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반짝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충청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덕성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이재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100만원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792
  • 다리오포作 여성문제극 ‘모든 집,침대‘/孫靜淑 기자(객석에서)

    ◎관객 사로잡는 ‘넘치는 익살’ 극단 민예가 공연중인 ‘모든 집,침대 그리고 교회’에서 가장 유명한 이는 극작가 다리오 포 이다.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타며 본격 소개됐지만 대학로 무대에선 일찌기 사랑받아온 이탈리아 작가다. 국가권력 횡포에 맞서며 억압받는 대중을 대변해온 ‘연극운동가’인 포의 매력은 ‘투쟁성’만은 아니다. 중세 어릿광대를 이은 넘치는 익살로 전혀 이론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번에 사로잡아버리는 힘이 있다. ‘…교회’에서 포는 여성문제에 덤벼들었다. 작품은 별개 소품 3개로 이뤄져 각각 여성 한명이 일인극을 하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번 무대에는 두개만 올랐다. ‘우리는 모두 똑같은 얘기를 가졌어요’에서 주인공은 아기 낳는 고통을 알게된 한 남자 얘기를 들려준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면 임신에 대한 아내의 두려움은 아랑곳없이 관계를 강제해도 되는 줄 아는 ‘전기기술자’. 어느날 아내의 헝겊인형이 그의 엉덩이 사이에 박혀 빠져나오지 않는 바람에 팔자에 없는 난산을 겪다 결국 펑터져버렸다는 것이다. ‘외로운 여인’은 더 직설적이다. 여자를 도구로만 여겨 집에 가둬버린 남편,그런 여인을 망원경으로 엿보는 앞집 남자,온통 화상을 입고도 가정부 건드리기를 멈추지 않는 시동생,육체적 사랑밖에 모르는 애인에게 포위돼 여인은 미치기 일보 직전이다. 포의 기지는 여기서 나타난다. 여인은 영화 ‘델마와 루이스’ 주인공들처럼 어떤 사탕발림에도 끝내 타협하지 않는다. 아니 델마나 루이스는 자신을 부숴버리지만 여인은 자기를 괴롭히는 바깥에 총부리를 겨눈다는 점에서 더 선동적이다. 생경한 구호에 그치기 쉬운 ‘비타협’에 익살의 살을 붙이는 포의 입심은 짜릿하기까지 하다. 젊은 여배우들의 연기는 사실 어설픈 감이 없지 않다. 무대도 누추하고 깜박깜박 호흡을 놓치는 조명이 한번씩 극의 흐름을 끊어놓는다. 하지만 어떤 불리한 여건도 작가의 반짝이는 생기를 죽이지 못했다. 9월30일까지 마로니에 극장. 744­0686.
  • ‘섬소년’ 이정선(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4)

    ◎장발때문에… 첫 앨범 10곡 ‘연금’/‘불신풍조 조장’‘자기 비하’ 갖가지 이유/좌절… 오기… 나중엔 빠져나갈 궁리만/“음악인에 맡기면 자연스레 풀릴 문제를…”/그룹활동 하면서도 ‘언더그라운드’ 고집 ‘닥터 기타’‘국내 최고의 기타 연주가’‘언더그라운드 음악계의 대부’….우리 가요계에서 기타와 언더그라운드 가수를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잔잔한 목소리로 시같은 노래말들을 쏟아내는 李正善씨(48). 20여년간 변함없이 노래를 하고 있지만 방송에서는 거의 모습을 대할 수 없는 고집스런 가수다.고교 1년때 기타를 처음 배웠고 서울대 미대 조소과 2년때 입대해 군악대에서 복무한뒤 복학전 아르바이트삼아 노래를 부른게 평생직업이 됐다.평생직업은 ‘언더그라운드 가수’.보이지 않는 다수의 군중보다 숨소리까지 느낄 수 있는 코 앞의 청중이 훨씬 좋아 ‘언더’를 택했다고 한다. 이 ‘언더’라는 명제가 지난 70년대와 80년대엔 가슴아픈 추억을 남겼지만…. 74년 봄.군에서 제대한지 1년이 지났을 때였다.언더그라운드를 무대로 활동하면서 대학가와 젊은이들에게 이름이 어느정도 알려져 있었다.가수생활을 일반인들에게 처음 공개적으로 알리는 앨범을 받아들고 마치 첫 아들을 얻은 것처럼 좋아했다.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6개월도 채 안돼 레코드 판매금지령이 떨어졌던 것.이미 전국에 5,000여장이 배포돼 있었다.발매금지와 함께 매장에 진열된 것들을 모두 수거하라는 당국의 서릿발같은 명령이었다.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다. 첫 앨범 ‘이리저리’에는 타이틀곡 ‘이리저리’를 포함해 모두 11곡이 실려 있었다.예기치 않은 불호령으로 수록곡 가운데 비교적 밝은 분위기의 ‘모두 다 함께’를 빼놓곤 10곡 모두가 금지곡 운명에 처하게 됐다.실린 노래들은 ‘바보가 되어’‘비오는 날에’‘청개구리 마음’ 등 모두가 일상의 마음을 크게 흔들지 않는 평범한 가사를 담은 잔잔한 분위기의 노래들이다. 앨범 전체가 금지곡집으로 묶였지만 사실상 문제가 된 것은 ‘거리’라는 노래 한 곡의 한 소절.“서로들 믿지 않는 사람만이 거리를 덮었네”가 10곡 모두를‘듣지못할 위험한 노래’로 묶는 단서가 됐던 것이다.‘불신풍조 조장’과 ‘자기 비하’‘문맥이 안통한다’ 는 등 그럴싸한 사유가 노래마다에 붙었다.유신정권의 치부를 애써 감추려는 올가미들이었다. ‘불신풍조 조장’ 등 다양한 금지 명분이 생겨났지만 공식적인 금지사유는 ‘장발’.당시 대대적인 단속 바람에 편승해 李正善의 장발이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레코드 표지모델로 본인 李正善씨가 등장했는데 머리상태가 장발이었다.표지제작 때 돈도 아낄 겸 동네 골목의 공중화장실 앞에서 긴머리를 한채 서있는 모습을 그대로 실었는데 보기좋게 걸려든 것.나중에 이씨가 머리를 짧게 깎고 문제의 노래 ‘거리’를 뺀 채 같은 앨범을 다시 냈는데 이 앨범은 아무런 문제없이 통과됐다.75년 하반기 큰 반응을 얻은 ‘섬소년’판이 그것으로 이 앨범이 사실상 공식적인 첫 앨범이 됐다. 76년 6월 두번째 앨범은 또다른 시련을 몰고 왔다.이번엔 다분히 의도적이었다.처녀 앨범에서 뼈저린 고통을 맛본 뒤 일을 저지른 것이다.‘건전가요를 삽입하라’는 당국의 지시대로 당대의 유행곡인 ‘새마을노래’를 넣었는데 ‘朴正熙 작사·작곡’으로 표기했던 것.당연히 레코드는 판매금지였다.금지사유는 여전히 표지모델의 장발을 문제삼은 ‘퇴폐’.이 앨범도 새마을 노래를 빼자 통과됐다. 李씨는 당시 거듭된 금지와 심의통과,그리고 해금의 악순환을 이렇게 돌이켜 말한다.“젊은 가수들은 대부분 상황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있었습니다.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맡기면 자연스럽게 불만이 해소되고 정리될 수 있는데도 강압적인 조치를 취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리석은 짓이었다고 봅니다.저만 해도 처음엔 좌절을 느꼈고 두번째엔 오기가 생겼는데 다음엔 숨바꼭질 하는 식으로 빠져나갈 궁리를 하게 됐던게 솔직한 심정입니다.사실은 은유적인 표현이 더 위험하고 무서운데…” 레코드가 거듭 판·금 조치를 당했지만 노래는 계속했다.당시 李光祚 韓英愛 등과 함께 4인조 보컬 해바라기를 구성해 서울 명동 가톨릭여학생회관에서 매주 토요일 공연을 가졌다.공연때마다 중부경찰서 정보과 형사들이 초대받지 않은 손님으로 꼬박꼬박 참석했다.명동 가톨릭여학생회관은 그때만해도 젊은이들이 금지된 노래들을 찾아 부르면서 젊음을 발산하던 요주의 감찰대상지.감시 요원들과 숨바꼭질을 해가며 어렵게 모임을 가졌던 만큼 수난도 많았다.가수들이 불려가기 일쑤였고 공연전 노래목록을 제출하는 사전검열도 숱하게 당했다.“형사들도 노래를 함께 부르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분위기를 유도해 가니까 점차 감시가 뜸해지고 나중엔 나오지 않게 되더군요” 79년 ‘풍선’,86년 ‘신촌블루스’를 만들어 활동하는 등 그룹활동을 병행하면서도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고집하고 있는 가수.요즘 흔한 ‘반짝가수’와 달리 언더그라운드를 배경으로 고집스럽게 음악에 매달려온 만큼 애환이 많다.지난 91년엔 기타 관련 전문서적 출판사인 ‘이정선 음악사’를 만들어 지금까지 40여종을 냈다.지난해까지 가끔 국악프로의 편곡과 연수를 맡기도 했지만 여러 가수들이 함께 어울려 노래하는 이른바 ‘떼창’ 프로그램 출연은 시종일관 절대사절.“언더그라운드 가수는 언더그라운드 가수 다워야 한다”는게 그 이유다. ◎사연들/말하는 사람 많아도 말 듣는 사람 없으니 말 같지 않은 말만이/은유적인 표현이 더 무서운데… ‘집권연장 연상시킨다’ 트집도/삶 얘기서 자연대상으로 변화 “말을 하는 사람은 많아도/말을 듣는 사람은 없으니/아무도 듣지 않는 말들만이/거리를 덮었네/신을 믿는 사람은 많아도/사람을 믿는 사람은 없으니/서로를 믿지 않는 사람만이/거리를 덮었네/웃음짓는 얼굴은 많아도/마음주는 사람은 없으니/아무도 받지 않는 웃음만이/거리를 덮었네” 74년 李正善씨의 첫 앨범중 문제가 된 ‘거리’의 가사다.“서로를 믿지않는 사람만이 거리를 덮었네”라는 대목이 ‘불신감을 심하게 조장한다’라는 이유로 당국의 미움을 샀다.이 노래를 빼고 앨범 표지모델의 머리를 장발에서 짧은 머리로 바꿔 다시 만든 앨범은 무난히 통과,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李正善씨의 노래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다가 나중엔 대부분 자연을 대상으로 삼게 된다.구태여 사람 이야기를 건드려 당국의 미움을 사지않겠다는 의도였다.“어리석고자 어리석고자/어리석고자 어리석고자/사랑이 지나도 그사람 떠나도/안타까움 모르는 바보가 되고저/죽음이 닥쳐도 하늘 무너져도/두려움 모르는 바보가 되고저/콩을 팥이라 미움을 사랑이라 속여도/의심을 모르는 바보가 되고저/배고프면 울음울고 배부르면 웃음웃고/속일 줄 모르는 바보가 되고저”(바보가 되어)“이제는 그만,이제는 그만해도/‘한번만 더 꼭,한번만 더’하고 미련이 남아/맘대로 해라,맘대로 해라하면/‘하기싫어 내가 왜 해’하는 고집이 있고/비오는 날이면 울음우는 청개구리처럼/후회할 것을 후회할 것을/착해져야지 착해져야지 해도/하지마라 하면 자꾸하고 싶은 청개구리 마음”(청개구리마음). ‘바보가 되어’는 유치환시 ‘바위’와 아주 흡사한 분위기의 노래.본래 가사의 의미와 동떨어지게 ‘지나친 자기비하’라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 그런가 하면 ‘청개구리 마음’은 ‘정서미숙’이 금지사유.청개구리 동화를 소재로 사람사는 이야기를 희화적으로 담은 노래지만 첫 귀절과 맨 마지막부분이 ‘정권연장’을 연상시킨다는 억지를 낳았다. ◎그의 길 ▲50년 대구 출생. ▲68년 용산고교 졸업. ▲68년 서울대 조소과 입학. ▲69년 군 입대. ▲73년 복학. ▲74년 첫 앨범 ‘이러저리’ 발표. ▲75년 앨범 ‘이러저리’ 수록곡 금지곡 조치.앨범 ‘섬소년’ 발표. 해바라기 공연활동 시작. ▲76년 졸업.두 번째 앨범 ‘이정선’ 발표. ▲86년 해금. ▲91년 출판사 ‘이정선 음악사’ 설립. ▲97년 MBC 국악 프로그램 ‘샘이 깊은 물’ 국악 편곡·연수. ▲현재 서울예전·동덕여대·동아전문대 출강.
  • 달라진 司正의 실체/梁承賢 기자(청와대 취재수첩)

    金大中 대통령은 공직자비리 수사의 중간보고를 받을 때 아무런 얘기없이 묵묵히 듣고만 있다고 한다. 어떤 때는 “관심이 없는 것 아닌가”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담담한 표정이라는 것이다. 측근정치인이 청구 ‘張壽弘리스트’에 올라있다고 일부 언론에 보도됐을 때도 확인지시 조차 하지않았다. 비서관들은 ‘뭐라고 한 말씀하시겠지’라는 ‘기대’가 무너져 섭섭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청와대에선 李康來 정무수석만이 개인적인 관심으로 알아봤을 뿐이다. 정치보복과 표적사정(司正)은 절대 안된다는 金대통령의 오랜 정치철학에 따른 것으로 보이지만,정부가 진행중인 사정작업의 실체를 엿볼 수 있다. 지난 91년 수서사건 당시 야당총재였던 金대통령은 정권 차원의 정경유착 비리로 판단하고 거세게 밀어부쳤다. 분노는 용솟음첬고,서슬은 시퍼렀었다. 그러나 결과는 태산명동(泰山鳴動)에 서일필(鼠一匹)이었다. 재수없이 먼저 혐의가 드러난 국회의원 몇사람하고 청와대비서관 한사람만 구속하는 것으로 덮어진 것이다. 수서에 이은 한보사건도 마찬가지였다. 금융권에서 수조원의 돈이 왔다갔다 했으나 수사결과 밝혀진 검은 돈의 실체는 다 합쳐도 300억원이 채 못되었다. 정치권의 실세(實勢)가 금융권 인사를 좌지우지하고,정경유착이 판을 치던 시절이었다. 金대통령은 언젠가 “수서를 제대로 처리했다면 한보사건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 우(愚)를 다시는 범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청와대 사정관계자들은 ‘세탁에 세탁을 거듭한’ 은행계좌는 추적하는데만 1년은 족히 걸린다고 한다. 조급한 여론에 밀려 허겁지겁 성과를 내놓으려고 하다보면 큰 도둑은 다놓치고 재수없는 작은 도둑만 잡아들이는 결과만 낳게 된다는 지적이다. 그런 탓인지 현정부의 사정은 요란하지 않다. 또 예전처럼 일과성이 아닌 관계부처의 통상활동이다. 그것은 어쩌면 金대통령의 스타일에서 연유한 것인지 모른다. 민주화 투쟁시절, 金대통령은 ‘투 톱’으로 金泳三 전 대통령과 함께 시위대 앞에 선 적이 있다. 시위대가 길가 약국 앞에서 잠시 주춤하고 있을때, 쇼맨쉽에 강한 金전대통령은 카메라기자들을 의식하며 독려의 구호를 외쳤다. 그 사이 DJ는 약국에 들러 피로회복제 너댓박스를 사서, 체력이 약해 뒤에 처져있던 사람들에게 하나씩 돌렸다. 표나지 않게­. 金대통령은 결코 사정을 무덤덤하게 지켜보지 않는다. 사정은 ‘반짝 쇼’가 아니다. DJ의 치밀한 성격을 알면, 현정권 사정의 끝이 보인다.
  • 시대를 알면 불황은 없다

    ◎시장변화 대응속도따라 극심한 부침/IMF 틈새 파고든 절약형 상품 인기/뛰어난 기술력·혁신적 마케팅이 열쇠 국제통화기금(IMF) 시대에도 탈출구는 있게 마련이다. 틈새를 노려 스스로 시장을 창출하는 제품이 있는가 하면 기존 시장에서 새로운 왕자로 떠오르는 상품도 있다. 시절이 어려울수록 중원(中原) 쟁탈전이 더 치열해지고 그 만큼 부침이 심하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히트 상품은 시절을 가리지 않고 늘 새롭게 탄생한다. 특히 시장 상황이 급변한 요즘에는 얼마나 빨리 변화에 대응하느냐가 관건이다. 서울신문사는 너나 없이 어려운 시기를 맞아 소비자들의 현명한 선택을 유도하고 지속적인 히트 상품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98 상반기 서울신문 선정 히트상품’을 발표했다. 6월 한달간 신청접수를 받은 뒤 학계,광고대행사,업계 전문가로 구성된 선정위원회가 마케팅,판매량,인지도,시장 점유율 등을 토대로 15개 부문 46개 상품을 엄선했다. 이들 상품은 시중에서 공전의 히트를 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지만 각양각색의 성공 배경을 지니고 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기능을 개선하거나 시대에 부응하는 새 브랜드를 내놓아 성공한 사례도 있고,기발한 광고 전략으로 소구(訴求)효과를 높여 히트상품 대열에 끼여든 경우도 있다. 이 중에는 ‘싼게 비지떡’이라는 기존의 상식을 뒤엎으면서 단기간에 시장을 휩쓸어 동업 타사의 부러움을 산 경우도 적지 않다. 이들 상품의 각기 다른 성공 사례를 제품별로 정리했다. ◎심사평/兪鵬老 연세대학교 명예교수·經博/상품 고유성능·비교우위성 등 기준 선발/국산화 비율·소비자욕구 만족도에도 비중 국제화와 무한 경쟁 속에서 산업기술에 따라 수많은 제품이 개발되고 개량돼 신상품과 개량된 상품이 시장에 홍수를 이루게 된 유사 상품시대에 동종류품 중에서 비교우위로 뛰어난 가치를 발휘하여 소비자로부터 환영받는 상품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히트 상품이다. 이번에 서울 신문사에서 히트 상품을 찾아내 평가하는데는 다음과 같은 기준 적용됐다. ①상품 고유 성능 ②동종류품과의 비교 우위성 ③브랜드와 디자인 ④국산화 비율 ⑤품질에 따른 판매가격의 적정성 ⑥소비자 욕구 만족도 ⑦판매실적 ⑧경제·사회 발전과 소비생활 향상 기여도. 이러한 심사기준을 척도로 15개 부문에 걸쳐 46개 제품을 히트상품으로 선정하였다. 히트 상품을 선정하고 이것을 널리 알림으로써 거시적으로는 우리나라 제품기술의 발전과 가치 있고 수준 높은 상품이 출현하고 있음을 널리 알리고, 구체적으로는 뽑힌 제품의 올바른 평가로 해당 기업에게 명예와 자신을 주고 보다 발전하도록 격려하며,아울러 동 종류 기업들이 다 같이 분발하여 세계 일류 또는 일등 제품을 만들어내도록 촉구할 수 있다. 히트상품으로 선정된 기업체에 대해 축하와 더불어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바라며 히트상품 제도를 만들어 뜻 있는 일을 하는 서울신문사에 경의를 표한다.
  • 통통 튀는 기획 한국영화 떴다!/美 직배사 횡포속 히트작 풍성

    ◎참신한 소재·재치있는 아이디어/여고괴담·조용한 가족 등 관객몰이/SF ‘퇴마록’ 액션 ‘쉬리’ 등 개봉 채비 기획에 승부를 건다. 올 상반기 한국영화는 제작이 17편에 그치는 40년래 최악의 상태에 빠졌으면서도 흥행에서는 ‘여고괴담’(28일 현재 50만)‘8월의 크리스마스’(40만) ‘조용한 가족’(37만) ‘찜’(23만) ‘투캅스 3’(15만,이상 서울 기준)등 5편의 히트작을 내는 성공을 거두었다. 올들어 IMF한파로 관객이 격감한데다 할리우드 직배사들이 더욱 기승을 부리는데도 이처럼 예년보다 뛰어난 흥행성적을 거둔 까닭은 철저한 기획이 뒷받침 됐기 때문. ‘여고괴담’(박기형 감독,시네2000 제작)은 공포물 인기를 예견,귀신영화라는 외형을 갖추고 그 틀에 누구도 취급 못한 교육현장의 문제점들을 구체적으로 담아 고속으로 흥행가도를 질주했다. ‘여고괴담 신드롬’이라는 신조어까지 낳은 이 영화는 개봉 4주만에 전국적으로 150만 관객을 돌파했으며 개봉 초보다 현재 상영관이 더 늘어난 이변을 연출했다. ‘조용한 가족’(김지운 감독,명필름)은 공포에 코믹함을 가미한 ‘코믹 잔혹극’이란 새 장르로,로맨틱 코미디인 ‘찜’(한지승 감독,황기성사단)은 연하남자와 연상여자의 사랑을 재치있게 처리해 각각 인기를 모았다. 이에 힘입어 하반기에 개봉하는 한국영화들도 제각기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무장,관객몰이에 나설 예정이어서 충무로의 기대를 모은다. 현재 개봉을 앞두었거나 한창 제작 중인 한국영화는 10여편. 이 중에서도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퇴마록’‘처녀들의 저녁식사’‘쉬리’등이 특이한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시네마서비스가 제작하고 흥행의 귀재 강우석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은 IMF세태를 신랄하게 풍자한 블랙코미디. 일에 파묻혀 밤에 ‘남편 구실’조차 제대로 못하던 가장이 정리해고 대상에 오르자, 아내가 그동안 생과부 노릇의 책임을 지라며 대기업을 상대로 위자료 청구소송을 낸다는 줄거리다. 안성기 문성근 심혜진 황신혜 등 내로라 하는 연기파들을 총동원했다. 8월1일 개봉예정. ‘퇴마록’(박광춘 감독,폴리비전 엔터테인먼트)은 대형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기공·부적술·초능력·엑소시즘 등이 횡행하고 액션·멜로·스릴러·판타지가 두루 섞인 작품으로 할리우드 영화에 못지않은 SF대작으로 만들어 첫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되겠다는 야심찬 기획에서 출발했다. 한창 촬영중인 ‘처녀들의 저녁식사’(임상수 감독,우노필름)는 여성의 성적(性的) 담론을 대담하게 보여줄 계획. 29살 동갑내기 세 노처녀들이 주고받는 대화,그리고 그들의 행적에서 ‘내숭떨거나 숨기지 않는’ 적나라한 여자의 성을 그려낸다. 상당히 에로틱한 소재지만 일반 에로영화와 다른 점은 철학과 사회의식을 담는다는 것이다. ‘쉬리’는 ‘은행나무 침대’의 강제규 감독이 연출하는 작품. 남북한 특수요원들의 팽팽한 대결이라는,영화계에서는 한동안 다루지 않은 소재로 액션대작을 겨냥했다. 기획에 2년이 걸렸다는 ‘쉬리’에는 한석규·최민식·송강호 등 인기와 연기력을 함께 갖춘 배우들이 출연한다. 이밖에 그룹 젝스키스가 출연하는 하이틴영화 ‘세븐틴’(7월17일 개봉), 양택조·최종원 등 조연급 연기파들을 전면에 내세운 블랙코미디 ‘기막힌 사내들’,‘찜’에서 한걸음 더 나가 연하인 여동생의 약혼자와 사랑에 빠진 중년여자 이야기를 에로틱하게 다루는 ‘정사’도 관심을 끄는 기획영화들이다.
  • 늦깎이 춤꾼 김현옥씨/日에 한국정원의 美 전파

    ◎도쿄 테아터 카이 국제페스티벌 참가 ‘무용수가 되려면 무용을 전공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해뵈는 이 명제가 현대무용에 와서 조각나고 있다. 데시카와 사부로는 조각을 공부했고 호세 리몬은 미술에서 돌아섰지만 지금은 현대무용가 이전 경력이 흐릿해질 만큼 ‘전향’에 성공했다. 바다건너를 더듬느라 애쓸것도 없다. 중견안무가 김현옥씨(44)는 대학 불문과 졸업후 연극배우가 되고 싶었을뿐 춤은 안중에도 없었다. 다시 진학한 서울예전 선생의 매서운 눈썰미가 아니었다면 한국 현대무용계는 반짝이는 아이디어의 샘 하나를 놓칠 뻔했다. 지난 5월 베를린 페스티벌에서 호평받은 김씨가 이번엔 일본무대에 나선다. 8월5일부터 열리는 동경 테아터 카이 국제 무용페스티벌에 초청된 것. 96년 2회때 ‘윤이상추모작’으로 참가한뒤 또다시 초청장을 받았다. 베를린에서 북채로 장독을 두드려가며 죽음이라는 존재론적 문제에 한국적 화법으로 접근했던 김씨,이번엔 정원,특히 한국정원이 키워드다. “파리에서 늦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우연히 충남 외암리민속마을 한식정원에 들렀는데 경이롭더군요. 툇마루에 앉았자니 대나무 서걱이는 소리,물소리가 귀를 간지르며 한 우주가 숨쉬는 듯했지요. 이를 프랑스 특유의 후원(後園)에서 받은 느낌과 접붙여 제 내면의 ‘정원’을 풀어내고 싶어요” 올해 ‘테아터…페스티벌’의 기획은 외국 무용수와 일본 다른 장르 예술과의 만남. 무용가마다 과학자,서커스단장,작곡가,가부키 연구가,건축가 등을 하나씩 붙여줘 장르와 국경을 초월하는 ‘스며들기’를 시도한다. 김씨는 건축실내 디자이너 미키 하야시와 8월5일∼7일 3일간 공연할 계획. “전통 와당무늬 의상과 윤이상 현악4중주 배경음악으로 한국색을 물씬 선보이게 될듯” 싶단다. 초청받은 8팀 명단엔 라인힐드 호프먼,수잔 크리스너,다니엘 나그린 등 주목받는 이름들이 보인다. 공연 끝나면 김씨는 이들과 함께 워크숍 강사를 맡고 2000년의 대규모 공연 ‘불가사의한 중국 관리인’ 오디션 심사위원도 겸하게 된다. 얼마전 한국인 처음으로 유럽의 유명 발레잡지 ‘발레 탄츠’ 표지인물로도 뽑혔던 김씨. 창무회와 손잡고 ‘영상과 춤의 만남’이란 대주제로 무용영화도 찍는 등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는 11월말∼12월초쯤 공개될 듯.
  • ‘민족 서정시의 계승자’/故 박재삼 시인 詩 세계 여행

    ◎1주기 추모 60·70년대 작품묶어 ‘시전집 1권’ 발간/시집 2권·산문집 준비 ‘해방이후 한국 서정시의 정점’에 자리잡은 박재삼(朴在森) 시인이 주위의 안타까움을 훌훌 털고 세상을 떠난 지도 1년.그의 ‘시전집 1권’이 민음사에서 나왔다. 이 전집은 시인의 첫번째 시집 ‘춘향의 마음’(62년,신구문화사)부터 다섯번째 시집 ‘뜨거운 달’(79년,근역서재)까지를 묶은 것이다.시 세계의 정수(精髓)가 담긴 시절의 작품들이다.생전에 펴낸 시집을 모아 두 권을 더 펴내고 한 권의 산문집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한 작가를 떠올릴 때 한 마디로 집약할 수 있는 말,일체의 형용사를 다 발라내고 박재삼 시인 앞에 붙는 것은‘서러움’이다.그에겐 삶이 서러웠고 시가 서러웠다.그의 설움이 세상에겐 위로였다. 인생의 절반을 병마와 가난과 싸우면서도 올곧은 자세를 흩뜨리지 않았던 박재삼 시인의 존재는 한국 시사(詩史)적인 의미로만 보더라도 김소월,서정주로 이어지는 민족서정시의 계승자였다.전통적인 리듬에 고유의 정서인 한을 접맥시켜 온 흐름에풍부한 물줄기를 보태고 있다. 그 물줄기는 지금도 의미를 띠면서 유유히 흐른다.80년대엔 ‘싸움터의 소리’에 치이고,90년대엔 ‘현란한 감각의 난장(亂場)’에 치이면서 지칠 대로 지친 현재의 시단에서 그의 시가 지니는 위치는 어떤 것인가. 전집을 기획한 문학평론가 이광호씨는 이렇게 말한다.“시인의 1주기를 맞아 한국 서정시의 원류를 탐색하는 징검다리를 놓아 보고 싶었다.90년대를 고비로 선정성·실험성이 주춤하는 우리 시의 현주소에서 시의 서정성에 대해 밀도있는 고찰을 하려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시인이 박재삼이다” 세월이 지나도 빛바램이 없는 시인의 육성.(‘천년의 바람’) 자연의 변함없음에 빗대어 인간사의 가벼운 팔랑거림을 나무라고 있다.영리에 눈먼 세상의 덧없음을 한탄한다.그 음조는 비애미(悲哀美)다.(‘사람이 사는 길 밑에’) 시인의 몸은 떠나도 노래의 반짝거림은 남는다.변함없는 음성으로 시 정신의 한 갈래를 지켜 온 그의 자취를 더듬다 보면 오늘의 노래도 더 풍성해지리라. 시인은 1933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53년 ‘문예’지에 ‘강물에서’,55년 ‘현대문학’에 ‘정적’등이 추천되어 등단했다.고려대 국문과를 수료했으며 평생 가난을 벗삼아 지냈다.살아갈 방도 삼아 서울신문에 ‘요석자(樂石子)’라는 이름으로 바둑 관전기를 싣기도 했다.
  • 고구려 밤하늘/任英淑 논설위원(外言內言)

    고구려의 하늘을 본다.밤하늘의 중심에 북극성이 자리잡고 그 왼쪽 위로 북두칠성이 빛난다.왼쪽으로 황소자리,그 위로 오리온자리 등 다른 별자리도 선명하다. 지난 3월 일본 아스카의 기토라 고분 천장에서 발견된 천문도가 고구려의 수도 평양 부근에서 관측된 별자리를 그린 것으로 밝혀졌다.일본 도카이대학과 NHK방송이 이 천문도를 컴퓨터로 처리해 분석한 결과,별자리의 관측 위치가 평양주변인 북위 38∼39도이고 관측연도는 기원전 3세기∼기원후 3세기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컴퓨터가 재구성한 기토라 고분의 천문도는 거의 2천년의 세월을 성큼 뛰어 넘어 고구려인들이 보았던 하늘을 우리에게 보여준다.놀랍고 반갑다.그리고 절로 옷깃이 여며진다. 고구려의 천문역학은 당시 수리천문학에서 세계 최고수준에 도달해 있었던 중국에 못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고구려 고분(무용총·각저총)의 별자리 그림과 석각본(石刻本)으로 남은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가 그 사실을 확인해 준다. 고구려 고분 천장에 그려진 별자리는 주요 별자리 위치를 정확하게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별모양도 육안으로 보았을 때의 반짝이는 5각형이 아니라 천체 망원경으로 관찰한 듯한 둥근 모양이다.또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조 태조때 만든 것이지만 당시 權近이 남긴 글에 의하면 고구려의 천문도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여기에는 1467개의 별들이 둥근 형상으로 새겨져 있고 그 별자리는 현대 천문학자들이 계산한 별자리와 일치한다. 사실 우리 천문학자와 과학사학자들은 기토라 고분의 천문도가 이 ‘천상열차분야지도’와 흡사하다는 것에 이미 주목하고 있었다.NHK가 2주일전 全相運 전 성신여대 총장을 통해 羅逸星 교수(연세대)에게 코멘트를 요청하면서 컴퓨터가 재구성한 기토라 고분 천문도를 보내 왔고 우리 학자들은 두 천문도의 구도가 너무나 똑같다는 사실에 놀랐다.기토라 고분 천문도에 나타난 별은 약 600개(1000여개로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별자리의 모양이 천상열차분야지도와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다. 기토라 고분에서는 일본에 불교와 천문학을 전한 백제 스님 觀勒의 목간(木簡)이 발견되기도 했다.기토라 고분과 고구려 백제의 삼각관계가 규명되면 우리는 다시 한번 시간을 넘나드는 역사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학교폭력 대책 없나(사설)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아이가 자살하는 모습을 도대체 언제까지 지켜보아야 하는가.울산의 한 중학생이 같은 반 학생들에게 2년동안 온갖 폭행과 괴롭힘을 당해 오다가 학교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사건은 우리를 참담하게 만든다. 우리 사회에서 학교폭력이 문제되기 시작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그런데도 학교폭력 문제가 아직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폭력의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해야 하는 학생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어른들의 무관심과 무능의 결과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이번에 자살한 학생이 당한 폭력의 양상은 너무 끔찍하다.수돗가에서 물고문을 하고 화장실에서 허리띠로 채찍질을 한 것이 같은 중학생이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흉악한 조직폭력배나 할 짓인 잔혹한 폭력을 10대의 학생들이 동급생을 상대로 휘두른 것이다. 학교폭력은 여러차례 사회문제화됐고 그때마다 당국의 발본색원 대책이 발표되곤 했다.지난해에는 학교폭력 근절대책회의가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려 4개 부처가 합동대책을 마련했다.대검찰청은 ‘자녀 안심하고 학교 보내기 운동’추진본부를 발족하고 전담 수사반까지 설치했다.중·고교에 전담 경관 1명씩을 배치한다는 방침도 발표됐고 학교폭력 신고전화와 ‘그린 포스트 카드’란 이름의 신고엽서 제도도 만들어졌다. 이번 사건은 그런 대책들이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했음을 보여준다.피해학생이 2년동안 고통을 당하면서 여러차례 자살 기도를 한 사실을 그 부모와 교사는 몰랐고 친구들은 보복이 두려워 침묵했다.학교폭력의 피해자가 한해 15만명으로 추산되지만 피해학생의 65%가 보복이 두려워 신고하지 못한다는 조사결과도 있다.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공권력도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학생들이 부모와 교사,즉 어른을 믿고 의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폭력의 피해를 호소하고 해결을 기대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그러자면 정부 당국은 물론 가정·학교·사회가 공동으로 한때의 반짝 캠페인이 아닌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조직화된 범죄로서의 학교폭력에 대해서는 강력한처벌과 제재조치가 필요하다.그러나 학교폭력은 사회범죄와 달리 법적 대응과 엄벌만으로 해결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어려움을 지니고 있다.피해자도 가해자도 우리 아이들이고 그들을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키울 책임을 우리 모두 지고 있기 때문이다.학교폭력 근절에 우리 모두 힘을 모아야 겠다.
  • 반짝 아이디어로 2억 절감/경남 통영기상대 權圭喆 부대장

    ◎관측장비 연결망 국가전산망 활용 제안 기상청이 직원 1명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연 2억5000만원이란 큰 돈을 절약하게 됐다. 경남 통영기상대 權圭喆 부대장(49·6급).최근 전국 400여곳에 설치된 자동기상관측장치(AWS)의 연결망을 현행 한국통신 전용회선에서 초고속국가전산망으로 전환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기상청은 현재 한국전산원에 초고속국가망 사용신청을 내놓고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또 權씨를 1계급 특별승진시킬 계획이다. AWS는 각 지역의 온도 습도 풍향 풍속 등 기상 관측의 기초자료를 자동으로 탐지,기상청 중앙컴퓨터로 1분마다 송출해 주는 장치.회선을 항상 연결하고 있어 비용이 한해에 4억6700만원에 이른다. 앞으로 초고속국가망을 이용하면 연간 2억1490만원으로 비용이 2억5200여만원 정도 절감된다. 지난 77년 9급으로 공직을 출발한 權씨는 AWS,기상레이다,해상 부이 등을 20여년 관리·관측해 온 기상통신 분야의 베테랑. 그동안 지리산 중산리,통영 매물도 욕지도,거제도 서이말등대 등 격오지에서 근무하면서도 관련 전문서적과 인터넷·신문 등을 뒤적이며 아이디어를 개발해 왔다. “우리 부처 살림에 보탬이 돼 무척 기쁩니다.앞으로 더욱 깊이 생각하고 좋은 아이디어를 짜내겠습니다” 부인 徐末德씨(43)와 사이에 晋暎(23)·祐暎 쌍둥이 형제를 두고 있다.
  • 스리랑카 불교유적(세계 문화유산 순례:73·끝)

    ◎그곳에 가면 ‘부처’가 된다/아누라다푸라­부처가 정각이룬 보리수 50m 루완웰리탑 위용/폴론나루와­드러누운 열반상 푸근/시기리야­200m 암벽에 세운 궁전 벽화 미인 살가운 미소 【스리랑카=金鍾冕·金明國 특파원】 인도양 위에 한 점 외로이 떠있는 망고모양의 섬 스리랑카.‘찬란하게 빛나는 섬’이라는 뜻을 지닌 스리랑카의 옛 이름은 실론이다.동북부의 타밀 반군과 14년 넘게 내전을 치르고 있는 나라지만 스리랑카에는 정신적 풍요로움이 깃들어 있다.유구한 불교적 전통 때문일까. 스리랑카에는 기원전 3세기 인도 아쇼카왕의 아들 마힌다가 불교를 처음 전전했다.석존이 열반한 직후에 전파된 소승불교였다. 스리랑카의 불교는 신할라 왕조의 보호 아래 민중 속에 깊숙이 뿌리를 내렸다.식민세력인 포르투갈이나 네덜란드가 불교를 박해했을 때에도 스리랑카사람들은 미얀마나 타이의 고승을 맞아들이는 등 소승불교의 전통을 굳건히 지켜나갔다.스리랑카는 지금도 소승불교의 성지로 숭앙받고 있다. 스리랑카는 전국이 문화유적지라고 할 만큼 고대 문화가 온전한 형태로 보존돼 있다.그 유산은 주로 아누라다푸라와 폴론나루와,그리고 캔디를 잇는 이른바 문화삼각지대(cultural triangle)와 시기리야에 몰려 있다.아누라다푸라는 기원전 5세기경에 세워진 스리랑카의 첫 수도다.콜롬보에서 북쪽으로 200㎞쯤 떨어진 이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보리수인 ‘스리 마하 보리수’가 있다.전하기로는 기원전 3세기 인도 아쇼카 왕의 딸 상가미타가 인도 부다가야의 보리수 가지를 가져와 옮겨 심은 것이다.이 보리수는 부처가 정각(正覺)을 이룬 나무로 신성시된다.수령(樹齡)이 2천200년이 넘는 이 보리수는 잎은 무성하지만 줄기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가늘었다.보리수를 지나 오른편에는 40개씩의 돌기둥이 40줄로 늘어서 있는 ‘로하 파사다’ 절터가 있어 그 옛날의 영화를 전해 줬다.그 너머로는 높이가 50m에 이르는 루완웰리 대탑이 하늘을 찌를 듯 위용을 드러냈다.이 탑은 338개의 코끼리 조각품으로 둘러싸여 있어 이채로웠다. 11세기초 남인도 타밀족의 침입으로 타격을 받은 스리랑카는 수도를 아누라다푸라에서 폴론나루와로 옮겼다.밀림 속의 고대도시 폴론나루와의 유적은 남북으로 나란히 자리잡고 있어 둘러보기 편했다.이 옛 도읍에 남아 있는 유적들은 대부분 비자야 바후 1세와 파라크라마 바후 1세 두 왕 시대의 것들이다.폴론나루와에서의 주목거리는 단연 파라크라마 바후 1세 때 세워진 갈비하라 불교사원이었다.이 곳에는 열반상·입상·좌상 등 3기의 불상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길이가 14m나 되는 열반상은 오른팔로 머리를 괴고 왼팔은 몸을 따라 쭉 뻗은 형상이었다.열반상 특유의 좌우 크기가 다른 발 모습도 볼 수 있었다.발 밑에 자잘하게 뻗친 연꽃의 뿌리는 땅을,꽃은 하늘을 향했다.입상의 높이는 7m,좌불상은 5m에 달했다.팔짱을 끼고 있는 입상은 석가의 수제자인 아난 존자라고 한다.하지만 연꽃대좌에 서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석가의 제자가 아니라 깨달음을 얻은 석가라는 설도 있다.좌불상은 진리를 터득한 석존을 나타낸 것이다. 계율을 중시하고 자기 인격완성에 힘을 쏟는 소승불교의 참뜻을 새기며 시기리야로 발길을 돌렸다.시기리야는 5세기 카샤파 왕조때의 수도로 고고학적으로 특히 가치있는 유적지다.폴론나루와에서 시기리야까지는 약 70㎞.자동차로 정글 속을 50분 가량 달리니 곧추선 적갈색의 바위산이 거대한 요새처럼 다가왔다.이 시기리야 록은 예술가이자 정신이상자이기도 했던 카샤파왕이 부왕을 죽이고 왕좌에 오른 뒤 후환이 두려워 바위 꼭대기에 세웠다는 궁전 터다.암벽의 높이는 200m는 족히 됐다.이곳이 세계적인 명소가 된 것은 스리랑카의 대표적인 예술작품으로 평가받는 시기리야 벽화 때문이다. 벽화를 보려면 천야만야한 낭떠러지를 타고 꼬불꼬불 나 있는 철제 계단을 올라야 했다.그것은 마치 외줄을 타듯 고도의 정신집중을 요하는 고행이었다.정상에 오르니 앙가슴을 훤히 드러낸 시기리야 벽화 미인이 살가운 미소로 이방객을 맞아 줬다.시기리야 벽화는 왕의 시녀들의 시중을 받고 있는 압살라라는 요정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이 ‘시기리야 레이디’는 당초 500명이 넘었지만 지금은 훼손돼 18명만 남아 있다.시기리야 벽화 아래쪽에는 ‘미러 월(mirror wall)’이라 불리는 회랑 벽이 있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달걀 흰자와 꿀,석회 등을 이겨 칠했다는 ‘거울 벽’은 진주처럼 반짝거렸다.벽에는 역대 왕조의 흥망을 노래한 서사시와 시기리야 벽화의 여인을 칭송하는 시들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이 시들은 신할라어로 씌여진 최초의 문학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부처의 치아사리를 모신 불치사(佛齒寺)로 유명한 고도(古都) 캔디는 신할라 왕조의 마지막 도읍지다.살색 벽에 갈색 지붕을 한 불치사는 인공호수인 캔디호를 끼고 있다.이 사원은 4세기에 자이나교의 세력에 쫓긴 남인도의 한 왕녀가 부처의 치아를 머리카락 속에 숨겨 스리랑카로 가지고 왔다는 전설을 안고 있다.그 부처의 치아는 지금도 불치사 본당에 있는 일곱 겹의 황금상자 속에 보관돼 있다.스리랑카 사람들은 이것을 민족의 상징이자 최고의 자랑거리로 여긴다.스리랑카에서는 매년 7∼8월에는 불치 축제가 열린다.화려한 의상을 걸친 코끼리의 등에 부처의 치아를 싣고 시내를 한바퀴 도는 행사다.‘불심(佛心)의 나라’스리랑카에 가면 부처의 얼굴을 닮는다. ◎여행 가이드/콜롬보서 200㎞ 거리… 시기리야는 버스타야 아누라다푸라는 신시가지와 구시가지,유적지의 세 구역으로 나뉜다.유적지는 도시를 흐르는 말와투 강의 서쪽에 주로 있다.유적순례는 유적지구 남쪽 끄트머리에 있는 이수루무니야 사원에서 출발하거나 스리 마하 보리수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다.폴론나루와는 유명한 관광지이지만 교통은 좀 불편한 편이다.아누라다푸라에서 폴론나루와까지는 하루 여러 차례 버스가 다닌다.시기리야까지는 철도가 다니지 않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가야 한다.직행편이 없을 경우에는 스리랑카 최대의 석굴사원이 있는 담불라를 거쳐 가야한다.‘가장 스리랑카다운 도시’로 불리는 캔디에서는 캔디왕조시대에 궁전연회에서 추었던 춤에 민속무용적 요소를 가미한 캔디안 댄스를 관람할 수 있다.
  • IMF시대 인력시장 반짝/실직자 선거운동에 몰린다

    ◎일당 4만5천원… 유급운동원 문의 쇄도 ‘유급 선거운동원 자리를 잡아라’ IMF 사태로 일자리를 잃은 실직자들이 지방선거 운동원 자리를 얻기 위해 몰려들고 있다.짧은 기간이지만 선거가 반짝 인력시장이 되고 있다. 선거기간 동안 유급 선거운동원으로 활동하면 일당 3만원과 식비 1만5천원 등 하루 4만5천원을 받을 수 있다. 후보등록이 끝나고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된 21일에도 각 선거운동 사무소에는 유급 선거운동원을 희망하는 실직자들의 문의 전화가 쇄도했다. 서울의 한 선거사무소 관계자는 “후보등록을 마친 뒤 실직자로 보이는 사람들의 문의전화가 하루 10여통씩 걸려온다”면서 “‘선거 운동원으로 일하면 일당을 얼마나 주느냐’고 묻는 전화가 많다”고 말했다. 강남구청장에 출마한 한나라당 權文勇 후보는 이날까지 10여명의 실직 가장을 유급 운동원으로 채용했다.權후보측 관계자는 “지금도 실직자들의 문의전화가 하루에 10여통씩 걸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금천구청장 후보로 나선 국민회의 潘尙均후보와 서초구청장에 출마한 한나라당 趙南浩후보측도 관내 어려운 실직 가장을 유급 운동원으로 선발할 계획이다.두 후보측은 “생면부지의 실직자들이지만 면접을 통해 책임감 있고 성실한 사람을 유급 선거운동원으로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구 선거관리위원회에도 실직자들의 문의전화가 하루 10여통씩 걸려오고 있다.부재자투표용지 발송작업과 투표함 운반,투·개표 참관 등 하루 2만∼5만원을 벌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다.
  • 함신익 지휘 KBS 정기연주회

    KBS교향악단이 22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23일 KBS홀(이상 하오 7시30분)에서 5월 정기연주회를 갖는다.상임지휘자 문제로 한바탕 파동을 겪은 뒤끝이라 얼마나 빨리 어수선함을 털어내며 ‘난국’수습능력을 보여줄지 관심을 기울이는 눈길이 많다. 환난(換亂)탓에 외국 명문 교향악단 심포니를 즐길 수 없게 됐다고 안타까워하기 전에 KBS교향악단 정기연주회 역대 협연자 명단을 꼼꼼히 뜯어보라.묻혀 있는 보석을 발굴해 세우는 기획 안목의 탁월함이 반짝인다.이번의 지휘자 함신익과 바이올린 협연자 살바토레 아카르도도 여간한 선구안의 선택이 아니다. 함씨는 미국 라이스대·이스트만 음대에서 지휘를 전공한뒤 폴란드 그레고르 피텔베르크 국제지휘 콩쿠르에서 2위 입상,현재 예일 음대 교수로 예일대 심포니 상임지휘도 맡고 있는 국제파.아카르도도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현역 바이올리니스트로 ‘재래한 파가니니’라는 별칭까지 붙은 테크니션이다. 연주회는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서곡으로 막을 올려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1번,히나스테라 ‘에스탄치아’ 발레모음곡,레스피기 ‘로마의 소나무’까지 두루 순례한다.BBC·NHK교향악단 부럽잖은 앙상블을 우리 밑천으로 이뤄보자는 KBS향의 기합소리가 기대된다.781­1573.
  • 슈베르트 D.956.(명반과 함께하는 음악여행:1)

    ◎눈물 부서져,광휘(光輝)로운…/베토벤 장례식후 유언으로 쓴 4악장/안개,흐느낌 영롱한 눈물 아! 베토벤 죽음의 安息/절정이 쇠한 미완성 아찔한 현기증… 음악 작품에는 작곡가의 혼이 있습니다.그의 삶이 있고 시대적 배경이 있습니다.명연주가가 그것을 살려 냅니다.金正煥 시인의 지상 음악감상실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1.바이올린,비올라,첼로.세 겹 현음(絃音)이 겹쳐 전설같은 안개가 형성된다마치 시작은 시간이 아니라 공간이라는 듯이.비장(悲壯)이 낮고 무겁다. 그러나 짧다.선율이 잠시 흐르다가 흩어질 틈도 없이 현악기들이 갈라진다.바이올린은 길길이 치솟고 첼로는 둔중하게 깔리고,비올라는 양자를 수습치 못한다.무언가 찢어진다.바이올린 음이 제 스스로 분리되어,하나가 아니고둘이다.아니 여럿이다.첼로 음은 무거운 채로 균열되고…. 음악은 그렇게 흐느낌의 생애를 시작한다.현악5중주 D.956번.슈베르트는이 작품을 생애 마지막 유언으로 썼다.1827년 3월 29일 베토벤 장례식에서그는 관을 옮겼다. 2.베토벤은 그에게 평생 거대한 벽이었다.비엔나의 한 카페에 베토벤은 늘같은 자리에 무뚝뚝하게 앉아 있었지만 슈베르트는 자기소개도 제대로 못하고 더듬거렸었다. 그러나 더 구체적인 슬픔의,원흉이 그의 몸 안에 도사리고 있었다.매독이그의 몸에 치명적으로 번진 상태였던 것.그런데,어떻게,아름다운 음악이? 그러나 그렇게 음악은 고통의 생애를 ‘고통스러울수록 아름답게’ 액정화(液晶化)하기 시작한다.이듬해 10월 2일 그는 피아노 소나타 세 편 ,하이네시에 곡을 붙인 가곡 여섯편을 라이프치히 출판업자에게 보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위대한 유언에 달하는 걸작이다.그러나 그 모두를 합해도 그가 ‘써 볼 참’이라고 덧붙인 현악5중주 한 편을 능가하지 못한다. 출판업자는 ‘노래’에만 흥미를 보였다.11월 19일 슈베르트는 31세로 숨을 거두고 현악5중주는 22년 동안 연주도 출판도 되지 못하다가 1850년 처음으로연주되고 1853년에 원고가 일부만 출판되었다. 3.슈베르트는,아니 음악은 그 운명을 알고,오로지 아름다움으로써 감내하기로 결심했던 것일까? 2악장 아다지오에서 기적이 일어난다.1악장의 서두,‘공간화했던 시간’이 장중한 주선율로 흐르고 제1바이올린과 첼로음이 묻어난다.그 묻어남은 정확히 눈물의,시야(視野)흐릿함과 자체(自體) 영롱함을 그대로 닮았다. 그렇다.눈물은 언제나 생애의 광경에 묻어난다.그것이 광경을 흐리지만 음악은 손에 잡히지 않고 귀에 들리고 귀는 마음에 가장 가깝고 그렇게 기억의최대 광경이 음악의 선율로 액정화되고 흐른다. 귀가 광경을 보고 눈이 선율을 듣는다.위대한 미완성,위대한 미완성….미완성이므로 더욱 감동적인 그러므로 몸은 지상을 떠나되 음악은 역사 속으로 스며드는,그렇게,미완성이므로 영원히 이어지고 포괄하는 순간이다. 물론 모든 예술이 그렇다.상상력은 손에 잡히지 않고 무한한 광경을 펼친다.조각 예술조차,우리가 손으로 만지기 전에,얼마나 무수한 광경을 펼치고있는가.다만 음악은,그 사실을 다시 예술의 시간으로 가시화(可視化)하며 흐른다. 4.슈베르트 현악5중주,2악장 아다지오.때는 불곰 러시아가 터키를 노리고 숫사자 영국이 그 러시아의 배후를노리던 1827년.제목조차 선율화하는 이 만파식적(萬波息笛)의 음악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펼쳐진다.전쟁의 참상과 인간 존재의 슬픔을 머금고.더욱 광활한 음악의 광경으로. 그 속으로 황혼녘,우리의 가장들이 귀가한다.일터를 찾지 못한,하릴 없는 가장들이.점차 황혼을 닮아가는 그들의 생애와 표정이 음악의 집으로 귀가한다.음악은 다시 묻어나고 무언가,슬픔이,지상에서 가장 찬란하게 반짝이다가 아름다운 희망으로 전화된다. 아,미완성.31세.모차르트보다 4년 더 짧았던 슈베르트의 생애.그러나 누가 그것을 안타까워하겠는가.그의 유언이 이리도 흐릿하며 영롱하고,간절하며 흥건한 것을. 3악장은 베토벤의 위대한 스케르초에 바치는 헌사다.그것은 베토벤의 언어로 베토벤을 뛰어넘으려 했던 자신의 시도가 허망한 것이었음을 깨닫고 자신의 길을 펴가는 과정의,고백의 헌사다. 그래서,4악장은 슈베르트만의 출발.그러나 음악 안에 이미 죽음의 안식이 깃든다.되돌아오는 론도 무곡(舞曲) 형식 속에 그 형식이 발전한다.그렇게 그는 자신의 음악 속으로가라앉고,아찔한 현기증이 지나면 어느새 지상에 남은 자 벅찬 삶의 무게에 감동하고. 5.그래,이제 알겠다.왜 슈베르트가 (베토벤의) 현악4중주 아닌 현악 5중주를 유언의 형식으로 삼았는가를.현악4중주는 절정과 심화,5중주는 절정이 쇠하는 미완성의 경지고,그런 채로 ,펼쳐짐인 채로,현악기 음악의 끝이다. 현악6중주는 3중주의 2배에 불과한 까닭이다. 그리고,위 음반이 위대한 연주인 까닭도 그 미완성의 경지와 일맥상통한다.하이페츠의 바이올린이 예의 강성한 독재성을 스스로 무마시키며 현악5중주의 세계로 귀가한다.그리고 묻어난다.숱한 광경으로 묻어난다. 피아티고르스키의 첼로가 그런 그를 따스한 자궁으로 받아들인다.프림로즈의 비올라가 그 세계를 가장 겸손하게 주관하면서 나머지 두 무명(?)연주자를 위로 세운다. 그래서 어떻게 되는가? 하이페츠와 ‘ 백만불 짜리 피아노 트리오’를 구성했던 불세출의 피아니스트 루빈스타인은 이렇게 유언했다.‘내 장례식 때슈베르트 현악5중주 2악장을 연주해다오…’ 놀라운 일이다.2악장에는 피아노가 없는데. □金正煥 시인 약력 △1954년 서울 출생. △서울대 문리대 영문과 졸업. △‘창작과 비평’통해 시인 등단. △자유실천문인협회 사무국장 역임. △‘황색 예수전’등 시집 다수.음악 관련 저술 ‘클래식은 내 친구’‘김정환의 클래식 이야기­음악이 있는 풍경’ 등 △라디오 클래식 음악 해설자 1년. ◎1961.녹음,1988.BMG 7964­2­RG/바이올린:야샤 하이페츠/비올라:윌리엄 프림로즈/첼로: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 현악5중주는 현악4중주 악기 구성(바이올린 2대,비올라 1대 첼로 1대)에다 비올라 혹은 첼로를 추가한다. 모차르트가 비올라를,슈베르트가 첼로를 추가한 대표적인 경우.슈베르트 이전에 보케리니가,이후에 본 윌리엄즈가 첼로를 추가했다. 야샤 하이페츠(1899∼1987)는 러시아에서 태어나 미국에 귀화한 바이올리니스트.세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고 1911년 데뷔,그 이듬해에 니키쉬의 베를린필과 고난도의 차이코프스키 을 협연했다.1917년 미국 이주 및 카네기홀 데뷔 이후 반세기 넘게 바이올린의 제왕으로 군림했다.그의 전집음반이 BMG레이블로 나와있다.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1903∼1976) 또한 러시아 태생으로 미국에 귀화한 첼리스트.1921년 소련을 떠나 푸르트뱅글러의 베를린필 수석 첼리스트로 활동했다(1924∼28년).그 후 슈나벨,호로비츠,밀슈타인 등과 실내악 연주 호흡을 맞추다가 하이페츠를 만났다.정명화의 스승이다. 윌리엄 프림로즈(1903∼1982)는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이자이에게 배우며 활동하다가 1937년 미국으로 이주한 비올리스트.1938년부터 1942년까지 토스카니니의 NBC심포니오케스트라 수석 비올라주자로 활동했다.
  • 터키 넴루트유적(세계 문화유산 순례:71)

    ◎2,150m 산 정상에 늘어선 거대 석상들/우주를 껴안은 ‘신의 테라스’/기원전 1세기 번성 코마게네왕국 ‘흔적’/로마에 대항했던 파르티아와 소멸 함께/안티오쿠스1세 묘·신상 등 곳곳에/테라스에 비친 빛의 향연 신을 만난듯 터키의 아나톨리아는 수천년 오리엔트 문명이 다양하게 중첩되고 잘 보존된 문명 박물관이다.어디를 가나 쉽게 만날 수 있는 히타이트,미타니,오라르투,바빌로니아,아시리아,메데스,페르시아,마케도니아,그리스­로마로 이어지는 일련의 인류문명들이 모두 이 지역을 지나가거나 이곳을 중심으로 꽃을 피웠다.더욱이 동방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아나톨리아는 동양과 서양이 함께 조화된 독특한 문화의 향기를 가졌다. ○페르시아 그리스 혼합 이러한 대표적인 유적지가 터키 동남쪽 아드야만을 중심으로 기원전후 1세기경 번영을 누렸던 코마게네 왕국이었다.이 왕국의 유적은 특이하게도 2천150m 높이의 넴루트 산 정상에 있는 안티오쿠스 1세의 무덤을 중심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넴루트 유적지로 더 잘 알려져 있다.세계 8대 불가사이의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다.산 정상에 이룬 정교한 도시문명과 수도 없이 펼쳐지는 10m에 달하는 거대한 석상들의 존재 때문이다.물론 코마게네 왕국의 수도는 카흐타 마을에서 남쪽으로 50㎞ 지점에 있는 유프라테스 강변의 사모사타였다.그러나 그곳은 이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폐허가 되었고,그나마 몰아닥친 개발의 열풍에 밀려 영원한 역사의 수수께끼가 된지 오래다. 코마게네 왕국은 기원전 69년에서 서기 72년까지 반짝했던 동서양 혼합 문명국가였다.오히려 이란을 중심으로 한 고대 파르티아 왕국과 로마군단이 대치하고 있는 경쟁의 공백지대에 생겨난 완충국가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같다.이런 상황은 동시에 주변 양 강대국의 세력판도에 따라 왕국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을 의미하였다.코마게네는 파르티아와 연계하여 로마내전의 시기에 집요한 반로마 투쟁을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결국 로마가 평정을 되찾자코 마게네 왕국도 다른 수많은 군소국가들과 함께 네로 통치하의 로마제국에 편입되었다. 코마게네 왕가의 출신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다만 기원전 2세기 소아시아의 안티오크를 중심으로 번성했던 알렉산더의 후계국가 셀루키드 왕조의 후손이라는 설이 유력하다.유프라테스 상류에 자리잡은 코마게네 왕국의 통치권이 셀루키드 왕조와 일치하고 왕의 이름이 안티오쿠스라는 점 등이다.그러나 다방면의 연구결과 코마게네 왕국의 문화적 성격은 페르시아적인 비탕에 그리스적 요소가 가미된 혼합문화라는 점이 명확해지고 있다.더욱이 소아시아의 수많은 군소국가들이 로마의 점령과 함께 역사무대에서 사라지고 망각되었지만,코마게네는 인간의 눈을 의심케하는 위대한 문명을 남겨놓았다.그것도 2천m가 넘는 험준한 산의 정상에. ○60m 높이에 직경 150m 넴루트 산 아래에 있는 카흐타 마을에서 출발하여 산 언저리에 오르는 시간만 자동차로 한시간 가량 걸린다.우선 산 정상이라 생각되는 자그만 언덕이 눈길을 끈다.이것이 바로 코마게네 왕국의 전성기를 이루었던 안티오쿠스 1세 왕의 거대한 무덤이다.높이 60m,직경 150m 크기의 이 왕묘는 소아시아전역에서 다른 예를 찾아 볼 수 없는 형태인데,산 정상에서 하늘로 향하고있는 독특한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다.하늘과 가장 가까이 감으로써 왕 자신이 다시 신으로 부활하리라는 강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그들은 이 무덤의 정상을 중심으로 아름답게 펼쳐지는 지상의 낙원을 향해 사방으로 돌을 깎아 성벽과 테라스를 만들었다. 특히 동서 테라스에는 거대한 신의 석상이 어지럽게 널려져 있다.분명 지상이 아닌 천상에서 실제로 신을 만나는 감흥이 있다.8∼10m 높이를 가진 신들은 아폴로,행운의 여신 티케,제우스와 헤라클레스등 4개의 신들이 주류를 이룬다.그리고 이 왕국의 최고 통치자인 안티오쿠스가 지상의 인간신으로 그 거대한 불멸의 모습을 남겨놓았다.그들의 수호신인 사자와 독수리의 석상들도 훨씬 커다란 높이에서 그들을 감싸고 있다. 여기서 특기할 사항은 아폴로 신상의 의미이다.태양신 아폴로는 이 지역전통신인 빛의 신 미트라와 습합(習合)하여 나타난다.조로아스터교의 한 분파인 미트라교는 당시 오리엔트 일대에 크게 성행하여 로마의 종교는 물론 새로 태동한 기독교의 성장과 의례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기독교의례에도 영향 넴루트 유적을 감상하는 최고의 시간대는 일출과 일몰이다.동서 테라스에 스며드는 황홀한 빛의 향연은 2000년전 바로 이곳에서 성대하게 행해졌던 종교적 의례의 분위기를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코마게네 유적과 유물이 가장 잘 보존되고 있는 넴루트의 동쪽 테라스로 가본다.이곳에는 바위 반석위에 나란히 앉아 있는 신들의 모습이 압권이다.아폴로와 미트라 신상이 함께 보이고,풍요의 신인 코마게네 신과 8∼9m 높이의 안티오쿠스 1세의 신상도 열을 지어 서 있다.좌우에는 사자와 독수리 상이 수호신으로 신들을 보호하고 있다. 서쪽 테라스는 신들의 회합장소를 연상케 할 정도로 많은 석상들이 테두리가 있는 다양한 모양의 모자를 쓰고 한결같이 근엄한 모습으로 나란히 서있다.서쪽 테라스에서 가장 눈길을 크는 것은 여러 신들과 악수하고 있는 안티오쿠스 신상은 물론이려니와 너무나 아름답게 조각된 사자별자리의 부조이다.이 천문도의 역법에 의하면 기원전 109년 7월14일인데 이 날은 바로 안티오쿠스의 부친인 미트리다테스 왕이 대관식을 거행하던 날이었다. 특히 동서 테라스를 연결하는 언덕에 서있는 비문에는 안티오쿠스 1세가 새긴 코마게네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당시의 사회관습과 생활상이 구체적이고 역동적으로 묘사되어 있다.넴루트 산 정상에 남아 있는 유적은 코마게네왕국의 일부분이다.이 왕국의 실체는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는 셈이다. ◎넴루트 가는 길/아드야만시서 차로 3시간/아레세미아모텔 등 깨끗 넴루트 산 정상 유적지로 향하기 위해서는 우선 터키 동남부의 아드야만시로 가야한다.이스탄불에서 1천228㎞,앙카라에서 770㎞ 거리에 있다.이스탄불까지는 서울에서 아시아나 직항편이 있다.아드야만에서 다시 자동차로 1시간30분을 달려 카흐타로 가서,그곳에서 약 100㎞ 거리에 있는 넴루트 정상까지는 약 2시간이 소요된다.카흐타에 코마게네 호텔과 아드야만에 아레세미아 모텔이 비교적 깨끗한 편이다.원더풀 투어(212­257­2288)와 한국계 윤투리즘(212­257­1361)이 넴루트 전문여행사이다.
  • TV광고 판매 점차 회복세

    ◎1∼3월 평균 58%서 4월엔 70% 넘어/지방민방도 20%대서 35%로 늘어나 장기간의 경기침체로 허덕이던 방송3사의 TV광고 판매가 서서히 회복세에 들어갔다. 방송광고업계에 따르면 4월말 현재 TV광고 판매율은 평균 65% 정도.지난 1월 56%,2월 55%,3월 60인 것과 비교하면 일단 바닥권은 벗어났다는 평가다. 특히 KBS의 상대적인 부진에 따라 최근 시청률 호조를 보이는 MBC의 경우 4월달 판매율이 70%를 무난히 넘어서 TV광고 시장을 선도했다.이와 함께 지역민방들도 평균 35%대의 판매율을 기록,지난 1월의 20%대에 비하면 사정이 크게 나아져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다. 따라서 현재로선 방송3사의 5월 판매율이 평균 70%를 넘을 것으로 보이며 하반기 TV광고 판매전망도 밝은 편이다. 그러나 TV광고 판매가 본격적으로 좋아지리라는 예상에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많다.국내 경제가 완전히 회복세에 접어들기 전에는 경기선행지수 성격이 강한 TV광고 판매의 급격한 호전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실제로 최근의 판매증가도 연중 광고물량이 비교적 많은 3∼5월의 반짝효과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나마 다행인 사실은 IMF한파로 급격하게 위축된 TV광고 시장이 최저점을 통과,앞으로 사정이 더 이상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점차 확산된다는 사실이다.
  • 고종즉위 40년(秘錄 南柯夢:10)

    ◎외채위기에도 팔도 名妓·악공불러 “지화자…”/세자탄신과 번갈아 요란한 경축행사/극심한 가뭄에 굶주린 백성 줄 이었지만 덕수궁서 잔치상받은 3천여 내직관료/함포고복 속에 “堯임금 시절보다 좋은 세상” 1902년은 지금의 IMF사태에 버금갈만한 대한제국 위기의 해였다.국가의 연간 총세입이 7백50만원에 지나지 않았지난 대포 몇문 사들이는데 20만원이 나들였다.그러니 외채는 늘어나고 돈값은 날로 폭락해 갔다.전라,경상,충청 등 3남에서 거둬들인 토지세 전액이 일본 외채를 갚는데 들어갔다 할 정도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럴 때 큰 행사날이 돌아왔다.고종 즉위 40주년 경축대회가 그것이다.고종의 나이도 바로 이 해에 50을 맞았다.일찍이 조선왕조로서는 이렇게 경사스런 일이 없었다.거기다 세자의 탄신일까지 겹쳐서 부자간에 번갈아 생일잔치를 벌여야만 했다.먼저 세자(순종)의 탄신일 경축행사 광경을 살펴보자. ○50주년 생일잔치 겸해 “음정월을 지나 중춘(仲春) 2월 9일이 오니 세자(명성황후 소생)의 탄신일이다.많은 영재들을 뽑는과거시험을 치르게 됐으니 이를 경과(慶科)라 했다.그래서 그날 팔도의 유생들이 과거보러 상경을 했는데,황상(皇上) 부자분께서는 친히 창경궁의 춘당대(春塘台)에 납시어 합격자를 가리셨다.그러나지난 갑오년(1894년) 경장(更張) 이후로 모든 과거가 폐지되다 보니 경연(經筵)에서 임금께 강의하던 유학은 낡은 학문이 되어 비웃음받는 처지가 되었다.대신 일본과 태서(泰西=유럽)에서 들어온 신학문이 교과목이 되어 마치 국학처럼 우대를 받았다.이러한 시국을 당하여 아관박대(갓 쓰고띠 두른) 차림을 한 선비들은 적막공산에서 썩어버리고 대신 높은 모자에 단장 짚고 뽐내는 들뜬 놈들이 세상에 가득찼으니 선왕이 남긴 정신문화는 영원히 끊어져 없어지고 시세를 타는 서양 풍조만 날마다 급하게 불어닥쳤다.” 세자도 나이 28세.어엿한 청년이 되었고 모후인 명성황후가 비명에 돌아가신 뒤라 고종은 세자의 생일잔치를 성대하게 치르고 싶어했다.옛날같으면 과거시험을 치러 선비들의 사기를 북돋아주었을 터이지만 개화바람에 폐지돼버렸으니 다만 먹고마시고 춤추는 잔치만 요란하였다. ○“5백칸 마당 장막 치고” “지금 춘궁(春宮·세자)의 탄신일을 맞이하여 다만 기생의 노래와 춤으로 요란할 뿐이다.9일 탄신일을 맞아 상감께서는 궁내부에 분부하시기를 관명전(觀明殿) 앞뜰에 장전(張殿·임금이 앉도록 임시로 꾸민 자리)을 베풀고우구청(雨具廳)으로 이름하라 하셨는데 5백여칸이나 되는 마당에 기름먹인 장막을 치고 그 안에 나무판자를 깔았다.그 위에는 비단 무늬를 그린 담요를 깔았다.한가운데 전등을 매달아놓았는데 큰 전등은 해와 달같이 둥글었고 작은 것은 별과 같이 촘촘히 반짝거렸다.” 세자의 생일찬치는 그다지 큰 규모가 아니었으나 고종의 즉위 40주년 경축잔치는 어마어마했다.고종이 26대 임금인데 22대 순조부터 내리 4대에 걸쳐 모두가 단명,재위 40년에 향년 50년을 채운 분이 없었다.22대 정조는 재위 24년에 수(壽)는 49세였고,23대 순조는 34년에 45세,24대 헌종은 더욱 짧아 15년에 23세,25대 철종도 14년에 불과 33세였다.따라서 당시의 정부는 고종즉위 40주년 경축행사를 성대하게 치를 수밖에 없었다. 나라는 외채 때문에 빛더미에 올라 오늘 내일 하는 지경인데,엄청난 예산을 들여 잔치를 벌이고 외국사신을 초청하고,그 때문에 새로 영빈관을 짓고,광화문 네거리에 비각을 세웠다.광화문 비각에는 이런 글이 새겨있다.‘신민의 간절한 소망에 부응하여 원구(圓丘)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제위에 오른 뒤 천하를 소유할 칭호를 대한이라 하고 연호로 광무라 하였다’. 이 얼마나 좋은 글귀인가.대한이 천하를 소유하고 무(武)에 빛났다 하여연호를 광무라 했다는 것이다.그러나 현실은 글귀와는 한참 동떨어져 있었다.1897년에 조선왕조가 허울좋은 대한제국을 선포하여 겉으로는 면모를 일신한 것처럼 보였으나 6년만인 1902년(광무 6년) 마침내 외채위기를 맞게 되고2년뒤 러일전쟁 발발,그리고 을사조약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해마다 대소조(大小朝·고종과 세자) 두분의 탄신일에는 팔도의 명기(名妓)들을 뽑아올려 무대 위에서 노래와 춤을 추는데 이것을 진연이라 불렀다.궁궐 뜰에는 기이하고 아름다운 화초가 사시장철 봄경치를 방불케 했다.장막 앞에 선 악공과 선녀도 일대의 기관(奇觀)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해 극심한 흉년에다 호열자가 만연하여 모든 행사가 다음해로 연기되었다.잇따른 가뭄과 기근,거기다가 유행병까지 만연하였으니 민심이 흉흉했다.사람들은 모두 정감록에 귀를 기울였다.정감록에는 공공연히 ‘이씨가 망하고 정씨가 흥한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그러나 그것도 모르고 궁궐의 잔치는 성황을 이루었다. ○유행병 만연 인심 흉흉 “이해 7월 25일은 고종황제께서 탄신하신 날이다.함녕전 앞뜰에 또 한번장전을 설치하였는데 한결같이 관명전의 앞뜰에 설치했던 것과 같은 모양이었다.기생이 노래하고 춤을 추고 악공이 북을 치고 피리를 불기를 한결같이 세자의 탄신때와 같이 하였다.상을 겹겹이 차릴 필요가 없었으나 고기를 산처럼 쌓아놓고 포는 숲처럼 준비하였으며(肉山脯林) 술도 샘처럼 차려 잔치를 즐기니(酒泉需雲) 보통 때의 수라상에 비하면 10배가 넘는 가지수였다.또 상에 진열한 것으로 논하면 주척(周尺)으로 1척 이상 높이 진열하였다.내직 3천명의 관료에게 균일하게 지급하여 주어 함께 먹게 하니 흡사 함께떼지어 강에서 물을 먹는 것과도 같았다.각자가 배를 채우되 한 사람도 모퉁이에 돌아 앉아 탄식하는 자가 없었으니 위대하도다,왕의 덕이여. 옛날 요임금 시절에 한사람의 백성이 굶주리면 임금이 말하기를‘내가 배고픈 것이다’라고 했으니 오늘로 보면 모두 잔뜩 먹고 배를 두드리니(含哺鼓腹) 한 사람도 굶주린 자가 없는 것이다.요임금 시절보다 훨씬 좋은 세상이다.” ○서울­옷 전라­음식 사치 3천명의 중앙 공무원들이 덕수궁 뜰에 앉아 잔치상을 받아 먹었으니 나라는 먹고 마시는 가운데 망해가고 있었다.시골에서는 극심한 가뭄으로 못먹고 굶어죽는 사람이 줄을 잇고 있었지만 서울의 덕수궁 밖을 보면 일부 부유층이 외제 비단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자고로 서울은 옷사치,전라도는 음식 사치,경상도는 집 사치로 유명했으나 1902년에는 서울의 옷사치를 빼놓고는 먹고 죽을래도 먹을 것이 없고 집을 지을래도 지을 돈이 없었다. “흥이 다하면 슬픔이 오고 기쁨이 극에 달하면 서러움이 오게 마련이다.돌연 인천 감리 하상기(河相冀)로부터 월미도가 일본인 손에 들어갔다는 보고가 들어왔다.”주지육림 속에 빠져 있을때 인천의 월미도가 날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 “日 영화 들어온다” 충무로 술렁

    ◎양국 합작단계 등 거쳐 2∼3년 지나야 가능/“흥행작 한해 3∼5편 불과… 큰 영향 없을 것” 정부가 최근 ‘일본영화 개방’방침을 처음 공식적으로 밝힘에 따라 영화계가 술렁거리고 있다.충무로의 관심은 첫째 구체적인 개방일정에 쏠리고,다음에는 일본영화 상영이 국내 영화계에 미칠 영향에 집중된다.아울러 영화계 일각에서는 일본영화 수입을 둘러싼 경쟁도 벌어지고 있다. 개방원칙이 세워지긴 했지만 실제로 일본영화가 극장에 오르는 것은 2∼3년후의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문화관광부는 이달안에 ‘일본 대중문화 정책자문위원회’(가칭)를 발족,여론수렴 과정을 거친 뒤 구체적인 일정을 정한다는 계획을 세웠다.그러나 일본영화를 ‘빠른 시일 안에 한꺼번에 풀지는 않는다’는 기본방침은 확고하다. 문화부가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방안은 3단계 개방원칙이다.첫 단계로는 한·일 양국이 함께 기획·제작하거나 한국영화에 일본배우를 출연시키는 등 넓은 범주의 ‘합작영화’를 허용한다는 것.일정기간 이 단계를 거친 뒤 다시 국민여론을 조사,긍정적인 반응을 얻어야 2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2단계는 일본과 제3국의 합작영화를 수입,배급하는 것이며 이어 마지막 단계로 순수한 ‘일본 완제품’영화를 수입하겠다는 것이다.이같은 일정에 관해 문화부의 한 관계자는 “영화의 기획·제작이 한두달만에 급작스럽게 이루어지기 어렵고,합작영화를 공개하더라도 그 영향을 평가할만한 적정한 기간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1단계만으로도 1년이상의 기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따라서 1∼2년안에 일본영화가 상영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정작 일본영화가 들어오더라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하리라고 충무로는 전망한다.그 근거로는 ▲일본 극영화로서 국내에서 흥행이 될만한 작품은 한해에 3∼5편에 불과하고 ▲스크린쿼터가 지켜지는 한 일본영화는 할리우드영화 등 다른 외화와 먼저 경쟁하게 되며 ▲일본영화를 즐기는 사람들은 지금도 화제작들을 비디오로 대부분 보았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다만 극장용 애니메이션이나 세미포르노,액션물이 등장 초기에 반짝 경기를 누릴 수는 있지만 이들도 장기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하리라고 예측하고 있다. 한편 개방원칙 천명이후 일부 수입업자들이 일본영화를 미리 사두려는 움직임을 보이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아직 잠잠한 편이다. 지난해 일본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모은 ‘실락원’을 비롯 부산국제영화제 등에서 소개돼 관심을 모은 ‘장어’‘우나기’‘함께 춤추실까요’(Shall We Dance) 등 화제작들은 대부분 ‘개방 표명’이전에 수입계약이 끝난 상태이다.이밖에 ‘러브레터’‘하루’ 등 영화팬들에게 익숙한 몇몇 작품의 수입협상이 진행중이지만 ‘일본영화 사재기’같은 현상은 벌어지지 않고 있다.충무로는 일본영화 수입논의가 예상외로 부진한 이유를 “IMF 한파로 자금력이 떨어진데다 개방일정이 아직 불투명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 백화점 바겐세일 ‘반타작’

    ◎기한 감안 매출 신장률 절반 감소… 사상 최악/평균 구입가격 하락… 식품·영캐주얼 ‘반짝’ 봄정기 바겐세일에서 백화점들이 사상 최저의 매출신장률을 기록하는 등 불황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 현대 신세계 갤러리아 등 서울시내 주요 백화점들은 지난 3일부터 19일까지 실시한 세일에서 예년에 비해 10∼20%의 매출신장률을 기록했다.특히 세일기간이 대부분 지난해 열흘에서 일주일이 더 늘어나 70% 가량의 매출신장률을 보여야 평년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절반 가량매출이 줄어든 셈이다. 롯데의 경우 본점이 6백85억원의 매출을 올려 지난해 봄세일 때의 5백66억원보다 21%가 늘어났다.잠실점 18%,월드점 17% 등 전체 6개점의 평균 매출증가율이 21.8%에 머물렀다.현대는 본점과 무역센터점이 2백71억원과 2백80억원의 매출을 올려 20.5%와 11.8%의 매출신장률을 기록했다. 신세계는 본점이 2백15억원,영등포점이 1백74억원 등 서울 4개점의 매출액이 지난 해보다 22.7% 신장됐다.그러나 일평균 매출액 기준으로는 37억4천만원으로 지난해 51억9천만원보다 27.8% 줄었다.갤러리아 역시 이번 바겐세일에서 지난해보다 평균 15% 매출이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백화점을 찾은 고객들의 평균 구입가격인 객단가도 현대백화점의 경우 부유층이 많이 사는 본점이 지난해 5만7천원에서 올해는 4만7천원으로,무역점은 6만7천원에서 5만1천원으로 각각 떨어졌다. 한편 이번 세일에서는 잘 팔리는 상품구성에도 변화가 있었다.예년같으면 세일기간 매출신장세가 두드러졌던 의류,가정용품이 20% 이하의 신장률에 그친 반면 식품과 영캐주얼에서 40∼50%의 신장률을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는 “불황의 깊이를 확인한 백화점들이 앞으로 할인점 진출 모색 등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 위탁경영 성공사례 ‘정동극장’

    ◎민간경영 1년만에 수익 2.6배 증가/마케팅부 신설 등 손님끌기 성공 정동극장이 나라살림의 새 모델로 떠올랐다.정동극장이 벤치마킹 대상이 된 것은 이 극장이 ‘공무원 경영’에서 ‘민간인 경영’으로 바뀐 뒤 경영효율이 눈에 띄게 좋아졌기 때문.옛 문체부 산하기관이었던 정동극장은 97년 재단법인으로 독립하면서 환골탈태(換骨奪胎)하게 됐다.극장장을 공무원에서 계약제 민간인(洪思琮)으로 바꾸면서 부터다.예산의 50%만 지원하고 나머지는 극장운영수입으로 충당케 하는 책임경영제가 도입됐던 것. 정동극장은 새 경영방식 도입과 함께 새로운 아이디어와 마케팅으로 문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차 한잔 값으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정오공연 ▲공연과 모임을 결합한 주문식 패키지 상품 ▲농업박물관과 공연관람을 묶은 ‘문화특활’▲외국인들을 겨냥한 전통예술 상설무대 ▲벼룩시장 개설 등 파격적인 상품으로 손님을 끌어들였다.특히 농업박물관과 덕수궁관람을 함께 엮은 패키지상품 ‘문화특활’(6천원)은 지방학생들까지 버스를 타고올라올 정도로 인기다. 반짝이는 아이디어 상품으로 96년 관객 8만1천295명,수입 3억2천3백만원에서 97년에는 관객 14만8천423명에 8억4천5백만원의 수입을 올렸다.대관만 했다면 수입은 2억원이 채 못됐을 것이다.감량경영도 단행,인원을 24명에서 19명으로 줄였다.23명의 소속단원도 돈을 못벌면 월급을 받지못하는 시스템으로 바꾸고 공연장으로는 처음 마케팅부도 신설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