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반짝
    2026-06-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745
  • [경제 살리려면-전문가 릴레이 인터뷰] ② 와코 日노무라硏 수석연구원

    [경제 살리려면-전문가 릴레이 인터뷰] ② 와코 日노무라硏 수석연구원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노무라증권연구소 와코 주이치 수석연구원은 16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경제의 현주소를 “경기가 하강하고 있고, 좋지 않은 면도 있지만 15년 전 일본처럼 심각하지는 않다.”고 진단했다. 또 “일본에서는 정부가 경기부양책을 쓰면 반짝 회복되고, 그만두면 나빠지기를 반복하면서 장기불황이 이어졌다.”고 소개하고 “한국도 정부 개입이 지나치면 경기회복이 늦어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다음은 질문과 답변. 한국경제가 일본형 장기불황으로 악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는데. -한국은 이미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은행과 기업의 부실채권 문제를 한 차례 정리했다. 따라서 은행들의 부동산대출 거품(버블)이 일시에 꺼지며 부실채권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늘어났던 일본의 불황 초기와는 상황이 다르다. 일본 장기불황의 원인은. -부동산 거품붕괴 외에 기업이 고용조정을 할 수 없었던 것이 주요인으로 꼽힌다. 거품붕괴 이후 기업매출이 하락했지만 종신고용제도 때문에 임금삭감과 구조조정에 실패, 비용부담이 커졌다. 현재는 어떤가. -98년 이후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기업, 증권, 은행의 ‘안전(安全)’신화도 깨졌다. 기업이 고용제도를 개혁, 간신히 회생하고 있다. 한국은 노동조합이 강해 구조조정이 어렵다. 일본의 경험에 비춰보면 기업이 강해져야 수익력이 높아지고, 고용도 좋아진다. 한국도 적기 구조조정 여부가 성공의 열쇠다. 한국경제의 성장전망은 어떤가. -한국은 연간 5∼6% 정도의 성장은 아니지만 실질·명목 성장률이 좋은 편이다. 일본처럼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막대한 가계부채로 약화된 한국의 구매력을 늘릴 방안은 없나. -교육비가 드는 가정에 대한 세금감면 등 세제혜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일본도 소비세 삭감을 동원했다. 한국정부가 벌이는 경제회생 노력이 성공하려면. -일본에서는 정부가 개입해 공공투자를 늘리면 반짝하고 경기가 살아났다가 그만두면 나빠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기업의 자율 회생능력이 떨어졌다. 현 고이즈미 정권은 공공사업에 의한 경기부양을 그만뒀다. 그러자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정부대응이 지나치면 기업개선이 늦어진다. 일본경제는 민간기업이 분투해 강해진 것이다. ‘종합투자계획’ 등 한국정부의 대형 공공사업 추진을 어떻게 평가하나. -일본도 공공사업, 건설사업에 힘을 쏟았지만 재정적자만 키웠다. 경기회생에 도움이 될 것이란 사람도 있지만 회의론이 더 많다. 효과가 일시적인 것은 물론이고 정작 한국인들이 혜택을 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일본의 경우 외국인 노동자가 더 많은 혜택을 봤다. 공공사업이 경제 전체에 기여하는 바는 있겠지만 정보기술(IT) 지원이 장기적으로 더 좋다고 본다. 일본의 경험에서 한국이 배울 것은 무엇인가. -규제를 많이 풀어야 한다. 규제를 완화하면 새로운 비즈니스가 생긴다. 농업에 기업을 참여시키고, 의료사업 규제를 완화하면 새로운 사업거리가 나와 경제가 활발해진다. 규제를 완화하면 일부는 저항하지만 전체에는 좋다. 일본경제의 향후 과제는. -일본경제는 조정기를 거쳐 하반기에는 보통 선진국 수준인 2% 정도의 성장을 할 것이다. 앞으로 열쇠는 민간기업이 얼마나 더 강해져 글로벌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일본경제 전체적으로는 몰라도 기업만큼은 성장할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경제의 중요한 외부변수는. -미국과 중국, 특히 세계경제의 3분의1을 차지하는 미국경제가 중요하다.70년대식 오일쇼크(유가파동)는 없겠지만 아시아 국가들은 여전히 유가변동에 취약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taein@seoul.co.kr
  • 의류·고가품등 무게 마케팅

    의류·고가품등 무게 마케팅

    경기 불황이 지속되면서 유통업체들이 소비자들의 꽉 닫힌 지갑을 열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으나, 내수부진의 골은 점점 깊어지는 형국이다. 극심한 내수부진의 한파 속에서도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불황을 이겨내고 있는 쇼핑 현장을 찾았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대 정문 옆의 ‘안전지대 스타마켓’.100여평의 규모의 매장에는 옷을 고르느라 여념이 없는 젊은 여성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면티·니트 등의 의류를 브랜드나 품질 등을 가리지 않고 무게(g)로 달아 판매하는 ‘무게 마케팅’을 실시하고 있어 싼 가격에 쇼핑의 재미도 느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타마켓에서 무게로 달아 판매하는 주요 품목은 면 티셔츠와 니트 등 집안에서 편하게 입는 의류가 대부분이다. 최소 100g 단위로 판매하며, 가격은 100g 당 1500∼2000원이다. 보통 겨울 티셔츠 한장의 무게가 300g 이하인 점을 감안하면 4000∼5000원이면 괜찮은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셈이다. 이곳에서 만난 대학생 김성민(20·여·노원구 중계동)씨는 “처음에는 ‘무게를 달아 판매한다.’는 말을 듣고 신기해 찾았으나, 막상 들러보니 상품 구색도 제대로 갖춰져 있고 가격도 저렴해 틈나는 대로 쇼핑을 즐기고 있다.”며 “오늘은 집안에서 언더웨어로 받쳐 입을 수 있는 반팔 니트를 3750원(250g)에 구입했다.”고 말했다. ●수출잉여·자체디자인 제품 판매 스타마켓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보다 마케팅 기법이 색다른 데다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임화진 안전지대 스타마켓 영업차장은 “미국 등 선진국의 슈퍼마켓에서 야채 등을 g으로 달아 판매하는 것에서 착안, 옷을 무게로 달아 판매하는 가게를 오픈하게 됐다.”며 “판매상품은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동남아 스탁제품(수출되고 남은 잉여분)을 수입해오거나 직접 디자인해 제작한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수입물량이 70%, 자체 제작물량이 30%를 차지해 유통마진을 없앴다.”며 “특히 광고도 하지 않아 가격이 매우 저렴하다.”고 덧붙였다. 덕분에 점포와 매출액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4월 처음으로 문을 연 이대점 외에도 서울 이태원점과 명동점, 부산 광복동점, 대구 동성로점, 전북 익산점 등을 잇달아 오픈해 지금은 6개 점포로 늘어났다. 매출액도 80∼100평 규모인 서울 점포는 월 2억∼2억 5000만원,30∼40평 규모인 지방 점포는 1억∼1억 5000만원으로 기반을 확고하게 잡았다. ●노마진 홍보 부정기 이벤트도 서울 중구 명동에 있는 영국 화장품 브랜드인 러시 매장은 보디비누·고체 헤어케어제품 클렌저 등 보디케어 제품을 소비자들이 원하는 만큼 잘라 무게로 달아 파는 곳이다. 케이크나 치즈 모양의 덩어리에서 원하는 만큼 잘라 살 수 있다는 점이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주요 품목은 보디비누 제품·고체 헤어케어 제품 클렌저 제품 등 다양하다. 최소 단위가 100g이고, 가격은 제품마다 다르지만 100g당 대략 5000∼8000원이다. 러쉬코리아 홍보담당 왕미연씨는 “판매품목의 대부분이 천연재료를 사용한 핸드메이드(수제)의 고급제품인 만큼 가격은 그리 싼 편이 아니다.”며 “하지만 소비자들이 스스로 원하는 양 만큼, 그리고 가격을 확인하고 구입할 수 있어 많이 찾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삼성 테스코 홈플러스는 저울에 무게를 달아 판매하는 부정기 기획행사를 펼치고 있다. 지난해 2월에는 러닝화와 문구용품 등 4개 품목,10월에는 러닝화·아동화 등 2개 품목을 무게로 달아 파는 등 두 차례의 기획 행사를 진행해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지난해 10월 러닝화 및 아동화를 100g당 1000원에 내놓아 다른 기획행사 때보다 10배 이상의 소비자들이 몰려들어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보통 성인 러닝화가 750g 안팎인 만큼 7500원이라는 헐값에 살 수 있었던 까닭이다. 최원배 홈플러스 판촉팀 대리는 “이같은 행사는 소비자들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노마진으로 판매하는 투자개념으로 진행하고 있다.”며 “지난해 10월 러닝화 행사에서는 불과 1주일새 무려 10만켤레가 팔려 나갔을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고 귀띔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버스타고 ‘신의 걸작품’ 금강산 겨울여행

    버스타고 ‘신의 걸작품’ 금강산 겨울여행

    ‘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 산/그리운 만이천봉 말은 없어도/…/수수 만년 아름다운 산 못가본지 그 몇 해/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금강산은 부른다.’ 고귀함이 묻어나는 금강산(金剛山), 녹음이 깔리는 봉래산(蓬萊産), 단풍으로 물든 풍악산(楓嶽山), 깎아지른 듯한 바위가 앙상한 뼈와 같은 개골산(皆骨山), 눈 덮인 설봉산(雪峰山)…. 때마다 철마다 모습과 이름을 바꿔가며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금강산. 특히 겨울이 아름답다는 이곳을 살짝 맛보고 왔습니다. 오색찬란한 화려함은 없지만 봉우리의 자태가 빼어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웅장함에 넋이 나가 돌아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새해 첫 여행으로 겨울에 더욱 아름다운 금강산이 어떨까요. 지금 바로 비무장지대를 거쳐 출발합니다. ●보이지 않는 남북의 선을 넘어 오후 4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 있는 남측출입국관리소(CIQ)에서 간단한 출국 수속을 마쳤다.(한 나라의 땅인데도 ‘출국’이라니, 왠지 서글프다.) 비무장지대를 건너, 북녘을 향한다. 비무장지대의 임시도로로 33인승 미니 버스가 신나게 달렸다. 금강통문과 남방한계선을 지나 출발한 지 15분만에 군사분계선을 넘는다. 이제부터 북한이다. 함께한 ‘관광조장(관광가이드)’에게는 2003년 9월에 육로관광이 시작된 후 오늘까지 452번째로 넘는 군사분계선이란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우리민족을 갈라놓은 선은 없다. 그저 도로 구석에 철책도 아닌 녹슬어버린 표지 하나가 군사분계선을 나타내며 민족을 갈라놓고 있을 뿐이다. 북방한계선을 지나 구서통문에 차가 멈췄다. 겨울 찬바람에 빨갛게 언 볼과 오래된 듯한 군복의 북한군인 두 명이 버스에 올라 “모두 몇 명입네까.” 짧게 한마디 묻고는 내려버린다. 통관 절차다. 도로 옆 연두색 철책은 관광지역과 북측 마을의 경계다. 철책 너머로 북측 마을에 북한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가는 모습이 보이지만 갈 수는 없다. 개발되지 않은 모습이 오히려 정겹다. 고성 통일전망대를 떠난 지 45분만에 금강산에 도착했다. 정말 가까워졌다. 배로 무려 4시간이 걸린 길을 이렇게 단숨에 달려오다니. 벅찬 감흥을 가슴에 담고 북녘에서의 첫날은 지나간다. ●신의 걸작, 계절의 명산 개골산 둘째날 아침 8시30분에 금강산의 구룡연으로 출발했다. 금강산에서만 볼 수 있다는 미인송. 옆으로 늘어진 소나무가 아니라 하늘로 쭉쭉 뻗은 자태가 미인처럼 아름다워 미인송이라 이름 붙였다. 미인송 숲을 빠져나와 10여분만에 도착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행을 시작한다. 북한 해설원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린다.“한반도의 3대 폭포중 하나인 구룡폭포와 선녀들이 목욕을 했다는 상팔담을 볼 수 있으며 산행시간은 왕복 4시간입네다.” 맑은 공기가 가득한 계곡을 따라 걷는다. 고개를 들어 산을 바라보니 겨울 금강산을 개골산(皆骨山)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겠다. 흙이라고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산. 그래서 인간의 뼈처럼 허연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바위산. 그것이 개골산이다. 커다란 바위를 깎고 다듬어 만들어 놓은 신의 걸작품이라고밖에 표현할 말이 없다. 그 바위에 자라고 있는 ‘배지하늘솔’. 땅을 배신하고 하늘을 향하는 소나무란 뜻으로 바위를 뚫고 자라고 있다. 신기하다 신기해. 어찌 저렇게 단단한 바위덩어리에 생명이 자라고 있을까. ●아름다운 금강산을 눈에 가득 담으시라요 30분 정도 걸어가 도착한 양지대에서 여자 해설원이 말한다. “저 앞에는 거북선 모양의 거북선바위, 뒤에는 개구리 바위예요. 선생, 거기가 아니고 저기라요. 이쪽 보시라요.” 말투는 약간 퉁명스럽지만 정감이 느껴져 “원래 북측 여성동무들은 다 예쁩네까.”하고 묻자 “심한 농하면 안됩네다.”하고 정색이다.“죄송합니다.” 꼬리를 확 내리고 다시 걷는다. 삼록수는 추운 날씨에 얼어버렸다. 산삼과 녹용이 흘러내린다는데…. 마시지 못해 아쉽다. 땀으로 젖은 머리는 금세 얼어버린다. 진한 에메랄드빛부터 연한 옥빛까지 다양한 초록이 어우러진 유명한 옥류동계곡도 얼음으로 변해있어 물빛의 아름다움은 감상할 수 없다. 대신 굽이굽이 계곡을 돌아설 때마다 펼쳐지는 금강산의 비경을 눈에 담는다. 이래서 금강산을 느끼려면 사계절을 와야 한다는 건가. 1시간을 걷자 나타난 웅장한 비룡폭포. 얼어버린 그 모습이 마치 하늘에서 던진 번개가 그대로 굳어버린 것 같다. 중간중간 비석에 김일성교시를 적어 놓은 ‘표식비’와 봉우리마다 전설이 얽혀있는 바위들이 즐비하다.15분을 더 걸어 관폭정에 도착했다. 구룡폭포를 볼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정자다. 북측안내원들이 “수고하셨습네다. 여기가 조선의 3대 폭포중 하나인 구룡폭포입네다.”라며 설명한다. 이곳에서 파는 차 한잔에 1달러. 따뜻한 차를 마시며 얼어버린 웅장한 폭포를 감상하는데 ‘쩌억!쩍!’ 소리가 들린다. 계곡에서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다. 깊고 깊은 금강산, 이곳 아니면 또 어디서 들을 수 있을까. 언 몸을 잠시 녹이고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을 가진 상팔담으로 향했다. 가파른 절벽을 향하는 길에 ‘아휴, 다리야. 그냥 갈걸.’하는 후회가 간절하다. 도대체 뭐가 있기에 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오르려 했나.30분을 올라 도착한 구룡대. 아까의 후회는 사라진다. 커다란 바위로 발아래 계곡에 비록 얼어있지만 멋진 소와 담이 한눈에 들어온다. ●온천에 몸을 담그고, 피로를 풀고 내려오는 길에 점심을 먹으러 목란관에 들렀다. 아침에 10달러를 내고 산 표(식권)를 건네며 주문을 하는데 북한여성이 “여기는 무조건 냉면이라요.”라며 돌아간다. 추어탕, 비빔밥을 먹을 수 있다고 하더니만. 10분,20분이 지나도 음식이 나오지 않는다. 인내의 한계를 느껴 냉면 언제 나오냐며 불평하자 “참고 기다리시라요.” 한마디하고 돌아간다.30분만에 나온 물냉면, 육수는 심심하고 면발은 그럭저럭이다. 양념이 적은 북한음식은 입맛에 잘 안 맞는다. 저녁에는 물이 좋다는 금강산 온천에 몸을 담근다. 반짝이는 별을 보며 향긋한 미인송의 냄새를 맡으며 금강산의 정기를 맨몸으로 느끼는 노천온천이야말로 최고다. 피로가 가시며 여유가 생긴다. 금강산에는 음기가 강해 한달에 한번씩 남탕과 여탕을 바꾸는데 오늘이 그날이란다. 내가 몸을 담그고 있는 곳이 어제는 여탕이었다! ●만물상을 품에 안고 셋째날은 만물상코스다. 미니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 미인송이 가득한 길을 간다. 마치 옛날 대관령을 오르는 것 같다. 내금강과 외금강을 연결하는 온정고개는 모두 106굽이, 이중 만물상까지가 모두 77굽이다. 온정각에서 떠난지 30분만에 주차장에 도착한다. 왕복 2시간 코스. 구룡연과 다르게 가파른 길이 이어진다. 깎아지른 절벽과 솟구쳐 오른 봉우리, 그 위에 아슬아슬 올라선 바위들. 토끼 호랑이 거북이는 기본이고 독수리 곰 허수아비 등 저마다 이름을 가진 바위들이 펼쳐져 ‘만물상’답다. 삼선암 귀면암 절부암을 지나 30분을 오르니 안심대. 탄성이 절로 나온다. 발아래는 수길 낭떠러지이고 그만큼 또 위로 봉우리들이 솟았다. 울퉁불퉁 근육질 남자의 벗은 몸처럼 아릅답고, 힘이 느껴진다. 금강산을 보지 않고 산세를 논하는 것은 허무하다고 했던가. 역시 민족의 명산이란 칭송이 아깝지 않은 산이다. 철사다리를 의지하며 천선대에 오르자 눈 앞에 펼쳐지는 만물상에 또 한번 놀란다. 나도 모르게 조물주에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 만물상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망향대까지 오르고 싶지만 일정이 여의치 않다. 그림같은 만물상을 가슴에 담은 채 발길을 돌렸다. 주차장에서 북한해설원들이 따뜻한 두부와 막걸리를 판다.5달러. 산행 뒤에 마시면 더욱 시원한 막걸리 한잔과 함께 금강산 일정이 끝났다. 몇 해전, 여름 금강산에서 “반드시 겨울에 오리라!”던 꿈을 이뤘더니, 또다른 욕심이 생긴다. 금강산은 바로 그런 민족의 산이다.‘언젠가 내 다시 너를 품으러 오마. 좀 더 자유롭게….’ ● 이렇게 가세요 금강산 관광 선택의 폭이 좀 넓어졌다.2박3일,1박2일, 당일 등 세가지의 형태로 진행중이다. 당일은 2월말까지 토요일만 출발하며 1인당 12만원.1박2일은 매주 토, 일요일 출발 1인당 20만원,2박3일은 매일 출발한다.29만원. 단 교예공연(25달러), 온천욕(12달러)과 식사(중·석식, 보통 10달러)비용은 별도 부담. 또한 통일부에 방북승인신청 등을 해야 하므로 출발일 기준 10일 전에 현대아산 영업부나 금강산관광에 예약해야 한다.(02)3669-3000,www.mtkumgang.com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몽정기2 “꿈에서만 해야 돼요?”

    몽정기2 “꿈에서만 해야 돼요?”

    ‘별’들의 경합전이 되어버린 최근 한국영화계의 현실과 비춰볼 때 의외다. 메이저 영화사에서 제작한 영화의 주인공 치곤 신선한 얼굴들. 이들에게선 ‘초짜’의 풋풋함과 열기, 건방떨지 않는 귀여움이 흘러넘친다. 그렇다고 보통의 신인급 배우처럼 흐릿한 주관을 보이지도 않는다. 신세대다운 발랄함과 여자들 특유의 수다스러움 속에서도 뚜렷한 연기관을 똑부러지게 말할 줄 안다.‘몽정기 2’(제작 MK픽쳐스·14일 개봉)의 세 여주인공 강은비(19), 전혜빈(22), 신주아(21). 이들이 주연을 꿰찬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치열한 경쟁률 뚫고 주연 맡은 ‘미녀 삼총사’ 지난해 3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주인공 성은역에 캐스팅된 강은비. 성은은 초경도 못한 ‘미성숙’여고생이지만 교생 봉구(이지훈)를 좋아하게 되면서 조금씩 성과 사랑에 눈뜨게 되는 중심역할이다. 얼짱대전 대상 수상이 경력의 전부인 그녀는 오디션의 결과를 인터넷을 통해 확인하고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단다.“사실 주인공은 생각지 못했어요. 저의 성실한 모습에 반하신 것 같아요.3차까지 올라온 다른 후보 20명의 ‘뒷조사’까지 했거든요. 무용, 연극에 노래도 불렀구요.” 교생 봉구를 사이에 두고 성숙미를 무기로 성은과 실랑이를 벌이는 세미 역의 신주아는 CF와 드라마 ‘작은 아씨들’의 악역에 이어 첫 영화에 출연했다.“맨 마지막에 캐스팅됐는데 천만 다행이죠.” ‘남행열차’를 부르는 모습이 심사위원들의 눈에 들어 ‘막차’를 탄 행운의 주인공이 됐다. 성은의 단짝친구이자 남성스러운 털털함으로 후배의 사랑을 받는 수연 역의 전혜빈은 이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얼굴. 가수로 데뷔했지만 TV드라마, 단막극 주연, 영화 ‘령’등을 거치며 연기자로 자리매김했다. “내후년 정도까지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연기자로 더 성숙된 뒤에 음반을 다시 낼 거구요. 예전엔 모두를 절 보고 가수 빈이라고 했지만, 요즘은 열의 한 명은 ‘전혜빈이다.’라고 말해요. 뭔가 하나는 이룬 것 같아요.” #더 섹시하고 야하게 연기할 걸 그랬나봐요 이번 영화를 통해 서로 처음 알게 된 사이지만 서로 질 새라 조잘대는 모습은 오랜 친구 같았다. 경쟁심 같은건 없었단다.“촬영장에서 같이 놀았어요. 떠들고…”(전) “진짜 친구처럼 지냈죠.”(신) 특히 연기 선배인 전혜빈은 큰 언니 노릇을 톡톡히 했다. 노출신 때문에 마음앓이 했던 둘에게 ‘해야되는 일이니 부담가질 필요없다.’며 격려했고, 촬영이 없을 때도 항상 힘내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사실 영화 속에는 홍보물과 달리 야한 장면이 거의 없다. 살짝 단추를 풀거나 내려간 팬티를 보여주는 정도. 하지만 영화 초보인 이들에게 이같은 장면의 촬영은 힘든 일이었다. 카메라 앵글에는 안 잡혀도 사방을 둘러싼 스태프들의 눈 때문이다. 다 벗고 샤워하는 신을 찍은 강은비는 “화장이 다 지워질 정도로 울면서” 연기했다.(영화속에서는 편집됐다.) 양수리 세트에서 취재진에게 촬영공개가 있던 날, 단추가 풀어진 가슴 앞에다 바로 카메라를 들이댄 기자들 때문에 신주아는 남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그래도 둘 모두 “지금은 좀 더 적극적으로 야한 부분을 표현하지 못해서 ‘살짝’ 후회된다.”고 말하는 걸 보니 천상 욕심많은 배우들이다. #‘반짝 스타’아닌 ‘노력하는 배우’ 되고 싶어요 모두 연기자로서 걸음마 단계지만 이들의 모습엔 젊음 특유의 싱그러움이 느껴졌다. 고두심, 전도연을 존경한다는 전혜빈은 “연기라기보다는 또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비련의 여주인공보다는 가족의 사랑을 다룬 휴먼드라마의 인물들이 더 끌린다는 그녀. 김희애를 존경하는 신주아는 자기자신에 대해 알아가면서 그 안에서 다양한 내면의 감정을 끄집어내는 연기를 하고 싶단다.“내면연기를 머릿속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둔 뒤 잘 꺼내 활용하려구요.” 그리 이제는 청순하고 착한 역할에 욕심이 난다고 했다. 데뷔와 함께 주인공이 된 강은비는 앞으론 “작은 역이라도 맡아 선배들의 연기를 배워나가고 싶다.”고 말했다.“온화한 눈빛에서 강한 힘을 분출하는” 이영애, 심은하 같은 배우가 그녀의 꿈이다. 성과 사랑의 좌충우돌을 거치며 어른으로 커 간 영화속 주인공들처럼, 첫 영화의 홍역을 치르며 진정한 연기자로 성숙해가고 있는 이들. 대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김소연기자 pure@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그 영화 어때?]새영화 ‘스노 워커’

    인간은 참 간사하다. 제 잘난 맛에 우쭐대다가 ‘쓰나미’같은 재앙을 겪어야 자연 앞에 겸손해지는 척이라도 한다. 대자연의 위대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요즘 같은 때, 문명에 기댄 현대인의 삶이 얼마나 나약한 것인지를 새삼 일깨워주는 영화가 바로 ‘스노우 워커(Snow Walker)’다. 베테랑 비행사인 찰리(배리 페퍼)는 병든 에스키모 소녀 카날라(아나벨라 피카턱)를 태우고 도시로 가는 중에 비행기 고장으로 북극해 오지에 추락한다. 생면부지의 두사람, 게다가 말도 통하지 않는 이들 앞엔 오직 허허벌판 설원뿐이다. 한번도 도시를 떠나본 적이 없는 찰리는 두려움과 초조함에 미칠 지경이지만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카날라는 그저 담담하기만 하다. 비상식량인 콜라와 햄으로 연명하는 찰리는 생선을 낚아 날것으로 먹는 카날라가 역겹고, 카날라는 문명의 이기가 없는 곳에서는 마치 갓난 아기처럼 무방비 상태인 찰리가 안타깝다. 점점 혹독해지는 추위와 날로 심해지는 병마에 맞서면서 두사람은 조금씩 서로의 삶의 방식에 익숙해진다. 찰리는 날고기를 먹고, 가죽으로 외투를 만들어입는 에스키모인들의 전통 생활방식에 적응하고, 카날라는 서툰 영어로 의사소통을 시도한다.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툰드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들의 정신적인 교감은 설원위에 반짝이는 한낮의 태양처럼 맑고 투명하다. 극장문을 나서는 순간 콘크리트 문명에 갇혀 지내는 도시인으로서의 비애가 문득 가슴을 파고들게 만드는 영화다.2월25일 개봉. 전체 관람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승진한 삼성임원이 선택한 車 SM7

    승진한 삼성임원이 선택한 車 SM7

    삼성그룹의 임원차량 ‘특수’를 둘러싼 그랜저와 SM7의 한판 승부가 SM7의 일방적 승리로 기울고 있다. 현대차측은 “그랜저 후속모델이 출시되면 양상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며 내년 설욕을 단단히 벼르고 있다. 12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이날 임원인사를 마무리 지었다. 신규 승진자나 차량 소유기간 3년이 지난 기존 임원에게는 격에 맞게 회사에서 새 차를 제공해준다. 대상자가 몇 백명인 만큼 해마다 이 특수를 따내기 위한 자동차업계의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올해는 그랜저가 독주하는 대형차 시장에 르노삼성의 신차 SM7이 가세해 일찌감치 승부의 향방이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SM7의 압승. 상무와 상무보 차량교체 대상자 약 400명 가운데 11일 현재까지 330명이 SM7 2.3(2300cc)을 선택했다. 그랜저XG 2.5(2500cc)를 선택한 사람은 60명에 불과했다. 자동차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뗀 삼성그룹은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임원들에게 2∼3개 차량을 제시한 뒤 선택권을 준다. 선택은 전적으로 당사자의 몫이다. 이번에는 상무급에게 종전보다 한단계 급을 올려 그랜저XG 2.5와 SM7 2.3 중에 선택하도록 했는데 상당수가 SM7을 낙점한 것이다. 전무급 이상 교체대상자에게는 현대 에쿠스·쌍용 체어맨·르노삼성 SM7 3.5(3500cc) 세가지 가운데 선택하도록 했다. 그나마 에쿠스가 69대로 SM7(15대)을 가볍게 젖히고 체면을 유지했다. 물론 이날 신규 승진한 임원들의 ‘선택’이 아직 남아있지만 현재 추이대로라면 SM7의 압승이 확실시된다. 현대차측은 “SM7이 일단 신차인데다 옛 삼성차에 대한 밀어주기도 작용한 것 같다.”면서 “진짜 승부는 뉴 그랜저가 출시되는 5월부터”라고 강조했다.SM7의 이번 선전은 ‘반짝 신차효과’라는 주장이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홍합부인 김쏘였네, 속살 올랐네

    홍합부인 김쏘였네, 속살 올랐네

    찬바람이 불면 그리워지는 그 맛. 따끈하면서도 담백한 홍합탕은 얼었던 몸을 풀어준다. 이런 까닭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홍합을 내놓는 길거리 포장마차 불빛마저 정겹다. 보랏빛이 약간 감도는 까만 껍데기를 벌려 빼먹는 속살에는 감칠맛이 그만이다. 홍합 특유의 향에서 바다까지 느낄 수 있다. 홍합의 속살은 어찌보면 참으로 외설적이다. 지역에 따라선 합자, 열합, 섭 등으로 부른다. 허균은 중국인들은 홍합을 ‘동해부인(東海夫人)’이라며 즐긴다고 적었다. 홍합을 많이 먹으면 여성의 속살이 예뻐진다고 믿었던 것. 프로비타민D가 풍부해 골다공증을 예방하고, 조혈작용에도 효과가 높아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닐 성싶다. ■ 이번 주말 홍합 어때요 홍합은 사실, 우리보다 서양의 식탁에서 더 주빈의 자리를 꿰차고 있다. 우리는 나물이나 국을 끓일 때 홍합을 넣거나 술국으로 홍합탕이 인기다. 하지만 프랑스·이탈리아 등 유럽에선 홍합을 주요리로, 당당한 한끼의 식사로 먹고 있다. 홍합을 삶으면서 나오는 국물에 크림이나 토마토 소스를 섞어 요리해 다시 홍합에 끼얹어 먹는다. 요즘 홍합이 한창 나는 곳은 전남 여수시다. 홍합은 굴에 비해 수익성이 낮아 양식은 훨씬 적다. 돌산대교를 건너 옥색 바다의 여수시 돌산읍 우두리 강남금마을을 찾았다. 돌로 쌓은 방파제가 있을 정도로 고즈넉한 마을의 포구에서 배를 타면서 배 이름을 물었다. 선장 정충길(55)씨는 “작은 밴데 무슨 이름이 있겠어요.”라고 말했다. 마침 바람이 없어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를 10여분간 미끄러지듯 달렸다. 대경도 사이였다. 한 줄로 죽죽 늘어선 띔개가 보였다. 홍합 양식장이었다. 선장 정씨가 부인과 함께 띔개 아래로 매달린 줄을 낫으로 끊어 끌어올렸다. 뽀얀 흙먼지를 둘러쓴 홍합이 빼곡히 매달려 있었다. 다른 부착 생물도 많이 붙어있었다. 끌어올린 홍합에 물을 끼얹자 깨끗해졌다. 선장 정씨가 끌어올린 홍합을 부인이 하나 하나 다 뗐다. 홍합은 실같은 족사로 서로 붙어있는데 이를 떼냈다. 선장 부인은 “껍데기를 깨끗이 씻어 실파·풋고추와 마늘을 다져 넣고 끓이면 기막힌 홍합탕이 된다.”며 “홍합은 조개와는 달리 해감할 필요가 없지만 국물처럼 마시려면 소금물에 조금 해감하면 된다.”고 말했다. 홍합은 찬물에 끓여야지 뜨거운 물에 넣으면 조가비가 벌어지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한 시간가량 이렇게 작업하자 커다란 광주리에 5개 가득했다. 다시 돌아왔다. 커다란 통속에 넣고 바닷물로 씻자 홍합 특유의 검은빛이 반짝거렸다. 씻은 홍합을 박신양에서 깠다. 홍합을 까던 박정이(60)씨.“요즘엔 홍합을 까도 인건비가 안 나와요. 홍합 알 1㎏에 겨우 2000원선이에요.”라고 하소연했다. 굴은 배가량 더 받는단다. 이렇게 깐 홍합을 상인들이 모아 대형 마트와 음식점 등에서 판매한다. 박씨는 “홍합 살은 연한 소금물에 흔들어 씻고 검은수염(족사)이 있으면 자르면 된다.”며 “국을 끓일 때 끓는 물에 살짝 데쳐 헹군 뒤 쓰면 된다.”고 말했다. 선장 정씨는 “좋은 홍합은 껍데기가 까맣고 광택이 나며 깨지지 않아야 하며 껍데기를 벗겼을 때 살이 통통하고 붉은 빛이 돌며 윤기가 있는 것이 싱싱하다.”고 귀띔했다. ■ 여수에서 홍합 맛보랑께 아름다운 항구도시 여수에는 먹을거리도 풍부하다. 요즘 여수의 가장 대표적인 음식은 삼치회다. 다른 지역에선 구이로 먹어도 비린 생선인데, 여기선 최고의 횟감으로 통한다. 여수에서도 삼치회를 먹기 시작한 것은 20년 정도에 불과하다. 거문도 부근에서 잡힌 삼치는 씨알이 1m 이상 나갈 정도로 굵어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됐단다. 일본에선 삼치를 선어 상태로 보관했다가 즉시 회로 내놓는 것. 삼치잡이 선원들만 그동안 삼치회를 맛봤던 별미다. 여수 사람들은 삼치회 전문집으로 교동의 사시사철(061-666-1445)을 든다.12년째 삼치회(3만∼5만원)만 취급한다. 삼치회는 참치회처럼 썰어 낸다. 김동근씨는 “삼치회는 손바닥에 배춧잎과 김을 올린 다음 삼치회를 기름간장 소스에 찍어 얹고 풋마늘과 함께 먹는다.”며 시범을 보여줬다. 참치처럼 부드러웠지만 맛은 참치 뱃살(오도로)보다 더 고소했고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고깃살에 흰줄이 들어간 부분은 졸깃한 질감이 느껴졌다. 삼치회를 다진 마늘·참기름 등을 넣은 간장에 찍어 먹는 것이 특징. 사시사철 맞은편의 노다지(662-4045)도 삼치회 전문집이다. 삼치 전문집들은 대개 오후에 문을 연다. 삼치가 거문도에서 매일 오후에 들어오는 탓이다. 여수에서 뺄 수 없는 또 한가지는 서대회. 가자미처럼 생긴 넓적한 생선인 서대는 남해안 지역에서 꾸덕꾸덕하게 말려 찜이나 조림으로 주로 먹는다. 뼈는 무척 억세지만 살은 토실하면서 담백하다. 서대를 회로 먹는 것은 여수가 거의 유일한 듯하다. 진남관앞 로터리에서 중앙파출소로 가는 길목의 구백식당(662-0900)은 서대회(1만원)로 유명세를 탔다. 구백식당의 서대회는 향토음식으로 여수지역 초등학교의 지역사회 교과서에도 올랐다. 서대는 껍질을 벗기고 포를 떠 1㎝ 크기로 어슷 썰어 미나리·상추·양파 등을 넣고 양념장으로 비벼 낸다. 양념 맛은 달콤·새콤·매콤하다. 주인 손춘심(57)씨는 “서대회 무침은 막걸리 식초에 발효시켜 내오기 때문에 탈이 나지 않는다.”며 “넓은 그릇에 밥을 조금 푸고 그 위에 콩나물·참기를 넣고 서대회를 넣고 비벼 먹는 것이 여수의 방식”이라고 말했다. 양이 넉넉하기 때문에 3명이면 2인분,5명이면 3인분 정도 주문하면 적당하다. 구백식당 주위로 서대회 전문 음식점 예닐곱집이 몰려 있다. 여수 사람들은 생선만 먹을까? 바다에서 나는 것을 고기라고 부르고 소·돼지고기를 ‘육고기’라 부르며 즐겨 찾는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돌산대교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빠져 한일택시 옆의 초당갈비(643-6333)를 많이 찾는다. 이 집의 대표 음식은 등심(1만 7000원). 겉모습이 꽃무늬 모양으로 빨갛다. 나주에서 나는 암소만 취급하며 부드러우면서도 입안에서 살살 녹는 듯하다. ■ 서울서도 홍합 맛보세요 서울 이태원역 2번 출구앞에서 30m가량 가면 나오는 라시갈 몽마르트(796-1244)는 프랑스 음식점이지만 홍합요리도 낸다. 외국인들에게 먼저 알려진 이 곳은 프랑스인 요리사가 주방을 책임지고 있다. 지난 2002년 문을 열 당시 최초로 유럽 스타일의 홍합요리 2가지를 냈다가 지난해부터 23가지로 보강했다. 여러 프랑스 음식과 함께 홍합구이·홍합찜·홍합샐러드·홍합수프·홍합꼬치 등 프랑스뿐만 아니라 태국식까지 다양하게 내고 있다. 먹는 방식은 유럽스타일이다. 플로랑 레스코자크 조리장은 “젓가락이나 포크 대신 한 손에 홍합을 들고 다른 손으로 홍합 껍데기를 집게처럼 집어 속살을 파내 소스에 찍어 먹고, 국물은 껍데기로 떠 먹는다.”고 말했다. 인기 메뉴는 전통적이면서도 홍합 고유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브뤼셀스타일(1만 1000원), 매콤한 토마토 소소를 곁들인 홍합요리(1만 4000원)와 함께 훈제 베이컨·홍합요리(1만 4000원)이다. 홍합을 백포도주·양파·마늘·셀러리 등과 함께 넣고 익힌 다음 나오는 국물에 크림과 훈제 베이컨을 넣고 익혀 홍합의 향을 살렸다. 국물이 담백하면서 부드럽고, 빵을 찍어 먹기도 좋다. 서울 신촌 민들레영토 맞은편의 완차이(392-7744)의 아주매운홍합찜(2만원)이 유명하다. 조개와 새우 등의 해산물을 홍콩 스타일로 내놓지만 메뉴 이름에서 보듯이 맵다. 따갑듯이 매운 자극이 아니라 따끔따끔하다. 홍합을 살짝 익혀 사천·청양 고춧가루를 마늘·파·생강 등과 함께 두반장 소스와 넣고 볶아 냈다. 고추기름은 쓰지 않는다. 주인 총복자씨는 “우리집 홍합찜은 신촌에선 첫째다.”며 겸손하지만 자신감을 내보였다. 첫 맛은 고소하고 졸깃하면서 매운 맛이 느껴진다. 단맛도 살짝 배어있다. 웬만한 사람은 홍합 5개 정도 먹으면 이마에서 땀이 맺힌다. 아주매운홍합찜을 주문하면 전혀 간이 되지 않은 밍밍한 쌀죽이 한 그릇 나온다. 입안이 매운 맛으로 달아오르면 죽을 먹으면 된다. 금방 매운 맛이 가라앉는다. 매운 맛에 중독성이 있는지 홍합찜을 맛본 사람은 자주 찾는다. 서울 삼청동 청수정(738-8288)이 홍합밥으로 유명하다. 홍합을 넣고 가마솥에서 밥을 지은 다음 상에 내기 직전 참기름과 간장을 약간 넣고 살짝 볶는다. 주인 박일화씨는 “영업 비밀”이라며 더 자세한 비법 공개를 거부했다. 연한 갈색의 밥에 기름기가 돈다. 고소하면서 밥에 찰기가 있다. 메뉴는 2가지. 똑같은 밥을 도시락(6000원)과 정식으로 낸다. 도시락은 김치와 나물 등 반찬이 네댓가지가 나오며 포장해서 야외에서도 먹을 수 있다.2인분 이상만 주문받는 홍합정식엔 김치·겉절이·나물·생선구이·찌개 등 17가지의 반찬이 나온다. 정갈하지만 1인분에 1만 3000원 하는 가격이 만만찮다. 대구볼때기탕(2만원)도 유명하다. 마늘전문점으로 유명한 서울 여의도의 메드포갈릭(783-5296)도 홍합을 내놓고 있다. 매운 홍합찜(1만 3800원)은 홍합에다가 토마토 소스와 마늘과 후추를 넣고 바질 등의 향신료와 함께 졸인 것으로 향이 좋다. 또 화이트와인 홍합찜(1만 3800원)은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럽다. 크림 소스를 넣어 맛이 담백하고 깔끔하다. 와인의 안주로 잘 어울린다. 압구정(546-8117)과 광화문(722-4580)에 분점을 두고 있다. 이밖에 서울 압구정동 성수대교 남단에서 글로리아백화점 방향의 하나은행골목에 있는 더버블스(3446-8041)는 블루치즈 홍합요리(2만 1000원)를 비롯해 벨기에와 이탈리아식 홍합요리 10여가지를 내고, 대학로의 마로니에공원 근처의 장(742-4788) 역시 이탈리아식 홍합구이(1만 5000원)와 홍합죽(1만 2000원)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글 여수 이기철기자 chuli@seou.co.kr 사진 남상인기자 sangin@seoul.co.kr
  • 야! 토성이다…중미산 과학캠프

    야! 토성이다…중미산 과학캠프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르다는 빛, 북극성은 그 빛을 타고 800년을 날아가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그 신비의 별 북극성과 환상의 데이트가 대한민국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신복3리 중미산 천문대에서 펼쳐지고 있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겨울철 야외 놀이도 체험할 수 있어 초등학생들에게 어린시절의 추억을 심어주는 별자리 캠프. 서울신문이 마련한 중미산 천문대 겨울방학 천문과학캠프를 동행취재했다. 체감온도 영하 15도. 서울에서는 좀처럼 만날 수 없는 매서운 추위다. 두꺼운 내복에도 모자라 겉옷을 여러 벌 껴입고 장갑에 목도리로 완전무장한 ‘별 사냥꾼’ 70명이 지난 4일 양평 중미산 천문대에 모였다. ●행성·별·성단 등 배우고 보고 겨울바람은 찼지만 구름 한점없이 맑은 하늘은 별보기에는 안성맞춤. 별이 좋아 논산에서부터 한달음에 쫓아온 최연소 참가자 샘(6)도, 큰개자리의 시리우스를 좋아한다는 오류초등학교의 ‘별 박사’ 병건(9)이도, 나란히 참가한 매송초등학교의 은중(8)·범중(7)이 남매도 모두 들뜬 모습이다.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리면서 아이들은 숙소에 짐을 풀고 강당에 모여 2박3일을 함께할 팀을 짠다. 한 팀은 7∼8명으로 팀마다 1∼6학년을 고르게 구성했다. 형제없는 외톨이가 많은 요즘 아이들에게 언니나 형을 사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동그랗게 둘러앉은 아이들은 팀 이름을 정하고 팀을 상징하는 깃발을 만든다. 매송초등학교 현우(8)는 깃발에 토성을 그려 넣었다. 능길초등학교 윤나(9)는 아름다운 우리별, 지구와 상상 속의 비행접시,UFO를 그렸다. 우주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를 가득 담은 깃발을 앞세우고 아이들은 앞마당에 모였다. 오늘 첫 이벤트는 썰매타기와 비료포대 눈썰매 타기. 아이들은 꽁꽁 얼어붙은 40평 남짓한 연못 위에서 썰매를 타고 신나게 얼음을 지친다. 도심에서 이런 연못을 좀처럼 볼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썰매를 타본다고 했다. 아이들은 썰매의 매력에 푹빠져 “놀이동산의 범퍼카는 저리가라.”라고 입을 모았다. 비료포대 눈썰매의 재미도 쏠쏠하다.50m가량 되는 흙 비탈에 폭 1m 정도의 눈길을 냈다. 신남성초등학교 철홍(7)이는 TV에서 보았던 봅슬레이 선수의 자세를 흉내낸다. 비료포대 위에 앉아 등을 뒤로 바짝 붙이고 다리를 쭉 뻗어 최대한 몸을 일자로 만든 철홍이는 엄청난 스피드에 놀라 환호성을 지른다. 즐거운 겨울 놀이에 아이들은 시간가는 줄도 몰랐다. 이른 저녁을 먹고나니 하늘은 금방 어둑어둑해졌다. 아이들은 강당으로 자리를 옮겨 오늘 밤 무슨 별을 볼 것인지 점검한다. 수성부터 명왕성까지 지구가 속한 태양계 식구들의 특징을 이해하고 오늘 관찰할 토성과 플레이아데스 성단에 대해서도 공부한다. ●낮엔 태양흑점 망원경 관측 이윽고 밤 하늘에 초롱초롱 별이 떠오르자 아이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주 관측실로 들어선다. 원형돔이 자동으로 열리고 새까만 밤 하늘에 헤아릴 수 없이 반짝이는 별이 한눈에 들어온다. 능길초등학교 은지(10)는 8인치 굴절망원경에 눈을 대고는 토성을 찾아보았다. 은지는 “책에서만 보았던 토성의 고리를 직접 확인하니 너무 신기하다.”면서 활짝 웃는다. 원형돔 밖에서는 황소자리에 있는 플레이아데스 성단을 찾느라 법석이다. 우리말로는 ‘좀생이별’이라는 플레이아데스 성단은 북동쪽 하늘에 옹기종기 모여 신비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삼정초등학교 지윤(12)이는 “앞으로 과학시간에 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플레이아데스 성단이 생각날 것 같다.”면서 “우주에 대한 궁금증이 너무도 많이 생겨 책을 많이 보아야겠다.”고 말했다. 중미산의 첫날 밤이 가고 새 아침이 밝았다. 오늘 아이들이 관찰해야 할 것은 태양의 흑점. 온도가 아주 낮은 태양의 흑점은 강력한 자기장으로 통신장애를 불러일으키는 등 지구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능길초등학교 한솔(10)이는 11년을 주기로 숫자가 늘었다 줄었다 한다는 흑점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망원경으로 태양 중심 부위에서 작고 검은 점 3개를 관찰하긴 했지만 흑점에 대한 궁금증은 풀리지 않는다. 한솔이는 “태양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많아 앞으로 과학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눈썰매 타고 언덕길 질주도 즐거운 점심시간이 끝나자 태양계 체험활동이 펼쳐진다. 팀별로 우리 은하를 직접 꾸며보는 것이다. 백마초등학교 혜진(10)이는 은하계의 핵심인 태양을 맡았다.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별 수성은 능길초등학교 예지(9)가 맡았다. 샛별이라고 불리는 금성은 신남성초등학교 동현(7)이가, 우리별 지구는 능길초등학교 융경(10)이가, 화성은 영본초등학교 항식(8)이 몫이다. 태양계에서 가장 큰 행성인 목성은 응봉초등학교 민수(10), 고리가 아름다운 토성은 신흥초등학교 지은(9)이에게 맡겨졌다. 이들은 태양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공전하는 모습과 스스로 회전하는 자전도 실험해본다. 혜진이는 “우리 은하계에 많은 별이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면서 “이번 캠프가 공부를 더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평소에도 별에 관심 많아 캠프에 가게 해달라고 엄마를 졸랐다는 병건이는 “캠프에 와보니 우주에 대해 궁금한 것이 오히려 더 많이 생겼다.”면서 “미래에 훌륭한 천문학자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다짐했다. 올해로 6회째를 맞은 중미산천문대 천문과학캠프는 12∼14일 제5차 캠프로 겨울 일정을 마무리한다. 양평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중미산 천문대는 3000여개 별 육안관측 가능 중미산 자연휴양림 입구에 자리잡은 중미산 천문대는 서울 근교에서 별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다. 이곳은 천문대가 문을 열기 전부터 ‘별 좀 본다.’는 아마추어 천문가들에게 사랑받아 왔다. 서울의 밤 하늘에서 확인할 수 있는 별은 가장 밝은 1등성 20개 정도. 하지만 불빛과 공해가 없는 중미산 천문대에서는 북반구에서 맨눈으로 볼 수 있는 4000여개의 별 가운데 3000개가 보인다. 김학(50) 중미산 천문대장은 별보기 좋은 해발 437m 지점에 사비를 털어 2001년 천문대를 세웠다. 대지 1만 3000여평 규모의 중미산 천문대는 천문관측실과 과학실험교실, 숙박시설 및 자연체험학습장을 갖추고 있어 체험캠프 장소로 적합하다. 천체 관측 기구들의 성능도 좋다. 지름 6.6m로 360도 회전하는 주관측실은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큰 원형돔이다. 독일 APM사의 8인치 굴절망원경으로는 성단, 달의 크레이터, 행성을 관측할 수 있다. 이밖에도 10여개의 굴절·반사·보조 망원경을 보유하고 있다.50여명이 누워서 하늘을 볼 수 있는 야외 관측소도 있어 여름에는 평상에 누워 별을 볼 수 있다.(031)771-0306 양평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별 재미있게 보는 법 별을 관측하는 데는 순서가 있다. 중미산 천문대 송한석(29)교육팀장은 무턱대고 하늘만 바라본다고 별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초보자가 별 보는 데 재미를 붙이려면 순서를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초보자는 먼저 북극성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 북극성은 나침반이 발명되기 오래 전부터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사람들이나 밤 길을 가는 이에게 방향을 일러주는 친근한 벗이었다. 북극성을 만나려면 북쪽 하늘에 떠 있는 북두칠성이나 카시오페이아를 먼저 찾아야 한다. 북두칠성은 잘 알려져 있는 대로 국자모양, 카시오페이아는 W모양이다. 북극성은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의 사이에 있다. 북극성을 중심으로 방향을 파악한 뒤에는 길잡이 별을 찾아야 한다. 매일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길잡이 별은 가장 밝은 1등성으로 별자리를 찾는 지표가 된다. 늘 한자리에 있는 북극성이 먼 길 떠나는 사람들에게 방향을 알려주듯 계절마다 이정표가 되어 준다. 봄철 길잡이 별은 목동자리 별 가운데 가장 밝은 아크투르스와 처녀자리의 스피카이다. 여름철 길잡이 별은 거문고자리의 직녀성, 독수리자리의 견우성, 그리고 백조자리의 데네브이다. 한여름 밤 밝은 세 개의 별이 직각삼각형으로 놓여져 있어 여름철의 대삼각형으로 불린다. 가을밤이 깊어가면 하늘 한가운데에 거대한 사각형을 볼 수 있다. 페가수스 자리의 몸통 부분에 해당하는 이 사각형이 가을철 길잡이 별이다. 겨울에는 우주 축제라도 열린 듯 볼 수 있는 별이 많다. 오리온 자리의 리겔이 겨울철 대표적 길잡이별이다. 계절별 길잡이 별을 확인하면 자신이 알고 있는 별자리부터 찾는다. 송 팀장은 별자리 공부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서는 풍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밤 하늘을 수놓은 아름다운 별들을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해 선으로 이어보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와 별자리의 주인공을 함께 연관해 상상하며 별을 공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송 팀장은 “처음 별을 볼 때는 가로등이나 자동차 불빛 등 주변에 빛이 없는 어두운 곳에서 맨눈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면서 “별 관찰이 익숙해지면 쌍안경이나 망원경으로 어두운 별도 관찰하면서 서서히 성단과 성운까지 관찰하는 것이 재미있게 별을 보는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송 팀장은 “하늘을 뿌옇게 가리는 공해와 별 보기를 방해하는 자동차·가로등 때문에 서울 하늘에서 볼 수 있는 별은 그리 많지 않다.”면서 “별 관찰이 익숙해 지면 친구 또는 가족들과 서울 근교로 별소풍을 떠나면 좋을 것”이라고 권했다. 양평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은행 지각변동 ‘시동’] (하)’나홀로 상품’ 캔다

    [은행 지각변동 ‘시동’] (하)’나홀로 상품’ 캔다

    신한은행 상품개발실 윤태웅 부실장은 새해 들어 툭하면 밤을 지새우고 있다. 머릿속에는 신 금융상품을 개발하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고객을 사로잡을 수 있는 최고의 무기는 ‘반짝이는 상품’‘차별화된 상품’이기 때문이다. 새해 벽두부터 은행권에는 신상품 출시 경쟁에 불이 붙었다. 이미 국민·신한·조흥·기업·농협 등이 5개의 신상품을 내놓고 ‘상품전쟁’의 기선을 제압할 태세다. 그동안 저금리 기조에다 경기침체의 여파로 새로운 상품 개발이 미흡했다는 게 은행권 안팎의 지적이다. 따라서 경쟁력 있는 상품을 누가 먼저 개발해 소비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지가 막오른 ‘금융대전’의 승패를 좌우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한+조흥, 상품개발 최고 지난해 상품개발 부문에서는 신한·조흥은행이 단연 으뜸이었다. 은행들이 출시한 200여개의 신상품 중 신한과 조흥은행이 모두 60개를 선보여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양적인 경쟁력뿐 아니라 은행권 최초로 새로운 금융기법을 적용한 응용상품도 다양해 은행권을 압도했다. 신한은행이 2003년 1월 각 사업부에 흩어져 있던 상품개발 담당자들을 모아 은행권 최초로 독립조직으로 ‘상품개발실’을 개설한 게 주효했다. 개인·기업·외환·신탁 등 사업부마다 1∼2명의 소수인원에 의존했던 상품개발을 전문가들의 단일조직을 통해 체계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중장기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복합상품을 대거 출시하게 된 것. 특히 지난해 3월 조흥은행 상품개발자 7명이 합류, 신한금융지주의 전체 은행상품을 책임지는 조직으로 강화됐다. 이들이 출시한 골드지수, 해외주가지수·유로환율연동예금 등은 증권업계를 긴장시킬 정도로 폭발력이 컸다. 상품개발실 관계자는 “신상품 하나를 개발하는 데 3개월 이상 매달려야 한다.”면서 “올해도 금융권을 강타할 새로운 트렌드 상품을 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타깃상품으로 경쟁 국민·우리·하나·외환·기업은행 등도 상품개발 진용을 새롭게 갖췄다. 지난해 전산시스템 업그레이드작업으로 신상품 개발이 지연됐던 우리은행은 올 들어 새로운 예금·대출상품은 물론, 증권·실물 등에 투자하는 다양한 투자상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일반고객뿐 아니라 큰손 고객을 대상으로 한 프라이빗뱅킹(PB·종합자산관리)영업의 강화에 맞춰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다양한 틈새상품이나 퓨전상품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나은행은 최근 PB본부에 상품개발부서를 별도로 신설하고, 중소기업 전용 대출상품 개발을 추진하는 등 예년보다 공격적인 상품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국민은행과 외환은행은 각각 개인·외환 등 다른 은행보다 경쟁력이 있는 영역의 타깃상품을 개발, 고객을 끌어들인다는 전략 아래 상품개발 인력 등을 보강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지난해 8월 첫 출시한 뒤 1089개 중소기업에 제공,1587억원의 실적을 올린 ‘네트워크론’을 더욱 강화할 예정이다. 중소기업 사장 및 우량 자영업자 등을 위한 특화된 상품도 개발키로 했다. ●‘상품의 질 더 높여야’ 하지만 무분별한 상품개발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신상품 개발의 초점을 양보다는 질에 둬야 한다는 지적이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독창성 등 경쟁력이 인정되는 은행 신상품에 1∼6개월간 우선판매 권리를 주는 ‘배타적 독점판매권’을 취득한 상품이 지난 4년간 5건에 불과했다. 지난해에는 1건도 없었다. 연합회 관계자는 “금융시장 위축 등의 여파로 지난해 눈에 띄는 상품이 많이 나오지 못했다.”면서 “서로 조금씩 모방하는 상품이 아니라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신상품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배타적 상품권뿐 아니라 BM(비즈니스 모델)특허 출원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투신·보험상품 등 다른 권역의 상품을 가져다 파는데만 급급할 게 아니라 자체 상품개발조직을 활성화해야 할 것”이라면서 “특히 외국계 은행들과 경쟁하려면 정보기술(IT)과 고객 밀착력 등을 활용한 특화상품 개발에 주력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의원들 “금배지가 귀찮아”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무관심과 불신이 깊어가는 만큼 ‘금배지’의 가치가 추락하고 있다.‘금배지’란 국회의원을 상징하는 단어로, 배지가 금색으로 반짝반짝 빛난다고 해서 붙여진 말이다. 그러나 배지는 진짜 금이 아니라 도금된 것으로, 가격도 불과 2만 5000원선이다. 이 배지를 초선의원 일부는 아예 달지 않는가 하면, 국회에 출근할 때만 다는 의원도 있다. 국회의원들이 국회 사무처로부터 수령하는 당선자를 위한 ‘007가방’에는 금배지 2개가 기본사양이다. 갈아입는 양복 개수에 따라 배지를 10개씩 구입하던 의원도 있었다는 과거와 비교할 때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우리는 금배지를 안 달아요” 변호사 출신의 한나라당 진영 의원은 지난해 4월 당선된 이후에 단 한번도 배지를 달아본 적 없다. 재야 출신의 열린우리당 이인영 의원도 ‘배지는 국회에서만’으로 국한한다. 같은 당 비례대표 김영주 의원도 대학생 딸과 동행할 때는 배지를 뗀다. 김 의원은 “딸은 친구들이 ‘국회의원의 딸’이라고 거부감을 느낄까 봐 걱정”이라면서 “쇼핑을 나갈 때면 ‘엄마, 가슴!’하며 배지를 뗄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의원들의 행동에 일부 지역구민들이 섭섭해한다는 것이 문제다. 진영 의원측은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에 의원이 금배지를 달고 나타나야 하객이나 조문객이 곧바로 알아볼 텐데, 배지도 없이 ‘맨양복’으로 나타나니 ‘빛’이 안 난다고 성화”라고 소개했다. ‘금배지’ 착용 여부에 따른 차별대우를 받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열린우리당 윤원호 의원과 장복심 의원은 최근 한 여성단체의 모임에 참석했다. 주요인사 소개때 사회자는 금배지를 달고 나타난 장 의원에게는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장 의원”이라고 소개했다. 반면 그날 배지를 달지 않았던 윤 의원은 “한국여성유권자 연맹 부산지부회장”으로 소개됐다. 열린우리당 한 초선의원은 ‘배지’ 때문에 아들의 혼사가 자꾸 깨져서 신경을 쓰고 있다. 아들이 선을 본 뒤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에 “어머니가 국회의원”이라고 하면 여성 쪽에서 “없던 일로 하자.”며 끝내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또 다른 초선의원은 정치권을 떠나는 후배가 “작별선물로 배지를 달라.”고 졸라대자 ‘울며 겨자 먹기’로 떼어 주기도 했다.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은 지난 2002년 9월 자택에 도둑이 들어 안방의 소형 금고가 털렸다. 금고에는 현금 1000만원과 평소 달고 다니지 않았던 금배지 2개도 들어 있었다. 문소영 박지연기자 symun@seoul.co.kr
  • ‘키다리 아저씨’-아날로그식 짝사랑, 지금도 있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항상 나를 지켜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상상은 다분히 사춘기 소녀적인 취향이긴 해도 꽤나 근사한 일임에 틀림없다. 미국 여성작가 J 웹스터의 동명소설에서 모티브를 따온 영화 ‘키다리 아저씨’(감독 공정식·제작 유빈픽쳐스)는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헌신적인 사랑’이라는 아주 고전적인 사랑의 테마를 스크린위에 옮겨 놓는다. 일찍 부모를 여의었지만 밝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라디오 방송작가 영미(하지원)에겐 대학 등록금을 대신 내주고, 힘들 때마다 격려의 손길을 보내주는 후원자가 있다. 영미는 그를 ‘키다리 아저씨’라고 부르며 애틋한 마음을 간직하는 한편 방송국 자료실 직원 준호(연정훈)와 가슴 설레는 첫사랑을 시작한다. 영화는 원작의 큰 틀을 그대로 빌려왔지만 영미가 우연히 발견한 메일속 커플의 사랑이야기가 액자식 구성으로 녹아들면서 원작과는 다른 길을 걷는다. 일견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과 무관한 듯 보였던 대목, 즉 영미가 메일속 그녀의 안타까운 짝사랑 상대를 찾아주려했던 과정이 액자밖 스토리와 교묘하게 포개지는 막판 반전은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영미가 선물로 받은 대형 곰인형, 영미와 준호의 새벽 꽃시장 데이트 등 몇몇 장면의 아이디어도 반짝인다. 하지원, 연정훈의 자연스러운 연기와 코믹커플 정준하, 신이의 감초 연기도 무난한 편. 하지만 요즘 같은 광속의 시대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홀로 가슴앓이하는 아날로그식 ‘짝사랑’을 스크린에서 바라보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마지막 10여분의 클라이막스에만 기댄 듯한 감독의 순진함, 혹은 우직함이 안쓰럽다.13일 개봉.12세 관람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패션+α]

    ●팀버랜드는 전국 팀버랜드 매장에서 23일까지 시즌오프 행사를 진행한다. 아웃트로 의류는 30%, 신발 및 용품은 20%까지 할인된다. 액세서리, 일부 상품 제외.(02)3445-7346. ●일본 화장품 브랜드 코스메 데코르테가 ‘AQ 에센스 컨디셔너 기획세트’를 1월 한달간 한정 판매한다. 이는 화장수, 에센스, 마사지의 세 가지 기능을 가진 제품이다. 클렌징 크림, 워싱폼 등이 담긴 여행용 파우치와 AQ 에센스 컨디셔너(정품)로 구성.18만원.080-568-3111. ●아식스는 기능성을 강화한 러닝화 ‘GT 2100 시리즈’를 출시했다. 오픈 에어 메시 소재를 사용해 가볍고 통풍성이 뛰어나며, 젤 쿠셔닝 시스템 기능을 강화해 충격흡수율을 높였다. 뒤꿈치와 앞쪽에 빛을 받으면 반짝이는 반사체를 달아 야간에도 도로에서 안전하게 달릴 수 있다. ●DHC코리아가 지난 10월 출시한 ‘DHC 헬스푸드’가 3개월만에 15억원어치의 판매를 달성했다.DHC코리아는 비타민C 파우더, 식이섬유, 아미노산 등의 제품이 인기를 끌었다며 올해 매출 목표를 150억원 정도로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 구호기금 증액 속보이는 경쟁

    쓰나미 피해국가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 열기가 최단시일 내 최대규모를 기록할 정도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러나 국제 구호단체 관계자들은 이같은 지원규모 ‘증액 열풍’ 뒤에는 각 국마다 ‘노림수’가 숨어 있다고 지적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두운 측면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한 지원 노력이 꾸준히 이뤄져야 함에도, 최근 피해 주민들에 대한 지원은 큰 충격에 따른 1회용이거나 과시적 지원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2일 미 ABC방송에 출연해 “참사 발생 후 7일간 쓰나미 구호기금으로 모은 성금이 2004년 한해 인도주의에 호소해 모은 성금 총액보다 더 많았다.”고 밝혔다. 개별적 사건에 관계없이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는 인도주의적 지원이 필요한데, 이번처럼 충격적인 사건이 터져야만 반짝 지원이 줄을 잇고 사건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잊고 만다는 지적이다. 그는 “콩고에서만 하루 1000명 정도가 죽어가고 있다.3∼4개월이면 콩고에서만도 이번 쓰나미 희생자만큼의 사망자가 나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구호단체 관계자들이 우려하는 또 다른 측면은 순수 민간 차원에서 이뤄지는 구호금 모금 외에 정부 차원에서 내놓는 구호자금 약속에는 다른 나라를 의식한 ‘눈치 보기’와 ‘생색 내기’,‘자존심 지키기’,‘체면 차리기’,‘향후 위상 강화나 이권 획득을 노린 주도권 경쟁’ 같은 요인들이 눈에 띈다는 점이다. 당장 일본이 5억달러라는 거금을 쾌척, 미국을 제치고 최대 지원국으로 부상한 것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는 정치적 목적에서 비롯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일고 있다. 지원 약속이 구두선에 그칠 것이란 우려도 이같은 구호 약속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유세진기자 yujin@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청진기/박만호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청진기/박만호

    (무대) 원룸 아파트 아래 위층,301호와 401호 (등장인물) 남:소리감별사 여:빨간 구두의 여인 의뢰인1:50대 초반 의뢰인2:30대 중반 의뢰인3:30대 초반 할머니:꿈속의 환영 딸:중학생 (소리에 대해) 소리는 하나의 등장인물처럼 연기한다. 극의 흐름을 이끌고 가는 극적 요소로 기능하는 것이다. 이 소리를 측정하는 청진기는 ‘호른’의 유려한 곡선 음관을 부착한 특별한 도구이다. ●제1장 어둠 속에서 “영호야- 영호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원룸 아파트 아래 위층인 301호와 401호가 서서히 드러난다. 스탠드만 침침하게 켜져 있는 아래층 301호는 실내가구들이 어렴풋이 보인다. 그 위층 401호는 아직 어둠 속에 싸여있다. “우웅 우웅-”하는 진동음이 들리자, 침대에서 부스스 일어나 귀마개를 벗고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남자.“새로운 메시지가 없습니다.”라는 안내음이 들린다. 이어 아파트의 여러 생활소음들이 와글와글 들려온다. 다시 귀마개를 하고 눕는 남자. 이때 다급한 뾰족구두 소리. 쫓기듯 달려와 위층 401호로 올라간다. 문을 닫고 구두를 벗고 룸으로 들어서는 여자. 외투를 벗고 침대 위로 무너지듯 쓰러진다. 아래층 침대에 누웠던 남자가 슬며시 몸을 일으킨다. 플래시를 켜서 천장을 비춰본다. 위층 여인의 숨소리가 평정을 되찾는다.“끼리리리-”하며 냉장고 가동 소음이 시작된다. 냉장고를 비추는 플래시. 새벽 4시를 알리는 괘종시계 소리와 함께 암전된다. 무대 밝아지면, 아래층 301호의 실내가 드러난다. 침대와 평범한 실내가구들. 구석 쓰레기통에는 호른 나팔과 야구방망이가 처박혀 있다. 탁자에서 남자에게 소리 감별을 받고 있는 의뢰인들. 호른을 닮은 청진기로 손목시계들을 검진하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소리:(손목시계) “째각 째각 째각 째각-” 남자:이게 불량입니다. 태엽이 긁히는 소리가 나는군요. 의뢰인1:계측기로는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남자:0.5데시벨의 소음이군요. 계측기는 보통 플러스 마이너스 1데시벨의 오차를 가지고 있지요. 다음 분. 의뢰인2:(믹서기 3개를 탁자에 놓고) 동방가전에서 출시한 신제품입니다. 모델별 소음의 차이를 알고 싶습니다. 소비자에게 주는 청각적 영향 말이죠.(뚜껑을 살피는 남자에게) 저... 뚜껑이 아니라 작동시의 소음만 분석해 주시면. 남자:모든 소리를 다 분석해야죠. 의뢰인2:우리가 필요한 건. 남자:다시 말하지만, 소리는 복합적입니다. 의뢰인1:감별사님을 믿고 따르세요. 남자:G-1800, Q-300, A-7, 이 세가지 모델의 소리 중에서 A-7이 가장 우수합니다. 의뢰인2:그럴리가요.A-7이 가장 구형인데. 남자:신제품이 G-1800이죠? 이건 실패작입니다.110데시벨의 고주파 파동 현상이 발생합니다. 여기에 무방비로 노출되면 고객만족도가 어찌 될까요? 다음 분이오. 의뢰인3:역시 탁월한 분석이십니다.(포도주 2병을 내밀며) 적포도주와 백포도주입니다. 소리:(뾰족구두) “또각 또각 또각 또각-” (포도주 병을 살펴보다가, 뾰족구두 소리에 눈길을 돌리는 남자. 초인종 소리. 남자가 청진기를 벗고 문을 연다. 복숭아 접시를 들고 들어오는 이층 여자) 여자:안녕하세요? 저는…. 남자:위층 401호 분이시죠? 여자:어머나, 어떻게 아셨죠? 남자:(여인의 빨간색 뾰족구두를 보며) 내 추측이 맞았군요. 빨간색일 거라 생각했죠. 어젯밤에 구두 소리를 들었어요. 여자:어머나, 새벽 4시가 넘어 들어왔는데. 남자:새벽엔 더 잘 들리죠. 여자:한데 색깔까지 어떻게 아셨나요? 남자:검은색 구두였다면 소리가 더 낮게 깔리거든요. 낡은 가죽이라 세월의 나이가 느껴지던데요.15년 된 캥거루 가죽입니다! 여자:호호호- 점쟁이신가봐! 어제 이사왔어요. 인사도 드릴 겸 복숭아 좀 드시라고요.(남자에게 복숭아 접시를 건네며) 어머나, 손님들이 많이 계시군요. 남자:제 의뢰인들입니다. 여자:무얼 의뢰 받으시는데요? 남자:소리요. 의뢰인1:제품의 소리를 감별해 주시는 거죠. 의뢰인2:그 느낌까지요. 의뢰인3:감별사님은 기계보다 정확하시죠. 여자:우리 아파트에 대단한 명인이 살고 계시는군요. 저…이것도 감별이 되나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소리가 잘 안 들리거든요. 남자:(휴대전화를 검진하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소리가 작게 설정된 거 외엔.(진동음을 조정하고) 들어보세요. 소리:(휴대전화 진동음) “우웅 우웅 우웅…” 남자:커졌죠? (휴대전화를 여자에게 주며) 이웃사촌이니 감별비는 받지 않겠습니다. 여자:아유, 고마워요. 남자:소리를 놓치면 후회가 크답니다. 여자:맞아요. 일년 전에 정말 중요한 연락을 놓친 적이 있어요. 샤워 중이었거든요. 제 인생이 걸린 중요한 기회였는데….30분 늦게 연락하는 바람에 바이 바이! 근데 감별사님은 소리를 어떻게 분석하시나요? 남자:기억되어 있는 소리들 때문에 분석이 되는 겁니다. 여자:이 세상 소리를 전부 기억하고 계세요? 남자:한 번 들으면. 의뢰인2:스리쿠션 때린 당구공처럼요? 의뢰인3:구구 팔십일 구구단처럼요? 여자: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처럼? 남자:망각이 안돼요. 모두:오!…. (다시 포도주 병을 검진하는 남자. 가만히 주시하는 사람들) 소리:(포도주) “출렁 출렁 출렁 출렁-” 남자:아르마냑 17년산이군요. 의뢰인3:네! 맞습니다. 남자:색깔도 소리를 냅니다. 적포도주는 백포도주보다 0.3데시벨 정도 고음을 지닙니다. 잔에 따를 때, 잔을 부딪칠 때, 적포도주는 유혹의 소리를 발산하지요. 좋은 술은 좋은 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우와!…. 의뢰인2:선생님. 그 차이를 일반인도 인식할 수 있나요? 남자:그들도 분명 듣습니다. 말로는 표현하진 않지만, 마켓에서 돈으로 표현하죠. 의뢰인들:(박수치며)니즈는 욕망이다! 여자:전 들을 수 없거든요! 색깔이 소리를 낸다고요? 그런 황당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는 거죠? 왜들 무조건 믿는다고만 하시죠? 남자:이걸 쓰고 한번 들어보세요. (여자에게 청진기를 건네는 남자) 여자:이건 호른의 음관이잖아요! 남자:제가 특별히 제작한 청진기입니다. 여자:(쓰레기통에 처박힌 호른의 나팔부분을 발견하고) 저기서 떼어내 만드셨나요? 남자:네. 난 새로운 악기가 필요하거든요. 여자:이 청진기가 악기라고요? 남자:그럼요. 혼자만 들을 수 있는 악기죠. 여자:혼자만 듣는 게 어떻게 악기가 되죠? (청진기를 던지며) 이건 장난감에 불과해요. 남자:진정하세요. 이 세상은 소리로 가득차 있습니다. 소리를 외면하지 마세요. 제발…. 이리 오셔서 들어보세요. 호른 소리를 음미할 수 있어야 진정한 호른 주자가 될 수 있듯이, 이 청진기는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듣게 해 줍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수많은 소리로 가득 차 있는가를 가르쳐 주는 거죠.(청진기를 여자에게 씌워주고 백포도주를 흔든다.) 들리나요? 눈을 감고 들어 보세요. 소리:(백포도주) “출렁 출렁 출렁 출렁-” 여자:들려요. 남자:이번엔 적포도주입니다. 소리:(적포도주) “출렁 출렁 출렁 출렁-” 남자:안단테 칸타빌레로 사라지는 아련한 고음의 잔상이 왼쪽 귓전을 스치죠? 여자:(청진기를 벗으며) 들려요…. 하지만 차이는 모르겠어요. 의뢰인1:허허허- 소리 감별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의뢰인2:그래서 우린 의뢰를 하러 오고요. 의뢰인3:기계보다 정확하시니까요. 여자:흥, 정말로 듣지 못하는 소리가 하나도 없어요? 남자:듣지 못하는 소리라…. 있죠. 잠들었을 때. 여자:밤에도 안 자고 전부 듣는다면서요. 새벽 4시에 제 구두소리도 듣고. 남자:낮에 자나보죠? 여자:농담하세요? 어째 좋은 이웃이 되기는 힘들 것 같군요. (휭하니 나가버리는 여자. 의뢰인들도 일어선다.) 의뢰인1:허허허. 성질도 급하시네. 오늘도 좋은 감별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의뢰인2,3:최상의 분석이었어요.(박수치며) 엑설런트! (모두 나가면 하품하는 남자. 위층 402호로 들어서는 여자. 소리를 읊조린다.) 여자:“우리 아기 예쁜 배, 할미 손은 약손, 쓱쓱 만져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우리 아기 동그란 배, 할미 손은 약손. 궁글궁글 쓸어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남자, 위층의 소리를 의식하며 침대 밑에서 박스 하나를 꺼낸다. 박스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꺼내 물끄러미 바라보는 남자. 스케이트 신발의 줄을 풀렀다가 다시 매더니 하품하며 드러눕는다. 조명 분위기가 바뀐다.) (탁자 위에서 남자의 휴대전화가 진동한다. 코를 고는 남자. 이어 부르는 소리) 소리:“우웅 우웅 우웅- 영호야. 영호야-” 남자:(몸을 뒤채며) 순이니…. 인라인 스케이트 사놨다. 어여 신어봐….(부스스 얼굴을 들고) 엥! 내가 자고 있었나. 순이니? 순이 왔니? 날 저물었는데 얘는 뭐하고 안 들어오나. 어휴, 말을 말아야지. 세상 좋아졌다. 맨땅에서 스케이트를 다 타고.(보호장구와 헬멧을 착용해보며) 돈 쓰게 만드는 기술도 가지가지여. 앉아서 이런 거만 연구하는 놈들 천지니. 어뗘. 순이야. 아빠도 멋져 보이냐? 아빠도 소싯적에 얼음지치기 한가닥 했다. 외날 썰매 모르지? 우선 중심을 잘 잡고…. 긴 꼬챙이 하나를 다리 사이로 넣고 얼음을 팍팍 찍으면서 달리는 거여. 대가미 방죽에선 아빠가 일등했다. 니 이렇게 차려입고 씽씽 달리면 동네 남학생들이 줄줄 따르것다. 순이야, 얼른 들어온나. 인제 호른을 필요로 하는 나이트클럽은 없다. 그러니 아빠는 내일이면 배 타러 가야헌다. 한동안 못 보니까 얼른 와. (시계를 흘낏 보다) 아니 근데 이누무 지지배가 아직도 들어올 생각을 안 하고 어딜 싸돌아 다니는 거여. 내 이년을….(휴대전화 메시지를 발견하고) 얼래, 이게 뭐여.“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그려 근데.“아빠. 로데오광장 빨리….” 20분전에 온 거네. 로데오 광장? 하하- 요것이 눈치 하난 빨라요. 거기서 스케이트 타고 싶다 이거지? 다른 애들처럼. 오냐. 아빠가 가마. 근데 얘가 스케이트 사논 걸 어떻게 알았지? 돈 없다고 등짝을 후려패서 학교 보내 놨더니…. 하여튼 귀신이여 귀신. (박스를 옆구리에 끼고 달려 나가는 남자. 그 열린 문으로 여자가 은밀하게 들어와, 가구들 뒤에 무엇인가를 붙여 놓는다. 감별사의 청진기를 보고 자기 심장에 대본다.) 소리:(심장박동) “쿵 쿵 쿵 쿵-” (남자가 돌아오는 기척. 얼른 복숭아 가져왔던 접시를 드는 여자. 남자가 힘없이 들어선다.) 여자:어머! 오셨네요. 문이 열려 있기에 접시를 가져가려고요. 아깐 제가 너무 흥분했었나 봐요. 어디 산책 다녀오세요? 남자:근처 로데오 광장에 갔었습니다. 아이들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있더군요.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나도 즐거워지거든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지요. 웬 처녀가 글쎄 나한테 “아빠”라고 부르는 겁니다. 여자:어머나, 그래서요. 남자:후후후. 당황스러워 혼났습니다. 여자:그 아가씨 아빠가 감별사님과 비슷한가 보죠. 남자:하긴…. 그 아가씨도 우리 딸애와 비슷하긴 했어요. 여자:따님이 있으세요? 남자:……. 여자:참, 그거 잘 타세요? 스케이트요. 남자:내 스케이트가 아닙니다. 여자:누구한테 선물하시려나 보죠? 남자:……. 여자:호호- 말씀하기 싫으신가 봐요.(문으로 가며) 그럼 또 뵙겠습니다. 남자:일년 전, 휴대전화 소리 때문에 인생이 달라졌다고 했죠? 소리는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금방 사라지거든요. 여자:감별사님. 좋은 이웃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여자 나가면, 남자는 박스를 옆에 낀 채 홀로 서성인다. 조명 분위기 다시 바뀐다.) 남자:어휴! 몇 분 차이로 이게 뭐여. 속 터져. 쬐금만 더 기다리지 않고선.(박스를 놓고 휴대전화 메시지를 확인하며) 이누무 기지배는 대체 어딜 간 거여. 소리:“삐- 삐- 새 메시지는 없습니다.” 남자:아! 눈부시다. 눈부셔. 왜 이리 눈이 부시지? 불을 끌 수도 없고. 순이야, 어여 연락 좀 해라. 아빠 이러다가 죽는다잉. 일주일째 이러고 잠 한숨 못 잤다.(침대에 드러누우며) 이러다 아빠 죽겠다. 순이야. 순이야…. 소리:(진동소음) “우웅 우웅 우웅 우웅-” 남자:(벌떡 일어나 휴대전화 확인하며) 아니잖아. 어디지? 아래층 201호여! 죽겠네. (문을 열고 아래층으로 뛰어가는 남자. 문을 다급히 두드리는 소리) 남자(E):여보세요,201호 아저씨! 전화 왔어요- 얼른 휴대전화 좀 받아 봐요. 201호(E):돌겠네! 안 받으려던 건데. 알았다니까- (휴대전화 진동소리 겨우 멈춘다. 다시 들어오는 남자) 남자:싸가지 없는 놈. 끝까지 안 받네. 매너들 없어. 소리:(TV 끝나는 소리)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치이-” 남자:302호 미친놈. 오늘도 저 모양이야. 꺼라. 제발 좀 꺼라. 바로 옆방에서 이러면 어떡하냐.(앞쪽 베란다로 나와서) 302호- 텔레비전 좀 끄쇼. 시끄러워 살 수가 있나. 이웃들(E):조용히 좀 해요. 남자:302호, 조용히 하라잖아요∼ 이웃들(E):301호, 당신이 조용히 해∼ 당신 때문에 못자. 아저씨 날마다 이게 뭐예요. 남자:이런 우라질. 귓구멍이 거꾸로 뚫렸나. 나는 니들 때문에 못자- 아! 눈이 터질 것 같네. 그래도 안 끈다 이거지. 니기미! 대한사람 살아야 길이 보전도 된다. (야구방망이 들고 나가는 남자.302호 문 부서지는 소리. 비명소리. 순찰차 사이렌 소리) (위층 401호 여자는 나지막이 뭔가를 읊조린다.) 여자:“쓱쓱 만져 주면…뭐든지 다 낫는다…궁글궁글 쓸어 주면…뭐든지 다 낫는다….” 무대 서서히 어두워진다. 암전. ●제2장 무대 밝아지면, 아래층 301호 침대에 우울하게 앉아있는 남자. 얼굴에 수건을 두르고 귀마개를 하고 있다. 말씨가 점차로 사투리 운율로 변해간다. 남자:백두산이 다 닳기 전에, 대한사람 살고 보자는데 웬 말들이 많은 겨.(수건을 풀며) 돌아와 보니 문은 닫혀있고 불은 꺼져 컴컴하고…. 아무도 없는 거여. 그냥 빈집이여. 빈집.(귀마개를 벗으며) 기껏해야 한 삼일이면 됐지. 왜 삼일이 열흘 되고 달포 되고 한달 되느냔 말이여. 왜 삼일이 석달 되고 석삼년 되느냔 말이지. 이상타. 참말 이상한 일이다. 어무이는 금가락지 끼워주면 훨훨 날아간다 허지, 딸년은 스케이트 있어야 씽씽 달려간다 하지. 아! 나도 편지 한 장 달랑 써 놓고 부산으로 가서 외항선 탔다 했지? 석달 열흘만 꾹 참고 다녀오자. 어무이도 없지. 딸자식도 없지. 여편네도 없지∼ 허참, 귀신이 곡할 노릇인 거여, 시방 이것이. 태평양 넘어 동지나해 건너 알류산 열도 거쳐 부산항에 도착, 광복동 시장에서 딸년 인라인스케이트하고 어무이 서돈짜리 금가락지 서둘러 해가지고 와보이, 종적이 묘연한 것이여. 여편네 줄려고 야들야들한 속곳 둘둘 말아 끼고 왔는디, 입을 사람이 없는 거여. 세상 참 얄궂네. 인생 허망타. 어무이도 없지, 딸자식도 없지. 여편네도 없지∼ 소리:(진동음) “우웅 우웅 우웅 우웅-” (얼른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남자.“새로운 메시지가 없습니다.”라는 안내음. 실망하는 남자. 이때 문을 노크하는 소리. 남자가 문을 여니 의뢰인들이 의뢰품들을 들고 들어온다.) 의뢰인들:좋은 아침입니다. 의뢰인1:(전자레인지를 탁자에 놓고) 부품 교체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남자:(청진기로 검진하다 고개를 갸웃거린다.) 흠…흠… 소리:(전자레인지) “위이이잉-” 남자 : 모터가 낡았으니 교체하세요. 다음. 의뢰인2:(책들을 놓으며) 신나라출판사의 기획 시리즈 견본품인데요. 남자:(책장 넘기며) 책도 소리를 가집니다. 종이 지질에 따라서 소리는 천차만별입니다. 소리:(종이) “펄렁 펄렁… 팔랑 팔랑… 풀렁 풀렁…” 남자:이건 모조지, 이건 아트지, 이건 하드보드에 코팅까지. 아트지는 반짝 반짝! 모조지는 서글 서글! 3데시벨의 편차가 있네요.(표지를 보며) “세계의 미스터리”라…. 이 제목에는 모조지보단 아트지가 어울립니다. 미스터리는 반짝반짝해야죠. (여자가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와 몰래 엿본다.) 의뢰인3:(돌멩이 2개를 놓으며) 심산인테리어에서 의뢰한 겁니다. 남자:(돌을 살피며) 흥미 있는 소재이군요. 돌의 소리는 가장 심원한 소리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재질이니까요. 돌의 소리는 음악의 근본입니다. 돌로 만든 악기인 편경의 소리는 국악의 표준 음정이죠.(돌을 부딪쳐 본다.) 오만년의 역사를 간직한 소리입니다. 소리:(돌) “딱 딱 딱 딱-” 의뢰인들:정말 탁견이십니다. 남자:저 전자레인지는 전에도 감별해 드린 건데요. 저를 시험하시나요? 의뢰인1:예? 오해십니다. 남자:칠일 전에도 해드렸고, 한 달 전에도 했습니다. 의뢰인1:청진기가 착오를 일으킬 수도 있지 않습니까? 남자:기계든 인간이든 자기만의 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리는 살아있는 생명체죠. 청진기는 거짓을 모릅니다. 여자:(앞으로 나서며) 감별사님의 판단을 믿지 못하시나요? 의뢰인1:음…. 출고담당 직원의 미스인가 봅니다. 확인해 보죠. 여자:(모두 자신을 쳐다보자) 어머나! 안녕하세요. 호호호- 문이 열려있지 뭐예요. 의뢰인1:소리 감별은 회사의 일급 기밀입니다. 여자:한심한 출고담당 재교육도 중요하죠. 의뢰인1:(전자레인지 들고 나가며) 성질도 급하시고 변덕도 심하시군요. 흠, 흠. 여자:오늘의 분석은 어땠나요? 의뢰인2:출판사가 관심을 가질 것 같습니다. (의뢰인2,3도 나간다. 남자가 문을 잠그더니, 얼른 여자를 데리고 구석으로 간다.) 남자:혹시 이 아파트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 못하셨나요? 여자:글쎄요? 남자:이사 온 뒤로 다른 주민들 보신 적 있나요? 여자:네… 봤죠. 남자:이상하지 않던가요? 여자:네. 남자:언제부터인가 이 아파트 주민들이 잠만 자고 있어요. 모든 활동이 중지된 겁니다.201호는 휴대전화를 안 받는 버릇이 있고,302호는 지가 무슨 애국시민이라고 날마다 애국가를 시청하더니 모두 조용해 진 겁니다. 여자:에이, 고급 아파트는 원래 조용하잖아요. 남자:(눈치를 보더니 말소리를 죽이며) 나는 저 의뢰인들을 믿지 않습니다. 여자:(놀라며) 네? 무슨 말씀이세요? 남자:뭔가 수상쩍은 음모가 있어요. 의뢰 물품이 변하지 않고 있어요. 여자:날마다 똑같아요? 남자:일주일 주기로 반복되고 있어요. 예전엔 한달 주기였죠. 점점 짧아지고 있어요. 나는 새로운 소리를 원합니다. 여자:좋아하는 음악은 자꾸 듣기도 하잖아요. 가령 호른 연주는 어때요? 남자:모차르트 호른협주곡 3번 2악장 로만자… 호른은 같은 곡을 연주하더라도 날마다 다릅니다.(청진기 곡선음관을 어루만지며) 호른을 통해서 들어야 세상은 아름다워집니다. 하지만 누가 날마다 같은 구름을 보고 싶겠소. 누가 날마다 같은 바람을 맞고 싶겠소. 출고담당 직원의 미스라고 둘러대지만 실수가 아닙니다. 치밀하게 반복되는 순환시스템이죠. 소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이 세상이 죽어가는 것처럼. 저들이 소리를 뺐어가는 겁니다. 아…. 이러다가는 당신의 잠꼬대마저 뺐어갈지도 몰라요. 여자:어젯밤에 제가 잠꼬대했나요? 남자:(흉내 낸다.) “쓱쓱 만져 주면… 궁글궁글 쓸어 주면…” 여자:어머, 어머! 저를 너무 속속들이 아시네. 호호호- 내 정신 좀 봐. 가야겠어요. 남자:어젯밤에 당신의 잠꼬대 소리를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아세요? 제발 가지 마세요. 여자:네? 남자:잠꼬대 소린 정말 너무 오랜만에 들어 봤어요. 지금 이 아파트에서 당신만이 유일하게 살아있는 사람이에요. 지금 가버린다면 당신도 잃어버릴 것만 같아요. 여기 계세요. 여긴 안전하니까. 여자:(남자를 경계하며)감별사님은 소리를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남자:사실은 소리가 무서워요. 여자:왜요? 남자:너무 진실하니까. (이때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온다. 점점 고조되는 온갖 소리들. 서로 뒤섞여 아비규환의 아우성처럼 난무한다.) 소리:“찌르르르… 출렁출렁… 저벅저벅… 쿵쾅쿵쾅… 우웅우웅… 영호야∼영호야∼” 여자:이게 뭐야? 어디서 들리는 소리지? 남자:(귀를 막으며) 아! 아! 저리가. 듣기 싫어. 씨끄러. 듣기 싫어. 아아악- (남자 귀를 막으며 고통스러워한다. 나가려 하지만 열리지 않는 문. 야구방망이로 치고 머리로 들이받으며 발광하다가 쓰러진다. 여자는 놀라서 남자를 부둥켜안는다. 소리들이 그친다.) 여자:여보… 여보! (병원 가운을 입은 의뢰인들이 나타난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남자를 침대에 뉘고 벨트로 사지를 결박한다. 남자를 청진기로 진단하는 의뢰인1) 여자:아… 어떻게 된 거죠. 무서워요. 무슨 소리였죠? 그이는 괜찮은가요? 의뢰인2:안심하세요. 본 특병동의 소리치료 시스템입니다. 일종의 충격요법이죠. 의뢰인1:상태가 좋지 않아.2단계 프로그램도 실패야. 발작 증세가 멎지를 않네. 더 이상 늦출 수 없어. 내일 수술 일정 잡도록 해. 의뢰인3:근데 보호자께서 동의서에 아직 서명을…. 의뢰인1:그깟 동의서 하나를 여태 못 받아? (여자에게) 똑바로 들으세요. 내일도 서명하지 않으면 조치를 취할 겁니다.(의뢰인2에게) 자네 수련의가 왜 그 모양이야. 그럴 거면 딴 병원으로 가. 내가 이젠 환자한테 훈계까지 받아야 돼? 내가 저를 시험한다고? 미친놈이 입만 살아서. 한데… 어떻게 알았지? 의뢰인2:환자는 지각능력이 있는 게 확실합니다. 자신에게 의미있는 것에만 몰두하는 주의력 증가 기제가 너무 왕성해서 그렇습니다. 환자의 소리 분석은 정상입니다. 의뢰인1:믹서기 회사에선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했잖아. 의뢰인2:그건 생산부장의 말이고요. 오늘 아침에 마케팅팀장과 통화했는데 좋은 지적이라고 반기더군요.2차 분석도 의뢰하겠답니다. 일시적인 “해리성 황홀경”입니다. 의뢰인1:속단하지 말라고 했지? 자네의 진단은 정서적인 판단이 앞서고 있어. 의뢰인2:“뇌손상에 의한 퇴행성 기억장애”란 과장님의 진단은 측두엽의 손상만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거 아닙니까? (쓰레기통에서 부서진 호른 나팔을 꺼내서 안고 있던 여자가 나선다.) 여자:선생님, 우리 그이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의뢰인1:미치겠네 정말. 아까 발작하는 거 못 봤어요? 가족도 몰라보잖아요. 여자:예전에 연주하던 곡 이름을 정확히 기억해 냈단 말이에요. 의뢰인1:단편적인 기억 정도는 모든 환자들이 다 가지고 있어요.(부적뭉치를 던지며) 이게 뭡니까? 이런 식으로 맘대로 행동하면 퇴거조치시킬 겁니다. 여자:이 부적에 어떤 힘이 있다고 믿으세요? 미신에 불과하다면서요? 의뢰인1:그게 아니고…. 의사의 치료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 아닙니까. 협조요. 협조! 여자:협조했잖아요. 가구며 소지품들 가져다가 집안처럼 꾸며놓고… 순이더러 로데오 광장에서 아빠를 기다리라고 해서 그렇게 했잖아요. 근데 별 이상도 없는 이가 왜 딸을 몰라보나요? 왜 아내도 몰라보나요? 그저 지쳐서 그런 걸 거예요. 집에 가서 잘 요양하면… 고요한 호숫가를 찾아서 호른도 불면서 푹 쉬면 나아질 거예요. 의뢰인1:흥, 호른 분다고 치료가 되면 병원이 뭐하러 있어요! 도대체 의사를 뭘로 보는 거요? 기물을 파손하고 상해를 입힌 환자는 완치되기 전엔 퇴원할 수 없습니다. 내일까지 수술 동의서에 서명하세요.(의뢰인3에게) 진정제 5밀리그램…. 아니 7밀리그램 준비하고, 면회는 금지시켜. (의뢰인1,3 나간다. 흐느끼며 부적을 줍는 여자. 창문으로 복도에서 담배 피우는 의뢰인1이 보인다.) 여자:흑흑흑…. 날더러 어떡하라고요. 기다려라. 기다려라…. 벌써 세 달이 됐어요. 의뢰인2:왜 그토록 소리에 집착하는지 그 압제의 요인을 찾아야 하는데…. 기억 과잉이 문제입니다. 뇌의 측두엽에 너무 많은 소리의 기억들이 축적되어서, 컴퓨터가 다운되듯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주치의께선 손상된 부위를 제거하지 않으면 발작이 계속된다고 보십니다. 삭제키를 눌러야 리소스 부족에서 해방되니까요. 여자:그러면 과거의 모든 기억이 사라진다면서요. 의뢰인2:대신 새 기억은 지킬 수 있습니다. 여자:그토록 찾던 딸이 눈앞에 나타나도 못 알아보는데, 앞으론 영원히 그렇게 되겠죠? 이 빨간 구두요… 15년 된 캥거루가죽 맞아요. 저이가 나이트밴드 아르바이트 뛰어서 첫 월급으로 사준 우리 결혼 선물이죠. 이거 신고 난생 처음 비행기 타고 제주도로 신혼여행 갔어요. 이 호른은 방직공장 월급 일년을 꼬박 모아서 제가 사준 거예요.(호른을 쓰다듬는 여자. 창가에서 귀 기울이는 의뢰인1) 서귀포 밤바다는 그날 따라 왜 그렇게 고요했는지, 저이가 부는 호른 소리가 수평선 끝까지 울려 퍼졌어요. 모차르트 호른 협주곡 3번 2악장 알레그로. 그게 저이가 아는 유일한 연주곡이죠. 순이를 낳게 되어서 사범대학을 그만뒀으니… 이 모든 걸 다 잊어버리겠죠? 의뢰인2:아마 그렇게 되겠죠. 여자:그렇게 되면, 우린 이 세상 안 산 거나 같네요. 시골 고등학교 밴드부 남학생이 부는 호른 소리에 바람나 쫓아다니다가…. 외아들 사범학교 나와 선상님이 평생소원이던 홀어머니 가슴에 못질하고, 남자 앞길 망쳤다고 원망들은 촌년이… 저승 가서 어머니까지 못 알아보는 산송장 만들어 놨다는 소린 죽어두 들을 순 없네유. 차라리 청진기 쓰고 세상의 소리에 미쳐서 사는 게 나아요. 저인 소리를 사랑했으니까. 저이 어머니도 소리를 벗삼아 사셨으니 하늘나라에선 서로 알아보겠지요. 의뢰인2:사모님…. 여자:선생님도 저이가 미쳤다고 보세요? 의뢰인2:의사가 해서는 안 되는 말이 하나 있지요. 알 수 없습니다…. (의뢰인3이 주사기 가지고 들어온다. 의뢰인2가 여자를 부축해 나간다. 의뢰인3이 주사할 준비를 하는데, 창문에서 지켜보던 의뢰인1이 들어와서 부서진 호른을 들어본다.) 의뢰인1:아까 몇 밀리그램이라 했지? (쳐다보는 의뢰인3) 3밀리그램만 투여해. 의뢰인3:3밀리요? 네…. (주사기 용량을 조절해서 남자의 팔에 주사 놓고 나가는 의뢰인3) 의뢰인1:길영호씨. 지금 혼자서 호숫가를 거닐고 있소? (입으로 모차르트 호른협주곡 3번을 불며 빠져든다.) 빠밤 빠바바밤 바밤바 빠바밤- 빠밤 빠바바밤 바밤바 빠바밤- (이층 401호로 힘없이 들어서는 여자. 부적 뭉치를 탁자에 놓다가 세어본다.) 여자:하나, 둘, 셋, 넷…. 분명 다섯장을 붙였는데. 한 장이 살아있어! (암전) (무대 밝아지면, 병실 분위기가 나는 아래층 301호. 환자복이 입혀진 남자가 침대 벨트에 묶여있고, 의뢰인2를 따라 여자와 딸이 들어선다.) 의뢰인2:휴, 제가 미친 거 같네요. 주치의가 회진오시기 전에 끝내셔야 합니다. 여자:고맙습니다. 순이야, 어서. 딸:아빠! 제가 왔어요. 어째 잠만 자는 거야. 흑흑흑…. 아빠 일어나세요. 눈떠- 아빠- 여자:여보! 순이가 돌아왔어요. 이제 일어나세요. 다 잘되었어요. 저도 직장 잡아 돈벌이해요. 지난 일은 잊고, 정신 좀 차리세요. (여자와 딸이 벨트를 풀고, 사력을 다해 남자를 일으켜 세운다. 아무리 흔들어도 눈을 뜨지 못하고 무너져 태아처럼 웅크리는 남자) 딸:흑흑흑…. 엄만 대체 무얼 한 거야! 아빠가 저리 되도록. 여자:엄만 안 해본 거 없다. 귀신 쫓는다는 복숭아도 들이고, 부적도 붙여보고, 약손으로 아픈 데 쓸어주시던 할머니 소리도 해보고…. 너는 뭘 하고 있었어. 이년아, 니 아빠 이리된 것 다 너 때문이다. 나가버릴 거면 그냥 나가지 메시지는 왜 남겨! 딸:난 그냥…. 아빠가 기다릴 것 같아서…. 여자:그걸 아는 년이 세 달이나 안 들어와! 니 메시지 못 들었다고, 또 올지도 모르니까 지켜봐야 한다고, 휴대전화에서 눈도 못 떼고 일주일을 뜬눈으로 지새우셨다. 그러다 결국 쓰러지신 겨. 산송장 되신 겨. 집으로 가요, 여보. (남자의 환자복 윗도리를 벗기고 몸을 쓸어주며 사복으로 갈아입히는 여자와 딸. 자연스럽게 할머니의 소리를 하게 된다.) 여자:“우리 아기 예쁜 배, 할미 손은 약손, 쓱쓱 만져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할머니:“우리 아기 동그란 배, 할미 손은 약손. 궁글궁글 쓸어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소리를 받아 부르는 할머니의 환영. 문으로 들어와 부엌에서 요리를 한다.) 할머니:어여 일어나거라. 영호야. 된장찌개에 밥 말아먹고 어여 핵교 가야지. 온나 온나. 어여…(미소 짓는 남자) 우리 외동이, 온나 온나. 딸:엄마! 아빠가 웃어. 여자:어디? 정말! 여보, 어디 좋은 곳 유람이라두 하는 게유? 할머니:아유, 찌린내. 요 녀석 바짝 섰네. 쯧쯧쯧. 이부자리는 한강이구. 늦게까지 숙제하더니 곤했던 게여. 그려 됐다. 옷 갈아입자. 아부지 모르시게 저리 치워놨다. 인나렴. (여자와 딸이 남자의 아랫도리도 사복으로 갈아입힌다. 할머니는 싱크대로 가서 도마를 꺼내 칼자루 끝동으로 마늘을 다진다.) 소리:(마늘 다지는) “쫑 쫑 쫑 쫑-” 여자:여보,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눈을 떠요. 딸:아빠. 눈 떠. 제가 잘못했어요. 흑흑흑. 아빠. 제발! 남자:불…. 불이여…. 딸:뭔 불이 나? 남자:집에 불났다. 어쪄 어무이. 할머니:간밤에 어매가 호롱불 꺼놨다. 걱정 말그라, 불 안 났으니. 밥 다됐다. 소리:(찌개 끓는) “보글 보글 보글 보글….” (마침내 힘없이 눈 뜨는 남자) 할머니:됐다. 눈 떴다! 딸:아빠! 여자:여보! 할머니:어매는 좀 쉴란다. (이젠 할머니가 기력이 다한 듯 눕는다. 중얼거리며 그 옆으로 다시 무너지는 남자) 남자:왜 이리 자꾸 졸리지. 어무이 괜찮으셔유? 주무시는가베. 순이야, 엄마는 일 나갔니? 밥은 먹었니? 그래 아빠 잠깐 눈 좀 붙였다 일어날 테니 뭔 일 있으면 깨우렴. 아주 잠깐이다…. 아빠가 일어나서 떡볶이 해줄게. 설탕도 넣고 달달하게…. (모로 쓰러진 남자 어느새 코를 곤다. 할머니가 부스스 일어나 아들과 손녀를 보더니 천천히 문으로 걸어 나가며 아들을 부른다.) 할머니:애비야…. 영호야! 영호야…. (놀라서 벌떡 일어나는 남자) 남자:어무이! 딸:아빠. 꿈에 할머니 봤어? 남자:순이야. 혹시 할머니가 뭐라 하셨니? 딸:언제요? 남자:돌아가시기 전에. 딸:(할머니 목소리로) “애비야…. 영호야! 영호야….” 남자:그래… 맞았어. 어무이가 날 부르는 소리였어.(딸을 안으며) 순이야. 할머니가 아빠를 불러주셨구나. 아빠는 할머니가 한마디도 안 하고 그냥 가신 줄 알았다. 여보, 어무이가 나를 불러 주셨대. 날 용서하신 거여. 여자:여보, 흑흑흑…. 딸:내가 아빠를 얼마나 깨웠는 줄 알어? 남자:기특한 것. 아빠가 잘못했다. 어무이, 지가 죽일 놈입니다. 여자:아니에요. 지가 죽일 년이에요. 남자:어무이 손은 약손이여. 암…. 그렇구 말구. 딸:할머니 손이 약손? 남자:니 여섯 살 때, 맹장염을 앓았단다. 할머니가 밤새 순이 배를 문질러 주셨대. 할머니 약손으로. 니가 잠이 들어서 새벽이 됐는데, 아빠가 나이트 일 마치고 와보니 이미 혼수상태인 거라. 그래 아빠가 들쳐 업고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은 거여. 딸:애게, 약손이면 맹장도 고쳐야지. 남자:아픈 걸 잊게 해주셨잖니. 그러니 약손이지. 이렇게 배를 쓸어주시면서…. (약손 소리를 함께 부르는 가족. 할머니가 밖에서 창문을 열고 함께 부른다.) 가족:“우리 아기 예쁜 배, 엄마 손은 약손, 쓱쓱 만져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할머니:“우리 아기 동그란 배” 가족:“엄마 손은 약손” 할머니:“궁글 궁글 쓸어 주면…” (노래하다가 침울하게 그치는 할머니) 할머니:인자 이 손 약발도 다 떨어졌는가부다. 이 손으로 아범 뺐어가려던 저승사자들 다 쫓아 버렸는데 이젠 안 되는가부다. 내 다시는 약손 안 할란다. 남자:어무이, 이참에 그 달랑무 소리도 그만 두세요. 동네 애들이 벌써 순이를 놀린대요. 할머니:내 그리하마…. 달랑무 소리두 안 할란다. (창문을 닫는 할머니. 의뢰인1이 방으로 들어선다. 긴장하는 의뢰인2) 의뢰인2:선생님, 환자가 깨어났습니다. 어제 2단계 프로그램의 효과인 것 같습니다. 옷은 환자가 갈아입고 싶다고 해서…. 의뢰인1:음…. 잘했구만. 길영호씨. 이제 환청이 들리지 않습니까? 남자:네, 사라졌습니다. 의뢰인님. 의뢰인1:허허허…. 잊으세요. 불필요한 소리들을. 불필요한 기억들을. (의뢰인3이 호른 케이스를 하나 들고 들어온다.) 의뢰인3:지금 도착했습니다. 의뢰인1:(케이스를 남자에게 주며) 퇴원하게 되면 이게 필요하실 겁니다. 여자:호른이잖아요? 의뢰인1:제가 30년간 가지고 있던 겁니다. 주인을 잘못 만나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었죠. 한적한 호숫가를 찾게 되거든 연락 한번 주세요.(나가며) 한번 들으러 가고 싶군요. 의뢰인2:선생님! 의뢰인1:자네가 “알 수 없습니다.” 하는 순간, 나도 알 수 없어 졌다네. 의사는 신이 아니지 않은가. 남자:선생님. 신은 이 수많은 세상의 소리를 어찌 다 들을까요. 의뢰인1:허허허- 다 듣다간 신도 입원해야지요. (마주보고 씩 웃는 그들. 의뢰인들 나간다.) 남자:어머니더러 달랑무 못 파시게 한 그것이 내내 걸리는 거여. 바깥출입도 안 하시구 말수도 적어지더니 그냥 가신 거여. 여자:제 잘못이에요. 동네 푼수들 말만 듣고…. 남자:어무이는 소리 힘으로 사신 겨. 그게 어무이 약손이여. (문이 열린 채다. 그 문으로 겨울바람이 불어온다. 어머니가 다시 들어와 서성이며 누군가를 기다린다. 뭔가 바람에 날려 쿵- 엎어지는 소리) 할머니:영호니? 영호야- 야가 삼일씩이나 어딜 간 거여. 저게 누구여. 영호지. 어여 어여 온나. 세상에! 야가 못 먹어서 눈이 십리는 들어갔네. 집 놔두구 어딜 갔다 이제 오는 겨. 들어가 밥 묵자. 엄매가 된장국 끓여놨다.(흰 고무신을 주며) 봐라. 흰 고무신 사놨다. 따습지? 어여 신어봐. (흰 고무신을 받아 침대 머리맡에 놓았다가, 가슴에 끌어안고 웅크리는 남자) 소리:(소년) 흰 고무신 때 타면 어쩐대유. 소리:(할머니) 영호야 자니? 엄매는 그깟 금가락지 없어도 된다. 영호만 있으면 된다. 소리:(소년) 어무이. 흰 고무신… 내 눈 내리면 신을란다. 소리:(눈 밟는) “뽀작 뽀작 뽀작 뽀작” 할머니:멋지다. 헌헌장부 났다. 남자:남학생들이 줄줄 따르것다잉. 손이 얼은 것 좀 봐. 요리로 들어와. 어여. (어느새 인라인 스케이트 신고 헬멧 쓰고 서있는 딸. 아빠 엄마 있는 침대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간다. 문가에서 고개 끄덕이던 할머니, 달랑무 팔러 가신다.) 할머니:달랑무∼ 있어. 푸성귀나∼ 달랑무∼ 있어. 무대 서서히 어두워지며 암전. ■ 희곡 당선소감 게으른 며느리에게 시켜야 할 일은 두부 만드는 일이랍니다. 느긋하게 일해야 맛있는 두부가 만들어진다죠. 군대 지휘관도 게으른 사람이 좋답니다. 게으른 천재여야지 괜히 아랫사람 생고생 시키지 않는다는 건데…. 요건 사실 게으른 아랫사람들의 소망이죠. 부지런한 천재 즉 이순신 같은 양반 만났다간 그저 죽었구나 하고 뛰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는 없지요. 안 뛰면 바로 곤장 맞지요. 난중일기 쬐금 보니까, 임진왜란 발발 전에 이 어른 매일 하는 일이 순찰 나가서 하급지휘관 곤장 치는 게 주업무이시더군요.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다 하셨으니 백전백승의 신화를 창조하셨던 게죠. 선친께서 제 원래 이름자에 늦을 만(晩)자 하나를 넣어주신 덕택에 이렇게 느즈막히 입문하게 되었나 봅니다. 작은 상 하나를 펴놓으시고 늘 만년필로 원고지에 글을 쓰셨던 아버님께서는 교단 은퇴 후에 스스로 책 몇 권을 출간하셨죠. 그러곤 집안잔치가 있으면 친구 분들께 그 책을 선물하던 낙으로 사셨습니다. 평생 글을 쓰시던 열정은 정말 프로작가 못지않으셨지요. 이제부턴 저도 작심하고 자세 가다듬어 열심히 쓰겠습니다. 작은 상 앞이 아니라 PC 앞이 되겠네요. 축하해주는 벗님들, 사랑하는 영두와 영소, 그리고 가족들. 더불어 삶의 위안과 기쁨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서. 아울러 미흡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약력 1959년 충북 제천 출생 중앙대 교육대학원 무용 석사과정 ■ 심사평 세상이 어수선한 탓인지 응모작들 중에서도 투신자살, 노숙자, 입시부정, 로또복권 등 세상살이의 고달픔을 담은 작품들이 유난히 많았다.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 그리고 각종 드라마 매체에 많이 노출된 탓인지 대화체의 이야기 구사에는 능숙해졌으나 막상 연극이라는 무대예술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는 작품은 드물었다. 최종적으로 심사자들의 손에 남은 희곡들은 박만호의 ‘청진기’, 김성제의 ‘바다로 가는 성북행’, 그리고 류세균의 ‘달 속의 그늘’이었다. 공사판의 살인사건을 그린 ‘달 속의 그늘’은 밑바닥 인생들의 성격설정이나 대사구사에 능숙했으나 극 구성이 너무 평이하고 결말 부분을 배영감의 감상적인 인생고백으로 가져간 점이 지적되었다. 지하철 승강장을 배경으로 해서 사회적으로, 성적으로 상처받고 억압된 두 모자의 아픈 일상을 포착해낸 ‘바다로 가는 성북행’은 살아있는 독특한 정서가 심사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남편에게 맞고 사는 식당 파출부인 엄마와, 성전환 수술을 위해 일본으로 돈벌러 가는 여성적 아들의 아픔을 과장되지 않은 일상적 대사 속에 담아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극적 상황과 행동을 충분히 연극적으로 객관화시키지 못했고 극이 아직 작가의 주관적인 관점 안에 갇혀있다는 느낌이 있다. 현대생활을 지배하는 각종 소음과 어린 날에 듣던 정겨운 소리들을 대비시킨 ‘청진기’는 ‘소리’를 극적으로 전경화시킨다는 아이디어나, 신경증환자인 남편을 아내가 의료진과 공모해서 연극적으로 치유한다는 설정 등이 충분히 연극적이며 대사나 극 전개 기법도 상당히 감각적이었다. 그러나 ‘문명의 비인간성/어린 시절의 순수함’이라는 대비가 도식적이며, 극전개의 생략과 비약이 과도한 점에서 어느 기성작가를 연상시킨다는 점이 다소 걸렸다. 결국 각각 장단점을 갖춘 ‘청진기’와 ‘바다‘를 두고 고심을 거듭하다가 그 나름의 완성도와 무대적 상상력을 높이 사 ‘청진기’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김철리(연출가)·김방옥(평론가)
  • [그 영화 어때?] 웰컴투동막골 촬영현장

    햇살이 채 스며들지 못한 산자락 응달엔 언제 내렸는지 알 수 없는 하얀 눈이 군데군데 웅크리고 있다. 차 한대 겨우 들어가는 울퉁불퉁한 좁은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오르니 기와를 얼기설기 이어 지붕을 만든 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작은 마을 ‘동막골’이 눈앞에 펼쳐진다. 한국 근현대사를 통틀어 가장 피비린내났던 상처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평화로워 보이는 그 곳. 강원도 평창군에 자리잡은 영화 ‘웰컴 투 동막골’(제작 필름있수다)의 세트장인 이 마을에서, 국군·인민군·연합군이 이념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아름다운 팬터지를 그리고 있었다. #덩실덩실 마을 축제에 귀청 찢는 총소리가… 모닥불이 모락모락 연기를 날리는 마을의 정자나무 근처엔 한참 흥겨운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전쟁이 일어났는지조차 모르는 마을사람들과 그들에게 동화돼 함께 어울리는 군인들. 이들은 전투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오게 된 연합군 조종사 스미스(스티브 태슐러), 길 잃은 인민군 수화(정재영), 국군 탈영병 현철(신하균)의 일행들이다. 음악이 흐르고 슛 사인이 들어가자 30여명의 마을 사람들과 10여명의 어린아이들이 덩실덩실 춤을 춘다. 하지만 이내 귀청을 찢는 듯한 총소리가 판을 깬다. 동막골에 추락한 미군기가 피격됐다고 오인한 한·미연합군이 쳐들어온 것. 총구를 들이댄 채 “이 X새끼들아.”“Shut up”“빨갱이 어딨어?”등의 목소리가 뒤섞이고 마을사람들도 우왕좌왕한다. 참다 못한 현철은 국군을 공격하고, 수화도 연합군 두 명을 처리한다. 어디에 눈을 둬야할지 모를 정도로 순식간에 수십명이 뒤엉켜 긴장감 넘치는 액션신. “컷. 누구 다친사람 없나 확인해 주세요.”이내 무술감독이 동작들을 점검하러 나선다. 연합군 역의 외국배우들을 앞에 두고 급한 맘에 손짓발짓을 다 동원한다.“턱 탁(치는 동작), 드르륵(총소리) 알겠어요?” 그 짧은 틈을 타 까까머리를 한 아역배우들은 모닥불 앞에서 작은 나뭇가지를 불쏘시개 삼아 불장난을 하느라 신났다. #“연극과 다른 팬터지와 비주얼 돋보일 영화” 평창군의 세트장은 10억원을 들여 넉 달에 걸쳐 폐광촌으로 버려진 야산을 다듬어 길을 내고 개울을 만들고 집을 짓고 나무를 심어 완성시켰다. 이은하 PD는 “관광단지로 조성할 계획으로 평창군에서 아낌없는 지원을 했다.”고 말했다. 세트장을 둘러보다 영화의 원작자이자 2년전 같은 제목으로 연극무대에 올렸던 장진 감독을 만났다. 연극과 많이 달라느지냐고 묻자 “연극만 하겠어요?”라며 웃더니 이내 영화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박광현 감독에게 잘 맡긴 것 같아요. 한국전쟁을 정말 감각적으로 찍었습니다. 영화는 한국 최고를 향해 가고 있어요. 나도 각본상 받을 수 있을 것 같고…(웃음)” 박광현 감독은 CF 감독 출신으로 옴니버스 영화 ‘묻지마 패밀리’의 ‘내 나이키’편을 연출한 바 있다. 박 감독은 “연극과 이야기의 큰 구조는 바뀌지 않지만 동막골이란 공간의 팬터지를 더 많이 살렸다.”면서 “공중전을 포함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비주얼과 영상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영화는 1월중 크랭크업해 내년 5월쯤 개봉할 예정이다. 평창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한지붕 세븐스타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엔 유독 주연배우가 많다. 영화가 공식적으로 이름을 내세우는 주연배우만 7명. 화려한 스타는 없지만 모두 연기력이 검증된 실력파 배우들이다. 국군은 신하균 서재경, 인민군은 정재영 임하룡 류덕환, 연합군은 스티브 태슐러가 맡았고 마을 여성 역에 ‘올드보이’의 강혜정이 유일한 홍일점으로 가세했다. 특히 정재영 신하균 임하룡은 연극에 이어 같은 역할로 다시 스크린에 얼굴을 내미는 것. 정재영은 “머리에 흉터가 깊이 나서 딱 보면 ‘사람 여럿 죽였구나.’싶은 외모지만 알고 보면 따뜻하고 바보스러운 역”이라고 소개했고, 신하균은 “연극보다 디테일이 살아난 캐릭터로 큰 이야기를 전달하는 연기의 앙상블에 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여러 영화에서 ‘반짝’ 출연에만 그쳤던 임하룡은 “겁많은 군인역으로, 내년엔 신인상에 도전해 보겠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스티브 태슐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공개 오디션을 통해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배우.“밤낮으로 열심히 일하는 한국 스태프의 성실함에 놀랐다.”는 그는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는 아름다운 이야기와 친절한 현장분위기에 감동을 받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순박한 동막골을 상징하는 여일 역의 강혜정은 “첫 촬영 때 모니터를 보고 ‘우리 영화가 이런 색깔을 가졌구나.’라는 생각에 설다.”면서 “한마디로 ‘때깔’이 아주 좋은 영화”라고 말했다. 3개월간 동막골의 세트장 근처에서 함께 숙식을 해결하면서 저절로 ‘팀워크’가 생겼다는 이들.“이렇게 현장 분위기가 좋은 영화가 잘 되는 것 같다.”는 정재영의 말대로 한바탕 흥겹고도 감동적인 연기의 앙상블이 펼쳐지길 기대한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함혜리특파원의 파리지앵스타일]“당신은 송년파티 스타”

    [함혜리특파원의 파리지앵스타일]“당신은 송년파티 스타”

    |파리 함혜리특파원| 프랑스에서는 크리스마스와 12월 31일 두차례 ‘레베이옹(Reveillon·밤을 새는 파티)’을 한다.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반면 송년모임은 친한 친구들과 즐기면서 새해를 맞이하기 때문에 파리지앵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멋을 부리는 때이기도 하다. 하지만 올해는 이날이 한 주일의 고된 업무가 끝나는 금요일이라는 점이 문제다. 휴식을 취할 수도, 멋부릴 시간도 없이 부스스하고 지친 모습으로 파티장소에 나타나야 할 판이다. 때맞춰 ‘르 피가로’ 주말판은 화사한 피부, 빛나는 눈빛, 근사한 헤어스타일로 파티장소에 나타나 시선을 집중시키는 방법을 소개했다.30분 정도만 공 들이면 누구든 사무실의 파김치에서 파티장의 스타로 변신할 수 있다. 금빛이나 은빛, 반짝이 등을 사용해 부분적으로 광채를 내는 것이 화장의 포인트. 하지만 너무 번쩍이는 것은 천박해 보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샤넬의 하이디 모라비츠는 “구릿빛을 기본색상으로, 여러 색깔을 섞어 자신만의 색상을 창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메이크업포에버의 다니 산츠는 “입자가 큰 반짝이는 피부에 무게감을 주므로 미세한 반짝이로 자연스럽게 연출한다.”고 말했다. 눈화장에 대해 베네핏에이전시의 에린 지메네즈는 “눈 주위를 짙은 빛깔로, 주변은 밝은 색으로 마무리하면 신비로우면서 섹시하다.”며 “아이섀도 색상은 2가지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충고했다. 눈화장이 짙은 경우 입술은 너무 진하지 않게 하는 것이 요령이다. 눈두덩이와 눈꼬리에 미세한 입자의 반짝이를 덧칠해도 좋다. 어깨가 드러난 드레스를 입었다면 어깨에도 살짝 금칠을 해 주면 화려해 보인다. 긴머리를 양쪽으로 땋아 안으로 굴려 넣고 구슬이나 리본으로 마무리하면 간단하게 세련된 스타일이 완성된다. 중간 길이의 머리라면 바깥 방향으로 세팅을 말아 적당히 웨이브를 주는 복고풍이 요즘 유행과 어울린다. 탄력있는 피부를 위해 짧게는 10초, 길게는 5분 만에 피부에 생기를 주는 에센스마스크나 심해 상어기름 등으로 만든 크림을 발라주면 좋다는 게 전문가의 조언. 좀 비싼 것이 흠이지만 일년에 한번인 송년파티를 위한 투자로 무리가 없지 않을까. lotus@seoul.co.kr
  • “산타가 끄는 굴절버스 타보세요”

    “산타가 끄는 굴절버스 한번 타보실래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굴절버스가 서울 시내를 누비고 있다. 서울교통네트웍㈜은 160번(도봉산∼온수)과 600번(온수∼광화문) 굴절버스 5대를 이용해 24일부터 31일까지 ‘사랑을 실은 버스’행사를 연다. 이 기간동안 굴절버스를 타는 승객들은 산타복장을 한 운전기사로부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말을 듣게된다. 어린이에게는 사탕 등 작은 선물이 주어진다. 버스 천장에는 반짝거리는 작은 전구를 매달아 별이 빛나는 하늘을 연상케 하고, 창문에는 ‘메리 크리스마스, 해피 뉴이어’(Merry Christmas,Happy New Year)라는 글자를 성탄트리로 화려하게 꾸몄다. 이 회사 안재천 총무팀장은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 우울한 연말연시를 보내고 있는 시민들에게 따뜻한 선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행사를 기획했다.”며 “지난 9월 서울에 첫 도입된 굴절버스가 시민들에게 친근하게 느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굴절버스는 버스 2대를 이동방향에 따라 휘어지는 마디로 연결한 것으로 앞·뒤객차에 각각 2개씩 총 4개의 출입문을 갖추고 있다.1대당 탑승 인원이 보통 버스의 2배인 140여명이나 되어 ‘땅위의 지하철’로도 불린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토요일 아침에] 생명 살리기/여연스님 대흥사 일지암 암주

    깊은 산중에 발길이 뚝 끊어졌다. 흰 구름 자욱한 안개에 휩싸인 조그마한 암자엔 맑은 물소리만 은은하다. 밤새 기름칠을 한 무쇠 호미를 손에 들고 텃밭으로 나간다. 겨울나기를 위해 땅속에 묻어둔 무의 봉분을 북돋고, 허름하게 풀린 배추를 감싸주기 위해서다. 한평 남짓한 마와 더덕 밭의 겨울 푸성귀도 메어주어야 한다. 좀더 시간이 남으면 앞마당의 차나무들도 김매기를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겨울의 하루는 짧다. 봉분을 다독이고 배추를 묶다보니 멀리 산너머 서해로 낙조가 길게 그림자를 끌며 바다로 들어가고 있다. 오늘 할 일을 미루고 허리를 펴고 텅빈 산천을 본다. 무성한 여름과 가을은 갔듯 한해가 그냥 깊은 산속으로 걸어들어가 버렸다.“벌써”라는 단어가 내 깊은 영혼을 알 수 없게 꾹꾹 찌른다. 피가 배어 나오듯 영혼 한쪽이 서걱이는 소리가 먼 시원을 통해 들려오는 것 같다. 공양미를 한 움큼 발우에 담아 수곽으로 향한다. 저녁공양 준비를 하는 것이다. 쌀을 헹구기 위해 발우에 손을 넣자 싸늘한 한기가 온 몸을 찌르르 울리고 간다. 오래된 대나무 홈통을 타고 수곽으로 흐르는 물은 푸릇한 생동감이 있다. 어느새 사방은 하늘에 길잡이로 별만 남기고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목탁을 두드리며 저녁예불을 시작한다.“지심귀명례, 지심귀명례…” 가슴 한쪽에서 울컥 한 웅큼 눈물이 비어져 나온다. 며칠전 2만달러 시대에 굶어죽은 어린 영혼을 위한 기도를 한다. 독점자본주의 유령이 온 세계를 휩쓸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 팔레스타인을 휩쓸고 우리나라에도 어느덧 소리없이 상륙해 있는 것이다. 굶어죽은 그 어린이의 가족은 때론 일주일 때론 이틀 그러기를 몇 달을 반복했다. 한 아이는 그냥 죽어갔다. 그 며칠전 맞벌이를 하는 경찰관 부부의 세 어린이가 화재로 죽음을 당했다. 그 처참한 어린 주검 앞에 우리는 오열을 토 할 수밖에 없다. 소유의 시대에 빈곤을 초래하는 자본의 공포는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고 살인적인 위력을 갖는다. 공포의 시대에 떠오르는 한 스님이 있다. 그 스님은 진감국사다. 진감스님은 헐벗고 굶주린 백성들을 위해 맨 처음에는 밥과 옷을 마련했다. 그러나 그일은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그는 짚신삼기 수행법을 착안했다. 저녁이 되면 염불을 외며 밤새워 짚신을 삼았다. 아침이 밝아오면 밤을 새우며 삼은 짚신을 메고 사람들의 통행이 빈번한 장터에 나가 발을 살폈다. 맨발이거나 너덜너덜 닳은 짚신을 신은 사람들에게 새 짚신을 신겨주었다. 진감스님은 짚신을 얻어신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도록 깨우쳐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큰눈이나 장마가 와서 사람들이 다니지 않을 때만 제외하고 밤에는 염불하며 짚신을 삼아 낮에는 그 짚신을 들고 늘 그 자리에서 짚신을 신겨주었다. 그런 수행을 본 사람들은 함께 짚신을 삼아 보시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다른 것으로 보시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진감국사는 중생의 마음이 바로 부처인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자신의 헌신을 통해 마음 하나를 나누는 씨앗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지구의 온 생명을 불가사리처럼 먹어치우는 독점자본주의의 광풍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나와 남을 구분하지 않고 나누는 부처의 마음이다. 그 마음이 하나씩 하나씩 내안에서부터 내 주변에서부터 싹을 틔우는 생명살리기를 해야 할 때다. 작은 법당안에는 어느덧 싸늘한 한기가 스며들어 있고 밤하늘엔 길 잃은 중생들을 위한 ‘별불’만 반짝이고 있다. 세월은 원래 없던 것 묵은해도 오는해도 없다. 다만 하루 하루의 일상을 평생처럼 사는 것만 남았다. 여연스님 대흥사 일지암 암주
  • [스포츠 라운지]소아암어린이돕기 자선경기 출전 홍명보·황선홍

    [스포츠 라운지]소아암어린이돕기 자선경기 출전 홍명보·황선홍

    “라이벌이라는 말보다는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영원한 동반자’라는 표현이 가장 정확할 겁니다.” 홍명보와 황선홍. 십년지기인 둘은 서로를 ‘경쟁관계’로 표현하는 데 불편해했다. 실제로 절친한 사이인 둘은 비슷한 점이 꽤나 있다.2002한·일월드컵을 정점으로 축구인생의 최고순간을 맛봤고, 비슷한 시기에 은퇴를 한 뒤 똑같이 해외에서 ‘축구공부’에 매진했다.‘흥부’ 홍명보가 축구행정가나 지도자로 장래 진로를 생각하고 있다면,‘황새’ 황선홍은 국가대표 감독이 꿈이라는 점만 다소 다를 뿐이다. 이들은 오는 26일 인천문학월드컵 경기장에서 선수로 다시 발을 맞춘다. ●‘흥부’ 홍명보 vs ‘황새’ 황선홍 홍명보가 소아암어린이와 소년소녀 가장을 돕기 위해 마련한 자선축구경기에 황선홍이 함께 출전하기로 한 것. 둘은 같은 팀(사랑팀)이 돼서 오랜만에 후배들과 땀을 쏟으며 흔쾌히 ‘산타클로스’가 되기로 했다. 둘은 같은 87학번이다. 나이는 황선홍이 68년생으로 홍명보보다 한 살 위지만 같은 학번이라 십년 넘게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태극마크는 황선홍이 대학 2학년 때인 1988년에 먼저 달고, 홍명보는 졸업반이던 1990년에 대표팀의 일원이 됐다. 가장 막내로 시작했던 대표팀에서 최고 선참의 자리까지 함께 올랐고, 같은 프로팀(포항)에서도 6년간 한솥밥을 먹었다. 황선홍은 “경기를 뛸 때 뒤에 명보가 보이면 마음이 놓인다.”고 말할 정도로 서로에 대한 신뢰가 두텁다. 2002한·일월드컵에서는 ‘맏형’ 역할을 함께 해내며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았다. 수많은 A매치를 치렀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도 서로 같다. 바로 2002월드컵 첫 경기였던 폴란드전. “월드컵에서 첫 승을 거둔 경기라 가장 기억이 납니다. 스페인전에서 마지막 PK를 성공시켰을 때보다도 첫 승을 거둔 폴란드전을 평생 못 잊을 겁니다.”(홍명보) “월드컵에 4번째 나갔는데, 한 번도 못 이겼습니다. 이렇게 선수생활이 끝나면 정말 한이 남을 것 같았습니다.16강이 문제가 아니라 제발 ‘한 번만이라도 이기자.’는 생각뿐이었죠.”(황선홍) ●‘세대교체’는 의견 달라 한국축구의 최대 화두가 돼버린 ‘세대교체’에 대해서는 생각이 약간 다르다. “(한국축구의)세대교체가 늦은 것은 사실입니다.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곧바로 젊은 선수로 바꾸고 경험을 쌓게 했어야 하는데, 시기를 놓쳤습니다. 최종예선이 코앞에 닥친 이제와서 급작스레 바꾸기에는 늦은 셈이죠.”(홍명보) “젊은 선수들에게도 기회는 줘야 하지만, 노장도 필요합니다. 발전가능성만 보고 무조건 대표팀에 넣을 수는 없습니다. 젊은 후배들도 철저한 경쟁을 통해 실력을 보여줌으로써 살아 남아야지 ‘노장은 안 되고, 소장만 집어넣겠다.’는 식은 곤란합니다.”(황선홍) 월드컵 이후 반짝붐이 일다가 다시 사그라지고 있는 K리그에 대해서는 같은 해법을 제시했다. “재미있는 경기를 안 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구단들이 노력을 안 하고 세일즈도 제대로 못 하니까 결국 팬들의 외면을 받게 되는 겁니다.”(홍명보) “J리그는 거품이 빠지고 고정관중이 정착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월드컵이 끝나고 관심을 끌 기회를 놓쳤습니다. 구단별로 장기적인 마스터 플랜을 마련해야 합니다. 자국 프로리그가 약하면 대표팀도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황선홍) ●따로 또 같이 홍명보는 내년 1월초 다시 미국으로 가 2∼3년간은 공부에만 집중한다. 일단은 LA의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영어연수부터 착실히 받을 생각이다. 전설적인 선수에서 독일월드컵조직위 위원장까지 오른 독일의 베켄바우어처럼 축구행정가가 되든지, 아니면 지도자의 길을 택할 생각이지만 결정은 나중으로 미뤘다. 다만, 지난해 처음 시작한 자선경기는 앞으로도 계속 해 나갈 생각이다. 축구를 통해 얻은 게 너무 많기 때문에 이를 축구로 다시 돌려주겠다는 다짐에서다. 전남 코치인 황선홍은 독일에서 국제지도자 코스를 밟은 데 이어 최근에는 브라질 프로팀에서 두 달간 연수를 하고 귀국했다. 한때 허정무 전남감독의 사의로 공석이 된 대표팀 수석코치로 물망에 올랐지만, 공식제의는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감독과 선수들 사이에서 다리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기회가 된다면 대표팀 코칭스태프에 합류할 생각도 있다고 털어놨다. 황선홍의 꿈은 국가대표 감독이 되는 것. 한국축구의 역사를 새로 썼던 ‘영원한 맏형’ 홍명보와 황선홍이 제2의 축구인생을 어떻게 펼쳐 나갈지 궁금해진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그 영화 어때?] 서바이빙 크리스마스

    우리에게 크리스마스 이브란 연인과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거나 짝이 없는 친구들끼리 모여 술잔을 기울이는 날이라면, 미국인들에게는 온가족이 오붓하게 모여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명절쯤 되나 보다.24일 개봉하는 ‘서바이빙 크리스마스’(Surviving Christmas)의 주인공 드루(벤 애플렉)가 연인에게 피지에서 환상적인 크리스마스 연휴를 보내자고 제안했다가 보기좋게 퇴짜를 맞는 걸 보니. 가족과 보내겠다고 떠난 연인의 빈자리는 큰 거실에 소파 하나 달랑 놓인 드루의 집 만큼이나 허전하다. 광고 회사의 경영진으로 남 부러울 것 없는 돈과 지위를 가졌지만, 사실 남겨진 가족 하나 없는 외톨이인 드루의 심정을 누가 알까. 크리스마스를 혼자서 보내게 된 그는 어릴 때 살던 집으로 무작정 찾아가고, 그 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듯 보이는 다른 가족의 모습에 이끌려 돈으로 가족을 ‘매수’하기에 이른다. “내 가족을 팔 수 없네.”라며 완강히 버티던 톰(제임스 갠돌피니)은 25만달러라는 돈 앞에서 “환영하네, 아들”이라며 무너진다. 온가족이 함께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미고 즐겁게 화목한 웃음꽃을 피우는 ‘이상적’인 가족을 꿈꾸는 드루와, 돈 때문에 억지로 끌려오는 뚱한 가족들의 대조적인 모습은 시종일관 폭소를 터뜨리게 한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엔 곪을대로 곪은 우리시대 가족의 자화상이 웅크리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부부 사이에는 대화가 끊겼고 아들은 혼자 방에만 틀어박혀 포르노 사이트를 뒤지기에 바쁘다. 그 와중에 드루는 톰의 외동딸 앨리샤(크리스티나 애플게이트)에게 사랑을 느끼고, 설상가상으로 떠났던 연인 미씨(제니퍼 모리슨)가 가족들을 이끌고 드루의 집에 찾아오면서 숨겨진 이들의 치부가 폭발한다. 가족이란 가장 가깝고도 어렵고 또 복잡한 대상이다. 어떤 이는 돈을 주고라도 얻고 싶어하지만, 또 어떤 이는 떨쳐버리고 싶어하는 게 바로 가족이다. 물론 크리스마스 시즌용 가족영화인 만큼 가족의 초상에 관한 깊이있는 메시지를 담은 건 아니지만, 한번쯤 자신의 가족에 대해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줄 듯 싶다. 별 근거도 없이 가족의 재결합이라는 수순을 밟는 뻔한 해피엔딩이 좀 거슬리긴 하지만, 적당한 감동과 재미가 뒤섞이고 반짝이는 트리와 새하얀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눈이 부신 ‘잘 만든’ 크리스마스용 영화임에는 틀림없다.‘듀스 비갈로’의 마이크 미첼 감독.12세 관람가.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