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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것이 알고 싶다 여고생, 시선서 정액 발견 ‘DNA 일치 인물 발견’ 반전 결과

    그것이 알고 싶다 여고생, 시선서 정액 발견 ‘DNA 일치 인물 발견’ 반전 결과

    ’그것이 알고 싶다 여고생’ SBS 시사교양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은 ‘나주 드들강 여고생 살인 사건’의 범인을 추적한다. 16일 방송되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한 여고생의 죽음이 왜 두 번째 미제가 되었는지를 알아보고 ‘나주 드들강 여고생 살인 사건’의 진짜 범인을 추적해 본다. 제작진에 따르면 2001년 2월4일 전남 나주 드들강에서 한 여성의 익사체가 발견됐다. 피해자는 당시 고3 진학을 앞둔 광주의 여학생이었다. 그러나 연고도 없는 나주의 강변에서 그는 스타킹만 신은 채 알몸으로 발견됐다. 사건 당시 여학생의 시신에서 정액이 발견돼 용의자로 특정될만한 200여명을 대상으로 DNA 조사를 벌였지만 수사는 진척되지 않았다. 그는 엄마에게 선물 받아 항상 손에 끼고 다닌 반지마저 없어진 상태였다. 딸의 죽음에 아버지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지난 2012년 사건이 일어난 지 11년 만에 드디어 DNA가 일치하는 사람이 밝혀졌다.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은 교도소에 복역 중이던 한 남성이었다. 그는 지난 2003년, 돈을 노리고 교도소 동기와 전당포 업자 2명을 유인해 살해한 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던 무기수 김 씨였다. 경찰은 그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강간살인죄로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나서야 내려진 검찰의 판단은 뜻밖에도 불기소처분이었다. 경찰 조사에서 수연 양을 전혀 모른다고 말했던 피의자 김 씨는, 검찰 조사에서는 ‘수연 양과 성관계는 했지만 살인을 저지르진 않았다’라고 진술을 바꿨고 이를 근거로 사건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불기소처분으로 다시 미제가 되어버린 수연 양의 죽음. 무기수 김 씨는 정말 수연 양의 죽음과 관련이 없는 걸까? 제작진은 DNA 외에 다른 증거는 없는지 다시 사건 현장으로 돌아가 보았다. 불기소처분으로 다시 미제가 돼버린 여고생의 죽음의 진실은 오는 16일 오후 11시15분에 방송된다. 그것이 알고 싶다 여고생, 그것이 알고 싶다 여고생, 그것이 알고 싶다 여고생, 그것이 알고 싶다 여고생, 그것이 알고 싶다 여고생 사진 =서울신문DB (그것이 알고 싶다 여고생)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동학혁명, 실은 영남에서 싹텄다

    동학혁명, 실은 영남에서 싹텄다

    한국 근현대사 속에 반봉건, 반외세를 전면에 내걸고 기층 민중들이 이뤄낸 사실상 첫 번째 운동이라는 굵직한 이정표를 남긴 동학농민혁명은 흔히 전라도, 충청도를 주 무대 삼은 것처럼 기억된다. 혁명의 불씨를 던진 전라도 고부의 농민 봉기와 농민군이 처음 관군에게 승리를 거둔 전라도 정읍 황토현 전투, 관민상화(官民相和)책으로서 ‘거버넌스형 자치기구’인 집강소를 전라도 전역에 설치한다는 합의, 일본군과 관군에게 처절하게 패배한 뒤 혁명의 기세가 꺾인 충청도 공주 우금티 전투 등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굵직한 역사의 공간이 모두 충청도와 전라도에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민군과 결합해 일으킨 동학농민혁명의 주요한 사상적 기반과 실천적 방향을 제공한 동학의 발원지는 오히려 영남 지역이었다. 동학학회는 15일 영남대에서 조선 후기 유림의 영향력이 막강했던 경상도 일대에서 동학을 창시하고 전파한 과정을 밝히고 그 의미를 되돌아보는 ‘동학의 글로컬리제이션-대구 감영과 1894년 경상도 지역 동학농민혁명’을 주제로 동학농민혁명 제121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갖는다. 동학농민 혁명사에서 대구와 경상 감영이 차지하는 역사적 위상을 사료 연구로 실증적으로 밝힘으로써 한국 근대사 발전 과정에서 경상도 지역이 기여한 바를 규명하자는 취지로 마련했다. 실제 동학농민혁명이 본격화한 1894년 3월 1차 봉기에 북접 계통에 속하는 경상도 지역 동학 조직은 가세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학은 ‘척왜(斥倭)’의 기치를 분명히 들었고, 경상도 동학 조직은 일본 침략 경로의 첫 번째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일본군들이 그해 6월 21일 경복궁을 기습 공격했다는 사실은 세력 확장의 명분이자 배경이었다. 동래에서 수륙 양쪽으로 진격하는 일본군 앞에 속수무책인 경상 감영과 달리 가장 먼저 일본군과 대적하는 전투를 개시했다. 처음에는 전신소를 공격하는 등 게릴라 전술을 폈고, 8월에는 경북 예천 읍내 일본 병참부를 공격하며 9월 전라, 충청 지역의 2차 봉기 결정을 선도하는 역할도 맡았다. 신영우 충북대 교수는 “경상도 북서부 군현의 동학농민군의 공세 대상은 문경, 상주 등 북상하는 일본군 병참부와 군용전신소를 공격하는 것이었고, 이는 청과 전쟁을 벌이려 하는 일본군에게 절실한 문제였다”는 경상도 지역 동학농민군의 활약상을 구체적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척왜 싸움은 물론, 내치 측면에서도 경상도 지역 농민들은 소송까지 관아가 아닌 동학 조직을 찾아가 할 정도로 의지했다는 점도 밝힌다. 이뿐 아니다. 동학의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1824~1864)는 경주에서 태어나 울산과 경주 등에서 수도를 하고 동학을 일으킨 뒤 대구읍성 남문 밖 관덕당에서 처형을 당했다. 그의 목은 사흘간 남문 장대에 걸려 있었다. 경북 상주 동학교 및 교당(지방문화재 민속자료 120호)은 최제우 사후 남접 김주희가 창시한 동학 및 동학 교당이다. 이렇듯 경상 지역은 동학이 시작하고 이론적 체계가 완성된 곳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상주 동학교당에 보관 중인 동학대전, 동학경전 발간물과 목판 등 289종 1425점의 영남 지역 동학 관련 유물들은 한창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1890∼1950년 전후까지 상주 동학교에서 포교활동을 위해 생산한 기록물 일체로 전적, 판목, 복식, 교기, 의기 등으로 이뤄져 있다. 물론 유교 지식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경상도의 지역적 한계에 대한 지적도 제기된다. 19세기 후반 외세 침략과 유교사회 내부의 변동이라는 위기에 직면한 영남학파 유생들은 상소와 격문을 통해 동학을 ‘좌도난정(左道政·잘못된 도리로 세상을 어지럽힌다)’으로 규정하고, 동학군을 집권체제 및 양반지배층에 대한 심각한 반역의 무리로 바라봤다. 이병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장은 “지금까지 확인된 경상 지역 동학농민혁명 관련 자료들은 주로 토벌군이나 민보군, 그리고 유생들이 기록한 경우가 대부분이며 농민군이 직접 기록한 자료는 최근에 알려진 ‘학초전’을 제외하고는 전무한 실정”이라면서 “경상 지역 동학농민혁명의 실제 양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는 새로운 자료의 발굴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지만 쉽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다이아 비켜!… ‘핏빛 루비’ 무려 335억원 역대 최고가

    다이아 비켜!… ‘핏빛 루비’ 무려 335억원 역대 최고가

    웬만한 다이아몬드는 명함도 못내밀 희귀 붉은색 루비가 경매에 나와 루비 사상 역대 최고가를 세웠다.지난 12일(현지시간) 경매업체 소더비는 스위스 제네바에 열린 보석경매에서 25.59캐럿의 루비반지가 역대 최고가인 2825만 스위스 프랑(약 335억원)에 낙찰됐다고 발표했다. 역사를 새로 쓴 이 루비반지의 이름은 일출 루비라는 뜻의 '선라이즈 루비'(Sunrise Ruby). 이 루비에 상상을 초월하는 몸 값이 매겨진 것은 희귀한 색깔 때문이다. 현지에서 '비둘기 핏빛'(pigeon's blood colour)이라 부르는 희귀한 색을 가진 덕에 더욱 높은 평가를 받은 것. 당초 예상 낙찰가(1170만 ─1750만 스위스 프랑)보다 무려 2배나 몸 값이 오른 것은 전화로 경매에 참여한 2명의 개인 수집가가 끝까지 '레이스' 했기 때문으로 최종 낙찰자의 신원은 공개되지 않았다.   소더비 국제 주얼리 부문 회장 데이비드 베넷은 "다이아몬드를 능가하는 희귀한 색체를 가진 보석" 이라면서 "40년 간 일하면서 본 수많은 보석 중 손에 꼽을 만한 '매직 스톤'" 이라고 밝혔다. 이어 "역사상 가장 비싼 루비로 기록됐으며 낙찰 시 박수가 터져나올 정도였다" 고 덧붙였다.   사진= ⓒ AFPBBNews=News1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다이아 비켜!… ‘무려 335억’ 역대 최고가 ‘핏빛 루비’

    다이아 비켜!… ‘무려 335억’ 역대 최고가 ‘핏빛 루비’

    웬만한 다이아몬드는 명함도 못내밀 희귀 붉은색 루비가 경매에 나와 루비 사상 역대 최고가를 세웠다.지난 12일(현지시간) 경매업체 소더비는 스위스 제네바에 열린 보석경매에서 25.59캐럿의 루비반지가 역대 최고가인 2825만 스위스 프랑(약 335억원)에 낙찰됐다고 발표했다. 역사를 새로 쓴 이 루비반지의 이름은 일출 루비라는 뜻의 '선라이즈 루비'(Sunrise Ruby). 이 루비에 상상을 초월하는 몸 값이 매겨진 것은 희귀한 색깔 때문이다. 현지에서 '비둘기 핏빛'(pigeon's blood colour)이라 부르는 희귀한 색을 가진 덕에 더욱 높은 평가를 받은 것. 당초 예상 낙찰가(1170만 ─1750만 스위스 프랑)보다 무려 2배나 몸 값이 오른 것은 전화로 경매에 참여한 2명의 개인 수집가가 끝까지 '레이스' 했기 때문으로 최종 낙찰자의 신원은 공개되지 않았다.   소더비 국제 주얼리 부문 회장 데이비드 베넷은 "다이아몬드를 능가하는 희귀한 색체를 가진 보석" 이라면서 "40년 간 일하면서 본 수많은 보석 중 손에 꼽을 만한 '매직 스톤'" 이라고 밝혔다. 이어 "역사상 가장 비싼 루비로 기록됐으며 낙찰 시 박수가 터져나올 정도였다" 고 덧붙였다.   사진= ⓒ AFPBBNews=News1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포토] “174억원에 낙찰된 핑크 다이아 반지 봐주세요”

    [포토] “174억원에 낙찰된 핑크 다이아 반지 봐주세요”

    12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소더비 경매장에서 8.72 캐럿 크기의 핑크 다이아 반지를 낀 모델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다이아 반지는 나폴레옹의 조카 마틸드 보나파르트 공주가 소유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날 경매에서 1590만 달러(약 174억 3600만원)에 낙찰됐다. 사진 ⓒAFPBBNews=News1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보송보송’ 잠자리… 구청장의 특별한 선물

    ‘보송보송’ 잠자리… 구청장의 특별한 선물

    “아이고, 구청장님이 이런 곳까지…. 죄송해서 어쩌나.”(2급 장애인 김모 할머니) “별 말씀을 다 하세요. 앉아 계세요, 어르신. 아이고, 이불이 좀 오래됐습니다.”(유종필 관악구청장) 11일 유 구청장이 관악구 삼성동 우렁각시를 자청하고 나섰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동별 자원봉사활동 프로그램 상황을 점검하면서 본인도 하루 봉사활동에 나선 것이다. 이날 유 구청장이 참가한 봉사 프로그램은 ‘사랑의 빨래방’ 사업이다. 장애가 있거나 나이가 많아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이불 빨래를 대신 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유 구청장이 빨래방에 도착하자 자원봉사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불 빨래 한 꾸러미와 작은 손수레를 내밀었다. 빨래가 다 된 이불을 배달하고 또 빨래거리를 가지고 오라는 것이다. 유 구청장은 “오케이” 소리와 함께 힘차게 빨래를 들고 길을 나섰다. 밝았던 유 구청장의 표정은 첫 방문지에서부터 어두워졌다. 이불을 수거하러 삼성동 주택가의 김 할머니 집에 갔을 때다. 반지하방에 들어서자 특유의 쿰쿰한 냄새가 났다. 눅눅한 이불이 비닐 장판에 달라붙어 있었다. 김 할머니는 “집이 더럽다”며 미안하다는 말만 거듭했다. 짧은 시간 유 구청장이 할머니의 세간살이를 눈으로 훑었다. 낡은 전기밥솥과 플라스틱 식기류 몇 가지, 입구에는 동주민센터에서 가져다준 20㎏짜리 쌀이 포장이 뜯긴 채로 있었다. 유 구청장은 묵묵히 빨랫감을 챙긴 뒤 김 할머니의 말을 들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렇죠. 그렇죠”가 전부였다. 고민 많은 표정으로 반지하방을 나온 그는 “어려운 노인들을 뵈면 구청장으로서 마음이 편하지 않다. 특히 김 할머니는 자녀가 있어 복지 혜택도 못 받고 있다”면서 “구청의 긴급 지원으로 도움을 드리고 있는데 여기에도 한계가 있다”며 담담하게 말했다. 봉사활동은 어느새 민생 탐방이 됐다. 그는 그래도 관악은 참 좋은 곳이라고 말한다. 유 구청장은 “우리 구의 봉사활동가가 1만 800명이 넘는다”면서 “이런 지역이 어디 있냐”고 되물었다. 삼성동 봉사캠프장을 맡고 있는 유현숙씨는 “지속적으로 빨래 봉사를 하는 주민이 30여명이고, 빨래 수거를 도와주는 사람들까지 합치면 100명이 넘는다”면서 “때가 꼬질꼬질한 빨래가 때로는 벤츠를 타는 호사를 누릴 때도 있다”고 전했다. 현재 구 자원봉사센터는 19개 동에서 27개 봉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이광식의 천문학+] 우주를 모래알로 채운다면 몇개?-수학자 아르키메데스

    [이광식의 천문학+] 우주를 모래알로 채운다면 몇개?-수학자 아르키메데스

    우주를 가득 채울 모래알 수는? 우주를 놓고 가장 기발한 생각을 한 사람을 꼽자면 아마도 기원전 3세기 아르키메데스일 것이다. 뉴턴, 가우스와 함께 역사상 3대 수학자로 꼽히는 아르키메데스는 과연 우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던 것일까? 그가 한 생각은 참으로 기상천외 그 자체였는데, 바로 이런 것이었다. -모래알로 이 우주를 가득 채우려면 모래알이 몇 개나 들어갈까? 참으로 놀랍고 기발한 생각이 아닌가. 먼저 그 놀라운 상상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고대 세계 최고의 지성으로 꼽히는 아르키메데스를 두고 프랑스의 계몽 사상가 볼테르가 호메로스보다 더 훌륭하고 풍부한 상상력을 가졌다고 상찬한 말이 빈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고대의 뛰어난 천문학자이기도 했던 아르키메데스는 왜 하필이면 모래를 갖고 그런 엄청난 계산을 하려 했던 것일까? 모래는 우리가 손가락으로 감각할 수 있는 물체 중 가장 작은 물건이다. 그리고 우주는 가장 크다. 이 극과 극, 둘의 비교는 얼마나 신선한가. 다른 이유도 있었다. 아르키메데스 이전까지 그리스 인들이 다루던 숫자의 크기는 기껏해야 1만을 넘지 않았다. 그리고 당시 수학자들은 바닷가의 모든 모래알 수를 나타낼 정도로 큰 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는데, 아르키메데스는 그들에게 그보다 더 큰 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우주를 가득 채울 모래알 수 계산에 도전했던 것이다. 아르키메데스는 그 도전장인 ‘모래알 계산자'(The Sand Reckoner)라는 자신의 책 첫머리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겔론 왕 전하, 세상에는 모래알의 수가 무한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말씀 드리는 모래는 시라쿠사와 시칠리아 섬 전역에 있는 모래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는 곳이건 살지 않는 곳이건 세상의 모래란 모래는 다 모았다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단순히 무한대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태껏 이름 붙여진 그 어떤 크기의 수라도 세상 모래알의 수보다는 작다’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운을 뗀 아르키메데스는 모래알로 우주를 가득 채우려면 몇 개나 있어야 하는가 하는 어마어마한 계산에 도전했던 것이다. 아르키메데스는 대체 어떤 방법으로 그 엄청난 크기의 숫자를 다루는 계산을 해냈을까? 당시는 복잡한 기수법 때문에 단순한 곱하기 문제도 여간 어렵지 않아 일반인들은 풀 엄두를 내지 못하던 때였다. 중세까지만 해도 유럽에 인도-아라비아 숫자가 전해지지 않아, 곱셈을 제대로 하려면 로마로 유학을 가야 했다는 웃지 못할 얘기가 전한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일이지만 당시는 실제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아르키메데스는 그런 엄청난 계산을 해냈다. 그가 사용한 계산과정은 그의 위대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다음과 같은 방법이었다. 먼저 그는 양귀비 씨앗 한 개의 크기에 해당하는 모래알의 수를 계산한 후, 다음에는 손가락 크기에 해당하는 양귀비 씨앗 개수를 어림잡아 구했다. 그리고 다음에는 육상 경기장 한 개를 가득 채우는 데 필요한 손가락 개수를 어림 계산하는 등과 같은 과정을 순차적으로 반복해나갔다. 이는 바로 지수 개념의 계산법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위대한 지성은 기원전 3세기에 이미 지수 개념을 창안해냈던 것이다. 또 아르키메데스는 당시에 알려져 있던 아리스타르코스의 태양중심설을 기준으로 우주의 크기를 정했다. 아리스타르코스의 태양중심설 자체는 전해지지 않고, 아르키메데스의 ‘모래알 계산자’ 그의 태양중심설을 설명하는 글 가운데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유일한 것이다. 아리스타르코스가 지구와 별들 사이의 거리를 따로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아르키메데스는 이를 대략적으로 추정할 수 밖에 없었다. 아르키메데스가 나름대로 추정한 우주의 크기는 약 2광년이었다. 이렇게 하여 아르키메데스가 구한 모래알 개수는 자그마치 8X10^63 개였다. 이는 지구상 모래알 개수인 10^22개보다 엄청 많은 숫자이다. 하지만 우주를 가득 채우기에는 턱도 없는 숫자임을 이제 우리는 안다. 현재의 팽창우주는 아르키메데스가 생각하던 크기보다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그럼 실제로 현재의 이 우주를 모래알로 가득 채우려면 몇 개의 모래알이 필요할까? 편의상 모래알 사이의 공간은 무시하기로 하자. 먼저 모래알의 크기부터 정하자. 보통 지름 2~0.2㎜까지의 모래를 조사(粗砂), 0.2~0.02㎜사이의 모래를 세사(細砂)라고 한다. 우리는 이중에서 세사를 택해, 그 지름을 편의상 0.1mm로 정하기로 하자. 다음으로, 우주의 크기는 얼마나 되는가? 빅뱅에서 시작된 우주의 나이가 138억 년이니까, 그것을 반지름으로 한다면 지름은 276억 광년인데, 빅뱅 초창기에 인플레이션으로 광속보다 더 빨리 팽창되어 현재 대략 950억 광년 크기로 나와 있다. 그럼 우주 크기를 km단위로 나타내보자. 1광년=300,000kmX3,600(초)X24(시간)X365(일)=9,460,800,000,000km(약 10^13km) 우주 지름=95,000,000,000광년X10^13km=95X10^22km(약 10^24km) 모래알 지름=0.1mm=10^-7km 위 둘을 나누면; 10^31배 우주의 지름은 모래알 지름의 10^31배라는 답이 나왔다. 부피는 길이의 3제곱이므로 (10^31)^3=10^93(개) 즉, 1구골(10^100)의 1/10^7인 10^93개의 모래알이면 온 우주를 모래로 빈틈없이 가득 채울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동양권 숫자의 가장 큰 단위인 무량대수(無量大數/10^68)보다도 10^25배 크고, 아르키메데스의 모래알 수보다는 무려 10^30배나 많은 숫자이다. 그러나 만 단위 수도 잘 사용하지 않았던 고대에 아르키메데스가 우주를 가득 채울 모래알 수를 계산해냈다는 것은 대단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 고대세계에 아르키메데스 외에도 모래알을 계산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우리가 쓰는 인도-아라비아 숫자를 창안한 인도인들이었다. 고대 인도인은 ‘부처가 태어나고 유행(遊行)한 곳이라고 전하는 갠지스 강(恒河)의 모래알 개수를 10^52개라고 계산했다. 그래서 이 숫자의 이름이 ‘항하사(恒河沙)’이다. 이 숫자의 크기를 따져보기 위해, 먼저 모래알 하나와 지구와의 크기 비율을 알아보기로 하자. 지구 지름=13,000km 모래알 지름=10^-7km 둘을 나누면; 13X10^10(1.3천억 배) 그 3제곱은 약 10^33 지구를 모래알로 다 채우려면 약 10^33개의 모래알이 필요하다. 따라서 1항하사(10^52)의 모래알은 지구 1000경(10^19) 개를 채울 수 있는 양이다. 고대 인도인들의 과장이 좀 지나쳤음을 알 수 있다. 숫자의 위대함이 팍 느껴지는 대목이다. 세계는 수로 표현될 수 있다고 믿고 만물의 근원은 수라고 말한 피타고라스가 맞았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여공의 아들, 여성 노동자 위로하다… 한국의 영상, 세계 미술 경계를 넘다

    여공의 아들, 여성 노동자 위로하다… 한국의 영상, 세계 미술 경계를 넘다

    제56회 베니스비엔날레 미술전의 본전시(국제전)에 아시아 여성노동문제를 다룬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위로공단’을 출품한 임흥순(46)씨가 한국작가로는 역대 최고인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베니스비엔날레 재단은 9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니스의 비엔날레 본부에서 열린 개막식 겸 시상식에서 은사자상 수상자로 임흥순씨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은사자상은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에 이어 두 번째에 해당하는 상이다. 원래 35세 미만 젊은 작가를 대상으로 한 은사자상을 40대 중반의 임 작가에게 수여한 점과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를 선정한 점 등이 이변으로 꼽힌다. 심사위원단은 “인터뷰와 역사적 사실들이 가볍게 매개된 다큐멘터리 형태로 인물들과 그들의 근로조건을 직접적으로 대면한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한국작가로는 그동안 국가관에 출품한 전수천(1995), 강익중(1997), 이불(1999)씨 등이 특별상을 받은 적은 있지만 본전시 수상은 처음이다. 임 작가의 이번 전시 초청 및 수상은 미디어 아트 관점에서 작품 해석의 폭을 넓히는 동시에 세계 미술 영역으로 한국 영화의 외연을 확장한 것이어서 큰 의미를 지닌다. 임 작가는 시상식 직후 “예상치 못한 큰 상을 받게 돼 기분이 굉장히 좋다”면서 “어머니가 가장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40년 넘게 봉제공장 ‘시다’(보조) 생활을 해 오신 어머니와 백화점 의류매장, 냉동식품 매장에서 일해 온 여동생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위로공단’은 국내뿐 아니라 캄보디아 등에서 포착되는 노동자들의 삶을 다루면서 신자유주의 사회의 자본 이동과 노동 변화에 따른 현실적 불안을 예술적 언어로 써내려 간 역사 기록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적 불안을 예술이 어떻게 위로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 질문하며 2012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한국과 캄보디아, 미얀마, 베트남 등지에서 64명의 여성노동자를 인터뷰했다. 영화에는 이 가운데 22명이 등장한다. “항상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 속에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노동자나 서민들이 얘기할 수 있는 표현 방식을 고민해 왔다”는 임 작가는 “작품을 통해 현실을 설명한다기보다 현실을 얘기해 주면서 질문을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들에게서 이 사회를 바꿔 나갈 수 있는 희망을 봤다. 특히 경험 많은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에게서 그랬다. 그분들의 경험을 통해 이 사회의 힘든 지점을 얘기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며 “한국 사회뿐 아니라 세계에서 금기시되는 부분들을 다루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가족과 지역, 공동체라는 사회성 짙은 화두를 놓고 영상언어가 지닌 새로운 가능성과 효과를 꾸준히 탐색해 온 그는 미술과 영화의 결합에 대해 “그 경계를 특별히 의식하지 않는다. 미술도 미술관 안에서만 이뤄질 필요는 없다”면서 “미술과 영화의 경계에서 결합을 꾀하는 작업을 앞으로도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95분 분량의 다큐멘터리는 다산콜센터에서 감정노동자로 일하다 해직된 한 여성의 절규에 가까운 인터뷰로 시작된다. 동남아 여성노동자들의 고된 환경을 보여 준 영화는 후반부에 다시 청계천 봉제공장에서 고생스럽게 일했던 여성의 증언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에 할머니가 등장한다. 작가의 어머니다. 할머니는 습관처럼 동네 뒷산에서 산책을 한 뒤 집으로 돌아온다. 엔딩 음악이 묻는다. ‘이 풍진 세상을 살았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고. 그의 어머니는 3년 전 대상포진이 발병해 봉제공장 일을 그만뒀다. 임 작가는 “먼지가 많고 반지하라는 좋지 않은 환경에서 오래 일하시다 보니 그렇게 됐을 것”이라며 “너무 감사하고 죄송스러운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임 작가는 경원대 회화과에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2013년 일민미술관 ‘애니미즘’, 2014년 아르코미술관 ‘역병의 해 일지’, 국립로마현대미술관 ‘미래는 지금이다’, 2015년 아랍에미리트의 사르자 비엔날레 등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다. 200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올해의 예술상’ 독립예술부문 우수상을 받았고, 2014년 내일의 작가상, 인천다큐멘터리리포트에서 베스트러프컷을 수상했다. 한편 올해 국제전 황금사자상은 미국의 에이드리언 파이퍼가 받았으며, 국가관 황금사자상은 아르메니아에 돌아갔다. 베니스(이탈리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우주를 모래알 수로 계산한 수학자 아르키메데스

    우주를 모래알 수로 계산한 수학자 아르키메데스

    우주를 가득 채울 모래알 수는? 우주를 놓고 가장 기발한 생각을 한 사람을 꼽자면 아마도 기원전 3세기 아르키메데스일 것이다. 뉴턴, 가우스와 함께 역사상 3대 수학자로 꼽히는 아르키메데스는 과연 우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던 것일까? 그가 한 생각은 참으로 기상천외 그 자체였는데, 바로 이런 것이었다. -모래알로 이 우주를 가득 채우려면 모래알이 몇 개나 들어갈까? 참으로 놀랍고 기발한 생각이 아닌가. 먼저 그 놀라운 상상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고대 세계 최고의 지성으로 꼽히는 아르키메데스를 두고 프랑스의 계몽 사상가 볼테르가 호메로스보다 더 훌륭하고 풍부한 상상력을 가졌다고 상찬한 말이 빈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고대의 뛰어난 천문학자이기도 했던 아르키메데스는 왜 하필이면 모래를 갖고 그런 엄청난 계산을 하려 했던 것일까? 모래는 우리가 손가락으로 감각할 수 있는 물체 중 가장 작은 물건이다. 그리고 우주는 가장 크다. 이 극과 극, 둘의 비교는 얼마나 신선한가. 다른 이유도 있었다. 아르키메데스 이전까지 그리스 인들이 다루던 숫자의 크기는 기껏해야 1만을 넘지 않았다. 그리고 당시 수학자들은 바닷가의 모든 모래알 수를 나타낼 정도로 큰 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는데, 아르키메데스는 그들에게 그보다 더 큰 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우주를 가득 채울 모래알 수 계산에 도전했던 것이다. 아르키메데스는 그 도전장인 ‘모래알 계산자'(The Sand Reckoner)라는 자신의 책 첫머리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겔론 왕 전하, 세상에는 모래알의 수가 무한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말씀 드리는 모래는 시라쿠사와 시칠리아 섬 전역에 있는 모래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는 곳이건 살지 않는 곳이건 세상의 모래란 모래는 다 모았다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단순히 무한대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태껏 이름 붙여진 그 어떤 크기의 수라도 세상 모래알의 수보다는 작다’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운을 뗀 아르키메데스는 모래알로 우주를 가득 채우려면 몇 개나 있어야 하는가 하는 어마어마한 계산에 도전했던 것이다. 아르키메데스는 대체 어떤 방법으로 그 엄청난 크기의 숫자를 다루는 계산을 해냈을까? 당시는 복잡한 기수법 때문에 단순한 곱하기 문제도 여간 어렵지 않아 일반인들은 풀 엄두를 내지 못하던 때였다. 중세까지만 해도 유럽에 인도-아라비아 숫자가 전해지지 않아, 곱셈을 제대로 하려면 로마로 유학을 가야 했다는 웃지 못할 얘기가 전한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일이지만 당시는 실제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아르키메데스는 그런 엄청난 계산을 해냈다. 그가 사용한 계산과정은 그의 위대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다음과 같은 방법이었다. 먼저 그는 양귀비 씨앗 한 개의 크기에 해당하는 모래알의 수를 계산한 후, 다음에는 손가락 크기에 해당하는 양귀비 씨앗 개수를 어림잡아 구했다. 그리고 다음에는 육상 경기장 한 개를 가득 채우는 데 필요한 손가락 개수를 어림 계산하는 등과 같은 과정을 순차적으로 반복해나갔다. 이는 바로 지수 개념의 계산법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위대한 지성은 기원전 3세기에 이미 지수 개념을 창안해냈던 것이다. 또 아르키메데스는 당시에 알려져 있던 아리스타르코스의 태양중심설을 기준으로 우주의 크기를 정했다. 아리스타르코스의 태양중심설 자체는 전해지지 않고, 아르키메데스의 ‘모래알 계산자’ 그의 태양중심설을 설명하는 글 가운데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유일한 것이다. 아리스타르코스가 지구와 별들 사이의 거리를 따로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아르키메데스는 이를 대략적으로 추정할 수 밖에 없었다. 아르키메데스가 나름대로 추정한 우주의 크기는 약 2광년이었다. 이렇게 하여 아르키메데스가 구한 모래알 개수는 자그마치 8X10^63 개였다. 이는 지구상 모래알 개수인 10^22개보다 엄청 많은 숫자이다. 하지만 우주를 가득 채우기에는 턱도 없는 숫자임을 이제 우리는 안다. 현재의 팽창우주는 아르키메데스가 생각하던 크기보다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그럼 실제로 현재의 이 우주를 모래알로 가득 채우려면 몇 개의 모래알이 필요할까? 편의상 모래알 사이의 공간은 무시하기로 하자. 먼저 모래알의 크기부터 정하자. 보통 지름 2~0.2㎜까지의 모래를 조사(粗砂), 0.2~0.02㎜사이의 모래를 세사(細砂)라고 한다. 우리는 이중에서 세사를 택해, 그 지름을 편의상 0.1mm로 정하기로 하자. 다음으로, 우주의 크기는 얼마나 되는가? 빅뱅에서 시작된 우주의 나이가 138억 년이니까, 그것을 반지름으로 한다면 지름은 276억 광년인데, 빅뱅 초창기에 인플레이션으로 광속보다 더 빨리 팽창되어 현재 대략 950억 광년 크기로 나와 있다. 그럼 우주 크기를 km단위로 나타내보자. 1광년=300,000kmX3,600(초)X24(시간)X365(일)=9,460,800,000,000km(약 10^13km) 우주 지름=95,000,000,000광년X10^13km=95X10^22km(약 10^24km) 모래알 지름=0.1mm=10^-7km 위 둘을 나누면; 10^31배 우주의 지름은 모래알 지름의 10^31배라는 답이 나왔다. 부피는 길이의 3제곱이므로 (10^31)^3=10^93(개) 즉, 1구골(10^100)의 1/10^7인 10^93개의 모래알이면 온 우주를 모래로 빈틈없이 가득 채울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동양권 숫자의 가장 큰 단위인 무량대수(無量大數/10^68)보다도 10^25배 크고, 아르키메데스의 모래알 수보다는 무려 10^30배나 많은 숫자이다. 그러나 만 단위 수도 잘 사용하지 않았던 고대에 아르키메데스가 우주를 가득 채울 모래알 수를 계산해냈다는 것은 대단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 고대세계에 아르키메데스 외에도 모래알을 계산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우리가 쓰는 인도-아라비아 숫자를 창안한 인도인들이었다. 고대 인도인은 ‘부처가 태어나고 유행(遊行)한 곳이라고 전하는 갠지스 강(恒河)의 모래알 개수를 10^52개라고 계산했다. 그래서 이 숫자의 이름이 ‘항하사(恒河沙)’이다. 이 숫자의 크기를 따져보기 위해, 먼저 모래알 하나와 지구와의 크기 비율을 알아보기로 하자. 지구 지름=13,000km 모래알 지름=10^-7km 둘을 나누면; 13X10^10(1.3천억 배) 그 3제곱은 약 10^33 지구를 모래알로 다 채우려면 약 10^33개의 모래알이 필요하다. 따라서 1항하사(10^52)의 모래알은 지구 1000경(10^19) 개를 채울 수 있는 양이다. 고대 인도인들의 과장이 좀 지나쳤음을 알 수 있다. 숫자의 위대함이 팍 느껴지는 대목이다. 세계는 수로 표현될 수 있다고 믿고 만물의 근원은 수라고 말한 피타고라스가 맞았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연애의 맛’ 하주희 19금 댄스에 오지호 반응이…

    ‘연애의 맛’ 하주희 19금 댄스에 오지호 반응이…

    영화 ‘연애의 맛’을 통해 스크린 신고식을 치른 배우 하주희가 도발적인 댄스 영상을 공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공개된 영상에는 극중 왕성기(오지호)를 유혹하는 맹인영(하주희)의 19금 댄스 장면과 촬영 전 연습 장면이 교차 편집되어 있다. 촬영 당시 그녀는 강렬한 비트의 음악에 맞춰 야릇한 춤 동작뿐만 아니라 뇌쇄적인 눈빛으로 현장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는 후문이다. 그동안 드라마 ‘루비반지’와 ‘부탁해요 캡틴’ 등에 출연하며 도시여성의 매력을 보여줬던 하주희는 영화 ‘연애의 맛’을 통해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섹시 코믹 캐릭터의 진수를 보여줄 예정이다. ‘연애의 맛’은 산부인과 의사 왕성기(오지호)와 비뇨기과 의사 길신설(강예원)이 벌이는 좌충우돌 섹시 코미디로 오는 7일 개봉한다. 사진 영상=와우픽쳐스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아하! 우주] 우리 태양계의 크기, 과거 학자들은 어떻게 쟀을까?

    [아하! 우주] 우리 태양계의 크기, 과거 학자들은 어떻게 쟀을까?

    -천문학자들의 줄자 '우주 거리 사다리’(2) 삼각법으로 알아낸 태양계의 크기 달까지의 거리를 자로 재듯이 정확하게 측정한 히파르코스의 후예는 무려 1,800년 뒤에야 나타났다. 이탈리아 출신의 천문학자 조반니 카시니가 그 주인공으로, 그가 발견한 토성의 카시니 간극으로 우리에게도 낯익은 사람이다. 1625년 니스에서 태어난 카시니는 일찍이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겨우 25살 나이에 볼로냐 대학의 천문학 교수가 되었다. 그는 특히 행성 관측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 1665년 목성의 대적반 변화를 관찰, 목성의 자전주기가 9시간 56분임을 밝혔고, 이듬해에는 비슷한 방법으로 화성의 자전주기가 24시간 40분임을 확인했다. 카시니가 태양까지의 거리를 재겠다는 야심찬 계획에 도전한 것은 그가 프랑스 루이 14세의 초청을 받아 파리 천문대장에 취임, 거금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된 최초의 천문학자가 되었을 때였다. 당시 태양과 각 행성들 간의 거리는 케플러의 제3법칙, 행성과 태양 사이의 거리의 세제곱은 그 공전주기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공식에 의해 상대적인 거리는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 거리가 알려진 게 없어 태양까지의 절대 거리를 산정하는 데는 쓸모가 없었다. 카시니는 먼저 화성까지의 거리를 알아내고자 했다. 방법은 역시 시차(視差)를 이용한 삼각법이었다. 시차를 알고 두 지점 사이의 거리, 곧 기선의 길이를 알면 그것을 밑변으로 하여 삼각법을 적용해서 목표물까지의 거리를 구할 수가 있다. 이 기법은 이미 1,900년 전 히파르코스가 38만km 떨어진 달까지의 거리를 측정하는 데 써먹은 방법이었다. 그러나 좀더 멀리 떨어져 있는 천체와의 거리를 정확하게 재기 위해서는 좀더 긴 기선이 필요하다.  카시니는 먼저 제1단계로 시차를 이용해 화성까지의 거리를 구하기로 했다. 마침 화성이 지구에 접근하고 있었다. 이는 곧 큰 시차를 얻을 수 있는 기회임을 뜻한다. 1671년, 카시니는 조수 장 리셰르를 남아메리카의 프랑스 령 기아나의 카옌으로 보냈다(기아나는 ‘빠삐용’에 나오는 유명한 유형지 악마의 섬이 있는 곳이다). 파리와 카옌 간의 거리 9,700km를 기선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리셰르는 화성 근처에 있는 몇 개의 밝은 별들을 배경으로 해서 화성의 위치를 정밀 관측했고, 동시에 파리에서는 카시니가 그와 비슷한 측정을 해서 화성의 시차를 구했다. 계산 결과는 놀랄 만한 것이었다. 화성까지의 거리는 6400만km라는 답이 나왔다. 이 수치를 ‘행성의 공전주기의 제곱은 행성과 태양 사이 평균 거리의 세제곱에 비례한다’는 케플러의 제3법칙에 대입하니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는 1억 4000만km로 나왔다. 이것은 실제값인 1억 5000만km에 비하면 오차 범위 7% 안에 드는 훌륭한 근사치였다. 오차는 화성의 궤도가 지구와는 달리 길죽한 타원인 데서 생겨난 것이었다. 어쨌거나 이는 태양과 행성, 그리고 행성 간의 거리를 최초로 밝힌 의미 있는 결과로, 인류에게 최초로 태양계의 규모를 알려주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한 일이었다. 당시 태양계는 토성까지로, 지구-태양 간 거리의 약 10배였다. 이로써 인류는 태양계의 크기를 최초로 알게 되었다. ‘광속’도 천문이 알려준 것이다 태양-지구간 거리는 천문학에서 ‘천문단위’(Astronomical Unit 또는 AU)라 하며, 태양계를 재는 잣대로 쓰인다. 천문단위는 단지 길이의 단위일 뿐만 아니라 천문학에서 중요한 상수이다. 태양계 내의 행성이나 혜성 등의 천체 사이의 거리는 천문단위를 이용함으로써, 취급하기 쉬운 크기의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예를 들어, 화성이 지구에 가장 가까이 접근할 ​​때, 화성과 지구 사이의 거리는 0.37AU 정도이고, 태양에서 토성까지는 약 9.5AU, 가장 먼 행성 해왕성까지는 약 30AU가 된다. 30AU부터 100AU까지에는 명왕성을 비롯한 태양계 외부 천체가 분포하고 있다. 태양계의 경계이며 혜성의 고향이라고 여겨지는 ‘오르트 구름’은 수만 천문단위에 걸쳐져 있으며, 천문단위가 사용되는 한계이다. 빛이 8분 20초를 달리는 거리인 1AU, 곧 1억 5000만km는 시속 100km의 차로 밤낮 없이 달려도 170년이 걸리는 엄청난 거리지만, 우주를 재기에는 턱없이 작은 단위다. 그래서 별이나 은하까지 거리를 재는 데는 광년(Light Year 또는 LY)을 쓴다. 빛이 1년간 달리는 거리로, 약 10조km쯤 된다. 그런데 카시니 시대에 이르도록 빛이 입자인지 파동인지, 또는 속도가 있는 건지 무한대인지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인류에게 빛이 속도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도 역시 ‘천문’이었다. 카시니는 갈릴레이가 발견한 목성의 4개 위성에 대한 운행표를 계산했는데, 이것은 해상에서의 경도(經度) 결정에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이의 보정을 위해 카시니는 제자인 덴마크 출신 올레 뢰머에게 목성의 위성을 관측하는 임무를 맡겼다. 그는 1675년부터 목성에 의한 위성의 식(蝕)을 관측하여, 식에 걸리는 시간이 지구가 목성과 가까워질 때는 이론치에 비해 짧고, 멀어질 때는 길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목성의 제1위성 이오의 식을 관측하던 중 이오가 목성에 가려졌다가 예상보다 22분이나 늦게 나타났던 것이다. 그 순간, 그의 이름을 불멸의 존재로 만든 한 생각이 번개같이 스쳐지나갔다. “이것은 빛의 속도 때문이다!” 이오가 불규칙한 속도로 운동한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것은 분명 지구에서 목성이 더 멀리 떨어져 있을 때, 그 거리만큼 빛이 달려와야 하기 때문에 생긴 시간차였다. 뢰머는 빛이 지구 궤도의 지름을 통과하는 데 22분이 걸린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지구 궤도 반지름은 이미 카시니에 의해 1억 4천만km로 밝혀져 있는만큼 빛의 속도 계산은 어려울 게 없었다. 그가 계산해낸 빛의 속도는 초속 21만 4,300km였다. 오늘날 측정치인 29만 9,800km에 비해 28%의 오차를 보이지만, 당시로 보면 놀라운 정확도였다. 무엇보다 빛의 속도가 무한하다는 기존의 주장에 반해 유한하다는 사실을 최초로 증명한 것이 커다란 과학적 성과였다. 이는 물리학에서 획기적인 기반을 이룩한 쾌거였다. 1676년 광속 이론을 논문으로 발표한 뢰머는 하루아침에 광속도 발견으로 과학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제자가 잘되는 꼴을 못 보는 카시니는 가만 있지 않았다. 그는 이오가 늦게 나타나는 것은 그 자체의 궤도가 불규칙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제자를 깎아내렸다. 목성 위성을 수도 없이 보아왔던 카시니는 자신은 왜 그런 생각을 못했는지 한탄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실은 감추어지지 않는 법이다. 빛의 입자설을 내세웠던 뉴턴과, 그에 맞서 파동설을 내세웠던 하위헌스가 모두 뢰머를 지지하고 나서자 카시니의 주장은 자연 무시되고 말았다. 우주에서 광속보다 빠른 것은 없다. 그러나 이 광속으로도 우주의 크기를 재기에 버거울 만큼 우주는 광대하다. 3000억 개의 별들이 버글거리고 있는 우리은하지만, 별들과의 평균 거리는 약 4광년이다. 그러니 다른 은하와 충돌하더라도 별들끼리 부딪힐 확률은 아주 낮다. 동해 바다에서 미더덕 두 개가 우연히 부딪힐 확률과 비슷하다. 그래서 어떤 천문학자는 별들 사이의 아득한 거리에는 신의 배려가 깃들어 있다고 표현했다.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별은 센타우리 프록시마란 별인데, 거리는 4.2광년이다. 빛이 거기까지 갔다오는 데 8년이 걸린다는 뜻이다. 바로 이웃에 다녀오는 데 8년이 걸린다면 광속도 우주에 비하면 달팽이 걸음과 다를 게 없다. 한편, 카시니는 행성관측에 매진해, 토성 근처에서 4위성을 발견하고, 토성 고리에서 이른바 카시니 간극을 발견하는 등, 천문학사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기고 1712년 생을 마감했다. 향년 87세. 그의 이름은 1997년에 발사된 토성 탐사선 ‘카시니-하위헌스 호’와 화성의 지명에 남아 있다. 그가 죽은 지 13년 뒤인 1725년, 영국의 천문학자 브래들리가 광행차(光行差)를 발견하여 빛의 속도가 유한함을 결정적으로 증명함으로써 뢰머의 광속 이론은 완전히 입증되었다. 지하의 카시니도 그제야 제자의 업적을 인정해줬을까? ​중학교 중퇴자가 최초로 별까지 거리를 쟀다 별까지의 거리를 재려면 시차를 알아야 한다. 그러면 지구 궤도 반지름을 기선으로 삼아 별까지의 거리를 계산해낼 수 있다. 이 궤도 반지름을 기선으로 삼는 별의 시차를 연주시차라 한다. 다시 말하면, 어떤 천체를 태양과 지구에서 봤을 때 생기는 각도의 차이를 연주시차라는 말이다. ​‘연주(年周)’라는 호칭이 붙는 것은 공전에 의해 생기는 시차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연주시차를 구할 때, 관측자가 태양으로 가서 천체를 관측할 수 없기 때문에, 지구가 공전궤도의 양끝에 도달했을 때 관측한 값을 1/2로 나누어 구한다. 이것만 알면 삼각법으로 바로 목표 천체까지의 거리를 계산할 수 있다. 1543년,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발표한 이래, 천문학자들의 꿈은 연주시차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지구가 공전하는 한 연주시차는 없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지구 공전에 대한 가장 확실하고도 직접적인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후 3세기가 지나도록 수많은 사람들이 도전했지만 연주시차는 난공불락이었다. 불세출의 관측 천문가 허셜도 평생을 바쳐 추구했지만 끝내 이루지 못한 것이 연주시차의 발견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장 가까운 별들의 평균 거리가 10광년으로 칠 때, 약 100조km가 되는데, 기선이 되는 지구 궤도의 반지름이라 해봐야 겨우 1.5억km이다. 무려 1,000,000 대 3이다. 어떻게 그 각도를 잴 수 있겠는가. 그야말로 극한의 정밀도를 요구는 대상이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발표한 지 거의 300년 만에야 이 연주시차를 발견한 천재가 나타났다. 놀랍게도 중학교를 중퇴하고 천문학을 독학한 프리드리히 베셀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천재는 삶의 내력도 재미있을 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매력적인 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베셀의 최대 업적이 된 연주시차 탐색은 그가 쾨니히스베르크 천문대 대장으로 있을 때인 1837년부터 시작되었다. 별들의 연주시차는 지극히 작으리라고 예상됐던만큼 되도록 가까운 별로 보이는 것들을 대상으로 선택해야 했다. 고유 운동이 큰 별일수록 가까운 별임이 분명하므로 베셀은 가장 큰 고유운동을 보이는 백조자리 61을 목표로 삼았다. 이 별은 5.6등으로 어두운 편이라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것을 베셀이 굳이 선택한 것이다. 베셀은 1837년 8월에 백조자리 61의 위치를 근접한 두 개의 다른 별과 비교했으며, 6달 뒤 지구가 그 별로부터 가장 먼 궤도상에 왔을 때 두 번째 측정을 했다. 그 결과 배후의 두 별과의 관계에서 이 별의 위치 변화를 분명 읽을 수 있었다. 데이터를 통해 나타난 백조자리 61번별의 연주시차는 약 0.314초각이었다. 이 각도는 빛의 거리로 환산하면 약 10.28광년에 해당한다. 실제의 10.9광년보다 약간 작게 잡혔지만, 당시로서는 탁월한 정확도였다. 이 별은 그후 ‘베셀의 별’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지구 궤도 지름 3억km를 1m로 치면, 백조자리 61은 무려 30km가 넘는 거리에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 연주시차를 어떻게 잡아내겠는가. 그 솜털 같은 시차를 낚아챈 베셀의 능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 10광년의 거리는 사람들을 경악케 했다. 그러나 그 거리 또한 알고 보면 솜털 길이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을 머지않아 우리는 알게 된다. 천왕성을 발견한 윌리엄 허셜의 아들이자 런던 왕립천문학회 회장인 존 허셜 경은 베셀의 업적을 이렇게 평했다. “이것이야말로 실제로 천문학이 성취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성공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그토록 넓으며, 우리는 그 넓이를 잴 수 있는 수단을 발견한 것이다.” ​베셀의 연주시차 측정은 우주의 광막한 규모와 지구의 공전 사실을 확고히 증명한 천문학적 사건으로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별들의 거리에 대한 측정은 천체와 우주를 물리적으로 탐구해나가는 데 필수적인 요소라는 점에서 독학자 베셀은 천문학의 새로운 길을 열었던 것이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깨끗한 물 절실한 케냐 할머니와 두 손자의 암담한 현실

    깨끗한 물 절실한 케냐 할머니와 두 손자의 암담한 현실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서 차로 8시간 거리에 떨어진 반지 마을에는 더러운 웅덩이의 물을 마시며 갈증을 해소하는 형제가 있다. 첫째는 13세 에드워드, 둘째는 10세 토머스다. 형제가 마시는 오염된 물은 통에 담겨 학교 급식소로 전달되고, 급식은 형제의 허기를 달래는 귀중한 한 끼 식사다. 오염된 물에 의존하다 보니 몸이 성할 리 없다. 동생 토머스는 에이즈에 걸렸다. 할머니 다마(70)는 노쇠한 몸을 이끌고 손자들 먹일 음식 찾기에 급급하다. 자신은 굶을지언정 손자들만큼은 배를 채워 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에드워드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두 팔을 걷어붙이고 밭일을 시작한다. 할머니와 아픈 동생을 위해 에드워드가 할 수 있는 건 밭일뿐이다. 할머니에게는 꼭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아이들을 잘 부탁한다며 먼저 떠난 아들의 유언이다. 할머니는 어린 손자들이 학업의 끈을 놓지 않게 하기 위해 오늘도 남들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한다. 그러나 요즘 들어 몸이 도통 말을 듣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손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어지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할머니는 토머스에게 오늘도 더러운 물로 약을 먹였다. 병원에서는 깨끗한 물을 마시라고 했지만, 하루 한 끼 해결하는 것도 버거운 현실에 깨끗한 물은 언감생심이다. 오늘도 에드워드가 일하러 나섰다. 이제는 손주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할머니의 눈앞이 캄캄해진다. 더러운 물로 고통받고 있는 할머니와 두 손자의 이야기는 1일 저녁 8시 20분 방송되는 EBS 1TV ‘글로벌 프로젝트 나눔’을 통해 볼 수 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NBA] ‘킹’ 제임스 27점 폭발 클리블랜드 4강 진출

    개인 통산 세 번째 우승 반지와 친정팀에서의 첫 트로피를 노리는 르브론 제임스(클리블랜드)가 플레이오프(PO) 첫 관문을 무난하게 통과했다. 클리블랜드는 27일 보스턴 TD가든에서 열린 미국프로농구(NBA) 동부콘퍼런스 플레이오프 1라운드 4차전 보스턴과의 경기에서 제임스(27득점)와 카일리 어빙(24득점) 등의 활약에 힘입어 101-93으로 이겼다. 4전 전승으로 PO 2라운드에 올라 시카고-밀워키 승리팀과 챔피언십 진출을 다투게 됐다. 현역 최고의 스타 제임스는 오프 시즌 2년간 4210만 달러(약 450억원)의 계약을 체결하며 친정 클리블랜드로 되돌아왔다. 마이애미 시절인 2011~12시즌과 2012~13시즌에 이어 개인 통산 세 번째 우승 반지를 클리블랜드에서 끼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정규리그에서 변함 없는 활약으로 팀을 동부콘퍼런스 2위에 올려놓았다.‘그러나 클리블랜드는 이날 제임스, 어빙과 함께 삼각편대를 구축하는 케빈 러브가 어깨 부상을 당해 비상이 걸렸다. 러브는 1쿼터 초반 상대 센터 켈리 올리닉과 공을 다투다 왼쪽 어깨 통증을 호소했고, 이후 경기에 뛰지 못했다. 진단 결과 러브는 어깨가 탈골된 것으로 나타나 향후 출전이 불가능해졌다.’ 한편 워싱턴도 홈인 버라이즌센터에서 열린 토론토와의 경기에서 125-94 완승을 거두고 4전 전승으로 PO 2라운드에 올랐다. 정규리그 5위 워싱턴은 4위 토론토를 잡는 ‘업셋’(하위팀이 상위팀을 이기는 것)에 성공했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아하! 우주] “밤하늘은 왜 어두운가” -올베르스의 역설, 소설가가 풀었다

    [아하! 우주] “밤하늘은 왜 어두운가” -올베르스의 역설, 소설가가 풀었다

    "밤하늘은 왜 어두운가?” 이런 싱거운(?) 질문 하나가 몇 세기 동안 천문학자들의 골머리를 싸매게 했다니, 얼른 믿어지지가 않지만 사실이다. 이 질문의 의미는 보기보다 심오하다. 어두운 밤하늘이 ‘무한하고 정적인 우주’라는 기존의 우주관에 모순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주가 무한하고 별들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면, 우리 눈앞에 펼쳐진 2차원의 밤하늘은 별들로 가득 메워져 밤에도 환해야 한다. 왜냐면, 우리 시선이 결국은 어떤 별엔가 가서 닿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별빛의 광도가 떨어지기 때문일 거라는 말도 정답이 될 수 없다. 광도는 거리 제곱에 반비례하지만, 그 거리를 반지름으로 하는 구면의 면적 역시 거리 제곱에 비례하여 늘어나고, 따라서 별의 갯수도 그만큼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밤하늘은 여전히 어둡다. 이건 역설이다. 왜 그럴까? 17세기 천문학계에서 불세출의 거장이었던 케플러도 이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다가 "우주가 유한해서 그렇다"고 결론내리고 말았다. 이 역시 정답은 아니다. 이 천문학의 난제는 오래 전부터 존재했지만, 이것을 하나의 화두로 만든 사람은 19세기 독일의 천문학자이자 의사인 하인리히 올베르스다. 그래서 이 역설을 ‘올베르스의 역설’이라 한다. 소행성 발견자인 올베르스는 '어두운 밤하늘의 역설'이라고도 하는 이 역설로 더욱 유명해졌다. 이 질문에 대한 올베르스 자신의 답은, 별빛을 차단하는 무엇, 예컨대 성간 가스나 먼지 같은 것들 때문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이것도 '땡~'. 먼지와 가스층이 우주공간을 메우고 있다면 오랜 세월 빛에 노출되어 발광성운이 되어 빛나게 되므로 우주는 마찬가지로 밝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올베르스의 역설을 처음으로 해결한 사람은 뜻밖의 인물이었다. 유명한 소설 '검정 고양이'를 쓴 미국의 작가이자 아마추어 천문가인 에드거 앨런 포(1809 ~ 1849)였다. 자신이 천체관측을 한 것에 대해 쓴 산문시 <유레카>(1848)에서 포는 "광활한 우주공간에 별이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이 따로 있을 수는 없으므로, 우주공간의 대부분이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천체로부터 방출된 빛이 우리에게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이 아이디어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진실이 아닐 수 없다"고 자신했다. 예술가다운 직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포의 말마따나 밤하늘이 어두운 이유는 빛의 속도가 유한하고, 대부분의 별이나 은하의 빛이 아직 지구에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별빛이 우리에게 도달하기에는 우주가 태어난 지 충분히 오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포가 미처 몰랐던 중요한 사실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우주가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 엄청난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지금 도달하지 못한 빛들은 당분간 아니, 영원히 도달하지 못할 것이고, 밤하늘이 점차 밝아지는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정답이다. 우리가 지구 행성에서 올려다보는 밤하늘이 어두운 이유는 우주가 정적이지 않다는 빅뱅 이론을 지지하는 거창한 증거 중 하나인 셈이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다이아 결혼반지 실종, 4개월 뒤 애완견 ‘변’에서...

    다이아 결혼반지 실종, 4개월 뒤 애완견 ‘변’에서...

    소중한 결혼반지를 잃어버렸다가 ‘황당한’ 곳에서 되찾은 여성이 사연이 알려져 화제를 모으고 있다. AP통신 등 해외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알래스카주 시트카에 사는 니키 발로비치라는 여성은 임신 중이던 지난 1월 손가락이 부어올라 항상 끼고 있던 결혼반지를 빼놓았다. 얼마 후 그녀는 다이아몬드가 박힌 결혼반지가 사라진 것을 알아채고는 온 집안을 찾아 헤맸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다. 집에서 키우던 마스티프 종(種) 애완견인 ‘할리’가 삼켰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긴 했지만 ‘물증’이 없어 결국 반지를 포기해야만 했다. 그로부터 4개월 뒤 ‘결혼반지 실종사건’은 황당한 곳에서 해결됐다. 그녀의 반지는 다름 아닌 애완견 할리의 배설물에서 발견된 것. 지난 주, 니키는 자신이 자원봉사를 하는 한 경기장에 할리와 동행한 적이 있는데, 이후 이 경기장을 이용한 한 남성이 개 배설물에서 반지를 발견했다며 이를 판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니키는 우연히 이 글을 발견했고 직감적으로 그 반지가 자신의 것임을 예감했다. 곧장 페이스북 계정 주인에게 연락했고, 자신의 예감이 맞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녀는 “나와 남편은 하이킹을 갈 때, 보트를 탈 때 등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할리를 동반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개를 데리고 내가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경기장에 갔고, 그곳에서 할 리가 ‘볼일’을 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혼반지가 없는 내내, 내 손이 매우 허전했었다. 매우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사라진 결혼반지, 애완견 ‘응가’에서 발견한 女

    사라진 결혼반지, 애완견 ‘응가’에서 발견한 女

    소중한 결혼반지를 잃어버렸다가 ‘황당한’ 곳에서 되찾은 여성이 사연이 알려져 화제를 모으고 있다. AP통신 등 해외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알래스카주 시트카에 사는 니키 발로비치라는 여성은 임신 중이던 지난 1월 손가락이 부어올라 항상 끼고 있던 결혼반지를 빼놓았다. 얼마 후 그녀는 다이아몬드가 박힌 결혼반지가 사라진 것을 알아채고는 온 집안을 찾아 헤맸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다. 집에서 키우던 마스티프 종(種) 애완견인 ‘할리’가 삼켰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긴 했지만 ‘물증’이 없어 결국 반지를 포기해야만 했다. 그로부터 4개월 뒤 ‘결혼반지 실종사건’은 황당한 곳에서 해결됐다. 그녀의 반지는 다름 아닌 애완견 할리의 배설물에서 발견된 것. 지난 주, 니키는 자신이 자원봉사를 하는 한 경기장에 할리와 동행한 적이 있는데, 이후 이 경기장을 이용한 한 남성이 개 배설물에서 반지를 발견했다며 이를 판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니키는 우연히 이 글을 발견했고 직감적으로 그 반지가 자신의 것임을 예감했다. 곧장 페이스북 계정 주인에게 연락했고, 자신의 예감이 맞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녀는 “나와 남편은 하이킹을 갈 때, 보트를 탈 때 등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할리를 동반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개를 데리고 내가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경기장에 갔고, 그곳에서 할 리가 ‘볼일’을 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혼반지가 없는 내내, 내 손이 매우 허전했었다. 매우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유병재 “아는 형 여자친구 집에서 동거” 유재석 반응이?

    유병재 “아는 형 여자친구 집에서 동거” 유재석 반응이?

    유병재 “아는 형 여자친구 집에서 동거” 유재석 반응이?   런닝맨 유병재가 예능 대세다운 활약을 보여주며 시청자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지난 19일 방송된 SBS ‘일요일이 좋다-런닝맨’(런닝맨)에서 유병재는 ‘B급 마이너’의 분위기를 풍기며 등장했다. 이날 방송에서 유병재는 자신의 추억의 장소로 신월 3동 아파트를 꼽으며 “오늘 촬영장에 같이 온 형과 7, 8년 전부터 반지하에서 살았다. 신월 3동 아파트가 그 형의 여자친구집이다. 이 아파트에서 형과 여자친구가 동거하는데 나도 거기 같이 살았다”고 말해 다른 출연진들을 놀라게 했다. 이어 “그런데 그 누나가 중간에 남자가 생겼다. 형과 나는 그걸 알면서도 집을 나가야 하니까 모르는 척을 했다. 두 달 정도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누나가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는데 이 형은 모르는척 했다. 결국 나중에 그 형과 누나, 새로운 남자친구가 삼자대면했다. 조금 맞았다고 들었는데 그 이후에 쫓겨났다”고 덧붙였다. 유병재만이 털어놓을 수 있는 생생한 경험담에 유재석은 “토크가 살아있다”며 만족스러워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런닝맨 유병재, 유재석 만족시킨 발언은?

    런닝맨 유병재, 유재석 만족시킨 발언은?

    런닝맨 유병재, 유재석 만족시킨 발언은? 런닝맨 유병재   런닝맨 유병재가 예능 대세다운 활약을 보여주며 시청자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지난 19일 방송된 SBS ‘일요일이 좋다-런닝맨’(런닝맨)에서 유병재는 ‘B급 마이너’의 분위기를 풍기며 등장했다. 이날 방송에서 유병재는 자신의 추억의 장소로 신월 3동 아파트를 꼽으며 “오늘 촬영장에 같이 온 형과 7, 8년 전부터 반지하에서 살았다. 신월 3동 아파트가 그 형의 여자친구집이다. 이 아파트에서 형과 여자친구가 동거하는데 나도 거기 같이 살았다”고 말해 다른 출연진들을 놀라게 했다. 이어 “그런데 그 누나가 중간에 남자가 생겼다. 형과 나는 그걸 알면서도 집을 나가야 하니까 모르는 척을 했다. 두 달 정도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누나가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는데 이 형은 모르는척 했다. 결국 나중에 그 형과 누나, 새로운 남자친구가 삼자대면했다. 조금 맞았다고 들었는데 그 이후에 쫓겨났다”고 덧붙였다. 유병재만이 털어놓을 수 있는 생생한 경험담에 유재석은 “토크가 살아있다”며 만족스러워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런닝맨 유병재 입담에 유재석 반응이? ‘大만족’

    런닝맨 유병재 입담에 유재석 반응이? ‘大만족’

    런닝맨 유병재 입담에 유재석 반응이? ‘大만족’ 런닝맨 유병재   런닝맨 유병재가 예능 대세다운 활약을 보여주며 시청자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지난 19일 방송된 SBS ‘일요일이 좋다-런닝맨’(런닝맨)에서 유병재는 ‘B급 마이너’의 분위기를 풍기며 등장했다. 이날 방송에서 유병재는 자신의 추억의 장소로 신월 3동 아파트를 꼽으며 “오늘 촬영장에 같이 온 형과 7, 8년 전부터 반지하에서 살았다. 신월 3동 아파트가 그 형의 여자친구집이다. 이 아파트에서 형과 여자친구가 동거하는데 나도 거기 같이 살았다”고 말해 다른 출연진들을 놀라게 했다. 이어 “그런데 그 누나가 중간에 남자가 생겼다. 형과 나는 그걸 알면서도 집을 나가야 하니까 모르는 척을 했다. 두 달 정도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누나가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는데 이 형은 모르는척 했다. 결국 나중에 그 형과 누나, 새로운 남자친구가 삼자대면했다. 조금 맞았다고 들었는데 그 이후에 쫓겨났다”고 덧붙였다. 유병재만이 털어놓을 수 있는 생생한 경험담에 유재석은 “토크가 살아있다”며 만족스러워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런닝맨 유병재 입담에 유재석 반응이?

    런닝맨 유병재 입담에 유재석 반응이?

    런닝맨 유병재 입담에 유재석 반응이? 런닝맨 유병재   런닝맨 유병재가 예능 대세다운 활약을 보여주며 시청자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지난 19일 방송된 SBS ‘일요일이 좋다-런닝맨’(런닝맨)에서 유병재는 ‘B급 마이너’의 분위기를 풍기며 등장했다. 이날 방송에서 유병재는 자신의 추억의 장소로 신월 3동 아파트를 꼽으며 “오늘 촬영장에 같이 온 형과 7, 8년 전부터 반지하에서 살았다. 신월 3동 아파트가 그 형의 여자친구집이다. 이 아파트에서 형과 여자친구가 동거하는데 나도 거기 같이 살았다”고 말해 다른 출연진들을 놀라게 했다. 이어 “그런데 그 누나가 중간에 남자가 생겼다. 형과 나는 그걸 알면서도 집을 나가야 하니까 모르는 척을 했다. 두 달 정도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누나가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는데 이 형은 모르는척 했다. 결국 나중에 그 형과 누나, 새로운 남자친구가 삼자대면했다. 조금 맞았다고 들었는데 그 이후에 쫓겨났다”고 덧붙였다. 유병재만이 털어놓을 수 있는 생생한 경험담에 유재석은 “토크가 살아있다”며 만족스러워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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