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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루지야 시위진압때 음파장치 사용”

    지난 7일 그루지야 반정부 시위 진압 작전때 극도의 공포심을 유발시키는 특수 음파장치가 사용됐다고 러시아 리아 노보스티 통신이 자국 ‘NTV’의 시사 프로그램을 인용해 보도했다. 18일 방송된 프로그램에는 당시 시위대를 향해 서 있던 경찰 차량 중 일부에 특수 제작된 음향 장치가 탑재돼 있고, 그루지야 내무부 소속 요원들이 이를 조정하는 장면이 방송됐다. 이 장치는 미군이 이라크 전투에서 사용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은 이 장치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청각의 한계를 뛰어넘는 자극 전파를 보냄으로써 극도의 공포를 느끼게 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 음파를 접하는 순간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는 무력감에 빠진다면서 심할 경우 정신 착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음파 장치를 규제할 만한 국제적 근거는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모스크바 연합뉴스
  • 파키스탄 시위소년 2명 사망

    파키스탄에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된 이후 처음으로 반정부 시위 도중 사망자가 발생했다. AP통신은 15일 파키스탄 남부 항구도시 카라치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에서 11세와 12세 소년 두 명이 총격에 숨졌다고 보도했다.AP는 현지 경찰관의 말을 인용,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의 가택연금에 항의하는 시위대와 경찰 간에 총격전이 벌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두 소년이 희생됐다고 전했다. 앞서 부토와 나와즈 샤리프 등 파키스탄의 두 전직 총리는 비상사태 선포를 통해 정권연장을 노리는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을 축출키 위해 공동으로 반정부투쟁에 나서기로 합의했다. 망명 중인 샤리프가 이끌고 있는 파키스탄무슬림리그(PML-N) 내 소식통들에 따르면 오랜 정적관계인 두 전직 총리는 반무샤라프 연대원칙에 합의했다. 부토가 총재로 있는 파키스탄인민당(PPP) 고위관계자도 협력 방안 마련을 지시받았다고 언론에 밝혔다. 사우디아라비아에 머무는 샤리프는 14일 외신들에 “무샤라프와 맞서기 위해 부토 전 총리와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서 “우리는 PPP와 차이를 접어두고 민주주의를 회복시키기 위해 공동노력키로 했다.”고 밝혔다. 또 광범위한 야당연합에 대해서도 “그것은 시대의 요구”라고 말했다. 부토 전 총리도 오랜 정적인 샤리프와 연대투쟁 의지를 밝히며 “나는 계속 약속을 파기하는 사람(무샤라프) 아래서 총리는 하지 않겠다.”고 처음으로 무샤라프와 권력분점은 하지 않겠다고 공개했다. 샤리프를 포함한 다른 야권인사들은 부토가 무샤라프 측과 권력분점 밀약을 했다며 의심했었다. 이에 따라 파키스탄 최대 이슬람정당인 자마트-에-이슬라미와 구금된 크리켓 스타 출신 정치인 임란 칸 등도 부토-샤리프 연대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야권의 공동투쟁이 모처럼 확실해졌다. 야권연합은 조만간 성명을 발표, 무샤라프의 즉각 퇴진, 과도정부 구성, 해임법관 복권 등을 촉구할 방침이라 파키스탄의 긴박감이 고조되는 기류다.●무샤라프 과도정부 구성키로 이에 무샤라프 대통령은 이달말까지 군사령관직을 내놓겠다면서도 내년 1월9일 총선 때까지도 비상사태는 계속 유지하겠다며 맞섰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또 대통령과 의회의 임기가 만료됨에 따라 당분간 국정을 수행할 과도정부를 출범시킬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이춘규기자 taein@seoul.co.kr
  • 부토 가택연금

    파키스탄 정부는 9일 국가비상사태 선포에 맞서 대규모 반정부 집회를 이끌려던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를 가택연금했으며, 지지자들을 연행했다고 AP,AFP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경찰은 이날 이슬라마바드 외곽 부토 전 총리의 집을 철조망으로 에워싸고 부토의 외출과 외부인의 출입을 원천 봉쇄했다. 부토 전 총리는 방탄 차량을 타고 경찰 저지망을 뚫으려 시도했으나 실패했으며, 곧바로 가택연금 조치를 당했다. 경찰 당국도 부토 전 총리가 가택연금 상태임을 확인했으나 테러 위협에 따른 보호 차원이라는 이유를 댔다. 정부 대변인은 부토 전 총리가 10일 가택연금에서 해제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미국 백악관은 부토 전 총리의 가택연금 조치를 강하게 비난했다.부토 전 총리는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의 국가비상사태 선포에 대한 항의와 군사령관직 포기를 촉구하는 반정부 시위를 이날 이슬라마바드 인근 라왈핀디에서 개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파키스탄 정부는 모든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 라왈핀디 주변에 6000여명의 경찰병력을 배치해 집회를 원천 봉쇄했다. 부토 전 총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가택연금 되더라도 지지자들이 집회를 강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토가 총재로 있는 파키스탄인민당(PPP)은 경찰이 자신들의 지지자 5000여명을 체포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오후 북서변경주 페샤와르의 가정집에서 무샤라프 대통령 측근을 노린 자살테러가 발생해 적어도 4명이 사망했다고 ‘더 뉴스’ 등 현지언론들이 보도했다.여당 파키스탄무슬림리그(PML-Q) 북서변경주 지부장인 아미르 무캄의 집에서 폭탄이 터져 경찰관 3명 등 최소 4명이 숨지고 5명이 다쳤지만 무캄은 다치지 않았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미국 통제·아랍 독재에 문학적 저항”

    “미국 통제·아랍 독재에 문학적 저항”

    “나는 아랍을 위협하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속성에 맞서 싸웁니다. 동시에 아랍 민중을 억압하는 아랍 독재정권의 비민주성에도 맹렬하게 저항합니다.” 이집트 소설가 소날라 이브라힘(70)은 “나는 아랍작가며, 아랍작가여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미국의 정치·문화적 통제에 반대하는 ‘아랍인’으로서의 자의식을 강하게 드러냈다. 이브라힘은 “나는 아랍의 독재정권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또렷이 힘줘 말했다. 아랍의 민주주의를 열망하며 온몸으로 싸웠고, 가장 매서운 언어로 독재정권의 비민주성을 폭로해 왔음을, 그는 “저항”이란 단어로 짧게 표현했다. ‘2007 아시아·아프리카 문학페스티벌’(AALF) 참석차 한국을 찾은 이브라힘을 8일 전북 전주 코아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프랑스를 제외한 서구 문학계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다. 외국문학을 서구문학과 동일시하는 한국 독자들에게 낯선 이름임은 물론이다. 반면 아랍 세계에서 그는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이자 ‘가장 논쟁적인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아랍에 드리운 미국의 막강한 정치·문화적 영향력을 비판·탐구해온 소설가이자, 부패권력의 전복을 꿈꾸다 투옥됐던 실천적 지식인이다. 그는 줄곧 정치적 메시지를 짙게 함의한 글들을 써왔다.“아랍 세계의 하루하루는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폭탄소리와 죽어가는 사람들로 가득하다.”는 그에게, 정치적 글쓰기는 일상을 살아가는 삶 그 자체다. ●아랍민족주의 비판하는 아랍민족주의자 한국을 처음 찾은 이브라힘은 이날 조금 피곤한 듯했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잠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세월이 쌓여가는 백발의 머리와 검은 뿔테 안경 속 형형한 눈매가 대조를 이뤘다. 1959년 나세르 정권은 비밀 정치조직원이란 이유로 그에게 7년형을 언도했고,5년 반 동안 강제노역에 처했다. 당시 그는 작가가 아닌 정치운동가였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감옥 안 최악의 경험들은 그를 ‘정치성 강한 소설가’로 변신시켰다. “독방에 혼자 있으면서 내 삶의 과거와 현재를 깊이 돌이켜 보게 됐고, 교수·학생·노동자·농민·언론인 등 나와 함께 갇혀 있는 사람들의 삶을 관찰하게 됐습니다. 나와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왜 우리는 감옥에서 고문받아야 하는지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브라힘은 “우리는 미국의 위협에 대항하는 동시에 아랍의 독재정권에도 대항해야 한다.”고 했다.“독재에 대항하는 정치운동은 미국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민족운동”이라고도 했다. 미국에 대한 저항과 아랍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을 함께 강조하는 것이 그와 그의 문학이 가진 독특한 가치다. 이브라힘은 아랍민족주의자면서도, 아랍민족주의에 대항해 싸워 왔다. 미국의 아랍 지배에 대항하는 아랍민족주의를 지지하면서도, 독재권력이 정권 유지를 위해 오용하는 아랍민족주의는 강하게 비판했다.“미국이 원하는 것은 아랍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아랍의 석유와 시장”이란 지적과 “최근 국회를 해산한 파키스탄 무샤라프 군부독재를 보면 이집트 무바라크의 26년 장기독재가 보인다.”는 지적은 쌍둥이처럼 따라 나왔다. ●‘미국화된 지식인의 위기’ 경고 반미·반독재 작가로서 이브라힘의 면모는 그가 수상과 참석을 거부한 문학행사에서 드라마틱하게 발현됐다.2002년 ‘베를린국제문학축제’에 초청받은 그는 “팔레스타인 점령 정책을 고수하는 이스라엘 대사관과 이스라엘을 전폭 지지하는 미국 대사관이 후원하는 행사엔 참석할 수 없다.”며 거부 시위를 선언했다. 이듬해 10월 카이로국제협회가 주는 ‘올해의 작가상’ 시상식에서는 “신뢰할 수 없는 정부로부터 상을 받을 수 없다.”며 수상을 거부한 채 단상을 내려와 이집트를 발칵 뒤집었다. 청중은 기립박수로 환호했고, 반정부 언론들은 ‘정부의 강압정치에 직격탄을 날렸다.’며 대서특필했다. 이후 그는 이집트 언론에 정치·사회적 견해를 담은 글을 쓸 기회를 박탈당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여성의 배를 갈라 뱃속 아이까지 죽이는 현실에서 문학축제는 축제가 아니란 사실, 이집트 국민을 고문하고 죽이는 무바라크 독재에 내가 항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디어 앞에서 보여 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브라힘은 지식인의 위기를 경고한다. 초강대국 미국의 입김에 휘둘리는 아랍 정권과 그 때문에 발생하는 국가적 혼란엔 ‘미국화된 지식인의 위기’가 자리잡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과 유럽의 문학이 세계 문학을 지배하고 있는 지금, 아랍작가는 아랍의 문화와 정치상황을 말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 현실을 타개할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는 곧 ‘아시아·아프리카 문학페스티벌’이 뿌리박은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전주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파키스탄 시위대·경찰 충돌

    비상사태가 선포된 파키스탄에서 베나지르 부토 전 파키스탄 총리가 대규모 집회를 강행할 예정인 가운데 시민·경찰간 충돌이 발생하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AP통신은 7일 부토가 총재로 있는 파키스탄인민당(PPP)이 9일 이슬라마바드 인근 군사도시 라왈핀디에서 대규모 반정부 집회를 개최키로 했다고 전했다. 부토는 이날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우리 형제 자매들이 라왈핀디에 올 것을 요청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9일 집회에도 우리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13일부터 동부 도시 라호르에서 장거리 행진 시위에 나설 것이다. 이슬라마바드에서는 연좌시위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BBC는 부토의 메시지가 무샤라프 대통령에게 보내는 최후통첩이라고 보도했다. 한편 AP통신은 7일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파키스탄 의회 근처에서 현지 경찰이 부토 전 총리의 지지자들에게 최루탄을 발사하고 진압봉을 휘두르며 지지자들을 연행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수백명의 시위자들은 경찰이 진로 봉쇄차 막아놓은 바리케이드를 밀쳐내며 저항했다.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중국 공안에 정보제공” 제리 양 야후사장 사과

    중국 당국에 반정부 성향 기자의 개인정보를 자발적으로 유출했다는 비난을 받아온 인터넷 포털업체 야후가 6일(현지시간) 공개적으로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야후의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제리 양은 이날 미국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체포된 시 타오 기자와 그의 가족들에게 사과한다.”면서 “앞으로 중국내 인권을 보호하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야후 중국 자회사인 야후 홀딩스는 2005년 경제지 현대비즈니스뉴스(CBN)소속 시 타오 기자의 이메일 정보를 중국 공안 당국에 제공함으로써 도덕성 논란에 시달렸다. 시 타오 기자는 톈안먼 사태 기념일을 전후해 시위 발생 가능성을 언급한 중국 정부의 비밀 메모를 외국인들에게 제공했다는 혐의로 체포돼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변호사도 무샤라프에 등돌렸다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된 파키스탄에서 변호사들의 저항이 거세다. 5일 AP·AFP통신과 미국 CNN방송 등 외신들에 따르면 카라치, 라호르, 라왈핀디에서 시위를 벌이던 변호사 가운데 적어도 1500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지난 3일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뒤 임시헌법령(PCO) 발동에 맞서기 시작, 이날 하루만 전국에서 1만여명이 집회를 갖는 등 본격화했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지난달 치러진 대선에서 육군참모총장직을 겸한 그의 후보자격이 적법한지를 놓고 대법원이 6일 결과를 발표하려 하자 전격적으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 모든 헌법기능을 중단시켰다. 이들은 무샤라프의 퇴진 등 구호를 외치며 법원으로 행진하다가 곤봉을 휘두르고 최루탄을 쏘는 경찰에 밀려 주춤거렸다. 이날 펀자브 주도인 라호르에서는 2000여명의 변호사들이 고등법원 인근에 모여 정권퇴진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변호사들은 거리행진을 위해 거리로 나섰으나 경찰은 경고 방송을 내보낸 뒤 곧바로 최루가스를 쏘고 곤봉을 휘두르며 진압에 나섰다. 아프타브 치마 라호르 경찰서장은 “변호사들이 먼저 경찰에 돌을 던지며 문제를 일으키는 바람에 진압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시위에 참여했던 원로 변호사 사르프라즈 치마는 “변호사들의 평화적인 시위를 경찰이 무력으로 진압한 것은 독재에 대한 저항을 잠재우려는 것”이라고 비난한 뒤 “우리는 절대 비상사태 선포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라치 고등법원 판사인 라시드 라즈비는 “파키스탄 역사상 이렇게 많은 변호사들이 체포된 적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남부 항구도시인 카라치에서도 법원 진입을 시도하던 변호사들과 취재진이 경찰과 충돌했다. 또 이슬라마바드 인근의 군사도시인 라왈핀디 법원에서도 50∼60명의 변호사들이 반정부 구호를 외치며 항의 시위에 나섰다. 경찰은 변호사들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가했으며 현장에 있던 기자들의 촬영을 막았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페샤와르 변호사협회의 라티프 아프리디 회장은 AP통신에 “수많은 동료들의 연행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집회를 열어 정권에 대한 분노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 지도자인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는 “2002년 총선에서 정보당국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현재 집권당은 장외집회와 시위, 유세 금지를 요구하고 있다.”면서 “이는 정권 연장을 위해 내년 1월 총선을 부정하게 치르려는 명백한 음모로 의심되는 전조”라고 지적했다. 지난 9월 망명생활을 접고 귀국하려다 정부에 의해 좌절된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도 “악정을 연장할수록 국가는 혼란상황에 빠질 것”이라면서 “나를 보호해 주는 이곳 사우디 인사들과 귀국문제를 논의하고 있다.”고 경고했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미얀마 시위 재개

    미얀마 유혈진압 사태 이후 한 달여만에 승려들이 다시 거리로 나섰다. 31일 미얀마 옛 수도 양곤에서 북서쪽으로 630㎞떨어진 파코쿠에서 승려 100여명이 슈웨구탑을 출발,1시간가량 불경을 외며 가두행진을 벌였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이들은 성명을 발표하거나 정치적 구호를 외치지 않았으나 집회는 반정부 성격을 띠었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그러나 군경과 충돌은 벌어지지 않았다. 파코쿠는 80여개의 사원이 있는 불교 수행도시로 지난 9월 발생한 시위 때 승려들이 처음으로 거리행진을 벌였던 곳이다. 미얀마 정부군은 승려 300여명이 이끄는 반정부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공중에 실탄을 발사하고 승려들을 무차별 구타했다. 이후 승려들이 주도하는 반정부 시위대가 양곤 등지에서 10만명으로 불어나면서 군경의 유혈진압 사태로 이어졌다. 군정은 유혈진압으로 20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으나 야당 등 반정부 단체들은 사망자가 200여명에 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이브라힘 감바리 유엔 특사가 오는 3일 엿새 일정으로 미얀마를 다시 방문할 계획이라고 AFP통신이 현지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방콕 연합뉴스
  • [데스크시각] 미얀마가 버마로 불리는 날/최종찬 국제부 차장급

    지난달 19일 승려들이 이끄는 반정부 민주화 시위로 시작된 미얀마 사태가 한 달을 넘겼다. 전세계의 지대한 관심 속에서 들불처럼 번져가던 민주화시위는 군사정부의 무자비한 강제 진압으로 일단 수그러들었다. 지난 1988년 8월8일의 민주화시위가 3000명의 희생자만 남긴 채 끝난 것과 닮은꼴이다. 총칼과 탱크 앞에서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은 속절없이 고개를 숙인 모습이다. 하지만 총칼을 앞세운 무력의 힘은 영원할 수 없는 법이다.1962년 쿠데타를 통해 집권해 45년간 누리고 있는 군부의 영화는 이제 끝을 맺을 때가 된 것 같다.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움직임들이 이런 희망을 가능하게 해준다. 먼저, 군부 내의 불협화음을 들 수 있다. 군 장성 일부가 이번 시위 진압에 불만을 품고 항명을 계획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군부 서열2위인 마웅 아예 장군이 아웅산 수치여사와 몰래 면담을 하려 했다는 소문도 무성하다. 철옹성 같았던 군부의 결집력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 금이 커지다 보면 군정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다음은 국제사회의 압박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절대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군정을 더 이상 두고볼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제재 수위는 갈수록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탄 슈웨 장군 등 미얀마 군부 지도자 14명의 미국내 금융자산을 이미 동결한 미국은 지난 19일 군부 지도자 11명에 대한 추가적인 미국내 금융자산을 동결하고 미얀마에 대한 수출 통제를 더욱 강화하는 제재조치를 다시 발표했다. 십시일반으로 각국의 제재조치가 뭉치면 미얀마 군정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그동안 미얀마 군정을 은밀히 지원해온 중국과 인도도 세계의 눈초리를 더 이상 외면하기 힘들 것이다. 그 다음으로 민심이 군부에 완전히 등을 돌렸다는 점이다. 특히 이번 시위 때 군정은 승려들에게 총을 쏘고 게다가 불교사원에 난입해 1000여명의 승려를 체포하기까지 했다. 정신적 지주인 승려들이 총에 맞아 쓰러지고 끌려가는 모습을 본 미얀마 국민들의 마음은 어떠했었을까. 가슴 깊은 곳에서 군정에 대한 분노가 끓어올랐을 것이다. 이 분노가 끓어 넘치면 화산 폭발하듯 폭발할 것이다. 그 중심부엔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수치여사가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며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그녀는 비록 군정에 의해 가택연금 상태에 있지만 그녀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따라 미얀마의 민심은 ‘지진해일’처럼 요동칠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얀마의 민주화를 바라는 세계인들의 바람이다. 세계인들은 미얀마 군정을 무너뜨리기 위해 무력을 동원할 것을 주장하지 않지만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미얀마 군정을 압박하고 있다. 군정이 1989년 입법기관의 승인 없이 바꾼 국명인 미얀마를 쓰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대신 버마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미얀마라는 이름을 쓰게 되면 현 군정을 합법정부로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해서 대부분의 국제 언론들도 버마라는 명칭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언론 가운데 일부 신문도 미얀마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와 관련, 기자는 서울신문도 기사를 쓸 때 미얀마라는 이름 대신 버마를 사용해 달라고 부탁하는 분당의 한 고등학교 2학년생 12명의 이메일을 받았다. 한국 고교생을 비롯한 세계인들이 미얀마의 민주화를 한마음으로 바라고 있다. 이처럼 미얀마를 둘러싼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보면 미얀마의 민주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며 단지 시간문제일 뿐인 것으로 보인다. 서울 광화문앞의 촛불문화제에서 “버마의 민주화를 지지한다면 미얀마 대신 버마라고 불러주세요.”라는 버마민족민주동맹 소속 조모아의 절규를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는 날이 한걸음에 달려오길 기대한다. 최종찬 국제부 차장급 siinjc@seoul.co.kr
  • [女談餘談] 그녀들의 귀환/이순녀 국제부 기자

    독립영웅의 딸로 태어났다. 두살때 국부로 추앙받던 아버지를 정적의 손에 잃었다. 열여섯살에 인도로 떠난 뒤 영국과 미국 등지에서 정치와 경제, 철학을 공부하며 학자의 길에 몰두했다. 그러나 1988년 잠시 들른 고국땅에서 군부가 시위대에게 무차별적으로 발포를 하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고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명망있는 총리의 딸로 태어났다. 스물여섯살때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부친이 처형되자 부친이 창당한 정당의 중앙위원이 되어 반정부 운동에 앞장섰다. 두 차례 총리로 재임하며 이슬람국가 최초의 여성지도자라는 호칭을 얻었다. 미얀마(버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와 파키스탄의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 아시아를 대표하는 여성지도자인 두 사람은 여러모로 닮은꼴이다. 나이는 수치 여사가 62세로 부토 전 총리보다 여덟살 많지만 둘 다 부친의 정치적 영향력을 물려받았다는 점, 외국 유학파 출신이라는 점, 군부정권에 맞서는 정당의 지도자라는 점 등이 판박이다. 수치 여사는 미얀마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로 1991년 노벨평화상을, 부토 전 총리는 2005년 여성세계상을 받았다. 오랫동안 정치적 자유를 잃고 유배생활을 하고 있는 상황도 비슷하다. 수치 여사는 1989년부터 지금까지 반복적인 가택연금에 시달리고 있다. 부토 전 총리는 페르베스 무샤라프 현 대통령이 무혈쿠데타에 성공한 98년 런던으로 망명해 10년 가까이 외지에서 머물고 있다. 폐쇄적이고 강압적인 군부정권에 의해 수족이 묶이고, 언로가 막혔던 그녀들이 다시 국제사회의 중심으로 돌아오고 있다. 수치 여사는 최근 미얀마에서 벌어진 대대적인 민주화시위에서 변함없는 영향력을 드러냈다. 유엔 특사가 수치 여사를 면담하는 등 국제 여론이 악화되자 미얀마 군부는 마지못해 그녀에게 대화를 제의하며 유화책을 펴고 있다. 부토 전 총리도 장기집권을 노리는 무샤라프 대통령의 권력분점 제안에 따라 오는 18일 망명생활을 접고 귀국할 예정이다. 그녀들의 귀환이 폭력과 독재로 얼룩진 두 나라에 평화와 민주주의의 새 기운을 불어넣길 기대한다. 이순녀 국제부 기자 coral@seoul.co.kr
  • “미얀마 군부서 시위 희생자들 비밀리에 화장”

    미얀마에서 민주화 시위의 희생자들이 비밀리에 화장돼 희생자 처리 방식까지 ‘제2의 톈안먼 사태’를 연상케 하고 있다고 일부 외신이 전했다. 영국 선데이타임스 인터넷판은 7일(이하 현지시간) 보안군이 옛 수도 양곤 북동쪽의 시 화장터에서 유혈진압 희생자들의 시신을 비밀리에 화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주민들은 “밤이면 (사망자들을) 천으로 덮은 녹색 트럭들이 속속 화장터로 들어간다. 이어 가마 굴뚝에선 연기가 계속 피어오른다.”고 증언했다.무장군인들이 일반인들의 화장터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일주일째 목격됐다. 시민들 사이에선 일부 중상자들이 산 채로 화장되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시민들은 지난달 28일 보안군이 평화시위대에 발포하며 무력진압에 나선 뒤 하루 뒤부터 화장이 시작됐다고 전했다.간헐적으로 계속된 화장은 지난 주말까지 이어졌다. 타임스는 미얀마의 모습이 1989년 중국 톈안먼 사태 때 베이징 바바오산 화장터에서 신원미상의 시신들이 불태워진 것을 연상시킨다고 보도했다. 탄압도 계속되고 있다. 한 외국인 의사는 “군부가 각 병원에 시위 부상자에게 어떤 치료도 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미얀마인 의사로부터 들었다.”면서 “보안군에 잡혀 두들겨 맞거나 부상입은 채 감금된 사람들은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유혈진압이 중단된 이후 미얀마 시가지의 낮은 평온한 모습이다. 하지만 국내외 승려들은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며 새로운 시위 계획을 밝히는 반면 보안군은 시위가담자를 색출하는 등 여전히 긴장감은 흐르고 있다. 국제기구 관계자들은 “밤이면 체포자들을 실은 트럭 행렬이 덜컹대며 지나가는 걸 볼 수 있다.”고 전했다. 미얀마 군사정부는 국제적십자사가 억류자들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입국하겠다는 요청도 거절했다. 군정측은 2093명이 구금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로는 승려 최소 1000명, 시민 3000명 이상이 억류 중인 것으로 추산된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이와 관련, 지난주 미얀마를 방문한 이브라힘 감바리 유엔특사는 5일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탄압이 심각한 국제적인 반발을 야기할 수 있다면서 군정당국에 모든 정치범의 석방을 요구했다. 그는 또 6일에는 일정을 앞당겨 11월중순 이전 미얀마를 다시 방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수치여사 만날 뜻 있다”

    미얀마 군사정부의 최고지도자 탄 슈웨 국가평화개발위원회(SPDC)의장이 최근 이브라힘 감바리 유엔특사와 만났을 때 ‘개인적으로’ 민주화운동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를 만날 뜻이 있음을 밝혔다고 미얀마 관영매체들이 4일 보도했다. 슈웨 의장은 지난 2일 감바리 특사를 만난 자리에서 수치 여사를 만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수치 여사가)군사정부에 대한 대결 의지, 경제제재를 포함하는 모든 제재에 반대하다는 선언을 하면 개인적으로 만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고 관영매체들은 전했다. 슈웨 의장이 내건 조건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군부 최고실력자인 그가 수치 여사를 만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감바리 특사는 미얀마 방문 4일째인 지난 2일 미얀마의 신행정수도인 네이피도에서 슈웨 의장을 만난 데 이어 양곤으로 날아가 몇시간 뒤엔 수치 여사와 면담했다. 한편 관영 TV는 지난주 대규모 반정부 시위 기간 동안 모두 2000명 이상이 당국에 구속됐다고 보도했다.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부토 파키스탄 정계 복귀 길 열렸다

    오는 18일 망명 10년만에 귀국하는 파키스탄 전 총리 베나지르 부토의 정계 복귀 길이 열렸다.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이 그녀의 부패혐의를 말소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이르면 3일(이하 현지시간) 부토가 연류된 부패사건과 관련된 정치인들의 일괄 사면을 허가하는 내용의 법령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AP 통신이 2일 전했다. 사실상 정치적 해금조치다. 무샤라프가 부토에게 손을 내민 것은 국민적 인기가 높은 그녀를 국내에 불러들여 정정 불안을 진정시키려는 포석이다. 부토와의 권력분점 협상도 재개해 ‘적과의 동침’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와 관련, 무샤라프는 부토가 차기 총선에서 승리하면 그녀와 권력을 공유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3일 AP가 전했다. 부토는 이슬람국가 최초의 여성 지도자로 줄피카르 알리 부토 전총리의 딸이다. 총리였던 아버지가 모하메드 지아 울 하크 육군참모총장의 쿠데타로 실각하고 1979년 처형되자 반정부 운동을 벌였다.1981년 체포돼 3년간 옥살이를 한 뒤 1984년 유럽으로 망명했다. 하크 대통령이 계엄령을 풀자 1986년 4월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귀국,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1988년 8월 하크대통령이 비행기 추락사고로 죽고 실시된 11월 총선에서 자신이 이끄는 인민당이 최다 의석을 획득함에 따라 총리로 취임했다. 이후 군부독재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민주화개혁을 시도했으나 군부와 야당의 견제로 좌절됐고 91년 총선에서 패배하면서 총리직에서 물러났다.1992년 정권 퇴진, 조기총선을 요구하며 반정부시위를 주도해 1993년 10월 재집권했다.1997년 부패사건에 연루돼 사임한 뒤 다시 망명길에 올라 두바이와 런던에서 지금까지 망명생활을 해왔다.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미얀마판 ‘땡전 뉴스’ 아시나요

    미얀마판 ‘땡전 뉴스’가 무력탄압 앞에 숨죽인 현지 국민들의 저항 의식에 작은 불씨 역할을 하고 있다. 땡전 뉴스란 1980년대 한국의 군사정권 시절 유행한 용어다.TV방송들이 오후 9시를 알리는 시계 음이 울리자마자 ‘전두환 대통령은…’으로 시작하는 앵커의 목소리를 어김없이 내보내 국민들을 식상케 했다. AP통신은 3일 “미얀마의 옛 수도로 이번 사태의 진앙지인 양곤에서 시민들이 군사정부의 소식을 내보내는 뉴스 시간엔 TV를 꺼버린다.”면서 “이는 지난 1일부터 시작된 새로운 방식의 저항운동”이라고 보도했다. 군정을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뉴스는 오후 8시부터 15분까지 이어진다. 그런데 이같은 침묵저항운동은 2일 이브라힘 감바리 유엔특사가 수도 네피도에서 최고 지도자인 탄 슈웨 국가평화개발평의회(SPDC) 의장, 민주화운동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를 잇달아 만난 장면을 소개했을 때도 이어져 미얀마 국민들의 분노가 얼마나 큰가를 보여줬다. 침묵시위로 대표되는 미얀마 국민들의 저항방식은 21세기 현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공포정치를 일삼는 군사정권이 강요한 측면이 강하다. 주민들은 버스나 열차 등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는 정치 문제를 입에 올리기를 꺼린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번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도 등장한 사복 차림의 비밀경찰에 자칫하면 현행범으로 체포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군부는 지난달 26일 유혈사태 이후 5명 이상이 집단으로 모이는 것을 금지했다. 나라 바깥과의 접촉을 막으려고 끊어놓은 인터넷도 아직 복구되지 않고 있다. 요한 할렌보리 태국주재 스웨덴 대사도 스위스 제네바에서 이날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중무장 보안군이 단 몇분 안으로 해산하라고 으름장을 놓은 뒤 시간이 지나면 곧바로 비무장한 시민들에게 총을 갈기는 장면을 똑똑히 봤다.”고 증언했다. 군부는 지난주 민주화 요구 시위때 연행한 시위대 가운데 승려 229명을 3일 석방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그동안 중국과 더불어 미얀마 사태에 개입을 꺼렸던 인도가 전향적 움직임을 보여 주목된다. 인도 외무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프라납 무케르지 인도 외무장관이 유엔총회가 열린 뉴욕에서 우 니안 윈 미얀마 외무장관을 만나 민주화 시위 진압 과정에 대한 조사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일본 외무성은 반정부 민주화 시위를 취재하던 중 진압군의 총격에 희생된 일본인 프리랜서 영상기자 나가이 겐지의 시신이 4일 일본으로 운구된다고 2일 발표했다 한편 백혈병을 앓고 있던 미얀마의 소 윈(59) 총리가 2일 오후 양곤의 한 군병원에서 숨졌다고 인도에 본부를 두고 있는 반정부 온라인 매체인 미지마 뉴스(Mizzima News)가 보도했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미얀마 또 봄날은 간다

    대규모 시위로 촉발된 미얀마 사태가 꼭 2주일째를 맞은 2일 민주화 함성으로 가득했던 옛 수도 양곤은 정적만 감돌았다고 BBC 등 외신들이 이날 전했다. 10만명이 모여 들끓던 양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또 한번의 좌절 때문인지 시민들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짙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들은 “시위가 끝났나?”라고 묻는 기자들에게 손으로 ‘X’를 그으며 “끝났다.”고 잘라 말해 절망감이 그득히 묻어나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달 26일 군사정권이 단행한 야간 통금령은 1주일째 풀리지 않았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2일 제네바 유엔유럽본부에서 미얀마 사태를 논의하기 위한 특별회의를 개최,“미얀마 당국이 폭력을 최대한 자제하고 추가 폭력을 중지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아웅산 수치 여사를 비롯한 모든 정치범도 지체없이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한편 이브라힘 감바리 유엔특사가 평화적 사태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이날 미얀마 수도 네피도에서 최고 지도자인 탄 슈웨 국가평화개발평의회(SPDC) 의장과 면담했으나 10분만에 끝나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대화내용도 밝혀지지 않았다 영국 BBC방송은 이날 “거리 시위가 늘 성공적인 민중봉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정권의 불안정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강제진압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번 사태가 일깨워준다.”고 밝혔다. 방송은 이번 민주화 운동이 실패로 끝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독재정권 타도의 5대요인을 제시했다.5대요인은 1. 대중시위 확산과 다양한 사회·경제단체 참여 2. 명확한 구상을 가진 야당 중심의 세력 결집 3. 메시지 전파를 위한 미디어 이용 능력 4. 군정 내부에서의 쿠데타와 개혁파 출현 등 정권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체계 5.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핵심 국가들로부터의 외부압력 등이다. 이같은 분석에 따르면 군사정권에 맞선 이번 미얀마 시위는 실패로 끝난 1988년 88사태를 되풀이할 것으로 풀이했다. 그러나 영국 더 타임스는 미얀마 반체제 인사들이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운영하는 ‘버마의 민주 목소리(DVB)’ 방송 보도를 인용, 만약의 사태를 우려한 슈웨 의장의 부인과 딸, 사위가 싱가포르로 피신했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양곤의 폐쇄된 경마장이나 대학건물 등에 감금된 승려 수천명이 북부 감옥으로 이송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AP통신은 실제 시위로 빚어진 참상이 알려진 것보다 더하다고 보도했다. 또 “시민들이 정부가 운영하는 화장터에서 산 채로 불태워졌다.” “두들겨 맞아 숨진 승려의 시체가 강물에 떠다녔다.”는 등의 소문마저 나돌아 민심이 흉흉해졌다. 재미 반정부 단체인 ‘버마를 위한 미국운동’은 지난달 27일 양곤 시내에서 군인들이 자동소총을 갈겨 100명이 숨졌으며, 양곤 북쪽에 있는 탐웨 마을의 한 고교에서도 총을 쏴 학생 100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주장했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미얀마, ‘이 한 장의 사진’/심재웅 한국리서치 상무이사

    지난주 가장 큰 뉴스는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승려와 민간인을 미얀마 군부독재정권이 무력으로 진압한 사건이다. 추석 다음날인 26일 옛 수도 양곤에서 수만명의 승려와 시민들이 가두시위를 벌였고, 미얀마 군·경은 최루탄과 실탄을 발포하여 적어도 10명 이상 사망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서방의 외교소식통 등에 따르면 사망자의 수는 수십명에서 이백여명까지 늘어날 수도 있다고 한다. 독재정권에 맞서서 미얀마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평화적인 시위와 이를 무력으로 탄압하는 현장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진이 금요일인 28일자 조간에 일제히 실렸다. 그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사진은 양곤에서 로이터가 전한 사진이다. 이 사진은 경찰과 군대를 피해 고개를 숙이고 달아나는 민간인을 곤봉을 든 경찰과 자동소총을 겨눈 군대가 쫓는 장면을 담고 있다. 붉은 색의 커다란 철제 시설물과 변전시설을 에워싼 철망을 배경으로 시위대가 잃어버린 샌들이 흩어진 도로의 오른쪽 하단에 일본인 기자인 나가이 겐지가 쓰러진 채 카메라를 들고 있는 모습이 있고, 그의 바로 옆에는 한 병사가 그를 향하여 자동소총을 겨누고 있다. 나가이 기자는 바로 이 장면에서 가슴을 관통한 한 발의 총탄을 맞고 현장에서 숨을 거두었다. 로이터가 전한 ‘이 한 장의 사진’은 전 세계에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참모습을 보여주었다. 손에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남녀노소의 민간인이 대나무 방패와 곤봉을 든 경찰과 자동소총을 겨누는 군대를 피해 달아나는 장면은 폭압정권의 실상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달아나는 시위대 군중 속의 한 남자가 달려오는 곤봉을 든 경찰이나 자동소총을 겨눈 군인이 아닌 길바닥에 쓰러진 기자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돌아보는 모습도 보인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사진은 28일자 조간에 일제히 실렸다. 그러나 이 사진을 1면 머리로 실은 다른 신문과 달리 서울신문은 국제면인 16면에 게재하였다. 게다가 카메라를 든 채 도로에 쓰러진 기자의 모습과 그 기자를 향해 자동소총을 겨누고 있는 미얀마 병사의 모습을 담은, 가장 극적인 사진이 아닌 이미 숨을 거둔 것으로 보이는 기자를 병사들이 지나쳐서 시위대를 향해 쫓아가는 모습이 담긴 연속 촬영의 다음 장면의 사진을 게재하였다. 이 장면도 물론 중요하지만 긴박한 현장의 생생한 순간을 담은 가장 극적인 사진은 분명 아니다. ‘이 한 장의 사진’에 대한 28일자의 사진 설명도 미흡하였다. 서울신문의 사진설명은 “미얀마 반정부 시위가 유혈사태로 번지고 있는 가운데 27일 군·경이 옛 수도 양곤 중심부에서 수천명의 시위대에 발포, 해산하는 과정에서 부상당한 한 남자가 길위에 누워 있다.”고 전했다. 같은 사진을 게재한 한 조간은 “오른쪽에 쓰러진 채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는 사람이 일본인 기자 나가이 겐지다. 그는 결국 숨졌다.”고 현장상황을 인적 사항과 함께 전하며 쓰러진 사람의 생사를 확실하게 보도하였다. 물론 또 다른 조간은 같은 사진에 대해 “오른쪽에 부상당한 것으로 보이는 여성 시위자가 힘없이 길 위에 누워있다.”는 잘못된 사진설명을 붙이기도 하였다. 서울신문은 29일 토요일자 지면에 나가이 겐지가 카메라를 든 채 쓰러져 있고 미얀마 병사가 자동소총을 겨누는 극적인 장면의 사진을 다시 게재하고 상세한 정황 설명과 함께 “아무도 안 가는 곳 누군가는 가야” 한다고 했던 나가이 겐지의 기자정신을 기리는 도쿄특파원의 박스기사를 11면 톱으로 실었다. 금요일자의 미흡한 부분을 보완한 후속보도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감이 든다. 나가이 겐지 기자와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모든 희생자의 명복을 빈다. 아울러 긴박한 상황에서도 ‘이 한 장의 사진’을 촬영한 기자에게도 경의를 표한다. 심재웅 한국리서치 상무이사
  • 미얀마 ‘민주화 불씨’ 또 꺼지나

    ‘양곤의 봄’은 또 무산되나. 19년만에 찾아온 미얀마의 민주화를 향한 열망이 다시 꺾일 위기에 놓였다. 군경이 강경진압의 강도를 높이면서 시위대가 눈에 띄게 세력을 잃고 있어서다. 이런 와중에 이번 시위로 인한 사망자가 200명에 이른다는 주장도 나왔다. ●병력 대폭 늘리고 시민들 외출 차단 30일 AP와 AFP 등 외신에 따르면 군사정부는 주말부터 진압병력을 대폭 늘리는 등 시위대에 대한 적극적인 ‘목조이기’에 나섰다. 일요일 밤사이 시위의 진앙지인 옛 수도 양곤에 배치한 군경 병력만 2만명으로 늘어났다. AP에 따르면 익명을 요구한 아시아의 한 외교관은 “군경이 힘을 과시하면서 거의 모든 시위대가 양곤의 거리에서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시위대가 거리로 다시 나와 군정을 전복시킬 만큼의 군중을 동원할 가능성은 지금으로선 ‘제로’”라고 상황을 전했다. 군경은 양곤에 있는 아웅산 수치 여사의 자택 주변에도 수백명의 군병력을 미리 배치, 사태 확산을 막고 있다. 제2도시인 만달레이도 무장한 병력이 주요 길목마다 깔려있다.29일엔 양곤 시내의 불과 수백여명이 모인 소규모 집회에 대해서도 최루탄을 발사하며 조기 진압을 벌였다. 이로 인해 이번 시위와 관련돼 붙잡힌 사람들이 이미 1000명을 넘었다. 시내의 주요 유치장은 자리가 없어 이들은 현재 대학 등 교육기관의 건물에까지 수용돼 있다. 양곤과 만달레이의 불교사원 대부분도 군경이 이미 점거한 뒤 문을 걸어잠갔다. 사원 주변에는 철조망을 둘러쳐서 승려들이 거리로 나가는 길을 원천봉쇄했다. 양곤 시내의 쇼핑몰, 식료품점 등 거의 모든 상가도 문을 닫았고, 공원도 폐쇄됐다. 시내 중심가에서는 몇몇 사람들이 일을 하려고 집을 나섰다가 군경의 무차별적인 진압에 겁을 먹고 돌아가는 모습도 목격됐다. 시위장소에 근접한 곳에 사는 사람들은 시위대로 몰려 군경에게 두들겨 맞기도 했다. 이들은 아예 외출을 하지 말거나 심지어 창밖을 내다보지도 말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200여명 사망설… 시위대 결집 어려울듯 지난 27일 시위에 참여했다는 한 젊은 여성은 AP와 인터뷰에서 “이제 우리가 이길 희망은 없어 보인다.”고 털어놨다. 그는 “승려들이 우리에게 지금껏 용기를 줬지만 이제 그들도 철조망에 둘러싸인 사원에 감금돼 있다.”고 탄식했다. 하지만 한 반정부 소식통은 “군경이 우리를 추격해도 흩어졌다가 다시 모일 수 있을 것”이라고 시위를 계속할 의지를 밝혔다고 AFP는 보도했다. 한편 미국 워싱턴에 있는 반(反) 군사정부 단체인 ‘버마를 위한 미국 운동’은 지난 사흘간의 유혈 진압으로 시위 참가자 약 200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주장했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이날 보도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한국 교민 철수계획 마련

    미얀마의 반정부 시위 사태가 28일 11일째를 맞았지만 민주화를 위한 국민들의 저항은 수그러들지 않고 오히려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미얀마 군정의 무자비한 강제진압과 삼엄한 경비에도 불구하고 이날 오후 옛 수도 양곤 중심가에는 1만명의 군중이 집결해 시위를 벌였다. 제2도시 만달레이에서는 수천명의 젊은이들이 오토바이에 타고 거리 시위를 벌이다 군경에 의해 저지됐다. 보안군은 시위대에 해산할 것을 명령했으며 이어 경고 사격을 가하고, 무자비하게 곤봉을 휘둘러 강제해산시켰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보안군은 셰다곤탑과 술레탑 등 시위 중심지인 5대 사찰을 봉쇄했으며, 양곤 중심가로 통하는 도로를 막았다. 미얀마 군정은 지금까지 진압과정에서 10명이 숨졌다고 밝혔지만 AP통신은 밥 데이비스 미얀마 주재 호주 대사의 말을 인용,“10명의 몇 곱절되는 수가 숨졌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의 비난과 압박도 강도를 높여 가고 있다. 미국은 전날 미얀마 군정 최고 지도자인 탄 셰 장군과 제2인자 마웅 아예 장군 등 고위 당국자 14명의 미국내 금융자산을 동결하는 등의 경제제재조치를 발동했다. 일본 정부도 전날 미얀마에서 취재하다 보안군의 총탄에 사망한 자국 기자의 진상규명을 촉구할 방침이다. 마치무라 노부타카 관방장관은 28일 기자회견에서 이같은 내용 외에 재발방지도 강력히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엔은 새달 2일 미얀마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인권이사회 특별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한편 미얀마 정세가 악화일로를 향해 치닫자 한국 교민 1000여명은 현지 공관을 중심으로 철수계획 등 단계적인 비상대책을 마련했다고 미얀마에 주재한 국내기업 관계자가 전했다. 아직까지 교민 피해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미얀마 유혈사태 확산] 中, 국익과 국제여론 사이 고민

    미얀마 반정부시위가 유혈사태로 번지면서 최우방인 중국의 대응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국가 이익과 국제 여론을 저울질하며 미적거리는 형국이다. 중국은 미얀마 20여곳에서 해저유전과 가스전 개발사업을 벌이고, 군사정권 출범 이후 14억달러어치 이상의 무기를 제공하는 등 미얀마 최대 교역국이자 오랜 동맹국으로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미얀마 군부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경제적 제재에도 불구하고 건재할 수 있는 가장 큰 힘도 중국이다. 때문에 중국 정부는 애초 “미얀마 사태의 조속한 안정을 희망하지만 이번 일에는 간섭하지 않겠다.”며 한 발 물러섰다. 유엔 안보리의 추가 제재 논의에 대해서도 “현지 상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미얀마 군부가 27일 시위대에 발포를 가해 일본인 사진기자 등 10명이 사망하면서 국제 여론이 크게 악화되자 중국도 당혹스러운 눈치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28일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와 가진 전화통화에서 미얀마 사태 해결에 협력하기로 합의한 것도 이같은 변화의 조짐을 뒷받침한다. 중국 정부는 미얀마에 외교부 당국자를 중심으로 한 대표단을 파견, 군부 핵심인사들과 만나 더 이상 희생자를 내지 않도록 자제를 촉구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내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둔 중국으로선 미얀마 군부의 강제진압으로 인한 주변 정세 불안과 국제적 비난을 모른 척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가뜩이나 중국은 수단 다르푸르 사태로 인권문제에 대해 국제사회로부터 강한 압력을 받고 있다. 하지만 베이징의 한 전문가는 이날 “중국이 회유를 할 수는 있겠지만, 구체적인 압박을 할 것으로 보긴 어렵다.”고 회의적으로 전망했다.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려는 미얀마의 민주항쟁 여파가 중국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중국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사설] 미얀마 유혈사태 국제사회가 막아야

    미얀마에서 반정부 시위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지난달 15일 군사정권의 기름값 대폭 인상으로 촉발된 민생 시위는 승려들이 가세하면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야간통행금지와 시위금지 조치에도 시위가 수그러들지 않자 군사정권은 그제 병력을 투입해 강제진압에 나섰다. 미얀마 정부는 부인하고 있으나 진압 과정에서 적어도 4명 이상이 숨지고 100명이 넘는 부상자를 냈다고 한다. 또한 옛 수도 양곤에 있는 사원을 덮쳐 승려들을 다수 연행했다. 평화적인 비폭력 시위대에 총을 쏘아대는 군사정권의 야만적인 행위는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압정에 못 이긴 수십만명이 거리에 나서 독재자를 퇴진시켰지만 쿠데타를 일으킨 군에 의해 3000여명의 희생자를 낸 1988년의 유혈사태를 기억한다. 당시 군부는 시위대에 무차별 사격을 가하며 학살에 가까운 진압으로 국제사회를 경악케 했다.90년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정당이 80% 이상의 의석을 얻었으나 군정은 민정 이양 약속을 어겼다. 이번 미얀마 시위는 5000만 국민들의 가슴 속에 억눌려 있던 장기 군사독재에 대한 불만이 유가 인상을 계기로 폭발했다고 볼 수 있다. 19년 전의 불행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유엔이 비상회의를 소집하고 선진 8개국 외무장관들도 폭력을 비난하고 대화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그러나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미얀마에 경제·군사적 영향력을 지닌 중국이 나서야 한다. 중국은 지난 1월 유엔 안보리의 미얀마 제재안을 “내정간섭”이라며 거부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군부를 지지하는 듯해서는 책임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이라고 할 수 없다. 유혈사태 확산을 막아야 한다. 나아가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80년 민주항쟁 경험이 있는 우리를 포함한 국제사회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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