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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스모그 기습시위

    中 스모그 기습시위

    한 편의 다큐멘터리가 촉발한 중국 스모그 논란이 반정부 시위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명보(明報) 등 홍콩 매체들은 10일 중국의 누리꾼들이 전국 곳곳에서 환경오염을 방치한 정부의 무능과 스모그 문제를 고발한 다큐멘터리에 대한 인터넷 통제에 항의하는 기습 시위를 벌였다고 보도했다. 중국 당국은 중국중앙TV(CCTV) 전직 여성 앵커 차이징(柴靜)이 만든 다큐멘터리 ‘돔 천장 아래서’의 반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인터넷에서 이를 모조리 삭제했다. 홍콩 매체들에 따르면 지난 9일 누리꾼들은 중국 산시(陝西)성 시안(西安)과 장시(江西)성 닝두(寧都), 쓰촨(四川)성 러산(樂山), 광둥(廣東)성 둥관(東莞) 등에서 마스크를 쓴 채 기습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암을 유발하는 스모그, 우리 모두가 피해자’, ‘정부가 책임지고 스모그를 해결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지방 정부청사 앞이나 광장 등에서 행진했다. 이 중 집회 규모가 비교적 컸던 시안에서는 주도자 2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스모그에 특히 민감한 젊은 엄마들이 시위의 촉매제가 됐다. ‘3·8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스모그 위험에 관심 있는 엄마들’이란 인터넷 모임에서 행동에 나설 것을 제안했다. 차이징도 스모그 때문에 자신의 딸이 배 속에서부터 뇌종양에 시달렸을 것이라고 믿고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집회를 제안한 누리꾼은 “스모그에 대한 논의가 댓글 토론에 그쳐서는 안 된다”며 “인터넷 밖에서도 목소리를 내고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위 동영상은 중국판 카카오톡인 위챗과 유튜브 등을 통해 퍼지고 있다. 스모그에 이어 불량 식품을 고발한 중국 여대생의 책도 큰 파장을 낳고 있다. 신경보는 이날 칭화대에 재학 중인 대학원생 천차오링(陳巧玲)이 2년여의 준비 기간과 10만 위안(약 1750만원)이 넘는 개인 비용을 들여 완성한 ‘중국식품안전파일’을 출간했다고 전했다. 이 책에는 지난 수년간 중국 언론에 보도된 식품안전 문제 관련 기사와 학술연구보고서 내용 등이 담겨 있다. 특히 천차오링과 동료들은 식품안전문제를 일으킨 해당 기업 100여곳을 직접 조사해 사건의 진상을 파헤쳤다. 천차오링은 “분뇨와 썩은 돼지고기, 맹독성 농약을 써서 만든 즙으로 중국인들이 즐겨 먹는 발효두부를 제조한 사건을 조사하면서 이런 행위를 단순한 식품 문제가 아닌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것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외부의 영향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후원을 받지 않고 자비로 책을 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중국 누리꾼들은 앞다퉈 책을 사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친유럽과 친러의 공생… 핏빛 우크라, 분열은 숙명인가

    [글로벌 인사이트] 친유럽과 친러의 공생… 핏빛 우크라, 분열은 숙명인가

    #1 지난달 5일(현지시간) AP통신 등 외신들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러시아 방문을 긴급 뉴스로 전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위한 획기적인 행보로 평가받은 덕분이다. 같은 시각 CNN은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과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동부 도네츠크에서 또다시 충돌했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목격자들의 말을 인용, 반군이 점령한 도네츠크 키로프 거리의 병원에 정부군이 쏜 우르간 미사일이 수차례 떨어져 환자 5명 이상이 숨지고 20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지난 1월 반군이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향해 로켓 공격을 퍼부어 민간인 30명이 숨진 데 따른 보복이란 비난이 쏟아졌다. #2 지난 7일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반군은 분쟁을 종식하기 위해 동부지역에 배치된 중화기들을 50~100㎞ 후방으로 철수했다고 선언했다. 지난달 15일 자정을 기해 발효된 휴전 합의에 따른 조치였다. 독일, 프랑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정상이 17시간에 걸친 마라톤 협상 끝에 마련한 휴전안은 우크라이나 정부와 교전 당사자인 자칭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의 지도자들이 벨라루스 민스크에 도착해 추인하면서 효력을 얻었다. 오는 16일은 우크라이나 동부의 크림반도가 주민투표로 러시아에 합병된 지 1년째 되는 날이다. 친러파인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축출되자 이에 반발한 크림반도의 러시아계 주민들은 97%란 찬성표를 던졌다. 한 달 뒤 정부군과 반군은 ‘지옥 같은’ 교전을 개시했다. 피비린내 나는 1년 내전의 서막은 이렇게 열렸다. 최근 휴전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의 앞날은 여전히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9월 민스크 평화협정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데다, 서방의 대러시아 경제 제재가 풀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타산지석의 교훈을 준다고 말한다. 국가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면 지역색을 등에 업은 다양성이 분열을 초래한다는 교훈이 첫손가락에 꼽힌다. 세계 5대 군사대국이던 우크라이나는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통해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주권과 영토를 보장받았다. 이런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빼앗겼다는 건 두 번째 교훈이다. 북한의 핵무기 협상에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긴 셈이다. 우크라이나는 동슬라브어로 ‘변경’(邊境)이란 뜻이다.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지정학적 요지에 남한의 6배 면적을 지닌 자원 대국이다. 13세기 몽골, 14세기 리투아니아, 17세기 이후에는 러시아의 침략을 받으며 제대로 된 민족 국가를 형성하지 못했다. 중서부 지역은 수백년간 폴란드·리투아니아에 가까웠고 동남부는 친러시아 정서가 강했다. 러시아정교와 가톨릭,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가 공존해온 것도 이런 배경 탓이다. 1917년 제정러시아가 붕괴하면서 우크라이나는 소비에트연방(옛 소련)에 편입됐으나 수탈과 기근이 겹쳐 100만명 넘는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석탄, 철광석 등 지하자원이 풍부한 동부 지역에 러시아인들이 대거 이주하자 정서적 괴리감은 더욱 커졌다. 1991년 12월 옛 소련이 해체되면서 독립했으나 고난의 행보를 알리는 신호탄에 불과했다. 수많은 민족이 이동과 교역, 충돌과 통합을 반복하던 이곳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사태의 발단은 2013년 11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던 야누코비치가 러시아의 압력에 굴복해 협상을 중단하자 “러시아 치하로 돌아갈 수 없다”며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의회의 탄핵을 받은 야누코비치는 이듬해 2월 러시아로 망명한다. 이른바 ‘우크라이나 혁명’이다. 기업가 출신의 친서방파 포로셴코가 집권했지만 이미 경제는 붕괴 직전에 내몰렸다. 동부지역의 친러계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우크라이나는 동서로 분열됐다. 야누코비치의 축출은 친유럽 진영에선 시민혁명으로, 친러 진영에선 쿠데타로 각기 다른 평가를 내놓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애초부터 국가 정체성을 친유럽, 친러시아 등 어느 한쪽으로 단정 지을 수 없었음에도 독립 이후 정부가 바뀔 때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행태를 보여왔다. 1991년 독립 이후 크라우축, 쿠치마, 유셴코, 야누코비치, 현재의 포로셴코까지 정권은 예외 없이 친유럽과 친러시아를 오갔다. 뉴욕타임스는 우크라이나의 분열을 숙명이라 표현했다. 민족 구성은 우크라이나계가 75%, 러시아계가 25%다. ‘유럽의 화약고’는 잠시 총성이 멎었을 뿐이다. 로이터통신은 향후 변수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라고 단정 지었다. 미국 입장에선 우크라이나가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고 이야기하지만 러시아는 서방 세력의 동진을 더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美 CIA, 우크라 사태에 개입했다” “친서방 뿌리는 극우와 파시스트”

    1997년 폴란드, 헝가리, 체코를 시작으로 동유럽 국가들이 잇따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하면서 우크라이나는 서방과 러시아가 맞부딪히는 최전선이 됐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본질이 서방과 러시아의 패권(覇權) 다툼이 빚어낸 비극이라는 해석도 그래서 나온다. 러시아는 친러 시위대에 무기를 제공하고 정체불명의 군인을 파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이에 맞서 우크라이나에 경제적인 지원을, 러시아에는 경제 제재를 시작했다. 미국의 진보적 영화감독인 올리버 스톤은 지난해 12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우크라이나 사태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못잖게 미국의 우크라이나 개입이 문제라는 요지의 글을 올렸다.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모스크바에 망명 중인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을 인터뷰한 스톤 감독은 지난해 2월 벌어진 ‘마이단 학살’ 사건의 배경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조기 총선을 통해 권력 이양을 약속한 야누코비치가 굳이 시위대를 정체불명의 저격수들을 동원해 피습할 이유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이 사건 직후 권력은 친서방 정치인들에게 넘어갔다. 스톤은 미 정보기관의 은밀한 개입 가능성을 거론했다. 이런 관측이 지나치게 음모론적이라는 비판에 스톤은 “큰 그림을 보라”고 주문했다. 2차 대전 당시부터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극우 세력과 긴밀한 협력관계에 있었고, 종전 이후 나치 부역의 책임을 면제한 채 대소련 선전 및 침투 공작에 이들을 활용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미 중앙정보부(CIA)의 비호를 받기도 했다. 이런 사실은 1991년 러스 벨란트가 펴낸 ‘옛 나치, 새로운 우파, 공화당’이란 책에도 소개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친러 야누코비치 정권에 대한 반정부 시위가 한창이던 지난해 1월 “(친서방) 시위대의 중심에는 극우민족주의자와 파시스트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2차 대전 당시 나치 친위대가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에서 우크라이나인으로 구성된 ‘갈리시아 사단’을 운영했고 이들이 반공과 반유대주의를 표방했다는 역사를 더듬은 것이다. 이곳에선 1920년대에 극우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기구’가 결성되기도 했다. 그 흐름은 현재 극우정당인 ‘스보보다’가 잇고 있다. 10% 안팎의 지지를 얻는 스보보다는 지난해 2월 친서방 임시정부 구성 뒤 부총리와 교육·농업·환경부 장관직을 차지할 만큼 영향력을 확대했다. 반면 러시아는 지정학적 요소 때문에 우크라이나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는 러시아의 유일한 부동항이요, 잇닿은 흑해는 유럽으로 향하는 뱃길이다. 1954년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행정구역을 재편하며 흑해 함대의 사령부가 자리한 크림반도를 연방 내 우크라이나로 편입시킨 것이 실수였다. 세계 최대 천연가스 생산국인 러시아가 수출용 가스의 80%를 우크라이나에 매설된 가스관을 통해 수출한다는 사실도 침략의 야욕을 드러내는 이유다. 우크라이나는 이런 천혜의 지정학적 조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오히려 친유럽과 친러 진영으로 갈려 협상력을 스스로 떨어뜨렸다는 지적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푸틴 정적’ 크렘린궁 인근서 피살… 러 정국 암살설 회오리

    ‘푸틴 정적’ 크렘린궁 인근서 피살… 러 정국 암살설 회오리

    ‘야권 지도자 보리스 넴초프(56) 전 부총리가 모스크바 한복판에서 피살돼 러시아가 충격에 빠진 가운데 배후가 누구냐를 두고 정국에 긴장감이 조성되고 있다. AFP·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 시민 7만여명은 1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시내에서 넴초프 초상화를 들고 “나는 결코 두렵지 않다”는 구호를 외치며 그를 추모하는 행진을 벌였다. 연도에 있던 시민들도 “그는 러시아의 미래를 위해 산화했다”, “그는 러시아의 자유를 위해 싸웠다”는 구호가 적힌 깃발을 흔들며 지지를 보내기도 했다. 반면 현지 경찰은 시위 참여 인원을 1만6000명으로 추산했다. 앞서 넴초프는 지난달 27일 밤 11시 40분쯤 여자 친구인 우크라이나 모델 안나 두리츠카야(25)와 함께 모스크바 크렘린 인근 ‘볼쇼이 모스크보레츠키 모스트’ 다리 위를 걷던 중 지나던 차 안의 괴한이 쏜 총탄에 맞아 숨졌다. 내무부는 “괴한들이 흰색 승용차를 타고 넴초프에게 접근해 6발 이상의 총격을 가했고 그중 4발이 그의 등에 맞아 즉사했으며 함께 있던 여성에 대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두리츠카야는 다치지 않았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통령 공보비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사건을 청부 살인이자 도발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며 “연방수사위원회와 연방보안국, 경찰청 등의 수장들이 직접 사건을 챙기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괴한이 이용한 차량은 사건 현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발견됐지만 범인의 행적은 오리무중이다. 때문에 푸틴의 ‘정적’인 그의 살해 배후를 두고 갖가지 억측이 무성하다. 연방수사위는 사건의 가능한 몇 가지 동기들을 추적하고 있다. 우선 특정 세력이 러시아 정치 상황을 불안하게 만들고자 저질렀을 가능성과 30살 연하의 우크라이나 여성과 동행했던 점을 부각해 넴초프의 사생활에 초점을 맞추는 시각이 있다. 유대계인 그가 파리의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를 비난한 데 분노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살해했을 가능성도 제시된다. 또 넴초프가 친서방 성향의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 정권을 지지하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에 반대했다는 점에서 친러시아 성향의 우크라이나 동부 반군 세력이나 러시아 내 과격 민족주의 세력이 그를 응징하려 했을 수 있다는 추정도 있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 증거 공개를 준비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블라디미르 마르킨 수사위 대변인은 “국내 정치 혼란을 조장하기 위한 도발과 사업상 이권 분쟁, 개인적 원한,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소행 등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조사위가 넴초프 피살 사건의 배후가 크렘린이라는 세간의 의혹을 일부러 불식시키기 위해 이슬람 과격 세력을 내세웠다는 비판이 나온다. 넴초프는 지난해 10월 주간지 소베세드니크와의 인터뷰에서 푸틴 정권에 대한 반정부 행위로 인한 살해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야권은 사건을 ‘정치적 보복’으로 규정하고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드미트리 구트코프 야권 운동가는 “의심할 여지 없는 정치 살인”이라고 주장했다. 주요 야당인 야블로코당 그리고리 야블린스키 당수도 “최악의 범죄”라며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은 현 정권에 있다”고 비판했다. 넴초프는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 때인 1990년대 후반 부총리를 지냈다. 2000년 푸틴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권위주의와 부패,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 등에 대해 비판을 제기해 온 인물이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푸틴 정적 넴초프 암살 둘러싼 시나리오 “5가지 가능성 확인해보니…”

    푸틴 정적 넴초프 암살 둘러싼 시나리오 “5가지 가능성 확인해보니…”

    푸틴 정적 넴초프 푸틴 정적 넴초프 암살 둘러싼 시나리오 “5가지 가능성 확인해보니…” 러시아의 대표적 야권 지도자인 보리스 넴초프(55) 전 부총리가 27일(현지시간) 괴한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가운데 총격이 누구의 소행인 지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반대하는 야권의 대규모 거리시위 예정일을 이틀 앞두고 발생한 이 사건에 대해 러시아 야권은 “정치적 살인”이라고 강력히 반발하는 등 정국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현지 인테르팍스 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 내무부는 넴초프가 이날 저녁 11시 40분쯤 우크라이나 출신의 24세 여성과 함께 크렘린궁 인근의 ‘볼쇼이 모스크보레츠키 모스트’ 다리 위를 걷던 중 지나가던 차량에서 가해진 총격을 받고 숨졌다고 발표했다. 내무부는 괴한들이 흰색 승용차를 타고 넴초프에게로 접근해 6발 이상의 총격을 가했으며 그 중 4발이 넴초프의 등에 맞았다고 전했다. 1발은 심장을 관통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 모델로 알려진 동행 여성은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 사건 수사를 맡은 연방수사위원회는 28일 살해 당시 넴초프와 함께 있었던 우크라이나 여성과 다른 목격자들의 증언을 청취하는 한편 사건 전후 넴초프의 통화 내용과 그의 이동 경로가 찍힌 CCTV 영상을 확보해 분석 중이라고 밝혔다. 연방수사위원회 대변인 블라디미르 마르킨은 “국내 정치 혼란 조장을 위한 도발, 사업상 이권 분쟁, 개인적 원한,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소행 등의 가능성을 모두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사 당국에 따르면 넴초프는 사건 당일 크렘린궁 인근에 있는 반정부 성향의 라디오 방송 ‘에호 모스크비’에서 인터뷰를 하고 나와 붉은광장 옆의 대형백화점 ‘굼’에서 우크라이나 여성과 만나 사건 현장인 모스크바강 다리 건너편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걸어가던 중 총격을 받았다. 당국은 “현장에 남겨진 총탄을 볼 때 구경 9mm 소련제 마카로프 권총이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계획적 범행으로 철저히 준비됐으며 장소 선택도 우연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범인들은 넴초프의 동선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수사 당국은 덧붙였다. 넴초프 가족의 변호사는 몇 달 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넴초프에 대한 살해 협박이 있어 당국에 신고했었지만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러시아 초대 보리스 옐친 대통령 시절인 1990년대 후반 제1부총리를 지낸 넴초프는 그동안 푸틴 정권의 권위주의와 부패,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 등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해 왔다. 현지에서는 그의 사망 원인을 두고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다. 넴초프가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에 반대해온 대표적 인사였던 만큼 ‘정치적 살해’라는 주장이 주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설과 이권 관계나 개인적 원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소행설 등도 제기되고 있다.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연방수사위원회는 28일 이번 범행의 동기로 5가지 가설을 제시했다. 수사위원회 블라디미르 마르킨 대변인은 “국내 정치 혼란을 조장하기 위한 도발과 사업상 이권 분쟁, 개인적 원한,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소행 등의 가능성을 모두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특정 세력이 넴초프를 살해하고 그 책임을 푸틴 정권에 지움으로써 러시아에 정치적 혼란을 조장하려 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또 넴초프가 친서방 성향의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 정권을 지지하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에 반대했다는 점에서 친러시아 성향의 우크라이나 동부 반군 세력이나 러시아 내 과격 민족주의 세력이 그의 ‘반역행위’를 응징하려 했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수사위원회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소행설의 근거로 넴초프가 프랑스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를 비판한 발언으로 이슬람 과격 세력으로부터 협박을 받았다는 정보를 꼽았다. 이밖에 여성 관계 등에 따른 개인적 원한이 범행 동기일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넴초프는 별거 중인 부인 외에 또 다른 2명과 사실혼 관계에 있으면서 모두 4명의 자식을 뒀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모델 출신의 여성과 수년 동안 교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24세인 이 여성은 피살 당시 함께 있었다. 반면 야권은 넴초프가 푸틴이 집권한 지난 2000년대 이후 줄곧 반정부 활동을 했다는 점에서 크렘린이 배후라고 주장했다. 야권 운동가 드미트리 구트코프는 “의심할 여지없는 정치 살인”이라면서 “현 정권이 직접 청부하지 않았더라도 정권이 선전해온 (야권에 대한) 증오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대표적 인권단체인 헬싱키그룹의 류드밀라 알렉세예바 대표도 “무서운 정치적 살해”라고 말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은 넴초프가 우크라이나의 정권 교체혁명을 지지하려고 키예프를 다녀오기도 했지만, 배후가 우크라이나일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러시아 정치에서 열쇠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넴초프의 변호사는 사건 동기가 넴초프의 반정부 정치활동이라며 “그는 사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권 분쟁일 수 없고, 개인적 문제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표적 공식 야당인 공산당 출신의 하원 의원 발레리 라슈킨은 개인적 원한 관계나 경제적 문제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야권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예정된 날(3월 1일) 바로 전에 시위 조직을 주도한 정치인을 살해한 것은 정권에도 이롭지 않다고 주장했다. 라슈킨은 또 친우크라이나 인사인 넴초프 피살을 러시아 정부의 책임으로 돌려 우크라이나 사태를 악화하려는 시도일 수 있다며 우크라이나의 극단주의 세력이 개입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수사 당국은 사건 당시 함께 있었던 여성과 목격자들의 증언 외에도 통화 기록과 폐쇄회로TV 등을 확보해 수사하고 있다. 넴초프는 전날 밤 반정부 성향의 라디오 ‘에호 모스크비’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인근 백화점 ‘굼’에서 우크라이나 여성과 만나 모스크바강 다리 건너편의 자택으로 걸어가다 총격을 받았다. 당국은 “현장에서 발견한 총탄을 조사한 결과 범행에 소련제 마카로프 권총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며 범인들은 넴초프의 동선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푸틴 정적 넴초프 암살 둘러싼 논쟁 “같이 있던 20대 여성 누구?”

    푸틴 정적 넴초프 암살 둘러싼 논쟁 “같이 있던 20대 여성 누구?”

    푸틴 정적 넴초프 푸틴 정적 넴초프 암살 둘러싼 논쟁 “같이 있던 20대 여성 누구?” 러시아의 대표적 야권 지도자인 보리스 넴초프(55) 전 부총리가 27일(현지시간) 괴한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가운데 총격이 누구의 소행인 지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반대하는 야권의 대규모 거리시위 예정일을 이틀 앞두고 발생한 이 사건에 대해 러시아 야권은 “정치적 살인”이라고 강력히 반발하는 등 정국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현지 인테르팍스 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 내무부는 넴초프가 이날 저녁 11시 40분쯤 우크라이나 출신의 24세 여성과 함께 크렘린궁 인근의 ‘볼쇼이 모스크보레츠키 모스트’ 다리 위를 걷던 중 지나가던 차량에서 가해진 총격을 받고 숨졌다고 발표했다. 내무부는 괴한들이 흰색 승용차를 타고 넴초프에게로 접근해 6발 이상의 총격을 가했으며 그 중 4발이 넴초프의 등에 맞았다고 전했다. 1발은 심장을 관통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 모델로 알려진 동행 여성은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 사건 수사를 맡은 연방수사위원회는 28일 살해 당시 넴초프와 함께 있었던 우크라이나 여성과 다른 목격자들의 증언을 청취하는 한편 사건 전후 넴초프의 통화 내용과 그의 이동 경로가 찍힌 CCTV 영상을 확보해 분석 중이라고 밝혔다. 연방수사위원회 대변인 블라디미르 마르킨은 “국내 정치 혼란 조장을 위한 도발, 사업상 이권 분쟁, 개인적 원한,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소행 등의 가능성을 모두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사 당국에 따르면 넴초프는 사건 당일 크렘린궁 인근에 있는 반정부 성향의 라디오 방송 ‘에호 모스크비’에서 인터뷰를 하고 나와 붉은광장 옆의 대형백화점 ‘굼’에서 우크라이나 여성과 만나 사건 현장인 모스크바강 다리 건너편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걸어가던 중 총격을 받았다. 당국은 “현장에 남겨진 총탄을 볼 때 구경 9mm 소련제 마카로프 권총이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계획적 범행으로 철저히 준비됐으며 장소 선택도 우연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범인들은 넴초프의 동선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수사 당국은 덧붙였다. 넴초프 가족의 변호사는 몇 달 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넴초프에 대한 살해 협박이 있어 당국에 신고했었지만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러시아 초대 보리스 옐친 대통령 시절인 1990년대 후반 제1부총리를 지낸 넴초프는 그동안 푸틴 정권의 권위주의와 부패,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 등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해 왔다. 현지에서는 그의 사망 원인을 두고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다. 넴초프가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에 반대해온 대표적 인사였던 만큼 ‘정치적 살해’라는 주장이 주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설과 이권 관계나 개인적 원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소행설 등도 제기되고 있다.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연방수사위원회는 28일 이번 범행의 동기로 5가지 가설을 제시했다. 수사위원회 블라디미르 마르킨 대변인은 “국내 정치 혼란을 조장하기 위한 도발과 사업상 이권 분쟁, 개인적 원한,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소행 등의 가능성을 모두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특정 세력이 넴초프를 살해하고 그 책임을 푸틴 정권에 지움으로써 러시아에 정치적 혼란을 조장하려 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또 넴초프가 친서방 성향의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 정권을 지지하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에 반대했다는 점에서 친러시아 성향의 우크라이나 동부 반군 세력이나 러시아 내 과격 민족주의 세력이 그의 ‘반역행위’를 응징하려 했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수사위원회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소행설의 근거로 넴초프가 프랑스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를 비판한 발언으로 이슬람 과격 세력으로부터 협박을 받았다는 정보를 꼽았다. 이밖에 여성 관계 등에 따른 개인적 원한이 범행 동기일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넴초프는 별거 중인 부인 외에 또 다른 2명과 사실혼 관계에 있으면서 모두 4명의 자식을 뒀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모델 출신의 여성과 수년 동안 교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24세인 이 여성은 피살 당시 함께 있었다. 반면 야권은 넴초프가 푸틴이 집권한 지난 2000년대 이후 줄곧 반정부 활동을 했다는 점에서 크렘린이 배후라고 주장했다. 야권 운동가 드미트리 구트코프는 “의심할 여지없는 정치 살인”이라면서 “현 정권이 직접 청부하지 않았더라도 정권이 선전해온 (야권에 대한) 증오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대표적 인권단체인 헬싱키그룹의 류드밀라 알렉세예바 대표도 “무서운 정치적 살해”라고 말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은 넴초프가 우크라이나의 정권 교체혁명을 지지하려고 키예프를 다녀오기도 했지만, 배후가 우크라이나일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러시아 정치에서 열쇠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넴초프의 변호사는 사건 동기가 넴초프의 반정부 정치활동이라며 “그는 사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권 분쟁일 수 없고, 개인적 문제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표적 공식 야당인 공산당 출신의 하원 의원 발레리 라슈킨은 개인적 원한 관계나 경제적 문제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야권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예정된 날(3월 1일) 바로 전에 시위 조직을 주도한 정치인을 살해한 것은 정권에도 이롭지 않다고 주장했다. 라슈킨은 또 친우크라이나 인사인 넴초프 피살을 러시아 정부의 책임으로 돌려 우크라이나 사태를 악화하려는 시도일 수 있다며 우크라이나의 극단주의 세력이 개입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수사 당국은 사건 당시 함께 있었던 여성과 목격자들의 증언 외에도 통화 기록과 CC(폐쇄회로)TV 등을 확보해 수사하고 있다. 넴초프는 전날 밤 반정부 성향의 라디오 ‘에호 모스크비’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인근 백화점 ‘굼’에서 우크라이나 여성과 만나 모스크바강 다리 건너편의 자택으로 걸어가다 총격을 받았다. 당국은 “현장에서 발견한 총탄을 조사한 결과 범행에 소련제 마카로프 권총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며 범인들은 넴초프의 동선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푸틴 정적 넴초프 암살 둘러싼 5가지 가설 “구체적으로 살펴보니…” 충격

    푸틴 정적 넴초프 암살 둘러싼 5가지 가설 “구체적으로 살펴보니…” 충격

    푸틴 정적 넴초프 푸틴 정적 넴초프 암살 둘러싼 5가지 가설 “구체적으로 살펴보니…” 충격 러시아의 대표적 야권 지도자인 보리스 넴초프(55) 전 부총리가 27일(현지시간) 괴한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가운데 총격이 누구의 소행인 지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반대하는 야권의 대규모 거리시위 예정일을 이틀 앞두고 발생한 이 사건에 대해 러시아 야권은 “정치적 살인”이라고 강력히 반발하는 등 정국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현지 인테르팍스 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 내무부는 넴초프가 이날 저녁 11시 40분쯤 우크라이나 출신의 24세 여성과 함께 크렘린궁 인근의 ‘볼쇼이 모스크보레츠키 모스트’ 다리 위를 걷던 중 지나가던 차량에서 가해진 총격을 받고 숨졌다고 발표했다. 내무부는 괴한들이 흰색 승용차를 타고 넴초프에게로 접근해 6발 이상의 총격을 가했으며 그 중 4발이 넴초프의 등에 맞았다고 전했다. 1발은 심장을 관통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 모델로 알려진 동행 여성은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 사건 수사를 맡은 연방수사위원회는 28일 살해 당시 넴초프와 함께 있었던 우크라이나 여성과 다른 목격자들의 증언을 청취하는 한편 사건 전후 넴초프의 통화 내용과 그의 이동 경로가 찍힌 CCTV 영상을 확보해 분석 중이라고 밝혔다. 연방수사위원회 대변인 블라디미르 마르킨은 “국내 정치 혼란 조장을 위한 도발, 사업상 이권 분쟁, 개인적 원한,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소행 등의 가능성을 모두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사 당국에 따르면 넴초프는 사건 당일 크렘린궁 인근에 있는 반정부 성향의 라디오 방송 ‘에호 모스크비’에서 인터뷰를 하고 나와 붉은광장 옆의 대형백화점 ‘굼’에서 우크라이나 여성과 만나 사건 현장인 모스크바강 다리 건너편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걸어가던 중 총격을 받았다. 당국은 “현장에 남겨진 총탄을 볼 때 구경 9mm 소련제 마카로프 권총이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계획적 범행으로 철저히 준비됐으며 장소 선택도 우연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범인들은 넴초프의 동선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수사 당국은 덧붙였다. 넴초프 가족의 변호사는 몇 달 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넴초프에 대한 살해 협박이 있어 당국에 신고했었지만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러시아 초대 보리스 옐친 대통령 시절인 1990년대 후반 제1부총리를 지낸 넴초프는 그동안 푸틴 정권의 권위주의와 부패,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 등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해 왔다. 현지에서는 그의 사망 원인을 두고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다. 넴초프가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에 반대해온 대표적 인사였던 만큼 ‘정치적 살해’라는 주장이 주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설과 이권 관계나 개인적 원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소행설 등도 제기되고 있다.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연방수사위원회는 28일 이번 범행의 동기로 5가지 가설을 제시했다. 수사위원회 블라디미르 마르킨 대변인은 “국내 정치 혼란을 조장하기 위한 도발과 사업상 이권 분쟁, 개인적 원한,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소행 등의 가능성을 모두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특정 세력이 넴초프를 살해하고 그 책임을 푸틴 정권에 지움으로써 러시아에 정치적 혼란을 조장하려 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또 넴초프가 친서방 성향의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 정권을 지지하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에 반대했다는 점에서 친러시아 성향의 우크라이나 동부 반군 세력이나 러시아 내 과격 민족주의 세력이 그의 ‘반역행위’를 응징하려 했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수사위원회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소행설의 근거로 넴초프가 프랑스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를 비판한 발언으로 이슬람 과격 세력으로부터 협박을 받았다는 정보를 꼽았다. 이밖에 여성 관계 등에 따른 개인적 원한이 범행 동기일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넴초프는 별거 중인 부인 외에 또 다른 2명과 사실혼 관계에 있으면서 모두 4명의 자식을 뒀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모델 출신의 여성과 수년 동안 교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24세인 이 여성은 피살 당시 함께 있었다. 반면 야권은 넴초프가 푸틴이 집권한 지난 2000년대 이후 줄곧 반정부 활동을 했다는 점에서 크렘린이 배후라고 주장했다. 야권 운동가 드미트리 구트코프는 “의심할 여지없는 정치 살인”이라면서 “현 정권이 직접 청부하지 않았더라도 정권이 선전해온 (야권에 대한) 증오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대표적 인권단체인 헬싱키그룹의 류드밀라 알렉세예바 대표도 “무서운 정치적 살해”라고 말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은 넴초프가 우크라이나의 정권 교체혁명을 지지하려고 키예프를 다녀오기도 했지만, 배후가 우크라이나일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러시아 정치에서 열쇠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넴초프의 변호사는 사건 동기가 넴초프의 반정부 정치활동이라며 “그는 사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권 분쟁일 수 없고, 개인적 문제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표적 공식 야당인 공산당 출신의 하원 의원 발레리 라슈킨은 개인적 원한 관계나 경제적 문제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야권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예정된 날(3월 1일) 바로 전에 시위 조직을 주도한 정치인을 살해한 것은 정권에도 이롭지 않다고 주장했다. 라슈킨은 또 친우크라이나 인사인 넴초프 피살을 러시아 정부의 책임으로 돌려 우크라이나 사태를 악화하려는 시도일 수 있다며 우크라이나의 극단주의 세력이 개입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수사 당국은 사건 당시 함께 있었던 여성과 목격자들의 증언 외에도 통화 기록과 CC(폐쇄회로)TV 등을 확보해 수사하고 있다. 넴초프는 전날 밤 반정부 성향의 라디오 ‘에호 모스크비’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인근 백화점 ‘굼’에서 우크라이나 여성과 만나 모스크바강 다리 건너편의 자택으로 걸어가다 총격을 받았다. 당국은 “현장에서 발견한 총탄을 조사한 결과 범행에 소련제 마카로프 권총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며 범인들은 넴초프의 동선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푸틴 정적 넴초프 피살, 정치적 암살? 치정관계? 정국 회오리

    푸틴 정적 넴초프 피살, 정치적 암살? 치정관계? 정국 회오리

    푸틴 정적 넴초프 푸틴 정적 넴초프 피살, 정치적 암살? 치정관계? 정국 회오리 러시아의 대표적 야권 지도자인 보리스 넴초프(55) 전 부총리가 27일(현지시간) 괴한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가운데 총격이 누구의 소행인 지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반대하는 야권의 대규모 거리시위 예정일을 이틀 앞두고 발생한 이 사건에 대해 러시아 야권은 “정치적 살인”이라고 강력히 반발하는 등 정국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현지 인테르팍스 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 내무부는 넴초프가 이날 저녁 11시 40분쯤 우크라이나 출신의 24세 여성과 함께 크렘린궁 인근의 ‘볼쇼이 모스크보레츠키 모스트’ 다리 위를 걷던 중 지나가던 차량에서 가해진 총격을 받고 숨졌다고 발표했다. 내무부는 괴한들이 흰색 승용차를 타고 넴초프에게로 접근해 6발 이상의 총격을 가했으며 그 중 4발이 넴초프의 등에 맞았다고 전했다. 1발은 심장을 관통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 모델로 알려진 동행 여성은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 사건 수사를 맡은 연방수사위원회는 28일 살해 당시 넴초프와 함께 있었던 우크라이나 여성과 다른 목격자들의 증언을 청취하는 한편 사건 전후 넴초프의 통화 내용과 그의 이동 경로가 찍힌 CCTV 영상을 확보해 분석 중이라고 밝혔다. 연방수사위원회 대변인 블라디미르 마르킨은 “국내 정치 혼란 조장을 위한 도발, 사업상 이권 분쟁, 개인적 원한,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소행 등의 가능성을 모두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사 당국에 따르면 넴초프는 사건 당일 크렘린궁 인근에 있는 반정부 성향의 라디오 방송 ‘에호 모스크비’에서 인터뷰를 하고 나와 붉은광장 옆의 대형백화점 ‘굼’에서 우크라이나 여성과 만나 사건 현장인 모스크바강 다리 건너편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걸어가던 중 총격을 받았다. 당국은 “현장에 남겨진 총탄을 볼 때 구경 9mm 소련제 마카로프 권총이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계획적 범행으로 철저히 준비됐으며 장소 선택도 우연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범인들은 넴초프의 동선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수사 당국은 덧붙였다. 넴초프 가족의 변호사는 몇 달 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넴초프에 대한 살해 협박이 있어 당국에 신고했었지만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러시아 초대 보리스 옐친 대통령 시절인 1990년대 후반 제1부총리를 지낸 넴초프는 그동안 푸틴 정권의 권위주의와 부패,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 등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해 왔다. 현지에서는 그의 사망 원인을 두고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다. 넴초프가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에 반대해온 대표적 인사였던 만큼 ‘정치적 살해’라는 주장이 주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설과 이권 관계나 개인적 원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소행설 등도 제기되고 있다.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연방수사위원회는 28일 이번 범행의 동기로 5가지 가설을 제시했다. 수사위원회 블라디미르 마르킨 대변인은 “국내 정치 혼란을 조장하기 위한 도발과 사업상 이권 분쟁, 개인적 원한,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소행 등의 가능성을 모두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특정 세력이 넴초프를 살해하고 그 책임을 푸틴 정권에 지움으로써 러시아에 정치적 혼란을 조장하려 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또 넴초프가 친서방 성향의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 정권을 지지하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에 반대했다는 점에서 친러시아 성향의 우크라이나 동부 반군 세력이나 러시아 내 과격 민족주의 세력이 그의 ‘반역행위’를 응징하려 했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수사위원회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소행설의 근거로 넴초프가 프랑스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를 비판한 발언으로 이슬람 과격 세력으로부터 협박을 받았다는 정보를 꼽았다. 이밖에 여성 관계 등에 따른 개인적 원한이 범행 동기일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넴초프는 별거 중인 부인 외에 또 다른 2명과 사실혼 관계에 있으면서 모두 4명의 자식을 뒀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모델 출신의 여성과 수년 동안 교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24세인 이 여성은 피살 당시 함께 있었다. 반면 야권은 넴초프가 푸틴이 집권한 지난 2000년대 이후 줄곧 반정부 활동을 했다는 점에서 크렘린이 배후라고 주장했다. 야권 운동가 드미트리 구트코프는 “의심할 여지없는 정치 살인”이라면서 “현 정권이 직접 청부하지 않았더라도 정권이 선전해온 (야권에 대한) 증오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대표적 인권단체인 헬싱키그룹의 류드밀라 알렉세예바 대표도 “무서운 정치적 살해”라고 말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은 넴초프가 우크라이나의 정권 교체혁명을 지지하려고 키예프를 다녀오기도 했지만, 배후가 우크라이나일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러시아 정치에서 열쇠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넴초프의 변호사는 사건 동기가 넴초프의 반정부 정치활동이라며 “그는 사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권 분쟁일 수 없고, 개인적 문제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표적 공식 야당인 공산당 출신의 하원 의원 발레리 라슈킨은 개인적 원한 관계나 경제적 문제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야권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예정된 날(3월 1일) 바로 전에 시위 조직을 주도한 정치인을 살해한 것은 정권에도 이롭지 않다고 주장했다. 라슈킨은 또 친우크라이나 인사인 넴초프 피살을 러시아 정부의 책임으로 돌려 우크라이나 사태를 악화하려는 시도일 수 있다며 우크라이나의 극단주의 세력이 개입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수사 당국은 사건 당시 함께 있었던 여성과 목격자들의 증언 외에도 통화 기록과 폐쇄회로TV 등을 확보해 수사하고 있다. 넴초프는 전날 밤 반정부 성향의 라디오 ‘에호 모스크비’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인근 백화점 ‘굼’에서 우크라이나 여성과 만나 모스크바강 다리 건너편의 자택으로 걸어가다 총격을 받았다. 당국은 “현장에서 발견한 총탄을 조사한 결과 범행에 소련제 마카로프 권총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며 범인들은 넴초프의 동선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푸틴 정적 넴초프 암살 둘러싼 시나리오 “24세 모델과 함께한 이유는?”

    푸틴 정적 넴초프 암살 둘러싼 시나리오 “24세 모델과 함께한 이유는?”

    푸틴 정적 넴초프 푸틴 정적 넴초프 암살 둘러싼 시나리오 “24세 모델과 함께한 이유는?” 러시아의 대표적 야권 지도자인 보리스 넴초프(55) 전 부총리가 27일(현지시간) 괴한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가운데 총격이 누구의 소행인 지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반대하는 야권의 대규모 거리시위 예정일을 이틀 앞두고 발생한 이 사건에 대해 러시아 야권은 “정치적 살인”이라고 강력히 반발하는 등 정국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현지 인테르팍스 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 내무부는 넴초프가 이날 저녁 11시 40분쯤 우크라이나 출신의 24세 여성과 함께 크렘린궁 인근의 ‘볼쇼이 모스크보레츠키 모스트’ 다리 위를 걷던 중 지나가던 차량에서 가해진 총격을 받고 숨졌다고 발표했다. 내무부는 괴한들이 흰색 승용차를 타고 넴초프에게로 접근해 6발 이상의 총격을 가했으며 그 중 4발이 넴초프의 등에 맞았다고 전했다. 1발은 심장을 관통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 모델로 알려진 동행 여성은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 사건 수사를 맡은 연방수사위원회는 28일 살해 당시 넴초프와 함께 있었던 우크라이나 여성과 다른 목격자들의 증언을 청취하는 한편 사건 전후 넴초프의 통화 내용과 그의 이동 경로가 찍힌 CCTV 영상을 확보해 분석 중이라고 밝혔다. 연방수사위원회 대변인 블라디미르 마르킨은 “국내 정치 혼란 조장을 위한 도발, 사업상 이권 분쟁, 개인적 원한,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소행 등의 가능성을 모두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사 당국에 따르면 넴초프는 사건 당일 크렘린궁 인근에 있는 반정부 성향의 라디오 방송 ‘에호 모스크비’에서 인터뷰를 하고 나와 붉은광장 옆의 대형백화점 ‘굼’에서 우크라이나 여성과 만나 사건 현장인 모스크바강 다리 건너편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걸어가던 중 총격을 받았다. 당국은 “현장에 남겨진 총탄을 볼 때 구경 9mm 소련제 마카로프 권총이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계획적 범행으로 철저히 준비됐으며 장소 선택도 우연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범인들은 넴초프의 동선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수사 당국은 덧붙였다. 넴초프 가족의 변호사는 몇 달 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넴초프에 대한 살해 협박이 있어 당국에 신고했었지만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러시아 초대 보리스 옐친 대통령 시절인 1990년대 후반 제1부총리를 지낸 넴초프는 그동안 푸틴 정권의 권위주의와 부패,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 등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해 왔다. 현지에서는 그의 사망 원인을 두고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다. 넴초프가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에 반대해온 대표적 인사였던 만큼 ‘정치적 살해’라는 주장이 주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설과 이권 관계나 개인적 원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소행설 등도 제기되고 있다.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연방수사위원회는 28일 이번 범행의 동기로 5가지 가설을 제시했다. 수사위원회 블라디미르 마르킨 대변인은 “국내 정치 혼란을 조장하기 위한 도발과 사업상 이권 분쟁, 개인적 원한,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소행 등의 가능성을 모두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특정 세력이 넴초프를 살해하고 그 책임을 푸틴 정권에 지움으로써 러시아에 정치적 혼란을 조장하려 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또 넴초프가 친서방 성향의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 정권을 지지하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에 반대했다는 점에서 친러시아 성향의 우크라이나 동부 반군 세력이나 러시아 내 과격 민족주의 세력이 그의 ‘반역행위’를 응징하려 했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수사위원회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소행설의 근거로 넴초프가 프랑스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를 비판한 발언으로 이슬람 과격 세력으로부터 협박을 받았다는 정보를 꼽았다. 이밖에 여성 관계 등에 따른 개인적 원한이 범행 동기일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넴초프는 별거 중인 부인 외에 또 다른 2명과 사실혼 관계에 있으면서 모두 4명의 자식을 뒀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모델 출신의 여성과 수년 동안 교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24세인 이 여성은 피살 당시 함께 있었다. 반면 야권은 넴초프가 푸틴이 집권한 지난 2000년대 이후 줄곧 반정부 활동을 했다는 점에서 크렘린이 배후라고 주장했다. 야권 운동가 드미트리 구트코프는 “의심할 여지없는 정치 살인”이라면서 “현 정권이 직접 청부하지 않았더라도 정권이 선전해온 (야권에 대한) 증오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대표적 인권단체인 헬싱키그룹의 류드밀라 알렉세예바 대표도 “무서운 정치적 살해”라고 말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은 넴초프가 우크라이나의 정권 교체혁명을 지지하려고 키예프를 다녀오기도 했지만, 배후가 우크라이나일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러시아 정치에서 열쇠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넴초프의 변호사는 사건 동기가 넴초프의 반정부 정치활동이라며 “그는 사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권 분쟁일 수 없고, 개인적 문제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표적 공식 야당인 공산당 출신의 하원 의원 발레리 라슈킨은 개인적 원한 관계나 경제적 문제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야권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예정된 날(3월 1일) 바로 전에 시위 조직을 주도한 정치인을 살해한 것은 정권에도 이롭지 않다고 주장했다. 라슈킨은 또 친우크라이나 인사인 넴초프 피살을 러시아 정부의 책임으로 돌려 우크라이나 사태를 악화하려는 시도일 수 있다며 우크라이나의 극단주의 세력이 개입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수사 당국은 사건 당시 함께 있었던 여성과 목격자들의 증언 외에도 통화 기록과 폐쇄회로TV 등을 확보해 수사하고 있다. 넴초프는 전날 밤 반정부 성향의 라디오 ‘에호 모스크비’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인근 백화점 ‘굼’에서 우크라이나 여성과 만나 모스크바강 다리 건너편의 자택으로 걸어가다 총격을 받았다. 당국은 “현장에서 발견한 총탄을 조사한 결과 범행에 소련제 마카로프 권총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며 범인들은 넴초프의 동선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푸틴 정적 넴초프 암살 둘러싼 5가지 ‘충격적 시나리오’

    푸틴 정적 넴초프 암살 둘러싼 5가지 ‘충격적 시나리오’

    푸틴 정적 넴초프 푸틴 정적 넴초프 암살 둘러싼 5가지 ‘충격적 시나리오’ 러시아의 대표적 야권 지도자인 보리스 넴초프(55) 전 부총리가 27일(현지시간) 괴한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가운데 총격이 누구의 소행인 지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반대하는 야권의 대규모 거리시위 예정일을 이틀 앞두고 발생한 이 사건에 대해 러시아 야권은 “정치적 살인”이라고 강력히 반발하는 등 정국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현지 인테르팍스 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 내무부는 넴초프가 이날 저녁 11시 40분쯤 우크라이나 출신의 24세 여성과 함께 크렘린궁 인근의 ‘볼쇼이 모스크보레츠키 모스트’ 다리 위를 걷던 중 지나가던 차량에서 가해진 총격을 받고 숨졌다고 발표했다. 내무부는 괴한들이 흰색 승용차를 타고 넴초프에게로 접근해 6발 이상의 총격을 가했으며 그 중 4발이 넴초프의 등에 맞았다고 전했다. 1발은 심장을 관통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 모델로 알려진 동행 여성은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 사건 수사를 맡은 연방수사위원회는 28일 살해 당시 넴초프와 함께 있었던 우크라이나 여성과 다른 목격자들의 증언을 청취하는 한편 사건 전후 넴초프의 통화 내용과 그의 이동 경로가 찍힌 CCTV 영상을 확보해 분석 중이라고 밝혔다. 연방수사위원회 대변인 블라디미르 마르킨은 “국내 정치 혼란 조장을 위한 도발, 사업상 이권 분쟁, 개인적 원한,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소행 등의 가능성을 모두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사 당국에 따르면 넴초프는 사건 당일 크렘린궁 인근에 있는 반정부 성향의 라디오 방송 ‘에호 모스크비’에서 인터뷰를 하고 나와 붉은광장 옆의 대형백화점 ‘굼’에서 우크라이나 여성과 만나 사건 현장인 모스크바강 다리 건너편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걸어가던 중 총격을 받았다. 당국은 “현장에 남겨진 총탄을 볼 때 구경 9mm 소련제 마카로프 권총이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계획적 범행으로 철저히 준비됐으며 장소 선택도 우연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범인들은 넴초프의 동선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수사 당국은 덧붙였다. 넴초프 가족의 변호사는 몇 달 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넴초프에 대한 살해 협박이 있어 당국에 신고했었지만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러시아 초대 보리스 옐친 대통령 시절인 1990년대 후반 제1부총리를 지낸 넴초프는 그동안 푸틴 정권의 권위주의와 부패,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 등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해 왔다. 현지에서는 그의 사망 원인을 두고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다. 넴초프가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에 반대해온 대표적 인사였던 만큼 ‘정치적 살해’라는 주장이 주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설과 이권 관계나 개인적 원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소행설 등도 제기되고 있다.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연방수사위원회는 28일 이번 범행의 동기로 5가지 가설을 제시했다. 수사위원회 블라디미르 마르킨 대변인은 “국내 정치 혼란을 조장하기 위한 도발과 사업상 이권 분쟁, 개인적 원한,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소행 등의 가능성을 모두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특정 세력이 넴초프를 살해하고 그 책임을 푸틴 정권에 지움으로써 러시아에 정치적 혼란을 조장하려 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또 넴초프가 친서방 성향의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 정권을 지지하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에 반대했다는 점에서 친러시아 성향의 우크라이나 동부 반군 세력이나 러시아 내 과격 민족주의 세력이 그의 ‘반역행위’를 응징하려 했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수사위원회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소행설의 근거로 넴초프가 프랑스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를 비판한 발언으로 이슬람 과격 세력으로부터 협박을 받았다는 정보를 꼽았다. 이밖에 여성 관계 등에 따른 개인적 원한이 범행 동기일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넴초프는 별거 중인 부인 외에 또 다른 2명과 사실혼 관계에 있으면서 모두 4명의 자식을 뒀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모델 출신의 여성과 수년 동안 교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24세인 이 여성은 피살 당시 함께 있었다. 반면 야권은 넴초프가 푸틴이 집권한 지난 2000년대 이후 줄곧 반정부 활동을 했다는 점에서 크렘린이 배후라고 주장했다. 야권 운동가 드미트리 구트코프는 “의심할 여지없는 정치 살인”이라면서 “현 정권이 직접 청부하지 않았더라도 정권이 선전해온 (야권에 대한) 증오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대표적 인권단체인 헬싱키그룹의 류드밀라 알렉세예바 대표도 “무서운 정치적 살해”라고 말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은 넴초프가 우크라이나의 정권 교체혁명을 지지하려고 키예프를 다녀오기도 했지만, 배후가 우크라이나일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러시아 정치에서 열쇠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넴초프의 변호사는 사건 동기가 넴초프의 반정부 정치활동이라며 “그는 사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권 분쟁일 수 없고, 개인적 문제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표적 공식 야당인 공산당 출신의 하원 의원 발레리 라슈킨은 개인적 원한 관계나 경제적 문제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야권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예정된 날(3월 1일) 바로 전에 시위 조직을 주도한 정치인을 살해한 것은 정권에도 이롭지 않다고 주장했다. 라슈킨은 또 친우크라이나 인사인 넴초프 피살을 러시아 정부의 책임으로 돌려 우크라이나 사태를 악화하려는 시도일 수 있다며 우크라이나의 극단주의 세력이 개입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수사 당국은 사건 당시 함께 있었던 여성과 목격자들의 증언 외에도 통화 기록과 폐쇄회로TV 등을 확보해 수사하고 있다. 넴초프는 전날 밤 반정부 성향의 라디오 ‘에호 모스크비’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인근 백화점 ‘굼’에서 우크라이나 여성과 만나 모스크바강 다리 건너편의 자택으로 걸어가다 총격을 받았다. 당국은 “현장에서 발견한 총탄을 조사한 결과 범행에 소련제 마카로프 권총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며 범인들은 넴초프의 동선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집트 또 축구장 참사… 경찰·팬 충돌 최소 30명 사망

    이집트 카이로에서 8일 밤(현지시간) 경기장에 입장하려던 축구 팬과 경찰이 충돌해 최소 30명이 숨지고 20여명이 다치는 대형 참사가 벌어졌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이날 사고는 이집트 프리미어리그 자말레크와 ENPPI 간 경기가 예정된 카이로 동북부 에어디펜스 스타디움에서 1만명 가까운 축구 팬이 입장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이집트 총리실은 관중들의 무질서가 사태를 초래했다며 이후 예정된 모든 국내 리그 경기를 무기한 연기했다. 하지만 CNN은 자말레크의 팬클럽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인용, 사고가 경찰과 시민 사이의 오랜 숙원(宿怨) 탓에 불거졌다고 분석했다. 이집트 경찰이 좁고 철조망이 쳐진 문 한 곳만을 개방하고 팬들을 입장시키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일어났고, 이때 경찰이 갑자기 예고 없이 최루탄을 발사하면서 압사 사고가 일어났다는 설명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의 말을 빌려 경찰이 쏜 최루탄에 7세 아이가 맞아 그 자리에서 숨지고 축구장 안팎이 피바다를 이뤘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경찰이 출입문을 봉쇄한 채 소요 사태에 놀라 뛰어나오던 수천명의 입장객을 향해서도 최루탄을 난사했다고 덧붙였다. NYT는 이 같은 이집트의 축구장 소요 사태가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이집트에서는 ‘아랍의 봄’ 이듬해인 2012년에도 카이로 북쪽 포트사이드의 축구장에서 축구 팬과 경찰이 충돌해 74명이 사망하고 1000여명이 부상을 입는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이 사건은 양 팀 축구 팬 사이의 폭력 사태가 단초가 됐으나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등장한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과 무슬림형제단의 폭정에 반한 소요 사태의 성격도 띠고 있었다. 그러나 이집트 법원은 2013년 경찰 측 피고 대부분에게 무죄를 선고한 반면, 축구 팬 21명에게는 사형을 선고했다. 이 판결은 다시 40여명이 죽고 수백명이 다치는 반정부 시위로 이어졌다. 외신들은 이를 아랍의 봄 이후 가중된 사회불안이 배출구를 찾지 못해 빚어진 참사라고 해석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경찰 총탄에 죽은 인권 운동가… 이집트 ‘제2의 봄’ 도화선 되나

    경찰 총탄에 죽은 인권 운동가… 이집트 ‘제2의 봄’ 도화선 되나

    하늘색 니트와 검은색 목도리 차림의 30대 여성은 플래카드를 흔들며 “빵과 자유, 정의를 달라”고 외쳤다(왼쪽). 커다란 화환을 마련해 4년 전 이집트 혁명이 처음 시작된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이 여성은 불과 몇 분 뒤 힘없이 바닥에 꼬꾸라졌다. 머리와 가슴에는 피가 맺혔고 주변에선 오열이 터져 나왔다. 동료들의 부축을 받으며 도망치던 여성은 거리에서 동료의 애도 속에 쓸쓸하게 눈을 감았다(오른쪽). 지난 24일(현지시간) 인권운동가이자 다섯 살 된 아들의 엄마인 샤이마 알사바그(32)는 타흐리르 광장 인근에서 열린 평화집회에 참석했다가 경찰이 쏜 사냥용 산탄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이 모습을 담은 사진과 동영상이 25일 공개되자 이집트 정부와 공권력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사진과 동영상은 시위 현장에 있던 시민과 취재진이 촬영한 것이다. 알사바그가 숨진 때는 군부 출신 압둘팟타흐 시시 대통령이 방송에서 혁명 4주년 기념연설을 시작하기 불과 몇 시간 전이었다. 뉴욕타임스는 동영상 속 집회 모습이 무척 평화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알사바그와 사회주의대중연합당(SPAP) 소속의 동료 정치인, 법률가들이 “군사정권 퇴진”이란 구호를 외치자 복면 차림의 중무장 경찰이 투입됐고 주변은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동영상에는 산탄총으로 무장한 경찰과 “쏘라”고 외치는 지휘관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알사바그를 추모하는 글이 봇물을 이뤘다. 이집트 혁명 4주년인 25일 알렉산드리아에서 열린 알사바그의 장례식에는 수백명의 시민이 운집했다. 이날 카이로와 전국 주요 도시에선 반정부 시위대와 군경이 충돌해 최소 20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부상, 지난해 6월 시시 대통령 취임 후 가장 많은 시위 인명 피해로 기록됐다. 이런 가운데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로 축출된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의 두 아들인 알리와 가말이 풀려나 혁명 4주년의 의미를 무색하게 했다. 이집트 언론은 이들이 카이로 남부 토라 교도소를 걸어서 나갔다고 전했다. 이번 석방은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된 무바라크와 두 아들에 대한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인 가운데 나왔으며, 무바라크 전 대통령도 조만간 자유의 몸이 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이집트 경찰, 반정부 시위하던 女 성폭행 충격

    이집트 경찰, 반정부 시위하던 女 성폭행 충격

    이집트 경찰이 반정부시위를 하던 여성을 성폭행한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고 영국 텔레그래프 등 해외 언론이 22일 보도했다. 지난 해 말부터 이집트 곳곳에서 반정부 시위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경찰이 속한 이집트 보안군은 시위대 해선 과정에서 성폭행을 무기로 삼았다고 텔레그래프가 전했다. 텔레그래프와 이집트 국내외 인권단체는 억류됐다 풀려난 시위자의 말을 인용해 “수많은 시위자들이 경찰로부터 ‘성(性)적인 공격’을 당했다”면서 “이중 한 여성은 어떤 보호나 의료혜택을 받지 못했으며 남편과 친구들로부터 격리 당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시위에 참가했다 체포된 뒤 경찰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한 여성은 “경찰이 나를 강제로 트럭안에 밀어 넣은 뒤 성폭행을 했다. 이후 풀려나자마자 심리치료를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무섭다. 때때로 나는 고작 두 살 된 아들이 두렵게 느껴지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이집트 정부 및 경찰은 과도하게 인권단체로부터 과도하게 시위대를 탄압하고 있다고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이집트 정부는 지난해 말 ‘3일 전 신고 의무화’, ‘10명 이상 모일 경우 경찰의 사전 허가 후 집회’ 등의 내용이 포함된 법규를 공포한 뒤 시위를 벌인 학생 수 백명을 연행했다. 텔레그래프는 “이집트 정부가 너무 많은 사람들을 체포하고 투옥한 탓에 감옥이 포화상태”이라고 전했다. 한편 현재 이집트 카이로 도심에서는 2013년 7월 현 군부정권에 의해 축출된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들의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 ⓒ AFPBBNews=News1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이집트 경찰, 반정부 시위하던 女 성폭행 충격

    이집트 경찰, 반정부 시위하던 女 성폭행 충격

    이집트 경찰이 반정부시위를 하던 여성을 성폭행한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고 영국 텔레그래프 등 해외 언론이 22일 보도했다. 지난 해 말부터 이집트 곳곳에서 반정부 시위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경찰이 속한 이집트 보안군은 시위대 해선 과정에서 성폭행을 무기로 삼았다고 텔레그래프가 전했다. 텔레그래프와 이집트 국내외 인권단체는 억류됐다 풀려난 시위자의 말을 인용해 “수많은 시위자들이 경찰로부터 ‘성(性)적인 공격’을 당했다”면서 “이중 한 여성은 어떤 보호나 의료혜택을 받지 못했으며 남편과 친구들로부터 격리 당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시위에 참가했다 체포된 뒤 경찰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한 여성은 “경찰이 나를 강제로 트럭안에 밀어 넣은 뒤 성폭행을 했다. 이후 풀려나자마자 심리치료를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무섭다. 때때로 나는 고작 두 살 된 아들이 두렵게 느껴지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이집트 정부 및 경찰은 과도하게 인권단체로부터 과도하게 시위대를 탄압하고 있다고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이집트 정부는 지난해 말 ‘3일 전 신고 의무화’, ‘10명 이상 모일 경우 경찰의 사전 허가 후 집회’ 등의 내용이 포함된 법규를 공포한 뒤 시위를 벌인 학생 수 백명을 연행했다. 텔레그래프는 “이집트 정부가 너무 많은 사람들을 체포하고 투옥한 탓에 감옥이 포화상태”이라고 전했다. 한편 현재 이집트 카이로 도심에서는 2013년 7월 현 군부정권에 의해 축출된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들의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 ⓒ AFPBBNews=News1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김정은의 ‘7일 전쟁’ 시나리오... 가능성 있나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김정은의 ‘7일 전쟁’ 시나리오... 가능성 있나

    김정은이 집권 직후 북한군에 한반도 전면전을 상정한 작전계획 수립을 지시했으며, 지난해까지 전쟁 준비를 완료하고 올해를 통일대전의 해로 선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2015년 통일대전 발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일부 언론에서는 익명을 요구한 군 소식통과 정부 당국자의 발언을 인용해 김정은이 지난 2011년 12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추대된 직후 한반도 전면전 작전계획 수립을 지시했으며, 2012년 8월 25일 원산에서 열린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이른바 ‘7일 전쟁’으로 전해지는 작전계획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원산에서 열린 회의에는 당 중앙군사위원들은 물론 군단장급 이상 고위 장성들이 대거 참석했으며, 이 회의를 통해 총참모부가 수립한 작전계획을 확정하고 이 작전계획에 맞춰 각 군단이 세부 작전계획을 수립해 훈련을 실시하라는 김정은의 지시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김정은이 지시했다는 작전계획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北 작전계획의 5단계 시나리오 이번에 정부 당국자와 군 소식통이 전했다고 하는 김정은의 작전 계획 가이드라인은 사실 전통적인 북한군 전쟁 전략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다만 핵과 미사일 사용을 작전계획에 명기하도록 했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실제로 이번에 보도된 북한의 새로운 작전계획은 지난 2013년에 북한이 대남 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에서 공개했던 ‘3일 전쟁 시나리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의 전쟁 전략은 지난 1971년 인민군 창건 23주년 기념 보고대회에서 당시 북한군 총정치국장 한익수 상장이 발표한 전략에 기초하고 있다. 김일성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이 전쟁 전략의 핵심은 선제 기습공격 · 단기속전속결전 · 배합전 등으로 요약되며,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이 다듬어 가고 있는 전쟁 전략 역시 이 전략의 틀 안에서 수립되고 있다. 북한이 수립했다는 새로운 작전계획은 우리 군의 전면전 작전계획인 ‘작전계획 5027’과 마찬가지로 5단계로 나뉘어 전개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1단계는 전쟁 개시를 위한 국지도발 단계다. 선제 기습 전략에 따라 북한은 전방 북방한계선(NLL) 일대나 서북도서 지역에서 아군 함정을 공격하거나 백령도·연평도 등에 포격을 가하고 공기부양정과 항공기 등을 이용해 섬을 점령하는 등의 기습적인 국지 도발을 걸어온다. 우리 군은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나 한민국 국방부장관, 최윤희 합참의장 등이 “적이 도발할 경우 도발 원점은 물론 지휘·지원 세력까지 응징하겠다”라는 뜻을 여러 차례 밝힌 만큼 대대적인 반격에 나설 것이며, 이러한 반격은 포병 화력은 물론 전투기와 전투함 등의 전력과 미군 전력까지 동원할 수 있도록 미국과 공동 대응 계획까지 수립되어 있다. 지난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에도 남쪽 해상을 향해 포탄 사격 훈련을 실시했던 우리 군의 합법적이고 정당한 훈련에 대해 자신들의 영해에서 사격 훈련을 하는 등 남측이 먼저 도발했다고 주장하며 연평도에 포탄을 퍼부었던 것처럼 북한은 우리 군의 훈련 상황을 구실로 선제 도발을 감행한 뒤 이에 대해 우리 군이 반격하면 최초 도발 원점 인근의 지원 전력까지 모두 끌어 모아 대대적인 공세를 펴면서 전면전의 포문을 열 것이다. 2단계는 전면전 확전 단계다. 우리 군 수뇌부가 강조해왔던 ‘도발 원점 및 지휘·지원세력까지 응징’을 수행하는 전력은 전방 지역의 자주포 및 다련장로켓, 해군 호위함과 구축함, 공군 전투기 등이다. 우리 군은 국지도발 대비계획에 따라 북한군이 도발할 경우 어느 부대의 어떤 전력이 어떤 무기로 몇 발의 사격을 가해 보복 타격에 나선다는 세부 지침을 수립해 놓고 있다. 북한의 도발이 발생하더라도 최단시간 내에 적 도발 및 지원 세력을 제거하고 현장에서 상황을 종결지음으로써 확전을 막기 위함이다. 그러나 북한이 전면전으로의 확전을 의도하고 도발을 감행했다면, 응징에 나선 아군 전력에 대한 공격에 나섬으로써 ‘도발-응징보복-재보복’ 형태로 무력 충돌 확대를 시도할 것이다. 북한은 이미 이를 위한 준비를 마친 상태다.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우리 군이 차후 도발 시 북한의 갱도 진지를 타격하기 위해 서북도서에 자주포와 다련장로켓을 증강 배치하자 이 자주포와 다련장로켓을 타격할 수 있는 175mm 자주포와 240mm 방사포를 황해남도 일대에 추가 배치한 사례나 우리 공군 전투기의 공습에 대응하기 위해 SA-5 등 지대공 미사일을 전방에 추진 배치한 사례를 예로 들 수 있다. 가령 연평도에 배치된 우리 해병대가 포탄 사격 훈련을 실시할 때 이를 구실 삼아 황해남도 강령군과 옹진군 일대의 해안포가 연평도에 포격을 실시한다. 연평도의 해병대 K-9과 증강 배치된 다련장 로켓, 스파이크 미사일 등이 해안포를 타격하면, 강령군과 벽성군, 옹진군 일대에 증강 배치된 122mm, 240mm 방사포가 우리 해병대 포대에 보복 사격을 가한다. 북한의 장사정포와 방사포를 타격하기 위해 KF-16 전투기와 F-15K 전투기가 나서면 황해북도 사리원시와 봉산군 일대에 배치된 장거리 지대공 미사일 SA-5와 황해남도 해주시와 옹진군 일대에 배치된 SA-2/3 지대공 미사일은 물론 백령도와 가까운 황주 비행장에 전진 배치된 MIG-23 전투기를 이용해 요격에 나서는 한편, 우리 공군의 전투기 증원을 막기 위해 최근 개발 완료 단계에 와 있는 사거리 200km 이상의 300mm 방사포 KN-09와 와 신형 지대지 탄도 미사일 KN-10을 이용해 우리 공군기지 활주로에 대한 무차별 공격에 나설 것이다. 장사정포와 방사포 등 포병이 일제 사격을 시작했다는 것은 전술 용어로 ‘공격준비사격’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하며, 이는 사격 후 전방 4개 전연군단과 제2, 제3 제파를 구성하는 후방 예비 부대가 대대적인 공격 작전에 나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의 의도대로 국지적 도발이 전면전까지 확대되는 상황이 이것이다. 3단계는 미 증원 전력의 차단이다. 한반도에 전면전이 발발할 경우 미국은 해ㆍ공군 가용 전력을 우선 투입하고, 신속억제방안(FDO : Flexible Deterrence Option)에 따라 SBCT(Stryker Brigade Combat Team)를 한반도에 증원하고, 여의치 않을 경우 이를 전투력증강(FMP : Force Module Package) 단계로 확대해 병력을 증원한다. 이 전력으로도 확전을 막지 못하고 대규모 전면전으로 확대될 경우 시차별 부대 전계 제원(TPFDD : Time Phased Forces Deployment Data)에 따라 대규모 지상군과 함정, 항공기를 한반도 전역에 투입한다. FDO로 파견되는 일명 ‘스트라이커 부대’는 3,700여 명의 병력과 330여 대의 스트라이커 장갑차로 구성되며, 수송기를 통해 하와이와 미 본토에서 96시간 이내에 한반도에 전개되며, 이 부대가 증원되어도 전쟁 억제 및 확전 방지에 실패할 경우 FMP에 따라 SBCT가 추가로 증원되는데, FMP로 투입되는 전력은 미국 본토 서부 워싱턴 주 소재 루이스-맥코드(Lewis-McChord) 합동기지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이 인근의 시애틀 기지에서 고속수송선에 적재되어 부산항에 도착하려면 약 15~20일 가량이 소요된다. FMP로도 북한군 저지에 실패할 경우 TPFDD에 따라 주방위군과 예비군이 소집되며, 전차와 장갑차로 무장한 HBCT(Heavy Brigade Combat Team) 부대가 전개되는데, TPFDD에 반영된 미군 증원 전력이 한반도에 완전히 전개하는데는 약 2개월이 소요된다. 즉, 북한 입장에서는 미군 TPFDD 전력이 들어오는 것은 당연히 막아야 하며, FMP 전력이 들어오기 전에 부산을 점령하고 종전을 선언한 뒤 협상에 나서는 것이 유리하다. -김정은 새로운 작전계획에 핵과 미사일 사용 반영 김정은이 새로운 작전계획에 핵과 미사일 사용 계획을 반영하라고 지시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미 본토에서 전략수송기로 나흘 내에 들어오는 FDO 전력은 막기 어렵다 하더라도 알래스카와 하와이, 괌, 일본에 배치된 FMP 전력의 발을 묶어 놓을 수만 있다면 손쉽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미국 본토 도달이 가능한 핵미사일로 미국을 위협하거나, 재래식 탄두를 탑재한 장거리 미사일을 알래스카와 괌, 일본, 하와이 등에 발사해 미군의 신속한 증원을 막으려 할 것이다. 4단계는 배합전과 남조선 혁명이다. 배합전(配合戰)은 문자 그대로 정규전과 비정규전이 뒤섞인 전쟁 형태이다. 휴전선 일대에서는 북한군을 동원해 대규모 재래식 전쟁을 진행하면서, 대규모 특수부대를 남한 후방에 침투시켜 주요 시설 파괴, 요인 암살, 보급로 차단 등으로 한국군 후방에 제2전선을 형성하는 것이다. 제2전선이 형성되면 우리 군은 전방 지역에 증원 병력을 보내기가 어려워지고, 보급이 어려워지면서 전쟁 지속 능력을 잃게 될 뿐만 아니라 후방 지역에 고향이 있는 장병들의 동요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특수부대와 종북 세력을 규합한 소요 사태 유발 역시 배합전 전략의 일부다. 이러한 전략은 과거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을 집어 삼키는데 가장 효과적이었던 전략이었다. 평화와 반외세·민족공조를 부르짖던 과거 북베트남이 제1야당 지도자였던 쭈옹 딘 쥬(Truong Dinh Dzu), 반전·반미 시위에 앞장섰던 짠 후 탄(Tran Huu Thanh) 신부, 월남 정부에 대한 비난 기사를 쓰면서 군사기밀을 북베트남에 빼돌렸던 팜 쑤안 안(Pham Xuan An) 기자 등은 지속적으로 반정부 시위와 소요 사태를 일으켜 남베트남의 전쟁 수행 능력과 의지를 무너뜨리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는데, 종전 이후 이들은 북베트남의 간첩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압도적인 병력 우위와 대량살상무기를 이용해 신속하게 남한의 군사 역량을 소멸시키고, 제2전선 형성을 통해 남한 전역을 혼란으로 몰아넣은 다음 실시되는 마지막 5단계는 종전 선언과 ‘반동분자 색출’이다. 이 과정은 과거 6.25 직후 북한군 점령 지역에서 공산 세력이 붉은 완장을 차고 앞장서서 지역 유지와 부유층, 군과 경찰 등 공무원들에 대한 처형에 나섰던 상황과 유사하게 전개될 것이다. 김정은은 이 모든 과정을 7일 이내에, 이것이 녹록치 않다면 15일 이내에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 북한군은 김정은 최고사령관 추대 이후 빠른 속도로 변모해가고 있다. -北, ‘의지’ 뒷받침할 ‘능력’ 확보에 총력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겪은 북한은 극심한 식량난과 경제난으로 인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재래식 군사력에 투자할 돈이 없었다. 그러나 1997년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이후 대북포용정책에 따라 대북 현물 지원이 급증하면서 10여년 가까이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던 재래식 군사력 증강에 다시 손을 대기 시작했다. 1998년 러시아로부터 BTR-80A 보병전투차량 수십여 대를 구입했고, 1999년에는 카자흐스탄으로부터 개량형 MIG-21 전투기 40여 대를 도입했다. 같은 시기 중국과 러시아, 독일에서 폭풍호 전차에 사용된 디젤엔진과 장갑차, 헬기 등을 수입하는 등 연 평균 1억~3억 달러어치의 무기를 해외에서 수입했다. 북한군의 재래식 군사력 강화는 김정은 집권 이후 더 빠른 속도로 추진되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제3차 핵실험으로 핵무기 소형화에 성공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와 맞물려 있다. 핵미사일이라는 수단을 손에 넣음으로써 미국의 개입을 억제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하자마자 재래식 군사력 강화에 나섰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13년 7월 전승 6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신형 무기체계들을 대거 공개하면서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 증강이 이전에 알려졌던 것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국방부가 최근 발간한 '2014 국방백서'를 보면 최근 북한은 노후 전차를 퇴역시키고 폭풍호와 선군호 등 신형 전차를 대량으로 생산해 전체 전차 보유량을 100여 대 증가시켰으며, 장갑차 역시 신형 장갑차인 BTR-80A를 모방 생산해 200여 대 증가시킨 것이 확인되고 있다. 포병화력 역시 신형 방사포를 대량 배치하면서 그 수가 무려 700문 이상 증가했다. 신형 전차와 장갑차 수량이 대폭 증가했다는 것은 북한이 대규모 포병 화력을 통해 한국군을 조기에 무력화시키고, 기계화부대를 이용해 기동전을 벌이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해군력 분야에서도 소형 경비정과 어뢰정 위주의 전력을 탈피해 신형 미사일과 함포를 탑재한 중형 전투함들을 건조하고 있으며, 신형 잠수함과 스텔스·고속 성능이 강화된 침투용 선박을 대량 건조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해상에서 파상 공세를 퍼부어 한국 해군을 개전 초기에 제압하고, 고속 침투용 선박을 이용해 특수부대를 대량으로 침투시키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처럼 김정은 후계자 등극 직후부터 할아버지 김일성 시기부터 기획된 전면 남침 시나리오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 작전계획을 구체화시키고, 이 작전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능력을 갖추는데 총력을 기울여 오면서 ‘2015년 통일대전’ 주장을 계속해 왔던 것이다. 이제 김정은이 그토록 외쳐왔던 ‘통일대전 완성의 해’인 2015년에 되었고, 이립(而立)을 갓 넘긴 그의 손에는 핵미사일과 120만 대군이라는 위험한 장난감이 쥐어져 있다.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기획] 김정은의 ‘7일 전쟁’ 시나리오

    [기획] 김정은의 ‘7일 전쟁’ 시나리오

    김정은이 집권 직후 북한군에 한반도 전면전을 상정한 작전계획 수립을 지시했으며, 지난해까지 전쟁 준비를 완료하고 올해를 통일대전의 해로 선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2015년 통일대전 발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일부 언론에서는 익명을 요구한 군 소식통과 정부 당국자의 발언을 인용해 김정은이 지난 2011년 12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추대된 직후 한반도 전면전 작전계획 수립을 지시했으며, 2012년 8월 25일 원산에서 열린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이른바 ‘7일 전쟁’으로 전해지는 작전계획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원산에서 열린 회의에는 당 중앙군사위원들은 물론 군단장급 이상 고위 장성들이 대거 참석했으며, 이 회의를 통해 총참모부가 수립한 작전계획을 확정하고 이 작전계획에 맞춰 각 군단이 세부 작전계획을 수립해 훈련을 실시하라는 김정은의 지시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김정은이 지시했다는 작전계획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北 작전계획의 5단계 시나리오 이번에 정부 당국자와 군 소식통이 전했다고 하는 김정은의 작전 계획 가이드라인은 사실 전통적인 북한군 전쟁 전략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다만 핵과 미사일 사용을 작전계획에 명기하도록 했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실제로 이번에 보도된 북한의 새로운 작전계획은 지난 2013년에 북한이 대남 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에서 공개했던 ‘3일 전쟁 시나리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의 전쟁 전략은 지난 1971년 인민군 창건 23주년 기념 보고대회에서 당시 북한군 총정치국장 한익수 상장이 발표한 전략에 기초하고 있다. 김일성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이 전쟁 전략의 핵심은 선제 기습공격 · 단기속전속결전 · 배합전 등으로 요약되며,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이 다듬어 가고 있는 전쟁 전략 역시 이 전략의 틀 안에서 수립되고 있다. 북한이 수립했다는 새로운 작전계획은 우리 군의 전면전 작전계획인 ‘작전계획 5027’과 마찬가지로 5단계로 나뉘어 전개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1단계는 전쟁 개시를 위한 국지도발 단계다. 선제 기습 전략에 따라 북한은 전방 북방한계선(NLL) 일대나 서북도서 지역에서 아군 함정을 공격하거나 백령도·연평도 등에 포격을 가하고 공기부양정과 항공기 등을 이용해 섬을 점령하는 등의 기습적인 국지 도발을 걸어온다. 우리 군은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나 한민국 국방부장관, 최윤희 합참의장 등이 “적이 도발할 경우 도발 원점은 물론 지휘·지원 세력까지 응징하겠다”라는 뜻을 여러 차례 밝힌 만큼 대대적인 반격에 나설 것이며, 이러한 반격은 포병 화력은 물론 전투기와 전투함 등의 전력과 미군 전력까지 동원할 수 있도록 미국과 공동 대응 계획까지 수립되어 있다. 지난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에도 남쪽 해상을 향해 포탄 사격 훈련을 실시했던 우리 군의 합법적이고 정당한 훈련에 대해 자신들의 영해에서 사격 훈련을 하는 등 남측이 먼저 도발했다고 주장하며 연평도에 포탄을 퍼부었던 것처럼 북한은 우리 군의 훈련 상황을 구실로 선제 도발을 감행한 뒤 이에 대해 우리 군이 반격하면 최초 도발 원점 인근의 지원 전력까지 모두 끌어 모아 대대적인 공세를 펴면서 전면전의 포문을 열 것이다. 2단계는 전면전 확전 단계다. 우리 군 수뇌부가 강조해왔던 ‘도발 원점 및 지휘·지원세력까지 응징’을 수행하는 전력은 전방 지역의 자주포 및 다련장로켓, 해군 호위함과 구축함, 공군 전투기 등이다. 우리 군은 국지도발 대비계획에 따라 북한군이 도발할 경우 어느 부대의 어떤 전력이 어떤 무기로 몇 발의 사격을 가해 보복 타격에 나선다는 세부 지침을 수립해 놓고 있다. 북한의 도발이 발생하더라도 최단시간 내에 적 도발 및 지원 세력을 제거하고 현장에서 상황을 종결지음으로써 확전을 막기 위함이다. 그러나 북한이 전면전으로의 확전을 의도하고 도발을 감행했다면, 응징에 나선 아군 전력에 대한 공격에 나섬으로써 ‘도발-응징보복-재보복’ 형태로 무력 충돌 확대를 시도할 것이다. 북한은 이미 이를 위한 준비를 마친 상태다.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우리 군이 차후 도발 시 북한의 갱도 진지를 타격하기 위해 서북도서에 자주포와 다련장로켓을 증강 배치하자 이 자주포와 다련장로켓을 타격할 수 있는 175mm 자주포와 240mm 방사포를 황해남도 일대에 추가 배치한 사례나 우리 공군 전투기의 공습에 대응하기 위해 SA-5 등 지대공 미사일을 전방에 추진 배치한 사례를 예로 들 수 있다. 가령 연평도에 배치된 우리 해병대가 포탄 사격 훈련을 실시할 때 이를 구실 삼아 황해남도 강령군과 옹진군 일대의 해안포가 연평도에 포격을 실시한다. 연평도의 해병대 K-9과 증강 배치된 다련장 로켓, 스파이크 미사일 등이 해안포를 타격하면, 강령군과 벽성군, 옹진군 일대에 증강 배치된 122mm, 240mm 방사포가 우리 해병대 포대에 보복 사격을 가한다. 북한의 장사정포와 방사포를 타격하기 위해 KF-16 전투기와 F-15K 전투기가 나서면 황해북도 사리원시와 봉산군 일대에 배치된 장거리 지대공 미사일 SA-5와 황해남도 해주시와 옹진군 일대에 배치된 SA-2/3 지대공 미사일은 물론 백령도와 가까운 황주 비행장에 전진 배치된 MIG-23 전투기를 이용해 요격에 나서는 한편, 우리 공군의 전투기 증원을 막기 위해 최근 개발 완료 단계에 와 있는 사거리 200km 이상의 300mm 방사포 KN-09와 와 신형 지대지 탄도 미사일 KN-10을 이용해 우리 공군기지 활주로에 대한 무차별 공격에 나설 것이다. 장사정포와 방사포 등 포병이 일제 사격을 시작했다는 것은 전술 용어로 ‘공격준비사격’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하며, 이는 사격 후 전방 4개 전연군단과 제2, 제3 제파를 구성하는 후방 예비 부대가 대대적인 공격 작전에 나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의 의도대로 국지적 도발이 전면전까지 확대되는 상황이 이것이다. 3단계는 미 증원 전력의 차단이다. 한반도에 전면전이 발발할 경우 미국은 해ㆍ공군 가용 전력을 우선 투입하고, 신속억제방안(FDO : Flexible Deterrence Option)에 따라 SBCT(Stryker Brigade Combat Team)를 한반도에 증원하고, 여의치 않을 경우 이를 전투력증강(FMP : Force Module Package) 단계로 확대해 병력을 증원한다. 이 전력으로도 확전을 막지 못하고 대규모 전면전으로 확대될 경우 시차별 부대 전계 제원(TPFDD : Time Phased Forces Deployment Data)에 따라 대규모 지상군과 함정, 항공기를 한반도 전역에 투입한다. FDO로 파견되는 일명 ‘스트라이커 부대’는 3,700여 명의 병력과 330여 대의 스트라이커 장갑차로 구성되며, 수송기를 통해 하와이와 미 본토에서 96시간 이내에 한반도에 전개되며, 이 부대가 증원되어도 전쟁 억제 및 확전 방지에 실패할 경우 FMP에 따라 SBCT가 추가로 증원되는데, FMP로 투입되는 전력은 미국 본토 서부 워싱턴 주 소재 루이스-맥코드(Lewis-McChord) 합동기지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이 인근의 시애틀 기지에서 고속수송선에 적재되어 부산항에 도착하려면 약 15~20일 가량이 소요된다. FMP로도 북한군 저지에 실패할 경우 TPFDD에 따라 주방위군과 예비군이 소집되며, 전차와 장갑차로 무장한 HBCT(Heavy Brigade Combat Team) 부대가 전개되는데, TPFDD에 반영된 미군 증원 전력이 한반도에 완전히 전개하는데는 약 2개월이 소요된다. 즉, 북한 입장에서는 미군 TPFDD 전력이 들어오는 것은 당연히 막아야 하며, FMP 전력이 들어오기 전에 부산을 점령하고 종전을 선언한 뒤 협상에 나서는 것이 유리하다. -김정은 새로운 작전계획에 핵과 미사일 사용 반영 김정은이 새로운 작전계획에 핵과 미사일 사용 계획을 반영하라고 지시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미 본토에서 전략수송기로 나흘 내에 들어오는 FDO 전력은 막기 어렵다 하더라도 알래스카와 하와이, 괌, 일본에 배치된 FMP 전력의 발을 묶어 놓을 수만 있다면 손쉽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미국 본토 도달이 가능한 핵미사일로 미국을 위협하거나, 재래식 탄두를 탑재한 장거리 미사일을 알래스카와 괌, 일본, 하와이 등에 발사해 미군의 신속한 증원을 막으려 할 것이다. 4단계는 배합전과 남조선 혁명이다. 배합전(配合戰)은 문자 그대로 정규전과 비정규전이 뒤섞인 전쟁 형태이다. 휴전선 일대에서는 북한군을 동원해 대규모 재래식 전쟁을 진행하면서, 대규모 특수부대를 남한 후방에 침투시켜 주요 시설 파괴, 요인 암살, 보급로 차단 등으로 한국군 후방에 제2전선을 형성하는 것이다. 제2전선이 형성되면 우리 군은 전방 지역에 증원 병력을 보내기가 어려워지고, 보급이 어려워지면서 전쟁 지속 능력을 잃게 될 뿐만 아니라 후방 지역에 고향이 있는 장병들의 동요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특수부대와 종북 세력을 규합한 소요 사태 유발 역시 배합전 전략의 일부다. 이러한 전략은 과거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을 집어 삼키는데 가장 효과적이었던 전략이었다. 평화와 반외세·민족공조를 부르짖던 과거 북베트남이 제1야당 지도자였던 쭈옹 딘 쥬(Truong Dinh Dzu), 반전·반미 시위에 앞장섰던 짠 후 탄(Tran Huu Thanh) 신부, 월남 정부에 대한 비난 기사를 쓰면서 군사기밀을 북베트남에 빼돌렸던 팜 쑤안 안(Pham Xuan An) 기자 등은 지속적으로 반정부 시위와 소요 사태를 일으켜 남베트남의 전쟁 수행 능력과 의지를 무너뜨리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는데, 종전 이후 이들은 북베트남의 간첩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압도적인 병력 우위와 대량살상무기를 이용해 신속하게 남한의 군사 역량을 소멸시키고, 제2전선 형성을 통해 남한 전역을 혼란으로 몰아넣은 다음 실시되는 마지막 5단계는 종전 선언과 ‘반동분자 색출’이다. 이 과정은 과거 6.25 직후 북한군 점령 지역에서 공산 세력이 붉은 완장을 차고 앞장서서 지역 유지와 부유층, 군과 경찰 등 공무원들에 대한 처형에 나섰던 상황과 유사하게 전개될 것이다. 김정은은 이 모든 과정을 7일 이내에, 이것이 녹록치 않다면 15일 이내에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 북한군은 김정은 최고사령관 추대 이후 빠른 속도로 변모해가고 있다. -北, ‘의지’ 뒷받침할 ‘능력’ 확보에 총력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겪은 북한은 극심한 식량난과 경제난으로 인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재래식 군사력에 투자할 돈이 없었다. 그러나 1997년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이후 대북포용정책에 따라 대북 현물 지원이 급증하면서 10여년 가까이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던 재래식 군사력 증강에 다시 손을 대기 시작했다. 1998년 러시아로부터 BTR-80A 보병전투차량 수십여 대를 구입했고, 1999년에는 카자흐스탄으로부터 개량형 MIG-21 전투기 40여 대를 도입했다. 같은 시기 중국과 러시아, 독일에서 폭풍호 전차에 사용된 디젤엔진과 장갑차, 헬기 등을 수입하는 등 연 평균 1억~3억 달러어치의 무기를 해외에서 수입했다. 북한군의 재래식 군사력 강화는 김정은 집권 이후 더 빠른 속도로 추진되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제3차 핵실험으로 핵무기 소형화에 성공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와 맞물려 있다. 핵미사일이라는 수단을 손에 넣음으로써 미국의 개입을 억제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하자마자 재래식 군사력 강화에 나섰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13년 7월 전승 6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신형 무기체계들을 대거 공개하면서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 증강이 이전에 알려졌던 것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국방부가 최근 발간한 '2014 국방백서'를 보면 최근 북한은 노후 전차를 퇴역시키고 폭풍호와 선군호 등 신형 전차를 대량으로 생산해 전체 전차 보유량을 100여 대 증가시켰으며, 장갑차 역시 신형 장갑차인 BTR-80A를 모방 생산해 200여 대 증가시킨 것이 확인되고 있다. 포병화력 역시 신형 방사포를 대량 배치하면서 그 수가 무려 700문 이상 증가했다. 신형 전차와 장갑차 수량이 대폭 증가했다는 것은 북한이 대규모 포병 화력을 통해 한국군을 조기에 무력화시키고, 기계화부대를 이용해 기동전을 벌이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해군력 분야에서도 소형 경비정과 어뢰정 위주의 전력을 탈피해 신형 미사일과 함포를 탑재한 중형 전투함들을 건조하고 있으며, 신형 잠수함과 스텔스·고속 성능이 강화된 침투용 선박을 대량 건조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해상에서 파상 공세를 퍼부어 한국 해군을 개전 초기에 제압하고, 고속 침투용 선박을 이용해 특수부대를 대량으로 침투시키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처럼 김정은 후계자 등극 직후부터 할아버지 김일성 시기부터 기획된 전면 남침 시나리오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 작전계획을 구체화시키고, 이 작전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능력을 갖추는데 총력을 기울여 오면서 ‘2015년 통일대전’ 주장을 계속해 왔던 것이다. 이제 김정은이 그토록 외쳐왔던 ‘통일대전 완성의 해’인 2015년에 되었고, 그의 손에는 핵미사일과 120만 대군이라는 위험한 장난감이 쥐어져 있다. 이립(而立)을 갓 넘긴 어린 폭군의 손에 7000만 민족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푸틴 정적 유죄 판결에… 러 대규모 시위

    푸틴 정적 유죄 판결에… 러 대규모 시위

    서방 제재와 유가 하락으로 경제위기에 봉착한 러시아에서 사회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자신의 정적에 대한 탄압의 고삐를 죄면서 경제난으로 누적된 불만이 대규모 시위로 표출되고 있다. 30일(현지시간) 반부패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38)가 횡령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직후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거리에서 수천명 이상의 시민이 운집한 대규모 반정부 집회가 산발적으로 열렸다. BBC방송 등 외신은 러시아 법원의 보복성 판결에 항의하는 군중이 영하 20도 가까운 추위 속에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경제가 루블화 폭락 등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반푸틴 시위가 어느 정도 확산될 수 있을지 관심을 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시위는 모스크바 자모스크보레츠키 법원이 나발니와 그의 동생에게 형제가 운영하는 배송업체를 이용해 프랑스 화장품 회사의 러시아 지사로부터 3000만 루블(약 5억 9000만원)을 횡령했다며 유죄를 선고한 뒤 몇 시간 만에 촉발됐다. 법원은 나발니에게 징역 3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동생에게 3년 6개월의 실형을 내렸다. 변호인단은 즉각 항소의 뜻을 밝혔다. 나발니는 법정을 나서며 “푸틴 정권은 존속할 권리가 없다. 모두 거리로 나서자”고 트위터를 통해 촉구했다. 나발니는 3년 전 푸틴에 저항하는 대규모 군중 시위를 이끈 장본인이다. 변호사 출신의 유명 블로거로, 지난해 모스크바 시장 선거에 나서 27%의 득표를 얻으며 2위를 차지했다. 지난 2월에는 소치 동계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벌어진 정부 관리들과 국영기업들의 대규모 비리를 폭로했다. 로이터통신은 러시아 인권단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법원이 실형 선고 뒤 후폭풍을 우려해 동생에게만 실형을 선고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도 릴라 셰프소바 브루킹스 연구소 연구원의 말을 인용, “가족을 구금해 나발니의 활동을 제약하려는 크렘린의 전형적인 방식”이라고 꼬집었다. 가택 연금 중인 나발니는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크렘린궁 앞의 시위 장소로 향하다 경찰에 체포돼 다시 자신의 아파트에 구금됐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시위대는 “나발니를 풀어줘라, 러시아를 풀어줘라, 푸틴 없는 러시아” 등을 외치며 시위에 나섰고, 일부 시위대가 크렘린궁 진입을 시도했다고 BBC가 보도했다. 시위 과정에서 시민들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인 ‘파이어챗’을 이용했고, 2만 5000명 넘는 사람들이 이 앱을 다운로드받아 시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러시아 정부는 시위가 본격화하기 전 페이스북을 차단했다. BBC는 시위로 200명 넘는 시민이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서방 각국은 우려를 표명한 상태다. 미 국무부는 “이번 판결은 통치에 반하는 정치적 행동에 대한 경고”라고 평가했고, 유럽연합은 “법원이 정치적 판단을 내렸다”고 규정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세계의 창] 민주주의 실험 홀로 성공 튀니지 비결

    튀니지는 ‘아랍의 봄’ 진원지이자 아랍 민주화의 ‘마지막 불씨’다. 2010년 12월 경찰의 폭력적인 단속에 항의한 대학생 노점상의 분신으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는 벤 알리의 23년 독재정치를 종식시켰다. 뒤이어 민중 봉기가 발생한 다른 아랍 국가들은 모두 군부독재로 회귀하거나 내란·내전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어 갔다. 하지만 튀니지는 지난 4년 동안 위기를 극복하면서 민주정치의 기틀을 다졌다. 지난 21일(현지시간) 사상 처음 민주적으로 치러진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에 세계가 주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튀니지가 민주주의 실험에 홀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BBC와 알자지라는 이날 튀니지를 ‘아랍의 새로운 모델’로 묘사하면서 이슬람주의 세력과 세속주의 세력의 타협 과정을 조명했다. 벤 알리 정권 붕괴 이후인 2011년 10월 총선에서 온건 이슬람주의 정당인 엔나흐다당이 승리해 연립정부를 구성하자 옛 정권을 지탱했던 세속주의 세력이 반발했다. 갈등이 고조되자 강경 이슬람주의 살라피스트들이 득세하며 세속주의자들을 공격했다. 혼란을 틈타 알카에다와 연계된 무장세력이 세를 불렸다. 경제 위기까지 고조되자 정권퇴진 목소리가 다시 터져 나왔다. 엔나흐다당은 정부 총사퇴와 중립 과도정부 구성이라는 타협안을 받아들였다. 이슬람 세력과 세속주의 세력 간 타협의 결정체는 헌법이었다. 새 헌법은 국교를 이슬람이라고 명시했지만 종교의 자유를 보장했다. 이슬람 율법(샤리아)에 근거한 조문들도 모두 삭제했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못 박았다. 고문 금지, 적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남녀평등도 명시했다. 더욱이 튀니지는 이슬람 강경파가 소수였다. 다수파인 무슬림형제단 계열의 온건한 엔나흐다당은 헌법 양보를 넘어 대선에서 이슬람 후보를 내지 않았다. 대신 민중 시위를 이끈 문시프 마르주키 후보를 지지하기로 했다. 옛 정권 출신의 세속주의자로 경제를 외치는 에셉시 후보와 ‘아랍의 봄’ 투사 사이의 양자대결은 이렇게 완성됐다. BBC는 “정치에 가급적 개입하지 않는 군부의 전통, 종교보다는 경제에 더 관심이 많은 여론, 프랑스와의 심리적 유대감 등도 튀니지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고 있다”면서 “온건 엔나흐다당이 종교적 가치에서 출발했으나 세속적 민주주의 정당으로 발전한 유럽의 기독민주당이나 기독사회당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이창구 기자 window2@seoul.co.kr
  •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새누리당, 종북 몰아 ‘정윤회’ 출구전략

    새누리당이 통합진보당 해산 사태 이후 야당의 ‘원죄론’을 꺼내는 등 대야 공세의 강도를 연일 높이고 있다. 특히 헌법재판소 선고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대한민국 부정’으로 정의하고 ‘강력한 공권력 투입’까지 촉구하면서 신(新)공안 정국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2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집권만을 위해 통합진보당과 연대했던 새정치민주연합은 이제 종북과 헌법 파괴를 일삼는 낡은 진보 세력과의 절연을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군현 사무총장도 “통합진보당의 국회 진출에 큰 역할을 한 당시 민주통합당의 지도부는 한마디 책임 있는 사과와 반성도 없다”며 야권 연대 책임론을 꺼내 야당을 비난했다. 새누리당은 지난 20일 박근혜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역사적 결정”이라고 헌재 선고를 평가한 후 연일 대야 공세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비선 실세 국정 개입 의혹으로 정부·여당이 수세에 몰리자 ‘종북 콘서트’ 논란을 비롯해 잇따라 이념 문제를 부각시키며 국면 전환의 기회를 잡으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이날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통합진보당 출신 인사들이 선거에 출마할 경우 관련 경력을 의무적으로 공개하자며 사실상 ‘주홍글씨’를 새기는 극단적인 입법을 주장하기도 했다. 새누리당은 헌재 선고에 대한 ‘불복 시위’에 대해서도 엄단을 촉구했다. 선고 불복 시위가 공무원연금 개혁, 노동시장 개혁 등의 현안과 맞물려 대대적인 반정부·여당 시위로 격화될까 하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정부는 통합진보당 당원들의 장외 불법 투쟁을 강력한 공권력으로 막아 달라”고 촉구했다. 한편 친박근혜계 좌장 격인 서청원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비선 실세 국정 개입 의혹을 거론하며 “청와대 참모들이 옷깃을 여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참모들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또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병역 비리 의혹을 제기했던 김대업씨를 언급하며 “(청와대 문건을 유출한) 박관천 사건도 분명히 배후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터키, 반정부 언론인 등 대대적 검거…국제사회 “반민주적 행위” 맹비난

    터키 당국이 반(反)정부 성향의 언론인, 경찰 등에 대한 대대적 검거작전에 나서자 국제사회가 “반민주적 행위”라며 맹비난하고 나섰다. AFP통신 등 외신은 14일(현지시간) 터키 경찰이 터키 전역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에 반대하는 신문사 편집국장과 방송사 회장, 프로듀서, 작가, 경찰 등 최소 27명을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체포영장은 32명에 대해 발부됐다. 언론인들은 협박과 위협을 통해 국가 권력을 찬탈하려 한 혐의를, 경찰들은 2010년 알카에다와 연관된 범죄 조직을 수사하면서 증거를 조작·왜곡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고 터키 국영 아나톨리아통신이 전했다. 이날 체포된 인사 중에는 터키 최대 일간지 자만의 에크렘 두만리 편집국장과 사마뇰류 TV의 히다예트 카라차 회장 등이 포함돼 있다. 두만리 국장이 체포되는 모습은 TV로 생중계되기도 했다. 두만리 국장 체포 시 이스탄불 자만 본사 앞에는 수천명의 지지자와 언론인이 모여 “자유 언론은 침묵할 수 없다”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항의 시위를 벌였다. 체포된 사람들은 과거 에르도안 대통령의 동지였다가 최대 정적이 된 이슬람 성직자 페툴라 귤렌의 지지자들이다. 귤렌은 현재 미국에 머물며 교육과 언론, 문화, 경찰, 사법부 등에 지지자를 다수 확보한 터키의 사회단체 ‘히즈메트(봉사) 운동’을 이끌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12일 귤렌 지지자에 대한 대대적 검거를 예고했다. 두 언론사는 1년 전 당시 총리였던 에르도안 대통령의 부정부패 의혹을 집중 보도한 바 있다. 터키 제1야당이 “이번 급습은 쿠데타”라며 반발하는 가운데 국제사회의 비난도 이어지고 있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EU) 외교담당 집행위원과 요하네스 한 EU 확대협상담당 커미셔너는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검거는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인 언론 자유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며 “이는 터키의 EU 가입 신청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젠 사키 미 국무부 대변인도 성명을 통해 “터키 당국이 자국의 민주적 근간과 핵심가치를 침범하지 않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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