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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얀마 88년이후 최대 반정시위/수지 여사 또 가택연금

    ◎양곤·만달레이시 학교 전면 폐쇄 【양곤 AP AFP 연합】 지난 88년 미얀마 민주봉기 이후 최대규모의 학생 반정부시위가 10일 연2일째 수도 양곤과 제2도시 만달레이에서 벌어졌다. 학생들은 시내 곳곳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이면서 자유신장과 인권강화,학생회 조직 허용 등을 외쳤다. 이에맞서 정부는 경찰과 군 병력을 출동시켜 시위대들을 강제로 해산시키고 시내 요소에 장애물과 가시철망을 설치하는 한편 양대 도시의 학교를 전면 폐쇄하고 야당지도자 아웅산 수지 여사를 또다시 가택 연금시켰다. 다른 학생 50여명은 미대사관앞에서 시위를 벌이다가 긴급 출동한 경찰에 해산됐으며 양곤공대생들은 도심지에서 시위를 벌이다가 군대에 의해 해산됐다. 만달레이에서도 의대생과 공대생들이 주축이 되어 연일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군사정부는 학생시위가 확산되자 양곤의 대학교들을 9일 폐쇄한데 이어 10일에는 모든 중등학교를 폐쇄했다.만달레이의 학교들은 8일 폐쇄됐다. 한편 미얀마 민주화지도자 수지 여사는 학생들의산발적인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날 자택에 연금조치됐다.
  • 미,「세」에 경제제재 경고

    【베오그라드·워싱턴 AFP 로이터 연합】 최근 세르비아에서 반정부시위가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9일 세르비아에 대한 제재조치를 재개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 등 슬로보단 밀로세비치대통령에 대한 압력을 강화하고 있다. 워런 크리스토퍼 미 국무장관은 이날 브뤼셀에서 자신은 밀로세비치대통령이 야당의 승리로 끝난 지난달 17일의 지방선거결과를 계속 인정하지 않을 경우 국제적인 경제제재조치를 재개하는 문제를 놓고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회담을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 「세」 항의시위 또다시 격화/반정리더 “군동원 가능성”

    ◎대법원 “베오그라드 선거로 집권당 승리” 판결 【베오그라드 AFP 로이터 연합】 야당측의 명백한 승리에도 불구하고 8일 세르비아 대법원이 지난달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집권 사회당이 승리했다고 판결을 내린 뒤 반정부 시위가 다시 격화되고 있다. 연 20일째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수도 베오그라드에서는 이날 10만여명의 시위대가 운집,슬로보단 밀로세비치 대통령에게 선거 패배를 인정할 것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또 제2의 도시 니스에서도 4만명의 시민이 대법원의 선거 무효화 지지 판결에 항의하는 시의를 벌였다. 대법원은 정부의 지방선거 무효화 조치에 반대하며 야당이 제기한 소송 50건중 5건에 대해 무효화 지지 판결을 내린데 이어 베오그라드 선거에서도 집권 사회당이 승리했다고 결정했다. 반정부 시위를 이끌고 있는 「다함께」의 지도자 부크 드라스코비치는 『우리의 평화적 시위는 밀로세비치 대통령이 퇴진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정부가 무력을 사용해 유혈사태가 발생할 것을 우려했다. 드라스코비치는 『내일이나 모레중으로 정부가 경찰 병력,심지어는 군병력을 동원해 시위진압에 나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밀로세비치 대통령은 지난 91년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을 당시 탱크를 동원해 진압한 바 있다. 밀로세비치 대통령은 5일 폐쇄했던 2개 방송국의 방송 재개를 허용하는 등 유화 조치를 취한 바 있으나 대법원의 판결을 계기로 밀로세비치가 다시 강경 입장으로 선회,세르비아 사태가 다시 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 「세」 대통령,반정시위 굴복 조짐

    ◎밀로세비치 “군·경 도원 강제 진압않겠다”/대법원,지방선거 무효화소송 지지 판결 【베오그라드 AFP 연합】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세르비아대통령은 7일 지방선거 무효화 조치에 항의하는 반정부시위대 진압을 위해 군·경을 동원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는 등 19일째 계속된 시위에 굴복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밀로세비치는 이날 미국 언론인보호위원회 캐티 마턴 의장과 면담에서 시위를 종식시키기 위해 병력을 사용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마턴 의장은 『밀로세비치는 시위가 경찰이나 군대,집권당 당원들의 간섭없이 평화적으로 계속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을 약속했다』고 말했다. 밀로세비치 대통령은 이에 앞서 지난 5일에도 폐쇄조치했던 2개 라디오방송국의 방송 재개를 허용하고 방송국 폐쇄를 주도한 알렉산데르 티야니치 공보장관을 해임했다. 밀로세비치는 또 전기료를 인하하고 연체된 연금및 학생장학금을 지불하는 등 유화조치를 취했다. 한편 베오그라드에서는 7일 20여만명의 시위군중이 밀로세비치의 허수아비를 처형하고 반정부 구호를 외치는 등 지방선거 무효화 조치에 대해 항의하는 19일째 시위를 벌였다. 한편 세르비아대법원은 지난달 실시된 지방선거 무효화에 반대하며 야당후보들이 제기한 소송 46건중 5건에 대해 무효화 지지 판결을 내렸다고 한 라디오방송이 8일 보도했다. B92라디오방송은 그러나 나머지 소송에 대한 판결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 「세」 야당연합 민주정부 구성

    ◎드라스코비치 당수 “밀로세비치 하야투쟁” 선언 【베오그라드 AFP 로이터 연합】 세르비아 정부의 유화 조치에도 불구하고 반정부시위가 18일째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야당 세력은 현정부를 대체할 새로운 「민주정부」를 구성했다고 야당 연합 「다함께」 지도자 부크 드라스코비치가 6일 밝혔다. 「다함께」를 구성하고 있는 3개 야당중 하나인 「신세르비아 운동」의 드라스코비치 당수는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대통령이 지난달 실시된 지방 의회 선거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가 이미 조직한 민주정부와 국가평의회가 권력을 인수해 새로운 선거를 치를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측은 밀로세비치가 사임할 때까지 계속 투쟁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역시 야당연합 세력에 참여하고 있는 민주당의 조란 딘디치 당수도 『우리의 최종 목표는 밀로세비치 대통령을 퇴진시키는 것』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그 방법은 공정한 정치 투쟁 방법으로 이뤄질 것이며 그 첫단계는 야당의 선거 승리를 인정받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지난주 폐쇄시켰던 2개 라디오 방송의 방송 재개를 허용하고 방송국 폐쇄조치를 주도한 알렉산데르 티야니치 공보장관을 해임하는등 유화 조치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날 베오그라드 시내에는 10만여명의 시위대가 승리축하 분위기속에 정부에 대해 선거 결과 수용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 세르비아/밀로세비치,반정시위에 굴복

    ◎방송국 폐쇄 해제­부정혐의자 숙정 착수/대법,「지방선거 무효조치」 적법성 재검토 【베오그라드 로이터 AP 연합】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세르비아공화국 대통령이 5일 국내외의 압력에 굴복,반정부 시위 보도를 이유로 중단시킨 민간방송국의 방송 재개를 허용하는 등 유화 제스처를 취해 지방선거 무효화 선언에 항의,시위를 주도해온 야당측에 일단의 승리를 안겨줬다. 또 베오그라드 선거위원회는 대법원에 정부가 무효화한 선거결과의 적법성을 재검토해줄 것을 요구했으며 대법원은 48시간 이내에 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방송인가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난 3일 방송이 중단됐던 B92 라디오 방송은 5일 「방송이 재개됐다」는 성명과 함께 이날 아침 7시(현지시간) 방송을 시작했다. 이에 앞서 B92와 함께 같은 날 반정부 시위 보도로 송신이 중단된 또 다른 민간 라디오방송국인 라디오 인덱스도 방송을 재개했으며 밀로세비치 대통령은 선거부정을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는 정당 관리들의 숙정을 이미 시작했다. 언론들은 밀로세비치 대통령이 시위무마를 위해 선거부정 혐의자와 거리를 두려하고 있어 수도 및 지방에서 이밖에 다른 고위관리들의 대규모 물갈이가 이어질 것으로 밝혔다.
  • 세 야당 “의회거부”…반정시위 격화/“집권당 전복겨냥 파업”위협

    ◎정부선 “폭력시위 불용” 【베오그라드 로이터 AP AFP 연합】 14일째 강력한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는 세르비아 야당은 1일 의회를 거부하고 수도 베오그라드에서의 가두시위를 지속하는 한편 반정부 시위를 전국으로 확산시킬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에 맞서 세르비아정부는 이날 경고성명을 발표,야당이 조직하는 어떠한 폭력적 항의 시위도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양측간의 충돌이 임박한 가운데 긴장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약 10만명의 반정부 시위자들은 이날 진눈깨비가 쏟아지는 악천후 속에서도 격렬한 가두시위를 벌였으며 야당연합세력인 「다함께」의 지도자 부크 드라스코비치는 이들 시위군중을 향해 『의회가 지방 재선거 결과를 무효화시키지 않으면 3일 의회를 거부할 것이며 집권 사회당을 패배시킨 7개 도시들에 금주중 새로운 시당국을 수립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함께」의 다른 지도자들은 항의 시위를 지속하고 50년 사회당 집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파업을 감행할 것이라고 위협했으다고 밝혔다.
  • 공익정론 외길 초일류 고급지로(서울신문 51년)

    □45년∼84년 ·항일지 「대한매일신보」 뿌리로 ·54년 소설 「자유부인」장안 선풍 ·56년 언론사상 첫 한글판 제작 □85년∼현재 ·CTS 첫 도입 등 언론사에 큰 획 ·서울신문,스포츠서울 뉴스넷 개통 ·96년 10월 전면가로쓰기 단행 서울신문은 해방공간의 어지러운 상황이 한창 전개되던 1945년 11월22일 태어났다. 서울신문 탄생은 당시 언론계는 물론 정치·사회·문화계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은 하나의 사건이었다.일제 총독부 기관지 역할을 한 매일신보의 인쇄시설과 건물 등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신문발행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갖춘데다 이제야 비로소 민족의 기대와 염원을 담아낼만한 권위있고 책임있는 언론기관이 등장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서울신문은 이와 함께 창간호를 1호가 아닌 제13738호로 시작했다.이는 새 시대를 맞은 해방조선의 대변기관을 자임하는 동시에 1904년에서 한일합방까지 지령 1461호를 기록한 대한매일신보와 이후 1945년 11월10일자(13737호)를 끝으로 미군정청으로부터 정간처분을 받은 매일신보의 전통을잇는다는 정통성의 표현이었다. 창간 이래 3년 가까운 기간 중립지 노선을 고수해온 서울신문은 그러나 국토가 분단되고 공산화 위협이 거세지자 반공지로 변신한다.직접적인 계기는 1949년 5월3일 공보처가 내린 발행정지 처분이었다.이유는 반정부기사를 많이 싣는다는 것이었다.그러나 이후에도 각종 현안이나 이승만정부에 대한 건설적 비판논조는 계속 이어갔으며 미군철수안·여순반란사건·국가보안법 문제 등에서 비교적 온건하고 균형있는 입장을 견지했다. 한국전 발발은 서울신문에도 큰 시련이었다.기자 1명을 포함한 사원 8명이 목숨을 잃었고 시설 일부가 두차례나 파괴·해체당했으며,고단한 부산 피난시절을 감당해야 했다.그러나 서울신문은 멈추지 않았다.51년 4월6일에는 서울수복후 첫 진중신문을 발행,「우리는 돌아왔다」는 사설을 게재함으로써 서울시민들을 감격에 젖게 했다. 6·25전란은 한편으로 서울신문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강화시키는 계기가 됐다.이는 자유당 발족을 전후해 통치기반의 공고화를 꾀했던 이승만정부의 구상에 의한 것이었다.하지만 이같은 상황에서도 서울신문은 정치부문에선 친정부적 성격을 분명히 하면서도 기타 문제에 있어서는 시시비비를 엄정하게 가리는 절묘한 균형을 취했다. 한편 50년대초 반공포로 석방·휴전협정 조인·한일회담 결렬 등 역사적 사건들이 쉼없이 전개되는 속에서도 서울신문은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사상초유의 인기와 시비를 몰고 왔던 소설 「자유부인」의 연재가 그것이다.54년 1월1일부터 그해 8월6일까지 모두 215회에 걸쳐 연재된 「자유부인」은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6·25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때 전후의 퇴폐적 분위기에 휩쓸려 허영과 향락으로 치닫는 여성을 묘사한 이 소설은 장안에 숱한 화제를 낳으며 소설의 윤리성과 창작의 자유에 관한 논쟁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1960년 4·19혁명은 서울신문에게 시련과 희망을 동시에 안겨주었다.4·19 그날 시위군중에 의해 사옥이 불타는 수난을 당한 반면,곧이어 출범한 제2공화국 하에서 서울신문은 「불편부당과 엄정중립」을 다시 표방할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된다.그러나 새출발의 기쁨도 잠깐,극심한 경영난으로 서울신문은 61년 5월9일부터 무기한 휴간에 들어갔다. 5·16 쿠데타는 서울신문에게 재기의 길을 열어주었다.7개월째 발행되지 못하던 서울신문이 집권층의 후원과 재벌들의 호의적 반응으로 그해 12월21일 속간된 것이다.이때부터 서울신문은 비약적인 사세신장을 이루었으나 한편으로는 5·16 군사정부와 뒤이은 제3·제4공화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길을 걷게 된다.특히 72년 10월 유신으로 빚어진 전환기에서 서울신문은 친정부적 성격을 굳히게 된다.서울신문의 성격상 당시로선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서울신문은 창간 30주년인 75년을 기점으로 사세중흥기를 맞게 된다.고속 오프셋 윤전기의 가동으로 신문발행의 전환기를 마련했고 ▲지령 1만호 기념 만호장학금 신설 ▲의료보험제 도입 ▲급여인상 등 사원복지를 크게 향상시켰다. 5공 출범한 81년은 서울신문으로선 새롭게 내실을 다지는 원년이 됐다.대중문화에 대한 욕구를 해소할 길이 없던 청소년층을 위해 「TV가이드」를 창간,대중문화를 선도했는가 하면 「예술과 비평」을 선보여 고급문화를 추구하는 독자들을 만족시켰다.바야흐로 종합언론사로서의 면모를 갖춰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신문은 이와 함께 국내 최고 종합일간지다운 면모를 다지고자 새 사옥 마련에 나섰다.82년 1월1일 태평로를 떠나 을지로 임시사옥으로 이사한 뒤 3년여에 걸친 대역사끝에 새 사옥을 마련한 것. 85년 1월1일 준공된 서울신문·프레스센터 사옥은 한국언론 제2세기의 개막을 알리는 전조였다.이때부터 서울신문은 쾌적한 환경에 최첨단 시설을 갖춘 「한국언론의 메카」로 자리잡았다.특히 이 시기에 도입된 CTS 제작시설은 신문발행사에 한 획을 긋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됐다.국내 신문사로는 최초로 CTS를 도입한 서울신문은 다른 신문사들의 부러움을 한껏 즐기며 신문제작 역사에 뚜렷한 이정표를 남겼다. 서울신문의 비약적 발전을 위한 사건은 또 있었다.그해 6월23일 「스포츠서울」의 탄생이 그것이다.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보다많은 스포츠 정보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자 창간한 「스포츠서울」은 30분만에 창간호 가판이 완전매진되는 등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면서 지금까지 정상의 스포츠·연예·오락 전문지로 군림하고 있다. 스포츠·연예·오락전문지 「스포츠서울」,시사주간지 「뉴스피플」,대중문화 전문주간지 「TV가이드」,여성월간지 「퀸」등을 자매지로 둔 서울신문은 이제 또한번의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증자를 통한 5세대 CTS와 최첨단 윤전기의 도입을 마무리한데 이어 「서울신문·스포츠서울 뉴스넷」이 1일 접속횟수 1백만을 돌파함으로써 전자신문계의 신기원을 이룩한 것이다.21세기에 진정한 정론지로서 독자들을 찾아갈 서울신문의 밝은 미래는 이미 시작됐다. □약사 1945년 △11.22 서울신문 창간 1946년 △3.1 제1회 「3·1기념 서울·인천간 왕복마라톤 경기대회」개최(77년 32회까지 존속) 1948년 △10.18 시사지 「주간 서울」 창간 1951년 △3.8 전란으로 휴간 △6.9 피란지 부산에서 서울 복귀 1953년 △8.16 첫 견습기자 공채 실시 △9.1 어린이신문 「주간소년서울」 창간 1954년 △1.1∼8.6 소설 「자유부인」연재 1956년 △10.18 언론사상 첫 한글판 제작 1958년 △10.1 신문사상 처음으로 조석간 발행 1960년 △4.19 시위군중에 의해 사옥 전소 △4.26 휴간 △6.27 속간 1961년 △5.9 경영난으로 휴간 △12.21 속간 1962년 △8.13 석간으로 전환 1966년 △2.9 한국 최초로 1백만원 고료 장편소설 당선작 시상 1968년 △9.22 대중 주간지 「선데이 서울」 창간 △11.22 전 지면에 걸쳐 한글전용 단행 1975년 △3.30 「주간 스포츠」 창간 △11·2 「주간 소년서울」 폐간 1978년 △10.5 보관자료 마이크로필름화 1981년 △7.18 청소년 주간지 「TV가이드」창간 1982년 △1.1 을지로 임시사옥으로 이전 1985년 △1.1 언론사상 처음으로 CTS 도입,태평로 신사옥 입주 △6.23 스포츠 전문지 일간 「스포츠 서울」 창간호 발행 1989년 △9.23∼10.18 파업 1990년 △6.23 여성월간지 「퀸」창간 1991년 △7.31 구로공장 준공 △12.31 「선데이 서울」폐간 1992년 △1.5 자매지 주간 「피플」창간 △7.3 대구인쇄본부 준공 △12.25 「피플」,「뉴스피플」로 제호 변경 1994년 △2.18 「깨끗한 산하지키기 운동본부」발족 1995년 △11.22 서울신문·스포츠서울 뉴스넷 개통 1996년 △1.29 서울신문·스포츠서울 뉴스넷 국내 첫 동화상 속보체제 시작 △10.1 전면 가로쓰기 단행
  • 벨라루시 1만명 시위/대통령 임기연장 항의

    【민스크 AFP AP 연합】 알렉산드르 루카센코 벨라루시 대통령의 개헌을 반대하고 언론탄압에 항의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17일 벨라루시 수도 민스크에서 벌어졌다. 1만여명의 시위대는 「우리는 언론자유를 원한다」,「폐쇄된 라디오방송국을 되돌려 달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국회의사당이 있는 독립광장으로 향하다,광장 외곽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저지하던 경찰과 충돌을 빚었다. 옛 소련식 정치체제를 공개적으로 지지해온 루카센코 대통령은 오는 24일 대통령의 임기를 현행 5년에서 7년으로 연장하고,대통령이 의회해산권,법관·선거관리위원·헌법재판소 재판관 및 일부 국회의원의 임명권을 갖도록 하는 등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 중,왕단 징역 11년형 선고/북경 인민법원/국가전복혐의 인정

    【북경 AFP 로이터 연합】 지난 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민주화시위를 주도한 중국의 대표적 반체제인사 왕란(27)에게 징역 11년형에 자격정지 2년이 선고됐다. 북경 제1중급인민법원은 30일 상오 9시부터 4시간동안 열린 선고공판에서 국가전복 기도혐의를 받고있는 왕의 혐의가 인정된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판결문에서 석방후 2년간 왕의 모든 정치적 권리를 박탈한다고 밝혔다. 이날 공판은 2백여명의 정·사복 경찰병력들이 법원 주변에 배치돼 기자들의 접근을 막는등 삼엄한 경계속에 진행됐으며 왕의 부모들은 아침 일찍부터 법원앞에 나와 무죄를 주장했다. 왕은 이미 민주화 시위 연루혐의로 4년간 복역한 바 있으며 이후에도 중국내 인권상황 개선과 정치범 석방을 요구하는 청원에 서명하는등 반정부 활동을 계속하다가 공식 기소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지난해 5월부터 약 17개월간 당국에 의해 구금돼왔다. 한편 재판을 앞두고 29일밤 홍콩에서는 1백여명의 시위대가 왕의 결백을 주장하며 가두행진을 벌였으며 전세계 저명인사 5백여명이 왕의 무죄를 주장하는 탄원서에 서명,이붕 총리에게 보내는등 세계 각국의 인권단체들이 중국의 인권문제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 파키스탄 야 요원/경찰,600명 검거/반정부시위 차단

    【이슬라마바드 로이터 연합】 파키스탄의 회교 근본주의 단체인 자마트 이 이슬라미당은 24일 경찰이 오는 27일 이슬라마바드에서 가질 예정인 반정부시위를 저지하기 위해 600명의 자마트당 행동대원들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콰지 후사인 아흐메드 자마트 당수는 기자회견을 통해 경찰의 검거 선풍에도 불구하고 자마트당은 예정대로 27일 1백만명이 동원되는 반정부 연좌시위를 의사당 앞에서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600명에 달하는 자마트당 행동대원 검거가 대부분 중부의 푼잡성과 아프가니스탄 접경지역인 서북부의 국경지역 성에서 지난 수일간 있었다고 밝혔다.
  • 대미 평화보장체제 제의 불응 비난(북녘 뉴스라인)

    잠수함을 통해 대규모 무장공비를 남파한 북한은 19일 한·미 양국의 「북침전쟁도발」이 실천단계에 들어서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에 대해 『절대로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내외통신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미국이 북한측의 새로운 평화보장체계 수립제안에 호응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미국의 호전분자들과 남조선 괴뢰들의 북침전쟁책동이 한계점을 이미 넘어서 극히 위험천만한 고비에 들어서고 있다』고 주장했다. ○부주석 박성철,김정일 숭배 촉구 북한은 19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백두산밀영」 창설60주 기념행사를 갖고 전체 당원과 근로자들에 대해 김정일을 절대 숭배하는 충신·효자가 될것을 촉구했다. 내외통신이 20일 평양방송을 인용,보도한 바에 따르면 북한 부주석 박성철은 이날 김정일을 「우리의 운명」 등으로 찬양하면서 전체 주민들은 『그 어떤 정세의 변화 속에서도 오직 장군님만을 절대적으로 숭배하고 천만리 길을 억세게 걸어나가는 참다운 충신·효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총련에 반정부폭력투쟁 선도 북한은 19일 한총련 조직에 대한 수사를 「폭압만행」이라고 모략·비방하면서 한총련 대학생들의 반정부 폭력투쟁을 선동했다. 내외통신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노동신문 논평을 통해 한총련 연세대 시위사건과 관련,검찰이 4백38명을 구속 기소한데 대해 『그들의 투쟁은 마땅히 온민족의 찬양을 받아야 할 일이지 결코 탄압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비호하면서 『남조선청년학생들은 애국학생들이 흘린 피의 대가를 천백배로 받아내고야 말 것』이라는 등 과격 폭력투쟁 활동을 부채질 했다.
  • 정규군사력 동원한 조직적 도발/무장공비사건 특징과 북 기류

    ◎전원 현역장교에 잠수함까지 이용/김정일 친위세력 군부 강경파 득세 지난 18일 강릉해안으로 침투한 북한 무장공비의 행태는 과거와 비교해 몇가지 면에서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다. 첫째,무장공비가 침투수단으로 잠수함을 이용한 것이다.북한은 그동안 대남공작원의 침투장비로 반잠수선이나 소형잠수정을 이용해왔다.대남공작원 침투용으로 이같은 잠수함이 포획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둘째,무장공비 전원이 「인민무력부 정찰국」 소속의 현역군인이며 단 한명의 사병도 없이 모두가 현역장교로만 구성됐다는 점이다.따라서 잠수함을 이용한 침투와 무장공비의 신분이 모두 현역군인으로 밝혀짐에 따라 이번 사건은 북한이 정규군사력을 동원한 조직적인 무력도발이 분명하다. 북한이 정규군사력을 동원한 점으로 볼 때 북한의 대남정책이 「긴장완화를 위한 대화」가 아니라 「대남교란을 노린 대결」노선으로 기울어졌음을 의미한다.경제개방을 통한 북한의 경제회생을 주장하는 대외개방파가 군부 강경파의 긴장조성주장에 밀렸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이미 지난해 10월 임진강을 통해 2명의 무장간첩을 남파한 데 이어 올해에도 수차례 군사력을 동원해 무력도발을 감행했다.예전처럼 대외적으로는 대화요구 및 유화제스처를 쓰면서도 뒤로는 무력도발을 준비해온 것이다.군부 실세서열 제1위로 꼽히고 있는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김광진차수가 지난 3월 담화에서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를 유지할 수 없게 된 상황』이라면서 군사대결을 강조한 이후 이번 무장공비사건까지 북한은 크고 작은 무력시위를 감행했다.4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3차례에 걸쳐 무장한 수백명의 군인을 진입시켜 중화기진지를 구축했고 6월에는 고속경비정 수척을 동원해 서해 연평도 남측해역을 침범하는 등 강경노선을 행동으로 보였다. 북한 군사전문가에 따르면 북한이 올들어 대남정책에 있어 전례없이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김일성 사망이후 강경파 군장성의 입김이 당정책결정에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군부로 대표되는 이들 강경파는 개방파의 대외정책이 흐름을 탈 때마다 제동을 걸고 나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부 강경파 가운데 현인민무력부장 최광은 68년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사건과 미 푸에블로함 피랍사건을 주도한 장본인이다.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김광진은 50년 민족보위성 후방총국 참모장으로,사회안전부장 백학림은 북한군 5사단 연대장으로 6·25전쟁에 참가한 인물이다.이밖에도 군참모장 김영춘 차수,군총정치국장 조명록 차수,인민무력부 보위국장 원응 희대장,작전참모장 김명국 대장,제3군단장 장성우 대장,중앙정치국 선전국장 한동근 중장 등이 군부를 좌우하고 있는 강경파로 알려져 있다.이들은 군최고사령관직책으로 북한을 통치하고 있는 김정일의 핵심친위세력이다. 군부 강경파는 남북대결과 긴장이 체제유지에 도움이 되며 우리정부와 미국으로부터 보다 많은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북한의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장 김정우가 나진·선봉투자포럼에 우리측 대표단이 불참하자 지난 14일 『앞으로 남북대화에 일체 응하지 않겠다』고 발언한 직후 무장공비가 남파된 것은 이런 의도가작용한 것으로 전문가는 분석하고 있다. 북한이 대규모 무장공비를 남파한 것은 지난 8월 한총련이 극렬한 반정부폭력시위를 벌인 것과 한국이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다는 시기적 고려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한총련시위를 통해 우리국민의 대공의식이 크게 약화된 것으로 오판,사회혼란을 획책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외통신에 따르면 북한은 남한사회의 교란과 주요인사 암살 등을 목적으로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와 「인민무력부 정찰국」 등에 약 10만명의 공작원을 보유하고 있다.특히 사회문화부에 「대남과」를 신설하는 등 대남공작활동부서의 기능을 최근 부쩍 강화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 메가와티 3차 조사/인니 반정시위 증인자격

    【자카르타 AP AFP 연합】 인도네시아 검찰은 지난 7월27일 발생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와 관련,인도네시아 민주당(PDI) 전당수인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49) 여사를 10일 증인자격으로 소환,조사했다. 검찰은 이날 7월 시위를 주도해 국가전복혐의로 체포된 좌익계 지도자 묵타르 파크파한과 부디만 수자트미코 인민민주당(PRD) 당수 사건의 증인자격으로 메가와티 여사를 소환했다고 밝혔다.
  • 「해방구」 만들려고 했다니(사설)

    경찰이 소위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하는 2개 대학 지하조직을 적발,20여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한창 정의와 젊음의 피가 끓어오를 나이의 청년학도들이 어쩌다 세계에 유례가 없는 부자간 독재권력승계의 통치논리,세계사의 흐름을 등진 주체사상에 현혹돼 그릇된 소신을 갖게 됐는지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특히 이중 2명은 한총련 폭력시위와 관련,이미 구속중이어서 예상되던 바대로 주사파지하조직이 한총련시위에 적극 가담하여 폭력시위를 부추겼음이 확인됐다. 대학내 주사파지하조직이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94년이후에만도 전국 대학에서 22개 조직 2백15명이 경찰에 검거됐다. 그럼에도 이번 서울대와 부산외국어대 주사파지하조직 검거가 특히 경종을 울려주는 것은 이들이 남한내의 소위 해방구 창출이라는 구체적 목표를 대규모 폭력시위가담이란 행동으로 옮겼기 때문이다.단순히 북한의 대남방송을 청취하며 주체사상을 학습하는 수준에 머문 것이 아니라 조직원을 적극적으로 한총련지도부나 총학생회에 진출시켜 이 조직을 배후에서 조종,대규모 시위등을 통해 남한내 「해방구」창출을 시도한 것이다. 서울대의 소위 「자주·민주·통일 애국청년선봉대」는 서울대를 조국통일·민족해방의 「성지」로 만들고 관악구를 민중과 함께 남한의 「해방구」로 만든다는 것을 행동목표로 설정하기도 했다.이들은 조직원에 대해 자신들을 제외한 타인 모두를 적으로 간주케 하고 혈서를 쓰게 하는 등 사회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시키는 세뇌작업을 통해 반미·반정부혁명투사로 만들었다니 기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학원내에 이같은 시대착오적 주사파 지하조직이 끊이지 않는 데 대해 누구보다 먼저 학부모와 교육자의 자기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숫자는 적지만 그 심각성은 수사당국이 알아서 처리할 남의 일로만 넘길 단계를 지났음을 경고치 않을 수 없다.
  • 좌익조직 「자주대오」/부산외대 12명 검거

    【부산=이기철 기자】 북한 김일성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삼아 학내 과격시위를 주도하며 반정부·반미투쟁을 전개해온 좌익학생조직 「자주대오」 조직원 12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부산경찰청은 4일 부산 남구 우암동 부산외국어대 자주대오 총대장 김태헌(22·총학생회장·독어4)·부대장 원태식(25·총학생회 부회장·인도어4)씨 등 10명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은 또 군복무중인 장정호(23)·김영준(22)씨 등 2명을 군기관에 넘겼다. 이들은 지난 89년부터 이 학교 독어과를 중심으로 혁명독서부를 구성,조직원을 확대해오다 94년 12월 「자주대오」라는 조직을 완비해 총학생회를 장악한 뒤 각종 반정부 및 반미투쟁을 주도한 혐의다. 경찰 조사에서 이들은 김일성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정치학교를 개설,주체사상의 주요내용인 5대혁명관인 수령관·조직관·대중관·인생관·도덕관을 학습하는 한편 주체사상총서 읽기 등을 주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 「한총련」 빌미 대남비방 강화/관영매체 총동원 학생선동 계속

    ◎“통일투쟁 탄압땐 대화 거부” 협박 김하기(소설가)씨 송환을 계기로 잠시 유화적인 자세를 보였던 북한이 김영삼 대통령의 8·15제안을 거부한채 계속 「한총련」을 물고 늘어지며 대남비방을 강화하고 있다.그러면서도 다른 한쪽에선 경제와 식량지원을 노려 추파는 보내는 양면성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지난달초부터 「범민족대회」와 「범청학련통일대축전」 등의 행사와 관련,우리사회의 혼란조성과 국론분열을 부추기기 위해 연일 상투적인 대남모략·선전·선동활동을 강화해왔다.북한의 대남비방과 반정부투쟁선동은 노동신문과 중앙방송,평양방송 등 관영매체들의 시사논단,논평에서부터 대담,성명 심지어 대회에 참가한 해외친북인사들까지 내세우는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고 있다. 한총련을 「통일애국세력」으로 치켜세우고 한총련의 시위를 「의거」,「최고의 애국」으로 미화해온 북한은 8·15가 훨씬 지난 뒤에도 정당과 사회단체들을 동원,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인신공격과 함께 한총련에 대해 지속적으로 반정부투쟁을 강화하라고 선동하고 있다.특히 북한은 지난 29일 최근 우리 정부의 한총련사태 대응이 남북관계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고 지적,한총련을 핑계삼아 대화거부를 협박했다.양형섭 조국통일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날 중앙방송을 통해 담화를 발표하고 『남한 당국이 청년학생들의 통일투쟁을 우리(북한)와 연관시켜 친북행위니 이적행위니 하는 구실밑에 탄압했다』면서 『남한당국의 대응은 북남관계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고 주장 했다.양은 『우리(북한)와 대화를 하자면서 학생들을 친북이적행위로 몰아 범죄시하는 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위협하면서 『이는 대화와 평화통일을 전면 부정하는 남북사이의 대결선언,전쟁선언 외에 다른 것으로 해석될 수 없다』고 협박했다.양은 이어 『우리(북한)는 남한 당국자가 통일운동을 범죄시하고 남북관계를 극단적인 대결관계로 몰아가고 있는 한 그 어떤 대화나 화해에 대해서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고 강변했다. 이와관련,통일원 당국자는 『북한측이 4자회담 수용촉구 등 우리측의 관계개선 요구에 대해 무성의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을 한총련 탄압을 빌미로 이를 합리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북한은 우리측이 제안한 적십자회담을 외면하고 대통령의 8·15제안을 거부하면서도 우리측에 대해 북경쌀회담 재개를 탐색하는 한편 나진­선봉자유경제무역경제지대에 대한 우리 기업인들의 투자와 참여확대를 요청하는 2중성을 보이고 있다.
  • 김 대통령 “좌경 뿌리뽑겠다” 의지 단호

    ◎원로초청 청와대 오천서 거듭 강조/방치땐 유사시 국가안보 위협/이념적 측면서 국민단합 절실 한총련 학생들의 연세대 불법시위가 진압된 이후에도 김영삼 대통령은 연일 좌경폭력 세력을 척결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만나는 사람들마다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게 낫다.연세대에 한번 가보라』는 충고를 하고 있다.국민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총련의 이적행위를 뿌리뽑겠다는 의지가 강력해 보인다. ○…김 대통령이 이처럼 단호한데는 한총련 시위의 폭력성,불법성때문만은 아니다.우리 사회의 좌경세력을 방치했을때 통일에 장애가 됨은 물론 유사시 국가안보에도 해를 끼친다는 우려를 깔고 있다. 김 대통령은 북한이 위기상황에 처한 것과 관련,올해와 내년이 통일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전했다.관계자는 『북한이 그들의 정치·경제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혁,개방의 쪽으로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우리와 미국이 도와준다해도 체제유지가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그는 『북한이 붕괴될때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른다는 점,그리고 북한의 붕괴에 따른 부담을 우리가 모두 져야한다는 점때문에 이념적 측면에서 국민적 단합이 중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권위주의 정부를 거치면서 좌경세력이 반정부 민주화운동과 섞이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던 것을 정리,한총련 사태를 이념문제를 확실하게 정리하는 계기로 삼아야한다는 지적이다. ○…김대통령이 24일 낮 서영훈 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 상임대표 등 각계 원로 12명을 청와대로 초청,오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도 불법시위학생들을 단호히 처리해야 한다는데 모두의 의견이 일치했다. 김대통령은 『한총련시위는 도시게릴라전이며 그들이 사용했던 살인적 방법을 생각하면 경찰관이 1명만 희생된게 불행중 다행이라고 할 정도』라고 개탄했다.이어 『한총련의 뿌리는 오래 된 것이며 그 뿌리가 학생들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고 지적한뒤 『한총련의 뿌리를 뽑는 것이 대통령으로서 나라를 위해 해야하는 가장 중요한 일의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상임 대표,백낙환 인제대 총장 등은 『시위는 진정됐으나 사태가 수습된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적당히 풀어주는 과거의 방식을 답습해서는 안된다』고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을 촉구했다. 고흥문 전 국회부의장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여야 정치권이 생각이 같아야하며 일부에서 학생들을 대변하는 성명을 발표해 찬물을 끼얹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 설땅 없는 한총련/구본영 정치부 기자(오늘의 눈)

    밀입북한 한총련 소속 대학생 2명이 21일부터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는 소식이다.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해프닝의 연출자는 역시 북한당국인 것같다.북측이 이를 소재로 22일부터 언론매체를 총동원,대남 선동공세를 펴고 있음이 이를 입증한다.북한내 각종 정당. 사회단체 명의의 성명을 통해 한총련 폭력투쟁을 거듭 비호. 찬양하면서 지속적인 반정부투쟁을 부추키고 있는 것이다. 이 와중에 한총련 산하 서총련 소속 학생들이 22일 야당당사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상황은 차라리 희화적이다. 이들은 혹시 우군이 아닌가 하고 찾아갔던 야당측으로부터 철저히 불청객 취급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연대사태로 구속된 동료들의 석방을 관철시키기 위해 국민회의와 민주당 당사를 농성장으로 제공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부됐다. 더욱이 『그동안의 친북발언을 반성해야 한다』는 등 핀잔까지 들어야 했다. 이쯤되면 연대 사태 이후 한총련의 설땅이 얼마 만큼 좁아진 것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국민정서와는 동떨어진 급진성향의 논리에 근거한 「통일운동」과 과격시위가 결과적으로 그들의 입지를 옥죈 셈이다. 따지고 보면 8·15 범청학련대회를 무대로 한 한총련의 통일운동은 처음부터 무모한 도박이었다. 연방제 통일,미­북 평화협정 체결등 북한의 주장에 편승했기 때문만은 아니다.무엇보다 일부 핵심지휘부가 주체사상이라는 시대착오적인 이념에 경사돼 고립무원의 처지를 자초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주체사상은 이미 이 지구촌에서 「헐벗은 신화」에 다름 아닌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 주체사상에 기반을 둔 이른바 「우리식 사회주의」가 북한당국으로 하여금 온세계를 상대로 식량구걸을 하도록 강요하고 있는 까닭이다. 농성중인 학생들과 북한당국이 금세기의 석학 폴 새뮤엘슨 교수의 경구에 귀를 기울였으면 싶다. 새뮤엘슨 교수는 대안이나 비전 제시없이 그의 주류경제학에 시비를 거는 신좌파학자들에게 이렇게 충고했다.『여러분이 후세에게 알려지기를 원한다면 빛과 과실을 남기는 것 이외엔 길이 없다』고.
  • 대학운동권 계보(한총련의 실체:5)

    ◎강경주사계 「자주파」가 조직 장악/강력 반정투쟁 주장… 분파싸움 승리/한총련 조통위·정책협 등 실질 주도/온건NL파·PD파완 앙숙… 조직 별도 운영 지난 93년 전대협의 후신으로 출범한 한국 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은 학생운동을 주도하는 전국적인 조직이다. 운동권내의 모든 계파는 물론 비운동권도 포함,전국의 거의 모든 대학의 총학생회를 산하에 거느리고 있다. 한총련은 출범 당시부터 민족해방(NL)계열이라는 학생운동권내의 다수파가 장악해 왔다. 이번 연세대 폭력시위를 주도한 현 제4기 한총련의 지도부는 NL계 가운데서도 북한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맹신하며 강경파로 분류되는 「자주파」다. 「자주파」의 한총련 장악은 학생운동의 쇠퇴와 이에 따른 운동권 내부의 치열한 분파투쟁에 따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생운동은 지난 87년 「6·29」선언 이후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줄곧 쇠퇴의 길을 걸어왔다. 특히 문민정부의 출범과 함께 반독재 투쟁이라는 명분이 퇴색하면서 학생운동은 학생들의 관심권으로부터 급격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지난 94년 제2기 한총련 출범 직후 서강대 박홍 총장의 운동권 실체폭로도 운동권을 위축시키는 데 적잖은 기여를 했다.물론 대외적으로 소련 등 동구권의 몰락도 운동권의 사상적인 기반을 와해시키는 데 일조했다. 이에 따라 90년대 초반만해도 전체 대학생의 5% 수준까지 달했던 운동권 추종학생들이 올해는 0.5%도 안되는 3만여명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이 당국의 분석이다. 지난해의 「8·15 통일 대축전」에는 2만여명이 참가했으나 올해는 그 규모가 8천여명으로 줄어든 것이 이를 반증한다. 학생운동이 이처럼 몰락의 길을 치닫자 「과감한 정치투쟁에 의한 운동권의 위상제고」를 내건 「자주파」가 운동권내 분파투쟁에서 승리,올해 한총련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현재 운동권에서 「자주파」 등 NL계열과 대립하는 분파는 우리 사회를 계급사회로 규정,계급투쟁을 우선시하는 「민중민주주의」(PD)계열이다. 80년대초 삼민투시절 운동권을 장악했던 PD계는 지난 86년 건국대 사건 때 지도부가 대량 검거되면서 87년부터 주도권을 NL계에 빼앗겼다.소수파로 전락한 PD계는 한총련에 가입해 있으면서도 92년부터 「전국 학생연대」라는 별도의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이들의 영향력은 극소수의 조직원과 서울·대전·부산지역 11개 대학 학생회에만 국한돼 있다. 이들은 지난해 한총련 의장자리를 놓고 NL계와 표대결을 벌인데 이어 올해는 한총련의 차기 주도권을 겨냥,꾸준히 세력을 규합 중이다.이들은 올 한총련 대의원대회 및 출범식 때는 NL계의 간부독점과 친북적 투쟁노선 결정에 반발해 독자적인 대회를 가졌다.이번 연세대 「통일축전」에도 참가를 거부,서강대에서 독자적인 8·15 기념행사를 가질 정도로 NL계와는 앙숙관계다. NL계내에서도 2개의 분파가 있다.지난 94년 김일성사망이후 NL계에서는 김정일체제 추종문제로 분파투쟁이 일어나 「자주파」와 「사람사랑파」로 분열됐다. 「자주파」는 학생운동이 온건노선으로 방향을 틀면서 쇠퇴했다며 운동권의 입지확보는 강력한 정치투쟁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논리를 내세운다.김일성·김정일 세습체제도 사실상 인정하고 있다. 타 계파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올해 한총련의 주요 목표를 반미반정부 투쟁과 연방제·국가보안법 철폐 등 친북적 정치투쟁으로 결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들은 지금까지 한총련의 단결을 위해 간부의 일정수를 다른 운동권 분파에 배분하던 전례를 무시하고 각 지역 총련의장·조통위원장은 물론 정책협의회·중앙상임위 등 요직을 독식했다. 「사람사랑파」는 주체사상에서 한발 비켜서는 대신 정당형태의 합법운동을 지향한다.따라서 「자주파」에 비해 온건파로 분류된다. 이들은 지난 15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자주파」가 주도한 「통일 대축전」과는 별도의 기념행사를 가질 정도로 「자주파」와는 담을 쌓고 있다. 이밖에 NL 및 PD계 양쪽에서 이탈한 세력들이 결성한 「21세기 연합」이 6개 대학 총학생회를 장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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