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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황되고 무모한 평양밀행(사설)

    전대협이 학생 두 명을 밀입북시키기 위해 면밀한 사전계획에 따라 출국시킨 사실은 우리에게 놀라움과 안타까움을 안겨주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24일 배낭족으로 위장,김포공항을 빠져나간 남녀 대학생 1명씩이 현재 베를린에 머물고 있으며 이들은 7월 중순께 북한으로 들어가 평양에서 열릴 예정인 「핵문제 국제회의」에 참석한 뒤 북한대학생들과 함께 백두산에서 판문점까지 「조국통일행진」도 펼칠 계획이라고 한다. 이들이 북한에서 어떤 언동을 할 것인가는 이미 임수경양이 시범을 보여준 바 있어 별관심이 없지만 우리가 이번 사건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전대협이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북한의 「남조선해방전략」을 그대로 추종하는 좌경 세력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는 데 있다. 87년에 발족,대학생들의 반정부 투쟁을 주도하고 있는 전대협은 겉으로는 학원과 사회의 민주화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 실상은 우리 사회의 혼란을 부추기고 이땅에 민중혁명정부를 세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반국가적 집단임을 그들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 지난 5월의 잇단 가투에서 살포된 각종 불온유인물도 우리는 전대협의 소행으로 판단하고 있다. 일부 재야인사들은 전대협의 밀입북 기도를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순수한 열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강변할지 모른다. 임수경양의 밀입북 때도 그들은 그렇게 말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녀의 북한에서의 언동이 남과 북에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묻고 싶다. 북쪽에서는 허황된 통일열기를 확산시키면서 김일성 우상화 놀음을 부추겨 주었고 남쪽에서는 다소의 혼란과 함께 그들이 매도해 마지 않는 공안정국을 자초했을 뿐이다. 남북관계도 개선이 아니라 오히려 악화시키는 빌미를 제공했다. 지금 대부분의 국민들은 전대협과 일부 재야세력의 불순한 언동에 고개를 돌리고 있으며 비판과 질책을 서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국민의 뜻은 6·20 시·도의회선거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전대협은 밀입북시키려 했던 학생들을 하루빨리 귀국시켜 부모의 품으로 돌려 보내야 하며 당국은 이 조직의 배후를 철저히 추적,불순세력을 색출해야 한다. 우리는 전대협의 밀입북 기도가 북한의 지령에 의한 것으로 믿고 있다. 북한과의 사전협의 없이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최근 전대협의 반정부시위와 분신자살 등을 「통일을 앞당기는 애국적용단」이라고 찬양하고 연일 학생들의 소요확산을 부채질하고 있다. 북한의 이같은 대남 선동이 무엇을 노리고 있는가를 정확히 파악하지도 못한 채 가투에 나서고 있는 학생들을 많은 국민들은 안타까운 심경으로 지켜보고 있다. 우리는 전대협에 가입한 학생 모두가 불순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민주화라는 그럴듯한 명분에 이끌려 맹목적으로 이 조직에 들어간 학생들은 이제 과감히 그 울타리에서 뛰쳐나와야 한다. 그것이 학생의 본분에 맞는 일이며 우리 사회의 안정에도 도움을 주는 일이다.
  • 「6·29」 4주년 평가와 과제

    ◎“지자제로 대미”… 민주화 정착단계 진입/제도·법령 꾸준한 정비,“탈권위” 큰 진전/“대화와 타협” 정치문화 쇄신이 숙제로 노태우 대통령의 「6·29선언」은 29일로 4주년을 맞는다. 6·29선언은 한마디로 권위주의 체제를 청산하고 민주체제에로의 이행을 약속한 것이라고 할 때 노 대통령은 취임 후 3년4개월 동안 이를 착실히 실천해 왔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금년 3월과 지난 20일 실시된 시군구 및 시도의회의원선거가 마무리됨으로써 6·29선언은 사실상 실천을 완료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29선언 8개항을 살펴보면 ①조속한 대통령직선제 개헌과 새 헌법에 의한 평화적 정부이양 ②대통령선거법개정과 공명정대한 선거관리 ③시국관련 사범의 대폭석방 및 사면·복권 ④인간존엄성의 존중과 기본권의 최대한 신장 ⑤언론기본법 폐지 등 언론자유의 창달 ⑥지방자치,대학자율화,교육자치 등 사회 모든 부문의 자치와 자율보장 ⑦정당활동의 보장과 대화·타협의 정치풍토 마련 ⑧과감한 비리척결로 밝고 맑은 사회건설 등이다. 이 가운데①②③항은 6공출범 전후로 모두 실천되었고 ④⑤⑥항은 대통령취임 후 관계법의 민주적 개폐와 실질적인 운영을 통해 보장되었으며 ⑦⑧항도 꾸준히 진전돼 왔다. 다만 교육자치,타협의 정치풍토,비리척결부문은 실천과정에 있거나 아직도 미흡하다는 평가가 없지 않다. 6·29선언을 항목별로 미시적으로 점검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4년을 넘기는 마당에서는 좀더 거시적으로 정치적 시각에서 평가하는 것이 적절한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권위주의에서 민주화로 이행하는 전환기에 관한 국제비교연구의 석학인 후안린츠 교수(미 예일대)의 「틀」을 잠시 원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스페인,포르투갈,중남미,그리스의 사례를 비교연구해 온 그는 권위주의→민주화 전환단계를 자유화단계와 민주화단계로 나누고 민주화단계는 다시 ▲민주화의 개시 ▲민주화의 실현 ▲민주화의 공고화로 세분하고 있다. 자유화의 단계는 억압의 해제를 의미하며 여기에서는 법률제도의 개정,억압담당기관의 축소,반대인사의 공인이 이뤄진다. 여기에 우리의 경우를 대입해 보면 민주주의제도화와 관련한 법령은 그 동안 1천8백여 건을 정비했고 안기부·보안사(현 기무사) 등 과거 인권억압기관으로 불리던 기관들은 기구정비와 함께 그 운영을 크게 쇄신했다. 또한 과거 반정부 재야인사들이 제도권정당에 대거 흡수돼 야당으로 정치활동을 하고 있고 정치적으로 현 정권을 반대하고 있다고 해서 특별히 탄압을 하지는 않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크게 보아 자유화단계는 넘어선 것으로 평가된다. 민주화단계는 민주주의방식에 의한 경쟁시대가 열리는 것으로 이 중 첫 단계인 민주화개시는 여야합의에 의한 6공헌법의 발효,민주화의 제도적 지표라고 할 수 있는 언론자유,사법권의 보장으로 이미 이뤄진 상태이다. 「민주화」의 두 번째 단계인 민주화의 실현은 공정한 선거관리가 보장되는 자유로운 선거,결사·집회의 자유,지방자치의 실시가 되는 단계이다. 민주화의 세 번째 단계인 민주화의 공고화는 민주화가 제도적으로 완성되는 것은 물론 실질적으로 정착되는 것을 뜻한다. 6·29선언 4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한국의 「권위주의→민주화전환단계」는 과연 어디쯤 와 있겠는가를 잘라 말할 수는 없으나 대체로 민주화의 실현과정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김학준 대통령정책조사보좌관은 이에 대해 『우리의 민주화 위상은 「민주화의 실현」으로부터 「민주주의의 공고화」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면서 『이는 대국민 민주화의 약속인 6·29선언이 사실상 모두 실천되었음을 의미한다』고 풀이했다. 6·29선언과 관련한 노 대통령의 앞으로 남은 과제는 민주화의 공고화 즉 민주주의의 정착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치문화를 개선해야 한다. 정치문화개선의 구체적인 방법의 하나는 정치풍토의 쇄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풍토쇄신은 노 대통령 자신만의 의지로 이룩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유권자가 함께 노력할 때 가능하다는 점에서 어쩌면 6·29선언의 완성은 우리 국민 모두의 과제라고도 생각된다. 좀더 현실적인 과제는 앞으로 남은 지자제단체장선거,14대 총선,차기대통령선거 등의 정치일정을 순조롭게 진행시키는 것이다. 이같은 정치일정을 마무리짓게 되면 우리의 민주화는 「실현」단계에서 「정착단계」로 진입하게 될 것이며 「6·29선언」도 명실상부하게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 광역의회선거 관련 북한 연일 모략·비방

    【내외】 북한은 23일 민자당의 압승으로 끝난 광역의회의원선거와 관련,『폭력과 부정협잡으로 날조해낸 용납못할 범죄행위』라고 모략·비방하면서 한국민들의 「지속적인 반정부투쟁」을 격렬 선동했다.
  • 북한,조총련청년 반한선동 밀봉교육/타스통신 전 평양특파원 폭로

    ◎평양서 40일씩 군중 동원방법등 집중주입/한국학생층 시위 부추기려 다수 서울 잠입 북한은 한국에서의 반정부시위를 선동할 목적으로 조총련계 청년들을 한 번에 20명씩 평양으로 끌어들여 40일 정도씩 여러회에 걸쳐 비밀교육을 실시한 사실이 소련의 한 언론인에 의해 폭로됐다. 지난해 5월까지 7년3개월간 타스통신 평양특파원으로 지내다 추방당한 알렉산드르 제빈씨는 타스통신 발행의 시사주간지 「에코 플라네트」 최신호에 기고한 「평양도심에서의 어느날」이라는 기사에서 이같은 내용을 밝혔다. 제빈씨는 북한에서 특별교육을 수료한 조총련계 청년들이 일본에 돌아온 후 북한당국의 지시에 따라 한국인 관광객,특히 젊은층을 대상으로 반정부 활동을 벌이도록 적극 권유했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바 있는 제빈 기자는 한국 언론종사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입북훈련을 받은 조총련계 청년들 가운데 다수가 『한국으로 들어가 반한활동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그의 기사의 요약이다. 『한국에서는 정치제도나 특히 주한미군문제로 반정부·반미시위가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나 반소시위는 흔치 않은 일이다. 그러나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간 제주정상회담을 놓고 한국의 급진적 학생들이 항의시위를 벌였다는 서울발 AP통신 보도를 보고 평양의 어느 술집에서 있었던 재일교포 청년들과의 만남이 기억에 떠올랐다. 평양 중심 대동강 기슭에 있는 이 술집은 경화만을 받는 특별한 곳으로 동경이나 홍콩처럼 흥청대는 분위기였으며 김일성 배지를 가슴에 단 사람들이 가격을 아랑곳하지 않고 마셔대고 있었다. 손님 가운데 북한인은 별로 없고 거의가 재일교포 청년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조총련계였으며 필자가 만난 김호일은 일본 모리오네지방 조총련 책임자였다. 김을 통해 그의 동료 김상호·김배봉·김재진과도 인사했다. 이들 청년들은 「우리는 40일 동안 사회주의 조국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과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의 혁명적 위업을 연구했으며 동시에 조국통일사업에 관한 문제들을 공부했다」고 말했다. 필자는 대화를 통해 이들이 「반인민독재투쟁을 위해 군중을 어떻게 동원해야 하는가」를 집중적으로 연구했음을 알게 됐다. 그들은 분명히 「반민족적 체제와의 투쟁에 인민이 앞장서야 할 것」이라는 명제하에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과정을 졸업한 사람들은 일본으로 돌아가 반한 선전자료들을 한국의 보통사람들에게 보내는데 적극 참여하도록 지시받았다는 것이다. 자료를 보내는 방법으로는 일본을 관광하는 한국인들에게 접근,주소를 알아낸 후 이 주소를 통해 선전물을 발송토록 했으며 조총련계가 한국으로 들어갈 경우 친척·친구와 특히 젊은층을 대상으로 선전활동을 벌이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선전의 주요목적은 한국인에 대해 평양의 인상을 좋게 하고 조국통일에 대한 북한노선을 심어주는 반면,서울측은 통일에 대한 말로만 떠들고 실천을 하지 않고 있다는 식으로 강조하는 데 있었다. 비밀교육을 받은 재일교포 청년들은 이미 한 번 이상 북한을 방문했던 것으로 확인됐는데 이들은 평양으로 떠나기 전에 일본정부에 대해 「친지방문」이라는 구실을 항상 내걸었다. 그러나 이들이 북한체류중 친지를 방문한 것은 단 한 번뿐이고 그 나머지는 이같은 비밀강습을 받는 데 보낸 것이다』
  • 흑인참정권 보장이 최대과제/남아공 「주민등록법」폐지와 정치적 장래

    ◎서방 경제제재 풀리면 개헌 미룰 가능성/흑인끼리 종족분쟁,주도권 다툼도 문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정권이 주민등록법을 폐지함으로써 그 동안 전세계적으로 악명높은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을 가능케 했던 법률적 차원의 근거들이 일단 모두 제거됐다. 이에 따라 그 동안 「요람에서 무덤까지」 극심한 차별대우로 끊임없는 유혈충돌사태를 빚어온 흑백분규종식 문제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이제 남은 걸림돌은 투표 및 선거권 등 흑인들의 참정권을 제한하고 있는 헌법의 개정과 정치범 석방 등 두 가지 가장 핵심적인 문제들이다. 프레데릭 데 클레르크 남아공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행한 지난해 2월 의회연설에서 인종차별정책의 폐기와 흑백간의 타협모색을 선언한 이래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등 반정부단체를 합법화하고 ANC지도자인 넬슨 만델라를 투옥 된지 28년 만에 석방했으며,지난해 5월부터는 개헌문제를 놓고 만델라와 협상을 벌이는 등 꾸준히 약속이행작업을 벌여왔다. 지난달 재판없는 구속과 언론검열을 허용해온 국가보안법을개정했고 이달초 인종간의 주거지를 구분해 놓은 집단거주지역법과 전국토의 87%를 백인에게 할당한 토지법을 폐지한 데 이어 이번 주민등록법 폐지로 법률적인 문제해결은 일단 마무리된 셈이다. 물론 편의시설이용법이 폐지됨에 따라 흑인자녀도 비교적 시설이 좋은 백인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되기는 했지만 의무사항이 아니고 학부모 7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데다가 대부분의 흑인들이 비싼 학비를 부담할 능력마저 없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예전과 다를 바 없는 등 피부에 와닿는 변화는 많지 않다. 때문에 흑인들은 이같은 법률차원의 개선작업도 환영하기는 하지만 자신들에게도 참정권을 부여하는 개헌이 하루빨리 이뤄져 흑인들의 생활수준 개선 등 보다 근본적이고도 급속한 해결책이 마련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개헌을 이룩하기까지는 아직도 넘어야 할 험난한 산들이 많다. 3천만명의 흑인에 비해 5분의1 정도인 6백만명에 불과한 소수 백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제까지의 법률폐지작업은 정권과는 무관하면서도 전세계의 경제제재조치를벗어나기 위해 불가피한 양보였지만,개헌은 차기선거 및 정권창출로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계속 주도권을 잡으면서 지연작전을 펴고 있다. 이에 반해 ANC는 제헌의회 및 임시거국정부 구성을 주장하고 있다. 반백인 투쟁단계에서는 공동보조를 맞추었던 흑인들도 막상 개헌과 선거가 눈앞으로 다가오자 종족과 파벌간에 분열상을 드러내고 있다. 호사족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ANC가 백인정부와의 협상을 독점하자 최대종족인 줄루족의 인카타자유당(IFP)이 창과 도끼 등을 무기로 호사족에 대한 습격을 종종 벌여 지난해 ANC합법화 이후에만도 5천여 명의 사망자를 냈다. 이념적으로도 ACN가 전반적인 사회변혁과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중도좌파라면 IFP는 흑백분리통치 등 보수개혁과 자본주의를 앞세운 우파이며 공산당과 범아프리카회의 등 극좌파들도 제각각 협상참가를 주장하고 있다. 개헌 후 IFP 등 보수흑인집단과 연합해 재집권을 노리고 있는 백인들의 국민당정권은 이같은 흑인들간의 갈등에 내심 흐뭇해하고 있다. 따라서 내달쯤 적당한 수준에서 정치범이 석방되고 미국 등 세계각국의 경제제재가 완화된다면 개헌은 더욱 요원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부 백인들이 비록 심한 반발을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인종차별정책 폐지는 이제 되돌이킬 수 없는 대세다. 그러나 그 동안 우월주의에 사로잡힌 백인과 억압에 짓눌려온 흑인들이 앞으로 슬기로운 타협점을 찾아내고 방종이 아닌 자유를 몸에 익히기까지에는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 같다.
  • “학내문제 해결에 학부모동참 긴요”/노 대통령­대학총장 대화내용

    ◎“과감한 교육투자로 면학분위기 부축/운동권 1% 불과… 사회전체가 치유해야”/건의사항 노태우 대통령은 18일 낮 서울·고대·연세대 등 대학총장 30명을 청와대로 초청,오찬을 함께하며 학원문제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박영식 연세대 총장=교수가 교내에서 폭행을 당하고 사진이 밟히고 총리가 폭행을 당하는 등 대학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학의 운동권은 1%에 불과하고 99%가 학업에 열중하고 있으나 이 1%가 학원을 장악하여 물리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교직원과 동창회,그리고 학부모와 국민들이 나서고 있어 전과는 달라지고 있습니다. ▲노 대통령=총리폭행사건을 계기로 대학 스스로 자성과 책임을 바탕으로 대학자율을 이루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박홍 서강대 총장=70∼80년대에 종교인의 양심으로 소외된 계층에 관심을 갖고 반정부투쟁도 해봤습니다만 지금은 그때와는 전혀 다릅니다. 1%의 운동권이 문제이나 이들의 공통점은 어릴 때부터 인간적 사랑이 결핍돼 있고 모든 것을 한 단면만 보면서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정당화하려 하고 있습니다. 김일성 주체사상이나 마르크스 레닌사상 등 세계적으로 퇴물이 되고 있는 것을 읽고 목숨까지 바치는 광신자가 되어 있습니다. 다행히 최근 대학뿐만 아니라 학부모,언론 등 사회전체에 이 문제를 치유하려는 공감대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노 대통령=대학이 자율로 나갈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을 과감히 해나갈 것입니다. 이제는 민주주의를 하는 입장에서 통치의 편의를 위해 무엇을 하지는 않습니다. 학생들을 북한에 과감히 보내는 것을 나도 찬성하지만 북한이 공작적 차원에서 전대협 일부 학생들만 받아들이려고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장을병 성균관대 총장=총장이 된 지 넉달밖에 되지 않았으나 여러 가지 일을 겪어 임기가 다 된 총장이 부럽습니다. 김귀정양 사건 때 중재에 니서면서 학생들이 화염병을 스스로 제거하지 않으면 앞장서지 않겠다고 했었습니다. 한 트럭분의 화염병이 수거됐지요.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그리고 정부와 학생간의 불신의 벽을실감하기도 했습니다. 1%의 운동권을 내버려서는 안 되며 정부도 이들과의 대화에 인색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총장에 취임한 자체가 민주화의 가시화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노 대통령=민주화를 가속화해 달라는 사람보다는 너무 급속하다며 점진적으로 해 달라는 국민의 수가 더 많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민주화는 가속화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경찰병원에서 화염병으로 얼굴이 일그러진 경찰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이제 폭력은 안 된다는 국민의 공감대가 생긴 만큼 학원문제를 해결하는 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희집 고대 총장=고려대학은 재작년까지는 시위 등으로 소연했으나 작년과 올해 아주 조용합니다. 동문들이 학원사태 개선에 나서고 교수가 움직이고 학부모가 동참하고 주민들까지 나서고 있어 사태가 나아지고 있습니다. ▲노 대통령=우리는 치맛바람이라는 말이 말해 주듯 초·중·고등학교까지는 자녀들에 관심을 가져오다 대학에만 들어가면 무관심해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대학문제의 해결에 학부모들의동참이 바람직합니다. ▲윤형섭 교육부 장관=교수들이 운동권학생이 극소수라고 말하고 있는 데는 동감하나 극소수이니 위험하지 않다는 데는 동감하지 않습니다. 병균이 아무리 적어도 저항력 없는 몸에 들어가면 차명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현승종 한림대 총장=대통령의 말씀처럼 교육에서 스승의 교권확립이 기본이며 모든 교육자들도 교권이 무너졌다는 데는 공동의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학생이 스승을 스승으로 여기지 않으면 교육이 되지 않습니다. ▲조완규 서울대 총장=6·29선언 이후 제적생 1천명 이상이 복교를 하여 이들로 인해 대학이 혁명기자화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을 했으나 다행히 이들 학생들이 발붙일 바탕이 없어져 전체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아침 8시만 되면 도서관에 자리가 없을 정도입니다. 대학은 자율이 문제인데 한때 일부 교수들이 학생들에 대한 징계를 기피하려는 경향도 있어 어려움이 컸었습니다. 정부는 교육투자를 점진적이 아닌 혁명적으로 하여 대학다운 대학으로 만들어야 우리 교육이 발전할수 있습니다. ▲노 대통령=6·29선언 후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연설을 할 때 미 국민들이 한국의 반미감정을 걱정하는 데 대해 나는 젊은세대가 민족적 자존심을 찾는 것이라고 얘기했었습니다. 세계의 많은 지도자들을 만나보니 오히려 갈등과 문제가 있는 나라가 발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모든 문제를 녹이는 용광로라고 생각하고 인내와 포용으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그래서 약한 대통령,물대통령이라는 소리도 들었습니다만 나라 전체는 발전적 방향으로 나가고 있으며 운동권 학생문제도 시간이 문제이지 해결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총장들께서는 대학이 희생을 극소화하고 대학 본연의 모습을 되찾도록 자율노력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 이적 유인물 수사/경찰/국민대회때 10종 발견

    경찰이 재야·학생들의 집회장소에서 발견된 이적·용공성 유인물 10종에 대한 일제 수사에 나섰다. 9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 8일 서울을 비롯,전국 6개 도시에서 열린 재야측의 이른바 제5차 국민대회장에서 총 25종의 유인물이 발견돼 이를 분석한 결과 「노정권 타도와 임시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학생투쟁본부준비위」 등의 이름으로 된 유인물 2종이 이적성을 보였으며 「서울대 특별위원회 연석회의」 등 명의의 유인물 8종이 용공성,나머지 15종이 반정부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이에 따라 수사전담반을 편성,이들 유인물의 제작·배포자의 검거에 나섰다.
  • 「총리폭행」 사건 국회 교청위 안팎

    ◎“체제전복 획책 극렬운동권 격리를”/“민주투쟁 빌미 혼란야기 용인 못해”/도덕성 함양등 교육정상화도 촉구/윤 교육/“학생회 활동 학술·문화중심으로 유도” 정원식 국무총리서리에 대한 외국어대생들의 집단폭행 사태를 다루기 위해 소집된 국회 교육체육청소년위원회는 「반인륜적」인 이번 사태에 대해 국민들의 충격과 분노를 반영하듯 「더 이상 반지성적,반민주적 학원폭력이 용인돼서는 안 된다」는 정치권의 일치된 인식을 바탕으로 대학의 도덕성 회복과 실추된 교권의 확립,교육정상화 방안 등을 모색하는 계기가 됐다. 여야는 특히 광역의회선거를 앞두고 터진 이번 사태가 앞으로의 선거운동 과정에 미칠 파장과 득표전략과의 함수관계 등을 고려한 탓인지 각당 나름대로 학원사태에 대한 처방과 향후대응책 등을 제시하는 등 모처럼 진지한 모습을 보였다. 이날 위원회에서 민자당 소속 의원들은 그 동안 베일에 가려 지나치게 미화돼 왔던 과격학생 운동권의 실체를 부각시켜 학원폭력을 근절하는 제도적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시각을 표출한 반면,야권은 학원폭력 대책마련과 병행해 과감한 개혁조치 등 근원적인 사회병리현상을 치유해야 한다고 주장,여야간에 미묘한 시각차이를 표출했다. ○…이날 회의에는 그 동안 광역의회선거지원 등을 위해 귀향활동에 나섰던 14명의 여야의원 전원이 참석,차례로 질의를 벌여 이번 사태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도를 확인케 했으며 윤형섭 교육부 장관은 시종 침통한 표정으로 보고와 딥변을 진행. 윤 장관은 특히 이날 보고에 앞서 『이번 사태는 우리 대학의 공통적 병폐 속에 어느 대학에서도 발생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한층 더 심각성이 있다』면서 『대학의 도덕성이 얼마나 붕괴됐고 교권이 얼마나 짓밟혔는지 보여주는 실례』라고 지적하고 젊은이들을 선도해야 할 「기성세대 모두의 책임」이라며 지성인들의 반성을 우선 촉구. 최재욱·황철수·강성모 의원 등 민자당 소속의원들은 이날 질의에서 학원이 폭력과 범법의 「성역」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하고 ▲면학분위기 조성대책 ▲교권확립 방안 ▲비교육·비윤리적인 전교조에 대한 대응책 등을 중점 추궁. 최재욱 의원은 『극렬운동권 대학생들은 단순한 반정부 차원을 넘어 전쟁의 결의로 체제전복에 나서고 있다』고 진단하고 『성당본당의 열쇠를 쇠톱으로 자르고,시체를 볼모로 삼고,대학과 병원을 해방구로 설정,계급투쟁에 나서는 폭력대학생은 이제 엄중 격리조치해 그들의 그릇된 확신과 주장을 고쳐야 한다』고 강조. 강성모 의원 등도 『이번 사건은 행정부의 수장에 대한 반인륜적 폭행으로 정부의 권위를 손상시키고 나아가 체제전복을 겨냥한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이제 우리 사회에 기생하며 민주화 투쟁의 명분을 내걸고 사회혼란을 조장해 온 좌익폭력 세력을 일소해야 할 때』라고 주장. 이들 의원은 또 『좌익폭력 세력을 척결하는 방법이 일시적인 대증책이거나 감정적인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부연하고 ▲도덕성 함양교육,인본교육 강화 ▲공권력의 이미지 개선 및 신뢰회복 ▲교육행정의 개선 등 사회전반의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할 것임을 지적. ○…그러나 야당 의원들은 「불행한 사태」에 대한 정치인으로서의 책임과 자괴심을 느낀다는 데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정부·여당의 미진한 민주화조치와 공안통치,「전교조」 탄압 등이 복합적으로 뒤엉켜 이 같은 사태가 발생했다고 근본원인과 배경 쪽에 화살. 야당 의원들은 정부가 이번 사태를 빌미로 「치사정국」에 따른 수세분위기를 만회하고 오히려 공안통치 강화로 역공을 시도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 박석무 의원(신민)은 『현재 정부와 언론은 해당 학생들을 패륜아로 몰고 있는데 이 사회의 정의·도덕·윤리문제가 비단 학생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인지 우리 모두가 자문해 봐야 한다』면서 『이번 사태에서 가장 크게 제기되는 교권문제만 하더라도 노 교수의 교권은 존중되어야 하고 교단에서 쫓겨난 1천5백여 명이나 되는 교사들의 교권과 생존권은 무시되어도 좋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하면서 「전교조」 출신 해직교사들의 복직가능성에 대해 집중 질의. 박 의원은 또 『정 총리서리가 격앙된 시국상황 속에서도 외대에 출강한 것은 안이한 시국관 때문이 아니었느냐』고 추궁. 이철 의원(민주)은 『정 총리서리에 대한 일부 학생들의 무뢰한 행동을 접한 뒤 보여준 정부의 태도는 분명히 평형감각을 잃고 있다』고 지적하고 『정부의 어른스러운 도덕적 자기반성과 민주적 개혁없이 공권력 강화를 운운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간에 적대화를 가속화시켜 결국 현정권의 파국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 ○…윤형섭 교육부 장관은 답변에서 『지금 상황에서 교수들만의 힘만으로 학생들을 지도하기는 대단히 어렵다』고 시인하면서도 『그러나 1차로 책임져야 할 사람은 교수이고 그래도 학생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은 교수들이기 때문에 교수들이 일치단결해 지도하면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대학문제는 정부가 간여해서 해결될 수 없으며 대학인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 윤 장관은 학생회의 건전화방안과 관련,『학생회의 설립 목적은 대학문화 창달에 있지만 요사이는 시위와 투쟁에만 몰입하는 등 바람직스럽지 못한 방향으로 운영되어 왔다』고 지적,『앞으로는 본래 취지대로 학술·문화활동을 우선시하도록 유도하겠으며 이를 위해 각 대학도 학생회 간부의 자격요건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학칙을 개정하려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 윤 장관은 『대학측이 면학분위기 조성을 위해 학칙개정을 건의해 오면 모두 승인해 주겠다』고 부연. 윤 장관은 또 외대 전체교수회의에서 청원경찰제 도입문제가 거론된 것과 관련,『청원경찰제는 각 대학 총학장의 결의로 시행할 수 있으며 서울대에도 형식적으로 10여 명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고 『현재 전대협과 전대협의 경비출처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전국 대학에서 학생회 경비로 50억원 정도가 사용되고 일부가 전대협에 납부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 윤 장관은 『정 총리서리가 30여 분 동안 폭행당하는 동안 외대 교직원의 말리는 모습이 보이지 않은 것은 고의적으로 피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김일동 의원(민자)의 질문에 『외대측은 학생회간부 대부분이 전날 부산에서 열린 전대협 5기 출범식에 내려가 모습을 보이지 않은 데다 정 총리서리에게 강의받은 대학원생의 3분의2가 현직 교사라는 점 등을 고려해 이 같은 사태가 일어날 것을 예상치 못했고 결과적으로 상황을 잘못 판단했다고 할 수 있다』고 답변. 윤 장관은 특히 『비민주적·독단적 일부 운동권 세력으로 인해 면학분위기가 흐려지고 학교의 힘만으로 이 같은 사태를 해결할 수 없어 공권력 개입요청이 있을 경우 정부는 이에 대해 응분의 응답이 있어야 한다』고 원칙론을 재피력. ○…김원기 위원장(신민)은 이날 질의답변을 마치면서 『이번 사태는 있을 수 없는 일로 학원사태가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했고 사태의 책임은 정치·교육계와 사회일반 모두에게 책임이 있고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대증요법적인 처방이 아니라 근본원인 해소를 위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데 입법·행정부가 뜻을 같이했다』고 결론. 김 위원장은 이어 『이번 불행한 사태가 누적된 학원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하오 10시30분쯤 산회를 선포.
  • 시신 얼어 4시간30분 걸려/14일만의 김양 부검…백병원 주변표정

    ◎바리케이드 철거에 “이제 편히 잠자겠다”/검찰팀 도착하자 「사수대원」들 비난구호 ○…7일 오전 11시40분쯤에 시작된 부검은 2시간쯤 걸리리라는 당초의 예상과는 달리 오후 4시10분까지 끌어 영안실 밖에서 결과를 기다리던 보도진·시민 사이에서는 『사인이 확실히 나오지 않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부검이 늦어진 이유는 김양의 시체가 열흘 이상 냉동실에 보관돼 있던 관계로 얼어 있어 이를 녹여가면서 부검을 진행해야 했던 때문이라는 것. ○…임채진 검사·이정빈 서울대 의대교수 등 검찰부검팀 7명과 수사요원 등 20여 명은 이날 상오 10시40분쯤 승용차와 중형승합차에 나눠타고 백병원 현관에 도착했는데 이들이 차에서 내리는 순간 백병원 현관은 몰려든 취재진과 이를 저지하는 사수대 학생 30여 명이 뒤엉켜 아수라장. 학생사수대는 스크럼을 짠 채 임 검사 등 검찰관계자 7명을 먼저 통과시켰으나 뒤따르던 경찰관계자들의 출입은 제지. 한편 학생들은 임 검사 등이 엘레베이터를 타는 동안 『귀정이를 살려내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기도. ○…부검이 진행되자 병원영안실 주변에는 학생·시민 50여 명이 늘어서 부검결과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습이었으며 학생들은 반정부 구호를 외치기도. 직장인들도 점심시간을 이용해 영안실 주변으로 몰려들어 사수대 소속 학생과 취재진들에게 『부검에 들어갔느냐』며 관심을 표명. ○…병원을 사수하기 위해 학생들이 설치해놓은 바리케이드·모래주머니 등으로 긴장감이 감돌던 백병원 주변은 7일 김양의 부검이 실시되자 예전처럼 차량과 통행인이 오가는 등 차츰 정상을 되찾고 있다. 그 동안 경찰의 투입에 대비,병원 주변을 지키고 있던 1백여 명의 학생들은 이날 병원 양쪽 진입로에 설치한 바리케이드를 치우고 병원앞 도로에 널려진 쓰레기를 불태우기도. ○…김양의 사체가 이 병원으로 실려온 뒤 줄곧 최루탄 냄새와 학생들의 구호소리로 고통을 겪던 환자들도 김양의 부검이 실시된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의 한숨.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고 입원가료중인 이 병원 302호실 전연수씨(49)는 『그 동안 환자들과 보호자들이입은 정신적·육체적·물질적 피해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면서 『부검문제가 원만히 해결된 것과 마찬가지로 장례식도 아무런 충돌없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부검이 진행되는 동안 백기완씨 등 「대책위」 관계자들은 영안실 바닥에 앉아 침통한 표정. 윤태일 「대책위」 부대변인은 『검찰이 우리가 요구했던 「선 수사 후 부검」을 들어주지 않은 상태에서 부검을 실시하게 돼 좋지 않은 분위기인 것은 당연하다』면서 『이번 부검에 의해 직접사인이 정확히 규명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경찰측도 이날 부검집행을 위해 35개 중대 4천5백여 명의 병력을 투입,백병원 주위를 포위,학생들의 출입을 통제했으나 합의부검 소식이 알려지자 일부 병력을 제외하고 부검집행을 위해 투입된 대부분 병력을 현장에서 철수. ○…경찰과 학생들 사이에 자칫 유혈충돌도 일어날 수 있었을 김귀정양 부검문제로 인한 위기국면이 6일 밤 유족들의 부검동의로 극적인 반전을 이뤘으나 그 배경에는 비록 극적이지는 않더라도 꾸준히 경찰과 대책위 양측을 오가며 평화적 해결을 적극 모색한 숨은 중재자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관심. 경찰 관계자는 「합의부검」이 최종 결정된 뒤 김양의 사망 이후부터 검찰투입 직전까지의 비화를 털어놓는 자리에서 『아직 상황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단계이기 때문에 신원을 공개할 수 없으나 명동성당 관계자가 무던히 애를 쓴 덕분에 이번 합의부검이 가능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그에게 고마움을 표시.
  • 알제리,비상사태 선포/수도에 군 투입… 내각은 총사퇴

    ◎반정시위대­보안군 충돌로 6명 사망 【알제 로이터 AFP 연합】 샤들리 벤제디드 알제리 대통령은 수도 알제 중심가에서 보안군과 시위대간의 무력충돌로 6명이 사망한 지 하룻만인 5일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내각 총사퇴를 발표했다. 벤제디드 대통령은 회교 근본주의자들의 폭력시위가 있은 후 탱크와 군인들이 수도를 장악한 가운데 대국민 성명을 통해 오는 27일로 예정된 사상 첫 다당제 총선도 연기될 것이라고 밝혔다. 벤제디드 대통령의 사임과 선거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는 알제리 최대 야당 이슬람구원전선(FIS)을 지지하고 있는 반정부시위는 전날까지 연 11일째 확대일로를 걸어왔다. 이 성명은 또 무루드 함루셰 총리가 이끄는 내각이 사퇴서를 제출했으며 벤제디드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였다고 덧붙였다. 한편 FIS는 지지자들에게 유혈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시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으며 지난 5월25일부터 시작된 무기한 파업이 곧 끝날 수 있을 것이라고 FIS소식통이 말했다. 이 소식통은 FIS 대표와 벤제디드 대통령 측근은 거국내각 등 알제리 사태해결을 위한 협상을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 전대협 전면수사 착수/검·경,합동회의 “불법시위·폭력 근절”

    ◎의장등 간부 15명 검거 총력/「정책위」 30명도 신원파악 나서/「사노맹」등 이적단체와 연계 여부도 수사 검찰과 경찰은 5일 대학가의 시위와 운동권 학생들의 반정부 투쟁을 주도해온 「전국대학생 대표자협의회」(전대협)에 대해 일제 수사에 나섰다. 검·경의 이번 수사는 외국어대학생들의 정원식 국무총리서리에 대한 집단폭행사건을 계기로 운동권 학생들의 불법시위와 폭력을 뿌리뽑겠다는 방침에 따른 것이다. 검·경은 이에 따라 이미 구속영장이 발부된 「전대협」 의장 김종식군(24·한양대 총학생회장) 등 간부 15명에 대한 검거에 총력을 기울이는 한편 이들을 배후조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전대협」의 비밀조직 「정책위원회」와 「학추위」 등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기로 했다. 검·경은 이를 위해 「정책위」 간부와 조직원 등 30여 명의 신원파악에 나섰다. 검·경은 이날 하오 삼청동 검찰청 별관에서 이건개 대검 공안부장,최병국 서울지검 공안2부장,박일룡 치안본부 3차장,윤정원 치안본부 5차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합동회의를열고 「전대협」에 대한 수사대책을 논의했다. 검·경은 「정책위원회」의 활동내용을 밝혀내는 대로 이 비밀조직을 이적단체로 규정,조직원 등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처벌하기로 했다. 검·경은 이와 함께 「전대협」이 최근에 적발된 「자민통」 및 「사노맹」 등 이적단체 등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활동해온 사실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일 방침이다. 검찰은 「정책위」가 지난 89년의 임수경양 밀입북 사건을 배후조종한 것으로 밝혀졌을 뿐 간부와 조직원들이 모두 가명을 쓰고 숨어서 활동해 지금까지 활동상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없으나 의장 김군 등 공개활동을 하는 간부들을 배후에서 조종해온 것으로 보고 있다. ◎전민련 간부 등 6명도 사전영장 한편 경찰은 5일 「전대협」 의장 김종식군과 이른바 「대책회의」 대변인 이동진씨(38·전교조 서울강남·강동지회장),「전민련」 사무처장 대행 김선택씨(36·서강대 경제학과 3년),연세대 총학생회장 임헌태군(21),서강대 총학생회장 표홍철군(23),「국민연합」 사무처장 최종운씨(41) 등 6명에 대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혐의로 미리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경찰은 또 「전교조」 위원장 윤영규씨(55),「전민련」 정책기획실장 황인성씨(39),「대책회의」 정책기획국장 이동균씨(30),「전민련」 인권위원장 서준식씨(43) 등 4명에 대해서도 곧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검거하기로 했다. 경찰은 이들이 강경대군의 치사사건이 일어난 뒤 지난달 4일과 9일,14일과 18일에 「국민대회」라는 명목으로 대규모 폭력시위를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 외언내언

    동구사회주의국가들이 차례로 붕괴되고 북한도 국제적인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엔가입의 백기」를 들 수밖에 없는 이 마당에 김일성 주체사상을 미화,찬양하고 프롤레타리아혁명을 부르짖는 세력이 우리 사회에서 준동한다면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자유민주주의체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폭력혁명을 부추기는 「어둠의 세력」이 이 땅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며 최근의 시위현장에서는 이들이 뿌려대는 볼온유인물이 난무하고 있다. 극소수 좌경극렬분자들의 소행이지만 숫자의 적고 많음이 문제가 아니라 시대를 역행하고 우리 사회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으려는 불순세력은 깡그리 잡아내야 한다. ◆어둠의 세력은 햇빛 밝은 데서는 기를 펴지 못한다. 박쥐처럼 컴컴한 구석을 찾아다닌다. 우리 사회에 기생하고 있는 불순세력도 그 동안 지하에서 암약해왔는데 시국이 다소 혼란해진 틈을 노려 어느 새 지상으로 올라와 활개를 치고 있다. 사노맹이 그 본보기.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이란 이름에서 드러나듯 우리 사회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반국가단체이다. 대학가의 「주사파」란 것도 비슷한 성격. ◆이 단체들이 부르짖는 구호와 유인물의 내용은 날이 갈수록 악랄해지고 있다. 「노동자·농민·학생들이 통일전선을 구축,폭력혁명을 통한 정권탈취와 미국타도」를 외치고 있는가 하면 「91년을 사회주의 혁명운동의 분기점으로,92년의 격변기를 혁명투쟁의 시발점」으로 정해놓고 있다. 또 김일성을 「민족의 태양」 「불세출의 영도자」 「불멸의 지도자」로 찬양하고 있다. 북한의 「남조선 해방전략」과 한치도 어긋남이 없는 섬뜩한 울부짖음.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언제부터인지 성당과 병원이 반정부투쟁을 벌이고 있는 재야세력들의 성역(?)이 되고 있다. 지금도 서울의 명동성당과 백병원이 이들의 불법적인 강점 아래 놓여 있다. 우리는 이른바 「국민대책회의」를 좌경세력으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강점하고 있는 성역들이 폭력혁명과 체제타도를 부르짖는 불순좌경세력의 온상지가 되고 있음을 알고나 있는지 묻고 싶다. 성당은 교인에게,병원은 환자에게돌려주어야 한다.
  • “폭력추방”…정치권 새명제로/「총리폭행」 시국에 어떤 영향 미칠까

    ◎운동권 투쟁명분 약화… 입지 좁아져/공권력 정면대응 태세… 야 「바람정치」엔 역풍 과격 외국어대생들의 정원식 국무총리서리 집단 폭행사건은 앞으로 시국향방과 광역선거정국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운동권에 대한 공권력 대처방법이 강화되고 재야 및 학생시위에 대한 시민들의 시각도 보다 비판적으로 변할 조짐이다. 우선 이번 사건은 강경대군 치사사건으로 시작된 시위정국의 종식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일련의 분신자살과 여대생 압사사건 등으로 일반시민들은 경찰의 과잉진압에 의한 공권력 남용과 학생들의 무분별한 행위를 함께 비난하는 양비론적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많은 시민들이 이번 사태로 과격 운동권 학생들의 반인륜성,폭력성,반민주성을 뚜렷이 확인함으로써 더 이상 폭력운동권을 치외법권적인 지대에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이 때문에 강군 사건 등으로 새로이 결속,각종 시위를 주도해온 학생·재야운동권의 입지가 필연적으로 약화될 수밖에 없고 이들이계획하고 있는 「국민대회」 등 이른바 「6월 투쟁」의 명분과 설득력도 크게 약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또한 여론이 운동권에 등을 돌린 것을 계기로 그 동안 최소한도의 공권력 행사까지 자제해왔던 정부 당국이 각종 불법 폭력시위에 단호히 대응하면서 핵심인물들에 대한 일대 검거작업을 펼 것으로 보인다. 광역선거정국에 미칠 영향은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시위정국에 편승,정권퇴진 등의 정치공세를 펼쳐온 야당의 입지가 매우 위축될 것이라는 점이다. 야당은 운동권과 재야의 「노 정권 퇴진 운동」에 부분적으로 동참,정치공세를 강화하면서 정부의 물가·부동산 정책에 불만을 품고 있는 표를 노리는 이중적인 태도를 견지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야당은 제도권 정당으로서 재야 및 운동권과의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유권자들의 압력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둘째는 광역선거를 겨냥,「바람작전」의 최대 수단으로 구사해오고 있는 장외 군중집회에 대한 일반국민의 거부감이 더욱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따라서 전시효과만을 노리는 득표전략보다는 건전한 시위문화의 정착,과격 폭력세력 배제,학원정상화 등에 대한 정당별 대안 제시가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 공산이 크다. 더욱이 젊은층이나 반정부적인 계층의 표를 의식하면서 또한 중산층도 동시에 노리는 양다리 선거전략을 폈던 야당측은 이번 사태로 『악재를 만났다』면서 당혹해 하는 것도 사실이다. 적당히 이곳저곳에서 인기를 끌어보려던 전략이 도리어 혹을 붙이는 결과가 되었고 이같은 최악의 사태를 빚게 된 상당부분의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유권자들의 따가운 시선을 감당해야만 되는 입장이다. 운동권의 경우는 이번 사태가 더욱 치명적인 오점으로 작용,여론의 비난과 공권력에 동시에 협공당하는 형국이 되었다는 분석이다. 아직도 운동권 일각에서는 이 사태를 『정부의 공안통치와 강성 국무총리의 기용으로 인한 필연적인 결과였을 뿐』이라며 강변하고 있으나 국민 정서에 치명적인 손상을 줌으로써 그 동안 자신들이 구축했다고 주장했던 「도덕적인 순수성」이 백안시당할 위기에 처해있다. 따라서 이번 사태로 운동권 세력이 크게 위축되고 내부적으로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에서 분열·대립될 가능성도 없지 않으며 전대협측은 운동방향의 전환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 학원관계자들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 계란세례 나무라자 주먹·발길질/패륜의 총리폭행 현장

    ◎「김귀정 살려내라」 소란… 강의 45분 만에 중단/수강생들 자제 호소… 과격학생들과 몸싸움도 ○…정원식 총리서리가 3일 하오 6시30분 총리가 되기 이전부터 맡아오던 외대대학원 학생들을 위한 「학생생활지도 특강」의 마지막 강의를 위해 교육대학원 4층 418호 강의실에 들어서자 미리와 수업준비중에 있던 50여 학생들은 박수를 치며 축하인사를 건네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수업을 시작. 이날 90분 예정으로 시작된 강의는 학생들이 수업분위기를 위해 취재를 마지막에 해줄 것을 요청,취재기자들도 없이 조용한 분위기에서 계속됐으나 30여 분이 지난 하오 7시쯤부터 2백여 명의 학생들이 복도로 몰려와 「정 총리 물러가라」 「전교조 탄압했다」 「김귀정을 살려내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소란을 피우자 정 총리서리는 하오 7시15분쯤 서둘러 수업을 마쳤다. ○유리창 깨고 끌어내 ○…정 총리서리가 강의실 문을 나서려는 순간 밖에 모여 있던 학생들이 계란을 던지며 한꺼번에 몰려들자 경호진들이 황급히 건너편 강의실인 415호로 정 총리서리를 피신시키고 안으로 문을 잠근 채 잠시 대피 밖에서 「귀정이를 살려내라」는 등 구호를 외치던 학생들은 강의실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 정 총리서리를 강의실 밖으로 끌어내 밀가루를 퍼부으며 이 가운데 6∼7명은 정 총리서리의 뒷덜미와 멱살·혁대끈을 잡고 계단을 통해 1층 로비까지 밀고 내려왔으며 이때 로비에 있던 학생들은 현관문을 닫고 총리일행을 건물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저지. 이 과정에서 정 총리서리의 강의를 듣던 학생들을 중심으로 많은 학생들이 자제를 호소하고 과격학생들을 뜯어 말리는 등 심한 몸싸움을 벌이기도. ○…가까스로 대학원 현관문을 나온 정 총리서리 일행은 처음에는 차량이 세워져 있는 쪽으로 가려 했으나 학생들이 물을 뿌리며 저지,운동장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교문 쪽으로 향했다. 이 과정에서 정 총리서리는 『이게 무슨 짓들이야 왜들 이러는가』라며 학생들을 나무랐으나 몇몇 학생들이 뒤편에서 주먹으로 정 총리서리의 머리를 내리쳤으며 허리부분에 발길질을 하기도 했다. 이들 과격학생들은 그들의 행위를 말리는 취재기자나 교직원들에게도 대들었으며 정 총리서리 일행을 교문 쪽으로 몰고 갔고 이때 운동장 주위에 있던 학생들도 반정부 구호를 외치며 가세. ○탈진상태 교문 탈출 ○…교문 앞에는 이미 1백여 명의 학생들이 교문을 잠가놓고 화염병 등을 준비해 놓은 채 「전교조 탄압주범 정원식을 몰아내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교문 앞의 전경들과 대치중이었는데 하오 7시45분쯤 정 총리서리 일행이 교문 앞에 당도하자 이들을 내보내지 말라고 외치며 계속 폭언. 이때 정 총리서리는 거의 탈진한 상태로 경호진과 일부 학생들에 의해 부축을 받고 있었으며 이같은 정 총리서리의 상태를 본 다른 학생들이 교문을 열어 하오 7시50분쯤 정 총리서리의 일행은 간신히 교문을 빠져나왔다. 정 총리서리는 곧바로 교문 앞을 지나던 서울3하5310 개인택시에 실려 삼청동 공관으로 향했으며 경호진과 비서진들도 서둘러 택시를 잡아타고 현장을 빠져나갔다. ○마이크로 집합선동 ○…정 총리서리는 이날 외대 강의에 앞서 교통현장을 점검하기 위해 기자들의 추적을 따돌리고 지하철1호선의 동대문역까지 승용차로 가서 그곳에서 외대 앞의 휘경역까지 지하철을 이용한 뒤 휘경역에서 학교까지 5백여 m를 도보로 가면서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이날 총리가 교문을 들어선 하오 6시10분쯤에는 학생들도 모여 있지 않아 별 제지를 받지 않았으나 강의가 시작된 하오 6시30분쯤부터 일부 학생들의 교내 마이크를 통해 모일 것을 선동,하오 7시쯤에는 5백여 명이 모여들었으며 이 가운데 2백여 명이 강의실로 올라가 소동을 벌였다.
  • 용공유인물 29종/부산대에서 수거/치안본부,출처조사

    치안본부는 1일 부산대에서 열렸던 「전대협」 제5기 발대식에서 29종의 불온유인물을 수거,분석한 결과 「전국민주주의학생연맹」 명의의 「투쟁결의와 긴급제안」 등의 이적성향 3종,용공성향 7종,반정부성향 19종 등으로 나타나 출처를 조사하고 있다고 2일 밝혔다.
  • 공권력과 그 위신/치외법권지대 있는가(사설)

    오늘의 우리 공권력은 마치 재야 반정부 세력과 운동권 학생들만을 상대하는 존재와 같다는 인상을 짙게 풍기고 있다. 더 심하게 표현한다면 그들이 벌이는 작태에 질질 끌려다니느라 힘에 겨워하는 모습이다. 본연의 자세를 잃고서 무언가 눈치를 살피고 있는 듯한 인상도 지울 수 없게 한다. 이건 대다수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일이다. 명동성당으로 강기훈씨를 연행하러 간 검찰은 맨손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전민련이 강씨의 인도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 동안의 전민련 거조로 보아 순순히 영장 집행에 응할 것 같지 않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것을 모르고 갔는지 아니면 알고서도 어떤 원모로 갔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거나 그들이 낭독하는 성명서나 듣고 돌아섰다면 공권력의 처지는 난처해진다. 「성당」이었다는 점이 있긴 해도 국민들의 눈에 외피상으로는 무력함으로 비치는 것이 아닌가. 김귀정양의 부검 문제에서도 그것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과연 압사한 것이냐 질식사한 것이냐를 가리는 데 있어 부검이 이를수록 좋다는 것이 법의학계의 견해이다. 그렇건만 「대책회의」 쪽은 과잉진압 책임자 처단­노 정권 퇴진이라는 본말전도의 주장을 펴면서 부검에 응하지 않고 있다. 강압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 자칫 또 다른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데서의 「신중함」이라고 일단 짐작하긴 하면서도 과연 공권력이 이래도 되는가 하는 심경만은 지울 수가 없다. 국민들의 눈에는 이 나라의 치외법권 아닌 곳에 치외법권이라도 있는 것처럼 비친다. 공권력과 재야­운동권은 「동격」이라도 되기에 그렇게 맞서도 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제각기의 논리는 있다고 치자. 그러나 그 논리의 여과를 거쳐 공권력이 그 행동반경의 방향을 정했다면,그리고 그 방향이 대다수 국민들의 눈에 정당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 추진에 유예준순할 까닭이 없지 않겠는가. 우리의 공권력은 지금도 권위주의 시대의 잘못된 행사에 대한 망령의 부담을 안고 있다. 그래서 정당하게 행사되는 경우에 대해서까지 강경할 때는 자칫 탄압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재야­운동권은 이 점을 교묘하게 악용하고 있고 일부 국민들 또한 그 논리에 현혹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 현실을 권위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라고 보는 사람은 편견을 배제한다면 별로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권위주의를 엄호하기 위한 공권력과 우리 사회의 안녕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공권력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또 후자의 경우 원칙에 입각하여 서릿발 같아야 법치주의가 살고 우리의 사회주의도 산다. 그래야 할 공권력이 그 행사에 있어 형평을 잃을 때 국민들에게는 불만의 씨가 되고 불안의 요소로 된다. 요는 국민을 위해,국민에 의해서 주어진 힘이 아니던가. 행사의 선택에는 신중하되 결코 위축된 듯한 인상을 심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한 번 더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북돋워야 할 권위는 힘을 합쳐 북돋워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공권력에 도전하여 그 권위를 무디게 하는 일이 더러 영웅시되는 시류이기도 하지만 공권력이 위신을 잃을 때 그것은 바로 우리 모두의 불행으로 이어진다는 점에 상도해야 한다. 이는 공권력의 주체나 객체 모두가 지나온 역정을 귀감 삼아 아픈 마음으로 성찰해야 할 대목이다. 이 나라의 국민이면 이 나라의 규범과 질서에 따라야 한다. 강씨는 자진해서 검찰에 출두해야 하고 부검은 차질없이 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 멀고도 험한 미얀마 민주화/미완의 선거혁명 1돌

    ◎군,보복 우려… 민정에 권력이양 거부/반정인사 거세 노골화… 임정수립도 기대난 27일로 미얀마(구버마)가 30년 만에 처음 총선을 실시,「미완의 선거혁명」을 이룩한 지 1년을 맞았다. 그러나 미얀마의 대표적인 야당인 민주민족연맹(NLD)은 지난해 5월27일의 총선에서 총의석 4백85석 가운데 3백92석을 석권하는 대승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집권군사혁명평의회(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 SLORC)의 권력이양 거부로 아직도 신정부를 구성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NLD는 대도시뿐 아니라 농촌지역 및 군가족의 거주지역에서도 압승,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지만 SLORC의 실세인 소 몽 장군은 『신헌법이 제정된 후에야 권력이양을 할 수 있으며 헌법제정은 복잡하고 긴 과정』이라고 밝혀 민의를 받아들일 뜻이 없음을 분명히했다. SLORC는 총선 패배 후 오히려 수백 명의 NLD의 간부 당원 및 지지자들을 체포,NLD의 와해를 기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NLD를 이끌고 있는 아웅산 수 키 여사는 지난 89년 7월 이래 가택연금상태에 놓여 있으며NLD 집행위원 가운데 4분의3이 구금돼 현재 미얀마는 글자 그대로 철벽같은 「공안정국」하에 놓여 있다고 서방외교소식통들은 전하고 있다. SLORC가 권력이양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지난 62년 네윈 장군의 군사쿠데타 이후 30년 동안 움켜쥐고 있는 군부의 기득권 상실에 대한 공포와 지난 88년 민주화 시위 때 일어난 수천 명의 학살에 대한 책임 추궁을 두려워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야당에 권력을 이양할 생각이 없는 현 군사정부가 지난해 총선을 실시한 것은 일면 88년 민주화 시위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총선을 통해 차세대 반정부 지도자들을 제거하기 위한 정략에 따른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지난 88년 9월 수천 명이 희생된 민주화 시위를 유혈진압,궁정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사우 마웅 SLORC 의장(당시 참모총장)은 겉으로는 다당제와 조기총선을 약속해놓고도 뒷구멍으로는 여전히 대국민 탄압정책을 고수해오고 있다. SLORC는 지난해 9월 서방대사관에 군을 투입,반체제 미얀마인 직원 체포를 서슴지 않았으며 10월에는 반정부활동의 본거지가 되고 있는 만달레이시의 1백여 불교사원을 급습,승려들을 체포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미얀마국민의 85%가 신봉,영향력이 큰 불교의 승려들은 지난해 8월 만달레이시의 반정부시위 도중 승려·학생들이 사살된 것에 항의해 군인과 그 가족에 대한 결혼식 및 장례식의 집전을 거부,군사정부에 대한 불만을 터뜨린 바 있다. 한편 미얀마의 일부 야당인사들이 지난해 12월 태국과의 접경지역에서 임시정부 수립을 선언했지만 그 효력은 의문시되고 있다. 많은 관측통들은 군부가 여전히 전권을 장악하고 있는 미얀마의 현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이라크의 대쿠르드족 탄압에 대한 세계여론의 압력행사와 같은 국제적인 제재뿐일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이 역시 실효를 거두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엔은 지난해 11월 민간정부에의 권력이양 거부에 대한 우려와 정치범 석방을 요구하는 대미얀마 결의안 채택에 실패한 바 있다. 민주화와 개혁이라는 역사의 대세를 외면하고 있는 미얀마의 현군사정부에 대해 국제적인 압력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군부 온건파가 득세하지 않는 한 미얀마의 민주화는 많은 국민들이 피를 흘렸음에도 쉽게 달성될 것 같지 않다.
  • 에티오피아 반군/홍해연안 완전장악

    ◎요충지 아삽항구 함락/정부군 10만명 투항설/수도 외곽 9㎞까지 진격 【카르툼 UPI 연합 특약】 에티오피아 반군 지도자는 25일 정부군이 장악하고 있던 홍해연안의 마지막 거점도시인 에리트리아주의 아삽항구가 함락됐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지도자는 『현재 아삽항구가 반군측에 의해 장악됐다는 보고를 접했다』고 밝혔다. 만일 이같은 보고가 사실이라면 에티오피아 반군은 홍해연안의 모든 지역을 장악한 것이 된다. 【아디스아바바·나이로비 AFP 로이터 연합】 멩기스투 대통령의 국외탈출 후 정부군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고 있는 에티오피아 반군이 수도 아디스아바바 외곽 9㎞ 지점까지 진격한 가운데 홍해연안 에리트리아주 독립투쟁을 벌여온 에리트리아인민해방전선(EPLF) 반군은 24일 주도 아스마라를 완전장악했다. 런던으로부터 전화로 연결된 EPLF의 한 대변인은 이날 『우리는 아스마라시를 완전장악했으며 에리트리아주민들이 오랫동안 기다리던 날이 마침내 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자체 통신망을 갖고 있으며 이를 통해EPLF의 아스마라시 장악사실을 완전히 확인했다』고 밝혔는데 미 국무부도 에티오피아 정부군이 아스마라시를 포기했다고 전하면서 이 도시가 반군의 수중에 떨어졌음을 확인했다. 정부의 즉각적인 휴전요구를 무시하고 대정부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또 다른 반군이 에티오피아인민혁명민주전선(EPRD)도 정부군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면서 이날 아디스아바바에서 북쪽으로 9㎞ 떨어진 지점까지 진격했다고 현지 외교소식통들이 전했다. 양대 반군이 EPLF와 EPRDP의 대정부 공세 강화는 미국의 중재로 27일 런던에서 개막되는 정부측과의 평화회담에서 가능한 한 최상의 협상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편 영 BBC방송은 아디스아바바의 외교소식통을 인용,10만명으로 이뤄진 정부군 제2군이 반군에 투항했으며 사령관은 이웃나라인 지부티로 도망갔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 대해 에티오피아정부는 논평하지 않고 있다. ◎반군 공세 갈수록 가열… 정부 붕괴위기/새 정권 수립돼도 내정불안 지속될듯(해설) 멩기스투 대통령의 국외탈출 후 정부군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고 있는 에티오피아인민혁명민주전선(EPRDP)이 24일 수도 아디스아바바 9㎞ 지점까지 진격,정부군의 패망이 목전에 다가온 느낌이다. 북부지역에서는 분리독립투쟁을 벌여온 또 다른 하나의 반군세력인 에리트리아인민해방전선(EPLF)이 오랫동안 정부군이 버티던 주도 아스마라를 장악,정부군의 숨통을 더욱 죄었다. 이러한 반군의 총공세는 27일 미국의 중재로 런던에서 열리는 정부측과 반군세력 사이의 평화회담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에티오피아 사회주의정부는 지난 90년까지는 반군의 공세에 외부의 지원을 받아가며 그럭저럭 견뎠으나 신사고 외교정책을 펼치는 소련의 지원이 두절되면서 반군의 공세에 시달려왔다. 에티오피아정부가 지난 21일 멩기스투 대통령이 망명길인지도 모른 채 야반도주하듯 에티오피아를 빠져나가게 한 것은 반군으로부터 협상에 최대의 걸림돌로 지목되던 그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그의 망명은 협상을 성공시키고자 하는 미국이 이스라엘의 협력을 받아서 꾸민 공작으로 전해지고 있다. 협상의 걸림돌인 멩기스투 대통령을 제거한 정부측은 곧 아스마라 수비의 책임자이자 부통령인 테스파예 가브레 키단 중장을 대통령권한대행으로 세우고 테스파예 딘카 외무장관을 총리로 하여 협상에 준비했다. 정부는 또 반군측에 즉각 휴전을 제의했다. 그러나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는 반군은 이 휴전제의를 바로 거부하고 공세를 강화,수도를 9㎞ 앞에 둔 지점까지 진격해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에티오피아의 반군은 크게 세 덩어리로 나누어진다. 우선 북부 홍해연안의 에리트리아지역의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에리트리아인민해방전선이 있다. 이들은 24일 아스마라 점령으로 거의 전지역을 해방시킨 상태며 아사브항만 점령하면 목표가 달성되는 그룹이다. 아사브는 외부와 통하는 유일한 항구로 그 동안 중앙정부가 강력하게 장악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함락 직전에 놓여 있다. 만일 아사브마저 점령당하면 정부는 외부의 지원이 거의 끊긴 질식상태에 놓이게 된다. 수도까지 넘보고 있는 반군은 에티오피아인민혁명전선으로 티그레인민해방전선과 암하라의 반정부단체 및 수도의 민주세력이 연합한 단체이다. 이 가운데 주역인 티그레전선은 알바니아스타일의 공산주의자로 알려지고 있다. 그외 오모로인민전선이 남부지역에서 활약하고 있다. 미국이 지금까지 에티오피아의 내란에 방관하던 자세에서 전환,평화협상을 중재하고 나선 것이나 멩기스투 대통령을 이스라엘과의 협력하에 망명토록 공작을 폈다고 전해지고 있는 것은 수도 장악을 앞둔 티그레 반군이 에리트리아 반군과 같은 티그레니아인이지만 현정부보다 결코 나을 것이 없는 골수 마르크시스트이기 때문이다. 아디스아바바정부도 소련의 지원이 끊기자 미국의 지원을 기대하면서 지난 90년부터는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제스처를 보였다. 하지만 27일 런던평화회담이 진정 평화를 가져오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성급한 전망인 듯하다. 아프리카에서 이데올로기는 종종 종족과 파벌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동원되는 껍데기일 뿐 라이베리아·적도기니·나이지리아·남아공·앙골라 등에서 보듯 이 알맹이는파벌의 이해관계로 평화회담이 짧은 시간 안에 성공한 예가 드물다. 에티오피아에서도 반군은 반정부라는 점 이외에는 전혀 공통점이 없는 상태로 승리 뒤의 분열을 막을 힘도 의지도 비전도 없으며 전국적인 정치적 기반도 가져본 적이 없다. 더욱이 10여 년간의 기아를 속수무책으로 방치하고 있는 경제형편은 어느 쪽의 승리로 곧 빛을 잃도록 만들 것이다.
  • 암살 배후 “0순위” 지목/「타밀엘람해방호랑이」란

    ◎타밀족 독립추구 스리랑카내 반군단체/총리 재임시절 파병·탄압… 간디에 원한 라지브 간디 전 인도 총리의 폭사와 관련,스리랑카의 타밀분리주의 반군단체인 타밀엘람해방호랑이들(LTTE)이 「0순위」의 혐의를 받음에 따라 이 단체와 타밀족이 세인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LTTE는 타밀족의 독립을 추구하는 스리랑카내 10여 개 반군단체 중 가장 과격하고 호전적인 그룹. 2만명의 전사를 거느리고 있는 LTTE는 스리랑카 거주 3백만 타밀족의 독립쟁취를 위해 지난 75년에 결성됐으며 83년부터 반정부 유혈무력투쟁을 벌여오고 있다. 힌두교를 신봉하는 타밀족은 스리랑카의 1천7백만인구 중 18%를 차지,불교를 믿는 74%의 싱할리족과 그 동안 자주 마찰을 빚어왔는데 양종족간의 반목과 불화의 원인 제공자는 영국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영국은 지난 19세기 인도와 스리랑카를 점령한 뒤 「분할통치」의 식민정책에 따라 스리랑카에서의 차재배를 위해 우대조치를 베풀며 인도 남부에 살던 타밀족을 스리랑카로 이주시켜 분쟁의 소지를 만든 것. 싱할리족은 스리랑카가 48년 독립하자 영국 식민통치하에서 타밀족으로부터 받은 천대에 대한 분풀이에 나서 공무원임용 제한,타밀어의 공용어 제외정책 등을 폈다. 이에 분개한 타밀족게릴라들은 지금까지의 합법적 투쟁에서 급선회,83년부터 정부군과의 무력대결에 나서 이미 쌍방간 2만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라지브 간디의 암살사건의 배후세력으로 LTTE가 지목되고 있는 것도 라지브 간디가 총리 재임중이던 지난 87년 7월 스리랑카정부와의 협정에 따라 타밀반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스리랑카에 5만명의 평화유지군을 파병,타밀족의 원한을 샀으며 지난 2월에는 LTTE와 가까운 타밀 나두주정부를 해산하도록 세카르 총리에게 압력을 넣기도 했기 때문. 인도에는 남부의 타밀 나두주에 5천만명의 타밀족이 거주하고 있다. 드라비다계인 타밀족은 BC 3세기 인도 남부로부터 이주했으며 말레이시아·베트남·아프리카 동부 및 북부지역 등에도 일부가 살고 있다.
  • 아프리카의 탈사회주의 바람(사설)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도 탈사회주의의 민주화바람이 불고 있다. 「복수정당제」와 「시장경제」란 말이 유행어가 되고 있으며 소련의 정치·경제·군사지원을 받던 사회주의 국가들이 연이어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포기를 선언하고 있다. 아프리카대륙 동북단의 에티오피아를 사회주의국가로 만들었던 멩기스투 대통령의 망명도 바로 그 바람에 밀린 결과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와 신사고의 바람이 마침내 아프리카에도 불어닥치기 시작한 사실과 그것이 한반도에 대해 시사하는 바를 우리는 주목한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나 신사고가 사회주의 동맹국들에 대해 의미하는 것은 정치·경제·군사원조의 감소 내지는 중단이었다. 소련이 혼자서 맡아야 하는 경제·군사 원조의 과중한 부담에서 해방되려는 것도 페레스트로이카의 중요목적의 하나였다. 소련은 정치적으로 동구를 해방하는 대가로 경제적으로는 동구로부터 해방되었다. 소련은 동구뿐만 아니라 온 세계의 사회주의동맹국들로부터도 경제적인 부담으로부터의 해방을 원하고 있으며 그결과의 하나가 에티오피아의 사회주의 붕괴인 것이다. 21일 망명길에 오른 멩기스투 에티오피아대통령은 77년 집권한 이후 강경마르크시즘 정책을 도입하면서 소련의 절대적인 지원을 받아왔다. 아프리카 적화혁명의 거점으로서,그리고 수에즈운하로 들어가는 홍해입구의 전략적 위치 때문에 소련은 에티오피아를 중요시했고 그만큼 많은 경제·군사원조를 제공해 왔다. 지난 10년 동안 90억 달러의 무기 등 소련의 막대한 군사원조를 받았으며 그 힘으로 북부 2개주의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반정부군의 격렬한 공세를 억제할 수 있었다. 에티오피아는 소련에 있어 아프가니스탄 다음가는 경제·군사원조의 부담이 되어온 것으로 알려져 왔다. 소 원조의 중단은 멩기스투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작년 3월 「마르크스·레닌주의 에티오피아 노동자당」을 에티오피아 민주통일당으로 개칭할 의사를 밝히는 등 정치·경제의 탈사회주의 개혁을 시작했으나 그것을 뒷받침할 경제적인 힘이 없었다. 그는 결국 14년 권좌를 버리고 탈출할 수밖에 없었으며이로써 에티오피아는 평화와 정치·경제 민주화개혁의 새로운 기회를 맞게 되었다. 에티오피아 이외에도 지금 아프리카에서는 모잠비크·앙골라·콩고·베닌 등 5개 사회주의 국가가 모두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포기를 선언하고 복수정당제에 의한 사회민주주의에로의 이행과 시장경제의 도입에 착수하고 있다. 이들은 1당 독재의 사회주의야말로 국가건설의 지름길로 믿었으나 결과는 정체와 대립·갈등의 좌절이었으며 그것이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바람에 힘입어 탈사회주의와 민주화 전환에서 새로운 탈출구를 모색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소련 등 공산권의 지원이 중단되는 상황에서 이들은 필요한 지원제공의 상대를 미·서구 등에서 찾을 수밖에 없게 되었으며 국제통화기금이나 세계은행 등은 정치·경제의 탈사회주의 민주화개혁을 차관제공의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도 아프리카의 변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복수정당제」와 「시장경제」가 빈곤과 대립·갈등의 대륙 아프리카를 구원할 마법의 지팡이가 될 것으로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선택의 여지는 그 길뿐이며 시작이 중요하다. 우리는 아프리카에까지 미치고 있는 이 바람이 북한만 그대로 두는 일은 절대 없을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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