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반정부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폐교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미래농업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녹지율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장어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669
  • 되는 일 없는 比아로요

    필리핀 정국이 혼미하다.에스트라다 전 대통령의 지지시위로 정국이 불안한 가운데 수년간 계속된 경기침체도 나아질기미가 없다. 5월에는 총선까지 예정돼 있어 혼란상태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마닐라에서는 공금횡령 등의 혐의로 지난주 체포된 에스트라다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가 연일 계속되면서 쿠테타설이 난무하고 있다.이에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은 28일 “군대가 헌법에 도전하는 모든 행위에 반격할 준비가 돼 있다”고 경고했다. 에스트라다는 이날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전국적 규모의 반정부 시위를 ‘비폭력적’으로 해달라고 요청했다.29일에는마닐라의 한 쇼핑몰에서 폭발사고가 발생, 30여명이 부상하는 등 필리핀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있다. 에스트라다 수감으로 촉발된 이번 정치위기는 아로요 정권출범 때부터 예견됐던 일이다. 에스트라다의 지지자 대부분은 빈곤층이다.필리핀은 전체 국민의 30∼40%가 빈곤층이다.이들은 에스트라다가 학생과 중산층에 의해 축출된 뒤에도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고 있다. 정권 안정을위해 에스트라다 지지층, 즉 빈곤층을 줄이는것이 아로요 대통령에게 절대적 과제지만 최근 시위로 더욱어려워졌다. 정치 위기가 페소화 가치와 주식시장에 영향을주기 시작했다. 경제는 실업률과 물가 상승,전 정권들이 남긴 대규모 재정적자 등으로 둔화되고 있다. 다음달 14일로 예정된 총선은 현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중간평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아로요 대통령의 지지도는 지난 3월 48%에서 최근 22%로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에스트라다를 마닐라 외곽감옥으로 이감시켜 시위를 누그러뜨리려는 필리핀 정부의 시도가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 지가 관심사다. 전경하기자 lark3@
  • [김삼웅 칼럼] 또 색깔론, 한겨레죽이기

    수구냉전 세력과 족벌언론이 ‘한겨레(신문)죽이기’에작심한 것 같다.재독학자 송두율 교수의 ‘한겨레’ 기고를 트집잡아 전면적인 색깔공세를 펴고있다.동업 ‘한겨레’는 건국 이래 최초로 국민주 형태로 태어난 국민의 신문이다.6월 민주항쟁의 결과 당시 야당과 재야는 분열해 군사독재 3기정권을 허용했지만 유일한 ‘소득’은 국민주신문인 ‘한겨레’ 창간이었다. 당시 3김씨가 대권을 앞두고 각기 ‘마이 웨이’와 ‘못먹어도 고’의 행태에서 노태우 정권을 불러왔을 때,여기에 실망한 재야 양심세력과 동아·조선 80년 해직기자들이중심이 돼 ‘한겨레’ 창간의 산파역을 맡았던 것이다. 여기서 잠시 개인사정을 덧붙이겠다.나는 당시 모종의 시국사건으로 피신하면서 ‘변절자’란 저서의 인세 전액 100만원을 집사람(장인숙) 명의로 ‘한겨레’ 기금으로 투척했다.당시 우리집 형편으로는 거액이었다.이런 사정은 신문 창간에 돈을 낸 대부분의 주주가 비슷했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한겨레’가 창간되고 그동안 반독재·반부패·반지역감정·민중생존권투쟁·평화통일운동에 앞장서온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그리고 최근 ‘언론권력’화된 족벌언론의 각종 비리와 추악한 과거에 대해 샅샅이폭로함으로써 사회정의와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정론지의 역할을 하고 있다. ‘보수로 위장한 수구 정치세력’과‘언론권력’화된 족벌언론에게는 자신들의 기득권에 도전하고 치부를 파헤치는 ‘한겨레’가 눈엣가시처럼 증오의대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그래서 덫을 놓고 찾다가걸린 것이 재독 송두율 교수 기고사건이다. 그동안 냉전세력과 수구언론이 민주인사와 통일운동가들에게 들씌운 용공좌경의 색깔공세는 민족 분단사와 궤를같이한다. 소매치기에게는 소란한 곳이 적격이듯이 냉전세력과 수구언론에게는 남북대결과 지역갈등 등 ‘소란’이 정치생명유지와 사세확장에 적격이다.적절한 위기감과 긴장조성이기득권 유지와 언론권력 행사에 유리하다고 인식해온 것이다. 미흡하나마 김대중 정부의 개혁이 정치·사회적 이슈가되고 남북 사이에 긴장이 완화되면서 수구냉전 세력은 불안을 느끼게 됐다.여기에 언론사 세무조사와 신문고시 부활로 족벌언론도‘만수무강’에 위협을 느끼고 이들은 ‘동병상련’의 처지가 되면서 개혁의 발목잡기와 반정부 지면으로 도배질하기에 이르렀다. ‘한겨레’가 창간정신으로 남북화해와 언론개혁의 기치를 들고 냉전세력과 족벌언론을 매섭게 비판하자 ‘처첩발언’ 등 음해가 따르더니 마침내 사상공세에 나섰다.수구세력은 수세에 몰리면 어김없이 색깔론을 편다. 냉전세력과 수구언론이 색깔론으로 ‘한겨레 죽이기’에나선 배경은 복합적이다. 첫째, 부시 정권 출범 이후 미국의 대북정책에 변화의 기미가 보이자 그 틈새를 이용해 남북관계를 비틀려는 전략이다.남북화해를 국민이 지지하고 이것이 향후 대권경쟁에 불리하다는 판단일 것이다. 둘째, “냉전적 사고에 찌들고 민족문제에 투철하지 않은”(김원웅 의원) 한나라당 지도부의 노선을 비판하는 개혁성향 의원들의 움직임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작용했을 터이다. 셋째,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될 반부패기본법 등 개혁입법과 보안법 개정의 발목을 잡으려는 노림수라는 지적이다. 마지막으로 ‘한겨레’로부터 비판받는 족벌언론의 편을들어줌으로써 내년 대선에서 이들의 지원을 받으려는 선거전략이란 분석이다. 이런 것이 진짜 ‘언론탄압’이다. 족벌언론이 조금이라도 양식이 있다면 합법적인 세무조사와 합리적인 신문고시부활을 언론탄압이라고 떠들 것이 아니라 특정 신문에 붉은색을 칠하려는 냉전세력의 음해를 비판하는 것이 정직한언론활동이다. 송두율 교수의 ‘노동당 정치국원’ 진위 여부는 재판에서 밝혀질 것이고, 이미 그의 많은 저서가 국내에서 출판됐다.또한 다른 신문에도 기고문이 실렸으며 족벌언론들도그의 귀국을 종용했다.그리고 한겨레 기고문에 이적성이없다는 것이 관계당국의 설명이다. 그런데 유독 ‘한겨레’에만 붉은색을 칠하고자 든다. 건국 이래 최초의 국민주 신문을 색깔론으로 매도하는 것은 바로 국민을 용공으로 모는 매카시즘의 발작이다. 역사에 대한 도전이고 정의에 대한 협박이다. “한겨레 너마저 타락하면 이민 갈 거야.” 공휴일 북한산 등산길에서 만난 학생들의 소곤거림이었다. 언젠가 듣던 비슷한 소리 아닌가. 김삼웅 주필 kimsu@
  • 국내 첫 난민 인정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난민의 지위를 인정하는 결정이 내려졌다. 법무부는 13일 외교통상부,보건복지부 등 7개 부처로 구성된 ‘난민인정실무협의회’를 개최,에티오피아인 데구 타다세 데레세(26)에 대해 난민의 지위를 인정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나라가 지난 92년 ‘UN 난민지위에 관한 협약’에 가입한 후 처음으로 내려진 결정이다. 난민 지위를 인정받으면법무부로부터 특별체류허가를 받아 합법적인 신분으로 체류할 수 있게 된다. 데레세는 에티오피아 오로모족으로 반정부단체인 오로모 해방전선(OLF)에 소속돼 반정부 활동을 한다는 혐의로 94년 이후 구금·폭행 등 박해를 받다가 97년 9월 에티오피아를 탈출,같은달 한국에 입국한 뒤 지난해 7월 난민인정을 신청했다. 법무부는 앞으로도 협약의 근본취지를 존중,요건을 갖춘 신청자가 있으면 이를 적극 수용할 방침이다.이에 따라 현재심사중인 47명 중 몇명이 추가적으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을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지난 92년 12월 국제난민조약과 국제난민선택의정서에 가입,난민에 관한국제적 보호의 대열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했으나 실제 난민으로 인정한 사례는 전무했다. 지난 94년 5명이 처음으로 난민신청서를 제출한 후 최근까지 모두 104명이 난민신청했으나 11명은 신청을 자진철회했고,45명에 대해서는 난민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장택동기자 taecks@
  • 인질극 ‘프루프 오브 라이프’

    남미 안데스산맥의 작은 나라 테칼라.미국 거대 석유회사에서 파견근무나온 피터(데이비드 모스)가 반정부군에게 납치된다.납치범들은 회사에 거액을 요구하지만,납치보험을 철회한 회사는 현지 민심을 거스르지 않으려 협상마저 포기한 상태.다급해진 인질의 아내는 직접 남편구출작전에 팔을 걷어붙인다. 테일러 헥포드 감독이 오랫만에 내놓은 영화 ‘프루프 오브 라이프’(Proof of Life)는 별 무리없이 관객몰이에 성공할 듯하다.뭣보다 주인공의 면면 때문.지난해 ‘글래디에이터’로 스펙터클 액션의 적임자임을 확인시킨 러셀 크로우와,‘지금은 통화중’이후 뜸했던 멕 라이언이다.다음으로 주목할 대목은 ‘아날로그식’액션.첨단과학 코드가 난무하는 SF액션이 지겨웠다면,밀림을 누비는 80년대식 ‘람보’류의 총격전은 오히려 반가울 거다. 올해로 마흔살인 멕 라이언은 분위기를 사뭇 성숙한 쪽으로 바꿨다. 그의 역할은 인질의 아내 앨리스.이국땅에서 일중독에 빠진 남편과티격태격한 다음날 남편은 납치되지만,귀엽고 명랑한 캐릭터를 무기삼아 위기를 수습하려 들진 않는다.그의 파트너는 특수요원 출신의인질협상 전문가 쏜(러셀 크로우)이다.회사측 이해관계로 한때 손을뗐던 그는 앨리스에게 묘한 연민을 느껴 목숨건 협상을 자처한다. 한마디로 영화는 ‘인질협상에 관한 보고서’다.몸값협상에서 제1원칙은 인질이 살아있다는 증거(프루프 오브 라이프)부터 확보하는 것. 상대의 요구가 뭐든 적정 몸값을 먼저 설정한 뒤 협상에 들어가야 한다는 등등,화면밖을 향해 쏜은 전문지침을 열심히 소개한다.‘사관과신사’‘돌로레스 클레이븐’‘데블스 애드버킷’ 등을 통해 드라마연출과 심리묘사에 탁월한 개인기를 보여온 헥포드 감독답다. 별것아닌 내용얼개에 테러협상의 긴박감과 로맨스를 솜씨좋게 녹여붙였다.또 인질의 아내가 협상가와 사랑에 빠지는 설정으로 영화에 포인트를 찍었다. 그러나 찜찜한 구석이 있다.냉전이데올로기가 할리우드 소재가 되지못한지 오래.옛소련의 지원이 끊겨 납치극으로 활동자금을 마련하는게릴라들의 이야기까지는 좋았다.하지만 주인공이 뜬금없이 총을 든‘람보’로 둔갑하는 후반과정은 좀 억지스럽다.올해 아카데미상의유력한 후보.20일 개봉. 황수정기자 sjh@
  • ‘에스트라다 대통령 탄핵재판’무기연기

    필리핀에 ‘시민혁명’이 재연되나. 지난 16일 조셉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비밀계좌에 대한 조사가 상원에서 부결되고,탄핵재판의 검사(하원의원) 11명과 상원의장의 사임으로 그에 대한 탄핵재판이 무기 연기되자 ‘민초’들의 정권 퇴진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에스트라다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는 폭력과죽음이 더 이상 없도록 다 함께 기도하자”며 국민을 달랬다. 그러나야권과 종교계, 시민단체 등 반(反) 에스트라다 세력의 강력한 반발로 정국 수습은 쉽지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태 악화부른 상원 표결 에스트라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초 탄핵재판에 회부된 직후 6,600만달러의 비자금을 가명으로 6개 은행 비밀계좌에 예치해둔 사실이 밝혀졌다.이에 탄핵재판을 맡은 검사들은상원에 그의 계좌를 조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그러나 상원은 16일 실시한 투표에서 11대 10으로 이를 부결시켰다. 탄핵안은 탄핵재판 판사를 맡고 있는 22명의 상원의원 중 3분의 2이상인 15명이 찬성해야 가결된다.하지만 검사들의집단 사임으로 탄핵재판은 사실상 무기한 중단된 상태다. ■번지는 소요,돌아서는 민심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부정축재를 밝힐중요한 증거인 은행계좌에 대한 조사가 좌절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수도 마닐라를 비롯,세부·바콜로드·다바오 등 주요 도시에서는 이날 수천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자동차 경적을 울리고 폭죽을 쏘며 격렬하게 철야 시위를 벌였다.에스트라다 대통령의 주요 지지세력인 중·하층민들의 민심이반도 가속되고 있다.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과 일부 상원의원,학생,야당 지도자들을 포함한 수천명은 독재자 페르디난도 마르코스를 축출했던 86년 시민혁명의 성지에서 철야 촛불 기도회를 열고 정궈퇴진을 외쳤다.80년대반 마르코스 시위를 이끌었던 가톨릭 지도자 하이메 신 추기경도 친(親) 에스트라다 상원의원들의 ‘부도덕성’을 비난하면서 폭력사태를경고했다. ■무너지는 경제 일부 재계 지도자들도 철야 기도회에 가담했다.그들은 탄핵재판이 진행되면서 외국인 투자가 줄고 페소화 가치가 급락하는 등 필리핀 경제가 큰 타격을받고 있다고 걱정했다. 사실 에스트라다 대통령 취임 1년간 필리핀의 경제는 비교적 성공적이었다.페소화는 취임 당시인 98년 7월 달러당 41페소에서 99년 7월엔 37페소로 회복됐다.그러나 지난해 말 그의 탄핵문제가 불거지면서페소화는 계속 하락세로 이어져 17일 현재 달러당 55페소까지 내려앉았다. ■“쿠데타 가능성” 필리핀에 대한 투자유치를 위해 홍콩을 방문 중인 피델 라모스 전 대통령은 에스트라다 대통령이 탄핵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을 경우 군사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확실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쿠데타가 일어날 수도 있다”면서“친위 쿠데타가 더 가능성있는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육철수기자 ycs@. *필리핀 대통령 에스트라다 혐의. 시민혁명의 위기로까지 몰린 조셉 에스트라다 필리핀 대통령은 98년11월부터 99년 9월까지 친구인 루이스 싱송 일로코수르 주지사를 통해 도박조직 두목들로부터 모두 800만달러의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탄핵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싱송 지사는 가방에 돈을넣어 에스트라다에게 보냈다고 폭로했다.돈가방을 전달한 증인도 확보된 상태.에스트라다도 일부 돈을 받았다는 점은 시인했지만 도박조직의 돈은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다. 에스트라다는 담배 재배업자들에게 정부보조금 1억3,000만페소를 지원하고 그 대가를 받았고 부인·정부·자녀들 명의로 공식 발표된 자산 이외의 재산을 비밀리에 소유함으로써 위증을 한 혐의도 받고 있다.클라리사 오캄포 이퀴터블 PCI은행 부행장은 탄핵재판에서 에스트라다가 비밀계좌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에스트라다는 친구의 부탁을 받고 게임업체인 BW 리소시즈사의 증시조작 혐의에 대한 증권거래소측의 조사에 개입하기도 했고 필리핀 게임오락국에 압력을 행사,한 게임사의 사업권을 내주기도 했다. 대학을 중퇴한 ‘B급’ 영화배우 출신인 에스트라다는 98년 초 대통령 선거 유세 때부터 여성편력,음주,카지노 업계와의 연계설에 시달렸다.그러나 빈곤탈출을 국가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부패척결과 탈세근절이란 구호로 부동표를 흡수,집권에 성공했다. 강충식기자chungsik@. *필리핀, 86년 당시 상황은. 86년 2월 부정선거로 네번째 권좌에 오르려했던 페르디난도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의 축출과정은 시민혁명의 전형이다. 마르코스는 선거에서 이겼지만 시민들의 거센 저항을 피할 수 없었다.시위의 구심점은 83년 8월 암살된 야당지도자인 베니그노 아키노전 상원의원의 부인 코라손 아키노 여사.수만명의 시민들은 연일 거리로 뛰쳐나와 ‘코리(코라손의 애칭)’를 외쳐댔다. 선거가 끝난 뒤 보름이 지난 86년 2월22일 군 핵심부마저 반 마르코스 전선에 합류했다.당시 엔릴레 국방장관과 피델 라모스 참모총장서리는 “마르코스를 반대하고 아키노를 지지한다”면서 국방부를 점거했다.군중들도 국방부에 몰려들면서 이들에게 지지를 보냈다. 정부군은 마지막 수단으로 탱크를 들이댔지만 하이메 신 추기경의호소로 시민들은 맨몸으로 인간띠를 이룬 채 탱크에 맞섰다.정부군은인간띠를 넘지 못하고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일부 정부군은 반정부군에 가담했다.반정부군은 TV방송국까지 점령,대세를 장악했다. 그러나 마르코스는 25일 취임식을 강행했고,코라손도 이날 시민들의환영속에 대통령에 취임했다.한 나라에 두 대통령이 등장하게 된 것.시민들과 반정부군은 대통령궁인 말라카냥궁을 향해 밀려갔다.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마르코스는 취임 9시간만인 25일 오후 10시쯤 미군 헬기로 대통령궁을 탈출해 괌으로 달아났다. 그는 89년 5월 망명지 하와이에서 쓸쓸히 눈을 감았다. 마르코스가축출된 지 14년여가 지난 지금 필리핀은 제2의 시민혁명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강충식기자
  • 카스트로 “인터넷이 가장 두려워”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인터넷? 1959년 혁명 이후 카스트로는 쿠바인들의 눈과 귀를 통제하면서 41년동안 장기집권하고 있다.하지만 최근 쿠바내에서 인터넷 열풍의 조짐이 보이자 전전긍긍하고 있다.인터넷으로 자유·개혁의 물결이 쿠바에까지 밀려올까봐서다.특히 카스트로는 유고 피플혁명에서 인터넷이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물론 쿠바에서는 당국의 허가가 있어야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당국이 허가한 인터넷 이용 가능자는 공무원,사업가,과학자 등으로 전체인구 1,100여만명 가운데 5만여명 정도. 하지만 최근 인터넷에 접속하는 암호를 풀거나 공무원 등의 아이디를 도용하는 해커들이 급속히 늘고 있다.스스로를 ‘인포마티코스(informaticos)’라고 칭하는 이들은 현재 수천명선에 달한다.이들은 인터넷에 서방세계의 소식은 물론 반정부의 글도 과감히 띄우고 있다. 당국은 이들을 단속하고자 해도 비용이 엄청나 포기한 상태다.그렇다고 인터넷을 없앨 수도 없다.인터넷을 통해 쿠바의 여행정보를 접한 외국인이 대거 입국,확실한 외화벌이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 판매도 철저히 단속하고 있지만 돈만 주면 암시장에서 얼마든지 컴퓨터를 살 수 있는 상황이다.인터넷의 파급력을 감안하면 쿠바에서는 인포마티코스 전체 숫자의 몇 배에 해당하는 반체제 인사가 활동하고 있는 셈이다. 강충식기자
  • 세르비아 새 총리 진지치

    지난 23일 치른 유고연방 세르비아 총선에서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대통령이 이끄는 세르비아민주야당(DOS)이 압승을 거두면서 새 정부의 총리에 내정된 조란 진지치 DOS 당수(47)가 새로운 정치 인물로떠올랐다. 2차 대전후 첫 비(非)공산당 출신 총리가 될 진지치는 지난 대선과민주화 시위 과정에서 야당연합 세력을 막후에서 지휘,코슈투니차 정부의 산파역을 했다. 그는 70년대 초 티토 치하의 유고에서 반정부 세력의 온상이었던 베오그라드대 철학부 재학 당시 반공 학생단체를 조직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이로 인해 수개월동안 옥고를 치른 뒤 독일로 유학,철학박사학위를 땄다.79년 귀국,노비사드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89년 반체제 작가와 지식인을 규합해 민주당을 결성했다.90년 첫 다당제 선거에서 의회 진출에 성공했으며 94년에는 민주당 당수가 됐다.상황에따라 무정부주의자에서 자유주의자로, 다시 민족주의자로 변신을 거듭,비난 또한 만만치 않다.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의 사법처리와 관련,25일 BBC와의 회견에서 “밀로례비치를 (국내)법정에 세워 재임기간 자행한 부패와 권력남용및 전쟁범죄에 대한 개인적인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육철수기자 ycs@
  • 6·25참전 재미교포 김상곤씨 인터뷰

    6·25전쟁 참전용사로 지난 71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면서 미처 받지 못한 군인연금을 수령하기 위해 29년만에 한국을 찾은 재미교포김상곤씨(金商坤·74)는 ‘연금지급기한이 지났다’는 국방부 당국자의 말에 할말을 잊었다. 예비역 중위인 김씨는 6·25전쟁 때 평양전투 등지에서 전공을 세워 금성화랑무공훈장을 받은 역전의 용사.김씨의 연금재정번호는 61번으로 이민가기 전까지 매월 2,800원의 연금을 받았었다. 김씨는 “71년 7월17일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연금관계를 꼼꼼하게 챙기지 못했고,미국에서 유신반대운동 등 반정부활동으로 입국이어려워지면서 귀국을 포기한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라며 정부의매정함을 원망했다. 김씨는 때 늦었지만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지난달 13일 귀국,국방부 연금과에 문의했으나 ‘71년 11월20일에 일시불로 연금을찾아간 것으로 기록돼있다’는 대답을 들었다.실제 김씨는 국방부가보관중인 ‘이민으로 인한 연금일시불 재정대장’에 ‘11월25일 출국예정이며 연금지급특례에 따라 1년 연금액의 4배에상당하는 81만4,640원을 찾아갔다’는 기록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연금을 수령한 사실이 없고 연금 수령일자에 본인은 미국에있었다는 주장도 소용이 없었죠” 당시 수령자와 수령자가 제출한 서류를 보여달라는 김씨의 요청에국방부는 “관련서류는 5년이 지나면 폐기처분하므로 남아있지 않으며 연금일시불 재정대장 외에는 증빙서류가 없다”고 답했다.또 “회계법에 따라 연금은 5년이 지나도 찾아가지 않으면 저절로 국고에 환수된다”는 대답만 들었다. 김씨는 “받지도 않은 연금을 받은 것으로 기록해 놓은 것도 억울하지만 5년이 지나면 받지 못하도록 규정한 관련법도 이해할 수 없다”면서 “나라를 위해 몸바친 참전용사가 없었다면 오늘의 조국이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행정소송을 제기해서라도 29년치 연금을 반드시 되돌려받겠다”고 말하는 김씨의 눈엔 당국에 대한 섭섭함이 서려있었다. 노주석기자 joo@
  • “후지모리 40억弗 빼돌렸다”

    [멕시코시티 연합] 알베르토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이 1990년부터 10년 집권 동안 40억달러에 이르는 국고를 빼돌려 외국은행의 비밀계좌에 예치해 놓았다고 반정부 성향의 페루 일간지 ‘리베라시온’이 19일 보도했다. 신문은 “후지모리 대통령의 국고 밀반출은 해외탈출한 블라디미로몬테시노스 전국가정보부장의 조언을 받아들여 이뤄졌다”면서 “두사람은 92년초부터 라틴아메리카 역사상 전례없는 불법적이고도 조직적인 수법으로 국고를 빼돌렸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또 후지모리 대통령이 92년 4월 일으킨 친위쿠데타는 국고를빼돌린 사실이 일부 드러나면서 궁지에 몰리자 의회를 해산하는 동시에 사법부를 재개편,사법당국의 조사를 중지시키기 위한 술책이었다고 주장했다.
  • 밀로셰비치 13년 철권통치 끝나

    [베오그라드 외신종합]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 대통령의 13년 철권통치가 6일 피플파워 앞에 무너졌다. 야당의 보이슬라브 코스투니차는 이날 베오그라드를 방문 중인 이고르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만나 대선 승리를 축하하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받았다.푸틴은 이 메시지에서 “유고의새 지도자가 현재의 위기를 잘 극복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바노프 장관은 코스투니차와 회담한 뒤 밀로셰비치 대통령과도 회담을 가졌다고 세르비아정교회 소식통들이 전했다. 코스투니차는 6일 새벽 새 대통령 자격으로 국영 TV에 출연해 정권인수와 새 시대의 출범을 선언하고 1년6개월 내에 새로운 선거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EU)은 9일부터 세르비아에대한 제재조치를 해제할 것이라고 하비에르 솔라나 EU 외교담당 대표가 6일 밝혔다.EU와 미국,영국 등 서방국 정상들은 잇따라 성명을 내고 코스투니차를 유고의 새 대통령으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수십만명에 달하는 유고의 반정부 시위대들이 5일 밤(현지시각)과 6일 새벽 사이 의회의사당을 비롯한 수도 베오그라드의공공 건물들을 장악했고 국영 텔레비전 등 주요 언론들은 야당 지도자 보이슬라브 코스투니차를 새 대통령으로 선언했다.
  • 東유럽 공산당독재 몰락 도미노

    신유고연방의 피플혁명은 지난 89년 이후 동유럽을 휩쓴 공산정권의몰락 도미노 현상이 마무리되는 과정이라고 할수 있다. 동구권 공산당의 몰락은 89년 6월 폴란드에서 자유선거가 실시돼 공산당이 대패하면서 시작됐다.이듬해 12월 자유노조 지도자 레흐 바웬사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폴란드의 혁명은 완료됐다. 폴란드의 공산정권 몰락에 영향받은 헝가리는 그해 9월 다당제 민주주의의 뼈대를 마련했다.이듬해 3월 실시된 자유총선을 통해 새로운민주 정권이 탄생했다.체코도 89년 11월17일 ‘벨벳혁명’으로 불리는 순조로운 민주화 과정을 통해 공산당 지도부를 몰아냈다.그뒤 희곡작가인 바츨라프 하벨을 대통령으로 선출해 민주국가로 성공적인변신을 이룩했다. 동독은 거센 자유화 물결로 89년 10월 18일 에리히 호네커 당서기장이 사임하고 에곤 크렌츠서기장이 바통을 넘겨받았다.다음달 9일 동독인들의 서방 여행 자유화 발표로 베를린 장벽이 붕괴됐고 크렌츠서기장 역시 12월 6일 사임했다.90년 실시된 총선에서 기민당이 승리,공산당 독재를 청산했다. 루마니아는 89년 12월17일 서부도시 티미소아라에서 발생한 폭동,8일뒤인 12월25일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와 부인 엘레나의 즉결 처형으로 가장 폭력적이기는 하지만 가장 빠른 민주화 행보를 보였다. 강충식기자 chungsik@. *밀로셰비치 철권 붕괴 ‘10일간의 드라마'. 밀로셰비치 대통령 13년 철권통치의 마지막 10여일은 한편의 드라마를 연상시키듯 숨막히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다. ● 9월 24일 투표 유고 대선 및 총선이 치뤄진 뒤 밀로셰비치는 자신이 44%,보이슬라브 코스투니차 세르비아민주야당(DOS) 후보가 41%를득표했다며 결선투표를 주장했다. ● 9월 26일 결선투표 선언 유고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과반수 득표자가 없어 10월 8일 결선투표를 실시한다고 발표.성난 국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야당은 코스투니차 후보의 당선을 선포했다.9월 28일 밀로셰비치는 결선투표강행을 지시했다.이후 전역에서시위가 격화되며 전국적인 시민불복종운동이 전개됐다. ● 9월 29일 불복종운동 시작 코스투니차의 재개표 요구마저도 거부되자 반 밀로셰비치 시위는 세르비아 전역으로 확산됐다.10월 1일 반정부시위의 중심지로 떠오른 콜루바라 탄광에 공권력이 투입됐지만대세는 이미 기울었고 일부 국영언론마저 야당지지로 선회했다.탄광파업은 전국적인 불복종운동에 불을 지폈다.10월 3일 유고 정부는 반정부 활동을 엄단하겠다고 발표. ● 10월 5일 드라마 종결 야당은 밀로셰비치에게 오후 3시까지 선거패배를 인정하라는 최후통첩 발동.3시가 지나면서 수십만명의 시위대가 공공건물로 밀어닥쳤다.10월 6일 새벽 코스투니차가 국영 TV에 출연,자신을 새 대통령이라고 선언하면서 10일간의 드라마는 막을 내렸다. 강충식기자
  • [사설] 李運永씨 배후

    대출보증 외압의혹을 제기해 온 이운영(李運永)씨의 배후에 한나라당 관계자와 국정원 전 간부들이 있다는 한나라당 엄호성(嚴虎聲)의원의 발언은 충격적이다.엄의원은 21일 밤 한 조간신문 기자와 만난자리에서 “이씨의 변호사를 통해 수시로 접촉해 왔다”고 밝히고 “국정원 전직 간부 S씨가 이씨를 돌보고 있는 게 사실이냐”는 물음에는 “사실이다”고 시인했다.상당량의 자료를 건네받아 보관 중이라는 사실도 털어놓았다.엄의원은 그러나 22일 발언 내용이 파문을 일으키자 “이씨의 기자회견이나 도피에 관여한 적이 없고 이씨를 만난 적도 없는데 배후라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문제의보도는 상당 부분 ‘과대포장’됐다는 것이다.하지만 엄의원의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자료를 넘겨받아 분석·평가해주고 간접적이라 하더라도 수시로 접촉하며 조언해준 것이 배후가 아니면 무엇이란말인가.엄의원과 접촉했다는 이씨의 변호사는 한나라당 인권위원이다.한나라당은 얼마전에는 이씨의 일기를 공개하는 등 이씨를 대변하는 듯한 모습을보이기도 했다.일련의 과정으로 미루어 이씨의 주장에는 진위와는 상관 없이 정치적 의도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여겨진다. 이씨는 지난 21일 검찰에 긴급체포되면서 “지금까지 어떤 정치단체나 정당과도 접촉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하지만 엄의원의 발언으로 이는 거짓임이 드러났다.특히 이씨의 도피생활을 돌봐줬다는 국정원 전직 간부 S씨는 4·13 총선 당시 한나라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국정원이 자신의 서울 종로 출마를 막고 있다고 주장했던 인물이다.S씨가 총무를 맡고 있는 ‘국사모’(국가를 사랑하는 모임)라는 단체도 정치적 색채가 강하다.현 정부 출범 이후 국정원 개혁과정에서 직권 면직된 국정원 2·3급 간부들이 회원으로,반여(反與) 입장에서 활동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민주당은 “과거 민주인사들을 고문하고 탄압한 사람들이 이제는 반정부 공작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국정원 출신과 한나라당과의 관계는 지난해 11월 ‘폭로정국’의 와중에서도 문제가 됐다.“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이 국정원 전직간부들을 활용해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법리적으로 따진다면 수배 중인 이씨를 돌봐준 행위는 범인은닉죄와 공무집행방해죄에 해당한다.검찰은 이씨의 주장이 사실인지 여부 못지 않게 이에 대해서도 철저히 수사해야 할 것이다.한나라당도 부인으로만 일관할 사안이 아니다.민주당은 이씨 사건의 본질이 ‘정치공작’이라고 규정하고 이회창(李會昌)총재의 사과를 강력히 요구하고나섰다.국민들도 의구심을 갖기는 마찬가지다.한나라당은 이에 대해분명한 답변을 해야 할 것이다.
  • 8.15 이산가족 교환방문 D-6/ 남북 단장 이모저모

    북측이 8·15이산가족 서울 방문단 단장으로 조선적십자회 관계자가 아닌,유미영(78·柳美英) 천도교 청우당 중앙위원장을 임명한 데는 체제 우월성을과시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유위원장은 86년 남한 각료출신으로는 최초로월북한 최덕신 전 외무장관(89년 사망)의 아내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군 장성 출신인 최씨는 5·16직후 군사정부에서 외무부장관,서독 대사,통일원 고문 등을 지냈으나 이후 민정이양 과정에서 소외되자 아내 유씨와 77년미국으로 망명,반정부활동을 벌이다 86년4월 북한으로 넘어갔다. 유위원장은 6월 평양 남북정상회담때 이희호(李姬鎬)여사와의 남북 여성분야 협력간담회에 북한 여성계 대표로 참석하는 등 북 주석단 서열 30∼40위안에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정부 당국자는 “현재 유위원장의 딸과 여동생등이 서울에 거주하고 있으며 소재를 찾고 있다”고 말해 서울방문때 상봉을 주선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우리측 평양 방문단장으로 임명된 장충식(張忠植)한적 총재는 평북 선천 출신으로 직계가족은 모두 함께 월남했으며,현재 고향에는 사촌 형제만 살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장 총재는 89년 남북체육회담 수석대표로 평양을 방문했을 때 북한당국이 친척을 만날 용의가 없느냐고 권유했으나,사적인 일로온 게 아니라는 이유로 정중히 거절한 전례가 있다.그러나 이번에 서울을 방문하는 유위원장이 가족 상봉을 할 경우 장총재도 평양에서 친척을 만날 가능성이 있다. 김상연기자
  • [끊이지 않는 지구촌 분쟁](8.끝)체첸 사태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에 위치한 북카프카스 지역이 21세기 지구촌의 화약고로 떠올랐다.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는 체첸군의 무력항쟁이 계속되고있고,매장량이 엄청난 카스피해 유전과 송유관을 둘러싼 연안국들의 힘겨루기와 크고 작은 민족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체첸과 지난 10년동안 두차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러시아군은병력수 및 화력면에서 월등한 우세에도 불구하고 1차 전쟁에서 패배한데 이어 11개월째에 접어든 2차 전쟁에서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체첸전은 특히 러시아와 체첸간의 독립전쟁 이상의 성격을 띤다.슬라브정교의러시아에 맞서 체첸 지역에 이슬람공화국을 수립하기 위한 성전(聖戰)으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다. [분쟁의 뿌리] 이슬람교도인 체첸인들의 대(對)러시아 독립투쟁 역사는 140년 가까이 된다.17세기부터 19세기까지는 페르시아제국과 오토만제국간 영토쟁탈전에,18∼19세기에는 제정러시아의 남진정책에 시달렸지만 지금까지 러시아의 통치를 거부하며 저항을 계속하고 있다.서슬퍼런 스탈린 정권때에도폭동을 일으켰을 만큼 반러 감정은 뿌리깊다. 1991년 옛소련이 해체되면서 이 지역의 그루지야와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이 독립했고 체첸도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했다.하지만 러시아는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체첸에는 질좋은 유전과 카스피해 유전과 유럽을 잇는 송유관이 지나고 있다는 경제적 이유와 인근 공화국으로 독립 움직임이 확산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1·2차 전쟁] 러시아군이 94년 전격적으로 체첸을 침공함으로써 1차 전쟁이발발했다. 러시아군은 체첸군의 끈질긴 저항에 밀려 2년1개월만에 철수,평화협정을 체결했다. 지난해 8월 강경파인 샤밀 바사예프가 이끄는 체첸군이 이슬람공화국을 세우겠다며 인근 다게스탄공화국을 침공,이를 저지하기 위해 러시아군이 체첸을 침략하면서 4년만에 2차전쟁이 시작됐다.러시아군은 정규군과 국경경비대등 15만명의 병력과 막강한 화력을 투입,전면전을 감행했다. 올 2월1일 수도그로즈니를 점령했고 2월6일 ‘전쟁 종료’를 선언했다. 하지만 남부 산악지대로 밀려난 체첸군은 게릴라전으로 버티고 있다. 최근에는 자살폭탄공격을감행,러시아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있다. [전망]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러시아 국민들 사이에 체첸전은 제2의 베트남또는 아프가니스탄으로 비춰지고 있다.군사적으로 승리할 수 없을 바에야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여론이 점차 힘을 받고 있다. 체첸전을 주도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국민과 군부의 지지를 얻어 집권했지만 지금은 계속되는 전쟁과 군부의 지나친 기대가 오히려 짐이 되고있다.매달 1억달러의 전비가 들고 8개월동안 2,000여명의 러시아 연방군 전사자를 낸 전쟁을 마냥 끌고만 갈수도 없다. 현재 러시아 정부와 체첸 임시정부간에는 종전협상이 진행중이다.하지만 러시아는 체첸이 항복하는 것만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체첸군은 마지막 한명까지 항쟁을 계속한다는 입장이어서협상전망은 밝지 않다. 김균미기자 kmkim@. *용맹하고 난폭한 체첸인들. 세계적 장수촌으로 유명한 카프카스 지역에는 80여개 소수민족이 모여살고있다.이중 러시아를 상대로 독립전쟁을 치르고 있는 체첸인들은 용맹하고 난폭하기로 유명하다. 체첸자치공화국은 우리나라 경상북도 정도 크기에 인구는 고작 120만명에불과하다.영토의 대부분이 산악지대로 덮여있어 목축으로 생계를 이어왔다. 사내아이들은 10세가 넘으면 아버지가 총과 칼을 주고 생존능력을 키워줄 정도라고 한다. 체첸인들의 반러 감정은 수백년동안 러시아와 터키 등 주변 강대국들의 침략에 맞서 싸우면서 단련됐다.이들은 40년대와 70년대에도 옛소련 정권을 상대로 항쟁했고 스탈린은 이들을 아예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켰다.이슬람교도인 체첸인들은 슬라브정교를 믿는 러시아와의 전쟁을 지하드(성전)로 생각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들의 저항은 실로 처절하기까지 하다.전쟁전 6.7%이던 출산율이 현재 7.4%로 높아졌다.14∼16세 소녀들의 조혼은 물론 일부다처제를 적극 권장하고있다.다산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있다. 자금원 역할을 했던 유전과 정유시설 대부분이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거의파괴됐다.따라서 체첸전을 성전으로 여기고 있는 전세계의 이슬람단체들은체첸에 무기구입과 용병고용을 위한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 체첸은 연간 260만t의 원유 생산지이며 주요 정유시설의 소재지이다.체첸지역의 원유는 1932년 한때 러시아 전체 생산량의 10%이상을 차지할 만큼 비중이 높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비중이 떨어졌다. 김균미기자. *체첸분쟁 일지. ●1944 스탈린,체첸인들 친나치세력으로 몰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1957 후루시초프,체첸인들 귀향 허용●1991.10 옛 소련 공군장군 출신 조하르 두다예프 체첸대통령에 당선●1991.11 체첸-잉구시공화국,러시아로부터 독립선언●1993.10 체첸,반정부군과의 내전 발발●1994.11 옐친,체첸 반군에 휴전 촉구●1994.12 러시아군,체첸 공격으로 1차 체첸전쟁 발발●1997.1 반군 지도자 아슬란 마스하도프 대통령에 당선●1997.5 러시아-체첸 평화협정 체결●1999.8 체첸반군,다게스탄 국경 침범해 이슬람공화국 선언●1999.9.30 러시아군,체첸 재침략으로 2차 전쟁 발발●1999.12.25 러시아군,수도 그로즈니전면 공격●2000.2 러시아군,그로즈니 장악.‘전쟁 종료’ 선언●2000.7 체첸반군,자살테러 감행.현재 종전협상 진행중
  • [외언내언] 80년 ‘언론도살’

    1980년 신군부가 정권 탈취를 위한 사전 공작으로 언론계에서 몰아낸 언론인 711명의 해직사유가 구체적으로 명기된 당시 보안사 내부문건이 지난달 30일 최초로 공개됐다.노태우(盧泰愚)보안사령관이 직접 결재·서명한 이 문건의 제목은 ‘정화언론인 취업허용건의’. 이 문건은 “언론을 확실하게 장악하기 위해 우리가 몰아낸 반군부(反軍部)성향의 기자들이 먹고 살지도 못하면 반정부 세력으로 똘똘 뭉칠 우려가 있다. 따라서 그들이 적어도 ‘먹고는 살 수 있게’해주자.그리고 그들이 취업을할 수 있는 범위는 우리가 ‘비위’를 이유로 공직에서 몰아낸 전직 공직자들이 취업을 할 수 있는 범위로 제한하자”쯤으로 풀이할 수 있는 문건 작성취지를 밝히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해직언론인들에게 제한적으로나마 취업을 허용하자’고 건의한 이 문건이해직언론인 711명 개개인에 대한 해직사유를 구체적으로 명기함으로써 20년가까운 세월이 흐른 오늘날 80년 당시 해직의 아픔을 겪었던 언론인들의 명예와 권리 회복에 결정적으로 기여를할 줄이야!정부는 그동안 80년 해직언론인들에 대한 명예회복 및 보상관련 입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강제해직의 ‘물증’이 없다고 망설여 왔다.그러나 이 문건보다 딱 떨어지는 물증이 또 있겠는가. 문제의 문건을 보면,신군부는 해직언론인 711명을 3등급으로 나눠 A급으로분류된 12명은 영구적으로 취업을 제한했고,B급 97명에 대해서는 1년 동안,C급 602명은 6개월 동안 취업을 제한했다.‘영구 취업 제한’이라니 말이 되는가. 뿐만 아니라,이 문건에는 중요한 사실들이 드러나 있다.신군부는 억대 이상치부한 부패 언론인들과 파렴치 기자 등 저질 언론인들을 축출대상에 포함시킴으로써 언론탄압이란 국민들의 비판에 ‘물타기’를 했고,각 언론사들 또한 미운털 박힌 기자들을 ‘자체 정화대상자’로 ‘끼워 넣기’를 했던 것이다.그럼에도 그 언론사들은 아직도 건재(健在)하다. 80년 신군부 ‘언론도살’의 물증이 드러난 이상 정부는 해직언론인 보상관련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 뿐만 아니라 역대 군사정권의 업보(業報)에서 자유로운 국민의 정부는박정희 유신독재에 항거하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서 쫓겨난 75년 해직기자들의명예도 회복해 주어야 할 역사적 책임이 있다. 장윤환 논설고문 yhc@
  • 홍콩 1국2체제 위기 불만 팽배

    홍콩이 1일로 주권 반환 3주년을 맞는다.예년 같으면 성대한 기념식이 치러지겠지만 올해는 대신 둥젠화(董建華) 홍콩특구 행정장관의 퇴진과 민주개혁의 가속화를 요구하는 학생과 시민단체 등 30개 단체의 반정부시위가 벌어질예정이다. 불과 3년만에 홍콩의 여론이 둥장관에게 이처럼 냉담해진 것은 장기 침체에빠진 경제에 대한 비관적 전망과 날로 정도가 심해지는 중국 정부의 내정간섭으로 ‘1국2체제’ 원칙이 훼손되고 있기 때문이다.중국 정부는 1국2체제와 50년간의 고도자치를 약속했지만 홍콩정부에 대한 간섭은 도를 더해가는데도 둥정부는 미온적 반응만 보이고 있다. 홍콩정부는 지난해 6월 홍콩 대법원이 내린 판결에 대한 재해석을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요청,스스로 최고 법원의 권위를 훼손시켰다.중국은 언론탄압도 서슴치 않고 있다.첸치천(錢其琛) 중국 부총리가 홍콩 법무장관에게‘홍콩언론의 양국론 홍보를 금지시키라’고 훈계하고 지난 4월에는 왕펑차오(王鳳超) 주홍콩중앙연락판공실 부주임이 홍콩언론에 대해 ‘타이완 독립관련내용은 일반 뉴스로 취급하지 말라’며 일종의 보도지침을 제시,반발을샀다. 지난달 31일 중앙연락판공실의 허즈밍(何志明) 타이완사무부장은 홍콩기업들에 독립을 지지하는 타이완기업들과 거래하지 말도록 경고,‘1국2체제위기설’을 증폭시켰다. 홍콩 중문대 아·태연구소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1국2체제 만족도는 98년 4월 10.9%에서 지난 4월에는 5.5%로 뚝 떨어졌다. 경제에도 명암이엇갈린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당초보다 상향조정되고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가입 등 대외환경 변화로 성장이 지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비관론이 만만치 않다.비관론자들은 중국의 WTO가입으로 중개기능 약화,산업공동화로 따른실업난 가중, 위안화 변동에 따른 고정환율제 붕괴를 우려하고 있다. 김균미기자 kmkim@
  • 행정정보 공개/ 제대로 돼가나

    행정정보 공개제도가 겉돌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실효성있는 행정정보 접근이 어렵다는게 공직사회안팎의 지적이다.우리나라에서 행정정보 공개는 지난 94년부터 시작됐다.처음에는 국무총리 훈령으로 ‘행정정보공개 운영지침’에 의해 시범적으로 운영됐다.그러던 것이 98년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전 공공기관으로 확대 실시됐다. 훈령으로 운영되던 때는 정보공개 대상이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불과했다.나중에는 헌법재판소나 선거관리위원회 등 헌법기관과 입법기관,정부투자기관,특수법인에까지 늘어났다.정부기록보존소의 영구보존 국가기록물이 포함된 것도 이 때부터다.공공기관은 청구를 받은 날부터 15일이내(부득이한 경우 15일 연장 가능)에 공개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정보공개청구 건수도 꾸준히 늘었다.지난 한해 전국 각급 행정기관에 접수된 각종 정보공개청구 건수는 4만2,930건으로 98년 2만6,338건에 비해 63%가증가했다.94년 첫해에는 1만2,113건이었다. 제도적인 보완도 뒤따랐다.불복 구제절차가 법제화된 것은 큰 변화다.처분기관에 재심의를 요구하는 이의신청,상급기관에 심의를 요청하는 행정심판,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행정소송 등이 법적으로 보장돼있다.인터넷 등으로 공개청구와 처리를 실시하는 기관이 늘어나는 등 제도 운영 역시 개선되는 추세에 있다. 그러나 이같은 외형적 견실화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문제점이 상존하고있다. 우선 공개여부 판정기준이 모호하다.지난해 전국적으로 정보공개심의회가 335차례 열렸지만 절반에 가까운 158건이 ‘결정 곤란’으로 판정났다.정보공개에 따른 분쟁의 소지를 방지하고 행정의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또한 신속하고 적절한 불복구제를 위한 전문기관의 설치가 요구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일부 기관에서는 정보공개 이용을 위해 비치하게 돼있는 주요문서목록 등도아직 마련하지 않고 있는 등 준비가 미흡하다. 정보 청구방법의 다양화 방안도 모색 돼야한다. 지난해 전체 청구의 86%가행정기관에 직접 출석한 경우였다.전자적 정보공개에 대한 구체적인 운영지침이 필요하다.현재 각급 기관이 홈페이지를 통해 구축하고 있는 인터넷 정보공개시스템이 정착되면 정보공개청구사례는 대폭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정보는 시간에 따라 자산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필요로 하는 정보를 신속히 공개,정보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공개여부 결정에서 공개까지 걸리는 시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지운기자 jj@. *시민단체 지적 문제점.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정보공개청구제도의 문제점으로 우선 정보공개청구를전담하고 있는 주무부서가 없는 점을 들고 있다. 현재 정보공개청구는 각 부처 총무과 문서계에서 접수받아 해당 부서로 넘기는 체계로,약간이라도 까다로운 자료의 경우 정보공개청구자는 같은 문의를 여기 저기에서 여러 번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또한 비공개 대상이 너무 광범위한 점을 지적했다. 녹색연합은 지난 98년 영동군에 화학무기 폐기 실태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국가보안’의 이유로 비공개했다는 것이다. 정보공개제도의 비공개 사유는 국가안보 등 국가의 이익을 해친다고 판단되는 정보,업무의 공정한 수행이나 연구개발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하는 정보등 크게 8가지로 분류돼 있으나 문제는 이 판단을 일선 실무자가 자의적으로한다는 데 있다.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비정기적으로 열기는 하지만 유명무실한 형편이다. 더욱이 시민단체 등 정보공개청구자가 행정 소송 등 구제 절차를 밟으려 하면 ‘공식적으로는 비공개 대상인 정보가 비공식적으로 공개’되는 경우도발생한다. 그밖에 공무원들의 정보공개제도에 대한 무사안일과 인식 부족,이용자인 국민들의 권리 의식 미비도 제도정착을 지연시키는 문제로 꼽을 수 있다. 공무원들은 실제 정보공개 청구에 대해 ‘자기 업무에 부담을 주는 귀찮은일’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는 현실이다.정보공개제도에 대한 일선 공무원들에 대한 체계적 교육은 지금까지 한 번도 이뤄지지 않고 정보공개를 청구할때 그때 그때 설명해주는 데 그치고 있다. 실제로 참여연대 정보공개사업단 이경미 간사는 “정보공개청구제도에 대해시민단체 간사들이 공무원들에게 설명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국민들이 자신들의 알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못하는 점,그리고 비싼 수수료의 문제도 앞으로 극복돼야할 부분이라는 것이 시민단체들의 지적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 *金正鎭 행자부 행정능률과장. “대체로 잘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행정자치부 행정능률과 김정진(金正鎭)과장은 19일 행정정보 공개제도의 운영에 대해 ‘양호’ 점수를 매겼다.제도 운영실무책임자로서 당연한 답변이겠지만,시민·사회단체 등 수요자들의 평가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것이다. 김과장은 이에 대해 “제도가 본격 시행된 지 2년 밖에 안됐다는 점을 감안해달라”고 주문했다. “시행 2년째에 정보공개 청구실적이 전년도보다 63%나 늘어난 것은 제도에대한 인지도와 필요성이 높아졌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제도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정보 공개율이 90%에 육박하는것도 나름대로 내실있게 운용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아직 문제가 있다는 점을 시인한다.사회단체등이 요구하고 있는핵심자료는 아직 개인정보 공개 등과 맞물려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점을 대표적으로 꼽았다.하지만 “사법시험 내용이 공개되는 것 처럼 사회의 요구에따라 점차 공개의 폭이 넓어지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지난 2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법적 정비도 준비중이라고 소개했다.“이의신청 절차를 줄이고 처리기간도 단축시킬 계획이고,소비자들의 불만이 많은 열람수수료 인하도 포함돼있다”고 귀뜸해주었다.논란이 되고 있는 정보 비공개에 대한 사유를 구체화시키겠다고 공언했다. 이런 것들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개정안을 만들어 올 하반기 정기 국회 회기내에 제출할 계획이다.개인적으로는 행정기관의 판공비도 공개돼야 한다는견해지만 현재 재야단체의 소송 결과를 지켜보고 일을 추진할 방침이다. 그러면서도 김과장은 “법이 개정되더라도 당장 만족도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개인정보 보호’만 하더라도 최근 각종 판례를 통해 사회적 개념이 정립되고 있어 이런 추세가 제도에 반영되려면 좀 더시간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김과장은 “전반적으로는 앞으로 2년쯤 더 지나고 나면 인터넷 등을 통해행정정보 공개제도가 우리사회에서 확실하게 자리를 잡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지운기자. *외국의 사례. 현재 정보공개제도는 우리나라를 포함,미국,스웨덴,프랑스,캐나다,오스트리아,호주,뉴질랜드,덴마크,노르웨이,핀란드,네덜란드,벨기에 등 14개국에서법으로 보장돼 시행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67년 법제화한 정보자유법(FOIA·Freedom Of Information Act)을 통해 ‘누구라도 연방 정부 기록에 접근권을 지닌다’고 규정했다.미국에서는 CIA(중앙정보부)가 지난 60년대 반정부 성향을 가진 것으로 판단되는미국인들과 사회 단체들을 불법적으로 감시해왔음을 이 정보공개청구제도를통해 밝혀냈다. 또 비밀리에 수감중인 죄수들을 대상으로 세뇌용 약품의 실험 대상으로 사용했다는 사실과 양로원 노인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의약품의 성능 시험을 한것 등을 공개했다. 한편 일본은 지난 99년에야 정보공개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2001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그러나 지난 82년부터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조례형식으로 정보공개제도를 시행해 풍부하고 구체적인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 그중 정보공개운동의 중요성을 새삼 각인시킨 일로 ‘약해(藥害) 에이즈 사건’은 지난 84년 일본 후생성이 혈우병 환자에게 사용되는 비가열 혈액제재가 에이즈를 감염시킬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국내 제약업계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이를 숨긴 채 환자에게 시판·투약되도록 방치해 에이즈 감염 사망자를 발생시킨 사건이다. 위험성을 미리 알지 못했다며 발뺌하던 생물제재과장의 파일에서 관련 서류가 발견됐고 이를 후생성 장관이 과감히 공개했고 이후 정보공개의 중요성을더욱 크게 인식할 수 있었다. 또 ‘관관접대(官官接待)’ 역시 일본 시민단체가 치중하고 있는 중요한 활동이다.관관접대란,거짓 출장이나 가공 접대로서류를 통해 예산을 소모하는 것을 말한다.지난 95년 ‘전국시민옴부즈맨 연락회의’가 도도부현(都道府縣)과 일부 시에 대해 자치단체의 지출항목인 식량비에 관한 정보공개청구를 행해 조사결과 관관접대 비용은 무려 300억엔에이르렀다. 박록삼기자
  • ‘강제징집자 총회’ 내일 개최

    ‘민주화운동정신계승 국민연대’는 18일 오전 11시 고려대 학생회관 앞 광장에서 ‘강제 징집자 총회’ 발기인대회를 갖고 강제 징집 희생자 합동추모제 및 의문사 진상 규명 결의대회를 갖는다. 국민연대는 결의대회에서 80년대 초 군사정권의 강압통치 아래 학내외 반정부 시위를 벌이다 입대를 강요당한 1,000여명의 강제 징집자들과 의문사의실태를 밝히고 정부에 명백한 진상 규명을 촉구할 예정이다. 이 단체는 특히 학생 신분으로 옛 보안사 등 군 수사기관에 끌려가 밀실에서 강압 수사를 받게 하는 이른바 녹화사업의 진상 규명에 직접 참여할 것을선언할 예정이다. 송한수기자 onekor@
  • OAS, 페루 3차 결선투표 논의 검토

    [멕시코시티 연합] 페루 대선 결선투표를 놓고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미주기구(OAS)는 조만간 회원국 외무장관 특별회의를 소집,페루사태를 논의하는 문제를 검토중이라고 페루 언론들이 30일(현지시간)보도했다. 언론들은 이번 결선에 불참한 야당지도자 알레한드로 톨레도가 페루 언론인과 야당의원 등 2명에게 대표자격을 부여,미국 워싱턴 소재 OAS본부에 파견했으며 OAS는 이들과 협의를 거쳐 외무장관 회의 소집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OAS 관리들도 “회원국 외무장관 특별회의가 소집될 경우 페루에서 ‘자유롭고 공정한 3차 결선’을 촉구하는 문제를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관리들은 페루에 파견됐던 OAS 소속 국제선거감시단이 이번 결선투표에 대한 최종보고서를 내놓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페루사태에 대한 결의안을 채택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결선투표에서 과반수 득표로 압승을 거둔 알베르토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은 이날 한 TV에 출연,“야당세력의 근거없는 모함으로혼란 속에결선이 치러졌지만 공정한 선거였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역경을 극복했으며,지금은 국민통합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매진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톨레도를 지지하는 반정부 세력은 후지모리 대통령의 당선과 취임을 거부키로 결의한 뒤 후지모리가 ‘3차 결선투표’를 선언할 때까지 총파업과 비폭력 저항운동 등을 통해 투쟁키로 했다.
  • 후지모리 대통령 3選… 野선 “무효”

    알베르토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61)이 28일(현지시간) 야당후보가 불참한가운데 실시된 결선투표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선거부정을 이유로 선거에 불참한 알레한드로 톨레도 야당후보(54)가 ‘선거 무효’를 선언,비폭력적인 반정부 운동에 나섰고 곳곳에서 반정부 시위가더욱 격렬해지면서 페루 정국은 혼미상태가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현지 언론들은 페루 경찰이 수만명의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공포탄을발사,이중 수십명이 공포탄에 맞아 부상당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결선에 대한 국내외 비난여론이 고조됨에 따라 후지모리 대통령은 집권 이후 최악의 위기에 봉착,어떻게 대응할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돼있다. 반정부 시위는 현지의 여론조사기관인 컴파니아 페루아나 데 인베스티가시온(CPI)이 25% 개표결과를 토대로 전망한 결과,후지모리 대통령이 전체 유효표의 76.8%를 획득,3선에 성공했다고 발표하면서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AP통신에 따르면 26.9% 개표결과,후지모리 대통령이 50.3%를 득표했고 알레한드로 톨레도 후보(54)는 16.2%를 얻었다.32.4%는 무효표로 판정됐다.최종결과는 2∼3일뒤에 공식 발표된다. 수만명의 반정부 시위대는 28일 밤 늦게 리마 시내 에서 ‘독재타도’와 ‘부정선거 무효’ 구호를 외치며 격렬하게 시위를 벌였다. 이중 수백명의 대학생이 대통령궁을 향해 돌진하다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는경찰들과 심한 몸싸움을 벌였다.일부 지방 도시에서는 시위대가 정부 건물에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고 건물에 불을 지르는 등 시위 수위가 격렬해지고 있다. 결선투표 불인정을 선언한 톨레도 후보는 “후지모리가 페루의 민주주의를고사시켰다”면서 “이제 독재정치를 끝내야 한다”며 후지모리 정권을 상대로 ‘비폭력 반정부 운동’을 선언했다.그는 후지모리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하고 군부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후지모리 대통령은 “이번 선거가 공정했음을 입증할만한 증거를 충분히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미주기구(OAS)소속 국제선거감시단은 투·개표 컴퓨터의 조작가능성과 선거요원들의 비전문성 등을 이유로 결선연기를 요청했으나받아들여지지 않자 선거결과 불인정 및 감시업무 철수를 선언했다. 미국 등 여러 국가들도 선거강행에 유감을 표시했다. 특히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은 27일 이례적으로 성명을 발표,“공정한 공개 자유선거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며 이같은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양국 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 이라며 경제 제재를 시사했다. 미국이 남미 인접국들과 대(對)페루 제재 조치의 수위를 논의할 계획이라고밝혀 머지않아 국제사회의 대페루 제재조치가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 후지모리 정권 일지. ■1990.7 후지모리,대통령에 취임. ■1992.4 친위쿠데타로 의회 해산 및 사법부 봉쇄■1992.11 하이메 살리나스장군 주도 군사쿠데타 진압. ■1993.12 대통령 연임 보장하는 새 헌법 제정. ■1995.7 대통령에 재선에 성공. ■1999.12 후지모리,3선 연임 출마 선언. ■2000.4 대선 1차투표에서 후지모리 49.8%,톨레도 40.2%의 득표율 기록,5월28일 결선일정 확정. ■2000.5.28 결선투표서 3선에 연임에 성공. ◆ 3연임 후지모리는 누구. 28일 결선투표에 반대하는 시위군중을 최루가스와 물대포로 진압하고 기어코 3선 연임 대통령 타이틀을 거머쥔 알베르토 후지모리(Alberto Fujimori)페루 대통령.일생일대의 정치생명을 내건 대도박판 한가운데에 섰다. ‘대통령은 한차례 연임할 수 있다’는 헌법을 무시하고 지난해 12월 3선출마를 선언했을 때부터 그의 정치도박은 시작된 셈.일본인 이민 2세로 대학총장까지 역임한 그는 지난 90년 ‘캄비오 90(개혁90)’이라는 신당을 급조,같은 해 실시된 대선에서 여당후보인 페루의 저명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를 물리치고 대통령이 됐다. 그의 10년 재임기간동안 보여준 통치스타일은 한마디로 ‘철권통치’.냉정하고 강단있게 일을 처리,‘사무라이 대통령’이라고도 불렸고 그 이면에는‘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도박수가 있었다는 분석이다.첫번째 도박판은 지난 92년 일으킨 친위쿠데타.리마 거리에 탱크를 진주시키고 의회를 해산,이후 95년 유엔사무총장 출신인 하비에르 데 케야르에 맞서 연임에 성공했다. 96년 12월 ‘투팍아마루 혁명운동(MRTA)’이 페루주재 일본대사관관저에서인질극을 벌였을 때도 5개월 만에 무장병력을 침투시켜 인질사건을 해결했다.후지모리는 특히 박정희(朴正熙) 전대통령식 경제개발계획에 지대한 관심을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정치적 격랑기때마다 교묘하게 고비를 넘겨온 후지모리가 피플파워를 이끄는 톨레도 후보와 미국등 국제사회의 압력을 어떻게 맞서나갈지 미지수다. 김수정기자 crystal@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