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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설업계 리비아 재건 참여 잰걸음

    리비아 내전 사태가 진정되면서 국내 건설사들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정부도 리비아 사태 동향과 대응 전략 마련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서두르지 않으면 리비아 반정부군을 도왔던 프랑스와 영국 등에 리비아 재건시장을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다. 2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리비아 시장 접근은 그동안 리비아에서 왕성하게 사업을 벌였던 업체를 중심으로 발 빠르게 펼쳐지고 있다. 이 가운데 현대건설은 현지 지사장과 소장 등으로 구성된 대책팀을 조만간 리비아에 보낼 예정이다. 외교통상부에는 입국 허가를 신청한 상태다. 대책팀은 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NTC)와 접촉해 공사 재개는 물론 인프라 구축 등 재건사업 참여 기회를 모색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건설의 리비아 사업장은 5곳으로, 전체 해외 수주 잔액 가운데 10%를 차지하고 있다. 현대건설과 리비아시장 수주 1~2위를 다퉈온 대우건설도 30년 넘게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신규 프로젝트 참여를 노리고 있다. 현대엠코, 신한건설, 원건설, 한일건설 등도 사정은 비슷하다. 리비아는 발주 예산액 기준으로 2012년 기준 전체 중동·북아프리카 시장의 8%를 차지하는 중견 시장이다. 앞서 리비아에 진출한 16개 건설사는 지난달 30일 내전으로 어려움을 겪는 리비아 국민을 위해 50만 달러어치의 구호물자를 보내기로 하고 최근 현대건설과 대우건설이 각각 10만 달러, 나머지 14개 업체가 30만 달러를 갹출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지식경제부는 이날 서울 팔레스호텔에서 리비아 사태 동향과 향후 대응 전략 마련을 위해 무역 관련 기관, 관련업계와 함께 대책회의를 가졌다. 정부는 리비아 NTC와의 신뢰 구축에 역점을 두면서 정국 동향을 면밀히 살피기로 했다. 코트라도 새로운 정권 수립 작업에 들어간 리비아에서 원활한 기업 활동을 유지하려면 의료진 파견 등 지원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트라 관계자는 “소요 사태 이후 막대한 규모의 건설시장이 펼쳐지는 시점에서 이윤 추구보다 진정성에 초점을 둔 기업 활동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오상도·감승훈기자 sdoh@seoul.co.kr
  • [씨줄날줄] 국회의원 제명/곽태헌 논설위원

    1979년 10월 4일 공화당과 유신정우회(유정회) 소속 여당 의원 159명은 국회 본회의에서 김영삼(YS) 신민당 총재를 제명했다. 여당은 “국회의원으로서 본분을 일탈하여 반국가적인 언동을 함으로써 국회의 위신과 국회의원의 품위를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YS의 의원직을 제명했다. 앞서 9월 16일 자 미국 뉴욕타임스에 실린 기자회견 내용을 문제삼았다. YS는 이란에서 팔레비 왕정이 무너진 것과 관련, “이는 (팔레비 왕정을 지지했던)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의 실책에 의한 것이었다. 한국에서도 미국대사관이 비슷한 전철을 밟지 않기 바란다.”고 말했다. 당시 국회 본회의장은 제1야당인 신민당 의원들이 점거하고 있었다. 백두진 국회의장은 경찰권을 발동해 경찰 파견을 요청했다. 여당 의원들은 사복경찰 300여명의 호위를 받으며 국회 본청 146호실에서 전원 찬성으로 YS의 의원직 제명안을 통과시켰다. 요즘 같아서는 상상할 수도 없지만 서슬 퍼런 당시의 유신체제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YS의 의원직 제명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그해 8월 9일 가발 수출회사인 YH무역의 여성 근로자 170여명이 신민당 당사에 들어와 농성에 돌입했고, YS는 이들을 격려했다. 사흘 뒤 2000여명의 경찰이 농성 중이던 YH무역 근로자들을 강제로 끌어냈다. YH무역 근로자들의 강제연행과 YS의 의원직 제명은 유신체제 종말의 예고편이었다. YS가 의원직에서 제명당하자 YS의 정치적 고향으로 불리는 부산·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반정부 시위가 본격화했다. YS의 의원직 제명은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로 이어지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1966년 9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무위원들에게 오물을 던졌던 김두한 의원에 대한 제명안이 본회의에 올라왔다. 김 의원이 사직서를 내자 제명안은 폐기됐다. 1975년 10월 김옥선 의원은 박정희 대통령을 독재자로 지칭해 제명 위기를 맞았다. 그도 사직서를 제출해 제명안은 처리되지 않았다. 그제 국회는 성희롱 발언을 한 무소속 강용석 의원에 대한 제명안을 ‘당당하게’ 부결시켰다. 표결에 앞서 박희태 국회의장은 부끄러운 것은 알았는지 방청객과 기자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방송중계도 하지 못하도록 했다. 여야 의원들은 사사건건 싸우고 난리를 피우지만 역시 초록은 동색이었다. 강 의원은 동료 의원들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 의원직을 유지하게 됐다. 국회의원들의 수준은 1979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갈 곳 잃은 카다피軍 시르테로…반군 진격 맞춰 시민 깨어날 것”

    “갈 곳 잃은 카다피軍 시르테로…반군 진격 맞춰 시민 깨어날 것”

    “시르테는 이미 유령도시가 됐다. 반군이 진격하면 시민들이 반길 것이고 (카다피가 속한) 카다파 부족만 결사항전할 것이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마지막 요새이자 고향인 시르테는 시간이 멈춘 지 오래다. 지난 2월 첫 반정부 시위 이후 인터넷은 차단됐고 갈 곳 잃은 카다피 세력이 이 도시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시르테 출신의 트위터리안(트위터 사용자) 하나 살레(28·여·아이디 hanayat82)는 서울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시르테 역시 혁명의 무풍지대일 수 없다.”고 전했다. 영국 웨스트요크셔에서 유학 중인 그는 고향 친구들과 위성전화로 통화하며 시르테 소식을 가장 빨리 트위터로 퍼뜨리고 있다. 영국 스카이뉴스 등 세계 유명 언론의 정보원인 그에게 반군의 진격을 눈앞에 둔 시르테 상황에 대해 물었다. →시르테의 현 상황은. -지난 2월 이후 리비아 전역에서 쫓겨난 카다피 정부 관료와 상류층 인사들이 시르테로 피신했다. 때문에 보안이 무척 살벌하다. 시민들도 무차별적으로 탄압당한다. 카다피의 용병들이 중무장한 채 거리를 배회해 시민들이 두려워하면서 동시에 분노하고 있다. →전기나 식량, 물 등은 충분한가. -트리폴리가 해방된 뒤 전기가 완전히 끊겼다. 식량 공급이 원활한지는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고립 상황이 1주일 이상 지속된다면 (식량난 등) 심각한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는 점이다. →시르테 시민들은 카다피에 대한 충성심이 높다는데. -시르테가 카다피 근거지 중 한 곳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반카다피 성향의 지역민도 존재한다. 물론 수는 많지 않다. 반군이 시르테에 진입하면 숨죽이던 많은 시민이 그들을 도울 것이다. 또 많은 카다피 추종자들이 코너에 몰리면 항복할 것으로 추측된다. →카다피가 시르테에 숨어 있다는 소문도 돈다. -카다피나 그의 가족이 시르테에 머문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 하지만 그의 넷째 아들 무아타심이 시르테에 있다는 소문은 마을에 계속 퍼지고 있다. →카다파 부족의 움직임은. -카다파족은 (유목 민족) 베두인 사람들로 구성돼 소떼나 양떼를 몰며 살았다. 그러다가 1969년 (카다피의) 혁명 이후 정권 덕에 부유해졌고 호화 주택에 살게 됐다. 충성심이 강할 수밖에 없다. 카다피의 귀환을 위해 어떤 무자비한 일도 할 태세다. →지역 방송들은 어떤 소식을 전하고 있나. -국영 TV는 방송을 중단했지만 지역 라디오는 계속 방송 중이다. 또 카다피 측은 시르테 중심부에 있는 대형 스크린을 통해 카다피의 메시지를 퍼뜨리고 있다. 반군에 대한 증오를 표하면서 최후의 순간까지 시르테를 지키라고 촉구하고 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카다피 일가, 흩어져야 산다?

    카다피 일가, 흩어져야 산다?

    리비아 반정부군의 추격을 받고 있는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가족 일부가 29일(현지시간) 이웃 국가인 알제리로 도피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카다피와 다른 자녀들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정황상 이들은 리비아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반군은 30일 카다피 측에 나흘 안으로 항복하라고 최후 통첩을 전달했다. 알제리 외교부는 카다피의 부인 사피야와 장남 무함마드, 5남 한니발, 딸 아이샤, 그리고 손주들이 알제리에 들어왔다고 밝혔다. 유엔 주재 알제리 대사는 인도적 차원에서 카다피 가족의 입국을 허용했으며, 이 같은 사실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알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카다피의 알제리행 가능성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마흐무드 샤만 과도국가위원회(NTC) 대변인은 “우리는 카다피 가족에게 공정한 재판을 보장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피신처를 제공하는 것은 적대행위”라며 알제리 측에 송환을 요구했다. 알제리는 리비아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데다 반정부 시위 초기부터 카다피 측에 용병을 보내는 등 친(親)카다피 국가로 알려져 트리폴리 함락 이후 카다피 가족의 유력한 도피처로 거론돼 왔다. 알제리가 카다피와 그 가족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한 국제형사재판소(ICC) 가입에 관한 로마조약을 비준하지 않은 국가라는 점도 고려됐을 것으로 보인다. AP통신은 “이들의 도피는 카다피가 완전히 힘을 잃었다는 확고한 증거”라고 보도했다. 카다피와 차남 사이프 이슬람, 3남 사디는 리비아를 빠져나가지 않았을 것이란 의견이 우세하다. 제이 카니 미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카다피가 리비아를 떠났다는 어떤 징후도 없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안사통신은 리비아 외교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이들이 트리폴리와 시르테 사이에 있는 바니 왈리드에 머물고 있다고 전했다. 반군 측은 그동안 몇 차례 사망설이 제기됐던 막내 아들 카미스가 지난 27일 트리폴리 근처 타르후나에서 반군의 공격을 받아 숨졌다고 밝혔으나 사실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반군의 심리전으로 보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ICC가 카다피와 차남 사이프에 이어 카미스 역시 1급 수배자 명단에 올려 체포영장을 발부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카다피 진영의 마지막 저항도 계속되고 있다. 반군은 시르테의 부족들과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이 부족들은 항복할 기미 없이 삼엄하게 무장한 채 결전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29일 시르테로 진입하는 길목과 남서부 도시 세바, 바니 왈리드 등지에서는 심각한 교전이 벌어졌다. 카다피 측은 시르테 진입로에 지뢰를 매설하고, 정예 부대를 배치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미국의 인권단체인 ‘인권을 위한 의사회’(PHR)는 카다피 친위부대가 리비아 제3의 도시인 미스라타에서 어린이를 ‘인간방패’로 이용하고 살인과 고문 등 각종 인권 침해와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는 보고서를 30일 발표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항복 안하면 10일내 시르테 장악”

    무아마르 카다피의 고향인 시르테로 진격하고 있는 리비아 반군이 카다피군에 최후통첩을 보내고 차기 정권을 함께 구상하자는 카다피의 협상 제의도 일축했다. 반군은 시르테에 있는 카다피 친위대에게 29일까지 무기를 버리고 반군을 평화적으로 입성하지 못하게 하면 격전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살렘 무프타 알레파이디 반군 대령은 28일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시르테 내 카다피 지지세력의 항복을 요구하는 협상이 실패하면 10일 안에 시르테를 장악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반군 전사 1만 4000여명도 대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말 투날리 반군 사령관은 “시르테 서쪽 30㎞ 지점에 최전선이 형성됐다.”고 밝혔다. 반군은 동쪽으로 100㎞ 떨어진 동부의 최전방 빈자와드와 소규모 마을인 노필리아도 장악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 전투기도 시르테 공습에 합세했다. 마무드 압델 잘릴 과도국가위원회(NTC) 위원장은 29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반군 지원국 국방장관 회의에서 “카다피는 여전히 리비아뿐 아니라 세계에 위협적인 존재”라고 경계심을 늦추지 않으며 반군에 대한 나토와 국제사회의 지원을 요구했다. 나토는 리비아 군사작전 만료시한인 오는 9월 27일까지는 작전을 계속하겠다고 약속했다. 카다피 측은 NTC에 차기 정권의 구상을 놓고 협상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으나 보기 좋게 묵살됐다. 카다피 측 대변인인 무사 이브라힘은 “카다피는 여전히 리비아에 머물고 있으며 셋째 아들 알사디를 통해 NTC와 과도정부 구성에 대해 논의하고 싶어 한다.”고 AP를 통해 밝혔다. 하지만 마무드 샤맘 NTC 대변인은 “우리에게 그들은 범죄자”라며 협상 가능성을 부인했다. 카다피 측이 반군의 공세를 저지하기 위해 민간인을 ‘인간방패’로 삼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시르테 교전이 트리폴리보다 더 큰 유혈사태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편 반정부 시위 탄압이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에 대해 유럽연합(EU)이 시리아산 석유제품의 유럽 수입을 금지하는 데 합의했다고 AFP가 외교 소식통을 인용, 보도했다. EU는 이번 주말 안에 이 제재안을 최종 승인할 예정이다. 유럽은 시리아의 전체 석유 수출량 가운데 95%를 구입해온 터라 제재안이 발효되면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유모를 끓는 물에…” 카다피 며느리의 만행

    “유모를 끓는 물에…” 카다피 며느리의 만행

    리비아 반정부군이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아들과 딸들의 집을 접수하면서 감춰져 있던 이들의 특권층 생활과 만행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카다피의 다섯째 아들 한니발의 부인은 심지어 유모에 화상을 입히는 등 학대를 저질렀던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줬다. 최근 미국 CNN방송은 한니발 부부가 거주하다가 떠난 트리폴리 서부 초호화 저택에는 전신에 화상을 입고 시름하는 에디오피아 출신 유모 슈에이가 물라(30)란 여성만 남아 차가운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지내는 모습을 폭로했다. 1년 전 이곳으로 건너와 한니발 부부의 아들딸을 돌봤다는 물라는 임금 한푼 받지 못한 채 며칠 씩 굶는 건 예사였으며, 심지어 모델 출신인 부인 알린 스카프는 물라의 온몸에 뜨거운 물을 들이붓는 끔찍한 고문을 가하기도 했다는 것. 물라는 “우는 아이를 때리라는 명령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알린이 화장실로 끌고가 손발을 묶은 채 뜨거운 물을 들이부었다.”면서 “고문은 2차례나 이어졌으며 이후 치료는커녕 쌀쌀한 밖에 3일이나 세워둔 채 물과 음식을 주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화상을 입은 뒤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물라의 상처는 심각하게 악화돼 있었다. 두피는 심하게 벗겨져 피고름이 앉아있었으며 어깨와 팔다리, 가슴 피부가 벌겋게 부어오른 상태였다. 한니발 부부는 집안을 온갖 호화 장식품으로 꾸밀 정도로 사치를 부리면서도 저택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노예부리듯 한 것으로 드러났다. 물라 뿐 아니라 익명을 요구한 한 집사 역시 돈한푼 받지 못한 채 일했고 맞거나 수차례 칼에 찔렸다고 증언했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NATE 검색어로 본 e세상 톡톡] 오세훈·카다피·잡스… 그들의 공통점은

    [NATE 검색어로 본 e세상 톡톡] 오세훈·카다피·잡스… 그들의 공통점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을까. 지난 주 1~3위 키워드는 이 질문이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퇴로 이어진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가 1위에 올랐다. 투표함을 열 수 있는 33.3% 투표율에 못 미친 25.7%를 기록, 투표 자체가 무산됐다. 오세훈의 선택이 오세훈 개인은 물론 향후 정치 지형에 어떤 영향을 줄지 관심이다. 2위는 ‘카다피 정권 붕괴’가 차지했다. 서구의 지원을 등에 업은 반정부군이 6개월간 내전 끝에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를 장악했다. 반군을 지원해온 국가들은 카다피정권의 붕괴를 선언했으나, 카다피의 행적은 아직 묘연하다. 3위는 ‘스티브 잡스 사임’이다. 애플 최고경영자로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혁신 아이콘이 물러났다. 건강악화가 이유로 알려져 있다. 애플이 전과 같은 돌풍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 관심이다. ●도쿄 ‘反한류 시위’ 높은 관심 5, 6위는 일본 소식이 차지했다. 5위에 오른 ‘도쿄 반한류 시위’는 일본에서 한류방송을 많이 내보내고 있는 후지TV 앞에서 수천명의 인파가 모여 한류편중 현상을 시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6위는 ‘일본 신용등급 강등’이다.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를 이유로 일본 국가신용등급을 ‘Aa2’에서 ‘Aa3’로 한 단계 내린 것. 다만 일본국채에 대한 신뢰가 여전하고 저금리로 자금조달에 이상 없다는 이유로 ‘안정적’이라고 판정했다. ●‘시티헌터’ 이민호·박민영 열애 인정 7~9위는 그래도 속 시원한, 재밌는 소식들이다. 7위는 ‘추신수 7호 홈런’. 지난 24일 시애틀과의 경기에서 9회 말 역전 끝내기 3점 홈런을 터뜨린 것. 8위엔 ‘이민호 박민영’이 올랐다. 드라마 ‘시티헌터’에 나란히 출연했던 이들은 최근 데이트 장면이 포착됐는데, 양측도 좋게 만나고 있다고 인정했다. 9위는 ‘우사인 볼트 기자회견’이다. 지난 25일 대구세계육상대회 기자회견장에서 “세계기록보다 세계 전설이 되고 싶다.”는 등 톡톡 튀는 대답을 내놨다. 10위는 ‘광화문 강아지 돌팔매 논란’이다.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강아지 한 마리가 사람이 고의적으로 던진 돌에 맞아 크게 다쳤다. 공사 부지를 돌아다니는 개가 시끄럽게 짖는다는 게 이유였다. 네티즌들은 이 강아지를 ‘소망이’라 부르며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내사랑 콘디” 카다피의 순정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관저인 밥알아지지야 요새에서 콘돌리자 라이스(애칭:콘디)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의 사진첩이 발견되면서 라이스 전 장관을 향한 카다피의 ‘짝사랑’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 리비아 반정부군이 지난 23일 수도 트리폴리에 있는 밥알지지야 요새를 습격했을 때 발견한 이 사진첩에는 라이스 전 장관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사진과 각종 활동상을 찍은 사진들이 가득했다고 AP통신이 26일 보도했다. 카다피가 라이스 전 장관에게 공개적인 구애를 한 것은 한두번이 아니다. 2007년 아랍권 위성 뉴스채널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라이스 전 장관을 ‘나의 아프리카인 여왕’이라고 부르며, “나는 그녀가 등을 기댄 채 아랍 지도자들에게 지시하는 방식을 존경하고,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서 “나는 그녀를 아주 많이 사랑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리비아가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던 2008년 라이스 전 장관이 트리폴리를 방문했을 때 카다피는 20만 달러 상당의 보석을 선물했으며, 라마단 금식 기간이 끝나는 것을 축하한다는 명목으로 그녀를 자신의 부엌에 초대하기도 했다. 현재 스탠퍼드대에서 대학원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라이스 전 장관은 이와 관련한 언급을 거절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보도했다. 빅토리아 눌런드 국무부 대변인은 “(사진첩에 대한 소식이)별로 놀랍지는 않지만 아주 기이하고, 소름끼치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라이스 전 장관은 오는 11월 자신의 두 번째 회고록 ‘최고의 영예’를 발간할 예정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英 SAS 카다피 추격 선봉 섰다

    英 SAS 카다피 추격 선봉 섰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리비아 현지에 투입된 영국 특수부대 SAS 요원들이 반군의 카다피 추격전을 선봉에서 이끌고 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24일(현지시간)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텔레그래프는 “SAS 22연대 요원들이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지시에 따라 반군의 추격전을 이끌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SAS는 이미 수주 전부터 리비아 지상전에 배치됐으며, 트리폴리 함락 작전에서도 주요한 역할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현지 아랍인의 복장으로 변장하고, 반군이 쓰는 것과 같은 무기를 사용하고 있으며, 당초 공습 목표물 유도 역할에서 트리폴리 함락 이후 주요 임무를 카다피 추적으로 전환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현재 리비아 반정부조직인 과도국가위원회(NTC)와 나토는 카다피를 체포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이와 관련, 프랑스 주간 파리마치는 리비아 반군을 지지하는 의용군이 트리폴리에서 카다피의 신병을 거의 확보할 뻔했다고 25일 보도했다. 이 잡지는 전날인 24일 의용군이 카다피가 숨어 있던 것으로 보이는 트리폴리의 한 민가를 급습했지만 카다피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고 전했다. 잡지는 정보관계자들이 이 같은 정황으로 볼 때 카다피가 아직 트리폴리 내 어딘가에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고 전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카다피 동상 ‘참수’… 공관 무차별 약탈

    카다피 동상 ‘참수’… 공관 무차별 약탈

    “오늘이 비로소 리비아인이 자유를 쟁취한 첫날이다.” 42년간 ‘철옹성’으로 여겨졌던 무아마르 카다피의 트리폴리 요새 ‘밥알아지지야’가 23일(현지시간) 함락되자 반군과 시민은 총을 치켜들며 해방감을 만끽했다. 파죽지세로 수도를 장악해 가면서도 “밥알아지지야 안에서 자축할 것”이라며 전의를 다져 왔었다. 여섯 달의 내전, 그 사이 수많은 가족과 친구를 잃었던 이들은 쌓인 울분을 풀듯 요새 곳곳의 시설을 부수고 닥치는 대로 전리품을 챙겼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의 공중지원을 받으며 육상저지선을 뚫은 반군은 요새에 도착, 1m 두께의 출입문과 시멘트벽을 향해 총탄을 쏟아부었다. 미스라타에서 트리폴리로 합류한 반군 최정예 부대 수백 명이 선봉에서 한참을 공격하자 대문 중 한 곳이 갈라졌다. 기세에 눌린 카다피군이 도주하면서 승부는 쉽게 갈렸다. 순식간에 알아지지야에는 반군기가 게양됐다. 요새 안에 입성한 반군은 6㎢에 이르는 경내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몰락한 독재자의 흔적을 파괴하고 ‘전리품’을 수집했다. 반군과 시민 수백 명은 금빛 카다피 조형물을 찾아 머리 부분을 떼어냈고 손바닥으로 후려치다가 분이 안 풀린 듯 땅에 처박은 뒤 짓밟았다. 1986년 미군의 트리폴리 공습을 기억하려고 카다피가 세운 ‘비행기를 움켜쥔 주먹’ 조형물도 청년들의 분풀이 대상이 됐다. 요새 곳곳은 이미 5개월여에 걸친 나토군의 폭격으로 벙커 등 곳곳이 초토화된 상태였다. 카다피가 머물던 저택도 무차별 약탈당했다. 카다피를 상징했던 군모와 복장에서부터 기이한 수집품, 카다피 가족 구성원의 것으로 보이는 건강기록카드까지 남아나는 게 없었다. 반군은 금을 덧씌운 총과 트로피 등을 들고 나와 자랑하듯 외신 카메라 기자들 앞에서 흔들었다. 카다피가 TV에 등장할 때 애용하던 전동 골프 카트도 반군 차지가 됐다. 한 청년은 카다피의 희귀 모피를 몸에 두르고 집 밖으로 나왔다. 카다피가 6개월 전 반정부시위가 발생했을 때 처음 TV에 나오며 입었던 옷이다. 한 반군은 “많은 친구가 (내전 중) 숨졌다. 그들이 오늘 함께 이 자리에 있어야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밥알아지지야 요새는 1969년 카다피에게 쫓겨난 아드리스 국왕이 처음 지었다. 쿠데타 이후 카다피가 관저와 막사, 통신센터 등으로 활용해 왔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카다피 몰락] 트리폴리서 잠든 美 첫 원정 해군 200년 만에 귀향?

    [카다피 몰락] 트리폴리서 잠든 美 첫 원정 해군 200년 만에 귀향?

    카다피 정부군과 반정부군이 최후의 격전을 벌이고 있는 리비아 트리폴리 도심의 녹색광장(순교자의 광장) 바로 아래에는 207년 전 트리폴리에서 전사한 미 해군들이 묻혀 있다. 이들은 1804년 아프리카 북서 해안지역의 해적을 소탕하기 위한 바르바리 전쟁 당시 폭발물을 실은 전함을 타고 트리폴리에 도착하기 직전 폭발물이 터지는 바람에 전함과 함께 수장됐다. 당시 숨진 미 해군은 리처드 소머스 사령관을 비롯해 모두 13명. 이 가운데 시인 롱펠로의 삼촌인 헨리 워즈워스 중위도 포함돼 있다. 희생자들 가운데 일부는 트리폴리의 신교도 공동묘지에 묻혔고, 나머지는 녹색광장 바로 밑에 매장됐다. 현재 미국에서는 이들의 유해 송환 문제를 놓고 재향군인회와 해군, 의회 사이에 논쟁이 한창이다. 재향군인회가 6개월 전 리비아 사태가 촉발된 직후 이들의 유해를 고국으로 송환해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해야 한다며 입법 로비를 벌이면서부터다. 22일(현지시간) 허핑턴포스트에 따르면 재향군인회의 팀 테츠는 “유해를 송환할 수 있는 적기를 맞았다.”면서 “리비아 정세는 변하고 있고, 후손들도 유해 송환을 강력히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는 “재향군인회는 리비아 사태와 관련해 각별히 관심을 가질 만한 로비를 벌인 11개 그룹 가운데 하나”라고 전했다. 재향군인회의 수개월에 걸친 로비 끝에 트리폴리에 묻힌 해군의 유해를 발굴, 송환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도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 법안은 해군사관학교 출신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존 매케인(애리조나) 상원의원의 반대로 난관에 봉착했다고 허핑턴포스트는 전했다. 매케인 의원은 허핑턴포스트의 입장 표명 요청에 응하지 않았지만, 그 이유는 미 해군의 공식 입장에서 짐작할 수 있다. 게리 러프헤드 제독은 “해군의 관습과 전통은 전함이 가라앉은 장소를 전사자들의 명예로운 안식처로 삼는 것”이라면서 “해군은 트리폴리 묘지를 전사자들의 마지막 안식처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해군 대변인 애레나 게레스 중위도 러프헤드 제독의 발언이 해군의 공식 입장이라고 확인했다. 이에 재향군인회 대변인 마티 칼라한은 “카다피군이 시위대를 진압했던 녹색광장과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신교도의 공동묘지는 조국을 위해 희생한 이들의 마지막 안식처로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명예로운 전사자들을 존중할 의지와 힘을 갖고 있고, 알링턴 국립묘지에도 이들이 묻힐 장소가 있다.”고 덧붙였다. 리비아 사태의 급진전으로 미 해군들의 유해가 207년만에 송환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카다피 몰락] 油戰…정권교체후 세계 각국, 고품질 리비아산 원유 확보 총력

    [카다피 몰락] 油戰…정권교체후 세계 각국, 고품질 리비아산 원유 확보 총력

    “리비아 원유를 잡아라.” 리비아 내전에서 반정부군이 사실상 승리함에 따라 세계적 석유 메이저들이 리비아의 원유 확보를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이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6개월에 걸친 내전 기간 동안 거의 중단됐던 원유 생산이 머지않아 재개될 전망이어서 ‘정권 교체’된 리비아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뛰어들고 있다. 리비아는 세계 원유 수요량의 2%에 해당하는 하루 평균 130만 배럴을 수출하고 있지만, 리비아산 원유가 유황 성분이 적은 ‘고품질 원유’여서 세계 원유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비교적 크다. 일단 반군을 적극 지원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소속 서방국가들의 석유 메이저들이 앞서가는 모양새다. 반군 측 석유회사인 아고코의 압델잘릴 마유프 대변인은 22일 “우리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영국 등 서방국가들과는 문제가 없다.”며 “그러나 러시아·중국·브라질과는 정치적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 에니와 영국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프랑스 토탈, 스페인의 렙솔-YPF, 오스트리아 OMV 등 내전 이전 리비아에서 원유 생산을 활발히 해오던 유럽 석유 메이저들이 원유 생산을 재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리비아 원유 생산에 관여하지 않았던 프랑코 프라티니 이탈리아 외무장관은 국영 라이(RAI) TV와의 인터뷰에서 에니 기술자들이 이미 생산 재개를 위해 리비아 동부 현지에 도착했으며 에니가 리비아 원유 생산에서 “1위로 올라설 것”이라고 밝혔다. 리비아 원유의 85%가 유럽 지역에 수출돼 왔고, 이 중 3분의1 이상을 이탈리아가 수입해 왔다. 반면 카다피 정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에 협력하지 않고 반군 측에 미온적이었던 75개 중국 석유회사, 러시아 가스프롬 네프트·타트네프트, 브라질 페트로브라스 등은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 때문에 중국은 반군 측에 대해 ‘화해’를 모색하고 나섰다. 장즈량(張志良) 카타르 주재 중국 대사가 최근 리비아 반정부군 대표기구인 과도국가위원회(NTC) 무스타파 압둘 잘릴 대표와 카타르 도하에서 만나 리비아 현 상황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데 이어 마자오쉬(馬朝旭)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2일 성명을 통해 “중국은 리비아인의 선택을 존중하며 리비아가 곧 안정을 되찾고 일상의 삶을 영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국은 앞으로 리비아 재건에서 건설적인 역할을 하고자 국제사회와 기꺼이 힘을 합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리비아의 원유 생산 수준을 정상화하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내전으로 원유 생산 시설의 상당수가 파괴된 까닭이다. 글로벌 석유 컨설턴트 회사인 우드 매킨지는 리포트를 통해 “리비아가 내전 이전 수준으로 석유를 생산하는 데 약 36개월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카다피 몰락] “민주화·경제성장 선배 한국, 阿·중동 독재자를 꾸짖어라”

    “민주화 선배인 한국이 북아프리카·중동의 독재국을 당당히 꾸짖어야 한다.” 이란의 인권운동가이자 2003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시린 에바디(64·여)가 한국이 ‘아랍의 봄’(아랍권역의 반정부·민주화 바람) 때 택한 ‘침묵 외교’에 일침을 가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등 국제사회 리더들이 아랍 청년들에게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쟁취한 한국을 본보기로 삼으라.”고 권고했지만, 정작 한국은 독재자의 인권탄압과 폭압정치를 견제할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우리 정부는 6개월을 끈 리비아 사태 종식이 임박하자 지난 22일 뒤늦게 “반군에 100만 달러(약 10억 8000만원)를 직접 지원하겠다.”며 지지를 공식화하고 있다. 내전 초기부터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를 비판하며 반군을 승인했던 서방 국가들과 비교되는 행보다. 현지의 국내 기업 보호를 위한 타당한 조치라는 평가와 함께 ‘경제에만 함몰된 철학 없는 외교’라는 비판도 나온다. 에바디는 23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및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인권은 경제적 이권 앞에 자주 희생된다.”면서 “한국 역시 인권 침해에 눈감으면서 중동국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해 왔다.”고 꼬집었다. 모국인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가 핵무기 개발을 반대하는 국민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주장해온 그는 “정당한 국민적 요구조차 탄압한 시리아와 예멘, 바레인, 이란 등의 권력자들에게 한국 내 여행 제한과 자산 동결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바디는 또 “민주화 시위를 둘러싼 아랍 지역의 카오스가 앞으로 몇 년간 계속될 듯하다.”며 사태의 장기화를 예상했다. 그러나 “결국 혼란 끝에 민주주의가 찾아올 것”이라며 낙관적인 시각을 보였다. 에바디는 특히 “아랍의 진짜 민주화는 지역민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지배할 수 있을 때 달성했다고 볼 수 있으며 미국 등 서방사회와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 같은 지역 통치자들은 모두 아랍인의 의지를 존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란의 첫 여성판사 출신인 에바디는 자국 민주주의와 아동·여성의 권리를 높이려 투쟁한 공로로 2003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올해 초에는 영국 일간 가디언과 미 시사주간 뉴스위크가 각각 선정한 ‘세상을 바꾼 여성’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등 ‘우먼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2009년 6월 강경파인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재선된 뒤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영국 등에 머물고 있다. 노벨위원회가 있는 노르웨이 외교부는 2009년 이란 당국이 에바디의 노벨상 메달을 몰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카다피정권 붕괴] 구심점 없는 과도국가위… 또 다른 권력다툼에 빠지나

    무아마르 카다피 독재정권이 사실상 붕괴되면서 리비아의 앞날에 서방국가를 비롯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42년을 이어온 전제주의 체제가 민주주의 체제로 순조롭게 전환되길 희망하지만 권력 다툼으로 인한 내분으로 새로운 수렁에 빠져들 가능성도 적지 않다. 뉴욕타임스는 22일(현지시간) 카다피 정권 몰락을 주도한 리비아 반군이 단결과 화합이란 진정한 도전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반군을 대표하는 기구인 과도국가위원회(NTC)는 반정부 인사와 해외 망명자, 카다피 체제에서 이탈한 고위 인사, 아랍민족주의자, 이슬람교도 등 다양한 배경의 인사들로 구성돼 있다. 차기 지도자로 내세울 만한 구심점을 갖춘 인물도 뚜렷하지 않다. 리비아 동부 벵가지를 거점으로 활동해온 NTC가 권력 이양을 위한 위원회 재편 과정에서 리비아의 폭넓은 부족과 지역의 대표들을 포괄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NTC는 지난달 피살된 반군 최고사령관 압둘 파타 유네스 대장이 반군 내부의 반대세력에 의해 사살됐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심각한 분열상을 드러냈다. 이와 관련해 NTC 내부 개편 논의에 관여하고 있는 리비아 출신의 오마르 터비 미 컴퓨터회사 대표는 CNN 인터뷰에서 “현재 NTC 위원들은 대부분 동부 리비아 지역의 인사들로 임의로 구성된 만큼 위원회를 확대해 리비아 전체를 대표하는 수준으로 만들 준비가 진행 중”이라면서 “비민주주의적 시스템을 민주주의적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데 최소 24개월 이상이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비아 반군이 정권장악 이후에도 친서방 정책을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전망도 불확실하다. 로이터는 “카다피 몰락 후 리비아에 자동적으로 친서방 정부가 들어설 것이라는 기대가 틀렸다는 점이 입증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재스민 혁명’ 이후 아랍과 중동 지역의 일부 국가들이 서방의 민주주의 체제에 가까워졌지만 일부에선 서방과 가깝다는 이유로 권좌에서 쫓겨난 권력자들도 있기 때문이다. 리비아 반군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지원을 등에 업고 카다피 정권을 붕괴시켰지만 나토군의 리비아 주둔 문제에 대해선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서방 입장에서 최선의 시나리오는 리비아가 독자적인 길을 가며 제 목소리를 내되 이슬람 극단세력 척결과 이스라엘 지지 같은 문제에서 서방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는 것이다. 유럽외교관계이사회의 대니얼 코르스키 선임연구원은 “서방은 질서 있는 권력 이양을 지원해야 하며, 카다피가 이루지 못했다고 반군 세력 스스로 생각해온 원칙들을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리비아 반군 지도자와 주요 관련국 지도자들에게 향후 리비아의 권력 이양과 민주화 지원 방안에 대해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성명에서 “리비아의 미래는 이제 리비아 국민의 손에 달렸다.”면서 “미국은 권력 이양 과정에서 파트너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카다피 몰락] 알아사드·살레의 시간 얼마나 남았나

    [카다피 몰락] 알아사드·살레의 시간 얼마나 남았나

    ‘절반의 성공’에 그칠 듯했던 ‘재스민 혁명’(아랍권역의 반정부·민주화 움직임)이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정권의 사실상 붕괴로 재점화할 조짐이다. 튀니지, 이집트에 이어 리비아에서 독재자의 세 번째 퇴장을 지켜본 세계인의 관심은 ‘다음 타깃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쏠린다. 당장 시민의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진 시리아와 예멘의 통치자가 강력한 네 번째 후보다. 부자 세습을 통해 11년째 권력을 쥐고 있는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들을 탱크와 군함까지 동원해 유혈진압하고 있다. 민주화 시위가 불붙은 5개월 사이 2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알아사드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퇴진 요구를 “대꾸할 가치가 없다.”며 일축했다. 비폭력 반정부 시위를 고집해온 시민들로서는 강한 권력욕을 보이는 알아사드 앞에서 뾰족한 돌파구를 찾기 힘든 상황이다. 알아사드 대통령이 국내외의 거센 비난 여론에도 대국민 학살극을 멈추지 않는 것은 든든한 ‘버팀목’이 있기 때문이다. 시리아는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과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어 서방의 무력 개입 가능성이 낮다. 역내 우방이 없어 고립무원 처지에 놓였던 카다피와는 사정이 다르다. 충성도 높은 군대도 알아사드가 ‘믿는 구석’이다. 막내동생인 마헤르는 정예 부대인 제4사단과 공화국수비대를 이끌며 ‘정권의 수호자’ 역할을 맡고 있다. 군부가 정권과 시위대 사이에서 중립적 자세를 끝까지 지키며 독재자 퇴진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튀니지나 이집트와 다른 점이다. 하지만 리비아 사태는 정권의 친위대가 버티는 상황에서도 시민의 힘으로 독재자를 끌어내렸다는 점에서 시리아 국민들에게 큰 힘을 줄 수 있다. 카다피와 닮은꼴 행보를 하는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도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다. 35%에 달하는 실업률에 빈곤선 이하 계층 비율이 5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우리(예멘군)는 마지막 피 한 방울이 남을 때까지 싸울 것”이라며 시민들에게 선전포고를 해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반정부 시위가 사실상 내전으로 바뀐 지난 6월 대통령궁에서 폭탄 공격을 받았고 중화상 치료차 사우디아라비아로 건너가 두 달 넘게 체류 중이다. 카다피의 몰락을 지켜본 살레로서는 자신이 앞서 거부했던 사후 처벌 면제를 보장하는 대신 조기 퇴진이라는 걸프협력협의회(GCC) 중재안에 다시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 중동 전문가인 제프 포터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리비아 사태는 시리아와 예멘 내 시위대에 강한 자극을 줬다.”면서 “비록 리비아에서처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 해도 시위대와 반군, 야권이 저항을 계속한다면 정권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속보] 주리비아 한국대사관 무장괴한 30여명에 약탈 당해

    [속보] 주리비아 한국대사관 무장괴한 30여명에 약탈 당해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 있는 주리비아 한국대사관저가 지난 23일 저녁 무장 괴한 30여 명에 의해 약탈 당했다고 외교소식통이 24일 전했다. 괴한들은 총기를 들고 관저에 남아 있던 현지 행정원들을 위협하며 TV와 가전제품, 가구 등을 약탈해간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은 “우리 직원들이 철수한 대사관저에 무장세력이 들이닥쳐 각종 집기를 닥치는대로 가져갔다.”며 “지금 트리폴리 시내는 한마디로 치안공백 상태”라고 말했다. 당시 관저에는 방글라데시 국적의 행정원 2~3명이 남아 있었으나 인명 피해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괴한들은 자신들의 신분을 반정부군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주리비아 대사관 직원들은 지난 5월 말 임시 이전한 튀니지 제르바에 당분간 머물면서 현지 치안과 반군 국가과도위원회(TNC) 본부 설치 상황을 봐가며 트리폴리 복귀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정부 당국자는 “치안이 어느 정도 확보되고 TNC 본부가 트리폴리에 설치되는 시기를 고려하면서 대사관 복귀 시점을 검토한다는 것이 기본 방침”이라며 “국내 기업들보다는 앞서 복귀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TNC의 거점인 벵가지에 주리비아 대사관 직원 3명을 급파해 인도적 지원 문제 등을 협의할 방침이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리비아 카다피 42년독재 끝났다

    리비아 카다피 42년독재 끝났다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사실상 붕괴됐다. 지난 2월 리비아 사태가 촉발된 지 6개월 남짓 만이다. 카다피의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전멸 위기에 몰린 카다피군은 22일(현지시간) 수도 트리폴리의 카다피 관저와 녹색광장을 중심으로 최후 항전에 나서 산발적인 총격전이 계속되고 있다. 리비아 반정부군은 21일 ‘인어의 새벽’이라는 작전명 아래 카다피 국가원수의 최후 거점인 트리폴리를 대부분 장악하고, 카다피의 두 아들을 생포하면서 카다피 42년 체제의 종식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반군 측 런던 주재 마흐무드 나쿠아 부대사는 22일 “트리폴리에서 교전이 계속되고 있지만 반군이 수도의 95%를 장악하는 등 통제력을 확고히 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신들은 반군들이 카다피의 관저가 있는 밥 알아지지야 요새로 통하는 주요 도로에서 카다피 측 저격수들과 맞서고 있다고 전했다. 관저 안에는 카다피의 4남 알 무타심이 버티고 있다고 아랍권 위성TV인 알아라비야가 보도했다. 반군은 21일 정부군의 저항을 거의 받지 않고 트리폴리에 입성했으며, 카다피의 경호와 수도 방위를 책임진 최정예부대 32여단의 기지를 점령했다. 반군은 이날 밤 트리폴리 도심의 ‘녹색광장’까지 완전 장악했다. 반군과 시민들은 “더 이상 녹색광장이 아니라 순교자의 광장이다.”, “승리의 순간이 왔다.”며 환호했다. 이로써 밥 알아지지야 등 일부 지역을 뺀 트리폴리 전역이 반군 통제에 들어갔다. 그러나 22일 오후 카다피 친위부대가 필사적인 반격에 나서면서 반군이 녹색 광장 밖으로 밀려났다. 또 카다피의 아들 중 한명이 이끄는 부대가 트리폴리 중심부에서 반군과 격렬한 교전을 벌이고 있다고 알아라비야가 보도했다. 반군의 트리폴리 입성 과정에서 카다피의 후계자 1순위였던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과 3남 알사디가 생포됐다. 장남 모하메드 알카다피는 반군에 투항했다고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가 전했다. 반군은 민간인 불법 공격 지시 등 반인도 범죄 혐의로 카다피와 함께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기소된 사이프 알이슬람이 리비아 내에서 재판받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카다피의 최측근인 한 친척이 체포되고 총리는 튀니지에 머무는 등 내부의 이탈도 가속화되고 있다. 카다피는 정확한 행방이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국외 망명 가능성과 함께 시르테나 남부 사막 기지 등에 은신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서방 각국은 잇따라 성명을 내고 카다피 체제의 전복을 기정사실화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트리폴리가 독재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있다.”며 카다피의 권력이양을 촉구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2인자’ 차남 생포… 리비아서 재판 받을 듯

    ‘2인자’ 차남 생포… 리비아서 재판 받을 듯

    42년간 철권통치를 해 온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정권이 사실상 붕괴되면서 카다피 일가의 거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전히 결사항전의 의지를 밝혔지만 장남 모하메드 알카다피가 반정부군에 투항한 데 이어, ‘2인자’인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과 3남인 알사디가 반군에 생포돼 카다피 정권의 핵심 기반이 무너졌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리비아 반군 대표부인 과도국가위원회(NTC)의 무스타파 압델 잘릴 위원장은 “사이프 알이슬람이 생포됐다.”고 밝혔다. 잘릴 위원장은 “그는 법정에 넘겨질 때까지 안전한 지역에서 지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22일 AFP에 따르면 국제형사재판소(ICC) 대변인은 아버지와 함께 시위대 유혈진압을 진두지휘, 반(反)인도주의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사이프 알이슬람을 ICC가 위치한 헤이그로 송환하는 방안을 국가위원회와 함께 논의 중이라고 확인했다. 이날 루이스 모레노오캄포 ICC 수석검사도 그의 조속한 송환을 촉구했다. 하지만 NTC 측은 그의 재판을 리비아에서 진행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수도 트리폴리의 카다피 관저인 밥 알아지지야 인근 호텔에서 반군에 붙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생포된 사이프 알이슬람은 서방세계에는 진보적 개혁파로 알려져 있다. 2009년 ‘시민·인민위원회’의 위원장에 추대되고 비영리법인인 ‘카다피 재단’을 통해 대외업무 등을 맡으면서 사실상 2인자로 급부상했다. 2008년 미 팬암기 폭파사건 보상협상, 2010년 한국인 선교사 등 2명에 대한 석방 협상 등에서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난 2월 반정부 시위사태가 일어나면서 카다피를 대신해 강경입장을 고수하는 바람에 아버지 등과 함께 반인륜범죄 혐의로 ICC에 기소된 바 있다. 우편·통신위원장과 리비아올림픽위원장을 맡은 장남 모하메드는 22일 새벽 반군에 투항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다피는 2명의 부인 사이에 7남 1녀를 두고 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퇴진 요구 말도 안돼” 버티는 알아사드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반군의 맹공으로 벼랑 끝에 선 가운데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서방국가의 퇴진 요구를 단칼에 거부했다. 서방국가가 리비아 사태처럼 군사개입 카드를 꺼내들 경우 “감당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위협도 빼놓지 않았다. 알아사드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현지 국영TV와 인터뷰를 갖고 “퇴진 요구는 말할 가치도 없다.”면서 “미국 등 서방국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리아 국민들에 의해 선택된 대통령에 대해 해서는 안 되는 언급”이라고 일축했다. 알아사드는 정치 개혁 로드맵도 제시했다. 오는 12월 지방선거를 시행한 뒤 이번주 새 정당법이 발효되면 내년 2월 의회를 다시 구성하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반정부 인사들은 알아사드의 개혁 조치와 대화 요청을 전면 거부한 가운데 터키에 모여 이번 사태를 지원할 위원회 발족을 위한 회담에 나섰다. 대표단 중 1명인 와엘 메르자 교수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주말까지 위원회 명단 구성에 합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유럽연합(EU)은 시리아 원유 수입을 금지하는 새 제재안 채택을 위한 막판 협상에 나섰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나토군 공중지원… 6만5000 카다피군 반군에 ‘백기’

    나토군 공중지원… 6만5000 카다피군 반군에 ‘백기’

    ‘현존 최장기 독재자’ 무아마르 알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쌓은 난공불락의 요새조차 자유에 목마른 반군의 기세 앞에 속수무책으로 뚫렸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의 ‘공중 지원’을 받은 반군은 21일(현지시간) 내전 개시 6개월여 만에 처음 수도 트리폴리에 입성, 시설 대부분을 장악했다. CNN은 “반군이 카다피의 대문 앞 계단까지 접근했다.”며 42년간 이어진 카다피 철권통치의 종말이 코앞에 다가왔음을 전했다. 반군 대표기구인 과도국가위원회(NTC)의 아랍에미리트연합 주재 대사인 아레프 알리 나야드는 “오늘이 (카다피가 없는) 첫날”이라며 사실상의 승리를 자축했다. ‘인어의 새벽’이라는 작전명으로 수도 함락전을 개시한 반군은 이날 서부 나푸사 산을 통해 트리폴리까지 순식간에 밀고 들어갔다. 트리폴리의 27㎞ 외곽에 있는 최정예부대 ‘카미스 여단’이 가로막았지만 어렵지 않게 격퇴했고 수도 중심부로 치고 나갔다. 카미스 여단은 카다피의 7남 카미스가 이끄는 수도방위군이다. AP통신은 카미스 여단 간부 중 한명이 몇년 전 카다피가 자신의 형을 숙청하자 앙심을 품고 반군에 투항하면서 정예부대가 허무하게 함락됐다고 전했다. 또 카다피군이 동부전선 방어에만 신경쓰는 틈을 타 반군이 서부 산악지역에서 진격해 온 것도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트리폴리에는 6만 5000여명의 친카다피 병력이 있었지만 큰 저항은 없었다고 CNN이 전했다. 반군 측은 자신들이 22일 오전까지 카다피 관저인 ‘밥 알아지지야’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을 장악했다며 트리폴리 함락이 임박했다고 밝혔다. 카다피 지지자들의 집결지였던 녹색광장과 미티가 국제공항도 접수했다. 반군은 카다피가 집권 이후 이름 붙인 녹색광장을 ‘순교자의 광장’으로 개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반군 측 관계자는 “트리폴리의 핵심시설인 병원과 군 막사, 외국 취재진이 머무는 릭소스호텔 등은 여전히 카다피 측이 장악 중”이라고 밝혔다. 반군이 등장하자 트리폴리는 일순간 ‘해방구’로 변했다. 반정부군이 100여대의 군 트럭에 나눠 타고 대열을 이루며 진격하자 시민들은 길가에 늘어서 환호하며 반겼다. 카다피는 반군이 숨통을 죄어 오는 상황에서도 “트리폴리를 포기하지 않고 결사항전해 승리를 쟁취할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카다피를 지켜 줄 ‘우군’은 많지 않아 보인다. 심지어 차남인 사이프 알이슬람이 생포됐고 3남인 알사디도 붙잡힌 것으로 알려지면서 독재자는 벼랑 끝에 섰다. 반군에 투항한 것으로 알려진 장남 모하메드는 이날 아랍권 위성방송인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카다피 정권이) 현명하지 못해 리비아의 위기와 혁명이 발생했다.”며 국민에게 사과했다. 목격자들은 사면초가에 몰린 카다피의 트리폴리 관저와 녹색광장 주변에서 22일 오후 늦게까지 치열한 교전음이 들렸다고 전했다. 또 군대를 이끌고 트리폴리로 진격한 카다피의 아들 중 한명이 중심부에서 반군과 교전을 벌이고 있다고 아랍권 위성 TV인 알아라비야가 보도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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