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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은, 비키니 몸매 공개...’임산부 맞아?’

    김성은, 비키니 몸매 공개...’임산부 맞아?’

    탤런트 김성은이 환상적인 비키니 뒤태를 공개했다. 김성은은 지난 6월 13일 자신의 미니홈피에 남편인 축구선수 정조국과 함께 괌으로 휴가를 다녀온 사진을 게시했다. 사진 속에서 김성은은 검은 비키니를 입고 있으며 임신 7개월의 상태임에도 완벽한 뒤태를 드러내고 있다. 이어 김성은은 “임신 만 7개월 아직 뒤태는 이정도면 괜찮지? 그런데 앞모습은 반전.”이라고 재치 있는 글을 올려 시선을 끌었다. 또 김성은은 비키니 사진 외에도 남편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려 행복한 부부의 모습을 과시했다. 사진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뽀뽀를 하는 등 다정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으며 “신랑과 함께여서 너무 행복하다. 우리 이렇게 웃기만 하자. 사랑해 아주 많이.”라고 글을 올려 부러움을 자아냈다. 이에 사진을 접한 네티즌들은 “신혼여행 미공개 사진 올린 줄 알았다.”, “임산부의 몸매라고 믿기지 않는다.”, “몸매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궁금하다.” 등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편 김성은은 2009년 11월 축구선수 정조국과 결혼식을 올렸으며 현재 KBS 2TV 예능프로그램 ‘해피버스데이’에 MC로 출연하고 있다. 사진 = 김성은 미니홈피 서울신문NTN 서은혜 인턴기자 eune@seoulntn.com
  • [서울신문 STV]

    06:00 헤이헤이헤이 07:00 반전드라마 08:00 위험한 동영상SIGN 09:00 생활의 달인 10:00 러브 파이터 11:00 황금알을 잡아라 11:30 별순검 12:30 전국 TOP 10 가요쇼 13:30 황금어장 14:30 대박예감 성공창업 15:00 놀러와 16:00 꼭 한번 만나고 싶다 17:00 빅히트 성공스토리 17:30 닥터 몽 의대가다 18:30 전국 가요대행진 19:00 생활의 달인 20:00 미스터리 X파일 21:00 TV특종 놀라운 세상 22:00 스타골든벨 23:00 놀러와 24:00 꼭 한번 만나고 싶다 01:00 생활의 달인 02:00 헤이헤이헤이
  • 亞게임·아시안컵·올림픽·월드컵… 또 일희일비 할텐가

    조급증이 문제다. 친선경기에서 져도 감독퇴진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이 선수는 왜 넣었느냐, 저 선수는 왜 쓰지 않느냐.”는 등 갖가지 비판이 쏟아진다. 새로운 선수를 투입했을 경우 경기 분위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연습해 왔던 수비전술과 공격작전이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지 살펴보려는 감독의 복안은 팬들의 안중에 없다. 문제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일부 언론과 축구계 인사들은 스스럼없이 ‘감독교체’의 목소리를 내뱉는다.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다 보면 결국 감독이 교체된다. 2002년 거스 히딩크 감독 이후 한국 축구대표팀은 모두 6명의 감독을 갈아치웠다.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뒤 선수선발-전술실험-조직력강화의 ‘팀빌딩’을 마치고 제 실력을 드러내는 데 걸리는 기간은 일반적으로 1년6개월에서 2년이다. 그런데 지난 8년 동안 1년6개월 이상 대표팀을 맡은 지도자는 허정무 현 감독밖에 없다. 아시안컵이나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조금이라도 부진하면 감독을 갈아치우다 보니 국내파 감독이든 해외파 감독이든 제 실력을 보이지도 못한 채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사실 허 감독도 부임 이듬해인 2008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화끈한 승리를 보여주지 못했고, 퇴진 압력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그같은 부담을 질 후임 감독이 없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허 감독이 남아공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뤄내고도 스스로 퇴임의사를 밝힌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새 역사를 쓴 한국 축구가 굳건한 ‘축구강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장기적 안목과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U-17(17세 이하), U-20, U-23 대표팀에서 성인 대표팀으로 이어지는 유기적인 선수 발굴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 이 시스템이 도입된 뒤에야 월드컵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고 나서 대회 직전까지 선수선발을 고민해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다. 현재 홍명보 감독이 올림픽에 대비해 U-23과 U-20 대표팀 감독을 겸하고 있어 이 같은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어렵지 않은 상황이다. 조급증을 버리고 올해 11월 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2014년 8강, 2018년 4강을 향한 마스터플랜을 가동해야 한다. 아시안게임, 아시안컵, 올림픽을 통해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김남일(톰 톰스크)의 계보를 이어갈 공수의 핵심 선수들을 찾아내야 한다. 물론 한두 명에 그칠 것이 아니라 두터운 상비군을 만들어야 한다. 강팀들은 ‘베스트 11’에 못지않은 ‘슈퍼서브’(훌륭한 교체선수)를 구축하고 있다. 우루과이와의 16강 후반전에 체력이 바닥난 김정우(광주), 기성용(셀틱)만큼이나 믿을 수 있는 선수가 있었다면 ‘유쾌한 도전’은 8강까지 이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국순당家 삼남매 “대기업과 한판승부”

    국순당家 삼남매 “대기업과 한판승부”

    국내 막걸리 시장이 급속히 커지면서 전통술로 가업을 이어온 배상면가(家)의 막걸리 ‘형제대결’이 주목받고 있다. 막걸리 시장에 CJ, 오리온, 농심 등 대기업들의 참여도 잇따르고 있다. 배상면 국순당 회장의 장남인 배중호 대표가 국순당, 둘째 배혜정 대표가 배혜정누룩도가, 셋째 배영호 대표가 배상면주가를 이끌고 있다. 막걸리 시장의 주도권을 놓고 한국 최고의 ‘술 명가’ 삼남매가 대기업과의 한판 승부를 벼르고 있는 것이다. ●국순당 “쌀 품질경쟁 앞설 것” 현재 대기업과의 ‘막걸리 전쟁’을 발빠르게 준비하는 곳은 국순당이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3일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2010 국제 와인대회’에서 ‘국순당 생막걸리’가 스파클링 와인 부문에서 동메달을 수상했다. 막걸리가 세계적인 주류 대회에 출품된 것도 처음이지만, 해외 여러 주류들과 경쟁해 수상한 것도 처음이라는 게 업체의 설명이다. 국순당은 이번 수상을 계기로 자사 생막걸리를 글로벌 브랜드로 육성한다는 생각이다. 지난 4월 국순당은 1년 이내 수확한 국내산 쌀로만 만든 ‘우리 쌀로 빚은 국순당 생막걸리’를 내놓았다. 맛뿐만 아니라 막걸리의 원료인 쌀 자체의 품질경쟁에서도 앞서 나가겠다는 의도다. 올해 국순당은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많은 1030억원의 매출 실적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누룩도가 프리미엄막걸리 출시 배혜정누룩도가는 ‘프리미엄 막걸리’로 도전장을 냈다. 회사의 대표 제품이라고 할 수 있는 프리미엄 막걸리 ‘부자’의 신화를 되살려 “일본의 사케처럼 고가에 판매되는 명품 막걸리를 만들겠다.”는 각오다. 이를 위해 지난 21일 배혜정누룩도가는 21개 막걸리 생산업체와 함께 ‘막걸리수출협의회’를 출범시켰다. 막걸리 품질기준과 용기 및 라벨의 표시기준 등을 마련하고, 스토리텔링을 통한 마케팅 강화를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기로 했다. 또 이번 남아공월드컵을 겨냥해 내놓은 ‘호랑이 막걸리 월드컵’ 특별 한정판에는 와인처럼 라벨에 향, 농도, 단맛, 쓴맛, 신맛 등 다섯 가지 항목에 대한 막걸리 전문가들의 관능 검사 결과도 실었다. 배상면주가는 ‘막걸리 100년 대계 프로젝트’로 승부수를 던졌다. 전통 방식으로 하루 1000~1500병가량 인공 첨가물을 모두 뺀 생막걸리를 생산하는 소규모 양조장을 세워 소비자가 직접 사갈 수 있게 하겠다는 계획이다. ●배상면주가 도심형양조체제로 이를 위해 배상면주가는 올해 안에 서울 지역에 양조장 10곳을 세워 ‘도심형 양조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이곳에서 빚은 막걸리는 지역 업소에 판매하고 나머지는 양조장에서 직접 ‘테이크아웃’ 형태로 주민들에게 판매할 예정이다. 지난해 배상면주가의 매출은 178억원. 배영호 사장은 “반전의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나쁜 남자들’ 웃고 ‘웃기는 남자들’ 울고

    ‘나쁜 남자들’ 웃고 ‘웃기는 남자들’ 울고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것이 시청률이라고 하지만 2010년 상반기 방송가는 어느 때보다 예상치 못한 반전이 많이 터져나왔다. 새로움을 주지 못하고 기존의 흥행 공식만을 답습한 경우는 여지없이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시청률 보증수표로 인식된 톱스타도, 전편의 화려한 명성도 예외는 아니었다. ●반전 거듭한 안방극장 신년 벽두부터 안방극장을 떠들썩하게 했던 KBS 수목 미니시리즈 ‘추노’. 톱스타들이 나오거나 기존의 궁중사극도 아니었지만 노비를 주인공으로 한 ‘길거리 사극’이 오히려 신선함을 줬다. 특히 ‘추노’는 ‘다모’의 계보를 잇는 스타일리시 사극으로 명품 대접을 받았다. 영화용 카메라로 촬영한 세련된 영상미와 화끈한 액션은 모처럼만에 남성 시청자를 TV 앞으로 끌어당겼고, 구릿빛 피부에 탄탄한 복근을 자랑하는 ‘추노꾼’들은 여심까지 사로잡았다. 거센 남자들의 질주는 ‘나쁜 남자’ 신드롬으로 이어졌다. MBC 월화드라마 ‘파스타’의 주인공 이선균은 까칠하고 마초적인 셰프 최현욱 역을 맡아 극 초반의 ‘비호감’ 위기를 극복하고 일과 연애에 카리스마까지 있는 남자로 뒷심을 발휘했다. ‘선덕여왕’ 이후 주도권 경쟁이 치열하던 월화극에서는 KBS ‘공부의 신’이 의외의 안타를 쳤다. 꼴찌들의 명문대 입학기를 다룬 이 작품은 우리 사회의 학벌주의와 1등 지상주의를 부추긴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공부 비법’ 전수라는 실용적(?)인 소재로 10대 학생과 40대 학부모의 인기를 동시에 누렸다. 수목극 시장에서도 반전은 계속됐다. KBS ‘신데렐라 언니’는 해당 방송사에서도 흥행을 자신하지 못했으나 문학적인 대사와 섬세한 심리 묘사라는 아날로그적 가치를 되새기며, 화려한 스케일과 빠른 전개에 매몰되는 듯했던 TV 드라마에 급제동을 걸었다. 제목부터 노골적인 SBS 수목극 ‘나쁜 남자’는 극 초반 김남길, 한가인 등 스타 이름값에 의존하는 모양새를 보였으나 회를 거듭할수록 고정팬을 늘려가고 있다. 상반기를 마감할 즈음, SBS 주말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도 동성애 코드를 전면에 내세우며 보수적인 안방극장에 파란을 일으켰다. ●‘내우외환’ 시달린 예능프로 반면 예능 프로그램은 그 어느 때보다 정치·사회적 이슈로 얼룩졌다. 천안함 사태, 방송사 파업, 정치권 외압 등으로 장기 결방되거나 폐지되는 프로그램이 많아 웃음의 본질적 의미에서부터 예능 프로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프로그램 형식 면에서는 몇 년째 이어진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강세가 계속됐다. KBS ‘해피선데이’의 ‘1박2일’은 예능프로그램으로는 드물게 시청률 40%를 돌파했고, 평균 나이 40.6세 아저씨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남자의 자격’ 역시 방영 1주 만에 시청률 20%를 돌파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제대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소리없이 사라진 프로그램도 많았다. 천안함 사태로 인한 TV 예능프로의 잦은 결방은 시청률 하락으로 이어져 자연스럽게 폐지 수순을 밟았다. SBS ‘골미다(골드 미스가 간다)’, ‘절친노트’, MBC ‘하땅사(하늘도 웃고 땅도 웃고 사람도 웃고)’ 등이 대표적이다. KBS ‘상상 더하기’나 ‘달콤한 밤’처럼 비슷한 형식을 반복하다 식상함을 이유로 ‘구조조정’ 대상이 된 경우도 있었다. 예능과는 별 인연이 없을 것 같은 정치적 외압설도 상반기 방송가를 뜨겁게 달궜다.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 추도식 사회를 본 방송인 김제동은 한 케이블 방송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토크쇼 녹화까지 마쳤으나 끝내 전파를 타지 못한 채 자리에서 물러났고, 국회에서 대사가 부적절하다고 지적을 받은 KBS 2TV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도 결국 폐지됐다. 물론 해당 방송사는 외압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지만 시청자들에게 남긴 것은 ‘씁쓸한 미소’였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라이언킹 “너무 허무하게 끝났다”

    “12년 동안 기다려왔는데…. 이건 내가 상상했던 게 아니다. 너무 허무하게 끝났다.” ‘라이언킹’ 이동국(31·전북)이 고개를 숙였다. 한풀이를 기대했던 월드컵은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남겼다. 12년 만에 다시 밟은 월드컵 무대에서 이동국은 단 38분을 뛰었다. 허벅지 부상을 딛고 극적으로 최종엔트리에 들 때만 해도 ‘장밋빛 희망’뿐이었다. 이동국은 그라운드에서 묵묵히 훈련에 매진했고, 허정무(55) 감독은 “우리 팀에 꼭 필요한 선수”라고 신뢰를 보냈다. 2002년 엔트리 탈락, 2006년 부상 악몽 모두 반전시킬 수 있을 기세였다. 그러나 막상 남아공월드컵이 시작되자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리스전에서는 벤치를 지켰고, 아르헨티나전에선 ‘패전처리반’이었다. 1-4로 뒤진 후반 36분 투입돼 겨우 9분을 뛰었다. 선발 출전이 예상됐던 나이지리아전에서도 ‘벤치의 조연’에 만족해야 했다. 16강전에서 마침내 기회는 왔다. 26일 우루과이전에서 1-1로 맞선 후반 16분 김재성(포항)과 교체돼 그라운드를 밟았다. 완벽한 찬스도 잡았다. 이동국은 후반 42분 절묘하게 오프사이드 트랩을 뚫어 골키퍼와 1대1 찬스를 잡았다. 그러나 슈팅은 발에 제대로 걸리지 않았고, 공은 힘없이 골키퍼 정면으로 갔다. 골키퍼의 가랑이 사이로 빠진 공이 골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지만 수비수가 재빨리 걷어냈다. 그동안의 불운을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었던 슈팅이었기에 아쉬움은 더 컸다. 이동국은 187㎝의 큰 키를 이용해 수비수를 끌고 다니며 제공권을 따냈다. 동료에게 찬스도 만들어줬고, 활발한 몸싸움으로 공격의 활로를 뚫었다. 하지만 공격수는 ‘골’로 기억될 뿐이다. 이동국은 “12년 동안 월드컵 무대를 기다려 왔는데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이건 내가 생각했던 결과가 아니다. 이런 순간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운동을 했나 싶다.”고 침통해했다. 이어 “수없이 그런 상황을 상상했다. 비 때문에 그라운드가 미끄러워 땅볼슛을 했다.”면서 “아쉽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굳게 입을 닫았다. 한국은 사상 첫 원정 16강이라는 화려한 열매를 맺었지만, ‘비운의 스트라이커’ 이동국의 꼬리표는 더 짙어졌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서울신문 STV]

    05:00 위험한 동영상 SIGN 06:00 미스터리 X파일 07:00 생활의 달인 08:00 생활의 달인 09:00 반전 드라마 10:00 미스터리 X파일 11:00 황금알을 잡아라 11:30 헤이헤이헤이 12:30 전국 TOP10 가요쇼 13:30 생활의 달인 14:30 대박예감 성공창업 15:00 러브파이터 16:00 별순검 17:00 빅히트 성공스토리 17:30 엑소시스트 18:30 TV특종 놀라운 세상 19:30 생활의 달인 20:30 닥터몽 의대가다 21:30 스타골든벨 22:30 미스터리 X파일 23:30 심야드라마 화 24:00 위험한 동영상 SIGN 01:00 체험, 삶의 현장 02:00 TV특종 놀라운 세상
  • [월드컵@포토] 잘 싸운 16강 아쉬운 패배 (종합 화보)

    [월드컵@포토] 잘 싸운 16강 아쉬운 패배 (종합 화보)

    태극전사들의 ‘유쾌한 도전’은 16강에서 멈췄다. 26일 밤(한국시간) 2010 남아공월드컵 16강전에서 한국은 우루과이에 1-2로 아쉽게 패해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이번 대회 기분 좋은 첫 승의 무대였던 포트엘리자베스 넬슨만델라베이 스타디움은 한국의 마지막 격전지가 됐다. 한국은 전반 7분 우루과이 공격수 루이스 수아레스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며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우루과이 공격의 핵 디에고 포를란의 빠른 크로스가 정성룡 골키퍼와 수비수들 사이를 통과했고 수아레스가 이를 오른발로 차 넣었다. 비교적 이른 시간에 실점했지만 한국은 꾸준한 공격으로 흐름을 조금씩 가져왔다. 전반전은 0-1로 마쳤다. 후반전에도 주도권을 잡고 공격을 펼친 한국은 후반 22분 이청용의 헤딩골로 동점을 만들었다. 기성용이 프리킥한 공이 경합하던 선수들 사이에서 위로 튀어나왔고 이를 이청용이 뛰어들며 머리로 받아 넣었다. 그러나 동점골의 기쁨은 잠시였다. 한국은 후반 35분 수아레스에게 또 다시 골을 내주면서 다시 끌려가기 시작했다. 페널티박스 모서리에서 오른발로 감아 찬 공이 골대를 맞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남은 10분과 추가시간 3분까지 한국은 박주영과 이동국을 앞세워 우루과이의 골문을 두드렸지만 끝내 골을 뽑아내지는 못했다. 이동국이 찬 공이 골키퍼 다리 사이를 통과하고도 힘을 잃고 골라인을 넘어가지 못한 장면이 특히 아쉬웠다. 결국 1-2로 경기가 끝났고 한국 선수들은 아쉬움으로 경기장에 주저앉았다. 정성룡과 차두리 등 일부 선수들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목표를 이룬 한국 선수단은 오는 29일 귀국할 예정이다. 사진=멀티비츠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
  • 산다라박, 합성 사진 미투데이 공개 ‘싼(?)토끼가 응원?’

    산다라박, 합성 사진 미투데이 공개 ‘싼(?)토끼가 응원?’

    걸그룹 2NE1 멤버 산다라 박이 골키퍼로 변신해 화제다. 산다라 박은 지난 26일 미투데이를 통해 골키퍼로 변신한 합성 사진을 공개하는 응원전을 펼쳤다. 산다라 박은 26일 포트 엘리자베스의 넬슨 만델라 베이 스타디움에서 우루과이와를 상대로 한 16강전 경기가 있는 날 “(미국 LA)여기는 아침 7시 25분, 축구 보고 있다.”며 “후반전 남았는데 우리 태극전사들 힘내라. 싼토키 골키퍼가 열심히 응원하겠다.”고 메시지를 남겼다. 이어 산다라박은 “한국의 모든 붉은 악마와 함께! 할 수 있다.”며 “우리 8강가는 거죠”라고 승리를 기원했으나 한국팀은 우루과이와 16강전에서 1대 2로 아쉽게 패했다. 산다라박의 골키퍼 모습 합성 사진을 본 네티즌들은 “싼토끼 골끼퍼! 본인이 한 것이 맞느냐? 정말 해맑다.”, “진짜 귀여운 골키퍼다.” 등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한편 2NE1 멤버는 빅뱅 태양의 뮤직비디오 촬영과 함께 휴식을 즐길 예정으로 지난 23일 미국 LA로 출국한 상태다.사진=산다라박 미투데이서울신문NTN 뉴스팀 ntn@seoulntn.com
  • [조은지기자의 월드컵 토크] 코엘류 사단서 코치활동 최강희감독

    [조은지기자의 월드컵 토크] 코엘류 사단서 코치활동 최강희감독

    허정무(55) 감독은 새 역사를 썼다. 한국인 감독 최초로 월드컵 1승을 거뒀고, 원정 사상 첫 월드컵 16강 진출도 한국인 감독으로서 해냈다. 일본의 오카다 다케시(54) 감독도 조별리그를 가뿐하게 통과했다. 한·일 ‘토종 감독’이 편견과 싸워가며 일군 결과라 더욱 값지다. 토종 감독의 마음은 어떨까. 이번 토크의 주인공은 ‘강희대제’ 최강희(51) 감독이다. 최 감독은 한·일월드컵 뒤 2004년까지 움베르토 코엘류(포르투갈) 감독 밑에서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았다. 지난해엔 전북의 K-리그 통합우승을 이끌며 ‘명장’ 반열에 올라섰다. ●조은지기자(이하 조) 한국과 일본이 나란히 16강에 진출했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빼면, 아시아 두 팀이 16강에 오른 건 처음인데요. 토종 감독이 16강까지 견인했다는 것도 흥미롭고요. 우리가 거스 히딩크(네덜란드) 감독을 못 잊는 것처럼, 일본도 필립 트루시에(프랑스) 감독에 대한 향수가 진한데 말이죠. “농부로 살겠다.”던 오카다 감독이 이렇게 극적인 반전을 일굴 줄이야. ●최강희 감독(이하 최) 맞아요. 히딩크 감독이 훌륭한 일을 했지만, 이젠 그 그늘을 벗어날 때가 됐어요. 허정무 감독께서 ‘한국 감독은 안 된다’던 축구계의 편견을 깼다는 점이 고무적입니다. ●조 허 감독님이 사령탑을 맡으신 뒤에 얼굴을 붉히는 걸 딱 한 번 봤어요. 지난해 6월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 지은 자리였는데, 어떤 기자가 “본선에서는 외국인 감독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물었죠. 인자하던 허 감독님이 정색했어요. “좋은 분이 있다면 언제든지 감독을 맡을 수 있다. 하지만 외국인 감독이 무조건 좋다는 식은 곤란하다.”면서 목소리가 떨렸죠. 토종 감독에 대한 사명감이 있는 듯했어요. ●최 이제 와 말이지만, 외국인 감독에 대한 믿음이 너무(!) 굳건했죠. 코엘류 감독 밑에서 코치도 해 봤지만, 사실 한국인 감독이 유리한 부분도 많거든요. 선수와 감독 사이에 굳이 말이 없더라도 통할 수 있는 부분, 그런 게 외국 감독하고는 부족할 수밖에 없어요. 선수들하고 아주 세심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중요한데. ●조 그렇군요. 한국축구가 외국인 감독에게 배울 수 있는 부분은 충분히 체득한 것 같아요. 특히 선수선발은 항상 잡음이 많았는데, 외국인 감독은 그걸 투명하게 했죠. 학연·지연은 당연히 없고, 이름값에도 연연하지 않았고요. 허 감독은 ‘토종 감독도 공정하게 뽑는다.’는 걸 보여준 것 같아요. ●최 내가 국가대표팀 코치를 할 때는 분위기가 흐트러져 있었습니다. 일종의 ‘월드컵 후유증’이라고 할까요. 선수들이 성취감에 너무 젖어 있었어요. 차라리 카리스마 있는 한국 감독이 맡았으면 어땠을까 싶을 만큼. 당시 코엘류 감독은, 생긴 그대로, 카리스마는 장롱 속에 넣어둔 분이었어요. 한 번은 이을용 선수가 경기 중에 화를 못 참고 상대 선수를 때려눕힌 적이 있었어요. ●조 아, 2003년 동아시아축구대회 때 중국 선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때렸던 일요? ‘을용타’로 네티즌들한테 굉장한 인기를 끌었잖아요. 그 준엄한 표정이란. 그때 이을용 선수가 퇴장당하고 흐름이 바뀌지 않았나요. ●최 맞아요. 결국 이기긴 했지만, 나머지 10명이 참 어렵게 싸웠죠. 경기 중 화가 날 수도 있지만, 팀 전체를 생각하면 그런 행동은 안 되죠. 잔소리해야 할 것 같았어요. 코엘류 감독한테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코엘류 감독이 “그건 당신 감독할 때 하시죠.”하더라고. ●조 그런 걸 보면 외국인 감독이 책임감이 부족할 수도 있겠다 싶어요. 떠나면 그만이니까. 히딩크 감독부터 코엘류-조 본프레레-딕 아드보카트-핌 베어벡까지 7년 동안 외인감독 시대였어요. 성적은 별로 못 냈지만. ●최 그래서 허정무 감독이 더 대단하죠. ‘숙원’이었던 원정 16강 진출을 일궜으니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죠. 남은 경기는 보너스로 유쾌하게 도전해도 될 만큼 잘했습니다. 가는 김에 4강까지 한 번 더 가죠, 뭐. 모든 토종감독을 대표해서, 허정무 감독님 파이팅! zone4@seoul.co.kr
  • 우루과이는 없다! 26일은 유쾌한 8강의 밤

    우루과이는 없다! 26일은 유쾌한 8강의 밤

    무서웠다. 1990년 6월21일 이탈리아 월드컵 당시 하얀 유니폼을 입은 우루과이 선수들은 마치 거인 같았다. 크고 단단해 보였다. 위축됐다. 앞선 벨기에, 스페인전의 연패 영향도 있었을 테다. 하지만 모두 이를 악물었다. 3전 전패로 돌아갈 수 없다는 비장한 각오가 모두의 눈에 깃들었다. 세계의 벽은 높았다. 수비수를 여럿 제치고 달려나가는 ‘득점왕’ 소사를 따라잡지 못했다. 고조된 관중들의 함성도 부담이었다. 앙다문 각오가 되레 파울로 이어졌다. 윤덕여가 후반 25분 레드카드를 받았다. 우리는 제대로 된 공격 한번 펼치지 못하고 그렇게 0대1로 고개를 떨궜다. 대표팀의 결정적 실패요인은 정보력 부재였다. 황보관 일본 프로축구 오이타 감독(당시 포워드)은 “대다수의 참가국들이 3-5-2 포메이션을 사용하고, 강한 압박 축구를 구사했지만 한국의 포메이션과 전술은 ‘우물 안 개구리’ 수준이었다.”고 회상했다. 최강희 K-리그 전북 감독은 “감독이 상대편 선수들 이름도 잘 모르는 등 상대팀에 대한 기본적인 분석도 부족했다.”고 말했다. 부족한 해외 경험에 위축된 선수들의 심리상태도 문제였다. 개막을 불과 며칠 앞두고 현지에 도착해 시차 적응과 컨디션 조절에도 실패했다. 당시 수비수로 경기장을 누볐던 최 감독은 “후반전 추가시간, 상대 공격수 다니엘 폰세카의 헤딩슛이 골문을 가르며 3전 전패가 결정됐을 때 눈물이 났다.”고 고백했다. 그는 “진 게 억울했던 게 아니었다. 허무해서 눈물이 다 나더라. 2년 넘게 월드컵만을 바라보며 훈련하고 준비했던 것들을 한 번 펼쳐 보지도 못했다는 사실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고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완급을 조절하는 게임조절 능력, 최고의 골잡이들, 남미 특유의 빛나는 개인기…. 우루과이는 그렇게 강팀이었다. 지금의 우루과이도 20여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노장들은 경계의 목소리를 냈다. 황보 감독은 “우루과이는 아르헨티나처럼 볼 컨트롤이 자유자재인 데다 패스도 뛰어나다. 오히려 당시엔 개인기 위주의 팀이었지만 지금은 전술과 수비력까지 강화됐다.”고 덧붙였다. 거칠고 지저분한 경기 스타일도 변수다. 손으로 잡아당기고 발로 걷어차는 것은 예사다. 심하면 침까지 뱉는다. 당시만 해도 대표팀은 이런 거칠고 더티한 스타일에 주눅이 들었다. 그래서 ‘더 거친 축구’를 주문했다. 우리도 달라졌다. 황보 감독은 “체력적인 면이나 정신적인 면에선 오히려 앞선다고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선수 개개인의 해외경기 경험이 늘어 지나친 긴장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황보 감독은 “특히 신·구세대의 조화와 잘 맞춰져 있는 포지션 체제는 눈에 띄는 강점”이라고 강조했다. 최 감독도 “이제 앞선 예선전에서 드러난 측면 수비불안에 대비해야 한다. 나이지리아전 때도 사이드 돌파가 잦았다. 크로스할 때의 위치선정도 불안했다. 공격 때 좀 더 빠른 템포로 돌파해야 한다.”면서 “우루과이는 틈이 있으면 놓치지 않고 파고드는 팀이기 때문에 수비전술에 있어서 절대로 틈을 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두 감독은 우루과이에 대해 “한국의 장기인 ‘세트피스’에 대해 철저히 분석하고 나올 것이기 때문에 이번엔 다양화된 전술과 허리를 강화한 수비전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도 “남미팀들이 가장 까다로워하는 선수들이 바로 아시아 선수들”이라면서 “기동력·순발력·투지 등 남미선수들에게 부족한 점이 우리의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황보 감독은 “지금까지 보여줬던 여유, 조직적인 세트 플레이, 공격적인 자세를 다시금 가다듬으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속공’과 ‘세트피스’, 10번 포를란을 중앙미드필드에서 꽁꽁 묶는 ‘그물망 수비’로 우리가 못 이룬 ‘짜릿한 복수전’을 후배들이 해주리라고 믿는다.”고 일본땅에서 승리를 기원했다. 자, 이제 몇 시간 남지 않았다. 20년 전 선배들이 들었던 쓴잔, 겁 없는 후배들이 돌려줄 기회다. 백민경·김양진기자 white@seoul.co.kr
  • [實錄, 한국전쟁] 이승만 휴전반대·북진통일 주장… 美 친위쿠데타 검토

    [實錄, 한국전쟁] 이승만 휴전반대·북진통일 주장… 美 친위쿠데타 검토

    한국전쟁의 발발과 전개과정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남한정부는 어떤 역할을 했으며, 어떻게 평가받을까. 북진통일을 외친 이승만은 한국전쟁 발발을 논하는 장에서 반짝 등장하지만, 한국전쟁 과정에서는 언급이 미미하다. 존재감이 없다. 러시아나 중국, 심지어 미국 자료들도 한국전쟁의 주역으로 이승만을 취급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반도의 남쪽을 지배하고 있던 남한 정부와 이승만은 단지 전쟁을 획책한 북한 김일성과의 비교 대상으로 등장할 뿐이다. 그러나 휴전협정 국면에 접어들면서 상황은 반전된다. 이승만의 극렬한 휴전반대가 주요 변수로 급부상했다. 이 시기 평양과 모스크바, 베이징 그리고 서울과 워싱턴 사이에 오간 각종 자료를 분석해 보면 ‘이승만’이라는 이름 석 자의 등장 빈도가 갑자기 높아졌다. 특히 1953년 6월18일 반공포로 2만 7000명의 전격적인 석방이 준 충격파는 컸다. 휴전협정 당사자인 미국과 중국은 물론 평양이 발칵 뒤집혔다. 영국의 처칠 총리는 아침에 면도하다 이 소식을 보고받고 얼굴을 벨 정도였다. ●‘미국의 남자’ 이승만 美와 애증 미국은 진퇴양난이었다. 미국 국내의 들끓는 휴전여론과 달리 중국과의 휴전협상은 평행선을 긋고 있었다. 한국정부와의 관계는 이승만의 휴전반대로 말미암아 담벼락 위를 걷는 아찔한 상태였다. 미국 합동참모본부가 간행한 ‘한국전쟁’에 따르면 “예측할 수 없고, 변덕스러운 이승만 정부의 자세와 행동이 특별히 어려웠다. 이러한 것들은 회담에 역기능적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협상을 불필요하게, 복잡하게 만들기도 했다. 어떤 점에서 이 대통령의 조치는 유엔군사령부의 군사적 입장을 위태롭게 하기도 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승만은 어떤 종류의 휴전협정도 반대했다. 협상 자체를 거부했다. 오로지 남한에 의한 한반도 통일을 원했다. 그는 ‘중국군의 완전한 철수, 북한 공산당 해체, 인민군 무장해제’ 등을 협상조건으로 내걸었다. 이승만은 1951년 7월 “유엔군이 한국의 분할에 동의하지 않는 것을 보장해 달라.”라는 서한을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냈다. 트루먼은 이 대통령을 비난하면서도 협조를 요청하는 답신을 보냈다. 요구 사항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심지어 미국 합참보고서는 1952년 초 뉴욕 출신의 저명한 천주교 인사인 스펠만이 한국을 방문, 무초 미 대사와 벤플리트 8군 사령관이 함께한 자리에서 이승만이 “미국의 모든 천주교인이 한국에 휴전이 없도록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정보를 싣기도 했다. 미국입장에서는 수용 불가능한 무리한 요구였다. 미국이 한국의 지도자로 선택한 ‘가장 미국적인 한국인’인 이승만은 그를 키워준 미국을 거역하고 있었다. 소련이 김일성을 북한지도자로 지목한 것처럼 이승만도 미국에 의해 선택되고 키워졌다. 이 시기 이승만을 묘사한 미국 측 자료는 온통 노회, 변덕, 아집, 독선 같은 단어로 도배돼 있었다. 전쟁발발 이전 이승만을 접촉한 한국주둔군 사령관 하지는 “솔직하지 않고, 정서적으로 불안하며, 야비하고, 부패하고, 예측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악평했다. 이승만을 바라보는 미국의 우려가 오래됐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이승만은 ‘미국의 남자’였다. 1905년 영어를 잘한다는 이유로 선발돼 백악관으로 루스벨트 대통령을 방문해 인연을 맺었다. 미국이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중단할 수 있게 도와주길 바랐지만, 그때 이미 미국은 일본과 ‘가쓰라-태프트 조약’을 맺으려고 작업 중이었다. 서로 필리핀과 대한제국에 대한 재량권을 인정하는 조약이었다. 이승만은 하버드대학에서 수학하고 나서 프린스턴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훗날 대통령이 된 윌슨의 제자가 됐다. 윌슨은 이승만을 ‘미래 한국의 독립을 위한 구세주’라고 부추겼다. 이승만은 윌슨이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한 파리평화회의에 참석하려 했으나 미 국무부로부터 여권을 발급받지 못했다. 이승만과 미국은 애증의 관계였다. 미국 지도부는 민족주의자인 동시에 기독교인인 이승만이 미국식 종교와 정치 기조를 따를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이승만의 마음속에는 미국에 대한 배신과 위선, 불신의 불씨가 자라고 있었다. ●이승만 ‘북진통일’ 정치적 구호 이승만의 또 다른 트레이드 마크인 ‘북진통일’은 남한주민들로부터 열광적인 지지와 호응을 받았지만 득보다 실이 컸다. 김일성의 남한공격 본능을 자극하는 구실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 스탈린으로부터 원조받은 무기와 군수물자로 완전무장한 북한 인민군과 비교하면 남한의 군사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전쟁발발 당시 한국군은 자신을 지키기에도 역부족인 상태였다. 전쟁 열흘 전인 1950년 6월15일 미 국방부에 보고된 군사고문단 보고서에는 ‘한국군은 가까스로 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장비와 무기 대부분은 쓸모가 없었고, 방어능력도 기껏 보름 정도’라고 기술돼 있다. 실제 인민군이 보유한 소련제 T34전차의 위력 앞에 한국군은 맥없이 무너졌다. 구형 바주카포는 무용지물이었다. 치밀하게 계산하고 준비한 김일성의 남침에 비해 이승만의 북진통일은 정치적 구호에 불과했다. 한국전쟁은 이승만의 의도와는 달리 종결을 향해 달려갔다. 미국 공화당이 1952년 7월 아이젠하워를 대통령후보자로 지명하면서 대세는 군사적 종결이 아닌 정치적 종결, 즉 휴전 쪽으로 기울었다. 대통령 후보자 아이젠하워는 같은 해 10월 디트로이트 연설에서 “명성을 걸고 한국전쟁을 조기에 명예롭게 종결짓겠다.”고 천명했다. 그는 “새로운 행정부의 정책은 한국전쟁을 끝내는 일에 집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젠하워가 당선됐다. 그는 12월2일 극비 한국방문길에 올랐다. 미 행정부 수뇌부는 남한의 정치적 위기는 전적으로 이승만으로 말미암아 일어났다고 여겼다. 이 같은 위기가 휴전협상뿐만 아니라 38도 상에 진행되고 있는 군사작전마저도 위협한다고 보았다. 실제 이승만은 1952년 국회 간선을 통한 재선이 어렵게 보이자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는 이른바 ‘발췌개헌’을 꾀했다. 임시수도인 부산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반대파를 제거했다. 한국군 전투부대를 철수시켜 계엄군으로 사용하려 했다. 이종찬 육군참모총장이 나서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개인의 군대로 사용하는 것”을 반대했으나 이승만은 막무가내였다. 전쟁을 끝내고 싶은 미국에 이승만은 골칫거리였다. 1953년 미국과 중국의 협상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갔지만, 미국과 이승만 정부와의 사이는 또 다른 고비를 향해 뒤틀려 갔다. 이승만은 4월5일 “판문점에서 무엇이 일어나든 관계없이 우리의 목표는 똑같다. 우리의 변함없는 목표는 한국을 남으로부터 압록강까지 통일시키는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이승만은 아이젠하워에게 “유엔군사령부가 중국군이 압록강 이남에 잔류하는 것을 허용하는 데 동의한다면, 우리는 한국군을 유엔군사령부에서 철수시킬 것이며 단독으로 싸울 것”이라는 내용의 최후 통첩장을 보냈다. ●아이젠하워 한때 李 제거 계획 워싱턴은 이승만을 휴전협상의 훼방꾼이자 위협세력으로 간주했다. 특유의 허세라고 판단하면서도 극단적인 조치로까지 몰고 갈 것으로 예측했다. 달래기에 나섰지만 이승만은 클라크 사령관과의 회담에서 “당신들은 모든 유엔군, 모든 경제원조를 철수시킬 수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것이다. 처음부터 민주주의가 우리를 도울 것이라고 의존한 것이 우리의 실수였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협력하겠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면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승만은 6월6일 ‘선(先) 한미방어조약 체결, 후(後) 유엔군과 공산군의 상호철군’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우리는 반쪽 휴전이나 평화보다는 싸움을 택한다.”라는 예의 벼랑 끝 외교전을 펼쳤다. 클라크 사령관은 “이 대통령은 송환 불원 한국인 포로를 경고 없이 석방할 수 있다.”는 예언에 가까운 메시지를 워싱턴에 보냈다. 포로경비부대 대부분이 한국군으로 구성됐기 때문에 유엔군은 이를 막을 수단이 없었다. 클라크 사령관의 예언대로 이승만이 반공포로를 석방하자 아이젠하워는 이승만 제거를 검토했다. 미국 수뇌부는 당시 한국에 임시군사정부를 수립하는 극비의 군사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 반공포로 석방 다음날인 6월19일 자 미국 국가안보회의 비망록에 따르면 아이젠하워는 “위험을 없애는 가장 빠르고 유일한 길은 쿠데타”라면서 “이는 확실히 고려해볼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군사자문 기구인 합참은 1952년부터 쿠데타 계획을 세워 놓았다. 합참으로부터 지시를 받은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은 6월27일 벤플리트 장군에게 이 계획을 통보했다. 한국육군과 참모총장은 유엔군사령부에 충성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밀해제된 미국 합참보고서에 따르면 “이 대통령을 어떤 구실을 붙여 서울로 초대한다. 유엔군사령부가 부산으로 이동하여 주요 지지자들을 체포하고, 주요시설을 방호하며 한국육참총장을 통하여 기존 계엄령을 장악한다. 이 대통령에게 계엄령을 종결토록 요구한다. 만일 거부하면 외부와의 통신을 차단한 채 연금하고, 요망되는 포고령은 협조적인 것으로 예상하는 국무총리가 발표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李 재선 이후 美와 화해모드 다행히 워싱턴의 친위 쿠데타계획은 불발됐다. 현실론을 내세운 참모들의 설득으로 강력한 경고수준에서 그쳤다. 한국 국회도 대통령 직선제 헌법개정을 승인했다. 계엄령은 해제됐고 이승만은 제2대 대통령으로 재선에 성공하면서 화해모드로 전환됐다. 미국은 손을 들었다. 미국은 휴전동의를 얻고, 이승만은 그 대가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는 보호우산을 제공받는 선에서 양국의 갈등은 마무리됐다. 아이젠하워는 “한국의 통일을 정치적인 수단으로 계속 추구한다. 휴전협정 수락 직후에 상호방위조약을 협상한다. 전후 경제원조를 계속한다.”라는 세 가지 조치를 약속했다. 이승만은 극단적인 휴전반대와 반공포로 석방이라는 초강수를 통해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이끌어냈다. 허물도 컸지만, 오늘의 한국이 있게 한 주춧돌을 놓았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한국전쟁의 산물인 한·미동맹은 단순한 양자동맹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안전판 역할을 하는 지역동맹”이라고 평가했다. 러시아를 저지하고, 중국을 봉쇄하면서, 일본을 견제하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동맹이라는 것이다. 노주석 논설위원·윤샘이나기자 joo@seoul.co.kr
  • [한국전쟁 名著] 데이비드 핼버스탬 ‘콜디스트 윈터’

    [한국전쟁 名著] 데이비드 핼버스탬 ‘콜디스트 윈터’

    전후 세대들에게 한국전쟁은 낡은 흑백사진이다. 호화찬란하지도, 역동적이지도, 극적 반전도 없는 재미없는 전쟁이다.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책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는 뉴스는 듣지 못했다. 이 모든 얘기들이 퓰리처상을 받은 언론인이자 쟁쟁한 역사가인 데이비드 핼버스탬의 ‘콜디스트 윈터’가 출판되기 전의 얘기다. 공병호경영연구소 공병호 소장은 이 책에 대해 ‘기념비적인 책’이라고 정의했다. 부연한다면 미국인의 눈으로 본 걸작 한국전쟁사라고 할 수 있다. 한국전쟁은 베트남전쟁보다 흥미가 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착각을 확실하게 불식시켜 준다. 방대한 문헌과 인터뷰를 통해 한국전쟁을 정공법으로 조명하면서도 소설처럼 읽는 재미를 보장했기 때문이다. 책은 2007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올랐으며, 지난해 한국에서 출간됐다. 4만 8000원이라는 가격보다 1082쪽이라는 분량 때문에 지레 질릴 수도 있다. 잠깐의 망설임만 극복하면 일사천리로 읽힌다.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전투와 작전묘사는 숨이 막힐 듯 생생하고, 전쟁의 막후에서 벌어지는 정치인, 고급 군인들의 권력투쟁은 손에 잡힐 듯 사실적이다. 60년 전 한국전쟁 발발을 전후한 시점에 한반도를 둘러싸고 진행된 국제정세가 60년이 지난 지금과 판박이라는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의 지적이 실감 난다. 학자들은 별로 환영하지 않는 눈치다. 흥미 위주의 문학작품이라고 보는 시각이 강하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잊혀진 전쟁’이 된 이유는 막강 화력의 미군이 중국 해방군에게 처절하게 패했을 뿐 아니라, 참전자들의 인간 스토리가 별로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측면도 돌아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한국전쟁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손색없다. 핼버스탬은 이 책의 출판을 30년 동안 구상했고, 10년 동안 집필했다. 참전용사들을 찾아 미국 구석구석을 뒤졌다. 책의 진가는 인터뷰 대상자 목록에서 나타난다. 그가 인터뷰했다고 이름을 밝힌 사람은 모두 130명이다. 이 중에는 알렉산더 헤이그 전 국무장관,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명예교수 등 유명인사도 있다. 대부분은 최전선에서 싸운 초급 장교이거나 사병들이었다. 저자는 후기에서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의 변두리에 사는 폴 맥기를 특별히 소개했다. 그는 지평리 전투 당시 소대장이었다. 저자는 “맥기는 55년 동안 내가 찾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린 사람 같았다.”고 했다. “일반대중이 얼마나 고귀한 이야깃거리를 가슴속에 숨겨두고 있는지 알았고, 그들을 깊이 존경하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한국전쟁을 기획하고 연출한 스탈린과 마오쩌둥, 두 공산 지도자는 물론 옛 소련 적군 소령계급장을 달고 평양에 나타난 김일성, 이승만 대통령의 미국에서의 행적, 대륙에서 쫓겨난 장제스 등 이야깃거리는 무궁무진하다. 책은 중국군과의 첫 교전으로 시작해 미국의 참전 배경으로 옮겨간다. 세계 최강의 부대 미군이 중국군에 얼마나, 어떻게 호되게 당했는지 낱낱이 알려준다. 미국인답게 워싱턴 내부 정가와 군부의 이야기가 압권이다. 한국전에서 동고동락한 맥아더, 리지웨이, 알몬드 등 세 장군의 애증 관계가 저자 특유의 저널리즘적인 서술을 통해 드러난다. 특히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의 갈등과 알력이 한국전쟁에 미친 영향을 읽노라면 소름이 끼친다. 인천상륙작전의 영웅으로만 알려진 맥아더의 야망에 대한 분석은 새롭다. 족보까지 파헤치면서 맥아더의 허상을 밝혔다. 전쟁이 발발한 1950년 겨울 한반도에는 100년 만에 닥친 추위가 기승을 부렸다고 한다. 책제목은 하복차림으로 투입된 미군들이 중국군이나 인민군보다 ‘동장군’ 때문에 고생했다는 데서 따왔다. 50년 동안 21권의 저서를 남긴 핼버스탬은 베트남전쟁에서 실패한 미국의 이야기를 주로 썼다. ‘최고의 인재’는 베트남전쟁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한 권이다. ‘콜디스트 윈터-한국전쟁의 감추어진 역사’는 유작이다. 저자는 2007년 봄 마지막 퇴고작업을 마무리한 닷새 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미식축구에 관한 새로운 책을 준비하려고 캘리포니아로 가던 길이었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나는 왜 한국전쟁 연구 뛰어들었나”

    “나는 왜 한국전쟁 연구 뛰어들었나”

    박명림 연세대 교수와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24일 연세·삼성 학술정보관 장기원국제회의실을 가득 메운 80여명의 청중과 함께 한국전쟁 연구에 대한 개인적·사회적 경험을 나눴다. 특별강연은 한국전쟁 연구에 평생을 바친 세계적 권위자들이 이 연구에 뛰어들게 된 계기와 개인적 경험 등 진솔한 이야기를 듣는 자리였다. 사회자인 연세대 사회학과 김동노 교수는 “늦은 밤 술자리에서 나올 법한 얘기들이 학회 자리에서 나왔다.”고 말해 청중의 웃음을 이끌었다. 커밍스 교수는 야구선수로 대학에 입학해 심리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 진학해 비로소 한국전쟁에 관심을 갖게 된 사연을 말해 눈길을 끌었다. 커밍스는 “인디애나 대학에서 만난 김일평 교수와 1973년 도쿄에서 벌어진 ‘김대중 납치사건’을 계기로 한국에 관심을 두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1987년 북한 방문을 떠올리며 “개성에서 만난 북한군 병사 출신 주민은 1950년 6월25일 새벽의 일을 ‘이전에도 종종 있었던 38선 부근의 게릴라전’으로 기억하고 있었다.”면서 “한국전쟁은 이처럼 시작을 특정할 수 없는 역사 속에서 자라난 내전이었다.”고 주장했다. 와다 교수는 러시아 현대사 연구로 시작해 한국전쟁 전문가로 변모한 이력을 밝히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1968년 도쿄대 대학원에서 ‘현대 러시아 역사’에 대해 강연할 당시 세계적으로 베트남전 반전운동이 일었고 곧 베트남전과 한국전쟁에 대한 연관성을 연구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자리를 마련한 박명림 교수는 “제주 4·3사건을 연구하기 위해 찾아간 제주도에서 망월동 묘지를 옮겨 놓은 듯한 희생자들의 수많은 묘를 보게 됐다.”면서 “그때부터 한 사람의 생명과 전체의 역사는 분리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가위에 눌려 가며 연구를 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박 교수는 “독재와 이념대결 등을 직접 겪지 않았기 때문에 순수한 자유와 이성으로 연구할 수 있는 젊은 세대들과 소통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고 강연 취지를 밝혔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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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00 생활의 달인 07:00 생활의 달인 08:00 TV특종 놀라운 세상 09:00 놀러와 10:00 미스터리 X파일 11:00 황금알을 잡아라 11:30 샴페인 12:30 전국 TOP 10 가요쇼 13:30 엑소시스트 14:30 대박예감 성공창업 15:00 TV특종 놀라운 세상 16:00 체험, 삶의 현장 17:00 빅히트! 성공스토리 17:30 생활의 달인 18:30 미스터리 X파일 19:30 TV 쏙 서울신문 20:00 샴페인 21:00 놀러와 22:00 생활의 달인 23:00 별순검 24:00 별순검 01:00 체험 삶의 현장 02:00 반전드라마
  • ‘축구 종가’ 잉글랜드 16강 기사회생

    ‘축구 종가’ 잉글랜드 16강 기사회생

    벼랑끝에 몰렸던 ‘축구종가’ 잉글랜드(FIFA랭킹 8위)가 기사회생했다. 잉글랜드는 23일 포트엘리자베스의 넬슨 만델라 베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남아공월드컵 C조 최종전에서 슬로베니아(FIFA 25위)를 1-0으로 꺾었다. 1승2무가 된 잉글랜드는 C조 2위로 16강에 합류했다. 잉글랜드는 4회연속 16강에 진출해 자존심을 회복했다. 몰락 직전의 종가를 구한 ‘효자’는 저메인 디포(토트넘)였다. 디포는 2009~10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18골(6위)을 몰아치면서 토트넘을 4위로 끌어올린 골사냥꾼. 파비오 카펠로 잉글랜드 감독은 1·2차전 모두 웨인 루니(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투톱 파트너로 에밀 헤스키(아스톤 빌라)를 중용했다. 하지만 얕잡아 보던 미국과 알제리를 상대로 ‘승점 2’를 챙기는데 그쳤다. 44년만에 우승컵 탈환을 목표로 내걸었던 카펠로 감독으로선 당황스러운 상황. 설상가상 불화설까지 불거졌다. 1·2차전 졸전 이후 존 테리(첼시)가 감독과 선수단 사이의 갈등을 시사하는 발언을 해 잉글랜드를 발칵 뒤집어 놓은 것. ‘자중지란’을 가라앉히는데 필요한 것은 골이었고, 카펠로 감독의 승부수는 초반부터 빛을 발휘했다. 전반 23분 오른쪽을 파고든 제임스 밀너(애스턴 빌라)가 크로스를 띄웠다. 페널티박스에 슬로베니아 수비 세 명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새 쇄도한 디포가 몸을 날려 오른쪽 정강이를 갖다 댔다. 골키퍼가 손 쓸 틈 없이 공은 빨려들어갔다. 미국(FIFA 14위)은 같은 시간 프리토리아의 로프투스 페르스펠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C조 알제리(FIFA 30위)와의 최종전에서 후반전 인저리타임에 터진 랜던 도노번(LA 갤럭시)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뒀다. 미국은 1승2무로 잉글랜드와 동률을 이뤘지만 다득점에서 2골 앞서 조 1위가 됐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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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00 위험한 동영상 SIGN 07:00 생활의 달인 08:00 반전드라마 09:00 MC몽 의대가다 10:00 스타 골든벨 11:00 대박예감 성공창업 11:30 생활의 달인 12:30 전국 TOP 10 가요쇼 13:30 미스터리 X파일 14:30 황금알을 잡아라 15:00 스타의 친구를 소개합니다 16:00 생활의 달인 17:00 빅히트 성공스토리 17:30 TV특종 놀라운 세상 18:30 전국 가요대행진 19:00 스타 골든벨 20:00 반전드라마 21:00 MC몽 의대가다 22:00 세남자 23:00 놀러와 24:00 샴페인 01:00 TV특종 놀라운 세상 02:00 생활의 달인
  • 이들의 발끝서 새로운 신화… “이젠 8강”

    이들의 발끝서 새로운 신화… “이젠 8강”

    동틀 무렵 끝난 숨막히는 ‘B조의 전쟁’은 한편의 드라마였다.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은 23일 새벽 3시30분 더반의 모저스마비다 스타디움에서 열린 남아공월드컵 B조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나이지리아와 2-2로 비겨 1승1무1패(승점 4)를 기록, 3전 전승을 기록한 아르헨티나에 이어 조 2위로 사상 첫 원정 16강에 오르는 쾌거를 이룩했다. 전반 12분 칼루 우체에게 선제골을 허용해 불안한 출발을 보였으나 전반 38분 이정수의 동점골로 16강 희망을 살렸고, 후반 4분 박주영의 ‘속죄포’로 앞서나갔지만 후반 24분 야쿠부 아이예그베니에게 페널티킥 동점골을 내줬다. 그러나 아르헨티나가 그리스를 꺾어 16강행이 확정됐다. 우리 대표팀은 26일 밤 11시 포트엘리자베스의 넬슨만델라베이 스타디움에서 A조 1위인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와 8강 진출을 놓고 운명의 한판을 벌인다. 한국 축구사를 새로 쓴 월드컵 첫 원정 16강 축포는 ‘양박(박주영·박지성)’의 발끝에서 터져나왔다. 나이지리아전에서 박지성과 박주영은 특유의 장기를 선보이며 90분간 그라운드를 누볐다. 서울신문이 실시한 ‘붉은 악마가 뽑은 베스트 태극전사’ 이벤트에서 국민들은 박주영, 박지성을 최고로 뽑았다. 전체 참가자 3674명 중 785명이 박주영을, 652명이 박지성을 선택했다. 이정수가 598표로 뒤를 이었다. 회사원 이영섭(59)씨는 “첫 번째 이정수 골과 두 번째 박주영의 골이 분위기 반전에 결정적이었다.”고 평가했다. 박양일(27·여)씨도 “박주영의 골이 없었다면 1대2로 졌을 것”이라면서 “박지성이 나타나는 곳이면 어김없이 골이 터지는 모습에 ‘역시 캡틴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같은 의견을 내놨다. 박항서 전남 감독은 “박주영을 꼽지 않을 수 없다.”면서 “아르헨티나전 자책골로 심적인 부담감이 많았을 텐데 골을 성공한 것이 대단하다.”며 “박지성, 이영표, 이정수 등 모두 빼어났다.”고 고루 칭찬했다. 박경훈 제주 감독은 “박지성의 플레이는 최고였다.”면서 “박지성이 당당하게 뛰는 것만으로도 다른 선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극찬했다. 또한 “김정우는 패스 연결과 위기대처 능력이 뛰어나다.”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하는 선수다.”고 말했다. 이제는 16강전. 26일 밤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이틀. 태극전사를 향한 국민들의 심장이 달아오르고 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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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00 생활의 달인 07:00 엑소시스트 08:00 생활의 달인 09:00 반전드라마 10:00 별순검 11:00 황금알을 잡아라 11:30 샴페인 12:30 전국 TOP 10 가요쇼 13:30 황금어장 14:30 대박예감 성공창업 15:00 헤이헤이헤이 16:00 반전드라마 17:00 빅히트 성공스토리 17:30 생활의 달인 18:30 스타의 친구를 소개합니다 19:30 미스터리 X파일 20:30 샴페인 21:30 스타골든벨 22:30 위험한 동영상 SIGN 23:30 심야드라마 화 24:00 미스터리 X파일 01:00 엑소시스트 02:00 생활의 달인
  • [월드컵@포토] ‘결국 16강!’ 나이지리아戰 이모저모

    [월드컵@포토] ‘결국 16강!’ 나이지리아戰 이모저모

    한국 축구대표팀이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뤄냈다. 23일 새벽(한국시간) 2010 남아공 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한국은 나이지리아와 2-2로 비겼지만 그리스가 아르헨티나에 패하면서 조 2위(1승1무1패·승점4)를 차지해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한국은 전반전 초반부터 경기를 주도했지만 전반 12분 나이지리아의 칼루 우체에게 선제골을 내줬다. 우체는 오른쪽에서 연결된 크로스를 차두리와 경합을 이겨내고 받아내 선제골을 성공시켰다. 선제골을 내줬지만 한국은 이내 흐름을 되찾아왔다. 박주영과 염기훈 등을 앞세워 나이지리아 골문을 몇 번이나 두드린 한국은 전반전이 끝나기 전 결국 동점을 만들어냈다. 전반 37분 기성용이 올려준 프리킥을 이정수가 밀어 넣은 것. 그리스전 선제골과 유사한 장면이었다. 1-1로 돌입한 후반전 초반에도 한국의 공세가 이어졌다. 역전골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주인공은 박주영이었다. 후반 2분 나이지리아 우측 페널티박스 26m지점에서 얻은 프리킥을 박주영은 오른발로 감아 차 골문 오른쪽 구석으로 꽂아 넣었다. 그러나 한국은 후반 24분 김남일이 조금 주춤하는 사이 볼을 뺏기고 뒤늦게 태클을 시도하다가 페널티킥을 허용해 다시 동점으로 따라잡혔다. 자칫 흐름을 잃고 추가 실점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한국은 이후 나이지리아와 수차례 공방을 주고받으며 더이상 실점하지 않고 경기를 마쳐 ‘원정 16강’ 도전에 성공했다. 한국은 26일 밤 11시에 A조 1위로 16강에 진출한 우루과이와 맞붙는다. 사진=멀티비츠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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