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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쿄서 FM공동이원방송 마친 DJ 이숙영 씨

    “‘강경 일변도는 일본 우익을 돕는 일’이라는 말이 옳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주 말 일본 도쿄에서 ‘도쿄FM’과 공동 이원방송을 마치고 돌아온 방송인 이숙영씨는 21일 독도 문제에 대한 ‘차별화된 대응’을 강조했다. 공동 방송은 이씨가 진행하고 있는 ‘SBS라디오 파워FM(107.7㎒)’과 도쿄FM이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이를 한국과 일본에 동시에 전달하는 것으로, 처음 시도되는 행사다. 한·일 우정의 해를 맞아 한류 붐 현상을 진단하고 향후 대책을 모색해 보자는 취지에서 문화관광부의 승인을 받아 지난해부터 기획된 것이다. 그러나 이씨의 팀은 예정대로 행사를 치를 것인가부터 심각한 고민을 했다. 반일 감정의 분위기를 타고 행사를 반대한 청취자들이 적지 않았다. 이씨는 “결국 방송에서 ‘우정의 해’라는 말을 단 한 차례도 꺼내지 못하고 왔다.”면서 “유명 일본 가수들을 출연시켰으나 출연 비중이나 일본어 인터뷰도 대폭 줄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이런 심적 부담감에서 워낙 ‘일본’‘독도’를 많이 거론하다 보니, 도쿄FM의 스태프들이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더라.”고 이씨는 소개했다. 이어 “일본인 가운데는 ‘다케시마’라는 말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았고, 지금 독도가 문제가 됐는지도 모르더라.”고 전했다. 반면 현지 활동중인 체육·연예인들은 대단히 민감해하고 있다고 한다.“안정환은 독도 문제를 묻는 한국 기자에게 ‘강한’ 톤으로 답했다가 현지 소속팀으로부터 눈총을 받고 있고, 이런 사정을 아는 가수 보아는 아예 ‘묻지 말아 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씨는 “지금 같은 분위기가 장기화하면 민간 교류행사는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한류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서 ‘문화 통로’의 차단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특히 “요즘에는 일본 뉴스도 한국 뉴스의 화면을 보도하며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면서 “국내에서의 일부 선동적인 ‘애국 마케팅’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스키관광 조난객 수색비 갈등

    |도쿄 이춘규특파원|독도와 역사교과서 왜곡문제 등으로 한·일관계에 긴장이 높아지는 가운데 일본 온천스키장에서 한때 조난당한 한국인들의 수색비용을 둘러싼 ‘양국간 마찰’이 또 다른 갈등요인으로 부상했다. 지난 11일 일본 동북지방 야마가타의 자오온천스키장에서 45세 남성과 중학생 등 5명이 밤새 실종되는 사건이 발단이다. 이후 수색대측에서 11만엔(약 110만원)의 수색비용을 요구했으나 한국인들은 비용부담을 거부한 채 귀국했다. 이처럼 수색비용을 둘러싼 갈등에는 양국의 문화적 차이가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산케이신문이 20일 보도했다. 내용은 이렇다.11일 밤 한국인 스키관광객 일행 8명 중 5명이 행방불명됐다. 이들 중 4명은 다음날 아침 자력으로 돌아왔고,1명은 현의 헬리콥터가 무사히 구조했다. 이에 민간의 산악조난구조대는 수색비 11만엔을 지불할 것을 요구했으나 일행은 이를 거부하고 귀국했다. 일본에선 민간 조난구조대가 수색에 나설 경우 조난자들이 비용을 부담한다. 특히 한국에선 조난되면 군·경찰 등이 철야로 수색한다. 하지만 이번처럼 일본에서는 밤에는 2차조난을 우려, 수색하지 않고 다음날 아침에야 구조활동에 들어간다. 민간 구조대는 수색 준비도 포함해 비용을 청구한 것이다. 아울러 조난자 일행은 사고시 경찰이 실명을 공개한 것에 격분하고 있다.“독도 문제로 반일 감정이 높아지는 가운데 일본여행이 주위에 알려지면 비난받는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수색비는 앞으로도 공중에 붕 뜰 전망이다. 일본 관계자들은 한국 조난자들에게 청구를 계속할 계획이지만 돈을 수령할 가능성은 낮게 본다고 한다. taein@seoul.co.kr
  • [사설] 독도, 이제는 차분하고 내실있게

    독도 문제가 우리나라와 일본의 정치·외교적 차원을 넘어 경제와 민간교류로 파급될 조짐을 보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국민의 뜨거운 애국심을 이해하나, 감정의 무절제한 발산으로 우호협력을 해친다면 발전적이어야 할 양국의 미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 국기를 짓밟거나 불태우고, 국내 거주 일본인들에 대한 신변위협, 일본상품 불매운동 등의 극단적 반일감정의 표출은 자제돼야 할 것이다. 이제 양국 정부간 입장 표명으로 냉정을 되찾아가는 시점이다. 마산시의회가 일본 시마네현에 대응해 ‘대마도의 날’을 조례로 제정한 데 대해 정부가 철회를 요청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독도 문제는 정부가 열화 같은 국민의 여망을 거듭 확인한 만큼, 대내외적으로 차분하게 국토수호정책을 펴서 대응해 나가야 한다. 국민들도 다수의 이성적인 일본 국민과 소수의 극우파를 분리해서 대응해야 하며, 일본 국민 전체와 등지는 우(愚)를 피함으로써 정부와 호흡을 같이해야 한다. 한·일 관계 경색에 따른 경제계의 우려도 그냥 넘길 수 없는 부분이다. 일본은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8.6%인 210억달러, 수입의 20.7%인 447억달러를 차지한 주요 교역 상대국이다. 금융과 자유무역협정 등 현안도 많아 독도 문제가 경제 쪽으로 파급되면 피차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국민감정이 절제돼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한·일어업협정 재협상 문제도 나라간 신뢰가 걸린 만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한·일 우정의 해’도 포기해서는 안 되며, 과거의 원한과 피해를 우정과 협력으로 바꾸는 노력에 양국 국민은 적극 동참해야 한다.
  • ‘독도 한파’로 한류열풍 급랭

    일본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 처리에 대한 반일감정이 높아지면서 지난해 일본을 휩쓸었던 욘사마와 한류 열풍이 급속히 냉각되고 있어 강원도 관광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특히 한류 열풍의 진원지인 춘천 남이섬과 준상이네집, 평창 용평 등 강원도를 찾는 일본 관광객들의 발길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18일 여행업계에 따르면 최근 겨울연가 촬영지인 춘천을 방문하는 관광객 수가 지난해 하루평균 500∼600명에서 대폭 감소한 100명 안팎에 그치고 있다. 관광업계 관계자들은 “일본인들의 촬영지 방문은 이미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것 같다.”면서 “설상가상으로 이번 일본의 조례안 사태와 교과서 왜곡문제가 한류 열풍에 찬물을 끼얹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류 열풍을 여행상품으로 내놓아 곧 대규모 해외수학여행단도 유치할 계획이었지만 한·일관계가 냉각되고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 관광객 방문의 최대 수혜자인 강원도를 비롯한 일선 자치단체들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올해 한·일수교 40주년을 기념해 각종 교류 이벤트를 준비하던 강원도와 춘천시 등은 이번 사태로 인해 불똥이 튀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춘천시는 현재 일본 호우시와 히가시쓰쿠마군, 가가미가하라시 등 3개 도시와 자매결연을 하고 교류중이지만 이번 사태로 고심하고 있다. 강원도 차원에서 추진하던 한·일 정상회담의 남이섬이나 용평 유치뿐 아니라 한·일관광 교류회의, 청소년교류, 국제학술포럼, 신혼부부초청 투어 등도 정상적인 진행이 어려울 전망이어서 난감해하고 있다. 강원도와 춘천시 관계자는 “겨울연가 열풍을 이어가기 위해 행사들을 기획하고 있는데 독도문제가 터져 홍보는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면서 “어떤 결론을 내리지 않고 사태를 더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휴대폰 되는 땅” 독도사랑 마케팅

    “휴대폰 되는 땅” 독도사랑 마케팅

    ‘아하! 독도 마케팅, 앗! 독도 후폭풍’ 독도 지키기가 전국민의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기업들도 연일 ‘내사랑 독도’를 부르짖고 있다. 국민 정서에 호응할 수 있는 데다 기업이미지 개선, 소비 진작 등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다.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독도는 우리땅’ 등의 관련 상품들이 잇따라 출시되거나 독도를 테마로 한 마케팅이 쏟아지고 있다. 반면 독도 파고에 휩쓸려 속앓이하는 기업도 적지 않다. 관광업계와 일본 기업들은 반일 감정이 진정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눈치다. ●이통사 선봉… 유통업체 테마상품 봇물 “한국 휴대폰이 되는 곳은 한국 땅입니다.” 독도 지킴이의 ‘선봉장’은 이동통신업계. 독도의 여행제한 조치가 사실상 해제됨에 따라 현지에 중계기 설치를 추진하는 등 ‘독도의 통신 영유권’ 확보에 나섰다. 여행객 증가에 따른 통신 수요를 사전에 충분히 준비하기 위한 포석이다.SKT 관계자는 “정부의 여행허가 제한조치 완화로 독도 일원의 통신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관련 기관과 협조를 얻어 독도에 기지국 설립을 적극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KTF는 울릉도 기지국 보강차원에서 독도 중계기 설치 등을 위한 현지의 전원 확보 등 제반 문제에 대한 검토 작업을 벌이고 있다.LG텔레콤도 조만간 울릉도에 기지국과 광중계기를 증설, 독도에서 통화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할 방침이다. ‘독도는 우리땅’ 통장도 나온다. 기업은행은 이달말 수익의 일부를 출연, 독도 관련 사업에 쓰는 공익상품으로 ‘독도는 우리땅’ 통장을 시판할 계획이다. 유통업계도 독도 알리기가 뜨겁다. 롯데백화점 본점은 18∼20일 초등학교 이하 어린이 동반 고객 선착순 20명에게 독도 사진이 들어간 타월을 무료로 나눠준다. 롯데마트는 서울역점 등 전국 21개점에서 ‘독도 사랑 티셔츠’를 판매하고 있다. 그랜드백화점과 그랜드마트는 ‘독도 사랑 캠페인’을 실시한다. 오는 21일부터 발행되는 모든 전단지에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문구를 삽입하고 독도 여행 상품을 사은품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관광업계는 ‘벙어리 냉가슴’이다.‘한류’ 붐을 이어갈 시기에 독도라는 돌출 사고가 터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국민의 분노가 치솟는데 대놓고 말할 수도 없는 처지여서 매듭이 빨리 풀리기만 기대하는 눈치다. ●관광업계 냉가슴… 항공사도 긴장 제주 관광업계는 일본의 공휴일인 ‘춘분절(19∼21일)’을 전후해 3000여명의 일본 관광객이 제주에 올 예정이나 최근의 반일감정으로 제주관광을 포기할 움직임이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경주는 일본인 관광객들의 예약이 줄고 이미 예약된 일정을 취소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한 특급호텔은 최근 일본인 관광객이 투숙할 예정이었던 30개가량의 객실 예약이 취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북관광협회 홍준흠 사무국장은 “최근 고조된 반일감정으로 고도(古都) 경주를 즐겨 찾는 일본인들의 발길이 끊이고 있다.”면서 “반일감정이 집단·과격행동으로 표출될 경우 다음 달부터 본격시즌인 일본학생들의 수학여행단 무더기 취소 등으로 지역 관광업계에 타격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항공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예약 취소가 심각한 상황은 아니지만 한·일 갈등이 지속되면 항공수요 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가 일본 기업의 불매운동을 선포한 가운데 일본 가전·자동차 업계는 그야말로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올림푸스한국은 올해 한·일 수교 40주년을 기념하는 ‘한·일 우정의 해’를 맞아 추진중인 이벤트를 전면 보류했다. 산업부·지방자치뉴스부 종합 golders@seoul.co.kr
  • “교류 끊어라” 전국 분노의 함성

    “교류 끊어라” 전국 분노의 함성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조례로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한 16일 전국 곳곳에서 반일 시위가 잇따랐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조례안 파기와 일본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정부에 적절한 대응책을 주문했다. ●일본대사관 앞 무기한 촛불시위 통일연대와 전국민중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대표와 일반 시민 등 70여명은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촛불집회를 갖고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동북아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극우 국수주의와 군국주의의 부활로, 우리 민족과 세계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고 성토했다. 이들은 일본이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할 때까지 17일부터는 더 많은 시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광화문빌딩 앞에서 무기한 촛불집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이날 촛불집회에는 황금주(86)·길원옥(78)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도 참석했다. 통일연대 한상렬 대표와 민주노동당 이영순 국회의원 등 대표자 6명은 일본대사관에 항의서한을 전달하려다 대사관측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대사관 정문에서 서한을 던져 넣기도 했다. 앞서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독도수호대는 이날 오전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마네현의 결정은 두고두고 아시아 각국의 지탄을 받는 올가미가 될 것”이라고 규탄했다. 독도수호대 김점구 사무국장은 “독도 주권수호를 위한 공개적·전면적 외교가 시급하다.”면서 “지난 1900년 독도가 대한제국의 고유 영토임을 재확인하는 칙령을 공포한 10월25일을 ‘독도의 날’로 제정하자.”고 주장했다. 일반 시민 3∼4명은 1인시위를 벌였다. 북핵저지시민연대와 활빈단 등은 일본의 역사교과서 표지를 붙인 종이상자 6개를 대사관쪽으로 던지고 3개를 불태웠다. 이 과정에서 고모(45)씨가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지만, 경찰의 제지로 별다른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독도역사찾기운동본부는 인사동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든 1999년 한·일 어업협정을 파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경찰은 일본대사관과 대사관저, 일본문화원 등 관련 시설에 8개 중대를 배치,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진보·보수 떠나 성토 목소리 시민·사회단체는 진보·보수를 떠나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다.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양미강 운영위원장은 “지방자치단체의 결정으로 어쩔 수 없다는 일본 정부의 태도는 책임회피일 뿐”이라면서 “정부는 단호한 의지를 보이되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구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태평양전쟁피해자 보상추진협의회 김은식 사무국장은 “대화단절 등 감정 대응보다는 적극적인 대화와 교류로 일본 국민에게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범국민협의회는 성명에서 “조례 제정과 교과서 왜곡 등은 일련의 도발 행위이자 선전포고”라면서 “정부는 미봉책이 아닌, 과거사 진실규명을 포함한 철저한 종합 대책을 수립하라.”고 촉구했다.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자유시민연대 등 보수단체도 성명을 내고 “주권 침해를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재향군인회도 “소가 웃을 일”이라고 비난하며 “독도에 국군을 상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 광복회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도 잇따라 규탄 성명을 냈다. ●경북도·진주시, 교류중단 선언 경북도는 이날 시마네현과 자매결연을 철회하고 단교를 선언했다. 경북도는 성명에서 “1989년 자매결연한 이후 우호관계를 유지해 왔지만, 수차례에 걸친 경고에도 조례안을 통과시킨 것은 신뢰관계를 유지할 의사가 없다는 뜻”이라고 규탄했다. 도의회는 궐기대회를 열어 결의문을 채택하고 일장기를 불태웠다. 도의회는 “군국주의 망령에서 비롯된 침략 근성을 보여준 망동”이라고 비난했다. 울릉군청 직원 150여명도 군청 광장에서 일본의 독도침탈 야욕을 규탄하는 집회를 갖고 일본의 공식 사죄와 조례 파기를 촉구했다. 경남 진주시도 우호교류 협정을 맺은 시마네현 마쓰에시와 교류를 전면 중단키로 하고, 이를 통보했다. 시는 오는 20일 마쓰에시에서 열리는 여자마라톤대회의 공무원 파견과 7∼8월 공무원 교환근무 계획을 취소키로 했다. 이효용 박지윤·진주 이정규·울릉 김상화기자 utility@seoul.co.kr
  • [열린세상] 克日의 元年 삼아야/황병선 청주대 초빙교수·언론인

    사실 일본의 한낱 지방자치단체인 시마네현이 엉뚱하게 ‘다케시마의 날’ 조례를 채택했다 해서 독도의 위상에는 티끌만한 변화도 오지 않는다. 한국의 ‘독도의 실효적 점유’라는 현실이나 국제법적 지위에도 아무런 변함이 없는 것이다. 그보다는 이번 시마네현 사태를 전에 없이 끈질기고 음험한 일본 위정자들의 ‘독도 침탈’ 속셈 바로 뒤에 도사린 군국주의 망령의 부활 조짐에 대비하는 계기로 삼아야만 한다. 아울러 독도문제다, 일본 교과서 왜곡이다, 하면 그때마다 요란스레 들끓다 마는 냄비처럼 철저하지 못한 우리의 ‘일본을 다루는’ 자세를 반성, 시정해야 한다. 특히 이번에는 과거처럼 감정에 호소하는 일과성 반일, 항일 시위의 되풀이로 끝내서는 안 된다. 독도와 역사교과서 문제는 수없이 되풀이되어온 것이지만 이처럼 일본의 보수화 경향 등 시대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의 입장에서 근본적으로 새 한·일 관계를 모색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일본을 속속들이 연구하고 장기적 시각에서 양국관계의 청사진을 마련하는 노력이 시작되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아직까지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양국간의 과거사를 바로잡는, 우리로서는 진정한 극일(克日)의 원년을 삼아야 한다. 이토록 한·일 국가간 공식 관계가 근래 들어 가장 심각한 올해가 한·일 우정의 해라는 것은 아이러니다. 일본에 확산되고 있는 무슨 사마, 무슨 히메의 소위 한류 열풍에 취해 사실 우리는 흐뭇한 미소를 지어왔다. 삼성이 소니를 눌렀다느니, 현대가 도요타를 따라잡고 있다느니 하여 일본에 대해 은근히 자부심을 키워오고 있었다. 그러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우리 수출품인 첨단 전자제품을 만드는 기계들의 상당부분이 일제이며 원천기술 보유를 비교한다면 한·일간에는 아직도 엄청난 수준 차이가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듣는다. 드라마, 연예의 한류바람도 어찌 보면 왜색의 재가공 수출인 측면이 없지 않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한마디로 우리는 아직 우쭐할 때가 아니다. 또한 한·일 우호를 운운할 자격도 없다. 올해로 광복 60주년, 한·일 국교정상화 40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60년이 지나도록 식민지 청산작업조차 말끔하게 하지 못해 우리는 오늘날까지 식민지 역사관 바로잡기, 친일파 척결, 과거청산 문제를 현안으로 안고 살고 있다. 수교 40주년을 맞았다고 하지만 과거 정부가 식민지 시절 피해 국민의 배상문제를 멋대로 포기하는 수교협상을 벌인 것이 확인돼 생생한 쟁점으로 살아있는 실정이다. 우리는 일본을 제대로 철저하게 연구해 본 일이 없다. 일본은 과거 조선을, 지금의 한국을 철저하게 연구했다. 우리가 과거사 속의 일본을 극복하고 오늘의 일본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일본을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 당연히 인간 생체 실험 등 과거 일본의 잔혹한 전쟁 죄악상에 대한 연구 실적이 미미하다. 우리 후세에 대한 과거사 교육이 형식에 그치고 있음도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일이다. 지금부터라도 한·일 관계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와 함께 일본 연구를 강화해야 한다. 구체적 조치로 국내의 민간외교 활동을 지원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민간단체들의 자발적 일본 과거사 연구활동을 지원하고 이들이 일본의 피해를 입었던 중국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과 유대해 일본의 과거를 추궁하는 조직적 민간외교를 전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번 사태는 어떤 통쾌한 조치로 매듭지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더라도 일본이 진심으로 과거사를 반성치 않을 수 없게 하는 효과적 조치, 한국의 극일의 방도를 찾아내는 깊이 있는 일본 연구, 처절한 우리의 과거사 반성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황병선 청주대 초빙교수·언론인
  • 이승만의 이상한 ‘반공과 반일’

    이승만의 이상한 ‘반공과 반일’

    반공과 반일의 이상하게 얽힌 관계를 드러내는 두가지.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이 문제되자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일장기를 찢고 불태우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묘한 것은 그들 가운데 일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가보안법 수호를 위해 인공기를 불태우던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동시에 역사교과서 왜곡을 분석한 시민단체는 ‘일본 우익이 반공을 강조해서 한국 우익의 지지를 기대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어찌보면 앞뒤가 잘 안 맞는 반공과 반일의 희한한 동거의 원형은 이승만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런 때에 한국 현대사 연구에 천착해온 성균관대 서중석 교수가 ‘이승만의 정치이데올로기’를 통해 이승만의 머리 속을 낱낱이 해부했다. 서 교수는 이승만에 대한 우리 사회의 담론 자체가 빈약하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정통성과 정체성’이라는 정치적 편싸움의 소재로만 이용됐기 때문이다. 물론 해방 이후 50년대까지의 정국이 워낙 역동적이어서 이승만을 ‘주변화’할 수밖에 없었다는 측면도 있었다. 이 때문에 서 교수는 이승만의 ‘일민(一民)주의’ 사상을 집중 분석했다. 일민주의를 통해 반공주의와 반일운동을 어떻게 결합했는지 추적했다.‘하나의 백성’이라는 일민주의와 파시즘의 유사성문제, 반공주의를 내걸면서 자유당 내에 우익 민족주의자들을 청산한 뒤 다시 반일운동으로 대중을 동원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서 교수는 ‘반공·반일’ 외에 ‘유교적 심성’ 문제까지 거론해 이승만에 대한 입체적인 이해를 시도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독도여! 조국의 고독이여…

    일본 시마네 현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 조례안이 16일 통과돼 반일감정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고은, 성찬경, 이근배, 유안진, 오세영 등 국내 대표 시인 12명이 독도를 주제로 한 시를 발표해 눈길을 끈다. 이들은 한국시인협회(회장 김종해) 주최로 4월4일 독도에서 열리는 ‘독도사랑 시낭송 예술제’에서 자신의 ‘독도시’들을 낭송할 예정이다.“지난 2월16일 새벽 꿈 속에서 나왔다.”고 창작배경을 밝힌 고은 시인은 그의 시에서 독도를 ‘조상의 담낭’‘조국의 고독’으로 그린다. 성찬경 시인은 ‘독도의 노래’에서 독도를 “한국의 오른손 새끼손가락”으로 묘사하며 “미쁜/모습 독도. 독도의 하늘이 청명할 때/세계의 하늘이 청명하다.”고 노래한다. 그런가 하면 이근배 시인은 “독도는 섬이 아니다/단군사직의 제단이다/광개토대왕의 성벽이다/바다의 용이 된 문무대왕의 뿔이다/불을 뿜는 충무공의 거북선이다/최익현이다, 안중근이다, 윤봉길이다/아니 오천년 역사이다/칠천만 겨레이다”(‘독도 만세’중)라고 절규한다. 신달자 시인은 “독도는 그대 섬나라가 기지개를 켜다 기우뚱/벗겨나간 신발이 아니다”(‘독도여 우리들의 혼이여!’중)라고 했고, 오세영 시인은 “동해 푸른 바다 멀리 홀로 떠 국토를 지키는 섬,/내 사랑하는 막내 아우야”(‘독도에게’중)라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한·일 독도 파고] 경북도 “시마네현과 결연 취소”

    일본 시마네현 의회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 조례안 처리를 하루 앞둔 15일 강도 높은 반일 시위가 하루종일 이어졌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국청년단체협의회 등 28개 단체로 이뤄진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청년학생본부’는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남북은 동북아 평화를 위협하는 일본의 모든 시도를 저지하기 위해 공동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다카노 주한 일본대사의 사진을 붙인 허수아비를 불태우고 ‘역사왜곡 중단하라.’고 적힌 종이비행기 30여개를 대사관 안으로 날렸다. 서울흥사단과 독도재경향우회는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독도 망언을 한 일본대사를 외교상 기피인물로 규정, 공관 직무를 종료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파공작원(HID)·애국청년동지회 회원 100여명도 일본대사관 앞에서 유관순, 윤봉길, 안중근 의사의 대형 사진을 들고 항의 시위를 벌인 뒤 고이즈미 총리의 사진과 일장기가 붙은 피켓을 불태웠다.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 대사관을 비롯한 관련 시설에 20개 중대를 배치했다. 대한민국독도향우회 회장단은 시마네현 의회 의장단과 면담하고,16일 본회의장에서 다케시마의 날 제정 조례안 의결을 막기 위해 이날 일본으로 출국했다. 한편 독도를 관할하는 경북도는 조례안이 가결되면 시마네현과의 자매결연을 취소하고, 도립 경도대학과 시마네현립 대학의 교류도 중단키로 했다. 도의회는 시마네현의회와 1997년 체결한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파기하고 일본의 독도 영유권 침탈 야욕을 규탄하는 결의문을 채택할 계획이다. 이효용·대구 한찬규기자 utility@seoul.co.kr
  • 日 독도영유권 주장…일제車에 ‘불똥’

    일본차 돌풍이 ‘독도 브레이크’에 걸렸다. 반일 감정이 확산되면서 구매 문의가 줄어드는 등 전시장에 난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올해 ‘한·일 우정의 해’를 맞아 일본차 돌풍 굳히기에 나서려던 전략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15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한국도요타자동차·혼다코리아·한국닛산 등 국내에 진출한 일본차 업체들은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주한 일본대사의 발언 이후 악화되기 시작한 한·일 양국간 감정이 갈수록 극한 대립 상태로 치닫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딜러숍에 구매문의 급감” 지난해 5월 한국시장에 진출해 빠른 속도로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혼다코리아측은 “반일감정 악화로 딜러숍의 구매문의 열기가 예전만 못하다.”면서 “실제 판매 감소로 이어질지는 더 두고봐야 되겠지만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한국닛산도 비상이 걸렸다. 닛산은 다음달 ‘일산 모터쇼’때 고급차 브랜드인 ‘인피니티’ 5개 차종을 한꺼번에 선보인 뒤 7월말부터 공식 판매에 들어간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으나 독도 문제가 장기화될 경우 타격이 예상된다. 혹시라도 일본제품 불매운동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는 양상이다. ●한국도요타 대응책 논의 렉서스를 판매하는 한국도요타는 일본차 이미지가 단박에 연상되는 혼다나 닛산보다는 상대적으로 타격이 덜한 편이다. 렉서스가 도요타보다 ‘렉서스’라는 브랜드 자체로 더 유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여진이 없을 수는 없다.BMW를 잡고 벤츠는 계속 따돌려야 하는 입장인 렉서스는 독일·미국차가 어부지리를 얻을 경우 입지가 좁아들 수밖에 없다. 일본 본사의 임원을 이달 말 한국에 초대해 매스컴의 이목을 끌려던 복안도 다소 김이 샜다. 오기소 이치로 한국도요타 사장은 최근 한국 주재 일본 관료들을 만나 반일감정 확산에 따른 기업 대응책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씨줄날줄] 독립지사 권평근/이용원 논설위원

    1945년 9월8일 인천시내에는 흥분과 긴장이 교차했다. 우리 백성을 일제의 사슬에서 구출해 준 ‘해방군’ 미군이 입국하는 날이었다. 당연히 적극 환영하자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반면 패망한 일제는 시민들에게 외출 금지령을 내렸다.“미군이 환영행사를 원치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8일 아침이 되자 시민들은 거리 곳곳으로 몰려 나왔고, 미군 함정이 도착하는 오후 2시를 앞두고는 거대한 물결이 되어 부두로 향하였다. 대기한 일본 경찰이 위협하자, 행렬을 이끌던 권평근 조선노조 인천중앙위원장은 “해방된 우리땅에서 웬 참견이냐. 쏠 테면 쏘라.”라고 가슴을 내밀었다. 흉탄이 발사돼 권 위원장 등 2명이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해방된 조국 땅에서 일제의 흉탄에 순국한 비운의 독립지사 권평근(1900∼1945)이 이번 3·1절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타계한 지 60년만의 일이다. 권평근은 배재학당 재학 중에 고향인 경기도 강화에서 3·1운동에 앞장섰다. 이후 피신 생활을 거쳐 1920년대 후반에는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귀국해 인천으로 이사한 그는 노동조합·청년동맹을 중심으로 항일 활동을 했다.31년 ‘일본인 습격 사건’의 주동자로 체포돼 그해 10월 경성지법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재판 기록을 보면 권평근은 31년에만도 5∼7월에 걸쳐 반일시위를 3차례 구체적으로 준비했다. 또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해외 반일 조선인 명부’에는 그를 ‘배일사상이 농후한 요주의 인물’로 기록해 놓았다. 권평근의 공적은, 본지가 1995년 연재한 ‘새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학계와 언론에서 전혀 알지 못하던 독립지사를 발굴한 것이었다. 당시 취재팀은 조선총독부 경무국 자료, 경성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가 발행한 ‘사상월보’등 일본측 기록과,31년의 각 신문보도 등 국내 자료를 종합해 그의 삶을 복원해 냈다. 보도가 나간 뒤로는 학계로부터 찬사가 잇따랐다. 그런데도 권평근이 건국훈장을 탄 것은 그로부터도 10년이 지나서였다. 좌파 계열로 분류된 탓이었다. 미군 환영행사를 주도하려던 그에게 좌파란 굴레는 과연 합당할까. 그의 이데올로기라면 오직 민족이었을 것이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고이즈미 “국내사정 있을것”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당국은 1일 노무현 대통령의 ‘일본의 과거사 사죄’ 요구 발언에 대해 가급적 직설적 반응은 피하는 대신 해석에 부심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기자들로부터 논평을 요구받고 “과거사를 반성하면서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자고 (노 대통령과) 합의했었다.”며 “전향적으로 양국의 우호를 생각하는 편이 좋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발언 의도에 대해선 “(한국의) 국내 사정을 생각하고 일본과의 우호도 고려해가면서 발언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정부 대변인인 호소다 히로유키 관방장관도 기자회견에서 직접 논평 없이 “(노 대통령 발언은) 양국이 좀더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 대통령이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와 관련, 종군위안부 문제 등 한국민의 고통에도 일본의 이해를 요구한 데 대해 “다양한 수준에서 끊임없는 외교노력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일부 관계자들은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제주 한·일 정상회담 때 노 대통령의 ‘임기 동안 한·일 과거사를 공식적인 의제나 쟁점으로 제안하지 않을 것’이라는 발언이 문제를 방관하겠다는 게 아니라 “일본측이 결자해지하라.”고 촉구한 것으로 해석했다. 일본 언론들도 한·일관계의 긴장의 파고가 높아질 것으로 분석했다. 신문들은 이 날짜 석간신문에서 노 대통령의 발언 취지를 “일본이 마음에서 우러난 사과를 요구했다.”고 해석하며 주요 기사로 보도했다. 방송들도 주요 뉴스로 발언 내용을 전했다. 한편 자민당 ‘대북경제제재 시뮬레이션팀’은 4일부터 사흘간 예정했던 한국방문을 한국 내 반일감정 고조 등을 이유로 연기했다고 언론들이 전했다. taein@seoul.co.kr
  • 3·1절에 맞춰 발간된 책들

    을사조약을 전후해 본격화한 일제 침략과정과 그동안 은폐축소됐던 승려들의 친일 행적, 진실과 거짓을 넘나드는 일본의 실체 등을 다룬 책들이 눈에 띈다. 그중 을사늑약 1905, 그 끝나지 않은 백년(김삼웅 지음, 시대의창 펴냄)은 친일 및 독립운동을 연구해온 김삼웅 독립기념관장이 일제 침탈의 과정을 소상히 기술한 책. 을사조약은 일제의 강압으로 체결된 ‘늑약(勒約)’이라는 일관된 사관을 갖고 있는 그는 1910년 한일합병이 아닌 1905년 을사늑약을 국권침탈의 원년으로 보고 그 전후에 일어났던 일제의 한반도 침략과정을 그리고 있다.1만 9500원. 친일승려 108인(임혜봉 지음, 청년사 펴냄)은 은폐·축소되었던 친일 승려 108인의 행적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31대 본사에서 말사 주지들까지, 불교 언론계와 학계, 중앙교무원과 총본산의 승려들까지 일제 강점기 초와 중일전쟁기, 태평양전쟁기로 나누어 시기마다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었던 승려들의 친일 행적을 상세히 다뤘다.3만 8000원. 항상 가깝고도 먼 나라로 묘사되는 일본의 과거와 현재, 저력과 한계, 발전과 퇴행의 역사를 들춰낸 책 일본, 두 얼굴 이야기(이규배 지음, 학민사 펴냄)도 나왔다. 정확한 문헌근거를 바탕으로 한·일 관계의 연원과 뿌리를 고대에서부터 현대까지 추적하고, 반일 또는 극일이라는 일방으로 흐르던 한·일 관계 설정을 통합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또 1세기가 안 되는 세월에 내려진 두 나라간 애증의 뿌리를 어떻게 치유할지도 모색해 본다.1만 2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한국영토 불인정 ‘과시용’

    한국영토 불인정 ‘과시용’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이 왜 한국은 물론 중국, 러시아, 타이완 등 주변국 모두와 공세적 영토분쟁을 벌이는가. 일본 정부는 지난해 2005년도 예산안의 중점 시책을 ‘국민을 지키고, 주장하는 일본외교’라고 국익외교 강화 방침을 분명히 했다. 최근 일본의 움직임은 이것을 그대로 실행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침략전쟁의 책임문제를 의식해 주변국과 영유권 갈등을 자제했던 지금까지의 입장에서 선회, 국제무대에서 일본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펼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됐고, 패전 60주년도 된 만큼 패전국의 멍에를 떨쳐내고 대국의 행보를 취하겠다는 뜻이다. 어업권·해양지하자원 등을 노렸음직도 하다. ●한국 점유권 시효 불인정 속셈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국제법에 눈을 뜨면서 주변 섬들을 일본 영토라고 선언, 오늘의 영토분쟁 씨앗을 잉태했다는 것이 일반론이다. 독도 영유권 주장도 연례행사다. 일본측은 회계연도가 끝나는 매년 3월 말 정기적으로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표현)를 왜 한국이 불법점령했느냐.”며 우리정부에 공한을 보내, 환기시켰다. 이번에 시마네현이 나서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도 국제법정 제소에 대비한 자료나 명분 축적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한국이 독도를 장기간 점유, 독도가 한국영토로 완전히 굳어지는 걸 막기 위한 의도가 엿보인다. 한국의 점유권 시효를 인정하지 않기 위해서다. 궁극적으로는 독도문제가 국제 쟁점으로 부상하고, 한국이 일순간 허점을 보일 경우 독도를 빼앗겠다는 속셈이라는 것이다. ●아시아지역 패권·자원확보분쟁 중국·타이완과는 센카쿠제도(중국명 댜오위타이ㆍ釣魚島) 영유권 분쟁이 뜨겁다. 역시 동중국해의 춘샤오(春曉) 가스전 천연가스채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분쟁은 배타적경제수역(EEZ)과 대륙붕 권익확보가 노림수다. 일본은 중국이 양국간 중간수역에 채굴시설을 건립하자 맞불작전으로 탐사활동을 시작했다. 최근 중국의 반일감정 고조에 대한 일본 여론의 반발 강도도 커져 일본의 대응은 점차 강화되고 있는 중이다. 도쿄도 남쪽 1700㎞의 이른바 오키노도리시마가 섬이냐, 암초(중국측)냐에 대한 논쟁도 자원확보 전쟁의 일환이다. 일본 정부는 내년도 예산에 거액의 동중국해 자원탐사비를 책정하고 유엔 대륙붕 관련 위원회 위원들과 외국 학자들을 초청해 심포지엄도 개최할 계획이다. 다른 국제학술 행사도 개최하거나 지원, 일본에 우호적인 국제여론을 조성한다는 복안이다. 특히 중국과의 분쟁은 아시아지역 전체의 패권과도 연결돼 있어 서로 신경전도 치열하다. ●북방 4개 섬은 내부단결용? 일본과 러시아의 북방 4개 섬 영유권을 둘러싼 분쟁은 풀릴 듯 하면서도 꼬여가는 양상이다. 고이즈미 총리가 지난해 9월 4개 섬 시찰을 강행하면서 꼬여 버렸다. 미국의 개입 논란도 여전하다. 러시아측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4개 섬 가운데 2개를 돌려줄 수 있다고 밝혀, 타협점을 찾으려 했으나 일본측이 “2도 반환은 냉전시대의 타협 산물”이라며 반발하자 급변했다. 급기야 루시코프 모스크바 시장은 22일 “4개 섬을 일본에 반환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돌아섰다. 러시아측은 “일본이 4개섬(일본명 북방영토, 러시아명 쿠릴열도) 문제를 국민결속 등 내부정치에 이용하려 한다.”며 점차 강경해지고 있다. taein@seoul.co.kr
  • 本社후원 韓·日수교 40주년 세미나

    本社후원 韓·日수교 40주년 세미나

    지난 19일 고려대 LG포스코관에서는 ‘일본역사교과서와 역사인식’을 기획테마로 토론회가 열렸다. 서울신문이 후원하고 한국일본학회가 주최한 제70회 학술대회의 역사문화 파트 가운데 하나였다. 그동안 어학·문학 위주의 연구를 진행해오던 한국일본학회로서는 파격적이라 할 수 있는 자리였다. 한국일본학회는 1600명을 넘는 규모의 회원수를 자랑하는 국내 최대의 일본학 연구자 모임이다. 그러나 그동안 제대로 된 활동상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반일감정 탓에 일본을 연구한다는 이야기를 드러내놓고 하기 어려운 분위기도 일부 작용했다. 이번 역사문화 토론회의 좌장이자 새 학회장에 선출된 성균관대 구태훈 교수는 “한국인으로서 일본학을 연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되새겨봐야 한다.”면서 “한·일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겠다.”고 밝혔다. 2001년 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후쇼샤(扶桑社)교과서 파문은 여러 결과를 낳았다. 일본 우익에 대한 비판은 물론, 우리의 근현대사 연구성과와 역사교과서에 대한 자성론까지 낳았다. 그러나 올해 3∼4월로 예정된 일본 문부성의 역사교과서 검정 때 이런 파문은 또다시 재연될 조짐이다. 이를 논의하기 위해 한국일본학회가 마련한 ‘일본역사교과서와 역사인식’ 토론회가 19일 오후 고려대 LG포스코관에서 열렸다. 토론회에 앞선 주제 발표에서 서울시립대 정재정 교수는 0.039%의 채택률에 그친 후쇼샤 교과서 대신 50%이상의 채택률을 기록한 도쿄교과서를 분석, 도쿄교과서도 후쇼사 못지않다는 결론을 내려 눈길을 끌었다. 경기대 김기봉 교수는 미조구치 유조의 ‘인식의 공유’에 빗댄 ‘문맥의 공유’를 내세워 한국적인 대응을 비판, 참가자들과 열띤 토론을 벌였다. 세종대 오성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회에는 이외에도 고려대 최덕수 교수, 경복고 현명철 교사, 경기대 남상호 교수,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김종식 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영순 교수, 역사문제연구소 이신철 연구원이 참가했다. 김기봉 역사교과서에 대해 수많은 비판이 있었지만 일본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의 접근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운동’으로서가 아니라 ‘학술’로 접근해야 한다. 정재정 냉전 이후 유일하게 동아시아에서만 내셔널리즘이 강고하다. 더구나 관련 나라가 모두 연동되어 있어 실타래를 풀기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가 역사교과서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단, 문제를 볼 때는 일본 교과서 시장의 경쟁관계라는 자본의 논리와 납치·수교·미국의 압박으로 얽힌 대북관계문제 같은 정치적 문제도 함께 봐야 한다. 남상호 후쇼샤 교과서 처음에 나오는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이라는 글이 문제다. 역사상대주의를 천명하고 있는데 굉장히 기술(테크닉)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을 편의적으로 적용한다는 데 있다. 오성 개인적으로 보편주의를 내세워 일본을 비판했더니 일본학자들이 굉장히 냉소적이어서 놀란 적이 있다. 역사에서 보편적 인식이 가능한지 묻고 싶다. 김기봉 사실과 해석을 나눠 생각해야 한다. 사실은 연구해서 바로잡으면 된다. 그러나 해석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후쇼샤 서문은 랑케의 역사주의 입장과도 비슷한데 아주 훌륭한 문장이다. 우리 역사책은 그렇지 않다. 우리 역사책은 객관성을 전제로 두는, 신(神)의 사관을 내세우고 있다. 주입식 역사교육은 비판받아야 한다. 김종식 기본적으로 일본역사 해석은 문부성 편수관들이 맡고 있다. 신의 관점을 비판했는데 행정관료인 편수관이 일본에서는 신이다. 좋은 지적이지만 일본 역사교과서 역시 편수관이 짜준 틀 내에서만 움직인다는 게 문제다. 정영순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 필리핀에는 후쇼샤 내용이 그대로 실린 교과서를 쓴다. 인도네시아 학자들은 아예 ‘역사학 자체가 해석학’이라면서 ‘우리는 말할 권리가 없다.’고 한다. 이런 것을 보면 일본연구자의 벽을 뛰어넘을 수 없지 않나 하는 고민이 앞선다. 이신철 운동과 학술의 병행을 얘기했는데 물론 학문적 접근도 중요하다. 그러나 홀로 서있는 학문은 없다. 강제동원의 경우 피해자는 해마다 죽어가고 일본은 자료를 숨긴 채 죽기만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이것을 뛰어넘어 인식을 공유하자는 것인가? 보편주의도 마찬가지다. 강대국과 약소국의 보편주의는 다르다. 이라크전을 보면 잘 드러난다. 그 대신 ‘평화공존’을 내세워야 한다. 지금 일본측과 접촉해보면 머리 좋은 청년들은 우익단체에 다 가고 진보단체에는 노인들밖에 없다. 진보진영이 새로운 것을 찾는 젊은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해서다. 반면 피스보트 같은 평화단체에는 젊은이들이 넘친다. 이들은 동남아 각국에서 봉사활동을 하는데 그 와중에 일제시대 피해자들을 접하다 보니 자연스레 과거사에 대해 사죄하고 반성한다. 우리도 이런 걸 제시하지 못한 채 반일만 내세우다가는 자멸할 수 있다. 김기봉 그럼에도 궁극적으로 민족주의는 포기해야 한다. 일본도 여러 측면이 있다. 일본 우익이면서도 욘사마에 열광하는, 그런 복합적인 존재다. 이런 사람들과 인식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역지사지해야 한다. 오성 예전에 후쇼샤 서문을 보고 개인적으로 역사학 훈련이 덜 됐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긍정적으로 평가하니 당혹스럽다. 최덕수 내세우는 명분·이론과 드러나는 사실·역사상을 구분해야 한다.2001년 후쇼샤 교과서를 보고 일본 우익이 굉장히 두려워한다는 인상을 받아 안심한 적이 있는데 계속 그렇게 간다는 것은 문제가 많다. 정재정 학자들이 흔히 접하는 일본인들은 일본사회의 비주류이고 별종이며 사회적 영향력은 거의 없다. 그걸 알아야 한다. 보통의 일본인은 내셔널리즘만 나오면 입을 다문다. 여기에다 천황제 얘기까지 나오면 대화 자체가 불가능하다. 한·일역사공동연구회에 몸담고 있는데 이 모임의 일본 학자들은 그래도 중도쪽을 택한 ‘국제파’들인데도 대화가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역지사지는 굉장히 어려운 말이다. 국제사회의 여건도 좋지 않다. 김종식 비관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다. 일본은 지역운동이 굉장히 발전해 있다.2001년도 지역운동과의 연계가 상당히 힘을 발휘했다. 이들과 밀착해야 한다. 이신철 두 개의 칼을 떠올렸다. 시민·지역단체와는 ‘평화공존’으로 연대를 이끌어내야겠지만, 정치적으로는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달려들어야 한다. 어떤 장기적인 방향성으로 민족주의에서 탈피하자는 것은 그 자체로는 정당하지만 현실 운동과는 거리감이 있다는 생각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日근대화 이론가 후쿠자와 유키치 ‘동아시아와의 연대’ 사상가 아니다” 한국일본학회 비판 일찍이 근대를 향한 욕망에 경도된 춘원 이광수가 “하늘이 일본을 축복하셔서 이러한 위인을 내리셨다.”고 평가했던 일본 근대화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메이지시대 사상가임에도 일본에서는 여전히 일본의 미래를 제시했던 계몽사상가이자, 게이오 대학을 설립한 교육가로서 이름 높다. 그러나 한국에서 후쿠자와는 ‘탈아론(脫亞論)’으로 제국주의를 정당화했다고 비판받고 있다. 최근 일각에서 후쿠자와에 대한 이런 평가를 달리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후쿠자와의 제국주의적 측면은 비판하되 그의 사상사에서 ‘동아시아와의 연대’ 부분을 부각하는 방식이다. 여기에는 제국주의를 노골적으로 찬미했던 후쿠자와의 메이지의 중·후기 글들이 후쿠자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 일본 우익에 의해 날조된 것이라는 주장도 한몫했다. 이런 관점은 아시아주의 혹은 아시아연대 문제를 고민하는 일부 연구자들 사이에서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한때’에 불과했더라도 후쿠자와는 정말 일본과 동아시아와의 연대를 주장했을까. 고려대 일본학 연구센터 박삼헌 연구원은 ‘근대 일본의 대외관과 위기론의 구조’라는 글을 통해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그는 후쿠자와 사상사에 대한 기존 연구가 아시아와의 ‘연대-개혁-탈출’로 변해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고 정리한 뒤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박 연구원은 “서구열강의 압도적인 힘 앞에 노출된 상황에서 아시아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순차적으로 변해갈 수는 없다.”면서 “후쿠자와의 연대는 진정한 연대라기보다 불쌍하다는 연민과 우리도 저들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는 반면교사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후쿠자와 논의의 출발점은 강대한 서양에 대한 두려움이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동아시아와의 연대를 주장하지만 내용은 중국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는 것이었고, 동아시아의 개혁 대상은 조선에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김옥균을 중심으로 한 개화파의 조선개혁이 실패하자 터진 청·일전쟁을 후쿠자와가 ‘문명과 야만의 전쟁’으로 규정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그의 탈아론은 서구문명을 따라잡자는 것만이 아니라 아시아 침략을 당위로 삼는 논리인 셈이다. 박 연구원은 특히 “이미 메이지 초기 문헌에서 이런 논리가 등장했다.”고 말해 후쿠자와 저작의 진위논란과는 무관함을 강조했다. 서울대 최장근 교수 역시 “메이지유신 직후 일본은 홋카이도와 유구(오키나와)를 통합했고 이것이 제국주의 팽창으로 이어졌다.”면서 “후쿠자와의 논리는 팽창을 위한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성균관대 구태훈 교수는 “개항 직후 일본은 교린하는 아시아의 소국이냐, 아니면 대국지향이냐 하는 국가 진로를 두고 심각히 고심했다.”면서 “결국 일본은 대국지향을 선택했는데 이런 근대국가설계 논란과 함께 묶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본사후원 한·일수교 40주년 기념 세미나

    본사후원 한·일수교 40주년 기념 세미나

    한·일수교 40주년을 맞아 한·중·일 학자 160여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국제학술대회인 ‘한·일수교 40주년 기념세미나’가 18일 고려대 LG포스코관에서 열렸다. 한국일본학회와 고려대 일본학연구센터가 공동주관하고 서울신문이 후원하는 이 학술대회는 19일까지 이틀 동안 진행된다. 이번 대회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서로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집중 점검한다. “일본문화연구는 여전히 미개척 분야입니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 오히려 학문적으로는 방법론적 단련을 소홀하게 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습니다.” “기존 근현대사 연구는 민족적 색채가 강하다 보니 문장 하나 혹은 서적 하나만 가지고 너무 물고 늘어진 측면이 강합니다.” “일본을 배우자거나 따라잡자 혹은 협력하자고 외치면서 기본적인 통계치 하나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18일 오후 1시반부터 고려대 LG포스코관 107호 강의실에서 열린 ‘한국에서의 일본학 연구의 현황과 과제’ 토론회에서 쏟아져 나온 한국내 일본 연구자들의 자성론이다. ●우리식 일본이해 ‘폭력’ 수준 광복 후 우리의 일본 연구는 스테레오타입화했다. 일본을 대상화하고 재단하기에 바빴다. 여기에다 ‘일본은 악랄한 가해자, 한국은 선량한 피해자’라는 선악 이분법까지 보탰으니 우리식 일본 이해는 ‘폭력’에 가까웠다. 이런 분위기는 최근 들어 서서히 바뀌고 있다. 우리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조치와 일본의 한류열풍이 그 상징이다. 이분법적인 시각은 점차 설 땅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일본연구는 ‘이제서야’ 조금씩 움트고 있다는 게 토론회 참가자들의 지적이다. 이제 선과 악의 이분법에서 벗어났으니 한층 더 학문적인 접근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묻어나왔다. 중앙선관위 선거연수원 고선규 교수는 “일본정치연구에서 이제야 서서히 ‘일본’이란 제약을 벗어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광복 직후 일본은 아예 연구 자체가 금기시된 분야였고, 그 뒤에는 미국 등 서구적인 시각에서 분석한게 전부였다. 그나마 ‘일본은 악’이라는 가치판단이 전제된 뒤에야 연구가 시작됐기 때문에 연구내용도 한일관계사에만 치우쳤다. 이러다보니 기존 연구는 “학문적 상상력이 동원된, 해석으로서의 정치학”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최근 일본에서 직접 공부한 세대들이 학계에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이 같은 경향이 바뀌고 있다. 고 교수는 학제간 협동연구를 앞으로의 과제로 꼽았다. 일본역사 연구에서도 이런 발전적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경기대 남상호 교수는 “반일정서가 강했지만 1946년에서 1948년까지 열린 동경재판에 대한 제대로 된 언급이 없다.”고 지적했다. 무조건 매도만 했지 일본을 제대로 살펴볼 여유나 인식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내셔널리즘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 성과가 축적돼 가면서 보다 세밀하고 정치한 분석과 연구가 정착돼 나갈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한일경제 기초 통계도 없어 이에 반해 일본경제와 일본문화를 공부한 한양대 김종걸 교수와 세명대 김필동 교수의 일본학 비판은 신랄했다. 김종걸 교수는 기본적으로 한일경제 관련 기초 통계치조차 없다는 점을 지적한 데 이어 은연중에 일본의 학문적 저력을 무시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1930년대 오오쓰카 히사오는 ‘구주경제사서설’ 등 일본과 영국간 비교연구를 통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경제학의 일반론을 끌어냈다. 이 논의는 모리스 돕과 폴 스위지 사이의 ‘자본주의체체 이행논쟁’을 낳았을 만큼 센세이셔널한 주제였지만 한국은 이에 대해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일본의 경제는 부러워하면서 정작 그들이 경제를 어떻게 분석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김필동 교수는 아예 “그래도 다른 발표자들은 시대구분이라도 했지만 문화분야에 있어서는 시대구분조차 할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김 교수는 “일본 경제 성장만 숭배하다보니 일본은 있니 없니 하는 불필요한 일본 논쟁만 낳았다.”면서 “최근 완화됐다지만 기초적인 문헌연구조차 없이 쉽게 쉽게 써내는 일본문화론이 번창했다.”고 꼬집었다. 특히 “반일논리로 제대로 된 연구를 막는 사회분위기도 문제지만 이에 무사안일하게 편승한 연구자가 더 큰 책임”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그는 주관적·선정적 일본론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는 기초자료 조사를 통한 보다 엄정한 접근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아리랑’ 원본필름 공개될까

    ‘아리랑’ 원본필름 공개될까

    |도쿄 이춘규특파원|한국 최초의 영화인 ‘아리랑’의 필름 원판이 드디어 발견되나. 일본의 전설적인 영상수집가 아베 요시시게가 지난 9일 타계, 춘사(春史) 나운규의 무성영화 ‘아리랑’의 원본필름이 발견될지 주목된다고 마이니치신문이 11일 보도했다. 조선총독부 경찰의사를 지낸 부친 때부터 영화를 수집,5만점 이상의 희귀 필름을 소장한 것으로 알려진 아베가 오사카병원에서 상속인 없이 타계함으로써 일본 문화청이 소장품을 승계, 관리할 것으로 보인다고 신문이 전했다.‘아리랑’ 원본은 6·25 때 불타 없어진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아베가 소장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고, 언론은 그의 자택 소장목록에서 ‘아리랑/9권/현대극’이라는 목록을 확인했다. 고인도 생전에 자신이 ‘아리랑’을 소장하고 있음을 시사했지만 공개는 거부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도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남북 영화관계자들이 고인으로부터 아리랑을 얻어내기 위해 경쟁을 벌였다. 북한측은 조총련 산하 총련영화제작소장인 여운각(78)씨가, 한국측은 다큐멘터리 작가 정수웅(62)씨가 건네줄 것을 호소했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은 “아리랑은 식민지시대 반일(反日)영화인 만큼 일본인으로서 생각할 점이 있다.”며 “내놓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남북한이 통일되면 평화를 위해 내놓겠다.”고 말했었다. taein@seoul.co.kr
  • [열린세상] ‘꼬붕’의식을 버리자/정세현 이화여대 석좌교수·전 통일부 장관

    1970년대 초 동서데탕트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먼저 적십자회담을 제의하여 남북간에 대화가 시작되었지만 물론 ‘판문점의 봄’이 오래가지는 못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매년 8·15경축사에서 남북관계 관련 대북제의를 했다. 그리고 이 전통은 5,6공과 문민정부까지 이어졌다. 이는 북한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경제를 보호하고 국민들이 전쟁공포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 개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90년대 중반까지는 북한도 방어적이었기 때문에 남북간 접점조차 찾기가 쉽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 들어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고 남북교류·협력이 활성화되면서 적어도 일반국민들은 안보불안감을 훨씬 덜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복무쌍지(福無雙至)인가? 그렇게 바라던 남북관계 개선이 막상 현실로 구현되면서 오히려 ‘남남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했다.“북한 편들고 퍼주는 친북정권이다.”,“미국에 대드는 반미정권이다.”,“남북관계 때문에 한·미관계가 나빠지고 있다.” 등등의 비난은 노무현 정부 들어서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기본적으로 냉전논리나 흑백논리, 또는 대미의존의식의 발로라고 할 수 있지만, 앞으로의 건전한 통일논의와 민족자존 외교를 위해서 몇 가지는 좀 짚어둘 필요가 있다. 첫째, 대북압박을 하지 않고 기계적 상호주의를 적용하지 않으면 친북이고 퍼주기인가? 대화·교류·협력·왕래·지원이야말로 경쟁적·적대적 국가간 평화정착과 통합의 유력한 방법론이라는 것은 유럽연합(EU) 형성과정에서 입증되었다. 남북경협과 대북지원은 반북하자는 것이 아니지만 친북하자는 것도 아니다. 현실을 인정하는 토대위에서 현실을 고쳐나가는 방법이다. 이 방법 말고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평화적으로 통일할 묘수가 있는가? 둘째, 미국에 대든다, 외교를 거칠게 한다고 비판하지만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상대가 우리 주장을 귓등으로 듯는 것처럼 보이면 큰소리로 힘을 주어 말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핵참화만은 막으려는 절박한 심정에서 하는 문제제기조차 오히려 우리 내부에서 ‘대들기’,‘반미’로 규정하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미국이 우리를 많이 도와주었고 지금도 동맹국이지만, 미국과 우리의 국가이익이 똑같을 수는 없다. 미국의 정책이 우리에게 불리할 때는 불리하다고 말하고, 대미설득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외교는 왜 하는가? 한·일관계에서는 친일·반일 구분없이 ‘할 말 하기’와 국익극대화를 주문하면서, 유독 한·미관계에서는 친미·반미의 선부터 긋는 것은 자가당착이고 굴종주의다. 셋째, 남북관계 개선은 ‘평화만들기’를 위한 방법이다. 한·미관계는 경제적 의미도 크지만, 기본적으로 ‘평화지키기’를 위한 수단이다. 그런데 ‘평화지키기’만으로는 ‘적극적 의미의 평화’나 통일을 기약할 수 없다. 따라서 평화와 통일이라는 국가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남북관계와 한·미관계는 적절하게 균형을 잡으면서 활용해 나가야지 어느 한쪽으로 기울 일이 아니다. 요컨대 한·미관계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이다. 이제는 남북관계와 한·미관계에서도 반북이 아니면 친북이고 반미라는 흑백논리는 버릴 때가 되었다. 지금이 냉전시대도 아니지만, 한반도문제는 아이들 같은 흑백논리나 이데올로기적 양단논법으로 접근해서 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는 우리도 누구의 바짓가랑이라도 잡아야 비로소 안심이 되는 ‘꼬붕’의식을 버리고,2만달러 시대를 준비하는 나라의 국세(國勢)에 맞게 ‘내나라 입장에서’ 정세를 분석하고 상황을 주도해나가야 한다. 북한을 더 변화시키고 남북관계를 개선해나가는 것도 우리 책임이고 주변국들이 우리의 통일에 협조하도록 만드는 것도 우리의 일이다. 이런 일을 다른 나라에 맡길 수도 없지만, 다른 나라가 해 줄 리도 없다. 물론 현실적으로 중요한 나라는 미국이기 때문에 미국과는 긴밀한 공조를 하되, 숭미(崇美)가 아닌 용미(用美)차원에서 협력해 나가면서 그때그때 유관국들을 적절히 활용하는 외교를 능소능대하게 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마음속의 변방의식(邊方意識)부터 걷어내야 한다. 대한민국은 스스로 평가하는 것보다 상당히 큰 나라다. 정세현 이화여대 석좌교수·전 통일부 장관
  • [‘박정희 저격사건’ 문서 공개] 韓日 한달간의 외교 냉전

    [‘박정희 저격사건’ 문서 공개] 韓日 한달간의 외교 냉전

    ‘문세광 사건’은 한·일 관계를 단교 직전 상황까지 내몰게 된다. 박정희 정권은 당시 일본의 미온적인 수사협조 등 ‘성의 부족’에 분개했다.8월29일자 외무부 정보보고는 “일본 경시청은 육영수 여사의 저격이 ‘과실 살인’인데도 한국 수사당국이 짜맞추기 수사로 무리한 법 적용을 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에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日, 對韓접촉 중단 게다가 일본 정부는 한국에서 일고 있는 반일감정으로 양국관계가 최악의 사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이에 따라 일본 기업들도 대(對) 한국 상담(商談)을 유보했다. 외무부는 “일본의 지원없이 한국경제가 지탱하기 곤란할 것이라는 오만한 자부심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외교부는 “외교 최우선 과제로서 (주재국에) 일본을 압박해줄 것을 요청하라.”고 재외공관에 전문을 보낸다. 앞서 주일 한국대사는 8월24일 다나카 총리를 찾아가 일본의 적극적 수사협조 등을 촉구하는 김종필 국무총리의 친서를 전달했다. 정부는 다나카 총리의 답신에 일본정부의 공식 사과와 조총련에 대한 철저한 수사 등의 언급이 포함될 것을 기대했다. ●韓, 美에 압력행사 요구 그러나 주한 일본대사는 9월8일 외교부 장관을 예방,“특사를 보내면 사죄 사절이란 인상을 주기 때문에 곤란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9월9일 김종필 총리에게는 “사죄특사의 파견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친서에 다른 현안을 언급하는 것이 어떠냐.”고 ‘황당한’ 안을 내놓기도 했다. 일본의 입장에 변화가 없자 9월4일 함병춘 주미대사가 미 국무부 하비브 차관보를 비밀리에 만난 데 이어 김동조 외교부장관도 5일 에릭슨 주한미국 대사대리를 만나, 일본에 영향력 행사를 부탁한다. 한국 정부의 태도가 강경하자 미측은 우려를 표시했다. 하비브 차관보는 “포드 대통령과 키신저 국무장관에게 한국정부 입장을 브리핑하겠다.”면서도 “미국은 모두 우방인 두 나라가 원만히 문제를 해결하기 바란다. 조용히 일본측의 답변을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라고 조언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9월10일 유정회 소속 최영철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만약 일본정부로부터 11일까지 아무 회답이 없으면 12일에 특별성명을 발표하고 최후 경고를 일본에 발한 뒤 주일대사와 외무장관의 사표를 받든가 하는 조치를 하고, 다음에 단교조치도 불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美 “단교땐 한국 안보 위험” 이에 주미대사관 박근 공사는 12일 하비브 차관보를 만나 거듭 같은 요청을 하지만, 하비브는 격앙된 어조로 “미국은 할 만큼 했다.”며 단호히 거절했다. 박 공사는 이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다. 그리고 한 시간 뒤 정부는 다시 하비브에게 전화를 걸어 “몇시간 내에 요구사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예정된 코스’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한국의 방위는 일본을 전제로 할 때만 가능한 만큼 한·일 관계가 깨지면 한국 방위도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가 돌아왔다. 하비브는 한국의 조총련 규제요구는 비합리적이라며 일본의 안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고, 결국 한·일협정의 주역이었던 시나 특사 일행이 방한해 답신을 전달하면서 한달 가까이 지속된 한·일 외교갈등이 봉합된다. 역시 이 과정에도 한·일협정의 배후에 있었던 미국의 중재가 있었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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