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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ook Review] ‘단도와 활-지한(知韓)과 혐한(嫌韓) 사이’ /채명석 지음

    일본 후소샤판 역사교과서에는 “조선반도는 일본 열도를 향해 돌출된 흉기”라고 씌어져 있다. 그렇듯 일본인들은 663년 백촌강 전투에서 패배한 이래 한반도가 일본 열도의 옆구리를 겨누는 ‘단도’라는 피해망상에 젖어 있다. 그러나 사실은 ‘활’처럼 구부러진 열도의 나라 일본이 백촌강 전투 이후 1300여년 동안 끊임없이 한반도를 공격했다. 약자일 때는 전수방어 운운하다가도 강자로 바뀌면 이익선, 생명선, 주권선 등 온갖 명분을 내세워 반도에 대한 전진방어, 즉 선제공격을 감행해 온 것이다. 최근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론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단도와 활-지한(知韓)과 혐한(嫌韓) 사이’(채명석 지음, 미래M&B 펴냄)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일본분석서다. 저자는 시사저널 도쿄 주재 편집위원으로 10여 년간 활동한 일본통. 스스로를 반일도 친일도 아닌 ‘숙일파(熟日派)’라고 부른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 정치는 지금 ‘혼네(본심)의 정치’ 즉 ‘강자의 정치’로 바뀌어가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하고 있는 것이 그 한 예.‘일본의 네오콘’으로 불리는 세습 정치가들은 이제 주변국의 눈치를 봐가며 과거사를 사죄하는 척하는 ‘다테마에(표면상의 방침)의 정치’ 즉 ‘약자의 정치’의 간판을 내리려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일본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저자는 먼저 ‘극장국가(theatre state)’라는 개념을 통해 국가로서의 일본이 어떤 습성을 갖고 있는가부터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극장국가는 문명국가의 반대 개념으로, 국가운영의 시나리오를 제 힘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나라를 가리키는 말이다. 극장국가에는 반드시 ‘모범적 중앙’이 존재한다.1982년 ‘극장국가’라는 책을 펴낸 야노 도오루(矢野暢) 전 교토대 교수는 일찍이 일본이야말로 일왕, 즉 모범적인 중앙을 정점으로 한 극장국가라고 갈파했다. 한국과 중국의 정치 문화를 모방해 율령제 국가를 이룬 것이 제1기 극장국가 시대라면, 메이지 유신 전후 서양문명을 모방해 근대화를 이룩한 시기는 제2기 극장국가 시대다. 제3기 극장국가는 태평양전쟁에서 패한 후 요시다 시게루 총리가 내건 ‘경무장, 경제우선´이란 기치 아래 미국을 모방,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을 건설한 시기. 일본은 지금 평화헌법의 족쇄를 풀고 일왕을 정식 국가원수로,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한 ‘제4기 극장국가´로 전환하기 위해 온힘을 쏟고 있다. 책은 부제가 암시하듯 지한의 얼굴을 한 혐한의 계보를 밝히는 데 적잖은 지면을 내준다. 한국 흠집내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구로다 가쓰히로. 저자는 에도시대 유학자로 조선 멸시에 앞장 선 아라이 하쿠세키와 후쿠자와 유키치의 지시로 경성에서 한성순보를 발행한 이노우에 스미고로의 행적을 좇으며 구로다가 그들 혐한파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밝힌다. 오늘의 한류(韓流)에 대한 진단도 주목할 만하다. 고대 일본의 도래인(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 붐,17세기 조선통신사 행차에 몰려든 ‘군왜(群倭, 왜나라 군중)’에 이어 최근의 한류는 역사상 세 번째 한류라는 게 저자의 말. 이 지점에서 저자는 다시 한번 반한파와 혐한파의 도발을 경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과거 일본은 편의에 따라 정한론(征韓論, 임진왜란, 일제의 식민통치)과 대한론(帶韓論, 삼한과의 교류, 조선통신사 환대)을 구사하며 우리를 괴롭혀 온 만큼 현재의 한류 붐이 멸한론과 정한론의 종언을 고하는 것으로 확대 해석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일본이 뿌리 깊은 탈아론적 의식을 버리지 않는 한 아시아의 평화는 요원하다고 강조한다. 그런 관점에서 아시아 침략과 태평양 전쟁의 이론적 토대인 탈아론을 주창한 후쿠자와 유키치에 대한 엄정한 평가를 주문한다. 침략주의자보다는 조선문명화론자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듯한 후쿠자와는 “시나·조선 같은 악우(惡友)와는 사귀지 말라.”“돈 문제로 조선인을 상대해선 안된다.”고 한 인물. 저자는 섣부른 낙관이나 비관을 모두 경계하며 500년전 신숙주가 남긴 유언을 결론으로 삼는다.“왜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되 우호친선을 끊지 말라.”1만 3000원. 김종면기자 jmkim@ seoul.co.kr
  • [씨줄날줄] 한·일 악플 전쟁/이목희 논설위원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 당시 북한의 예상밖 선전에 우리 국민들은 의기소침했다. 이때 영웅으로 떠오른 선수가 포르투갈의 에우제비우.8강전에서 4골을 성공시켜 북한에 0-3으로 지고 있던 상황을 단숨에 역전시켰다. 대회 직후 박정희 정권은 ‘북한 타도’를 기치로 중앙정보부 밑에 양지팀을 급히 창설했다. 일류선수를 징집해 해외전지훈련 등 아낌없는 지원을 퍼부었다. 당시에는 남북 축구에서 지면 그야말로 ‘죽음’이었다. 실력이 북한에 못 미쳐 승산이 없으면 월드컵 예선전을 아예 포기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좀 대범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영국의 한 언론사는 잉글랜드월드컵에서 북한,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의 활약을 역대 10대 이변으로 꼽았다. 이웃이 잘 나가면 배가 아플 수 있다. 하지만 지구촌 차원에서는 ‘동북아의 선전’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제 남북한 사이에는 스포츠 협력이 잘되는 편이다.6·15행사 참석차 광주를 방문한 북측 대표단장은 “남쪽이 월드컵 결승에 올랐으면 좋겠다.”고 덕담을 했다. 북한 대신 미운 오리로 떠오른 상대는 일본이다. 과거에도 한·일 축구전의 라이벌 의식은 대단했다. 그러나 일본팀의 다른 경기를 놓고 희비가 극명하지는 않았다. 요즘 들어 독도 논란으로 반일 감정이 끓어올랐다. 이것이 자연스레 스포츠로 옮아가고 있다. 일본이 호주에 1-3으로 역전패한 뒤 한·일 네티즌간 ‘악플(악의적 댓글)전쟁’이 벌어졌다. 히딩크 호주팀 감독이 한국을 위해 일본을 이기겠다고 언급, 양국민의 민족감정에 불을 질렀다.“일본의 패배가 고소하다.”는 한국 네티즌의 반응에 일본이 발끈했다. 야후 재팬 월드컵게시판에 ‘한국, 놀리지마’라는 별도 코너가 생겼다.“프랑스, 스위스가 한국의 코를 납작하게 해달라.”는 기원이 잇따르고 있다. 일본의 고집불통 지도자들이 미운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한국인이 속좁지 않음을 보여주자. 남북한 관계처럼 스포츠가 한·일 우호회복에 도움을 줘야 한다. 중국을 포함, 동북아 3국의 민족주의를 축구 경기와 응원을 통해 누그러뜨려야 한다. 월드컵에서 한국, 일본팀이 모두 잘 싸우는 게 좋다. 아시아지역의 국제 위상이 높아지고, 월드컵 출전권 확대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여성이 파헤친 日帝 난징학살

    2004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쪽 17번 고속도로변 차 안에서 미모의 한 여성이 머리에 총을 맞아 숨진 채 발견됐다. 일본 우익 세력으로부터 끊임없 는 협박에 시달리다 권총 자살로 삶을 마감한 그녀의 이름은 아이리스 장. 중국 이름은 장춘루(張純 如), 당시 나이는 36세였다. 1930년대 말 중국의 수도 난징에서 자행된 일본군의 잔학행위를 폭로한 책 ‘The Rape of Nanking(난징의 강간)’을 낸 뒤 줄곧 공포와 협박속에 살아온 그녀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마침내 자살을 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도서출판 미다스북스에서 펴낸 ‘역사는 힘있는 자가 쓰는가’(아이리스 장 지음, 윤지환 옮김)는 바로 그 책의 한국어판이다. 저자는 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턴에서 중국인 2세로 태어나 난징 희생자들을 위해 싸운 행동주의자이자 미국내 중국 인권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명성을 얻은 다큐멘터리 작가. 원제가 말해주듯 이 책은 1937년 난징대학살 만행을 낱낱이 고발한다. 1937년 11월 상하이 침공에 성공한 일본은 난징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감행, 그 해 12월 이 도시가 함락되자 역사상 유례없는 잔학행위를 벌이기 시작한다. 수천, 수만명의 젊은 남성들이 일본군의 전투연습 대상으로 희생됐으며,2만∼8만명에 이르는 중국 여성들이 강간당했다. 산 채로 매장하기, 거세하기, 신체장기 도려내기, 산 채로 불태우기 등 책에 묘사된 일본의 만행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 책은 출간 첫 해에 60만부가 팔려나가며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반일위서(反日僞書)’로 규정돼 출판조차 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출간되지도 않은 책의 비판서까지 등장, 베스트셀러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저자에 따르면 난징의 강간은 ‘잊혀진 홀로코스트’다. 하버드대 현대 중국사 교수인 윌리엄 커비 또한 “난징의 강간은 서구에서는 거의 잊혀진 사건이었다.”며 “난징의 비극에 대해 영어로는 처음 씌어진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한다. 난징 대학살에 대한 진실규명의 열기는 올들어 한층 뜨거워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12월12일을 ‘난징대학살 기념일’로 정했다. 난징 만행을 다룬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도 제작돼 2007년 전세계에 동시 개봉될 예정이다.1만 3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오늘의 눈] 한류 파이를 키우려면/김미경 문화부 기자

    “한류를 염두에 둔 작품을 만들 게 아니라, 우리나라 시청자들이 좋아하면 해외 어디에서도 인정받을 겁니다.” 최근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 만난 ‘한류스타’ 안재욱씨의 말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중국 비자를 받지 못할 정도로 한류에 대한 견제가 있었지만 이제는 한류 문이 넓어진 것 같아 긍정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최근 한류용으로 만들어졌으나 국내 흥행에 실패한 일부 드라마들을 외국에 떳떳하게 팔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다행스러웠다. 한류 1세대 격인 그가 언급한 한류는 단순한 붐이 아니었다. 비판도 필요하고 격려도 필요한, 냉정한 문화의 흐름이었다. 이제 한류는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아니라 한단계 도약해야 하는 시기이며, 이를 위해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2006년, 과연 한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최근 일본 도쿄를 찾았다. 한국에 오는 일본 관광객 수가 줄어들고, 혐(嫌)한류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한류의 방향과 미래를 짚어보기 위해서다. 도쿄 신주쿠를 중심으로 수십명의 한류 관계자들을 만났다.NHK 등 방송국과 영화관, 출판사, 서점, 카페 등에서 만난 그들은 한목소리로 “한류의 붐은 꺼졌지만 정착기·성숙기로 접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오히려 한국 사람들이 한류가 사라질까봐 우려하면서 한류를 겨냥한 콘텐츠에만 너무 치중한다고 지적했다. 우리가 한류 붐이 사라졌다며 걱정하고 있을 때 일본인들은 한류를 한국문화로서, 자기네 문화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채비를 하고 있었다. 특히 스타에 열광하는 것에서 벗어나 한국어를 배우고, 의·식·주 등 한국의 일상생활에 대해 궁금해하는 등 한국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있었다. 우리는 어떠한가. 최근 일본 영화들이 잇따라 개봉해 눈길을 끌고 있지만 ‘반일감정’에 사로잡혀 일본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류가 지속되려면 양질의 콘텐츠 개발은 물론, 양국간 문화교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일본에서 만난 한류 관계자들의 조언이다. 우리 콘텐츠만 일방적으로 공급할 것이 아니라 일본 등 아시아권 문화와 교류해야 한류가 제공할 파이는 더욱 커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김미경 문화부 기자 chaplin7@seoul.co.kr
  • [진화하는 韓流 꿈틀대는 日流] 저변 넓혀가는 일본문화

    [진화하는 韓流 꿈틀대는 日流] 저변 넓혀가는 일본문화

    한류 열풍을 타고 한국문화가 일본에 급속히 유입되는 동안에 일본문화도 한국에 조용히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일본 대중문화가 1차로 개방된 1998년 이후 문학과 영화, 대중음악 등을 중심으로 저변을 넓혀온 일본문화는 최근 다양한 콘텐츠를 앞세워 마니아층을 기반으로 수면 위로 떠오를 채비를 하고 있다. ●문학·애니메이션 등 최고 문학을 비롯한 출판분야는 문화부문에서 한·일 역조가 가장 심각하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지난해 출간된 일본 소설은 391권으로,2004년 252권,2003년 208권에 비해 급증했다. 지난 10년간 연간 집계한 종합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1996년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시작으로 지난해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 등 매년 2∼4권의 일본 서적이 20위권에 들었다. 올들어서도 매월 소설 베스트셀러에 3∼5권씩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일본 소설 바람을 타고 ‘플라이, 대디, 플라이’(가네시로 가즈키)‘어깨 너머의 연인’(유이카와 게이) 등이 영화로 제작, 개봉될 예정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극장과 방송, 단행본으로 나뉘어 한국 만화시장을 휩쓸고 있다. 케이블·위성 애니메이션채널에서 일본 작품은 50∼60% 정도를 차지하며 최고의 시청률을 올리고 있다.80년대 후반부터 불법복제물로 유입된 단행본은 지난해 점유율이 70%에 육박했으며, 해외 번역물 중에서는 98.7%로 절대적이다.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올들어 전면 개방돼 본격적인 수입이 이뤄질 전망이다.2004년 개봉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전국 300만명을 넘어서며 일본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다. 올해는 ‘폭풍우 치는 밤에’‘개구리중사 케로로’ 등에 이어 ‘원피스’‘게도전기’ 등이 잇따라 개봉한다. ●일본문화, 조용히 확산된다 영화, 드라마, 대중음악(J-POP), 격투기 등도 젊은 층을 공략하는 장르다. 지난해 10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이어 올들어 관객 9만명을 돌파한 ‘메종 드 히미코’와 ‘박치기’‘스윙걸스’‘나나’ 등이 잇따라 개봉하며 호평을 받자 감독·배우들이 방한, 눈길을 끌었다.98년 이후 ‘러브레터’ 등이 화제를 모았지만 최근처럼 일본 영화에 관심이 쏠린 적은 없었다는 분석이다. 일본 드라마는 지상파까지 개방되지 않아 케이블·위성채널에서 방송되고 있지만 다양한 작품들이 들어와 잔잔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10월까지 118편이 방송됐으며,‘고쿠센’‘소년탐정 김전일’‘춤추는 대수사선’‘러브 제너레이션’‘서유기’ 등이 마니아층을 형성했지만 시청률은 그리 높지 않은 편. 일본전문 채널J 관계자는 “최근 방송된 일본 대하드라마와 다큐멘터리 등이 고학력층에 어필하고 있다.”면서 “잠재된 마니아층이 많기 때문에 작품 수준에 따라 이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80년대부터 불법 복제음반으로 들어온 J-POP은 2004년 전면 개방 이후 마니아층 위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나카시마 미카의 ‘러브’, 희데의 ‘666’,‘하울의 움직이는 성’OST 등이 2만∼3만장 정도 팔리며 팝음반 판매 10위권을 넘봤다.2000년부터 아무로 나미에, 각트 등 스타들이 한국에서 개최한 공연이 흥행하면서 J-POP 가수들의 내한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JVC 송은아 과장은 “대형 음반사는 한달에 10개 이상의 일본 타이틀을, 작은 음반사는 인디 아티스트를 위주로 1∼2개 타이틀을 출시하고 있다.”면서 “나카시마 미카 등 한국 입맛에 맞는 발라드는 팬층이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드라마·사주팔자 등 다양한 콘텐츠를 일본에 공급하는 드림젠 박종욱 사장은 “일본 파트너들이 역(逆)한류를 이용, 다양한 콘텐츠를 한국에 수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오랫동안 일본문화를 즐겨온 마니아층이 있기 때문에 일본문화는 계속 저변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 홍지민기자 chaplin7@seoul.co.kr ■ “반일감정 때문 日문화 성공못할것” 67% 서울신문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일본 속 한국문화와 한국 속 일본문화에 대한 인식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일본 문화가 한국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것 같은 이유로 반일 감정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혔다. 반면 한류가 일본에서 약화될 것 같은 까닭은 한류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한류가 국가적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고(88.4%), 한국에 대한 일본사람의 호감을 늘렸다(86.5%)는 등 긍정적인 평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향후 일본에서의 한류 열풍 전망을 묻는 항목에서 ‘얼마간 지속되겠지만 약화될 것’(55.2%),‘10년 이상 지속’(35.2%),‘조만간 약화’(6.0%) 순으로 나타나 부정적인 전망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한류 약화 이유로는 ‘한류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아서’(32.0%) ‘반한 감정’(24.9%) 등이 꼽혔다. 한국에서의 일본 문화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는 ‘한류 정도의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것’(67.7%)이라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것 같은 이유로는 ‘반일 감정’(67.1%)이 가장 높았고,‘정치 외교상 한계’(13.3%)‘일본 문화 수준이 높지 않아’(10.3%) 순으로 나타나 한류 약화 이유를 묻는 항목과는 대비되는 결과가 나왔다. 일본 문화를 접하는 이유로 ‘별다른 이유는 없다.’(38.9%),‘참신하고 기발해서’(18.9%) 순이었다.‘일본을 이해하기 위해서’(7.8%)는 상대적으로 낮았다.‘참신하고 기발해서’는 29세 이하에서 33.4%로 집계되는 등 일본 문화의 신선함은 젊은 연령층에 매력요인이었다. 일본 문화가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가 45.7%,‘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가 50.2%로 집계됐다. 특히 능동적인 향유층인 29세 이하에서는 긍정 응답이 53.0%로 가장 많았다. 이번 조사는 지난 3월17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실시됐고,95% 신뢰 수준에 표집오차는 ±3.1%이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알찬 日영화 수입해놓고 정치적 상황 신경 곤두서” “‘일본 문화’는 ‘일본’이 아닌 ‘문화’입니다.” 조성규(37) 스폰지 대표는 일본 문화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진정한 문화 교류를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스폰지는 작은 규모라도 탄탄한 내용을 갖춘 유럽·일본 영화들을 국내에 소개하고 있는 중견 영화사. 특히 일본 영화 소개에 있어서는 국내에서 가장 선두에 있다.130편가량 되는 라이브러리에서 일본 영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30∼40편 정도. 올해만해도 이미 개봉한 작품을 포함해 15편 이상의 일본 영화를 극장에 걸게 된다. 일본 영화가 잇따라 개봉되고 감독·배우들이 한국을 찾으면서 60∼70년대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에 빗대 ‘일본의 침공(Japan Invasion)’이라는 표현도 나왔지만, 그는 호들갑이라고 봤다. 국내 영화처럼 200∼300개 이상 극장에 거는 와이드릴리스 방식을 써 일본 영화 성공을 가늠하는 리트머스지로 꼽혔던 ‘나나’와 ‘스윙걸즈’의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는 것. 한국에는 ‘일본 영화 마니아 1만명’이라는 좁은 시장만 있기 때문에 10개 미만 스크린에서 개봉하는 게 적당하다고 본다. 더구나 일본에 대한 불편한 감정은 강한 걸림돌이다. 일본 영화를 수입하면, 경쟁작보다는 일본 정치인의 망언에 더 신경이 쓰이는 판국이다. 그러니 ‘붐’이란 게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조 대표는 영화든 음악이든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지만 알찬 일본 영화는 많은데 정치적 상황 때문에 묘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게 한두번이 아니어서다. 거꾸로 일상의 잔잔함을 비추는 일본 영화들을 보면, 일본 망언의 배경을 알 수 있다고 충고했다. 특히 독도,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만 나오면 일본하고는 모든 걸 다 끊자고 열내던 국내 젊은이들이, 정작 만화나 게임은 일본 것을 즐기는 이중적 태도에 비하면 이들 영화를 보는 게 훨씬 낫다고 강조했다. 또 ‘한류’라는 이름 아래 한국이 일본을 문화적으로 압도하고 있다는 생각도 좋은 게 아니라고 지적했다. 일방적인 것은 반드시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도호·도에이·쇼치쿠 같은 일본 3대 영화사가 한국 영화를 수입하지 않는 배경에는 ‘한국이 사지 않는 마당에 우리가 살 필요 있느냐.’라는 자존심이 깔려 있다는 설명. 그는 문화 교류는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이를 통해 서로 배울 점은 배우고 고칠 점은 고치는 것이 진정한 문화 교류라고 덧붙였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美 車업계 “한국산 타지 말자”

    한국과 미국간 자유무역협정(FTA) 본협상을 앞두고 미 자동차업계의 한국 자동차 시장 진출 공세가 거칠어지고 있다. 미 자동차 업계는 지난주말부터 TV 광고 등을 통해 주로 일본과 한국 자동차 회사들을 겨냥해 ‘반외제차’ 운동을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자동차무역정책위원회(ATPC)는 FTA 체결에 앞서 한국으로부터 자동차시장 개방조치를 사전에 받아낼 것을 미 무역대표부(USTR)에 주문하고 있다고 미 온라인 경제주간지가 13일 보도했다. 인사이드 유에스 트레이드(Inside US Trade)에 따르면, 찰스 유더스 ATPC 부회장은 11일 ‘글로벌 비즈니스 대화(GBD)’ 모임에서 ATPC가 한국의 자동차 시장 사전 개방조치를 받아내려고 USTR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 자동차 시장 접근이 개선됐다는 통계적 증거를 먼저 보기 전엔 미 자동차 업계가 한·미 FTA를 지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고 ‘인사이드’는 전했다. 그는 특히 “한국 정부는 과거 이미 두차례 양해각서를 통해 시장접근 장벽 철폐를 약속했으나 지키지 않았다.”면서 “세제와 안전기준 등 비관세 장벽을 없애겠다는 약속 이상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사이드는 미 정부와 업계 소식통을 인용, 한국 자동차 시장 장벽이 낮아지더라도 미국에서 생산하는 일본 자동차 회사들엔 별 이득이 안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인사이드는 특히 일본업계 소식통의 말을 인용, 한국에선 반일감정 때문에 일본 자동차 판매가 어렵고 예민한 문제여서 한·미 FTA가 체결돼도 일본 업계엔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워싱턴 연합뉴스
  • [중계석] 미·중·일 역학관계 주시할 때/이홍표 일본 규슈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최근 미·일이 군사일체화를 표방하면서 동아시아의 역학관계 변화와 안보가 화두로 대두되고 있다.‘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대표 장성민)은 4일 서울 홀리데이인 서울 호텔에서 ‘중·일의 전략적 각축과 21세기 동아시아 안보’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홍표 일본 규슈대 교수의 주제발표문을 간추린다. 동북아시아가 어수선하다. 양대 강국인 일본과 중국 관계는 1972년 수교 이래 최악의 상태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상임이사국 진출을 계기로 지난해 4월 발생한 베이징에서의 반일시위 이후 본격화된 냉각은 일시적 현상보다는 구조적 갈등과 모순이 노정된, 목표와 전략적 이해의 충돌 차원이다. 냉전 이후 미·중 양국은 소원한 상태로 경계하는 반면, 미·일은 더욱 밀착돼 있다.90년대 중반까지 가장 영향력 있는 국가지위를 향유한 일본은 경제침체와 함께 중국의 경제·군사적 부상에 경계하기 시작했다. 중국도 결사적으로 맞대응하고 있다. 중국의 21세기 추진전략은 세계차원의 강대국이 되는 것으로 동아시아 지역 질서를 이끄는 중심 국가가 돼야 하는데 장애세력은 바로 일본이다. 일본은 국내 통합과, 미국과의 관계 강화로 전략을 짜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가 개인적으로 부시 미 대통령을 좋아한다기보단 향후 일본의 미래를 위해 미국의 파트너가 되려는 것이다. 경제적 이해 등으로 중·일이 단기적으로는 정면 충돌할 가능성은 적다. 중국은 평화 5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 군사력이 일본을 압도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중·일 국력차가 줄고 군사력이 일정수준에 오를 때, 중국의 의도는 한순간에 바뀔 수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결국 중요한 것은 미국의 입장. 미국은 동북아의 균형자 역할을 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중·미를 축으로 한 패권 대결, 미·일 동맹의 강화라는 상황이 상당기간 유지될 것이다. 한국은 미·중·일간의 세력관계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지금 동북아는 불투명하다. 누가 우리의 안보에 해를 끼치는지가 불분명한 상황이다. 한반도 안보이익 확보를 위해 비용대비 효율이 높은, 그리고 지난 50년간 이미 검증된 한·미관계를 강화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다. 이홍표 일본 규슈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 공무원 근무시간 출강 놔두나

    “전문분야의 후진양성이 아무리 중요해도 공무원이 근무시간에 가욋일을 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말이 안된다.”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이 행정자치부로부터 제출받은 ‘공무원 겸직현황’이 지난 1일 공개되자 국무총리실 관계자는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정부 관련 부서는 4일까지도 ‘근무시간중 외부 강의’가 문제가 있다는 데는 한결같이 공감하면서도 “구체적인 대책을 세우기는 쉽지 않아 고심 중”이라고 입을 모았다. 올 상반기 대학에 강의를 나가는 등의 공식적으로 겸직을 허가받은 공무원은 47개 중앙부처 본부인원 1만 9510명 가운데 1.3%인 245명이다. 하지만 반일휴가 등을 이용해 편법으로 외부강의를 나가는 공무원은 이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관별로는 국가청렴위원회가 전체 인원의 8.3%인 14명에게 겸직을 허가했다. 이어 교육인적자원부 5.6%(20명), 식품의약품안전청 5.1%(24명), 특허청 2.8%(36명), 문화관광부 2.3%(12명) 등의 순이었다. 유형별로는 겸임교수 등 외부강의가 210명으로 전체의 85.7%를 차지했으며, 이 중 상당수는 근무시간에 강의를 나가는 것으로 조사됐다. 공무원 복무규정에 따르면 공무원이 겸직을 하려면 소속 기관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직무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으면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또 공무원 행동강령은 한달에 3차례 이상 또는 월 6시간을 초과하는 외부강의를 나가려면 소속 기관장에게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총리실 관계자는 “근무시간에 자리를 비우면 급여에서 그만큼 빼는 것이 맞는다.”면서 “자신의 근무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했다고 하더라도 업무배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행자부 관계자는 “근무시간에 직무와 관련이 없는 외부강의를 나가더라도 휴가를 사용하면 이를 막을 마땅한 수단이 없다. 복무규정 준수 여부를 관리·감독하는 권한도 소속 기관에 맡겨져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국가청렴위원회 관계자는 “공무원 행동강령을 어겼다는 신고나 제보가 있어야 조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의 삶과 노래(2)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의 삶과 노래(2)

    1964년‘동백아가씨’를 시작으로 우리나라 트로트 시대를 ‘완성’시켰다고 평가받는 이미자씨. 그러나 이후 3대 히트곡인 ‘동백아가씨’ ‘섬마을 선생님’에 이어 ‘기러기 아빠’까지 왜색, 비탄조 등의 사유로 금지되면서 한때 가수 생명까지 위협받는다. 이 노래들의 금지 배경에는 아직도 확실히 규명되지 않은 몇 가지 설이 나돈다. 그 중 하나는 정치적 희생양 설. 당시 한·일국교를 맺을 즈음 치닫던 반일감정을 ‘왜색 근절’이라는 의지를 보임으로써 ‘민심 달래기용’으로 이용되었다는 설과 아울러 당시 정책구호였던 ‘재건’에 대한 ‘의욕 저하 설’ 등이 그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다른 하나는 주위 음반사의 작용설. 정작 당사자인 이미자씨는 후자에 더 비중을 두고 있는 듯하다. 그는 99년에 발간한 자전 에세이 ‘인생 나의 40년(황금가지刊)’에서 본인의 심경을 이렇게 적고 있다. ‘65년 한·일국교 정상화에 따른 주체성 확립 차원에서 본보기로 규제한 시대적 희생물이라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었지만 정작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이 노래를 너무 좋아해 청와대 영빈관에서 만찬이 있을 때마다 나를 불러 이 노래를 부르게 했다.’며 정말로 ‘동백아가씨’가 왜색이어서 정부가 금지시켰다면 일본에 대해 강경자세를 취했던 박 대통령이 그 노래를 내게 부르게 했을 리 없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권력층에서는 정작 이 노래의 금지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며 오히려 연속되는 빅히트로 상대적으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타 음반사가 극에 달한 ‘반일감정’에 편승, 심의실과 결탁해 여론몰이를 통한 ‘마녀사냥’에 나선 것이 아니겠느냐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해적판’까지 기승을 부리게 만든 ‘동백아가씨’ 신드롬은 우리 가요계에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된다. 미8군 출신가수들이 주축을 이루던 가요계가 트로트 붐으로 급선회했고 아울러 한국 최고의 메이저 음반사로 꼽히던 지구레코드사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피란 시절, 이북 출신 일곱명의 ‘38 따라지’들이 고물을 주워 모아가며 부산에서 설립한 미도파레코드사는 9·28수복 후 서울로 본거지를 옮긴다. 임정수·김능억 공동사장으로 운영되던 미도파는 동백아가씨가 ‘대박’을 터뜨리자 이듬해인 65년 1월부로 결별, 각각 독립한다. “두 공동사장이 분가할 때 그동안 미도파 라벨로 출시된 음원들도 똑같이 분배했지요. 그런데 정작 분가의 불씨를 제공한 선택 1호 ‘동백아가씨’ 만큼은 임정수 사장의 ‘지구’ 몫이었습니다. 미도파 전속 후 별다른 히트곡이 없던 작곡가 백영호씨의 그동안 밀린 월급을 임사장이 개인적으로 주어왔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지구’는 출발부터 돈방석에서 시작했습니다.” 당시 미도파레코드사에 근무하던 현 한국가요작가협회 김병환(68) 이사장의 증언이다. 결국 임 사장은 지구를, 김 사장은 그랜드를 각각 설립, 결별한 이후에도 미도파 당시에 출시한 동백아가씨 판매수익 지분을 놓고 법정싸움으로까지 비화되었다. 지구의 출발과 함께 ‘이미자 시대’는 본격적으로 막을 연다. 게다가 천재 작곡가 박춘석씨가 자신의 곡을 이미자씨에게 취입키 위해 자청, 지구에 전속된다. 작풍도 ‘이미자풍(風)’에 맞춰 트로트로 선회, 스스로 ‘제2의 전환기’를 맞는다. 이렇게 해서 60년대 빅 히트 3대요소인 ‘지구+박춘석+이미자’라는 진용을 갖추고 ‘섬마을 선생님’ ‘그리움은 가슴마다’ ‘흑산도 아가씨’ ‘기러기 아빠’ ‘황혼의 블루스’ ‘한번 준 마음인데’ 등을 잇달아 발표한다. 동시에 이미자씨는 백영호 곡인 ‘여자의 일생’ ‘아씨’ ‘서울이여 안녕’ ‘여로’, 그리고 손석우 곡인 ‘사랑했는데’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거침없는 질주를 계속했다. 쉴 새 없는 공연과 취입으로 그녀의 목은 늘 잠겨 있었다. 따로 연습할 시간조차 없어 ‘녹음이 곧 연습’이었다. 그럼에도 ‘타고난 목소리’에 대한 찬사는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의 성대를 연구하기 위해 일본의 한 연구기관이 그녀의 성대를 사들였다는 소문까지 전국에 파다하게 나돌기도 했다. 물론 낭설이었지만 이미자씨 역시 이 소문을 접했을 때 그리 나쁜 기분만은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백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천상의 목소리’ 그리고 ‘촌스러움’이라는 극단적인 평가를 동시에 받았던 이미자씨 노래는 89년 10월,30주년 기념공연을 기해 세종문화회관무대에 오른다. 처음 이 공연은 ‘공연장의 품위와 관객의 질적 수준 저하’라는 이유로 세종문화회관 운영자문위원회의 결사반대에 부딪혔던 일화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격이 낮다’는 노골적인 멸시를 받으며 막이 오른 이 공연은 정작 시작 첫날부터 세종문화회관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당시 민정당 박태준 대표, 평민당 김대중 총재, 민주당 김영삼 총재, 공화당 김종필 총재, 즉 당시 4당 총재부부가 나란히 관객석에 자리한 것이다. 한국인만의 정서를 대변하고 달래주었던 이미자 노래, 그 실타래 같은 노래 한가닥 한가닥은 서민의 밑바닥 정서부터 한국을 움직이는 최고 수뇌부까지 모두 하나로 묶는 소중한 ‘끈’이었던 것이다. (sachilo@empal.com)
  • [서울광장] ‘독도 도발’ 無대응만으론 못 막는다/이용원 논설위원

    [서울광장] ‘독도 도발’ 無대응만으론 못 막는다/이용원 논설위원

    대한민국 국토의 동쪽 끝, 독도의 주변 해역에 파고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날로 거세져 이제 구체적인 ‘침범’ 움직임마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해상보안청은 4월14일부터 6월 말까지 독도 해역을 포함한 우리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내에서 수로 측량을 하겠다고 최근 국제수로기구(IHO)에 통보했다. 지난달에는 문부과학성이 고교 교과서를 검정하면서 독도가 자국 영토임을 표기하도록 강요한 사실이 드러났고, 뒤이어 노무현 대통령이 레임덕을 피하고자 반일강경론을 유지하리라고 분석한 외무성 내부 보고서가 알려지기도 했다. 가히 일본 정부는 독도 문제를 두고 ‘올코트 프레싱’에 들어간 태세인데 우리의 대응은 어떠한가. 정부는 어제도 송민순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주재로 청와대에서 관계부처 장관급 회의를 열어 일본 탐사선의 EEZ 도발 가능성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는 일본 선박이 EEZ에 접근하면 정선을 명하고, 그런데도 침입하면 나포한다는 기존 방침을 재확인했다. 이번처럼 일본 선박이 우리 해역에 멋대로 들어올 때 국제법·국내법에 따라 정선을 명하고 나포를 하는 일은 당연한 우리의 권리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실제 발생한다 해도 독도에 관한 정부의 ‘조용한 외교’, 즉 대응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외교 기조에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독도는 우리가 60년 넘도록 실효 지배하고 있으므로, 도발에 대응해 분쟁이 일어나면 도리어 저들의 전략에 넘어가 국제 분쟁지역이 될 뿐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같은 인식은 많은 전문가들에게서 지지를 받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개인간 싸움이건, 국가간 다툼이건 한쪽이 의도적으로 계속 집적댄다면 그 분쟁을 피하기란 실로 불가능하다. 이번 사태를 놓고 정부는 일본 탐사선이 EEZ 주변 해역에서 갈등만 조성하고 실제 진입을 시도하지는 않으리라고 보고 있다. 가령 이같은 낙관론대로 사태가 끝난다 해도 칼자루를 쥐는 쪽은 결국 일본이다. 일본이 전략상 물리적 충돌을 택해 독도 영역에 침범한다면 우리는 언제라도 끌려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태인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독도에 관한 외교 정책을 더욱 강력하고 공개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일본이 국력을 앞세워 국제사회에서 독도 영유권 주장을 집요하게 펼쳐온 데다 우리가 저들의 도발을 무시하는 태도가 자칫 ‘묵인’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면, 우리의 결의를 확고히 함으로써 저들의 집적거림을 사전에 차단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아울러 내부적으로는 독도 영유권에 관한 이론적 뒷받침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지난해 교육부는 독도 문제를 3대 연구과제의 하나로 선정해 이를 수행할 대학 연구소를 공모한 바 있다. 매년 3억원을 9년간 지원한다는 후한 조건이었다. 그러나 응모한 대학은 단 하나뿐이었고 그마저도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해 무산됐다. 독도 문제만 터지면 목청을 높이는 학자들이 적지 않지만 실제로 독도에 관해 연구할 대학 하나 변변히 없는 게 현실임을 아프게 자각해야 한다.10여일 전 독도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논산훈련소에서 차출된 전투경찰대원들이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아직 소년 티를 벗지 못한 듯한 그들의 팔팔한 젊음은 내 땅을 내 손으로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이 훗날 손자·손녀의 손을 잡고 독도를 관광하면서 그 젊은 날을 자랑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는 ‘독도 지키기’에 한치의 빈틈을 보여서는 안 된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박정신 교수가 본 ‘식민지 조선의 희망과… ’

    우리의 근·현대의 역사는 대립과 갈등의 역사다. 이 시대를 살아야 했던 이들은 외세와 대립하고 그리고 우리끼리 갈등해 왔다. 그래서 이 대립과 갈등의 질곡을 지나온 이들이 당연히 지니고 있을 ‘한’이 이 시대의 역사를 연구하는 이들의 마음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해방된 후 우리의 근·현대사 연구가 본격화될 때‘식민사학 극복’이라는 기치를 높이 쳐든 ‘정의의 사도들’이 나타나 ‘우리’(我)와 ‘그들’(非我)을 구분하고, 친일과 반일, 순응과 저항, 식민근대화론과 내재적 발전론이라는 ‘우리 편’과 ‘그들 편’ 사이에 굵은 줄을 그어대고 ‘재판의 한 마당’을 펼쳤다. 이들의 후예들은 군사독재시대를 지나면서 민주와 반민주, 통일과 반통일, 개혁과 반개혁이라는 잣대를 우리 역사와 우리 사회에 들이대었다. 이들은‘새로운 사회’를 갈망하고 모색하는 작업이 그들만의 사명인 듯이 때로는 이념의‘거룩한 사도’로서, 때로는 앞을 꿰뚫는 예언자로서, 때로는 신념에 가득 찬 혁명가로서 우리 역사를 읽어왔다. 다양하고 복잡한 삶의 마당이었을 우리의 근·현대 역사를 둘로 나누어 한 쪽은 선이고 다른 한 쪽은 악으로 인식하는 학문풍토를 만든 셈이다. 그런데 이들에 대항하려는 듯 또다른 ‘선 긋기의 학문하기’가 나타났다. 해방이후 나타난 ‘정의 사도들’이나 군사독재시대, 이른바 비분강개의 시대에 나타난 ‘혁명의 사도들’처럼 이들도 그들이 비판하는 ‘해방전후사의 인식’그룹이 그어 논 선의 다른 한 쪽에서 ‘정의의 사도들’인양 또는 ‘혁명의 사도들’인 양 복잡하고 다양한 우리의 근·현대사를 읽으려 하고 있다. 아무리 학문이 변증적으로 발전한다고 하지만 이들 또한 ‘우리 편’과 ‘그들 편’이라는 편 가르기를 하거나 이념의 다른 한 쪽에서 다양하고 복잡한 우리의 역사현상을 읽으려 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양 쪽에서 벌이는 ‘이분법적 우리역사읽기’를 넘어서 복잡하고 다양했을 우리의 근·현대사를 인식하려는 새롭고 소망스러운 시도가 등장하였다. 우리의 학인들이 미국을 비롯한 서양나라나 일본에 줄지어 유학 갈 때, 반대로 좁다란 우물에 갇혀 우리 것 우리가 제일 잘 안다는 학문적 국수주의에 파묻혀 있을 때 홀연히 인도로 가 공부한 역사학자 이옥순이 이 작은 물결 그 한가운데에 있다. 그는 ‘여성적인 동양이 남성적인 서양을 만났을 때’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과 같은 저술을 통해 이미 역사연구에서 ‘제국주의/민족주의’ 패러다임과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의 유용성을 보고, 그리고/그러나 이를 넘어서려는 ‘새로운 역사읽기’를 보여주었다. 이번에 그가 펴낸 ‘식민지 조선의 절망과 희망, 인도’는 그가 끈질기게 추구하고 있는 새로운 역사읽기를 더 발전시키고 더 구체화하는 작업의 산물이다. 일제 식민지시대 우리 지식인들의 인도 인식을 그 시대의 신문과 잡지에 나타난 수많은 인도에 대한 기사, 논설 그리고 기획 기사를 통해 담아내고, 당시 우리에게 인도는 어떻게 각인되었고 또 왜 그렇게 되었는가고 묻고 있다. 우리와 같은 처지의 인도를 바라다보는 당시의 ‘우리 마음’에는 동경·연민·동질성과 연대의식과 함께 문명화되지 못한, 서구가 만든 그 ‘타자’를 바라다보는 측은함과 내려다봄이 담겨져 있음을 실증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옥순은 바로 이 이중성과 모순성을 읽어낸 후 감히 이를 해석하고 설명하고 있다. <숭실대 기독교학과 교수>
  • 日마쓰시타 육아휴직 최장 6년 확대 허용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의 세계적 가전업체인 마쓰시타전기가 ‘자녀가 만 1세인 3월까지 최대 2년간’ 허용하던 육아휴직 기한을 ‘취학전까지’로 연장한다. 이런 파격적인 사원의 육아휴직은 오는 4월부터 실행할 방침이다. 이는 올 노사교섭에서 노조가 요구해 온 ‘만 3세까지 연장’ 안을 훨씬 웃도는 이례적인 내용이다. 마쓰시타전기는 오는 15일 노조측에 이를 정식으로 전달할 방침이라고 아사히신문이 12일 보도했다. 일본 대기업 중 육아휴직을 만 3세까지 실시하는 기업이 있기는 하지만 취학전(만6세)까지 인정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마쓰시타전기는 또 현재 부인이 전업주부일 경우에는 남성사원에게 육아휴직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지만 이런 제한도 없애 육아휴직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남편이 전업주부인 부인의 육아를 도울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아울러 자녀가 등·하굣길에 범죄에 노출될 것을 우려하는 사원에게는 재택근무나 주 2∼3일 근무, 반일(半日)근무 등 근무제도를 지금까지는 초등1년생까지 실시했으나 초등3년생까지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회사측의 이런 조치는 사원들이 마음놓고 회사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고 우수인력의 퇴직이나 유출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일본에서 불임치료를 위한 휴직·휴가제도가 등장할 전망이라고 요미우리신문이 이날 보도했다. 대형 전기업체들은 관련 부문 노조인 전기연합의 ‘불임치료 휴직·휴가제도’ 요구를 받아들일 방침이라는 것이다. 현재 일본에서 인공수정과 체외수정 등을 위한 불임치료를 받는 숫자가 연간 46만명에 달한다. 불임치료를 통해 태어난 신생아는 지난 2003년 기준 1만 7400명으로 전체의 1.5%였다. 전기연합측은 배란유발 주사를 맞거나 난자를 채취하기 위해서는 통원치료가 필요하다며 휴직·휴가제도의 도입을 요구해왔다.taein@seoul.co.kr
  • “공격이 최선의 방어” 여야, 서로 때리기

    與 ‘골프파문 벗어나기’ 박대표 訪日행보 맹공 정동영 의장을 비롯한 열린우리당 수뇌부가 10일 작심한 듯 방일 중인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향해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강행 때문에 한·일 정상회담이 중단된 상황에서 박 대표가 ‘신사 참배’의 부당성을 지적하지 않았다는 점에 우선 공세의 초점이 맞춰졌다. 한국민들의 반일 감정을 무시하고 방일 시점을 ‘3·1절’ 직후에 택한 것도 도마위에 올랐다. 하지만 내심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전략과 박 대표의 대일 외교 행보를 ‘오버랩’시키면서 시시각각 좁혀오는 이해찬 총리의 사퇴 압력을 돌파하겠다는 정치 공세적 성격도 강하다. 정 의장은 “국민 감정을 무시한 채 3·1절 직후 방일해 정부 외교정책과 엇박자를 낸 것이 국익외교·초당외교에 합당한지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공격했다. 김근태 최고의원도 “제1야당 대표가 일본 총리를 만나 야스쿠니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것은 국민이 동의할 수 없다.”고 거들었다. 특히 ‘한국에서 여성 대통령이 나오는 것이 일본에서 여성 총리 탄생보다 빠를 것 같다.’는 고이즈미 총리의 발언에 여당 수뇌부가 발끈했다. 김한길 원내대표는 “이는 한국민을 깔보는 태도이며 여성 대통령이든 뭐든 대통령은 우리 국민이 결정할 것”이라고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한나라 ‘性수렁 탈출용’ 총리골프 4단계 압박 한나라당은 10일 이해찬 총리의 ‘3·1절 골프’ 파문을 둘러싼 각종 의혹과 관련, 국정조사 실시와 특별검사제 도입 등 ‘4단계 압박카드’를 순차적으로 추진키로 했다. 청와대와 여권의 ‘이 총리 구하기’ 움직임을 정면 돌파함으로써 최연희 의원의 성추행 파문을 둘러싼 열린우리당과 여론의 공세에 맞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재오 원내대표는 이날 주요당직자회의에서 “해외 순방 중인 노무현 대통령은 귀국하는 기내에서 이 총리 해임을 단행하고, 국민의 신망을 받는 사람으로 후임 총리를 임명해야 한다.”며 이 총리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 원내대표는 이어 “이 총리의 골프로비사건을 규명하기 위해 3·1절 골프 당사자들의 전화통화 내역 제출 요구, 야4당 합의로 국정조사 요구, 해임건의안 제출, 특검법 제출 등 4단계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 총리의 ‘100만원 내기골프’ 의혹과 관련해선 “총리와 골프를 치는데 어느 기업인이 돈을 따먹으려고 하겠느냐.”며 “이는 사실상 뇌물공여”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국회 정무위·교육위·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중심으로 ‘골프로비조사단’(단장 권영세)을 구성, 영남제분 주가조작 개입 의혹을 받는 교직원공제회를 방문해 현장조사했다. 또 ‘100만원 내기골프’ 의혹과 관련, 이 총리와 이기우 교육차관을 수뢰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조선업계 ‘中으로 中으로’

    조선업계 ‘中으로 中으로’

    최근 국내 조선업계의 ‘친중(親中) 반일(反日)’ 기조가 뚜렷하다. 중국 진출과 중국산 제품 사용은 늘리는 반면 일본과의 관계는 갈수록 삐걱대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7일 중국 산둥성 롱청시에서 60만평 규모의 선박용 블록공장 착공식을 가졌다. 삼성중공업이 100% 지분을 갖는 현지법인 형태며 2008년 말까지 3억 5000만달러를 투자, 연간 선박용 블록 20만t, 해양설비 30만t을 생산할 계획이다. 산둥 블록공장이 준공되고 저장성 닝보 블록공장이 현 12만t에서 올 연말 20만t으로 늘어나면 삼성중공업은 블록 수요의 30% 이상을 중국에서 충당하게 된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2만∼3만t이었던 중국산 후판 사용량을 올해 13만t으로 늘린다. 산둥공장이 본격 가동되면 더욱 늘어난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달 중국 바오산강철과 연간 18만t 규모의 조선용 후판 공급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교환했다. 이로써 현대중공업은 올해 후판 소요량 300만t 중 약 17%인 50여만t을 중국산으로 대체하게 됐다. 대우조선해양도 현재 건설중인 산둥성 옌타이 블록공장에서 연간 30만t의 블록을 생산할 계획이다. 중국과 달리 일본과는 찬바람이 불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일본 신일본제철 등과의 2·4분기∼3·4분기 후판 가격 협상은 두달 넘게 난항을 겪고 있다. 한·일 후판 협상은 통상 4주면 마무리됐었다. 현대중공업이 t당 500달러를 요구한 반면 일본측은 600달러 이상을 고집하고 있다. 2·4분기를 불과 20여일 앞둔 7일까지 진전이 없어 다음달 첫 선적분이 취소될 가능성도 있다. 현대중공업측은 “협상이 늦어지면 다음달 초 물량을 미루거나 일단 수입한 뒤 추후 합의한 가격을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일 후판협상은 늘 난항을 겪다 전격 타결됐지만 이번만큼은 사정이 다르다는 분석이다. 최악의 경우 최대 30일치인 후판 재고량을 소진해 가며 중국산 물량으로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씨줄날줄] 한·일전/오풍연 논설위원

    “일본은 한국에 있어 말 그대로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과거 식민지 역사에서 비롯된 앙금이 아직까지도 가시지 않고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한다면 한·일간 문제는 감정적으로 처리할 수 없다. 이성적 접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최근 ‘부와 권력의 대이동’을 펴낸 클라이드 프레스토위츠 미 전략경제연구소장은 몇해 전 두나라 관계를 이처럼 진단했다. 감정적 대응은 한국에 불리하다는 점을 시사한 대목이다. 극일(克日)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일본은 정치·경제·외교·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사사건건 부딪치고 있다. 국민의 감정 역시 그렇다. 한국에 반일(反日)이 있다면, 일본에는 혐한(嫌韓)의 뿌리가 깊다. 지난해 7월 발간된 ‘만화 혐한류’(야마노 샤링)가 베스트 셀러가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만화는 “일본이 오늘의 한국을 건설했다.”는 식의 왜곡과 편견으로 가득차 있다. 일본 우익세력의 대대적인 판매공작 등 지원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오죽했으면 뉴욕타임스(NYT)가 이를 ‘비이성적’이라고 꼬집었을까. 여기에 보수·우익신문인 산케이는 NYT의 ‘반일’적인 논조를 공격하기도 했다. 5일 오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최종 3차전이 치러진 일본 도쿄돔. 우리 선수들은 3대2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둬 일본인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한국 선수단의 이성이 그들의 감정을 압도한 경기였다. 이번에도 일본측이 먼저 우리의 심기를 건드렸다. 오 사다하루(王貞治) 감독과 이치로, 마쓰자카는 ‘30년 망언’ 등으로 기선잡기에 나섰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달랐다.9회말 박찬호가 이치로를 뜬공으로 잡을 때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이진영의 호수비도, 이승엽의 2점 홈런도 이성적 판단과 다부진 각오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특히 오 감독의 한 시즌 아시아 홈런 신기록(55개)을 1개차로 갱신한 기록도 가지고 있는 이승엽이 단연 돋보였다. 그의 오기가 일본 야구 영웅들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는 순간이었다. 한·일전의 승리는 국민에게도 쾌감을 더해준다.13일부터 미국에서 열리는 WBC 2라운드도 주목된다. 일본과 다시 맞붙는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대∼한민국”을 듣고 싶다. 우리 선수단 파이팅!. 오풍연 논설위원 poongynn@seoul.co.kr
  • 북관대첩비 100년만의 귀향

    북관대첩비 100년만의 귀향

    1905년 러·일 전쟁 때 일본에 반출됐다가 10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임진왜란 승전기념비인 북관대첩비가 3·1절을 맞아 원소재지인 북한으로 인도됐다. 북관대첩비환수추진위원회(공동위원장 김원웅 열린우리당 의원·유홍준 문화재청장)는 북한 북관대첩비되찾기대책위원회(위원장 김석환)와 함께 1일 오전 11시 개성 성균관 명륜당 앞에서 ‘북관대첩비 인도·인수식’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양측 위원회 및 관련 문중회원, 한·일불교복지협회, 조선불교도연맹 등 남북한 관계자 20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는 남북 공동사회로 북관대첩비 환수추진 관련 경과보고, 북측 대표 김석환 위원장의 환영사, 김원웅 의원의 인사말, 유홍준 청장의 환송사, 한·일불교복지협회장 초산 스님의 축사에 이어 인수·인도에 대한 서명식 순으로 진행됐다. 김석환 위원장은 “북관대첩비 반환이 우리 민족의 우수한 역사문화 전통과 애국정신을 되살리고 통일을 앞당기는 계기가 됐다.”면서 “앞으로 남북이 함께 문화유산을 보존·계승하고 일본에 빼앗긴 우리 문화재를 되찾도록 노력하자.”고 말했다. 김원웅 의원은 “북관대첩비의 환수는 민족사의 수모를 씻는 상징”이라면서 “일본이 약탈한 문화재들을 돌려받기 위해 북·일 수교협상 과정을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홍준 청장은 “이번 일은 남북 민간이 주축이 된 ‘문화의병운동’의 의미가 있다.”면서 “남북한 문화재 교류ㆍ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문화재 당국 최고책임자 회담을 제의한다.”고 밝혔다. 이어 북측 대표자들은 일본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및 역사왜곡, 문화재 약탈 등을 비판하는 ‘반일성명’을 발표, 눈길을 끌었다. 식이 끝난 뒤 북관대첩비는 참석자들의 배웅 속에 원소재지인 함경북도 김책(옛 이름 길주)으로 떠났다. 남북 관계자들은 함께 기념촬영을 한 뒤 성균관과 선죽교, 표충비 등 개성 시내 주요 역사 유적지를 함께 둘러봤다. 북관대첩비는 이날 오전 7시쯤 서울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을 떠나 오전 10시 개성에 도착했다. 앞서 지난달 28일에는 임진왜란 때 왜군을 격파해 북관대첩비에 기록된 정문부 장군 묘소앞 경기도 의정부 충덕사에서 ‘북관대첩비 충의공 제향의식’이 열렸다. 일본군에 의해 강탈돼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됐다가 지난해 10월20일 고국으로 돌아온 북관대첩비는 보존처리를 거쳐 일반에 공개된 뒤 고궁박물관 앞뜰에 전시돼 왔다. 앞으로 북측은 북관대첩비를 원위치인 함경북도 김책시 임명리 언덕에 복원하게 되며, 남북은 복원 이후 남측 관계자들이 참관할 수 있는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개성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GM·도요타 ‘7년제휴’ 흔들

    |도쿄 이춘규특파원|자동차생산 세계 1위인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2위 업체 일본 도요타자동차가 7년간 비교적 탄탄하게 유지해 온 제휴 관계가 흔들리고 있다. 두 회사가 1999년부터 함께해 온 차세대 연료전지차(FCV)의 개발을 위한 공동연구를 다음달 말 중지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차세대 차를 둘러싼 세계 2대 업체의 공동보조가 백지화되면 업체간 새로운 제휴도 예상된다. GM은 그간 상용화까지 수조엔이 드는 개발비 경감을 노려 연료전지차 공동개발을 추진해 왔다. 도요타는 연료전지차 공동개발을 지원, 미국내 시장점유율이 급격히 확대되는 데 따른 미국민들의 반일감정 약화를 기대했다. 이처럼 연료전지차 개발은 두 회사 제휴의 핵심 사업이었다. 따라서 연료전지차 공동연구 포기는 제휴관계의 위기를 의미한다.GM과 도요타는 1999년 연료전지차 공동연구를 핵심으로 하는 환경·안전·정보 등의 기술제휴계약을 체결,5년간 유지했다.2004년 4월 2년간 계약을 연장했다. GM과 도요타의 제휴관계가 흔들림에 따라 그동안 GM과의 우호관계를 대미 무역마찰 회피의 방패막이로 활용해 온 도요타의 세계전략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아사히신문이 22일 분석했다. 두 회사는 3월말 끝나는 첨단기술에 대한 제휴기간을 2년 연장할 방침이지만, 핵심인 연료전지차 연구는 제외시킨다. 안전이나 교통시스템(ITS) 기술 등의 정보교환은 계속하지만 큰 의미는 없는 분야다. 두 회사는 지난해 협력을 한층 강화, 연료전지차 공동개발을 위한 합작회사의 설립을 눈앞에 두는 듯했다. 하지만 막판 특허권 문제 등을 둘러싸고 타협점을 찾지 못해 표류해 왔다.taein@seoul.co.kr
  • [도약 2006-우리는 이렇게 뛴다](13)한국도로공사 손학래 사장

    [도약 2006-우리는 이렇게 뛴다](13)한국도로공사 손학래 사장

    “도로공사는 고속도로라는 기간산업을 담당하는 기업입니다. 민간기업보다 더 높은 수준의 청렴도와 투명성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손학래 한국도로공사 사장은 창립 37주년을 하루앞둔 14일 도공이 존재하는 이유를 이렇게 강조했다. 도공을 ‘국민과 시민기업’으로 정의한 손 사장은 깨끗한 기업, 즉 ‘클린 컴퍼니’로 태어나지 못하면 도공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단언했다. 손 사장은 윤리경영 외에도 ▲고객중심기업▲화합과 신뢰의 신기업문화 구축▲건강한 노사관계를 올해 도공이 추구해야 할 기업목표로 제시했다. 그는 “지혁균형 발전과 교통수요에 대비한 국가 간선도로망 건설계획에 따라 2020년까지 남북 7개축, 동서 9개축 등 총 6160㎞의 고속도로를 건설할 계획”이라며 고속도로망을 대폭 확충하겠다는 뜻을 강하게 내비쳤다. 손 사장은 ‘7×9’로 불리는 이른바 ‘국가 간선도로망’이 건설되면 전국 어디에서나 30분 이내 고속도로에 접근 가능한 반일 생활권을 실현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손 사장은 구체적으로 “올해는 남북 5개축이 완료된 점을 감안해 동서축 고속도로 건설에 중점투자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손 사장은 “고속도로는 건설하는데에만 의미를 둘 수 없다.”면서 “환경친화적이고 도로관리 체계를 과학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건설하는 것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친환경적인 도로건설로 ‘로드킬’을 예로 들었다. “도로를 횡단하는 동물들이 차에 치여 죽는 로드킬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도로공사는 고속도로를 건설할 때 야생동물 생태통로 설치, 동물 유도펜스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도로공사는 손 사장의 뜻에 따라 현재 고속도로에 설치된 생태통로 14개 외에 48개를 추가로 설치하고 있다. 손 사장은 고속도로 안전의 중요성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최근 3년 동안 전국 고속도로에서 모두 9180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해 4350명이 다치고 839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말했다. 때문에 고속도로 본연의 기능인 빠른 이동을 확보하면서도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사고 취약구간 및 선형불량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손 사장은 “이같은 노력의 결과로 2002년 이후 해마다 교통량은 늘어났지만 교통사고 건수는 10%가량, 사망자는 15%가량 줄어들었다.”면서 “앞으로도 매년 1700억원의 예산을 투자, 고속도로 사고취약지점을 개선하고 도로안전시설을 확충해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고 말했다. 손 사장은 창립 37주년을 맞아 국민과 더불어 사는 기업을 화두로 던졌다. 세부안으로는 ‘유비쿼터스 하이웨이(U-Highway)’,‘시민기업으로 재무장´,‘사회공헌´을 제시했다. 그는 “올해 설 연휴는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전구간 교통량은 6.6% 늘었으나 소요시간은 단축됐다.”면서 “이는 도로공사가 그동안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정보화 고속도로의 효과가 본궤도에 올랐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설연휴기간 동안 첨단교통체계(ITS)와 인터넷방송과의 접목을 통해 고속도로와 우회도로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한 도공의 노력이 주효한 것이다. 손 사장은 공기업으로서의 사회적 역할도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2월부터 매주 두차례 서울역 노숙자 급식 지원사업을 해오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따뜻한 사회, 살맛나는 사회,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전직원이 돌아가면서 한번씩 사회에 공헌하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더욱 확대운영하겠다.”고 말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임영숙칼럼] 칼람, 인도, 미래전략…

    [임영숙칼럼] 칼람, 인도, 미래전략…

    인도의 압둘 칼람 대통령이 3박4일간의 국빈방문을 마치고 엊그제 떠났다. 내각책임제 국가인 인도에서 대통령은 상징적인 국가수반일 뿐이라지만 너무 조용히 그를 보낸 듯싶다. 그는 인도를 통치하지는 않지만 인도의 미래를 이끌고 있는 지도자이다. 인도가 어떤 나라인가. 머지않아 세계경제 중심축의 하나가 될 것으로 자타가 인정하는 나라다. 미국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이른바 ‘브릭스 보고서’에서 앞으로 30년 안에 인도가 미국 중국 다음의 경제대국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현대경영학의 아버지’라는 피터 드러커는 “인도의 발전이 중국보다 더 인상적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인도는 교육수준이 높고 1억 5000만명 이상이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 고등교육 인력과 기업가 배출에 힘입어 ‘파워하우스’로 빠르게 부상할 것이다.”라고 인도의 미래를 중국보다 더 낙관적으로 예측했다. 선진국의 인구고령화 추세속에 인도가 상대적으로 젊은 나라인 것도 주목된다.20∼30년 지나면 인구로도 중국을 추월하게 된다. 중국을 대체, 또는 보완할 시장으로서의 인도에 대한 관심은 당연하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인도시장 투자, 또는 안보전략 이용의 복잡한 구도에 대한 일부 경계의 목소리도 경청할 만하다. 그러나 떠오르는 인도의 진정한 힘, 그 내면을 파악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압둘 칼람 대통령은 바로 그 길잡이가 될 만하다. 올해 일흔다섯 살의 칼람 대통령은 정치인이라기보다 과학자로 더 유명하고 과학자라기보다 시인이자 사상가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 인도 최초의 위성발사 로켓 개발과 토종 인도 미사일 개발 책임자, 그리고 2차 핵실험을 주도해 인도를 과학강대국 대열에 합류시킨 주역이지만 미혼으로 단칸방에 책상 하나가 그가 가진 재산의 전부이다. 해외 유학도 다녀오지 않은 국내파로 인도 공교육에 대한 신뢰의 표지판이 되고 있다. 힌두교도가 아닌 이슬람교도로서 인도사회의 비주류이지만 90%이상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선출됐다. 국내에도 번역된 그의 자서전 ‘불의 날개’를 읽어 보면 그 정신의 맑음과 깊이에 압도당하게 된다. 그는 과학기술과 경제력을 하나로 연결하지만 가치있는 미래에 대한 도덕적 비전을 강조한다. 바로 그가 작성한 ‘새천년의 비전, 인도 2020’에 나는 주목한다. 대통령이 되기 직전 정보기술예측·평가위원회 의장으로서 500명의 전문가들과 함께 마련한 비전 2020은 부단한 기술개발을 통해 인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변모시킨다는 청사진이다. 이 도약의 주역은 청소년이라며 그는 말한다.“인도의 새로운 세대가 인도를 노래하게 하라. 젊은이들이 저마다의 가슴에 깃들인 불꽃에 날개를 달게 하라.”고. 칼람 대통령은 취임직후 인도 전역을 돌며 모든 계층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10만명의 초·중·고 학생들을 만났다. 타고르의 시가 자주 인용되는 그의 비전 2020은 그렇게 구체적인 현장을 토대로 다듬어졌다. 한·인 정상회담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이 칼람 대통령으로부터 미래 전략의 지혜를 배웠다면 얼마나 좋을까. 뛰어난 학습능력을 지녔다는 노 대통령이 ‘비전 한국 2020’을 수립하고 우리 국민에게 희망을 심어준다면 비록 지금 인기는 바닥권이라 할지라도 앞으로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황우석 사태에서 얻은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국가전략으로서의 미래 비전은 통합적이고 도덕적인 것이어야 한다. 논설 고문 ysi@seoul.co.kr
  • ‘해방전후사 재인식’ 대담

    ‘해방전후사 재인식’ 대담

    ‘해방전후사의 인식’(이하 ‘인식’)을 비판하겠다며 지난 8일 출간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하 ‘재인식’)을 놓고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와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무릎을 맞댔다. 이 책의 출간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두고 10일 서울신문 회의실에서 열린 대담에서였다. 이 교수는 ‘인식’‘재인식’ 모두에 글을 실었고, 김 교수는 ‘인식’의 집필은 물론 기획에도 깊숙이 관여했던 학자다. ●“‘인식’에 대해 정당한 대우를 해달라” 이완범 ‘재인식’뿐 아니라 ‘인식’의 집필에도 참가한 사람으로서 두 책을 동등하게 봐달라고 하고 싶다. 우선 ‘재인식’은 뉴라이트가 아니다. 책임편집을 맡은 박지향 교수는 민족에 기댄 반지성주의적이고 운동만능주의적인 풍토를 비판하는 것이지 ‘뉴라이트’라는 이름까지 동의하지는 않는다.‘인식’ 역시 민족중심적이기는 해도 민족지상주의라고까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김명섭 ‘인식’이 좌쪽에 가깝긴 하다. 그러나 당시 시대상황을 생각해 보면, 그렇기 때문에 인식을 넓혀줄 수 있었다.‘현대사에 대한 인식의 사보타주’를 끝내기 위한 작업이었다. 그렇다고 당시 집필에 참가한 사람들이 지금도 그때의 생각에 머물러 있지는 않다. 계속해서 후속 연구결과를 내면서 변화·발전하고 있다. 또 한 가지는 미국에서도 끝난 ‘수정주의’를 아직도 한국에서 하고 있느냐는 식의 얘기다. 참 어이가 없다. 수정주의가 옳다는 게 아니라, 미국이 끝내면 우리는 더이상 연구하면 안 되나? 정말 주변적인 사고다. ●“재인식 주장에 이의 있다” 이 ‘인식’이 북한의 일제청산을 완벽하다고 평가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재인식’은 300만명을 남으로 내쫓았으니 북의 청산은 청산이 아니라는데 나는 그것도 어쨌든 청산이라 생각한다. 또 일제 천황제가 북한의 수령제로 연결되기 때문에 북에서 일제청산이 안 됐다는 대목에도 이의가 있다. 카스트로의 독재가 스탈린의 독재에서 보고 배웠다 해서 카스트로가 청산을 안 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여기에다 에커트는 박정희가 만주 모델을 베껴 와서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뤘다고 말하는데 흥미로운 주장이며 검증해볼 주장이다. 그런데 만주 모델 때문에 박정희한테 친일잔재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에커트 주장에 대한 확대해석이다. 오히려 만주국군 출신 정일권을 국무총리에 앉힌 것에서 친일파를 등용했다면 모를까. 김 스탈린의 세계전략으로 한국전쟁이 발생했다는 ‘재인식’의 주장은 정말 세계학계에 안 먹힐 주장이다. 스탈린의 세계전략이 원인으로 꼽혔던 것은 유럽중심적 연구 때문이었다. 서구 연구자들이 김일성과 북한은 잘 모르니 소련과 스탈린에다 초점을 맞췄고, 그러니 스탈린의 세계전략으로만 모든 걸 설명하려 든 것이다.‘인식’은 그게 아니라 한국전쟁은 김일성이 이니셔티브를 쥔 전쟁이라는 점을 처음으로 명확히 했다. 사실 당시 대학가에는 북침설과 미국에 의한 남침 유도설 등이 번지고 있었을 때였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인식’이 외려 남침설을 가장 확실하게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앞뒤도 안 맞다. 분단 초기에는 스탈린이 한국에 관심도 없다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전쟁을 키웠다고 설명한다. 김 그것도 중요한 결점이거니와 스탈린의 심경변화를 드러낼 자료를 아무것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비교사·문명사·미시사적 연구? 아무 내용 없다” 김 ‘재인식’의 가장 큰 문제는 ‘인식’을 일국사·민족사로 폄하하면서 비교사·문명사를 얘기하는데, 정작 비판에 걸맞은 연구성과물은 없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이분법적인 친일·반일구도를 비판하기 위해 조선어학회가 조선총독부의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발굴한 것까지는 좋다. 그렇다면 일제가 동남아지역을 침략하면서 동남아 원주민 언어를 되살리려는 노력을 기울였던 사실과 비교해야 비로소 비교사가 된다. 특히 인도·미얀마 같은 지역은 영국과 일본의 침략을 동시에 받은 경우인데 이런 경험에 대한 이해가 전혀 드러나지 않아 ‘재인식’이 비교사적 작업인지 회의가 든다. 또 이영훈 교수는 문명사 얘기를 하는데, 참 좋은 얘기다. 주목할 점은 문명사 바람이 불고 있는 프랑스에서 지금 쏟아져 나오고 있는 책이 주로 노예무역을 다룬 책이라는 점이다. 문명 건설과정에서 팽창과 확대만 보는 게 아니라, 숨어 있는 검은 그림들까지 다 드러내보자, 명(明)뿐 아니라 암(暗)까지 함께 보자는 것이다. 왜 이런 측면은 무시하는지 모르겠다. 동시에 일반인의 생활상을 드러내는 미시사·문화사적 접근도 좋다. 그런데 1930년대 이후를 다루면서 어떻게 그 관점만 고집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1937년 중·일전쟁으로 완전한 전시체제가 들어서는데 이 틀은 무시한 채 모던 보이, 모던 걸만 얘기할 수 있나. ●‘인식’,‘재인식’보다 더 흥분한 언론들 이 어떤 기자는 뉴라이트로 쏠린 보도에 자기는 책임 없다는 식으로 해명전화를 했다. 원래 처음 책 출간 소식을 알린 신문은 그 뉴스를 특종으로 생각하고 다른 신문은 이미 예전에 다 나왔던 기사로 생각하더라. 그런 것들을 보니 특종 욕심 속보 욕심에 싸움 붙이고, 그런 것에 언론이 더이상 집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 학문적 논쟁 자체는 문제될 것이 없다.‘인식’과 ‘재인식’ 필자들이 무슨 원수진 것도 아니고…. 그런데 언론에서 차분하게 따져 보기보다 그냥 ‘인식’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니까 문제다. 더구나 ‘인식’의 저자들은 가르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이런 식으로 ‘인식’을 매도하면 ‘인식’의 저자들은 모두 ‘천박한 프로파간다나 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인식’은 기본적으로 몇몇 학자들이 동원되다시피 해서 쓴 책이 아니다. ●생산적 논의로 이어져야 이 어쨌든 기존의 틀에 박힌 현대사를 재인식한다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다만 평행선을 달리는 것처럼 논쟁을 벌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재인식’은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렇다면 ‘인식’이 가지고 있던 사회사적인 의미나 학술운동적인 의미 등을 받아들이고 제대로 평가해 주는 바탕 위에서 ‘재인식’이 진행돼야 한다. 왜 선학들의 고민이 쌓인 책을 ‘빨갱이 책’으로만 몰아가야만 하나. 김 어떤 분들은 사회가 한쪽으로 쏠렸을 때 지식인들이 반대쪽 얘기를 해서 ‘물타기’를 해야 한다는 말씀도 한다. 그래서 ‘인식’과 ‘재인식’이 자꾸만 맞물려서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다만 프랑스와 비교할 때 한국사의 경계가 더 넓어져야 한다. 프랑스는 ‘어디까지가 프랑스의 역사냐.’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프랑스사가 아니라 역사를 가르친다. 이에 반해 우리는 한국사와 서양사간의 골이 너무 깊다. 넘나드는 역사인식이 필요할 듯하다. 대담 김종면 문화부차장 jmkim@seoul.co.kr 정리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이광수 친일적 민족주의자 평가도 모순” ‘재인식´ 출간에 대한 진보쪽 인사들의 평가는 냉혹하다. 한국 근·현대사 박사학위 1호인 성균관대 서중석 교수는 “한국사의 몇몇 특징적인 계기만 잡아내 확대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 전반에 대해 깊이있는 연구를 했는지 의문”이라면서 “결국 양측이 앞으로 계속 내놓을 논문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또 일제시대·북한문학 연구자로 유명한 원광대 김재용 교수는 춘원 이광수를 ‘친일적 민족주의자’라고 평가한 ‘재인식’의 주장을 “형용모순”이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문인들의 경우 외형적으로 어떤 직위를 차지했느냐 안 했느냐, 무슨 글을 발표했느냐 안 했느냐와 같은 단순잣대를 들이대지 말고 그 개인의 내면논리로서 친일 여부를 봐야 한다는 점에서는 동의한다.”면서 “그러나 기본적으로 민족주의는 식민주의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일제를 용인하는 민족주의’,‘친일적 민족주의’란 존재할 수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박정희시대 평가를 두고 재인식의 책임편집자 가운데 한 명인 서울대 이영훈 교수와 논쟁을 벌여왔던 경상대 장상환 교수 역시 ‘재인식’에 대한 평가가 지나치게 부풀려졌다고 봤다. 장 교수는 “일례로 ‘농지개혁’문제를 다룬 성균관대 김일영 교수의 글은 ‘인식’의 글과 큰 차별성이 없다.”면서 “좌파적인 ‘인식’을 우파적인 ‘재인식’이 뒤집었다고 단순하게 평가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일부는 기존 우익의 역사인식을 그대로 따온 데다 대부분 특별히 진전된 내용이 없다는 점을 들어 ‘재인식’이라기보다 ‘재탕’에 가깝다는 혹평도 나오고 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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