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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안부 문제해결 아베총리가 걸림돌”

    최근 일본 수뇌부의 군 위안부 부인 발언에 강력한 비판논조를 펼쳤던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31일(현지시간) 일본군의 위안부 설치 관여를 처음 공개한 요시미 요시아키 주오대 교수를 집중 인터뷰했다. 요시미 교수는 인터뷰에서 “15년 전 방위청 보관 자료를 통해 일본군의 위안소 설치 사실을 밝혔을 때만 해도 이 문제가 잘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곧 엄청난 반격에 부딪쳤다.”면서 “반격의 주역은 아베 신조 현 총리와 같은 젊은 민족주의 정치인들이었다.”고 말했다. 전후 일본의 민주화 문제를 연구하던 요시미 교수가 위안부 문제를 세상에 드러낸 것은 1992년이다. 바로 전해 한국에서 ‘정신대’(당시 명칭) 피해 할머니들이 여성단체들의 지원으로 침묵을 깬 직후다. 일본 정부가 이를 부인하자 참을 수 없었다고 한다. 도쿄대를 졸업한 뒤 방위청 자료실에서 2차대전 당시 일본의 독가스 사용 자료를 찾고 있던 그는 일본이 위안소 설치·운용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음을 드러내는 문서를 발견, 까무러칠 뻔했다.그러나 워낙 이 문제가 생소한 것이었고, 전시 여성의 피해 문제에 대한 인식이 낮았기 때문에 공개하진 않았다고 한다. 찾아낸 문서는 1938년 3월4일 일본 관동군 참모총장 부관이 작성한 ‘군 위안소 여성 충원에 관하여’란 제목의 글.“야전의 군은 여성 충원을 통제하고, 헌병과 각 지방 경찰이 긴밀히 협조해야 한다.”는 것이다.1938년 7월 관동군 참모총장의 문서에도 “일본군의 주둔군 여성 겁탈이 반일 정서를 고조하고 있으므로 최대한 빨리 위안소를 설치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돼 있다. 1991년 말 일본 정부의 후안무치한 태도를 본 그는 자신의 자료를 아시히 신문에 제보했다.1993년 고노 담화가 이렇게 해서 나왔지만, 그후 그는 우익 단체들로부터 엄청난 시달림을 받았다. 요시미 교수는 “1945년 8월15일 일본의 항복 이후 2주간 도쿄 하늘은 군 지휘부 인사들이 전범 증거를 없애기 위해 공식 문서를 태우느라 검은 연기로 뒤덮였을 정도”라고 말했다. 요시미 교수가 찾은 자료는 당시 도쿄에서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불타지 않고 미군정에 압수됐다. 미 군정은 문서들을 1950년 일본 방위청에 반환했다. 요시미 교수는 8개 검정 교과서 가운데 1997년 7개 검정 교과서가 위안부 문제를 교과서에 실었지만, 지금은 2개에 불과하다면서 이는 정치 권력을 손에 쥔 아베 신조와 그의 ‘동지들’이 땀을 흘린 결과라고 비꼬았다.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문화마당] 한국 ‘떼법’과 일본 문화침투/최동호 고려대 국문과 교수·시인

    일본 속의 한류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많다. 도쿄의 지하철에서 한국말을 거리낌 없이 하게 된 것도, 일본의 가라오케에서 한국 노래를 마음껏 부를 수 있게 된 것도 한류 열풍에 힘입은 것이리라. 언뜻 보면 마치 한국이 일본을 점령한 것 같은 기분에 빠져들기 쉽다. 그러나 우리의 주변을 잠시 돌아보면 우리 역사와 문화는 일본에 소리·소문 없이 잠식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서울 명동에 가보라. 이미 명동의 많은 술집들은 일본식 주점으로 바뀌었다. 한류로 인해 일본의 관광객이 많아진 때문이 아닐까 짐작하고 대범하게 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신촌이나 홍대 앞거리는 물론이거니와 안암동 고대앞 상가거리에서도 조금만 이면도로로 들어서면, 여기가 일본인지 한국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일본식 주점이 번성하고 있다. 마치 1930년대 경성의 거리를 걷고 있는 듯한 분위기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최근에는 버젓이 간판을 일본어로 내걸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문제는 여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소설 목록을 보면 일본의 신세대 작가들의 소설들이 그 자리를 상당수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쉽게 확인된다. 우리가 한류를 떠들고 있을 때 일본 문화는 소리·소문 없이 한국의 청년문화를 잠식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좀더 깊이 들어가 보면 성인만화나 동성애 소설이 청소년들에게 널리 읽혀지고 있으며, 한국의 동화까지 일본 동화의 영향을 받아 매우 잔혹하게 변질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우리 문화의 심층부에 일본 문화가 깊이 침투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한류라는 것도 자연발생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일본인들이 상당 부분 조작적으로 부추긴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독도 영유권 분쟁을 유발하기 위한 사전조치로, 한국인들의 극단적인 반일감정을 약화시키는 방편으로 한국의 드라마를 공영방송에서 방영하고 대중들의 호응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물론 처음 기대했던 것과 달리 그 폭발적인 반응으로 인해 그들 스스로도 당황해할 정도였다. 하지만 한류를 내세워 한국인들이 거기에 도취된 사이에 일류(日流)를 확산시키는 동시에 독도문제를 부각시킨 것은 그들의 전략이 놀라울 정도로 성공했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한류 열풍에 빠져 있을 때 그들은 그들 나름의 조용한 전략을 내세워 한국의 대중문화를 점령한 것이다. 한국인들은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열정적이고 직선적이다. 감정을 앞세우고 타협을 용납하지 않는다. 시끄럽고 요란하다. 반면에 일본인들은 이성적이고 우회적이다. 조용하고 침착하다. 독도 문제를 놓고 한국인들이 거국적으로 흥분했을 때 일본인들은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그 해결책을 모색했다. 역사적 자료수집과 학문적 연구는 물론 국제사법재판소 상정 등에 철저하게 대비한다. 정말 법률적 판단이 필요할 경우를 위해 대처하는 것이다. 우리가 한류의 이면을 깊이 살펴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학문적 축적과 논리적·이성적 공감이 없다면 안에서 아무리 큰 소리로 외치더라도 그 목소리는 시끄럽기만 할 뿐 밖으로는 퍼져나가지 않는다. 한국에는 모든 법에 우선하는 ‘떼법’이 존재한다고 한다. 일단 큰 목소리가 힘을 얻고 억지가 통한다. 그러나 이런 떼법은 인정주의가 지배하는 국내에서는 일시적으로 통용될지 모르지만 냉엄한 국제사회에서는 결코 받아들여지지 않는 감정적 대응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깨달을 필요가 있다. 역사 바로세우기란 떼법의 극복에서 비롯된다. 이를 통해 참다운 반일도 극일도 가능하고 국제 경쟁력도 강화된다. 최동호 고려대 국문과 교수·시인
  • [국제플러스] 日 자민당, 고노담화 수정요구 보류

    |도쿄 이춘규특파원|자민당내 극우성향 의원들이 주축이 된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의원모임’이 위안부 문제에 옛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한 1993년의 고노담화 수정을 아베 신조 총리에게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마이니치신문은 7일 이 모임이 총리실측으로부터 고노담화 수정 요구를 자제해 달라는 요구가 잇따라 이같이 결정했다고 전했다. 아베 총리는 이 의원모임을 만드는 데 참여, 사무국장을 역임한 바 있다. 이 의원모임은 대신 위안부 문제의 재조사 등을 요구하는 제언을 가까운 시일내에 총리에게 제출하기로 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이처럼 의원모임이 입장전환을 한 것은 총리실측이 “위안부 강제동원 증거가 없다.”는 아베 총리의 발언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이 거세지는 등 외교적으로 위기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은 물론 최근에는 중국·타이완·필리핀까지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한국과 미국·중국 3국이 위안부 문제를 계기로 ‘반일연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아울러 의원모임측의 수정 요구가 ‘고노담화’ 계승이라는 정부의 공식 방침과도 배치되는 데다 국회에서도 “총리와 여당의 인식이 어긋난다.”는 야당측의 비판이 우려된다면서 총리실이 의원모임을 설득했다.
  • 한국의 일본인 처 질곡의 60년 말한다

    일제 식민지 시절 한국인과 결혼해 살다가 광복과 함께 한국에 남게 된 일본인 여자들이 있다. 광복 이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단지 한국 남자를 사랑한 죄로 엄청난 고통과 수모를 겪으면서도 신음 소리 한번을 내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이 이들의 현실이다. 오는 3일 오후 11시5분에 방송되는 SBS TV ‘그것이 알고 싶다-아카타 할머니의 세 가지 소원’은 이들 ‘일본인 처’의 기구한 삶을 들여다본다. 한국에선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당해 결혼생활을 제대로 이어가기 힘들었고, 친정인 일본에선 한국인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쫓겨났다. 결혼한 뒤 남편을 따라 한국으로 왔지만 본가의 반대로 호적에 오르지 못한 경우도 대부분이었다. 하루 아침에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이방인이 되었고 이제 60여 년이 흘렀다. 비록 고통 속에서 살아온 삶이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땅이 한국이고, 자식들이 살아가야 할 곳도 한국이기 때문에 여생을 한국에서 보내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국적 문제로 생활보호 대상자로 지정되지 못하고, 지원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제작진은 “아직도 반일 감정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해국’ 출신의 소수자 인권까지 다뤄야 하느냐는 반발도 생길 수 있다.”며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그러면서도 “이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우리의 민족주의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며우리의 그릇된 인권의식 중 지나칠 수 없는 게 ‘자민족 중심주의’”라고 낮지만 강한 어조로 지적한다.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미녀는 괴로워… 하얀거탑… ‘일드’의 역습

    강한 반일(反日)감정 때문에 문화개방 이후에도 그동안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던 일본 문화가 국내 대중문화계에 ‘소리 없이 강하게’ 다가오고 있다. 만화, 소설, 영화와 TV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일본 원작을 리메이크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 덕에 원작들도 국내에서 큰 인기다. ‘일류(日流)’라고까지 불리는 ‘소리 없이 강한’ 일본문화는 먼저 TV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쌍끌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일본 작가 스즈키 유미코의 원작 만화를 바탕으로 각색한 영화 ‘미녀는 괴로워’는 개봉 한 달 만에 600만 관객을 향해 흥행 바람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 원작 만화는 일본에서 수백만부가 팔린 밀리언셀러로 국내에서도 30만부 이상 팔렸다. 의학 드라마의 신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드라마 ‘하얀 거탑’도 일본 소설이 원작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두 차례나 드라마로 제작돼(1978년,2003년)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이기도 하다. 지난해에는 일본판 블록버스터 ‘일본침몰’과 ‘데스노트’와 같은 작품들이 국내 박스오피스에서 기대 이상의 흥행을 거뒀다. 데스노트는 원작 만화가 국내에 먼저 소개된 작품으로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케이블 TV에서 일본 영화와 드라마 최신작을 접하는 것도 쉬워졌다.‘구로사기’,‘오렌지 데이즈’,‘맛있는 프로포즈’,‘푸드 파이터’,‘너는 펫’,‘히어로’,‘어텐션 플리즈’ 등 일본에서 이미 큰 인기를 끌었거나 톱스타가 출연한 화제작들이 잇달아 국내에 소개되며 기존 작품들과는 차별화된 독특한 매력을 선보이고 있다. 일본 드라마의 흥행 보증수표로 꼽히는 기무라 다쿠야(히어로)나 쓰마부키 사토시(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아오이 유(하나와 앨리스), 오다기리 조(메종 드 히미코), 우에노 주리(스윙걸즈) 같은 배우들은 국내에서도 2030 젊은층을 중심으로 기대 이상의 인기를 얻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1990년대 초중반 이후 일본 문화가 처음 본격적으로 개방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국내 대중문화 잠식에 관한 우려와는 달리 국내 대중문화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한류가 일본을 비롯해 아시아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듯이, 일본 문화도 최근 마니아 중심에서 시작해 꾸준한 개방을 통해 서서히 저변을 넓혀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피플 인 포커스] ‘위안부 결의안’ 총대 멘 일본계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일본계 미국 의원이 ‘위안부 결의안’ 채택에 총대를 메고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주인공은 캘리포니아 출신인 민주당의 마이크 혼다 하원 의원. 그는 지난 8일(현지시간) 109대 의회 마지막 전체회의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위안부 문제가 정의롭게 해결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혼다 의원은 이번 회기중에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추진했던 레인 에번스 의원의 은퇴를 기리는 발언을 통해 “에번스 의원이 해오던 일을 계속 이어나가겠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에번스 의원이 주도했던 위안부 결의안은 국제관계위원회를 만장일치로 통과했으나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해 회기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혼다 의원이 부모의 나라인 일본을 겨냥한 입법 활동을 추진하려는 것은 그의 독특한 이력과 관련이 있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4년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그는 콜로라도의 일본인 집단수용소에서 유아기와 소년시절을 보내야 했다. 부모는 1953년 수용소에서 풀려난 뒤 캘리포니아의 새너제이에 정착해 딸기농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혼다 의원도 그곳에서 성장해 새너제이 주립대학을 졸업했다. 대학 시절 공공서비스 정신을 강조하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에 감동을 받고 평화유지군에 들어가 엘살바도르에서 2년간 자원봉사 활동을 하기도 했다. 엘살바도르에서 돌아온 혼다 의원은 과학 교사가 됐으며 후에 두 학교에서 교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후 새너제이시 기획위원회, 새너제이 학교연합회 회장, 캘리포니아 주의회 의원 등을 거쳐 2000년 하원 의원에 당선됐다. 그는 하원 과학위원회와 교통·사회간접시설위원회에서 활동했지만 시민권과 인권에 큰 관심을 기울여 왔다. 이미 1999년 캘리포니아 주의원 시절 일본이 2차대전 당시의 행위를 사과하고 배상하라는 내용의 결의안(AJR 27)을 제출해 통과시킨 바 있다. 결의안은 일본 정부가 종군위안부 희생자들에게 금전적 배상을 하도록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 의회 소식통은 혼다 의원이 다소 ‘반일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9월13일 노무현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낸시 펠로시·스테니 호이어·톰 랜토스 등 당 중진 의원들과 함께 노 대통령을 면담하기도 했다. 한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의 차기 위원장으로 내정된 민주당의 톰 랜토스 의원은 8일 기자들과 만나 “일본이 종군위안부 문제 등 잘못된 과거사에 대해 감추기보다는 해결하려고 나서는 것이 일본의 국익에도 부합된다.”고 혼다 의원을 지원 사격했다.dawn@seoul.co.kr
  • 中·日 급속 해빙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양국은 지금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 탕자쉬안(唐家璇) 중국 국무위원의 지난 3일 언급은 일본 아베 정권의 출범 이후 가까워지는 중·일 관계를 직접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두 나라는 도쿄 하네다-상하이 홍차오(虹橋) 공항간 전세항공편 취항, 가족 단위 중국인 여행객에 대한 일본측의 비자발급 등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고 4일 양국 언론이 보도했다. 최근 중국과 일본은 2년 만에 방위 교류도 재개했다. 또 역사 공동연구도 진행하기로 합의하는 등 고이즈미 일본 전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후 냉각됐던 양국 관계를 빠르게 회복해가고 있다. 내년 봄 9년 만에 중국 국가원수의 일본 방문까지 추진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양국의 관계개선 의지는 당면한 현안이라기보다는 각자의 정치·경제·외교적 수요에 따른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때문으로 보고 있다. 중·일 관계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아베 정권으로서는 ‘아시아 외교’의 회복을 통해 고이즈미 정권과의 차별화를 시도해야 하고, 갈수록 경쟁이 심화되는 중국 시장에 적극 대응해야 하는 필요도 있다.”고 분석했다. 고이즈미 총리 시절 중·일 관계는 ‘정치적으로는 냉각돼도 경제 교류는 뜨겁다.’는 ‘정냉경열(政冷經熱)’로 알려져 왔지만,“경제 교류가 정치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게 많은 외교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한 관계자는 “중국에 진출해 있는 많은 일본 기업가들을 만나보면 극심한 반일 감정 때문에 심리적으로 상당히 위축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면서 “정치적 우호 관계를 회복하면 일본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상당한 힘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최근 중국 내륙에서 열린 박람회에서 한 일본의 전 고위관료가 1000여명의 기업인과 관료를 이끌고 나와 현지인들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한 중국인 관계자는 “베이징∼상하이간 고속철도 사업에서 ‘죽은 카드’로 알려진 일본의 신칸센이 전폭적인 기술이전을 전제로 다시 하나의 카드로 되살아날 수도 있다.”고까지 말했다. 중국으로서도 주변국과의 ‘조화’로운 외교 측면에서뿐 아니라 에너지, 환경 등을 비롯한 일본의 선진 기술이 절실한 상황이다. 한편 이 같은 중·일 관계 개선과 관련, 한 외교 관계자는 “한·중·일이 여러 측면에서 ‘제로섬’ 관계에 있지는 않지만, 세부적으로 어떤 결과가 파생될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jj@seoul.co.kr
  • “육당 ‘만몽론’은 대륙지향 의식”

    요즘 유행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기 위해 만주와 몽고의 역사를 재해석하는 작업이다. 우리가 ‘한반도’에 얽매인 삶을 살았던 게 아니라 한때는 저 드넓었던 땅을 앞마당처럼 헤집고 다녔다는 얘기다. 그런데 여기에는 ‘선구자´가 있었다. 바로 변절한 친일 지식인의 대표격으로 꼽히는 육당 최남선의 ‘만몽(滿蒙·만주와 몽고)문화론’이다. 강해수 계명대 국제학연구소 연구원은 계간지 ‘역사비평’ 가을호에 실은 ‘최남선의 만몽인식과 제국의 욕망’에서 육당을 ‘친일-반일’ 구도로 보는 단순논리에서 벗어나자고 제안한다.‘제국의 욕망’이라는 또 하나의 차원은 없었는지 봐야 한다는 것. 강 연구원은 그동안 육당에 대한 연구가 3·1운동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뛰어난 지식인에서 1920년대에 변절해가는 과정을 추적하는 데 그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다 보니 1930∼40년대 육당의 언행은 ‘변절한 친일 지식인의 남루한 행적’으로만 다뤄질 뿐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는 것. 그래서 강 연구원은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0년대 중반 이후 일제가 만주에 세운 건국대학으로 건너가 육당이 발표한 글들에 주목한다. 지금 일본 우익이 흔히 ‘불행했던 과거사’라고 불리는 20세기 초반 동북아 침략사를 합리화하기 위해 내세우는 논리가 바로 후소샤 교과서에도 실렸던 ‘조선 팔뚝론’이다. 조선반도는 대륙에서 섬나라 일본을 향해 불쑥 솟아있는, 위협적인 팔뚝이라는 것. 그래서 일본의 조선병합은 이 위협을 예방하기 위한 ‘일종의 자위권 발동’이었다는 얘기다. 육당은 이 논리를 거꾸로 뒤집어 ‘평화의 도끼론’을 만들어낸다. 손잡이는 조선반도, 도끼날은 만주 몽고 지역이다. 일본은 도끼 손잡이(조선 병합)를 잡은 뒤 도끼날(만주국 성립)까지 확보했으니 이제 남은 일은 중원을 내려 찍는 일, 바로 중일전쟁만 남았다는 얘기다. 이건 그냥 침략이 아니다. 오래전 고대사부터 반복되어 왔던, 중원을 향한 모든 민족들의 자연스러운 투쟁 과정 가운데 일부다. 거기다 이번에는 이미 낡아버린 제국, 중국을 제압하고 서양에 맞서는 것이니 또 다른 평화의 길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이 가능한 것은 육당이 ‘만몽지역-한반도-일본열도’를 잇는 공통점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신도(神道)’다. 지금이야 일본의 대중적인 종교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육당은 다르게 본다. 만몽지역의 샤머니즘, 한반도의 무당이 바로 신도다. 육당은 이를 ‘대륙신도-조선신도-일본신도’라 이름 붙인다. 이런 논리 전개는 비교언어학과 비교문화론 등을 통해 널리 퍼지고 있는 오늘날의 재야사학, 민족사학을 떠올리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실제 이들은 육당의 논리를 따오기도 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육당은 20세기 초반 가장 근대적이었던 일본을 주체로 상정했고 백인종 대 유색인종간의 대결이라는 인종주의적 관점과 발전하지 못한 민족은 절멸될 수밖에 없다는 사회진화론을 날것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점 정도다. 그래서 강 연구원은 되묻는다. 육당의 배경에는 “민족의 원향(原鄕)으로서의 만주를 향한 우리들의 제국의식”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냐고.“오늘날 우리의 자화상”이 아니냐고. 그래서 육당은 과연 그냥 친일파이기만 했던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고이즈미 8·15 도발] 中 “인류양심 짓밟는 행위” 분개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중국은 15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직후 외교부 성명을 통해 “국제 정의에 대한 도전이자 인류의 양심을 짓밟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리자오싱(李肇星) 중국 외교부장은 미야모토 유지(宮本雄二) 주중 일본대사를 불러 “강력한 분개와 규탄의 뜻을 표시했다.”고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그러나 성명은 “일본 각계의 지식인들이 역사의 조류에 순응해 정치적 장애를 제거하고 중·일관계가 조속히 정상적인 발전 궤도를 회복하는 데 앞장설 것을 믿는다.”면서 포스트 고이즈미 시대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지난 10일 ‘주요 공관장 회의’ 참석 형식으로 불러들인 왕이(王毅) 주일 중국대사는 20일 이후 복귀할 것으로 관측된다. 왕이 대사의 사전 귀국 조치는 신사참배로 야기될 수 있는 극단적인 충돌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외교적 ‘묘수’로 간주된다. 대외적으로는 ‘대사 소환’ 형태로 비쳐져 체면치레를 한 셈이 됐고 외교적 부담도 더는 효과를 거뒀다. 한편 중국 광저우(廣州)에 있는 일본 총영사관은 이날 교민들에게 외출을 자제하고 중국인들과 정치적 토론을 하지 말 것을 권고하는 안내문을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중국에 반일시위 정황이나 관련 정보가 있으면 총영사관에 연락해줄 것도 당부했다. 광저우 외의 다른 일본 공관도 반일 시위가 발생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비상상태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jj@seoul.co.kr
  • [고이즈미 8·15 도발] 고이즈미 강행 퇴임뒤 정치영향력 유지 ‘계산’

    [고이즈미 8·15 도발] 고이즈미 강행 퇴임뒤 정치영향력 유지 ‘계산’

    |도쿄 이춘규특파원|예상대로 일본 총리가 패전 기념일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그는 8·15를 앞두고 최근 기회있을 때마다 참배 강행 의사를 표명하며 분위기를 조성해왔다. 총리가 되기 전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그가 그뒤 매년 정기적으로 야스쿠니를 참배한 것은 다분히 정치적 동기가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2001년 자민당 총재선거 때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공약, 예상을 뒤엎고 승리했다. 아울러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때마다 한국·중국 등이 강력 반발하면,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본 국민들의 잠재된 민족주의가 분출, 고이즈미 지지를 강화하는 흐름을 보였다. 그가 이런 흐름을 적절히 탔다는 지적도 많다. 상당수 일본 언론사 여론조사에서도 절반 이상 응답자가 총리의 참배에 문제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국민성을 감안하면, 국민 다수가 반대하지 않는다고 보아도 큰 문제 없다. 특히 올해의 경우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각국이 강력히 반발하는 8월 15일을 택해 참배를 강행한 것은 어느 때보다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공약을 지키는 지도자라는 인상을 심어주길 기대했다는 해석이다. 이같은 여론의 지지를 토대로 9월 말 퇴임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해석도 적지 않다. 실제로 고이즈미 총리 취임 전 15년 가까이 일본에서는 단명총리가 계속 나오는 등 정치혼란이 계속됐다. 그래서 일본 국민들은 강한 지도자를 원했고, 고이즈미 총리가 이같은 흐름에 부응했다는 분석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그의 퇴임 뒤 자민당내 리더십이 약화되면 국민들이 다시 부를 수 있고, 이때를 대비해 이날 참배를 강행했다는 해석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는 더욱 경직될 것으로 전망된다. 주변국 정부와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반성과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 반일 감정은 고조되고 경제협력 퇴조 등의 강한 후유증이 예상된다. 그렇지만 고이즈미 총리가 ‘지는 태양’이기 때문에 후유증이 그리 크지 않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차기 총리가 유력한 아베 신조 관방장관의 태도에 따라 파문이 조기 진정될 여지도 있다는 해석이다. 아울러 다음달 20일 예정된 자민당총재 선거에 대한 영향도 미미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taein@seoul.co.kr
  • “정부서 관련자료 불 태우고 입증하라니요”

    “정부가 증조할아버지의 서류를 모두 소각했는데, 이제와서 서류를 가져와야 독립유공자로 인정해 준다고 합니다.” 정병기(49)씨는 일제시대 경성형무소(현 서대무형무소)에서 옥사한 증조부가 독립투사였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30년 가까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는 일가친척과 이웃의 증언을 토대로 “증조부 정용선(1883년생)선생이 1900년대 초부터 1916년 즈음까지 고향인 경북 봉화군을 중심으로 독립군 군자금 모금 활동을 했다.”고 주장한다. 정씨에 따르면 증조부는 독립 자금을 모으기 위해 친일파의 집을 털고 일본 주재소를 습격하는 등 위험천만한 활동을 서슴지 않았다. 증조부는 1916년 갑자기 자취를 감췄고 10년 가까이 지난 1928년 경성형무소에서 옥사했다는 통지서 한통만이 날아왔다. 정씨는 “당시 반일 활동가를 가두던 경성형무소에서 장기복역하다 숨졌다는 것 자체가 증조부가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희생됐다는 증거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정부가 요구하는 서류를 찾아 고향인 봉화군에 증조부의 수형기록을 요청했지만,‘형의실효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기록을 소각했다.’는 어이없는 답변만 돌아왔다.”면서 “서류를 태운 정부가 서류를 요구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정씨는 “독립운동가의 자료를 제대로 보존하지 못한 것은 정부의 귀책 사유인데 자손들에게 독립운동 사실을 입증하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 집안이 가난해 문맹으로 살아야했던 나의 할아버지, 아버지처럼 대부분의 독립투사 후손이 무지하다는 것을 정부가 악용하는 것이 아니냐.”고 비판했다. 정씨 주장에 대해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객관적인 자료가 검증이 돼야 서훈을 추서할 수 있다. 정부에서도 정씨 증조부에 대한 자료를 찾고 있으나 좀처럼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 [Book Review] ‘단도와 활-지한(知韓)과 혐한(嫌韓) 사이’ /채명석 지음

    일본 후소샤판 역사교과서에는 “조선반도는 일본 열도를 향해 돌출된 흉기”라고 씌어져 있다. 그렇듯 일본인들은 663년 백촌강 전투에서 패배한 이래 한반도가 일본 열도의 옆구리를 겨누는 ‘단도’라는 피해망상에 젖어 있다. 그러나 사실은 ‘활’처럼 구부러진 열도의 나라 일본이 백촌강 전투 이후 1300여년 동안 끊임없이 한반도를 공격했다. 약자일 때는 전수방어 운운하다가도 강자로 바뀌면 이익선, 생명선, 주권선 등 온갖 명분을 내세워 반도에 대한 전진방어, 즉 선제공격을 감행해 온 것이다. 최근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론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단도와 활-지한(知韓)과 혐한(嫌韓) 사이’(채명석 지음, 미래M&B 펴냄)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일본분석서다. 저자는 시사저널 도쿄 주재 편집위원으로 10여 년간 활동한 일본통. 스스로를 반일도 친일도 아닌 ‘숙일파(熟日派)’라고 부른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 정치는 지금 ‘혼네(본심)의 정치’ 즉 ‘강자의 정치’로 바뀌어가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하고 있는 것이 그 한 예.‘일본의 네오콘’으로 불리는 세습 정치가들은 이제 주변국의 눈치를 봐가며 과거사를 사죄하는 척하는 ‘다테마에(표면상의 방침)의 정치’ 즉 ‘약자의 정치’의 간판을 내리려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일본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저자는 먼저 ‘극장국가(theatre state)’라는 개념을 통해 국가로서의 일본이 어떤 습성을 갖고 있는가부터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극장국가는 문명국가의 반대 개념으로, 국가운영의 시나리오를 제 힘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나라를 가리키는 말이다. 극장국가에는 반드시 ‘모범적 중앙’이 존재한다.1982년 ‘극장국가’라는 책을 펴낸 야노 도오루(矢野暢) 전 교토대 교수는 일찍이 일본이야말로 일왕, 즉 모범적인 중앙을 정점으로 한 극장국가라고 갈파했다. 한국과 중국의 정치 문화를 모방해 율령제 국가를 이룬 것이 제1기 극장국가 시대라면, 메이지 유신 전후 서양문명을 모방해 근대화를 이룩한 시기는 제2기 극장국가 시대다. 제3기 극장국가는 태평양전쟁에서 패한 후 요시다 시게루 총리가 내건 ‘경무장, 경제우선´이란 기치 아래 미국을 모방,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을 건설한 시기. 일본은 지금 평화헌법의 족쇄를 풀고 일왕을 정식 국가원수로,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한 ‘제4기 극장국가´로 전환하기 위해 온힘을 쏟고 있다. 책은 부제가 암시하듯 지한의 얼굴을 한 혐한의 계보를 밝히는 데 적잖은 지면을 내준다. 한국 흠집내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구로다 가쓰히로. 저자는 에도시대 유학자로 조선 멸시에 앞장 선 아라이 하쿠세키와 후쿠자와 유키치의 지시로 경성에서 한성순보를 발행한 이노우에 스미고로의 행적을 좇으며 구로다가 그들 혐한파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밝힌다. 오늘의 한류(韓流)에 대한 진단도 주목할 만하다. 고대 일본의 도래인(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 붐,17세기 조선통신사 행차에 몰려든 ‘군왜(群倭, 왜나라 군중)’에 이어 최근의 한류는 역사상 세 번째 한류라는 게 저자의 말. 이 지점에서 저자는 다시 한번 반한파와 혐한파의 도발을 경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과거 일본은 편의에 따라 정한론(征韓論, 임진왜란, 일제의 식민통치)과 대한론(帶韓論, 삼한과의 교류, 조선통신사 환대)을 구사하며 우리를 괴롭혀 온 만큼 현재의 한류 붐이 멸한론과 정한론의 종언을 고하는 것으로 확대 해석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일본이 뿌리 깊은 탈아론적 의식을 버리지 않는 한 아시아의 평화는 요원하다고 강조한다. 그런 관점에서 아시아 침략과 태평양 전쟁의 이론적 토대인 탈아론을 주창한 후쿠자와 유키치에 대한 엄정한 평가를 주문한다. 침략주의자보다는 조선문명화론자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듯한 후쿠자와는 “시나·조선 같은 악우(惡友)와는 사귀지 말라.”“돈 문제로 조선인을 상대해선 안된다.”고 한 인물. 저자는 섣부른 낙관이나 비관을 모두 경계하며 500년전 신숙주가 남긴 유언을 결론으로 삼는다.“왜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되 우호친선을 끊지 말라.”1만 3000원. 김종면기자 jmkim@ seoul.co.kr
  • [씨줄날줄] 한·일 악플 전쟁/이목희 논설위원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 당시 북한의 예상밖 선전에 우리 국민들은 의기소침했다. 이때 영웅으로 떠오른 선수가 포르투갈의 에우제비우.8강전에서 4골을 성공시켜 북한에 0-3으로 지고 있던 상황을 단숨에 역전시켰다. 대회 직후 박정희 정권은 ‘북한 타도’를 기치로 중앙정보부 밑에 양지팀을 급히 창설했다. 일류선수를 징집해 해외전지훈련 등 아낌없는 지원을 퍼부었다. 당시에는 남북 축구에서 지면 그야말로 ‘죽음’이었다. 실력이 북한에 못 미쳐 승산이 없으면 월드컵 예선전을 아예 포기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좀 대범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영국의 한 언론사는 잉글랜드월드컵에서 북한,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의 활약을 역대 10대 이변으로 꼽았다. 이웃이 잘 나가면 배가 아플 수 있다. 하지만 지구촌 차원에서는 ‘동북아의 선전’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제 남북한 사이에는 스포츠 협력이 잘되는 편이다.6·15행사 참석차 광주를 방문한 북측 대표단장은 “남쪽이 월드컵 결승에 올랐으면 좋겠다.”고 덕담을 했다. 북한 대신 미운 오리로 떠오른 상대는 일본이다. 과거에도 한·일 축구전의 라이벌 의식은 대단했다. 그러나 일본팀의 다른 경기를 놓고 희비가 극명하지는 않았다. 요즘 들어 독도 논란으로 반일 감정이 끓어올랐다. 이것이 자연스레 스포츠로 옮아가고 있다. 일본이 호주에 1-3으로 역전패한 뒤 한·일 네티즌간 ‘악플(악의적 댓글)전쟁’이 벌어졌다. 히딩크 호주팀 감독이 한국을 위해 일본을 이기겠다고 언급, 양국민의 민족감정에 불을 질렀다.“일본의 패배가 고소하다.”는 한국 네티즌의 반응에 일본이 발끈했다. 야후 재팬 월드컵게시판에 ‘한국, 놀리지마’라는 별도 코너가 생겼다.“프랑스, 스위스가 한국의 코를 납작하게 해달라.”는 기원이 잇따르고 있다. 일본의 고집불통 지도자들이 미운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한국인이 속좁지 않음을 보여주자. 남북한 관계처럼 스포츠가 한·일 우호회복에 도움을 줘야 한다. 중국을 포함, 동북아 3국의 민족주의를 축구 경기와 응원을 통해 누그러뜨려야 한다. 월드컵에서 한국, 일본팀이 모두 잘 싸우는 게 좋다. 아시아지역의 국제 위상이 높아지고, 월드컵 출전권 확대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여성이 파헤친 日帝 난징학살

    2004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쪽 17번 고속도로변 차 안에서 미모의 한 여성이 머리에 총을 맞아 숨진 채 발견됐다. 일본 우익 세력으로부터 끊임없 는 협박에 시달리다 권총 자살로 삶을 마감한 그녀의 이름은 아이리스 장. 중국 이름은 장춘루(張純 如), 당시 나이는 36세였다. 1930년대 말 중국의 수도 난징에서 자행된 일본군의 잔학행위를 폭로한 책 ‘The Rape of Nanking(난징의 강간)’을 낸 뒤 줄곧 공포와 협박속에 살아온 그녀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마침내 자살을 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도서출판 미다스북스에서 펴낸 ‘역사는 힘있는 자가 쓰는가’(아이리스 장 지음, 윤지환 옮김)는 바로 그 책의 한국어판이다. 저자는 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턴에서 중국인 2세로 태어나 난징 희생자들을 위해 싸운 행동주의자이자 미국내 중국 인권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명성을 얻은 다큐멘터리 작가. 원제가 말해주듯 이 책은 1937년 난징대학살 만행을 낱낱이 고발한다. 1937년 11월 상하이 침공에 성공한 일본은 난징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감행, 그 해 12월 이 도시가 함락되자 역사상 유례없는 잔학행위를 벌이기 시작한다. 수천, 수만명의 젊은 남성들이 일본군의 전투연습 대상으로 희생됐으며,2만∼8만명에 이르는 중국 여성들이 강간당했다. 산 채로 매장하기, 거세하기, 신체장기 도려내기, 산 채로 불태우기 등 책에 묘사된 일본의 만행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 책은 출간 첫 해에 60만부가 팔려나가며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반일위서(反日僞書)’로 규정돼 출판조차 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출간되지도 않은 책의 비판서까지 등장, 베스트셀러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저자에 따르면 난징의 강간은 ‘잊혀진 홀로코스트’다. 하버드대 현대 중국사 교수인 윌리엄 커비 또한 “난징의 강간은 서구에서는 거의 잊혀진 사건이었다.”며 “난징의 비극에 대해 영어로는 처음 씌어진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한다. 난징 대학살에 대한 진실규명의 열기는 올들어 한층 뜨거워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12월12일을 ‘난징대학살 기념일’로 정했다. 난징 만행을 다룬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도 제작돼 2007년 전세계에 동시 개봉될 예정이다.1만 3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오늘의 눈] 한류 파이를 키우려면/김미경 문화부 기자

    “한류를 염두에 둔 작품을 만들 게 아니라, 우리나라 시청자들이 좋아하면 해외 어디에서도 인정받을 겁니다.” 최근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 만난 ‘한류스타’ 안재욱씨의 말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중국 비자를 받지 못할 정도로 한류에 대한 견제가 있었지만 이제는 한류 문이 넓어진 것 같아 긍정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최근 한류용으로 만들어졌으나 국내 흥행에 실패한 일부 드라마들을 외국에 떳떳하게 팔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다행스러웠다. 한류 1세대 격인 그가 언급한 한류는 단순한 붐이 아니었다. 비판도 필요하고 격려도 필요한, 냉정한 문화의 흐름이었다. 이제 한류는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아니라 한단계 도약해야 하는 시기이며, 이를 위해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2006년, 과연 한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최근 일본 도쿄를 찾았다. 한국에 오는 일본 관광객 수가 줄어들고, 혐(嫌)한류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한류의 방향과 미래를 짚어보기 위해서다. 도쿄 신주쿠를 중심으로 수십명의 한류 관계자들을 만났다.NHK 등 방송국과 영화관, 출판사, 서점, 카페 등에서 만난 그들은 한목소리로 “한류의 붐은 꺼졌지만 정착기·성숙기로 접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오히려 한국 사람들이 한류가 사라질까봐 우려하면서 한류를 겨냥한 콘텐츠에만 너무 치중한다고 지적했다. 우리가 한류 붐이 사라졌다며 걱정하고 있을 때 일본인들은 한류를 한국문화로서, 자기네 문화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채비를 하고 있었다. 특히 스타에 열광하는 것에서 벗어나 한국어를 배우고, 의·식·주 등 한국의 일상생활에 대해 궁금해하는 등 한국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있었다. 우리는 어떠한가. 최근 일본 영화들이 잇따라 개봉해 눈길을 끌고 있지만 ‘반일감정’에 사로잡혀 일본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류가 지속되려면 양질의 콘텐츠 개발은 물론, 양국간 문화교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일본에서 만난 한류 관계자들의 조언이다. 우리 콘텐츠만 일방적으로 공급할 것이 아니라 일본 등 아시아권 문화와 교류해야 한류가 제공할 파이는 더욱 커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김미경 문화부 기자 chaplin7@seoul.co.kr
  • [진화하는 韓流 꿈틀대는 日流] 저변 넓혀가는 일본문화

    [진화하는 韓流 꿈틀대는 日流] 저변 넓혀가는 일본문화

    한류 열풍을 타고 한국문화가 일본에 급속히 유입되는 동안에 일본문화도 한국에 조용히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일본 대중문화가 1차로 개방된 1998년 이후 문학과 영화, 대중음악 등을 중심으로 저변을 넓혀온 일본문화는 최근 다양한 콘텐츠를 앞세워 마니아층을 기반으로 수면 위로 떠오를 채비를 하고 있다. ●문학·애니메이션 등 최고 문학을 비롯한 출판분야는 문화부문에서 한·일 역조가 가장 심각하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지난해 출간된 일본 소설은 391권으로,2004년 252권,2003년 208권에 비해 급증했다. 지난 10년간 연간 집계한 종합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1996년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시작으로 지난해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 등 매년 2∼4권의 일본 서적이 20위권에 들었다. 올들어서도 매월 소설 베스트셀러에 3∼5권씩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일본 소설 바람을 타고 ‘플라이, 대디, 플라이’(가네시로 가즈키)‘어깨 너머의 연인’(유이카와 게이) 등이 영화로 제작, 개봉될 예정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극장과 방송, 단행본으로 나뉘어 한국 만화시장을 휩쓸고 있다. 케이블·위성 애니메이션채널에서 일본 작품은 50∼60% 정도를 차지하며 최고의 시청률을 올리고 있다.80년대 후반부터 불법복제물로 유입된 단행본은 지난해 점유율이 70%에 육박했으며, 해외 번역물 중에서는 98.7%로 절대적이다.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올들어 전면 개방돼 본격적인 수입이 이뤄질 전망이다.2004년 개봉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전국 300만명을 넘어서며 일본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다. 올해는 ‘폭풍우 치는 밤에’‘개구리중사 케로로’ 등에 이어 ‘원피스’‘게도전기’ 등이 잇따라 개봉한다. ●일본문화, 조용히 확산된다 영화, 드라마, 대중음악(J-POP), 격투기 등도 젊은 층을 공략하는 장르다. 지난해 10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이어 올들어 관객 9만명을 돌파한 ‘메종 드 히미코’와 ‘박치기’‘스윙걸스’‘나나’ 등이 잇따라 개봉하며 호평을 받자 감독·배우들이 방한, 눈길을 끌었다.98년 이후 ‘러브레터’ 등이 화제를 모았지만 최근처럼 일본 영화에 관심이 쏠린 적은 없었다는 분석이다. 일본 드라마는 지상파까지 개방되지 않아 케이블·위성채널에서 방송되고 있지만 다양한 작품들이 들어와 잔잔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10월까지 118편이 방송됐으며,‘고쿠센’‘소년탐정 김전일’‘춤추는 대수사선’‘러브 제너레이션’‘서유기’ 등이 마니아층을 형성했지만 시청률은 그리 높지 않은 편. 일본전문 채널J 관계자는 “최근 방송된 일본 대하드라마와 다큐멘터리 등이 고학력층에 어필하고 있다.”면서 “잠재된 마니아층이 많기 때문에 작품 수준에 따라 이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80년대부터 불법 복제음반으로 들어온 J-POP은 2004년 전면 개방 이후 마니아층 위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나카시마 미카의 ‘러브’, 희데의 ‘666’,‘하울의 움직이는 성’OST 등이 2만∼3만장 정도 팔리며 팝음반 판매 10위권을 넘봤다.2000년부터 아무로 나미에, 각트 등 스타들이 한국에서 개최한 공연이 흥행하면서 J-POP 가수들의 내한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JVC 송은아 과장은 “대형 음반사는 한달에 10개 이상의 일본 타이틀을, 작은 음반사는 인디 아티스트를 위주로 1∼2개 타이틀을 출시하고 있다.”면서 “나카시마 미카 등 한국 입맛에 맞는 발라드는 팬층이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드라마·사주팔자 등 다양한 콘텐츠를 일본에 공급하는 드림젠 박종욱 사장은 “일본 파트너들이 역(逆)한류를 이용, 다양한 콘텐츠를 한국에 수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오랫동안 일본문화를 즐겨온 마니아층이 있기 때문에 일본문화는 계속 저변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 홍지민기자 chaplin7@seoul.co.kr ■ “반일감정 때문 日문화 성공못할것” 67% 서울신문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일본 속 한국문화와 한국 속 일본문화에 대한 인식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일본 문화가 한국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것 같은 이유로 반일 감정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혔다. 반면 한류가 일본에서 약화될 것 같은 까닭은 한류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한류가 국가적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고(88.4%), 한국에 대한 일본사람의 호감을 늘렸다(86.5%)는 등 긍정적인 평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향후 일본에서의 한류 열풍 전망을 묻는 항목에서 ‘얼마간 지속되겠지만 약화될 것’(55.2%),‘10년 이상 지속’(35.2%),‘조만간 약화’(6.0%) 순으로 나타나 부정적인 전망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한류 약화 이유로는 ‘한류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아서’(32.0%) ‘반한 감정’(24.9%) 등이 꼽혔다. 한국에서의 일본 문화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는 ‘한류 정도의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것’(67.7%)이라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것 같은 이유로는 ‘반일 감정’(67.1%)이 가장 높았고,‘정치 외교상 한계’(13.3%)‘일본 문화 수준이 높지 않아’(10.3%) 순으로 나타나 한류 약화 이유를 묻는 항목과는 대비되는 결과가 나왔다. 일본 문화를 접하는 이유로 ‘별다른 이유는 없다.’(38.9%),‘참신하고 기발해서’(18.9%) 순이었다.‘일본을 이해하기 위해서’(7.8%)는 상대적으로 낮았다.‘참신하고 기발해서’는 29세 이하에서 33.4%로 집계되는 등 일본 문화의 신선함은 젊은 연령층에 매력요인이었다. 일본 문화가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가 45.7%,‘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가 50.2%로 집계됐다. 특히 능동적인 향유층인 29세 이하에서는 긍정 응답이 53.0%로 가장 많았다. 이번 조사는 지난 3월17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실시됐고,95% 신뢰 수준에 표집오차는 ±3.1%이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알찬 日영화 수입해놓고 정치적 상황 신경 곤두서” “‘일본 문화’는 ‘일본’이 아닌 ‘문화’입니다.” 조성규(37) 스폰지 대표는 일본 문화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진정한 문화 교류를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스폰지는 작은 규모라도 탄탄한 내용을 갖춘 유럽·일본 영화들을 국내에 소개하고 있는 중견 영화사. 특히 일본 영화 소개에 있어서는 국내에서 가장 선두에 있다.130편가량 되는 라이브러리에서 일본 영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30∼40편 정도. 올해만해도 이미 개봉한 작품을 포함해 15편 이상의 일본 영화를 극장에 걸게 된다. 일본 영화가 잇따라 개봉되고 감독·배우들이 한국을 찾으면서 60∼70년대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에 빗대 ‘일본의 침공(Japan Invasion)’이라는 표현도 나왔지만, 그는 호들갑이라고 봤다. 국내 영화처럼 200∼300개 이상 극장에 거는 와이드릴리스 방식을 써 일본 영화 성공을 가늠하는 리트머스지로 꼽혔던 ‘나나’와 ‘스윙걸즈’의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는 것. 한국에는 ‘일본 영화 마니아 1만명’이라는 좁은 시장만 있기 때문에 10개 미만 스크린에서 개봉하는 게 적당하다고 본다. 더구나 일본에 대한 불편한 감정은 강한 걸림돌이다. 일본 영화를 수입하면, 경쟁작보다는 일본 정치인의 망언에 더 신경이 쓰이는 판국이다. 그러니 ‘붐’이란 게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조 대표는 영화든 음악이든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지만 알찬 일본 영화는 많은데 정치적 상황 때문에 묘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게 한두번이 아니어서다. 거꾸로 일상의 잔잔함을 비추는 일본 영화들을 보면, 일본 망언의 배경을 알 수 있다고 충고했다. 특히 독도,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만 나오면 일본하고는 모든 걸 다 끊자고 열내던 국내 젊은이들이, 정작 만화나 게임은 일본 것을 즐기는 이중적 태도에 비하면 이들 영화를 보는 게 훨씬 낫다고 강조했다. 또 ‘한류’라는 이름 아래 한국이 일본을 문화적으로 압도하고 있다는 생각도 좋은 게 아니라고 지적했다. 일방적인 것은 반드시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도호·도에이·쇼치쿠 같은 일본 3대 영화사가 한국 영화를 수입하지 않는 배경에는 ‘한국이 사지 않는 마당에 우리가 살 필요 있느냐.’라는 자존심이 깔려 있다는 설명. 그는 문화 교류는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이를 통해 서로 배울 점은 배우고 고칠 점은 고치는 것이 진정한 문화 교류라고 덧붙였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美 車업계 “한국산 타지 말자”

    한국과 미국간 자유무역협정(FTA) 본협상을 앞두고 미 자동차업계의 한국 자동차 시장 진출 공세가 거칠어지고 있다. 미 자동차 업계는 지난주말부터 TV 광고 등을 통해 주로 일본과 한국 자동차 회사들을 겨냥해 ‘반외제차’ 운동을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자동차무역정책위원회(ATPC)는 FTA 체결에 앞서 한국으로부터 자동차시장 개방조치를 사전에 받아낼 것을 미 무역대표부(USTR)에 주문하고 있다고 미 온라인 경제주간지가 13일 보도했다. 인사이드 유에스 트레이드(Inside US Trade)에 따르면, 찰스 유더스 ATPC 부회장은 11일 ‘글로벌 비즈니스 대화(GBD)’ 모임에서 ATPC가 한국의 자동차 시장 사전 개방조치를 받아내려고 USTR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 자동차 시장 접근이 개선됐다는 통계적 증거를 먼저 보기 전엔 미 자동차 업계가 한·미 FTA를 지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고 ‘인사이드’는 전했다. 그는 특히 “한국 정부는 과거 이미 두차례 양해각서를 통해 시장접근 장벽 철폐를 약속했으나 지키지 않았다.”면서 “세제와 안전기준 등 비관세 장벽을 없애겠다는 약속 이상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사이드는 미 정부와 업계 소식통을 인용, 한국 자동차 시장 장벽이 낮아지더라도 미국에서 생산하는 일본 자동차 회사들엔 별 이득이 안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인사이드는 특히 일본업계 소식통의 말을 인용, 한국에선 반일감정 때문에 일본 자동차 판매가 어렵고 예민한 문제여서 한·미 FTA가 체결돼도 일본 업계엔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워싱턴 연합뉴스
  • [중계석] 미·중·일 역학관계 주시할 때/이홍표 일본 규슈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최근 미·일이 군사일체화를 표방하면서 동아시아의 역학관계 변화와 안보가 화두로 대두되고 있다.‘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대표 장성민)은 4일 서울 홀리데이인 서울 호텔에서 ‘중·일의 전략적 각축과 21세기 동아시아 안보’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홍표 일본 규슈대 교수의 주제발표문을 간추린다. 동북아시아가 어수선하다. 양대 강국인 일본과 중국 관계는 1972년 수교 이래 최악의 상태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상임이사국 진출을 계기로 지난해 4월 발생한 베이징에서의 반일시위 이후 본격화된 냉각은 일시적 현상보다는 구조적 갈등과 모순이 노정된, 목표와 전략적 이해의 충돌 차원이다. 냉전 이후 미·중 양국은 소원한 상태로 경계하는 반면, 미·일은 더욱 밀착돼 있다.90년대 중반까지 가장 영향력 있는 국가지위를 향유한 일본은 경제침체와 함께 중국의 경제·군사적 부상에 경계하기 시작했다. 중국도 결사적으로 맞대응하고 있다. 중국의 21세기 추진전략은 세계차원의 강대국이 되는 것으로 동아시아 지역 질서를 이끄는 중심 국가가 돼야 하는데 장애세력은 바로 일본이다. 일본은 국내 통합과, 미국과의 관계 강화로 전략을 짜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가 개인적으로 부시 미 대통령을 좋아한다기보단 향후 일본의 미래를 위해 미국의 파트너가 되려는 것이다. 경제적 이해 등으로 중·일이 단기적으로는 정면 충돌할 가능성은 적다. 중국은 평화 5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 군사력이 일본을 압도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중·일 국력차가 줄고 군사력이 일정수준에 오를 때, 중국의 의도는 한순간에 바뀔 수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결국 중요한 것은 미국의 입장. 미국은 동북아의 균형자 역할을 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중·미를 축으로 한 패권 대결, 미·일 동맹의 강화라는 상황이 상당기간 유지될 것이다. 한국은 미·중·일간의 세력관계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지금 동북아는 불투명하다. 누가 우리의 안보에 해를 끼치는지가 불분명한 상황이다. 한반도 안보이익 확보를 위해 비용대비 효율이 높은, 그리고 지난 50년간 이미 검증된 한·미관계를 강화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다. 이홍표 일본 규슈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 공무원 근무시간 출강 놔두나

    “전문분야의 후진양성이 아무리 중요해도 공무원이 근무시간에 가욋일을 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말이 안된다.”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이 행정자치부로부터 제출받은 ‘공무원 겸직현황’이 지난 1일 공개되자 국무총리실 관계자는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정부 관련 부서는 4일까지도 ‘근무시간중 외부 강의’가 문제가 있다는 데는 한결같이 공감하면서도 “구체적인 대책을 세우기는 쉽지 않아 고심 중”이라고 입을 모았다. 올 상반기 대학에 강의를 나가는 등의 공식적으로 겸직을 허가받은 공무원은 47개 중앙부처 본부인원 1만 9510명 가운데 1.3%인 245명이다. 하지만 반일휴가 등을 이용해 편법으로 외부강의를 나가는 공무원은 이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관별로는 국가청렴위원회가 전체 인원의 8.3%인 14명에게 겸직을 허가했다. 이어 교육인적자원부 5.6%(20명), 식품의약품안전청 5.1%(24명), 특허청 2.8%(36명), 문화관광부 2.3%(12명) 등의 순이었다. 유형별로는 겸임교수 등 외부강의가 210명으로 전체의 85.7%를 차지했으며, 이 중 상당수는 근무시간에 강의를 나가는 것으로 조사됐다. 공무원 복무규정에 따르면 공무원이 겸직을 하려면 소속 기관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직무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으면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또 공무원 행동강령은 한달에 3차례 이상 또는 월 6시간을 초과하는 외부강의를 나가려면 소속 기관장에게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총리실 관계자는 “근무시간에 자리를 비우면 급여에서 그만큼 빼는 것이 맞는다.”면서 “자신의 근무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했다고 하더라도 업무배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행자부 관계자는 “근무시간에 직무와 관련이 없는 외부강의를 나가더라도 휴가를 사용하면 이를 막을 마땅한 수단이 없다. 복무규정 준수 여부를 관리·감독하는 권한도 소속 기관에 맡겨져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국가청렴위원회 관계자는 “공무원 행동강령을 어겼다는 신고나 제보가 있어야 조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의 삶과 노래(2)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의 삶과 노래(2)

    1964년‘동백아가씨’를 시작으로 우리나라 트로트 시대를 ‘완성’시켰다고 평가받는 이미자씨. 그러나 이후 3대 히트곡인 ‘동백아가씨’ ‘섬마을 선생님’에 이어 ‘기러기 아빠’까지 왜색, 비탄조 등의 사유로 금지되면서 한때 가수 생명까지 위협받는다. 이 노래들의 금지 배경에는 아직도 확실히 규명되지 않은 몇 가지 설이 나돈다. 그 중 하나는 정치적 희생양 설. 당시 한·일국교를 맺을 즈음 치닫던 반일감정을 ‘왜색 근절’이라는 의지를 보임으로써 ‘민심 달래기용’으로 이용되었다는 설과 아울러 당시 정책구호였던 ‘재건’에 대한 ‘의욕 저하 설’ 등이 그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다른 하나는 주위 음반사의 작용설. 정작 당사자인 이미자씨는 후자에 더 비중을 두고 있는 듯하다. 그는 99년에 발간한 자전 에세이 ‘인생 나의 40년(황금가지刊)’에서 본인의 심경을 이렇게 적고 있다. ‘65년 한·일국교 정상화에 따른 주체성 확립 차원에서 본보기로 규제한 시대적 희생물이라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었지만 정작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이 노래를 너무 좋아해 청와대 영빈관에서 만찬이 있을 때마다 나를 불러 이 노래를 부르게 했다.’며 정말로 ‘동백아가씨’가 왜색이어서 정부가 금지시켰다면 일본에 대해 강경자세를 취했던 박 대통령이 그 노래를 내게 부르게 했을 리 없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권력층에서는 정작 이 노래의 금지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며 오히려 연속되는 빅히트로 상대적으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타 음반사가 극에 달한 ‘반일감정’에 편승, 심의실과 결탁해 여론몰이를 통한 ‘마녀사냥’에 나선 것이 아니겠느냐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해적판’까지 기승을 부리게 만든 ‘동백아가씨’ 신드롬은 우리 가요계에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된다. 미8군 출신가수들이 주축을 이루던 가요계가 트로트 붐으로 급선회했고 아울러 한국 최고의 메이저 음반사로 꼽히던 지구레코드사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피란 시절, 이북 출신 일곱명의 ‘38 따라지’들이 고물을 주워 모아가며 부산에서 설립한 미도파레코드사는 9·28수복 후 서울로 본거지를 옮긴다. 임정수·김능억 공동사장으로 운영되던 미도파는 동백아가씨가 ‘대박’을 터뜨리자 이듬해인 65년 1월부로 결별, 각각 독립한다. “두 공동사장이 분가할 때 그동안 미도파 라벨로 출시된 음원들도 똑같이 분배했지요. 그런데 정작 분가의 불씨를 제공한 선택 1호 ‘동백아가씨’ 만큼은 임정수 사장의 ‘지구’ 몫이었습니다. 미도파 전속 후 별다른 히트곡이 없던 작곡가 백영호씨의 그동안 밀린 월급을 임사장이 개인적으로 주어왔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지구’는 출발부터 돈방석에서 시작했습니다.” 당시 미도파레코드사에 근무하던 현 한국가요작가협회 김병환(68) 이사장의 증언이다. 결국 임 사장은 지구를, 김 사장은 그랜드를 각각 설립, 결별한 이후에도 미도파 당시에 출시한 동백아가씨 판매수익 지분을 놓고 법정싸움으로까지 비화되었다. 지구의 출발과 함께 ‘이미자 시대’는 본격적으로 막을 연다. 게다가 천재 작곡가 박춘석씨가 자신의 곡을 이미자씨에게 취입키 위해 자청, 지구에 전속된다. 작풍도 ‘이미자풍(風)’에 맞춰 트로트로 선회, 스스로 ‘제2의 전환기’를 맞는다. 이렇게 해서 60년대 빅 히트 3대요소인 ‘지구+박춘석+이미자’라는 진용을 갖추고 ‘섬마을 선생님’ ‘그리움은 가슴마다’ ‘흑산도 아가씨’ ‘기러기 아빠’ ‘황혼의 블루스’ ‘한번 준 마음인데’ 등을 잇달아 발표한다. 동시에 이미자씨는 백영호 곡인 ‘여자의 일생’ ‘아씨’ ‘서울이여 안녕’ ‘여로’, 그리고 손석우 곡인 ‘사랑했는데’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거침없는 질주를 계속했다. 쉴 새 없는 공연과 취입으로 그녀의 목은 늘 잠겨 있었다. 따로 연습할 시간조차 없어 ‘녹음이 곧 연습’이었다. 그럼에도 ‘타고난 목소리’에 대한 찬사는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의 성대를 연구하기 위해 일본의 한 연구기관이 그녀의 성대를 사들였다는 소문까지 전국에 파다하게 나돌기도 했다. 물론 낭설이었지만 이미자씨 역시 이 소문을 접했을 때 그리 나쁜 기분만은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백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천상의 목소리’ 그리고 ‘촌스러움’이라는 극단적인 평가를 동시에 받았던 이미자씨 노래는 89년 10월,30주년 기념공연을 기해 세종문화회관무대에 오른다. 처음 이 공연은 ‘공연장의 품위와 관객의 질적 수준 저하’라는 이유로 세종문화회관 운영자문위원회의 결사반대에 부딪혔던 일화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격이 낮다’는 노골적인 멸시를 받으며 막이 오른 이 공연은 정작 시작 첫날부터 세종문화회관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당시 민정당 박태준 대표, 평민당 김대중 총재, 민주당 김영삼 총재, 공화당 김종필 총재, 즉 당시 4당 총재부부가 나란히 관객석에 자리한 것이다. 한국인만의 정서를 대변하고 달래주었던 이미자 노래, 그 실타래 같은 노래 한가닥 한가닥은 서민의 밑바닥 정서부터 한국을 움직이는 최고 수뇌부까지 모두 하나로 묶는 소중한 ‘끈’이었던 것이다. (sachilo@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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