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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론] 정부가 없으면 공무원노조도 없다/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조직학박사

    [시론] 정부가 없으면 공무원노조도 없다/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조직학박사

    요즘 많은 분들이 공무원들의 사용자인 국민으로부터 사랑을 받아야 할 공직사회가 뭔가 어수선하고 안정감을 잃고 있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아마 전공노·민공노·법원노조 등 3개 노조가 통합해 거대 공무원노조가 나타났고, 이 노조가 바로 민노총 가입을 결정하면서 나온 우려 때문일 게다. 우려의 핵심은 통합노조의 민노총 가입이 공무원과 공무원노조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헌법과 관련 법률의 위반일 수도 있다는 주장이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데 있다. 헌법에 규정돼 있는 바와 같이,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특정 정당에 관계없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공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공무원들의 정치적 중립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만일 공무원들이 조직적으로 특정 정치세력을 지지한다고 상상해 보라. 우리 사회에서 막강한 파워를 행사하는 관료들이 특정 정파의 이익을 위해 뛴다면 그 폐해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결국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것은 부여된 직무를 공평무사하게 수행하고, 특정 정파의 이익을 위한 정치활동을 금지하며, 오로지 헌법의 근본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수호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필자는 공무원 노조의 민노총 가입 자체가 불법은 아니라고 본다. 민노총이 곧 정당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민노총이 민노당 창당의 중요한 모태가 되었고, 민노당 당원 중 가장 큰 비율이 민노총의 조합원들이라는 사실, 이미 여러 번 과시된 민노총과 민노당의 특별한 관계에 있다. 물론 일부의 주장이지만, 만일 민노총과 민노당이 실제로는 하나의 단체나 다름없고, 그런 측면에서 민노총은 정당적 노동단체라고 볼 수 있다면, 민노총 가입은 민노당에 가입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 경우 결국 공무원 노조의 민노총 가입은 공무원노조법 제4조의 정치활동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는 해석까지 가능할 것이다. 조합원의 의사보다는 정치투쟁 위주의 민노총, 여기에 대안세력이 못 되는 한노총, 또 위법논쟁을 일으키면서까지 민노총에 가입하는 공무원노조, 몇 달 전부터 가시화됐던 공무원노조의 민노총 가입 움직임에 사실상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한 정부 등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거의 모든 참여자들은 국민의 사랑에서 멀어지고 있다. 공무원노조가 민노총에 가입하는 것은 노조의 투쟁력을 높이는 데는 도움이 될 게다. 하지만 국민은 사실상 실직 위험도 없는 공공기관 노조원들의 임금 및 복지수준을 수많은 비정규직 근로자 및 사회 취약계층과 비교할 수밖에 없고, 이런 상황에서도 ‘이중의 보호막’을 치고야 마는 공무원노조의 행태에 실망하게 된다. 지난 9월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09년 국가경쟁력 평가결과’를 보면,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은 노사협력 부문이 131위, 고용·해고 관행에 대한 평가가 108위를 기록하는 등 투쟁적 노사관계가 그대로 반영됐다. 공무원노조가 국가경쟁력 하락과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가지 않기 위해선 노조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라는 미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공무원 노조는 자신들의 민노총 가입으로 민노총을 기사회생시키는 것에 감동할 국민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공무원노조는 “공무원이 먼저냐, 노조원이 먼저냐?” 하는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한다. 당연히 공무원이 먼저일 수밖에 없다. 정부라는 조직 없이는 그들이 우선 공무원 노조원이 될 수 없다. 정부가 없으면 공무원도 없고, 공무원노조도 없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조직학박사
  • 역대 日王 방한 추진사례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연합뉴스, 일본 교도통신과의 공동인터뷰에서 아키히토 일왕의 방한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의사를 밝힘으로써 내년 일왕의 방한이 급물살을 탈지 주목된다. 일왕의 방한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거론된 것은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 재임시절이다. DJ는 대통령 후보시절부터 한·일 과거사 문제를 종결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일왕의 방한 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그러나 대통령 당선 직후인 지난 1998년 1월 일본이 일방적으로 한·일 어업협정을 파기하자 DJ는 일본 정부의 방침을 비난하면서 “일본과의 관계를 다시 세우려는 목적으로 일왕의 방한을 위한 여건을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일왕 방한 추진을 포기하는 듯했다. 하지만 취임 이후 DJ는 당시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일왕의 방한 문제를 다시 거론하며 긍정적 입장을 밝혔다. 일왕의 방한 문제가 기존의 한·일 정상회담에선 단 한 번도 논의된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특히 DJ는 지난 1999년 한·일 각료 간담회 참석차 제주도를 방문한 오부치 게이조 당시 일본 총리에게 “앞으로 오부치 총리와 협력해 아키히토 일왕 방한과 월드컵의 성공적인 공동개최를 이루고 싶다.”고 밝혀 일왕 방한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협력을 당부했다. 이에 따라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식에 아키히토 일왕의 방한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으나 결국 일본 정부의 반대로 성사되지는 않았다. 앞서 김영삼(YS) 전 대통령도 취임 이후 군사정부와 문민정부와의 차별성을 위해 일왕 방한을 추진했으나 국내 종군위안부 등 반일 여론에 의해 성사시키지 못했다. 이와 관련, 외교부 관계자는 “과거 대통령들은 대부분 일왕의 방한을 추진했기 때문에 정부가 일왕의 방한을 계속 초청해 놓은 상태라고 보면 된다.”면서 “그동안 일본측에서 일왕의 방한에 대해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사선 다섯번 넘어… 민주주의 유토피아 꿈꿨다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사선 다섯번 넘어… 민주주의 유토피아 꿈꿨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인동초’, ‘행동하는 양심’으로 불리며 반세기 한국 정치사를 풍미했다. 한국 정치사에서 ‘3김(金)시대’의 한 축이었던 고인(故人)은 1997년 겨울, 반세기만에 ‘선거혁명’을 통한 정권교체를 이뤘다. 3전4기로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외환위기를 극복했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한반도 정세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5차례의 죽을 고비와 5년여의 감옥생활, 6년여의 가택연금, 3년의 망명생활 등 고인의 삶은 견디기 어려운 시련으로 점철됐다. 가톨릭 세례명인 ‘토마스 모어’처럼 고행하는 구도자의 삶을 이어온 셈이다. “정이 많은 분이다.” 영원한 비서실장인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을 이같이 묘사했다. 말년에도 거의 매일 서울 동교동 자택을 드나든 박 의원은 “지난 1월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방문해 용산참사에 대해 말을 꺼내자 이내 김 전 대통령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면서 “평소에도 드라마 속 (비참한) 사람들을 보며 눈시울을 붉힐 만큼 평소 인정도 많으셨다.”고 전했다. 말년에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등장과 맞물려 케네디 전 대통령과 관련된 책을 탐독하고 여론주도층을 만나 서민과 비정규직을 위한 사회 안전망, 생산적 복지를 강조했다고 한다. 전남 목포에서 뱃길로 150리. 김 전 대통령은 1924년 매서운 바닷바람을 등진 하의도라는 작은 섬에서 3남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에는 지금도 생가터가 남아 있다. ‘후광’(後廣)이라는 호(號)도 여기서 따왔다. 중농의 아들이었던 그는 목포상고(현 전남제일고)에 수석 입학한 수재였지만 반일운동으로 학적부에 ‘시찰계요’라고 적힐 만큼 반골기질을 드러냈다. 1945년 약관의 나이에 ‘건국준비위원회’와 조선 신민당에 입당했지만 8개월 만에 탈당한다. 이어 3단계 통일방안(1972년)과 광주 민주화운동(1980년) 등을 거치면서 색깔론에 휘말렸다. 고인은 1946년 첫 부인 차용애 여사와 가정을 꾸리고 해운회사를 경영, 큰돈을 모은다. 뛰어난 상술로 목포일보를 인수한 뒤 주필을 겸하기도 했다. 자금을 끌어대고 경쟁상대를 꺾으며 사람의 마음을 낚는 장사와 정치는 닮은꼴이다. 1950년 한국전쟁 때는 우익단체 참여를 빌미로 인민군에게 처형될 위기에 몰렸지만 이송 중 극적으로 탈출, 첫 죽음의 고비를 넘긴다. 1954년 3대 민의원 선거에서 목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며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3대를 포함, 4차례 낙선의 쓴잔을 연거푸 마셨다. 1958년 강원도 인제군 민의원 선거 때는 후보등록이 취소됐고, 1959년 보궐선거에선 색깔론에 휘말렸다. 4·19혁명이 일어난 1960년 선거에서도 낙선했다. 1961년 인제군 보궐선거에서 당선의 첫 기쁨을 누린 김 전 대통령. 하지만 사흘 만에 5·16을 맞아 반혁명사건에 연루돼 교도소로 직행한다. 토머스 모어의 교훈은 오히려 고난 극복의 힘이 됐다. “늦어도 100년 뒤면 (토머스 모어처럼) 역사에서 재평가받을 것”이라며 고통을 이겨냈다. 1962년 이희호 여사와 재혼한 고인은 이듬해 목포에서 민주당 후보로 공화당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 1964년 5시간20분간 행한 ‘필리버스터’ 발언과 6개월간 13차례 본회의 발언 등은 지금도 기록으로 남아 있다. 1971년 7대 대선은 기회이자 시련의 계기였다. 1970년 45세의 나이에 ‘40대 기수론’의 라이벌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물리치고 신민당 후보로 나섰지만 이듬해 선거에선 94만표 차로 패배했다. 이후 20년간 혹독한 시련이 밀려왔다. 일본 망명 중인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을 시작으로 전두환 군사정권까지 55차례의 연금생활, 5년반 동안의 감옥생활, 2차례의 망명생활을 겪었다. 1976년 명동 3·1구국선언으로 구속(긴급조치 9호 위반)됐고, 1981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훗날 고인은 “솔직히 죽는 것이 두려웠지만 영원히 사는 길을 택했다.”고 회고했다. 가톨릭계의 구명운동 덕에 목숨을 건진 고인은 1982년 도미, 두 번째 망명길에 오른다. 한국인권문제연구소와 민주화추진협의회를 이끌며 민주화 운동의 외로운 무게중심이 됐고, ‘인동초’란 별칭도 얻게 된다. 1985년 12대 총선을 앞두고 전격 귀국한 고인은 김포공항에서 연행돼 가택연금에 처해졌다. 하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만든 신한민주당이 2·12총선에서 109석을 확보, 1987년 6월 항쟁의 기틀을 마련한다. 사면복권 뒤 1987년 13대 대선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3위에 머무르며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후보 단일화 실패에 따른 비난에 휩싸였다. 1988년 총선의 평민당 ‘황색 돌풍’으로 일선에 복귀했지만 1992년 12월 대선에서 패배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한다. 고인은 “40여 년의 파란 많았던 정치생활에 사실상 종막을 고한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며 대선 낙선의 소회를 곱씹었다. 막을 내릴 것 같던 정치인생은 영국으로 건너간 지 6개월만에 다시 불꽃을 살렸다. 1993년 귀국해 아태평화재단을 설립했고, 빗발치는 비판 여론을 무릅쓰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이듬해 총선에서 제1야당으로 올라서자 대선 4번째 출마를 선언한다. ‘대통령병 환자’라는 비난이 일었지만 단 1.6%포인트의 표차이로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색깔론과 지역감정의 벽을 넘었다. 보수세력인 자민련과의 DJP연합이 힘이 됐지만, 역설적으로 색깔과 지역의 부조화스러운 조합이기도 했다. 고인의 대표 브랜드는 ‘햇볕정책’이다. 반세기 동안 닫혔던 북쪽의 문을 열게 하는 열쇠로, 서독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과 궤를 같이한다. 이를 바탕으로 이뤄진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가 ‘레드 콤플렉스’를 벗어던지고 탈냉전체제로 진입하는 촉매제가 됐다. 고인을 한반도 유일의 노벨상 수상자로 만든 일대 사건이었고, 퇴임 뒤에도 논쟁이 있는 사안에 대해 비중있게 언급할 수 있는 유일한 지위를 부여했다. 고인은 대통령 임기말 측근들의 비리가 뒤늦게 터진 데다 아들들이 구속되는 등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다. 6·15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북한과 밀거래한 사실은 안타까운 기록으로 남게 됐다. 또 완벽주의와 제왕학적 리더십은 권위주의적 통치라는 오명도 남겼다. 오상도 허백윤기자 sdoh@seoul.co.kr
  • [2030] 직장인들이 말하는 아부의 기술

    [2030] 직장인들이 말하는 아부의 기술

    “아이 선배님~ 선배님 없으면 제가 어떻게 살았겠어요~.” 분장실에서 벌어지는 선후배 사이의 권력관계를 적나라하게 그린 한 방송 프로그램이 요즘 인기다. 그 중에서도 후배에겐 윽박지르고 선배에겐 아양떠는 캐릭터가 폭소를 자아낸다. 선배의 말이라면 “무조건 맞다.”며 온갖 아부를 서슴지 않는 모습은 마치 ‘아부의 기술’이 현대사회에서 꼭 필요하다는 걸 방증하는 것 같아 씁쓸함마저 자아낸다. 2030들이 생각하는 ‘아부의 기술’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아부의 현실과 한계는 무엇인지 들어 봤다. 아부를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은 없을 터. 단지 “사회생활을 하는데 유용하기 때문에” 하는 경우가 태반일 것이다. 2030세대들은 ‘회사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상사와의 인간관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아부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서울의 한 동사무소에서 복지 업무를 3년째 맡아 하고 있는 강모(28)씨는 ‘앓는 소리’의 귀재다. 민원인들과 하루종일 씨름을 하고 나면 선배들에게 달려가 하소연하는 것이 강씨의 하루 일과다. 동사무소에 있다 보면 가끔 난감한 민원인을 만날 때가 있다. 술 마시고 매일 같이 동사무소에 찾아와 “이번 달 보조금이 5만원이나 빈다.”며 강씨를 사기꾼으로 몰아가는 할아버지도 있고, 5분마다 한 번씩 전화를 걸어 ‘인감을 떼어 와라, 몸이 아파 꼼짝도 못하겠으니 밥을 시켜 달라.’며 괴롭히는 할머니도 있다. 이런 민원인들을 오랫동안 숙련되게 다뤄온 선배들의 노하우를 얻는 것이 강씨에겐 꼭 필요한 일이다. 노하우를 얻기 위해 강씨가 쓰는 방법은 자신의 무능력을 한탄하는 것. “선배들이 딱하다며 혀를 끌끌 찰 정도로 제 자신을 비참하게 만든 뒤 ‘난감한 민원인을 훌륭하게 처리해온’ 선배들을 치켜 세우죠. 그럼 선배들은 제게 노하우를 털어 놓기 시작해요.”라고 강씨는 말했다. 선배들은 “지금은 동사무소에서 민원인 치다꺼리를 하면서 고생해도 열심히 하면 시청으로 발령날 수도 있고 승진도 바라볼 수 있다.”며 진심어린 충고도 잊지 않는다. 강씨는 “아부가 목적인 아부는 의미가 없어요. 아부를 통해서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직장생활 노하우를 얻는 게 더 현명하죠.”라고 말했다. 효과 만점 ‘아부의 기술”에 대해 많은 2030들이 고민을 하고 있었다. 대놓고 아부를 하는 것과 은근슬쩍 아부를 하는 것을 놓고 어떤 방법이 더 효과가 있을지 결정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로 보였다. 해운회사 늦깎이 신입사원인 임모(31)씨는 ‘정공법’을 선택한 케이스다. 자신을 망가뜨리면서 회사내의 귀염둥이가 되는 것. 이런 방법으로 임씨는 입사 반년 만에 상사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임씨가 말하는 비결은 “선배들이 시키면 무조건 하고 능력을 120% 발휘하면 된다.”는 것. 임씨는 신입사원 연수 때부터 동기 30여명 가운데 가장 눈에 띄었다. 뛰어난 언변과 유머감각으로 과제수행 프레젠테이션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의 주무기는 뒤풀이 때 빛을 발했다. 술은 주는 대로 마셨고 노래는 트로트부터 랩까지 소화하면서 코믹 댄스까지 곁들였다. 과장, 부장은 물론 이사급 이상 임원진도 임씨를 보며 배꼽을 잡고 웃었다. 마케팅 부서에 배치된 임씨는 첫주부터 거래처 고객의 술자리에 불려 나갔다. 매주 두차례 이상 같은 부서의 김모 과장을 따라 술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노래와 춤 실력을 선보였다. 분위기 메이커인 임씨를 ‘영업에 최대한 활용하라.’는 임원진의 주문이 있었다면서 김 과장은 임씨에게 미안해 했다. 물론 매번 과음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과격하게 몸을 흔들고 난 뒤 온 몸이 쑤시는 아픔도 있다. 그러나 임씨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게 제 능력이죠. 그 능력으로 상사들에게 인정받는다면 회사에서 입지를 굳히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라고 되물었다. 그는 “기쁨조가 되어서 상사를 즐겁게 하는 게 아부의 정공법”이라고 정의내렸다. 올해 초부터 서울 한 중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하기 시작한 김모(26)씨는 요즘 ‘포인트 아부’에 대해 배우고 있다. 같은 대학 출신의 선배 교사 A씨에게서다. 김씨는 A씨에게 업무처리법부터 시작해 교무실의 다른 선생님들의 성향까지 크고 작은 정보를 얻어 왔다. 사회생활이 처음인 김씨는 A씨의 업무처리 능력과 대인관계 조절능력에 큰 감명을 받았다. 당연히 A씨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며 지내게 됐다. 그러던 어느날 A씨와 저녁식사를 함께 하던 김씨는 ‘놀라운 비밀’ 한 가지를 듣게 됐다. “내가 학교 생활 잘 하는 비결 하나 가르쳐 줄까?”라며 A씨는 자신의 ‘처세술’ 강의를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윗사람에게 잘 아부하는 방법’이었다. “드러내 놓고 아부하는 것처럼 바보 같은 짓이 없어요. 가장 최고급 아부는 하는 듯 안하는 듯 은은하게 하는 거야.”라고 설명하는 A씨의 ‘아부 병기’는 ‘포인트 아부’였다. 우선 아부가 잘 먹힐 만한 상사를 몇 사람 정해 놓는다. 대학 선배라든가 고향 선배, 혹은 지인의 지인 등등이 좋은 예다. 그런 뒤 정말로 ‘응원의 한 마디’가 필요한 시점에 한 마디를 툭 던지고 지나간다. 예를 들어 상사가 내놓은 의견이 교무회의에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을 때 회의 직후 “그 아이디어 좋았는데 왜 그렇게 됐을까요.”라며 심정적 지지를 하는 식이다. 어려울 때 지원을 받은 상사들은 A씨를 잊지 않고 꼭 챙기게 된다는 것이다. 김씨는 A씨의 얘기를 들으며 “아부 고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란 생각을 하게 됐다. 은행원 박모(28)씨도 ‘은은한 아부’의 예찬자다. 박씨는 “아부 덕분에 5년 전 군생활을 편하게 했다.”고 당당히 말한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아부의 달인’이었는데, 박씨가 세운 아부의 두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원칙은 ‘남에게 들은 말을 활용해 아부하라.’는 것. 다른 사람이 칭찬한 것을 전해 주는 식으로 선임병에게 아부하라는 원칙이었다. 예컨대 부대의 한 장교가 ”김 병장이 평소보다 일찍 나왔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이등병이었던 박씨는 “아무개 장교가 김 병장님이 너무 성실해 일을 맡기는 게 가장 미더운 사병이라고 하더라.”라고 전하는 식이었다. 남의 의견을 포장해 전하면 자신의 의견인 양 말할 때보다 아부의 효력이 배가된다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두 번째 원칙은 ‘구체적으로 하라.’였다. “많은 후배들이 든든한 김 병장님을 믿고 따른다.”고 추상적으로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김 병장님은 아침저녁 내무반 쓰레기통을 손수 비우실 정도로 사소한 일에도 모범을 보여 후배들이 믿고 따른다.”며 콕 집어 아부하는 것이다. 박씨는 “아부의 다른 말은 칭찬”이라면서 “적절한 아부 덕분에 내가 실수를 해도 선임들이 크게 혼내지 않고 웃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털어 놓았다. 과유불급이라는 말도 있듯이 지나친 아부는 자신을 해친다. “이렇게까지 해서 사회생활을 해야 하나.”라는 자괴감에 빠지기 십상이다. 또 지나친 아부는 ‘역효과’를 불러와 왕따를 자초하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2년차 직장인인 심모(29)씨는 요즘 자괴감에 빠져 있다. “나도 닳고 닳은 사람이 다 됐구나.” 하는 생각에서다. 공대를 나온 심씨는 대학 때만 해도 ‘아부’가 무엇인지조차 몰랐다. 남자들이 많은 공대의 특성상 ‘아부’는 그저 ‘낯 간지러운 소리’로 치부됐기 때문이다. 심씨가 본격적으로 ‘아부’를 배운 곳은 군대였다. 행정병으로 일한 심씨는 사무실에서 난무하는 은근한 아부를 목격하며 충격을 받았다. 선임병 치켜 세우기는 기본이고 초코파이를 건네는 등 물량 공세도 서슴없이 진행됐다. 군대에서 아부의 ‘기본기’를 익혔다면, 회사에서는 ‘응용편’을 써야 했다. 마케팅 업무를 맡고 있는 심씨는 ‘라인’을 만들기 위해 온갖 아부를 서슴지 않는 동료와 선배들을 보면서 “나도 가만히 있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심씨가 보기엔 기발하지도 않은 상사의 아이디어에 “그것 괜찮겠네요.”라고 공치사를 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하다 보니 ‘추진력’이 붙었다. 이제 “팀장님 요새 아이디어가 샘솟으시나 봅니다.” 같이 낯뜨거운 말도 익숙해졌다. 심씨는 “사회생활을 하려면 어느 정도의 아부는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속마음과 다른 말을 일상적으로 하려니 스트레스가 밀려 온다.”며 씁쓸해 했다. 2년차 회사원인 김모(27)씨는 지나친 아부로 역풍을 맞은 케이스. 김씨는 요즘 점심을 혼자 먹는 ‘대굴욕’을 감당하고 있다. 2개월 전 새로 부임해온 팀장에게 지나치게 아부를 했다가 주위 동료들의 견제를 당한 것. “처음에는 팀장님 몰래 책상에 꽃을 갖다 놓거나, 음료수를 살짝 놓거나 하는 방법으로 관심을 끌려 했어요. 그러다가 팀장님 집이 저희 집과 같은 방향이라는 걸 알고 아침에 제 차로 모시러 가겠다고 팀장님께 귀띔을 드렸어요. 그렇게 일주일 동안 눈도장을 열심히 찍었죠.” 문제는 김씨가 팀장과 함께 출근을 하는 사실이 일주일 만에 들통난 것. 동료들은 “김씨가 너무 튀려 한다.”며 견제를 하기 시작했다. 결국 김씨는 동료들에게 ‘왕따’를 당하고야 말았다. 김민희 유대근 오달란기자 haru@seoul.co.kr
  • “안중근 의거 中의 반일 애국주의 교과서”

    “안중근 의거 中의 반일 애국주의 교과서”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26일 하얼빈역에서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하얼빈 의거는 조선의 독립 의지와 일본의 침략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린 역사적 사건이었다. 올해 100주년을 맞아 안중근 의거가 한·중·일 등 국제사회에 미친 영향을 재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안중근 의거의 국제적 영향’을 주제로 학술심포지엄을 연다. 손염홍 건국대 교수가 미리 배포한 발표문 ‘안중근 의거와 중국의 반제 민주운동’에 따르면 안중근 의거 직후 중국 혁명파와 입헌파의 평가는 엇갈렸다. 그러나 5·4운동이 끝나고 신민주주의 혁명기에 들어가면서 안중근 의거는 반일 애국주의 교육의 상징으로 부상하고 교과서로 활용돼 다양한 방식으로 중국 혁명에 계속 영향을 미쳤다. 특히 박은식이 1914년에 발간한 ‘안중근’ 전기는 안중근 의거가 단순히 한국의 원수를 갚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동양의 평화를 위한 것임을 강조함으로써 한·중이 연대해 반제 항일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사상적 기초가 됐다고 손 교수는 분석했다. 안중근은 1907년 가을부터 1909년 10월까지 러시아 한인사회를 두차례 순방하며 동의회와 동의단지회를 결성하는 등 러시아지역 항일운동을 주도했다. 반병률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러시아에서의 안중근의 항일독립운동에 대한 재해석’에서 “안중근의 거사는 한인단체들이나 한민학교의 연설회, 연극 등의 행사에 단골 주제로 등장해 러시아 지역 한인들의 항일의식과 독립의지를 고취시켰다.”고 했다. 안중근 의거에 대해 일본 사회는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이규수 순천향대 교수는 “일본 언론계는 안중근에 대해 ‘미친 개’라는 표현을 주저하지 않았고, 안중근으로 상징되는 조선인의 저항에 대해서도 ‘괴물’ ‘마물’이라는 극단적인 멸시감을 유포했다.”면서 “이토 공을 죽인 한국을 멸망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언론의 비호를 받으면서 더욱 확산되었고, 이후 한국 강점을 주장하는 논리로 발전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안중근 의사의 업적에서 그가 주창한 ‘동양평화론’을 빼놓을 수 없다. 안중근은 뤼순 감옥에서 자서전을 탈고한 뒤 ‘동양평화론’ 집필을 시작했으나 끝맺지 못했다. ‘안중근 의거와 동양평화론의 현대사적 의의’를 주제로 발표하는 윤경로 한성대 교수는 ▲뤼순의 개방 ▲한·중·일 3국 평화회의 구상 ▲공동은행 설립 ▲공동 군단 설립, 교육 ▲상공업 발전 ▲로마 교황으로부터 3국 독립보장 등을 동양평화론의 핵심으로 요약했다. 윤 교수는 “오늘의 유럽공동체(EU)와 같은 아시아 경제공동체를 100년 전에 이미 구상했던 것은 참으로 놀라운 탁견이자 예지”라면서 “안중근 의거와 동양평화론은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를 위한 평화운동이며, 이 점이 안중근 의거의 현대사적 메시지”라고 말했다. 심포지엄에서는 이 외에 윤병석 인하대 명예교수가 ‘안중근 의거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 기조연설하고, 장석흥 국민대 교수가 ‘안중근 의거의 국제성과 그 영향’을 주제로 발표한다. 한시준 단국대 교수, 방광석 고려대 교수, 윤선자 전남대 교수 등이 토론자로 참여하고, 신용하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주도로 종합토론이 이어진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고미영씨 사고로 본 한국 고봉등정] 대책은 없나

    산악 전문가들은 히말라야에서 유명을 달리한 고미영(42) 대장의 사고에 대해 “불확실성에 대한 탐험가의 무한도전도 좋지만 기록경쟁에 휘둘리는 상황을 사실상 방관하는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다.”고 꼬집는다. A씨는 13일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가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게 고난도 등반엔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를 간과할 경우 불상사의 우려를 안고 등반하게 된다는 얘기다. 짧게는 대학 때부터 고봉(高峰)을 오르는 데 기초적인 경험을 쌓아야 최고 난이도의 산악을 오를 수 있는 근력과 기술을 익힐 수 있다. 예컨대 8000m가 넘는 최고봉 등정을 위해서는 대규모 원정대에 연습생 신분으로 거리별 경험을 차례로 해야 한다고 A씨는 덧붙였다. 반면 고씨는 클라이밍 분야에서 세계적인 선수였지만 고산 등반에선 2006년 히말라야 6위 봉우리인 초오유(8210m) 등정으로 단박에 첫발을 내디뎠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외국의 경우 한번 등정에 짧아도 50일 이상, 길면 3개월이 걸릴 정도로 충분한 시간을 두는 것도 곱씹어 볼 만하다. 해발 2500m 정도부터 산소 부족으로 생기는 고산 증세는 베테랑 산악인에게도 위협적이기 때문. 그래서 하루 400∼500m씩 고도를 높여 베이스캠프까지 걸어가고, 6000∼7000m까지 올라가 고산 적응을 충분히 한 뒤 정상 공격에 나선다. 지난 3월에 출국한 오씨와 고씨도 이같은 방법으로 5월에서야 정상에 섰다. 그러나 한 번 정상에 선 뒤에는 별도의 고산 적응이 필요 없다. 이 때문에 이들은 첫 등정 성공 뒤 베이스캠프로 내려와 다음 목표의 베이스캠프까지 헬리콥터로 이동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단축했다. 김남일(47) 서울산악연맹 청소년위원장 겸 구조대장은 “고씨가 올해 안에 14좌를 모두 오르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면서 “뒤늦게 시작했지만 경쟁자들을 따라잡으려고 어려운 일을 꿈꾼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한산악연맹 이의재 사무국장은 “히말라야 등 고봉에 도전하는 연간 150~160명을 지원하기는 벅찬 현실”이라면서 “고씨나 오씨와 같이 최고 난이도의 기술과 장비를 동반하는 경우 안전에 유의하라는 당부 말고는 딱히 할 수 없다.”고 털어놨다. “천천히 음미하며 등반을 해야 하는데 스포츠처럼 경쟁하다 보면 무리가 따른다.”는 산악인 허영호(55)씨의 말은 자연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진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톈안먼 아닌 농촌으로 가라”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중국 현대사의 기념비적 사건인 ‘5·4운동’ 90번째 기념일인 4일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에는 당시 울려퍼졌던 학생들의 함성은 들리지 않았다. 대신 ‘우이제(5·1節) 휴가’를 맞아 중국 각지에서 올라온 관광객들만이 광장을 가득 메웠다. 광장 주변에는 베이징시 공안(경찰)의 삼엄한 경계가 여전했다. 이 같은 ‘풍경’은 10월1일 중국 건국 60주년 기념일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중국의 양대 지도자인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5·4운동’ 기념일을 앞두고 각각 베이징 시내 대학을 찾아 학생들을 만났다. 후 주석은 2일 중국농업대학, 원 총리는 3일 칭화(淸華)대를 방문, 5·4운동의 주역인 대학생들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들이 건넨 대화의 요지는 “톈안먼이 아닌 농촌과 변방을 파고들어 이상을 키우라.”는 것. 후 주석 등은 ‘톈안먼’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21세기 중국이 젊은 대학생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애국주의’이며 애국의 뿌리를 키우기 위해서는 ‘농촌과 변방’에서의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원 총리는 곧 농촌과 서부 변경지역 등으로 떠날 칭화대 졸업생들에게 “조국의 서부와 기층민중에 뿌리내리는 견실한 씨앗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며 “그것이 (지금의 대학생들이) 국가에 봉사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후 주석도 학생들에게 “애국심을 갖고 근면하게 일해 조국의 부흥에 기여하라.”며 “자발적으로 기층조직에서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두 지도자가 5·4운동 기념일에 대학을 찾아 농촌과 기층, 변경 등을 거론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대목으로 해석된다. 한 달 뒤(6월4일)로 다가온 톈안먼 사태 20주년과 무관치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 5·4운동이나 톈안먼 사태나 모두 대학생들의 톈안먼광장 시위로 시작됐다. 5·4운동은 반제국주의, 반일, 반군벌의 기치를 내세운 반면 톈안먼 사태는 중국 공산당 개혁이 테마였다. 비록 목적과 주장이 달랐지만 70년 시차로 발생한 중국내 양대 학생운동의 동기는 같았다. 베이징의 한 외교소식통은 “중국 정부는 5·4운동을 기점으로 하는 중국 학생운동이 더 이상 반정부 시위로 번지지 않길 바라고 있다.”며 “서부와 농촌 진출을 독려하는 것도 애국주의 고취와 함께 이런 희망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stinger@seoul.co.kr
  • 한국 폄하 만화 ‘혐한류 4’ 출간 논란

    한국 폄하 만화 ‘혐한류 4’ 출간 논란

    한일 양국에서 논란을 불러 일으킨 일본 만화 ‘혐한류’(マンガ嫌韓流) 시리즈 4편이 오는 30일 출간된다. 이 시리즈의 저자인 우익작가 야마노 샤린(山野車輪)은 지난 24일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4편의 내용은 ‘재일한국인 특집’이라고 밝혔다. 일본에서 ‘혐한류’ 시리즈를 출판하는 ‘신유샤’(晋遊舎)는 자사 홈페이지(shinyusha.co.jp)에 특집 사이트를 만들어 “몇 년 안에 재일한국인은 내정간섭을 할 수 있는 ‘외국인참정권’과 언론탄압을 합법화하는 ‘인권옹호법’을 손에 넣어 일본을 탈취하는 최종단계에 돌입한다.”는 자극적인 광고 문구를 내세워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2007년 출간된 3편에 이어 2년 만에 등장한 이번 4편도 “재일한국인의 일본침략”, “재일 한국인이 일본에 강제 연행됐다는 주장은 특권과 돈을 받아내기 위한 사기도구”, “외국인참정권과 인권옹호법은 일본을 망치는 무기”라는 자극적인 타이틀이 실려 있다. 또 한국을 “성범죄대국”으로 칭하며 “강간민족의 기원”, “슬픈 속국의 역사”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 2005년 1편이 처음 출간된 ‘혐한류’ 시리즈는 재일한국인 차별문제, 반일문제 등을 다루며 한국사를 왜곡해 큰 논란을 일으켰다. 출판사 측은 이 시리즈가 총 9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현지에서 큰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amazon.co.jp 문설주기자 spirit0104@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박홍환 특파원 베이징은 지금] 후야오방 20주기 앞두고 초긴장

    최근 베이징에서 친목 모임을 가지려던 한 외국인 단체는 베이징시 공안 당국으로부터 집회불허 통보를 받았다. 지난해까지는 아무런 제재도 없이 모임을 가졌던 터라 여러차례 재고를 요청했지만 공안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이 단체는 베이징시 경계를 벗어난 허베이(河北)성의 한 소도시로 장소를 옮겨 모임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티베트 봉기 50년(3월10일)을 무사히 넘긴 중국이 이번엔 톈안먼(天安門) 사태 20년(6월4일)이 가까워짐에 따라 또다시 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특히 15일은 톈안먼 사태를 촉발시킨 계기가 된 후야오방(胡耀邦)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20주기여서 중국 공안 당국은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후야오방은 중국의 혁명 1세대 가운데 대표적인 개혁주의자. 1981년 6월 공산당 제11기 6중전회(제6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마오쩌둥(毛澤東)의 오류를 비판하면서 총서기에 선임됐으나 87년 1월 반일시위에서 비롯된 대학생들의 민주화 시위에 온건하게 대처했다는 이유로 덩샤오핑(鄧小平)에 의해 실각했다. 그로부터 2년여 뒤인 1989년 4월15일 후야오방이 사망하자 대학생들은 잇따라 애도 집회를 가지면서 정부에 대대적인 민주개혁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사흘 뒤 대학생 1000여명은 최고 권부인 중난하이(中南海)로 몰려가 후야오방의 복권을 요구했고, 장례식이 치러진 4월21일 대학생 20만명이 톈안먼 광장에 운집, 사태는 더욱 확대됐다. 톈안먼 광장에서의 대학생 단식투쟁 등에 대한 동조여론이 확산되는 등 사태가 심상치 않게 전개되자 중국 지도부는 결국 강제진압을 결정, 6월4일 인민해방군을 톈안먼 광장에 투입했다.중국 정부가 그의 20주기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그의 개혁정신에 대한 복권 요구가 가져올 폭발력 때문이다. 그의 탄생 90주년인 2005년 일부 복권 시도가 있었고, 그를 기리는 홈페이지(www.hybsl.cn)도 개설됐지만 중국에서는 아직도 톈안먼 사태와 관련된 부분은 이야기하는 것이 금기시돼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 13일 사상 처음으로 참정권의 확대와 인권개선 방안 등을 담은 인권행동계획을 발표했다. 톈안먼 사태 20주년을 앞둔 시점이라는 점에서 ‘민심 달래기’가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stinger@seoul.co.kr
  • [김문 전문기자 인물 프리즘] 네팔에 초등학교 짓는 산악인 엄홍길

    [김문 전문기자 인물 프리즘] 네팔에 초등학교 짓는 산악인 엄홍길

    그것은 한 사나이가 히말라야 산신(山神)과 주고 받은 숙명의 약속이었다. “제발 나를 (산에서)살려 보내주신다면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키우는 데 일생을 바치겠나이다.”라고 20년 동안 간절히 빌고 빌었다. 마침내 사나이는 신의 가호 아래 2007년 5월 히말라야 16좌를 세계 최초로 완등했다. 그리고 이제 네팔의 어린이들을 가슴으로 품기 시작했다. ●교실·강당 갖춘 현대식 건물… 내년초 완공 영원한 산악인 엄홍길(49·㈜ 에델바이스)씨. 지난해 12월 ‘불멸의 도전’ 사진집을 출간할 때였다. 20년 산악인의 인생을 회고하면서 환경파괴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기후변화 현장 탐험가’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고 천명했다. 아울러 자연사랑, 인간사랑, 꿈과 희망의 전도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취지에서 지난해 ‘엄홍길 휴먼재단’(이사장 김앤장 대표변호사 이재후)이 설립됐다. 그 첫번째 프로젝트가 바로 네팔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를 짓는 것. 이달 말 엄씨는 휴먼재단 일행 30여명과 함께 출국해 다음달 5일 어린이날을 맞아 네팔의 쿰푸히말라야 팡보체 마을에서 기공식을 갖는다. 규모는 2개의 교실과 강당이 있는 현대식 건물로 내년 초 완공된다. 이에 앞서 4일부터 한 달동안 서울 종로구 구기동 ‘시우터 아트 무한스페이스’에서 ‘희망, 그 새로운 도전’이라는 엄씨의 에베레스트 사진전이 열린다. 히말라야 16좌의 아름답고 고요한 정상의 모습, 등반일지 속에 담긴 성공과 실패를 통해 아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기 위해 마련됐다. 수익금은 네팔 어린이들의 배움터를 만들어주는 데 쓰인다.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 지하 전통찻집에서 엄씨를 만나 악수를 했더니 역시 히말라야 산 사나이의 기(氣)가 강한 전율로 다가왔다. 먼저 네팔에 초등학교를 짓게 된 동기부터 물었다. “1985년부터 히말라야 등정에 나섰지요. 첫번째도 실패했고 이듬해 등정할 때도 실패했습니다. 두번째에는 네팔 팡보체 마을에 살고 있던 셰르파와 동행했는데 기상악화로 불행하게도 추락사를 당해 시신도 못 찾았습니다. 당시 그는 결혼한 지 3개월밖에 안 됐지요. 1988년 세번째 등정에 성공한 뒤 팡보체 마을에서 유가족인 부인과 어머니, 여동생과 자녀도 만났습니다. 그때 제가 학교를 짓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곳에는 어린이가 50여명이 사는데, 초등학교 시설이 열악해 제대로 배우질 못하는 상황이었지요. 결국 제가 목표를 이루고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도 히말라야 신의 보살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산간오지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 주고 싶어 팡보체 마을이 어떤 곳이냐고 했더니 “수도 카트만두에서 소형 비행기를 이용해 해발 2700m 지역에 내린 다음 3박4일 동안 걸어가야 하는 네팔 북부의 산간오지”라고 하면서, 작년 연말에도 치과의료 봉사단원들과 다녀왔으며 이번에도 의료봉사도 하고 문구용품 전달식도 가질 예정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어 자신의 청춘 대부분을 히말라야에서 무사히 보낸 만큼 앞으로는 그 보답을 하는 삶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사망한 셰르파 부인은 여전히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그동안 등정을 하면서 동료도 잃고... 살아남은 자로서 유가족을 지키고... 현지 어린들에게 희망과 꿈을 주는 일을 해야지요.” 상명대 석좌교수로 일주일에 6시간 강의를 한다는 그에게 어떻게 하면 주말 산행에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느냐고 했다. 무작정 오르지 말고 산을 사랑하고 속삭이라고 하면서 “알파인 스틱 두 개를 사용해 오를 때는 짧게, 내려올 때는 조금 길게 하면 덜 힘들고 안전하다.”고 조언했다. 슬하에 1남1녀를 둔 그는 주말을 이용해 지인들과 함께 도봉산과 북한산 등을 산행한다.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日언론 “김연아 방해 발언, 일방적이다”

    日언론 “김연아 방해 발언, 일방적이다”

    일본 언론이 김연아 선수에 대한 일본 선수들의 고의적인 연습방해 지적에 대해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둔 라이벌 견제”라며 반박하고 나섰다. 지난 14일 김연아 선수가 SBS와의 인터뷰에서 지난달 캐나다에서 열린 4대륙피겨스케이팅선수권대회 때 연습방해를 받았다고 밝힌 뒤 인터넷 상에 이와 관련된 동영상이 유포되면서 많은 한국 팬들이 분노했다. 이에 일본 ‘스포츠호치’는 16일 “한국 TV방송국이 김연아 선수가 일본 선수에게 방해를 받았다고 보도했다.”며 “이 영상이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 퍼져 반일 감정이 폭발하는 등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일본 스케이트 관계자들이 김연아 선수의 발언에 곤혹스러운 기색”이라며 일본 스케이트 연맹 이토 히데히토 피겨 위원장의 해명을 함께 소개했다. 이토 위원장은 일단 김연아 선수의 발언에 대해 몰랐다는 반응이다. 그는 “현재 한국 스케이트 연맹이나 선수 측에서 항의를 받은 적은 없다.”며 “지난 4대륙선수권대회 현지에서도 항의는 없었다. 의도적으로 방해를 하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신문은 “이번 김연아 선수의 발언은 일방적이고, 갑작스러운 느낌도 부정할 수 없다.”며 “심리적 압박감 때문에 예민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한 피겨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번같은 갑작스러운 ‘일본 때리기’는 3월 말에 세계선수권대회가 있기 때문에 일본을 견제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한편 이 소식을 접한 일본 네티즌들은 “올림픽을 앞두고 일본 선수들을 견제하려는 심리전”이라며 “반일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발언”이라고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문설주기자 spirit0104@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서울시 상습 지각공무원 추석 등 명절때 ‘벌 당직’

    “어느 부서시죠?” “늦는다고 사무실에 전화했는데…. 어휴” “그래도 늦은 건 늦은 겁니다. 자, 부서하고 이름 말씀해주세요” 지난 2일 오전 9시20분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2동 앞. 서울시청 인력운영과 성과관리팀 직원들이 별관2동 1층에서 공무원들의 출근시간을 점검하고 있다. 성과관리팀은 우선 소속부서와 이름을 적고, 개인별로 지각사유를 확인한다. 출근 시간뿐 아니라 점심시간, 근무시간도 감시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회초리 대신 종이와 펜을 지참하는 것을 빼면 선생님이 따로 없다. 각 청사나 사업소 등을 불시에 방문해 입구에서 지각 공무원들을 하나하나 가려낸다. 사무실에서 장시간 자리를 비운 경우엔 출장 등 공무수행 활동이 있는지 먼저 조사한 뒤 위반 여부를 따진다. 업무관련 사항이나 피치 못한 사정이 있을 경우엔 정상을 참작해 주의만 준다. 하지만 명확한 규정 위반일 때에는 인사고과 직무수행 점수를 깎는다. 또 해당 부서에 통보하고 부서장 특별교육도 받게 한다. 특히 상습 지각자로 분류된 직원들은 설이나 추석 등 명절 때 ‘벌 당직’을 서야 한다. 위반 정도가 심할 경우엔 징계도 한다. 5일 서울시에 따르면 이 복무점검은 지난해부터 강화됐다. 방문 점검 빈도는 높아지고 내용은 세분화됐다. 지난해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시와 자치구 특별사법경찰예정자들을 격려하는 자리에서 나온 말이 계기가 됐다. 오 시장은 아무리 작은 결함도 오래 방치하면 결국 큰 화가 된다는 ‘깨진 유리창 법칙’을 인용해 “기본적이고 사소한 업무부터 신경써 달라.”고 당부했다. 오 시장은 2일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도 ‘기본’을 강조했다. 양천구청 장애인 보조금 횡령 사건을 계기로 아무리 작은 금액의 예산이라도 철저히 관리·감독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오시장은 “자치구나 서울시 직원들이 먼저 공무원으로서의 마음가짐을 가다듬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 성과관리팀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근무태만 적발 건수는 총 117건이다. 2008년도 90건, 올해 1~2월엔 27건이다. 적발 건수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지난해의 경우 출근 지각이 55건, 점심시간 미준수가 13건, 무단이석이 2건, 복장불량 등이 20건이다. 올해(2월 기준)는 지각 14건, 점심시간 미준수가 13건이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로컬플러스] 진안 고로쇠축제 주말에 개최

    제5회 전북 진안 운장산 고로쇠축제가 오는 7~8일 주천면 대불리 운일암 반일암 광장에서 개최된다. 이번 축제는 열림길놀이와 고로쇠 증산기원제를 시작으로 이틀 동안 다양한 공연과 참여행사가 펼쳐진다. 첫날에는 한·중민속기예공연, 음악줄넘기, 스포츠댄스, 송어잡기, 고로쇠 가수왕 선발, 떡 메치기, 두부만들기, 불꽃놀이 등을 선보인다. 둘째 날에는 태평봉수대 등반대회, 윷놀이대회, 고로쇠 체험 건강걷기 등 다채로운 참여행사가 개최된다. 행사장에서는 해발 600m 청정 고원지대에서 채취한 고로쇠 약수가 판매된다. 고로쇠 수액은 칼륨과 칼슘 등 각종 미네랄이 풍부하게 함유돼 있어 몸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구로다 “KTX, TGV 대신 신칸센 도입했어야”

    구로다 “KTX, TGV 대신 신칸센 도입했어야”

    일본 ‘산케이 신문’의 구로다 가쓰히로(黒田勝弘) 서울지국장이 한국 고속철도(KTX)는 프랑스 테제베(TGV) 대신 일본 신칸센(新幹線) 을 도입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잇따른 ‘우익 발언’으로 논란을 불러왔던 구로다 지국장은 산케이 신문 온라인판 18일에 게재된 ‘일본 아시아 철도의 꿈’(日本アジア鉄道の夢よ)이라는 제하의 칼럼에서 “KTX가 최근 건설 중인 노선에서 부설이 끝난 콘크리트 침목 15만 개가 불량품으로 알려져 큰 소동이 있어났다.”고 전하며 이와 같은 주장을 펼쳤다. 구로다 지국장은 한국이 고속철도 시스템을 선정할 당시 일본 정부가 반일 감정을 신경 쓰면서 “소극적인 자세를 보인 것은 지금 생각해도 통한”이라며 아쉬워했다. 이어 “한국 철도는 100년 이상 일본 시스템으로 운영돼 왔는데 이제 와서 프랑스냐”면서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신칸센을 ‘한국을 위해서’ 자신을 갖고 강력히 밀어붙여야 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KTX에 처음 승차했을 때 “일본인으로서 프랑스 TGV에 대한 경쟁의식을 갖고 있었다.”며 “좁고 불편하고 승차감이 좋지 않아 ‘신칸센 쪽이 더 낫다.’고 실감했다.”고 전했다. 또 개통 후 열차 시간이 지연되거나 말썽이 줄을 이었다며 “신칸센으로 만들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한편 구로다 지국장은 칼럼을 통해 현재 신칸센 노선을 달리고 있는 ‘노조미’(のぞみ)와 ‘히카리’(ひかり)를 예로 들며 일본 철도와 한국 철도의 연관성를 부각시켰다. 그는 태평양 전쟁 이전 열차 시각표를 조사한 결과 “부산에서 한반도를 가로질러 중국 국경을 넘어 만주 장춘(長春)까지 달리는 특급 열차 이름이 ‘노조미’이며 이외에도 ‘히카리’가 있다”면서 “신칸센에 이름을 붙인 사람들은 그런 역사를 당연히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문설주 기자 spirit0104@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한국 연쇄살인범의 특징은

     한국 연쇄살인범의 일반적인 모습은 어떨까. 경찰대 표창원 교수가 2005년 펴낸 ‘한국의 연쇄살인’ 이란 책이 강호순 사건과 맞물려 관심을 불러모으고 있다. 표창원 교수가 책에서 정리한 한국 연쇄살인범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일정한 직업이 없거나, 있어도 우수한 실적을 나타내지 못한다.  2. 연령대는 20대 후반~40대 후반일 가능성이 높다.  3. 대개 남성이다.  4. 미혼이거나 결혼에 실패한 독신일 가능성이 높다.  5. 평소 속을 잘 드러내지 않고 조용한 편으로 눈에 띄지 않는다.  6. 간혹 아무것도 아닌 일로 자신을 무시한다고 화를 내거나 싸늘하게 돌변해 주위를 놀라게 한다.  7. 사는 곳이나 개인 물건 등을 남에게 보여주지 않는 등 사생활을 철저히 감춘다.  8. 진지하게 대화하거나 남의 말을 잘 들으려 하지 않아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없다.  9. 때로 공상에 잠기거나 다른 세상사람처럼 느껴진다.  10. 과묵하고 반항적인 모습이 때로는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11. 이성 관계에 서투르면서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집착이 심하고 지나칠 정도로 잘해준다.  12. 이성 관계에서 마음을 나누려 하지 않고 일방적인 애정 표현으로 상대에게 부담을 준다.  13. 헤어지려고 하면 폭력을 휘두르거나 섬뜩할 정도로 차가워진다.  14. 좋아하는 일이나 취미, 대상에는 대단한 집중력과 인내심을 보인다.  15. 폭력이나 절도, 성범죄 등의 전과가 있거나 경찰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  16. 거짓말을 아주 능숙하게 한다.  연쇄살인이란 말을 처음 쓴 것은 미국의 FBI 요원이었던 로버트 레슬러다. 그는 마인드 헌터스, 혹은 심리 전담반이라고 불린 ‘FBI 엘리트 행동과학연구소(BAU)’의 창립 인원이다.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중인 미국 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가 BAU를 다루고 있다.  로버트 레슬러는 동료 존 더글라스와 함께 토마스 해리스의 소설 ‘한니발 렉터 3부작’에 나오는 잭 크로포드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레슬러는 1992년에 발표한 자서전 ‘살인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1970년대 초 영국경찰대학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한 동료가 연쇄살인, 강간, 절도 등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듣고 미국으로 돌아와 반복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을 연쇄살인범(serial killer)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연쇄 살인범에 대한 연구가 가장 깊이 있게 진행된 미국에서의 분석에 따르면 이런 대형 범죄는 사회나 경제적 불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옛소련에서는 미국과 달리 자신들은 연쇄 살인범이 없다는 선전을 하곤 했다. 반면 미국의 전문가들은 옛소련에도 이런 범죄가 있지만 밝혀내지 못한 것뿐이라고 폄하하곤 했는데, 실제로 옛소련에서의 연쇄 살인 범죄가 나중에 밝혀지기도 했다.  로버트 레슬러가 1984년 국제법의학협회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논문에서 정리한 연쇄살인범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대부분 백인 독신 남성이다.  2. 영리하며 IQ는 대개 높은 편에 속한다.  3. 지적 능력과 무관하게 학업 성취도는 낮다. 학교 성적은 형편없고 일정한 직장을 구하지 못하며, 대개 비숙련 노동자로 끝을 맺는다.  4. 어릴 때 가정환경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일반적으로 어린 시절 아버지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며, 편모 슬하에서 성장한다.  5. 가계 내에 정신의학적 문제, 전과, 알코올 중독의 전력이 존재했다.  6. 어린 시절 정신적, 육체적, 혹은 성적으로 심한 학대를 받는다. 혹독한 학대를 겪으면서 심한 굴욕감과 무력감을 갖는다.  7. 멀리 떨어져 있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든지, 혹은 학대를 일삼는 아버지에게 적의를 가지기 때문에 남성적 권위를 지닌 이들과 마찰을 빚는다. 주로 어머니의 지배를 받으므로 여성에 대해서도 심한 적대감을 느낀다.  8. 정신의학적인 문제를 일찍이 드러내므로 어릴 때부터 시설에 수용되기도 한다.  9. 사회와 극단적으로 고립되어 세상에 적개심을 품는다. 자신을 포함한 세상 모든 사람을 증오하며, 종종 10대 때 자살을 기도하기도 한다.  10. 조숙한 편으로 정상에서 벗어난 성행위에 평생 몰입한다. 이성의 옷 조각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페티시즘, 엿보기 좋아하는 관음증, 폭력적인 포르노에 집착한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국내 의료진 부모·자식간 골수이식 성공

    백혈병 치료에서 금기시됐던 ‘부모·자식 간 골수이식수술’이 국내 의료진의 임상에서 기록적인 성공률을 보여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골수이식 수술의 가장 중요한 관건은 조직적합성항원(HLA)의 일치 여부. 하지만 부모·자식간에는 조직적합성항원이 반밖에 일치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는 골수이식을 해도 실패가 뻔한 부모·자식간 골수이식 대신 그나마 성공 확률이 25%로 높은 형제간 골수이식을 시도하거나 타인의 골수를 이식해 왔다.그러나 이제는 백혈병 치료를 위해서는 부모·자식간 골수이식도 유력한 대안이 될 전망이다. 서울아산병원 혈액내과 이규형 교수팀은 백혈병 환자가 부모나 자식으로부터 골수를 기증받을 수 있는 ‘반(半)일치 골수이식법’ 개발에 성공했다고 21일 밝혔다.의료팀은 2004년부터 최근까지 51명의 백혈병 환자에게 반일치 골수이식법을 적용한 결과, 수술 사망률이 13%에 그쳤다고 설명했다. 이는 형제간 골수이식수술 사망률의 세계 평균치인 20%에 크게 못 미치는 것이다. 또 골수이식 후의 자가면역 반응인 ‘이식편대숙주반응’ 발생률도 형제간 골수에서는 40%를 넘었으나 부모·자식간에는 30%로 크게 낮았다.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미네르바 박모씨를 소개합니다

    검찰이 9일 구속영장을 청구한 ‘미네르바’ 박모(31) 씨가 거주하는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S빌라 주변에서 취재한 내용을 간단히 메모 형식으로 소개합니다.개인 신상이 너무 드러나지 않도록 숨겨야 하는 정보는 숨겼습니다.  ■신상 정보  -1978년생(30)  -자택 주소 : 서울시 서대문구 창천동 S빌라  -출신학교 : D공과대학 정보통신과(3년제이지만 박씨 졸업 당시는 2년제)  -1997년 3월 D공과대학 정보통신과 입학  -1998년 11월 군 입대  -2001년 3월 복학  -2002년 2월 졸업  -이수과목은 전공과목 이외 타과목 발견되지 않음(경제학관련 교양과목 수강 기록 없음), 대부분 전공과목 이수  ■창천동 자택 주변 및 주민 전언  -자택은 현대백화점 뒤 서민 빌라촌(3층짜리 건물) 반지하 1층.  -동네 사람들 말에 따르면 박씨는 키 170㎝대의 약간 통통하고 조용한 성격에 말도 별로 없음.바깥 출입도 거의 안해 눈에 띄지 않는 성격. 평소 캐주얼 차림.  -약 15년 전 빌라 입주때 부모,할머니,여동생과 함께 입주해 살다가 2~3년 전 부모가 이사(고양 일산 추정), 여동생과 둘이서 거주. 이후 여동생도 따로 나가 혼자 삼.  -주변 세탁소에도 양복 맡기거나 하는 일 거의 없었음. 음식 배달도 잘 안 시켰고 가끔 재료배달만 시킴.  -등기부등본 확인 결과 현재 빌라는 90년 지어짐. 98년 7월부터 미네르바 소유함. 아버지가 증여한 것임. 이전 주소는 경기 고양시 일산구 일산동  -언론에 박씨가 활동한 동아리가 미네르바였다고 나오는데 사실과 다름.D공대 경영학 동아리인 미네르바는 박씨 졸업 뒤인 2005년에 생겼고 여기에 가입 활동한 적 없음.  ▲지하층 사는 장모 할머니  “가끔 인사만 하는 사이다. 떠드는 성격도 아니고, 조용한 성격이다. 어른들한테도 예의 바른 성격이고 인사 잘했다.중간 키에 평범하게 생겼다. 예전엔 말랐는데 최근에는 뚱뚱해졌다. 안경은 끼지 않았다. 오른쪽 라인은 22평인데 왼쪽 라인은 20평 조금 안 된다. 18평~20평쯤 될거다.”  ▲옆집 김모 할아버지  “별로 왕래 없어 누구와 접촉했는지도 모른지만 주변에 사람이 없어 보인다. 관심 끌만한 사람이 아니고 평범하다. 일류대 아닌 건 알았다. 배다른 여동생과 사이는 좋았다. 건설 계통 회사 다녔다는 말도 있다.”  ”얼마 전에 내가 화장실 고쳐달라고 했을 때도 흔쾌히 고쳐줬다. 착한 친구다. 아버지가 인천, 일산(진술 엇갈림)에서 여관한다고 알고 있다. 여동생은 24~25세 정도로 교회다닌다. 우편물도 별로 없는 집이다. 아버지는 60대 정도, 어머니는 50대 중반일 것”.  ”3일 전에 월급이 늦게 나와 돈이 없다며 아내한테 10만원 꿔갔다. 예전에 2만원 빌렸을 때도 바로 갚아서 빌려줬다. 우리 부인이 예전 미네르바 할머니랑 나름 왕래가 있었다.미네르바가 체포되던 날 검은색 지프차에 두 명이 타고 와서 우리 집에서 신원 확인했다. ”  ▲D공대 정보통신과 지도교수  -조용하고 성실한 친구였다.  -전공 과목은 열심히 했는데, 재능이 탁월하게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그런 재능이 있는 줄 몰랐다.  -교우 관계는 여러 사람과 다양한 스타일로 어울리기보다 한 그룹에서 너댓명 정도와 어울리는 정도였다. 동아리 활동은 하지 않았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檢,‘인터넷 경제논객’ 미네르바 체포

    네티즌들 사이에서 ‘얼굴 없는 경제대통령’이라고 불려온 인터넷 경제논객 ‘미네르바’가 검찰에 체포됐다.  서울중앙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부장 김주선)는 8일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의 토론게시판 ‘아고라’에서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활동해온 네티즌 박모(30)씨를 전날 긴급체포했다고 밝혔다.  체포된 ‘미네르바’는 경제학을 공부했거나 외국에서 근무한 경력이 없는 전문대 졸업자인 것으로 밝혀졌다.이는 미네르바가 자신의 글을 통해 “증권사에 근무한 적이 있고 해외체류 경험도 있다.”고 밝혔던 것과는 다른 사실이다.또 50대 초반일 것이라는 항간의 추측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미네르바’는 검찰에서 “미네르바의 이름으로 올린 글 전부를 내가 썼다.”며 “경제학을 독학했으며 학위를 받거나 한 것은 아니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네르바’는 지난해 12월 아고라 게시판에 ‘대정부 긴급공문발송-1보’란 글을 올려 “오늘 오후 2시30분 이후 주요 7대 금융 기관 및 수출·입 관련 주요 기업에게 달러 매수를 금지할 것을 긴급 공문 전송했다.”고 주장했다.이에 기획재정부는 해명자료를 통해 “미네르바가 게재한 내용은 전혀 사실무근이며 허위사실을 인터넷에 유포한 것에 대해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미네르바’는 현재 인터넷을 통해 허위사실을 유포,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  ’미네르바’는 지난해 미국 주요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과 환율 급등, 주가 급락을 예견하는 글을 포털사이트 다음의 토론방 ‘아고라‘에 연달아 올렸다.이 같은 내용이 맞아떨어지면서 ‘미네르바’의 신원에 관심이 집중됐었다.또 지난해 11월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난한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 “깡패 만도 못한 3류 XXX 같은 노인네”라면서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자신을 미네르바라고 지칭한 네티즌이 자신에 쏠린 과도한 관심을 이유로 절필을 선언했지만 이후에도 미네르바라는 필명을 쓴 네티즌의 글이 수차례 아고라에 게시돼 진위를 둘러싼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이와 관련,검찰은 ‘미네르바’가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하나의 필명으로 글을 써왔다는 소문에 대한 진위도 확인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그동안 사설 정보지나 인터넷을 통한 허위사실 유포 등 경제위기 조장행위를 엄단하겠다는 방침을 수 차례 밝혔으며 김경한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국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미네르바의 불법성이 있다면 수사할 수 있다는 뜻을 비치기도 했다.  검찰은 ‘미네르바’를 계속 조사하고 있으며,조사를 마무리하는대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 미네르바 사과글 진위 논란 미네르바 “난 악마의 앞잡이였다.죄송하다” 미네르바 “잘못했다.강 장관님께 사죄드린다” 미네르바 “정부 외환시장 개입” 재정부 “사실무근” [2008년을 뒤흔든 사람들](5) 인터넷 경제대통령 미네르바
  • “독도 문화상품 개발해 전세계 알려야”

    “독도 문화상품 개발해 전세계 알려야”

    “독도의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시위나 반일 감정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독도를 문화상품으로 개발해 세계에 널리 알리는 것이 더욱 효과적입니다.” ‘독도화가’로 미국에서 활동 중인 권용섭(51·캘리포니아주) 화백이 10일부터 15일까지 6일간 대구 대백플라자 갤러리에서 독도 전시회를 갖는다. 권 화백은 전시회에서 독도 현지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수묵속사’ 기법으로 완성한 ▲삽사리가 노는 독도 ▲파도를 맞는 독도 ▲묵희(墨戱)의 독도 작품과 함께 독도 세계 순회전을 벌이면서 그린 작품 등 35점을 선보인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러 연구팀, 석기시대 ‘여성 조각상’ 발견

    석기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조각상 2점이 발견돼 고고학계가 주목하고 있다. 러시아 Surgey Lev 과학연구소는 최근 “모스크바에서 150km 가량 떨어진 자라이스키 지역에서 맘모스의 엄니를 깎아 만든 조각상 2점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고 영국 BBC 방송이 보도했다. 연구소측은 “이번 발견에 앞서 Kostenki와 Avdeevo의 근처에서 조각상이 발굴된 적이 있지만 자라이스키 지역에서 조각상이 발견된 것은 처음”이라며 말한 뒤 “도구를 사용하고 기초적인 미술품을 만들기 시작한 석기시대 후반일 것”이라고 제작시기를 추측했다. 여성의 모습을 형상화 한 듯한 조각상 2점은 당시 사람들이 직접 파놓은 모래 구덩이에 맘모스 뼈와 함께 묻혀있었다. 조각상은 단단한 맘모스 견갑골(어깨뼈)로 덮여져 있어 당시 사람들이 이 조각상을 매우 소중히 여겼음을 짐작케 했다. 연구팀의 일원인 제프리 브랜팅험은 “2개의 조각상 중 하나는 17cm 가량의 완성된 상태였던 반면 또 다른 하나는 반쯤 완성된 상태였다. 크기는 약 절반정도였으며 중간에 구멍이 뚫려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석기시대 미술품들은 매우 드물어 발견된 조각품들의 연구가치가 상당하다.”며 “인간이 언제부터 예술 활동을 했는지, 조각상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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