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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토] ‘소녀상을 지켜라’

    [포토] ‘소녀상을 지켜라’

    반아베반일청년학생공동행동 회원들이 12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서 열린 보수단체의 소녀상 철거 촉구 집회에서 맞서 피켓을 들고 소녀상 주변을 지키고 있다. 2020.5.12 뉴스1
  • 이영훈 “위안부 강제연행설은 거짓” 또 친일·반한 발언

    이영훈 “위안부 강제연행설은 거짓” 또 친일·반한 발언

    지난해 여름을 달군 친일·반한 발언이 또다시 튀어나왔다.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은 11일 오전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미래사) 발간 기자회견을 열어 책 내용을 소개하며 “일본인 위안부는 일본 정부, 모집업자, 위안부의 부모 친지 등 3자의 합작품이었다”, “전시동원 노무자는 끌려간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응했다”고 주장했다. 이번 책은 지난해 7월 출간해 사회적으로 논란을 부른 ‘반일 종족주의’에 관한 비판을 재반박한다. 이 교장을 비롯한 필자들은 앞선 책 출간 이후 쏟아진 비판에 대해 언론 기고나 인터뷰, 유튜브에서 했던 반론 등을 책으로 엮었다. 다섯 가지 주제에 관한 25편에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특별 기고를 더해 모두 28편의 글로 구성했다. 이 교장은 “지난해 ‘반일 종족주의’를 출간한 이후 서점가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적지 않은 분노와 매도, 심하게는 저주 같은 공격과 비판이 있었다”며 발간 취지를 밝혔다. 책의 내용은 ‘반일 종족주의’ 당시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교장은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강제납치설을 부정하고 “일본 정부, 모집업자, 위안부의 부모 친지 등 3자의 합작품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관한 근거로 취업사유서, 호주 취업동의서, 경찰 확인서 등을 들고 “역사적 관점에서 위안부를 재평가하고 성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시동원과 관련 “노예처럼 끌려가 혹사당하다 돌아왔다는 주장은 종족주의의 환상”이라며 “특히 소송을 제기한 노무자 4명은 능동적으로 응했다”고 설명했다. 대한민국 대법원은 지난 2018년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근로정신대 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이 교장은 이에 관해 “대법원은 이런 중대한 판결을 하면서 학술적으로 많은 문제를 안은 주장을 검증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독도 문제와 관련해서는 “우산도를 근거로 우리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은 실증적이거나 과학적이지 않다”고 반박하고, 일제의 토지 수탈설도 “날조됐다”고 강조했다. 또 “우리나라 근대의 출발은 사법제도가 성립한 일제강점기이며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근대인으로 개발하는 과정”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이 교장을 비롯해 김낙년 동국대 교수, 김용삼 펜앤마이크 대기자, 주익종 이승만학당 상근이사, 정안기 전 서울대 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등 기존 필진에 차명수 영남대 교수와 박상후 전 MBC 전국부장이 참여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정의기억연대 “3년 기부수입 22억 중 41% 피해자 지원에 써”(종합)

    정의기억연대 “3년 기부수입 22억 중 41% 피해자 지원에 써”(종합)

    “후원금 전달만 피해자 지원사업 아냐”“위로금 수령 못하게 했다는 주장 사실무근”후원금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은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후원금을 전달하는 것만이 피해자 지원사업은 아니다”며 기금 운용에 문제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정의연은 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성산동 ‘인권재단 사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기자회견 시작에 앞서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은 “지난 30년간 이 운동을 같이 해오며 가족같이 지내셨던 할머님의 서운함, 불안감, 분노를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할머니께 원치 않은 마음의 상처를 드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말씀을 드리겠다”고 말한 뒤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앞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는 지난 7일 대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의연이 성금·기금을 받아 할머니들에게 쓴 적이 없다’, ‘성금을 어디에 쓰는지도 모른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이에 정의연은 입장문을 내고 ‘모금 사용 내역을 정기적인 회계감사를 통해 검증받고 공시 절차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단체 회계 관련 논란이 계속되자 정의연은 이날 추가로 기자회견을 열고 해명에 나섰다. 정의연 측은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기부수입 총 22억 1900여만원 중 41%에 해당하는 9억 1100여만원을 피해자지원사업비로 집행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액수에는 2017년 100만 시민모금을 통해 모금한 7억여원에 일반 후원금을 더해 조성한 8억원을 총 8명의 할머니들에게 여성인권상금으로 지급한 것도 포함돼 있다. 한경희 사무총장은 “피해자 지원사업은 건강치료지원, 인권·명예회복 활동 지원, 정기방문, 외출동행, 정서적 안정 지원, 쉼터 운영 등으로 수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같은 비용은 뒤따르는 인건비를 포함하지 않은 비용”이라며 “공시에 나와 있는 피해자지원 사업 예산만으로 저희의 피해자 지원사업을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정의연은 지난해 수요집회를 통해 모금한 금액은 약 460만원으로, 전액 수요시위 진행에 사용했다고 밝혔다. 수요시위 진행비는 연간 1억 1000여만원 가량이라고 설명했다. 또 공시한 기부금 사용 내역 중 ‘피해자 지원사업’ 항목의 수혜자 수가 ‘99명’, ‘999명’등으로 기재돼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데이터가 깔끔하게 처리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드리고, 실무적으로 미진한 부분을 고쳐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의연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2015년 한·일 합의 당시 일본 정부가 화해·치유재단을 통해 지급하기로 한 10억 엔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전면 부인했다. 이상희 정의연 이사는 “화해·치유재단 기금의 수령 여부는 전적으로 할머니들이 결정하게끔 했다. 할머니들을 일일이 방문해 의사를 확인했다”며 “할머니들에게 위로금을 수령하지 못하게 했다고 하는 것은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또 일본이 10억 엔을 출연할 것이라는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해당 내용은 발표 전부터 언론 보도를 통해 거론됐다”며 “외교부는 국장급·고위급 협의에서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 정대협이나 나눔의 집에 알린 바 없다. 공식 합의 발표가 있기 전에는 10억 엔 관련 내용을 전달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 이사장은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 이후 정의연 관련 언론 보도에 강한 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이사장은 “지난 30년간 피해자와 활동가들이 일궈낸 세계사적 인권운동사를 이런 식으로 훼손할 수 있을까”라며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때 용감한 피해자와 헌신적인 활동가·연구자들이 이 운동을 만들어왔다. 그런데 여러분이 그 역사를 알고 있는지 솔직히 의구심이 들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장 바깥에서는 ‘반일동상진실규명공대위’·‘위안부인권회복실천연대’ 관계자들이 피켓을 들고 윤 전 대표와 정의연 측을 규탄하는 1인시위를 열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반일감정 덕(?)에 탄생한 ‘한국형 전투식량’의 비밀

    반일감정 덕(?)에 탄생한 ‘한국형 전투식량’의 비밀

    소고기 고추장 비빔밥, 김치 비빔밥, 카레 비빔밥, 해물 비빔밥, 닭고기 비빔밥…. ‘집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이 음식들은 바로 ‘전투식량’입니다. 최근 출시된 전투식량은 일반 즉석식품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품질이 높아졌습니다. 심지어 물이 없어도 ‘발열팩’으로 데워 먹을 수 있습니다. 6·25 전쟁 때만 해도 전투식량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주먹밥’이 곧 전투식량이었습니다. 물론 미군이 2차 세계대전부터 보급한 ‘C레이션’이 있었지만, 우리 입맛엔 맞지 않았습니다. ‘한국인의 밥상’에 대한 갈구는 베트남전까지 이어졌습니다. 한국군은 1964년 9월부터 1973년 3월까지 8년간 베트남전에 파병됐습니다. 이 긴 기간을 미군 전투식량으로만 버텼다면 아마 군인들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졌을 겁니다. 그래서 이 시기 ‘한국형 전투식량’(K레이션) 개발이 본격화됐습니다.●베트남전이 만든 ‘한국형 전투식량’ 23일 이신재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이 작성한 ‘베트남전쟁기 한국형 전투식량 개발과정 고찰’ 논문에 따르면 베트남전 파병 첫 3개월 동안 우리 군은 쌀밥을 맛보지 못하는 ‘지옥’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파병 초기 미군으로부터 전투식량을 보급받았지만, 대다수 병사들은 제대로 된 사용법조차 몰랐습니다. 참고로 당시 미군 전투식량은 냉장시설이 완비된 곳에서 사용하는 신선식품 조리식 ‘A레이션’, 취사장비는 있지만 냉장시설이 없을 때 먹는 통조림 형태의 ‘B레이션’, 취사가 불가능한 지역에서 먹는 즉석식품 ‘C레이션’ 등 3종류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한 해병대 대대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취사병들이 B레이션 깡통 속 내용물을 요리할 줄 몰라 처음에는 솥에 넣고 물을 부어 ‘꿀꿀이죽’처럼 먹었다. 맛이 시금털털하고 괴상했다. 처음엔 엉망이었지만 차차 나아졌다”고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한국군 사령관이었던 채명신 장군의 요청으로 남베트남의 쌀이 보급됐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김치’였습니다.●“김치 보급 문제 美 상원 청문회에도 등장” 채 전 사령관은 회고록에서 “월남쌀로 밥을 짓고 C레이션으로 찌개나 국을 끓여 먹이니 장병들의 입맛이 살아나 살이 찌는 현상까지 생겼지만 한계가 있었다”며 “내가 부대를 방문할 때마다 듣는 건의사항은 무기나 탄약, 한국에서는 귀했던 휘발유 같은 보급품이 아니라 ‘된장, 고추장, 김치가 먹고 싶다’는 요청이었다”고 토로했습니다. C레이션에 질려버린 일부 장병들은 추수가 끝난 밭에서 그 매운 ‘베트남 고추’를 따 섞어 먹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김치 문제는 미 상원 청문회에 등장할 정도로 크게 이슈가 됐습니다. `채 전 사령관의 간곡한 요청으로 미 군사원조사령부는 ‘한국형 C레이션’을 새로 보급했습니다. 밥, 김치, 꽁치 통조림이 포함돼 맛도 괜찮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또 있었습니다. 전투식량을 하와이에서 일본인들이 만들어 납품한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한국 고유의 음식인 김치를, 일본 사람이 만들어 납품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1965년 한일협정의 여파로 베트남전 파병시기는 국민들의 반일 감정이 매우 높을 때였습니다. 이에 채 전 사령관은 정부에 ‘국산 전투식량’을 개발해 달라고 요청하게 됩니다. 난관이 이어졌습니다. 시제품 통조림에선 시뻘건 녹물이 나와 도저히 음식을 먹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열대 기후에도 버틸 수 있는 통조림 제조기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미 육군 시험소 분석 결과 미군이 최초 보급한 한국형 C레이션도 미군 C레이션 중량의 절반이었고 칼슘, 비타민 등의 영양소가 기준치에 미달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14개 업체를 동원해 7개월간의 노력 끝에 1967년 3월 드디어 미군 검증을 통과한 제품이 나왔습니다. 그해 10월 한미 양국은 한국에서 개발한 ‘K레이션’을 납품하는 내용의 합의서를 작성하게 됩니다. K레이션은 한국인 기호를 고려해 K1부터 K6까지 6가지 종류로 구성됐습니다. 흰밥과 김치, 멸치 파래무침, 돼지고기 조림, 소고기 조림, 오징어 조림, 꽁치 조림, 두부전, 콩자반, 장조림, 소시지 조림 등 반찬 10가지가 포함됐습니다. 여기에 인삼차, 가루고추장, 설탕, 소금, 껌, 담배, 휴지, 성냥 등의 부속품도 포함됐습니다. 한국형 전투식량의 역사가 시작된 순간입니다.●베트남전 기간 5639만 달러 수출 달성 한미 정부는 1967년 12월부터 1968년 6월까지 7개월분 709만 달러, 이후 1년 단위로 해마다 1000만 달러가 넘는 전투식량 공급 계약을 맺었습니다. 한국 장병들이 먹는 음식이었지만, 비용은 미국이 부담했기 때문에 우리가 미국에 전투식량을 ‘수출’한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김치를 그리워하는 장병들의 원성에 마음이 급했던 정부는 위문품 형태로 시제품 15만 상자를 구입해 보급하기도 했습니다. 이 ‘성탄절 선물’은 1966년 12월 배에 실렸고 다음해 2월 처음으로 장병들에게 보급됐습니다. 이후 장병들은 하루 2끼는 미군 전투식량을, 1끼는 한국 전투식량을 먹게 됐습니다. 심지어 남베트남 쌀까지 보급돼 식단 열량이 미군을 능가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아도는 쌀을 베트남 민간인에게 보급할 정도였습니다. 베트남 파병 장병에게 우선 공급됐던 K레이션은 1971년부터 한국에도 보급됐습니다. 전투식량은 해외 수출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베트남 전쟁 시기 군납을 통한 외화수입은 1억 8000만 달러 규모였는데, 그중 31.3%인 5639만 달러가 K레이션 수출로 달성한 것이었습니다. 1968년 1000만 달러 이상 수출한 업체가 국내에 2곳밖에 없을 정도였으니,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였던 겁니다. 지금은 일반 마트에서도 제품을 접할 수 있을 정도로 전투식량이 흔해졌습니다. 진공건조 기술을 적용하고 물만 부으면 일반 비빔밥처럼 즉시 먹을 수 있어 여행할 때 이용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제품과 입맛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지만, 편의성만큼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겁니다. 불과 50년의 역사로 이런 성과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정부와 군, 업체가 경쟁력 있는 제품을 계속 개발해 K레이션이 세계적인 전투식량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한필원의 골목길 통신] 코로나19 사태 이후 자영업의 새로운 영업전략

    [한필원의 골목길 통신] 코로나19 사태 이후 자영업의 새로운 영업전략

    코로나19 사태가 세 달째 계속되면서 자영업 또한 이제까지 생각조차 못했던 엄청난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신규 확진자 수가 많이 감소해 조금 숨을 돌리게 됐지만 백신이 개발돼 이 사태가 완전히 끝나기까지는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더욱이 일정 시간이 흐른 뒤 이 감염병이 재유행할 가능성도 있다 하니 자영업자의 시름이 더욱 깊어진다. 자영업자들이 몇 번씩 들어왔던, 어떻게든 버텨서 이 위기를 잘 넘기기만 하면 될 상황은 분명 아니다. 과거의 영업방식을 재검토하고 근본적으로 새로운 영업전략을 세워야 살아남을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고객의 급감. 물론 이 사태가 진정됨에 따라 점차 고객이 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완전히 종식되는 시점에 다가가면 그간 억압됐던 수요가 표출돼 이 사태 이전보다 고객이 더 늘 가능성도 있다. 요컨대 고객 수를 예측하기 힘든 상황인데 소규모 자영업자가 이에 대응하기는 매우 어렵다. 자영업의 매출은 흔히 고객 수에 객단가, 곧 고객 한 사람이 매장에서 지출하는 비용을 곱해 계산한다. 이 공식에 따르면, 매출을 증가시키려면 고객 수 혹은 객단가를 늘려야 한다. 물론 둘 다 늘리면 가장 좋을 것이다. 이 계산방식의 한계는 고객 수가 일정하지 않을 때 매출목표를 설정하거나 영업계획을 세우기 어렵다는 점이다. 고객 수와 객단가가 즉시 반비례 관계를 형성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런 자영업은 없다. 커피숍에서 매장에 있는 고객 수가 평소의 절반일 때 커피를 한 잔 마시던 사람이 두 잔 마실 리도, 커피값을 두 배로 올려 받을 수도 없지 않겠는가. 직원 수와 매장 공간 규모는 모두 영업비용 지출뿐 아니라 매출, 특히 고객 수에 직접 관련된다. 그러니 고객 수가 널뛰기하면 매출도 큰 폭으로 오르내리고 필요한 직원과 매장 규모의 편차도 커진다. 직원 수나 매장 크기는 수시로 줄였다 늘렸다 할 수 없으므로 음식점 등 자영업이 이런 상황에 대처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코로나19 사태가 초래한 이 문제에 대처하는 영업전략을 세우기 위해서는 매출을 계산하는 방식부터 변동 폭이 큰 고객 수에 좌우되는 방식에서 고정된 매장공간 규모에 관련되는 것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그래서 필자는 ‘공간단가’라는 영업지표를 제안하고자 한다. 공간단가는 매출을 매장면적과 영업시간으로 나눈 것, 다시 말해 단위 매장면적당 한 시간에 벌어들이는 수입을 말한다. 공간단가는 고객 수보다 고객이 얼마나 넓은 공간을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차지하는가, 곧 밀도에 관련된다. 공간단가를 사용해 매출목표를 세우려면 먼저 매장의 적정 밀도를 설정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과거보다 사람 사이 거리를 좀더 확보하려는 경향이 나타날 것이므로 앞으로 매장의 밀도를 낮추는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이제까지의 매출 계산 방식으로 이런 전략을 구사하기는 어렵다. 객단가가 고정된 상황에서 이는 매출 감소, 곧 경영 악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간단가라는 지표를 사용하면 객단가는 유지하고 고객당 매장 이용시간을 줄임으로써 매출을 유지할 수 있다. 또한 매장의 적정 밀도와 높은 공간수준을 상품 가격에 반영해 객단가를 높이거나 매장 이용시간이 늘면 상품 구매금액이 늘어나 객단가가 높아지도록 하는 전략도 쓸 수 있다. 곧 공간단가를 사용하면 고객 수와 객단가만 생각하는 좁은 인식 틀에서 벗어나 밀도와 공간 수준, 고객의 매장 이용시간 등을 변수로 포함시킴으로써 사용 가능한 영업전략의 카드가 더 많아진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자영업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런 새로운 인식과 영업전략이 필요하다고 본다.
  • 정부, ‘해열제 먹어 열 내리고 검역 통과’ 유학생 고발키로

    정부, ‘해열제 먹어 열 내리고 검역 통과’ 유학생 고발키로

    정부가 해열제를 복용해 코로나19 증상을 숨기고 인천공항 검역을 통과한 유학생을 고발하기로 했다. 이 유학생은 입국 전부터 기침, 가래 등의 증상이 있었지만 인천공항 검역소에 제출한 건강상태질문지에 표기하지 않았다. 또 체온을 일시적으로 내리면 발열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다는 허점을 이용해 비행기 탑승 전에 해열제를 먹고선 검역을 무사 통과했다. 이 유학생은 미국에서 입국한 다음 날인 지난달 26일 코로나19로 확진됐다.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총괄조정관은 10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미국에서 입국한 이 남성은 당시 특별입국절차대상으로 건강상태질문서를 작성하고 여기에 근거한 검역조사와 진단검사를 수행할 의무가 있었다”며 “입국 당시 제출한 건강상태질문서에 ‘증상없음’이라고 고의로 허위기재를 한 것으로 판단해 인천공항 검역소가 고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 총괄조정관은 “해열제를 복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증상을 숨기고 검역을 통과하는 사례는 같이 비행기에 탑승한 사람들, 또 이후 이동과정에서 접촉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감염의 위험을 전파하는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이라며 “검역법 위반일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동임을 유념해달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무관용의 원칙에 따라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검역 과정에서 거짓서류를 제출하고 입국하면 검역법 위반으로 최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세월호 침몰시키자” 주동식, 이번엔 “제사에 매달리는 광주”

    “세월호 침몰시키자” 주동식, 이번엔 “제사에 매달리는 광주”

    2018년엔 세월호 막말 논란도…“매달 세월호 하나씩 만들어 침몰시키자” 주동식 미래통합당 광주 서구갑 후보가 8일 “광주는 80년대 유산에 사로잡힌 도시, 제사에 매달리는 도시로 추락했다”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주 후보는 지난 8일 KCTV 광주방송을 통해 송출된 후보자 방송 연설 발언에서 “광주는 80년대의 유산에 사로잡힌 도시, 생산 대신 제사에 매달리는 도시, 과거 비극의 기념비가 젊은이들의 취업과 출산을 가로막는 도시로 추락했다”고 말했다. 또 “지금 호남 정치를 지배하는 것은 80년대 낡은 유산. 호남 정치는 민주화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워 문재인 정권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호남정치 앞에는 이제 역사적 평가가 기다리고 있다. 문재인 정권의 국정 운영은 절망적”이라고 했다. 그가 언급한 ‘제사’는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 문재인 대통령을 ‘시진핑의 지시를 받는 남한 총독’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바이러스 대응을 보면 문재인 대통령이 누굴 위해 일하는지 의문”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은 방중 당시 북경대 학생들 앞에서 ‘중국은 큰 산맥 같은 나라고 한국은 작은 나라다, 중국몽에 함께하겠다’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이분이 대한민국 대통령인지, 아니면 시진핑의 지시를 받는 남한 총독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주 후보는 4.15 총선 후보 초청 토론에서도 “광주는 80년대에 묶여 있는 도시이다. 민주화의 성지라는 미명 아래 비극을 기리는 제사가 마치 본업처럼 됐다”며 “운동권들이 5·18과 민주화를 내세워 생산과 상관없는 시설과 행사를 만들어내 예산을 뜯어내 무위도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일본 문제를 굉장히 악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저는 현재 문재인 정권이 주장하고 있는 반일 감정, 반일 정신병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이성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한편 앞서 주 후보는 지난 2018년 8월 세월호 관련 막말로 한 차례 논란을 산 바 있다. 그는 당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일자리 창출 고민할 것 없다. 앞으로 매달 세월호 하나씩만 만들어 침몰시키자”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세월호를 많이 만들어 침몰시키자고 했지, 거기에 사람을 태우자고 하지 않았다”며 “세월호 진상을 규명한다며 혈세를 낭비하는 행태를 비꼰 풍자이다. 오해들 말고 막말들 하지 말라”고 덧붙인 바 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코로나 이권 챙기는 아베 측근들… 일본, 더 안 좋아질 것”

    “코로나 이권 챙기는 아베 측근들… 일본, 더 안 좋아질 것”

    “나는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도, 반정부 운동가도 아닌 그저 학자일 뿐입니다.” 일본계 귀화 한국인으로 자타공인 최고 독도 전문가인 호사카 유지(63) 세종대 정치학 교수(세종대 독도연구소장)는 한 저서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토종 한국인보다도 더 한국을 사랑하는 모습, 일제 강제징용·위안부 문제에 어느 한국인보다도 더 공분하는 그의 모습은 ‘반일투사’를 연상하게 하지만, 그는 사실 자정 가까이 연구실에 묻혀 있을 때가 더 많은 연구자일 뿐이라고 자신을 설명한다. 그동안 보여 준 ‘한국 사랑’이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지만, 올해 코로나19 사태를 보며 “다시 한번 한국에 귀화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서울신문 본사에서 있었던 인터뷰에서 그의 한국 예찬과 학자로서의 삶에 대한 얘기를 들어 봤다. ●후쿠시마 원전·동일본대지진… 日보다 한국이 안전 “불안감을 갖지 않고 정부가 말하는 지침을 잘 따르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로나19로 촉발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한일 양국의 상반된 대응을 지켜본 호사카 교수는 한국에 대해 느낀 점을 이렇게 밝혔다. 2003년 귀화한 그는 일본에서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느낀다고 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동일본대지진 등이 그 사례였고,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그가 귀화했을 때만 해도 일본인보다 한국인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을 더 많이 보였다. 일본이 더 좋은 나라가 아니냐는 이유였다. 하지만 어느 때부턴가 이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게 됐다. 한국인들 역시 이제 일본보다 자신들이 더 안전한 나라에 살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호사카 교수는 광범위한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실시한 한국과 그러지 않았던 일본을 비교하며 “일본은 누가 감염됐는지 모르는 상황이고, 그래서 지금과 같은 사재기 열풍까지 일어난 것”이라고 했다. 특히 그는 긴급사태까지 선포된 현 일본의 상황이 극우파인 아베 신조 정권이 자초한 일이라고 말했다. 도쿄올림픽 개최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감염 확산 규모를 축소하는 등 소극적으로 대응하다 때를 놓치고 말았다는 의미다. 더불어 한국이 진단 키트를 개발하도록 민간을 적극적으로 독려한 반면 일본은 후생노동성의 관리 아래 있는 업체에만 개발하도록 하며 대응이 더욱 늦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기술대국이라는 일본이 진단 키트를 개발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었겠느냐”면서 “후생성 내 아베의 낙하산 인사와 그들의 이권 때문”이라고 했다.그는 일본의 상황이 더 안 좋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보건 당국이 감염자의 동선 파악도 어려운 것이 현재 일본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일본인 특유의 국민성은 평상시에는 ‘예의 바름’으로 평가받지만, 지금과 같은 감염병 사태에서는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된다고 분석했다. 일본인들이 감염돼도 제대로 신고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호사카 교수는 “중간에 들른 곳에 폐를 끼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자신이 어디에 다녀왔다고 밝히지 않는 것”이라며 “영안실로 들어온 사망자가 코로나19 때문에 사망했는지도 알 수 없는 장례식장 같은 곳은 무척 난감한 상황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감정적 대응 넘어 독도 연구 체계화에 기여 호사카 교수는 이제 역사학도들뿐만 아니라 거리를 지나가다 만난 시민들도 알아볼 만큼 유명 인사가 됐다. 특히 학계는 물론 대중들에게도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계기는 단연 1998년부터 시작한 독도 연구다. “‘일본 출신 학자도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라며 한국 학자들이 저에게 자극을 받은 부분도 있다고 봅니다.” 호사카 교수는 과거 감정적 대응이 앞섰던 독도 연구를 체계화하고 구체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 출신’이라는 점만으로도 주목받을 수 있었지만, 지금의 그를 만든 것은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 치밀한 연구 자세였다. 그는 “사안에 대해 상세하게 접근하는 것이 일본인들의 특성이고, 그들의 독도 연구도 마찬가지였다”면서 “일본의 그러한 연구·주장에 대해 치밀하고 철저하게 반박했다. 이를 통해 한국의 독도 연구 문화가 새롭게 바뀌는 데도 기여했다고 본다”고 자평했다. 그는 최근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일본 문부과학성의 중학교 교과서 검정 승인에 대해 “이제 일본은 독도영유권 주장을 전체 교과서에 다 싣게 되는 셈인데, 실제 일본의 학교 현장에서 어떻게 이뤄지는지도 봐야 한다”면서 “도쿄의 모교에 물어보면 독도 문제를 가르치지 않는 교사도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독도·친일파 문제… 책 쓰는 재미 빠져 1년에 한 번 출간 치열하고 성실한 연구자로서의 면모를 알 수 있는 또 다른 사례는 바로 그의 저서들이다. 2002년 첫 출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낸 책은 단행본 기준으로 17권 정도다. 그가 귀화한 시점인 2003년을 전후로 거의 1년에 한 번꼴로 책을 낸 셈이다. “책을 쓰는 재미가 생겼습니다. 논문 작성과는 또 다른 재미죠.” 계속해서 책을 낸 비결·원동력을 묻자 호사카 교수는 ‘글쓰기의 즐거움’이라고 답했다. 그는 어린 시절 집보다 밖에서 노는 걸 더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 시절 야구선수 장훈과 같은 재일교포 운동선수들이 우상이었다는 호사카 교수의 말은 그의 외향적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다. 그런 자신이 PC 앞에서 하루 종일 자료와 씨름해야 하는 학자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한일관계사에서 숨겨졌던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낸 그의 연구 성과는 학계뿐만 아니라 출판사들의 관심도 끌게 됐다. 그가 낸 책들은 ‘상품성’을 간파한 출판사가 먼저 출간을 제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의 책들은 역사 분야 서적 가운데 상위에 오를 만큼 인기를 끌며 한일 관계와 독도 영유권 문제 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대중에게 제공했다. 호사카 교수는 “논문이 하나의 사실을 증명해 나가는 과정이라면 책은 결론부터 시작해 독자를 설득하는 성격이 더 강하다”면서 “처음에는 출판사 의뢰로 책을 쓰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책을 쓰는 것 자체로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5개월 동안 ‘반일 종족주의’ 허구성 조목조목 지적 이 같은 오랜 노력의 한편에서 식민지 근대화론과 일본군 위안부·징용의 강제성을 부인하는 내용을 담은 ‘반일 종족주의’ 같은 책이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역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는 학문적인 관심보다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반일 종족주의’에 많은 관심이 쏠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 정권에 반대하는 이들이 그 책을 사봤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지금 정권이 일제 강제징용 문제 등에서 일본을 강하게 밀어붙였으니까요.” ‘반일 종족주의’에 대해 그는 학문과 연구를 통한 철저한 검증으로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사카 교수는 길지 않은 인터뷰 시간상 강제징용 문제를 예로 들어 ‘반일 종족주의’의 주장을 반박했다. “반일 종족주의 저자들은 강제징용을 당한 조선인과 일본인들이 평등한 대우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월급도 똑같이 받았고, 탄광 노동과 같은 힘든 일은 일본인들도 똑같이 했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죠.” 호사카 교수는 “월급은 액면상 조선인과 일본인이 같았다고 하지만, 실제 조선인들은 그 돈을 다 받지 못했다”면서 “말로만 고향에 월급을 보내 준다고 하는 경우가 많았고, 조선인들의 통장 관리자들이 따로 있었기 때문에 중간에 가로채기를 당했다”고 말했다. 때마침 이 같은 그의 반박을 담은 신간 ‘신친일파’가 지난 4일 출간됐다. ‘반일 종족주의’ 내용의 허구성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책을 완성하는 데 5개월이 걸렸다. 호사카 교수의 이름이 한국과 일본 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일본 우파들의 공격 수위도 높아졌다. 세종대 연구실은 일본인들의 항의·협박 전화를 받는 게 하나의 일상 업무가 됐을 정도다. 테러가 우려돼 호사카 교수는 가족에 대한 신상은 절대 밝히지 않는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그의 연구실로 전화하는 한국인들도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대부분 한국말로 “독도는 일본 영토”라는 식의 주장을 하는 비난 전화다. 그의 연구실로 전화해 폭언을 쏟았던 ‘21세기의 친일파’들은 ‘반일 종족주의’와 같은 책이 나올 것이란 징후였을 수도 있다. 호사카 교수는 일본 우파의 주장을 따르는 이들에게 ‘신친일파’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는 신간의 책 제목이 되기도 했다. 그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극우 세력의 지원을 받고 ‘확성기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 그대로 ‘신친일파’에 맞선 연구는 앞으로도 계속된다고 했다. “역사를 좋아하는 분들이 제 책을 많이 사랑해 주셔서 그동안 서적들은 정치사회 분야에서 10위 안에 오르곤 했습니다. 이제 전체 서적 가운데 10위 안에 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하하.”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일본 도쿄대의 공학도 출신으로, 1988년 한국으로 건너와 고려대 대학원 정치외교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석사 논문은 ‘일본의 한국 침략 배경 연구’, 박사 논문은 ‘일본제국주의의 민족동화 정책 분석’이었다. 2003년 한국인으로 귀화하며 본격적으로 한일 관계 및 독도문제 전문가로 인지도를 얻게 됐다. 시낭송 모임에서 만난 한국인 아내와 2남1녀의 자녀를 두고 있다. 그의 든든한 벗인 아내는 그가 책을 낼 때 교정을 봐주는 역할을 도맡기도 한다. 두 아들은 모두 현역으로 국방의 의무를 다했다고 한다.
  • “‘기무치’는 도저히 못 먹겠다”…‘반일’로 탄생한 전투식량 [밀리터리 인사이드]

    “‘기무치’는 도저히 못 먹겠다”…‘반일’로 탄생한 전투식량 [밀리터리 인사이드]

    베트남전, 초기 3개월간 미군 C레이션 제공“한국음식 그립다” 불만에 ‘한국형 C레이션’‘일본인 생산’ 김치 비판여론…K레이션 개발베트남 군납 수출 30% 차지…외화벌이 기여소고기 고추장 비빔밥, 김치 비빔밥, 카레 비빔밥, 해물 비빔밥, 닭고기 비빔밥…. ‘집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이 음식들은 바로 ‘전투식량’입니다. 최근 출시된 전투식량은 일반 즉석식품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품질이 높아졌습니다. 뜨거운 물만 부으면 한 끼 식사로 충분한 밥상이 차려집니다. 물을 끓이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발열팩’이 포함된 제품으로 데워 먹을 수도 있습니다. 6·25 전쟁 때만 해도 전투식량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주먹밥’이 곧 전투식량이었습니다. 그래서 군인들은 전투를 마친 뒤 참호에서 늘 ‘따뜻한 밥 한 끼’를 떠올렸고, 주린 배를 움켜쥐고 전투에 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미군이 2차세계대전부터 보급한 ‘C레이션’이 있었지만, 우리 입맛엔 맞지 않았습니다. ‘한국인의 밥상’에 대한 갈구는 베트남전까지 이어졌습니다. 한국군은 1964년 9월부터 1973년 3월까지 8년간 베트남전에 파병됐습니다. 이 긴 기간을 미군 전투식량으로만 버텼다면 아마 군인들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졌을 겁니다. 그래서 이 시기 ‘한국형 전투식량’(K레이션) 개발이 본격화됐습니다. ●베트남전 파병으로 개발한 ‘한국형 전투식량’ 한국형 전투식량 시초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을 뿐 구체적인 연구가 진행된 적이 없습니다. 참전자의 회고록이나 사료 등으로 조금씩 알려졌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신재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이 올해 ‘베트남전쟁기 한국형 전투식량 개발과정 고찰’이라는 제목의 첫 논문을 냈습니다. 5일 이 논문을 바탕으로 김치 등 한국음식이 어떻게 참호 속 군인들의 밥상에 올라왔는지 되짚어보려 합니다.베트남전 파병 첫 3개월 동안 우리 군은 쌀밥을 맛보지 못하는 ‘지옥’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파병 초기 미군으로부터 전투식량을 보급받았지만, 대다수 병사들은 제대로 된 사용법조차 몰랐습니다. 참고로 당시 미군 전투식량은 냉장시설이 완비된 곳에서 사용하는 신선식품 조리식 ‘A레이션’, 취사장비는 있지만 냉장시설이 없을 때 먹는 통조림 형태의 ‘B레이션’, 취사가 불가능한 지역에서 먹는 즉석식품 ‘C레이션’ 등 3종류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한 해병대 대대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취사병들이 B레이션 깡통 속 내용물을 요리할 줄 몰라 처음에는 솥에 넣고 물을 부어 ‘꿀꿀이죽’처럼 먹었다. 맛이 시금털털하고 괴상했다. 처음엔 엉망이었지만 차차 나아졌다”고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한국군 사령관이었던 채명신 장군의 요청으로 남베트남의 쌀이 보급됐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김치’였습니다. ●“휘발유보다 더 귀한 고추장·김치를 달라” 채 전 사령관은 회고록에서 “월남쌀로 밥을 짓고 C레이션으로 찌개나 국을 끓여 먹이니 장병들의 입맛이 살아나 살이 찌는 현상까지 생겼지만 한계가 있었다”며 “내가 부대를 방문할 때마다 듣는 건의사항은 무기나 탄약, 한국에서는 귀했던 휘발유 같은 보급품이 아니라 ‘된장, 고추장, 김치가 먹고 싶다’는 요청이었다”고 토로했습니다. C레이션에 질려버린 일부 장병들은 추수가 끝난 밭에서 그 매운 ‘베트남 고추’를 따 섞어 먹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김치 문제는 미 상원 청문회에 등장할 정도로 크게 이슈가 됐습니다. 채 전 사령관의 간곡한 요청으로 미 군사원조사령부는 한국 음식으로 구성된 ‘한국형 C레이션’을 새로 보급했습니다. 밥, 김치, 꽁치 통조림이 포함돼 맛도 괜찮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또 있었습니다. 전투식량을 하와이에서 일본인들이 만들어 납품한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한국 고유의 음식인 김치를, 일본 사람이 만들어 납품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1965년 한일협정의 여파로 베트남전 파병시기는 국민들의 반일 감정이 매우 높을 때였습니다. 이에 채 전 사령관은 정부에 통조림 형태의 ‘국산 전투식량’을 개발해 달라고 요청하게 됩니다.군납업체인 ‘대한종합식품’이라는 회사가 만들어지고 시제품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다시 난관이 이어졌습니다. 시제품 통조림에선 시뻘건 녹물이 나와 도저히 음식을 먹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열대 기후에도 버틸 수 있는 통조림 제조기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미 육군 시험소 분석 결과 미군이 최초 보급한 한국형 C레이션도 미군 C레이션 중량의 절반이었고 칼슘, 비타민 등의 영양소가 기준치에 미달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14개 업체를 동원해 7개월간의 노력 끝에 1967년 3월 드디어 미군 검증을 통과한 제품이 나왔고, 그 해 10월 한미 양국은 한국에서 개발한 ‘K레이션’을 납품하는 내용의 합의서를 작성하게 됩니다. K레이션은 한국인 기호를 고려해 K1부터 K6까지 6가지 종류로 구성됐습니다. 흰밥과 김치, 멸치 파래무침, 돼지고기 조림, 쇠고기 조림, 오징어 조림, 꽁치 조림, 두부전, 콩자반, 장조림, 쏘세지 조림 등 반찬 10가지가 포함됐습니다. 여기에 인삼차, 가루고추장, 설탕, 소금, 껌, 담배, 휴지, 성냥 등의 부속품도 포함됐습니다. 한국형 전투식량의 역사가 시작된 순간입니다. ●5600만 달러 수출 기여…전투식량 발전 ‘초석’ 한미 정부는 1967년 12월부터 1968년 6월까지 7개월분 709만 달러, 이후 1년 단위로 해마다 1000만 달러가 넘는 전투식량 공급 계약을 맺었습니다. 한국 장병들이 먹는 음식이었지만, 비용은 미국이 부담했기 때문에 우리가 미국에 전투식량을 ‘수출’한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김치를 그리워하는 장병들의 원성에 마음이 급했던 정부는 위문품 형태로 시제품 15만 상자를 구입해 보급하기도 했습니다. 이 ‘성탄절 선물’은 1966년 12월 배에 실렸고 다음해 2월 처음으로 장병들에게 보급됐습니다.이후 장병들은 하루 2끼는 미군 전투식량을, 1끼는 한국 전투식량을 먹게 됐습니다. 심지어 남베트남 쌀까지 보급돼 식단 열량이 미군을 능가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아도는 쌀을 베트남 민간인에게 보급할 정도였습니다. 베트남 파병 장병에게 우선 공급됐던 K레이션은 1971년부터 한국에도 보급됐습니다. 전투식량은 해외 수출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베트남 전쟁 시기 군납을 통한 외화수입은 1억 8800만 달러 규모였는데, 그 중 30%인 5639만 달러가 K레이션 수출로 달성한 것이었습니다. 1968년 1000만 달러 이상 수출한 업체가 국내에 2곳 밖에 없을 정도였으니,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였던 겁니다. 지금은 일반 마트에서도 제품을 접할 수 있을 정도로 전투식량이 흔해졌습니다. 진공건조 기술을 적용하고 물만 부으면 일반 비빔밥처럼 즉시 먹을 수 있어 여행할 때 이용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제품과 입맛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지만, 편의성 만큼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 할 겁니다. 불과 50년의 역사로 이런 성과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정부와 군, 업체가 경쟁력 있는 제품을 계속 개발해 K레이션이 세계적인 전투식량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후보 아닌 비례당원, 지역구 후보 유세 가능…지역구 후보, 비례당 후보 위해 유세는 금지

    후보 아닌 비례당원, 지역구 후보 유세 가능…지역구 후보, 비례당 후보 위해 유세는 금지

    “우리는 형제정당이다.” 미래한국당 원유철 대표는 1일 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미래통합당과의 동일성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통합당 지지자들을 향해 미래한국당 비례 투표를 호소하는 듯한 이 발언은 선거법 위반일까. 정답은 ‘아니다’다. 이번 4·15 총선에는 선거 사상 처음으로 비례위성정당이란 기형적 정당들이 출전했다. 이에 상호 지지 발언, 합동 선거운동 등에 대한 허용 범위를 둘러싸고 현장의 혼란도 적지 않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최근 접수된 각 당의 질의 등을 바탕으로 ‘정당 상호 간의 선거운동 가능 범위 사례’를 발표했다. 비례후보를 내지 않는 지역구 정당과 비례후보만 내는 비례정당은 ‘한집안 정당’이지만 법적으로는 별개 정당이다. 선관위의 판단도 기본적으로 이 같은 원칙에 입각해 있다. 원 대표의 통합당 지지 발언은 공직선거법 위반이 아니다. 후보자로 등록하지 않은 비례정당의 대표, 간부, 당원이 지역구 정당이나 후보자를 위해 선거운동을 하는 건 허용되기 때문이다. 앞서 원 대표는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럼에도 한 자리에서 지역구 정당과 비례정당 모두를 대표해 연설·대담을 할 순 없다. 법적으로 별개인 두 정당을 지지해 달라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 후보자 신분인 통합당 황교안 대표의 경우에도 미래한국당 후보를 위해 유세를 할 수 없다. 자매정당이 공동 명의로 선거홍보물을 제작하는 것도 위반이다. 선거공보물, 신문·방송·인터넷 광고 등에 ‘지역구는 더불어민주당에, 정당투표는 더불어시민당에’ 같은 문구를 쓰면 안 된다. 지역구 정당 후보자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비례정당과 그 후보자를 지지하는 글을 쓰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두 정당이 공동선거대책기구 등을 구성하는 것도 선거법 위반이다. 하지만 선대위를 따로 운영하면서 행동을 함께하는 방법은 가능하다. 자매정당 후보가 같은 장소에서 선거운동을 하되 상호 지지 발언은 하지 않으면 법 위반은 피하면서 공동 선거운동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얘기다. 지역구 정당과 비례정당은 허용되는 선거운동 유형에 차이가 있다. 선거벽보, 현수막, 공개 장소 연설·대담, 유세차량 등은 지역구 후보에게만 허용된다. 반면 신문·방송 광고를 통한 정당의 정강·정책, 후보자 정견 등 홍보는 비례후보를 낸 정당에 한해 허용된다. 민주당과 통합당은 신문·방송 광고를 할 수 없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노태우 정부 때 일왕 첫 해외 일정으로 방한 추진했었다

    노태우 정부 때 일왕 첫 해외 일정으로 방한 추진했었다

    아키히토 즉위 직후 방한 논의했지만 日 우경화 흐름에 재임 내내 한국 못 와 헝가리에 차관 주고 동유럽 첫 수교 임수경 비밀 방북 문서는 공개 안 돼아키히토 전 일왕 즉위 직후인 1989년 한일 정부가 일왕의 첫 해외 일정으로 한국 방문을 진지하게 논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일 과거사 문제에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수 없다’고 했던 아키히토 전 일왕의 방한은 결국 양국의 반대 여론이 높아지면서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가 31일 비밀 보존기한 30년이 지나 공개한 외교문서에 따르면 1989년 4월 우노 소스케 당시 일본 외무상은 한일 외무장관 회담차 일본을 방문한 최호중 외무장관에게 “한국 측 분위기가 성숙했다고 판단되면 일본 정부로서는 예견 가능한 장래에 (일왕의) 최초 해외 방문으로 방한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조정하고 싶다”고 했다. 특히 우노 외무상은 한국의 반일감정을 염두에 둔 듯 “한국 내에서 미묘한 상황도 있을 것이란 것도 잘 알고 있다. 은밀히 답변을 듣고 싶다”고 했다. 정부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이듬해 방일을 준비하면서 아키히토 일왕의 방한을 고려할 것을 과제로 제시했다. 주일대사관도 외교 전문에서 “세부 교섭 사안들과 일왕의 방한 초청 가능성을 연계해 성과를 높일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이듬해 노 대통령의 일본 방문 당시 아키히토 일왕은 만찬사로 “일본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의 국민들이 겪으셨던 고통을 생각하며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다”는 다소 진전된 입장을 밝혔다. 2차 세계대전과 식민통치 시기에 일왕으로 있었던 선대 히로히토 일왕은 전두환 대통령과 만나 “불행한 과거는 유감”이라고 한 바 있다. 그러나 일왕의 방한은 재임 기간 내내 이뤄지지 않았다. 국내에선 1990년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이 나오는 등 과거사 청산 요구가 커졌고 일본도 보수 우경화 흐름이 나타나면서 결국 무산됐다. 아키히토 일왕은 황태자 신분이었던 1988년에도 한국 방문을 타진한 바 있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는 1989년 노태우 정부 초기 주요 외교 이슈들이 담겼다. 모두 1577권(24만여쪽) 규모다. 북방외교를 펼치던 당시 정부가 동유럽 최초로 헝가리와 수교하기 위해 1억 2500만 달러의 은행차관을 제공한 사실도 포함됐다. 다만 1989년에 이뤄진 ‘임수경 방북 사건’에 대한 문서는 공개되지 않았다. 외교부 관계자는 “(비밀 방북 관련) 간략하게 그런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개인에 관한 문서이기 때문에 외교문서공개심의회가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데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12번 열린민주 이순신 장군 끌어들이자 “렉서스 팔아라”

    12번 열린민주 이순신 장군 끌어들이자 “렉서스 팔아라”

    4·15 총선에서 비례대표 국회의원 정당순위 12번을 받은 열린민주당이 “이순신 장군은 12척으로 왜놈들을 무찔렀다”고 선전하자 최강욱 후보의 일제 차 렉서스를 꼬집는 의견이 제기됐다. 최강욱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열린민주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다. 지난 26일 관보를 통해 발표된 고위공직자 재산공개에서 최 후보는 2012년식 렉서스를 비롯한 차 3대를 보유했다고 신고했다. 열린민주당 내에서도 비례대표 순번 2번인 최 후보의 렉서스 배기량은 4600㏄다. 고위공직자 재산공개에서 청와대 전·현직 비서관 가운데 일본차 소유를 신고한 사람은 최 후보가 유일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해 남편이 역시 일제인 혼다를 신고했으나 이미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후보가 이순신 장군의 명언을 인용해서 열린민주당 정당순위를 소개한 지난 27일 페이스북에는 “신에게는 아직 4600cc 렉서스가 있습니다!”란 비꼬는 댓글들이 이어졌다. 한 네티즌은 “당신 같은 사람들이 한 얘기로 많은 사람이 손해 보면서 일본여행 취소하고, 일제 대신 우리나라 상품 사려고 노력했으며 심지어 일제 자동차를 부순 사람도 있다”며 “그런데 당신은 뭡니까? 지지자들 응원만 보니까 아무런 느낌도 없나 보죠?”라고 비판했다. 이어 “일본에 대해서 사소하게 목소리 잘못 내면 토착 왜구니 친일파니 하며 낙인 찍히게 한 거 기억한다”며 “당신이 지금도 일본척결 외치면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이라. 하다못해 지금 소유한 자동차 부수는 모습이라도 보여달라”고 지적했다. 렉서스 자동차를 산 것은 문재인 정부의 반일운동이 시작되기 훨씬 전이니 억울할 수도 있지만 사회지도층은 대중에게 미치는 발언의 파급력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네티즌은 “렉서스 파세요. 렉서스 도요타 계열사인 거 아실 테고 도요타는 전범기업입니다. 렉서스부터 처분하시고 이순신 장군 들먹이세요”라고 주장했다. 최 후보는 국회의원 출사표에서도 “한국보다 일본의 이익에 편승하는 무리를 척결하는 것. 그것이 제가 선거에 임하며 다짐하는 최고의 목표”라고 밝혀 렉서스 소유와 함께 비난을 샀다.한편 열린민주당은 전날 봉하마을을 찾아 고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했으나 권양숙 여사를 만나지는 못했다. 앞서 지난 27일 더불어민주당이 참여하는 비례연합정당인 더불어시민당 지도부와 비례대표 후보들은 봉하마을을 찾아 권 여사와 면담했다. 최 후보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들의 입시 비리에 연루된 것과 관련해 각을 세우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권양숙 여사가 안 만나 준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진 전 교수는 더불어시민당은 조국 반대당, 열린민주당은 조국 수호당이라 명명하며 정당정치와 팬덤정치가 충돌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그 충돌이 시각적으로 드러난 것은 봉하마을 방문 경쟁으로 결국 열린민주당 사람들은 권양숙 여사 못 만나고 빈말만 듣고 왔다”며 “봉하마을에서는 이분들께 짜증이 났을 것”이라고 설명했다.이쪽이든 저쪽이든 노무현의 이름을 팔아 기득권을 유지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나, 그 짓을 하는 정도에는 차이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쪽은 조국 문제에 대해서는 애써 침묵하려 하고, 다른 쪽에서는 노골적으로 조국을 감싸니 봉하마을에선 ‘노무현=조국’이라는 등식이 당연히 불쾌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불어시민당의 비례대표 1번 신현영 명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조 전 장관의 딸이 대학 입시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반일 종족주의’ 저자 “내 딸이 n번방 피해자라면 딸 행동 반성하겠다”

    ‘반일 종족주의’ 저자 “내 딸이 n번방 피해자라면 딸 행동 반성하겠다”

    역사 왜곡 논란을 불렀던 책 ‘반일 종족주의’ 공동 저자가 ‘텔레그램 n번방’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 책임을 제기해 ‘2차 가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난 22일 페이스북에 “내게 딸이 있다면 n번방 근처에도 가지 않도록 평소에 가르치겠다. 내 딸이 지금 그 피해자라면 내 딸의 행동과 내 교육을 반성하겠다. 여러분은 그렇지 않나”라면서 “n번방 피해자들에게도 같은 규칙이 적용돼야 한다. 범죄자들에 대한 처벌과는 별개다”라고 적었다. 이 글은 6일이 지난 28일까지 1800여개의 댓글이 달리면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대체로 이우연 연구위원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비판 댓글이 쏟아지자 이우연 연구위원은 “온갖 잡것들이 싸지르고 가네. 역시나 똥물로 가득찬 대가리와 천박한 주둥이밖에 없구나. 니들은 그 짓이나 계속 해라. 난 내 길을 간다”라는 글을 올렸다.이후 이우연 연구위원은 댓글을 단 누리꾼들에 대한 고소를 예고했다. 24일 그는 페이스북에 “하나하나 꼼꼼히 고소 들어간다”면서 “이미 당신이 쏟아낸 구역물, 이제 와서 주워담을 수도 없고…어쩌겠습니까? 그저 내 탓이다 생각하고 반성하며 기다리라”고 썼다. 25일에는 “강도 당한 사람에게 ‘조심했어야 했다’고 말하면 그것이 ‘당할 만했다’거나 강도를 옹호하는 말이 되나”라면서 “나는 ‘당할 만 했다’고 말한 적 없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다시 반박했다. 이우연 연구위원은 지난해 12월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피해를 항의하는 수요시위 중단과 소녀상 철거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인 바 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항공모함 도입 결정, 중일 눈치보다 23년 흘려보냈다

    항공모함 도입 결정, 중일 눈치보다 23년 흘려보냈다

    이케다 日외무상 “독도, 日영토” 망언YS, 2만t급 항모 도입 계획 전격 재가軍, 중일과 갈등 이유로 반대해 무산해군 ‘대양해군 건설’ 여론 조성 나서천안함 사건 이후 해군에 질타 쏟아져아덴만 여명작전 성공으로 여론 반전작년 도입 결정…‘23년 전쟁’ 종지부 지난해 7월 12일은 해군사에 역사적인 날로 기록됐습니다. 이날 박한기 합참의장과 육해공군 총장 등 군 수뇌부는 해군의 오랜 숙원이었던 경항공모함급 ‘대형수송함Ⅱ’ 건조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정부와 군이 공식적으로 사업 추진 결정을 내린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습니다. 국민들의 호응도 뜨거웠습니다. 그동안은 항모를 도입해야 하느냐, 도입하지 말아야 하느냐를 놓고 수십년 동안 옥신각신하느라 연구는커녕 시간만 흘려보냈습니다. 어떤 시기엔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의 눈치를 보느라, 어느 시기엔 북한의 연안 기습 도발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정부와 군이 스스로 항모 도입을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흘려보낸 시간이 무려 ‘23년’입니다. 항모 도입 결정에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걸까요.27일 한국국방연구원이 발간하는 학술지 ‘국방정책연구’에 실린 ‘한국형 항공모함 도입 계획과 6·25전쟁기 해상항공작전의 함의’ 보고서에 따르면 ‘대양해군’에 대한 개념이 희미하게나마 잡히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였습니다. 그 이전인 박정희 정부 시절엔 북한의 지상전력 위협에 대비하느라 해군에 힘을 쏟을 여력이 없었습니다. ●“北 위협에 연안 방위… 이젠 항모 필요” 강영오 전 해군교육사령관은 1992년 ‘제1회 함상토론회’에서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는 “북한의 지상 위협 때문에 불가피하게 연안 방위에 중점을 뒀던 전략에서 탈피해야 한다. 중국과 일본의 해군력 증강에 대처하고 통일 이후 태평양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항모기동함대’ 체제를 갖추는 게 급선무”라고 했습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1996년이었습니다. ‘대양해군’ 개념을 국내에서 처음 공론화한 것으로 알려진 안병태 전 해군참모총장은 그해 4월 김영삼 전 대통령으로부터 수직이착륙기 20기를 운용할 수 있는 경항모 도입 계획을 재가받았습니다. 그 배경엔 이케다 유키히코 일본 외무상의 ‘독도 망언’이 있었습니다. “독도는 일본 영토의 일부”라고 주장한 일본에 대해 반일 감정이 치솟았고, 김 전 대통령의 지시로 2만t급 항모와 구축함 6척 건조 계획이 마련됐습니다. 국민 열망을 대변하듯 1996년 서울에어쇼에는 현대중공업이 제작한 2만t급 국산 경항모 모형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국방부와 합참이 이 계획에 반대했고, 이듬해 경항모 연구개발비는 전액 삭감됐습니다.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군은 “항모 도입이 중국, 일본 등 주변국과의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했다고 합니다.●국방부·합참 “한반도는 불침항모” 반대 현재 항모 개발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붓고 있는 중국이나 일본의 상황을 감안하면 실소가 나올 법한 논리였지만 당시엔 그렇게 계획이 무산됐습니다. 당시 육군 위주로 구성된 국방부와 합참 지휘부는 “한반도 자체가 ‘불침항모’이기 때문에 항모가 필요 없다. 북한에 우선 대응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이때부터 해군 지휘부는 ‘북한의 위협’ 대신 ‘대양해군 건설’을 주된 노선으로 삼고 여론 조성에 나섰습니다. 여기에 국민들의 공감대도 더해져 독도함과 마라도함 등 대형수송함 건조사업, 세종대왕함 등 이지스 구축함(KDX-III) 건조사업이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2010년 3월 발생한 ‘천안함 폭침 사건’이 해군에 또 한 번의 고난을 안겼습니다. 1200t급 초계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하면서 “덩치만 크고 비싼 군함 만들면서 허세 부리다 앞마당이 뚫렸다”, “연안도 못 지키면서 무슨 대양해군이냐”는 언론의 질타가 이어졌습니다. 그러자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나서 “우리 군이 현실보다는 이상에 치우쳐 국방을 다뤄 온 것이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고 군을 질책했습니다. 해군은 그해 국회 국정감사 업무보고서에 ‘대양해군’이라는 용어를 단 한마디도 꺼내지 못할 정도로 움츠러들었습니다.●올해 경항모 개발사업비 271억 첫 투입 2011년 1월 여론은 다시 급반전했습니다. 해군 청해부대가 소말리아 해적에 의해 피랍된 삼호 주얼리호 선원 21명을 단 1명의 사망자도 없이 구출해 낸 ‘아덴만의 여명작전’이 대대적으로 보도됐습니다. 이에 2012년부터 해군사관학교 졸업식에 ‘대양해군’이라는 용어가 다시 등장하고, 해군의 노력이 점차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2012년 중국이 첫 항모인 랴오닝호를 취역시키고 일본 내부에서 이즈모급 경항모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며 국산 항모 도입 논의에 가속도가 붙게 됩니다. 그러고도 7년이 더 흐른 지난해 정부는 올해 예산으로 ‘F35B 스텔스 전투기’를 탑재할 수 있는 경항공모함급 ‘대형수송함Ⅱ’ 개발사업비 271억원을 확정했습니다. 항모 건조까지는 앞으로도 10년의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항모 도입 계획은 지난해까지 무려 23년 동안 수많은 논쟁과 질곡의 역사를 거쳤습니다. 이젠 이런 소모적인 논쟁은 끝내고 건설적인 연구가 필요한 시점 아닐까요. 수십년간의 논쟁에도 많은 국민이 꿋꿋하게 항모 도입에 응원을 보내고 있다는 점은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입니다. ●“전투 지원 ‘움직이는 비행장’으로 대비” 연구팀은 이미 ‘6·25전쟁’에서 항모의 장점이 입증됐다고 설명했습니다. 핵심은 전쟁 초기 지상군 지원 기능입니다. 전쟁 초기 남한에서 비행장 운용이 어려워지자 미 공군은 일본에서 전투기를 출격시켰습니다. 그렇지만 대한해협 너머에서 온 전투기들은 작전시간이 ‘15분’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항모를 동원하자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공군 전투기들이 표적에 도착하는 데 평균 1시간 7분이 걸린 반면 함재기는 5~10분 만에 지상군 지원이 가능했습니다. 이는 ‘낙동강 혈투’에서 북한군을 막아 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미 해병1사단의 역사적 철수작전인 ‘장진호 전투’와 피란민 9만명과 병력 10만명을 안전하게 대피시킨 ‘흥남철수’도 수많은 함재기의 도움으로 가능했습니다. 당시와는 상황이 다르지만 방사포와 탄도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리는 북한이 공군 비행장을 1차 타격 목표로 삼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70년 전의 교훈을 되짚어 보며 ‘움직이는 비행장’ 항모를 통한 대비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아오리라멘, ‘승리·반일불매·코로나19’ 삼중고 끝에 파산 신청

    아오리라멘, ‘승리·반일불매·코로나19’ 삼중고 끝에 파산 신청

    가수 승리가 사내이사를 맡아 유명했던 외식 체인 ‘아오리라멘’이 영업에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법원에 파산을 신청했다. 26일 법원에 따르면 아오리라멘을 운영하는 팩토리엔(전 아오리에프엔비)은 지난 24일 서울회생법원에 파산신청서를 접수했다. 팩토리엔은 버닝썬 사태에 승리가 연루되면서 이미지에 타격을 입고 매출이 급락한 데 이어 지난해 일본과 외교 마찰이 심해지면서 반일 불매운동의 유탄도 맞았다. 이어 올해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 침체까지 겹치면서 채무를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일부 아오리라멘 점주들이 본사를 상대로 “버닝썬 사태 이후 매출이 급락했다”며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다만 당시 법원은 “가맹본부에 브랜드 명성을 유지할 의무는 있지만, 거기에 승리 개인의 평판을 유지할 의무까지 포함되지는 않는다”며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향후 파산 사건을 담당할 재판부를 지정하고 심문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법원이 파산 선고를 하면 파산관재인이 선임돼 회사의 자산을 채권자들에게 배분하게 된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이동구 칼럼] ‘이 풍진 세상을…’

    [이동구 칼럼] ‘이 풍진 세상을…’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중략)~세상만사를 잊었으니 희망이 족할까.” 최근 한 종편TV 프로그램에서 4명의 경연자들이 함께 불러 방청객과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던 ‘희망가’의 노랫말이다. 방청객뿐 아니라 기성 가수들조차 눈물을 훔치기도 했고 관련 소셜미디어 접속 조회수가 족히 200만회를 넘었다. 100여년 전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대중가요에 많은 사람이 뜨겁게 공감한 이유는 무엇일까. 대중문화는 시대상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가요뿐 아니라 아카데미상 4개 부문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도 마찬가지다. ‘희망가’가 일제강점기 민족의 애환이 담겼다면 ‘기생충’은 빈부의 차는 존재해도 가족 사랑은 인간 본성이라는 것으로 공감을 이끌어 냈다. 100년 전의 대중가요가 다시 사랑을 받고, 영화 ‘기생충’이 다른 인종과 지구 반대편의 먼 나라에서조차 사랑받는 이유는 대중문화가 자신들의 처지를 잘 이해해 주고 달래 준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온 세상이 뒤죽박죽이다.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가 아시아권을 넘어 유럽, 미국, 남미 등 전 세계로 번졌다. 이란과 이탈리아 등지에서는 사망자가 이미 1000명을 넘어섰다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뒤늦게 팬데믹을 선언했지만 코로나19의 확산세는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덩달아 각국은 국경을 봉쇄해 왕래를 막고 있다. 세계 경제가 곤두박질치는 것은 당연하다. 코로나19가 세계와의 교감을 중요치 않게 여겨 왔던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나 EU를 탈퇴한 영국의 고립주의 등을 더 견고히 하는 계기가 될까 걱정이다. 코로나19는 조만간 사라지거나 통제 가능한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우리 국민들이 겪은 고통과 상처는 쉬 아물지 않을 것 같다. 환자나 희생자 가족뿐 아니라 자영업자 등 전 국민이 큰 고충을 겪었다. 여전히 말 그대로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런 시민들을 두고 자신들의 공치사를 먼저 내세우는 정치인들과 진영 논리나 포퓰리즘에만 혈안이 된 위정자들이 막말들을 쏟아냈다. 특히 “대구 봉쇄, 대구는 손절해도 된다, 코로나 사태는 대구 사태, 대구 폐렴, 지역민들의 무능과 특정 정당을 광신하기 때문에 집단 발병했다”는 등의 발언은 대구·경북 시민들에게 비수를 꽂았다. 공감 능력이 상실된 행위로 관련 주민들에게 큰 상처를 남긴 것이나 다름없다. 평소엔 입을 열 때마다 ‘국민’, ‘소통’, ‘정의’ 등을 외치던 사람들이다. “대구·경북 힘내라”라는 격려의 말 백마디보다 더 아픈 상처를 안겼다. 정의는 선언이나 이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이어야 한다. 그 첫 시작은 이웃이나 약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이다. 이런 배려 없이 자신만이 정의로운 듯 외쳐 댄다면 대중들의 마음에 지워지지 않을 흉터가 되기 마련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사회·경제·정치적인 큰 이슈 때마다 ‘국민의 뜻, 국민적 공감대’라는 명분으로 희생양을 찾는 게 문제 해결보다 더 중요한 과정이 되고 있다. 대통령이나 좋아하는 정치인, 연예인이 비난받거나 궁지에 몰린다고 생각되면, 실체적 진실을 가리기도 전에 소셜미디어 등으로 테러에 가까운 공격을 퍼붓는다. 지난해 조국 전 장관 일가족을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사실관계를 정치적인 명분으로 희석시키려다 사회정의의 혼란을 일으킨 사례다. 최근엔 한 외신기자가 코로나19 대응을 자화자찬하는 우리 정부를 꼬집는 동영상을 트위터에 올렸다가 댓글테러를 당했다. 성차별적 발언부터 ‘토착왜구’, ‘매국노’ 등의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막말까지 마구 쏟아졌다. 다른 의견을 인정하지 않는 도 넘은 혐오와 분노가 표출된 것이다. 그는 “정부를 비판했다가는 ‘친일’, ‘친미’ 딱지가 붙으며 배신자·반역자 취급을 당한다”고 토로한다. 정치적 이해관계나 이념, 지역주의 등으로 형성된 거대 집단의 특징 중 하나는 골치 아픈 사회문제에 대해 원인 규명과 근본 치유보다 ‘희생양’을 찾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중세의 마녀사냥이나 나치의 유대인 학살 등이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희생양으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면 당장은 편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두가 사회정의에 눈감게 돼 결국 그 사회는 큰 혼란에 빠지거나 붕괴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100년 전 그 어지럽고 모진 세상을 한탄했던 심경에 지금의 대중들이 공감하는 이유가 아닐까.
  • 근무시간에 골프친 경찰관 구두 경고

    근무시간을 어기고 업자와 골프를 친 경찰관들이 구두 경고만 받아 논란이 일고 있다. 전북경찰청은 관급공사업체 관계자와 근무시간에 골프를 친 것으로 확인된 군산경찰서 소속 A 경감 등 3명에 대해 ‘구두 경고’했다고 16일 밝혔다. 이들은 지난해 9월 25일 반일 휴가를 내고 오후 1시 10분부터 전북의 한 골프장에서 골프를 쳤다. 반일 휴가의 경우 오후 2시까지 근무해야 하지만 A 경감 등은 50분 일찍 퇴근했다. 민원인의 제보를 받고 감찰 조사에 착수한 경찰은 당시 골프 친 일행에 관급공사업체 관계자 1명도 포함된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전북경찰청은 A 경감 등이 관급공사업체와 직무 관련성이 없다고 보고 근무시간을 어긴 부분에 관해서만 구두 경고 처분을 내렸다. 함께 골프를 쳤던 1명의 경찰관은 감찰 과정에서 민원인의 대응에 불성실했던 점이 추가로 드러나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관들이 휴가 시간을 착각해 근무시간을 어긴 것으로 보고 구두 경고했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왜 항공모함 도입 결정까지 ‘23년’이 흘렀나 [밀리터리 인사이드]

    왜 항공모함 도입 결정까지 ‘23년’이 흘렀나 [밀리터리 인사이드]

    1996년 김영삼 前대통령 재가 받아놓고도“주변국에 갈등 야기” 軍 스스로 항모 반대“한반도는 불침항모” 황당 논리까지 등장‘대양해군’ 내세우며 23년 만에 도입 결정전문가 “6·25전쟁으로 항모 유용성 부각”지난해 7월 12일은 해군사에 역사적인 날로 기록됐습니다. 이날 박한기 합참의장과 육·해·공군 총장 등 군 수뇌부는 해군의 오랜 숙원이었던 경항공모함급 ‘대형수송함-II’ 건조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정부와 군이 공식적으로 사업 추진 결정을 내린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습니다. 국민들의 호응도 뜨거웠습니다. 그동안은 항모를 도입해야 하느냐, 도입하지 말아야 하느냐를 놓고 수십년 동안 옥신각신하느라 연구는 커녕 시간만 흘려 보냈습니다. 어떤 시기엔 중국, 일본 등 주변국의 눈치를 보느라, 어느 시기엔 북한의 연안 기습도발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정부와 군이 스스로 항모 도입을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흘려보낸 시간이 무려 ‘23년’입니다. 항모 도입 결정에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걸까. 15일 한국국방연구원이 발간하는 학술지 ‘국방정책연구’에 실린 ‘한국형 항공모함 도입계획과 6.25전쟁기 해상항공작전의 함의’ 보고서에 따르면 ‘대양해군’에 대한 개념이 희미하게나마 잡히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였습니다. 그 이전인 박정희 정부 시절엔 북한의 지상전력 위협에 대비하느라 해군에 힘을 쏟을 여력이 없었습니다. ●“北 위협에 연안방위…이젠 항모함대 필요” 1992년 강영오 전 해군교육사령관은 ‘제1회 함상토론회’에서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는 “북한의 지상위협 때문에 불가피하게 연안방위에 중점을 뒀던 전략에서 탈피해야 한다. 중국과 일본의 해군력 증강에 대처하고 통일 이후 태평양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항모기동함대’ 체제를 갖추는 게 급선무”라고 했습니다.결정적인 전환점은 1996년이었습니다. ‘대양해군’ 개념을 국내에서 처음 공론화한 것으로 알려진 안병태 전 해군참모총장은 그 해 4월 김영삼 전 대통령으로부터 수직이착륙기 20기를 운용할 수 있는 경항모 도입계획을 재가 받았습니다. 그 배경엔 이케다 유키히코 일본 외무상의 ‘독도 망언’이 있었습니다. “독도는 일본 영토의 일부”라고 주장한 일본에 대해 반일 감정이 치솟았고, 김 전 대통령의 지시로 2만t급 항모와 구축함 6척 건조 계획이 마련됐습니다. 국민 열망을 대변하듯 1996년 서울에어쇼에는 현대중공업이 제작한 2만t급 국산 경항모 모형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국방부와 합참이 이 계획을 반대했고, 이듬해 경항모 연구개발비는 전액 삭감됐습니다.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군은 표면적으로 “항모 도입이 중국, 일본 등 주변국과의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했다고 합니다. ●처음엔 “중일, 갈등 유발” 軍 스스로 반대 주변국의 해군 군비 증강이라는 ‘나비 효과’를 일으켜 국가 안보를 더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겁니다. 현재 항모 개발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붓고 있는 중국이나 일본의 상황을 감안하면 실소가 나올 법한 논리였지만, 당시엔 그렇게 항모 도입계획이 무산됐습니다. 당시 육군 위주로 구성된 국방부와 합참 지휘부는 “한반도 자체가 ‘불침항모’이기 때문에 항모가 필요없다. 북한에 우선 대응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이 때부터 해군 지휘부는 ‘북한의 위협’ 대신 ‘대양해군 건설’을 주된 노선으로 삼고 여론 조성에 나섰습니다. 여기에 국민들의 공감대도 더해져 독도함과 마라도함 등 대형수송함 건조사업, 세종대왕함 등 이지스 구축함(KDX-III) 건조사업이 마련됐습니다. 하지만 2010년 3월 발생한 ‘천안함 폭침사건’이 해군에 또 한번의 고난을 안겼습니다. 1200t급 초계함이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침몰하면서 “덩치만 크고 비싼 군함 만들면서 허세 부리다 앞마당 뚫렸다”, “연안도 못 지키면서 무슨 대양해군이냐”는 언론의 질타가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나서 “우리 군이 현실보다는 이상에 치우쳐 국방을 다뤄 온 것이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고 군을 질책했습니다. 해군은 그 해 국회 국정감사 업무보고서에 ‘대양해군’이라는 용어를 단 한마디도 꺼내지 못 할 정도로 움츠러들었습니다. ●‘아덴만의 여명작전’으로 국민여론 급선회 2011년 1월 여론은 다시 급반전했습니다. 해군 청해부대가 소말리아 해적에 의해 피랍된 21명의 삼호 주얼리호 선원들을 단 1명의 사망자도 없이 구출해 낸 ‘아덴만의 여명작전’이 대대적으로 보도됐습니다. 이에 2012년부터 해군사관학교 졸업식에 ‘대양해군’이라는 용어가 다시 등장하고, 해군의 노력이 점차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여기에 2012년 중국이 첫 항모인 랴오닝호를 취역시키고 일본 내부에서 이즈모급 헬기항모를 경항모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 국산 항모 도입 논의에 가속도가 붙게 됩니다. 그러고도 7년이 더 흐른 지난해 정부는 올해 예산으로 ‘F35B 스텔스 전투기’를 탑재할 수 있는 경항공모함급 ‘대형수송함Ⅱ’ 개발사업비 271억원을 확정했습니다. 우리 눈으로 항모를 직접 확인하려면 앞으로도 10년의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항모 도입 계획은 지난해까지 무려 23년 동안 수많은 논쟁과 질곡의 역사를 거쳤습니다. 이런 역사를 이해한다면 “좁은 바다에서 굳이 돈이 많이 드는 항모를 운용할 필요가 있느냐”는 무의미한 논쟁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될 겁니다. 수십년간의 논쟁에도 많은 국민들이 꿋꿋하게 항모 도입에 응원을 보내고 있다는 점은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입니다. 연구팀은 ‘6·25전쟁’ 당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 항모의 역할을 감안하면 항모 도입에 단순히 대양해군 논리만 내세워선 안 된다고 조언했습니다. ●“전투지원 ‘움직이는 비행장’으로 대비” 전쟁 초기 남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비행장 운용이 어려워지면서 미 공군은 일본에서 전투기를 출격시켰습니다. 그렇지만 대한해협 너머에서 온 전투기들은 작전시간이 ‘15분’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항모를 동원하자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공군 전투기들이 표적에 도착하는데 평균 1시간 7분이 걸린 반면 함재기는 5~10분만에 지상군 지원이 가능했습니다. 이는 ‘낙동강 혈투’에서 북한군을 막아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미 해병1사단의 역사적인 철수작전인 ‘장진호 전투’와 피난민 9만명과 병력 10만명을 안전하게 대피시킨 ‘흥남철수’도 수많은 함재기들의 도움으로 가능했습니다. 당시와는 상황이 다르지만 방사포와 탄도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리는 북한이 공군 비행장을 1차 타격 목표로 삼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70년 전의 교훈을 되짚어보며 ‘움직이는 비행장’ 항모를 통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겁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황성기 칼럼] 아베 리스크

    [황성기 칼럼] 아베 리스크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에 이어 코로나19까지 17년 사이 4개의 감염병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감염병 경험이 축적됐을 법도 한데 여전히 국가에 따라, 정치 지도자에 따라 대처가 다르고 결과도 하늘과 땅 차이다. 그건 아마도 역사의 교훈에서 배우냐 못 배우냐 차이일 것이다. 코로나19 위기에서 아베 신조 총리가 내놓은 정책은 졸작 중 졸작이다.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실패나, 노벨 생리의학상을 5명이나 배출한 의료 선진국인데도 코로나19 검사가 하루 1300여건에 불과한 불가사의는 사스나 메르스를 겪지 않은 ‘바이러스 불감증’이라 치자.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두 번째 하계올림픽을 치르는 저력의 일본인데 곧 좋아지겠거니 낙관에 응원까지 했다. 하지만 하루 2만건에 육박하는 양을 신속하게 검사하는 한국의 진단·치료 체계에 비해 느려터진 일본 정부의 코로나 대응에 겁 먹고 화난 일본인들이 “목숨보다 올림픽이 중요하냐”며 아베 정권 지지를 하나둘씩 철회하자 허겁지겁 내놓은 정책이 기가 막힌다. 사실상의 한국인과 중국인 입국금지이다. 코로나19 증가세가 꺾이고 있는 한국·중국으로부터의 입국 거부와 일본에서 번지는 코로나와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과학적 데이터나 검증 결과도 제시하지 않았다. 후생노동성의 11일 발표를 보면 크루즈선을 제외한 일본 국내 확진자는 전날보다 무려 9.5%나 증가한 568명에 달했다. 일본 각지에서 확산하는 코로나를 막는 방책이 기껏 ‘미즈기와 대책(물 가장자리인 공항이나 항만에서 바이러스를 막는다는 뜻)의 근본적인 강화’라니 섬나라다운 발상이다.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지 못하는 정치의 무기력을 보는 듯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일본 방문 연기를 발표한 날 나온 한중발 입국 금지는 아베 정권의 콘크리트 지지층인 핵심 보수세력을 만족시키려는 ‘정략적’ 결정이다. 아베도 “정치적 판단”임을 시인했다. 초록은 동색인가. 한일 보수의 ‘중국(한국)인 입국 금지’ 주장이 어찌나 닮았는지 신기할 정도다. 국민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정치인이라지만 코로나19라는 미지의 감염병에 의학과 과학으로 대처해야 하는데도 정치가 개입하면서 의료 선진국이면서도 후진국처럼 대응하는 일본을 세계가 주목하는 건 아이러니다. 지난해 7월 일본은 반도체 핵심소재 3개 품목에 대한 대한국 수출규제를 내놓았다. 강제동원 피고 기업의 한국 내 자산 현금화도 이뤄지지 않았는데 아베는 보복의 칼을 꺼내 국제사회를 경악하게 했다. 당시 참의원 선거를 앞둔 대한국 강공책은 아베와 그를 둘러싼 우익 인사들의 작품이다. 일본에서조차 반발을 부른 이 조치로 선거에 큰 재미는 보지 못했지만 한일 관계를 국내 정치에 주저없이 이용하는 아베의 진면목을 또렷이 확인시켰다. 이번도 그 연장선상이다. 한국인 입국금지에 대해 한국인이나 한국 정부가 맹렬히 반발할 걸 예상하고 아베는 선공을 가했을 것이다. 한국은 일본의 코로나 확진자 증가세, 숫자에 잡히지 않는 ‘투명한 감염자’가 더 있을 거라는 공포에도 불구하고 일본인 입국금지에 신중한 자세를 견지해 왔다. 코로나 진단키트 기술을 일본에 제공하겠다고 보건복지부 장관이 공언까지 한 한국이다. 당연히 한국은 일본의 발표 다음날인 6일 저녁 신속히 상응조치를 내놨다. 울고 싶은데 뺨 때려 준 격이다. 한국을 가볍게 정치에 써먹는 일본과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모독이자 한국을 비하하는 혐한 행위이다. 일본의 비자 효력 정지에 상호주의에 입각해 비자 효력정지를 택한 한국 정부를 ‘반일’이라 공격하는 일본 보수와 일부 언론·언론인의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를 듣자니 딱하기까지 하다. 일본의 대구·청도 등 확진자 발생이 많은 지역의 입국 제한은 타당했다. 하지만 전면적 제한은 납득하기 어렵다. ‘특별입국절차’ 같은 중간 단계를 왜 생략했는지 아쉽다. 수출규제조치나 한국인 입국금지는 역대 어떤 일본 총리도 하지 않았을 외교적 일탈이다. 식민지배의 부채 의식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던 전직 총리들과는 달리 한일을 보통 이하의 관계로 낮추려는 아베 총리는 한국에 큰 리스크다. 한중, 한일, 일중은 외교 현안을 항상 안고 사는 이웃이다. 비전통적 안보 영역인 감염병만큼은 국경을 넘어 협조하는 틀을 만들어야 하는데도 일본은 혼자서 거꾸로만 간다. 아베 리스크가 어디까지 폭주할지 걱정이다. marry04@seoul.co.kr
  • 靑 “일본, 입국제한 사전 협의 없었다…신뢰 없는 행동 유감”

    靑 “일본, 입국제한 사전 협의 없었다…신뢰 없는 행동 유감”

    청와대 “日, 5일 사전 확인 요청 때도 부인해놓고선…” “일본, 사증면제·14일 대기 요청도 전달 안했다”청와대가 10일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한국에 대한 입국제한 조치를 한국 측에 사전 통보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일본은 우리 정부에 사전 협의나 통보 없이 이번 조치를 일방적으로 발표했음을 분명히 한다”고 반박했다. 청와대는 “지난해 수출규제 규제 때에 이어 반복되는 일본의 이런 신뢰 없는 행동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윤재관 청와대 부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스가 관방장관은 9일 ‘외교 루트를 통해 한국 측에 사전 통보했고 발표 뒤에도 정중하게 설명했다’고 말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윤 부대변인은 “일본은 지난 5일 우리 정부가 일본의 조치 가능성을 감지하고 외교 통로 통해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했을 때에도 관련 사실을 부인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시 우리 정부는 이런 조치의 자제를 요구하는 한편 최소한의 사전 협의나 통보가 중요하다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 부대변인은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의 대 언론 공개시점을 전후해서야 입국제한 강화조치가 취해질 가능성을 전했다”면서 “사증면제조치 정지, 14일 대기 요청 등 구체적 내용은 전달하지도 않았다”고 설명했다.일본,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에 불만 품고 작년 한국 수출주력품목 반도체 소재에 경제보복 단행 윤 부대변인은 “반면 우리는 조치발표 전 외교 경로를 통해 발표 계획을 알리고 구체적인 사전 설명을 했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에 불만을 품고 지난해 7월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 핵심 소재 3종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를 강화하는 조치를 내리는 경제 보복을 예고 없이 단행했다. 이후 8월에는 수출 절차를 간소화해주는 등 수출 우대 혜택을 주는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대상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시키는 2차 경제보복을 감행했다. 이후 정부도 백색국가에서 일본을 제외하는 등 맞대응 조치를 취하고 국민들 사이에서는 반일 감정이 격화되면서 일본산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일었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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