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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이 시국에… 일본에 방역물품 지원한 경주시장

    [단독] 이 시국에… 일본에 방역물품 지원한 경주시장

    주낙영 경주시장 지난해 일본 나라시 특별명예시민“지금은 일본이 우리보다 방역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 한일간 외교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시점에서 경주시가 일본에 방역물품을 지원해 논란이 되고 있다. 경북 경주시는 지난 17일 자매결연 도시인 일본 나라시와 교류도시인 교토시에 각각 비축 방호복 1200세트와 방호용 안경 1000개씩을 항공편으로 보냈다고 21일 밝혔다. 이달 말까지 자매결연도시인 오바마시, 우호도시인 우사시와 닛코시 등 3개 도시에 방호복 각 500세트와 방호용 안경 각 500개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어려울 때 돕는 것이 진정한 친구이자 이웃”이라며 “누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은 중요하지 않고 지금은 한일 양국이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최근까지도 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해 ‘일본 고유 영토인 독도를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했고, 위안부 문제는 ‘2015년 한일 합의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을 밝혔다.  보건·방역 부문에서 한국의 높아진 입지를 대다수의 나라가 인정하고 있지만 일본의 주요 언론은 “한국이 일본에 방역물품 지원하고 싶으면 사죄부터 해야”, “한국이 일본에 방역물품 지원하고 싶으면 익명으로라도 해야”라며 뻔뻔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정부는 지난달 일본에 마스크를 지원할 것이란 관측에 대해 “마스크 문제는 중대본 차원에서 논의된 바가 없다”고 명확히 했고, 청와대 핵심 관계자 역시 “논의가 필요한 내용이다. 충분한 물량이 확보된 물품이 있을 건데 그런 경우 참전용사 중심으로 지원하자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부 뿐만 아니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일본에 마스크를 지원하지 말아달라는 국민들의 의견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지자체 단독으로 일본 지원을 결정한 것에 대해 시민들은 항의하고 있다. 주낙영 경북 경주시장이 지난해 일본 나라시 특별명예시민이 된 사실도 재조명되고 있다. 당시에도 주낙영 시장은 “오랫동안 쌓아온 두 도시의 두꺼운 형제 우의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며 1970년 자매결연한 사실을 전했다. 22일 경주시 홈페이지에는 “경주시가 일본이냐”, “일본 지원해주라고 세금 보내고 경북에 후원금 보낸 줄 아냐”며 경주시로 수학여행과 관광을 가지 않겠다며 항의하는 글들이 계속해 올라오고 있다. 주낙영 시장은 이같은 반응에 대해 “토착왜구다, 쪽발이다, 정신 나갔냐, 미통당답다 등등 평생 먹을 욕을 다먹은 것 같다”면서 “반일감정이 팽배한 이 시점에 굳이 그런 일을 했느냐는 비판은 겸허히 수용하면서도 시민들께 이해를 구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주낙영 시장은 이번 방역물품 지원은 상호주의 원칙하에 지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 시장은 2016년 지진으로 경주가 어려움을 겪었을 때 일본을 비롯한 해외 자매·우호도시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을 예로 들었다. 주 시장은 “지금은 일본이 우리보다 방역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며 대승적 차원에서 지원했다고 말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사설] ‘윤미향 빌미’로 준동하는 극우, 과거사 왜곡 중단하라

    검찰이 그제 ‘일본군성노예제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에 대한 강제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 정의연 사무실과 연남동 위안부 할머니 쉼터인 ‘평화의 우리집’ 등을 압수수색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당선자와 정의연은 기부금과 후원금 회계부실 처리 의혹과 ‘안성쉼터’ 조성과 관련해 횡령 및 업무상 배임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관련 혐의는 검찰 수사로 조만간 밝혀질 것이지만, 정의연의 이번 위기를 빌미로 과거사를 왜곡하려는 극우세력이 준동하는 사실을 시민들은 좌시해선 안 된다. ‘위안부 할머니는 사기’라는 가짜뉴스가 소셜미디어에 유통되고, 서울의 한 소녀상은 돌멩이 테러를 당했다. ‘반일동상진실규명공대위’(공대위)라는 극우단체는 정의연이 주도해 온 수요집회가 “청소년들한테 성노예 개념을 주입해 정신적으로 학대했다”며 소녀상 철거와 수요집회 중단을 주장했다. 또한 ‘반일 종족주의’ 등의 출간을 주도한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등 극우 인사들은 “일본군 위안소는 후방의 공창제에 비해 고노동, 고수익, 고위험의 시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동원에 대해서도 “노무동원은 자발적”이었다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일본 최고재판소조차 지난 2007년 4월 27일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도 불구하고 개인 청구권은 살아 있다”고 판결했는데도, 한국의 극우세력이 이 문제를 쟁점화하려는 의도가 의심스럽다. 일본 군국주의의 대표적 전쟁범죄인 위안부 강제동원 등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살아서 범죄사실을 증언하는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진실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극우들이 이를 부정하며 일본 극우와 궤를 같이하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특히 학문의 외피를 쓰고 역사왜곡을 일삼는 것은 극우세력 스스로 한국인임을 부인하는 꼴이다. 정의연이 과거의 잘못을 도려내는 과정에 있다고 해서 세계적으로 공인된 위안부 피해자 인권운동이 매도돼서는 안 된다. 특히 한일 극우가 주장한다면, 소녀상 철거도, 수요집회 중단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데스크 시각] 우리, 자격을 갖고 있나/최여경 문화부장

    [데스크 시각] 우리, 자격을 갖고 있나/최여경 문화부장

    프랑스에 사는 사촌언니는 현지 친구들에게 필자를 소개할 때마다 유독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10대에 파리에 정착한 언니는 프랑스 공인교사로 현지 대학생들과 고등학생들에게 아랍어를 가르친다. 대단한 이력을 가진 언니가, 기자 동생을 그토록 자랑스러워한 건 프랑스에서 기자는 정부와 사회가 권위를 인정하는 직업군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공인기관 중엔 기자증발급위원회(CCIJP)가 있다. 1936년에 발족한 기관은 1~2년마다 기자 심사를 한다. 심사를 받으려면 언론사 재직서류, 월급명세서 1년치, 최근 3개월간 쓴 기사 등 준비할 서류도 많다. 정부 비판 기사를 썼다고 심사에서 떨어지진 않는다. 심각한 오보를 냈거나, 가짜뉴스를 양산하면 당연히 자격 박탈이다. 2019년 현재 3만 2000여명이 기자증을 갖고 있다. 이러니 기자와 기사에 대한 신뢰도 높다. 서너 살 아이들이 가는 어린이집에서도 어린이용 신문과 잡지를 교육 교재로 쓴다. 초등학교엔 일주일에 한 시간씩 신문 논조를 분석하는 리터러시(Literacy) 수업이 있다. 온라인으로 뉴스를 접하는 비중이 높아지지만 여전히 가판대에는 신문·잡지가 그득하다. 2015년 1월 파리에서 일어난 만평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을 취재했다. 현장에 아이들과 온 사람들이 많았다. 아이들을 데려온 이유를 묻자 한결같이 말했다. “아이들에게 이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려주는 게 어른들의 역할이다.” 우린 그만 한 책임감을 갖고 있나. 스스로 자긍심을 갖고 일하고 있나. 적어도 부끄럽지는 말자고 다짐하지만, 씁쓸한 일을 자주 접하게 된다. 올해 창간 100년을 맞은 한 일간지는 몇 년이 지난 후에야 과거 오보를 바로잡으면서 갖은 생색을 내고 있다. “최대한 진실에 접근하려고 노력”했지만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고 고백하면서. 이해 못할 대목은 아니다. 실수를 저지를 수 있기에 확인 즉시 ‘바로잡는다’는 공지를 내고 정정보도까지 한다. 그런데 그 신문이 보도한 1986년 11월 17일 ‘김일성 총 맞아 피살’, 2004년 1월 12일 “검찰 두 번은 갈아마셨겠지만”이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 발언, 2013년 8월 29일 ‘김정은 연인 현송월 공개 총살’ 등을 언급한다면? 많은 이들은 ‘실수’보다는 ‘의도’를 읽는다. 그 신문은 최근엔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낸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인물과사상사)를 두고 “‘문빠’ 지지층이 가져온 폐해를 지적하며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처럼 “진보 지식인의 ‘진영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고 썼다. 원래 책은 사회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정치적 소비자 운동을 강조한다. 3장에서 ‘어용 지식인 유시민’, 진보 성향 신문의 절독 운동 등을 꼬집는다. 책을 읽었다면 강 교수의 말이 다소 불편하긴 해도 썩 틀린 말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책의 일부만 발췌하면서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갔다. 책이 왜곡된 데 답답증을 느낀 출판사 편집장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조목조목 반박하기에 이르렀다. 기사의 생명은 객관적인 정보다. 의도를 주입하거나 가르치려는 오만을 부려서는 안 된다. 건설적인 비판을 두고 진영 분열이나 와해 프레임에 가두는 것도 옳지 않다. 정의기억연대, 나눔의집 등의 논란 역시 반일·친일, 진보·보수 프레임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와 평안을 중심에 두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미국 스토니브룩대 리터러시 센터장인 하워드 슈나이더의 말로 갈음한다. “언론인인 척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고의적으로 모호하게 표현해서 주장이나 의견을 제공한다. 정보가 신뢰할 만한 것인지 단순 의견인지, 그걸 구분하지 못하면 인생에서 끔찍한 실수를 저지를지도 모른다.” cyk@seoul.co.kr
  • “일제 기업 문서에 적힌 ‘도주’ ‘납치’ 등 표현이 조선인 강제동원 증거”

    “일제 기업 문서에 적힌 ‘도주’ ‘납치’ 등 표현이 조선인 강제동원 증거”

    정의기억연대의 부실 회계 의혹과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자의 기부금 횡령 의혹이 불거지면서 과거 일본군의 반인도적 전쟁범죄를 부정하는 극우 세력의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에 대해 일제강점기 역사 전공자인 정혜경 박사는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사실을 외면하는 불성실한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일제강제동원 평화연구회’ 대표연구위원인 정 박사는 21일 서울 중구 서울시NPO지원센터에서 ‘그들이 부정하는 역사’라는 제목의 강연을 진행했다. 강제 동원 피해자 3000여명을 연구한 정 박사는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김낙년 동국대 교수 등이 책 ‘반일 종족주의’,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에서 주장한 내용을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 자료를 근거로 조목조목 비판했다. 먼저 ‘노무 동원은 자발적이었지 강제가 아니었다’는 주장에 대해 정 박사는 “일본 미쓰비시광업이 니가타현에서 운영한 사도광업소의 ‘조선인 광부 현황’(1943년 6월 기준)을 보면 ‘도주’(달아남) 항목이 나온다”면서 “‘퇴사’ 대신 ‘도주’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노무에 동원된 조선인들은 2년 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자발적이었다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강제 동원 방법 중 하나인) 강제 연행은 명백한 역사 왜곡’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일본 내무성 관리국의 1944년 7월 출장복명서를 인용하면서 ‘출동은 납치와 같은 상태. 사전에 동원 사실을 알리면 모두 도망쳐 버리기 때문’이라고 적힌 대목이 있었다고 반박했다. 정 박사는 “조선총독부 전직 재무국장은 ‘트럭을 몰고 순사를 동반해 시골에서 잡아채 오는 일’이라고 증언한 적이 있다”고 비판했다. 정 박사는 “30년 가까이 ‘수요집회’가 열리며 우리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외치는 동안 정부와 학계에서 ‘위안부’ 피해 문제의 진상을 규명하려는 노력은 없었다. 이것은 사회 전체의 책임”이라면서 “고령의 피해자가 대신 정부가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일제 문서에 ‘도주’ ‘납치’ 등 표현이 조선인 강제동원 근거”

    “일제 문서에 ‘도주’ ‘납치’ 등 표현이 조선인 강제동원 근거”

    정의기억연대의 부실 회계 의혹과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자의 기부금 횡령 의혹이 불거지면서 과거 일본군의 반인도적 전쟁범죄를 부정하는 극우 세력의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에 대해 일제강점기 역사 전공자인 정혜경 박사는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사실을 외면하는 불성실한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일제강제동원 평화연구회’ 대표연구위원인 정 박사는 21일 서울 중구 서울시NPO지원센터에서 ‘그들이 부정하는 역사’라는 제목의 강연을 진행했다. 정 박사는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에서 2005년부터 11년 동안 조사과장을 지내면서 3000여명의 강제동원 피해자를 만났다. 이날 강연은 법인권사회연구소가 마련했다. 정 박사는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김낙년 동국대 교수 등이 책 ‘반일 종족주의’,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에서 주장한 내용을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 자료를 근거로 조목조목 비판했다. 먼저 ‘노무 동원은 자발적이었지 강제가 아니었다’는 주장에 대해 정 박사는 “일본 미쓰비시광업이 니가타현에서 운영한 사도광업소의 ‘조선인 광부 현황’(1943년 6월 기준)을 보면 ‘도주’(달아남) 항목이 나온다”면서 “‘퇴사’ 대신 ‘도주’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노무에 동원된 조선인들은 2년 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자발적이었다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강제동원 방법 중 하나인) 강제 연행은 명백한 역사 왜곡’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일본 내무성 관리국의 1944년 7월 출장복명서를 인용하면서 ‘출동은 납치와 같은 상태. 사전에 동원 사실을 알리면 모두 도망쳐 버리기 때문’이라고 적힌 대목이 있었다고 반박했다. 정 박사는 “조선총독부 전직 재무국장은 ‘트럭을 몰고 순사를 동반해 시골에서 잡아채 오는 일’이라고 증언한 적이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2015년 7월 독일 본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당시 주유네스코 일본 대사가 ‘본인의 의사에 반해 동원되어 가혹한 조건 아래서 강제로 노역한 수많은 한국인들이 있었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박사는 또 “30년 가까이 ‘수요집회’가 열리며 우리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외치는 동안 정부와 학계에서 ‘위안부’ 피해 문제의 진상을 규명하려는 노력은 없었다. 이것은 사회 전체의 책임”이라면서 “고령의 피해자가 대신 정부가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사설] 민주당의 ‘윤미향 감싸기’, 정의연 미래에 도움 안 된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자를 둘러싼 의혹과 논란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2012년 경기도 안성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쉼터 매입·매각 과정 의혹에 이어 윤 당선자가 2012년 구매한 부동산 자금의 출처에 대한 의혹이 불거졌다. 곽상도 미래통합당 의원은 윤 당선자가 2012년 3월 경매에서 2억원 초반에 낙찰받은 아파트를 현금으로 구매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돈의 출처가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윤 당선자는 경매 아파트를 사기 위해 전에 살던 집을 팔았다고 해명했지만 낙찰받은 시점이 이전 아파트 매각보다 8개월이나 빨라 해명이 불충분하다. 윤 당선자에게 쏠리는 이런 의혹은 부동산은 물론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모체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수령한 국고보조금 부실 회계 등 불투명한 금전 처리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국민의 세금이 시민단체에 들어간 만큼 윤 당선자는 자신에게 호의적인 일부 언론을 통해서만 입장을 밝힐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기자회견을 통해 밝혀야 한다. 윤 당선자가 진보세력 등 진영에 숨으려는 태도는 더불어민주당의 ‘윤미향 감싸기’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김두관 의원 등 민주당 소속 16명의 의원은 부동산과 국고보조금 의혹 제기에 대해 윤 당선자를 옹호하면서 “친일 세력의 최후 발악”이라고 진단했는데, 이는 문제의 본질을 잘못 짚었다. 일본군 위안부라는 전시 성폭력을 세계적 인권 운동으로 발전시킨 정의연의 30년 활동을 협소한 반일 프레임에 가두는 어리석은 일이다. 또한 자칫하면 정대협을 포함해 정의연의 불투명한 회계나 단체 운영을 스스로 바로잡을 좋은 기회를 놓치게 할 뿐이다. 민주당은 윤 당선자를 감싸지 말고 진상규명을 요구해야 한다. 이용수 할머니의 지난 7일 문제제기는 2004년에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공론화했던 사안이다. 따라서 이번에는 반드시 털고 가야 ‘정의연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윤 당선자도 검찰의 수사 이전에 정의연 활동이 ‘인권운동의 대의’를 이어 갈 수 있도록 의혹을 충분히 설명하고 국민의 판단을 구해야 한다.
  • [베스트셀러]부와 성공의 비밀 밝힌 ‘더 해빙’ 4주 연속 1위

    [베스트셀러]부와 성공의 비밀 밝힌 ‘더 해빙’ 4주 연속 1위

    부와 성공의 비밀을 파헤친 ‘더 해빙(사진)’이 4주 연속 1위를 달렸다. ‘반일 종족주의’ 후속작인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이 18위권에 진입했다. 교보문고가 15일 발표한 5월 둘째 주 온·오프라인 종합 베스트셀러 현황에 따르면 1위 ‘더 해빙’을 비롯해 2위 ‘지리의 힘’부터 7위 ‘오래 준비해온 대답’까지 전주와 순위가 동일했다. 특히 ‘더 해빙’은 예스24와 인터파크 등 인터넷서점에서도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코로나19 사태 이후의 사회적·경제적 대전환의 흐름을 비대면·비접촉의 관점에서 분석한 ‘언컨택트’가 지난주보다 3계단 상승한 11위에 올라 눈길을 끈다. 출간 전부터 논란을 부른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이 18위로 처음 진입했다. 다음은 교보문고 5월 둘째 주 베스트셀러. 1. 더 해빙(수오서재) 2. 지리의 힘(사이) 3.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 작품집(문학동네) 4. 흔한남매4(아이세움) 5. 1㎝ 다이빙(피카) 6. 녹나무의 파수꾼(소미미디어) 7. 오래 준비해온 대답(복복서가) 8.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다산초당) 9. 하버드 상위 1퍼센트의 비밀(한국경제신문) 10.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현대지성)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제2의 조국” 자처해 반격 나선 윤미향…프레임 대결 우려 

    “제2의 조국” 자처해 반격 나선 윤미향…프레임 대결 우려 

    이용수 할머니 문제제기… 정치적 대결로 격화 윤 “조국 장관 생각나” vs 한국당 “여권 대주주는 조국”박용진 “지금 이 문제는 단순한 회계 투명성의 문제”정의기억연대 대표를 지낸 더불어시민당 윤미향 당선자가 이용수(92) 할머니의 기자회견으로 촉발된 정의연 후원금 의혹 등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소환하면서 ‘제2의 조국’ 프레임이 형성되고 있다. 정치적 공방이 아니라 정의연의 회계투명성을 밝히는 방식으로 이번 논란이 마무리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은 13일 한 라디오에서 “근본적으로는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친일 세력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있지 않습니까”라며 ‘진보 대 보수’ ‘친일 대 반일’의 프레임으로 윤 당선자를 옹호했다. 윤 당선자는 전날 페이스북에 딸의 지인들을 취재하는 기자의 실명을 거론하며 “6개월간 가족과 지인들의 숨소리까지 탈탈 털린 조국 전 법무장관이 생각나는 아침”이라고 적었다. 억울한 심경을 토로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었지만, 진영 대결을 격화시킬 수 있는 발언으로 해석될 여지가 컸다. 당장 미래한국당은 “여당이 엄호에 나선 시점은 윤 당선자가 자신의 처지를 ‘조국’에 빗대 조국 장관이 생각나는 아침이라는 글을 쓴 직후”라면서 “역시, 여권의 대주주는 조국”이라고 비꼬았다. 전여옥 전 한나라당 의원은 “‘여자 조국 윤미향’에 등극했다”며 제2의 조국 프레임으로 이번 논란을 확대시켰다. 이 할머니가 지난 7일 대구의 한 찻집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성금이 피해자 할머니를 위해 쓰인 적이 없다”며 수요 집회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 내용이 정치적 공방으로 변질된 것이다.전문가들은 이번 논란이 진영 간 대결로 격화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정치적 공방으로 가면 진실과는 무관하게 양 진영의 난타전으로 변한다”면서 “그런 점을 알면서 윤 당선자가 조국 전 장관 이야기를 한 것은 적절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 할머니는 이날 경향신문에 보낸 입장문에서 “폄훼와 소모적인 논쟁은 지양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정치적 대결로 비치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서 “지금 문제 제기가 되고 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단순하게 회계 투명성의 문제”라면서 “이것을 가지고 왜 우리의 운동, 우리 단체가 하려고 하는 일에 대한 시비를 거느냐고 갈 필요 전혀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회계투명성 관련해서는 조금 지켜보자는 분위기”라면서 “시민단체에서 약간의 실수가 있었다면 사과를 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은 이날 수요집회에서 “정의연에서는 개인적 자금 횡령이나 불법유용은 절대 없다”며 “국세청 시스템 공시 입력과정에서 아주 약간의 실수가 있었지만, 국세청 재공시 명령에 따라 바로잡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의연은 2018년 ‘기부 금품 모집·지출 명세서’에서 22억 7300만원의 기부금 수익을 2019년으로 이월한다고 기록했지만, 2019년 서류에는 이월 수익금을 0원이라고 적었다. 피해자 지원 사업 수혜자를 99명·999명 등으로 기재하기도 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성금 유용 의혹 정의기억연대, 오늘 수요시위 정상진행

    성금 유용 의혹 정의기억연대, 오늘 수요시위 정상진행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에 대한 후원금 회계 관련 의혹이 연일 제기되는 가운데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시위가 13일도 예정대로 열린다. 정의연은 이날 정오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1439차 정기 온라인 수요시위’를 한국여성단체연합 주관으로 개최한다고 밝혔다. 정의연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해 올해 2월부터 수요시위를 온라인으로 전환했다. 일부 활동가들만 성명서를 낭독하고 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온라인으로 생중계하고 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1992년 1월부터 28년 넘게 이어진 수요시위를 주도한 정의연·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과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협력했다. 그러나 이 할머니는 지난 7일 대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의연이 성노예제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해 후원금을 쓰지 않고 있다”, “수요집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펴 파문이 일었다.이에 정의연은 11일 서울 마포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목적을 지정해 기부한 금액을 제외한 일반 기부 수입 총 22억 1900여만원 중 41%에 해당하는 9억 1100여만원을 피해자지원사업비로 집행했다고 설명했다. 또 정의연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2015년 한일 합의 당시 일본 정부가 화해·치유재단을 통해 지급하기로 한 10억 엔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화해·치유재단 기금의 수령 여부는 전적으로 할머니들이 결정하게끔 했다”고 해명했다. 기자회견 이후에도 일부 언론은 과거 정의연이 국세청을 통해 공시한 회계 내역 등을 토대로 회계 처리와 관련한 추가 의혹을 제기했다.이날 수요시위에는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 한경희 사무총장을 비롯한 활동가들이 참석한다. 정의연은 “위안부의 역사적 진실을 부정하는 국내외 세력과 2015년 한일 합의 주역들인 적폐 세력이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며, 인권운동 전체를 탄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반일동상진실규명공대위·위안부회복실천연대 등 보수 성향 단체들은 같은 시각 주변에서 ‘맞불 집회’를 열겠다고 예고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포토] ‘소녀상을 지켜라’

    [포토] ‘소녀상을 지켜라’

    반아베반일청년학생공동행동 회원들이 12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서 열린 보수단체의 소녀상 철거 촉구 집회에서 맞서 피켓을 들고 소녀상 주변을 지키고 있다. 2020.5.12 뉴스1
  • 이영훈 “위안부 강제연행설은 거짓” 또 친일·반한 발언

    이영훈 “위안부 강제연행설은 거짓” 또 친일·반한 발언

    지난해 여름을 달군 친일·반한 발언이 또다시 튀어나왔다.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은 11일 오전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미래사) 발간 기자회견을 열어 책 내용을 소개하며 “일본인 위안부는 일본 정부, 모집업자, 위안부의 부모 친지 등 3자의 합작품이었다”, “전시동원 노무자는 끌려간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응했다”고 주장했다. 이번 책은 지난해 7월 출간해 사회적으로 논란을 부른 ‘반일 종족주의’에 관한 비판을 재반박한다. 이 교장을 비롯한 필자들은 앞선 책 출간 이후 쏟아진 비판에 대해 언론 기고나 인터뷰, 유튜브에서 했던 반론 등을 책으로 엮었다. 다섯 가지 주제에 관한 25편에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특별 기고를 더해 모두 28편의 글로 구성했다. 이 교장은 “지난해 ‘반일 종족주의’를 출간한 이후 서점가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적지 않은 분노와 매도, 심하게는 저주 같은 공격과 비판이 있었다”며 발간 취지를 밝혔다. 책의 내용은 ‘반일 종족주의’ 당시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교장은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강제납치설을 부정하고 “일본 정부, 모집업자, 위안부의 부모 친지 등 3자의 합작품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관한 근거로 취업사유서, 호주 취업동의서, 경찰 확인서 등을 들고 “역사적 관점에서 위안부를 재평가하고 성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시동원과 관련 “노예처럼 끌려가 혹사당하다 돌아왔다는 주장은 종족주의의 환상”이라며 “특히 소송을 제기한 노무자 4명은 능동적으로 응했다”고 설명했다. 대한민국 대법원은 지난 2018년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근로정신대 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이 교장은 이에 관해 “대법원은 이런 중대한 판결을 하면서 학술적으로 많은 문제를 안은 주장을 검증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독도 문제와 관련해서는 “우산도를 근거로 우리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은 실증적이거나 과학적이지 않다”고 반박하고, 일제의 토지 수탈설도 “날조됐다”고 강조했다. 또 “우리나라 근대의 출발은 사법제도가 성립한 일제강점기이며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근대인으로 개발하는 과정”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이 교장을 비롯해 김낙년 동국대 교수, 김용삼 펜앤마이크 대기자, 주익종 이승만학당 상근이사, 정안기 전 서울대 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등 기존 필진에 차명수 영남대 교수와 박상후 전 MBC 전국부장이 참여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정의기억연대 “3년 기부수입 22억 중 41% 피해자 지원에 써”(종합)

    정의기억연대 “3년 기부수입 22억 중 41% 피해자 지원에 써”(종합)

    “후원금 전달만 피해자 지원사업 아냐”“위로금 수령 못하게 했다는 주장 사실무근”후원금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은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후원금을 전달하는 것만이 피해자 지원사업은 아니다”며 기금 운용에 문제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정의연은 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성산동 ‘인권재단 사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기자회견 시작에 앞서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은 “지난 30년간 이 운동을 같이 해오며 가족같이 지내셨던 할머님의 서운함, 불안감, 분노를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할머니께 원치 않은 마음의 상처를 드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말씀을 드리겠다”고 말한 뒤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앞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는 지난 7일 대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의연이 성금·기금을 받아 할머니들에게 쓴 적이 없다’, ‘성금을 어디에 쓰는지도 모른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이에 정의연은 입장문을 내고 ‘모금 사용 내역을 정기적인 회계감사를 통해 검증받고 공시 절차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단체 회계 관련 논란이 계속되자 정의연은 이날 추가로 기자회견을 열고 해명에 나섰다. 정의연 측은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기부수입 총 22억 1900여만원 중 41%에 해당하는 9억 1100여만원을 피해자지원사업비로 집행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액수에는 2017년 100만 시민모금을 통해 모금한 7억여원에 일반 후원금을 더해 조성한 8억원을 총 8명의 할머니들에게 여성인권상금으로 지급한 것도 포함돼 있다. 한경희 사무총장은 “피해자 지원사업은 건강치료지원, 인권·명예회복 활동 지원, 정기방문, 외출동행, 정서적 안정 지원, 쉼터 운영 등으로 수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같은 비용은 뒤따르는 인건비를 포함하지 않은 비용”이라며 “공시에 나와 있는 피해자지원 사업 예산만으로 저희의 피해자 지원사업을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정의연은 지난해 수요집회를 통해 모금한 금액은 약 460만원으로, 전액 수요시위 진행에 사용했다고 밝혔다. 수요시위 진행비는 연간 1억 1000여만원 가량이라고 설명했다. 또 공시한 기부금 사용 내역 중 ‘피해자 지원사업’ 항목의 수혜자 수가 ‘99명’, ‘999명’등으로 기재돼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데이터가 깔끔하게 처리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드리고, 실무적으로 미진한 부분을 고쳐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의연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2015년 한·일 합의 당시 일본 정부가 화해·치유재단을 통해 지급하기로 한 10억 엔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전면 부인했다. 이상희 정의연 이사는 “화해·치유재단 기금의 수령 여부는 전적으로 할머니들이 결정하게끔 했다. 할머니들을 일일이 방문해 의사를 확인했다”며 “할머니들에게 위로금을 수령하지 못하게 했다고 하는 것은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또 일본이 10억 엔을 출연할 것이라는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해당 내용은 발표 전부터 언론 보도를 통해 거론됐다”며 “외교부는 국장급·고위급 협의에서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 정대협이나 나눔의 집에 알린 바 없다. 공식 합의 발표가 있기 전에는 10억 엔 관련 내용을 전달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 이사장은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 이후 정의연 관련 언론 보도에 강한 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이사장은 “지난 30년간 피해자와 활동가들이 일궈낸 세계사적 인권운동사를 이런 식으로 훼손할 수 있을까”라며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때 용감한 피해자와 헌신적인 활동가·연구자들이 이 운동을 만들어왔다. 그런데 여러분이 그 역사를 알고 있는지 솔직히 의구심이 들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장 바깥에서는 ‘반일동상진실규명공대위’·‘위안부인권회복실천연대’ 관계자들이 피켓을 들고 윤 전 대표와 정의연 측을 규탄하는 1인시위를 열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반일감정 덕(?)에 탄생한 ‘한국형 전투식량’의 비밀

    반일감정 덕(?)에 탄생한 ‘한국형 전투식량’의 비밀

    소고기 고추장 비빔밥, 김치 비빔밥, 카레 비빔밥, 해물 비빔밥, 닭고기 비빔밥…. ‘집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이 음식들은 바로 ‘전투식량’입니다. 최근 출시된 전투식량은 일반 즉석식품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품질이 높아졌습니다. 심지어 물이 없어도 ‘발열팩’으로 데워 먹을 수 있습니다. 6·25 전쟁 때만 해도 전투식량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주먹밥’이 곧 전투식량이었습니다. 물론 미군이 2차 세계대전부터 보급한 ‘C레이션’이 있었지만, 우리 입맛엔 맞지 않았습니다. ‘한국인의 밥상’에 대한 갈구는 베트남전까지 이어졌습니다. 한국군은 1964년 9월부터 1973년 3월까지 8년간 베트남전에 파병됐습니다. 이 긴 기간을 미군 전투식량으로만 버텼다면 아마 군인들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졌을 겁니다. 그래서 이 시기 ‘한국형 전투식량’(K레이션) 개발이 본격화됐습니다.●베트남전이 만든 ‘한국형 전투식량’ 23일 이신재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이 작성한 ‘베트남전쟁기 한국형 전투식량 개발과정 고찰’ 논문에 따르면 베트남전 파병 첫 3개월 동안 우리 군은 쌀밥을 맛보지 못하는 ‘지옥’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파병 초기 미군으로부터 전투식량을 보급받았지만, 대다수 병사들은 제대로 된 사용법조차 몰랐습니다. 참고로 당시 미군 전투식량은 냉장시설이 완비된 곳에서 사용하는 신선식품 조리식 ‘A레이션’, 취사장비는 있지만 냉장시설이 없을 때 먹는 통조림 형태의 ‘B레이션’, 취사가 불가능한 지역에서 먹는 즉석식품 ‘C레이션’ 등 3종류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한 해병대 대대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취사병들이 B레이션 깡통 속 내용물을 요리할 줄 몰라 처음에는 솥에 넣고 물을 부어 ‘꿀꿀이죽’처럼 먹었다. 맛이 시금털털하고 괴상했다. 처음엔 엉망이었지만 차차 나아졌다”고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한국군 사령관이었던 채명신 장군의 요청으로 남베트남의 쌀이 보급됐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김치’였습니다.●“김치 보급 문제 美 상원 청문회에도 등장” 채 전 사령관은 회고록에서 “월남쌀로 밥을 짓고 C레이션으로 찌개나 국을 끓여 먹이니 장병들의 입맛이 살아나 살이 찌는 현상까지 생겼지만 한계가 있었다”며 “내가 부대를 방문할 때마다 듣는 건의사항은 무기나 탄약, 한국에서는 귀했던 휘발유 같은 보급품이 아니라 ‘된장, 고추장, 김치가 먹고 싶다’는 요청이었다”고 토로했습니다. C레이션에 질려버린 일부 장병들은 추수가 끝난 밭에서 그 매운 ‘베트남 고추’를 따 섞어 먹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김치 문제는 미 상원 청문회에 등장할 정도로 크게 이슈가 됐습니다. `채 전 사령관의 간곡한 요청으로 미 군사원조사령부는 ‘한국형 C레이션’을 새로 보급했습니다. 밥, 김치, 꽁치 통조림이 포함돼 맛도 괜찮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또 있었습니다. 전투식량을 하와이에서 일본인들이 만들어 납품한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한국 고유의 음식인 김치를, 일본 사람이 만들어 납품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1965년 한일협정의 여파로 베트남전 파병시기는 국민들의 반일 감정이 매우 높을 때였습니다. 이에 채 전 사령관은 정부에 ‘국산 전투식량’을 개발해 달라고 요청하게 됩니다. 난관이 이어졌습니다. 시제품 통조림에선 시뻘건 녹물이 나와 도저히 음식을 먹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열대 기후에도 버틸 수 있는 통조림 제조기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미 육군 시험소 분석 결과 미군이 최초 보급한 한국형 C레이션도 미군 C레이션 중량의 절반이었고 칼슘, 비타민 등의 영양소가 기준치에 미달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14개 업체를 동원해 7개월간의 노력 끝에 1967년 3월 드디어 미군 검증을 통과한 제품이 나왔습니다. 그해 10월 한미 양국은 한국에서 개발한 ‘K레이션’을 납품하는 내용의 합의서를 작성하게 됩니다. K레이션은 한국인 기호를 고려해 K1부터 K6까지 6가지 종류로 구성됐습니다. 흰밥과 김치, 멸치 파래무침, 돼지고기 조림, 소고기 조림, 오징어 조림, 꽁치 조림, 두부전, 콩자반, 장조림, 소시지 조림 등 반찬 10가지가 포함됐습니다. 여기에 인삼차, 가루고추장, 설탕, 소금, 껌, 담배, 휴지, 성냥 등의 부속품도 포함됐습니다. 한국형 전투식량의 역사가 시작된 순간입니다.●베트남전 기간 5639만 달러 수출 달성 한미 정부는 1967년 12월부터 1968년 6월까지 7개월분 709만 달러, 이후 1년 단위로 해마다 1000만 달러가 넘는 전투식량 공급 계약을 맺었습니다. 한국 장병들이 먹는 음식이었지만, 비용은 미국이 부담했기 때문에 우리가 미국에 전투식량을 ‘수출’한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김치를 그리워하는 장병들의 원성에 마음이 급했던 정부는 위문품 형태로 시제품 15만 상자를 구입해 보급하기도 했습니다. 이 ‘성탄절 선물’은 1966년 12월 배에 실렸고 다음해 2월 처음으로 장병들에게 보급됐습니다. 이후 장병들은 하루 2끼는 미군 전투식량을, 1끼는 한국 전투식량을 먹게 됐습니다. 심지어 남베트남 쌀까지 보급돼 식단 열량이 미군을 능가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아도는 쌀을 베트남 민간인에게 보급할 정도였습니다. 베트남 파병 장병에게 우선 공급됐던 K레이션은 1971년부터 한국에도 보급됐습니다. 전투식량은 해외 수출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베트남 전쟁 시기 군납을 통한 외화수입은 1억 8000만 달러 규모였는데, 그중 31.3%인 5639만 달러가 K레이션 수출로 달성한 것이었습니다. 1968년 1000만 달러 이상 수출한 업체가 국내에 2곳밖에 없을 정도였으니,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였던 겁니다. 지금은 일반 마트에서도 제품을 접할 수 있을 정도로 전투식량이 흔해졌습니다. 진공건조 기술을 적용하고 물만 부으면 일반 비빔밥처럼 즉시 먹을 수 있어 여행할 때 이용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제품과 입맛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지만, 편의성만큼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겁니다. 불과 50년의 역사로 이런 성과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정부와 군, 업체가 경쟁력 있는 제품을 계속 개발해 K레이션이 세계적인 전투식량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한필원의 골목길 통신] 코로나19 사태 이후 자영업의 새로운 영업전략

    [한필원의 골목길 통신] 코로나19 사태 이후 자영업의 새로운 영업전략

    코로나19 사태가 세 달째 계속되면서 자영업 또한 이제까지 생각조차 못했던 엄청난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신규 확진자 수가 많이 감소해 조금 숨을 돌리게 됐지만 백신이 개발돼 이 사태가 완전히 끝나기까지는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더욱이 일정 시간이 흐른 뒤 이 감염병이 재유행할 가능성도 있다 하니 자영업자의 시름이 더욱 깊어진다. 자영업자들이 몇 번씩 들어왔던, 어떻게든 버텨서 이 위기를 잘 넘기기만 하면 될 상황은 분명 아니다. 과거의 영업방식을 재검토하고 근본적으로 새로운 영업전략을 세워야 살아남을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고객의 급감. 물론 이 사태가 진정됨에 따라 점차 고객이 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완전히 종식되는 시점에 다가가면 그간 억압됐던 수요가 표출돼 이 사태 이전보다 고객이 더 늘 가능성도 있다. 요컨대 고객 수를 예측하기 힘든 상황인데 소규모 자영업자가 이에 대응하기는 매우 어렵다. 자영업의 매출은 흔히 고객 수에 객단가, 곧 고객 한 사람이 매장에서 지출하는 비용을 곱해 계산한다. 이 공식에 따르면, 매출을 증가시키려면 고객 수 혹은 객단가를 늘려야 한다. 물론 둘 다 늘리면 가장 좋을 것이다. 이 계산방식의 한계는 고객 수가 일정하지 않을 때 매출목표를 설정하거나 영업계획을 세우기 어렵다는 점이다. 고객 수와 객단가가 즉시 반비례 관계를 형성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런 자영업은 없다. 커피숍에서 매장에 있는 고객 수가 평소의 절반일 때 커피를 한 잔 마시던 사람이 두 잔 마실 리도, 커피값을 두 배로 올려 받을 수도 없지 않겠는가. 직원 수와 매장 공간 규모는 모두 영업비용 지출뿐 아니라 매출, 특히 고객 수에 직접 관련된다. 그러니 고객 수가 널뛰기하면 매출도 큰 폭으로 오르내리고 필요한 직원과 매장 규모의 편차도 커진다. 직원 수나 매장 크기는 수시로 줄였다 늘렸다 할 수 없으므로 음식점 등 자영업이 이런 상황에 대처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코로나19 사태가 초래한 이 문제에 대처하는 영업전략을 세우기 위해서는 매출을 계산하는 방식부터 변동 폭이 큰 고객 수에 좌우되는 방식에서 고정된 매장공간 규모에 관련되는 것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그래서 필자는 ‘공간단가’라는 영업지표를 제안하고자 한다. 공간단가는 매출을 매장면적과 영업시간으로 나눈 것, 다시 말해 단위 매장면적당 한 시간에 벌어들이는 수입을 말한다. 공간단가는 고객 수보다 고객이 얼마나 넓은 공간을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차지하는가, 곧 밀도에 관련된다. 공간단가를 사용해 매출목표를 세우려면 먼저 매장의 적정 밀도를 설정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과거보다 사람 사이 거리를 좀더 확보하려는 경향이 나타날 것이므로 앞으로 매장의 밀도를 낮추는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이제까지의 매출 계산 방식으로 이런 전략을 구사하기는 어렵다. 객단가가 고정된 상황에서 이는 매출 감소, 곧 경영 악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간단가라는 지표를 사용하면 객단가는 유지하고 고객당 매장 이용시간을 줄임으로써 매출을 유지할 수 있다. 또한 매장의 적정 밀도와 높은 공간수준을 상품 가격에 반영해 객단가를 높이거나 매장 이용시간이 늘면 상품 구매금액이 늘어나 객단가가 높아지도록 하는 전략도 쓸 수 있다. 곧 공간단가를 사용하면 고객 수와 객단가만 생각하는 좁은 인식 틀에서 벗어나 밀도와 공간 수준, 고객의 매장 이용시간 등을 변수로 포함시킴으로써 사용 가능한 영업전략의 카드가 더 많아진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자영업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런 새로운 인식과 영업전략이 필요하다고 본다.
  • 정부, ‘해열제 먹어 열 내리고 검역 통과’ 유학생 고발키로

    정부, ‘해열제 먹어 열 내리고 검역 통과’ 유학생 고발키로

    정부가 해열제를 복용해 코로나19 증상을 숨기고 인천공항 검역을 통과한 유학생을 고발하기로 했다. 이 유학생은 입국 전부터 기침, 가래 등의 증상이 있었지만 인천공항 검역소에 제출한 건강상태질문지에 표기하지 않았다. 또 체온을 일시적으로 내리면 발열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다는 허점을 이용해 비행기 탑승 전에 해열제를 먹고선 검역을 무사 통과했다. 이 유학생은 미국에서 입국한 다음 날인 지난달 26일 코로나19로 확진됐다.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총괄조정관은 10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미국에서 입국한 이 남성은 당시 특별입국절차대상으로 건강상태질문서를 작성하고 여기에 근거한 검역조사와 진단검사를 수행할 의무가 있었다”며 “입국 당시 제출한 건강상태질문서에 ‘증상없음’이라고 고의로 허위기재를 한 것으로 판단해 인천공항 검역소가 고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 총괄조정관은 “해열제를 복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증상을 숨기고 검역을 통과하는 사례는 같이 비행기에 탑승한 사람들, 또 이후 이동과정에서 접촉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감염의 위험을 전파하는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이라며 “검역법 위반일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동임을 유념해달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무관용의 원칙에 따라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검역 과정에서 거짓서류를 제출하고 입국하면 검역법 위반으로 최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세월호 침몰시키자” 주동식, 이번엔 “제사에 매달리는 광주”

    “세월호 침몰시키자” 주동식, 이번엔 “제사에 매달리는 광주”

    2018년엔 세월호 막말 논란도…“매달 세월호 하나씩 만들어 침몰시키자” 주동식 미래통합당 광주 서구갑 후보가 8일 “광주는 80년대 유산에 사로잡힌 도시, 제사에 매달리는 도시로 추락했다”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주 후보는 지난 8일 KCTV 광주방송을 통해 송출된 후보자 방송 연설 발언에서 “광주는 80년대의 유산에 사로잡힌 도시, 생산 대신 제사에 매달리는 도시, 과거 비극의 기념비가 젊은이들의 취업과 출산을 가로막는 도시로 추락했다”고 말했다. 또 “지금 호남 정치를 지배하는 것은 80년대 낡은 유산. 호남 정치는 민주화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워 문재인 정권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호남정치 앞에는 이제 역사적 평가가 기다리고 있다. 문재인 정권의 국정 운영은 절망적”이라고 했다. 그가 언급한 ‘제사’는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 문재인 대통령을 ‘시진핑의 지시를 받는 남한 총독’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바이러스 대응을 보면 문재인 대통령이 누굴 위해 일하는지 의문”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은 방중 당시 북경대 학생들 앞에서 ‘중국은 큰 산맥 같은 나라고 한국은 작은 나라다, 중국몽에 함께하겠다’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이분이 대한민국 대통령인지, 아니면 시진핑의 지시를 받는 남한 총독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주 후보는 4.15 총선 후보 초청 토론에서도 “광주는 80년대에 묶여 있는 도시이다. 민주화의 성지라는 미명 아래 비극을 기리는 제사가 마치 본업처럼 됐다”며 “운동권들이 5·18과 민주화를 내세워 생산과 상관없는 시설과 행사를 만들어내 예산을 뜯어내 무위도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일본 문제를 굉장히 악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저는 현재 문재인 정권이 주장하고 있는 반일 감정, 반일 정신병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이성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한편 앞서 주 후보는 지난 2018년 8월 세월호 관련 막말로 한 차례 논란을 산 바 있다. 그는 당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일자리 창출 고민할 것 없다. 앞으로 매달 세월호 하나씩만 만들어 침몰시키자”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세월호를 많이 만들어 침몰시키자고 했지, 거기에 사람을 태우자고 하지 않았다”며 “세월호 진상을 규명한다며 혈세를 낭비하는 행태를 비꼰 풍자이다. 오해들 말고 막말들 하지 말라”고 덧붙인 바 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코로나 이권 챙기는 아베 측근들… 일본, 더 안 좋아질 것”

    “코로나 이권 챙기는 아베 측근들… 일본, 더 안 좋아질 것”

    “나는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도, 반정부 운동가도 아닌 그저 학자일 뿐입니다.” 일본계 귀화 한국인으로 자타공인 최고 독도 전문가인 호사카 유지(63) 세종대 정치학 교수(세종대 독도연구소장)는 한 저서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토종 한국인보다도 더 한국을 사랑하는 모습, 일제 강제징용·위안부 문제에 어느 한국인보다도 더 공분하는 그의 모습은 ‘반일투사’를 연상하게 하지만, 그는 사실 자정 가까이 연구실에 묻혀 있을 때가 더 많은 연구자일 뿐이라고 자신을 설명한다. 그동안 보여 준 ‘한국 사랑’이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지만, 올해 코로나19 사태를 보며 “다시 한번 한국에 귀화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서울신문 본사에서 있었던 인터뷰에서 그의 한국 예찬과 학자로서의 삶에 대한 얘기를 들어 봤다. ●후쿠시마 원전·동일본대지진… 日보다 한국이 안전 “불안감을 갖지 않고 정부가 말하는 지침을 잘 따르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로나19로 촉발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한일 양국의 상반된 대응을 지켜본 호사카 교수는 한국에 대해 느낀 점을 이렇게 밝혔다. 2003년 귀화한 그는 일본에서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느낀다고 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동일본대지진 등이 그 사례였고,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그가 귀화했을 때만 해도 일본인보다 한국인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을 더 많이 보였다. 일본이 더 좋은 나라가 아니냐는 이유였다. 하지만 어느 때부턴가 이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게 됐다. 한국인들 역시 이제 일본보다 자신들이 더 안전한 나라에 살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호사카 교수는 광범위한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실시한 한국과 그러지 않았던 일본을 비교하며 “일본은 누가 감염됐는지 모르는 상황이고, 그래서 지금과 같은 사재기 열풍까지 일어난 것”이라고 했다. 특히 그는 긴급사태까지 선포된 현 일본의 상황이 극우파인 아베 신조 정권이 자초한 일이라고 말했다. 도쿄올림픽 개최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감염 확산 규모를 축소하는 등 소극적으로 대응하다 때를 놓치고 말았다는 의미다. 더불어 한국이 진단 키트를 개발하도록 민간을 적극적으로 독려한 반면 일본은 후생노동성의 관리 아래 있는 업체에만 개발하도록 하며 대응이 더욱 늦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기술대국이라는 일본이 진단 키트를 개발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었겠느냐”면서 “후생성 내 아베의 낙하산 인사와 그들의 이권 때문”이라고 했다.그는 일본의 상황이 더 안 좋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보건 당국이 감염자의 동선 파악도 어려운 것이 현재 일본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일본인 특유의 국민성은 평상시에는 ‘예의 바름’으로 평가받지만, 지금과 같은 감염병 사태에서는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된다고 분석했다. 일본인들이 감염돼도 제대로 신고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호사카 교수는 “중간에 들른 곳에 폐를 끼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자신이 어디에 다녀왔다고 밝히지 않는 것”이라며 “영안실로 들어온 사망자가 코로나19 때문에 사망했는지도 알 수 없는 장례식장 같은 곳은 무척 난감한 상황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감정적 대응 넘어 독도 연구 체계화에 기여 호사카 교수는 이제 역사학도들뿐만 아니라 거리를 지나가다 만난 시민들도 알아볼 만큼 유명 인사가 됐다. 특히 학계는 물론 대중들에게도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계기는 단연 1998년부터 시작한 독도 연구다. “‘일본 출신 학자도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라며 한국 학자들이 저에게 자극을 받은 부분도 있다고 봅니다.” 호사카 교수는 과거 감정적 대응이 앞섰던 독도 연구를 체계화하고 구체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 출신’이라는 점만으로도 주목받을 수 있었지만, 지금의 그를 만든 것은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 치밀한 연구 자세였다. 그는 “사안에 대해 상세하게 접근하는 것이 일본인들의 특성이고, 그들의 독도 연구도 마찬가지였다”면서 “일본의 그러한 연구·주장에 대해 치밀하고 철저하게 반박했다. 이를 통해 한국의 독도 연구 문화가 새롭게 바뀌는 데도 기여했다고 본다”고 자평했다. 그는 최근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일본 문부과학성의 중학교 교과서 검정 승인에 대해 “이제 일본은 독도영유권 주장을 전체 교과서에 다 싣게 되는 셈인데, 실제 일본의 학교 현장에서 어떻게 이뤄지는지도 봐야 한다”면서 “도쿄의 모교에 물어보면 독도 문제를 가르치지 않는 교사도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독도·친일파 문제… 책 쓰는 재미 빠져 1년에 한 번 출간 치열하고 성실한 연구자로서의 면모를 알 수 있는 또 다른 사례는 바로 그의 저서들이다. 2002년 첫 출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낸 책은 단행본 기준으로 17권 정도다. 그가 귀화한 시점인 2003년을 전후로 거의 1년에 한 번꼴로 책을 낸 셈이다. “책을 쓰는 재미가 생겼습니다. 논문 작성과는 또 다른 재미죠.” 계속해서 책을 낸 비결·원동력을 묻자 호사카 교수는 ‘글쓰기의 즐거움’이라고 답했다. 그는 어린 시절 집보다 밖에서 노는 걸 더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 시절 야구선수 장훈과 같은 재일교포 운동선수들이 우상이었다는 호사카 교수의 말은 그의 외향적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다. 그런 자신이 PC 앞에서 하루 종일 자료와 씨름해야 하는 학자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한일관계사에서 숨겨졌던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낸 그의 연구 성과는 학계뿐만 아니라 출판사들의 관심도 끌게 됐다. 그가 낸 책들은 ‘상품성’을 간파한 출판사가 먼저 출간을 제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의 책들은 역사 분야 서적 가운데 상위에 오를 만큼 인기를 끌며 한일 관계와 독도 영유권 문제 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대중에게 제공했다. 호사카 교수는 “논문이 하나의 사실을 증명해 나가는 과정이라면 책은 결론부터 시작해 독자를 설득하는 성격이 더 강하다”면서 “처음에는 출판사 의뢰로 책을 쓰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책을 쓰는 것 자체로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5개월 동안 ‘반일 종족주의’ 허구성 조목조목 지적 이 같은 오랜 노력의 한편에서 식민지 근대화론과 일본군 위안부·징용의 강제성을 부인하는 내용을 담은 ‘반일 종족주의’ 같은 책이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역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는 학문적인 관심보다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반일 종족주의’에 많은 관심이 쏠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 정권에 반대하는 이들이 그 책을 사봤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지금 정권이 일제 강제징용 문제 등에서 일본을 강하게 밀어붙였으니까요.” ‘반일 종족주의’에 대해 그는 학문과 연구를 통한 철저한 검증으로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사카 교수는 길지 않은 인터뷰 시간상 강제징용 문제를 예로 들어 ‘반일 종족주의’의 주장을 반박했다. “반일 종족주의 저자들은 강제징용을 당한 조선인과 일본인들이 평등한 대우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월급도 똑같이 받았고, 탄광 노동과 같은 힘든 일은 일본인들도 똑같이 했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죠.” 호사카 교수는 “월급은 액면상 조선인과 일본인이 같았다고 하지만, 실제 조선인들은 그 돈을 다 받지 못했다”면서 “말로만 고향에 월급을 보내 준다고 하는 경우가 많았고, 조선인들의 통장 관리자들이 따로 있었기 때문에 중간에 가로채기를 당했다”고 말했다. 때마침 이 같은 그의 반박을 담은 신간 ‘신친일파’가 지난 4일 출간됐다. ‘반일 종족주의’ 내용의 허구성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책을 완성하는 데 5개월이 걸렸다. 호사카 교수의 이름이 한국과 일본 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일본 우파들의 공격 수위도 높아졌다. 세종대 연구실은 일본인들의 항의·협박 전화를 받는 게 하나의 일상 업무가 됐을 정도다. 테러가 우려돼 호사카 교수는 가족에 대한 신상은 절대 밝히지 않는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그의 연구실로 전화하는 한국인들도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대부분 한국말로 “독도는 일본 영토”라는 식의 주장을 하는 비난 전화다. 그의 연구실로 전화해 폭언을 쏟았던 ‘21세기의 친일파’들은 ‘반일 종족주의’와 같은 책이 나올 것이란 징후였을 수도 있다. 호사카 교수는 일본 우파의 주장을 따르는 이들에게 ‘신친일파’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는 신간의 책 제목이 되기도 했다. 그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극우 세력의 지원을 받고 ‘확성기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 그대로 ‘신친일파’에 맞선 연구는 앞으로도 계속된다고 했다. “역사를 좋아하는 분들이 제 책을 많이 사랑해 주셔서 그동안 서적들은 정치사회 분야에서 10위 안에 오르곤 했습니다. 이제 전체 서적 가운데 10위 안에 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하하.”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일본 도쿄대의 공학도 출신으로, 1988년 한국으로 건너와 고려대 대학원 정치외교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석사 논문은 ‘일본의 한국 침략 배경 연구’, 박사 논문은 ‘일본제국주의의 민족동화 정책 분석’이었다. 2003년 한국인으로 귀화하며 본격적으로 한일 관계 및 독도문제 전문가로 인지도를 얻게 됐다. 시낭송 모임에서 만난 한국인 아내와 2남1녀의 자녀를 두고 있다. 그의 든든한 벗인 아내는 그가 책을 낼 때 교정을 봐주는 역할을 도맡기도 한다. 두 아들은 모두 현역으로 국방의 의무를 다했다고 한다.
  • “‘기무치’는 도저히 못 먹겠다”…‘반일’로 탄생한 전투식량 [밀리터리 인사이드]

    “‘기무치’는 도저히 못 먹겠다”…‘반일’로 탄생한 전투식량 [밀리터리 인사이드]

    베트남전, 초기 3개월간 미군 C레이션 제공“한국음식 그립다” 불만에 ‘한국형 C레이션’‘일본인 생산’ 김치 비판여론…K레이션 개발베트남 군납 수출 30% 차지…외화벌이 기여소고기 고추장 비빔밥, 김치 비빔밥, 카레 비빔밥, 해물 비빔밥, 닭고기 비빔밥…. ‘집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이 음식들은 바로 ‘전투식량’입니다. 최근 출시된 전투식량은 일반 즉석식품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품질이 높아졌습니다. 뜨거운 물만 부으면 한 끼 식사로 충분한 밥상이 차려집니다. 물을 끓이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발열팩’이 포함된 제품으로 데워 먹을 수도 있습니다. 6·25 전쟁 때만 해도 전투식량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주먹밥’이 곧 전투식량이었습니다. 그래서 군인들은 전투를 마친 뒤 참호에서 늘 ‘따뜻한 밥 한 끼’를 떠올렸고, 주린 배를 움켜쥐고 전투에 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미군이 2차세계대전부터 보급한 ‘C레이션’이 있었지만, 우리 입맛엔 맞지 않았습니다. ‘한국인의 밥상’에 대한 갈구는 베트남전까지 이어졌습니다. 한국군은 1964년 9월부터 1973년 3월까지 8년간 베트남전에 파병됐습니다. 이 긴 기간을 미군 전투식량으로만 버텼다면 아마 군인들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졌을 겁니다. 그래서 이 시기 ‘한국형 전투식량’(K레이션) 개발이 본격화됐습니다. ●베트남전 파병으로 개발한 ‘한국형 전투식량’ 한국형 전투식량 시초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을 뿐 구체적인 연구가 진행된 적이 없습니다. 참전자의 회고록이나 사료 등으로 조금씩 알려졌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신재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이 올해 ‘베트남전쟁기 한국형 전투식량 개발과정 고찰’이라는 제목의 첫 논문을 냈습니다. 5일 이 논문을 바탕으로 김치 등 한국음식이 어떻게 참호 속 군인들의 밥상에 올라왔는지 되짚어보려 합니다.베트남전 파병 첫 3개월 동안 우리 군은 쌀밥을 맛보지 못하는 ‘지옥’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파병 초기 미군으로부터 전투식량을 보급받았지만, 대다수 병사들은 제대로 된 사용법조차 몰랐습니다. 참고로 당시 미군 전투식량은 냉장시설이 완비된 곳에서 사용하는 신선식품 조리식 ‘A레이션’, 취사장비는 있지만 냉장시설이 없을 때 먹는 통조림 형태의 ‘B레이션’, 취사가 불가능한 지역에서 먹는 즉석식품 ‘C레이션’ 등 3종류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한 해병대 대대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취사병들이 B레이션 깡통 속 내용물을 요리할 줄 몰라 처음에는 솥에 넣고 물을 부어 ‘꿀꿀이죽’처럼 먹었다. 맛이 시금털털하고 괴상했다. 처음엔 엉망이었지만 차차 나아졌다”고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한국군 사령관이었던 채명신 장군의 요청으로 남베트남의 쌀이 보급됐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김치’였습니다. ●“휘발유보다 더 귀한 고추장·김치를 달라” 채 전 사령관은 회고록에서 “월남쌀로 밥을 짓고 C레이션으로 찌개나 국을 끓여 먹이니 장병들의 입맛이 살아나 살이 찌는 현상까지 생겼지만 한계가 있었다”며 “내가 부대를 방문할 때마다 듣는 건의사항은 무기나 탄약, 한국에서는 귀했던 휘발유 같은 보급품이 아니라 ‘된장, 고추장, 김치가 먹고 싶다’는 요청이었다”고 토로했습니다. C레이션에 질려버린 일부 장병들은 추수가 끝난 밭에서 그 매운 ‘베트남 고추’를 따 섞어 먹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김치 문제는 미 상원 청문회에 등장할 정도로 크게 이슈가 됐습니다. 채 전 사령관의 간곡한 요청으로 미 군사원조사령부는 한국 음식으로 구성된 ‘한국형 C레이션’을 새로 보급했습니다. 밥, 김치, 꽁치 통조림이 포함돼 맛도 괜찮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또 있었습니다. 전투식량을 하와이에서 일본인들이 만들어 납품한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한국 고유의 음식인 김치를, 일본 사람이 만들어 납품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1965년 한일협정의 여파로 베트남전 파병시기는 국민들의 반일 감정이 매우 높을 때였습니다. 이에 채 전 사령관은 정부에 통조림 형태의 ‘국산 전투식량’을 개발해 달라고 요청하게 됩니다.군납업체인 ‘대한종합식품’이라는 회사가 만들어지고 시제품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다시 난관이 이어졌습니다. 시제품 통조림에선 시뻘건 녹물이 나와 도저히 음식을 먹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열대 기후에도 버틸 수 있는 통조림 제조기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미 육군 시험소 분석 결과 미군이 최초 보급한 한국형 C레이션도 미군 C레이션 중량의 절반이었고 칼슘, 비타민 등의 영양소가 기준치에 미달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14개 업체를 동원해 7개월간의 노력 끝에 1967년 3월 드디어 미군 검증을 통과한 제품이 나왔고, 그 해 10월 한미 양국은 한국에서 개발한 ‘K레이션’을 납품하는 내용의 합의서를 작성하게 됩니다. K레이션은 한국인 기호를 고려해 K1부터 K6까지 6가지 종류로 구성됐습니다. 흰밥과 김치, 멸치 파래무침, 돼지고기 조림, 쇠고기 조림, 오징어 조림, 꽁치 조림, 두부전, 콩자반, 장조림, 쏘세지 조림 등 반찬 10가지가 포함됐습니다. 여기에 인삼차, 가루고추장, 설탕, 소금, 껌, 담배, 휴지, 성냥 등의 부속품도 포함됐습니다. 한국형 전투식량의 역사가 시작된 순간입니다. ●5600만 달러 수출 기여…전투식량 발전 ‘초석’ 한미 정부는 1967년 12월부터 1968년 6월까지 7개월분 709만 달러, 이후 1년 단위로 해마다 1000만 달러가 넘는 전투식량 공급 계약을 맺었습니다. 한국 장병들이 먹는 음식이었지만, 비용은 미국이 부담했기 때문에 우리가 미국에 전투식량을 ‘수출’한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김치를 그리워하는 장병들의 원성에 마음이 급했던 정부는 위문품 형태로 시제품 15만 상자를 구입해 보급하기도 했습니다. 이 ‘성탄절 선물’은 1966년 12월 배에 실렸고 다음해 2월 처음으로 장병들에게 보급됐습니다.이후 장병들은 하루 2끼는 미군 전투식량을, 1끼는 한국 전투식량을 먹게 됐습니다. 심지어 남베트남 쌀까지 보급돼 식단 열량이 미군을 능가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아도는 쌀을 베트남 민간인에게 보급할 정도였습니다. 베트남 파병 장병에게 우선 공급됐던 K레이션은 1971년부터 한국에도 보급됐습니다. 전투식량은 해외 수출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베트남 전쟁 시기 군납을 통한 외화수입은 1억 8800만 달러 규모였는데, 그 중 30%인 5639만 달러가 K레이션 수출로 달성한 것이었습니다. 1968년 1000만 달러 이상 수출한 업체가 국내에 2곳 밖에 없을 정도였으니,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였던 겁니다. 지금은 일반 마트에서도 제품을 접할 수 있을 정도로 전투식량이 흔해졌습니다. 진공건조 기술을 적용하고 물만 부으면 일반 비빔밥처럼 즉시 먹을 수 있어 여행할 때 이용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제품과 입맛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지만, 편의성 만큼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 할 겁니다. 불과 50년의 역사로 이런 성과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정부와 군, 업체가 경쟁력 있는 제품을 계속 개발해 K레이션이 세계적인 전투식량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후보 아닌 비례당원, 지역구 후보 유세 가능…지역구 후보, 비례당 후보 위해 유세는 금지

    후보 아닌 비례당원, 지역구 후보 유세 가능…지역구 후보, 비례당 후보 위해 유세는 금지

    “우리는 형제정당이다.” 미래한국당 원유철 대표는 1일 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미래통합당과의 동일성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통합당 지지자들을 향해 미래한국당 비례 투표를 호소하는 듯한 이 발언은 선거법 위반일까. 정답은 ‘아니다’다. 이번 4·15 총선에는 선거 사상 처음으로 비례위성정당이란 기형적 정당들이 출전했다. 이에 상호 지지 발언, 합동 선거운동 등에 대한 허용 범위를 둘러싸고 현장의 혼란도 적지 않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최근 접수된 각 당의 질의 등을 바탕으로 ‘정당 상호 간의 선거운동 가능 범위 사례’를 발표했다. 비례후보를 내지 않는 지역구 정당과 비례후보만 내는 비례정당은 ‘한집안 정당’이지만 법적으로는 별개 정당이다. 선관위의 판단도 기본적으로 이 같은 원칙에 입각해 있다. 원 대표의 통합당 지지 발언은 공직선거법 위반이 아니다. 후보자로 등록하지 않은 비례정당의 대표, 간부, 당원이 지역구 정당이나 후보자를 위해 선거운동을 하는 건 허용되기 때문이다. 앞서 원 대표는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럼에도 한 자리에서 지역구 정당과 비례정당 모두를 대표해 연설·대담을 할 순 없다. 법적으로 별개인 두 정당을 지지해 달라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 후보자 신분인 통합당 황교안 대표의 경우에도 미래한국당 후보를 위해 유세를 할 수 없다. 자매정당이 공동 명의로 선거홍보물을 제작하는 것도 위반이다. 선거공보물, 신문·방송·인터넷 광고 등에 ‘지역구는 더불어민주당에, 정당투표는 더불어시민당에’ 같은 문구를 쓰면 안 된다. 지역구 정당 후보자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비례정당과 그 후보자를 지지하는 글을 쓰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두 정당이 공동선거대책기구 등을 구성하는 것도 선거법 위반이다. 하지만 선대위를 따로 운영하면서 행동을 함께하는 방법은 가능하다. 자매정당 후보가 같은 장소에서 선거운동을 하되 상호 지지 발언은 하지 않으면 법 위반은 피하면서 공동 선거운동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얘기다. 지역구 정당과 비례정당은 허용되는 선거운동 유형에 차이가 있다. 선거벽보, 현수막, 공개 장소 연설·대담, 유세차량 등은 지역구 후보에게만 허용된다. 반면 신문·방송 광고를 통한 정당의 정강·정책, 후보자 정견 등 홍보는 비례후보를 낸 정당에 한해 허용된다. 민주당과 통합당은 신문·방송 광고를 할 수 없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노태우 정부 때 일왕 첫 해외 일정으로 방한 추진했었다

    노태우 정부 때 일왕 첫 해외 일정으로 방한 추진했었다

    아키히토 즉위 직후 방한 논의했지만 日 우경화 흐름에 재임 내내 한국 못 와 헝가리에 차관 주고 동유럽 첫 수교 임수경 비밀 방북 문서는 공개 안 돼아키히토 전 일왕 즉위 직후인 1989년 한일 정부가 일왕의 첫 해외 일정으로 한국 방문을 진지하게 논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일 과거사 문제에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수 없다’고 했던 아키히토 전 일왕의 방한은 결국 양국의 반대 여론이 높아지면서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가 31일 비밀 보존기한 30년이 지나 공개한 외교문서에 따르면 1989년 4월 우노 소스케 당시 일본 외무상은 한일 외무장관 회담차 일본을 방문한 최호중 외무장관에게 “한국 측 분위기가 성숙했다고 판단되면 일본 정부로서는 예견 가능한 장래에 (일왕의) 최초 해외 방문으로 방한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조정하고 싶다”고 했다. 특히 우노 외무상은 한국의 반일감정을 염두에 둔 듯 “한국 내에서 미묘한 상황도 있을 것이란 것도 잘 알고 있다. 은밀히 답변을 듣고 싶다”고 했다. 정부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이듬해 방일을 준비하면서 아키히토 일왕의 방한을 고려할 것을 과제로 제시했다. 주일대사관도 외교 전문에서 “세부 교섭 사안들과 일왕의 방한 초청 가능성을 연계해 성과를 높일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이듬해 노 대통령의 일본 방문 당시 아키히토 일왕은 만찬사로 “일본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의 국민들이 겪으셨던 고통을 생각하며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다”는 다소 진전된 입장을 밝혔다. 2차 세계대전과 식민통치 시기에 일왕으로 있었던 선대 히로히토 일왕은 전두환 대통령과 만나 “불행한 과거는 유감”이라고 한 바 있다. 그러나 일왕의 방한은 재임 기간 내내 이뤄지지 않았다. 국내에선 1990년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이 나오는 등 과거사 청산 요구가 커졌고 일본도 보수 우경화 흐름이 나타나면서 결국 무산됐다. 아키히토 일왕은 황태자 신분이었던 1988년에도 한국 방문을 타진한 바 있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는 1989년 노태우 정부 초기 주요 외교 이슈들이 담겼다. 모두 1577권(24만여쪽) 규모다. 북방외교를 펼치던 당시 정부가 동유럽 최초로 헝가리와 수교하기 위해 1억 2500만 달러의 은행차관을 제공한 사실도 포함됐다. 다만 1989년에 이뤄진 ‘임수경 방북 사건’에 대한 문서는 공개되지 않았다. 외교부 관계자는 “(비밀 방북 관련) 간략하게 그런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개인에 관한 문서이기 때문에 외교문서공개심의회가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데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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