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반유대주의
    2026-03-2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42
  • 히틀러 평전/안인희씨,페스트가 쓴 평전 번역 출간

    ◎히틀러 그는 누구인가 히틀러 평전의 결정판으로 꼽히는 요아힘 페스트의 ‘히틀러 평전’(전2권,푸른숲)이 독문학자 안인희씨의 번역으로 나왔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알게 마이너’지 발행인을 지낸 지은이는 이 책에서 한 인물의 전기를 넘어 그 시대의 역사를 폭넓게 다루고 있어 주목된다. 히틀러(1889∼1945)는 성(姓)도 불확실한 보잘것 없는 집안 출신이다. 그의 56년 생애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 볼 수 있다. 1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약 30년 동안 뚜렷한 삶의 목적 없이 방황하던 시기와,그 이후 정계에 들어가 감전된 듯 격렬하게 활동한 시기가 그것이다. 이 책에서는 특히 히틀러라는 인물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이 돋보인다. 히틀러는 가장 먼저 선전효과를 인식한 정치가로,자신의 연출 재능을 이용해 ‘예술가 정치가’가 되고자 했다. 그는 내적인 동류의식을 느꼈던 바그너의 서사시적인 오페라의 효과를 모방,국가적 이벤트를 기획했다. 특히 제3제국의 거대한 제례의식들은 그의 탁월한 연출능력을 보여준다. 히틀러는 합리적인 계산과 대중심리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특별한 연설양식을 개발했다. 듣는 이들의 사고를 마비시키고 최면효과를 일으키는 그의 연설의 힘은 ‘치정살인 같은 연설’이라는 평을 들었다. 이 책은 히틀러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데도 적잖은 지면을 내준다. 히틀러는 젊은 시절을 빼고는 술과 담배를 멀리했다. 채식주의에 금욕주의적인 면도 있었다. 그가 사랑한 여인은 이복누이의 딸인 어린 조카딸 겔리 라우발. 에바 브라운과는 죽기 직전에 결혼식을 올리기는 했지만 평범한 관계였다. 히틀러는 단순하고 우직한 하류계층 사람들을 주변에 두기 좋아했으며,기념 동상의 모습으로 자신을 양식화했다. 또한 자신에 관한 정보가 알려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과거의 흔적들을 지웠다. 히틀러의 전기는 한 개인의 삶의 역사로만 씌어질 수 없다. 그것은 20세기 전반부 유럽사,부분적으로는 세계사의 가장 큰 사건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야사(野史)보다는 정사(正史)를 주로 다뤘다. 이 책은 이전의 히틀러 전기들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다른 관점을 보여 준다. 히틀러는 시대의 흐름을 역행한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라 정확하게 자기 시대의 요청을 구현한 인물이며,권력만을 추구한 공허한 기회주의자가 아니라 집요하게 자신의 이념을 추구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히틀러 이념의 핵심은 반유대주의와 생존공간 정책,즉 게르만족을 위한 세계제국 건설 정책으로 요약된다.
  • 나치수용소 유태인에 “죽음의 전주곡”/바그너음악 이스라엘공연 논란

    ◎바렌보임 연주무산후 찬반논쟁 가열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이스라엘 필하모닉이 바그너의 작품을 공식적으로 연주할 수 있을까. 지난 연말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이 이스라엘 필하모닉과 함께 바그너를 연주하려던 계획이 단원 및 여론의 강력한 반발에 밀려 무산된 뒤에도 이를 둘러싼 논쟁은 더욱 가열되고 있다고 근착 뉴욕타임스와 시사주간지 타임이 잇따라 전하고 있다. 이스라엘에서의 바그너는 지난 19 38년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지휘한 팔레스타인 심포니의 연주 이후 공연계획표에서 사라졌다. 그 뒤 지난 81년 인도인이지만 이스라엘에 누구보다도 애정을 갖고 있는 주빈 메타가 「트리스탄과 이졸데」가운데 「사랑과 죽음」을 「금기를 깨기 위해」앙코르곡으로 연주하다 청중들의 흥분으로 중단됐다. 10년이 흘러 지난 해 바렌보임이 이스라엘 필하모닉과의 연주계획을 발표하며 바그너를 포함시키자 또다시 소동이 일어 오케스트라 회원 및 단원들은 투표끝에 연주를 거부했다. 바그너는 히틀러가 태어나기 6년전이고 권력을 잡기 무려 반세기전인 18 83년에 죽었다.그가 살아있는 동안 유대인을 혐오하는 글들을 쓰기도 했고 그의 작품속에 반유대주의적인 경향이 있다고는 하지만 세익스피어가 「베니스의 상인」에서 그리고 있는 유대인의 모습처럼 구체적이지는 않다.사실 바그너적인 유대인에 대한 편견은 당대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문제는 그의 음악이 나치선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에따라 나치침략의 가장 강력한 상징이 되었다는데 있다. 특히 30만명에 이르는 「죽음의 수용소」의 생존자들에게는 당시 수용소의 나팔스피커에서 울려퍼지던 바그너의 음악이 곧 「죽음의 전주곡」으로 깊숙이 각인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유대인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잭 스턴과 이츠하크 펄먼,슐로모 민츠,그리고 수용소 생존자인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 부악장 데이비드 아번 등은 바그너의 음악으로 히틀러가 힘을 얻었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수많은 수용소 생존자들에게 바그너는 고통을 상징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에서의 연주는 불가능 하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이처럼 이스라엘에서의 바그너연주를 반대하는 쪽의 의사가 대부분 관철되고 있다. 그러나 메타나 바렌보임과 같은 노력도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다. 수용소 생존자의 한 사람인 클리블랜드오케스트라의 트럼펫주자 데이비드 조더,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펠츠만,지휘자 레온 보트스타인 등도 그런 쪽의 사람들이다. 그들의 주장은 음악은 그 자체로 미하적 도덕적 기준을 적용해야지 청중의 경험과 결부시켜서는 안 되며 바그너가 음악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이스라엘에서 바그너 음악의 연주가 불가능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바그너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유대인들도 흥분이 아닌 이성을 갖고 이 문제를 대하자는 것이지 과거를 잊자거나 나치의 역사와 화해를 하자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처럼 관대한 쪽의 유대인들도 막상 텔아비브에서 바그너음악회가 열리면 대부분 외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들의 주장은 이스라엘에서의 바그너연주를 억지로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 고통의 상징인 바그너의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