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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혁의 중동을 가다] (중)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전쟁 중

    [변혁의 중동을 가다] (중)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전쟁 중

    |예루살렘·헤브론 최종찬특파원| 요르단에서 육로로 이스라엘로 넘어가는 3개 국경검문소 가운데 알랜비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선글라스를 쓰고 총을 어깨에 멘 이스라엘 국경수비대원들이 날카로운 경계의 눈초리를 흘리고 있었다. 적성국인 아랍국가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아 입국절차가 유난히 까다로웠다. 여권심사를 담당하는 여자 군인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이것저것 질문하며 입국자들을 괴롭혔다. 기자 일행은 이란을 다녀왔다는 이유로 일부가 조사실로 끌려가 한 시간 가깝게 곤욕을 치렀다. 이 때문에 일행 7명이 모두 빠져나오는 데 4시간이 넘게 걸렸다. 출국심사가 까다롭다는 말은 들었는데 입국심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앨렌비에서 만나 이곳까지 같이 온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오말 바셀(19)은 “1994년 미국에 입양돼 14년만에 서안지구에 있는 고향 라말라의 가족들을 만나러 간다.”며 “이스라엘을 싫어하지만 나로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어 안타깝다.”고 귀띔했다. ●장벽으로 나뉜 두 지역 예루살렘은 성벽을 기준으로 유대지역과 아랍지역으로 나눠져 있다. 유대지역은 산뜻한 건물에 쾌적한 모습이었다. 또한 집집마다 유대 국기를 내걸어 쉽게 알 수 있었다. 반면 아랍지역은 낡은 건물에 지저분한 모습이었다. 거리 곳곳에서 총을 메고 퇴근하는 군인들이 발견됐다.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으로 총을 메고 밤거리를 다니는 여자군인들도 보았다. 히브리대학이나 시청, 쇼핑몰 등 모든 공공건물은 보안요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폭탄테러를 막기 위한 고육책이다. 예루살렘성에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성지가 함께 있다. 전세계 유대인의 순례지인 통곡의 벽 앞 광장에는 평일에도 사람들로 북적댔다. 이강근(44) 히브리대 트루먼연구소장은 “이스라엘은 1967년 6일 전쟁후 이곳에 있던 100여채의 아랍인 주택과 사원 2곳을 불도저로 밀고 광장을 세웠다.”며 “이곳은 유대인의 정체성의 상징이며 종교 성지이기 때문에 국가 중요행사와 성인식, 결혼식 등이 열린다.”고 말했다. 통곡의 벽에서는 납작한 유대 모자를 쓴 사람들이 벽에 머리를 대고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들 가운데 검은 옷에 중절모를 쓴 사람들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이 바로 종교인들이다. 이들은 직업을 갖지 않고 평생 기도만 하고 산다. 이들의 주수입원은 실업수당과 자녀수당 등 정부 보조금이다. 이 때문에 자녀들을 많이 낳는다. 예루살렘에는 종교인들이 많아 역사상 처음으로 종교인 출신 시장을 배출했다. 우리 루포리얀스키 현(現)시장이 그 주인공이다. 모세 벤지오니 시장 국제관계 자문위원은 “예루살렘은 정치·종교적인 특성을 지녀 운영하기 힘든 도시”라며 “사소한 것도 세계적인 이슈가 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시정 운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엄한 베들레헴 가는 길 팔레스타인 자치구역인 베들레헴에 들어가려면 이스라엘 시민권자 출입금지라는 경고판이 있는 삼엄한 검문소를 통과해야 한다. 팔레스타인인은 이스라엘 정부가 발행한 허가증을 보여줘야 통과됐다. 외국인인 우리 일행도 여권을 보여줘야 했다. 유대인 정착촌과 팔레스타인 마을을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만드는 분리장벽에는 낙서가 난무했다. 살아 있는 한 저항한다는 문구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분리장벽이 이스라엘인에게 안전의 철옹성이지만 팔레스타인인에게는 고립과 차별의 장벽일 뿐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분리장벽 안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고 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분리장벽은 국제법 위반이라면서 유엔이 이를 중단시킬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하지만 이스라엘은 콧방귀도 뀌지 않고 있다. 분리장벽 인근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팔레스타인인 요셉 하스분(34)은 “분리장벽에 대해 매우 나쁘게 생각하지만 익숙해져 있어 화조차 나지 않는다.”며 “이 지역에서 5년 동안 나가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갈등하는 시온주의와 반유대주의 가자, 나블로스와 함께 팔레스타인의 3대 저항도시에 속하는 헤브론의 유대인 성지인 막벨라굴 주변은 준전시상태를 방불케 했다. 군초소가 있고 무장한 군인들과 장갑차가 수시로 순찰을 돌고 있었다. 주변 상가는 3곳을 빼곤 모두 셔터를 내린 상태였다. 닫힌 문에는 이스라엘국기가 그려져 있었다. 유대인이 이용하는 버스는 방탄유리가 돼 있었다. 이는 아랍인 자치구역 한가운데 불법으로 자리잡은 정착민 12가구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이들은 1994년 오슬로협정에 따라 이스라엘 정부가 내린 철수 명령을 거부하고 있다.2006년엔 정착촌 연합회까지 동원해 정부의 강제철수를 막은 바 있다. 이 때문에 이곳의 경제상황은 패닉 그 자체다. 잡화를 파는 팔레스타인인 무니르 카펠아시(50)는 “4일만에 처음으로 3달러짜리 건전지를 팔았다.” 면서 “이스라엘 군인들이 저렇게 지키고 있는데 누가 물건을 사러 오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아랍 무슬림들의 땅인 중동 한복판에서 1948년 5월14일 탄생한 이스라엘은 지난 4월 건국 60주년을 맞아 성대한 축하행사를 벌였다. 의료, 제약, 전자 분야에서 세계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국민총생산이 연간 5000억달러에 육박하는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자인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지금 자기들이 2000년 동안 디아스포라(이산)로 세계를 떠돌며 당해왔던 설움을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똑같이 경험하게 만들고 있다. 물론 이스라엘 내에서는 팔레스타인인들과의 화해를 모색하는 사람들도 있다.“양측 사이에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 많지만 둘 사이에 공존을 위한 화해가 가능하리라 믿는다.”고 말하는 텔아비브대 정치학도 힐리 헐트(22)가 그런 사람이다. 하지만 이런 의견은 아직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는 중동 분쟁의 원인은 팔레스타인에 있다고 강변한다. 이 때문에 둘 사이의 평화정착은 아직까지 요원해 보인다.“유대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 시온주의가 반유대주의를 낳았다. 이스라엘이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했다.“는 어느 외국인의 말을 이스라엘인들은 깊이 되새겨봐야 한다. siinjc@seoul.co.kr ■ 이 인권단체 피스나우 사무총장 “정착촌이 팔 건국 장애 서안지구만 300개 달해” |텔아비브 최종찬특파원|“서안지구 안쪽에 중구난방으로 건설된 정착촌이 팔레스타인 건국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정착촌 건설을 막는 것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평화 정착의 지름길이다.” 이스라엘 내 최대 인권단체인 피스나우(Peace Now)의 야리브 오펜하이머(31) 사무총장은 수도 텔아비브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정착촌 건설 반대 방침을 수차례 강조했다.1978년에 설립돼 30년 동안 활동하고 있으며 회원은 모두 3만명이다. ▶정착촌과 분리장벽 건설 현황은. -정착촌은 서안지구에 300개 정도가 있다. 지금도 계속 건설 중이다. 특히 팔레스타인 마을과 마을 사이에 건설된 정착촌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분리장벽은 작년 말 기준 474㎞가 완공됐다. 현재 79㎞가 건설 중이며 237㎞는 건설 예정이다. 이 가운데 40㎞는 콘크리트 장벽으로 돼있고, 750㎞는 철조망으로 돼 있다. ▶주요 활동과 팔레스타인 조직과의 연대 여부는. -두 단계로 나눠진다. 먼저 정착촌 추가 건설을 막는 일이다. 또 하나는 그린라인 부근에 있는 정착촌은 현실적 어려움 때문에 놔두고 안쪽에 있는 정착촌은 하나씩 철거시켜 이 지역에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창설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팔레스타인 조직과 이슈마다 대화를 한다. 하지만 오해를 막기 위해 그들과 함께 일하지는 않는다. ▶조직 활동에 어려운 점은 없나 -두 가지 장애물이 있다. 하나는 위대한 이스라엘을 꿈꾸는 정착촌 사람들이다. 또하나는 폭력사태를 조장하는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 과격파들이다. 이들은 동맹을 맺은 것처럼 똑같은 목소리로 우리 활동을 반대하고 있다. ▶구체적인 성과물이 있는지. -정착촌 건설현장에 회원들이 대거 몰려가 반대시위를 하거나 대법원 제소를 통해 건설을 중단시킨 일이 있다. 또한 분리장벽을 팔레스타인 마을 깊숙이 건설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판결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예루살렘은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은가.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 3대 종교 성지가 있는 구시가지(올드시티)는 한 국가의 영토로 지정하지 말고 누구라도 와서 자유롭게 기도할 수 있도록 국제완충지역으로 설정해야 한다. siinjc@seoul.co.kr
  • ‘유대인 고교생 피습’ 화들짝 놀란 프랑스

    |파리 이종수특파원|프랑스계 유대인 고등학생이 21일(현지시간) 저녁 8시쯤 파리 19구의 한 거리에서 아프리카계로 보이는 젊은이들로부터 공격을 받아 뇌사 상태에 빠졌다. 반유대, 인종공격 성격을 띠고 있어 파문이 커지고 있다. AFP 등에 따르면 루디 하다드(17)는 이날 아프리카 출신 젊은이들 6∼7명으로부터 흉기로 공격을 받아 신경계통에 치명상을 입고 코생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나 의식 불명 상태다. 경찰은 용의자 5명을 22일 오전에 체포해 수사를 하고 있다. 만약 용의자들이 하다드가 단순히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공격한 것으로 판명되면 인종 갈등 양상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사건이 발생한 19구 지역에서는 유대인에 대한 모욕은 물론 공격이 종종 발생하는 지역이다. 사건이 알려지자 유대인 공동체와 단체들도 강력 반발했다. 프랑스 유대인기구 대표자회의의 아리엘 골드만 부회장은 “피해자가 공격을 받을 당시 유대인 전통 모자인 키파를 쓰고 있었다.”며 “정황으로 볼 때 반유대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은 게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반유대주의 감시기구(CIRF)도 “이번 사건으로 유대인 사회 특히 아이들을 둔 가정에서 크게 우려하고 있다.”며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을 비롯, 정·관계 인사들과 유대인단체들이 ‘반유대인 공격’이라며 강력 비난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스라엘 방문 직전 사건 소식을 듣고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이나 반유대주의와 강력하게 싸울 것”이라며 피해자와 가족들을 지원하라고 지시했다. 프랑수아 피용 총리도 “모든 법적인 조치를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vielee@seoul.co.kr
  • 비트겐슈타인과 히틀러/킴벌리 코니시 지음

    ‘레알슐레(오스트리아 린츠의 국립실업학교)에서 나는 한 유대인 소년을 만났다. 우리는 모두 그를 조심스럽게 대했는데, 그 이유는 단지 우리가 여러 차례의 경험으로 그가 경솔하다고 의심해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히틀러의 ‘나의 투쟁’) 이 소년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부유한 가문 출신으로 말끔한 옷차림에 다른 아이들은 잘 쓰지 않는 점잖은 말씨에 친구도 사귀지 않는 ‘왕따’였다. 그는 20세기 최고의 언어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이다. 히틀러가 어린 시절의 비트겐슈타인을 훗날 자서전에서 언급한 이유는 무엇일까.‘비트겐슈타인과 히틀러’(킴벌리 코니시 지음, 남경태 옮김, 그린비 펴냄)는 “비트겐슈타인은 당시 히틀러에게는 없었던 문화적 특권을 누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히틀러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과 미술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지만, 그것을 충분히 누릴 만한 여건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철강업으로 재계를 주물렀던 바트겐슈타인 가문은 1903년 클림트가 창설한 예술단체인 분리파의 전시회를 후원하고, 브람스를 집으로 불러 연주회를 가질 만큼 예술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또 히틀러는 오페라 ‘로엔그린’의 가사를 모두 외울 만큼 작곡가 바그너에 심취해 있었다. 그런데 바그너의 반유대주의는 부인 코지마 바그너가 어린 시절 비트겐슈타인 후작부인에 의해 어머니로부터 헤어져 멀리 떠나야 했다는 악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가문의 배경을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녔던 비트겐슈타인은 히틀러가 언급한 대로 ‘경솔한’ 존재였고, 평생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당시 유럽에 뿌리 내린 반유대정서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20세기 최대의 만행으로 꼽히는 히틀러의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는 사실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증오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히틀러는 권력을 잡은 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을 제치고 어린 시절을 보낸 린츠에 ‘아돌프 히틀러 박물관’을 세운다. 또 이 도시에 헤르만 괴링 제철소를 세우고 비트겐슈타인 가문의 비트코비츠 제철소를 흡수했다. 어린 시절 비트겐슈타인에게서 느낀 상대적 박탈감과 질투에 대한 복수였다는 것이다.1만 80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Book Review] 히틀러·스탈린 광기 사라지지 않았다

    올해는 독일 태생의 유대인 정치사상가 한나 아렌트(1906∼1975)가 태어난 지 100년째 되는 해이다. 지난 10월 국내에서는 아렌트 탄생 100주년 기념 심포지엄이 열리는 등 아렌트 사상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다. 홀로코스트 등 ‘이해할 수 없는 절대 악(惡)’을 경험한 유대인 사상가로서 아렌트는 이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이해하기 위해’ 평생을 전체주의 해부에 보냈다. 위르겐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패러다임은 아렌트의 정치행위 모델에서 시작된다. 하버마스가 아렌트의 지적 계보를 잇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아렌트는 수십년간 ‘국외자’였다. 아렌트 사상이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말∼90년대초의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과 함께한다. 사회주의 국가통제 체제가 하루아침에 시민들이 세운 민선체제로 바뀜에 따라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이 요구됐다. 그런 상황에서 정치이론가로서 아렌트의 존재가 부각된 것이다. 아렌트는 이미 전체주의 정권의 만행을 가져온 ‘옛 정치’를 대체할 ‘새로운 정치’로 고대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를 제시했던 터였다. 아렌트 사상은 이렇게 화려하게 부활했다. ‘하이데거의 연인’으로 더 잘 알려진 아렌트의 첫 저서로서 아렌트를 정치사상가의 반열에 올려 놓은 ‘전체주의의 기원’(한길사 펴냄, 이진우·박미애 옮김)이 출간됐다. 이 책은 1951년 미국에서 출간되자마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독일 하노버에서 태어난 아렌트는 동프로이센의 수도이자 ‘칸트의 고장’인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성장했다.1929년 하이데거의 친구인 실존철학자 야스퍼스로부터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랑 개념’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아렌트는 히틀러 정권의 등장과 함께 유대인 탄압이 시작되자 33년 프랑스로 망명했다. 그러나 상황이 악화되자 41년 다시 미국 뉴욕으로 거처를 옮긴다. 미국에서 나치의 유대인 학살 소식을 접하고 충격을 받은 아렌트는 그의 주저라고 할 수 있는 ‘전체주의의 기원’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이 책이 1부 반유대주의,2부 제국주의,3부 전체주의로 구성돼 있는 점에서 알 수 있듯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을 반유대주의, 제국주의로 이어지는 역사적 흐름에서 찾고 있다. 마지막 부분인 전체주의에서 그는 전체주의를 다른 독재정치와 구분, 나치즘과 스탈린주의만이 전체주의적 성격을 온전히 드러낸 정치체제라고 역설하고 있다. 동시에 이들 체제가 언제든 재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렌트는 또 계급사회의 붕괴로 인한 대중의 등장을 전체주의의 실질적 배경으로 파악했다. 전체주의 정권은 인간 개개인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각각의 개성을 말살한다는 것이다. 아렌트에 따르면 이때 국민은 하나의 집단에 불과해진다. 나치즘의 광기도 여기서 시작되는 셈이다. 이와 관련, 아렌트는 홀로코스트의 실행자였던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한 뒤 “아이히만은 나치즘의 명령을 수행한 소시민에 불과하다.”며 그 유명한 ‘악의 평범성’ 개념을 설파한다. 전체주의의 위험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재등장을 막기 위해서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자유’를 수호해야 하며, 이는 다원주의와 민주주의의 덕목을 주지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결론을 맺는다.1권 2만 5000원,2권 2만 2000원.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유럽 ‘反유대주의’ 비상

    유럽 ‘反유대주의’ 비상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유럽대륙에 ‘반유대주의’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일부 극우집단의 병리학적 일탈행위로 간주되던 반유대주의가 ‘상식을 가진 정상인들’ 사이에 빠르게 확산되면서 현지 유대인 사회는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유럽의 반유대주의는 지난 여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을 계기로 급격히 심화됐다는 게 전문가들 진단이다. 이같은 기류는 독일·오스트리아 등 유대인 탄압의 전력을 가진 나라들뿐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들에서도 뚜렷하게 감지되고 있다. ●해외 유대인회의 ‘반유대주의´ 의제로 12일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지난 7∼8월 영국에서는 132건의 반유대주의 행위가 적발됐다. 프랑스에서도 7월 이후 유대인에 대한 공격이 79% 증가했다. 이날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해외 유대인 회의 참석자들도 이 문제를 주요 의제로 다뤘다.80개국 100여명의 유대인 대표들이 참석한 회의에서 텔아비브 대학의 다이나 포랫 반유대·인종주의 연구센터 소장은 “2006년 여름을 계기로 중대한 변화가 생겼다.”면서 “반유대주의는 이제 ‘정상적 견해들’ 가운데 하나가 됐다.”고 진단했다. 유럽 유대인 의회의 일람 모스는 “일반인들 사이에 확산된 반유대주의는 거리에서 벌어지는 극단주의자들의 공격보다 더 심각한 문제로 간주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레바논에 대한 군사공격이 유럽과 나머지 지역에 반유대주의 기류를 결정적으로 악화시켰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독일선 추모행사장 습격도 독일·오스트리아 등 중·동부 유럽의 반유대주의 기류도 강화되고 있다. 지난 9일 독일 동부 도시 프랑크푸르트에서는 1930년대 유대인 탄압이 시작된 날을 기리기 위해 열린 추모식에 네오 나치 시위대원들이 난입해 행사장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사건이 벌어졌다. 독일 경찰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극우집단이 저지른 유대인 공격행위는 8000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증가했다.7월에는 작센 안할트 주의 네오 나치 집회현장에서 홀로코스트 희생자인 안네 프랑크의 일기가 불태워져 시민단체들의 분노를 샀다. 지난달에는 이 지역 10대 청소년들이 급우 한 명에게 나치시대 유대인 표식이 그려진 옷을 입고 학교를 돌아다니게 한 사실이 보도돼 충격을 던졌다. 호르스트 쾰러 독일 대통령도 9일 국영 TV를 통해 중계된 연설에서 “독일에는 반유대주의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유대인 60% 非이스라엘 거주 2004년 현재 전 세계의 유대인 수는 약 1300만명으로 이 가운데 520만명이 이스라엘에 살고 있다. 나머지는 주로 북미와 유럽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미국이 580만명으로 가장 많고 프랑스가 60만명, 러시아 55만명, 영국 30만명 등이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이 한권의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한나 아렌트 지음

    버림받은 동족으로부터 또 버림받은 사람!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버림받은 국외자(pariah)일 수밖에 없었다. 이는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 이루어진 평범한 악의 드라마를 보여주려는 용기 때문에 아렌트가 지불해야만 했던 대가이다. 오늘 탄생 100주년을 맞는 아렌트는 이 책에서 수많은 유대인들을 인간도살장으로 내모는 아이히만의 정치적 악행을 이야기 형식으로 전개하고 있다. 이야기는 결말부터 시작된다. ‘정의의 집’이라는 법정 정리의 외침과 더불어 드라마는 시작된다. 아이히만은 법정의 유리보호대 속에 보이지만, 벤구리온은 막후 진행자로 법정에서는 보이지 않는다(제1장). 이어 평범한 시민이며 친유대적이었던 아이히만이 생존과 성공 욕구 때문에 나치당에 가입해 유대인 문제 전문가, 인간 도살자로 부상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2∼3장). 유대인들을 인간도살장으로 내모는 조직적인 과정(추방, 수용, 학살)에서 ‘인간됨’을 포기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모습은 전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4∼6장). 드라마의 주역은 반제(Wannsee)에 위치한 한 가정의 저녁모임을 계기로 본디오 빌라도라도 된 듯이 양심을 버린 채 ‘국가적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인간 도살자로 변신한다(7∼8장). 이후 유럽 전역에서 유대인의 소거과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9∼13장). 종결부에 이르러 아이히만은 “모두 만날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긴 채 사형당한다(15장). 아렌트는 바로 이 장면에서 ‘악의 평범성’이란 말로 드라마 전체를 아우르며 이야기를 종결한다(15장과 후기). 이 책에 드러난 주옥같은 정치적 지혜들을 짧은 지면에 담기에는 부족하다. 이 가운데 하나를 들자면, 그것은 바로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이다. 아렌트는 사유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는 삶은 정치적 악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명제를 제시했다. 유대인들은 아렌트가 악마인 아이히만을 용서하고 동족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손상시켰다고 비난했다. 아울러, 아렌트는 유대인위원회와 유대인 경찰의 나치 동조를 부각시켰다는 이유로 반유대주의자로 낙인찍혀 소모적인 논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악의 평범성을 둘러싼 논쟁은 이후 수없이 제기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쟁점이 되고 있다. 이외에도 아렌트는 양심 문제, 조직화된 범죄와 책임 문제, 인간성 문제, 정치적 의무, 정치행위와 말의 관계 등 다양한 문제를 부각시키고 있다. 삶의 근본 문제를 새롭게 조명한 이 책은 치열한 학문적 논쟁의 계기를 제공하였으며, 정치평론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평범한 것 같지만 심오한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기에 저자의 의도를 생생하게 살려 우리말로 옮기기 어려운 책이다. 아렌트 연구의 권위자인 숭실대 김선욱 교수의 진지한 노력으로 비로소 빛을 보게 되어 다행이다. 일반정부를 총독관구로, 죽음의 수용소를 인간도살장으로 표기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전반적으로 우리 언어감각에 맞게 생소한 용어와 문장을 옮기려고 고심했으며 정화열(미국 모라비언대) 교수의 해제를 포함시킬 정도로 독자들을 배려한 역서이다. 홍원표 한국외대 정치철학 교수
  • 9·11테러 5주년 세계질서의 변화 미국 ‘퓨포럼’ 두 석학 인터뷰

    9·11테러 5주년 세계질서의 변화 미국 ‘퓨포럼’ 두 석학 인터뷰

    2001년 9월11일 뉴욕 테러가 발생한 이후 5년 동안 국제사회는 근본적인 질서의 변화를 목격해왔다. 특히 서양의 기독교 문화와 중동의 이슬람 문화의 충돌 양상이 더욱 뚜렷하고 강력해지고 있다. 종교와 공공사회의 문제를 연구하는 미국의 퓨포럼은 9·11 5주년을 맞아 ‘문명 충돌’(1996년)의 저자인 사무엘 헌팅턴 하버드대 교수와 헌팅턴 교수의 이론에 비판적인 악바르 아흐메드 아메리칸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를 인터뷰한 뒤 그 내용을 발표했다. ■ 사무엘 헌팅턴 하버드대 교수 헌팅턴 교수는 “아직까지 문명의 충돌이 절정에 이르지는 않았다.”고 진단하면서도 “머지않은 장래에 그같은 시점에 이를 것”이라고 예견했다. ▶종교와 문화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고 말해왔다. 그 의미는 무엇인가. -종교란 사람의 문화를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다. 언어가 문화의 핵심적 요소일 수 있겠지만 종교 역시 중요하다. 왜냐하면 종교는 바깥 세상을 보는 시각의 틀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언어가 외부와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지만 역시 소통의 틀을 종교가 제공하는 셈이다. ▶국제관계 전문가들은 문명충돌 이론이 미국의 외교정책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에 대한 생각은. -그렇다면 나로서는 기쁜 일이다. 책을 처음 출간했을 당시에는 조금 놀랍기도 했다. 영향력을 갖는 이론들은 주장하고자 하는 논리가 명확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실질적이다. 그러나 또하나 중요한 것은 바로 그같은 이론이 나오는 타이밍이다. 내 책이 5년 전이나 5년 후에 발간됐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다른 학자들보다 종교의 중요성을 먼저 깨달은 것인가. -나는 당시 사고의 조류 속에 서있던 한 사람일 뿐이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종교라는 전제를 깔고 문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9·11을 예견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9·11이 발생할 수 있는 맥락을 예견했던 것 아닌가. -그점에 대해서는 논쟁을 하고 싶지 않다. ▶9·11은 미국과 서구를 이슬람과 충돌시키려는 오사마 빈 라덴의 시도였다고 말했다.5년이 지난 지금 빈 라덴의 시도는 성공했다고 보는가. -지난 몇 년간 이슬람과 서방의 관계가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려움의 많은 부분은 이슬람 국가들이 서방의 식민지였던 역사적 사실로부터 기원한 것이다. 물러나는 외부세력과 떠오르는 국내 세력간의 긴장관계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현재의 상황이 본격적인 문명충돌이라고 볼 수 있나. -단순하게 하나의 충돌이라고 하기보다는 문명간의 충돌들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충돌의 양상을 잘 보면 문명간의 충돌보다는 문명내의 충돌이 많은 상황이다. 유럽의 역사를 보라. 유럽의 국가들도 늘 싸워왔다. 현재의 세계는 많은 수의 주요 문명들이 존재하는 다극화된 사회이다. 미국이 압도적인 힘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세계를 위계적인 질서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어떤 나라든 다른 나라의 반응을 고려하면서 행동해야 한다. ▶이슬람 세계와의 갈등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좀더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들의 생각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슬람 내에서도 종파와 국가간에 많은 차이가 있다. 그들 하나하나를 모두 이해하고 수용해야 한다. ▶앞으로 올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무엇일까. -이슬람 국가들이 연합해서 과거에 통치했던 서방 지역들을 되찾아가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그들은 스페인과 프랑스 남부까지 통치했던 역사가 있다. ▶미국의 핵심은 앵글로-프로테스탄트(앵글로색슨 인종에 개신교도)라고 말한 바 있다. 개신교도의 선교 정신이 문명충돌의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닌가. -개신교도 국가라고 해서 반드시 선교 국가는 아니다. 물론 미국은 종교적인 그룹들에 의해 건립됐다. 따라서 근원적으로는 종교적인 국가다. ▶이라크 전에 대해 비판적인가. -그렇다. 이라크에 갈 이유가 없었다. 미국은 페르시아 만의 안정이 필요했고 급진적인 이란의 영향력 확산을 막을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란을 침공할 이유는 없었다. ▶이라크에서 나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문제는 어떻게 이라크를 더욱 큰 혼란 속으로 빠뜨리지 않고 나올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내부적으로 시간표를 정해서 이라크 안정의 책임을 걸프만 지역 국가들과 유럽 국가들에 조금씩 넘겨가는 것도 방법이다. ▶미국이 미래를 어떻게 보는가. -미국은 다원적이고 다양한 그룹으로 이뤄진 국가이다. 민족, 인종, 종교, 정치적 신념이 다 다르다. 미국은 그러나 남북전쟁이라는 예외를 제외하면 화합을 이루며 살아왔다. 그리고 이처럼 강대하고 풍요로운 사회를 건설해낸 것이다. 미국은 여러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표현과 종교의 자유를 가진 민주적인 사회이다. ■ 악바르 아흐메드 아메리칸대 교수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문명간의 대화가 세계 질서의 주된 흐름이 돼야 한다.” 악바르 아흐메드 아메리칸 대학 국제학과 교수는 헌팅턴 교수의 문명충돌론에 반대해 지난해 3월 ‘테러 이후:문명간의 대화 촉진’이라는 저서를 발간한 인물이다. 파키스탄 출신인 아흐메드 교수는 드물게 이슬람과 서구 문명을 모두 연구한 학자이다. 최근에는 브루킹스 연구소의 ‘국제화시대의 이슬람’ 연구 프로젝트의 대표 연구자를 맡기도 했다. ▶9·11이 발생했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나. -그 당시 아메리칸 대학의 강의실에 있었다. 막 강의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뉴스를 처음 듣게 된 순간 앞으로 나에게 가장 어려운 시기가 올 것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직감했다. 무슬림으로서, 그리고 이슬람을 가르치는 학자로서. ▶학자로서 무엇이 힘들다고 본 것인가. -지난 10년간 영국에서 기독교와 이슬람간의 상호 대화를 시도하는 노력을 모색해왔다. 영국은 사우디아라비아를 식민지로 삼는 등 이슬람 세계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교류를 해온 역사가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슬람 세계와 오랜 기간 교류해온 경험이 없다. 따라서 이슬람 세계에 대한 이해도 어려운 것이다. ▶문명충돌이라는 패러다임에 여전히 반대하고 있나. -나는 학자다. 따라서 문명충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충돌은 지난 1000년간 존재해왔기 때문에 지금도 존재하는 것이다. 지난 1000년간 십자군의 전쟁이 있었고, 서구 열강의 식민지화가 있었다. 그것이 이슬람과 서구의 관계를 복잡하고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서구와 이슬람은 또한 화합과 문화적 교류 및 융합의 시대도 경험했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무슬림들이 기록을 남겼다가 유럽 사람들에게 전해준 것이다. 지금도 수백만명의 무슬림들이 유럽과 미국의 시민으로서 살고 있지 않는가. 미국을 처음으로 국가로 인정해준 나라도 이슬람 국가인 모로코였다. 문명의 충돌뿐만 아니라 화합도 분명히 역사의 일부였다. 그러나 9·11 이후 미국의 우파 정부와 언론은 헌팅턴의 이론을 부각시켰다.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이슬람 9개국을 방문했다. 현지에서 느낀 반미 감정은 어땠나. -반미주의와 반유대주의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을 만큼 강렬했다. 방문국에서 정치지도자와 종교지도자, 교수와 학생을 모두 만났다. 그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뿐만이 아니었다. 서방의 미디어가 이슬람교를 비난하고 예언자 마호메트를 조롱하는 것을 보며 무슬림들은 이슬람 세계가 서방사회의 총체적 공격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같은 상황에서 이슬람 세계에서는 어떤 리더십이 떠오르는가. -세 가지 모델이 떠오르고 있다. 첫번째는 현재의 상황을 인내하자는 것. 두번째는 이슬람과 서구의 문화를 융합하자는 것. 세번째는 이슬람만의 철옹성을 쌓자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와하비스가 대표적인 세번째 모델이며 문명충돌의 사례이다. 그러나 반미감정 때문에 세번째 모델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은 첫번째와 두번째 모델이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최근의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은 부유하고 교육도 받은 사람들이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서구사회는 아직도 폭력을 빈곤의 산물로 생각하고 있다. 미국은 미국의 시각으로만 세계를 본다. 특정 인종이 범죄를 저지르는 경향이 크다고 규정해버리는 식이다. 이를 이슬람에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슬람 부족들은 복수를 통해 명예를 회복한다는 전통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무슬림 젊은이들을 행동으로 모는 것이다. 지금 무슬림들은 명예가 위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미국인들도 9·11 이후 마찬가지의 위협을 느끼며, 아랍 국가들에 둘러싸인 이스라엘 사람들도 위협을 느낄 것이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문화가 다양한 대도시에 살지 않는다. 그들은 무슬림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도 모를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대화가 가능할까. -나의 주장은 미국 사람들뿐만 아니라 무슬림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상대방의 예배당을 방문해보고 축제를 경험해보라는 것이다. 이슬람에는 아브라함을 기리는 축제가 있다. 기독교인과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을 통해 공통의 끈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리 워싱턴 이도운특파원 dawn@seoul.co.kr
  • [월드컵 앞둔 독일에서는 지금] ‘新나치 부활’ 노심초사

    월드컵과 함께 독일에서 신(新)나치 망령이 부활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독일 정부는 신나치를 비롯한 인종차별주의 집단이 피부색이 다른 사람을 공격해 다음달 9일 시작되는 월드컵 대회를 망칠까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독일에서 극우파에 의한 폭력 사태는 24% 늘었다. 신나치 집단도 3800명에서 4100명으로 증가했다. 독일 정부는 한달간 진행되는 월드컵 기간에 외국 관광객은 안전할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하지만 신나치는 행동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혀 정부의 공언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22일 막데부르크에서는 한국인 남자 유학생(31)이 독일 청년으로부터 폭행을 당해 경미한 부상을 입었다. 신나치는 다음달 21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리는 이란-앙골라 전을 앞두고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신나치의 시위를 지지하는 극우 정당인 국가민주당(NDP)은 올봄에 독일 국가대표 선수 사진과 함께 “흰색-유니폼만을 위한 색은 아니다!”라는 문구가 들어간 경기 대전표 책자를 발간해 논란을 일으켰다. 외국에서 태어나 독일 팀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에 대한 모욕이라는 비난을 샀다. 독일 정부 대변인을 지낸 적이 있는 우베 카르스텐 하이예는 유색인종 출신 월드컵 팬에게 “베를린을 벗어난 마을과 옛 동독의 도심 지역은 피하라. 살아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독일 정부는 하이예에게 발언을 취소하라고 압력을 가했으나 며칠 뒤 터키 출신 의원이 동베를린에서 “더러운 외국인”이라는 욕설과 함께 공격당해 경고가 현실로 나타났다. 독일의 아프리칸 커뮤니티 그룹은 월드컵 때 외국인에게 안전하지 않은 곳을 표시한 ‘가지 말아야 할 지역’ 안내서를 만들었다. 아마데우 안토니오 재단의 아네타 카헤인은 “독일 시민들은 인종차별주의와 반유대주의에 맞서길 꺼린다. 금발에 파란 눈이 아니라면 옛 동독 지역의 작은 마을에서는 적대적인 눈길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월드 리포트] ‘톨레랑스 정신’ 메말라가는 佛

    [월드 리포트] ‘톨레랑스 정신’ 메말라가는 佛

    프랑스 사회는 유대인 청년의 처참한 죽음으로 큰 충격에 빠져 있다. 올해 23세인 일란 알리미는 파리 11구에 있는 볼테르가의 한 휴대전화 영업소에서 판매원으로 일하는 평범한 젊은이였다. 영업소를 찾았던 젊은 여성을 만나러 1월20일 저녁 파리 남쪽 교외에 갔던 그는 약 3주가 지난 뒤 파리 남쪽 철로변에서 목숨만 겨우 붙은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그의 상태는 말할 수 없이 처참했다. 입에는 자갈이 물려져 있고, 손이 뒤로 묶여진 채 발견된 그의 벗겨진 몸은 온통 피멍으로 얼룩져 있었다. 칼 자국과 휘발성 액체로 불에 덴 자국 등 엄청난 고문을 당한 흔적이 곳곳에 있었다.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고통을 겪은 뒤 버려진 알리미는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숨졌다. 경찰과 범죄심리 전문가들은 알리미에게 가해진 고문은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난 것이며 여럿이 그룹으로 행동했을 때만 가능한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처음에는 단순한 납치·강도사건으로 여겨졌던 이 사건은 검거된 용의자가 경찰 조사에서 “알리미가 유대인이어서 집에 돈이 많을 것으로 보고 납치했다.”고 진술하면서 종교·인종적 동기가 범행에 개입된 것이 드러났다. 유대인 지도자들은 범죄조직이 정치적 동기를 지니지는 않았을지라도 유대인에 대한 증오와 편견이 폭력행위를 유발했을 것이라며 이번 사건을 반(反) 유대주의적인 인종차별 범죄로 규정했다. 프랑스 사회는 범행의 ‘야만성’에 놀랐고, 반 유대주의와 인종차별주의가 파리 교외의 슬럼가 범죄조직에까지 스며들었다는데도 큰 우려와 경계를 표했다. 특히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한 사람을 납치해 고문하고, 목숨까지 잃게 만들었다는 데에 경악했다. 사람들은 이같은 범죄가 계몽주의가 태동한 지성과 예술의 나라,‘톨레랑스(tolerance·관용)’의 나라에서 발생한 것을 믿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프랑스의 필립 사시에는 ‘왜 톨레랑스인가’라는 책에서 “톨레랑스란 내가 동의하지 않는 것을 용인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서로 다른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톨레랑스이며 이는 프랑스인의 깊은 사상적 기저(基底)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톨레랑스가 언제부터인가 프랑스인들에게 가장 ‘부족한 품성’으로 인식되고 있다. 유럽이 차지하는 비중이 예전같지 않듯이 프랑스의 영광도 과거사가 돼 버렸고, 프랑스인의 생활은 각박해졌다. 늘어나는 이민자들과 함께 범죄발생률이 높아진 것 등이 자연스럽게 프랑스인들을 배타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에두아르 발라뒤르 전 총리는 수만명이 거리에서 반유대주의·인종차별주의 규탄시위를 벌인 지난 26일 방송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다문화·다민족 사회일수록 톨레랑스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인들이 ‘톨레랑스’ 정신을 되찾으려는 노력을 조금이라도 기울이게 된다면 알리미의 죽음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lotus@seoul.co.kr
  • 유럽의 이중성

    마호메트 만평을 둘러싸고 서방과 이슬람 사이에 벌어지던 ‘표현의 자유’ 공방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오스트리아 법원이 20일(현지시간)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의 실체를 부인한 영국 역사학자의 발언이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한 것이다. 유럽 언론이 내세운 표현의 자유가 이슬람 모욕을 정당화하려는 ‘이중잣대’라고 비판해온 이슬람권으로선 더할 나위 없는 호재를 만난 셈이다.●유대인 학살 부정하면 10년형 영국의 우익 역사학자인 데이비드 어빙(68)은 지난 1989년 오스트리아에서 가진 강연과 언론 인터뷰를 통해 나치 독일 정권이 유대인 학살에 가스실을 이용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히틀러가 학살에 개입했다는 구체적 증거도 없다고 주장했다. 독일, 벨기에, 프랑스 등과 함께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발언을 범죄행위로 규정, 처벌하고 있는 오스트리아는 당연히 어빙을 수배했다. 오스트리아의 홀로코스트 관련 법은 유대인 학살을 부정하는 이에게 최고 10년형을 선고할 수 있게 돼 있다. 지난해 11월 오스트리아의 고속도로에서 불심검문 끝에 체포돼 이날 법정에 선 어빙은 즉각 항소의 뜻을 밝혔다. 그는 “내 관점은 변했고, 더 이상 홀로코스트를 부인하지도 않는다.”고 반발했다. 그는 또 이 문제가 “명백히 표현의 자유와 관련돼 있다.”고 말했다. 변호인 엘마르 크레스바흐는 “잘못된 주장을 펼 권리도 존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나치 망령과의 싸움…표현의 자유는 사치” 영국의 BBC는 “특정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의심조차 금지하는 것은 진실에 대한 믿음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여론이 공감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나라가 홀로코스트 부인 행위를 처벌하게 된 역사적 맥락을 살펴야 한다는 의견이 더 우세하다. 홀로코스트 관련 법은 1938년 나치 독일에 병합된 뒤 나치와 연관된 온갖 범죄에 연루된 오스트리아가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같은 범죄에 빠져드는 것을 막기 위해 제정됐다. 실제로 많은 오스트리아인들은 이 법이 어두운 과거와 단절하려는 국민들의 의지와 노력이 응축된 것이라 믿고 있다. 독일의 역사학자 한조 푼케는 “우리는 이 문제에 있어 표현의 자유라는 사치를 누릴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판결은 정작 다른 나라에서 더 큰 파문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이란의 한 유력지는 “홀로코스트를 희화화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지켜보겠다.”며 전세계 만화가들을 상대로 만평을 공모한 상태다. 아므르 무사 아랍연맹 사무총장은 “반유대주의를 다룰 표현의 자유는 인정하지 않으면서 이슬람을 모욕할 때 유럽인들은 이를 들먹인다.”고 비난했다. 마누셰르 모타키 이란 외무장관도 21일 “서방의 패러독스를 명백히 보여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란은 올봄 테헤란에서 홀로코스트의 실체 규명을 위한 회의를 열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이 어빙을 표현의 자유를 위한 ‘순교자’로 비치게 할 뿐 아니라 유럽의 이중잣대에 대한 무슬림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을 위험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괴벨스, 대중 선동…/랄프 게오르크 로이트 지음

    독일 제3제국의 선전장관으로 ‘히틀러 신화’를 창조한 요제프 괴벨스 평전. 대개 하급 군인 출신이거나 사회 부적응자로 이뤄진 나치 지도부에서 인문학 박사학위를 지닌 괴벨스는 예외적인 존재였다. 그는 단 몇 마디 말과 몇 줄의 글로 사람들을 분노와 열광, 광기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을 수 있었던 타고난 연설가이자 선전가였다. 또한 누구보다 먼저 정치에서의 대중매체의 영향력을 깨닫고 그것을 정치적 목적에 탁월하게 활용한 인물이었다. 유대인 교수를 존경하고 히틀러 추종자들을 조롱했던 괴벨스. 그가 어떻게 철저한 반유대주의자로 변신해 유대인 절멸 정책을 기획하고 히틀러를 지상의 절대자로 떠받들게 됐을까. 책은 열등감과 증오와 출세욕에 이끌려 악마적 파시즘에 영혼을 판 괴벨스의 복잡 다단한 성격과 사상, 행적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유지하면서도 객관적인 자세로 접근한다.3만 9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하버드가 지배한다/리터드 브래들리 지음

    1636년, 미국 독립보다 140년 앞서 하버드대학교가 문을 연다. 이후 7명의 대통령,3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해 명망있는 정치가, 대법관, 학자, 예술가 등을 배출하며 세계 지성의 산실로 자리매김한다. 하버드는 이같은 물리적 가치를 넘어 ‘정신의 제국’이란 평가를 받아왔다.1960년대 미국 대학생들 사이에 들불처럼 번진 반전운동과 흑인 인권운동의 핵이었으며, 널찍한 하버드 야드 중앙에 세워진 메모리얼 교회는 진실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하버드의 의지를 상징한다. ●서머스, 400대1 경쟁률 뚫고 총장에 하지만, 이처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하버드에 대한 ‘진실’은 지금도 유효할까?‘하버드가 지배한다’(리처드 브래들리 지음, 문은실 옮김, 생각의나무 펴냄)는 하버드에 대한 지금까지의 인식에 강력한 의문부호를 던지며 하버드가 전통적 상식 밖으로 달음질치고 있는 현실을 고발한 책이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에 프리랜서로서 글을 써온 저자는 예일대에서 학부를 나와 하버드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공부했다. 저자는 마치 잘 짜여진 다큐멘터리를 진행하듯 하버드 외피속 이야기를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가장 이상적인 세계로 여겨지던 하버드는 언제부터 누구에 의해 변화하게 되었는가? 책은 그 변화의 핵심 인물로 로렌스 헨리 서머스 현 하버드대 총장을 지목한다. 래리 서머스란 이름으로 더 친숙한 그는 젊은 시절 하버드에서 최연소 종신교수직을 따내고 미래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까지 언급되었던 인물. 하지만 돌연 워싱턴의 경제전문가로 진로를 바꾼 뒤 재무부 장·차관을 거쳐 지난 2001년 10년 만에 하버드로 돌아온다.400대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돌아온 서머스는 하버드에 매머드급 돌풍을 몰고 왔다. 10년간의 ‘워싱턴식’ 게임이 하버드에서 시작된 것. 책에 따르면 하버드엔 이제 외곬같은 ‘착한 교육’은 없다. 오로지 경쟁 속에서 세계 초일류 대학 정수리에서 낙마하지 않기 위해 서머스는 이렇게 주장한다. 시대의 트렌드, 생명공학에 투자하라. 찰스강 인근에 자리잡은 하버드를 올스톤 구역까지 확대해 하버드 제국을 건설하라. 커리큘럼을 바꾸고, 세계화에 발맞춰 세계 각국에 하버드 분교를 설립하라. 하버드는 지난 4년간 그야말로 엄청난 지각변동을 겪게 된다. 보통 15∼20년인 총장 재임기간을 고려해볼 때 하버드의 변화는 누구를 총장으로 앉히고, 누가 지배하느냐에 따라 결정적 영향을 받는다. ●“학생·교수 본분에 돌아가 성과 만들라” 지금 하버드 교정에선 반유대주의를 인정할 수 없고, 한갓 회의주의에 빠진 인종·종교 관련 문제에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 학생과 교수의 본분으로 돌아가 오로지 경쟁, 그리고 성과를 만들어 내라는 것이 서머스의 강력한 논리다. 이 논리를 거부하는 학생이나 교수는 버텨낼 수 없다. 총장에게 길들여지거나, 아니면 일찌감치 하버드인이기를 포기하거나, 선택의 기로에 선 것이다. 인종 종교 사회문제 등에 적극적이었던 미국흑인학과 교수 코넬 웨스트는 학생들을 선동하고, 수업에 소홀하다는 서머스의 트집에 첫번째 희생양이 된다. 서머스의 동갑내기로, 서머스보다 1년 앞서 종신교수직을 따냈던 하버드 학부 학장 해리 루이스도 축출된다. 교육에 대해 ‘속도 줄이기’를 요구했던 그는 2003년 서머스가 베네딕트 그로스를 학부 학장에 앉혀 완벽한 ‘서머스계’ 인사를 감행한 후 자진 사임의 형식으로 하버드에서 완전히 밀려난다. 극심한 경쟁과 성과주의 압박은 학생도 마찬가지. 공부벌레로 불려지는 하버드 학생들은 90년 이래 16명이나 하버드의 새로운 환경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신의 몸뚱이를 해체하는 극단적 방법, 즉 자살을 택했다. ●‘서머스계 인사´ 감행 반대교수들 축출 학교가 배움의 전당이라는 숭엄한 권위 보다는 각종 데이터로 수치가 매겨지는 산술의 공간으로 변모해 간다는 저자의 우려는 의미심장하다.‘속도만능’‘성과만능’의 시대를 교육이 거리낌 없이 좇아가야 하는지,21세기 교육의 자화상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1만 95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천재-리처드 파인만의…/제임스 글릭 씀

    양자론의 개척자이자 원자폭탄 계획의 ‘악동’. 챌린저호의 폭발 원인 규명자이자 생기 넘치는 봉고 주자. 1965년 양자전기역학 연구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P 파인만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들이다. ‘천재-리처드 파인만의 삶과 과학’(제임스 글릭 지음, 황혁기 옮김, 승산 펴냄)은 전후 시대 과학사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물리학자로 꼽히는 파인만의 독특했던 생애와 과학적 성과를 흥미롭게 기술한 전기다.1992년 파인만이 사망한 후 4년 만에 미국에서 출판됐던 것이 이번에 국내에 처음 번역 출판됐다. 이 책은 뉴욕타임스 기자 출신인 저자가 방대한 자료와 파인만 가족 등 주변인물들의 밀착 취재 등을 거쳐 완성했다.1920년대 파라커웨이에 살았던 유대인들의 생활에서부터,1930년대 MIT 학부생들의 삶, 나아가 당시 미국 일류대학에서 대대적으로 표방했던 반유대주의 등이 잘 묘사되어 있다. 또 원폭실험 장소였던 로스앨러모스의 풍경, 종전후 대학간 경쟁, 노벨상 수상에 얽힌 역학관계, 챌린저호 참사를 조사한 대통령 직속 조사위원회의 배후 활동 등의 내막까지 들여다본다.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로서, 스승으로서, 한 남자로서, 노벨상 수상자로서, 아버지로서 언제나 유쾌하고자 했던 리처드 파인만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2만 8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월드이슈] 이주자 급증…흔들리는 유럽

    [월드이슈] 이주자 급증…흔들리는 유럽

    |파리 함혜리특파원|‘소요, 범죄…공화국의 적들.’프랑스의 대도시 외곽 저소득층 집단거주지역에서 발생한 소요사태가 이어지는 동안 파리의 곳곳에는 자극적인 붉은 글씨로 이같은 내용을 담은 포스터가 나붙기 시작했다.‘공화국 수호연합’이란 극우단체가 제작한 포스터는 이민자들을 배척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프랑스 소요사태를 계기로 극우단체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단적인 사례다. 이들은 과거 사회당 정권은 물론 현 중도우파 정부의 정책이 모두 실패했음을 강조하며 공화국의 가치를 수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업과 경기침체로 고전하는 독일에서는 신자유주의 노선에 반대하는 좌파연합이 지난 9월 치러진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러시아에서는 국수주의를 고취하는 극우파들이 외국 혐오증과 반유대주의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안정과 평화’의 상징이던 유럽사회가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높은 실업률, 이민자 문제, 가속화되는 세계화 등으로 혼란을 겪으면서 극단주의가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목소리 높이는 극우세력 이민자들의 차별과 소외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프랑스 소요사태를 계기로 극우세력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장마리 르펜 당수는 14일 저녁 파리도심 팔레롸얄에서 대중 집회를 갖고 “지난 30년간 좌·우파 정부를 막론하고 추진한 이민자 정책이 실패했음이 이번 소요사태로 입증됐다.”면서 “외국인들에 대한 모든 사회보장 혜택을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날 뉴스전문채널 LCI의 토론프로그램에서도 “경찰에 돌을 던지고 학교를 불태우는 극단적인 폭력행위로 사회 신고식을 치르는 이민 2·3세들은 장차 테러리스트로 성장할 것”이라며 “이들이 바로 시라크가 공들여 키운 자녀들”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자동적으로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지만 자신들이 프랑스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심지어 프랑스를 적으로 여긴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프랑스인으로 대우받아서는 안된다.”고 유화책을 비판했다. 역시 이민자 수용에 반대하는 다른 국수주의 우파정당인 ‘프랑스운동’(MPF)의 필립 드 빌리에 당수도 사태 초반부터 “20세 미만 청소년을 대상으로 통금령을 실시하고 파리 교외 지역에 군대를 투입해야 한다.”고 정부를 압박했었다.FN과 MPF는 지난 5월말 프랑스의 유럽헌법 국민투표 당시 프랑스를 보호하기 위해서 EU헌법이 부결돼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투표결과가 부결로 나타나면서 힘을 얻은데다 이번 소요사태로 더욱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부 정치분석가들 사이에 이번 소요사태로 시라크 대통령과 정부 입지가 약화된 틈을 타 극우정당이 다시 세를 얻을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프랑스 유권자들은 지난 2002년 대선 1차 투표에서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 후보 대신 르펜 당수를 선택, 르펜이 2차 결선투표에서 자크 시라크 후보와 맞붙는 이변이 발생했었다. ●뿌리내리는 유럽의 신좌파 한편 여야 정당간 뚜렷한 승자없이 끝난 지난 9월18일의 독일 총선에서 최대의 돌풍을 일으킨 정당은 좌파연합이었다. 좌파연합은 구 동독 공산당의 후신인 민사당(PDS)과 사민당의 우경화에 반발해 분리해 나온 사민당 좌파와 노조 지도자들이 만든 ‘선거대안’이 통합한 정당이다. 좌우 이념대립이 극심했던 지난 60년대 중반∼70년대 초반 이후 독일에서는 각 주 단위로 반급진주의 조례를 채택, 정치적인 극단주의를 지양해 왔다. 따라서 지금까지 극우·극좌파는 의회내 교섭단체 구성에 필요한 5% 이상의 지지를 받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 총선결과 좌파연합은 총 54석을 확보하면서 8.7%의 지지를 받으며 의회 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했다. 독일의 한 언론인은 “좌파연합의 정책들은 대부분 재정적으로 실현이 불가능한 것들이다. 실현가능성과 현실성이 거의 없지만 경제가 어렵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달콤한 약속’에 이끌리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유럽정치 지형에서 신좌파를 표방하는 정치운동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전했다. ‘개혁이냐 사망이냐.’의 문제로 고민해 왔던 유럽공산주의가 그동안 우파 정책노선을 포용하는 개혁을 추구해 왔으나 영국의 노동당과 독일의 사민당이 우파 정책을 채택함으로써 생긴 커다란 공백을 메우기 위해 신좌파 운동이 새로이 역량을 키워가고 있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특히 반전운동과 반세계화운동, 반 신자유주의의 토양에서 독일의 좌파연합과 같은 신좌파 성향의 정당이 서서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유럽의 네오-코뮤니스트들과 신좌파들이 모여 지난해 조직한 유럽좌파정당(ELP)은 지난 달 29·30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첫 총회를 갖고 신자유주의가 야기한 유럽의 위기를 극복하고 평화와 민주주의, 인권의 가치를 재정립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채택했다. lotus@seoul.co.kr ■ 양극을 이끄는 대표적 인물 |파리 함혜리특파원|프랑스의 장마리 르펜과 독일의 오스카 라퐁텐은 극우·극좌 양 극단으로 치닫는 유럽정치상황을 상징한다. 갈수록 커지고 있는 그들의 목소리가 곧 유럽 정치상황의 변화 방향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 신자유주의 맹비난…신좌파 상징 오스카 라퐁텐 독일의 좌파연합을 이끌고 있는 오스카 라퐁텐(62)은 유럽에서 태동하고 있는 신좌파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로 꼽힌다. 골수 좌파인 그는 신자유주의가 유럽 위기를 불러왔다며 비판한다. 대학생 때인 1966년 사민당에 가입하고 1976년 32세에 프랑스 접경 산업도시 자르브뤼켄의 최연소 시장이 된 그는 68세대 스타급 정치인으로 한때 게르하르트 슈뢰더, 루돌프 샤르핑(94년 사민당 총리후보)과 함께 독일 사민당 3두체제를 이루면서 당내 좌파를 이끌었다. 그는 우파에 가까운 중도좌파 성향의 슈뢰더와 정책적인 대립으로 1999년 3월 모든 정치적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슈뢰더 총리의 노선에 실망한 당원들과 노동계를 규합한 뒤 옛 동독공산당의 후신인 민사당까지 끌어들여 좌파연합을 결성했으며 지난 9월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 노골적 인종주의…극우파 수장 장 마리 르펜 극우파 정치인으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프랑스의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장마리 르펜(77) 당수.1972년 이후 FN당수를 맡고 있는 그는 지난 2002년 대선에서 프랑스 정치사상 처음으로 극우파가 대통령 자리를 놓고 맞대결을 벌인 정치 파란을 일으켜 프랑스와 세계를 함께 놀라게 했다. 노골적인 인종주의와 국수주의를 기초로 한 극우파의 부상은 평등·박애·자유를 이념으로 하는 프랑스 민주주의의 위기론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르펜은 최근 AP통신과의 회견에서 파리 교외 폭동이 시작된 이래 당으로 지지 e메일과 당원으로 가입하겠다는 요청이 넘치고 있으며 자신의 ‘제로 이민’ 정책에 대한 지지가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2007년 대선에도 출마할 것이라고 밝힌 그가 또 다시 극우돌풍을 일으킬지 관심사다. lotus@seoul.co.kr ■ ’배우자 이민’도 언어시험 통과해야 유럽에서 무슬림들의 이민은 복지 제도의 부담 가중, 기독교 문화와의 충돌 등으로 오래전부터 논쟁거리였으나 이제는 사회안정을 위협하는 문제거리가 되고 있다. 7·7 런던 테러와 프랑스 소요 사태 및 무슬림 청년의 네덜란드 반 고흐 영화감독 살인사건 등으로 무슬림은 유럽에서 위협적인 세력으로 인식되고 있다. 서유럽 국가들은 1960년대 이후 경제 활황으로 노동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자 북아프리카나 가난한 인접 이슬람 국가 이민자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경제가 침체하자 본국으로 돌아갈줄 알았던 이민자들은 도심 밖에서 그들만의 거주지나 ‘접시 도시’를 형성하면서 냉대와 차별의 대상이 됐다. 접시 도시란 이슬람 커뮤니티에서 아랍 위성방송을 보기 위해 접시 모양 안테나를 집집마다 달아 붙여진 이름이다. 해마다 유럽연합으로 가는 합법 이민자는 130만명쯤이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많은 700만명 가량이 불법이민을 시도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모로코나 튀니지 등에서는 매년 수천명이 스페인 카나리 제도나 이탈리아 람페투사 섬 등으로 밀입국을 시도한다. 때문에 유럽연합에서는 이들 불법 이민자를 막기 위해 공동경비정을 띄우는 지중해 해상 작전을 계획 중이다. 유럽의 이민은 망명, 가족의 재결합, 결혼이란 크게 세가지 법적 형태로 이뤄진다. 망명 조건은 까다로워져 해마다 탈락자가 증가추세다. 가족 결합이나 결혼도 네덜란드에서는 언어 시험을 통과해야 가능하도록 하는 등 점점 관문이 좁아지고 있다. 친척이나 배우자를 데려오기 위한 나이와 연봉 조건도 높아지고 있다. 영국은 유럽연합 시민이 아니거나 기술이 없을 경우 자국에 정착하는 길을 막는 이민 법안을 추진 중이다. 오직 투자자나 기술이 있을 경우에만 영국 시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네덜란드도 시민권을 따기 위한 시험을 의무화할 예정이다. 시민권을 받게 되면 미국처럼 국가를 연주하는 의식도 마련할 예정이다. 높아지고 있는 유럽의 ‘이민 장벽’은 미국 등 다른나라에까지 영향을 주면서 세계적인 추세로 확산되고 있어 심각성을 더한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부시 “미국 겨냥 테러 3건 막았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9·11 테러 이후 지금까지 자국 영토에서 계획된 알 카에다의 테러 공격 3건을 좌절시켰다고 밝혔다. 다른 나라에서 막아낸 테러 공격은 7건에 달했다고 덧붙였다. 부시 대통령은 6일 오전 10시쯤(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민주주의기부재단(NED)의 한 행사에서 이라크전과 대테러전에 관한 연설을 하면서 이같이 말했다고 AP뉴스 등 현지 언론이 전했다. 부시 대통령은 또 “알 카에다 등 이슬람 무장세력이 전 국가와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이라크를 주요 발판으로 삼았다.”면서 “이들은 한 나라만 손아귀에 넣으면 무슬림 대중을 연쇄적으로 움직여 다른 온건한 정부를 전복하고 스페인에서 인도네시아에 이르기까지 과격한 근본주의 이슬람 제국을 건설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테러와의 전쟁을 승리할 때까지 지치거나 쉬지 않고 계속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번 연설에서 이슬람 무장세력의 이념을 공산주의로 비유했으며 증오와 반유대주의를 부추기는 아랍 언론에 의해 지원받고 있다는 주장도 펼쳤다. 부시 대통령은 전날 백악관에서 수석 군사자문단을 만난 후 기자들에게 “오는 15일 실시되는 이라크 새 헌법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방해하려는 세력을 공격 중”이라며 “이라크군 3000명이 미군 부대와 함께 전투에서 활약했고 이라크군의 30% 이상이 작전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유대인의 역사1, 2, 3/폴 존슨 지음

    역사상 가장 많은 위인을 배출했으면서도 가장 많은 적대자들을 만났던 사람들은 누구일까? 장구한 세월 세계 각지를 떠돌며 박해를 받았으면서도 가장 강력한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이 정도 질문만으로도 보통 상식의 소유자라면 ‘유대인’이란 답을 찾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예수, 마르크스, 프로이트, 스피노자, 하이네, 샤갈, 아인슈타인, 벤야민, 나치, 홀로코스트, 록펠러, 모건,GE, 이스라엘, 중동분쟁…. 사람이든, 사건이든, 기업이든, 과거든, 현재든 모든 분야에서 유대인의 역사는 세계사의 가장 큰 줄기를 이루고 있다는 것도 새삼스럽지 않은 상식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도대체 무엇이 유대인들로 하여금 2000년이 넘는 세월동안 고통과 핍박을 견디며 위대한 성취를 거둘 수 있게 했는지에 대해서는 대부분 너무 무지하거나 피상적인 이해에 머물고 있지 않나 싶다. 영국의 지성 폴 존슨의 ‘유대인의 역사1,2,3’(김한성 옮김, 살림 펴냄)은 그에 대한 비교적 충실한 답을 찾을 수 있는 저작이다. 폴 존슨에 따르면 유대인의 역사는 아주 특별한 세계사다.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무시무시한 적대자들을 만났으면서도 자신들만의 고유한 동질성을 잃지 않고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20세기 이스라엘 건국에 이르기까지 4000년에 걸친 이들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피해자의 입장에서 조망되는’ 새로운 시각의 세계사를 만나게 된다. ●피해자 입장서 조망된 새로운 세계사 폴 존슨은 옥스퍼드 대학을 나와 ‘뉴 스테이츠먼’ 편집장 등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인문·종교·역사 분야에서 왕성한 저술활동을 해왔다. 그가 유대인의 역사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게 된 시초는 앞서 나온 그의 저서 ‘기독교의 역사’를 저술하면서부터다. 기독교가 유대교에 커다란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이 강한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인류 최초로 인격적 유일신 개념을 창조했다. 그리고 신의 뜻을 헤아리기 위한 ‘지적 통찰’에 몰두하게 된다. 훨씬 뒤에 시작된 기독교가 오랜 역사를 가진 유대교라는 유일신교에 새로운 해석을 첨가한 종교라는 것뿐만 아니라 동시에 유대교의 교훈과 교의신학, 각종 의식, 성물, 그리고 근본적인 개념들을 공유하고 있는 것도 유대인들의 지적 통찰 덕분이라는 것이 지은이의 생각이다. ●인류 최초로 인격적 유일신 개념 창조 중요한 것은 이같은 지적 통찰이 신에 대한 사상에만 머무르지 않고 학자(랍비)에 의해 다스려졌던 유대인 공동체사회를 통해 다양한 지성인 배출의 장이 됐다는 점이다. 유대인들은 중세에 자신들을 강제 격리시키기 위해 만든 게토 안에 거주할 때도 오히려 자신들의 신앙과 전통을 지켜가며 지성의 탑을 쌓아올렸다. 19세기 게토에서 해방되자 이들은 끊임없이 지성의 거인들을 쏟아냈다. 마르크스, 프로이트, 아인슈타인이 대표적 인물들. 인간을 바라보는 인류의 시각을 전복시켰던 마르크스와 프로이트 이론들도 사실은 천재들의 독창적 사유라기보다는 유대적 전통에 기인한 바 크다고 폴 존슨은 말한다. 이를테면 마르크스의 경우 진보개념에 관해 헤겔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의 역사관은 기본적으로 유대적인 것이었고, 그의 공산주의 천년왕국론도 유대인의 종말론과 메시아주의의 변주였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끊임없는 박해 속에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고 경제적 번영이 가능했던 것에 대해 지은이는 ‘장소의 이동’이 주는 혜택이라고 설명한다. 유대인들은 역사적으로 언제 공동체로부터 추방당하거나 재산을 몰수당할지 모르는 위험을 안고 살았다. 때문에 이주에 있어서 전문가들이었고, 그 와중에서 특히 부에 집중하는 기술 습득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유가증권, 무기명채권 등 새로운 방식의 유동재산 제도를 만들어냄으로써 그런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고 현대 자본주의에 가장 쉽게 적응해갈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반유대주의의 실체는 무엇인가? 지은이는 유대인들이 단순히 세상을 떠도는 이주자들이 아니라 선택받은 민족으로서 이방인들과 스스로를 구별하게 되면서 거꾸로 그들로부터 격리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분석한다. 복합적인 인종과 민족들로 구성된 사회를 중시했던 그리스인들에게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고집하는 유대인들은 ‘사람을 싫어하는’ 민족으로 보였으며, 중세에도 음식과 도살, 할례 등 독특한 율법으로 인해 비정상적인 사람들로 간주되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유대인들은 ‘꼬리를 감춘채 살아간다, 하혈로 고생한다, 악마를 섬긴다, 중세시대 흑사병은 유대인들이 마실 물에 독을 탔기 때문이다.’ 는 등의 루머와 음모에 시달려야 했다. 이같은 음모는 20세기에 이르러 유대인들이 세계정복을 꾀하고 있다는 내용의 ‘시온의정서’에서 그 절정에 달했다. 지은이는 ‘역사가 하나의 목적을 지니고 있고, 인류는 하나의 운명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유대인들만큼 강력하게 주장한 민족이 없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자신들이 신의 계획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과 인류에게 그 계획에 대한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명 아래 갖은 고난을 뚫고 살아왔다는 것이다. 사실 이같은 사명감 때문에 어느 시대, 어느 영역에서나 유대인들의 통찰력은 그 빛을 발했다. 지은이는 전 인류적 관점에서 이들의 노력이 추구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무익한지에 대한 답을 내지는 않는다. 이는 결국 유대인들의 역사를 추적한 이 책을 읽고 독자가 스스로 찾아야 할 몫이다. 각권 1만 5000∼1만 8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정복자의 시선/에드위 플레넬 지음

    ‘세계화’(globalization)에 대한 인식은 받아들이는 입장에 따라 양 극단을 달릴 수 있다. 한쪽에선 국경을 넘어 전 지구인의 호혜평등으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다른 한쪽에선 가진 나라와 기업이 못가진 나라와 기업을 정복, 지배해 나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진보적 좌파 지식인 에드위 플레넬의 저작 ‘정복자의 시선’(김병욱 옮김, 마음산책 펴냄)은 이 중 후자의 입장에서 15세기 콜럼버스의 신대륙 정복의 궤적을 좇아가며 오늘의 세계를 바라본 책이다. ●콜럼버스 정복궤적 쫓아 18개국 심층취재 지은이는 프랑스의 권위지 ‘르몽드’에서 탐사 저널리즘으로 두각을 나타낸 뒤 1996년 편집국장에 취임해 2004년까지 데스크를 지킨 유명 저널리스트다.‘르몽드’(Le Monde)는 ‘세계’라는 뜻의 제호에서 알 수 있듯이 국제면에 많은 지면을 할애해왔으며 ‘세계를 보는 눈’을 제공하는 것을 기본방침으로 삼아 왔다. 외신보다는 직접 특파원을 파견, 생생한 르포 기사를 제공하는 차별화된 강점을 갖고 있다.‘정복자의 시선’은 이러한 전통을 기반으로 탄생한 야심찬 르포르타주다. 1,2부로 구성된 이 책은 10년 간격으로 나온 두 책을 시간의 역순으로 묶은 것이다.2부 ‘콜럼버스와의 여행’은 1991년 ‘아버지 부시’의 ‘사막의 폭풍작전’이 사담 후세인의 군대를 굴복시켰을 때,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여정을 따라 두 달간 18개 나라를 직접 발로 뛰며 각국의 역사와 현 정세를 심층 취재한 결과물이다. 이 글들은 당시 르몽드에 연재되었다가 그 해 책으로 출간되었다. 그리고 10년 후,2001년 온 세계가 9·11테러의 충격에 휩싸였을 때 10년 전의 여정을 떠올리며 사유의 자취들을 쫓고자 한 것이 이 책의 1부인 ‘혼합인’이다. 시간적 현실감을 주기 위해 나중에 나온 ‘혼합인’을 앞으로 돌린 듯 하지만, 실은 2부‘콜럼버스와의 여행’을 먼저 읽고 나서 1부를 읽는 것이 책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콜럼버스와의 여행’은 저자의 표현대로 ‘과거의 빛에 현재가 모습을 드러내는 거울’과도 같은 여행이다. 콜럼버스가 태어난 이탈리아 제노바를 출발해 멕시코에서 끝나는 18개국 순방의 이 도정은 망각과 추억을 가로지르는 시간여행이기도 하다. ●전쟁은 서방세계 편견의 반복 여정의 단계마다 옛 인물에 대한 회고와 현재 인물과의 인터뷰를 교차시키면서 과거와 오늘을 가로지르는 다양한 울림과 메아리들을 펼친다. 미지의 땅,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손톱만큼이라도 이해하려는 의지도 없이 ‘나’혹은 ‘우리’와 다른 ‘타자’라는 이유만으로 가해진 무자비한 만행의 흔적과 상처들을 현재적 관점에서 더듬어 나간다. 1부 ‘혼합인’에서 지은이는 5세기 전의 정복과 충돌의 시간을 현재로 돌려 놓는다. 미국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중국, 반유대주의, 테러, 전쟁 등의 소재는 500여년 전의 정복과 지배의 역사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 정점은 이 책의 모티프인 ‘사막의 폭풍’, 그리고 ‘충격과 공포’다. 이 두 차례의 전쟁을 통해 극명하게 표면화된 문화충격과 문명 충돌의 시대에 지은이는 동·서양이라는 이항대립의 함정에서 빠져 나와 ‘동양의 서양인’이 되고,‘서양의 동양인’이 되는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부시 부자의 두 전쟁을 두고 지은이는 ‘우리 모두는 자신의 관행이 아닌 것을 야만이라 부른다.’는 몽테뉴의 금언을 끌어온다. 저자가 보기에 ‘진보’와 ‘자유’를 빙자한 두 차례의 전쟁은 동양(야만), 서양(문명)이라는 오래된 서방세계의 편견을 반복, 재생산하는 폭력이자 비이성이다. 이같은 자가당착적 위기는 물론 미국뿐만 아니라 저자의 나라인 프랑스도 마찬가지. 극우파 르펜이 급격히 부상했던 ‘르펜현상’ 등을 예로 들며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그는 ‘양식’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자국민 우선주의가 세계에 대한 사유 자체를 가로막고 있으며,‘타자’에 대한 경제적·문화적 울타리들은 정치를 실종시키고 있다고 꼬집는다. 아울러 문화 및 인종적 우월감이 내포하고 있는 대재앙의 싹이 여전히 엄존하고 있음을 경고한다. ●세계주의적 휴머니즘 개념인 ‘혼혈’ 지향 긴 여정과 치열한 사유를 통해 그가 내린 결론이 바로 1부 타이틀인 ‘혼합인’이다. 서방세계에 만연된, 인종우월주의에 바탕을 둔 오리엔탈리즘을 폭로하는 한편 ‘타자에 대한 이해’, 나아가 적극적인 섞임을 추구하는 ‘혼혈’을 지향한다.‘세계주의적 휴머니즘’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이 개념은 동서나 흑백 같은 단순대립을 넘어 ‘타자를 어떻게 만날 것인가.’라는 적극적, 포괄적인 문제를 제시한다.“혼혈은 강자에 대한 약자의 전략이다. 승자 앞에서 살아남고 약자를 구제하는 생존과 구제의 한 방식이다.”란 저자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이 과정에서 그는 에드워드 사이드, 한나 아렌트, 롤랑 바르트 등 ‘타자’의 문제에 고민했던 선배와 동료들을 불러낸다. 지배적 담론에서 벗어나 ‘군도(群島)의 사상’을 쫓고자 한 저자의 의지는 그의 문체에도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체계적 분석과 단언보다는 암시와 역설을 위주로 한 그의 파편적 글쓰기는, 다소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수많은 ‘타자’의 다양성을 상징하는 것 같아 오히려 미덕으로 읽혀진다.2만 2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푸틴, 중동평화 전도사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000년 취임 이후 처음으로 이집트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등 중동지역 순방에 나서 평화 구축을 위한 전도사 이미지 심기에 열중하고 있다. 첫 방문지인 이집트에서의 일정을 마친 푸틴 대통령은 27일 오후(현지시간) 텔아비브공항에 도착, 곧바로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는 등 2박3일의 공식 일정에 들어갔다. 29일에는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를 방문,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회담을 가질 계획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 지역에서의 러시아 영향력을 복원하고 민주주의를 짓밟고 있다는 안팎의 따가운 시선을 희석하는 동시에 세계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세워보겠다는 계산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첫 방문지인 이집트에서의 화기애애한 분위기와는 달리 이스라엘과는 적지 않은 파열음이 예상된다. 러시아가 이스라엘이 중지해줄 것을 요청한 시리아에 대한 미사일 판매를 계속하겠다고 버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러시아제 미사일이 시리아를 거쳐 이라크와 이란, 레바논 등의 테러단체들에게 유입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이란의 핵개발에 러시아가 도움을 주고 있으며 러시아에서의 반유대주의 점증 문제, 유대인인 석유재벌 유코스 전 사장 재판 등을 이스라엘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앞서 옛 소련과 러시아를 통틀어 크렘린 지도자로서 40년만에 이집트를 방문한 푸틴 대통령은 이날 오전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이라크와 레바논, 시리아 등 중동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술레이만 아와드 대통령 대변인은 두 정상이 중동평화 구상에 대해 일치된 입장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유대인 이미지의 역사/볼프강 벤츠 지음

    유대인에 대한 이미지는 누구나 한 마디씩 초들 수 있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다. 그만큼 고정관념화돼 있다는 반증이다. 탈무드의 지혜로운 민족이니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뛰어난 민족이니 하는 찬사로부터 ‘미국 네오콘의 배후세력’ 등과 같은 비난성 지적에 이르기까지 그 이미지는 실로 다양하다. 그러나 유대인에 대한 이미지는 단연 부정적인 것이 주류를 이룬다. 반유대주의의 뿌리는 기독교에서 찾을 수 있다. 유대교도들이 기독교로의 개종을 거부하며 예수 이전의 신앙을 고집하자 기독교도들의 포교적 사명감은 증오로 돌변했다. 유대인에 대한 저주와 사회적 격리는 ‘개종의 열정’이 좌절된 데 따른 반작용인 셈이다. 나아가 19세기에 등장한 ‘근대적 반유대주의’는 인종주의에 기초해 인간의 우열을 규정하는 등 서구 사회의 근거없는 편견을 그대로 보여줬다. 독일 본 대학 반유대주의연구소 소장인 볼프강 벤츠의 ‘유대인 이미지의 역사’(윤용선 옮김, 푸른역사 펴냄)는 유럽사회의 유대인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을 낱낱이 폭로한다. 책은 인종학살이라는 끔찍한 폭력으로 발전한 유대인 혐오가 사실은 별 생각없이 받아들인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여준다. 종교적인 이유에서 출발한 유대인에 대한 편견은 교회, 민간에 유포된 이야기, 각종 조형물 등을 통해 전해지고 확산됐다. 이런 편견은 지배집단 사이에서도 별다른 비판없이 수용됐다. 이 책은 안네 프랑크의 ‘상품화된’ 신화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 눈길을 끈다. 수용소에서 비참하게 죽어간 10대 소녀의 순수한 일기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부드럽게’ 이지화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한편 이 책은 역자(한국외대 외국학종합연구센터 교수)도 지적하고 있듯이, 반유대주의 범주에 포함시키기엔 어울리지 않는 사례까지 반유대주의 유형으로 다뤄 의문을 남긴다. 국가 이데올로기로까지 발전한 반유대주의를 별 저항없이 받아들이는 유대인을 혐오한 독일의 유대인 작가 쿠르트 투홀스키의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1만 3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교황 첫 해외방문지 어딜까

    ‘새 교황의 첫 해외 방문지는 중동?’ 베네딕토 16세(78)가 첫 미사 등에서 종교·문명간 대화와 화해 및 중재를 강조하자 그의 대외 행보와 역할에 기대가 쏠리고 있다. 무엇보다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중동 행보.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모아놓고 미사를 집전할 것이란 기대마저 제기되고 있다. 예루살렘이 여러 종교의 성지인데다 중동 정세가 전환기를 맞고 있다는 점에서 새 교황의 방문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 까닭이다. 아울러 나치 전력 시비를 겪은 독일 출신 새 교황의 예루살렘 방문은 화해와 용서란 상징적인 의미도 지닌다. 이 때문인지 중동 지도자들의 관심 표시와 주문도 봇물을 이뤘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20일 새 교황이 반유대주의 근절을 위해 노력해줄 것을 주문했고, 유대교 지도자들은 그를 ‘이스라엘의 친구’라며 환영했다. 시리아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 이브라힘 알 자피리 이라크 총리 지명자, 요르단의 압둘라 2세 국왕 등도 종교ㆍ문명간 대화에 함께 노력하자고 강조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마무드 아바스 수반도 “성지 평화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주문했다. 한편 이탈리아 언론들은 20일 요한 바오로 2세의 고향인 폴란드 등이 해외 방문지로 고려되고 있다고 전했다. 교황청의 호아킨 나바로 발스 대변인은 8월 16∼20일 쾰른에서 열리는 세계 가톨릭 청년의 날 미사 집전과 관련,“교황의 독일 쾰른 방문이 확실시된다.”고 말하는 등 교황의 향후 일정이 조율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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