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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농업 파탄… 외교관에도 식량 배급/스위스 쥬네브지 기자 방북기

    ◎김일성 초상화 많아도 레닌 것은 안보여/외국인용 태환화폐 암시장서 5∼6배 거래 북한의 「위대한 지도자」 김일성이 현재 79세의 인생 말기에서 니콜라이 차우셰스쿠 전 루마니아 독재자의 최후를 반복하는 악몽과 아마도 이보다 훨씬 현실에 가까운 또다른 악몽,즉 한반도의 독일식 통일이란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지 모른다고 스위스일간 트리뷴 드 쥬네브지가 최근 보도했다. 이 신문은 평양 국제의회연맹(IPU) 연차총회 취재차 북한을 1주일간 방문하고 귀국,지구가 아닌 다른 외계를 여행한 인상을 받았다고 실토한 동지 기자의 「버티는 북한­마르크스주의의 박물관」 제하의 기사를 게재하고 오늘의 북한 실상을 보도했다. 이 신문은 한 평양 주재 외국외교관이 『조지 오웰도 이같은 체제를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고 전하고 그러나 북한은 현재 더이상 외부세계로부터 완전 차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언젠가는 「독일식」 통일에 뒤이어 동독과 같은 종말을 맞게 될는지 모른다고 전망했다. 이 기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산정권들이 도처에서 붕괴된 오늘날 김일성 왕국은 그 나름대로 일종의 「완벽」의 경지에 도달해 있다. 「연락관들」의 감시하에 1주일간 북한여행을 마친 기자는 외계를 구경한 듯한 느낌을 금할 수 없었다. 한 평양 주재 외국외교관은 『모두가 서로를 감시하는 이 사회체제를 조지 오웰조차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구가 1백50만명이라 하나 평양은 버스정거장과 지하철역을 빼고는 사람이 살지 않는 수도처럼 보였다. 외세를 배격하는 주체사상의 나라 북한에서는 김일성동상과 초상은 도처에 널려있으나 마르크스 레닌의 초상은 눈에 띄지 않았다. 주체사상이 인간중시의 사상이라 하지만 북한 주민들은 맹목적 복종을 강요받고 있다.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북한에는 12개의 혹독한 강제수용소에 10만∼16만명의 정치범들이 수용되어 있으며 또다른 수용소들에서는 소련과 전 동구 형제국들에서 급거 송환된 북한 유학생들이 「재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국민학교 산수교과서에는 한국동란중 사살된 「미제국주의자」와 미군포로의 수를 더하는 문제가 실려있다. 개인이 아무런 권리도 갖고 있지 않은 전제국가의 도구인 북한 형법은 음모·테러·스파이 행위는 물론 언행·저술·낙서 등을 통해 「당과 국가의 정책을 비방·중상」하는 자에 대해서는 사형에 처하도록,그리고 「외국대사관으로의 정치적 망명 등 외국에로의 도주」를 꾀하는 자도 사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북한경제는 파탄상태에 놓여 있다. 철저히 집단주의적 체제하에서 살충제 남용에 타격을 받고 있는 농업은 더이상 북한주민들을 먹여 살릴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어 있다. 북한주민들은 물론 외국외교관들에게도 배급카드가 배포되어 있다. 80여 개 국 1천여 명의 방문객들은 평양으로 불러들인 최근의 IPU연차총회 개최는 현찰거래상점들에 일본산 맥주,불가리아산 포도주,그리고 바나나나 파인애플 등을 다시 채워줄 기회를 제공했다. 이는 대외부채를 상환하지 않기로 악명높은 북한정부에 아직도 여전히 차관을 공여하는 유일한 나라인 중국의 차관 덕분이다. 원칙적으로 외국인용으로 제한되어 있으나 그 가치가 현지통화의 5∼6배에 달하는 태환성 북한 원화의 존재는 암시장을 태동시키고 있다. 철저한 공산주의의 박물관인 북한은 앞으로 얼마나 생존할 것인가. 평양정권의 지주들은 영구히 살아 남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동구 공산정권을 무너뜨리고 뒤이어 소련에 침투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바이러스」로부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북한을 보호할 결의에 차있다. 「위대한 지도자」 김일성이 육체적으로는 79세 노인의 외양만을 보여주고 있는 가운데 그의 후계자로 지명되어 있는 아들 김정일은 특히 외국인들 앞에 공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만큼 애매한 수수께끼를 게속 던져주고 있다. 현재 일상적 당정업무를 관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정일은 권력의 모든 요직에 이미 자기세대의 심복들을 앉힌 듯하다. 또한 김정일은 그의 49세 생일날인 지난 2월16일 비밀리에 북한군사령관에 임명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정일이 일제치하에서 대항하여 실제로,또는 미화된 아버지 김일성의 항일투쟁에 의해 획득된 위세와 군사적 경력을 물려받을 수는 없다. 입증할 수는 없으나 김정일의 호사취미에 대한 소문도 계속 나돌고 있다.
  • 고르비 방일 계기로 알아본 「북방4섬」

    ◎“주권회복”·“영토고수”… 일·소,팽팽한 줄다리기/황금어장·광산 많아 「천연자원 보고」/소 국내 반발 커 일괄 반환은 불투명/일 “1855년 국교수립 후 영토로 확정” 소 카이로선언등 근거,영유권 주장 이른바 「북방영토」 문제가 최근 일본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 오는 16일부터 일본을 방문하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일소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에 관해 어떤 「정치적 결단」을 내려줄 것을 일본측은 기대하고 있으며 알렉산드르 베스메르트니흐 소련 외무장관의 방일,오자와 이치로(소택일랑) 자민당 간사장의 방소도 모두 북방영토문제와 관련지어 생각한다. 요즘 일본의 관심은 온통 이 문제에 쏠려 있다. 북방영토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 현재 소련이 점유하고 있는 이들 영토는 과연 일본에 반환될 것인가. 소련에 거액의 경제원조까지 제의하며 일본이 반환에 열을 올리는 것은 북방4개 섬은 하보마이(치무)군도를 비롯,시코탄(색단)·구나시리(국후)·에토로후(택족) 등이다. 모두 일본 홋카이도 동부 네무로(근실) 동쪽 오호츠크 해역에 있는 섬들이다. 이들 섬의 귀속문제는 소위 일본의 「전후 처리문제」로서 남아 있는 최대의 현안이며 일소 평화조약교섭의 가장 큰 난관이다. ○일,소태도 변화 주목 ▷역사적 경위◁ 일소 양국의 국교가 개시된 1855년 이들 4개 섬이 일본의 영토로 확정되었으며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것이 일본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따라서 반환은 둘째치고 우선 이들 섬에 대한 일본의 주권을 인정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소련측은 카이로선언,포츠담회담,얄타협정 등을 근거로 이들 4개 섬이 소련영토로서 「이미 해결된 사항」이라고 주장하며 현실적으로 현재 소련의 점유하에 있다는 사실이 존중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영토 귀속의 문제는 일소 평화조약체결의 대전제가 되어 있다. 일본정부는 지난 81년 1월 일·로 통상수호조약이 체결(1855년)된 2월7일을 「북방영토의 날」로 제정했으며 그해 9월에는 스즈키 젠코(영목선재) 총리가 현직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이들 지역을 시찰했다. 이번 베스메르트니흐 소련 외무장관의 일본방문(3월29∼31일)과오자와 간사장의 방소(3월24∼27일)에서 소련측이 『일소간에는 「영토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소련측이 명확히 인정했다』(중산태랑 외상발언)는 점에 일본측은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경제적 가치◁ 북방영토에 관해서는 『소련측이 반환해 주지 않는다면 돈을 주고 사들여도 좋지 않겠는가』라고 발언한 정치인도 있어 비난의 대상이 됐었다. 그것은 『소련측에 대한 모욕이며 일본의 주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라는 의미에서이다. 북방영토 주변은 굴지의 어장이다. 따라서 소련 경비정에 의한 일본어선의 나포사건이 심심치 않게 발생,양국관계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이 지역의 현재의 경제적 가치는 정확히는 계산되지 않는다. 다만 전 전의 자료를 데이터로 물가상승률을 곱해 볼 때 연간 수백억엔의 총 생산액을 올릴 수 있다는 추정이 나온다. 94%가 어업이다. 네무로시 북양어업대책실의 추계에 따르면 1941년 어종별 어획량에 88년의 시세를 곱하면 대략 2백50억엔어치쯤 된다. 그러나 당시에는 태반이 연안어업이었다. 이 해역에서 꽃게를 잡는「특공대」 선장에 따르면 『일본어선이 자유로 어업행위를 할 수 있다면 당시의 10배쯤의 어획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수산업 이외에도 금·은 등 광산도 있다. 금은 구나시리섬의 천도광산에서 1t당 평균 품위 37g을 채취할 수 있는데 비록 소량이긴 하지만 채산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여기에 토지 자체의 가치도 무시할 수 없다. 홋카이도 북부 리시리조(이고정) 행정당국에 따르면 북방 4개 섬의 임야는 싼 곳이 평당 3백엔,비싼 곳은 2천엔이나 나간다. 총체적으로 임야만 5천억∼3조엔에 이른다는 계산이다. 리조트 개발업자들에 의하면 이곳은 활화산과 온천이 많으며 후미진 바다가 많아 관광지로 개발할 만한 곳이라는 것이다. 스키장 조성도 가능하다. 그러나 북방영토는 이 같은 산업과 숫자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이곳에 묘지를 참배하러 가는 일본의 구도민들이 배 위에서 『돌아왔다』고 소리치는 모습은 금전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가치이다. 그 옛날 선조의 땅이었다는 정신적 가치를 지닌다. ○군사적 가치 떨어져 ▷군사적가치◁ 오호츠크해에는 미국본토를 겨냥하는 소련의 원자력 잠수함이 작전을 펴고 있다. 북방 4개도서는 이곳을 「성역」화하기 위한 중요한 지역이다. 일본 방위백서에 따르면 현재 구나시리·에토로후·시코탄섬에는 1개사단 규모의 지상부대가 주둔하고 있으며 에토로후의 천영비행장에는 미그23 후로가 전투기 약 40대가 배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지역의 군사적 가치에 대해서는 그렇게 높게 평가하지 않는 전문가들도 많다. 군사평론가 오가와 가즈히사씨(소천화구)에 따르면 『미소가 전략핵 삭감에 합의한 이상 잠수함전략으로서의 북방영토의 군사적 의미는 적다』는 것이다. 국제정치학자 이와시마 히사오(암도구부) 교수(암수대)도 냉전구조의 종결과 더불어 소련의 잠수함 전략의 변화에 비춰볼 때 이곳의 군사적 가치는 적어졌다고 말한다. 그는 『소련은 잠수함의 소음을 줄이고 보다 고속화시켜 미국본토에 접근시킴으로써 순항미사일로 공격하는 방법으로 변했다』고 지적하고 『이곳의 성역화 의미는 희박해졌지만 소련으로서는 만일 이곳을 철수한 뒤 일본 자위대와 미군이 이곳에 잠수함 탐지부대를 배치한다면 곤란하기 때문에 반환에는 4개섬의 비군사화가 조건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환 전망◁ 이번 일소 외무회담에서 소련측은 종전과는 달리 「영토문제」라는 표현을 『아무런 저항도 없이』(외무성 당국자) 사용했으며 이 문제에서 그 어떤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한걸음 전진했다는 인상을 풍겼다. 그러나 소련측은 동시에 소련 국내여론 등을 지적,『쌍둥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한 해결책의 모색』(소련 외무장관)을 강조함으로써 일본측의 4개도서 일괄 반환에는 차라리 부정적인 발언을 반복했다. 따라서 앞으로의 초점은 오는 16일 방일하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자세에 달려 있다. 베스메르트니흐 소련 외무장관은 이번 방일기간중 영토문제와 관련,『최근까지 소련측은 영토에 관한 그 어떤 문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으나 이제는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며 양국의 입장 차이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며 평화조약의 합의에 도달했을 때 『명확히영토의 경계를 확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방일 때 영토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형태로든 정치결단을 내릴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일본의 많은 외교문제 전문가들은 이 문제가 쉽사리 해결될 것으로는 생각지 않는다. 그것은 ▲일소관계의 역사적 경위 및 현재의 상황 ▲양국 국민의 감정 ▲소련 국내의 경제상황과 여론 ▲소련연방최고회의내의 의견 및 다양한 입장 ▲유럽의 전반적 상황 등이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결단」을 주저케 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방영토의 반환문제는 경제대국 일본이 안고 있는 최대의 「외교적 시금석」이라고 전문가들은 주시하고 있다.
  • 북한,영변에 원자로 3기 보유/미,일본에 브리핑

    ◎94년엔 「광도형 원폭」 한해 6개 제조 가능/핵시설 한곳 집중… 핵무기 생산의도 뚜렷 북한에는 현재 3기의 원자로가 있으며 오는 94년에는 히로시마(광도)형 원자폭탄을 1년에 6개나 제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사실이 21일 밝혀졌다. 이날부터 발매된 일본의 주간지「주간문춘」(29일자)은 지난달 하순 일본을 방문한 미국정부의 핵·군사정보 브리핑팀이 일본측에 설명한 북한의 원폭공장 실태를 상세히 소개했다. 미국측은 일본 외무성의 다니노 사쿠타로(곡야작태랑) 아시아국장을 비롯,방위청·경찰청·내각조사실의 스태프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북한의 원폭개발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전후 45년간의 배상금」이 원폭제조비에 전용되지 않도록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브리핑은 이렇게 시작됐다. 『전부터 미국의 군사위성은 평양북방 88㎞ 지점 영변산중에 핵 재처리시설이 있는 것을 탐지했다. 당초엔 이것을 발전용으로 보았으나 그후 정보수집 결과 핵무기제조에 절대 필요한 플루토늄 제조시설로 판단하게 됐다. 미국정부는 북한이 핵무기제조를 의도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으며 그 완성시기는 오는 95년이다』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제조하려 한다는 근거로서 다음 4가지 증거를 들고 있다. 첫째는 2기의 원자로를 비롯한 핵리사이클 시설이 전부 같은 구역안에 있다는 점이다. 제1원자로는 소련제를 모델로 한 흑연 감속가스 냉각방식의 소형으로 출력은 10∼30메가와트. 이 원자로는 87년 9월 가동됐는데 현재 제2의 대형 원자로가 밀집돼 건설중에 있다. 84년 착공된 이 원자로는 50∼2백메가와트의 출력을 갖고 있으며 준공 예정시기는 오는 94년. 이 원자로들의 외형적 특징은 송전선이 달려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전력공급등 평화적 이용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제2의 증거는 핵연료 재처리공장의 건설이다. 벽두께가 1m나 되고 건물 자체가 좁고 긴 점,배기가스를 뿜는 연돌이 높고 특수기계를 도입하는 입구가 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핵연료 재처리시설임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현재 내부설비를 부착중이며 반복테스트 중이다. 시설가동시기는 95년께로 추정된다. 이들이 평화적 이용목적의 원자로라고는 생각될 수 없는 제3의 증거는 시설주변에 저공공격용의 대공포를 비롯한 방위병기가 배치되어 있는등 엄중한 경계가 펼쳐지고 있으며 산에 둘러싸여 외부에서 보이지 않는 지형을 선정한 점이 지적되고 있다. 네번째,원자로 부근에 저레벨의 폭발실험 흔적이 있다는 점이다. 비록 규모가 큰 것은 아니지만 폭발실험을 행한 흔적이 클레이터로 남아 있다. 이 폭발실험장은 소련이 제공한 핵연구시설 근처에 있는데 83년부터 88년까지 약 70회에 걸쳐 폭발실험을 했다. 이런 실험이 핵개발에 응용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폭발능력의 분석에 불가결한 것이기도 하다. 이 구역안에는 우란 농축공장도 있다. 북한엔 천연우라늄 자원이 부존돼 있으며 이곳에서 핵연료로서의 우란으로 농축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측의 보고를 종합하면 현재 북한에는 3기의 원자로가 있다. 제1은 소련이 제공한 연구용으로 지난 60년대 건설되어 기초연구에 사용된다. 두번째는 소련제를 모델로한 것으로 기술적으로는 구식이지만10∼30메가와트의 출력을 갖는 흑연 감속가스 냉각식 원자로다. 지난 80년에 건설이 결정되어 87년부터 가동했다. 그 전출력으로 미루어 계산하면 1년에 5∼6㎏의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으며 풀가동하면 7㎏의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다. 1개의 원자폭탄은 6㎏의 플루토늄이 있으면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세번째 원자로는 프랑스에서 제조된 대형이다. 기술은 구식이지만 완성되면 연간 18∼50㎏의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다. 이것은 원폭 2∼5개 분량에 상당한다. 즉 북한은 이 프랑스형 원자로가 완성되는 94년에는 히로시마형 원자폭탄을 1년에 6개나 제조할 수 있는 플루토늄 제조능력을 갖게 된다. 『실제로 프랑스제 원자로가 흑연감속형으로 가압수형이 아닌 점이 중요하다. 흑연형은 플루토늄의 생산이 용이하며 천연우란의 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북한에 꼭 맞는 형이다. 따라서 외국의 도움 없이도 독자적으로 핵개발이 가능하다』고 원자력 전문가는 지적하고 있다. 이번 미국측 설명에서 일본 정부 관계자들이 무엇보다 놀란 것은 대형원자로 바로옆에 김일성주석의 별장이 있다는 사실이다. 정보에 따르면 김은 빈번히 평양에서 이곳 별장을 드나들며 현지 지도를 한다고 한다. 김이 「현지 지도」를 한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이 시설을 중요시하는가를 나타내는 반증이라고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 남북 「화해의 초석」으로 /석지명 청계사 주지/고위회담에 바란다

    이번에 이루어지는 독일의 통일을 보면서 우리는 독일인들의 기쁨을 같이 기뻐해주는 아량을 베풀 여유도 없이 절망에 빠지게 된다. 우리의 처지가 너무도 한심스럽기 때문이다. 그전에 우리는 한국이 독일보다는 앞서서 통일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왜냐하면 통일된 강대국으로서의 독일은 다른 주변국가들의 안보에 위협이 될 염려가 있으므로 그 주변 국가들이 통독을 막을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까지 이모양이고 저들은 내일 모레 통일을 이룩하게 되었다. 독일통일이 가시화되기 전까지 우리는 남북의 접근이 미국이나 소련같은 강대국들의 한반도 분단방침 때문에 불가능한 것으로 짐작했었다. 그러나 독일의 통일을 보는 우리는 남북의 접근이 강대국들의 방해때문이 아니라 남북에서 통치하고 있는 사람들의 지혜나 복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남북이 진정한 대화를 하지 못하고 자기주장만 내세우다가 서로 토라지고 비방하면서 돌아서기를 반복하는 것은 강대국들의 책임이 아니라 분단된남북에서의 통치에 맛을 들이고 그 맛에 안주하려고 하는 통치자들의 책임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되었다. 남북의 총리들이 만난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 고위회담에 어떤 기대를 거는 것이 겁난다. 과거의 많은 남북 접촉들이 희망에 부풀었던 우리의 가슴들에 좌절의 성처만을 남기곤 했기 때문이다. 서울사람이 평양을 방문하고 평양사람이 서울을 방문했을 때의 감동과 기대가 컸던 만큼 그 접촉을 발전시키기 못하는데 대한 실망도 컸던 것이다. 그렇지만 같은 핏줄을 가진 동족간의 관계는 상대가 아무리 사악하고 교활하고 정직하지 못하다고 해도 끊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과거의 남북접촉에 대해서 실망하고 체념했었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접촉이 있을 때 우리는 『이번에는 혹시나』하고 새로운 기대에 부풀지 않을 수가 없다. 북쪽도 이번에는 소련을 필두로 한 동구 공산국가들의 개방을 보았을 것이고,그 개방의 물결이 북한에 들어오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으리라. 그리고 남쪽도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 군인들의 이라크 포위를 보고 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문제삼은 미국은 얼마 전에 파나마와 라이베리아를 서슴없이 침공했었고 그전에는 그라나다를 점령했었다. 그리고 이란과 싸움하도록 이라크를 충동하고 도우면서 이라크를 키운 것은 바로 미국이었다. 모든 나라들은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싸운다. 우리도 우리의 이익을 챙겨야 한다. 우리에게 최대의 이익은 분단된 남북이 피가 통하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에게 있어서 통일은 목숨이다. 목숨은 이익 이상의 것이다. 이번의 만남에는 그전의 말장난을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한다. 상대와 상대의 처지를 인정하지 않고 수십년전부터 외쳐오던 주장만 되풀이하다가 사진이나 찍고 헤어지는 쇼적인 만남은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 그전대로라면 북쪽은 현실적 실현성을 외면한 채 우선적인 국가통합을 전제로 해서 군사ㆍ정치문제를 주의제로 내세우고 미군철수문제를 들고 나올 것이 뻔하다. 그리고 북쪽의 통치자들이 지난 40여년간 북한동포를 묶어놓는 데 이용해온 독재적 폐쇄정책에 취약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남쪽은 가능한 것부터의 점진적인 교류를 주장하면서 우리가 북쪽의 폐쇄사회로 뚫고 들어갈 수 있는 틈을 찾아 내려고 할 것이다. 민족의 화합문제에 있어서는 아무리 옳고 좋은 주장이라고 하더라도 한쪽이 지고 다른 한쪽이 이기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상대와 내가 똑같이 이기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대단히 어려운 과제이다. 이번의 회담은 그 묘안을 찾는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 이번의 만남에서 당장 완전한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우선 남북간에 상대의 실체를 인정하고,그 실체와 그 실체의 주장이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대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자체가 하나의 큰 성과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번 회담에 나타날 남북 사람들의 웃는 모습들이 각기 계획적인 이중작전의 한 면이 아니고 진심을 나타내는 얼굴이라면 상호간의 쌀쌀한 기운을 가시게 하는 만남 그 자체가 또한 큰 성과가 될 것이다. 이번 회담에 임하는 사람들의 의지도 중요하지만,우리 국민들의간절한 발원과 그 발원과 일치하는 행동이 또한 중요하다. 남한에서의 국민 화합적인 통일도 이룩하지 못하면서 남북의 통일을 바라는 것은 하나의 난센스이다. 이 조그만 나라에서 몇군데 지역의 얼굴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한 지역을 고립시키는 듯한 몸가짐을 하면서 입으로 남북통일을 외친다면 그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요,다른 한 지역의 얼굴이라고 하는 이가 자기 지역을 고립시키는 일만 골라가지고 행하면서 국민화합과 통일이 좋다는 말만 염불처럼 왼다면 그 또한 우스꽝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온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계층간 또는 지역간의 화합을 깨지 않도록 마음 먹고 행하는 것이 발전되어서 마침내 남북의 화합으로 이어지게 해야한다. 회담에 거는 기대는 바로 내 이상과 내 마음과 내 행동에 거는 발원이 되어야 한다.
  • 아랍국,겉으론“형제”속으론“남남”/이라크침공사태이후 겉도는 회교권

    ◎대책보다“불똥튈라” 전전긍긍/세계비난 일자 뒤늦게 소극적 제재만/원유가 논의때도 이해따라 이합집산 아랍형제국들이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사태를 맞아 뚜렷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제각기 자국의 이해타산에만 급급한 나머지 불똥이 튀어 넘어오지 않도록 눈치만 보고 있는 형편이다. 지난 81년 이란회교혁명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쿠웨이트와 함께 페르시아만협력협의회(GCC)를 결성,상호방위협정까지 맺어놓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ㆍ카타르ㆍ바레인ㆍ오만ㆍ아랍에미리트연합 등 5개왕국들은 이라크의 쿠웨이트침공 직후 방위협정에 따른 대이라크 선전포고를 하기는 커녕 침공사실을 보도하는 것조차 기피하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GCC는 이라크를 비난하는 국제여론이 들끓게 되자 침공 48시간 뒤에야 이라크를 규탄하고 나섰으나 규탄성명 외에는 이렇다할 대응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들 5개 회원국이 경제적으로는 부유하지만 군사력면에서는 모두 합해봐야 1백만대군을 거느린 이라크의 20% 수준에도 못미치기 때문에 이라크의 제2의 침공목표가 되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실정이다. GCC의 리더격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파드국왕이 사태발생 직후 거의 공식석상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등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다가 이라크의 쿠웨이트점령군이 사우디국경으로 배치되고 체니 미 국방장관이 전격 방문해 미군의 주둔을 허용하고 이라크의 송유관을 폐쇄해 주도록 요청하는 등 사태가 급진전되자 마지못해 미군의 잠정주둔만을 허용했다. 그러나 이라크 송유관 폐쇄요청에 대해서는 이라크에게 침공구실을 주지 않을까 우려한 나머지 아직까지 결정을 미루고 있다. GCC는 8년간의 이란ㆍ이라크전쟁때 이란의 회교혁명이 확산돼 자국의 왕정이 흔들리는 사태를 방지할 목적으로 이라크를 전면지원했고 전후복구비용까지 합해 총4백억달러이상을 지원했으나 오히려 「호랑이」를 키운 셈이 됐다. 이라크와 함께 아랍협력위원회(ACC)를 구성하고 있는 이집트 요르단 예멘 등 3개국의 대응자세도 제각각이다. 지난달 18일 이라크가 쿠웨이트의 원유도굴과 산유쿼타위반을비난하며 석유분쟁을 일으키자 곧바로 이라크 쿠웨이트 사우디 등을 오가며 중재역을 자임했던 이집트의 무바라크대통령은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과 만난뒤 지난달말 『이라크의 쿠웨이트침공은 없다』고 공언했으나 사태가 정반대 방향으로 진전됨에 따라 모멸감을 느낀 나머지 아랍권지도자중 처음으로 이라크를 규탄하고 나섰다. 1백만명의 이집트인이 이라크에서 일하고 있는 현실과 이라크와의 화해를 통해 아랍권내의 중재자 지위를 추구했던 점을 감안할 때 무바라크에게는 어려운 결단이었으나 후세인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이 워낙 컸기 때문에 모로코와 함께 자국군을 다국적군에 파견키로 결정했다. 이에 반해 이스라엘과 인접해 있으면서 경제ㆍ군사적으로 이라크의 지원을 받고 있는 요르단의 후세인국왕은 이번 사태에 대한 서방세계의 개입을 경고하고 예멘 리비아 수단 등과 함께 아랍연맹 및 회교회의기구(ICO)의 이라크 침공규탄 결의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쿠웨이트 임시 정부(괴뢰)에 대한 승인은 거부하는등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아랍국지도자들과의 접촉을 활발히 하며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는 태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경우 사우디와 쿠웨이트등으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아왔기 때문에 이제까지 분쟁이 있을 때마다 전통적으로 온건아랍국들을 지지해왔으나,이집트 중재하에 추진돼온 미ㆍPLO간 대화가 부진한 데 대한 실망과 아랍권의 새로운 실세로 떠오르는 이라크와의 유대필요성 때문인지 이번 ICO의 이라크침공규탄 결의에 반대했다. 아라파트 PLO의장은 파드 사우디국왕 등과 접촉하며 중재를 시도하고 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사우디와 함께 이라크의 송유관을 자국영토내에 두는 대가로 연간 4억달러의 재정수입을 올리고 있는 터키는 사태초반까지 이라크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을 자제하고 미국의 이라크 송유관 폐쇄요청을 거절해 왔다. 그러나 UN의 이라크제재결의가 나오고 국제여론이 거세지자 이에 힘입어 7일 뒤늦게 이라크 송유관 폐쇄를 결정했다. 이라크와 경쟁관계에 있는 이란과 시리아도 이라크군 철수를 촉구하는 것 외에는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라크와의 화해를 선도했던 라프산자니 이란대통령은 이번 사태로 인해 국내강경파들의 입지가 강화되지 않을까 우려하며 원유 증산채비를 갖추고 있다. 리비아 튀니지 모리타니 알제리 등 아랍마그레브연합을 구성하고 있는 아프리카지역의 아랍국가들도 아직 태도표명은 유보한채 눈치를 살피고 있다. 이같은 아랍국가들의 이해관계에 따른 이합집산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다트 전이집트대통령이 지난 70년대 후반 이스라엘과의 화해정책을 촉구했을 당시 나머지 아랍국가들은 즉각적인 반발을 보였으나 사우디 등 온건국들이 점차 이집트 동조로 돌아섰으며 이란ㆍ이라크전쟁 당시에는 리비아와 시리아 등 극소수국가를 제외하고는 모든 아랍국들이 이라크를 적극 지원했다. 유가정책에 있어서도 사우디등 온건국들은 「지나친 유가인상은 원유수입국들의 에너지절약을 유발시켜 오히려 원유수입감소를 초래한다」는 이유로 저렴한 가격에 충분한 원유공급을 주장하는 반면 이라크 이란 리비아 시리아 등은 고유가정책과 원유무기화를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그러나 지난달 26일 제네바에서 열린 석유수출국기구(OPEC)각료회의에서는 이라크 등 강경국들의 주장이 먹혀들어 공시유가를 배럴당 18달러에서 21달러로 인상하는데 성공,모처럼 합의점을 찾아내기도 했다. 정치분야의 이집트,경제분야의 사우디아라비아,군사분야의 이라크 등 분야별 리더들이 완전한 아랍세계의 주도권을 따내기 전까지는 이슈에 따라 이들 맹주들의 눈치를 살피는 주변국들의 이합집산은 끊임없이 반복될 전망이다. 이같은 사분오열 때문에 이번사태가 아랍권내에서 자체해결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직접적인 피해의 우려가 없는 아랍산유국들은 이번사태로 인해 유가가 급등하는데 대해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 “북방4섬 반환 고집땐 동경행 재고” 일 정가에 「고르비발언」파문

    ◎“영토분쟁 없다” 강경선회에 당황/“협상서 우위확보 위한 협박용”관측도 일본정계가 「고르바초프 충격」에 얼을 잃고 있다. 전후 45년간 일ㆍ소간 최대 현안이 되어왔으며 일본측으로서는 그 반환을 위해 갖은 공을 들여온 「북방 4개도서」문제에 대해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일ㆍ소간에 영토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며 하루 아침에 등을 돌려 버렸기 때문이다. 나아가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내가 일본을 방문해서 (영토문제로)관계가 나빠진다면 가지 않는 쪽이 좋을지도 모른다』며 내년초로 예정되어 있는 자신의 일본방문 자체를 취소할 뜻을 비쳤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이같은 대일강경발언은 25일 하오 2시30분(한국시간 하오 7시30분) 소련을 방문중인 일본의 사쿠라우치 요시오(앵내의웅) 중의원의장과의 회담에서 터져 나와 일본정계의 충격을 더 해주고 있다. 이날 크렘린대통령 집무실에서 있었던 30여분 동안의 회담에서 사쿠라우치 의장은 북방영토반환문제에 관해 『일본국민의 소원이다』라며 소련측의 전향적인 대응을 촉구했다.그러나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외교적 언사」를 기대했던 일본측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일ㆍ소양국이 협력한다면 상호간에 더 한층 이익이 생길 수 있다』고 말하고,일본측이 북방영토의 반환만을 고집할 경우 내년으로 예정되어 있는 자신의 방일 자체를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는 강경한 자세를 보였다. 이보다 앞서 사쿠라우치의장은 루키야노프 소련최고회의 의장으로부터 고르바초프대통령을 만나면 북방영토문제에 관해 진일보한 답변을 들을 가능성이 있다고 귀띔받은 터여서 일본측의 쇼크는 더욱 컸다. 일본정계에서는 이같은 소련수뇌의 경연양면작전에 일본측이 말려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우려하고 있다. 고르바초프­사쿠라우치회담은 일본측의 요청으로 갑자기 이루어졌다. 이자리에서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어디까지나 문제가 있느냐 없느냐고 추궁받는다면 영토문제란 없다는 발언을 반복할 수 밖에 없다. 일본을 방문해도 이문제 뿐인가』라며 방일재고가 불가피하다는 뜻을 밝혔다. 일ㆍ소간 영토분쟁은 일본 홋카이도(북해도) 동북쪽에 있는 4개의 섬,에토로후(택착) 구나시리(국후) 시코탄(색단) 하보마이(치무)를 둘러싼 분쟁이다. 일본은 전전 자국영토였던 이 섬에 대한 소련의 점령은 불법이라고 주장하며 반환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소련은 이를 일축해 왔다. 이 때문에 일ㆍ소양국은 제2차세계대전 종전후 정식 평화조약도 체결하지 못하고 있으며 소련내 개발사업에 대한 일본의 투자를 가로막는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이번 고르바초프의 영토문제에 관한 강경발언에 대해 일본정계의 해석은 구구하다. 더구나 지난 1월 아베 신타로(안배보태랑)전자민당간사장의 방소때 유연한 자세를 보였던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갑작스런 태도변화의 배경이 무엇인가를 둘러싸고 많은 억측이 일고 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경제위기라는 국내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외교관계에서는 대미관계를 비롯,독일통일을 둘러싼 유럽안보,한국과의 관계 등 주위가 놀랄만큼 유연한 자세를 보여왔다. 그러한 그가 돌연 대일 문제에서 강경자세를 보인 것은 고르바초프 특유의 「협박」이 아닌가라고 보고 있다. 이번 그의 방일중지발언도 『농담조였다』는 사쿠라우치 의장의 말처럼 액면 그대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일본 국내에서는 이 4개의 섬을 경제적으로 『매수하라』는 의논도 일고 있다. 이런 상황을 외교에 능한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모를리가 없다. 따라서 일본외무성측도 그에게는 어떤 「목적」이 있을 것이라며 고르바초프의 방일 재고발언에 『일희일비는 금물』이라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 판문점 「고위급」 예비회담장 이모저모

    ◎서명까지 1년반… 서로 “고생 많았다”/북측서 의제 재독 요구… 일순 긴장/자유왕래 제의 싸고 한때 신경전 ○…26일 상오 10시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회담 개최를 위한 제8차 예비회담은 범민족대회 예비회의 북측 대표단의 도착 지연 때문인지 다소 긴장된 분위기속에서 진행. 남북 대표들은 그러나 이날 회동이 마지막 접촉이고 이미 실무대표접촉을 통해 합의서 작성작업이 완료돼 일단 홀가분한 표정들. ○…우호적인 회담분위기를 반영하듯 양측은 회담시작 27분 만인 상오 10시27분 정각에 합의서에 서명함으로써 88년 12월 예비회담 시작이후 1년6개월 만에 고위급회담 절차문제를 최종 마무리. 양측은 두통씩의 합의서 초안을 작성,각각 자기측 합의서 초안을 1회씩 번갈아 낭독한 뒤 우리측 송한호수석대표와 북측 백남준단장이 합의서에 서명하는 형식으로 진행. 우리측 신성오대표가 합의서 초안을 읽어가던 중 초안 제4항 「회담의제」 부분에 이르자 북측 군대표인 김영철대표가 갑자기 『그 부분을 다시한번 읽어달라』고 이의를 제기해 일순 긴장. 이에 신대표가 「남북간 정치ㆍ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다각적인 교류협력문제」라고 된 회담의제 조항을 다시 반복해 낭독하자 북측 대표는 『어렵게 합의된 의제이기 때문에 다시한번 읽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해 가벼운 미소를 자아내기도. ○…우리측 송 수석대표와 북측 백단장은 서로 폐막사를 읽은 뒤 자유왕래와 전면개방문제로 한동안 가벼운 신경전. 송대표는 백단장이 폐막사에서 자유왕래를 막는 남측의 법적 제도적 장애 운운한 데 대해 『자유왕래와 개방문제라면 70년대부터 우리가 여러번 촉구해왔지만 여러분들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한 뒤 『좋은 분위기속에서 오늘 회담이 폐막돼야지 상대측이 듣기 거북한 발언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일침. 백단장은 이에대해 『남북대화의 원칙적인 문제들을 앞으로 대화의 앞날을 생각해서 시작한 것뿐』이라며 『심사숙고해서 새기도록 하자』고 주장. 양측 대표들은 47분 만인 10시47분쯤 회담을 끝낸 뒤 서로 일일이 악수를 하며 『그동안 고생많았습니다』라고 인사. ○…회담이 끝난 뒤 우리측 송 수석대표는 평화의 집으로 돌아와 기자회견을 갖고 『오늘 남과 북이 함께 서명한 합의서는 우리에게 통일과 번영을 약속해 주는 증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날 합의서 교환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 ◎남북 고위급회담 개최 합의서 1,회담명칭=회담명칭은 남북(북남) 고위급회담으로 한다. 2,회담일시=1차 회담은 9월4일부터 9월7일까지,2차 회담은 10월16일부터 10월19일까지 각각 개최하며 제3차 회담 이후부터는 매차 회담때 쌍방이 합의하여 정한다. 3,회담장소=회담은 서울과 평양에서 번갈아가면서 하되 제1차 회담은 서울에서,2차 회담은 평양에서 한다. 4,회담의제=남북간의 정치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다각적인 교류협력실시문제. 5,회담대표단 구성=회담대표단은 총리를 수석대표로 해 7명으로 하되 대표는 장차관급(부장 부부장급)으로 구성한다. 대표단의 군대표는 참모총장급 1명을 포함해 2명 이내로 하며 그 수는 각기 편리한 대로 한다. 6,수행원 및 기자=회담수행원은 33명,기자는 50명으로 한다. 7,회담형식=회담은 대표단회담을 기본으로 하며 필요에 따라 본회담 테두리안에서 쌍방 총리 단독회담과 부문별회담도 할 수 있다. 회담은 공개 또는 비공개로 한다. 8,합의서 채택=합의내용은 각기 2통씩 문서로 작성해 대표단 수석대표(단장)가 서명한 다음 1통씩 교환한다. 9,회담기록=회담기록은 속기 녹음 녹화 등 각기 편리한 대로 한다. 초청측은 상대측에 녹음중계선 2회선을 보장하며 텔레비젼 기록을 위해 초단파를 상대측에 쏘아준다. 10,회담보도=회담보도는 각기 편리한 대로 한다. 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은 필요하면 쌍방 합의에 따라 공동으로 작성해 발표할 수 있다. 11,회담장 표식 및 시설=회담장에는 어떠한 표지도 하지 않는다. 초청측은 회담장에 회담에 필요한 시설외 다른 시설들을 설치하지 않는다. 초청측은 상대측 대표단과 기자단이 자기측에 신속히 연락할 수 있도록 통신시설을 설치,보장한다. 12,신변안전보장=초청측은 자기측 지역에 오는 인원들의 신변안전을 보장하는 총리 명의의 신변안전담보각서를 회담 6일전에 판문점에서 교환한다. 초청측은 상대측 인원들의 문서 통신 사무용 기재 사진 필름 녹음 및 녹화테이프 취재수첩 보도자료 및 기타 회담에 필요한 휴대품에 불가침을 보장한다. 13,표지 및 증명서=쌍방 대표단은 자기측 총리가 발행한 신분증명서를 지참한다. 기자는 완장을 착용한다. 14,판문점 통과등 남북왕래 절차=쌍방은 상대측 지역에 들어가는 인원들의 명단을 5일전에 상대측에 넘겨준다. 명단에는 성명 성별 대표단 직위를 밝히며 사진을 첨부한다. 명단을 넘겨준 후 변동사항은 직통전화로 통지하고 판문점을 통해 문서로 전달한다. 대표단의 통과지점은 판문점으로 한다. 왕래수단은 비행기 자동차 기차로 한다. 비행기는 각기 자기측 비행기를 이용하며 평양(순안비행장)∼서울(김포공항)사이를 직행한다. 초청측은 상대측으로부터 넘겨받은 명단에 따라 신분을 대조 확인하고 상대측 인원들을 접수하며 돌아갈 때도 같은 방법으로 한다. 15,취재활동=쌍방은 체류기간중 기자들의 취재활동을 보장하며 취재활동은 남북간의신뢰와 단합,화해와 통일에 기여하는 방향에서 보도의 공정성과 정확성을 기한다. 16,체류일정=상대측에 체류하는 일정은 3박4일로 하며 쌍방 합의로 조절할 수 있다. 체류일정은 회담 5일전에 상대측에 통지한다. 17,편의제공=초청측은 체류기간중 상대측 인원의 숙식 교통 통신 의료 보도 및 기타 필요한 모든 편의를 제공한다. 쌍방은 상대측 지역에 체류하는 동안 초청측의 안내와 질서에 따른다. 초청측은 상대측 대표단의 자기측 지역 체류기간중 1일 2회 행낭운반을 보장한다. 18,직통전화=쌍방은 이미 가설된 서울과 평양사이의 직통전화선을 이용하며 쌍방이 협의해 증설할 수 있다. 19,합의서 발효=합의서는 쌍방이 서명,교환한 때로부터 효력을 가진다.
  • 북의 「판문점개방 발표」 왜 나왔나

    ◎대외선전 대남교란의 “복합적 카드”/8월 범민족대회 전민련등 참가 유인/고위급회담 때맞춰 의미축소도 노려/“선언적 의미에 불과” 상투적 전략 분석하기도 북한이 6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위원장 허담)의 성명을 통해 오는 8월15일부터 판문점 공동경비 구역내 북한측 지역을 일방적으로 개방한다고 발표하자 정부는 북한측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다각적인 검토작업과 함께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정부는 일단 북한측의 이번 조치가 오는 8월13일부터 3일동안 판문점에서 열기로 돼 있는 「범민족대회」에 전민련·전대협 등 우리측 재야단체의 참가를 유도하기 위한 사전포석의 일환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3일 제7차 남북 고위급 예비회담에서 남북 쌍방이 본회담 의제및 대표단 구성·회담형식 등 모든 실무문제에 합의,제1차 본회담의 8월중 서울개최가 확실해진 이 시점에서 북한측이 우리 정부가 꺼려하는 범민족대회 개최를 굳이 들고나온 배경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북한측의 이번 제의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우선 범민족대회 개최주장의 연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게 통일원 당국자의 설명이다. 범민족대회는 지난 88년 9월 우리측의 전민련이 남북공동 서울올림픽 참가를 명분으로 먼저 북한측에 제의했으나 당시에는 북한측의 별다른 호응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같은해 12월 강경파인 김중린 대남 담당비서가 중용되면서 오히려 북한측에서 자주 이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했고 이후 북한은 남북대화가 중단될 때마다 이를 들고 나오는 「주기적인 습관」을 반복해 왔다는 것이 이 당국자의 분석이다. 더욱이 북한측은 지난 5월 최고인민회의 제9기 1차회의에서 김일성이 조국평화통일 5개 방침을 밝힌 이래 이에따른 후속조치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것으로 정부측은 보고 있다. 따라서 북측 제의는 조국통일 5개 방침중 제5항인 「전민족적 통일전선형성」의 후속조치성격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즉 북측은 이 방침에 따라 남북의 모든 정당·사회단체가 참가하는 민족통일협상회의와 범민족대회 개최가 남북통일의 지름길임을 여러 차례에 걸쳐 강조해왔다는 얘기다. 정부내에서도 북측의 이번 제의를 놓고 강·온 양론이 엇갈리고 있는 것같다. 먼저 북한측 제의는 고위급회담의 서울개최에 합의는 했지만 의외로 대북 개방유도등 우리측 공세에 말려들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고위급회담의 의미를 축소시키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강경론자들은 풀이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측에서 계속 거부하고 있는 전민련등의 범민족대회 참가를 고집함으로써 이 대회의 개최를 고위급회담의 전제조건화 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형편이다. 한마디로 북측은 고위급회담까지 성사되는 마당에 우리 정부가 전민련등의 범민족대회 참가허용여부를 놓고 고심하는 모습을 「선전용 카드」로 이용하겠다는 전략을 드러낸 것으로 이들은 보고 있다. 바꿔 말하면 재야단체를 보낼 수도,안 보낼 수도 없는 것이 우리 정부가 처할 딜레마이고 북측은 이를 최대한으로 활용하겠다는 계산을 했음직하다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 만약 전민련등이 범민족대회 참가를 강행하고 우리 정부가 이를 원천봉쇄한다면 많은 수의재야인사가 구속될 것이고 북측은 이들의 석방을 명분으로 고위급회담의 무기한 연기를 통보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이럴 경우 8·15이후에 개최될 것으로 예상되는 고위급회담은 설령 개최되더라도 처음부터 암초에 부딪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북측 제의는 우리측을 상당히 비난하는 내용이 많아 이해할 수 없는 예상밖의 일이라는 것이 강경론자들의 해석이다. 북측이 또 통일논의를 위해서만 접촉과 왕래의 의미가 있다고 제안한 것은 그밖의 다른 분야,즉 경제 학술 체육 등 제반교류에는 상당히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낸 것으로 이들은 보고 있다. 반면 온건론자들은 북측 제의를 심각하게 생각지 않고 있다. 범민족대회 개최자체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그동안 여러차례 제기한 습관적인 문제인 만큼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이다. 북측이 이 대회개최를 강행,특별한 성과를 얻겠다는 것이 아니라 김일성의 조국평화통일 5개 방침에 따른 북측 나름대로의 후속조치를 선언적 의미에서 밝힌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들은 생각한다. 결국 온건론자들은 『대내외선전용으로 한번 제의해본 것에 불과하다』고 북측 제의를 일과성으로 의미를 축소하고 있는 것 같다. 고위급회담도 이에따라 범민족대회 개최예정일인 8월15일을 피해 이후에 열린다면 아무런 물의없이 성공적으로 개최될 것으로 이들은 예상한다. 이들은 또 북측이 제의하는 것마다 심각하게 의미를 부여할 경우 남북 관계개선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이같은 양론에도 불구,정부는 모처럼 마련된 남북 화해분위기를 이어나간다는 방침아래 우리측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수용할 수 있다는 전향적인 자세로 임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된다면 북측의 이번 제의는 상당한 홍역을 치르지 않고 「찻잔속의 태풍」에 그칠 공산이 크다고 하겠다.〈한종태기자〉 ◎북의 「일방 발표」… 전문가의 시각/“대외선전용의 상징적 개방… 북의 진의 파악을” ▲유석렬교수(외교안보연구원)=남북한 전면개방및 자유왕래를 주장한 김일성신년사의 후속조치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판문점의 북측 지역을 개방한다고 해서 이것이 곧 시행된다는 의미는 아니고 어디까지나 선전적 차원에 불과하다. 가령 북한이 군축회담 의때 군대를 일정 규모 일방적으로 감축했다고 선언하고 있으나 이를 확인할 수 없듯이 특정지역을 개방한다는 것 또한 대외적인 개방압력에 맞서 북한도 앞장서서 남북교류에 대처하고 있음으로 과시하는 것일 뿐이다. 북한은 대미관계의 개선,대소관계의 유지 등을 위해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전향적인 제스처를 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최평길교수(연세대)=북한의 선전적 선언에 대응하는 우리측의 반응이 보다 중요하다. 객관적인 측면에서 북한은 동구식의 개혁과 개방조치를 취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때문에 북한은 자체내의 변화를 극소화하는 조건하에서 대외적인 선전공세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이번 선언 또한 그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내 우리측 지역만을 개방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지역을 몇곳 선정,이를 개방하겠다는 식의 역선언을통해 북한측의 진의를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신철균교수(통일연수원)=국제적인 여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북한이 상징적이며 대외선전차원에서 내놓은 선언임에 분명하지만 남북 관계의 진전으로도 볼 수 있다. 북한은 곧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한소수교를 비롯,북경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강화될 수밖에 없는 한중관계등을 고려할 때 과거와 같은 정치적 선동만을 되풀이 할 수 없는 곤경에 빠져 있다. 따라서 남북 총리회담및 국회회담등 각종 회담에 있어 북한의 자세는 보다 적극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실질적인 남북교류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남북 정상회담을 비롯,경제교류등이 이뤄져야 하지만 이같은 개방이 초래할 체제위협을 잘 알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남북관계를 급진전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이번 조치는 「8·15 범민족대회」의 개최를 겨냥하는 동시에 앞으로 열릴 총리회담에서 그들이 주장하는 정치·군사문제를 우선적으로 다루기 위한 분위기조성 노력을 가시화하기 위한 전략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정용석교수(단국대)=종래 볼 수 없었던 획기적인 조치다. 그러나 비무장지대의 진정한 비무장화와 같은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내 북한측 지역만 개방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북한측의 이번 선언은 우리 사회내 일부 급진세력의 주장을 옹호하는 한편 오는 8월13일부터 3일동안 판문점에서 열릴 예정인 「8·15 범민족대회」의 성사를 위한 사전정지작업의 일환일 가능성이 보다 농후하다. ◎판문점 운영 현황/출입허가·경비·대북접촉 등 유엔사서 관장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에 의해 생긴 판문점은 남북이 군사분계선상에 걸쳐 있는 지름 8백m가량의 원형 구릉지대로 남북이 공동으로 경비하고 있다. 면적은 약 15만평 정도이다. 판문점 주변은 1m높이의 시멘트말뚝 1백26개가 10m간격으로 둘러쳐져 있고 남쪽의 경비는 유엔군사령부 비서처가 관장하는 독립부대가 맡고 있다. 판문점공동경비구역의 출입통제와 경비·운영은 휴전회담 당사자인 유엔군사령관이 관장하고 있다.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는 일직장교회의·비서장회의 등을 통해 공산측과 접촉하며 군정위 본회담을 준비한다. 유엔사는 한국 정부의 신청을 받아 공동경비구역안의 내·외국인 출입을 허가해 주고 있다. 한국인이 단체로 판문점을 관광하려면 정부 관계기관의 허가와 승인을 받은 뒤 유엔사에 신청,시간배정을 받아 자유의 다리를 통과,방문할 수 있다. 한국정부의 승인을 받는다는 것은 내무부나 공보처·통일원·적십자사 등 관계기관의 추천과 신원조회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에 공동경비구역안의 출입자명단을 북한측에 통보할 필요는 없다. 유엔사는 남북한간의 대화·접촉을 지시하고 있어 한국 정부의 방문신청을 거부한 일이 없다. 북한이 공동경비구역안의 북한측 구역을 일방적으로 개방한다고 해도 한국 정부가 승인하지 않으면 유엔사측은 이곳의 출입을 허가할 수 없다.〈김원홍기자〉
  • 한민족 재결합의 돌파구 어디에(정담)

    ◎서울신문 6ㆍ25 40주 특집/「6ㆍ25아픔」극복해야 「통일의 문」열린다/극우ㆍ극좌의 극단적 논리 지양할때/상호 실체 인정,「시각」의 재조정 시급/체제화합의 「예멘식 통일안」이 적절/경제교류ㆍ사회단체 접촉 확대가 선결돼야 해방과 함께 조국이 두동강 난지 45년. 6ㆍ25전쟁이란 동족상잔이 발발한지도 40년. 강산이 네번 바뀌고 일제가 이땅을 침탈했었던 36년 보다도 더 긴 세월. 이 세월동안 우리민족은 남북으로 갈라져 전혀 다른 체제와 이데올로기 속에서 살아오면서 숱한 시련을 겪어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분단의 비극도 전쟁의 상흔도 치유하지 못한채 가슴아픈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동서냉전의 틀이 깨지면서 동서독이 다시 하나로 합쳐지고 남북예멘이 통일의 기틀을 마련하는 놀라운 변혁을 지켜보고 있다. 바로 이 시점에서 6ㆍ25전쟁이 우리민족에게 던져준 진정한 교훈은 무엇이며 분단과 전쟁의 비극을 딛고 통일을 앞당길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일까. 6ㆍ25전쟁 40돌을 맞아 사회전반에 걸쳐 폭넓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는 고영복교수(서울대)와 북한의 사회변화를 예의 주시해온 도흥렬교수(충북대)그리고 분단의 현실에 고뇌하면서 그 현실을 다각적인 시각에서 작품화하고 있는 작가 김원일씨의 좌담을 통해 통일로 가는 바르고 곧은 길이 어디에 있으며 이길을 어떻게 걸어야 할 것인가를 알아본다. □참석자 고영복(서울대교수) 도흥렬(충북대교수) 김원일(작가) ▲김원일=6ㆍ25전쟁이 우리민족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가를 짚어보기 위해서는 해방후부터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시 남과 북이 외세에 의해 갈라지기는 했으나 이질화는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가령 김구선생은 북의 김두봉정도의 인물을 만나 대화하면 38선도 허물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며 남과 북사이 사람들의 왕래도,편지의 교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6ㆍ25전쟁으로 남북의 분단은 고착화됐고 극우와 극좌라는 이데올로기 사이에도 넘을 수 없는 장벽이 가로 놓이게 됐습니다. ▲고영복=해방후 6ㆍ25까지 만해도 민족적 동질성은 유지돼 왔고 남과 북 각각의 영역에는획일화 되지 않은 여러 정치세력들이 다양한 주장을 전개할 수 있었으며 통일의 가능성도 높았습니다. 그러나 6ㆍ25전쟁은 지리적 이동과 이데올로기의 양극화를 초래하는 계기가 됐고 이 결과 기존의 민족적 동질성을 파괴하는 형태의 극한적 체제대립을 낳고 말았습니다. ▲도흥렬=보다 중요한 것은 6ㆍ25전쟁으로 인해 남과 북한간의 평화공존의 길이 더 멀어지고 어렵게 됐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6ㆍ25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그 실체는 뒷전으로 밀어둔채 추상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의 논쟁만이 판을 친 느낌이 없지 않았고 남북 모두가 이를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해 왔습니다. 가령 북한은 김일성체제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를 이용해 왔으며 이에 따라 반제ㆍ반미ㆍ증오ㆍ우상화 문화가 형성됐습니다. 또한 한국사회에서는 반공문화가 생겨났으며 반공이데올로기가 정권유지의 수단으로 작용한 것도 사실입니다. 더욱이 북한은 「전쟁은 수단을 달리하는 정치의 연장」이라는 레닌의 전쟁론에 입각,6ㆍ25전쟁은 해방 후 남한정권이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던 친일파숙청,토지개혁 등의 과제를 해소해 남한을 해방시키기 위한 정의의 전쟁,통일전쟁이었다고까지 주장하고 있습니다. ▲김원일=최근 6ㆍ25전쟁의 의미와 성격에 대해 많은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 이는 6ㆍ25전쟁이 기존의 반공논리나 북한의 주장등과 같은 단순한 의미로써 해석할 수 없는 복잡한 성격의 전쟁이었음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고영복=6ㆍ25전쟁이 일어난지 40년의 세월이 흐르고 그동안 세대교체도 이루어졌으나 아직도 결론없는 논쟁만이 계속되고 있는데 이는 남과 북이 아직도 전쟁의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최근 해외동포들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과 같은 제3자적 시각이 민족적 입장에서 정립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행히도 최근 우리사회의 경우 국력의 축적으로 정치적인 자율성이 확보되면서 기존의 획일화된 반공논리를 비판하는 주장이 나오고 있고 재소동포들사이에서도 북한지배세력의 논리를 반박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어 멀지않아 6ㆍ25의 실체에 접근하는 민족적 입장의 해석이 확립되리라 기대합니다. 이럴 때만이 6ㆍ25의 상처를 극복하고 민족의 통일을 이룩하는 길도 열릴 것입니다. ▲도흥렬=최근 우리 대학생들의 이념동향을 조사한 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북한이 내세우고 있는 「6ㆍ25전쟁은 분단극복의 의지가 표출된 전쟁」으로 보는 수가 점점 적어지는 반면 「반공이데올로기를 분단이념」으로 보는 비율도 높아지는등 최근 우리사회에는 이념의 다원화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한 젊은세대들의 통일후 체제에 대한 시각도 매우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개방된 논의를 통해 어느 일방의 주장이 아닌 민족공동체의식을 바탕으로 한 통일상의 정립이 시급하다고 생각됩니다. ▲김원일=그러면 6ㆍ25전쟁이 오늘의 시점에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도흥렬=북한은 통일의 수단으로 전쟁을 선택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전쟁은 오히려 통일을 어렵게 했으며 분단을 더욱 심화시키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전쟁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단호히 거부되어야 합니다. 남과 북의 문제는 대화와 교류 평화적이고 점진적인 과정을 통해서 해결되어야 하며 6ㆍ25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더 이상 정치적으로 이용되어서도,또 재발해서도 안됩니다. ▲고영복=서로에게 전쟁의 책임을 전가하는 단계는 지났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가 누구이고 책임을 어떻게 져야 하는 문제는 역사적 자료로서 규명해야 할 가치는 있으나 이 문제에만 매달리는 것은 통일을 방해할 뿐입니다. 6ㆍ25를 일으켰고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해 왔던 책임있는 세대는 서서히 사라지는 과정에 있으며 다음세대가 어떻게 앞날을 여는가가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경우 피해의식과 전쟁에 대한 공포심이 적지 않았으나 최근 국제정세의 변화와 내적인 성숙으로 전쟁의 재발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가고 있습니다. 역사란 반복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에서 6ㆍ25전쟁의 비극을 통일의 초석으로 삼아야 합니다. ▲김원일=우리는 오늘 이 시점까지 극우와 극좌라는 이데올로기에 억눌려 살아왔으나 이제는 이와 같은 극단적 논리는 지양돼야 합니다. 전쟁이나 테러와 같은 수단으로 자신의 주장을 상대에게 강요하려하고 또 강요할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의 해악에서 벗어날 때가 됐습니다. 남과 북은 50∼60년대의 냉전시대를 거쳐 72년 7ㆍ4공동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고 우리의 경우 광주민주화운동,6월 항쟁을 겪으면서 통일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도흥렬=7ㆍ4공동성명은 통일과 남북관계 개선에 역사적인 의미가 컸던 사건이었습니다. 북한은 「자주ㆍ평화ㆍ민족대단결」이라는 이 성명의 3대원칙에 바탕한 통일방안을 내놓으며 이를 일관되게 활용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통일방안에 있어서 뚜렷한 지침은 있었으나 일관성있게 논리를 구축하는 작업을 해오지 않았다고 봅니다. ▲고영복=7ㆍ4공동성명은 6ㆍ25전쟁으로 빚어진 남북의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해 보려한 시도로서 비록 형식적이고 잠정적인 합의 도출에 그쳤으나 그 의의가 크다고 봅니다. 남과 북이 7ㆍ4공동성명에 합의했다는 것은 서로의 실체를 인정,대화와 평화의 방법으로 통일을 하겠다는 선언의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80년대 들어서 우리 정부가 북한의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에 대응,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마련해 접합점을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 합니다. ▲김원일=국민적 합의와 같은 기반조성이 없었다는 점에서 7ㆍ4공동성명은 선언적 의미를 넘지 못했는데 이점이 아쉽습니다. 이 성명 발표 이후 북에서는 김일성우상화 작업이 더욱 가속화됐고 남에서는 유신체제가 들어서는등 체제를 보다 강화하는 길로 나아가지 않았습니까. 문단에서의 경우 70년대까지만 해도 분단문학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드물었으나 80년대 들어 활발한 작업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또한 통일논의가 젊은 세대들 사이에 확산되고 다시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자 정부에서도 새로운 통일방안을 내놓은등 남북간의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많은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통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가 이시점에서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요. ▲고영복=동서독의 통일이 가시화되면서 최근 서독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합병식 통일방안이 한반도 통일의 한본보기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북한의 통일에 있어서는 독일식 방안이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2차 대전 후 강대국에 의해 강제분할된 서독과 동독은 그동안 이데올로기의 장벽은 있었으나 이를 뛰어넘을 수 있는 전통적 민족의식과 동질성 확보를 위한 민족적 공감대를 계속 유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통적 동질성이 40년의 분단기간을 통해 극도로 파괴됐으며 극심한 체제경쟁으로 이데올로기가 민족적 동질성 보다 우위를 점하게 됐습니다. 때문에 동질성 회복이 힘든 이 시점에 있어서는 예멘식 통일방안과 같은 것이 오히려 현실적이라고 봅니다. 남북이 대등한 위치에서 점진적으로 접근,하나의 체제로 화합하는 것이 우리 현실에 맞는 통일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도흥렬=6ㆍ25전쟁은 통일로 가는 길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6ㆍ25란 비극적 체험을 통해 남북에는 상호불신의 골이 깊어졌고 경쟁체제를 강화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통일방안은 이러한 현실적 여건을 고려한 독자적인 방안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독자적통일방안의 전제 조건으로는 다음의 3가지 선결과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남북간에 사실에 기초하고 현실에 바탕을 둔 시각의 재조정이 이뤄져야 합니다. 이념과 체제유지를 위한 고식적인 틀에서 탈피,있는 그대로의 상호 체제를 인정해야 합니다. 둘째 6ㆍ25로 인한 이질화 극복을 위해 남과 북은 각기 통일지향적 사회체제로 개혁되어야 합니다. 특히 동질성 회복을 위한 노력,즉 한민족 한겨레라는 의식을 통해 민족공감대를 확보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통일은 긴 여정속에서 이뤄지는 것인 만큼 남북은 상호접근을 위한 제안ㆍ조치 등을 일관성 있게 계속 추진해야 합니다. 비공식 민간교류의 확대는 통일을 위한 분위기 조성에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됩니다. ▲김원일=민족동질성의 회복이란 말은 쉽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독일은 강제분할을 겪으면서도 상호방문을 허용하고 이데올로기보다는 동질성확보를 우선으로 삼아 통일분위기를 조성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상황이 다릅니다. 남에는 6ㆍ25의 원한세대가 적지 않으며북에는 김일성의 세대가 아직도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고영복=남과 북은 서로가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뀌기를 바라고 있는데 이같은 정치적인 대립으로는 통일이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현 체제상황에서는 비정치적인 경제ㆍ사회단체의 상호접촉을 이룩하는 것이 선결과제입니다. 또한 각각의 통일방안을 고집하는 것보다 서로의 방안을 폭넓게 수용하는 보다 유연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김원일=민간교류를 수행함에 있어서도 섣불리 체제의 우월성을 강조,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은 금물입니다. ▲고영복=김정일의 권력세습이후 북한내부에 나타날 변화가 우리측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으나 이같은 변화가 통일여건을 성숙시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속단입니다. 따라서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남북공동의 장을 단계적으로 마련해 나가야 합니다. ▲도흥렬=역사의 흐름은 분명히 있으며 동구변혁의 물결이 한반도에도 미쳐 북한에도 변화가 오리라고 낙관하고 있습니다. 단지 언제 그리고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가 관심사 입니다. 북한이 언제 또 어떻게 변화하건 우리부터 성숙한 민주사회를 이룩해 긍정적인 모범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통일은 어려운 목표이지만 서로가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굳건한 신념이 필요합니다.
  • 「통석」과 「괜찮아」/임춘웅 국제부장(서울칼럼)

    『우리나라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 국민들이 겪었던 고통을 생각하고 본인은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 한마디를 듣는 일이 왜 그렇게도 어려웠는지 실로 통석의 염을 금할 길이 없다. 아키히토(명인) 일본왕이 24일밤 궁성에서 베푼 노태우대통령을 위한 공식만찬에서 한 이 만찬사는 전후 일본이 한국에 한 첫 사과다운 사과라는 점에서 사뭇 감개가 크다. 실로 45년만의 일이다. 이 한마디를 얻어내기 위해 현해탄에는 천둥번개가 그토록 요란했는지도 모른다. 어찌보면 하찮기도 한 이같은 명분싸움을 양국은 반세기에 걸쳐 해온 것이다. 24일 일왕의 공식사과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그들이 상대로 싸웠던 세계 어느 나라에도 한 일이 없던 수준의 것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하긴 1945년 9월 맥아더사령부를 방문한 당시의 히로히토(유인)일왕이 맥아더 사령관에게 한 말이 없었던건 아니다. 『나는 전쟁중에 내린 모든 결정과 일본군이 자행한 행위에 대해서 일체의 책임을 지겠다』는 표현은 자못 자책적이고 회한마저서려있다. 그러나 이때는 항복직후이고 패전 일본의 천황이 점령군사령관을 스스로 찾아가 사죄하는 그런 상황이었다. 일본정부가 재구성되고 새 일본의 국왕으로서는 사과다운 사과는 한 일이 없다. 74년 미국의 포드대통령이 방일했을 때는 『일시 진실로 불행한 시대를 가졌던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었고 우리와 함께 피해를 가장 많이 입었던 중국의 등소평이 78년 방일했을 때는 『양국사이에는 매우 오랜 역사가 있으며 그 사이에는 한때 불행한 일도 있었지만 그러한 일은 과거로 돌리고 지금부터는 오랜 양국 친선의 역사가 진행될 것을 기대함』이었다. 그러니까 지난 84년 히로히토 일왕의 전두환 당시 대통령에게 한 『근세기의 한 시기에 있어서 양국간에 불행한 과거가 있었던 것은 진실로 유감이며 또다시 반복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함』은 그나마 정중한 언급이었던 셈이다. 우리 정부는 이날 이같은 일본의 사과에 대해 『일본이 지난날의 잘못된 과거가 일본의 행위에 의해 초래되었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우리 국민이 겪은 고통과 슬픔에 대해서도 분명히 사죄하고 반성한 것』으로 평가했다. 이로써 한일간의 지루하고 힘들었던 명분싸움은 이제 겨우 역사의 한장을 넘긴 셈이다. 이번 일본의 태도는 상당히 진전된 것이고 우리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왜 일본의 태도가 이토록 변했는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우선은 우리의 요구가 워낙 강력했었다. 일본으로서는 침략 일본의 망령을 벗고 새 일본의 이미지를 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웃 한국과의 새로운 관계정립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다른 하나는 함께 2차대전을 일으켰던 독일 이탈리아와는 달리 일본의 전후처리방식이 잘못됐다는 자성의 소리가 일본내에서도 없었던게 아니다. 사과문안 내용을 놓고 한일간 특사외교가 한참이던 지난 21일 유럽에서는 「역사와 지리교육용 지침서」라는게 발표됐다. 프랑스와 서독학자 60여명이 7년여동안 공동노력끝에 내놓은 이 지침서는 양국이 그들의 후세대에 역사를 바로 가르치려는 것. 이 지침서에서 프랑스측은 서독교과서가 나치 치하의 프랑스 비시정권에 대해 너무 소홀히 취급하고 있는데 비시정권이 나치에 철저히 협력한 사실을 상세히 기록하고 이와 함께 당시의 레지스탕스운동도 비중있게 다루어 주길 권고하고 있다. 반면 서독측은 나치의 잔인한 유대인 학살과 나치하에서 독일국민이 겪은 고통과 나치즘에 대한 독일국민 스스로의 투쟁내용도 담아 나치즘의 폐해를 후세대에 정확히 인식시켜줄 것을 건의하고 있다. 이처럼 독일은 잘못된 역사를 철저히 반성하고 그것을 교훈으로 삼으려한 반면 일본은 침략사를 은폐하고 철저히 호도하려 해왔다. 23일자 일본의 매일신문은 사설에서 일본은 한국에 반드시 사과를 해야하며 일본이 불성실하다는 인식을 한국인에 심어줘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네번째로는 자신감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할만큼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모든게 끝난것은 아니다. 사과 한마디로 켜켜이 쌓인 응어리들이 다 쓸려나간다면 세상은 얼마나 편리하겠는가. 지금 50대 이상의 한국인들은 일본의 잔학상을 몸소 겪고 보아온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어찌 하겠는가. 지난 일에 영원히 매달려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이제는 우리가 용서할 차례다. 얼마전 일본을 방문했던 한 한국기자가 일본의 저명한 저술가이자 경제이론가인 하세가와 게이타로(장곡천경태랑)씨를 만나 물었다고 한다. 한국이 꽤 발전을 하다 주춤해졌는데 충고를 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한국을 잘 알고 있는 하세가와씨는 대뜸 한국이 계속 발전하려면 무엇보다 「괜찮아 사고」부터 고치지 않으면 안된다고 나무라더란 것이다. 괜찮지 않은 것도 대충대충 넘어가는 한국인의 「괜찮아 사고」로는 곤란하다는 얘기다. 일본인이면 못 지나갈 일이지만 우리는 이번일도 『그만하면 괜찮아』하고 넘어갈 참이다. 새 시대를 함께 열어가기 위해서다. 이만하면 한국인의 「괜찮아」도 괜찮은 편이다.
  • 「당위」와 「호도」와… 현해탄에 “사죄파고”/서울의 시각

    ◎“주체분명히… 일왕이 직접 솔직하게/과거청산 없인 진정한 동반자관계 기대난” 오는 24일로 예정된 노태우대통령의 일본방문을 앞두고 한일 양국이 불행했던 과거사에 대한 사과문제로 인해 또 한차례 홍역을 치르고 있다. 노대통령의 방일시 아키히토(명인)일왕의 과거사에 대한 사과수준을 놓고 양국정부가 현격한 입장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방일까지 불과 열흘도 남지않은 시점에서 이 문제가 원만하게 처리되지 못할 경우 양국간에는 자칫 불편한 관계마저도 초래될 우려가 증폭되고 있는 실정이다. 당초 노대통령이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 3개국 순방을 연기하면서도 일본방문만은 예정대로 실현시키겠다고 한 것은 다름 아닌 「다가오는 21세기를 맞아 아태시대를 함께 이끌어갈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인 협력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불행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이제는 첨단과학기술,산업기술협력,통상 등 보다 경제적 실익이 있는 분야로 양국협력의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는 정부방침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해방된지 45년이지났건만 과거에 대한 협상은 아직 완전하게 처리되지 않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지난달 30일 한일외무장관회담을 통해 재일한국인차별의 상징이면서 역시 과거청산문제의 일환인 지문날인제,외국인등록증 상시휴대의무 등 이른바 4대악 제도의 개선에 양국간합의를 이끌어낼 때만해도 일왕의 명백한 사과표명문제는 그다지 표면화되지 않은 다분히 「잠복성 이슈」였다. 이 문제는 노대통령이 지난 14일 청와대에서 가진 주한일본특파원들과의 회견에서 『일본이 한일 양국간의 과거사에 대해 사과의 주체임을 명확히 해야하며 사과발언도 아키히토일왕에 의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양국간 최대현안으로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각 일본에서는 집권 자민당의 4역(간사장ㆍ정조회장ㆍ총무회장 참의원의원회장)이 회동,『한국에 대한 유감표명은 84년 고 히로히토(유인)일왕이 전두환 전대통령에게 했던 수준 이상을 벗어날 수 없고 특히 이번에는 일왕 대신 가이후(해부)총리가 해야만 한다』고 결론짓고 이같은 의견을 일행정부에 전달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양국간의 국민감정까지 겹쳐 사태는 점차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게 현재의 상황이다. 일왕의 사과수준에 대한 양국간의 입장차이는 너무나도 분명하다. 우리측은 이번 방일에서 불행했던 과거에 대해 보다 분명하고 구체적인 사과표명이 반드시 있어야 하며 일본의 상징인 아키히토 일왕이 직접 한국민을 상대로 이를 밝혀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즉 84년 당시 일왕이 밝힌 『금세기의 한시기에 있어서 양국민의 불행한 과거가 있었던 것은 진심으로 유감이며 다시 되풀이 되어서느 안된다고 생각한다』는 표현은 사과가 아닌 유감인데다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는 측의 주체가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에 일본이 명백한 사과와 함께 사과의 주체라는 사실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무부의 고위당국자는 이와관련,일본이 지난 72년 대중국국교 정상화때 발표한 양국 공동성명에서 『일본은 전쟁을 통해 과거 중국인민들에게 끼친 큰 손실에 대해 깊이 책임을 느끼고 깊이 자책한다』고 밝혔다시피 이번에도 일측으로부터 이정도 수준의 사과는 받아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를테면 깊은 자책은 분명한 사과의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 84년 당시의 「유감표명」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또 사과표명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이번 기회에 일왕의 사과는 물론 가이후총리의 직접적인 사과표명,그리고 일본의회의 불행한 과거사에 대한 사과결의까지 얻어낸다는 강도높은 전략을 짜놓고 외교력을 총동원하고 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이원경 주일대사와 방일에 따른 최종실무협의차 도일한 김정기외무부아주국장에게 이같은 지침을 시달,일정부측에 전달하도록 해 『과거청산및 미래지향적 동반자관계 구축을 위해서는 일왕의 구체적인 사과가 있어야 할 것』임을 강력 촉구할 방침이다. 만약 이번에도 일측으로부터 만족할 만한 사과표명을 얻어내지 못할 경우 내년초로 예상되는 일왕의 방한을 심각하게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노대통령은 이번 방일로 인해 엄청난 정치적 부담을 안고있으며 방일성과에 대한 국내 평가와 관련,자칫 잘못되면 「통치력의 위기국면」까지 초래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때문에 정부 일각에서는 지난번 노대통령의 3개국 순방연기 발표때 일본도 연기했어야만 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우리측의 이러한 강경한 방침에 비해 일측은 『천황은 「국민의 상징」이며 헌법상으로도 「국정에 관한 권능을 갖지 않는」 존재일 뿐이므로 그의 발언에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나아가 가이후총리가 「국민의대표」인 만큼 그가 직접 나서 유감표명을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이에 대해 『엄청난 경제력 상승에 힘입어 일본도 이제는 타국에 의해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자존심 외교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는 양국간의 이같은 입장차이에도 불구,방일을 전면 취소하는 최악의 카드를 쓰지 않고 방일직전까지 절충을 계속해 나갈 방침이다.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양국간 협상이 어떻게 결말지어질지는 모르지만 이번에도 일측이 과거청산과 관련,애매모호한 표현으로 어물쩡 넘기려 한다면 한일 양국간의 불신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이고 양국민간의 앙금은 더이상 치유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결국 이 문제는 해결의 열쇠가 일측에 있기 때문에 전후처리과정에서 유태인 및 이스라엘정부에 대한 완벽한 보상을 한 서독과 같이 일측이 대승적 차원에서 능동적으로 나설 때만 말 그대로 「양국간의 밝은 미래」로 나아갈 것으로 보여진다. ◎동경의 입장/자민당선 84년 유인발언 수준 고수 압력/죄과 반성않고 경협구실,우회 속셈 오는 24일부터의 노태우대통령 일본공식방문을 불과 1주일 남짓 앞두고 한일 양국간에는 일왕의 「사죄의 말」을 둘러싸고 새로운 냉기류가 흐르고 있다. 핵심은 반성의 표현을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군국주의 일본에 강점당해 36년간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한국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다 진지하고 명확한 사죄를 요구하고 있는 반면 대동아전쟁을 일으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제국을 전쟁의 참화속에 몰아 넣었던 일본은 과거의 죄과를 반성하기는 커녕 여러가지 이유를 둘러대며 사죄를 거부한다. 강한자 앞에서는 비굴하며 약해 보이는 존재 앞에서는 무차별 짓밟으려 드는 일본인 특유의 교활한 근성을 단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외교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민족적 자존에 직결되는 감정의 문제로 치달을 가능성마저 안고 있다. 한국측의 요구는 물질적 보상에 있지 않다. 『잘못했다』라는 한마디 사과의 말을 정신적 위자로 바라고 있는 것이다. 노태우대통령도 14일 상오 청와대 정원에서 열린 일본특파원들과의 회견에서 이같은 뜻을 밝혔다. 노대통령은 임진왜란과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예로들며 지난 84년 전두환 전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때 쇼와(조화)일왕이 표명한 「유감의 뜻」은 『사죄인가 아닌가가 확실하지 않은 표현』이라고 말하고 아키히토(명인)일왕이 말할 내용은 쇼와일왕보다 더욱 진전된 사죄표현이 되도록 기대한다는 뜻을 표명했다. 노대통령은 특히 『짧은 기간이었지만 불행한 역사가 있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해 「잘못되었습니다.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사죄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강한 쪽이 넓은 마음을 보여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도 「괜찮습니다. 이제부터는 잘해 나갑시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말하고 한국국민이 과거 역사에 대한 일본측의 사죄를 희망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같은 한국측의 기대와는 달리 일본측은 짜증과 불쾌감까지 나타내며 인색한 반응을 보인다. 자민당의 한 수뇌는 14일 밤 이문제에 관해 『더 깊은 내용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며 애당초 우리들이 이런 문제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며 비판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이 수뇌는 식민지 지배와 더불어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에 의한 임진왜란까지 예를 들며 『히데요시까지 끌어내는 것은 (일본측이)땅에 꿇어 앉아 빌어도 부족하다는 말인가』라는 망언에 가까운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보다 앞서 이날 상오 오자와이치로(소택일랑) 간사장을 비롯한 자민당4역은 모임을 갖고 아키히토 일왕이 말할 내용에 관해 『쇼와일왕이 말한 내용보다 더 진전되어서는 안된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이를 정부측에 전달했다. 일본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은 「과거의 역사」에 관해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반성의 빛을 보인다. 그러나 그 반성은 솔직ㆍ명확한 것이 아니라 『반성하고 있기 때문에(경제적인)협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자민당수뇌의 표현대로 오만한 자세의 그것이다. 올바른 역사인식하의 반성이라고는 볼 수 없다. 일본의 「천황」과 총리는 침략행위를 저질렀던 국가에 대해,원수나 수뇌가 방일하거나 자신의 상대국을 방문했을때 「과거의 역사」를 반성한다는 말을 해왔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나 「유감의 뜻」 표명에 머물고 있다. 이것은 같은 침략국이었던 서독의 바이츠제커 대통령이 몇번이나 반복했던 명확한 「사죄」와는 다르다. 85년 5월 바이츠제커 대통령은 독일패전 40주년을 기념하는 연방의회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전쟁과 폭력지배 아래서 억울하게 숨진 많은 사람들을 애도합니다. 독일의 강제수용소에서 목숨을 앗긴 6백만 유태인,전쟁에 시달렸던 모든 민족,그중에서도 소련ㆍ폴란드의 무수한 사자,레지스탕스의 희생자를 생각하며 삼가 경의를 표합니다』 일본의 경우는 달랐다. 지난 68년 3월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방일했을때 쇼와일왕은 『귀국과 일본은 함께 아시아의 일원으로서,또 예부터 깊은 관계를 가진 사이로서 우호적인 접촉을 계속해 왔습니다. 지난번의 대단히 불행한 전쟁후에도 이 전통적인 관계는 급속히 회복되었습니다』라며 얼버무렸다. 74년 포드미 대통령의 방일때에도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상접하는 양국은 2세기에 걸치는 연대를 통해 여러가지 기복은 있었으나…』라고 전제하고 『한때 참으로 불행한 시대를 가졌던 것은 유감이었습니다』라는 것이 고작이었다. 또 78년 10월 등소평 중국부총리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에도 『양국의 오랜 역사 사이에는 한때 불행한 일도 있었습니다만 과거의 것으로 끝나고…』라고 말했다. 일본의 가장 큰 피해국이었던 한국에 대해서도 애매모호한 말로 사죄아닌 사죄를 대신했다. 84년 전두환 전대통령을 맞은 쇼와일왕은 『금세기의 한 시기에 있어 양국사이에 불행한 과거가 존재했었다는 것은 참으로 유감이며 다시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라는 것이 전부였다. 일본측이 자신의 죄과에 대한 사죄에 인색하고 있는 것은 이제 세계 초일류의 경제대국이 되었다는 자만때문이라고 외교가에서는 보고 있다. 헌법상 규정의 「상징 천황」 여부를 떠나 일본국민의 정신적 구심체 역할을 맡고 있는 「천황」은 「천황의 이름으로」 저지른 전쟁책임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반성의 빛을 보여야만 한다는 것이 도쿄 외교가의 시각이다.
  • 부임앞둔 주한 일대사 야나기 겐이치(인터뷰)

    ◎“「교포3세」문제 원만한 타결 확신”/“과거의 불행한 역사 깊이 반성” 『만나뵙게 되어 기쁩니다. 한국 주재대사로 임명받아 서울에 가게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한일 양국의 우호를 증진시키기 위해 미력이나마 노력할 생각입니다』­야나기 겐이치(유건일)신임 주한 일본대사의 한국말은 대단히 유창했다. 그러나 그것은 인사말 뿐이었고 사실은 지난 2월 주한대사로 발령받으면서부터 1주일에 2번씩 부인과 함께 외무성 어학연수소에서 우리말을 배우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부임을 앞두고 4일낮 일본외무성에서 주일한국특파원들과 만난 야나기 대사의 관심도 역시 노태우대통령의 방일과 재일한국인3세의 법적지위 보장문제에 쏠려있는 듯,대단히 진지하고 성의있게 답변했다. 『노태통령의 방일은 일본측 사정으로 과거 2번이나 연기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빠른 시일내에 꼭 실현되도록 두 나라 정부당국이 현재 일정을 조정 중이나 아직 언제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최근 몇년간 한국과 일본은 좋은 협력관계를 이루어 왔습니다. 이를 밑바탕으로 한일 두 나라가 아시아ㆍ태평양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함께 공헌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대통령의 일본방문은 중요한 뜻을 갖는 것입니다』 현재 한일 양국에 최대 현안이 되어 있는 3세 문제에 대해서도 야나기대사는 『그 역사적 특성과 정주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고 말하고 『재일 한국인들이 일본내에서 충분히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성의를 갖고 노력중이며 양국이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그는 원폭피해자 보상,사할린 잔류동포 처우,무역적자의 해소,불법 반출 문화재 반환문제 등 각 부문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성심성의껏」이라는 어휘를 7∼8번이나 반복했다. 동경대 법학부를 졸업한 뒤 지난 52년 외무성에 들어가 주영대사관1등서기관,주시애틀총영사,경제협력국장,파키스탄 및 호주대사를 역임한 그는 지난 83년1월 나카소네 야스히로(중회근강홍)당시 총리의 한국방문 때 공식수행원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등 72년이후 12년동안 한국과 인연을 맺어왔다. 그는일본의 방위력 증강문제에 대해서도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깊이 반성하면서 헌법의 규정뿐만 아니라 정부와 국민 모두가 군사국가가 되지 않도록 결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도쿄=강수웅특파원〉
  • 노대통령 5월 방일…일“경호비상”/테러정보 입수…경시청 긴장

    ◎요도호 납치범 오잠입…“범행모의”추정/북한지령 따른 여객기 납치 가능성도 한일공안당국은 2일 노태우대통령의 일본방문을 저지하기 위한 각종 테러행위가 북한의 조종을 받은 일본 과격파에 의해 자행될 가능성이 크다는 긴급 정보를 입수,경계태세에 돌입했다. 일본경시청등 수사당국은 특히 테러행위가 일본적군파와 북한의 지령을 받고 있는 일항기 요도호 납치범들이 동남아 및 유럽등지의 과격 단체와 연계,한국적 민항기를 납치할 공산이 크다고 보고 있으며 혹시 있을지도 모를 폭파공격에 대비,재외 일본공관에 대한 경계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한국공안당국도 오는 5월 하순으로 예정된 노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이들 과격 분자들이 민항기를 납치,승객들을 인질로 잡고 노대통령의 일본방문을 저지하려는 테러행위를 준비하고 있다는 유력한 정보를 입수했다. 이같은 사실은 최근 적군파의 수뇌인 다이도지 아야코(대도사あ야자ㆍ41)와 지난 70년 3월31일 다른 적군파멤버 8명과 함께 JAL 요도호를 납치,북한에 체재하고 있던 다나카 요시미(전중의삼ㆍ41)가 위조여권을 갖고 오스트리아 등지를 드나들며 극비리에 접촉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한일 공안당국은 북한이 지금까지 평양에 체재하고 있던 요도호 납치범 7명(9명중 1명사망ㆍ1명은 일본서 검거)에 대해 해외여행을 허가하지 않았었으나 최근들어 이들에 대해 북한여권을 발급,이들의 해외활동을 지원하고 있는 사실을 중시하고 있다. 요도호 납치범 7명 가운데 5명은 현재 북한에 체재중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나 다나카 요시미와 오카모도 다케시(강본무)는 소재가 불명,공안당국은 이들 2명이 북한이 만들어 준 위조여권을 소지하고 테러준비를 위한 해외공작 활동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일본 산케이(산경)신문도 지금까지 전혀 소식이 없었던 적군파수뇌 다이도지와 요도호 납치범 다나카의 활동 상황을 공식으로 보도했다. 훗카이도(북해도)출신인 다이도지는 도쿄(동경)에서 고교동창인 극좌파 사형수 다이도지 쇼지(대도사장사)와 만나 연쇄 기업체 폭파사건에 관련됐던 인물로 지난 77년 9월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에서의 일항기 하이재킹 사건때 초법규적 조치로 일본에서 출국했었다. 일본공안당국은 그후의 다이도지의 행적에 관해 정보를 입수하지 못했으나 최근 들어 그가 지난해 1월부터 일본인 여성명의의 위조여권을 소지하고 스위스 오스트리아 유고슬라비아 헝가리 등에 빈번히 출입국 했음을 확인했다. 오도호 납치범 다나카도 지난 1월부터 유럽에 잠복중임이 확인됐다. 공안당국은 그가 지난해 11월경 북한을 떠나 유고ㆍ오스트리아를 반복해 출입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다나카는 최근 한 월간 잡지에 「평양발 메시지」라는 수기형식의 글을 게재했는데 공안당국은 그것이 그가 수사를 교란시키기 위한 위장술로 보고 있다. 공안당국이 이들에 대해 중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이들 모두가 극좌적군파를 「모체」로 유고등지에서 극비리에 접촉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일본적군파의 최근 수년간의 동향은 동남아시아및 일본 국내의 비밀지원조직인 「반전민주 전선」구축에 주력하면서 사령관격인 오쿠히라 준조(오평순삼ㆍ41)등이 도쿄 서미트(86 5월)등에 시점을 맞춰 각국에서 폭탄테러를 자행해왔다. 그러나 지난 87년 11월 제2인자인 마루오카 오사무(환강수ㆍ39)가 체포되고 이듬해 아시아에서의 거점을 상실하게되자 적군파 멤버들은 한때 중동지역으로 퇴각,체제를 정비한 다음 유럽에서의 거점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일본공안당국은 적군파 간부인 아다치마사오(족립정생ㆍ50) 사사키 노리오(좌좌목칙부ㆍ41)등이 이미 유럽지역에 잠입한 사실을 파악하고 있다. 이들은 요도호 납치사건이 사건발생일로부터 만20년이 지났다는 사실을 들어 북한을 방문하는 일본요인들에게 일본정부와의 「합의귀국」이 될 수 있도록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공안당국은 『죄를 묻지 않는다면 귀국하겠다』는 이들의 주장 역시 위장전술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 따라 한ㆍ일공안당국은 서로 긴밀히 정보를 교환해가며 이들의 동향을 주시하는 한편,북한이 한국민항기 또는 한국인 승객이 많이 탑승한 여객기를 대상으로 하이재킹등의 범행을 저지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대책을 마련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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