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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TO 가입만 시켜준다면”

    베트남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위해 대미 설득 외교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WTO 연내 가입을 목표로 하는 베트남이 열쇠를 쥔 미국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한 총력전에 나선 것이다. 우선 다음달 21일 이뤄지는 판 반 카이 베트남 총리의 미국 방문에서 WTO 가입 문제가 핵심 의제로 협의된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가입의 최대 관건인 미국과의 양자 협의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30일 베트남전쟁 종전 30주년 때도 베트남 당국은 반미 분위기 등 미국을 자극하지 않도록 무척 조심했다. 나아가 미국의 요구사항을 수용하면서 ‘환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조치들을 취해 나가고 있다. 총리의 방미를 앞두고 최근 베트남 당국은 종교 관련 죄수들을 석방하고 폐쇄했던 교회들도 문을 다시 열도록 허용했다. 미 국무부도 5일 베트남이 종교자유 확대 약속을 이행하기 시작했다고 확인하는 등 양측간에 부드러운 분위기도 조성되는 기류다. 느슨해졌던 국영기업(SOE) 민영화작업, 금융권 개혁에도 박차를 가하며 세계 기준에 부응하려는 노력도 보여주고 있다. 국가증권위원회(SSC)의 거대 건설사 비나코넥스(VINACONEX) 보유주식 매각 추진, 베트남 최우량은행 베트콤뱅크의 민영화 발표 등도 같은 맥락이다. 카이 총리는 “미국 방문은 새로운 시대를 맞아 두나라 관계를 한층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라며 미국에 적극적인 손짓을 보냈다. 경제발전에 중점을 둔 실용 외교나 다름없다. 미국은 1995년 수교 이후 10년만에 베트남의 최대 교역국이 됐다. 베트남은 지난해 43억달러 규모의 의류 및 섬유를 수출했으나 WTO 미가입으로 미국의 의류수입 쿼터와 베트남산 수산물에 대한 관세 등이 유지되고 있다. 2000년 11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종전 후 처음으로 베트남을 방문한 바 있으나 베트남 총리가 미국을 방문하기는 카이 총리가 처음이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데스크시각] 빛을 감추고 힘은 길러야/구본영 정치부장

    어린이날인 5일, 푸르러가는 5월의 하늘을 보며 지난 4월 중순 제주도의 짙푸른 봄 바다를 새삼 떠올린다. 성산포의 유채꽃과 눈이 시리게 맑은 물은 보름도 더 지난 지금도 눈시울에 찍혀있다.‘상생정치와 언론’이라는 주제로 열린 관훈클럽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의 기억이다. 그러나 제주도의 풍광보다 더 선연하게 뇌리에 남아 있는 화두가 있다.“한국적 정치풍토에서 상생(相生)이란 가당치 않다.”는 원로 언론인들의 빗발치는 이의제기였다. 세미나 분위기야 시종 화기애애했다. 주제발표를 한 정세균, 강재섭 두 여야 원내대표는 워낙 우리 정치판에서 합리적이고 유연한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어차피 다툴 수밖에 없는 여야 관계라면 페어플레이 속에서 상쟁(相爭)이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게 다수 참석자들의 속마음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갖가지 정쟁과 입씨름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3월 노무현 대통령이 육군3사관학교 졸업식에서 ‘동북아 균형자 역할론’을 편 이후의 날선 공방이 대표적이다. 동북아 균형자론에 비판적인 이들은 “중·일 대결이나 미·중 충돌이 발생했을 때 한국이 중재역을 맡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비현실성을 지적한다. 한·미·일의 남방3각과 북·중·러의 북방3각이라는 냉전구도에서 탈피하려는 취지도 한·미 동맹의 포기나, 반미로 비쳐질 경우 또 다른 화를 부를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이 남북통일 문제 등에서 한국 편에 설 의지가 없는 상황에서 자칫 게도 놓치고 구럭도 잃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다. 이같은 비판이 꼬리를 물자 국가안전보장회의(NSC)측이 동북아 균형자론이 한·미동맹의 약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공식 해명하고 나섰다. 중·미간이 아닌, 중·일 분쟁시 중재역을 하겠다는 취지였다.“동북아 균형자론은 무력에 의존하지 않고 중견국가의 위상에 맞는 ‘평화의 균형자역’을 맡겠다는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민주주의 역량, 의제설정 능력, 문화 역량 등 이른바 ‘소프트파워’(연성국력)를 통해 추구하겠다는 부연설명이었다. NSC의 복잡한 설명이 아니더라도 기자는 동북아 균형자론이 결국엔 한국이 지향해야 할 큰 비전일 수 있다고 본다. 언젠가는 강대국들의 종속변수가 아니라 판 자체를 주도하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다만 그 비전이 공허한 수사에 그치지 않으려면 그만한 역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얼마전 원로인 강원룡 목사도 동북아 균형자론은 통일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고언했다. 역사 속에서도 국제 관계에서 외교적 슬로건에 앞서 내실을 다지고 국력을 키우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뼈저린 교훈을 읽을 수 있다. 중국이 오늘의 미국에 비견될 초강대국격이던 시절 명·청 교체기를 맞자 조선에선 청에 대한 화친론과 주전론이 맞섰지만 어느 길도 자의로 선택할 수 없었다. 끝내 주전론을 고집했다면 사직과 백성의 공멸을 뜻하는 옥쇄외에 달리 길이 없었을 터였다. 마지못해 택한 화친론도 인조가 청태종을 향해 얼어붙은 맨땅에 머리를 찧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절을 하고 머리를 땅에 세번 부딪기를 세번 반복)’하는, 삼전도의 치욕으로 이어진다. 중국 여성의 전통 의상 중 치파오(旗袍)가 있다. 허리 아래로 옆이 터져 허벅지살이 허옇게 드러나는, 아름답지만 퍽 도발적인 옷이다.1972년 죽의 장막을 헤치고 미·중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베이징을 찾았을 때다. 누군가 부인 패티 여사에게 치파오를 본 소감을 묻자 이렇게 응수했다.“중국 인구가 이렇게 많은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고. 패티 여사, 아니 미국은 당시 이미 인구 10억이 넘는 ‘공룡’ 중국의 잠재력을 예감했던 셈이다. 그러나 정작 중국의 최고지도자 덩샤오핑은 ‘빛을 감추고 때를 기다리는’ 대외전략, 즉 ‘도광양회’(光養晦)정책을 선택, 힘을 대외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현 시점에선 주변국의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는 ‘동북아의 균형자’가 아닌 ‘평화의 중재자’정도의 겸손한 수사가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에 앞서 집권 3년차인 청와대가 해야 할 더 시급한 과제는 여야간, 세대간, 계층간 이해다툼을 조정하는 ‘내치의 균형자’를 자임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를 통해 우리의 단합된 힘부터 길러야 평화의 중재자역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뜻에서다. 구본영 정치부장 kby7@seoul.co.kr
  • [베트남전 종전 30주년] 끝나지 않은 40년전 악몽…반전운동·종교 귀의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지 30년이 흘렀지만 전쟁의 상처는 완전히 아물지 않았다. 한국은 32만여명을 파병, 전사 5099명, 부상 1만 1232명이라는 희생을 안았다. 한국군에게 피해를 당한 베트남 사람들도 악몽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두 나라는 1992년 수교한 뒤 서로의 상처를 보살펴 주며 과거의 악연을 씻고 있는 중이다. 베트남전 종전 30주년을 맞아 전쟁 희생자들의 고통 속에서도 돈독해지고 있는 양국 관계를 살펴봤다. ■ 참전 생존자들의 고통 “1년에 몇번씩은 퀴논의 그 지긋지긋한 전략촌을 찾아갑니다. 손에는 M1 소총을 들고 있죠. 그리고는 저의 오발로 밀림에서 죽은 30대 여인의 치켜뜬 두 눈과 목에서 분수처럼 피를 쏟아내던 정 일병이 겹쳐집니다. 소리치며 깨어나면 가슴이 콱 막혀 숨을 못 쉬겠어요.40년이나 지났으면 잊혀질 법도 하련만….” 지난 28일 오후 서울 명동의 커피숍. 떨리는 목소리로 40년 묵은 악몽을 얘기하던 박정익(가명·59·목사)씨의 눈가가 젖어든다.1965년 12월3일. 이 날은 박씨의 가슴에 핏빛 화인(火印)으로 남아 있다. ●밀림 헤매는 ‘김상사’ 박씨에게 베트남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1946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난 박씨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농사를 거들다 65년 10월 맹호부대 기갑연대 3중대 소속으로 베트남 중부 캄란 땅을 밟았다. 전쟁보다 가난이 더 무섭던 시절.1년만 버티면 집 두 채를 산다는 말에 자원했다. 하지만 전장에 나서기엔 박씨는 너무나 여렸다. 실전 투입 한달도 안돼 퀴논 지역 작전에서 동료를 잃었다.“살아서 소 몰고 고향에 같이 가자.”고 약속했던 친구였다.“그때는 눈이 뒤집혀서 움직이는 것을 보면 무조건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저 자신이 점점 ‘짐승’이 돼 갔지요.” 이듬해 11월 무사히 귀환해 수원에서 큰 포목점을 열었지만 전쟁의 악몽은 베트남 해변가의 안개처럼 머릿속을 짓눌렀다. 그를 ‘구원’한 건 신앙의 힘이었다. 뒤늦게 신학대학에 진학해 개척 교회를 열었다. 하지만 친구들에게도 베트남의 상처를 말하지 못했다.“퀴논에서 목회를 하면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짙은 그림자 남긴 베트남의 악몽 강인용(가명·부산)씨는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외상이 자기와 가족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보여주는 전형이다. 베트남에서 귀환해 가정을 꾸렸지만 정상적인 생활을 해나가지 못했다. 스트레스와 불안에 가족들을 괴롭혔고 결국 아들과 부인이 차례로 목숨을 끊었다. 현재 강씨는 세상과 연락을 끊은 채 살고 있다. ●속죄의 길로 택한 반전 운동 베트남의 기억이 삶의 방향을 완전히 다른 쪽으로 바꾼 경우도 많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이사 김용삼(55)씨는 ‘추악한 전쟁’의 경험을 바탕으로 왜곡된 현대사 바로잡기에 뛰어들었다. 해병대 5중대 소속으로 68년 7월 전쟁터에 뛰어든 그는 이듬해 4월 최전방이던 호이안 지역 전투에서 오른손에 총알 관통상을 입고 제대했다. 우연찮게 백범 김구 선생의 묘소를 돌보게 됐고 이를 계기로 한국 근현대사는 물론, 베트남 전쟁의 본질 규명에 나섰다. 경남 마산의 시민사회단체 열린사회희망연대 대표 김영만(59)씨는 해병대 포병 3대대 11중대 소속으로 참전했다.67년 2월14일 ‘짜빈동 전투’에서 코에 총상을 입고 기적적으로 살아 남았다.200명의 해병대는 짜빈동 전투에서 월맹군 3000여명을 격퇴했다. 해병 전투사는 이를 ‘베트남전 최고의 해병 전투’로 기록한다. 김씨 역시 ‘학살’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짜빈동 전투 이틀 전 30대 남자 포로의 뒤통수에 총알을 박았다. 당시 포로 즉결 심판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죽은 포로의 어머니가 찾아와 ‘아들을 찾아달라.’고 울며 애원했다.“고향에 계신 친할머니 같았어요. 순간,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베트남에 오기 전의 정상적인 청년으로 돌아온 거죠.” 김씨는 화랑무공훈장도 보훈 혜택도 마다하고 제대한 뒤 모든 것을 잊고 ‘희망의 땅’ 미국으로의 이민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민 준비를 위해 호텔 견습생으로 들어갔다가 척추를 다쳤다.30대의 대부분을 하반신 불구로 보냈고 부인은 행상에 나섰다. 2003년 3월 그는 배상현씨 등 열린사회희망연대 회원들을 전쟁을 막기 위한 ‘인간방패’로 이라크에 파견했다. 김씨는 “이라크 파병은 우리 민족이 베트남전의 비극을 되풀이하는 잘못된 결정”이라면서 “전쟁을 없애는 것이 베트남에서의 죄갚음을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고엽제후유증 8만명 고통 PTSD는 치료도 못받아 “포탄 날아온다. 모두 피하라.” 2003년 5월 미국 캘리포니아 LA의 USC 부속병원. 낯선 한국말 고함이 병동의 새벽 정적을 깼다.“여보, 제발 정신 좀 차려봐요.”눈을 뒤집은 채 병상에서 소리치고 있는 목사 김모(58)씨의 손을 잡고 부인 김모(56)씨가 눈물로 애원했다. “여기가 어디야. 또 월남 아니야.”김씨는 결국 꽁꽁 묶여 정신병동으로 갔다. 원인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백마부대 소속으로 1968년 9월부터 15개월을 베트남에서 보냈던 그는 현재 중풍과 PTSD 증세로 대소변도 못 가눌 정도가 됐다.PTSD는 전쟁 등 극단적인 사건에 노출된 뒤 나타나는 불안 장애. 헛것이 보이거나 비명 소리가 들리는 등 충격을 현실처럼 느끼기도 하고 한없이 차가워지기도 한다. 미국은 베트남전에 의한 PTSD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PTSD로 150만여명이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2만여명이 자살을 택했다. 우리 나라에서도 많은 파월 장병들이 PTSD에 시달리고 있다. 대구·경북지역 고엽제 환자 280명 중 60%가 우울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있다. 그러나 보상은커녕 치료마저 요원하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병상 일지에 관련 증세를 보였다는 기록이 있어야 전투와 연관된 상해로 인정받기 때문에 PTSD 전상자는 공식적으로 없다.”면서 “미국처럼 PTSD 환자를 위한 특별한 조치가 없는 한 구제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의 아버지는 PTSD로 고통받았고, 그 고통이 유영철에게 정신적 외상으로 전이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고엽제의 고통도 끝나지 않았다.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고엽제 후유증 환자와 후유의증 환자는 8만여명. 그러나 판정 조건이 너무 엄격하다. 진단받은 사람 가운데 17.9%만이 후유증으로 판정받고, 이중 58.3%만이 국가유공자 대우를 받는다. 고엽제는 참전자 2세의 생명도 위협하고 있다.2000년 182명의 부산·경남지역 고엽제 후유증 환자 2세 연구에 의하면 선천성 기형이 15건, 전신 허약이 12건이나 나타났다.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건강 장애를 보였다. 고엽제 피해로 미국뿐 아니라 호주와 뉴질랜드도 2억 4000만달러를 보상비로 챙겼다. 그러나 미국에 이어 가장 많은 32만여명을 보낸 한국은 한 푼도 못 받았다. 이두걸 이효용기자 douzirl@seoul.co.kr ■ 당시 주월 한국군사령관 채명신 예비역중장 “주한美軍 차출 막으려 파병” “주한미군을 자꾸 나가라고 하는 우리 사회 분위기가 패망 직전의 월남과 비슷하다는 얘기를 주위로부터 많이 듣고 있어요.” 주월 한국군사령관으로 5년 가까이 파병부대를 지휘한 채명신(80) 예비역 육군 중장은 베트남전 종전 30주년과 관련해 이 전쟁이 주는 교훈이 뭐냐고 묻자 대뜸 이렇게 말했다. 반미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는 사회 일각의 풍조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시했다. 요즘 그는 베트남참전동지회와 6·25 유공자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강의차 지방출장도 자주 다니고 있으며, 옛 전우들도 자주 만난다고 했다. “올해가 월남전 종전 30주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투부대 파병 40주년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답게 그는 종전보다는 전투부대 파병에 더 큰 의미를 두는 듯 했다. 월남 파병을 ‘용병(傭兵)’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하자 파병의 불가피성을 들었다. ●朴대통령 “쉽지 않은 전쟁” 고민 “당시 파병은 주한미군 철수와 연계돼 있었습니다. 미국이 월남에 지상군을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을 밝혔을 때 주한미군을 빼는 것은 시간문제였지요. 미국 본토에서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제한적이었거든요.” 당시 우리보다 GNP가 많고 군사력도 월등한 북한이 오판할 가능성이 높았던 만큼 파병은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물론 국가 경제발전과 5·16 이후 불편했던 미국과의 관계 등도 고려됐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파병 직전 박정희 대통령이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이던 자신을 불러 전투병 파병을 논의했었다는 얘기도 털어왔다. 육본 작전참모부장은 전투수행에 관한 한 군의 최고 전문가다. 당시 파병에 대한 반대여론이 높았던 만큼 박 대통령도 적잖은 고민을 한 것 같았다고 그는 말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박 대통령에게 월남에 파병되면 게릴라전을 수행해야 하는데, 뚜렷한 목표의식과 인간적인 존경을 받는 카리스마의 리더십, 은신과 보급이 가능한 지리적 환경 등을 호찌민부대가 갖추고 있어 싸움은 쉽지 않겠지만 미국을 붙들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민간인 무차별 총질 결단코 없었다” 최근 월남전과 관련해 이따금씩 보도되고 있는 베트남 양민학살 문제에 대해서는 참전 의미를 훼손하려는 의도적인 비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예컨대 주민으로 가장한 베트콩들이 많은 마을에서 수색작전을 하는 과정에 수류탄을 던지고 달아나는 일부 주민들과 교전을 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아무런 혐의도 없는 민간인들에게 무차별 총질을 한 적은 결단코 없다고 그는 단언했다.100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어도 1명의 양민을 보호하라는 게 당시 사령부의 지휘방침이었다고도 했다. 실제 그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당시의 전과(戰果)를 거론했다. 당시 한국군은 사살자의 절반 가량에 해당하는 무기를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으며, 베트남에 주둔하는 8년간 4만명 이상을 사살했는데 총이나 수류탄도 대략 2만정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베트콩들은 동료가 쓰러지면 시체보다 총을 먼저 챙길 정도로 무기를 생명처럼 여겼는데 이 정도로 많은 무기를 노획한 것은 한국군이 얼마나 알뜰하게 베트콩만 골라서 공격했는지에 대한 증거라는 것이다. 미군과의 작전지휘권 문제에 대해서는 다소간의 문제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파병 직전 박 대통령도 현지에서 미군의 지휘를 받는 게 더 좋지 않겠느냐는 말을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작전 지휘권만은 양보할 수 없다고 고집, 결국 그의 뜻대로 됐다. “미군은 당시 한국군 병력이 2만명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미군의 통제를 받으라고 강요했지만, 애초에 미국의 (월남전) 개입이 잘못됐고, 잘못된 군사전략에 우리가 휘말려서는 안된다는 게 내 신념이었습니다.” ●용병 논란 우려 독자 작전권 고집 한국군이 미군의 지휘를 받게 되면 ‘용병 논란’이 생길 게 뻔하고, 미군도 전쟁을 청부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작전권을 가질 때만 이 전쟁의 성격 문제가 해결된다는 논리로 설득했더니, 의외로 미군들도 수긍을 하더라는 것이다. 베트남전이 결국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는 질문에 그는 경제개발을 첫 손에 꼽았다. 파병 이후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점차 인정하게 됐다는 것이다. 세계금융기구에서 경제개발계획에 필요했던 차관을 선뜻 내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또 현대건설 등 월남전 특수에 힘 입은 것도 분명한 사실 아니냐고도 했다. 그는 ‘고엽제’ 등 전쟁의 부작용의 대해서도 적잖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사실 고엽제 후유증이 그렇게 심한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고엽제 부작용 이렇게 심할줄을” 문민정부 때부터 고엽제 ‘후유의증’ 환자를 후유증으로 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해 왔다. 현재 1만 2,000명이 후유증 판정을 받았으며,3만명은 의증 판정을 받은 상태다. 참전유공자회 책임자를 맡은 만큼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서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철군한 이후 베트남을 방문하지 않다가 수년전 관광차 하노이만 잠깐 한차례 들렀다고 한다. 또 월남전과 관련해 제작된 각종 영화 등도 관심있게 봤다. 하지만 상당수 작품의 경우 허구가 지나쳐 고개를 돌린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요즘 베트남전과 한국군 파병 등에 대해 회고록을 집필중이다. 잘 하면 올 연말쯤이면 책이 나올지도 모른다며 그는 나중에 책을 한번 읽어보라고 권했다. 그는 현지 사령관을 마친 뒤 귀국, 군사령관을 마치고 군문을 떠났으며, 이후 스웨덴과 그리스, 브라질 등의 대사를 지내기도 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기업 1000여곳 진출… 한류열풍 한국사람으로서 지금 베트남에 간다면 자신감을 만끽할 수 있다. 이제 한창 ‘성장’의 맛을 들인 이 후발 개도국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경제적·문화적으로 선망의 대상이다. 불과 30년전 총부리를 겨눈 적(敵)이었다는 역사는 애시당초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2005년 베트남의 정서는 친(親)한국 일변도다. 하노이 도심 곳곳에서는 ‘SAMSUNG’과 ‘LG’와 같은 한국 기업의 간판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마티즈, 매그너스 등의 승용차는 30년전 탱크가 밟고 다녔을 법한 도로를 거침없이 질주한다. 한국 제품이란 사실이 부각돼야 시장 점유율이 올라갈 만큼 베트남에서 한국의 경제적 이미지는 ‘선진국급’이다. 한국의 베트남 투자는 가속의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까지 총투자액이 40억달러를 넘었고 최근 3년간 투자금액은 타이완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KOTRA 하노이 무역관에 따르면, 한국 기업들은 농업을 뺀 베트남 전체 취업 인구의 3%(35만명)를 고용하고, 베트남 수출액의 10% 이상을 기여하고 있다. 베트남에 ‘진주’한 한국 기업은 1000개는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섬유·의류·신발 등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출발한 우리 기업의 베트남 진출은 90년대 중반부터 철강·통신·사회간접시설을 향해 정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우리가 정작 주목해야 할 부분은 양국간 교류 확대가 ‘돈벌이’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1997년 드라마 ‘의가형제’로 시작된 한류 열풍은 이제 완전한 문화현상으로 자리잡았다. 현재 베트남의 주요 TV채널에선 저녁 황금시간대에 ‘파리의 연인’과 ‘리멤버’ 등 한국 드라마끼리 시청률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뉴스도 경제뿐 아니라 스포츠·문화·사회현상과 같은 시시콜콜한 영역까지 보도돼 서울과의 시차를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다. 한국 유학이나 한국 기업 취업을 위한 ‘한국어 배우기’ 붐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해외에선 드물게 한국어 인증시험이 치러지는 곳이 베트남이다. 응시생이 월 200∼300명에 이른다.TV에서 한국어 강좌가 방영되고, 호찌민과 하노이의 주요 7개 대학에 한국어 학과가 개설돼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룰라 “차베스 反美 너무 나갔다”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이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지나친 반미 노선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브라질 일간 폴랴 데 상파울루가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신문은 최근 차베스 대통령을 만나고 돌아온 룰라 대통령의 최측근 조제 지르세우 브라질 정무장관의 분석을 인용,“룰라 대통령이 차베스 대통령의 미국에 대한 적대감 때문에 중남미 다른 국가들까지 피해를 미칠 수 있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룰라가 태도를 바꾼 데에는 미국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 26·27일 브라질을 방문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차베스 대통령을 강도높게 비판하는 한편 중남미에서 브라질의 주도권을 인정하며 협력을 부탁했다. 브라질은 겉으로는 ‘베네수엘라의 주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밝혔지만 미국과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여기에 역내 좌파정권 사이에서 영향력을 확대해가는 차베스에 대한 견제 의도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차베스 대통령이 27일부터 쿠바를 방문,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의장과 정상회담을 갖고 미국 주도의 미주자유무역지대(FTAA)에 대항해 별도의 경제공동체 구성을 합의한 데 자극받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美, 중남미 달래기 나섰다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미국의 ‘뒷마당’격인 중남미 단속에 나섰다.26일(현지시간) 브라질에 도착한 라이스 장관은 30일까지 콜롬비아, 칠레, 엘살바도르를 차례로 방문한다. 미 국무부는 민주주의 확산과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체결을 통한 교역 확대, 지속가능한 발전 모색 등이 순방의 목적이며 마약거래와 범죄 단속, 빈곤 탈피, 교육 개선, 환경 보호 등이 구체적인 의제가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라이스 장관의 ‘발표되지 않은 임무’는 중도좌파 정권들이 속속 등장한 중남미 지역에서 확산돼 가는 ‘반미 감정’을 완화해 미국의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은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과의 갈등, 콜롬비아 내전상황 격화, 에콰도르 등의 정치적 위기, 중국의 경제적 진출 확대 등으로 인해 중남미 지역을 새롭게 주목하고 있다. ●“브라질의 주도권 인정” 라이스 장관의 첫 방문지인 브라질은 중남미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다. 영국의 BBC방송은 “중남미에서 나타나는 ‘위기 신호’들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브라질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미국 정부가 인정했다.”면서 “라이스의 방문은 지난달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방문 때와 마찬가지로 ‘예방적 조치’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차베스를 룰라로” 미국과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워온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라이스 장관의 첫 중남미 순방을 전후해 예사롭지 않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차베스 대통령은 28일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장과 아바나에서 정상회담을 갖기로 확정했다. 이에 앞서 라이스 장관은 “난폭하고 비민주적인 베네수엘라 체제에 우려를 갖고 있다.”며 차베스 대통령에게 ‘선전포고’를 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차베스는 라이스 장관이 남미 순방길에 오르기 전인 지난 22일 미국과 35년간 유지해 온 군사교류를 파기한다는 ‘폭탄선언’으로 맞섰다. 이틀 뒤 차베스는 방송 연설에서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침공할 계획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미국에서는 부시 행정부가 베네수엘라 내부의 반(反)차베스 세력을 지원하는 공작과 중남미에서 ‘차베스 따돌리기’ 작업을 본격화한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미국 언론은 미 정부의 의도는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룰라화(化)’하는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미국에 대해 적대적이지 않고 중남미 지역 전체에 불안정을 가져오지 않는다면 브라질의 루이즈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대통령처럼 어느 정도의 독자노선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불확실성 커져가는 중남미 정세 미국은 차베스 정부가 러시아 등으로부터 도입한 소총, 헬기 등이 콜롬비아 반군 등의 손에 넘어갈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에콰도르에서는 지난 2000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던 루시오 구티에레스 대통령이 민중 봉기로 축출돼 지난주 브라질로 정치적 망명을 했다. 미국은 내년 10월로 예정된 총선을 앞당겨 실시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또 볼리비아와 아이티에서도 시민 시위로 인한 내정 불안이 계속되고 있다. 멕시코에서도 좌파가 점차 세력을 확산해 가고 있다. dawn@seoul.co.kr
  • [씨줄날줄] 돈키호테 리더십/이목희 논설위원

    1823년 미국의 제임스 먼로 대통령은 “미국이 유럽에 간섭하지 않을 테니 유럽도 아메리카대륙에 간섭하지 말라.”는 외교원칙을 발표했다. 이른바 ‘먼로독트린’이다. 신생국 미국이 수백년 동안 세계를 지배해온 서유럽 제국에 대항하고 나선 것이다. 당시엔 ‘계란으로 바위치기’로 치부되기도 했으나, 그로부터 100년이 채 안 돼 중남미는 미국의 안마당이 된다.1904년에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아메리카대륙에서 ‘경찰’ 노릇을 하겠다는 신먼로독트린을 발표하게 된다. 이후 중남미 제국에는 미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가느냐가 국가적 어젠다였다. 그 와중에 1950년대 후반 나타난 것이 종속이론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저개발 원인을 미국의 경제잉여 수탈에서 찾았다. 앞서 아르헨티나에서는 페론의 포퓰리즘(민중주의) 정권이 등장했고,1970년 칠레에서는 좌파 아옌데 정권이 들어서기도 했다. 많은 나라에서 군사독재정권이 이어졌다.1990년대에는 미국이 구축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충실하기도 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2003년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 집권을 시작으로 베네수엘라, 우루과이 등 남미 주요국에 좌파 정권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들이 실용좌파인 게 미국으로서는 그나마 다행이었으나 최근 분위기가 또 바뀌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좌파 포퓰리스트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반미의 기치 아래 남미 좌파공조를 외치고 나섰다. 차베스는 돈키호테의 추종자임을 스스로 강조하고 있다. 미국을 정의롭지 못하다고 이분법적으로 규정하고, 그를 타도하기 위해서는 돈키호테가 풍차에 돌진하듯 무모한 행동을 해도 된다는 식이다. 멕시코의 좌파 정치인으로 급부상한 로페스 오브라르도의 지지자들도 돈키호테를 닮자는 구호로 관심을 끌고 있다. 중남미의 빈부격차 및 열악한 경제실정은 돈키호테 리더십이 먹힐 정도로 심각하다. 온갖 체제실험에도 불구, 안 살아나는 중남미 경제구조가 자칭 ‘돈키호테 정치인’까지 만들어 내고 있는 셈이다. 중남미는 한국에 반면교사가 된다. 숙명적으로 친미·반미를 오락가락했지만, 그 자체가 국가발전을 가져다 주지 않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는 목표가 아닌, 수단일 뿐이다. 미국의 ‘강아지’가 돼선 안 되겠지만, 돈키호테도 지양해야 한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열린세상] 동북아 균형자 역할론과 미국/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의 중장기 대외정책 비전으로 제시한 동북아 균형자론은 동북아 안보구도와 관련국들의 동북아 전략 및 정책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 변화는 바로 한국의 안보전략을 제약하는 여건으로 환류될 것이므로 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먼저 중국과 북한은 한·미동맹과 한·일 협력관계의 이완으로 이를 반기고 있다. 일본은 한국을 우호협력자로 여기다가, 과거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고 우경화 추진과 재무장을 견제하는 세력으로 보게 되었다. 이는 정부가 이미 예상했던 바일 것이다. 문제는, 동북아 지역 밖에 있지만 사실상 동북아의 안정자 및 균형자 역할을 수행해온 미국의 반응에 있다. 참여정부의 기본 취지는 일본의 우경·재무장을 견제하고 중·일 대립을 적극 중재한다는 것이지만, 현재 미국이 일본의 재무장을 권장하여 중국의 팽창을 공동 봉쇄한다는 정책을 펴고 있으므로 균형자론이 자칫 반미노선으로 여겨질 수 있다. 정부는 한·미동맹 유지를 병행한다고 하지만 미국 측에서 보면 한·미동맹은 북한의 남침 억제와 중국 견제로 기능할 수 있을 뿐이다. 미국은 순수한 한·일 갈등에서는 중립을 취할 수 있지만, 우리가 일본을 견제하고자 중국과 연합할 경우 한·미동맹을 고려해 중립을 지키기보다는 일본 편을 들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현재 한국과 중국은 북핵문제 해결 등 주요 안보 현안에서 유사한 전략을 갖고 있지만 통일문제에 대한 이해는 상이하며, 중국은 한국을 보호할 의지나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동북아 안보를 주도해 온 미국이 우방이므로 우리가 원하는 한 계속 동맹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 낙관한다면 오산이다. 미국은 상수가 아니라 주요 독립변수이고, 미국의 외교적 수사와 실제 정책에는 큰 차이가 있다. 미국에도 한·미동맹이 유용하므로 일정 한도에서는 관망하겠지만 한국이 미국의 사활적인 이익 수호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할 경우, 예측 불가능한 차원의 전략적 공세를 가해올 수 있다. 미국은 우리가 1997년 IMF사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미 동맹국 보호보다는 자국 이익 극대화에 전력을 기울였다. 북핵문제를 보아도 물론 북한이 정권유지 전략과 모험주의로 한민족 전체를 위험에 내몬 책임이 크지만, 미국 역시 국익을 위해 동북아 평화를 경시하여 왔다. 부시 행정부는 남북경협 활성화와 고이즈미 방북으로 동북아에 화해 질서가 무르익어 가는 상황에서 으뜸패로 북핵문제를 들고 나와 동북아에 대한 통제력을 재구축했다. 또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의 양자대화를 거부하고 대북 강경책을 구사하여 북한의 핵보유를 자초하고도 문제 해결에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적대정책의 포기만 선언해주면 북한을 협상의 틀 속에서 압박할 수 있고, 조건부 체제보장을 해준 뒤 약속 불이행시 당당히 제재할 수도 있는데, 우라늄 고농축 프로그램에 대한 증거도 공개하지 않은 채 북한만 나무란다. 이는 미국의 동북아 전략이 대화를 통한 화해와 통합보다는 미사일 방어계획 추진의 명분을 얻기 위한 긴장 유지나 군사적 우위에 입각한 자국의 패권 유지를 우선시함을 보여준다. 더구나 부시 행정부는 그릇된 명분을 내세워 이라크를 군사 공격하였고 그 결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미국은 우리의 머리 위에서 전세계를 대상으로 전략을 구상하며 우리를 압도할 수 있는 다양하고 강력한 정책 수단을 전개해 왔다. 특히 미국은 매년 1조달러의 막대한 무역적자와 재정적자에 시달려왔기 때문에 난국 돌파를 위해 특단의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형편이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는 미국에 대한 심리적 의존은 탈피하되 미국을 무서운 국가로 간주하여 신중히 대해야 한다. 지혜와 끈기로 미국을 설득하여 한·미 우호관계를 기반으로 한 국가전략을 수행해야 한다. 무엇보다 균형자론이 미·중 대립이 아니라 중·일 갈등의 중재를 겨냥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동북아 어느 국가도 오해하지 않도록 명분을 보다 명확히 내세워야 한다. ‘균형자’라는 용어보다는 ‘평화 중재자’등 매력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정부의 대미 설득 역량에 새로운 국가전략의 성패가 달려있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사설] 친미·반미논쟁 그만두자

    노무현 대통령의 ‘친미주의자 발언’ 파장이 가라앉을 기미가 안 보인다. 그제 해명에 나선 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은 노 대통령의 진의를 제대로 전달했다기보다는 다분히 감정섞인 대응으로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들었다. 논란의 발단이 ‘동북아균형자’든 ‘친미주의자’든 분명히 노 대통령으로부터 촉발됐는데, 이를 일부 언론과 학계의 책임으로 떠넘기려는 모습은 보기에도 민망하다. 친미·반미를 둘러싼 치졸하기 그지없는 논쟁은 국익에 하등의 도움이 될 게 없으며, 국민을 짜증스럽게 만들고 있다.60년간 미국과 동맹관계를 유지해 온 우리는 정치·경제·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알게 모르게 미국의 영향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특정개인의 경우에도 때로는 친미적 성향을, 때로는 반미적 성향을 드러내는데 하물며 국가적으로 논쟁을 벌여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논란거리가 뻔한 의제를 불쑥 던져놓고 논쟁이 격화되자 뒤늦게 “협상력 약화” 운운하면서 논쟁 참여자들을 탓하는 것은 책임있는 정부가 취할 도리는 아니다. 논쟁이 확산될수록 국민의 시름은 더 깊어짐을 왜 모르는가. 더구나 최근 들어 주한미군 참모장이 방위비분담금 불만으로 한국인 근로자 1000명을 줄이겠다고 하고, 미7함대 사령관의 독자적 군사행동 발언 등 미국 쪽에서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일이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다. 그래도 “이견조정 과정에서 나오는 불가피한 마찰음이며, 한·미 우호에는 변함 없다.”는 노 대통령의 말을 믿고 싶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후보시절 “반미면 어떠냐?”라고 한 말 때문에 대통령과 생각이 다른 국민은 일이 터질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미국에 목소리를 내지 말라는 게 아니지 않은가. 당당하게 요구하되, 조용하고 ‘외교적’으로 처리하라는 얘기다. 그래야 일이 되는 것이다. 국민뿐 아니라 주변국들도 지켜보고 있다. 소모적 논쟁거리를 제공하는 것보다 국민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도록 해주는 게 양질의 정치다.
  • [씨줄날줄] 안보장사/우득정 논설위원

    참여정부의 한 핵심 인사는 지난해 말 사석에서 “군과 외교관들이 국익이 아닌 미국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정권에서는 미국에 잘 보여야 출세했던 만큼 미국의 이해를 중심에 두고 국익은 부차적인 것으로 여겼던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는 세계 전략에서는 미국의 생각이 존중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한반도문제에서는 한국이 중심이자 주체가 돼야 한다며 그것이 외교관이나 군과 참여정부 참여자들의 시각 차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 사람들은 이러한 생각에 공감하는데 이땅의 보수주의자들만 참여정부를 좌파로 매도한다고 흥분했다. 그는 미국의 집권 공화당이 한나라당에는 초청장을 보내면서 열린우리당에는 매우 싸늘하다며 한나라당은 국익을 위해 열린우리당과 공화당 채널을 공유하기는커녕, 참여정부를 폄하하는데 활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나라당의 공화당 채널 독점이 부러우면서 동시에 얄밉기도 하다고 했다. 미국 부시 행정부 ‘네오콘’들의 한국 정부 때리기도 같은 연장선상에서 파악했다. 미국 정계에서는 한국의 대기업을 통하면 공화당 고위층과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충고하지만 대기업의 연줄에 기댈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단언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터키 순방 중 “한국 국민들 중 미국 사람보다 더 친미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얘기하는 경우가 있어 힘들다.”라고 토로한 것과 관련,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일부 언론과 야당이 ‘친미와 반미의 이분법적 사고’ ‘편가르기식 사고’ 등으로 몰아붙이자 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이 취임 후 처음으로 홍보전 전면에 나섰다. 조 수석은 “과거 북한의 위협을 가지고 안보장사를 하던 언론이 이제 한·미동맹을 흔들고 국민의 불안감을 조성시켜 새로운 안보장사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일부 언론을 겨냥했다. 이에 앞서 라디오 방송에 출연,‘친미적인 사람’을 ‘학자·언론인 등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한국인들’로 규정했다. 조 수석으로선 심사숙고 끝에 칼을 뽑았겠지만 논란을 잠재우기보다는 새로운 분란만 부추긴 듯하다. 게다가 본인의 강력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앞선 참여정부 핵심 인사처럼 피아의 경계선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홍보의 기본은 타인의 마음을 사는 것이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한미동맹 흔들어 ‘안보장사’ 하나”

    “과거 안보장사를 하던 (일부)언론이 한·미동맹을 흔들어 새로운 ‘안보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이 19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한국 국민들 중 미국 사람보다 더 친미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는 게 걱정스럽고 힘들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독일 발언을 놓고 일부 언론이 ‘국민 편가르기’라고 비판한 데 대해 강도높게 역공에 나섰다. 조 수석은 미리 준비해온 원고를 읽으면서 “노 대통령에게 친미·반미를 나눠 편가르기를 한다는 얘기를 하는데 사실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조 수석은 “한·미동맹 보도도 국익을 걱정하는 의도에서 나온 것인지, 막말로 과거 안보이익으로 득을 봤던 사람들이 또다시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특정집단을 지칭한 적이 없고 특정행위를 하는 사람들에 대해 말한 것일 뿐”이라며 “언제 국민을 편가르기했다고 하는 것인지, 과연 편가르기를 하는 사람이 누군지 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조 수석이 문제삼는 언론보도는 ▲노대통령의 ‘친미 관련 발언’을 편가르기로 규정한 칼럼 또는 기사 내용 ▲동북아 균형자론을 놓고 한·미동맹의 균열이라고 쓴 기사내용 ▲대담에는 없는 내용을 제목으로 뽑은 기사 등으로 요약된다. 조 수석은 “최대한 국익을 지켜가면서 한·미동맹을 유지해나가는 게 의무”라면서 “일각에서 ‘한·미동맹이 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었다.’거나 학자들 대담에서 하지도 않은 말을 제목으로 뽑아 동북아 균형자론을 폄훼하는 일도 있다.”고 지적했다. 자이툰 부대원 철수를 놓고 한·미동맹에 문제가 있다는 보도내용도 사례로 들었다. 이런 보도가 사소한 일을 부각시키거나 감정적 비판이 대부분이라는 주장이다. 조 수석은 “정부의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무분별한 보도들이 국익을 해하는 일이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면서 “더 이상 대통령 발언을 왜곡해서 문제화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밝혔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野 “친미·반미 이분법적 사고”

    동북아균형자론과 노무현 대통령의 ’국내 친미주의자’ 발언이 도마 위에 올랐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와 국방위는 18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이종석 NSC(국가안정보장회의) 사무차장을 각각 출석시켜 동북아균형자론 등 현 정부 외교정책의 허점을 따졌다. 특히 야당은 노 대통령의 ‘친미주의자’ 발언을 “친미·반미의 이분법적인 사고”라며 강력 비난했다. 여야는 북한인권 문제를 놓고도 시각차를 보였다. ●균형자론 및 친미주의자 발언 야당 의원들은 능력과 효과에 대해 다시 의문을 제기했다. 국방위 소속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인기영합적 외교를 경계하면서 “차리리 ‘탈미친중(脫美親中)’이 더 솔직한 게 아니냐.”고 추궁했다. 송영선 의원도 갈등조정 능력을 강조했고, 통외통위 박계동 의원은 “자기 힘의 과대 평가로 보인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국방위 소속 열린우리당 박찬석 의원은 “균형자론은 누구의 편을 드는 게 아니라 동북아의 평화 번영을 위한 것”이라면서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균형자론의 근본 취지”라고 정부를 거들었다. 통외통위 김원웅 의원은 “야당도 큰 차원에서 뜻을 모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국방위에선 노 대통령의 ‘친미주의자’ 발언을 놓고 한나라당은 건전한 비판을 친미주의라고 했다면서 발끈했고, 열린우리당은 굳건한 외교정책 수립을 당부했다.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국가 미래를 위해 건전한 비판을 하는 사람을 친미주의라고 한 것은 지나친 것 아니냐.”면서 “친미·반미의 단세포적인 이분법으로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열린우리당 안영근 의원은 “한·미 동맹에 금이 가도록 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며 “극우파나 지나치게 친미적인 사람들이 시비를 걸어도 굳건하게 외교안보 정책을 수립해달라.”고 정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국방위에선 NSC의 위상과 관련해서 야당의 파상 공세가 이어졌다. 한나라당은 NSC가 자문기구임에도 불구하고 ‘대일 독트린’을 공표하는 등 국가 외교·안보정책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것은 ‘월권’이라고 주장했다. 권경석 의원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NSC 상임위원장 자격으로 ‘대일 독트린’을 발표한 것과 관련,“자문기관의 상임위원장이 어떻게 대외정책을 발표할 수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반면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야당의 주장을 ‘정치공세’라고 일축했다. 안영근 임종인 의원 등은 “(작계 5029는) NSC가 대처를 잘했다.” 등의 발언으로 NSC를 옹호했다. ●북한 처형 동영상 공개 통외통위에서는 북한의 공개처형 장면을 담은 동영상이 상영됐다.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은 지난달 북한 함경북도 회령에서 진행된 공개처형 장면을 ‘몰래카메라’ 형태로 찍은 동영상을 10여분간 상영했다. 그는 “판사가 사형을 선고하면 항소권한 없이 즉시 형이 집행된다.”고 북한의 열악한 인권상황을 폭로했다. 상영 전 열린우리당이 남북관계에 미칠 악영향을 이유로 비공개를 요구해 한동안 실랑이가 벌어졌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공개 처형과 관련,“야만적 행동에 통일부가 그냥 넘어간 것은 유감”이라며 정부를 비난했다. 박준석 김준석기자 pjs@seoul.co.kr
  • [사설] 친미·반미 갈등 유발 우려된다

    노무현 대통령의 화법은 직설적이어서 일단 듣기에 좋다. 그만큼 그 뜻이 국민에게 쉽게 전달되는 것 또한 장점이다. 반면 단점도 적지 않다. 호·불호가 그대로 드러난다든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함으로써 갈등의 소지를 제공하는 것 등은 국가 운영과 사회 통합의 최종 책임자로서 적절치 않은 측면이다. 노 대통령이 터키 방문 중에 교민들과 나눈 대화에는 그러한 위험이 도사려 있다.“한국 국민 중 미국 사람보다 더 친미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언급한 대목이다. 우리사회에 미국을 보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이는 부정적인 현상만도 아니다. 해방으로 비롯돼 6·25전쟁을 계기로 더욱 공고해진 한·미관계 60년사를 되돌아 보면 미국을 최우방으로 여겨 호의를 갖는 계층이 두껍게 형성돼 왔다. 이와는 반대로,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후 시작돼 ‘미순·효순양 사건’까지 이어져 오면서 한·미 관계를 재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흐름도 사회 일각에는 존재한다. 그러나 이를 ‘친미’‘반미’로 구분하는 일은 아직은 대중집회에서나 있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느닷없이 ‘친미 세력’의 존재를 기정사실화하며 ”(그들이) 내게는 걱정스럽고 제일 힘들다.”고 말하니 과연 어떤 뜻을 담은 말인지 우려된다. 대통령의 말 그대로라면 우리사회에는 민족 또는 대한민국보다 미국을 더욱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들이 과연 누구이며, 대통령이 힘들다고까지 한 그들의 언행은 무엇인지 국민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지금 우리사회에는 보수·진보의 이분법 외에도 지역갈등과 계층갈등이 존재하며 대북 관계를 놓고도 ‘친북’‘반북’ 공방이 치열한 실정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나서 ‘미국인보다 더욱 친미적인 존재’를 새로 공개했으니 이제 ‘친미’‘반미’를 둘러싼 화두가 사회를 다시금 분열시킬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노 대통령은 발언의 진의를 확실히 밝혀 불필요한 갈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기 바란다.
  • “美, 中 가장 주시해야”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존 네그로폰테 미국 국가정보국장(DNI) 지명자는 “미국 정보 당국이 장기적으로 가장 중요시해야 할 문제는 중국”이라고 말했다. 네그로폰테 지명자는 12일(현지시간) 상원 정보위원회의 인준 청문회에서 “중국의 점증하는 영향력과 그것이 미국의 외교정책에 주는 충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우리 아이들과 손자, 손녀들은 중국이 세계무대에서 매우 강력한 국가가 되는 세상에 살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네그로폰테 지명자는 또 정보 수집을 강화해야 할 분야로 북한 및 이란의 핵 개발 능력과 이라크의 반미 활동을 지목했다. 그는 이라크 침공 전에 정보기관이 대량살상무기 정보를 과장했다는 지적과 관련,“보는 대로 말하는 것이 최선”이라면서 “정보기관들이 수집한 정보를 정치적 목적으로 변형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네그로폰테 지명자는 새로 창설된 국가정보국의 단기적 과제들로 ▲대량살상무기의 근절 ▲대 테러전 지원 ▲미 정보망의 개혁 등을 꼽았다. 네그로폰테 지명자는 중앙정보국(CIA)의 포터 고스 국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을 것이며,CIA가 수행하는 비밀 작전을 의회에 사전 보고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또 CIA와 군 정보기관, 법무부간의 정보를 둘러싼 벽을 허무는 등 정보체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겠다고 말했다. 미 상·하원이 합동으로 구성한 9·11위원회의 요청으로 신설된 국가정보국장은 미국 15개 정보기관의 인사와 예산을 관장한다. 또 네그로폰테 지명자는 인준되면 매일 아침 대통령에게 일일 정보보고를 하게 된다. 네그로폰테는 공화당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민주당 의원들로부터도 지지를 받고 있어 이번 주말로 예정된 찬반투표에서 인준이 거의 확실하다.5개국어에 능통한 네그로폰테는 그동안 대사직 5차례를 포함해 상원 인준을 7차례나 통과했다. 한편 워싱턴 포스트는 이날 인준 청문회에 맞춰 지난 1983년 네그로폰테가 온두라스 주재 미국대사였을 당시 비공식 채널을 통해 인접국 니카라과의 반군을 고무하는 메시지를 보내는 등 반정부 활동을 적극 개입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네그로폰테는 당시 미국 하원이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좌파 정부를 전복하려던 우익 반군인 콘트라에 대한 지원을 모두 중단하려 하자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CIA 국장에게 콘트라 지원을 계속해야 한다며 강하게 버틸 것을 촉구했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네그로폰테가 콘트라 반군 비밀무장을 지지했으며, 이를 당시 중미에서 공산주의를 몰아내려는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전략의 요체라고 생각했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네그로폰테는 청문회에서 “당시 수행한 모든 일은 법의 범위 내에서 이뤄졌다.”고 말했다. dawn@seoul.co.kr
  • [김영만 칼럼] 50편은 중국, 69편은 미·일로 갔다

    [김영만 칼럼] 50편은 중국, 69편은 미·일로 갔다

    인천 공항에서 어제 하루 동안 홍콩을 제외하고도 중국의 도시들을 향해 출발한 여객기는 총 50편이나 됐다. 노무현 대통령이 ‘동북아균형자’를 자임하기 전에도 중국은 이처럼 가까이 있었다. 기업인들이나 상사맨들에게 중국은 이미 국내나 다름 없다. 그들의 대화에 부산이나 인천보다 상하이와 베이징이 더 많이 등장한 지 오래 됐다. 칭다오나 하이난섬은 제주보다 훨씬 친숙한 한국기업인들의 주말골프 장소다. 그러니 중국을 떼고는 한국경제를 이야기하기도 어렵다. 중화경제권의 영향을 벗어나기 어려운 한국이 외교, 군사면에서도 미국·일본에서 조금 떨어져 중국에 체중을 싣겠다는 동북아균형자론은 그래서 대단히 실용적이다. 경제현실을 쫓아가는 것이므로 뒤늦은 감도 있다. 그럼에도 선뜻 반갑고 효과적인 독트린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이를 뒷받침할 국력도 문제거니와 중국을 한 이불속에 넣기 저어되는, 중화주의에 대한 ‘불안’ 때문일 것이다. 미국에 대한 반감은 더러 교육과 정치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져 왔다. 그에 비해 중화주의에 대한 반감은 수천년간 누적되고 체화된 것이어서 반미보다 더 본질적일 수도 있다. 중국에 살다시피해도 한국 기업인들에게 중국은 무겁다.13억 인구와, 중화우월주의에 대한 경험이 우리를 편안하게 하지 않는다. 중국을 상대로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중국의 장래를 물으면 열에 칠팔은 이렇게 말한다.“우리가 겪은 대로, 경제가 발전하고 빈부격차가 심해지면 내부모순으로 분열의 길을 걷지 않겠는가.55개의 다민족국가라는데, 옛소련처럼 가지 않을까.”그러나 이들도 중국이 근세 이전에 2000년 가까이 대륙에 통일정부를 유지해온 전통과 저력을 지녔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니 이는 중화주의에 대한 불안을 반영한 전망아닌 희망일 뿐이다. 거대 중국에 대한 미래의 불안감은 관계강화를 원하면서도 미국과의 동맹도 현재처럼 유지되기를 바라는 이중정서를 만들고 있다. 청와대가 ‘동북아균형자’에 대한 국민여론을 확인하기 위한 조사에서 국민의 51.1%는 한국의 평화와 번영에 가장 도움이 될 국가로 미국을 꼽았다. 정부가 뒤늦게라도 동북아균형자론이 한·미 동맹의 터전위에서만 추진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새삼 강조하는 것은 그래서 국민정서에 맞다. 그러나 정부, 특히 국방부는 한·미간의 동맹은 낡아서 버려야할 코드처럼 취급하는 인상을 준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국방장관은 미국에 대해 이유없이 냉랭하다. 한 예로 찰스 캠벨 미8군 사령관이 방위비분담금협상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가졌을 때 국방장관은 “과거에는 한·미간 현안을 조용히 해결해 왔으나 앞으로는 절충과정에서 만족, 불만족이 그대로 노출될 것”이라고 했다. 같은 자리에서 “중국이 누구보다 한반도 평화안정을 바라고 있는 만큼 군사협력을 한·일간 수준까지 맞출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도 국방장관이다. 발언에서 기존의 혈맹에 대한 배려의 분위기는 없다. 중국에 대한 근거없는 애정과 비교된다. 미국은 바보일까. 남방동맹이든 뭐든, 새로 동맹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지 기존동맹을 버리는 데 힘을 쓸 이유는 없다. 외교부가 대통령을 반발짝 늦춰 따라가는데 비해 국방부는 대통령보다 한발 먼저가고 있다. 군사가 외교보다 신중해야 할텐데 반대다. 열린우리당의 386 김영춘 의원이 얼마전 같은당의 모의원에게 “맞는 말을 ‘싸가지’ 없이 하는 사람”이라고 해 화제가 됐다. 동북아균형자를 둘러싼 흐름도 그런 유다.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렇다고 50년 넘은 동맹에 ‘싸가지’없이 굴 일은 아니다.6·25때 5만명의 미국 젊은이들이 이땅에서 죽었다. 수요일이어서 교통량이 많은 편인 어제 인천공항에서는 일본과 미국으로도 69편의 여객기가 이륙했다. 그것이 오늘의 한국이다. 논설실장 sangchon@seoul.co.kr
  • [열린세상] 독도가 북핵을 만났을 때/김근식 경남대 정치학 교수

    한반도 정세가 심상치 않다.2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북핵문제는 북한의 회담불참 선언과 미국의 회담복귀 요구가 평행선을 그은 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과는 독도 영유권 문제를 계기로 외교전쟁이 진행되면서 급속도로 관계가 악화하고 있다. 한국이 방위비분담금 축소 의사를 밝히자 주한미군은 한국인 근로자의 대량해고 방침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론 발언은 한·미동맹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미국으로부터 불편한 의심을 받기도 했다. 이래저래 한반도 주변의 국제정세가 요동치는 가운데 한·일간 독도를 둘러싼 갈등은 최근 몇주 동안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이슈로 자리잡았다. 연일 수많은 시위 군중이 일본대사관 앞에 모여 일본대사 추방과 독도 사수를 외치며 데모하는 모습은 이제 익숙하기까지 하다. 일본총리 화형식과 함께 시위대가 손가락을 자르는 모습에서는 독도가 우리땅임을 확인하는 확고한 결의를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독도 관련 시위현장을 보면서 하나 흥미로운 것은 우리 사회의 좌우, 진보와 보수가 모두 동일한 목소리를 내면서 하나가 되어 결의를 다진다는 점이다. 대북정책을 포함하여 한·미관계와 주한미군, 이라크 파병 등 거의 대부분의 외교안보 이슈에서 진보와 보수는 이른바 남남갈등이라는 의견 대립을 보이고 있다. 똑같은 사안을 놓고도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의 접근법과 해법은 놀라울 정도로 상이했고 양극단을 달리곤 했다. 그런데 독도문제가 터져 나오자 우리나라의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 심지어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 모두 똑같은 분노와 결의를 표출하는 것이다. 일본대사관 앞에 반핵반김 단체 회원과 한총련 및 통일연대 회원들이 같은 목소리로 일본 규탄을 하는 모습은 분명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나 독도문제에 관한 한 남남갈등이 무색할 정도로 한목소리를 냈지만 여전히 북핵문제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진보진영은 미국의 대북 무시 정책과 협상의지 결여를 비판하면서 미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북한 요구에 귀 기울일 것을 요구하는 반면 보수진영은 북한의 핵카드가 협상용이 아니라 핵보유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는 인식하에 북한의 강경노선이 사태를 악화시키므로 북한의 태도변화가 선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독도 문제에서는 보수 진보의 구분 없이 일본을 비판하는 똑같은 입장을 보이지만 북핵문제에 대해서는 반미와 반북이 강조되면서 서로 다른 인식과 해법을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독도 문제만을 따로 떼어 이야기할 때는 소리 높여 반일을 외치던 보수진영이, 독도와 북핵문제가 섞여서 다뤄지면 일부이긴 하지만 딜레마에 빠져 내심 반일의 정도가 약해지곤 한다. 독도와 북핵 중 어느 것이 더 시급한 것이고 따라서 일본과 북한 중 어느 편이 더 적대적인가를 놓고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얼마 전 필자가 토론자로 참석한 북핵관련 세미나에서는 독도문제보다 북핵문제가 보다 사활적인 안보 이슈라면서 독도 문제를 이유로 북핵을 해결하기 위한 한·일공조가 약화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즉 보수진영의 입장에선 독도로 인해 북한을 압박하는 한·일공조가 흔들리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고민이 존재하는 것이다. 독도문제를 따로 고민하면 일본의 책임을 묻고 비판할 수 있지만 독도와 북핵문제가 같이 고민되면 일부 보수진영은 생각이 복잡해지는 것 같다. 북한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가 더 큰 나머지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이 밉긴 하지만 그것이 자칫 북핵전선에서 한·일간 공조를 해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앞서기 때문이다. 특히나 독도문제를 놓고 남북공조의 필요성이 거론되는 상황은 더더욱 보수진영에 용납하기 힘든 것이 된다. 북한 때리기를 위해 한·일공조가 더 필요한 마당에 독도 때문에 남북공조로 일본규탄을 한다면 이는 우리 보수진영에 매우 난처한 지경이 될 것이다. 민족보다 반공이 더 중요했고 반공을 위해서라면 친일파 등용도 용인할 수밖에 없었던 광복 후 역사가 오버랩되면서 씁쓸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김근식 경남대 정치학 교수
  • [씨줄날줄] 지도자의 인기/이목희 논설위원

    노무현 대통령 지지도가 수직상승하고 있다고 한다. 조사기관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지난해 11월 바닥을 친 뒤 연초 경제실용주의 표방으로 소폭 올랐다. 근래 들어 일본의 독도망동에 강력대응을 천명하면서 40%선까지 훌쩍 뛰었다. 청와대측은 “최신 조사에서는 50%에 육박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치지도자의 단기승부에서 ‘애국심’만한 호재가 없음을 보여준다. 민족주의를 강화하든지, 가상적국이 생기면 지지율은 오른다. 최근 한·일관계는 집권자의 국내지지도와 연관됨으로써 더욱 개선되기 어려운 국면에 빠져들었다. 이런 상황이 초래된 데는 일본에 1차적 책임이 있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 역시 지난해 지지율이 30%로 떨어졌다. 지지도 만회를 위한 고이즈미의 선택은 ‘중국 위협론’과 ‘우경화’였다. 친미(親美)로 중국을 견제하는 구도를 노골화하고 있다.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독도·과거사 파문도 일련의 스케줄이 있는 듯 비친다. 역사망언으로 인기를 끌려는 대표주자는 이시하라 도쿄도지사다. 원래 반미주의자였던 그마저 최근 친미로 돌았다.‘친미 우경화’는 지금 일본 지도자에게 그만큼 매력적이다. 한국 여론은 반대다. 중국에 우호적 시각이 늘고 있다. 미국에 당당한 목소리를 내고, 일본을 두들기는 게 지지율에 도움이 된다. 그런데 일본이 앞서 도발해왔으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긴장관계가 지지도를 높이는데 그치면 걱정이 없다. 자칫 안보·경제면에서 국내정책과 비교할 수 없는 파장을 일으킬까 우려되는 게 문제다. 먼저 가속기를 밟은 일본은 슬슬 부메랑을 맞을 조짐이다. 중국의 반격으로 무역 손해가 예상되고 있다. 한국·중국은 물론 러시아까지 일본의 영토 야욕을 비난하고 나섰다. 올가을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꿈이 무산된다면 고이즈미 외교는 큰 위기에 처할 것이다. 한국도 북핵, 경제를 고려할 때 꽃놀이패라고 여기기 어렵다. 한국·일본 모두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단기 지지율을 생각하고 대일 정책을 펼쳐서는 안 된다. 갑자기 오른 지지율은 조금 삐끗하면 다시 떨어진다. 일본을 혼내는 것은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 한·중·일을 EU같은 경제협력 관계로 끌어올리기 위함이다. 다른 의도가 깔렸거나, 비난 자체를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박세일 “정치인 탤런트 전락…이번주 탈당”

    박세일 “정치인 탤런트 전락…이번주 탈당”

    18일 밤 경기도 안성 도피안사(到彼岸寺)에서 한나라당 박세일 전 정책위의장을 ‘기습적’으로 만났다. 행정도시특별법 통과에 반발, 지난 4일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한 뒤 머물던 사찰이다. 박 의원은 머뭇거리다가 ‘불청객’에게 ‘탈당 의사’를 내비쳤다. 그는 “사퇴문제를 4월 임시국회로 넘길 생각은 없는데 김원기 국회의장이 굳이 사퇴서를 수리해주지 않는다면 선거법에 따른 절차밖에 없지 않으냐.”고 반문한 뒤 “머잖아 결정해야겠다.”라고 말했다. ‘결정’이 탈당을 뜻하냐고 물었더니 “그래야 되겠지.”라고 답했다. 나아가 “박근혜 대표가 없을 때 (탈당계를 내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 22일 귀국한 뒤 만나서 의사를 전하겠다.”면서 “탈당하더라도 ‘동료 의원들과 당원 여러분께 드리는 글’로 애당심과 탈당의 불가피함을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박 의원의 정치 철학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정책 지향’를 호평했지만 일각에서는 ‘지나치게 이상적’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그는 “‘정치는 현실’이란 걸 모른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그런 평가도 가능하다.”고 전제,“그러나 이상이 없으면 정치가 공적(公敵)이 될 수 있다. 현실주의의 승리는 현실 유지에는 도움이 됐지만 정작 역사를 발전시킨 것은 ‘이상주의의 좌절’이었다.”며 아쉬움을 에둘러 피력했다. 거의 마음을 비운 듯하다. 그러면서도 “13∼15년 사이에 선진국에 진입하지 못하면 영원히 실패한다.”면서 정치권에 열정적으로 ‘쓴소리’를 토로했다. 그는 “일본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선진국 문턱에서 주저앉았다.”면서 “그 원인이 포퓰리즘·평등주의식 통치다.”고 진단했다. 이어 “수도분할법도 그 전형인데 이걸 막지 못해 더 마음이 아프다.”면서 “20세기 인류 경험이 말해주듯 사회주의식 개혁이 아닌 자유주의·시장주의적으로 접근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화제가 최근 그와 전재희 의원을 상대로 한 KBS­TV의 ‘시사 투나잇’의 ‘누드 패러디’로 넘어가자 사뭇 개탄했다.“요즘 정치가 이미지·이벤트만 있음을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다. 비전·정책이 없으니 정치인은 탤런트가 됐고 정치권은 권력투쟁만 남았다.” 독도 문제에 대해서도 원인과 해법을 제시했다. 먼저 원인으로 “일본·중국이 한국을 우습게 보는 것인데 이는 한·미 관계 약화와 고도성장이 멈춘 데서 비롯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중국은 미국 등을 타고 중진국 진입을 서두르는데 우리는 되레 내리려 한다.”면서 “대미 관계는 단순히 친미·반미 차원이 아니라 국익을 고려해야 하는데 노무현 정권이 인기 영합용으로 한 발언이 이를 훼손시키자 중국·일본이 오만해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그 연장선상애서 “정부·국가 차원에서 이슈화 하면 국제법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는데 이는 일본이 노리는 바다. 차라리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대응하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나름의 해법을 내놓았다. 그의 ‘독도 해법’은 공교롭게도 박 대표와 같았다. 내친 김에 박 대표에 대한 평가를 물었다.“정책 정당에 집념·애착이 강한 분이다. 정치인 박근혜는 균형감각과 합리성을 겸비, 오래된 정치인의 탁(濁)함이 없는,‘맑은 정치인’이다.” 인터뷰를 마친 박 의원은 기자의 늦은 공양을 지켜본 뒤 귀경 길을 배웅했다. 합장하는 그의 두 손에 ‘이상주의자의 좌절과 희망’이 포개져 있었다. 안성 이종수 · 사진 오정식기자 vielee@seoul.co.kr
  • [라이스 美국무 방한] 여중생 사망·반미여론… 날카로운 질문에 ‘진땀’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한국 인터넷 기자들의 날카로운 질문 앞에서 진땀을 흘렸다. 라이스 장관은 20일 오전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미 정부의 고위급 인사로는 처음으로 방한 중 인터넷 기자들과 토론을 가졌다.40여분 동안 북·미 갈등 해결 방법, 일본의 우경화 현상, 여중생 사망 사건 및 우리 사회내 고조되는 반미 여론 등이 주된 질문 주제로 활용됐다. 하지만 그는 북한의 주권국가 인정,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지지, 한·미·일 관계의 동등한 중요성 등만을 되풀이하는 원론적인 답변으로 비켜나갔다. 이날 기자 간담회에는 진보적 성향의 인터넷 매체 기자들이 대거 참석해 ‘진보 질문’을 주도하며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 사건에 대한 공식적 사과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또한 독도 문제에 대해 중립을 강조하는 라이스 장관에게 미국의 입장을 집요하게 물으며 ‘사실상 일본 편향’이 아니냐는 의혹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피플 인 포커스] 美국무부 공공외교 차관 내정 카렌 휴즈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카렌 휴즈(여·48) 전 백악관 고문을 국무부 공공외교(홍보) 담당 차관에 임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휴즈 전 고문은 칼 로브 백악관 정치보좌관 겸 비서실 부실장과 함께 부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로브가 전략의 명수라면 휴즈는 그 전략을 대중에게 홍보하는데 비범한 재능을 갖고 있다. 휴즈는 로브와 마찬가지로 ‘텍사스 사단’의 일원이다. 텍사스 지역의 방송국 리포터였던 휴즈는 1994년 부시를 만나 공보업무를 시작했으며 두 차례의 텍사스 주지사 선거와 2000년 대선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부시의 대통령 취임 후 백악관 고문으로 임명됐으나 2002년 7월 사표를 던지고 고향인 텍사스로 돌아갔다. 아들 로버트(17)를 뒷바라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지난해 8월 대선을 앞두고 부시 캠프로 다시 돌아와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다니며 홍보전략을 진두지휘했다. 그녀의 정치적 위상은 교육장관에 임명된 마거릿 스펠링보다 훨씬 높다. 그런데도 부시 대통령이 휴즈에게 차관직을 맡기는 것은 전세계를 상대로 한 미국의 이미지 개선 작업이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미 언론은 분석했다. 휴즈는 특히 이라크 침공으로 악화된 이슬람 세계에서의 반미감정을 개선하고 ‘중동 민주화’의 명분을 홍보하는 작업에 집중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도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휴즈가 외교를 직접 담당한 경험은 없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홍보전을 치른 적이 있다. 당시 휴즈는 탈레반에 의해 집안에 ‘갇혀있던’ 아프간 여인들에게 초점을 맞춘 홍보 캠페인을 전개했었다. dawn@seoul.co.kr
  • 있는 그대로의 미국사 1,2,3/앨런 브링클리 지음

    미국은 싫든 좋든 우리가 알아야만 하고, 극복해야만 하는 과제이다. 오늘날 세계는 극심한 변화의 가운데 있으며, 그 변화을 주도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기 때문이다. 또 80,90년대의 ‘반미와 친미’라는 2분법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 세계속에서의 미국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에 출간된 ‘있는 그대로의 미국사 1,2,3’(앨런 브링클리 지음, 황혜성 등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은 미국에 대한 보다 균형잡힌 이해에 참고가 될 만한 책이다. 미국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지은이는 이 책에서 다양성과 통합성이라는 두 개의 힘이 미국의 역사를 변형시키고 있다는 시각을 제시한다. 한편에서는 미국사회를 형성한 다양한 집단들, 즉 지역, 인종, 성, 민족, 종교, 계급에 기초하여 내부에서 발전한 독특한 세계를, 다른 한편에선 미국이 지닌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하나로 뭉치고, 존속·번영할 수 있도록 만든 통합의 힘에 대한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다양한 시작’이란 부제의 1권은 식민지 시기부터 남북전쟁 직전까지의 시기로, 다양한 구성으로 시작한 신생국가가 국가주의를 형성하는 가운데 통합되는 이야기를 다룬다.2권(부제:하나의 미국)은 남북전쟁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시기로, 남북전쟁과 서부 정복,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쳐 제국주의로 치닫는 과정을 기술한다.3권(부제:미국의 세기)에선 1·2차 세계대전에서 9·11테러 이후의 21세기 초까지, 세계속의 미국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특히 ‘과거를 논하며’란 특별 지면을 두어 역사의 주요 쟁점에 대해 종래 역사학자들의 견지를 소개하고 새로운 해석을 보태 미국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을 돕고 있다. 노예제도의 기원과 본질, 미국혁명, 남북전쟁의 원인, 프런티어와 서부, 이민, 대공황의 원인, 베트남 전쟁 등에 대한 해석을 둘러싼 논쟁을 상세히 소개했다. 각권 2만 3000원∼2만 5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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