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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태원사건과 한미관계(사설)

    며칠전 서울 이태원에서 있었던 시민과 미군 사병들 사이의 충돌은 급기야 주한미군 당국의 소속장병 및 군속,그 가족들의 이태원 유흥가 무기한 출입금지조치로까지 확대됐다. 사건의 발단이나 경위로 볼때 시민 몇명과 미군 사병들간의 관습의 차이나 의사소통문제로 돌려서 이해하려 들면 얼마든지 해결될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현지조사 과정에서의 감정대립과 한미 관계당국간의 견해차이가 이런 결과를 빚은 데 대해서는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이맘 때도 비슷한 사건이 군산에서 발생했었고 이태원에서는 유사한 사건이 비일비재한 형편이다. 우리는 이같은 일련의 사건들을 지켜볼 때마다 안타까운 심정과 함께 미국에 대한 우리 국민의 시각과 감정이 어쩔 수 없이 크게 변해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미군 당국은 『주한미군들의 건강과 복지를 보호하기 위해 취해졌다』며 『생명이 위급할 때는 어떤 조치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그러나 미군 당국의 조치와 배경설명이 사건 자체에 대한 과장된 인식이나 과잉방어의식의 소산이 아닌가 보여 씁쓸한 마음이다. 또한 주권국가 시민의 입장이나 국민감정을 전혀 도외시한 지나친 우월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사실 한미 관계를 가리켜 모든 것이 잘 돼가고 있다고 말하던 시대는 지났다. 전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일도 꼭 시비를 가려야 직성이 풀린다. 지난 40여년간의 무조건적인 동맹과 우호관계에 조정과 개선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그것을 감정적인 배외의식이라거나 단순한 반미감정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시대의 변화일 수도 있고 발전의 양상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양국관계가 과거의 수직적인 것에서 수평적인 것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겪어야 할 필연적인 결과로 봐야 할 것이다. 이같은 인식을 토대로 할 때 우선 해결해야 할 과제중의 하나가 「주한미군에 관한 한미간의 행정협정」의 개정문제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은 재판권 관할문제인데 양쪽 당국은 해마다 이 문제를 논의는 하면서도 매듭을 짓지 못하고 있다. 작년 군산의 경우 미측의 양해로 우리 법무부가 미공군소속 가해사병에게 1차적인 재판관할권을 해사키로 함으로써 급한 불은 껐으나 유사한 사건의 재발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것이다. 이번 이태원 사건이나 그에 대한 미군 당국의 과잉대응을 지켜 보면서 우리는 거듭 한미간의 새로운 위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양국 관계가 주둔군으로 말미암아 상호 불필요한 자극이나 마찰을 가져오지 않도록 배려 있기를 바라마지 않기 때문이다. 미군은 또한 그들의 한국주둔이 한국을 위한 것이고 그들이 군대라는 특수조직이라는 점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나머지 한국인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이 크게 변했고 한미 관계가 달라졌듯이 한국인의 대미 시각도 크게 변했다. 국제사회에서의 지위와 기능역할도 달라졌고 무엇보다 한국 국민의 의식수준이 엄청나게 달라졌다는 사실을 미국은 알아야 한다.
  • 미군속­시민들 사소한 시비서 발단/미군 이태원 통금까지의 과정

    ◎8일새벽 술취한 미군속차가 한국인 들이받아/일행 8명 격렬항의…순찰 미헌병이 권총위협/미언론선 「폭도」로 표현…현장검증요구도 거부 12일 주한미군당국이 미군과 군무원및 그가족에 대해 이태원유흥가 출입을 금지시키기에 이른것은 지난 8일 새벽 이태원에서 발생했던 미군과 한국시민들과의 충돌에서 비롯됐다. 사건의 발단은 서로간 관습의 차이·언어소통문제등 이해하려면 얼마든지 조용히 해결할 수 있었던 것으로서 최근 한·미간의 미묘한 상황과 이에따른 고집등으로 미군의 출입금지에 이르기까지 점차 악화돼가고 있는 느낌이다. ▷사건경위◁ 8일 새벽 1시20분쯤 백봉훈씨(24·상업)등 전날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일행 8명은 술을 마신뒤 용산구 한남동124 「홀리데이호텔」앞에서 택시를 잡기위해 차도로 내려섰다. 이때 미8군통신여단소속군속 케네스 맥거원씨(59)가 술을 마시고 서울10­3­5568호 도요타 승용차를 몰고가다 오른쪽 범퍼로 백씨의 발을 친뒤 잇따라 일행 이상국씨의 팔을 백미러로 스쳐 이씨가 안고있던 아들(4)을 떨어뜨리게하고 그대로 진행했다. 그러자 백씨등이 몰려가 교통체증으로 멈춰있던 맥거원씨의 승용차를 둘러싸고 거세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이때 반대편 차선으로 진행중이던 미8군헌병대소속 순찰차가 이광경을 목격,게리 스웝중사(35)와 폭스 스티븐일병(19)이 달려와 맥거원씨에게 항의하는 백씨를 곤봉으로 위협해 그자리에 꿇어앉혔다. 이씨가 이어 미군들에게 「맥거원씨의 차에 받혀 아이가 다쳤다」는 상황을 「베이비」등 몇마디 단어와 한국말로 어렵게 설명했고 미군들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이씨에게 차에 타라는 신호를 해 이씨가 차에 타는 순간 이를 구경하고 있던 40∼50여명의 시민들이 미군들이 이씨를 연행하는 것으로 생각해 헌병순찰차를 둘러싸고 항의했다. 새벽 이태원 유흥가에서 이상한 다툼이 계속되자 시민들은 순식간에 2백여명에 이르게 됐고 시민들이 불어나자 미군들은 시민들이 집단으로 자신들을 공격하는 것으로 판단해 이씨를 매단채 차앞을 가로막고 있는 사람들을 밀어붙이고 그대로 전진 이씨등 4명이 다시 다쳤다. 이에 흥분한 시민들이 순찰차에 올라타 앞유리창을 부수기 시작했으며 놀란 두명의 미군은 권총을 빼들어 군중들을 향해 겨누고 곤봉을 휘두르며 3백m쯤 떨어진 이태원파출소로 피신했고 혼란한 틈을 타 맥거원씨도 차를 몰고 달아났다. ▷미군측주장◁ 충돌이 일어난 다음날 AP통신은 『반미감정을 지닌 한국인 폭도들이 미군을 공격했다(mob attack)』는 내용의 기사를 과거 대학생들의 미문화원점거사건 등의 반미행동 일지까지 덧붙여 보도했다. 미8군당국은 11일 각 언론사에 보낸 보도자료에서 『맥거원씨가 혼잡한 유흥가 지역을 지날때 한국인들이 그의 차위에 올라타 유리창을 깨자 빠져나가려 했으나 군중들에 의해 멈출수밖에 없었다』면서 맥거원씨에 대한 음주측정결과,『맥거원씨가 알코올때문에 행동을 잘못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발표했다. 또 『한국인들은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혼잡한 길거리에 서있었으며 한미행정협정에 따라 군영내를 벗어난 지역이라 할지라도 주한미군및 그 재산을 보호할 권리를 지닌 헌병들의 정당한 권리행사를 이들이 오인했다』고 주장했다. ▷한국측대응◁ 비교적 심한 상처를 입은 백씨와 이씨는 가까운 현대병원에 입원하는 한편 이사실을 경찰에 신고했다. 관할 용산경찰서는 백씨등 6명으로부터 「피해자조서」를 받은 한편 미8군 범죄수사대와 협의해 10일 하오2시에 맥거원씨와 스윕중위등 미군 2명,백씨등 피해자들을 모두 출석시키고 합동현장검증을 하기로 했으나 미군측은 『한국언론이 미국측에 불리하게 보도한다』는 이유로 현장검증에 나오지 않았다. 한편 백씨등 피해자들과 이날 사건을 목격한 이태원일대의 시민들은 『사고를 일으키고 달아난 맥거원씨에게 항의하는 피해자들을 「폭도」로 취급한 미헌병들의 행동은 도저히 이해할수 없다』며 『더구나 그들이 사과는 커녕 이태원일대의 미군출입금지령까지 내리는 조치는 도저히 이해할수 없다』고 분개하고 있다.
  • “노대통령과 현안논의 용의”/김대중총재 부천연설

    ◎3당통합후 대화재개 첫공식제의/정당추천 지자제보장 전제/「광주」·개혁입법·민생등 협의 【부천=김명서기자】 평민당의 김대중총재는 1일 정국의 원만한 운영과 현안문제들을 처리하기 위해 노태우대통령과 만날 용의가 있다고 대화를 제의했다. 김총재는 이날 부천시민운동장에서 열린 평민당국정보고대회에서 『노대통령이 지난해 12월 여야간에 이루어진 정당추천제등을 골격으로한 지자제실시합의를 준수하겠다고 국민앞에 천명한다면 노대통령과 만나 광주문제,개혁입법,민생문제등 당면한 현안문제에 대해서 격의없는 논의를 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김총재는 『지자제실시문제의 해결없이는 5월 임시국회의 순조로운 운영도 있을 수 없고 앞날의 정국에서의 타협도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정계개편이후 평민당이 주최한 첫번째 옥외집회로 3만여명의 시민이 참가했다. 김총재는 이날 『지난 2년동안 일부 과격한 사람들이 불필요한 폭력을 행사하고 용공반미구호를 외쳐 정권으로부터 탄압의 빌미를 주었다』고 지적하고 『총선·지자제실시와 민생안정을 요구하는 1천만명 서명운동을 비폭력 비용공 비반미의 원칙아래 추진해나가 전국민적인 지지를 받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총재는 『현재의 국회는 민의를 대변할 자격이 없다』고 지적,의원직 총사퇴를 통한 총선실시를 또다시 주장했다. 한편 집회에 참석했던 학생·근로자 1천여명은 이날 하오 5시쯤 행사가 끝난뒤 시위를 벌이다 해산됐다.
  • 쌀값 큰폭 오름세/6개월새 2만원 올라

    ◎80㎏ 1가마에 10만원 넘어 쌀값이 오름세를 보여 가마당 10만원을 넘어섰다. 28일 부산 창원 속초지역에서는 상품 80㎏ 1가마에 10만5천원에 거래됐으며 수원에서는 10만1천원,목포 9만9천원,대전에서는 9만6천원에 거래되는등 전국 주요도시의 평균 쌀값이 10만1천원을 기록했다. 이처럼 쌀값이 오른 것은 정부가 일반미값을 끌어올리기 위해 정부미 방출을 억제하고 있는데다 중간상인들이 쌀값상승을 예상,산지쌀을 대량으로 사들이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현재의 쌀값은 정부수매가를 밑돌았던 지난해 9월20일에 비해 6개월사이 2만3천원이 오른 셈이다.
  • 강택민의 「평양나들이」 2박3일

    ◎중국ㆍ북한,“사회주의 공동보조”재확인/북,「등소평식 권력승계」지지 요청한듯/「한ㆍ중 경제교류」엔 미묘한 입장차이/「한반도」문제 집중논의… 중국의 유연한 대한관 표출 강택민 중국공산당총서기의 북한방문은 지난해 11월 김일성의 비밀북경방문에 대한 의례적인 답방의 형식을 띤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강택민총서기와 김일성과의 3차례에 걸친 공식회담에도 불구하고 회담에 따른 구체적인 합의사항이 공개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이제까지 알려진 내외신보도를 종합할때 강총서기와 김일성은 이번 만남에서 ▲공산권의 변혁에 따른 공동대처방안 ▲한ㆍ중국관계를 비롯한 한반도문제 ▲북한의 권력세습문제 등을 거론한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특히 15일 첫 회담후 열린 강택민총서기의 방북환영리셉션에서 김일성이 『제국주의를 반대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공동위업수행에서 중국인민과 어깨걸고 함께 싸워나갈 것』임을 역설하고,강총서기 역시 『추호의 동요도 없이 사회주의 노선을 따라 나갈 것』을 강조함으로써 중국과 북한은 소련 및 동구공산국가들의 개혁과 관계없이 정치개혁을 거부하는 한편 아시아적 사회주의노선을 공동으로 구축해 나가겠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통일 연수원 윤병익교수는 『강총서기와 김일성의 이같은 발언은 북한과 중국이 소련ㆍ동구에 이어 아시아의 몽고에까지 파급된 정치개혁을 거부한다는 기존입장을 재확인하는 것으로 중국ㆍ북한ㆍ베트남이 연계해 아시아형공산주의를 완성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며 그러나 이는 중국이 대외개방정책과 경제체제개혁을 거부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닐 뿐아니라 북한역시 84년 합영법도입이래 시도해온 경제적 대외개방정책을 포기한다고 선언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도흥렬교수(충북대)는 『북한이 50만명의 주민을 동원, 대대적인 환영행사를 펼치면서 강총서기를 최고의 국빈대접을 한 것은 북한이 소련이나 동구의 개방압력에 독자적으로 대응하기에는 힘의 한계에 도달했음을 시인하는 것』이라고 진단하고 김일성은 강총서기와의 이번 회담에서 중국과의동지적 유대를 일층 강화,외부의 압력에 저항하면서 자신의 의도에 따른 계획적 개방조치를 취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필요했고 이런 측면에서 이번 회담은 소기의 목적을 거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도교수는 『김일성이 2차회담에서 강총서기에게 북한의 사회주의 건설작업에 관해 설명하고 당과 정부가 경제건설을 더욱 강력히 추진할 것을 밝힌 것은 개혁을 하되 사회주의 이념을 고수하면서 「우리식대로 하겠다」는 자신의 방침을 전달하고 이에 대한 중국의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강총서기가 김정일에 대한 권력세습을 승인하는 대가로 양국간의 단결과 우호를 가일층 강화하는 문제가 중점 논의됐을 것』이라는 홍콩의 성도일보의 보도와 강총서기가 자신의 방문목적을 김일성이외의 다른 당지도자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사실,김정일과 강의 만남이 이번이 처음이라는 사실 등을 들어 강총서기의 이번 방문이 김정일세습체제에 대한 중국의 보증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는 프랑스 르몽드지의논평에도 불구하고 이를 입증할 만한 구체적인 사실은 밝혀지지 않고 있어 이문제가 어느정도 비중을 두고 다뤄졌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도흥렬교수는 『북한이 당총비서와 국가주석직을 하나의 개념으로 보는 기존의 수령론을 필요에 따라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할때 김정일의 4월 승계설은 설득력이 있으며 그럴 경우 현재 중국에 편향되어 있는 김일성이 등소평식의 권력승계 모델을 뒤따르려 할 것이고 따라서 이번 회담에서 그 의사를 강총서기에게 전달하고 이에 대한 지지를 요청했을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윤병익교수는 『북한이 처한 여러가지 상황이나 서구 정치학적인 시각에서 볼때 김정일의 권력승계설이 설득력은 있으나 이를 단언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보나 근거가 없다』며 이번 강택민의 방북회담에서 김일성­김정일권력승계문제가 과연 논의됐는지 속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강택민총서기의 방북중 한ㆍ중관계등 한반도문제는 예상대로 심도있게 거론된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이제까지 드러난 것을보면 중국은 북한에 대해 한국과 정치적인 교류,더 나아가 국교수립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전달한 것으로 보이나 경제교류 등의 문제에 있어서는 미묘한 입장차이를 보인 것으로 분석된다. 강택민은 주한미군철수,남ㆍ북한과 미국과의 3자회담지지등 북한의 통일방안에 적극적인 동의를 표명했으나 김일성의 『남조선인민은 반미ㆍ자주화ㆍ반파시스트투쟁을 용감히 전개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언급을 회피하고 북한의 고려연방제통일방안에 대해서도 『북한의 많은 합리적 주장과 제안을 지지한다』고 우회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유연한 대한관을 표명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편 김창순씨(북한연구소이사장)는 강총서기가 밝힌 3자회담개최촉구,주한미군철수주장 등은 중국이나 북한으로 봐서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그가 북한 및 대만과의 관계 등을 고려해 2개의 한국을 인정하는 선까지 발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면서도 오는 10월 북경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한국과 경제ㆍ문화ㆍ체육 등의 교류를 강화할 수 밖에 없는 불가피성을설명하고 이의 양해를 구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중국­북한 미묘한 시각차/일 통신,강택민ㆍ김일성 연설내용 분석

    ◎반미투쟁 강조,개방문제 침묵 김/북측 통일안외 합리적 대안도 지지 한국ㆍ미 비난 삼가며 국제협력 촉구 강택민 북한을 방문중인 강택민 중국 공산당 총서기와 김일성은 특히 미국과 한국에 대해 미묘한 인식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김일성은 14일 환영연에서 『중국이 항미수조의 슬로건아래 한국전에 참여한지 40주년이 된다』며 반미를 기조로 발언을 한데 반해 강택민 총서기는 미국을 비판하지 않았다. 한국에 대해서도 김일성은 『남조선 인민은 반미ㆍ자주화ㆍ반파시스트 투쟁을 용감히 전개하고 있다』고 했으나 강택민은 「파시스트 비판」에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으며 북한이 내건 고려 연방제에 대해서도 『북한외의 많은 합리적 주장과 제안을 지지한다』고 말한 것으로 15일 교도(공동)통신이 북경발로 보도했다. 뿐만아니라 강택민은 『북남간의 장벽타파,최고당국자 회담,조선반도 정세의 완화』등 서방측에서도 쓰이는 좋은 말을 사용,대한 유화자세를 내보였다. 강은 평화공존 5원칙에 입각한 세계 모든 나라와의 관계발전을 목표로 한다고 말함으로써 대외개방 정책의 불변을 강조한 반면 김일성은 반제국주의에 역점을 둔채 대외개방에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교도는 말했다.
  • 워싱턴∼평양 “새로운 냉기류”/미­북한관계 최근 흐름을 보면

    ◎미의 잇단 유화조치에도 북한측 냉담/여행허가 신청 거부등 서로 강경 대응/미,상호주의 철저 고수… 일방적 양보는 없을 듯 미국이 대북한관계개선 노력에 「상호주의」 입장을 철저히 견지하고 있다. 미국의 88년 10월 대북한 유화조치에 북한이 「화답」하지 않는 한 미국의 일방적인 양보는 더이상 없으며 평양이 「강경」으로 나오면 워싱턴도 「강경」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또 한국과 소련이 수교하더라도 교차승인원칙에 얽매어 미국이 북한을 자동 승인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공공연히 시사하고 있다. 미정부의 이같은 태도는 「변화하지 않는 북한」에 대한 「실망과 불만」의 표시이자,변화를 촉구하는 「경고」의 의미로 워싱턴의 한반도문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지난 2월 북한이 연례적인 한미합동군사훈련 팀스피리트의 실시를 트집잡아 남북대화는 물론 모든 미ㆍ북한접촉을 중단시키자 워싱턴과 평양간에는 새로운 냉기류가 표면화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미 스탠퍼드대 군축문제연구소가 추진해온 남­북한­미 3국 학자들간의 군축세미나 개최(3월26일∼30일)에 합의했다가 참가를 철회한 데 이어 자신들의 초청으로 평양방문길에 오른 워싱턴 소재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수석연구원 윌리엄 테일러에 대해서도 중도에서 입국 불허를 통보했다. 지난 6일 미국무부는 북한의 유엔주재 대표부 차석대사 허종이 IMF(국제통화기금)본부 방문을 이유로 제출한 워싱턴 여행허가 신청을 거부했다. 미국은 또 이번에 미측이 제의할 차례인 북경에서의 미­북한 외교관 접촉을 잠정동결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실망과 불만은 남북한 교차승인 문제에 관한 미정부의 입장을 밝힌 지난 13일의 국무부 논평에 잘 나타나 있다. 국무부는 이 논평에서 『한국의 대소접근과는 달리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향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노골적으로 지적했다. 미국은 노태우대통령의 7ㆍ7선언에 호응하여 88년 10월31일 발표한 대북제재 완화조치를 통해 ▲미ㆍ북한 외교관 접촉을 재개,북한의 대미접촉길을 터주는 동시에 ▲미국인의 북한 여행을 자유화하고 ▲미ㆍ북한간비정치적 교류및 ▲인도적 교역을 허용했다. 워싱턴은 이 조치에 대해 북한이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반응을 보여야 다음 단계의 조치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는 「상호주의」 추구입장을 처음부터 분명히했다. 그리고 88년 12월6일 이래 북경에서 갖고 있는 양측 외교관 접촉에서 북한측에 대해 ▲남북대화의 진전 ▲6ㆍ25참전 미군유해 송환 ▲반미선전 중단 ▲비무장지대내 신뢰구축 조치 ▲핵 안전협정 수락 ▲테러리즘 포기 선언 등 6개항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것을 촉구했다. 미국은 특히 남북한 관계의 진전에 따라 미ㆍ북한 관계도 진전될 수 있다며 북한에 대해 무엇보다도 남북대화를 중시하도록 강조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이에 대해 북한측은 ▲주한미군 철수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 ▲양측 접촉수준의 참사관급에서 대사급으로 격상 ▲유해 송환을 위한 양국 정부간 협의 등을 주장하는 바람에 진전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지난 1월18일의 마지막 7차접촉에서 북한측은 미군 유해 5구의 송환을 위해 미의회의원 초청 계획을 통보하고 팀스피리트훈련이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킨다며 이의 취소를 요구했다. 북한은 유해 송환을 위해 양국 정부간 협상을 갖자는 그들 주장을 미국이 끝내 반대하자 미의원들을 초청,이 문제를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미국은 유해 송환문제가 판문점의 군사정전위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북한측의 미의원초청 계획에 반대했다. 미국무부의 드세이 앤더슨 동아태담당부 차관보는 13일 의회 증언에서 『북한과의 관계가 더욱 확대되기를 바라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라고 밝히면서도 『그러나 평양이 핵 안전협정 수락,테러리즘 포기 선언 등과 같은 믿음을 주는 조치를 취해야 미­북한 대화가 진전될 것』이라며 상호주의 원칙을 거듭 확인했다. 따라서 북한측의 태도 변화가 없는 한 미­북한 접촉은 재개되더라도 실질적인 진전이나 급격한 진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 분단의 「미ㆍ소 공동책임론」/한종태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통일원이 9일 동서양진영의 신데탕트 추세에 맞춰 공무원 교육기관ㆍ기업체 연수기관 등에 배포한 「통일교육지침」의 일부 내용이 큰 논란을 빚고 있다. 문제가 된 내용은 한반도 분단의 경위를 설명하면서 「분단책임주체로서의 미소에 대한 균형적 인식」을 강조한 대목으로 분단의 미소공동책임론을 전개,종전의 반공교육과 궤를 달리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반공교육은 분단과 6ㆍ25전쟁의 책임에 대해 『소련이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는 점에서 이번 지침은 사뭇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결국 이번 지침은 정부가 그동안 경원시했던 수정주의적 시각을 원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러나 이같은 갑작스런 인식변화가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인지,대다수 국민들로부터 광범위한 의견수렴과정을 거쳤는지 많은 사람들이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대미협력강화와 반공이데올로기 등을 「국시」로 교육받았던 이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통일원측은 80년대들어 반미감정의 증폭과 더불어 『분단의 주요책임은 미국에 있다』는 대학생들의 그릇된 의식을 바로잡기 위해 「미소의 분단공동책임론」을 강조했다고 설명한다. 통일원 관계자는 이같은 표현이 이번에 갑작스럽게 나온 것이 아니라 지난해 문교부에서 마련한 「통일안보지침서」에도 비슷한 내용이 적혀 있다고 밝히며 결코 「반공」국시와는 반대입장에 있는 수정주의적 입장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대다수 국민들이 제대로 마음의 준비자세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분단에 대한 인식변화가 공식적인 정부문서에 표기됐다는 점에서 좋은 인상을 심어줄리 없다고 본다. 비록 젊은층의 편향된 인식을 고쳐준다는 순수한 목적으로 지침을 마련했다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엄청난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사실도 충분히 고려했어야 했다. 남북관계 전문가들은 또 정부가 최근의 동구권 개방화와 함께 한소수교 가시화 등 최근의 「장미빛 미래」에 지나친 환상과 기대를 갖고 있지 않은가 지적하고 있다. 여하튼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추진의 주도기관인 통일원은 국민들간에 「인식의 아노미(anomie)」현상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지적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다. 이러한 때에 통일원이 일반 국민들의 오해가 없도록 문제가 된 표현을 자세히 서술하는 방향으로 수정하기로 했다니 정말 다행스럽다.
  • 통일논의와 교육의 새 방향(사설)

    90년대의 전반기는 남북한관계 전개에 있어 중대한 전환기로 전망되고 있다. 동구 사회주의국가들의 민주적 변혁과 동서화해추세,북한 내부의 경제난및 김일성부자의 권력승계문제 등 한반도 내부의 여건변화가 그러한 전망의 근거가 되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정부가 최근 주변정세변화와 남북교류협력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대국민 통일안보교육을 보다 전향적인 통일인식의「통일교육」으로 바꾸겠다는 정책의지가 바로 그것이다. 정확히 지적하건대 종래 우리의 통일관련교육은 근본적으로 안보와 반공의 논리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지나간 시대 우리에게 있어 반공과 안보와 통일은 한반도 문제해결 과정에서 삼위일체를 이루는 대명제였다. 안보와 통일문제가 정권유지차원에서 이용됐다거나 하는 부정적 시각도 여기서 비롯됐다. 통일이 먼저냐,반공이 우선이냐 하는 소모적인 국시논쟁이 한때 정치권을 소용돌이쳤던 것도 그때문이었다. 엄밀히 얘기해서 그것은 6ㆍ25동란을 겪은후의 전쟁적 산물이었다. 한반도분단의 연원과 책임을 거슬러 따질때 미국과 소련을 균형된 인식위에 올려놓는다는 정책의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사실 한반도 분단의 책임은 1차적으로 미국과 소련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미국은 그들의 세계전략수행과정에서 한반도 허리에 38선을 그었고,소련은 38이북을 선점하고 나섰다. 그같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확하고 객관적인 인식이야말로 한반도문제해결 노력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본다. 미소를 비롯한 한반도 유관국가들이 최근 남북한문제해결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접근하는 것도 이런 측면에서 인식돼야 할 것이다. 종래의 통일교육과 달리 한반도분단책임을 미소에 균형되게 돌린다고 해서 반미 용공이 된다거나 그것이 최근 남용되고 있는 수정주의 사관을 수용한 것이라고 지레짐작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잘못된 생각일 것이다. 우리는 그러나 통일교육의 발전적 수정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원칙은 불변해야 하리라고 본다. 첫째,통일논의의 다양성은 충분히 살리되 남북한의 통일은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체제와 민족적 대도 위에서 평화적 방법으로 추구돼야 한다. 통일은 해야한다. 통일없이 한반도와 우리 민족은 평화로울 수 없다. 둘째,통일은 현재의 대립되는 남북한 양쪽의 어느 한쪽도 훼손되거나 파괴되지 않는 상태로 이뤄져야 민족적인 정당성을 갖는다. 갈라진 남북한이 이제 다시 하나의 민족공동체로 적대를 중지하고 더불어 번영하기로 한 「7ㆍ7특별선언」의 정신이 그러하다. 셋째,통일정책의 수립과 그 구체적 추진은 국민적 합의위에서 정부가 담당해야 한다. 한민족 공동체통일안이 지금 광범한 국민적 합의로 되고 있는 것도 이 세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한민족공동체통일안이 그동안 다소 방만하다 할정도로 흩어졌던 국민적 통일의지와 역량을 새롭게 다지는 계기였다는 평가에 인색할 국민은 없다. 앞으로의 통일교육도 그 토대 위에서 새롭게 전개돼야 할 것이다.
  • “미ㆍ북한관계 급진전 가능성 희박”/일시 귀국한 박동진 주미대사

    ◎주한미군 감축ㆍ방위비 분담문제 잘될것/미,북방외교 지원 차원서 한ㆍ소관계 개선 지원 『한미 양국관계는 현재 전통우방국답게 과거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평온하고 건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재외공관장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일시 귀국한 박동진 주미대사는 2일 한미관계의 현주소를 이렇게 진단하고 『한국의 정치ㆍ경제적 민주화가 계속 발전돼 가고 있고 양국간의 통상마찰 등 주요 현안이 대부분 해소된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했다. 박대사는 특히 통상마찰문제에 대해 『과거 미국측으로부터 지원,격려만 받았던 우리경제가 괄목할 정도로 성장을 거듭한데 따라 이 문제가 주요 현안으로 떠오른 만큼 오히려 미측이 우리경제를 인정한다는 측면에서 자랑스럽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고 『우리가 미국측의 7대 교역국이기 때문에 앞으로 통상부문에서의 미세한 마찰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리나라와 소련과의 관계개선에 대한 미국측의 시각을 묻는 질문에 『미국은 우리정부의 북방외교를 적극 지지한다는 입장하에서 한소관계 개선에 가능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고 밝힌 박대사는 『그러나 한소관계 정상화문제와 관련,미국은 직접 당사자가 아닌데다 나름대로의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비교적 조심스런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개인적인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박대사는 미ㆍ북한간의 고위외교관 접촉에 대해서도 『미국은 북한과의 외교관 접촉에 앞서 우리정부와 사전에 충분하고도 긴밀한 협의를 계속해오고 있다』고 강조하고 『미 정부는 현재 자신들의 국익기준에 따라 대북접촉을 갖고 있기 때문에 비록 북한측이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더라도 미ㆍ북한간 관계개선이 급속도로 진전될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한미 현안은. 『최근 미 조야에서 거론되고 있는 주한미군의 부분적 감축문제와 용산기지 이전,그리고 방위비분담 증가문제 등이 한미 양국간에 해결해야 할 현안이다. 통상문제는 지난해 5월 양국간 몇가지 협약을 맺은 만큼 이를 성실히 이행할 것인지의 세부문제만 남아있을 뿐이다』 ­미국측은 방위비분담문제와 관련,고용된 한국근로자 임금의 전액 한국측 부담 등 직접경비를 6억달러 정도 요구하고 있는데. 『방위비 분담문제는 기본입장을 어떻게 정립하느냐가 중요하다. 우리경제가 성장하는 범위 내에서 응분의 방위비 분담은 마땅하고 따라서 가능한 한 방위비 분담을 늘릴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는 맹목적으로 증가시키겠다는 의미가 아니며 방위비 분담문제는 한미양국간에 계속해서 조정돼야 할 것으로 본다』 ­우리나라와 소련과의 관계개선에 대한 미국측의 시각은. 『한소 양국간 관계개선이 활발하게 진전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미측은 한반도 긴장완화와 남북통일문제 해결에 크게 기여한다는 시각에서 이를 환영하고 있는 입장이다. 개인적으로는 한소간의 관계 정상화가 빠르면 빠를수록 미측이 적극 지지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ㆍ북한간의 중국 북경 고위외교관 접촉은 현재 어떤 수준으로 진척되었으며 수교 전망은. 『미ㆍ북한간 7차례 접촉이 있었지만 특별히 신경쓸만한 결과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지만 미국은 우리정부와 충분한 사전협조 아래 자기 페이스대로 움직일 것으로 관측된다. 결국 미ㆍ북한관계 개선은 북한측이 적극적으로 원한다 하더라도 미국측의 기본적인 제약 때문에 이의 해소없이는 급속한 진전을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본다』 ­오는 6월의 미소 정상회담에서 동북아시아문제에 관해 어떤 얘기가 오갈 것으로 보는가. 『미국은 급한 불인 동구권사태에 신경을 쓰고 있지 동북아문제에는 덜 신경쓰고 있는 것 같다. 소련측도 마찬가지 입장인 것으로 보여져 이번 회담에서 동북아문제가 크게 거론될 것 같지는 않다』 ­우리나라에서 일고 있는 반미 감정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젊은 대학생들의 반미시위가 미국의회 및 언론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특히 주한미군 감축문제와 관련해서는 더욱 그렇다. 부디 우리 대학생들이 그같은 경솔한 행동을 하지 않고 책임질 행동을 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박대사는 마지막으로 한미간에는 현재 세부적인 문제점이 있지만 양국 사이에 성실한 대화와 함께상호이해가 따른다면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내다봤다.
  • 북한의 3ㆍ1절 이모저모/“전쟁 터질 긴장의 정세 한미서 조성”

    ◎김일성,「보고대회」 통해 책임 전가/당 기관지 사설 “김일성 투쟁으로 광복” 강변 【내외】 북한은 지난달 28일 한반도 정세의 긴장고조 책임을 한미양국에 전가하면서 남북최고위급이 참가하는 당국과 정당수뇌협상회의 소집을 거듭 주장했다. 북한은 이날 평양에서 「3ㆍ1 인민봉기 71돌 기념보고회」를 개최하고 팀스피리트 훈련을 내세워 한미양국이 한반도에서 『임의의 시각에 전쟁이 터질 수 있는 긴장한 정세를 조성하고 있다』고 모략ㆍ비방하면서 콘크리트 장벽 철거를 전제로 남북한 자유왕래와 전면 개방을 실현하는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남북최고위급이 참가하는 당국ㆍ정당수뇌협상회의 소집 제의에 호응할 것을 촉구한 것으로 평양방송이 1일 보도했다. 정무원부총리 강희원을 비롯해 어용정당ㆍ대남통일전선조직 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집회에서 북한은 또 3당통합에 의한 정계개편을 집중적으로 비난하면서 한국민들에 대해 반미ㆍ반정부투쟁을 선동하기도 했다. 한편 북한은 1일 당기관지 노동신문에 기념사설을 게재,『3ㆍ1인민봉기는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인 김형직(김일성의 부)의 지도 아래 벌어진 평양시민들의 대중적 반일시위투쟁을 도화선으로 하여 타오르기 시작했다』고 주장하고 김일성의 「항일투쟁」의 결과로 광복이 실현됐다고 강변,김일성가계 우상화를 위한 역사 왜곡을 자행했다.
  • 니카라과 좌익정권의 붕괴(사설)

    중미 니카라과의 대통령선거 결과가 세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좌익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 오르테가 현직 대통령의 패배가 갖는 의미 때문이다. 그것은 우선 소련과 동유럽을 휩쓸고 있는 공산권 개혁바람의 중미 상륙을 의미하며 79년 집권후 오르테가대통령이 추구해온 사회주의 혁명노선의 패배를 뜻한다. 그것은 또 오르테가가 지향해온 반미ㆍ친소노선의 패배 내지는 미국의 승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르테가는 79년 소모사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좌익정권을 세우면서 사회주의 혁명노선을 통한 평등사회의 건설을 공약하고 그러한 목적의 달성을 위한 미국의 영향력 배제 곧 반미를 내세웠었다. 독재정권하의 극심한 빈부격차에 시달리고 전통적 반미감정에 젖어있던 국민의 환영을 그때는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을 외면한 지나친 이상주의로 판명되었다. 사회주의 혁명을 통한 평등사회의 건설은 성장을 통한 부의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체를 통한 가난의 평등이란 사실은 사회주의 혁명의 종주국인 소련에서이미 증명이 되었으며 뒤늦게 개혁이 서둘러지고 있다. 오르테가의 퇴장을 재촉한 또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미국이라는 현실의 외면이었다. 이번 오르테가 패배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적되는 모든 문제의 배후는 미국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천7백%에 달한 89년의 인플레율을 비롯,25%에 달한 실업률,산디니스타정권지배 11년동안의 국민소득 90% 감소등의 경제침체는 주로 미국의 경제봉쇄에 따른 결과라 할 수 있다. 6만의 희생자를 낸 10년 내전의 배후에도 미국의 그림자가 결정적인 작용을 한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오르테가는 그동안 소련및 쿠바의 정치ㆍ경제적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미국의 압력에 저항해왔다. 그러나 고르바초프 등장이후 소련의 쿠바ㆍ니카라과에 대한 지원은 약화되었으며 작년의 몰타 미소 정상회담에선 소련의 중남미 불개입원칙이 합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원색적 반미주의의 오르테가도 대미 타협의 자세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고 미국인 참관단이 대거 감시하는 공정선거의 실시를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의외의 참패로 나타났으며 미국은 파나마에 이은 또하나의 뒤뜰 정리에 성공을 거둔 것이다. 결국 오르테가의 몰락도 동유럽제국의 공산당 몰락을 가져온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바람의 결과인 셈이다. 그것은 개혁바람의 또 한차례 세계적 확산이며 지금부터 오는 6월에 걸쳐 실시되는 소련의 각 공화국과 동유럽제국의 첫 자유선거의 결과가 어떤 것이 될 것인지를 예고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이로써 쿠바의 카스트로는 더욱 고립되고 어려운 궁지에 몰리게 되었으며 이미 소ㆍ동유럽으로부터의 식량ㆍ석유공급 감소로 경제파탄 상태에 이른 쿠바가 「굶어 죽을지언정 사회주의는 지킨다」는 자세를 언제까지 고집할 수 있을지도 지켜보고 싶다. 쿠바의 개혁은 외고집의 북한에 대한 또한차례의 중요한 개혁촉진 요청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차모로 니카라과 대통령 당선의 의의와 앞날

    ◎「선거혁명」으로 민주화장정 시작/미 외교 승리… 중미 좌익세력 큰타격/산디니스타 지지 군 향배가 변수로/새정부,경제난 타개 못할땐 도전 받을듯 25일 실시된 니카라과대통령선거에서 전국야당연합(UNO)의 비올레타 바리오스 데 차모로후보와 미국이 승리를 거두었다. 패배자는 지난 10여년동안 좌익 산디니스타정부를 이끌어 온 다니엘 오르테가후보와 중미의 좌익전체주의. 오르테가는 불과 선거 하루전만해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10%를 훨씬 웃도는 큰 폭의 우세를 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패배는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선거결과가 나온 뒤 정치관측통들은 차모로후보가 낙승을 거둘 만큼 산디니스타정권의 존립기반이 취약해져 있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우선 산디니스타정권은 10여년동안 농지개혁ㆍ문맹퇴치ㆍ보건수준향상등에 적지않은 성과를 남겼지만 다른 한편으로 미국의 지원을 받는 콘트라반군과의 내전과 그로인한 경제난으로 지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경제난과 내전의 원인이 미국에 있다는 산디니스타정권의 주장보다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야당측 주장을 선택한 것이다. 또한 차모로후보 승리의 뒤에는 미국의 지원이 크게 작용했음을 부인키 어렵다. 미국은 인구 3백50만에 불과한 니카라과선거에 5백만달러 이상의 자금을 투입,차모로후보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극우로부터 극좌에 이르기까지 무려 13개정파가 모인 UNO와 정치적 경험이 일천한 차모로후보가 비교적 성공적으로 선거캠페인을 벌일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국의 지원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또 미국을 중심으로 구성된 유엔,미주기구,카터 전 미대통령이 중심이된 국제선거감시단 등의 선거감시활동도 산디니스타정권의 선거부정을 봉쇄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미국은 국내외의 거센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레이건 전대통령이 85년2월 『현 니카라과정부가 물러나지 않거나 반혁명세력에 항복하지 않는 한 미국의 정책목표는 니카라과의 현정부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밝힌 것이나 부시대통령이 니카라과를 「가든 파티장의 스컹크」라고 비유한데서 보듯이일관되게 산디니스타정권 제거를 목표로 삼아 왔다. 미국이 지난해 12월 파나마를 무력침공,친미정권을 세운 것이나 니카라과에서 반군군사지원과 야당선거지원을 통해 친미정권을 세운것은 「미국의 뒷마당」중미에서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반미정권을 용납할 수 없다는 미국의 강력한 의지를 읽게 해 준다. 1926년 농민군을 이끌고 미해병대를 물리친 아우구스트 세자르산디노(산디니스타라는 명칭은 산이노를 기념키 위해 붙여진 것)를 1934년 암살한 소모사를 지원하면서 미국은 46년간의 우익독재정권을 지원해 준 대가로 미국의 이익을 보호받아 왔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 미국과 미국의 지원을 받은 차모로가 승리함으로써 미국의 대중미 지배력은 일층 공고해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동안 농촌을 중심으로 하는 민중혁명노선을 추구해 온 중남미지역 좌익혁명세력은 정치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커다란 타격을 받을 것이다. 이들의 민중혁명노선이나 「선거를 통한 혁명」(칠레와 니카라과)노선이 모두 결정적인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차모로정권이맞닥뜨려야 할 가장 심각한 문제는 경제난. 비록 내전과 미국의 경제제재조치 때문이라고는 해도 산디니스타정권은 1인당 GNP 7백70달러(87년),실업률 25%,인플레 1천7백%,외채 57억달러(89년)의 피폐된 경제를 유산으로 남겨 놓았다. 오는 4월25일 출범할 차모로정권으로서는 미국으로부터의 경제지원과 미국으로 빠져나간 전문인력의 재유입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차모로정권은 콘트라와의 휴전,야당이 된 산디니스타와의 정쟁등 정치적ㆍ군사적 갈등을 풀어나가야 하고 13개 정파의 연합체인 UNO의 허약체질도 차모로의 정치적 약점이다. 콘트라반군의 경우 미국의 지원을 받는 세력이기 때문에 휴전이 어려워 보이지는 않지만 반군의 귀환,정착문제는 적지않은 부담이 될 것이다. 산디니스타와의 문제는 더욱 복잡하다. 정권인수과정에서 공식명칭이 「산디니스타민중군」인 니카라과정부군의 충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산디니스타에 의해 장악돼 있는 노동조합등 사회제세력과의 마찰을 어떻게 처리해 나갈 것인가,최대 단일야당이 될 산디니스타로부터의 정치적 도전을 효율적으로 막아낼 것인가 등등 풀기에 쉽지 않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군이 선거를 통해 들어서는 정권에 제동을 걸기도 쉽지 않겠지만 차모로가 군을 장악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차모로정권이 빠른 시일내에 가시적인 경제성과를 보여주지 못할 경우 변화를 바란 국민과 군,산디니스타로부터의 도전은 거세어질 것이고 그럴수록 미국에 대한 차모로의 의존도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니카라과 최근 10년 일지 ▲1979년 7월17일=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아나스타시오 소모사 장군의 독재정권 전복. ▲7월19일=오르테가와 차모로를 포함,5인으로 구성된 국가재건평의회 마나과에 도착. 다당정부 구성. ▲1980년 4월19일=차모르 여사와 알폰소 로벨로,산디니스타정권 비난하며 평의회 위원직 사임. ▲1981년 3월4일=온건파들이 평의회에서 제거되고 오르테가가 부각. ▲4월1일=미정부,니카라과정부가 살바도르 반군을 지원한다며 경제원조 중단. 미국은 뒤이어 산디니스타를 반대하는 콘트라 반군에 대한 지원을 공언. ▲1984년 11월4일=오르테가,집권당 산디니스타와 함께 총선에서 승리. ▲1985년 5월1일=미,니카라과가 중미지역에서 침략을 자행했다는 이유로 대니카라과 전면 금수 조치 단행. ▲1986년 8월13일=미상원,콘트라반군에 대한 1억달러의 원조를 가결함으로써 오르테가 정권과 「사실상의 전쟁선언」감행 ▲1986년 후반∼1987년 초반=온두라스에 본거지를 둔 콘트라반군의 니카라과 침공 격화. ▲1987년 8월7일=중미 5개국 정상,코스타리카 대통령이 제의한 협상에 의한 무력분쟁 종결과 외국원조 중단에 의한 니카라과 평화안에 서명. ▲1989년 2월14일=오르테가대통령,중미정상회담에서 90년 2월25일까지 총선을 실시키로 하는 등의 니카라과 민주화조치를 발표.참가국들은 인접국들내 콘트라반군 기지들의 해체에 동의.
  • 변환기… 새 한미 군사관계의 정립 총점검

    세계적으로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동서화해(신데탕트)와 미국의 국방비 삭감,게다가 최근 한국 일각에서 일고있는 반미운동 등도 전통적인 한미 군사관계 변화의 하나의 요인이 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주한미군의 철수,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 이양,방위비 분담 증액요구 등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한미군사 관계의 변화는 양국이 의도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빠른속도로 진행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실정이다. 15일의 리처드 체니 미 국방장관 내한을 계기로 더욱 구체화된 군사관계의 변화를 총정리 해본다. ◎서울의 입장/미군 감축 행정병력 우선… 전력 차질 없어/북한 위협 줄어들 경우 역할 축소 불가피/「일본의 예」 적용,방위비 2배 증액은 무리 ○한미 방위조약은 불변 ▷주한미군 철수◁ 주한미군의 병력 철수는 지난 1월30일 발표된 주한미공군 3개 기지의 폐쇄와 비전투 행정요원 2천여명 철수에 그치지 않고 오는 93년까지 5천여명의 미 지상군 철수까지로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 14일 국방부에서 열린 리처드 체니 장관과 이상훈 장관간의 회담에서 체니 장관은 부분철군에 관한 언급이나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하지는 않았으나 기자회견 석상에서는 주한미군의 병력 수준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수천명의 병력이 감군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 우리 정부나 미 행정부의 희망과는 달리 철군은 불원간 구체화될 것이 틀림없는 것 같다. 그러나 점진적인 철군이 구체화 되더라도 한미 양국은 방위조약으로 묶여져 있는데다 양국의 국익과 직결돼 있는 제2사단과 7공군의 주력전투력에 대해서는 상당기간 감축대상에서 제외해야 된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갖고 있는 한 철군을 하더라도 전력에는 영향이 없는 후방 행정지원 병력을 우선 감군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4만3천여명 가운데 2사단 병력 1만5천명과 제7공군 1만명 등 실전투병력 2만5천명만 주둔할 경우 북한에 대한 전쟁억지력과 연합전력 등 미군의 대한 방위공약 수행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미군이 일부 철수한다고 해도 그들이 사용하던 기지나 장비 등은 한국군이 이양을 받게 되어전투력에는 손실을 입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우리 정부의 계산이다. 병력이 5천여명 철수한다고 해도 화력과 기동력을 보강한다면 병력 감축부분의 전투력 손실은 쉽게 커버할 수 있다는 속셈이다. ○정전위대표 “동의” 필요 ▷작전권 이양◁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은 6ㆍ25 발발 직후인 50년 7월14일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 사이에 맺은 대전협약으로 유엔군 사령관에게 이양됐다. 전쟁중에 작전권을 위임한 것은 유엔회원국이 아닌 한국이 유엔군 산하에 들어가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러나 53년 7월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된 뒤에도 전쟁상태의 종결이 아닌 작전상태라는 해석 때문에 한국군의 작전권은 반환되지 않았다. 78년 11월 한미연합사령부(CFC)의 창설로 국군의 지휘권이 부분적으로 한미공동으로 실시할수 있게 됐다. 그러나 79년 12ㆍ12사태와 80년 5ㆍ17 광주민주화 항쟁 당시 작전통제권을 행사하던 미군 사령관이 한국군의 부대 이전을 통제하지 못해 한국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자 미국에서도 평화시의작전통제권을 미군이 행사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독립국가의 국군 60여만명을 4만여명 밖에 되지 않는 주한미군의 사령관이 지휘하는 것은 주권의 유린이라며 자주국가의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작전 통제권의 한국군 행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졌다. 정부가 국군조직법을 개정,국방 참모본부를 설치하려는 것도 장차 주한미군 철수에 대비,한미연합사령관이 갖고있는 작전통제권을 이양받아 강력한 지휘체제를 갖추기 위한 사전준비로 설명할 수 있다. 작전권 이양은 한미연합사령부의 구성을 전면 개편하게되어 현재 지상군ㆍ해군ㆍ공군 등 3명의 구성군사령관중 지상군사령관을 한국측이 맡고 주한미군 사령관은 휴전업무만 전담하고 유엔군만 지휘하는 직책으로 남게 된다. 군사정전위원회의 유엔군측 수석대표를 한국군으로 교체하는 문제는,한국이 휴전당사국이 아니며 유엔군의 일원도 아니기 때문에 북한과 중국 등 휴전 당사국의 동의와 유엔의 인준이 있어야 가능하다. ○연 6∼7% 증액 고려 ▷방위비 분담◁지난 15일의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 체니 미 국방장관은 현재 한국이 부담하고 있는 주한미군의 직접경비 3억달러를 2배 이상인 6억8천만 달러로 증액하라고 요구해왔다. 체니장관이 요구한 6억8천만달러의 직접비는 현재 미국정부가 지불하고 있는 주한미군기지에서 일하는 1만8천6백여명에 달하는 한국인 근로자들의 연간 급료와 의료보험비ㆍ퇴직금등 인건비를 한국정부가 지불해 달라는 것이다. 이에대해 이상훈 국방장관은 주한미군내 한국인 근로자의 의료보험료 5백만달러와 퇴직금 3백만달러 등 8백만달러만 부담하겠다고 제시,구체적인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앞으로 4인 위원회를 통해 계속 논의키로 했다. 미국측이 갑자기 한국인 근로자들의 임금을 한국정부에게 지불할 것을 요구해 온것은 일본이 주일미군의 일본인 근로자의 임금을 전액 부담하고 있다는데 근거를 두고 있다. 미국이 일본에 주둔한 것은 2차대전의 승전국으로 항복 문서조인을 받은뒤 점령군의 성격으로 진주했으나 주한미군은 6ㆍ25동란의 발발로 독립국가인 한국을 공산주의의 침략으로부터 수호하기 위한 민주주의 수호국으로서의 형태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주일미군과는 성격이 다르다. 또 현재의 상황도 일본은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으로 경제규모가 우리보다 4∼5배나 크고 평화헌법에 의한 자위대의 규모도 20여만명 밖에 되지 않아 70만 대군을 유지하며 국가예산의 3분의1을 국방예산으로 쓰는 한국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는 것이 우리가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이다. 한국은 국방예산 6조8천억원 중 35% 이상인 2조5천억원을 차세대전투기 계획(KFP)ㆍ잠수함 건조등 전력증강사업에 사용하고 있는 입장이므로 주한미군 부대에 근무하는 노무자들의 임금까지 지불하기란 무리라는 설명이다. 국방부 당국자는 주한미군의 철군을 앞두고 대체전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전력증강사업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할 형편인데 투자를 줄이고 인건비로 지불할 수 없는데다 양국 정상회담의 합의대로 한국의 경제성장과 능력 범위안에서 증액 부담하기로한 원칙에 따라 연간 6∼7%정도의 직접비증액은 고려할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시말해 이 부담능력을 초과하는 무리한 요구를 미국이 강요할 경우에는 방위비 분담증액을 택하기보다는 차라리 미군의 부분 철수쪽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워싱턴 시각/「감축 동의」한국측의 태도변화는 “의외”/본격적인 철군협상은 93년 이후나 가능 딕 체니 미 국방장관의 서울 방문을 보도한 미 언론들의 표제는 한결같이 『한국이 주한미군 감축에 동의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작년 가을 댄 퀘일 미 부통령의 서울 방문시 한국정부는 물론 야당 지도자들까지도 미군 감축에 반대했던 일을 되돌아보면,6개월도 안돼 반전된 한국측의 태도가 미 언론의 눈에는 「의외」로 비쳐진것 같다. 뉴욕타임스는 『한국의 주한미군 5천명 감축 동의는 한미군사 관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큰 태도변화의 일부』라고 풀이하며 이번에 한국측이 요구한 「평시 작전권 이양 및 정전위 수석대표 교체」를 가리켜 『한국이 자체 방위에서 주도적 역할을 떠맡겠다는 가장 강력한 성명』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미국의 방위비 분담 증액요구에 한국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고 타임스는 덧붙였다. 워싱턴포스트의 보도내용은 뉘앙스가 좀 다르다. 포스트는 『한국은 일선 병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신중한 미군감축에 마지못해 동의하고 있다』며 『이같은 동의는 서울이 미군감축을 미리 봉쇄할 영향력을 미 의회에 갖고 있지 않으며 미군 4만3천7백명 전원에 대한 주둔 유지비를 감당할만한 돈도 충분히 갖고있지 않다는 서울의 현실을 나타낸 것』이라고 보도했다. 펜터건은 주한미군을 비롯한 동아시아ㆍ태평양 주둔 미군에 대해 ▲1단계=90∼92년 ▲2단계=93∼95년 ▲3단계=96년 이후의 단계적 장기 조정계획을 마련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펜터건이 발표한 한국내 미 공군기지 3개소 폐쇄와 공군지원병력 2천명 감축 계획이나 체니 장관의 이번 동북아 순방과 추가 감군 협의는 1단계 조정계획과 관련된 것이다. 미국의 동북아주둔군 감축안은 동서 긴장완화를 반영한 유럽에서의 미소주둔군 감축 합의와는 달리 지역정세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 아니다. 체니 장관이 서울에서 언급했듯이 한반도에서 북한의 남침위협은 여전히 감소되지 않고 있으며 소련은 지금까지 아시아에서 유럽주둔군 감축과 유사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미 정부의 기본인식이다. 또 미국이 지금까지 주한미군 철수의 선행조건으로 내세운 평양측의 신뢰구축 조치,즉 ▲비무장 지대에 전진배치된 군사력의 후퇴 ▲테러리즘 종식 ▲핵 비확산 조약 이행 등이 전혀 충족되지 않은 상태다. 그럼에도 미국이 동북아 주둔군을 감축하려는 것은 미국의 재정ㆍ무역적자 등과 관련한 국방예산의 축소 때문이다. 부시 미 행정부가 지난 1월 미의회에 제출한 91회계연도(90년10월1일∼91년 9월30일) 국방예산안은 총규모 2천9백21억달러로서 물가상승률을 고려할때 전년대비 2%가 줄어든 것이다. 체니 장관은 한일 양국에 대해 각각 종전보다 갑절이 늘어난 6억달러 및 40억달러의 방위비 부담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거에 방위비 분담의 배증을 요구한 체니의 제의가 미국의 어려운 국방예산 사정을 나타낸 것임은 물론이거니와 1단계 협상의 초점이 어디까지나 방위비 분담 증액문제에 있다는 미 정부 의도를 솔직이 드러낸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워싱턴의 소식통들은 『1단계 기간중의 한미간 협상은 주한미군을 80년 수준(3만8천명) 이하로 떨어뜨리지 않는 선에서 벌일 방위비 분담 줄다리기가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따라서 주한미군의 본격 감축이나 본질적 변화에 관한 협상은 93년 이후 제2단계의 과제라고 이들은 인식하고 있다. 93년은 몇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한국이 군사력면에서 북한과 동등해지거나 북한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시점이 93년이라는 것이 미 군사전문가들의 판단이다. 한국이 독자방어 능력을 갖추게 되면 전쟁억지력으로서의 주한미군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둘째,그때쯤 되면 북한이 적화통일 노선을 포기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셋째,미국의 경우 차기 대통령 임기 개시와 더불어 그동안 매달렸던 유럽문제에서 눈을 돌려 한반도를 비롯한 다른 지역문제 해결에 본격 대처할수 있는 시기라는 점이다. 이같은 상황에서의주한미군 감축 논의는 지금의 그것과 큰 차이를 보일 수 있다. 지금의 주한미군 감축논의가 한미 양국간에 진행되는 것이라면 그때의 논의는 남북한ㆍ미 3자간에 진행되거나 중ㆍ소ㆍ일도 관계되는 다자협상의 의제가 될지 모른다. 이번에 체니장관의 방한을 계기로 한국정부가 공식 요구한 정전위 수석대표의 한국군 장성으로의 교체라든가,최근 한미 양국에서 다같이 제기하고 있는 남북한 군축과 주한미군 철수의 연계론은 어떻게 보면 남북한ㆍ미 3자협상을 요구하는 문제들이다. 미국은 주한미군이 북한의 침공을 억제할 뿐만 아니라 동아ㆍ태 지역 안정을 보장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을 점차 공개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미 관리들이 주한미군의 또다른 유용한 역할 두가지를 개인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면서 『주한미군은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우려하는 일본의 재무장 필요성을 감소ㆍ억제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주한미군의 이같은 역할에 대한 인식이 국제적으로 확산될 경우 제2단계에도 미군의 대폭감축은 없을지 모른다. 주한미군이야말로 동북아에서 가장 싼 비용으로 미국의 영향력을 극대화시킬수 있는 수단이라고 강조한 루이스 메네트리 주한미군 사령관의 최근 미상원증언은 주한미군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이해를 단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전망/2천년대 초반까지 전면철수 없을듯/90년대 후반엔 2만명선으로 줄수도 미국이 주한미군의 역할을 한국방위의 주도적 역할에서 지원적 역할로 변경을 꾀하고 있는 만큼 주한미군의 철수는 불가피 하겠지만 최소한 2000년대초까지 전면 철군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 군사문제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미국은 장기적으로도 동북아시아의 지역 안보를 위해 대륙국가인 소련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일본과 한국에 지상군의 일부를 주둔시켜야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의 임무는 대소 봉쇄 및 세계전략의 전초감시기능은 물론,북한에 의한 전쟁 억지역할이다. 따라서 북한의 위협이 감소될 경우 구조개편과 함께 임무와 역할도 축소될 수밖에 없다. 그 방법은 현재 세계 최강의 중무장을 한 제2사단을 경보병사단으로 바꿀수도 있고 주한기지 축소 및 행정요원 감축 등 여러가지가 고려될 수 있다. 현재의 미국 국내사정,한국군 전투력 증강 속도 등을 감안할때 90년대 후반에는 현재 병력의 절반수준인 2만명으로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카터 행정부 당시 거론됐던 주한미군 철군계획과 같이 공군ㆍ정보ㆍ지휘ㆍ통제ㆍ통신ㆍ군수 지원부대만을 주둔시키고 기타 병력은 철수시킨다는 프로그램이 그대로 실현될 가능성도 크다. 한국이 오늘 이만한 전력을 갖추기까지는 미국의 기술과 자본지원이 적지않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서울올림픽의 성공이후 한국의 경제성장이 과대하게 선전되고 국민의식도 선진화되기 시작하자 미국에서도 한국의 발전 속도에 맞는 방위비 증액을 요구하게 됐고 우리측에서는 작전통제권 이양이 군사현안으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오는 10월 서울에서 열릴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에서는 주한미군의 추가철수 규모ㆍ방위비 부담액수ㆍ작전통제권 이양 스케줄에 대한 윤곽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방위의 궁극적인책임은 우리 스스로에 있으므로 현재 논의되고 있는 주한미군의 역할조정이 궁극적으로는 「한국방위의 한국화」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 추곡수매 목표 미달/총1천1백74만섬… 25만섬 적어

    농림수산부는 지난 15일 마감한 89년산 추곡수매량은 목표 1천2백만섬보다 25만7천섬이 적은 1천1백74만3천섬(97.9%)이라고 17일 발표했다. 품종별로는 일반미가 목표 6백만섬의 99.2%인 5백95만2천섬,통일계가 6백만섬의 96.5%인 5백79만1천섬이 각각 수매됐다. 이번 수매로 농가에 풀린 돈은 모두 2조1천65억원이다.
  • 민중혁명 선동 「노동계급」 적발/안기부

    ◎좌경 지하조직 「총책」등 둘 구속ㆍ10명 수배/북한원전등 62점 압수 국가안전기획부는 12일 「노동계급」이란 좌익지하조직총책 안민규씨(26ㆍ가명 최용현ㆍ서울대 국사학과 졸)와 이 조직기관지 「노동계급」 편집부장 박태호씨(27ㆍ가명 이진경ㆍ서울대 사회학과 졸)를 국가보안법 위반(이적단체 구성 등 )혐의로 구속했다. 안기부는 또 이 조직 「서울지역위원회」 조직책 이미경씨(24ㆍ여ㆍ서울대 음대 졸)를 같은 혐의로 입건하는 한편 「조직국 중앙위원회」 위원장 최정식씨(27ㆍ서울대 사회학과 졸) 등 10여명을 수배했다. 안기부는 이들의 기관지 「노동계급」과 퍼스널컴퓨터 3대 북한원전 17종 등 모두 62점을 증거물로 압수했다. 안씨 등은 지난87년 5월 반미ㆍ통일 투쟁을 주장하는 「NㆍL」파(민족해방혁명파ㆍ자민투계)나 러시아 혁명을 그대로 답습하려는 「NㆍD」파(민족민주혁명파ㆍ민민투계)로는 남한혁명을 달성할 수 없다고 보고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한 혁명 투쟁을 수행할 조직을 결성하기 위해 학원ㆍ노동계의 좌익세력 60여명을포섭해 계급투쟁론과 혁명이론 등 사상 학습을 펴온 혐의를 받고있다. 이들은 이어 89년5월부터 조직원 50여명을 서울ㆍ인천ㆍ성남ㆍ부산ㆍ울산ㆍ마산ㆍ창원ㆍ대구 등 전국 노동현장과 「교원노조」 및 서울대 등 학원에 침투시켜 학습소조를 운영하면서 의식화 투쟁을 선동하고 조직의 확산을 꾀해왔다는 것이다. 안기부의 수사결과 이 조직은 또 지난87년 11월부터 대학신문ㆍ잡지 등에 혁명이론을 공개적으로 기고하는 등 좌익혁명 세력의 진원지역할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 미 베이커 국무ㆍ체니 국방ㆍ파월 합참의장,상원 증언요지

    ◎“소 군축 불구,한국안보 위협 상존”/우방과 협조,전진배치군 존속시켜야/북한의 대남 적화야욕 포기 조짐 없어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과 딕 체니 국방장관,콜린 파월 합참의장 등 부시 미 행정부의 고위관리들은 1일 미 상원 외교위 및 국방위에서 각기 1991회계연도 예산안 제출과 관련한 외교ㆍ국방정책에 관해 증언했다. 베이커 장관은 이날 증언에서 미국의 대한 안보공약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긴요하다는 점을 강조했으며 파월 합참의장은 북한이 계속 가공할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으나 한미 안보관계는 한반도에 대한 도발을 계속 저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음은 베이커 국무,체니 국방장관과 파월 합참의장 증언의 요지이다.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 미국 정부는 미ㆍ북한간의 관계 개선을 기대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 88년 10월 이래 북한에 대해 대화재개 등의 조치를 취해왔다. 미국은 남북한과 미ㆍ북한간의 관계개선을 가져올 수 있는 꾸준하고 상호주의적 원칙에 따른 과정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의 대한 안보공약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긴요하며 미국은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궁극적인 통일의 요체는 남북한간의 생산적인 대화에 달려있다고 믿고 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은 북한을 고립으로부터 끌어내기 위한 노태우 대통령의 노력을 지지한다. 카스트로의 쿠바와 중국처럼 민주적 가치를 봉쇄하려는 정부들은 국민들의 발전을 지연시킬 뿐이고,모든 국가들이 자유롭고 공개적인 발전을 이루기를 원한다. 소련군이 완전철수한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는 주민들이 자유의사로 결정,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정부를 지원해 항구적인 평화정착이 이루어지길 희망한다. 이를 위해 소련과 유엔 및 이해 당사자들과 대화를 가질 용의가 있다. 또한 10여년간 내전에 시달리고 있는 캄보디아 사태와 관련,크메르 루주의 재집권을 저지하고 이 지역에서 유엔 주관 아래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실시돼 진정한 주민들의 의사가 반영된 정부가 들어서길 기대한다. 이를 위해 지난 1월16일 파리에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 대표들이 만나 캄보디아 문제를 논의,이 지역의 평화정착을 위한 16개항의 원칙에 합의해 앞으로 유엔의 활동이 크게 기대된다. ▷딕 체니 국방장관◁ 미국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변화가 전세계에 걸쳐 일어나고 있다. 가장 큰 변화가 소련과 동구에서 일어나고 있으나 소련은 강력한 군사력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 동구와 소련의 최근 사태는 소련의 계획적인 대서구 공격 위험성을 감소시켰다. 그러나 상황의 가변성과 예측불허성 때문에 다방면에서 우발적인 분쟁의 기회가 증대되고 있다. 현재 공산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가 장차 어디로 갈지는 확실히 알 수가 없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가 지적했듯이 긍정적인 변화가 뒤집어지지 않을 것이란 보장은 없다. 지금처럼 불확실한 과도기에 미국이 취할 최선의 자세는 단기적으로 확고한 방위정책을 견지하는 것이다. 향후 10년간 미군은 다음 도전들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①소련=우리는 소련군의 축소를 예상하지만 지금까지 소련군의 감축은 최소한에 그쳤고 그들의 중요한 군사능력은 그대로 남아있다. 소련의 핵무기 비축시설은 현대화되고 있으며 소련군의 효율성 제고작업이 진행중이다. 모스크바가 현재와 같은 군사적 억제를 앞으로도 지속할 것이라고 가정할 수 없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소련 당국의 중앙집권성 때문에 크렘린은 언제라도 군사정책의 방향을 신속히,그리고 결정적으로 바꿀수가 있다. ②잠재적 적대국으로의 군비확산=최소한 6개 국가가 핵능력 획득작업을 진행중이며 적지않은 숫자의 제3세계 국가들이 장거리 미사일과 화학ㆍ생물학 무기를 포함한 신무기 병기창을 보유하고 있다. 더욱이 이들 국가의 일부는 미국에 대해 적대적이며 근린해역에 대한 지배권 주장을 시사하고 있다. ③반미정권=파나마의 마누엘 노리에가가 그랬듯이 몇몇 제3세계 국가들은 승산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미국과 군사적 대결로 나갈지 모른다. ④비국가 위협=미군은 미국의 이해관계와 가치관에 적대되는 마약밀매,반민주적 모반,테러리스트 그룹 등과의 대결이 요청되고 있다.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은 세계적으로 개입이냐 고립이냐의 선택을 계속해야 한다. 미국은 핵심지역인 유럽ㆍ지중해ㆍ아시아ㆍ태평양의 우방 및 우호국들과 협조하여 전진배치군을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 소련 군사력의 감축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이해관계는 한국과 페르시아만 지역에서처럼 지속적으로 큰 위협에 직면할 것이다. 미국은 전쟁억지력,신축적 대응,전진방어,안보동맹,신중한 군비감축등의 독트린을 전략으로 고수해야 한다. 1989년의 이례적인 사태가 미국으로 하여금 이같은 전략적 기초를 포기케 하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콜린 파월 합참의장◁ 태평양에서 소련이 미국의 이해관계를 위협하는 적대행위를 주도하지는 않을 것이다. 소련의 관심은 중국과의 상호관심사에 집중돼 있다. 소련은 일반적인 병력감축의 일환으로서 몽고와 캄란만 주둔지상군 및 공군의 감축을 개시했다. 소련 태평양 함대는 노후함정의 퇴역으로 인해 다소 약화됐다. 그들 함대의 역외배치도 계속 축소될 것이다. 한반도에서 대화를 바라는 신호가 있어왔지만 서울과 평양간의 대화는 북한이 대결관계의 변화를 원한다는 것을 미국에 전혀 확신시키지 못했다. 북한은 강력한 군사력을 계속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한미안보관계는 한반도에서 침략을 계속 억제시킬 것으로 미국은 판단하고 있다.
  • 농지임차 기간 3년 이상으로/일반미 시세대로 방출

    ◎농수산부 보고 통일벼 수매 1백만섬 축소 정부는 올 하반기부터 농지임대차기간을 3년이상으로 하고 지역별 임차료 상한선을 설정,임차농을 보호하기로 했다. 또 올해 통일계벼 정부수매량을 4백50만섬으로 줄이고 농수산물 수입개방 확대에 대비,수입개방 보완 특별대책위원회를 운영해 나가기로 했다. 김식농림수산부장관은 2일 수원 농촌진흥청에서 노태우대통령에게 이같은 내용의 올해 업무계획을 보고했다. 김장관은 지난 87년 제정,시행을 미뤄온 농지임대차관리법을 하반기부터 시행키로 하고 상반기중 시행령을 마련,오는 7월의 임대차계약분부터 적용토록 하겠다고 보고했다. 그는 부재지주 농지에 대해서는 각종 세금을 무겁게 물리고 비농민의 농지구입을 엄격히 규제하는 한편 앞으로 보전이 필요한 농지는 농업진흥지역으로 지정,집중 개발하며 이를 위해 올해 기초조사를 벌이고 91∼92년에 단계적으로 지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또 농가주택과 농업용시설을 지을 때는 신고만으로 농지의 전용이 가능토록 절차를 간소화하는등 농지이용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말했다. 농림수산부는 통일벼 수매예시량을 지난해 5백50만섬으로 축소,일반벼의 증산을 유도하고 정부미 판매체계를 개선해 민간시장 기능을 활성화하는 한편,일반미는 시장시세대로 방출해 가격결정에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 특히 앞으로의 남북경제교류에 대비,관련기관등과 협의해 쌀수급관리를 해나가기로 했다. 또 수입개방에 적극 대처키위해 정부,학계,농 수 축협,비제도권 농어민단체까지 포함하는 수입개방보완특별대책위원회를 운영,직ㆍ간접피해조사와 개방품목의 선정및 대체작목개발등에 대한 의견을 모아 대응전략을 수립키로 했다. 현재 보존임지와 비보존임지로 구분된 6백50만㏊의 산림도 생산및 환경임지와 산업용지로 재편성,산업용지는 주택ㆍ공장용지ㆍ농지ㆍ초지 등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 90년 경제 “적신호”/1월 물가 1%급등… 무역적자 6억6천만불

    ◎전기ㆍ가스ㆍ전화료 곧 인하/정부 종합대책/물가는 9년,적자는 5년만에 최악 국내경제에 여기저기서 비상이 걸렸다. 지난 1월중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월중 상승률로는 지난 8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인 1%를 기록,올해 물가상승억제선 5∼7%를 지키기가 힘들 것으로 보이는 데 이어 지난 1월중 통관기준 무역수지적자가 지난 85년 1월 이래 최대규모로 나타나 올 수출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관련기사5ㆍ7면〉 특히 1월중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9년만에,무역수지 적자폭이 5년만의 일이라는 점에서 경제전반에 대한 정밀진단과 함께 종합적인 경기회복방안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1일 경제기획원과 한은에 따르면 1월중 소비자물가는 임금인상과 주택등 부동산가격이 폭등,소득보상욕구및 과소비풍조등 구조적인 요인에다 정부미방출가 12% 인상,신정ㆍ설날 등 명절이 겹쳐 야채ㆍ육류ㆍ수산물 등의 수요가 크게 늘어나는 등 특수요인이 가세해 지난해 12월말보다 1.0% 상승했으며 도매물가는 0.5% 올랐다. 특히 올해에는 임금ㆍ공공요금ㆍ환율 등 물가상승 요인이 누적되어 있는 가운데 지방의회선거등 경제외적 요인에 따른 물가불안심리마저 작용하는등 물가관리여건이 예년에 비해 현저히 악화되고 있어 물가불안 우려를 더해주고 있다. 또 상공부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 1월31일까지 수출실적은 39억5천2백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0% 감소한 반면 수입은 46억1천4백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2% 증가했다. 이에 따라 무역수지적자 규모는 6억6천2백만달러로 늘어났다. 이는 지난 85년 1월중 무역수지(통관기준)적자 폭이 7억5천7백만달러를 기록한 이래 최대규모이다. 상공부는 1월중 이처럼 수출이 부진한 것은 설날(27일)연휴에 따라 작업일수가 줄어든 것을 비롯,일본엔화에 대한 우리나라 원화의 상대적인 고평가와 설비투자부진 등 구조적인 수출경쟁력 약화현상이 지속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미 방출 재개 한편 정부는 이날 조순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주재로 경제부처 장관이 참석한 올해 첫 물가대책회의를 열고 「90년 물가안정 종합대책」을 마련,전화료와 전기료ㆍ도시가스요금의 인하를 추진키로 했다. 또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큰 쌀값 안정을 위해 통일벼등 90년산 신품종 수매량을 축소책정,2월중 사전예시해 쌀생산농가의 적정생산및 수매를 유도하고 수매가는 일반미 중심으로 결정,통일벼 차등가격수매제를 실시하는 한편 89년산을 포함해 정부미 방출을 조기 재개키로 했다. 정부는 이날 회의에서 공공요금중 수요증가로 가격하락 요인이 발생하는 전화요금과 경영실적이 양호한 한전의 전기료ㆍ도시가스요금 등은 인하를 적극 추진하고 철도ㆍ우편요금은 임금인상등에 따라 발생하는 인상요인을 자체 경영합리화와 부족분에 대한 재정지원으로 요금인상을 억제해나가기로 했다.
  • 쌀값안정 돕게 정부미방출 제한/농림수산부

    ◎80㎏들이 9만원 될때까지/산지미 시가로 사들여 도시민에 계통판매 검토 정부는 지난해말부터 계속 약세를 보이고 있는 쌀값 회복을 위해 정부미 방출을 제한하고 산지에서 일반미를 시가로 사서 도시에 싼값으로 파는 계통미 판매사업을 추진키로 했다. 31일 농림수산부에 따르면 산지 쌀값이 지난 29일 현재 80㎏가마에 8만5천3백44원으로 지난해말의 8만6천48원보다 7백4원(0.8%)이 떨어지는 등 약세를 지속함에 따라 이같이 쌀값안정대책을 마련,시행키로 했다. 이 대책은 산지쌀값이 가마당 9만원대로 회복될 때까지 정부미 방출량을 하루 평균 1만5천가마에서 7천가마로 줄이기로 했다. 또 2월까지 산지가격이 회복되지 않을 경우 농협중앙회의 계통미 판매사업을 확대하고 정부가 산지 일반미를 시가로 사서 서울ㆍ부산등 대도시에 시중가격보다 2천∼3천원 싸게 판매하는 특별계통미 판매를 검토키로 했다. 이와함께 쌀수요개발 및 소비대책을 적극 추진하고 농민과 상인들에 대해 쌀 수급사정 및 가격전망 등을 적극 홍보키로 했다. 농림수산부는 지난해부터 쌀값이 계속 약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9년연속 풍작으로 지난해 쌀 생산량이 4천만섬을 넘어선데 비해 소비량은 감소하고 정부 수매가격이 일반미의 경우 14%인상된데 따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농림수산부는 31일 현재 농가에서 시장에 출하할 수 있는 지난해산 쌀은 농가에서 소비하거나 가족들에게 증여하는 것 등을 제외하면 모두 1천2백84만7천섬으로 추산,이 물량은 오는 5월이면 대부분 소비될 전망이기 때문에 3월부터는 산지 쌀값이 회복세를 나타내기 시작할 것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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