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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 등록금/농협,1년치 연도별 비교

    ◎65년 쌀 10.7가마­소 0.8마리분/작년 46.8가마­2.3마리 팔아야 지난 65년에 쌀 10.7가마 또는 소 0.8마리를 내다팔면 사립대학에 들어간 자녀의 1년치 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지금은 쌀 46.8가마 또는 소 2.3마리를 팔아야 사립대 1년치 등록금과 맞먹는 돈을 마련할 수 있다. 4일 농협중앙회가 쌀값,소값 그리고 대학등록금을 연도별로 비교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65년의 경우 일반미 80㎏ 한가마가 3천2백10원,황소 4백㎏짜리 한마리는 4만6백99원이었고 사립대학 신입생의 1년 등록금은 3만4천3백20원이었다.따라서 사립대 1년분 등록금은 쌀 10가마 7말이나 소 0.8마리와 맞먹었다. 그러나 30년후인 지난 95년에는 쌀 한가마가 11만5천3백80원,황소 한마리는 2백35만2천6백19원인데 비해 사립대 1년분 등록금은 5백39만8천원으로 쌀 46.8가마나 소 2.3마리분에 해당한다.지난 30년 사이에 쌀값은 35.9배,소값은 57.8배로 오른 반면 사립대 1년치 등록금은 1백57.3배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 작년 농가살림 좋아졌다/쌀값 등 영향

    ◎「교역조건」 90년후 첫 100돌파 쌀 값의 강세 등에 힘입어 지난해 농가 살림살이가 90년대 들어 가장 좋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21일 농협중앙회에 따르면 지난 해 농가교역조건은 102.3으로 90년 이후 처음으로 1백을 넘었다. 농가교역조건이란 농가의 판매가격지수를 구입가격지수로 나눈 것으로 1백을 넘으면 농가경제의 호전,1백이면 현상유지,1백미만이면 악화를 의미한다. 지난 90년을 1백으로 잡았을 때 91년에 98.4,92년 95.8,93년 95.4 등으로 해마다 악화되는 추세를 보이다 94년 99.2로 회복된뒤 지난 해 5년만에 처음으로 1백선을 넘어섰다. 농가경제가 호전된 것은 지난 해 쌀을 비롯해 청과류,축산물 등 농산물 판매가격이 비교적 많이 오른 반면 공산품과,배합사료·입식송아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한 농자재의 가격이 안정세를 유지했기 때문이다.특히 농가 판매가격지수 가중치의 35%를 차지하는 쌀의 가격(일반미 40㎏ 중품기준)이 94년말 5만2천3백33원에서 작년말 6만3천4백53원으로 21.2%나 올라 농가교역조건을 호전시키는데 기여했다.
  • 노비자(NO VISA)로 가기까지(사설)

    한국 사람들이 빠르면 1∼2년내에 비자없이 미국을 방문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제임스 레이니 주한 미국대사의 언급보도는 대단히 발전적인 것으로 환영해 마지않는다.그렇지 않아도 이러저러한 일로 한국민의 대미감정이 복잡해져있는 터에 더없이 고무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그동안 한국인에 대한 비자발급률이 미국측 기준치인 98%에 못미치는 93%에 머물러있기 때문에 사증면제협정을 체결할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레이니 대사의 이번 발언은 한국인 비자발급률이 최근들어 현저히 개선됐다는 것인지 아니면 앞으로 발급조건을 완화하겠다는 것인지 확실치 않으나 미국의 비자발급 기준을 시대의 흐름에 맞춰 크게 개선하려는 것으로 이해된다.사실 그동안 한국인에 대한 비자발급기준과 조건은 세계가 급속히 좁아지고 있고 양국간 인적교류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시대적 상황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는 레이니 대사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겠지만 그에 앞서 현재의 비자발급에도 문제가 많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없다.미국측은 연방정부의예산지원이 없어 발급업무를 개선할 수 없다고 말하고있으나 예산문제 밖에도 개선의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인터뷰 대상을 줄인다든가,여행사보증제도를 확대하는 방법,신청창구를 늘리는 방법등이다.그러나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것은 영사업무관계자들의 불친절과 군림이다.불친절이나 군림은 예산이 아니라도 개선할수 있는 일이다.『미국비자를 한번 받아본사람은 확실한 반미주의자가 된다』는 우스갯소리의 바탕은 시간의 지연이나 불편에 앞서 거기서 당하는 모욕감인 것이다. 한·미간에는 지난 반세기와는 달리 무역마찰,한·미행정협정 개정문제,미·북한간교류 속도조절문제등 그렇지 않아도 마찰의 소지가 많다.비자발급문제 하나만이라도 개선되는 것은 양국관계 발전에 적지아니 기여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사소한 문제들로 한·미관계의 본질이 손상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 산지·도매가격 하락 불구 쌀 소매가 계속 강세

    쌀값이 산지가격은 20여일째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음에도 불구,소비자가격은 한껏 오른 상태에서 떨어지지 않은 채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10일 농림수산부와 재정경제원에 따르면 일반미 산지가격은 80㎏ 기준으로 1월18일 13만3천4백82원을 정점으로 계속 떨어져 10일 현재 13만2천7백3원을 기록했다.공매가격도 1월19일 1백만섬 공매당시 13만3천5백3원에서 지난 6일 공매때는 12만8천3백86원으로 5천1백17원 내렸다.도매가도 지난 6일 13만4천7백36원에서 10일 13만4천1백57원으로 인하됐다. 그러나 소비자가격은 62개지역 중품미를 대상으로 한 통계청 조사에서 1월25일 14만5천6백50원,지난5일 14만6천4백10원으로 오름세를 보였고,17개지역 상품미를 대상으로 한 농림수산부 조사에서는 1월18일 15만7백50원에서 1월28일 15만1천5백원으로 오른 뒤 10일까지 똑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재경원은 농림수산부 국세청 지방자치단체와 합동으로 12일부터 14일까지 3일동안 전국 주요 양곡소매상을 대상으로 가격안정지도를 펴기로 했다.
  • 미­중 갈등의 대한파장/이석우북경특파원(오늘의 눈)

    중국정부는 18일 저녁 미국 대사관의 공군 무관1명에 대한 본국 소환요구를 발표했다.최근 미국에 대해 표면상 한층 부드러워진 중국의 태도로 볼때 이유야 어떻든 사실상 외교관추방에 해당하는 이번 조치는 기습적이라고까지 할만하다. 중국국가주석 강택민은 지난 10일과 15일 중남해 집무실에서 부시 전 미국대통령과 다이안 파인스타인등 미국상원의원단의 개별예방을 받고 두 나라의 건설적 관계를 강조하는 기분좋은 모습으로 뉴스시간에 등장했었다.남중국해의 가스생산을 기념,중·미 합작사업 및 미국기업인의 역할을 치하하던 지난주 이붕 총리의 동정도 주요뉴스로 처리되는등 두 나라는 이원족 대만부총통의 미국 통과비자발급에도 불구,순조로운 출발을 보인듯했다. 그러나 중국정부가 군사기밀구역의 불법 정보수집을 이유로 미대사관의 거드스 공군중령에 대한 소환을 요구한 것은 중·미관계 개선의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북경외교가에선 중국의 결정을 이원족 대만부총통에 대한 비자발급등 「비우호적 정책을 포기치 않는」 미국에 대한 경고 메시지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어쨌든 이번 조치에 대해 미국이 크게 반발하지 않은채 받아들이기로 함에 따라 그 파장이 크게 번질것 같지는 않다.하지만 이러한 중·미 갈등과 균열은 중국의 역량과 행동반경이 늘어날수록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우리의 주의를 요한다.두 나라의 균열이 심해지면 한반도의 안정과 통일엔 직접적인 악영향을 피하기 어렵다.중국은 한국전쟁을 민족내전에 간섭해온 미국제국주의의 침략을 막아내고 북조선을 도운 전쟁이란 의미에서 「항미원조」라고 표현한다. 최근들어 항미원조의 의의가 강조되고 있는 것도 대미관계의 악화 및 군부의 발언권확대와 무관치 않는듯 보인다.중국 당국이 올들어 전국민대상의 우수영화로 한국전쟁 다쿠멘터리인 「항미원조 기실」을 추천하고 전국 극장들에서 상영키로 한것이나 전쟁기념관에 항미원조기념관을 설치키로 한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미국과 중국간에 갈등이 심화되면 될수록 중국은 반미구호를 더욱 높일 것이고,그러면 그럴수록 미국과 중국 중간에 끼여있는 한국의 입장이 난처해질수밖에 없을 것 같아 씁쓰레한 뒷 맛을 남기고 있다.
  • 북한과 팩시 통신 여대생 영장 기각/광주지법

    【광주=최치봉기자】 법원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피의자에게 무죄를 선고한데 이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광주지법 김재영판사는 15일 팩시밀리를 통해 북한 대학생과 통신을 시도한 혐의로 전남대 총학생회 조국통일위원회 위원 김모양(23·사회대 4년)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 영장을 기각했다. 김판사는 『죄질이 가벼우며 초범에,폭력 시위에 가담한 증거도 부족하다』고 기각 이유를 밝혔다. 김양은 지난 해 3월 전남대 총학생회 사무실에서 「95년 조국통일 사업에 관한 특별안건」을 작성하면서 반미·평화 및 군축투쟁과 국가보안법 철폐,안기부 해체 등을 주장하고 북한의 고려연방제 통일 방안에 동조한 것을 비롯,5회에 걸쳐 팩시밀리를 통해 북한의 김일성종합대학 학생위원회 등과 통신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었다.
  • 외교전문가 자곱 헤일브런·마이클 린든 공동칼럼

    ◎보스니아서 「세번째 제국」 노리는 미국/카리브해 연안국 종속시켜 첫 제국… 두번째는 서유럽·아주지역서 패권/중동지역의 서부전선 간주… 영향력 강화 시도/중·일 등과 긴장 불원… 아시아선 점차 발빼기로 보스니아는 미국의 영향력이 날로 증대하고 있는 중동지역의 「서부전선」이기 때문에 미국은 보스니아에 대한 적극적 지원을 하고 동아시아와의 유대를 줄이는 방향으로 일본 및 한국과 유연성 있는 새안보조약을 협의할 필요가 있다고 미국의 외교전문가인 자곱 헤일브런과 마이클 린든이 최근 뉴욕 타임스에 공동 기고한 칼럼에서 주장했다.「세번째 미국 제국」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요약한다. 클린턴 대통령은 보스니아에의 2만명 파병결정을 미국과 유럽간 동맹의 자연적 부산물이라고 묘사하고 있다.그러나 우리는 보스니아를 나토의 동부전선으로 보는 대신에 발칸반도가 중동지역에 있어서 급진적으로 팽창하는 미국 영향권의 서부전선이라고 보아야 한다.2차세계대전까지 발칸반도는 유럽의 일부가 아니라 「근동」의 일부로 간주돼 왔음을상기해야 한다.미국이 보스니아 회교국 창설에 대해 유럽동맹국들보다 더 열성적이라는 사실은 미국이 페르시아만부터 발칸반도까지의 회교국가들로 구성된 비공식모임의 지도자라는 새로운 역할을 떠맡고 있음을 보여준다.한때 오스만 터키에 의해 지배된 이 지역은 이제 「세번째 미 제국」의 심장부가 되고 있다는 여러 징후들을 보여주고 있다. 19세기이래 미국은 3개의 제국(전통적 식민지뿐아니라 자발적 종속국가의 그룹을 말한다)을 가졌다.첫번째 미 제국은 미국이 쿠바,푸에르토리코,필리핀 그리고 카리브해 국가의 상당수를 삼켜버린 1898년 미­스페인전쟁으로 생겨나 2차세계대전 말까지 지속됐다.1945년부터 1989년까지의 두번째 제국은 서유럽과 아시아에 집중됐다. 냉전이후 미국은 다시 옛날 적국의 제국위에 종주권을 행사하고 있다.소련의 붕괴는 미국이 (나토를 통해)동유럽과 유고슬라비아에 군사적 헤게모니행사 지역을 확대하는 것을 촉진시켰다.가장 중요한 것은 냉전종말이 미국으로 하여금 중동지역에의 개입을 심화시키는 것을 허용했다는 것이다.대이라크전이 미국을 페르시아만의 지배국으로 만들기 전까지도 미국은 중동지역에서의 군사적 공약을 계속 강화함으로써 세번째 제국의 기초를 다지고 있었다.미국이 베트남을 포기한 직후 카터 대통령은 이스라엘­이집트의 평화를 장려하고 시나이사막에 미군을 주둔하게 한 캠프 데이비드 평화협정을 주도했다.이란혁명과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후인 80년 1월에는 페르시아만 지배에 대한 어떤 외부의 기도도 미국의 중요이익에 대한 공격으로 여긴다는 카터 독트린이 나왔다.이는 신속배치군으로 뒷받침됐다.카터 대통령이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신속배치군을 강화,미국의 대중동지역 공약을 유럽 및 동아시아에서와 같은 수준으로 놓게 했다. 걸프전이후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주변국에 항구적 군사주둔을 확대시켜 호전적인 회교국들의 분노를 샀다.페르시아만에 미 제5함대를 설치하기도 했다.미국이 이지역을 점점더 중요시함은 이스라엘과의 친밀관계를 전례없이 높이는 데서도 감지된다.중동은 미국이 군사배치를 강화하고 있는 세계 유일의 지역이다.세번째 제국의 중동 핵심부가 견고해지는 동안 두번째 제국의 주 요소였던 유럽과 동아시아의 종속국들은 약화되고 있다.서유럽에 대한 미국의 군사공약은 급격히 쇠퇴했다.클린턴 대통령은 독일에 중부 유럽을 잠재적 적국인 러시아로부터 보호하는 짐을 맡아줄 것을 요청했다.나토국가의 주임무는 가까운 장래동안 발칸반도,지중해와 페르시아만에서의 미국의 전쟁을 위한 무대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세번째 미 제국내에서 아시아의 위상은 어떤 것일까.마땅한 위치가 아예 없을지도 모른다.중국과의 동맹은 단호히 배제될 수 있다.남지나해에서의 중국의 군사력 강화와 최근 반체제인사 위경생의 투옥에서처럼 북경정부는 워싱턴정부를 무시하거나 자극시키고 있다.중국을 압박하는 것 역시 현실적 대안이 못된다.중국정부를 전복시키려 한다면 분명 재앙을 초래할 것이다.그럴 경우 중국은 이란같은 반미정권들을 강력 지지하고 나설 것이다. 미국과 일본을 따로 움직이게 하는 긴장관계는 오해나 선동의 결과가 아니라 곧바로 이해관계 충돌의 결과이다.비록 일본이 장사꾼적인 무역,투자정책을 수정할지라도 이나라의 독특하고도 성공적인 정경카르텔은 계속해 자신의 무역 상대국과 긴장을 만들어 낼 것이다.미국 역시 영원히 일본의 파수꾼 역을 계속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중국과 일본과의 지역적 무기경쟁이 전개되더라도 미국은 외부 중재자라는 아쉬울 게 없는 입장에 있을 것이다.한반도 평화통일 뒤 미국과 한국과의 동맹관계는 계속될수 없다.왜냐하면 중국은 한반도 통일에 동의하는 대가로 통일한국의 중립성과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의 유대를 줄이고 일본 및 한국과 유연성있는 새 안보조약 체결을 협의해야 할 때가 왔다.기존의 안보조약은 모든 지역이해가 동등하다는 허구에 기초한 것이다.아시아에서의 미군감축은 중동과 발칸반도에서의 새 공약을 떠받치는 필요자원이 될 것이다.이 새 공약은 최소한 한세대는 지속될 공약이다. 처음 두번의 미 제국들과는 달리 세번째 제국은 민주주의와 자결권을 확대시키는 도구로 정당화될 수 없다.미국의 지도자들은 쿠웨이트를 사담 후세인으로부터 해방시켰을 때처럼 말로는 항상 이같은 가치들을 들먹일 것이다.그러나 중동의 미국 종속국 대부분은 사우디아라비아같은 권위주의 국가들이거나 민주국가라해도 소수민족의 자결권을 좀처럼 인정치 않는 국가들이다. 지금까지 미국이 아시아로부터 빠지고 중동으로 향하는 변화는 19세기의 역사학자 J R 시일리의 영국제국이 「정신없이」 창조된 것이라는 유명한 표현과 흡사했다.클린턴 대통령의 발칸반도에서의 도박은 미국은 더이상 「팩스 아메리카나(미국의 지배에 의한 평화)」밖에는 주도할 여유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아시아로부터의 철수와 동시에 유럽­중동 영향권의 구축에 대한 도전은 미국이 1990년이후 모은 다양한 종속국들을 다룰 새로운 나토유형의 기구나 동맹관계 발전을 필요로 한다.궁극적 윤곽이 어떻게 나오든 간에 세번째 제국은 적당한 힘으로 지원돼야만 한다.보스니아에서의 실패는 세번째 제국이 설립되기도 전에 그것을 무너뜨리는 것일 수 있다.
  • 작년산 벼 1백만섬 오늘부터 시가 수매

    농협중앙회는 8일부터 80㎏기준 95년산 일반미 1백만섬(벼 40㎏들이 5백만가마)에 대한 시가수매에 들어간다고 7일 밝혔다.농협 시가수매는 95년산 추곡 9백60만섬에 대한 정부수매가 모두 끝나고 농산물검사소 등과의 수매일정 협의,군별 수매가 결정,농가 출하 희망량 조사 등 세부절차도 마무리됨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다.
  • 10월부터 정비업체서 차량 정기검사(새해부터 달라지는 것들:Ⅱ)

    ◎남산 1·3호터널 하반기에 혼잡 통행료/기능사보 이상 자격자 공익근무요원 복무 ▷건설◁ ▲외국인 토지취득=대한민국 국민이 외국의 국적을 취득하는 경우 국내에 보유 중인 토지를 팔아야 했으나 계속 가질 수 있다.외국인이 증권거래업 보험업 등을 영위하기 위해 부동산을 취득할 때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뀐다. ▲시·도지사의 지방산업단지 지정규모 확대=30만㎡ 미만에서 1백만㎡ 미만까지 건설교통부 장관의 승인없이 지정할 수 있다. ▷교통◁ ▲자동차번호판=한자리수인 차종기호가 두자리수로 바뀌고 일련번호를 한글 음각으로 추가 표시한다. ○차종기호 두자리수로 ▲자동차 신규등록 신청대행 의무화=10월부터 자동차 구입자가 직접 신규등록을 신청하는 경우를 제외한 모든 경우에 자동차 판매업자가 신규등록 신청을 대행해야 한다. ▲자동차 검사제도=정기검사를 기존의 교통안전공단을 포함,지정 자동차 정비업체도 할 수 있다(10월 시행). ▲자동차 관리사업 운영=자동차의 매매·정비·폐차 등 관리사업이 10월부터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뀐다.중고 자동차 경매제도 10월부터 시행된다. ▲자동차 관리법 위반 처벌규정=말소등록신청을 위반할 때 벌금이 1백만원 이하에서 과태료 50만원 이하로 낮아진다.자동차 무단방치시 1년 이하 징역 또는 1백만원 이하 벌금에서 1년 이하 징역 또는 3백만원 이하 벌금으로 강화한다(10월 시행). ▲책임보험배상 한도액 인상=8월 1일부터 사망시 1천5백만원에서 3천만원,부상시 6백만∼20만원에서 1천만∼20만원,후유장애시 1천5백만∼60만원에서 3천만∼1백20만원 등으로 상향 조정된다. ▲혼잡통행료 부과=시장 등이 조례에 의해 지정한 혼잡지역에 진입하는 1∼2인승 차량에 대해 일정액의 통행료가 부과된다.서울시가 남산 1·3호 터널에 대해 하반기 시범실시를 계획중이다. ▲주차장법 적용지역 확대=원칙적으로 도시계획구역에 한했던 주차장법 적용지역을 전국으로 확대한다. ▲시내버스 운송사업차량의 고출력화=시내버스의 승차감을 높이고 매연방지를 위해 신설된다.1월 1일 신규등록 차량부터 t당 16마력 이상이어야 한다. ▲모범택시 무선호출통신망 운영=고객이 언제라도 호출,이용할 수 있도록 무선호출통신망을 개선한다. ▲시내버스 요금수수방법 개선=서울은 7월부터 전면 카드제를 실시한다.부산·인천·대구·광주·대전은 상반기에 시범 운영,하반기에 확대 운영한다. ▲고급형 우등고속버스 도입=9월 1일부터 운행거리 2백㎞ 이상 노선에서 화장실 및 세면대 등이 설치된 고속버스를 운행한다. ▲물류사업자 자율 경영권 확대=복합운송주선업·화물터미널사업·창고업 등의 요금신고제와 약관인가제를 없앤다. ▲분양가 자율화=강원·충북·전북·제주지역의 전용 25.7평 초과주택,수도권 이외의 지역에서 공급되는 주택,토지개발공사 등의 공영개발택지를 공급받지 않은 주택,국민주택기금 등 공공자금지원을 받지 않은 주택,공정이 80%에 달한 뒤 분양하는 주택 등의 경우를 충족하는 주택에 대해 처음으로 시행한다. ▲주택관리=입주예정자 보호를 위해 주택건설사업자가 착공과 동시에 분양하는 경우에 하는 주택착공보증을 폐지하고 준공시까지를 보증해 주는 주택분양보증이의무화된다. ▷농업◁ ▲농지취득 및 소유=농업진흥지역 내의 소유상한 10㏊를 폐지,무제한으로 소유할 수 있게 한다.농지 소재지로부터 20㎞ 이내 거주요건을 폐지,도시인도 농지를 살 수 있다.농업회사법인(유한·합자·합명)의 농지취득을 허용한다.주요 농작업의 3분의1 이상 또는 연간 30일 이상 농업경영에 참여할 경우 나머지 농작업은 남에게 맡기는 위탁영농이 가능해진다.농사를 짓지 않는 농지는 1년 안에 처분해야 한다.기간내에 처분하지 않으면 시장·군수가 처분명령을 내리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매년 공시지가의 20%를 이행강제금으로 물린다.처분의무는 96년 1월1일 이후 취득한 농지에만 적용된다.농지의 임대차 기간이 3년이상에서 1년이상으로 짧아진다.임대차 계약시 6개월 내에 신고하는 의무가 없어진다. ○농지소유 상한제 폐지 ▲농수산물 원산지표시제=대상이 63개 품목에서 2백27개로 확대된다. ▲홍삼 제조판매=담배인삼공사의 전매제가 폐지돼 민간의 제조판매가 가능해진다. ▲농지개량조합=수계가 달라도 일정 조합원수와 관리면적을 확보하면 설립할 수 있다.현물(10a당 벼 5㎏)로 내던 조합비를 현금(10a당 6천원)으로 내게 된다. ▲사료관리=배합 및 보조사료 제조업이 허가제에서 시·도지사 등록제로 바뀐다.수입사료 판매업에 대한 시·도지사 신고제가 폐지돼 자율화 된다. ▲농어촌 정비사업=주택신축 등 정주권 개발사업 융자한도가 면당 9억원에서 15억원으로 늘어난다.농기계 작업이 어려운 한계농지를 휴양지로 개발한 경우 그 주택과 부속농지에 대해서는 도시인이 4배50평까지 소유할 수 있다. ▲관광농원 개발=진흥지역은 개발이 불허된다.농어민 5인 이상이 공동으로 투자하는 경우 우선 지원한다. ▲양곡매매업=조·수수·옥수수·메밀 등을 신고대상에서 제외한다.인천·대구·메밀 등을 신고대상에서 제외된다. ▷총무행정◁ ▲전직대통령에 대한 예우 조정=재직중 탄핵당해 퇴임했을 때,혹은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거나 형사처분을 피할 목적으로 해외에 망명을 요청했을 때 연금지급 등 각종 예우가 중단된다.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이 처음으로이 규정의 적용을 받게 될 전망이다. ▲공무원 채용에 민간경력 인정=민간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교수로 일하거나 변호사.공인회계사 등 자격증이 필요한 전문직으로 일한 사람을 공무원으로 임용할 때 민간경력을 인정해 준다. ○본인 연금부담률 6.5% ▲공무원 연금제도 변경=연금의 본인 부담률이 5.5%에서 6.5%로 높아지는 대신 연금관리공단에서 부담해 오던 퇴직수당부담금 가운데 기금부담금과 사망조위금,재해부조금을 정부에서 부담한다.또 새해부터 새로 임용되는 공무원들은 60세가 되어야 연금을받을 수 있다.다만 55세에서 59세 사이에 퇴직하는 공무원은 60세 미달 연수 1년당 퇴직연금을 5%씩 뺀 조기퇴직연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 ▲공무원 휴가 확대=본인이나 배우자의 부모 생신 또는 기일에 하루씩,일년에 2∼3차례 효친휴가가 주어진다.20년 이상 장기근속자에게는 10일 동안의 장기근속휴가가 한차례 주어진다. ▷법제행정◁ ▲국민권리 구제 확대=96년 4월부터 개정된 행정심판법이 시행됨에 따라 행정기관으로 부터 억울하게 불이익을 받은 국민이 종전보다 더 확실하게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청소년◁ ▲수련시설 설치규제완화=수련시설 설치때 문화체육부와의 사전 협의제도가 폐지된다. ▲수련시설에 대한 가벼운 위반사항 처벌완화=시·도지사의 시정명령 위반자등 가벼운 위반에 대한 행정형벌이 과태료 부과로 전환된다. ▲서울평화상 장학사업=세계화 추진 및 21세기 대비,유망한 국내.외 차세대 인재육성을 위한 장학사업이 시작된다. ▷국방◁ ▲군 인사법 개정=특수전문직,기능사령부직 등 일부 직종을 대상으로 임기제 진급자가 2년간 복무할 수 있도록 하되 유사직위로 전직되면 2년 연장. ▲단기사관학교 과정개선=대학 2년이상 수료 및 전문대졸이나 동등이상 학력 인정자 가운데 선발.2년제 생도과정을 운영,임관 때 학사학위를 부여하되 학사과정은 폐지. △2년제 생도과정 운영 ▲장병 급양향상 및 피복·일용품 개선=하루 2천8백91원이던 1인당 급식비를 3천1백39원으로 올리고 일반미의 함유량을 90%로 확대·석식에만 적용되던 1식4찬을 점심까지 확대하고 대대급 이상에민간 조리요원을 확보. ▲방산협력단 신설=급변하는 국제 군수 및 방산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해외군수·방산협력을 강화하고 방산수출활동을 효율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제2차 관보 산하에 운영. ▲국방부 위탁 기술·자격종목 확대=기능사 1급의 건설기계정비,철도동력차 기관정비 등 4종목과 기능사 2급의 열차조작,유리시공,항공사진 등 18종목 확대. ▷병무◁ ▲교통불편지역 거주자,인접 징병검사장서 수검=관할 병무청이 아니더라도 서울 도봉·강북·노원구·강원 철원군에 사는 병역의무자는 의정부,경남 울산시·양산군은 부산,경북 울진군·강원 정선·평창군은 강릉,경기 가평군은 춘천 징병검사장서 신체검사 가능. ▲징병검사 통지서 우편송부제=읍·면·동 직원이 병역의무자에게 직접 전달하던 징병검사 통지서를 등기우편으로 교부. ▲공익근무요원 소집대상 보충역의 산업기능요원 편입자격 완화=제조업의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공익근무요원 편입대상 보충역은 학력에 관계없이 기능사보 이상의 자격만 따면 산업기능요원으로 편입.또 기술·자격이 없는 보충역이 산업기능요원에 편입한 경우 편입일로부터 2년안에 기술·자격을 따면 계속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 가능. ▲징병검사 현황공개=국가 기본정책을 수립할 때 활용할 수 있도록 개인정보 보호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에서 검사결과를 공개하고 정부기관과 민간단체 등에 제공.*징병신체검사 규칙 개정=신체 등위 평가기준 3급 항목 가운데 의학적으로 판단해 현역으로서 훈련 및 병영생활에 어려움이 예상되는 항목을 4급으로 하향조정. ▷외무행정◁ ▲여권발급시 주민증 제출 폐지=거주지 이외의 지역에서 여권을 발급할 때도 주민등록등본은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지방행정◁ ▲일반행정=1월부터 본인이나 가족,직계 존.비속 이외에 채권자등 정당한 이해관계가 있는 제 3자도 주민등록 등·초본을 발급받을 수 있다.읍·면·동 사무소에 팩스로 신청할 수 있다.토지의 경계를 조정하는 측량의 경우 지금까지는 신청만 하면 가능했지만,새해부터 는 인근 토지의 소유자가 측량에 동의하거나 측량시 입회해야 가능하다.이웃이 거부할 때에는 그 사유서를 첨부하면 된다.4월부터는 각 지방자치 단체들이 1년에 한번 이상예산집행 상황,지방채 및 일시 차입금의 현황,공유재산과 물품의 증감 및 현황 등을 주민에게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7월부터 소규모 온천개발이 가능해지고 굴착,동력장치 설치,온천영업 허가등 온천관련 인·허가권이 현행 시·도지사에서 시장·군수로 넘어간다.농어촌에서도 주택조합을 만들어 집을 지을수 있고,1년 이상 살지 않은 빈 집은 자치단체가 직권으로 철거할 수 있다. ▲지방세=종합토지세와 토지분 도시계획세의 과세표준이 건설교통부가 매년 조정하는 「토지 등급가격」에서 「공시지가」로 바뀐다.그러나 과표 현실화율을 반영하기 때문에 당장 세액이 늘어나지는 않는다.취득세와 등록세의 과표를 실거래 신고가격을 원칙으로 하는 것은 변함이없다.그러나 신고액이 과세시가 표준액에 못 미칠 경우 지금은 과세시가 표준액을 과표로 잡지만,내년부터는 과표 현실화율을 반영해 공시지가를 과표로 삼는다.역시 당장의 세액증감은 없다.국가 유공 상이자에대한 취득세·등록세·면허세·자동차세 등 지방세의 면제 대상이 1∼2급에서 1∼5급으로 확대되고 6급 유공 상이자는 자동차세만 면제된다.연안 화물선과 어민후계자 및 수산 계열 학교 졸업자가 취득한 어선과 어업권의 취득세 및 재산세가 절반으로 줄어든다.중소기업 창업 보호육성센터,유통단지,중소기업 임대공장,컨테이너 부두공단 지원시설의 취득세와 등록세가 면제되고 재산세와 종토세는 50% 경감된다.반면 소득세·법인세·농지세에 부과되는 「주민세 소득할」의 세율은 7.5%에서 10%로 높아진다. ▲자동차세=배기량 8백㏄ 이하인 경자동차의 자동차세가 5%에서 2%로 낮아진다.또 경차는 「1가구 2차량」이 되도 중과세 대상에서 제외되며,면허세도 50%로 줄어든다.농사를 지으며 결혼을 한 자녀나,또는 미혼이라도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농지소득이 있는 30세 이상의 자녀가 별도로 차를 살 경우도 「1가구 2차량」 중과대상에서 제외된다.지금까지는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이 있고 결혼한 자녀가 별도로 차를 살 경우에만중과세 대상에서 제외됐다.배기량 2천㏄ 이상의 대형 자가용 승용차의 자동차세는 큰 폭으로 내린다.2천㏄ 이상 3천㏄ 이하의 경우 ㏄마다 4백10원인 자동차세가 3백10원으로 낮아진다.3천㏄ 이상은 6백30원에서 3백70원으로 떨어진다. ○지프차세 9∼21% 올라 다만 지프형 승용차의 자동차세는 배기량에 따라 9∼21%까지 오른다. ▲재난관리=68개 소방서에만 있던 「119 구조대」가 전국 1백16개 소방서에도 생긴다.고속도로 구급대도 20개에서 40개로 늘어난다.7월부터는 「자연대책법」이 공포돼 자연재해에 가뭄과 지진이 추가되며,대규모 개발사업을 하기 이전에 반드시 재해영향 평가를 받아야 한다.지진에 대비해 건축은 물론 도로·철도·항만시설 등에 대한 내진설계 기준이 새로 마련된다. 자치단체는 재해복구 기금으로,목적이 정해지지 않은 지방세(예컨대 취득세나 등록세) 총액의 「1천분의 8」을 반드시 적립해야 한다.
  • 총선 이후의 러시아/예브게니 바자노프(지구촌 칼럼)

    ◎“공산주의 누를 후보 옐친 밖에 없다”/개혁진영 뭉쳐 밀어줘야… 차선책은 체르노미르딘 총리 지난 17일 총선에서 러시아 공산당은 정당에 대한 비례대표는 물론,지역구에서도 압승을 거뒀다.91년 옐친대통령에 의해 한때 활동이 중단됐던 공산당이 이처럼 압도적인 승리를 이룬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러시아 공산주의는 선량한 국민들을 우롱하다 결국 무너진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공산당은 국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지고 「붉은 공산주의」의 악령을 잊기 시작한 틈을 타 93년 12.4%의 지지를 획득,부활에 성공했다.국민들이 생필품의 가격이 낮고 인플레이션이 없었으며 월급들이 제때 나왔던 과거를 「좋은 시절」로 치부할 수는 있다. ○경제 어려운 지방서 득세 민족주의계열인 지리노프스키의 자유민주당이 과거 제1당에서 이번에는 공산당에 이어 제2당이 됐다.그의 기이한 행동에 염증을 느낀 많은 유권자들이 여당이라 할수 있는 「우리조국러시아당」보다는 공산당에 표를 준 결과다.공산당과 자민당은 특히 경제사정이 악화된 지방에서 많은 득표를 했다.반면 모스크바와 상페테르부르크등 대도시에서 반개혁주의정당들은 힘을 쓰지 못했다.체르노미르딘총리의 「우리조국러시아당」은 대도시에서 많은 지지를 얻었지만 지방에서 그를 잘 이해하지 못해 결국 9.8%라는 낮은 지지율에 그쳤다.개혁정당이라 할 수 있는 「야블로코블럭」이 다음을 이었다.젊은 학자 야블린스키가 이끄는 이 정당은 지도자 야블린스키가 한번도 옐친정부에서 일하지 않은 순수성 때문에 개혁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위치에 있지않아 7.2%의 저조한 지지를 얻었다.개혁정당이 이번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것은 그들 진영이 분열된채 선거를 치렀기 때문이다. ○듀마,옐친 탄핵 나설듯 그렇다면 새로 구성되는 듀마는 개혁의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 있을까. 옐친대통령과 그의 내각은 공산­민족주의계 정당승리의 영향을 최소화하려들 것이다.여기서 강조할 것은 러시아헌법은 대통령이 의회에 군림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의회는 행정부의 정책을 확인하거나 예산정책을 거부하는 정도밖엔힘이 없다.의회가 예산을 거부해도 정부는 중앙은행을 쥐고 있어 금융정책의 대부분을 뜻대로 추진할 수 있다. 하지만 의회는 정부를 「흔들수 있는」 잠재력을 얼마든지 갖고 있다. ○“주가노프는 단순한 대역” 공산당은 이번 선거결과로 듀마의장(국회의장)을 차지할 수 있다.또 옐친정부에 대한 탄핵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지리노프스키의 정당도 행동을 같이 할 것이다.탄핵에는 수많은 고비가 있겠지만 일단 그런 의회행동으로 옐친과 내각의 인기는 낮아질 것이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의회는 옐친정부의 외교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반미정책을 견지하면서 옐친정부가 러시아를 서방의 경제식민지로 전락시켰고 발칸지역에서도 국익을 챙기지 못했다며 비난을 퍼부울 것이다.의회는 민족주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한편 옛 소련 지역에서 러시아인들의 보호와 경제적 이익을 끊임없이 추구할 것이다.옛 소련지역의 통합은 공산·민족주의계열의 최대현안으로 등장할 것이다.이는 일부 동유럽국가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새 의회가 할수 있는 것은 또 옐친정부에 대한 심리적 압박을 증가시키는 일이다.이 경우 반대파들이 선호하는 정책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국제무대에서도 경직된 자세로 나올 것이다.역으로 공산·민족주의계 의회 다수세력들이 96년 대선을 겨냥해 자본주의화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공산당은 향후 의회를 대선의 연설회장으로 삼는 전략을 구상할 것이다.공산당의 승리에 고무된 국민들은 그들의 「설교」나 공약,연설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중요한 것은 공산당을 이끌고 있는 주가노프당수는 훌륭한 연사도 아니며 지도력있는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도 아니라는 점이다.공산당은 현재 그를 단순한 대역으로 생각하고 있다.일단 주가노프가 대선주자로 나설 경우를 상정,득표상황을 전망하면 대선의 첫라운드에서 30%정도의 지지를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지리노프스키는 인기가 감소추세이기 때문에 지지율이 10%정도에 머물 것이며 나머지 민족주의 세력이나 친공산계정당의 후보도 첫라운드에서 10%안팎을 내다볼 것이다.결선투표에서 지리노프스키나 다른 민족주의계후보에 대한 지지는 주가노프에게 쏠릴 것이다.그래서 반개혁진영이 결선투표에서 50%까지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건강·인기도 낮은게 문제 그렇다면 누가 공산주의 후보를 따라 잡을 것인가.옐친밖에 없다.그의 호전적인 성격,그의 공산주의에 대한 증오심을 감안할 때 「타고난 승부사」 옐친이 내년의 대선레이스에 공식 도전할 것으로 기대된다.그러나 장벽도 많다.가장 큰 문제가 그의 건강,다음이 그의 낮은 인기도다.체첸사태의 장기화,경제난국의 심화도 큰 장애물이 아닐 수 없다.옐친대통령 자신이 대선출마를 포기할 경우 체르노미르딘총리가 공산당주자를 패퇴시킬수 있는 가장 강력한 후보자로 떠오른다.지방의 많은 관리뿐만 아니라 보수세력,젊고 친서방적인 민주세력,옐친을 꺼려하는 많은 세력들이 그를 지지한다.그는 공산당 기술관료였으며 경제를 잘 알고 한번도 오만불손한 인텔리라든가 친서방적인 자유주의자로 인식되지 않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가 대통령이 되려면 옐친대통령과 야심만만한 민주세력 야블린스키가 출마를 포기하고 밀어줄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
  • 서울신문 발굴「한국합동군사원조 자문단 국가팀 회의 자료」를 보고

    ◎전문가 진단/김광운 국사편찬위 연구원/“한국정정 불안” 미 직접개입 주장/북한 위협·반미운동 확대 우려 1960년대초 대한민국의 역사는 독재정권의 몰락,사회개혁을 내건 장면정권의 무능,군사 쿠데타로 이어지는 격동의 시기였다.「3월위기설」,「4월위기설」이 계속 유포되면서 민심이 크게 동요하던 이 때는 북한당국이 남한을 무력공격하기에 가장 적절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1960년 8월 23일 구정권 청산과 사회개혁을 내걸고 출범한 장면정권은 계속되는 민주당내의 내분과 경제난의 악화 및 대중차원의 통일운동,반미운동의 대두에 적절한 대응을 못하면서 무능을 드러냈다.북한당국은 남한정세에 편승해 평화통일 선전공세를 강화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자 했다.장면정권은 대중운동의 활성화에 대해 『북한의 지시에 의한 것』 또는 『미국을 반대하는 자는 공산주의자들 뿐』이라고 대응했다. 한국에서의 새로운 사태발전은 미국에게도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했다.미국은 한국상황에 적극 개입해 대통령 특별전문위원회(Presidential Task Force)를 가동시키며,획기적인 대책을 강구해 나갔다.그 구체적 결과물이 「장면정권 평가보고서」,「팔리보고서」,「로스토우보고서」,「맥카나기보고서」,「중앙정보국보고서」,「국무부보고서」 등이었다. 지금까지 이 주제와 관련한 연구에서는 미국 행정관료들이 작성한 「콜론보고서」등의 분석을 통해 미국과 장면정권 및 군부와의 관계에서 주로 경제문제에만 초점을 맞추어 왔다.그 결과 대사관을 포함한 일반행정관료와 중앙정보국(CIA)이 사태 추이에 깊게 관여한 것과는 달리 주한미군사령부는 장총리의 『국군의 10만감병』주장에 대하여 『국내상황도 적절히 통제하지 못해 좌익학생들이 활개치도록 방치하고 있다』며 상황을 그대로 방치했다고 결론지어 왔다. 하지만 이것은 공개된 일부의 사실에 불과하다는 점이 새로운 자료의 발굴을 통해 밝혀졌다.미국이 한미관계에서 항상 신경을 곤두세운 부분은 북한의 평화통일 공세와 대남도발 가능성에의 대처였던 것이다.이 부분을 보완할 때만이 사실의 전체 윤곽이 그려질 수 있을 것이다. 당시 한국에서활동한 미국의 행정부 계통의 관리들은 『국민에 의해 선출된 합법정부』였던 장면정권을 지지했다.맥카나기 대사,마샬 그린 대리대사,그레고리 헨더슨 정치참사관 등은 군사쿠데타의 가능성을 결코 배제했던 것이다. 그러나 주한미군사령부에서는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위협과 반미운동의 확산에 적극 대응해 나갔던 것으로 자료는 밝혀주고 있다.현지의 미군은 『대한민국의 경제적 발전의 실패와 자신감 결여,혼란,판단불능 등 때문에 공산주의 선전에 대해 적절히 대처하는 것이 현재 어려운 형편』이라고 판단한 위에서 『강력한 정부의 수반이 요구되고 있으며,만약 필요하다면 우리의 군사적 경제적 공헌물에 대해 통제를 해야 한다』며 한국의 상황을 북한과 연관시켜 직접 개입을 주장하면서 모종의 대책을 준비해 나갔던 것이다.
  • 자유민주당­공산당 제1당 경쟁 치열/러시아 오늘 총선

    ◎43개 정당 8천여후보 난립 【모스크바=유민 특파원】 극우계열의 「러시아자유민주당」과 「러시아연방공산당」이 제1당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구소련붕괴후 두번째인 러시아총선이 17일(현지시간)1억5백만명의 유권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전국 9만4천여개 투표소에서 일제히 실시된다. 이번 총선에는 모두 43개 정당에서 8천여명의 후보가 난립,4백50석의 두마(하원)의원직을 놓고 경합을 벌이게 된다. 두마의원 4백50명중 2백25명은 각 지역구에서 1명씩 직접선거로 선출되며 나머지 2백25석은 5%이상 획득한 정당에 한해 득표율에 따라 배분하게 된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이번 선거의 결과는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개혁정책에 대한 지지도를 측정할 수 있는 시금석일뿐만 아니라 내년의 대통령선거를 미리 점쳐볼 수 있는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선거에 앞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극우계열의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가 이끌고 있는 「러시아자유민주당」과 공산계의 「러시아연방공산당」등이 우세를 보이는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유권자의 3분의1가량이 아직까지 부동표로 남아있어 선거결과를 예상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43개 정당중 어떤 정당도 과반수이상을 획득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유권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기는 했으나 러시아전문가들은 투표참가율이 50∼55%를 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빅토르 체르노미르딘총리가 이끌고있는 친정부계열의 「우리 조국 러시아당」이 이번 선거에서 약세를 보일 경우 체르노미르딘의 대통령선거출마가 불가능해지고 총리직에서도 경질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러 주요정당 공약 및 특표전망/“사유화 중단” 내세운 공산당 지지 급상승/현 총리가 이끄는 「러시아당」 10% 의석 차지할듯/자유주의 진영선 「야블로코 블록」 최고 득표예상 17일 러시아총선에 참여하는 43개 정당들은 여·야당을 떠나 대국민약속으로 크게 두가지 흐름을 강조하고 있다.우선 시장경제든 국가계획경제든 사회보장을 강화해 국민생활수준을 높이겠다는 것이다.다른 하나는 대외적으로 옛소련의 명예와 자존심을 회복,국제사회에서 적어도 러시아의 리더십을 강화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중도·자유주의적 정당들은 현재의 시장경제제도를 유지하거나 가속화시키는 주장을,공산·민족주의계 정당들은 사유화정책을 멈추고 옛소련 국경선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을 공통으로 펴고 있다.그러나 이들 공산·민족주의계열의 주장은 사유화가 국유화정책과 병존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 스탈린식 공산주의와는 구별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원내 제1당 가능성이 높은 공산당의 공약은 현정부의 사유화정책을 중단시키고 연금생활자등에 대한 사회보장을 크게 확대하는데 중점을 둔다.물론 「옛소련의 재건」도 강조한다.이는 옛소련에서 독립한 많은 독립국가연합(CIS)국가들을 긴장시키고 있다.이번 선거에서는 20%안팎의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각종 여론조사는 밝히고 있다. 현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총리가 이끄는 「우리조국­러시아당」은 정부주도의 사유화·시장경제정책을 지속시켜 나가고 「질서와 안정」을 강조한다.93년 선거에서 지리노프스키의 민족주의적 반향을 염두에 둬 이번에는 「강한 러시아」대목을 특히 강조,눈길을 끈다.하지만 계속되는 옐친정부의 실정으로 이번 선거에서 10%안팎의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리노프스키의 자유민주당은 국가계획경제,옛소련 국경선의 회복,반미등을 강조하고 있는데 특히 1백만명의 보안군을 창설해 대내외적인 치안을 유지하겠다는 공약을 내놓고 있다.이번 선거에서는 참여정당 대부분이 민족주의 애국주의등을 강조하고 있어서 지난 선거에서 받은 23%의 지지율에는 못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한때 옐친 대통령의 안보서기를 지낸 유리 스코코프와 러시아의 아프가니스탄전쟁영웅 레베드장군이 이끌고 있는「러시아공동체회의당」은 군예산을 증액시키고 중앙집권적인 물가통제를 주창하고 있다.이들은 옛소련연방내 2천5백만 러시아인에 대한 지원도 공약하고 있다 현재 자유주의정당 지도자가운데 가장 강력한 대통령후보로 꼽히고 있는 그리고리 야블린스키의 「야블로코 블록」은 중산층을 겨냥,에너지부문 세제개혁을 통해 사회보장·교육·문화·범죄방지에 지출을 강화한다는 전략이다.이번 선거에서는 10%안팎의 의석을 확보할 것으로 언론들은 분석한다. 공산당과 연립가능성이 높은 농민당은 국영·집단농장에 대한 정부보조확대,토지자유거래반대등을 주장하고 있다.외교정책에서는 옛소련식 목소리를 강조하는 공산당과 입장을 같이한다고 공언하고 있다.모스크바 정치분석가들은 이번 총선에서 5%이상의 유권자지지를 얻어내 기본의석 12석을 확보할 수 있는 정당이 공산당,「우리조국­러시아당」등 대략 6∼7개정당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즉 어느정당도 과반의석확보가 힘들 것이며 따라서 총선이후 정당들의 이합집산등 정개개편이 가속화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 서울신문에 미친 사회풍속도 세태 50년:Ⅱ(서울신문50돌 특집)

    ◎70년대/「보릿고개」 넘기자 미니스커트 상륙/비상계엄 후유증 「카더라 통신」 난무 70년대 70년대는 유신체제라는 스펙트럼이 처음부터 끝까지 국민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잣대로 작용했다. 유신체제는 우선 「우리도 한 번 잘살아보세」라는 새마을운동 노래로 국민들의 새벽단잠을 깨우며 다가왔다. 전국 농·어촌에 새마을기가 나부끼기 시작했으며 동남아시아 국가등 해외에서도 새마을 붐을 불러 일으켰다. 서울신문도 71년부터 정부의 본격적인 사업전개에 앞서 새마을가꾸기 선두부락을 소개하는 기획물 「번영을 가꾸는 희망가족 시리즈­의욕의 현지,북돋는 자립,땀흘린 보람의 합창」이란 고정컷으로 본지 최초의 새마을운동 기획물을 72년초까지 50회에 걸쳐 연재함으로써 이 운동의 확산에 큰 몫을 담당했다. 72년 3월24일자 사설에선 이 운동을 「농민들이 스스로 잘살기 위해 자조·자립·협동하는 정신의 계발」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70년 7월7일 경부·호남고속도로 개통에다 71년 3월31일 서울·부산 자동전화 개통은 「일일생활권」이라는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정부의 이러한 불도저식 경제 최우선 정책으로 국민들의 배고픔도 어느 정도 해결되기 시작해 국민들의 얼굴에 미소가 띠기 시작했다. 환해진 모습은 먼저 옷차림에서 띠였다.67년 가수 윤복희씨가 선보인 미니스커트는 73년에는 무릎위 17㎝위까지 올라갔을 정도로 그 길이가 짧아져 경찰이 경범죄처벌대상에 미니스커트 길이를 포함시켜 자를 들고 다니며 이를 단속하는 진풍경을 빚기도 했다.남자들의 긴 머리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생들을 비롯한 청년들은 청바지를 즐겨 입고 통기타와 생맥주로 이어지는 이른바 「청통맥문화」를 만끽했다.「사랑해」「왜불러」등의 포크송이 거리를 메웠으며 「아침이슬」「고래사냥」등 금지곡도 양산됐다. 72년 7·4 남북공동성명은 통일을 염원해 온 국민들에게 벅찬 감격과 흥분으로 소용돌이쳤다. 이날자 본지는 「피맺힌 4반세기…이제 전쟁은 사라지는가! 3천리에 벼락환성」「대화있는 남·북대결의 시대 열리다」라는 제목으로 당시 시민들의 반응을 실감있게 전하고 있다. 강하면 부러진다고 했던가. 70년 11월 13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며 근로조건개선을 요구하며 평화시장 교복공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씨의 분신자살 사건은 이러한 고도성장 드라이브 정책이 필연적으로 맞을 수 밖에 없는 종착점을 예고한 사건과 다름 없었다. 72년 10월 17일에는 비상계엄선포로 국회가 해산되고 대학이 문을 닫고 신문·통신마저 사전검열을 받으면서 국민들은 「카더라 방송」「유비통신」으로 불리는 소문에 귀를 기울이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행정부의 시녀로 전락한 유신국회의원들이 장충체육관에서 「체육관 대통령」을 뽑는 「거수기」로 변한 것이나 비상계엄 아래서도 반체제 인사들의 저항과 민주회복운동,양심선언 등이 계속된 것도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사건을 예고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유신정권은 「그때 그사람」이라는 노랫가락 속에 울린 몇발의 총성과 함께 79년 10월26일 막을 내렸다. 10·26사태 뒤엔 「한다면 합니다」란 말과 5·17후의 떡고물 얘기가 유행했다.부정축재자로 지목된 L씨가 자신은 떡(정치자금)은만졌으나 고물(부스러기돈)만 떨어졌다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70년대 종반은 79년 12월 12일 신군부의 군사반란에 이어 80년 5·17일 쿠데타로 또 다른 군사정권 시대를 예고하고 있었다. ◎80년대/“금융사기” 장영자에 “큰손” 조롱/테러범 김현희에 구혼 줄잇고/“탁치니 억하고 죽었다”엔 분노 79년 10월26일 독재자 박정희의 죽음을 뒤로 하고 80년대를 앞두고 있을 때만 해도 국민들은 비로소 「서울의 봄」을 맞게 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79년 12월12일 이른바 12·12 군사반란으로 정권탈취를 노린 신군부는 압제와 서슬 퍼런 군사독재의 시대로 80년대를 열고 있었다. 80년 5월17일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군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18일 군부독재 연장기도에 맞서 광주에서 발생한 항의시위를 공수부대 특전단을 동원해 총검으로 유혈진압하는 비극을 초래했다. 결국 신군부는 그해 9월1일 전두환 정권을 탄생시킨다.그리고 이날부터 TV에는 「땡전뉴스」가 등장하게 된다.9시 뉴스는 어김없이 『전두환 대통령께서는…』으로 시작됐던것이다. 80년 11월12일에는 언론통폐합과 언론기본법 등이 제정돼 기자들은 강제해직을 면치못했고 언론은 통폐합 됐다. 이같은 압제는 학생운동의 흐름에도 영향을 미쳤다.학생운동은 광주항쟁에서의 좌절을 계기로 반미라는 새로운 흐름으로 표출됐고 급기야 82년3월18일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발생했다.이는 85년 서울·광주 미문화원 점거로 이어졌다. 82년 5월에는 장영자 금융사기 사건이 발생했다.6천억원대에 달하는 건국후 최대의 금융사기사건으로 이때부터 사람들은 씀씀이가 큰 사람을 「큰손」이라 일컫기도 했다. 분단의 아픔은 80년 대에도 지워지지 않았다.83년 9월1일에는 사할린 부근에서 항로를 이탈한 대한항공 보잉007기를 소련의 전투기가 공격,승객과 승무원 등 탑승자 2백69명 전원이 사망했고 그해 10월9일에는 서남아시아 순방에 나선 전두환 대통령을 수행하던 서석준 부총리 등 고위관리 13명이 미얀마 양곤의 아웅산묘소에서 북한공작원이 설치한 폭탄에 절명,분노를 자아냈다. 그같은 분노는 87년 6월 테러범 김현희가 대한항공 858기에 폭탄을 설치,1백51명의 승객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로 절정에 달했다.그러나 압송돼온 김현희의 미모에 반해 결혼하고 싶다는 남성들의 문의가 쇄도했다는 웃지 못할 뒷얘기도 남겼다. 87년 1월14일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도 시대의 아픔을 공유케 했다.「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발표는 폭력적인 공권력과 인권침해에 대한 국민적인 저항을 불러 일으켜 6·29선언을 낳게 했다.민주화를 염원하는 국민들의 요구에 굴복해 나온 이 선언은 후에 「죽이구」선언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이처럼 어두운 시대였지만 변화의 물결도 뚜렷했다.80년 컬러TV 시대가 개막됐고 82년에는 통행금지가 해제됐다.또 비디오문화가 새롭게 열리기 시작하면서 외설문화의 범람을 초래하기도 했다. 80년에는 또 대입본고사 폐지,대학정원의 졸업정원제 등을 내용으로 하는교육개혁조치와 함께 과외 전면금지가 단행 됐다.이에 따라 숨어서하는 과외가 성행,수백만원대의 과외풍조가 생겨났으며 「쪽집게과외」 등 돈으로 교육을 사는 세태를 낳기도 했다. 82년 중·고생 두발자율화,83년 교복자유화 등의 조치는 청소년들의 유흥업소 출입 등 많은 문제를 양산하기도 했으며 유니섹스모드의 유행을 가져오기도 했다. ◎90년대/3D기피 현상속 세계화 바람타고 외국어 수강 “붑” 93년 2월25일 제 14대 김영삼 대통령 취임과 함께 「문민정부」가 탄생했다.5·16 이후 30여년만에 민간대통령이 탄생한 만큼 90년대는 사회 모든 분야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 안으로는 금융실명제 등을 통해 사회개혁의 기치를 높이 드는 사이 49년간 북한을 통치해온 김일성이 사망하고 김정일체제가 들어서는 등 안팎으로 많은 소용돌이가 있었다. 그러나 진정으로 90년대를 특징짓는 함축적인 표현은 이른바 「X세대 문화」다. 뒤돌아볼 겨를 없이 성장가도를 달려온 부모·선배 세대가 만들어 놓은 과실을 향유하는 신세대들의 시대인 것이다. 그들에게는 개인주의적이고 향락주의적이라는 부정적인 측면과 함께 개성적인 새대라는 의식이 공존 한다.알아들을 수 없는 「랩」을 흥얼거리며 록카페를 드나드는 「오렌지족」인가 하면 마음만 먹으면 배낭하나 덜렁 메고 유럽이고 미국이고 가고 싶은 곳은 어디라도 찾아나서 모험을 즐기기도 하는 세대들인 것이다. 컴퓨터 없이는 아무 것도 할수 없지만 정보화시대를 앞당기며 국제화와 세계화를 이끌 첨병도 바로 그들이다. 젊은이들의 문화가 인간성 상실로 인한 황금만능주의와 개인주의적 대중문화의 병폐를 양산하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그것은 컴퓨터나 외국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30∼50대 「컴맹세대」가 느끼는 세대간의 문화적 격차일 뿐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성수대교 붕괴사고,서울 아현동 가스폭발사고,삼풍백화점 붕괴 등 90년대 들어 빈발하고 있는 대형사고들은 선배세대들의 부정적 부산물일 뿐이며 그점에서 그들은 오히려 피해자인 것이다. 하지만 즐기는 신세대로서의 그들은 3D 기피현상이라는 어두운 한 단면을 90년대에 그려내고 있기도 하다.「고학력 구직난,저학력 구인난」현상과 외국인근로자의 양산도 바로 그들의 시대를 특정짓는 모습들이다.
  • 김일성 1인체제 구축(새로 쓰는 한국현대사:44)

    ◎전후 복구­외교정책 싸고 소련파­연안파 대립/56년 「8월 종파사건」 계기 본격 숙청… 59년 완료 북한 김일성은 한국전쟁이 끝난 뒤 노동당 내 경쟁 파벌들을 차례대로 숙청,50년대 말쯤에는 일인 집권체제를 구축했다.주체이론으로 무장한 김일성 유일지도체제는 북한을 세계에서 유례없는 공산독재 국가로 만들었다.이는 김일성이 사망한 뒤에도 그의 아들 김정일에게 계승돼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북한 노동당에는 원래 김일성이 이끄는 빨치산파를 비롯,국내파(남로당계)·소련파·연안파 등 주요 파벌이 넷 있었다.이 가운데 박헌영·이승엽 등으로 구성된 국내파는 한국전쟁 말기 이미 숙청돼 휴전 직후 형식적인 재판을 통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따라서 전후 김일성이 권력강화를 위해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는 소련파와 연안파가 남았다. 노동당내 권력투쟁은 1955년에 접어들어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냈다.여기에는 김일성의 권력욕이 물론 주요 동기였지만 전후 경제복구와 외교정책을 둘러싼 파벌간 노선 갈등도 적잖게 작용했다.김일성은 한국전이 끝나자 먼저 경제건설에 주력했다.김일성은 휴전협정 조인 다음날인 1953년 7월28일 라디오방송에서 『전쟁은 조선인민의 승리』라고 자화자찬한 다음 가장 시급한 과제로 『전쟁으로 파괴된 경제를 하루빨리 복구하고 발전시키는 일』을 들었다. 실제로 김일성은 중공업 우선의 「3개년 경제 계획」과 농업 집단화 등 경제개발에 한동안 힘을 쏟았다.또 소련·중국·몽골과 동구권 등 「사회주의 형제국」들을 순방하며 경제원조를 요청하는 외교활동을 벌였다.그러나 연안파와 소련파는 중공업 우선,농업집단화를 앞세운 경제복구가 북한 실정에 맞지 않는다며 반대했다.소련은 또 농업집단화가 중국의 인민공사제도를 흉내낸 잘못된 제도라고 비판했다. 이 무렵 스탈린 사망­흐루시초프 등장에 따라 기존의 국제관계에 변화가 일어난 점도 파벌 대립을 재촉했다.중국에 등을 대고 있는 연안파는 연안파대로,소련과 밀접한 소련파는 소련파대로 변화를 자기 파벌에 유리하게 작용시키려고 애썼다. 당연히 김일성과 반대파 사이에는 어느쪽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제대로 따르는가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김일성은 이즈음 방어논리로 주체이론을 새로 내놓는다.1955년 4월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은 연설을 통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북한의 구체적 상황에 연결해 공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기계적 수용과 적용을 피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력히 밝혔다.이에 대해 정치학자인 단국대 김학준 이사장은 『주체이론의 싹을 1940년대 말에 찾을 수도 있지만 늦어도 이 때 김일성 연설에서는 충분히 발견된다』고 그의 저서에서 기술했다. ○스탈린 사후 위기몰려 김일성은 이같은 이론을 무기로 먼저 연안파인 박일우(초대 내무상이자 당시 체신상)와 방호산(한국전 때 군단장)을 숙청했다.그해 말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12월 전원회의」에서는 당 중앙위원겸 조직위원인 소련파 김열의 죄상을 대대적으로 폭로하는 한편 같은 파 지도자인 박창옥(부수상겸 국가계획 위원장)에게도 칼날을 겨누었다.김열은 비록 황해도당위원장 재직시 비리가 문제됐지만 결국은 개인비리를 숙청무기로 사용한 것이었다. 19 56년 김일성은 중대한 도전을 받지만 이를 극복하면서 오히려 권력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았다.2월 14∼25일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에서 흐루시초프는 스탈린격하운동과 함께 집단지도체제를 지향하겠다고 선언했다.더불어 미국 등 자본주의 국가와의 평화공존을 제창하고 나섰다.이는 일인독재를 추구하면서 그 바탕을 「반미」에 두고 있는 김일성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흐름이었다. 56년 4월 조선노동당 제3차 대회가 열렸다.이 자리에 소련에서는 정치국 정위원이자 서기국 서기인 브레즈네프가 참석,흐루시초프가 제시한 새 노선을 북한이 충실하게 따를 것을 촉구했다.김일성은 이를 받아들이지도,그렇다고 소련의 비위를 거슬리지도 않은 어중간한 연설을 했다. 그해 8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연안파와 소련파는 힘을 합쳐 김일성에게 도전했다.연안파 최창익(부수상겸 재무상)이 중공업우선 정책은 주민에게 고통만을 준다며 먼저 비판의 포문을 연데 이어 상업상 윤공흠은 김일성의 개인숭배를 비난했다.박창옥 등 소련파들도 나서 김일성 1인독재를 비판하면서 집단지도체제로 전환할 것을 요구했다. ○김두봉 57년 직위박탈 그러나 북한 노동당에서 「8월 종파사건」으로 부르는 이 사태는 김일성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김일성이 노동당 3차 대회에서 중앙위원 대부분을 이미 친위세력으로 바꾼 상황에서 윤공흠 등 연안파는 지지를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회의가 끝나기도 전에 체포됐다.사건은 곧 국제문제로 비화한다.윤공흠 등이 감시소홀을 틈타 중국으로 달아났기 때문이다.중국과 소련은 즉각 개입해 김일성에게 압력을 가했다.김일성은 죄지은 연안파·소련파 지도자들을 처벌하지 않기로 일단 굽히고 들어가 원래 직책에 복귀시켰다.그러나 김일성은 이들을 끝내 숙청하고 말았다. 「8월 종파사건」은 아직 그 실상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일부 연구자들은 연안파가 김일성제거 계획을 조직적으로 세웠다고 주장한다.무혈쿠데타를 노렸다는 것이다.윤공흠 등이 김일성을 전원회의에서 비판한 뒤 그 죄과를 들어 기소하기로 했지만 김일성측에게 이 정보가 새나가 오히려 역습을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제 힘을 잃은 반대파들을 숙청하는 일은 절차만 남았을 뿐이었다.연안파의 우두머리 김두봉은 북한의 국가원수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자리를 19 57년 9월 박탈당했다. 이들의 운명은 그뒤 어떻게 됐을까.김두봉은 쫓겨날 때 68세였다.1년가량 사상개조 교육을 받았지만 「개전의 정이 없어」다시 산골 협동농장으로 추방된 그는 1960년 또는 61년에 숨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인은 병사와 피살설이 있다. 김일성은 이어 공산당원 한집이 네집을 감시하는 이른바 「5호담당제」를 1958년 7월부터 실시했다.곧이어 12월부터 일반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숙청작업을 대대적으로 벌였다.또 김일성의 빨치산운동을 항일독립운동에서 유일한 정통으로 내세운 역사조작에 손댄 것은 1959년의 일이다.이로써 30년 넘게 계속돼온 김일성독재체제가 완결된 것이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 발굴­노동당 중앙위회의 결정서/소련파 거물 김열 부패로 몰아 숙청/김일성의 정적 제거하는과정 보여줘/북 노동당 간부… 6·25때 대민착취 극심 북한 김일성이 한국전쟁후 권력을 강화하는 과정은 아직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이러한 상황에서 김일성이 정적을 숙청한 과정을 보여주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12월 전원회의 결정서」를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최근 모스크바에서 입수했다.1955년 12월에 열린 이 회의 결정서는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이 문서는 12월 2∼3일 진행된 전원회의에서 위원장 임해의 보고와 이에 따른 토론에서 내린 결정을 당 중앙위원회가 「절대비밀」로 분류,그달 25일 고위직 인사들에게 한정 발송한 것으로 돼 있다.내용은 황해도당위원장을 지낸 당 중앙위원겸 조직위원 김열의 부패한 생활상을 폭로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김열은 김일성에 맞선 소련파의 유력한 인물이다.그는 한국전쟁 때 황해도당위원장을 지내면서 직위를 이용,방탕과 사치가 극에 이를만한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그는 강제·억압·기만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여성 30여명의 정조를 유린한 것으로 기록됐다.그 가운데는 여중생까지 포함됐다. 이와 함께 갖은 명목으로 크고작은 잔치를 벌였던 김열은 당의 시설물들을 향락에 이용했다는 사실도 폭로됐다.이를 위해 횡령도 서슴지 않았다고 이 문서는 덧붙였다.그는 후방에서 거둬 전선으로 보내는 성금 2백53만여원을 비롯 1천여만원을 불법 조성해 모두 탕진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그리고 김열은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그를 비판하는 당 간부들에게 구실을 붙여 강등시키거나 쫓아냈으며 아첨하는 사람들만을 중용했다고 노동당 중앙위원회는 비판했다. 김열에 대한 노동당의 단죄에 정적 숙청의 의미가 없지 않더라도 자료에서 드러난 노동당 간부의 부패상은 북한 사회의 또다른 면을 보여줬다.한국전 당시 남한에서도 후방의 퇴폐 분위기가 문제된 것처럼 북한의 권력층도 전쟁을 틈타 백성에게 갖은 횡포를 부렸음이 밝혀진 것이다.북한이 남한보다 더욱 획일적인 사회임을 감안하면 그 정도 역시 훨씬 심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 최고 통치자 부패 반드시 사법처리/중남미국 비리 대통령 탄핵이후

    ◎페레즈·콜로르·가르시아 대통령이 대표적 군사쿠데타의 본고장쯤으로 연상되기 쉬운 중남미에서 최근 십여년간 알게 모르게 대통령탄핵이 왕성하게 진행돼오고 있다.최소한 법을 통해 전·현직 최고통치자를 심판함으로써 무법의 쿠데타보다는 훨씬 선진적인 정치형태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하지만 대통령탄핵은 단칼의 쿠데타보다 훨씬 장기적이고 우여곡절이 심하다는 사실을 다음 3명의 예가 말해준다. ▷베네수엘라 페레즈 대통령◁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즈 대통령은 74∼79년 대통령에 재임한뒤 다시 89년 취임,92년 두번 쿠데타위기를 무사히 넘겼지만 퇴임를 불과 9개월 앞둔 93년5월 남미에서 가장 긴 35년간의 민정을 자랑하던 베네수엘라 역사상 최초로 탄핵당하는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1천7백만달러상당의 비밀정보예산을 유용했다는 특별검사의 기소를 최고법원이 합당하다고 인정하고 상원이 이를 인준함에 따라 대통령직무를 정지당했다. 새 대통령이 들어선 다음 94년5월 최고법원의 결정에 따라 페레즈가 공금횡령혐의로 구속돼 3평짜리 감방에 갇혔으나 2개월후 70세이상의 형사범은 자택연금상태로 재판을 기다린다는 조문혜택이 인정됐다. ▷브라질 콜로르 대통령◁ 페르난도 콜로르 데멜로 대통령은 브라질에서 가장 작은 주지사에서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 40세인 89년말 지난 60년이후 브라질 첫 직선대통령으로 당선,「남미의 케네디」란 말을 들으며 탈부패개혁정치를 내걸었다.그러나 92년5월 선거유세도중 수천만달러의 뇌물성 정치헌금을 챙겼다고 동생이 방송에 폭로,9월말 하원의 탄핵결의에 따라 직무정지를 당했다. 상원은 대통령직 사임에도 불구하고 콜로르에 대한 부패혐의가 있다고 결정했다. ▷페루 가르시아 대통령◁ 85년 36세의 나이로 대통령이 된 알란 가르시아는 90년까지 재임동안 2백여억달러 외채의 불상환 통보와 잦은 반미발언으로 뉴스를 탔었다.후지모리 새 대통령취임 얼마 안돼 의회는 전직대통령으로 종신 상원의원인 가르시아가 재직시 40만달러 정부예산으로 집 3채를 신축하는 불법 재산증식혐의가 있다며 면책특권 박탈을 가결했다.1백70년 페루사상 대통령출신으론 처음으로 재판을 받게 될 처지였으나 15개월후인 92년2월 그가 임명한 판사들이 다수인 최고법원은 증거불충분으로 이 횡령혐의를 최종 기각했다. 이 재판 2개월후 후지모리 대통령이 의회·법원을 해산하는 비상대권을 발동하자 간신히 체포를 면한뒤 콜롬비아로 망명했다.후지모리정부는 40만달러 횡령외에 재임중 5천만달러의 국고를 도둑질했다며 가르시아 전대통령의 송환을 콜롬비아에 계속 요구하고 있다.
  • 오키나와 8만5천명 반미 시위

    ◎“미군주둔 반대” 3백여단체 초당파적 궐기대회/미­일,미군범죄혐의자 조기인도 곧 명문화 【도쿄=강석진 특파원】 지난 9월 발생한 오키나와 주둔 미군병사들의 국민학교 여학생 집단성폭행에 항의하는 오키나와현민총결기대회가 21일 하오 오키나와 주민등 6만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오키나와현 기노완시에서 열렸다. 이날 대회는 지난 72년 오키나와가 일본에 복귀된 이래 최대 규모의 항의집회일 뿐 아니라 50년대 후반 「시마 구루미(섬전체의 뜻)투쟁」이후 처음으로 현내 3백여개의 단체들이 모두 참여하는 초당파적 대회로 치러졌다. 이날 대회에서 오타 마사히데(대전창수)현지사는 『안보를 위해 오키나와가 미군과 중앙정부의 말을 들어왔지만 이제는 미군과 중앙정부가 오키나와의 말을 들어야 할 때』라면서 미군기지의 정리 축소등을 강력히 요구했다. 또 오야도마리 고세(친박강청)나하시장은 『기지가 있기 때문에 사고가 난다』면서 『근본원인을 제거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명명백백하다』고 미군 주둔에 반대하는 주민여론을 강조했다. 대회는 오타지사의 제안에 따라 ▲미군의 기강 확립과 범죄근절 ▲피해자에의 사죄와 보상 ▲미일지위협정의 개정 ▲기지의 정리 축소등을 결의했다. 【워싱턴 교도 연합】 미국은 일본내에서 죄를 범한 미군요원의 신병을 일본측에 조속히 인도토록 명시하는 내용의 새로운 문서를 작성하자는 일본측의 제안에 원칙적으로 동의했다고 미행정부의 한 관리가 20일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이 관리는 미국측이 미군 범죄혐의자의 신병을 일본에서 조속히 확보토록 하자는 일본측 제안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면서 만약 합의가 이뤄지면 그 내용이 문서로 명문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 일 자자체들 미군 기지협정 개정 요구/13개 시·구의회

    ◎면적축소·특권폐지 결의/“미국인들 아직도 점령군 의식” 【도쿄 교도 연합】 일본 오키나와(충승) 주둔 미군의 국민학생 성폭행사건에 대한 일본 국민의 분노가 거세게 일고 있는 가운데 각지의 지방의회들이 미군기지협정 개정,기지 사용면적 축소 등을 제기하고 나섰다. 도쿄 서부 요코타(횡전) 공군기지 인근의 31개 시·구 가운데 13개 의회는 29일 현 기지협정이 약 4만6천명의 미군들에게 특권을 주고 있다며 이의 개정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곳 주민들은 인근 미군기지의 4천m 활주로에서 비행기가 이·착륙할 때 나는 소음으로 고통을 받아왔으며 특히 밤중과 이른 새벽에는 훈련을 금지하도록 요구했으나 법원의 판결로 지금까지 묵살돼왔다. 또 호야(보곡)시 의회는 오키나와 미군기지의 면적이 축소돼야 한다며 『이번 사건은 미국인들이 아직도 점령군 의식을 갖고 있으며 인권을 무시하는 경향이 농후함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라고 비난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소녀 성폭행사건 불구/미·일 관계 불변희망/클린턴 【워싱턴 로이터 연합】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주일미군의 일본 국교생 성폭행 사건이 양국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고 백악관이 29일 밝혔다. ◎주일미군 경비부담/국회승인 신중대처/일 연립여당 【도쿄 연합】 일본 연립여당은 미군병사의 오키나와 국교생 성폭행사건에 대한 국민감정 등을 고려,미·일정부가 합의한 주일미군 주둔경비 부담에 관한 특별협정의 국회승인문제에 신중히 대처키로 했다고 일본언론들이 30일 보도했다. 연립여당은 29일 열린 외무조정회의에서 오키나와사건과 미·일지위협정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책이 없는 상태에서 특별협정에 대한 국회승인절차가 이뤄지는 것은 곤란하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날 여당 조정회의에서는 이와 함께 미·일 지위협정에 대해서도 협정 개정을 포함한 논의가 필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했다. ◎일 지자체 미기지 제공거부 파문/반미감정 맞물려 일정부 “당혹”/국가 강제권 발동보다 주민 달래기 주력/미군지위협정 독소조항 반발 무마도 “짐” 일본 오키나와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3명의 국민학교 여학생 집단 성폭행사건에 대한 분노가 일본 열도를 휩쓸고 있는 가운데 전국 각지의 지방자치단체들이 미군기지협정 개정,미일지위협정 개정,기지사용면적 축소등의 요구를 거세게 제기하고 있다. 지난 28일 오키나와현의 오타 마사히데(대전창수)지사는 미군기지 강제사용에 서명을 거부할 것이라고 공식천명했다.미군이 지주들의 동의를 얻지 못한 채 강제사용하고 있는 토지는 38만여㎡로 오키나와현이 국가의 기관위임을 받아 현지사가 서명함으로써 강제사용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이 서명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현지사가 서명을 거부할 경우 국가는 행정명령과 기관쟁송등을 거쳐 장관이 서명할 수도 있지만 파문의 확대는 필연이다.이번 사건의 파문이 미·일안보체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미국과 미·일지위협정을 개정하지 않고 대신 운용상 개선을 기하기로 했던 일본정부는 기습을 당한 표정이다.29일 오타지사에 특사를 파견해 설득작업을 벌이고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총리는 「타협에 의한 해결」을 희망하고 있다고 밝히는 등 파문확산 저지에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은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도쿄 서부 요코타(횡전)공군기지 인근의 31개 시·구 가운데 13개 의회는 29일 기지협정이 약 4만6천명의 미군들에게 특권을 주고 있다며 이의 개정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일본 외무성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29일까지 일본 전국에서 51개 시·정·촌의 의회가 지위협정의 개정을 요구하는 결의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소전 미군의 신병확보를 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어 불평등조약이라고 비판받고 있는 지위협정에 대해 일본 여당내에서도 개정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때문에 현지위협정의 개정에 반대하고 있는 외무성 등 정부쪽은 곤혹스런 입장에 처해 있다.
  • 미,헌정중단 막으려 무치오 대사 소환

    ◎서울신문 발굴 미 「정책수립처 문서」를 보고/미 이익 확보위해 이승만의 「민주파괴」 묵인 미 국무부 문서중 「정책수립처 문서(Records of Policy Planning Staff)」가 이번에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은 한국전쟁 연구의 실증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정책수립처는 국무차관의 주도로 19 47년 5월 조직된 국무부의 핵심기구로서 정책결정 관련지침을 정하고,정기계획 작성에 따른 자문 역할도 수행하였다.이 기구에서는 국무장관에게 미국의 기본정책에 관련되는 연구보고서를 제출하였다.주된 주제는 원자폭탄 처리,유럽 부흥,소련과 중국에 대한 외교방안등 다양했다. 정책수립처 문서를 통해 볼 때 한국전쟁 당시 한국과 미국간에는 다양한 논의가 오갔음을 알 수 있다.한·미간의 항공수송 협정,한·일간의 어업분쟁,휴전협상을 둘러싼 남한내의 반미캠페인,이승만의 막대한 원조요구 등이 주로 논의되었다.미국은 전쟁의 와중에서도 한·미간의 현안과 향후의 전망을 주의깊게 관찰하면서 의도대로 사태를 주도하고자 했지만,이승만을 비롯한 한국정부의 완강한 태도와 남한내 정치위기의 지속으로 애먹었음을 이 문서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하게 된다. 예를 들면 19 52년 5월25일 계엄령이 선포되고 다음날 국회의원 40명이 헌병대에 끌려가자,미국은 자국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즉각 사태개입을 결정하였다.곧 유엔의 틀 속에서 전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국제여론의 조절과 남한정치의 안정이 목표였다. 한국의 정치위기는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이 지휘권을 인수한 직후에 발생한 것이었기에 더욱 미국을 당혹하게 했다.자료에 의하면 미국은 「남한의 위기로 인해 심각하게 불안해하고 있으며」「헌정중단 사태를 회복시키기 위하여」무치오 주한대사를 소환하였다.이와 함께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UNCURK)과 미국의 군사·외교 관리들을 통해 이승만에게 계속 압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미국의 약점을 알고 있었고 현지 군부의 지지를 결국 확보할 것을 자신한 이승만에게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오히려 한국정부는 『유엔기구가 한국의 내정문제에 대한 간섭을 중지하지 않으면 그들을 축출할것』이라고 도전하였다.이승만정권이 미국정부와 유엔을 무시하고 「불법적이며 잔인한 조치」로 「미국이 아껴온 민주주의 이념의 일부를 파괴하는」상황은 계속될 수 밖에 없었다. 이처럼 정책수립처 문서를 통해 볼 때 1952년 「부산정치파동」을 겪으며 미국이 이승만을 제거하려 했다는 일부 주장은 사실을 너무 과장 또는 단순화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미국이 한때 제거를 고려한 흔적이 있긴 하지만 이에 대한 계획을 세울 단계로까지 발전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미국은 남한에서의 자국이익 확보를 위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이승만을 묵인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 담배 「조세주권」 7년만에 찾았다/한미 담배협상 타결의 함축

    ◎담배세제 권한 자율행사로 불평등 소지 없애/소비세 50% 인상 가능… 3년후엔 부가세 도입 담배의 조세주권이 7년만에 돌아왔다.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가서명된 한·미간 담배양해록 개정합의문은 그동안 담배소비세를 둘러싸고 벌여온 양국간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담배의 조세주권을 한국이 갖기로」 결론지었다. 이번 양해록 개정협상은 조세주권 회복과 불평등조항 삭제 등 여러면에서 외교적 성과로 평가된다. 우선 담배정책을 변경할 때 일일이 미국과 협상을 해야했던 번거로움의 소지를 없애고,정부가 담배세제의 권한을 자율행사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다. 담배양해록은 88년 우리가 대미흑자를 구가하던 시절,미국의 「강압」에 못이겨 체결한 불평등협약이다.말이 양해록이지 갑당 4백60원인 담배소비세뿐아니라 담배광고(잡지광고 연간 1백20회 제한)와 판매(담배견본판매 허용)정책까지 미국과 협의해야 하는 독소조항이 담겨있었다.미국산 담배를 국산과 동등대우하는 쪽으로 정책을 바꾸려해도 협상을 해야 했다. 이번협상으로 담배소비세를 내년부터 최고 50%까지(이후엔 자율인상) 올릴 수 있고,3년 뒤에는 부가가치세도 도입할 수 있게 됐다.기존 종량세에다 종가세(부가가치세)까지 붙일 수 있게 된 것이다.미국은 저급술과 저급담배의 유통방지 차원에서 종량세가 바람직하고,국제적인 추세라며 버텨 협상이 한때 결렬위기로까지 갔었다. 세계무역기구(WTO)정신에 따라 무차별원칙을 강조하는 쪽으로 골격이 잡힌 점도 성과다.담배광고나 판매규제를 내국민대우 범위에서 우리가 자율결정키로 한 것이 그것이다.따라서 미국산 담배도 9월1일부터 발효되는 국민건강증진법상의 광고 및 판촉규제를 받게 됐다. 이번 담배협상의 타결은 외교노력과 국민여론에 힘입은 바 크다.양해록이 독소조항을 담은 불평등 조약이라는 국내의 비판여론이 미국 조야에 전달됐고 외교채널을 통한 정부의 협상타결 촉구가 밑거름이 됐다.주한 레이니대사는 국내의 반미여론을 본국에 보고,국무부가 무역대표부(USTR)에 압력을 행사토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국민건강증진법의 9월 발효라는 배수진에다 담배를 마약으로 규정한 클린턴의 「담배전쟁」도 타결에 물론 일조를 했다.그러나 정부가 담배관련 법령을 개정할 때 사전에 입법내용을 미국에 통보키로 한 것은 사전통지라는 정부의 설명에도 불구,미국의 새로운 정책개입으로 보여 「옥에 티」다. *용어해설:「양해록」(Record Of Understanding)은 이해당사국간 통상 차원의 합의로 국회비준의 절차를 거치진 않지만 외교적으론 합의내용을 이행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국회비준을 거쳐야 하는 국가간 협정보다 법적효력은 약하나 합의이행을 위한 약속이라는 점에서 구속력은 강하다.
  • 주한미군 보도(외언내언)

    주한미군범죄를 둘러싼 한미간 갈등과 관련,범죄 자체보다 무책임한 한국언론의 선정적인 보도에 더 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레이니 주한미국대사의 주장은 사실인가.아니면 그런 주장이야말로 일방적인 변명이며 책임전가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많은 것을 생각하고 반성해보게 하는 문제제기라는 느낌이 든다. 50년전의 우리에게 있어 주한미군은 일종의 해방군이었다.6·25때는 절대적인 지원군이었다.지금현재까지도 우리의 평화와 안보를 지켜주는 중요한 초석의 하나가 되고 있다.때문에 고마워하고 웬만한 잘못은 감싸며 덮어주려 한 것이 그동안의 우리사회 분위기였다. 그런 근본적인 상황에 이렇다 할 변화가 생긴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다.그런데도 우리 사회분위기가 옛날같지 않아진 것은 무엇 때문인가.그 주된 원인의 하나를 레이니대사는 미군의 지하철 한국여성 성희롱사건 보도의 경우와 같은 우리언론의 일방적이고 선정적인 보도태도에 있는 것으로 돌리고 있다.그는 『반미적인 보도태도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이 사건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으나 그것을 관심있게 보도한 한국언론은 별로 없었다.무책임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주한미군은 미국을 위해서 뿐 아니라 우리가 필요해서,도우러 와 있는 우군이다.실수와 잘못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물론 잘못된 것이 있다면 당연히 비판하고 할말은 해야 하겠지만 가능한 우호적인 자세로 보고 대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그리고 주한미군에 관한한 신중한 보도가 보다 큰 국익일 것이다.우리에게 있어 감상주의적 반미는 아직 이른 사치라 할 수 있다.미국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함께해야 할 일이 우리에게는 아직 많다고 생각되지 않는가.물론 미국쪽도 본의아닌 대국주의적 오만으로 우리국민과 언론을 자극한 면은 없는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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