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뉴라운드 출범전의 정부 과제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제 4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는 일정을 하루 연기하는 등의 진통을 겪은 끝에 뉴라운드출범에 합의했다.농업과 서비스·비농산품에 대한 시장접근,WTO 규범 개정 등을 골자로 2005년 1월1일까지 일괄타결방식으로 협상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지난 99년 뉴라운드 출범 실패 이후 나타난 다자주의 체제의 약화,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상당부분 제거됐다고 볼 수 있다.사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세계경제가 극심한침체에 빠지고, 미국 테러사태로 인해 경제주체들의 세계화에 대한 신뢰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뉴라운드 출범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이번 뉴라운드 의제는 농업과 서비스 외에 개도국들이 집중적으로 주장한 반덤핑 등 WTO 규범 개정 문제,일부 환경문제 등에 국한됐다.세계경제 기조를 전환하기 위해 뉴라운드의 출범 자체가 시급하다고 판단한 미국 등 선진국들이이견이 적고 조기에 협상을 끝낼 수 있는 이슈만을 의제로선정했기 때문이다.
이번 협상 의제에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농업과 WTO 규범의 개정문제이다.농업의 경우 시장접근과 수출보조금,국내보조금 등에서 실질적인 감축이나 단계적 폐지 등이이뤄지도록 했다.따라서 우리나라로서는 향후 상당 폭의 관세인하가 불가피해졌다.다행스럽게도 농업의 비교역적 특성(NTC)을 고려하기로 했기 때문에 향후 협상과정에서 이를잘 살리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반덤핑 협정 개정으로 상당한 반사이익을 볼것이다.그동안 미국이나 EU의 반덤핑 제소가 한국의 철강·섬유 등 전통산업의 수출에 상당한 걸림돌로 작용했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그런 점에서 반덤핑 협정 개정으로제소국의 자의적인 판단이 줄어든다면 우리나라의 수출환경은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번 뉴라운드 출범은 세계경제 질서의불확실성을 상당부분 제거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WTO를 중심으로 한 다자주의가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세계주요 통상국가들이 쌍무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때 우리처럼다자주의에만 의존하는 국가들은 가장 큰 타격을 볼 수도있다.이번 뉴라운드 출범 협상과정에서 선진국의 양보와 개도국의 발언권 강화 현상이 나타난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60년대 이후 세계화 과정에서 확대된 국가간 소득불균형은 반세계화의 원인이 됐고,결국에는 개도국의 총수요 부족으로 선진국의 발전마저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모두 인식한 덕분이다.
우리나라는 앞으로 남은 3년의 협상기간 동안 농업과 서비스,반덤핑 협정의 개정 등에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그러나 현실적으로 농업협상 등에서 우리의 선택범위는 매우 제한되어 있다.따라서 정부는 개방 과정에서 국민경제 전체의 이익을 최대화하고,이 이익을 피해보는 부문에 적절히 보상하는 시스템을 갖춰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결국 이 문제는 정치권이 장기적인 국가전략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
박번순 삼성경제硏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