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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인사이트] 사우디를 다 가진 32세 사내… 개혁군주냐 전쟁광이냐

    [글로벌 인사이트] 사우디를 다 가진 32세 사내… 개혁군주냐 전쟁광이냐

    무함마드 빈살만(32) 사우디아라비아 제1왕위계승자(왕세자) 겸 국방장관은 ‘모든 것을 가진 사나이’(미스터 에브리싱)로 불린다. 아직 왕위에 앉지 않았으나, 전쟁을 일으키고 경쟁자를 숙청하며, 국가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등 사실상 국왕과 다름없는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부친인 살만 빈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은 올해로 81세다. 살만 국왕은 지난 6월 당시 왕세자인 자신의 조카 무함마드 빈나예프를 폐위하고 빈살만 당시 국방장관을 왕세자로 지목했다. 빈살만 왕세자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그의 추종자들은 왕세자가 사우디를 이슬람 근본주의(와하비즘)로부터 해방시키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빈살만 왕세자의 반대파는 그를 ‘경험은 없고 자존심만 센, 호전적인 애송이’라고 평가절하한다. 빈살만 왕세자는 아직 자신의 역량을 증명하지 못했다. 그는 사우디의 시리아 내전 및 예멘 내전 개입 등을 주도했다. 카타르 봉쇄의 배후에도 빈살만 왕세자가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사우디는 시리아에서 사실상 패배했다. 예멘 내전은 3년이 지나도록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카타르는 사우디에 굴복하지 않았다. 이 와중에 적성국 이란의 영향력은 강해져 간다. 특히 사우디 북부에 위치한 아랍국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에서 이란의 입김이 날로 강해진다. 국가 경제의 대부분을 석유에 의존하는 구조도 불안하다. 한동안 이어졌던 저유가 기조가 최근 고유가로 돌아서기는 했지만, 유가는 등락이 심하다. 불확실성의 시대, 왕국의 미래가 32세 차기 군주의 손에 달려 있다.빈살만 왕세자는 왕세자로 지명되기 전이었던 2016년 4월 중장기 사회·경제 개혁 계획 ‘비전 2030’을 발표했다. 비전 2030은 경제 번영, 사회 분위기 쇄신, 국가 투명성 확보로 요약된다. 빈살만 왕세자는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고 한다. 현재 사우디 경제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80%에 육박한다. 유가의 변화에 사우디 경제는 크게 종속돼 있다. 빈살만 왕세자는 건설·관광·기술 등 산업을 육성해 경제 구조를 복선화하고 국영기업을 민영화할 방침이다. 빈살만 왕세자는 또 여성의 운전, 영화관 영업 등을 허용하며 온건한 이슬람 국가로의 변화를 꾀한다. 빈살만 왕세자는 반(反)부패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사정 작업 중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달 4일 왕자와 전·현직 장관 수십명을 부패에 연루된 혐의로 체포해 수사하고 있다. 그러나 빈살만 왕세자가 부패 척결을 운운할 자격이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 16일 뉴욕타임스(NYT)는 빈살만 왕세자가 2015년 2억 7500만 유로(약 3538억원)를 주고 프랑스 파리의 호화 대저택을 구입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빈살만 왕세자는 2015년 440피트(약 132m) 길이의 요트를 5억 5000만 달러(약 6000억원)에 사들여 논란을 일으켰었다. NYT는 전 미 중앙정보국(CIA) 분석관 브루스 리들을 인용해 “빈살만 왕세자가 부패하지 않은 개혁가로서의 이미지를 쌓으려 노력하고 있는데, 이번 일은 큰 타격”이라고 전했다. 빈살만 왕세자는 왕세자로 책봉되기 전이었던 2015년 1월 국방장관에 임명됐다. 살만 국왕 즉위 직후다. 그는 국방장관이 된 직후 시리아 내전에서 반군 지원을 결정했다.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지휘하는 시리아 정부군이 이란과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지원을 받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우디와 미국 주도의 국제 연합군을 등에 업은 반군의 공세가 강해지자, 알아사드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러시아도 시리아 내전에 뛰어들었다. 이후 반군을 지원했던 미국이 발을 빼면서 시리아 내전은 사실상 알아사드 정권의 승리로 끝나 가고 있다. 빈살만 당시 국방장관은 시리아 내전이 한창이었던 2015년 3월, 이란이 조종하는 예멘 시아파 후티 반군을 몰아내겠다며 예멘 공습을 강행했다. 동시에 두 개의 전쟁에 뛰어든 것이다. 빈살만 당시 국방장관은 수개월 내에 전쟁을 끝낼 것으로 예상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후티 반군의 저항이 거셌다. 예멘 내전은 지금까지도 지지부진하다. 예멘 반군과 유엔에 따르면 사우디 개입 이후 예멘에서 약 9000명이 사망했고 5만명 이상이 부상당했다. 사망자 중 60%가 민간인으로 추산된다. 빈살만 왕세자는 지난 6월 카타르 봉쇄를 명령하기도 했다.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이집트 등 수니파 4개국은 카타르가 이란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알카에다 등 테러조직을 지원했다면서 카타르와 단교했다. 빈살만 왕세자는 카타르가 머리를 조아리기를 바랐다. 하지만 카타르는 이란, 터키와 교역을 확대하면서 지금까지도 버티고 있다. 가디언은 “빈살만 왕세자는 혈기왕성하고 경험이 부족하며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남자”라면서 “최근 사태에서 그의 외교적 미숙함과 성급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평했다. 빈살만 왕세자는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등 사우디의 머리맡에서 이란의 입김이 강해지는 것에 초조함을 느끼는 듯 보인다. 이란은 이라크가 자국 내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와 전쟁을 치를 때 이라크의 편에서 같이 싸웠다. 시리아 내전에서는 알아사드 대통령의 정부군을 지원했다. 레바논에서는 헤즈볼라의 정치적 입지가 단단하다. 지금과 같은 흐름이라면 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시아 벨트’ 구축은 시간문제다. 빈살만 왕세자가 이란을 견제하려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루살렘 수도 선언’을 미리 알고도 묵인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된다. 뉴스위크 등은 “사우디와 이스라엘은 이란에 반감을 갖고 있다. 사우디는 이란보다는 차라리 이스라엘을 믿을 만한 국가로 여긴다”면서 “트럼프의 유대인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이 여러 차례 사우디를 방문했으며, 예루살렘 수도 선언에 대해 빈살만 왕세자와 사전 교감했다”고 보도했다. 뉴스위크는 또 “미국이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에 수니파 국가인 팔레스타인을 설득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전했다. 지난 9일 로이터통신은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극비리에 사우디를 방문해 빈살만 왕세자를 만났으며, 예루살렘 선언과는 별도로 서안지구에 독립국가를 건립하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고 보도했다. 빈살만 왕세자는 2015년 국방장관이 된 이후 전쟁과 개혁, 숙청 등 굵직한 이슈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처리했다. 이것은 결단력이나 과감함일 수도 있지만, 성급함일 수도 있다. 인디펜던트는 “빈살만 왕세자의 외교 정책은 이란과 친이란 세력을 공격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빈살만 왕세자의 반(反)이란 정책의 실패로 오히려 역내에서 이란의 영향력이 강해졌다”고 평가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사우디가 당면한 대내외적 상황을 감안하면 (빈살만 왕세자의 개혁의)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고 보도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빈살만은 -1985년 8월 31일 출생. 살만 빈압둘아지즈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의 아들 -사우디 리야드 킹사우드대에서 법학 전공(차석 졸업) -2009년 당시 리야드 주지사였던 살만 빈압둘아지즈의 특별 고문으로 정계 입문 -살만 국왕, 2015년 1월 당시 30세였던 빈살만 왕세자를 국방장관에 임명. 세계 최연소 장관 -2015년 4월 사우디 국영석유회사 아람코 회장에 임명 -2016년 4월 사우디 개혁안 ‘비전2030’ 발표 -2017년 6월 무함마드 빈나예프 왕세자 제치고 차기 왕위 계승자에 지명
  • 5년째 내전 남수단에 ‘휴전 선물’… 필리핀은 ‘태풍 악몽’

    5년째 내전 남수단에 ‘휴전 선물’… 필리핀은 ‘태풍 악몽’

    성탄절을 앞두고 지구촌 분쟁지 곳곳에서 휴전 선언이 잇따르며 평화를 기원했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성탄절 시즌을 겨냥한 연이은 테러 위협으로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태풍으로 200명 이상이 사망하는 등 연말연시에도 재해와 사고로 인한 대규모 인명피해가 지구촌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성탄절을 맞아 가장 먼저 무기를 내려놓은 곳은 남수단이다. 남수단 정부군과 반군은 지난 21일(현지시간)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동아프리카 정부 간 개발기구’(IGAD)가 중재한 회담 후 휴전 합의를 발표했다. 휴전은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오전부터 시작됐다. 지구촌에서 ‘가장 어린 나라’로 불리는 남수단은 2011년 국제사회의 축복을 받으며 수단으로부터 독립했지만 정치세력 간 고질적 불화로 5년간 내전을 겪으며 수만명이 숨졌다. 3년 넘게 내전 중인 우크라이나도 잠시 총성을 멈췄다. 정부군과 반군은 23일 크리스마스 연휴를 맞아 교전을 멈추기로 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는 2014년부터 중앙정부의 친서방 노선에 반대하는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과 정부군 간 내전이 이어져 1만명 이상 숨졌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도 24일부터 내년 1월 2일까지 열흘간 공산 반군을 대상으로 한 군사작전을 일방적으로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시리아, 리비아, 예멘 등에서는 휴전 합의가 나오지 않아 성탄절에도 내전이 지속될 전망이다. 올해 빈발했던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테러 위협은 크리스마스 축제를 앞두고도 계속됐다. 22일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유명 관광지 ‘피어39’에서 테러 공격을 기도한 혐의로 IS를 추종하는 전직 해병대원 에버리트 에런 제임슨(26)이 체포됐다. 그는 인파가 가장 많이 몰리는 크리스마스에 피어39 주변에서 폭탄을 터트려 사람들이 한쪽으로 몰리면 살상을 하려는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21일 호주 멜버른에서는 아프가니스탄 난민 출신 32세 남성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몰고 인도로 돌진해 한국인 3명을 포함해 19명을 다치게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특히 중동 무슬림 국가에 사는 기독교도들은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선언한 이후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의 표적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이집트는 내년 1월 7일 콥트교의 크리스마스 축하행사를 앞두고 경찰이 교회 주변을 수시로 순찰하기로 했다. 이스라엘도 예루살렘에 있는 기독교도 성지 주변에 경력을 배치하고 순례자들을 호위할 계획이다. 한편 필리핀은 태풍과 사고로 ‘크리스마스의 재앙’을 겪고 있다. 22일 태풍 ‘덴빈’이 휩쓴 남부 민다나오섬에서 홍수와 산사태가 일어나 200여명이 사망하고 160명 이상이 실종됐다. 23일에는 남부 다바오시 NCCC 쇼핑몰에서 불이 나 최소 37명이 숨졌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1000일간 6만명 사상…출구 없는 예멘 내전

    1000일간 6만명 사상…출구 없는 예멘 내전

    1000일 동안의 내전이 예멘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1만여명이 죽고, 약 5만명이 다쳤다. 인구의 70%인 2200만명이 구호물품에 의지해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AFP통신 등은 19일(현지시간)로 예멘 내전이 시작된 지 1000일이 됐다고 전했다. 2015년 2월 예멘 시아파 후티 반군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예멘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에 도움을 요청했다. 사우디는 적성국 이란이 후티의 배후라고 판단했다. 자국의 턱밑에 친이란 정권이 수립되는 것을 막으려고 사우디는 2015년 3월 26일 예멘을 공습했다. 내전이 시작됐다.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제1왕위계승자(왕세자)는 후티를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오판이었다. 유엔에 따르면 이날까지 사우디가 주도하는 수니파 연합군의 폭격과 공습으로 8670명이 사망했고, 약 5만명이 부상당했다. 상하수도 등 도시 기반시설이 파괴돼 수인성 전염병 콜레라가 창궐했다. 88만 4000명이 콜레라에 걸렸고, 2184명이 콜레라로 숨졌다. 700만명은 영양실조 상태다. 전쟁이 끝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후티는 이날 사우디 수도 리야드의 야마마궁을 향해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 당시 야마마궁에는 살만 빈압둘아지즈 국왕이 회의 중이었다. 사우디가 미사일을 공중에서 요격해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사우디는 즉각 후티의 거점인 예멘 사나에 보복폭격했다. 후티가 국왕을 노린 만큼 사우디의 대대적인 추가 보복이 확실시된다. 후티는 자신들이 운영하는 알마시라TV를 통해 “사우디 개입 1000일째가 되는 날에 맞춰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것”이라면서 “사우디가 범죄를 저지를수록, 폭력을 휘두를수록 더 많은 미사일을 쏘겠다”고 밝혔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이날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사우디를 향한 미사일은 이란제”라면서 “유엔 차원의 강력한 이란 제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사우디 국왕 향해 미사일 쏜 ‘親이란’

    예멘의 친이란 반군 후티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살만 국왕을 겨냥해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사우디가 공중에서 요격해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사우디군은 요격 3시간 뒤 후티의 근거지인 사나를 보복 폭격했다. 후티가 국왕을 직접 노린 만큼 사우디의 추가적인 초강경 대응이 확실시된다. 19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방송 알아라비야는 수도 리야드 상공에서 예멘 반군이 발사한 미사일 1발을 요격했다고 전했다. 알아라비야에 따르면 이 미사일의 목표지점은 살만 국왕이 외국 귀빈을 맞거나 종종 집무실로도 이용하는 야마마 궁이었다. AFP통신은 살만 국왕이 야마마 궁에서 내년도 예산안을 발표하기 직전인 이날 오후 1시 50분쯤 폭음이 들렸다고 보도했다. 후티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무함마드 압둘살람은 발사 직후 트위터를 통해 “야마마 궁을 향해 ‘부르칸 H2’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고 주장했다. 사우디 매체들은 맑은 하늘에 구름 같은 흰 연기가 피어오른 영상을 공개하고 미사일이 요격된 뒤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사우디가 후티의 배후를 이란으로 기정사실화하고 있어 양국의 관계는 더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후티는 지난달 4일에도 리야드의 킹칼리드 공항을 향해 부르칸 H2로 추정되는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 역시 사우디가 격추해 인명피해는 없었다. 사우디군은 킹칼리드 공항으로 날아온 미사일이 이란제이며,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후티에 제공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란은 부인했다. 당시 사우디는 미사일 발사를 이유로 예멘의 모든 공항과 항구, 육로 국경을 봉쇄했다가 국제 구호단체들의 비판에 2주 만에 봉쇄를 풀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내년 3차세계대전 나면 바로 ‘북한’에서 시작될 것”

    “내년 3차세계대전 나면 바로 ‘북한’에서 시작될 것”

    내년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면 한반도가 가장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만과 우크라이나, 터키, 페르시아만 국가들도 위험하다고 꼽혔다.미국의 외교안보 전문지 ‘내셔널인터레스트’(TNI)는 로버트 팔리 켄터키대 패터슨외교국제통상대학원 교수의 기고를 인용해 “북한이 현재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전쟁 위기 지역”이라고 보도했다. 팔리 교수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한 집요함과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분야 경험부족이 문제를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하며 “서로 상대를 사전에 제압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한쪽이 오판해 선제공격에 나서면 곧바로 전쟁으로 치닫게 되고 일본과 중국도 휘말려 들게 도리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대만 ‘무력통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대대적인 군사력 증강에 나서고 미국은 중국의 군사적 확장을 비난하며 대만에 첨단무기를 판매할 채비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만 역시 화약고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팔리 교수는 “북한 문제에 대한 중국의 지지가 필요한 트럼프 정부로선 중국에 대한 대만 문제 관련 입장이 상호 충돌한다”며 “미중 관계의 불확정성 증가는 결국 중국과 대만의 무력충돌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정부군과 러시아가 후원하는 분리주의 반군 간의 충돌이 순식간에 대규모 전쟁으로 확산될 소지가 다분하다고도 강조했다. 팔리 교수는 교전 격화에 따라 러시아가 점령 지역을 확대하고 이에 반발해 우크라이나에 우익 강경파 정권이 들어서게 돼 내전이 더욱 확산되고 미국·유럽연합(EU)과 러시아 사이에도 전선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통의 ‘화약고’ 중동도 또 다른 군사분쟁의 가능성을 이어가고 있다. 팔리 교수는 시리아 내전의 종결에 따라 향후 초점은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대치로 옮겨가며 분란을 촉발할 것으로 내다봤다. 팔리 교수는 “세계는 현재 전쟁위기의 경계선에 놓여있다”며 “트럼프 정부의 외교정책은 이 위기를 지속적으로 고조시키며 각 지역 정세의 불확정성을 높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9살 때 콜롬비아 반군에 납치… “12년 삶은 지옥”

    9살 때 콜롬비아 반군에 납치… “12년 삶은 지옥”

    9살 때 콜롬비아 무장반군(FARC)에 끌려갔던 여성이 14년 만에 지옥 같았던 삶에 대해 입을 열었다. 이제는 자유의 몸이 돼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이 여성은 반군에 끌려간 뒤 11살 때 처음으로 성폭행을 당했다. 이후 3번이나 아기를 가졌지만 그때마다 강제로 중절수술을 받았다. 이 여성은 잔인하게 인권을 유린한 반군 사령관을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반세기 이상 계속된 내전에서 비롯된 안타까운 사연이다. 14년 전인 2003년 콜롬비아 남부 발시야스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던 바네사 가르시아(23)는 동네에 들이닥친 무장반군에 끌려갔다. 반군은 이런 식으로 어린이들을 반군으로 징병했다. 이후 3년간 가르시아는 외부와 단절된 채 생활했다. “집에 가고 싶다”는 호소에 반군은 “돌아가는 길은 없다. 계속 고집을 피우면 ‘뜨거운 맛’을 보게 될 것”이라며 위협할 뿐이었다. ‘뜨거운 맛’이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된 건 얼마 후였다. 한 남자어린이가 병영을 이탈해 도주하자 반군은 대대적인 추적에 나섰다. 추적대는 도주한 아이를 발견하자 수류탄을 터뜨려 살해했다. 가르시아는 “추적작전에 아이들을 모두 참가시켰다”면서 “겁을 먹은 아이들은 그때부터 집에 가겠다는 말을 일절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11살 때 가르시아는 반군 사령관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이후 가르시아는 사령관의 성노예로 전락했다. 사령관은 “다른 남자보다 우선적으로 나와 있어야 한다”면서 가르시아를 농락했다. 가르시아는 3번이나 임신을 했지만 그때마다 임신중절수술을 받았다. 가르시아는 “비록 성폭행으로 임신을 했지만 아기를 낳고 싶었다”며 “반군은 그때마다 규정을 들어 낙태를 강요했다”고 말했다. 가르시아는 처음으로 임신중절수술을 받은 후 죽은 태아를 알코올에 넣어 보관했다. 시간만 나면 태아의 시신을 들여다 보면서 혼잣말을 하는 게 위안이 됐다. 하지만 군에 쫓겨 도피하면서 그 유일한 위안거리마저 잃어버리고 말았다. 2년 전 콜롬비아 정부가 반군과 평화협정을 맺으면서 탈출에 성공한 가르시아는 현재 재활을 위해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자유의 몸이 된 가르시아는 최근 스페인 일간지 엘문도와 인터뷰를 가졌다. 탈출 후 처음으로 언론과 만난 가르시아는 “반군에 잡혀 있을 때는 도움을 주지 않는 신을 많이 원망했다”면서 “지금도 무기력하게 당하던 시절이 떠오르면 끔찍하다”고 말했다. 가르시아는 자신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했던 반군 사령관을 고발할 예정이다.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그의 목표는 ‘아이를 구하는 것’

    그의 목표는 ‘아이를 구하는 것’

    휴머니스트 오블리주/애덤 파이필드 지음/김희정 옮김/부키/504쪽/1만 8000원 1980년 전 세계 5세 이하 아동사망률은 정상 출산 1000명당 117명에 달했다. 2013년에는 46명으로 급격히 줄었다. 1년간 사망한 어린이 수는 1390만명에서 630만명으로 반 토막 났다. 이러한 아동생존혁명은 죽기 직전까지 15년간 유니세프 총재를 지냈던 제임스 그랜트(1922~1995) 덕택이다. 그는 어린이 사망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 설사병을 잡는 사업을 펼쳤고 예방접종 확대에 매진했다. 그 결과 1980년 16∼17%였던 예방접종률은 1991년 80%를 넘었다. 엘살바도르 내전에서는 총에 맞는 게 아니라 예방접종을 받지 못해 생을 마감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점에 주목, 정부와 반군을 설득해 휴전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이 책은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독재자에게도 잘 보이려 했던 그랜트의 삶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9살 때 게릴라에 끌려간 콜롬비아 여성… “지옥 같은 삶”

    9살 때 게릴라에 끌려간 콜롬비아 여성… “지옥 같은 삶”

    9살 때 콜롬비아 무장반군(FARC)에 끌려갔던 여성이 14년 만에 지옥 같았던 삶에 대해 입을 열었다. 이제는 자유의 몸이 돼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이 여성은 반군에 끌려간 뒤 11살 때 처음으로 성폭행을 당했다. 이후 3번이나 아기를 가졌지만 그때마다 강제로 중절수술을 받았다. 이 여성은 잔인하게 인권을 유린한 반군 사령관을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반세기 이상 계속된 내전에서 비롯된 안타까운 사연이다. 14년 전인 2003년 콜롬비아 남부 발시야스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던 바네사 가르시아(23)는 동네에 들이닥친 무장반군에 끌려갔다. 반군은 이런 식으로 어린이들을 반군으로 징병했다. 이후 3년간 가르시아는 외부와 단절된 채 생활했다. “집에 가고 싶다”는 호소에 반군은 “돌아가는 길은 없다. 계속 고집을 피우면 ‘뜨거운 맛’을 보게 될 것”이라며 위협할 뿐이었다. ‘뜨거운 맛’이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된 건 얼마 후였다. 한 남자어린이가 병영을 이탈해 도주하자 반군은 대대적인 추적에 나섰다. 추적대는 도주한 아이를 발견하자 수류탄을 터뜨려 살해했다. 가르시아는 “추적작전에 아이들을 모두 참가시켰다”면서 “겁을 먹은 아이들은 그때부터 집에 가겠다는 말을 일절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11살 때 가르시아는 반군 사령관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이후 가르시아는 사령관의 성노예로 전락했다. 사령관은 “다른 남자보다 우선적으로 나와 있어야 한다”면서 가르시아를 농락했다. 가르시아는 3번이나 임신을 했지만 그때마다 임신중절수술을 받았다. 가르시아는 “비록 성폭행으로 임신을 했지만 아기를 낳고 싶었다”며 “반군은 그때마다 규정을 들어 낙태를 강요했다”고 말했다. 가르시아는 처음으로 임신중절수술을 받은 후 죽은 태아를 알코올에 넣어 보관했다. 시간만 나면 태아의 시신을 들여다 보면서 혼잣말을 하는 게 위안이 됐다. 하지만 군에 쫓겨 도피하면서 그 유일한 위안거리마저 잃어버리고 말았다. 2년 전 콜롬비아 정부가 반군과 평화협정을 맺으면서 탈출에 성공한 가르시아는 현재 재활을 위해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자유의 몸이 된 가르시아는 최근 스페인 일간지 엘문도와 인터뷰를 가졌다. 탈출 후 처음으로 언론과 만난 가르시아는 “반군에 잡혀 있을 때는 도움을 주지 않는 신을 많이 원망했다”면서 “지금도 무기력하게 당하던 시절이 떠오르면 끔찍하다”고 말했다. 가르시아는 자신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했던 반군 사령관을 고발할 예정이다.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네팔, 친중 좌파정권 승리… 인도 대신 中경제와 손잡았다

    네팔, 친중 좌파정권 승리… 인도 대신 中경제와 손잡았다

    중국의 티베트 자치구와 인도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내륙국 네팔. 네팔 국민들이 공화제 선포 이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치러진 선거에서 친(親)인도 성향의 집권여당을 외면하고 친중국 성향의 좌파 연합에 승리를 안겼다.네팔 선거관리위원회는 10일(현지시간) 제2당인 통합마르크스레닌주의 네팔공산당(CPN-UML)과 제3당 마오주의 중앙 네팔공산당(CPN-MC) 연합이 의회 및 지방선거에서 승리할 것으로 예측된다는 예비 결과를 발표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선관위는 좌파 연합이 현재 84석을 차지해 다수를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현재 집권여당인 네팔의회당(NC)은 13석에 그쳐 예상을 밑돌았다. 이번 선거는 2007년 네팔이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뀐 지 10년 만에 처음 치러진 의회·지방선거다. 공화제 이행에 따른 헌법 제정이 계속 미뤄지다 2015년 9월에야 발효됐고, 새 헌법 아래서 처음으로 선거를 치르게 됐다. 유권자 1500만명이 연방 하원의원 275석과 7개 지방의회 대표를 선출한다. 275석 중 165석은 직접 선출하고 나머지 110석은 비례대표로 채운다. 275석 중 138석을 차지하면 내각을 구성할 수 있다. 지난달 26일 북부 지역에 이어 지난 7일 남부 지역에서 투표가 실시됐다. 최종 결과가 나오는 데는 열흘 이상 걸릴 것으로 보이는데, 개표가 완료되면 네팔은 새 헌법에서 예정한 연방-주-지방 3단계로 구성된 정부와 의회 조직을 모두 갖추게 된다. CPN-UML을 이끄는 프라디프 갸왈리 당수는 “안정감과 번영을 앞세운 좌파 연합에 투표해 달라는 우리의 호소가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한다”면서 “우리의 좌파 연합은 굳건하다. 정부 구성 준비에 들어가겠다”고 AFP에 말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이 선거를 “2015년 헌법에 명시된 연방 구조를 이식하는 역사적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오랜 기간 네팔은 정치적 갈등으로 불안정했다. 1951년 입헌군주제를 채택한 네팔은 2001년 비렌드라 왕의 장남인 디펜드라 왕세자가 왕궁에서 총기를 난사해 국왕 등 왕족 9명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비렌드라 왕의 동생 갸넨드라 왕이 즉위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왕실의 인기가 떨어졌고 갸넨드라 왕도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이런 가운데 마오이스트들이 네팔 정부군과 내전을 벌이면서 네팔 정국은 불안해진다. 그러나 갸넨드라 왕은 도리어 2005년 절대왕정을 부활시키며 민심을 폭발하게 만든다. 결국 2007년 12월 주요 7개 정당연합이 마오이스트 반군이 제시한 네팔연방공화국 안을 받아들였고, 2008년 5월 선거에서 마오이스트 정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239년 만에 왕정이 붕괴되고 공화국이 됐다. 그러나 공화국으로 이행한 이후에도 여러 정치세력 간 합의가 쉽게 이뤄지지 않으면서 10년간 단명한 정부들이 속출했고, 그 과정에서 부패가 만연하고 나라의 성장은 멈췄다. 설상가상으로 2015년에는 9000명의 사망자를 내고 50만 가구 이상을 쑥대밭으로 만든 네팔 대지진이 발생하며 네팔 경제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네팔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16년 기준 730달러(약 79만원)로 세계 최빈국 중 하나다. 좌파 연합은 이번 선거에서 경제를 최우선 이슈로 내세웠다. 네팔 일간 칸티푸르신문 에디터 수디르 샤르마는 AFP에 “좌파 연합은 개발과 민족주의 같은 어젠다를 이용해 승리했다”면서 국민들이 이들의 손을 들어준 것은 예상 밖이라고 평가했다. 친중국 성향의 좌파 연합은 중국이 추진하는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인도와 가까운 마데시족과 느슨한 형태의 선거 동맹을 체결하는 등 친인도 성향을 보인 네팔의회당은 인도가 네팔 최대의 수출입 상대국인 점을 강조했지만 국민의 선택을 받는 데 실패했다. 좌파 연합이 본격적으로 집권하게 되면 네팔은 중국과의 관계 강화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새 정부의 총리는 2015년 10월부터 10개월간 총리를 지낸 카드가 프라사드 샤르마 올리 CPN-UML 대표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씨줄날줄] 장기 집권 독재자의 말로/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장기 집권 독재자의 말로/이순녀 논설위원

    ‘아랍의 봄’ 여파로 5년 전 권좌에서 쫓겨날 때까지 33년간 예멘을 철권통치한 알리 압둘라 살레(75) 전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한때 동지였던 후티 반군에 피살됐다. 1978년 군사 쿠데타로 북예멘을 장악한 살레는 남예멘을 흡수통일해 통일 예멘의 첫 국가수반이 된 뒤 1999년 여권 단독의 첫 직선제 대선에서 96%의 지지율로 당선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2012년 실각한 뒤엔 후티 반군과 연대해 과도 정부에 맞서면서 재기를 노려 온 불굴의 정치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예멘 정부를 지원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후티 반군과 단절하면서 반역자로 몰려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살레 전 대통령은 살해당했지만 전 세계 장기 집권 독재자들의 말로는 엇갈린다. 살레 전 대통령처럼 총탄에 비명횡사한 독재자도 있지만 천수를 누리거나 퇴출 후에도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는 운 좋은 독재자도 적지 않다. 노환으로 자연사한 대표적인 독재자는 지난해 90세를 일기로 사망한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다. 재임 기간은 무려 52년이다. 14년 장기 집권한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오랜 암 투병 끝에 2013년 58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재임 17년째인 2011년 급성심근경색으로 70세에 사망했다. 권력은 잃었지만 면책특권을 누리며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는 독재자로는 단연 로버트 무가베(90) 전 짐바브웨 대통령을 꼽을 수 있다. 부부 세습을 노리다 집권 37년 만에 지난달 21일 불명예 퇴진한 그는 불기소 면책과 재산권을 보장받았을 뿐만 아니라 퇴진 위로금으로 1000만 달러를 받아 챙겼다. 게다가 새 지도부가 그의 생일을 공식 휴일로 지정했다고 하니 쫓겨난 게 맞나 싶을 정도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프리카에는 무가베 못지않은 장기 집권 독재자들이 여럿 있다. 적도기니 대통령은 38년, 카메룬 대통령은 35년, 콩고공화국 대통령은 33년째 집권 중이다. ‘아랍의 봄’ 당시 살레와 함께 축출된 독재자들의 운명도 제각각이다. 42년간 리비아를 통치했던 무아마르 카다피 전 국가원수는 2011년 고향에서 반군에게 붙잡혀 살해됐다. 반면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은 대량학살과 부정부패 등의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지난 3월 석방돼 카이로의 고급 주택에서 머물고 있다고 한다. 목숨 걸고 민주화 운동을 벌였던 국민으로선 기가 찰 노릇이다. coral@seoul.co.kr
  • 휴전 중재 사흘 만에 피살된 독재자 “사우디, 반군에 군사적 옵션만 남아”

    휴전 중재 사흘 만에 피살된 독재자 “사우디, 반군에 군사적 옵션만 남아”

    33년 집권 퇴진 뒤에도 권력 욕심 후티 반군·사우디 ‘양다리’ 행보 중재자 사라져 내전 격화 불가피 예멘 후티 반군이 4일(현지시간) 알리 압둘라 살레 전 예멘 대통령을 살해했다. CNN 등 외신은 살레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예멘 내전이 더 처참한 지경에 빠질 것으로 내다봤다. 살레 전 대통령은 사망하기 전 사우디아라비아와 손을 잡았었다. 살레 전 대통령을 추종하는 민병대는 후티를 대상으로 복수전을 시작, 내전이 격화될 전망이다. 살레 전 대통령은 ‘아랍의 봄’의 여파로 2012년 권좌에서 밀려났다. 그때까지 그는 33년간 제왕과 같은 권력을 휘둘렀다. 퇴출된 뒤에도 권력욕을 버리지 않고 후티 반군과 손을 잡아 예멘 과도정부를 흔들었다. 후티 반군이 2014년 9월 수도 사나를 점령해 본격적으로 내전이 시작됐다. 살레 전 대통령은 공식적으로는 후티 반군과 동맹을 유지하는 척하면서 물밑에서는 사우디와 협상을 시도했다. 그는 지난 1일 “새 장을 열겠다”며 사우디가 주도하는 동맹군이 예멘 봉쇄를 풀고 공격을 중단한다면 휴전을 중재하겠다고 밝혔다.후티 반군은 즉시 “(살레 전 대통령의 발언은) 쿠데타”라면서 “그는 자신의 말에 막대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후티 반군은 사흘 뒤 살레 전 대통령을 총살하고 시신 사진을 공개했다. 후티 반군의 대변인 무함마드 압델살람은 “아랍에미리트(UAE)가 살레 전 대통령의 반역을 사주하고, 그를 치욕적 종말로 이끌었다”고 주장했다. UAE는 사우디 동맹군의 일원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CNN에 따르면 살레 전 대통령 사망 사실이 발표된 직후 그를 추종하는 세력이 후티 반군을 공격해 최소 100명이 목숨을 잃었다. BBC는 “살레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예멘의 미래는 암울해졌다”면서 “이제 사우디가 협상할 수 있는 반군 세력은 없다. 군사적 옵션만 남았다”고 분석했다. 알자지라는 중동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살레 전 대통령의 협상력에 내전 종식의 희망을 걸었었지만, 다 끝났다. 전쟁은 예멘을 파산으로 몰고 갈 것”이라면서 “진정한 의미에서 승자는 아무도 없다”도 내다봤다. 한편 뉴욕타임스는 “예멘을 통일하고, 다시 분열시킨 독재자가 75세를 일기로 숨졌다”고 보도했다. 살레 전 대통령은 1978년 쿠데타로 북예멘 정권을 장악했다. 1990년 남예멘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통일해 통일 예멘의 수반이 됐다. 살레 전 대통령 집권 기간 내내 예멘은 빈곤과 기아에 시달렸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살레 전 예멘대통령, 사나 외곽서 후티 반군에 피살

    살레 전 예멘대통령, 사나 외곽서 후티 반군에 피살

    알리 압둘라 살레 전 예멘 대통령이 후티 반군에 살해당했다고 중동 언론이 4일(현지시간) 일제히 보도했다.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와 알아라비야 방송 등에 따르면 후티 반군은 이날 자신이 통제하는 알마시라TV와 예멘 라디오를 통해 살레 전 대통령을 지칭하며 “반역자들의 우두머리가 죽었다”고 밝혔다. 후티 반군은 또 “살레가 이끄는 다수의 범죄 지지자들도 사망했다”고 전했다. 후티 반군의 한 소식통은 “살레가 오늘 사나 남부 외곽에서 탈출하던 중 살해됐다”며 “우리 대원들이 로켓추진유탄발사기(RPG)로 그의 무장 차량을 정지시킨 후 그의 머리에 총탄을 발사했다”고 말했다.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는 예멘 정부의 고위급 간부와 살레의 친척, 살레측 정치인도 이날 살레의 사망 사실을 확인했다. 후티 반군은 천으로 덮여 있는 살레의 시신이 찍힌 영상도 알마시라TV와 소셜미디어에 공개했다. 그 시신 주변에서 무장 대원들이 환호하며 “신은 위대하다”를 외치는 장면도 나온다. 이번 피살 건은 살라가 전날 밤 후티 반군과의 파트너 관계를 단절하겠다고 공식 선언한 다음 발생했다고 알아라비야는 전했다. 살레를 추종하는 무장대원들은 지난 엿새 동안 사나에서 후티 반군과 치열한 교전 끝에 수세에 몰리며 큰 인명 손실을 봤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지난 5일간 사나에서 벌어진 전투로 최소 125명이 죽고 238명이 다쳤다”고 이날 전했다. 2011년 ‘아랍의 봄’ 여파에 따른 반정부 운동으로 2012년 대통령직에서 쫓겨난 살레는 후티 반군과 함께 연대해 2014년 이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만수르 하디 예멘 대통령에 반대하는 활동을 해 왔다. 살레를 추종하는 세력은 또 후티 반군의 편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을 받는 예멘 정부와 맞서면서 권좌 복귀를 노려 왔다. 그러나 살레를 지지하는 무장 대원들이 최근 후티 반군과 갈라선 뒤 사나에서는 양측간 전투가 계속됐다. 살레는 지난 2일 사우디 주도의 동맹군이 예멘 봉쇄를 풀고 공격을 중단한다면 휴전 중재에 나서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우디는 즉각 이 제안을 환영했으나 후티 반군은 그를 비난하며 이를 거부했다. 예멘에서는 30여 년간 철권통치를 하던 살레 정권이 2012년 2월 실각한 뒤 민주적 정권 이양 절차가 진행되는 듯했다. 그러나 높은 실업률과 정부의 연료비 인상으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에 힘입어 이란에 우호적인 시아파 반군 후티가 2014년 9월 수도 사나를 점령하고 예멘 정부를 축출하면서 혼란에 빠졌다. 이에 위협을 느낀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랍권 동맹군을 결성해 2015년 3월 26일 군사 개입에 나서면서 예멘 내전은 본격화했다. 이 과정에서 이어진 아랍동맹군의 공습은 수많은 민간인을 숨지거나 다치게 했다. 지금까지 8천600여명이 폭격과 교전 등으로 숨졌고, 약 5만명이 부상했다. 인구의 70%인 2천만명은 장기간 지속한 내전과 콜레라 등으로 끼니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연합뉴스
  • 살레 전 예멘 대통령, 후티 반군에 피살

    살레 전 예멘 대통령, 후티 반군에 피살

    알리 압둘라 살레 전 예멘 대통령이 후티 반군에 의해 살해됐다.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와 알아라비야 방송 등에 따르면 후티 반군은 4일(현지시간) 자신이 통제하는 알마시라TV와 예멘 라디오를 통해 살레 전 대통령을 지칭하며 “반역자들의 우두머리가 죽었다”고 밝혔다. 후티 반군은 또 “예멘 수도 사나의 중심부에 있는 살레의 자택을 폭파했다”면서 “살레가 이끄는 다수의 범죄 지지자들도 사망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살레로 추정되는 시신이 찍힌 영상도 소셜미디어에 올라왔다. 시신 주변의 무장 대원들이 “신은 위대하다”를 외치는 장면도 영상에 나온다. 이번 피살 사건은 살레를 추종하는 무장대원들이 사나에서 엿새 동안 후티 반군과 치열한 교전 끝에 수세에 몰리며 큰 손실을 본 다음에 발생한 일이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지난 5일간 사나 전투로 최소 125명이 죽고 238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2011년 ‘아랍의 봄’ 여파에 따른 반정부 운동으로 2012년 대통령직에서 쫓겨난 살레는 후티 반군과 함께 연대해 2014년 이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만수르 하디 예멘 대통령에 반대하는 활동을 해 왔다. 그러나 살레를 지지하는 무장 대원들이 최근 후티 반군과 갈라선 뒤 사나에서는 양측 간의 전투가 계속돼 왔다. 살레는 지난 2일 사우디 주도의 동맹군이 예멘 봉쇄를 풀고 공격을 중단한다면 휴전 중재에 나서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우디는 즉각 이 제안을 환영했으나 후티 반군은 그를 비난하며 이를 거부했다. 예멘에서는 약 30년 동안 철권통치를 하던 살레 정권이 2012년 2월 실각한 뒤 민주적 정권 이양 절차가 진행되는 듯 했다. 그러나 높은 실업률과 정부의 연료비 인상으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에 힘입어 이란에 우호적인 시아파 반군 후티가 2014년 9월 수도 사나를 점령하고 예멘 정부를 축출하면서 혼란에 빠졌다. 이에 위협을 느낀 사우디가 아랍권 동맹군을 결성해 2015년 3월 26일 군사 개입에 나서면서 예멘 내전은 본격화했다. 이 과정에서 이어진 아랍동맹군의 공습은 수많은 민간인을 숨지거나 다치게 했다. 지금까지 8600여명이 폭격과 교전 등으로 숨졌고, 약 5만명이 부상했다. 인구의 70%인 2000만명은 장기간 지속한 내전과 콜레라 등으로 끼니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계의 무관심에 용서를”…교황, 로힝야 난민 만나 축복, ‘로힝야’ 첫 지칭

    “세계의 무관심에 용서를”…교황, 로힝야 난민 만나 축복, ‘로힝야’ 첫 지칭

    1% 가톨릭, 이슬람국가 방글라데시에서 미사…10만명 운집교황, 아시아 순방 후 처음 ‘로힝야’ 단어 공개 사용 프란치스코 교황이 1일 이슬람국가인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로힝야 난민을 만나 이들이 겪은 상처와 세계의 무관심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고 AP통신 등이 전했다. 교황은 지난 27일 아시아 순방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이날 공개적으로 ‘로힝야’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교황은 이날 방글라데시 남동부 콕스바자르 난민 캠프에 있다가 다카로 온 로힝야 난민 16명을 만나 한명씩 손을 잡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교황은 이들 가운데 한 소녀에게는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을 했다고 AP는 전했다. 교황은 이들을 만난 뒤 “오늘날 하느님의 현존은 또한 ‘로힝야’라고 불린다”면서 “여러분을 박해하고 상처 준 이들을 대신해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을 돕고 올바른 일을 계속하고 이들의 권리가 인정받을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자”면서 “우리 마음을 닫지 말고 다른 길을 살펴보자”고 덧붙였다. 전날 나흘간의 미얀마 방문을 마치고 방글라에 도착한 교황은 대통령궁에서 한 첫 연설에서 “국제사회가 대규모 난민 사태를 낳은 정치적 문제를 풀기 위해 단호한 조치를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시급한 인간적 필요에 대응하기 위해 방글라데시에 즉시 물질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또 “난민 캠프에 있는 수많은 형제자매들의 위태로운 상황과 현 상황의 엄중함을 누구도 모를 수 없다”면서 “방글라데시 사회는 (미얀마) 라카인 주에서 대규모로 유입한 난민들에게 임시 거처와 생필품을 주는 등 인도주의 손길을 가장 분명하게 뻗어줬다”고 말했다. 교황은 이날 로힝야라는 단어를 순방하면서 처음 말했다. 앞서 미얀마에서는 말하지 않았다. 불교국가인 미얀마는 이슬람교도인 로힝야족을 자신들의 소수민족으로 인정하지 않고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민자란 뜻을 담아 ‘벵갈리’라고 부른다.앞서 8월 말 미얀마 라카인 주에서 로힝야족 반군단체인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ARSA)의 경찰초소 공격을 계기로 미얀마군의 대대적인 반군소탕전이 벌어진 가운에 로힝야족 민간인을 겨냥한 살인, 방화 등이 이어지면서 지금까지 62만 5000명의 로힝야족이 이웃 방글라데시로 대피했다. 한편 교황은 이날 로힝야족 난민을 만나기에 앞서 다카 시내 공원에서 10만명이 운집한 가운데 대규모 야외 미사를 집전했다. 이슬람국가인 방글라데시에는 전체 1억 6000만 국민 가운데 1% 정도가 가톨릭 신자로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빈살만, 아랍 40개국과 “反테러”… 속내는 ‘反이란’

    빈살만, 아랍 40개국과 “反테러”… 속내는 ‘反이란’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제1왕위계승자(왕세자) 겸 국방장관이 이끄는 이슬람대테러군사동맹(IMCTC) 40개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AFP통신 등은 26일(현지시간) 빈살만 왕세자가 소집한 IMCTC 회의가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열렸다고 보도했다. 이 회의는 지난 24일 이집트 시나이반도 북부의 이슬람 사원에서 테러가 발생한 직후 기획됐다. 앞서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이집트 지부로 추정되는 세력이 이집트 시나이반도 북부의 이슬람 사원에서 총기를 난사하고 폭탄을 터뜨려 어린이 27명을 포함해 최소 305명을 살해하고, 128명에게 부상을 입혔다.빈살만 왕세자는 “오늘부터 우리는 테러리즘에 대한 추적을 시작한다. 앞으로 많은 나라, 특히 이슬람 국가에서 테러리즘이 패배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을 것”이라면서 “테러리즘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추격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또 “극단주의자들의 테러가 우리 관대한 종교의 명성에 먹칠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빈살만 왕세자의 이 같은 움직임은 사우디와 이란의 갈등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일각에서는 사우디가 테러 격퇴를 명분으로 앙숙 이란에 칼을 겨눈 게 아니냐고 보고 있다. IMCTC의 주요 참석국이 아랍에미리트·바레인·쿠웨이트·이집트 등이 수니파 국가로 전통적인 사우디 우방인 데다, 사우디가 말하는 테러의 범주에 이란의 군사적 위협·헤즈볼라 등 친이란 무장단체 등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시아파 국가인 이란, 이라크 등은 IMCTC에서 베제됐다. IMCTC 회원국이지만, 테러국가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사우디 등 주변국으로부터 단교 당한 카타르는 이날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IMCTC 측은 카타르를 초대했으나 불참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카타르 측은 초대받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파이낼셜타임스(FT)는 “빈살만 왕세자의 발언은 사우디와 이란의 ‘냉전’이 첨예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면서 “사우디와 그 동맹국은 이란이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예멘에 개입해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고 주장한다”고 보도했다. 사우디와 이란은 현재 예멘 내전에 개입해 사실상 대리전을 치르고 있다. 사우디가 정부군을, 이란이 후티 반군을 지원하는 가운데 2014년부터 지속된 내전으로 최소 1만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이외에도 양국은 사우디 리야드를 향한 후티 반군의 미사일 발사, 사드 하리리 레바논 총리 사임 의사 발표 등 사건을 둘러싸고 최근 마찰을 빚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지난 21일 IS의 배후로 사우디를 지목했다. 그는 이날 국영방송을 통해 발표한 IS 격퇴전 승리 연설에서 “미국 등 세계열강과 사우디 등 중동 일부 국가가 지원한 테러조직은 이라크와 시리아의 문화유산을 밀매하고 여성을 인신매매했으며 주민을 살해했다”고 밝혔다. 카타르도 거들었다. 모하마드 압둘라흐만 알타니 카타르 외교장관은 지난 23일 런던에서 열린 대테러회의에서 “충동적으로 위기를 조장하는 사우디보다 카타르가 더 믿음직한 서방의 동맹이 될 것”이라면서 “사우디는 이전의 위기를 덮기 위해 새로운 위기를 조장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사우디가 주도하는 연합군은 중동에서 더 큰 분열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디의 위협이 커지자, 이란과 카타르는 밀착하고 있다. 셰이크 아흐메드 빈자심 카타르 경제장관은 이날 이란 테헤란에서 이란 고위인사를 만나 양국 간 협력을 다짐했다. 이란 외무부는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과 빈자심 경제장관이 환담하는 사진을 공개하고 “두 장관이 양국의 경제, 통상 관계를 증진하는 방안을 논의했고 무역 장벽을 없애는 문제를 협의했다”고 밝혔다. 이란은 사우디 등 주변국으로부터 단교 당한 카타르에 식량 등 주요 생필품을 공급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믈라디치 ‘뒤늦은 단죄’… 유족들 22년 한맺힌 눈물

    믈라디치 ‘뒤늦은 단죄’… 유족들 22년 한맺힌 눈물

    22일(현지시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북동부의 스레브레니차 마을, 1995년 7월 집단학살의 광풍이 휩쓸었던 스레브레니차 대학살 당시 잔인하게 살해된 희생자 유가족들은 인근 포토차리에 건설된 학살 추모 센터에 함께 모여 대형 스크린을 숨죽인 채 주시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유엔 산하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가 라트코 믈라디치 전 세르비아계군 사령관에 대해 종신형을 선고한 순간 마을은 주민들의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센터에 모인 유가족들도 손뼉을 치며 환호했으며 일부 여성들은 회한과 기쁨이 뒤섞인 울음을 터뜨렸다. 스레브레니차에서 남편과 아들, 아버지를 한꺼번에 잃은 네드치바 살리호비치라는 “내 아들을 죽인 믈라디치가 이제 헤이그에서 죽게 됐다”며 “정의가 실현돼 기쁘다”고 말했다. 학살 당시 42명의 일가친척을 잃은 아이사 우미로비치는 “그가 저지른 잔악 행위에 비하면 종신형 선고도 충분치 않다”고 분노했다.‘스레브레니차 학살’은 1992년부터 3년 동안 이어진 보스니아 내전의 대표적인 인종 청소 사건이다. 1995년 7월 당시 유엔은 이곳을 안전지역으로 선포했으나 믈라디치 군사령관이 이끄는 세르비아계군은 이슬람계 남성 주민 8000여명을 무자비하게 몰살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참혹한 학살로 꼽혔다. 보스니아는 내전이 끝난 뒤 스레브레니차에서 학살된 사람들의 유골을 발굴하고 희생자를 확인하는 작업을 벌여 왔지만 아직도 1000여명은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다. 스레브레니차를 비롯해 보스니아에서는 내전으로 20만명이 숨지고, 180만명의 피란민이 발생했다. 믈라디치는 보스니아 대학살을 저지른 지 무려 22년 만에 죗값을 치르게 됐다. 그는 올해 74살이다. 믈라디치는 1965년 유고연방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마케도니아에서 소대장으로 군 경력을 시작했다. 1990년 당이 해체될 때까지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원의 신분을 유지했던 그는 1991년 크로아티아가 유고연방에서 독립을 선언하자 연방군을 이끌고 혁혁한 무공을 세웠으나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막지는 못했다. 이후 보스니아는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에 이어 1992년 유고 연방에서 탈퇴해 독립을 강행했다. 그러나 보스니아에 거주하고 있던 세르비아계와 연방의 중추였던 세르비아가 이에 반발하며 내전이 벌어졌다. 국제사회가 보스니아를 독립국으로 인정하자 믈라디치의 신분은 유고연방의 정부군에서 반군 사령관으로 바뀌었다. 그는 내전이 한창이던 1994년 당시 23살 딸 아나가 자신의 권총으로 자살하자 대학살을 지시하는 잔혹한 학살자로 돌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나의 자살 원인은 자신의 만행을 다룬 신문기사를 보고 충격을 받아 자살했다는 설과, 전쟁으로 우울증을 겪다가 자살했다는 설이 엇갈린다 믈라디치는 전쟁 직후인 1995년 유엔전범재판소에 넘겨졌지만, 16년 도피 생활 끝에 2011년 5월 체포됐다. 믈라디치가 오랫동안 국제사회의 추적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세르비아 정부의 비호 덕분이었다. 내전 종식 이후 줄곧 학살에 대한 책임을 부인해 오던 세르비아는 스레브레니차 학살 등 내전 뒤처리 미숙을 이유로 유럽연합(EU) 가입 승인이 거부당하자 적극적으로 전범 체포에 나서기 시작했다. 세르비아군이 운영하는 온천·사냥 리조트에서 호화로운 도피 생활을 하던 믈라디치는 2011년 세르비아 북부 라자레보에서 세르비아 사법부에 의해 검거됐다. EU는 그동안 그의 체포를 세르비아의 EU 가입 조건 가운데 하나로 제시했다. 세르비아는 EU 가입을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美 방관 틈타… 러, 중동·동유럽서 패권 회복

    푸틴, 美와 대리전서 승리 강조 체코 대통령 “러, 佛 10배 중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시리아와 체코 대통령을 잇달아 면담하며 이 국가들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재확인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방관과 서방 세계의 분열을 틈타 푸틴 정권이 옛 소련 시절 중동과 동유럽에서의 패권을 일정 부분 회복한 상징적 사건으로 비춰진다. 푸틴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휴양도시 소치에서 러시아를 방문 중인 밀로시 제만 체코 대통령과의 회담을 통해 “시리아 정부군이 자국 영토의 98%를 통제하고 있다”면서 “테러리스트들의 저항 근거지들이 남아 있지만 러시아 공군과 시리아 정부군의 공격으로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고 타스 통신이 보도했다. 제만 대통령은 “시리아에서 승리한 것을 축하한다”면서 “바샤르 알아사드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시리아의 대통령”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방러 대표단에 140명의 기업인이 포함된 데 반해 프랑스 방문 때는 고작 14명의 기업인만이 동행했다”면서 “러시아가 우리에게 (프랑스보다) 10배는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푸틴 대통령을 치켜세웠다. 푸틴 대통령은 전날인 20일에는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시리아에서 우리가 테러범 격퇴를 위해 협력한 덕분에 군사작전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알아사드 대통령은 “러시아 덕분에 시리아 내 정치적 해법을 도출하기 위한 과정이 가능해졌다”고 화답했다. 시리아의 전통적 우방인 러시아는 2015년 9월부터 시리아에서의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테러 단체 ‘이슬람국가’(IS)와 시리아 반군을 모두 소탕하는 군사 작전을 실시해 왔다. 반면 미국이 이끄는 국제연합군은 알아사드를 독재자로 규정하고 러시아와 별도로 시리아 반군과 손잡고 IS 격퇴 작전을 진행해 왔다. 푸틴 대통령이 이번 회담에서 보여 준 자신감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에 공습을 명령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미국이 시리아를 러시아에 양도하고 방관자로 남은 현실을 보여 준다고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평가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시리아에서 이란의 세력을 몰아내겠다고 공언했지만 이란의 영향력도 건재해 말뿐에 그쳤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 정상인 제만 체코 대통령의 친러 행보도 동유럽에서 옛 영향력 회복을 꿈꾸는 푸틴 대통령의 외교적 결실로 꼽힌다. 제만 대통령은 푸틴의 측근인 러시아 국영철도 재벌 블라디미르 야쿠닌과 유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는 러시아의 크림 반도 병합을 인정하고 서방의 대러 경제 제재를 반대해 왔다. 불가리아에서는 지난해 11월 친러 성향의 루멘 라데프 대통령이 당선되는 등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제난에 시달리는 동유럽에서의 러시아 영향력은 날로 커지고 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사우디는 ‘이란식 민주주의’가 두려워

    사우디는 ‘이란식 민주주의’가 두려워

    레바논 ~ 이라크 ‘시아 벨트’ 부담 “사우디 왕권 교체기 불안 투영” 사우디아라비아의 왕권 교체가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기 권력 무함마드 빈살만(32) 사우디 제1왕위계승자(왕세자) 겸 국방장관은 아직 정치적 역량을 증명해내지 못했다. 이 와중에 오랜 숙적 이란은 중동 일대에서의 영향력을 키워 나가고 있다. 이란은 이슬람 시아파를 신봉한다. 수니파 맹주 사우디에게는 눈엣가시다. 이란은 혁명을 일으켜 왕조를 전복시키기도 했다. 새 국왕이 사우디를 틀어쥐기 전에 이란을 위시한 시아파가 중동을 장악하는 것은 아닌지, 이란에서 태어난 이슬람식 민주주의가 아랍국 일대로 퍼져 나가는 것은 아닌지, 이란을 바라보는 사우디는 불안하다.사우디가 주도하는 아랍연맹은 지난 19일(현지시간)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긴급총회에서 “이란은 세계 제1의 테러지원국이다. (레바논의 친이란 시아파 무장세력) 헤즈볼라는 아랍국 안보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사우디 등은 지난 4일 예멘 시아파 후티 반군이 사우디 리야드 공항을 향해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사건의 배후에 이란과 헤즈볼라가 있다고 보고 있다. 사우디 측은 “이란의 공격에 나태하게 대응하지 않겠다”며 무력 충돌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란은 20일 “아랍연맹의 성명은 거짓말과 왜곡”이라고 반박했다. 같은 날 하산 나스랄라 헤즈볼라 최고지도자는 TV 연설에서 “우습다”며 탄도미사일 발사 배후에 헤즈볼라가 있다는 설을 일축했다. 양측이 전쟁이라도 벌일 듯한 기세지만, 군사력·경제력 등 전통적인 ‘하드 파워’ 측면에서 이란은 사우디의 상대가 안 된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펴낸 ‘세계 군비 지출 동향’에 따르면 사우디는 지난해 637억 달러(약 69조 8597억원)의 군비를 지출했다. 미국, 중국, 러시아에 이은 세계 4위다. 이란의 지난해 군비는 123억 달러로, 사우디의 5분의1 수준이다. 사우디는 세계 최강의 군사대국 미국의 오랜 우방이기도 하다. 전임 버락 오바마 미 정부와 달리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이란에 적대적인 것도 사우디에 유리하다. 경제 규모도 사우디가 크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17년 사우디 국내총생산(GDP)은 6785억 달러이며, 이란의 GDP는 4276억 달러다. 또 사우디는 세계 1위 산유국으로 세계 경제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다. 하지만 이란의 ‘소프트 파워’는 사우디에 위협적이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을 통해 왕조를 전복시키고 이슬람식 민주주의를 구축한 전력이 있다. 최고 성직자가 최고지도자를 맡되 그 아래 대통령을 중심으로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를 분리해 민주주의가 작동한다. 반면 사우디는 1932년 국가를 수립한 이후 지금까지 전제군주제를 고수해 왔다. 사우디 국왕은 왕이자 동시에 이슬람의 수호자를 자임한다. 왕은 입법, 사법, 행정 등 각 방면에 걸쳐서 절대적 권력을 가진다. 이에 대해 AFP통신은 지난 12일 “사우디는 이란이 혁명을 수출해 자국 체제를 위협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고 전했다. 특히 이란의 입김 강화가 사우디 왕위 교체기와 맞물리면서 사우디의 불안감이 증폭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사우디 정부는 양위 계획을 부인하고 있지만, 데일리메일은 지난 16일 왕실 관계자들을 인용해 “늦어도 25일까지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사우디 국왕이 빈살만 왕세자에게 왕위를 이양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란은 동맹국 또는 추종 세력에 자율성을 주는 방식으로 세를 불리고 있다. 미 온라인매체 더인터셉트는 지난 17일 “사우디와 이란이 각각의 동맹국을 어떻게 대우하는지를 보면 현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고 전했다. 더인터셉트에 따르면 이란은 각국을 직접 통치하거나 명령하지 않고 독립적 정치구조를 허용한다. 헤즈볼라,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 후티 반군 등이 그 예다. 그들은 의사결정에서 어느 정도 자율성을 보장받는다. 반면 이슬람 근본주의 ‘와하비즘’이 지배하는 사우디는 동맹국에도 엄격한 종교적·정치적 기준을 요구했다. 때문에 소수의 우방국을 제외한 다수를 적국으로 만들었다. 실제로 이슬람국가(IS) 패퇴 이후 이란은 IS가 점령했던 이라크, 시리아와의 유대를 다지고 있다. 레바논에서는 이란의 지지를 받는 헤즈볼라의 입지가 단단해졌다. 지금과 같은 흐름이라면 사우디는 머리맡에 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시아 벨트’를 두게 된다. 다급해진 사우디는 앙숙 이스라엘의 손을 잡았다.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는 20일 유발 슈타이니츠 이스라엘 에너지 장관의 발언을 인용해 “이스라엘은 사우디와 비밀리에 접촉해 왔다”고 전했다. 조너선 아델만 미 덴버대 국제학 교수는 지난 17일 미국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빈살만 왕세자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이란과의 갈등을 지렛대로 삼고 있다”면서 “국내 문제로 향한 사우디의 시선을 이란으로 돌리려는 것이지 꼭 전쟁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카타르 아부 디아브 프랑스 파리대 정치학 교수는 “이라크, 시리아 그리고 예멘 등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우디와 이란의 대리전이 변수”라면서 “상황이 더 악화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美 “사우디 사드 조기배치”… ‘미·사·이’ 삼각동맹 구축하나

    美 “사우디 사드 조기배치”… ‘미·사·이’ 삼각동맹 구축하나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당초 계획보다 신속하게 사우디아라비아에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에 대해서는 ‘이스라엘과의 평화 협상을 진전시키지 않으면 미국 내 외교 연락사무소를 폐쇄할 것’이라고 압박하는 등 중동의 불안정 고조를 감수하며 노골적인 ‘우방 편들기’ 행보를 지속하고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공적’ 이란을 겨냥한 미국·사우디·이스라엘 삼각 동맹을 구축하기 위한 포석으로 분석된다.미국의 한 고위 관리는 지난 1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이란은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포함해 역내 동맹에게 첨단 무기를 공급하고 있고 레바논 총리가 (이란 등의 위협 때문에) 사퇴를 선언하고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반군이 사우디에 미사일을 발사하는 상황이 이어지는 등 사우디의 안보 위협이 가중되고 있다”며 “현 상황이 오래 지속될수록 우리 우방의 이익은 줄어들기 때문에 사우디의 미사일 방위(MD) 역량 강화를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앞서 미 국방부는 지난달 사우디에 사드 발사대 44기 및 요격 미사일 360발 등 총 150억 달러(약 16조 4900억원) 규모의 사드 체계를 판매하기로 했다. 미국 정부의 사우디 MD 강화 방침에 따라 당초 2023~2026년으로 예정됐던 사우디의 사드 배치가 앞당겨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같은 날 미국의 다른 고위 관리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대해 “이스라엘과 진지한 평화협상 논의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워싱턴 DC에 있는 팔레스타인 측 연락사무소를 폐쇄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미국으로부터 공식 국가로 인정받지 못한 팔레스타인은 1994년부터 대사관 대신 ‘워싱턴 DC 사무소’를 두고 있다. 미국의 사무소 폐쇄 카드는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지난 9월 유엔 총회 연설에서 국제형사재판소(ICC)등에 이스라엘을 제소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팔레스타인은 미국에 대해 “중동 평화에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노골적으로 우방인 사우디와 이스라엘을 두둔하며 이들의 숙적 이란과 팔레스타인에 압박을 가한 것은 이란과 팔레스타인을 포용하던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미국의 최대 무기 구입국인 사우디는 지난달 20억~40억 달러 규모의 러시아제 S400 방공미사일 체계도 도입하기로 하는 등 ‘안보실용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사우디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보다 확실한 동맹으로 붙잡아두기 위해 사우디와 좀더 강한 유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아울러 테러 단체 이슬람국가(IS)가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몰락함에 따라 이 지역에서의 이란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데 대한 불안감이 사우디, 이스라엘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울러 이란은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부와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지원하며 시아파가 인구의 다수인 이라크까지 영향권에 넣는 반미(反美) ‘시아파 벨트’ 구축을 노리고 있다. 수니파 이슬람의 맹주 격인 사우디 왕정으로서는 페르시아만을 사이에 둔 이란의 존재가 위협이다. 사우디 못지않게 이란에 대한 적의를 드러내 온 이스라엘 방위군의 가디 에이젠코트 참모총장은 지난 16일 사우디 매체 엘라프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스라엘과 사우디가 외교 관계는 없지만 이란에 대적하기 위한 새로운 국제동맹을 통해 협력해야 할 것”이라며 정보 공유를 제안했다. 사우디 정부는 이스라엘과의 연계설을 부인하고 있지만 최근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왕자들을 숙청하면서 이란과 대결을 주문해온 상황이라는 점에서 미국을 매개로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군사적 밀착이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CNBC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이슬람권의 뿌리 깊은 증오보다 수니파와 시아파 간 적대감이 더 커진 양상”이라며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관계 개선 움직임은 (이들 국가와 이란과의) 전쟁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닭떼 잡듯 칼로 마구…” 로힝야족 소녀가 전한 ‘그날’

    “닭떼 잡듯 칼로 마구…” 로힝야족 소녀가 전한 ‘그날’

    “대나무 담장 사이로 숨죽이며 지켜봤는데, 마치 닭을 잡듯이 사람들을 마구 칼로 내리쳤어요.” 미얀마에서 탈출해 방글라데시로 피난온 로힝야족 소녀 쿠르시다(12·가명)는 몇 달이 지났지만 그날의 끔찍했던 살육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자신의 눈앞에서 100명이 넘는 이웃사람들이 죽어갔다. 영국 언론 인디펜던트는 지난 16일(현지시간) 방글라데시 발루칼리 난민 캠프에 있는 쿠르시다를 인터뷰해 지난 8월 라카인주 부티다웅 마을로 들어온 미얀마군이 저지른 집단 학살의 생생한 상황을 전했다. ‘땃마도’(Tatmadaw)로 불리는 미얀마 군은 이슬람계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을 상대로 살인, 방화, 성폭행 등을 자행해 최소 1000명 이상이 숨졌고, 6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 방글라데시 등 인근 국가로 피신했다. 버마 정부는 로힝야 반군에 대한 작전이었으며 무고한 민간인 희생자는 없었다고 항변했지만, 국제사회의 시선은 냉혹했다. 16일 UN총회 제3위원회는 로힝야 유혈 사태와 관련해 논의한 뒤 미얀마 당국에 로힝야족에 대한 군사행동 중단을 촉구하고, 안토니우 구테흐스 UN 사무총장에게 특사 임명을 주문하는 결의를 채택하는 등 ‘인종 청소의 교과서적 사례’로 적시했다. 쿠르시다는 “마스크를 쓴 군인들이 들이닥친 뒤 숨어있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나눠서 각각 다른 방으로 집어넣었고, 이내 남자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이기 시작했다”면서 “미얀마 군인들은 하루 종일 사람들에게 총을 쐈다”고 말했다. 그는 “군인들은 이밖에도 칼을 사용하거나 밧줄로 목을 조르거나 다양한 방법의 학살이 끊임없이 이어졌으며 시신은 앞마당에 내던졌다”고 덧붙였다. 쿠르시다는 울기만 했고, 옆에 있는 숙모와 여성들은 코란을 암송하면서 공포를 이겨내려 애썼다. 덜덜 떨면서 당시 상황을 떠올리는 쿠르시다는 “아빠도 목이 잘린 채로 죽었다”고 말했다. 가까스로 학살을 면했던 삼촌은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아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데, 쿠르시다의 아빠는 총에 맞아 숨졌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쿠르시다의 심리상담 및 치료를 맡고 있는 정신과 의사는 “쿠르시다가 처음 난민 캠프에 왔을 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계속 울기만 했다”면서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쿠르시다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아이들은 수만 명에 이른다. 국제구호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은 쿠르시다와 같은 아이들 사례를 조사한 뒤 17일 ‘평생 못 잊은 공포-로힝야족 어린이들 이야기’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인디펜던트와 인터뷰를 통해 쿠르시다는 끔찍한 기억에도 불구하고 미얀마 고향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만약 여기 있는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나도 함께 갈 것”이라고 말했다. 미얀마 군인의 로힝야족에 대한 군사행동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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