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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伊기자 석방 ‘테러단체와 타협’ 논란

    지난 5일 아프가니스탄 남부 헬만드주에서 탈레반 반군에 의해 납치된 이탈리아 라 레푸블리카의 아프간 주재 특파원 대니얼 마스트로자코모 기자의 석방을 놓고 국제사회에 논란이 일고 있다. “테러단체와 타협은 없다.”는 국제사회 불문율을 아프간과 이탈리아 정부가 깬 것을 두고 나온 논란이다.마스트로자코모 기자는 자신의 운전기사, 통역과 함께 납치됐다 19일 풀려났으며, 이를 위해 아프간 정부는 반군 지도자 5명을 석방했다. 이탈리아 정부의 협조 요청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 대변인은 인질교환은 “이탈리아와의 우호관계를 고려한 예외적인 조치”라고 설명했다.하지만 아드리안 에드워드 아프간 주재 유엔 대변인은 “유엔은 테러리스트와 협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프간 독립기자협회는 “이번 거래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카불주재 미국 대사관 대변인도 “테러리스트의 요구에 양보하지 않는 게 미국의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로마에서도 야당이 로마노 프로디 이탈리아 총리에게 “테러리스트 석방의 대가로” 그가 풀려난 이유를 설명하라고 요구했다. 국제사회에서 테러리스트들과의 타협은, 명분도 명분이지만 타협 즉시 제2의 사건을 유인하는 덫이 되는 부작용이 있다.특히 이번 사건의 경우 마스트로쟈코모 기자의 운전사는 그가 보는 앞에서 잔인하게 살해됐고, 통역은 여전히 억류돼 있다.김수정기자 외신 종합 crystal@seoul.co.kr
  • [열린세상] 이라크 석유와 군사독트린/김재두 한국국방연구원 에너지안보실장

    이라크 전후 처리의 중요한 한 축이 베일을 벗기 시작했다. 이라크 내각이 승인한 석유법은 이라크의 석유 수입을 인구 비례에 따라 18개주에 골고루 나누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또한 석유 자산의 채굴·생산권을 최대 32년 동안 서방 다국적 기업에 넘기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2006년 10월 이라크 의회에서 통과된 연방제 법안이 실질적인 효력을 발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시작하면서 설정한 중요한 목표중의 하나는 “전쟁 이전과 이후의 국경선이 같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국가분열이나 연방제는 애당초 의도한 그림이 아니었다. 이 방향으로 일이 진행될 경우 갈등이 갈등을 낳는 구조가 형성되어 지역 불안정이 가속화하기 때문이다. 이라크 내 질서 유지가 워낙 어렵다 보니 문제점을 알면서도 봉합한 측면이 강하다. 이미 발생한 이란과 이라크 시아파 간의 동맹은 시리아, 레바논과 더불어 ‘시아파 초승달 세력’과 수니파 주변국가와의 갈등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번 결정으로 쿠르드 자치정부의 입지가 보다 확고해지면 터키의 긴장은 더욱 고조될 것이다. 쿠르드 자치정부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제도적 형태와 무관하게 독립된 국가발전의 길로 나가고 있었다. 나라 없는 설움이라는 비유가 무색할 정도로 유엔이나 주요 국제기구에서 활약을 하던 인사들이 국가건설에 참여함으로 인해 주변 국가에 산재된 쿠르드인들의 결속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터키는 자국 내 쿠르드족이 이라크의 쿠르디스탄을 중심으로 뭉칠 경우 군사력을 사용해서라도 국가 차원의 예방 조치를 취하겠다고 수차례 공언한 바 있다. 터키 정부를 위협하는 쿠르드반군(PKK) 소탕을 테러와의 전쟁으로 규정하고 이미 국제적 지지를 얻었기 때문에 거리낄 것이 없다는 인식도 가지고 있다. 이라크 석유의 처리를 지켜 보면서 미국이 중동에서 가지는 국가이익의 중요성을 강조한 카터독트린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사실 현재 미국이 구사하는 대중동정책은 카터독트린에 기반해 발전되어 왔으며 미국의 국가안보정책이나 군사정책 작성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어 왔다. 조만간 발표될 러시아의 군사독트린에는 에너지안보를 위한 군사 분야의 비중과 역할이 강조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가안보전략에서 에너지 초강국으로의 위상 강화를 천명한 데 이은 후속조치이기도 하다. 2006년 중국이 국방백서를 통해 밝힌 해상 권익의 강화도 따지고 보면 해·공군력을 강화함과 동시에 에너지안보를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개별 국가뿐만의 문제가 아니다. 안보동맹으로 출발한 상하이협력기구가 에너지동맹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특히 옵서버국가인 이란과 파키스탄은 강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서방권과의 배타성을 강화시키고 있다. 군사독트린에 에너지문제가 명기되는 현상은 사안의 중요성을 의미한다. 또한 자원 확보를 둘러싼 대외정책이 밀접한 군사 협력 없이는 국가이익을 충분히 구현하기 어려움을 반영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상황에서는 군사적 갈등이 쉽게 촉발될 수 있다는 개연성도 가지고 있다. 주변 국가들이 하나 같이 군사독트린에 에너지안보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자원을 시장에서 돈을 주고 매입하면서 갈등 발생 시 외교적으로 해결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국방 관련 연구기관에서 에너지안보연구실을 만들고 난 이후 주변 국가의 군사 독트린을 보는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는가 보다. 김재두 한국국방연구원 에너지안보실장
  • 뉴스위크 “美·이란 일촉즉발”

    미국과 이란, 일촉즉발 상태로? 두 나라의 전쟁 가능성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대결을 향해 치닫고 있다고 뉴스위크가 12일 보도했다. 페르시아만에 미 해군 전단이 증파되고 미 행정부 관리들의 관련 발언 수위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이란·페르시아만 담당 국장을 지낸 힐러리 맨은 “미국이 공격의 명분으로 쓸 ‘사건’을 이란이 저지르도록 자극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맞서 이란은 미사일 훈련 등 군사 훈련과 대통령 담화 등으로 전쟁 결의를 다지는 등 페르시아만에 전운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은 이란의 핵개발 프로그램을 핵무기 개발용이라고 몰아붙이면서 위기를 증폭시켜 왔다. 특히 미 관리들은 최근 몇 주째 이란이 이라크 반군을 훈련시켰으며 치명적인 무기를 제공, 미군들을 살상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미 국방부 관리 3명은 11일 바드다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2004년 6월 이후 이란에서 제조, 이라크로 밀반입된 고성능 폭탄으로 최소 170명의 미군 및 다국적군이 숨지고 620여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란 혁명수비대 정예 조직인 알쿠즈 여단이 ‘폭발물 형태의 발사체’(EFP)를 이라크내 극단주의 그룹에 제공했다.”며 이란 정부 고위 지도부의 관여를 주장했다.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씨줄날줄] 소년병/이목희 논설위원

    “9살에 반군에 납치돼 소녀병사 생활 시작, 성노리개 전락, 초경 시작하자마자 임신, 반군 중대장과 사이에 두 딸, 다른 반군 장교에게 폭행당해 딸, 반군에서 도망치자마자 정부군 장교에 의해 아들. 날마다 ‘나에게 기적이 일어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 아프리카 소녀의 사연이 탤런트 조민기씨를 눈물짓게 만들었다.‘기아대책’ 나눔대사로 우간다를 다녀온 조씨. 앞서 아프리카를 돌아본 선배 탤런트 김혜자씨는 시에라리온에서 말문을 잃는다. 어른들의 다이아몬드 탐욕으로 인한 내전. 그곳엔 성한 아이들이 없었다. 김씨는 책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어린이를 전쟁에 내몰지 말라.”고 절규한다. “사람을 쏘는 게 물 마시듯 쉬웠다.”는 12살 소년병 출신의 증언.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에서처럼 마약에 취해, 위협에 의해 소년들이 전쟁으로 내몰리고 있다. 유엔이 정한 소년병 기준은 18살 미만이다. 국제분쟁지역에 25만명의 소년병이 있는 것으로 집계했다. 전투병은 물론 연락병, 짐꾼, 간첩, 성노예 등 착취방법은 다양했다.5살 어린아이에게 총을 쥐어 주는 극악한 사례도 보고되었다. 소년병이 문제되는 지역은 아프리카, 동남아, 중동 등. 우리도 한국전쟁때 어린 병사의 희생이 있었다.14∼16세의 학도병들이 나라를 위해 꽃다운 목숨을 바쳤다. 북한 인민군에 강제징집된 이들의 얘기는 비극적이다.A씨는 북한군 점령지역의 중학교에 등교했다가 인민군에 차출되었다. 당시 14세. 변변한 전투도 못해 보고 포로가 되어 거제도 수용소에서 오랫동안 지냈다. 풀려난 뒤 뇌물로 신원조회를 통과해 일류대학에 들어갔고, 사회 지도층이 되었다. 그는 지금도 소년병 얘기가 나오면 가슴이 떨린다고 했다. 한반도에서 소년병의 슬픔은 현재진행형이다.16살부터 징집을 시작하는 북한. 제대로 못 먹여서 왜소하기까지 하니…. 북한군 대부분의 행색이 영락없는 소년병이다. 프랑스 파리에 모인 58개국 대표들이 엊그제 소년들의 군징집을 막는 파리규범에 서명했다고 한다. 단순히 선언에 그쳐서는 안될 것이다. 집단학살처럼 반인류범죄로 삼아 세계가 함께 징벌해야 한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中 ‘아프리카 사랑’ 점입가경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아프리카의 산타클로스?´ 중국의 ‘아프리카 끌어안기’ 행보가 점입가경이다. 채무탕감, 의료지원, 인권문제 개입 등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하려는 뜻이 숨겨 있다. 중국은 아프리카 33개국에 대한 채무를 탕감해주겠다고 30일 밝혔다. 이날부터 시작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아프리카 8개국 국빈방문에 맞춘 선물이다. 후 주석은 다음 달 10일까지 12일간 카메룬, 라이베리아, 수단, 잠비아, 나미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모잠비크, 세이셸 등을 순방한다.2003년 3월 국가주석 취임 이후 세 번째 아프리카 방문이다. 이번 선물은 지난해 열린 ‘중-아프리카 포럼’에서 약속됐다. 이번에 보따리를 싸서 직접 챙겨다주는 셈이다. 부채 탕감과 동시에 앞으로 3년간 30억달러의 우대 차관을 아프리카 국가들에 제공하기로 했다. 아프리카의 인프라 건설과 사회 문화 복지 시설 건립에 대한 지원도 지속된다. 아프리카 접근에 대한 서방 세계의 시선이 따가운 듯, 중국은 지원액수 등에 대해 구체적 내용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일전에도 중국 외교부 서아시아·북아프리카 담당 자이쥔(翟儁) 부장조리는 “중국에 대한 부채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전 세계에 지고 있는 2840억달러 가운데 일부에 불과하다.”고 말했었다. 중국은 각국 공무원에 대한 고급 인력 양성 프로그램도 지원할 계획이다. 고급 농업기술인력을 파견해 현지 농업기술 지도를 강화하고 농업지도자 양성에도 힘쓰기로 했다. 의료와 교육, 문화 등 전방위적인 지원계획도 실시된다.3년간 매년 100명씩 각 분야의 전문청년인력을 파견해 현지 의료과 교육 봉사활동에 나서기로 하고 농촌학교 건립도 지원하기로 했다. 특히 후 주석은 수단 방문을 통해 ‘다르푸르 사태’ 해결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슬람계 정부군과 아프리카 반군간의 내전으로 2003년 이후 20여만명이 숨지고 250만명의 난민이 발생한 사건이다.jj@seoul.co.kr
  • 미국인 61 “반대”… 국제사회도 냉랭

    미국인 61 “반대”… 국제사회도 냉랭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부시 대통령의 새 ‘이라크 실험’은 성공할 수 있을까.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10일 TV 연설을 통해 밝힌 새로운 이라크 정책의 핵심은 ▲병력 증파를 통한 바그다드 장악 ▲재건 예산 지원 등을 통한 이라크인들의 마음 잡기 ▲국제적인 협력 강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승부수’로 던진 새로운 정책은 기본적으로 미국인 다수의 기대와는 방향이 다른데다가 국제적인 협력도 얻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현실화되려면 적지 않은 난관을 극복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러시아 등 주요 유럽국가들도 냉담한 반응을 보냈다. ●바그다드와 안바르에 집중 배치 부시 대통령은 우선 이라크 수도인 바그다드와 수니파 반군의 거점인 안바르 두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2만 1500명의 전투군을 증파할 계획이다. 추가 파병이 이뤄지면 이라크 주둔군은 현재 13만 2000명에서 15만 3500명으로 늘어난다. 바그다드에는 1만 7500명이 증파되며 1진 5개 여단은 오는 15일까지,2진은 2월15일까지, 나머지는 그로부터 1개월내에 각각 투입할 예정이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추종세력과 알 카에다 소속 외국인 전사들의 근거지인 이라크 서부 안바르에는 해병대 4000명을 증파한다. 이와 함께 이라크 정부도 2월1일까지 바그다드에 3개 여단을 투입하고, 나머지 2개여단을 2월15일까지 증원할 것이라고 부시 대통령은 밝혔다. 그러나 민주당의 딕 더번 상원 원내대표는 부시 대통령의 연설이 끝나자마자 “지난 중간선거에서 나타난 표심과도 어긋나게 이라크 문제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가려고 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이라크에서의 해결 방안은 군사력 증강이 아니라 외교력의 확대”라고 강조했다.USA투데이와 갤럽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미국인의 61%가 추가파병에 반대했다. 찬성은 36%에 그쳤다. 또 이라크 현지 지휘관들과 미 합참 내부에서도 미군 증파에 대한 반대의견이 많지만, 부시 대통령은 “정치권이 아니라 일선 지휘관들의 의견에 따르겠다.”던 기존의 공약마저 뒤집고 백악관과 의회의 소수 강경파들만이 지지하는 증강안을 선택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지적했다. ●미 언론 “치안확보가 최우선 과제” 부시 대통령은 추가 파병과 함께 이라크의 경제 회생과 고용 확대를 위해 10억달러 규모의 재건비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일자리가 없어 테러 집단에 동조하는 이라크의 젊은이들에게 고용의 기회를 확대하겠다는 복안이다. 이와 함께 부시 대통령은 석유 수익금을 각 종파에 공평하게 분배하고 수니파의 정부요직 진출 제한을 완화하겠다는 화해정책도 밝혔다. 그러나 미 언론들은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판 마샬플랜’도 기존의 지원에서 입증됐듯이 치안확보가 선행되지 않고서는 별다른 경제적 효과를 나타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리아와 이란이 빠진 국제협력 부시 대통령은 새로운 이라크 정책 발표에 앞서 노무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 등과 연쇄 전화통화를 가졌다. 이라크에 파병해 미국을 지원하고 있는 것에 대해 사의를 표시하는 한편 이라크전에 많은 나라가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또 중동국가들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12일(현지시간)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을 현지에 파견할 계획이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외교는 이라크의 가장 중요한 접경국인 이란과 시리아가 배제됨에 따라 실효를 얻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이라크연구그룹(ISG)이 권고한 이란 및 시리아와의 직접 대화 추진에 대해 “이라크내 테러리스트들을 지원하는 양국의 노력을 차단할 것”이라고 오히려 강경 방침을 밝혔다. dawn@seoul.co.kr
  • [2007 월드 포커스] (5) 아프리카에 평화 찾아올까

    [2007 월드 포커스] (5) 아프리카에 평화 찾아올까

    종교와 영토 분쟁으로 붉게 얼룩진 아프리카에 평화의 기운이 감돌 수 있을 것인가. 대량 인종학살로 악명높은 수단 다르푸르 사태와 ‘제2의 이라크’우려를 낳았던 소말리아 내전이 최근 의미있는 진전을 보이면서 한가닥 희망의 빛이 비치고 있다. 수단은 오마르 알 바시르 대통령이 지난달 말 유엔 평화유지군 파병을 승인함으로써 좀체 풀리지 않을 것 같던 사태가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고 있다. 소말리아도 에티오피아의 지원을 받은 과도정부가 지난 연말 수도 모가디슈를 6개월간 장악했던 이슬람군벌을 몰아내고 전국적인 통치력을 회복했다. 하지만 식민지 탈피 이후 수십년간 누적돼온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려면 더 획기적인 해결방안이 나와야 한다는 점에서 향후 전망은 아직 장밋빛보다는 회색빛에 가깝다. ●3년간 250만명 난민 발생한 다르푸르 사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취임 일성으로 다르푸르 사태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공언하면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유엔 평화유지군 파병을 강하게 거부해온 수단 정부가 한발 물러선 것도 긍정적이다. 유엔은 1단계로 수단 정부에 2100만달러를 지원하고,2·3단계에는 정부와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다르푸르 사태의 근원은 흑인 기독교도와 아랍계 무슬림간의 갈등이다. 영국 식민통치 시절부터 차별을 당해온 남부 흑인들은 1989년 이슬람계의 지원으로 쿠데타에 성공한 현 정권이 다르푸르를 비롯한 남부 억압 정책을 실시하자 2003년 대대적인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정부가 아랍계 민병대인 잔자위드를 내세워 무차별적인 학살을 감행함으로써 다르푸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국제사회의 지탄이 높아지자 정부와 일부 반군은 지난해 5월 평화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협정에 참여하지 않은 반군세력은 잔자위드에 맞서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 게다가 차드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 인접국으로 폭력이 확산되면서 국가간 분쟁으로까지 치달을 공산이 커지고 있다. ●내전 일단락된 소말리아, 전후 처리협상 고민 모가디슈에서 이슬람군벌을 몰아낸 과도정부는 지역 안정을 구축하기 위한 전후 처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압둘라히 유수프 소말리아 과도정부 대통령은 지난 3일(현지시간) 음와이 키바키 케냐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다. 아프리카평화유지군의 조속한 배치를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유엔은 지난 12월 아프리카평화유지군의 소말리아 파견을 결의한 바 있다. 하지만 평화를 장담하기엔 아직 이르다. 이슬람세력이 무장투쟁을 멈추지 않고, 이라크식 게릴라전을 지속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BBC방송 인터넷판은 4일 과도정부 각료의 말을 인용해 모가디슈에 이슬람전사 3500여명이 아직 잔존해있다고 보도, 이같은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소말리아는 1991년 바레 정권이 축출된 이후 15년간 반군 세력간 내전에 시달렸다.2004년 유엔의 지원으로 과도정부가 출범했지만 이슬람군벌의 연합체인 UIC를 통제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지난해 6월 UIC가 모가디슈를 점령하자 과도정부는 기독교국가인 에티오피아를 지원세력으로 끌어들였다. 당분간 에티오피아군이 소말리아에 계속 머물 예정이어서 이슬람과 기독교간 종교 갈등의 불씨도 남아 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소말리아 내전 끝나나

    소말리아 내전 끝나나

    소말리아에도 평화가 올까. 소말리아 과도정부가 반군인 이슬람군벌(UIC)의 최후 보루 키스마요를 1일(현지시간) 점령함으로써 내전에서 일단 승리를 거뒀다. 지난 91년 이후 처음으로 중앙정부가 지역 군벌을 모두 진압하고 전국적인 통치력을 회복한 것이다.15년 만에 내전이 종식되고 평화가 찾아올지 기대를 모은다. UIC 세력은 남쪽으로 후퇴, 케냐 국경 지대인 캄보니를 향해 달아나고 있다고 BBC 등은 전했다. 지난 6월 모가디슈 장악 이후 남부와 중부를 지배하며 위세를 떨쳤던 UIC 통치는 6개월만에 막을 내렸다. 그러나 15년 만의 평화를 장담하기에는 아직 이른 상황이다.UIC 사령관 시크 야굽 이삭도 “과도정부와 이를 지원하는 에티오피아 군과의 전투를 중단하지 않겠다.”고 밝히는 등 이슬람 세력이 무장투쟁의 뜻을 굽히지 않고 있는 까닭이다. 이라크식 게릴라전을 펼쳐 기독교국 에티오피아군을 몰아내고 이슬람국가를 세우겠다고 UIC와 주변 이슬람 무장세력들은 날을 세우고 있다. 지난해 11월 과도정부를 지원해 내전에 공식 개입한 에티오피아군이 상당기간 주둔할 것으로 보여 종교간 대결 구도도 점쳐진다. 이슬람 군벌들을 몰아내느라 전통적 적대관계였던 에티오피아군의 지원을 업고 있는 과도정부가 어떻게 국민들을 설득해야 할지가 발등의 불이다. 군사력이 취약한 과도정부는 당분간 에티오피아군의 주둔을 필요로 하고 있다. UIC는 해외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의 지원도 받고 있어 게릴라전 또는 테러행위를 감행할 가능성도 높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2006년 지구촌 사라진 별들

    올해도 우리와 호흡을 함께 하던 사회 각계 인사들이 동시대인들의 안타까움 속에 세상을 등졌다. 해외에서는 독재자·인권유린자들이 많이 생을 마감한 것이 눈에 띈다. #정계 최규하 전 대통령이 10월22일 급성 심부전증으로 향년 87세로 세상을 떴다. 최 전 대통령은 신군부 집권 당시 8개월 동안의 증언이나 기록을 남기지 않은 채 눈을 감아 79∼80년 격동기의 진실은 영원히 미제로 남게 됐다. 국회 부의장을 역임한 민관식씨도 1월16일 88세로 타계했다. 그는 3,4,5대 민의원,6대와 10대 의원을 지냈고, 대한체육회장과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을 맡아 국내 체육발전에 큰 족적을 남겼다. 재야운동의 대부이자 5·18민주화운동의 산증인이었던 인권변호사 홍남순씨는 10월14일 94세로 영면했다. 한·일 국교수교의 주인공으로 ‘최연소 외무부장관’ 등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던 이동원 전 외무부 장관은 11월18일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5공화국 시절 야당인 민주한국당 총재를 지낸 유치송 헌정회 원로회의 의장은 6월2일 82세로 숨졌다.조연하 전 국회부의장도 8월 유명을 달리했고, 한나라당 총재 권한대행과 민주당 최고위원을 지낸 강창성 전 의원도 2월14일 76세로 별세했다. 열린우리당 구논회 의원은 11월15일 46세의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떴다.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지낸 박주천 전 의원은 12월2일 지병인 특발성 폐경화증으로 65세에 별세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사회계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지난 5월22일 집무 도중 쓰러져 유명을 달리했다.2003년 한국인 최초로 선출직 유엔 전문기구 수장에 오른 그는 에이즈와 결핵 등 질병 퇴치와 예방, 각국 보건의료행정 지원에 애쓰며 세계 건강 증진에 크게 기여했다. 11월26일에는 ‘거지왕’ 김춘삼씨가 향년 77세로 세상을 등졌다.20대에 전국의 거지를 통솔하면서 일약 전설적 인물로 떠오른 그는 거지구제사업을 벌이는 등 사회사업에도 큰 공헌을 했다. 지난 11월14일 화재를 진압하다 숨진 서병길(57) 소방관은 우리에게 살신성인의 정신을 깨우쳐 주었다. 첫 귀환 국군포로인 조창호(76) 예비역 중위는 11월21일 타계해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문화계 “예술은 반은 사기”라는 말을 남긴 천재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이 1월26일 74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늘 새로운 다양한 방법과 시각으로 예술을 해석하는 데 온 삶을 바쳤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말년에도 창작 활동을 이어갈 만큼 열정적이었다. 한국 최초의 ‘햄릿’역을 맡은 연극배우 김동원은 5월13일 90세를 일기로 타계, 자신의 바람대로 ‘영원한 햄릿’으로 우리 가슴에 남았다. “노력과 열정, 창의력, 그리고 최은희가 내 영화의 전부다.”라던 신상옥 감독은 4월11일 80세로 별세했다. 함북 청진 출신인 신 감독은 납북과 북한 생활, 탈북 등 크고 작은 인생의 굴곡을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승화시켰다.‘한국 사실주의 연극의 최고봉’으로 불린 극작가 차범석도 6월6일 82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팔순 때도 신작을 발표했을 만큼 쉼 없는 창작열로 젊은 후배들의 귀감이 된 그는 60여편의 작품을 남겼다. 한국 개신교계의 큰 어른이었던 여해 강원용 경동교회 명예목사는 8월17일 89세를 일기로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는 평생을 우리 사회의 갈등을 걷어내기 위해 좌·우를 몸으로 껴안는 구도자의 삶을 걸었다. 한국 바둑계의 산증인 조남철 9단은 7월2일 83세로 타계했다. 그는 1945년 한국기원 전신인 한성기원을 설립했고 조훈현, 조치훈을 일본에 유학 보내 바둑 강국의 기반을 마련했다. 1980년 데뷔 이래 ‘회장님, 우리 회장님’‘탱자 가라사대’ 등 시사풍자 개그로 한때를 풍미했던 개그맨 김형곤씨는 지난 3월 46세의 한창 나이에 팬들과 이별, 아쉬움을 남겼다. ‘머나먼 쏭바강’ ‘왕룽일가’의 작가 박영한, 원로가수 신카나리아와 ‘불나비 사랑’을 부른 가수 겸 영화배우 김상국도 사랑했던 팬들과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됐다. 국내 최고의 조선왕조궁중음식 전문가 황혜성씨는 12월14일 86세로 별세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경제계 한국 중공업 발전의 초석을 다진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7월20일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첫째 동생인 그가 숨짐으로써 ‘영’자 항렬은 정상영 KCC 명예회장만 남게 됐다. 해운업계는 두 명의 별을 잃었다.현영원 전 현대상선 회장이 11월24일 79세를 일기로 타계한 지 이틀 뒤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이 52세에 지병으로 별세했다. #체육계 통쾌한 ‘박치기’로 1960∼70년대 국민들에게 기쁨을 줬던 ‘전설의 프로레슬러’ 김일(77)씨가 심장마비로 10월26일 삶의 링에서 내려왔다. 라이벌이었던 ‘백드롭의 명수’ 장영철(78)씨는 앞서 8월8일 지병인 파킨슨 병에 따른 흡인성 폐렴으로 별세했다. 프로축구 성남에서 K-리그 3연패를 이룬 차경복(69) 전 성남 감독이 10월31일 타계했고,1950∼60년대 대표선수를 지낸 뒤 축구대표팀 감독을 역임한 문정식(76) 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도 12월25일 생을 마감했다.김형칠(47)씨는 12월7일 도하아시안게임 승마 종합마술에 출전했다가 낙마사고로 숨져 국민들을 안타깝게 했다. 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해외 미국의 지원으로 아옌데 좌파 정권을 무너뜨린 뒤 17년간 공포정치를 편 칠레의 철혈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지난 12월10일 고문 등으로 사망한 4000여 피해자 가족들의 원망을 외면한 채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다. 1990년대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보스니아계 무슬림 20만명을 학살해 ‘발칸의 도살자’로 불린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 대통령은 유고전범재판소(ICTY)에 기소돼 재판을 받던 중 지난 3월11일 옥중 사망했다. 독재자 투르크메니스탄의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 대통령도 최근 사망했다. 김선일씨를 납치·참수한 알카에다의 이라크 지부 지도자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도 지난 6월7일 미군 공습으로 사망했고, 체첸 반군 지도자 샤밀 바사예프는 러시아군 공격으로 숨졌다. 지난 7월21일 여든에 사망한 캄보디아의 타목은 ‘킬링필드의 도살자’로 불렸다. 논쟁의 중심에 선 경제학계의 두 거목도 유명을 달리했다.1976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밀턴 프리드먼은 현대 자유주의 경제학의 정신적 지주이자 통화주의의 수장.11월16일 94세로 세상을 떴다. 그 대척점에 선 경제학자 존 갈브레이스도 앞서 4월29일 97세로 타계했다. 정부의 사회문제 개입을 적극 주장했다. ‘팍스 아메리카나’를 가능케 한 미국의 외교안보 분야 관리들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스타워즈’로 유명한 전략방위계획을 추진했던 캐스퍼 와인버거 전 국무부 장관이 지난 3월 88세의 나이로, 네오콘의 대모격이랄 수 있는 진 커크패트릭도 12월 80세의 나이에 세상을 떴다. 백악관 안보 담당 핵심으로 미국 최초의 여성 유엔대사로 활동한 커크패트릭은 공산권 붕괴에 막대한 역할을 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미망인으로 킹 목사의 뒤를 이어 인권 운동에 헌신한 코레타 스콧 킹과, 세계 여성운동계의 ‘신화’였던 베티 프리단은 모두 2월에 각각 78세와 85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악어 사냥꾼’(사실은 동물보호운동가)으로 어린이들의 우상이었던 스티브 어윈은 지난 9월 촬영 중 가오리 꼬리가시에 심장을 찔려 마흔넷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골프계의 ‘살아 있는 전설’ 바이런 넬슨,1950·1960년 보스턴 셀틱스를 이끌며 통산 9회의 우승 기록을 갖고 있는 명장 레드 아우어바흐도 각각 9월과 10월에 사망했다. 회계부정 스캔들로 미 월가를 뒤흔든 엔론의 전 회장 케네스 레이도 지난 7월 선고 재판을 3개월 앞두고 심장병으로 돌연사, 끝내 명예회복을 하지 못했다.52년간 중국의 ‘국민 의사’로 불리며 의덕을 베풀어온 화이웨이가 지난 8월 73세의 일기로 사망, 중국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만인의 어머니’로 불린 미국의 배우 제인 와이어트도 10월 96살의 나이로 삶의 무대를 떠났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독살된 러 첩보원이 쓴 책 영화로 만든다

    방사성 물질인 폴로늄 210에 의해 독살된 것으로 드러난 러시아 연방보안부(FSB) 전 정보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가 쓴 책이 영화로 만들어진다. 영국 선데이 타임스 인터넷판은 24일(현지시간) 리트비넨코가 러시아 역사학자인 유리 펠시틴스키와 함께 쓴 ‘러시아 날려버리기(Blowing Up Russia)´의 판권을 미국 할리우드 영화사인 ‘브라운 엔터테인먼트 그룹’이 구매했다고 보도했다. 리트비넨코는 자신의 책에서 FSB가 1999년 러시아에서 3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폭탄테러 사건을 배후 조종했다는 ‘음모론’을 담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폭탄테러 사건을 체첸 반군의 소행으로 몰아붙였고 지지도 상승으로 크렘린에 입성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책이 영화로 만들어지면 리트비넨코의 독살 배후로 지목을 받고 있는 러시아 정부의 심기가 더욱 불편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사설] 이라크 내전 한복판에 남겨진 자이툰

    정부가 자이툰부대 이라크 파병 연장안을 확정했다. 병력을 지금의 2300명에서 1200명 선으로 줄이되 주둔기간을 1년 연장한다는 것이다. 이라크 내전이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에서 대단히 유감스러운 조치다. 이미 이라크전은 끝났고, 이라크에 새 정부가 들어선 지도 오래다.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른 파병의 목적은 달성됐고 더 머물 명분은 소멸한 것이다. 종파간 갈등에 따른 내전이라는 새 국면에 접어든 이라크에 왜 우리의 자이툰 부대가 있어야 하는지 근본적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이라크 재건 참여를 명분으로 내세운다. 주둔지 아르빌의 지방재건팀(RRT)에 참여하는 한국인 경호를 자이툰부대에 맡기는 방안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RRT에 참여하는 미국인과 함께 이라크 반군세력의 공격 표적이 될 가능성을 열어 놓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지금껏 석유자원 확보 같은 실익을 전혀 거두지 못한 터에 새로운 이익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미 이라크 파병 39개 나라는 대부분 철군했거나 철군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심지어 미국 다음으로 대규모 병력을 보낸 영국조차 내년에 수천명을 감축할 태세이고, 폴란드도 내년에 완전 철수한다. 우리와 비슷한 규모로 파병한 이탈리아 역시 이번 주 철군을 완료한다. 열린우리당의 철군계획서 제출 요구에 정부는 내년 중에 철군안을 마련하겠다고 답했다. 어떻게든 파병연장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고 보자는 꼼수로 비친다. 당장 전원 철수가 어렵다면 단계적 철군안이라도 즉각 국민에게 내놓아야 한다.
  • 네팔 과도정부·반군 평화협정

    ‘신들의 고향’ 히말라야에 평화가 깃들고 있다.1만 3000여명이 희생된 10여년의 네팔 내전이 마침내 종착점을 향해 큰 걸음을 내디뎠다. 네팔 과도정부와 마오주의자 반군은 21일(현지시간) 수도 카트만두에서 역사적인 평화협정에 서명하고 내년에 총선을 실시, 왕정 폐지 여부를 국민에 묻기로 했다. 프라찬다(52)가 이끄는 마오 반군은 무기를 유엔 감시 아래 반환하고 다음달 과도정부에 본격 참여한다.26일에는 임시의회에도 나올 계획이다. 프라찬다는 조인식에서 “238년간 지속된 봉건체제의 종식과 11년의 내전이 끝났음을 알리는 순간”이라고 선언했다. 기리자 프라사드 코이랄라(85) 총리는 “총으로는 분쟁을 해결할 수 없다는 메시지”라며 “10대 최빈국 네팔이 새 시대로 접어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평화의 씨앗은 반군이 야당들과 손잡고 지난 4월 갸넨드라 국왕의 독재에 맞서 대규모 민주항쟁을 조직한 뒤 야당연합이 주축이 된 과도정부와 휴전함으로써 싹텄다. 특히 정부특별위원회가 민주화 시위 유혈 진압에 국왕이 책임 있다고 발표하고, 코이랄라 총리가 전날 국왕의 형사처벌 가능성을 시사하자 협정이 결실을 맺게 됐다. 이번 협정에는 내전 당시의 반인륜 범죄에 대한 사실 규명도 포함돼 있다. 남은 문제는 반군 대원들이 과연 무기를 버린다는 약속을 이행할 것인가라고 뉴욕 타임스는 짚었다. 이들은 무기고의 열쇠를 내놓지 않고 있다. 유엔은 무기고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기로 했다. 프라찬다는 로이터 통신에 “우리는 교조적인 공산주의자가 아니다.”면서 “내년 선거에서 국민들이 왕정을 택한다 해도 폐지 투쟁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벌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내전이 종식된다는 소식에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환호했다. 학생인 바산타 샤마(35)는 “이제 보통 사람들이 일도 하고 돈도 벌 수 있겠다.”며 기뻐했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이슬람 문명과 도시] (22) 청·백 나일강 합수 정치·경제 중심지 수단 하르툼

    [이슬람 문명과 도시] (22) 청·백 나일강 합수 정치·경제 중심지 수단 하르툼

    고대 이집트시대 이전부터 찬란한 문명과 역사를 꽃 피웠던 아프리카의 수단. 중세 암흑기와 근대 식민통치기를 거친 지금은 아랍과 아프리카 토착문화가 공존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수단 문화의 특징은 각 종족문화의 다양성이다. 수단 북부에는 아랍어를 사용하는 이슬람계 함족과 셈족이, 남부에는 다양한 언어와 신앙을 가진 여러 인종과 부족이 살고 있다.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농업이 발달한 북부와 미개발지역인 남부간의 대립은 심각한 문제이기도 하다. 수단은 1870년대 이래 이집트의 지배를 받다 이집트가 영국의 통치를 받으면서 1899년부터는 영국과 이집트의 공동 지배를 받았다.1956년 독립했지만 내부갈등 때문에 쿠데타와 내전으로 점철돼 왔다. 이슬람주의를 내세운 북부의 중앙정부와 토착종교와 기독교를 신봉하는 남부 반군간의 싸움이 21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지난해 1월 평화협정을 맺었지만, 아직도 수단 서부 다르푸르에서는 총성이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1990년대초 알 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에게 은신처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미국이 테러지원국으로 분류, 오랫동안 경제제재를 받아왔다. 한술 더 떠 1998년 클린턴 행정부는 화학무기 공장이 있다며 수도 카르툼의 한 공장을 폭격하기도 했다. 물론 이 공장은 테러와는 전혀 무관한, 보통 제약회사 공장에 지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수단은 둘러볼 곳이 많은 나라이다. 아프리카 정중앙에 위치하고, 면적도 아프리카에서 가장 넓은 편이며,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만도 9개에 이르는데다, 홍해까지 끼고 있다. 여기에다 수단은 건조한 누비아 사막에서 나일강 습지에 이르는 광대한 자연을 자랑하고, 아프리카와 중동이 만나는 곳이다. 그럼에도 이런저런 상처 때문에 관광을 즐기기엔 제한이 많다. 관광객들이 볼 수 있는 곳은 하르툼 주변과 누비아·나일강 유역에 있는 쿠슈 유적지 정도다. 이나마도 교통이나 호텔 등이 잘 정비되어 있길 기대해서는 안 된다. 높은 기온 때문에 11월에서 이듬해 3월까지가 움직이기 편하다. 하르툼 시외 관광은 내무성의 사전허가가 있어야 한다. 하르툼은 백나일 지역의 옴두르만, 청나일 지역의 북부 하르툼 지역이 한데 뭉쳐진 곳이다. 처음에는 1824년 이집트의 군사도시이자 요새로 만들어졌다. 한때 무너지고 버려지기도 했지만,1898년 영국이 재건한 뒤 수단 진출 거점으로 활용하면서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가 됐다. 지금도 하르툼에는 중앙정부 기관과 주요은행, 사무소, 호텔 등이 밀집해 있다. 이런 행정적인 역할 뿐아니라 국제공항과 철길, 나일강 수상교통루트가 모두 연결되어 있어 명실상부한 중심도시다. 하르툼을 거치면 금세 동부의 포트수단, 북부의 와디할파, 서부의 니얄라, 남부의 와우 등 사방으로 뻗어나갈 수 있다. 수단 중동부에 위치한 하르툼은 또 백나일과 청나일의 합류점이기도 하다. 하르툼 시가지는 이 두 강의 합류지점에 위치해 있다. 청나일 부근에는 유럽인 지역이 있고 이 지역은 점차 넓어지는 추세다. 반면 백나일 쪽 옛 시가지 옴두르만은 아랍적인 곳으로 서민의 냄새를 물씬 풍긴다. 청나일 너머 북부 하르툼은 최근 공업지대로 개발되고 있다. 이렇게 보면 몹시 번잡한 도시일 것 같지만, 의외로 가로수가 가득차 있는 조용한 도시다.7∼9월에 우기가 잠시 있고 고온건조한 기후에 4∼6월 동안엔 50도를 넘을 때도 많다. 시내를 이리저리 둘러봐도 역시 가득한 것은 이슬람적인 색채다. 수단의 역사를 잘 알 수 있는 곳은 역시 샤리아 엘 니르 거리의 국립박물관이다. 여기에는 기원전 4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적들이 즐비하다. 누비아호에서 옮겨진 고대 신전 유적과 파라스에서 옮겨진 고대 기독교 벽화 등 보관 중인 유물·유적은 그 수준도 매우 높다. 약간 허전하다 싶은 사람은 국립박물관 인근에 모여 있는 자연사박물관이나 민족박물관 등도 살펴볼 만하다. 또 의회 거리에 위치한 쿠슈 갤러리도 반드시 들러봐야 할 곳이다. 수단 문화의 정수가 담겨 있는 곳인데, 특히 수단 국내에 서식하는 새들에 관한 전시물들이 인상적이다. 백나일 쪽 옴두르만은 반건조지역이다. 그러나 물을 댈 수 있는 관개망이 발달하면서 점차 목화 생산의 중심지로 탈바꿈했다. 목화뿐아니라 설탕이나 아라비아 고무는 물론, 차까지도 생산한다. 작은 마을에 불과했지만 1884년 ‘무하마드의 재림’이라 불리던 마흐디가 영국의 고든 장군이 이끄는 이집트군을 격파하기 위해 군대를 소집하면서 군사기지가 됐다.19세기 막바지에 마흐디를 기리는 ‘마흐디 운동’이 다시 한번 불꽃처럼 번져나가는데, 이 운동의 지도자였던 수단 출신의 무하마드 아마드 이븐 압드 알라는 눈여겨 볼 만하다. 그는 제4대 정통 칼리파인 알리의 맏아들 하산의 후예임을 자칭했는데, 마흐디 운동의 확산을 위해서는 ‘지하드’를 무엇보다도 중요시했다. 이슬람교도들의 신성한 종교적 의무인 성지순례를 대신할 수 있다고까지 역설할 정도였다. 이는 후일 수단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다.1898년 영국군은 키치너 장군의 지휘 아래 마침내 마흐디의 후계자인 칼리파 압둘라를 이곳에서 궤멸시켜 지난날의 패배를 앙갚음했다. 지금 옴두르만은 정치중심지 하르툼 내에서도 물길과 도로·철도망이 이어진 교통과 상업중심지이지만, 이런 역사 때문에 곳곳에 온갖 역사유적들이 가득하다. 들어서면서부터 이미 마흐디 시대에 지어진,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이어진 좁은 골목과 낮은 토벽담도 인상적이고 전통 가옥도 눈길을 끈다. 이슬람교 사원은 기본이고, 마흐디와 관련된 유적들도 많다. 이 근처에는 은으로 된 돔 형태의 마흐디 무덤이 있는데, 여기서는 매주 금요일 오후 4시30분부터 해가 떨어질 때까지 이슬람교 금욕고행파 수도승들의 춤사위를 볼 수 있다. 칼리파박물관도 꼭 가볼 필요가 있다. 이슬람의 종교지도자이자 국왕인 칼리파의 거처로 이곳에서는 마흐디의 전설에 얽힌 각종 전리품이 전시돼 있다. 또 여기서 얼마 더 가면 전통시장 ‘스쿠’가 나오는데, 하르툼 시내의 시장보다 더 활기차다. 옴두르만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교외의 ‘하이 엘 아랍’이 있는데, 여기서는 매일 매일 떠들썩한 낙타 거래가 이뤄진다. 여기서는 수송용뿐아니라 식용 낙타도 거래된다. 이외에도 국립극장에서 열리는 민족무용대회, 금·일요일마다 열리는 나일강 뱃놀이 등 즐길거리가 끊이지 않는다. 수단은 21세기에 다시 아프리카와 중동의 가교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다르푸르 내전 등 국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 문제들이 정리되면 천연자원이 풍부한 수단이 한국과 좀더 많은 교류를 가져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관계로 발전했으면 한다. 유왕종 성결대 교수 이슬람문화연구소 연구원
  • [피플 인 포커스]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 당선 확정

    결국 ‘미국의 악몽’은 현실화됐다. 5일(현지시간) 치러진 니카라과 대선에서 다니엘 오르테가 전 대통령이 40%에 가까운 득표율로 사실상 당선을 확정지었다. 레이건 행정부의 ‘제거대상 1호’이자 80년대 좌파들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라틴아메리카의 혁명 영웅이 16년 만에 권좌에 복귀한 것이다. 오르테가가 이끄는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은 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뒤 선거에 패해 물러났다 선거를 통해 재집권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권력은 ‘총구’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정치적 진리를 확인시킨 셈이다. ●오르테가-부시 父子의 악연 1990년 오르테가의 실각이 사실상 미국의 ‘기획’에 의해 이뤄졌고 그의 재집권을 가장 우려한 것도 미국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결과는 단순한 좌·우 정권교체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영국 BBC 방송은 선거 전부터 오르테가가 승리한다면 “미국의 16년 중남미 정책이 총체적으로 실패했음을 알리는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이라고 예견해 왔다. 이같은 사실은 미국, 특히 부시 부자(父子)와 오르테가의 ‘악연’을 살펴 보면 분명해진다. 아버지 부시는 1970∼80년대 CIA국장과 부통령을 지내며 산디니스타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해 가혹한 봉쇄정책을 주도하는 한편 우익반군 ‘콘트라’에 돈과 무기를 지원, 니카라과를 내전의 수렁으로 밀어 넣었다.‘이란-콘트라 스캔들’로 위기에 몰리기도 했지만 89년 대통령 취임 뒤엔 우파 비올레타 차모로를 앞세워 오르테가를 낙선시키는 데 성공한다. 미국이 중남미에서 벌인 ‘저강도 전쟁’의 결정판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워싱턴 컨센서스’로 상징되는 미국의 시장주의 이식 프로젝트는 니카라과를 비롯한 중남미 전역에서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경기침체와 양극화라는 부작용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내전에 대한 염증과 미국의 지원에 대한 기대심리로 우파에 기울던 중남미 민심은 다시 좌파로 급선회한다. 베네수엘라를 시작으로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에 차례로 좌파정권이 들어섰고 올해엔 칠레와 볼리비아가 좌파의 집권대열에 합류했다. ●반제국주의 혁명가에서 ‘노회한 정치인’으로 오르테가의 귀환은 결국 중남미의 ‘좌파 벨트’가 미국의 ‘턱밑’까지 육박했음을 의미하는 한편, 부시 대통령에게는 아버지 시절부터 진행해 온 중남미 정책이 총체적 실패로 판명됐음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최근 중남미 선거에 개입을 자제해 왔던 미국이 니카라과 선거를 앞두고는 “오르테가만은 안된다.”며 자본 철수를 경고하는 등 ‘강수’를 둔 것도 이 때문이었다. 물론 오르테가의 승리에는 해외투자를 적극 유치하고 기업활동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스스로 급진적 이미지를 탈색시키기 위해 노력한 것도 주효했다. 과거 자신과 대립했던 콘트라 반군 지도자를 러닝메이트로 삼는가 하면, 집권시절 재산을 압류당하거나 내전으로 희생된 사람들에게도 용서를 구했다.‘매판자본 축출’을 외치던 반제국주의 혁명가에서 화해와 평화를 말하는 ‘노회한 정치인’으로 변신한 것이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盧대통령·DJ 회동, 지역갈등 고착화”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오찬 회동을 놓고 박찬종 전 의원이 ‘반군(反軍)’을 자청했다. 여권발 정계개편을 경계하는 한나라당을 지원 사격하며 정치판 복귀를 알리는 신호탄을 쏘는 듯했다. 박 전 의원은 6일 ‘후광(後廣) 김대중 선생께 드리는 글’을 통해 개인적인 인연부터 강조했다.“미국에 망명 중인 김대중 선생께서 귀국하십니다. 부산시민께서 열렬한 박수로 격려해 주십시오.”라는 자신의 12대 총선 후보연설 내용을 소개했다. 그리고는 “선생께서는 영호남 지역갈등 위에서 성취를 쌓았고, 대통령직까지 올랐다.”고 꼬집었다. 이어 “목포를 방문해 무호남(無湖南) 무국가(無國家)라고 했는데 무영남(無嶺南) 무당선(無當選)은 어찌하란 말이냐.”면서 “전라도 표심을 100% 묶어내는 ‘전라도당’ 창당을 공개 성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심각한 지역갈등 구조를 고착시키는 쐐기를 박는 것과 같다. 이를 깨야 할 책임이 선생께 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권력만 좇는 정치투기꾼의 ’떴다방 정치’”“위장과 교란으로 국민을 속이는 새판짜기”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어 “노 대통령과 DJ가 만나 부동산 대책을 논의했다고 하는데 삼척동자가 웃을 일”이라며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정계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오르테가 재집권 ‘아슬아슬’

    5일 치러지는 니카라과 대통령 선거에서 1980년대 산디니스타 혁명의 지도자 다니엘 오르테가(60)의 재집권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투표일을 사흘 앞두고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85년부터 5년 동안 대통령을 지냈던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FSLN)의 오르테가 후보는 중도우파 자유동맹보수당(ALN-PC)의 에두아르도 몬테알레그레(51) 후보와 8∼10%포인트 차이로 선두를 지키고 있다. 현재 오르테가 후보의 지지율은 30% 초반. 결선투표를 피할 수 있는 35%선에 한참 못 미친다.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결선투표에선 누구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현행 선거법상 1위 후보가 40% 이상을 얻거나 최소 35% 득표에 2위와 격차를 5%포인트 이상으로 벌리지 못하면 45일 안에 결선투표를 실시하도록 돼 있다. 남은 기간 최대의 변수는 우파 후보의 막판 단일화 여부다. 일부 언론은 하버드 대학 출신으로 재무장관과 외무장관을 지낸 억만장자 몬테알레그레 후보가 투표 직전 사퇴할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사퇴가 현실화된다면 19%의 지지율로 3위를 달리고 있는 집권 헌정자유당(PLC)의 호세 리소(62) 후보가 보수표를 끌어모아 당선될 수도 있다. 미국은 그동안 몬테알레그레와 리소에게 후보 단일화 압력을 넣는 한편, 오르테가가 다시 집권할 경우 미국 기업들을 철수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아왔다. 90년 대선에서 미국의 노골적 지원을 받은 우파 여성후보에 패해 정권을 내준 뒤 이후 선거에서 내리 세번을 실패한 오르테가는 러닝메이트로 80년대 우익반군 ‘콘트라’를 이끌며 산디니스타와 대립했던 하이메 모랄레스와 손잡는 등 당선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최근엔 기업 활동을 보장하고 자유교역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협정에 서명하기도 했다.그는 ‘평화로운 통치’를 약속하며 “일자리 창출이란 또 하나의 혁명을 완수할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이라크 미군 10월 103명 숨져

    이라크 미군 10월 103명 숨져

    지난달 이라크 주둔 미군 사망자 수가 100명을 넘어선 것으로 드러나면서 원인과 책임을 둘러싼 논란이 미국 정치권에 확산되고 있다. 이라크 무장세력이 미국내 철군여론 조성을 위해 공격을 강화한데 따른 것이란 주장이 있는가 하면,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빚어진 필연적 결과라는 견해도 있다. 특히 이번 사안이 집권당과 정부에 대한 정치적 책임론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공화당과 백악관은 이라크의 상황을 베트남전 말기 상황과 비교해가며 논란 차단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라크판 ‘구정공세’? ‘무장세력 기획설’을 전파하는 데는 부시 대통령과 체니 부통령까지 나서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이라크 상황을 1968년 베트남전 당시 반군들의 ‘구정공세’와 비교한 뒤 공화당과 정부에 화살을 돌리는 것은 무장세력의 의도에 놀아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구정공세가 공산반군들에도 큰 군사적 손실을 가져왔지만 미군의 인명피해를 늘려 철군압력을 가중시키고 존슨 행정부에 대한 지지도를 큰 폭으로 떨어뜨리는 등 정치적 성공을 거둔 것처럼 이라크 반군들도 유사한 목적에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체니 부통령도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반군세력들이 임박한 미국 중간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군사행동을 강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반군들은) 우리가 선거일정에 돌입했다는 사실에 매우 민감하다.”면서 “인터넷을 통해 미국의 여론 추이를 면밀히 살피며 공격시기를 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이 이슬람 성월(聖月) 라마단이었다는 점도 치안 악화에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바그다드 장악하려 군병력 투입 늘린 탓” 하지만 정치권 외부의 전문가들은 백악관의 주장에 냉소적이다. 이라크의 상황악화를 반군들의 정치적 의도와 연결지으려는 것은 지나친 견강부회라는 것이다. 워싱턴에 있는 국제전략연구센터의 앤서니 코데스먼은 “10월 미군 사망자가 늘어난 것은 미군이 수도를 장악하기 위해 더 많은 병력을 바그다드로 투입시킨 데 따른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중요한 것은 이라크가 종파간 갈등이 악화되면서 느리고, 꾸준하게 내전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라면서 “내전으로 인한 군사갈등의 십자포화에 갇혀 있는 한 미군의 피해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미 국방부는 10월 이라크에서 사망한 미군이 103명이라고 31일 밝혔다. 지난 2003년 개전 이래 한달 사망자로는 네번째로 많은 수다. 지금까지 가장 많은 미군 사망자가 발생한 달은 2004년 11월로 137명이 숨졌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학생 vs 민병대원” 희생자 논란

    파키스탄 군의 종교 학교 공습으로 80여명이 숨진 데 대해 과연 희생자들이 누구였느냐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파키스탄 당국은 알카에다 대원들이었다고 주장했지만 주민들은 무고한 학생과 교사들이었다고 맞서며 미국의 대(對) 테러전을 비난하고 나섰다. AP통신에 따르면 파키스탄 군 헬기 3∼4대는 지난 30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국경 근처에 있는 이슬람 학교를 공습해 70∼80명의 민병대원을 제거했다고 군 관리들이 밝혔다. 파키스탄 카르에서 북쪽으로 10㎞ 떨어진 체나가이 마을의 이 학교가 이 지역의 탈레반 반군 지도자가 운영하는 알카에다 훈련기지라는 정보에 따라 기습작전을 개시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사망자들의 장례식에 참석한 이슬람 율법학자는 숨진 사람이 83명이며 이들은 모두 학생과 교사들이었다고 주장했다. 부족 지도자 파키르 모하메드는 장례식에 모여든 1만여명의 성난 군중들 앞에서 “정부가 미국의 명령을 받고 무고한 양민을 살해했다.”고 성토했다. 이에 군중들은 성조기를 불태우며 ‘부시에게 죽음을’,‘무샤라프에게 죽음을’이라고 연신 외쳐댔다. 공습 사건으로 더욱 나빠진 반미 감정은 수도 카라치 등 파키스탄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영국 BBC 방송은 전했다. 파키스탄의 이슬람 원리주의 학교 ‘마드라사’는 예전부터 테러전사들의 양성소로 지목돼 왔다. 최근에는 미국과 영국 등에서 태어난 파키스탄계 2세 젊은이들이 고국을 찾았다가 이 학교에서 교육받고 테러주의자가 된다는 의혹까지 사고 있다. 이 때문에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은 마드라사 개혁을 서방세계에 공언하기도 했다. 특히 이번 공습은 이 지역에서 정부와 전 탈레반 민병대와의 평화 협상이 타결되려던 무렵 단행돼 협상이 물거품이 됐다. 알카에다 2인자 아이만 알 자르카위가 공습을 받아 한때 숨졌다는 의혹을 받은 지역이기도 하다. 그만큼 오사마 빈 라덴의 은거지로도 유력한데 파키스탄 정부는 이 접경 지대에 8만명의 병력을 보냈지만 아직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수단의 ‘두 얼굴’

    한쪽에선 지구상 최악의 인종학살이 자행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선 오일특수로 풍요를 구가하는 나라가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24일(현지시간) 아프리카 수단의 ‘두 얼굴’을 조명했다. 수도 하르툼의 한 카페 풍경. 청바지와 고급 운동화 차림의 젊은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주변엔 16만 5000달러의 BMW 승용차가 즐비하다. 하르툼의 거리에는 새로운 고층건물과 고급호텔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으며 다리 건설도 활발하다. 값비싼 플라즈마 TV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아프리카의 가장 역동적인 도시 가운데 하나로 꼽기에 손색이 없다. 하지만 960㎞ 떨어진 다르푸르 지역에서는 국제사회 최악의 인도적 위기로 불리는 ‘아프리카판 킬링필드’가 펼쳐지고 있다. 수단 정부의 지원을 받는 아랍계 이슬람 민병조직 잔자위드와 기독교계 흑인 반군조직들 간의 분쟁으로 지난 3년간 최소 20만명의 사망자와 250만명의 난민을 낳았다. 하루 51만 2000배럴의 석유를 생산해 수십억달러의 수입을 거두면서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다르푸르 사태’는 전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통계에 따르면 수단은 지난해 8%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나타낸 데 이어 올해 12%의 고도성장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산타클라라 대학 경제학 교수 마이클 커베인은 “석유와 도심지역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투자가 수단 경제의 견인차”라고 말했다. 미국이 다르푸르 사태에 개입하려고 해도 먹히지 않는 이유가 이 때문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지적했다. 유엔까지 동원해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은 수단과의 교역 확대를 꾀하고 있다. 수단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 규모는 지난 2000년 1억 2800만달러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벌써 23억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중국이 유엔 안보리의 수단 제재안을 거부한 것도 수단에 세운 자국 정유공장 때문이다. 압다 야히아 전 수단 재무장관은 “정부는 미국이 필요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면서 “제재로 피해를 보는 건 미국사람뿐”이라고 조롱했다. 오마르 하산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이 다르푸르에 대한 유엔 평화유지군 배치에 강력 저항하는 것도 이같은 자신감에서 비롯한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스리랑카 자폭테러 92명 사망

    스리랑카 북서부에서 16일 해군 호송행렬을 상대로 한 자살 폭탄테러가 발생, 최소 92명의 해군 병사가 숨지고 160여명이 부상당했다고 AP·AFP 통신이 보도했다. 스리랑카 보안군 관계자는 이 테러가 수도 콜롬보에서 북동쪽으로 190㎞ 떨어진 하바라나 마을 인근에서 발생했다고 밝혔다. 정부 당국은 정부군과 맞서고 있는 대표적 반군인 ‘타밀엘람 해방호랑이(LTTE)’의 소행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자폭테러는 폭발물을 장착한 트럭이 15대의 버스가 정차한 곳으로 돌진하면서 발생했다. 해군 병사들은 모두 휴가를 위해 이동중이어서 무장하지는 않았다. 버스안에서 대기하다 인명손실이 더욱 커진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현장에서 63구의 시체를 수습했고 13명은 병원에서 숨졌다. 부상자 가운데 중상자가 많아 사망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번 자폭테러는 타밀반군에 의한 테러 중 군인 40명이 숨진 1987년 테러 이후 가장 큰 규모다.함혜리기자 lot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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