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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기문 총장, 유엔평화유지군 사망에 분개

    수단 다르푸르에서 유엔평화유지군 7명이 반군의 공격으로 숨졌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강한 어조로 무장세력을 비난했다. 알자지라 방송은 9일(현지시간) “다르푸르에서 활동하는 ‘유엔·아프리카연합 임무단(UNAMID)’ 병력이 무장세력의 매복공격을 받아 최소 7명이 숨지고 22명이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평화유지군은 북부 다르푸르에서 민간인 학살사건을 조사하고 있었던 걸로 알려졌다. 방송은 “대전차 무기 등으로 중무장한 반군 200여명이 갑자기 평화유지군을 기습 공격했다.”고 전했다. 수단 관영 수나(SUNA) 통신도 “중무장한 차량 40대가 무장세력을 호위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교전은 2시간여 동안 지속됐다. 유엔은 “무장세력이 먼저 후퇴했고 이후 평화유지 임무단이 철수하면서 교전이 끝났다.”고 발표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분노했다. 전례 없이 강한 어조로 비난을 쏟아냈다. 그는 “극악한 폭력사태를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범인들을 최대한 빨리 색출해 법의 심판대에 세워야 한다.”고도 했다. 현재 유엔 평화유지군은 수단 정부의 의도적인 비협조와 만성적 장비 부족으로 임무수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카불 印대사관 폭탄테러… 41명 사망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인도 대사관앞에서 7일 오전 차량을 이용한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해 최소 41명이 죽고,140여명이 부상했다고 AP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대사관은 상점들이 밀집한 카불 도심에 위치한 데다 비자를 받으려는 시민 수십명이 건물 앞에 대기중이어서 사망자 피해가 컸다.목격자들에 따르면 테러범은 인도 대사관으로 진입하려던 외교 차량 2대를 막아선 채 폭탄을 터트렸다. 이로 인해 정문 경비를 담당하던 보안군 요원 2명을 포함해 모두 4명의 인도인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간 내무부는 이번 사건이 현지에서 활동중인 정보기관의 도움을 받은 탈레반 대원에 의해 자행됐다며 강력 비난했다. 하미드 카르자위 아프간 대통령은 “아프간과 인도의 우정을 훼손하려는 무장단체들의 행위”라고 비난했다.인도 외무부는 성명에서 테러 행위에 대해 강력한 유감을 표명한 뒤 “이번 공격이 아프간 정부와 국민을 위한 우리의 노력을 멈추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2001년 미국의 아프간 공격으로 정권에서 축출당한 탈레반은 끊임없이 테러 공격을 감행해 왔으며, 특히 최근 몇달 간 폭력 양상이 심해졌다. 올들어 카불에서 일어난 자살테러 공격은 이번이 6번째이며, 탈레반군의 공격으로 인한 사망자도 올 한 해 22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씨줄날줄] 콜롬비아 반군(FARC)/노주석 논설위원

    ‘콜롬비아의 잔다르크’ 잉그리드 베탕쿠르가 6년 6개월 동안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the Revolutionary Armed Forces of Colombia)에 의해 인질로 붙잡혀 있다가 한편의 영화처럼 탈출했다.22분 13초의 감쪽같은 구출극으로 전세계적인 스타가 된 사람은 베탕쿠르 자신이지만 상대역인 FARC도 최고의 악명을 날리게 됐다. 돌아온 베탕쿠르는 “반군은 인간이 아니다.6년 내내 목에 쇠사슬을 채워 끌고 다녔다.”고 폭로했다. 수백명이 아직 억류돼 있다고 주장했다. 남미대륙 북서쪽 끝에 위치한 콜롬비아는 우리에게 커피와 난민, 부정부패 그리고 세계 최대의 코카인 생산국으로 유명하다. 지난 44년간 이어진 내전으로 약 300만명의 난민이 생겼다. 매년 2만 5000명이 살해되고 전세계 납치사건의 절반인 3000건이 발생한다. 이 나라의 2002년 대통령 후보였던 베탕쿠르가 “인질생활을 하면서 FARC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농담한 FARC는 어떤 조직일까. 1964년 창설된 좌익 게릴라 조직 FARC는 미국이나 유럽국가들로부터는 테러조직으로, 일부 좌익세력으로부터는 합법적인 교전단체로 인정받고 있다.40년 이상 최고 지도자로 군림해온 마누엘 마루란다가 지난 3월 심장마비로 사망한 뒤 알폰소 카노가 이끌고 있다.80∼90년대 콜롬비아 마약조직과 결탁해 세력을 확장했으며 한때 1만 7000명의 반군이 활동했다. 부패한 콜롬비아 정부에 분노한 농민들이 끊임없이 반군진영에 가담해 자리를 채웠다. 또 마약 밀거래로 한해 2억달러를 손쉽게 벌어들이고 있어 호락호락하진 않다. 이번에 베탕쿠르의 탈출로 감옥에 있는 동료들을 구출하고 교전단체로 인정받을 최고의 협상 카드를 상실했다. 외부적인 요인도 불리하게 돌아간다. 좌파의 대부격인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이나 강력한 지원자로 알려진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마저 “게릴라투쟁은 과거의 역사”라며 “무장해제와 조건없는 인질석방”을 촉구하고 있기 때문이다.FARC는 콜롬비아 국민들을 위한 정권을 잡는 것이 전략적 목표라며 새 선거실시를 요구하고 있지만 마약을 판 돈으로 위장한 그들의 미사여구를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6년 내내 내 목엔 쇠사슬이… 잠은 매일 찬 땅바닥에서 자”

    “반군은 사람도 아니었어요.6년 내내 제 목에 쇠사슬을 채웠습니다.” 게릴라 조직인 콜롬비아혁명군(FARC)에 억류됐다가 지난 3일(이하 현지시간) 풀려난 잉그리드 베탕쿠르(46)는 이렇게 말했다. 4일 로이터·AP통신 등에 따르면 베탕쿠르는 “FARC 지도부가 (콜롬비아와 함께 이중으로 된) 내 국적이 프랑스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내 뒤엔 (프랑스) 정부가 있다는 점 때문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베탕쿠르는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감옥보다도 못한 억류생활에 대해 또렷또렷 증언했다. 반군들이 행군할 때를 제외하고는 인질 목에 쇠사슬을 묶어 줄곧 나무 기둥에 사슬을 매놓았다고 덧붙였다. 또 “반군은 무자비한 사람들이었다.”면서 “동물, 심지어 식물이라도 그렇게 취급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어 “내가 100살까지 살아 머리카락이 모두 희어져도 억류생활 중 맞닥뜨린 광경에 깜짝깜짝 놀라며 지낼 것”이라고 말했다. “어젯밤 가족들과 얘기하느라 꼬박 지새웠다.”고 운을 뗀 베탕쿠르는 “포로생활 내내 차가운 땅바닥에서 잠을 잤다.”고 말했다. 감시병이 붙은 채 강(江)에서 목욕했다고 한다. 반군을 인간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말도 보탰다. “속옷이 모자라 고생했으며 밥도 뚜껑 없는 찌그러진 냄비에 담아 먹었다. 과일이나 채소라곤 구경도 못했다.”고 떠올렸다. 피랍 뒤 처음으로 재작년 공개된 비디오에서 건강이 나빠 보였던 사연도 곁들였다. 당시 상상을 뛰어넘는 열악한 대우로 뼈만 남은 듯 마른 체구로 국민들 걱정을 자아냈다. 이에 대해 베탕쿠르는 “간(肝)이 나빠져 눈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었다.”고 회고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피랍 때인 2002년 대선후보였던 베탕쿠르가 “나라를 위해 봉사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 “FARC 기지에 아직 억류된 피랍자 석방을 위한 일에 당장 뛰어들겠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반군이 정치적 이유로 억류한 사람만 적어도 25명이며, 평범한 콜롬비아 국민도 수백명에 이른다고 했다. 베탕쿠르는 프랑스에서 석방소식을 듣고 보고타로 온 딸 멜라니(22), 아들 로렌조(19)와 손을 맞잡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은 너희들 생각 때문”이라면서 “너희는 내 자존심이자 빛이요, 별이야.”라며 웃었다. 로이터 통신은 몇달 전까지만 해도 반군을 만나 인질들이 풀려나도록 하겠다던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이번 구출작전 성공으로 망신을 샀다고 전했다. 통신은 15명 석방소식이 들린 지 24시간이 넘은 4일, 차베스가 “기쁘다.”는 원론적인 반응을 보인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풀이했다. 한편 바티칸은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베탕쿠르를 곧 만날 예정이라고 4일 밝혔다. 교황은 베탕쿠르의 구출 소식을 듣고 매우 기쁘다는 내용의 전보를 보냈으며 가능한 한 빨리 그녀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베탕쿠르 구출’ 22분만에 상황끝

    인질 구출 개시에서 완료까지 걸린 시간은 단 22분이었다. 스페인어로 외통수란 의미의 작전명 ‘하케’처럼 실패하면 빠져나올 구멍이 전혀 없는 위험천만한 방법이었지만 콜롬비아군은 치밀하고 과감한 계획속에 임무를 완벽히 수행했다. 2일(이하 현지시간) AP,AFP 등 외신들에 따르면 콜롬비아 군요원들은 이날 6년 전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에 납치된 잉그리드 베탕쿠르(46) 전 콜롬비아 대선 후보를 비롯한 인질 15명을 극적으로 구출했다. 총알 한방 쏘지 않고 반군 소굴에서 인질들을 무사히 빼냈다. 베탕쿠르가 구출 뒤 기자회견에서 밝혔듯 “기적 같은 일”이었다. 후안 마누엘 산토스 국방장관이 기자회견에서 공개한 수개월간의 구출 계획과 실행 과정은 마치 한 편의 첩보 드라마를 연상케 했다. 아무런 표시없는 흰색 헬기 2대가 콜롬비아 남부 밀림지대에 내려앉으며 작전은 시작됐다. 반군으로 가장한 정부요원들은 ‘세사르’라는 이름의 감시 책임자에게 인질들을 새 지도자 알폰소 카노에게 데려가기 위해 왔노라고 속였다. 베탕쿠르를 비롯해 미국인 3명, 군인, 경찰 등 중요 인질 15명이 헬기에 태워졌다. 인질들은 손발이 묶인 채였다. 요원들은 반군을 속이기 위해 체 게바라의 얼굴이 찍힌 티셔츠와 FARC 유니폼까지 입었다. 이때까지 이것이 구출작전이란 것을 눈치챈 이는 아무도 없었다. 헬기 조종사들은 ‘발전기 이상없음’이라는 작전 진행상황까지 본부에 알렸다. 그러나 이 말조차 상황을 보고하는 암호문이었다. 게릴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헬기가 이륙하자 조종석에 앉은 요원이 뒤돌아보고 베탕쿠르에게 말했다.“우리는 정부군이다. 당신은 이제 자유다.”‘세사르’ 등 게릴라 3명은 바로 제압당했다. 베탕쿠르는 “인질들이 너무 기뻐서 서로 부둥켜안고 뛰는 바람에 헬기가 떨어질 뻔했다.”고 당시 흥분을 전했다. 헬기가 보고타 근처 카탐 공군기지에 안착한 뒤 베탕쿠르는 트랩을 내려와 인질들과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이어 모친 욜란다 풀레시오, 남편 후안 카를로스 르콤프와 재회의 포옹을 나눴다. 군복 조끼, 모자 차림에 땋아올린 머리를 한 그녀는 수척한 얼굴이었다. 만성간질환에 시달려온 것으로 전해졌지만 건강상태는 양호한 편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그녀의 어머니가 “이 순간을 상상하며 수없이 기도했다.”고 울먹이자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울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베탕쿠르는 기자회견에서 “신께서 기적을 실행하셨다. 이런 완벽한 작전은 내 삶에서 가장 자랑스런 순간이다.”라면서 “여전히 콤롬비아 대통령으로서 봉사하기를 갈망한다.”고 말해 2010년 대선 출마 의지를 내비쳤다. 콜롬비아 정부에도 감사의 뜻을 전했다.콜롬비아TV RCN과의 인터뷰에선 “내가 프랑스인인 게 자랑스럽다.”면서 자신을 지지해준 프랑스 국민과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납치 당시 16세,13세이었던 딸 멜라니, 아들 로렌조도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파리에서 보고타행 비행기에 급히 몸을 실었다. 로렌조는 “자유를 위한 싸움에서 우리가 이겼다.”고 가슴 벅찬 표정을 지었다. 산토스 장관도 “전례없는 이번 작전은 대담함과 효율 면에서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자평했다.콜롬비아와 프랑스 이중국적 소지자인 베탕쿠르는 2002년 2월23일 반군 점령지역인 남부 산 빈센테 델 카관에서 대통령 유세 중 납치됐다. 장관 출신 아버지와 미스 콜롬비아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1994년 하원의원에 당선된 뒤 출중한 언변과 미모로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었다. 반부패를 슬로건으로 내걸어 대선 유세 중엔 FARC에 대한 독설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해엔 깡마른 체구로 정글 속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베탕쿠르의 사진이 공개되면서 생명위독설이 퍼지기도 했다. 한편 이날 프랑스를 비롯한 국제사회는 일제히 환영했다. 특히 베탕쿠르 구출을 위해 백방으로 뛰었던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6년 동안의 악몽이 오늘 끝났다.”며 축하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도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을 강한 리더로 추켜세우며 축하했다고 백악관 고든 존드로 대변인이 말했다.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네팔공화국’ 28일 출범

    히말라야 산자락의 네팔이 민주주의 국가로 28일 다시 태어난다. 이날 239년간 유지됐던 샤(Shah)왕조의 완전 종식을 선언할 제헌의회가 소집되기 때문이다. 지난달 10일 총선에서 선출된 601명의 제헌의원들은 이날 기리자 프라사드 코이랄라 총리 주재로 첫 회기를 개최한다. 이 자리에서 마오 반군이 만든 네팔공산당(M)은 왕정 폐지와 공화국 출범을 선언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네팔은 공화제로 전환된다.3대 정당인 네팔국민회의(NC)와 마르크스 레닌주의자 연대인 네팔공산당(UML),M으로부터 퇴진압력을 받고 있는 갸넨드라 국왕도 왕의 신분을 버리고 평민으로 돌아갈 전망이다. 지난 3월24일 은둔의 왕국인 부탄이 총선을 통해 100년 동안의 왕정을 끝내고 입헌군주제로 전환한데 이어 네팔도 공화제로 바뀌면서 히말라야 주변국에 민주화 실험이 확산되고 있다. 네팔은 제1당인 M이 과반의석을 확보하지 못해 NC와 UML 등이 참여하는 연립정부가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 정당들이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자기 몫을 둘러싼 갈등이 나타나고 있어 연정구성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향후 네팔 정국 기상도는 맑지마는 않다. 왕정 폐지를 반대하는 테러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외교부 “교전 발생 수단 여행자제”

    외교통상부는 12일 정부군과 반군 간 교전이 발생한 수단에 대한 여행자제를 당부했다. 외교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수단은 정정이 불안해 이미 지역별로 여행경보 2단계(여행자제)나 3단계(여행제한)로 지정돼 있다.”면서 “이번에 발생한 교전으로 하르툼 등 일부 지역에 통행금지가 내려지는 등 상황이 정상화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니 여행을 자제해 달라.”고 밝혔다.외교부는 “수단 내에 머물고 있는 우리 교민 98명의 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면서 “현지에 체류하고 있는 우리 국민들도 이동을 자제하고 공관을 통해 안전정보를 수시로 확인하는 등 신변안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했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국제유가 120달러 첫 돌파

    국제유가가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배럴당 120달러를 돌파했다. 우리나라가 주로 수입해 쓰는 중동산 두바이유 가격도 배럴당 110달러 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달러화 약세에 따른 투기 수요와 공급 차질 우려가 겹쳐서다. 6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전날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된 6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장중 122달러까지 치솟았다.1983년 원유 선물거래가 시작된 이래 120달러선이 무너진 것은 처음이다. 이날 기록한 WTI 최고가는 1년 전에 비해 100% 가까이 오른 수준이다. WTI 선물은 정규 시장에서도 전날보다 배럴당 3.65달러 상승한 119.97달러에 마감됐다. 영국 런던석유거래소(ICE)의 북해산 브렌트유 선물은 3.43달러 뛴 117.9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중동산 두바이유 현물 가격도 4.91달러 오른 109.77달러를 기록했다. 석유공사측은 “달러화 가치가 하락세로 돌아선 가운데 최대 산유국인 나이지리아의 정정 불안과 쿠르드족 반군의 미국 시설물 공격 위협, 이란의 핵포기 요구 거부 등이 겹치면서 공급 차질 우려가 증폭됐다.”고 분석했다. 안미현 이재연기자 hyun@seoul.co.kr
  • 유가 120弗 육박

    국제유가가 28일 북해 원유공급 차질의 여파로 장중 사상 최고치인 배럴당 119.93달러까지 치솟았다. CNN,AFP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뉴욕상업거래소 전자거래에서 6월 인도분 미국산 경질유 가격은 배럴당 119.93달러를 기록했다. 싱가포르에서도 배럴당 119.40달러에 거래가 마감돼 지난 25일 종가 118.52달러보다 88센트 올랐다. 영국은 지난 27일부터 영국 원유 생산의 40%를 차지하는 북해 송유관을 폐쇄했다.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은 정유공장 직원들이 이틀 동안 파업에 돌입하면서 북해 70개 유전으로부터 하루 70만배럴의 석유를 받아 공급하는 포티스 송유관을 폐쇄했다고 밝혔다. 블룸버그 통신은 “북해 송유관 가동 중단과 나이지리아의 산유량이 반군의 공격으로 급감해 국제 유가 급등이 우려된다.”고 전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나쁜 기업/한스 바이어·클라우스 베르너 지음

    나쁜 기업/한스 바이어·클라우스 베르너 지음

    “‘친환경’‘친소비자’를 내세운 글로벌 기업들의 이미지 광고는 결국 노동력 착취, 인권탄압, 독재정권과의 협력, 환경파괴 등의 진실을 감추는 포장지” 깔끔한 기업 이미지로 ‘자동’연결되는 갈색 조개 마크. 다국적 석유회사 셸의 로고이다. 기업정보에 밝은 꽤 많은 석유 소비자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셸이 서아프리카 지역의 사회사업에 거액을 기부하는 회사라는 사실을.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세상사람들은 까맣게 모를 것이다. 셸이 나이지리아를 사업거점으로 삼으면서 현지 수천 가구의 생계를 위협하고 40억 유로(1992년 현재)에 맞먹는 환경훼손을 자행했다는 사실을. ●부도덕한 세계 기업들 실명으로 고발 사회적 책임과 시민의식을 앞장서 떠벌리는 글로벌 기업들의 구린 이면을 들춘 책이 ‘나쁜 기업’(한스 바이어·클라우스 베르너 지음, 손주희 옮김, 프로메테우스 펴냄)이다. 독일 르포 작가인 글쓴이들이 부도덕한 세계 기업들을 실명을 들어 고발하는 수위는 기대치 이상이다. 다양한 근거자료와 통계수치를 개정판(2003년)을 내면서까지 보충한 덕분에 철저히 객관성이 담보된 기업비판서가 됐다. 서두에 등장한 셸은 콘체른(독점력을 발휘하는 거대 기업집단)의 파렴치한 기업행태를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1995년 셸은 석유시추 시설인 브렌트 스파를 북해에 수장 폐기하려 한 적이 있었다. 환경단체를 위시한 수백만 명의 시위대는 당시 그 안건이 철회될 때까지 셸 주유소 불매운동을 벌였다. 그 와중에 나이지리아의 유명 저항운동가의 살인사건에 셸이 연루됐고, 기업 이미지는 곤두박질쳤다. 셸이 6000만 유로를 나이지리아 자선활동에 밀어넣은 건 그 즈음부터였다. 기업광고 예산에 비하면 푼돈이었으나, 이미지 개선 효과는 어마어마했다. 셸의 자선활동은 일제히 전세계 미디어를 탔다. 해마다 나이지리아 남부 빈민학교와 보건시설에 6000만 유로를 기부하는 ‘도덕’기업으로 인식되기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브랜드 이미지 관리에는 거액을 투자하면서도 생산여건을 개선하는 데는 지갑을 열지 않는 콘체른들을 책은 집중 성토한다.“대부분 거대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이란 선전용 개그에 불과하다.”는 원색적 비난이 전제된다.“‘친환경’‘친소비자’를 내세운 글로벌 기업들의 이미지 광고는 결국 노동력 착취, 인권탄압, 독재정권과의 협력, 환경파괴 등의 진실을 감추는 포장지”라는 주장이다. 독일에서 출간된 즉시 몇몇 기업의 불매운동이 벌어졌을 정도로 책의 고발의식은 신랄하다. 아예 세계 악덕기업의 순위를 매겼다. 저자들이 지목한 파렴치 기업 ‘톱3’는 아스피린을 만드는 세계적 제약회사 바이엘, 석유회사 엑손 모빌, 바비인형 제조사인 마텔.“바비인형은 중국인 여성근로자들에 대한 비양심적 노동착취로 이뤄낸 결과물”이라고 폭로한다. 책에 따르면, 특히 바이엘은 이윤을 위해 한 나라의 내전까지도 악용하는 부도덕 기업의 전형이다. 자매회사인 슈타르크가 이동전화의 주요 부품으로 각광받는 금속 ‘콜탄’으로 막대한 이익을 손에 넣은 이면을 낱낱이 까발렸다. 콜탄의 세계적 주산지는 콩고. 무기자금을 마련하려는 콩고 반군과의 불법 음성거래를 통해 콜탄을 확보했다는 사실을 저자들은 광물 바이어로 위장해 취재했다. 바이엘이 위험천만한 콜탄 광산에서 어린 아이들의 노동착취를 묵인했음은 물론이다. ●바이엘·엑슨 모빌·마텔 세계파렴치기업 톱3 인간을 ‘원료’로 취급하는 기업 현장은 세계 곳곳에 널려 있었다. 거의 예외없는 서구 제약회사들이 최대한 빨리 신약의 효력을 확인하기 위해 미개발 국가들의 환자를 실험대상으로 삼는다는 고발은 섬뜩하다. 세금과 규제가 엄하지 않은 나라를 찾아 의사들에게 거액을 주고 환자를 ‘실험용 모르모트’로 동원하는 게 상례화됐다는 것. 저자들은 제약회사 관계자로 위장해 이메일로 병원장의 반응을 떠보는 위험한 작업을 감행했다. 삼성도 이들의 감시망을 피해 가진 못했다. 멕시코 하청업체에서 임신부를 채용하지 않기 위해 불법 임신테스트를 했다는 사실 등을 공개했다. 책은 지구촌 경제를 움직이는 50여개 거대기업들을 고발대상으로 삼았다. 신자유주의의 달콤한 우산 너머로 진실을 볼 줄 아는 안목을 갖자고 촉구한다. 부도덕 거대기업에 항의서한을 보낼 수 있는 주소와 담당자까지 특별부록으로 실었다.1만 68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마오이스트, 네팔 총선 압승

    네팔 첫 총선에서 반군 정당 마오이스트(M)의 돌풍이 거세다. 일간 네팔뉴스 등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13일 개표가 완료된 94개 선거구 가운데 54석이 M에 돌아갔다. 이 추세라면 집권은 떼놓은 당상으로 보인다고 더 히말라이언타임스는 보도했다.플라찬다 총재는 자신의 지역구에서 2만 3277표를 얻어 1만 2154표에 그친 네팔국민회의(NC) 후보를 2배 가까이 따돌리고 무난히 당선됐다. 제헌의회 진입에 성공한 다른 후보들도 워낙 큰 표차로 앞서 M의 기세를 그대로 드러냈다. 바부람 바타라이 부총재도 3만 5119포로 4894표의 NC 후보를 제쳤다. 반면 M과 각축을 벌일 것으로 예상됐던 NC와 마르크스-레닌주의 연대(UML)는 13일 현재 각각 16석을 차지하는 데 머무르며 제2당 다툼을 벌이고 있다. 이번 선거를 통해 240명의 지역구 의원과 335명의 비례대표 의원이 뽑히며, 선거결과 확정 뒤 총리가 26명의 의원을 추가로 지명,601명의 제헌의회가 구성된다. 특히 총선엔 74개 정당 가운데 54개가 뛰어든 난립상태여서 M의 득표는 그 결과가 사실상 뻔하다는 분석을 가능케 한다.M은 벌써부터 압승을 장담하며 축제 분위기에 빠졌다. 수도 카트만두에서는 망치와 낫이 그려진 당기(黨旗)가 나부끼는 가운데 지지자들이 공산혁명 구호를 외치면서 거리를 붉은 색 꽃가루로 물들이고 있다. 플라찬다 총재는 “민주주의 정부 수립을 염원하는 국민들의 뜻이 반영된 당연한 결과”라면서 “다른 정당들과 협조해 이에 부합하는 새 헌법을 만들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총선에 옵서버로 참가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선거는 네팔이 오랜 정치폭력을 털어내고 민주주의의 길을 걷는 계기”라면서 “마오이스트 정당이 승리하더라도 미국과 좋은 관계를 맺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네팔에서는 1990년 복수정당제가 허용된 이래 의회 세력이 꾸준히 민주화를 요구해 왔으나 정부해산권을 가진 갸넨드라 국왕은 총리를 13번이나 교체하면서 의회와 맞섰다. 네팔의 마오이스트 반군은 군주제 타도와 공산국가 건설을 꿈꾸며 1996년 무장봉기를 일으켜 10년간 정부군과 내전을 치렀으며 이 과정에서 1만 3000여명의 희생자를 냈다.2006년 11월 정부와 평화협정을 체결, 내전에 종지부를 찍은 마오 반군은 뒤로는 임시정부에 참여해 민주화 이행 과정에 목소리를 냈다. 1만 5000여명의 병력을 거느린 마오 반군은 국토의 절반 가까이를 장악하며 국왕 축출과 군주제의 즉각적인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총선에서 M이 승리하면 1769년부터 239년간 영욕을 누려온 샤(Shah) 왕조는 실권을 모두 빼앗긴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질 확률이 커진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239년 왕정’ 네팔 민주주의 첫실험

    ‘239년 왕정’ 네팔 민주주의 첫실험

    히말라야의 작은 나라 네팔이 민주주의 국가로 다시 태어난다. 오는 10일 역사적인 총선을 통해 제헌의회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제헌의회가 민주주의 헌법을 만들면 239년간에 걸친 샤(Shah)왕조에 의한 절대왕정은 완전히 종식되고 공화제로 바뀐다. 지난달 24일 ‘은둔의 왕국’ 부탄이 총선을 통해 100년 동안의 왕정을 완전히 접고 입헌군주제로 전환한 데 이은 것이다. 히말라야 산자락에 ‘민주주의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있다. 네팔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10일 전국 240개 선거구 2만 1000여개 투표소에서 제헌의회 의원 610명을 뽑는 선거를 치른다.6일 현재 선관위에 등록된 지역구 출마후보는 3947명이며 비례대표 후보도 5710명에 달한다. ●마오반군 “선거 압승 자신한다” 현재 네팔에는 74개의 정당이 난립하고 있다. 기리자 프라사드 코이랄라 총리가 이끄는 네팔국민회의당(NC)과 마르크스 레닌 주의자 연대인 네팔공산당(UML), 인도와 중국이 기원으로 알려진 마오 반군이 만든 네팔공산당(M)이 3대 정당으로 손꼽힌다. 왕정 반대에 한목소리를 내는 이들 정당이 이번 총선에서도 다수 의석을 확보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절대왕정 국가였던 네팔은 1990년 비렌드라 전 국왕이 입헌군주제 도입을 골자로 한 정치개혁을 단행하면서부터 정치상황이 급변했다. 하지만 정정 불안으로 2년을 넘긴 정부가 없었고 1996년 마오반군의 무장봉기로 네팔은 내전의 불바다로 빠져들었다.10년 내전 끝에 정부와 마오반군은 2006년 11월 공동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제헌의회 구성을 위한 총선을 치르기로 합의했었다. 총선 이후 정국 기상도에 있어서는 맑음보다 흐림에 무게추가 실린다. 부탄은 국왕이 스스로 권력을 국민에게 넘겨줌으로써 소리 없는 정치혁명을 이룬 데 비해 네팔은 ‘피플파워’가 국왕의 권력을 강제로 빼앗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유혈사태가 벌어졌으며 희생자가 속출했었다. 그 후유증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게다가 마오반군이 “우리는 총선 압승을 자신하고 있다.”며 “선거 조작 행위가 포착되면 선거 결과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수차례 밝혀 향후 정국은 시계제로 상태다. ●향후 정국 시계제로… 주도권 다툼 예상 이에 따라 네팔 정부는 파국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공정 선거를 위해 28개 국제기구와 단체에서 선거감시단 856명을 초청했으며 부정선거 감시요원도 6만 4000명을 위촉했다. 인도와의 국경을 봉쇄하고 13만 5000여명의 경찰병력을 동원하는 한편 지난 주말부터 항공기를 동원한 공중정찰도 실시하고 있다. 한국외대 남아시아연구소 김찬완 박사는 “네팔은 의회민주주의 경험이 적고 마오주의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민주주의 정착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당분간 정국 주도권을 둘러싸고 계파 갈등을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네팔의 민주화 실험이 성공할지, 미완으로 끝날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죽음의 상인’ 바우트 잡혔다

    ‘죽음의 상인’ 바우트 잡혔다

    ‘죽음의 상인’으로 불리며 무기 밀거래로 한해 수백만달러에 이르는 돈을 주물러온 러시아 출신 무기 밀매업자 빅토르 바우트(41)가 영화 속 장면처럼 극적으로 붙잡혔다. 영화 ‘로드 오브 워(Lord of War)’의 실제 주인공으로 알려진 그는 미 마약단속국(DEA)의 1년여에 걸친 함정수사 끝에 태국 방콕의 한 호텔에서 7일 체포됐다. 이날 AFP와 CNN에 따르면 바우트는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과 무기계약을 맺으려던 참이었다. 바우트가 지난달 말 태국으로 잠입했다는 첩보를 입수한 DEA 요원들은 FARC 반군으로 가장, 그의 측근을 감쪽같이 속인 뒤 이날 그를 체포하는 개가를 올렸다. 러시아 일간 러시아투데이는 바우트가 법정에서 유죄를 선고받을 경우 최소한 징역 15년형에 처해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은 좌익반군인 FARC에 무기를 공급하려 한 혐의로 그를 기소하는 한편 태국에 신병인도를 요청할 방침이다. 타지키스탄 태생인 바우트는 러시아 국가안보위원회(KGB) 소속 장교로 앙골라에서 근무하면서 무기·석유 밀매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미국과 중동, 아프리카, 동유럽에서 화물운송회사 운영을 가장해 아랍에미리트(UAE)를 거점으로 암약해 왔다. 자신이 소유한 에어세스, 그리고 센트라프리칸 항공기를 통해 아프가니스탄과 앙골라, 콩고민주공화국, 라이베리아, 이라크 등에 무기를 실어 날랐다.1991년부터 2002년까지 이어진 내란으로 5만여명이 숨진 시에라리온의 반군에게 무기를 공급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콜롬비아 국경분쟁으로 사면초가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 토벌을 둘러싼 남미 국경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군대가 여전히 콜롬비아를 남북으로 둘러싸고 대치 중이고 브라질, 페루 등이 역내문제 해결을 위해 긴급히 대책회의에 나서는 등 움직임이 긴박해졌다.AP,AFP통신에 따르면 에콰도르 외교부는 3일(이하 현지시간) “콜롬비아 군대가 FARC 토벌을 구실로 자국 영토를 침범한 데 대한 보복으로 3일부터 콜롬비아 정부와 외교관계를 단절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은 외교부의 단교 성명에 앞서 “콜롬비아에 보다 강력한 조치들을 취하겠다.”고 다짐했다. 자신과 FARC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는 콜롬비아 정부의 주장도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4일 콜롬비아와의 국경을 폐쇄했다. 엘리아스 하와 베네수엘라 농업장관은 이날 콜롬비아 카라콜TV와의 회견에서 “우리 정부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몇 가지 조치를 취했다. 그 가운데 국경 폐쇄가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콜롬비아의 라 과히라, 노르테 데 산탄데르, 아라우카 등 3개 주(州)에서 양국을 연결하는 국경 통과지점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분위기 속에 남미 국가들은 콜롬비아의 영토 침범 행위를 비난하는 한편 중재 움직임을 재촉하고 있다. 브라질 정부는 3일 콜롬비아 정부와 반군단체인 FARC와의 협상에서 중재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밝혔다.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61) 반란자와 귀순자들 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61) 반란자와 귀순자들 Ⅱ

    공유덕과 경중명이 이끄는 반란군이 후금으로 도주하려 하자 명에는 비상이 걸렸다. 명 조정은 주문욱(周文郁)에게 수군을 이끌고 공경(孔耿) 일당을 저지하도록 지시했다. 주문욱은 나름대로 분투했지만 반란군의 도주를 차단하지 못했다. 급기야 공유덕 일당이 계속 달아나 압록강 쪽으로 갈 기미를 보이자 명은 조선을 끌어들이려 했다. 병력을 동원하여 공경의 도주로를 막고, 군량을 마련하여 추격하는 명 수군에게 공급하라는 요구가 날아들었다. 주문욱은 1633년(인조 11년) 1월부터 수군을 이끌고 반란군을 추격했다. 그는 수차례의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공유덕 일당을 완전히 제압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우선 가도 등지에 있는 다른 명군 부대와의 협력 작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와 함께 요동반도 연안에 흩어진 섬 지역에, 명에 반기를 들고 있는 세력들이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것도 걸림돌이었다. 상가희(尙嘉喜)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었다. 상가희는 본래 모문룡의 부하였다가 모문룡이 죽은 뒤 요동반도 연해의 도서 지역을 전전하고 있던 인물이었다. 그는 주문욱으로부터 공경 일당을 공격하는 데 동참하라는 명령을 받았음에도 사태를 관망하면서 움직이지 않았다. 상가희는 오히려 공경 일당이 후금으로 귀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자 동참하기로 결심한다. ●주문욱, 끝내 조선을 끌어들이다 3월30일, 주문욱이 이끄는 명군은 공경 일당을 추격하여 장자도(獐子島)까지 이르렀다. 장자도는 동쪽으로 가도( 島)를 거쳐 조선의 평안도와 압록강으로 연결되고, 서남쪽으로는 녹도(鹿島), 석성도(石城島), 장산도(長山島)를 거쳐 여순(旅順)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공유덕 등은 장자도에서 여순으로 가는 길이 명군에 의해 차단되자, 압록강을 통해 후금으로 들어가기로 결심을 굳힌다. 주문욱은 조선에 글을 보내 병력을 동원하라고 요구하는 한편, 평안도의 지방관들이 공유덕 일당에게 양곡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주문욱은 장자도 부근에서 공경 일당을 차단하려고 분전했지만,4월4일 공경의 반란군은 주문욱의 저지를 뚫고 압록강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공경 일당이 명군의 추격권에서 벗어난 4월5일에야 오안방(吳安邦)과 도증령(陶曾齡)이 수군을 이끌고 각각 등주(登州)와 천진(天津)으로부터 합류했다. 그것은 전형적인 ‘뒷북치기’이자 당시 명군이 처해 있던 총체적인 난맥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공경 일당이 압록강으로 진입하자 주문욱 등은 조선을 들볶아대기 시작했다. 공유덕 일당이 후금군과 연결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역할을 조선에 강요했다. ●후금과의 절교(絶交) 가까스로 막아 앞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공유덕의 반란’ 사건이 일어날 무렵까지 조선과 후금의 관계는 그야말로 아슬아슬했다. 후금으로부터 ‘명나라와 같은 수준으로 대접해 달라.’고 요구받았을 때, 조선은 ‘내키지 않는 형제관계’를 당장 파기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주문욱 등으로부터 참전을 요구받기 직전인 1633년 1월에도 조선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사건이 있었다.1월25일, 심양에서 돌아온 회답사 신득연(申得淵)은 홍타이지의 국서를 내놓았다. 홍타이지는 먼저 ‘조선은 갖은 모욕을 당하면서도 명에는 공손히 예물을 바치면서 후금에는 약속한 수량도 채워주지 않는다.’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는 이어 자신이 곧 가도를 정벌할 것이라며 큰배 300척을 빌려주고 의주에 있는 포구(浦口)를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조선이 거부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배를 빌려달라고 다시 요구한 것은 사실 조선으로부터 더 많은 세폐를 받아내기 위한 포석이었다. 인조와 조정은 격앙되었다. 후금과의 화호(和好) 유지를 강조했던 비변사조차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인조는 후금과의 관계를 끊고 선전포고할 것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조정은, 세폐를 더 내놓으라는 후금의 요구를 정면에서 부정하는 내용으로 답서를 썼다. 배를 빌려줄 수도, 세폐를 늘려줄 수도 없다는 답서의 내용은 사실상 ‘절교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2월2일 회답사 김대건(金大乾)이 답서를 가지고 심양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김대건은 압록강을 건너지 못했다. 도강 직전 사도체찰사(四道體察使) 김시양(金時讓)과 부원수 정충신(鄭忠信)이 김대건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김대건을 의주에 대기시켜 놓고 인조에게 상소를 올렸다. ‘1년 동안 군사를 동원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수년 동안 오랑캐에게 세폐를 보내는 비용보다 훨씬 비싸다.’는 것이 내용의 핵심이었다. 김시양 등은 이어 ‘세상일을 통쾌하게 하려고만 하면 후회가 따르는 법’이라며 후금과의 절교 방침을 재고하라고 촉구했다. 인조는 격노했다. 그는 두 사람을 붙잡아다가 하옥시키라고 지시하면서 ‘무신들은 춥지도 않은데 떨고, 문신들은 천장만 바라보며 날을 보낸다.’고 통탄했다. 사실 당시 비변사도 처음에는 격앙되었지만 속으로는 김시양 등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면전에서는 인조의 명을 어기지 못하고 ‘회답사를 즉시 출발시켜야 한다.’고 동조했지만, 속으로는 후금과의 절교가 몰고 올 파장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유독 최명길(崔鳴吉)만이 ‘후금의 원한을 사서 화를 재촉해서는 안 된다.’고 공개적으로 말할 뿐이었다. 그러던 차에 김시양 등이 김대건의 도강을 저지하자 비변사는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일선에 있으면서 우리의 방어태세가 형편없는 것을 알고 있는 김시양 등의 조처를 존중하자.’는 것이었다. 비변사는 홍타이지에게 보내는 국서를 부드러운 내용으로 수정하자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김시양 등에게 ‘무장은 화의(和議)를 말하지 않는다.’는 대의를 어긴 죄만 묻자고 했다. 사실상 처벌하지 말자는 주장이었다. 인조는 불만을 터뜨렸지만 결국 비변사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인조 또한 후금과의 전쟁까지 감내할 자신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후금과의 관계가 또다시 한 고비를 넘는 순간이었다. ●유보된 척화론(斥和論)에 불을 붙이다 하지만 ‘첩첩산중’이었다. 비변사가 인조를 다독여 후금과의 파국을 가까스로 막았던 직후 명으로부터 새로운 소식이 날아들었다.3월13일, 가도의 심세괴(沈世魁)가 ‘공유덕 등이 등주의 반군을 이끌고 여순 쪽으로 도주하고 있으니 조선 해안으로 숨어들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내용으로 표문(票文)을 보내왔다. 4월6일에는 공경의 반군이 장자도에 이르렀다는 사실과 조선도 병력과 군량을 보내 협공하라는 내용을 담은 주문욱의 자문(咨文)이 도착했다. 주문욱은 ‘수군과 전선(戰船)이 후금의 수중에 들어가면 조선도 위험해 진다.’는 경고를 곁들였다. 실제로 4월9일에는 후금 기마병 50명이 중강(中江)에 나타났다. 공유덕 등을 맞이하려고 준비하는 한편, 조선의 동향을 탐지하려는 목적이었다. 주문욱의 자문은, 어렵사리 유보되었던 후금에 대한 조선의 적개심에 다시 불을 붙였다. 조선은 임경업(林慶業) 등이 이끄는 화기수를 압록강 연안으로 보냈다. 당시 후금군은 압록강에 닿아 있는 구련성(九連城,鎭江) 일대에 병력을 배치하고 공유덕 일행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4월10일, 압록강 부근의 탁산(卓山)이라는 곳에서 주문욱 휘하의 명군과 공유덕의 반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주문욱 군이 밀어붙이자 공유덕 등은 천가장(千家庄)을 거쳐 마타자( ) 쪽으로 물러났다. 천가장은 압록강에서 후금 본토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다. 후금군은 두 곳에 홍이포를 비롯한 중화기를 배치하여 주문욱의 공격에 대비했다. 4월13일 주문욱이 마타자를 공격할 때 조선군도 동참했다.300여명의 조선군 화기수들은 공유덕의 반군을 향해 진격하면서 조총을 쏘았다. 후금군 진영으로부터 홍이포의 포탄이 날아 왔다. 조선군은 어느 순간 명과 후금과의 전쟁에 뛰어든 것이다. 김대건의 도강을 멈춰 ‘절교’를 유보시킨 지 불과 두 달 남짓이었다. 조선과 후금의 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차베스, 콜롬비아 국경에 병력배치

    차베스, 콜롬비아 국경에 병력배치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 토벌을 둘러싸고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 에콰도르 3국간 국경 긴장이 고조되면서 남아메리카가 술렁이고 있다. 3일(이하 현지시간) AP,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2일 콜롬비아 국경지대에 탱크와 병력 6000여명을 긴급 배치하는 한편 공군에 출동태세를 명령했다. 콜롬비아 주재 대사관 폐쇄 및 외교관 전원 철수 조치도 내렸다. ●대사관 폐쇄·외교관 전원 철수 콜롬비아 군대가 전날 에콰도르 영토에 진입,FARC의 2인자 라울 레예스(59) 대변인과 혁명군 16명을 사살한 것에 대한 보복 조치다. 군사동맹 관계를 맺고 있는 에콰도르에 콜롬비아 군대가 진입한 것을 베네수엘라에 대한 침공으로 간주한 것이다.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도 이날 군대를 콜롬비아 국경지대에 배치하고 콜롬비아 대사를 추방했다. 차베스는 “에콰도르의 주권이 명백히 침략당했다.”며 “우리는 전쟁을 원하진 않지만 콜롬비아를 조종하는 미 제국주의가 우리를 양분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번 사태가 남미 전쟁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면서 “콜롬비아 정부가 남미의 이스라엘 같은 존재가 됐지만 사태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FARC는 40년 이상 콜롬비아 정부를 상대로 게릴라전을 벌이면서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월경을 주요 도피전술로 구사해 왔다. 여기에 차베스 대통령은 콜롬비아 최대 반군인 FARC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지난 1월 클라라 로하스 전 콜롬비아 부통령 후보 등 반군이 억류중인 인질 석방협상의 중재에 나서는 등 콜롬비아 정부의 심기를 계속 건드려 왔다. ●美 영향력 때문에 침공 가능성은 낮아 그러나 BBC는 차베스가 실제로 콜롬비아를 침공할 가능성은 낮다고 전했다. 이미 지난해 11월 콜롬비아 주재 자국 대사를 소환한 상태라 그의 말잔치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게릴라전을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수십억달러를 지원받고 있는 콜롬비아를 공격하는 것은 미국에 원유 수출의 절반 이상을 의존하는 베네수엘라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수도 키토의 260㎞ 남서쪽에 미군 공군기지가 들어선 에콰도르 역시 콜롬비아 진격은 쉽지 않은 입장이다. 한편 이번 사태로 지난해부터 창설이 본격화된 남미국가연합(UNASUL)이 벽에 부딪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남미 12개국을 묶는 정치적 결사체가 목표인 남미국가연합은 이달 말 창설 협의를 위한 회의를 앞두고 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데스크시각] 러드총리의 호주 ‘새판짜기’ /최종찬 국제부 차장

    [데스크시각] 러드총리의 호주 ‘새판짜기’ /최종찬 국제부 차장

    지난 13일 호주 캔버라 연방의회에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됐다. 캐빈 러드 총리가 과거 애버리진(원주민) 탄압정책에 대해 1세기만에 처음으로 사과했기 때문이었다. 러드 총리는 특히 동화정책이란 미명하에 어린시절 부모의 품에서 강제로 떨어져 교회나 사회복지시설에서 길러졌던 ‘도둑맞은 세대’와 그 후손들에게 깊이 머리를 숙였다. 호주의 부끄러운 과거사에 대해 정부가 공식적으로 반성한 것이다. 이 자리에 초청된 원주민 대표들은 오랜 숙원이 이뤄진 것에 대해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과거사에 대한 보상 문제가 걸림돌로 남아있긴 해도 일단 정부의 사과로 원주민과 백인들 사이에 진정한 화해를 위한 초석이 마련된 것이다. 이는 깨끗한 마스크와 참신함으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러드 총리의 호주 새판짜기의 한 단면이다. 그는 지난해 12월24일 치러진 연방총선에서 야당인 노동당을 이끌고 집권 자유당 총재이며 호주 사상 두번째 장수총리인 존 하워드의 5연속 집권을 저지하며 12년만에 정권교체를 달성했었다. 러드 총리는 퀸즐랜드 출신으로 11세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차 속에서 가족이 잠을 자야 할 정도로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어렵게 호주국립대 중국어과를 졸업한 그는 외교부 공무원과 퀸즐랜드 지방정부 관리를 거쳐 1988년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됐다. 베이징에서 외교관 생활을 했던 그는 지난해 시드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정상회담에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대화를 나눌 정도로 중국어에 능통하다. 러드 총리가 집권한 지 26일로 85일에 불과하지만 여러 면에서 하워드 전 총리와는 뚜렷이 다른 색깔을 보이고 있다. 먼저 러드 총리는 원주민들을 포함한 약자들에 대한 배려정책을 펴고 있다. 해상 난민 수용정책도 그 일환이다. 난민들을 호주에서 멀리 떨어진 섬으로 추방하는 이른바 ‘태평양 해결책’을 없앴다. 이 정책은 하워드가 보수층의 표를 결집하기 위해 사용한 강경책으로 인권침해 논란을 불러왔었다. 그는 첫 단계로 1년이상 나우루섬에 억류돼온 미얀마인 7명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했다. 또한 좌파 정부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추세를 좇아 ‘작은 정부’를 추구하고 있다. 정부 지출과 총리실 및 장관실 공무원 30%를 줄이며 허리띠를 바짝 조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외교정책에서도 큰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친미 일변도의 외교노선에서 벗어나 아시아를 중시하는 등거리외교를 펼치고 있다. 그는 ‘부시의 푸들’로 비난받아왔던 하워드와는 달리 미국과 다른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동안 기피해 왔던 온실가스감축협약인 교토의정서를 비준했고 이라크 주둔 호주군을 연내 철군시키기로 약속했다. 반면 중국과는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등 밀월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조만간 중국을 방문해 장기적인 자원과 에너지 협력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동티모르와 피지 등 주변 정세의 안정에도 앞장서고 있다. 지난 11일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호세 라모스 오르타 대통령이 반군의 기습으로 중상을 입어 정정이 갑자기 불안해진 동티모르에 호주군을 증파해 정국 안정을 돕고 있다. 러드 총리는 이밖에도 영국 여왕을 수반으로 하는 입헌군주제 대신 공화제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임기 중에 군주제 폐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최근 여론도 군주제 폐지를 찬성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하워드가 만든 노동악법이 폐지되고 이민 문호가 넓어지며 자영업자에게 세금혜택을 늘려줄 것으로 기대한다.”는 호주 교민들의 말 속에 평등사회를 지향하는 러드 총리에 대한 믿음을 엿볼 수 있다. 최종찬 국제부 차장 siinjc@seoul.co.kr
  • 다르푸르 학살 5주년… 악몽은 아직도

    다르푸르 학살 5주년… 악몽은 아직도

    ‘21세기 최초의 대학살’로 불리는 수단 다르푸르 사태가 26일로 발발 5년을 맞았으나 악몽이 가실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국제사회는 인권문제 등에 대해 관심을 갖고, 평화유지군(UNAMID)을 파견했지만 이와는 달리 성과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수단 정부도 손을 놓기는 마찬가지 양상이다. 이같은 비관적 상황을 방증하듯 25일(현지시간) BBC는 “말만 무성할 뿐 실질적인 성과는 찾아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유엔 “20만명 사망·220만명 난민 발생” 유엔은 이날 5주년을 맞아 성명을 통해 “서부 다르푸르 지역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임무를 맡은 항공기가 전쟁 때문에 접근하지 못해 수십만명이 구호품을 받지 못해 굶주리고 있다.”면서 “다르푸르 사태 이후 20만명 이상이 숨지고, 집을 잃고 떠돌아 다니는 난민도 220만명이나 된다.”고 발표했다. 최근 AP통신도 지난 5년간 사망·실종자는 30여만명에 이르며, 난민은 300만명 가까이 발생했다고 수단 정부와 국제사회를 비난했다. 이날도 수단 정부군이 다르푸르 반군과 교전에서 무장 헬리콥터를 빼앗겼다고 발표하는 등 현지에서는 꼭 5년이 지난 오늘도 총소리가 멈추지 않고 있다. 수단 정부는 사망자가 9000여명이라고 축소하려 애쓰는 등 인종갈등과 뒤엉켜 민감한 다르푸르 사태에 대해 비협조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상황이 날로 악화되는 바람에 다르푸르에서는 각종 전염병이 창궐하고 식수, 식량 부족으로 난민들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지난 20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올 1월 발발한 차드 내전의 영향으로 다르푸르 상황이 더욱 심각해졌다.”며 거듭 경종을 울렸으며, 지난주 아프리카 순방을 마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도 1억달러 지원을 약속했다. 지난 1월 다르푸르 사태 해결을 위해 유엔과 아프리카연합(AU)은 12억달러를 들여 평화유지군 활동을 처음 시작했다. 그러나 당초 2만 6000명 선이었던 평화유지군 규모는 아프리카 외 국가들의 병력 지원을 꺼리는 수단의 방해로 35% 수준인 9200명만 파견됐다. 이마저도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BBC와 AFP 등은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쏟아 부은 돈, 노력에 비춰 국제사회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인도주의적 개입을 했는지는 의문”이라면서 “국제사회가 사태 해결의 시기를 놓쳐 전범 처벌 등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역할에 대해 공조를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中, 특사파견… 인도적 지원 확대 한편 다르푸르 사태 해결에 팔짱을 끼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 온 중국은 이날 지원확대를 발표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24일 평화유지군 증파를 밝힌 데 이어 이날 수단의 수도 하르툼에서는 류구이진(劉貴今) 중국 다르푸르 특사가 찰스 마니안프 수단 인권장관과 만나 식수난 해결을 포함한 인도주의적 지원의 확대 외에 280만달러를 추가로 지원하겠다는 협정을 맺었다고 신화통신은 보도했다. 중국은 지금까지 다섯차례에 걸쳐 1100만달러를 다르푸르 지원금으로 내놨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터키군 1만명 이라크 진격

    터키군 1만명이 쿠르드노동자당(PKK) 게릴라 소탕을 위해 21일(이하 현지시간) 국경을 넘어 이라크 북부 지역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 이번 공격은 지난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첫 대규모 월경 군사 작전이다. 터키·쿠르드간 무력 충돌이 확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로이터,AP통신은 22일 터키군 당국 발표를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터키 군 참모는 웹사이트를 통한 성명에서 “터키 군은 이라크 영토의 안정을 보존한다는 조건 하에 월경 작전을 시작했으며 목적을 달성한 뒤 가능한 한 단시간 내에 귀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터키군은 이날 저녁 7시쯤 쿠르드 반군 거점에 대한 전투기 공습과 지상군 포격을 시작으로 국경을 넘었으며 전투기 엄호 아래 작전을 수행했다. 터키 민영 NTV는 터키군이 이라크 영토 10㎞ 지점까지 진격했다고 전했다. 군사작전은 이라크 접경인 쿠쿠르카 남쪽의 PKK 근거지인 하쿠르크 지역에 집중된 것으로 전해졌다. 관영 아나톨리아 통신은 터키 남동부 디야르바크르의 공군 기지에서 전투기 이륙과 헬기의 국경지역 정찰 비행이 목격됐다고 보도했다. 이라크 주둔 미군도 이날 터키군의 진격 사실을 확인했다. 그레고리 스미스 미군 대변인은 “터키군의 이라크 북부 진격은 이 지역의 PKK 테러리스트들을 타깃으로 한 제한적인 작전”이라고 말했다. 한편 PKK 대변인 아흐메드 다나스는 “터키군의 국경 침입으로 인한 충돌에서 터키군 2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터키군은 즉각 언급하지 않았다. 누리 알 말리키 이라크 총리는 공습 직후 터키 측에 이라크의 주권을 존중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레젭 타입 에르도간 터키 총리는 TV회견을 통해 “터키군의 작전은 대상과 목표, 규모가 제한적”이라면서 “터키군은 목표를 달성하는 즉시 가능한 한 빨리 철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압둘라 귤 터키 대통령은 잘랄 탈랄바니 이라크 대통령에게 이번 작전의 목표에 관해 설명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터키의 이번 작전은 봄철에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PKK 게릴라들의 테러 활동을 사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터키는 PKK가 북부 이라크에 은신하면서 지난 수개월 간 영토에 침입해 터키군 수십명을 사살한 것을 비난해 왔다. 터키군은 PKK를 공격할 수 있는 국제법상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는 PKK 게릴라 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고집 중이다. 터키군은 지난 90년대에도 PKK 소탕을 위해 수차례 이라크 국경을 넘었다. 지난해 10월엔 의회로부터 이라크 월경 작전을 승인받은 후 PKK 근거지를 수차례 공습하는 지상 작전을 감행했다. 그러나 1만명이라는 대규모 병력을 파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용어클릭 ●PKK(Partia Karkaren Kurdistan) 쿠르드족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무장단체로 1984년 창설된 뒤 터키 내에 거주하는 1600만명의 자치 확대를 위한 무력투쟁을 벌여 왔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 3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 동티모르 독립영웅 반군 총격에 혼수상태

    동티모르 독립영웅 반군 총격에 혼수상태

    국제사회가 동티모르에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 불발에 그쳤지만 권력 심장부를 노린 반군 쿠데타가 발생, 안정을 찾아가던 동티모르의 정세에 먹구름이 드리웠기 때문이다. 1996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호세 라모스(59) 대통령이 11일 수도 딜리의 관저에서 반군의 총격을 받고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AP통신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포스트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이에 따라 사나나 쿠스마오 총리는 야간 통행금지 조치를 포함한 국가 비상사태(최소 48시간동안)를 선포했다. 알프레도 레이나도 전 소령이 이끄는 반군은 동틀 무렵을 틈타 라모스 대통령의 관저를 기습, 경호원과 반군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져 대통령은 복부에 총상을 입었다. 라모스 대통령은 곧장 딜리의 호주군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뒤 다시 이날 호주 다윈의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총격전으로 대통령 경호원 1명도 숨졌다. 반군은 대통령 관저 습격 직후 구스마오 총리 관저에도 총격을 가해 구스마오 총리에게 경상을 입혔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반군 지도자인 레이나도는 현장에서 사살됐다. 레이나도는 2006년 4∼5월 37명의 희생자와 15만명의 난민을 발생시킨 동티모르 사태의 주동자다. 동티모르 사태는 마리 알카티리 전 총리가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 군 병력 1400명 가운데 600명을 전격 해고하면서 시작돼, 폭력시위와 폭력조직간 교전으로 2002년 독립 후 4년 만에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이에 책임을 지고 알카티리 총리가 같은 해 6월 사임한 뒤 동티모르 안팎에서 명망이 높은 라모스가 총리직을 승계하고 호주군을 비롯한 2500여명의 평화유지군이 투입되면서 동티모르 사태가 진정되기 시작했다. 라모스는 총리 신분이던 지난해 5월 대선에 뛰어들어 압승을 거두면서 독립국 제2대 대통령에 올랐다. 그러나 2006년 7월 체포됐던 레이나도가 한달 만에 탈옥, 현 정부 타도를 선언하면서 안정을 찾아가던 동티모르를 위협해 왔다. 현재 동티모르에서는 또 다른 반군인 프레틸린(동티모르독립혁명전선)이 건재한 데다 실업률이 50%에 이르며 80여만명의 인구 가운데 25%가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어 이번 사건이 반군의 기승과 사회불안을 부채질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호주의 국제정치 연구소인 ‘로위 인스티튜트’의 앨런 듀폰 연구원은 “대통령 피습이 동티모르의 국가안정을 심각하게 해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편 호주의 케빈 러드 총리는 “동티모르 정부의 요청에 따라 동티모르 주둔 평화유지군에 중대 규모의 군대와 70여명의 연방경찰을 이른 시일 내에 증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용어클릭] ●동티모르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인도네시아는 동인도 제도에 속했던 서티모르를 장악했으며,1975년 포르투갈의 식민통치가 끝나 독립을 선포한 동티모르마저 무력으로 점령했다. 인도네시아는 동티모르의 석유자원을 탐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는 89년 11월 평화적 시위대에 발포,200여명이 살해당하는 ‘딜리 대학살’로 세계의 반발을 샀으며 이후 10여년에 걸친 국제사회의 노력 끝에 2002년 유엔의 감시 아래 실시된 주민투표로 독립이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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