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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3운동 희생자·공로자 국가유공자 지정 공청회

    6·3운동 희생자·공로자 국가유공자 지정 공청회

    ‘6·3운동 공로자회’ 및 ‘6·3동지회’는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대한민국 헌정회 강당회에서 6·3운동 희생자 및 공로자를 국가유공자로 지정하라는 ‘국가유공자법 개정안 공청회’를 가졌다. 6·3운동은 1964년 6월 3일을 전후해 전국적으로 전개된 민주화 학생운동으로, 박정희 정권의 굴욕적인 한·일회담을 규탄했던 최초의 반군부독재 민주화 운동이다. 6·3운동은 2006년 ‘민주화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받았지만 희생자와 공로자들에 대한 예우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날 공청회에서 조병윤 태백관광개발공사 사장은 “6·3운동은 한·일 굴욕 외교 저지를 위해 대학생과 고등학생이 주축이 돼 전 국민적 운동으로 전개된 애국주의·민주주의·민족주의·세계주의 선진화 운동”이라고 강조했다.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리비아 전장 한복판에 ‘기타치는 영웅’ 등장

    리비아 전장 한복판에 ‘기타치는 영웅’ 등장

    리비아 반군과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 친위군이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살벌한 전쟁터에 총 대신 기타를 든 남성이 나타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10일(현지시간) 카다피 친위군의 최후거점인 시르테(Sirte)의 한 격전지에서 반군으로 보이는 한 젊은 남성이 위험천만한 모습으로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을 해외 언론사 사진기자인 아리스 메시니스가 사진으로 담는 데 성공했다. 사진 속 남성은 동료들이 바로 옆에서 총을 쏘고 있는 긴박한 상황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기타를 연주하며 알 수 없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긴장한 눈빛까지는 숨길 수 없었지만 이 남성은 한동안 기타연주를 계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원이 알려지지 않은 이 남성이 왜 총 대신 기타를 들었는지, 그리고 어떤 곡을 연주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해외 네티즌들은 이 남성의 기타연주가 핏빛 총성이 가득한 전쟁터에서 피어날 평화의 희망을 상징하는 듯 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사진이 찍힌 곳은 지난달 트리폴리를 대신해 리비아의 새로운 수도가 된 곳이자 카다피의 고향이다. 반군 대표기구인 국가과도위원회(NTC)는 “시르테의 와가두구 컨퍼런스 센터, 병원, 대학교 등도 반군이 장악했기 때문에 일주일 안에 시르테에서 종전이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카다피는 니제르와의 국경 어딘가에 운둔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지=멀티비츠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살레 대통령 ‘피의 귀환’… 예멘 내전 격화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이 3개월 만에 귀국하면서 “평화의 비둘기”를 거론한 지 하루 만에 박격포까지 동원해 민주화 시위대와 근처에 주둔하던 반정부군을 무차별 공격했다. 24일(현지시간) 하루 동안 유혈 진압으로 죽은 사람만 40명을 넘어섰다. 혁명기념일(26일) 전날인 25일 저녁 살레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을 하기 수 시간 전에도 시위대를 공격해 최소 4명이 숨졌다. 리비아에 대해서는 신속한 제재 조치를 단행했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예멘 정부와 시위대에 “폭력 중단과 자제를 촉구한다.”는 면피성 발언만 되풀이하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예멘 정부군은 이날 시위대가 점거농성을 계속하고 있던 수도 사나의 ‘변화 광장’에 박격포를 퍼부었다. 도심 건물 지붕 곳곳에 배치된 저격수들은 시위대를 조준 사격했다. 살레 대통령의 아들인 아메드가 이끄는 정예부대인 공화국수비대와 중앙보안부대는 정부군에서 이탈해 변화 광장 북쪽에 진지를 구축하고 있던 알리 오센 알아마르 소장 휘하 제1기갑사단을 기습공격했다. 부대 대변인은 60발이 넘는 포탄이 떨어졌으며 이로 인해 11명이 전사하고 112명이 부상했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지난 한 주간 양측 충돌로 140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AP통신에 따르면 알아마르 소장은 살레 대통령을 “병들고, 복수심에 불타는 영혼”이라고 표현하면서 그가 예멘을 내전의 소용돌이로 몰고 가려 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25일 정부군이 살인자 처벌을 요구하던 시위대를 또다시 공격했다. 미니밴에 올라 확성기를 들고 시위대 수만명을 이끌던 시민이 머리에 총을 맞아 숨진 것을 비롯해 최소 4명이 죽고 17명 이상이 다쳤다. 예멘 제2의 도시 타이즈에서도 정부군과 시위대가 충돌해 세 명이 숨지고 최소 일곱 명이 부상했다. 예멘 국영 뉴스통신 사바(SABA)의 한 관계자는 살레 대통령이 1962년 9월 26일 혁명 49주년을 하루 앞둔 25일 저녁에 “중요한 연설을 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아직 이에 대한 공식 발표는 전혀 없는 상태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살레 예멘 대통령 귀국

    부상 치료차 출국했던 알리 압둘라 살레(69) 예멘 대통령이 석 달여 만에 돌연 귀국했다. 정부군과 반정부 시위대 사이의 교전이 격화되는 가운데 귀환한 것이어서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예멘 국영방송은 살레 대통령이 개인 전용기편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떠나 23일(현지시간) 오전 5시 사나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살레 대통령의 귀국은 지난 18일 이후 정부군과 반정부 시위대의 충돌이 계속돼 100여명이 숨진 시점에 이뤄진 것이다. 살레 대통령이 귀국한 이날도 새벽부터 정부군과 반군 간 전투가 벌어졌으며 수도 사나에서만 최소 4명이 숨졌다. 정부 관계자는 “살레 대통령이 모든 정치·군사적 세력에 휴전을 요청했다.”면서 “대화 외에는 유혈사태를 끝낼 대안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살레 대통령의 귀국과 함께 예멘에서는 오히려 전면적인 내전이 시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반군 측에 선 알리 모흐센 알아마르 장군은 지난 2월 이후 자신의 군대를 이끌며 살레 대통령과 맞서고 있다. 미국 백악관은 이날 살레 대통령을 향해 “완전한 권력이양을 준비하라.”고 촉구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NATE 검색어로 본 e세상 톡톡] 전국 정전사태 최고 화제 ‘무쇠팔’ 최동원 별세 충격

    [NATE 검색어로 본 e세상 톡톡] 전국 정전사태 최고 화제 ‘무쇠팔’ 최동원 별세 충격

    추석 연휴가 끝난 9월 셋째 주 인터넷을 달군 최고의 화제는 전국 정전 사태였다. 지난 15일 한국전력은 늦더위 탓에 전력수요가 폭주하면서 전국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인 정전사태가 벌어졌다고 밝혔다. 이날 정전으로 엘리베이터에 갇힌 시민들의 구조 요청이 수백 건 접수되었고, 신호등도 멈춰 한전의 안이한 판단이 큰 비판을 샀다. 검색어 순위 2위에 오른 것은 성추행 의대생 보석 기각이었다. 13일 서울중앙지법은 동기 여대생을 집단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고려대 의대생 배모씨가 보석신청을 냈으나 기각했다고 밝혔다. 앞서 고려대의 출교조치를 받은 3명의 학생 가운데 배씨는 유일하게 혐의를 부인하며 보석 신청을 했다. 3위는 곽노현 접견 금지. 검찰은 13일 후보자 매수 등의 혐의로 구속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에 대해 변호인과 가족을 제외한 일반인 접견 금지 조치를 내렸으나, 서울시교육청의 반발로 교육청 간부들의 공무상 접견을 허용했다. 옥중 집무를 하게 된 곽 교육감은 “오해의 가시가 내 몸에 박혀 있지만 나는 오해인 줄 알기 때문에 스스로는 당당하다.”고 말했다. 4위에는 카다피 항복시한 만료가 올랐다. 리비아 시민군이 카다피군에 제시한 항복 시한이 10일(현지시간) 만료됐으나 카다피군은 반군의 공격에 격렬히 저항하며 항복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드러냈다. 5위는 프랑스 원전 폭발 사고. 12일 오전 11시 37분쯤 프랑스 남부 랑그독 루실롱 지역 마르쿨 원자력 발전소의 핵폐기물 용광로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해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쳐 새삼 방사능의 위험성을 상기시켰다. 6위는 군 예산낭비. 14일 군이 1만원대에 구매 가능한 이동식 저장장치(USB)를 무려 95만원이나 주고 납품받은 것으로 드러나 예산낭비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방위사업청은 군용 USB는 영하 32도에서 영상 50도까지 사용 가능하며 충격과 진동에 대비해 모든 제작 과정을 자체 설계해 단가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으나 시중의 일반 상품도 동일 성능으로 밝혀져 비웃음을 샀다. 7위는 최동원 별세. ‘무쇠팔’ 최동원 전 한화 이글스 2군 감독이 14일 새벽 지병으로 별세했다. ‘타격 천재’ 장효조 전 삼성 2군 감독의 죽음이 가시기도 전에 한국 프로야구를 이끈 큰 별들이 연이어 세상을 떠 야구팬뿐 아니라 온 국민이 충격에 빠졌다. 8위는 중국 유로본드 구매. 15일 스위스 다보스포럼 개막식 기조연설에서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유럽 지원을 위해 유로본드 매입에 나설 뜻이 있음을 시사했다. 9위는 강심장 암호. 13일 방송된 SBS 토크쇼 ‘강심장’에서 보름달이 등장했는데 이 안에는 ‘힘내라 강호동’이란 글자가 한 글자씩 차례로 등장했다. 2년간 프로그램을 이끈 강호동에 대한 제작진의 의리로 해석됐다. 10위는 부인 살해 유명 블로거 자살. 지난 7월 경기 수원에서 이혼한 전 부인을 살해하고 달아난 파워 블로거 황덕하씨가 13일 경기 화성시 칠보산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돼 충격을 주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사르코지·캐머런 리비아행… 발 빠른 佛·英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15일(현지시간) 무아마르 카다피 축출 이후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리비아를 방문했다. 프랑스와 영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의 공습전을 선봉에서 이끌며 리비아 반군이 수도 트리폴리에서 카다피군을 몰아내고, 새 정부를 수립하는 데 도움을 준 대표적인 서방국가다. 두 정상의 발빠른 리비아 방문은 반군이 수립한 과도국가위원회(NTC)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포스트 카다피’ 체제에서의 입지를 선점하기 위한 실리적인 행보로 풀이된다. 사르코지 대통령과 캐머런 총리는 이날 각각 헬기를 이용, 트리폴리의 메티가 공항에 도착했다. 두 정상은 NTC의 2인자 마무드 지브릴의 안내를 받으며 트리폴리의 의료원과 코린시아 호텔 등 주요 시설을 둘러봤다. 사르코지 대통령과 캐머런 총리가 병실 3곳에 들러 부상자를 위로하자 리비아인들은 이들을 향해 “고맙다.”는 말을 연발했다. 두 정상은 이날 무스타파 압델 잘릴 NTC 위원장과 기자회견을 열고 리비아 사태가 끝날 때까지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나토의 임무를 계속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잘릴 위원장도 “동맹국들이 리비아가 앞으로 맺을 계약에서 우선권을 가질 것”이라고 화답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국제사회에서 NTC를 가장 먼저 리비아의 합법정부로 인정하고, 잘릴 위원장을 파리로 초대했으며, 캐머런 총리는 이집트 민주혁명 성공 이후 처음으로 카이로를 방문한 전력이 있다. 이번 방문에는 리비아 혁명을 지원하도록 사르코지 대통령을 설득했던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나르 앙리 레비가 동행했다. 이들은 트리폴리에서 NTC 지도자들을 만나 리비아의 조속한 정상화를 위한 방안들에 대해 논의했다. 프랑스 경찰은 전날 밤 트리폴리에 요원 160여명을 파견했으며 16일 본국으로 귀환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앞서 제프리 펠트먼 미 국무부 중동담당 차관도 14일 트리폴리를 방문했다. 지난 8월 23일 카다피 요새 함락 이후 리비아를 방문한 최고위급 미국 관리다. 한편 반군 측은 카다피 고향인 시르테로 진격하면서 집중 포격을 가했다고 AFP 통신이 전했다. 이에 대해 카다피는 14일 시리아 아라이TV에 또다시 육성 메시지를 보내 “시르테가 고립되면 세계는 잔혹한 행위에 맞서야 한다.”면서 “리비아 반군에 포위된 고향 시르테를 지켜 달라.”고 국제사회에 호소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中, 阿민주화 물결에 외교 주도권 흔들

    中, 阿민주화 물결에 외교 주도권 흔들

    중국의 아프리카 외교가 흔들리고 있다. 이집트·리비아 등 아프리카의 도도한 민주화 물결 앞에서 정부군과 반정부군의 눈치를 보다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바람에 중국의 아프리카 외교가 급속히 쇠락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석유개발과 사회기반시설 건설 등의 분야에서 3만 5000여명의 인력을 파견해 188억 달러(약 20조원) 규모의 50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원유 수입의 11%를 의존하고 있는 리비아에서만도 적지 않은 경제적 손실이 예상된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아프리카는 사실상 중국의 ‘안마당’이었다. 중국은 서방 국가들이 부패·인권탄압 등을 이유로 아프리카 진출을 꺼릴 때 경제성장과 외국인 투자 유치를 통해 확보한 풍부한 달러를 바탕으로 아프리카의 석유·천연가스·광산 개발권을 무차별 사들여 교두보를 확보했다. 2015년까지 중국 기업들의 아프리카 석유·가스·광물에 대한 투자가 500억 달러를 돌파할 전망이고, 지난해 중·아프리카 간 교역이 1100억 달러를 훌쩍 뛰어넘으며 아프리카의 최대 교역국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올 들어 아프리카의 재스민 혁명(민주화 혁명)에 대해 정부 쪽과 반정부 쪽을 오가며 ‘눈치를 보는’ 자세를 보임으로써 신뢰를 잃어 중국의 아프리카 외교가 휘청대고 있다. 올해 초 이집트 카이로의 반정부 시위대를 ‘무법자’로 규정한 데 이어, 지난 2월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사임하자 중국 정부는 주요 도시 전역에 경찰을 배치해 이집트 혁명의 불똥이 튀는 것을 막기에 급급했다. 특히 중국은 2009년 다르푸르 내전과 관련한 전쟁범죄와 인종 대량학살 혐의가 인정돼 국제형사재판소(ICC)로부터 체포영장이 발부된 오마르 바시르 수단 대통령을 지난 6월 국빈 초청해 최고 지도부와 회동토록 하는 등 환대해 우려를 자아냈다. 리비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무아마르 카다피에 대한 유엔안보리 결의안에 동의했다가 3월 돌연 거부하면서 나토군의 공중작전을 비판하고 나섰다. 그런데 전세가 반정부군에 유리해지자 중국 정부는 리비아 반군 지도부와 접촉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카다피 측근들에게 무기를 판매하는 ‘양다리 외교’를 펼쳐 국제사회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물론 이런 외교 행보에는 다른 나라의 내부 문제에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중국의 ‘내정 불간섭’ 원칙 탓도 있다고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보도했다. 중국이 지난 6일 발표한 평화발전백서에 따르면 다른 국가가 “독자적으로 그들 고유의 사회체제와 발전 경로를 따르는 것을 존중하겠다.”고 밝혀 여전히 ‘내정 불간섭’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카다피 3남 등 측근 32명 니제르로

    리비아 국가원수에서 도망자 신세가 된 무아마르 카다피의 셋째 아들 알사디가 리비아와 남쪽 국경을 접한 니제르로 탈출했다. 반군은 새 정부 구성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중국 정부도 태도를 바꿔 반군 대표기구인 국가과도위원회(NTC)를 합법 정부로 인정했다. 반면 카다피 측 반격도 계속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AI)는 카다피군뿐만 아니라 반군도 전쟁 범죄에 해당하는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밝혀 논란이 예상된다. AFP통신은 알사디를 포함한 카다피 정권 핵심 인사 32명이 리비아와 남쪽 국경을 접한 니제르에 입국했다는 사실을 브리기 라피니 니제르 총리가 12일(현지시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현지 주재 외교단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밝히고 일행 중에는 알사디뿐 아니라 군 장성 3명도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라피니 총리는 “니제르에 입국한 32명 중 국제 사법당국이 체포영장을 발부했거나 수배령을 내린 사람은 없다.”고 덧붙였다. 리비아의 반군 대표인 무스타파 압둘 잘릴 NTC 위원장은 같은 날 트리폴리 중심지에 위치한 순교자 광장에서 1만여명이 모인 가운데 처음으로 연설을 하면서 향후 정국 구상을 내비쳤다. 그는 “우리는 법치국가를 추구하며 온건 이슬람에 기반한 민주국가를 건설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카다피 정권 치하 가해자들을 법에 따라 처리해야 하며 이들의 가족들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여성권익 향상을 약속했다. 이와 관련, NTC 2인자인 마무드 지브릴 총리는 지난 11일 기자들에게 “새 정부가 7~10일 사이에 출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군 측이 자신감을 보이는 반면 카다피 친위부대는 리비아 최대 유전지대인 라스 라누프 정유시설을 공격해 17명이 숨지는 등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 NTC 석유부 관리인 압달릴 살라는 “이 공격은 카다피군의 소행”이라면서 “정유시설 경비원들에게 공포를 주고 원유 생산을 방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카다피군의 거점인 바니 왈리드, 시르테 등지에서는 반군과 카다피군의 교전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인권단체인 AI는 13일 리비아 반군 역시 카다피를 축출하는 과정에서 살인과 고문 같은 범죄를 저질렀으며 이 중 일부는 전쟁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니컬러스 베거 앰네스티 유럽 지부장은 특히 “지난 2월 카다피가 흑인을 용병으로 고용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라면서 그 결과 이제는 무고한 이들까지 집과 일자리를 빼앗기고 거리로 쫓겨나 고문당하고 목숨을 잃을 위험에 처해 있다고 밝혔다. 한편 중국과 세계은행(WB)은 이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 가운데 마지막으로 NTC를 리비아를 대표하는 합법 정부로 인정한다고 밝혔했다. 중국은 내전 발생 이전까지 석유개발과 사회기반시설 건설 등에서 3만 5000여명에 이르는 인력을 파견해 188억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 50개를 진행하는 등 리비아와 적지 않은 경제협력 관계를 맺어 왔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독재자 카다피도 손자들에겐 보통 할아버지였다

    “독재자도 닫힌 문 뒤에서는 상냥한 할아버지였다.” AP통신은 12일 리비아 최고 지도자였던 무아마르 카다피의 뜻밖의 인간적인 면모가 담긴 홈비디오 영상을 공개했다. 카다피의 다섯째 아들인 한니발의 집 컴퓨터에서 발견된 비디오 영상이었다. 32초 분량의 영상에서 카다피는 지난 42년간 철권통치 과정에서 투영된 잔인한 이미지와는 달리 손자들과 놀아주는 여느 할아버지와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영상에 등장한 카다피는 몇달 전 국영TV에 나왔던 것처럼 주름이 많고 얼굴이 부은 모습이었으며 무릎을 꿇고 앞으로 숙였을 때는 뒤통수의 머리가 없는 대머리 부분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영상이 언제 촬영됐는 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영상은 녹색 카펫이 깔린 넓은 텐트 안에서 찍힌 것으로 추정되며 카다피는 기도를 하는 매트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이슬람 신도가 기도하는 자세를 취했고 장난스럽게 손으로 얼굴을 감싸기도 했다. 그의 양옆에는 손자들로 추정되는 3, 5살 짜리 두 소년이 있었다. 카다피는 소년들이 일어서서 군대식 인사를 하자 카다피는 앞으로 몸을 기울여 소년들의 볼에 입을 맞추기도 했다. 그의 철권통치에 반대하는 측의 공세로 수도 트리폴리가 무너지며 쫓기는 신세가 된 카다피는 지지자들에게 반군에 맞서 싸울 것을 독려하고 있다. 12일 시리아 알-라이 TV에서는 카다피가 쓴 메시지가 읽혀졌으며 그는 지지자들에게 배신자에 맞서 싸우라고 주문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nownews@seoul.co.kr
  • ‘도망자’ 카다피 목소리 7개월새 20년 늙었다

    ‘도망자’ 카다피 목소리 7개월새 20년 늙었다

    ‘무아마르 카다피의 목소리가 7개월 새 최소 20년 늙었다.’ 리비아의 ‘도망자’ 무아마르 카다피(69)의 행방과 상태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수도 트리폴리 함락 뒤 보름 넘게 행방이 묘연한 그는 음성메시지를 유일한 ‘힌트’로 흘린다. 목소리가 몰락한 독재자의 심리 및 건강 상태를 알아보는 열쇠라는 얘기다. 서울신문은 소리 분석 전문가인 배명진 숭실대 정보통신전자공학부 교수의 도움을 받아 리비아 사태 개시 뒤 카다피가 내놓은 5건의 연설 목소리를 분석했다. 각 연설의 시점은 ▲2월 22일(반정부 시위 일주일째) ▲3월 20일(다국적군 공습 직후) ▲7월 1일(내전이 장기화되던 시기) ▲8월 24일(트리폴리 함락 직후) ▲9월 1일(반군이 시르테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한 리비아 전역 장악) 등이다. 카다피는 5차례의 연설에서 시위대를 시종일관 ‘쥐새끼’, ‘마약중독자’에 비유하며 “고향 리비아에서 순교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카다피의 ‘진짜 메시지’는 성문의 파동에 숨겨져 있었다. 배 교수는 “카다피가 화병에 걸렸고, 심리적으로 무너져 협상을 원하는 상태”라면서 “목소리 나이도 20~30년 늙었다.”고 말했다. 목소리에 담긴 카다피의 심리·건강을 키워드로 정리했다. ●노령화 카다피의 2월 목소리는 69세라는 생체 나이에 맞지 않게 젊었다. 음성 노화의 지표로 활용하는 저음화 영역에서 카다피의 목소리는 668헤르츠(㎐)를 기록했다. 50대 초반의 음성 상태였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저음화 현상이 뚜렷해졌다. 7월 646㎐와 8월 581㎐를 기록하더니 9월에는 560㎐까지 급락했다. 70~80세 사이의 음성으로 불과 7개월 새 목소리가 20~30년은 족히 늙은 것이다. 북아프리카의 산유국을 호령하던 ‘지배자’에서 반군에 쫓기는 ‘초라한 늙은이’로 전락한 카다피의 처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배 교수는 “음성의 노화 현상이 급속히 진행될 경우 신체적으로도 쇠약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화병 카다피는 전형적인 ‘선동가의 목소리’를 가졌다. 음성이 크고 곧잘 흥분한다. 반정부 시위가 막 시작됐던 2월 22일 연설에서도 목소리의 기본톤이 이미 323㎐로 일반 남성 평균(100~200㎐)보다 높았다. 극적인 심리적 변화는 8월 트리폴리마저 반군에 빼앗기면서 나타났다. 7월까지 323㎐를 유지하던 음성이 8월 연설에서는 366㎐, 9월에는 495㎐까지 올라간다. 짐짓 태연한 척했지만 수도 함락을 지켜보며 독재자의 울분이 2월보다 1.53배 치밀어올랐다는 뜻이다. 칠순을 바라보는 카다피에게 격분은 생명을 위협하는 독이 될 수 있다. ●타협 카다피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 머뭇거림이 없었다. 배 교수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등 독재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어떤 발언을 해도 제지당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탄압 속에서 신념을 굽히지 않아온 민주주의 운동가나 소신껏 발언하는 연예인 등도 목소리에 같은 특징이 녹아 있다. 그러나 지난 3월 19일 영국·프랑스 주도의 다국적군이 리비아 공습을 개시한 뒤 카다피의 음성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목소리의 대역폭(기본 톤의 변화율을 보여주는 단위)을 토대로 ‘일관성’을 분석해 보니 2월 66㎐였던 대역폭이 3월 88㎐로 33.5% 높아졌고 8월 172㎐에 이어 9월에는 324㎐까지 치솟았다. 7개월 새 심리적 갈등이 4배 증가한 것이다. 고집불통인 탓에 반군과 ‘타협’하기보다 ‘자결’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지만 목소리에는 타협의 여지를 열어두고 있었다. ●자신감 결여 카다피의 목소리에는 시간이 갈수록 자신감이 사라졌다. 목소리에 3.0㎑ 이상의 고음 성분이 많으면 그만큼 결의에 찬 호소력 있는 음성으로 들린다. 자신있게 정확히 발음해야 낼 수 있는 목소리다. 카다피는 2월 연설에서 평균 고음폭이 5.5㎑로 자신감에 차 있는 상태였으나 7월 3.7㎑, 8월 3.4㎑, 9월 2.8㎑ 등으로 급속히 하락했다. 내전을 겪으며 카다피의 자신감은 거의 반토막 났다.
  • ‘도망자’ 카다피, “7개월 새 20~30년 늙었다.”

    ‘도망자’ 카다피, “7개월 새 20~30년 늙었다.”

    ‘무아마르 카다피의 목소리가 7개월 새 최소 20년 늙었다.’ 리비아의 ‘도망자’ 무아마르 카다피(69)의 행방과 상태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수도 트리폴리 함락 뒤 보름 넘게 행방이 묘연한 그는 음성메시지를 유일한 ‘힌트’로 흘린다. 목소리가 몰락한 독재자의 심리 및 건강 상태를 알아보는 열쇠라는 얘기다. 서울신문은 소리 분석 전문가인 배명진(54) 숭실대 정보통신전자공학부 교수의 도움을 받아 리비아 사태 개시 뒤 카다피가 내놓은 5건의 연설 목소리를 분석했다. 각 연설의 시점은 2월 22일(반정부 시위 일주일 째), 3월 20일(다국적군 공습 직후), 7월 1일(내전이 장기화되던 시기), 8월 24일(트리폴리 함락 직후), 9월 1일(반군이 시르테 등 일부 지역 제외한 리비아 전역 장악) 등이다. 카다피는 5번의 연설에서 시위대를 시종일관 ‘쥐새끼’, ‘마약중독자’에 비유하며 “고향 리비아에서 순교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카다피의 ‘진짜 메시지’는 성문의 파동에 숨겨져 있었다. 배 교수는 “카다피가 화병에 걸렸고, 심리적으로 무너져 협상을 원하는 상태”라면서 “목소리 나이도 20~30년 늙었다.”고 말했다. 목소리에 담긴 카다피의 심리·건강을 키워드로 정리했다. 화병 카다피는 전형적인 ‘선동가의 목소리’를 가졌다. 음성이 크고 곧잘 흥분한다. 반정부 시위가 막 시작했던 2월 22일 연설에서도 목소리의 기본톤이 이미 323헤르츠(㎐)로 일반 남성 평균(100~200㎐)보다 높았다. 극적인 심리적 변화는 8월 트리폴리마저 반군에 빼앗기면서 나타났다. 7월까지 323㎐를 유지하던 음성이 8월 연설에서는 366㎐, 9월에는 495㎐까지 폭증한다. 짐짓 태연한 척 했지만 수도 함락을 지켜보며 독재자의 울분이 2월보다 1.53배 치밀어 올랐다는 뜻이다. 칠순을 바라보는 카다피에게 격분은 생명을 위협할 독이 될 수 있다.   타협 카다피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데 머뭇거림이 없었다. 배 교수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등 독재자들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어떤 발언을 해도 제지당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탄압 속에서 신념을 굽히지 않아온 민주주의 운동가나 소신껏 발언하는 연예인 등도 목소리에 같은 특징이 녹아있다. 가수 김C가 비슷한 유형이다. 그러나 지난 3월 19일 영국·프랑스 주도의 다국적군이 리비아 공습을 개시한 뒤 카다피의 음성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목소리의 대역폭(기본 톤의 변화율을 보여주는 단위)을 토대로 ‘일관성’을 분석해보니 2월 66㎐였던 대역폭이 3월 88㎐로 33.5% 높아졌고 8월 172㎐에 이어 9월에는 324㎐까지 치솟았다. 7개월 새 심리적 갈등이 4배 증가한 것이다. 고집불통인 탓에 반군과 ‘타협’하기보다 ‘자결’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지만 목소리에는 타협의 여지를 열어두고 있었다.   자신감 결여 카다피의 목소리에는 시간이 갈수록 자신감이 사라졌다. 목소리에 3.0㎑ 이상의 고음 성분이 많으면 그만큼 결의 찬 호소력 있는 음성으로 들린다. 자신있게 정확히 발음해야 낼 수 있는 목소리다. 카다피는 2월 연설에서 평균 고음폭이 5.5㎑로 자신감에 차 있는 상태였으나 7월 3.7㎑, 8월 3.4㎑, 9월 2.8㎑ 등으로 급속히 하락했다. 내전을 겪으며 카다피의 자신감은 거의 반토막났다.   노령화 카다피의 2월 목소리는 69세라는 생체 나이에 맞지 않게 젊었다. 음성 노화의 지표로 활용하는 저음화 영역에서 카다피의 목소리는 668㎐를 기록했다. 50대 초반의 음성 상태였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저음화 현상이 뚜렷해졌다. 7월 646㎐와 8월 581㎐를 기록하더니 9월에는 560㎐까지 급락했다. 70~80세 사이의 음성으로 불과 7개월 새 목소리가 20~30년은 족히 늙은 것이다. 북아프리카의 산유국을 호령하던 ‘지배자’에서 반군에 쫓기는 ‘초라한 늙은이’로 전락한 카다피의 처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배 교수는 “음성의 노화 현상이 급속히 진행될 경우 신체적으로도 쇠약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카다피 “니제르 도주?… ‘쥐떼’의 심리전”

    리비아 반군과 미국이 ‘포위설’과 ‘망명설’이 나돌고 있는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한 총력전에 나섰다. 하지만 카다피는 8일 자신이 이웃나라 니제르로 도주하고 있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거짓말과 심리전에 기대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라면서 강력히 부인했다. 카다피는 이날 시리아 아라이TV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우리는 트리폴리와 리비아 전역에서 쥐떼(반군)와 용병(다국적군)을 상대로 공격을 가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과 과도국가위원회(NTC)를 격퇴할 것이라고 재차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현재 리비아에 있다면서 “조상의 땅을 절대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반군의 트리폴리 점령 이후 카다피와 유일하게 접촉 중인 아라이TV의 소유주 미샨 알주부리도 그가 아들 사이프 알이슬람과 함께 아직 리비아에 있다고 AFP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BBC도 이 인터뷰가 리비아에서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전날 NTC의 파티 바자 정치위원장은 “우리는 모든 국가에 카다피를 받아들이지 말 것을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NTC는 이와 함께 카다피 측근들도 리비아로 돌려보내라고 촉구했다. 이들이 호송차량에 카다피의 자산으로 추정되는 금과 현금을 싣고 가는 것이 목격됐다는 보도가 잇따라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니제르 정부는 국경 봉쇄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모하메드 바줌 니제르 외무장관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국경지대가 너무 넓어 폐쇄할 방법이 없다.”면서 “카다피가 입국을 요청한다면 받아들일지 아니면 국제형사재판소(ICC)로 넘겨줄지는 나중에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 역시 카다피 정부 관리들이 니제르 국경을 넘었다는 것은 확인했지만 카다피나 그의 아들들이 니제르로 이미 들어갔거나 입국 시도를 했다는 일부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일축했다. 카다피의 음성 메시지가 전해진 지 수시간 뒤 반군이 이번 주말까지 전투 시한을 연장한 바니 왈리드에 카디피 친위대가 최소 10여차례의 로켓포를 발사했다고 AFP가 보도했다. 나지 바라캇 과도정부 보건장관은 지난 6개월간의 전쟁으로 리비아 국민 3만명이 죽고, 4만명이 실종됐다고 밝혔다. 한편 루이스 모레노오캄포 ICC 수석검사는 카다피 체포를 위해 인터폴에 회원국에 발령하는 체포명령인 적색 경보를 카다피에 대해 발령해 달라고 지원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반군 “카다피 사살·생포 시간문제”

    리비아 반군이 ‘도망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리비아 내 은신처를 찾았다고 밝히면서 리비아 사태가 새 전기를 맞고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카다피가 이미 리비아를 빠져나가 니제르 등 인근 국가로 이동했다는 목격담도 흘러나왔다. 내전 중 우군 대부분을 잃은 카다피지만 사하라 사막 건너 아프리카 중·남부에는 ‘친구’가 여럿 남아 있다. ●“친카다피 황금·달러 등 싣고 월경” 리비아 반군은 7일(현지시간) 카다피의 소재를 파악했으며 그를 포위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반군 측 대변인인 아니스 샤리프는 ‘옛 독재자’의 정확한 소재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은신처의 반경 60㎞를 둘러싸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카다피를 생포하거나 사살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반군 내부에서는 카다피가 남부도시를 거쳐 접경국인 니제르나 차드 등으로 빠져나갔다는 증언도 나와 혼선을 빚고 있다. 카다피를 추격하는 리비아 반군 측 히샴 부하지아르는 지난 6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카다피가 이미 3일 전 남부 그와트 지역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포착됐다.”고 밝혔다. 그는 현지 소식통의 말을 인용, 카다피 측 차량이 줄지어 이 도시에 들어와 텐트를 치고 잠을 잤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카다피가 탄 군 차량이 국경을 빠져나가 알제리를 거쳐 니제르에 진입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와트는 수도 트리폴리에서 남쪽으로 950㎞ 떨어진 도시로 이곳에서 니제르까지의 거리는 300㎞가량 된다. 앞서 5일에는 카다피군이 200여대의 군용차량에 나눠 타고 니제르 북부 아가데즈에 도착했고 카다피도 부르키나파소로 향하는 이 행렬에 동참할 것을 고려 중이라고 프랑스와 니제르 군 소식통 등이 전하기도 했다. 또 친카다피 인사들이 트럭에 황금과 달러, 유로화 등을 싣고 니제르 국경을 넘어갔다는 주장이 나와 ‘카다피 해외 도주설’에 힘을 실어줬다. 독재자의 망명지로 급부상한 니제르 정부는 일단 카다피가 자국 내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압두 라보 니제르 내무장관은 6일 기자회견을 열고 “카다피 정권 고위관리인 만수르 다오 보안군 사령관 일가에만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입국을 허용했다.”고 설명했다. ●阿주변국 오일머니로 환심… 망명 1순위 아프리카 국가들은 일찌감치 카다피의 망명지 1순위로 거론돼 왔다. 카디피가 집권 당시 ‘오일머니’를 이용해 여러 아프리카국 지도자로부터 환심을 산 덕분이다. 22개 회원국으로 이뤄진 아랍연맹(AL)마저 카다피에게 등을 돌릴 때조차 아프리카연합(AU)은 반군 기구인 과도국가위원회(NTC)를 공식정부로 인정하지 않으며 ‘신의’(?)를 지켰다. 특히, 니제르에는 카다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 온 투아레그족이 세를 유지하고 있어 주요 망명지로 꼽혀 왔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카다피 은신처 파악 반경 60㎞내 포위”

    리비아 반군이 행방이 묘연했던 ‘도망자’ 무아마르 카다피 전 국가원수의 소재를 파악해 포위했다고 밝히면서 리비아 사태가 중대 기로에 섰다. 카다피가 이른 시일 내에 반군에 생포되거나 사살되면 7개월을 끌어온 리비아 사태는 사실상 종지부를 찍는다. 아니스 샤리프 반군 대변인은 7일(현지시간) 카다피의 위치를 알아냈으며 그를 포위 중이라고 밝혔다고 AP통신이 전했다. 그는 “카다피가 여전히 리비아에 머물고 있으며 빠져나갈 수 없다. 생포하거나 사살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며 강한 자심감을 내비쳤다. 그는 카다피의 정확한 소재는 언급하지 않은 채 “은신처 반경 60㎞를 둘러싸고 있다.”면서 “첨단 기술과 정보요원을 활용해 카다피를 추적해 왔다.”고 덧붙였다. 반군 측 국가과도위원회(NTC)는 또 카다피가 사하라 사막 이남의 접경국 니제르로 도주할 것을 대비해 니제르 수도 니아메로 협상팀을 급파했다. 이들은 니제르 정부와 대화에 나서 카다피와 그 가족, 친위대 등이 국경을 넘어오는 것을 허용하지 말 것을 설득할 계획이다. 리비아 반군은 또 카다피 추종세력의 최후 거점인 사막 도시 바니 왈리드와 시르테에서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 반군 사령부는 특히 카다피의 고향인 시르테 외곽 80㎞ 인근에서 친위부대와 교전을 벌이면서 도시 중심으로 진격 중이라고 전했다. NTC는 최근 며칠간 바니 왈리드 지역 부족장 원로들과 가진 회의에서 합의점을 도출했으며 카다피 친위부대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친카다피 언론인 시리아 민영 알 오루바 TV를 소유한 미산 알 주부리는 “카다피와 매우 최근에 대화를 나눴으며 그와 그의 아들인 사이프 알이슬람이 매우 건강한 정신을 지니고 있었다.”고 전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리비아 반군, 카다피 거점 입성 눈앞

    리비아 반군이 무아마르 카다피의 새로운 거점 도시였던 바니 왈리드의 입성을 눈앞에 둔 가운데 리비아와 이웃하고 있는 니제르의 수도 니아메에 리비아 정부군의 총사령관이 병력을 이끌고 들어왔다고 니제르 정부 관리가 6일(현지시간) 밝혔다. 니제르 정부 세관의 하루나 이드는 오전 만수르 다오 카다피 보안군 사령관이 부대를 이끌고 니아메로 들어왔으며, 이와 별도로 다른 정부군 일행이 니제르 중부 아가데즈 남부 지역으로 향했다고 전했다고 AP·AFP통신이 보도했다. 또 한 목격자는 이날 아침 리비아군의 대규모 차량행렬이 투아레그 부족 전사들과 함께 아가데즈 지역을 출발, 니아메로 향했다고 전했다. 이들 행렬에 카다피나 그의 가족이 포함됐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무사 이브라임 카다피 측 대변인은 “카다피는 건강하며 리비아에 머물고 있다.”고 밝혀, 카다피의 소재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이런 가운데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반군 측이 결렬됐던 바니 왈리드의 부족 지도자들을 포함한 현지 대표단과 협상을 계속함에 따라 이날 도시로 입성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현재 상당수의 카다피 지지자들은 바니 왈리드를 떠났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반군 대표기구인 국가과도위원회(NTC)의 압둘라 칸실 협상대표는 “바니 왈리드의 평화적 이양이 임박했다.”며 “이는 주민들의 희생을 피하려는 것이며 일부 카다피 측 저격수들도 항복했다.”고 말했다. 바니 왈리드는 수도 트리폴리에서 남쪽으로 150㎞ 떨어진 사막도시로, 트리폴리에서 밀려난 카다피의 새로운 근거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리비아 협상 결렬… 새 협상 재개

    카다피 세력의 마지막 저항지에 대한 공세를 앞두고 4일(현지시간) 리비아 반군과 카다피군 간의 협상이 일단 결렬되면서 폭풍전야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트리폴리 남동쪽 150㎞ 지점인 바니왈리드와 카다피 고향 시르테 등 카다피 세력의 거점을 포위한 반군의 총공세가 임박한 것이란 해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5일 리비아 반군과 카다피군 사이에 새로운 협상이 재개되면서 평화적인 결말에 대한 희망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아랍권 위성방송인 알자지라는 “반군이 바니왈리드 중심지에서 7㎞까지 밀고 들어갔으나 카다피군이 그곳에 방어선을 구축하는 대신 다소 물러난 채 새로 시작된 협상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앞선 협상에서는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대변인 무사 이브라힘이 반군의 무장 해제를 요구하면서 협상이 더 이상 진전되지 못했다. 바니왈리드에는 카다피와 그 가족들이 머물고 있었으며, 현재는 사디와 무타심 등 아들 두 명이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카다피의 맹렬한 충성 세력 100여명이 도시에서 진을 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바니왈리드 주변의 전략적 요충지를 장악한 반군은 본격적인 공세에 앞서 이 지역 주민들이 카다피 세력에 맞서 봉기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알자지라는 보도했다. 현지에서는 바니왈리드 내부에서 반카다피 주민과 카다피 세력 간에 이미 충돌이 발생했다는 얘기도 돌고 있다. 하지만 무사 대변인은 바니왈리드에 있는 부족 지도자들의 카다피에 대한 충성심이 여전하다고 주장했다. 당초 항복 협상은 유혈사태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 부족 지도자들의 중재로 진행됐다. 이런 가운데 외신들은 NTC 관계자의 말을 인용, 사망설이 나돈 카다피의 막내아들 카미스가 트리폴리 근처에서 실제 죽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한편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날 리비아 평화 정착 과정에 반군에 밀려난 카다피 세력들도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타르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라브로프 장관은 타지키스탄 외무장관 회담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카다피 정권을 대표하는 정치·인종·종족 세력들도 당연히 국민 화해 과정의 한 부분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서방 ‘카다피와 은밀한 거래’ 들통에 전전긍긍

    자국의 이해에 따라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국제 사회의 불문율이 정권 교체 과도기에 있는 리비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리비아 반정부군을 지지하며 재건지원 사업에 앞장서고 있는 미국, 영국, 독일 등 서방의 정보당국이 과거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과 긴밀한 협력관계에 있었고, 중국은 수주 전까지도 카다피군에 무기를 판매한 사실이 속속 밝혀지면서 해당국 정부들이 난처한 입장에 처했다. 리비아 반군 사령관인 압델 하킴 벨하지는 5일(현지시간) 지난 2004년 태국 방콕에서 체포됐을 때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영국 해외정보국(MI6)이 자신을 고문하고 리비아로 강제 송환했던 것과 관련해 미국과 영국 정부에 사과를 요구했다고 BBC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가 최근 트리폴리의 리비아 정보기관 사무실에서 입수한 비밀문서에 따르면 당시 리비아 이슬람투쟁그룹 일원이었던 벨하지는 CIA에 의해 생포됐고, 7년간 트리폴리 교도소에서 MI6 요원들에게 고문을 당했다. 벨하지는 “내가 당한 일은 불법이며, 사과받을 만하다.”며 양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MI6가 2003년 리비아 정부로부터 ‘카타르와 연계된 알카에다 조직이 런던에 체류 중인 카다피의 차남이자 후계자 사이프 알이슬람을 암살하려 한다.’는 정보를 듣고, 사이프를 보호하는 작전을 벌였다고 보도했다. 당시 MI6는 사이프의 암살음모 첩보를 런던 경찰청에 통보했고, 런던 경찰청은 사이프를 직접 방문해 정황을 설명하면서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중동의 시민혁명 불길이 리비아로 번지자 MI6는 리비아 반군을 도와 카다피 정권 붕괴에 힘을 보탰으며, 카다피 일가의 행방을 좇는 데 앞장서고 있다. 독일 정보 당국 역시 카다피 정권과 협력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1991년부터 1998년까지 독일 첩보기관의 조정관이었던 베른트 슈미트바우어는 독일 일요판 신문 빌트암존탁과 인터뷰에서 “리비아 보안기관은 독일이 접할 수 없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으며, 우리는 이 정보들 덕분에 테러 위협에 맞서 스스로 방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양국의 협력은 주로 반테러전같이 독일 안보에 득이 되는 정보로 이뤄졌다.”면서 “하지만 영국이나 미국의 정보기관들처럼 리비아 첩보원들과 합동작전을 펴지는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중국은 7월에도 카다피군에 무기 판매

    중국은 7월에도 카다피군에 무기 판매

    중국 국영기업이 무아마르 카다피가 막다른 골목에 몰린 지난 수주일 동안에도 카다피군에 무기를 팔았다고 리비아 과도정부가 4일(현지시간) 주장했다. 캐나다 ‘글로브 앤드 메일’(G&M)과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카다피 정부 관계자들이 지난 7월 16일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2억 달러어치의 중국제 무기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이런 사실은 G&M 소속 그래미 스미스 기자가 리비아 현지에서 입수한 카다피 정부 문서에 기재돼 있으며, 과도정부 측은 문서가 진본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카다피 측이 베이징에서 만난 무기제조 회사는 중국 북부산업(Norinco), 중국 국립 정밀기기 수출입공사(CPMIC), 중국 신싱 수출입 공사 등 3곳이다. 카다피군이 구매한 무기는 로켓 발사대와 대전차 미사일,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QW18) 등으로, 중국은 카다피군에 대한 무기 판매를 금지한 유엔 결의를 위반한 셈이다. 문서에 따르면 중국 측은 무기를 알제리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을 통해 리비아로 반입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두 나라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대(對)리비아 군사작전에 반대하는 나라들이자 평소 중국제 무기를 수입하는 국가들이다. 중국 측은 무기 운송에 시간이 걸리는 점을 감안, 급한 대로 알제리가 갖고 있는 무기를 카다피군이 가져다 쓰는 방법까지 제의했다. 리비아 반군 대변인 압둘라만 부신은 “유엔 결의를 위반한 나라는 앞으로 리비아와 사업을 하기 힘들 것”이라면서 “중국과 카다피가 거래한 문서와 무기 등 명백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미스 기자는 4장으로 된 문제의 문서를 카다피 정부 고위 관리들이 많이 살았던 트리폴리의 ‘밥 아카라’ 마을 휴지통에서 발견했으며, 문서는 리비아 정부 조달청 마크가 새겨진 봉투에 들어 있었다고 밝혔다. 문제의 중국 기업과 알제리 정부 등은 사실 확인을 거부했다고 G&M은 보도했다. 중국 외교부의 장위(姜瑜) 대변인도 5일 정례브리핑에서 “중국은 유엔 안보리의 리비아 관련 1970, 1973호 결의안을 엄격하게 준수하고 있다.”면서 “리비아에 군수품을 수출하지 않았고 그런 제안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미 국무부와 국방부 등은 “그런 (중국과 카다피군의 무기거래) 사실을 몰랐다.”면서 “그 문서를 분석해봐야 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막판까지 카다피의 리비아에 대한 유엔 차원의 제재에 반대했던 중국은 반군이 상황을 완전 장악하자 뒤늦게 반군 측을 상대로 적극적인 ‘구애작전’을 펴고 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카다피 “승리 아니면 순교… 게릴라戰 준비”

    “승리 아니면 죽음뿐이다. 항복은 없다.” 트리폴리에서 패퇴한 뒤 종적을 감춘 리비아의 몰락한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1일(현지시간) 두 차례 성명을 내놓으며 지지자들에 결사항전을 촉구했다. 승기를 잡은 반군은 카다피의 고향 시르테에 “항복 시한을 1주일 더 주겠다.”고 밝히며 친카다피 세력의 항복을 유인했다. 시리아의 친카다피 방송인 알 라이 TV는 이날 두 차례에 걸쳐 카다피의 목소리로 추정되는 메시지를 내보냈다. 카다피가 자신이 집권한 1969년 쿠데타 42주년을 기념해 발표한 것으로 보인다. 카다피는 “신은 우리와 함께 있다. 리비아인은 신의 뜻을 위해 순교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라며 “반군 격퇴를 위해 게릴라전을 준비하고 리비아인, 외국인 가릴 것 없이 죽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리비아를 점령하려 한다며 “억압받느니 죽는 게 낫다. 유정과 항구를 빼앗겨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이어 “우리는 여자가 아니다. 투항은 없다.”고 못박았다. 카다피는 이날 자신의 위치를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리비아의 수도를 트리폴리에서 시르테로 옮겼다.”고 말해 시르테가 자신의 ‘마지막 요새’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이틀 전 협상 가능성을 내비쳤던 카다피의 셋째 아들인 알사디는 이날 같은 방송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말을 바꿔 “승리 혹은 순교 밖에 남지 않았다.”라며 결사항전을 예고했다. 그는 “갱단을 공격하기 위해 모두 움직여야 할 때”라면서 “밤낮 가릴 것 없이 공격하라. ”고 촉구했다. 그는 자신이 트리폴리 교외 지역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CNN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도 반군에 투항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앞서 알사디는 아랍권 위성TV인 알아라비야와의 인터뷰에서는 “만약 반군이 이 나라를 이끌겠다면 반대하지 않겠다.”면서 “유혈사태를 막을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 다만 (안전을) 보장해달라.”고 말했다. 그는 또 포격을 멈춘다면 카다피의 항복 협상도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군 측 국가과도위원회(NTC)의 모하메드 자와위 대변인은 “협상 진전을 위해 시르테의 친카다피 세력에 항복시한을 10일까지로 1주일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애초 반군은 3일까지 항복하지 않으면 시르테 진격을 개시할 것이라고 밝혀왔다. 한편, 미국과 프랑스, 영국 등 60개국 정상과 외교사절들은 지난 1일 프랑스 파리에서 리비아 재건 및 반군 지도부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카다피 “알제리 망명설? 끝까지 싸운다”

    알제리 망명설이 나돌고 있는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1일 반군에 항복할 뜻이 없으며,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재차 천명했다. 카다피는 이날 시리아의 알라이TV에서 방송된 음성 녹음을 통해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반군에 대한 저항을 유지하도록 촉구했다. 앞서 알제리 현지 신문 엘 와탄은 카다피가 알제리의 입국 허가를 받기 위해 리비아 서쪽 끝에 있는 오아시스 도시 가다메스에 나머지 가족들과 함께 대기 중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무라드 메델치 알제리 외무장관은 프랑스 라디오방송 인터뷰에서 “카다피가 알제리의 문을 두드릴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단 한 번도 고려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수도 트리폴리 등 리비아 국토의 대부분을 장악한 반군 지도부는 카다피의 고향 시르테의 항복 시한을 3일에서 10일로 일주일 연장했다. 반군은 카다피가 남부 사막도시 바니 왈리드에 은거 중일 것으로 지목하고 추격을 계속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카다피의 아들들 사이에서 ‘결사항전’과 ‘막후협상’의 상반된 메시지가 나오고 있어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카다피의 차남이자 독재정권의 2인자인 사이프 이슬람은 지난달 31일 알라이TV에서 방송된 음성 녹음에서 “우리는 저항을 계속할 것이며 승리는 우리 가까이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수도 트리폴리 교외에 있다면서 시르테에서 2만명의 카다피군이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3남인 알사디는 전날 압델 하킴 벨하지 반군 사령관과의 전화 통화에서 반군과 협상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고 알자지라가 전했다. 한편 1일 파리에서 열린 일명 ‘리비아의 친구들’ 회의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을 비롯해 리비아 사태에 미온적이었던 러시아와 중국의 대표도 참석했다.국제사회는 리비아가 민주국가 수립 과정에서 피의 보복을 일으킨 이라크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효율적인 지원 방안 등을 협의했다. 유럽연합(EU)은 은행과 항만을 포함한 28개 리비아 기업에 대한 제재를 해제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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