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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마당]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하여/김기봉 경기대 역사학 교수

    [문화마당]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하여/김기봉 경기대 역사학 교수

    인간은 말하지 않고 살 수 없는 존재다. 인간의 가장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은 말이다. 인간은 말을 통해서 타자와 생각과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문명을 건설하는 존재가 됐다. 하지만 말은 인간에게 축복인 동시에 저주임을 얼마 전 우리 사회 자기 분야에서 출세한 한 남녀의 발언을 통해 깨닫는다. 이 둘이 던진 몇 마디 말은 몇 십년 동안 공들여 쌓아 올린 탑을 일순간에 무너뜨리는 폭탄이 됐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말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 하지만 말실수가 사태의 본질이 아니다. 문제는 그들의 말이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그들을 비난하고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것으로 우리의 자화상이 지워질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자화상을 거울로 병든 우리를 반성하고 치유하는 일이다. 남성 국회의원의 말이 여성을 한 인간이 아닌 성적 대상으로 여기는 한국 사회 대다수 남성의 무의식을 드러낸 것이라면, 여교사가 던진 농담은 군대에 대해 갖는 한국 사회 많은 여성의 정서를 대변한 발언이다. 따라서 이 두 말이 일으킨 소동과 파장은 개인이 아닌 사회 일반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남성 국회의원 발언이 언제부턴가 TV에 나오는 여성 아나운서가 방송 분야 전문인이 아닌 연예인으로 인식되는 경향과 관련이 있다면, 그에게만 돌을 던질 문제가 아니다. 한편으로는 성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말과 행동을 해서 인기를 얻고자 노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성적 대상으로 취급받는 것에 분개하는 위선을 당사자들은 물론 우리 사회 대다수 사람들이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여교사 발언을 계기로 한국 사회에서 군대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성찰해 봐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군대는 남자로 성장하기 위한 하나의 통과의례로 여겨져 왔다. 대한민국 모든 성인 남자는 빈부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동등하게 군대에 가야 할 의무를 가진다. 이는 모든 인간은 죽어야 할 운명을 가진다는 신의 평등만큼 대한민국 국민의 평등성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국방의 의무는 대한민국 국가의 정당성을 보장하는 시민종교의 기능을 한다. 한국남자는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원죄로 군대에 가야 한다. 그런데 주위에 군 복무 면제를 받은 ‘신의 아들’이 있다. 누군가가 그에게 면죄부를 판 것 같다는 의심이 들 때, 대한민국 시민종교에 대한 믿음은 깨진다. 지금 대한민국은 중세 말 루터가 면죄부 판매에 반대해서 종교개혁을 일으킨 것 같은 근본적인 개혁이 요청된다. 독재정권 시절 ‘반공’이 시민종교의 도그마였다면, 민주화 이후에는 개정된 ‘국기에 대한 맹세문’이 표현하듯 “조국의 통일과 번영을 위하여 정의와 진실로서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하는 공화주의가 우리의 시민종교가 돼야 한다. 하지만 천안함 침몰 때 죽은 군인들과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행태를 보면, 대한민국이 과연 평등한 시민들의 정치공동체인지 의심스럽다. 60년 이상 동안 남북한은 자유와 평등 가운데 무엇을 중심으로 정치공동체의 시민종교를 형성하느냐로 체제 경쟁을 벌였다. 결과적으로 자유가 평등에 승리했다. 하지만 오늘날 남한사회는 평등을 희생시키는 자유란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에 심각한 갈등에 직면해 있다. 2010년 여름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어려운 사회철학 책이 이례적으로 오랫동안 인문학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정의에 목말라 있는지를 웅변한다. 사회적 정의를 바탕으로 하지 않은 성장이 유발하는 상대적 박탈감은 지금까지 이룩한 성과를 한순간에 날려버리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북한 김정일 정권보다 남한 이명박 정부가 더 정의로운 통치행위를 할 때, 그리고 북한사회보다 남한사회에 사는 한국인들이 더 정의로운 삶을 영위할 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가 시민종교의 교리가 될 수 있다.
  • 충남 산단 조성 자금난에 ‘발목’

    충남 산단 조성 자금난에 ‘발목’

    충남의 주요 산업단지 조성사업이 경기침체로 잇따라 차질을 빚고 있다. 충남도는 2일 지식경제부에 최근 천안영상문화복합단지의 외국인투자지역 지정 해제를 요청해 승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도는 1999년 국내 최대 ‘영상메카’를 조성한다며 외국인투자지역으로 지정받아 사업을 추진했으나 10여년 간 시행사 코아필름서울의 투자부진이 계속되자 백지화했다. 도 관계자는 “서둘러 이곳을 일반산업단지로 개발해 전자·자동차부품 업체 등을 유치하겠다.”고 말했다. 서천군 장항국가생태산업단지 조성사업도 시행사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자금난 때문에 미뤄지고 있다. 당초 올해 상반기 착공 예정이었으나 착공은커녕 지금까지 보상계획 공고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이 사업은 장항 앞바다 갯벌을 매립해 장항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하려던 정부의 계획이 생태계 훼손 논란으로 취소되자 대안으로 나왔었다. 2013년까지 5687억원을 들여 내륙인 장항읍과 마서면 일대 270만㎡에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군 관계자는 “사업 자체가 무산되거나 축소되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황해경제자유구역 당진군 송악지구도 한화 측이 자금난을 명분으로 사업 추진을 잠정 중단했다. 한화는 송악지구 사업자 ㈜당진테크노폴리스의 최대 주주이다. 황해경제자유구역청은 “다음달 중순까지 사업에 착수하지 않으면 사업자 재선정 절차를 밟겠다.”고 발표했다. 태안기업도시도 사업자 현대건설의 자금난으로 지연되고 있다. 현대건설은 지난해부터 5740억원을 들여 13만 7850㎡에 18홀짜리 골프장 2개와 클럽하우스, 콘도, 워터파크, 컨벤션센터 등 골프휴양시설을 내년 말까지 건설할 예정이었으나 성토 등 기반공사에 그치고 있다. 이 기업도시는 2020년까지 7조 7000억원을 투입, 태안군 천수만 부남호(서산B지구 담수호) 일대 1089만㎡를 관광레저단지로 개발하는 것으로 국내 기업도시 가운데 사업진척이 빨라 주목을 받아왔다. 러시아 최대 자동차회사 DI그룹이 투자한 ㈜타가즈코리아도 2012년까지 6500억원을 들여 보령시 관창산업단지 38만 7000㎡에 자동차부품 공장을 세우기로 하고 2008년 10월 첫삽을 떴으나 자금난과 검찰의 GM대우차 기술유출 관련 수사를 이유로 공사에 나서지 않고 있다. 충남도 관계자는 “타가즈코리아 측이 확실한 답변을 내놓지 않아 사업포기 선언 등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새 방법으로 核억제력 강화”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밝혀

    “새 방법으로 核억제력 강화”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밝혀

    북한 김영춘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겸 인민무력부장은 26일 “미국의 가증되는 핵 위협에 대처하여 우리는 새롭게 발전된 방법으로 핵억제력을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에 따르면 김 부장은 이날 정전협정 체결 57주년을 맞아 평양체육관에서 열린 중앙보고대회 연설을 통해 “오늘 조선반도에는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의 악랄한 반공화국(반북) 대결과 새 전쟁 도발책동으로 하여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를 일촉즉발의 정세가 조성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프로야구] 장마가 야구에 미치는 영향

    [프로야구] 장마가 야구에 미치는 영향

    야구는 민감한 스포츠다. 조그만 변수에도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예를 들어 보자. 지난 4월14일 오후 6시30분. 삼성-LG전이 열리던 잠실구장 기온은 4도였다. 습도는 25%. 너무 추웠다. 당시 양팀 더그아웃엔 난로가 등장했다. 세 달 가량 지난 7월15일. 같은 구장에서 열린 KIA-LG전. 경기 시작할 때 27도였다. 습도는 68%. 기온과 습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여름과 장마가 왔다. 이런 기후 변화가 야구의 공격과 수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공격 이론적 유리함과 경험적 불리함이 교차한다. 타자가 공을 때리면 타구는 공기의 저항을 뚫고 날아간다. 자연히 공기 밀도가 낮으면 비거리는 늘어난다. 기온이 10도 올라가면 공기 밀도는 3.3% 정도 낮아진다. LG 타자 이진영이 120m짜리 타구를 날렸다고 가정하자. 로버트 어데어의 ‘야구의 물리학’에 따르면 기온이 10도씩 오를 때마다 타구 비거리는 2.16m씩 길어진다. 4월14일 120m짜리 타구는 7월15일 124.9m를 날아간다. 뜬공이 홈런으로 변할 수 있는 수준이다. 공이 따뜻해지면 공 자체의 탄성(반발력)도 늘어난다. 공은 방망이에 맞으면 찌그러진다. 많이 찌그러지는 만큼 멀리 나간다. 공이 차가우면 탄성은 떨어진다. 공의 온도는 주변 실온과 비슷하다. 그러나 15도 이하가 될 일은 거의 없다. 경기 전 실내에서 보관하고 경기 중에는 투수들이 공을 쥐고 있어서다. 습도도 영향을 준다. 증기는 공기보다 약간 더 가볍다. 다른 조건이 같고 습도만 높다면 대기 밀도는 낮아진다. 타구가 더 멀리 나간다. 그러나 타자들은 습도가 높으면 공이 멀리 안 나간다고 얘기한다. 공과 방망이가 머금은 습기 때문이다. 이진영이 일반공으로 120m를 날렸다면 습도 100% 공은 111m밖에 날아가지 못한다. 방망이도 미세하게 무거워져 스윙이 둔해진다. ●수비 긍정적 요소와 부정적 요소가 교차한다. 습도가 높아지면 공과 손가락의 마찰력이 증가한다. 투수들은 손가락으로 공을 더 잘 잡아챌 수 있다. 변화구 각도가 훨씬 커진다. 떨어지는 변화구를 자주 구사하는 투수들은 경험적으로 장마철에 공이 잘 채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부정적인 면도 있다. 공인구 둘레는 22.9~23.5㎝. 무게는 141.7~148.8g이다. 공이 습기를 머금으면 미세하게 둘레는 늘어나고 무게도 무거워진다. 규정 한도만 벗어나지 않으면 된다. 투수들은 상대적으로 작고 가벼운 공을 선호한다. 공이 크면 다루기 어렵고, 무거우면 직구 속도가 떨어진다. 공의 습도가 높아지면 탄성이 줄어든다. 그러면 야수들이 편해진다. 타구 속도가 평소보다 떨어진다. 그라운드와 공이 모두 습기를 머금고 있으면 양쪽의 탄성력이 줄어든다. 적게 튀어오르고 타구 속도는 느려진다. 타구 속도가 0.1초 느려지면 내야수의 수비 범위는 70㎝ 정도 줄어든다. 직선 타구나 쇼트 바운드 처리 하나로 경기 흐름이 달라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무시할 만한 수치가 아니다. 장마철이 오면 투수들은 비로 취소되는 경기가 많아 컨디션 조절이 힘들어진다. 야수들은 덥고 습한 환경에서 그라운드에 서 있어야 한다. 집중력과 체력이 떨어진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열린세상] 국론분열 이대로 좋은가/이성무 한국역사문화연구원장

    [열린세상] 국론분열 이대로 좋은가/이성무 한국역사문화연구원장

    나라에 일이 있으면 국론이 양분되는 게 보통의 일일 것이다. 일리 있는 주장도 있겠지만 공론이 아닌 사론일 경우도 있다. 이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공론인 경우에는 지도자가 앞장서 조율을 해야겠지만 개인적인 이해관계나 당리당략에 의한 주장이라면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얼마 전 우리는 60년째 6·25전쟁을 맞이했다. 필자는 민족상잔의 비극 6·25전쟁을 직접 체험한 사람이다. 그때 한국은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가난한 나라였다. 그런데 그 이후 60년 만에 세계 15위의 경제대국을 이룩해 놓은 것이다. 골드먼 삭스의 예측에 의하면 2025년에는 미국, 일본에 이어 한국이 GDP 기준 세계 3위, 2050년에는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된다고 한다.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국민도 일치단결해 노력했겠지만 이를 지도한 지도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부터 지금 대통령까지 온전하게 대접받는 사람이 없다. 비단 대통령뿐이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 발전에 기여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설혹 이들에게 약간의 결함이 있더라도 좋은 점을 부각시켜 자손들이 이를 벤치마킹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자손들이 미래의 비전을 제대로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국가발전과 민족문화 창달에 기여하는 길일 것이다. 서양 여러 나라엔 가는 곳마다 위인들의 동상이 즐비하다. 그들에게도 따져 보면 장점도 있고 약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표상으로 이들을 위인으로 키우고 있다. 그네들이 흠이 있는 것을 몰라서일까?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역사를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조작하려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위인 만들기에 그토록 인색한가? 마음이 각박해서일까?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의 근·현대사는 극심한 격동기를 거쳐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이념이 자주 바뀌고 가치기준이 자주 변화한 것이다. 일제의 식민지를 겪다 보니 친일파 논쟁이 있게 되었다. 제국주의의 침략을 경험하다 보니 전통문화와 외래문화의 거친 충돌이 있게 되었다. 냉전을 거치다 보니 반공과 통일이 헛갈리게 되었다. 이 때문에 각각 다른 기준으로 재단하다 보니 이 사람이 찬성하면 저 사람이 반대하고, 이 사람이 올려 세우려 하면 저 사람이 헐뜯는 형국이다. 이것은 사안마다 다른 것이 아니라 사회풍조로 굳어 가고 있다. 이러고도 국가가 잘될 리 없다. 의견을 조율해야 한다. 의견을 조율하려면 토론을 해야 한다. 토론을 하려면 상대방의 논지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절장보단(絶長補短)해 공동분모를 찾아내야 한다. 이른바 구동존이(求同存異) 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 공론에 의해 합의한 부분은 법률로 제정하고, 법률로 제정된 것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준수해야 한다. 의견이 다른 것은 그대로 남겨두고 더 심도 있게 논의하는 게 필요하다. 그래도 안 되면 다수결로 결판을 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엄연한 민주주의의 원칙이 아닌가. 그런데도 지금 우리는 일마다 대립이요, 정책마다 반대 일변도다. 일찍이 고속도로를 놓을 때도 그랬고, 인천공항을 건설할 때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었다. 요즈음 세종시도 그렇고, 4대강 정비사업도 마찬가지다. 고속도로와 인천공항을 반대하던 사람은 지금 어디로 갔는가? 지금 그것을 만들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면 끔찍할 따름이다. 세종시도 그렇고, 4대강 사업도 그럴 것이다. 내일의 입지를 생각하면서 말을 하고 행동을 해야 한다. 각자가 주장하는 것에는 일리가 있는 부분도 있다. 애국심에서 말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고 개인의 이익이나 당리당략으로 무턱대고 반대한다면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각자의 주장에 일리가 있더라도 국론이 분열되면 되는 일이 없으니 누군가가 이를 조율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지도자의 몫이다. 지도자의 리더십으로 양쪽의 의견을 절장보단해 합의점을 찾아야만 국가나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 경춘 복선전철 12월21일 개통

    올 12월 강원 춘천이 수도권시대를 맞는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은 7일 춘천~망우 간 81.4㎞를 복선전철화하는 사업이 올 12월21일 개통된다고 밝혔다.지난 1997년 공사를 시작한 이후 14년 만이다. 지금까지의 복선화 전철사업 공정은 83%를 보이고 있으며 노반공사는 이달 말, 궤도 공사는 9월 말까지 완료할 계획이다. 오는11월 말까지 모든 신축 역사 건립도 마무리한다.10월11일부터 12월20일까지 시운전을 거쳐 12월21일부터 영업을 시작하게 된다. 경춘선 복선전철이 개통되면 춘천역~신상봉 간 운행시간은 1시간29분대로 현재보다 25분 단축된다. 요금은 2600원으로 현재 무궁화호 5400원보다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내년 말에는 춘천~용산까지(97.9㎞) 운행 노선을 연장해 시속 100㎞ 이상인 고속형 열차(EMU180)를 투입한다. 이렇게 되면 소요시간이 40분대로 단축된다. 반면 요금은 5200원대로 다시 올라간다. 기본운임 외 별도 요금이 부과되기 때문이다. 복선전철이 개통되면 춘천역~신상봉역 간 전동차 운행은 러시아워 등 승객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17분 간격으로 단축될 전망이다. 춘천역~용산 간 고속형 열차는 30분간격으로 이어진다. 운행횟수는 현재 1일 30회에서 1일 편도 168회로 늘어난다. 김선호 한국철도시설공단 수도권본부장은 “서울~춘천간 고속도로 개통에 이어 경춘선 복선화전철사업까지 마무리되면 춘천이 새로운 수도권 배후도시로 각광 받을 전망이다.”며 “공정에 차질이 없도록 마무리 작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장편소설 ‘강남몽’ 출간한 황석영 작가

    장편소설 ‘강남몽’ 출간한 황석영 작가

    어머니 대지로서 생명을 품고 길러내는 것이 땅의 오롯한 역할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가 근대화의 바람 속에서 땅에 사람의 탐욕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땅은 ‘부동산’이라는 이름을 얻더니 사고 파는 과정을 거듭하며 스스로 몸값을 불려나갔다. 달뜬 탐욕 앞에서 호박이며 배추, 고추 등속을 길러내던 말죽거리 밭뙈기가 금싸라기 땅으로 변신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소설가 황석영(67)이 장편소설 ‘강남몽’(창비 펴냄)을 내놓고 이렇듯 부끄러움조차 잃은 채 한국사회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자라고 있는 부동산에 대한 욕망이 어떻게 뿌리내렸는지 낱낱이 들춰냈다. 소설을 통해 일제강점기 이후 한국현대사에 아로새겨진 우리의 남루한 자화상이 여과없이 드러난다. 황석영으로서는 1980년대 말 ‘장길산’을 마친 뒤부터 쓰겠다고 마음먹었으니 무려 20년이 넘는 산통이 담겨 있는 셈이다. 지난해 9월부터 여덟 달 동안 인터넷에 연재한 뒤 책으로 묶었다. 그는 30일 서울 신문로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나 “작품의 주제는 무겁지만 정색하고 대드는 리얼리즘 방법은 아닌 것 같고, 장편대하소설도 아닐 것 같아 고민만 하다가 뒤로 자꾸 미뤘다.”면서 “지난해 문득 우리 전통 인형극 꼭두각시 놀음처럼 몇몇 캐릭터를 만들어서 풀어나가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화류계 여인, 친일과 반공을 앞세워 부를 쌓은 재벌, 부동산 투기업자, 이권만을 좇아 재벌과 정치권에 기생하는 조폭, 먹이사슬 맨 아랫단에 있으면서 늘 집, 땅에서 쫓겨나는 노동자 등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1995년 무너져내리는 삼풍백화점(소설 속에서는 대성백화점)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해방공간 좌우의 대립, 개발독재, 민주화 노력 등 긴 역사를 숨가쁘게 그려낸 뒤 다시 1995년으로 돌아온다. 황석영 특유의 힘있는-인터넷 연재를 통해 더욱 젊고 빨라진-문체가 서사를 끌고 간다. 또한 국립문서보관소 등을 뒤져가며 얻어낸 새로운 자료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역사적 인물의 실명과 함께 누구인지 충분히 짐작하게 해주는 이들이 소설을 끌고 가고 있다. 황석영이 스스로 ‘다큐 소설’이라고 이름붙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사실은 위대하다는 생각을 새삼 했다.”면서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인 자료 중심으로 풀어냈음에도 우리 욕망의 뿌리를 확인시켜주는 이 소설은 불온할 수밖에 없다.”고 자평했다. 그의 말마따나 김구와 여운형의 죽음 뒤에 미국이 있었다거나 박정희의 남로당 활동 경력 등을 재확인하며 심기가 불편한 이들도 있겠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KT, ‘olleh KT 벤처 어워드 2010’ 공모 시작

    KT, ‘olleh KT 벤처 어워드 2010’ 공모 시작

    [서울신문NTN 차정석 기자] KT는 초기 단계의 벤처/중소기업과 개인 개발자 지원 및 육성을 위한 ‘olleh KT 벤처 어워드 2010’을 개최한다고 28일 밝혔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olleh KT 벤처 어워드는 유망 신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거나 애플리케이션 개발이 가능한 벤처/중소기업 또는 일반인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일반인의 경우 팀(2~4인)을 구성할 수도 있다. 참가 분야는 신사업 제안을 위한 일반공모와 애플리케이션 위주의 테마공모로 나뉘어 진행된다. 일반공모는 예년과 동일하게 KT사업과 시너지를 창출하거나 KT의 미래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BM(비즈니스 모델)/서비스/기술에 대한 사업계획서를 접수 받는다. 쿡TV를 주제로 한 올해 테마공모는 쿡TV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및 앱 기획서를 제출하면 된다. 일반공모 8월 31일, 테마공모는 9월 12일까지 홈페이지에서 접수 받으며 시상은 10월에 진행될 예정이다. 올해 벤처 어워드는 총 상금 1억 5천만원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50% 늘어났다. 일반공모와 테마공모 최우수상 1팀에게는 각각 5천만원과 3천만원의 상금이 지급된다. 이 밖에 일반공모 우수상 2팀에 각 2천만원과 장려상 2팀 각 5백만원, 테마공모 우수상 1팀 1천만원과 장려상 2팀 각 5백만원이 수여된다. 수상자들에 대한 지원도 대폭 강화된다. 벤처 어워드 최종 수상작에는 ‘KT 개발협력사’ 자격으로 100여 개의 KT 인재개발원 e-learning 교육 프로그램을 비롯해 중소기업 직업훈련 프로그램 등을 지원할 예정이다. 또한 클라우드 기반 서버 등 인프라와 시험장비, 계측기 등 개발환경이 제공되며, 투자 검토 및 연말 오픈 예정인 쿡TV 앱스토어에 등록 등 다양한 사업기회가 주어진다.차정석 기자 cjs@seoulntn.com
  • [오늘 한국전쟁 60주년] “수용인민군들, 반대파 토막살해뒤 바다 버려”

    [오늘 한국전쟁 60주년] “수용인민군들, 반대파 토막살해뒤 바다 버려”

    “분뇨통을 들고 나오는 포로의 얼굴을 보는 순간 ‘성규(가명)야.’라고 외쳤죠.” 국군 헌병단으로 1949년에 입대, 1954년에 전역한 강옥(80) 일등중사는 휴전이 다가오던 1953년의 어느 날 한양공고 동창으로 절친한 친구인 성규씨를 자신이 감시하고 있던 거제포로수용소에서 만났다. 그는 성규씨와 고교 시절 축구부로 함께 생활했다. 강 중사는 “함께 공을 차며 지냈죠. 참 보고 싶었었는데 안타까운 만남이었죠.” ●축구 시합 준비 중에 전쟁 소식 고교 졸업 후 연락이 닿지 않던 성규씨는 전쟁이 나자 인민군에 붙잡혀 의용군으로 끌려오게 됐다. 친한 친구를 만난 반가움과 함께 포로로 잡혀온 친구에 대한 안타까움이 끓어올랐다. 강 중사는 성규씨를 도와줄 방법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도와주고 싶었지만… 당시엔 국군이 포로와 친하게 지내면 엄청난 의심을 받거나 고초를 겪게 되니까… 쉽지 않았죠.”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후 성규씨는 1953년 6월18일 반공포로 석방 때 풀려나 국군에 입대했다. 하지만 그들의 우정은 고교시절로 돌아가지 못했다. 1950년 6월25일. 강 중사는 경기도 의정부에 주둔하고 있던 7사단 헌병대에 근무하고 있었다. 일요일이던 전쟁 발발 당일에 그는 부대원들과 축구시합을 준비하고 있었다. 전쟁을 예상하지도 못했고, 믿어지지도 않았다. 북한군은 국군이 방어선을 구축할 겨를도 없이 밀고 내려왔다. ●반공포로 석방 헌병도 당일 아침에 알아 전세는 유엔군의 지원으로 역전됐다. 국군과 유엔군은 평양을 넘어 북으로 올라갔다. 1951년 중공군이 가세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1·4 후퇴 길에 올랐다. 강 중사는 당시 평양 포로수용소 경비를 담당했다. 밀고 내려오는 인민군과 중공군을 피해 포로들을 데리고 진남포 항구에서 수송선에 올랐다. 그와 포로들은 거제포로수용소로 이동했다. 1950년 11월 만들어진 거제포로수용소에는 10만명 이상의 전쟁포로가 수용됐다. 유엔군이 제네바 협정에 따라 포로를 관리하고 국군 헌병단은 그 외곽 경계를 담당하게 됐다. “유엔군이 제네바협정에 따라 먹여 주고, 입혀 주고 했죠. 국군들보다 포로들의 차림새가 더 좋았어요. 배가 부르니까 폭동도 일으키고….” 당시 포로수용소 안은 제네바협정을 준수한 유엔군 덕에 포로들만의 규율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일부는 나무로 모형 총과 칼을 만들어 제식훈련을 하고, 일부는 국기게양대를 만들어 경례를 하고 군가를 불렀다 특히 인민군들은 포로들 가운데 사상이 불순하다고 판단되면 재판을 거쳐 살해하고 토막내 바다에 버리기도 했다. “포로들은 매일 아침 수용소를 나와 거제 앞바다에 분뇨통을 비웠는데 거기에 살해한 포로의 시체를 토막내 함께 버렸어요. 한동안 그렇게 해오다 수상히 여긴 헌병의 검열에 비인간적인 행위가 들통났죠.” 1952년 5월7일 수용소장 F T 도드 준장이 76포로수용소 시찰 중 납치 감금됐다. “포로들이 분뇨통을 비우기 위한 시간에 도드 준장이 시찰을 나왔다가 당했죠. 순식간에 발생한 일이었죠.” 도드 준장이 납치되자 국군과 유엔군은 거제수용소를 탱크로 에워싸고 구출을 시도했다. 도드 준장의 납치 배경에는 유엔군 측이 송환원칙을 어기고 포로들에게 본국 귀환을 포기시키려고 협박과 고문을 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강 중사는 유엔군이 제네바 협정을 잘 지켜줬다면서 협박과 고문이 있었다는 말에 의문을 달았다. 당시 도드 준장 납치 사건은 4일 후 미국이 협박 등의 행위를 인정하면서 해결됐다. 1953년 6월18일 갑작스럽게 이뤄진 반공포로 석방은 당일 아침에야 알 수 있었단다. 비밀리에 진행된 반공포로 석방은 외곽을 경계하는 헌병단에도 알려지지 않았다. “갑자기 새벽에 포로들이 도주하더라고요. 외곽을 경계하던 우리에겐 전혀 연락 온 바가 없었죠.” 당시 국군은 이들의 석방을 도주로 오해해 사격하기도 했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휴전협정이 맺어지고 전쟁은 중단됐다. 강 중사는 이듬해 4월까지 근무하고 전역했다. 강 중사의 아들은 현재 공군 중령으로, 며느리는 육군 중령으로 군문(軍門)의 대를 잇고 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25일 TV 하이라이트]

    ●한국전쟁 <정전>(KBS1 오후 10시) 자그마치 1년4개월을 끈 포로 협상. 이승만의 ‘반공포로 석방’. 미국에 의해 계획됐으나 불발된 에버레디 계획(이승만 제거 계획). 남과 북 어느 쪽으로도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제3국행을 택한 88명의 포로들. 그리고 북한에 억류돼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한 5만여명의 한국군 포로들의 삶을조명해 본다. ●VJ특공대(KBS2 오후 9시55분) 한국 축구 16강 진출, 월드컵 속 기회를 잡아라. 월드컵 열풍에 그라운드 밖에서는 대박 행진이 펼쳐진다. 편의점 하루 매출이 3000만원, 남아공 월드컵으로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문전성시를 이루는 아프리카 용품 전문점까지 4년 만에 찾아온 월드컵. 그 기회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을 만나본다. ●휴먼다큐멘터리 사랑 아빠의 집으로(MBC 오후 10시55분) 경남 산청 읍내에서도 외길로 30분을 더 들어가는 산골마을에서 단둘이 사는 친할머니와 손녀 가은이. 막 다섯 살이 되던 해 아빠의 이혼으로 가은이가 할머니 집에 맡겨진 지 벌써 6년이 지났다. 하지만 서로에게 삶의 전부가 돼 버린 두 사람에게는 예정된 이별의 순간이 기다리고 있는데…. ●귀농프로젝트 농비어천가(SBS 오후 6시30분) 오이 농사에 도전하게 된 형석. 대망의 오이농사 첫날 비료 뿌리기에 도전한다. 유연한 몸짓을 자랑하며 뿌리기에 나선 형석과 진탁. 반면 준원은 특이한 몸짓으로 형석의 오이 밭을 휘젓고 다닌다. 피곤해도 잠 못들고 뒤척이는 진탁의 고민. 늦은 밤 이장님을 찾아 갈 수밖에 없었던 진탁의 속사정을 공개한다. ●스크린 한국어(EBS 오후 1시40분) 지난 시간에 이어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의 명장면을 보고 일상생활에서 쓰일 수 있는 한국어 표현을 익힌다. 영화 속 장면을 ‘뉴스’로 다시 보는 시간. 이번 시간에는 ‘종잡을 수 없는 날씨 계속’이라는 내용으로 뉴스나 신문 기사에 자주 사용되는 어려운 말들을 율리아와 함께 배워 본다. ●명불허전(OBS 오후 10시) 6·25전쟁 60주년을 맞이해 잊혀져 가는 전쟁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대한민국 국군 최초의 4성 장군 백선엽 장군을 초대해 민족 최대의 비극인 6·25전쟁의 생생한 증언을 듣는다. 백 장군은 긴박하고 참혹했던 전쟁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6·25전쟁의 의미와 참전 용사의 희생을 후대들이 기억해 줄 것을 당부한다. 이 프로그램은 방송사 사정에 따라 바뀔 수도 있습니다. KBS 02-781-1800 MBC 02-780-0015 SBS 02-2113-3190 OBS 032-670-5000 EBS 02-526-2000 서울신문STV 02-777-6466
  • [實錄, 한국전쟁] 이승만 휴전반대·북진통일 주장… 美 친위쿠데타 검토

    [實錄, 한국전쟁] 이승만 휴전반대·북진통일 주장… 美 친위쿠데타 검토

    한국전쟁의 발발과 전개과정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남한정부는 어떤 역할을 했으며, 어떻게 평가받을까. 북진통일을 외친 이승만은 한국전쟁 발발을 논하는 장에서 반짝 등장하지만, 한국전쟁 과정에서는 언급이 미미하다. 존재감이 없다. 러시아나 중국, 심지어 미국 자료들도 한국전쟁의 주역으로 이승만을 취급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반도의 남쪽을 지배하고 있던 남한 정부와 이승만은 단지 전쟁을 획책한 북한 김일성과의 비교 대상으로 등장할 뿐이다. 그러나 휴전협정 국면에 접어들면서 상황은 반전된다. 이승만의 극렬한 휴전반대가 주요 변수로 급부상했다. 이 시기 평양과 모스크바, 베이징 그리고 서울과 워싱턴 사이에 오간 각종 자료를 분석해 보면 ‘이승만’이라는 이름 석 자의 등장 빈도가 갑자기 높아졌다. 특히 1953년 6월18일 반공포로 2만 7000명의 전격적인 석방이 준 충격파는 컸다. 휴전협정 당사자인 미국과 중국은 물론 평양이 발칵 뒤집혔다. 영국의 처칠 총리는 아침에 면도하다 이 소식을 보고받고 얼굴을 벨 정도였다. ●‘미국의 남자’ 이승만 美와 애증 미국은 진퇴양난이었다. 미국 국내의 들끓는 휴전여론과 달리 중국과의 휴전협상은 평행선을 긋고 있었다. 한국정부와의 관계는 이승만의 휴전반대로 말미암아 담벼락 위를 걷는 아찔한 상태였다. 미국 합동참모본부가 간행한 ‘한국전쟁’에 따르면 “예측할 수 없고, 변덕스러운 이승만 정부의 자세와 행동이 특별히 어려웠다. 이러한 것들은 회담에 역기능적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협상을 불필요하게, 복잡하게 만들기도 했다. 어떤 점에서 이 대통령의 조치는 유엔군사령부의 군사적 입장을 위태롭게 하기도 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승만은 어떤 종류의 휴전협정도 반대했다. 협상 자체를 거부했다. 오로지 남한에 의한 한반도 통일을 원했다. 그는 ‘중국군의 완전한 철수, 북한 공산당 해체, 인민군 무장해제’ 등을 협상조건으로 내걸었다. 이승만은 1951년 7월 “유엔군이 한국의 분할에 동의하지 않는 것을 보장해 달라.”라는 서한을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냈다. 트루먼은 이 대통령을 비난하면서도 협조를 요청하는 답신을 보냈다. 요구 사항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심지어 미국 합참보고서는 1952년 초 뉴욕 출신의 저명한 천주교 인사인 스펠만이 한국을 방문, 무초 미 대사와 벤플리트 8군 사령관이 함께한 자리에서 이승만이 “미국의 모든 천주교인이 한국에 휴전이 없도록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정보를 싣기도 했다. 미국입장에서는 수용 불가능한 무리한 요구였다. 미국이 한국의 지도자로 선택한 ‘가장 미국적인 한국인’인 이승만은 그를 키워준 미국을 거역하고 있었다. 소련이 김일성을 북한지도자로 지목한 것처럼 이승만도 미국에 의해 선택되고 키워졌다. 이 시기 이승만을 묘사한 미국 측 자료는 온통 노회, 변덕, 아집, 독선 같은 단어로 도배돼 있었다. 전쟁발발 이전 이승만을 접촉한 한국주둔군 사령관 하지는 “솔직하지 않고, 정서적으로 불안하며, 야비하고, 부패하고, 예측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악평했다. 이승만을 바라보는 미국의 우려가 오래됐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이승만은 ‘미국의 남자’였다. 1905년 영어를 잘한다는 이유로 선발돼 백악관으로 루스벨트 대통령을 방문해 인연을 맺었다. 미국이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중단할 수 있게 도와주길 바랐지만, 그때 이미 미국은 일본과 ‘가쓰라-태프트 조약’을 맺으려고 작업 중이었다. 서로 필리핀과 대한제국에 대한 재량권을 인정하는 조약이었다. 이승만은 하버드대학에서 수학하고 나서 프린스턴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훗날 대통령이 된 윌슨의 제자가 됐다. 윌슨은 이승만을 ‘미래 한국의 독립을 위한 구세주’라고 부추겼다. 이승만은 윌슨이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한 파리평화회의에 참석하려 했으나 미 국무부로부터 여권을 발급받지 못했다. 이승만과 미국은 애증의 관계였다. 미국 지도부는 민족주의자인 동시에 기독교인인 이승만이 미국식 종교와 정치 기조를 따를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이승만의 마음속에는 미국에 대한 배신과 위선, 불신의 불씨가 자라고 있었다. ●이승만 ‘북진통일’ 정치적 구호 이승만의 또 다른 트레이드 마크인 ‘북진통일’은 남한주민들로부터 열광적인 지지와 호응을 받았지만 득보다 실이 컸다. 김일성의 남한공격 본능을 자극하는 구실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 스탈린으로부터 원조받은 무기와 군수물자로 완전무장한 북한 인민군과 비교하면 남한의 군사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전쟁발발 당시 한국군은 자신을 지키기에도 역부족인 상태였다. 전쟁 열흘 전인 1950년 6월15일 미 국방부에 보고된 군사고문단 보고서에는 ‘한국군은 가까스로 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장비와 무기 대부분은 쓸모가 없었고, 방어능력도 기껏 보름 정도’라고 기술돼 있다. 실제 인민군이 보유한 소련제 T34전차의 위력 앞에 한국군은 맥없이 무너졌다. 구형 바주카포는 무용지물이었다. 치밀하게 계산하고 준비한 김일성의 남침에 비해 이승만의 북진통일은 정치적 구호에 불과했다. 한국전쟁은 이승만의 의도와는 달리 종결을 향해 달려갔다. 미국 공화당이 1952년 7월 아이젠하워를 대통령후보자로 지명하면서 대세는 군사적 종결이 아닌 정치적 종결, 즉 휴전 쪽으로 기울었다. 대통령 후보자 아이젠하워는 같은 해 10월 디트로이트 연설에서 “명성을 걸고 한국전쟁을 조기에 명예롭게 종결짓겠다.”고 천명했다. 그는 “새로운 행정부의 정책은 한국전쟁을 끝내는 일에 집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젠하워가 당선됐다. 그는 12월2일 극비 한국방문길에 올랐다. 미 행정부 수뇌부는 남한의 정치적 위기는 전적으로 이승만으로 말미암아 일어났다고 여겼다. 이 같은 위기가 휴전협상뿐만 아니라 38도 상에 진행되고 있는 군사작전마저도 위협한다고 보았다. 실제 이승만은 1952년 국회 간선을 통한 재선이 어렵게 보이자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는 이른바 ‘발췌개헌’을 꾀했다. 임시수도인 부산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반대파를 제거했다. 한국군 전투부대를 철수시켜 계엄군으로 사용하려 했다. 이종찬 육군참모총장이 나서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개인의 군대로 사용하는 것”을 반대했으나 이승만은 막무가내였다. 전쟁을 끝내고 싶은 미국에 이승만은 골칫거리였다. 1953년 미국과 중국의 협상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갔지만, 미국과 이승만 정부와의 사이는 또 다른 고비를 향해 뒤틀려 갔다. 이승만은 4월5일 “판문점에서 무엇이 일어나든 관계없이 우리의 목표는 똑같다. 우리의 변함없는 목표는 한국을 남으로부터 압록강까지 통일시키는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이승만은 아이젠하워에게 “유엔군사령부가 중국군이 압록강 이남에 잔류하는 것을 허용하는 데 동의한다면, 우리는 한국군을 유엔군사령부에서 철수시킬 것이며 단독으로 싸울 것”이라는 내용의 최후 통첩장을 보냈다. ●아이젠하워 한때 李 제거 계획 워싱턴은 이승만을 휴전협상의 훼방꾼이자 위협세력으로 간주했다. 특유의 허세라고 판단하면서도 극단적인 조치로까지 몰고 갈 것으로 예측했다. 달래기에 나섰지만 이승만은 클라크 사령관과의 회담에서 “당신들은 모든 유엔군, 모든 경제원조를 철수시킬 수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것이다. 처음부터 민주주의가 우리를 도울 것이라고 의존한 것이 우리의 실수였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협력하겠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면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승만은 6월6일 ‘선(先) 한미방어조약 체결, 후(後) 유엔군과 공산군의 상호철군’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우리는 반쪽 휴전이나 평화보다는 싸움을 택한다.”라는 예의 벼랑 끝 외교전을 펼쳤다. 클라크 사령관은 “이 대통령은 송환 불원 한국인 포로를 경고 없이 석방할 수 있다.”는 예언에 가까운 메시지를 워싱턴에 보냈다. 포로경비부대 대부분이 한국군으로 구성됐기 때문에 유엔군은 이를 막을 수단이 없었다. 클라크 사령관의 예언대로 이승만이 반공포로를 석방하자 아이젠하워는 이승만 제거를 검토했다. 미국 수뇌부는 당시 한국에 임시군사정부를 수립하는 극비의 군사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 반공포로 석방 다음날인 6월19일 자 미국 국가안보회의 비망록에 따르면 아이젠하워는 “위험을 없애는 가장 빠르고 유일한 길은 쿠데타”라면서 “이는 확실히 고려해볼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군사자문 기구인 합참은 1952년부터 쿠데타 계획을 세워 놓았다. 합참으로부터 지시를 받은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은 6월27일 벤플리트 장군에게 이 계획을 통보했다. 한국육군과 참모총장은 유엔군사령부에 충성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밀해제된 미국 합참보고서에 따르면 “이 대통령을 어떤 구실을 붙여 서울로 초대한다. 유엔군사령부가 부산으로 이동하여 주요 지지자들을 체포하고, 주요시설을 방호하며 한국육참총장을 통하여 기존 계엄령을 장악한다. 이 대통령에게 계엄령을 종결토록 요구한다. 만일 거부하면 외부와의 통신을 차단한 채 연금하고, 요망되는 포고령은 협조적인 것으로 예상하는 국무총리가 발표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李 재선 이후 美와 화해모드 다행히 워싱턴의 친위 쿠데타계획은 불발됐다. 현실론을 내세운 참모들의 설득으로 강력한 경고수준에서 그쳤다. 한국 국회도 대통령 직선제 헌법개정을 승인했다. 계엄령은 해제됐고 이승만은 제2대 대통령으로 재선에 성공하면서 화해모드로 전환됐다. 미국은 손을 들었다. 미국은 휴전동의를 얻고, 이승만은 그 대가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는 보호우산을 제공받는 선에서 양국의 갈등은 마무리됐다. 아이젠하워는 “한국의 통일을 정치적인 수단으로 계속 추구한다. 휴전협정 수락 직후에 상호방위조약을 협상한다. 전후 경제원조를 계속한다.”라는 세 가지 조치를 약속했다. 이승만은 극단적인 휴전반대와 반공포로 석방이라는 초강수를 통해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이끌어냈다. 허물도 컸지만, 오늘의 한국이 있게 한 주춧돌을 놓았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한국전쟁의 산물인 한·미동맹은 단순한 양자동맹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안전판 역할을 하는 지역동맹”이라고 평가했다. 러시아를 저지하고, 중국을 봉쇄하면서, 일본을 견제하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동맹이라는 것이다. 노주석 논설위원·윤샘이나기자 joo@seoul.co.kr
  • [實錄, 한국전쟁] (4)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동상이몽

    [實錄, 한국전쟁] (4)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동상이몽

    휴전협상을 앞두고 스탈린과 마오쩌둥 사이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있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지 일 년째 접어들자 기력이 쇠한 중국은 휴전을 꾀했다. 김일성도 정전을 원했지만, 스탈린의 생각은 달랐다. 유엔에 휴전을 발의하는 한편 남한 내 빨치산 활동 강화 등 적극적인 군사 반격을 재촉했다. ●“스탈린, 끝없는 마오요구에 짜증” 베이징은 휴전교섭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달라고 모스크바에 요구했다. 모스크바는 오히려 한 발을 뺐다. 마오쩌둥이 휴전을 주도하도록 권한을 위임했다. 토르쿠노프 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 총장은 “소련이 전쟁의 주체자가 아님을 보여주려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휴전협정 문제가 처음 거론된 1951년 6월5일부터 유엔주재 소련대표 말리크가 정전교섭을 제안한 6월23일까지 모스크바와 베이징 그리고 평양 간 비밀문서의 교환이 급증했다. 마오쩌둥의 정전제안에 대해 스탈린의 첫 반응은 신통찮았지만, 김일성과 가오강 중국 동북성 서기를 만나고 나서 태도가 달라졌다. 스탈린은 6월13일 마오쩌둥에게 “정전이 현시점에서 타당하다고 판단했다.”고 긍정적인 내용의 친서를 보냈다. 두 공산 거목이 주고받은 서신의 형식에도 변화가 엿보인다. 모스크바 주재 대사나 베이징 주재 대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주고받았다. ‘경애하는 스탈린 동지’ 같은 서두는 생략됐고, ‘볼셰비키적 경의를 표하며 마오쩌둥’이라고 꼬박꼬박 썼던 마무리도 ‘마오쩌둥’이라는 이름 석 자를 적는 것으로 끝냈다. 내용적으로도 마오쩌둥의 자기주장이 강해졌다. 휴전협정 장소가 개성으로 정해진 것은 마오쩌둥의 아이디어였다. 마오쩌둥은 스탈린에게 보낸 1951년 6월30일자 친서에서 “다음 몇 가지 문제에 관해 귀하에게 나의 의견을 전한다. 검토 후 김일성에게 직접 지시하시기 바란다.”면서 “회담 장소로 미국 리지웨이(유엔군 총사령관)는 원산항을 제안했지만, 북한 해군의 요새기지인 원산항에 적의 함정을 상륙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내 생각에는 38선 부근의 개성이 적당하다고 본다. 회담개시는 7월15일로 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같은 날 스탈린은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 중지와 휴전을 포함한 모든 평화적 제안에 우리는 동의한다. 회담장소는 38선 인근의 개성지구를 제안한다. 귀하가 동의한다면 7월10일부터 15일 사이에 귀측 대표단과 만날 것이다.”라는 내용의 유엔군에 보내는 회답문을 직접 작성해 마오쩌둥에게 보낸 친서에 동봉했다. 마오쩌둥의 의견을 100% 받아들였다. 스탈린은 또 이 친서에서 “모스크바가 휴전교섭을 지시해야 한다는 제안은 잘못된 생각이며 그럴 필요조차 없다. 교섭을 지휘할 사람은 바로 마오쩌둥 귀하 자신이다. 우리는 개별 문제에 대해 조언할 뿐이다. 우리는 김일성과 접촉할 수 없다. 귀하가 직접 김일성과 접촉해야 한다.”고 썼다. 스탈린은 휴전교섭 책임의 배턴을 마오쩌둥에게 넘겨버렸다. 이후 스탈린은 중국이 요청한 군사고문 파견과 6억루블의 군사차관에는 동의했지만, 추가 고문파견과 장비공급은 거부했다. 김일성과 스탈린 마오쩌둥 사이에 오간 1951년부터 1953년까지의 기밀문서를 분석한 토르쿠노프 총장은 “휴전교섭 과정에서 스탈린은 마오쩌둥의 끊임없는 지원요구에 짜증을 냈고, 분노마저 느끼는 듯했다.”고 말했다. 휴전교섭의 열쇠는 마오쩌둥이 쥐고 있었다. 스탈린에게 정기적으로 진행상황을 보고하고, 충고도 받았지만 형식적이었다. 김일성은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렀다. 박헌영은 “북한 인구의 10%가 기아상태에 있다.”면서 조기정전을 요청했다. 다급해진 김일성도 ‘유엔군 측의 요구를 다 수용하겠다.’고 나섰지만, 스탈린은 불리한 전쟁종결을 원치 않았다. 나약한 보습을 보여 정치적 불이익을 가져왔다고 김일성을 나무랐다. ●마오, 스탈린에 협상상황 형식적 보고 스탈린은 마오쩌둥에게 보낸 1951년 7월20일자 전문에서 “휴전제안에 동의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전쟁종결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썼다. 이 같은 견해는 스탈린이 사망한 1953년 3월까지 유지됐다. 3월5일 독재자가 죽자 소련 내각회의는 전쟁을 종결짓는 쪽으로 한반도정책을 바꿨다. 이승만 대통령의 반대에도 휴전협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 대통령은 6월18일 반공포로 2만 7000명을 석방하는 초강수를 뒀지만, 전쟁을 종식하고자 하는 중국과 미국의 의사를 꺾을 수는 없었다. 한국전쟁은 미국과 러시아, 중국, 일본, 타이완에 각각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영어권 학자들은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 ‘원치 않은 전쟁’이라고 부른다. 미국의 서점에서 베트남전쟁에 관한 책은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지만, 한국전쟁에 관한 책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콜디스트 윈터’를 쓴 퓰리처상 수상작가 데이비드 핼버스탬은 “책을 저술하던 2004년 미국 플로리다의 한 도서관 서가에 베트남전 관련 책은 88권이나 꽂혀 있었지만 한국전쟁 관련 서적은 4권뿐이었다.”고 술회했다. 영화도 그랬다. 미국이 만든 전쟁영화의 무대는 대개 베트남 정글이거나 사이공 거리였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 중 인기를 끈 작품은 ‘M.A.S.H’ 정도에 불과했다. 그나마 80년대 이후에는 사라졌다. 한국전쟁에서 3만 3000명의 미군이 희생됐고, 10만 명이 넘는 상이군인이 발생했지만, 미국의 영광은 별것이 없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낳은 최고의 전쟁영웅 맥아더를 추락시킨 것도 한국전쟁이었다. 그래서 잊고 싶은지도 모른다. 한국전쟁을 총지휘한 스탈린의 나라, 옛 소련도 마찬가지였다. 소련은 2차 대전 종식과 함께 38선 이북을 점령해 공산 이데올로기를 수혈시켰다. 항일무장 게릴라 지휘관 김일성을 북한의 지도자로 둔갑시켰다. 막대한 군수물자를 지원했다. 하지만 전쟁은 무승부로 종결됐다. 무엇보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부동항을 가진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중국으로 넘어간 것이 뼈아팠다. ●타이완 ‘戰禍’ 모면… 또 다른 수혜국 굳이 한국전쟁의 승자를 따지자면 중국을 거론할 수 있다. 더 엄밀하게 말하면 마오쩌둥이었다. 냉전체제 아래에서 중국은 한국전쟁의 의미를 내전으로 축소했고, 마오쩌둥과 중국의 한국전쟁 관련성을 부인했다. 80년대 말까지 무려 40년 동안 감췄다. 중국과 마오쩌둥의 역할은 90년대 들어 냉전체제가 해체되면서 공개된 러시아와 중국의 비밀문서에서 속살을 드러냈다. 한반도를 무대로 치른 미국과 중국의 전쟁이었다. 중국은 한국전쟁에 한때 130만명의 대군을 일시에 참전시켰다. 3년간 연인원 500만명을 동원했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파병이다. 갓 태어난 신생 사회주의국가 중국은 비록 미국을 이기지는 못했지만, 지옥을 보여줬다. 크리스마스 이전에 전쟁을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가고자 계획했던 연합군의 ‘크리스마스 공세’는 미국의 전쟁사에서 가장 처참한 패배 중 하나로 기록됐다. 한국전쟁 최대의 수혜국은 일본이었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학 명예교수는 “일본은 전쟁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참전해 경제적 이익을 챙겼다.”고 분석했다. 전쟁 기간 중 일본은 군사기지 역할을 했으며,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된 미군 전차상륙함(LST)은 대부분 일본인 승무원에 의해 조정됐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알아차린 미국의 전후 복구자금은 대부분 일본으로 흘러들어 갔다. 한국경제는 일본 예속형으로 변했다. 일본의 경제부흥에는 한국전쟁의 공이 지대했다. 타이완도 수혜국으로 볼 수 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한국전쟁을 대체하는 또 다른 전쟁에 휩싸였을지도 모른다. 마오쩌둥과 중국은 한반도보다 타이완 점령을 최우선순위에 두고 있었다. 마오쩌둥은 한반도에서 3년 동안 발이 묶였고, 힘을 소진하는 바람에 통일의 대업을 이루지 못했다.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1950년 6월27일 7함대를 출동시켜 타이완해협을 봉쇄한 것도 중국 참전의 한 요인이었다. 해군력과 공군력이 없다시피 한 중국의 처지에서는 불리한 양안(兩岸)전쟁을 치르는 것보다 한반도에서 보병으로 싸우기로 작정한 것이다. 미국은 1941년부터 1949년까지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를 재정적, 군사적으로 지원했다. 당시 워싱턴에는 중국의 공산화에 반대하는 세력이 있었다. 이른바 ‘차이나 로비’였다. 워싱턴 정가에 영향을 미치는 외국단체 중에서 가장 활발했다. 중국 국민당 정부의 존재감은 중국보다 워싱턴에서 오히려 더 클 정도였다. 장제스의 희망은 미국의 지원을 얻어 공산당을 밀어내고 본토로 귀환하는 것이었다. 장제스는 군대를 한반도에 파견해 중국과 싸우겠다고 큰소리쳤다. 한국전쟁 덕분에 타이완은 호전적인 마오쩌둥과의 전화(戰禍)를 피할 수 있었다. 한국전쟁의 공산 측 두 주역, 스탈린과 마오쩌둥은 같은 전쟁을 치르면서 다른 꿈을 꿨다. 상호 의견교환이 별로 없던 두 지도자 사이에서 한국전쟁이라는 공통관심사가 생기면서 교류가 활발해졌다. 그러나 목적은 달랐다. 스탈린은 전지전능한 영향력의 유지를 원했지만, 마오쩌둥은 한반도와 타이완, 베트남으로부터 가해지는 미국의 위협으로부터 신생 조국을 지켜내고 싶었다. 연합군의 파상공세로 궁지에 몰린 북한이 9월28일 노동당 중앙정치국 긴급회의를 열어 소련과 중국에 지원을 요청했다. 10월1일 아침, 스탈린은 마오쩌둥과 김일성에게 긴급 메시지를 타전했다. 김일성에게는 “중국의 동지와 협의하라.”고 했다.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에게는 “조선의 동지들이 절망적인 곤경에 빠졌다. 지원군을 보낼 수 있다면 속히 38선으로 보내야 할 것이다. 이 건에 관하여 나는 조선의 동지에게는 조금도 언급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전할 생각이 없다.”라고 썼다. ●中 참전번복… 체면 구긴 스탈린 노회한 스탈린은 김일성에게는 ‘마오쩌둥에게 말하지 않겠지만’이라고 했고, 마오쩌둥에게는 ‘김일성에게 알리지 않겠지만’이라고 전했다. 도요가쿠엔 대학 주지안롱 교수는 “중국과 북한을 분리시켜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고자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군을 출병시킨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이다. 중국의 참전결정이 두 번, 세 번 번복되면서 스탈린의 체면이 구겨진 것도 사실이다. 10월12일부터 14일까지 스탈린이 김일성에게 보낸 전보내용이 ‘중국이 참전한다.’ ‘참전을 거부했다.’ ‘참전이 최종 결정됐다.’는 식으로 계속 변경됐다. 비록 목적과 계산법은 달랐지만, 약속을 지킨 쪽은 마오쩌둥이었다. 독자적 참전 결단에 따라 스탈린은 중국과 마오쩌둥을 다시 보게 됐다. 중국은 공산주의국가의 ‘둘째 형’으로 당당하게 자리매김했다. 소련은 중국에 공군 사단을 배치해 본토방위에 대한 염려를 놓게 했다. 1953년부터 시작된 중국의 1차 5개년 계획에 소련의 전폭적인 지원이 이어졌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이대통령 국정연설] 세종시 수정안 동력 상실… 원안 공사도 로드맵 다시 세워야

    [이대통령 국정연설] 세종시 수정안 동력 상실… 원안 공사도 로드맵 다시 세워야

    이명박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국회 표결처리를 요청하면서 ‘세종시 원안’의 부활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세종시를 둘러싼 논란이 종결되려면 ‘원안 추진’이나 ‘원안+α 추진’ 등의 확실한 대안이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14일 정치권과 관련 부처 등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세종시 논란’ 조기종결 입장에도 불구하고 그 파장은 어느 정도 이어질 전망이다. 관련 부처들은 “(대통령의) 정확한 의중을 파악해야 한다.”며 일단 유보적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국토해양부의 한 고위 관계자도 “세종시는 정치적으로 워낙 꼬여 있어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다.”고 전했다. 국토부는 국회가 원안, 수정안, 원안+α 가운데 여론을 수렴해 방향을 정해주면 이를 토대로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지난 3월22일 국회에 넘겨진 세종시 수정안 관련법은 모두 5건. ‘연기·공주지역 교육과학중심경제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과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 따른 혁신도시 건설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조세특례제한법’, ‘기업도시개발 특별법’,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 등이다. 업무 추진 속도만 놓고 본다면 수정안을 포기할 경우 원안 추진이 가장 효율적이다. 수정안이 국무회의 의결이나 상임위 표결, 본회의 표결 등을 거쳐 폐기되면 원안은 자동으로 재개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원안에는 이주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지원과 일자리 마련 등의 대책이 없다.”면서 “다시 ‘원안+α’의 법안을 마련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1단계(2007~2015년), 2단계(~2020년), 3단계(~2030년)로 나눠 진행될 예정이던 세종시 건설은 지난해 10월 세종시 수정 방침이 나오면서 주요 사업이 중단된 상태다. 원안에서 1-1구역에 들어서기로 했던 국무총리실 청사는 수정안에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본부로 바뀌어 23.7%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부처가 입주할 1-2구역은 지난해 착공 예정이었지만 공터로 남아 있다. 다른 부처의 이전 부지도 기반공사만 마친 상태다. 수정안이 폐기되면 ‘세종시 로드맵’은 원점에서 다시 논의돼야 한다. 국토부는 세종시를 제외하고 10개 혁신도시 건설과 6개 기업도시 조성 사업은 차질없이 진행하기로 했지만, 세종시 수정안과 함께 국회에 넘겨진 혁신도시·기업도시 관련법 개정안도 모두 수정안을 전제로 만들어진 법안들이기 때문이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강남 보금자리 당첨 40대가 최다

    2차 보금자리지구 6곳 가운데 ‘알짜’로 꼽혀 높은 사전예약 경쟁률을 보인 서울 내곡 및 세곡2지구 당첨자 중에 40대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 따르면 3자녀·노부모·신혼부부·생애최초 특별공급과 일반공급 등 당첨자 1273명의 연령은 40대가 483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30대 476명 ▲50대 153명 ▲60대 67명 ▲20대 66명 ▲70대 이상 28명 등의 순이었다. 3자녀 특별공급 당첨자(146명)의 평균 연령은 만 41세였고, 자녀수는 5명 이상이 14명, 4명이 79명, 3명이 53명이었다. 최대 자녀수는 7명으로 조사됐다. 무주택 기간은 10년 이상 100명, 5년 이상 10년 미만 41명, 5년 미만 5명이다. 노부모 특별공급 당첨자(71명)의 평균 나이는 만 43세였으며 최고령은 60세, 최연소는 33세로 나타났다. 서울거주 당첨자(994명)의 청약통장 납입은 평균 124회, 1178만 6000원이고, 최고액은 2050만원(205회), 최저액은 940만원(94회)이었다. 신혼부부 특별공급에 당첨된 221명의 평균 나이는 32세(최고령 47세, 최연소 22세)이다. 일반공급 청약통장 커트라인은 서울 1213만 5000원, 경기 1150만원 등이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사설] 또 도진 북한의 ‘서울 불바다’ 협박

    북한이 ‘서울 불바다’를 거론하면서 위협했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그제 “전 전선에서 반공화국 심리전 수단을 흔적 없이 청산하기 위한 전면적 군사적 타격행동에 진입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의 ‘중대 포고’를 발표했다. 총참모부는 “군사적으로 심리전이 전쟁 수행의 기본작전 형식의 하나라는 점에서 반공화국 심리전 수단 설치는 우리에 대한 직접적 선전포고”라며 “우리의 군사적 타격은 비례원칙에 따른 1대1 대응이 아니라 서울의 불바다까지 내다본 무자비한 군사적 타격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위협했다. 우리 군 당국이 최근 군사분계선(MDL) 일대 11개소에 대북 심리전 방송 재개를 위한 확성기를 설치한 것과 관련한 북측의 반응이다. 북측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공개적으로 협박한 것은 1994년 제8차 남북실무접촉에서 박영수 대표의 발언 이후 16년 만이다. 북측은 3월26일 천안함을 폭침시킨 이후 아직도 사과나 사죄는 한 마디도 없이 이렇듯 적반하장식으로만 나오고 있다. 이 와중에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인 한상렬 목사가 그제 당국의 허가 없이 평양에 도착한 것으로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보도했다. 통일부는 천안함 사태에 따른 대북 조치의 하나로 지난달 24일부터 개성공단과 금강산 지역을 제외한 방북을 허가하지 않고 있다. 한 목사가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남북이 첨예하게 맞선 상황에서 당국의 허락도 받지 않고 방북한 것은 경솔하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누구든 북측에 의해 악용될 소지가 있는 언행은 자제해야 한다. 정부는 북한의 상투적인 벼랑 끝 전술과 같은 위협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군은 MDL 일대에서의 북한군 특이 동향을 면밀히 살피는 등 감시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북한군이 도발하면 몇 배로 응징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최전방 부대에서는 우발적으로 충돌할 가능성도 있는 만큼 보다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일반적인 예측이 불가능한 집단인 북한은 또 도발할지도 모른다. 북한이 도발할 경우의 대비는 완벽하게 하되 확성기를 사용한 대북방송 재개 시기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조치를 지켜보는 등 유연하고 신축적인 대응도 필요하다.
  • 北, 심리전 대응 “서울 불바다” 위협 속내 뭘까

    北, 심리전 대응 “서울 불바다” 위협 속내 뭘까

    우리 군이 천안함 사태에 따른 대북조치로 군사분계선(MDL) 일대에 대북 심리전 방송을 위한 대형 확성기를 실제로 설치하자 북한이 ‘서울 불바다’라는 표현을 동원하면서 군사적 대응을 경고했다. ●“전면적 군사적 타격행동 진입” 북한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인민군 총참모부는 12일 ‘중대포고’를 통해 “전 전선에서 반공화국 심리전 수단을 흔적 없이 청산해 버리기 위한 전면적 군사적 타격행동에 진입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총참모부는 “괴뢰들(남한)은 군사분계선 일대의 11개소에서 이미 심리전용 확성기를 설치했다.”면서 “군사적으로 심리전이 전쟁 수행의 기본작전 형식의 하나라는 점에서 반공화국 심리전 수단 설치는 우리에 대한 직접적 선전포고”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군사적 타격은 비례적 원칙에 따른 1대1 대응이 아니라 서울의 불바다까지 내다본 무자비한 군사적 타격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위협했다. ●軍 “북한군 특이동향 포착 안돼” 이에 우리 군은 “군사분계선 일대의 북한군 특이동향은 포착되지 않고 있다.”면서도 “우발적인 충돌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현재 지휘관들은 정위치에 대기하며 대비태세를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합참 관계자는 “북한군의 이번 ‘중대포고’는 지난달 24일 인민군 전선중부지구사령관 명의의 ‘공개 경고장’의 연장선상으로 주체만 바꿔 가며 유사한 내용을 반복하고 있다.”면서 “포고문의 ‘서울 불바다’는 수사적 표현으로 보이지만 정확한 의도를 분석 중”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서울 불바다 발언을 엄포용으로 간주하면서도 도발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못하는 분위기다. 전성훈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서울에 포격을 하려면 미사일이나 장거리 야포로 쏴야 하기 때문에 쉽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여러 상황에 비춰 도발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천안함 사태가 설마 하는 상황에서 일어났듯이 안심은 금물이라는 얘기다. 전 위원은 특히 “북한의 위협은 정부와 민간을 이간하려는 측면이 강하다.”면서 “남한 내 국론이 분열되면 북한은 그 틈을 노려 도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미사일 공격 같은 전면전 대신 도심 테러와 같은 도발을 기도할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정부 소식통은 “남북 간 군사력의 차이와 미국, 중국 등 강대국이 연계돼 있다는 점에서 전면 도발은 자해행위나 다름없기 때문에 천안함 사태처럼 은밀한 방식으로 도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계했다. ●“휴전선 일대 전광판 설치 재검토” 한편 국방부는 대북 심리전을 위해 군사분계선 일대 10여곳에 전광판을 설치하려던 계획을 비용 대비 효과가 적다는 이유로 재검토하기로 했다. 관계자는 “전광판 하나 설치하는데 13억~15억원 정도가 든다.”면서 “시내에서 흔히 보는 전광판 화면은 멀리서는 보이지 않아 전방 지역에선 효과가 없다.”고 했다. 김상연·오이석기자 carlos@seoul.co.kr
  • 北, ‘서울 불바다’ .. 16년만의 경고

    북한이 16년 만에 ‘서울 불바다’를 운운하며 강력한 군사적 대응을 경고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가 12일 ‘괴뢰들의 반공화국 심리전 재개에 전 전선에서 전면적 군사적 타격으로 대응할 것이다’라는 제목의 ‘중대포고’를 발표했다고 전했다. 총참모부는 포고에서 “경고한 대로 전 전선에서 반공화국 심리전 수단을 흔적 없이 청산해 버리기 위한 전면적 군사적 타격행동에 진입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괴뢰들은 군사분계선 일대의 11개소에서 이미 심리전용 확성기를 설치했다.”고 밝혔다. 이어 포고는 “심리전 재개 시도는 6.15 공동선언과 그에 기초해 작성된 북남군사적 합의에 대한 노골적 파기행위로 우리의 존엄과 국가이익을 침해하는 특대형 도발”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또한 “군사적으로 심리전이 전쟁 수행의 기본작전 형식의 하나라는 점에서 반공화국 심리전 수단 설치는 우리에 대한 직접적 선전포고”라고 명시했다. 특히 총참모부는 “우리의 군사적 타격은 비례적 원칙에 따른 1대 1 대응이 아니라 서울의 불바다까지 내다본 무자비한 군사적 타격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로써 북한은 지난 1994년 제8차 남북실무접촉 이후 16년 만에 ‘서울 불바다’ 발언을 다시 꺼내들었다. 당시 북측 박영수 대표가 ‘서울 불바다’ 발언을 하자 정부는 이듬해 발간한 국방백서에서 북한을 주적으로 처음 명기한 바 있다. 앞서 우리 군당국은 천안함 사건 이후 대북조치 일환으로 최근 MDL 인근 최전방 지역을 비롯해 서해 북단 등 11곳에 대북 심리전용 확성기 설치를 마쳤다. 한편 합동참모본부는 북한군 총참모부의 ‘중대포고’ 발표와 관련해 “MDL 일대의 북한군 특이동향은 포착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북한이 도발할 경우 몇배로 응징할 준비태세가 갖춰져 있다.”면서 “북한군의 도발 징후 여부에 대해 한미 연합전력으로 감시체계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신문NTN 김수연 인턴기자 newsyouth@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北 “南 심리전 재개시 서울 불바다”

    北 “南 심리전 재개시 서울 불바다”

    북한이 16년 만에 ‘서울 불바다’를 운운하며 강력한 군사적 대응을 경고했다.조선중앙통신은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가 12일 ‘괴뢰들의 반공화국 심리전 재개에 전 전선에서 전면적 군사적 타격으로 대응할 것이다’라는 제목의 ‘중대포고’를 발표했다고 전했다.총참모부는 포고에서 “경고한 대로 전 전선에서 반공화국 심리전 수단을 흔적 없이 청산해 버리기 위한 전면적 군사적 타격행동에 진입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괴뢰들은 군사분계선 일대의 11개소에서 이미 심리전용 확성기를 설치했다.”고 밝혔다.이어 포고는 “심리전 재개 시도는 6.15 공동선언과 그에 기초해 작성된 북남군사적 합의에 대한 노골적 파기행위로 우리의 존엄과 국가이익을 침해하는 특대형 도발”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또한 “군사적으로 심리전이 전쟁 수행의 기본작전 형식의 하나라는 점에서 반공화국 심리전 수단 설치는 우리에 대한 직접적 선전포고”라고 명시했다.특히 총참모부는 “우리의 군사적 타격은 비례적 원칙에 따른 1대 1 대응이 아니라 서울의 불바다까지 내다본 무자비한 군사적 타격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이로써 북한은 지난 1994년 제8차 남북실무접촉 이후 16년 만에 ‘서울 불바다’ 발언을 다시 꺼내들었다. 당시 북측 박영수 대표가 ‘서울 불바다’ 발언을 하자 정부는 이듬해 발간한 국방백서에서 북한을 주적으로 처음 명기한 바 있다.앞서 우리 군당국은 천안함 사건 이후 대북조치 일환으로 최근 MDL 인근 최전방 지역을 비롯해 서해 북단 등 11곳에 대북 심리전용 확성기 설치를 마쳤다.한편 합동참모본부는 북한군 총참모부의 ‘중대포고’ 발표와 관련해 “MDL 일대의 북한군 특이동향은 포착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그러면서도 “북한이 도발할 경우 몇배로 응징할 준비태세가 갖춰져 있다.”면서 “북한군의 도발 징후 여부에 대해 한미 연합전력으로 감시체계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사진 = KBS 1TV 뉴스 방송화면 캡처서울신문NTN 뉴스팀 ntn@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강남 2차 보금자리 최저 당첨선 1150만원

    강남 2차 보금자리 최저 당첨선 1150만원

    지난 5월 실시된 2차 보금자리주택지구 사전예약에서 서울 강남권 일반공급 청약저축액 커트라인이 84㎡의 경우 1150만~1749만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9월 강남권 시범지구 사전예약 커트라인과 비교해 최저 당첨액은 400만원가량 낮아졌다. 국토해양부는 11일 서울 세곡2·내곡, 남양주 진건, 구리 갈매, 부천 옥길, 시흥 은계 등 2차 보금자리지구 6곳에 대한 사전예약 당첨자 1만 5544명을 발표한다. 이번 사전예약은 평균 2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관심을 모은 서울 강남권 2개 지구 가운데 세곡2지구가 내곡지구보다 경쟁률과 청약저축액 커트라인이 모두 높았다. 청약저축액이 많은 순으로 당첨자를 가리는 일반공급의 경우 세곡2지구는 12.4대 1, 내곡지구는 9.8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내곡지구가 세곡2지구보다 서울 강남에 가까운 만큼 경쟁률이 낮을 것으로 예상된 세곡2지구에 지원자들이 대거 몰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84㎡의 강남권 최고 커트라인인 1749만원(1단지)과 최저 커트라인인 1150만원(3단지)은 모두 세곡2지구에서 나왔다. 최저 커트라인은 지난해 시범지구 사전예약 때 최저 커트라인인 서초 우면지구의 1556만원보다 400만원가량 낮은 것이다. 3자녀 특별공급은 강남권 2개 지구 모두 지난해 시범지구와 비슷한 85점(59㎡), 90점(84㎡)을 기록했다. 노부모 특별공급에선 청약저축 최저 커트라인이 내곡지구 3단지 84㎡의 940만원이었다. 신혼부부 특별공급 당첨자는 결혼 3년 이내,2자녀 이상을 둔 가구 중 추첨으로 결정됐다. 경기지역 4개 지구 가운데 사전예약 신청이 공급가구보다 많았던 곳은 구리 갈매와 부천 옥길지구 2곳 뿐이었다. 구리 갈매의 청약저축 최저 당첨선은 S1단지 84㎡의 37만원, 최고 당첨선은 B1단지 84㎡의 690만원이었다. 부천 옥길은 각각 24만원, 990만원이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한국전쟁 60주년 기획] “통일은 결코 무력으로 안 된다”

    [한국전쟁 60주년 기획] “통일은 결코 무력으로 안 된다”

    한국사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을 일으켜 한민족의 분단에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역사 너머로 사라졌다. 그러나 민족의 통일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출판물과 영화로 신세대에 전해지고 있다. 전쟁이 발생한 지 60년이 지났는데도 한반도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폭발 가능성이 큰 곳이다. 불안정한 휴전하에서 남북한은 준전시 상태로 유지됐다. 금방이라도 군사적 충돌이 재현될 것 같았지만 위기를 극복했다. 그동안 남한에서는 경제발전이 우선, 군사문제는 이차적인 순위로 밀려났고, 북한은 선군 정치로 일관해 왔다. 지난 세기 러시아도 소비에트시대의 군사적 분쟁에 휩싸여 있었다. 러시아사람들 사이에서도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이 잊혀져 가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 파견됐던 옛 소련 공군 출신과 한반도의 현황을 좀 더 깊이 연구해 보려고 하는 학자들만이 잊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 서방세계의 정보를 자유롭게 얻는 러시아 신세대는 한국전쟁을 북한의 돌발적인 남침으로 알고 있다. 그들은 한국전쟁을 그 전쟁에서 승리해 공산주의 체제를 한반도의 남쪽까지 확산시키고 미국을 중국과의 군사대결에 끌어넣는다는 것에 목적을 두고 스탈린이 직접 주도해 행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대부분의 러시아 전문가들은 한반도에서 발생한 한국전쟁은 외부적인 영향보다도 내부적인 요소가 더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필자는 더 나아가서 제1차 대전의 마지막 단계에 일어난 제정 러시아 붕괴의 결말이었던 적군(赤軍)과 백군(白軍) 간에 벌어진 내전과 제3차 전쟁의 서곡이 충분히 될 수 있었던 남북한 간 동족상잔의 유혈전쟁, 그 두 전쟁 사이에 일종의 유사성이 있다고 본다. 결국은 러시아에서 적색테러와 백색테러, 한국의 공산테러와 반공테러 등은 우리 양국에서 시민적 자유와 민주사회의 형성과정을 수십 년 거꾸로 돌려놓았다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유사성이 또 하나 있다. 러시아는 제정 러시아가 남긴 폐허 위에서 일어나 20년 만에 세계 역사상 가장 유혈적인 제2차 대전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며, 반세기에 걸쳐 미국과의 군사 정치적 세력균형을 유지해온 강대국으로 변했다. 전후 한국에서도 같은 능력을 볼 수 있다. 3년 동안의 한국전쟁으로 수백만 명의 희생자를 내고 전 국토가 폐허가 되었다. 예를 들어 민간인의 피해는 여러 통계에 의하면 150만명 내지 400만명에 달해 제일 컸다. 제2차 대전 당시 소련의 인구손실과 대비할 수 있다. 남북한은 경제적으로도 큰 피해를 보았다. 남한의 경제적 피해 규모는 30억달러로 평가되었으며 북한은 4200억원이었다. 북한의 피해는 남한보다 훨씬 더 컸다. 왜냐하면 2년 동안 미 공군의 공습으로 북한의 경제기반이 깡그리 파괴됐기 때문이다. 남한은 전쟁의 피해에도 단 한 세대 만에 아시아 국가 중에 일본에 버금가는 산업대국이라는 지위와 세계 12대 경제 강대국 대열에 드는 국가로 성장했다. 북한의 발전은 그다지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자기보존과 생존에 있어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고, 핵클럽에 사실상 가입을 선언한 상태다. 올해는 한국전쟁 발발 60주년과 동시에 한국전쟁에 개입했던 러시아와 수교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다. 한반도에는 1950년 전쟁 직전의 긴장이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통일은 무력으로 할 수 없다는 교훈을 한국사람 자신들이 잘 알고 있다. 물론 그동안 힘의 배분이 변화되어 북한과 남한의 경제력과 군사력은 예전과 비교해 뒤바뀌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60년 전에 무력통일을 실패한 대가로 수많은 희생과 고통을 치러야 했다면 오늘날은 휴전선 쌍방에서 대량 살상무기를 포함한 군비의 축적규모를 살필 때 어떤 전쟁 시나리오도 전쟁이 발생하게 된다면 아예 한민족의 존재 여부 자체가 의심스럽게 될 확률이 높다고 볼 수밖에 없다. 러시아로서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극동에 평화가 유지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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