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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첫 여성 국무장관이 된 난민 소녀, 올브라이트 별세

    美 첫 여성 국무장관이 된 난민 소녀, 올브라이트 별세

    1937년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난 유대인 소녀, 마리 야나 코르벨로바는 일찌감치 난민 신세가 됐다. 두 살 무렵 독일 나치의 눈을 피해 영국 런던으로 도망치고 천주교로 개종까지 했지만 불행은 이어졌다. 체코의 스탈린주의자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반공산주의 외교관 아버지 요제프 코르벨은 가족을 이끌고 미국으로 탈출했다. 11살의 나이에 미국의 품에 안긴 소녀는 미국식 교육을 받으며 이런 생각을 키웠다. ‘강한 미국이 유럽을 해방시켰다. 미국은 세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국가다.’ ● 나치와 공산당 피해 미국으로 이주당차고 똑똑한 소녀는 1997년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이 됐다. 훗날 이름을 개명한 매들린 올브라이트다. 유리천장을 깨고 ‘금녀의 공간’에 들어가 미국 외교정책을 휘어잡은 그는 걸크러시의 원조였다. 악명 높은 독재자들을 적이자 친구로 두었던 올브라이트가 23일(현지시간)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불과 한 달 전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판하는 칼럼을 뉴욕타임스에 써보낼 정도로 열정을 불태웠지만 지병인 암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 외교계 거두 브레진스키의 제자로 백악관 입성명문 웰즐리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부유한 신문 상속인 조셉 메딜 패터슨 올브라이트와 결혼 후 성을 바꾼 그는 워싱턴 조지타운의 사교계에 영향력 있는 리더로 주목받았다. 컬럼비아대학원에서 외교계의 거두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밑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땄다. 1976년 지미 카터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발탁된 브레진스키를 따라 백악관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빌 클린턴 행정부 1기 때 유엔 주재 대사를 지냈고, 2기 때 제64대 국무장관에 올랐다. 그의 인준안은 상원에서 99대 0,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 동유럽 나토 가입 추진…서방의 동진 이끌어거침없는 말투와 저돌적인 외교 스타일은 올브라이트의 전매특허였다. 1999년 세르비아의 독재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의 무슬림 인종청소를 저지하기 위해 클린턴을 강하게 압박해 참전을 이끌어냈다. 당시 미국 합참의장인 콜린 파월에게 “쓰지도 않을 거면 당신이 항상 강조하는 이 훌륭한 군대를 뭐하러 갖고 있나”라고 쏘아붙였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체코와 폴란드, 헝가리 등 동유럽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승인한 것은 올브라이트의 주요한 외교적 업적으로 꼽힌다. 오늘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구실이 된 나토의 동진, 즉 서방 동맹의 구소련 진출의 시작점에 그가 있었던 셈이다.● 미 장관으로 처음 북한 땅 밟아 올브라이트는 북미 관계 해빙기를 이끈 장본인이기도 했다. 2000년 10월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비핵화를 논의했다. 실패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올브라이트는 1994년 르완다 내전 문제 해결을 위해 연합군 개입을 추진했지만 불과 1년 전 소말리아 내전 진압에 실패해 궁지에 몰린 클린턴 정부는 강하게 반대했다. 르완다의 소수 지배층인 투치족과 다수의 후투족 사이에 일어난 부족 갈등으로 1994년부터 2년간 80만명 이상 사망했다. 올브라이트는 훗날 르완다 집단학살을 막지 못한 것을 가장 크게 후회한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북한은 포용, 이라크엔 제재…오락가락 외교 비판받기도 이 밖에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중재하려 애썼지만 긴장을 완화하는 데 실패했고 대북 포용 정책을 발판으로 한 북한 비핵화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북한에는 포용적이고 이라크에는 제재를 주장하는 등 오락가락했던 올브라이트의 외교 전략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에게 국무장관직을 빼앗긴 오랜 라이벌 리처드 홀브룩 전 유엔 주재 대사가 대표적이다. 비평가들은 올브라이트가 미국이 언제, 어느 지역의 문제에 관여해야 하는지 일관된 비전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고 포린폴리시(FP)는 전했다. 그럼에도 올브라이트는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갈등이 21세기 내내 계속 되리라는 것을 예견했다고 FP는 평가했다.● 브로치에 담긴 외교 메시지 CNN은 올브라이트가 종종 브로치에 외교적 메시지를 담는 것을 즐겼다고 보도했다. 러시아가 미국 국무부를 도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올브라이트는 커다란 벌레 핀을 꼽았고,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자신을 뱀이라고 부르자 보란 듯이 금색 뱀 브로치를 가슴에 달았다. 마녀라고 불렸을 때는 작은 빗자루를, “자립할 수 있는 이민자들만 미국에서 환영받을 것”이라는 이민국 켄 쿠치넬리 국장의 발언에 반발해 자유의 여신상 브로치를 달았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일제히 애도성명을 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그의 손은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손이었다”며 “그녀의 열정적 믿음을 항상 기억할 것”이라고 밝혔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을 향한 열정적인 힘”이라고 치켜세웠고,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고 다른 이의 그것을 실현하도록 도왔다”며 애석해했다. 유족으로는 앤, 앨리스, 케이티 등 3명의 딸과, 6명의 손자가 있다.
  • [STOP PUTIN] 국제의용군에 몰리는 극우세력, 러시아 용병 폭력 부추기지 않을까

    [STOP PUTIN] 국제의용군에 몰리는 극우세력, 러시아 용병 폭력 부추기지 않을까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싸우겠다며 유럽과 미국, 한국, 일본 인도 등에서 건너간 이들이 참여한 우크라이나 국제의용군에 극우나 네오나치 같은 극단적인 신념을 가진 이들이 섞여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사실 스페인 내전 때도 다양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한데 뭉쳐 싸우면서 적지 않은 부작용이 있었는데 52개국 출신 2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우크라이나 의용군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외무부의 발표에 따르면 국제의용군에는 독일,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스웨덴, 폴란드 등 유럽 출신이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중에는 네오나치나 백인 우월주의자 같은 극우 세력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일간 타게스차이퉁은 지난 3일 우크라이나 전쟁에 독일 극우세력이 가담하고 있다고 전했다. 독일 정부는 이런 형태의 참전을 허용하지 않고 있지만, 강제로 막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심지어 이근 예비역 대위를 비롯한 한국인 9명도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 몰래 우크라이나에 입국했으니 국경 왕래가 자유로운 유럽인들은 말할 것도 없다. 마르티나 레너 독일 좌파당 의원은 “네오나치 활동가가 우크라이나에서 전투 경험을 쌓는 것은 독일 정치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14일 뉴스위크 일본판에 따르면 100년 전 독일에서도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끔찍한 폭력을 경험한 군인들이 그 뒤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폭력적인 정치 문화를 형성해 아돌프 히틀러의 부상을 초래한 역사가 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참전 경험이 있는 청년들이 의용군 조직(Freikorps)을 결성했는데 이들이 규모가 축소된 정규군을 대신해 좌파 활동가와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데 앞장섰다. 이들 중 상당수는 반공산주의자였지만 동시에 반공화국 성향도 띠고 있었다고 뉴스위크 일본판은 전했다. 나치당의 유력자 중에도 의용군 경험자가 많았다. 나치의 준군사 조직인 돌격대의 실질적 지휘관이던 에른스트 렘도 그 중 한 명이다. 독일 출신 역사학자 조지 모세는 병사와 의용군에 의해 형성된 ‘전쟁 체험의 신화’는 정적(政敵)을 비인간화해 그들의 전멸을 목적으로 하는 사고를 받아들이기 쉽게 한다고 설명했다. 워싱턴 포스트(WP)는 우크라이나의 대표적 네오나치 그룹으로 알려진 아조우(아조프) 연대가 지난달 25일 외국인 전투병을 공개 모집하자 이 조직의 공식 텔레그램에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으로부터 참여를 희망한다는 메시지가 쇄도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인기 있는 네오나치 웹 채널 등을 통해 참전 정보를 교환한 뒤 유럽 각지에서 차량을 공유해 우크라이나로 향했다고 WP는 덧붙였다. 신문은 “네오나치 추종 세력은 그들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악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편에서 싸우기 위해 몰려든 국제의용군들에게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러시아가 지난 13일 새벽 우크라이나 서부 야보리우의 훈련장과 군사시설에 수십 발의 순항 미사일 공격을 감행한 것도 이런 메시지로 해석된다. 우크라이나 군은 이 공격으로 35명이 사망하고 134명이 다쳤다고 발표했는데 단일 공격으로는 상당히 큰 인명피해다. 러시아 국방부는 성명을 통해 “우크라이나는 이 시설에 외국 용병 훈련소를 설치한 뒤 용병을 교전 지역으로 보냈고 외국에서 들어오는 무기와 장비들을 위한 저장고도 배치했다”며 “이번 공격으로 용병 180명을 제거했다”고 밝혔다. 서방 언론은 집중 폭격이 이뤄진 곳이 야보리우의 국제평화유지·안보센터(IPSC)라고 보도했지만 러시아는 용병 캠프라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또 시리아 등에서 시가전에 숙달된 용병을 돈을 주고 끌어와 우크라이나 의용군에 맞서게 하고 있다. 러시아가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을 오랫동안 지원해 왔음은 물론이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참전 자원자가 1만 6000명에 이르며 대체로 중동 국가 출신이라고 말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러시아가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을 비롯한 아프리카 국가 병사들을 데려올 가능성도 보도했다. 러시아는 몇년 동안 반군과 싸우는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정부군의 장비 현대화를 지원하거나 비밀 사병조직 ‘와그너 그룹’을 통해 아프리카 분쟁에 개입해 왔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에 모여 든 국제의용군과 러시아가 돈 주고 끌어들인 용병들과 대치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제대로 검증되지 않고, 사상적으로 경도된 이들이 무력을 행사하는 과정에 전쟁 자체가 잔인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WP는 “일부 네오나치 세력은 이 새로운 전쟁을 그저 자신들의 폭력적 환상을 실연해보는 장으로 여긴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사실과 거짓이 뒤섞인 정보가 SNS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확산하면서 대중이 전쟁에 대해 왜곡된 이미지를 갖게 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뉴스위크 일본판은 “SNS를 포함한 미디어의 진화에 따라 거짓과 사실이 뒤섞인 정보가 빠른 속도로 퍼지면서 ‘전쟁의 신화화’가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짚었다.
  • [나와, 현장] 저항하지 않은 사람들의 최후

    [나와, 현장] 저항하지 않은 사람들의 최후

    코로나 악몽이 시작되기 바로 전해에 휴가를 틈타 러시아에 갔었다. 묵직한 굉음을 내며 한국의 최소 2배속으로 오르내리는 러시아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 끝내 적응 못 한 어머니는 여행을 마친 뒤 “소련엔 무섭고 사악한 사람들만 사는 줄 알았는데 사람 사는 곳 다 똑같더라”며 웃었다. 부모님 세대 어릴 적엔 ‘공산국가 사람들 머리엔 뿔이 달렸다’는 반공 교육을 받았을 장면을 상상하니 나도 웃음이 났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기사마다 즐비한 “공산주의 박멸” 댓글에서 한국 내 뿌리 깊은 반공 정서가 엿보인다. 여기엔 한 가지 오해가 있다. 러시아 하원 의석 70%를 독식한 통합러시아당은 중도우파를 표방하는 민족주의 정당이다. 공산당과는 이념적으로 반대편에 서 있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사실상 이끄는 통합러시아당을 소련 공산당과 동일 선상에 놓는 것이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북한이나 중국처럼 서방의 언론·소셜미디어를 원천 봉쇄하진 않지만, 관영매체를 활용해 선전·선동하는 것은 러시아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다.그 결과는 러시아 국민 58%가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군사 작전에 찬성한다는 여론으로 나타난다. 반대 의견은 23%에 그친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한다. 그럼에도 전쟁에 반대하며 거리로 나서는 용기 있는 사람들도 있다. 인권감시단체 OVD인포에 따르면 침공 이후 러시아에서 체포된 반전 시위 참가자는 지난 13일 기준 1만 4000명을 넘었다. 다만 전쟁을 옹호하는 친푸틴 시위 규모에 비하면 소수 목소리에 그친다. 침공 후 70%대로 오른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은 러시아 국민 다수가 자국의 독재자를 제어하기는커녕 방조 혹은 독려하는 현실을 보여 준다.미국과 유럽의 초고강도 대러 제재 직후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탈(脫)러시아를 선언했다. 옛 소련 심장부에 꽂힌 ‘자유의 상징’ 맥도날드 1호점의 32년 만의 폐점은 러시아 경제가 소련 시절로 회귀할 것을 예고하는 한 장면이다. 푸틴 대통령의 독재를 용인한 러시아 국민들에겐 이제 소련 붕괴 당시만큼이나 혹독하고 어두운 터널이 기다리고 있다. 비판도 저항도 하지 않는 다수가 러시아에만 있을까. 무소불위로 권력을 휘두르려는 자, 그 아래서 한 자리씩 차지하려는 아첨꾼들은 가까운 곳에도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그것을 보면서도 콩고물을 기대하며 눈치 보는 사람들, 무력감을 핑계로 침묵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결국 주어지는 건 ‘유사 빅맥’뿐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여러 교훈 중 하나일 것이다.
  • 北 이틀 뒤 “윤석열 당선” 박근혜 때는 이름 빼고 이명박 때는 일주일 뒤에

    北 이틀 뒤 “윤석열 당선” 박근혜 때는 이름 빼고 이명박 때는 일주일 뒤에

    북한 관영매체들이 우리 대통령 선거 이틀 만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됐다고 보도했다. 그 동안 자신들에게 ‘달갑지 않은’ 보수정당의 후보가 당선되면 보도 시점을 늦추거나 간략한 사실만 알리곤 했던 북한 매체들은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보도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대외용인 조선중앙통신은 11일 “남조선에서 3월 9일 진행된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야당인 국민의힘의 후보 윤석열이 근소한 차이로 대통령으로 당선되였다”고 한 문장으로 짤막하게 전했다. 모든 주민이 볼 수 있는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도 이날 6면에 같은 내용을 게재했다. 남한의 대선 결과를 이틀 만에 전한 것이지만 당선인 윤곽이 드러난 10일 새벽을 기준으로 하면 하루 만이라고 볼 수도 있다. 북한이 남한 대선에서 보수 정당 후보가 당선된 사실을 당선인 이름까지 즉각 보도한 것은 이례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2012년 18대 대선 때 박 전 대통령의 이름조차 거론하지 않을 정도로 첫 보도의 내용과 형식 모두 단출했다. 중앙통신은 선거 이튿날인 12월 20일 밤 대선 결과를 처음 보도했는데, 박근혜 당선인의 이름과 득표율 등을 생략한 채 “새누리당 후보가 근소한 차이로 당선되였다고 한다”고 한 문장을 송고했다. 특히 2007년 12월 19일 17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선 당시에는 무려 일주일 동안 보도하지 않았다.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인 조선신보가 같은 달 27일 처음으로 가십성 칼럼인 ‘메아리’를 통해 이 전 대통령 당선이 ‘보수의 승리, 진보의 패배’란 구도가 아니라 경제문제 때문이었다고 주장하며 남북협력 관계와 북미관계 개선 흐름에 역행하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대북 문제에 우호적인 진보 정부가 들어서면 보도량이 늘어났다. 2017년 5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는 다음날 조선신보가 “정권교체를 이루어낸 민중의 힘”이라며 발빠르게 첫 소식을 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11일 ‘남조선에서 제19대 대통령선거 진행’이라는 제목으로 4문장짜리 기사를 타전했다. 2002년 12월 19일 16대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 때도 북한 매체들은 대선 이틀 뒤에 일제히 보도했다. 당시 매체들은 “선거에서는 민주당 후보 노무현이 당선되고 한나라당 후보 이회창이 패했다”며 “6·15공동선언을 반대하고 반공화국 대결을 고취하는 세력은 참패를 면치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1997년 12월 18일 15대 대선 때는 사흘 뒤에 김대중 전 대통령 승리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밋밋하게 선거 결과를 보도했다. 당시 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남조선에서 대통령 선거가 진행돼 정권교체가 이뤄지게 됐다”며 외신을 인용해 당선인 앞에 난제가 산적했다고 소개해 처음으로 남쪽에 진보 정권이 출범한 것에 대한 나름의 ‘고민’을 드러내기도 했다. 북한은 남한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연연하지 않겠다는 종전의 자세를 확인하면서도 한 문장으로 짤막하게 보도해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는 지적도 나온다.
  • 김정은 “5년 안에 정찰위성 다량 배치” 미군 “서해 감시정찰능력 강화”

    김정은 “5년 안에 정찰위성 다량 배치” 미군 “서해 감시정찰능력 강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국가우주개발국을 시찰하고 5년 안에 다량의 정찰위성 배치 계획을 밝혔다. 남측 대통령 선거 다음날 김 위원장의 시찰 및 향후 위성배치 계획을 공개해 어떤 정권이 출범하든 관계 없이 무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분석된다. 조선중앙통신은 10일 “김정은 동지께서 국가우주개발국을 현지지도하시었다”며 “최근에 진행한 정찰위성 중요시험들을 통하여 항공우주 사진 촬영 방법, 고분해능촬영장비들의 동작 특성과 화상자료 전송계통의 믿음성을 확증한 데 대하여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시었다”고 밝혔다. 통신은 김 위원장의 시찰 날짜는 공개하지 않았다. 북한 매체들이 통상 행사 다음날 보도하는 것을 감안하면 9일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김 위원장은 시찰에서 “군사 정찰위성 개발과 운용의 목적은 남조선지역과 일본지역, 태평양상에서의 미제국주의 침략군대와 그 추종 세력들의 반공화국 군사행동 정보를 실시간 공화국 무력 앞에 제공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하여 5개년계획 기간 내에 다량의 군사 정찰위성을 태양동기극궤도에 다각 배치하여 위성에 의한 정찰정보수집 능력을 튼튼히 구축할 데 대한 국가우주개발국의 결심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반도와 주변지역에서 감행되는 미제국주의 침략군대와 그 추종세력들의 반공화국 적대적 군사행동 성격을 철저히 감시, 감별하고 정황관리 능력을 높이며 해당 정황에 따라 국가무력의 신속한 대응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우리 당이 중시하는 국가방위력강화에 관한 전략전술적방침”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또 “진행 중에 있는 우주과학연구원과 우주환경시험기지건설 문제도 요해(파악)하시였다”며 “우리 국가가 내세운 우주 정복의 높은 과학 기술적 목표를 달성하려면 우주과학연구 부문의 물질 기술적 토대를 튼튼히 구축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가적인 방조를 강화하고 중요 조치들을 검토해보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북한은 지난달 27일 고도 591㎞에서 시험 촬영했다는 지상 위성사진도 함께 공개했다. 남측에서 어떤 정권이 출범하든 핵미사일 개발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것으로, 한반도 긴장을 더욱 높이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은 지난달 27일과 지난 5일 연달아 ‘정찰위성 개발을 위한 시험’이라고 주장하며 준중거리탄도미사일(MRBM)을 발사했다. 북한이 밝힌 태양동기극궤도는 인공위성 궤도 중 하나로 궤도면과 태양의 각도가 항상 일정하게 유지돼 이 궤도를 도는 위성은 지구상 물체를 매일 같은 시각에 관측할 수 있다. 이 궤도의 위성은 매일 13~15번가량 지구 주위를 공전한다. 북한이 2012년 12월 쏘아 올린 ‘광명성 3호 2호기’도 이 궤도에서 포착됐다. 2012년 발사한 우리 다목적실용위성 ‘아리랑 3호’도 태양동기궤도에서 매일 지구 주변을 14바퀴 반을 돌며 지상관측 임무를 수행했다. 한편 미군 인도태평양사령부는 최근 북한의 미사일 무력 시위가 늘어난 것과 관련해 한반도에서 감시 및 정찰 활동을 강화하고 미사일 방어망 태세를 상향하는 조치를 했다고 밝혔다. 한반도를 관할하는 인태사령부는 9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우리는 평화와 안보를 저해하고 역내 및 국제사회를 불안정하게 하는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가 크게 증가하는 것을 분명히 우려해 왔다”며 “이에 따라 사령부는 지난 7일 서해에서 정보·감시·정찰(IRS) 수집 활동 강화와 역내 우리의 탄도미사일방어망(BMD) 대비태세 상향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인도태평양사령부가 이런 지시 내용을 공개한 것은 이례적이며 우리 대통령선거 이틀을 앞두고 지시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서해는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쏠 때 이용하는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의 서해위성발사장을 관측할 수 있는 곳이다. 이번 지시는 지난 1월 20일 북한이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모라토리엄(유예조치)을 사실상 해제하며 시험 재개 가능성을 시사한 가운데 이뤄진 것이기도 하다. 미국이 북한의 대규모 도발 징후를 포착했을 가능성과 함께 북한이 섣부른 행동에 나서지 못하도록 하는 경고의 의미를 동시에 지닌 것으로 보인다. 존 커비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에 인태사령부의 지시를 언급한 뒤 “말보다 행동이 더 중요하다”면서 “우리는 우리의 우려가 무엇이고 그 우려에 관해 어떤 행동을 하는지 분명히 해 왔다”고 말했다. 앞서 존 아퀼리노 인도태평양사령관은 이날 하원 군사위 청문회를 앞두고 제출한 서면자료를 통해 북한이 올해 우주 활동을 재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인공위성을 실어나르는 장거리 로켓과 ICBM 기술이 거의 비슷해 북한의 ICBM 시험발사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 ‘나토 XX’ 욕설…주중 캐나다 대사관 ‘우크라 지지’ 현수막, 하루 만에 훼손

    ‘나토 XX’ 욕설…주중 캐나다 대사관 ‘우크라 지지’ 현수막, 하루 만에 훼손

    중국 주재 캐나다 대사관 외벽에 걸린 우크라이나 지지 현수막이 하루 만에 훼손됐다. 3일(현지시간) CNN 등에 따르면, 중국 베이징 소재 주중 캐나다 대사관이 지난 1일 대사관 건물 외벽에 내건 두 개의 우크라이나 지지 현수막 중 하나가 2일 밤 훼손됐다. 현수막에는 중국어로 각각 ‘우리는 우크라이나와 함께한다’,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지지한다’고 쓰여 있다. CNN 관계자는 훼손된 현수막에는 영어로 나토(NATO)에 대한 욕설이 쓰여있었다고 전했다.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인 트위터에 공유된 사진에는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지지한다’고 쓰인 현수막에 붉은색 락카로 ‘나토 XXXX’(FXXX NATO)라고 써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주중 캐나다 대사관은 앞서 SNS인 트위터와 중국의 SNS인 웨이보에 각각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공개하며 ‘우크라이나와 함께한다’(#StandwithUkraine)는 해시태그를 붙였다. 웨이보에서 많은 중국 누리꾼은 우크라이나에 지지를 표명한 캐나다 대사관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미국의 개’, ‘이번 전쟁의 주범인 미국에 동조한 공범’, ‘쇼를 하고 싶으면 너희 집 앞마당에서 해라’ 등의 악성 댓글 수천 건이 이어졌다.베이징 예술가 지펑(季風)은 중국판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애국주의자들이 주중 캐나다 대사관의 우크라이나 지지 현수막을 훼손한 것”이라고 말했다. 호주의 중국계 반공예술인 ‘바디우차우’(Badiucao)도 지펑의 주장을 지지하며 관련 글을 공유했다. 중국에서 반전 목소리는 검열 대상이다. 중국 여배우 장흔(蒋欣)과 위안리(袁立), 커란(柯蓝)을 비롯한 많은 유명 연예인도 웨이보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하는 반전 시위를 지지했다. 하지만 우마오(五毛)로 불리는 극우 댓글부대의 공격을 받자 웨이보 측이 해당 글 등을 빠르게 삭제했다.
  • 경찰 일반공무원들의 ‘대모’… 36년 공직 마무리

    경찰 일반공무원들의 ‘대모’… 36년 공직 마무리

    일반직·경찰직 직장 차별에 맞서공무원노조 시초 한울타리회 조직경찰청 내 일반공무원 노동조합을 만든 이연월(55) 초대 경찰청 공무원노조위원장이 28일 36년의 공직 생활을 마쳤다. 정년(60세)을 앞두고 명예퇴직한 이 전 위원장은 경찰청 일반공무원 노조 23개 지회 대표들이 경찰청 본관 문화마당에 마련한 퇴임식장에서 “36년의 공직생활 중 30년을 공무원 노동자로 인정받고자 투쟁과 협상을 거듭하면서 공무원 노조활동가로 살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노동운동을 시작한 계기는 경찰 조직에서 일반직 공무원으로 살아가면서 조직의 그림자로 방치된 채 월급을 받는 저 자신이 부끄러워서였다”고 소회를 밝혔다. 경찰청을 비롯해 전국 경찰서에는 5000명가량의 일반직 공무원이 있지만 경찰 안팎에선 경찰공무원만 ‘직원’으로 보는 등 보이지 않는 차별이 만연했다는 것이다. 이 전 위원장은 1986년 경찰청에 고용직으로 들어와 1989년 정식 공무원이 됐다. 이후 소수의 여성 일반직 공무원과 직장 내 차별에 맞서기 위한 ‘한울타리회’를 조직했다. 이는 직장협의회와 공무원노조의 시초가 됐다. 대우 공무원 제도, 경감 근속승진 제도 도입을 이끌어 내며 노조를 만들 수 없는 경찰공무원의 애로 사항을 대변하기도 했다.
  • 공무원 노조 ‘대모’ 이연월 초대 경찰청 노조위원장 퇴임

    공무원 노조 ‘대모’ 이연월 초대 경찰청 노조위원장 퇴임

    “30년간 공무원 노동자로 인정받고자 투쟁” 여성 일반직, 직장 내 차별 맞선 ‘한울타리회’ 조직 대우 공무원·경감 근속승진 제도 도입 이끌어 경찰청 내 일반공무원 노동조합을 만든 이연월(55) 초대 경찰청 공무원노조위원장이 28일 36년의 공직 생활을 마쳤다. 정년(60세)을 앞두고 명예퇴직한 이 전 위원장은 경찰청 일반공무원 노조 23개 지회 대표들이 경찰청 본관 문화마당에 마련한 퇴임식장에서 “36년의 공직생활 중 30년을 공무원 노동자로 인정받고자 투쟁과 협상을 거듭하면서 공무원 노조활동가로 살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노동운동을 시작한 계기는 경찰 조직에서 일반직 공무원으로 살아가면서 조직의 그림자로 방치된 채 월급을 받는 저 자신이 부끄러워서였다”고 소회를 밝혔다. 경찰청을 비롯해 전국 경찰서에는 5000명가량의 일반직 공무원이 있지만 경찰 안팎에선 경찰공무원만 ‘직원’으로 보는 등 보이지 않는 차별이 만연했다는 것이다. 이 전 위원장은 1986년 경찰청에 고용직으로 들어와 1989년 정식 공무원이 됐다. 이후 소수의 여성 일반직 공무원과 직장 내 차별에 맞서기 위한 ‘한울타리회’를 조직했다. 이는 직장협의회와 공무원노조의 시초가 됐다. 대우 공무원 제도, 경감 근속승진 제도 도입을 이끌어 내며 노조를 만들 수 없는 경찰공무원의 애로 사항을 대변하기도 했다. 대우 공무원 제도는 장기근속한 경찰공무원에게 ‘대우 직책’과 그에 맞는 보수를 수당으로 지급하는 것으로 인사 적체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이 전 위원장은 2006년 경찰청 공무원노조가 설립된 이후 초대 위원장부터 5대 위원장까지 내리 맡았으며 대한민국공무원노조총연맹 위원장과 수석부위원장을 지냈다. 2019년 12월 공무원노조위원장을 끝으로 현업에 복귀한 그는 182 경찰민원콜센터에서 근무했다.
  • [씨줄날줄] 이어령의 유산/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이어령의 유산/박록삼 논설위원

    ‘미래학’이라는 개념은 20세기 이전에 딱히 존재하지 않았다. 앨빈 토플러(1929~2016)의 ‘제3의 물결’이 1981년에 나왔지만 주목받은 건 한참 뒤다. 군사정권의 억압 속에 민주와 인권의 결핍에 신음하던 대한민국 현실에서는 먼 나라 뜬구름 잡는 얘기로 들리던 시절이었다. 문학비평가이자 언론인이었던 이어령은 달랐다. 상상력과 창의력을 통한 인류 문명의 변화에 적극 호응했다. 단적인 예로 그는 1980년에 집집마다 보급되는 컴퓨터의 세상이 올 것이라는 ‘예언적 전망’을 할 정도였다. 커다란 공간에 놓인 중앙처리장치(CPU) 하나를 여러 개의 단말기가 공유하던 시대에선 쉽지 않은 발상이었다. 사실상 문명비평가이자 미래학자의 위상을 스스로 정립한 셈이다. 따지고 보면 문학도 시절 청년기부터 그의 사유와 지성은 도발적이면서도 웅숭깊었다. 1956년 대학 2학년이던 시절 소설가 김동리과 이무영, 시인 조향 등 당대 문단의 거목들을 혹독히 비판한 ‘우상의 파괴’를 발표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1960년 26세로 서울신문 논설위원에 발탁된 파격의 배경이기도 했다. 기존의 가치와 질서의 전복을 꾀하는 이어령의 지성은 분단과 반공의 반이성적 굴레도 옭매지 못했다. 그는 1965년 남정현의 소설 ‘분지’가 북한 찬양 혐의로 중앙정보부에 붙잡혀 재판받는 필화 사건이 벌어졌을 때 증인으로 출석해 문학의 역할을 놓고 검사와 공방을 벌였다. 징역 7년을 구형한 검찰의 뜻과 달리 남정현은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그를 참여형 지식인의 틀에 가둬 놓을 수만은 없다. 일찍이 정보화 시대의 도래를 예고했지만, 과학기술의 발달을 철인의 도래로 여기지 않았다. 디지털 시대일수록 아날로그적 지성, 즉 종교와 철학 기반의 지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디지로그’라는 개념의 탄생 배경이다. 세계화에 따라가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말할 때 그는 오히려 국내와 작은 공동체의 중요성으로서 ‘로컬’을 강조하며 ‘글로컬리즘’을 주창했다. 다양한 가치와 전통, 문화의 융합과 통섭, 그리고 이를 통한 더욱 큰 다양성의 가치 창조는 극한 대립에 신음하는 우리에게 그가 남긴 유산이다. 한국 지성계의 큰 별이 졌다.
  • “李 1조 약탈, 盧라면 좌시했겠나”

    “李 1조 약탈, 盧라면 좌시했겠나”

    1박 2일 일정으로 ‘서해안 공략’에 나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2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을 정조준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계셨다면 도시개발사업에 3억 5000만원을 들고 가 1조원의 시민 재산을 약탈하는 부정부패를 결코 좌시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맹공을 폈다. 특히 광주 복합쇼핑물 문제를 부각해 민주당의 ‘호남 홀대론’을 주장하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윤 후보는 충남 당진·서산·홍성·보령 유세에서 이 후보의 대장동 의혹을 거론하며 “이런 사람에게 나라를 맡기면 되겠냐. 고양이 앞에 생선 맡기는 것보다 더한 것 아니냐”고 맹폭했다. 이어 “상당한 조직력이 없으면 안 되는데 한 건만 있겠나”라며 “대장동, 백현동, 성남FC, 코나아이 등 한둘이 아니다. 부정부패를 일상으로 저지르는 사람이 무슨 유능한 경제 대통령이라고, 후보로 만들어 놓은 ‘이재명의 민주당’”이라고 말했다. 그는 ‘옆집 비선 캠프’, ‘법인카드 횡령’ 의혹을 거론하면서 “공무원들은 마음이 다 떠났다”면서 “저와 국민의힘이 정부를 맡게 되면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들어 낸 주역들은 한국 정치에서 퇴출시키겠다. 이재명의 민주당이 아닌, 김대중(DJ)의 민주당, 노무현의 민주당에서 합리적으로 국정을 이끌었던 양식 있는 정치인들과 협치하겠다”고 했다. 윤 후보는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만 두 번째로 전북(군산·익산)을 찾았다. 그는 군산·익산 유세에서 ‘광주 복합쇼핑몰 논란’과 관련,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대통령이었거나 활동 중이었다면 대기업이 호남에 들어가겠다고 하는 걸 막았겠나”라며 ‘민주당의 호남홀대론’을 제기했다. 특히 익산 유세에서는 조배숙 전 민생당 의원이 등장해 지지 선언을 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혼선과 관련, “이 정부 들어 집값, 부동산이 더 치솟았는데 실책이 아니고 고의”라며 “국민 편가르기를 해 못 살게 만들고, 못사는 사람은 민주당 편이라는 생각으로 오로지 권력 유지에만 관심 두고 국가와 국민 생각은 하지 않은 결과”라고 주장했다. 윤 후보는 특히 “20년, 50년 심지어는 100년 집권을 떠들며 우리 사회를 서서히 자유민주국가가 아닌 사회주의국가로 탈바꿈시키려는 공산당 좌파혁명 이론에 빠져 있는 이 소수에게 대한민국 정치와 미래를 맡겨서 되겠느냐”고 외쳤다. 또 “대공 미사일 방어망을 중층적으로 단단하게 구축해야 한다고 의견 개진을 했더니 저보고 전쟁광이라고 했다. 꼭 북한에서 하는 거랑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생각이 평양과 똑같다”고도 했다. 이어 “저 사람들은 반공 포퓰리즘이라고 매도할 수 있지만, 지난 5년간 국정을 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19일 경남 거제 유세 중 말린 대형 대구를 들어 올린 퍼포먼스를 두고 일각에서 무속 의혹이 제기되자 윤 후보는 페이스북에 “청년 어부에게 귀중한 선물을 받았다”며 “주민의 땀과 노력이 담긴 지역 특산물에 대해 무속 운운하는 건 국민에 대한 실례”라고 반박했다.
  • [데스크 시각] ‘반중민족주의시대’의 도래, 김대중 외교가 그립다/이창구 사회2부장

    [데스크 시각] ‘반중민족주의시대’의 도래, 김대중 외교가 그립다/이창구 사회2부장

    20일 막을 내린 베이징동계올림픽은 한중 외교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한복공정’ 논란과 쇼트트랙 편파 판정은 자욱하게 깔렸던 반중(反中)·혐중(嫌中) 유증기에 불을 댕겼다. 하필 대선과 겹쳐 걷잡을 수 없게 됐다. 반중 감정은 국내 정치에 소환돼 다른 정치적 모순을 가리는 외교포퓰리즘으로 소비되고 있다. ‘토착왜구’라는 용어로 극단화됐던 ‘반일민족주의’의 자리를 ‘착짱죽짱’(착한 중국인은 죽은 중국인뿐)이라는 ‘반중민족주의’가 차지한 셈이다. 올림픽 기간 내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각났다. 그의 국내 정치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겠지만, 외교적 탁견과 성취에 토를 달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베이징 특파원으로 일했던 2015년 8월 귀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해 7월 99세로 사망한 완리 전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의 아들 완보아오를 두 시간 넘게 만났다. 청백리의 상징인 완리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아버지 시중쉰 등과 함께 마오쩌둥을 도와 공산혁명을 이루었다. 마오쩌둥은 1년 만에 인민대회당을 건설한 완리에게 “완리(萬里)는 하루에 1만리를 가는 사람”이라고 했다. 완리는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동반자이기도 했다. ‘쌀이 필요하면 완리를 찾으라’는 말은 1970년대 완리가 안후이성 당서기 시절 농가생산 책임제(일정 생산량 이상은 개인 소유로 인정)를 성공시켜 전국으로 확산시킨 데서 나왔다. 완보아오는 시진핑처럼 선대의 후광으로 권력 핵심부로 들어갈 수 있는 ‘태자당’이었지만, 공직 진출과 창업을 엄금한 아버지 때문에 초야에 묻혀 작가로 살았다. 완보아오가 들려주는 얘기 가운데 중국 지도자들의 역대 한국 대통령 평가가 가장 흥미로웠다. 마침 전승 70주년 열병식 참석을 위한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이 예정돼 있었다. 완보아오는 의외로 박 전 대통령 대신 김 전 대통령 얘기를 많이 했다. 그는 “김대중은 중국 역대 지도자들이 모두 존중한 한국의 유일한 지도자”라고 했다. 인동초로 표현되는 김대중의 인생역정이 대장정을 이끈 혁명열사들의 삶과 비슷한 데다 사상가적 기풍까지 갖춘 인물이라는 평가였다. 완보아오는 특히 “반공 이데올로기가 압도적인 한국에서 실리 외교를 펼친 김대중의 전략은 중국도 본받아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해 발간된 책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장신기 지음)를 보면 1970년대부터 김대중은 중국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1979년 미중이 국교를 정상화하자 국회의원이었던 김대중은 “중화인민공화국과의 관계 개선을 준비하기 위해 대만과의 국교를 종식시켜야 한다”고 했다. 당시 김대중에게 씌워졌던 ‘빨갱이’ 프레임을 생각하면 외교를 대하는 그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중국이 명심해야 할 말도 남겼다. 2008년 독일 석학 울리히 베크와의 대담에서 “중국이 평화적으로 민주국가로 이행해 간다면 세계의 축복이 될 것이며 중화주의, 제국주의, 자기도취적 민족주의에 빠진다면 큰 재앙이 될 것”이라고 했다. 돌이켜 보면 김 전 대통령 재임 기간은 한국 외교의 전성기였다. 김대중·오부치 선언, 한중협력동반자관계, 페리프로세스와 북한 미사일 실험 중단, 남북 정상회담과 6·15남북공동선언, 북미 공동 코뮈니케, 북일 정상회담 등은 김대중 외교의 산물이었다. ‘도랑에 든 소’와 같은 처지에서 미국 언덕의 풀과 중국 언덕의 풀을 잘 뜯어 먹은 결과이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과 비교하면 지금 대선 후보들의 외교 의식은 천박하다. 조선족을 건강보험 재정이나 축내는 존재로 인식(윤석열)하고 영해를 넘는 중국 어선을 격침하겠다는 후보(이재명)가 도랑에 든 소를 어디로 끌고 갈지 불안하기만 하다.
  • 두산중공업 유상증자 일반공모 청약 첫날 성적은?…‘줍줍’이냐 가라앉는 배냐

    두산중공업 유상증자 일반공모 청약 첫날 성적은?…‘줍줍’이냐 가라앉는 배냐

    15~16일 일반공모 청약첫날 청약 경쟁률 2.86:1증거금 800억원 모여전날 주가는 10% 급락주주배정 유상증자 청약 미달 여파로 주가가 급락한 두산중공업이 일반공모 청약 첫날 뜨듯미지근한 성적표를 받았다. 15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두산중공업 실권주 일반공모 청약 1일차인 이날 10개 증권사 합산 청약 경쟁률은 2.86:1로 집계됐다. 청약 건수는 2만 969건, 청약 주수는 577만 9470주로 증거금은 800억 4566만원이 모였다. 두산중공업 유상증자와 관련해 일반 공모가 나올 수 있었던 건 우리사주조합과 구주주(신주인수권증서 보유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청약이 미달됐기 때문이다. 앞서 두산중공업은 지난 11일까지 주주배정 유상증자 청약을 진행했는데 총 모집 주식 수 8287만 2900주 가운데 97.44%(8074만 7701주)가 청약됐다. 이에 따라 발생한 실권주 212만 5199주는 일반에 공모하게 된 것이다. 이번 일반공모 공동주관사는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 미래에셋증권, 키움증권 및 신영증권이고 인수사는 신한금융투자 IBK투자증권, DB금융투자, 유진투자증권이다. 일반공모가 신규 투자자 입장에선 ‘줍줍’의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통상 유상증자는 주식 가치가 희석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 기존 투자자에겐 악재로 인식된다. 청약 미달 소식까지 들리면서 전날 두산중공업의 주가는 10.09% 급락한 1만 5600원에 마감했다. 이날도 0.96% 소폭 하락하며 1만 5450원에 장을 마쳤다. 유상증자 일반공모 발행가액은 1주당 1만 3850원으로 현 주가보다 낮지만 투자자들 사이에선 하방 압력이 계속될 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동헌 대신증권 연구원은 “두산중공업이 지난 11일에 발표한 실적이나 유상증자 일반공모 첫날 결과는 크게 나쁘진 않다”며 “다만 금리 상승기와 맞물려 시장에선 자금 융통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소형모듈원전(SMR) 등 신산업 투자의 가치에도 의문이 생겨 주가에 반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유상증자를 마무리하고 재무리스크를 탈피하면 안정성이 높아지는 분위기로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두산중공업 신주 상장 예정일은 3월 4일이다. 일반공모 청약은 오는 16일까지 진행된다.
  • 닉슨·마오처럼… 바이든은 악수로 신냉전 악수 피할까

    닉슨·마오처럼… 바이든은 악수로 신냉전 악수 피할까

    1972년 2월 21일. 중국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미 공군 1호기 ‘에어포스원’이 착륙했다. 리처드 닉슨(1913~1994) 당시 미 대통령이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트랩을 밟으며 걸어 내려왔다. 마중 나온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가 악수로 그를 맞이했다. 이날 닉슨은 미국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마오쩌둥(1893~1976) 중국 국가주석과 1시간 동안 정상회담을 가졌다. 한국전쟁(1950~1953)으로 적이 된 두 나라 사이에 일어난 ‘대변화’였다. 닉슨 전 대통령이 중국을 전격 방문해 미중 화해의 서막을 연 지 정확히 50주년이 됐다. 미국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초강대국으로 자리매김했고, 중국은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미국을 턱밑까지 추격하며 패권을 넘보고 있다. 미중 갈등이 극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외신들은 닉슨과 마오쩌둥의 만남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언론들은 두 나라가 체제와 이념의 벽을 허물고 변화와 화해를 위해 손잡았던 유연함을 다시 보여 달라는 주문을 내놓고 있다. 14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닉슨 전 대통령의 중국 방문(1972년 2월 21∼28일)을 두고 “20세기 후반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며 “기존의 틀을 완전히 깬 두 정상의 결단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닉슨은 대표적인 ‘반공주의자’였다. 그러나 누구보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이었다. 소련의 팽창을 봉쇄하려면 중국을 국제사회로 끌어내 ‘천하삼분지계’를 구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과 손잡으면서 역설적으로 공산주의 도미노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 중국이 미국과의 관계를 감안해 ‘균형자’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미 우드로윌슨센터에 따르면 김일성 당시 북한 국가주석은 1975년 4월 중국을 찾아가 한반도 공산화를 위해 두 번째 남침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덩샤오핑 당시 부주석은 “더이상 한반도에서 군사 충돌이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미국과 중국의 우호적 관계를 상징했던 판다외교는 50년 후 위기를 맞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13일(현지시간) “닉슨의 중국 방문 50주년을 맞아 미 공화당 하원의원이 중국의 판다외교에 문제를 제기했다”고 전했다. 우호국에 천연기념물인 판다를 임대하는 중국의 외교 전략은 권위주의 국가인 중국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낸시 메이스 의원은 “판다외교가 중국의 인권 탄압 문제를 가리고 있다”며 “이를 바꿔야 한다”는 법안을 냈다. 미중 갈등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지만 양국 모두 닉슨의 중국 방문 50주년을 관계 개선의 계기로 삼으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0일 정례 브리핑에서 “당시 닉슨 대통령이 합의한 상하이 코뮈니케는 ‘하나의 중국’ 등 양국 관계 발전의 원칙을 확립했다”며 “중미 양측은 가까운 시기에 닉슨의 방중과 상하이 코뮈니케 발표를 기념하기 위한 활동을 함께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문체부, 미술 시장 육성 위해 ‘아트페어’ 종합 플랫폼 키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미술시장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 미술 전람회(아트페어)를 한국 작가와 작품을 조명하는 종합 플랫폼으로 집중 육성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재단법인 예술경영지원센터와 함께 올해 미술 전람회를 개최·운영하는 단체 중 지원 대상을 공모한다고 11일 밝혔다. 지원사업은 2021년 문체부의 ‘아트페어 평가’를 받은 단체가 신청할 수 있는 ‘제한공모형’과 평가와 상관없이 미술 전람회 특성과 성장 잠재력을 바탕으로 신청할 수 있는 ‘일반공모형’으로 나눠 진행한다. 제한공모형의 경우 전년도 아트페어 평가 결과와 이듬해 사업운영 계획을 토대로 아트페어 개최·운영 단체를 선정해 지원한다. 일반공모형은 다양한 작가와 작품군을 소개하거나 융·복합 예술행사로 경쟁력을 가진 아트페어 관련 단체를 선정한다. 최소 3000만원에서 최대 1억 5000만원까지 총 5억5000만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문체부와 예경은 전문가 심의와 적격성 검증 등을 거쳐 최종 10여 개 미술 전람회 개최·운영 단체를 선정, 담론 형성을 위한 토론회와 작가 소개, 교육 프로그램, 국민 참여 프로그램 등 한국미술을 홍보할 수 있는 다양한 공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할 계획이다. 또한 4월부터는 미술 전람회의 자생력을 높이기 위한 상담도 지원한다. 상담을 신청한 단체를 대상으로 미술 전람회의 기획·운영, 해외 진출 전략, 홍보·마케팅, 온라인 채널 운영 등에 대한 맞춤형 자문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다. 공모 신청은 국가보조금통합관리시스템 ‘e-나라도움’에서 할 수 있다, 문체부 관계자는 “이번 사업을 통해 국내에서 열리는 미술 전람회가 한국미술을 홍보하고 확산할 수 있는 종합 유통망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북핵·미사일로 쪼개진 한반도…한미일vs북중러 ‘신냉전’ 우려

    북핵·미사일로 쪼개진 한반도…한미일vs북중러 ‘신냉전’ 우려

    한반도를 둘러싸고 한미일과 북중러 간 대결구도가 고착화하고 있다. 북한이 미국령 괌을 타격할 수 있는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화성12형’ 시험 발사에 나서는 등 새해 들어 7번째 무력 시위를 벌이자 미국은 “국제사회와 협력해 북한의 시도를 막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을 감싸고 있어 신냉전 상황으로 접어드는 모양새다. 린다 토머스 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는 31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조현 주유엔 한국대사와 이시카네 기미히로 주유엔 일본대사와 만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회동에서 한미일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3자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재확인했다. 한미일 유엔 대사는 향후 유엔 안보리 차원에서의 대응 수위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보인다. 유엔 안보리는 여러 대북 제재 결의에 북한의 추가적인 핵실험 또는 탄도미사일 발사시 ‘추가적인 중대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의지를 표명한 상황이다. 앞서 한미 북핵 수석대표인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성 김 미국 대북특별대표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안보태세를 유지해 나가는 가운데 북한과 조속한 대화 재개를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가기로 했다. 미 국무부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핵실험·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재개 검토 선언에 대한 서울신문의 이메일 질의에 “(미국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가 목표임을 분명히 해 왔다”며 “외교에 전념하는 동시에 국제사회와 협력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의 진전을 막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외교적 접근 우선’이라는 기존 원칙에서 대북 제재 쪽으로 무게추를 옮기는 모양새다.반면 북한은 최근 일본과 프랑스가 북핵·미사일 폐기를 요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한 것과 관련해 “명백한 반공화국 적대행위로 정정당당한 자위권 행사에 대한 용납 못 할 도전”이라고 맹공했다. 1일 북한 외무성 홈페이지에 따르면 외무성은 전일 게재한 ‘반드시 치르게 될 값비싼 대가, 초래하게 될 엄중한 후과’ 제목의 글에서 지난달 20일 일본-프랑스 외교·국방장관의 ‘2+2회의’에서 “우리의 자위적인 국방력 강화조치를 걸고 들며 유엔 안보리의 대조선 제재 결의 이행을 운운했다”고 밝혔다. 외무성은 “이미 수차 언급했듯 우리가 취하는 국방력 강화조치들은 ‘국방발전 5개년 계획’에 따라 이뤄지는 자위권행사의 일환”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에 극구 추종하다 못해 이제는 프랑스까지 끌어들여 있지도 않은 우리의 위협을 고취하고 있다. 반공화국 적대의식에 찌든 고질적 병폐”라며 일본이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밝혔다. 프랑스를 향해서도 “조선반도(한반도) 형세를 모르고 분별없이 처신하다가는 엄중한 후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정부는 관련국을 향해 냉정과 자제 및 신중한 대응을 촉구했다. 지난달 31일 중국 외교부 대변인실은 북한의 화성12형 시험 발사 성공 발표에 대해 “중국 측은 관련 보도와 한반도 기타 각 측의 동향을 인지했다”며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 것은 각 측 공동 이익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대변인실은 이어 “우리는 관련 각 측이 냉정과 자제를 유지하고 언행을 신중히 하고 정치적 해결 방향을 견지하고 대화와 협상을 재개하기 위한 조건을 창출하고 함께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과정을 추동하는 데 주력하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대북 규탄 또는 제재 움직임에 선을 긋는 동시에 대화 국면을 만들자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은 앞서 지난 20일에도 미국이 낸 유엔 안보리 대북 추가 제재안에 ‘보류’ 의견을 내 이를 무산시켰다. 같은 날 류샤오밍 한반도사무특별대표도 한중 북핵협상 수석대표 통화에서 “미국은 ‘제재 만능론’을 포기하고 실질적 조치를 내놓음으로써 북한의 정당하고 합리적인 우려를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북한 미사일 도발의 근본 원인이 지난해 5월 미국이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제한을 풀어 군사적 긴장을 키운 탓이라는 속내도 담겨 있다.현재 중국은 러시아와 역대 최고 수준의 밀착도 과시하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 직전 정상회담을 갖는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두 나라는 앞으로도 대북 추가 제재에 반대하며 “미국이 먼저 양보해 북미 대화의 여건을 만들라”고 공세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당분간 한반도는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가 심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는다. 특히 중국은 국경 봉쇄로 전방위적 물자 부족 현상에 시달리는 북한에 인도적 지원과 교역을 매개로 대북 영향력을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미중 균형외교를 추구하는 한국을 움직여 대북 제재 완화에 동참할 것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일 동맹 가운데 ‘약한 고리’를 흔들어 보려는 의도다. 북한은 지난달 30일 자강도 무평리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지상대지상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이번 발사는 새해 들어 북한이 진행한 7번째 무력 시위다. 지난달 27일 지대지 전술유도탄 두 발을 발사한 지 사흘 만이다. 북한이 이날 쏜 미사일의 비행거리는 약 800㎞, 정점 고도는 약 2000㎞로 탐지됐다. 북한이 IRBM급 이상의 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한 건 2017년 이후 처음이다.
  • 현실정치 뛰어든 초야의 철학자… “安과 선도국가 비전 일치”

    현실정치 뛰어든 초야의 철학자… “安과 선도국가 비전 일치”

    지난 18일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가 갑자기 일정을 취소하고 서울에서 전남 함평으로 한달음에 내려갔다. 그곳에서 안 후보가 만난 사람은 ‘도가(道家) 철학의 대가’인 최진석(63) 서강대 명예교수였다. 최 교수는 과거 민주화 운동권 세력과 문재인 정부를 거침없이 비판해 소신 있는 지식인으로 평가돼 왔으며, 교수 정년퇴임을 7년 이상 앞둔 2018년 함평으로 내려가 인재 양성과 대중강연, 저술활동을 해 왔다. 초야에 묻혀 있던 철학자는 왜 이전투구의 현실정치에 뛰어들었을까. 이런 궁금증을 품고 지금은 ‘국민의당 상임선대위원장’이란 직함을 갖고 있는 그를 서울 여의도 선거 캠프 사무실에서 26일 만났다. -철학자가 왜 정치에 참여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학교에서는 철학과 정치학이 분리돼 있지만, 사실 이 둘은 출생 생년월일이 같고 지행합일의 한 형태다. 정치가 살이 빠지면 철학이 되고 철학에 살이 붙으면 정치가 된다. 지금 우리 정치는 막장이고, 국민은 외통수에 걸렸다. 지식인은 문제를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해결하는 사람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가진 역량을 다 투입해 노력해야 한다고 배웠다.” -도가철학은 속세와 거리를 두는 것 아닌가. “도가는 속세를 떠나는 철학이 아니라 속세에 깊이 개입하는 철학이다. 공자는 본성을 바탕으로, 노자는 자연의 질서를 모델로 해서 사회에 개입한다. 공자와 노자 모두 현실참여다.” -왜 꼭 지금 참여해야 했나. “문재인 대통령은 말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인식을 했다. 대한민국을 위해 싸운 사람을 폄하하고 적(敵)인 사람을 높였다. 예를 들면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백선엽 장군을 무시하고 김원봉을 높였다. 국가정보원 원훈석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돼 감옥에 살던 사람의 필체로 바꿨다.” -친일 문제보다는 반공이 중요하다는 얘기인가. “그게 아니라 대통령은 민족의 지도자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군통수권자라는 얘기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 친일 문제는 학계나 사회단체에 맡겨야 한다.” -과거 5·18 특별법을 반대했는데. “5·18 항쟁은 우리가 더 민주적인 사회, 더 자유로운 나라로 가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법은 기본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막는다. 자유와 민주의 핵심은 표현의 자유다. 5·18을 왜곡하는 한두 마디 말은 현행법으로도 막을 수 있고, 몇 사람의 왜곡으로 5·18 정신이 절대 손상되지 않는다. 5·18에 대해 좀더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과거 촛불혁명을 실패라고 규정했는데. “혁명은 ‘달라지는 것’이다. 낙하산 인사가 문제라면 안 하는 게 혁명이다. 이런 식의 낙하산 인사를 다른 식의 낙하산 인사로 바꾸는 것은 혁명이 아니다. 이런 식의 검찰 장악을 다른 식의 검찰 장악으로 바꾸는 것은 혁명이 아니다. 그것은 반항이다.” -왜 그런 잘못이 반복될까. “시선의 높이 때문이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보는 시선, 세계를 보는 시선 등 인간은 자기가 가진 시선 이상의 무엇을 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이 한 생각의 결과를 보고 자랐다. 선진국으로 가면 ‘생각을 하는 삶’으로 바뀐다. 생각의 결과를 받아서 사는 삶에서 생각하는 삶으로의 이행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차이가 없다. 두분은 시선의 높이가 같다.” -왜 안철수 후보를 택했나. “안 후보와 대화하며 두 가지 말을 듣고 감동했다. ‘왜 정치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나라를 살려야 한다’고 하더라. ‘무엇으로 나라를 살려야 하냐’고 물으니 ‘과학과 교육’이라고 했다. 이제 우리는 과학도 최첨단의 시대로 가고 있다. 과학을 중심으로 한 문명사적 흐름을 꿰뚫고 있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것이 적합하다고 봤다. 안 후보를 처음 만나서 굉장히 매력을 느꼈다. 국가 운영의 비전이 분명하고 나와 꿈이 같았다. 안철수도, 나도 선도국가로 가야 한다는 꿈을 갖고 있다.” -역대 대선에서 중도 후보가 당선된 사례가 없다. 안 후보도 현재 지지율은 3등이다. 이번엔 다를 수 있나. “세상의 어떤 일은 결과와 상관없이 가야만 하는 길이 있다. 중도라는 것은 ‘가운데 길’이 아니라 더 나은 길을 말한다. 중도는 중간이 아니라 거대 양당 위에 있는 탁월한 길이다. 이 탁월한 길이 더 낫다고 해도 유권자는 이득이 아닌 믿음을 추종하는 성향으로 묶여 있다. 믿음으로 묶여 있는 상태에서의 선택이 당신의 이익을 보장하지 못한다고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 -이번 대선에서 처음으로 2030세대가 캐스팅보터로 떠올랐는데. “바람직한 현상이다. 국가의 주도권이 2030으로 넘어가야 한다. 우리의 미래를 미래세대가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밖에서 정치를 보다가 막상 정치권에 들어오니 어떤가. “개안(開眼)을 한 것 같다. 내가 이(정치권) 세상을 모르고 죽었다면 세상의 반쪽밖에 모르고 살다 죽었을 것 같다. 나는 선과 악에 대해 사유한 사람이지만, 선악이 어떻게 연결돼 구현되는지를 경험해 보지는 못했다. 진실한 말과 착한 말, 정확한 말만 다뤘는데 그 말이 어떻게 감춰져 있다가 드러나는지 경험할 수 있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내가 선대위원장을 맡고 나니까 주변에서 그렇게 맑고 깨끗한 분이 그런 탁한 세상에 들어가서 어떻게 하냐고 했다. 하지만 맑기만 한 세상도, 탁하기만 한 세상도 없다. 두 세상이 서로 착종하면서 어떤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다. 좀더 폼나게 얘기하면 내가 그동안 찾았던 수행처를 발견한 것 같다. 책으로 가득 찬 내 서재도, 산 속도 완벽한 수행처가 아니었다. 여기가 완벽한 수행처다. 서재에서 수행의 승부를 보려고 해서는 이 판에서 수행을 해낸 사람을 당해낼 수 없다. 몸은 힘들 수 있겠지만, 자기 완성을 한번 꿈꿔 본 사람이 완벽한 수행처를 발견한다면 그 이상으로 좋은 일이 있을까.” 이 말을 하는 그의 눈이 호기심 가득한 사춘기 소년처럼 빛났다.
  • 현실정치 뛰어든 초야의 철학자… “安과 선도국가 비전 일치”

    현실정치 뛰어든 초야의 철학자… “安과 선도국가 비전 일치”

    지난 18일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가 갑자기 일정을 취소하고 서울에서 전남 함평으로 한달음에 내려갔다. 그곳에서 안 후보가 만난 사람은 ‘도가(道家) 철학의 대가’인 최진석(63) 서강대 명예교수였다. 최 교수는 과거 민주화 운동권 세력과 문재인 정부를 거침없이 비판해 소신 있는 지식인으로 평가돼 왔으며, 교수 정년퇴임을 7년 이상 앞둔 2018년 함평으로 내려가 인재 양성과 대중강연, 저술활동을 해 왔다. 초야에 묻혀 있던 철학자는 왜 이전투구의 현실정치에 뛰어들었을까. 이런 궁금증을 품고 지금은 ‘국민의당 상임선대위원장’이란 직함을 갖고 있는 그를 서울 여의도 선거 캠프 사무실에서 26일 만났다.   –철학자가 왜 정치에 참여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학교에서는 철학과 정치학이 분리돼 있지만, 사실 이 둘은 출생 생년월일이 같고 지행합일의 한 형태다. 정치가 살이 빠지면 철학이 되고 철학에 살이 붙으면 정치가 된다. 지금 우리 정치는 막장이고, 국민은 외통수에 걸렸다. 지식인은 문제를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해결하는 사람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가진 역량을 다 투입해 노력해야 한다고 배웠다.” –도가철학은 속세와 거리를 두는 것 아닌가.  “도가는 속세를 떠나는 철학이 아니라 속세에 깊이 개입하는 철학이다. 공자는 본성을 바탕으로, 노자는 자연의 질서를 모델로 해서 사회에 개입한다. 공자와 노자 모두 현실참여다.” –왜 꼭 지금 참여해야 했나.  “문재인 대통령은 말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인식을 했다. 대한민국을 위해 싸운 사람을 폄하하고 적(敵)인 사람을 높였다. 예를 들면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백선엽 장군을 무시하고 김원봉을 높였다. 국가정보원 원훈석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돼 감옥에 살던 사람의 필체로 바꿨다.” –친일 문제보다는 반공이 중요하다는 얘기인가.  “그게 아니라 대통령은 민족의 지도자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군통수권자라는 얘기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 친일 문제는 학계나 사회단체에 맡겨야 한다.” –과거 5·18 특별법을 반대했는데.  “5·18 항쟁은 우리가 더 민주적인 사회, 더 자유로운 나라로 가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법은 기본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막는다. 자유와 민주의 핵심은 표현의 자유다. 5·18을 왜곡하는 한두 마디 말은 현행법으로도 막을 수 있고, 몇 사람의 왜곡으로 5·18 정신이 절대 손상되지 않는다. 5·18에 대해 좀더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과거 촛불혁명을 실패라고 규정했는데.  “혁명은 ‘달라지는 것’이다. 낙하산 인사가 문제라면 안 하는 게 혁명이다. 이런 식의 낙하산 인사를 다른 식의 낙하산 인사로 바꾸는 것은 혁명이 아니다. 이런 식의 검찰 장악을 다른 식의 검찰 장악으로 바꾸는 것은 혁명이 아니다. 그것은 반항이다.” –왜 그런 잘못이 반복될까.  “시선의 높이 때문이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보는 시선, 세계를 보는 시선 등 인간은 자기가 가진 시선 이상의 무엇을 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이 한 생각의 결과를 보고 자랐다. 선진국으로 가면 ‘생각을 하는 삶’으로 바뀐다. 생각의 결과를 받아서 사는 삶에서 생각하는 삶으로의 이행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차이가 없다. 두분은 시선의 높이가 같다.” –왜 안철수 후보를 택했나.  “안 후보와 대화하며 두 가지 말을 듣고 감동했다. ‘왜 정치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나라를 살려야 한다’고 하더라. ‘무엇으로 나라를 살려야 하냐’고 물으니 ‘과학과 교육’이라고 했다. 이제 우리는 과학도 최첨단의 시대로 가고 있다. 과학을 중심으로 한 문명사적 흐름을 꿰뚫고 있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것이 적합하다고 봤다. 안 후보를 처음 만나서 굉장히 매력을 느꼈다. 국가 운영의 비전이 분명하고 나와 꿈이 같았다. 안철수도, 나도 선도국가로 가야 한다는 꿈을 갖고 있다.” –역대 대선에서 중도 후보가 당선된 사례가 없다. 안 후보도 현재 지지율은 3등이다. 이번엔 다를 수 있나.  “세상의 어떤 일은 결과와 상관없이 가야만 하는 길이 있다. 중도라는 것은 ‘가운데 길’이 아니라 더 나은 길을 말한다. 중도는 중간이 아니라 거대 양당 위에 있는 탁월한 길이다. 이 탁월한 길이 더 낫다고 해도 유권자는 이득이 아닌 믿음을 추종하는 성향으로 묶여 있다. 믿음으로 묶여 있는 상태에서의 선택이 당신의 이익을 보장하지 못한다고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 –이번 대선에서 처음으로 2030세대가 캐스팅보터로 떠올랐는데.  “바람직한 현상이다. 국가의 주도권이 2030으로 넘어가야 한다. 우리의 미래를 미래세대가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밖에서 정치를 보다가 막상 정치권에 들어오니 어떤가.  “개안(開眼)을 한 것 같다. 내가 이(정치권) 세상을 모르고 죽었다면 세상의 반쪽밖에 모르고 살다 죽었을 것 같다. 나는 선과 악에 대해 사유한 사람이지만, 선악이 어떻게 연결돼 구현되는지를 경험해 보지는 못했다. 진실한 말과 착한 말, 정확한 말만 다뤘는데 그 말이 어떻게 감춰져 있다가 드러나는지 경험할 수 있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내가 선대위원장을 맡고 나니까 주변에서 그렇게 맑고 깨끗한 분이 그런 탁한 세상에 들어가서 어떻게 하냐고 했다. 하지만 맑기만 한 세상도, 탁하기만 한 세상도 없다. 두 세상이 서로 착종하면서 어떤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다. 좀더 폼나게 얘기하면 내가 그동안 찾았던 수행처를 발견한 것 같다. 책으로 가득 찬 내 서재도, 산 속도 완벽한 수행처가 아니었다. 여기가 완벽한 수행처다. 서재에서 수행의 승부를 보려고 해서는 이 판에서 수행을 해낸 사람을 당해낼 수 없다. 몸은 힘들 수 있겠지만, 자기 완성을 한번 꿈꿔 본 사람이 완벽한 수행처를 발견한다면 그 이상으로 좋은 일이 있을까.”  이 말을 하는 그의 눈이 호기심 가득한 사춘기 소년처럼 빛났다. 
  • 닉슨·마오쩌둥 악수 뒤엔 패권다툼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다

    닉슨·마오쩌둥 악수 뒤엔 패권다툼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다

    엄혹한 근현대사에서 미국과 중국은 적과 동지의 관계를 넘나드는 묘한 사이다. 1844년 마카오 인근에서 왕샤(望廈) 조약을 통해 첫 공식 관계를 맺은 이후 올해로 178년간 애증의 관계를 이어 왔다. 복잡한 국제질서 속에서 양국 모두 이이제이(以夷制夷)와 원교근공(遠交近攻) 전략을 멋지게 구사했다. 멀리 떨어진 나라와 협력하고 오랑캐로 오랑캐를 제압하는 대전략을 통해 국익 극대화를 관철시킨 나라들이다. 미중의 대립과 갈등이 커져만 가는 국제 정세 속에서 한국의 외교 전략을 모색해 본다. 1840년 1차 아편전쟁에서 패한 중국은 굴욕적인 난징조약(1842년) 체결 뒤 최강국 영국 견제를 위해 미국을 끌어들였다. 중국은 영국을 격퇴하고 독립을 쟁취한 미국을 서구 열강의 방패막이로 활용했고 미국 역시 시장 확대를 위해 왕샤조약을 체결했다. 6·25 전쟁 당시엔 전쟁까지 벌여 숙적이 되기도 했던 양국은 20세기 냉전 당시 손을 잡고 소련을 무너뜨렸다. 물고 물리는 양국이 21세기 패권전쟁에 돌입한 것은 냉엄한 국제질서의 단면을 보는 듯하다. 한국전쟁 이후 20년간 죽의 장막에 갇힌 중국을 극적으로 국제무대로 이끈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제국주의자 미국’이었다.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과 갈등을 빚어 온 중국은 1969년 소련과 무력 충돌 이후 새로운 국가안보 전략을 수립한다. 1971년 7월 9일 낮 12시 15분, 베이징 난위안(南苑) 비행장에 두꺼운 뿔테 안경의 미국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날 파키스탄의 칸 대통령과 만찬 도중 복통을 이유로 사라졌던 인물이 돌연 베이징 공항에 나타난 것이다. 바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외교안보 보좌관, 헨리 키신저였다. 마오쩌둥·저우언라이 등 중국 수뇌부와의 극비 회동을 위한 것이다. 1950년 6·25전쟁 이후 철천지원수로 지냈던 미중 양국이 화해의 첫발을 뗀 순간이었다.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말부터 닉슨 대통령은 공산진영의 넘버2, 중국을 끌어들이는 구상에 착수했다. 중소 국경 분쟁에 휩싸인 중국과 손을 잡고 당시 주적인 소련 견제에 나서야 한다는 키신저의 ‘세력균형론’을 수용한 것이다. 미국은 700년 전 중국 땅을 밟았던 마르코 폴로의 이름을 딴 ‘폴로 프로젝트’라는 극비 계획을 가동했다. ‘키신저·저우언라이 극비 회동’을 통해 미중 수교의 큰 그림을 그렸고 이듬해인 1972년 2월 21일, 골수 반공론자 닉슨 대통령과 미 제국주의 타도를 외쳤던 마오쩌둥 주석이 역사적인 회담을 가진다. 미국은 중소 분쟁의 틈을 노려 중국과 손을 잡고 일거에 힘의 균형을 역전시켰고 `1979년 국교를 수립한다. 소련 붕괴와 냉전체제의 종식은 세력균형을 통해 패권국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키신저 외교’의 결정판이었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팍스 아메리카나(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라는 기본 틀을 유지했다. 미국은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도우면서 ‘아름다운 동반자’로 불렸다. 미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자본주의 분업체제의 틀 속에서 중국은 경제개발에 나섰고, 중국은 그 대가로 이 지역에서 미국의 지배적·군사적 우위를 인정한 것이다. 1979년 미중 수교를 주도했던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힘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린다) 전략이 나온 배경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국민당 장제스 정권과 연합해 대일 태평양전쟁(1941년)을 치른 전우의 사이였다. 큰 틀에서 미국과 중국이 국교를 단절하고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 것은 한국전쟁(6·25전쟁) 이후 20년에 불과하다.양국은 2018년 7월 출구조차 보이지 않는 갈등기로 접어들었다. 관세·무역 전쟁의 외피를 둘렀지만 갈등의 본질은 세계 경제 주도권을 둘러싼 기술 전쟁이란 시각도 강하다. 트럼프·바이든 정권이 3년 넘게 공세를 취했지만 중국은 여전히 결사항전 의지를 다지면서 갈등이 전방위로 확산 중이다. 미국으로서는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한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것을 더는 용납할 수 없다는 경고다. 미국이 중국을 ‘잠재적 적국’으로 간주해 본격적으로 움직인 시기는 2010년부터다. 중국은 그해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일본을 처음으로 추월, 주요 2개국(G2)으로 발돋움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소홀히 했던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정권은 2011년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전략’을 공식선언했다. 대중 포위전략이 본격화되면서 퇴로 없는 패권전쟁에 돌입한 것이다. 중국 역시 세계 강대국으로 우뚝 서려는 대국굴기의 욕망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2012년 11월 당 총서기에 오른 시진핑 국가주석이 세계 최강국의 꿈, 즉 중국몽(中國夢)을 전면에 내걸었다. 미중 모두 ‘투키디데스 함정’(패권국과 신흥 강대국 간의 대결)에 빠져드는 형국이다.
  • 코로나 첫해 신입 직원 넷 중 한 명 공공일자리

    코로나 첫해 신입 직원 넷 중 한 명 공공일자리

    코로나19 첫해인 2020년 공공부문 일자리가 역대 최대인 16만개 이상 늘었던 것으로 집계됐다. 이 해 민간까지 합친 전체 일자리가 70만개가량 늘었던 것을 감안하면 넷 중 하나는 공공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경제가 선순환하기 위해서는 세금으로 만드는 공공 일자리보다 민간에서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공무원 수는 역대 최대인 140만명에 육박했다. 20일 통계청이 발표한 ‘공공부문 일자리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공공부문 일자리는 276만 6000개로 전년보다 16만 4000개(6.3%) 늘었다. 2016년 이 통계를 집계한 이래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2020년 전체 일자리(행정통계 기준) 수가 전년 대비 71만개 증가했던 것을 감안하면 23.1%가 공공에서 늘어난 것이다. 정부기관 등 일반정부 일자리(237만 5000개)가 15만 5000개, 공기업 일자리(39만 1000개)는 9000개가 각각 증가했다. 총취업자 수와 대비하면 10.2%가 공공부문 일자리라고 통계청은 밝혔다. 2019년(9.5%)보다 0.7% 포인트 상승한 역대 가장 높은 비율이다. 공공부문 일자리는 전 연령층에서 일제히 증가했는데 특히 60세 이상 노년층에서 4만 6000개 늘어 증가폭이 컸다. 노인 일자리 사업 확대 등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공공 일자리 평균 근속기간은 11.0년으로 전년보다 0.4년 감소했다. 정부 기능별로 보면 일반공공행정 일자리가 84만 7000개(35.7%)로 가장 많았고 ▲교육 72만 8000개(30.7%) ▲국방 25만 4000개(10.7%) ▲공공질서 및 안전 21만 8000개(9.2%) 등의 순이었다. 공무원 수는 139만 4000명(일자리 수 기준)으로 집계됐다. 1년 새 3만 5000명 늘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전인 2016년에는 128만명이었는데, 4년간 11만명가량 증가했다. ‘큰 정부’를 지향한 영향으로 해석된다. 통계청 관계자는 “정부 일자리정책 로드맵의 영향으로 경찰·소방·교육 등 공무원 수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 [특파원 칼럼] 이건희 ‘베이징 발언’과 정용진 ‘멸공 발언’/류지영 베이징특파원

    [특파원 칼럼] 이건희 ‘베이징 발언’과 정용진 ‘멸공 발언’/류지영 베이징특파원

    지금은 고인이 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53세였던 1995년 4월. 중국 베이징에서 가진 특파원 간담회에서 “한국의 정치는 4류이고 행정과 관료는 3류, 기업은 2류”라고 일갈했다. 지금까지도 널리 회자되는 ‘베이징 발언’이다. 이 회장의 지적은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다. 대통령과 정·관계 지도자들의 그릇이 너무 작아 그의 쓴소리를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이다. 국회의원들도 여야 할 것 없이 “감히 기업가 따위가 우리를 지적하냐”고 격하게 성토했다고 한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그의 발언을 괘씸하다고만 여기지 않고 통치 기조 전반을 점검하는 계기로 삼았다면 우리 사회는 좀더 건강하고 투명하게 성장했을 수도 있다. 27년이 지났다. 이 회장의 조카로 신세계그룹을 이끄는 정용진(54) 부회장이 지난 6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사진이 담긴 기사를 캡처해 올렸다. 기사 제목은 ‘“소국이 감히 대국에…” 안하무인 中에 항의 한번 못해’였다. 정 부회장은 별도의 메시지 대신 ‘멸공’, ‘승공통일’, ‘반공방첩’ 등 해시태그(#)를 달았다. 당연히 중국 공산당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여졌다. 논란이 커지자 정 부회장은 “나의 멸공은 오로지 우리 위에 사는 애들(북한)에 대한 것이니 중국과 연결시키지 말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중국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그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이는 많지 않았다. 베이징의 반응이 궁금했다. 모욕당한 건 반드시 되갚는 ‘늑대외교’로 무장한 중국 지도부가 아닌가. 그런데 아직까지 조용하다. 일부 누리꾼들이 정 부회장의 SNS 활동에 비난을 쏟아내고 이를 ‘애국기사 제조기’ 환구시보가 확대재생산할 때가 됐지만 이번은 그냥 넘어가는 분위기다. 올해가 한중 수교 30주년임을 감안해 서로 얼굴 붉힐 일을 피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다음달에 열리는 베이징동계올림픽의 성공에 매진하겠다는 뜻도 담겨 있다. 2010년 취재차 상하이를 찾은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시내 곳곳에 이마트가 포진해 있었다. 여기서 삼성과 LG의 가전기기와 이랜드·빈폴 등 의류, 락앤락 등 생활용품, 수를 다 세기 힘든 한국 화장품이 팔려 나갔다. K브랜드가 이마트를 등에 업고 중국 시장을 석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런데 주한미군이 한반도에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한 2017년 이마트는 중국 시장 철수를 공식 선언했다. 불과 몇 년 만에 상황이 180도 달라진 것이다. 이 시기 신세계와 정 부회장은 ‘회사 바깥에선 절대로 알 수 없을’ 황당하고 난감한 일들을 무수히 겪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회장의 ‘베이징 발언’과 정 부회장의 ‘멸공 발언’에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나라 최고 재벌인 삼성가에서 나왔고 중국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기업인의 정치 발언을 금기시하는 대한민국에서 ‘할 말은 하겠다’고 결기를 보인 것도 비슷하다. 무엇보다 발언의 이면에 녹아 있는 두 사람의 속내가 같다. 차마 공개적으로 밝힐 수 없는 불합리한 압박에 맞서 조직을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경영자의 어려움과 울분이 그것이다. 최근 정 부회장은 “더이상 멸공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며 백기를 들었다. 기자는 그에게 정치 발언을 하지 말라고 권하고 싶지 않다. 그건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기왕 하려면 감정을 잘 정제해 외삼촌인 이 회장처럼 ‘촌철살인’ 명언을 내놨으면 한다. 사회에 좋은 영향을 줄 ‘죽비소리’를 남기는 것도 정 부회장 같은 스타 기업인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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