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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명 벗은 과거사] ‘인혁당 1차 사건’도 재심서 최종 무죄…50년 만에 매듭

    ‘1차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원회 사건’의 피해자들이 마침내 누명을 벗었다. 1965년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지 50년 만이다. 2007~2008년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된 2차 인혁당 사건에 이어 1차 사건까지 무죄가 확정되면서 ‘사법살인’으로 불렸던 잘못된 수사와 재판이 바로잡히게 됐다.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도예종씨 등 9명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1일 밝혔다. 재판부는 옛 반공법 혐의에 대해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1차 인혁당 사건은 1964년 박정희 정권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반정부 조직을 결성했다며 혁신계 인사 수십명을 잡아들인 사건이다. 당시 서울지검 검사들이 공소제기를 거부하며 사표를 제출하기도 했지만, 도씨 등 13명은 결국 재판에 넘겨졌고 유죄판결을 받았다. 도씨는 이후 1974년 2차 인혁당 사건에 또다시 연루돼 사형을 선고받았고 18시간 만에 형이 집행됐다. 1차 인혁당 사건의 피고인들과 유족들은 2011년 재심을 청구했고, 서울고법은 2013년 9월 재심 개시결정을 내린 뒤 같은 해 11월 무죄를 선고했다. 2차 인혁당 사건 피해자와 유족들은 2007∼2008년 재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1차 인혁당 사건 재심서 무죄 확정…‘최악의 사법살인’ 50년 만에 무죄

    1차 인혁당 사건 재심서 무죄 확정…‘최악의 사법살인’ 50년 만에 무죄

    ‘1차 인혁당 사건’ 1차 인혁당 사건이 재심 끝에 결국 무죄가 확정됐다. 사상 최악의 사법 살인으로 이어진 ‘1차 인민혁명당 사건’의 피해자 고(故) 도예종씨 등 9명이 재심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1965년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지 50년 만이다.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도씨 등 9명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재판부는 옛 반공법 혐의에 대해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1차 인혁당 사건은 1964년 박정희 정권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반정부 조직을 결성했다며 혁신계 인사 수십명을 잡아들인 사건이다. 당시 서울지검 검사들이 공소제기를 거부하며 사표를 제출하기도 했지만, 도씨 등 13명은 결국 재판에 넘겨졌고 유죄판결을 받았다. 도씨는 이후 1974년 2차 인혁당 사건으로 불리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또다시 연루돼 사형을 선고받았고, 18시간 만에 형이 집행됐다. 1차 인혁당 사건의 피고인들과 유족들은 2011년 재심을 청구했고, 서울고법은 2013년 9월 재심 개시결정을 내린 뒤 같은해 11월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몸에 고문의 흔적으로 보이는 상처가 있었고, 변호인이나 가족과 면담·접견이 허락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사를 받았다는 자료 등을 토대로 국가의 불법행위를 인정했다. 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와 당시 국회 조사자료 등을 볼 때 인혁당이 강령을 가진 구체적 조직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다만 당시 기소됐던 13명 가운데 4명은 재심청구가 기각돼 누명을 벗지 못했다. 2차 인혁당 사건 피해자와 유족들은 2007∼2008년 재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고, 당시 검찰이 상고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1차 인혁당 사건 재심서 무죄 확정…‘최악의 사법살인’ 인혁당은 어떤 사건?

    1차 인혁당 사건 재심서 무죄 확정…‘최악의 사법살인’ 인혁당은 어떤 사건?

    ‘1차 인혁당 사건’ 1차 인혁당 사건이 재심 끝에 결국 무죄가 확정됐다. 사상 최악의 사법 살인으로 이어진 ‘1차 인민혁명당 사건’의 피해자 고(故) 도예종씨 등 9명이 재심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1965년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지 50년 만이다.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도씨 등 9명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재판부는 옛 반공법 혐의에 대해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1차 인혁당 사건은 1964년 박정희 정권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반정부 조직을 결성했다며 혁신계 인사 수십명을 잡아들인 사건이다. 당시 서울지검 검사들이 공소제기를 거부하며 사표를 제출하기도 했지만, 도씨 등 13명은 결국 재판에 넘겨졌고 유죄판결을 받았다. 도씨는 이후 1974년 2차 인혁당 사건으로 불리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또다시 연루돼 사형을 선고받았고, 18시간 만에 형이 집행됐다. 1차 인혁당 사건의 피고인들과 유족들은 2011년 재심을 청구했고, 서울고법은 2013년 9월 재심 개시결정을 내린 뒤 같은해 11월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몸에 고문의 흔적으로 보이는 상처가 있었고, 변호인이나 가족과 면담·접견이 허락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사를 받았다는 자료 등을 토대로 국가의 불법행위를 인정했다. 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와 당시 국회 조사자료 등을 볼 때 인혁당이 강령을 가진 구체적 조직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다만 당시 기소됐던 13명 가운데 4명은 재심청구가 기각돼 누명을 벗지 못했다. 2차 인혁당 사건 피해자와 유족들은 2007∼2008년 재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고, 당시 검찰이 상고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1차 인혁당 사건’ 50년 만에 무죄 확정…무슨 사건이기에?

    ‘1차 인혁당 사건’ 50년 만에 무죄 확정…무슨 사건이기에?

    ‘1차 인혁당 사건’ 50년 만에 무죄 확정…무슨 사건이기에? ‘1차 인혁당 사건’ ‘1차 인민혁명당 사건’의 피해자 고(故) 도예종씨 등 9명이 재심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1965년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지 50년 만이다.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도씨 등 9명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재판부는 옛 반공법 혐의에 대해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1차 인혁당 사건은 1964년 박정희 정권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반정부 조직을 결성했다며 혁신계 인사 수십명을 잡아들인 사건이다. 당시 서울지검 검사들이 공소제기를 거부하며 사표를 제출하기도 했지만, 도씨 등 13명은 결국 재판에 넘겨졌고 유죄판결을 받았다. 도씨는 이후 1974년 2차 인혁당 사건으로 불리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또다시 연루돼 사형을 선고받았고, 18시간 만에 형이 집행됐다. 1차 인혁당 사건의 피고인들과 유족들은 2011년 재심을 청구했고, 서울고법은 2013년 9월 재심 개시결정을 내린 뒤 같은해 11월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몸에 고문의 흔적으로 보이는 상처가 있었고, 변호인이나 가족과 면담·접견이 허락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사를 받았다는 자료 등을 토대로 국가의 불법행위를 인정했다. 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와 당시 국회 조사자료 등을 볼 때 인혁당이 강령을 가진 구체적 조직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다만 당시 기소됐던 13명 가운데 4명은 재심청구가 기각돼 누명을 벗지 못했다. 2차 인혁당 사건 피해자와 유족들은 2007∼2008년 재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고, 당시 검찰이 상고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41년 만에 누명 벗은 ‘울릉도 간첩단’

    과거 박정희 정권이 조작한 ‘울릉도 간첩단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김용희(79·여)씨 등 5명이 41년 만에 억울한 한을 풀었다. 김씨는 이 사건 주범으로 몰려 1977년 사형된 고 전영관씨의 부인이다.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년형이 선고됐던 김씨 등에 대한 재심 사건 상고심에서 무죄를 확정했다고 26일 밝혔다. 이번 판결로 평생을 ‘간첩의 아내’로 살아야 했던 김씨는 물론 전씨를 숨겨 줬다는 이유로 각각 징역 1년형을 받았던 전씨 친·인척 3명도 누명이 풀렸다. 또 반국가단체 활동에 동조한 혐의로 징역 5년이 선고됐던 이모씨도 무죄가 확정됐다. 하지만 이씨와 전씨 친·인척 1명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이 사건은 1974년 박정희 정권이 긴급조치 4호를 발령한 뒤 ‘울릉도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간첩단이 있다’며 전씨 등 47명을 불법 감금하고 고문해 허위 자백을 받아 낸 대표적 공안 조작 사건이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울릉도 간첩단 사건 재심서 또 무죄 판결

    1970년대 이른바 ‘울릉도 간첩단 사건’과 관련한 재심에서 네 번째 무죄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이정석)는 40년 전 ‘울릉도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반공법 위반 및 간첩방조 등의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았던 박모(79)씨 등 2명과 이미 세상을 뜬 서모씨 등 3명의 유족이 재심을 청구한 사건에서 모두 무죄 판결했다고 28일 밝혔다. 재판부는 “박씨 등은 당시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에게 연행된 후 불법 구금돼 폭행과 협박 등 가혹행위를 당했고 그 과정에서 자백 진술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 결과 작성된 피의자신문조서, 진술서, 반성문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같은 사건과 관련해 이날까지 네 차례의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피해자는 2012년 11월 이성희(88) 전 전북대 수의학과 교수를 필두로 24명에 이른다. 이들 외에 8명이 재심을 진행하고 있거나 청구를 준비하고 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주말 영화]

    ■독립영화관 부산국제영화제 기획 1 와이드 앵글 단편선 4편(KBS1 토요일 밤 1시 5분) <여름방학>열일곱살 동갑내기 남녀 아이가 동시에 같은 남자를 좋아한다. 동균을 남몰래 짝사랑하는 남학생 준희는 어느 날 학교 양호실에 잠들어 있던 남학생 동균에게 키스하는 모습을 여학생 순영에게 들키고 만다. 순영은 준희의 비밀을 지켜주는 대가로 준희를 마음대로 부리기 시작한다. 결국 준희는 방학 동안 학원이 끝나면 자신의 자전거로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순영을 집까지 태워다 주는 심부름을 한다. 이 일로 두 사람이 함께 보내는 시간은 점점 많아지고, 그럴 때마다 순영은 준희에게 동균에 대해 물어보곤한다. 동균의 생일이 가까워진 어느 날 순영은 준희에게 동균을 만나지 말라는 말을 하게 되고, 준희는 그런 순영의 말을 무시한 채 동균과 친구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칠수와 만수(EBS 일요일 밤 11시) 1988년 동아수출공사가 제작한 사회성 짙은 박광수 감독의 데뷔작. 동두천 하우스 보이의 아들 칠수는 미군을 따라 미국으로 간 누나의 초청장을 기다리고 있다. 숙련된 도공인 만수는 아버지가 반공법에 연류돼 해외 취업을 하고도 외국에 나갈 수 없다. 미대생이라 속여 여대생과 사귀던 칠수는 여대생으로부터 실연당하고 누나와의 연락도 끊긴다. 실망한 칠수와 사회에 분노를 품은 만수가 간판작업을 마친 후, 옥외 광고탑에서 장난을 치며 푸념을 늘어놓고 있을 때, 자살시도로 오해한 사람들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는데….
  • 33년 걸린 진실… 다시 찾은 미소

    33년 걸린 진실… 다시 찾은 미소

    “당연한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너무 먼 길을 돌아왔네요. 재판정에서 거짓말만 하던 검사와 그런 검사 편에 섰던 판사들에 맞서 격정적으로 싸워 주신 노무현 대통령님이 많이 그립고 고마운 마음입니다” 1980년대 부산 지역 최대 공안사건으로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된 이른바 ‘부림사건’의 피해자 5명이 33년 만에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25일 이진걸(55)씨 등 5명에 대한 재심 사건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공소사실 중 반공법 및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해 범죄가 되지 않거나 범죄의 증명이 없다는 이유로 1심 유죄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부림사건 관련 다른 피해자들에 대한 재심에서 계엄법 위반 및 집시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 또는 면소 판결이 확정된 적은 있지만 핵심 죄목인 국보법과 반공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된 것은 처음이다. 전두환 정권이 조작한 사건 당시 모진 구타와 고문을 당하고 범죄자 낙인이 찍힌 채 살아온 이씨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무고한 피해자들을 변호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고호석(58)·설동일(58)·노재열(56)·최준영(62)씨도 이날 이씨와 함께 억울하게 덧칠됐던 죄목을 깨끗이 털어 냈다. 이들은 1981년 부산에서 공부 모임을 가장해 이적 서적을 소지하고 북한 체제를 찬양·고무하는 한편 계엄령으로 금지된 집회에 참가했다는 이유 등으로 공안 당국에 영장 없이 체포돼 불법 감금과 고문을 당했다. 이들을 포함한 대학생, 교사, 회사원 등 모두 22명이 체포됐고 19명이 기소돼 징역 1~7년 형을 선고받고 1983년 형이 확정됐다. 이후 피해자 가운데 11명이 1999년 재심을 청구했고, 이씨 등 5명이 두 차례의 재심 끝에 마침내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이 사건을 계기로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됐다.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변호인’은 지난해 말 개봉해 1136만명의 관객을 동원하기도 했다. 재심 사건의 변론은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정재성(54) 변호사가 이끌었다. 영화 속 국밥집 아들 ‘진우’의 모델이 된 송병곤(56)씨는 현재 정 변호사가 대표로 있는 법무법인 부산의 사무장으로 일하고 있다. 정 변호사는 “피해자 중 재심을 신청하지 않으신 분도 있고 2009년 재심에서도 일부 명예가 회복되지 못한 분들도 계시는데 이번 확정 판결에 따라 추가로 재심을 청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부림사건 33년 만에 무죄 판결 확정…‘변호인’ 33년 간의 억울한 옥살이를 어찌 하나

    부림사건 33년 만에 무죄 판결 확정…‘변호인’ 33년 간의 억울한 옥살이를 어찌 하나

    ‘부림사건’ ‘변호인’ 부산지역 최대 공안사건으로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된 이른바 ‘부림사건’의 피해자 5명이 33년 만에 무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25일 부림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고호석(58), 설동일(58), 노재열(56), 최준영(62), 이진걸(55)씨 등 5명에 대한 재심 사건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5공화국 시절 대표적 공안사건인 ‘학림사건’의 부산판이라는 뜻의 ‘부림사건’은 1981년 공안 당국이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과 교사, 회사원 등 22명을 영장 없이 체포해 수십일 간 불법 감금하고 고문해 조작한 용공 사건이다. 피고인들은 1977∼1981년 이적서적을 소지하고 공부모임 등을 통해 반국가단체 등을 찬양·고무하는 한편 계엄령에 금지된 집회를 하거나 사회적 불안을 야기할 우려가 있는 집회에 참가했다는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당시 19명이 기소돼 법원에서 징역 1∼7년 형을 선고받았고, 1983년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부림사건의 변론을 맡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 사건을 계기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됐고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고씨 등은 1990년대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받은 뒤 2012년 8월 부산지법에 재심을 청구해 개시 결정을 받았다. 지난 2월 열린 재심에서 재판부는 검사 작성 피의자신문조서와 각종 압수물 등의 증거능력을 배척한 뒤 피고인들의 반공법 및 국가보안법 위반, 계엄법 위반 등의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 판결하고, 집시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면소 판결했다. 부림사건 33년 만에 무죄 소식에 네티즌들은 “부림사건 33년 만에 무죄, 이제서야”, “부림사건 33년 만에 무죄, 참 오래 걸렸다”, “부림사건 33년 만에 무죄,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림사건 33년 만에 무죄 판결 확정…‘변호인’ 33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어찌 보상받나

    부림사건 33년 만에 무죄 판결 확정…‘변호인’ 33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어찌 보상받나

    ‘부림사건’ ‘변호인’ 부산지역 최대 공안사건으로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된 이른바 ‘부림사건’의 피해자 5명이 33년 만에 무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25일 부림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고호석(58), 설동일(58), 노재열(56), 최준영(62), 이진걸(55)씨 등 5명에 대한 재심 사건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5공화국 시절 대표적 공안사건인 ‘학림사건’의 부산판이라는 뜻의 ‘부림사건’은 1981년 공안 당국이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과 교사, 회사원 등 22명을 영장 없이 체포해 수십일 간 불법 감금하고 고문해 조작한 용공 사건이다. 피고인들은 1977∼1981년 이적서적을 소지하고 공부모임 등을 통해 반국가단체 등을 찬양·고무하는 한편 계엄령에 금지된 집회를 하거나 사회적 불안을 야기할 우려가 있는 집회에 참가했다는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당시 19명이 기소돼 법원에서 징역 1∼7년 형을 선고받았고, 1983년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부림사건의 변론을 맡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 사건을 계기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됐고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고씨 등은 1990년대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받은 뒤 2012년 8월 부산지법에 재심을 청구해 개시 결정을 받았다. 지난 2월 열린 재심에서 재판부는 검사 작성 피의자신문조서와 각종 압수물 등의 증거능력을 배척한 뒤 피고인들의 반공법 및 국가보안법 위반, 계엄법 위반 등의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 판결하고, 집시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면소 판결했다. 부림사건 33년 만에 무죄 소식에 네티즌들은 “부림사건 33년 만에 무죄, 억울한 옥살이 어찌 보상받나”, “부림사건 33년 만에 무죄, 한창 좋을 나이를 억울한 옥살이 때문에”, “부림사건 33년 만에 무죄, 얼마나 속이 탈까”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친 ‘억울한 옥살이’로 고통 김한길 前대표 등 유족 3명에 국가가 9800만원 배상 판결

    부친 ‘억울한 옥살이’로 고통 김한길 前대표 등 유족 3명에 국가가 9800만원 배상 판결

    김한길(61) 새정치민주연합 전 공동대표가 부친인 김철 전 통일사회당 당수의 억울한 옥살이와 관련해 국가로부터 배상금을 받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9단독 김유랑 판사는 김 전 대표 등 유가족 3명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는 각 3200여만원씩 모두 98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소 승소 판결했다고 24일 밝혔다. 김 판사는 “긴급조치 제9호 위반죄로 김 전 당수를 574일간 구금한 것은 국가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면서 “이로 인해 김 전 당수의 가족들이 겪었을 고통에 대해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1977년 석방 뒤에도 김 전 당수는 수사기관으로부터 감시 및 사찰을 당하는 등 유·무형의 불이익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선구자로 알려진 김 전 당수는 1975년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같은 당 박모 중앙상임위원회 의장의 공소장 사본을 언론사에 배포했다가 유신헌법을 부정·반대·왜곡·비방하는 주장이나 보도 행위 등을 금지하는 긴급조치 9호를 위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3~4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각각 긴급조치 9호의 위헌·무효를 확인하는 결정과 판결을 내리자 1994년 숨진 김 전 당수를 대신해 유족들이 서울고법에 재심을 신청했고, 같은 해 9월 37년 만에 김 전 당수에 대한 무죄 선고가 내려졌다. 이에 김 전 대표 등은 형사보상 청구를 통해 1억 1000만원을 보상받았으며 추가적으로 불법구금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석촌 지하차도 싱크홀 옆 거대 동공 추가 발견…길이 80m에 폭 5~8m ‘큰 사고날 뻔’

    석촌 지하차도 싱크홀 옆 거대 동공 추가 발견…길이 80m에 폭 5~8m ‘큰 사고날 뻔’

    ‘석촌 지하차도 싱크홀’ ‘동공’ 석촌 지하차도 싱크홀 옆에 동공이 또 발견됐다. 길이가 80m에 이르는 거대 동공이었다. 서울시는 지난 13일 석촌지하차도 입구 싱크홀의 원인을 조사하던 중 지하차도 중심부에서 폭 5∼8m, 깊이 4∼5m, 연장 80m의 굴을 발견했다고 14일 밝혔다. 굴의 천장은 지하차도 표면에서 약 4∼5m 아래에 있었으며, 발견 당시 천장 부분이 이미 주저앉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서울시는 석촌지하차도 양방향 차량 통행을 완전히 중단시킨 상태다. 서울시와 싱크홀 전문가 조사단은 이날 현장에서 기자설명회를 열고 이 땅굴과 지난 5일 발견된 폭 2.5m, 깊이 5m, 연장 8m의 싱크홀이 지하철 터널 공사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밝혔다. 조사단은 “1차 조사 결과 2건의 지반침하 현상은 지하철 9호선 3단계 건설을 위해 석촌지하차도 하부를 통과하는 쉴드(Shield) 터널 공사가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쉴드 공법은 터널 굴착 방법의 하나로 원통형 쉴드(강재)를 회전시켜 흙과 바위를 부수면서 수평으로 굴을 파고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조사단은 직진하던 쉴드가 공사 중에 멈춰 있었던 지점에서 지반 침하가 크게 일어났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석촌지하차도가 있는 지역은 지하수에 취약한 충적층(모래·자갈)이 두껍게 자리한 곳으로 터널 공사로 인한 지하수 수위의 변동에 따라 침하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조사단은 설명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동부도로사업소와 삼성물산 등 시공사들은 연약한 지반에서 쉴드를 쓸 때 어떤 위험이 있을 수 있는지 이미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시공사들은 2012년 10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제출한 지반공법보고서에서 지하수 유출 가능성을 언급했다고 밝혀 향후 부실 공사와 서울시의 관리 책임 문제가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조사단은 싱크홀이 제2롯데월드 공사 또는 석촌호수 수위 저하와 관련됐을 가능성은 작다고 밝혔다. 조사단장인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호수와 현장과의 거리를 감안할 때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어 보인다”면서도 “정밀 조사를 통해 관련 여부를 계속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석촌 지하도 싱크홀 옆 거대 동공(공동) 추가 발견, 길이 80m에 폭 5~8m…큰일날 뻔

    석촌 지하도 싱크홀 옆 거대 동공(공동) 추가 발견, 길이 80m에 폭 5~8m…큰일날 뻔

    ‘석촌 지하도 싱크홀’ ‘공동’ ‘동공’ 석촌 지하도 싱크홀 옆에 공동(동공)이 또 발견됐다. 길이가 80m에 이르는 거대 동공이었다. 서울시는 지난 13일 석촌지하차도 입구 싱크홀의 원인을 조사하던 중 지하차도 중심부에서 폭 5∼8m, 깊이 4∼5m, 연장 80m의 굴을 발견했다고 14일 밝혔다. 굴의 천장은 지하차도 표면에서 약 4∼5m 아래에 있었으며, 발견 당시 천장 부분이 이미 주저앉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서울시는 석촌지하차도 양방향 차량 통행을 완전히 중단시킨 상태다. 서울시와 싱크홀 전문가 조사단은 이날 현장에서 기자설명회를 열고 이 땅굴과 지난 5일 발견된 폭 2.5m, 깊이 5m, 연장 8m의 싱크홀이 지하철 터널 공사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밝혔다. 조사단은 “1차 조사 결과 2건의 지반침하 현상은 지하철 9호선 3단계 건설을 위해 석촌지하차도 하부를 통과하는 쉴드(Shield) 터널 공사가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쉴드 공법은 터널 굴착 방법의 하나로 원통형 쉴드(강재)를 회전시켜 흙과 바위를 부수면서 수평으로 굴을 파고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조사단은 직진하던 쉴드가 공사 중에 멈춰 있었던 지점에서 지반 침하가 크게 일어났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석촌지하차도가 있는 지역은 지하수에 취약한 충적층(모래·자갈)이 두껍게 자리한 곳으로 터널 공사로 인한 지하수 수위의 변동에 따라 침하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조사단은 설명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동부도로사업소와 삼성물산 등 시공사들은 연약한 지반에서 쉴드를 쓸 때 어떤 위험이 있을 수 있는지 이미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시공사들은 2012년 10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제출한 지반공법보고서에서 지하수 유출 가능성을 언급했다고 밝혀 향후 부실 공사와 서울시의 관리 책임 문제가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조사단은 싱크홀이 제2롯데월드 공사 또는 석촌호수 수위 저하와 관련됐을 가능성은 작다고 밝혔다. 조사단장인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호수와 현장과의 거리를 감안할 때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어 보인다”면서도 “정밀 조사를 통해 관련 여부를 계속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시는 원인이 정확히 규명되고 지반이 안정될 때까지 석촌지하차도 차량 통행을 금지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석촌 지하차도 싱크홀 옆 거대 동공 또 발견…길이 80m에 폭 5~8m ‘아찔’

    석촌 지하차도 싱크홀 옆 거대 동공 또 발견…길이 80m에 폭 5~8m ‘아찔’

    ‘석촌 지하차도 싱크홀’ ‘동공’ 석촌 지하차도 싱크홀 옆에 동공이 또 발견됐다. 길이가 80m에 이르는 거대 동공이었다. 서울시는 지난 13일 석촌지하차도 입구 싱크홀의 원인을 조사하던 중 지하차도 중심부에서 폭 5∼8m, 깊이 4∼5m, 연장 80m의 굴을 발견했다고 14일 밝혔다. 굴의 천장은 지하차도 표면에서 약 4∼5m 아래에 있었으며, 발견 당시 천장 부분이 이미 주저앉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서울시는 석촌지하차도 양방향 차량 통행을 완전히 중단시킨 상태다. 서울시와 싱크홀 전문가 조사단은 이날 현장에서 기자설명회를 열고 이 땅굴과 지난 5일 발견된 폭 2.5m, 깊이 5m, 연장 8m의 싱크홀이 지하철 터널 공사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밝혔다. 조사단은 “1차 조사 결과 2건의 지반침하 현상은 지하철 9호선 3단계 건설을 위해 석촌지하차도 하부를 통과하는 쉴드(Shield) 터널 공사가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쉴드 공법은 터널 굴착 방법의 하나로 원통형 쉴드(강재)를 회전시켜 흙과 바위를 부수면서 수평으로 굴을 파고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조사단은 직진하던 쉴드가 공사 중에 멈춰 있었던 지점에서 지반 침하가 크게 일어났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석촌지하차도가 있는 지역은 지하수에 취약한 충적층(모래·자갈)이 두껍게 자리한 곳으로 터널 공사로 인한 지하수 수위의 변동에 따라 침하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조사단은 설명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동부도로사업소와 삼성물산 등 시공사들은 연약한 지반에서 쉴드를 쓸 때 어떤 위험이 있을 수 있는지 이미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시공사들은 2012년 10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제출한 지반공법보고서에서 지하수 유출 가능성을 언급했다고 밝혀 향후 부실 공사와 서울시의 관리 책임 문제가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조사단은 싱크홀이 제2롯데월드 공사 또는 석촌호수 수위 저하와 관련됐을 가능성은 작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림사건, 국가존립 위험성 없다”… 33년 걸린 명예회복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된 부림사건 관련자 5명에 대해 33년 만에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부산지법 형사항소2부(부장 한영표)는 13일 부림사건(국가보안법 및 계엄법 위반죄)에 대해 재심을 청구한 고호석(58)씨 등 5명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은 단순히 정권에 반대한다거나 사회주의에 관한 공부를 한 정도가 아닌,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줄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 적용되므로 피고인들의 학생운동이나 현실 비판적인 학습 행위만으로는 위 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피고인들의 행위가 국가의 존립과 안전, 자유기본질서를 위협했다고 볼 수 없다”며 청구인들에게 적용된 계엄법 위반도 무죄로 판결했다. 집시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이 사건 판결 이후 법이 개정되면서 범죄로 볼 수 없게 됐다며 면소 판결했다. 고씨는 무죄 판결 후 “합리적 판단을 내려 준 재판부와 많은 관심을 보여 준 국민들께 감사드리며 당시 변호를 맡아 헌신적으로 노력해 주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거듭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재판부의 무죄 판결과 관련해 법원의 한 관계자는 “이번 재심 사건에 대한 재판부의 무죄 판결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보고서엔 피고인들이 고문 등 가혹 행위를 당했다는 사실이 없었지만 당시 피고인들의 진술이 불법 구금과 고문 등으로 인한 강제 자백이었음을 인정, 무죄를 선고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당시 부림사건의 담당 공안검사였던 고영주(65) 변호사는 “좌경화된 사법부의 판단으로, 사법부 스스로가 자기 부정을 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또 “과거 공안 사건들을 무죄 판결할 때에도 모두 같은 논리를 적용했고 그 외의 사건들은 ‘민주화운동 보상 등에 관한 법률’로 아무 이유 없이 퍼 주곤 했다”면서 “노무현 정부 때 시작된 이러한 흐름이 박근혜 정부까지 이어진 것이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33년 만에 무죄 판결’ 부림사건과 영화 ‘변호인’의 힘

    ‘33년 만에 무죄 판결’ 부림사건과 영화 ‘변호인’의 힘

    ‘33년 만에 무죄 판결’ 부산지역 최대 공안사건인 이른바 ‘부림사건’의 재심 청구인 5명에게 33년 만에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부산지법 형사항소2부(한영표 부장판사)는 13일 부림사건의 유죄판결에 대한 재심을 청구한 고호석(58)씨 등 피고인 5명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33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게 된 것. 부림사건은 지난 1981년 공안 당국이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과 교사, 회사원 등 22명을 영장 없이 체포해 불법 감금, 고문한 뒤 국가보안법, 계엄법,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한 공안사건이다. 당시 19명이 기소돼 법원에서 징역 1∼7년형을 선고받았으나 이후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받았다. 33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게 된 부림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33년이라는 시간 탓도 있지만 팍팍한 생활 속에서 잊혀졌다. 그런 부림사건은 영화 ‘변호인’을 통해 새삼 부각됐다. 무려 1134만명이 영화 ‘변호인’을 관람했다. 영화에서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라며 절규하는 송우석 변호사는 관객들을 향해, 국가를 향해 ‘국가란, 정의란 무엇인가’를 되물었다. 33년 만에 무죄 판결을 내린 재판부는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은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줄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 적용되기 때문에 피고인들의 학생운동이나 현실비판적인 학습행위만으로는 이 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영화 ‘변호인’에서 송 변호사가 변론하던 내용이나 별다름 없다. 영화 속 송 변호사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33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은 부림사건의 당사자들은 “재판부의 현명하고 합리적인 판단에 감사하고 이 사건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여준 언론과 국민에세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늘의 무죄 선고는 33년 전 우리들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변호했던 노무현 변호사의 노력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33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은 이진걸(55)는 “정말 많은 시간이 흘렀고 어쨌든 진실이 밝혀져서 대단히 기쁘다”면서 “앞으로는 국가 권력에 의해 우리와 같은 희생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부림사건과 영화 ‘변호인’의 힘

    부림사건과 영화 ‘변호인’의 힘

    부산지역 최대 공안사건인 이른바 ‘부림사건’의 재심 청구인 5명에게 33년만에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부산지법 형사항소2부(한영표 부장판사)는 13일 부림사건의 유죄판결에 대한 재심을 청구한 고호석(58)씨 등 피고인 5명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부림사건은 지난 1981년 공안 당국이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과 교사, 회사원 등 22명을 영장 없이 체포해 불법 감금, 고문한 뒤 국가보안법, 계엄법,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한 공안사건이다. 당시 19명이 기소돼 법원에서 징역 1∼7년형을 선고받았으나 이후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받았다. 부림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33년이라는 시간 탓도 있지만 팍팍한 생활 속에서 잊혀졌다. 그런 부림사건은 영화 ‘변호인’을 통해 새삼 부각됐다. 무려 1134만명이 영화 ‘변호인’을 관람했다. 영화에서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라며 절규하는 송우석 변호사는 관객들을 향해, 국가를 향해 ‘국가란, 정의란 무엇인가’를 되물었다. 재판부는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은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줄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 적용되기 때문에 피고인들의 학생운동이나 현실비판적인 학습행위만으로는 이 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영화 ‘변호인’에서 송 변호사가 변론하던 내용이나 별다름 없다. 영화 속 송 변호사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무죄 판결을 받은 부림사건의 당사자들은 “재판부의 현명하고 합리적인 판단에 감사하고 이 사건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여준 언론과 국민에세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늘의 무죄 선고는 33년 전 우리들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변호했던 노무현 변호사의 노력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무죄를 선고받은 이진걸(55)는 “정말 많은 시간이 흘렀고 어쨌든 진실이 밝혀져서 대단히 기쁘다”면서 “앞으로는 국가 권력에 의해 우리와 같은 희생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중앙지검장에 보고·승인 여부 핵심 쟁점…조만간 정식 감찰 전환·징계 수위 판가름

    국가정보원 대선·정치 개입 수사와 관련해 항명 파문의 중심에 선 윤석열(53) 수원지검 여주지청장에 대한 진상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향후 내부 징계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조만간 정식 감찰로 전환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21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은 길태기 검찰총장 직무대행의 지시에 따라 18일부터 윤 지청장 및 특별수사팀에 대한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진상조사는 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과 공안부장들이 맡고 있다. 윤 지청장에 대한 진상 조사는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에게 영장 집행 이전에 보고를 했는지, 공소장 변경 관련 승인을 받았는지 등이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검찰은 윤 지청장이 조 지검장에게 영장 집행 전 보고를 했다는 주장과 공소장 변경 신청 시 네 차례의 보고를 통해 허가를 받았다는 주장에 대해 검찰청법 7조와 검찰보고사무규칙 등을 준수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윤 지청장이 조 지검장에게 사전 보고한 것이 정식 보고 절차로 인정되고, 공소장 변경 등에 대한 사전 승인을 받았다면 통상적으로 징계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검찰은 윤 지청장이 상급자의 지휘·감독을 따르도록 규정한 검찰청법과 중앙지검 예규, 사무규칙 등을 어겼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지청장이 조 지검장에게 건넨 A4용지 두 장짜리 보고서와 당시 이뤄진 보고는 집무실이 아닌 장소에서 이뤄진 점 등 형식과 절차상 문제가 있어 체계를 갖춘 보고로 볼 수 없고, 공소장 변경과 관련해 네 차례에 걸친 보고 역시 정식 보고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르면 이번 주 대검찰청에 진상조사 보고서를 올린 뒤 정식 감찰로 전환할 것인지와 징계 수위 등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 반공법 위반 재심 사건에서 상부의 지시를 무시하고 무죄를 구형했던 임은정 검사는 정직 4개월의 처분을 받았다. 상부보고 없이 영장을 집행한 경우가 흔치 않아 윤 지청장에 대한 징계 수위는 이보다 더 높을 가능성도 있다. 한편 윤 지청장에 대한 진상조사가 또 다른 ‘찍어 내기’를 위한 절차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윤 지청장이 기밀유출 등을 우려해 제대로 보고조차 하지 않았던 이진한 2차장을 필두로 공안부장들이 진상 파악에 나섰기 때문이다. 국정원 사건을 두고 수사기간 내내 특수·공안 라인의 충돌이 있었던 데다 원 전 원장 기소 등을 두고 갈등이 표출되기도 한 마당에 ‘특수통’ 강골 검사로 불리는 윤 지청장을 찍어 내기 위한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부고] ‘김지하 석방 담화’ 오탁근 前법무장관

    [부고] ‘김지하 석방 담화’ 오탁근 前법무장관

    오탁근 전 법무부 장관이 15일 새벽 별세했다. 92세. 경북 의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일제강점기 말 경북고와 일본 메이지대 법대를 나와 1950년 대구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5·16 군사정변 이후 개설된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의 차장보, 박정희 정권 말기에 검찰총장을 역임했다. 1980년부터 이듬해까지는 29, 30대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 당시 특별담화를 통해 반공법 및 계엄법 위반으로 복역 중이던 김지하씨 등 8명의 석방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 한국가스공사 이사장과 여의도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를 지냈다. 유족으로는 아들 태환(사업)·장환(사업)씨, 딸 정혜·상혜·숙혜·성혜씨 등이 있다. 빈소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은 17일 오전 8시. (02)2227-7580.
  • 37년만에 부친 무죄 입증한 김한길 “재판부 사과에 울컥”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시절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복역한 부친의 무죄를 37년 만에 입증했다. 김 대표는 13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고(故) 김철 전 통일사회당 당수의 ‘긴급조치 9호’ 위반 사건 재심에서 청구인 자격으로 진술했다. 김 대표는 “20대 청년으로 아버지의 재판을 지켜보던 제가 어느덧 60대가 됐다”면서 “37년이 지난 오늘 이미(1994년) 저세상으로 가신 아버지와 법정에서 민주주의를 놓고 마음의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그동안 심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많은 고통을 겪은 가족들에게 사법부를 대신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김 대표는 선고 직후 “재판부의 사과에 울컥했다”면서 “유신시대를 극복하는 것은 물론 현재 맞닥뜨린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소회를 밝혔다. 김 대표의 부친은 1975년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같은 당 중앙상임위원 박모씨의 공소장 사본 등을 언론에 배포했다가 긴급조치 9호와 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옥고를 치렀다. 김 대표는 헌법재판소가 지난 3월 긴급조치 9호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고, 대법원도 무효성을 확인하자 지난 6월 재심을 청구했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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