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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위기 둘러싼 강ㆍ온 대립의 저변

    ◎치열한 개혁속도 논쟁… 크렘린 갈등 증폭/급진파 “시장경제 도입 5백일내 매듭”/온건파 “사유재산제등 단계적 실시를”/방법론에 큰 이견… 소 지도부 분열 가능성도 이번 가을 회기에서의 종합적인 경제개혁안 채택을 싸고 현재 개회중인 인민대표회의(의회)를 포함,소련전역이 급진 대 온건의 일대 논쟁에 휘말려 있다. 논란의 초점은 16인 대통령자문위원인 스타니슬라프 샤탈린의 주도로 입안된 급진적인 개혁안인 「5백일 계획」과 니콜라이 리슈코프 현 총리가 추진하는 단계적 경제개혁안이다. 이 2개 안이 함께 인민대표회의에 제출돼 있다. 대체적인 분위기는 샤탈린안을 지지하는 쪽이다. 우선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 의장을 중심으로 한 급진개혁 세력들이 절대적으로 이 안을 지지하고 있다. 러시아공화국의회는 이미 지난 11일 샤탈린안을 공식 채택,오는 10월1일부터 시행할 것을 결의해 놓고 있다. 소련영토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러시아공화국의 이같은 결의는 중앙정부로서도 사실상 뒤집을 수 없는 결정이다. 일반 소련국민들도 급진개혁을 요구한다. 지난 16일 모스크바 시내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 분위기가 이를 대변한다. 「리슈코프 사임」「옐친 대통령 지지」 등이 시위대의 주장이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도 분명치는 않지만 지난 14일 인민대표회의에서 샤탈린안과 거의 유사한 절충안을 제시,급진개혁 지지를 표명했다. 따라서 공식적으로 3개 개혁안이 의회에 제출돼 있는 실정이다. 대통령 경제보좌관 아벨 아간베기얀이 이끄는 긴급조정위가 설치됐지만 단일안 마련에는 실패했다. 리슈코프총리도 14일 기자회견을 갖고 샤탈린안이 채택될 경우 가격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와 실업 등이 초래돼 소 전역이 엄청난 혼란에 빠질 것이라며 반격에 나섰다. 그러나 리슈코프의 약점은 취임 후 5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련국민들이 겪는 경제사정이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물론 현재대로라면 그의 계획이 의회에서 지지를 받을 가능성도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소련경제가 처한 사정이 과연 샤탈린의 급진개혁안으로 회복될 것이냐에도 많은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샤탈린안은 가격자유화와 국유재산의 대폭적인 사유화등 본격적인 시장경제 도입과 15개 공화국의 경제주권을 대폭인정,소연방의 소위 「경제연합체화」를 주요골자로 담고 있다. 이를 위한 5백일간의 시행지침도 마련돼 있다. 우선 1백일까지는 공화국간 경제개혁위가 설립돼 개혁일정을 조정한다. 기존 경제부처의 권한은 유명무실해진다. 그리고 국가자산의 매각과 농민에 토지매각이 시작된다. 이 기간중 세출삭감을 통해 국방비 10% 삭감,KGB예산 20% 삭감,외국에 대한 원조의 76%를 줄여나간다. 각 공화국 중앙은행으로 구성된 연방준비은행을 설립,직종별로 설치되는 상업은행과 함께 2중은행 시스템을 구축하고 루블화의 단일환율제를 정착시킨다. 2백50일까지는 가격자유화의 전면실시와 소규모기업의 절반까지 사유화를 이룬다. 4백일까지는 제조산업의 40%를 매각하고 자본자유화를 전면 실시한다. 마지막으로 5백일까지는 제조업체의 70%,건설ㆍ소규모기업의 90%를 사유화시킨다는 의욕적인 계획을 담고 있다. 이 과정 전반에서 각공화국은 중앙정부에 앞서 상당한 경제주권을 행사하게 된다. 개혁추진과정에서 초래될 부작용은 최대한 국가에서 흡수한다는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리슈코프안은 92년까지 단계적 시장화를 추구하되 가격인상 실시시기와 폭,사유화의 도입 폭을 싸고 샤탈린 안보다 신중한 입장이다. 중앙정부의 경제 권한도 보다 강조한다. 예를 들어 세금ㆍ루블화관리ㆍ석유 등의 전략자원관리는 계속 중앙정부가 관할하자는 주장이다. 어떻게 보면 이 두 안은 개혁의 실시시기와 방법상의 차이만 있을 뿐 개혁을 하겠다는 기본 정신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두 안을 싸고 전개되는 갈등은 현 지도부내의 균열로까지 비화될 조짐이다. 리슈코프는 자신의 안이 거부될 경우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이미 밝혀놓았고 옐친측은 그의 사임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어쩔 수 없이 샤탈린안 지지쪽으로 입장을 바꿨지만 결국은 지난 5년간의 실정을 자인하는 결과가 돼 리슈코프의 사임만으로 정치적인 부담을 마무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일반국민들의 샤탈린안 지지도 현 경제사정에 대한 불만에서 오는 반사적인 지지의 측면이 강한 것으로 풀이된다. 금년초 정부가 일부 품목의 가격자유화 방침을 발표했을때 가격폭등과 사재기 등의 일대혼란을 겪었던 일을 생각한다면 샤탈린안이 안고 있는 「위험」도 간과할 수 없다. 물론 그후로도 생필품의 부족현상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도저도 안되니까 차라리 한꺼번에 해버리자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일반 시민들 사이에 퍼져있다는 지적이 있다. 급진경제개혁을 실시했을 때 나타날 여러 쇼크현상을 과연 어떻게 흡수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와 함께 필연적으로 가속화될 각 공화국의 정치적인 탈크렘린 현상에는 과연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급진개혁 채택 이후의 소련에 오히려 불안한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 선거구 「30만상한」이면 30여곳 증가/지역구분할 어떻게 추진되나

    ◎소선거구제 유지·표의 등가성 높여/분구대상지 조직책 자천타천 무성/민자 계파중복된 곳 숨통트여 술렁 민자당이 올 정기국회에서 국회의원선거구 조정등 의원선거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선거구가 어떻게 획정지어질 것이냐에 정가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14대 총선이 1년6개월이나 남았음에도 불구,선거구 재조정은 금배지를 향하고 있는 선량후보들을 술렁이게 하고 있으며 분구대상지의 조직책후보까지 벌써 거론되기 시작하고 있다. ○…지난 13대 총선직전 당시 민정당이 독자통과시킨 의원선거법의 선거구 획정기준은 인구하한을 8만8천명,상한을 35만명으로 했으며 20만명 증가마다 1개 선거구씩을 분구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따라 지역구가 2백24개가 되었고 전국구 의석으로 지역구의 3분의1인 75석을 배정,전체 의석이 2백99석이었다. 민자당이 이번에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되 지역구를 늘리는 선거법개정을 거론하면서 그 주된 이유로 내세운 것은 투표권의 등가성. 과거 「여촌야도」시절 여당측이 자기에게 유리한 농촌지역에 지역구를 늘리다보니 인구 상하한편차가 벌어졌으며 미·일 등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정도의 인구편차를 보이는 것은 위헌이라는 판례까지 있다는 것. 민자당 일각에서는 지역구분구 상한선을 인구 20만∼25만명까지 대폭 낮춰 표의 등가성에 충실해보자는 견해도 대두하고 있으나 그럴 경우 전체의석이 지금보다 50∼1백여석이 늘어나 대국민 설득력이 없다는 반론이 대두. 현재 민자당내에서는 지역구획정 인구하한선은 그대로 두고 상한선을 35만명에서 30만명으로 내리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으며 금년 초 3당합당당시 내부적으로 이 방안을 추진하자는 합의가 있었다는 관측. 인구하한선을 30만으로 낮출 경우 8만8천이상∼30만이하의 시·군·구는 1개 선거구,30만∼50만은 2개,50만∼70만은 3개,70만이상은 4개 선거구로 각각 분할된다. 이를 금년초 인구통계를 기준으로 지역별로 살펴보면 서울 12,부산·경남 8,대구·경북 5,인천·경기 6,광주 1,대전 1개 지역 등 30개이상의 지역구가 늘어나게 된다. 민자당은 또 충북 보은·옥천·영동,경남 충무·통영·고성 등 1개 선거구가 3개이상의 행정구역으로 이뤄진 지역도 분구한다는 방침이어서 전체지역구수는 35∼36개가 증가된 2백60개 내외가 될 것으로 전망. 민자당은 전국구의원을 포함한 전체 의원정수가 과도하게 늘지 않도록 전국구의원의 대지역구의원비율을 현행 3분의1에서 4분의1로 낮추는 방안을 강구중. 이에따라 전국구의원수는 65명내외가 될 것으로 보이며 전체의원수는 3백25명수준에서 결정될 것이란 관측. 민자당 일부에서는 지역구 인구 하한선을 현행 8만8천명보다 다소 높여 호남·강원지역 등의 선거구수를 줄여보자는 견해도 대두하고 있으나 대야·대국민 설득력이 없다는 평. 금년초 인구를 토대로 지역구 인구 상한선을 30만명으로 낮출 경우 서울에서 분구가 예상되는 지역은 용산 성동 동대문 성북 도봉 양천 관악 강남 송파 강동구 등이며 구로구는 현재의 2개 선거구에서 4개 선거구로 2개가 더 떨어져나올 것으로 예상. 부산·경남지역에서는 부산 진 동래 남 북 사하 금정구 등과 마산·창원 등이 분구예상지역이고 대구는 동 북 수성 달서구 등이 추가 분구대상. 그밖에 인천 북구,경기의 수원 성남 부천 광명 과천 시흥,광주 북구,대전 중구,경북의 포항 등도 분구가 유력시되는 지역들. ○…민자당의 경우 인구 30만명을 상한선으로 잡을 경우 12개 정도의 「다량」의 지역구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서울은 3당통합과정에서 아깝게 지구당위원장 인선에서 탈락했던 인물들을 중심으로 우선 배정될 전망. 그동안 복잡한 사정으로 아직까지 위원장직을 공석으로 두고 있는 도봉을을 포함한 도봉구는 지역구가 2개에서 하나 더 늘 경우 신오철의원(도봉갑위원장)의 지역구를 제외한 나머지 2개의 자리를 놓고 민정당 시절부터 지역구진출을 노려왔던 양경자의원(전국구)과 배성동 전민정당의원,공화계가 밀고 있는 조용식 전공화당대변인 등이 각축을 벌일 듯. 민정·민주계의 갈등으로 역시 조직책인선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는 양천구도 2개로 나눠지면 박범진(민정계) 박수복씨(민주계)가 한자리씩 나눠 가질 것으로 예상. 강남구는 분구가 될 경우 지난번 총선때 강남에서 예상외의 선전으로 당시 공화당의 성가를 높인 최재구 당고문을 공화계가 강력 천거할 태세를 보이고 있으나 이대순(전체신부장관·민정계)·강인섭씨(민자당당무위원·민주계) 등을 염두에 두고 있는 민정·민주계도 자신들이 밀고 있는 인물의 역량과 비중을 내세워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 상당한 진통을 겪을 전망. 또 관악 성북 송파 동대문 등도 지역구가 늘어나게 되면 지난 선거에서 고배를 들었던 김종인 청와대경제수석·김정례당고문·조순환·유종렬씨 등이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를 것으로 보이지만 이번 기회를 지역구진출의 「호재」로 포착하고 있는 조경목ㆍ임인규ㆍ서상목의원 등 일부 전국구의원들도 암중모색에 나설 것으로 예상. 6개 정도의 지역구가 늘어날 부산은 민주계의 아성인 점을 고려,합당과정에서 다소 소외됐던 민주계인사들이 상당수 등장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민주계에 우선 지명권이 부여될 경우 석준규·노흥준·송두호·권헌성의원(이상 전국구·민주계) 등을 조직책 인선대상에 포함시킬 것으로 점쳐지지만 지난 총선때 지역바람의 영향으로 낙선했던 장성만·유흥수·이상희·정상천씨 등 민정계의 반격도 만만찮을 것으로 분석. 대구·경북은 5개 지역구가 더 늘어날 경우 박철언·최재욱·강재섭·김종기·이재황·김길홍·신진수의원(이상 전국구) 등 영남지역에 기반을 둔 전국구의원들이 대거 자기몫 찾기에 나설 것으로 보이고 5공 후반기부터 조심스럽게 정계입문기회를 타진해온 김복동씨도 나설 것으로 정가주변에서 해석.〈최태환·이목희기자〉
  • 중동 위기에 대처하는 자세(사설)

    이라크의 쿠웨이트침략을 규탄하는 국제사회는 다시 그들의 쿠웨이트합병 발표이후 직접적인 응징을 위한 확고한 대응태세를 굳히고 있다. 그럴수록 중동지역의 전운은 더욱 짙어지면서 일촉즉발의 파국을 앞두고 있는 듯하다. 전쟁이란 어느 일방의 공격과 그 대응에 의해 확대되게 마련이다. 이라크는 선제 무력침공행위를 반성하거나 철회하기는 커녕 미국을 비롯한 세계적 응징태세에 반격하듯 사우디아라비아 침공 의사를 보였다. 그들은 「성전」이라는 이름아래 1백만명을 추가 징집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어느 쪽이 전쟁도발자이며 국제적 범죄자인지 얼른 분간하기조차 어렵게 된다. 또 침공에 대한 응징이 선인지 응징에 대한 「성전」운운의 대응이 악인지 한계가 모호해진다. 지금 중동이 처한 모순과 위기를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현상이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 전면전을 불가피하게 할 수도 있는 이라크의 군사적 모험주의가 끝내 포기되지 않는다면 그에대한 국제적 제재와 응징은 마땅한 것이다. 유엔안보리는 이미 대이라크 경제적 제재와군사적 행동을 결의한 바 있다. 소련 역시 다국적군에 참여할 뜻을 굳혔다. 소련이외에도 일부 북대서양동맹국들과 아랍연맹국가들도 대이라크 제재행동에 뜻을 같이하고 있다. 그렇다고 세계는 지금 중동 위기가 더 이상 확대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유엔이나 아랍동맹국들의 중재 노력과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전쟁은 도발한측의 실수로서 곧장 끝나야 한다. 확전은 전쟁 당사국은 물론 그 동맹세력까지도 피폐케 한다. 그것이 바로 인류공통의 평화의지를 말살하는 전쟁이 사라져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우리 정부가 유엔의 대이라크 경제제재와 무기판매를 금지한 제1차 결의에 지체없이 동조한 것도 그 때문이다. 사실 전쟁에 대한 혐오와 기피,평화에의 의지와 노력에 있어 우리는 누구보다도 앞서는 민족이다. 우리는 동족전쟁을 겪었고 그보다 오래전에 일제의 침략과 병탄에 의한 국권상실의 뼈저린 경험도 갖고 있다. 지금도 우리는 전쟁적 대결과 체제ㆍ이념의 대립에 의한 민족분단의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라크의쿠웨이트침공에 남다른 증오와 응징의 결의를 갖는 것도 이에 연유한다 할 것이다. 마침 이라크의 침공과정에서 실종됐던 우리 근로자 3명이 돌아왔다. 우리로서는 더이상의 사태전개와 관련해서 현지의 우리 근로자및 교민들 안전문제에 더욱 유념해야 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들을 대피시킬 수 있는 외교적인 수단과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세계와 인류는 국제화해와 긴장완화라는 시대적 추세에 역행하는 무력대결은 극력 피해야 한다. 더구나 지금 확전위험속에서 이라크가 경솔하게도 화학무기를 사용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것은 파멸이다. 인류문명의 발상지의 하나인 메소포타미아가 회교도들의 무덤이나 비극의 땅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라크는 평화공존의 논리가 성숙되어가는 세계사적 조류에 동참해야 한다. 즉 전쟁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 군과의 갈등ㆍ정치적 미숙이 “불씨”/부토총리 왜 별안간 실각됐나

    ◎대통령ㆍ군 견제로 개혁의지 실현못해/부패ㆍ종족분규 미해결로 민심도 이탈 지난 88년 12월 파키스탄국민들의 「피플스 파워」에 힘입어 회교국 최초의 여성총리에 취임하면서 파키스탄의 민주화를 이끌 새 기수로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베나지르 부토 총리가 6일 집권 20개월만에 넘어지고 말았다. 부토총리를 전격해임시킨 굴람 이샤크 칸대통령은 해임원인으로 부토의 족벌정치와 정부의 부정부패,정치적 무능력을 지적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아직도 파키스탄내에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군부와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부토는 88년 군부와 칸대통령사이에 이뤄진 타협아래 총리에 임명될 수 있었지만 실제로는 총리와 대통령 그리고 군부가 권력을 공유하는 삼두체제가 이뤄짐으로써 부토정부는 취임초기부터 많은 취약점을 안은 허약한 정부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이같은 취약점은 부토의 정치적 미숙과 겹쳐 내각책임제에서 대통령이 총리를 해임하는 사태로 비화됐다. 부토는 집권 후 지아 울 하크 전대통령치하에서 자신과 함께 고난을 받았거나 친인척,자신과 친밀했던 측근들을 고위직에 대거 임명,족벌정치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이것이 『부토정부의 비효율성을 증대시키고 있다』고 지적돼 왔는데 이같은 비효율성은 부토 스스로 야당측에 반격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두번째로는 부정부패문제. 파키스탄공직자들이 부패해 있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가장 결정적인 타격은 지난 4월 부토총리의 남편인 아시프 자르다리가 파키스탄 최대의 독직사건이라 할 수 있는 부하리공갈ㆍ사취사건에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게 된 일이다. 이 사건에 자르다리가 관련됐음이 명백하게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파키스탄국민들은 이미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취임 한달후인 89년 1월 54%에 달했던 부토총리의 인기도가 이 사건 후인 지난 6월 34%로 급락한 것만봐도 이 사건이 부토의 이미지에 얼마나 큰 타격을 가했는지 알 수 있다. 부토의 정치적 무능력에 대한 비판은 부토가 물려받은 해결과제들이 너무 많았던데다 총리의 권한행사를 제한하는 파키스탄의 독특한 2원적 정부체제에기인한 것이다. 파키스탄은 내각책임제를 기초로 하면서도 대통령에게 총리해임권 및 의회해산권을 부여한 2원적 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같은 제한속에 부토의 개혁노력은 사사건건 제동이 걸려 지난 20개월간 부토정부가 한 일이라곤 예산안을 통과시킨 것외엔 야당으로부터의 공격을 막는데 급급해왔다. 부토가 취임전 민주화개혁을 위해 내세웠던 수많은 선거 공약들은 결국 공약으로 그치게 됐고 이에 대한 국민들의 배신감이 부토정부의 정치적 무능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게 됐다. 더욱이 부토총리의 정치적 기반인 남부 신드주에서 인도출신 모하지르족과 토착 신디족간에 발생한 종족간 대립은 올해에만도 1천1백87명의 사망자와 2천4백91명의 부상자를 내는 등 파키스탄 최대의 위기로 지칭될 만큼 악화되고 있다. 이에 군이 동원돼 질서유지에 나섰지만 군이 「범법자」들을 체포하면 뒷전에선 정치적 압력을 받은 경찰이 이들을 다시 석방하는 악순환이 계속돼 군의 불만이 고조돼 왔다. 때문에 군은 군사재판소를 설치,범법자들에 대한 재판권을 군에 부여할 것을 요구했지만 부토총리는 그럴 경우 사실상의 계엄령상태가 되며 민간정부의 권위를 손상시킨다며 이를 거부,군부와의 갈등을 빚어왔다. 결국 신드주의 종족간 대립진압에 대한 군의 강경방침과 부토총리의 온건방침이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충돌하고 만 것이다. 부토는 취임이후 인도 캐슈미르주의 분리운동을 둘러싸고 매우 공격적인 대인도외교정책을 폄으로써 인도와의 마찰을 계속 증폭시켜왔는데 신드주의 내우에 대인도마찰의 외환까지 겹쳐 「국가가 위기에 처했다」고 생각한 군부가 이번 부토축출에 나선 것이다. 칸대통령이 군부의 동의 없이는 부토총리를 해임할 수 없었음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미르자 아슬람 베그 파키스탄 군참모총장은 군이 권력을 잡을 생각은 없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오는 10월 새 총선의 결과와 관계없이 앞으로 파키스탄 군부의 입김이 한층 강화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파키스탄의 민주화노력은 한걸음 후퇴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 아랍권 맹주 꿈꾸는 후세인/대이란 전쟁 주도… 권력기반 다져

    ◎중동패권 거머쥐려 침략도 불사 사담 후세인 대통령은 지난 79년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줄곧 중동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도 불사해 온 중동의 야심가. 자신은 스스로를 「바그다드의 기사」로 칭하고 있으나 그를 적대시하는 사람들은 「바그다드의 도살자」로 부른다. 1937년 4월28일 바그다드 북부 티그리스강변의 티크리트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9개월만에 아버지를 여읜채 숙부 밑에서 자랐다. 18세에 학생운동에 뛰어들어 혁명당인 바트당에 입당했으며 1956년에는 친영정권에 항거하는 시위에 참여. 59년 당시의 압델 카림 카셈총리 암살사건에 가담했다가 이집트로 망명했다. 63년 바트당이 쿠데타로 집권하자 귀국했으며 9개월후 바트당정권이 쿠데타로 무너지자 체포돼 복역하기도 했다. 66년 석방된 그는 68년 바트당이 쿠데타로 재집권하자 혁명위원회 부의장겸 부통령으로 임명되는 등 정상을 향한 도약의 발판을 구축했다. 79년 42세에 평화적 정권교체로 대통령이 된 그는 총리ㆍ총사령관ㆍ혁명위원회 위원장ㆍ바트당총재직을 모두 장악,독재권력의 기반을 확보했다. 중동패권 장악의 꿈을 가진 그는 지난 75년 이란ㆍ이라크 양국이 체결한 수로협정이 불평등하다며 1980년 혁명직후의 이란을 침공,중동역사상 가장 긴 8년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란의 반격으로 한때 위기에 몰리기도 했으나 미국 및 이란혁명을 두려워 하는 온건 아랍국 사우디와 쿠웨이트의 지원,그리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정치술수로 오히려 정권기반을 단단하게 구축했다. 철권독재정치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우상화를 꾀하는 등 절대적 지위를 장악하고 있다. 이란과의 전쟁이 끝난뒤에도 중동에서의 패권장악을 위해 군비증강을 부르짖었으며 특히 핵무기ㆍ화학무기 및 장거리미사일 개발에 역점을 두어 왔다. 그는 이란과의 전쟁기간중 화학무기의 사용으로 국제적 비난을 받았으며 최근에는 핵무기와 화학무기개발용 부품수입 문제로 미국ㆍ영국 등과 외교적 마찰을 초래해 왔다. 그의 대통령취임후 모두 7번의 암살기도 사건이 있었다. 수니파 회교도인 그는 1963년 사촌인 사지다 톨파여사와 결혼,5자녀를 두고 있다.
  • 조치훈,본인방 2연패/고바야시 9단 눌러

    일본에서 활약하고 있는 조치훈9단의 25,26일 일본 시즈오카(정강)현 하전센트랄호텔에서 열린 본인방전 도전 7번기 제7국에서 도전자인 고바야시(소림광일)9단에게 백을 쥐고 2백30수만에 3집반을 이겨 4승3패의 전적으로 타이틀을 방어했다. 조9단은 4국까지 1승3패로 무관이 될 위기에 몰렸으나 그뒤 반격전을 펼쳐 통쾌한 역전승을 거두고 본인방 2연패에 성공했다.
  • 라이베리아반군 대통령궁 포격/수도 대부분 장악… 최후결전 돌입

    【몬로비아 로이터 연합】 수도 몬로비아에 대한 막바지 공세를 취하고 있는 라이베리아 반군은 24일 마침내 새뮤얼 도 대통령이 은신해 있는 대통령궁에 공격을 가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했다. 목격자들은 반군 함정이 대통령궁 인근 해역에 접근 6발 이상의 포탄을 퍼부었으며 도 대통령과 함께 있는 5백여 친위병력도 즉각 반격에 나섰다고 전했다. 이날 교전으로 인한 피해상황은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 찰스 테일러가 이끄는 반군은 몬로비아에 집격한 이후 시 대부분을 장악한데 이어 정부군의 마지막 거점은 대통령궁 함락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다른 외교관들은 몬로비아의 미국 외교관들이 도에게 수도를 테일러에게 내주고 탈출하도록 설득했으나 실패했다면서 도는 기적이그를 살릴 것이라는 그의 종족의 신념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했다.
  • 김 민자대표 부산 회견·야 보라매집회의 여운

    ◎“대화 촉구” 지루한 장마정국 “총선 투쟁”/국회버린 장외 선동 격렬 비난/「사실상 내각제 포기」 시사… 대야 반격 김대표/거여 규탄 한목소리… “집회 성공” 자평 야 집회 여야는 주말인 21일 서울과 부산에서 각각 기자회견과 대중집회를 갖고 현재의 대치정국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을 국민앞에 호소하고 나섰다. 야당의 대중집회 강행으로 정국긴장도는 주말을 고비로 한결 높아졌다. 민자당의 김영삼대표최고위원은 이날 부산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야당과 재야의 연합집회를 결렬히 비난하면서 대화에 의한 정국운영을 촉구했다. 평민당과 민주당·재야연합으로 열린 서울 보라매공원의 대중집회는 거여정국의 위축된 야당세를 과시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날을 시발로 야권이 장외투쟁에 들어감으로써 정국은 더욱 풀기 어려운 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다. ○“상당부분 양보” 강조 ○…민자당 김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야당의 보라매집회를 국민에게 불안감을 안겨주는 일로 규정하고 협상테이블로 돌아와 줄 것을 촉구. 김대표는 자신이 야당시절에 가졌던 장외투쟁을 상기,『과거에는 정치규제에 묶여있거나 국회에서 싸울 수 없을 경우 장외투쟁을 했던 것』이라고 말하고 『국회에서 얼마든지 토론의 여건을 제공하고 있는 터에 국회를 버리고 장외로 나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난. 김대표는 그러나 동시에 정치현안에 대해 야당이 협상테이블로 돌아와 줄 경우 이견이 있는 상당한 부분을 양보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국가보안법과 안기부법을 보다 전향적으로 개정할 수 있음을 밝힌 대목이라든지 내각제개헌에 대해 사실상 포기를 시사한 점등은 이들 현안이 곧 보라매집회의 이슈가 되었다는 점에서 보라매집회의 공격목표를 무디게 하는 효과를 노린 셈이다. ○여권 제2인자 부각 김대표가 이날 기자회견을 가진 것은 야당의 보라매집회에 대응,여당의 논리를 홍보한다는 목적외에 여권 제2인자로서의 위상을 보다 확고히 하기 위한 다목적 행사였다는 풀이. 이는 5일전에 가졌던 기자회견 내용과 정치현안에 대한 입장이 큰 차이가 없고 오히려 국민과 국가의 이익이된다고 판단되면 서슴없이 법안들을 앞으로도 강행처리하겠다고 밝힌 대목에서 읽혀지는 부분. 즉 정치현안에 대한 기존의 여권입장을 다시 한번 천명하면서 문제가 되고 있는 물러서지 않는 국회운영을 재삼 다짐한 것은 당내자신의 위상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풀이다. 김대표의 이날 기자회견에서 관심을 끈 부분은 비록 개헌포기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내각제개헌에 대한 의지를 사실상 철회한 대목이다. 김대표는 『내각제를 당내에서 발의한 적도 당론으로 결정한 일도 없다』 『그럼에도 야당이 내각제를 투쟁의 제1목표로 삼는 것은 유감』등의 간접적 표현으로 내각제개헌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대표는 당초 이날 회견에서 당내외의 여론을 제시하면서 내각제개헌 포기를 천명할 것을 검토했었다는 후문. 이같은 방침을 변경,국민과 야당이 반대하는 개헌은 하지 않겠다는 종전의 발언정도로 수위를 낮춘 것은 야당이 내각제를 반대하며 공동투쟁에 나선 시점에서 굳이 내각제에 미련을 갖고 있는 당내 민정계와 공화계를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측근들의 건의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관련,김대표의 측근인 황병태의원이 이날 새벽 급거 부산으로 내려와 김대표와 상당시간 밀담을 가진 바 있고 이때 수위조절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특정인사 연호 자제 ○…평민당과 민주당은 이날 하오 보라매공원에서 재야의 민주연합 통추회의와 공동으로 개최한 「민자당 폭거규탄 의원직사퇴및 총선촉구 결의대회」가 성공적인 집회였다고 자평하고 여세를 몰아 대여규탄의 고삐를 더욱 조여 나가겠다는 자세. 이날 대회를 공동주최한 각 정파는 참석관중수가 지난해 공안정국당시 평민당주최의 보라매공원 집회보다 훨씬 많다고 주장하며 거여에 대한 야권연합 공격의 출정무대로서는 기대이상이었다는 반응. 평민·민주당은 앞으로 정국상황을 봐가며 부산·광주 등지에서도 같은 방식의 대규모 집회를 잇따라 열어 조기총선과 지자제선거 실시를 주장하고 야권통합 분위기를 고취시켜 나가겠다는 전략. 재야의 국민연합과 통추회의도 이번 집회를 계기로 반민자당 투쟁을 위한 재야운동권의열기를 범국민운동적 차원으로 확산시켜 나가겠다는 방침. 이날 집회에서 각 정파는 야권의 대동단결을 과시하기 위해 특정인사의 연호를 자제하고 호칭앞에 「민족의 지도자」등 수식어를 삼갔으며 연단앞에는 평민·민주 양당의 정당원이 나란히 자리잡도록 하는등 각별한 신경. ○“내각제 목숨 걸고 저지” 김대중 평민당총재는 마지막 순서에 1시간여동안 계속한 연설에서 난국수습의 유일한 길이 총선과 지자제선거 동시실시뿐이라고 주장하며 여당이 국회해산을 위헌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점을 의식,『총보선의 형태를 취하건 국회의 자결권에 의한 국회의 종식을 결의하건 여당이 응하기만 하면 되며 어느 방법을 택할지에 대해 여권과 협상할 용의가 있다』면서 여권과의 협상대상을 종전 지자제선거 문제에서 국회해산에 이은 조기총선으로 강도를 가세. 이기택 민주당총재는 『민자당 장기집권을 위해 획책되는 내각제개헌 음모를 목숨을 걸고 저지하겠다』면서 이 문제에 대한 협상가능성을 전면 배제하고 야권통합 문제에 대해서도 『4·19를 하던 정신으로 정치생명을 던져 통합을 이뤄내겠다』고 다짐. 통추회의 상임대표인 김관석목사는 『평민·민주 양당의원들이 의원직을 사퇴하기로 한 것은 민주화를 염원하는 국민의 외침에 대한 결연한 응답』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범민주통합을 위한 결단을 촉구.〈김명서·김경홍기자〉
  • “국회해산” 야 공세 민자의 법리 대응

    ◎“총선불가”… 대치정국 새 국면/“현행헌법에도 위배… 어거지 주장”/경제상황 고려,선거 부작용 홍보 임시국회이후의 여야간 대치정국은 야권의 의원직 사퇴,국회해산 및 조기총선 실시주장을 민자당이 헌법을 짓밟은 발상이라고 반격하는 법리론을 전개함에 따라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민자당측이 지금까지 지난 임시국회때 법안의 일방처리를 유도한 평민당측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던 전략을 수정,법리론으로 맞서기로 방향을 선회한 것은 벼랑끝으로 몰고가는 야권의 공세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방송관계법ㆍ국군조직법중 문제조항의 수정 ▲문공위의 폭력사태 및 야권의 법안상정 실력저지 ▲민생관련 법안의 처리불가피성 등 평면적인 논리로는 역부족이라고 판단한 때문으로 분석된다. 민자당은 이에따라 국민의 절대다수가 경제불안을 이유로 조기총선 실시를 반대한다는 여론결과에 착안,총선이 실시될 경우 예상되는 정치ㆍ경제ㆍ사회불안 외에 현행 법체계상으로도 국회해산과 총선실시는 불가능하다는 논리로 여론에 호소키로 전략을 세운 것 같다. 민자당측이 18일의 소속 국회의원 및 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에 이어 19일의 당무회의에서 채택된 당의 공식입장은 「개헌이 전제되지 않는 한 국회해산과 총선실시는 불가능하다」는 내용으로 요약된다. 88년 2월25일부터 발효된 현행 헌법은 당시 야당측의 요구를 받아들여 국회 해산관련 조항을 삭제했기 때문에 국회의원의 4년 임기를 보장한 헌법 제42조에 의거,국회해산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민자당의 주장이다. 설령 야권의 요구에 따라 국회의원이 전원 사퇴하더라도 총선이 될 수 없으며 13대 국회의 잔여임기기간인 1년6개월을 채우는 보궐선거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민자당측은 이처럼 총선이 자주 실시될 경우 현재 극심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우리 경제가 이를 감당해 낼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야권의 총선실시주장은 국가장래를 도외시한 당리당략차원의 술수에 불과하다고 몰아붙이고 있다. 게다가 전국구의원은 의원직을 사퇴했을 경우 보궐선거에서는 다시 의원직에 지명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현재 등록된 순서에 따라 예비후보가 승계해야 하며 승계자가 없을 땐 궐석이 돼야 하는 문제점도 지적하고 있다. 야당측은 총선실시의 근거로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 국방 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는 헌법조항(72조)을 내세우고 있으나 민자당은 법안의 일방처리나 3당통합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반박하고 있다. 특히 야당측이 『헌법이 국회해산 명문규정이 없기 때문에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의 결의로 국회해산이 가능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우리 헌정사에서 비정상적인 헌정 중단사태의 실례로 꼽히고 있는 「이승만 전대통령의 논리」를 인용,맞서고 있다. 즉 이 전대통령이 6ㆍ25전쟁중 부산피난시절 국회를 해산시키기 위해 『헌법에 대통령의 국회해산권 규정도 없지만 국회해산금지 규정도 없기 때문에 국회를 해산시킬 수 있다』고 했던 억지논리를 빗대어 『야당측이 편의에 따라 헌법을 해석,국회를 해산하는 선례를 남길 경우 훗날 여권도 자신들의 정치적인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국회를 해산시킬 수 있다』면서 야권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이밖에도 우리의 권력구조는 대통령중심제이기 때문에 설령 야당의 요구대로 국회가 해산돼 총선이 실시되고 야당이 압도적인 우위의 의석을 확보하더라도 그것은 국회의 구성비율에만 변동을 가져올 뿐 야권이 정치공세의 궁극적인 목표로 설정하고 있는 정권퇴진으로는 연결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통령은 재임기간중 탄핵소추에 의하지 않고는 임기가 중단될 수 없다는 사실을 대통령중심제의 전형으로 꼽히는 미국이 입증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즉 미국의 경우 매 2년마다 실시되는 중간선거에서 야당이 압승을 거두어도 우리의 야당처럼 그것을 정권퇴진의 논리로 비약시키지 않는다면서 야권정치공세의 예봉에 맞서고 있다. 그러나 야권은 지금까지 법논리보다는 정치논리가 여론에 보단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했던 헌정 40년의 관행을 근거로 의원직사퇴­국회해산­총선실시라는 이미 정해진 수순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천명하고 있다. 비록 헌법상 국회해산의명문규정이 없다고 하더라도 평민ㆍ민주당의원 79명이 모두 사퇴할 경우 민자당이 야당이 없는 여당만의 일당국회를 고집할 수 있겠느냐는 계산인 것 같다. 또 민자당이 이미 표명한대로 사퇴서를 반려하더라도 다시 사퇴서를 제출하게 되면 여당의 사퇴서반려전술도 곤경에 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계산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9월 정기국회이전까지 여야의 공방과 대결해소를 위한 막전ㆍ막후의 절충은 계속 되겠지만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여론이 여야공방의 강도와 타협의 수준을 가늠하는 데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할 것 같다.
  • 고르바초프 당권투쟁서 승리/소 서기장직 재선 안팎

    ◎당정분리 진일보… 권력중심 정부로/“정치국원 직선” 보수파 제안 부결시켜/「민주집중제 유지」 개혁파서 양보할듯 개막초 보수ㆍ개혁세력간의 노선 갈등으로 험로를 예고하던 28차 소련 공산당 대회는 고르바초프가 서기장직에 재선출됨으로써 일단 그를 중심으로한 개혁지도부의 승리로 막을 내릴 전망이다. 서기장 선출 하루 전인 9일 당대회에서 현 지도부가 제출한 당지도부 개편안이 통과되면서 고르바초프의 서기장 재선출은 사실상 예상이 되었었다. 이 개편안은 당서기장 직을 존속시키기로 하는 한편 12명 정원인 기존의 정치국을 최고 23명선으로 확대 개편하는 것을 주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동안 크렘린 권력의 핵이었던 당정치국은 당서기장,신설되는 부서기장 및 15개 연방공화국당 제1서기들이 당연직으로 들어가고 그외 당중앙위서 선출하는 무임소 정치국원 약간명이 추가돼 인적구성면에서 과거와 큰변화를 겪게 되었다. 당초 새 당규약안에 포함돼 있던 당의장 신설안은 표결에서 3천6백47대 4백57로 부결되었다. 확대 개편되는 정치국의선출직 구성방법을 싸고 보수파들이 당대회 직선을 주장했으나 87표차로 부결됐다. 이번 당대회 결정사항을 현지도부의 승리로 풀이할 수 있는 근거는 그동안 당의 실질적 권력기반이던 정치국의 지위가 크게 퇴색됐다는 점을 우선 지적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정치국은 서기장을 비롯해 연방 최고회의의장 등 당과 정부의 고위직을 겸직하는 소련내 실질적인 최고권력자들이 포진된 최고 의사결정 기구였다. 새정치국의 과반수 이상을 공화국 당 제1서기로 채우기로 한 것은 정치국의 위상을 당대표기구로 분명히 한정시킨다는 뜻을 담고 있다. 따라서 이는 고르바초프가 꾸준히 추진해온 당과 정부기구간 권한분리작업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대회개막 전까지 고르바초프는 권한이 1인에게 과도하게 집중돼있다는 이유로 급진ㆍ보수양세력으로부터 서기장직의 사임을 종용받았고 그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당의장과 당 제1서기로 지도부를 2원화 시킨다는 안이었다. 따라서 서기장직을 존속시키기로 한 것은 당권장악면에서 고르바초프가 다시한번 승리한 것으로풀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2백50명으로 구성될 새 당중앙위와 당중앙위서 뽑을 선출직 정치국원들의 성향 그리고,실질적으로 당무를 책임질것으로 보이는 부서기장을 어느 파의 인물이 맡을 것이냐에 따라 이번 지도부 개편의 성격이 보다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평가되는 현지도부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소련의 개혁 템포는 보다 신중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리가초프를 중심으로 한 보수파는 이번 당대회를 개혁과정에서 약화된 당을 재건할 마지막 기회로 간주하고 일대반격을 감행한다는 방침이었다. 대회개막초 가열됐던 보혁논쟁이 이를 뒷받침 한다. 당지도부개편안이 고르바초프의 뜻대로 큰마찰없이 관철된 것은 보수세력의 패배라는 측면보다 이들 보수세력에게 수긍가능한 반대급부가 보장됐을 것이란 추리를 가능케한다. 다시 말하면 당권을 고르바초프가 계속 장악하는 대신 당의 위신유지,나아가 앞으로 개혁일정을 보다 신중하게 추진한다는 합의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11일 폐막일에앞서 채택될 새당강령에서는 하급당원에 대한 당지도부의 영향력을 보장하는 이른바 「민주집중제」원칙의 고수와 함께 국가보안위(KGB),군 및 내무행정에 대한 당의 통제권 등 기존의 당의 권한이 상당부분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국가정책은 지난 3월 신설된 16인 「대통령자문위」를 중심으로 추진해 나가돼 당도 나름대로 새로운 출발이 가능하게 됐다는 뜻이다. 그럴 경우 『당과 페레스트로이카를 따로 떼서 생각할 수 없다』는 보수파들의 목소리가 앞으로 개혁 일정 전반에 어떤 식으로든 반영될 것이다. 조직ㆍ인물,소련이 처한 현재 사정 등을 감안할때 보수세력은 어차피 고르바초프와 맞서 싸워 이기기는 힘든 실정이다. 현 지도부 역시 당원 1천9백만의 소련 공산당을 개혁과정에서 계속 뒷전으로 돌려 힘든 이념논쟁을 계속하기 보다는 타협의 길을 모색하려했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 경우 보다 과감한 개혁을 요구하는 급진세력들의 주장,생활개선을 요구하며 폭발 일보전에 이른 일반시민들의 불만 등은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이런 의미에서고르바초프의 이번 승리는 「제한적」인 승리라 할 수 있다.
  • 원점서 맴도는 「이감사관」 공방(상위쟁점)

    ◎루머 확인 방식으로 야 공격에 대응 여/구속 부당성 부각,정부 도덕성 추궁 야 ▷법사위◁ 영등포역사 상가분양 의혹설과 관련,분양자 명단공개 시비로 5일 하룻동안 공전됐던 국회법사위는 6일 법제처및 군사법원에 대한 업무보고등은 서면으로 대체한 채 감사원 업무보고및 정책질의 안건만을 「독상」으로 올려 이문옥 전감사관사건등 지난 국회 본회의때 여야 공방을 주고 받았던 현안에 대한 격론을 거듭. 특히 평민당측은 사건발생 초기부터 「별러왔던」 이 전감사관 사건을 정부의 도덕성 흠집내기 공세로 연계해 ▲이 전감사관 구속의 부당성 ▲서울시 예산전용 여부 ▲내각제개헌에 대비한 감사원위상연구설 등을 중점 추궁. 이에대해 민자당측 의원들은 갖가지 루머등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야권의 정치공세를 반격했고 감사원측도 민감한 현안에 대해서는 업무보고 내용에도 구체적으로 언급했으면서도 상세한 보충설명등으로 대응. ○…질의에 나선 박상천·오탄·조승형의원 등 평민당 의원들은 『지난 2월 3당통합직후 해외연구반을 편성,해외자료수집 등을 통해 내각제 개헌이 이루어질 경우 감사원을 대통령 직속기구로 두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이 사실이냐』고 묻고 『이는 국군조직법 개정 움직임과 연관해 볼 때 내각제하에서 대통령이 국군과 안기부·감사원을 관장하려는 이원집정부제 추진설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주장. 야당측은 또 감사원은 현집권층과 재벌을 옹호하는 기관으로 전락,국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며 이 전감사관이 폭로한 사실들을 열거하며 감사원의 공정성·정치적 중립성 결여를 공격. 박상천의원은 특별기금을 선심용 지역사업에 사용한 데 대해 강영훈총리가 시인·사과한 것과 관련,『그동안 감사원이 철저한 감사기능을 행사했다면 이같은 시비도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면서 『총리가 앞으로 시정을 약속한 만큼 감사원도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이같은 사건을 처리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주문. ○…야당측이 정치공세에 초점을 맞춘 반면 민자당측은 감사원의 내부기강확립 방안등 공직사회정화및 기강확립 등을 중점 거론,이 전감사관사건 후유증 진화에전력. 유수호의원(민자)은 이 전감사관사건이 공무원사회에 불신풍조를 일으켰다고 지적하고 감사원장은 부하 지휘·감독의 책임을 느끼느냐고 질책. 유의원은 『이 전감사관은 내부문제에 대해서는 마땅히 시정 건의를 통해 해결해야 했음에도 당초부터 폭로를 목적으로 자료를 수집한 인상이 짙다』면서 「인간적 측면」에서의 비난을 퍼붓고 『이 전감사관은 냉철한 반성과 함께 모든 공무원들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고 주장. 유의원은 또 감사원장이 청와대등으로부터 감사중단의 압력을 받았는지 여부와 재벌회사로부터 로비를 받은 사실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질의. 박충순의원(민자)도 이 전감사관 사건에 따른 감사원의 자체기강확립 방안을 묻고 감사원에 대한 외부의 압력여부에 대해서도 추궁. 답변에 나선 김영준감사원장은 『이 전감사원 사건은 사건경위를 떠나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었고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쳐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운을 뗀 뒤 『내부기강 강화교육 등을 통해 앞으로 더욱 충실한 감사활동을 펴 나가겠다』고 다짐. 김원장은 감사원의 내각제에 대비한 연구반편성설과 관련,『지난해 정기국회때 해외연수 명목으로 계상됐던 예산에 따라 올해초 간부일부가 유럽을 다녀온 것이며 연수내용에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연구 등은 일체 포함돼 있지 않다』고 해명. 김원장은 『해외연수 목적은 지자제가 실시될 경우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감사가 어떻게 진행돼야 할 것인지 선진국의 사례를 수집하는 데 있었다』고 부연. ○…3시간여의 답변정회끝에 하오 9시쯤 속개된 회의는 답변내용이 방대한 데다 답변 중간중간에 보충질의등이 쏟아져 자정무렵까지 계속. 김원장은 답변을 통해 『어떤 권력기관이나 재벌등으로부터 업무수행과 관련,직·간접의 압력이나 로비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하고 외부압력으로 여러차례 감사가 중단됐다는 이 전감사관의 주장을 반박하고 『이씨의 구속 타당성여부는 사법부가 판단할 사안인 맡큼 개인적인 견해피력을 자제하겠다』며 이씨의 석방탄원등 별도의 조치를 고려치 않고 있음을 확인. 김원장은 고위공직자에 대한 감사가 미흡하다는 지적에 대해『지난 81년부터 지난 4월까지 공직자비리와 관련,지적된 6천9백38명중 국장급이상 고위공직자가 5백71명으로 고위공직자 숫자가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고 설명. 이날 감사원 답변자료에는 「이문옥관련 설명자료」라는 48페이지 분량의 별도의 책자를 미리 준비해와 눈길을 끌었는데 감사원장의 답변도중 평민당측의 일문일답이 계속되자 일괄답변후 보충질의를 할 것을 주장하는 민자당측이 반발,한때 양측에서 고성이 오가는등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최태환기자〉
  • 「방송개편」ㆍ내각제 뜨거운 공방(상위쟁점)

    ◎“「공민영」 복귀” “장악기도” 맞서 문공위/“국민ㆍ야 무시한 개헌 없을 것” 행정위/법사위선 상가분양 명단공개 요구… 정회소동 ▷문공위◁ ○…정부측의 방송구조 개편안이 정부의 방송장악 및 재벌의 방송지배 음모라는 이유로 평민당측이 공보처 보고사항에서 제외시키자고 주장해 여야간에 논란을 벌이다 이 문제를 제일 뒷순서로 미루는 조건으로 예정보다 1시간 늦은 이날 하오 3시쯤 개의. 최병렬공보처장관은 답변을 통해 『공영방송체제인 현 방송구조를 발전시켜 공민영혼합체제로 변화시키자는 것이 이번 방송구조 개편의 취지』라고 밝히면서 관계법안 처리에 국회의 협조를 요청. 최장관은 ▲공영방송을 KBS(제1TVㆍ제2TVㆍ5개 라디오)와 교육방송(제3TVㆍ제2라디오ㆍ교육FM)으로,민영방송은 신규민영 TV및 라디오로 구성하겠다고 밝힌 뒤 MBC는 현행체제를 유지하되 위상을 재정립하는 문제를 별도로 검토하겠다고 설명. 최장관은 『방송구조 개편을 위해 방송법ㆍ한국방송공사법ㆍ한국방송광고공사법의 개정이 필요하다』면서 법률개정의주요방향은 ▲민영방송 허용 ▲방송의 공정ㆍ공공성 유지장치 보완 ▲방송수입의 사회환원 등이라고 부연. 최장관은 특히 방송법개정과 관련,『한사람의 영향하에 있는 주식이 30%를 넘지 못하게 하겠으며 상호친족관계에 있는 이사의 이사회구성 비율을 3분의1이내로 제한하겠다』고 말하고 『주식소유 초과분에 대한 시정명령을 어길 경우 체형에 처하도록 하겠다』며 방송의 독과점소유를 금지하고 있음을 강조. 최장관은 이밖에 『대통령이 정하는 대기업ㆍ계열기업 및 특수한 관계에 있는 자의 주식소유도 금지시켰다』면서 재벌의 민방참여도 제한시켰음을 역설. 조홍규의원(평민)은 최장관이 『정부시책에 대한 국민반응을 측정키 위해 주로 갤럽연구소와 대륙연구소에 의뢰해 정기 및 간이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있다』고 보고하자 『정부는 여론조사 기능도 없고 갤럽이 조사하는 여론에 대한 감독기능이 전혀 없는 게 아니냐』고 질책. 이에 최장관이 『여론조사란 정부 주체가 되어 하면 객관성이 결여되기 때문에 전혀 간섭이나 통제를 하지 않고 있다』며 여유있게 설명하자 이 부분에 대해서만은 조의원이 더이상 질문을 않기도. 서기원한국방송공사 사장의 현황보고에서도 조의원은 『현황중에 현황이 KBS사장 퇴진에 관한 문제인데 이 부분을 밝히지 않고서는 현황보고를 들을 수 없다』며 또다시 의사진행을 방해해 여야의원들의 설전이 계속. ▷법사위◁ ○…법제처및 군사법원ㆍ감사원 등 3개 부처에 대한 현황보고를 듣고 정책질의를 벌일 예정이던 법사위는 이날 영등포역사상가 분양의혹설과 관련,평민당측이 『전날 개의에 앞서 법무장관의 답변만으로는 국민들의 의혹이 풀리지 않았다』며 이종남법무장관의 재출석과 분양자 명단공개를 요구하면서 회의벽두부터 파란을 거듭,하오 늦게까지 정회하는등 진통. 법무장관의 출석요구 여부를 둘러싼 여야간의 절충이 이뤄지지 않자 김중권위원장(민자)은 상오 11시쯤 일단 개의를 선언했으나 평민당측과 민자당측의 법무장관 출석요구 시비가 계속되자 5분만에 법제처에 대한 업무보고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정회를 선포. 평민당의 박상천ㆍ허경만의원 등은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법무부측이 정치권의 특혜분양자가 없다며 명단공개를 거부하고 있으나 국회의원에 대한 특혜분양 의혹은 더욱 깊어가고 있다』고 지적하고 『법무장관이 분양자 명단공개를 거부할 경우 정부ㆍ여당내에 특혜분양자가 있다는 의혹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정치권 전체가 불신을 받을 소지가 있다』며 명단공개의 당위성을 역설. 당측은 특히 『법무부측이 명단 비공개 이유로 개인의 사생활 보호를 내세우고 있으나 사생활의 개념은 개인의 은밀한 사항을 말하는 것』이라며 『따라서 다중을 상대로 장사를 하려는 사람의 이름을 공개한다고 해서 사생활 침해라 할 수 없다』며 「사생활침해이론」을 반박. 야당측은 이와함께 『과거 이철희ㆍ장영자사건때도 이들 부부의 결혼식 참석자명단을 국회법사위에서 비공개로 의원들에게 밝힌 전례도 있다』면서 법무장관을 출석토록 하기 위해 의사일정을 변경하자고 제의. 이에대해 강신옥의원(민자)은 『국민들의 관심사항이라는 이유로 헌법상 보장된 개인의 인격및 사생활을 침해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고 전제하고 『정부가 소신껏 발표했음에도 불구,이를 불신하고 「여론」이나 「국민」을 팔아 개인의 인권을 무시하는 풍조는 없어져야 한다』며 평민당측 주장을 반격. 여야간의 이견대립으로 하오 늦게까지 절충점을 찾지 못하자 이날 업무보고를 위해 상오부터 기다리고 있던 최상엽법제처장관은 하오 3시쯤 일부 간부들만 남기고 모두 정부청사로 돌아가도록 조치. ▷행정위◁ ○…5일 국회 행정위의 정무1장관실에 대한 정책질의에서 여야의원들은 김윤환장관의 여권내 「비중」을 감안한 듯 내각제개헌문제에서부터 시국사범석방,최근의 영등포역사 상가특혜 분양설에 이르기까지 국정전반에 걸쳐 답변을 요구. 김종완의원(평민)은 『최근의 시국사범 증가는 정무1장관이 재야인사와의 대화를 기피하고 있는 데도 그 원인이 있다』면서 『당과 행정부간의 가교역할을 해야할 정무1장관실이 최근에는 공작정치의 사실이 되고 있다』고 주장. 서청원의원(민자)은 『여야 국회의원 11명이 영등포역사상가 특혜분양에 관련됐다는 최근의 보도는 특정집단에서 의도를 갖고 흘린 의혹이 짙다』고 주장하고 그 출처를 밝힐 것을 요구. 김장관은 답변에서 내각제개헌문제와 관련,사견임을 전제한 뒤 『제도적으로 내각제가 우리 현실에 더 적합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하고 『그러나 국민과 야당의 의사를 무시한 내각제개헌은 이루어지지 않으리라 확신한다』고 강조. 김장관은 또 『내각제를 도입함으로써 「안정된 복수정당제」 「직업 공무원제의 확립」 등 그 전제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고 지적하고 『궁극적으로 내각제개헌문제의 경우 정치권과 국민의 공감대형성이 선행조건이 돼야한다고 본다』고 피력. ▷보사위◁ ○…당초 환경처에 대한 추가경정예산심의와 대정부질문을 벌일 예정이었으나 추경예산심의도중 여야간 현격한 시각차를 보여 3차례 정회끝에 결론을 내지 못하고 개회된지 3시간여만인 하오 5시45분쯤 산회. 이철용의원(평민)은 『당초 예산보다 2백67억여원을 증액한 것은 물가앙등ㆍ인플레 등의 영향을 전혀 고려치 않은 방만한 예산』이라고 지적하고 『화급하지 않은 부분에 추경예산을 신청한 것은 법리에 위배된다』며 소위를 구성,항목별 엄격한 심사를 주장해 정회. 여야의원들간 공방을 벌인 끝에 황명수위원장이 나서 추경예산을 처리하고 빨리 정책질의에 들어갈 것을 요구했으나 황위원장과 야당의원들간에 감정대립이 섞인 설전을 벌인 끝에 세번째 정회. 황위원장은 세번째 회의를 속개했으나 야당의원들이 상임위에 참석하지 않자 『6일 상오 속개,추경심의와 정책질의를 계속하겠다』며 5분만에 산회를 선언.
  • 치열한 보혁 대결… 안개속 크렘린 권력판도

    ◎공산당대회 계기로 본 인맥과 노선/고르비 정점으로 「신사고 개혁」추진 개혁파/옐친 주도… 과감한 군ㆍ경제 개편 촉구 급진파/군ㆍKGB,“개혁이 실업등 초래”비난 보수파 제28차 당대회를 계기로 소련공상당내 보수ㆍ혁신간의 노선대립이 표면화 되고 있다. 소련은 현재 두세력중 어느쪽도 완전히 세력장악을 못한 일종의 「권력공백」상태에 처해있다. 당정치국의 기능이 사실상 정지되고 신설된 대통령자문위가 모든 정책입안을 담당하고 있지만 지방당은 여전히 각종 행정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새의회(인민대표회의)가 구성돼 실질적인 정책토의를 벌이고 있지만 의회내 보수세력의 존재 또한 만만치 않다. 여기에 덧붙여 「개혁2세대」격으로 급진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보수ㆍ급진 양세력으로부터 협공을 당하는 양상인 소련의 현지도부가 과연 어떻게 이번 당대회를 이끌어갈지 주목된다. 새롭게 드러나고있는 각 세력의 노선ㆍ인맥을 정리해 본다. ▷개혁파◁ 고르바초프대통령을 중심으로 실질적으로 개혁 개방정책을 입안,실행에 옮기는 사람들이다. 현정치국내에도 다소 포진하고 있지만 지난 3월 신설된 대통령자문위가 이들의 활동기반이다. 「고르바초프의 분신」으로 통하는 알렉산더 야코블레프(66)가 핵심인물. 정치국원이며 대통령자문위원이다.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IMEMO)소장을 거쳐 87년 정치국원이 되었으며 페레스트로이카,글라스노스트의 이론적 바탕을 마련한 사람이다. 고르바초프에게 대통령직을 맡도록 권고한 장본인으로 알려지고 있다. 예브게니 프리마코프(60)는 「신사고」외교정책을 입안한 장본인으로 외교정책에 관한한 고르바초프의 최고위 측근이다. IMEMO소장을 지냈으며 현대통령자문위원으로 최고회의대의원. 지역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국방비 삭감,동유럽에 대한 불간섭을 지론으로 내세운다. 대한 정책에도 실질적으로 고르바초프의 대행역을 하는 인물이다. 셰바르드나제외무장관(62)도 측근중의 측근. 그외 경제개혁추진과 함께 급부상한 경제 전문가들이 대통령자문위에 대거 기용돼 있다.국가계획위(고스플란)의장인 유리 마슬루코프(53)와 경제학자인 스타니슬라프 사탈린은 집권초기부터 고르바초프의 경제개혁을 보좌한 인물. 니콜라이 리슈코프총리와 레오니드 아발킨부총리는 「자문위」내에서 경제개혁팀을 이끌었으나 5월에 발표한 개혁안이 의회승인을 받지 못한 뒤 「희생양」으로 실각설이 나돌고 있다. 현내무장관이며 대통령자문위원인 바딤 바카틴(53)과 대통령개인보좌관인 게오르기 사크나자로프(65)는 정치구조개편을 주장하는 측근. 사크나자로프는 특히 정치국의 개편과 다당제 도입을 적극 주장하는 인물로 외교에서도 프리마코프와 한팀을 이뤄 「신사고」이론을 개발한 장본인이다. ▷급진개혁파◁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 의장이 된 보리스 옐친은 자타가공인하는 이파의 대표인물이다. 의장당선직후 러시아공화국의 주권선포를 했으며 당대회를 앞두고 고르바초프의 서기장직 사임을 주장하기도 했다. 고르바초프에 맞설 유일한 인물로 꼽힌다. 최근 급격히 부상한 인물은 4월 모스크바시장에 선출된 가브릴 포포프(53)와 5월 레닌그라드시장이 된 아나톨리 소브차크(53). 포포프는 급진적인 경제개혁을 주장하는 경제학자로 의회내 야당세력인 「지역간 그룹」의 발기인. 리슈코프의 개혁안이 미흡하다고 신랄히 비난하고 경제부처의 전면 폐지를 주장하며 모스크바시의 독자적인 경제개혁추진을 내세운다. 소브차크시장 역시 「지역간 그룹」대표로 리슈코프개혁을 맹비난하는 급진개혁파이다. 최고회의 대의원으로 경제법학자,현공산당의 지위에 법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인물이다. 당내 야당세력인 「민주강령」파의 세력도 점차 확산일로에 있다. 옐친을 비롯해 블라디미르 리센코,소브차크 레닌그라드시장 등이 지도자들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강령은 다당제,당간부 특권폐지,당소유재산 반납,군ㆍKGB내 당세포조직 해체 등이다. 모스크바시내 곳곳에서 개혁요구 시위를 벌이는 일반시민들도 무시못할 이들의 지지세력이다. ▷보수파◁ 정치국원인 예고르 리가초프(70)를 필두로 이번 당대회서일대반격을 개시하고있다. 당ㆍ군부내 지지세력을 업고 반사회주의ㆍ반공산주의 세력에 맞서 당재건을 다짐하고 있다. 새로러시아공화국공산당 제1서기에 선출돤 이반 폴로즈코프(55)도 자타가 공인하는 정통마르크시스트. 정치국원으로 KGB의장인 블라디미르 크루츠코프(66)도 고르바초프의 측근이면서 이번 당대회연설에서 보수로 회귀한 듯한 발언을 해 주목을 받고 있다.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입가,개혁정책이 빈부격차와 실업ㆍ범죄ㆍ마약사범 증가등 부작용만 가져왔다고 현지도부를 통박한다. 드미트리 야조프(67)국방장관도 군부개혁과 관련,지도부를 비난했다. 군부내 당세포를 폐지하려는것은 부당하다는 공식입장을 밝히고 있다. 대통령자문위 소속의 베니야민야린(50),보리스 그로모프(46)도 보수노선을 고집하는 인물. 현역 육군중장으로 키예프군관구사령관인 그로모프는 군은 정치와 분리될수 없다며 개혁정책이 지금같이 계속 혼란을 가져온다면 군이 움직일수 밖에 없다는 주장을 펴는 인물이다.
  • “진통하는 크렘린”… 당대회의 향방

    ◎소 개혁ㆍ공산당 장래 가름할 중대 전기/혁신ㆍ보수 협공… 고르비 위상 “시험대”로 2일 개막된 소련공산당 제28차 전당대회는 소련공산당의 장래는 물론 현재 추진중인 개혁정책의 앞날을 가름할 일대 전환점이 될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번 당대회를 통해 페레스트로이카(개혁)의 기반을 한층 더 공고히 한다는 의도하에 당초 91년초에 예정된 당대회 일정을 앞당겨 개최키로 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 대회를 통해 당중앙위를 비롯,당지도부내 잔존 보수세력을 견제할 장치를 보완,앞으로 경제 사회 제분야에서 개혁정책을 가속화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정치국원 예고르 리가초프를 중심으로 한 보수세력은 이번 당대회를 반격의 마지막 기회로 간주,일전불사의 태세를 보이고 있어 보혁간의 한판 대결이 불가피할 것같다. 6월에 열린 러시아 공산당대회는 이들 보수세력의 존재가 여전히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정통 마르크시스트를 자처하는 이반 폴로츠코프를 당제1서기로 선출하는 외에 대회 전반적인 분위기도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비난 일색이었다 보리스 옐친을 앞세운 급진개혁파들 또한 보다 과감한 개혁을 요구하며 독자 당강령제출의사를 밝히고 있고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분당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표면적으로 고르바초프는 보수ㆍ급진 양세력으로부터 협공을 당하는 양상이다. 두 세력 모두 현재 권력이 1인에게 너무 집중돼 있다며 고르바초프에게 대통령직만 갖고 당서기장직은 내놓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대회의 일차적인 관심은 고르바초프의 거취문제이다. 하지만 프라우다지에 공표된 당규약안대로 당의 권력구조가 당의장,제1서기로 분리되더라도 고르바초프가 실질적 대표자리인 당의장을 맡을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당대회 개막을 며칠 앞두고 열린 당중앙위 전체회의에서 보수파들이 고르바초프가 제출한 강령초안을 순순히 채택한 것은 이들이 조직적인 반발을 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임을 짐작케 한다. 서기장이든 당의장이 되든 당의 최고지도자는 당대회 대의원들이 직접 선출케 돼 있다. 4천6백83명의 대의원들로부터 고른 지지를 받을 인물로 고르바초프외에는 내세우기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페레스트로이카 추진과정에서 당의 권력기반은 크게 약화됐지만 군과 비밀경찰 KGB등은 여전히 당의 통제하에 있다. 지금 당을 포기하면 페레스트로이카는 끝장이라는 생각을 현 지도부는 하고 있다. 급진개혁파들은 자신들의 뜻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민주강령」세력을 중심으로 새 당을 만들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는 현 지도부와 함께 보수세력 견제에 뜻을 같이할 것으로 보인다. 고르바초프가 제시한 당강령초안은 레닌이래 유지돼 온 당의 정신에 근본적인 변화를 담고 있다. 민주집중제 폐지,당관료직의 명실상부한 경선제 채택,당정책의 과오시인 등은 기본적으로 급진 개혁파들의 주장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그동안 실질적인 최고 정책결정기구였던 당정치국을 폐지하고 대신 간부회로 개편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당의 권력기반을 거의 무너뜨리는 조치이다. 따라서 개혁세력들이 별도의 당강령 제시등 독자행동을 하더라도 이번 대회서 분당등의 과격행동을 취할 것 같지는 않다. 페레스트로이카에 따른 지위격하로 위상의 변화를 겪었지만 당원 1천9백만명에 달하는 공산당은 여전히 소련내 최대 정치세력이다. 보수세력들은 이번 대회를 계기로 그동안 실추된 권위를 회복하려 하고 있다. 이들의 시도가 당권장악까지 발전하지 못하고 고르바초프의 의도대로 대회가 끝나더라도 혁신세력들과의 갈등은 이번 대회를 통해 한층 더 깊어질 것 같다.
  • 헛도는 국회 3일째… 여야의 입장과 전망

    ◎여의도서 안걷히는 「예산전용」 난기류/사실규명보다 “정치공세 목적” 판단/정공법 자제,진상조사로 우회 반격태세 민자/3역회담 등 유리한 고지 선점 작전/지자제법처리 민자속셈 파악하려는 듯 평민 국회 대정부 질문과정에서 돌출한 87년 서울시 예산전용시비로 냉각된 정국이 어떻게 풀려 나갈지 정가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여야는 지난 28ㆍ29일에 이어 주말인 30일에도 국회의 공전이 거듭됐으나 별다른 접촉도 갖지 못한채 각자의 입장들만 거듭 확인,냉각기류는 당분간 더 지속될 전망이다. 민자ㆍ평민 양당은 일요일인 1일과 주초에 총무와 당3역 등이 잇따라 접촉하는 등 대화체널을 통해 국회정상화를 모색할 것으로 보이지만 서울시 예산전용시비와 관련,이미 양측이 내놓을 수 있는 카드를 모두 내놓았다가 접점을 찾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극적인 합의점 도출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특히 평민당측은 회담초반부터 교착상태에 빠진 민자ㆍ평민 3역회담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키위해 이 문제를 적극활용하고 있는만큼 민자당측으로부터 지자제법안ㆍ안기부ㆍ국가보안법 등 쟁점법안에 대한 일정선의 양보를 받아내지 않는 한 쉽사리 물러서지 않을 태세를 보이고 있다. 더구나 이번 기회를 통해 향후 당의 입지확대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것으로 평가하고 있는 지자제법안에 대해서는 보다 확실한 민자당의 속셈을 확인하겠다는 입장이어서 국회 공전이 장기화될 우려마저 없지 않다. 이에 대해 정부와 민자당은 이번 사태를 유도한 평민당의 「태도」에서 확인했듯 사실규명등 정상적인 의정활동보다는 정치공세 및 위력시위에 그들의 목적이 있었다고 판단,정공법보다는 대국민설득등 우회적으로 반격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즉 여권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조차 주지 않고 무조건 사과ㆍ시인하라며 윽박지르고 파행운영으로 몰고 가는 판깨기식의 돌격에 대해 정면대결을 자제하면서 정부의 철저한 진상조사 및 발표 등을 통해 진위여부를 국민들에게 알려 정치공세의 허구성을 격파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노태우대통령이 30일 상오 민자당의 김영삼대표최고위원ㆍ김종필최고위원과 청와대에서 긴급 회동,이번 국회사태와 관련,▲어떤 사안이든 사실을 확인하고 온당한 처리방안이 이뤄져야 하고 ▲어떤 경우에도 국회가 파행적으로 운영돼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정리한 것도 국회운영을 방해하는 야당에게 더이상 끌려가지 않고 정상적인 국회운영을 해 나가겠다는 의미가 함축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날 회동에서 국회운영방침의 기본방향과 함께 추경예산ㆍ국군조직법ㆍ부동산관계법 등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거듭 확인함으로써 거대 여당의 책임성을 다시한번 인식시킨 셈이다. 따라서 서울시 예산전용시비가 빌미가 돼 공전되고 있는 국회는 각종 현안처리를 둘러싸고 여야가 어느 수준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느냐에 따라 정상화 여부가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2일로 예정된 민자ㆍ평민 양당 3역회담에서 회담의제 및 일정 등 기본사안에 대한 접근점을 찾고 서로 상대의 입장을 어느정도 살려주는 선에서 타협을 해 나가기로 인식을 공유할 경우 급랭된 여야 구조는 다소 풀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평민당은 이미 여권이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한 국회보고를 약속한 예산전용시비를 더이상 물고 늘어질 경우 국회파행의 책임을 자신들이 떠맡을 수밖에 없어 최소한의 양보선을 확인할 경우 국회운영정상화에는 동참해야 할 입장이다. 더욱이 정부의 사정활동과정에서 서울 영등포 민자역사의 상가분양등과 관련,평민당 일부 의원들이 특혜분양을 받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는 등의 보도가 나오자 국회에서 평민당이 여권의 도덕성 흠집잡기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경우 반격을 하기 위한 경고라는 경계의 눈초리를 보이고 있다. 앞으로 상위활동과정에서 이와관련,파상공세를 펼 기회가 더 있는 만큼 국회를 벼랑끝으로 모는 파행운영은 이 정도선에서 그쳐야 한다는 주장이 평민당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측 답변준비기간중 행정위ㆍ내무위ㆍ법사위 등에서 공세를 이어 나가면서 국정조사권 공동발의등의 주장을 계속 펴 나갈 심산이다. 김대중 평민당총재가 30일 『국회보이콧등 강경투쟁으로 계속 나갈지 일단 국회운영에 참여해 시시비비를 가려나갈지는 2일 총재단회의및 의총에서 결론을 내리겠다』고 밝혀 자신들의 주장이 받아 들여지지 않을 경우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29일의 입장에서 다소 후퇴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평민당이 다소 유화적인 입장으로 선회한다 하더라도 순조롭게 국회가 운영돼 나갈 지는 미지수다. 민자당으로서도 지난 여야 총재회담에서 확인됐듯 여권이 현안처리와 관련,더이상 평민당측에 내놓을 「선물」이 없기 때문이다. 여야간의 심각한 견해차,경제사회적인 어려움 등을 감안,내심 연내에 지자제실시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민자당은 최근 평민당이 새로운 돌파구 모색을 위해 지자제조기실시에 체중을 싣는 듯한 모습을 보여 야권이 적극공세로 나갈 것에 대비한 대응논리개발에 부심하고 있는 실정이다. 민자당의 한 당직자는 단지 부동산투기억제 특별법등 민생관련법안을 여야 공동제의 법안으로 처리하고 광주보상법안의 경우 평민당의 주장을 다소 수용하는 선을 제시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점치고 있다. 결국 이같은 양자의 입장을 고려할 때 주초 여야의 신경전을 거쳐 외견상 국회는 정상화의 모습을 회복할 것이지만 각 현안마다 격돌의 파고는 여느 국회 때보다 높을 것으로 점쳐진다. 민자당이 이번 국회에서 처리해야 될 법안은 반드시 처리해 13대초반 국회의 짐이 됐던 5공문제정리및 개혁법안완료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평민당은 강격저지 등으로 선명성을 부각,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민자당은 평민당이 의사진행을 방해하더라도 3일부터 상위활동에 들어가겠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평민당은 그동안 국회공전으로 소화하지 못한 경제2ㆍ사회ㆍ문화분야의 대정부질문일정을 새롭게 조정하자고 주장하고 있어 또한차례 파란이 예상된다. 집권여당으로서 그동안 약속해 온 각종 법안을 처리,책임정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정치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하는 것이 민자당의 고민이라면 국회초반 장을 주도했던 기세를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지 투쟁의 수위선택문제가 평민당의 숙제라 할 수 있다.
  • 노대통령 「6ㆍ29」 3주년 기자간담 내용

    ◎“「윗물」은 직접 점검,사정반 계속 가동”/국정 우선부문은 갈등ㆍ위화감 해소/우리 경제 1∼2년뒤엔 활력 회복 확신/“지도자는 때로는 「물」,때로는 「불」이 되어야” 노태우대통령은 28일 낮 청와대에서 6ㆍ29선언 3주년을 하루 앞두고 출입기자들과 오찬간담회를 갖고 내각제개헌문제,특명사정활동,한소및 한중관계,대북한관계 등 국정전반에 걸쳐 약 1시간20분동안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다음은 노대통령과의 일문입답 요지. ­내일이면 6ㆍ29선언 3주년이 됩니다. 당시 선언과 관련된 공개되지 않은 비화라도 있습니까. ▲나는 본래 비밀을 간직하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설사 있다 해도 여러분들이 가만히 놔두길 합니까. 보도될 것은 다 되어버렸어요. ­6ㆍ29선언에 대해 평가하는 시각이 여러가지인 것 같은데요. ▲여러 눈으로 보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마침 내일(29일) 저녁에 6ㆍ29선언 3주년을 맞아 「국민과의 대화」 시간이 있는데 그 자리에서 회고도 있을 것이고 무엇이 잘 돼 왔고 무엇이 잘 안돼 왔는지도 결산을 하게 되리라 봅니다. 오늘 이 자리는 내일을 위한 예행연습이 되는 셈이군요. 사람들은 흔히들 망각속에 산다고들 하지만 망각이 때로는 좋을 수도 있고 어느 때는 아쉬울 수 있지요. 6ㆍ29이후 변화된 상황에 대해서는 책도 문헌도 많이 나와 있다지요.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편안하고 영광스러웠던 것은 얼른 잊어버리고 무엇이 문제인가 하는데 집착하는 경향이 있지요. 물론 이런 점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어려운 문제가 계속 생기고 문제가 와글와글하는 나라는 발전하고 반면 잠잠하면서 겉으로 문제가 없는 듯이 보이는 나라는 정체하고 후퇴하는 게 사실입니다. 6ㆍ29이후 모든 것이 잘 됐다고 하는 것은 현실안주가 되기 쉽고 뭔가 계속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미래지향적인 발전의 에너지가 될 수 있다고 봐요. 사회 각계 각층의 얘기들을 지도자들이 수렴해 발전적으로 풀어 나가야지요. ­대통령은 스스로 국민에게 부드럽게 보인다고 보십니까,아니면 강하게 보인다고 생각하십니까. ▲얼마전 워싱턴포스트 소련지국장이 회견을 요청해 만났는데이렇게 묻더군요. 「6ㆍ29선언이후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이나 하는 일을 보고 어떤 이는 마음이 약하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옛날의 강경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며 「어느 쪽이냐」고 질문했어요. 나는 이에 「민주주의를 하려니 유할 때는 유해야 하고 또 질서를 잡을 때는 강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대답했습니다. 지도자는 물이 될 때는 물이 되고 불이 될 때는 불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변화가 너무 잦아서는 안되겠지요. 그렇게 되면 국민이 불편하고 자연히 통치도 어려워지지요. 나는 스스로 나의 개성이 유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군에 있을 때 1년에 한두번 화를 내는 일이 있을까 말까 하는데도 부하나 참모들이 나를 어렵고 무섭게 느낀다고 하더군요. 총체적으로 말한다면 나는 권위주의를 싫어합니다. 권위주의는 반민주 정치문화이지요. 과거엔 권위주의가 정치문화의 주류를 이뤄왔으나 이것을 깨뜨리지 않고는 민주주의가 안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6ㆍ29선언이후 권위주의 문화가 다 없어졌다고는 말할수 없지만 적어도 이제는 그것이 정치문화의 주류를 이루고 있지는 않다고 확신합니다. ­집권 중반기에 들어선 이 시점에서 국정의 가장 중요한 부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이 시점이라기 보다는 이 시대의 과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갈등과 위화감을 해소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 다음 현실적이면서 또 그 목표가 보이는 것이 통일문제라고 봅니다.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두가지의 요소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국민의 의지가 통합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통합과도 직결되는 것이지요. 둘째는 경제적으로 후퇴해서는 안되고 안정적으로 발전시켜나가는 것입니다. 경제가 안되면 민주주의도 기대할 수 없지요. 어려운 경제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느냐가 시대적 과제입니다. ­「노­고르비」회담이후 한소관계는 어디까지 와있습니까. ▲회담 당시 분위기가 아주 좋았습니다. 소련측이 공개를 꺼렸습니다만. 지금 문제는 소련측 자체내에 있습니다. 정치ㆍ경제ㆍ사회적으로 갈등이 뒤엉켜 있지요. 내달(7월)에 당대회가 열리겠지만 워낙 경제가 안풀려 안심을 할 수 없습니다. 경제가 안풀리면 보수세력이 반격을 가할 수 있고 급진개혁파도 공격을 할 가능성이 있지요.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중간에서 고민이 크겠지요. 그러나 소련은 국내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으로 보여 고르비도 페레스트로이카정책으로 개혁을 이뤄낼 것으로 기대합니다. 우리가 너무 초조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순리적으로 되게 마련입니다. ­김영삼 민자당대표최고위원이 한소회담직전 노대통령의 연내방소를 자신있게 전망했는데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습니까. ▲희망사항으로 얘기했겠지요. 그 양반도 소련에 갔다 와서 그쪽 분위기도 알고 하니까 그렇게 희망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방소수교단 파견은 언제쯤 이뤄집니까. ▲다음달 소련의 전당대회가 끝나는 것을 봐야 알겠습니다. ­한소회담후 한­중국관계도 급진전되고 있다는데. ▲중국과의 관계개선은 시작이 소련보다 빨리 되었고 또 진전이 진행되어오다가 천안문사태로 주춤해졌지요. 중국은 지금 스스로 정치적 변화를 하기도 어렵고 우리가 강요할 수도 없는 입장이고 해서 경제협력도 자연히 영향을 받게되었지요. 한때 경제교류도 둔화되었으나 최근 회복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9월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다시 상승하게 될 것으로 봅니다. ­항간에는 아시안게임때 대통령이 북경을 방문한다고 하는데요. ▲고르비와 회담이 뜻밖에 이뤄졌다고는 하지만 어디 원인없는 행위가 어떻게 이뤄집니까. 한소회담에서도 느꼈지만 사회주의국가와의 협력,수교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특히 언론의 보도문제입니다. 그들은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그런 문제를 논의할 때 첫째 내거는 조건이 논의의 보안입니다. 한중관계의 언론추측보도는 상대방을 당혹하게 만들고 국익차원에서도 큰 폐해를 끼치게 됩니다. ­중국과의 사이에도 「원인행위」가 이뤄지고 있습니까. ▲내가 직접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어요. ­지난 16일 김대중 평민당총재와의 회담에서 내각제개헌문제등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얘기가 있다는 설이 있던데요. ▲여러번 김총재와 회담을 해봤지만 지난번 회담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게 없었어요. 한가지 이 사람(김대중총재)이 오해하는 것은 금년내에 당장 개헌을 하여 내각제로 바꾸어 내가 또다시 대통령으로 뽑혀 장기집권을 하지 않나 하는 것이었는데 이번에 그 오해는 풀린 것 같았어요. ­내각제개헌 추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대통령중심제나 내각책임제나 정부형태문제를 정치인이면 자유스럽게 논의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까. 김 평민총재와의 회담에서도 밝혔듯이 나는 6ㆍ29선언 당시에도 내 소신은 내각제라고 단서를 붙여 놓고 직선제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내각제를 갖고 무슨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없습니다. 내각책임제가 아무리 좋다 해도 국민이 싫다하면 하지 않을 것이고 야당과도 논의할 용의가 있습니다. 헌법개정문제는 여야가 상의하고 협력해서 할 일이며 일방적으로 몰아부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금년은 국민들에게 정치ㆍ경제ㆍ사회의 안정을 약속한 큰 일이 있는데 금년안에 개헌을 추진한다고 하는 것은 다 뜬 소문입니다. ­부동산투기 근절ㆍ특명사정반 활동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야당에서 권력남용이라고 하고 있으나 국가의 모든 행정책임을 지고 있는 대통령이 참모에게 무엇을 못 시킵니까. 특히 부동산문제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뿌리를 뽑을 것입니다. 5ㆍ7특별담화를 통해 한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데 이를 지킬 주체는 공직자입니다. 공직자의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약속을 지킬 수 없으니 그들의 자세를 점검 안 할 수 없는 것이지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이 있지만 윗물은 내가 직접 점검하여 틀림없다 확일될 때까지 특명사정반을 계속 가동할 작정입니다. 부동산투기ㆍ물가ㆍ민생치안 등에 대해서는 열심히 하고 있으나 아직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지 않고 있는 만큼 더 열심히하여 이만하면 됐다고 할 때까지 노력을 계속할 것입니다. ­특명사정반으로부터 정치인 비리내사에 대한 보고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또 신문에 정치인 비리를 내사한다고 대문짝만하게 쓸려고 그러지요. 그 문제는 알쏭달쏭함이라고만 하겠어요. ­한소 정상회담이후 대북한정책을 어떻게 정리하고 있습니까. ▲기본원칙 자체가 흔들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나 북한측의 주장을 수용하는 범위가 전보다 넓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쪽은 대화의 목적 전부가 선전에 있어 종전에는 끊어버리는 입장이었으나 앞으로는 선전목적이더라도 웬만한 것은 수용하는 선에서 폭을 넓혀 대화를 해 나가게 될 것입니다. ­경제구조의 문제등으로 수출부진등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지난 86년이후 경기가 좋을 때 경제구조 변경을 했어야 했습니다. 어느 외신기자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고 한국경제를 평했듯이 샴페인을 터뜨리기 전에 경제구조 조정을 하고 기술향상 제조업등에 투자의 우선순위를 두었으면 지금의 어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추진하고 있는 정부의 정책이 금방 효과가 나타날 수는 없겠지만 1∼2년뒤에는 반드시 활력을 회복할 것이고 특히 소련등 동구권국가들과의 교역이 본격화되면 소비재 분야등 중소기업의 붐이 일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 내각제개헌 “당위와 부당” 평행선 대립

    ◎“미래지향적 정치구도 위해 불가피” 여/“기득권세력의 장기집권 음모” 반격 야 국회 대정부질문 일정 첫날인 25일의 정치분야 질문에서는 민자당출범이후 정치권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내각제개헌의 당위성 여부를 놓고 여야의 날카로운 공방이 전개돼 관심을 끌었다. 김용채의원을 질문자로 내세운 민자당은 인물이나 권력이 아니라 제도와 정책이 지배하는 선진민주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내각책임제 개헌이 신중하게 검토돼야 한다는 내각제당위론을 공론화한 반면,평민·민주당 등 야권은 김원기·김정길의원 등을 통해 내각제개헌은 집권당의 「장기집권 야욕」및 「기득권 세력의 자기 이익보호를 위한 음모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다」고 반격,내각제의 부당성을 역설했다. 김용채의원은 『21세기의 한국과 통일된 조국을 내다볼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정치구도와 헌정체제의 모색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지적하고 『국민화합및 사회통합의 구현,지역감정 해소,남북통일에 대비할 수 있는 체제정비 등을 위해서는 내각제의 모색이 당연한 것』이라고주장. 김의원은 특히 야당의 이원집정부제 음모설 주장과 관련,『이원집정부제및 영구집권음모 주장등은 터무니없는 발상』이라면서 『미국을 제외한 세계의 모든 선진국들이 내각제를 통해 국가번영을 이루고 있고 대통령제 아래에서 보다는 민의가 보다 예민하고 충실하게 반영되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도 이 제도의 선택을 고려할 때』라고 거듭 강조. 이에대해 평민당의 김원기의원은 『대통령직선제를 수용한 6·29선언에 존립근거를 둔 현정권은 내각책임제 개헌을 논의할 자격이 없다』며 내각제 개헌논의 부당성을 제기하고 『현재의 국회의원 어느 누구도 지난 총선때 13대 국회에서 내각제개헌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한 사실이 없는 만큼 국회에서 이를 거론하는 것도 정치도의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역설. 김의원은 정부여당의 내각제개헌의 배경을 ▲현재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특정지역의 특정세력내부에 차기대통령후보로 내세울 만한 마땅한 인물이 없고 ▲돈과 권력을 장악한 현집권세력이 안심하고 권력을 장악하는 방안가운데 내각제가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한 때문이라고 분석. 민주당의 김정길의원은 『제6공화국의 헌법은 제헌헌법이후 9차례개헌중 유일하게 국민의 민주화 열기를 받아들인 헌법』이라고 전제,『현시점에서 내각제개헌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비도덕적이고 반역사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공박. 한편 이날 국회에서의 여야공방과 관련,민자당 수뇌부들은 김용채의원의 내각제 발언을 두고 당의 공식입장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정치적 소신을 밝힌 것이라고 다소 의미를 축소,아직까지 본격적인 개헌논쟁에 나서지 않을 뜻을 거듭 천명. 박태준최고위원은 이와관련,『개헌문제는 정치권밖에서 먼저 제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지만 정치인이 자신의 개인적 소신을 밝히는 것을 막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당지도부와 공식적인 상의는 없었고 JP(김종필최고위원)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며 공화계의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 그러나 박희태대변인은 『국회의원은 당원이나 개개인이 헌법기관이라는 의미를 잘 조화시켜 유추하면 될 것』이라고 부연,당의 공식입장을국회를 통해 에드벌룬을 띄운 것임을 강력 시사.〈최태환기자〉
  • 전쟁의 발발과 전개(새 실록 6ㆍ25 김학준:중)

    ◎“북한 남침은 소의 적화음모”… 미,1주만에 파병/중국,유엔군 38선 넘자 16개사단 급파/소선 항공ㆍ기갑사단 만주에 전진배치/7월에 대전서 새 한ㆍ미협정… 군지휘권 유엔군에 넘겨(서울신문 6.25 40주 특집) 한국전쟁은 전쟁의 국면의 전개양상에 따라 5개의 기간으로 나누어 살필 수 있다. 제1기는 50년 6월25일부터 50년 9월 중순까지의 시기로,남침을 개시한 북한의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대구와 부산 일대를 제외한 남한 전역을 석권했던 시기이다. 제2기는 50년 9월 중순부터 50년 10월 하순까지의 시기로,국제연합군의 인천 상륙작전의 극적인 성공을 계기로 국련군이 반격을 계속해 한ㆍ만 국경으로까지 접근함으로써 북한정권이 붕괴 직전까지 이르렀던 시기이다. 제3기는 50년 10월 하순으로부터 51년 4월 초순까지로,중공군이 개입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고 국련군이 다시 후퇴하던 시기이다. 제4기는 51년 4월 초순부터 51년 6월 중순까지로,국련군이 「대량보복」을 통해 전투의 주도권을 다시 장악하여 군사적 균형을 이룬시기이다. 제5기는 51년 6월 중순부터 53년 7월27일까지의 시기로,전쟁과 함께 휴전회담이 진행된 화전양상의 시기이다. 이번의 제2회에서는 제1기부터 제3기까지를 다룬다. ○3일만에 서울점령 ▷제1기◁ 50년 1∼2월 이후 38도선 주변에서 소규모의 군사력 충돌을 계속 일으켜오던 북한은 6월25일 새벽 드디어 전면남침을 개시했다. 북한의 공격은 빨라 6월27일 서울의 외곽인 창동과 미아리에 방어선을 설정한 한국군을 붕괴시켰다. 이에 따라 이 날짜로 육군본부는 수원으로 후퇴했고 정부는 대전으로 천도했다. 6월28일 북한군은 서울을 점령했다. 그런데 북한군은 서울 점령 3일동안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는데,이 3일은 생사의 갈림길에 있던 남한을 살려 준 귀중한 시간이었다. 북한군이 남침 사흘만에 서울을 점령한 여세로 그대로 밀어붙였다면 남한으로서는 최악의 상태를 맞았을지도 모른다. 북한군의 기습에 대한 놀라움 속에서도 트루먼 미국대통령은 즉각적인 응전을 결심했다. 북한의 남침을 소련의 세계적화 시도의 일환으로 보았으며,직접적으로는 미일 군사안보체제에의 대항조치로 인식하여 한반도가 공산화하는 경우 그것이 일본의 국내정치에 미칠 영향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는 곧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에 대해 긴급회의의 소집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6월25일 일요일 하오 3시에 열린 안보리에서 미국은 북한이 남한에 대해 「무력공격」을 가했다고 주장하고 그 「무력공격」은 「평화파괴행위」라고 비난한 다음 북한군이 즉각적으로 적대행위를 중지하고 군사력을 38도선 이북으로 철퇴시킬 것을 요청했다. 미국의 제안은 9대0으로 가결됐다. 때마침 소련 대표는 장기결석중이어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안보리의 결의는 북한의 군사행동을 정지시킴에 있어 아무런 효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그리하여 6월27일 안보리는 『군사공격을 격퇴하고 그 지역의 국제평화와 안전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원조를 대한민국에 제공할 것』을 결의했다. 이와 더불어 트루먼은 도쿄의 미극동군 총사령관 맥아더에게 대한민국에 대한 해ㆍ공군의 지원을 개시하라고 명령하고,미 제7함대로 하여금 중공군이 대만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막으면서 동시에 대만의 장개석정부가 중국 본토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조처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6월30일 트루먼은 맥아더 총사령관에게 ①해ㆍ공군뿐만 아니라 지상군을 투입할 권한과 ②군사상 필요한 경우에는 38도선 이북의 군사목표를 공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이튿날 주일 미 제24사단 제21연대 제1대대가 부산에 상륙함으로써 미 지상군의 개입이 시작됐다. 바로 이날 안보리는 국제연합군 사령부를 설치하고 국제연합 회원국들의 무력원조를 미국의 단일지휘 아래 둔다는 내용의 공동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노르웨이 출신의 국제연합 사무총장 트리그브리는 국제연합기를 미국에 전달했으며 트루먼은 즉시 미극동군 총사령관 맥아더를 국련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 미국의 단호하고 신속한 결정은 대한민국을 크게 고무시켰다. 비록 남침에 쫓겨 피난길에 들어선 형편이지만 국련군의 반격으로 오히려 통일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6월29일 맥아더가한강전선을 시찰하고 곧바로 수원에 내려왔을 때 이승만 대통령은 모든 협력을 약속했다. 실제로 7월14일 대전에서 맺은 협정을 통해 이대통령은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국제연합군 총사령관 맥아더에게 위임했다. 이어 7월19일 이대통령은 『국련군의 작전목표가 전전원상의 회복,즉 38도선에서의 진격정지에 그쳐서는 안되며 북진통일을 완수해야 한다』는 내용의 친서를 트루먼에게 전달했다. 한미간의 이러한 협력속에서도 전세는 계속 불리해 후퇴에 후퇴를 거듭 했다. 그리하여 맥아더는 한때 최악의 경우에는 한국에서 손을 떼고 한국정부를 괌이나 하와이로 후퇴시킨다는 계획마저 세웠다. 이대통령은 분노속에 강경하게 거절했다. 마침 9월5일부터 13일까지 경주와 영천일대의 사활을 건 전투에서 국련군은 북한군 제15사단을 궤멸시켰다. 국련군의 반격이 전개될 수 있는 상황이 비로소 형성된 것이다. ○소대사가 대화 제의 ▷제2기◁ 국련군 반격의 결정적 계기는 확실히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이었다. 9월12일 극비리에 부산을 출발한 2백61척의 대수송선단은 9월15일 인천항에서의 작전개시와 동시에 곧바로 인천시 남부에 상륙했다. 북한군은 2개 사단병력으로 서울방위사령부를 편성했으나 한국군의 해병대가 9월27일에,이어 국련군이 9월28일에 서울을 완전히 수복했다. 이에 따라 9월29일 이대통령은 맥아더와 함께 공로로 서울에 도착하여 서울을 대한민국정부의 관할아래 넘기는 수도 탈환식에 참석했다. 국련군의 성공적인 반격이 확고해지면서 서방진영 및 중립국가들의 일각에서는 전전원상의 회복이라는 조건아래 즉 북한군을 38도선 이북으로 철퇴시키는 조건아래 국제연합군의 진격을 멈추게 하고 이 테두리 안에서 한국전쟁을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제기됐다. 8월1일 안보리의 의장이 되는 것을 계기로 삼아 안보리에 복귀한 소련대사 말리크도 남북한 대표를 국제연합에 동시 초청하여 한반도문제를 해결하자고 제의했다. ○북한에 “항복”요구 그러나 미국의 태도는 확고하여 북한정권의 완전한 붕괴,즉 대한민국에 의한 한반도 통일만이 국련군의 목표임을 선언했다. 대한민국 정부도 『38도선의 존재를 부인한다』고 선언하면서 국련군의 북진에 의한 한반도의 통일을 강조했다. 이때 서방 7개국이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공동결의안을 제출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무력을 써서라도 국련군의 주도 아래 한반도를 통일시킨다는 태도를 밝혔다. 그러나 국련군이 38도선을 넘어 북진해도 좋다는 최종적인 결정은 내려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10월1일 우선 한국군은 드디어 38도선을 넘어 북으로 진격했다. 이튿날 맥아더는 국련군이 38도선을 넘어서도 좋다는 미국정부의 최종결정을 한국정부에 알리면서 북한정권의 항복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발표했다. 그러나 다시 말하거니와 국련군이 38도선 이북으로 진격해도 좋다는 서방의 공동결의안이 아직 국련을 통과한 것은 아니었다. 여기서 국련군의 38도선 북상을 막으려는 공산진영 외교적 노력이 시도됐다. ○주은래 “방관 않겠다” 우선 중국 총리겸 외무장관 주은래는 10월2일 깊은 밤에 주중 인도대사 파니카르를 외무부로 불러 『만일 국련군이 38도선을 넘어 북진하는 경우 중국은 조선에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선언하고,그러나 한국군만이 38도선을 넘는 경우 중국은 그러한 조처를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니카르대사는 주의 발언을 본국정부에 즉시 알렸으며,인도정부는 그대로 미국정부에 알렸다. 트루먼은 주의 발언이 국련군 북상안이 통과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련을 협박하려는 「대담한 시도」로 판단하여 그것을 무시했다. 이에 따라 국련은 10월7일 국련군의 38도선 북상을 허용하는 서방쪽의 공동결의안을 통과시켰으며 여기에 근거해 국련군은 7∼8일 드디어 38도선을 넘어 북진하기 시작했다. 이제 중국이 주사위를 던질 차례가 되었다. 10월10일 주은래는 『조선전쟁은 처음부터 중국의 안전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었다』고 규정하고 이 전쟁에서 『중국인민은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주의 이 선언은 중국의 모든 유력지들에 보도되었는데 그것은 중국의 참전에 대비하여 중국인민들을 동원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되었다. 이처럼 중국의 참전 가능성이 커지자 이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트루먼은 10월5일 태평양의 웨이크도로 맥아더를 불렀다. 회담에서 맥아더는 중국의 참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대답했다. 이 무렵 국련군의 북진은 계속되고 있었다. 북한군이 곳곳에서 무너지자 김일성은 10월12일 스탈린에게 소련의 지원을 요청하는 친서를 보냈다. 그러나 소련은 미국과의 직접적 대결을 피하려는 자세만 보일 뿐이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김일성은 가을비가 세차게 내리던 10월16일 새벽 2시 소련제 고급승용차 볼가를 타고 평양을 빠져 나가 10월26일 만주와의 접경지대인 평양북도 강계군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바로 이날 이대통령은 원산시에 그 모습을 나타내 열광적인 원산시민들을 격려했다. 이어 10월30일 평양을 방문하고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덩어리가 되어 공산당을 몰아내고 남북통일을 완수하자』고 호소했다. ○스탈린,중국에 찬사 ▷제3기◁ 이 무렵 중국의 군사적 개입이 극비리에 시작되고 있었다. 국련군의 38도선 북상을 허용한 서방결의안이 10월7일 국련총회를 통과하자 모택동 중국공산당 주석은 「중국인민지원군」을 조직하라는 명령을 내리면서 팽덕회을 총사령관에 임명했다. 마침 북한으로부터 파병을 요청하는 밀사들이 와 있었으며 그리하여 팽은 10월13일 북한으로 들어가 김일성을 만난 뒤 전투에 참가하여 전황을 살핀다음 그 결과를 모에게 보고했다. 그때로부터 엿새뒤 중국군은 마침내 은밀하게 압록강을 건넜다. 중국이 참전을 최종 결정하던 어느 시점에 스탈린은 『김일성동지는 장래 중국 국경 안에 망명정부를 세울 것』이라고 모에게 알리면서 이처럼 위급한 상태에 빠진 북한정권을 구출하려던 중국이 적어도 6개 사단을 파견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러나 중국은 일단 행동을 개시한 뒤 16개 사단을 출동시켰다. 중국쪽 설명에 따르면 중국의 이러한 결정을 보고 『처음에는 우리들을 민족주의자가 아닌가 의심했던 스탈린은 눈물을 흘리며 우리들이 가장 좋은 동지임을 인정했다』 중국군의 개입을 전혀 모르는 채 한국군은 10월25일 마침내 압록강변의 초산을 점령했고 미 제24사단은 북한의 임시수도 신의주에 접근하고 있었다. 이제 대한민국에 의한 한반도의 통일은눈앞에 닥쳐온 것 같았다. 그러나 바로 그날에 있었던 한국군과 중국군의 첫 교전은 상황을 완전히 바꾸었다. 맥아더는 11월5일 중국군의 참전을 국련에 보고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전쟁」이 시작됐음을 알렸다. 중국군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한국전쟁은 국련군 총사령관의 권한 범위를 벗어나 국련과 세계 여러 나라들의 정치수뇌급에서 해결책이 제시돼야 할 전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중국 외무부도 11월11일 중국군의 참전을 공개적으로 처음 시인했다. 이와 더불어 중국군은 대대적인 공격을 취하면서 계속 남쪽으로 쳐내려 왔다. 이때로부터 약 2개월 동안 미군은 미군의 역사상 가장 장기의 후퇴를 경험하게 되었다. ○영서 종전모색 제의 그 결과 중국군은 12월26일 38도선을 넘고 12월말까지 38도선 이북의 북한 전역을 점령하고 51년 1월4일에는 서울을 점령했다. 이에 따라 국련군은 평양철수(12월4일 완료)와 흥남철수(12월24일 완료) 및 서울철수(1ㆍ4후퇴)를 경험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만주에 소련의 1개 항공사단이 배치되어 북한군과 중국군의 배후를 지원했고,전투상황의 악화에 대비하여 5개 기갑사단을 북한에 파견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중국군이 개입하면서 서방세계의 일각에서는 휴전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미 중국을 승인한 영국은 국련 대표권을 대만에 줄 것이 아니라 중국에 준뒤 중국과 종전을 모색하자고 제의했으며,애틀리 총리는 12월4일 워싱턴에서 트루먼과 회담한 뒤 『두나라는 협상을 통해 종전을 추구한다』는 합의를 끌어냈다. 여기에 발맞춰 아시아ㆍ아랍권 13개국도 한반도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골자로 하는 결의안을 국련에서 통과시켰다. 그러나 미국 안의 반공분위기는 매우 높아 하원과 상원은 각각 51년 1월19일과 1월23일 국련이 중국을 「침략자」로 규정해 줄 것을 요청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국련의 휴전 분위기에 실망하던 한국 정부는 다시한번 무력통일에 대한 기대를 걸게 됐다. 북한은 북한대로 다시 한번 적화통일에 대한 꿈을 키우게 됐다. 중국군의 개입으로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구출된 김일성은 12월4일 강계군에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3차 정기회의를 열고 「미제의 완전한 축출」을 다짐했다. 이와 동시에 무정을 비롯한 주요한 도전자들을 숙청했다.
  • 북한 고위관리 지낸 재소동포의 「6ㆍ25증언」

    ◎“김일성,6ㆍ25새벽 내각 소집… 남침비준 강요”/4월초 군관학교간부 전선에 미리 배치/전쟁 한달전 강동학원서 통치요원 육성/폐쇄적인 북한체제는 「수용소적 사회주의」로 불러야 한때 북한의 권력 핵심에서 활약하다가 소련으로 망명했던 재소교포 18명이 분단이후 처음으로 조국을 찾아왔다. 이들의 대부분은 6ㆍ25전쟁 전후 북한의 고위직에 있었으나 50년대말부터 60년대초까지 김일성 1인지배체제에 반발,소련으로 망명했던 「역사의 증인」들이다. 대부분이 70을 넘긴 고령인 이들은 22일 MBC시사토론에 참석,북한정권의 성립과 6ㆍ25전쟁의 발발 그리고 김일성 1인통치체제의 구축과정 등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이날 토론에 나온 사람은 강상호(80ㆍ전 북한 내무성차관) 장학봉(71ㆍ전 북한 군관학교부교장) 박병률(82ㆍ전 북한 강동정치학원원장) 송진파(76ㆍ전 북한 문화성국장) 정상진(73ㆍ전 북한 문화성차관)등 5명이다. ­6ㆍ25당시 그리고 소련으로 망명하기전까지 북한에서 어떤 일을 했는가. ▲박병률=47년 12월부터 50년 6월25일까지 남로당원 양성기관이었던 강동정치학원 원장으로 일했다. 당시 훈련시킨 제자는 3천명에 이르는데 지리산 빨치산대장이었던 이현상과 제주도 폭동주역인 김달삼도 포함돼 있다. ▲강상호=김일성과 마찬가지로 해방후 소련에서 북한으로 돌아왔다. 6ㆍ25당시 내무성 차관이었는데 북한의 내무성은 경찰권 탐정권등의 권한을 행사했다. 나는 여러명의 차관중 당정치교양사업ㆍ문화사업을 맡았으며 김일성을 도와 북한정권수립에 참여했다. 당시 내무성장관은 현사법상인 방학세였다. ○「김정권」수립에 참여 ▲정상진=6ㆍ25직전 김일성종합대학에서 러시아문학을 강의했다. 해방전에는 소련에 있었으며 45년 3월에서 8월까지 소련해병대원으로 5개월간 훈련을 받고 소련의 대일전쟁에도 참여했다. ▲장학봉=군관학교부교장으로 군장교양성교육사업을 맡았으며 6ㆍ25전쟁이 일어나자 당시 상좌(우리의 준장)계급장을 달고 전투에 참가했다. 1988년까지 남한의 소식을 거의 듣지 못했는데 포항제철,울산자동차공장 등을 둘러보니,경제ㆍ문화적으로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조국임을 실감,자부심을 느끼게 되었다. ○콘크리트장벽 없어 ▲송진파=북한의 문화성국장,잡지 「새조선」의 주필을 맡았고 망명후에는 소련에서 발행되고 있는 한글신문 「레닌기치」의 주필을 맡았으며 현재는 은퇴했다. ­휴전선도 돌아보았을텐데 콘크리트장벽을 보았는가. ▲정상진=북한에서 선전하는 콘크리트장벽은 만리장성을 연상시키는데 대전차장벽은 있었으나 다른 것은 없었다. 그러나 콘크리트장벽이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다. 베를린장벽과 같은 물리적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심리적 장벽」이 문제이다. 몇년전만해도 한국에 대해 잘 몰랐으나 고르바초프등장이후 소련언론이 진실을 보도하기 시작해 정세를 바로 알게됐다. ­올해는 6ㆍ25발발 40주년이 된다. 6ㆍ25에 대한 연구도 많고 주장도 엇갈리는데 당시 내각에 참여한 사람으로 진상을 말해 달라. ▲강상호=그때 나는 병으로 평양중앙병원에 입원해있었으며 6월25일은 퇴원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중앙당비서가 그날 새벽전화를 걸어와 퇴원즉시 내각에 참석하라는 연락이 있었다. 내각회의에는 국가보위상인 최용건만 빠지고 전원이 참석했다. 회의에서 김일성은 『지금부터 2∼3시간전 38선 전역에서 남조선괴뢰군이 북침을 해왔다. 나는 최고사령관으로 즉시 반격을 명했다. 전쟁과 평화에 관한 사항은 내각의 비준이 있어야 하니 이를 비준해 달라』고 말했다. 김일성의 이 제안은 토론없이 1백%찬성으로 통과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지금 곧 원산행차에 올라 강원도당회의를 열고 전쟁에 대비한 과업을 수행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서울이 해방됐다는 소식과 함께 3ㆍ8선이 남의 강원도를 책임지라는 지시가 있어 춘천으로 출발했다. 이때 나는 북침이 아닌 남침이라는 생각을 처음 갖게 됐다. 그 이유는 첫째 3ㆍ8선을 넘어 산굽이를 돌면서 국군포대를 관찰해보니 국군의 포와 포탄이 흩어져 있었는데 탄피는 몇개 없었다. 북침을 했다면 숱한 사격의 흔적이,공격의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둘째 전선지대의 이북 농촌에는 파괴된 집도 없었으며 농민들은 들판에서 김을 매고 부녀자들은 길거리를 오가고 있었는데 국군의 포격이 있었다면 그럴수 있겠는가. 셋째 미국무장관 덜레스가 이승만에게 북침을 명령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미국이 왜 하나의 사단도 남겨놓지 않고 군대를 철수했으며 딘소장이 포로가 될 정도로 전쟁초반에 패퇴했는가 하는 것이었다. ▲박병률=김일성이 도발한 것이라는 구체적 자료를 갖고 있지 못했지만 감지할 수는 있었다. 남한에서 월북한 사람들이 전쟁발발 1개월전부터 강동학원장인 내게 보내져 집중 훈련을 받았다. 또 전쟁이 발발하기 몇시간전에 서울 함락후 서울시 인민위원회위원장을 맡았던 이승엽이 『자기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면서 강동학원을 떠났다. ○스탈린이 전쟁 묵인 ▲장학봉=당시 군관학교에는 인민군지도자 25명의 그룹반이 있었는데 50년 4월에 이미 이 그룹반이 해산돼 소속원들 모두가 전선으로 배치됐다. 50년 8월까지 북한의 신문 라디오 등 모든 선전기관은 남조선이 북침을 했고,북한이 이에 반격을 가했다는 선전을 거듭했고 나 또한 전선에 나가지않아 이를 그대로 믿었었다. 8월초 전선에 투입됐을 때는 정의의 전쟁에 참가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싸웠다. 그러나 흐루시초프의 회고록이 나오면서 진실이 밝혀지게 됐다. 이 회고록에 따르면 김일성은 50년이전에 스탈린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어 남조선해방과 전조선의 자유를 위해 남침을 호소했으나 스탈린은 남조선침입의 대가로 미국이 참전하면 다음은 소련이 이에 대응해야 하는데 준비가 안됐다며 이를 반대했다. 그후 6ㆍ25발발 5∼6일을 앞두고 김일성은 이 문제를 다시 스탈린에게 제기,스탈린은 「좋다 나쁘다」는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으며 묵인했다. 이와 관련,흐루시초프는 내가 스탈린의 입장이었더라도 작은 나라가 통일을 하겠다는데 대해 어떠한 승인도 지시도 않았을 것이라고 술회했다. 전쟁이틀후 열린 유엔안보이사회에서 소련대표가 유엔군의 참전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퇴장한 것은 내막을 뻔히 아는 스탈린의 고육지책이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정권 수립때의 실정은 어떠했는가. ▲강상호=김일성일파가 만주에서 유격활동중 일본군의 토벌강화로 상황이 어려워지자 중국공산당이 소련측에 이들의 보호를 제의했다. 김일성부대는 소련정찰여단으로 편입돼 아무르강유역의 비밀지역에 있었고 해방후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원산으로 귀국했다. 나는 소련 제25군 정치부 지도원이어서 김일성을 해방전에는 본 적 없었는데 해방후 소련군 상위(대위)로 귀국한 김일성을 본적이 있다. ­이 자리에는 김일성 1인독재체제를 구축하는데 도움을 주신분들이 많은데(일동 웃음) 지금 북한 체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상진=김일성은 북한에 들어오면서부터 정권에 욕심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개인숭배주의자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1956년 소련 공산당 20차전당대회에서 스탈린격하운동이 벌어졌다. 이 대회에 북한 노동당대표로 참석한 최용건이 돌아와 귀국보고를 했을 때 김일성은 우리 당에는 과거 박헌영이란 개인숭배자가 있었지만 지금은 개인숭배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뒤 연안파 윤공흠 이필규 등이 반김일성 움직임을 보였는데 이들은 곧 숙청됐다. 이후 김일성은 「이단」숙청을 결심,대대적인숙청작업에 나섰고 1인지배체제를 구축했다. 6ㆍ25당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군고위간부ㆍ당간부 등이 모두 숙청당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도 반당분자로 몰렸고 이것이 우리가 소련으로 망명하게 된 이유다. ▲박병률=김일성은 북한체제를 「주체주의적 사회주의」라고 주장하지만 나는 북한체제를 「수용소적 사회주의」라고 부르고 싶다. ○남측서 통일 주도를 ­북한에 있을때 남로당출신들을 많이 만났을텐데…. ▲정상진=당시 나는 문화성차관 및 문학예술총동맹 부위원장이어서 홍명희 이태준 김남천 임화 최승희 등 많은 남쪽예술인들과 알고 지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이 비참한 운명을 맞았다. 작곡가 김순남선생은 전쟁전 박헌영외상 취임 축하파티에서 피아노를 쳤는데 이것이 죄가 됐다. 김순남선생이 궁지에 몰렸을 때 나를 찾아와서 「이제 어떻게 해야되느냐」라고 탄식하면서 춘향전을 가극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것이 마지막 만남이었고 그 분은 모든 창작활동이 금지된 채 숙청되고 말았다. ­마직막으로 남북통일을 위해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겠는가. ▲장학봉=화해의 물결은 그 누구도 억제할 수 없다. ▲강상호=오늘날에는 무력으로 누구를 굴복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이 세계적 여론을 일으켜 북한측에 평화통일의 압력을 가해야 한다. 남북통일을 하루라도 지연시키는 것은 정치지도자들의 죄악이며 우리도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 한ㆍ미 통상파고 왜 거세지나/양국의 마찰음 언저리

    ◎미 「수입규제 캠페인」확산 우려,선제 공격/한 미의 불공정무역 사례 공개,“맞불작전” 한동안 잠잠하던 한미간 통상마찰의 파도가 다시금 거세졌다. 지난 13일 칼라 힐스 미무역대표부(USTR)대표가 박동진 주미대사를 불러 한국내 수입규제 움직임에 유감을 표시했고 모스배커 미상무장관의 특명을 받고 내한한 웨인버만 상무부자문관(차관급)은 19일 박필수 상공부장관을 만나 한국시장에서의 수입품 판매부진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확인하고 귀국했다. 미국측이 대한통상문제에 대해 이처럼 공식외교 및 통상채널을 풀가동하다시피 하며 적극적인 자세로 나선 것은 드문 일이지만 우리 측의 대응도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무역협회가 대미 수출이 감소한 1백10개 품목을 정밀 조사해 미국의 대한불공정 무역사례를 발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미국측이 한국내 사치용품 수입자제 캠페인을 정부가 부추기고 있다고 추측하고 이 캠페인이 확산되면 대한수출이 크게 영향받을 것을 우려한 나머지 「선제공격」을 해왔다면 한국측은 미국의 불공정무역 사례를 공개함으로써 거꾸로 「맞불작전」을 구사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측의 대미반격은 한미통상관계에서 처음있는 일로 최근 통상마찰조짐이 내부적으로 상당히 격앙되어 있는 상황임을 잘 말해주고 있다. 그동안 미국측의 한국내 수입자제운동에 대한 대응은 매우 의도적이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모스배커 미상무장관이 지난 11일 방미중인 대미통상사절단장인 금진호 무역협회고문에게 돌연 수입규제조사단 파견계획을 통보한 것을 비롯,칼라 힐스 대표의 박대사초치,낸시 애덤스 USTR 부대표보의 주미특파원 간담회를 통한 경고로 이어졌다. 미국측의 시각은 기본적으로 한국정부가 수입규제정책을 실시,사치용품 수입자제 캠페인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냐는 것으로 요약된다. 미국측 관계자들은 지난달 서울의 7대 유명 백화점들이 외제품 매장을 동시에 철수,축소한다고 발표했고 이에 앞서 국산품과 수입상품간의 가격 차이를 확대,수입상품의 가격경쟁력을 떨어지게 만들었다며 한국정부가 수입개방이라는 합의사항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표시했다. 이에 대해 한국측은 수입개방과 외제 사치품 매장의 철수는 다른 차원의 일이며 소비재 수입문제에 대해 정부가 관여한 일이 없다고 강조했다. 무협이 발표한 미국의 대한불공정 무역사례는 수출이 극히 부진한 현 상황에서 한국이 처한 어려운 통상환경을 잘 말해준다. 미국측이 운동화 끈까지 섬유제품으로 간주,쿼타적용을 받게 하는 등 온갖 관세ㆍ비관세 장벽을 강화하고 있으면서 오히려 한국측을 불공정 무역국가로 몰아붙이는 것은 너무한 것이 아니냐는 자구적인 성격을 무협에 대응에서 엿볼 수 있다. 무협의 반박과 함께 이승윤 부총리가 때마침 18일 서울에서 열린 제3차 한미재계회의에 참석,한미통상마찰의 근본원인이 미국 자체의 거시경제정책상의 문제와 보호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양국 통상마찰의 책임이 미국측에 보다 많다는 것을 명확히 한 정부의 시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사치성소비재의 수입규제이나 사실 미국의 대한 총수출에서 소비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2.4%에 불과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대미수출은 올들어 지난 4월말까지 6.8% 감소한데 반해 수입은 무려 18.3%나 증가,대미 무역수지는 3억8천8백만달러의 흑자에 그쳤고 현재의 추세가 계속될 경우 연말께는 수입이 수출보다 많아져 흑자전환 8년만에 대미 무역수지 적자를 나타낼 전망이다. 대미무역수지 흑자는 지난 82년 1억6천3백만달러를 시작으로 87년 95억5천3백만달러로 최고를 기록했고 88년 이후에는 감소세로 돌아서 89년에는 47억2천8백만달러로 85년 수준에 머물렀다. 미국측은 한국의 수입상품 반대켐페인이 중지되지 않는다면 이를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질세라 우리측도 미국의 대한수입규제강화는 국제적인 무역장벽을 제거하기 위한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규정에 위배된다며 관계당국간의 대응방안을 모색중이다. 그러나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모두 이같은 경고는 아직 엄포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측은 한국의 수입규제가 소비재를 넘어 다른 상품으로 파급되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가 강하고 한국측은 제1의 수출시장인 미국과 불편한 관계를 해소하는데 1차적인 통상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버만 미상무부 자문관은 방한기간중 우리측 재계 인사들과의 접촉,백화점 견학등을 통해 한국정부가 이들에게 사치성 소비재수입을 자제해 달라는 압력을 가한 사실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미국언론일부에서 한국정부가 수입개방을 막고 있는 것처럼 자의적인 보도를 계속하는데 있으나 버만이 서울행로에서 보고 느낀 것을 본국정부에 정확히 보고한다면 더이상의 통상마찰요인은 없을 것으로 한국측은 기대하고 있다. 더욱이 나웅배 전부총리와 한승수 전상공장관등 의원 6명이 오는 24∼29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의원 합동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방미하는 동안 미의회 행정부인사들과 폭넓게 접촉,우리측 입장을 설명할 예정이어서 한미통상마찰은 더이상 확대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더 많은 편이다.〈정종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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