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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포치(破七) 시대’, 미국과 중국 누가 웃을까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포치(破七) 시대’, 미국과 중국 누가 웃을까

    지난 8일 오전 9시 19분(현지시간). 지난달 31일 이후 6일 연속 기준환율을 높여오던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결국 이날 기준환율을 전날(6.9996위안)보다 0.06% 오른 달러당 7.0039위안으로 고시했다. 시장에서 위안화 환율이 이미 달러당 7위안이 깨진 상황에서 중국 정부의 기준환율마저 7위안을 넘어섰다는 소식이 날아들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은 ‘패닉’(공황) 상태에 빠졌다. 인민은행 기준환율이 7위안을 넘겨 고시한 것은 글로벌 금융 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5월 15일 이후 11년여만이다. 위안화 환율은 5일 홍콩 역외시장에서 7위안을 돌파한 뒤 7위안선을 그대로 유지하며 위안화 가치의 약세를 의미하는 ‘1달러=7위안 시대’가 열린 것이다.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이후 이 위안화 약세현상이 뚜렷한 만큼 미중 무역전쟁이 미중 환율전쟁은 물론 글로벌 환율전쟁으로도 옮아갈 수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중국에 1달러=7위안선, 이른바 ‘포치(破七) 시대’가 공식 개막됐다. 중국 정부가 7위안선이 힘없이 무너져도 시장 개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 바람에 9일에도 전날보다 0.14% 오른 7.0136위안을 기록하는 등 ‘1달러=7위안선’을 유지함으로써 위안화 가치의 악세현상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위안화의 약세 현상을 용인한 것은 무엇보다 중국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인정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7일 진단했다. 위안화의 소폭 절하만으로도 해외에 판매하는 중국산 제품의 가격이 낮추는 효과가 있는 덕분에 미중 무역전쟁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중국의 수출업체에는 위안화 가치의 절하가 반가운 소식일 수 밖에 없다. 장밍(張明) 중국 사회과학원 연구원은 “만약 미국이 계속 무역 갈등을 고조시키면 중국 정부가 시장의 압박에 따라 위안화를 움직이도록 내버려 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고율 관세의 충격을 상쇄해 중국 수출업체들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위안화 가치 약세 기조의 현실화는 미국의 3000억 달러(약 363조원) 규모의 추가 관세부과 예고 등에 따른 미중 무역전쟁 격화와 중국 경기 둔화로 사실상 시간문제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그동안 경제적 펀더멘탈(기초체력)보다 ‘환율조작국 지정’이라는 카드를 들고 으름장을 놓는 미국의 눈치를 살피느라 위안화의 약세를 방어해 왔다. 데이비드 로에빙거 TCW그룹 매니징 디렉터는 중국 지도부가 미국 정부와 선의를 구축하기 위해 중국 인민은행은 위안화에 대한 하락 압박에 저항하면서 대세를 거슬러 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국의 추가관세 보복→ 중국의 위안화 7위안선 돌파 용인→ 미국의 환율조작국 명단 등재 등 미중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도박 같은 치킨게임을 벌이는 통에 이제 위안화 환율의 ‘고삐’가 풀려버린 것이다.중국 정부가 위안화 평가절하를 ‘유도하는’ 것은 물론 미국과의 무역전쟁과 관련이 있다. 위안화 가치가 낮아지면 부작용도 있지만 미국이 추가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수출단가가 낮아지는 효과를 내는 덕분에 보복관세의 충격을 일정부분 상쇄할 수 있는 까닭이다. 미국이 얼마만큼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느냐에 따라 위안화의 환율 수준이 결정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뱅크오브 메릴린치는 미국이 예고대로 오는 9월1일부터 중국산 제품 3000억 달러에 10% 관세를 부과할 경우 위안화 가치는 연말까지 7.3위안 수준으로 떨어지고, 25%까지 관세를 부과할 경우 7.5위안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정부는 위안화가 약세현상을 보이더라도 이에 대응할 수 있는 곳간인 중국의 외환보유고가 여전히 3조 달러가 넘을 만큼 든든하다는 점에 자신감을 보인다. 중국 국가외환관리국에 따르면 7월 말 기준 외환보유고는 올들어 310억 달러가 늘어난 3조 1037억 달러에 이른다. 중국 정부가 위안화 약세현상을 용인함으로써 대미 ‘반격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하지만 위안화 약세 기조는 중국에 ‘양날의 칼’이다. 미국과 전방위 갈등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고개를 드는 가운데 위안화 약세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대규모 자본유출과 이에 따른 증시 폭락, 부채 급증 등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 요소도 큰 것이다. 대규모 자본유출을 촉발할 수 있는 점이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미중 무역전쟁이 재개되기 전인 올해 1~4월 중국 상하이 종합지수는 외국인 자금의 유입에 힘입어 30% 넘게 수직 상승했다. 하지만 미국과의 무역협상이 결렬되면서 상하이 증시는 맥을 못추지 못하는 바람에 투자자들 사이에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다 위안화 가치까지 추가 절하된다면 환차손까지 우려한 외국인 자금이 급속히 빠져나갈 공산이 크다. 김경환 하나금융투자 팀장은 “달러당 7위안은 자본유출과 금융불안 등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중국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위안화 약세 가능성만으로도 대규모 자본유출을 경험한 트라우마도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지난 4~5월 두 달간 중국 자본시장에서 이탈한 외국자본은 무려 120억 달러에 이른다.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위안화 가치 하락 우려감으로 외국자본이 이탈했다는 것이다. 상하이 소재의 자산운용사 MQ인베스트먼트의 존 저우는 “미중 무역전쟁과 위안화 환율이 7위안대가 깨질 수 있다는 우려로 외국 자본이 이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위안화 가치의 7위안 시대는 국민경제 전반에 걸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중국 경제에 미칠 충격파는 작지 않을 전망이다. 위안화 가치가 떨어지면 중국인들은 더 많은 위안화를 주고 달러화 제품을 사야 한다. 해마다 석유와 옥수수, 콩 등을 대량 수입해야 하는 중국으로선 서민경제와 직결되는 농산물 등의 가격이 폭등하는 인플레 위기에도 직면할 수 있다. 중국 기업들이 갚아야 하는 외화부채 부담도 커진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국제금융협회(IIF)는 1분기 중국의 총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304%에 이른다고 밝혔다. 1년 전의 297%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중국 정부가 비공식 통로를 통한 차입, 즉 그림자금융(정부 관리감독 범위 밖의 비제도권 금융)을 통한 차입을 제한하면서 비금융부분에서의 기업부채는 줄었지만 다른 부문에서 대출이 급증하면서 그 규모는 40조 달러를 넘어섰다. 글로벌 총부채의 15%에 이른다. 중국 시장조사업체인 윈드(Wind)는 올해 만기 도래하는 중국의 달러화 표시 부채가 1138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위안화 가치 하락으로 중국 현지에 생산 거점을 두고 있는 홍콩계 회사나 글로벌 기업들이 빠져나갈 경우 대량 실업 사태가 발생하면서 고용기반마저 흔들릴 수 있다. 기업들로서는 위안화 가치가 하락해 대량의 환차손이 발생하면 생산 규모를 줄이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다. 위안화 가치 하락은 투자 심리도 냉각시켜 중국의 경제체질 전환에도 어려움을 주고, 위안화가 불안정해지면 금융 리스크나 금융위기 발생 가능성도 커져 장기 투자계획 등이 미뤄지거나 취소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대외 개방을 통해 경제성장 구조 전환의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중국의 전략에도 차질이 생기는 것이다. 위안화 약세 기조는 중국의 최대 이벤트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중국판 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데에도 독이 될 수 있다. 일대일로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중국은 막대한 달러화 자금을 각국에 투자하고 있는데, 위안화의 가치가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달러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지는 탓이다. 안유화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는 “중국이 일대일로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해외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다”면서 “위안화 가치가 너무 떨어지는 것은 중국 정부 입장에서도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中인민은행, “환욜은 댐의 수위와 같아” ‘대미 반격’ 카드 기준환율 또 올려

    中인민은행, “환욜은 댐의 수위와 같아” ‘대미 반격’ 카드 기준환율 또 올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9일 오전 달러 대비 위안화 중간 환율을 전 거래일보다 0.14% 오른 7.0136위안으로 고시하면서 중국 정부가 ‘위안화 약세’ 카드를 어느 정도까지 용인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인민은행이 이날 고시한 중간환율은 “위안화 가치를 의도적으로 낮추고 있다”는 미국의 비판에도 위안화 약세를 용인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와 관련 시장에서는 7.2~7.3위안이 다음 마지노선이라는 관측이 많다고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9일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다음달부터 3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해 추가로 1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근거로 역산해 위안화 환율의 다음 마지노선을 예측하고 있다. 마쓰모토 히로시 픽테투자신탁 투자고문은 “9월에 발동할 추가관세를 상쇄할 수 있는 환율 목표는 달러당 7.3 위안”이라고 말했다. 추가관세 부과 대상은 3000억 달러 규모로 중국의 전체 대미수출의 60% 정도다. 여기에 10%의 관세가 부과되면 대미수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6%다. 이를 상쇄하기 위해 6%의 위안화 약세를 용인할 경우 달러당 7.3 위안이 된다는 설명이다. 노무라 증권의 궈잉 연구원은 “역사적으로 보아도 연평균 위안환율 변동률은 대체로 5%에 그쳤고 환율조작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도 이 수준이 목표가 될 것”이라며 달러당 7.2위안을 방어선으로 예측했다. 인민은행은 성명에서 “7이라는 수준은 넘어서면 돌아올 수 없는 나이 같은 게 아니라 댐의 수위와 비슷하다. 비가 많이 오는 시기에는 수위가 올라가고 건기에는 내려간다”고 표현했다. 시장원리를 강조해 환율조작 비판을 반박하면서도 일방적인 위안화 약세는 없을 것이라는 뜻을 내비쳐 미국을 배려한 것으로 해석됐다. 인민은행은 달러, 유로, 엔화 등 복수의 통화에 대한 위안화 변동폭 등을 가미해 기준환율을 결정한다고 설명해 왔다. 미국의 환율조작 비판을 반박하면서도 시장 실세에 맞춰 기준환율을 정한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시장에서는 환율이 달러당 7.2~7.3이 되면 미국이 부과할 추가관세의 영향을 상쇄해 중국 수출기업을 지원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면서도 중국 기업의 달러화 표시 부채가 팽창해 패닉상태의 위안화 투매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와 일본경제연구센터가 경제 현실을 반영하는 여러가지 지표를 토대로 분석한 올해 1~3월 닛케이 균형환율은 달러당 6.74위안이었다. 이후 이뤄진 미국의 금리인하 등을 감안하면 달러당 7위안은 과소평가됐다는게 시장의 평가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한편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며 양국 간 무역 갈등이 환율전쟁으로 확전한 가운데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9일 논평에서 “미국의 관세부과와 환율조작국 지정은 이성적이지 않고 거친 조치”라며 “이는 정상 궤도를 한참 벗어나고 문제 해결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인민일보는 “미국은 양국 정상이 합의한 공동 인식을 위반하고, 신의를 저버렸다”면서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은 국제금융 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할 뿐 아니라 금융시장에 큰 혼란을 야기한다. 미국은 중국을 겨눠서 방아쇠를 당겼지만 자신도 총알에 맞은 꼴”이라고 지적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中, 고시환율 1달러=7위안… 美에 ‘위안 약세’ 맞불

    11년 만에 돌파… 추가 약세도 불가피 일각 “가파른 가치 하락 땐 개입할 것” ‘1달러=7위안(위안화 약세) 시대’가 열렸다. 시장에서는 위안화 환율이 7위안선을 이미 돌파한 가운데 중국 정부의 기준환율마저 7위안을 넘어섰다. 중국 인민은행은 8일 위안화 기준환율을 전날(6.9996위안)보다 0.06% 오른 달러당 7.0039위안으로 고시했다. 기준환율이 7위안선을 돌파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5월 15일 이후 11년여 만에 처음이다. 하루 한 차례 기준환율을 고시하는 인민은행은 지난달 31일 이후 6일 연속 기준환율을 높여 고시했다. 홍콩 역외시장에서는 위안화 환율이 지난 5일 돌파한 이후 7위안선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에도 위안화 약세 현상이 지속되면서 미중 간 환율전쟁이 이어질 것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위안화 약세 현상은 미국의 3000억 달러(약 363조원) 규모의 추가 관세 계획 발표 등 미중 무역전쟁 격화와 중국 경기 둔화가 주요인이다. 그런데 중국 정부가 7위안선을 지키기 위해 시장 개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약세 현상을 용인함으로써 대미 ‘반격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신화통신은 이날 왕춘잉(王春英) 중국 국가외환관리국 대변인이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은 “기본 상식에서 벗어난 정치 조작이자 모독”이라고 맹비난했다고 전했다. 시장에서는 중국 기준환율마저 7위안을 돌파하면서 추가 약세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본다. 인민은행이 기준환율을 고시하면 2% 내외로 중국 역내시장 등에서 환율이 움직이는 만큼 추가 약세가 불가피하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3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율을 25%로 올릴 경우 위안화 환율은 7.5위안을 넘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이 위안화 환율을 무역전쟁에서 무기화한다는 것이다. 달러 대비 위안화가 약세가 되면 중국이 미국에 수출하는 상품에 미국이 부과한 관세 효과를 반감시키고, 수출에서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반면 외환시장에서는 인민은행이 기준환율을 예상보다 낮은 수준에 고시했다는 시각도 있다. 로이터통신은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날 고시 기준환율을 7.0205위안으로 예측했다. 블룸버그의 전문가 예상치는 7.0156이었다. 중국 당국이 급격한 위안화 약세를 용인하지 않고 적절히 시장에 개입해 7위안 안팎에서 관리할 수 있다는 방증이다. 가파른 위안화 가치 하락은 중국에서 대규모 자금 이탈과 증시 폭락, 이에 따른 경기 침체 가속화 등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환율전쟁이 격화되면 중국이 보유한 1조 1000억달러 규모의 미국 국채를 팔아치우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에 대해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도 막대한 손실이 예상되기에 실제로 사용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IHS마킷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나리먼 베라베시 등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사설] 북한의 막무가내 도발 더는 두고 보기 어렵다

    북한이 어제 새벽 5시 30분을 전후로 황해남도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두 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또 쏘아 올렸다. 북은 그간 원산 일대 등 동해안에 가까운 지역에서 미사일을 발사했지만, 이번에는 서해쪽 황해남도에서 동해 쪽으로 쏨으로써 저고도 정밀타격 능력과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북한의 발사체 발사는 지난달 25일 이후 13일 동안 네 번째다. 북한은 이날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새로운 길 모색”을 거론하며 경고도 잊지 않았다. 김정은 북한국무위원장이 올 신년사에서 처음 언급한 뒤 이후 정치적 고비 때마다 써 온 표현이다. 한미는 지난해 4·27 남북 정상회담과 6·12 북미 정상회담 등을 계기로 기존의 대규모 연합훈련을 축소해 왔다. 이번 건은 병력과 장비를 실제 기동하지 않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진행하는 지휘소연습(CPX) 형태다. 그나마 북한의 반발을 의식해 명칭에서도 ‘동맹’을 뺐다. 전작권 전환 프로그램 실행 차원에서 예정된 것으로, 휴전선 반격 등을 담은 훈련 내용도 바꿨다. 한미로서는 북의 입장을 최대한 배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자주국방’을 위한 이 같은 기본적인 훈련에도 과거와 달라진 것이 없는 군사도발과 협박을 이어 간다면 도를 넘어서는 것이다. 게다가 문재인 대통령이 전날 “남북 경협으로 일본을 따라잡겠다”며 내놓은 ‘평화경제론’에도 북한은 찬물을 끼얹었다. 우리 스스로 남북 협력의 공간을 훼손한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의 새벽잠을 설치지 않게 하겠다’고 한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한미 군사훈련에 대한 반발이라고 해도 북의 미사일 발사가 일상화해서는 안 된다. 군사적 긴장감과 위협의 일상화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통일부가 당일 발표한 ‘최근 북한 정세 동향’ 자료에서 “최근 북한의 군사 행동은 내부 결속 및 협상력 제고 차원”이라고 한 것은 다소 한가한 평가가 아닌가 싶다. 청와대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관계 부처 장관회의를 열고 “현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했다”고 한 것과도 상충된다. 부처 간 인식도 일치시키고, 국민을 안심시킬 대책을 내놓길 바란다.
  • 최태원 “하나 되는 DNA로 위기 극복”

    최태원 “하나 되는 DNA로 위기 극복”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한국 제외 조치 이후 첫 근무일인 지난 5일 오후 비상회의를 소집하고 대응 방안을 긴급 재점검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6일 반도체 패키징 기술 개발과 같은 후공정을 주로 담당하는 충남 온양·천안 사업장을 찾아 현장 경영에 나섰다. 최 회장은 서울 SK T타워에서 16개 주요 관계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참석한 가운데 수펙스추구협의회 비상 회의를 주재했다. 수펙스추구협의회는 SK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는다. 보통 매달 마지막주 화요일이 정례회의 날이지만, 이날 회의는 일본이 지난 2일 한국을 안보상 우방국으로 수출입 절차에서 우대하는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한 뒤 긴급 소집됐다. 이미 지난달 4일 일본이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 규제 조치를 단행했을 때 SK하이닉스가 사정권에 포함된 데 이어 일본의 규제 확대 조치로 자동차 배터리를 생산하는 SK이노베이션에도 영향이 미치게 됐다. 동시에 SK머터리얼즈가 최근 일본의 수출 규제 품목인 고순도 불화수소 개발을 추진하는 등 반격 카드를 모색하는 계열사도 그룹 내에 있다. 최 회장은 회의에서 흔들림 없이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위기에 슬기롭게 대처하자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 회장은 “그동안 위기 때마다 하나가 돼 기회로 바꿔 온 DNA가 있으므로 이번에도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SK그룹 측은 “위기 극복을 위한 단합의 구심점이 되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고 밝혔다. 앞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전날 사장단 회의를 소집해 “긴장은 하되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 위기를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어 이날 충남 온양사업장과 천안사업장을 잇따라 찾고, 온양 사업장에서는 임직원들과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함께 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자유무역 ‘G20회담’ 한 달 만에… 보복 앞세운 보호무역 ‘기세’

    자유무역 ‘G20회담’ 한 달 만에… 보복 앞세운 보호무역 ‘기세’

    美, 환율조작국 전격 지정… 中 즉각 반격 日, 한국 규제는 국제분업체계에 큰 지장 국제신용평가사 성장 전망 줄줄이 낮춰 “무역 혜택받은 강대국이 자유무역 외면 각자도생 길 나서면서 ‘G0’의 혼돈 초래”‘미국과 중국의 새로운 관세장벽이 세계경제 성장의 추가적인 리스크가 되고 있다.’(New U.S.-China Tariffs A Further Risk To Global Growth.)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지난 2일(현지시간) 내놓은 보고서 제목이다. 6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최근 미중 관세전쟁과 한일 무역갈등의 ‘교집합’은 기존의 자유무역주의 대신 보호무역주의가 힘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분업 체계 대신 자국생산 체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불과 한 달여 전인 6월 29일 주요 20개국(G20) 정상들이 일본 오사카 G20 정상회담에서 ‘자유·공정·무차별적 무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180도 상황이 바뀐 것이다. 미중 무역분쟁이 결국 환율전쟁으로 확전되면서 세계경제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 휩싸였다. 미국은 5일(현지시간)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전격 지정했고, 중국은 이에 반발해 보복 카드를 검토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요동쳤고, 안전자산에 대거 돈이 몰렸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전 세계 무역 증가세가 꺾이고 향후 하향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전망했다.일본의 수출 규제로 촉발된 한일 경제전쟁도 국제분업 체계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지금까지 세계경제는 글로벌 분업 체계라는 경제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운영됐다. 반도체만 놓고 보면 일본이 부품과 소재 등을 생산하고, 이를 한국이 사들여 D램 반도체를 생산한 뒤, 미국 등이 이를 가지고 스마트폰을 제조하는 형태였다. 한국은행 고위 관계자는 “국제분업 체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세계 각국은 안정적인 생산 체계의 구축을 위해 막대한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면서 “세계경제가 무역을 통해 각자가 모두 이득을 얻는 ‘윈윈 게임’이 아닌 누가 더 많은 손해를 보는가라는 ‘치킨 게임’의 장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자유무역과 국제분업 기조가 흔들리면 글로벌 무역이 위축될 수 있고, 이는 세계경제 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농후하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지난 2일 미중 무역전쟁의 확전으로 내년 세계경제 성장률이 기존 2.74%에서 2.62%로 내려갈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지난달 23일 보호무역주의의 확산을 근거로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기존 3.3%에서 3.2%로, 내년 성장률을 3.6%에서 3.5%로 낮춰 잡았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지금까지 무역을 통해 이득을 얻은 강대국들이 자유무역 기조로부터 발을 뺀 채 각자도생의 길로 나아가면서 ‘G0의 상황’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취임 때부터 우려됐던 상황이 현실로 다가온 만큼 수출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도 내수를 키우는 고차방정식을 어떻게 풀 것인지가 우리의 숙제”라고 말했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일제가 남긴 ‘알뜨르’ 軍시설·상처 입은 오름… 기억하겠습니다

    일제가 남긴 ‘알뜨르’ 軍시설·상처 입은 오름… 기억하겠습니다

    조선을 강제 합병한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1937년 중일전쟁을 도발한다. 뒤이어 국가총동원법을 만들어 한반도를 군수기지화해 무자비한 수탈을 감행한다. 조선 청년 40만명이 징병으로, 72만명은 징용으로 끌려가 이역만리에서 죽거나 죽을 고생을 했다. 특히 제주도는 육지가 당한 수탈에 더해 중국 침략의 전초기지로, 일본 본토 방어의 최전선으로 이중 삼중의 피해를 입게 됐다.●육중한 콘크리트 구조물에 띠 입혀 위장한 비행기 격납고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넓은 감자밭에 수십 개의 풀무덤들이 작은 오름과 같이 펼쳐져 있다. 자세히 보면 육중한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띠를 입혀 위장한 비행기 격납고들이다. 그 옆에 마련된 넓은 벌판은 과거 활주로의 흔적이다. ‘아래 펼쳐진 벌판’이라는 뜻의 ‘알뜨르’ 비행장은 1937년 당시 중국의 수도 난징을 폭격하기 위한 징검다리였다. 난징 폭격은 일본 나가사키현에 기지를 둔 오무라항공대가 담당했다. 나가사키에서 이륙한 항공대는 난징을 폭격하고 알뜨르에 착륙, 연료와 폭탄을 보충해 이튿날 다시 난징을 폭격한 후 나가사키로 귀환했다. 총 36회 출격, 300여t의 폭탄을 투하해 난징의 도시 시설 89%를 파괴했다. 폭격에 뒤이어 진주한 일본 육군은 30만명의 민간인을 학살하고 8만명의 여성들을 강간했다. 아직도 중일 간에 해결이 안 된 ‘난징대학살’이다. 1941년 일제는 하와이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전쟁을 도발했다. 초기에는 우세했지만 곧 미드웨이 해전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반격에 밀리게 된다. 1944년 4월, 80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미군은 오키나와를 함락했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군 1만 5000명, 일본군 6만 5000명이 전사하고 섬 주민 20만여명 중 12만명이 사망했다. 그해 11월부터 대대적인 일본 본토 공습이 시작됐다. 미군의 이른바 ‘몰락작전’의 시작이었다. 이 작전은 공습으로 일제를 무력화한 후 일본 규슈와 혼슈를 차례로 점령한다는 계획이었다.이에 대응해 일제는 전원 죽음으로 본토를 수호한다는 ‘결○호작전’을 펼친다. 일본 본토를 1호부터 6호까지 나누어 방어하고 7호는 제주도가 맡는다는 내용이다. 일제는 미군이 곧 제주도에 상륙하리라 예상했고, 제주도를 본토 방어의 최전선으로 삼았다. 제주도는 이른바 ‘결7호작전’의 작전지가 돼 군사시설을 건설하는 대대적인 노역에 시달린다. 알뜨르 외에도 여러 곳에 군사비행장을 만들고 훈련장과 포대, 대피소, 특공대 기지 등을 섬 전체에 건설했다. 대부분의 군사시설은 지하로 파들어 간 진지동굴이었는데, 제주도 내 총 360여개의 오름 중 160여개에 지하 진지를 구축했다. 58군 사령부 예하에 5개 사단, 보병 5만 8000명, 포병과 기갑부대 1만 6000명이 주둔했다. 이는 한반도 전체에 주둔한 군대보다 많은 숫자이며 10만명이 주둔했던 오키나와에 육박하는 규모였다.●모슬포 마을 주민 5000여명 강제 동원해 격납고 38개 지어 알뜨르비행장이 있는 모슬포 일대는 결7호작전의 핵심지역이었다. 비행장은 1944년부터 활주로를 늘리는 등 대대적으로 확장했고 이때 지은 격납고 38개 중 20개가 잔존하고 있다. 매일 주민 5000여명을 강제 노역에 동원한 결과였다. 격납고는 폭 10m, 길이 20m, 높이 4m의 반원통형 구조로, 전투기에 꽉 끼는 옷과 같은 최소한의 크기이다. 30~80㎝ 두께의 매우 견고한 철근콘크리트 구조물로서, 공중 관측을 피하기 위해 지붕에 풀을 덮어 위장했다. 여기에 숨긴 전투기는 일본의 주력인 제로센이었다. 제로센은 기체의 무게를 과감하게 줄여서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었고 개전 초기에 우수한 전과를 거두었다.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은 무게를 줄이기 위해 저출력 경량엔진을 장착하고 보호용 장갑판을 제거했다. 그래서 민첩함은 얻었으나 속도가 느려 쉽게 노출되고 적기의 공격에 취약한 문제가 있었다. 전쟁 말기에는 급기야 자살특공대인 가미카제의 운송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알뜨르의 격납고들은 모두 가미카제 특공대를 위한 위장 보호시설이었다.격납고 인근에 지하 벙커가 남아 있다. 터널같이 긴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들고 그 위에 3~5m 두께의 잡석들을 쌓아 인공 둔덕을 만들었다. 풀을 심은 둔덕은 얼핏 동산같이 보이지만 벙커 내부는 수십 명이 너끈히 들어가 작전을 펼 수 있다. 환기용 굴뚝과 배수로, 별도의 설비관로까지 설치한 모습으로 보아 아마도 중요한 통신시설로 쓰인 듯하다. 활주로 반대 송악산 쪽으로 3개의 작은 오름이 연달아 있는데 이를 통틀어 셋알오름이라 부른다. 이 오름 정상부에는 고사포진지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땅을 파고 지름 6m의 원통형 콘크리트 진지를 구축했다. 원통의 중심부에 고사포를 설치해 360도 회전하며 적기를 공격할 수 있었다. 현재 포좌는 없어지고 원통부만 남아 하늘에서 보면 마치 숲속에 뚫린 원형탈모 상흔과 같다. 모두 5기를 배치했는데 하나는 미완성이며 2기는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인근 송악산의 원래 이름은 ‘절울이오름’으로 ‘물결이 우는 소리를 듣는 오름’이란 뜻이었다. 바다 위에 솟은 대단한 절경이지만 60여기의 일제 동굴진지가 여기저기 뚫린 상처 입은 오름이다. 화순포구 쪽에서 보면 인공적으로 뚫은 해안동굴들이 절경을 훼손하고 있다. 총 15기의 해안동굴에는 1인용 모터보트들을 주둔시켰는데, 선두에 250㎏의 폭약을 싣고 적함에 돌진해 자폭하는 특공함이었다. 합판으로 선체를 만들고 자동차 엔진을 달았다니 애초부터 돌아오지 못하는 1회용 자살함정이었다. 하늘에 가미카제가 있었다면, 바다에는 인간어뢰라고 불린 가이텐 특공대가 있었다. 모두 나 죽고 너 죽자 식의 무모한 전술이며 최후 발악의 광기였다.●“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다시 반복된다”… 다시 봐야 할 이유 전쟁은 건축을 파괴하지만, 그래도 군사용 시설은 건설된다. 1940년대 제주에 남겨진 알뜨르비행장의 격납고나 지하 벙커, 고사포진지, 해안동굴 진지들은 여러 감상을 불러온다. ‘이 땅과 민족을 희생시켜 일본의 영토를 지킨다?’ 일제에 분노가 치밀지만 이 지경까지 당하게 된 역사적 수치심이 앞선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다시 반복된다.” 이 수치 유산들을 둘러보고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왜 이 땅에 이런 것들이 세워졌으며 어쩌다 그러한 역사에 처하게 됐는가. 어두운 체험과 불쾌한 사유의 여정을 일컬어 다크 투어리즘이라 한다.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그 대표적인 성공(?) 사례이다. 제주의 일제군사시설은 거의 다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인장력(당기는 힘)에 강한 철근과 압축력(누르는 힘)에 강한 콘크리트를 합쳐 천하무적이 된 건축 재료다. 20세기 초 발명한 이 재료는 강하기는 강철 같지만 밀가루 반죽과 같이 어떤 형태든지 만들 수 있다. 알뜨르의 격납고는 공중폭격에 가장 강한 반원통 구조로 지어졌다. 지하 벙커는 수m 두께의 토압을 견디고 내부 통행이 가능하도록 아치형 터널로 만들었다. 철저하게 기능적이며, 단순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건축은 죄가 없다. 하지만 이를 만들고 사용한 인간들의 탐욕과 광기는 용서 못 할 죄악이다. 식민지근대화론도 그렇다. 일제는 이 땅에 항만, 철도, 공장 등 근대적 시설을 지었다. 해방 후 근대화는 그 혜택의 연장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 목적은 무엇이고, 이익은 누가 차지했는지 손익 계산을 해야 한다. 그러면 식민지근대화는 허구이며 식민지수탈이 있을 뿐이다. 2차대전 직전에 프랑스 국방장관 앙드레 마지노는 350㎞ 길이의 초대형 철근콘크리트 지하 진지를 완성했다. 참호전으로 점철했던 1차대전의 교훈에서 얻은 방어선이었다. 그러나 개전과 동시에 독일군은 탱크를 앞세운 기동력으로 마지노선을 돌파, 이를 무력화했다. 마지노선 건설은 지상 최대의 삽질로 비웃음거리가 됐다. 일제의 전략은 무모하고 시설은 어리석다. 전원 옥쇄란 사무라이 싸움에서나 있을 법한 전략이다. 총길이 15㎞에 달하는 제주 내 동굴 진지들도 자학적이다. 내부에 아무 지원시설 없어 단 며칠도 버티기 어려운 동굴에서 미군의 첨단 전투력을 어찌 대항하나. 가미카제나 가이텐 특공대의 성공 확률은 얼마나 높을까. 통계에 따르면 특공대 1명의 자폭으로 미군 1명을 사살했을 정도라 한다. 전쟁의 실체를 모르는 시대착오적 전술은 얼마나 허망한가. 해방 74년, 일제가 남긴 알뜨르의 군사건축이 던지는 역설적 교훈이다.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일제가 남긴 ‘알뜨르’ 軍시설·상처 입은 오름… 기억하겠습니다

    일제가 남긴 ‘알뜨르’ 軍시설·상처 입은 오름… 기억하겠습니다

    조선을 강제 합병한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1937년 중일전쟁을 도발한다. 뒤이어 국가총동원법을 만들어 한반도를 군수기지화해 무자비한 수탈을 감행한다. 조선 청년 40만명이 징병으로, 72만명은 징용으로 끌려가 이역만리에서 죽거나 죽을 고생을 했다. 특히 제주도는 육지가 당한 수탈에 더해 중국 침략의 전초기지로, 일본 본토 방어의 최전선으로 이중 삼중의 피해를 입게 됐다.●육중한 콘크리트 구조물에 띠 입혀 위장한 비행기 격납고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넓은 감자밭에 수십 개의 풀무덤들이 작은 오름과 같이 펼쳐져 있다. 자세히 보면 육중한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띠를 입혀 위장한 비행기 격납고들이다. 그 옆에 마련된 넓은 벌판은 과거 활주로의 흔적이다. ‘아래 펼쳐진 벌판’이라는 뜻의 ‘알뜨르’ 비행장은 1937년 당시 중국의 수도 난징을 폭격하기 위한 징검다리였다. 난징 폭격은 일본 나가사키현에 기지를 둔 오무라항공대가 담당했다. 나가사키에서 이륙한 항공대는 난징을 폭격하고 알뜨르에 착륙, 연료와 폭탄을 보충해 이튿날 다시 난징을 폭격한 후 나가사키로 귀환했다. 총 36회 출격, 300여t의 폭탄을 투하해 난징의 도시 시설 89%를 파괴했다. 폭격에 뒤이어 진주한 일본 육군은 30만명의 민간인을 학살하고 8만명의 여성들을 강간했다. 아직도 중일 간에 해결이 안 된 ‘난징대학살’이다. 1941년 일제는 하와이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전쟁을 도발했다. 초기에는 우세했지만 곧 미드웨이 해전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반격에 밀리게 된다. 1944년 4월, 80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미군은 오키나와를 함락했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군 1만 5000명, 일본군 6만 5000명이 전사하고 섬 주민 20만여명 중 12만명이 사망했다. 그해 11월부터 대대적인 일본 본토 공습이 시작됐다. 미군의 이른바 ‘몰락작전’의 시작이었다. 이 작전은 공습으로 일제를 무력화한 후 일본 규슈와 혼슈를 차례로 점령한다는 계획이었다. 이에 대응해 일제는 전원 죽음으로 본토를 수호한다는 ‘결○호작전’을 펼친다. 일본 본토를 1호부터 6호까지 나누어 방어하고 7호는 제주도가 맡는다는 내용이다. 일제는 미군이 곧 제주도에 상륙하리라 예상했고, 제주도를 본토 방어의 최전선으로 삼았다. 제주도는 이른바 ‘결7호작전’의 작전지가 돼 군사시설을 건설하는 대대적인 노역에 시달린다. 알뜨르 외에도 여러 곳에 군사비행장을 만들고 훈련장과 포대, 대피소, 특공대 기지 등을 섬 전체에 건설했다. 대부분의 군사시설은 지하로 파들어 간 진지동굴이었는데, 제주도 내 총 360여개의 오름 중 160여개에 지하 진지를 구축했다. 58군 사령부 예하에 5개 사단, 보병 5만 8000명, 포병과 기갑부대 1만 6000명이 주둔했다. 이는 한반도 전체에 주둔한 군대보다 많은 숫자이며 10만명이 주둔했던 오키나와에 육박하는 규모였다.●모슬포 마을 주민 5000여명 강제 동원해 격납고 38개 지어 알뜨르비행장이 있는 모슬포 일대는 결7호작전의 핵심지역이었다. 비행장은 1944년부터 활주로를 늘리는 등 대대적으로 확장했고 이때 지은 격납고 38개 중 20개가 잔존하고 있다. 매일 주민 5000여명을 강제 노역에 동원한 결과였다. 격납고는 폭 10m, 길이 20m, 높이 4m의 반원통형 구조로, 전투기에 꽉 끼는 옷과 같은 최소한의 크기이다. 30~80㎝ 두께의 매우 견고한 철근콘크리트 구조물로서, 공중 관측을 피하기 위해 지붕에 풀을 덮어 위장했다. 여기에 숨긴 전투기는 일본의 주력인 제로센이었다. 제로센은 기체의 무게를 과감하게 줄여서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었고 개전 초기에 우수한 전과를 거두었다.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은 무게를 줄이기 위해 저출력 경량엔진을 장착하고 보호용 장갑판을 제거했다. 그래서 민첩함은 얻었으나 속도가 느려 쉽게 노출되고 적기의 공격에 취약한 문제가 있었다. 전쟁 말기에는 급기야 자살특공대인 가미카제의 운송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알뜨르의 격납고들은 모두 가미카제 특공대를 위한 위장 보호시설이었다.격납고 인근에 지하 벙커가 남아 있다. 터널같이 긴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들고 그 위에 3~5m 두께의 잡석들을 쌓아 인공 둔덕을 만들었다. 풀을 심은 둔덕은 얼핏 동산같이 보이지만 벙커 내부는 수십 명이 너끈히 들어가 작전을 펼 수 있다. 환기용 굴뚝과 배수로, 별도의 설비관로까지 설치한 모습으로 보아 아마도 중요한 통신시설로 쓰인 듯하다. 활주로 반대 송악산 쪽으로 3개의 작은 오름이 연달아 있는데 이를 통틀어 셋알오름이라 부른다. 이 오름 정상부에는 고사포진지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땅을 파고 지름 6m의 원통형 콘크리트 진지를 구축했다. 원통의 중심부에 고사포를 설치해 360도 회전하며 적기를 공격할 수 있었다. 현재 포좌는 없어지고 원통부만 남아 하늘에서 보면 마치 숲속에 뚫린 원형탈모 상흔과 같다. 모두 5기를 배치했는데 하나는 미완성이며 2기는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인근 송악산의 원래 이름은 ‘절울이오름’으로 ‘물결이 우는 소리를 듣는 오름’이란 뜻이었다. 바다 위에 솟은 대단한 절경이지만 60여기의 일제 동굴진지가 여기저기 뚫린 상처 입은 오름이다. 화순포구 쪽에서 보면 인공적으로 뚫은 해안동굴들이 절경을 훼손하고 있다. 총 15기의 해안동굴에는 1인용 모터보트들을 주둔시켰는데, 선두에 250㎏의 폭약을 싣고 적함에 돌진해 자폭하는 특공함이었다. 합판으로 선체를 만들고 자동차 엔진을 달았다니 애초부터 돌아오지 못하는 1회용 자살함정이었다. 하늘에 가미카제가 있었다면, 바다에는 인간어뢰라고 불린 가이텐 특공대가 있었다. 모두 나 죽고 너 죽자 식의 무모한 전술이며 최후 발악의 광기였다.●“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다시 반복된다”… 다시 봐야 할 이유 전쟁은 건축을 파괴하지만, 그래도 군사용 시설은 건설된다. 1940년대 제주에 남겨진 알뜨르비행장의 격납고나 지하 벙커, 고사포진지, 해안동굴 진지들은 여러 감상을 불러온다. ‘이 땅과 민족을 희생시켜 일본의 영토를 지킨다?’ 일제에 분노가 치밀지만 이 지경까지 당하게 된 역사적 수치심이 앞선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다시 반복된다.” 이 수치 유산들을 둘러보고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왜 이 땅에 이런 것들이 세워졌으며 어쩌다 그러한 역사에 처하게 됐는가. 어두운 체험과 불쾌한 사유의 여정을 일컬어 다크 투어리즘이라 한다.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그 대표적인 성공(?) 사례이다.제주의 일제군사시설은 거의 다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인장력(당기는 힘)에 강한 철근과 압축력(누르는 힘)에 강한 콘크리트를 합쳐 천하무적이 된 건축 재료다. 20세기 초 발명한 이 재료는 강하기는 강철 같지만 밀가루 반죽과 같이 어떤 형태든지 만들 수 있다. 알뜨르의 격납고는 공중폭격에 가장 강한 반원통 구조로 지어졌다. 지하 벙커는 수m 두께의 토압을 견디고 내부 통행이 가능하도록 아치형 터널로 만들었다. 철저하게 기능적이며, 단순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건축은 죄가 없다. 하지만 이를 만들고 사용한 인간들의 탐욕과 광기는 용서 못 할 죄악이다. 식민지근대화론도 그렇다. 일제는 이 땅에 항만, 철도, 공장 등 근대적 시설을 지었다. 해방 후 근대화는 그 혜택의 연장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 목적은 무엇이고, 이익은 누가 차지했는지 손익 계산을 해야 한다. 그러면 식민지근대화는 허구이며 식민지수탈이 있을 뿐이다. 2차대전 직전에 프랑스 국방장관 앙드레 마지노는 350㎞ 길이의 초대형 철근콘크리트 지하 진지를 완성했다. 참호전으로 점철했던 1차대전의 교훈에서 얻은 방어선이었다. 그러나 개전과 동시에 독일군은 탱크를 앞세운 기동력으로 마지노선을 돌파, 이를 무력화했다. 마지노선 건설은 지상 최대의 삽질로 비웃음거리가 됐다. 일제의 전략은 무모하고 시설은 어리석다. 전원 옥쇄란 사무라이 싸움에서나 있을 법한 전략이다. 총길이 15㎞에 달하는 제주 내 동굴 진지들도 자학적이다. 내부에 아무 지원시설 없어 단 며칠도 버티기 어려운 동굴에서 미군의 첨단 전투력을 어찌 대항하나. 가미카제나 가이텐 특공대의 성공 확률은 얼마나 높을까. 통계에 따르면 특공대 1명의 자폭으로 미군 1명을 사살했을 정도라 한다. 전쟁의 실체를 모르는 시대착오적 전술은 얼마나 허망한가. 해방 74년, 일제가 남긴 알뜨르의 군사건축이 던지는 역설적 교훈이다.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가족 돌봄은 회생 어렵다… 사회적 돌봄으로 ‘젠더 갈등’ 풀자

    가족 돌봄은 회생 어렵다… 사회적 돌봄으로 ‘젠더 갈등’ 풀자

    한국 사회에 변혁의 바람을 몰고 온 ‘미투’ 운동의 진동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각계각층에서 터져나온 여성들의 목소리는 공고하게 이어져 온 남성 중심적 폭력 문화의 민낯을 들춰냈고, 남성 중심 권력 구조에 균열을 냈다. 불법촬영 규탄 시위, 낙태죄 폐지 등 여성 관련 이슈가 주요 의제로 떠오르는 가운데 성폭력 대책과 성평등 정책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반발과 반격도 거세지고 있다. 일부 사건은 여혐 대 남혐의 대결 구도로 비화됐고, 역차별을 거론하며 페미니즘에 반기를 드는 남성들도 늘어났다. 서울신문 부설 서울젠더연구소는 출범에 맞춰 국내 대표 여성학자이자 문화인류학자인 조한혜정(71) 연세대 명예교수에게 ‘지속가능한 성평등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에 대해 물었다. 조한 교수는 가깝게는 근대의 근간을 형성해 온 군사주의와 과학기술주의에 대해, 멀게는 긴 인류사를 통해 구축돼 온 가정과 공공 영역 분리에 대해 근원적 성찰을 하지 않으면 미래를 상상하기 어렵다고 했다. 지나치게 비대해진 ‘교환 영역’(시장)과 ‘재분배 영역’(국가)을 축소시키는 한편 장기적으로 공존의 원리인 ‘호혜의 영역’을 사회의 핵심으로 삼고 확장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담은 지난달 서울젠더연구소장 김균미 대기자가 진행했다.-2018년 미투 운동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현재 상황을 진단한다면. “한국에서는 2005년에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이 남학생의 진학률을 추월했다. 그런데 아직도 여성을 자신의 소유물이나 노리개처럼 여기면서 폭력적으로 대하는 남성들이 남아 있다. 미투 운동은 ‘더이상 그런 행위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여성들의 단호한 선언이다. 이전의 성폭력 폭로 사건이 피해자를 대변하는 운동이었다면 현재 미투 운동에서는 당사자들이 직접 발언을 하고 나섰다. 이 현상은 사회학자 울리히 베크의 ‘1·2차 근대’의 개념으로 풀어내면 이해가 쉽다. 1차 근대의 주역은 중세 신분제에서 해방된 남성들이었다. 그들은 산업 역군이자 제국주의 전쟁의 참전자로 1등 시민의 자리에 있었다. 여성들은 그들을 보조하는 현모양처, 가정주부의 자리에 있었다. 2차 근대에 접어들면 남녀 모두가 경제 활동에 참여하면서 자립가능한 개인으로 살아가게 된다. 여성 운동 차원에서 보면 1차 근대에서 여성은 경제·사회적 자립을 위한 동등한 권리 운동을 펼쳤다. 그런데 2차 근대에 가면 개인의 존엄과 자율적 삶을 존중하자는 운동을 벌인다. 서지현 검사나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비서 김지은씨의 미투는 2차 근대의 대표적 사례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된 여성들이 작은 폭력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사회원리 자체의 근원적 변화를 요구하게 된 것이다.” -최근 여성들에 대한 남성들의 백래시(반발·반격)가 심각한데 이를 어떻게 보시는지. “1차 근대에서 2차 근대로 넘어서는 과도기 현상이다. 2차 근대에 접어들면 여성들도 온전한 독립이 가능해져서 공사 영역에 걸쳐 자율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반면 직장만 있으면 결혼하고 가장으로서 어깨를 펴고 살 수 있으리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며 성장한 남성들에게는 수난 시대가 시작된다. 현재 한국의 ‘일베화 현상’이나 여혐 대 남혐 구도는 이러한 변화의 와중에 나온 병리적 현상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1차 근대적 여권 운동은 역효과를 낼 가능성이 높다. ‘여성의 좌절’과 함께 ‘남성의 좌절’도 다루어낼 수 있어야 한다. 남자와 여자 모두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살되 그간의 발전주의가 파생시킨 문제들을 해결하는 협동적 주체가 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남녀 갈등의 원인 중 하나로 군대 문제가 꼽히는데 교수님께서는 오래전부터 해결 방안으로 사회복무제를 제시하셨다. “한국의 남성 의무복무제는 성차별 체계의 핵심이다. 최근까지 월급 호봉이나 공무원 채용 시험에 가산점을 주는 보상제도가 있었다. 군대를 가지 않은 존재를 따돌리거나 2등 시민으로 취급하는 풍토가 만연해 있었다. 공무원시험 시 군 가산점을 두고 여성과 장애인 대표가 위헌 소송을 내 1999년에 승소했는데, 이 즈음에 병역 제도를 2차 근대적 시점에서 개혁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병사가 총 들고 싸우는 시대도 지났고, 기강을 세우기 힘든 상황에서 군대는 청년 직업훈련소화하고 있다. 냉전 체제는 북한의 개방으로 전혀 다른 지평으로 이동하고 있다. 청년들을 위한 훈련은 이제 재난과 재앙의 시대에 대비하는 것이어야 한다.” -‘젠더’를 둘러싼 논란을 해결하려면 일자리와 결혼, 돌봄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기성 정치인이나 관료, 부모들은 자기 세대의 세계에 갇혀 평생 일자리와 결혼을 전제로 해법을 내려고 해서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과 혼자서도 잘 사는 사회를 만드는 방향으로 선회해야 한다. 앞서 말했지만 1차 근대는 아내가 돌봄을 맡고 남편이 돈을 벌면서 유지됐다. 2차 근대는 여자가 사회에 나간 반면 남자들이 가정의 돌봄 영역으로 들어오면서 여자들이 사회에 나가며 만들어진 공백을 메울 것이라 예상했다. 현실은 어떤가. 어릴 때부터 입시 공부와 직장을 얻기 위한 준비만 한 여성은 남성 못지않게 돌봄에 서툴다. 그렇게 성장한 많은 ‘능력 있는’ 여성들은 출산하고 3개월도 지나지 않아 다시 직장에 가고 싶어 한다. 여성들은 남성 못지않게 돈벌이에 몰두하면서 육아를 맡을 사람을 고용하거나 어린이집에 장시간 맡겨 두려 한다. 그렇게 ‘기획된 가족’의 아이들은 장시간 학교와 사교육 시장에 맡겨져 관리·보호된다.” -돌봄의 공백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현안으로 보인다. “그간 가족에게만 맡겼던 돌봄을 ‘사회적 돌봄’의 개념으로 풀어내는 것이 바로 여성가족부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1차 근대에서 제기된 생산성, 곧 여성 노동과 인권 문제를 다루면서 동시에 2차 근대의 생산성이 핵을 이루는 사회적 돌봄에 바탕을 둔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거시적 기획을 시도했어야 했다. 사회복무제는 그런 2차 근대적 기획의 핵심 사안 중 하나일 것이다. 남녀 모두가 성인이 되는 시점에 갖가지 위기 상황에 민첩하게 대처하고 아이와 약자를 보호하는 주체가 되는 훈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최근 어린이집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는데 사회복무를 하는 청년 남녀가 참여하게 되면 지혜롭게 풀어 갈 수 있다. 스무살 즈음의 모든 국민들이 천재지변에 대비하고 약자를 돕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받으면서 사회의 책임 있는 어른으로 성장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더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가족 단위 돌봄을 회생시키려 하기보다 사회적 관계망 안에서 호혜적 관계를 맺고 다음 세대를 함께 키우는 즐거움을 경험하는 새로운 인프라를 만드는 데 세금을 써야 한다.” -‘토건 국가’에서 ‘돌봄 사회’로의 전환을 강조해 오셨다. “경제학자 낸시 폴브레가 쓴 ‘보이지 않는 가슴’이라는 책이 있다. 시장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잘 굴러간다고 하지만 실은 ‘보이지 않는 가슴’이 있어 가능했음을 보여 주는 책이다. 돌봄은 존재와 존재의 만남, 소통과 이해와 공존의 행위다. 그러나 도구적 합리성이 주도하는 사회에서는 이 영역을 무시해 왔다. 여성들, 특히 1차 근대에서 열렬한 운동을 했던 페미니스트들도 돌봄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가정주부 시대에 어머니들이 강요받은 비지불 노동에 대한 거부감에서 비롯한 것이다. 돌봄 사회에서 말하는 ‘돌봄’은 가족을 넘어선 ‘사회적 돌봄’이다. 사회적 돌봄이 가능한 사회는 결혼을 강요하기보다 동거를 장려하고 의무적 제도가 아닌 실질적 지원을 하는 사회다. 더 나아가 돌봄은 창의의 근원이다. 창의성은 돌봄이 있는 여유로운 환경에서 나온다.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더 자연스럽고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코리빙 스페이스’(co-living space), 자신이 원하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 밤낮없이 연구하는 ‘리빙 랩’(living lab), 이들이 모여 서로 지지하고 격려하는 ‘창의적 공유지,’ 이런 크고 작은 공동체적 시공간이 돌봄 사회로의 전환을 가능케 하는 기반이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차원에서라도 성평등 교육은 중요한데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까. “무엇보다 남자들에 대한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까지 남자들은 소통을 하지 못하는 조직에서 성장하지 않았나. (그 조직에서) 정말 열심히 일을 했고, 사실상 그것밖에 선택지가 없었던 거다. 그런 이들은 나이가 들면 점점 더 귀가 잘 안 들리는 존재가 돼 간다. 여자들이 처음 공적 영역에 들어갈 때 적극적 조치가 필요했듯이 남자들을 돌봄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게 하려면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관리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비폭력 대화 등 훈련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남자아이들 문제도 심각하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부터 제대로 사회화되지 못하고 있다. 존경스러운 남자 모델도 없고, 어머니나 여자 교사와 거리감을 느끼면서 온라인 전쟁 게임에 몰입하거나 남자 패거리 문화에 휩쓸리게 된다. 아버지가 가르쳐 주지 못한 소통과 돌봄의 능력을 키워 줄 수 있어야 한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분법적 구도로 접근하면 역효과만 난다. 각자의 경험을 꺼내 놓고 함께 배워 가는 리빙랩과 같은 분위기에서 시대 변화를 배우고 스스로를 알아 갈 수 있게 도와야 한다. 현재는 소수의 전문가들이 연구할 시간도 없이 분주하게 ‘계몽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 성평등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국가의 대대적인 연구와 지원이 필요하다.” -젠더 이슈와 관련한 다양한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발족한 서울신문 서울젠더연구소에 기대하는 역할이 있다면. “‘젠더’는 생물학적 성과 구분되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성으로서 남성 중심의 사회가 어떻게 구성돼 왔는지 살펴보자는 의미에서 붙여진 단어다. 남녀로 구성된 사회가 긴 인류사를 통해 왜 이렇게 적대적 사회가 됐는지 거시적 관점을 갖고 지금 이곳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연구하고 해결해 가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현재 세계가 돌아가는 현실을 보면 이 작업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차 근대의 원리였던 발전주의적 언어를 넘어 근대를 성찰하는 언어로 시대의 문제를 연구하고 풀어낼 것을 기대한다. 페미니즘은 다음 세대가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선언이다. 서울젠더연구소가 남녀와 세대 등으로 나눠진 이들이 같이 모여 의논하고 작업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되면 좋겠다. 특히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2차 근대의 성찰적 페미니즘의 토대를 만들어 주기를 기대한다.” 김균미 젠더연구소장 kmkim@seoul.co.kr정리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여성·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 교수는… 연세대 명예교수. 1981~2013년 연세대 사회학과·문화인류학과 교수로 일했다. 1980년대 여성주의 동인 집단 ‘또 하나의 문화’와 함께 여성주의적 공론의 장을 열었고, 1990년대에는 서울시립청소년 직업체험센터인 ‘하자센터’를 설립해 청소년 대안교육의 장을 마련하는 데 힘썼다. 2000년대부터는 서울시 마을공동체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아 민관 협력의 다양한 모델을 제시했다. 곳곳의 마을을 돌봄과 소통이 있는 배움터로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성찰적 근대성과 페미니즘’, ‘학교를 찾는 아이 아이를 찾는 사회’,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 아이를 거부하는 사회’,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와 삶 읽기’, ‘다시, 마을이다’, ‘가족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마을로’, ‘선망국의 시간’ 등이 있다.
  • [열린세상] 치킨게임 이기는 방법/남시훈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열린세상] 치킨게임 이기는 방법/남시훈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선언으로 시작된 한일 무역분쟁은 치킨게임의 성격을 갖고 있다. 수출 규제의 특성상 한일 모두 피해를 입으며, 이것이 지속되면 양국 모두 피해가 누적된다. 한 국가가 포기하면 다른 국가의 승리로 끝난다. 이렇게 승패가 결정되면 서로의 공격은 중단되겠지만, 패배한 국가는 국가의 위신에 상처를 입고 향후에 비슷한 공격을 또 당할 수 있게 된다. 일본이 한국보다 좀더 강하기 때문에 치킨게임에서 유리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일본이 한국보다 인구가 많고, 국민총생산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치킨게임의 승패는 국력의 격차만으로 갈리지 않는다. 상대편 기업이 망할 때까지 계속된 ‘반도체 치킨게임’과는 다르다. 국가와 국가가 상대하는 치킨게임은 정치세력의 안정성 문제가 걸려 있으므로 어느 한쪽의 피해가 정권에 타격이 갈 만큼 누적되면 치킨게임이 더 지속되기 어렵다. 또한 치킨게임은 양국의 충돌이 심해지면 이긴 쪽이나 진 쪽이나 모두 피해를 심하게 입는다. 따라서 전면전으로 가면 우리가 이긴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전면전에서 우리가 입는 피해가 너무 크다면 일단 전투를 피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즉 국가 단위의 치킨게임은 강한 국가 입장에서 이 싸움을 걸었을 때 내가 입는 피해가 별로 없다고 판단될 때 시작된다. 상대방에게 피해를 많이 입히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내가 어떤 정치경제적 이득을 얻고 싶어서 싸움을 거는 것인데 내가 피해가 많아지면 싸움에서 이기는 보람이 없게 된다. 즉 일본이 한국에 대해 수출 규제를 시작한 것은 한국이 일본에 항복하거나 한국이 일본에 피해를 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이다. 치킨게임을 이기는 필승 전략은 없지만, 유리하게 이끄는 몇 가지 원칙은 있다. 첫 번째는 신뢰성을 역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치킨게임 초반에는 강력한 조치와 상대방에 대한 강한 비난 발언이 이어진다. 이 행동은 우리가 옳다는 대내외적 여론전을 펼치는 의미 외에도, 우리 쪽이 발언을 취소하기 어렵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강력한 조치를 취했다가 갑자기 다시 취소한다면 국가의 신뢰성이 하락하며 국내 지지율도 잃게 된다. 그러므로 강력한 발언을 할수록 그 말을 취소하기는 어려워지며, 공격을 한 국가는 상대방이 쉽게 포기할 거라고 생각하고 공격했는데 강력한 발언이 돌아오면 상대방이 강하게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파악하고, 우리 쪽 피해가 많아질 것을 우려해 포기하는 것을 고려하게 된다. 두 번째로 상대국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수집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의 무역 충돌이 심해질 때 양국 기업이 입을 피해 수준과 일본 업계의 반응을 확인하면서 전략 수립에 반영해야 한다. 현재까지는 일본이 한국 측의 강한 대응에 놀라며 당황하는 모습이 보인다. 일본은 과거 박근혜 정부에 내정간섭 수준의 압박을 했고 이것이 통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통할 것으로 생각하고 단순하게 문제를 생각한 것일 수 있다. 한국에 대한 정보 수집에 실패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건 한국의 단합이다. 한국 정부는 우리의 피해보다 일본이 상당한 피해를 입는다는 것을 계속 강조해야 하며, 불매운동은 이것을 국민 차원에서 실현하는 좋은 방법이다. 치킨게임을 두고 미친 척을 해야 이긴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굳이 그런 수준까지 나갈 필요도 없다. 일본의 공격으로 인한 한국의 피해나 한국의 약점을 강조하는 것은 개인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한일 간의 대결에서 한국을 더 불리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므로 적절한 수준에서 자제돼야 한다. 국민 스스로 단합해 각자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일본에 피해를 주고, 사령부 역할을 할 정부를 신뢰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는 안으로는 약점에 대비하되 겉으로는 강경하고 단호해야 한다. 또 일본의 도발에 대한 방어 대책 외에 반격할 계획도 준비하고 그중 일부는 명시적으로 공개해 위협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 차원에서는 언젠가는 한일 간의 협력이 복원돼야 한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이 게임은 한쪽의 완승보다는 한쪽의 판정승 정도로 타협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불매운동은 좋지만, 인종차별을 하거나 민간의 학술·문화 교류를 중단해서는 안 된다.
  • ‘열여덟의 순간’ 옹성우vs신승호, 한밤 중 옥상 만남 “폭발 1초 전”

    ‘열여덟의 순간’ 옹성우vs신승호, 한밤 중 옥상 만남 “폭발 1초 전”

    ‘열여덟의 순간’ 옹성우가 신승호를 향한 반격을 시작한다. JTBC 월화드라마 ‘열여덟의 순간’(연출 심나연, 극본 윤경아, 제작 드라마하우스·키이스트) 측은 5회 방송을 앞둔 4일, 절친의 죽음 이후 싸늘하게 돌변한 최준우(옹성우 분)의 모습을 공개해 궁금증을 증폭했다. 열여덟 ‘Pre-청춘’들의 감정이 요동치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지난 방송에서 준우는 절친 정후(송건희 분)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모든 것을 잊고 떠나기로 한 정후, 준우는 “우리 꼬여버린 인생 아니야”라는 위로와 함께 그를 배웅했다. 하지만 그것은 두 사람의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 사고로 응급실에 실려 온 정후가 끝내 죽음을 맞은 것. 홀로 빈소를 지키던 준우는 휘영(신승호 분)의 계획에 정후가 학교를 그만두고 떠나게 됐음을 깨닫고 분노를 폭발했다. 그동안 참아왔던 슬픔과 분노를 터뜨리는 준우의 모습은 보는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런 가운데 준우의 심상치 않은 변화가 감지됐다. 공개된 사진 속 준우와 휘영의 대립이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휘영의 계획을 알게 된 준우의 차가운 눈빛과 자신의 철벽을 뒤흔드는 그의 자극에 뜨겁게 타오르는 휘영의 눈빛이 대비를 이루며 위태로운 두 소년의 갈등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궁금증을 더한다. 이어진 사진 속 준우와 상훈(김도완 분)의 한밤중 만남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준우의 날 선 눈빛이 사그라지지 않은 그의 분노를 짐작게 한다. 평소 능청스럽게 자신의 속내를 감춰오던 상훈의 달라진 분위기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준우와 휘영의 갈등에 불을 지핀 시계 도난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상훈. 준우가 그를 찾아간 이유는 무엇인지, 거짓 증언으로 준우를 범인으로 몰았던 상훈이 진실을 밝히게 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오는 5일(월) 방송되는 5회에서 휘영은 정후의 사고 이후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고, 자신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려 하는 그의 모습에 불안감을 느끼는 기태(이승민 분)가 준우를 찾아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생애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순간들을 보내고 있는 열여덟 청춘들의 성장기가 뜨겁게 그려진다. ‘열여덟의 순간’ 제작진은 “친구의 죽음에 이어 휘영의 계획까지 알아차린 준우의 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소년들의 감정선에 집중에서 지켜봐 달라”고 전했다. ‘열여덟의 순간’ 5회는 내일(5일) 밤 9시 30분 JTBC에서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단호한 상응조치’로 반격 나선 한국…‘전면전’ 치닫는 韓·日

    ‘단호한 상응조치’로 반격 나선 한국…‘전면전’ 치닫는 韓·日

    일본 정부가 2일 수출 우대 국가 명단인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2차 경제보복’에 나선 것을 기화로 한일 관계가 전면전으로 치달았다. 우리 정부도 백색국가 리스트에서 일본을 제외한 데에 이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파기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국회는 본회의에서 일본의 보복적 수출규제 조치 철회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며 공세에 힘을 보탰다. ‘단호한 상응조치’를 예고했던 우리 정부는 이날 한국의 화이트리스트에서 일본을 제외하는 초강수로 맞대응했다. 일본이 한국의 백색국가에서 빠지면 한국산 물품을 수입하기 위해 산업통상자원부 등 수출허가기관의 개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일본 전체 수입액에서 대 한국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4.1%다. 일본산 상품·서비스에 시장접근을 제한하고 관세를 인상하거나 기술 규정 및 표준 인증심사 강화와 같은 비관세장벽을 세우는 방안이 추가적 ‘상응 조치‘로 나올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또한 정부는 일본의 결정이 자유무역에 관한 WTO(세계무역기구) 규범에 위배된다는 점을 들어 조만간 일본을 WTO에 제소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지소미아와 관련해서도 ’단호한 상응조차‘가 이뤄질 조짐이 보이고 있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정부는 우리에 대한 신뢰를 잃고 안보상 문제를 제기하는 나라와 과연 민감한 군사정보 공유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맞는지를 포함해 종합적 대응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소집한 일본 경제침략 관련 비상대책 연석회의에서 “이렇게 신뢰 없는 관계를 갖고 지소미아가 과연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지소미아는 한국 정부가 군사정보 분야에서 일본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역할을 하는 데다가 군사 분야에서 일본과 맺은 유일한 협정이다. 한국이 북중 접경지역의 인적 네트워크, 군사분계선 일대의 감청수단 등으로 수집한 내용은 일본에게도 중요한 정보이다. 이 때문에 일본의 ‘무역보복’에 맞대응하기 위해 지소미아의 연장을 거부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정부는 국제 여론전을 통해 일본의 조치가 부당하다는 점을 알리는 데도 공을 들일 전망이다. 외교부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일본 정부가 부당한 경제보복 조치를 즉각 철회하지 않는다면 양국 관계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을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면서 “이에 따른 책임은 일본 정부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를 초치해 “이런 보복적 경제 조치를 취하는 국가를 우리 국민은 더이상 우호국으로 생각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회는 이날 열린 본회의에서 일본 정부의 보복적 수출규제 조치 철회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재석의원 228명 만장일치로 가결시켰다. 국회는 결의안을 통해 “일제 강제동원 문제에 관한 우리 사법부 판결에 대한 보복적 성격으로 일본 정부가 취한 수출규제 조치를 단호히 배격한다”면서 “한일 우호 관계의 근간을 훼손함은 물론, 양국 국민을 고통스럽게 하고, 전 세계 자유무역 질서를 퇴보시키는 조치라는 점에서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일본 정부를 비판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조국 “日정부 ‘갑질’ 앞에 한국 정부 문제라니, 한심한 작태”

    조국 “日정부 ‘갑질’ 앞에 한국 정부 문제라니, 한심한 작태”

    “우매한 나로서는 고준담론 못해”“日불매운동 냉소, 의병·독립군 비하 현대판”“싸울 땐 싸워야…피, 아 구분해라” “누가 가해자고 피해자인지 확실히 해”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일본이 2일 수출 우대 혜택을 주는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한 것을 ‘경제전쟁’으로 규정하며 국내에서 한국과 일본이 둘다 문제라고 언급하는 ‘양비론’에 대해 “완전히 틀렸다”고 비판했다. 조 전 수석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국의 (사법)주권을 모욕하고 자유무역 원칙을 훼손하면서 한국 경제에 타격을 주려는 일본 정부의 ‘갑질’ 앞에서 한국 정부와 법원도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한심한 작태”라며 정부의 대응 조치를 비판하는 목소리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조 전 수석은 “최근 일본이 도발한 ‘경제전쟁’ 상황에 대해 일본과 한국 양쪽의 ‘민족주의’ 모두가 문제라며 ‘양비론’을 펼치고 ‘민족감정’ 호소는 곤란하다고 훈계하는 일부 언론과 전문가들이 있다”며 포문을 열었다. 조 전 수석은 “이들은 한국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전개하는 일본 상품 불매운동에 대해서도 냉소적 평가를 던지고 ‘이성적 대응’을 운운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문제 상황에서 양비론은 완전히 틀린 것이다”라면서 “외국이 침공했는데 ‘우리나라에도 문제가 있잖아?’라고 말하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조 전 수석은 일본 불매운동에 대해 냉소를 던지는 일부 시각에 대해서도 비판을 쏟아냈다. 조 전 수석은 “불매운동에 대한 냉소는 ‘의병’과 ‘독립군’에 대한 비하의 현대판”이라면서 “우매한 나로서는 이러한 고담준론(高談峻論)은 못하겠다”고 올렸다. 조 전 수석의 이런 발언은 최근 차명진 전 새누리당 의원 등이 올린 일본 불매운동 비하 표현에 대한 반박으로 받아들여진다.앞서 차명진 전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달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일본 제품 불매 운동에 대해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나 국산부품 자력갱생운동 같은 퇴행적인 운동”이라면서 “국민의 저급한 반일감정에 의지하는 문재인의 얄팍한 상술을 비판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차 전 의원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에 대한 조언’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 플래카드 게첩(揭帖·내붙임) 사건은 완전 패착”이라면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수출 금지 조치가 주요 공격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한국당 중앙당 사무처가 지난달 26일 전국 당원협의회에 일본 수출 규제 중단과 KBS 수신료 거부 등의 문구가 담긴 플래카드를 게시할 것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낸 것을 비판한 것이다. 차 전 의원은 “문재인에게 징용 문제를 제3국 조정위원회에 회부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며 “그거 주장한다고 아베 편을 드는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일본은 한국 대법원이 지난해 10월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에 대해 불만을 품고 지난달 4일 한국 주력품목인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등 경제보복을 단행했는데 차 전 의원이 말하는 징용 문제의 ‘제3국 중재위원회 회부’를 한국 정부에 똑같이 요구하고 있다. 조 전 수석은 “싸울 때는 싸워야 한다. 그래야 협상의 길도 열리고, 유리한 협상도 이끌어낼 수 있다”면서 “국민적 분노를 무시·배제하는 ‘이성적 대응’은 자발적 무장해제일 뿐이다”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여건 야건, 진보건 보수건,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인지 확실히 하자”면서 “‘피’(彼)와 ‘아’(我)를 분명히 하자. 모든 힘을 모아 반격하자”고 주장했다. 조 전 수석은 이날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한국 배제 결정 이후 열린 긴급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앞으로 벌어질 모든 책임, 일본 정부에 있다”고 발언한 뉴스 동영상과 아베 정부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규탄 집회 모습을 페이스북에 나란히 게재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장정일이 돌아왔다 장정일식 詩語 들고

    장정일이 돌아왔다 장정일식 詩語 들고

    ‘냉무’(내용 없음)로 돌아왔다. 출판사는 ‘장정일이 돌아왔다’고 했고 누군가는 ‘시마(詩魔)가 돌아왔다’고 했다. 그러나 인터뷰 요청 메일을 보낸 기자에게 불과 몇 분 만에 돌아온 것은 ‘냉무’였다. 해설도, 추천사도 없는 시집을 덜렁 낸 시인. 32년 전, ‘무명’ 장정일의 시집에도 없던 그것들은 지금도 없고, 유명해지거나 말거나 장정일은 여전했다. 장정일(57)이 새 시집 ‘눈 속의 구조대’를 냈다. 그간 소설, 에세이, 희곡 등은 꾸준히 써 왔지만 시집은 꼬박 28년 만이다. 문학 교과서에도 나왔던 시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쓴, ‘희대의 문제작’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쓴 그 장정일이다. ●28년 만에 내놓은 시집… 바뀐 것은 현실 인식 32년 전, 현대 자본주의 문명을 비판한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쓴 시인은 여전히 문화적 기호에 민감하다. 예순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에는 방탄소년단이 등장하고, ‘쇼미더머니’와 ‘고등래퍼’가 나온다. 성역이 없기도 마찬가지다. ‘국위선양의 총체’ 방탄소년단 보고 ‘꺼지라’ 한다. 신에게도 마찬가지다. 하느님은 돌연, 성소수자 담론의 한복판으로 뛰어든다. ‘하느님 아버지, 하느님 아버지 하는데/논리적으로/하느님 어머니는 어디에 계신가?//하느님 아버지에게 부인이 없다면/논리적으로/우주는 하느님 똥구멍으로 나왔을 테지?//만약 하느님 혼자서 부인과 남편을 겸했다면/논리적으로/하느님은 쉬메일(Shemale) 아니신가?’(‘성소수자인 하느님’) 이 문제적 시에 대해 박혜진 문학평론가는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언어들에 대해 바로 반격하는, 정언에는 정언으로 대치해 누구나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장정일식 퀴어 언어”라고 말했다. 바뀐 것은 오로지 현실 인식 하나다. 이는 ‘햄버거에 대한 명상’의 바통을 이어 받은 시 ‘시일야방성대곡’을 보면 알 수 있다. ‘2018년 3월 30일/맥도날드 경희대학교점이 폐점했다’로 시작하는 시는 ‘온통 맥도날드인 세상에서/우리는 장소를 잃어버렸다’로 끝맺는다. 그 시절 신(新)문물 햄버거에 열광했던 우리는, 이제 사라진 맥도날드 앞에서 나라 잃은 백성처럼 목놓아 운다. 시 ‘눈 속의 구조대’에서 ‘현대빌라’를 찾는 구조대는 마을 사람들도 모르는 ‘신현대빌라’ 앞에서 난감해한다. 눈으로 덮여 길이 없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알 수 없는 기묘한 현대상이다. ‘눈 속의 구조대’는 ‘K2’, ‘불타는 집을 교대로 지킨다’ 같은 B안들 중에서 시인이 직접 고른 시집 제목이다. 그만큼 시인의 문제의식이 집약된 시라 할 것이다.●특유의 직설화법·노골적 표현… 장정일 “사회 비판 시집” ‘57년산 아웃사이더’ 시인에게서는 뜻밖에 얼핏 낙담이 보인다. 일련의 레시피를 읊던 ‘햄버거에 대한 명상’, 김춘수 ‘꽃’에 대한 패러디 ‘라디오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 같은 발랄함이 더는 보이지 않는다. 허희 문학평론가는 “웃음으로 치환되지 않는 강고한 현실이나 이 세계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 근본적으로 회의를 품고 있는 게 아닐까 한다”며 “예전에는 ‘아버지’라든가, ‘미국’ 같은 기표 등 뚜렷한 적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현대 그 자체가 시인의 적이 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시인은 ‘내가 없는 완벽한 세상/내가 없으면 더욱 아름다운 세계!’(‘내가 없는 세상’)라고 느낌표를 찍었다. 시인은 이번 시집을 80년대 스타일, 사회 비판 시집이라고 했다고 한다. ‘28년 만에 돌아온 한국 시단의 가장 날카로운 자리’라는 헤드카피를 붙인 편집자 서효인 시인은 “자기비판도 치열하고, 여전히 가장 날카로워서”라고 했다. 시 곳곳에 드러나는 시인 특유의 직설어법, 노골적 표현(가장 자주 등장하는 시어는 ‘항문’이다)은 누군가의 심기를 건드릴 수도 있다. 그러나 문학이 꼭 아름다워야 할 필요는 없고, 그래야 한다면 문학은 문학일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리얼 힙합’일지도.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계파적·이기적 행위 반드시 신상필벌” 황교안, 비박 등 반대 세력에 강력 경고

    “제 머릿속에는 친박·비박 존재 않는다” 내년 총선 공천때 불이익 의미 해석도 경고에도 김용태 “계파 벗어나야” 비판 ‘도로 친박(친박근혜)당’ 논란과 리더십 위기론에 직면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1일 취임 이후 가장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며 ‘반격’에 나섰다. 비판론이 대표의 위상에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위험 수위에 달했다고 보고 비박계 등 반대 세력에 경고를 날린 것으로 분석된다. 황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제 머릿속에는 친박·비박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사를 비롯한 어떤 의사 결정에도 계파를 기준으로 삼고 있지 않다”며 “대책 없이 지도부를 흔들고 당을 분열시키는 행위를 한다면 총선을 망치고 나라를 이 정권에 갖다 바치는 결과만 낳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결코 올바른 정치행위라 할 수 없다”며 “지금 이 순간에도 당과 나라를 걱정하면서 땀 흘려 일하는 당원 동지들을 생각한다면 그런 해당행위는 용납이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을 망치는 계파적 발상과 이기적 정치행위에 대해서 때가 되면 그 책임을 묻겠다. 반드시 신상하고 필벌하겠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황 대표의 이 같은 작심 발언이 내년 총선 공천 때 불이익을 주겠다는 의미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황 대표의 경고에도 비판론은 계속됐다. 비박계 김용태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서 “황 대표가 지난 당대표 경선에서 친박들로부터 얼마나 도움을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강을 건넜으면 타고 온 배를 버리고 볼일을 보러 가야 하지 않겠나”라며 “계파 갈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계파를 벗어나는 행동을 해야 하고 보수 통합으로 성큼성큼 뛰어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 ‘호우’ 노쇼에 ‘호구’ 된 6만 관중

    ‘호우’ 노쇼에 ‘호구’ 된 6만 관중

    대행사 ‘호날두 45분 출전’ 계약서 공개 위약금, 수익 4분의1 안돼… 먹튀 가능성분노한 팬, 집단 소송… 1000여명 참여송종국 “에스코트 키즈 2000만원 요구” 호날두, SNS에 “집에 와 좋다” 글 논란지난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팀K리그와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A 유벤투스의 친선경기에 결장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4)의 ‘노쇼’ 후폭풍이 거세다. 한국 축구팬들에 대한 무시 논란을 넘어 28일 팬이 주축이 된 집단소송과 대행사, 유벤투스, 프로축구연맹 간 상호 책임 공방으로 비화되는 양상이다. 주관 대행사인 더페스타는 지난 27일 유벤투스가 제출한 출전 명단과 ‘호날두 45분 출전’이 명시된 계약서상의 일부 표현을 공개했다. 전체 원문은 비밀유지조항을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다. 서울신문이 이날 계약서 내용을 확인한 바에 따르면 유벤투스가 내야 하는 위약금은 자신들이 가져가는 돈(약 40억원)의 4분의1도 채 되지 않아 손해를 감수하고 ‘먹튀’를 노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로빈 장 더페스타 대표는 “호날두가 후반 출전 명단에서 빠진 걸 알고 연맹 관계자와 함께 유벤투스에 적극 항의했지만 구단으로부터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벤투스 측에서 이번 주 초 이번 사태에 대해 자체회의를 가진 뒤 한국에 찾아오겠다고 밝혀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축구연맹은 더페스타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분노한 축구팬들은 ‘호날두 노쇼’에 집단소송 방식으로 ‘직접 반격’에 나섰다. 전날 법률사무소 명안이 착수한 소송인단 모집에는 28일까지 1000여명이 참여 의사를 표명했다. 이 법률사무소 공식 홈페이지는 접속량 폭주로 때때로 접속이 불가능했다. 김헌기 변호사는 “팬들은 호날두가 출전할 것으로 알고 표를 산 것이기 때문에 민사상 계약 완전불이행, 채무불이행 등으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추후 주최 측의 대응을 보며 적용 법리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날에는 친선경기 중 A보드를 통해 지상파로 생중계됐던 해외 스포츠 도박 사이트 광고와 관련해 더페스타를 처벌해 달라는 청원도 청와대 게시판에 올랐다.국가대표 출신 송종국은 전날 개인방송을 통해 더페스타 측이 선수들과 입장하는 에스코트 키즈에게 사례비를 요구했다고 주장해 논란에 불을 지폈다. 송종국은 “호날두(의 에스코트 키즈)에게 2000만원이 책정됐다. 동심을 깨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통상 축구 경기에서 에스코트 키즈나 볼 키즈에게 사전에 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없어 진위 논란이 커지고 있다.미국 포브스는 “이번 경기는 일부 유럽 구단이 아시아를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한다는 인식에 기름을 부었다”고 했고, 중국의 시나스포츠는 이날 “호날두가 인터밀란과의 중국 친선전에는 90분을 출전했지만 서울에서는 벤치에만 있었다”며 “유벤투스의 아시아 투어는 순전히 상업적인 용도였다”고 비판했다. 궂은 날씨에도 월드컵경기장을 가득 메운 6만 5000명의 관중과 TV로 시청했던 국민들이 ‘악의’의 피해자가 됐다. 호날두와 유벤투스는 그 어떤 해명과 사과도 남기지 않았다. 호날두는 귀국 후 인스타그램에 ‘집에 와 좋다’는 표현과 환한 표정의 영상을 올려 한국팬들의 분노를 더했다. 호날두의 ‘45분 출전’ 조항으로 2시간 만에 매진된 입장권 수익만 60여억원으로 추정된다. 국내 스포츠에서 역대 단일 경기 최고 수익을 거뒀지만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거센 비판과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파행이 지속되고 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인종차별 막말 트럼프, 이번엔 흑인 의원에 “잔인한 불량배”

    인종차별 막말 트럼프, 이번엔 흑인 의원에 “잔인한 불량배”

    前 흑인 관료 149명 트럼프 비판 기고문 오바마 “美위해 싸우는 그들 자랑스럽다”민주당의 초선 여성의원 4인방을 향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인종차별적 막말로 도마에 올랐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에는 민주당의 흑인(아프리카계) 중진인 엘리자 커밍스 미 하원 정부감독개혁위원장과 그의 지역구인 볼티모어를 비하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나 언사에 극도로 말을 아껴 온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까지 이례적으로 비판 대열에 가세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트위터에 글을 올려 “커밍스 위원장은 남부 국경 상태에 관해 국경경비대의 위대한 남녀 대원에게 고함치고 소리 지르는 ‘잔인한 불량배’였다”며 “실제로 그의 볼티모어 지역은 훨씬 더 나쁘고, 더 위험하다. 그의 지역은 미국에서 최악으로 여겨지고 있다. 역겹고 쥐와 설치류가 들끓는 난장판”이라고 비하 발언을 퍼부었다. 볼티모어는 커밍스 위원장의 지역구인 메릴랜드 7선거구에 해당하는 도시로 흑인 비중이 전체 인구의 52%로 높다. 트럼프 대통령의 ‘막말 트윗’은 지난주 하원 감독개혁위가 케빈 매컬리넌 국토안보부 장관대행을 청문회로 불러 멕시코 국경 이민자 수용시설의 열악한 상황을 지적한 데 따른 반격으로 해석된다. 미 정가에서는 이번 사태를 초선 여성의원과의 설전에 이은 트럼프발(發) 인종차별 논란 ‘2라운드’로 보고 있다. 인종차별 논란이 다시 불거지자 여야를 막론하고 비판이 이어졌다. 민주당 1인자이자 볼티모어가 고향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인종차별주의적 공격을 거부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공화당 소속인 래리 호건 메릴랜드 주지사의 대변인 마이클 리시는 이메일을 통해 “볼티모어는 진정한 우리 주의 심장부이다. 정치인끼리의 더 많은 공격은 우리를 그 어느 곳으로도 이끌지 못할 것”이라고 볼티모어와 주민을 옹호했다. 보다 못한 오바마 전 대통령도 결국 말문을 열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최근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아프리카계 전직 관료 149명의 공동 기고문을 소개하며 지지 의사를 밝혔다. 기고문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연이은 인종차별적 발언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겼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나는 늘 이 팀이 나의 행정부에서 이뤄 낸 일들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이뤄 낸 것보다 더 나은 미국을 위해 이들이 계속 싸우고 있다는 것이 더욱 자랑스럽다”고 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택배노조 “국민유해상품 이언주…반품 안 돼 분노스럽다”

    택배노조 “국민유해상품 이언주…반품 안 돼 분노스럽다”

    일본 의류브랜드 유니클로의 배송을 거부한 택배노동자들이 자신들을 비방한 이언주 무소속 의원에 반격 논평을 내놨다.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과 전국택배노동조합으로 구성된 택배노동자기본권쟁취투쟁본부는 25일 “국민유해상품 이언주 의원을 반품시킬 수 없는 것이 분노스러울 뿐”이라며 “국민이 아닌 일본을 대변하고 노동자를 혐오하는 이 의원은 당장 국회의원직을 그만둬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택배연대노조 페이스북에 게시된 논평에서 노동자들은 “이언주 의원의 발언을 듣고 흡사 친일부역을 강요받는 느낌이었다”며 “택배노동자의 반일 불매운동 동참은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양심에 따른 지극히 정당한 것”이라고 강조했다.노조는 “일하기 싫으면 그만두라는 말은 오히려 국민이 이언주 의원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며 “반일을 대변해야 할 국회의원 직무를 수행하기 싫으면 당장 그만두라”라고 지적했다. 앞서 이 의원은 지난 25일 페이스북에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동참한 택배·마트 노동자들이 “소비자의 선택권과 경제적 자유를 짓밟고 있다”며 “일하기 싫으면 그만두고 다른 사람이라도 일하게 둬라”고 비난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핵잼 사이언스] 식물에도 ‘기생식물’ 있다…숙주의 유전자를 훔쳐쓰다

    [핵잼 사이언스] 식물에도 ‘기생식물’ 있다…숙주의 유전자를 훔쳐쓰다

    기생(parasitism)은 한 생물이 다른 생물의 영양분을 빼앗으면서 함께 살아가는 관계를 의미한다. 기생이라고 하면 우리가 떠올리는 일반적인 이미지는 회충, 조충, 편충 등 사람 몸 속에 사는 징그러운 벌레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을 기생충이라고 부르며 반드시 박멸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하지만 기생 자체는 박멸의 대상도 아니고 벌레 같은 생물에만 국한된 방식도 아니다. 예를 들어 기생은 식물계에서도 흔한 생존 방식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기생 식물만 4000여 종에 달한다. 새삼(dodder)은 대표적인 덩굴성 기생식물로 아예 발아할 때부터 떡잎이나 뿌리를 만들지 않고 줄기를 길게 내서 숙주 식물을 찾는다. 일단 숙주를 찾으면 이 식물에 기생근을 뿌리 내려 여기서 양분을 빨아먹으며 살아간다. 꽃도 피우는 엄연한 식물이지만, 광합성 대신 숙주에 의존해 살아가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광합성을 하던 평범한 식물에서 어떻게 이런 독특한 식물이 진화했는지 연구해왔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과 버지니아 공대 연구팀은 새삼 속의 식물에서 100여 개의 숙주 유전자를 찾아내 이를 저널 '네이처 식물'(Nature Plants)에 발표했다. 연구팀에 의하면 새삼의 성공 비결은 숙주의 유전자를 빼앗는 능력에 있다. 사실 식물이라고 해서 얌전히 포식자나 기생 식물에 먹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식물이 움직이거나 물리적으로 반격하지는 못하지만, 대신 다양한 방법으로 식물을 먹는 동물과 다른 식물을 공격할 수 있다. 새삼은 숙주에서 빼앗은 유전자를 바탕으로 숙주 식물의 방어를 무력화할 방법을 개발한 것은 물론 여러 가지 다양한 용도로 이 유전자를 활용하고 있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새삼의 유전자 훔치기는 매우 놀라운 능력이다. 연구를 이끈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의 클로드 드팜필리스 교수는 박테리아처럼 단순한 생물의 경우 다른 박테리아의 유전자를 받아들이는 수평적 유전자 이동(Horizontal gene transfer)이 흔하지만, 새삼처럼 복잡한 식물에서는 드문 일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새삼은 몇 개가 아니라 적어도 108개의 유전자를 숙주 식물에서 가져왔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 중 18개는 모든 새삼종에서 발견된다. 따라서 새삼 속의 공통 조상이 훔친 18개의 유전자가 이 기생 식물의 성공에 중요한 비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기생 생물 전체에서 새삼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연구팀은 더 다양한 기생 식물이 사례를 연구해 이들이 어떻게 숙주의 유전자를 활용해서 효과적인 기생 식물이 되었는지 밝히기 위해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기생이 인간 사회에서 좋은 의미로 사용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역시 생명의 경이로운 진화 가운데 하나이다. 고든 정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
  • 당 요직 밀리고 내년 공천도 불안… 입지 좁아진 한국당 비박계

    당 요직 밀리고 내년 공천도 불안… 입지 좁아진 한국당 비박계

    비박계 “어디를 가도 ‘친박 세상’ 얘기뿐” 김세연 여연원장 교체 시도 사실에 주목 공천룰도 비박계에 불리하게 적용 우려 불만 많지만 마땅한 반격 카드 없어 고민 황 대표 “과거 이야기… 당에 계파 없어져”자유한국당에서 황교안 대표 체제 출범 이후 주요 당직을 친박(친박근혜)계가 싹쓸이하면서 비박(비박근혜)계의 설 자리가 갈수록 더 좁아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라면 내년 4월 총선에서 집중 물갈이 대상은 친박계가 아니라 비박계가 될 것이라는 자조 섞인 불만이 비박 의원들 사이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영남권 비박계 한 중진의원은 25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어디를 가도, 가는 곳마다 ‘친박 세상’이란 얘기들뿐”이라며 “결국 총선에서 물갈이 대상은 비박계가 될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다”고 했다. 수도권에서 내년 총선에 도전하는 한 전직 한국당 의원은 “황 대표가 언젠가는 친박계에 철퇴를 내리침으로써 당의 이미지를 쇄신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오히려 당이 더 친박 일변도로 가는 것 같아 의외”라며 “결국 원내든 원외든 친박만 살아남을 것 같다”고 했다. 최근 한국당 신정치특별위원회에서 내년 총선 때 정치 신인에게 최대 50%의 가산점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탈당했다가 복당한 비박계 의원들의 위기감은 높아진 상황이다. 수도권 비박계 초선 의원은 “공천룰이 비박계에만 불리하게 작용하는 ‘고무줄 룰’이 될 수도 있다”며 “공천 심사 과정에서 탈당 사실만 부각되면서 복당파가 전멸할 것이라는 걱정도 있다”고 했다. 비박계에서는 특히 공천 심사의 주요 기준이 되는 여론조사를 맡는 여의도연구원의 김세연(비박계) 원장을 최근 당 지도부가 교체하려 했던 사실을 비박계 물갈이의 조짐으로 주목하고 있다. 황 대표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우리 당에는 계파가 없어졌다. 과거 이야기를 미래를 향해 가는 당에 덧씌우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반박했지만, 비박계는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 눈치다. 문제는 비박계에 마땅한 반격 카드가 없다는 것이다. 황 대표의 임기는 내년 총선 이후까지로 어쨌든 칼자루는 황 대표가 쥐고 있다. 그렇다고 이미 탈당했다가 복당한 전력이 있는 비박계가 다시 탈당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황 대표에 대항해 비박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대안도 현재로서는 빈약해 보인다. 지난 대선 패배의 책임론을 짊어진 홍준표 전 대표에 대해서는 비박계 내에서도 호불호가 갈린다. 복당파의 중심이었던 김무성 의원도 지난해 말 원내대표 경선 과정에서 비박계 다수의 뜻과 다른 후보를 내세워 패배함으로써 신망을 잃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당장 내년 총선에서 부활하기 위해 지역구(서울 광진을) 표밭을 가느라 겨를이 없는 상황이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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