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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욱~ 하는 대한민국] (3) 불특정 다수 겨냥 ‘묻지마’ 범죄

    [욱~ 하는 대한민국] (3) 불특정 다수 겨냥 ‘묻지마’ 범죄

    #1 지난 1월 1일 오전 4시쯤, 경기 부천의 한 주택가 골목에서 라모(33·지적장애 3급)씨는 주점 문을 닫고 귀가하던 권모(50·여)씨 뒤를 조용히 밟았다. 라씨는 몰래 다가가 준비한 흉기를 휘둘렀다. 권씨는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경찰은 라씨를 살인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라씨는 “기분 나쁜 일이 있어 막걸리를 한 병 먹은 뒤 아무나 죽이겠다고 마음먹고 (흉기를 들고) 나왔다”고 말했다. #2 지난달 1일 오전 9시쯤, 경기 안양의 한 식당. 한모(67·무직)씨는 옆 테이블에서 밥을 먹던 A(55·여)씨를 흉기로 찌르고, 근처에 있던 B(61)씨를 깨물었다. A씨는 폐 아래 부분을 찔려 중태에 빠졌고, 경찰은 한씨를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했다. 조사 결과 한씨는 식당에서 처음 본 피해자들에게 “날 왜 미행하느냐”, “혹시 자식이 보낸 것이냐”는 등의 말을 하며 이유 없이 흉기를 휘둘렀다. 뚜렷한 동기 없이 불특정인을 겨냥한 ‘묻지마 범죄’(우발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원한을 품은 특정인이나 치정 관계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평소 누적된 불만과 적대감을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표출하는 것이다. 3일 경찰청에 따르면 살인·강도·강간·절도·폭행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 묻지마 범죄는 최근 5년간 연평균 21만 4000여건이 발생했다. 그중 불특정한 사람들에게 자행되는 ‘묻지마 살인’만 연평균 400여건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묻지마 범죄가 정신장애 또는 환각 상태에서 일어날 수도 있지만, 사회·경제적 이유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이들에게서도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배상훈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는 “직장·학교·가정의 인간관계 혹은 본인의 사회·경제적 지위에서 비롯된 스트레스를 원인이 되는 직접 대상이 아닌 제3자에게 분풀이하는 게 묻지마 범죄”라고 설명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급격한 사회 변화와 경제 양극화로 경쟁에서 낙오되고 계층·세대간 갈등으로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는 데서 비롯된 분노가 최근 묻지마 범죄의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대검찰청이 발간한 ‘묻지마 범죄 분석’ 자료에 따르면 대부분 경제 빈곤층, 소외계층, 정신질환자 가운데 범죄 전력이 있는 이들이 주로 우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배 교수는 “묻지마 범죄를 저소득층이나 소외계층이 저지르는 범죄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겉보기에는 남부러울 것 없는 중산층도 평소 부모와 연인, 직장 상사 등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아 우발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묻지마 범죄의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대부분이 사회적 약자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 교수는 “우발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은 범행을 저질렀을 때 본인에게 더 큰 피해가 올 것인지를 따져본 뒤 별다른 피해가 없을 만한 상대를 대상으로 삼는다”며 “묻지마 범죄가 불특정인을 대상으로 한다지만 주로 여성·노인·아이·노숙인 등이 피해자인 까닭”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해 3월 공익근무요원 이모(22)씨가 서울 서초구의 한 빌라 앞에서 길을 걷던 김모(당시 25·여)씨를 흉기로 찌르고 벽돌로 20여 차례 내려쳐 숨지게 한 일이 있었다. 알고 보니 이씨는 ‘어린아이·여자·노인’ 등을 상대로 범행을 저지르겠다’고 오래전부터 마음먹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사회안전망 확충과 함께 내면의 분노가 범죄로 이어지지 않도록 관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채규만 성신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미국은 국가 차원에서 분노조절 클리닉 등을 통해 묻지마 범죄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다”며 “우리도 직장이나 지역사회의 상담센터 등을 활용해 분노조절 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단어 철자 틀렸다 이유로 3살 조카 때려 사망

    단어 철자 틀렸다 이유로 3살 조카 때려 사망

    단어 철자가 틀렸다는 이유로 3살 된 조카를 때려 사망에 이르게 한 20대 여성이 법의 심판대 위에 섰다고 미국 뉴욕포스트 등 외신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크리스틴 데일이라는 이름의 21세 여성이 친언니의 아들 이선 알리(3)를 벨트로 수차례 때려 사망에 이르게 했다. 피고는 경찰 조사에서 조카가 자신이 직접 가르치는 공부에서 철자를 틀려 수차례 벨트로 폭행했음을 시인했다. 그녀가 밝힌 자백 중에는 벨트로 폭행한 것 외에도 방 한쪽 구석에서 양손으로 병을 들고 팔을 뻗도록 했다. 이를 넘어질 때까지 계속시켰고 소년은 엉덩이를 심하게 다쳤다. 피고의 학대는 그 다음 날도 계속됐다. 치명상은 이때 입은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은 피고와 사망한 조카, 그리고 친언니가 함께 사는 브루클린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했다. 검사 측은 사망한 소년의 몸에 수많은 버클 자국이 남겨져 있었다고 말했다. 부검 결과에서 소년은 몸통과 등, 엉덩이, 허벅지, 팔, 심지어 두피에까지 광범위하게 타박상을 입은 상태였다. 이에 대해 변호사는 “피고가 조카를 사랑하고 신경을 기울였다는 것에 의문은 없다”며 “여기 우리가 안고 있는 것은 과도한 훈육이 낳은 비극적 결과일 뿐”이라고 말했다. 사망한 소년의 부모는 이미 이혼했다. 친부는 몹시 분노한 상태이며 엄마 나타샤 알리(27)는 공황상태에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엄마는 일이 바쁘고 밤에는 학교에 가야 해서 아들의 양육권을 친동생 크리스틴으로 변경했었다. 크리스틴은 살인죄 등으로 체포됐기에 보석 청구의 권리는 박탈된 상태이다. 사진=방송 캡처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지역의 미래를 묻다] 이동진 서울 도봉구청장 “학교·지역 잇는 마을교사 양성”

    [지역의 미래를 묻다] 이동진 서울 도봉구청장 “학교·지역 잇는 마을교사 양성”

    “혁신교육지구 선정을 계기로 혁신학교에서 시도된 새로운 흐름들을 지역사회로 확대시키겠습니다.” 2일 집무실에서 만난 이동진 서울 도봉구청장은 최근 22개 서울시 자치구가 참여한 ‘서울형 혁신교육지구’에 도봉구가 선정된 것에 대해 “지역사회의 열악한 교육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전기를 마련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구는 공교육 강화를 목표로 교육정책특별보좌관 신설 및 서울시 최초 현직교사 채용, 주민의 35%가 넘는 12만 6000여명이 참여한 범구민 서명운동 등 지난해 7월부터 혁신교육지구 선정을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해 왔다. 그 결과 지난 1월 혁신교육지구에 선정, 내년까지 연간 20억원씩 총 40억원을 지원받게 됐다. 이 구청장은 “2012년 사회지표조사 결과 우리 구의 공교육 수준과 질에 대한 만족도가 23.6%로 매우 낮게 나왔다”면서 “주민들의 공교육 불신 해소를 위해 민·관·학이 합심해 이뤄낸 결과”라고 말했다. 구는 혁신교육지구 선정을 계기로 향후 민·관·학이 협력하는 다양한 사업을 구상 중이다. 앞으로 중학교 학급당 학생 수 25명 이하 감축사업, 일반고 직업·진로 교육지원사업, 학교·마을 연계 방과후사업 등을 전개할 계획이다. 혁신교육팀을 신설해 향후 혁신교육지구를 총괄하기 위한 혁신교육지원센터 건립도 구상 중이다. 이 구청장은 “학교와 마을을 이어주기 위한 마을교사를 500명 양성하겠다는 공약을 실천할 예정”이라면서 “이들이 혁신교육지구 사업과 연계된다면 더욱 좋은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박차를 가하는 창동 신경제 중심지 조성사업 추진 역시 도시재생을 위한 새로운 모델이 될 것으로 확신했다. 아시아 공연문화 허브 조성이란 목표 아래 1만 5000석 규모의 K팝 공연장을 건립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서울시가 지난 달부터 구체적인 건립 방안 모색을 위한 연구용역을 실시하고 있다. 그는 “이 사업이 상반기 국토교통부의 도시재생사업 대상 지역으로 선정되도록 해 공신력을 높여야 한다”면서 “우리나라에 K팝 공연장이 하나도 없는 현실을 감안하면 투자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창동역 주변의 환승주차장 부지는 일명 ‘박스파크’로 조성할 계획이다. 폐컨테이너 재활용을 통한 창업임대오피스와 각종 창업지원시설, 문화체험공간 등을 도입해 창동 신경제 중심지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을 유도할 계획이다. 이 구청장은 “우리 구는 서울의 외곽에 있는 대표적인 베드타운으로 상당히 낙후된 실정”이라면서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하기 위해 도시 활력을 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10 ~ 30대 사망 원인 1위 ‘자살’

    10 ~ 30대 사망 원인 1위 ‘자살’

    최근 10~30대 사망 원인 가운데 자살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40~50대에서도 자살 비중은 높게 나타났다. 2012년 3월 정부가 ‘자살예방법’을 시행한 지 2년이 됐지만 양극화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상당수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2일 서울신문이 입수한 ‘2014 생명보험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1~2013년 10대, 20대, 30대 사망 원인 1순위가 모두 자살이었다. 보험개발원이 2011~2013년 생명보험 계약자와 피보험자 가운데 사망으로 계약이 해지된 16만 9000여건의 사망 원인을 분석한 결과다. 10년 전인 2002년에는 사망 원인 1위가 모두 교통사고였다. 10년 사이 흐름이 크게 바뀐 것이다. 10대 사망 원인을 살펴보면 10~19세 사망 2226건 가운데 투신자살이 135건으로 1위, 질식으로 인한 자살이 101건으로 뒤를 이었다. 20~29세(6815건)에서도 질식에 의한 자살이 1위(711건), 투신 3위(228건), 가스 중독 8위(86건)로 나타났다. 30~39세(1만 9474건)에서도 역시 질식에 의한 자살이 1위(1326건), 투신 6위(319건), 가스 중독 9위(194건)를 차지했다. 성인병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40~50대에서는 간암이 각각 사망 원인 1순위로 나타났다. 하지만 40대 사망 원인 2위는 역시 자살이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망 원인이 나타나는 원인을 전 연령대에 걸쳐 사회적 스트레스가 그만큼 높아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양극화와 경쟁은 10년 전보다 훨씬 심해졌지만 경제적으로 내몰린 사람들을 받아줄 사회안전망이 탄탄하지 못해 사람들이 재기할 희망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는 “가난이나 우울증 등을 자살의 주요 원인으로 보는 것은 단순하고 위험한 판단”이라며 “양극화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지속적인 저성장 속에서 미래에 대한 안정감을 찾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 사회안전망의 부재 등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어 “젊은 세대들의 노인 부양이 힘겨워지면서 빈곤과 병으로 인한 노인 자살 문제가 최근 심각하게 떠오르고 있지만 제대로 된 예방책은 거의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젊은 층에서는 과도한 입시 경쟁으로 인한 정신적 압박, 왕따 문제, 자존감 형성 부족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정신적으로 어려워졌을 때 정신과나 상담소 방문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이 큰 것도 문제를 키운다”고 지적하며 “적절한 조치를 통해 스트레스 대응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보험업계에서도 자살 증가가 보험의 손해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자살 예방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은 2011년부터 자살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한강 교량에 ‘생명의 전화’를 설치해 상담과 신고를 유도하고 있다. 재단 관계자는 “도심에서는 투신이 많고, 농촌에서는 노인들의 음독 자살 기도가 많다는 분석에 따라 농약안전보관함 등을 정기적으로 실태 조사하고, 자살 충동을 막기 위한 특성화 프로그램 등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新 평판 사회] ‘학벌의 벽’ 뚫다 - 전문대 출신 성공한 ‘4060’

    [新 평판 사회] ‘학벌의 벽’ 뚫다 - 전문대 출신 성공한 ‘4060’

    ■김영진 디자인일어소시에이츠 대표 ”학벌 위주 사회 기죽지 않아, 120억 매출…가능성 무한대” 국내외 홍보 전시장에서 전시디자인을 하는 전문 대행사 ㈜디자인일어소시에이츠 김영진(42) 대표는 2005년 창업 이래 11년째 회사를 이끌고 있다. 5평(16.5㎡) 남짓한 공간에서 직원 3명으로 시작한 회사는 현재 직원 25명이 다니는 5층 2개동 규모의 회사로 성장했다. 삼성, LG 등 대기업을 비롯한 20여곳을 거래처로 뒀고, 매출액도 창업 첫해 10억원에서 지난해 120억원으로 성장했다. “지금도 전시 현장에 나가서 직원들과 함께 직접 전시용 부스도 꾸미고 청소도 합니다. 대표직을 맡고 있지만 누군가의 윗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김 대표가 꼽은 성공 비결이다. “학벌을 따지는 현실에 주눅이 들 필요는 없습니다. 스스로 가능성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해요.” 지금 잘나가는 그이지만 시작은 힘겨웠다. 인덕대학에서 실내건축디자인을 전공한 김 대표는 대학 졸업 후 직장을 네 차례 옮겼다. 1997년 들어간 첫 직장은 취업한 지 2년이 못 돼 부도가 났다. 두 번째 직장은 임금 체불로 두 달 만에 관뒀다. 세 번째 회사의 동료가 창업한 회사로 김 대표도 옮겼는데, 곧 부도로 문을 닫았다. “아이 분유값도 집사람에게 제대로 못 줬고, 카드 돌려 막기를 하다가 신용불량자 예비 통보를 받은 적도 있었어요. 일이 없던 기간이 얼마나 답답했는지 모릅니다.” 그의 설움을 더욱 깊게 한 건 전문대 출신이란 ‘꼬리표’였다. “세 번째 회사를 나올 때 돼서야 제가 정규직이 아닌 일용직이었다는 걸 알았어요. 회사에서 퇴직금을 줄 수 없다고 했죠. 전문대를 나와서 일용직으로 채용했다는 설명을 들었을 때는 씁쓸하더라고요.” 창업 2년차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2006년 한 대기업 통신회사에서 전시디자인 프레젠테이션을 하는데 한 관계자가 갑자기 ‘어느 대학 출신이냐’고 물었다. 김 대표는 “발표 내용의 신뢰도가 학벌 때문에 의심을 받아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았다. 이전 회사에서의 인연으로 창업하자마자 대우조선해양 등에서 거래 요청을 받았다. 그는 “창업 후에도 기존에 알고 있던 거래처에서 계속 연락이 왔다”며 “학벌에 신경 쓰지 않고 주어진 일을 빈틈 없이 하는 모습을 인정받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전문대 출신이라고 소극적일 필요는 없다. 꾸준히 자기 일을 하면 빛을 발할 수 있다”며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학벌, 스펙을 극복하고 한 분야의 최고가 될 수 있다”며 웃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강호양 디자인 회사 ‘홍당무’ 대표 ”한때 여공 생활…주경야독, 창업으로 내 자리 찾았어요” “대기업에서 뽑지 않는다고 좌절할 필요 없습니다. 내 자리는 스스로 만들어 가면 됩니다.” 지난해 매출 22억원을 올린 디자인회사 ㈜홍당무의 강호양(47·여) 대표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곳은 서울 왕십리의 장갑 공장. 넉넉지 못한 집안 형편 탓이다.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생계를 위해 타지로 떠나면서 친척 집에 맡겨졌다. 선택의 여지 없이 졸업과 동시에 공장에 취직했다. 강씨는 “사람답게 대우받지 못하는 처지와 반복되는 일상이 서글펐다”며 “그런 삶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직공들 사이에서 유독 서글픔과 더 나은 삶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고 했다. 주경야독을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 고단한 하루를 마치면 학원으로 달려갔다. 자정까지 주산, 부기, 타자를 배웠다. 1년 만에 공장을 그만두고 스키복을 수출하던 한독섬유에 들어갔지만 주어지는 일은 잔심부름뿐. 고심 끝에 강씨는 화실에 다니며 디자인 공부를 시작했다. 디자인 회사에 들어가 4년간 일했지만 강씨에게는 ‘고졸’ 딱지가 따라다녔다. 그는 “정말 열심히 했는데도 대졸자보다 못한 대우를 받았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이어 “인정하기 싫지만 능력보다 학벌이 중시되는 사회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고 덧붙였다. 결국 강씨는 26세 때 한양여대 산업디자인학과 93학번으로 늦깎이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강씨는 “2년제 대학이었지만 당시 상황에서 최선이었다”며 “학교 경험은 창업의 밑그림이 됐다”고 설명했다. 졸업을 앞두고 구직 활동을 하면서 또 한 번 냉정한 현실에 부딪혔다. 그는 “28살짜리 전문대 졸업생에게 손을 내미는 회사는 드물었지만 작은 회사에 들어가 일을 닥치는 대로 하다 보니 창업을 해도 못할 게 없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강씨가 1998년 설립한 ‘디오’란 디자인 업체는 8년 만에 3억원의 빚만 남기고 망했다. 하지만 주저앉지 않았다. 3년 뒤 ㈜홍당무로 오뚝이처럼 회생했다. 홍당무는 영어교육 콘텐츠 개발 업체인 ㈜이퓨처와 손잡고 초등 영어교재 ‘마이 퍼스트·넥스트 그래머’를 디자인했다. 이 책은 유럽, 북아프리카, 중동 등으로 수출됐다. 강씨는 또 애니메이션 제작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성공 비결을 묻자 강씨는 “‘특별함’은 지겨운 하루하루가 쌓여 만들어진다”며 “아무리 열심히 해도 대기업에서 날 절대 뽑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고, 날 받아 주는 곳에 가서 내 자리를 찾아 나갔다”고 말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이명희 국립소록도병원 간호과장 ”‘한센병 환자 위해 인생 바쳐…언젠가 阿 의료 봉사하고파” “언젠가 아프리카로 가서 의료 봉사의 꿈을 이루고 싶습니다.” 한센병이나 결핵 같은 극한의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를 보살피며 40여년을 보낸 이명희(60·여) 국립소록도병원 간호과장은 오는 6월 정년퇴임 이후 또 다른 꿈이 있다며 여전히 설레고 있었다. 이씨는 1977년 대전과학기술대학교의 전신인 대전간호전문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전남 고흥군에 딸린 섬 소록도로 떠났다. 모양이 어린 사슴과 비슷하다 해서 소록도라 불리는 섬은 한센병 환자를 위한 국립소록도병원이 있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지금도 ‘한센병력자’ 600여명이 소록도에 머물고 있다. 이씨는 “사회에서 소외되고 상대적 박탈감과 상실감을 안고 살아가는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간호사가 되고 싶어 소록도를 택했다”며 “소록도는 초심을 잊지 않도록 해 준 곳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새내기 간호사에게 소록도는 녹록지 않았을 터. 이씨는 “균이 말초신경에 침범해 손가락, 발가락이 문드러진 환자는 물론 안구가 적출되거나 코의 연골이 내려앉은 환자 3200명을 30여명의 간호사가 돌봐야 했다”며 “의료인이 되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감염에 대한 우려는 아예 접었다”고 회상했다. 부모의 극심한 반대로 2년 만에 소록도를 떠나야 했지만, 이씨는 2011년 다시 소록도로 돌아갔다. 당시 작은 아들이 고3 학생이었지만, 간호사로서의 초심을 잡아 줬던 곳이기에 다시 갔던 것이다. 소외된 환자들을 돌보고자 하는 이씨의 의지는 소록도를 떠나서도 계속됐다. 국립마산병원에서 오랫동안 결핵 환자들을 돌봤다. 이씨는 결핵 환자들을 위한 ‘치료 순응도 관리 프로그램’ 등 프로그램을 개발·운영하고 결핵 환자를 위한 후원회, 봉사단 활동도 지속했다. 또 사회복지사, 정신보건간호사, 노인건강지도사, 호스피스, 보험심사 전문가 과정을 수료하거나 자격증을 취득해 업무에 접목했다. 2011년 간호사의 최고 명예인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기장’을 받기도 했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기장은 나이팅게일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상으로, 1912년부터 국제적십자위원회가 2년마다 한 번씩 전 세계 간호업무 종사자 50여명에게 수여한다. 이씨는 “유명 대학 간호학과를 나왔는지, 않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내가 선택한 일을 더 잘하기 위해 공부하고 또 도전한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며 “후배들이 기존 평판을 좇기보다 부족한 부분에 대한 개발을 끊임없이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3·1절 인터뷰] 일본인 첫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 받아

    [3·1절 인터뷰] 일본인 첫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 받아

    ‘민중과 함께 살고, 민중을 위해 죽다.’ 후세 다쓰지 변호사의 묘비명은 그의 인생을 한마디로 보여준다. 후세 변호사는 제국주의의 광풍이 휘몰아친 20세기 초 일본에서 식민 치하의 조선인을 비롯한 약자들의 편에 서온 양심적 지식인이었다. 그는 1880년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의 농가에서 태어났다. 1902년 메이지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뒤 22세에 사법관 시보(검사)가 됐다. 그러나 생활고 때문에 자식과 동반자살을 시도했다 미수에 그친 어머니를 살인미수로 기소해야 하는 현실을 보며 회의를 느끼고 임관 1년도 안 돼 사임했다. 1904년 변호사로 개업한 그는 1906년 도쿄시 전철요금의 인상을 반대하는 시민대회가 발단이 된 소요사건의 변호를 맡은 것을 시작으로 쌀 소동사건(1918년), 가마이시 광산·아시오 동산·야하타 제철소 파업사건(1919년) 등 굵직한 노동 사건의 변호를 맡았다. 후세 변호사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의 희생자인 조선인들을 앞장서 변호하는 한편 인간적인 연대도 이어갔다. 한·일 강제합병 다음해인 1911년 ‘조선의 독립운동에 경의를 표함’이라는 글을 발표했고, 1923년 관동대지진의 여파로 발생한 조선인 학살사건을 강력하게 비판하며 조선의 한 언론에 이를 사죄하는 글을 보내기도 했다. 그는 암울한 제국주의하에서 온몸으로 항거한 지식인이기도 했다. 인권변호사, 사회운동가로서 신념을 굽히지 않으며 두 번의 변호사 자격 박탈과 두 번의 투옥을 경험했다. 1945년 패전 이후 변호사 자격을 회복한 뒤에는 재일 한국인과 관련된 변호를 도맡았고 1946년에는 해방된 한국을 위해 ‘조선건국 헌법초안’을 작성하기도 했다. 2001년부터 한국에서 그에 대한 서훈 추진이 이뤄져 2004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 수여가 결정됐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김연아·박태환 올해 청룡훈장 받는다

    김연아·박태환 올해 청룡훈장 받는다

    ‘피겨 여왕’ 김연아(왼쪽) 선수가 올해 체육훈장 청룡장(1등급)을 받는다. 최근 도핑 테스트에서 양성 반응이 나온 ‘마린 보이’ 박태환(오른쪽) 선수도 같은 훈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27일 “김연아 선수와 박태환 선수가 청룡장 자격 요건을 갖춰 오는 10월 15일 체육의 날에 훈장을 줄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 선수는 지난해 훈장을 받을 뻔했으나 받지 못했다. 관계부처 간 협의 등이 원활치 못해서였다. 당초 문체부는 지난해 청룡장의 경우 1000점 이상에서 1500점으로 높이는 등 서훈 기준 점수를 대폭 올리려 했다. 김 선수는 기존 기준으로는 1430점이었지만 새 기준에서는 2014 소치동계올림픽에서 딴 은메달까지 합쳐도 1440점에 그쳤다. 김 선수가 훈장을 못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판 여론이 들끓자 문체부는 체육 유공자 특례로 훈장을 주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내부 논의도 모아지지 않은 데다 훈장 업무를 총괄하는 행정자치부와 서훈 기준 개정 협의 등을 끝내지 못해 김 선수의 훈장은 불발됐다. 박 선수도 훈격 점수가 현재 3490점으로 청룡장 기준을 훌쩍 넘는다. 한민호 문체부 국제체육과장은 “도핑 테스트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서훈 자격이 사라지지는 않는다”면서 “2014 인천아시안게임 은메달 자격을 박탈당해도 (훈장받을) 점수가 남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론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세종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3·1절 인터뷰] “祖父는 日 쉰들러… 조선 청년을 동지로 생각하고 변론 앞장”

    [3·1절 인터뷰] “祖父는 日 쉰들러… 조선 청년을 동지로 생각하고 변론 앞장”

    1919년 3·1운동의 기폭제가 된 2·8 독립선언은 재일(在日) 조선인 유학생들이 제국의 심장인 도쿄 한복판에서 독립을 요구한 사건이다. 이 사건의 뒤에는 ‘일본의 쉰들러’라고 불리는 한 일본인 변호사의 조력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후세 다쓰지(1880~1953). 이 사건으로 기소된 9명의 조선인을 위해 변호에 나서는 등 식민지 시대 많은 조선인을 도운 이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후세 변호사는 2004년 일본인 최초로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기도 했다. 지난 25일 후세 변호사의 외손자인 오이시 스스무(80)를 만나 2·8 독립선언 사건 당시의 상황과 후세 변호사의 치열했던 삶에 대해 들었다. 1980~2008년 출판사 일본평론사의 사장·회장을 역임한 오이시는 2010년 한국에도 번역 출판된 ‘후세 다쓰지와 조선’을 비롯해 4권의 책을 펴내는 등 할아버지의 삶을 알리는 데 앞장서왔다. →후세 변호사가 2·8 독립선언 사건을 맡게 된 계기는. -할아버지는 항소심부터 관여했다. 기소된 한국인 유학생의 친구가 찾아와서 사건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한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중국과 조선에 대한 존경심이 있었다. 더군다나 유학생들의 행동은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해 맡게 된 것 같다. 2·8 독립선언은 나도 감동할 정도로 훌륭하다. 학생들은 어두운 역사에서 맨 처음 떨쳐 일어난 사람들이다. 할아버지는 2·8 독립선언에서 유학생들이 대한제국의 부활이 아닌 민주주의를 주창하는 것에 주목했다. 거기에 동조해 그들을 동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2·8 독립선언은 어떻게 일어나게 됐나. -그해 음력 정월은 2월 1일이었다. 8일의 독립선언은 새해 축하를 끝낸 조선인 유학생들이 체포를 각오하고 감행한 것이었다. 학생들은 특별고등경찰(일본 구 경찰 중 정치·사상 관계를 담당)의 주목 대상이었다. 촘촘한 감시망을 뚫고 그들은 그날 오전 한글, 영어, 일어로 쓰여진 독립선언문을 몰래 각국 대사관과 신문사, 학자 등에게 보냈다. 오후 2시 간다의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 모여 독립을 선언했다. 경찰에 의해 즉시 해산됐고 체포자가 나왔다. 독립선언문을 만들어 뿌린 것이 출판물의 인쇄·발행·배포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출판법 위반 혐의를 받았다. →후세 변호사가 사건을 맡았을 때의 상황은. -재판은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8일 체포돼 10일 기소, 15일 1심 판결, 3월 21일 항소심 판결, 6월 26일 상고심 판결이 나왔다. 채 5개월도 되지 않아 상고심까지 끝난 것이다. 당시 조선에서 반일 사건의 처리는 길게 끌수록 통치에 악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대개 즉결 처리했다. 기소된 9명의 한국인 유학생이 내란예비죄가 아니라 출판법으로 기소된 것도 그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항소심에 관여하기 전 1심을 담당한 두 명의 변호사는 ‘국헌 문란이기 때문에 유죄를 인정하지만 젊은이들이니 집행유예를 부탁한다’, ‘조선은 일본에 합병됐기 때문에 이들의 행위는 일본이라는 본가의 행랑방을 빼앗은 정도다. 그렇다고 일본의 국체가 붕괴되는 일은 없다’며 감형을 호소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대체 조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며 그들을 나무랐다. 할아버지는 당국의 온정을 바란 것이 아니라 2·8 독립선언을 한 청년들의 생각을 존중하며 조선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1919년 일본은 러시아 소비에트 정권에 붙잡힌 체코군을 구출한다는 명목으로 시베리아를 침공했다. 당시 할아버지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 논리를 역이용해 “체코의 독립을 도왔던 일본이 왜 조선의 독립은 돕지 않는가”라고 검사에게 질문하며 피고인석과 방청석을 열광케 했다고 한다. →조선인과 대만인 등 식민 치하의 국민들을 도우면서 후세 변호사는 두 번의 변호사 자격 박탈과 두 번의 투옥을 경험했다. 그 와중에도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은 이유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 아닐까. 할아버지는 기독교(그리스 정교) 세례도 받았지만 그전에 중국 묵자를 공부했다. 묵자의 사상은 한마디로 사랑이다. 이웃의 아픔은 곧 자신의 아픔이라는 생각이 강하다. 할아버지의 주변에서 가장 아파하는 사람이 우연히도 조선인이었던 것뿐이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일방적으로 조선인을 도운 것은 아니었다. 우유 배달을 하는 조선인이 당시에 매우 귀했던 우유를 공짜로 넣어주거나, 집마다 1명씩 차출되는 방공훈련을 할아버지 대신 해준 사람도 있다. 할아버지와 조선인 간에는 마음의 이어짐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2009년 다큐멘터리도 제작됐지만 아직 후세 변호사의 업적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느낌이다. -동의한다. 할아버지가 좌익이었던 것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이제 나도 여든 살이다. 나처럼 할아버지가 한 일을 후세에 전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일본의 전전, 전후에 대한 역사가 제대로 평가된다면 자연스럽게 할아버지가 한 일도 평가받지 않을까 기대할 뿐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았지만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아직도 식민 지배와 관련된 청산 작업이 지지부진하다. -어려운 문제다.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해 전체의 틀을 보지 않고 위안부나 강제연행 같은 개별 문제를 놓고 무엇이 사실인지 일일이 논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틀리기 쉽다. 더 큰 틀에서 제대로 평가하지 않으면 (식민지배와 관련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이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나. -일본의 식민 지배, 아니 그 이전에 청일전쟁이 끝난 뒤 명성황후 시해부터 시작된 역사에 대한 사죄나 배상이 전혀 없었다고 생각한다.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이 체결돼서 경제협력이나 무상지원이 실시됐지만 그런 정치적인 조치 말고 인간으로서의 진정한 사죄나 배상은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이것이 일본이 독일과 다른 점이라고 본다. 그게 제대로 되지 않으면 한국인은 용서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 사진 가마쿠라(가나가와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여성 혐오와 양성평등기본법/김주혁 정책뉴스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여성 혐오와 양성평등기본법/김주혁 정책뉴스부 선임기자

    지난달 초 터키에서 실종된 김모(18)군이 회교 원리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에 자진 가담한 것으로 확인돼 충격을 더하고 있다. 김군은 실종 전 ‘페미니스트를 증오한다. 그래서 IS가 좋다’는 글을 트위터에 남겨 페미니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중학교를 자퇴한 은둔형 외톨이의 ‘이유 없는 반항’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여성 혐오 문제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원인과 대책을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온라인상 여성 혐오 표현 모니터링 보고서’를 지난해 말 펴내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한 바 있다. 경제학자 우석훈씨는 지난해 펴낸 ‘솔로 계급의 경제학’에서 솔로 증가의 원인으로 신빈곤 현상과 함께 ‘젠더 비대칭성’ 등을 꼽았다. 한국 남성의 낮은 가사분담률 및 청년 솔로들에게서 연령층이 낮을수록 더 강하게 나타나는 여성 혐오 등이 여성의 욕구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구상에서 여성 차별이 과거 인종 차별 이상으로 심각했고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으며, 페미니즘이 여성 참정권 확보 등 많은 긍정적 기여를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고위직 승진이나 결혼생활의 차별 등과 당장은 무관한 청년들에게는 역차별이 체감될 수도 있겠다. 연령이 적을수록 성 차별은 감소하는데도 여성만 지원받는 것 같은 데 대한 거부감, 성적과 취업 등에서 여성들이 약진하는 가운데 맞는 취업난 등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 여성들이 불리한 것만 말하고 유리한 것은 방치하는 것 같은 데 대한 불만 등이 여성 혐오의 배경이 아닌가 여겨진다. 청소년의 경우 온라인게임 중독을 방지하기 위한 셧다운제를 주관하는 여성가족부에 대한 반발이 엉뚱하게 청소년정책과 무관한 여성 혐오로 투사된 것으로도 보인다. ‘자녀가 성공하려면 어머니의 정보력, 할아버지의 재력, 아버지의 무관심이 필요하다’는 식의 남성비하 유머 확산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정당한 불만은 표출돼야 하지만 무조건적인 외국인 혐오나 여성 혐오, 남성 비하는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오는 7월부터 여가부의 모법인 여성발전기본법이 양성평등기본법으로 전면 개정 시행된다. 여성 정책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남성과 여성의 조화로운 발전을 위해 일하는 명실상부한 ‘양성 모두의 부처’로 거듭나겠다”고 김희정 여가부 장관이 올 초 신년사를 통해 밝힌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여가부는 궁극적으로 부처 명칭을 영어 명칭(Ministry of gender equality & Family)처럼 양성평등가족부로 바꾸기에 앞서 7월 법 시행에 맞춰 우선 여성정책국을 양성평등정책국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양성평등기본법 시행을 계기로 이제는 이성(異性)에 대한 마녀사냥식 혐오와 비하는 내려놓자. 집안일과 양육 공평 분담, 데이트 및 결혼 비용 공평 분담 등 남녀 불문하고 이성의 합리적인 목소리에는 귀와 마음을 열자. 이성이 없는 세상은 종족 단절은 차치하더라도 상상만으로도 삭막하고 끔찍하지 않은가. 어차피 서로 필요한 존재라면 미워하고 헐뜯기보다 존중하고 배려하고 사랑하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happyhome@seoul.co.kr
  •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貧&富] “빈부 기사 읽기 싫을 만큼 분노 치밀었다” “두 개의 나라로 느껴질 만큼 격차 커졌다”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貧&富] “빈부 기사 읽기 싫을 만큼 분노 치밀었다” “두 개의 나라로 느껴질 만큼 격차 커졌다”

    서울신문은 지난 16일 서울신문사 회의실에서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와 관련해 독자권익위원들이 독자 입장에서 취재팀에 궁금증을 질의하는 청문회 형식의 자리를 마련했다. 서울신문 독자권익위원으로 활동 중인 이청수 연세대 행정대학원 겸임교수, 권성자 ‘책 만들며 크는 학교’ 대표, 박준하 전 이화여대 학보사 편집장이 질의에 나섰고 서울신문 특별기획팀의 김상연 팀장, 이두걸·유대근·송수연 기자가 답변했다. 권 위원 이번에 빈부 리포트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김 팀장 지난해 화제가 된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읽으면서 과연 우리나라의 빈부 격차 실상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책에 나오는 수치가 아니라 실생활을 취재해 독자들에게 보여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부자나 빈자의 생활상을 따로따로 단편적으로 다룬 기사는 있었지만 두 계층을 정식으로 낱낱이 비교해 심도 있게 드러낸 기사는 없었다. 이 위원 부유층과 빈곤층의 삶을 대조해 생중계하듯 보여 줬는데 기자들의 목소리와 전문가 해석이 매회 곁들여지지 않아 아쉬웠다. 김 팀장 기존 기획기사들과 차별화하고 싶었다. 처음부터 기자가 원인을 분석하고 해법을 몰아가는 관습적 방식을 버리고 겸손하게 팩트를 있는 그대로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판단 기회를 주자는 의도였다. 그래서 분석과 해법 소개를 시리즈 말미로 미룬 것이다. 박 위원 기사에 등장한 빈곤층과 부유층의 사례가 너무 극단적인 것은 아닌가. 김 팀장 극과 극을 알아야 우리가 처한 위치를 정확히 분석하고 해법을 도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유 기자 내가 직접 구걸에 나섰던 ‘걸인 체험’ 기사에 달린 댓글 중 가장 공감을 많이 산 내용이 무엇이었을까. ‘하루 종일 구걸로 1만 3110원 벌었다는데 폐지 줍는 분들보다 많이 버셨네요’라는 댓글이었다. 우리는 극단적 상황을 보여 주려고 했는데 현실은 더 극단적이고 절박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권 위원 독자들로부터 직접적으로 받은 반응이 많았나. 송 기자 많았다. 돈이 없어 화장품을 안 쓰는 주부의 사연을 보도했는데, 그 기사를 보고 한 독자가 회사로 전화를 걸어와 “화장품을 보내 주고 싶다”고 해 빈곤층 주부에게 전달해 줬다. 한국외국어대 영어교육과 교수와 학생들이 기사에 소개된 빈곤층 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권 위원 빈부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가치중립적으로 전달하고 싶었다면서 매회 보도 직후 온정의 손길이 쏟아지고 있다는 식의 후속 기사는 왜 썼나. 취재진의 의도가 드러난 것 아닌가. 김 팀장 독자들이 표시하는 온정적 반응도 뉴스라고 판단해 보도했다. 그런 후속 보도가 의도를 드러내지 않겠다고 한 취지에 어긋난다는 생각은 미처 못했다. 박 위원 나는 오히려 시리즈 중간에 독자의 의견을 전달하는 후속 기사를 보면서 기자들이 하고 싶은 얘기가 뭔지 가닥이 잡혀 좋았다. 후속 보도 중 지방의 한 고등학교 교사 인터뷰가 있었는데 “최저임금을 올리면 사교육에 목매는 구조가 바뀔 것”이라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이 위원 기사에서는 상위 1% 부유층의 기준을 금융자산 10억원을 포함해 개인 순자산 40억원 이상, 연소득 1억 5000만원 이상으로 잡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땅값이 비싸 순자산 40억원을 가진 ‘부동산 거지’들도 많다. 이 기자 우리가 자의적으로 만든 기준은 아니다. 누구를 부유층으로 볼 것이냐를 판단할 때 순자산과 금융자산이 핵심이다. 기준을 10억원으로 정한 건 미국 등 전 세계적으로 부유층 여부를 가릴 때 금융자산 100만 달러(약 10억원)를 기준으로 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금융자산 10억원을 가졌다면 실제로는 상위 0.6~0.7% 안에 들겠지만 부유층 기준을 최대한 엄격히 하자는 취지로 10억원을 상위 1% 기준으로 삼았다. 이번에 상류층 취재를 하면서 느낀 건 우리 주변에 이 기준을 충족하는 상류층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이다. 박 위원 부유층은 상위 1%로 잡았는데 절대빈곤층은 왜 하위 9.1%를 대상으로 삼았나. 유 기자 원래는 상위 1%와 하위 1%를 비교하려고 했다. 하지만 하위 1%를 뽑는 건 통계적으로 어려웠다. 한 가구의 소득 수준은 세금을 낸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데 벌이가 거의 없는 극빈층은 세금은 내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최저생계비(4인 가족 월소득 166만 8329원) 이하의 절대빈곤층을 대상으로 하자는 데 의견이 모였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뿐 아니라 ‘송파 세 모녀’처럼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 등으로 수급권이 없는 매우 가난한 사람들까지 절대빈곤층으로 본 것이다. 이 기자 빈곤층을 직접 만나 보니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보다 차상위계층이 더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50만원이라도 수급비를 받으면 어떻게든 먹고사는데 차상위계층은 소득이 한 달에 10만원 이하인 경우도 있고 어떤 사람은 노령연금이 안 나와서 한 달 동안 라면만 먹었다고 하더라. 그 정도로 차상위계층의 빈곤이 심각했다. 그래서 기초생활수급권자뿐 아니라 그분들도 절대빈곤층에 넣어야 합리적일 것으로 봤다. 권 위원 내 주위의 50대들이 빈부 리포트 기사를 보면서 “분노라는 감정이 먼저 들었다”고 얘기하더라. 일찌감치 강남에 집을 샀으면 기사에 나오는 부유층과 비슷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심정에 “분노가 솟구쳐 기사를 읽다가 보기 싫어지더라”는 반응이 있었다. 현장을 취재한 기자들은 상위 1%에 대해 어떤 감정이 들었나. 송 기자 김호기 연세대 교수도 지금 우리 사회를 ‘분노사회’라고 규정했다. 취재를 하면서 생활 하나하나를 뜯어 보니 ‘대한민국에 두 개의 나라가 존재한다’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예상보다 빈부 격차가 심했다. 개인적으로는 분노보다는 박탈감을 느꼈다. 서울의 한 특급호텔에서 부자 체험을 하면서 ‘여기에 오는 사람들은 정말 나와 다른 세계에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내 몸짓이 그 공간에서 이질적으로 보일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유 기자 이 기획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화려한 부유층 생활상만 관심을 끌고 빈곤층 기사는 안 읽히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했다. 그런데 막상 보도가 시작되자 부유층 기사보다 빈곤층 기사가 훨씬 많이 읽혔다. 현장에서 만난 극빈층을 이해하는 키워드는 ‘분노’보다는 ‘무력감’이었다. 삶이 워낙 고달파서 ‘왜 나는 아등바등 사는데 가난할까. 구조적 원인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자체를 안 하는 이들이 많았다. 김 팀장 부유층 기사에 달린 댓글 중에는 ‘왜 이런 기사를 써서 화나게 하느냐’는 의견이 많았고 빈곤층 기사에는 ‘우울하게 왜 이런 기사를 쓰느냐’는 댓글이 많았다.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는 어쩌면 빈부 격차의 현실을 애써 외면하려는 태도일 수도 있다. 알지 못하면 해결할 수 없다. 프랑스왕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배고픔을 호소하는 백성들에게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고 말했다는 것도 빈곤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 아닐까. 이 기자 빈부 리포트 이후 한국 언론이 추가로 짚어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이 위원 빈부 격차에 대한 사회적 분노를 완화할 수 있도록 대안을 찾아야 할 것 같다. 권 위원 상·하위 1% 간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찾아보는 게 중요할 듯하다. 우리 국민 중 다수가 중산층이라고 본다면 이 중산층이 양 극단의 1% 사이에서 소통의 이음새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부에만 맡기지 말고 국민끼리 소통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봤으면 한다. 박 위원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을 부각시켜 정책적 대안이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해 줬으면 좋겠다. 정리 원유빈 인턴기자 jwyb12@seoul.co.kr
  • “부정선거 조합에는 자금지원 즉각 중단”

    농협중앙회는 다음달 실시되는 전국 조합장 동시 선거와 관련해 “부정선거 발생 조합에 대해서는 자금 지원을 즉각 중단하겠다”고 13일 밝혔다. 농협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부정선거 적발 때 신규자금 지원을 중단하고 이미 지원한 자금도 회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심의회 등의 절차를 거친 뒤 자금 지원을 중단했지만 이번 선거부터는 서면 심의를 통해 2~3일 내에 지원을 끊기로 했다. 부정행위 조합에 대해 표창·시상이나 예산 지원을 제한하고 점포 설치, 농협 상표 사용도 막을 계획이다. 후보자로부터 금품을 받은 조합원은 조합원 자격을 의무적으로 박탈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농협 관계자는 “8개 조합에 대해 이미 자금지원 제한에 들어갔으며 1~2개 조합은 심의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세종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데스크 시각] 100% 대통령/박상숙 국제부 차장

    [데스크 시각] 100% 대통령/박상숙 국제부 차장

    난데없이 ‘말벼락’을 맞았다. 장사 잘되냐는 의례적 인사에 친지는 갑자기 울화통을 터뜨렸다. 대학가에서 자그만 식당을 한 지 10년째. 숱한 가게들이 들락날락하는 와중에도 꿋꿋이 자리를 지켜 터줏대감 소리도 들었는데 요즘 사정은 험악하기 그지없다. “손님이 없으니 인터넷으로 하루를 때우고 아예 오후 7시면 불을 끈다”며 본의 아니게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린다고 자조한다. 모임에서 만난 중견 은행원은 연봉이 1억원이라고 했다. 자랑삼아 떠든 게 아니다. 그는 지난해 140만원을 환급받았는데 올해는 440만원을 ‘토해야’ 한다며 핏대를 세웠다. 그동안 연말정산 환급액에 설 보너스까지 보태 명절 부모님과 신학기 아이들까지 챙겼는데 자식 구실, 가장 노릇하기 어려워졌다고 한숨이다. 그는 담뱃값 인상에도 끊지 못하고 늘 두 갑씩 사는 애연가다. 예전에 5000원이면 됐는데 지금은 1만원을 내고 달랑 1000원 한 장 손에 쥐니 짜증이 난다. ‘억대 연봉자도 이렇게 박탈감이 심한데 나보다 못한 사람은 어떻겠냐’고 한참 육두문자를 날렸다. 늘 ‘대통령님’ 하던 그의 아내는 요즘 이름 석 자만 달랑 부른단다. 2008년 금융위기도 겪었는데 뭔 호들갑이냐 할 수도 있지만 체감 수위는 사뭇 다르다. 당시엔 전 세계가 똑같이 위기였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니까 견딜 수 있었다. 참여정부 때도 어렵기는 매일반이라지만 그땐 아파트를 가진 계층은 집값 뛰는 재미라도 느꼈다. 연말정산을 비꼰 주말 오락 프로그램에서 ‘열심히 일하는데 왜 빚만 늘지’ 하는 대사에 네티즌들의 공감 댓글이 폭주했다. 가계부채와 고통지수가 올라가는, 즉 스트레스가 가득한 환경에서 사람은 오래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어린이집 폭행 사건이나 가장의 가족 살해 등 끔찍한 뉴스가 연일 그칠 줄 모른다. 무엇보다 국민이 힘든 이유는 현재의 어려움이 국제 경제 등 외부 여건보다는 잘못된 정책, 내부의 실패에서 기인했다는 점이다. 여당 수뇌부도 사실상의 증세로 인정한 담뱃값 인상이나 연말정산 파동을 정부는 한사코 부정한다.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비판에도 끄떡없다. 급기야 9일 박근혜 대통령은 “세수가 부족하다고 세금 더 걷는 것이 할 소린가”라며 국민감정과 동떨어진 발언을 했다. 일본의 한 유명 야구감독은 ‘아마추어는 화목해야만 이기고 프로는 이기고 나서야만 화목해진다’고 말했다. 국정은 치열하게 논쟁하고 싸워야만 성과를 내는 프로의 무대다. 대통령의 철학과 정책이 현실과 민심을 거스른다면 진통과 갈등을 각오하고라도 과감히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법인세 인상 등 증세 논쟁은 시작부터 불씨가 꺼지는 분위기다. 100% 국민 대통합을 약속한 대통령이 왜 대다수 서민과 중산층의 아우성에 둔감한지 모를 일이다. 이 와중에 태평양 건너에서 날아든 부자증세 소식은 우리를 착잡하게 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상위 1%에 해당하는 기업과 개인에 집중 과세해 향후 10년간 2조 달러의 추가 세수를 확보한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99%의 국민을 살리는 데 올인하겠다는 것이다. 여소야대 의회로 오바마의 계획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도 하지만,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향해 전력투구하는 지도자가 부럽기만 하다. alex@seoul.co.kr
  • [단독] 대리인 없이 입양 취소 청구 미성년 자녀 권리에 힘 실어

    [단독] 대리인 없이 입양 취소 청구 미성년 자녀 권리에 힘 실어

    지난해부터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A(16)양은 부모 얘기만 나오면 몸서리를 친다. A양이 10살 되던 때 집을 나간 아버지는 연락조차 없고, 엄마는 매일 술에 취해 A양을 두드려 패기 일쑤였다. 보다 못한 할머니가 데려가 가까스로 폭행 위기에서는 벗어났지만 언제 또 엄마가 들이닥쳐 몽둥이를 들지 걱정돼 잠을 이루지 못한다. 8일 대법원이 발표한 가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A양은 직접 부모의 친권을 박탈하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미성년 자녀의 권리 강화’로 압축된다. 현행 가사소송법에서는 미성년자 또는 지적 장애인처럼 행위 능력이 제한된 경우 민사소송을 수행할 수 있는 절차 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 입양 자녀의 경우에도 특별대리인을 선임해야 파양 청구를 할 수 있던 것이 자신의 의사만으로 파양 청구를 할 수 있게 된다. 항소 및 항고도 할 수 있다. 다만 신중한 소송을 위해 상소심 진행은 대리인과 함께 해야 한다. 법원이 이혼소송 등에서 친권자와 양육자를 지정할 때 13세 미만 자녀의 의견은 듣지 않아도 됐던 현행법도 나이와 관계없이 자녀의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하는 것으로 개선된다. 이혼 후 부모 한쪽이 자녀들과 함께 주거지를 옮겼다면 옮긴 곳의 관할 법원에서 이혼소송을 진행할 수 있게 된다. 종전에는 기존에 거주하던 지역 법원에서만 소송을 진행할 수 있었다. 양육비 강제 집행도 가능해진다. 또 양육비를 3개월 이상 내지 않아야 일정 기간 구금하던 것을 30일로 단축시켜 양육자의 경제적 부담을 덜었다. 법원이 면접교섭관을 선임해 면접교섭 과정에 직접 개입시키는 제도도 새로 도입돼 이혼 후 자녀의 원만한 환경 적응을 돕는다. 미성년자의 친권박탈 청구 남용 우려에 대해 법원 관계자는 “소송 전 심리 과정에 보조인이 참여해 청구인의 판단에 도움을 줘 남용을 막게 될 것”이라며 “개정안은 길고 복잡했던 미성년자의 소송 과정에 대한 법원의 개입 시점을 앞당긴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소송 결과로 미성년자 부모의 친권이 박탈되면 현행 법률에 따라 가까운 친족에게 친권이 가고 마땅한 친족이 없을 때는 후견제도에 따른 후견인이 정해진다. 유미숙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미성년자의 권리를 확대했다는 점은 높이 산다”면서도 “국가가 부담해야 할 친권자 없는 미성년자에 대한 복지체계가 제대로 마련됐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단독] 학대피해 자녀, 친권박탈 소송 청구 가능

    부모의 학대나 폭력에 시달리는 미성년 자녀가 직접 법원에 부모의 친권을 박탈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이혼한 부부 중 한쪽이 법원이 정한 양육비 지급 시한을 30일 이상 어기면 감치 명령이 내려진다. 대법원 가사소송법 개정위원회는 지난 6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에서 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가사소송법 개정안’을 의결했다고 8일 밝혔다. 1991년 1월 가사소송법 제정 이후 이 같은 전면적 개정 추진은 처음이다. 개정안은 가족 간 분쟁에서 통상적으로 약자인 미성년 자녀의 복리를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기존에 법정대리인을 통해서만 소송 제기가 가능했던 미성년 자녀에게 가족관계 가사소송을 낼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된다. 이에 따라 자녀가 법원에 직접 부모의 친권상실이나 친권정지 청구를 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입양된 미성년 자녀의 경우 직접 파양을 청구할 수 있다. 양육비 지급 시한을 3개월 이상 어길 경우 감치할 수 있는 현행 법과 달리 30일 이상 어기면 감치 명령을 내리게 하는 등 양육비를 주지 않는 이혼 부모에 대한 처벌도 한층 강화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IS는 소녀조차도 성노예로…탈출 성공 17세 소녀, 국제사회에 호소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로부터 탈출한 한 17세 소녀가 국제 사회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6일(현지시간) 미국 바이스 뉴스에 따르면, IS는 지난해 여름 이라크 북부에서 다수의 야지디족을 납치하고 포로로 삼은 9세부터 17세까지의 소녀들을 성노예로 팔아넘겼다. 다행히 탈출에 성공한 17세 소녀 아디라(가명)는 자신이 IS에서 벗어나게 된 경위를 이야기하고 납치된 소녀들에 대한 관심과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아디라는 IS의 포로가 된 뒤 다른 소녀들과 함께 6일간 감금돼 있었고 그들은 식사는커녕 물 한 모금도 주지 않았었다고 떠올렸다. 아디라의 증언에 따르면 일부 소녀들이 공황 상태에 빠져 뒤짚어 쓰고 있던 베일을 사용해 자살을 시도하거나 다른 소녀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요청했지만 성공한 이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녀 역시 매우 약해져 있어 자살할 힘조차 없었다고 한다. 어느 날, 아디라는 한 13세 소녀와 함께 노예 시장으로 끌려갔다. 그때 그녀는 건물 지붕으로 올라가 다른 건물로 도망치려 했지만 간수에게 발견돼 결국 자신은 어느 IS 전사의 집에 노예로 팔렸다고 밝혔다. 다행히 전사 아내는 특별히 자신을 학대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녀는 어느 날 식사할 때 손을 씻고 오겠다고 말하고 그 집을 빠져나왔다고 설명했다. 이후 자신을 숨겨주는 사람을 만나게 됐고 그 집에서 삼촌에게 연락했고 마침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아디라는 IS에 납치된 여성들은 기혼 여부에 상관없이, 또한 9~10세의 어린 소녀라도 IS 요원들에게 계속해서 유린당한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더 많은 사람이 목소리를 높여 국제 사회의 힘을 통해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들이 풀려나길 바라고 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의료 과실, 면책 대상 안 돼… 내년 리우올림픽 힘들 듯

    박태환(26)이 고의성 없이 금지약물을 복용했다는 검찰의 판단을 받았지만 국제수영연맹(FINA)의 자격정지 징계를 피하기 힘들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내년 8월 열리는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출전에도 먹구름이 낄 것으로 전망된다. 박태환은 오는 27일 스위스 로잔에서 열리는 FINA 청문회에 출석해 도핑테스트에 적발된 사유를 소명한다. 박태환 측은 최고 수사기관인 검찰이 의료사고로 판단한 사실을 적극 알리고 선처를 호소할 것으로 보인다. 박태환이 지난달 외부에 알려질 우려가 있음에도 금지약물을 주사한 병원장을 고소한 것도 청문회에서 활용할 공신력 있는 기관의 수사 결과가 필요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박태환이 징계를 완전히 피하는 것은 사실상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FINA의 도핑 규제 규정 10조를 보면 도핑 적발 선수에게는 2~4년의 자격정지를 명시하고 있다. 선수의 책임이나 과실이 없을 경우 징계를 감경하거나 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으나, 의료진의 과실은 면책 대상이 아니다. FINA가 징계를 결정하면 자격정지는 박태환의 소변 샘플을 채취한 지난해 9월 3일부터 시작된다. 9월 19일부터 시작된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박태환이 수확한 은메달 1개와 동메달 5개도 모두 박탈될 수 있다. 단체전인 계영 종목의 경우 동료들의 메달도 함께 박탈된다. 무엇보다 박태환이 1개월이라도 자격정지 징계를 받으면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출전이 좌절될 가능성이 높다.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선발 규정 제5조(결격사유) 6항에 ‘체육회 및 경기단체에서 금지약물 복용, 약물사용 허용 또는 부추기는 행위로 징계처분을 받고 징계가 만료된 날로부터 3년이 경과하지 아니한 자는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日 역사상 최초 ‘파란눈의 게이샤’ 근황 공개

    日 역사상 최초 ‘파란눈의 게이샤’ 근황 공개

    일본에서 약 400년 만에 탄생한 ‘파란눈의 게이샤’가 최근 활동을 재개하면서 재조명을 받고 있다고 미국 CNN 등 해외 언론이 2일 보도했다. 주인공은 호주 멜버른 출신의 피오나 그레이어(51). 그녀는 15살 때 우연히 일본으로 여행을 간 뒤 일본문화에 매료됐고, 이후 일본 도쿄의 게이오대학과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역사상 최초로 ‘외국인 게이샤’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정식 게이샤 양성과정에 등록한 그녀는 10개월 간 훈련을 통해 게이샤로 활동할 수 있는 자격증을 따는데 성공했다. 이후 ‘사유키’라는 게이샤명(名)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현지의 요정과 정식 고용계약을 맺고 ‘파란 눈의 게이샤’로 활동을 시작했다. 꿈에 그리던 게이샤 생활을 시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위기가 찾아왔다. 2011년 게이샤 협회는 그녀가 전통을 거부하고 음악과 무용 수업에 빠졌으며, 개인 활동만 주장하고 윗사람의 말에 복종하지 않는 등의 불성실한 태도를 이유로 들어 그녀의 게이샤 자격을 박탈했다. 이후 피오나는 잠시 게이샤로서의 삶을 접었지만, 최근 들어 독립적으로 게이샤 활동을 다시 시작했으며, 중고 기모노 매매, 일본식 연회 및 여행 등을 주최하는 사업 등으로 반경을 넓혔다. 그녀는 자신의 ‘직업’에 매우 만족해하며 “게이샤의 음악과 춤 뿐만 아니라 기모노라는 옷 역시 예술에 속한다”며 “내 장기는 요코부에(대나무로 만든 플루트식 일본 악기)다. 게이샤는 반드시 자신만의 특기 한 가지를 가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서양인들은 게이샤를 성(性)적인 것과 연관해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본에서 게이샤는 무용과 음악에 능한 예술인으로 간주된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한편 짙은 화장과 새하얀 얼굴, 아름다운 기모노 등으로 대표되는 게이샤는 400년 전 일본 문화에 처음 등장했다. 1920년대에는 게이샤가 8만 명에 달하는 등 호황기를 누렸지만 현재는 2000명이 명맥을 잇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공무원연금 정부 논란] 공무원노조 “여당안과 달라진 것도 없고 더 좋아진 것도 없다”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이 지난 5일 국회에서 돌출적으로 내놓은 공무원연금 개편안은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가 밝혔듯이 절충안으로 볼 측면도 있다. 연금수령 최소 가입기간을 20년에서 10년으로 줄이고 연금지급률을 일부 완화하는 것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정작 공무원노조에서는 “실효성이 없다”며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다.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공동투쟁본부(공투본)는 6일 공식성명에서 “소모적인 논란과 신뢰를 깨뜨린 인사혁신처장의 즉각적인 교체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김성광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 사무처장은 전화인터뷰에서 “새누리당이 내놓은 방안과 특별히 달라진 것도 없고 더 좋아진 것도 없다”고 밝혔다. 그는 “연금지급률은 1.25%나 1.5%나 별다른 차이가 없다”면서 “최소 가입기간을 20년에서 10년으로 줄인다는 것도 국민연금과 연계시키는 틀 속에서 보면 별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민간기업 취업자 중 일정 소득 이상이면 전액 정지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공무원이었다가 졸지에 공무원신분을 박탈당한 철도공사 약 3만명과 도로교통공단 약 3000명이 그동안 인정받던 특례에 위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처장은 고액연봉자를 염두에 뒀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일방적으로 발표하면 예기치 않은 피해자들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공투본은 이날 성명에서 “질의응답을 통해 ‘정부 기초안’이라고 불쑥 내놓는 것은 정부가 그동안 정부안이 없다고 당당하게 얘기해 온 것에 비춰 볼 때 꼼수로 볼 수밖에 없다”면서 “기본적인 원칙과 절차를 무시하는 인사혁신처장의 경거망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개탄스러울 뿐”이라고 비판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영진위 ‘입맛대로’? 갇혀버린 독립영화

    영진위 ‘입맛대로’? 갇혀버린 독립영화

    영화진흥위원회의 예술영화전용관 지원 방식 변경을 놓고 독립 영화계가 “예술영화 죽이기”라며 집단 반발에 나섰다. 영진위가 오는 4월부터 추진할 것으로 알려진 ‘한국 예술영화 좌석점유율 지원 사업’ 개편안을 보면 영진위가 1년간 상영이 지원되는 한국 예술영화 26편과 이 영화를 상영할 스크린 35개를 선정해 지원하도록 되어 있다. 영진위는 이 개편안에 대해 “예술영화로 분류되는 영화가 급격히 늘어나고 예술영화전용관의 과도한 교차 상영으로 전용관을 찾는 관객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예술영화전용관 관계자들은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정책”이라며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예술영화전용관은 스크린이 1~2개에 불과하고 프로그래머에 따라 자율적으로 상영작을 선정해 왔는데 영진위가 고른 예술영화를 특정한 날짜에 상영하는 것은 오히려 예술영화의 자율성을 훼손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예술영화 수입배급사 엣나인필름의 정상진 대표(예술영화전용관 모임)는 “극장들의 정체성을 무시하고 영진위의 별도 심의 기관에서 선정한 예술영화를 목~토요일 중 이틀간 상영하는 극장에만 지원을 하겠다는 것은 영진위의 입맛에 맞는 영화만 틀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멀티플렉스와 달리 예술영화전용관은 극장마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갖고 관객의 성향에 맞춘 다양한 영화를 상영하고 있는데 이를 교차 상영으로 보는 시각은 적절치 않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개봉한 지 한 달도 안 돼 멀티플렉스에서 보기 힘들어진 ‘더 테너 리리코 스펜토’나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등의 작품은 현재 일부 예술영화전용관에서 상영되고 있다. 독립 예술영화 감독이나 제작자들의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한 예술영화 제작자는 “독립 영화 특성상 사회고발적인 내용이나 정부를 비판하는 다큐멘터리가 많은데 상영작을 제한한다면 관객에게 보여줄 최소한의 기회조차 박탈당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크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아트나인, 씨네큐브, 인디스페이스, 스폰지하우스, 씨네코드 선재, 아트하우스 모모 등 전국 20여개 극장이 소속된 예술영화전용관모임은 이번 개편안에 대해 보이콧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 대표는 “좌석점유율 15%(100석 기준)에 해당하는 지원금을 거부하는 등 대부분의 상영관에서 보이콧에 동참하기로 했다”면서 “최근 영진위에 공청회를 요청한 상태로 원만한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을 경우 범영화계 차원에서 이를 문제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영진위 관계자는 “2002년부터 지난 13년간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지원사업을 시행해 왔지만 최근 전용관 운영실적의 지속적인 하락과 지원금 의존율의 악화 등으로 실효성이 떨어져 사업의 개선방안을 검토하게 된 것”이라면서 “지난달 23일 관계자 의견수렴을 위한 1차 간담회를 시작으로 내·외부 의견수렴 등 개선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합리적 진보주의자’로 불리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합리적 진보주의자’로 불리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

    ‘현장을 외면하지 않는 대주교’ ‘합리적 진보주의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김희중(68) 대주교에게는 자주 이런 수식어가 붙는다. 천주교 안팎에서 거부감 없이 소통 가능한 사제로 꼽힌다는 열린 성직자. 세월호 참사 이후 줄곧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았고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때도 대주교 중 유일하게 그 리본을 달았던 한국 천주교계의 큰 인물이다. 지난해 10월 주교회의 의장 선출 직후부터 ‘시대의 아픔과 함께하는 교회’를 입에 담고 사는 김 대주교. 서울 광진구 중곡동 주교회의 의장 집무실에서 만난 대주교는 “종교는 울타리 안의 공동체를 벗어나 세상과 호흡하고 소통하는 빛과 소금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의장 취임부터 ‘시대의 아픔과 함께하는 교회’를 강조하고 있다. 시대의 아픔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함의를 갖는가. -시대의 아픔이란 근래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매 시대의 아픔이 있다. 지난해 눈 뜨고 빤히 보면서 단 한 생명도 구하지 못한 세월호 참사는 그 아픔의 작은 예일 뿐이다. 어떤 말로도 변명할 여지가 없는 무기력의 노출이란 점에서 아픔을 통감한다. →의장 취임 이후 사건 사고가 많다. 지금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보고 있나. -세월호 참사에선 무엇보다 미래의 꿈이자 희망인 학생들의 희생이 컸다. 쌍용차를 비롯해 해고 노동자들의 생존권 박탈과 그들이 느끼는 생명의 위협도 참담하다. 남북한 경색 국면의 지속은 여전히 민족적인 아픔이다. 소외계층을 향한 있는 자들의 나눔이 너무 인색하다. 특히 결혼이주여성 등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이주민 노동자에 대한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배려가 필요하다. 다른 나라 사람들에 대한 배려라기보다 국가, 민족에 상관없는 천부적인 생존권 보장 차원이다.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은 한국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교황 방한 이후 우리 주교들이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의 실천에 대해 다양하게 논의해 온 것으로 안다. -잘 알려졌듯이 주교들이 먼저 사마리아통장을 개설했다. 어려운 사람과 함께하자는 차원에서 작은 정성을 모은 첫 번째 집단적 실천이 아닐까 한다. 현재 매월 송금하는 분도 있고 분기별로 송금하는 이들도 있다. 작은 일이지만 큰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다른 구체적인 실천 방안도 조만간 사회에 알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주교회의 산하 단체에서 그에 관한 사목 방안을 고심하고 있고 교구별로도 실천 사안을 마련 중이다. →올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폐막 50주년을 맞는 해다. 한국 교회가 어떤 점을 더 신경 써야 한다고 보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최대 화두는 교회의 현대사회 적응이다. 우선 내적인 차원에서 성직자와 교회 구조의 쇄신이 중요하다. 외적으로는 시대의 아픔에 보다 적극적으로 응답해야 한다. 교회 건물에 갇힌 ‘우리끼리’가 아니라 세상 밖으로 나가는 공동체가 돼야 한다. 시대의 문제를 복음의 정신으로 보고 교회가 함께할 수 있는 길을 찾자는 것이다. →교회의 사회 참여를 놓고 시선이 엇갈린다. 정의구현사제단의 언행 논란이 단적인 예다. 보수·진보의 갈등이 심한데 종교까지 쪼개지는 양상에 대한 우려를 어떻게 보나. -한 조직의 구성원이 가는 길은 다양하다. 어떤 분은 직설적이고 어떤 분은 상당히 정제된 표현을 쓰지만 근본적으로 의도하는 바는 비슷하다고 본다. 교회 내 보수·진보 편 가르기는 세간에서 보는 기준일 뿐이다. 사제는 모두 교회를 사랑한다. 교회 내에서는 복음의 정신과 교회의 가르침이 항상 으뜸 기준이고 그 기준에 따라 사회·정치 문제를 식별하는 것이다. 보수에도 진리와 정의가 있고 진보에도 진리와 정의가 있는 법 아닌가. →지난해 성탄절 메시지를 발표하면서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비판했다. ‘상상치 못한 결정에 당혹스럽다’는 언급이 주목받았다. 지금도 여전히 같은 생각인가. -‘나와 다른 것은 틀린 것이다’라는 의식이 팽배해 대화나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 당시 특정 정당을 옹호하거나 그쪽 편에 서서 한 말이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한 정당이 해산되는 건 보통 일이 아니라고 했다. 정치 발전과 국가의 위신을 생각해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린 것이다. →올해는 분단 70년이 되는 해다. 남북 관계가 여전히 경색돼 있는 상황인데. -좀 더 적극적으로 나가야 한다. 단지 정책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전 국민이 공감대를 가져야 한다. 통일부가 그런 의지에서 구성됐다면 그 뜻을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금년엔 꼭 가시적인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 2011년 방북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정치적 자존심보다 민족이 더 앞서는 것이니 서로 품어 안고 나가자’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몫은 통일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분들의 적극적인 의지에 선의의 협력을 하는 것이다. 물론 정치적인 계산 없는 민족 동질성 회복의 차원이다. →올해 방북을 소망한다고 밝혔는데 계획은 잡혔나. -구체적인 협력이 가능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우선 광주대교구가 있는 전라도가 북한 농어촌을 도울 수 있을지 교구 차원에서 탐색하고 있다. 가능하면 정부나 행정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면 한다. 조만간 통일부에 방북 신청을 낼 계획이다. 천주교 민화위(민족화해위원회) 차원에서도 방북할 계획을 갖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은 대박’ 발언을 어떻게 생각하나. -어떤 의도인지 정확히 가늠하기 힘들지만 통일은 국가와 민족이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희망의 출구라고 본다. 경제, 사상, 이념 갈등이나 동북아 지정학적 측면 모두에서 문제를 해소하는 길임에 틀림없다. 경제적 차원이라도 잘된다면 북한 주민들 삶의 질이 올라가고 통일이 되더라도 충격이 덜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 종교 갈등이 늘고 있다는 시각이 적지 않은데. -아직 그럴 정도의 징후는 없다고 본다. 50여개 종교, 600여 종파가 잘 지내고 있는 편이다. 일부 배타적인 근본주의를 제외하곤 문제가 없다. 다른 종교의 교리를 다 수용하거나 인정할 순 없어도 존중은 해야 한다. →최근 이슬람국가(IS)의 연이은 테러와 인질 살해를 보고 느낀 점이 많을 텐데. -제 신앙을 제대로 통찰한다면 그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코란에서 그렇게 가르치지는 않을 것이다. 편향된 해석이 큰 문제다. 제 교파의 교리를 더 공부, 연구하고 타 종교를 비난, 폄훼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의 종교들이 큰 마찰 없이 지내는 건 국민들의 종교적 심성이 좋기 때문이다. 지금 IS 사태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잠잠해질 것이다. 배타적 근본주의도 톨레랑스 차원에서 바라보고 동행토록 배려한다면 말이다. →일본의 우경화가 심상치 않다. 과거사 반성은 차치하고 거꾸로 우경 군국주의로 치닫는데 어찌 봐야 하나. 특히 천주교 차원에서 할 일이 있다면. -양국 교회가 한·일 주교 교류 모임을 매년 하고 있다. 양국의 교회와 성직자들이 사회 관심사를 복음의 빛으로 식별하자는 공동의 노력이 아닐까 한다. 지난해 일본 주교들이 한국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찾아가 위로한 건 큰 결실이라고 본다. 극단적 우경화는 동북아 평화 노력을 깨고 국제적인 고립을 자초한다. 군국주의를 부활해 패권을 잡겠다면 시대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얼마 전 단행한 새 추기경 임명에 한국이 빠졌다. 대주교도 물망에 올랐는데 섭섭하지 않았나. 한국 천주교 교세 증가는 세계가 주목할 만큼 이례적인데. -우리 교회 교세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하면 작은 편이다. 섭섭해할 이유가 없다. 한국 천주교는 보편적 종교로서의 역할을 차분히 잘하고 있다. 그러면 되지 않는가. →왜 사제가 됐는가. 혹시 사제가 된 걸 후회한 적은 없었나. -모태 신앙이다. 어릴 때부터 신앙적 분위기에서 컸다. 큰누님도 수녀다. 사제의 상이 좋았던 것 같다. 후회는 없었지만 결혼해서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신학교 학생 시절 어려웠을 때 유혹처럼 다가왔었다.(웃음) →이 시대의 사제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나. -기능인으로서의 역할보다는 존재 자체로 빛과 소금의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 능수능란한 행정 관리의 측면이 아니라 하느님과 신자 사이의 진정한 중재다. →많은 국민이 어렵게 살고 있다. 덕담 한마디 부탁한다. -양은 순하고 평화로움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특출한 사람 혼자만 나가지 않고 뒤처진 사람과 어깨동무해 같이 걸어간다면 국민들이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김희중 대주교는 누구 불교 등 타 종교와 활발한 교류… 열린 성향에 강단 있는 성직자 1947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광주 살레시오고교와 대건신학대를 졸업했다. 1975년 대건신학대를 졸업하면서 사제 서품(세례명 히지노)을 받아 이때부터 줄곧 광주대교구에 소속돼 왔다. 광주대교구 명상의 집 지도신부, 광주가톨릭대 교수(사무처장), 광주대교구 금호동 본당 주임신부, 총대리 등을 지냈다. 1976년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로 유학해 박사학위(교회사)를 받아 1983년부터 광주가톨릭대 교수로 재직하던 중 2003년 주교품을 받았고 2010년부터 광주대교구장직을 승계해 맡아 왔다. 지난해 추계 주교회의 정기총회에서 강우일 의장(제주교구장)의 뒤를 이어 임기 3년의 주교회의 의장에 선출했다.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위원, 성직주교위원회 위원,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특히 2004년부터 주교회의 교회일치와종교간대화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개신교, 불교 등 타 종교와 활발히 교류하며 전국적인 활동을 해 왔으며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공동회장을 맡고 있다. 2006년부터는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 교회일치와종교간대화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고 교황청의 그리스도일치촉진평의회 위원, 종교간대화평의회 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합리적이고 열린 성향의 사제로 사회적 논란에 분명한 목소리를 내 온 강단 있는 성직자로 종교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4대강 사업과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등 비교적 진보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국내 16개 천주교 교구 협의체로서 한국 천주교회를 대표하는 기관이다. 대내적으로는 주교회의총회, 상임위원회, 주교위원회, 전국위원회 등의 기구를 통해 한국 교회의 전국 단위 사업을 추진하며 교구 간 협력을 도모한다. 전국의 성당에서 통용되는 성경, 기도서, 성가집과 각종 예식서, ‘복음의 기쁨’을 비롯한 교황 문헌을 공식 번역해 펴내는 일도 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한국 천주교회를 대표해 교황청 및 외국 교회와 연락하는 업무를 한다. 회원은 추기경 1명, 대주교 2명, 주교 21명, 대수도원장 1명 등 모두 25명이다. 은퇴한 주교인 준회원 12명은 사안에 따라 총회에 참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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