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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진 패션 브랜드 축제 ‘하이서울패션쇼’ 동대문 DDP서 19일 개최

    신진 패션 브랜드 축제 ‘하이서울패션쇼’ 동대문 DDP서 19일 개최

    서울시와 서울시 일자리 창출의 주역인 중소기업지원기관 SBA(서울산업진흥원, 대표이사 장영승)가 패션 유통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한층 강화한다. 국내 최고 패션쇼 축제기간 동안 신진 디자이너들이 대거 참여하는 패션쇼 개최를 통해서다. SBA는 오는 19일부터 22일까지 총 4일간 동대문DDP에서 개최되는 국내 최대 패션행사 ‘2019 F/W 서울패션위크’ 기간에 ‘2019 FW 하이서울패션쇼’를 개최할 예정이다. ‘2019 F/W 서울패션위크’는 명실상부 국내 최대 패션쇼 중 하나로 업계 최고 관계자들이 대거 참여하는 행사다. 이 행사기간에 SBA는 하이서울패션쇼를 개최, 신진 패션 브랜드를 알리고 이들의 역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SBA 김용상 본부장(SBA 서울유통센터)는 “신진 패션 브랜드의 경우 우수한 품질을 갖춰음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이번 패션쇼를 통해 역량있는 디자이너들이 만든 브랜드가 널리 알려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패션쇼에서는 홀리넘버세븐(최경호 디자이너, 송현희 디자이너), 소누아(이병렬 디자이너), JCHOI(최정수 디자이너) 등 우수한 신진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가 대거 참여한다. 또한 박종철 디자이너의 슬링스톤 등 단독쇼 13개 브랜드, 연합 패션쇼 6개 브랜드 등 총 19개 브랜드가 16번의 런웨이를 진행한다. 신진 패션 브랜드를 위한 바이어 미팅 자리도 마련된다. 지난 2016년부터 3년간 우수한 신진 패션 브랜드를 발굴, 지원해온 SBA 하이서울쇼룸은 이번 패션쇼에서 선기획 상품 스타일을 런웨이에서 첫선을 보이는 ‘오프쇼’ , 바이어와 브랜드 디자이너 간의 수주 상담을 위한 피버 미팅(Fever Meeting)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해 유통 플랫폼 역할을 강화한다. 서울하이쇼룸에서는 의류 뿐만 아니라 제트블랙(최진 디자이너), 엘노어(김미혜 디자이너) 등 최근 주목을 받고있는 잡화 브랜드들의 쇼도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 SBA의 하이서울패션쇼는 동아TV, 네이버V앱을 통해서도 실시간 감상할 수 있다. SBA는 앞서 2019 SS 시즌, 시청자 수가 최대 1만2,000여 명을 넘으며 관계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만큼, 이번시즌에도 영상 송출을 준비했다. 또한 패션쇼 이후에도 온라인을 통해 각 브랜드의 영상을 볼 수 있도록 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신한반도 체제 우리의 역할과 과제’…민주평통, 14~15일 남북관계 토론회

    ‘신한반도 체제 우리의 역할과 과제’…민주평통, 14~15일 남북관계 토론회

    대통령 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는 오는 14~15일 강릉시 스카이베이 경포호텔에서 ‘신(新)한반도 체제 전환을 위한 우리의 역할과 과제’라는 주제로 학계·언론계 등 전문가 30여명이 참석하는 가운데 제24차 남북관계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한다. 이번 토론회는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비핵·평화프로세스에 대해 각계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고 정책 대안을 도출하기 위해 마련됐다. 1세션은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비핵·평화체제 이행전략’을, 2세션은 ‘남북관계 전망과 우리의 대응전략’을 의제로 발표와 토론이 이뤄진다. 황인성(왼쪽) 민주평통 사무처장이 개회사를, 김덕룡(오른쪽)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이 환영사를 하며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박종철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이 사회를 맡는다. 또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 발표자로 참여한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In&Out] 2019 다시 청소년이다/이광호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이사장

    [In&Out] 2019 다시 청소년이다/이광호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이사장

    사망자 7509명, 부상자 1만 5858명, 체포·구속자 4만 5306명. 이 가슴 아픈 숫자는 100년 전 200만여명이 참가한 3·1운동의 기록이다. 3·1운동은 빼앗긴 주권을 되찾기 위한 국민적 염원의 표출로, 동북아 평화를 넘어 세계평화를 갈망하던 민족의 숭고한 정신을 담고 있다. 미래에도 이 정신을 이어 가기 위해서 그동안 부각되지 않았던 역사 속 다양한 주체를 기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청소년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 청소년은 민족의 운명을 바꾼 주요한 변곡점마다 발화점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3·1운동의 주역인 유관순(17세) 열사, 1929년 광주학생운동 참가 학생, 6·25전쟁의 3만여 학도병, 4·19혁명의 발화점 김주열(16세) 열사, 6월항쟁의 불씨가 된 이한열(21세) 열사와 박종철(20세) 열사도 청소년이었다. 산업화 시대의 역군도 10대 청소년이었다. 이처럼 청소년은 주권회복, 조국수호, 민주화, 산업화라는 민족의 굵직한 역사 속에서 주도적으로 자신의 몫을 하며 현재의 대한민국을 이룩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역사의 주역으로서 청소년과 현재 청소년의 개념에는 거리가 있다. 과거 100년 우리는 젊은 세대를 어떻게 호명했었나? 1900년대에는 젊은 세대를 ‘청년’, ‘소년’, ‘학생’ 등으로 연령이나 가치에 따라 혼용하여 불렀다. 1900년대 중반 이후 청년과 소년은 국권상실의 위기 속에 새로운 사회와 미래를 이끌어 갈 책임을 가지는 동시에 교육을 통해 국민형성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입지(立志)와 인격수양의 주체인 이중적 존재였다. 1910년대 근대교육 확산으로 청년ㆍ소년은 가르치고 지도하는 교도(敎道)의 대상으로 인식되어 현실참여보다는 준비하고 수양하는 세대로 보기 시작했다. 1920년대에 들어서 소년과 청년의 위계적 분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청년+소년=청소년’으로 보는 포괄적 개념이 등장했다. 그러나 군부시절을 거치며 청소년은 보호와 선도의 객체로 보는 대상화가 가속화되었고, 현재 청소년은 소년도 아닌 청년도 아닌 단지 청소년(13~18세), 그것도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문제아 내지는 지도 대상으로 고정되었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들면서 변화는 일상화되고 불확실성은 커지고 있다. 새로운 시대에는 기성세대의 지혜와 경험으로는 풀지 못하는 사회적 문제가 증가할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 과거 100년의 역사 속에서 청소년의 위상과 역할을 성찰하고 다가올 미래 100년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는 청소년을 문제유발자에서 문제해결자로 다시 호명할 필요가 있다. 청소년에게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청소년이 주도성을 갖고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며, 세상을 바꾸는 동력으로 다시 서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한 2019년은 ‘다시 청소년이다!’
  • “종철이 죽음 헛되지 않도록 남영동 대공분실 원형 복구해야”

    “종철이 죽음 헛되지 않도록 남영동 대공분실 원형 복구해야”

    박종철 열사의 죽음은 묻힐 뻔했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경찰의 어이없는 설명에도 대꾸할 수 없는 게 당시 분위기였다. 그렇게 의문사로 남을 수도 있었던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건 전적으로 우연들이 만들어 낸 힘 때문이었다. 만약 1987년 1월 당시 최환 부장검사가 경찰의 은폐 조작을 저지하지 않았다면? 일부 언론이 서슬 퍼런 5공화국의 보도지침 검열에 저항하지 않았다면? 열사의 친형이자 현재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청년회장을 맡고 있는 박종부(61)씨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고 했다. 그는 “하나의 우연이 또 하나의 우연과 연결되고 결국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졌다고 본다”면서 “역사의 엄중한 무게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동생과 아버지를 떠나보낸 뒤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오늘도 새벽을 깨우는 박씨를 지난 19일 서울 용산의 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만났다.-지난해 문무일 검찰총장이 세 차례에 걸쳐 부친을 찾았다. 검찰은 무슨 잘못을 했나. “대다수 국민들은 검찰이 당시 어떤 잘못을 했는지 의아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미 2009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검찰도 사건의 축소·은폐 조작에 깊이 관여한 점을 밝히고 유족과 국민에게 사과할 것을 권고했다. 10년이 흐른 지금도 당시 수사 검사(박상옥 대법관)를 포함해 수사 라인에 있던 검사 3명 모두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를 한 적 없다. 물론 검찰이든 경찰이든 자기 허물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았겠지.” -문 총장 방문은 어떻게 이뤄졌나. “지난해 초에 종철이 고등학교 친구(김기동 부산지검장)한테 연락이 왔다. 총장이 아버지(고 박정기씨)를 찾아뵙고 싶다고. 그때는 아버지께서 의식이 또렷하셨을 때였다. 아버지께서도 반대하시지 않아 만남이 성사됐다. 2월 3일 오후 3시. 정확히 날짜도 기억한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함께 와서 아버지께 사과를 했다.” -부친이 뭐라 하셨나. “아버지가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사과를 받아주겠습니다. 그런데 오늘보다 어제가 더 좋았을걸 그랬습니다’라고 말씀하시더라. 왜 조금 더 일찍 오지 않았느냐는 의미 아닐까. 그 말씀을 하시는데 울컥하더라. 당시 병상을 둘러 서 있던 저와 아내, 여동생 모두 뒤돌아서서 눈시울을 붉혔던 기억이 난다.” -총장의 사과에서 진정성이 느껴졌나. “총장이 종철이와 아버지의 삶을 다룬 책 ‘유월의 아버지’를 읽고 왔다고 들었다. 그전에는 아버지에 대해 잘 몰랐던 것 같고. 형식적으로 사과를 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한 달 뒤 공식 방문을 했고, 아버지 돌아가시기 직전 또 한 번 찾아왔다.” -옆에서 지켜본 아버지의 삶은 어땠나. “종철이가 3년 동안 민주화운동을 했다면 아버지는 30년을 했다. 외롭고 힘든 일도 많았을 거다. 어떤 날은 경찰 방패에 맞아 피멍이 들어 밤새 끙끙 앓으시다가도 새벽같이 일어나 유가협 사무실에 청소하러 가셨다. 제 아버지이지만 참 큰 어른이셨다.” -아버지가 동생을 떠나보내며 하신 말씀 ‘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데이’가 지금도 회자된다. “왜 할 말이 없었겠나. 아들이 죄 없이 죽은 게 힘없고 못난 아비 때문이라고 생각하신 거지. 아버지는 1987년 11월 30일부터 거의 30년 동안 일기를 써내려갔다. 이 일기를 기록물로 남겨 놓는 작업도 하려고 한다.” 1994년 4월 26일 고인의 일기장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막내야, 다음에도 나는, 이 아버지는 민주화운동을 할 거야/ 역사에 없어도 나는 네가 하다 간 그것 할 거야!’ 3년 뒤인 1997년 5월 8일 일기장에는 아들을 떠나보냈을 때의 심정을 10년 만에 글로 담았다. ‘처절한 심정으로 이 넓고 큰 지구에서/ 나 혼자 변을 당하는 외로움/ 사지가 마비되는 고독감/ 당하고 마는구나 하는 마음이 바로 이날이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부친이 돌아가셨을 때 조의를 표했다. 어떤 인연이 있나. “종철이가 그렇게 되고 나서 나흘 만인가 당시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이 집으로 찾아와 부모님을 위로해 줬다. 이후 아버지와 가깝게 지내셨다. 그런데 두 분 다 대통령이 되면서 예전같이 자주 만날 기회는 없어지더라(웃음).” -동생이 고문당한 남영동 대공분실이 드디어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아버지 생전에 이뤄내지 못한 것이 아직도 가슴 아프다. 1999년 아버지가 유가협 회원들과 고령의 몸을 이끌고 국회 앞에서 422일간 천막농성을 벌인 적이 있다. 그 당시 민주화 과정에서의 희생자를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보상심의위원회, 과거사위원회 등이 꾸려졌다. 그때 남영동 분실을 넘겨받았어야 했는데 사회운동권 단체의 역량이 부족했던 것 같다. 그 기회를 한번 놓치니 20년이 흘러 버렸다.”-분실을 경찰이 관리하면서 원형이 훼손됐다고 하던데. “원형 보존과 복구 과정이 쉽지 않겠지만 역사 왜곡을 막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다. 이곳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도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과제다. 우리가 지켜낸 민주주의와 인권은 후대에 물려줄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2022년 개관(민주인권기념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의문사 가족들과 연대 활동을 많이 하는 것은 세상에 안 알려진 제2의 박종철 열사를 기리기 위함인가. “문영수, 김두황, 한영현, 기혁, 한희철, 허원근, 우종원, 신호수, 김성수, 최우혁, 안치웅, 김용권….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로 너무 많다. 1988년 행방불명돼 시신도 못 찾은 안치웅의 경우, 행여 돌아올까 문도 못 잠그고 지내다 23년이 지나서야 시신 없는 장례식을 치러야 했다. 전태일, 박종철, 이한열뿐 아니라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목숨 바친 수많은 열사들, 그들의 뒤를 이어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수십년을 헌신한 유가족들, 그들이 국가유공자가 아니면 누가 유공자이겠나.” -이제는 국가가 나서야 할 때라는 뜻인가. “그렇다. 그들은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로 언제나 약자였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여전히 죄책감에 시달리는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거다. 너무 늦어 많은 분들이 한 많은 가슴을 부여안고 돌아가시는 현실이 안타깝다. 의문사는 누구든지 당할 수 있다. 불행한 과거가 다시 오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박씨는 인터뷰를 마칠 즈음,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설치됐을 때 위원회 명칭이 거북했다고 털어놨다. 피해자들의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화해’라는 단어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처럼 꼭 필요한 말도 없다고 했다. 지금도 진행 중인 과거사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는 길도 화해에 달려 있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세상에 안 알려진 종철이가 너무 많다…의문사 가족에도 관심을”

    “세상에 안 알려진 종철이가 너무 많다…의문사 가족에도 관심을”

    묻힐 뻔한 죽음, 지금 생각해도 아찔…역사적 우연 연결되며 민주항쟁 이어져아버지 병상에서 문무일 검찰총장 만나 “오늘보다 어제 왔으면 더 좋았을걸…”아버지, 30년간 힘든 싸움 일기에 남겨…의문사 유가족에 손만 내밀어도 위로박종철 열사의 죽음은 묻힐 뻔했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경찰의 어이없는 설명에도 대꾸할 수 없는 게 그 당시 분위기였다. 그렇게 의문사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건 전적으로 우연들이 만들어 낸 힘 때문이었다. 만약에 1987년 1월 당시 최환 부장검사가 경찰의 은폐 조작을 저지하지 않았다면? 일부 언론이 서슬 퍼런 5공화국의 보도지침 검열에 저항하지 않았다면? 열사의 친형이자 현재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청년회장을 맡고 있는 박종부(61)씨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고 했다. 그는 “하나의 우연이 또 하나의 우연과 연결되고 결국 6월 민주 항쟁으로 이어졌다고 본다”면서 “역사의 엄중한 무게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동생과 아버지를 떠나 보낸 뒤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오늘도 새벽을 깨우는 박씨를 지난 19일 서울 용산의 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우리 사회 민주화를 앞당긴 1987년은 현대사의 한 획을 긋는 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힘든 한 해였을 것 같다. “그해 4월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당시 공무원이셨던 아버지(고 박정기씨)는 6월 정년퇴직이 예정돼 있었고. 그런데 갑작스런 동생의 사망 소식에 우리 가족은 몹시도 힘들었다. 아버지는 기관으로부터 회유와 압박에 시달렸다. 그때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아버지가 많이 흔들리시는 것 같아 자주 부산에 내려갔다. 조금만 버텨보자고 아버지를 설득했다. 그후로 부모님과 여동생은 시민사회단체에 소속돼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가족들과 달리 회사 생활을 했다고 들었다.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아들을 키워야 했으니까. 2001년 아버지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사람 뽑는다고 슬쩍 권유를 하시더라. 그때도 조심스럽게 거절했다. 그래도 마음은 늘 사회운동단체에 닿아 있었다. 틈나는 대로 연대 활동도 했고. 그러다 2010년 퇴직하고 난 뒤 아버지 활동도 뜸해지면서 바통을 이어받은 거지.” -지난해 문무일 검찰총장이 세 차례에 걸쳐 부친을 찾았다. 검찰은 무슨 잘못을 했나. “대다수 국민들은 검찰이 당시 어떤 잘못을 했는지 의아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미 2009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검찰도 사건의 축소·은폐 조작에 깊이 관여한 점을 밝히고 유족과 국민에게 사과할 것을 권고했다. 10년이 흐른 지금도 당시 수사 검사(박상옥 현 대법관)를 포함해 수사 라인에 있던 검사 3명 모두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를 한 적 없다. 물론 검찰이든 경찰이든 자기 허물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았겠지.” 지난해 10월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정권 안정이라는 정치적 고려를 우선해 치안본부에 사건을 축소·조작할 기회를 줬고, 치안본부 간부들의 범인 도피 행위를 의도적으로 방조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과거사위는 당시 검찰의 수사를 ‘졸속 수사’, ‘늦장 수사’, ‘부실 수사’였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문 총장 방문은 어떻게 이뤄졌나. “지난해 초에 종철이 고등학교 친구(김기동 현 부산지검장)한테 연락이 왔다. 총장이 아버지를 찾아뵙고 싶다고. 그때는 아버지께서 의식이 또렷하셨을 때였다. 아버지께서도 반대하시지 않아 만남이 성사됐다. 2월 3일 오후 3시. 정확히 날짜도 기억한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함께 와서 아버지께 사과를 했다.” -부친이 뭐라 하셨나. “아버지가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사과를 받아주겠습니다. 그런데 오늘보다 어제가 더 좋을 걸 그랬습니다’라고 말씀하시더라. 왜 조금 더 일찍 오지 않았느냐는 의미 아닐까. 그 말씀을 하시는데 울컥하더라. 당시 병상을 둘러 서 있던 저와 아내, 여동생 모두 뒤돌아서서 눈시울을 붉혔던 기억이 난다.” -총장의 사과에서 진정성이 느껴졌나. “총장이 종철이와 아버지의 삶을 다룬 책 ‘유월의 아버지’를 읽고 왔다고 들었다. 그전에는 아버지에 대해 잘 몰랐던 것 같고. 형식적으로 사과를 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한 달 뒤 공식 방문을 했고, 아버지 돌아가시기 직전 또 한 번 찾아 왔다.” -옆에서 지켜본 아버지의 삶은 어땠나. “종철이가 3년 동안 민주화운동을 했다면 아버지는 30년을 했다. 외롭고 힘든 일도 많았을 거다. 어떤 날은 경찰 방패에 맞아 피멍이 들어 밤새 끙끙 앓으시다가도 새벽같이 일어나 유가협 사무실에 청소하러 가셨다. 제 아버지이지만 참 큰 어른이셨다.” -아버지가 동생을 떠나보내며 하신 말씀 ‘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데이’가 지금도 회자된다. “왜 할 말이 없었겠나. 아들이 죄 없이 죽은 게 힘없고 못난 아비 때문이라고 생각하신 거지. 아버지는 1987년 11월 30일부터 거의 30년 동안 일기를 써내려갔다. 이 일기를 기록물로 남겨놓는 작업도 하려고 한다.” 1994년 4월 26일 고인의 일기장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막내야, 다음에도 나는, 이 아버지는 민주화 운동을 할 거야/ 역사에 없어도 나는 네가 하다 간 그것 할 거야!’. 3년 뒤인 1997년 5월 8일 일기장에는 아들을 떠나보냈을 때의 심정을 10년 만에 글로 담았다. ‘처절한 심정으로 이 넓고 큰 지구에서/ 나 혼자 변을 당하는 외로움/ 사지가 마비되는 고독감/ 당하고 마는구나 하는 마음이 바로 이날이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부친이 돌아가셨을 때 조의를 표했다. 어떤 인연이 있나. “종철이가 그렇게 되고 나서 나흘 만인가 당시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이 집으로 찾아와 부모님을 위로해 줬다. 이후 아버지와 가깝게 지내셨다. 그런데 두 분 다 대통령이 되면서 예전같이 자주 만날 기회는 없어지더라(웃음).”-동생이 고문당한 남영동 대공분실이 드디어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아버지 생전에 이뤄내지 못한 것이 아직도 가슴 아프다. 1999년 아버지가 유가협 회원들과 고령의 몸을 이끌고 국회 앞에서 422일간 천막농성을 벌인 적이 있다. 그 당시 민주화 과정에서의 희생자를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보상심의위원회, 과거사위원회 등이 꾸려졌다. 그때 남영동 분실을 넘겨받았어야 했는데 사회운동권 단체의 역량이 부족했던 것 같다. 그 기회를 한 번 놓치니 20년이 흘러 버렸다.” -분실을 경찰이 관리하면서 원형이 훼손됐다고 하던데. “원형 보존과 복구 과정이 쉽지 않겠지만 역사 왜곡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다. 나아가 이곳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도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과제다. 우리가 지켜낸 민주주의와 인권을 후대에 물려줄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2022년 개관(민주인권기념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의문사 가족과의 연대 활동도 많이 한다고 들었다. “문영수, 김두황, 한영현, 기혁, 한희철, 허원근, 우종원, 신호수, 김성수, 최우혁, 안치웅, 김용권…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로 너무 많다. 1988년 행방불명돼 시신도 못찾은 안치웅의 경우, 행여 돌아올까 문도 못 잠그고 지내다 23년이 지나서야 시신 없는 장례식을 치러야 했다. 전태일, 박종철, 이한열뿐 아니라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목숨 바친 수 많은 열사들, 그들의 뒤를 이어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수 십년을 헌신한 유가족들, 그들이 국가유공자가 아니면 누가 유공자이겠나.” -이제는 국가가 나서야 할 때라는 뜻인가. “그렇다. 그들은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로 언제나 약자였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여전히 죄책감에 시달리는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거다. 너무 늦어 많은 분들이 한 많은 가슴을 부여 안고 돌아가시는 현실이 안타깝다. 의문사는 누구든지 당할 수 있다. 불행한 과거가 다시 오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박씨는 인터뷰를 마칠 즈음,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설치됐을 때 위원회 명칭이 거북했다고 털어놨다. 피해자들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화해’라는 단어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처럼 꼭 필요한 말도 없다고 했다. 지금도 진행 중인 과거사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는 길도 화해에 달려 있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제명된 예천군의원 2명 빈자리 보궐선거 않기로…군선관위 결정

    공무국외 연수 중 가이드 폭행 등 물의로 의원직을 잃은 경북 예천군의원 2명 보궐선거는 치러지지 않는다. 예천군선거관리위원회는 21일 위원 회의를 열어 박종철·권도식 의원 제명으로 보궐선거 사유가 발생한 군의원 가 선거구와 라 선거구 선거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군 선관위는 지난 13일 군의회가 의원 2명 결원을 알렸으나 군의원 정수(9명) 4분의 1 이상 결원이 아니고 유관기관 의견수렴 결과 보궐선거 실시로 지역갈등이 우려돼 선거하지 않기로 했다. 또 두 의원이 제명 처분 취소소송과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할 수 있고 농민회 등에서 의원 전원 사퇴를 요구하며 오는 7월 이후 주민소환을 검토해 이것이 확정되면 보궐선거 실시에 실효성이 없다는 점도 들었다. 게다가 보궐선거를 하면 예천군이 부담해야 할 경비가 6억 3000여만원이나 되는 것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공직선거법 제201조(보궐선거 등에 대한 특례)에는 지방의회 의원 정수 4분의 1 이상 결원되지 않으면 보궐선거를 안 해도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예천군의회는 지난 1일 임시회 본회의를 열어 박종철 의원과 권도식 의원을 제명했다. 또 폭행 사태 책임이 있는 이형식 의장은 30일 출석정지와 공개 사과를 결정했다. 예천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10주기 추모도 낮게…약자의 손잡던 바보가 그립습니다

    10주기 추모도 낮게…약자의 손잡던 바보가 그립습니다

    노동 인권·민주화 등 현대사 질곡 관통 ‘세상 속 교회’ 기치로 민주적 가치 실현 분열된 사회, 자비·사랑으로 포용 실천 선종 후 ‘바보 정신’ 재단 통해 유지 이어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둘러싼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의 발언이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여야 4당이 문제 발언을 한 의원 제명을 요구하는 등 강력 반발하는 가운데 역사전쟁으로까지 치닫는 분위기다. 그 와중에 5·18 민주화운동 유족들과 광주 시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정치적 입장을 앞세운 발언이라지만 민주화운동 폄훼와 왜곡은 많은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그 5·18 민주화운동을 놓고 김수환 추기경은 이런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 “진실을 밝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에는 무슨 보복이나 원수를 갚는다는 차원이 아니라 역사 바로 세우기를 위해섭니다. 책임자는 분명히 나타나야 하고 법에 의해 공정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어디 5·18 민주화운동뿐인가. 김 추기경은 생전 약자 편에 선 채 불의에 강하게 맞선 쓴소리와 행동을 주저하지 않았다. “위정자도, 국민도, 여당도, 야당도, 부모도, 교사도, 종교인도 모두 이 한 젊은이의 참혹한 죽음 앞에서 무릎을 꿇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1987년 1월 26일 박종철군 추모 및 고문 추방을 위한 미사 강론 중 일부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일들이 생길 때마다 많은 이들은 김 추기경을 떠올린다. ‘김 추기경이 계셨다면 무슨 말씀을 하실까.’ 16일은 김 추기경이 선종한 지 10주기가 되는 날. 그날을 중심으로 추기경의 사랑과 배려 정신을 되새겨 실천으로 옮기자는 행사들이 이어질 전망이다. 추모 미사(16일 오후 2시 명동성당), 추모 사진전(23일까지 명동성당 지하 1898광장), 유품 전시회(16일~6월 20일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기념 음악회(18일 오후 8시 명동성당), ‘내 기억 속의 김수환 추기경’ 토크콘서트(17일 오후 5시 명동대성당 꼬스트홀)…. 그런데 이어지는 그 추모의 몸짓들이 요란하지 않다. 천주교의 최대 지도자, 시대의 사표, 민족의 양심…. 그 막중한 수식어들만 보더라도 성대한 행사가 있을 법한데 영 딴판이다. 그 조용하고 잔잔한 추모 열기를 놓고 천주교 서울대교구 신부들은 귀띔한다. “일회성 행사가 아닙니다. 그분의 가르침을 본받아 우리 삶 안에서 하루하루 살아 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그분의 가르침’은 무엇일까. 김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장을 맡은 30여년간 서울대교구는 48개 본당 신자 14만여명에서 197개 본당 신자 121만여명으로 무려 8배 넘게 교세가 불어났다. 그 종교적 위업에서 비롯된 존경과 추모만일까. 김 추기경의 어록을 다시 뒤져 보았다. “교회가 모든 것을 바쳐서 사회에 봉사하는 ‘세상 속 교회’가 되어야 한다”(1968년 서울대교구장 취임 미사), “항상 가난한 사람들 속에 들어가 살고 싶은 열망을 갖고 살았지만 그러지 못해 답답했다. 추기경이란 직책 때문이 아니라 용기가 없어서 그러지 못했다.”(1998년 서울대교구장 퇴임 소견)김 추기경은 그랬다. 인류 구원을 위해 존재하는 교회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약자들 편에 기꺼이 서야 한다고 믿었다. 단순히 종교지도자에 머물지 않고 현대 시민사회의 민주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앞장섰으며 각 개인의 양심을 일깨워 주고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그 인권과 노동, 생명 사랑의 족적은 너무 혁혁하다. 경제성장이 지상의 과제였던 1960, 1970년대 추기경은 산업화 과정에서 희생된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쏟았다. 1967년 5월 강화도 심도직물의 노조원 해고 사태 당시 김 추기경의 건의에 따라 주교회의는 사회 정의와 노동자 권익 옹호를 위한 교단 공동 성명서을 발표했다. 이 사건은 김 추기경이 처음으로 대사회 메시지를 던진 사건이다. 이것 말고도 유사한 노동 탄압 사건이 있을 때마다 추기경은 노동자 인권을 지키는 데 앞장섰다. ‘교회가 가난한 사람에게 더 적극적인 사목을 펼쳐야 한다.’ 서울 상계동 철거 사태 등 정부 주도의 반강제적 철거로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고 빈민으로 전락하던 무렵 추기경은 스스로 빈민들의 삶의 현장을 수시로 방문했다. 직접 도시 빈민 문제 해결을 위한 공청회에 참가해 당시 정부의 정책이 빈민을 양산하고 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1987년 4월 28일 도시빈민사목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지금의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는 바로 그 추기경의 의지를 담아 탄생한 단체다. 그렇게 현대 한국 천주교회를 이끈 주역이었지만 그는 교회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유신독재,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등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외면하지 않고 한가운데서 뚫고 나갔다. 1987년 6월 13일 밤 경찰력 투입을 통보하러 명당성당에 들어온 경찰 고위 관계자에게 던진 말은 아직도 쩌렁쩌렁하다. “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다음 시한부 농성 중인 신부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당신들이 연행하려는 학생들은 수녀들 뒤에 있습니다. 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그다음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십시오.”그런가 하면 1971년 12월 24일 전국에 TV로 생중계된 성탄 자정 미사에선 이렇게 소리쳤다. “비상 대권을 대통령에게 주는 것이 나라를 위해서 유익한 일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한테 막강한 권력이 가 있는데, 이런 법을 또 만들면 오히려 국민과의 일치를 깨고 그렇게 되면 국가안보에 위협을 주고 평화에 해를 줄 것입니다.” 또 1972년 10월 유신 개헌 소식을 로마에서 접하곤 큰소리로 외쳤다. “10월 유신 같은 초헌법적 철권통치는 우리나라를 큰 불행에 빠뜨릴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그랬던 추기경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장례식장에서 이런 기도를 남겼다. “이제 대통령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주님 앞에서 박정희를 불쌍히 여기소서.”스스로를 ‘바보’라 부르면서 ‘밥이 되고 싶다’고 외쳤던 김 추기경의 아호는 옹기다. “옹기는 먹는 것도 담지만 더러운 것도 담는다. 우리 자신도 여러 가지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웃었던 추기경의 유지와 정신을 이은 사랑과 봉사의 물결은 추기경 선종 이후 도도히 흐르고 있다. 박신언 몬시뇰이 설립을 건의해 김 추기경이 사재를 털어 2002년 설립된 옹기장학회와 김 추기경의 바보 정신을 이어받아 2010년 설립된 (재)바보의나눔은 대표적인 단체들이다. 갈라지고 분열된 세상을 사랑과 자비로 포용하려는 김 추기경의 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옹기장학회는 통일 이후 북녘 동포들에게 복음을 전할 사제 양성 목적으로 설립됐지만 현재 북한과 중국은 물론 아시아 선교에 뜻을 둔 신학생까지 지원 대상을 확대해 놓고 있다. (재)바보의나눔은 종교와 지역, 계층을 초월해 국내외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지원한다. 형편이 어려운 아동과 청소년 돌봄이 필요한 노인, 편견에 휘청이는 장애인과 다문화가정 등을 돕고 있다. ‘웃음과 유머를 잃지 않는 한편 신자와 국민을 위해 눈물 흘리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지도자.’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김 추기경이다. 물신주의 팽배와 경쟁 심화, 고통을 호소하는 가난한 사람들…. 그 어두운 모습 탓에 김 추기경이 더 그리워지는 게 아닐까.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김 추기경의 마지막 유언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서울대 졸업생 6200명은 왜 집단퇴장 했을까 [그때의 사회면]

    서울대 졸업생 6200명은 왜 집단퇴장 했을까 [그때의 사회면]

    고교 졸업식장에서 불미스러운 일을 막기 위해 경찰이 나선 것은 2011년 무렵이다. 졸업식에 밀가루 세례로도 모자라 알몸 뒤풀이까지 등장하자 공권력이 동원된 것이다. 졸업식날의 일탈은 수십 년 전부터 있었다. 1973년 서울시교육청은 화환과 꽃다발 증정, (오색) 테이프 감기, 밀가루 뿌리기, 모자·교복 찢기를 없애라고 일선 학교에 강력히 지시했다(경향신문 1973년 1월 5일자). 이해만 한 것은 아니고 해마다 그랬다. 어떤 연유로 졸업식날 밀가루를 교복에 뿌리는지, 언제부터 그랬는지에 대한 명확한 근거는 없다. 일본식 검은색 교복(가쿠란)에 대한 반감 때문에 일제강점기에 시작됐다며 반일 감정과 연결하는 것도 그럴듯하지만 막연한 추측일 뿐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힘든 학교 생활을 마친다는 해방감에서 누군가가 밀가루를 뿌린 것이 급속도로 확산됐다고 본다. 근래 대학졸업식은 취업난 때문에 불참하는 학생들이 늘어 썰렁한 분위기다. 심지어 졸업식에 가족조차 부르지 않고 ‘혼졸’(혼자 졸업)하는 학생도 있다고 한다. 요즘 세태와는 다르게 1970년대와 1980년대의 대학졸업식의 파행은 군부독재와 연관 있다. 1987년 서울대 졸업식에서 박봉식 총장의 식사(式辭)가 시작되자 졸업생들은 ‘우’ 하는 야유와 함께 뒤로 돌아서서 ‘아침이슬’ 등의 노래를 불렀다. 이어 손제석 문교부 장관이 치사를 낭독하자 ‘타는 목마름으로’를 합창하며 6600여명 중 6200여명이 퇴장해 버렸다(경향신문 1987년 2월 27일자). 군부정권에 협력한 장관과 총장에 대한 저항의 표시였다. 고 박 총장은 제5공화국 출범의 산실이 된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원을 지낸 전력이 있다. 서울대 졸업생들의 집단 퇴장은 1986년에도 있었으며 박종철군 치사 사건으로 1988년에도 졸업식장이 어수선했다. 서울대는 소란이 계속되자 1989년부터는 대통령상과 외부 인사 초청을 없애고 순수 학내 행사로 치렀다. 서울대 졸업식에는 1974년까지는 대통령이, 1981년까지는 국무총리가 참석했었다. 1985년 고려대 졸업식 시위는 뜻이 달랐다. 정부의 학생 제적 요구를 거부한 김준엽 총장의 반강제 퇴임에 대한 항의였다. 그 뒤에도 서울대 졸업식의 파행은 계속돼 학생들은 따로 ‘민주졸업식’을 열기도 했다. 1994년에는 김영삼 대통령이 모교이기도 한 서울대 졸업식에 20년 만에 참석해 큰 불상사 없이 식을 치렀다. 1999년에는 김종필 총리가 학생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경찰의 경호 속에 서울대 졸업식에 참석했다. 일부 학생들은 피켓 시위를 벌였고 관용 차량이 훼손되기도 했다.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미국 가이드 “최교일이 간 스트립바 이름은 ‘파라다이스’”

    미국 가이드 “최교일이 간 스트립바 이름은 ‘파라다이스’”

    지난 31일 미국 현지 가이드가 라디오 인터뷰에서 ‘경북 지역의 C모 국회의원이 2016년 공무 국외연수 때 스트립바를 방문했다’고 폭로해 논란이 됐다. 이 ‘C의원’이 최교일 자유한국당 의원으로 알려지면서 최 의원은 갔던 곳이 스트립바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현지 가이드가 최 의원이 갔던 바 주소와 이름까지 언급하며 최 의원의 해명을 재반박했다. 미국에서 20년 넘게 가이드를 하고 있는 한국 교포 대니얼 조씨는 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두 번째 인터뷰에서 “그렇게 한 개인을 이름까지 밝히면서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그쪽에서 먼저 그렇게 자수하듯이 먼저 반박자료를 내고 한 거에 대해서 참 조금 의아스럽다”고 말했다. 어제 언급한 ‘C의원’이 최교일 의원이 맞는지를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조씨는 맞다면서 자신이 갖고 있는 명함에 “국회의원 영주·문경·예천 최교일이라고 나온다”고 답했다. 최 의원은 경북 영주시·문경시·예천군 지역구 의원이다. 앞서 조씨는 지난 31일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2016년 가을 (중략) 경북 지역의 C모 국회의원이 식사 후에 저녁에 맨해튼에서 자꾸 스트립바를 가자고 굉장히 강요했다”면서 “강압적인 분위기에 못 이겨서 그분들을 그쪽으로 안내하고 두세 시간 동안 스트립쇼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호텔로 모시고 갔다”고 폭로했다. 당시 조씨는 ‘C의원’이 스트립바에 함께 간 연수 동행자들에게 1달러씩을 댄서에게 팁으로 주라고 주도했다고 말했다. 이에 최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10여명이 모두 있는 자리에서 가이드에게 식사 후 술을 한 잔 할 수 있는 주점을 알아봐달라고 한 사실은 있으나 스트립쇼를 하는 곳으로 가자고 한 사실도 없고, 스트립쇼를 하는 곳으로 가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스트립바가 맞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누구나 갈 수 있는 바에 갔다. 스트립쇼를 하는 곳은 확실히 아니었다”고 답했다. 하지만 조씨는 최 의원의 해명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조씨는 “제가 모시고 다녔으니까 제가 잘 안다. 첫째 날(2016년 9월 24일) 맨해튼에서 식사하고 차를 32가쪽 코리아타운 맨해튼으로 돌려서 33가에 있는, 이름까지도 제가 말씀드리겠다. 지금은 이름이 바뀌었을지 모르지만 ‘파라다이스’라는 스트립바였다”면서 “전형적인 미국 스트립바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무희들이 춤추는 주변에 앉아서 술을 시켜먹는 그런 곳”이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춤추는 무희들은 있었을 것 같은데, 스트립쇼는 아니었다. 별도의 테이블에서 술 한잔했다”는 최 의원의 설명도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조씨의 설명이다. 조씨는 “무희들은 메인 테이블이 있고, 또 테이블이 이쪽저쪽에 있어서 이쪽에 1명이 올라가면 또 저쪽 테이블로 옮겨 가기도 하고, 어디에나 작은 테이블이 여러 개가 있다”면서 “그래서 이쪽 테이블에 있던 무희가 한 노래가 끝나면 저쪽 테이블로 가고 돈다. 한두 명이 아니니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트립바에 같이 간 인원이 최 의원을 포함해 총 8명이라고 밝혔다. 조씨는 사회자에게 “원하신다면 그 자료(최 의원과 같이 다닌 사람들의 명단)를 보내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조씨는 “저는 개인적으로 어느 당을 지지하거나 개인을, 어제도 ‘C의원’이라고만 했지 최 의원하고도 아무 개인적인 감정은 사실 없는 사람”이라면서 “(폭로의) 가장 큰 목적은 이번에 ‘예천군 군의원 사건’이 일어나면서 그 가이드했던 (분이) 참 외로운 싸움이 아닌 싸움을 이렇게 하고, 굉장히 그런 측은한 마음이 개인적으로 제 신앙의 양심에 들었고, 또 갑자기 그러면서 3년 전 생각이 난 것”이라고 밝혔다. 조씨가 언급한 ‘예천군 군의원 사건’이란 최근 물의를 빚고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박종철 경북 예천군의원이 지난해 12월 국외연수 중에 현지 가이드를 폭행하고, 그와 함께 연수를 떠난 권도식 군의원이 가이드에게 여성 접대부가 있는 술집으로 데려가달라고 계속 요구한 일을 가리킨다. 다른 군의원들은 현지 호텔에서 문을 열어놓고 술을 마시고, 복도를 돌아다니며 소리를 질러 다른 투숙객들로부터 항의를 받기까지 했다. 조씨는 “이런 사람들이 이제는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못하도록, 자기 돈으로 와서 스트립바를 가든지 더한 것을 가면 저는 상관하지 않겠지만 분명히 국민이 낸 그러한 돈으로 비행기를 타고 와서 일정에 없는 것들을 하는 것 자체가 마음 속에 분노가 있었던 것 같다”면서 “그래서 다시는 이러한 일들이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으로 순수한 마음으로 제보를 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가이드 폭행 박종철 예천군의원 “혐의 시인”

    가이드 폭행 박종철 예천군의원 “혐의 시인”

    경북 예천경찰서는 17일 국외 연수 중 가이드를 폭행한 혐의로 박종철 예천군의원을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박 의원은 동료의원 8명과 함께 미국 동부와 캐나다에서 연수 중이던 지난달 23일 오후 6시쯤(현지시각) 토론토에서 출발하려는 버스 안에서 현지 가이드 얼굴과 머리를 때려 상처를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시민단체 고발로 수사에 착수해 피해자 서면 진술, 버스 내 폭행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CC)TV 자료 등을 통해 박 의원 혐의를 확인했다. 박 의원도 혐의를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합의금 공금 사용 의혹 등 해외 연수 경비 사용에 대해서는 별다른 범죄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관련 수사를 계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가이드 폭행 박종철 예천군의원 상해 혐의로 검찰 송치

    경북 예천경찰서는 17일 국외 연수 중 가이드를 폭행한 혐의(상해)로 박종철 예천군의원을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박 의원은 동료의원 8명과 함께 미국 동부와 캐나다에서 연수 중이던 지난달 23일 오후 6시쯤(현지시각) 토론토에서 출발하려는 버스 안에서 현지 가이드 얼굴과 머리를 때려 상처를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시민단체 고발로 수사에 착수해 피해자 서면 진술, 버스 내 폭행 장면이 담긴 CCTV 자료 등을 통해 박 의원 혐의를 확인했고 박 의원도 혐의를 시인했다. 경찰은 합의금 공금 사용 의혹 등 해외 연수 경비 사용에 대해서는 별다른 범죄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관련 수사를 계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예천군의회는 오는 21일 임시회를 열고 6명의 의원으로 윤리특별위원회를 꾸려, 이형식 의장과 박종철·권도식 의원 등 3명을 징계할 예정이다 예천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박종철을 만나러 갑니다”

    “박종철을 만나러 갑니다”

    13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 예정 부지에서 열린 박종철 열사 32주기 시민추모제에서 참석자들이 박 열사의 사진을 들고 “보고 싶다, 종철아”라고 외치며 부지를 돌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1987년 1월 14일 서울대생 박 열사가 물고문을 받다 숨진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을 올해 경찰로부터 이관받아 민주인권기념관을 조성한다. 연합뉴스
  • [사설] 예천군의회 같은 막장 해외연수, 더는 안 된다

    지난 연말 캐나다와 미국 연수에 나섰던 경북 예천군의회 의원들의 여행 가이드 폭행과 여성 접대부 요구 등 추태가 드러나면서 지방의회의 외유성 해외연수 문제 폐지론이 다시 불거졌다. 박종철 부의장은 술에 취해 현지 가이드를 폭행하고도 정식 사과도 하지 않은 채 동료 의원들이 가이드에게 준 합의금을 꼬투리 잡아 “너도 나 때려 봐라. 나도 돈 좀 벌어 보자”고 말하고, 가이드 교체까지 요구하는 갑질 행패를 부렸다. 다른 의원은 여성 접대부가 나오는 술집에 데려가 달라고 요구했다가 없다고 하자 접대부를 전화로 불러 달라고까지 했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이들은 호텔에서 술 마시고 소란을 피워 일본 관광객의 항의까지 받았다고 하니 나라 망신이 아닐 수 없다. 지방의원 연수 금지 등 뜨거운 비판 여론에 박 의원은 부의장직 사퇴와 함께 자유한국당을 탈당했다. 의원 9명 등 연수 참가자들은 연수경비 6188만원도 반납하기로 했다. 1991년 지방의회 도입 이후 지방의회 의원들의 외유성 해외연수는 늘 문제다. 10년 동안 100여 차례 지방의회 해외연수를 했다는 한 전직 여행사 대표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지방의회 해외여행 99%가 외유성이라고 폭로했다. 예천군 의회 연수도 7박 10일 일정 중 농산물 판로 개척과 선진관광기법을 배워 군 재정에 도움을 주겠다던 공식 일정은 3회뿐이고 나머지는 미국 나이아가라폭포,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인 캐나다 퀘벡 프티샹플랭 거리, 아브라함대평원 견학 등 모두 관광이었다. 해외연수안에 대한 심의도 당사자인 박 부의장이 했다고 하니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이런 지방의회의 막장 해외연수를 더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주민이 낸 세금으로 가면서 연수 목적에 맞지 않는 놀자판 연수는 없애야 한다. 필요한 해외연수라면 심사에 당사자 참여를 배제하고 사후 보고도 철저히 받는 등 근본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 대낮 음주운전·해외 주취폭력…지방의회 견제 없어 구태 반복

    대낮 음주운전·해외 주취폭력…지방의회 견제 없어 구태 반복

    탈당으로 ‘꼬리 자르기식’ 꼼수 똑같아 지방의원 토호세력 득세… 시스템 한계새해 벽두부터 정치인들의 주취 사건이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원내 제1·2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소속 시·군의원이 상식 이하의 사고를 친 상황이라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심정은 분노를 넘어 허탈할 정도다. 민주당 소속이었던 채우석 고양시의원은 지난 1일 오후 3시쯤 고양시 일산서구 한 도로 위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냈다. 낮술을 마신 그는 면허정지 수준인 혈중알코올농도 0.065% 상태에서 운전대를 잡았다가 중앙분리대 화단을 들이받았다. 민주당은 새해 첫날부터 대낮 음주운전을 한 채 의원을 9일 당 윤리심판원에 넘길 방침이었지만 채 의원은 8일 탈당했다. 이로 인해 당 차원의 중징계는 불가능해졌다. 한국당 소속이었던 군의원의 행태는 더 심하다. 박종철 예천군 의원은 미국과 캐나다 연수 중이던 지난달 23일 토론토의 한 식당에서 술을 마시고 차로 이동 중 가이드 A씨를 때렸다. 이로 인해 A씨는 이마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다. 박 의원은 해명 과정에서도 국민을 우롱했다. 그는 지난 3일 언론 인터뷰에서 “때린 건 아니고 손톱으로 긁은 것 같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8일 공개된 당시 CCTV 영상을 보면 만취 상태에서 버스 뒷자리에 누워 있던 박 의원이 갑자기 일어나 A씨의 얼굴을 다짜고짜 오른손 주먹으로 가격했다. 지난해 11월 26일 이번 연수의 타당성을 논의한 ‘예천군의회 공무국외여행 심사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박 의원은 “최근에는 의원의 견문과 식견을 높이고자 국외연수가 필요하다는 주민 의견을 많이 듣고 있다”며 “이번 국외연수도 단순 여행이 아니라 의원으로서 전문성 강화, 지역발전과 주민복지 향상을 위한 것임을 참고해달라”고 호소했다. 약 한 달 뒤 박 의원은 전후 사정도 없는 그야말로 주폭(酒暴)을 저질렀다. 한국당은 지난 8일 박 의원을 당 윤리위원회에 넘기려 했지만 박 의원 역시 이미 당을 탈당한 상태여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지난해 국회는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하는 이른바 ‘윤창호법’과 응급실 내 주취자 폭행에 대해서는 감경을 적용하지 않는 응급의료법 개정안 등을 통과시키며 ‘음주사고와의 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풀뿌리 민주주의의 산실인 지방의회에서는 여전히 구악과 구태가 판을 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 정치 시스템과 감시 범위에서 벗어나 있는 지방의회의 특성 등으로 인해 이번과 같은 사고가 반복된다고 지적한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지방은 소위 토호(土豪)로 불리는 세력이 특정 정당에 입당해 의회 자리를 싹쓸이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렇게 되면 자체적인 감시와 견제 기능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중·대선거구제 도입 같은 시스템 변화를 통해 서로 경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물의를 일으킨 의원은 탈당하며 사실상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았다”며 “‘꼬리 자르기식’ 꼼수를 쓸 수 없도록 중앙당이 지방의회에 대한 감시와 징계 체계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 예천군 의회, ‘가이드 폭행’ 박종철 의원 제명키로

    예천군 의회, ‘가이드 폭행’ 박종철 의원 제명키로

    해외 연수 중 가이드를 폭행하고 추태를 부린 것으로 드러난 박종철 군의원에 대해 경북 예천군 의회가 제명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예천군 의회 이형식 의장은 9일 “윤리위원회를 열어 사건 당사자인 박종철 의원을 제명하는 등 강력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또 “기타 물의를 일으킨 의원들도 응분의 조처를 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의장은 성명서를 내고 “이번 일로 군민, 출향인 등 많은 분에게 심려를 끼쳐 드려 대단히 죄송하고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또 “제8대 군 의회 임기 중에는 외국 연수를 실시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이어 “지금 당장 의장직에서 물러나고 싶으나 군 의회를 대신해 다른 기관에서는 사태를 수습할 수 없어 이를 마무리하고 의장직을 내려놓겠다”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전 자유한국당 소속 박종철, 가이드 폭행에 접대부 요구까지

    전 자유한국당 소속 박종철, 가이드 폭행에 접대부 요구까지

    자유한국당 소속 박종철 예천군의원이 해외연수에서 현지 가이드를 폭행하고 일부 의원은 접대부를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종철 의원을 비롯한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 7명 등 예천군 소속 의원 9명과 의회사무국 직원 5명은 지난달 20일 7박10일 일정으로 6188만원의 예산을 들려 미국 동부와 캐나다 연수를 다녀왔다. 박 의원은 연수 나흘째인 23일 오후 6시쯤(현지시간) 캐나다 토론토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다른 곳으로 가기 전 버스 안에서 박 의원이 가이드 A씨를 주먹으로 때려 상처를 입혔다. 가이드는 박 의원과 6000달러(약 671만원)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저녁식사를 한 다음 남은 일정이 하나 더 있었다. 그런데 (의원들이) 술에 취해 일어날 생각을 안 하더라. 대화를 하는 도중 갑자기 일어나 내게 주먹을 날렸다”고 말했다. A씨는 예천군 의원 일행이 현지에 도착한 다음날인 21일부터 ‘여자가 있는 술집에 데려가 달라’, ‘보도를 불러 달라’고 요구했다고 폭로했다. 박종철 의원은 “때린 게 아니라 손톱으로 긁었다”고 방송에서 해명했지만, CCTV 영상을 통해 거짓임이 탄로났다. 영상에서 박 의원은 주먹을 쥐고 가이드의 얼굴을 내려쳤고, 가이드는 안경이 부러지면서 얼굴에 피를 흘려 911에 신고했다. 박 의원은 다음날 기자회견에서도 “빡빡한 일정 탓에 말다툼을 하다가 손사래 치는 과정에서 얼굴에 맞은 것”이라며 음주, 폭행 사실을 부인했다. 박 의원과 동료 의원들, 예천군의회 의원 전체에 대한 비난이 폭주하는 가운데, 국민청원 게시판을 중심으로 ‘정치인 해외연수 금지’, ‘기초의회 폐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박 의원은 지난 4일 부의장직에서 사퇴하고 자유한국당에 탈당계를 냈다. 예천군의회는 연수 경비 전액을 자진 반납하기로 결정했다. 박 의원이 속했던 자유한국당은 해당 사건과 관련, 철저한 진상조사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예천군의회 가이드 “권도식 의원이 ‘여성 접대부 있는 술집’ 계속 요구”

    예천군의회 가이드 “권도식 의원이 ‘여성 접대부 있는 술집’ 계속 요구”

    자유한국당 소속 박종철 경북 예천군의회 의원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가이드가 무소속 권도식 군의원이 해외연수 중에 여성 접대부가 있는 술집으로 데려가 달라고 계속 요구했다고 폭로했다. 미국 현지 교민이자 최근 예천군의원들의 국외연수 가이드를 맡았던 A씨는 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농담하는 건가 싶었는데 (권도식 의원이) ‘이거 농담 아니다. 정말로 좀 찾아봐달라’라고 했다”면서 “‘여기는 그런 곳이 없다’ 그랬더니 (권도식 의원이) ‘보도를 불러 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후에도 권도식 의원이 여러 번 같은 부탁을 했다는 것이 A씨의 주장이다. ‘여성 접대부가 있는 술집에 데려가 달라고 말한 의원이 한 명이었는지’를 물은 김현정 앵커의 질문에 A씨는 “그건 한 사람만 계속 그랬다”면서 “권도식 의원”이라고 실명을 언급했다. A씨는 “녹취는 당연히 없다. 버스 안에서 처음에 그런 말을 했으니까 같은 버스 안에 있던 사람들은 다 들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예천군의원 9명과 의회사무국 직원 5명은 지난달 20일부터 29일까지 7박 10일 동안 미국과 캐나다 연수를 다녀왔다. 이 연수에 6100만원이 넘는 주민들의 세금이 쓰였다. 그런데 연수 나흘째인 지난달 23일 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캐나다 토론토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다른 곳으로 가기 전 버스 안에서 박종철 의원이 A씨를 주먹으로 때렸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박종철 의원은 예천군의회 부의장직을 사퇴했다. 그런데 이 연수기간에 일부 군의원들이 A씨에게 ‘여성 접대부가 있는 술집에 데려가 달라’고 요구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날 A씨는 인터뷰를 통해 권도식 의원이 그런 요구를 했다고 폭로했다. 논란이 일자 권도식 의원은 한겨레, 동아닷컴 등과의 인터뷰를 통해 “미국에서 캐나다로 가는 버스에서 가이드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단 한 번 ‘현지에도 도우미가 나오는 노래방이나 가요주점이 있느냐. 있으면 일정 끝나고 한 번 가고 싶다’고 말했고, 가이드가 ‘없다’고 해 그걸로 그 이야기를 끝냈다”면서 “솔직히 말하면 노래방 가면 눈도 어둡고 번호도 책자에 있는 번호도 찾아주고, 그런 의도로 물어본 건데 수차례 요구했다고 하니 억울하다”고 했다. A씨는 또 박종철 의원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뒤에도 박종철 의원에게서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몇몇 예천군의원들은 호텔에서 문을 열어놓고 술을 마시고, 복도를 돌아다니며 소리를 질러 다른 투숙객들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또 이번 예천군의회 국외연수 일정에는 외유성 일정이 다수 포함된 점도 비판을 받았다.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인 캐나다 퀘백 쁘띠샹플랭 거리를 비롯해 미국 나이아가라 폭포, 아브라함 대평원 등 관광명소를 견학하는 일정이 들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해외연수 중 가이드 때린 예천군의원

    해외연수 중 가이드 때린 예천군의원

    가이드와 6000달러 합의 사실 드러나 부의장직 사퇴·한국당 탈당 의사 밝혀 “일부 의원, 유흥점 데려가 달라 요구”경북 예천경찰서는 7일 시민단체가 미국·캐나다 연수 기간에 현지 가이드를 폭행한 자유한국당 소속 박종철 예천군의원을 고발함에 따라 수사에 나섰다. 예천경찰서에 따르면 시민단체 활빈단(대표 홍정식)이 이날 박 의원의 가이드 폭행과 군의회 연수 경비 내용을 조사해 달라는 고발장을 내 경찰은 홍 대표를 상대로 고발인 조사를 했다. 또 박 의원에게 폭행당한 가이드 A씨 진술을 받는 등 증거를 확보한 뒤 박 의원을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다. 활빈당 홍 대표와 회원 1명은 이날 예천군의회를 찾아 이형식 의장에게 박 의원 사퇴를 요구했다. 군의회 부의장인 박 의원은 지난 4일 부의장직 사퇴 의사를 밝힌 데 이어 한국당에 탈당계를 냈다. 예천군의원 9명과 의회사무국 직원 5명은 지난달 20일부터 7박 10일간 미국 동부와 캐나다로 연수를 다녀왔다. 연수 나흘째인 23일 오후 6시쯤(현지시간) 캐나다 토론토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다른 곳으로 가기 전 버스 안에서 박 의원이 가이드 A씨를 주먹으로 때려 상처를 입혔다. A씨는 “버스 안에서 의장과 얘기하는데 그 뒤에서 술에 취해 누워 있던 박 의원이 일어나 갑자기 주먹을 날려 안경이 다 부서졌고 다쳤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 버스 운전기사가 경찰에 신고해 앰뷸런스가 먼저 왔고 응급차 안에서 처치를 받는 중에 경찰관이 출동해 리포트를 작성했다”며 “경찰이 박 의원을 연행하려 했는데 제가 막았다”고 했다. 또 “그 뒤 병원 응급실에 갔을 때 의사가 얼굴에 안경 파편을 끄집어냈다”고 밝혔다. 가이드는 박 의원과 6000달러(약 671만원)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일부 의원은 지난달 21일부터 “여성이 있는 노래방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 달라”고 요구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몇몇 의원은 호텔에서도 술을 마시고 복도에서 소리를 질러 다른 투숙객이 호텔 측에 항의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천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가이드 폭행한 예천군의원 경찰 수사받는다

    가이드 폭행한 예천군의원 경찰 수사받는다

    경북 예천경찰서는 7일 시민단체가 미국·캐나다 연수 기간에 현지 가이드를 폭행한 자유한국당 소속 박종철 예천군의원을 고발함에 따라 수사에 나섰다. 예천경찰서에 따르면 시민단체 활빈단(대표 홍정식)이 이날 박 의원의 가이드 폭행과 군의회 연수 경비 내용을 조사해 달라는 고발장을 내 경찰은 홍 대표를 상대로 고발인 조사를 했다. 또 박 의원에게 폭행당한 가이드 A씨 진술을 받는 등 증거를 확보한 뒤 박 의원을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다. 활빈당 홍 대표와 회원 1명은 이날 예천군의회를 찾아 이형식 의장에게 박 의원 사퇴를 요구했다. 군의회 부의장인 박 의원은 지난 4일 부의장직 사퇴 의사를 밝힌 데 이어 한국당에 탈당계를 냈다. 예천군의원 9명과 의회사무국 직원 5명은 지난달 20일부터 7박 10일간 미국 동부와 캐나다로 연수를 다녀왔다. 연수 나흘째인 23일 오후 6시쯤(현지시간) 캐나다 토론토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다른 곳으로 가기 전 버스 안에서 박 의원이 가이드 A씨를 주먹으로 때려 상처를 입혔다. A씨는 “버스 안에서 의장과 얘기하는데 그 뒤에서 술에 취해 누워 있던 박 의원이 일어나 갑자기 주먹을 날려 안경이 다 부서졌고 다쳤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 버스 운전기사가 경찰에 신고해 앰뷸런스가 먼저 왔고 응급차 안에서 처치를 받는 중에 경찰관이 출동해 리포트를 작성했다”며 “경찰이 박 의원을 연행하려 했는데 제가 막았다”고 했다. 또 “그 뒤 병원 응급실에 갔을 때 의사가 얼굴에 안경 파편을 끄집어냈다”고 밝혔다. 가이드는 박 의원과 6000달러(약 671만원)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일부 의원은 지난달 21일부터 “여성이 있는 노래방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 달라”고 요구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몇몇 의원은 호텔에서도 문 열어놓고 술을 마시고 복도로 다니며 소리를 질러 다른 투숙객이 호텔 측에 항의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천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가이드 폭행에 호텔에서는 주취소란…나라망신 예천군의회

    가이드 폭행에 호텔에서는 주취소란…나라망신 예천군의회

    다른 의원들과 함께 해외연수를 떠난 박종철(자유한국당) 경북 예천군의회 부의장이 현지에서 가이드를 폭행해 물의를 빚었다. 박 부의장은 사과하고 부의장직에서 물러났다. 6일 예천군의회 등에 따르면 예천군의원 9명과 의회사무국 직원 5명은 지난달 20일부터 29일까지 7박 10일 동안 미국과 캐나다 연수를 다녀왔다. 이 연수에 총 6100만원이 넘는 예산이 쓰였다. 그런데 연수 나흘째인 지난달 23일 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오후 6시쯤(현지시간) 캐나다 토론토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다른 곳으로 가기 전 버스 안에서 박 부의장이 가이드 A씨를 주먹으로 때렸다. 당시 미국 버스운전 기사가 경찰에 신고했고 박 부의장은 현지 경찰 조사를 받았다. A씨는 예천군의원들의 중재로 약 5000달러를 받고 합의했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박 부의장은 “폭행으로 큰 상처를 받은 현지 가이드에게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 용서를 구한다”면서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해 죄송하게 생각하고 부의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연수 기간에 일부 군의원들이 가이드에게 ‘여성 접대부가 있는 술집에 데려가 달라’고 요구한 사실도 드러났다. 또 몇몇 의원은 호텔에서 문을 열어놓고 술을 마시고, 복도를 돌아다니며 소리를 질러 다른 투숙객들이 호텔에 항의하기도 했다. 또 해외연수 기간에 외유성 일정이 다수 포함된 점도 비판을 받았다. 이번 해외연수엔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인 캐나다 퀘백 쁘띠샹플랭 거리를 비롯해 미국 나이아가라 폭포, 아브라함 대평원 등 관광명소를 견학하는 일정이 포함돼 있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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