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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 대통령, 암 투병 중인 이용마 MBC 기자 병문안

    문 대통령, 암 투병 중인 이용마 MBC 기자 병문안

    2012년 MBC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이후 암 판정을 받고 현재까지 투병 중인 이용마 기자를 문재인 대통령이 병문안했다. 이 기자는 이 사실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알렸다. 이 기자는 17일 페이스북에 “문재인 대통령이 문병을 다녀갔다. 참으로 고마운 분이다. 나같은 게 뭐라고 이렇게 챙겨주시니 고맙기 그지 없다”라면서 “김정숙 여사가 직접 보내준 무릎담요도 아주 긴요하게 쓰일 것 같다”고 밝혔다. 앞서 MBC는 2012년 공정방송을 요구하며 170일 간의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이 기자를 포함해 언론인 6명을 해고했다. 하지만 해직 언론인들은 MBC를 상대로 낸 해고 무효 확인소송 1·2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이후 해직 언론인들은 2017년 12월 8일 최승호 MBC 사장이 MBC 노조(전국언론노조 MBC본부)와 해직 언론인 전원 복직에 합의하면서 약 5년 만에 다시 MBC로 돌아왔다. 앞서 문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전인 2016년 12월에도 해직 상태의 이 기자를 위로 방문한 적이 있다. 이 기자는 지난 13일 페이스북에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방문한 사실을 공개한 바 있다. 이 기자는 대통령에게 두 가지 메시지를 전달해줄 것을 윤 수석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이 기자는 “소득주도 성장정책 기조를 유지해달라는 것이다. 재벌 중심의 경제체제를 바꾸지 않으면 정권이 아무리 바뀌어도 서민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면서 “박정희 이래 수십년 간 지속돼온 경제구조를 바꿔야 한다. 소득주도 성장정책은 그 초석일 뿐”이라고 밝혔다. 또 “공영방송 사장 선임 과정에서 ‘국민대표단’ 제도를 도입해 국민들이 직접 사장을 뽑을 수 있게 하면 공영방송 종사자들이 정치권 눈치를 볼 일이 없어질 것”이라면서 “나아가서는 검찰총장이나 경찰청장 등 권력기관장들도 모두 청문회를 거친 뒤 국민대표단이 뽑도록 법을 바꾸는 것이 좋다”고 제안했다. 이 기자는 문 대통령이 직접 이날 답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그는 “소득주도 성장정책과,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 변화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보여주었다. 복지 확충에 대해서도 불변의 입장”이라면서 “적어도 경제정책에 관한 한 확고한 신념을 가진 것 같아 무한 신뢰가 간다”고 평가했다. 이어 “방송사 사장 선임 과정에 공론화위원회 방식의 국민대표단을 운영하는 방안에 대해 적극 찬성했다. 다만 법제화가 걸림돌”이라면서 “국무위원 인사청문회 통과 여부를 국민대표단에게 묻는 방안에 대해서도 검토해보겠다는 뜻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한국당 5·18 망언이 불러낸 ‘김영삼(YS) 계승의 자격’ 논란

    자유한국당 김진태·김순례·이종명 의원의 5·18 민주화 운동 모독 망언이 2015년 서거한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16일 정치권으로 다시 불러냈다. 지난 8일 문제의 공청회 이후 연일 날 선 비판을 이어간 정치권은 한국당 회의실 벽에 걸린 김 전 대통령의 사진을 문제 삼았다. 더불어민주당 등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한국당이 세 의원에게 꼼수 징계를 내린 것을 강하게 비판하며 김 전 대통령의 사진을 걸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김 전 대통령 사진 논란에 불을 댕긴 것은 YS의 차남이자 김영삼민주센터 상임이사를 맡은 김현철씨다. 김씨는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국당 전당대회가 수구적인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확인되면 아버님 사진은 그곳에서 내려주기 바란다”고 했다. 지난 8일 문제의 공청회를 주최한 후 한국당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에 출마한 김진태·김순례 의원을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특히 김씨는 “그런 수구반동적인 집단 속에 개혁 보수의 상징인 김영삼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다는 자체가 어울릴 수 없는 빙탄지간(氷炭之間·얼음과 숯처럼 서로 어울릴 수 없는 사이)”이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지난 13일에도 “아버님은 문민정부 당시 5·18 민주화 운동의 정신을 계승하는 정부가 문민정부라고 규정하고 특별법을 만들어 전두환을 위시한 신군부세력을 단죄했다”며 “김 전 대통령은 지난 1983년 5·18일을 기념하기 위해 23일간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하기도 했다”고 적었다. 이해식 민주당 대변인도 15일 국회 정론관 브리핑에서 “5·18 민주화 운동을 왜곡 날조하고, 그 유공자들을 모욕하고 있는 당 일각의 망동 주의자들에게 판(전당대회)을 깔아주고 있는 한국당은 차라리 김 전 대통령의 사진을 당사에서 떼라”며 “그것이 최소한의 예의”라고 비판했다.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에서는 5·18의 부정은 김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과 마찬가지라는 게 공통 인식이다. 1980년 5월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3년간 불법 가택연금을 당한 김 전 대통령이 당시 자신의 사저를 둘러싼 전경들을 향해 “나를 감금할 수는 있어, 힘으로 이런 식으로 할 수는 있어. 그러나 내가 가려고 하는 민주주의의 길은 말이야, 내 양심을, 마음을 전두환이가 뺏지는 못해!”라고 외친 장면은 한국 민주화 투쟁 역사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 후 1993년 5·18 특별담화를 통한 광주민주화운동 명예회복을 선언했다. 1995년 5·18 특별법 제정을 지시했고, 1997년 대법원 판결로 전두환씨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김 전 대통령은 2010년 8월 15일 이명박 전 대통령 초청으로 청와대을 방문했을 때 전씨가 함께 초대되자 “전두환이는 왜 불렀노, 대통령도 아니데이. 죽어도 국립묘지도 못 간다”라고 면박을 준 적도 있다. 한국당이 세 의원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표하지 못할 때 YS와 정치를 함께한 김무성 한국당 의원, 무소속 서청원 의원 등 상도동계가 가장 먼저 나선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지난 11일 두 의원은 각각 입장문을 내고 5·18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병준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지난 10일 “한국당 회의실 벽에는 ‘건국’ 이승만, ‘근대화’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 김영삼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다”며 “한국당은 다양한 의견이 제기될 수 있는 정당이지만, 기본적으로는 5·18에 관한 문민정부의 역사적 결단을 존중하고 계승할 책무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14일 한국당 윤리위가 이종명 의원만 제명하고, 전당대회에 출마한 김진태·김순례 의원의 징계는 전당대회 뒤로 미루면서 한국당이 김 전 대통령과 문민정부를 계승한 정당이 맞느냐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 김현철 “한국당, 아버지 사진 내려주길”…‘5·18 망언’ 비판

    김현철 “한국당, 아버지 사진 내려주길”…‘5·18 망언’ 비판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이 5·18 민주화운동은 ‘폭동’이었다고, 5·18 유공자들은 ‘괴물 집단’이라고 망언하자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씨가 “그런 수구·반동적인 집단 속에 아버지 사진이 걸려있다는 자체가 도저히 어울릴 수 없다”고 비판했다. 현재 자유한국당 당사에는 이승만·박정희·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진 액자가 걸려 있다. 김씨는 지난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작금의 자유한국당의 행태를 보면 박근혜 정권의 탄핵을 통해 처절한 반성과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도 시원찮을 판에 다시 과거 군사독재의 향수를 잊지 못해 회귀하려는 불순한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감지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런 수구·반동적인 집단 속에 개혁보수의 상징인 김영삼 대통령의 사진이 그곳에 걸려있다는 자체가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빙탄지간”이라고 비판했다. ‘빙탄지간’은 얼음과 숯의 사이라는 뜻으로, 서로 맞지 않아 화합하지 못하는 관계를 이르는 말이다. 김씨는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과거 수구적인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확인되면 반드시 아버님의 사진은 그곳에서 내려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앞서 지난 8일 자유한국당의 김진태·이종명 의원 공동 주최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이종명 의원은 “5·18 사태가 발생하고 나서 5·18 폭동이라고 했는데, 시간이 흘러 민주화 운동으로 변질됐다”고 말했다. 이 공청회에 참석한 같은 당의 김순례 의원은 “저희가 방심한 사이 정권을 놓쳤더니 종북 좌파들이 판을 치며 5·18 유공자라는 괴물 집단을 만들어내 우리의 세금을 축내고 있다”고 말했다.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을 비판하는 여론이 커지자 자유한국당은 전날 이종명 의원을 제명했다. 반면 오는 27일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때 실시되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김진태 의원과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한 김순례 의원에 대한 징계는 유예했다. 지난 13일에도 김씨는 페이스북을 통해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의 망언을 강하게 비판했다. 김씨는 “아버지는 문민정부 당시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계승하는 정부가 문민정부라고 규정하고 특별법을 만들어 전두환을 위시한 신군부세력을 단죄했다”면서 “1983년 아버지가 상도동에 전두환의 신군부에 의해 3년째 연금당할 때 5월 18일을 기해 23일 간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통해 5.18을 기념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김영삼 정부로부터 보수의 정통성을 찾겠다는 자유한국당이 5·18을 부정하고 매도하는 발언을 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인 셈이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10주기 추모도 낮게…약자의 손잡던 바보가 그립습니다

    10주기 추모도 낮게…약자의 손잡던 바보가 그립습니다

    노동 인권·민주화 등 현대사 질곡 관통 ‘세상 속 교회’ 기치로 민주적 가치 실현 분열된 사회, 자비·사랑으로 포용 실천 선종 후 ‘바보 정신’ 재단 통해 유지 이어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둘러싼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의 발언이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여야 4당이 문제 발언을 한 의원 제명을 요구하는 등 강력 반발하는 가운데 역사전쟁으로까지 치닫는 분위기다. 그 와중에 5·18 민주화운동 유족들과 광주 시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정치적 입장을 앞세운 발언이라지만 민주화운동 폄훼와 왜곡은 많은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그 5·18 민주화운동을 놓고 김수환 추기경은 이런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 “진실을 밝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에는 무슨 보복이나 원수를 갚는다는 차원이 아니라 역사 바로 세우기를 위해섭니다. 책임자는 분명히 나타나야 하고 법에 의해 공정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어디 5·18 민주화운동뿐인가. 김 추기경은 생전 약자 편에 선 채 불의에 강하게 맞선 쓴소리와 행동을 주저하지 않았다. “위정자도, 국민도, 여당도, 야당도, 부모도, 교사도, 종교인도 모두 이 한 젊은이의 참혹한 죽음 앞에서 무릎을 꿇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1987년 1월 26일 박종철군 추모 및 고문 추방을 위한 미사 강론 중 일부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일들이 생길 때마다 많은 이들은 김 추기경을 떠올린다. ‘김 추기경이 계셨다면 무슨 말씀을 하실까.’ 16일은 김 추기경이 선종한 지 10주기가 되는 날. 그날을 중심으로 추기경의 사랑과 배려 정신을 되새겨 실천으로 옮기자는 행사들이 이어질 전망이다. 추모 미사(16일 오후 2시 명동성당), 추모 사진전(23일까지 명동성당 지하 1898광장), 유품 전시회(16일~6월 20일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기념 음악회(18일 오후 8시 명동성당), ‘내 기억 속의 김수환 추기경’ 토크콘서트(17일 오후 5시 명동대성당 꼬스트홀)…. 그런데 이어지는 그 추모의 몸짓들이 요란하지 않다. 천주교의 최대 지도자, 시대의 사표, 민족의 양심…. 그 막중한 수식어들만 보더라도 성대한 행사가 있을 법한데 영 딴판이다. 그 조용하고 잔잔한 추모 열기를 놓고 천주교 서울대교구 신부들은 귀띔한다. “일회성 행사가 아닙니다. 그분의 가르침을 본받아 우리 삶 안에서 하루하루 살아 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그분의 가르침’은 무엇일까. 김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장을 맡은 30여년간 서울대교구는 48개 본당 신자 14만여명에서 197개 본당 신자 121만여명으로 무려 8배 넘게 교세가 불어났다. 그 종교적 위업에서 비롯된 존경과 추모만일까. 김 추기경의 어록을 다시 뒤져 보았다. “교회가 모든 것을 바쳐서 사회에 봉사하는 ‘세상 속 교회’가 되어야 한다”(1968년 서울대교구장 취임 미사), “항상 가난한 사람들 속에 들어가 살고 싶은 열망을 갖고 살았지만 그러지 못해 답답했다. 추기경이란 직책 때문이 아니라 용기가 없어서 그러지 못했다.”(1998년 서울대교구장 퇴임 소견)김 추기경은 그랬다. 인류 구원을 위해 존재하는 교회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약자들 편에 기꺼이 서야 한다고 믿었다. 단순히 종교지도자에 머물지 않고 현대 시민사회의 민주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앞장섰으며 각 개인의 양심을 일깨워 주고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그 인권과 노동, 생명 사랑의 족적은 너무 혁혁하다. 경제성장이 지상의 과제였던 1960, 1970년대 추기경은 산업화 과정에서 희생된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쏟았다. 1967년 5월 강화도 심도직물의 노조원 해고 사태 당시 김 추기경의 건의에 따라 주교회의는 사회 정의와 노동자 권익 옹호를 위한 교단 공동 성명서을 발표했다. 이 사건은 김 추기경이 처음으로 대사회 메시지를 던진 사건이다. 이것 말고도 유사한 노동 탄압 사건이 있을 때마다 추기경은 노동자 인권을 지키는 데 앞장섰다. ‘교회가 가난한 사람에게 더 적극적인 사목을 펼쳐야 한다.’ 서울 상계동 철거 사태 등 정부 주도의 반강제적 철거로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고 빈민으로 전락하던 무렵 추기경은 스스로 빈민들의 삶의 현장을 수시로 방문했다. 직접 도시 빈민 문제 해결을 위한 공청회에 참가해 당시 정부의 정책이 빈민을 양산하고 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1987년 4월 28일 도시빈민사목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지금의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는 바로 그 추기경의 의지를 담아 탄생한 단체다. 그렇게 현대 한국 천주교회를 이끈 주역이었지만 그는 교회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유신독재,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등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외면하지 않고 한가운데서 뚫고 나갔다. 1987년 6월 13일 밤 경찰력 투입을 통보하러 명당성당에 들어온 경찰 고위 관계자에게 던진 말은 아직도 쩌렁쩌렁하다. “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다음 시한부 농성 중인 신부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당신들이 연행하려는 학생들은 수녀들 뒤에 있습니다. 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그다음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십시오.”그런가 하면 1971년 12월 24일 전국에 TV로 생중계된 성탄 자정 미사에선 이렇게 소리쳤다. “비상 대권을 대통령에게 주는 것이 나라를 위해서 유익한 일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한테 막강한 권력이 가 있는데, 이런 법을 또 만들면 오히려 국민과의 일치를 깨고 그렇게 되면 국가안보에 위협을 주고 평화에 해를 줄 것입니다.” 또 1972년 10월 유신 개헌 소식을 로마에서 접하곤 큰소리로 외쳤다. “10월 유신 같은 초헌법적 철권통치는 우리나라를 큰 불행에 빠뜨릴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그랬던 추기경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장례식장에서 이런 기도를 남겼다. “이제 대통령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주님 앞에서 박정희를 불쌍히 여기소서.”스스로를 ‘바보’라 부르면서 ‘밥이 되고 싶다’고 외쳤던 김 추기경의 아호는 옹기다. “옹기는 먹는 것도 담지만 더러운 것도 담는다. 우리 자신도 여러 가지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웃었던 추기경의 유지와 정신을 이은 사랑과 봉사의 물결은 추기경 선종 이후 도도히 흐르고 있다. 박신언 몬시뇰이 설립을 건의해 김 추기경이 사재를 털어 2002년 설립된 옹기장학회와 김 추기경의 바보 정신을 이어받아 2010년 설립된 (재)바보의나눔은 대표적인 단체들이다. 갈라지고 분열된 세상을 사랑과 자비로 포용하려는 김 추기경의 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옹기장학회는 통일 이후 북녘 동포들에게 복음을 전할 사제 양성 목적으로 설립됐지만 현재 북한과 중국은 물론 아시아 선교에 뜻을 둔 신학생까지 지원 대상을 확대해 놓고 있다. (재)바보의나눔은 종교와 지역, 계층을 초월해 국내외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지원한다. 형편이 어려운 아동과 청소년 돌봄이 필요한 노인, 편견에 휘청이는 장애인과 다문화가정 등을 돕고 있다. ‘웃음과 유머를 잃지 않는 한편 신자와 국민을 위해 눈물 흘리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지도자.’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김 추기경이다. 물신주의 팽배와 경쟁 심화, 고통을 호소하는 가난한 사람들…. 그 어두운 모습 탓에 김 추기경이 더 그리워지는 게 아닐까.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김 추기경의 마지막 유언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5·18 단체들 한국당 항의 방문… “광주 영령 능욕, 석고대죄하라”

    5·18 단체들 한국당 항의 방문… “광주 영령 능욕, 석고대죄하라”

    김병준 비대위원장에 “공식 입장 밝혀라” 진상규명위 한국당 추천 몫 포기 요구도 金 “광주 비대위나 5·18 묘역 참배 검토” 국회에 3인 제명 절차·특별법 처리 촉구 민주당, 특별법 개정 관련 긴급 토론회 광주 시민단체, 3인 명예훼손 혐의 고소자유한국당 김진태·김순례·이종명 의원의 5·18 민주화 운동 모욕에 분노한 5·18 단체와 광주지역 시민단체 회원 200명이 13일 5대의 전세버스 등을 나눠 타고 국회를 찾았다. 대부분의 회원들이 국회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이들 중 대표 격인 20여명이 국회에 들어가 세 의원의 국회 제명 절차와 특별법 처리를 촉구했다. 논란의 진앙인 한국당의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과 마주 앉아 북한군 개입설에 대한 한국당의 공식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라는 요구도 했다. 하지만 문희상 국회의장과 여야 5당의 일부 대표는 방미 중이어서 만나지 못했다. 오전 9시 민주평화당은 장병완 원내대표 등 지도부 발언에 앞서 대표들에게 발언권을 내줬다. 김후식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장은 “민의의 전당 국회 내에서 범법자와 피의자를 데려다가 공당인 한국당이 공청회를 주최했다”고 성토했다. 한국당에서는 김 비대위원장과 김용태 사무총장이 무거운 표정으로 이들을 맞았다. 다른 정당 방문과 달리 격노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 이들은 북한군 개입설에 대한 당의 공식 입장, 당 징계와 국회 징계에 대한 입장, 반(反)5·18 처벌법 동참 여부, 진상규명위 한국당 추천 몫 포기 등을 요구했다. 특히 유봉식 진보연대 대표는 “광주 영령을 모욕하고 능욕한 데 대해 당 지도부가 광주에 직접 와서 무릎 꿇고 석고대죄 수준으로 대국민 사죄를 하라”고 촉구했다. 대표자들의 주요 발언을 받아 적은 김 비대위원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광주 시민들과 5·18 희생자, 유가족들께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했다. 또 “광주에 가서 비대위를 열고 5·18민주묘지를 참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다만 진상조사위 추천, 특별법 개정 동참 등과 관련해선 “나경원 원내대표가 출타 중이라 협의를 하지 못해 바로 말씀을 못 드려 죄송하다”고 했다. 이들은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 바른미래당 박주선 의원,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 등도 만났다. 민주당이 여야 4당이 공동으로 발의하기로 한 특별법 개정안에 대한 학계 의견을 듣기 위해 개최한 긴급 토론회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김재윤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북한군 개입설 지만원씨에 대해 2012년 대법원 무죄 선고는 명예훼손죄로 처벌하려 했기 때문”이라며 “독일 형법처럼 별도의 처벌 규정을 마련, 형법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반면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5·18에 대한 부정을 처벌한다면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에 대한 부정을 처벌하자는 주장이 당장 대두될 것”이라고 신중론을 밝혔다. 한편 광주지역 시민단체인 ‘오월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오사모)은 13일 서울중앙지검에 지만원씨와 한국당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을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오사모는 “이번 공청회에선 독일인 기자 힌츠페터가 북한 고정간첩이었다고 주장하며 사자의 명예마저 훼손했다”고 비난했다. 오사모는 고소장 제출 이후에도 북한군 투입 주장이 왜곡된 사실임을 입증하기 위한 자료와 증언을 수집·분석해 검찰에 제출할 예정이다. 5월 단체 등 광주지역 100여개 시민사회단체는 16일 오후 4시 광주 금남로에서 한국당 망언 의원 3명 퇴출과 역사왜곡처벌법 제정 등을 촉구하는 범시민 궐기대회를 갖기로 했다. 서울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5·18 모독 의원들 제명 어려운 이유…당 차원 징계 ‘물타기’ 지적도

    5·18 모독 의원들 제명 어려운 이유…당 차원 징계 ‘물타기’ 지적도

    5·18 민주화운동 모독 논란을 일으킨 일부 의원들에 대해 자유한국당이 뒤늦게 당 차원의 징계를 검토하고 나섰지만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3일 “한국당이 뒤늦게 사과하고 망원 의원들을 당 윤리위원회에 제소하겠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물타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면서 “한국당은 제명이나 출당 등 구체적인 징계 수위에 대해 언급이 없고 소나기를 피하고 보자는 식의 미봉책으로 시간을 끌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날 김병준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김진태·김순례·이종명 의원의 지난 8일 공청회 개최 및 망언에 대해 당 윤리위에서 엄중히 다룰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문제가 불거져 논란을 일으킨 지 나흘이 지나서야 나온 조치다. 당 지도부는 뒤늦게 심각성을 깨닫고 당 윤리위 회부 등에 나섰지만 처음엔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했다. 김병준 위원장은 지난 9일 “당내 다양한 모습의 하나”라고 말했다. 11일에도 “우리 당의 문제니까 다른 당은 너무 신경쓰지 않았으면 한다”고 일축하고 “보수정당 안에 여러 가지 스펙트럼, 즉 견해 차가 있을 수 있고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있는데 그것이 보수정당의 생명력”이라고 평가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도 10일 “일부 의원의 발언이 5·18 희생자에게 아픔을 줬다면 그 부분에 유감을 표시한다”면서 사과라고 하기 애매한 ‘조건부 유감 표시’로 망언 논란을 대했다. 한국당의 뒤늦은 대처에 여론은 이미 심각하게 악화됐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11일 오마이뉴스 의뢰로 전국 성인 남녀 501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 포인트)한 결과, ‘5·18 망언’ 의원 제명에 대한 찬성이 64.3%로 반대( 28.1%) 의견을 압도했다. 그러나 여론처럼 문제 의원들에 대한 제명이 실현되기는 쉽지 않다. 더불어민주당과 야3당의 공조를 통해 망언 의원들에 대한 제명안이 제출됐지만 국회 윤리특위가 징계안을 의결하는 데는 아무런 시한이 없다. 그래서 상당수 징계안이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되곤 한다. 윤리특위가 징계안을 의결해 본회의에 회부해도 의결 요건이 엄격하다. 국회의원을 제적하려면 헌법에 따라 재적 의원 2/3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20대 국회 298석 중 199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데, 자유한국당을 뺀 나머지 의석 수를 다 합쳐도 185석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의정사에서 국회의원에 대한 제명이 이뤄진 것은 1979년 신민당 총재였던 김영삼 의원이 유일하다. 이는 박정희 정권의 야당 탄압의 결과였다. 이후 18대 국회에서 여성 아나운서에 대한 성희롱 발언을 한 강용석 의원 제명안을 본회의에서 부결됐고, 19대 국회에서 성폭행 혐의가 제기된 심학봉 의원은 본회의 표결 전 자진 사퇴했다. 망언 논란을 일으킨 의원들이 자진 사퇴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 12일 이종명 의원은 “5·18 북한 개입 검증과 유공자 명단 공개가 이뤄지면 의원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다. 11일 김진태 의원도 유공자 명단 공개를 주장했고, 김순례 의원은 “사과한다”면서도 역시 “허위 유공자를 바로잡자는 취지였다”고 말하며 기존 주장을 고수했다. 당 차원의 징계도 이들 의원들의 의정 활동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당 차원 징계 중 가장 무거운 것은 당에서 내보내는 ‘출당’이다. 그러나 출당이 되더라도 의원직 유지에는 아무런 문제 없다. 또 ‘이부망천’ 발언으로 출당됐던 정태옥 의원도 지난달 21일 복당됐던 사례로 보아, 망언 의원들도 출당이 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슬그머니 복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남원 산림녹화탑 등 국가산림문화자산 지정

    남원 산림녹화탑 등 국가산림문화자산 지정

    산림청은 12일 전북 남원 향교동 산림녹화탑 등 5곳을 국가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했다.산림문화자산은 문화재로 등록돼 있지 않지만 조림 성공지와 숲 등 생태·경관·정서적으로 보존 가치가 높은 유·무형 자산으로 2014년 4월 홍릉숲 등 9곳이 첫 지정됐다. 이번에 신규 지정된 곳은 산림녹화탑을 비롯해 경남 하동 십일천송, 의령 신포숲, 강원 횡성 사방시설 유적, 충남 태안 소나무숲이다. 남원 산림녹화탑은 3단으로 구성된 석조물로 탑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로 ‘백세청청(白世靑靑)’이 새겨져 있다. 비문에는 산림녹화 유공자들의 뜻을 기리는 글이 담겼다. 하동 십일천송은 11그루의 소나무가 어우러져 하나의 큰 소나무 모양을 하고 있다. 수련 도인들만 갈 수 있다는 11천도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공생과 상생을 의미한다. 노전마을 입구 어귀에서 재앙을 막는 당산나무로 1900년에 식재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포숲은 ‘마을 동쪽을 가려야 좋다’는 풍수에 따라 조성된 숲이다. 숲을 이루는 소나무와 참나무 등의 수형이 우수해 경관이 아름답고 산책로 등이 조성됐다. 풍광을 보기 위한 방문객이 이어지고 있다. 횡성 사방시설 유적은 1936년 8월 수해로 인한 피해지 복구 현장이다. 국내 사방공사 중 제일 큰 규모로 보존가치를 인정받았다. 안면도 소나무숲은 적송으로 수려한 미를 자랑한다. 우산 모양의 수형이 장관을 이루면서 충남가 1978년 ‘소나무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관리하고 있다. 이번 지정으로 국가산림문화자산은 총 46건이 등록됐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크래커총이 진짜라면”… 금지의 시대 꼬집다

    “크래커총이 진짜라면”… 금지의 시대 꼬집다

    1960~1990년 주제… 13개국 100명 참가 탈식민지·독재·산업화 등 사회변화 유사“박정희 군사독재 시대였기에 (예술가들이) 하고 싶은 작업을 하지 못하는 시대였지만, 언제나 새로운 걸 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었어요.”(한국 전위 미술의 대가 김구림) “(수하르토)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제 입장을 대놓고 얘기할 수 없어서 총 모양 크래커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인도네시아 ‘신미술운동’ 주요 멤버 FX 하르소노) 금지의 시대에 무엇이라도 했던 예술가들. 외부로부터 이식한 게 아니라 철저히 자생적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겠다는 열망이 그들을 들끓게 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지난달 31일부터 시작한 ‘세상에 눈뜨다: 아시아 미술과 사회 1960s-1990s’ 얘기다. 전시를 열고자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도쿄국립근대미술관, 싱가포르국립미술관, 일본국제교류기금 아시아센터가 4년여 동안 조사·연구했다. 한국, 일본, 중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인도, 미얀마, 캄보디아의 아시아 13개국 주요 작가 100명의 작품 170여점이 이렇게 모였다.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아시아는 탈식민, 이념 대립, 베트남전쟁, 민족주의 대두, 근대화, 민주화운동 등 급진적인 사회 변화를 경험했다. 전시를 기획한 배명지 학예연구사는 “(국가들 사이에) 직접적인 상호 작용은 없었지만, 그들 간 예기치 않은 공명을 발견하는 데 중점을 뒀다”며 “국가별 전시가 아닌 초국가적인, 비교문화적인 방식으로서의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구조를 의심하다’, ‘예술가와 도시’, ‘새로운 연대’의 3부로 구성했다. 동시기 각국의 작가들이 비슷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유사한 표현 방식을 차용한 것을 보면 소름이 돋는다. 전시장 입구에서 한 무더기 핑크빛 총과 맞닥뜨린다. 인도네시아 작가 FX 하르소노의 ‘만약 이 크래커가 진짜 총이라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습니까?’다. 1965년 수하르토 통치 이후 1966년을 기점으로 표방한 이른바 ‘신질서’에 따라 인도네시아에서는 정치적 성격의 예술과 미디어는 늘 검열 대상이었다. 엄혹한 시대를 살았던 작가는 부지불식 간 일상에 잠입한 폭력성을 크래커 총으로 은유했다. 독재정권이라는 정치상과 더불어 소비 자본주의 침투라는 달라진 경제상에 대한 두려움도 엿보인다. 전시장 한쪽에는 ‘0엔’짜리 모형 지폐가 자리한다. 1000엔짜리 모형 지폐를 제작했다가 통화 사기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일본 작가 아카세가와 겐페이. 그는 이후 지폐에 ‘0’이라는 숫자를 의도적으로 삽입했다. 한국의 오윤 작가는 조선시대 불화를 차용해 물신주의를 ‘지옥’에 비유했다.(‘마케팅Ⅰ: 지옥도’) 군데군데 인간 군상을 살펴보는 재미가 있는 이 그림에서 펄펄 끓는 물에 내던져지는 화탕 지옥은 휘발유 제품명 ‘CX3’, 거대한 나무 판에 짓이겨지는 석개 지옥은 코카콜라와 연계된다. 소비사회를 상징하는 코카콜라의 메타포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옥도 옆에는 콘돔을 씌운 콜라 유리병이 자리한다.미술관의 큐레이팅을 따라가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해 보는 것도 전시를 즐기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가령 관객이 무대 위에 앉은 오노 요코의 옷을 자르는 영상 ‘컷 피스’는 당대에는 폭력과 전쟁(특히 베트남전쟁)에 대한 항의로 여겨졌다. 그러나 요즘엔 페미니즘 작업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전시 말미 ‘젠더와 사회’에서 만나는 ‘생각하는 누드’에서는 필리핀 여성미술연대 ‘카시블란’ 창시자인 줄리 루크가 제왕절개수술의 상처가 역력한, 모성 경험으로서의 자기 신체를 드러낸다. ‘폭력’과 ‘모성’이라는, 여성의 신체에 각인된 제각기 다른 키워드를 떠올리게 한다. 전시를 보면 “아시아 현대미술의 새로운 경향이 외부나 서구에서 영향을 받은 게 아니라 내부의 정치적 자각, 이전과 다른 예술 태도, 새로운 주체 등장을 따라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미술관 측의 설명을 이해할 수 있다. 제1·2전시실, 중앙홀을 아우르는 방대한 규모에 각 나라 역사를 되새기느라 작품들 앞에서 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다. 오랜 시간을 가지고 충분히 음미할 것을 추천한다. 오는 5월 6일까지. 글 사진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황교안 “박근혜 최대한 도왔다”…특검 수사기간 연장 불허 언급

    황교안 “박근혜 최대한 도왔다”…특검 수사기간 연장 불허 언급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 메시지’가 오는 27일 당 대표를 선출하는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유영하 변호사가 방송에서 ‘박 전 대통령이 황교안 전 국무총리의 접견 신청을 거절했다’고 말해 황 전 총리의 당권 도전에 ‘박근혜 홀대 논란’이 변수가 될 것인지 여부가 주목받고 있다. 앞서 유 변호사는 지난 7일 TV조선 ‘시사쇼 이것이 정치다’에 출연해 “박 전 대통령이 언젠가 제가 접견을 들어갔을 때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만나고 싶다는 뜻을 교도소 측에 전해왔지만 거절했다’고 말했다”면서 “당시 (박 대통령이 황 전 총리와의 접견을) 거절한 이유도 말했지만 제가 이 자리에서 밝힐 수는 없다”고 말했다. 유 변호사는 또 “박 전 대통령 구속영장이 발부된 2017년 3월 31일부터 수차례에 걸쳐 교도소 측에 대통령의 허리가 안 좋으니 책상과 의자를 넣어달라고 부탁을 했다”면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 7월 21일 책상과 의자가 반입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유 변호사는 “당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보고를 받았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당대회 당 대표 선거 출마를 선언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난 8일 경남 창원의 한 카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유 변호사의 이 인터뷰를 언급하면서 “이번에 (박 전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한 것은 배신이라는 측면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의 정치 생리상 배신자는 용서치 않는다”는 말로 황 전 총리를 겨냥했다. 이에 황 전 총리는 “박 전 대통령이 어려움을 당한 것을 보고 최대한 잘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맞섰다. 그는 9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찾은 뒤 ‘박근혜 홀대 논란’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같이 말하면서 특검 수사를 언급했다. 그가 언급한 특검 수사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를 가리킨다. 황 전 총리는 “실제로 특검 수사가 진행 중일 때 1차 수사를 마치니 특검에서 수사기간 연장을 요청했다”면서 “그때 제가 볼 땐 수사가 다 끝났으니 이 정도에서 끝내야 한다고 봐서 수사기간 연장을 불허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것도 했는데, 지금 얘기하는 그런 문제보다 훨씬 큰일들을 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황 전 총리는 또 2차 북미정상회담(27~28일)과 같은 날에 열리는 전당대회 일정에 대해 “당에서 결정하는 대로 따르겠다. (다른 후보들의 뜻대로) 제가 양보할 수도 있지만, 당이 정하는 것 아니겠나”라면서 사실상 오는 27일 전당대회를 예정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북미회담에 앞서 기억해야 할 ‘명분없는 전쟁’

    북미회담에 앞서 기억해야 할 ‘명분없는 전쟁’

    2월 6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새해 국정연설에서 베트남에서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고 밝혔다. 알려진 대로라면,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 기지였고, 19세기 말 프랑스 식민정부의 주요 항구였던, 이제는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여행지 다낭으로 곧 세계의 눈과 귀가 몰릴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이 아니더라도 베트남은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나라 중 하나다. 베트남전쟁으로 한동안 멀리 있었지만 해외여행 붐으로, 최근에는 베트남 축구를 반석 위에 올려 놓은 박항서 감독의 인기 덕에 마치 형제의 나라처럼 느껴진다. 관련 책들도 많이 출간되었다. 여행서들은 옥석을 가리기 어렵고, 쌀국수로 대표되는 요리 관련 책들도 부지기수다. 베트남 전쟁과 관련한 몇 권의 책도 눈에 띄는데, 그중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베트남 전쟁’이 읽음 직하다. 박 교수가 베트남 전쟁에 주목한 가장 큰 이유는 우리 현대사에 적잖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1964년 첫 파병 이후 1973년 철수할 때까지 무려 32만명이 넘는 한국군이 그곳에 갔다. 이 가운데 무려 5000여명이 전사했고, 고엽제 후유증으로 지금도 1만명 이상이 고통 받고 있다. 한국은 베트남 전쟁의 최대 파병 국가였다. 당시 가장 가까운 우방이었던 영국과 프랑스도 참전하지 않은 전쟁이었다. 여기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한국의 군부와 대표였던 박정희가 “정권 승인을 받기 위한 조건 중 하나로 한국군 파병을 먼저 제시했다”는 사실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은 베트남 내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적이 북베트남인지, 베트콩인지, 혹은 베트콩을 지지하는 남베트남 사람들인지 규정하지 못하고 시작한 전쟁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고, 무고한 사람들만 죽어갔다. 우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민간인 학살은 어쩌면 베트남 전쟁 시작과 함께 예정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박 교수는 우선 베트남 전쟁과 관련한 미국의 상황을 면밀하게 관찰한다. 공산주의의 도발을 막는다는 사명감과 적절한 보상을 받기 위해 참전한 청년들은, 전후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명분 없는 전쟁의 뒷감당은 참전 용사들의 몫이었다.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가해자였을지 몰라도, 그들 역시 고엽제 후유증과 전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국가는 그들에게 싸워야 할 이유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 개개인의 안보도 지켜주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의 안보를 위협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그들 자신과 싸워야 했다.”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우리 청년들도 트라우마와 싸워야 했다. 하지만 정권은 승승장구했다. 전쟁 특수로 안정적 집권이 가능해진 박정희는 곧 유신을 선포했고, 독재의 토대를 쌓는다. 전쟁 특수는 재벌의 기반도 튼튼하게 해주었는데, 이즈음 그들은 부동산 투기를 본격화했다. 청년들이 목숨 걸고 싸운 보상은 정권과 재벌의 몫이었다. 1970년대 한국은 베트남 파병 한국군과 기술자들로 다소 풍요로워진 시대를 맞았지만, 동시에 자유와 권리가 가장 제한되던 시대였다고 박 교수는 지적한다. 베트남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한반도의 앞날도 좀 더 밝아질 것이다. 이미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는 돈독하다. 그럼에도 베트남 전쟁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꾸준한 반성만이 우리의 좌표와 나아갈 방향을 정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장동석 출판평론가·뉴필로소퍼 편집장
  • ‘경제 브레인’ 김만제 전 부총리 별세

    ‘경제 브레인’ 김만제 전 부총리 별세

    김만제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 31일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85세. 김 전 부총리는 경북 구미 출신으로 경북고를 졸업한 뒤 미국 덴버대 경제학 학사, 미국 미주리대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재직 중 정부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수립에 참여하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발탁됐다. 1971년 경제 개발의 산실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초석 원장을 맡았다. 이어 한미은행 초대 은행장과 재무부 장관을 거쳐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지냈다. 공복을 벗은 뒤에는 고려증권 경제연구소 회장, 삼성생명 회장, 포항제철(현 POSCO) 회장 등 최고경영자(CEO)의 길을 걸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대구 수성갑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정계에 진출한 뒤 정책위의장을 맡는 등 ‘경제 브레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장례는 KDI장으로 진행된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영결식은 2일, 장지는 대전현충원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최구혜씨와 아들 성우, 딸 지영·지수, 사위 윤종수·김용성, 며느리 함지은씨가 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KBS 추적 60분, 박정희 정권 강남 개발 의혹 추적

    KBS 추적 60분, 박정희 정권 강남 개발 의혹 추적

    KBS는 1TV ‘추적 60분’은 다음달 1일 박정희 정권의 강남 개발 이면에 숨어있는 의혹을 파헤친다고 31일 밝혔다. 방송은 박씨 성을 가져 ‘박 회장’으로 불리는 부동산 재벌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 인물은 강남에 1만여 평의 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제작진은 박 회장이 추정 시세 1조원에 이르는 땅을 가지고 있지만 건물 16채 중 11채를 비워두고 있다며 그의 수상한 행보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 중심에 박 전 대통령이 있다고 주장한다. 박 회장은 30대 후반의 나이에 강남땅 1만평을 대량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중 박 회장이 매입한 삼성동 임야 9000여평 땅값은 4000만원이었다. 당시 월급이 8만 1000원인 차관급 1급 공무원이 한 푼도 쓰지 않고 40여년을 모아야 겨우 손에 쥘 있는 거액의 돈이라고 제작진은 설명했다. 제작진에 따르면 1960년대 말 3.3㎡당 200원~400원이었던 강남의 땅값은 70년대 초엔 4000원~5000원으로 폭등했다. 관련 내용은 1일 오후 10시 50분 방송된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김경수 구속…야3당 “여론조작 사건 실체 규명해야”

    김경수 구속…야3당 “여론조작 사건 실체 규명해야”

    자유한국당은 30일 김경수 경남지사의 법정구속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당시 최측근인 김경수 경남지사의 댓글 조작 개입을 인지하고 관여했는지 여부가 중요한 쟁점으로 이에 대한 사법적 판단도 조속히 진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김 지사와 드루킹의 댓글 조작은 2017년 대통령 선거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대선 결과의 정당성에 대한 국민적인 의혹이 거세지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윤 대변인은 “김 지사가 댓글로 대선 여론을 조작하고 여론조작의 대가로 인사를 약속한 것은 민주주의를 유린한 중대한 범죄”라면서 “즉시 지사직에서 사퇴하고, 문 대통령은 김 지사의 대선 댓글 조작 개입을 인지하고 관여했는지 명백히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바른미래당도 이날 논평을 내고 “일탈한 정치인에 내려진 당연한 판결로, 검찰은 이제 불법 여론조작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화 대변인은 서면 논평에서 “불법 여론조작 사건은 여론을 왜곡해 민주주의 선거제도를 공격한 질 나쁜 선거범죄인만큼 10년 징역형도 부족하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김 대변인은 “드루킹을 처음에 모른다고 잡아떼던 김 지사는 앞에서는 정의를, 뒤에서는 조작을 한 민주주의 파괴자”라면서 “거짓 덩어리 김 지사는 부끄러움을 알고 사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김경수의 진짜 배후를 밝혀야 한다”면서 “불법 여론조작 사건에 관용과 성역이 있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민주평화당은 “민주주의 폄훼에 대한 사법부의 엄중한 판단으로 당연지사”라고 평가했다. 박주현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이같이 밝히고 “현직 지사에 대한 법정구속을 계기로 정치권은 정상적 민주주의로 거듭나고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를 얻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박 수석대변인은 또 “댓글조작과 매크로조작은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리는 반민주주의 행태”라며 “박정희 유신체제 이래 수십 년간 자행돼온 마타도어와 여론공작은 이제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열린세상]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 보내는 공개 제안/조성대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열린세상]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 보내는 공개 제안/조성대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국회 정개특위가 예정된 시한을 훌쩍 넘겨서도 선거제도에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야 3당, 시민사회, 학계의 연동형 비례대표제 요구에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유불리 계산에 바쁘다. 한국당은 아직 당의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지만 지역구를 도시는 중선거구제로, 농촌은 소선거구제로 재편하는 도농복합선거구제를 내심 바라는 듯하다. 중선거구제가 거대 정당의 동반 당선을 보장하는 방법임은 박정희 유신과 전두환 시대를 통해 이미 검증된 바 있다. 즉 한국당은 수도권 대도시에서는 민주당과 의석을 나눠 가지고 대구 등의 우세 지역에서는 의석 독점도 기대하는 눈치다. 금권 및 파벌 정치의 문제가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그러나 이 제도를 실행하고 있는 국가는 아프가니스탄, 인구 21만명의 바누아투와 인구 48명의 영국령 핏케언제도뿐이다. 민주당의 속내는 좀더 복잡한 듯하다. 지역구 200석과 비례대표 100석을 기준으로 권역별 변형 연동제 세 가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준연동제는 100석의 비례의석 중 50석은 연동형, 나머지 50석은 병립형으로 배분하는 안이고, 복합연동제는 비례의석 배분 기준을 ‘지역구 득표율+비례대표 득표율’로 삼는 안이며, 보정연동제는 지역구 득표 대비 의석의 차이를 비례의석으로 보정(추가 혹은 삭감)한 후 나머지를 병립형으로 배분하는 안이다. 계산식이 복잡한 이유는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소수 정당 배려제’가 될 우려가 있어 연동 수준을 낮췄다는 언급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듯이 연동형 비례제를 가미하나 거대 정당에 조금이라도 더 유리하게 만들려는 계산속 때문이다. 그런데 복합연동제와 보정연동제는 위헌 소지가 있는데, 비례의석 배분 기준에 지역구 득표율 혹은 지역구 의석을 사용하기에 지역구 선거에서 표출된 국민 의사를 비례대표 의석 배분의 기준으로 활용하면 위헌이라는 2001년 헌재 판결과 정면으로 부딪치고 있다. 준연동제만이 그나마 현실적이다. 현재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둘러싼 주요 갈등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제대로 된 연동형을 도입하려면 의원 정수 확대가 불가피하고, 반대로 현행 정수로 시행하려면 지역구 의석을 축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반대하는 국민 여론이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난망하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의원 정수 확대에 반대하는 여론이 59.9%에 달했다. 후자의 경우도 선거법 개정의 당사자인 현역 의원들의 저항이 불을 보듯 뻔한 상태다. 따라서 의원 정수 확대나 지역구 수 축소를 피하면서 연동형 비례제를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을 구해야 한다. 한 가지 대안으로 영국의 런던, 스코틀랜드, 웨일스 의회가 실행하고 있는 영국식 의석추가형 비례제를 들 수 있다. 각 정당의 지역구 의석수와 비례대표 정당 득표를 기준으로 비례의석을 돈트식으로 할당해 나가는 제도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각 정당의 지역구 당선자수가 결정되면 각 정당의 비례대표 정당 득표수를 ‘지역구 당선자수+1’로 나눈다. 이때 ‘1’을 더하는 이유는 배당될 추가 의석을 의미한다. 그 결과 각 정당의 1석당 평균 비례대표 정당 득표수가 나온다. 이때 비례의석 1석을 평균 득표수가 가장 많은 정당에 배분한다. 다음은 새로 조정된 의석수를 기준으로 다시 평균 득표수를 계산해 추가로 비례 1석을 배분한다. 계산을 반복하며 비례의석을 끝까지 배분해 나가면 각 정당의 총의석수가 결정된다. 이 제도는 의원 정수를 확대하지 않아 국민의 원성을 사지 않고, 지역구 수를 줄이지 않아 현역 지역구 의원들의 기득권을 침범하지 않는다. 심지어 적은 수의 비례의석을 가지고도 비례성을 향상시켜 군소 정당들도 만족할 만하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물론 비례의석이 많을수록 각 정당의 1석당 평균 정당 득표수는 동일하게 수렴돼 비례성은 증가한다. 그동안 한국 선거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득표 대비 의석의 불균형에 있었다. 이를 시정하는 그 어떤 노력도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정개특위는 거대 여당의 유불리 계산, 의원 정수 확대에 대한 국민적 불신, 그리고 현역 지역구 의원의 기득권이라는 복잡한 요인들이 얽히며 교착에 빠져 있다. 서로 한발씩 물러서는 타협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갈등하는 국회 정개특위에 보내는 공개 제안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갈등하는 국회 정개특위에 보내는 공개 제안서

    국회 정개특위가 예정된 시한을 훌쩍 넘겨서도 선거제도에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야 3당, 시민사회, 학계의 연동형 비례대표제 요구에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유불리 계산에 바쁘다. 한국당은 아직 당의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지만 지역구를 도시는 중선거구제로, 농촌은 소선거구제로 재편하는 도농복합선거구제를 내심 바라는 듯하다. 중선거구제가 거대 정당의 동반 당선을 보장하는 방법임은 박정희 유신과 전두환 시대를 통해 이미 검증된 바 있다. 즉 한국당은 수도권 대도시에서는 민주당과 의석을 나눠 가지고 대구 등의 우세 지역에서는 의석 독점도 기대하는 눈치다. 금권 및 파벌 정치의 문제가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그러나 이 제도를 실행하고 있는 국가는 아프가니스탄, 인구 21만명의 바누아투와 인구 48명의 영국령 핏케언제도뿐이다.민주당의 속내는 좀더 복잡한 듯하다. 지역구 200석과 비례대표 100석을 기준으로 권역별 변형 연동제 세 가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준연동제는 100석의 비례의석 중 50석은 연동형, 나머지 50석은 병립형으로 배분하는 안이고, 복합연동제는 비례의석 배분 기준을 ‘지역구 득표율+비례대표 득표율’로 삼는 안이며, 보정연동제는 지역구 득표 대비 의석의 차이를 비례의석으로 보정(추가 혹은 삭감)한 후 나머지를 병립형으로 배분하는 안이다. 계산식이 복잡한 이유는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소수 정당 배려제’가 될 우려가 있어 연동 수준을 낮췄다는 언급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듯이 연동형 비례제를 가미하나 거대 정당에 조금이라도 더 유리하게 만들려는 계산속 때문이다. 그런데 복합연동제와 보정연동제는 위헌 소지가 있는데, 비례의석 배분 기준에 지역구 득표율 혹은 지역구 의석을 사용하기에 지역구 선거에서 표출된 국민 의사를 비례대표 의석 배분의 기준으로 활용하면 위헌이라는 2001년 헌재 판결과 정면으로 부딪치고 있다. 준연동제만이 그나마 현실적이다. 현재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둘러싼 주요 갈등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제대로 된 연동형을 도입하려면 의원 정수 확대가 불가피하고, 반대로 현행 정수로 시행하려면 지역구 의석을 축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반대하는 국민 여론이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난망하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의원 정수 확대에 반대하는 여론이 59.9%에 달했다. 후자의 경우도 선거법 개정의 당사자인 현역 의원들의 저항이 불을 보듯 뻔한 상태다. 따라서 의원 정수 확대나 지역구 수 축소를 피하면서 연동형 비례제를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을 구해야 한다. 한 가지 대안으로 영국의 런던, 스코틀랜드, 웨일스 의회가 실행하고 있는 영국식 의석추가형 비례제를 들 수 있다. 각 정당의 지역구 의석수와 비례대표 정당 득표를 기준으로 비례의석을 돈트식으로 할당해 나가는 제도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각 정당의 지역구 당선자수가 결정되면 각 정당의 비례대표 정당 득표수를 ‘지역구 당선자수+1’로 나눈다. 이때 ‘1’을 더하는 이유는 배당될 추가 의석을 의미한다. 그 결과 각 정당의 1석당 평균 비례대표 정당 득표수가 나온다. 이때 비례의석 1석을 평균 득표수가 가장 많은 정당에 배분한다. 다음은 새로 조정된 의석수를 기준으로 다시 평균 득표수를 계산해 추가로 비례 1석을 배분한다. 계산을 반복하며 비례의석을 끝까지 배분해 나가면 각 정당의 총의석수가 결정된다. 이 제도는 의원 정수를 확대하지 않아 국민의 원성을 사지 않고, 지역구 수를 줄이지 않아 현역 지역구 의원들의 기득권을 침범하지 않는다. 심지어 적은 수의 비례의석을 가지고도 비례성을 향상시켜 군소 정당들도 만족할 만하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물론 비례의석이 많을수록 각 정당의 1석당 평균 정당 득표수는 동일하게 수렴돼 비례성은 증가한다. 그동안 한국 선거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득표 대비 의석의 불균형에 있었다. 이를 시정하는 그 어떤 노력도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정개특위는 거대 여당의 유불리 계산, 의원 정수 확대에 대한 국민적 불신, 그리고 현역 지역구 의원의 기득권이라는 복잡한 요인들이 얽히며 교착에 빠져 있다. 서로 한발씩 물러서는 타협안이 필요한 시점이다.글: 조성대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 [인터뷰 플러스] “간첩 잡던 열정으로 지역 봉사”

    [인터뷰 플러스] “간첩 잡던 열정으로 지역 봉사”

    망양휴게소는 외지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명소이기도 하지만 지역의 랜드마크로 지역민들에게 사랑받는 곳이기도 하다. 이호영 망양휴게소 대표는 휴게소가 있는 울진에서 장교로 군 생활을 하고 이후로도 지역에 터를 잡아 오랫동안 지역민들과 함께 일해 온 인사다. 군인으로 국가와 지역을 위해 일하던 열성은 현재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특권이란 남을 위해 베풀 수 있는 권한”이라고 그의 말은 헌신적인 삶의 흔적을 보여준다. 이호영 망양휴게소 대표의 삶을 짧은 인터뷰로 함께 돌아봤다. →망양휴게소가 경북 동해안의 명소로 유명합니다. 휴게소는 언제 어떻게 시작하신 건가요. -저는 원래 군인 출신입니다. 83년도에 군 생활을 마치고 나왔고, 그 직전에 이 휴게소를 준비해서 82년에 오픈했어요. 지금 있는 건물은 3년 전에 새로 지은 건물이고요. 제가 이곳 울진에서 보안대장을 하고 있었는데, 이 국도 공사를 하는 걸 보면서 당시 건축과장에게 이 자리에 대해 들었습니다. 풍경도 좋고, 뭣이든 해보고 싶더라고요. 혼자 설계도 맡기고 뛰어다녔지만 행정 절차에 막혀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박정희 대통령이 휴게소 마련에 대한 의견을 냈고, 오래 준비해서 시작하게 됐지요. →장교 출신이시라면, 군에선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울진 삼척이라고 하면 간첩들 많이 기억하시잖아요. 그런 간첩 잡는 작전 많이 했어요. 간첩 한창 올 때 여기 보안대장 했으니까. 그땐 젊어서 위험하고 무섭고 그런 것도 없었어요. 일단 간첩부터 잡겠다고 뛰었지. 헬기 타고 작전도 하고, 간첩이 산으로 도망간 걸 병력 데리고 직접 산 능선 타면서 잡고 그랬어요. 정말 국가를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사회가 많은 변화를 겪던 시기였지 않습니까. 지역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가요. -삼청교육대가 있었던 시기가 있었잖아요. 지역에서 경찰서 수사과장이 간사로 들어오고 지방청장이 있고, 제가 그 아래에서 실무를 했어요. 그때 나는 이 지역에 오래 있었으니까 지역 상황을 다 알았죠. 그런데 교육대로 보낼 대상이 아닌 사람들이 막 들어오는 거예요. 그렇게 유치장에 다 가둬놓고 그랬지. 그러면 제가 전부 불러내서 물어봐요. 자기들이 얘기를 쭉 하는데 들어보면 교육 대상이 되는 사람이 없더라고. 그러면 다 훈방으로 풀어줬어요. 꼭 보내야 할 사람들만 보내고, 안 그런 사람들은 많이 내보냈습니다. 이게 특권이라면 특권이었죠. 그런데 특권을 가진 사람들은 특권의식을 가져야 해요. 그 권한이 있으면 그 권한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국제인권옹호한국연맹에서도 활동하셨죠. 대구경북지구위원장을 지내셨는데, 그때도 일을 많이 하셨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연맹 자체가 어려울 때였죠. 단체에 빚도 있었고요. 재정적인 상황을 제가 다 해결했어요. 내가 영남대학교 경영대학원을 나와서 그 인맥으로 도움도 받았고, 그렇게 활성화가 됐죠. 운영 안정도 그렇지만 저는 특별히 청소년 보호수감소에 많이 갔어요. 교육도 하고, 살펴보기도 했죠. 인권은 서로가 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사회는 아직 멀었습니다. 서로의 존중이 부족해요. 자기에게 조금만 거슬리는 얘기만 해도 갈등이 생기죠. 존중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요즘 청소년 폭력이나 사회에서의 성폭력 같은 것들이 모두 인권의 문제 아니겠어요. →울진에서 오래 일해 오셨습니다. 끝으로 울진 향우 후배들과 지역민들에게 남기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지역 발전을 위해 서로 돕는 마음가짐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군에서는 결국 군수가 가장 어른 아닙니까. 군수를 비롯해서 기관장들을 잘 도와서 울진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면 좋겠어요. 지역민들이 잘 도와야 우리 울진이 발전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정태기 객원기자
  • [탐방 플러스] 동해안의 파라다이스… 풍경·운치 좋아 ‘추억 만들기’ 최적

    [탐방 플러스] 동해안의 파라다이스… 풍경·운치 좋아 ‘추억 만들기’ 최적

    동해안을 대표하는 깨끗하고 풍경 좋은 운치 있는 휴게소가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다. 휴게소 뒤의 풍경은 동해안 일대에서 보기 드믄 명소로 바다와 바로 맞닿은 망양휴게소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여, 동이 트면서 발하는 해돋이 명소로 소원을 빌기 위해 찾는 손님들은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게 된다. 바다와 절벽이 어우러진 자연경관이 일품이고, 이를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꼼꼼하게 손질한 시설도 훌륭하다. 바다 쪽으로 전망대가 갖춰져 있고, 바닷바람을 쐴 수 있는 스카이워크도 있다. 깨끗하게 지어진 지상 3층 규모의 건물도 국도 옆 휴게소에 대한 아쉬운 선입견을 깨기에 충분하다.이 망양휴게소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휴게소의 위치와 이름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정했다는 사실이다. 이호영 망양휴게소 대표의 회고에 따르면 1966년 7번 국도 준공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직접 브리핑을 들었는데, 현재 망양휴게소 자리의 경치를 보고 “여기에 휴게소를 지으면 좋겠다.”라고 지시했다. 또 군수에게 이곳이 어디냐고 물은 뒤, 예부터 부르던 ‘망양’이라는 지명을 따서 “망양휴게소라고 하나 짓자”고 이름을 정했다. 현재 망양휴게소는 행정구역상 망양리에서는 조금 벗어나 있다. 박 대통령이 직접 방문하기 전부터 이호영 대표는 이 자리에 휴게소를 짓고자 준비하고 있었다. 오히려 당시 이호영 대표가 청와대에서 근무하던 지인에게 대통령 방문이 가능한지 문의하기도 했다. 산을 타고 지나는 국도 옆에 휴게소를 지으려면 대통령이나 산림청장의 허가가 있어야 했다고 이 대표는 당시를 회상했다. 실제로 그의 요청에 의해 대통령이 방문했는지는 알 수 없다. 동해안을 따라 주요 지역을 잇는 7번 국도였기에 대통령이 준공일에 돌아보는 것은 납득할 만한 일이다. 배경은 알 수 없으나 박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망양휴게소는 지금의 자리에 터를 잡게 됐다. 감성돔 낚시 포인트에 펜션까지 망양휴게소는 1981년에 지어져서 1982년부터 운영됐다. 이호영 대표는 군 장교 생활을 마치고 나와 휴게소 운영을 해왔다. 당시 건물은 지하 2층에 지상 1층으로 작은 규모였으나 3년 전 새롭게 지어 현재의 건물을 완성했다. 새로운 건물에는 지상 3층 규모의 운전자 휴게시설과 함께 절벽 밖으로 바다를 바라보는 지하 공간을 이용해 펜션이 생겼다. 바다낚시는 망양휴게소가 알려진 또 다른 이유다. 망양휴게소 앞 갯바위가 유명한 감성돔 낚시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휴게소인 만큼 먹을거리와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고기도 잘 올라오니 이만한 낚시 명소가 없다. 편히 쉴 수 있는 펜션까지 있으니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태기 객원기자 jtk3355@seoul.co.kr
  •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굿바이, 스카이캐슬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굿바이, 스카이캐슬

    지난해 말 완성된 문재인 정부 2기 행정부 장·차관의 면면을 보면 서울대 출신이 58명으로 전체의 40%에 달한다. 연세대(14), 고려대(11)를 더하면 스카이 출신은 60%에 가깝다. 박근혜 정부 6개월 행정부의 1급 이상 고위공무원 중 스카이 출신은 서울대 95명, 연세대 26명, 고려대 26명 등이었다. 과거 군사정권의 폭력에 질려서일까?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소위 엘리트 계급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어느 채널이든 교수, 변호사, 관료들이 패널로 나와 자신들의 지식을 만병통치약처럼 처방해 준다. 똑똑한 사람들이 일을 잘하겠지? 설마 군인들처럼 가두고 고문하고 함부로 죽이기야 하겠어? 막연하나마 우리 기대는 그랬을 것이다. 인기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 ‘코디’라는 직업명을 처음 들었다. 좋은 대학, 좋은 전공을 대가로 20억~25억원을 부른다는데 위의 통계를 보면 비싼 것도 아닌 듯싶다. 스카이를 나와야 저렇듯 나라에서 불러 주고 위인으로 추앙받을 수 있으니 왜 아니겠는가. 아니, 잘하면 20억원의 투자는 200억원, 2000억원으로 돌아오기도 하지 않을까. 그런데 정말 스카이가 엘리트이긴 한 걸까? 기대대로 일을 잘하기는 했을까? 사실 지난 정부 국정농단 사태로 드러난 엘리트 관료들의 민낯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엘리트로서의 자부심은커녕 무능하고 파렴치한 데다 비열하고 비겁하기까지 했다. 권력에 빌붙고 정의와 진실에는 눈을 감고 문제가 드러나면 잡아떼기 일쑤였다. 그런 자들이 극소수라는 일부의 주장도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국민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동안 행정부의 50%를 차지했다는 150명의 엘리트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을까? 사법부, 입법부의 엘리트들은 파탄을 막지 못한 것에 그 흔한 자괴감이라도 느끼고 있는 걸까? 정권이 바뀐 지금도 내 귀에는 고위공무원의 기본 덕목이 위장 전입, 논문 표절, 세금 탈루라는 얘기만 들린다. 박정희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가장 흔한 주장이 “이만큼 먹고사는 게 누구 덕인데?”이다.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 고문해도 먹고살게만 해주면 그만이라는, 이른바 ‘개·돼지론’이다. 그런데 무지막지한 군사정권이 지나고 말랑말랑한 엘리트 정권이 들어온 후 우리 살림은 정말 조금 나아지기는 한 걸까? 아니, 그보다는 오히려 나빠진 쪽이다. 지금 내가 보고 겪는 대한민국은 더도 덜도 아닌 ‘헬조선’ 딱 그 수준이다. “이게 나라냐?”는 자괴감 섞인 한숨도 여기저기서 새어나온다. 대학은 정치와 돈만 좇고(법을 악용해 시간강사마저 내쫓는 꼴이라니), 젊은이들은 희망을 잃고 비정규직과 최저임금 속에서 허덕인다. 남녀는 서로를 증오하고 기득권자들은 부는 물론 직업까지 세습한다(심지어 연예인과 노동자까지 대물림이다). 부는 한쪽으로 몰리고 어두운 곳은 더욱 어두워졌으며, 사회 갈등은 극에 달했다. 바로 엘리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이다. 오죽하면 유시민 작가가 엘리트를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권리만 누리는” 존재들이라며 비난했겠는가. 개구리 왕국은 무능한 막대기 왕을 쫓아내고 강력한 황새를 왕으로 맞이했다. 우리는 그 반대인 줄 알았을 것이다. 폭력보다는 이성이 지배하는 세상, 합리와 상식이 통하는 세상…. 우리가 엘리트에게 기대한 세상은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 기대를 저버리고 자본, 권력과 결탁해 제 배를 불리는 데만 힘썼다. 더 교활해지고 더 잔인해지고 더 탐욕스러워진 건 아닌가. 엘리트의 실험은 실패했다. 탐욕과 이기심으로 세운 개구리 왕국의 ‘캐슬’은 무너져야 한다. 우리가 그들의 얘기를 들을 때가 아니라 그들이 우리 얘기를 들을 때다. 고 김용균과 심석희가 얘기하고 비정규직과 편의점 알바, 시간강사가 나서야 한다. 적어도 우리 대통령은 엘리트가 아니라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 사회 약자들의 얘기를 들으며 여기까지 오신 분이 아니던가?
  • [그때의 사회면] 사라진 노포, 남은 노포/손성진 논설고문

    [그때의 사회면] 사라진 노포, 남은 노포/손성진 논설고문

    서울 을지면옥 재개발 논란이 뜨겁다. 여러 노포(老鋪·오래된 가게)들은 개발 바람에 사라졌지만 옛 자리를 지키고 있거나 옮겨서 명맥을 잇고 있는 노포들도 아직 많다. 1971년 매출 기준 순위를 보면 ‘생과자’ 부문에서 뉴욕제과가 1위다(경향신문 1971년 3월 3일자). 1949년 부산 광복동에서 창업한 뉴욕제과는 1953년 서울 명동으로 이전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뉴욕제과 빵만 먹는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1974년 강남 개발 초기에 강남역 사거리에 직영점을 열었다. 명동점은 2000년 부도를 냈으며, 강남점은 2013년 문을 닫고 64년 역사를 마감했다. 2위 태극당과 3위 고려당은 프랜차이즈 공세와 맞서며 강북과 강남에서 영업하고 있다. ‘한식’ 1위는 한일관이다. 종로1가 한일관은 2008년 재개발로 압구정동으로 옮기고 6개의 지점을 운영하는 등 사업을 확장했다. 1939년 화선옥으로 개업했다가 광복과 함께 한일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음식점을 ‘옥’(屋)이라 부르는 것은 일본식이라고 한다. 1946년 문을 열어 가장 오래된 냉면집 우래옥은 6위에 올라 있다. 을지로 4가의 본점은 그대로 있고, 대치동에 지점이 있다. ‘요리점’(요정) 1위 오진암이 시대 변화로 철거된 것은 벌써 9년 전이다. 서울에서 오래된 순위를 따지면 한일관은 8위, 우래옥은 10위다. 을지면옥이 노포라지만 1985년 개업해 사실 역사가 34년밖에 안 된다. 1904년 문을 연 이문설렁탕이 최고(最古)의 노포다. 김두한이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손기정이 단골손님이었다고 한다. 두 번째가 형제추어탕(1926년 개업)이다. 형제주점에서 형제추탕, 형제추어탕으로 이름이 세 번 바뀌는 동안 위치도 현재 평창동까지 세 번 옮겼다. 세 번째 용금옥(1932년)과 네 번째 은호식당(1932년)은 다동과 남대문시장에 건재하다. 조병옥, 변영로 등 숱한 정치인과 문필가들이 드나든 용금옥은 원래 옛 코오롱빌딩 자리에 있었고 규모가 100평에 이르렀다. 1960년대 중반에 다동으로 터를 줄여 옮겼다. 1973년 서울에 온 북한 박성철 대표가 “아직도 용금옥이 있습니까”라고 물어 더 유명해졌다. 용신동 곰보추탕(1933년)은 재개발과 후계자 부재로 몇 년 전 문을 닫았다. 유명한 해장국집 청진옥(1937년)과 곰탕집 하동관(1939년)은 재개발로 자리를 옮겼다. 유서 깊은 양념갈비집 조선옥(193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자주 찾았다는 양대창집 양미옥은 을지면옥과 함께 철거가 보류돼 현 위치를 지키게 됐다. 설렁탕집 문화옥(1952년)과 한식집 부민옥(1956년)도 전통을 지키고 있는 노포다. sonsj@seoul.co.kr
  •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은 박정희 대통령이 낸 기금으로 건립됐다.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은 박정희 대통령이 낸 기금으로 건립됐다.

    서울시가 지난 21일 광화문광장을 3.7배 넓게 새로 조성하겠다고 야심 찬 계획을 발표했다. 새 광장에 대한 시민의 기대감이 큰 만큼 조성의 큰 축인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 동상 이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보수진영은 “50년이 넘는 기간 시민을 지킨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의 상징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원순 시장은 연말까지 공론화 과정을 거쳐 시민 의견을 듣고 최종 결정하겠다고 밝혀 귀추가 주목된다. 현 광화문 사거리 이순신 장군 동상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68년 4월 27일 세워졌다. 당시 세종네거리 제1녹지대에서 건립된 충무공 조상은 박 대통령이 기금을 헌납했고 친필로 ‘충무공이순신장군상’이라고 세겼다. 전체 높이 17m로 당시 동양 최대 규모였다. 이날 제막식에는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이효상 국회의장, 김종필 건립위 총재, 장태화 서울신문 사장 등 각계 인사 200여명이 참석했다.원래 세종로 한가운데 녹지대에는 미술대학생들 작품인 37기의 석고 위인상이 세워져 있었다. 서울시는 새로운 도시계획을 세우고 형상이 초라하고 훼손된 석고상을 철거했고, 서울신문이 나서 동상 건립을 추진했다. 제1회 5.16 민족상 산업부문 장려상 수상자인 이한상 풍전산업 사장이 상금 50만원을 서울신문에 기탁하면서 사업이 구체화됐다. 1966년 8월 11일 ‘애국선열 조상 건립위원회’가 발족하면서 초대 총재에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추대됐다. 위원회는 조상을 건립할 인물을 선정하기 위해 각계 인사 12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고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을 1968년에 세웠다. 세종대왕 동상은 김종필 총재가 기금을 헌납했다. 이순신 장군 동상 등 1기당 건립자금은 현재 가치로 수십 억원대가 넘는 2000여만원이 들었다. 광화문 사거리에 세워진 이순신 장군 동상은 2010년 11월 균열 등 보수를 위해 잠시 자리를 떠나긴 했지만 세워진 이후 50년 동안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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