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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준표 “부끄러워도 내 부모…MB·朴 공과 안고 심판받자”

    홍준표 “부끄러워도 내 부모…MB·朴 공과 안고 심판받자”

    무소속 홍준표 의원은 22일 “이명박(MB)·박근혜 정권의 공과를 안고 더 나은 모습으로 국민들의 심판을 받을 생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 의원은 이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아무리 염량세태라고들 하지만, 부끄러운 조상도 내 조상이고 부끄러운 부모도 내 부모”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그분들과 역사를 단절시키면서까지 집권을 꿈꾸는 것은 위선이고 기만”이라며 “쿠데타로 집권하지 않은 이상 단절되지 않고 도도히 흘러가는 것이 역사. 지금 집권한 문재인 대통령은 폐족을 자처하던 노무현 잔여 세력이 뭉쳐 노무현 2기를 만든 것이지, 노무현 정권과 차별화하거나 역사단절을 외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홍 의원은 “역대 모든 정권이 전 정권의 공과를 토대로 집권했다”면서 “(자유한국당) 대표 시절 당사에 이승만·박정희·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진을 건 것도 그런 뜻”이라고 말했다. “모래시계처럼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 앞서 지난 17일 홍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시간이 지나면 텅비는 모래시계처럼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며 “레임덕을 막을려고 몸부림 치면 칠수록 권력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섭리로 받아 들이시고 마무리 국민통합 국정에만 전념하시라”고 조언하며, “자신의 업보로 될 두 전직 대통령도 이젠 사면 하시고 마지막으로 늦었지만 화해와 화합의 국정을 펼치시길 기대한다”고 전한 바 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박정희 재단 “광주비엔날레 작품 전시 중단“ 재단 “그럴 수 없다”

    박정희 재단 “광주비엔날레 작품 전시 중단“ 재단 “그럴 수 없다”

    “박정희 관련 전시물을 철거해라” VS “창작의 자유일 뿐이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이 광주비엔날레 출품작의 전시 중단을 요구하자 비엔날레 재단은 “그럴 수 없다”고 맞서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22일 광주비엔날레 등에 따르면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은 최근 광주비엔날레에 전시중인 이상호의 ‘일제를 빛낸 사람들’(417×245㎝)이 ‘악의적 정치 선전물’이라며 전시 중단을 요구하는 우편물을 발송했다. 이 작품은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인물과 대통령직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회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수록자 등 92명을 포승줄에 묶인 모습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모습도 포함돼 있다. 이상호 작가는 군사정권 시절인 1987년 걸개그림 ‘백두의 산자락 아래 밝아오는 새날이여’를 제작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광주비엔날레는 이에 대해 “특정 단체의 중단 요구와 관계없이 비엔날레가 끝나는 오는 5월 9일까지 전시를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지역 예술인들도 성명서를 내고 전시중단 요구 철회를 촉구했다. 박정희기념재단 측은 “이상호 화가의 작품이 박정희 대통령과 대한민국 산업화의 주역들을 왜곡·폄훼하고 있다”며 “광주비엔날레가 끝까지 작품을 전시하면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광주비엔날레 관계자는 “전시 내용은 예술감독의 고유 영역이고 작가들의 창작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며 “전시를 중단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예술인 260명도 최근 발표한 성명을 통해 ‘박정희 기념재단은 예술표현의 탄압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친일 단죄 작품은 역사의 모순을 바로잡기 위한 예술적 활동”이라며 “작가의 예술활동을 탄압하지 말고 전시 중단 요구를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집값에 찔린 ‘도시의 허파’ 가쁜 숨… 미래세대 숨 쉴 틈조차 없다

    집값에 찔린 ‘도시의 허파’ 가쁜 숨… 미래세대 숨 쉴 틈조차 없다

    도시의 ‘허파’라는 개발제한구역(이하 그린벨트)이 사라지고 있다. 우리의 다음 세대를 위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필수인 그린벨트에 아파트와 산업단지가 들어서는 등 녹지 공간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개발과 보전이라는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과연 ‘집값을 잡겠다’는 정치 논리로 그린벨트를 파괴하는 정부의 정책이 옳은가는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그린벨트는 지난 20년 동안 29% 이상 사라졌다. ‘사유재산권 제한’ 여론에 밀려 한번 해제되기 시작한 그린벨트는 ‘구멍 뚫린 둑’처럼 각종 명목으로 계속해서 풀리며 도입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그린벨트는 도시가 지나치게 비대해지는 것을 막고 주변 녹지를 보전하기 위해 개발을 엄격히 제한하는 지역을 말한다. 19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대한민국 정부는 1971년부터 1977년까지 전 국토의 5.4%, 서울시 면적(605㎢)의 9배에 해당하는 5397.110㎢를 그린벨트로 지정해 개발을 엄격하게 제한해 왔다. 1945년 8·15 해방 이후 남한 지역은 급격한 인구 증가와 탈농촌 현상을 경험했다. 1970년대 우리 경제가 고도 성장을 하면서 서울 등 전국 대도시는 교통·주거·상하수도·전기 등의 기본적인 인프라 부족에 시달렸다. 과부하에 걸린 서울 등 도시로 몰려든 지방 이주민들이 도시 외곽의 녹지 공간에 자리잡으면서 도시 황폐화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1년부터 7년 동안 여덟 차례에 걸쳐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 14개 도시권을 그린벨트로 지정했다.그러나 그린벨트를 처음 지정한 이후 2020년 12월 말 기준 당초 지정 면적 대비 29%에 해당하는 1567.943㎢가 해제됐다. 이는 서울시 면적의 약 2.6배, 여의도 면적(4.5㎢)의 345배에 해당한다. 정부가 그린벨트를 본격적으로 해제하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정부 때부터다. 정부는 2000년 개발제한구역특별법 제정 등 제도적 정비를 시작으로 2001~2003년 7개 중소 도시권 그린벨트를 전면 해제했다. 이후 수도권, 부산권, 울산권 등 전국 7개 대도시 권역도 부분적으로 풀어 줬다. 이제 강원, 전북, 제주 등에서는 남아 있는 그린벨트가 모두 해제됐다.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과학적인 환경평가 실시로 보전 가치가 없는 지역은 해제하고 보전이 필요한 지역은 국가가 사들이겠다”며 그린벨트 해제를 대통령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다. 철옹성 같던 그린벨트 해제를 검토하게 된 배경은 ‘사유재산권 침해’에 따른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컸기 때문이다. 정부는 산업단지 개발과 외국인 투자 활성화를 이유로 그린벨트를 풀고 나선 것인데, 당시 환경 단체를 중심으로 반발이 심했다. 이후 정부는 계속해서 그린벨트를 풀었다. 해제 사유도 점차 다양해졌다. 이제는 치솟는 아파트값을 잡겠다며 정부가 앞장서서 그린벨트를 없애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2018년 9월 수도권 그린벨트 일부를 공공택지로 개발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이후 수도권 공공택지 개발 예정지에는 그린벨트가 어김없이 포함돼 있다. 정부가 그린벨트 도입 취지를 잊고 여전히 팽창적 도시정책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3기 신도시 조성은 집값을 잡지 못한 정부가 국민들에게 약속한 주택 공급 물량을 맞추기 위해 수도권 지역의 ‘그린벨트 희생’을 전제로 한 것이다. 당시 정부는 보전 가치가 낮은 3등급 이하 개발제한구역을 해제하는 방안을 서울시와 지속적으로 협의하되 불가피할 경우 국토교통부 해제 물량의 일부를 직접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한 데다 서울과 1기 신도시 사이 지역에 330만㎡(약 100만평) 이상 면적의 대규모 택지 4~5곳을 조성해 약 2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번에 택지로 공급되는 지역은 대부분 그린벨트 지역이다. 과거 정부는 주로 국민임대, 지역 현안사업, 집단취락, 보금자리 등의 이유로 그린벨트 해제를 추진했는데, 이번에 정부가 밝힌 이른바 ‘수도권 3기 신도시’와 서울 그린벨트 해제 등이 이뤄지면 이 면적은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역대 정부에서도 대규모 국책사업이나 지역 현안사업을 추진하며 그린벨트를 푼 경우가 많다. 노무현 정부 당시 국민임대주택단지, 이명박 정부의 보금자리주택단지, 서울 송파구와 경기도 성남·하남 등에 걸쳐 있는 위례신도시 조성 등이 그런 사례다. 국민의힘 김상훈(대구 서구) 의원은 “정부가 수도권 중심의 그린벨트 해제 정책을 이어 가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며, 자꾸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난개발 방식으로 주택을 공급하려는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정부가 공공의 목적을 이유로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걸 무조건 나무랄 수는 없다. 아무리 옳은 제도라 해도 시간이 흐르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그린벨트 해제로 가장 흔하게 내세우고 있는 명분이 ‘주거안정’이라는 점에서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더욱이 중앙정부가 이같이 도시 확장 정책을 취하면서 그린벨트를 계속해서 풀자 지방정부들도 그대로 모방하고 있다. 경기 구리시는 2027년 완공을 목표로 토평·수택동 일대 한강변 150만㎡에 민간투자 방식으로 도시개발사업을 추진 중이다. 한강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해제한 뒤 스마트 복합도시를 조성하는 사업으로, 박영순 전 시장이 추진하던 구리월드디자인시트의 대체 사업이다. 환경단체들은 상수원 및 그린벨트 보호를 이유로 그동안 강력히 반대해 왔으나, 박 전 시장 측이 끊임없이 사업 재개를 요구해 왔다. 부산시가 해운대구 반여·반송·석대동 일원에 추진하는 센텀2지구 도시첨단산업단지도 그린벨트 해제 후 추진하는 사업이다. 국토부 중앙도시계획위원회는 지난해 3월 센텀2지구 도시첨단산업단지 그린벨트 해제안을 조건부 승인했다. 2016년부터 추진해 온 센텀2지구 그린벨트 해제는 중앙도시계획위에서 네 차례나 보류됐던 안건이다. 홍익대 건축도시대학 유현준 교수는 “송도를 만들면 인천 다른 구도심에서 이사를 하기 때문에 바로 옆 도시가 슬럼화한다”면서 “농경지(그린벨트)를 밀어 신도시를 만드는 것보다 구도심을 재개발해 특색 있는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박정희 역사자료관’ 열려도 ‘논란자료관’

    ‘박정희 역사자료관’ 열려도 ‘논란자료관’

    우여곡절 끝에 ‘박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이 마침내 문을 연다. 경북 구미시는 오는 6월 말부터 박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을 시범 운영한다고 19일 밝혔다. 애초 지난달 문을 열 예정이었으나 “전시실 공사가 지연된 데다가 개관 기념 특별전을 준비 중에 있어 시기를 부득이 늦추기로 했다”고 시는 설명했다. 시범 운영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한 뒤 오는 9월 정식 개관할 계획이다. 역사자료관은 구미시가 2017년 11월 상모사곡동 소재 박 전 대통령 생가 옆 부지 6100㎡에서 착공, 총사업비 159억원을 들여 준공됐다. 지하 1층·지상 2층, 연면적 4358㎡ 규모다. 이 자료관은 상설·특별 전시실을 비롯해 수장고, 세미나실, 컴퓨터 검색대 등을 갖췄다. 특히 상설전시장에는 박 전 대통령이 외국 순방 때나 외교사절로부터 받은 선물, 생전에 사용했던 가구, 구미국가산업단지 자료 등 모두 313점이 전시됐다. 수장고에는 구미시 선산출장소에서 옮겨온 박 전 대통령의 유품 5400여점이 보관됐다. 역사자료관은 개관까지 명칭 및 용도 변경으로 진통을 겪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장세용 구미시장이 2018년 7월 취임한 뒤 건립을 취소하거나 다른 용도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됐다. 진보단체는 “박정희 기념사업은 전임 시장이 시민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사업을 추진한 적폐”라고 주장했다. 이에 보수단체는 “역사자료관을 없애는 것은 박정희 역사 지우기 과정”이라며 반발했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 역사지우기반대 대책위원회는 당시 8차례 규탄대회와 41일간 천막집회를 가졌다. 찬반 논란이 거세지자 구미시는 공론화위원회에 넘겨 결정하겠다는 방침을 정했으나 관련 조례가 시의회를 통과하지 못해 유보되는 등 논란이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있다. 사업비는 당초 200억원에서 41억원 삭감돼 추진됐다. 구미시는 역사자료관이 문을 열면 인근 박 전 대통령 생가, 새마을운동테마파크 등과 연계해 역사관광자원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개관식 때 박정희 역사자료관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고, 이후에 시민 의견 수렴과 문화체육관광부 협의 등을 거쳐 명칭을 변경할 수도 있다”면서 “이번 역사자료관이 어르신들에게는 옛 시절에 대한 향수를, 청소년들에게는 구미 근현대 산업화 과정을 배우는 교육 공간으로 자리매김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구미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박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 우역곡절 끝에 6월부터 시범 운영

    박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 우역곡절 끝에 6월부터 시범 운영

    ‘박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이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개관된다. 경북 구미시는 박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을 오는 6월 말부터 시범 운영한다고 19일 밝혔다. 애초 지난달 문을 열 예정이었으나 “전시실 공사가 지연된 데다가 개관 기념 특별전을 준비 중에 있어 시기를 부득이 늦추기로 했다”고 구미시는 설명했다. 시는 시범 운영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한 뒤 오는 9월 정식 개관할 계획이다. 역사자료관은 구미시가 2017년 11월 상모사곡동 소재 박 전 대통령 생가 옆 부지 6100㎡에서 착공, 총사업비 159억원을 들여 준공됐다. 지하 1층·지상 2층, 연면적 4358㎡ 규모다. 이 자료관은 상설·특별 전시실을 비롯해 수장고, 세미나실, 컴퓨터 검색대 등을 갖췄다. 특히 상설전시장에는 박 전 대통령이 외국 순방 때나 외교사절로부터 받은 선물, 생전에 사용했던 가구, 구미국가산업단지 자료 등 모두 313점이 전시됐다. 수장고에는 구미시 선산출장소에서 옮겨온 박 전 대통령의 유품 5400여점이 보관됐다. 역사자료관은 개관까지 명칭 및 용도 변경으로 진통을 겪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장세용 구미시장이 2018년 7월 취임한 뒤 건립을 취소하거나 다른 용도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됐다.진보단체는 “전임 시장이 시민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사업을 추진한 적폐”라고 주장했다. 보수단체는 “역사자료관을 없애는 것은 박정희 역사 지우기 과정”이라며 반발했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 역사지우기반대 대책위원회는 당시 8차례 규탄대회와 41일간 천막집회를 가졌다. 찬반 논란이 거듭되자 구미시는 공론화위원회에 넘겨 결정하겠다는 방침을 정했으나 관련 조례가 시의회를 통과하지 못해 유보됐다. 시는 개관식 때 박정희 역사자료관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고, 이후에 시민 의견 수렴과 문화체육관광부 협의 등을 거쳐 명칭을 변경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사업비는 당초 200억원에서 41억원이 삭감돼 추진됐다. 구미시는 역사자료관이 문을 열면 인근 박 전 대통령 생가, 새마을운동테마파크 등과 연계해 역사관광자원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시는 역사자료관 운영을 위해 전담 부서 및 인력(9명)을 확보했으며, 연간 예산 19억원을 운영비로 투입할 예정이다. 구미시 관계자는 “역사자료관이 어르신들에게는 옛 시절에 대한 향수를, 청소년들에게는 구미 근현대 산업화 과정을 배우는 교육 공간으로 자리매길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구미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지켜 보겠다”…홍준표, 문 대통령 퇴임 이후 우려한 까닭

    “지켜 보겠다”…홍준표, 문 대통령 퇴임 이후 우려한 까닭

    홍준표 무소속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을 요구하며 문 대통령의 퇴임 이후를 우려했다. 17일 홍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시간이 지나면 텅비는 모래시계처럼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며 “레임덕을 막을려고 몸부림 치면 칠수록 권력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섭리로 받아 들이시고 마무리 국민통합 국정에만 전념하시라”고 조언하며, “자신의 업보로 될 두 전직 대통령도 이젠 사면 하시고 마지막으로 늦었지만 화해와 화합의 국정을 펼치시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홍 의원은 “지켜 보겠다”며 글을 마쳤다. “대한민국 대통령 잔혹사는 끝임없이 계속” 홍 의원은 전날에도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임기 말을 향해 가는 문 대통령을 언급했다. 홍 의원은 페이스북에 “대한민국 대통령 잔혹사는 끝임없이 계속 되고 있다”며 역대 대통령의 사례를 들었다. 이어 홍 의원은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4.19 혁명으로 하야했고, 윤보선 전 대통령은 5.16 쿠테타로 하야를 당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피격돼 서거했고 최규하 전 대통령은 신군부에 쫒겨 나갔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군사반란등으로 사형선고까지 받았고, YS(김영삼 전대통령)는 IMF사태로 퇴임후 곤욕을 치뤘다”고 언급했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은 비극적인 자진(自盡)을 했고,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문 정권의 정치보복으로 아직도 영어의 몸이 돼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홍 의원은 “문 대통령도 이제 퇴임을 앞두고 있다. 다음 정권에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라고 물음을 던졌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최순실 이복오빠 베트남 교민 돈 횡령 혐의로 법정구속

    최순실 이복오빠 베트남 교민 돈 횡령 혐의로 법정구속

    최서원씨(개명 전 최순실)의 이복오빠 최재석씨가 베트남 교민들의 돈을 횡령한 혐의로 법정구속됐다. 16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동부지법 형사항소3부(부장판사 김춘호)는 업무상 횡령 혐의를 받는 최씨의 항소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최씨는 법정구속됐다. 최씨는 1심에서도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당시 재판부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피해자들과 투자금 반환 협의를 할 수 있도록 법정구속은 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최씨는 2016년 12월 한국에서 운영하던 회사가 부도가 나자 베트남으로 사업을 옮기는 과정에서 피해자 A씨를 소개받았다. 최씨는 2017년 9월 베트남에서 현지인 명의로 회사를 설립한 뒤 실질적인 운영을 맡았다. 최씨가 돈을 투자한 만큼 지분을 주겠다고 약속하자 A씨는 친구의 돈까지 총 11만5000달러(약 1억 3621만원)를 투자했다. 이후 사업이 어려워지자 최씨는 회사를 매각해 A씨의 투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최씨는 매각대금 중 체불임금을 정산하고 남은 11만32달러(약 1억2400만원)를 A씨에게 주지 않고 개인 용도로 썼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일부를 변제하는 등 징역 1년은 무겁다”면서도 “처분 대금을 마음대로 썼다는 점에서 실형은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최씨는 박정희 정부 시절 구국봉사단 총재를 지낸 고(故) 최태민씨의 아들이다. 2017년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하던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을 방문해 최태민씨 타살 의혹을 제기하며 사망 사건을 수사해달라고 의뢰하기도 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당직자에서 원내 사령탑까지…윤호중 신임 원내대표는 누구

    당직자에서 원내 사령탑까지…윤호중 신임 원내대표는 누구

    86그룹이자 이해찬계 친노·친문 핵심의 4선 의원전략·기획·협상통으로 21대 법사위원장 역임야당에 “쓰레기”, “지라시” 막말 논란도 당직자에서 원내 사령탑까지.  16일 더불어민주당 차기 원내대표로 선출된 윤호중 의원은 평민당의 당직자로 정치를 시작했다. 1963년생으로 서울대 철학과 재학 당시 학생운동을 한 86그룹이자 이해찬계 친노·친문 핵심의 4선 의원이다. 친문 2선 후퇴론에도 불구하고 169표 가운데 104표를 획득하며 결선투표 없이 바로 당선됐다.  초선 시절 원내대표 비서실장과 대변인을 역임했고, 재선 시절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간사를 맡았다. 2012년 당 사무총장을 맡으면서 24년만에 당직 말단에서 최고위직까지 올라갔다. 20대 국회에서 당 정책위의장을 지냈고, 21대 국회에서는 비법조인 출신으로 법사위원장에 선출돼 공수처법 개정안 등 민주당이 추진하는 검찰개혁 입법에 앞장섰다.  김대중 정부 청와대에서 민정수석비서관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실에서 행정관으로 일했고 정책위의장을 거친 이력으로 인해 ‘정책통’으로 꼽힌다.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 정책위의장으로서 민주당의 경제정책 수립에 관여했다.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정책본부장으로 대선 정책도 총괄했다. 현재는 검찰개혁TF의 위원장도 맡고 있다. 21대 총선 당시 공천관리위원장, 선대위 총괄본부장을 맡아 180석의 대승을 견인하며 ‘전략통’이라는 극찬도 받았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의 참패에도 불구하고 구리시장 선거를 승리로 이끌기도 했다. 당시 윤 의원은 구리시 지역위원장이었다. 2015년 안철수 의원의 탈당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의 디지털소통본부장을 역임하며 온라인 입당시스템을 만들었고, 당시 민주당의 권리당원이 150만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협상의 달인’이라는 평가도 있다. 18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를 이끌어냈다. 2020년에는 21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협의체에 여당 대표로 참여해 준연동형비례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21대 국회 출범 이후 막말 논란으로 수차례 입방아에 올랐다. 원구성 협상 당시 사무총장이었던 윤 의원은 상임위원장 자리를 의석수에 따라 나누는 관행에 대해 “그릇된 관행”이라며 강한 어조로 자기 주장을 펼쳤다. 윤 의원은 “지금은 절대적 안정적 다수인데, 13~20대 국회 운영 방식으로 돌아간다면 결국 동물·식물국회가 되는 그릇된 관행을 뿌리뽑지 못 한다”고 주장했다. ‘12대 국회 이전은 박정희, 전두환 정권 아니냐’는 질문에 “이승만·윤보선·장면 정부도 마찬가지”라며 “상임위원장을 나누는 관행은 여소야대 국회 또는 여당이 단순 과반일 때의 관행이지, 절대 다수당이 존재하는 상황의 관행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법사위원장으로서 회의 진행 방식도 논란이 됐다. 법사위 회의 중 동아일보 기자 출신인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에게 “지라시 만들 때 버릇이 나온다”고 비난했다. 공수처법 개정안 통과 당시에는 국민의힘이 윤 위원장에게 독재라고 항의하자 “평생 독재의 꿀을 빨더니 이제와서, 상대 정당을 독재로 몰아가는 이런 행태야말로 정말 독선적인 행태”라고 정색하고 비판했다.  4.7 재보궐선거 운동기간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 유세 중 “4월 7일 쓰레기를 잘 분리수거하셔야 한다”고 말했다. 윤 의원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를 향해 “내곡동 땅이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 거짓말하는 후보, 쓰레기입니까, 아닙니까. 자기가 개발계획 승인해놓고 ‘내가 안 했다’고 거짓말하는 후보, 쓰레기입니까, 아닙니까”라며 “쓰레기입니다”라고 주장했다.  통상 야당 몫으로 배정되는 법사위원장에 대한 강한 애착도 보였다. 전날 상대후보인 박완주 의원과 토론회에서 관련해 “국민의힘이 지금 법사위원장 자리를 포함한 7개 상임위원장 자리를 달라고 하고 있는데, 그것에 반대하신다면, 절대 재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저에게 몰표를 보내주시면 된다”라고 강조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광역·기초의원도 국민의 힘 압승

    광역·기초의원도 국민의 힘 압승

    4·7 전국 광역·기초의원 재보궐선거에서도 국민의 힘이 압승을 거뒀다. 국민의 힘은 광역의원 8곳중 6곳, 기초의원 9곳중 6곳에서 당선자를 배출했다. 서울·경기도·충남북에서는 싹쓸이하는 기염을 토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역 기반인 호남에서만 가까스레 체면치레를 했다. 순천시·고흥군 광역의원 2명, 김제시·보성군 기초의원 2곳 등 4명이다. 당선자중에는 ‘박치기왕’ 김일의 외손자가 눈길을 끌고 있다. 보성군의원 선거에서는 불과 5표차로 당락이 결정되기도 했다. 전남 고흥군 도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박선준(42·더불어민주당) 씨는 생전에 ‘박치기왕’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고(故) 김일(1929∼2006년) 선생의 외손자다. 김일 선생의 손자 9명중 유일하게 고향인 고흥에서 생활하고 있다. 고흥 녹동에 살고 있는 둘째 딸 김순희(73)씨의 아들이다. 8일 오전 6시부터 읍내를 돌아다니며 감사 인사를 전한 박 의원은 “어릴때 무릎에 앉혀 놀이를 해주시고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예뻐해주셨던 기억이 항상 떠오른다”며 “20대때 신라호텔에서 첫 봉급을 받고 할아버지에게 도미요리를 사드렸는데 맛있게 드셨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웃음을 보였다. 박 의원은 “할아버지가 사인을 하시면 ‘美德良心(미덕양심)’이란 글자를 한자로 꼭 같이 쓰셨던 의미를 되새기겠다”며 “아름다운 덕행은 바른 마음에서 나온다는 말씀을 실천하는 정치인이 되겠다”고 포부를 보였다. 고흥에서 태어난 박 의원은 초등학교 때 서울로 올라간 후 요리를 전공한 뒤 2004년에 아버지가 하던 사업을 물려받기 위해 귀향했다. 그는 “외할아버지가 고향 금산에 가뭄이 심하자 사비 수천만원을 들여 양수기 수백대를 지원하고, 부탁을 들어주겠다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고향에 전기를 놔달라고 건의했던 것처럼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치에 임하겠다”고 다짐했다. 기초의원 2개 선거구에서는 손에 땀을 쥐는 승부가 펼쳐졌다. 전남 보성군의원 보궐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조영남(59) 후보가 2209표(득표율 45.12%)를 얻어 2204표(득표율 45.02%)를 얻은 무소속 윤정재 후보를 불과 5표 차이로 이겼다. 재검표 결과에서도 똑같은 결과가 나왔다. 경남 의령군 ‘다선거구’ 군의원 선거에서는 무소속 윤병열(61) 후보가 1826표를 얻어 1812표를 받은 국민의힘 차성길(59) 후보를 14표 차이로 이겼다. 당선자들은 전날 저녁 선관위로부터 당선증을 받고 이날 부터 바로 업무를 시작했다. 고흥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납짝 납딱 납작만두

    납짝 납딱 납작만두

    밀가루를 반죽해 얇게 민 다음 동그랗거나 길쭉하게 모양을 찍어 고기나 채소로 만든 소를 넣고 빚는 게 만두다. 소로 넣은 고기나 채소로 인해 모양은 가운데가 볼록하다. 이와는 전혀 다른 모양의 만두가 있다. 만두 전체가 납작한 납작만두다. 납작만두는 대구에서만 맛볼 수 있다. 납작만두는 얇은 만두피가 납작하게 포개어져 있다. 잘게 썬 당면과 부추로 속을 채워 넣고 반달 모양으로 빚어 물에 한 번 삶은 것을 기름에 튀기듯 지져 내는 게 핵심이다. 대구 납작만두의 역사는 1960년대 초로 올라간다. 6·25전쟁을 거치면서 쌀 등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절이었다. 이에 미국산 밀가루가 국내에 대량 유입됐다. 박정희 정부는 분식 장려 정책을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새로운 모양과 맛의 납작만두가 만들어진 것도 이때였다. ●재료 마땅치 않았거나 중국만두 싫었거나 납작만두의 탄생 배경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싸고 흔해진 밀가루로 만두피를 만들 여건은 충분했으나 만두소로 쓸 재료가 마땅찮았다. 그래서 보관이 쉽고 씹는 맛을 낼 수 있는 당면을 사용해 만든 게 납작만두가 됐다는 것이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부쳐 먹었던 밀가루 반죽처럼 납작만두 역시 배고팠던 시절 허기를 달래 주는 소중한 간식 중 하나였다. 다른 하나는 중국식 만두가 대구 사람의 입맛에 맞지 않아 새로운 만두를 만들었다는 설이다. 고춧가루를 듬뿍 뿌린 진간장에 납작만두를 찍어 먹는 방법으로 중국식 만두의 느끼함을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납작만두는 전국은 물론이고 동아시아권에서도 비슷한 것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특색 있다. 대구 특유의 억양으로 납짝만두로 불릴 때가 많다. 연세가 많은 어르신들은 납딱만두로 부르기도 한다.●파 띄운 간장·고춧가루 팍팍 양념장 필수 납작만두의 핵심은 종이만큼 얇은 만두피를 찢어지지 않게 굽는 것이다. 만두소가 많지 않아 사실상 무미에 가깝다. 부들부들하면서도 고소한 만두피의 맛을 살려 주는 양념장을 곁들여 먹을 때 맛이 완성된다. 파를 띄운 간장에 고춧가루를 넣어 만두피 위에 얹어 먹거나 한꺼번에 뿌려 먹으면 제맛이 난다. 최근에는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거나 적셔 먹고 쫄면에 곁들여 많이 먹는다. 납작만두와 함께 대구 10미 중 하나인 무침회 역시 납작만두와 좋은 궁합을 이룬다. 대구에서 납작만두를 만드는 곳은 여럿 있는데 저마다 조금씩 다른 특징을 보인다. 이는 업체마다 다르게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50년 전통의 미성당과 남문시장 내 남문납작만두가 유명하다. 교동시장과 서문시장에서도 납작만두를 즐길 수 있다. ●남문납작만두… 52년 대 잇는 수제만두 남문납작만두는 1970년 중구 남문시장 인근에서 문을 열었다. 50년 넘게 이 일대에서 납작만두를 판매한다. 처음 문을 연 김창출(75)씨의 아들 김동철(48)씨 부부가 가게를 이어받았다. 이곳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손수 납작만두를 만드는 곳으로 유명하다. 대구 납작만두 중 만두소가 가장 많다. 일반 만두와 비교하면 소가 적지만 납작만두 중에서는 속이 알차 한입 베어 물면 바로 느낄 수 있을 정도다. 만두소에는 당면과 부추, 당근, 파 등 6가지 채소가 들어간다. 이때 당면은 간장과 식초 등으로 간을 한 것을 사용한다. 탄력 있는 만두피를 만들기 위해 강력분과 중력분을 섞어 반죽한다. 두꺼운 무쇠판에서 굽는 것을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다. 무쇠판에 구우면 일반 프라이팬에 굽는 것보다 빠르다. 더구나 안이 골고루 익고 만두피가 부드러워진다. 남문납작만두는 입소문을 타고 전국 스타가 됐지만 체인점을 내지 않고 있다. 맛이 없어진다는 단 하나의 이유에서다. 그 대신 택배로 미식가들의 입맛을 만족시킨다. 맛을 유지하기 위해 택배 주문도 하루 15개 정도만 받는다. 몇 배나 더 많은 주문이 들어오지만 다음에 배달해 주는 것으로 양해를 구한다. 택배로 판매하는 납작만두는 30개 5000원이다. 김씨의 부인 신영숙(46)씨는 “시어른들이 지켜 온 맛의 명성에 조금이나마 흠이 가지 않도록 매일 최선을 다한다”고 말했다.●미성당… 고춧가루 뿌려 쫄면과 찰떡궁합 미성당 납작만두는 1963년 중구 남산초등학교 정문 맞은편에서 시작했다. 고 임창규씨가 운영하다가 아들인 임수종(58)씨가 32년 전 대물림해 2대째 운영하고 있다. 미성당 납작만두가 50년 넘게 사랑받아 온 배경에는 맛과 전통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있다. 그래서인지 다양한 음식을 판매하지 않고 납작만두와 곁들여 먹으면 좋은 쫄면, 라면, 우동만 있다. 이곳의 만두소에는 파, 부추, 당면 3가지만 들어간다.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18개의 체인점을 가지고 있어 여러 곳에서 미성당 납작만두를 맛볼 수 있다. 현재는 체인점을 늘리지 않는다고 한다. 맛이 궁금한 미식가들에게는 택배로 대신해 준다. 하루 최대 50개까지다. 미성당 납작만두는 `일명 ‘춤추는 납작만두’로 불리며 언론에서 많이 보도됐다. 서울 등 수도권은 물론이고 제주도 등에서도 미식가들이 직접 미성당을 찾는다. 미성당 납작만두를 만들기 위해선 먼저 물에 희석한 빙소다로 미성당 특유의 밀가루 반죽을 한다. 그다음 밀가루 반죽을 국수를 만드는 기계에 통과시켜 만두피를 뺀다. 이어 분유통으로 모양을 낸다. 여기에 만두소를 넣는다. 정성과 노하우까지 더해지는 것은 기본이다. 그러다 보니 더 쫀득쫀득하고 담백한 느낌이다. 납작만두 위에 송송 썬 파와 간장, 고춧가루를 뿌려 먹는다. 윤기가 잘잘 흐르는 보드라운 만두의 고소한 맛부터 냄새까지 버릴 게 없다. 젊은 손님에서부터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머니,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찾는 고객이 다양하다. 납작만두에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아 3일 이상 두면 변질될 우려가 있다. 빨리 먹지 못하는 경우에는 개별 포장해 냉동 보관하는 게 좋다. 교동시장에도 오랜 역사를 가진 납작만두 먹자골목이 있다. 지금은 도심 개발로 과거에 비해 먹자골목이 다소 줄었다. 교동시장 납작만두는 미성당과 역사가 비슷하다. 만두피가 유난히 얇고 고유한 밀가루 숙성으로 식감이 남다른 특징이 있다. 가게 앞 철판 위에서 먹음직스러운 소리를 내며 익어 가는 납작만두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이 밖에 칠성야시장 등 대구 야시장과 전통시장에서도 납작만두를 파는 곳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글 사진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열린세상] 대선 주자가 읽어야 할 교육책 2권/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열린세상] 대선 주자가 읽어야 할 교육책 2권/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10의 자료로 10을 쓴 책이 있다. 배설이다. 20의 자료로 10을 쓴 책이 있다. 설사다. 30의 자료로 10을 쓴 책이 있다. 소화다. 100의 자료로 10을 쓴 책이 있다. 근육이다. 100권의 ‘배설’이 모였다고 1권의 ‘근육’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만 권의 ‘배설’보다 한 권의 ‘근육’이 낫다. 책에도 강도와 근육이 있고 이를 알아보는 것은 의외로 쉽지 않다. 차기 대선이 1년 앞으로 다가왔고 차기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에게 ‘배설’을 권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한국 교육의 미래를 위해 그 미지의 지도자에게 한 쌍의 아름다운 ‘근육’을 추천한다. 아쉽게도 아니면 공평하게도 이 두 책은 미국 학자들이 쓴 책이다. 조지프 피시킨의 ‘병목사회’와 마이클 세스의 ‘한국교육은 왜 바뀌지 않는가?’는 배설물 속에서 빛나는 다이아몬드다. 전자가 철학적, 분석적 깊이로 무장했다면 후자는 역사학적 넓이와 통찰로 무장했다. 나는 피시킨의 ‘병목사회’가 한국에서 왜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았는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텍사스대(오스틴)의 피시킨 교수는 한국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세계 최강의 학벌을 가졌다. 그는 옥스퍼드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예일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병목사회’는 교육, 정의, 공정, 유전ㆍ환경, 역량, 발달기회, 기회균등, 노동시장 등의 어려운 문제를 기회다원주의라는 관점으로 다각적이면서 예리하게 분석한다. 피시킨의 깊이와 탁월함은 한국인들이 왜 교육지옥에서 사는지 명쾌하게 보여 준다. 공간병목(서울)과 대학병목(소수 명문대)이 강력하게 결합돼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회물리학(socio-physics)이다. 병목사회는 독점사회이자 부정의한 사회이다. 이를 다원기회구조로 바꾸는 게 정의의 실현이다. 정의는 철학적 원칙이 아니라 병목으로 인한 독점의 사회인프라를 다원기회의 사회인프라로 바꿀 때 세워진다. 따라서 ‘정의론’의 존 롤스는 틀렸다. 한국의 대학병목과 부동산 독점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또 다른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과대평가됐다. 우리는 번지수를 잘못 짚은 철학자들의 정의론 때문에 헤매고 있었다. 정의론의 최후의 승자는 대학독점체제를 비롯한 모든 독점을 해체하고 다원기회구조의 구축을 강조한 피시킨과 세스다. 세스 교수의 ‘한국교육은 왜 바뀌지 않는가?’(이하 ‘왜’)는 한국교육 100년의 파노라마를 한 권의 책으로 응축해서 보여 준다. 한국교육 100년의 결과는, 세계 최고의 대학진학률과 세계 최고의 사교육비로 대별되는, ‘기적’과 ‘지옥’이라는 두 단어로 압축될 수 있다. ‘왜’는 한국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박살낸다. 역대 교육정책에서 정부는 약했고 학부모들은 강했다. 학부모들은 박정희의 말도 듣지 않았다. 대학입학정원을 절반으로 줄이기로 한 박정희 정권에 대해 학부모들의 원성이 자자했고 이들은 교육당국과 대학에 엄청난 압박을 가했다. 1965년 이화여대 총장인 김옥길은 대학정원제를 거부하고 배당된 정원보다 40%가 더 많은 학생을 불법으로 입학시켜 정부와 1년 넘게 험악하게 대치했다. 결과는 학부모와 이화여대의 승리였다. 온갖 편법을 동원해 대학들은 학부모들의 요구로 학생들을 입학시켰다. 대학정원을 절반으로 줄이기로 한 박정희 정권에서 5년 후 오히려 대학정원이 25% 증가했다. 학부모는 국가를 항상 이겼다. 수시ㆍ정시 논쟁에서 학부모들에게 밀려 문재인 정부는 정시를 늘렸다. 강남 지역 학부모들의 혁신학교 설치 반대에 서울교육청은 항복했다. 이것은 예외가 아니라 지난 100년 동안 늘 그랬다. ‘왜’를 번역하고 해설한 교육학의 권위자 유성상 교수는 국가가 학부모를 이긴 적이 딱 두 번이라고 분석한다. 그것은 중학교 무시험제도(1969년)와 고교 평준화 정책(1974년)이었다. 이 정책들은 학부모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국가가 밀어붙여 한국교육에 획기적인 긍정적 변화를 가져온 매우 드문 사례들이다. 세스 교수는 한국의 교육지옥이 “명문대 학위와 권력을 획득하는 데 전 국가적으로 매몰돼” 있기 때문이라고 한탄한다. ‘병목사회’와 ‘왜’는 차기 대통령에게 교육정책의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한다. 누가 뭐래도 대학의 상향평준화를 밀어붙여야 한다. 대선 주자라면 읽고 스스로 깨닫기 바란다.
  • 윤미향 “경남서 진보 정치하기 참 어려워…김영춘에 박수”

    윤미향 “경남서 진보 정치하기 참 어려워…김영춘에 박수”

    “경남이 고향이라 ‘공화당’ 밖에 없는 줄”“박정희 경호과장 출신 의원 달력 보고 자라”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출신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9일 경남에서 진보 정치를 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하며 김영춘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를 지지해달라고 호소했다. 윤 의원은 “경남지역이 민주화운동 중심에 섰던 역사도 있고, 진보 성향 국회의원을 낸 지역도 있지만, 여전히 경남에서 그런 분들이 정치를 하거나 지역운동을 하는 일이 참 어렵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이날 오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페이스북에서 “저는 고향이 경상남도 남해다. 정치적으로 보수 성향이 깊어 어릴 때부터 우리나라엔 공화당이란 정당 하나밖에 없는 줄 알고 자랐다”며 이렇게 올렸다. 그는 “글자를 익히기도 전인 유아 시절엔 방벽에 붙은 당시 최지환 공화당 의원의 달력을 보며 자랐다”면서 “1971년부터는 박정희 대통령 경호과장을 지낸 신동관 의원의 얼굴이 인쇄된 달력을 보며 자랐다”고도 했다. 윤 의원은 그러면서 자신의 지역에서 민주화 운동 등 진보 정치인들이 일하기가 참 어렵다고 언급한 뒤 “제 고향 지역에서 그 어려운 길을 선택한 분들을 보면 저도 모르게 더 큰 응원을 하게 된다. 부산시장 김영춘 후보님과 경남지역 의회 후보로 뛰고 계신 분들에게 한 번 더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며 응원을 부탁했다.미 국무부 “초선 윤미향 위안부 지원NGO서 사기·횡령·자금 유용” 보고서 한편 미국 국무부는 최근 국가별 인권 보고서를 통해 한국 고위 공직자의 부정부패와 성추행 등 비위 문제를 지적했는데 지난해 불거진 윤미향 의원의 ‘위안부 기금 유용’ 혐의도 부패 항목에 넣어 명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서 ‘2020 인권 관행에 관한 국가별 보고서: 한국’에 따르면 “9월 검찰은 초선 의원인 윤미향을 일본군 위안부를 지원하는 비정부기구(NGO)인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재직 기간에 사기, 업무상 횡령, 직무 유기 및 자금 유용과 관련한 기타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했다”고 소개했다. 검찰은 지난해 9월 윤 의원을 사기·준사기·업무상횡령 등 6개 혐의로 기소했다. 부정한 방법으로 국고와 지방 보조금을 교부받아 편취한 혐의, 무등록 기부금품 모집 혐의, 개인계좌로 모금한 기부금과 단체 자금을 유용한 혐의, 치매 상태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돈을 기부하게 한 행위, 위안부 할머니 쉼터로 사용할 주택을 비싸게 사들여 정대협에 손해를 끼친 혐의, 위안부 할머니 쉼터를 미신고 숙박업에 이용한 혐의 등이다. 당시 서울서부지검은 윤 의원이 정대협 기부금 중 1억 35만원을 개인적으로 횡령하고, 치매를 앓는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의 심신장애를 이용해 길 할머니의 여성인권상 상금 중 돈 일부인 7920만원을 기부·증여하게 하는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임병선의 시시콜콜] 대법 “국정원의 베트남전 학살 정보 공개” 판결 나오기까지

    [임병선의 시시콜콜] 대법 “국정원의 베트남전 학살 정보 공개” 판결 나오기까지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임재성 변호사가 국정원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 거부처분 무효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26일 확정했다. 2019년부터 KBS1 시사프로그램 ‘시사직격’을 진행해 얼굴이 알려진 임 변호사는 제주 4·3사건 군사재판 재심, 일제 강제동원 손해배상소송 등도 맡고 있는데 1968년 2월 베트남 꽝남성 퐁니·퐁넛 마을에서 민간인 70여명이 몰살된 사건과 관련한 자료를 공개해줄 것을 2017년 11월 국정원에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옛 중앙정보부가 학살 사건에 관련된 소대장 등 3명을 신문한 조서들의 목록을 공개해달라고 했는데 국정원은 안 된다고 했다. 행정소송에서 패소 판결이 확정됐는데도 국정원은 다른 사유를 들어 또 비공개 처분을 내렸다. 그러자 민변은 2019년 3월 공개 거부 처분을 취소하라며 다시 행정소송을 내 3년 반 만에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받아냈다. 현재 퐁니 마을의 한국군 학살 의혹과 관련해 베트남 여성 응우옌티탄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 중이다. 한국군은 1964년부터 1973년까지 파병됐는데 민간인 학살은 1968년부터 1970년까지 3년에 집중돼 있다. 1968년 북베트남의 구정공세가 기폭제가 된 것은 맞다. 전장과 마을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전쟁이었다. 병사들은 민간인과 베트콩을 구분하기 힘드니 늘 경계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투입됐다. 그 해 2월 해병대 청룡부대가 두 마을 일대에 배치됐다. 퐁넛 마을을 지나던 한 병사가 지뢰를 건드려 발목이 날아가자 70명의 두 마을 민간인을 도륙했다. 어린 아이들도 발가벗겨진 채 숨져 있었고 두 다리를 잡아 당긴 사체도 있었다. 한국군의 학살 가운데 비교적 초기의 사건이었다. 희생자 가운데 남베트남군 친척이 있어 얼마 안돼 남베트남 정부가 항의하고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NYT) 등 외신들도 다뤄 국제 문제가 됐다. 박정희 정권이나 군 최고 책임자가 엄중히 책임을 물었더라면 그 뒤 조금 줄어들었을지 모르는데 모르쇠로 일관한 것도 모자라 한 술 더 떠 무적 해병, 귀신잡는 해병, 10대 1의 라이따이한 등으로 전과를 부풀리기 바빴다. 언론은 침묵했다. 고 리영희 교수의 책 ‘스핑크스의 코’에는 조선일보 외신기자의 고백이 나오는데 “매일 수없이 죽어가는 무고한 베트남인의 처지를 생각하면서 나는 매일 우울한 마음으로 신문사를 나서야만 했다. 그리고는 아픔을 달래기 위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딘가에서 소주를 마시곤 했다.” 정권은 베트남에 파병된 우리 병사가 5000명 전사했는데 여덟 배인 4만명을 살해했다는 식으로 참전 명분을 정당화하기에 바빴다. 사실 9000명은 애꿎은 민간인이었다. 땅굴 등에 숨은 민간인을 베트콩이라며 쏴죽이고 자기 최면을 걸었다. 마을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다가도 위에서 명령만 떨어지면 표변했다. 현지 말을 할 줄 아는 병사를 미군은 데리고 다니는 반면, 한국군은 애초에 현지인들과 소통하려 하지 않았다. 민감한 시기에 한국전쟁을 겪은 이들은 반공을 앞장서 실천한다는 믿음을 계속 키웠다. 여자들을 강간하고 화염방사기를 쓰기도 했다. 불도저로 밀어 시신을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만들었다. 작가 안정효의 ‘하얀 전쟁’에 담긴 내용은 그나마 정제된 내용이었고 실상은 훨씬 잔혹했다.베트남 곳곳에 한국군 증오비가 세워진 이유다. 이름과 나이도 표시돼 있다. ‘T’라고 표시돼 있으면 여자를 뜻하고, 우리로 치면 ‘개똥이’ 이름 옆에 ‘0’이란 나이가 표시돼 있기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전에 다낭이나 호이안처럼 국내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베트남 관광지들이 모두 한국 군인들의 무자비한 만행을 겪은 곳이다. 식당이나 풍광 좋은 곳의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우리 젊은이들이 베트남인을 향해 “가난하고 불쌍한 것들”이라고 혀를 차거나 “여자애 하나가 몸 팔아 온 식구를 먹여 살린대” 어쩌구하는 것을 듣기도 한다. 아시아에서도 가장 젊은 나라란 말을 듣는 것도 전쟁통에 워낙 많은 사람이 죽어 그런 것이고, 학교에 화장실이 없을 정도로 궁핍한 것도 전쟁에 산업 기반이 완벽히 무너진 탓이며 우리에게도 일단의 책임이 있는데 2차 가해를 하는 셈이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문재인 대통령까지 진보정권 책임자들이 사과하긴 했지만 턱없이 모자라다. ‘만대에 걸쳐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베트남 민초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기엔 한참 모자란다. 개인적으로 베트남을 세 차례 정도 찾아 만난 베트남인들 중에는 꼭 한국군의 잔학함을 거론하는 이들이 한둘 있었다. 사과하면 그들은 알겠다고 답하면서도 “절대로 잊지 않겠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려면 정부와 사회, 국민들의 일치된, 일관된 각성이 필요하다. 국정원 관계자는 확정 판결의 취지를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임 변호사는 한발 나아가 해당 문서들의 공개를 요청하기로 했다. 국가정보원이 법원 판결에 수동적으로 응할 것이 아니라 아예 적절한 기회에 전향적, 적극적으로 과거 권부와 군 지휘부의 잘못을 드러내는 문서를 공개하고 사죄하길 기대해 본다. 박지원 국정원장이니 기대해 볼 수 있지 않나? 임병선 논설위원 bsnim@seoul.co.kr
  • 영남대 ‘새마을학’ 이젠 ‘아프리카 르완다’로 간다

    영남대 ‘새마을학’ 이젠 ‘아프리카 르완다’로 간다

    영남대는 르완다 교육부와 현지 새마을 교육을 위한 국제교류협약을 체결했다고 25일 밝혔다. 영남대가 체계화한 ‘새마을학’을 공식 교육과정에 도입하고, 새마을운동을 통한 대한민국의 경제발전 경험을 전수받기 위해서다. 이날 협약 체결식에는 르완다 교육부 장관을 대신해 야스민 암리 수에드(Yasmin Amri Sued) 주한 르완다 대사가 참석했다. 지난해 11월 야스민 암리 수에드 대사는 영남대를 찾아 새마을운동을 통한 르완다 국가발전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당시 영남대는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졸업생들의 각국에서의 활동, 캄보디아 웨스턴대학과의 새마을학 복수학위제 등을 소개하며, 르완다 현지 대학의 학과 설립 등에 대해서 제안하고 후속 논의를 진행해 왔다. 이날 르완다 교육부와의 공식 협약 체결로 르완다 현지에서의 ‘새마을’ 바람이 본격화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협약 체결에 따라 양 기관은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지원자에 대한 르완다 교육부의 사전 검증 및 추천 ▲현지 새마을학과 설립을 위한 르완다 교육부의 대학 추천 ▲현지 새마을운동 및 새마을 교육 보급을 위한 상호 협력 ▲현지 새마을학과 설립 등을 위한 실행기구로 글로벌새마을개발네트워크(GSDN) 지정 및 현지 NGO 등록 등을 위해 역량을 모으기로 합의했다. 야스민 암리 수에드 대사는 “4개월 전, 영남대를 방문해 새마을학과 새마을운동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본국 정부와 협의를 통해 이렇게 조속한 시일 내에 다시 영남대를 찾아 협약을 체결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영남대와의 교류협약 체결이 르완다 국가 발전에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오늘 이 시작이 르완다 발전을 위한 큰 걸음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42명의 르완다 출신 유학생이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이 가운데 38명이 석사 학위(수료 1명 제외)를 받았고 현재 3명이 재학 중이다. 이처럼 이전부터 르완다 현지에서의 새마을운동에 대한 관심이 컸던 만큼, 이번 르완다 교육부와의 공식 협약 체결로 르완다에서의 새마을 교육 수요가 대폭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최외출 영남대 총장은 “르완다는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도 국가 발전과 경제 성장에 관심이 큰 나라 중 하나다. 대한민국의 국가 발전 경험과 새마을운동이 르완다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을 확신한다”면서 “사회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인 중에 인재 양성이 제일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서명한 국제교류협약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르완다 발전을 선도할 인재 양성을 위해 영남대가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왕회장의 유일한 패배” 대권 도전으로 돌아본 정주영 회장 20주기

    “왕회장의 유일한 패배” 대권 도전으로 돌아본 정주영 회장 20주기

    오는 21일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20주기를 맞아 그의 일대기를 대선 도전을 통해 재조명하는 다큐멘터리가 방송된다. KBS 1TV는 18일 밤 10시 다큐멘터리 ‘모던코리아’ 9회 ‘왕이 되려던 사나이’에서 대한민국 경제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정 명예회장의 일대기를 14대 대선 출마라는 정치적 사건을 통해 재조명한다고 17일 예고했다. 강원도 시골 마을에서 아버지의 소를 판 돈 70원을 들고 서울로 와 굴지의 기업인 현대건설과 대한민국 최초의 조선 산업, 자동차 산업 등을 일으킨 고인의 성공스토리는 ‘이봐, 해봤어?’와 같은 그가 남긴 말들과 함께 여전히 신화처럼 전해진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 출마와 1년 남짓한 정치 인생은 그의 또 다른 도전이자 유일한 패배로 기억된다. 1992년 1월 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은 물론 당시 현직이던 노태우 대통령까지 역대 대통령들에게 수십억 원의 정치자금을 상납한 사실을 폭로하며 통일국민당을 창당하는 것으로 정 명예회장의 정치 도전은 시작됐다. 그는 같은 해 12월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경제대통령이 되겠다는 각오로 제14대 대통령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가 내건 ‘아파트 반값’과 같은 파격적인 공약들에 사람들은 환호하는 듯도 했다. 결국 실패로 돌아간 대선 도전은 기업인의 욕망이었는지, 그가 꿈꾼 정치와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돌아본다. 박세용 전 현대건설 임원, 음용기 전 현대중공업 임원, 박철언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한완상 전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이 출연해 고인을 기억한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버마 혹은 미얀마/최병규 체육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버마 혹은 미얀마/최병규 체육부 전문기자

    1970~80년대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미얀마보다는 버마라는 이름이 훨씬 익숙할 게 틀림없다.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버마는 1989년 군사정부에 의해 바뀐 현재 국호 미얀마의 예전 이름이다. 버마 축구는 70년대 초반 공포의 대상이었다. 1971년 서울(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제1회 ‘박대통령컵 쟁탈 아시아 축구대회’에서 한국과 공동 우승을 차지하더니 이후 두 해 거푸 준결승에서 만난 한국에 똑같이 0-1 패를 안겼다. 자신의 이름을 딴 대회에서 연속 3위에 그치자 시상식을 마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차지철 경호실장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2회 대회 준결승 당시 25m짜리 중거리 결승골의 주인공은 마웅 예뉜이다. 이듬해는 마웅 틴윈이 헤딩 결승골을 넣었다. 버마 이름에는 성(姓)이 없다. ‘마웅’(Maung)은 20세 전후 미혼 남자의 이름 앞에 붙이는 일종의 존칭 접두어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거나 사회적 지위가 있으면 ‘우’(U)가 붙는다. 초등학교 시절 따지지도 않고 달달 외던 당시 유엔 3대 사무총장의 이름 우 탄트(우 딴)가 대표적이다. 1983년의 버마는 우리에게는 축구보다 더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억된다. 10월 9일 버마를 방문 중이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전 수도 랑군(양곤)에 있는 버마 독립운동의 영웅 아웅 산 묘소를 참배하기 직전 발생한 폭탄 테러 때문이다. 정부 관료 17명이 한자리에서 폭사한 끔찍한 참사였다. 버마는 1988년 아웅 산 수치(이하 수치) 국가고문의 등장으로 다시 주목을 받는다. 병석의 어머니를 보기 위해 영국에서 돌아온 그는 8월 8일 3000여명이 죽어나간 ‘8888 민주항쟁’을 목격한 뒤 50만 군중을 상대로 ‘공포로부터의 자유’라는 연설을 통해 버마 민주화운동의 어머니로 떠올랐다. ‘아메이 수’(어머니 수)의 연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권력을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는 권력을 휘두르는 자를 부패시키고 권력의 채찍에 대한 공포는 거기에 복종하는 사람을 타락시킨다.” 19세기 이후 버마 혹은 미얀마를 관통하는 두 가지 코드는 ‘반외세’와 ‘민주화’다. 버마는 마지막 왕조 멸망 전 1824년을 시작으로 세 차례나 영국과 전쟁을 치렀다. 망국은 피할 수 없었지만 이후 ‘영연방’ 가입은 거부할 정도로 자존심은 옹골찼다. 가시밭길 같은 ‘민주화’ 행보는 우리네와 꼭 닮은꼴이다. 박정희의 5·16 군사정변 바로 1년 뒤 네 윈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버마는 이후 60년 가까이 군부가 좌지우지했다. 2008년 개정된 헌법에는 의석의 25%를 군부가 지명토록 하는 조항이 명시됐다. 수치 고문의 민족민주연맹(NLD)이 2015년 총선에서 의석을 휩쓸어 1기 문민정부를 출범시키고도 사정은 그대로였던 이유다. 그런데 향후 15년간 단계적 군부 의석 지명 축소를 선언한 NLD는 지난해 11월 총선에서도 83%의 압승으로 이를 실현할 개헌 가능성까지 열었다. 이에 대한 반발이 전두환 신군부의 12·12사태와 비견될 만한 이번 쿠데타의 빌미다. 2013년 첫 방한 당시 수치 고문은 국내 언론사에 미얀마 대신 ‘버마’로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사실 미얀마는 영국의 지배 이전의 이름이다. 130여개 소수민족을 아우른다는 좋은 의미를 가졌지마 신군부에 의해 되돌려졌다는 사실 자체가 못마땅했다. 광주의 5·18 항쟁에 버금가는 반군부 시위와 유혈 진압은 이제 얼마나 더 많은 희생자를 낼지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현지 매체는 14일 희생자가 100명에 육박한다고 타전했다. 꼭 50년 전 ‘박대통령컵 축구대회’에서처럼 이름이 ‘마웅’으로 시작되는 20세 안팎의 젊은이가 대다수일 것이다. 우리에게 한때 익숙했던 ‘민주주의 나무는 민중의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지금 버마 혹은 미얀마에서 고스란히 되풀이되고 있다. cbk91065@seoul.co.kr
  • 車요일제·종량제봉투의 아버지 “환경 지키는 게 돈”

    車요일제·종량제봉투의 아버지 “환경 지키는 게 돈”

    시대를 앞서 한 분야에 평생을 바치는 사람들은 남다르다. 열정과 뚝심이 있다. 그래야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에 부딪혀도 꾸준하게 목표를 향할 수 있다. 정치권의 구애 등 유혹도 이겨 낼 수 있다. 긍정 마인드와 미래를 내다보는 눈도 있다. 긍정 마인드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자신의 뜻을 쉽게 전파해 동지를 만든다. 앞을 내다보는 사람은 과거의 성과에만 매달리지 않고 전진한다.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환경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최열(72) 이사장이 그런 사람이다. 박정희 독재 정권 시대에 민주화운동에 나섰다가 환경운동에 투신한 지 40년 넘게 현장에서 뛰고 있다. 민주투사에서 환경운동가로 변신한 과정도 독특하다. 그는 1975년 5월 명동성당 전국대학생연맹 사건으로 옥살이하던 1976년 ‘공해추방운동’으로 내 능력을 사회에 돌려주겠다고 결심했다. ‘공해’라도 배부르게 먹고 싶다는 시대에, 공해를 공예로 알아듣던 시대에 환경오염을 떠올렸다. 그의 생명 존중 사상은 그만큼 컸다. “동료와 나가면 뭘 하겠느냐고 토론했는데 다들 노동운동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화학을 공부했으니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공해 추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에서는 미나마타병이 심한 시절이었습니다.” 당시는 한국에 공해 관련 책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가족에게 부탁해 일본 책을 받아 봤다. 하지만 그는 일본어를 몰랐다. 가타카나부터 시작해 일본어를 독학했다. 1979년 5월 30일 형집행정지로 4년 만에 출소했을 때 환경전문가가 됐다. 그동안 그가 본 공해 관련 책만 250권에 달했다. “책 보는 거 말고 할 게 없었습니다. 온종일 몰입해 책을 보니까 현장 조사하고 토론에서 밀리는 꿈을 꾸다 놀라서 깨어나기도 했습니다. 박정희가 구속했기 때문에 환경운동가가 된 겁니다. 구속 안 됐으면 맥주공장이나 식품공장에 일했겠죠.”그러나 시대가 그를 놔주지 않았다. 6개월 만인 1979년 11월 YWCA 위장결혼식 사건으로 신군부에 의해 또다시 구속됐다. “1년 4개월간 다시 수감된 것은 공해 공부가 부족했기 때문인가 봅니다. 두 번째로 공해 공부를 했습니다.” 당시 그는 서울 용산구 국군보안사령부 서빙고 분실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얼굴이 두 배가 되도록 맞아도 기절하지 않았다. 수사관이 ‘플라스틱 인간’으로 불렀다. 일명 ‘빵 동지’인 고 백기완 선생과 출소 후 8개월 동안 강원 추곡약수터 등 좋은 곳을 다녔다. 백기완 선생이 혹독한 고문으로 건강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이는 그의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 긍정 마인드, 인간성까지 알 수 있는 일화다. 공해 공부 ‘재수’ 끝에 그는 1981년 공해문제연구소를 구상해 그다음 해에 발족시켰다. 우리나라 최초의 환경운동단체였다. 1993년에는 환경운동연합을 창립해 2005년까지 12년간 사무총장과 공동대표를 지내며 아시아 최대 환경단체로 키웠다. 2002년에는 환경재단을 만들었다. 국내 처음 환경전문 공익재단이었다. 정부, 기업과 손잡고 아시아의 기후·환경 문제 해결에 나섰다. 마시는 물이 없는 지역에 우물을 파 주고, 전기 없는 곳에 태양광 등을 지원한다. 환경운동하는 후배를 위해 재충전할 기회도 만들었다. 석박사 과정 10명씩 선발해 1년간 월 100만원씩 지원해 준다. 그는 이처럼 남들이 가지 않은 험난한 길을 가며 환경운동의 새 역사를 써 내려간다. 그동안 성과도 눈부시다. 종량제봉투, 마트 장바구니 사용, 자동차 요일제 등이 그의 아이디어와 추진력에서 나왔다. 1995년에 ‘환경노벨상’ 골드만 환경상을, 2013년에는 수감 중 세계적인 환경운동단체 시에라클럽의 ‘치코멘데스상’을 받는 등 전 세계가 인정하는 환경운동가가 됐다. 환경운동을 하면서도 시련을 겪었다. 4년 6개월의 수사와 재판 끝에 2013년 2월 대법원에서 알선수재 혐의로 징역 1년에 추징금 1억 3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이 확정돼 1년간 수감됐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대해 ‘흐르는 물을 막아서 맑아진 역사가 없다’고 반대했더니 이사 자금이 부족해 빌렸던 돈을 문제 삼았습니다. 2008년 1억 3000만원을 빌렸다가 1년 후에 모두 갚았습니다. 그동안 쉬지 않고 현장을 다녔기 때문에 공부도 좀 하고 또 충전해야 되는데 마침 그런 기회가 와서 오히려 도움이 됐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광고 문구가 그에게 딱 맞는다. 추진력은 한결같고 아이디어는 넘친다. 올해에도 오는 25일 우리나라 최초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리더십 과정을 시작한다. ‘쾌적한 환경에서 강한 경제가 나온다’는 확신에서 이상기후 시대 기업의 필수 경영 전략인 ESG 지도자 과정을 마련했다. 융합얼라이언스추진단과 한국가스공사, 한국가스안전공사와 함께 지난달 2일에는 ‘2021 그린수소포럼’을 창립했다. 정부의 탄소중립, 그린뉴딜, 수소경제 등 청정에너지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민간 포럼이다.미래 그림도 크게 그린다. 크루즈선을 만들어 다보스포럼 같은 세계적인 환경포럼을 열 계획이다. 지난해 코로나19로 하지 못했던 그린보트의 진화 버전이다. 그린보트는 시민, 비정부기구(NGO) 활동가, 기업 임직원, 전문가, 명사 등이 동아시아 환경 현장을 탐방하며 환경 문제를 얘기하는 크루즈 프로그램이다. “이걸 할 사람은 최열밖에 없다”는 뚝심으로 진행한다. 그의 환경운동 방식은 부드럽고 슬기롭다. 머리띠 두르고 구호 외치는 방식이 아니다. 이상과 현실을 조화시키면서 환경의 가치를 전파한다. 어린이환경센터를 세워 10만여명의 그린리더를 길러 냈다. 스테디셀러인 ‘최열 아저씨의 지구 온난화 이야기’ 등의 책을 써 어린이들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미리 일깨워 준다. 구호도 긍적적으로 바꾼다. ‘인간이 자연을 버리면 자연도 인간을 버린다’를 ‘인간이 자연을 살리면 자연도 인간을 살린다’는 식이다. 기업도 환경운동의 동반자로 인식하며 상생하려고 노력한다. “환경이 밥 먹여 주고 돈이 됩니다. 환경은 21세기의 제2반도체입니다. 환경에 투자 안 하면 살 수가 없습니다. 1980년대 지구 용량이 찼는데 그대로 갔습니다. 현재 1.5배 초과해서 파산이 온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코로나 바이러스도 인간이 자연 영역을 침범해 역습한 겁니다. 인류는 (화상회의 앱) 줌에 갇혀서 회의하고 마스크 쓰는 신세가 됐습니다. 최강국 미국이 코로나19로 50만명 이상 사망했다는 것은 인류가 기후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했죠. 너무 심각하니까 유럽도 미국도 2050년 탄소중립을 하겠다고 얘기했고 우리나라도 탄소중립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습니다.”1990년대부터 이대로 가면 인류가 최악의 경우를 맞는다고 주장했지만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체험하지 않은 미래를 얘기하면 진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기후 재난으로 어떤 세상이 될 거인지를 그림 그리듯 설명해야 합니다. 겁주는 거는 효과 없어요.” 사람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환경운동에 문화도 접목했다. 2004년 서울 환경영화제를 만들었고, 오는 6월 3~9일 18회째 이어 간다. “21세기는 환경과 문화의 세기입니다. 영화 한 편이 세미나 10번보다도 더 감동을 줍니다. 지구를 살리려면 물질적인 욕망을 줄여야 하지만 어렵습니다. 문화생태로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거죠.” 그는 이상기후 문제를 해결하려면 전 세계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오래전부터 강조했다. “기술과 자본이 있어야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재원이 가장 중요합니다. 10대 강대국이 군사비 10% 줄이면 됩니다. 과거에 소련과 미국이 핵무기가 너무 많으니까 동시에 감축한 것처럼요. 2050년까지 탄소제로가 되지 않으면 그다음에는 노력해도 낭떠러지로 떨어집니다.” 그는 내내 미소를 띠었다. 긍정적인 성격이 그대로 나타났다. 고문받은 것을 회상할 때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절대로 쓰지 않는 단어 3개도 부정적인 말이었다. ‘죽겠다’, ‘힘들다’, ‘바쁘다’. 생활신조도 ‘신나게 일하고 재밌게 살자’다. 인생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였다. 대신 미래를 예측하고 프로가 돼야 한다고 했다. “지식 반감기가 갈수록 짧아지기 때문에 금방 제로가 된다”며 공부도 해야 한다고 했다. 칠순이 넘었어도 지구를 생각하는 열정과 행동은 현재진행형이다. 한 발짝 앞서 나가는 그가 어떤 새 길을 보여 줄지 주목된다. 글 사진 김영중 선임기자 jeunesse@seoul.co.kr
  • 車요일제·종량제봉투의 아버지 “환경 지키는 게 돈”

    車요일제·종량제봉투의 아버지 “환경 지키는 게 돈”

    시대를 앞서 한 분야에 평생을 바치는 사람들은 남다르다. 열정과 뚝심이 있다. 그래야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에 부딪혀도 꾸준하게 목표를 향할 수 있다. 정치권의 구애 등 유혹도 이겨 낼 수 있다. 긍정 마인드와 미래를 내다보는 눈도 있다. 긍정 마인드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자신의 뜻을 쉽게 전파해 동지를 만든다. 앞을 내다보는 사람은 ‘라떼는 말이야’라며 과거의 성과에만 매달리지 않고 전진한다.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환경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최열(72) 이사장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박정희 독재 정권 시대에 민주화운동에 나섰다가 환경운동에 투신한 지 40년 넘게 현장에서 뛰고 있다.민주투사에서 환경운동가로 변신한 과정도 독특하다. 그는 1975년 5월 명동성당 전국대학생연맹 사건으로 옥살이하던 1976년 ‘공해추방운동’으로 내 능력을 사회에 돌려주겠다고 결심했다. ‘공해’라도 배부르게 먹고 싶다는 시대에, 공해를 공예로 알아듣던 시대에 환경오염을 떠올렸다. 그의 생명 존중 사상은 그만큼 컸다. “동료와 나가면 뭘 하겠느냐고 토론했는데 다들 노동운동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화학을 공부했으니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공해 추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에서는 미나마타병이 심한 시절이었습니다.” 당시는 한국에 공해 관련 책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가족에게 부탁해 일본 책을 받아 봤다. 하지만 그는 일본어를 몰랐다. 가타카나부터 시작해 일본어를 독학했다. 1979년 5월 30일 형집행정지로 4년 만에 출소했을 때 환경전문가가 됐다. 그동안 그가 본 공해 관련 책만 250권에 달했다. “책 보는 거 말고 할 게 없었습니다. 온종일 책을 보니까 현장 조사하고 토론에서 밀리는 꿈을 꾸다 놀라서 깨어나기도 했습니다. 박정희가 구속했기 때문에 환경운동가가 된 겁니다. 구속 안 됐으면 맥주공장이나 식품공장에 일했겠죠.”그러나 시대가 그를 놔주지 않았다. 6개월 만인 1979년 11월 YWCA 위장결혼식 사건으로 신군부에 의해 또다시 구속됐다. “1년 4개월간 다시 수감된 것은 공해 공부가 부족했기 때문인가 봅니다. 두 번째로 공해 공부를 했습니다.” 당시 그는 서울 용산구 국군보안사령부 서빙고 분실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얼굴이 두 배가 되도록 맞아도 기절하지 않았다. 수사관이 ‘플라스틱 인간’으로 불렀다. 정신착란 증세를 보일 정도로 혹독한 고문이었다. 일명 ‘빵 동지’인 고 백기완 선생과 출소 후 8개월 동안 강원 추곡약수터 등 좋은 곳을 다녔다. 백 선생이 모진 고문으로 건강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이는 그의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 긍정 마인드, 인간성까지 알 수 있는 일화다. 공해 공부 ‘재수’ 끝에 그는 1981년 공해문제연구소를 구상해 그다음 해에 발족시켰다. 우리나라 최초의 환경운동단체였다. 1993년에는 환경운동연합을 창립해 2005년까지 12년간 사무총장과 공동대표를 지내며 아시아 최대 환경단체로 키웠다. 2002년에는 환경재단을 만들었다. 국내 처음 환경전문 공익재단이었다. 정부, 기업과 손잡고 아시아의 기후·환경 문제 해결에 나섰다. 마시는 물이 없는 지역에 우물을 파 주고, 전기 없는 곳에 태양광 등을 지원한다. 환경운동하는 후배를 위해 재충전할 기회도 만들었다. 석박사 과정 10명씩 선발해 1년간 월 100만원씩 지원해 준다. 그는 이처럼 남들이 가지 않은 험난한 길을 가며 환경운동의 새 역사를 써 내려간다. 그동안 성과도 눈부시다. 종량제봉투, 마트 장바구니 사용, 자동차 요일제 등이 그의 아이디어와 추진력에서 나왔다. 1995년에 ‘환경노벨상’ 골드만 환경상을, 2013년에는 세계적인 환경운동단체 시에라클럽의 ‘치코멘데스상’을 받는 등 전 세계가 인정하는 환경운동가가 됐다. 환경운동을 하면서도 시련을 겪었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대해 “흐르는 물을 막아서 맑아진 역사가 없다”고 반대했다가 2013년 세 번째로 1년간 수감됐다. 긍정 마인드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했다. “그동안 쉬지 않고 현장을 다녔기 때문에 공부도 좀 하고 또 충전해야 되는데 마침 그런 기회가 와서 오히려 도움이 됐습니다.” 출소하면서 “나하고 이명박하고 임무 교대할 때가 올 거다”고 예언했고 적중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광고 문구가 그에게 딱 맞는다. 추진력은 한결같고 아이디어는 넘친다. 올해에도 오는 25일 우리나라 최초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리더십 과정을 시작한다. ‘쾌적한 환경에서 강한 경제가 나온다’는 확신에서 이상기후 시대 기업의 필수 경영 전략인 ESG 지도자 과정을 마련했다. 융합얼라이언스추진단과 한국가스공사, 한국가스안전공사와 함께 지난달 2일에는 ‘2021 그린수소포럼’을 창립했다. 정부의 탄소중립, 그린뉴딜, 수소경제 등 청정에너지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민간 포럼이다.미래 그림도 크게 그린다. 크루즈선을 만들어 다보스포럼 같은 세계적인 환경포럼을 열 계획이다. 지난해 코로나19로 하지 못했던 그린보트의 진화 버전이다. 그린보트는 시민, 비정부기구(NGO) 활동가, 기업 임직원, 전문가, 명사 등이 동아시아 환경 현장을 탐방하며 환경 문제를 얘기하는 크루즈 프로그램이다. “이걸 할 사람은 최열밖에 없다”는 뚝심으로 진행한다. 그의 환경운동 방식은 부드럽고 슬기롭다. 머리띠 두르고 구호 외치는 방식이 아니다. 이상과 현실을 조화시키면서 환경의 가치를 전파한다. 어린이환경센터를 세워 10만여명의 그린리더를 길러 냈다. 스테디셀러인 ‘최열 아저씨의 지구 온난화 이야기’ 등의 책을 써 어린이들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미리 일깨워 준다. 구호도 긍적적으로 바꾼다. ‘인간이 자연을 버리면 자연도 인간을 버린다’를 ‘인간이 자연을 살리면 자연도 인간을 살린다’는 식이다. 기업도 환경운동의 동반자로 인식하며 상생하려고 노력한다. “환경이 밥 먹여 주고 돈이 됩니다. 환경은 21세기의 제2반도체입니다. 환경에 투자 안 하면 살 수가 없습니다. 1980년대 지구 용량이 찼는데 그대로 갔습니다. 현재 1.5배 초과해서 파산이 온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코로나 바이러스도 인간이 자연 영역을 침범해 역습한 겁니다. 인류는 (화상회의 앱) 줌에 갇혀서 회의하고 마스크 쓰는 신세가 됐습니다. 최강국 미국이 코로나19로 50만명 이상 사망했다는 것은 인류가 기후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했죠. 너무 심각하니까 유럽도 미국도 2050년 탄소중립을 하겠다고 얘기했고 우리나라도 탄소중립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습니다.”1990년대부터 이대로 가면 인류가 최악의 경우를 맞는다고 주장했지만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체험하지 않은 미래를 얘기하면 진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기후 재난으로 어떤 세상이 될 거인지를 그림 그리듯 설명해야 합니다. 겁주는 거는 효과 없어요.” 사람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환경운동에 문화도 접목했다. 2004년 서울 환경영화제를 만들었고, 오는 6월 3~9일 18회째 이어 간다. “21세기는 환경과 문화의 세기입니다. 영화 한 편이 세미나 10번보다도 더 감동을 줍니다. 지구를 살리려면 물질적인 욕망을 줄여야 하지만 어렵습니다. 문화생태로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거죠.” 그는 이상기후 문제를 해결하려면 전 세계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오래전부터 강조했다. “기술과 자본이 있어야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재원이 가장 중요합니다. 10대 강대국이 군사비 10% 줄이면 됩니다. 과거에 소련과 미국이 핵무기가 너무 많으니까 동시에 감축한 것처럼요. 2050년까지 탄소제로가 되지 않으면 그다음에는 노력해도 낭떠러지로 떨어집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미소를 띠었다. 긍정적인 성격이 그대로 나타났다. 고문받은 것을 회상할 때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절대로 쓰지 않는 단어 3개도 부정적인 말이었다. ‘죽겠다’, ‘힘들다’, ‘바쁘다’. 생활신조도 ‘신나게 일하고 재밌게 살자’다. 인생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였다. 대신 미래를 예측하고 프로가 돼야 한다고 했다. “지식 반감기가 갈수록 짧아지기 때문에 금방 제로가 된다”며 공부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칠순이 넘었어도 지구를 생각하는 열정과 행동은 현재진행형이다. 한 발짝 앞서 나가는 그가 어떤 새 길을 보여 줄지 주목된다. 글 사진 김영중 선임기자 jeunesse@seoul.co.kr
  • 지동 순대·오산 수제맥주 꿀꺽… 넉넉한 시장의 情 꿀꺽

    지동 순대·오산 수제맥주 꿀꺽… 넉넉한 시장의 情 꿀꺽

    전통시장은 생필품 구입은 물론 다양한 먹거리도 함께 즐길 수 있어 ‘식도락 여행지’로 각광받는다. 붕어빵, 군고구마, 뜨끈한 국물에 담긴 어묵, 호떡 등 길거리 간식거리도 언제든 맛볼 수 있다. 북적이는 전통시장에는 진한 사람 냄새가 배어 있고 따스한 정이 스며 있다. 푸짐한 먹거리는 물론 신선한 채소와 저렴한 상품까지 시장에는 즐거움이 있다. 경기관광공사가 특색 있는 시장 음식과 간식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경기도 전통시장을 추천했다. 수원 지동시장순대타운 40여곳 가게 자랑거리지동시장은 1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수원의 대표 전통시장이다. 농수축산물과 건어물 식품 등 먹거리라면 없는 것 빼놓고 다 있다. 신선할 뿐 아니라 대형할인점보다 싼 품목도 즐비하다. 상인들의 박수소리, 젓갈 냄새 등으로 삶의 현장이란 느낌을 전해 준다. 무엇보다 인심 좋은 주인을 만나거나 흥정만 잘하면 값도 깎을 수 있는 재미가 있다. 깊은 역사만큼 유명한 ‘순대타운’의 순대와 곱창이 지동시장의 자랑거리다. 순대타운은 40여곳의 가게들이 최고의 맛을 자부하며 경쟁을 벌이는 곳이다. 순대는 서민 음식의 대표 격이다. 싼 가격에 맛도 좋고 영양도 가득하다. 뜨끈하게 말아 푸짐한 고명이 가득한 순댓국 한 그릇은 허기진 배를 채우기에 제격이다. 특히 잡채와 선지 등 8가지 재료를 섞어 찐 ‘지동순대’는 쫄깃하고 담백한 맛에 수원 양념갈비와 함께 수원의 대표음식으로 통한다. 지역 주민뿐 아니라 각지 순대 마니아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순대는 전자레인지나 뜨거운 물에 데워 먹으면 즉석에서 먹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가게에서 먹는 순대는 1인분 한 접시에 4000원이다. 편육은 돼지고기 특유의 누린내가 없고 쫄깃한 맛 때문에 주문이 밀린다. 먼 거리는 진공 포장한 순대를 택배로 보내 준다. 한 그릇에 8000원 하는 순댓국은 담백하면서도 뒷맛이 깔끔하다. 다른 고기를 넣지 않고 돼지뼈로만 꼬박 24시간 국물을 우려냈기 때문이다. 인심도 후해 순대와 머리 고기 등을 푸짐하게 넣어 준다. 부추와 양파, 팽이버섯, 양배추 등 풍성한 채소를 곁들여 매콤한 양념으로 볶아낸 순대곱창볶음은 시원한 막걸리와도 어울린다. 순대곱창볶음을 다 먹었을 즈음 남은 양념에 향긋한 참기름과 새콤한 김치, 고소한 김가루로 맛을 낸 볶음밥은 화룡점정이다. 수원 미나리광·못골 시장60년 전통 도넛·통큰칼국수에 반해지동시장 주변에는 수원천을 중심으로 8개의 시장이 더 있는데 바로 옆 미나리광시장을 가면 60년 전통의 ‘추억의 도너츠’를 맛볼 수 있다. 시장 초입에 있으며 도넛과 꽈배기, 찹쌀 도넛, 당면 만두가 대표 메뉴이다. 종류에 따라 6개 또는 8개에 2000원이다. 2대째 가게를 운영하는 박정희(56·여)씨는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소화가 안 된다는데 우리 집에서는 이스트를 사용하지 않고 10시간 천연 발효 과정을 거친 반죽을 사용하기 때문에 소화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설명했다. 못골종합시장은 작은 골목 시장이지만 정육·농수산물·떡 등 다양한 식품과 먹거리가 풍부하다. 대표 맛집은 ‘통큰칼국수’이다. 푸짐한 양에 한 번 놀라고, 저렴한 가격에 두 번 놀라고, 그 맛에 세 번 놀란다고 한다. 칼국수의 고명은 당근, 파채, 김가루, 깨소금뿐이지만 멸치와 디포리로 우려낸 육수와 직접 반죽해 뽑는 쫄깃한 면발이 일품이다. 잔치국수는 3000원, 칼국수는 4000원. 주인 김재호(61)씨는 “맛은 거짓말을 못한다. 우리 가족이 먹는 음식이라고 생각하고 정성을 담아 낸다”고 말했다. ‘국민냉면’의 냉면과 녹두빈대떡도 인기 있다. 오산 오색 시장야시장·수제 맥주 젊은층 취향저격오색시장은 오랜 기간 지역의 대표 전통시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오색은 오색 오감의 다양한 즐길거리가 있는 시장이라는 의미다. 젊은 사람들에게도 야시장으로 새로운 매력을 선보이며 꾸준히 사랑받는 곳이다. 낮 시장의 매력도 크지만 8~10월 사이 열리는 오색시장 야맥길장의 볼거리도 무궁무진하다. 다양한 글로벌 먹거리와 오색시장이 개발한 수제맥주를 즐길 수 있도록 특화시켰다. 특히 오색시장만의 특성을 담은 수제맥주 ‘오로라’와 ‘까마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인기가 많다. 새벽을 연다는 의미의 오로라는 오산 오색시장을 의미하는 5가지 홉(맥주의 원료)이 들어간다. 까마귀는 흑맥주로 중후한 맛이 특징이며 붉은 계통 과일향이 가미된 ‘발그레’ 수제맥주도 인기다. 최근에는 막걸리 양조장도 운영한다. 먹거리는 소떡소떡, 김밥, 튀김 같은 소소한 간식거리부터 중국, 태국 등 다양한 나라의 음식까지 맛볼 수 있다. 광명전통시장1000원 떡갈비 등 줄 서는 먹자골목광명전통시장은 평일에도 밤낮으로 붐비는 활기찬 시장이다. 광명사거리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오일장에서 시작해 지금은 400여개 점포의 상설시장으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지역 농가에서 재배한 싱싱한 채소, 인접한 포구에서 공급된 수산물, 품질 좋은 농산물과 안전한 식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이웃 도시 주민들까지 애용하는 대표적인 전통시장이다. 특히 1000원 떡갈비로 유명한 ‘장릉왕떡갈비집’이 대표 맛집이다. 국내산 돼지고기와 과일, 채소, 각종 앙념을 넣어 반죽한다. 가격이 저렴해 주말이면 줄을 서야 한다. 채소, 참치, 스팸, 햄치즈, 오징어진미, 볶음김치 등 11가지의 꼬마김밥과 3000원에 불과한 홍두깨칼국수, 따듯할 때 먹어야 더 좋은 빈대떡 등 맛있고 정 넘치는 먹자골목 또한 광명시장의 자랑이다. 용인중앙시장수제만두 찜기 냄새에 지갑 열어1960년대에 문을 연 용인중앙시장은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관광형 시장이자 중대형 시장이다. 760여개의 점포에서 싱싱한 채소와 과일은 물론 산지에서 공수된 수산물과 축산물, 곡물 등 다양한 품목을 취급한다. 특히 순대골목과 떡골목, 잡화골목은 별도의 특화 골목으로 형성돼 손님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중앙시장에서 맛볼 수 있는 대표 간식거리는 수제만두다. ‘떡이랑 만두랑’ 골목을 가면 만두피를 직접 손으로 밀어 만든 만두집들이 모여 있다. 찜기를 열었을 때 뭉게뭉게 퍼져 나가는 만두 구름의 냄새를 맡는다면 당장 지갑을 열게 된다. 전통과 자부심을 내세운 유영 떡집 수십곳이 즐비해 항상 문전성시다. 족발과 순대집이 몰려 있는 순대골목에는 평일에도 밤낮으로 손님들로 북적인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박정희 주치의’ 민헌기 서울대 명예교수 별세

    ‘박정희 주치의’ 민헌기 서울대 명예교수 별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주치의였던 민헌기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가 6일 별세했다. 93세. 민헌기 교수는 1928년 서울에서 태어나 1951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1963년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 의대 전임강사와 조교수, 부교수 등으로 재직하던 1970년 박 전 대통령의 주치의로 임명됐다. 그는 1974년 육영수 여사가 총에 맞아 쓰러졌을 때 수술을 총지휘했으며, 1979년 암살당한 박 전 대통령의 시신을 수습하기도 했다. 고인은 서울대 의대 내분비내과 교수, 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장, 당뇨병학회장, 내분비학회장, 내과학회장, 제일병원 상임고문,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로회원 등을 지냈으며 국민훈장 모란장, 동아의학문화상, 서울대학교 30년 근속표창 등을 받았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차려졌으며 상주는 민경집 전 LG하우시스 대표이사다. 발인은 9일 오전 6시이며 장지는 서울추모공원이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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