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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남 나들이 DJ의 득실

    ◎“정치쇼” 비난속 “지역감정 완화 기여” 자평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가 1일 경남 하동의 화개장터 방문으로 이틀간의 영남나들이를 마무리했다. 김총재의 이번 방문은 하한정국을 맞아 국민회의의 최대취약지인 영남권를 최우선으로 찾아, 반 DJ정서를 희석시키려는 계산도 무시할 수 없다.그러나 김총재의 심중엔 「거국내각의 당위성」을 설파하기 위한 호기로 삼으려는 의도가 곳곳에서 엿보인다.이는 이날 화개장터 연설에서 분명해졌다.김총재는 『영호남의 갈등은 박정희 정권 출범이후 지역차별에 따른 것』이라며 자신도 피해자임을 은연중에 내비쳤다.이어 김총재는 『영남과 호남·충청·경기 등 모두가 참여하는 거국내각을 통해 지역감정을 극복하자』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방문으로 뚜렷한 효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지역감정을 해소하려는 국민회의의 적극적인 노력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당관계자들도 『하루아침에 영남권의 반 DJ정서를 바꿀 수는 없지만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털어놓는다.이런 의미에서 국민회의측은 『이벤트식의 유세를 통해 청중동원이나 호응도면에서 성공했다』고 자평하는 분위기다. 그렇지만 비판론도 만만치 않다.『한발한발 지역주민의 마음속을 파고드는 전략 외에 일시적인 방문으로 어떻게 이들의 마음을 돌리겠는가』라는 주장이다.오히려 「정치적 쇼」로 비쳐질 것을 우려하는 셈이다.특보회의에서 『한달이고 두달이고 김총재가 영남권에 머물면서 생활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오일만 기자〉
  • 미국으로… 지방으로… 집에서…/3당대표 “여름나기 3색”

    ◎이홍구 대표/올림픽 선수단 격려… 정치 거취 구상도 신한국당 이홍구 대표위원이 31일 하오 애틀랜타올림픽 선수단 격려차 대한항공편으로 출국했다.올림픽이 끝나는 5일부터는 대표취임후 3개월만에 첫 휴가도 갖는다.체류기간은 유동적이지만 당사 출근은 12일로 예정돼 있다. 이대표는 한때 교편을 잡았던 모교 에모리대의 동료 교수와 지기들을 오랜만에 만나 홀가분한 시간을 갖고 현지 유학중인 아들도 만나볼 생각이다.표면적으로는 그야말로 「사적인 시간」을 갖는 셈이다. 그러나 이 대표의 「미국 구상」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시각도 있다.정치초년생으로서 현실정치에서 느낀 애로사항을 차분히 정리하고 향후 개인적인 거취를 포함한 새로운 정치의 밑그림을 그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 측근은 『임시국회가 정치초년생으로서 치른 첫 시험무대였다면 오는 9월 정기국회는 본격적인 역량을 선보이는 장이 될 것』이라면서 『당 대표로서나 개인적으로나 이번 휴가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대표 스스로도 지난 29일 출국에 즈음한 기자간담회에서 선택과 책임의 정치를 강조하면서 『새로운 정치상을 확립하기 위해 임시국회 과정을 평가하고 앞으로 갈길을 계획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박찬구 기자〉 ◎김대중 총재/영남 나들이 “지역감정 되레 자극” 여론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최근 행보엔 눈에 튀는 대목들이 엿보인다. 31일부터 이틀간 영남권 나들이에 나선 김총재는 이날 전두환씨의 고향인 합천에서 1박을 했다.이날 상오엔 고 박정희 대통령의 고향인 구미를 찾았다.1일엔 경남 하동을 방문,영남과 호남이 만나는 「화개장터」를 찾는가 하면 내달 4일엔 X세대의 우상이라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기념 영상콘서트에 「비디오 출연」을 한다. 내년 대선에 앞서 취약지구 공략과 함께 「젊은 세대과 호흡하는 정치인」으로서의 이미지 개선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셈이다.그러나 이러한 김총재의 전략에 대해 당내외에서 비판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젊은이와 호흡하는 정치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좋지만 지금까지 다져온 이미지가 훼손되지 않겠는가』라는 우려의 목소리들이다.『젊은이들이 즐기는 장소를 정치인의 이미지 개선무대로 활용할 경우,자칫 역효과도 있지 않겠느냐』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구미의 경우 중소기업 공단 방문이 표면상 방문이유지만,「그 이상의 것」을 겨냥했다는 분석이다.「TK(대구 경북) 정서」를 감안,고도의 분리작전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이날 김총재는 구미공단을 방문한 자리에서 『세계가 중소기업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우리는 중소기업이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의 중소기업정책을 꼬집었다. 경남 하동에서는 영남과 호남이 만나는 화개장터를 방문,「지역화합」이란 상징성을 함축한 행사도 계획하고 있다.김총재는 지역주민들과의 대화에서 자신이 「지역감정」의 최대 피해자인 점을 부각하면서 『화합만이 한국정치를 구할수 있다』는 요지의 강연도 계획하고 있다.그러나 김총재가 방문하는 현지에선 『인위적인 지역정서 달래기 제스처에 오히려 거부감이 든다』는 비난도 적지않은 것으로 알려졌다.불거지지않던 지역감정이 정치권의 움직임으로 부각된다는 주장이다.〈오일만 기자〉 ◎김종필 총재/정국 새판짜기 장고돌입… 당 “개점휴업” 자민련이 「휴업간판」을 내달았다.매주 월·수요일마다 열던 당무회의와 간부회의를 1일부터 20일까지 쉬기로 했다.휴가철을 맞은데다 지역활동에 소홀했던 의원들에게 개인적 시간을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김종필 총재도 지난 달 29일부터 당사에 나오지 않고 청구동 자택에 머물고 있다.측근들은 누적된 과로로 지병인 어깨결림이 악화된 탓이라고 설명한다.그래서 31일 당무회의에도 나오지 않았고 내친김에 1일부터는 일주일 정도 휴가를 보낼 것이라고 한다.이를 테면 「재충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당안팎에서는 단순한 「개점휴업」으로 보는 것 같지는 않다.「정치하한기」라고 하지만 수해복구가 한창이고 10일부터는 국회 정치제도개선특위와 국정조사특위가 가동된다.정기국회 국정감사 준비도 하고 예결위 구성도 마쳐야 하는 등 현안이 산적했다. 더욱이 상임위 배분과정에서 드러난 TK(대구·경북)와 충청권의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예결위 구성에서도 또 한차례 홍역이 예상되는 상황에 휴가를 핑계삼아 「정치방학」에 들어간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보다는 김총재가 새로운 판을 짜기 위해 정국구상에 돌입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다.〈백문일 기자〉
  • 변호인 집단사임… 맥빠진 분위기/25차 공판 이모저모

    ◎공판 하오 4시 속개 최장 휴정시간 기록 29일 열린 12·12 및 5·18사건 25차 공판은 피고인측의 막바지 반격이 예상됐으나 변호인단의 집단사임과 불출석으로 외양상으로는 「접전」없이 싱겁게 끝났다. ○…황영시 피고인 등의 변호인들은 이날 법원 1층 변호인실에 모여 『재판부가 이번 사건에 대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재판을 진행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사임계를 제출. 변호인단은 이처럼 「편파적인 재판 진행에 대한 항의」를 사임계 제출의 이유로 내세웠으나 일각에서는 재판의 공정성에 흠집을 내려는 의도라고 분석. 사임계를 낸 변호인들 가운데 일부가 이양우 변호사 등을 만나 사전에 변호인 사임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져 이같은 추측을 뒷받침. ○…변호인단의 사퇴로 증인들에 대한 반대신문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바람에 김영일 재판장은 재판시작 한시간만인 상오11시에 휴정을 선언. 이어 하오 공판도 4시에 속개해 평소 2시간 정도의 휴정시간이 5시간으로 늘어나 「최장 휴정시간」을 기록. ○…재판이 시작될 당시만해도 23명의 거물급 변호인단이 포진했으나 이날 공판에서는 국선·사선변호인 등 8명의 변호인만 법정에 나와 맥빠진 분위기가 역력. 사임계를 내지 않은 박준병 피고인 등의 사선변호인들조차 핵심증인인 정승화 전육참총장에 대해 단지 예닐곱가지의 「일반적인」 질문만으로 신문을 종결해 「전의」를 상실한 모습. 검찰도 평소 8명의 검사가 참여했으나 이날은 다음달 1일자로 서울고검으로 인사가 난 임성덕검사 등 4명의 검사가 불참. ○…김영일 재판장은 상오 공판이 끝나기전 장시간에 걸쳐 피고인들에게 변호인단의 증인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 등을 상세히 설명. 김재판장은 『변호인단이 증인들에 대해 군사반란이나 내란죄의 성립여부 등 본질적인 사안과는 상관이 없는 신문을 하려했기 때문』이라며 『자꾸 재판이 파행으로 가는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불쾌한 표정. ○…김재판장은 정총장을 상대로 직접신문을 진행하면서 박정희 전대통령 시해사건뒤 군부내의 불만 여론을 알면서도 사퇴하지 않은 이유 등 정총장의 「아픈 곳」을집중적으로 거론해 눈길. ○…이날 하오 공판에서 증인으로 나선 최세창 전3공수여단장에 대한 신문이 끝나자 광주에서 올라온 한 50대 방청객이 손을 번쩍 들며 재판장에게 큰 목소리로 발언권을 요청하다 퇴정당하는 소동을 빚었다. 재판부는 『여기는 토론장이 아니다』며 제지하다 방청객이 『할말이 많은데 발언권을 달라』고 계속 요구하자『법정에서 나가라』며 퇴정을 명령.〈김상연 기자〉
  • 「12·12」 신촌 요정 「민마담」 찾았다

    ◎“장태완 사령관 등 격리 목적” 검찰서 진술 지난 79년 12월12일 하오 6시30분.장태완 수경사령관·정병주 특전사령관 등 육군본부측 장성들의 운명을 가른 이른바 「신촌 모임」.베일에 가려졌던 신촌의 요정 주인이 공개됐다. 서울지검 특별수사본부는 9일 신군부측이 정승화 육참총장을 연행하기 직전 장사령관·정사령관을 격리할 목적으로 마련했던 만찬모임의 비밀요정 주인을 찾아내 이달초 조사했다고 밝혔다. 3공때 이름을 날린 속칭 「민마담」인 김모씨(53·서울 서초구 서초동).연희동 노태우 전대통령의 집에서 5백m 떨어진 대지 1백16평의 2층 기와집이 만찬장소였다. 민마담은 검찰에서 당시 보안사로부터 『조용한 곳을 마련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동생의 집에 만찬을 준비했다고 밝혔다.또 『나중에야 장사령관 등을 격리하는 차원에서 만찬이 마련됐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진술했다. 특히 당시 종업원이던 문모씨(40)는 『참석자들이 한두잔 밖에 양주를 들지 않았다』고 증언,장사령관의 만취설을 일축했다. 민마담은 12·12당시 서울장충동의 고급요정인 「대화」와 성산동의 「아리랑」을 운영했던 화류계의 히로인.이곳에는 당대의 내노라하는 정·관·재계 인사와 장성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박정희 전대통령도 단골손님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민마담이 「요정 정치」의 안방마담 역할을 한 셈이다.한량들사이에는 아직까지 민마담의 이야기가 구전된다. 그녀는 합의이혼후 현재 고급주택가에서 조용히 살고 있으며 며느리가 일본서 활동중인 여가수 K이다.〈박선화 기자〉
  • 빗길 곳곳 윤화 얼룩/광주­버스·승용차 충돌 53명 중경상

    ◎안성­승용차 저수지 추락 3명 사망 【광주·부여=김명승·최용규 기자】 시내버스가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승용차와 총돌,승객 5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4일 하오 4시20분쯤 경기도 광주군 광주읍 역리 3번국도 예촌주유소 앞길에서 경기교통 소속 경기 5카 6294호 시내버스(운전사 나익수·29)가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마주 오던 경기 3크 5969호 엘란트라승용차(운전자 최호경·32)를 들이받고 길옆 6m 아래 논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이 사고로 박정희씨(72·여·역리 138의 2)와 정지원양(19·광주읍 경안2리 51) 등 5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찰은 성남에서 광주읍쪽으로 가던 버스가 사고지점 내리막 커브길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경위를 조사중이다. 이에 앞서 이날 하오 1시쯤 충남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 검문소 삼거리에서 충남 7하 9914호 5t 화물트럭(운전사 하배수·22)이 부여여객 소속 충남 74자 5621호 시내버스(운전사 김낙득·34)를 들이 받아 트럭 운전사 하씨와 버스에 타고 있던 조창선씨(86·부여군규암면)등 승객 1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안성=조덕현 기자】 승용차가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저수지에 빠져 3명이 숨졌다. 4일 하오 5시 55분쯤 경기도 안성군 삼죽면 배태리 214번 지방도에서 경기3부 9651호 엘란트라승용차(운전자 이동범·39·경기도 용인군 외사면 백봉리)가 길옆 덕산저수지에 빠졌다. 이 사고로 이씨와 양주호씨(45·여·경기도 용인군 외서면 근삼리),2세가량의 여자 어린이 등 3명이 숨졌다.
  • 공선옥 두번째 장편소설 「시절들」

    ◎“잡초처럼 살아온 버려진 인생의 넋두리”/격동기 버틴 30대 남성의 성장기/유신·80년 광주·전씨 구속이 배경 작가 공선옥씨(33)는 국내 문단에서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개성의 소유자로 꼽힌다.생채기투성이 밑바닥인생의 내뱉듯한 넋두리를 소설이라고 들고 나왔을때 문단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주목했다.그는 머리나 마음이 아니라 「몸」으로 밀고나가는 글쓰기를 보여줬다. 최근 그의 두번째 장편 「시절들」이 문예마당에서 나왔다.첫장편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창작집 「피어라 수선화」 등에서 가난한 미혼모나 이혼녀 얘기를 꾸역꾸역 뱉아놓았던 공씨가 이번엔 남자들의 세계를 들고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장하준이라는 주인공의 다섯살에서 서른여섯까지를 그린 이 책은 일종의 성장소설이다.그 하준의 성장기는 65년부터 유신,80년 광주,87년 직선제 개헌을 거쳐 지난 95년 전두환씨 구속에 이르는 우리 현대사의 격동기와 겹친다.그런 점에서는 후일담소설의 성격도 짙다.하지만 90년대 문단의 상투형인 성장과 후일담이 만난 이 소설은 전혀 상투적이지 않다.그 흔한 소재가 공씨의 붓끝에 녹아 완전히 그다운 작품으로 탈바꿈해버렸기 때문이다. 60년대 장흥읍 탄진강가에서 하준은 옆집 의원딸 은실에게 묘한 감정을 품는가 하면 의리파 두목 추명식과 어울리면서 꿈같은 어린 시절을 보낸다.하지만 젊어서 소신있었던 변호사 아버지가 술자리의 혈기로 박정희대통령을 욕하다 감옥행,자격정지 7년을 먹는 바람에 남부끄러워진 어머니는 자식들을 죄다 끌고 광주로 올라온다. 서울로 대학을 오지만 더부룩이들(머리가 더부룩한 장발족) 사이에서 까닭모를 무력감에 1년만에 중퇴하고 광주 뒷골목을 어슬렁거리던 하준은 80년 5월 형을 찾으러 나섰다가 얼결에 광주항쟁의 물결에 휩쓸리게 된다. 공씨의 다른 작품들처럼 소설의 매력은 위악적인 인물들에 있다.이들은 하나도 「중뿔나게」 잘난 이가 아니다.아니 오히려 「버려진 인생」인지라 쓰레기같은 세상을 향해 토악질하듯 사설을 늘어놓고 되는대로 몸을 던진다. 독립투사연 하던 아버지가 변호사 신분을 이용해 사기를 쳤다는 내용의공소장을 하준은 화장지 틈에서 발견한다.장남으로 아버지 못잖게 권위를 내세우던 형 하영은 하준의 「마음의 연인」 은실을 가로챈다.80년 광주의 5월에는 비단 학생이나 민주시민뿐 아니라 추명식이나 석철같은 건달도 얽혀든다.여자한테 비열하고 깡패들사이에서도 치사하기로 소문난 석철은 어느틈에 민주투사로 돌변,대학생들에게 강연을 다닌다.「깡패 추명식과 정신병자 장하준이 한패가 될수 있게 된 그 이름 ‘폭도’」라며 하준은 자조한다. 때문에 현대사의 격변을 배경삼으면서도 이 소설은 거창한 울림을 띠지 않는다.중요한 것은 역사가 아니라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그래도 버텨야 했던 이들의 삶의 몸부림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광기의 시대에 미치지 않고 질기게 살아남은 잡초같은 한세대의 이야기는 진득진득한 익살과 역설에 담겨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게 만든다.〈손정숙 기자〉
  • 최 전대통령 증인출두할까

    ◎“강제구인땐 여론악화” 검찰·법원 소극자세/신현확 전 총리 「재가 강압성」여부 증언 증언 주목 20일 12·12 및 5·18사건 15차공판에서 최규하 전 대통령 등 12·12당시 국정을 담당한 주요인사를 비롯,26명이 증인으로 채택되면서 재판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이들의 증언내용도 관심거리가 되겠지만 이들이 사건의 방조자 또는 피해자라는 점에서 공판분위기도 사뭇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변호인단이 이날 공판에서 검찰이 제출한 증거 대부분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의 증언내용은 재판의 결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채택된 증인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끄는 인물은 최규하 전 대통령이다.최 전대통령은 여러 차례에 걸친 검찰의 참고인조사시도에 응하지 않았다.대통령 재임 때의 일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가 국가를 위해 바람직스럽지 못하고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수 있다는 논리로 침묵으로 일관했다. 검찰은 최 전대통령을 압박하기 위해 예금계좌까지 비밀리에 추적하는 소동까지 벌였다.하지만 입을 열게 하는 데는실패했다. 이런 사정에 비추어 최 전대통령이 법정에 출두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구인장을 발부해 강제로 법정에 서게 하는 방법도 있다.하지만 재판부로서는 여론악화에 신경을 쓰는 눈치다.검찰도 구인장발부를 검토하다 같은 이유로 포기했다.법원 역시 「무리수」를 쓰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신현확 당시 국무총리나 최광수 대통령비서실장이 최 전대통령을 대신해 재가과정에서의 강압성 여부를 증언할 가능성이 크다. 노재현 전 국방부장관도 주목의 대상이다.12·12당시 8시간여동안 피신한 경위,최 전대통령에게 정승화 당시 육참총장의 연행재가를 요청하는 과정 등에 대해 여러가지 불분명한 주장이 제기됐었다.노씨의 증언은 신군부가 대통령→국방장관→계엄사령관 겸 육참총장으로 이어지는 정식지휘계통을 어떻게 장악했는가를 파악하는 중요한 단초가 될 전망이다. 정승화 전 총장·장태완 전 수경사령관 등 12·12당시 육본측 인사들은 변호인측과 치열한 설전을 전개할 것으로 보인다.변호인측은 이들을 상대로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사건에 개입했는지 여부,신군부세력에 대한 무리한 진압여부 등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겠다는 자세다.이들이 그동안의 울분을 얼마나 터뜨릴지도 관심거리다. 우국일 당시 보안사 참모장과 백동림 합수부 수사1국장은 검찰 조사과정에서 전두환 피고인 등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이들이 신군부내의 알려지지 않은 비화를 공개할지도 관심을 끈다.〈박상렬 기자〉
  • 정총장이 최대통령 조사 지시”/검찰,「12·12」당시 전말 공개

    ◎“김재규가 범인” 알고도 아무런 조치없어/군검찰·전씨 총리공관서 진술서 받아 지난 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의 내란방조 의혹에 따라 착수된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조사와 관련,15일 검찰이 당시 조사를 지시한 주체와 조사 착수경위 등 사건의 전말을 공개했다. 지금까지 전두환 당시 합수본부장 등 신군부측이 12·12 「거사」에 앞서 최전대통령을 압박하기 위해 조사를 감행했다는 설이 지배적이었다. 최 전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김재규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김재규에게 『10월27일 새벽 4시에 비상계엄이 선포된다』는 사실을 직접 알려주는 등 최고 통수권자로서의 책임을 저버린 점을 문제삼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최전대통령은 그러나 사건발생 17년여가 지나도록 이에 대해 입을 열지 않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조사는 79년 12월3일 밤 11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2시간여동안 이뤄졌다.당시 수사기록에는 조사날짜가 12월1일로 돼 있으나 이는 날짜가 소급돼서 기재된것이다.실제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내란사건에 대한 첫 공판을 하루 앞두고 전격적으로 실시됐다. 조사는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의 지시에 따라 이뤄졌다.정총장은 12월3일 하오 7시쯤 김재규의 공소장을 검토한 뒤 군검찰에 『최대통령이 시해사건에 대해 김계원 비서실장으로부터 보고받은 것으로 공소장에 기록돼 있다』며 『국민들이 오해를 하지 않도록 최대통령에게 양해를 구하고 진술서를 받아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당시 전창렬 육본 검찰부장(중령)은 합수부에 수사협조를 요청,전합수본부장과 함께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을 방문해 2시간여동안 최대통령을 조사했다.이 진술서는 앞뒤쪽의 표지를 빼면 3쪽의 간략한 분량이다. 『각하께서 위독하십니다.거지철과 김재규가 언쟁끝에 총격전을 하다가 그만…』,『방안을 보니 거지철이 쓰러져 있었고 그 위에 각하가 쓰러져 계셨습니다』는 내용을 김계원으로부터 보고받았다는 진술이었다. 한편 전두환 전 대통령은 최근 공판에서 『정총장이 나를 직접 불러 「최대통령을 둘러싼 소문의 진상을 규명하라」는 지시를 했다』고 진술,조사착수 경위에 대해서는 엇갈린 주장을 폈다.〈박은호 기자〉
  • “역사는 시대적 삶의 기록”/공판서 본 전씨 역사관

    ◎이승만­건국·박정희­경제·5공­국위선양 평가해야 12차 공판에서 전두환피고인측은 공판이 시작된 이래 가장 강력한 어조로 「5공식」 역사관을 폈다. 이들은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보수 반동의 논리라는 비난을 의식한 듯 지금의 역사진행 상황을 수정주의 역사관이라고 비판하면서 나름대로의 논리를 개진했다. 전피고인측은 「역사는 시대적 삶의 기록」이라는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의 역사관을 인용하면서 자신들은 집권 후 유일하게 전 정권을 매도한 사실이 없었던 정권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정권은 건국 이래 모든 정권을 반민주적이고 부도덕적이라고 매도,국민들은 「역사적 허무주의」에 빠져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은 대한민국을 좌·우익의 이념적 혼란에서 공산독재화를 막아냈고 공산군의 침략을 격퇴,나라의 기초를 세운 공로가 있다고 평가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3공화국은 경제개발로 나라의 국력을 배가시켰고 자주국방과 무기체제의 자립화 계기를 만든 점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5공화국은 이른바 「3고」시대에 경제를 파탄의 위험에서 구해냈고 외채를 격감시켰으며 강력범이 횡행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고 강변했다. 또 노태우 피고인과 함께 6·29을 통해 민주화를 이루었고 88올림픽의 유치로 국위를 선양하는 등의 공로를 세웠다고 주장했다. 6공이 민주화와 개방화로 북방외교에 성공한 것도 치적으로 내세웠다. 5·6공은 건국 이후 한국을 이끌어온 이승만·박정희 정권의 정통성을 잇는 정권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들의 역사관이 보수주의라기보다는 수구주의라고 비판한다. 전피고인 등에 대한 재판이 과거 역사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잘못된 과거의 진실을 밝혀내고 새 도약의 기초를 세우자는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이지 좌·우 이념 논쟁의 소산이 아니기 때문이다.〈박상렬 기자〉
  • 김 대통령 추념식 직접 참석 의미

    ◎현충일/국민단합의 재전으로 자리매김/유공자위상 정립·문민정통성 재천명/야 등원거부로 입법부대표 배석 못해 김영삼대통령은 관례를 깨고 6일 열린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했다.추념식에 대통령이 참석한 것은 80년을 제외하고는 75년이래 이번이 처음이다.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김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식 참석은 주변상황과 관련,중요한 뜻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추념식에는 3부요인중 입법부대표인 국회의장이 참석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김수한 국회의장내정자가 야당의 저지로 정식 선출되지 못해 의원자격으로 단하에 자리했기 때문이다.여야 정당대표들도 초청됐으나 김대중 국민회의·김종필 자민련·이기택 민주당총재 등 야당측은 모두 불참했다. ○…지난 70년 북한 공작원의 소행으로 보이는 현충문폭파사건이 발생,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위해를 입을뻔한 사건이 있었다.그뒤 경호상의 문제가 제기되어 75년부터 국무총리가 추념식을 주재해왔다.83년부터 87년까지는 행사가 국립극장에서 간소하게 진행되기도 했다. 현충일은 순국선열과 전몰 호국영령의 충절을 기리는 범국가적 제전의식이다.이제까지 정부 스스로 의식의 격을 떨어뜨림으로써 국민들도 현충일의 의미를 실감치 못했던 측면이 있다. 지난해까지 김대통령은 현충일 하루전쯤 국립묘지를 참배했으나 추념식에는 총리를 참석시켰다.이번에 김대통령은 추념식 주재를 직접 결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군의 올바른 자리매김 등 역사바로세우기 추진이후 현충일을 사회분위기 일신과 국민단합을 도모하는 범국민적 제전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소신에 따른 것이란게 청와대관계자들의 설명이다.취임초부터 순국선열 유해봉환을 추진해온 것과도 맥을 같이 한다. 최근 안보상황과 목전에 다가온 통일에 대비,안보의식을 고취하기 위해서도 현충일의 의미를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김대통령의 추념식 참석은 국가유공자위상의 재정립과 함께 문민정부 정통성을 다시 과시한다는 뜻도 있다. ○…김대통령은 이날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열린 추념식에 참석한데 이어 강동구 둔촌동소재 보훈병원을 방문해 국가유공보훈환자들을 위로했다.김대통령은 이날 상오10시 황창평 보훈처장과 함께 승용차편으로 국립묘지에 도착해 이양호 국방·김우석 내무장관,김시복 보훈처차장의 영접을 받고 현충문앞 옥외행사장으로 이동해 윤인 대법원장을 비롯,국가유공자단체대표및 유족대표들과 함께 현충탑에 헌화·분향했다 이날 추념식에는 이홍구 신한국당대표 및 국무위원과 유족,시민등 각계대표 5천여명이 참석했다.〈이목희 기자〉
  • DJ 80년2월 복권 전씨가 건의/정부 일부 관계자 반대속 관철

    ◎「5·18」 사태후 「내란죄」로 구속시켜 전두환 피고인이 지난 80년 2월 당시 최규하 대통령에게 정치활동이 금지돼 있던 김대중씨(현 국민회의 총재)를 복권시키자고 강력히 건의한 사연은 무엇일까. 80년 2월29일 민주화 조치의 일환으로 시국사범에 대한 복권조치를 앞두고 정부의 일부 관계자들은 DJ의 복권은 안된다는 견해를 폈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민주화의 의지를 보여주려면 DJ를 꼭 복권시켜야 한다고 건의,관철시켰고 이른 바 「서울의 봄」이 왔다는 것이다. 전씨는 당시 정치상황을 서울의 봄이라고 말하게 된 것은 박정희대통령 체제하의 정치규제가 풀려간다는 뜻이지,정치·사회상황이 안정을 찾았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전씨는 복권 조치 전에 DJ의 행보에 관심을 갖고 DJ를 직접 만나려 했다고 밝혔다. 시국안정과 정치발전에 협조해 줄 것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는 설명이다. 전씨의 지시에 따라 권정달 당시 보안사 정보처장이 면담을 주선했고 면담 일자가 결정됐다. 하지만 당시 관심의 대상이던 「3김씨」 가운데 DJ만을 만나면 정치적으로 오해를 살 수 있다는 문제점이 제기되자 전씨는 권 정보처장과 이학봉 수사국장을 대신 보내 만나도록 했다. DJ를 만난 권처장과 이국장은 정부의 복권조치 배경을 설명하고 시국안정에 협조해 달라는 전씨의 뜻을 전했다.서약서를 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면서 DJ는 내란죄로 구속됐다. 이후 DJ의 구명을 전씨에게 건의하고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생명을 구해낸 사람은 신군부의 2인자였던 노태우씨였다. 피고인측의 주장대로라면 80년 정치적 격변기에서 DJ는 전·노씨에 의해 생사의 기로를 오간 셈이다.〈박상렬 기자〉
  • “「5·17」최대통령 독자적 결단 국헌문란 내란행위아니다”/전씨

    ◎「12·12­5·18」 사건 11차공판 전두환 피고인은 지난 80년 5월17일 상오 10시 최규하대통령에게 보안사의 「시국수습 6개 방안」을 건의,최대통령이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는 승인했으나 국회해산은 보류토록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5·17은 당시 시국상황을 인식한 최대통령이 독자적 결단에 따라 행한 정당한 국가행위라며 검찰이 주장한 국헌문란의 내란행위가 아니라고 반박했다.〈관련기사 20·21면〉 전피고인은 3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형사 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12·12 및 5·18사건 11차 공판에서 이같이 진술했다. 전피고인은 변호인 반대신문에서 권정달피고인에게 시국수습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사실은 시인했으나,5·17 계엄확대는 당일 상오 최대통령에게 보고해 승인을 얻었으며 국무회의에서 통과될 때까지 혼자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당일 낮 지휘관회의의 의결을 거쳐 저녁 신현확 총리와 주영복 국방부장관,이희성 참모총장이 최대통령에게 건의,승인을 얻은뒤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시행됐다고 덧붙였다. 국보위 설치와 관련,79년 5월에 박정희 대통령에게 비상계엄시 행정과 사법업무를 함께 처리할 수 있는 비상기구의 설치를 이미 내락받았으며,5·17 이후 이에 따라 국보위를 설치했다고 주장했다. 전피고인은 『79년 12월13일 육참총장에 이희성 대장이 임명된 것은 평소 깐깐한 성품을 아는 최대통령이 13일 새벽 정승화 총장의 연행을 재가하며 노재현 국방장관에게 지시해 이뤄졌다』며 자신의 인사개입설을 부인했다. 이 날 재판에서는 12·12 사건과 관련,최세창·허화평·장세동·허삼수·신윤희·박종규피고인 등 6명에 대한 변호인의 반대신문이 있었으나,이들 모두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재판부는 오는 10일 상오 10시 5·17사건에 대한 12차 공판을 열기로 했다. 이어 13일에는 12·12사건에 관련된 13명의 피고인에 대한 증거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박선화 기자〉
  • “정총장 내란방조 4가지 혐의”/합수부「연행 재가서」내용 밝혀져

    ◎「시해 현장」 대기·총성파악 미흡 등 적시/「유신비판론」 등 관련 주변향도 담아 12·12 당시 합수부가 작성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연행에 대한 재가문서의 실체가 27일 10차 공판에서 밝혀졌다. 당시 합수부 수사국장이던 이학봉 피고인은 이날 변호인 반대신문에서 자신이 이를 작성했다고 시인했다. 이피고인은 지난 79년 12월6일 전두환 합수본부장으로부터 재가문서를 만들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앞서 10월28일과 11월8일,이피고인은 전본부장에게 정총장의 내란방조 혐의에 대한 수사내용을 보고했다.『정총장의 구속수사가 불가피하다』는 건의도 곁들였다. 문서는 12월11일 작성했다.형식은 A4 용지 크기에 「정총장 연행의 필요성에 관한 보고서」라는 제목을 붙였다.밑에는 「합동수사본부」라고 적고,표지 오른쪽 상단에 대통령의 결재란을 만들었다.보고서는 12∼13쪽 분량으로 글씨를 크게 써 보고시간이 15분 정도 걸리도록 했다. 목차는 ▲정총장의 내란방조 혐의점 ▲군 내부의 동향 ▲김재규사건 공판 관련 동향 ▲합수부의 의견 순이었다. 내란방조의 주요 내용은 정총장의 박정희대통령 시해현장 대기,총성파악 미흡,불법 병력동원,김재규 구속수사시 미온적 행동 등이다. 정총장의 유신비판 발언과 3김씨 비토론에 대한 군부내 동향,외신이 본 군부내 쿠데타 동조세력 가능성,세간의 정총장 의혹에 대한 반향도 담았다. 결론적으로 정총장을 연행해 조사하겠다는 의견을 붙였다. 12일 하오 6시30분 전본부장이 이를 최대통령에게 보고했다.전본부장이 내용을 하나 하나 설명하면 최대통령이 보고서를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고 이피고인은 진술했다.〈박선화 기자〉
  • 「사전모의」 규명 치열한 공방/「12·12사건」 사실심리 결산

    ◎검찰­신군부측의 군사반란 입증에 주력/변호인­“우발적 충돌”… 구체증거는 제시못해 27일의 10차 공판으로 12·12 사건 주요 피고인에 대한 변호인 반대신문이 끝났다.다른 피고인들에 대한 신문도 다음 공판으로 끝난다. 검찰의 보충신문과 증인신문이 남았지만 사건의 전모와 양측의 해석은 거의 모습을 마무리 셈이다. 이 날까지 12·12 문제로만 모두 6차례의 공판이 열렸다.피고인들의 군사반란과 내란 혐의를 증명하는 중요한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검찰과 변호인단의 대결도 치열했다. 쟁점은 사전 모의 여부,이른바 「경복궁 모임」의 성격,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연행 목적과 합법성 여부,최규하대통령 재가의 적법성,병력동원의 경위 등이었다. 검찰은 12·12 사건은 10·26 이후 군부내 입지에 위협을 느낀 전두환 보안사령관 등 하나회 중심의 소장 군부세력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측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군 주도권을 장악한 군사반란이라는 점을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이 과정에서 당시 우국일 보안사 참모장 등의 증언,「5공 전사」등 방증자료 등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제시하며 피고인들을 궁지로 몰았다. 변호인단은 사실자료 제시보다는 정황증거로 맞섰다. 12·12 사건은 10·26 당시 김재규에게 동조한 혐의가 뚜렷한 정승화 육참총장을 연행·조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우발적 충돌이라고 주장했다.또 정총장측 장성들이 먼저 병력을 동원했기 때문에 「반란」을 제압하는 차원에서 병력을 동원했다고 강변했다. 쟁점 자체를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에 정총장의 연루 여부,장태완 당시 수경사령관의 병력동원의 적법성 등 2∼3가지로 단순화하려고 애썼다.12·12가 사전각본에 따라 일어났다는 공소 사실을 부인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구체적인 증거는 거의 제시하지 못했다. 검찰과 변호인단의 공방을 종합하면 앞으로 증인신문 등에서 이변이 발생하지 않는 한 검찰의 논거가 훨씬 설득력을 갖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12·12 사건에 대한 변호인단의 논거로 미루어,앞으로 5·17,5·18 사건에 대한 변호인 반대신문의 방향과 수위도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고 있다. 12·12 사건에서 정총장의 혐의와 육본측의 대응을 집중 공략했듯이 5·17 사건에서는 대학생 시위와 정치권 및 재야의 움직임이 혼란한 상황을 만들어냈다고 강변할 전망이다.5·18사건에서는 사태의 책임을 일부 시민들의 「과격한」행동으로 미룰 것으로 보인다.〈박상렬 기자〉
  • 이학봉/김재규 “정총장 끝까지 믿고 행동”진술/공판 이모저모

    ◎변호인 “수사기록 읽을 시간도 없다” 불평 27일의 12·12 및 5·18 사건 10차 공판에서도 피고인들은 12·12가 정당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학봉 피고인은 변호인 반대신문에서 『김재규는 10·26 사건 후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끝까지 협조해 줄 것으로 믿고 행동했다』고 주장. 합수부 수사국장이었던 이피고인은 『김재규는 수사과정에서 정승화총장이 자신을 배신하지 않고 끝까지 협조할 것으로 믿었으며 협조하지 않으면 쏴 죽였을 것이라고 진술했었다』고 말했다. 이어 『김재규는 또 정승화총장이 10·26 사건 후 병력출동 상황에 대해 당일 육본 벙커에서 만난 노재현국방부장관에게 당연히 보고해야 하는데도 보고하지 않은 점 등으로 미뤄 정총장이 국방부장관도 안중에 두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했다고 말했었다』고 덧붙였다. ○…유학성 피고인은 변호인의 반대신문에서 서너차례 『내가 (당시 계급이) 중장인데…』라는 표현을 쓰며 혐의 내용을 강력히 부인. 유피고인은 12·12 당시 30경비단으로 전화를 한 장태완 수경사령관과통화하면서 『다 알면서 왜 그래.그러지 말고 이리로 와』라고 회유했다는 장태완씨의 검찰 진술에 대해 『나는 중장,장태완은 소장인데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그런 얘기를 했겠느냐』고 반문. 이른바 「신촌모임」에 참석한 우국일 보안사참모장과 12·12 다음 날 아침식사를 하면서 『우장군,어젯밤 술을 잔뜩 먹여 정신을 못차리게 하지 왜 팔팔 뛰게 만들었나』라고 했다는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해서도 예의 「중장 논리」를 내세우며 『나는 아침식사를 어디서 하든 부담을 주는 말은 하지 않는다』며 부인. ○…황영시 피고인은 『술에 취한 장태완이 30경비단으로 전화를 걸어 폭언하는 바람에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이를 막기 위해 병력을 동원했다』며 장태완 수경사령관의 돌출적인 언동이 결과적으로 12·12를 불러왔다고 주장.이어 『신군부측 장성들 사이에는 장태완이 두명의 대통령을 배출시켰다는 말이 나돌았다』고 부연. 황피고인은 또 김재규와 정승화 육참총장이 동기생들보다 진급이 늦었다고 지적,『늦게나마 진급시켜 준 박정희대통령을 배신한 변절자』라며 원색적으로 비난. ○…전두환 피고인의 이양우 변호사는 공판이 열리기 전 기자들에게 『수사기록 한 번 제대로 읽을 시간 여유도 없이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며 재판부와 검찰에 불만을 토로. 이변호사는 『18만쪽이나 되는 기록을 제대로 한 번 읽는데만도 2개월 이상이 걸린다』며 공판이 시작되자마자 『5·18 신문 사항을 정리하러 가야겠다』며 황급히 퇴정. ○…재판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퇴색하면서 방청객들의 숫자도 줄어 드는 추세. 전두환 피고인의 이양우·전상석 변호사와 노태우 피고인의 한영석 변호사 등 5∼6명의 변호인을 제외한 나머지 변호인들은 다른 재판 참석 등을 이유로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다.〈박은호·고영훈 기자〉
  • 미그기 귀순 계기 김정일체제 긴급 점검/전문가 좌담

    ◎“북,「최악의 위기」 외교수단으로 역이용”/군부강경파 득세… 대남도발 계속 예상/4자회담 큰틀엔 영향 미치지 않을것/한·미 공조 더욱 긴요… 북의 「자폭식 군사공격」 배제못해 식량난과 에너지난등으로 요약되는 극도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최근 북한체제의 총체적 난국이 가중되고 있다.23일 터져나온 북한 미그19기 조종사의 귀순사건 역시 북한체제의 불확실성을 입증한 사례라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서울신문은 24일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대사(코리아소사이어티회장)와 허남성 국방대학원 교수,홍승길 서울신문 국제전략연구소 연구위원(전안기부 북한정보국장)의 긴급 정담을 통해 「고장난 비행기」에 비유되는 북한체제의 현실상을 진단하고,한·미등 국제사회의 바람직한 대북 정책을 점검해 보았다.〈편집자주〉 ▲그레그 회장=23일 북한의 한 조종사가 귀순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북한의 공군 파일럿 귀순사건으로선 13년만에 생긴 일입니다.저에게 놀라운 점은 북한으로부터의 귀순자가 오히려 적다는 사실입니다.과거 동독에 비해 그렇다는 겁니다. 그러나 어쨌든 북한사회에서 높은 지적 수준과 기술력을 갖춘 촉망받는 우수한 조종사가 한국으로 귀순했다는 사실은 북한군부의 현재 「기분」,즉 사기나 준비태세를 반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비행사의 10년간 비행시간이 3백50시간에 불과했다는 사실입니다.1주일에 불과 1시간도 실제 비행 훈련을 못했을 정도라면 한·미 공군에 비해 형편없이 적은 훈련량일 것입니다.이래가지곤 한국과의 전투가 벌어지면 북측은 거의 승산이 없다고 여겨집니다. ○북 내부반발 확산 ▲홍승길 연구위원=미그19 귀순은 최근 북한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고 젊은 「귀족 계층」과 외국생활 경험이 없는 계층까지 북한체제에 회의하고 있음을 반증하기 때문에 의미가 큽니다.아직까지는 북한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세 기둥,즉 김일성의 카리스마와 당노선 및 통제메커니즘이 붕괴됐다는 징후는 없지만 내부 반발이 젊은 귀족계층으로 확산돼가고 있어 김정일이 이를 지탱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레그 회장=재미있는 말씀입니다.저는 지난 22∼23일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와 미 아메리칸대가 공동주최한 한 세미나에서 주북한대사로 내정된 러시아의 발레리 데니소프 외무부 아시아1국 부국장과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에서 그로부터 김정일이 북한권력을 장악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물론 저도 이에 동의했습니다. 다만 김정일은 김일성만한 카리스마가 없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의 자리에 서서히 다가서려는 듯합니다.북한의 강경파들이 변화를 싫어하는 것은 사실이나 김정일이 이들에게 반대급부를 주면서 잘 통제하고 있는 인상입니다.북한이 휴전협정 무효화공세를 펴면서 미국과 새 평화협정을 맺으려고 하는 것도 그것이야말로 강경파들에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반대급부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미 양국이 4자회담을 북한에 공동제안한 것은 적절한 선택이었습니다.특히 중국을 참여시켰다는 점이 그렇습니다.4자회담이라는 틀이 마련됨으로써 한국은 미국의 향후 대북 정책에 대해 그렇게 「염려」하지 않아도 되게 됐으며,북한 또한 한·미가 그들에 대한 목조르기나 붕괴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갖게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허남성 교수=그레그 회장께서 북한군의 잇따른 도발을 북한 사회 변화를 위한 보상,강경파를 무마하기 위한 보상으로 보는 분석은 매우 흥미롭습니다.그러나 전 다른 의도가 있다고 봅니다.북한은 지난 4월4일 현재의 정전협정 무효를 선언했고 북한군의 도발은 자신들의 말이 빈말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라고 봅니다.그리고 앞으로도 도발은 계속될 것입니다.7∼8명 단위에서 20∼30명 정도로 규모가 커지고 어선납치,20년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과 같이 극단적인 도발도 가능합니다.북한의 대남도발에는 첫째 미국을 군사회담장에 끌어들이고,둘째 북한내부의 결속을 강화하며,셋째 한국의 국론분열과 혼란을 유도하고,마지막으로 한·미,한·일간의 관계를 분열시키겠다는 배경이 깔려있습니다. 지난해 10월10일 열렸던 노동당창건 50돌 행사때 김영춘 이하일등 갓 차수로 승진한 군인들이 당비서보다 먼저 호명되고 군 열병식을 하는가하면 최광이 경축사를 해 당이 아닌 군 행사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혁명1세대를 중심으로 군부 강경파가 상당히 전면에 나서 엄청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홍위원=김정일은 금년 하반기에 권력을 완전 승계할 것으로 예측됩니다.근거로 삼년상 얘기가 있고 또 3년간의 경제개혁이 올해로 끝나고 내년부터 7차 경제개혁이 시작된다는 점,그리고 오는 10월 김일성이 창건한 「타도제국주의 동맹」 70주년을 맞는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습니다.그러나 향후 경제실정과 미국과의 관계에 따라 내년으로 넘길 수도 있습니다. ▲그레그 회장=지난 3년간 한국의 북한에 대한 태도가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제가 한국을 떠난 지난 93년 무렵만 해도 통일을 늦추는 게 좋다는 의견이 우세했습니다.남북간 경제적 격차를 줄여 10∼15년 후에 통일하는게 유리하다고 본 것입니다.그러나 그후 김일성 사망이 한국민의 심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한국인에게 사악한 인물로 비쳐지고 있는 김일성 대신에 좀 「이상하게」 보이는 김정일이 지도자가 된데다가 독일통일 과정에서 엄청난통일비용을 지켜본뒤 남한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았나 여겨집니다.더욱이 북한의 경제력이 한국을 따라잡기는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갈수록 격차가 벌어져 통일이 멀수록 통일비용만 늘어나기 때문에 지금 통일하는게 낫다는 의견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을 현실적인 파트너로 여기고 협상하는 게 낫다고 보는 계층과,북한의 지금 상황을 그대로 방치해 붕괴하도록 내버려둬야 한다는 두 부류로 한국사회의 대북관이 엇갈리고 있는 느낌입니다.더욱이 문제는 어느 쪽이 주도세력인지조차 불분명하다는 점입니다. ▲허교수=북한체제의 연착륙을 놓고 한·미간에 이견이 있는 것처럼 비쳐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연착륙에 대한 정의가 애매하기 때문입니다.저는 연착륙을 안락사라는 의미로 씁니다.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현재의 경제위기를 극복,정상 상태로 진입하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는데,이렇게 되면 통일이 더 어렵게 될 뿐입니다.따라서 한·미간에 연착륙에 대한 개념을 분명히 하고 상호 합치점을 도출해야 합니다.미국에서 포용정책을 들고 나오는데,유연한 대처는 좋지만 유화적인 것은 문제입니다. ▲그레그 회장=오늘 우리가 하고 있는 이같은 토론에 귀순한 북한 조종사도 노출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또 한국의 정치지도자들도 대북 정책을 좀더 일관성있게 펴나갔으면 하는 권고를 하고 싶습니다. 덧붙여 말씀드린다면 한국의 지도자는 이승만·장면·박정희등으로 이어지고 있는 동안 북한은 김일성­김정일로 승계되고 있습니다.제 생각으론 북한에도 박정희와 같은 역할을 할 인물이 나중에 출현할 가능성이 높고,한국측이 이 사람과의 대화가 오히려 잘 될수도 있다고 여겨집니다. ▲홍위원=제주에서 한·미정상은 한반도 문제해결은 당사자가 중심이 돼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했습니다.미국이 북한 개입정책을 펴고 있는데 이는 남북대화와 연결해야 남북관계 발전의 여건이 조성됩니다.남북대화는 동결됐는데 미·북관계만 발전되면 한국민의 대미불신을 야기해 양국간 복잡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봅니다. ▲허교수=북한의 식량난은 과장된 측면이 많아 크게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고 봅니다.60년대초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쌀소비량은 연간 1백36㎏이었습니다.북한의 경우 1인당 1백50㎏이라고 설정하고 2천3백만명이니까 3백50만t 정도인데 여기에 자연감소량을 감안해 1백만t을 더해도 연간 4백50만t이면 굶어죽지는 않습니다.북한의 90년 들어 양곡생산량은 연간 4백만t 안팎입니다.93년 3백80만t,95년 홍수로 3백30만t으로 올해에는 약 2개월치의 양곡이 부족할 것으로 분석됩니다.7∼8월쯤이 어렵겠지만 지하경제에 약 1백만t의 쌀을 갖고 있다고 추측돼 미국처럼 쌀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식량난 과장됐다 ▲그레그 회장=상호간의 무지 때문에 이견이 생기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봅니다.한미간 뿐만 아니라 남북한 간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한·미간에 공조를 더 잘 유지하자면 정확한 식량사정등 북한에 대한 정보를 더 잘 공유하는 게 중요합니다. ▲허교수=4자회담에 대해 북한은 앞으로도 신속하게 반응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중국이 이 제안에 적극적이지 않고 러시아도 배제된 상태에 대해 반발하고 있고 북한은 4자회담이 아니더라도 미사일과 유해송환협상등 다양한 대미채널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또 시간을 끌면 끌수록 떡이 커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수정제의를 통해 공을 이쪽으로 넘길 수도 있다는 심산입니다.북한은 최악의 위기사태를 유효한 외교수단으로 역이용하고 있습니다.핵협상때 벼랑끝외교에서 이번에는 「자폭위협 외교」라는 얘기도 있을 정도입니다.하여튼 앞으로 3∼4년이 매우 중요합니다.북한이 우세한 군사력으로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죠.따라서 국방비를 일종의 안보보험금으로 보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레그 회장=김정일이 하반기쯤에 공식적인 권력승계 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홍위원님의 말씀이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김이 정확히 언제 최고위직 승계 절차를 밟을지 모르지만 권력승계후에는 4자회담에 참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것으로 보입니다.한·미 양국은 북한이 이렇게 나가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바람직할 것입니다.이같은 관점에서 북한의 식량사정에 대해한·미 양국이 엄밀하게 공동 평가해 공동으로 대응할 필요성이 있다고 봅니다.이런 가운데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하고 4자회담을 수용한다면 한반도의 긴장국면이 완화되는 새로운 상황을 기대할 수 있을 듯합니다. ○「경보망 구멍」 충격 ▲홍위원=미그19기의 귀순이 4자회담의 큰 틀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단,북한의 지도층이 개방하니까 이런 일이 터진다고 판단할 경우 당장에는 4자회담이 위축될 수는 있다고 봅니다.이번 일을 계기로 북한내부의 저항문제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허교수=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단기적으로는 내부단속을 강화해 역효과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홍위원=한가지 첨언하고 싶은 것은 이번에 서울시의 조기경계망에 허점이 드러났다는 우려할 만한 사실입니다.항상 전쟁터에 있다는 업무자세가 필요한 때입니다. ▲허교수=서울시의 민방위 경보체제에 구멍이 뚫린 것은 충격적인 사태입니다.수시로 해오던 훈련도 주민불편을 이유로 간헐적으로실시하는데 이는 잘못입니다.이번 사건을 계기로 민방위 문제를 재고해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정리=구본영·김균미 기자〉
  • 변호인 “진행 협조”… 재판부에 유화 제스처/공판 이모저모

    ◎전씨 “12·12상황 다시 벌어져도 정 총장 연행”/노씨 “87년 대선때 「12·12」 국민심판 받았다” 12·12 및 5·18사건의 공판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주중에 열린 제9차 공판은 예상과 달리 순조롭게 변호인의 반대신문이 진행됐다. ○…지난 20일 8차 공판에서 야간재판을 거부,퇴장하는 등 재판부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던 변호인단은 이 날 『원만한 진행에 협조하겠다』며 재판부에 유화 제스처. 이양우 변호사는 신문에 앞서 『변론권의 적절한 행사와 피고인의 인권옹호 측면을 감안해 가급적 주 1회 공판을 지켜주시고 야간신문을 자제해 달라』고 공손하게 말한 뒤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등 한결 부드러워졌다. ○…변호인측의 한 관계자는 『어제 재판부와 만나 재판진행 방식에 대한 서로의 오해를 충분히 풀었다』며 『재판이 물 흐르듯 잘 진행될 것』이라고 언급. 특히 이 변호사는 상오 재판에서 1백23문항을 신문,8차공판 상오에 진행된 53문항보다 두배 이상의 속도를 냈다. ○…평소 「칼같은」 재판진행을 자랑하는 김영일 재판장은 피고인들의 입정 때 순서를 바꾸어 호명하는 등 두어차례 실수.박종규 피고인의 입정을 명하면서 박준병 피고인이라고 잘못 부른데 이어 입정순서가 4번째인 황영시피고인의 이름을 맨 나중에 호명. 김부장판사는 피고인 대기실에 황피고인이 남아있는 것을 확인한 법정경위가 이를 알려주자 멋적은 웃음을 띠며 황피고인의 입정을 지시. ○…변호인단은 김재규의 내란사건에 정승화 육참총장이 연루됐음을 주장하면서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을 고대 로마의 「시저 암살사건」에 비유.시해 직후 군부에서는 김재규를,시저를 암살한 부르터스에 비유하며 천하의 패륜아·반역자로 지칭했다고. ○…변호인측은 공판에 앞서 8차 공판당시 배포했던 전두환 피고인의 반대신문 내용의 문구를 일부 고친 수정본을 배포.그러나 기존의 문항수(4백28문항)보다 15문항이나 늘어나자 일각에서는 『또 다른 재판지연책』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수정본은 내용의 추가나 변경은 전혀 없이 기존의 신문을 2∼3문항으로 쪼개거나 여러 신문사항을 묶어 다시 되묻는형식으로 고쳐진 정도다. ○…신군부측이 기술한 「5공전사」가 검찰의 수사 참고자료로 이용돼 피고인들의 발목을 잡은 것처럼 변호인단은 장태완 당시 수경사령관의 「12·12쿠데타와 나」라는 자서전을 인용해 장 수경사령관 등이 반란군이었음을 주장. 이변호사는 당시 윤성민 육참차장이 30경비단에 대한 공격명령을 제지하자 『나보고 가만히 앉아있으란 말이냐.이제 당신들(윤차장 등 육본측 장성)마음대로 하라』는 등의 문구를 들며 이러한 행위는 명백한 하극상이며 위법한 것이라고 주장.전피고인도 『자서전을 읽어보았다』고 진술. ○…전피고인은 변호인의 신문에 구체적인 설명을 곁들이거나 군사적인 지식을 활용해 상황을 설명하는 등 적극적인 변론.특히 장 수경사령관의 『총장공관 지역에 있는 모든 사람을 사살하라』는 공격명령과 관련,이 지역에는 국방·외무장관과 합참의장·육참총장·해병대 사령관의 공관이 있어 무조건 사살하라는 명령은 위법한 조치라고 주장. ○…노태우피고인은 하오 5시를 넘어 시작된 반대신문에서 12·12 당시9사단 29연대가 전방을 이탈했지만 1개 예비연대가 후방으로 빠지더라도 방위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그는 『결과적으로도 휴전선 경비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1개 연대병력이 이탈했다고 해서 북한이 남침할 정도로 국방태세가 취약하지는 않다』며 12·12당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 ○…전피고인은 『12·12와 같은 상황이 다시 벌어지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변호인의 질문을 받고 『정승화 육참총장을 연행하겠다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고 대답.그러나 『다만 12·12사건 과정에서 불행을 당한 분들에 대해서는 가슴아프게 생각한다』고 부연. ○…노피고인은 반대신문 말미에 『지난 87년 대선때 12·12사건이 선거이슈로 다뤄져 국민의 심판을 받고 대통령에 당선됐었다』며 『그런데도 다시 이 자리에서 같은 문제가 거론되니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항변. 노피고인은 12·12사건 당시 30경비단을 떠나 부대로 복귀하는 최세창 여단장 등과 헤어질때 『(육본측에)잡혀죽을 지도 모르니 사별하는 심정이었다』고 했던 검찰 직접신문때의 진술은 착각으로 잘못 답변한 것이라고 정정. ○…김부장판사는 지난 8차공판때 야간재판을 열어 변호인단이 퇴정하는 등 파행을 빚은 것과 관련,『앞으로 저녁식사후의 야간재판은 열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주2회 공판이 적절하다고 판단할때는 열 수 있다』고 설명. 이는 변호인 반대신문 분량이 많거나 신문을 느리게 진행돼 재판의 효율성이 침해될때는 언제든지 2회공판을 강행하겠다는 경고성발언이라는 평.
  • 전씨 “김재규 「혁명계획」 자백”/「12·12」 「5·18」공판

    ◎시해현장 정 총장 부른것도 계획적/변호인단 「야간재판 거부」 퇴정… 재판 중단 12·12 및 5·18 사건의 8차 공판이 20일 하오 상오 10시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형사 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 심리로 열려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변호인단의 첫 반대 신문이 진행됐다. 공판은 3차례의 휴정을 거쳐 하오 8시40분 속개됐으나 전상석·석진강 변호사 등 변호인단이 밤 늦게까지 강행하는 것은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이유 등으로 신문을 거부하고 퇴정,하오 9시10분쯤 중단됐다. 재판부는 변호인단이 공판을 거부하자 앞으로 1주일에 2차례 공판을 열기로 결정했다.이에 따라 9차 공판은 오는 23일 상오 10시에 열린다. 전피고인은 『당시 정승화 육참총장의 연행은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에 연루됐다는 혐의가 있어 취해진 합법적인 조치였다』며 군사반란과 관련한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또 정총장은 계엄확대 회의에서도 김재규를 구명하기 위해 『박대통령의 서거는 불행이 아니며,체제가 잘못됐던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김재규가 정총장을 시해현장에 참여시켰던 것은 3단계 혁명계획 가운데 첫 단계라고 자백했다고 진술했다. 신군부의 병력 출동에 대해서도 『장태완 수경사령관 등 정총장 계열의 육본 장성들이 대통령의 재가도 받지 않고 무장병력을 동원해 청와대를 포위하는 등 먼저 반란행위를 주도했기 때문』이라며 『장수경 사령관과 김진기 헌병감은 12·12 직후 수경사 병력을 동원해 최대통령을 총리공관에서 수경사로 납치하려는 음모를 꾸몄으나 무산됐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정총장은 박대통령 시해사건 수사 과정에서 최대통령을 철저히 조사하도록 군 검찰에 지시,당시 검찰관이 본인을 찾아와 정사령관의 지시를 전하고 협조를 요청했다』며 최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합수부와는 무관하게 육본에 의해 이뤄졌다고 말했다. 변호인단은 반대신문에 앞서 「공소장변경요구와 재석명 요구서」를 통해 『내란죄 구성요건으로서 폭동은 비상계엄확대 선포로 종료된 것으로 봐야 한다』며 『검찰이 내란의 종료시점을 비상계엄이 해제될 때까지로연장한 것은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황진선 기자〉
  • 전씨 공개 「10·26」 비화

    ◎3단계 혁명계획­정 총장주도하 계엄선포… 후일 김씨 집권/김재규 3김비토­부정부패·사상에 문제·역량부족 내세워/정 총장 정치행위­최 총리 “대통령 추대” 막후서 결정적 역할 전두환 피고인은 20일 공판에서 79년 10·26 이후 12·12까지의 몇 가지 비화를 공개했다.상당 부분은 자기 변호를 위한 주장이라는 지적도 많다. 전피고인의 주장을 간추린다. ▲김재규의 3단계 혁명계획=김재규는 합수부의 이학봉 수사책임자에게 3단계 혁명계획을 자백했고 이씨는 11월8일 전씨에게 보고했다.김재규가 집권하기 위한 내란계획이었다. 1단계는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하는 현장 부근에 정승화 총장을 대기시켜 시해사건의 관련자로 만들어 정총장이 김재규의 내란행위에 가담하도록 몰고 가는 것이다. 2단계는 정총장으로 하여금 군 주도하에 계엄을 선포하고 군을 동원해 주요 국가시설을 장악케 하는 과정이다.3단계는 국가기관을 장악한 뒤 혁명위원회를 구성해 위원장에 정총장을 앉힌 뒤 자신이 집권한다는 내용이다. 이런 집권계획은 김재규의 말대로『김계원 청와대 비서실장의 배신』으로 체포됨으로써 실패로 끝났다. ▲김재규의 「3김」 비토(거부)론=김재규는 11월17일 군검찰 조사에서 3김에 대한 비토 발언을 했다.박대통령 시해후 자신이 집권하려는 배경 논리였다. 정국혼란을 수습할 수 있는 지도자로서 김종필씨는 부정부패에 관련돼 부적합하고,김대중씨는 사상적인 하자가 있어서 곤란하며,김영삼씨는 역량을 높이 평가할 수 없어서 적임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9일 뒤인 11월27일 정총장도 언론사 사장단과 편집국장·보도국장과의 오찬에서 같은 발언을 했다고 전씨는 주장했다. 만일 이런 사람들이 대통령이 된다면 군은 쿠데타를 일으켜서라도 막을 것이라는 내용이다.이 발언으로 예산을 심의하던 국회가 공전되기도 했다. ▲정승화 총장의 정치행위=정총장은 최규하 과도정부 체제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역할을 했다.노재현 국방장관과 함께 최총리를 대통령으로 추대하고 김종필씨의 대통령 출마를 저지하는 등 막후에서 정치를 조정했다. 정총장은 그의 자서전 「12·12사건 정승화는 말한다」에서도 이를 시인했다.정총장은 『지난 79년 11월초 노장관이 「국무위원들은 최총리가 다음 대통령으로 가장 무난한 인물」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내게 물어왔다』고 밝혔다.정총장은 이에 동의,군은 내가 이해시키겠다고 약속했다. 노장관과 정총장은 최총리를 과도정부의 대통령으로 추대하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과도정부는 1년 전후 길어도 2년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데 합의했다. 정총장은 또 대통령후보 등록마감일을 앞둔 11월15일 김종필씨가 공화당후보로 나서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며 길전식 사무총장과 장경순 정책위의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무위원들의 최총리 추대의사를 전달했다.공화당은 이 날 의원총회에서 김씨를 대통령후보로 옹립할 것을 가결했으나 김씨는 입후보를 포기했다. ▲대통령의 재가는 행정절차=전피고인은 정총장 연행을 사후에 최규하 대통령으로부터 재가를 받았으며,이는 행정절차라고 주장했다. 군의 수사·정보기관은 주요 장성의 형사사건을 처리하는데 있어 대통령에게 관례상 보고한다.행정적인 보고이지 반드시 필요한 법적절차는 아니다. 군법회의법이나 예규상 수사관이 혐의자를 연행·수사할 때 미리 군통수 체계에 의한 상급자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검사가 장·차관·국회의원 등 주요인사를 구속할 때 검찰총장에게 보고하는 것과 같은 행정절차이다. 보안사는 과거 박임항 내란사건과 윤필용 장군 사건처럼 주요 사건의 경우,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고 재가를 받은 뒤 국방부장관에게 구두로 사후 보고하는 게 관례이다.〈박선화 기자〉
  • 전씨가 말하는 「정승화 총장 군맥」

    ◎김재규 도움으로 총장에… 군인사 장악/장태완·이건영·김진기씨 등 요직 앉혀/신군부 동조 차규헌·황영시씨도 포함 “이채” 전두환 피고인은 20일 공판의 변호인 반대신문에서 12·12 당시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의 군맥을 구체적으로 지목했다. 전씨는 「정승화계열 군부」라고 지칭했으며 정총장이 김재규의 도움으로 총장 자리에 올랐다고 주장했다. 당시 전피고인은 거지철 청와대 경호실장의 비호와 노재현 국방부장관의 추천으로 보안사령관에 임명 됐었다. 전피고인은 정총장이 김재규와 동향으로 평소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다고 밝혔다.지난 77년 12월 정총장이 1군사령관에 보임된 이후 더욱 가까워졌다고 했다.김재규가 시국관이 같은 정 사령관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강력히 추천,참모총장에 앉혔다는 것이다. 정총장은 79년 11월 중순에 단행된 인사에서 자신과 김재규 계열 장성들을 요직에 배치,군부를 완전히 장악했다고 주장했다. 정총장 계열의 핵심장성으로 자타가 공인했던 장태완소장을 수도경비사령관에 발탁했고,7사단장 시절 작전참모와 1군사령관 때 참모장을 지낸 하소곤 소장을 육본 작전참모부장에 임명했다. 3군사령관인 이건영 장군은 김재규가 중앙정보부장 때 1차장으로 임명한 측근이라고 밝혔다.김진기 육본 헌병감과 손길남 수도기계화사단장,배정도 26사단장,정병주 특전사령관도 정총장 계열의 핵심장성으로 분류했다. 특히 「신군부」 세력에 가담한 거규헌 수도군단장과 황영시 1군단장을 정총장 측근으로 분류해 이채롭다.거장군은 정총장이 방첩부대장 때 정보처장을 지냈고 참모총장의 직계장성이 맡는 게 관례인 장성진급 심사위원장을 79년에 지냈다는 점을 들었다.황장군은 정총장이 1군 참모장 시절 작전참모로 근무한 인연으로 의형제와 같은 친분을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윤성민 참모차장과 이재전 청와대 경호실차장,문홍구 합참본부장,윤흥기 9공수여단장도 정총장 계열 군부로 지목했다. 전씨는 대통령 시절 장태완·이건영·문홍구씨 등 정총장 계열 퇴역장성들에게 『12·12 당시 자기계보의 수장을 위했다는 인간적인 측면을 고려해 국영기업체 이사장과 마사회장등의 자리를 주었다』고 덧붙였다.〈박선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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