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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력이 분산되는 사회로/이종화 고려대 교수·경제학(서울광장)

    남성과 여성은 심리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다고 한다.그 중 하나가 남성들은 위계질서에 익숙하여 사람을 사귈때 상대가 자신보다 우월한가 열등한가를 따져 상하 관계로 생각하는 반면 여성들은 자신과 얼마나 가까운 가하는 친근도를 중심으로 인간 관계를 형성한다고 한다.따라서 남성들은 선배 후배,형님,동생과 같은 수직관계를 편안해하는 반면,여성들은 친한 사람과 친하지 않은 사람으로 나눠지는 수평관계를 더욱 편안해하며 상하 관계도 예를 들면 친한 언니,친하지 않은 언니로 나누어 수평관계로 생각한다는 것이다.많은 남성과 여성간의 갈등이 이러한 심리적인 차이를 서로가 이해하지 못할때 발생한다고 하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분석이다.수평과 수직의 관계가 잘 조화되지 않고 남성이 일반적인 수직관계를 강요할 때 가정의 불화가 발생한다. 한국사회의 많은 문제들 또한 경직된 수직관계에서 발생한다.우리 사회의 모든 조직이 남성적인 사고 방식,상하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정치조직은 보스를 중심으로 한 수직구조이며 기업들은 소유주를 정점으로 피라미드형의 계급사회를 이루고 있다. 수직사회의 장점은 지도자의 명령에 따라 조직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으므로 매우 효율적인 통솔이 가능하다는 것이다.따라서 군과 같은 조직이 계급을 중심으로 한 상하관계로 이루어지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하겠다.그러나 사회구조가 단순할 때는 모든 조직원의 의사가 쉽게 일치할 수 있으므로 능력있고 우수한 지도자가 모든 조직을 매우 효율적으로 통솔해가는 것이 가능할 수 있으니 사회구조가 복잡해질수록 이것이 어렵다는데 수직적인 조직의 한계가 있다. ○수직적 구조 부작용 양산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능력이 제한된 지도자가 모든 일을 결정할 때 구성원들 간의 갈등과 불화가 발생하고 결국 조직전체가 파멸할 수 있다.또 수직적인 조직에서는 능력보다는 보스에 대한 충성도가 중요시되어 조직원들이 보스의 눈치만 살피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보스가 불합리한 생각을 하는 경우에도 조직원들이 맹목적인 충성을 다하게되어 사회적으로 전혀 바람직한지 못한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과거 유신시대를 회고하고 고 박정희 대통령을 기리는 움직임이 있다.침체한 경제와 혼란한 사회에서 느끼는 불안한 심리 때문에 강력한 지도자가 모든 국사를 일사불란하게 이끌어 가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그러나 대통령이 강력한 통솔력으로 사회전체를 이끌어갈수 있던 시대는 지났다.현재와 같이 사회구조가 다원화되고 국민들의 다양한 욕구가 표출되는 시점에서 권위적인 지도자가 국가 전체를 군대처럼 통솔할 수 없음은 이미 80년대에 우리가 경험한 바 있다. 한보사태,대선자금 비리와 같은 최근 우리사회의 문제는 언뜻 무능력한 천민자본가와 부패한 정치지도자들 때문에 생겨난 것처럼 보이고 따라서 유능하고 양심적인 지도자를 찾는 것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인양 생각할 수 있다.그러나 온갖 비리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기업가 정치권 할 것 없이 모든 사회조직이 수직화되고 있고 힘과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화되어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초인과 같은 지도자를 찾기보다는 권력이 다수에게 분산되도록 하는 제도적인 개선이 문제의 해결책이라 하겠다. ○불필요한 권위 사라져야 과거 30년 동안 눈부신 발전을 통해 우리사회는 복잡해지고 다원화되었다.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된 수직적인 사회구조로는 수평적 관계를 원하는 국민 대다수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어렵다.이제 21세계의 한국은 경제는 경제전문가가,외교는 외교전문가가,국방은 국방전문가가 하는 전문가 사회,권력이 분산되고 불필요한 권위의식이 사라진 탈권위 사회,팀워크를 중심으로 한 협동작업이 주가 되는 수평적 사회가 돼야 한다.
  • 루카센코와 박정희/류민 모스크바 특파원(오늘의 눈)

    민스크 시내 벨라루스 공화국궁전 공사장에서 만난 루카센코 벨라루스대통령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그의 언행은 실제로 박전대통령과 닮은 점이 많기 때문이다. 이들 둘은 일반인들에게 독재자라는 별로 달갑지 않은 수식어를 받는 사람들이다.루카센코와 박 전 대통령은 현직에 있는 동안 대통령임기를 연장,정권연장을 한 인물이다.루카센코는 또 박 전 대통령처럼 「근면의 경제철학」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근면=나라부흥」이라는 판단에서 그는 매주 토요일 해당기관원과 주민들을 동원,새마을청소를 독려한다.그런 탓인지 민스크 일대는 어디서나 선진국 못지않은 청결함을 볼 수 있다.모스크바나 동유럽 다른 대도시에서 볼 수 없는 참신함이다. 19일 하오.민스크시내 공화국궁전 공사장.모스크바에서 온 기자들은 『회견을 시켜준다』는 한 대통령보좌진에 「이끌려」 뜻밖의 공사장에 도착했다.모스크바 특파원들은 앞서 회견약속을 받고 17일 도착해 있었으나 이틀이 지나도록 『시간이 정해지면 전화를 주겠다』는 대통령실의 말에자리를 뜨지도 못한채 「반감금」 상태로 이틀을 호텔에서 보내야 했다.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서성이는 뒤에야 루카센코가 도착했다.루카센코 수행기자들은 오히려 한국특파원들을 취재했다.눈코뜰새 없이 바쁜 일정에 짬을 내 공사장을 찾은 루카센코라는 식의 연출이 시작됐고 그의 이런 활약상을 좇아 민스크를 찾은 한국특파원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루카센코는 한국특파원단과의 회견약속,한국특파원들이 현장에 와 있음을 알고도 3시간 남짓 공사장 곳곳을 돌며 휴무임에도 불구,「동원된」 인부들을 만나 바쁜 인물임을 한껏 과시했다.3시간여 지정된 장소에서 추위에 떤 뒤 달갑지 않은 회견을 갖는 그때서야 한국기자들은 「이용당한」 것을 눈치챘다. 자발적인 시위를 억압하고 그 현장을 취재하던 외국기자를 추방하고,일반민중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실적·전시행정을 중시하는 루카센코에게서 박 전 대통령의 편린이 발견된다.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눈부신 경제업적을 가진 인물이다.루카센코가 얼마만큼 경제를 일으킬런지는 두고 볼일이다.〈민스크에서〉
  • 국림민속박물관 「공직자 선물전」/외교활동서 받은 160점

    ◎23일부터 새달 27일까지 국립민속박물관은 23일부터 5월27일까지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공직자선물전」을 마련한다. 이번 공직자선물전은 공직자들이 국가간 외교관계 활동중 받은 선물 160점을 소개하는 자리로 어떤 나라에서 무엇을 받았고 어떻게 국가에 귀속 관리되고 있는지를 함께 보여줘 흥미있는 볼거리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전직 국무총리,장·차관,서울시장의 선물이 망라돼 있으나 전두환·노태우씨 선물은 현재 종로구청이 주민들을 위해 민속박물관 협조로 서울 종로구 전시공간 사랑방에서 열고있는 상설전시에 나와있어 포함시키지 않았다. 국가간 상호 방문시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는 국가간 외교관행의 한 행위로 개인소유가 아닌 국가간 관계설정의 상징물로 평가되고 있다.지난 83년 1월부터 시행된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국가간 외교상 관계에서 받은 선물은 국가에 귀속 관리토록 규정하고 있다.공직자들이 신고해야 할 선물은 당시 증정한 국가나 외국인이 속한 국가의 싯가로 미국화폐 100달러 이상이거나 국내 싯가 10만원 이상의 선물로 하고 있다. 이번 공직자 선물전에 나오는 것중에는 지난 95년 오학겸 중국 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증정한 길이 32㎝,높이 12㎝ 크기의 장식용 마차모형과 라닐 위크레마싱게 스리랑카 수상이 이영덕 전 국무총리에게 증정한 길이 20㎝,높이 27㎝ 크기의 장식용 코끼리모형,87년 사우디아라비아 주한국대사가 당시 노신영 총리에게 증정한 20㎝크기의 의장용 칼도 들어있다. 박물관은 전시에 앞서 22일 하오4시30분 송태호 문화체육부장관과 각계인사 200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막행사를 갖는다.
  • 작가 겸 평론가 이인화 이대 교수 「인간의 길」내

    ◎첨삭과 허구로 그린 「소설속 박정희」/반항아 기질 주인공의 「운명을 거부한 삶」/2∼3부 「혁명의 길」·「나의조국」 등 10권 예정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한국 근현대사를 통틀어 가장 소설적인 인물입니다.작가라면 누구나 한번쯤 탐내볼만한 주인공이지요』 작가이자 평론가인 이인화씨(31·이화여대 교수)가 박 전 대통령을 모델로 소설 「인간의 길」을 살림출판사에서 펴냈다.현재 나온 1,2권에 이어 다음달 나올 3권으로 「인간의 길」을 마감한 뒤 「혁명의 길」과 「나의 조국」으로 이어지는 모두 3부작 10권으로 마무리할 예정이다. 『우리 역사가 배출한 많은 인물 가운데 박씨만큼 자신의 운명을 극단까지 살아낸 카리스마적 존재가 있을까요.선·악 양면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인물,마키아벨리스트인가하면 휴머니스트이기도 했던 국가주의자 박씨는 고유명사를 넘어선 보통명사,인문학적 탐구대상이라는 생각입니다.역사의 굵은 능선이 된 한 특별한 인물을 통해 한국 현대사를 써보고 싶었습니다』 「인간의 길」은 일제시대 만주군 장교 허정훈의 삶을 그 조부 허생원 대로부터 그려내고 있다.극양의 사주로 태어날 때부터 파멸의 운명을 예고받은 아버지 선영은 아니나다를까 동학혁명에 가담,멸문을 자초하고 폐인이 된다.정훈은 일제시대 그의 일곱째 아들로 태어나 굴종과 가난을 팔자로 받아들이는 조선인의 삶에 반발,대구사범학교로 만주군관학교로 떠돌지만 운명을 거부하는 반항적 기질때문에 무수한 죽을 고비를 넘긴다. 『로맹 롤랑의 「장 크리스토프」가 바로 베토벤은 아니잖습니까.박씨의 화신 허정훈 역시 첨삭과 허구가 따른 인물입니다.창조된 주변인물과 역사설정도 많지요.하지만 창작자의 이같은 개입은 운명을 딛고 일어선 한 초인적 인물을 더 강렬하고 장엄하게 형상화하기 위한 범위내에서 이뤄졌습니다』 최근의 박정희 재평가 분위기속에서 이 소설은 문단안팎으로 곱건 굳건 적잖은 시선을 모으고 있다.하지만 이씨는 이같은 시류가 반갑지만은 않다.사회 분위기가 지식인들의 몸사리기를 불러와 거쳐야 할 논쟁을 가로막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버트란트 러셀도 언급했듯이 우리는 악한 인간의 극단적 운명에서 더 많은 것을 암시받습니다.그런 의미에서 전범없이 흔들리는 최근의 지식인사회에 이 소설이 하나의 전망을 암시하는 기폭제역할을 하기를 바랍니다』 이씨는 역사적으로 충분한 평가가 선행되기를 기다리며 박씨에 대한 보다 사실적인 접근과 가치판단이 불가피할 2부 「혁명의 길」,3부 「나의 조국」 등 60년대 이후의 밑그림그리기를 21세기로 미뤘다.
  • 금도끼 은도끼(외언내언)

    『나는 이 배를 ○○○호로 명명하나니 이 배와 승무원 모두에게 신의 축복과 가호가 깃드소서』 새로 지은 배를 선주에게 인도하기 직전에 그 이름을 짓는 명명식에서는 전통적으로 선주측의 여성이 나와 이런 축문을 낭독한 뒤 금도끼나 은도끼로 테이프를 자른다.명명자는 그 배의 대모가 된다. 도끼는 대모가 보관한다.국내에서는 한진해운 조수호 사장의 부인 최은영씨가 20개가 넘는 금도끼와 은도끼를 갖고 있다.가족들이 명명해 온 회사의 전통에 따라 행사를 도맡은 덕분이다.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의 부인 김정일씨가 7개,조회장의 외동딸 현숙씨가 5개,조양호 한진그룹 부회장의 부인 이명희씨가 3개 등 조회장의 부인과 딸·며느리들이 모두 40여개 금도끼와 은도끼를 갖고 있다.기네스북에 오를만한 기록이다. 반면 해운업계의 라이벌인 현대상선은 대부분 재계와 관계의 고위직 인사의 부인을 명명자로 선정한다.역대 해운항만청장의 부인들이 단골 멤버이고 전경련 등 재계 인사와 통상산업부장관의 부인 등이 고루 참여했다. 역대 대통령 부인들도대부분 선박의 대모가 됐다.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를 제외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부터 현 김영삼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여사에 이르는 퍼스트레이디들이 그들이다. 90∼95%의 순도를 지닌 은도끼는 10여년 전부터 금도끼를 대신하는 추세다.도금 제품임에도 금도끼는 50만∼1백만원인 은도끼보다 훨씬 비싼탓이다.조선업계와 해운업계의 불황 때문에 이런 절약풍조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조선소에서 후판을 설계도면대로 처음 자를때 조선소 대표와 선주가 참석해 갖는 강재 절단식과 건물의 상량식에 해당하는 용골 거치식도 간소해지거나 없어지고 있다.재래식 고사로 때우는 사례도 허다하다.멋있고 이국적인 행사가 돈 때문에 간소해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을 법 하다.
  • 박지만씨 봉사로 거듭나기/장애인시설서 구슬땀

    ◎“참된 삶 알것 같아” 히로뽕 복용으로 4차례나 물의를 일으킨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씨(38)가 사회봉사 활동을 하며 거듭나고 있다. 2일 낮 12시 장애인 복지시설인 서울 강동구 고덕2동 「우성원」. 『지체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겠습니다』 장애인 물리치료실을 나오며 이마에 흐르는 구슬땀을 닦는 박씨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밝았다.청바지에 「사회봉사」라고 씌여진 녹색 조끼를 입고 있었다. 지난 2월25일 서울지법에서 집행유예와 함께 200시간 사회봉사 명령을 받은 박씨는 지난달 31일부터 우성원(이사장 최병문)에서 지체장애인을 상대로 봉사활동을 펴고 있다. 4월 한달 동안 매주 월·수·금요일 상오 9시부터 하오 6시까지 하루 9시간씩 일해야 한다. 봉사활동 두번 째인 이날 박씨에게 맡겨진 일은 지체 장애인들의 물리치료를 도와주는 것.장애인들의 허리펴기,걷기 등을 곁에서 거들어 주어야 한다.10평 남짓한 치료실에서 물리치료사 1명과 상오 3시간을 보냈다. 첫날인 지난달 31일에는 식당청소와건물 거미줄 제거 작업을 했다. 박씨는 이날 하오 2시쯤에는 건물 3층에 있는 예배실에서 1시간동안 기도했다.두 눈을 꼭 감은 박씨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최근 박씨가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다고 우성원 관계자는 전했다. 예배를 마친 박씨는 『앞으로 장애인들과 식사도 같이 하면서 그들의 아픔을 나눌 생각』이라면서 물리치료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달에는 서울시립요양원에서 또 다른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
  • 밀양 표충비서 땀 6일 3시간 16되 흘려(조약돌)

    ○…나라에 대사가 있을 때면 땀을 흘리는 것으로 소문나 있는 경남 밀양시 무안면 무안리 홍제사내 사명대사 표충비에서 지난 6일 하오 다시 땀이 흘러내려 화제. 까만 대리석인 오석으로 만들어진 높이 3m,폭 97㎝의 이 비석은 사명대사와 서산대사 등의 비명이 새겨있으며 이날 정오부터 갑자기 땀같은 16되가량의 물이 3시간여동안 흘러내렸다는 것. 사찰 주지 박법마스님은 『이 비석은 6·25때와 5·16쿠데타,10·26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등 국가에 큰일이 있기 전 어김없이 땀을 흘렸다』며 『이번에 비석이 흘린 땀이 흉사를 예고하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고 말했다.
  • 오타니 히로치카 산케이신문 기고

    ◎김 대통령 민주주의 기초 확립/한국 선진국 진입과정 혼란·경제부진 겪어 일본의 오타니 히로치카(대곡박애) 타쿠쇼쿠(척식)대학 교수는 6일 산케이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김영삼 대통령은 지금 어려운 환경에 있지만 지난 4년동안 과감한 개혁을 단행했다고 평가했다.다음은 기고문 내용. 국내외로 어려운 환경속에 김영삼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취임 4주년을 맞았다.노동법 강행개정과 한보사건 등에 의해 정권 지지율도 급락해 김대통령은 남은 1년의 임기동안 순조롭다고는 말할수 없는 상황에서 정권을 운영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느 사회에서도 현재를 평가하는 일은 어렵다.더욱이 전통과 가치의 미묘한 사정에 이르기까지 속속들이 알수 없는 타국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그러나 보다 보편적인 가치를 척도로 했을 경우에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보편적 가치인 민주주의라는 척도와 관점으로부터 김영삼 정권이 4년동안 이룩한 성과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번째 업적은 김대통령이 취임후 처음으로 단행한 군과 정치의 분리다.정치를 물리적 힘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대전제다.박정희 정권으로부터 30여년간 한국은 군출신에 의해 통치돼왔다.그간 구조적으로 정착됐던 정·군 유착에 대해 김대통령은 단호한 태도로 개혁을 단행했다. 두번째는 금융 및 토지거래 실명제 도입이다.지금까지의 거래관행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이 개혁에는 격렬한 저항이 있었다.더욱이 이 개혁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초래하는 일도 예상됐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단행한 것은 획기적이라 할 수 있다.실제 그결과로 전직 대통령들의 천문학적인 부정축재가 발각됐다. 세번째는 정부고위관리의 재산등록·공개제도이다.공직자 재산 등록·공개는 선진 민주국가의 지위를 확보하는 상징이라 할수 있다.이에따라 대통령 자신도 재산을 공개했다. 네번째는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선거를 전면적으로 실시한 지방자치제도의 도입이다.지방자치제도 도입은 민주주의의 기초를 정착시키기위한 것이지만 95년도의 선거에서는 여당 참패라는 희생을 치렀다. 이러한 일련의 개혁이 사회에 충분히 침투했다고는 아직까지말할수 없다.그리고 민주개혁과 선진국에의 진입과정에 수반되는 혼란과 경제부진을 지금 경험하고 있다.지금 한국국민에 요구되고 있는 것은 강력한 지도력아래 여러가지 어려운 문제의 해결을 위한 협력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일이다.국민의 자각과 제도에 대한 습관이 개혁의 실효성을 높여 사회의 시스템으로 정착돼야 한다.〈정리=강석진 도쿄 특파원〉
  • 3·5개각 장관·장관급 프로필

    ◎강운태 내무장관/화술·뛰어난 재사형 작은 키에 치밀한 성격,논리정연한 화술이 돋보이는 재사타입.작은 일도 놓치는 경우가 없는 꼼꼼한 성격으로 일벌레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지난 해에는 농림부 장관을 맡아 사상최대의 쌀 대풍작을 이뤘지만 재임 1년만에 교체돼 다른 중책을 맡을 것으로 예상됐었다. 대학재학중 행시에 합격한후 72년 내무관료로 출발,내무부에서만 24년을 보낸 정통내무관료.청와대 내무행정비서관과 광주시장을 지내 정책과 일선 지방행정에 모두 밝다. 부인 이덕희씨(42)와 사이에 2남. ◎최상엽 법무장관/검찰요직 두루 거쳐 법 이론에 정통하고 사심이 없어 선비형이라는 평.대검 형사2부장,공안부장,대검 차장 등 검찰 요직을 두루 거쳤으나 일선 검사장은 한번도 하지 못한게 흠.검찰 내 대표적인 공안통으로 분류된다.93년 문민정부 출범 직후 법제처장을 끝으로 공직을 떠났다가 장관으로 복귀. 안우만 전 장관과 생년월일(37년2월14일)이 같고 서울대 법대,고시동기(고시 사법과 13회)로 안장관이 추천했다는 후문.대검 공안부장 재직때인 86년 49세의 나이로 중앙대 생물학과 최경희 교수(49)와 결혼,5살난 딸을 두고 있다.취미는 테니스. ◎송태호 문체장관/꼼꼼한 일처리 정평 온화한 성품에 뛰어난 균형감각을 갖춘 언론인 출신.경향신문 외신부장 시절인 86년 대통령 공보비서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뒤 청와대와 총리실을 번갈아가며 경력을 쌓았다. 총리 비서실장으로 이홍구·이수성 두 총리의 「이미지 메이킹」에 그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는 후문. 꼼꼼한 일처리로 정평이 나 있고,상하 모두에게 신망이 두텁다.매사에 신중하면서도 한번 결정된 일은 과감히 밀어부치는 추진력을 갖추었다는 평. 부인 서인자씨(52)와의 사이에 1남 1녀. ◎임창렬 통상장관/3개부처차관 역임 뱃심있는 추진력에 업무능력을 겸비한 정통 재무관료.행시7회로 문민정부들어 조달청장과 과학기술처,해양수산부,재정경제원 등 3개 부처의 차관을 지내고 마침내 장관에 기용됐다.유창한 영어실력으로 우루과이라운드 금융협상 타결과 한미 금융협상을 깔끔하게 마무리한 국제금융통이기도 하다.재경원차관으로 자리를 옮긴지 1개월만에 한보사건이 터지자 현장에 달려가 수습하는 등 위기대처 능력도 뛰어나다는 평.경제부처내 경기고 출신 인맥의 리더격이다.AIDS전문가로 용산보건소장을 지낸 부인 주혜란씨(48)와 사이에 2녀. ◎이환균 건교장관/정통 경제관료출신 초면에도 오랜 친구처럼 느껴지게 하는 사근사근한 화술이 돋보인다.대인관계가 원만해 적이 없다. 일처리가 합리적이고 매사에 무리를 하지 않는다.재정경제원 차관과 총리 행정조정실장을 거치면서 특유의 친화력으로 경제부처간에 마찰을 무리 없이 조정했다는 평. 경남고·서울법대를 나온 「PK」.옛 경제기획원과 재무부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 경제관료.재무부 1·2차관보와 관세청장을 지냈다. 부인 성정숙씨(52)와 사이에 2남. ◎권숙일 과기장관/30년간 서울대재직 교육과 사회활동 모두에 열성적인 활동파.두주불사의 활달한 성격에 실험실에서는 학생들을 「들볶는」 꼼꼼한 면도 있다.서울대 물리학과와 대학원 졸업후 미국 유타대학에서 고체물리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30년간 서울대에 재직하면서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장,한국물리학회장,국립대학교 자연과학대학장협의회장,전국자연과학대학장협의회장 등을 맡아 리더쉽과 행정 능력을 발휘했다.95·96년 연달아 서울대 총장 후보로 출마했을 정도로 뚝심도 있다.교개위 위원,과학기술한림원 회원 활동을 통해 지론인 기초과학 육성을 정책화하는 데 노력해왔다.부인 최계자 여사(54)와의 사이에 1남1녀. ◎박상범 보호처장/청와대경호 산증인 지난 71년 청와대 경호실에 발을 들여놓은 뒤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을 경호한 경호맨.94년 12월 경호실장에서 물러난 뒤 민주평통 사무총장을 맡아왔다.치밀하면서도 전면에 잘 나서지 않는 업무처리로 유명하다.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당시 총성과 함께 연단 뒤에서 뛰어나와 박대통령을 몸으로 막아낸 인물.79년 10·26때는 수행계장으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부하들로부터 4발의 총격을 받았으며 버마 아웅산테러때도 살아남았다.부인 정명희씨(51)와 2남1녀. ◎정호근 평통총장/최장 군복무로 유명 지난 91년 12월 합참의장을 마지막으로 군문을 떠난 4성장군 출신.경복고에 재학중이던 51년 갑종 5기로 임관,6·25전쟁에 참가한 이후 사단장,군단장,군사령관 등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40년 1개월이라는 창군이래 최장기 복무기록을 세웠다.강직하고 청렴결백한 성품으로 군내 신망도 두터웠다.야인으로 있을때 국영기업체 사장등 영입제의가 여러차례 있었으나 국방과 관련이 없다는 이유로 모두 거절했다는 후문.부인 김재순씨(60)와 2남1녀. ▲경기 안성·64세 ▲5사단장 ▲7군단장 ▲1군사령관 ▲합참의장. ◎전윤철 공정위장/원칙 준수하는 「대쪽」 공정거래정책의 산증인.79년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총괄과장으로 시작해 공정거래법 제정때부터 인연을 맺었다. 외모대로 잘못된 일은 보지 못하는 대쪽같은 성품의 원칙주의자.공정위 부위원장시절 다른 부처 관련법에 들어있는 불공정한 조항들을 추려내 메스를 가한 일로 유명하다.김정자 여사(53)와 사이에 1남1녀. ▲전남 목포·56세 ▲서울 법대졸 ▲행시4회 ▲경제기획원 물가정책국장·기획관리실장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수산청장
  • 네번째 선처받은 박지만씨/김상연 사회부 기자(현장)

    ◎재판부·방청석 “이번이 마지막돼야…” 『이번이 히로뽕과 결별하고 떳떳하게 살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점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25일 상오 10시 서울 서초구 서울지법 525호 법정.히로뽕을 상습 흡입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고 박정희 전대통령의 외아들 지만씨(38)의 움츠린 어깨 위로 박동영판사가 판결문을 읽어나가자 방청객들은 미동도 하지 않은채 숨을 죽였다. 박판사는 먼저 『크게 봐서는 법적용의 형평성을 잃지 말아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피고인 개인의 특수성을 외면할 수도 없다』고 고심의 일단을 내비쳤다. 박판사는 『박피고인은 퇴폐적인 모습이라기 보다는 마약의 유혹에 굴복해 버린 지치고 나약한 모습이다』는 말로 연민의 정을 나타내는가 하면,『주위의 중압감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일이 급선무』라며 나름대로의 처방을 내놓기도 했다. 박판사는 결국 『범죄만을 놓고 볼때 실형이 마땅하지만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 나이에 부모를 비명에 잃은 점 등 정신적 충격이 범죄의 동기로 작용한 점을 인정한다』고 밝힌 뒤 『마지막 기회를 법원이 빼앗는 것은 너무나 가혹하다』는 말로 집행유예 이유를 설명했다. 피고인 「박지만」.우리 현대사의 아픔이 투영된 그이기에 방청객들에게도 징벌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연민의 대상이었다.박판사의 판결도 그러한 고뇌를 고스란히 담아냈다.하루도 빠짐없이 법정에 나왔던 둘째 누나 서영씨는 두손을 모으며 고마워했다. 지만씨에 대한 네번째 선처이자 재기의 기회인 이번 판결은 「더 이상의 선처는 없다」는 마지막 경고라고도 할 수 있다.방청객 모두가 죄수복을 입은 지만씨의 초췌한 모습을 더이상 보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듯했다.
  • 박지만씨에 사회봉사 명령/양로원·장애인시설서 200시간/서울지법

    서울지법 박동영 판사는 25일 히로뽕을 상습 흡입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징역 3년이 구형된 고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 피고인(38)에 대해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위반죄를 적용,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이와함께 집행유예 기간동안 보호관찰처분 및 양로원과 장애인 시설에 대한 봉사활동 1백시간씩 모두 2백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내렸다.
  • 윌리엄 오버홀트 미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이즈 기고­요약(해외논단)

    ◎중국 등 사후도 안정견지/강택민 등 3세대 지도자들 합의통치 예상 등소평 사망후 중국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등 사망전에 발표되었지만 권위있는 「포린어페어즈」에 게재된 윌리엄 오버홀트의 「등 이후의 중국」을 소개한다.「중국의 부상:경제개혁이 어떻게 새 슈퍼파워를 창조했는가」란 책을 쓴 저자는 아주 낙관적인 전망을 흥미있게 전개하고 있다. 중국 권력의 후계는 4가지 측면을 갖는다.누가 최고지도자가 될 것인가,어떤 세대가 주요 권력을 좌지우지할 것인가,정부는 어떤 모습으로 짜여지고 정책은 어디를 지향하는가.특히 누가 최고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는 예측하기 어려운 문제이나 누가 되든 모택동이나 등소평 같은 위치에 오르기는 좀체 어려울 것이다.후계 예상 지도자들의 자질이 뒤져서가 아니라 중국의 구조가 변하기 때문에 그렇다.2차대전은 루스벨트,트루먼,아이젠하워,처칠,드골 등을 차례로 배출했다.마찬가지로 혁명의 모진 시련 속에서만 모나 등과 비슷한 그릇의 지도자가 나온다고 할 수 있다. 등사후 중국은 다수 지도자들에 의해 다스려질 것이며 정책도 한 개인의 취향보다는 권력엘리트들의 광범위한 지지와 합의에 달려있게 될 것이다.새 지도자 세대는 「불멸의」 선배지도자들보다 이념적으로 아주 모호하다.강택민,이붕,주용기 등 이른바 3세대 지도자들은 대개 소련 스타일의 전기엔지니어들로 이뤄졌다.그러나 많은 기관에서 좀더 전문관료적이고 시장체제 지향적이며 정치적으로 더 관대하며 서구지향적인 40대들이 세력을 떨치고 있다.더 빠른 경제발달이나 더 무난한 대외관계를 원하되 이념적,민족적 슬로건의 강도는 수그러들기를 바랄때는 이 전통적인 3세대를 지지할 것이며 동시에 한층 빠르게 무게중심이 자유주의 성향이 강한 4세대로 옮겨질 것이다. 20년전 미국은 박정희 대통령이 죽자 한국이 어떻게 될까 막막하게 생각했다.박대통령 등장 이전에 한국을 휩쓸었던 혼란과 이념적 양극화가 재발할지 모른다고 거의 모든 관심있는 미국인들은 걱정했다.그러나 최고 자리를 차지하려는 무서운 투쟁에도 불구하고 박대통령의 경제적,외교적방향은 결코 도전받지 않았다.장개석 사후의 대만,이광요 총리 퇴진후의 싱가포르,프렘 틴술라논다 후의 태국도 마찬가지였다.박대통령 아래서 한국인들은 경제발전 일념의 권위적 정치와 수출주도 시장경제의 마술적 결합을 발견하였고 점차 기아에 대한 공포,전쟁의 불길한 조짐,외국에 대한 수치감이 씻은듯 사라져갔다. 영국지배의 홍콩을 예외로 하고 아시아의 대도약들은 초기엔 위대한 지도자에게 매여진채 진행되지만 그후엔 합의에 의해 계속된다.그리고 모든 경우 이 합의는 독재적 통치의 완화를 가져왔다.이는 라틴아메리카나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와 상이한 패턴이다.아시아에서도 인도와 필리핀처럼 성공의 정도가 근본적 합의를 이끌어낼 만큼 충분하지 못한 예도 있지만 중국에서는 경제발전의 중요성에 대한 전체적 합의는 결국 정치면의 진보를 유도할 것이다. 어떤 정책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냐에 관해 중국은 광범위한 합의가 이뤄져 있다.경제발전에 압도적인 우선순위가 주어져 있고 이와 연관된 시장체제로의 점진적 이동도 핵심적으로 중요시된다.최고위층 50명 가운데 국가가 농장을 다시 소유해야 한다든가 폐쇄경제로 되돌아가자든가 옛 소련처럼 국영기업 전체를 정부가 보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냉전종식후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마치 한국과 대만 국민들이 지난 80년대 중반까지 그랬듯이 경제 우선정책은 올바른 것이며 정치적 자유화는 느려도 괜찮다는 견해를 받아들이고 있다.지도층이 경제를 망치면 모르지만 이같은 컨센서스는 국민 대다수가 식량,주거 및 자녀의 건강 등을 당연한 권리로 여기게 되기까지의 장래 1,2세대동안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그런뒤 한국과 대만처럼 정치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다. 중국이 지금처럼 급속하게 발전하다 보면 어느날엔가 용기있는 반정부 인사들이 미래를 안내할 수도 있다.그러나 이는 등 사망 직후에 올 물결은 아니다.중국인들의 불만은 그간 점점 더 가시화되어 왔지만 등 사후의 중국은 지난 200년간 그 어느때보다 통일되고,안정되며,안전한 모습을 견지할 것이다.〈정리=김재영 워싱턴 특파원〉
  • 이씨 저서 「대동강 로열패밀리…」/뒤늦게 베스트셀러로

    ◎망명상황·남한사회 적응과정의 갈등 서술/「박 대통령 청부암살 미수」 등 비화도 소개 이한영씨 피격 이후 이씨가 지난해 6월 펴낸 「대동강 로열패밀리 서울잠행 14년」이 서점가의 화제가 되고 있다. 이씨는 권력핵심부에서 누렸던 부귀영화를 저버리고 자유의 품으로 망명할 수 밖에서 없었던 상황과 남한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과 고민을 담담한 어조로 서술했다. 「지난 79년 북한 청년들은 폭력조직을 결성,모란봉 주변의 데이트족을 상대로 강간행위를 일삼다가 30여명이 그 자리에서 사살됐다」 등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비화도 담고 있다.또 북한이 70년대 중반,일본 야쿠자조직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해 줄테니 몇백만달러를 달라는 제의를 받고 적극 검토하다 최종단계에서 취소했던 「박대통령 청부암살 미수사건」도 다루고 있다. 김정일주변의 기쁨조,부하에게 「하사」되는 여배우,「물고기집」 연회 등 김정일일가의 향락과 부패상도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책의 중반부터는 이씨가 자유를 찾아 망명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기까지의 긴박한 상황이 펼쳐진다. 지난 82년 10월1일 서울의 상공이 눈앞에 펼져지는 순간 이씨는 『새롭게 삶을 시작하자』고 중얼거리며 밀려오는 막연한 불안감과 환희를 느꼈다고 적고 있다. 그 뒤 남한사회의 적응훈련을 마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행복하게 누렸던 결혼생활,억대의 돈벌이,부도를 낸 뒤의 수감생활 등 15년간 파란만장했던 「제 2의 인생」이 그려진다. 이씨는 곳곳에서 어머니 성혜랑씨에 대한 그리움을 간절하게 드러내기도 했다.
  • JP “정 회장 잘안다” 밝힌 속사정

    ◎“관계 떳떳” 강조… 수사대비 적극방어 관측 JP(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10일 「묘한」 말을 했다.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한보 정태수 총회장을 3공때부터 잘 알고 있으며 여러차례 만난 사이』라고 했다.민자당 대표시절 정회장의 넷째아들 주례를 봐준 것이 알려졌을때 『내가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대답과는 뉘앙스가 다르다. 한보사태로 정치권 전체가 정회장을 『나 몰라라』하는 판국에 JP가 『잘 안다』고 밝힌 까닭은 무엇일까. JP는 정회장을 처음 만난 것은 70년대 초이며 정회장이 고 박정희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의 모교인 배화여고 기념관 건립 지원계획을 마련할 때라고 했다.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인 박승규현한보그룹 고문이 소개했으며 그 이후 몇차례 만났다고 덧붙였다.JP는 그러면서도 정회장과의 관계는 떳떳하다고 강조했다.최근 정회장과의 연관설에 『왜 내 집(청구동 자택)에서 만났다고 하지』라고 불쾌해 했다.정회장을 잘 알지만 『아는게 무슨 죄냐』는 식이다. JP의 이날 발언을 두고 정가에서는 검찰 수사에 대비한 자민련,특히 JP의 「방어선 구축」이라는 관측이다.정회장과의 관계를 미리 밝혀둠으로써 괜한 오해를 사지 않겠다는 사전정지 작업이기도 하다.
  • 큰 빌라의 계단/송우혜 소설가(굄돌)

    얼마전 서울 서초동에 있는 한 빌라에서 재미있는 현상을 보았다.부자라야 살 수 있을 평수 넓은 4층짜리 신축 빌라였는데 계단식이었다.『어째서 엘리베이터가 없는가.부자들이 엘리베이터 없는 이런 건물에 입주하러 드는가』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의표를 찌른다.요즘 부자들은 건강을 위해 일부러 시간내어 계단 오르내리기운동을 하는 형편이라서 빌라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것을 별로 반기지 않는다는 것.건강에 대한 각성이 생활에 편리한 문명의 이기를 밀어낸 것이다. 돌아오면서 박정희정권 시절의 삽화가 하나 떠올랐다.그 서슬퍼렇던 군사독재정권에서 주요한 위치에 있던 사람이 죽어 박대통령이 몸소 문상하러 갔다와서 즉각 공직사회 부패추방명령을 내렸다.고인이 집을 있는대로 호화판으로 꾸미다 못해 1∼2층 사이에 에스칼레이터까지 설치해 놓은 것을 보고 격노했다는 것이다.그러나 박대통령의 격노로도 공직자들의 부패를 영영 추방하지 못했다. 현재 「한보그룹사건」으로 온 국민이 고통받는데서 보듯,정권은 거듭 변해도 대형 비리사건은 사라지지 않고 줄창 터져나온다.그래도 한가지 분명한 것은,요즘은 그런 자들이라도 자택에서 에스칼레이터를 운행하지는 않으리라는 점이다.돈있는 사람일수록 건강에 더 신경을 쓴다는데,1∼2층을 오가는데는 계단이 더 건강에 좋다는 것이 상식이니까.아마도 건강에 이롭기만 하다면 어떤 강력한 권력자가 막는다 해도 부자들은 저택에 에스칼레이터를 설치하고 살 것이다. 건국이래 지금까지 지도층을 향해 계속 외지는 구호가 「부패추방」인데도 아직 여전한 이유는 오직 하나다.부패가 궁극적으로 그들의 이익이 되어왔기 때문이다.결국 부패를 깨끗이 추방하는 방법은 하나다.사회구조 자체가 변해야 한다.누구를 막론하고 부패는 궁극적인 이익이 아니라 영속적인 고통이 되는 구조가 확립되어야 한다.그렇지 않는한 부패는 끝없이 지속될 것이다.
  • 10대 국회의원 선우연

    제10대 국회의원을 지낸 선우연씨가 28일 상오10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68세. 선우씨는 언론계를 거쳐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보비서관,유정회 국회의원을 역임한 뒤 언론인금고 이사장,육영재단상임고문 등을 맡았었다. 유족으로는 전민자씨와 1남3녀. 발인 30일 상오 8시,강남시립병원,연락처 02­3452­2699
  • “과거 노동법은 고쳐야할 법이다”소신 변함없어/내가 본 진 장관

    ◎엘리트 경제관료 출신답게 탁월한 식견 돋보여 진념 노동부장관은 노동법 개정 문제에 대해 여권이 한발 후퇴함에 따라 다소 맥이 빠졌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동서양의 사례와 국가경제 현실 등을 속사포처럼 쏟아내며 노동법 개정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다만 심의·토론 절차 없이 긴급 처리한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고 절차상의 문제점을 자인할 때는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다. 또 정치권을 겨냥했던 자신의 발언이 논란이 된 점을 의식한 탓인지 국회에 대한 주문사항을 묻자 한마디 한마디에 용어를 세심하게 선택하는 등 신경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검찰 못지않게 「엄정한 법집행」을 강조했던 진장관은 민주노총·한국노총 지도부 모두가 못마땅한 듯했다.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이 「정치 6∼7단」이라면 박인상 한국노총 위원장은 「정치 2단」이라고 말하기도 했다.한국노총에 대한 서운함과 걱정이 함께 배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노동부 주변에선 「진장관이 명예퇴직 하려다 정리해고 당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말도 나돈다.이를 의식한 듯『만약 노동부장관에 계속 재직한다면 노동법을 마무리짓고 외국인 근로자 대책에 심혈을 기울이고 싶다』고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박정희 사관학교」로 불리는 경제기획원 출신 엘리트 관료답게 실력과 경륜이 뒷받침된 식견은 대단했다.1시간 남짓 인터뷰를 하면서 노동부관리들이 『장관의 그림자를 따라잡기도 급급하다』고 푸념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30여년의 공직생활을 통해 체득한 공직자관을 들려달라고 하자 『최근 열린 ROTC 총회에서 1기 명예회원으로 추대돼 35년만에 복권됐는데 ROTC후보생일때 별명이 「양념후보생」이었다』는 말로 대신했다.공직자는 사회의 소금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진장관은 서울대 ROTC 1기로 논산훈련소에 입소했다가 신체 이상으로 중도 탈락했다. 고등고시 행정과 14회 시험에 최연소로 합격했던 진장관은 「이 시대에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면 어떤 통로를 거쳐야 하는지,그 비법을 아는 사람」이라는게 관료사회의 평이다.
  • “박지만씨 선처” 은사들이 탄원/중앙고 교장 등 55명

    「부모님을 대신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과오에 대해 사죄드립니다…」 히로뽕을 상습적으로 흡입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고 박정희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38)의 중앙고시절 은사들은 23일 서울지법에 박씨에 대한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보냈다. 윤여옥 교장(58) 등 55명의 은사가 서명한 탄원서에는 성장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선생님들의 애정이 진하게 배어 있다. 윤교장 등은 박씨를 예전처럼 「박군」으로 칭하며 『대통령의 외아들이라는 신분임에도 우월감이나 독선없이 마음이 여리고 착한 학생이었다』고 회상했다.
  • 김신조 목사(외언내언)

    『박정희 머리를 까부스러 왔수다』­ 「무장공비 김신조」가 옛날 「중공군」 같은 누비군복에 발싸게를 신고 막 투항한 그대로 TV뉴스에 비쳐진 적이 있었다.남쪽에는 무엇하러 왔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그는 서슴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그 모습은 흡사 뭍에 오른 한마리 상어 같았다. 그것은 충격이었다.지독한 무장간첩의 실물에 접한 두려움보다는 거침없이 쏟아놓는 그의 『표현의 자유』가 주는 충격이었다.60년대인 당시의 우리가 앓고 있던 변비증세를 풀어주는 카타르시스 같은 것이었다. 북한에서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만을 양분으로 공급받으며 살아온 청년 김신조가 남쪽의 삶에서 겪었을 정신의 갈등과 평화를 압축해서 말해주는 것이 그의 「성직의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도시의 세련되므로 늠름하게 자란 남매도 슬하에 두었고 금실좋은 아내도 거느린 그의 「서울 살이」가 「고난」에 찬 것만은 아니었을듯 한데도 마침내 목회자의 길을 선택한 것을 보면 그의 남다른 인생역정이 많이 고달팠던 듯하다는 짐작이 들기 때문이다. 그가 「김신조목사」로 거듭난 것은 그가 『박정희의 목을…』어쩌러 온지 한해 모자라는 30년만의 일이다.그가 목사로 태어나던 날 이땅에는 또하나의 「소년 김신조」 같은 탈북소년이 찾아들었다.『지도자의 품』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줄로 알며 자라온 북한 땅을 마지못해 떠나와 언젠가 고향친구들과 만날날을 위해 틈틈이 탈북기를 적어가며 제3국을 전전하다 찾아온 소년이다. 신앙처럼 믿었던 「지도자」의 정체도 알게 되고 「속았던 세월」의 허망함도 알게 되고 그리고 『두고온 그리운 사람들의 추억』을 한처럼 간직한채 살아갈 소년의 남쪽 앞날이 김신조목사의 인생역정과 겹쳐지는 것을 느낀다.이제 이런 2세들의 탈북이 늘어나고 있다는 일에 각별한 관심이 기울어져야 할 것 같다.우리 7천만민족은 참으로 남다른데가 있다.
  • 세종대왕 동상

    덕수궁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은 어딘지 어색하다.왕이 거처하던 궁안에 자리잡았으면서도 제자리에 있지 않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막연한 이런 느낌을 뒷받침 해주는 이야기가 있다.그 세종대왕 동상은 원래 세종로 이순신장군 동상자리에 세워질 예정이었으나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뜻에 따라 위치가 바뀌었다는 것이다.군인출신이었던 박대통령은 유난히 이순신 장군을 존경했다. 세종대왕 동상이나 이순신 장군동상이나 모두 서울신문의 애국선열조상건립운동 사업에 따라 세워진 15기의 동상 가운데 하나다.이순신 장군 동상은 1968년 4월27일 제막됐고 세종대왕 동상은 그보다 1주일 후인 5월4일 제막됐다.그러나 착공시기는 세종대왕 동상이 두달 가량 앞선다.1966년 8월15일자 서울신문에 실린 애국선열조상건립운동 사고에 실린 사진도 이순신장군이 아니고 세종대왕이다. 「어색한 세종대왕 동상」에 대해 당시 건립위원이었던 임영방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조금 다른 증언을 한다.세종대왕 동상이 이순신장군 동상에 밀린 것은 사실이지만 작품제작은 『고궁의 지붕 높이 보다 낮게 하기 위해 좌상으로 처리한 것으로 아주 잘 된 작품』이라고 말한다.이 동상을 만든 조각가 김경승씨가 작고한터라 정작 작가의 이야기는 들을 수가 없다. 세종대왕 탄신 600돌을 맞아 서울 세종로나 경복궁에 세종대왕 동상을 세울 계획이라고 문화체육부가 발표했다.새로운 동상을 만들기 보다 애초에 자리를 잘못 잡은 덕수궁의 세종대왕 동상을 세종로로 옮기면 어떨까 싶다.세종로와 세종대왕은 이름만 같을 뿐 아니라 그 상징성에 있어서도 가장 잘 어울리는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세종대왕 동상은 세종로에서도 가장 눈에 잘 띄는 자리에 세워져야 한다.부득이 동상을 새로 건립해야 한다면 시간을 다투어 졸속으로 올해안에 만들 것이 아니라 훌륭한 작품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로댕의 저 유명한 발자크상은 무려 7년만에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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