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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삼웅 칼럼] 해 저물기전 민주의열사 묘역 착수를

    아직 ‘수준 미달’의 분야도 적지 않지만 우리가 자부할수 있는 것은 짧은 기간의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성취를 든다.많은 희생과 미해결의 과제를 남기면서 두 가지 목표를향해 치열하게 살아 왔다. 전근대에서 근대로,다시 탈근대라는 동시적이고 비동시적인 발전과정을 겪으며 경제는 여전히 전근대 또는 근대적인빈곤지대와 낙후성을 남기고 민주화 역시 사각지대와 망각부문을 방치하고 있다.최근 정부는 국가 인권위원회를 발족시켰다.그러나 행자부와 다툼으로 직제와 요원 선발도 하지못한 채 파행적인 출범식을 가졌다.문을 여는 첫 날부터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억울한 소시민들이 인권위를 찾았다. 인권위의 조속한 체제정비가 요구된다. 지난해부터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가 구성돼 독재정권과 싸운 사람들의 명예회복과 보상에노력하고 있다.수많은 민주 인사들이 명예를 회복하고 적절한 보상도 받게 된다.그러나 활동이 지지부진하고 제주 4·3사건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도 비슷한 처지다.일부 위원회는 내부 갈등까지 겪으면서 역사적 소임이 표류되고 있다. 총체적인 ‘민주화 사업’의 부진 속에서도 특히 민주화의‘정국공신(靖國功臣)’이라 할 의열사들에 대해서는 정부나 사회가 제대로 예우는커녕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명예회복과 적절한 보상책이 논의되고 있지 않느냐고 할지모르지만 ‘살아남은 자’들에 비하면 지극히 홀대한 편이다.할복·투신·분신·고문사·의문사 등 온 몸을 불태우면서 민주제단에 산화한 의열사와 그래도 살아 남은 사람들과는 비중이 같을 수 없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와 유가협등은 ‘민주화기념사업’으로 10가지를 선정한다. ①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민주열사 등 민주화운동 유공자를 안치하는 ‘민주화운동 희생자 묘역조성 사업’②민주화운동 기념관,민주주의 센터,민주화운동자료관 및 연구소 건립의 ‘민주공원조성사업’③민주화운동 일지,민주화운동단체,민주화운동 사건정리 등 ‘민주화운동자료총서 발간’④민주화운동 사적지에 푯말·동상 등 다양한 기념조형물 설치 등 ‘민주화운동 사적지발굴’⑤민주항쟁의 시발점이 되는 6월10일의 ‘6·10항쟁 국가기념일 제정’⑥민주화운동 관련 만화·비디오·영상자료 등 ‘교육자료 개발및 출판’⑦민주주의 학술논문상 제정·민주백일장 등 ‘민주화운동의 정신 선양사업’⑧민주화운동 ‘교과서 역사기술 및 기존 역사기술 정정작업’⑨기념전시회·민주역사기념제·시위문화제·마라톤대회 등 ‘추모제와 기획행사 개최’⑩민주화운동 연구소 및 시민교육,아시아 민주운동 지원사업 등 ‘민주시민 교육과 국제활동 전개’ 등이다.이중에 민주화운동 희생자 묘역 조성사업은 정부가 추진하고나머지는 ‘명예활동 및 보상심의위’에서 맡기로 했다.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는 희생자 묘역 조성이다. 그동안 민주 공원추진위원회는 남산 옛 안기부 터와 서울 서초구 내곡동 대모산을 후보지로 선정하고 당국과 협의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배제되고 대안으로 용산가족공원과 효창공원이제시됐다. 유가족협의회나 민주 진영에서는 역사성과 상징성이 높고 시민 접근이 용이한 두 곳 중에서 선정되기를 바란다. 공청회도 거쳤다. 우리는 독립지사와 6·25호국영령을 국립묘소에 모시고 4·19민주희생자는 4·19묘소,5·18광주항쟁 희생자는 광주민주묘역에 모셨다.당연히 군사독재와 싸우다 희생된 의열사를 모시는 민주묘역도 조성해야 한다. 그런데 웬 일인지 정부와 서울시는 박정희 기념관 건립에는 열심이면서 의열사묘역 조성에는 딴청을 부린다. 여야 정당에서 활동하는 민주화운동 출신 정치인들도 비슷한 모습이다.사회 전반의 보수화 기류 탓인지,기득권에 안주한 까닭인지 가신 영령들과 유가족들에게는 보통 서운한일이 아닐 수 없다.우리를 이만큼 자유와 권리를 누리게 한‘민주화 정국공신’들의 희생을 잊지 말자. 이 해가 저물기 전에 민주묘역 공사를 착수해야 한다. 김삼웅 주필 kimsu@
  • [대한광장] 불길한 쌀개방 대세론

    며칠 전 서울대 하용출 교수는 ‘한국외교의 구조적 실패’라는 글(문화일보 2001.12.1.)에서 우리나라 외교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전략적 사고의 부재’를 손꼽고 있다.오랜 기간 냉전체제의 유산인 대미종속적,군사안보위주의 양자적 사고방식에 길들여진 한국의 외교가 세계화 민주화 시대에 걸맞은 공개적 토론과 정보의 공유 그리고 국내 각 부처와의 유기적 협력의 결여로 구조적 실패를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비단 일반적인 일회성 외교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만이 횡행하는 다자간 경제통상 외교무대에서 더욱 여실하다.대통령직을 걸고 쌀 수입을 막겠다던 우루과이 라운드(UR) 실패의 쓰라린 경험이 이를잘 증거해 준다. 그런데 요즘 2004년의 세계무역기구(WTO) 쌀수입시장 추가개방 재협상과 2005년까지의 WTO 뉴라운드 ‘도하 개발의제’ 협상을 앞두고 UR 때와는 정반대인 쌀수입시장 전면개방론이 우리 언론의 대세를 이루고 있다.‘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덩달아 뛴다’고 이제는 1993년 UR협상 실패와 IMF 환란의 주역들마저 신문과 TV에 버젓이 나와 쌀시장 전면개방론을 부채질하고 있다. 당시 UR대책으로 세계 각국이 다하는 농가소득 직접지불제를 한사코 반대하여 IMF하에서 수매가 인상 외에는 다른대안이 없었는 데도 이제와서 쌀값을 왜 올려주었냐고 되레 호통까지 치고 있다.그리고 UR 농업협정문에는 엄연히2004년 쌀 재협상시 의무수입량(MMA)을 더 확대하거나 관세화에 의한 시장개방 여부를 다시 협상하도록 규정하고있는데,그 방법론과 이해득실 그리고 전략적 대응방안에대한 정밀한 분석도 없이 너도 나도 관세화 시장개방론을예단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재정경제부마저 느닷없이 쌀개방관세화를 전제로 과거 정권때의 경제기획원을 흉내내어 신농업정책인지 신포기정책인지를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농촌경제의 피폐와 몰락을 재촉했던 박정희 정권 말기의비교우위론적 신개방론과 그와 비슷한 구도하의 김영삼 정권 초기 신농업정책 망령(妄靈)들이 횡행하고 있는 현상에 임하여 모골이 송연해진 전국의 농어민들은 초겨울의 추운 날씨임에도 연일 아스팔트로 떼지어 나와 시위하고 있다.정권은 바뀌어도 관료는 영원하다라는 말이 새삼스러워지는 현상이다. 이러할 때 레스터 브라운 박사의 미국지구환경연구소는올해 세계곡물생산량이 범지구적 물부족 현상으로 연속 2년째 소비량보다 더 적게 생산되어 이월량이 소비량의 22% 수준으로 하락,20년만에 최저수준을 기록함으로써 전반적인 가격상승이 우려된다고 경고하고 있다.우리나라도 가뭄이나 냉해라도 들어 쌀농사마저 망칠 경우 식량자급률은 20%선으로 급락할지도 모른다.일본은 2000년 관세화에 의한 쌀수입시장 개방조치에 훨씬 앞서 미질개선과 농촌발전및 농가 실질소득을 보장하는 장치 등을 마련하는 선행조치들을 취하면서 수매가를 동결 인하하였다.그 바탕위에서 쌀 협상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UR협정상의 기준 연도를 수정해 1,300% 가까운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결론을 말하자면 우리나라도 2005년부터 쌀 수입시장의추가 개방이 피할 수 없는 국제적 약속 사항인 이상,지금부터라도 정부는 관련 부처 및 농민·소비자·시민대표들과총체적인 농업농촌 살리기대책을 다시 협의하고 강화하여야 한다.쌀 협상에 임해서는 의무수입량 제도를 고수하고 불가피하게 관세화에 의한 개방을 해야 할 경우라도 UR 협상때 합의했으니 관세를 388%밖에 부과할 수 없다고 미리 포기할 것이 아니다.일본의 사례와 전략을 참고하여 기준 연도를 달리해 최소 600%선 이상의 관세화 조건을 얻어내야 한다.그래서 전략이 필요하고 대책이 필요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같은 조치의 선행(先行)조건으로서 농가소득을 안정시키고 농촌발전을 지속케 하는 대책은 물론 국제적으로 우리 쌀의 품질과 안전성·가격경쟁력을 높일 친환경 정보화 농업과 유통구조개선,농가경영 및 소득안정제도를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先대책 後협상’의 전략이 필요하다.지금이라도 대통령 직속하의 ‘농수산업 발전위원회’를 설치,운영할 것을 제안한다. 김성훈 중앙대교수·전농림부장관
  • [대한광장] 정리해고와 함께하는 삶

    경제 불안심리가 곳곳에서 감지된다.제2의 IMF가 올지도모른다느니 하는 일부 언론의 호들갑 속에 또다시 정리해고의 삭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폭력진압으로 당사자들뿐 아니라 지켜본 많은 이들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겼던 대우자동차의 경우나 결국 자본의 논리가 관철되고 만 삼미특수강 노동자들의 아픔이 차마 눈길을 들어올리기조차 무참한데,한 수 더 떠서흑자를 보면서도 현장 생산직 노동자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인원에 대한 정리해고를 단행한,파렴치하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기업도 생겨나고 있다. 구조조정이라는 미명 하에 정작 실현돼야 할 재벌의 해체나 부의 편중을 해소하는 일에는 별 진전도 없으면서 어째서 정리해고만은 이리도 수월하게 이루어지는지 가슴이 답답해진다.지난 98년 IMF 관리체제를 조속히 극복해야 한다는 구호를 내걸고 소위 노사정이 정리해고의 법제화를 합의한 일은 지금 와서 생각해볼 때 정말 잘못 끼워진 비극적 단추였다. 나라 전체의 경제구조를 개편해야 한다는 절박성이 아무리 크기로,정리해고라는 극단적 처방이 어떻게 구조조정이라는 차원에서 운위될 수 있었던 것일까.우리나라처럼 사회보장도 제대로 돼 있지 않고 일자리도 편중된 나라에서달리 먹고 살 길이 없는 사람들에게 직장은 최후의 보루와 같은 것인데,그 최후의 보루를 빼앗길 때 가야 할 곳이어디 있다고 생각하기에 거리로 그리 쉽게 내모는 것일까? 경제를 단순히 이익의 극대화라 생각한다면 점점 부담스러워지고 있는 인건비를 감축한다는 발상은 손쉽고 효과적인 발상일 것이다.그러나 경제가 국가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인간적 품위와 윤리를 실천하기 위한 물적 토대를 만드는 활동이라 생각한다면,노동밖에는 자기의 부를 창출할 다른 방도를 지니지 못한 사람들을 거리로 내쫓는 일은,함께 망하는 일이 있어도 해서는 안될 일에 속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도산한 기업 또는 방만한 경영의 책임은 노동자에게 있지 않다.하물며 경영 합리화라는 이름이 일하는 사람에게서일자리를 빼앗고 그리하여 생존의 권리 자체를 박탈하는일을 당연한 선택으로여긴다면,도대체 그렇게 하여 늘어난 부를 어디다 쓰고 싶은 것인가. 자본주의 제도는 개인이 사유재산을 지닐 권리를 신성한것으로 인정한다.그러나 동시에,그 부의 축적과정이 정당해야 하고 재산권의 행사가 공동체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의무 또한 소유의 권리 못지않게 신성한 것이다.나아가 노동자가 노동의 대가로 가지고 가는 임금은 자본가가 베푸는 것이 아니라 노동 그 자체가 인간에게 부여하는 재산축적의 가장 근본적 방법에 속한다. 노동할 권리는 자본의 권리를 넘어선다.그러므로 자본가가 생각할 수 있는 구조조정은 노동자를 하나의 생산도구처럼 제거하거나 사용하는 일을 제외한 부분이며,국가공동체는 자본가가 노동을 자본에 종속된 것으로 다루는 것을 감시하고 부의 축적과정과 분배과정에 정의가 실현되도록 조정하고 규제할 근본적 의무를 지고 있다. 박정희식의 조국 근대화가 바람직한 경제모델일까.그 안에 얼마나 많은 피와 눈물이 있었던지를 기억한다면,정리해고를 허락한 법 조항은 폐기돼야 한다. 우리 각자가 쫓겨나는 사람이됐다고 한번만 입장 바꿔 생각해 보자.그리고 사람을 몰아내고서 이익과 생산이 극대화된다면 그것을 과연 경제라고 불러도 되는 것인지 한번만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노혜경 시인
  • 박정희 친필 삼일문 현판 기습 철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쓴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정문‘삼일문’ 현판이 23일 새벽 민족단체 회원들에 의해 철거됐다. 한국민족정기소생회 곽태영(郭泰榮·65·박정희기념관 반대 국민연대 공동대표)대표와 한국민족청년회 우경태(禹瓊泰·40) 집행위원장은 이날 새벽 2시 20분 쯤 3m 길이의장대에 낫을 연결해 현판을 떼어 낸 뒤 망치로 부수었다. 이들은 철거 뒤 정문 기둥에 “왜군 장교가 쓴 현판을 민족정기의 이름으로 철거한다”는 글을 써붙였다. 당초 삼일문에는 해방 직후 서예가 김충현씨가 쓴 현판이 걸려 있었지만 1967년 박정희 전대통령의 친필 현판으로교체됐다. 이들은 이어 오전 10시 서울 중구 향린교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3·1운동 발상지인 탑골공원 정문에 독립군을학살한 박정희가 쓴 현판이 계속 붙어 있는 것은 민족의수치였다”면서 “서울시 등 관계기관에 계속 현판 교체를촉구했으나 조치가 취해지지 않아 철거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기자회견 뒤 망가진 현판에 시너를 붓고 불을 지르려던 곽씨와 우씨를 긴급체포해 공용물건 손상 혐의로이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1965년 김구 선생 살해범 안두희를 처음으로 제거하려했던 곽 대표는 지난해 서울 문래공원에 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흉상을 철거해 불구속 기소됐었다.우경태 집행위원장 역시 지난달 26일 열렸던 ‘박정희기념관 완전 저지를위한 결의대회’에서 삼일문 현판을 떼려다 경찰에 연행됐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방치된 애국심…현충시설 훼손 심각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의 공훈을 기리고 호국정신을 함양할 목적으로 설치된 현충시설물 1,465개 중 71.6%에 이르는 1,049개가 설치 근거가 없는 시설물이다.또 245개는 심하게 훼손돼 개·보수가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충시설물들이 이처럼 방치되고 있는 것은 설치근거가문화재보호법,기타 법령 및 조례,지침 등으로 다원화돼 있는데다 관리주체도 국가,군,경찰,지자체,민간단체,개인 등으로 분산돼 있기 때문이다. 1919년 3월27일 강원도 횡성지역에서 일어난 3·1운동을기념하기 위해 지난 72년 횡성군 횡성읍 읍하리 3·1공원안에 설치된 ‘횡성군민 만세운동기념비’는 동네 아이들의 낙서판 겸 놀이터로 변했다. 기념비 곳곳에는 ‘김○○ 천재’ ‘왕(王)사가지’ 등동네 어린이들의 이름이나 욕설이 새겨져 있고 비석과 기단은 심하게 균열돼 있었다.기념비 주변 공터는 매년 3·1절 기념식이 열리는 것 외에는 주민들의 체육공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주민 황순석씨(70)는 “우리 고장 선조들의 얼이 깃든 고귀한 곳인데도 기념비를 보호하는 가드레일이나 안내표지판조차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경남 진해시 속천동 속천항 앞 대죽도 정상의 해군 UDT충혼탑도 탑신 일부가 균열되고 기단부 등이 심하게 파손돼 무너지기 직전 상황이다.해군 관계자는 “외진 곳이라관리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시 부산진구 부전2동의 스웨덴참전비와 영도구 동삼동의 의료지원단 참전기념비 동판과 기념비도 흠집투성이여서 매년 6월25일을 전후해 우리나라를 찾는 참전용사들의 얼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서울 남산 중턱 백범광장에 건립된 백범 김구선생 동상에 부착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 가운데 ‘박정희’ 이름 석자도 형체를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돼 있다. 근래 들어 중국 동북3성,러시아 연해주,미국 하와이지역등 해외 독립운동시설물 발굴에는 돈을 쏟아부으면서도 국내 시설물은 방치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수원대 사학과 박환(朴桓) 교수는 “정부가 현충시설물을 일일이 관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지방자치단체에현충시설물을 지정 또는 해제할 수 있는권한을 부여해야한다”고 말했다. 순국선열유족회 남기형(南基炯) 사무국장은 “현충시설물을 건립할 때만 요란할 뿐 일단 세워지고 나면 그만”이라면서 정부와 국민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현충시설물 중 설치 근거규정이 없는 시설물은 1,049개로 대부분 민간단체나 개인이 관리하는 탑,비석,생가,묘역기념관,사당,동상 등이다. 현충시설물의 관리주체는 군·경찰(616개) 관련 시설이가장 많고,지방자치단체(356개),민간단체(133개),개인(123개),국가(74개) 등의 순이다. 이에 대해 보훈처는 국가와 지자체가 현충시설물의 건립및 관리에 필요한 비용의 일부를 지원하고 공원 등에 현충시설물을 세울 수 있도록 하는 내용으로 국가유공자 예우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는 한편,현충시설물 설치 및 관리에 관한 규정을 제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노주석기자 joo@
  • “”제왕적 대통령 표현 부적절”” 박준영 국정홍보처장 반박

    박준영(朴晙瑩)국정홍보처장은 22일 한나라당 토론회에서일부 학자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통치행태를 박정희(朴正熙)전 대통령과 닮은 꼴이라며 ‘제왕적 대통령’이라고주장한 데 대해 “편향된 시각을 갖고 의도적으로 (김 대통령을)폄하하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박 홍보처장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자청, “이같은 인식이일부정치적 목적에 의해 사용된 적이 있다”면서 “하지만일부 지식인들이 이런 표현을 써서 (두 사람을)비교한 것은매우 부적절하다”고 말하고 “‘제왕적 대통령'이 뭔지 인식도 없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최광숙기자
  • 박전대통령 친필 잇따라 수난겪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현판과 비석 글씨 등이 잇따라수난을 겪고 있다. 서울 남산 중턱 ‘백범광장’에 건립된 백범 김구(金九)선생 동상에 부착된 박 전대통령의 글씨 가운데 ‘박정희’ 이름 석 자가 예리한 금속물로 찍힌 채 글자를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훼손된 것으로 20일 밝혀졌다.백범 동상은 3·1의거 50주년인 지난 69년 정부의 지원을 받아 건립됐다. 이 동상 기단 서편에는 당시 집권자인 박 전대통령이 백범동상 건립에 즈음해 쓴 ‘위국성충은 일월과 같이 천추만대에 기리 빛나리’라는 글씨가 음각으로 새겨진 석판이 부착돼 있다.반대편(동편)에는 백범이 중국서 임시정부주석으로 활동할 당시 물심양면으로 그를 지원했던 고 장제스(蔣介石)타이완 총통이 보낸 글씨가 역시 석판에 비슷한 크기로 부착돼 있다. 한편 ‘10·26사건’ 22주년인 지난달 26일 박정희기념관 건립반대국민연대 소속 회원 등은 서울 종로 탑골공원 정문 현판으로 박 전대통령 글씨인 ‘삼일문’을 철거하려다 경찰의 저지로 무산된 바 있다. 정운현기자 jwh59@
  • [씨줄날줄] 밸런타인 17년산

    1979년 박정희(朴正熙) 당시 대통령이 서울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金載圭)의 총격에 타계하기 전까지만 해도 애주가들은 조니워커 블랙이 가장 좋은 위스키인 줄만 알았다.그러던 것이 박 전대통령이 그때 안가에서 시바스 리갈을 마셨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이 술은 당대 최고의 위스키로 떠올랐다.조니워커 블랙과 시바스 리갈은 원액 숙성기간이 12년인 프리미엄급 위스키다.프리미엄급 위스키는 생산지인 스코틀랜드에서는 국민의 90% 이상이 평생 마셔보지 못하는 비싼 술이라고 한다.그러나 그 비싼 시바스 리갈조차 지금은 인기 서열 4위쯤 된다.지난 12일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여객터미널 면세점에서 팔리는 술의 양을 조사했더니 밸런타인 17년산이 월평균 3억1,200만원 어치로 1위를 기록했다.그 뒤를 이어 밸런타인 30년산과 21년산이2·3위에 올랐다.12년산인 시바스 리갈보다 훨씬 고가인 17·21·30년산인 밸런타인 시리즈가 압도적인 인기를 누리는 것이다. 1937년 생산이 시작된 밸런타인은 1987년 처음 국내 위스키 시장에 진출했는데,그 가운데 17년산은 곧바로 점유율1위를 차지했다.지난해에는 28만3,000여병이 팔렸고 올 들어서도 40% 이상 판매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따라서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제조회사들이 “한국의 주당들 덕분에 먹고 산다”고 공공연히 떠드는 것이 헛된 말은 아니다.나라 경제는 나날이 어려워지는데 밸런타인 시리즈로 대표되는 고급 술의 소비는 왜 갈수록 늘어나는 것일까.아마 우리의 주당들 입맛이 남다르게 고급스러워서만은 아닐것이다.그 바탕에는 ‘접대’와 ‘선물’로 대표되는 사회의 부패구조와 직접 관련됐으리라고 보인다.한 차례 술자리에서 1인당 100만원이 넘는 경비를 아까워하지 않는 접대용 술자리,그러다 보니 기왕이면 비싼 술로 접대하고 접대받는 것이 당연해진다.그뿐인가.‘선물’이라는 이름의뇌물에도 술은 주고받기에 부담없는 품목으로 일찌감치 자리잡았다. 지금 11월 중순이면 송년모임을 갖자고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기 시작하는 무렵이다.다정한 사이에 한해를 보내면서 술 한잔 나누는 것은 우리 사회의 미덕이다. 그렇더라도 이제는 비싼술을 좇는 ‘술 사치’로 호기를부리는 추태는 사라져야 하겠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
  • [씨줄날줄] 전태일의 편지

    투사들이 대개 그렇듯 전태일 열사도 원래는 순진한 청년이었다.그는 “민족을 위해 한번 더 십자가를 지기로 했다”는 삼선개헌에 즈음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의 담화를곧이곧대로 믿는 백성이었다.그가 처음 서울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비참한 작업환경에 눈을 떴을 때만 해도 대통령 각하가 이런 현실을 알면 즉각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었다.그는 1969년 11월,3선 개헌 후유증으로 정국이 어수선할 무렵에 박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쓴다. “존경하옵는 대통령 각하.옥체안녕하시옵니까.혁명 후 오늘까지 저희들은 각하께서 이루신 모든 실제를 높이 존경합니다.그리고 앞으로도 길이길이 존경할 것입니다.삼선개헌에 관하여 저희들이 알지 못하는 참으로 깊은 희생을 각하께선 마침내 행하심을 머리숙여 음미합니다.끝까지 인내심과 현명하신 용기에 또 한번 밝아오는 대한민국의 무거운십자가를 국민들은 존경과 신뢰로 각하께 돌릴 것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에 대한 그의 존경과 믿음은 배신감과 분노로 바뀐다.편지를 쓴 지 1년도 채 안되는 1970년8월 그는모종의 결단을 내린다.그리고 다음과 같은 일기를 남긴다. “이 순간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일생을 두고 맹세한,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될 나약한 생명체들.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조금만 참고 견디어라.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오늘은 8월 둘째 토요일.내 마음에 결단을 내린 이날,무고한 생명들이 시들고 있는 이 때에한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해 발버둥치오니 하느님, 긍휼과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민주투사로 나서기 전,문익환(文益煥) 목사는 풀잎 하나,바람 한 점에도 감동하는 시인이었다.그런데 독재자의 폭압이 한 시인의 감성을 분노로 바꿔놓았다.31년 전 오늘,“근로기준법 준수하라”고 절규하면서 자기 몸을 불사른 전태일도 순하디 순한 청년이었다.“박정희의 경제개발은 전태일의 죽음과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다”는 ‘딴지일보’의계산법이 무리가 아닌 것 같다.전태일 말고도 수많은꽃다운 청춘들,그뿐인가? 5·18로 재발된 쿠데타 악습, 지역감정 망령 등은 어떻게 할 것인가. 김재성 논설위원 jskim@
  • 감사원 완전독립 시급하다

    ■세계감사원장회의 계기 위상점검. “4년 임기이지만 외부의 어떤 간섭없이 15년째 일해 오고 있습니다.” 최근 막을 내린 세계감사원장회의(INTOSAI) 서울총회에서 헤다 폰 베델 독일 감사원장이 ‘감사원의 독립성’에 대해 언급한 말이다. 감사원의 진정한 독립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INTOSAI 총회에서 행정 선진국의 감사기구 운영방안을 지켜본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한상범(韓相範)동국대 교수는 8일 “현행 감사원 조직의독립성이 심각하게 훼손돼 있지는 않다”고 전제하면서도“정치적으로 연관돼 있는 사안과 국정원 등 권력기관은언제나 감사대상에서 빠지거나 겉핥기식 감사를 받고 있어 이를 불식시키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고말했다. 한 교수는 “노태우 대통령 시절의 수서사건,김영삼 대통령때의 한보비리사건 등에서 보듯 감사원이 능동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기에는 현재의 위상이 턱없이 낮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4년 임기로 중임제인 현 체계는 정권이 바뀔때마다 자리가 바뀌어 일관되고 소신있는 감사를 할 수 없는 실정”이라며 문제를 지적했다.행정 선진국이 12년 및4∼5년 단위의 연임,종신직 등 독립성을 갖춘 반면 우리감사원은 4년으로 50년 역사상 중임한 경우가 단 한번밖에없다.한 교수는 감사원장 및 감사위원회 위원(차관급)의임용시 인사청문회를 제안했다. 강경근(姜京根)숭실대 교수는 감사원의 독립과 관련한 법률적 독소조항의 개선을 제안했다.현행 국가안전보장에 관한 법률에는 국가기밀 사항에 대한 감사에 대해 국무총리가 소명을 하면 감사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강 교수는 이와 관련,“이회창 감사원장때 율곡비리 특감이 이규정에 의해 시작되지 못할 뻔했다”면서 “독소조항을 삭제하거나 구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부처 공직자도 “건강보험특감 결과 등 최근 몇 건의 굵직한 감사를 보면 정무직인 장관 등 책임자는 빠져나가고 실무자급만 징계를 하는 모순된 구조가 돼있다”면서 “이는 곧 감사원의 독립된 감사체계가 제대로안돼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정기홍기자 hong@. ■외국 감사원은. 국가최고감사기구는 미국·오스트리아는 입법부에,일본·독일·프랑스 등은 완전 독립돼 있다.우리나라는 입법부·집행부·독립형 등 세 분야의 장점을 원용했으나 집행부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선진 행정이 자리잡은 미국을 보면 의회 소속인 회계감사원(GAO)과 각 행정기관에 설치된 감찰관으로 이원화돼 있다.GAO는 연방정부의 예산집행을 점검하고 감찰관은 소속기관의 회계검사와 직무감찰에 나선다. GAO는 필요한 경우행정기관의 감찰관을 감사한다.감찰관은 연방정부 산하행정기관의 비리를 막기 위해 기관의 자체 감사기구를 폐지하고 만든 것이다.감찰관은 소속 기관장으로부터 독립돼있고,계좌조사도 할 수 있다. 프랑스는 좀 특이하다.대통령이 임명하지만 헌법기관으로독립돼 있다.정년은 68세로 종신직에 가깝다.검사관 이상은 법관의 신분과 같은 것이 특징이다.단 검사관이 직접감사를 하고 그 결과를 갖고 재판을 한다. 독일은 입법·사법·행정부로부터 완전 독립돼 있는 케이스.정년(65세)은프랑스와 같이 종신직으로 볼 수 있다.임명은 행정부 제청으로 의회에서 비밀투표로 선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임명을 거부할 수 없다. 감사 결과를 근거로 예산편성 과정에 개입,예산삭감을 권고하는 막강한 힘을 가졌다. 유럽연합(EU) 투자은행에 대한 투자예산이 감사원의 의견에 따라 전액 삭감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중국은 직무감찰은 감찰부에서,회계검사는 심계서(審計署)에서 한다.부정부패가 심한 편이어서 감사기구의 권한이매우 강하다. 두 기관의 장은 전국인민대표회의 인준을 거쳐 국가주석이 임명한다.그러나 군 기관에 대해서는 감찰 및 회계검사권한이 불가능하다. 정기홍기자. ■감사원 변천사. 감사원의 현 조직 및 역할체계는 박정희 전 대통령때인지난 63년 3월에 기본틀이 갖춰졌다.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감사원법을 제정,회계검사를 하던 심계원(審計院)과 감찰담당인 감찰위원회를 통합한 것이다. 70년대에는 두번에 걸쳐 소폭 개정했다.70년 말에는 9명의 감사위원이 많다는 지적에 따라 7명으로 줄였고,감사원의 시정요구에대한 조치결과를 대상기관이 통보토록 규정했다.73년 1월에는 정부가 임원을 임명한 단체에 회계검사를 하도록 했다.감사원이 파면을 요구한 건에 대해서는 재심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게 했다. 95년 1월에는 관련 규정이 대폭 개정됐다.감사원 조직 및 인사·예산에 독립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선언적’ 규정을 두었다.이때 감사교육기관을 감사교육원(1급)으로 승격시키고 복수 차장제(1,2차장)를 도입했다.감사청구를 행정소송의 사전절차로 규정해 시민·사회단체 등이 문제사안에 대해 직접 감사를 요구할 수 있게 했다. 지난해 4월에는 선출직 지방자치단체장의 방만한 예산집행 등이 사회문제가 되자 지방담당국(7국)을 한개 더 늘려지금에 이르고 있다.
  • [대한광장] ‘학생’이란 이름에 존경심을

    학생의 날이 허무하게 지나가 버렸다.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해마다 국화축제를 여는 것으로 유명했었다.그 축제가처음으로 준비되던 가을,시월유신이 선포된다는 소식은 부산 광안리 바닷가의 한적한 학교에도 전해졌다.그리고 국화꽃 화분의 그늘에 앉아 지금은 이름도 잊어버린 어떤 여선생님께서 나와 친구들에게 소곤소곤 광주학생운동이란 게있었단다,라고 전해주던 학생의 날 이야기는 무슨 전설처럼기억에 남아 있다. 노오란 황국화는 내게는 옥당의 금분도아니고 미당의 누님은 더더욱 아닌,바로 학생의 날을 기념하기 위한 간절한 휘장인 것이다. 그런데 올해도 어김없이 국화는 피지만,오래된 기억을 현재진행형의 이상으로 바꾸어 주시던 그런 선생님들은 여전히 계실까? 그리고 그 낮은 속삭임에 핏줄이 뜨거워지면서,우리는 공부 열심히 해서 언젠가는 반드시 그분들처럼 차별과 억압에 참지 않고 저항하는 사람들이 될 테야,하고 주먹부터 꼭 쥐던 어린 소녀들은 여전히 있을까? 광주와 목포를오가는 열차 안에서 시작된 작은 싸움을 일제로부터 강제되던 식민지 교육의 그 모든 억압에 대한 저항으로 바꾸어 낸전국의 소년소녀들의 의기의 불꽃은 아직 꺼지지 않고 남아있을까? 물론,학생의 날이 희미해진 데는 반드시 이유가 없지만은않을 것이다.한동안 정부에 의해 금지되었던 기념일이란 이유 말고도,광주학생운동의 정신 가운데 ‘학생’의 의의를4·19 정신과 광주항쟁 정신이 발전적으로 계승함으로써 그날의 정신 자체를 바로 그날을 따서 기리는 의미가 약간 퇴색되었다는 점,학생운동의 축이 고보가 아니라 대학으로 옮겨짐으로써 상대적으로 고등학생들이 주축이 된 운동을 발전적으로 계승할 주체가 약화된 점,나아가 이제는 더 이상학생운동이 사회의 발전의 가장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하는시대가 아니라는 점 등이 학생의 날을 그냥 지나간 어떤 날의 기념일로 잊고 살게 만든다는 사실 자체를 아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더 중요한 것은 학생이란 말의 가치가 하락하고 도구화되는 바로 이 현실이다.기념일을 기념한다는 것이 어떤의미일지는 독재자들이 훨씬 잘 알았던 것 같다. 박정희정권 치하에서 개천절과 국군의 날이 민족의 명절로 성대히치러지는 동안 학생의 날은 금기가 되어버렸다.그 옛날의어린 소녀들은 서서히 학생이라는 이름을 숙제하는 기계,입시공부하는 기계로 바꾸어 달고,마침내 꼭 그또래의 자녀를둔 엄마들로 바뀌어서는 자기 아이에게 행여 황국화 그늘로 이끄는 선생님이 나타날까 두려워 하고,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나날의 삶에 지쳐 무언가 의미심장한 생각거리가 주어지는 일 자체를 끔찍해 한다. 새내기 대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가장 가슴이 아픈 것은,이미 미성년의 나이를 벗어난 이 학생들이,지식의 양과 처세의 질에서 충분히 어른인 이 학생들이 타자를 배려하고공동체에 헌신하는 인간의 가슴을 지니기엔 너무나 경험이없다는 사실이다.감수성 풍부한 사춘기에 인간에 대한 사랑을 연습하지 못하고 오로지 경쟁에만 내몰린 결과다. 우리는 너무 당연히,너무 마땅히,지금의 학교풍경이 옳지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그리고 이미 어떤 아이들은 그 옳지않은 현실에 저항하고 싶어 한다. 두발자유화 운동에 뛰어든 아이들이 있고,부조리한 교칙 개정운동에 나선 아이들이있으며, 간디중학교의 학생들처럼 자신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위해 전면적으로 투쟁하는 아이들도 있다. 자본과 부모들과 국가가 공모하여 생각하지 않는 아이들,반항하지 않는 아이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사이에,학생은 죽고 공부하는 기계들은 남는다.그러니,높은 교육열이 우리나라를 일궈 내었다고 자랑만 할 것이 아니라,생각을 좀 해보자. 학생이란 이름에 존경심을 돌려주자.그들에게 지식기능공으로써의 삶을 강요하지 말자.학생은 공동체의 미래를 위하여 자신들의 현재를 양보하는 그런 아이들의 이름이 되어야한다. 학생이라는 말의 의미를 단 하루라도 새로 생각해 보게 만들 학생의 날이 기념되지 않는 오늘의 우리나라가 슬프다. 노혜경 시인
  • 정치 뉴스라인

    ■박근혜부총재 타이완 방문. 한나라당의 영남지역 비주류 중진인 박근혜(朴槿惠)부총재가 30일 3박4일간의 일정으로 대만을 방문한다. 이번 방문에서 박 부총재는 천수이볜(陳水扁)총통과 왕진핑(王金平)입법원장 등 대만 정계 지도자들과 만나 상호 관심사를 논의할 예정이다. 박 부총재는 자신이 고문으로 있는 당내 40대 의원 모임의회장인 정인봉(鄭寅鳳)의원, 총무인 박혁규(朴赫圭)의원,초재선의원 모임인 미래연대 공동의장 이성헌(李性憲)·오세훈(吳世勳)의원 등과 동행한다.한 측근은 29일 “역사상 한국과 대만이 가장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한 것은 박정희(朴正熙)전 대통령 시절이어서 대만 정계 지도자들이 박 부총재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방문 배경을 밝혔다. ■이원범 전의원 자민련 탈당. 자민련 이원범(李元範)전 의원이 29일 탈당계를 내고 정식 탈당했다.이 의원은 탈당성명에서 “새 정권창출의 선두에 서기 위해”라고 사유를 밝혀 조만간 한나라당에 입당할뜻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권철현(權哲賢)대변인은 “현역 의원의 입당은 받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원외 인사의 입당까지 막는 것은 무리”라며 그의 입당과 자민련과의 공조문제 사이에서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 ‘惡手’ 예방 나선 이총재

    ■한나라 정국운영 어떻게. 10·25 재보선에서 완승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의 향후 정국 대처 방식이 관심사다.과반수에 1석 못미치는 136석은 거대야당이 마음만 먹으면 정국은 그대로 흘러갈 수도 있는 힘을 가졌다. 그러나 이 총재는 바짝 몸을 낮추려는 모습이다.28일에도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수에 의한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계개편] 이를 막겠다는 뜻을 거듭 천명했다.적어도 당분간은 현 구도대로 두겠다는 방침을 확고히 한 듯하다.이총재는 정치권 일각에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자민련의원 영입설을 잠재우기 위해 권철현(權哲賢) 대변인을 통해“정국안정을 위해 정계개편 등의 편법을 동원하지 않을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여 관계] ‘부드럽게’로 잡은 것 같다.이 총재는 최근당 대변인실에 “험구를 동원한 대여 공세를 지양하라”고지시한 것으로 알려진다.권 대변인은 “여권의 국정운영에대해 야당으로서 충고와 대안제시에 적극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다수의 오만한 모습’으로 비쳐지지 않으면서 한편으로는 여권에 내부 정비의 시간을 줌으로써현행 정치 구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효과를 겨냥한다. [국회 활동] 자민련과의 공조로 힘의 우위를 지켜갈 것으로 보인다.수권 정당,정책 정당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위해서는 각종 법안 통과에서 주도권을 쥐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지금까지 합의한 언론사 세무조사,이용호게이트 등에 대한 국정조사를 통해 여권을 적절히 압박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정치일정] 대선 행보를 더욱 가속화한다는 복안이다. 이총재는 오는 31일 충북 청주를 시작으로 한동안 쉬었던 ‘민생투어’를 재개한다.다음달 1일과 4일에는 각각 대구와울산을 방문하고 경기, 충청,부산·경남 지역 등도 순방할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재·보선승리의 여세를 내년 지방선거와 대선으로 연결시키기 위한 다목적 포석으로여겨진다. [향후 전망] 이 총재는 이날도 대통령의 여당 총재직 사퇴를 요구하며 여권을 은근히 압박했다.향후 정국은 여권의정치적 이니셔티브뿐만 아니라 이처럼 서서히 여권을 조여가는 야당과 이에 대한 여당의 반응에 따라 끊임없이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이지운기자 jj@. ■한나라 비주류 행보/ 김덕룡씨 대선출마 선언 유예. 10·25 재·보선을 기점으로 한나라당의 잠재적 대권주자들과 비주류들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는 양상이다.선거 완승으로 ‘이회창(李會昌) 대세론’이 한층 탄력이 붙으면서 이 총재와 주류들의 당 장악력이 제고될 것으로 보이기때문이다. 수세로 시작한 선거 초반,뚜렷하게 감지됐던 ‘공천 실패’에 따른 지도부 인책론도 흐지부지 사라졌다.이부영(李富榮) 부총재는 선거 다음날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당 운영과 관련,별다른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최근 강연에서는 이총재의 통일관과 부친의 전력시비에 대해 “수구·반통일은 아니며 이 총재 집안도 국가보안법으로 피해를 봤다”고 오히려 엄호하기까지 했다. 조만간 있을 후원회에서 대권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알려진 김덕룡(金德龍·DR)의원도 이를 미룰 것이라는 전언이다. 물론 이들은 “선거결과와 상관없이 당 운영에 대해 할말을 하고 소신에 따라 움직일 것”이라며 독자적 행보를강조하고 있지만 당장은 상황이 녹록치 않다. 이 총재 역시 비주류 껴안기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있다.이 총재는 선거 직후 DR에게 “선거지원에 애써줘 감사하다”는 뜻을 전달했다. 지난 26일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22주기 추도식에는최병렬(崔秉烈) 부총재와 김무성 (金武星) 총재비서실장을보내 박근혜(朴槿惠) 부총재를 배려하기도 했다.이 총재는또한 유연한 정국 대처로 비판의 여지를 줄이는 데 노력할방침이다. 이런 까닭에 비주류들은 정기국회 중 크로스보팅 관철에주력하는 등 한동안 정중동(靜中動)의 행보를 이어가며 활로를 모색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내년 대선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있고, 정국에 돌발변수가발생할 여지도 얼마든지 있는 만큼 굳이 서두를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는 시각에서다. 이지운기자
  • 박정희기념관, 반대 VS 추모 행렬

    26일은 박정희(朴正熙)전 대통령이 숨진 지 22년이 되는날.박 전 대통령을 보는 시각은 해가 갈수록 양극단으로치닫고 있다.과연 박 전 대통령은 친일 반민주 군사독재자인가,아니면 산업화의 기수인가.이날 열린 행사를 통해 박전 대통령의 두 얼굴을 살펴본다. ■반대. “민족의 성지에 일본군 장교가 쓴 현판이 웬말이냐.” 민족문제연구소 등 251개 단체로 구성된 ‘박정희기념관반대 국민연대’ 소속 회원 70여명이 10·26 사건 22주년인 26일 서울 탑골공원의 ‘삼일문’ 현판을 기습적으로떼려다 경찰의 저지로 실패했다. 삼일문에는 애초에 서예가 김충현씨가 쓴 현판이 걸려 있었지만 1967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현판으로 교체됐다. 국민연대는 이날 ‘박정희기념관 완전 저지를 위한 결의대회’를 갖고 “3·1운동의 발상지인 탑골공원은 우리 민족이 세계만방에 민족자주독립을 선포한 겨레의 성지”라면서 “일본군 장교 출신인 박정희의 현판을 그대로 놔두는 것은 민족혼을 짓밟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연대 이관복(李寬福)상임공동대표는“탑골공원 성역화 작업이 마무리되는 11월 30일까지 철거하지 않으면 우리가 떼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철거가 무산되자 경찰과 심한 몸싸움을 벌였으며 준비해온 달걀을 현판에 던졌다. 국민연대는 지난 2월13일부터 서울시청 앞에서 매일 ‘박정희기념관 건립 반대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편 ‘10·26 재평가와 김재규장군 명예회복 추진위원회’(공동대표 金勝勳 신부)는 26일 고 김재규(金載圭) 전중앙정보부장의 명예회복을 위해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 신청서를 접수했다고 밝혔다. 추진위는 “정당하게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한 채 신군부에 의해 단죄된 10·26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현석 이창구기자 window2@. ■찬성.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22주기 추도식이 26일 오전 자민련 김종필(金鍾泌)총재,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부총재 등유족 및 관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거행됐다. 민족중흥회(회장 金振晩) 주관으로 열린 추도식에는 유족대표로한나라당 박 부총재와 서영(書永)·지만(志晩)씨등 박 전 대통령 3자녀,그리고 박준규(朴浚圭)전 국회의장,남덕우(南悳祐)전 총리,민관식(閔寬植)전 국회부의장 등3공 관련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박 부총재는 인사말에서 “올해는 미국 테러 사건과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경제상황,국가관을 혼란스럽게 하는 6·25와 월남전 논란 등 국내외에서 일어난 많은 일들 때문에더욱 아버지가 생각난다”면서 “잘못된 것을 하나 하나바로 잡도록 노력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 고인을 기리고 추모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와 민주당 한광옥(韓光玉)대표는 조화를 보내 추도의 뜻을 전했다. 박 대통령 생가보존회와 구미시도 이날 오전 박 전 대통령의 생가(상모동)에서 김관용 구미시장을 비롯, 1,000여명의 시민등이 참석한 가운데 22주기 추모제와 추도식을 가졌다. 추모제에서는 50여명의 제관이 제사를 올렸으며 추도식에는 고인의 녹음된 음성이 방송된 뒤 참석자들이 헌화,분향하는 순으로 진행됐다.또 박 전 대통령이 초등교사시절묵었던 하숙집인 문경읍 상리 청운각에서도 김학문 문경시장을 비롯한 기관·단체장과 문경초등학교 제자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도식이 열렸다. 구미 한찬규기자·홍원상기자 wshong@
  • 정몽준의원, 역대대통령 6명 평가 저서 화제

    2002년 월드컵조직위원장인 정몽준(鄭夢準·무소속) 의원이 11일 발간한 일본어판 저서 ‘일본인에게 전하고 싶다’에서 역대 대통령들을 비교 분석해 정가의 화제가 됐다. 그는 닛케이(日經)BP사가 발간한 이 책에서 이승만(李承晩),윤보선(尹潽善),박정희(朴正熙),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 및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의 개인적 비화 소개를 곁들여 각각에 대해 촌평을 했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는 “잘한 것도,잘못한 것도 있다”고 말했으나,윤 전 대통령에 대해선 “친구의 아버지여서 곧잘 그 집에 놀러가 같이 밥도 먹었다”면서 “임기가 길었다면 나라를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을 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는 또 “젊은 시절엔 자유(좌익)사상을 가졌던 리버럴한사람이었으나 실제 권좌에 앉았을 땐 좌우 균형을 잡고 보수인물을 대거 기용,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했다”고 박 전 대통령을 높이 평가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그분은 등산뿐 아니라 골프나 테니스 등 경쟁적인스포츠를 했다면 재임기간 중 더욱 유연한 정치를 펼칠 수있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그는 “18년을 재임한 박 전 대통령의 정치방침이‘테제’였다면,그후 전·노·김 전대통령 시기는 ‘안티테제’로, 김대중 대통령 시대는 ‘신테제’로 표현할 수 있다”고 나름의 분석틀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종락기자 jrlee@
  • JP ‘보수대연합’ 승부수

    ■자민련 총재 복귀 이후. 자민련이 김종필(金鍾泌) 명예총재의 총재복귀를 계기로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위해 재출범했다. JP의 총재복귀는 최근 자민련이 비교섭단체로 전락하고김영삼(金泳三·YS) 전 대통령과의 연대를 구체화하고 있는 시점에 이뤄져 의미를 배가시키고 있다. 김 총재는 YS와의 두차례 회동을 통해 ‘반(反) DJ,비(非) 이회창’ 노선하에 빠르면 연말쯤 현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구도와는 차별되는 ‘보수대연합 신당’을 출범시킨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JP가 이날 전당대회에 앞서 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생가를 방문한 것도 산업화의 세력과영남 유권자들을 결집하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김 총재가 “가신 어른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를 요즘 젊은 사람들도(이제는) 아는 것 같다”며 박 전 대통령을 추앙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민련 당직자들은 상모동 주민대표들이 ‘김서방! 처가에 잘 오셨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거는 등 환대를 해준데 대해 “자민련의 영남권 공략이 주효했다”며 반기는기색이역력했다. 김 총재는 전당대회 직후인 10일 고문단과 부총재단 등주요 당직개편을 단행함으로써 당을 선거준비 체제로 재정비할 전망이다.당을 추스른 뒤 YS와 연대를 굳건히 하는동시에 장세동(張世東)씨 등 5,6공 인사들중 대국민 이미지가 비교적 괜찮은 보수파들을 대거 영입하는 데 나설 것으로 보인다. 자민련내에서는 JP 자신이 대선후보로 나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영남권 출신,특히 대구·경북(T·K) 출신을후보로 내세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현재로선 신당의 대선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부총재,이수성(李壽成) 전총리,무소속 정몽준(鄭夢準) 의원 등과 김혁규(金爀珪) 경남지사 등이 김총재의 포섭대상이다. 대구 이종락기자 jrlee@. ■JP “YS와 합치된 생각있다”. 자민련 김종필(金鍾泌)총재는 9일 전당대회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나라당과의 공조의사를 밝히면서도 “우리는우리대로 한다”며 비장함을 보였다.특히 한나라당의 협조를 통한 국회교섭단체 구성과 관련,“(이회창 총재가)최소한의 정치적 감각이 있었으면 벌써 끝났을 텐데…”라며아쉬움을 표시했다.다음은 일문일답.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과 공동보조를 어떻게 이끌 것인가. 만나서 이야기한 내용을 말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상당히 억측이 많은 것 같다.내일 이 나라가 어떻게 돼야 하는가에 대해 거의 합치된 생각이 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의 재연대 가능성은. 우리는 끝까지 참아가면서 유종지미를 거두려고 했다.공조가 파기된 직후 이적 의원 4명을 데려갔는데 그런 처사를 받은 우리가 뭘 생각하겠느냐.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부총재를 영입하나. 구체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생각해본 일 없다.다만 우리가 어떤 욕심이 있다고 하더라도 함부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없다.박의원은 지금 한나라당 최고 지도자중 한명이다.그 분을 자꾸 데려오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온당한 발상이 아니다. ◆내각제를 구체적으로 추진할 복안은. 우리나라 정치제도는 내각제가 바람직하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계속 설파할 것이다. ◆5·6공 출신 대구·경북(TK) 인사를 영입할 계획인가.그런 계획보다 이제 우리 당이 거듭난다는 선언을 했다.전국적으로 조직을 확대해 나갈 것이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에 대한 평가는. 이 총재는 제1야당 총재로 생각한다.정책공조를 하자고 했다.약속을 지킬 것이다. ◆‘반 이회창’이라는 표현을 쓴다. 우리는 그런 말을 쓴 일이 없다.언론에서 하는 말이다. 우리는 시시비비를 가리면서 나라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을성사시키겠다면 어느 쪽이든 협력을 할 것이다. ◆교섭단체는 언제쯤 성사시킬 계획인가. 이 총재와 만났을 때도 교섭단체 구성에 대해 애걸하거나 일언반구 꺼내지도 않았다.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이종락기자
  • [씨줄날줄] 거꾸로 가는 정치시계

    지난 7일 김영삼(金泳三·YS) 전대통령과 김종필(金鍾泌·JP) 자민련 명예총재가 밤 늦게 만나 제2합작을 모색하는 회동을 가졌다.부산 경남과 충청권의 연대를 통해 반(反)DJ(김대중 대통령)·비(非)이회창 구도를 뼈대로 신당추진을 모색한다는 것이다.보도를 접하면서 정치 시계가거꾸로 도는 느낌을 갖게 된 국민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문명충돌론으로 유명한 새뮤얼 헌팅턴은 1968년 무렵 후진국의 정치발전과 관련,“정치발전은 정치조직과 절차가안정성과 가치를 확립해 가는 제도화의 과정”이라고 갈파했다. 우리나라의 민주화가 일정 부분 진전되면서도 정치발전의주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정당의 제도화는 영 이뤄지지못하고 있다.자유당에서 나온 이승만 대통령이 아니라 이승만 대통령이 만든 자유당이었고,박정희 대통령의 민주공화당,전두환 대통령의 민정당, 노태우 대통령의 민자당,김영삼 대통령의 신한국당이었다.박정희 대통령은 공화당으로도 성이 차지 않았던지 유정회라는 친위부대를 하나 더만들어 유신독재를 펴기도 했다. 현재의 여당 쪽도 사정이크게 다르지 않았다. 말하자면 제도화된 정당이 아니라 보스를 따라 몰려 다니는 파당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우리나라 정당들이었다. YS와 JP의 구상은 보스가 지배하는 파당을 하나 더 만들겠다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정치 발전에 도움이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경제적 어려움과 가치관의 혼란에처한 국민들은 미래에 대한 비전과 이를 실천에 옮길 정책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다.하지만 두 사람이 내놓은 것은기껏 누구를 반대하고 누구는 아니다라는 수준이다. 시대를 헤쳐 나갈 비전도,정책도 없다.무엇으로 지지를 얻겠다는 걸까. 유감스럽게도 두 사람의 구상 속에는 지역감정에 대한 기대감이 숨어 있는 것 같다.YS는 9일 “JP 브랜드가 300만표는 된다”고 말했다.두 사람의 주변에서 흘러 나오는 말로부터는 지역 감정을 볼모로 한 권력 거래,정치 거래의냄새가 풍겨 온다.지역감정에 사로잡혀 있는 국민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보스형 정치에 지쳐 가고 있다. 그들이 노욕을 부리지 못하게끔 기존 정당들이 비전과 정책,대안을 열심히 제시해 주길 바란다면 그것도 지나친 욕심일까. 강석진 논설위원 sckang@
  • “미주동포 힘모아 막아낼것”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인권을 탄압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기념관건립은 역사적으로나 후세교육 차원에서나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국내에서 힘이 모자라면 미주지역 동포들의 힘을 모아서라도 반드시 막을 겁니다.” 군사독재정권 시절 미국에서 오랫동안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활동해온 재미 인권운동가이자 의학박사인 김용성(金容成·73) 미주민주동지회 의장이 8일 서울시청 앞에서 계속되고 있는 ‘박정희기념관 건립반대’ 릴레이 1인시위에 참여했다.이날 시위는 박정희기념관반대국민연대(상임공동대표 이관복)이 지난 2월 13일부터 시작한 이래 152회째로,김씨는 이 단체의 미주지역 대표자격으로 참여했다. 김씨가 이 운동에 나서게 된 데는 오랜 민주화운동의 ‘인연’ 때문이다.1928년 전북 전주 태생으로 49년 미국으로건너가 노스웨스턴 대학·미네소타 의과대학 등을 마치고심장외과 전문의로 활동해오던 김씨는 위스콘신대·일리노이대 등에서 외과학 교수(1965∼70)를 지냈다.61년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뒤 한국의 인권상황이 악화되자김씨는 미주지역내 동지들과 함께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활동해왔다.이런 연유로 70년대 한동안 그는 고국방문이 금지됐으며,80년 5·18사건 당시 미주 장로교 총회의 특사자격으로 한국으로 실태조사를 왔다가 출국직전 김포공항에서 체포돼 조사를 받기도 했다. 김씨에 따르면,현재 미국내에는 LA,시애틀,시카고,보스톤,뉴욕,포틀랜드 등 10여 곳에 박정희기념관반대를 위한 미주동포들의 모임이 결성돼 있다.2공 시절 초대 민선 서울시장을 지낸 김상돈(金相敦·작고)씨의 사위이기도 한 김씨는각종 모임에 참석한 뒤 16일 출국할 예정이다. 정운현기자 jwh59@
  • 2001 길섶에서/ 묘비명

    북부 독일의 함부르크 시청 앞 광장에는 시인 하인리히하이네의 동상이 서 있다.기단(基壇)의 동판(銅板)에는 독일말로 대충 이런 글이 적혀 있다.“내 관(棺)위에 칼(劒)을 놓아다오.나는 민중의 자유를 위해 싸운 전사(戰士)였으므로.”그가 직접 쓴 묘비명이다.하이네는 흔히 ‘로렐라이’등 서정시를 쓴 낭만파 시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자유주의 혁명에 몸을 던진 ‘투사’였다. 프랑스 사실주의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는 무정부주의자프루동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다.쿠르베는 프랑스 정부가주는 ‘레종 도뇌르’ 훈장을 거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자유의 체제를 빼놓고는 어떤 체제에도 속하지 않았다.”스스로 쓴 묘비명인 셈이다. 몇 해 전 한 언론인이 박정희(朴正熙)소장의 ‘근대화 업적’을 한껏 추앙하면서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고 묘비명을 대필(代筆)해주자 한 논객이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라며 반박하고 나와 공감을 산 적이 있다.스스로 묘비명을 쓸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장윤환 논설고문
  • 신총장 이번엔 동생 때문에…

    신승남(愼承男) 검찰총장이 동생 승환씨가 G&G회장 이용호씨로부터 6,600여만원을 받은 것과 관련,곤욕을 치르고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서는 벌써부터 신 총장의 거취 문제를 제기하는가 하면,오는 25일로 예정된 대검 국정감사에서는 의원들의 질책이 쏟아질 게 뻔하다. 동정론도 나오고 있다.신 총장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뒤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청와대 사정비서관으로 특채돼일하기도 했으며 비서관으로 있으면서 사시9회 수석 합격한 수재 검사. 검찰내에서는 원칙을 중시하는 실무통으로 분류된다.5·6공에서도 ‘잘 나가는 검사’였지만 김영삼정부 초기 서울지검 3차장을 거친 뒤 상속 재산이 많다는 이유로 검사장승진에 두번이나 누락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한 검찰 간부는 신 총장이 또다시 곤경에 처하자 ‘악운이 인물을 시샘한다’며 아쉬워했다. 총장의 수난은 신 총장이 처음은 아니다.일부 총장들은여론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중도하차했다.88년 12월부터 검찰권의 독립이란 명분으로 검찰총장직이 임기 2년제로바뀌었지만 정치적·개인적 사유로 지켜지지 않은 적도 많다. 박종철(朴鍾喆) 전 총장은 지난 93년 외형적으로는 사정활동 미진을 이유로 자진 사퇴했다.그러나 당시 재산공개이후 부동산 투기 의혹이 문제가 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임기를 3개월여 앞두고 법무장관으로 영전했던 김태정(金泰政) 전 총장도 장관 취임 보름만에 조폐공사 파업유도의혹 파동으로 자리를 내놓았다.그는 이번 이용호 사건에서도 1억원을 변호사 비용으로 받아 문제가 되고 있다. 이에 앞서 3공 이후 정권 교체기에 부정선거 단속 부진이나 정치적인 이유로 검찰총장이 퇴진한 적도 있다. 손성진기자 son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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