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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눈] 민족이냐 동맹이냐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 이후 던져진 우리사회의 논쟁거리다.좀더 적나라하게 들어가 보자. “만일 북한과 미국이 전쟁을 한다면 우리는 누구 편을 들 것인가?” 북한 편도 있고,미국 편도 있을 것이다.하지만 대다수의 대답은 이럴 것이다.“질문 자체가 엉터리다.절대로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그렇다.그것이 정답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답이 아니라 어리석은 이분법으로 우리를 내몰고 있다.북한은 민족공조로 ‘미제’에 대항하길 갈구하고 있고,미국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뒤 우리가 어느 쪽에 설 것인지 확실하게 선택하라고 강요하고 있다.어려운 상황이다.한가닥 교훈을 역사로부터 얻어보자. 건국 이후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 대통령 시절까지는 논란의 여지가 없었다.동맹이 절대선이었다.민족공조는 소수의 절규였고,정권의 이벤트였을 뿐이다.김영삼 전 대통령은 야심찬 변화를 시도했다.“민족에 우선하는 우방은 없다.”고 선언했다.그러나 일관성 없는 대외정책으로 민족도 잃고 우방도 잃었다.김대중 전 대통령은 꾸준하게 민족의 화해·협력을 밀고 나갔다.미국과의 동맹에도 늘 신경을 썼지만 클린턴 정권이 물러가고 부시 정권이 들어선 뒤에는 동맹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결국 역사는 동맹과 민족을 동시에 만족시킨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노무현 대통령은 민족 대신 동맹을 택한 것 같다.우리나라의 명운이 걸린 경제와 안보 양쪽에서 칼자루를 쥔 것은 결국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현실을 인정한 것이다. 적지 않은 국민이 실망하고 있다.노 대통령의 변신이 밉고,강단없는 정부가 원망스러울 것이다.그러나 괴롭지만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우리 민족은 늘 가슴 속에 분단의 짐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그리고 그 무거운 짐을 벗기 위해 우리는 이토록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도운 정치부 기자dawn@
  • ‘철강경영’ 집념으로 한평생 / 연합철강 창업 권철현씨 별세

    ‘비운의 철강인’ 잠들다. 연합철강 옛 사주인 권철현(權哲鉉·사진) 중후산업 회장이 지난 18일 오후 급성 심장마비로 별세했다.78세.19일 중후산업에 따르면 권 회장은 지난 17일 오전 갑자기 가슴 통증을 호소해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으로 옮겨 응급치료를 받았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끝내 숨을 거뒀다. 권 회장은 1962년 연합철강을 설립,당시 국내 최대 민간 철강기업(연산 100만t)으로 키웠다.그러나 1977년 박정희 정권에 의해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를 받고 연합철강 지분 51%를 국제그룹에 빼앗긴 뒤 ‘유신비판죄’로 복역하기도 했다.연합철강을 되찾을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권 회장은 1985년 신군부에 의해 국제그룹이 해체되면서 뜻밖의 기회를 맞게 됐다.하지만 이번에도 좌절해야 했다.연합철강 새 주인이 고 장상태 회장이 이끄는 동국제강으로 결정된 것. 권 회장은 이를 장 회장측의 로비에 의한 결과라며 거세게 반발,두 가문은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이후 권 회장은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연합철강과 소송으로얼룩진 싸움을 이어왔다.지금도 대를 이어 소송이 진행 중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순자 여사와 2남1녀가 있다.빈소는 서울아산병원.발인은 22일 오전 8시.장지는 경기 여주 선영이다.(02)3010-2270. 김경두기자 golders@
  • 대한 매일 하프 마라톤 / 하프코스 완주자 명단

    ●1시간 20분 이내 윤길수(1:15:29) 김인섭(1:17:17) 이강식(1:18:16) 박태국(1:19:43) ●1시간 20분대 손종현 최수영 김영식 권용태 김경성 손신배 정봉구 이성진 박희철 박정경 남궁경 정점채 유연호 이군섭 김민철 김성법 김환규 채성만 김경석 지정구 조상민 최기재 최석환 이영주 이재만 이병탁 황사석 한상억 유영대 김창환 윤기용 박동진 우종구 윤채순 신대선 고태평 유양규 이용대 박근완 송봉규 한진옥 배진환 장경태 김모수 박종석 엄기용 이원재 김동율 김동현 김영식 이종두 함경선 김호경 최창덕 박한식 채종국 지선병 최월흠 나동용 최윤교 김관철 조정환 김용식 김영수 이상봉 이은규 이한천 이상훈 서헌전 김국진 신준식 이의호 이철호 황광대 유영기 ●1시간 30분대 김성수 김종인 서만영 김태기 이근용 김정의 박주용 김효성 김은영 황성환 홍창유 한석행 이용익 한명현 한철웅 조명래 남성우 안승일 김학찬 이계홍 이태훈 정기현 박원배 조용호 김태경 공명근 권혁철 정우국 박청우 양광렬 남창우 오철훈 김왕건 정찬진 김흥남 박기환 박점성 황병태 강대웅 백영운 백승민 민병수 권택호 김성진 윤승환 최재민 황상식 남궁영진 이철희 추인구 양재운 김화룡 서민규 구본길 박성훈 신영철 박홍진 홍석신 유인평 김성겸 배봉맹 윤병호 임성찬 조중기 최현우 강장순 최성락 권순형 우연호 김헌재 김만태 이황희 이선기 유지원 서상균 소관영 김영백 김봉수 고근영 박용주 곽영희 채기범 장준호 황영현 김영남 남동희 권은오 송병곤 최덕규 김용기 최근보 전용억 임성옥 김성진 서규환 최청식 김태규 서세원 박광인 서강원 유희봉 김재문 양완수 전병창 유영일 유순모 김찬규 임동호 박종기 오창후 유병철 안은섭 김선호 정우광 왕태성 류내섭 조재영 최승길 조지슬라마 소순태 한영태 김기문 남대원 홍연표 신동식 송재홍 인정교 문병웅 정이역 유병철 유영근 김흥수 박순찬 박종환 홍동일 정래학 변재수 이민재 송을섭 김개학 성기우 이종남 이재원 이형국 이순주 김진환 명일광 김융희 정한엽 공연배 김택구 양경철 김용만 변성주 황희동 박완우 손봉용 김광인 최보경 임녹재 박형석 방석원 이계정 정병국 정병인 안완구 이종백 최종응 임진홍 연대남 신현철 김창석 윤명로 최영훈 박옥균 심영호 김성원 최강찬 윤정룡 이하일 김행석 구본순 나남운 장달수 이제관 손영섭 이성근 이강찬 김덕관 도기용 손영수 조영채 이내국 이영곤 이진해 이석준 양선복 전광근 최종덕 양섭 최인성 김영기 노철래 김정남 서동준 조철윤 박용희 서상빈 김명수 박준호 강윤교 송의종 김동길 김민 이종원 최인수 이종윤 임철규 박성배 권오학 이현우 이범순 정진송 김인수 이범섭 안중식 백영현 김기희 이광래 송태성 정현수 정오진 김동오 송석구 정종록 이성균 서인석 김광재 박광칠 김윤석 오희용 조성대 강영준 김범주 김용균 서관영 김관식 김재광 김상규 노인영 김현수 이영우 강재욱 김명석 김용인 권영구 정철중 김휴현 최병완 김준성 김용현 이해준 윤재경 박진배 오재원 최진섭 김종배 황천상 이일영 안정훈 한환섭 송홍헌 서상만 양희민 오명석 박야영 조규석 안병건 이재춘 현창호 박국진 이순창 송병찬 손원재 장영기 고창호 송기수 정순용 서석배 이병철 이주현 박기웅 김요경 허정환 이겸노 김성렬 공병홍 김유겸 서정욱 천원석 박창덕 전대길 이동주 전상욱 신현근 이호일 이안재 조순구 이강수 황춘식 이금만 김형경 박경원 김정민 서정옥 송영기 윤석남 윤석화 고영국 안중군 김익현 권병대 김수호 박현규 전운구 김춘규 주철 장경환 변희석 진용길 장주열 한상주 김평호 천기욱 조봉렬 박주복 최상철 이대현 모현동 장정호 김창호 홍순후 권상태 박상진 최인권 윤희상 서흥수 한국영 이재력 전재만 배흥진 반익환 강한석 연문석 김대홍 백남호 김현수 배성완 노상윤 김대민 김영춘 박문구 김성준 오태규 강필선 유용근 김부일 박성일 손윤호 김희문 정태진 김상혜 정은철 김수환 김용찬 박유동 임병민 채청기 박동일 이윤백 김서권 오장환 신형수 박기운 김영구 김영성 백승삼 방승광 김길중 최남희 정지채 김익봉 서민식 류대범 이승섭 이중철 가기삼 김윤경 윤지현 서진석 김일숙 김용식 안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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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칠 이인국 정용준 방상천 전병주 권영수 정진오 신삼섭 김종태 정해용 정진영 한상호 최신택 최자종 현대일 김광순 안해정 김장호 임명근 구정환 김백수 박근석 김장오 이종태 이원재 주재완 강대식 윤인구 노재민 오도섭 이병호 임채영 김영태 박병귀 원종식 방성진 백군성 윤치명 하동균 조재룡 류규형 김우연 박헌 장인교 허강식 박백화 고병규 박노부 이충호 변재훈 박재현 서왕수 구희득 이병이 김정호 오언식 전영호 조창희 양준석 송환영 허남거 임동국 주용출 서인철 신종철 안수현 김경욱 송외동 우승일 김태승 임주환 주만성 이헌 장현석 김성우 김영관 서효석 김홍상 이상규 정유수 박만영 김성완 엄동철 최석권 이득우 이영중 강구현 황민구 정원목 조대희 윤정수 박명선 윤문유 김근복 오성환 조성우 김응민 박영열 김의도 하덕호 최대종 이행수 노광민 최순익 양기훈 김상진 윤정근 소재홍 김재형 박종헌 엄영식 박명규 최종득 박영익 왕규창 목화균 임재택 황한근 장영건 이효연 이수인 장현철 명노일 박병한 경민준 김태성 신경섭 김학수 김인주 조두하 김재연 김대중 이승준 송성규 진성권 김영석 김창식 홍평수 손승언 정진 이숭구 김세정 박진석 구태림 주영팔 김재열 박민양 이인락 곽영민 홍태영 장석춘 이진욱 이성우 윤종원 장홍식 소순재 조영현 박정한 장혁 전남식 박종선 국형걸 서학남 오성균 김철민 전용일 임철현 이원군 김영삼 권성호 허남익 임윤진 안송찬 홍성균 정의룡 김진두 최평연 이주 김정겸 계민석 송기용 탁성재 박일천 조학봉 박영남 안의찬 주경식 김상돈 박영수 홍석태 문천식 윤대식 박춘오 이규성 김귀순 이재우 정용제 김홍귀 윤정철 윤인규 장명학 나견주 손재홍 권혁주 김진규 고광휴 민병춘 김영욱 신형철 김양진 최영환 박종명 박효순 이명직 박원배 고인식 최성인 박종부 홍성각 오병무 엄경호 황인석 금병욱 유종진 김관식 최태영 안광섭 남기범 양몽룡 안용진 전도석 이형주 이영래 신준하 김학봉 우종덕 정인준 김현철 송건호 이종건 김창교 윤봉수 이영배 박상열 장병천 이영선 윤종필 채정석 권영균 이학만 이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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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형 홍순국 정병원 정환조 오세룡 정재은 권기환 황정민 이병조 박호섭 고창준 신승주 한상범 윤상철 최광윤 이신우 전민종 장재웅 김성택 김영만 김일문 최광학 권기홍 박동경 송권식 이광호 이상수 김재학 최성택 김상두 이수영 길전목 박영준 이태용 전현식 이상원 이상진 엄호용 박중도 김종태 한재혁 김왕근 서양기 이석호 김용철 진칠수 안동덕 국강호 김현정 지승환 정연광 조경일 김금남 박인이 홍복 김유석 김영춘 나치수 윤도영 박태섭 김철호 노연규 박응렬 박용설 신병묵 황영식 이계철 김종욱 김도경 오세용 홍성수 김운용 이명길 연일희 김응덕 권재열 권기철 장동오 문성수 이창민 박종숙 김경수 전태환 강종닌 이철재 윤종규 설효찬 김종순 명득훈 이익현 채희열 이광희 박옥배 김극섭 진재환 양홍신 송국현 이문선 박병희 이경화 최필규 이문수 최종식 이만진 우택호 김태형 최동수 정충희 류지형 전동완 김정기 김삼종 김용재 신현관 권종기 정재일 홍운기 이수환 염용섭 김덕희 손육래 장재창 김행기 전대원 원종성 우병진 고연갑 안동선 김윤태 이순길 한근탁 김형식 백만종 박상한 박호봉 김준회 김용기 양재교 전우팔 서창주 김현수 장진구 이상도 이호갑 김상순 김병두 김덕중 남궁인 김용주 심인보 심재만 육근형 배상일 김재선 박상길 박정희 이은호 송철의 안종상 공귀현 장권호 김문호 정창화 김성열 이갑주 김명철 차형구 박문환 이재문 박병관 성흥규 김원용 최승덕 이시현 임용태 이인수 한종구 안용호최덕기 김승민 류성우 정지환 전정섭 최윤석 한용석 나석진 김평식 이동포 이형진 김준희 박용환 임동욱 조정연 정남수 조용범 김대용 이병호 고정삼 이의백 이근채 이종운 장순석 정은주 김대수 김양규 황영상 이만호 최웅렬 방란주 박태규 안희찬 이승보 심재훈 김태훈 이규옥 김진식 김승호 이원기 이종운 문인식 박상욱 권영석 윤현중 양국남 이광휘 주종호 박상배 박주균 김진호 강은구 민한홍 이광원 김태성 이봉희 이근영 김병기 이인희 신창렬 임용택 이호민 정일구 최인태 김철진 김기복 조영환 박장규 오희상 최규종 권성재 김홍철 최석민 장군 김창오 지현철 정연문 김웅주 유병천 이재원 정영빈 구희관 백종준 정순기 정기선 이명구 강문갑 김일중 맹용호 김동오 김동호 손상호 최석동 윤성식 조금현 김학재 박형호 조규명 신명호 오창영 이승수 조창권 지명준 권혁신 이상규 권오형 최병용 임동훈 김법종 이종민 강상은 이영휘 이숭묵 김형렬 정영철 이근모 남덕현 김민규 조성묵 유선순 정형진 허인구 김현우 이재곤 강지원 전종락 황석상 김규완 이종희장재욱 김종범 김춘백 이상호 박영덕 임정호 이상돈 옥은택 강혁수 문혁동 이재룡 정덕수 박만욱 박흥수 박문호 장덕만 조명연 김학성 조명준 장용호 장한수 송호동 박귀호 강석문 박성진 서한욱 최덕용 장석기 박상영 송도섭 이기우 홍성훈 원유형 정회곤 이익수 이성인 한명섭 임영수 김경준 이승호 임성수 이동균 김부섭 신재록 전재무 이영선 양의호 김성문 윤종근 홍재식 나보균 백형신 류재현 박재용 안형수 임영진 한기신 이범식 김영환 윤종식 구교룡 양명열 박근배 김경원 강정민 윤완우 김기표 박준우 송병욱 최수철 신기창 윤상호 최형권 하태옥 신홍수 박형우 손호경 김홍주 김종문 신정섭 이운학 박석희 박동길 이원희 신동인 장진국 송준호 김진평 정봉철 강운식 이재종 홍병윤 박상현 김홍찬 주정식 이진규 김갑득 안성기 고군현 이향복 제갈준웅 권덕인 명팔만 이광우 김용화 황인섭 최태규 이성주 전철종 오재승 이상군 고양식 정종선 신주석 김효섭 진병국 나종필 이병철 오원영 김흥식 이금동 소병두 백양준 설동호 하연식 김준식 진석 최백용 이윤식 최해진 김형걸 안달섭 김칠규 김의수 박계호 한호종 정대원 홍양희 이경현 박헌재 이재상 김철 장준호 유재현 양승훈 홍순호 김헌태 염봉헌 김삼구 정근일 이재홍 이환옥 조성주 박규현 윤범수 이은선 양세원 이호영 유영욱 엄태민 정명복 김철용 박승모 안병하 장치성 이용우 박병근 김중효 유동완 김영필 신승우 박병석 안병길 김보현 우원희 강석학 정순목 나승운 구주회 전재권 이의환 박영규 박원 최홍철 최광수 김주병 장삼룡 ●2시간 00분대 김유진 강성덕 안수봉 박찬홍 최기동 박증규 조순 이종찬 박종철 한정희 유성현 조문제 김인수 김용우 이현호 안진호 권오선 황영선 김현수 이은찬 한재신 이의철 송경열 하원식 이종수 이광주 조성목 김유순 김학영 최윤수 이종영 김영식 이홍석 최남일 김석주 정영근 박정주 김순봉 김형민 양주봉 이동기 이병완 안서용 유시운 박종일 양찬수 윤진행 윤수호 김기욱 나중출 양태관 이건상 유익상 소상은 정성용 정찬재 손치훈 이용재 정해양 강성열 안경용 정철희 유제국 김한종 권원일 김한철 복춘선 김민석 강대홍 엄준호 한중섭 이정규 손현규 김승만 이헌정 하철 박종호 이경진 구연갑 김종광 김진영 고종식 이종열 이근택 고규성 이용주 이수영 최창덕 이헌일 이창길 오경호 국순환 박관수 이태훈 김창완 김동수 이재석 김재룡 이중구 오정석 윤호청 김진하 이재우 이형연 정승보 최종국 손심길 서정호 문병호 선승규 이필열 이성한 김종훈 장학기 신동문 임정혁 배석진 노규태 류종완 하태익 박봉일 이종두 김석병 신현두 이광수 김충렬 서일석 차동일 남창욱 이석철 김형석 이승규 김준희 최성운 김세연 류의성 이창윤 안효방 방성민 윤흥식 김광호 황호섭 정대지 한성열 김택직 김종웅 박하근 송기섭 이동천 이상원 한상동 안영상 이석순 조선영 박근우 이창학 임종은 김종국 박준우 이규춘 전관현 윤성근 이학준 정기호 조병준 우귀환 김정열 손정철 박일규 최선식 김대중 김헝우 민준홍 김진성 오달교 박정훈 최광진 최경준 이중영 김동천 이태훈 강상희 이성주 이병관 강대권 최병문 장창연 박종무 강한철 김경식 박성우 황춘걸 고용선 이건석 박봉웅 김현석 심종수 이갑형 박경수 안재준 임균성 정재두 허영수 허명관 임준희 황우근 김병일 조재언 안광섭 김한준 김장기 이성훈 정광훈 이강민 김영우 이선우 이창범 이경곤 김병일 장현이 태근 안종옥 신황인 오대석 김지훈 이종민 김학근 오기봉 이강광 안효선 이호현 김동원 염기창 정태식 이무진 배경환 심재록 윤유현 조한경 김승현 강동성 김성호 곽호선 박형기 이철로 장영호 조성철 장승진 박창우 박병준 김용흥 장정진 서영호 김기동 서영훈 정창환 조성주 오희택 이종태 박성준 황승진 이우천 김종직 김진광 조영건 조규동 이상권 구광호 임현창 이제욱 이용섭 박상병 송상욱 박경원 박일문 조인구 이성수 정중묵 임명현 엄윤 오용근 정희웅 오용석 김영수 안경훈 송용석 임용묵 강진태 김상진 박석배 김영범 손승귀 강성구 박상호 이상조 김선혁 박일규 송영섭 엄형률 최양규 문경섭 이영원 고정훈 김정부 이형진 이용규 이승환 홍석후 정석진 이대형 이종린 서호영 최승주 유명렬 최낙양 조한훈 이중용 김훈 강정열 박민우 김사영 이래강 장상택 황차익 최병준 김중환 조신호 이일구 김양희 김홍태 김장훈 고오환 김복삼 김준현 이희택 손윤호 송태근 변영훈 이수동 최승창 김수일 현수섭 고팔곤 이병덕 김용익 한지섭 김광배 김영식 한선우 이한희 한영석 황승린 김태열 이영섭 김한철 이우현 백보기 김종우 신용구 이광철 박보철 조영동 류길상 박용덕 이정일 김동회 권재동 장성구 문점수 민병찬 최흥섭 이기원 김광식 김오근 황우창 김명선 이상길 송희승 김진욱 한상구 계영수 우병우 윤창배 신현준 김종만 류선희 박광근 유범종 성시우 조성현 조수연 김영만 김용환 조병탁 전재홍 김희동 이상칠 진영곤 안철우 임성연 박광우 신수호 조종화 신영수 장영진 황인성 이석봉 서정희 전재홍 김용동 김응태 이동현 조원교 이희철 김재완 조용준 김용규 박충용 홍헌우 조재연 김영완 홍성효 김선일 김동준 최용달 손수연 송상섭 강신오 김철 김남훈 이성일 김정한 이종현 오성익 최상국 구교상 김상모 황동준 염장철 김대철 윤상태 박영훈 배준석 권명찬 유민석 박현우 박기태 구남렬 최진웅 주상순 박진오 최상철 김정용 조영욱 김배성 문병욱 고준평 임준석 ●2시간 10분대 윤용규 민경각 김태영 전근철 김남호 김성진 조동현 이욱헌 김상원 차도원 정도영 박한수 김준서 박정철 최경원 최연준 최송덕 변형균 김정환 진경섭 최정열 이준기 김현중 임정수 이용득 윤완 김준호 김주호 김종민 최순정 박수철 차범린 이연택 윤영훈 이동은 배장한 최경열 정계종 황성규 박길채 박광민 안재권 김인태 이규민 강기원 성태명 김선환 이세훈 이성용 최의진 양성창 신용철 한승환 오병승 박종인 주금중 김용상 오천석 이두성 신광수 최광철 이원행 유병휘 김정수 반진훈 이동일 최병언 정병돈 조정근 조정희 김동필 류재호 김문후 김낙환 김경평 이재진 주노성 이동직 김명수 박강식 심재복 제프 정진현 하창우 이한진 노영래 고우현 서성렬 민철희 서제진 남완규 박용민 박영규 김종열 윤은용 하성준 하재흠 윤헌수 이동진 이백형 이재철 길희영 김기철 박행수 허준평 김정근 정근호 박문규 지승호 진한영 안재숙 김상환 장영화 박석연 장지석 조도훈 박형기 신정섭 이병덕 김익수 류문수 김명수 박재천 배정철 김원태 조남길 김진상 오효근 박지병 양용태 한병석 김광주 심산 최상열 김수택 방정석 오윤석 홍영철 구세용 김유겸 반정호 조진모 손창호 김완희 지승원 강형채 허진성 김명학 이창기 이호철 박전용 이종구 안동현 신만용 신재용 조용범 류창완 이수원 강태봉 이상협 김영철 양청문 양인승 서병조 정병만 이경환 호영식 차상준 한상길 박대현 홍성삼 이상섭 박영식 장준희 이두상 김은태 장상옥 송형근 김진태 진성현 김동식 곽준영 김상준 권구성 김형균 박정근 김광주 한기성 박동각 김성만 최성식 공순권 현병운 성종환 이경문 강진규 류경종 이정우 이동수 김종국 최호선 김세준 백운성 김기범 이범탁 조판국 지수근 배상린 이상철 성재호 하성철 유승주 채성기 이주원 조은연 주석호 김옥섭 정창업 정성열 김필용 신명현 류호증 박영섭 황종기 김두래 노성신 김판식 윤여창 이선규 송영근 박상국 이종은 배도환 김남빈 김규명 양영권 최명선 최영환 염웅기 최형석 서용상 김태환 정대철 김경식 조태일 차준영 유재혁 서재영 김기상 남승식 김창하 유성재 황종선장재훈 윤성훈 최을선 이원형 강호연 이명웅 최재영 김도완 유명용 김동렬 장혁재 김규성 신용철 김충의 김용훈 김용환 신재영 선영훈 이학주 ●2시간 20분 이후 김성수 윤영필 강진수 김석규 김영을 신광철 오세중 김종영 최동만 김영만 유필호 배만주 임익주 명진성 이제용 최윤식 김광건 허규일 김홍준 이화석 최병기 이한규 윤효원 우홍식 이승열 강학구 이용철 강맹구 김성근 이성희 최상범 오상헌 백승호 한인철 이주송 임우규 이용훈 박희병 조의호 최희철 박병호 주대원 윤영철 김강 김상진 곽문식 조홍 이희성 한성익 김대희 이진용 황선국 최정수 이영민 이양일 현수진 이수용 전광일 정동섭 정연학 윤석도 이승기 하성영 이명식 남윤동 신재우 김중섭 김종태 류웅 최익수 김동준 김태관 김승욱 엄태우 신현주 김동일 박민호 김상기 유황현 박성일 김상섭 조현재 박상운 이용인 김태곤 서호열 조익현 이성호 심문보 이창근 전우수 김광모 정문철 박승국 오청민 홍현곤 김준 송기화 박재현 국민호 이상하 이강영 이덕노 김상일 하인식 최희남 전영범 정상식김광현 백대현 문수빈 서주원 김학종 이성실 유재호 신동학 진수명 조태현 박주련 이종순 임철순 김상오 이태용 김성순 김양수 박성진 김석호 서인석 이명주 권동하 김성무 반문환 조경수 김진수 이호진 유승근 정회진 이덕중 신정식 션파멀 이강태 장일섭 최기섭 김우
  • [씨줄날줄] 대통령의 골프

    미국 제임스 도드슨이 쓴 ‘마지막 라운드’는 말기 암환자인 아버지와 골프 컬럼니스트인 아들이 함께 한 2개월간의 마지막 골프여행에 관한 얘기다.골프 라운딩을 하면서 아버지와 아들이 나누는 진솔한 대화는 골프를 통해 삶의 깊이와 인생을 관조하는 법을 간접 체험하게 만든다.골프 문외한에게도 샷(골프채로 공을 치는 동작) 하나 하나가 단순 운동이나 기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넉넉하고 아름다운 곳에서 한시름 털고 갑니다.” 노 대통령이 어제 라운딩을 마친 뒤 방명록에 서명한 글이라고 한다.노 대통령의 골프철학이 시름을 털어내는 경지에 이르렀는지는 관심이 아니다.다만 잠시나마 국정에 대한 걱정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었다면,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것이다.또 공직자 골프 허용 여부를 놓고 앞으로 더는 소모적인 논란이 벌어지지 않도록 만든 점도 수확이다. 사실 우리 역대 대통령들 중에도 골프마니아들이 적지 않았다.군인출신답게 골프채를 어깨총 자세로 둘러메고 필드를 누빈 박정희 전 대통령과 경호상의 이유였다고는 하나 앞·뒤홀을 하나씩 비게 한 뒤 라운딩을 해 ‘대통령 골프’라는 신조어(新造語)를 만들어 낸 전두환 전 대통령,별장인 청남대에다 골프장을 만든 노 전 대통령….1967년 한양 골프장에서 박 전 대통령 재선축하대회가 열리기도 했다고 하면,‘어,그랬어?’라며 미심쩍어하는 골퍼들도 더러 있다. 골프와 접했으면서도 취임직후 부패척결을 명분으로 골프금지령을 내린 YS와 골프대중화를 내세웠지만,정작 자신은 몸이 불편해 골프와 처음부터 인연을 맺지 못한 DJ.정치적 라이벌이었던 DJ와 YS가 취한 골프 정책의 차이는 두 사람이 걸어온 정치역정과 통치스타일의 차이를 그대로 빼닮아 아이로니컬하기까지 하다.그래서 ‘골프를 쳐보면 그 사람을 안다.’고 하는 것일까. 현직 대통령이 골프를 즐겨서는 안 된다는 법은 없다.우리 사회도 이제 대통령의 골프를 받아들일 만큼 변해가는 중이다. 그런데 골프는 본인이 선수이고, 심판관이기에 스스로에게 매우 엄격해야 한다고 들었다.그렇다면 적어도 ‘대통령의 골프’는 그 이미지에 맞게 당당해야 한다.청와대가 ‘소비 진작’을 이유로 내세운 것은 어딘가 옹색해 보인다. 티샷이 좋지 않으면 두번째 샷이 어려워진다. 양승현 논설위원 yangbak@
  • 노대통령 내외 ‘새벽골프’ / 어제 태릉서 참모들과 라운딩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4일 새벽 태릉 골프장에서 김진표 경제부총리,김세옥 경호실장,유인태 정무수석 등 참모진과 3개조로 나눠 라운딩을 같이 했다.노 대통령은 이날 94타를 쳤고,생애 처음으로 ‘버디’를 잡았다.현직 대통령이 일반인들의 출입도 자유로운 곳에서 골프를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고(故) 박정희 대통령은 이 골프장을 가끔 찾은 적이 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도 청남대에서는 골프를 했지만 ‘경호상’의 이유로 태릉 골프장은 거의 찾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그린피는 노 대통령이 직접 계산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일반인들에 앞서 새벽 5시30분부터 5시간 동안 라운딩을 했다. 노 대통령 내외는 김 경호실장,김화중 보건복지부장관과 2조에서 라운딩했다.1조에는 김 부총리·권오규 정책수석·이해성 홍보수석·조윤제 경제보좌관이,3조에는 유인태 정무수석·반기문 외교보좌관·김희상 국방보좌관·김태유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이 라운딩을 했다. 오래 전에 골프를 그만둔 문희상 비서실장과 골프를 쳐본 적이 없는 문재인 민정수석은 참석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17번홀(파4)에서 투온 시킨 뒤 버디에 성공했다.골프 입문 3년 만에 첫 버디였다. 노 대통령은 라운딩을 마치고 동반자들과 가볍게 맥주를 하면서 “처음으로 버디를 해 기분이 매우 좋았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 내외는 오찬은 하지 않은 채 골프장을 떠났고,일부 참석자들은 오찬을 함께 했다. 노 대통령의 평균 기록은 100타 안팎이기 때문에,이날 성적은 좋은 편이었다. 지난달 17일 청남대에서 정대철 민주당 대표,김종필 자민련 총재,이원종 충북지사와 라운딩했을 때 9홀 기록은 53타였다. 96타를 친 권양숙 여사는 한 홀 앞선 16번홀(파3)에서 버디를 잡았다. 참석자들은 “퍼스트레이디가 버디를 퍼스트로 했다.”고 말했다.참석자 가운데는 김 부총리가 85타로 가장 성적이 좋았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방명록에 ‘넉넉하고 아름다운 곳에서 한시름 털고 갑니다.감사합니다.대통령 노무현’이라고 서명했다. 이 홍보수석은 대통령의 골프와 관련,“골프는 이제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이 즐기는 여가,취미생활로 자리를 잡았다.”면서 “과거 (김영삼 대통령 시절)처럼 골프금지령이 있다는 인상을 받을까봐 골프장을 찾은 이유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통령 스스로 여유를 찾는 것도 필요하고 주변에서 대통령의 허리에 대한 염려가 있었는데 건강한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주는 뜻도 있다.”고 덧붙였다. 곽태헌기자 tiger@
  • 리영희·백낙청씨등 19명 민주화운동 관련자 인정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30일 제65차 회의를 열고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이신범 전 한나라당 의원 등 19명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 백 명예교수는 74년 서울대 영문과 교수 재직 중 유신헌법 개정 및 구속인사 석방 등을 요구하는 ‘민주회복국민선언’에 서명해 파면되고 76년 ‘8억인과의 대화’를 펴내 징역 1년,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는 72년 민주회복국민회의 이사로 활동해 한양대에서 강제 해직됐고 77년 ‘전환시대의 논리’ 등의 출판물을 내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또 89년 한겨레신문기자단 입북 계획 등과 관련해 징역 1년,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신범 전 한나라당 의원은 71년 박정희 정권 반대시위 등으로 서울대에서 제명,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75년에는 이부영 현 한나라당 의원으로부터 대통령 긴급조치를 비판하는 표현물을 받아 보관해 징역 8월,자격정지 8월을 선고받았다. 또 배다지씨는 88∼89년 부산민주운동연합 부의장 및 의장으로 활동하면서 전두환·이순자씨 구속 촉구 투쟁을 주도하고 91년 범민족대회 추진과 노동영화 ‘파업 전야’ 상영 관련으로 징역 1년,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제65차 민주화운동 인정 대상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곽규현 박석룡 강성휘 정창렬 배다지 임성윤 한기인 최상영 이신범 강기정 노경진 허영구 박제현 백낙청 리영희 차재덕 김병석 이현세 한상근 장세훈기자 shjang@
  • [열린세상] 뿌리깊은 세대간 불신

    요즈음 50∼60대 기성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글이 하나 있다.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독에 파견한 광부와 간호원들의 봉급을 담보로 외자를 도입하여 경제건설을 했다는 내용의 글이다.가난한 나라의 대통령과 이국 땅에서 고생하는 광부,간호원들이 서로의 고통을 위로하며 통곡하는 장면들은 사뭇 감동적이다. 문제는 이 글의 ‘도입문’ 부분이다.“50,60대를 수구라고 몰아붙이는 젊은이들아! 지금 너희가 느끼는 편안함 뒤에는 우리들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이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신문지상에서 회자되었던 ‘대통령 선거 후 기성세대들이 느끼는 박탈감’을 실감나게 하는 대목이다. 어느 사회이건 지배세대들이 퇴장하는 시점에서는 회한을 토하기 마련이다.그러나 그것은 자신들의 역할이 축소되는 데 대한 소외감에서 나오는 것이지,자신들의 성취가 부정되는 것에 대한 억울함은 아니다. 성취가 부정되는 것에 대한 억울함에 따른 것이라면,이는 의례적으로 존재하는 세대갈등의 수준을 넘어서서 사회해체로의 파국을 염려해야 되는 국면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느끼는 피해의식 역시 기성세대의 분노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어른들은 젊은이들을 인터넷 상에서 미숙하고 즉흥적인 대화나 일삼으며,사회의 앞날을 무책임하게 재단한다고 매도한다. 그들이 서로의 다양한 생각을 교환하고,열린 마음으로 미래사회를 건설하는 활동을 폄하한다. 지난 학기에 400여명의 학생들이 ‘총장과의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필자는 학생들이 그 사건을 가지고 총학생회 임원들과 인터넷 토론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서로의 주장 속에서 교수들이 걱정했던 사항들도 주제로 떠올랐고,교수들과 같은-혹은 그 이상의-건설적인 결론을 도출하였다. 어른들이 젊은이들을 무책임한 선동에 휘말릴 만큼 단순하며 감정적이라고 평가절하한 것이 부끄러워진 순간이었다.어찌보면 기성세대가 먼저 젊은이들이 이루어 놓는 역사를 부정하고 그들의 존재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마저 들었다. 지금 우리사회는 도처에서 서로를 불신의 눈으로 보며,상대집단의 존재가치를 수용하지않는다.의사와 약사들,교장단과 전교조,기업과 노조와 정부,기성세대와 젊은이들,남성과 여성,호남인과 영남인들….이들은 서로를 믿지 않으며,평가절하하며,상대가 우리 사회를 망친다고 격분한다.그러면서 상대가 자신을 제대로 봐주지 않는다고,격분하고 억울해 하다가 마침내 허탈감에 빠진다. 상대의 눈으로 현상을 보고 느끼는 감정이입이 선행되지 않으면,대화는 불가능하다.상대에 대한 신뢰가 없는 적대적 대화(?)는 사회해체를 가져올 뿐이다.민주화된 사회에서 우리들은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부족한 채로,자신의 주장만을 부르짖고 있다.자신만이 정당하고,상대는 이해하기 어려운 도깨비일 뿐이다.서로의 양식을 믿지 않기에,100원을 얻기 위해 1000원 혹은 1만원을 달라고 우긴다.그러고는 과장하는 상대집단을 서로 경멸한다. 독재사회에서는 그래도 적이 하나였다.권력을 독점한 집단을 적으로 삼아 함께 뭉쳤었다.독재가 청산되고 민주화가 되었다는 지금,우리들은 생각이 다른 집단이면 모두 서로를 경멸한다.상대가 내리는판정에 억울해 하면서 펄펄 뛴다. 이제 우리는 가장 원초적인 대화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상대를 인정하고,상대의 감정을 존중하면서,합리적인 수준의 요구를 내세워야 한다.타인의 고통을 감지하며 손 내미는 종교적 자세는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다. 자신의 상황을 오해하고 자신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 사람에게 어느 누가 마음을 열겠는가? 우리사회는 상대집단과 그들의 고통을 ‘제대로’ 감지하는 ‘위대한 고통’을 시도할 때이다.위대한 고통에서부터 사회통합이라는 위대한 일을 성취할 것이다.더 늦어 화해가 불가능하기 전에,연성의 정치를 일상화할 때다. 이 미 나 서울대교수 사회문화교육
  • 치욕 서린 건물도 문화재 등록

    영동 노근리 쌍굴다리와 옥천 죽향초등학교,진천의 옛 덕산양조장,김제의 농장사무실…. 문화재청이 지난주 문화재로 등록을 예고한 15건의 근대 문화유산 가운데 일부이다. 조금 과장하면 노근리 쌍굴다리는 그야말로 볼품없는 콘크리트 덩어리.그러나 잘 알려진 대로 한국전쟁 당시 수백명의 민간인이 피살된 곳이다. 죽향초등학교와 덕산양조장은 건축적 가치도 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가 다녔고,현재도 3대가 가업을 이어 전통주를 생산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김제의 농장사무실은 일본인에 의한 토지수탈의 역사를 간직한 건물로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의 무대로 등장하기도 했다. 그동안에는 건조물이 얼마나 ‘건축적 가치’를 갖고 있는지가 문화재로 등록되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면,이제는 ‘역사’가 전면에 부상하고 있다. 무엇보다 치욕의 역사와 부정적인 역사도 간직해서 후세에 물려주어야 할 문화 유산으로 과감하게 수용하고 있다는 데서 등록 문화재 제도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경성부청사였던 서울시청청사.경복궁안에 있던 일(日)자모양의 옛 조선총독부청사는 헐렸지만,본(本)자 모양으로 짝을 이루던 옛 경성부청사는 등록문화재로 보존하게 된다. 일본사찰인 군산의 금강사 대웅전도 포함됐다.1913년 일본에서 건축자재를 들여와 지은 전형적인 에도(江戶)시대 사찰건축을 보여준다.제천기관차사무소 수검고가 등록 대상으로 예고된 것도 눈길을 끈다.1937년 철근콘크리트로 지어진 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오폭으로 남쪽 부분이 파괴되자 외장을 벽돌로 쌓아 복구했다.건축물로는 순수성을 잃어버렸지만,근현대사의 굴곡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는 더 크다는 것이다. 김정동 문화재위원(목원대 건축학과 교수)은 “이런 것까지 문화재로 등록해야 하느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좋은 역사만 역사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무엇보다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하려고 해도 남아 있는 근대문화유산 자체가 별로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면서 “문화재로 등록하여 당시의 흔적이나마 남겨놓을 수 있는 제도가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등록 문화재 제도는 1876년 개항 이후 한국전쟁에 이르는 동안 만들어진 근대문화유산을 효율적으로 보존하고자 지난해 3월 도입됐다.현재까지 서울 태평로 옛 국회의사당과 강경 남일리 옛 남일당한약방 등 모두 66건이 등록되거나,등록이 예고되어 있다. 서동철기자 dcsuh@
  • 이런 책 어때요 / 나를 배반한 역사

    박노자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관변 사학자,국정 국사교과서 등을 통해 개화기 선각자로 숭앙돼 온 김옥균,안창호,서재필 등은 여전히 성역의 존재일 수밖에 없는가.박노자(본명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귀화한 저자는 이 개화기 선각자들의 자취를 신랄히 비판한다.그들은 동학운동을 무지몽매한 백성들의 소란으로 매도했고,계몽 엘리트에 의한 권위적인 정국운영을 구상했으며,지역감정의 소유자였다는 것.상대적인 진보성과 함께 그들로부터 시작된 한국 근대화의 왜곡된 성격이 어떻게 광복 이후 박정희 ‘근대화담론’으로 이어졌는가를 밝힌다.1만원.
  • NGO / 또 불거지는 박정희기념관 건립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 재착공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박정희기념사업회측이 최근 “8개월째 중단된 공사를 재개하겠다.”며 정부에 국고보조금 집행을 요구하자 250여개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박정희기념관반대국민연대가 “국민들이 낸 혈세를 독재자의 기념관건립에 사용할 수 없다.”며 건립에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기념회측이 모금한 기부금 100억원의 성격과 아리송한 기념관사업만료시한 연장 등의 문제까지 겹쳐 해답을 찾기 쉽지 않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간의 경위 기념사업회측은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옆 부지에 연건평 1600평 규모의 기념관을 짓기로 하고 시민단체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지난해 1월 공사에 들어갔으나 기부금부족에 따른 국고보조금 미집행으로 인해 지난해 6월 공사를 중단됐었다.정부는 기념사업회측이 공사비 214억원의 절반정도의 기부금을 자체 모금,운영자금으로 사용한다는 조건아래 공사비를 국고로 지원키로 결정했었다. ●건립 반대 및 강행의 논리 곽태영 국민연대 공동대표는 “기념관 건립은 민족정서에 반한 것으로 현 정부가 국고보조금을 지원하면 반정부 투쟁에 들어가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국민연대측은 특히 사업만료시한인 2월28일을 불과 열흘앞둔 지난 2월17일 2004년 10월까지로 시한이 연장된 점을 문제삼았다.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은 퇴임을 일주일 앞두고 있었다. 이와 함께 기념회측이 모집한 국민모금 100억원을 전경련 등 경제단체,대기업 등이 내게된 경위도 석연치 않다는 주장이다. 국민연대측은 5·16기념일인 다음달 16일까지를 기념관건립 반대주간으로 정해 건립을 저지하는 소송투쟁 등을 병행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측은 “정부로부터 정식 모금허가를 받아 기부금을 받은 것과 사정에 의해 공사가 지연돼 공사기간을 연장받은 것이 무슨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면서 “기념관은 공사비가 없어 공사가 중단됐기 때문에 정부와 국회가 결정한 대로 공사비 지원이 이뤄지면 공사를 재개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난처한 정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입장에 빠진 김두관 행정자치부장관은 최근 “행정수도 이전으로 자리가 비게될 청와대 본관을 해방 이후 역대 대통령 기념관으로 활용하는 현대사기념관 건립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제3의 중재안을 냈지만 두 단체간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노주석기자 joo@
  • “노동절을 돌려 주세요”/ 민노총, 입법청원키로

    “‘근로자의 날’이 아니라 ‘노동절’입니다.” 다음달 1일 세계 ‘메이데이(MAY DAY·노동절)’ 113돌을 앞두고 노동계에서 “그동안 빼앗긴 ‘노동절’ 이름을 되찾아 새로운 노동자의 역사를 열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민주노총은 21일 성명을 내고 “1923년 국내에서 처음 개최된 ‘5·1 노동절 행사’가 57년 이승만 정권의 탄압에 의해 대한노총 창립일인 3월10일로 바뀌었으며,박정희 정권은 이름까지 ‘근로자의 날’로 고쳤다.”면서 “김영삼 정부 출범 후에도 날짜만 5월1일로 환원됐을 뿐 여전히 ‘근로자의 날’이란 명칭 아래 행사가 치러졌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노동절을 되찾기 위한 관련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참여정부’가 노동절 이름을 되돌려줘 노동자의 권익 향상에 일조할 것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영표기자 tomcat@
  • 행자부 ‘손발 안맞네’

    행정자치부가 요즘들어 김두관 장관과 실무담당 공무원간에 손발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같은 사안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어서다.김 장관은 정책적 판단에 따라 기존의 정부방침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나 담당공무원들은 원칙적으로 현행 제도를 고수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사례 1 김 장관은 16일 MBC 라디오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박정희 기념관 건립사업을 역대 대통령 기념관이나 현대사 자료관으로 대체하겠다고 밝혔다.시민단체들의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기념관 건립사업에 지원금을 지급할 것이란 담당공무원들의 언급을 뒤집은 것이다.관계자는 “(장관이) 사전 언급 없이 기존 방침을 바꿔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다.”면서 “장관의 정확한 의중을 파악한 뒤 종합 검토해 최종결정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례 2 김 장관은 지난달 공무원직장협의회를 비롯한 공무원노조 등과의 면담에서 근속승진제 확대와 차등정년제 폐지 등 하위직 공무원 처우개선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이정천 공노련 위원장은 “‘전향적’이라는 표현은 이전과는 다른 조치가 취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후속조치에 대한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담당공무원들은 하위직 공무원의 처우문제가 지속적으로 논란이 됐던 문제일 뿐 아니라,기존 방침을 뒤집는 결과를 내놓기 힘든 사안이라는 입장이다.관계자는 “(장관으로부터) 재검토 지시는 없었고,현재 고려하고 있지 않다.”면서 “공직사회 구조조정 등으로 공무원 조직이 고령화돼 있는 상태에서 정년을 연장하고,근속승진제를 확대한다면 이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고 우려했다. ●장관 따로,담당자 따로 이처럼 장관과 담당공무원들이 같은 사안에 대해 ‘두 목소리’를 내자,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관계자는 “(장관이) 각계각층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는 자세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면서 “하지만 요구 중 실현가능성이 낮고,긍정적인 효과보다는 부정적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 쉽게 바꾸기는 힘들다.”면서 “이같은 요구들이 수용되지 않을경우 상당한 후유증도 우려된다.”고 덧붙였다.반면 장관의 입장을 고려,민감한 반응은 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한 관계자는 “조직을 이끄는 장관의 경우 단정적인 표현은 삼갈 수밖에 없다.”면서 “장관이 열린 자세를 갖는다고 문제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장세훈기자 shjang@
  • ‘박정희와 핵’등 현대사자료 공개 / KBS1 ‘역사스페셜’ 특별기획 ‘발굴! 정부기록보존소’ 방영

    조선총독부 문서 3만건,정부수립 뒤 문서 180만건,대통령 결재문서 22만건,사진자료 130만건….정부기록보존소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던 수많은 현대사의 자료들이 브라운관을 통해 생생하게 재구성된다. KBS1 ‘역사스페셜’(토 오후 8시)은 5월부터 ‘발굴! 정부기록보존소’라는 기획 시리즈를 6개월 동안 내보내기로 했다.지난 98년 10월 탄생해 191회를 이어온 이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주로 고대사와 고려·조선 시대를 조명했다.하지만 아이템의 고갈,진행 패턴의 일률성 등의 문제점이 지적되면서 현대사 도입의 필요성이 제기돼 왔고,제작진은 그 단초를 정부기록보존소에서 찾았다. 정부기록보존소는 지금까지 학계에서도 극히 일부분만 파악하고 있는 감추어진 역사의 보고.지난 99년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법이 제정되면서,정부의 비밀 자료들이 30년 뒤 공개될 수 있는 법적 토대가 마련됐지만 실제로 이 자료를 이용하는 경우는 드물다.김재순 학예연구관은 “기록 보존의 중요성을 깨닫고 공개가 일반화되는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역사스페셜’과 손을 잡았다.”고 의의를 밝혔다. 제작진은 문서를 공개하는 차원을 넘어 문서작성자를 인터뷰하거나 시대적 배경을 지적해,문서의 이면을 함께 조명할 계획이다.감추어진 역사를 공개한다는 점에서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비슷하지 않겠느냐는 지적에 서재석 책임프로듀서는 “‘쉬쉬’하던 것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중요하지만 미처 모르고 있던 역사의 의미를 짚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발굴…’시리즈 사이 사이에 특집 형식으로 고대사나 조선시대도 다룰 예정이다. 시리즈는 5월 3·10일 방송되는 ‘최초 공개 박정희와 핵’으로 시작된다.핵무기 개발의 내용이 담긴 청와대 비서실의 문서를 공개하고,핵개발을 저지하려는 미국의 움직임을 추적한다.17일 ‘석유확보전쟁-사우디왕자를 접대하라’에서는 석유확보를 위한 눈물겨운 외교노력을,24일 ‘월남파병,이렇게 추진되었다’에서는 월남파병의 막전막후를 재구성한다. 하지만 이같은 새로운 변신에 우려의 시각도 존재한다.정부 자료를 참고로 하기 때문에 편향된 시각이 있을 수 있는데다,정부기록보존소측이 자료 공개 여부의 결정권을 가지고 있어 아이템이 한정될 수도 있다.프로그램의 성공 여부는 이 모든 문제를 극복하고,단순 자료 속에서 얼마나 풍성한 역사적 의미를 건져내느냐에 달려 있다. 김소연기자 purple@
  • 참여정부 50일 좌담 / 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 - 원칙 중시 실사구시型

    노무현 정부가 15일로 출범 50일째를 맞았다. 역대 대통령한테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파격적 언행은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대통령이 직접 기자들에게 장관인선 내용을 브리핑하고, 평검사와 토론을 하는 모습은 국민들에게 파격을 넘어 충격으로 다가왔다.대통령이 대북송금 특검제를 수용함으로써 여당 대신 야당의 손을 들어주자 여당이 공개적으로 대통령에게 반발하고,대통령이 이라크전 파병동의안의 국회통과를 촉구했음에도 여당의원들이 더 많이 반대를 하는 대목에 가서는 국민들은 ‘입법권 독립’이라는 기대 못지않게 ‘정치불안’을 연상시키는 일이 많았다. 이쯤에서 우리는 과연 민주주의 체제 아래서 대통령의 리더십은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하는지를 짚어볼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이에 대한매일은 지난 50일간 노무현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진단함으로써 향후 우리사회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대통령 리더십’의 모델을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14일 열린 좌담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통령직 인수위원을 거쳐 지금은 국가균형발전위원장으로서 참여정부의 핵심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성경륭 한림대교수와 대통령학의 권위자로 평가받고 있는 함성득 고려대 교수가 참여했다. 대한매일 이경형 논설위원실장의 사회로 진행된 좌담에서 두 전문가는 지금 우리사회가 대통령 리더십 변화의 출발점에 서있다는 데 공감하면서 보다 민주적이고 원칙에 입각한 통치방식이 지속적으로 정착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두 사람은 또 노 대통령의 리더십을 ‘실용적 리더십’으로 칭했다.어떤 이념이나 정파,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실사구시적 리더십이라는 평가다.다음은 좌담 내용. 1. 대통령 리더십 무엇인가 사회자 우선 민주주의 체제에서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대통령의 리더십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총론적으로 말해달라. 성 위원장 노태우 대통령 이후 민주주의의 제도는 갖춰졌지만 성과는 답보상태다.리더의 몫은 사회 각 영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의견과 갈등을 조절하고 사회를 한발짝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그런데 원론적으로 말해 이 부분이 취약하다. 1인당 국민소득이 95년도에 한번 1만달러를 넘었다가 지난해 다시 넘었다.8년동안 1만달러에서 오락가락한 게 전체적으로 리더십에 문제를 일으켰다.새 대통령이 이 문제를 인식하고 우리사회를 한발짝 나아가게 해야 한다. 함 교수 노 대통령이 취임한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스타일의 리더십을 창출할 호기다.노무현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이 될 수 없다.당권·대권 분리와 상향식 공천 제도 도입으로 공천권이 없다.또 무기로 삼을 지역도 없고 돈도 없다.따라서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제왕적 대통령은 권위주의적인 명령자였다.행정과 국가관료를 바탕으로 하는 ‘행정적 리더십’이 요체였다.하지만 앞으로 대통령은 타협과 협상을 통해 사회갈등을 조정하는 조정자가 돼야 한다.결국 행정을 효율적으로 다루는 것보다는,여야관계를 잘 이끄는 ‘입법적 리더십’이 요체가 됐다.다른 말로 ‘디지털 리더십’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성 위원장 독재권력과 대항하는 과정에서 양김씨 등 민주지도자에게 알게 모르게 공산권에서 보이는 지도자 숭배 현상이생겼다.일사불란한 수직적 명령체계였다.반면 노무현 정부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일하는 수평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눈에 잘 안 띄지만 실제로 상당히 수평적이고 권한 위임형 리더십이다. 사회자 새로운 리더십 등장과 21세기 한국의 국가과제를 연결해 얘기해보자. 노 대통령이 성취해야 할 우리사회의 과제는 무엇인가. 함 교수 민주주의 제도가 발전했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문제가 있다.실질적으로 돈 안 드는 정치를 정착시켜서 정치를 안정화한 뒤 경제번영의 계기를 마련하는 게 직면한 과제다. 성 위원장 역대 정권별로 성과가 있었다.박정희 정권이 산업화시대였다면,김영삼 정부는 민주화시대,김대중 정부는 남북화해·정보화시대라 할 만하다.다음단계는 선진화시대다. 우리나라 경제는 지금 세계 12위권이다.일각에서는 2020년쯤이면 한국이 G7에 진입할 가능성 있다는 얘기도 한다.이처럼 지난 반세기 동안 양적인 면에서는 부끄러운 게 없었다.박정희 정권때 1인당 국민소득 80달러에서 시작,지금은 1만달러를 넘지 않았나. 그러나 질적인면에서는 부끄러운 게 있다.이 부분에서 선진화가 필요하다.자부심 갖고 외국인 만나서 떳떳하고 자랑스러우려면 고치고 바꿀 게 많다.전통문화적 요소를 바탕으로 인권과 민주주의 등 서구의 보편적 가치를 수용해 뭔가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게 노 대통령의 당면과제다. 함 교수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선진화의 주축은 역시 정보화가 아니겠는가.양적 측면에서 축적된 정보를 활용하면 새로운 생산적인 면을 많이 창출할 수 있다.질적인 면에서도 정보화하면 돈이 적게 든다.장외정치 안 해도 된다.커뮤니케이션이 쌍방향으로 될 수 있고,국가도 균형발전할 수 있다. 성 위원장 대통령이 실수할 수도 있다.과거에 대통령한테 요즘처럼 대한 적이 없는 것 같다.과거에는 언론이 대통령을 뭔가 보통 사람과 다른 거룩한 존재로 숭배했다.하지만 이제는 대통령이 평범한 사람중에서 됐다.거대구조보다는 생활구조 속에서 이웃의 한분이 된 것이다.이처럼 시대가 바뀌었다는 점을 언론이 제대로 이해하고 전달할 필요가 있다. 함 교수 우리 국민이 노 대통령을 뽑은 것은 지난 대통령들이 너무 권위적이고 권력을 남용한 데 따른 반작용이다.그러나 국민들은 막상 대통령이 너무 탈권위적이니까 어색한 것이다.또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사전에 경험이 없는지라 너무 파격인가 주저하기도 하고.이같은 어색함이 불안한 만남처럼 느껴졌는데,이제부터는 자연스러운 만남으로 바뀌어야 한다. 2. 어떤 특징 보이나 사회자 리더십의 요체는 용인술,즉 인사라고 볼 수 있다.노 대통령은 사람을 쓸 때 코드(Code:국정철학)가 맞는지 안 맞는지를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진다.또 의욕이 충만해서 그런지 청와대 비서실을 확대해서 한때는 ‘권력 비대화’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성 위원장 노 대통령의 가장 큰 특징은 원칙을 중시한다는 것이다.내가 대통령에게 끌렸던 부분도 이분이 원칙 때문에 손해날 일을 계속했다는 것이다. 취임후에도 대통령은 틈날 때마다 장관들과 워크숍하고 모여서 토론한다.이렇게 하는 것은 대통령이 일일이 지시를 못하니까 전체의 목표와 비전을 공유하기 위한 일환인 것 같다.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사고하게만들고 뛰게 만드는 방법이다.굉장히 목표지향적이다. 함 교수 노 대통령은 한국 최초의 법조인 출신 대통령이다.또 장관을 지내본 대통령이다.이 두가지가 통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취임 전 대통령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대통령이 “보수 언론이 나를 대단히 불안한 사람으로 보는데,나처럼 원칙을 지키고 미래가 예측되는 사람이 어디 있나.”라고 말하더라.노 대통령은 원칙 있는 실용주의자다. 인간 노무현의 가장 중요한 노선은 실용주의다.놀라운 사실은 이 분은 뭐든지 빨리 배운다.자신이 컴퓨터를 접해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정도다.장관을 임명할 때도 경제냐 비경제냐로 나눈다.경제는 안정을 중요시해 비개혁적인 사람을 앉혔고,비경제 분야에는 개혁적이고 파격적인 요소를 반영했다. 철저히 둘로 나눠서 이끌어가는 부분 보면 대단히 실용적이다.한·미관계도 명쾌한 승부수를 던졌다.자존심의 문제와 생존의 문제란 논리를 제시하면서 “생존이 더 급하니까 자존심은 나중에 하자.”라고 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도 실용주의자라고 볼 수있는데,그 차이점은 DJ가 정치 9단으로서 말을 바꿀 수 있는 실용주의라면,법조인 출신인 노 대통령은 원칙이 있는 실용주의를 강조한다.그러니까 장관을 임명할 때 임명 대상자가 걸어온 길을 본 뒤 신뢰가 생기면 그것을 바탕으로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성 위원장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 토론하다가 이런 일이 있었다.부처 합동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노 대통령이 “문화부장관,생활체육이 활성화되면 복지부의 건강재정보험에 얼마나 도움이 됩니까.”라고 물어 깜짝 놀랐다.학자들도 그런 질문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내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데,맞는지 틀리는지를 여러 전문가들이 검증해 달라.”는 식이다.과거에는 대통령이 방향을 제시하면 교조화돼서 그걸 뒷받침하려고 억지논리를 개발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스스로 논리를 고착화시키지 않는다.가설로 내놓고 “검증해달라,다른 의견을 제시해 달라.”고 한다.일하는 사람들한테 큰 짐을 덜어주는 것이다.다른 얘기를 할 수 있으니까.그러니 토론에서 여러 대안이 제시된다.꾸준히 학습하고 토론하는 것, 아무도 노 대통령이 부시 미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이라크전을 지지할 것이라고 생각 못했다.노무현 지지그룹이 반대했기 때문이다.그러나 노 대통령은 실용주의자니까 할 수 있었다.일부 외국언론이 노 대통령을 가리켜 포퓰리스트(대중인기영합주의자)라면서 한국투자가 어렵다고 하는데,정말 몰라도 너무 모른다.노 대통령은 그때그때 상황에 가장 맞는 판단을 하려 한다. 3. 대국민토론 효과는 사회자 대통령이 평검사와의 직접 토론을 벌이는 등 국민을 직접 상대하는 데 대해 찬반양론이 있는데. 성 위원장 노 대통령의 리더십의 큰 축 가운데 하나는 정면승부하는 것이다.검사들 문제도 갈등이 계속되면 심각하니까 대화해서 정면으로 푼 것이다.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방식임에는 틀림없다. 함 교수 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개인적으로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그런데 그날 농민대회에 갔다가 계란을 맞고 왔더라.한나라당 이회창후보는 안 갔는데,이분은 알면서도 가서 맞고 들어왔다.하지만 그때는 후보였다.지금은 대통령이다.선거운동할 때와 통치할 때는 다르다.전면에 나서는 것은 선택적으로 해야 한다.국민들로 하여금 ‘대통령이 모든 문제의 해결사구나,일개 검사도 만나주는데 내가 교원노조의 장이면 당연히 대통령을 만나야지 왜 장관급하고 만나냐.’라는 생각이 들게 하면 안 된다. 성 위원장 그때는 대통령이 비상한 방법으로 풀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대통령이 그런 모범을 보이니까 이후 노동부장관도 창원에서 두산중공업 문제를 직접 들어가서 풀지 않았나.폭발직전인 엄청난 갈등을 현장에서 풀었다고 한다.결국 평검사 토론회는 굉장히 적절했다고 본다. 함 교수 평검사 토론회는 잘 끝났으니 좋은데,그다음 국회연설에서 KBS사장 문제를 거론한 것은 잘못되지 않았나.지금 책임총리가 안보인다.장관이 안 보인다.대통령이 나서기 때문이다. 4. 국회와의 관계 사회자 당정분리로 대통령이 여당을 좌지우지하지 않는 데서 행정부와 입법부의 위상을 재정립하려는 모습이 엿보인다.국회와 정치권에 대한 대통령의 리더십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함 교수 50일동안 가장 잘한 것을 고르라고 하면 대국회·정당 관계다.정말 획기적이다.무엇보다 역대 대통령들이 했던 인위적 정계개편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을 높이 평가한다.야당당사를 방문하고 원내총무와 대화하는 것은 새로운 여야관계의 이정표를 만든 것이다.불과 50일만에 이 정도 이정표 만든 대통령은 없었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성 위원장 국가와 국민 사이의 민주주의가 1차 민주주의라면,국가 기관끼리의 민주주의는 2차 민주주의다.직선제로 1차 민주주의가 달성됐다고 보면,지금은 2차 민주주의가 진행중이다.과거 대통령들은 행정·사법·입법의 3권을 다 갖고 있었다.지금은 대통령이 여당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고 국회도 야당이 다수당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3권분립,즉 2차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국민의 정부보다 더 어려운 상황인데도 총리인준을 받았고,파병동의안도 통과됐다.대통령이 야당을 존중하고 진정한 국정의 파트너로 삼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리더십은 ‘통치’보다는 ‘협치’라는 말이 적절할 것 같다.지금은 국가적 사안에 대해 여야의 정파를 뛰어넘는 공동 협치의 실험을 하고 있는 중이다.이런 흐름이 외교안보통일분야에서 앞으로 경제분야로까지 확장되면 소수정부로서 상당히 국정관리를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함 교수 그러나 불만족스러운 점도 있다.취임초 너무 바빠서 그랬는지 몰라도 대통령이 정치개혁을 시도하는 실마리가 안 보인다.지금쯤이면 대(對)여야 협상이 이뤄져야 하는데,민주당 내에서조차 틀이 안 보인다.당장 내년에 총선이 있는데 좀더 속도감 있게 해야 되지 않겠나. 사회자 당정분리로 대통령이 직접 나서기가 어렵기 때문은 아닐까. 성 위원장 지금은 3권분립을 제대로 하는 구조라 굉장히 조심하고 있는 것이다.의견은 내놓고 있지만 더 적극적인 역할 못하고 있다.양당은 기득권에 발목이 잡혀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이런 때 시민사회가 나서야 한다.의아하게 생각하는 건 시민단체가 뭔가 적극적으로 발언해야 하는데,근본적인 정치제도개혁 얘기가 안 나오고 있다. 함 교수 정치개혁을 하지 않으면 노무현 정부의정체성에 위기가 온다.대통령이 “지역구도를 깨뜨릴 수 있는 선거제도를 도입하라.”고 적극적으로 의사표시를 해야 한다.국민이 뽑을 때 가장 바라는 것이 정치개혁이었다.대통령이 좀더 진지하게 문제를 생각해야 된다. 5. 공직사회 개혁방향 사회자 노 대통령은 공무원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개혁하려고 한다고 보나. 성 위원장 공무원이 개혁 대상이라는 표현은 잘못됐다.공무원사회의 문제는 사람 문제가 아니고 잘못된 관행의 문제다.나는 ‘나쁜 시스템’이 ‘나쁜 행위’를 만든다고 본다.사람을 개혁 대상으로 볼 수 없다. 미국 클린턴 행정부가 개혁 작업할 때 동원한 초기 기획그룹이 대부분 공무원들이다.자기 문제를 자기들이 더 잘 알기 때문이다.공무원들을 개혁의 주체로 바로 세워주는 것,공무원들을 인정해 주는 것,그들에게 스스로 바꿀 게 없는가라고 질문하고 자각하고 바꾸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개혁대상으로 몰아가는 건 옳지 않다고 본다. 함 교수 정부개혁과 관련해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새 정부 들어 청와대 인력이 93명이나 늘었다는 점이다.이렇게 되니 일반 부처도 너도나도 증원을 요청해 놓았다고 한다.공무원은 늘려놓으면 줄이기 힘들다.책임장관제의 씨앗은 잘 안 보이고 행정부는 비대화되는 게 걱정이다. 성 위원장 청와대 인원이 늘어난 것을 긍정적으로 보면 일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다. 함 교수 노 대통령의 공약은 지방화인데,중앙행정부가 이렇게 비대화된다면 지방화는 물거품이 될 것이다. 6. 바람직한 외교 리더십 사회자 노 대통령의 직설적 화법이 민감한 외교전선에서 악영향을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이 있다.대통령의 발언은 최종단계여야 한다는 지적도 많은데. 함 교수 노 대통령은 자존심의 외교를 강조해서 당선됐다.그런데 취임후 지금까지 외교는 자존심의 외교를 지양하고 생존의 외교를 우선시하는 쪽으로 변이됐다.이 과정에서 많은 수사적 물의라면 물의가 있었다.그러나 생존의 외교를 펼치고 있는 점은 평가해줘야 한다.대통령은 대미외교가 경제와 직결된다고 느끼자 시민단체의 반대를 뚫고 이라크전 파병을 밀고 나갔다.대단한 변화다. 하지만 외교적 수사 없는 직설적 표현은 외교에서 안 좋다.참모를 충분히 활용하는 게 좋다.지금은 국제적 지도자로 발돋움하는 진통으로 보고 국민들이 좀 기다려주는 여유가 필요하다. 성 위원장 직설 표현이 많다는 점은 나도 인정한다.구체적 사안에 대해서는 전략적 모호함을 유지하는 게 좋다고 본다. 함 교수 지금까지 노 대통령은 탈권위주의적이고 진취성,진솔한 면으로 인정받았다.그러나 국제적 지도자는 세련미와 품격,중후함,신중함이 있어야 한다.이것이 글로벌 리더의 요소다.자신이 이 문제를 체화해야 한다. 7. 대언론관계 사회자 새 정부 들어 언론과 불편한 관계가 표출되고 있다.노 대통령으로서는 여론정치가 중요한데,나쁜 영향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함 교수 왜 이 시기에 대언론 작업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노 대통령은 기존 보수언론에 대한 피해의식이 좀 있는 것 같다.자신의 본모습이 대단히 왜곡된다고 보는 것 같다.방송보다 보수 활자매체가 불안정한 이미지를 고착화시켰다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편향성이 있는 것이다.신문보다는 방송에치중하는 게 보인다.오보와의 전쟁도 해야 되지만,매체 특성에 따라 그러는 건 문제다.다른 복잡한 일도 많은데 언론부터 손을 대면 여론을 양분화시킬 우려가 있다. 8.노대통령에 거는 기대 사회자 결론적으로 노 대통령은 어떤 리더십을 지향해야 하는지 정리해달라. 성 위원장 이 시대에서 대통령은 일종의 북극성 같은 존재가 돼야 한다.국민을 지배하는 게 아니고,국민에게 방향점이 돼달라는 것이다. 함 교수 노 대통령에게는 지금이 위기이자 기회다.국민이 민주화 대통령한테 실망한 것은 부정부패였다.이것만 제대로 해도 대단한 업적으로 남을 것이다. 미국의 위대한 지도자에게는 보수도 진보도 없었다.루스벨트 대통령은 보수와 진보를 뭉뚱그려 루스벨트 이념 만들었다.그게 ‘뉴딜정책’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집권 초기 너무 많은 일을 하려 했고,자신이 너무 나서서 실패했다.노 대통령도 사소한 일보다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정리 김상연 박정경기자 carlos@ 함성득 고려대 교수 ·미 카네기 멜론대 박사 ·조지타운대 교수 ·한국 대통령학연구소장 ·한국의회발전 연구회 상임이사 성경륭 한림대 교수 국가균형발전위원장 ·미 스탠퍼드대 박사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16대 대통령직 인수위원
  • [씨줄날줄] 푸대접론

    지역정서를 부추기는 말 가운데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아마 ‘호남 푸대접론’과 ‘충청도 핫바지론’일 게다.어휘는 다르나 말의 속뜻은 ‘우리 지역 사람들을 우습게 보니 이번 선거에서 손 좀 봐주자.’는 것으로 통한다.영남지역에 비해 소외되어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푸대접과 핫바지론은 ‘3김 정치’와 궤를 같이하면서 지난 30여년 동안 각종 선거 때마다 적지 않은 위력을 발휘해왔다. YS와 DJ의 ‘유훈(遺訓)정치’라는 측면도 있을 것이나,지역론은 아직은 한국정치의 최대 이데올로기이다.JP가 내년 총선에서 ‘장엄한 노을’을 꿈꾸는 바탕에는 ‘충청 민심’에 대한 기대가 자리하고 있음을 부인키 어렵다.참여정부에 대한 민심 흐름을 처음으로 가늠해 볼 ‘4·24 재·보선’을 앞두고 지역차별론이 다시 불거진 것만 봐도 그러하다. 푸대접론이 수면위로 재부상한 단초는 최근 단행된 행정자치부 1급 인사인 것 같다.이로 인해 정부의 2급 이상 고위직 인사에서 호남지역 출신들이 역차별을 받았다는 얘기로 번지더니,급기야 광주지역 언론사편집·보도국장들이 국정홍보처장과 오찬 간담회에 참석을 거부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결국 노 대통령 측근들의 현지 방문이 줄을 잇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인사라는 것이 결코 1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데도,정부 초장부터 제기된 이유는 무엇일까.여론조사에서 호남출신 비중을 묻는 질문에 67·3%가 ‘적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푸대접론이 고개를 드는 이유는 뭘까.김대중 정부가 경제청문회로 문민 대통령의 전통을 일궈낸 부산·경남(PK)지역의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입혔듯이 참여정부의 특검법 공포와 인사 소외가 결국 그 신호탄 아니냐는 민초들의 우려인 듯싶다.여기에 이 지역 출신 몇몇 민주당 의원들의 정치적 이해도 작용하고 있음을 본다. 제5대 대선을 앞둔 1963년 9월말 박정희 후보의 찬조연사였던 이효상씨가 대구 수성천변 유세에서 이렇게 얘기하면서 한국정치에서 지역론이 처음 등장했다는 게 정설이다.‘신라 천년의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건만,이 고장 임금이 한 사람도 없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오늘,이제는 고리를 끊어야 한다.참여정부 핵심들의 원려(遠慮)가 절실한 때이다. 양승현 논설위원 yangbak@
  • 뉴스플러스 / 청와대·검찰 ‘핫라인’ 단절

    청와대가 최근 민정수석실 및 산하 비서관실에 설치된 검찰과의 행정전화선을 모두 끊은 것으로 11일 알려졌다.청와대는 또 종전에 파견 검사가 이용하던 검찰 지원 차량 2대와 운전기사도 검찰로 돌려보낸 것으로 전해졌다.정권 출범과 함께 파견 검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때부터 30년 이상 사용해온 직통 연락망을 끊은 데 대해 검찰도 적잖이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 사회플러스 / 대법 “박지만씨 치료감호 취소 위법”

    마약투약 혐의로 기소됐으나 매번 온정적인 처벌을 받아 논란을 불러왔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45)씨에 대해 치료감호처분을 취소한 것은 위법하다는 판결이 나왔다.대법원 2부(주심 李揆弘 대법관)는 11일 마약투약 혐의로 6번째 기소된 박지만 피고인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1년6월 집행유예 3년에 보호관찰 처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수차례 마약투약과 관련된 범죄를 저질러 왔고 피고인의 가정적·사회적 환경 역시 치료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판단되는 만큼 재범 우려가 없어 치료감호가 필요없다고 판단한 원심 판결은 재범의 위험성에 관한 법리를 위법하게 해석했다.”고 밝혔다.
  • [씨줄날줄] 新 지조론

    “한해살이 푸나무도 온전히/제 목숨을 다 마치지 못했거니/사람들아 묻지를 말아라/이 황폐한 풍경이/무엇 때문의 희생인가를…” 한국전쟁 당시 다부원 전투 현장을 보고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한 조지훈의 시 ‘다부원에서’의 한 대목이다.박두진·박목월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불리는 조지훈(1920∼1968).‘승무’ 등의 시에서 우아하고 섬세한 필치로 민족정서를 노래했던 그는 자유당 정권 말기 지사적(志士的) 논객으로 거듭난다. 그는 3·15 부정선거 한달전인 1960년 2월15일 월간 ‘새벽’에 기고한,그 유명한 ‘지조론’에서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 없고,믿을 수 없는 지도자는 따를 수 없다.”고 설파하며 지식인과 정치지도자들의 맹성을 촉구했다.이어 4·19 혁명 나흘전 같은 잡지에 실린 ‘선비의 직언’을 통해 불의와 부패에 대한 지식인의 항거를 직설적으로 요구했다.“직언하는 선비는 함부로 죽이지 못한다.역사의 준엄한 감시가 있기 때문이다.바른말 한마디로 목숨을 잃는 세상이라면 그런 세상 살아서 무엇하리.”라고 반문하면서 말이다. 그로부터 20여년 뒤인 1980년대 초 또 다른 군사정권이 기승을 부리자 사학자이자 당대의 논객이던 김성식(1908∼1986)은 ‘신 지조론’에서 “비판이 없는 협조는 맹종이요,협조가 없는 비판은 파괴행위”라며 현대적 의미의 지조론을 주창했다.“정부를 비판할 줄 모르는 사람은 정부에 협조할 줄도 모른다.협조하기에 앞서 비판이 있어야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사석에서 “(김성식의) 글 한마디는 날카로운 총알이요,1개 군단을 지휘할 수 있는 생각”이라고 평했다고 한다. 오늘은 제 47회 신문의 날.꼿꼿했던 두 논객이 생각나는 것은 오늘날 언론의 책무가 바로 그들이 주창한 선비의 지조를 지키는 것이라는 자성에서다.“절대적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명제는 어느 시대이건 유효하다.‘정의가 강물처럼 흘러 넘치는’ 시대를 열겠다는 노무현 정부의 각오는 가상하지만 절대 부패하기 쉬운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는 여전히 이 시대 지성인의 몫이요,언론의 책무다.신문의 날 아침 정치지도자는 지도자대로,언론은 언론대로 저마다의 ‘신 지조론’를 새겨보자. 김인철 논설위원 ickim@
  • [CEO 칼럼] 이라크전 이후의 한국IT

    세계의 시선이 온통 바그다드에 쏠려 있다.이라크 전쟁이 세계 경제의 향배를 좌우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 경제연구소들은 속속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전쟁이 단기전으로 끝나도 고유가와 국제 금융시장 교란,주가 하락은 피하기 힘들 전망이다.장기전일 경우 70년대의 오일쇼크와 같은 스태그플레이션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IT산업이 나가야할 방향은 무엇일까. 우선 돌파구를 북한에서 찾아보자.북핵문제가 잘 마무리되어 공동 인프라를 서로 활용할 수 있다면 북한의 인력만큼 더 좋은 자원도 없을 것이다.특히 북한은 IT부문에서 수많은 우수 인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IT인력 활용의 모범 사례로는 인도를 꼽을 수 있다.세계적 소프트웨어의 기획은 대부분 미국과 서유럽이 하지만 소프트웨어의 실제 프로그래밍은 인도에서 이뤄지고 있다.TCS나 인포시스와 같은 인도 개발전문업체들은 마이크로소프트와 HP,오라클 등 대형업체들을 고객으로 삼아 불황속에서도 올해 25%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점쳐진다. 인도가 소프트웨어 아웃소싱 분야에서 독보적 존재로 부상한 것은 우수 인력 영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어가 원활히 소통된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남북한은 거리가 가깝고 미국과 인도 기업의 파트너십처럼 의사소통에 필요한 같은 언어와 같은 문화공동체를 갖고 있다는 점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둘째는 전쟁을 국내 IT벤처의 중흥을 위한 계기로 삼아보자는 것이다.필자의 견해로는 이라크전과 같은 불투명한 위기는 오히려 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지난 2,3년간 많은 벤처기업들이 자금과 판로 때문에 온갖 어려움을 겪었다.그러나 95년을 기점으로 본다면 벌써 8년동안 인터넷 확산과 보급,게임·기업용 솔루션 등의 응용 프로그램 개발 수준은 상당한 위치에 도달했다.이를 토대로 새 솔루션 분야를 개척할 수도 있게 됐다. 한국 정보통신산업은 D램이나 LCD,휴대전화 부문에서 이미 세계 1,2위를 다투고 있다.인터넷 하드웨어 인프라 분야에서도 세계의 귀감이 되고 있다.또 순수 한글만으로 된 빠르고 쉬운 한글 인터넷주소를 만들어 쓰고 있다. 셋째,정신무장이 필요한 시점이다.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와 같은 겉부분에만 신경쓸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부분(humanware),즉 기업인의 도덕성,윤리적 가치관,민족적인 자존심 회복에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한다.그래서 IT벤처의 투명한 변화상을 일반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필자는 과거 외형적 산업화의 모델인 새마을운동에 준하는 내부적 정신구조의 모범으로 ‘새마음 운동’을 주창하는 바이다.새마을운동은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산업 1세대 기업인의 비전이자,철학이었다.그 덕분에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고 오늘날 정보통신 강국의 대열에 설 수 있는 원동력을 마련했다.21세기 정보통신 사회인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시대정신은 바로 ‘새마음 운동’이다.‘새마음 운동’은 노무현 정부와 인터넷 1세대 기업인이 함께 개척해야 할 시대적 사명이다.현재 처한 경제적 위협에 당당히 맞서려면 우선 IT벤처부터 도덕적으로 강해져야 한다.기회가 와도 잡지 못하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된다. 우리가 큰 틀의 미래 비전을 갖고 하나씩 준비해 나간다면 그 어떠한 난관도 극복해낼 수 있다.비록 전쟁으로 인해 잠시 표류하고 있더라도 IT산업의 도전이라는 패러다임은 계속 이어져 나갈 것이다. 이 판 정
  • 클로즈업/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북파공작원, 누구의 책임인가

    지난해 3월 광화문은 북파공작원이라고 주장하는 200여명의 사람들로 난장판이 됐다.1시간여의 도로 점거,흉기 자해,가스통 방화….사태는 9월 영등포로 다시 이어졌다. 그들은 도대체 누구이고 무엇 때문에 분노하는가.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오후 11시40분)는 지난해 1편에 이어 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됐던 북파공작원의 실체를 파헤치는 ‘북파공작원2,우리는 인간이 아니었다’를 방영한다. 1968년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한 뒤 박정희 전 대통령은 특수부대 설립을 지시한다.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설악개발단은 80년대에 들어와 공작은 없고 훈련만 계속되는 유명무실한 부대로 전락한다.폭력으로 사망사고는 끊이지 않았고,구타를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대원도 있었다.국가는 보상과 명예회복을 약속했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대책도 없다.그들의 희생이 과연 누구의 책임인지를 따져본다. 김소연기자 pur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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