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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野 “현정권도 3년차 증후군”

    한나라당은 27일 노무현 대통령에게 “집권세력이 흔들리면 국민들만 손해”라며 “‘집권 3년차 증후군’을 조심하라.”고 권고했다. 한나라당 김무성 사무총장은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이같이 말하고 ‘오일게이트’와 ‘행담도게이트’ 등 조기 레임덕의 전조현상을 극복할 특단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그는 이어 “남북정상회담을 레임덕 방지를 위한 정략적 도구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면서 “교착상태에 빠진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대북 관련 프로그램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나라당은 현 정부의 ‘집권 3년차 증후군’으로 ▲‘오일게이트’와 ‘행담도게이트’ 등 대통령 측근과 청와대 인사 연루 사건 ▲열린우리당내 실용·개혁노선간 첨예한 갈등 ▲공위공직자들의 부동산 투기 등 도덕적 해이로 인한 낙마 등을 꼽았다. 한나라당은 또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상규명위가 과거사법을 어기면서까지 ‘김형욱 살해사건’을 앞당겨 발표한 것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대표를 압박함으로써 ‘오일게이트’와 ‘행담도게이트’ 등 대통령 측근 비리의혹을 희석시키려는 의도로 파악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측은 과거사규명위측의 김형욱씨 피살사건 중간조사 결과 발표에 대해 “뜻깊은 진전”이라며 정반대의 시각을 보였다. 한 고위 당직자는 이날 “우리가 과거사 드라이브를 걸지 않았다면 영원히 진실이 묻혀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광삼 박준석기자 hisam@seoul.co.kr
  • [열린세상] 균형자論과 거간꾼의 지혜/김민환 고려대 신문방송학 교수

    4·19직후의 민주당정부 시절에 나온 ‘민족일보’를 보면 이 신문이 무슨 통일운동 단체의 기관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신문은 시도 때도 없이 사설이나 기사로 통일문제를 다뤘다. 이 신문이 통일문제에 압도적으로 높은 관심을 보인 것은 당시 진보적인 지식인사회의 정서를 반영한 것이었다. 학생들이 조직적으로 통일운동을 펴고, 이에 호응하듯 기성 지식인들도 단체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통일운동에 나섰으며, 진보정당도 제각기 소리를 높여 통일을 외쳐댔다. 이들 진보계열의 통일론은 각론에 들어가면 어느정도 차이가 있지만 주장의 핵심이 ‘중립화 통일론’에서 벗어난 경우는 없었다. 남한과 북한이 각기 미·소 양대 진영의 다른 쪽에 편입되면 그것은 상대방에게 위협이 되고 끊임없는 음모와 위험의 요인이 되기 때문에 통일한국은 국제적 동의 하에 중립화해야 한다는 것이 그 주지였다. 이 중립화 통일론은 이론 자체로 보면 말 그대로 중립적인 것 같지만 당시의 국제관계를 고려한다면 반미적인 것이었다. 남한을 아시아대륙의 최전방 반공보루로 삼고자 한 미국으로서는 중립화 통일론이란 미국의 울타리에서 뛰쳐나가겠다는 배반의 논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실제로 라오스 등 아시아 여러 나라가 중립화를 내세우며 일단 미국을 떠난 뒤 곧 공산화의 길을 택했다. 당시 미국의 목표는 한국을 일본과 묶어 한·미·일 삼각체제를 굳히는 것이었다. 미국이 이승만 정부를 민중봉기로부터 보호하기를 포기한 것도 이승만 전 대통령이 이 삼각체제 구축에 동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각체제에 대한 미국의 집념은 확고부동한 것이었다. 따라서 엄청난 원조를 쏟아 부었을 뿐만 아니라 피까지 흘리며 지켜준 한국에서 지식인들이 중립화 통일을 부르짖는 것은 미국으로서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일이었다. 미국의 이런 심리를 파고 든 것이 바로 박정희 군사정부였다. 박정희 소장이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서울의 미 대사관이나 8군 당국은 거병 자체가 미국의 군 통수권을 거역한 것이려니와 박정희 소장 자신이 여순반란 사건과 관련이 있고 가족 중에도 좌익 경력자가 있어 부정적이었다. 박정희 소장에 대한 미국의 의구심은 5·16 직후 숨가쁜 상황에서 주한 미 대사관이나 미 정보당국이 국무부에 보낸 여러 기밀문서에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박정희 소장은 국내 용공분자에 대한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벌여 미국의 환심을 산 뒤 삼각체제 구축에 적극 호응함으로써 미국의 지지를 얻는 데 성공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후 이른바 ‘더러운 전쟁’이라는 월남전에까지 끼어들어 미국의 돈독한 신임을 얻었고, 이런 일련의 행보는 한국 자본주의의 획기적인 성장으로 보상받았다. 요즘 한·미관계가 다시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물론이려니와 미국의 일반시민들 사이에서도 한국에 대한 태도가 예전 같지 않다. 아시아에서 균형자 역할을 맡고자 하는 한국의 새로운 모색은 여전히 삼각체제에 집착하는 미국 사람들에게 냉소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예전의 중립화 통일론이 배반의 논리였다면 지금의 균형자론 역시 미국 사람들에게는 마찬가지일 따름이다. 며칠전에는 미국의 한 고위 관리가 한국 정부의 균형자론에 대한 미국의 달갑지 않은 심사를 반영하듯, 이른바 ‘우범지대론’이라는 색다른 주장을 편 바 있다. 인근의 강대국에 시달려온 역사적 경험을 되살려 멀리 있는 미국과 동맹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한국의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 논리야말로 한국에 대해 미국 중심의 세계 체제에 편승하라는 강력한 메시지의 외교적 수사에 불과하다. 미국의 그런 패권주의적 사고를 비판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 곱씹어 볼 사실이 있다. 자고로 훌륭한 거간꾼은 매매의 양 당사자가 모두 그 거간을 확고하게 자기편이라고 여기게 만든다. 다른편으로 기울었다는 느낌을 주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요 중립적이라는 인상까지도 되도록 피해야 한다. 한국이 동아시아에서 균형자 역할을 하려면 우선 거간꾼의 그런 요령부터 터득할 필요가 있다. 김민환 고려대 신문방송학 교수
  • “김형욱 살해 김재규가 지시”

    1979년 10월 7일 프랑스 파리 시내에서 실종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은 김재규 당시 중정부장의 지시로 프랑스에 있던 중정 거점요원들과 이들이 고용한 제3국인에 의해 파리 현지에서 살해된 것으로 조사됐다.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위원장 오충일)는 26일 전두환 전 대통령과 당시 중정 직원 등 사건관련자 33명의 면담내용과 국정원자료 1만905쪽 등 관련자료 2만9126쪽의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김형욱 실종사건에 대해 이같은 내용의 중간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진실위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 당시 부장에게 직접 살해 지시를 했는지는 확인 못했다.”고 밝혔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김재규 부장은 1979년 9월말 이상열 당시 주프랑스 공사에게 김형욱 살해를 지시했고 이 공사가 당시 중정 연수생이었던 신현진·이만수(가명)에게 살해임무를 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진실위는 “신현진은 동구권 출신의 지인 2명을 살해가담자로 고용한 뒤 10월 7일 함께 김형욱 전 부장을 승용차로 납치해 파리 근교로 끌고가 이들을 시켜 권총으로 살해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들은 시신을 낙엽으로 덮고 현장을 나왔다고 진술했지만 정확한 사체유기 장소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해 추가조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현재 경기도 성남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 이상열씨는 조사 시작 이후 2개월째 집을 비운 채 외부와 연락을 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10·26 사건’ 당시 김재규 부장의 변호를 맡았던 강신옥 변호사는 “김형욱씨가 숨지기 전까지 김재규 부장은 관련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면서 “만약 중정에서 김형욱 살해 지시를 내렸다면 김 부장을 전기고문까지 해가며 조사했던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측이 이같은 사실을 왜 밝혀내지 못했겠냐.”고 반문했다. 한나라당 임태희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최근 국회를 통과한 과거사법은 조사후 확정된 사실을 발표하게 돼있는 만큼 조사내용을 중간에 발표하는 것은 명백한 법위반”이라며 국정원측이 일부 과거사 사건을 중간발표한데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이에 진실위는 “이 사건에 대한 무수한 억측과 근거없는 낭설이 쏟아져 국민에게 혼란을 주고 국정원의 진실규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줘 이를 정리할 필요성이 제기됐다.”면서 “사건 조사가 종결된 것이 아니므로 국정원의 책임과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사후 처리방향은 포함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사설] 中情 주도 확인된 김형욱 살해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 진실위)가 어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은 당시 김재규 중정부장의 지시를 받은 중정요원들에 의해 파리 근교에서 살해됐다고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김형욱 미스터리’에 관해서는 그동안 다양한 시나리오가 제기돼, 올 들어서만도 중정의 청부를 받은 마피아의 손에 살해됐다는 주장과 자신이 김씨를 납치해 양계장에서 살해했다는 ‘행동팀장’의 증언 등이 있었다. 또 며칠전에는 김씨가 프랑스를 떠나 중동지역에서 실종됐다고 밝힌 미국 국무부 문서가 공개됐다. 이처럼 주장이 엇갈리는 와중에 국정원 진실위가 당시 살해현장 실무를 맡은 중정측 인물의 진술을 토대로 관계자 30여명의 증언, 내부 자료 등을 종합해 이같은 잠정결론을 내린 것은 그 의미가 적지 않다고 하겠다. 아울러 집권자의 뜻을 거스른다는 이유로 국가정보기관이 특정인물의 살해를 직접 주도했다는 사실에 분노를 느끼며 과거사 진상규명의 필요성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다만 우리는 공개된 내용 가운데 몇가지 보완해야 할 점을 지적함으로써 국정원 진실위가 최종 발표에서는 국민 앞에 한점의 의혹도 남기지 않게 되기를 기대한다. 먼저 김씨의 시신을 파리근교 숲 속의 낙엽더미에 묻었다는 진술에 관해서이다. 김형욱 실종사건은 프랑스 경찰도 적극 수사했는데 그처럼 허술하게 처리한 시신이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는 건 상식에 어긋난다. 중정의 프랑스 현지 책임자인 이상열 당시 공사의 진술도 어떻게든 받아내야 한다. 이 전 공사에게는 사건의 실상을 밝히는 것이 이 시대 국민의 도리임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또 김형욱 살해를 지시한 사람이 김재규인지 박정희 당시 대통령인지도 꼭 밝혀내야 할 것이다.
  • 朴정권 ‘3대 미스터리’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은 김대중 납치사건, 정인숙 피살사건과 함께 박정희 정권의 ‘3대 미스터리 사건’으로 꼽힌다. 김 전 부장은 1963년부터 6년 3개월간 역대 최장수 중정부장 자리를 지키다 경질된 뒤 1973년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1977년 6월 22일 박동선 로비 사건을 조사 중이던 미국 의회의 프레이저 청문회 증언대에 서면서 정권의 표적이 됐다. 김 전 부장은 1979년 10월 7일 프랑스 파리 ‘르 그랑 세르클’ 카지노를 나선 이후 실종됐다. 그동안 국가기관과 마피아 등 조직범죄집단의 개입설과 북한의 배후설 등 논란만 무성했다. “파리에서 중앙정보부원에게 살해돼 무거운 추에 매달려 센강에 던져졌다.”“비밀리에 청와대로 압송돼 청와대 지하실에서 사살당했다.”“프랑스의 한 양계장 분쇄기에 갈려 숨졌다.”는 식의 억측만 나돌았다. 26일 진실위의 발표대로라면 박 전 대통령의 지시 여부는 사실상 영원히 풀리지 않을 미제로 남게 됐다. 김 전 부장은 1991년 서울가정법원에서 ‘84년 10월 8일 사망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실종선고 판결을 받았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정치플러스] 朴대표, 김형욱사건 언급 피해

    |충칭(重慶) 이종수 특파원|중국을 방문 중인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26일 국정원이 김형욱 실종사건 등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 관련 과거사 조사 결과를 중간발표한 데 대해 언급을 피했다. 베이징 방문을 마치고 이날 일제시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활동했던 충칭에 도착한 박 대표는 기자들로부터 국정원 발표에 대한 질문을 받자 “국내 문제는 국내에 가서 얘기하죠.”라며 답변을 피했다. 또 지난 2월 이사장직에서 물러난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부일장학회’가 국가에 헌납돼 ‘5·16장학회’로 바뀔 때 부일장학회 직인이 위조된 것으로 드러났다는 얘기가 있다는 질문이 이어지자 “(여권이) 이랬다 저랬다 하고 있는데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면서 불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 [열린세상] 시대정신 담은 黨名/양길현 제주대 정치학 교수

    해방 이후 한국정치에서는 양당 또는 2.5정당 체계가 주를 이루어왔다. 이승만정부와 박정희정부 시절에는 집권여당인 자유당과 공화당에 대해서 반독재 민주의 기치를 내건 야당의 양당체계가 지배적이었다. 이 경우 민주당·신민주당 등으로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야당은 항상 민주를 표방하였고 또 그에 집착하였다. 1980년 이후 민주정의당·민주자유당으로 명명하면서 여당도 잠시 민주의 기치를 내걸었지만 진정 여당이 민주의 기치에 얼마나 헌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그래서인지 신한국당과 한나라당으로 개명한 구 집권여당은 민주보다는 국가를 더 강조하는 듯싶었는데, 이것이 당의 정체성에 더 도움이 된 것 같기도 하다. 1987년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으로 나뉜 야당 분열과 민주자유당과 자유민주연합으로 나뉜 여당 분할에서 4당 모두 민주를 내걸었다. 그만큼 1987년은 민주의 전성기였고 지배시기였다.1987년 이후 더 이상 반민주는 터 잡기가 어려울 만큼 공식과 비공식 모두에서 민주는 통치이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민주가 최고의 통치이념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면서 오랫동안 민주를 표방해온 야당이 집권할 가능성은 커졌지만, 통일민주당과 범여권 간의 보수대연합은 1992년 여전히 국가를 중시하는 신한국당의 집권으로 이어졌다. 신한국당 집권이 지역대결에 편승한 측면이 컸던 게 사실이지만, 또한 여전히 민주 못지않게 국가의 기치도 유효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지역대결과 국가 기치를 통한 성공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보수-개혁의 세대 대결 틈바구니에서 두 번이나 대선에서 패배했다. 1997년 대선에서 국가를 내건 한나라당에 대해 민주를 내건 새정치국민회의가 승리함으로써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민주의 제도화가 가능하게 되었다. 여전히 ‘대한민국주의’가 지배적 담론의 하나로 흔들림 없이 자리하고 있지만, 2000년 새천년민주당으로 이름을 바꾼 새정치국민회의의 집권은 대한민국 역사상 4·19 이후 잠시 동안 존재했던 민주당정부 이후 두번째로 민주의 승리를 획하면서 향후 대한민국은 민주의 주도하에 나아가리라는 기대를 안겨주었다. 그러나 2002년 이후 한국의 정당체계에서 민주는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새천년민주당 이름으로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 당선파들이 열린우리당으로 딴 살림을 차리고 나가게 되면서 민주의 기치는 양분되고 말았다. 민주당은 주권재민의 민주 기치보다는 빼앗긴 권력에 대한 분노의 감정 표출로 인해 탄핵에 찬성함으로써 3당으로 물러나 있지만, 탄탄한 지역 기반으로 어떻게든 버텨나갈 전망이다. 그러나 탄핵을 거치면서 민주당은 너무 큰 상처를 입어서 수권정당의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2007년 대선은 국가 중시를 내건 한나라당과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 간의 한판 승부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문제는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열린’의 의미는 개방성을 뜻한다고 보겠지만,‘우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이다. 만약 ‘우리’가 개혁이라는 코드 중심의 공동체를 의미하고 있다면, 이는 한나라당의 보수와 열린우리당의 개혁간의 양당체계를 전제하고 있는 듯싶다. 이렇게 해서 권위주의 시절 민주·독재의 양당체계에서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국가·민주의 양당체계로 이행하였다가 2002년 이후에는 보수·개혁의 양당체계로 변화하게 되었다. 만약 사안이 이렇다면 2007년에 대비한 열린우리당의 방책은 자명하다. 열린 자세로 개혁지향의 세력을 한데 묶는 것이다. 과거 민자당·통일민주당·자민련 사이에 범보수대연합을 이루어 민주세력에 승리했듯이, 이번에는 범개혁대연합을 이루어 명실상부하게 민주의 큰 흐름 속에서 개혁을 결집할 때 보수와의 한판 승부가 멋지게 펼쳐지게 될 것으로 기대해 본다. 열린우리당과 같이 애매한 당명보다는 민주와 개혁을 아우르는 민주혁신당으로의 재출발과 함께 한나라당도 민주한국당으로서 보수의 결집을 노리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2007년 대선은 지역대결을 떠나 보수와 진보간의 균형 잡힌 정책대결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양길현 제주대 정치학 교수
  • [25일 TV 하이라이트]

    ●환경 스페셜(KBS1 오후 10시) ‘소나무 에이즈’라 불리는 소나무 재선충 때문에 전국의 소나무가 치명적인 위기에 처해 있다. 지난 88년 부산에 처음 상륙,10여년 만에 경북 구미까지 북상한 재선충. 이 해충의 확산을 막지 못하면 서울 남산의 소나무까지 모두 말라 죽을 수 있다. 소나무를 지켜내기 위한 노력과 대안을 살펴본다. ●생방송 TV연예(SBS 오후 8시55분) 사회 장동건, 주례 조순 전 서울시장을 비롯, 한국 최고의 스타들이 총 출동했다. 세기의 결혼식 바로 톱스타 김남주, 김승우의 결혼식 현장을 찾았다. 제41회 백상 예술대상 시상식이 막을 올렸다. 어디에서도 공개되지 않았던 시상식 현장의 재미있는 뒷이야기를 엿본다. ●시사 업클로스(YTN 오후 3시5분) 노블레스 오블리주. 사회 고위층 인사들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일컫는 말이다. 새 국적법 시행에 즈음해 국적 포기자의 상당수가 사회 고위층 자녀들로 확인되면서 이 단어가 세간에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존경받을 만한 상류층의 도덕규범은 어떠한 것인지 알아본다. ●책, 내게로 오다(EBS 오후 10시50분) 예순의 나이에 수채화가로 화단에 데뷔한 박정희 할머니는 4녀1남의 어머니. 그는 다섯 자녀가 태어나서 자라는 수십 년 동안 동화와 육아일기를 직접 쓰고 그렸다. 수채화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평안 수채화의 집’ 박정희 할머니를 찾아 그녀의 수채화 인생을 들여다본다. ●신입사원(MBC 오후 9시55분) 강호를 위해 뭉친 일동들. 민, 성태, 준하에 봉삼이까지 합류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된다. 봉삼은 결정적인 증거가 담긴 동영상을 사내 네트워크에 띄워 결국 강호의 누명이 벗겨지고 다시 출근하기에 이른다. 강호의 누명이 벗겨졌다는 소식에 여직원들은 좋아하나, 문 과장은 흠칫 긴장한다. ●해신(KBS2 오후 9시55분) 황도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장보고는 왕의 자리를 넘보는 김양의 행태에 분개해 전쟁을 선포하고, 이에 김양은 그의 제거를 꾀한다. 모든 상황이 위기를 향해 치닫자 염장은 김양에게 자신이 장보고를 죽일 테니 전쟁을 중지해 달라고 요청하고 스스로 청해진으로 떠나는데….
  • 中 이례적 ‘환대’ 朴대표도 ‘깜짝’

    |베이징 이종수특파원|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을 24일 만났다. 한국 야당 대표로는 이례적이다.‘융숭한 환대’라는 의미를 갖는다. 두 사람은 40여분 동안 북핵 문제에 대한 진단과 해결 방안을 놓고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탕자쉬안 “재보선 성과 놀랐다” 박 대표는 주로 북한의 6자회담 복귀의 당위성과 중국의 ‘강한 역할론’을 거듭 당부했고, 후 주석은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후 주석은 중국의 지속적 경제 발전을 위한 조건으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아울러 두 사람은 21세기 동북아 시대를 열기 위한 양국의 공조 필요성과 교류 강화 방안에도 공감을 표시했다. 후 주석은 회담 장소인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서서 기다리며 박 대표를 영접하면서 “방문을 열렬히 환영한다.”라며 “고견을 들려달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에 분홍색 체크무늬 정장 차림의 박 대표는 “바쁜 일정에도 귀한 시간을 내줘 감사하다.”며 “중국의 큰 발전과 변화에 감탄했고 무한한 잠재력에 경의를 표한다.”라고 화답했다. 전여옥 대변인은 “과묵하고 수줍은 성격이라는 평을 듣는 후 주석이 이례적으로 박 대표에게 립서비스도 많이 했다.”며 “특히 박 대표가 이공계 육성 비결을 묻자 크게 웃는 등 회담 분위기가 시종 화기애애했다.”라고 전했다. 박 대표와 후 주석의 면담이 성사된 것을 놓고 한나라당은 두 가지 배경을 꼽고 있다. 먼저 박 대표에 대한 정치적 평가다. 탕자쉬안(唐家璇)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전날 박 대표를 초청한 만찬에서 “4·30 재보선에서 놀랄 만한 성과를 거둔 것을 보고 주목했다.”라고 말했다. 박 대표의 정치적 위상에 대해 중국측이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중국에서 큰 관심을 얻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후광’도 한몫했다는 해석이다.‘고도 경제 성장과 새마을 운동’이라는 코드로 상징되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중국의 반응은 호의적이다. 중국측은 박 대표 방문 때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책을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을 정도다. ●“후주석 새마을운동 공부” 탕자쉬안 국무위원도 박 대표를 만났을 때 포항제철과 제주개발계획을 거론하면서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을 높이 샀다는 후문이다. 전여옥 대변인은 “한국의 경제 성장을 이끈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중국인들의 평가는 대단하다.”며 “후 주석도 새마을운동을 공부할 정도로 박 전 대통령에 대해 관심이 높다.”라고 전했다. 구상찬 부대변인은 “중국 식자층에서는 박 전 대통령을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끈 덩샤오핑(鄧小平)에 견주기도 한다.”라고 귀띔했다. vielee@seoul.co.kr
  •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칠레 저항작가 루이스 세풀베다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칠레 저항작가 루이스 세풀베다

    “그 어떤 독재자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여독을 채 못 풀어서인지 의자에 몸을 파묻고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던 중남미 문학의 거장 루이스 세풀베다(56)는 갑자기 허리를 곧추 세우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옌데와 피노체트 얘기가 나오자 보인 반응이다. 한국과 칠레는 비슷한 면이 있다.4·19혁명에 이은 5·16쿠데타는 아옌데 정부 집권과 피노체트 쿠데타와 닮아있고, 박정희와 피노체트에 대한 평가를 둘러싼 논란도 닮은 꼴이랄 수 있다. “지난해 9월 칠레에서 열린 APEC회담에서 라고스 칠레 대통령이 ‘아시아 대표들에게 설명하는데 지쳤다.’고 하더군요. 무슨 말인가 했더니 칠레의 경제발전이 군부독재 덕분이 아니라고 설명하는게 너무도 힘들었다고 합니다.”세풀베다는 칠레의 경제발전에 대해 “잠재적인 민주주의가 작동했기 때문이며 민주주의가 없다면 거시적인 경제성장이 결코 불가능할 것”이라고 단정지었다. 세풀베다는 대표작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의 뒷얘기도 소개했다.“유네스코 조사단의 일원으로 ‘백인 식민주의가 아마존에 끼치는 영향’을 조사하기 위해 참가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조사의 후원을 셸이 맡았더군요.”다국적 석유기업 셸이 노리는 것은 뻔했다. 다량의 석유가 묻혀 있는 지역에 사는 원주민들의 머릿수를 알 필요가 있었다. 그의 목에 은 돌고래 목걸이가 걸려있는 것도 이 경험과 관련있다. 더 이상 그린피스같은 환경단체의 활동이 필요하지 않은 날까지 목에 걸고 있자고 그린피스 창설자 데이비드 맥타가트가 만든 10개의 목걸이 가운데 하나다.“이 목걸이를 바다에 던져버릴 그날은 언제올까 싶지만 한사람의 시민으로서 활동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윤리의식을 실천으로 연결하는 사람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마니아] ‘뽕짝’ 밖엔 난 몰~라

    [마니아] ‘뽕짝’ 밖엔 난 몰~라

    ‘뽕짜작 뽕짝, 뽕짜작 뽕짝….’ 최근 인기를 모으고 있는 트로트는 ‘뽕짝’이라는 별칭 그대로 어떤 모임에 가더라도 신바람을 일으키는 데 한몫을 한다. 나이 든 어른들의 노래라는 인식도 최근 ‘어머나’의 왕대박을 계기로 무색해졌다. 연령을 떠나 바람을 타고 있다. ●트로트 가수들은 왜 립싱크를 하지 않을까. 트로트 동호인들이 내놓는 답은 이렇다. 보통 립싱크 가수들이 내세우는 이유는 춤추기 위해서다. 하지만 트로트는 특성상 춤이 격렬하지 않다. 그래서 립싱크를 할 명분이 없다. 트로트만 찾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다. 바로 ‘트로트 사랑방’이다. 전국에서 통틀어 회원 709명을 거느린 사랑방에는 40대를 주축으로 30∼50대 연령층이 참여하고 있다. 회원 금잔화(47·여)씨는 “행복한 중년을 가꾸기 위해 가입했다.”면서 “주부 등을 대상으로 가요를 가르치는 교실이 엄청 늘어났지만, 한꺼번에 많은 인원이 몰리다 보니 평소 배우고 싶은 노래를 배우기는 이런 모임이 낫다.”고 말했다. 철저하게 정회원 중심으로 조직된 사랑방에는 가요를 신청하면 세이클럽(www.sayclub.com) 사이트를 통해 들려준다. 금잔화씨는 23일 백수건달의 ‘잊지 말고 와주오’라는 노래가 마음에 와닿아 듣고 싶다며 곡을 아는 회원이 있으면 띄워달라고 글을 올렸다. ‘까마귀’라는 별명을 가진 한 회원(51)은 나훈아의 ‘모르고’를 신청했다.‘아무것도 모르고 사랑했어요 당신을/사랑이 이렇게 아픈 줄도 모르고/당신을 사랑했어요/사랑은 날마다 행복한 줄 알았고/사랑은 꿀처럼 달콤한 줄 알았지/나는 몰랐네 나는 몰랐네/아픈 줄 나는 몰랐네’ ●트로트는 왜색(倭色)? 트로트를 둘러싸고 일어난 논란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트로트 동호인들의 대답은 노(No)이다. 각종 근거를 댄다. 우선 거꾸로 말해 우리나라에서는 트로트를 일본풍이라고 떠들기도 하지만 일본에서는 엔카(演歌)야말로 뿌리를 한국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본다며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는 김강섭(72) 관현악단 지휘자의 주장을 인용한 것이다. 미 8군에서 악단 생활을 하다 1961년부터 95년까지 KBS의 전속 악단장을 맡았던 김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일본을 싫어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왜색가요라며 금지곡을 남발했던 게 트로트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낳았다고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논문도 있다. 논문 뼈대는 다음과 같다. 원래 트로트란 1910년대 미국에서 생겨 댄스 음악의 대명사로까지 발전했다. 이것을 아시아에 도입한 사람 가운데 한명이 바로 엔카의 대부(代父)로 불리는 고가 마사오(古賀政男)였는데, 그가 바로 미국의 ‘폭스 트로트’를 동양적 감성을 실은 다른 방식의 작곡을 통해 ‘폭스’라는 꼬리를 떼고 트로트를 창시했다는 설명이다. 일제시대 당시 한국에서 자라난 그는 또 판소리, 민요 등을 연구했는데 이 시기가 자신의 음악세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마포의 ‘뽕짝 잔치’에 오세요 오는 28일 지하철 6호선 대흥역 쪽에 있는 마포문화체육회관에서는 우리나라 전통음악인 트로트를 살리기 위한 전국 가요제가 열린다. 이날 오후 2시 막을 올리는 제1회 대한민국 전통가요제는 한국전통가요운동본부(회장 김도현)가 주최한다. 예산만 해도 실내에서 열리는 가요제치고는 제법 많은 5000여만원이 들어간다. 지난 2월부터 4월 말까지 참가자를 접수한 결과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부터 60대 등 다양한 연령층 29명이 무대에 오르게 됐다. 전통가요운동본부는 대상, 금·은·동상, 장려상, 인기상 등 6명을 가려 한국연예협회 가수로 등록시키고 활동도 지원할 계획이다. 전통가요 홍보대사로도 임명한다. 흔히 뽕짝으로 깎아내리지만 생활 주변에서 트로트 빼고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전통가요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는 근거는 이렇다.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최근 경제난 등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애환을 달래주고 기쁨도 함께한 장르라는 주장이다. 김 회장은 “식민지 시대에 유랑 악극단들이 전국을 돌며 민족의 울분을 어루만지고, 긍정적인 사고를 심어주며 활력소가 됐던 게 바로 전통가요였다.”면서 “서양문화가 급속도로 들어와 전통을 깨뜨린 데다, 최근 들어서는 국적없는 노래와 춤으로 음악세계가 혼탁해진 현실을 타개하려는 뜻”이라고 가요제 창설 배경을 설명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박前대통령 딸 보자” 후진타오 선뜻 결정

    |베이징 이종수특파원| 중국을 방문중인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만난다. 야당 대표로는 이례적이다. 박 대표는 24일 오후 3시부터 인민대회당에서 30분∼1시간가량 후 주석을 만나 북핵문제를 비롯한 상호 관심사를 논의할 예정이다. 중국의 국가주석이 한국 야당 대표를 면담한 것은 지난 2002년 이회창(李會昌) 전 총재 시절에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그는 대선후보였던 데다가 ‘창(昌) 대세론’이 자리잡던 시절이어서 지금과는 상황이 달랐다. 이 전 총재는 지난 97년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의 대선 후보로 중국을 방문했을 당시에도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을 만난 바 있다. 후 주석이 선뜻 박 대표를 만나기로 결심한데는 한국의 근대화를 이끈 박정희 전 대통령 딸이라는 점이 크게 감안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표의 한 측근은 “박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점에서 중국측이 이번 박 대표 방중 전반에 매우 적극적이었고, 후 주석과의 면담도 이런 차원에서 성사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 대표의 후 주석 면담은 우리 정부 라인을 통하지 않고 한나라당과 중국 공산당간의 교섭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김하중 주중대사는 23일 박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중국에 오면 누구든지 후 주석을 만나고 싶어하지만 성사가 안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번에는 중국에서 자발적으로 박 대표를 만나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vielee@seoul.co.kr
  • [논술이 술술] 시사키워드/박정희 평가

    [논술이 술술] 시사키워드/박정희 평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평가 문제가 다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계간 ‘창작과 비평’은 이번 여름호에서 박정희 재평가를 쟁점 기획으로 다뤘다. 여기서 과거 반독재 지식인 진영의 중심에 섰던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민주개혁 없는 경제개발의 추구는 현실사회주의 나라들에서처럼 결국 경제의 장기적 침체와 쇠퇴를 낳거나 이란의 이슬람혁명에서처럼 원리주의적인 신정(神政) 체제로 귀결하기 십상”이라면서 “오늘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어떤 문제점이 있건 제2의 박정희가 해결책이 못 되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백 교수는 그러나 박정희의 공과를 따져 경제개발의 업적을 인정해 줘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최근 명지대 국제한국학연구소는 ‘박정희와 그의 시대’를 주제로 매월 한 차례 콜로키엄(전문가 토론회)을 열고 있다. 또 박 전 대통령의 친일행위를 부각한 만화 ‘박정희’가 지난 16일 출간되자 박정희 추종 세력이 반발하고 있다. 박정희는 ‘경제개발의 영웅’이면서 ‘독재자’다. 양면성을 가진 박정희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그의 본 모습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박정희가 비난받을 점 박정희의 허물로 지적되는 점들은 대통령이 되기전의 친일 행각과 좌익활동, 대통령이 된 다음의 장기집권과 독재정치, 인권탄압 등이다. 반(反) 박정희 진영에서는 박정희가 교사에서 일본군 장교로, 다시 대한민국 장교로,‘빨갱이’에서 반공의 기수로, 충성을 다하는 장군에서 쿠데타의 수괴로 변신을 거듭하며 조국 민족도, 적과 동지도, 양심과 이념도 버린 것은 오로지 권력욕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다음은 반 박정희 진영의 친일에 관한 주장. ▲친일행각=문경보통학교 교사로 일하던 박정희는 1940년 23세의 나이에 만주군관학교 2기생으로 자원 입대, 일본군 장교가 됐다.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로 창씨개명도 했다. 졸업식에서 박정희는 대표로 “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聖戰)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휼륭하게 죽겠습니다.”라고 선서를 했다.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박정희는 ‘盡忠報國 滅私奉公(진충보국 멸사봉공)’이라는 충성을 맹세하는 혈서를 썼다. 다시 일본 육사에 들어가 3등으로 졸업한 박정희는 ‘천황에게 바치는 충성심이라는 점에서 일본인보다 훨씬 일본인다운 데가 있다.’는 평을 들었다. 박정희는 만주 제8연대의 소대장을 거쳐 제8군단에 배속돼 독립군 토벌에 출정했다. 독립군 토벌에 나갈 때 “조센진 토벌이다. 요오시(좋다)”라고 말했다는 내용이 문명자씨의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워싱턴에서 벌어진 일들’이라는 책에 나온다. ▲좌익활동=해방후 군 창설에 참여한 박정희는 조선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의 전신)를 2기로 졸업하고 대위로 임관한 뒤 좌익활동에 빠진다. 육군본부 정보국 작전과장으로 근무하다 1948년 여수 순천 사건을 계기로 군내 ‘남로당 조직책’임이 드러나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러나 박정희는 자신이 참회했으며 사면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증거로 자신이 맡고 있던 조직망을 폭로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뒤 박정희는 수사에 협력해 공모자들을 수사대에 알려주기도 했고 공모자들의 집으로 수사대를 직접 이끌고 가기도 했다. 동료 장교들의 감형운동으로 석방되어 문관으로 육군본부 정보국에 근무하다가 6·25전쟁 이후 소령으로 복귀했다. ▲독재정치·인권탄압=3선 개헌으로 장기집권에 들어간 박정희는 1972년 유신으로 종신 대통령이 되고자 했다. 유신 반대세력에게는 가차없는 탄압이 가해졌다. 수백명의 언론인을 쫓아냈고 수많은 사람을 체포하고 고문했다.1973년 최종길 서울대 교수를 간첩으로 몰아 고문을 해 숨지게 했고 같은 해 일본 도쿄에서 김대중씨를 납치했다.1975년에는 인혁당 사건을 조작해 8명을 사형시켰다. 언론인 장준하도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18년 집권기간에 100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계엄령, 위수령, 비상령이 발동됐고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1만여명이 검거됐다. ●박정희의 경제적 업적 대통령 취임 이후 박정희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행하고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추진하는 등 경제성장에 힘을 쏟은 것은 사실이다. 매월 수출진흥확대회의를 열고 해외공관을 통해 수출 확대에 주력했다. 포항제철, 울산 중화학공업 단지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에도 힘썼다.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는 등 산업교통망을 늘렸다.‘잘살아 보세’라는 기치 아래 농어촌을 중심으로 새마을운동이라는 개혁 운동을 펼쳤다. 이런 성장정책으로 박정희는 한국을 절대빈곤에서 탈피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1인당 국민소득을 실질소득이 아닌 명목소득으로 계산할 때 박정희가 집권했던 1961년 82달러였는데 죽을 때인 1979년 1636달러를 기록해 외형상 연평균 18%의 고도성장을 달성했다. 특히 수출은 연평균 38% 증가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박정희의 이런 경제적 치적을 깎아내리는 사람들은 60년대의 고도성장은 다른 개도국에도 나타난 현상이었으며 수출도 늘었지만 수입도 엄청나게 늘어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이면을 간과하고 있다고 말한다. ●박정희,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떤 인물이든 공(功)과 과(過)가 있기 마련이다. 공 때문에 과가 묻혀서도 안되고 그 반대가 돼서도 안된다. 특히 잘못은 시간이 지나면 묻혀지고 미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 인물과 동시대에 살지 않은 후손들에게 어떤 한 면만 부각돼 인물 평가가 잘못될 수 있다. 따라서 박정희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과를 분명히 따져 객관적인 역사적 평가를 내려놓는 일이다. 경제난이 지속되는 요즈음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살아나고 있다. 그러나 단지 그의 한 쪽면만 보고 무턱대고 추종하는 것은 잘못이고 허물 때문에 공적을 폄하해서도 곤란하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 한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이 이룬 경제성장의 업적은 노동자의 희생과 인권침해, 천민자본주의 등의 폐단과 부작용을 낳은 것은 사실이다. 한국의 단기간 성장을 박 전 대통령이나 집권·지도층의 공만으로 돌릴 수 없다. 박정희가 경제적 리더십을 발휘했다면 열악한 조건 속에서 묵묵히 일한 노동자들이 있었다는 점도 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박정희가 닦은 경제적 기반 위에 1인당 GDP(국내 총생산) 1만달러를 넘는 중진국이 된 한국이 겪고 있는 심각한 빈부격차와 지역갈등은 박정희가 추구한 성장지상주의와 개발편향주의가 한 원인임을 부정할 수 없다. 손성진기자 sonsj@seoul.co.kr
  • [열린세상] ‘고건 현상’ 고건 때문이 아니다/이광호 전 진보정치 편집위원장

    고건 전 총리는 모든 종류의 국민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통령감 1순위로 꼽힌다. 최근 한 조사에서도 그에 대한 국민의 선호도는 26.2%로,2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16.6%)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기존 정당들 사이에서도 그의 인기는 높다. 중부권 신당이나 민주당에서 그와 선을 대려 하고 있으며, 최근 박근혜 대표까지 그를 영입할 수도 있다고 나섰다. 열린우리당의 한쪽에서도 ‘작업 중’이라는 게 정가의 관측이다. 그는 이달 초 이른바 싸이월드에 입성했다.‘레츠 고’. 그의 홈피 주소다. 그가 가고 싶어하는 곳이 어디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홈피를 방문하는 젊은이들의 수도 적지 않다.‘고사모’ 활동도 활발해졌다. 언론은 그가 몇명의 대학생들과 맥주 한잔 마시는 것도 빼놓지 않고 보도한다. 고건에 대한 기존 정당들의 러브콜이나 대중적 인기는 그의 장점을 말해주는 걸까. 오히려 단점을 드러내주는 지표는 아닐까. 분명한 것은 기존 보수정치의 실패가 고건에 대한 기대로, 러브콜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고건 현상’은 고건 때문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여야 거대 보수정당이 국민의 신망을 받는 후보를 내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난 반사적 현상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언론은 ‘고건 현상’의 역사적·구조적 배경보다는 고건 개인의 장점 또는 특성을 분석하는 데 더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안정성·중도성향 높은 점수’(한겨레신문 5월17일자)라는 식의 제목뽑기가 그것이다. 고건이 후보로 될까 안 될까, 후보가 되면 이길까 질까, 이런 게 언론의 관심이다. 물론 정치인들끼리의 ‘대선 게임’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거기서 그친다는 것이다. 도대체 그는 어떤 정치적 이념 또는 노선을 가진 사람인가. 그는 색깔을 가지고 있기나 한 사람인가. 민주노동당을 빼놓고 모든 정당이 선을 대려고 하는 것도 그의 무색성(無色性)과 어느정도 관련이 있다. 물론 기존 정당들도 피차간에 별로 다를 바 없는 보수 정당들이라서 그렇기도 하다. 박세일 사단이 만들어내고 한나라당이 공식 채택한 ‘공동체 자유주의’-박근혜 대표는 4·30 재보선 직후 서울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를 다시 강조한 바 있다-와 열린우리당이 말하는 ‘중도개혁’은 언술 수준뿐 아니라 내용상으로도 거의 같은 얘기다. 군사쿠데타가 난 1961년 고시에 합격한 그는 박정희 정권 때부터 노무현 정권 때까지 공직 생활을 해왔다.“2007년 이후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가는 대통령의 상이 ‘행정 달인’, 다시 말하면 행정실무가형이 돼선 안 된다. 역대 정권을 겪으면서 요직을 거친 것은 그가 정치철학이 없는 실무 스타일의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이 한 말이다. 그동안 수많은 정당이 만들어지고 깨지는 과정 가운데 단 한차례도 이념과 정책의 차이나 동질성이 그 요인으로 작용된 적은 없다. 선거 승리는 지역 방정식이라는 공학 정치의 결과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안다. 따라서 기존 보수정당들이 싸움에서 이길 수만 있다면 정책이나 이념, 비전과는 전혀 관계없이 어떤 후보하고라도 손잡을 수 있다고 덤벼드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정책·이념적으로 ‘미분화’한 원시적인 지역정당 체제가 만들어낸 ‘웃기는 비극’이다. “3김정치 이후 공황 상태에 직면한 보수 정치권이 차세대 지도자를 키워내지 못한 결과가 고건 인기의 배경이다.(대선이 후보나 정당의)정책·이념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이기기 위한 게임에 불과하다. 국민만 불쌍하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의 말이다. 보수 정당에 대한 비판은 말이 아니라 새로운 대안적 정치의 실천을 통해 진정으로 이뤄질 수 있다. 이런 비극적 정치가 지속되지 못하도록 하는 데는 민주노동당의 책임도 의석수 이상만큼 있다. 이광호 전 진보정치 편집위원장
  • 나의 정치학 사정 / 강준만 지음

    직설적·공격적 글쓰기로 한국의 내로라하는 정치인과 지식인들을 비판해왔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스스로의 표현대로 하면 ‘차가운 머리’를 위한 책을 냈다. 타이틀은 ‘나의 정치학 사전’(인물과 사상사 펴냄). 한국인은 가슴을 뜨겁게 덥히는 일에 있어선 천재에 가깝고 다혈질적 국민이기에 이제 그 열기를 좀 식혀주는 일이 필요한, 역사적 사이클에 한국사회가 접어들었다는 게 저자의 변이다. 그는 또 머리말에서 “최근 정치적, 정확히 말하자면 당파적 글쓰기를 그만두었다. 이제 초당파적 입장에서 정치에 대한 지식을 공급하고 싶다.”며 “모든 사람들을 위한 상호소통의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책은 이같은 저자의 소망을 담은 ‘살아있는 교양, 살아 있는 정치 이야기’를 부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한 테두리에 갇힌 이야기보다는, 국내와 국외의 경계, 다양한 학문간 경계 뛰어넘기를 통해 ‘사회과학의 현실화’에 충실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이 책은 남북관계는 물론, 한미·한일·한중관계에서부터 신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주요 현안들을 국제적 맥락 속에서 파악한다. 아울러 정치와 경제·문화의 경계를 뛰어넘어 세상을 분석한다. 또 오늘날 우리 지식계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는 아나키즘을 비롯해 마키아벨리즘, 민족주의, 포퓰리즘 등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정치이론과 사상을 펼쳐 보인다. 그는 한국인이 정치에 이중적이라고 비판한다. 많은 사람들이 국회의원, 대통령이 못 되어서 안달인 반면 정치혐오주의는 더욱 심해지는 현상도 이 때문이다. 권력의 횡포가 심했던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의 몫이 너무 컸기 때문에 ‘정치’만이 살 길이었고, 모두 정치인이 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정치에 근접하길 원하면서도 그걸 비난하는 이중적인 심리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책은 또 오랜 독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왜 박정희 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지, 승자 독식주의가 한국인을 얼마나 치열한 삶으로 내모는지 보여준다. 개혁물신주의, 권력중독, 정치혐오주의 등 정치와 권력을 둘러싼 주제들 속에서 우리도 몰랐던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다. 반미주의의 이중성도 마찬가지다. 이라크 침공후 세계적으로 반미주의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실상은 일면만 그럴 뿐이다. 멕시코의 반미주의는 강하지만, 그들 국민의 40%는 미국에서 살고 싶어하고, 미국을 싫어하는 다른 나라의 사람들도 미국의 대중문화는 사랑한다. 적대와 동시에 선망의 대상이 곧 미국인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반미주의를 정치 문제로서만이 아니라 문화·경제적인 문제로 지평을 넓혀 해석한다. 또한 문화제국주의, 신자유주의, 오리엔탈리즘 등 세계적 관심사가 되고 있는 이론과 사상들을 통해 국제정치와 문화, 경제를 보는 다양한 시각을 명쾌하게 소개한다. 강준만의 글은 대체로 직설적이고 단문이면서 논리가 명쾌해 칼럼이든 에세이든 속도감이 느껴지는게 특징이다. 생생한 현실이 녹아 있기에 더욱 그렇다. 이번 책도 예외는 아니다. 복잡한 사회현상과 이를 둘러싼 인간심리를 깊이 있으면서도 재미 있게 들려주는 강준만의 글쟁이로서의 미덕이 돋보이는 책이다.2만 5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이의원 ‘斷指해명’ 논란 가열

    이의원 ‘斷指해명’ 논란 가열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이 19일 단지(斷指) 논란과 관련해 홈페이지에 해명글을 올렸지만 파문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네티즌들은 ‘거짓말쟁이’라며 이 의원을 성토하고 있다. ID ‘souliver’는 “(학생)운동하고 군대간 사람들은 바보인가.”라면서 “양치기 소년처럼 거짓말을 하니까 이제는 믿지 않는다.”라고 성토했다.‘루팡’은 “운동권들은 자기에겐 관대하면서 왜 박정희 등 다른 사람들의 전후사정과 시대상황에 대해선 그리 엄격한가.”라고 반문했다. ●“거짓말쟁이” “그시대 안겪은 사람은 몰라” 반면 ‘붐’은 “이 의원의 단지는 80년대 대학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이해하고도 남을 것”이라고 반박했다.‘진하니’는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유신이라는 이름의 무서움을 믿지 못할 것”이라고 가세했다. 앞서 이 의원은 홈페이지에 “(당시)입영을 한다 해도 즉시 보안사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할 것이고, 고문을 못 이겨 동지의 이름을 불게 되면 동지들이 잡힐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그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었고, 배신의 기억을 지니고는 정상적인 인간으로 살 수 없을 것 같았다.”고 ‘입영이 어려웠음’을 털어놨다. 그는 “손가락을 버리고, 태극기에 ‘절대 변절하지 않는다.’는 혈서를 썼다.”면서 “피 묻은 태극기는 이화여대 선배에게 주었다.”고도 했다. 그리고 “앞뒤의 문맥, 시대 상황을 버리고 군 기피를 위한 단지라고 비난한다면 달게 받겠다.”면서도 “지금도 저의 행동을 결코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부인 “오늘의 잣대로 단죄 않기를” 이 의원의 부인 이정숙씨도 이날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정치적인 입장이 다르더라도 단지 부분에 대해 오늘의 잣대로 아무렇게나 언급하시지 않기를 간곡하게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그는 “(이 의원을)만난 지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물어보지 못했던 일”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나 이 의원은 2003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재직 당시 “주물공장에서 사고로 손가락이 잘렸다.”고 말했다고 한 일간지가 보도했으며 이에 대해 “불필요한 논란을 끄집어내지 않기 위해 비켜가려고 했던 것으로 안다.”고 이 의원측은 해명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박정희 논쟁 마침표를 찍자”

    “박정희 논쟁 마침표를 찍자”

    “진보 진영의 대표적 원로학자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의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오늘의 세태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그런데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흠집내기 위해, 또는 박정희 시대의 피해망령에 사로잡혀 외눈으로 그 시대를 보기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중앙일보 5월17일자 사설 ‘유신반대학자의 박정희 평가’) “국가 발전에 기여한 긍정적 업적은 애써 무시하고 부정적 측면만 부각시켜 편협하고 균형 잃은 역사 인식을 확산시키며 정략적 목적을 추구하는 과거사 규명 행태의 위험성을 지적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문화일보 5월16일자 사설 ‘박정희 과거사와 두 원로학자의 평가’) 백 명예교수가 자신이 편집인으로 있는 계간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기고한 ‘박정희 시대를 어떻게 평가할까’를 다룬 신문 사설의 일부다. 진보학계의 ‘어르신’인 백 명예교수의 글이 자못 새로웠던 모양이다. 여기에 정치권의 과거사규명법에까지 글의 해석을 확장시키기까지 했다. 하지만 백 명예교수의 글은 두 사설의 취지와 다르다. 글의 핵심은 ‘산업화세력 대 민주화세력’을 도식적으로 구분한 뒤 산업화세력은 경제개발에, 민주화세력은 민주주의에 기여했다는 기존의 이분법을 깨는 데 있다. 외려 민주화세력도 경제발전에 기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새로운 세기의 화두로 꼽히는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기준으로 봤을 때 산업화세력의 경제발전 방식은 결국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 지속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외려 한국사회의 건강성을 살린 민주화세력이 크게 기여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백 명예교수는 “기사를 다 보지는 못했지만 소위 유력신문이라는 곳에서만 너무 편향적으로 기사를 썼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글 가운데 박정희의 공과를 인정하자는 취지의 내용에 대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시기에 언제까지 ‘박정희는 악이었다.’라고 주장할 것이냐. 차라리 ‘그래 공도 있다.’라고 인정해주고 넘어가자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일종의 접근법이나 방법론 차원에서 언급한 것”이라고 명확한 선을 그었다. 그는 또 “전화를 걸어 온 곳은 동아일보뿐이었고 동아일보 기자에게는 (글의 취지를) 충분히 설명했다.”고 말했다. 실제 ‘박정희 향수’에 대해 그는 글의 말미에서 “기본적인 제반권리에 대한 무관심, 인간의 고통과 고난에 대한 무감각, 대화와 타협을 통한 문제해결 방식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잘 살아보세.’라는 걸인의 철학 이상의 어떠한 개인적 또는 공동체적 철학에 대한 무지 등을 고스란히 내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박정희의 공이라 해봤자 얼마 되지도 않고, 그나마도 지금 시대에 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박정희를 빨리 털어내는 게 낫다는 주장인 셈이다.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는 백 명예교수 외에 생태공동체운동센터 대표이자 ‘야생초 편지’로 유명한 황대권씨의 ‘지금도 계속되는 박정희 패러다임’, 상지대 경제학과 조석곤 교수의 ‘박정희 신화와 박정희 체제’도 함께 실려 있다. 황씨는 박정희 시대의 유산으로 ‘획일주의’와 ‘경제지상주의’를 꼽으면서 “얼치기 자본주의 문화로 바꿔버린 박정희의 만행은 그가 이룩했다는 경제 기적 열개를 갖다 붙여도 보상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시에 ‘참여정부’임을 내세워 획일주의에서 벗어나려고 하면서, 경제지상주의에는 여전히 묶여 있는 노무현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 교수는 ‘뉴라이트’ 진영의 성균관대 김일영 교수의 ‘선택적 친화력’(초기 경제발전과 권위주의 정부는 친화성이 있다는 주장) 논리를 반박했다. 그는 경제개발의 성공조건이 ‘동원능력’에 있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강력한 산업정책’을 ‘권위주의’로 바꾼 뒤 권위주의를 또다시 독재로 연결시키는 등 이중적으로 논리를 비약하고 있다고 비판했다.‘발전개념을 인간의 실질적인 자유를 확산시키는 과정으로 보자.’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티아 센의 주장을 끌어댄 것도 이제 성장률 몇%라는 신화에서 벗어나자는 의도로 읽힌다. 두 신문뿐만 아니라 다른 매체에서도 백 명예교수의 글을 인용해 ‘박정희 공도 있다’는 내용의 기사만 실었을 뿐 그 글의 본래 취지나 황태권·조석곤씨의 주장을 다룬 곳은 없었다. 박정희 바로보기를 막고 있는 것은 공이든 과든 어느 한쪽만 부각해 현실정치 문제에 끌어다 붙이는 데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주말에 뭘 보러갈까]

    미 술 ■ 이만의 개인전 6월30일까지 세오갤러리. 우리 민족의 심성과 사랑을 따뜻한 가족애로 표현하는 작품들로 꾸며져. 소박한 가족도와 민족의 전통 설화, 역사화 등 3가지 주제로 40여점이 출품. 이 화백의 삶과 예술을 주제로 한 영상물을 상영, 노 화백의 작품 감상에 도움.(02)522-5618. ■ 스케이프-코드:주관적 지형도전 6월25일까지. 종로구 화동 pkm 갤러리.(02)734-9467. 코엔 반덴브룩, 자네이나 샤페, 아오야마 사토루, 김형태, 김상길, 이누리, 이상원 등 국내외 젊은 작가 7인의 20여점이 출품. 유랑하는 현대인들의 정체성을 회화와 사진을 통해 보여주고 있음. ■ 남궁문의 외출금지전(No Exit) 20일부터 6월26일까지 세종로의 일민미술관.(02)2020-2069. 자신의 내면에 담긴 자폐적 감정을 화면에 담아낸 작품 전시.150점 가까운 출품작들은 그의 일상에서부터 내면 세계까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데 작가는 마치 일기를 쓰듯이 그의 생활을 드로잉한다. ■ 5월 문화축제 20일부터 22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온가족이 함께하는 축제.(02)2188-6000.‘자연. 예술. 사람’을 주제로 미술관 관람, 닥종이를 이용해 한지를 만들고 염색해 꽃을 만들어 보는 등의 미술체험 프로그램과 야외 음악공연이 펼쳐진다. 뮤지컬 ■ 로미오와 줄리엣 29일까지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셰익스피어 원작, 데니악 바르탁 작곡, 유희성 연출. 조정은 민영기 출연.2003년 한국뮤지컬대상 5개 부문을 수상한 화제의 뮤지컬.‘태풍’‘크리스마스 캐럴’의 체코 작곡가 데니악 바르탁의 감미로운 선율과 발레 무용수 제임스 전이 안무한 춤이 비극적 러브스토리의 매력을 빛낸다.(02)523-0986. ■ 틱틱붐 29일까지 신시뮤지컬극장.1588-7890. 조너선 라슨 작, 심재찬 연출, 이석준 배해선 출연.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를 꿈꾸는 가난한 뮤지컬 작곡가의 꿈과 좌절. ■ 백조의 호수 29일까지 LG아트센터(02)2005-0114. 매튜 본 안무·연출, 고전발레 ‘백조의 호수’를 현대적으로 재창작. 남성백조의 힘이 무대를 장악한다. ■ 인당수 사랑가 무기한 발렌타인극장3관(02)741-9120. 박새봄 작·최성신 연출, 서정금 강은경 김준원 김도현 장재용 출연. 우리 가락에 전통의 소리를 접목해 창작한 한국형 뮤지컬. ■ 달고나 31일까지 PMC자유극장(02)739-8288. 오은희 작·이현규 연출, 정의욱 임진아 이장훈 출연. 추억의 가요로 엮은 옛이야기. ■ 아이 러브 유 6월26일까지 연강홀(02)501-7888. 한진섭 연출, 남경주 이정화 정성화 오나라 출연. 이땅의 모든 커플들에게 바치는 뮤지컬. 연 극 ■ 소풍 22일까지 문예진흥원예술극장 대극장. 김청조 작·양정웅 연출, 정규수 박선희 출연.‘귀천’의 시인 천상병의 애절한 삶이 라이브 재즈 선율과 만난다. 지난 2월 의정부예술의전당 초연 당시 기립박수를 받았던 작품으로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에 뽑혔다.(02)3673-1392. ■ 청혼하려다 죽음을 강요당한 사내 22일까지 블랙박스시어터(02)744-0300. 김수정 작·박정희 연출, 권오수 김정호 출연. 결혼에 대한 위선을 까발리는 코믹풍자극. ■ 그린 벤치 22일까지 문예진흥원 예술극장소극장(02)745-0308. 유미리 작·이성열 연출, 예수정 이지하 출연. 해체된 가정의 모습을 통해 되돌아보는 가족의 의미. ■ 게팅 아웃 22일까지 학전블루소극장(02)3444-0651. 마샤 노먼 작·문삼화 연출, 지대한 길해연 출연.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한 여인의 심리. ■ 셜리 발렌타인 7월17일까지 산울림소극장(02)334-5915. 윌리 러셀 작·글렌 월포드 연출, 손숙 출연. 홀로서기를 꿈꾸는 40대 중년여성의 유쾌한 일탈. ■ 짬뽕 7월3일까지 인아소극장(02)2266-0867. 윤정환 작·연출, 윤영걸 공상아 출연.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상처를 웃음으로 승화. 어린이 ■ 제로공주 실종사건 31일까지 웅진씽크빅 아트홀(02)569-0696. 까다로운 수학을 뮤지컬로. ■ 노노 이야기 6월19일까지 상상나눔시어터(02)741-2323. 국내 최초 어린이 안전사고 예방뮤지컬. ■ 흥부와 놀부 6월30일까지 전쟁기념관문화극장(02)3676-5551. 고전소설을 참여마당놀이 형식으로 재구성한 가족극. 클래식 ■ 잘츠부르크 오페라 페스티벌 6월14∼30일 올림픽 공원내 올림픽 홀. 213년 전통의 세계 최정상급 루마니아 오페라단이 한국인이 좋아하는 3대 오페라인 라트라비아타, 카르멘, 토스카 등을 무대에 올림. 이어 우크라이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협주하는 베토벤 교향곡 7번, 멘델스존의 이탈리아 교향곡, 슈베르트의 미완성교향곡 등도 선보여.(02)1544-7920. ■ 서울바로크합주단 창단 40주년 특별정기연주회 6월2일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02)1588-7890. ■ 덴마크 국립교향악단 첫 내한공연 6월3일 오후 7시30분(02)3774-2500. 콘서트 ■ SEOUL JAZZ CT Festival 21∼22일 오후 2∼11시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 (02)3445-2813. ■ 이승환 음악회 20∼22일,27∼29일 금 오후 7시45분, 토·일 오후6시 백암아트홀 1544-1555. ■ 조규찬 ‘Guitology ’콘서트 조규찬 8집앨범 발매기념 콘서트 21∼22일 오후 8시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 (02)749-1300.
  • 친일·군부독재 비판 ‘만화 박정희’ 나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행각과 군부 독재 의혹을 다룬 ‘만화 박정희’가 5·16 쿠데타 44주년을 맞아 16일 출간됐다. 민족문제연구소와 뉴스툰(전국시사만화 작가모임), 도서출판 ‘시대의 창’이 공동 기획해 제작한 두 권 분량의 이 만화는 박 전 대통령의 출생에서 만주군관학교 시절,5·16 군사쿠데타, 유신을 비롯해 10·26에 이르는 일생을 통해 그의 친일행각과 군부독재 의혹을 주로 다루는 등 비판적 내용을 담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만화 출간에 맞춰 이날 오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열린 출판기념 기자회견에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지금은 악마와 천사도 구분 못하는 가치혼란의 시대”라며 “우리 민족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인물에 대해 국민들이 냉철하게 판단하는 근거를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에 책을 내게 됐다.”며 기획 취지를 밝혔다. 만화는 박 전 대통령이 ‘진충보국 멸사봉공’이라는 혈서를 쓰고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했던 과정과 군관학교를 수석 졸업하며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훌륭하게 죽겠다.”고 선서하는 모습, 박 전 대통령이 다른 여자와 호텔방에 함께 있는 장면을 보고 육영수 여사가 눈물을 흘리며 치를 떠는 모습 등 상당히 자극적이면서도 그동안 금기시돼왔던 의혹들을 비판적 시각에서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만화의 그림은 시사만화작가 박순찬 화백이, 글은 서울신문에 시사만평을 싣고 있는 백무현 화백이 각각 맡아 집필했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팬클럽인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는 14∼15일 충북 충주호리조트에서 열린 워크숍에서 민족문제연구소의 ‘만화 박정희’가 ‘박근혜 죽이기’의 일환이라고 보고 이에 대응하는 ‘인간 박정희’ 만화를 출판키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前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前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씨

    1980년 2월4일 오후 서울 서빙고동 국군보안사령부 분실장실.50여일 동안 감방생활을 한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운명적으로 만났다. 장 사령관은 전 사령관보다 장교임관 5년선배였다.. “장 선배, 그동안 고생이 많았습니다. 건강은 어떠신지요?” “나야, 이래저래 죽을 몸인데 건강이 뭐가 중요하겠소. 그런데 전 장군, 난 수경사령관이오. 나의 임무(반란군 진압)가 뭔지 잘 알잖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전 사령관은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정승화 육참총장이 김재규 사건과 관련이 있는데도 조사에 불응했습니다. 정 총장께서 총장직을 내놓고 6개월정도만 집에서 쉬고 계시면 국방부장관이나 더한 자리를 보장해드릴 생각이었습니다.” 순간 장 사령관은 쿠데타 계획이 매우 치밀하게 짜여져 있음을 직감했다. 전 사령관의 얘기는 계속됐다. “장 선배가 한강다리를 막는 바람에 지금 금값이 얼마인 줄 아십니까.3만원하던 것이 7만원으로 뛰었고, 국제여론도 좋지 않습니다.” 무슨 생뚱맞는 얘기인가. 장 사령관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그쳐 물었다. “전 장군, 정 총장은 나를 수경사령관으로 임명한 상관이요. 총장을 연행해 갔다는 사실을 왜 안 알려줬소.” “장 선배, 사실은 밑에 사람들이 장 선배를 사전에 연금시키자는 것을 내가 야단을 쳤어요.‘그 어른은 우리가 모시고 큰 일을 함께 할 분인데 그렇게 하면 되겠나.’라고 했지요. 장 선배가 그러지만 않았다면 우리들은 그 다음날 장 선배를 중장으로 진급시켜 군단장으로 내보내려 했습니다. 사정을 이해해주시고 6개월 동안 집에서 쉬고 계시면 자리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장 사령관은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너무나 분하고 억울했다.6.25전쟁도 겪지 않은 후배한테 철저하게 유린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장군, 군인이 군생활을 마치면 그것으로 그만이지 일자리는 무슨 일자리요. 자, 이제 그만합시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소. 승부는 깨끗하게 합시다. 이 패장을 죽이지 않고 집으로 보내준다니 나가야지.” 장 사령관은 다시 감방으로 돌아왔다. 수사관들이 전역지원서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사령관님, 이거 예편서입니다. 써주셔야 하겠습니다.” “뭐라고 쓰면 돼?” “네, 일신상의 사유로 인해 예편을 상신합니다.” “알았어.”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일제때 태어나 광복의 기쁨도 채 가시기 전 19세 어린 나이에 구국의 일념으로 6.25에 참전했다. 또 베트남전을 겪으며 무수히 많은 사선을 넘었다. 명예롭기는 커녕 12.12 군사반란을 진압하지 못한 불충의 죄인으로 30년 동안 몸담았던 군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전역지원서를 쓴 장 사령관은 연행돼 올 때 입었던 소장 계급장의 군복으로 갈아입었다. 때마침 노을지는 저녁무렵이었다. 서울 봉천동의 집에 도착하자 아들과 딸 부인과 누나 내외, 그리고 장모가 울음으로 맞이했다. ●드라마서 전두환을 유비·관우처럼 취급 이후 장 장군의 집안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우선 장 장군은 강제로 전역된 뒤 자택에서 2년동안 가택연금을 당했다. 또 TV뉴스를 통해 보안사에 끌려가는 장 장군의 모습을 본 시골의 아버지는 곡기를 완전히 끊고 매일 막걸리만 마시다가 80년 4월 세상을 뜨고 말았다. 또 82년 2월에는 외아들이 장 장군의 곁을 떠나버렸다. 그것도 할아버지의 산소 근처에서 꽁꽁 얼어붙은 채로. 꼭 25년 세월이 흘렀다. 쿠데타 세력들은 역사의 심판을 받았다. 장 장군은 재향군인회장,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 등을 지내며 뒤늦게나마 명예회복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가슴에 묻어둔 천추의 한을 어찌 씻을 수 있으랴. 특히 요즘 TV드라마 ‘제5공화국’으로 그날을 생생하게 되새기고 있다. 서울 대치동 자택에서 장 장군을 만났다. “쿠데타를 하고 나서 집권을 위해 어느 한쪽을 손을 봐야 했지. 그래서 민주화를 외쳐대는 전라도 광주를 친 거야. 서빙고에서 알았지만 놈들은 정부운용 계획까지 치밀하게 짜놓았더군.” 카랑카랑한 특유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그는 “이제와서 무슨 말을 해. 날 좀 내버려둬.”하면서 처음에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거실 의자에 앉자 “아무리 드라마라고 하지만 문제가 많아”하면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전두환을 무슨 유비나 관우처첨 취급하고 있어. 나머지는 다 샌님이야. 잘 모르는 젊은 세대들은 어떻게 생각할거야.” 또한 “쿠데타는 5·16이나 12·12에서 보듯 불과 200∼300명의 군인이 저질러. 이런 것이 미화되면 누가 아들을 군대에 보내겠으며, 목숨으로 나라를 지킨 호국영령들을 욕되게 하는 거야.”라고 했다. 그가 지적한 드라마 ‘제5공화국’의 오류. 첫째 쿠데타의 배경과 대통령 유고 상황에서 국가적 시스템이 전혀 작동되지 않은 부분을 쏙 빼버렸다는 것.5·16으로 집권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권좌의 안위를 위해 전두환씨를 보안사령관에 임명한 배경과 하나회를 통해 전씨에게 힘이 쏠린 과정, 그리고 10.26때 모든 요직의 책임자들이 우왕좌왕해 사실상 직무유기한 부분 등 교훈적 가치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보안사서 정보 완전 장악, 12·12진압 못해 두번째는 국가운영에 필요한 정보가 한곳으로 모아지면 안된다는 부분을 간과했다는 것.10·26직후 보안사령관이 군과 경찰 정보는 물론 중앙정보부까지 완전히 장악, 대통령에게 정보보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12·12가 성공할 수 있게 된 결정적인 요인임에도 드라마에서는 이를 놓치고 말았다고 꼬집었다. 또한 군사반란이란 어떤 것이며, 발생했을 경우 방어와 진압의 수순 등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수경사는 대통령령으로 방패계획에 의해 창설됐지. 또 수경사의 사전 허락없이 수도권에 군병력이 절대 들어올 수 없어. 지휘관이 몰래 수경사 예하 30경비단을 장악한 그 자체가 중대 반란이야.” 12·12를 진압하지 못한 결정적인 원인을 묻자 “무슨 명령만 내리면 저놈들이 죄다 알고 있는거야.”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어 “마지막으로 수경사 소속 전차를 출동시키려고 부대 정문을 나서는데 이희성 당시 중앙정보부장 서리가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를 걸어와 ‘출동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하더군.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하게 감시당했어. 또 휘하의 지휘관들은 이미 저쪽으로 많이 기울어졌어. 정말 기막힐 노릇이지.”라고 한탄했다. ●일과의 60% 독서… 쿠데타 막는 법 책낼 것 장 장군은 경북 칠곡에서 3남3녀 중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대구상고를 다니던 중 6·25가 터지자 육군종합학교(11기)에 지원, 사선을 넘었다. 육군대학 졸업논문으로 보안사령부 해체를 주장했다가 베트남 참전때 ‘사상 불순자’로 찍히기도 했다.71년 1월 별을 단 그는 5군단 참모장-수경사 참모장-26사단장 등을 거쳐 10·26 직후 수경사령관이 됐다. 요즘 장 장군은 쿠데타를 막지 못한 ‘한’ 때문에 동서고금의 쿠데타 자료를 모으고 있다.1799년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군력(軍力)으로 정부를 뒤집은 데서 유래한 쿠데타 막는 법을 생전에 책으로 엮어내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요즘에는 일과의 60%를 독서에 쏟아붓고 있다. “죽기보다 더 괴로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다시는 쿠데타가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제갈공명은 강류석불전(江流石不轉)이라고 했다. 강물은 흘러도 그 안의 돌은 물결따라 이리저리 구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 그가 걸어온 길 ▲1931년 경북 칠곡 출생 ▲50년 대구상고 재학 중 6·25참전. 육군종합학교 11기 졸업. 육군 소위 임관 ▲53년 조선대학교 법학과 졸업. ▲54년 보병학교 전술학교관 ▲71년 장군진급 ▲72년 5군단 참모장 ▲73년 수경사 참모장 ▲75년 26사단장 ▲78년 육본 교육참모부차장 ▲79년 11월 수경사령관 ▲80년 육군소장 예편 ▲82년 한국증권전산 사장 ▲91년 육군종합학교전우회 회장 ▲94년∼2000년 제27대,28대 재향군인회 회장 ▲2000년 새천년민주당 입당 ▲2000∼2004년 전국구 국회의원 ■ 상훈 충무무공훈장, 보국훈장 천수장, 자랑스런 한국인상(96년) ■ 저서 12·12쿠데타와 나(93년, 명성출판사) k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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