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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방선거 D-100… 野 ‘鄭조준’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 체제 구축에 대해 야권은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였다. 특히 5·31지방선거를 앞두고 여권과의 한판 승부가 불가피할 것으로 점치는 분위기다.●한나라, 인혁당 묘소 참배에 불쾌감한나라당은 정 의장 당선 뒤 첫 행보로 19일 대구 인혁당 관련자들의 묘소를 참배한 것에 대해 과거사에 집착하는 현 정권의 특징으로 치부하면서 내심 불쾌해하는 기류다. 다만 즉각적 대응보다는 사립학교법 개정을 비롯, 윤상림 게이트, 황우석 파문 등 권력형 비리 의혹에 대한 특검실시 등 원내 현안에 무게를 싣고 있다. 박근혜 대표는 18일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3주년 추모행사에 참석한 뒤 선친인 고 박정희 대통령의 생가를 방문했다. 정 의장 체제에 대한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하지만,“그동안 피땀흘려 쌓아온 나라가 최근 근본부터 흔들리고, 모든 분야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안타깝다.”고 뼈있는 소회를 밝혔다고 한 측근이 전했다.●지자체 國調·윤상림·황우석특검 `쟁점´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지방선거 뒤 단명으로 물러날 가능성이 농후하고 이후 여당의 내부 싸움이 더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기에 미래가 더 걱정”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여야의 이런 시각차는 20,21일 교섭단체대표연설을 신호탄으로 첨예하게 드러날 전망이다. 열린우리당 김한길 원내대표와 한나라당 이재오 원내대표는 사회 양극화 해소 방안,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 사회 양극화 방안 등에 대해 각기 다른 진단과 처방을 제시할 예정이다. 또 지방자치단체 국정조사와 윤상림 게이트, 황우석 파문 등에 대한 특검 실시 등으로 부딪치면서 정국을 달굴 것으로 보인다.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5·31승부 시작됐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19일 취임 첫 방문지로 대구를 선택한 것은 한나라당을 겨냥한 지방선거 신호탄으로 풀이된다.5·31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한나라당의 전통적 아성인 대구에서 정면 승부를 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정 의장은 이날 대구 인근 ‘인혁당 재건위’ 사건 희생자 묘역과 지하철 화재참사 현장을 방문, 유족들을 위로한 뒤 새로 선출된 지도부와 함께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는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철옹성 같은 ‘대구의 성’이 민주주의와 안전·생명의 성지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구 출신 민주화 운동가들이 대거 희생된 ‘인혁당 재건위’ 사건과 지하철참사를 가리킨 것이다. 인혁당 희생자들의 고통을 얘기하면서 “75년 4월 교수형 직전 그분들의 심정이 무엇이었을까. 대한민국은 무엇이고 박정희 정권은 무엇이었겠나.”라며 우회적으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겨냥했다. 이어 “부패한 지방권력을 교체해 대구를 풀뿌리 민주주의의 새 성지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동행한 정 의장의 핵심 측근은 “당선 다음 날 곧바로 방문한 곳이 대구라는 점은 정 의장이 한나라당과 박 대표의 심장부인 대구에서 칼을 빼든 것이 아니겠느냐.”고 진단했다. 정 의장이 광주가 아닌 대구를 첫 방문지로 택했다는 점에서 의장 경선 과정에서의 민주당과의 통합론에 선을 긋고 지방선거를 ‘한나라당 대 반한나라당’ 구도로 끌고 가겠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대구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풍산그룹-류진 회장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풍산그룹-류진 회장家

    ‘풍산’하면 어떤 회사인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소비재를 만들지 않는 회사인 까닭이다. 하지만 풍산은 이미 생활속에 깊이 스며있다. 누구나 사용하는 동전에 무늬를 넣기 이전 상태인 소전(素錢)을 생산한다. 그래서 ‘돈을 만드는 회사’라고 하면 ‘들어봤다.’는 사람이 많다. 군대 갔다온 남자들은 ‘총알 만드는 회사’로 알고 있다. 이런 까닭으로 방위산업체라고 한다. 모두 맞는 말이다. 이런 것으로 풍산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반도체 칩에 전기를 공급하고 이를 지지하는 역할을 하는 리드프레임 등 기초소재를 생산하는 등 첨단기업으로 변신 중이다. 이 모든 것을 꿰뚫는 것은 구리 합금기술이다. ●한 손엔 돈, 다른 손에 총알을 2세 경영인 류진(48) 회장이 이끄는 풍산은 ‘동전의 왕국’으로 불린다. 지난 1970년 4월부터 한국조폐공사로부터 소전 생산업체로 지정된 풍산의 기술력은 세계적이다. 오는 2008년까지 호주에 1억달러어치의 소전을 공급하기로 최근 계약을 맺었다. 유럽연합(EU) 동전의 소전도 공급하고 있다. 풍산의 소전은 세계 시장의 5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 73년 타이완 수출을 시작으로 세계 60여개국에서 30억여명이 풍산의 소전으로 만든 동전을 쓰고 있다. 지금까지 생산했던 소전을 이어면 지구를 40바퀴 돌 수 있는 분량이다. 소전은 구리를 기본으로 한다. 기원전 6000년경부터 사용해왔던 케케묵은 소재다. 하지만 동에 니켈 등을 적당히 합금만 하면 되는 그렇고 그런 굴뚝산업이 아니다. 까다로운 제조기술이 요구되는 첨단산업이다.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지난 73년 국내 민간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방위산업에 진출했다. 소구경 총탄뿐만 아니라 포탄까지 국군이 쓰는 탄약 국산화를 시작했다. 이후 모든 탄약을 국산화했다. 수입대체 효과를 매우 높였다. 지능화와 정밀화 등을 통한 첨단 탄약 개발에도 적극적인 국내 대표적인 방위산업체로 성장했다. 창업자 류찬우(1923∼1999) 회장이 ‘방위산업의 대부’로 불리기에 충분하다. 풍산의 출발은 미미했다. 눈에 띄지도 않았다. 풍산은 지난 1968년 10월 창업주 류 회장이 일본에서 번 1000만달러로 출발한 신동(伸銅·구리가공산업)업체다. 창업주 류회장은 기업을 일으키지만 돈을 벌기보다도 당시 허약했던 국가 산업발전에 힘을 쏟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비철금속소재 가운데서도 구리를 골랐다. 현대문명에서 구리가 들어가지 않는 제품은 없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창업 다음해인 1969년 부평공장 준공과 함께 정부의 5대 핵심업체로 지정되면서 사업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73년 경북 안강공장을 준공하면서 방위산업을 통한 자주국방의 의지를 실현했다. 방위산업 진출에는 조선시대의 명재상인 그의 조상 서애 류성룡(1542∼1607)의 징비록(懲毖錄·국보 제132호)을 읽고 유비무한 정신에 감명받았기 때문이다. 지난 1980년에는 온산신동공장을 세워 한국을 세계적인 신동산업국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아울러 92년부터 미국 현지공장,2000년 12월 태국 현지법인을 가동하면서 풍산은 연산 46만 5000t의 생산능력을 보유하게 됐다. 다국적 신동기업인 KM유로파 메탈에 이어 세계2위이다. 쉽게 설명하면 비철금속에서 풍산의 위상은 철강에서 포스코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첨단업종으로 변신중 구리가공산업이란 한 우물을 파던 풍산은 지난 79년 서울 퇴계로 극동빌딩에 세들어 사무실을 마련한 뒤 지금까지 본사로 사용하고 있다. 방위산업체인 까닭에 군관련 인맥 네트워크가 해외까지 탄탄하다. 풍산에서도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한다. 지난 97년부터 2세 류진 회장 체제가 구축되면서 풍산은 기업변신을 꾀하고 있다. 류 회장은 벤처기업에 투자를 하는가 하면 첨단 통신사업 등에도 조금씩 발을 담그고 있다. 이문원 풍산 사장은 “정보기술(IT)과 자동차·가전 등 전기가 통하는 곳은 어디나 동 압연재가 필요하다.”며 주력인 신동산업을 통한 사업 다각화 가능성을 강조했다. 현재 풍산그룹의 계열사는 핵심기업인 ㈜풍산을 중심으로, 풍산마크로텍, 풍산산업 등 16개(해외법인 포함)에 이르고 있다. 특히 류 회장이 경영을 맡은 이후 일본, 미국, 상하이 등지에 법인을 설립했다. 풍산이 안고 있는 과제 중 하나는 점차 줄어드는 방위산업을 첨단산업에 어떻게 접목시켜 나가느냐 하는 점이다. 이런 고민의 중심에 선 류 회장은 해외시장 개척을 통해 타개하는 것과 신사업 진출을 통해 기업변신을 꾀하는 두 가지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핵심사업인 동, 스테인리스, 티타늄 분야에서 신기술, 신제품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해 새로운 첨단소재산업 분야로 진출할 도모하고 있다. 또 방위산업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정밀 지능탄 개발을 통해 세계 최고의 탄약 전문기업으로 성장한다는 전략도 세웠다. 이와 함께 항공기와 유도무기에 필수적인 가속도계, 속도 및 고도측정센서 등 정밀 센서류와 반도체 장비를 생산하는 등 정밀산업분야에서도 영역을 확대하는 등 첨단기업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류 창업주의 4남매 가운데 막내인 류 회장은 82년에 풍산에 입사한 지 15년 만인 97년 풍산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지난 2000년 4월 회장에 올랐다. 일본에서 아메리칸 고교를 거쳐 서울대 영문학과를 마쳤다. 미국 다트머스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수료한 류 회장의 영어 구사력은 재계의 누구 못지않게 훌륭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동전의 제왕’ 류 회장은 미국통 류 회장은 ‘미국통’이다. 김대중 정권 이후 대통령의 방미에 단골로 수행하는 경제인 가운데 한사람이다. 특히 지난 2003년 초 출범한 노무현 정부의 대미외교와 관련해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그는 그해 4월 W 부시 대통령의 부친인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을 국내에 초청하는 일을 맡았다. 당시 부시 전 대통령의 방한은 노무현 대통령의 미국 방문의 전초전 성격이 강했기에 큰 관심을 모았다. 공식적으로 부시 전 대통령의 방한은 전경련 초청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전경련 부회장인 류 회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류 회장은 7월28일 전경련 주최로 열린 한국전 참전용사 환송 만찬의 사회를 보는 등 단순히 경제인 차원을 넘어서 민간외교 분야에서 큰 활약을 보였다. 앞서 지난 2002년 12월 국내에서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고로 인해 촛불시위가 연일 이어질 당시 부시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사과 전화를 한 것도 류 회장의 ‘간곡한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후문도 있다. 이런데서 보듯 류 회장은 부시 공화당 행정부 인맥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는 지난 92년 미국 아이오와주에서 풍산의 미국법인 PMX인더스트리의 공장 준공식에서 바버라 부시 여사가 기념 테이프를 자르면서 직접적인 인연이 시작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풍산이 방위산업체라 일찍부터 대미관계에 공을 들였고, 미국의 거대 방위산업체 인맥은 물론 정계 인맥과도 긴밀히 연결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류 회장은 일년 중 반 이상은 미국 등 해외에 머물며 사업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 활약에도 국내에는 풍산이나 류 회장에 대해선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류 회장이 매우 겸소한 성품이라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질 기회가 없었던 것. 유교적 가풍이 심한 집안에서 차남으로 가업을 이어받은 부담도 한 몫하고 있다는 게 주위의 전언이다. 족보상 명문가의 후손인 풍산의 류진가는 재계의 혼맥에서도 확실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풍산 류씨 서애종파의 류 회장은 서애 류성룡(1542∼1607) 선생의 13세손이다. 바로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류씨 가문의 후예다. 류 창업주는 회사 이름을 풍산 류씨인 자신의 본관을 따서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류 창업주는 병산교육재단을 세워 고향인 풍산에 풍산중·고등학교를 세웠다. 이 재단에 서애가 후학을 양성했던 병산서원과 그 일대 땅을 기증하기도 했다. 류 회장이 지난 99년 11월 숙환으로 별세한 뒤 풍산그룹의 경영권은 차남 류진 회장으로 이어졌다. 류 회장은 풍산그룹 계열의 ㈜풍산과 풍산마이크로텍 등 주요 계열사의 대표이사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풍산의 공익법인인 병산교육재단과 93년 설립된 학록장학재단(학록은 류 창업자의 호)와 서애기념사업회의 이사장으로 명실상부하게 풍산가의 대표자 역할을 하고있다. ●대통령가에 닿았던 화려한 혼맥 류 창업주는 부인 배준영(79) 여사와의 사이에서 2남2녀를 두었다. 배씨는 한국여자테니스연맹회장으로 활동하는 등 여전히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 1969년 풍산의 첫 공장인 부평공장을 지을 당시 배 여사는 동대문시장에서 장을 봐 부평 공장의 종업원들의 음식 뒷바라지를 할 정도로 창업고생이 많았던 것으로 전한다. 이문원 사장은 “모든 직원들을 따뜻하게 감싸줄 정도로 온화한 성품”이라고 치켜세웠다. 장남이자 류 회장의 형 류청(57)씨는 풍산의 미국 현지법인 PMX인더스트리 사장을 지냈다. 지난 198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둘째 딸인 박근령(53·당시 이름 박서영)육영재단 이사장과 결혼해 당시 큰 화제를 모았다. 대통령 딸과의 결혼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처음 있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결혼은 1년도 못돼 파경을 맞아 더 큰 화제를 낳기도 했다. 류청씨는 미국을 오가며 개인사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배 여사는 여전히 박씨를 “큰 며느리”로 부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류 회장의 큰 누이인 류지(54)씨는 서울 강남에서, 작은 누이 류미(52)씨는 미국 LA에서 개인사업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류진 회장은 노신영(77·롯데복지재단 이사장) 전 국무총리의 딸과 혼인했다. 류 회장의 부인인 노혜경(47)씨는 노 전 총리의 딸이다. 노씨는 미국 스탠포퍼드 법대 출신에 두 개의 석사학위와 한 개의 박사학위를 갖고 있으며, 김수환 추기경의 주례로 서울 명동성당에서 결혼식을 치렀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이들 부부는 성왜(17)양과 성곤(14)군을 두고 있다. 이들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다. 풍산의 류진가는 노 전 총리와의 통혼을 통해서 재계 혼맥의 중심부에 진입하게 됐다. 노 전 총리의 장남 노경수(53)서울대 교수는 정세영 전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작고)의 딸 숙영(47)씨와 결혼했다. 노 교수는 정몽규(44) 현대산업개발 회장의 매형이 된다. 류 회장은 노신영가를 통해 현대가와 순환혼맥을 이룬다. 노 전 총리의 둘째아들 노철수(51)씨는 P.Wian&Associate 대표이사 사장. 그의 부인은 홍진기 전 내무장관의 막내 딸인 홍라영(46)씨로 삼성그룹 비서실을 거쳐 레오버넷 코리아 사장을 지내고 삼성리움미술관 부관장이다. 이건희 삼성회장의 부인 홍라희의 동생이기도 하다. 이로써 풍산의 류진가는 이건희 삼성 회장,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과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다. 노 전 총리 셋째아들 노동수(48)는 고려서적 사장을 맡고 있다. chuli@seoul.co.kr ■ ’동전 왕국’ 일군 숨은 일꾼들 신동(구리가공산업)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한 오늘의 풍산은 창업주 류찬우 회장이나 2세 경영인 류진 회장 못지않게 숨은 공로자들이 많다. 풍산은 대표적으로 정훈보(68) 전 사장, 류민하(78) 전 부사장, 이진우(72) 전 부사장, 김사철(70) 전 감사, 류인한(79) 전 부사장 등을 꼽고 있다.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농협 중앙회 금융계획과장을 지냈던 정 전사장은 지난 78년 풍산의 전신인 풍산금속공업에 이사로 입사했다. 타고난 기획통으로 사세 확장에 막대한 공헌을 했다. 특히 지난 80년대 초 중동건설 붐이 일어났을 당시 바닷물을 담수화하는 플랜트를 수출할 때 백동관을 자체 기술로 개발, 공급함으로써 회사가 한 단계 도약하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97년 풍산 부회장을 거쳐 99년 한국철도차량 사장을 지냈다. 고려대 경영대학원을 거쳐 농협중앙회 자금부장을 지낸 류민하 전 부사장은 지난 73년 풍산금속공업의 상무로 입사, 류 창업주와 함께 초창기의 회사 기틀을 다졌다. 회사가 해마다 2배씩 성장을 거듭할 70∼80년대 자금과 인사 등 회사의 안살림을 두루 맡았다.80년 부사장을 거쳐 90년 감사를 지냈다. 풍산의 후배들은 학자풍인 그를 ‘선비형 매니저’로 기억하고 있다. 역시 고려대를 거쳐 농협 중앙회 출신인 이진우 전 부사장은 지난 75년 회사에 합류했다. 그는 80년대 초 회사의 경영정보관리시스템(MIS)을 도입, 당시로서는 국내의 어느 회사보다 빨리 선진적인 경영관리시스템을 받아들였다. 특히 90년 노사대립이 한창일 때 헌신적인 대화를 통해 노사관계 증진에 크게 이바지했다. 이후 정부로부터 노사협력우수기업으로 인정도 받았다. 지난 97년 중앙노동위원회 사용자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서울대 상대 출신의 김사철 전 감사의 경우 뛰어난 분석력과 판단력을 가진 타고난 최고재무관리자(CFO)이다. 세무사·공인회계사·공인감정사 자격을 갖춘 그는 재무부·국세청·총무처 등 정부의 여러 부처를 거쳐 76년 풍산금속에 이사로 들어왔다. 재무업무의 기본 프로세스를 조성했으며 시설·자재·감사 등에서 회사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후 정부로부터 녹조근정훈장도 수상했다. 한양대 공대 출신의 류인한 부사장은 세계 최상급의 품질과 능력을 자랑하는 동제품을 만들기 위해 기계설비와 생산프로세스의 토대를 구축한 산증인으로 전통적인 엔지니어 출신의 임원이다. 지난 73년 부평공장 공무부장으로 입사, 동제품 생산기술과 공정분야에서 경험을 쌓고 78년 온산공장 건설본부장으로 온산공장 건설의 총책임을 맡았으며 온산공장장을 지냈다. 풍산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데 토대가 됐다. 88년 온산공장 제2공장을 준공해 단일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연간 25만t 생산능력의 신동공장으로 성장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온산공장 건설경험을 바탕으로 90년대 이후 풍산의 세계화 전략에 따라 건설한 미국 현지법인 PMX사와 태국 공장건설에도 공헌했다. chuli@seoul.co.kr ■ “선조에 누 되는 일 하지 마라” 풍산의 창업주 류찬우 회장은 조선시대 명재상으로 임진왜란을 넘긴 서애 류성룡의 12세손이다.“선조에 누가 되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된다.”는 게 류 창업주의 확고한 인생관이다. 이런 정신이 2세 경영인 류진 회장에게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이런 까닭으로 지난 68년 순수민족자본에 의해 창업, 세계적인 신동기업으로 발전한 풍산은 전통 문화의 계승에 남다르다. 풍산이 유비무환과 자주국방이라는 방위산업에 참여하게 된 동기이다. 서애의 가르침이자 영향이다. 풍산의 기틀이 잡힌 지난 76년 12월 류 창업주를 중심으로 서애의 후손들과 학자들이 ‘서애선생기념사업회’를 설립했다. 서애가 징비록에서 남긴 유비무환과 자주국방의 뜻을 계승하고 역사왜곡을 바로 잡는다는 뜻에서 기념사업회를 세웠다. 또 류 창업자는 지난 80년 4월 사재를 출연, 육군사관학교에 서애관이라는 체육관을 기증했다. 지난 일을 되살려 앞날을 대비하자는 서애의 가르침을 호국 간성에게 일깨우고자 건립된 상무의 도장이다. 지난 91년 5월 서애의 정치·경제사상과 애국애민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서애전서 전4권을 출간했다. 일본 도쿄대 종합도서관, 미국 하버드대 동아시아연구소, 러시아 과학대 동방연구소, 중국 베이징대 등 30여개국 50여개 대학과 연구소 등에 흩어져 있었다. 약 10년 동안의 편찬사업 끝에 서애의 저술과 관계자료를 수집, 망라한 것으로 그동안 흩어져 있던 자료를 규합해 완성한데 의미가 깊다. 이로부터 10년 뒤인 2001년 7월 서애전서 국역본을 발행, 일반인들도 쉽게 볼 수 있도록 새롭게 했다. 특히 지난 2003년 임진왜란의 극복 경험과 교훈을 적은 ‘징비록(The Book of Corrections)’ 영역본을 출간, 세계화시켰다. 호남대 최병현 교수가 6년에 걸쳐 번역한 것으로, 미국 캘리포니아대(버클리) 동아시아 연구소에서 출간됐다. 기념사업회는 특히 내년 서애 서거 40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기념학술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또 범유림기념사업회에서 당파를 초월해 서애 서거 400주년 기념행사를 계획중이다.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진보도 교과서 만든다

    진보진영이 중·고등학생용 교과서 제작에 착수할 움직임이어서 이르면 내년 중에 역사, 경제과목 등에서 독자적인 검정 교과서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뉴라이트 진영 학자들이 지난해 만든 교과서포럼이 기존 역사·경제교과서를 문제삼은 데 이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재정경제부와 교육부 같은 정부기관을 앞세워 새 경제교과서를 제작하겠다는 데 따른 대응이어서 교과서에서도 보수·진보진영간 충돌이 본격화할 조짐이다. 진보진영 20여개 학술단체가 모여 만든 학술단체협의회(학단협)는 지난 1월 운영위원회를 열고 현존하는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분석하고 개선안을 내거나 새 교과서를 내기로 결정했다고 17일 밝혔다. 학단협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재승 국민대 교수는 “학단협은 올해 주요 사업으로 교과서문제를 다루기로 하고 일단 관련 학회를 중심으로 관련 과목 교과서의 실태를 파악하는 데 착수키로 했다.”면서 “구체적인 방향은 다음달 4일 열리는 운영위원회 정기모임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학단협 차원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교수노조’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등에도 공동작업 제안서를 보내는 것도 4일의 운영위 회의에서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학단협은 가칭 ‘대안교과서편찬특별위원회’를 꾸려 그 아래 사회(정치·경제 등)·국사·도덕·윤리 교과목 등을 다루는 ‘개별교과소위원회’를 두고, 이 소위는 소속된 관련 학회가 담당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학단협은 이미 사회과목은 한국산업사회학회, 경제는 한국사회경제학회 등 학회별로 담당 과목을 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승욱 중앙대 교수는 “일단 기존 국내 교과서의 내용과 편제는 물론, 외국의 교과서까지 분석한 뒤 보충하고 고칠 내용이 있는지 판단하는 작업이 먼저 이뤄질 것”이라면서 “이 때문에 과목별 관련 학회에 따라서는 작업 속도에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박정희 전 대통령 평가문제 등 첨예한 사안이 몰려있는 근현대사, 경제과목 쪽에서 가장 먼저 대안교과서가 나올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인간시대] 5대째 아차산자락 토박이 ‘아차산지킴이’ 박정분 회장

    [인간시대] 5대째 아차산자락 토박이 ‘아차산지킴이’ 박정분 회장

    평생을 봉사활동을 하며 살아온 사람이 있다. 1945년 광복과 1950년 한국전쟁 이후에는 ‘4H운동’. 1970년대에는 ‘새마을 운동’. 1980년대에는 한·일 민간인 친선운동. 1990년대 이후에는 친환경 운동과 저소득층을 위한 자선 활동. 굴곡 있는 대한민국 반세기의 봉사 활동 역사를 구구절절이 이야기할 수 있는 박정분(70) 할머니. 할머니는 5대째 광진구에서 살아온 서울 토박이다. 봉사하며 살아온 자신의 삶에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할머니는 매주 일요일마다 아차산을 찾아 청소를 하는 ‘아차산 지킴이’의 대표를 맡아 봉사 활동의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체험으로 얻은 박 할머니의 봉사 활동 철학을 들어보자. 글 사진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내 평생을 광진에 봉사하며 살았다오. 인생의 황혼에서 칠십 평생을 돌아보니 후회는 없어. 다만 요즘 사람들이 너무 잘 먹고 잘 살아서 세상 모든 것이 귀한 줄 모르는 게 슬퍼.” ●14살부터 각종 활동… 봉사역사 산증인 배고프고 못사는 서러움 많았던 대한민국 반세기를 이어오는 동안 광진구에서 봉사활동을 해온 할머니가 있다. 지금은 ‘아차산 지킴이’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정분(70·광진구 광장동)씨가 그 주인공이다. 박 할머니가 평생 참여한 봉사활동 단체는 일일이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다.1945년 광복과 50년 한국전쟁 이후에는 ‘4H운동’에, 개발시기인 1970년대에는 ‘새마을 운동’, 일본과 교류가 절실했던 80년대에는 한·일 민간인 친선운동,90년 이후부터는 친환경 운동과 저소득층을 위한 자선 활동 등에 투신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각종 봉사 활동에서 손을 놓았지만 박 할머니는 대한민국 봉사활동의 산증인인 셈이다. 박 할머니가 어린시절부터 봉사 활동에 열심히 참여한 것은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 때문이었다. 아차산 자락에서 5대가 터를 일구고 살아온 광진 토박이인 박 할머니는 6·25전쟁 중인 51년 1·4후퇴 때 부산으로 피란을 떠난 것 외에는 평생을 광진에서만 살았다. 전쟁이 끝난 후 고향에 돌아왔을 때 박 할머니의 나이는 열네살. 폐허가 된 고향을 재건하자는 4H운동이 일었을 때 당시 소녀였던 박 할머니는 마을 사람들을 모아 돼지를 나눠주고 키우는 법을 직접 알려주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박 할머니의 봉사활동은 스물 한살에 결혼한 뒤에도 계속됐다. 33년 3개월 동안 공직 생활을 하고 지난 92년 성수2가 1동장으로 퇴임한 남편은 박 할머니의 봉사 활동을 평생 지원해준 든든한 후원자였다. ●표창장 셀 수 없을 정도 70년대 새마을 운동은 물론이고 성동광진 농심회 광진구 회장,80∼91년 한·일 친선협회 부회장,90년대 아차산 어머니산악회 회장, 아차산 지킴이회 회장으로 활동하다보니 한 평생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박 할머니는 요즘은 매주 일요일에 아차산 지킴이들과 아차산에서 만나 쓰레기를 줍고 주변을 정리하는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박 할머니 자택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등 전직 대통령들의 표창장이 즐비하다.‘자랑스러운 구민상’ 수상 경력은 셀 수도 없을 만큼 많다. 평생을 봉사 활동하며 살아온 이유를 묻자 박 할머니는 “팔자라니까. 그냥 좋아서 했어.”라며 웃는다. 그 시대에 남자로 태어났으면 큰 일 이루셨을 것이라는 기자의 말에 할머니는 “전쟁 통에 배운 게 있어야지. 우리 세대가 고생만 하고 참 애매한 세대라니까. 나는 봉사 활동하는 게 마냥 좋았으니까 됐어.”라며 웃는다. ●요즘 사람들 물건 귀하게 여길 줄 몰라 하지만 박 할머니가 평생을 광진에서 봉사 활동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5대가 한 장소에서 살았다는 박 할머니는 마을의 길 하나, 나무 한 그루, 동네 이름 하나까지 지키고 보존해야 할 소중한 역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어딨어. 요즘 아파트 한동을 한 시간만 돌아보면 1년 내내 써도 좋을 버려진 물건들이 넘쳐나. 그런게 모두 우리가 지켜야 할 역사인데 요즘 사람들은 간직하고 귀하게 여길 줄을 모르고 너무 쉽게 버려. 그러니까 내가 봉사 활동하면서 그런 것 지키고 싶었던 거야.”라며 박 할머니는 평생을 봉사 활동에 투신한 소신을 담담히 밝혔다. 세 아들은 출가시키고 남편과 단출하게 살아가고 있는 박 할머니는 “새벽 5시에 일어나도 여기저기 부르는데로 따라다니며 봉사 활동하면 하루가 너무 바빠.”라며 노년의 즐거운 삶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봄방학때 가볼까…체험활동

    봄방학때 가볼까…체험활동

    봄방학에 뭘 할까. 새 학기 시작을 열흘쯤 앞두고 학생들은 새 교과서와 새 친구들을 만난다는 마음에 설렌다. 학부모들은 부족한 공부를 어떻게 하면 더 시켜볼까 고민이다. 겨울방학에 이어 선행학습을 시켜보려는 것이다. 봄방학은 길어야 보름. 계획을 짜서 공부하기도 마땅치 않다. 참고서 대신 직접 체험해보는 선행학습은 어떨까. 봄방학을 이용한 초등학생들의 체험식 선행학습 요령을 살펴봤다. ●초등학교 1·2학년 1∼2학년 때는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스스로 결정하기보다 부모 의견에 따르는 경향이 많다. 때문에 부모가 교과 내용과 관련된 견학 장소를 먼저 고른 다음 뭘 볼지 계획표를 짜면서 아이의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 좋다.1∼2학년은 너무 오래 걷거나 보는 것만으로는 흥미를 잃기 쉽다. 직접 만져보거나 활동할 수 있는 곳을 선택해야 한다. 우선 추천할 곳은 식물원이나 동물원 등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체험학습장이다.1∼2학년 ‘국어’와 ‘슬기로운 생활’에는 자연과 관련된 내용이 많이 나온다.1학년 때는 꽃밭에 기르기 좋은 식물을 발표하는 시간이 있고,2학년 때는 동물과 식물을 사는 곳에 따라 나눠보는 시간도 있다. 수목원에 간다면 교과서에 나오는 애기똥풀, 강아지풀, 씀바귀 등을 자세히 살펴보자. 생태공원은 깨끗한 자연환경 속에서 사는 식물과 동물, 곤충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학습장이다. 저학년 ‘슬기로운 생활’이나 중·고학년 ‘과학’에 생태계 속의 작은 생물을 체계적으로 다룬다. 과학관에 간다면 구체적으로 뭘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아이가 흥미를 갖고 있는 부분이나 교과 내용과 관련 있는 부분만 집중적으로 둘러보기만 해도 도움이 된다. 특히 1학년 때는 우리 몸의 생김새와 감각 기관을 공부하므로 인체를 자세히 알아보는 것이 좋다.2학년이라면 지구의 자전과 공전, 물과 공기의 성질에 대한 체험활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박물관은 초등학교 교과서와 직간접으로 많이 연관돼 있어 미리 견학하면 수업에 큰 도움이 된다. 특히 우정박물관과 김치박물관은 저학년 수업 시간에 많이 다룬다. 김치의 종류와 역사를 알아보고 영양가를 조사한다면 새 학기에 더욱 흥미있게 공부할 수 있다. 저학년 때는 우리나라 명절의 풍습과 놀이를 배울 기회가 많다. 한국민속촌이나 한옥마을 등을 둘러보자.1학년 ‘국어’시간에는 민속놀이를 하는 방법을 배우며,2학년 때는 여러가지 집의 모습에 대해 배운다. ●초등학교 3·4학년 3∼4학년이 되면 1∼2학년 때와는 달리 교과목이 나뉘어 공부할 내용이 많아진다. 때문에 자칫 학습 의욕을 잃기 쉽고, 사회나 과학 교과에 대한 흥미도 이 때 결정된다. 따라서 다양한 체험과 견학을 시켜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3∼4학년 ‘사회’는 지역화 교과로, 우리 고장과 시·도에 대해 배우게 된다. 인터넷만 찾아보지 말고 실제 박물관이나 지역 공연, 시장 등을 직접 찾아가보자. 3학년이 되면 자연에 대해 더 깊이 배운다.3학년 ‘과학’은 날씨에 대해 다루므로 기상청이 하는 일 등을 알아보면 좋다.4학년 ‘국어’ 시간에는 소금에 대해 배우고,‘과학’시간에는 소금물에서 소금을 분리하는 실험을 다룬다. 가족여행을 갈 기회가 있다면 서해안 염전이나 인천에 있는 수도권 해양생태공원을 다녀오면 도움이 된다. 동물원에 간다면 암수의 구별 방법과 함께 동물 분류에 초점을 맞춰 둘러보는 것이 효과적이다. 학부모들이 3학년 자녀에게 부담을 느끼기 시작하는 부분이 과학이다. 질문이 어려워지고, 쉽게 대답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다. 이 때는 과학관을 이용해 보자.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있는 과학연구원의 탐구학습관이나 체험학습장은 무료이거나 싸고, 내용도 알차다. 3학년 때부터는 다양한 박물관을 많이 견학해보는 것이 좋다.4학년 ‘사회’시간에는 박물관의 종류와 업무를 배우고, 박물관 견학과 모의 박물관 꾸미기 등의 활동을 한다.3∼4학년에게 도움이 될 만한 박물관으로는 경기도 의왕의 철도박물관(4학년 ‘국어’ 중 ‘증기기관차 미카’), 경기도 용인의 삼성교통박물관(3학년 ‘사회’ 중 ‘교통수단의 발달’), 전북 고창의 판소리박물관, 강원도 강릉의 참소리축음기 에디슨박물관, 민속박물관, 경기도 수원 국토지리정보원 내 지도박물관 등이 있다. 3학년 ‘사회’에서는 역사 공부가 시작된다. 서울 남산이나 무악산 등 전국의 봉수대를 비롯해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다녀오는 것도 좋다.4학년 ‘국어’시간에는 3·1운동을 주도한 유관순 열사에 대한 전기를 배우므로 미리 충남 천안에 있는 유관순 열사 기념관을 둘러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정약용은 ‘국어’‘사회’‘과학’등의 교과에서 자주 나오는 인물이다. 수원의 화성과 경기도 남양주의 정약용 생가와 기념관을 둘러보면 좋다. ●초등학교 5·6학년 고학년은 견학의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때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분야를 집중적으로 견학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좋다. 아이가 과학에 관심이 있다면 국립서울과학관부터 가보자.5학년이라면 1층 기초과학전시실과 4층 우주관은 필수 코스다.6학년은 3층에 있는 심장혈관의 집을 놓쳐서는 안된다. 서울특별시 과학전시관의 낙성대 본원과 남산 분원도 활용하기에 좋다. 특히 남산 분원에서는 5학년 때 배우는 물체의 속력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이 밖에 서울 LG사이언스홀이나 서대문 자연사박물관 등도 가볼 만하다. 5학년 ‘사회’시간에는 우리 조상의 의식주와 문화·종교·과학 등의 생활상을,6학년 때는 고조선에서 근대까지 전반적인 역사 흐름을 배운다. 때문에 저학년 때 가봤다고 하더라도 민속박물관을 다시 둘러보면 새삼 보람을 느낄 수 있다.6학년이라면 세계로 눈을 돌려 서울의 지구촌 민속박물관이나 경기도 고양의 중남미 문화원 등을 다녀오면 도움이 된다. 아이가 역사에 관심을 보인다면 국립박물관이나 민속박물관 외에 다양한 곳을 활용할 수 있다. 서울 절두산 순교 성지나 경기도 파주의 선사유적지, 강화역사박물관, 천안의 독립기념관, 서울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전쟁기념관 등도 좋은 공부가 될 만한 곳이다. 민주주의를 배우기에 좋은 장소도 추천할 만하다. 국회나 대법원, 지방법원 등을 견학하면서 삼권 분립과 준법 정신 등을 배울 수 있다. 국회는 꿈나무 의회교실(youth.assembly.go.kr), 대법원은 어린이 마당(www.scourt.go.kr/kids)에 접속해 견학할 수 있다. ■ 도움말 서울 화랑초등학교 이현진·김언지·장은미 교사 ■ 즐기면서 배워보세요! 봄 방학 때 가볼 만한 행사장을 소개한다. ●서울숲 곤충식물원(parks.seoul.go.kr/seoulforest) 세계 딱정벌레 표본 전시회와 살아 있는 우리나라 딱정벌레 상설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세계적으로 희귀 딱정벌레를 포함해 293종 1305개체를 매일 50종씩 교체 전시한다. 무료.(02)460-2905. ●IQ뮤지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층 서울갤러리에서 다음달 1일까지 열린다. 고전 퍼즐을 비롯해 희귀 퍼즐, 불가능 퍼즐, 세계의 퍼즐 등을 직접 풀어볼 수 있는 체험학습 행사다. 어른 7000원, 청소년 6000원, 어린이 5000원.(02)2000-9774. ●스포츠 과학놀이 체험전 서울 반포동 센트럴시티 파미에 파크 2층 씽크타운(www.thinktown.co.kr)에서 8월30일까지 열린다. 스포츠와 장비에 숨겨 있는 과학 원리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 과학 이벤트쇼와 마술쇼,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과학체험교실 등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1만 2000원.(02)6282-5777. ●여섯번째 대멸종 이화여대 자연사 박물관에서 4월30일까지 열린다. 과거 지구의 멸종을 뒤돌아보고 자연파괴로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는 동물들의 자취를 표본과 모형, 영상물을 통해 더듬어볼 수 있다. 무료.(02)3277-3155. ●‘우리의 오랜 친구, 개’특별전 국립민속박물관(www.nfm.go.kr)에서 병술년 개띠 해를 맞아 개의 상징과 의미를 살펴보도록 마련했다. 개가 등장하는 생활용품 등 각종 유물을 볼 수 있다. 이야기가 있는 개 사진 공모전과 개 모양 토우 만들기 작품전도 둘러볼 수 있다. 이달 27일까지. 일반 3000원, 학생 1500원. ●신비한 미생물 탐험전(www.microbes.co.kr)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다음달 5일까지 열린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미생물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어른 1만 2000원, 청소년 8000원.(02)785-8320. ●재미난 박물관(www.funkr.com) 인천 서구문화회관 전시실에서 이달 말까지 열린다. 빛, 소리, 움직임 등 과학적 원리로 반응하는 제품과 놀이기구, 생활과 날씨, 해양 등과 관련한 신기한 제품, 놀이기구 등을 경험할 수 있다. 유아 4000원, 청소년 5000원. 어른 6000원. ●집에서는 따라하지 마세요. 다음달 1일까지 서울 반포 센트럴시티 씽크아트홀에서 열린다. 음향과 3차원 입체영상, 조명, 특수효과를 동원해 상상력과 표현을 발휘시키는 과학교육극이다. 오전 11시, 오후 2시,4시 공연. 균일가 1만 5000원.(02)6737-6718. ●세계 밀랍인형 박물관(www.worldwaxmuse um.net) 서울 코엑스에서 다음달까지 열린다. 세계 유명 인사의 밀랍인형 150점을 볼 수 있다. 마돈나, 샤론 스톤, 찰리 채플린 등 해외 인기 배우에서부터 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 등 정치인, 박주영·홍명보·박지성 등 스포츠 스타, 설경구, 비, 안성기 등 국내 인기 연예인 작품도 전시한다. 방학을 맞아 입장료는 이달까지 어른 1만 2000원, 중·고생 1만원, 어린이 8000원으로 할인한다.(02)562-8153.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씨줄날줄] 새마을 운동/임태순 논설위원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1970년대를 풍미했던 새마을운동 노래의 한 구절이다. 요즘말로 하면 농촌 업그레이드 운동인 새마을운동은 70년 4월 박정희 대통령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근면, 자조, 협동의 기본정신에 따라 주민 스스로 농경지와 농로를 정비하고 교량과 마을창고를 지어 농촌의 인프라를 획기적으로 개선시켰다. 농업기계화, 농한기 부업개발 등을 통해 농촌소득이 증대되고 도시로도 번져 뒷골목 정비, 생활오물분리수거 등의 사업이 실시됐다. 새마을운동은 1988년 국정감사와 5공청문회 등을 통해 된서리를 맞으면서 관주도에서 순수민간운동으로 전환됐다. 중국에서 새마을운동을 벤치마킹한다고 해서 눈길을 끈다.14일 베이징에서 전국 31개 성과 시의 주요간부들이 머리를 맞대 일주일동안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중국 농촌에 접목시키는 방안을 놓고 토론을 벌인다고 한다.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도 참석한다고 하니 국가적 관심도를 엿볼 수 있다. 중국으로선 개방, 개혁의 뒷전에 놓여 불만세력이 되고 있는 농촌문제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새마을운동은 ‘한류1호’,‘원조한류’라고 할 수 있다.70년대부터 나이지리아, 네팔 등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의 지도자들이 내방, 새마을운동을 배워갔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71개국 1945명이 새마을연수원에서 정규교육을 받았다. 또 4만명 가까운 인원이 3732회에 걸쳐 새마을운동중앙회를 방문, 새마을운동을 견학하고 돌아갔다. 그렇지만 새마을운동은 유신체제유지 및 옹호 수단으로 이용된 부정적 측면도 있다. 새마을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적으로 한번 해보자는 분위기도 있지만 권위주의적인 사회체제도 일조했다고 할 수 있다. 외국인들이 토지소유자들의 이해다툼을 어떻게 조정했는지 궁금해 농로확장 등에 대해 물으면 연수원측에선 토지소유자가 마을발전을 위해 희사했다고 답하는데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새마을운동이 개발도상국들에 농촌개발의 모범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균형감각을 갖고 현대적인 시각으로 지속적으로 연구하면 스테디셀러 한류로 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미스·공군 박근주(朴槿珠)양 - 5분 데이트(38)

    미스·공군 박근주(朴槿珠)양 - 5분 데이트(38)

    『비행기를 탈 때가 제일 기분 좋아요. 아무리 타도 지리한 줄도 모르고 지치지도 않아요』 항공 생리의 적격자라는 진단을 받았다는「미스·공군(空軍)」박근주(朴槿珠)양. 활짝 웃는 입매에서 풍기는 청결함이 우선 상대방을 기분 좋게 만든다. 67년 6월부터「스튜어디스」로 비행기를 타기 시작, 비행시간은 6백시간을 훨씬 넘었단다. 준장 이상의 장성급, 정부요인등 VIP 비행에 동승해 오면서 익혀진「서비스」솜씨는 201호의 전용 탑승자 박정희(朴正熙)대통령 식성을 비롯해서 몇몇 사람 것을 알뜰히 기억 해오고 있는 세심함도 갖췄다. 신문의 정치면을 통독하는 새 버릇도 비행을 시작하면서부터. 신광여고 졸업, 숙대(淑大) 가정과를 중퇴한 35-23-36의「볼륨」, 1백62cm의 키, 50kg의 몸무게, 타원형 얼굴의 정돈된 미모는 보편성 있는 미인. 44년생. 『한달에 3,4일만 서울에 있는 집을 들를 수 있다는 것외에는 그렇게 불편하지도 않은』숙소 생활에서 비행 없는 날 대기 상태의 지리함이 이 미인의 고민. 「차이코프스키」와「바나나」를 좋아하는 2남2녀 중의 이 막내딸은 2,3세 차이의「엔지니어」인 차남과 연애결혼을 하고 싶단다. 그리고는 2남1녀의 엄마가 되는 게 소망. [ 선데이서울 69년 6/22 제2권 25호 통권 제39호 ]
  • ‘해방전후사 재인식’ 대담

    ‘해방전후사 재인식’ 대담

    ‘해방전후사의 인식’(이하 ‘인식’)을 비판하겠다며 지난 8일 출간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하 ‘재인식’)을 놓고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와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무릎을 맞댔다. 이 책의 출간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두고 10일 서울신문 회의실에서 열린 대담에서였다. 이 교수는 ‘인식’‘재인식’ 모두에 글을 실었고, 김 교수는 ‘인식’의 집필은 물론 기획에도 깊숙이 관여했던 학자다. ●“‘인식’에 대해 정당한 대우를 해달라” 이완범 ‘재인식’뿐 아니라 ‘인식’의 집필에도 참가한 사람으로서 두 책을 동등하게 봐달라고 하고 싶다. 우선 ‘재인식’은 뉴라이트가 아니다. 책임편집을 맡은 박지향 교수는 민족에 기댄 반지성주의적이고 운동만능주의적인 풍토를 비판하는 것이지 ‘뉴라이트’라는 이름까지 동의하지는 않는다.‘인식’ 역시 민족중심적이기는 해도 민족지상주의라고까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김명섭 ‘인식’이 좌쪽에 가깝긴 하다. 그러나 당시 시대상황을 생각해 보면, 그렇기 때문에 인식을 넓혀줄 수 있었다.‘현대사에 대한 인식의 사보타주’를 끝내기 위한 작업이었다. 그렇다고 당시 집필에 참가한 사람들이 지금도 그때의 생각에 머물러 있지는 않다. 계속해서 후속 연구결과를 내면서 변화·발전하고 있다. 또 한 가지는 미국에서도 끝난 ‘수정주의’를 아직도 한국에서 하고 있느냐는 식의 얘기다. 참 어이가 없다. 수정주의가 옳다는 게 아니라, 미국이 끝내면 우리는 더이상 연구하면 안 되나? 정말 주변적인 사고다. ●“재인식 주장에 이의 있다” 이 ‘인식’이 북한의 일제청산을 완벽하다고 평가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재인식’은 300만명을 남으로 내쫓았으니 북의 청산은 청산이 아니라는데 나는 그것도 어쨌든 청산이라 생각한다. 또 일제 천황제가 북한의 수령제로 연결되기 때문에 북에서 일제청산이 안 됐다는 대목에도 이의가 있다. 카스트로의 독재가 스탈린의 독재에서 보고 배웠다 해서 카스트로가 청산을 안 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여기에다 에커트는 박정희가 만주 모델을 베껴 와서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뤘다고 말하는데 흥미로운 주장이며 검증해볼 주장이다. 그런데 만주 모델 때문에 박정희한테 친일잔재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에커트 주장에 대한 확대해석이다. 오히려 만주국군 출신 정일권을 국무총리에 앉힌 것에서 친일파를 등용했다면 모를까. 김 스탈린의 세계전략으로 한국전쟁이 발생했다는 ‘재인식’의 주장은 정말 세계학계에 안 먹힐 주장이다. 스탈린의 세계전략이 원인으로 꼽혔던 것은 유럽중심적 연구 때문이었다. 서구 연구자들이 김일성과 북한은 잘 모르니 소련과 스탈린에다 초점을 맞췄고, 그러니 스탈린의 세계전략으로만 모든 걸 설명하려 든 것이다.‘인식’은 그게 아니라 한국전쟁은 김일성이 이니셔티브를 쥔 전쟁이라는 점을 처음으로 명확히 했다. 사실 당시 대학가에는 북침설과 미국에 의한 남침 유도설 등이 번지고 있었을 때였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인식’이 외려 남침설을 가장 확실하게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앞뒤도 안 맞다. 분단 초기에는 스탈린이 한국에 관심도 없다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전쟁을 키웠다고 설명한다. 김 그것도 중요한 결점이거니와 스탈린의 심경변화를 드러낼 자료를 아무것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비교사·문명사·미시사적 연구? 아무 내용 없다” 김 ‘재인식’의 가장 큰 문제는 ‘인식’을 일국사·민족사로 폄하하면서 비교사·문명사를 얘기하는데, 정작 비판에 걸맞은 연구성과물은 없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이분법적인 친일·반일구도를 비판하기 위해 조선어학회가 조선총독부의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발굴한 것까지는 좋다. 그렇다면 일제가 동남아지역을 침략하면서 동남아 원주민 언어를 되살리려는 노력을 기울였던 사실과 비교해야 비로소 비교사가 된다. 특히 인도·미얀마 같은 지역은 영국과 일본의 침략을 동시에 받은 경우인데 이런 경험에 대한 이해가 전혀 드러나지 않아 ‘재인식’이 비교사적 작업인지 회의가 든다. 또 이영훈 교수는 문명사 얘기를 하는데, 참 좋은 얘기다. 주목할 점은 문명사 바람이 불고 있는 프랑스에서 지금 쏟아져 나오고 있는 책이 주로 노예무역을 다룬 책이라는 점이다. 문명 건설과정에서 팽창과 확대만 보는 게 아니라, 숨어 있는 검은 그림들까지 다 드러내보자, 명(明)뿐 아니라 암(暗)까지 함께 보자는 것이다. 왜 이런 측면은 무시하는지 모르겠다. 동시에 일반인의 생활상을 드러내는 미시사·문화사적 접근도 좋다. 그런데 1930년대 이후를 다루면서 어떻게 그 관점만 고집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1937년 중·일전쟁으로 완전한 전시체제가 들어서는데 이 틀은 무시한 채 모던 보이, 모던 걸만 얘기할 수 있나. ●‘인식’,‘재인식’보다 더 흥분한 언론들 이 어떤 기자는 뉴라이트로 쏠린 보도에 자기는 책임 없다는 식으로 해명전화를 했다. 원래 처음 책 출간 소식을 알린 신문은 그 뉴스를 특종으로 생각하고 다른 신문은 이미 예전에 다 나왔던 기사로 생각하더라. 그런 것들을 보니 특종 욕심 속보 욕심에 싸움 붙이고, 그런 것에 언론이 더이상 집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 학문적 논쟁 자체는 문제될 것이 없다.‘인식’과 ‘재인식’ 필자들이 무슨 원수진 것도 아니고…. 그런데 언론에서 차분하게 따져 보기보다 그냥 ‘인식’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니까 문제다. 더구나 ‘인식’의 저자들은 가르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이런 식으로 ‘인식’을 매도하면 ‘인식’의 저자들은 모두 ‘천박한 프로파간다나 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인식’은 기본적으로 몇몇 학자들이 동원되다시피 해서 쓴 책이 아니다. ●생산적 논의로 이어져야 이 어쨌든 기존의 틀에 박힌 현대사를 재인식한다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다만 평행선을 달리는 것처럼 논쟁을 벌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재인식’은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렇다면 ‘인식’이 가지고 있던 사회사적인 의미나 학술운동적인 의미 등을 받아들이고 제대로 평가해 주는 바탕 위에서 ‘재인식’이 진행돼야 한다. 왜 선학들의 고민이 쌓인 책을 ‘빨갱이 책’으로만 몰아가야만 하나. 김 어떤 분들은 사회가 한쪽으로 쏠렸을 때 지식인들이 반대쪽 얘기를 해서 ‘물타기’를 해야 한다는 말씀도 한다. 그래서 ‘인식’과 ‘재인식’이 자꾸만 맞물려서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다만 프랑스와 비교할 때 한국사의 경계가 더 넓어져야 한다. 프랑스는 ‘어디까지가 프랑스의 역사냐.’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프랑스사가 아니라 역사를 가르친다. 이에 반해 우리는 한국사와 서양사간의 골이 너무 깊다. 넘나드는 역사인식이 필요할 듯하다. 대담 김종면 문화부차장 jmkim@seoul.co.kr 정리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이광수 친일적 민족주의자 평가도 모순” ‘재인식´ 출간에 대한 진보쪽 인사들의 평가는 냉혹하다. 한국 근·현대사 박사학위 1호인 성균관대 서중석 교수는 “한국사의 몇몇 특징적인 계기만 잡아내 확대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 전반에 대해 깊이있는 연구를 했는지 의문”이라면서 “결국 양측이 앞으로 계속 내놓을 논문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또 일제시대·북한문학 연구자로 유명한 원광대 김재용 교수는 춘원 이광수를 ‘친일적 민족주의자’라고 평가한 ‘재인식’의 주장을 “형용모순”이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문인들의 경우 외형적으로 어떤 직위를 차지했느냐 안 했느냐, 무슨 글을 발표했느냐 안 했느냐와 같은 단순잣대를 들이대지 말고 그 개인의 내면논리로서 친일 여부를 봐야 한다는 점에서는 동의한다.”면서 “그러나 기본적으로 민족주의는 식민주의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일제를 용인하는 민족주의’,‘친일적 민족주의’란 존재할 수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박정희시대 평가를 두고 재인식의 책임편집자 가운데 한 명인 서울대 이영훈 교수와 논쟁을 벌여왔던 경상대 장상환 교수 역시 ‘재인식’에 대한 평가가 지나치게 부풀려졌다고 봤다. 장 교수는 “일례로 ‘농지개혁’문제를 다룬 성균관대 김일영 교수의 글은 ‘인식’의 글과 큰 차별성이 없다.”면서 “좌파적인 ‘인식’을 우파적인 ‘재인식’이 뒤집었다고 단순하게 평가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일부는 기존 우익의 역사인식을 그대로 따온 데다 대부분 특별히 진전된 내용이 없다는 점을 들어 ‘재인식’이라기보다 ‘재탕’에 가깝다는 혹평도 나오고 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해방전후사 재인식’ 이념논쟁 가열

    지난 9일 발매된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이하 ‘재인식’·도서출판 책세상)을 둘러싼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객관적 사실에 기초한 한국 현대사를 표방한 ‘재인식’은 한국 현대사의 주류적 역사해석을 제공해 온 것으로 평가받는 ‘해방전후사의 인식’(이하 ‘인식’·1979년 제1권 출간)을 좌파적 시각에서 씌어진 책으로 공격하고, 여기에 일부 보수언론이 가세하면서 이념논쟁화할 조짐이다. 이처럼 화제가 되면서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만 2권짜리(총가격 6만 1000원)인 ‘재인식’이 100여권 팔리고 출판사측이 추가 인쇄에 들어가는 등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책 출간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언론들은 ‘인식’을 진보와 좌파적 역사관을 대변하는 책으로 간주하는 한편,‘재인식’에 대해서는 여전히 뉴라이트 혹은 보수우파적인 학계의 집단 산물로 규정한다. ‘재인식’ 필자들은 이번 공동연구 성과물이 ‘보수우파’로 비쳐지는 데 대해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재인식’ 편집대표인 서울대 박지향 교수(서양사학과)는 “우리가 ‘해방전후사의 인식’에서 드러난 역사해석을 우려하는 이유는 그것이 ‘좌파적’이기 때문이 아니다.”라면서 “그렇다고 ‘재인식’이 우파적 역사해석이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이 책의 또다른 필자는 “서울대 이영훈 교수나 성균관대 김일영 교수처럼 뉴라이트 운동과 연관 있는 사람들이 필자로 참여하긴 했지만 그들의 한국 현대사 해석이 반드시 ‘뉴라이트’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이런 입장과 달리 ‘재인식’에 실린 논문의 상당수는 ‘보수우파’적 시각이 짙은 것이 사실이다. 일제강점기와 친일파 문제, 이승만·박정희 정권의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 등이 대표적인 예다.‘인식’의 필진으로 참여한 한 인사는 친일파의 대명사격인 춘원 이광수를 ‘친일 내셔널리스트’로 자리매김하고, 좌파계열 민족주의자로 간주되는 작가 이태준을 일본제국주의자적 성향을 지닌 인물로 규정하는 것을 어떻게 학문적 성과라고 내세울 수 있느냐고 반박한다. 이번 ‘재인식’을 둘러싼 논란은 한국 사회에서 일종의 ‘성역’처럼 군림해온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해 정면으로 맞서 ‘탈(脫)민족주의’를 주창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학계나 언론이 ‘재인식’이 표명한 탈민족주의 화두는 접어둔 채 소모적인 이념 공방으로 치닫지 않을까 하는 점은 우려된다.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새마을운동 발상지 ‘업그레이드’

    새마을운동 발상지 ‘업그레이드’

    새마을운동의 발상지인 경북 청도군 신도마을이 ‘새마을 명소’로 다시 태어난다. 7일 청도군에 따르면 청도읍 신도1리에 32억원(교부세 10억원, 지방비 22억원)을 들여 새마을운동의 유래와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3800여평 규모의 ‘새마을운동 기념공원’을 조성키로 했다. 이곳에는 전시관과 소공원 등이 들어선다. 250평 규모의 전시관에는 새마을운동이 시작된 1970년부터 지금까지 신도마을을 비롯한 청도군의 변천사를 담은 사진과 새마을운동 규약집, 새마을운동에 동원된 농기구 등이 전시된다. 소공원에는 산책로와 사색공간 등이 만들어진다. 또 마을 입구에 꽃길이 조성되고,50여채의 가옥도 새롭게 단장된다. 오는 3월 착공,2007년 완공할 계획이다. 새마을운동은 1969년 8월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수해지역 시찰을 위해 열차를 타고 부산으로 가던 중 자력으로 수해 복구작업을 펼치는 신도마을 주민들을 보고 “모든 농촌이 이 마을처럼 됐으면 좋겠다.”고 희망한 것이 계기가 됐다. 청도군 관계자는 “그동안 여러 곳에서 새마을운동 발상지라고 주장,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며 “이번 사업을 통해 신도마을이 70년대초 전국 방방곡곡에 ‘잘살기 운동’의 불길을 지핀 새마을운동이 시작된 곳이라는 것을 확인시키겠다.”고 말했다. 청도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한·일 외교문서 공개] DJ납치 ‘정치적 해결’

    [한·일 외교문서 공개] DJ납치 ‘정치적 해결’

    한·일 양국이 1973년 8월 당시 야당 지도자인 김대중씨 납치사건을 진상규명이 아닌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북송된 재일한인은 1972년까지 9만 442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또 1950년대 말에 주한미군이 소형 핵무기를 발사할 수 있는 ‘원자포’를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외교통상부가 5일 공개한 외교문서에서 드러난 사실이다. 이 외교문서에는 김대중씨 납치사건과 관련,“한·일 양국관계와 국민 감정, 여론, 내외 정치적인 상황을 감안할 때 국제형사사건의 틀을 벗어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그 여파를 고려해 이 사건의 진상이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정치적인 해결이 있어야 한다.”고 기록돼 있다. 특히 사건 발생 50여일이 지난 11월2일 일본 총리 관저에서 김종필(JP) 총리와 다나카 총리간 대화에서는 진상규명보다는 밀실에서 적당히 사건을 무마하려 했던 정황도 나타난다. 하지만 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회(UNCURK)는 납치 10여일 후 한국 정부가 납치사건에 개입했을 가능성을 담은 보고서를 유엔에 보낸 사실이 확인됐다. 한편 ‘경무대와 주한미대사관 교환문서’(1958년)에 따르면 주한미군은 당시로서는 현대식 무기인 280㎜ 원자포 6문을 보유하고 있었다. 1960년대 말에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자 정부는 국군의 군사력 강화를 위해 미국에 전력증강을 요구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1년여 동안의 치열한 외교전 끝에 특별군사원조금 5000만달러를 받아내기도 했다. 박정현 김수정기자 jhpark@seoul.co.kr [외교통상부 공개 문서 보기] ☞ 재일동포 북송재개, 1971 ☞ 재일동포 북한 송환, 1972 ☞ 김대중 납치사건, 1973. 전12권 - V.1 동 사건을 위요한 한.일본간의 외교교섭 및 수사협력, 8-9월 ☞ 김대중 납치사건, 1973. 전12권 - V.2 동 사건을 위요한 한.일본간의 외교교섭 및 수사협력, 10-11월 ☞ 김대중 납치사건, 1973. 전12권 - V.3 대통령 및 국무총리앞 보고, 8-11월 ☞ 김대중 납치사건, 1974. 전3권 - V.1 김대중 문제에 관한 한.일본간 외교교섭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태광그룹-故 이임용 창업주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태광그룹-故 이임용 창업주家

    태광그룹은 겉의 화려함보다 내실을 추구한다. 재벌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사옥도 초라하기 그지없다. 서울 중구 장충동 옛 동북고등학교 교사(校舍)를 30년여년 동안 그룹 사옥으로 사용하고 있다. 여타 재벌과 달리 초고층 호화 사옥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재계 서열 30위권이면 서울 광화문 한복판이나 강남에 번듯한 빌딩을 사옥으로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룹 관계자는 “6층짜리 학교 건물이지만 아직 쓸 만하다.”고 말한다. 겉보다 속을 중시하는 태광의 사풍이 여실히 읽혀진다. 이같은 경영철학은 국내 재벌 가운데 재무구조가 가장 탄탄한 그룹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 이는 창업주인 고(故) 이임용 회장 때부터 관통하는 ‘내실경영’이 면면히 이어진 결과다. ●대쪽 같은 선대 회장의 결혼과 창업, 그리고 성장 창업주인 고 이 회장은 지난 1921년 경북 영일군에서 중농이었던 부친 이우식씨와 모친 정막랑씨 사이의 3남1녀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이 창업주는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간조(簡井)실업학교를 졸업한다. 그는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 등으로 일본의 정세가 혼란스러워지자 이듬 해인 42년 귀국길에 오른다. 이후 부친의 권유로 당시 22세 청년이던 그는 동네에 사는 이선애씨와 혼례를 올렸다. 신부 이씨는 이 창업주의 부친과 친분이 두터웠던 한동네 유지인 이송산씨의 맏딸이다. 민주당 총재를 지낸 이기택씨와 ‘창업 동지’ 이기화(태광그룹 회장까지 지냄)씨는 이씨의 남동생이다. 이기화씨는 부산고·서울대 화공과를 졸업한 뒤 이 창업주와 오늘의 태광그룹을 일궜다. 이 창업주는 야당 거물이던 이기택씨와 처남매부지간이란 이유로 군사정권 시절 여러차례 세무조사를 받는 등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처남이 유명한 정치인이었던 게 이 창업주에게는 결코 득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는 “기업은 절대 정치와 연결돼선 안 된다.”며 사업 외에는 한눈을 팔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찍히면 죽던 서슬퍼런 군사정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정경 분리를 평생의 신조로 삼았기 때문이다. 베테랑 세무조사 요원들을 투입, 몇 날 며칠을 털어도 먼지 하나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한국 기업사에 전례없는 일이다. 이씨와 중매 결혼한 이 창업주는 공직(면사무소) 생활을 하며 단란한 가정을 꾸린다. 그러던 그에게 결정적인 전환점이 찾아왔다. 바로 6·25전쟁이다. 1951년 공직을 접은 이 창업주는 전쟁 이듬해인 1954년 부산 문현동에 모직 공장을 차리고 태광산업사를 설립한다. 이 회사가 바로 태광그룹의 모체다. 이후 1961년 전 삼호그룹 조봉구 회장과 동업을 시작했으나 동업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 창업주는 조 회장과 결별한 뒤 부산 가야동에 새로운 공장을 신설하며 태광산업사를 주식회사로 출범시킨다. 초기 태광은 이 창업주와 이선애씨가 함께 일궈냈다고 해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이선애씨가 부산에서 소규모 직물공장에 손을 댔고 기업이 커지면서 이 창업주는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기업경영에 합류했다. 이후 태광은 섬유를 기반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한다. 박정희 정권이 경제 개발과 수출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면서 아크릴을 생산하던 태광은 눈부신 호황을 누렸다. 당시 아크릴은 양모 대체품으로 수요가 많았고 경쟁업체가 적어 태광의 고속 질주를 견인했다. 이 창업주는 스판덱스·나일론 등으로 품목을 다양화했다. 섬유 호황기인 1970년대까지 내놓은 제품마다 시장의 돌풍을 일으켜 국내 최대의 섬유업체로 성장했다. 태광은 이 시기에 동양합섬, 고려상호신용금고, 흥국생명, 대한화섬, 천일사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몸집을 불려 나갔다. 화섬·석유화학에 금융이 붙으면서 태광은 본격적인 성장과 함께 그룹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도약기를 맞은 셈이다. ●휴일에도 은행 이자는 큰다 태광그룹은 은행돈을 거의 안 쓰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타계한 이 창업주의 근검절약과 소탈함은 재계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 타계하기 전까지 이 창업주가 살던 서울 장충동 2층 양옥집은 지금도 부인 이선애(78)씨가 지키고 있다. 이 집에는 30∼40년 된 옛 가구들이 그대로 있다. 회사 관계자는 “현대 정주영 회장에 버금갈 정도로 검소했다.”고 이 창업주를 회고한다. 그는 해외이든 국내이든 출장길에는 새로 지은 고급 호텔을 이용하는 법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수십년 동안 단골로 다닌 낡은 호텔을 고집했다는 것이다. 점심도 설렁탕 한 그릇으로 후다닥 끝낼 정도로 무척 소탈했다. 이 창업주는 “은행돈을 빌리면 토·일요일 등 은행이 쉬는 동안에도 이자는 불어난다.”며 무차입 경영을 추구했다. 돈을 빌려 문어발식으로 확장하지도 않았다. 번 만큼 투자한다는 기조를 유지했다. 매출 규모 1조 3000억원인 모기업 태광산업의 부채 비율이 거의 제로인 것도 이같은 경영철학에서 비롯됐다. 절약 경영과 남의 돈을 빌려 쓰지 않고 수익만큼 투자하는 실속경영은 그룹을 더욱 튼튼하고 알차게 만들었다. 인수한 부실기업도 얼마 지나지 않아 건실한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이 창업주는 또 외부에서 전문경영인을 영입하지 않고 공채 출신을 키워 경영진으로 기용했다. 기획력과 업무 추진력을 인정받은 그의 처남 이기화씨는 이 창업주의 사후 태광그룹 회장에까지 올랐다. 또 공채 출신인 류석기·강석명·최운형씨 등이 중용됐다. 그의 이런 원칙적이고 대쪽 같은 성품은 자녀들의 혼사로도 이어진다. ●화려한 혼맥…‘연애결혼은 없다´ 이 창업주는 생전에 모두 6명의 자녀를 뒀다. 그러나 그는 자녀들의 연애결혼을 절대 허용치 않았다. 그는 평소 사대부가의 유교적인 면을 강조해와 전통 관습을 무척 중시했다. 재벌가의 혼사가 연애결혼보다 중매에 무게를 두고 있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3남3녀를 하나같이 중매결혼시켰다는 것은 가풍을 짐작케 한다. 이 창업주는 집안 어른이나 친지들이 지체 있는 가문의 훌륭한 배우자를 찾아내 중매를 넣어 혼사를 성사시키는 방식으로 자녀들의 혼사를 치러왔다. 이처럼 중매 일변도로 자녀 혼사를 치른 것은 중매야말로 좋은 가문의 좋은 배우자를 폭넓게 고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으로 여겨진다. 때문에 태광그룹 2세들의 혼맥은 서민의 가계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울 정도로 격이 높고 화려하다. 태광의 사돈가가 사람들은 당시에 내로라 하는 정·관·재계의 유력 인사다. 하지만 이 창업주는 자녀들 혼사로 정·관·재계의 거물들과 사돈이 되었지만 이들을 경영에 끌어들이는 법은 결코 없었다. 지금도 모기업인 태광산업의 사장은 태광 신입사원 출신인 이화동(62)씨다. 이 창업주는 이선애씨와의 사이에 식진(사망)·영진(사망)·호진(44) 3형제와 경훈(52)·재훈(50)·봉훈(48) 세 자매를 뒀다. 이 창업주의 개혼(開婚)인 식진씨의 혼사는 비교적 평범한 집안과 이뤄졌다. 그러나 이후로는 모두 유력 인사와 사돈을 맺는다. 이 창업주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태광산업 영업과장으로 있던 장남 식진씨를 1975년 개인사업을 하던 진재홍씨의 맏딸 임순(54)씨와 결혼시켰다. 식진씨는 태광산업 부회장까지 역임했다. 식진씨의 장인 진씨는 면방업체인 경방에서 일하다 독립했다. 서울대 공대 출신으로 공대 동창회장을 맡기도 했다. 식진씨 부부는 정아·성아·원준 등 1남2녀를 뒀다. 장녀 정아(31)씨는 결혼했다. 연세대 상대를 나온 차남 영진씨는 어머니 이선애씨 친구의 중매로 장상준(전 동국제강 회장)가의 4남2녀 중 막내딸인 옥빈(54)씨와 1976년 결혼했다. 태광산업에 입사한 뒤 계열사인 대우파일, 흥국생명, 고려상호신용금고 등에서 중역으로 활동했다. 이들 사이에는 성준·성은 남매가 있다. 현재 그룹 회장을 맡고 있는 호진씨의 부인 신유나(42)씨는 롯데 신격호 회장의 동생인 신선호(71·일본 산사스식품 회장)씨의 맏딸이다. 호진씨는 대원고·서울대 경제학과(81학번)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코넬대 경영학석사(MBA), 뉴욕대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슬하에 현준·현나 남매가 있다. 이 창업주의 세 딸은 모두 재원으로 꼽힌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세자매 모두 이화여대 선후배이라는 점이다. 이는 유교적 관습을 중시하는 이 창업주의 독특한 자녀 교육관이 스며들어 있다고 봐야 한다. 태광의 혼맥은 이대 출신의 세 딸을 출가시키면서 보다 화려하게 뻗어 나간다. 장녀 경훈씨는 진주의 대지주이자 LG그룹의 창업 멤버인 허만정가의 막내 며느리가 됐다. 경훈씨의 남편은 유통전문기업 GS리테일 대표인 허승조(56)씨다. 이들의 결혼은 경훈씨 친척 할머니의 중매로 이루어졌다. 이임용가에서 허만정가로 이어가면 조홍제-송인상-신덕균가와 만난다. 이연두-박치현-김준성-김우중가와도 연결된다. 경훈씨는 남편 허승조씨와의 사이에 지안·민경 자매를 두고 있다. 이 창업주는 차녀 재훈씨를 양택식 전 서울시장의 장남 원용(56)씨와 결혼시켰다. 원용씨는 현재 경희대 의대 교수로 있다. 이 창업주는 재훈씨를 양택식가로 출가시키면서 정·관계 유력인사와 연결된다. 양택식가를 통해 홍진기-노신영-정주영가로 연이 닿는다. 김한수-김복동가로도 이어진다. 특히 이 창업주는 이 결혼을 통해 업계의 라이벌인 한일합섬의 창업주 김한수가와 한 다리 건너 사돈이 된다. 재훈씨 부부는 서윤·서정·서인·혁준 등 1남3녀를 두고 있다. 3녀 봉훈씨는 한국베링거인겔하임 한광호가의 외아들 태원(49·한국베링거인겔하임 회장)씨와 결혼했다. 이들 사이에는 동우·상우·정우 3형제가 있다. ●뉴미디어·금융으로 21세기를 준비 태광은 1996년 일대 전환기를 맞는다. 그 해 11월 창업주인 이 전 회장이 75세를 일기로 타계하면서 3남 호진씨가 경영 전면에 부상한다. 호진씨는 이 창업주가 그룹의 후계자로 일찍 점찍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1997년 태광산업 사장에 이어 2004년 태광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호진 회장은 섬유가 주력인 태광의 업종에 메스를 댄다. 추진력에 관한 한 부친 못지않은 ‘신형 엔진’ 이 회장은 ‘조용한 기업’ 태광에 거센 변화의 바람을 불어 넣었다. 변화의 추동 세력은 MSO로 표현되는 종합유선방송과 금융 등 두 갈래다. 이 회장은 미래 태광의 신성장 동력이 여기에 있다고 확신한다. 따라서 1조 5000억원 수준으로 알려진 막강한 현금 동원력을 바탕으로 과감한 인수·합병(M&A)에 나서고 있다. 이는 섬유와 화학 중심에서 뉴미디어와 정보기술(IT), 금융기업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미디어 기업으로의 급성장이다. 이 회장은 케이블TV 회사인 ‘태광 티브로드’를 세웠다. 티브로드는 태광, 미래, 통신 등의 앞글자 ‘T’와 브로드 캐스팅, 브로드 밴드의 ‘브로드’를 합성해 지은 이름이다. 티브로드는 지역 케이블TV 20개를 거느리고 있다. 가입자 300만명, 시장 점유율 24∼25%로 명실상부한 국내 1위다. 아직까지는 많은 수익을 내고 있진 못하지만 뉴미디어는 태광의 미래를 밝혀줄 한 축임에 틀림없다. 이 회장이 2003년 이후부터 미디어 부문에 집중 투자하는 이유도 이런 이유에서다. 뉴미디어는 진헌진 티브로드 사장과 이상윤 안양방송 및 수원방송 사장이 이끌고 있다. 진 사장은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이 회장의 대학교 동창이다. 2002년 이 회장이 직접 스카우트했을 정도로 신임을 받고 있다. 금융 쪽도 더욱 살을 붙여야겠다는 게 이 회장의 전략이다. 현재 흥국생명, 고려상호저축은행, 태광투자신탁운용으로는 아무래도 무게가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쌍용화재와 예가람상호저축은행, 피데스증권 등의 인수작업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태광산업은 지난달 쌍용화재와 신주인수계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태광산업은 쌍용화재 지분의 50% 이상을 확보했다.‘흥국생명+쌍용화재’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의 근거는 생명보험·손해보험 상품의 교차 판매다. 태광은 쌍용화재 인수 열기가 식기가 무섭게 피데스증권 인수에 나섰다. 피데스증권은 현재 주식거래 업무만 하는 중소형 증권사지만 태광은 이 회사를 인수해 종합 증권사로 변신시킬 계획이다. 예가람상호저축은행은 서울·경남에 기반을 둔 저축은행이다. 이들 기업의 인수작업이 순조롭게 매듭지어지면 태광그룹은 생보, 손보, 증권, 투신운용, 저축은행까지 아우르는 종합금융그룹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금융 쪽은 류석기 흥국생명 부회장과 김성태 흥국생명 사장의 투톱 체제다. 김 사장은 씨티은행 출신으로 LG증권 사장을 지냈다. 태광산업 출신인 오용일 흥국생명 전무도 눈여겨 볼 전문 경영인이다. 이호진호(號)의 태광은 대변신을 꿈꾼다. 현재의 청사진이 조만간 구체화되면 태광그룹은 화섬 석유화학, 금융, 미디어, 레저(태광관광개발), 육영재단(일주학술문화재단, 일주학원)으로 새 틀을 짜게 된다. ykchoi@seoul.co.kr ■ 정도·신의는 기업의 생명 ‘정도’와 ‘신의’.50여년 전 부산의 한 작은 시장에서 출발해 오늘의 태광그룹을 일군 창업주 고 이임용 회장이 금과옥조처럼 여긴 명제다. 이를 지키지 않는 거래처와는 두번 다시 거래를 이어가지 않았을 정도다. 정도와 신의를 기업의 목숨이자 기업의 자격이라고 늘 강조했던 이 전 회장은 한눈 팔지 않고 기업 경영에만 충실했던 기업인이다. 태광은 이 전 회장의 타계 10주년을 맞아 그의 기업·국가관 등을 조명하기 위한 자서전 출간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특히 어록 정리에 신경쓰는 눈치다. 그의 어록에서는 경영관이 그대로 묻어난다. 지난 1973년 단 닷새 만에 흥국생명을 인수한 이 전 회장은 첫 임원회의에서 “보험회사의 재산은 보험가입자의 재산”이라며 “흥국생명의 돈을 태광에서 가져다 쓰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리고 이 약속은 지켜졌다. 이 전 회장은 ‘오래된 만남’을 중시했다. 태광의 주거래 은행은 조흥은행. 양자의 관계는 5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오직 하나의 은행만을 고집한 이 전 회장은 1975년 대한화섬 인수 후 많은 임원들이 복수은행 거래를 건의했지만 “새 친구 열 명을 사귀기 위해 헌 친구 한 명을 안 버린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용은 이임용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자신의 입으로 말한 약속은 반드시 지켰으며 계약서는 단지 둘 사이에서 오고 간 이야기를 정리해 놓은 종이에 불과했다. 타계 몇해 전 신입사원 특강에서 신용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닷새 만에 서는 장에 못가는 사람이 장에 가는 친구에게 무엇 무엇을 사다 달라고 부탁을 한다. 부탁을 받은 사람은 혹 자기 물건 사는 것은 잊어버리더라도 결코 친구의 부탁을 잊어서는 안된다. 만일 그 물건이 제수용품이었다면 남의 집 제사를 망치는 격이 돼 옛날 말로는 사람 같지 않은 꼴이 된다. 그래서 약속은 무서운 것이고 지켜야 하는 것이다.” ykchoi@seoul.co.kr ■ 베일에 싸인 오너一家 재계에서 태광그룹만큼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오너 일가’도 없다. 창업주인 이임용 전 회장은 물론 후계자인 이호진 현 회장 역시 언론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취재를 위해 이 회장 면담을 요청했으나 ‘불가하다.’는 단호한 한마디였다. 오너 일가가 이처럼 몸을 꽁꽁 숨기는 데에는 격동기를 헤쳐온 태광그룹의 기업사와 유교적 관습이 맞물려 있다. 태광에 있어 정치는 짐이었다. 창업주인 이 전 회장은 야당의 거목인 처남(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을 두면서 박정희·전두환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으로부터 강도 높은 세무사찰을 받았다. 고속성장을 질주한 태광이었지만 그럴수록 기업경영만큼은 살얼음판을 걷듯이 할 수밖에 없었다. 한눈 팔면 죽는다는 것을 절감한 이 전 회장은 정치는 물론이고 언론에도 자연히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유교적 관습을 중시하는 이 전 회장의 짙은 보수성도 중요한 부분이다. 이는 태광 일가의 여성들에게서 쉽게 발견된다. 태광가(家)의 여성들에게서는 다른 재벌가와 달리 우먼파워를 찾아볼 수 없다. 여성으로서 적합한 문화계나 학술계에는 진출해 있을 법도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누구도 외부에 노출되지 않았다. 이 전 회장의 세 딸도 그렇고 며느리도 마찬가지다.3형제 못지않게 똑똑한 것으로 알려진 세 딸 중 남녀공학 대학을 나온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큰딸 경훈과 둘째 재훈, 막내딸 봉훈씨 모두 이화여대를 졸업했다. 이들 모두 다른 대학은 생각지도 못한 게 아닐까. 경훈·봉훈씨는 남편이 재계의 실력자들이지만 외부활동 대신 살림을 하고 있다. 태광가의 며느리들도 전혀 노출돼 있지 않다. 삼성·현대가 등 재벌들의 며느리들이 문화·재계의 저명인사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40대 중반인 이 회장도 전경련 활동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외부 노출을 기피하고 있다. 선친 스타일을 빼닮았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래서 ‘은둔의 경영자’라는 칭호를 얻었다. 하지만 이 회장은 현장에 매우 충실한 CEO다. 캐주얼 차림으로 불쑥 현장을 찾아 임직원들을 놀라게 한다. 이 회장은 기업경영 못지않게 예술에 조예가 깊다. 서울 광화문 흥국생명 사옥도 사실상 이 회장 작품이다. 바닥재부터 인테리어, 사무실 소품 등에 이르기까지 이 회장의 손때가 묻지 않은 것이 없다. 회사 관계자는 “CEO가 안됐으면 예술가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ykchoi@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현대 ‘묵향’ vs 옛 ‘묵향’

    옛 묵향의 맛이 깊고 고졸한 데 있다면, 요즘 묵향의 매력은 그에 더해 창조적인 세련미까지 갖춘 데 있지 않을까.2월들어 서울 강남과 강북에서 나란히 열리는 ‘문자향 서권기’전과 ‘소전 손재형’전을 보면 이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청담동 박여숙화랑과 려갤러리가 공동 기획한 ‘도자향 서권기(陶瓷香 書卷氣)’전은 붓, 먹, 종이, 벼루의 문방사우를 테마로 현대 도자와 한국적인 현대회화의 만남을 시도하는 전시다. 전시 제목 ‘도자향 서권기’는 19세기 조선 남종 문인화를 대표하는 추사 김정희의 예술적 신념인 ‘문자향(文字香) 서권기’에서 따온 것. 그림에는 모름지기 문자의 향기와 서책의 기운이 담겨야 한다는 뜻으로, 문인화의 가치를 강조할 때 흔히 쓰는 말이다. 김익영 이천수 이기조 이헌정 이영호 등 도예가들이 연적, 연병, 문진, 필통 등 다양한 도자작품을 선보인다. 또 한국적 현대회화를 대표하는 강미선 문봉선 송영방 이왈종 정광호 허달재 등이 문인화적 예술관에 근거한 회화와 조각작품을 내놓는다. 진청색 필통에 붓, 편지지, 연필 등이 보일 듯 말 듯 그림자처럼 꽂힌 모양을 표현한 강미선의 회화작품 ‘도자기소묘3’, 수천년간 땅속 깊이 묻혀 있다가 발굴된 듯한 느낌을 주면서도 현대적 조형미를 강조한 ‘문방구1’ 등의 작품은 전통적인 문인화와 도자기의 창조적 계승 가능성을 보여줘 주목된다.7일부터 21일까지. 박여숙화랑과 려갤러리 두 곳에서 동시에 열린다.(02)549-7564. 관훈동 갤러리 우림 1∼3층에선 ‘소전 손재형’전(7∼16일)과 ‘소치 허련’전(17∼27일)이 잇달아 열린다. 추사 김정희가 19세기 한국서예를 대표한다면 소전(素) 손재형(1903∼1981)은 20세기 한국서예를 대표한다고 할 만큼 현대 서예사에서 독보적인 인물이다. 소전은 일본에서 몇달 동안 머물며 노력한 끝에 일본으로 건너간 추사의 대표작 ‘세한도’를 찾아올 정도로 추사를 존경했으며,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서예를 가르치기도 했다. 전·예·해·행·초 오체(五體)를 섭렵한 소전은 특히 갑골문을 연구해 자신만의 독특한 서체를 이뤘다. 이번 전시에선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작품 20여점과 ‘묵련’(墨蓮)‘묵란’(墨蘭)‘연화도’(蓮花圖) 등 서화 31점을 선보인다. 소치(小痴) 허련(1809∼1893)은 진도 출신으로 추사의 애제자. 조선 남종문인화를 계승해 주옥 같은 작품을 남겼다.이번 전시에선 개인 소장의 미공개 작품들을 중심으로 소치의 대가적 풍모를 느낄 수 있는 작품 50여점을 감상할 수 있다.(02)733-3738.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한·일 외교문서 공개] DJ납치 남는 의문점

    5일 1만 7000여쪽의 한·일 외교문건이 비밀해제됐지만 그동안 제기된 김대중(DJ)씨 납치사건에 대한 핵심 의혹은 풀리지 않았다. 먼저 박정희 대통령 직접 개입설의 진위. 지난 1998년 공개된 ‘KT공작’ 문건에서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주도로 치밀한 계획에 따라 납치가 이뤄졌고 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기록은 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지시했다는 기록은 없었으며. 이번 외교문서에서도 단서를 추정할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 다음은 단순 납치인지, 아니면 살해목적이었는지 여부. DJ는 생환 후 검찰 진술서에서 “범인들이 눈에는 붕대와 스카치 테이프를 3중으로 감았으며, 입에는 나무로 재갈을 물린 채 손발을 결박한 후 오른쪽 손발에 각각 50㎏ 정도의 물체를 매달고 물속에 내던질 듯한 준비를 하다가 중지하므로 잠시 졸다 깨는 순간 비행기 소리를 들었다. 물 좀 달라고 했으나 ‘병신 육갑하네.’라고 거절하다 주스, 미숫가루, 담배도 주었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납치에 가담한 용금호 선원들은 그런 일이 없었으며,DJ가 죽일 것이냐고 묻기에 “죽이지 않는다.”고 대답하자, 배위에 누워 자신의 배위에다 성호를 그었다고 모 언론에 증언한 바 있다. 이철희 중정 정보차장도 수년 전에 “이후락씨 지시로 납치했지만, 살해목적은 아니었다.”고 부인했다. 그후 DJ는 범인들이 자신을 수장하려 했으나, 미국의 항공기가 출현해 수장을 모면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용금호 선원들은 비행기는 보지 못했으며, 엔진소리를 잘못 들었을 수 있다고 증언했다. 미측도 사건 당일 주한 미 대사인 하비브가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 한국 정부를 압박했지만, 비행기를 보내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과학자·대중의 ‘부적절한 만남’

    황우석 사태는 단순한 과학사기 사건이 아니다. 과학자와 대중의 ‘잘못된 만남’이 빚어낸 참상이라는 게 공통된 견해다. 단순 과학사기 사건이라면 과학적 거짓이 드러난 그 순간 모든 결론은 이미 내려진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에 다른 시각이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상지대·성공회대·한신대 부설연구소 민주사회정책연구원은 2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1층에서 ‘황우석 사태로 보는 한국의 과학과 민주주의’를 주제로 28차 심포지엄을 연다. ‘기획적 속임과 자발적 속음의 진화발생학적 해부’를 발표하는 최종덕 상지대 철학과 교수는 ‘속고 속이는’ 과정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분석한다. 최 교수는 스스로 도취되어 가상의 대의명분(난치병 치료)을 제시한 뒤 자기 중심으로 시스템을 탁월하게 조종하는 것을 속임의 시작이라 본다. 이 속임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속아줄 준비가 되어 있는 대중이 필요하다. 이 대중의 특징은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더 이상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 둘의 결합을 가능하게 해준 것이 바로 언론이다. 사회 전체가 자기기만의 최면으로 빨려들어간 것은 황우석과 대중이 언론을 통해 부적절하게 만났기 때문이다. 강신익 인제대 의대 교수는 황우석 사태를 일종의 한국사회의 병리적 현상으로 본다. 황우석 신드롬의 병력, 증상, 체질을 점검한 뒤 역시 비슷한 결론을 내놓는다. 요컨대 ‘전문가집단과 대중간의 올바른 소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바통을 이어받은 전방욱 강릉대 생물학과 교수는 황우석 사태를 전한 언론보도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짚는다.홍성태 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이 모든 것을 종합해 황우석 사태를 ‘박정희 체계’와 ‘이중질서사회’로 분석한다. 온갖 감독기구들이 있지만 이 기구들이 관리·감독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부패의 사슬로 바뀌어버린다는 것. 거기에는 물론 성과만 좋으면 ‘만사 OK’라는 심성이 깔려 있다.조태성기자cho1904@seoul.co.kr
  • 이태현 뒤집고 백두봉 박영배, 세대교체 선언

    모래판은 세대교체를 간절히 원했고,‘골리앗 킬러’ 박영배(24·현대삼호중공업)가 그 중심에 우뚝 섰다. 프로 4년차 박영배는 30일 구미 박정희체육관에서 열린 설날장사씨름대회 백두급 결승에서 ‘황제’ 이태현(30·현대삼호중공업)을 2-1로 제압하고 차세대 기수임을 선언했다. 4강에서 ‘아마추어 돌풍’ 이충엽(수원시청)을 들배지기와 밀어치기로 누르고 결승에 선착한 박영배의 상대는 각종 대회 36회 우승 및 통산 최다승(468승)과 최다상금(5억 8146만원)에 빛나는 이태현.유연한 허리를 바탕으로 대학과 프로에서도 ‘테크노골리앗’ 최홍만(25)을 거푸 꺾어 골리앗 킬러라는 별명을 얻은 박영배였지만 덩치와 기술을 겸비한 이태현과의 상대 전적에서는 3전전패의 절대 열세. 더군다나 백두급 최단신인 박영배의 신장은 184㎝에 불과해 이태현(197㎝)을 뽑아들기엔 힘겨워 보였다. 하지만 은퇴 뒤 요리사를 꿈꾸는 ‘신세대 씨름꾼’ 박영배는 결코 기 죽지 않았다. 첫 판을 들배지기로 따낸 뒤 두번째 판을 배지기로 내줬지만, 마지막 판에서 신기에 가까운 뒤집기로 이태현을 모래판에 뉘었다.생애 두번째 타이틀인 동시에 2년연속 설날장사. 박영배는 또한 지난 92년 시작된 설날장사대회에서 2연패를 한 유일한 씨름꾼으로 기록됐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朴정권 ‘동백림 간첩단’ 과장”

    재독 음악가인 고 윤이상 선생을 비롯해 예술계·학계·관계 인사 194명이 연루됐던 1967년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은 당시 박정희 정권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간첩단’으로 확대 포장했던 것으로 드러났다.당시 중앙정보부는 피의자들의 단순한 대북 접촉 및 동조행위까지도 국가보안법 및 형법의 간첩죄를 무리하게 적용해 사건의 외연과 범죄사실을 확대·과장했다는 것이다. 수사과정에서 신체적 가혹행위가 행사됐으며, 서울대 학생서클인 민족주의비교연구회(민비연)를 공작단의 하부조직으로 왜곡하기도 했다.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는 26일 서울 세곡동 국정원에서 이같은 내용의 동백림 사건 조사 결과를 공식 발표했다.진실위는 사건 관련자들에게 포괄적인 사과를 정부에 권고했다. 진실위는 동백림 사건이 1967년 5월14일 서독주재 모 신문사 특파원 납치 사건을 계기로, 당시 북한측과 접촉한 사실이 있었던 임석진 교수가 같은 해 5월17일 당시 박 대통령을 면담해 대북 접촉사실을 고백하면서 시작된 것이라고 밝혔다.중앙정보부가 사전 기획·조작한 사건은 아닌 것으로 평가했다. 사건 관련자들은 당시 수사결과와 마찬가지로 북한방문, 금품수수, 특수교육 이수, 북측 요청사항 이행 등 실정법을 위반한 것으로 확인됐다. 진실위는 “중정이 당시 대표적인 학생서클이었던 서울대 민비연으로 수사를 확대하고 이례적으로 수사도중 10일동안 7차례에 걸쳐 사건을 대대적으로 발표한 것은 이 사건을 1967년 6·8 부정총선 규탄시위를 무력화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한편 한나라당 이계진 대변인은 “여야가 합의 처리한 과거사법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정부 각 부처가 경쟁적으로 과거사 진상을 발표하는 것은 변칙”이라고 논평했다. 이정현 부대변인은 “특정 정치세력이 정치 보복적 차원에서 역사를 일방적으로 뒤집는 것은 또 다른 진실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구혜영 박경호기자 koohy@seoul.co.kr▶관련기사 8면
  • ‘간첩·조작’ 40년 논란 종지부

    26일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실규명위가 밝힌 동백림 사건의 실체는 ‘공안기관의 무리한 확대적용’과 ‘정권의 정치적 악용’이 빚어낸 공안사건이라는 것이다. ●‘실체’를 확대적용한 공안사건 공안기관이 무리하게 확대 적용하고 정치적으로 악용한 사실은 진실위 조사결과 곳곳에서 드러났다. 당시 중앙정보부가 서울대 ‘민족주의 비교연구회’(민비연)를 동백림 공작단의 일부라고 발표한 게 대표적이다. 진실위는 “중정은 당시 6·8부정선거로 학생들의 시위가 거세지자 배후에 북한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가혹행위를 동원, 민비연과 황성모 교수에게 허위 진술을 강요했다.”고 밝혔다. 재판 결과 민비연 관련자들은 대부분 무죄선고를 받았고 민비연이 국가전복을 기도했다는 공소사실은 무죄 판결됐다. 동백림 수사과정에서 검찰 송치자 66명 가운데 23명에게 간첩죄가 적용됐지만 최종 선고결과 피고인 기운데 단 한 사람도 간첩죄가 적용되지 않았다. 사건 발생 3년 뒤인 1970년 12월까지 사형 선고를 받은 정하룡·정규명 박사를 포함, 모두 석방됐다. 단순 대북접촉자까지 간첩죄를 무리하게 적용한 탓이다. 중정이 해외 연행을 위한 ‘GK공작계획’을 수립해 30여명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서독지역 연행자는 모두 자진귀국했고 나머지는 임의동행했다고 밝혔지만 사실상 강제연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끝나지 않은 동백림 사건 동백림 사건은 ‘건국 이래 최대 간첩단 사건’이라고 불려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먼저 인지한 특이한 사건이기도 하다. 진실위는 비록 ‘정권이 사전 조작하거나 기획하지 않았던’이라는 단서를 붙이기는 했지만 당시 6·8 부정선거 시위가 이 사건 직후 수그러졌고 사형선고자가 무죄로 석방되는 등 정황상 ‘조작’으로 이해될 수 있는 대목이 많다. 중정이 ‘동백림 간첩단’이라고 발표하지 않아 진실위측은 간첩단 여부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방문, 금품 수수, 대북접촉 주선, 대북방송 청취’ 등을 예로 들어 중정은 간첩활동 혐의를 적용해 실정법 위반을 내세웠다. 사실상 간첩단임을 시사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개정 논의에 맞춰 진실위의 적극적인 재해석이 필요한 대목이다. 동백림 사건은 윤이상·이응로 선생 등 세계적인 예술가가 연루돼 조명을 받았던 사건이기도 하다. 지난 40여년 동안 분단으로 인해 ‘간첩’과 ‘조작’을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이들의 예술적 성과에 대한 ‘무형의’손실도 역사 속에 묻혀버렸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동백림 사건 중앙정보부가 1967년 7월 대학교수와 유학생, 예술인, 의사, 공무원 등 194명이 동백림(동베를린)을 거점으로 대남적화공작을 벌이다 적발됐다고 공개한 사건. 정규명씨 등 2명에게 사형이, 강빈구·윤이상씨 등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되는 등 34명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졌다. 천상병 시인은 사건 연루자인 친구로부터 막걸리 값을 받아썼다가 고초를 겪기도 했다. 독일과의 외교분쟁으로 이어질 뻔했고 연루자들은 1970년 광복절 특사로 모두 풀려났다.
  • 대한항공 프로팀 상대 첫승

    대한항공이 LG화재를 꺾고 프로팀을 상대로 시즌 첫 승을 거뒀다. 대한항공은 25일 구미 박정희체육관에서 벌어진 프로배구 경기에서 강동진(19득점)과 신영수(17득점)의 ‘좌우 쌍포’를 앞세워 이경수(28득점)가 버틴 LG화재를 3-1로 꺾고 7승(13패)째를 챙겼다. 프로팀을 상대로 한 승리는 지난해 4월10일 LG화재전 승리(3-2) 이후 15경기 만이다. 반면 주전들의 부상 속에 슬럼프에 빠진 LG화재는 시즌 10승10패로 승률이 5할로 떨어지며 3위 수성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LG화재는 용병 키드까지 2세트 수비 도중 부상을 당해 제대로 힘을 쓰질 못했다.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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