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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근혜, 이명박 고향서 ‘민심잡기’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는 5일 당내 라이벌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고향인 경북 포항을 방문했다. 지난 6월 퇴임 이후 처음이다. 박 전 대표는 이날 대구 계명대 특강에서 당내 대선주자 경쟁과 관련,“남은 기간 검증작업을 다 거치게 될 때 국민이 많은 고민을 해서 선택하게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피력했다. 또“지지율 변동은 앞으로 1년여 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 대표를 지낸 자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검증의 정도가 덜했던 이 전 시장을 노골적으로 겨냥한 언급인 셈이다. 계명대에 이은 경북대 최고경영자과정 특강에서는 중국 공산당학교 강연 내용을 꺼냈다.“공산당 정신교육을 시키는 세상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느냐.”면서 “중국측이 제 새마을운동 강연을 공산당원들에게 교육용으로 전국에 배포했다.”고 소개했다. 박 전 대표는 특히 “대구·경북은 지난 14년간 정말 어려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면서 “정권교체에 반드시 성공해서 대한민국도 살리고 대구·경북도 살려야 한다.”고 지역 정서를 부추겼다. 박 전 대표는 특강에 앞서 민심 공략에도 나섰다.‘공주’라는 이미지를 벗고 털털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죽도 어시장에서는 한 상인으로부터 빨간 장화, 조끼와 긴 비닐 앞치마, 비닐장갑까지 빌린 뒤 직접 대게를 파는 ‘이벤트’를 연출했다.“대게 사세요.”라고 외치며 1만 5000원짜리 대게를 10여분 만에 27만원어치나 팔았다. 박 전 대표는 영일만 신항 공사현장을 찾아 “영일만은 경제기적을 일으킨 시발점”이라고 전제,“지금껏 서·남해를 중심으로 L자형으로 발전했지만 이제는 U자형으로 발전해야 한다.”면서 “포항은 바로 동해안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뉴라이트 포항연합 창립식에서도 “황량한 영일만 벌판에 세운 포철은 우리 경제가 세운 기적의 출발점”이라며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자극했다.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씨줄날줄] 외모와 선거/육철수 논설위원

    영상매체 시대라서 그런지 정치인에게 외모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는 추세다. 정치인들이 성형수술을 마다않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좋은 이미지를 보이려는 노력은 어찌 보면 유권자에 대한 예의일 수 있다. 하지만 유권자 처지에선 포장은 그럴 듯한데 내용물이 형편없는 정치인을 겪어보고 나서야 깨닫기 일쑤인 게 문제다. 1971년 대선 당시 40대의 김대중 후보는 외모가 하도 수려해서 일부 열성 지지층 여성들이 그의 사진을 가슴에 품고 다녔다. 잘난 체하다가 낭패본 경우도 있다. 큰 키에 호남형인 전 의원 H씨는 선거홍보물에 몸 치수를 곁들인 전신사진을 넣었다가 유권자에게 미운털이 박혀 낙선하고 말았다. 그런가 하면 1990년대 초 민자당의 L대표는 저승사자 같은 고약한 인상 때문에 대선 선거대책위원장을 맡고도 TV출연을 자제했다고 한다. 대선이 1년 앞으로 성큼 다가오면서 항간에선 예비주자들의 외모에 대한 자평·타평이 난무한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우스갯말로 “탤런트 유인촌씨보다 잘 생겼다.”고 자랑한다. 단추구멍만 한 눈과 코맹맹이 소리는, 누가 봐도 유인촌씨와 비교도 안 되는데 본인이 애교를 부리니 속는 셈 쳐줘야 할 것 같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얼짱으로 손색이 없단다. 하얀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을 때는 어머니(육영수 여사)의 자애로움이, 심각한 표정일 때는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의 근엄함이 배어 있다고 한다. 고건 전 총리도 훤칠한 키에 외모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잘 생겼다는 평판이다.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대표는 언변과 외모로는 단연 으뜸이란다.‘봉황의 눈’을 가졌다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도 만만찮은 외모라는 게 민초들의 촌평이다. 핀란드와 스웨덴 경제학자들이 최근 예쁘고 잘 생기면 선거에 유리하다는 실증적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특히 여성의 경우 외모 프리미엄이 더 작용한다고 한다. 우리의 대선 예비주자들은 외모·경력·능력이 대개 검증됐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면 어떻게 표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후보들에 대한 호감과 신뢰도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제발 뽑아 놓고 후회하는 일은 다시 없어야겠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광화문 해체 돌입…‘제모습 찾기’ 3년 대공사

    광화문 해체 돌입…‘제모습 찾기’ 3년 대공사

    ■ 담장 330m 복원 철근콘크리트로 지어진 광화문을 철거하고 일대를 옛 모습대로 복원하는 작업이 4일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오는 2009년 말까지 복원되는 건물은 광화문을 비롯해 용성문, 영군직소, 수문장청, 군사방 등 모두 12동 169평이다. 임금이 다니던 폭 7.7m, 길이 100m의 어도(御道)와 안팎의 담장 330m도 평균 3.5m 높이로 옛 모습을 찾는다. 정부는 이날 오후 2시 경복궁 흥례문 앞 마당에서 ‘경복궁 광화문 제모습 찾기 선포식’을 갖는다. 12월4일은 1394년(태조 3년) 경복궁을 창건하고자 땅을 파기에 앞서 지신(地神)에게 제사 지내는 개토제(開土祭)를 했던 날이기도 하다. 선포식에서는 광화문의 용마루를 들어내는 이벤트와 함께 공사기간 동안 가림막으로 사용될 설치미술가 양주혜씨의 상징조형물 제막식도 베풀어진다.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이자 남문으로 북문인 신무문, 동문인 건춘문, 서문인 영추문과 함께 1395년(태조 4년)에 지어졌으며,1426년(세종 8년)에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광화문은 1492년 임진왜란으로 불탄 이래 1867년(고종 4년) 다시 지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청사가 경복궁 안에 들어서면서 1927년 건춘문 북쪽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한국전쟁 과정에서 다시 불탔고,1968년 현 위치에 불완전한 모습으로 세워져 오늘에 이르렀다. 광화문 제모습 찾기 사업이 마무리되면 모두 129동 6207평의 건물이 복원돼 고종 당시 원형의 40%를 회복하게 된다. 문화재청은 경복궁 복원정비사업으로 ▲1990년 침전 권역 ▲1999년 동궁 권역 ▲2001년 흥례문 권역 ▲2005년 태원전 권역을 복원했다. 한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한글 현판은 이웃한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옮겨져 전시된다. 새로운 현판은 광화문 복원이 마무리되는 2009년에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현판은 1867년 중건 서사관인 임태영의 현판글씨를 모사하거나, 아예 새 글씨를 의뢰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원형 되찾을까? 향후 3년간 ‘광화문 제모습 찾기’로 경복궁이 상당부분 옛 모습을 되찾을 것으로 보이지만 ‘원형’에 이르기까지에는 갈 길이 멀다. 먼저 동십자각과 서십자각의 원형 회복이 쉽지 않다. 동십자각은 광화문에서 삼청동길로 접어드는 경복궁 남동쪽 모서리에 있는 건물이다. 경복궁의 남동쪽 망루였지만, 궁궐의 담장 일부를 허물어 길을 내는 바람에 지금은 섬처럼 남아 있다.1929년 일제가 경복궁에서 조선박람회를 열면서 궁장(宮墻)을 헐어낸 것으로 알려진다. 남서쪽 망루인 서십자각은 아예 사라졌다. 역시 일제가 1923년 광화문에서 영추문 쪽으로 전차선로를 깔면서 철거했다. 동십자각이 제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것과 달리 서십자각은 원래의 위치조차 불분명하다. 경복궁의 남서쪽 모서리에서 지금보다는 남쪽과 서쪽으로 각각 10m 정도는 바깥쪽에 서있던 것으로 추측한다.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려면 발굴조사가 필요하다. 문화재청은 경복궁의 남동쪽 담장을 동십자각에 잇거나, 서십자각을 옛 자리에 복원하는 계획을 아직 세우지 못하고 있다. 복원했을 경우 ‘교통대란’을 넘어 일대 도로의 기능이 사실상 중단되는 상황으로 치닫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모습 찾기’에 따라 광화문을 현재보다 남쪽으로 14.5m, 서쪽으로 10.9m 옮겨 짓고,5.6도 틀어졌던 축을 원래대로 되돌린다고 해도 경복궁의 남동쪽과 남서쪽 모서리는 현재의 위치와 달라지지 않는다. 복원될 경복궁의 남쪽 외곽 담장 역시 옛 자리가 아닌 ‘현실’을 수용해 세워질 수밖에 없게 됐다. 궁궐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광화문 앞에 배치했던 넓고 높직한 섬돌인 월대(月臺)도 제모습을 찾기 어렵게 됐다. 길이 52m인 월대를 복원하면 광화문 앞의 자동차 통행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은 물론 정부중앙청사도 일부 침범할 수 있다. 경복궁 안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과 국립고궁박물관, 궁궐 안의 주차장 문제도 해결해야 할 장기 과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3일 “경복궁 복원정비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털어놓았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고건, 신세대·영남권 ‘러브콜’

    범여권의 헤쳐모여식 정계개편에 기대를 걸고 있는 고건 전 총리가 연말을 맞아 정치 보폭을 넓히고 있다. 세대간 소통을 겨냥한 ‘탈세대’와 영남권에 러브콜을 보내는 ‘동진(東進)정책’이 두드러진 움직임이다. 연말 원탁회의 구성과 신당 창당 작업의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다. 고 전 총리는 3일 오후 서울 홍대앞 비보이 전용극장에서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를 관람했다. 공연 후 무대에 선 그는 “비보이 공연이 이렇게 멋진 줄 몰랐다. 한류의 새 장르로 전세계에 뻗어나가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청년실업이 심각한데 한국의 경제인들이 비보이의 역동성을 배워 경제를 살리고 청년실업도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오는 8일에는 지지자들과 함께 경북 구미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를 둘러볼 계획이다. 호남출신으로서, 평소 “한나라당 소장파와도 잘 통한다.”고 밝혀온 고 전 총리가 본격적으로 영남 민심을 두드리려는 행보로 읽혀진다. 앞서 7일에는 정치권 인사가 두루 초청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6주년 기념행사에 참석, 정계개편의 기류를 탐지할 계획이다.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부고]

    ●강영원(대우인터내셔널 수석부사장)세원(베스트메탈라인 고문)동원(주신테크투어 회장)상원(자영업)씨 모친상 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4일 오전 8시 (02)3010-2238●이종동(한울회계법인 회계사)씨 모친상 김철중(동부건설 부장)김종한(사업)김윤제(KT 변호사)씨 빙모상 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3일 오전 6시 (02)3010-2292●임용재(대전시교육위원회 의사국장)현재(대전한사랑병원장)세재(계룡공고 교사)영재(공주대 도서관)완재(서울중부경찰서 신당지구대)씨 부친상 1일 대전중앙병원, 발인 3일 오전 9시 011-427-2106●김창현(군인공제회 금융투자본부장)씨 모친상 1일 경북 고령군 고령읍 영생병원, 발인 4일 오전 (054)956-4455 010-3808-7366●채수영(중지화학 대표)수원(고려대 기계공학과 교수)송훈(자영업)씨 부친상 김은호(양지병원 건강진료센터 소장)정무웅(단국대 건축대 교수)김종덕(경진A.C 부장)차대완(도예가)씨 빙부상 박정희(서울대 생활과학대 교수)씨 시부상 30일 고대안암병원, 발인 3일 오전 8시 (02)929-1299●박영기(사업)영철(〃)영수(〃)영호(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씨 부친상 1일 하계을지병원, 발인 3일 오전 9시 (02)970-8444●김태주(FC서울 홍보팀 과장)씨 부친상 1일 천안 단국대병원, 발인 3일 오전 8시 (041)550-7186●황영재(자영업)영엽(외교안보연구원)씨 부친상 김종수(동훈 이사)김성호(신토온 〃)김정식(대신증권 분당지점장)씨 빙부상 30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일 오전 8시 (02)3410-6916●김지택(현대상선 대만법인장)경택(카프코 영업이사)삼택(우송대 교수)씨 모친상 30일 대전 건양대병원, 발인 2일 오전 8시30분 016-691-6953●한정윤(자영업)정웅(〃)정일(조선일보 편집부장)씨 부친상 1일 강북삼성병원, 발인 3일 오전 9시 (02)2001-1097●김동운(전 통일중공업 대표)동철(자영업)동주(〃)동화(〃)동욱(미국 거주)동만(수원지방검찰청 평택지청장)씨 모친상 1일 부천 순천향대병원, 발인 4일 오전 8시 (032)327-4010
  • ‘뉴라이트’ 교과서 논란

    ‘뉴라이트’ 교과서 논란

    신우익(뉴라이트) 단체로 알려진 ‘교과서포럼’이 만든 대안 교과서가 5·16과 유신체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또 하나의 편향이라는 비판 속에 유신 체제의 피해자와 5·18민주화운동 관련 단체들은 독재 반대 및 민주화운동의 의미를 왜곡하는 것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교과서포럼은 29일 고등학교 2학년 선택과목인 ‘한국근현대사’의 대안 교과서 최종 편집본을 공개했다. 교과서를 보면 5·16을 ‘5·16혁명’으로 표현하면서 “5·16은 당시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국가적 과제인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주도할 새로운 대안적 통치집단 등장의 계기가 된 사건이다. 군사정부는 강한 추진력으로 경제발전을 성공적으로 주도했다.”며 높이 평가했다. 현재 일선 고등학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교과서는 5·16을 ‘군사정변’으로 표현하고 있다. 교과서에는 또 1961년 생긴 경제기획원에 대해 “이전에도 비슷한 기구들이 있었지만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 경제기획원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박정희 정부의 추진력 덕분”이라며 고 박정희 대통령을 치켜세웠다. 유신체제와 관련해서도 “권력구조적 차원에서 영도적 권한을 지닌 대통령의 종신 집권을 보장하는 체제인 동시에 행정적 차원에서는 국가적 과제 달성을 위한 국가의 자원동원과 집행능력을 크게 제고하는 체제”라며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발전과 중앙권력으로부터 광주 지역의 소외가 누적된 탓”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이는 “‘서울의 봄’을 좌절시킨 신군부 강압정치에 끝까지 저항한 운동”이라고 표현한 현재 교과서와 크게 다른 해석이다. 이에 대해 민주화 관련 시민단체들은 어처구니가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전국민주화운동 유가족협의회 박제민 사무국장은 “일본 우익이 전범을 미화하는 것과 같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으로, 살인정권을 찬양하고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산화한 열사들을 매도한 것”이라면서 “우리 국민들이 그동안 흘린 피땀으로 일군 체제를 모두 부정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5·18기념재단 조진태 사무처장은 “(5·18의 원인으로 제시한)호남 지역의 소외 누적이 하나의 내적 동기는 될 수 있어도 그 자체만으로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편협하다.”면서 “신군부의 쿠데타에 저항하는 부분이 빠진다면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학계에서도 정치적 이념에 따른 편향된 시각을 문제로 지적했다. 중앙대 사학과 권중달 교수는 “대안 교과서는 기존의 편향에 대한 반작용으로 또다시 편향된 면이 있다. 지금처럼 이념 대립이 극심한 상황에서는 올바른 역사가 나올 수 없다.”면서 “최근세사는 역사학회에서 정치와 독립적으로 순수하게 토론을 거쳐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한양대 역사철학부 박찬순 교수도 “교육에는 일관성이 필요한데 하루 아침에 내용을 바꾸면 국민들의 혼란을 조성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의사표시를 위해 시중에 배포하는 것은 자유지만 교과서로 채택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로 검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교과서포럼은 30일 서울대 사범대에서 ‘제6차 심포지엄’을 열어 찬반 의견을 수렴한 뒤 수정 작업을 거쳐 내년 3월 출간할 계획이다. 교수를 중심으로 12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 교과서포럼은 현재 쓰이고 있는 역사교과서 내용을 비판하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1월 출범했다. 이 포럼 대표인 박효종 서울대 교수(사범대)는 “한국근현대사 교과서가 후세들이 배우기에는 설명이 충분하지 않고 적절치 못하다는 판단에서 대안 교과서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김재천 박정경기자 patrick@seoul.co.kr
  • [씨줄날줄] 下野/이목희 논설위원

    노무현 대통령이 엊그제 “임기를 다 마치지 않은 첫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해 파문이 일고 있다. 비슷한 한탄을 했던 대통령이 과거에도 있었다. 공개석상의 발언이 아니어서 비사(史)로 알려지는 게 다를 뿐이다. 또 중도에 물러난 전직 대통령이 이미 4명이나 된다. 이승만·윤보선·박정희·최규하 전 대통령은 민중혁명, 쿠데타 군부의 압력, 시해 등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노 대통령의 ‘첫번째’라는 언급은 자의에 의한 하야(下野)를 지칭한 듯싶다. 역대 대통령의 임기 중단이 거론됐던 배경은 둘로 나눠진다. 첫째는 권력강화용이다. 물러날 의사가 없으면서 참모들을 압박하거나 정적을 견제하는 정치기술로 볼 수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5공청산 작업이 한창이던 1989년 말 민정당 핵심간부들을 청와대로 불렀다.“친구인 정호용을 사퇴시키려니 인간적으로 못할 짓이다. 하야절차를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혼비백산한 당간부들은 “각하, 아니됩니다.”라고 말렸다. 그때부터 여권 인사들은 죽을 힘을 다해 정씨의 의원직 사퇴를 관철했다. 전두환 정권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전 전 대통령은 86년11월 좌익세력 청소를 위한 친위쿠데타를 기획했다고 박철언 전 의원이 회고록에서 밝혔다. 실제 친위쿠데타를 일으키기보다는 검토사실을 퍼뜨려 야당을 비롯한 반대세력을 위협하겠다는 속셈이 깔렸었다고 본다. 둘째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하소연하는 푸념이 와전된 경우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임기말에 둘째아들이 구속되었다. 자존심에 먹칠을 당하자 의기소침했고, 비공식 자리에서 대통령직의 어려움을 몇마디 털어놓았다. 총리실 일각에서는 “대통령 궐위시에 대비하자.”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이를 전해들은 청와대 비서실은 발끈했다.“임기 마지막날까지 대통령 권한을 행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총리는 고건씨였다. 노 대통령의 언급은 두가지를 섞어놓은 모양새다. 절박한 심정이 느껴지긴 한다. 하지만 공개리에 작심하고 말하는 모습에서 정치의도가 엿보인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너무 자주 임기 관련 발언을 하는 것은 어떤 해명을 붙이더라도 좋게 비치지 않는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씨줄날줄] 광 화 문/함혜리 논설위원

    광화문은 서울의 상징이다. 광화문을 볼 때마다 파리의 개선문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가벼움 같은 것을 느꼈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콘크리트 때문이었던 것 같다. 광화문이 다음달 4일 복원작업을 위해 철거에 들어간다고 한다.2009년 말 완료되는 이번 복원공사를 통해 광화문은 중건 당시의 위치와 각도를 되찾는다. 앞으로 14.5m 나오면서 서쪽으로 10.9m 이동하고 서쪽으로 5.6도 틀어서 흥례문과 일직선으로 놓인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는 국내산 육송의 목조로 바뀌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현재의 한글 현판도 중건 당시의 것으로 복원된다. 광화문은 경복궁의 4대문 중 남문이며 정문이다.1395년(태조 4년) 9월 창건 시에는 특별한 이름없이 그냥 정문(正門)으로 불리다가 세종 대에 이르러 경복궁 수리공사를 하면서 광화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광화(光化)’는 중국 고전 서경의 ‘광피사표 화급만방(光被四表 化及萬方)’에서 유래됐다. 빛이 사방을 덮고 가르침이 만방에 미친다는 뜻이다. 이름을 붙인 집현전 학사들은 ‘나라의 위엄과 문화를 널리 보여주는 문’이 되기를 원했지만 광화문은 한국 근현대사의 우여곡절을 고스란히 겪었다. 임진왜란 때인 1592년 완전히 불에 탄 뒤 270여년간 중건되지 못하다가 1865년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재건으로 옛 모습을 되찾았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인 1927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경복궁 동문인 건춘문 북쪽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이어 6·25전쟁때엔 폭격으로 문루가 아예 사라지는 처참한 운명을 맞는다. 광화문은 박정희정부 시절인 1968년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재건됐다. 방향도 위치도 엉터리로 급조된 채 오늘에 이른 것이다. 총 244억원이 투입되는 광화문 복원사업은 1990년에 20년 계획으로 시작된 경복궁 원형 복원사업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이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문화재청의 주장과 방향도 맞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하고, 신경을 써야 할 것은 후세에 부끄럽지 않은 바로 된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란 사실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 & Out] 대선과 이슈 선점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 & Out] 대선과 이슈 선점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된 데는 ‘행정수도 건설’ 공약이 주효했다. 정몽준 의원과의 후보 단일화, 인터넷 환경에서의 우월적 지위, 귀족적 이미지의 이회창 후보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서민적 이미지 등도 승인(勝因)으로 꼽히지만 행정수도 건설이란 메가톤급 이슈가 충청권 표심의 이동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반대로 이회창 후보측은 이 공약에 대한 초동 대처부터 미약했고, 이 사안이 본격 이슈가 됐을 때도 서울 지역 집값 하락 문제만 제기하는 등 조직적인 대응을 하지 못해 결국 두번째 쓴 잔을 들이켰다. 1987년 대선 때도 노태우 후보는 경부고속철도 건설과 새만금사업 등 굵직한 국책사업을 공약으로 내걸어 득표력을 배가시킨 바 있다. 대선에선 대형 이슈를 제기하는 쪽이 일단 유리하다. 국민들의 눈과 귀를 쏠리게 하는 효과가 이만저만이 아니어서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를 띄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셈이다. 일자리 창출과 물류비용 감축 등을 내세워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총 연장 550㎞의 대운하를 건설하는 방안은 실효성 여부를 떠나 많은 국민들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다른 후보들이 이 이슈의 파괴력에 바짝 긴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무엇보다 최악의 현 경제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는 묘약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이 전 시장 측이 최대 23만명의 일자리 창출을 제1의 기대효과로 내세우는 것도 이같은 기대심리를 십분 활용한 것이리라. 물론 여기에는 말 많고 탈 많던 청계천 복원공사를 약속대로 2년 만에 마무리한 이 전 시장의 돌파력과 추진력을 믿는 정서가 깔려 있다고 본다. 이 전 시장에게 ‘리틀 박정희’란 별칭이 따라붙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1960년대 온갖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밀어붙여 결국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낸 박정희 전 대통령과 오버랩되는 탓일 게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정치권에선 대운하의 실효성과 관련해 논란이 한창이다. 삼면이 바다인 상황에서 굳이 17조원이란 막대한 돈을 들여 내륙운하를 건설할 필요가 있느냐에서부터 대운하 유지에 필요한 수량 확보가 힘들다는 지적까지 다양하다. 한 후보 진영에선 건설과 경제는 파이의 깊이가 너무도 다르다는 전제 아래 대운하 건설이 경제활성화와 직결되지 않는다는 논리를 설파하고 있다. 북한 핵실험으로 그 어느 때보다 외교와 안보문제가 심각한데 토목공사 타령이나 해서야 되겠느냐는 반대론도 만만치 않다. 아예 직설화법으로 ‘이명박은 수양제의 화신인가.’라며 감정적 대응을 하는 진영도 있다. 알다시피 수양제는 중국 수나라 때 남북을 연결하는 대운하를 건설했지만 백성들의 과중한 부역으로 민심이 이반, 결국 신하에게 피살당한 인물이다. 여야를 떠나 대선 후보들이 대운하 건설 문제를 놓고 치열한 찬반 토론을 벌이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후보군을 다 모으기 어렵다면 우선 한나라당 후보들만이라도 토론을 벌일 필요가 있다. 거기서 비록 상대방이라 하더라도 주장과 논리 전개가 맞다면 아집과 체면을 버리고 과감하게 수용해야 할 것이다. 설익고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라면 과단성 있게 폐기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그것이 진정 국민을 위하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jthan@seoul.co.kr
  • [데스크시각] 강남주민을 위한 변명/곽태헌 산업부장

    부동산정책은 노무현 정부의 대표적인 실패작 가운데 하나다. 공급을 늘리기보다는 ‘세금폭탄’과 수요억제에 초점을 맞춘 정책은 현재로서는 실패다. 현 정부는 입이 열개라도 부동산정책에 대해 할 말이 없겠지만, 과거정부의 잘못 탓에 ‘억울하게’ 된 측면도 없지는 않다. 대표적인 게 분양가 자율화다. 김대중 정부 초기인 1998년 분양가는 자율화됐다. 지난 10월 현재 서울 아파트 분양가는 평당 1392만원으로 분양가 자율화 직전보다 267%나 급등했다고 한다. 분양가 자율화는 어설픈 시장경제주의자들인 옛 경제기획원(EPB)과 건설업자들을 두둔하는 듯 보이는 건설교통부 일부 관료들의 합작품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긴다는 것처럼 그럴 듯하게 들리는 것은 없다. 그러나 나라마다 사정은 다르다. 한국의 대부분 가정에서 아파트 한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미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신호등이 고장난 곳에서는 교통경찰이 수(手)신호를 해야 한다. 팔짱만 낀 채 제 기능을 못하는 신호등에 맡길 일은 아니다. 관료들은 분양가가 낮아 그 차익이 청약자에게 돌아가는 것은 ‘악(惡)’으로, 과실(果實)이 건설업자에게 돌아가는 것은 ‘선(善)’으로 생각해 왔다. 백보 양보해서 분양가 자율화로 건설업자만 배부르면 그나마 괜찮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뛰는 분양가는 건설업자들의 배만 불려주는 게 아니라 주변 아파트값을 부추긴다는 데 더 문제가 있다는 점을 ‘잘난’ 관료들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깨닫고 있는지…. 노무현 정부 출범 뒤 강남(강남·서초·송파구) 주민은 이 나라를 부동산투기 공화국으로 만든 범죄자가 됐다. 그래서 강남에 산다는 말을 하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먼저 개인적인 얘기를 하자면 기자는 강남에 산다. 최근 강남, 강북 할 것 없이 아파트 가격이 폭등했다고 하지만 기자가 사는 아파트는 그렇지 않다. 기자는 대학에 다닐 때인 1985년부터 강남에 살았다. 단독주택에 살다가 아파트로 옮기기로 하면서 당시 집 근처의 아파트촌인 반포로 이사했다. 보통 사람들은 살고 있던 곳 근처에, 처음에 정착했던 곳에 사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85년의 강남과 비강남의 집값이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에 대한 통계는 유감스럽게도 구하지 못했다. 다만 부동산뱅크에 따르면 88년 10월 상계동 한신1차 31평의 평당 가격은 210만원, 압구정동 한양1차 32평의 평당가격은 이보다 30% 비싼 281만원이었다.85년에는 차이가 더 없었을 것이다. 정확히 10년 전인 96년 11월에는 압구정동의 아파트가 상계동 아파트보다 평당 40% 비쌌다. 압구정동이 상계동의 2배가 된 것은 2001년 7월이다. 강남과 비강남의 격차가 확대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직장인들은 보통 직장과 가까운 곳에 사는 경향이 있다. 출·퇴근시간 때문이다. 강북에 직장을 둔 경우는 일산에, 강남에 직장을 둔 경우는 분당에 사는 비율이 높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대표적인 대기업의 임원인 K씨는 몇년 전 서울로 발령을 받으면서 송파구에 아파트를 구했다. 회사가 강남에 있다는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경제부처 관료들이 강남에 적지 않게 사는 것도 ‘투기’에 혈안이 됐기 때문이 아니라 근무지인 과천에서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박정희 정부 시절 강남개발계획이 발표됐다. 말죽거리로 대표되는 당시의 강남에서 생활하려면 장화는 필수였다고 한다. 정부가 당시 최고의 명문고였던 경기고와 서울고를 강남으로 보내기로 한 것은 강남개발에 대한 의지를 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당시 정부의 말을 믿고 살던 곳을 떠나 선뜻 강남행을 결정한 시민들은 많지 않았다. 강남 주민들을 투기꾼으로 모는 게 표를 얻는 데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나라를 책임진 지도자들이 선택할 정도(正道)는 분명 아니다. 곽태헌 산업부장 tiger@seoul.co.kr
  • [이용원 칼럼] 박근혜, 유훈정치와 연좌제 사이

    [이용원 칼럼] 박근혜, 유훈정치와 연좌제 사이

    차기 대통령선거가 1년 넘게 남았지만 대선 예비후보로 꼽히는 정치인들의 행보는 진즉부터 지대한 관심을 끌어 모으고 있다. 현시점에서 예상되는 후보는 많이 있으나 관심은 역시 한나라당의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내부 경쟁에 쏠린다. 지지율 경쟁에서 두 사람은 오랫동안 적은 포인트 차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더니만 지난 추석과 북한의 핵실험이후 이 전 시장이 박 전 대표를 줄곧 앞서 나갔다. 그 차이는 한때 38.4% 대 24.9%로 13.5%포인트(11월 7∼8일 뉴스메이커·메트릭스 조사)까지 벌어져 선두 자리가 일찌감치 결정되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 15일 실시한 두가지 조사에서는 4.2%포인트(조인스)와 4.1%포인트(미디어다음)로 격차가 다시 줄어들었다. 그런데 묘한 것은 그 시점이다. 여론조사를 한 15일은, 박 전 대표가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서 열린 ‘숭모제’에 참석한 다음날이었다. 그는 숭모제에서 “흩어진 국민의 힘과 마음을 모아 아버지가 바라던 선진 강국의 불꽃을 다시 살려내야 한다.”면서 “저 역시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이에 일부 언론과 정치인들은 그 행태를 ‘유훈(遺訓)정치’라고 비판했다. 유훈정치(통치)는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정권을 지칭할 때나 쓰는 부정적인 이미지의 단어이다. 따라서 유훈정치란 비난은 박 전 대표에게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하겠으나, 그는 앞으로도 ‘아버지의 뜻’을 적극 이어가겠다는 식의 언행을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지지율 만회에서 확인되었듯이 ‘박정희의 딸’이란 위치는 상당부분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에는 ‘박정희 향수’가 엄연히 존재한다. 역대 대통령에 관한 인기 조사를 하면 박정희는 최근 몇년새 항상 1위 자리를 차지했다. 따라서 ‘박정희의 딸’에게 유훈정치는 당장 먹기에 좋은 떡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떡에는 ‘연좌제’라는 독 성분도 함께 포함돼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연좌제는 헌법에서 금지를 명시한 반인권적 행위이다. 지금 ‘박정희 향수’가 현실이듯 ‘박정희의 딸’에게 근원적인 거부감을 갖는 국민이 적지 않다는 것 또한 현실이다. 심정적인 연좌제이다. 1960∼70년대 박정희 정권 아래서 고초를 겪은 사람들, 그리고 그 뒷세대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박 전 대표를 보면서 ‘내 마음의 연좌제’를 떨쳐내려 애쓴다. 그에 겹쳐 박정희를 연상하는 일은, 그들이 옳지 않다고 믿는 연좌제를 심정적으로 실행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는 유훈정치에 더이상 유혹을 느끼지 말아야 한다. 유훈정치를 활용할수록 많은 국민이 연좌제의 죄를 범하게 된다. 아울러 유훈정치는 차기 대선의 본질조차 훼손시키기 십상이다. 가령 박 전 대표가 ‘유훈정치 효과’로 대선 후보가 된다면, 선거는 ‘박정희 평가’ 싸움으로 변질되고 국론은 양분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총체적 난국을 극복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차기 대선을 30∼40년전 패러다임으로 얼룩지게 할 수는 없다. ‘박정희의 딸’이 원죄이어서는 안 되듯이 선거전략이어서도 안 된다. 박근혜라는 이름 석자는 이미 국민 마음에 유능한 정치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당장의 지지율에 급급하지 말고 이제는 제 이름 석자만으로 당당히 승부해야 한다. ywyi@seoul.co.kr
  • [부고] ‘서예계 기둥’ 일중 김충현 선생 별세

    한국 서예계의 기둥인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 선생이 19일 오후 8시 별세했다.85세. 1921년 서울에서 태어난 일중은 38년 중동고 재학 때 조선남녀학생작품전에서 최고상을 받으면서 일찍이 이름을 알려 소전 손재형(1903∼1981) 선생과 나란히 해방후 한국 서예계를 이끌었다. 소전이 전서를 바탕으로 한 실험적 글자체인 ‘소전체’를 발전시켰다면, 일중은 반듯한 해서를 토대로 한 ‘일중체’로 주목을 받았다. 고인은 90년대 말 파킨슨씨병으로 활동을 중단하기 전까지 주요 비문과 건축물 현판 등 굵직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경복궁의 ‘건춘문’ 현판, 남산의 안중근 동상과 충무공 기념비 글씨, 탑골공원의 3·1정신 찬양 비문, 이승만·박정희 대통령 묘비 글씨, 삼성그룹 옛 로고인 한자 ‘三星’, 아모레퍼시픽의 상표 ‘설록차’ 글씨 등이 그의 작품이다. 고인은 경동고 교사, 국정교과서 편찬심의위원, 한국서예가협회 이사장을 지내면서 후학 양성과 한국 서예발전에 힘썼다.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보관문화훈장, 은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 부인 송용순(85)씨, 아들 김재년 코리아에어텍 사장, 딸 단희·봉희씨가 있다. 발인 23일 오전 9시. 빈소 서울대병원.(02)2072-2091.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박팽년 550주기 향사 대구 육신사 사당서 열려

    박팽년 550주기 향사 대구 육신사 사당서 열려

    사육신 박팽년 순절 제550주년을 기념하는 추모 제향이 19일 오전 11시 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묘골마을 육신사에서 열렸다. 추모제향에는 박종근(한나라당) 국회의원과 박종선 서울신문 부사장 등 사육신 후손들과 유림, 지역인사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육신사보존회(이사장 박준규 전 국회의장)가 주관한 이날 제향은 김범일 대구시장이 초헌관, 이종진 달성군수가 아헌관, 박진용 순천박씨 돈연공파 회장이 종헌관을 각각 맡았다. 제향에 앞서 묘골마을 입구에서 사육신의 충절정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충절문’의 현판식이 있었다. 육신사는 조선 세조 때 박팽년, 성삼문,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등 사육신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이다. 고종3년(1866년) 철거되었다가 1924년 재건됐다. 그리고 1974년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충효위인 유적정비사업’에 따라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한·일 정상화 주역 이동원 前외무장관 별세

    한·일 국교정상화의 주역인 이동원 전 외무부 장관이 18일 오후 2시 숙환으로 별세했다.80세. 이 전 장관의 이름 앞에는 여러 수식어가 붙는다.‘대한민국 제1호 해외유학생’‘최연소 청와대 비서실장’‘최연소 외무장관’‘최초의 전국구 4선 국회의원’‘한일의원연맹 초대회장’ 등이다. 함경도 북청의 이름난 부자집안 출신으로 송도중·고교를 졸업한 이 전 장관은 1948년 연세대 졸업을 앞두고 유학(미국, 영국)길에 오르면서 1호 유학생이 됐다. 옥스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뒤 박정희 소장을 만나 미국에 대한 조언을 한 것을 계기로 5·16 이듬해 36세로 최연소 비서실장에 임명됐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이경숙(77) 한영중·고 및 한영외고 이사장과 딸 정은(47·동원대학장)·아들 정훈(45·연세대 국제교육교류원장)씨가 있다. 장례는 외교통상부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22일이다. 빈소는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영안실 12호실.(02)-3410-6912.
  • “리얼 뮤직 인정해주는 분위기 됐으면”

    “그냥 조용히 사라질까도 했지만, 그래도 대중의 사랑을 받고 산 사람으로서 공개적으로 인사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거인의 표정은 온화했지만 약간의 서글픔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16일 서울 리베라호텔 로즈홀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장에 선 ‘한국 록음악의 전설’ 신중현(68)씨의 표정은 조금 착잡해 보였다. 기자들조차 ‘외국에서는 여든 살까지 활발하게 활동하는 음악인도 많은데 왜 벌써 떠나느냐.’고 항의성 질문을 쏟아냈다. “비록 떠난다 해도 지울 수 없는 게 음악입니다. 제 인생에서 어떻게 음악을 지우겠습니까. 음악에 관련된 책 등으로 자료를 한번 정리해 볼까 생각 중입니다.” 한국 음악계에 바라는 희망에서 그가 무엇을 아쉬워하는지가 묻어났다. “진정한 리얼 뮤직 그 자체를 인정해 주는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뒷전에서라도 그런 역할을 해보고 싶습니다. 또 ‘연주자’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 줬으면 합니다.” 후배들에게도 한마디 남겼다. “짧은 시간에 인기를 끌기 위해 애쓰기보다 대중들을 포근하게 안아줄 수 있는 음악을 했으면 좋겠고, 우리 음악의 뿌리도 한번쯤 되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거인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아직 음악과 관련해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녹음하지 못한 음원들도 있는데 음반산업 불황 때문에 따로 음반을 낼 수 있는 형편이 아닙니다. 대신 인터넷이나 그런 곳을 통해 음악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드릴게요.” 이를 위해 집 근처에 라이브 공연무대도 마련할 생각이다. 지난 7월 인천 송도에서 출발한 전국순회 은퇴공연 ‘신중현-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다’는 다음달 17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 공연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1955년 미8군 무대에 처음 오른 그는 그룹 ‘애드 포’로 1964년 ‘빗속의 여인’을 내며 데뷔했다. 박정희 정권 때 정권 찬양 노래를 만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기도 했지만, 수많은 록밴드로 실험적인 음악을 선보였다.펄 시스터즈·김추자처럼 ‘신중현 사단’으로 불리는 가수들을 통해 ‘님아’ ‘미인’ ‘님은 먼 곳에’ 등 대중적인 히트작도 무수히 만들어냈다. 록 음악뿐 아니라 한국 현대음악의 산증인인 셈이다. 이 때문에 그의 은퇴공연은 해외언론의 눈길도 끌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월스트리트 저널 등은 신중현을 ‘한국 록의 대부’로 치켜세웠다.(02) 561-9756.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영호남 정무직이 늘어났다는데…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영호남 정무직이 늘어났다는데…

    참여정부 정무직들의 출신지역별 비율은 어떻게 될까. 역대 정권마다 영남 출신과 호남 출신이 몇 %이고 수도권이나 충청권, 기타 지역의 비율은 어느 정도인지는 늘 관심 대상이었다. 기자가 중앙인사위원회로부터 입수한 장·차관(급) 정무직 출생지 자료와 2003년 2월 참여정부 출범 후 지금까지 임명됐거나 내정 상태인 국무총리와 장관 등 전·현직 각료 69명의 출신지역을 분석한 결과, 영남과 호남 출신 간의 불균형은 적잖이 해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중앙인사위의 장·차관(급) 정무직 출생지 분석 자료(11월 15일 현재)에 따르면 대상 직책 137개(이북 5도지사 제외) 가운데 영남 출신이 50명으로 전체의 36.5%에 달했다. 호남 출신은 39명으로 28.5%였다. 영호남을 합친 비율은 전체의 65%이다. 대상자 중 3분의2 가량이 영남 또는 호남 출신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수도권이나 충청권 등 기타 지역 출신은 인구 비례로 볼 때 턱없이 적은 편이다. 중앙인사위가 특별관리하는 정무직에는 청와대 수석비서관이나 보좌관, 감사원 감사위원, 국가인권위원회와 방송위원회의 상임위원 등은 물론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와 같은 한시적 기구의 위원장과 상임위원 등도 포함돼 있다. 참여정부 전·현직 각료의 출신지 비율 역시 이와 비슷하다. 지금 국회 인사청문회가 진행 중인 이재정 통일·송민순 외교통상·김장수 국방부 장관까지 포함할 경우 전체 69명 가운데 영남 출신이 24명으로 전체의 34.8%를 차지했다. 호남 출신은 19명으로 27.5%에 달했다. 영남과 호남 출신을 합치면 전체의 62.3%에 이른다. 역대 정권에서 영·호남 출신 각료 비율이 60%를 넘은 것은 처음이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영·호남 출신 각료 비율은 이승만 정부 27.3%, 박정희 정부 46.4%, 전두환 정부 50.5%, 노태우 정부 47.5%, 김영삼 정부 55%, 김대중 정부 51.6% 등으로 나타나 있다. 참여정부의 영남 출신 비율(34.8%)은 전두환 정부(39.8%)와 김영삼 정부(37%)에 비해 줄었으나 호남 출신 비율이 김대중 정부(25.8%) 때보다 늘어나면서 영·호남 출신비율이 60%를 돌파한 것이다. 영남 출신을 줄이지 않으면서 호남 비율을 늘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참여정부가 영남과 호남출신 간 균형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이기도 하다. 반면 수도권 출신은 10명(14.5%), 충청권 출신은 9명(13%)에 그쳤다. 강원과 제주 출신은 각각 2명,1명이다. 어느 정권이나 고위직의 출신지별 안배는 중요하다. 쓸데없이 지역감정을 유발할 수 있는 동인(動因)이어서다. 한때 출생지를 없애는 방안도 검토됐지만 결국 없던 일이 돼버린 것도 대부분의 국민들이 여기에 상당한 관심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가 영남과 호남간 불균형을 해소한 것은 인사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영·호남의 비율이 타 지역을 압도한 것은 잘못이다. 인구 비례에 따른 적재적소 배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참여정부가 남은 기간 이 대목에 상당부분 신경을 써줬으면 한다. 이는 곧 국민통합의 실천적 방안일 수 있다. jthan@seoul.co.kr
  • ‘해방전후사 再재인식’ 나온다

    “‘인식’,‘재인식’을 넘어 이제는 ‘재재인식’이다.” 역사비평사가 다음 주 ‘한국 근현대사의 새로운 흐름’(이하 ‘새로운 흐름’)을 시중에 선보인다. 이 책이 이목을 끄는 것은 지난 2월 출간돼 화제를 모았던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하 ‘재인식’)을 뛰어넘겠다는 의도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재인식’을 넘어선 ‘재재인식’인 셈이다. 특히 ‘새로운 흐름’은 ‘재인식’이 새로운 역사방법론을 다루는 듯했지만, 결국 뉴라이트의 들러리에 불과했다는 비판의식 위에 서 있다. “‘재인식’은 ‘인식’ 위에 최근 연구성과를 소화해 냈다기보다, 신자유주의적이고 친자본·친국가적인 성향으로 기울었다.”는 한 편집위원의 언급은 이를 뜻한다.‘해방전후사의 인식’(이하 ‘인식’)에 대한 비판이야 얼마든지 가능하지만,‘재인식’의 비판은 적절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두 권 분량으로 모두 6부로 구성된 ‘새로운 흐름’은 여기에 공감한 신진연구자들이 쓴 28편의 논문을 모았다.‘식민경험과 국민형성’이라는 주제 아래 1권은 ▲식민지와 근대성 ▲친일문제 ▲이승만·박정희 정권 시기 국민국가 형성 문제 등을 다뤘다.‘한국현대사를 보는 새로운 시선’을 다룬 2권은 제목 그대로 새로운 역사방법론을 제시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여성성·남성성과 미디어의 관점, 문화·담론연구나 사회적 소수자의 시선에서 현대사를 바라본 권보드래(이대)·이임하(덕성여대)·유선영(한국언론재단)·김준(성공회대)·김원(서강대)씨 등의 논문이 대표적이다. 총론 외에도 각 부마다 주제의식을 명확하게 하는 보론도 덧붙였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해방전후사 진보 보수 대립논리 극복 노력

    해방전후사 진보 보수 대립논리 극복 노력

    다음 주 출간되는 ‘한국 근현대사의 새로운 흐름´(이하 새로운 흐름)은 기존의 연구성과에 도전해 보겠다는 신진연구자들의 야심과 조바심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이는 ‘해방전후사의 인식´(이하 인식),‘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하 재인식) 논란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해야 함을 뜻한다. ●인식 VS 재인식 논란 ‘인식´에 대한 비판은 간간이 있어왔다. 당시엔 최신 연구성과였지만, 엄혹한 군부독재 시절이다보니 학술보다 운동에 치우쳤다는 것이다. 더구나 ‘인식´은 20∼30년 전의 책인데다, 그 사이에 사회주의권 붕괴 같은 세계사적인 사건도 있었다. 변화의 필요성은 있었다. 그러나 재인식이 성공적이었느냐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뉴라이트에 기울었다는 의미에서 ‘재인식´도 학술보다 운동에 가깝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재인식´ 편집진은 ‘재인식=뉴라이트´라는 평가를 오해라 했지만,‘재인식´ 자체가 오해의 소지를 담고 있다.‘개별 논문은 훌륭한데, 편집자들의 시각이 매우 단선적´(최원식 인하대 교수)이라는 비판이 한 예다. 가장 큰 문제는 편집진 구성이었다. 탈근대론자 박지향(서울대)·김철(연세대)이 뉴라이트인 이영훈(서울대)·김일영(성균관대)과 결합할 수 있느냐다. 뉴라이트는 박정희를 오늘날 대한민국을 반석에 올려둔 지도자로 평가한다. 그러나 탈근대론은 기본적으로 민족주의에 기반한 국가동원체계에 가장 비판적이다. 탈근대론의 입장에서 박정희 시기 경제개발을 분석한 김보현(성공회대)이 ‘박정희는 반민족주의자´라는 좌파의 통념을 깨되 ‘박정희는 민족주의자였기에 비판받아야 한다.´라고 주장한 것이 한 예다. 임대식 역사비평 주간의 표현대로 탈근대론과 뉴라이트의 ‘기묘한 연대´가 아닐 수 없다. ●인식, 재인식 모두 뛰어넘자 ‘새로운 흐름´의 야심과 조바심은 여기에 있다. 탈근대론으로 상징되는 다양하고도 새로운 역사접근법이 제대로 자리잡기도 전에 갈 길이 다른 뉴라이트 같은 정치운동에 얽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90년대 이래 쏟아져 나온 다양한 역사접근법을 차분하게 감상하기도 전에 출발선상에서부터 ‘진보냐 보수냐.´는 틀에 갇힐 수는 없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새로운 흐름´은 ‘재인식´에 투영된 ‘진영논리´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진보진영이 ‘인식´ 이후 지적으로 태만했다는 문제의식에는 공감하지만,‘재인식´ 역시 ‘인식´의 시대착오적인 진영논리를 그대로 답습하긴 마찬가지라는 것. 좌파를 ‘이분법적인 철부지 극렬 민족주의자´라 비판하면서 정작 스스로는 ‘국가=문명, 민족=야만´이라는 식의 이분법에 매여 있는 게 ‘재인식´의 분석틀이다. 또 탈근대론을 내세우면서도 역사적 사실이라는 근대 역사학의 방법론을 여전히 붙들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인식이냐 재인식이냐가 아니라 둘의 대결 구도 자체를 깨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재재인식, 누가 만들었나 ‘재인식´에 대한 비판 가운데 하나는 편집자 가운데 해방전후시기 전공자가 김일영뿐이고 그나마도 국사학자가 아니라 정치학자라는 것이다. 비전공자들이 개략적인 머릿속 그림만 가지고 시대를 논했다는 것인데, 많은 근현대사 연구자들이 공감하는 대목이다. 장상환(경상대) 같은 학자는 “이들이 모여 편집한 것 자체가 비극”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이에 반해 ‘새로운 흐름´은 편집위원 6명 가운데 4명이 한국 근현대사를 전공한 정통 국사학자다. 이들은 2000년 전후로 박사학위를 받은 30대 후반의 젊은 연구자들로 90년대 새로운 역사연구방법론을 듬뿍 받아들였다는 점이 주목된다. 책임편집자 윤해동(성균관대)은 근대민족주의 비판으로 유명한 국사전공자이고, 황병주(국사편찬위원회)는 탈민족주의를 제기했던 임지현 한양대 교수와 함께 작업했던 국사학자다. 허수(역사문제연구소)도 근대사상사를 연구한 국사 전공자이고, 이용기(서울대)는 국사학자로는 아직까지 낯선 사회사(구술사) 연구자다. 이외에도 국문학자인 윤대석(성균관대)·천정환(성균관대)은 한국 근현대 문학 연구에 진력해온 소장 연구자들인 점이 ‘재인식´팀과 분명히 구분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구미찾은 박근혜 ‘대선출정식 방불’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14일 경북 구미를 방문했다.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생존해 있다면 89번째로 맞았을 생일을 기념해 구미 상모동의 선친 생가를 찾은 것이다. 박 전 대표측은 ‘집안일’이라며 정치적인 해석을 경계했지만, 이날 숭모제에는 예년과 달리 2500명이 넘는 시민이 운집해 “박근혜”를 외치고, 박수를 치는 등 떠들썩한 분위기였다. 축사를 한 지역 관계자와 국회의원도 박 전 대표를 칭송하는 발언을 쏟아내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 했다. 검정색 바지 정장을 입은 박 전 대표는 유족 대표로 분향하고 절을 한 뒤 “아버지를 잊지 않으시고 이렇게 많이 와주시니 사심없이 나라를 위해 일한 아버지의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느낀다.”고 인사말을 했다. 이어 “아버지는 국민이 못 먹고, 못 입고, 나라의 힘이 없는 것을 평생의 한으로 생각했고,5000년 가난을 끊어야 한다고 했다.”면서 “이렇게 온 국민이 땀과 눈물로 만든 이 나라가 요즘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포부도 내비쳤다. 그는 “지금이야말로 확고한 국가관을 세우고 나라를 하나로 빨리 안정시키는 데 모든 힘과 역량을 쏟아야 한다.”면서 “저 역시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그의 구미 방문은 최근 대구·경북(TK) 지역을 잇따라 방문해 ‘텃밭 경쟁’을 벌이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겨냥했다는 관측도 나왔다. 특히 이 전 시장이 지난 8월 박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하는 등 광폭 행보를 보이며 지지도를 끌어올리고 있는 것을 경계하는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숭모제에 참석한 ‘친박(親朴)’계열의 김태환 의원은 “여성이라서 안 될 것이 뭐 있느냐. 박 전 대통령의 유지를 잘 받아들일 적임자는 박 대표”라고 말하기도 했다.구미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열린세상] 與 ‘지속가능한 정당’되어야/이덕연 연세대 헌법학 교수

    헤어짐과 만남, 모임과 흩어짐. 깊어가는 가을에 이합집산의 짝짜꿍이가 한창이다. 바닷가 모래 이야기가 아니다. 뒷산 숲길에 나뒹구는 낙엽 얘기도 아니다. 사람들 얘기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편가르기 장난을 노는 동네 꼬마녀석들이 아니다. 쉽게 삐치고 바로 깔깔대며 풋사랑을 하는 철부지 연인도 아니다. 최고의 정치엘리트인 국회의원, 그것도 대통령과 함께 국정운영을 주도하는 여당, 열린우리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얘기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지만, 현재의 정치판이 계속되는 한 정권 재창출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다는 절망적인 상황인식과 전망 때문이다. 창당일이 2003년 11월11일이니 딱 3년만이고,17대 총선 압승으로 창당 5개월만에 152석의 과반다수당이 된 때로 치면 대략 2년 반만의 급반전이다. 10% 초반의 수준인 대통령 지지율이나 재보궐선거 0대 40 참패의 기록을 보면, 현 상황에서 당체제 보수와 체질개선을 통해 자체적으로 추동력을 보완하고, 새 동력원을 개발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 어쨌든 ‘재창당파’와 ‘통합신당파’간에 나날이 심해지는 분란은 별 어려움 없이 내다보였던 모습이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정치평론가들을 꽤나 머쓱하게 만들었을 예정된 사태라고 할 수 있다. 이승만과 자유당, 박정희와 공화당, 전두환과 민정당, 노태우와 민자당, 김영삼과 신한국당, 김대중과 민주당. 한결같이 대통령과 여당이 함께 명멸했던 여당사(與黨史)에 비추어 보면 전혀 이례적인 현상은 아니다. 다만 참여정부 출범에서 찾았고 또 기대했던 각별한 정치사적 의미와 가치를 되짚어보면 아쉽고 안타까울 뿐이다.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정치이념과 정책노선에 대한 구구한 평가와는 무관하게, 적어도 진보 성향의 정치세력이 최초로 집권한 것 자체와, 젊고 도덕적 정당성에서 우위에 있던 민주화운동 인사들이 단숨에 여당 주도세력으로 제도권에 대거 진입한 것은 우리 정치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사건의 하나였다. 숱한 우여곡절 속에 세기를 넘어, 지천명(知天命)의 중반에 이른 우리 헌정사에서 처음으로 보수와 진보 진영이 함께 참여하는 명실상부한 정치를 펼칠 수 있는 필요조건을 갖추게 되었다는 점에서 가슴 설레면서 건 기대가 적지 않았다. 열린우리당이 제1의 강령으로 제시한 것도 ‘새로운 정치’였다. 군부 권위주의 정권을 논외로 한다면,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여당과 야당이 ‘정치시장’에서 공정한 자유경쟁을 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다.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국회와 여당이 독자적인 입지를 확보하고 제 역할을 하는 파트너로서 ‘견제와 균형’의 관계를 만들어 나간 것도 참여정부에서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민주정치 발전을 위해서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은 ‘사라지는 대통령’과 관계없이 여당이 ‘지속가능한 정당’으로 남는 것이다. 국정운영의 성패 경험과 그 책임을 공유하면서 재집권 희망을 살려 나가고, 실권의 쓰라림까지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여당, 당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정치철학과 이념, 주요 정강정책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 여당의 존재 자체이다. 찰스 디킨스는 소설 ‘피크빅 신문’에서 바람에 벗겨져 굴러다니는 모자를 잡기 위해서는 비상한 판단력이 필요하다면서 그 방법을 친절하게 일러준다. “너무 성급하면 모자가 있는 곳을 지나쳐서 넘어지게 되고, 너무 천천히 가면 모자는 저만치 날아가 버린다. 최선의 방법은 추적의 대상인 모자와 가능한 한 일직선상에 머무르면서,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때를 기다리다가, 서서히 다가가서 잽싸게 손을 뻗쳐서, 모자챙을 잡아채어 머리에 꽉 눌러쓴다. 그러는 과정 중에 계속 웃는 것이 좋다. 구경꾼들과 마찬가지로 모자를 잡기 위한 모든 일에 똑같이 재미를 느끼는 것처럼.” 생물인 정치에서도 빠름과 느림, 움직임과 머무름의 조화, 그것이 관건이다. 이덕연 연세대 헌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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