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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 정부, 별도 명칭 없이 ‘문재인 정부’로

    새 정부가 별도의 공식 명칭을 정하지 않고 ‘문재인 정부’란 이름을 쓰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뜻을 받드는 정부가 될 것임을 광주 영령들 앞에 천명한다”며 ‘문재인 정부’란 표현을 처음 사용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참여정부나 국민의 정부 같은 명칭을 붙일 계획은 현재로선 없다”며 “자율적으로 실용적으로 ‘문재인 정부’나 ‘더불어민주당 정부’로 써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9일 지상파 방송 3사의 대선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 민주당 당사에 들러 “다음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정부”라고 밝혔다. 다른 고위 관계자도 “괜히 이름을 정하려다 갑론을박할 수 있다”며 “지금은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많다”고 말했다. 정부의 철학을 담은 공식 명칭은 김영삼 정부부터 사용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진 군사정권을 끝냈다는 뜻에서 ‘문민정부’란 이름을 붙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민에게 주권이 있는 정부, 국민의 뜻을 받드는 정부란 의미를 담아 ‘국민의 정부’란 명칭을 썼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참여 민주주의를 강조하며 ‘참여정부’란 이름을 붙였다. 정부의 명칭은 그 정부의 성격과 지향점을 보여 준다. 문재인 정부는 이름을 쓰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실용’을 강조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걸쳐 10년간 공식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굳이 명칭을 따로 정할 필요가 있느냐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박근형 “검열 눈치 본 적 없다… 판단은 관객 몫”

    박근형 “검열 눈치 본 적 없다… 판단은 관객 몫”

    관객과 대화서 ‘블랙리스트’ 소회 밝혀 도종환 “새 정부, 지원하되 간섭 않을 것”박근혜 정부의 일명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논란 한가운데에 있었던 박근형이 연출한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가 지난해 초연에 이어 올해 남산예술센터 무대에 다시 올랐다. 박 연출은 2013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풍자를 담은 연극 ‘개구리‘를 공연했다.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지원 대상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이 작품을 문제 삼아 이미 지원이 결정됐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를 제외하라고 심사위원들을 압박해 탈락시켰고, 2015년 9월 국정감사에서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런 내용을 폭로하며 블랙리스트 논란이 시작됐다. 예술 검열 논란의 도화선이 된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네 가지의 에피소드를 교차 편집해 국가폭력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작품이다. 2016년 한국 경남에서 병역 제도의 폭력성을 견디지 못하고 무장 탈영한 병사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1945년 일본의 자살특공대 병사에 지원한 조선 청년들, 2004년 이라크 팔루자에서 미군 식품납품업체 일을 하다 무장단체에 납치된 평범한 남성, 2010년 한국 서해 백령도 해상에서 침몰한 초계함 선원들의 이야기까지 각각 다른 시공간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통해 군대, 전쟁, 국가에 의해 뭉개진 군인들의 비참한 삶을 그린다. 지난해 초연 당시 전석 매진 기록을 세우고 한 차례 추가 공연을 할 정도로 관객의 호응이 좋았다. 일본에도 초청돼 좋은 평가를 얻었으며 연말 주요 연극상을 수상하며 ‘뜨거운 작품’임을 입증했다. 새달 4일까지 서울 공연을 마치고 나면 인천, 성남에서도 공연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근형 연출은 지난 13일 공연이 끝난 후 ‘검열에 대해 말한다’를 주제로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소회를 전했다. 그는 “제가 만든 연극이 관객들에게 울림이 있을까 그리고 작품 속에서 내가 이 말을 과연 하고 싶은가 이 정도만 저 스스로 약속을 하고 작업을 하는 편”이라며 “그것을 제외하고 외부의 검열에 대해 눈치를 보는 적은 별로 없었다. 작품에 대한 가장 제대로 된 판단은 관객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관객으로 공연을 지켜본 도종환 의원은 “정부가 할 일은 ‘예술가들에게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라면서 “새 정부에서는 이념적 잣대로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문재인 대통령의 절을 받는 사람이 누군가 보니

    문재인 대통령의 절을 받는 사람이 누군가 보니

    문재인 제19대 대통령은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태어났다. 그는 6·25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서 피난을 내려온 부모로부터 1953년 경남 거제도 피난민 수용소에서 출생했다.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생 시절 친구 도시락 뚜껑을 빌려 강냉이죽을 받아먹던 때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한다. 그가 걸어온 길을 사진으로 되짚어 봤다. 그의 모친 강한옥(90) 여사는 당시 중학교 1학년이던 문재인을 데리고 암표 장사를 하기 위해 이른 새벽 부산역으로 향했다. 하지만 차마 아들 앞에서 떳떳하지 못한 돈을 벌 수 없어 먼 길을 그냥 돌아왔다고 한다. 시장에서 좌판을 꾸려 장사를 하고 연탄 배달로 가족의 생계를 꾸린 어머니를 떠올리면 문재인은 늘 죄송하기만 하다. 강 여사는 9일 부산 영도구 자택에서 개표 결과를 조용히 지켜봤다. 문재인은 가난한 형편에도 공부를 잘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부산 영도로 이사를 와 고등학교 때까지 부산에서 살면서 당시 명문이던 경남고에 진학했다. 하지만 ‘범생’은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 흡연과 음주를 하다가 학교 측에 들통나는 바람에 몇 차례 정학을 당한 것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그의 집에서는 전혀 알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은 경희대학교 법대에 72학번으로 입학했다. 재수 끝에 4년 장학금을 받고 대학생이 된 것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 학생운동의 선두에 서서 반독재 투쟁을 벌였다. 평생 동반자인 부인 김정숙(62) 여사를 이때 만났다. 시위에서 최루탄을 맞고 기절한 그를 김씨가 물로 적셔 깨우면서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됐다고 한다. 그녀는 대학교 2년 후배다. ‘안개꽃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진 그들의 러브스토리다. 그 시절 보통 군대에 면회를 갈 땐 맛있는 음식을 싸들고 갔지만 김씨는 안개꽃을 한 아름 안고 문재인을 찾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러브스토리가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김씨는 남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감옥으로, 군대로, 문재인이 사법시험을 공부할 때는 전남 해남 대흥사라는 절로 찾아갔다. 그들은 7년 열애 끝에 1981년 결혼했다. 문재인은 1975년 8월 육군에 입대했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제적을 당하고 강제 징집됐다. 특전사 수중폭파요원으로 복무한 그는 이 시절을 회상하면서 “‘내가 군인 체질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며 흐뭇해했다. 실제로 그는 군 생활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의 주특기가 폭파라는 사실은 점잖은 지금의 이미지와 사뭇 다른 반전이다. 폭파과정 최우수 표창, 화생방 최우수 표창을 받았다. 이 표창을 당시 사령관 전두환에게서 받은 것이 밝혀져 대선 과정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1978년 제대 직후 부친을 잃은 문재인은 사법시험에 본격적으로 매진해 1979년 사시 1차에 합격했다. 그러나 부마항쟁과 10·26, 12·12 쿠데타의 소용돌이 속에서 재차 구속된 그는 1980년 유치장에서 2차 시험 합격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문재인은 부산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1982년 처음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게 된다.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만나게 된 그는 본격적으로 인권변호사 활동을 같이 시작했다. 특히 6월 항쟁 때인 1987년 부산국본(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를 결성, 문 후보는 상임집행위원을 맡으며 부산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 이후 1988년 노 전 대통령은 13대 총선에 출마해 정치권에 들어섰지만, 문재인은 노동·인권 전문 변호사 일을 계속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2002년 대선 경선 당시 문재인은 노 후보의 부산선대본부장을 맡으며 두 사람은 재결합했다. 그 후 문재인은 참여정부 시작과 끝을 함께 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기각 후 시민사회수석으로 청와대에 복귀한 그는 민정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어 참여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비서실장을 맡으며 ‘동지 노무현’과 참여정부의 끝자락을 함께 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뇌물 의혹이 불거지자 문재인은 변호인 겸 대변인으로 활동했고, 노 전 대통령 서거 때는 국민장의위원회 운영위원장으로 장례를 도맡았다. 이후 노무현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역임했다. 2012년 대선에서 안철수와의 단일화 끝에 48.02%라는 역대 야권 대선후보 최고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박근혜 후보에게 패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면서 문 후보는 적폐청산의 최적임자로 거론되면서 ‘대세론’을 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그 시절 공직 한 컷] 에~엥~~ 중앙청에 화재가? 휴~ 훈련 상황이었다네요

    [그 시절 공직 한 컷] 에~엥~~ 중앙청에 화재가? 휴~ 훈련 상황이었다네요

    1971년 정부종합청사로 사용되던 중앙청에서 소방훈련을 하고 있다. 중앙청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식민통치의 위엄을 내세우기 위해 경복궁을 가로막는 위치에 건설했다. 1945년 이후 미군정기에 군정청으로 사용하면서 중앙청으로 불리기 시작했고, 이승만 전 대통령은 이곳을 집무실로 사용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중앙청을 집무실로 사용하지 않아 정부 부처가 쓰다가 1986년 박물관으로 개관했으나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완전히 해체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무실을 청와대가 아닌 정부종합청사로 옮기겠다고 공약함에 따라 대한민국 권력의 중심축이 다시 광화문으로 옮겨오게 됐다. 국가기록원 제공
  • [씨줄날줄] 대통령의 패션과 음식/이동구 논설위원

    [씨줄날줄] 대통령의 패션과 음식/이동구 논설위원

    최고 지도자가 바뀌면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대중들의 관심이 쏠리기 마련이다. 무슨 말을 하고, 무엇을 먹고, 어떤 옷을 입는지, 반려동물은 무엇인지 등 소소한 부분들까지도 모두 뉴스가 된다.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거침없는 언행 때문에 취임 전부터 부정적인 면이 많이 소개된 반면 패션모델이었던 그의 아내 멜라니아와 딸 이방카는 또 다른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최근 30대의 젊은 나이에 프랑스 대통령이 된 마크롱의 경우도 통치 능력보다 그의 아내가 24살이나 많은 학교 선생님이었다는 사실 등이 더 큰 관심사가 되기도 했다. 전임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패션이 화젯거리로 자주 등장했다. 취임식이나 외국 방문 등 주요 행사 때마다 색깔과 액세서리를 달리한 그의 패션에 대부분의 언론이 긍정적인 표현들로 호들갑을 떨었다. 첫 여성 대통령인지라 패션, 헤어스타일 등 업무 외적인 면에도 대중의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기 전까지만 해도 색깔 외교니 패션 외교니 하면서 나름대로 긍정적인 의미가 부여됐다. 오방색이니 무속신앙 관련설 등은 박 전 대통령이 정치적인 어려움에 부닥친 후에 세인들의 입방아가 본격화됐다. 임기 초 역대 대통령들은 대부분 음식과 관련해 많은 화제를 만들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에는 취임과 동시에 과메기가 유행어로 떠올랐다. 그의 고향을 대표하는 계절 먹거리였기 때문이다. 영일만 친구 등 긍정적인 단어들도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과메기가 이명박 정부를 표현하는 대표적 상징어가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청와대 인근의 한 삼계탕 집은 인산인해를 이루기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청와대 칼국수와 거제 멸치, 김대중 전 대통령은 흑산도 홍어 등이 당시 정부의 대표적인 유행어로 통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막걸리를 떠올리는 국민이 많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생선회와 커피를 즐긴다고 한다. 서민들도 즐기는 친근한 음식들이다. 국가 통치와는 아무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이런 사소한 것(?)들에 언론과 세계인들이 관심을 쏟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통령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으로 관심과 애정을 표하는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인기가 하락할 때는 음식과 패션 등 사소한 것들이 갖는 의미의 이면이 훨씬 더 크게 부각되기 십상이다. 문 대통령의 커피와 생선회 또한 앞으로 국정을 잘 펼칠 때 더 따뜻하고 신선한 상태로 오래 유지될 것이다. 이동구 논설위원
  • 바른정당 “靑인선, 盧정부·86 운동권 인사 대거…패권 안되길”

    바른정당 “靑인선, 盧정부·86 운동권 인사 대거…패권 안되길”

    바른정당은 문재인 대통령이 단행한 청와대 핵심 참모 인선에 대해 우려와 기대를 11일 동시에 표명했다. 오신환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대체적으로 노무현이라는 공통분모가 내재돼 있다는 아쉬움이 있다”며 “또한 소위 86세대 운동권 인사가 주를 이루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낳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과거 박근혜 정부 시절에 박정희 시대로 되돌아가는 인사를 걱정했던 트라우마가 아직도 생생한 지금 노무현 정부와 86 운동권 인사들의 대거 등용이 행여 대결의 정치 또는 패권정치로 귀결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신임대통령의 국정철학 이행을 위한 의지 또한 보인다”며 “조국 민정수석의 인사배경에는 검찰개혁의 의지가 담겨있어 보인다”고 했다. 오 대변인은 “조현옥 인사수석 임명은 향후 정부 주요 조직의 인사 구성이 양성 평등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며 “여성계와의 약속이 이행될 것이란 희망을 여성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오 대변인은 “계속 발표될 인사들도 보은이나 연고적 측면보다는 공약을 실행할 수 있는 유능한 인재가 등용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독서에 굶주렸던 ‘문제아’…강제징집 때 발견한 ‘특전사 체질’

    독서에 굶주렸던 ‘문제아’…강제징집 때 발견한 ‘특전사 체질’

    “평탄치 않은 삶이었다. 돌이켜보면 신의 섭리, 혹은 운명 같은 것이 나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고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이 2012년 대권 도전을 앞두고 펴낸 저서 ‘운명’에 담긴 내용이다. 이처럼 5년 전 운명에 떠밀리듯 정치를 시작했던 그는 이제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숙명’과 마주하게 됐다. 가난했던 10대, 학생운동에 뛰어든 20대, 인권변호사로 민주화운동 일선에서 활동한 30대, 노무현의 ‘친구’이자 ‘동반자’로 청와대에 입성한 50대, 그리고 정치적 홀로서기에 나선 60대까지. 그의 인생을 뒤바꾼 10가지 장면을 들여다봤다.(1)유기정학까지 받았던 ‘문제아’ 문 당선인은 1953년 경남 거제에서 이북(함흥) 출신 피난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장사 실패 후 어머니가 근근이 생계를 꾸렸는데 성당에서 배급받은 강냉이 등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일이 허다했다. 문 당선인은 ‘운명’에서 “검댕을 묻히는 연탄배달 일이 늘 창피했다”고 회고했다. 명문 경남중·고 시절 ‘모범생’보다는 ‘문제아’에 가까웠다. 고3 여름방학 무렵에는 친구들과 축구를 한 뒤 학교 뒷산에서 술 마시고, 담배 피우며 고성방가를 하다 걸려 유기정학을 받기도 했다. 처음에는 이름 때문에 ‘문제아’란 별명이 생겼지만, 유기정학으로 진짜 문제아가 됐다. 이처럼 입시공부는 뒷전이었지만, 비교적 상위권을 유지했고, 신문과 독서에는 늘 굶주렸었다. 그는 “독서를 통해 내면이 성장하고 사회의식을 갖게 됐으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재수를 한) 대가를 보상받기에 충분”하다고 했다.(2)10월 유신, 법대생을 학생운동으로 그가 경희대에 재학 중이던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정권은 10월 유신을 선포했다. 하숙 생활을 했던 문 당선인은 밤늦게까지 선후배들과 시국담론을 나눴다. 캠퍼스 커플이던 부인 김정숙씨와 인연을 맺은 것도 이때다. 대학가의 반(反)유신 시위 열기는 고조됐다. 1975년 문 당선인은 뜻이 맞는 친구들과 총학생회를 장악해 유신 반대 시위를 열기로 했다. 총무부장이던 그는 시위 당일 등굣길에 붙잡힌 총학생회장(강삼재 전 의원)을 대신해 비상학생총회를 개최했다. 또 태극기를 들고 선두에 서서 학생 대열을 이끌고 교문으로 향했다. 문 당선인은 구속과 동시에 곧바로 학교에서도 제적됐다. 당시 유신 반대 시위에 참가한 대학생에 대한 형량은 ‘징역 2년 정찰제’라고 할 만큼 일률적이었다. 그러나 판사의 소신 판결로 징역 10개월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3)훈련마다 최우수 표창… ‘A급 사병’ 비록 더불어민주당 경선 TV토론에서 ‘전두환 표창 논란’을 초래했지만, 특전사 복무 시절은 그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다. 1975년 석방되자마자 강제 징집돼 특전사 제1공수 특전여단에 배치됐다. 군대는 의외로 체질에 맞았다. 첫발을 디딜 때부터 ‘A급 사병’으로 분류됐다. 학창시절 개근상 말고는 상을 받아본 적 없는 그였지만, 군 복무 시절 훈련마다 최우수 표창을 받았다. 논란이 됐던 전두환 당시 여단장으로부터 화생방 최우수 표창을 받은 것도 이때다. 공수부대에서 가장 고되다는 ‘천리(1000里) 행군’을 받을 때에도 산과, 강, 마을을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상병 시절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에 대응하는 미루나무 제거조에 투입되기도 했다. 공수부대가 체질이어서 제대 후 한동안 다시 군대에 가는 꿈에 시달렸다고 한다.(4)운명의 시작, 노무현의 첫 만남 문 당선인은 사법시험 합격 후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했지만 시위 전력으로 판사 임용은 안 됐다. 1982년 변호사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 문 당선인은 ‘김앤장’을 비롯해 대형 로펌 스카우트 제의를 마다하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사시 동기(사법연수원 12기)인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소개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개받았다. ‘운명적 만남’의 시작이다. 문 당선인은 ‘운명’에서 노 전 대통령의 첫인상에 대해 “나와 같은 세계에 속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두 사람은 ‘노무현·문재인 합동법률사무소’, ‘법무법인 부산’에서 시국 사건을 도맡으며 부산 지역의 대표적인 노동 인권변호사로 자리잡았다. 1987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4·13 호헌조치를 발표하면서 전국적인 저항이 일어났다. 부산의 민주화 바람도 거셌다. 문 당선인과 노 전 대통령은 부산 국본(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을 결성해 6월 항쟁을 주도했다. (5)노무현의 동반자로 청와대 입성 2003년 1월 서울 종로의 한 한정식집. 제16대 대통령 당선인 신분의 노 전 대통령과 문 당선인, 이호철 전 민정수석.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였다. 부산선대본부장으로 대선을 도왔던 문 당선인은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맡아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그가 즉답을 못 하자, 노 전 대통령은 “당신들이 대통령을 만들었으니 책임을 져라”라며 압박했다. 문 당선인은 일주일이 넘도록 고민을 거듭한 끝에 “민정수석으로 끝내겠다. 대신 정치하라고 하지 말라”는 두 가지 조건을 내걸고 수용했다. 그렇게 문 당선인은 평생 가보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걷게 된다. 정권 초반부터 대북송금 특검, 검찰 개혁 등 굵직한 업무가 수두룩했다. 청와대에 들어간 첫 1년 동안 과로로 치아를 10개쯤 뽑았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사진으로 보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으로 보는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제19대 대통령은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태어났다. 그는 6·25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서 피난을 내려온 부모로부터 1953년 경남 거제도 피난민 수용소에서 출생했다.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생 시절 친구 도시락 뚜껑을 빌려 강냉이 죽을 받아먹던 때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사진으로 그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 봤다. 그의 모친 강한옥(90) 여사는 당시 중학교 1학년이던 문재인을 데리고 암표장사를 하기 위해 이른 새벽 부산역으로 향했다. 하지만 차마 아들 앞에서 떳떳하지 못한 돈을 벌수 없어 먼 길을 그냥 돌아왔다고 한다. 시장에서 좌판을 꾸려 장사를 하고 연탄배달로 가족의 생계를 꾸린 어머니를 떠올리면 문재인은 늘 죄송하기만하다. 강 여사는 9일 부산 영도구 자택에서 개표결과를 조용히 지켰봤다. 문재인은 가난한 형편에도 공부를 잘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부산영도로 이사를 와 고등학교 때까지 부산에서 살면서 당시 명문이던 경남고에 진학했다. 하지만 ‘범생’은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 흡연과 음주를 하다가 학교 측에 들통나는 바람에 몇 차례 정학을 당한 것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그의 집에서는 전혀 알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은 경희대학교 법대에 72학번으로 입학했다. 재수 끝에 4년 장학금을 받고 대학생이 된 것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 학생운동의 선두에 서서 반독재 투쟁을 벌였다. 평생 동반자인 부인 김정숙(62) 여사를 이때 만났다. 시위에서 최루탄을 맞고 기절한 그를 김씨가 물로 적셔 깨우면서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됐다고 한다. 그녀는 대학교 2년 후배다. ‘안개꽃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진 그들의 러브스토리다. 그 시절 보통 군대에 면회를 갈 땐 맛있는 음식을 싸들고 갔지만 김씨는 안개꽃을 한 아름 안고 문재인을 찾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러브스토리가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김씨는 남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감옥으로, 군대로, 문재인이 사법시험을 공부할 때는 전남 해남 대흥사라는 절로 찾아갔다. 그들은 7년 열애 끝에 1981년 결혼했다. 문재인은 1975년 8월 육군에 입대했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제적을 당하고 강제 징집됐다. 특전사 수중폭파요원으로 복무한 그는 이 시절을 회상하면서 “‘내가 군인체질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며 흐뭇해했다. 실제로 그는 군 생활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의 주특기가 폭파라는 사실은 점잖은 지금의 이미지와 사뭇 다른 반전이다. 폭파과정 최우수 표창, 화생방 최우수 표창을 받았다. 당시 사령관 전두환에게서 받은 것이 밝혀져 대선 과정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1978년 제대 직후 부친을 잃은 문재인은 사법시험에 본격적으로 매진해 1979년 사시 1차에 합격했다. 그러나 부마항쟁과 10·26, 12·12 쿠데타의 소용돌이 속에서 재차 구속된 그는 1980년 유치장에서 2차 시험 합격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문재인은 부산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1982년 처음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게 된다.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만나게 된 그는 본격적으로 인권변호사 활동을 같이 시작했다. 특히 6월 항쟁 때인 1987년 부산국본(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결성 문 후보는 상임집행위원을 맡으며 부산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 이후 1988년 노 전 대통령은 13대 총선에 출마해 정치권에 들어섰지만, 문재인은 노동·인권 전문 변호사 일을 계속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2002년 대선 경선 당시 문재인은 노 후보의 부산선대본부장을 맡으며 두 사람은 재결합했다. 그후 문재인은 참여정부 시작과 끝을 함께 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기각 후 시민사회수석으로 청와대에 복귀한 그는 민정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어 참여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비서실장을 맡으며 ‘동지 노무현’과 흥망성쇠를 같이 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뇌물 의혹이 불거지자 문재인은 변호인 겸 대변인으로 활동했고, 노 전 대통령 서거 때는 국민장의위원회 운영위원장으로 장례를 도맡았고, 이후 노무현 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역임했다. 2012년 대선에서 안철수와의 단일화 끝에 48.02%라는 역대 야권 대선후보 최고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박근혜 후보에게 패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면서 문 후보는 적폐청산의 최적임자로 거론되면서 ‘대세론’을 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영광의 순간들…오늘 밤 한 사람만 웃는다

    영광의 순간들…오늘 밤 한 사람만 웃는다

    9일 오전 6시 정각 전국 1만 3964개 투표소에서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일제히 시작됐다. 이번 대선은 대한민국 사상 첫 대통령 탄핵에 따른 궐위 선거로 오후 8시까지 진행되며, 10일 새벽 2~3시쯤 당선인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13명의 출마 후보 가운데 단 한명 만 웃게 될 대선, 제14대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부터 지난 대선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영광의 날을 돌아봤다.● 개표 방송에 뜬눈으로 밤새고 새벽 조깅, 김영삼 1992년 12월 18일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진 군부정권의 실질적 종식과 함께 제12대 대선이 진행됐다. 민주화의 두 거목 김영삼 민주자유당 후보와 김대중 민주당 후보 양강 구도 속에 19일 새벽 김영삼 후보 당선이 확정됐다. 이후 집계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최종 득표율은 김영삼 후보 41.96%, 김대중 후보 33.82%였다. 서울 상도동 자택에서 18일 밤부터 19일 새벽까지 TV 개표방송을 지켜보던 김영삼 후보는 당선이 확정되자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서울 상도동 자택 일대는 잔치판이 벌여졌다. 김 당선인은 평소보다 10분 이른 새벽 5시 10분쯤 가벼운 조깅복 차림으로 자택을 나와 상도동 조깅팀인 민주조기회 회원 30여명과 아침을 시작했고, 민주조기회 회원들은 ‘위대한 우리의 지도자 김영삼 대통령 만세’ ‘우리는 해냈다’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북과 꽹과리를 치며 당선을 축하했다. ● 동생의 죽음 후 찾아온 대통령 당선 소식, 김대중 15대 대선이 진행 중이던 1997년 12월 18일 저녁 당시 유력 대선 후보인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가 삼성서울병원을 찾았다. 전날 간암으로 숨진 동생 대의씨의 빈소다. 대의씨는 대선에 출마한 형을 위해 ‘선거가 끝날 때까지 사망 소식을 알리지 말라’는 내용의 유언을 남겼고, 김 후보는 대선 당일 오전에서야 동생의 죽음을 알게 됐다. 투표를 마치고 빈소에 도착한 김 후보는 동생의 영정 앞에서 오열, 조문객들을 숙연하게 했다.김 후보는 그렇게 동생을 떠나보낸 몇 시간 뒤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이날 밤 일산 자택에서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새벽까지 TV 개표방송을 지켜봤고,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앞서 나가자 흥분한 측근들에게 “오차율의 한계가 있다”며 성급한 반응을 보이지 말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 태풍이 된 노란 바람, 노무현 2002년 12월 19일 제16대 대선의 시작에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대세론이 있었다. 하지만 최후의 승자는 당시 광주 경선에서 불기 시작한 ‘바람’을 12월 대선 ‘태풍’으로 키운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였다. 노 후보는 48.91%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46.58%에 그친 이 후보를 간신히 따돌렸다.대선 당일 경남 김해 선영 참배를 마치고 오후 6시쯤 서울 김포공항에 도착한 노 후보는 여의도 당사 인근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며 개표방송을 지켜봤다. 노 후보가 부인 권양숙 여사와 함께 당사를 찾은 시간은 이미 각 방송사들이 노 후보의 당선을 확정한 밤 10시 30분쯤이었다. 당사 입구에는 노사모 회원 등 1000여명의 지지자들이 운집, 북과 꽹과리 등을 치며 “대통령 노무현”을 외쳤다. ● 대권 도화선 청계천서 당선 인사, 이명박 2002년 12월 19일 제17대 대선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득표율 48.7%로, 26.14%에 그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를 큰 차이로 따돌리고 일찌감치 당선이 확정됐다. 대선 당일 서울 가회동 자택에서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마친 이 후보는 오후 9시 40분쯤 여의도 당사에 도착했다. 당선 확정까지는 개표율이 낮았으나 이미 당선을 확신한 듯 얼굴에는 미소와 여유가 넘쳤다.사실상 당선이 확실시되면서 이 당선인이 찾은 곳은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서울 청계광장이었다. 이 당선인은 지지인파가 모인 청계광장에서 “오늘 이 시간부터 힘드신 분들, 절망하시는 분들, 외국으로 이민 갈지 망설이는 분들 모두 희망을 갖고 그 자리에서 함께 하자”라며 “저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5년 동안 보여드리겠다”고 말해 큰 환호를 받았다. ● 첫 여성 대통령에서 첫 파면 대통령으로 몰락, 박근혜 2012년 12월 19일 제18대 대선은 결국 대한민국 역사에 큰 오점으로 남게 됐다.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51.55%라는 과반의 득표율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에 올랐지만, 그는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로 임기 5년을 마치지 못하고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 탄핵 인용에 따라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 탄핵으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도 박탈되면서 이제는 박근혜 전 대통령도 아닌 ‘수인번호 503’으로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다.박 전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당선 확정 직후 찾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했던 말은 “국민 여러분 모두가 꿈을 이루고 작은 행복이라도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는 국민행복시대를 반드시 열겠다”였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19대 대선 오늘 선택의 날] ‘롤러코스터’ 충청… “文·洪·安, 투표장까지 고민”

    [19대 대선 오늘 선택의 날] ‘롤러코스터’ 충청… “文·洪·安, 투표장까지 고민”

    반기문·안희정 꺾여 실망감…하루 전까지 “못 정했다” 우세“이번 선거는 공부를 하나도 안 하고 보는 시험문제 같아요. 어떤 답을 골라야 할지 전혀 모르겠어요.”(대전 서구 25세 대학생 유의재씨) “소신 있고 정직한 대통령을 뽑고 싶은데 확실하게 믿음을 주는 후보가 없습니다. 당장 내일이 투표지만 오늘 잠들기 전까지 고민해볼 생각이에요.”(대전 동구 51세 안경원 운영 양모씨) 1992년 치러진 14대 대선부터 충청의 선택은 항상 당선으로 이어졌다. 선거마다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 온 충청권의 민심은 이번 대선 기간 동안 유독 롤러코스터를 탔다. 올 초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에게 쏠렸던 표심은 불출마 선언 이후 안희정 충남지사를 거쳐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로 옮겨 갔다. 대선 전 마지막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독주하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뒤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2위로 올라서는 양상이었다.서울신문·YTN의 지난 2일 여론조사(엠브레인, 2058명,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2% 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에서 대전·충청·세종의 지지율은 문 후보 42.3%, 홍 후보 19.7%, 안 후보 14.0%로 나타났다. 보름 전 서울신문 조사에서 안 후보가 39.5%의 지지를 받아 31.1%의 문 후보를 따돌린 것과 확연히 달라진 결과였다. 그 사이 홍 후보는 11.7% 포인트나 올랐다. 실제 선거를 하루 앞둔 8일 대전에서 만난 충청 민심은 세 갈래로 쪼개져 있었다. 특히 반 전 총장과 안 지사로 이어졌던 ‘충청대망론’이 꺾인 데 대한 실망감이 두드러졌다. 그래서인지 “투표장에 들어서는 순간까지 고민할 것”이라며 망설이는 유권자들이 많았다. 현재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문 후보의 지지자들은 적폐청산의 적임자라는 점에 높은 점수를 줬다. 학원강사 한하영(34·여)씨는 “기득권만 위하지 말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할 사람이 필요해 문 후보를 뽑을 것”이라면서 “인권변호사로 시작해 사람을 먼저로 하고 국민의 눈물에 마음 아파하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사전투표를 한 충남대생 박남규(20)씨는 “곧 취업해야 하는데 문 후보의 청년 일자리 공약이 좋아서 뽑았다”면서 “진심으로 사람을 위하는 것이 느껴진다”고 했다. 충북 영동군에 사는 유승선(57)씨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 법이 만인에게 평등하다고 느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줄 것 같다”고 말했다. 안 후보에 대해 묻자 TV 토론 이후 실망했다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장상규(59·서구)씨는 “원래 안 후보를 지지했는데 TV 토론을 보니 완전히 허무맹랑한 소리만 해서 2번 찍기로 마음을 바꿨다”고 전했다. 하지만 여전히 안 후보를 지지하는 목소리도 컸다. 으능정이 문화의거리에서 만난 박옥희(49·여)씨는 “오히려 능수능란한 정치인보다 말은 못해도 소신 있게 잘할 수 있는 게 안 후보”라면서 “이번에 프랑스 대선도 젊은 사람이 됐지 않나. 우리나라도 젊은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안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상대적으로 홍 후보의 지지율은 껑충 뛰었다. 임정빈(55·택시기사)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싫지만 문 후보 대항마를 키우기 위해 홍 후보를 찍어줄 것”이라면서 “손님들을 태워보면 문 후보 지지자는 진짜 극성 말고는 없다. 주변에선 최근 3~4일 전후로 홍 후보로 결집하고 있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조은희(51·여·서구)씨는 “문 후보가 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힘들었던 것에 대해 복수할 것 같아 걱정된다”면서 “사전투표에서 2번을 뽑았다. 가장 잘할 것 같다”고 말했다. 대전 토박이 차성균(64)씨는 “사전투표 첫날 홍 후보를 뽑았다. 옛날 박정희 전 대통령 같은 박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TV 토론 이후 호감도가 올랐지만 사표(死票)가 될까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김은지(25·여·대덕구)씨는 “원래는 그냥 될 사람 찍자 해서 문 후보였으나 TV 토론을 보고 심 후보에게 마음이 가고 있다”면서도 “사표가 될까 봐 확 찍어주지는 못하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한유리(20·여·대학생)씨는 “바른정당 탈당 사태를 계기로 유 후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일 투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상당수의 대전 시민들은 선거 당일까지 고민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마지막까지 출렁이는 충청 민심이 대선의 변수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최선홍(69·여)씨는 “옛날 독립투사들처럼 나라만 위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면서 “어느 후보도 믿을 수가 없어서 아직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오창근(60·동구)씨는 “안 지사가 나왔으면 아마 충청에서 90%는 밀어줬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대전 중앙시장에서 만난 박모(58)씨는 “이제 영호남 지역대결이 의미가 없어져 충청 민심이 얼마나 영향을 끼칠지 모르겠다”면서 “오히려 세대별로 차이가 나서 60대 이상은 홍 후보, 2030세대는 문 후보로 나뉜 것 같다”고 말했다. 대전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선거 풍경

    [그때의 사회면] 선거 풍경

    교통과 인터넷이 발달한 지금도 불철주야 선거운동을 해야 하는 후보자들의 체력은 극한의 상황에 이르기 마련이다. 과거에는 대중 앞에 후보자들이 직접 설 수밖에 없어 피로도는 지금보다 훨씬 더했다. 1956년 5월 5일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유세를 위해 호남선 야간 열차를 타고 가다 급서한 해공 신익희 선생의 사인도 과로였다.유세 차량이나 확성기 등 장비가 충분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한꺼번에 수십만명을 동원하는 대규모 유세는 선거운동의 하이라이트였다. 지금은 찾아가는 유세를 한다면 그때는 모으는 유세를 했다. 서울에서는 성동 원두라 불리던 옛 동대문운동장, 여의도광장, 한강 고수부지, 남산 야외음악당 등이 유세장으로 애용됐다. 부산은 조방광장이나 옛 수영공항 부지, 대구는 수성천 백사장 등이, 다른 도시들은 주로 공설운동장이나 역전광장, 학교 운동장이 유세장이 됐다. 후보들은 공항이 있는 대도시는 비행기로 이동하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주로 기차로 다닐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보통 대여섯 시간 이상 걸렸기에 지방으로 이동하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금품을 살포하고 폭력을 동원하는 불법 선거운동도 공공연하게 벌어졌다. 선거철이 되고 유세가 끝나면 막걸리판이 열리는 것은 보통이었고 비누, 수건, 설탕, 고무신 등 선물 제조 업체들이 선거 특수를 누렸다. 유세장에 사람을 동원하려면 금품이 필요했다. 유신 이후 15년 만에 체육관 선거에서 직선제로 바뀐 1987년 대선에서는 정당 가입자와 유세에 참석한 청중들에게는 라이터, 핸드백, 손목시계, 스카프 등의 고급 선물뿐만 아니라 돈도 살포할 만큼 분위기가 혼탁했다. 혼탁의 정도는 국회의원 총선이 더 심했다. 선거철만 되면 친목회와 동창회를 빙자해 관광을 시켜 주고 표심을 얻으려 했다. 1963년 제5대 대선에서는 대통령 후보의 신문광고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당시 기호 3번 박정희 후보의 신문 1면 광고에는 “새 일꾼에 한표 주어 황소같이 부려 보자”라는 표어가 실려 있다. 장년층 이상이면 기억하는 후보가 진복기(1917~2000)씨다. ‘카이저 콧수염’으로 유명한 그는 1971년 대선에 출마해 박정희, 김대중 후보에 이어 3위를 했다. 그는 돌풍이 일자 박정희 정부가 겁을 먹고 유신헌법을 만들었다고 큰소리쳤다. 또 “신안 앞바다의 보물을 캐내서 온 국민을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고 선언했는데 훗날 실제로 보물이 발견됐다. 진씨는 1980년대 들어 상습 대선 출마자로 규제를 받았지만 그가 대선에 출마한 것은 1971년 한 번뿐이었다. 사진은 1967년 4월 25일 전북 정읍농고 교정에서 제6대 대선에 출마한 당시 신민당 윤보선 후보가 중절모를 쓴 촌로들 앞에서 연설하고 있는 모습. 손성진 논설실장
  • ‘그것이 알고싶다’ 박근혜 비자금 실체 파헤친다

    ‘그것이 알고싶다’ 박근혜 비자금 실체 파헤친다

    SBS 탐사보도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가 박근혜(65·구속) 전 대통령의 은닉 재산을 파헤친다.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은 6일 “박근혜·최순실 경제공동체의 재산 형성과정의 의혹을 파헤치고 은밀히 보관되어 왔다는 막대한 규모의 비자금의 실체에 접근해본다”고 밝혔다. 앞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던 검찰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61·구속)씨가 ‘경제공동체’(이익을 공유하는 관계)라고 규정했다. 일례로 특검팀은 최씨가 박 전 대통령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을 사 주고, 미르·K스포츠재단을 두 사람이 공동 운영하는 등 경제적으로 밀접하게 얽혀 있다고 판단했다. 제작진은 박 전 대통령 비자금 조성 의혹의 뿌리가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비롯됐다고 판단했다. 1979년 10·26 사태가 발생한 직후 청와대가 두 개의 금고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김계원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근무하던 비서실에서 나온 첫 번째 금고에서는 9억 6000만원이 발견됐다. 이 돈은 이후 12·12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 세력의 전두환씨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그런데 대통령 집무실에 있었고 접근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던 두 번째 금고 안은 텅 비어있었다. 이에 박근혜 전 대통령은 1989년 당시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국장(國葬·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로 치른 장례를 가리킴)이 끝난 11월 초순에 아버님 집무실을 정리한 적이 있었다”면서 “집무실 금고에는 서류와 편지, 아버님이 개인적으로 쓰실 약간의 용돈도 있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석연치 않은 해명이었지만 불의의 사고로 부친을 잃은 직후라서인지 당시 이 문제에 대해 아무도 의혹을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작진은 최씨가 관리를 맡아온 박 전 대통령의 재산 규모가 검찰·특검 수사에 의해 확인된 것보다 훨씬 더 큰 규모라는 의혹에 초점을 맞춰, 독일과 스위스를 오가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스위스 비밀 계좌와 관련한 사실을 추적했다. 그 과정에서 최순실씨의 재산 증식 사업을 돕던 독일인이, 박정희 정권 집권 당시 한국 내에 자신 명의의 차명계좌를 만들었고 역시 최씨를 돕던 독일 현지 측근이 스위스 은행에 계좌를 만들었다는 새로운 제보를 입수했다. 금융당국의 추적을 피하려는 의도로 개설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한국과 스위스의 두 계좌를 오가는 돈의 출처는 어디이며 그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최씨 일가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공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자금의 뿌리는 과연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를 ‘그것이 알고싶다’가 집중 조명한다. 방송은 이날 밤 11시 5분에 방송된다. 592억의 뇌물을 수수하고 직권을 남용한 혐의 등 18가지 혐의가 적용돼 기소된 박 전 대통령의 첫 공판기일은 오는 23일 열린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서울광장] 편은 우리가 갈랐다/진경호 부국장 겸 사회부장

    [서울광장] 편은 우리가 갈랐다/진경호 부국장 겸 사회부장

    김영삼 집권에 더 큰 울분을 터뜨린 쪽은 호남이 아니라 TK(대구·경북)였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세 정권을 이어 가며 30년을 ‘성골’로 보낸 그들 눈에 김 대통령의 고향 PK(부산·경남) 인사들은 점령군이었다. ‘개핵’(개혁)을 외치며 자신들이 앉았던 요직을 죄다 꿰차고 앉는 모습에 경악했다. 같은 영남이 아니었다. 부산 어느 복국집에서 “우리가 남이가”라 외쳤다더니 ‘우리’는 따로 있었다. 삽시간에 ‘저들’이거나 들러리가 됐다. 5년 뒤 김대중 정권이 몰고 온 격랑은 더 컸다. 정권 교체의 완력을 절감했다. 주요 정부부처와 사정기관, 공공기관 심지어 주요 기업과 언론사 등의 인사에까지 서남풍이 거세게 몰아닥쳤다. 5년짜리 대통령이 내 자리, 내 인생에 얼마나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대다수 대한민국 국민들이 또렷이 목도했다. 노무현 집권은 ‘패권’이 무엇인지를 일깨웠다. 3김 정치가 깔아놓은 지역분할구도 위에 이념분할구도가 얹어지면서 나라는 바야흐로 다중분할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강남좌파’가 등장했고 영남보수와 영남진보, 호남진보와 호남보수가 본격적으로 담을 쌓았다. ‘우리’와 ‘저들’을 가려내는 시선은 더욱 날카로워졌고, 피아 식별이 일상이 됐다. 뒤를 이은 이명박 정부의 영포라인과 박근혜 정부 진박 세력이 보여준 인사 전횡은 대통령 선거라는 것이 세력과 세력의 권력 쟁탈전임을 거듭거듭 확인시켜 주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30년간 10년 터울로 두 차례 정권교체를 겪는 과정에서 어김없이 강고한 ‘완장’들이 등장했고, 이들의 구심력과 원심력으로 인해 누구는 빨려들고 누구는 밀려났다. 대선이 다가올수록 정치권에 줄을 대려는 공직사회의 움직임은 분주해졌다. 교수 사회는 넘쳐나는 폴리페서들로 점점 번잡해져 갔다. 심지어 새 정부가 들어서면 방송토론 주요 패널들마저 면면이 바뀌었다. 모두 기형정치의 변주들이다. 언제부턴가 소통은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서만의 것이 됐다. 지역과 이념, 계층과 세대 가릴 것 없이 담장 밖은 죄다 말이 안 통하는 ‘저들’뿐이다. 누구에겐 막말이 누구에겐 ‘사이다 발언’이다. 증오와 분노를 넘어 모두가 지친 지금의 피로사회, 단절과 불신의 사회는 그렇게 정치 완력이 그려온 궤적 위에 만들어졌다. TV토론에서 ‘적폐’와 ‘패권’을 운운한 대선 후보들을 향해 쏟아지는 비난은 공허하다. 패권세력, 적폐세력이라고 손가락질하면서 입으로는 ‘협치’와 ‘통합정부’를 말하는 그들의 표리부동만큼이나 헛헛하다. 그런 자세로 어떻게 통합을 이루겠느냐고 질타하지만, 기실 알게 모르게 편을 먹고, 그 속에서 ‘담장 밖 이해 못할 사람’들을 탓하며 게으른 넋두리를 되뇌는 건 그들이 아니라 우리인지 모른다. 초유의 안보 위기와 고령화의 시한폭탄 앞에 섰다. 너와 내가 따로 없는 외환과 내우다. 사흘 남겨 놓은 19대 대선은 이미 배척의 선거가 됐다. 아무개가 대통령 되는 것만은 반드시 막겠다는 노기(怒氣) 속에 새 대통령이 나온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차라리 벼룩 세 마리를 끌고 가는 게 쉬울 상황이다. 이런 분열사회를 한낱 국민통합기구 같은 정치적 미장센으로 묶을 수 없음은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보여줬다. 국무총리를 다른 지역 출신으로 삼는다고 탕평이 되지도 않는다. 모두의 용기가 필요하다. 배격의 기저에 깔린 ‘저들’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고, 신념이라 믿는 아집도 한 번쯤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만큼 ‘저들’을 인정하는 관용도 요구된다. 후보들부터 나서야 한다. 파부침주(破釜沈舟), 타고 온 배부터 버리길 바란다. 대선 때 몰려든 인사를 멀리하고, ‘저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우리’의 지지로 당선됐지만 ‘저들’의 박수 속에 떠나는 대통령을 꿈꿔야 한다. 대통령 되더니 사람 달라졌다, 속았다는 극언까지도 겁내지 말아야 한다. 어느 정권만큼은 안 된다는 각각의 ‘우리’들도 모두의 대통령이 된 당선자에게 통합의 길을 터줘야 한다. 자신을 고릴라라고 멸시한 자를 국방장관에 앉힌 링컨과, 그렇게 멸시한 자의 부름에 응한 윌리엄 스탠턴, 둘 다 우리에겐 절실하다. jade@seoul.co.kr
  • 사전투표 최하위 TK 민심, “내 맘 나도 몰라, 9일 대선 투표날에나 찍을 사람이 결정할 것 같다“

    ‘보수의 텃밭’ 대구·경북(TK) 지역 민심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보수 후보에게 몰표를 몰아줬던 역대 선거와는 다른 양상이다. 지난 4일 19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가 시작됐지만, 마음 둘 곳을 확정하지 못해 표류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지지 우세 속에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에 대한 동정론도 일고 있다. 젊은 층과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표심을 감춘 ‘샤이 문재인’과 ‘샤이(숨은) 안철수’ 등 숨은 지지층도 존재하는 형국이다. 그런 상황이 TK지역의 낮은 사전투표율로 반영된다는 분석이다. 사전투표 둘째 날인 5일 낮 12시 현재 대구의 누적 투표율은 14.22%로 전국 최하위를 기록했다. 경북은 18.31%로 전국 17개 시·도(평균 16.82%) 평균을 상회하지만, 광주(22.5%), 전남(23.7%), 전북(21.7%)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다. 9일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보수 회귀가 본격화되고, 홍 후보로 급 쏠림 현상은 나타내고 있다. 이모(54·달서구 도원동)씨는 “대통령 탄핵과 새누리당의 분당에 실망해 투표를 하지 않기로 했다가 결국 홍 후보를 찍기로 했다”고 말했다. 최근 지지후보를 안 후보에서 홍 후보로 바꿨다는 정 모(49·중구 동인동)씨는 “문 후보가 싫어 안 후보를 지지했으나 최근 홍 후보가 뜨는 것을 보고 지지 후보를 바꿨다”고 밝혔다. 안 후보에 대한 지지세는 아직 상당하다. 김모(62·수성구 황금동)씨는 “대구는 정서상 문 후보와 맞지 않는 것 아니냐. 그렇다고 실망만 안겨주는 한국당과 홍 후보를 찍을 수는 없다. 중도와 통합을 내세우는 안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지지 입장을 보였다. 유 후보는 바른정당 소속 의원 집단탈당의 역풍으로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이모(58·수성구 범어동)씨는 “유승민 후보가 코너에 몰렸다. 우리 집 5표를 유 후보에게 몰아 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모(37·달성군 화원읍)씨도 “우리 가족 유권자 4명 중 2명이 유 후모를 찍는다”고 말했다. 안동시외버스정류장에서 만난 40대 여성은 “유 후보가 여성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나라 건설을 공약해 마음이 끌린다”며 “유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경북의 분위기도 다르지 않다. 5일 이른 아침 사전투표를 했다는 김한수(63·회사원·포항시 대흥도)씨는 “우리 후보(TK 출신)가 없어 누구를 찍을까 갑갑해하다가 투표장에 나가니까 그래도 보수 후보밖에 없었다. 결국, 홍 후보를 찍었다”고 말했다. 동해안 최대 재래시장인 포항 죽도시장에서 수산물을 파는 이순녀(59·여)씨는 “그동안 박근혜 전 대통령과 한국당의 열렬 팬으로 실망한 것은 말도 못한다. 그렇다고 진보인가 뭔가 하는 후보를 찍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구미에서 개인택시 운전을 하는 김홍식(71)씨는 “‘박근혜 무능한 대통령’이라고 했던 홍 후보가 최근 박정희·박근혜 띄우기에 나서면서 보수층이 결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 후보, 안 후보에 대한 지지 분위기도 만만찮다. 공단이나 학원 밀집지역에서 두드러진다. 구미공단 회사원 김미나(27·여)씨는 “주위에서 자유한국당과 홍 후보가 싫어 문 후보와 안 후보를 찍으려는 사람이 많다”고 했고, 경주 문산공단의 최영숙(53)씨는 “문 후보가 우리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어려운 상황을 가장 잘 대변해 줄 것 같다”며 투표했다고 말했다. 12개의 대학이 몰려 전국 최대의 대학가를 형성하고 있는 경산대 3학년인 우창민(29)씨는 “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일자리를 많이 만들 것 같아 찍어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영주에서 자영업을 하는 김원석(60)씨는 “아무래도 대선일 투표 직전까지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文이 대세” “洪 아임니꺼” “安, 주관 뚜렷”

    “文이 대세” “洪 아임니꺼” “安, 주관 뚜렷”

    “살아온 과정이 깨끗하고 정직합니다. 대통령감은 대세인 문재인이죠.”(울산 52세 직장인 류모씨) “미국도 그렇고 강한 대통령들 시대다. 그렇다면 홍준표 아임니까.”(부산 사하구 57세 건설업 정점수씨) “아이를 키우다 보면 현실적으로 보게 되는데 안철수 후보는 주관이 뚜렷해 지지합니다.”(부산 해운대구 43세 주부 이윤정씨)●보름 새 文·洪 5·10%P↑ 安 10%P↓ 부산은 1990년 3당 합당 전까지 호남보다 야성(野性)이 강해 ‘야도’(野都)라 불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통치를 끝낸 단초가 된 부마항쟁의 중심이었다. 5·9 대선의 주요 후보 중 2명(문재인·안철수)은 부산에서 자랐고 1명(홍준표)은 경남지사 출신이다. 어느 때보다 관심이 크다. 실제 부산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 서울신문·YTN의 2일 여론조사(엠브레인, 2058명,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2% 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에서 부산·울산·경남의 지지율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40.6%,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28.2%,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14.8%로 나타났다. 보름 전 서울신문 조사에 비해 문 후보와 홍 후보는 각각 5%·10% 포인트 오른 반면 안 후보는 거의 10% 포인트 빠졌다. 첫 대선 사전투표가 시작된 4일 부산 시민들의 속내를 물어봤다. 정권교체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구여권에 대한 안타까움도 품고 있었다. 문 후보 지지자들은 개혁입법 과제를 완수할 수 있는 제1당 후보라는 점에 높은 점수를 줬다. 사전투표를 한 이영수(54·은행원)씨는 “박근혜 정권의 실정에 대한 평가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그 적임자는 문 후보라 한 표를 행사했다”고 말했다. 김소연(34·여·대학원생)씨는 “또래들 사이에선 박근혜 정권 실정에 대한 반감으로 무조건 바꾸자는 분위기가 우세하다”고 전했다. 한 청년은 양정1동 사전투표소 앞에서 문 후보를 연상케 하는 문(門) 한 짝을 들고 찍은 인증샷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리기도 했다. 보수색이 짙은 지역인 만큼 ‘샤이 문재인’(숨은 문 후보 지지자)도 고연령층에 존재했다. 초량1동 주민센터에서 투표를 한 박모(75)씨는 “주변 할배, 할매들 모두 홍 후보를 지지하는데 어떻게 말하냐”면서도 “앞서 나가는 후보에게 한 표를 줬다”고 귀띔했다. ●할배·할매 洪 지지하는데 어찌 말하나 부산은 전국 최고의 노인인구 밀집지역이다. 50대 이상 보수 성향 유권자의 결집은 이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2012년 대선 당시 부산에서 문 후보의 득표율은 39.9%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득표율(59.8%)보다 20% 포인트쯤 뒤졌다. 문 후보가 부산·경남(PK)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이유다. 취업준비생 정예찬(24·사하구)씨는 “주변에서 박 전 대통령에 배신감과 실망이 있어 대선 얘기를 잘 하지 않는다”면서 “홍 후보가 시원시원한 맛이 있어 호감이 간다”고 말했다. 자갈치시장에서 건어물 가게를 운영하는 윤재웅(61)씨는 “애초 안 후보를 염두에 뒀던 지인들이 최근 홍 후보 지지로 돌아서는 분위기”라면서 “문 후보는 빨갱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고 했다. 비프광장에서 길거리 음식을 파는 차모(60·여)씨도 “그리(탄핵) 할 수 있나. 돼지발정제는 장난으로 한 거라카는데 다른 후보는 흠이 없겠노”라고 주장했다. 안 후보와 홍 후보 사이에서 갈등하는 보수 유권자의 고민도 컸다. 서면에서 30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이해문(50)씨는 “안 후보는 안랩이나 교수를 지낸 경험을 보면 참 똑똑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뒤에 있는 박지원 때문에 호남 편향적이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사하구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배해숙(58·여)씨는 “안 후보가 4차 산업혁명 준비를 강조하는 걸 보면 전문성이 있어 청년 일자리를 잘 만들어 낼 것 같다”고 평가했다. ●劉·沈 호감도 커졌지만… 사표 우려 TV 토론에서 주목받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에 대한 호감도 존재했다. 다만 사표(死票) 심리는 여전했다. 부산 토박이인 택시기사 최재주(68)씨는 “유 후보를 지지하지만 세가 약하다 보니 마음을 못 정하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반면 대학생 김모(23·여·녹산동)씨는 “토론회에서 홍 후보에게 심한 말을 들으면서도 평정을 잃지 않는 유 후보의 모습에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부산가톨릭대에 다니는 배현규(20)씨는 “심 후보가 성소수자 문제를 밝히는 것을 보고 뚜렷한 소신이 마음에 들었다”면서 “사표가 될 수 있겠지만 지지하는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직장인 박민지(32·여·김해)씨는 “어차피 문 후보가 될 텐데 심 후보에게 소신 있게 한 표를 던지고 싶다”고 밝혔다. 부산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홍준표 유세 돕는 장기정 누구? “방망이 시위·일베 치맥파티”

    홍준표 유세 돕는 장기정 누구? “방망이 시위·일베 치맥파티”

    지난 2월 박영수 특검 자택 앞에서 야구방망이로 협박 발언을 쏟아낸 장기정(40) 자유청년연합 대표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유세를 돕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지난 1일 온라인커뮤니티에는 홍 후보와 나란히 걷고 있는 장기정씨의 사진이 올라왔다. 사진 속 모습은 홍 후보가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 박정희 대통령 기념 도서관을 방문했을 때로 장씨는 홍 후보 캠프에서 유세지원본부 특별유세단 부단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직접 자신의 SNS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이런 거 뿐”이라며 홍준표 후보 캠프로부터 받은 임명장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장씨는 10여 년을 보수단체에서 활동해오며 지난 2014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단식 투쟁을 폄훼하기 위한 목적으로 일간베스트의 회원들을 초대해 ‘치맥 파티’를 주도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를 앞둔 지난 2월 27일 주옥순 엄마부대 봉사단 대표, 박찬성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대표, 신혜식 신의 한수 대표 등과 함께 박영수 특검 자택 앞에서 과격시위를 벌였다. 당시 장씨는 야구방망이를 들고 연단에 올라 “말로 하면 안 된다. 이XX들은 몽둥이 맛을 봐야 한다”며 협박성 발언을 쏟아냈고, 이날 집회로 박영수 특검의 부인이 혼절하기도 했다. 장씨는 집시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돼 경찰 조사를 받았지만 자신의 SNS에 “내가 잘못되더라도 슬퍼하거나 분노하지 말라, 인생은 원래 그런거다”라며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근령, 홍준표 지지선언 “언니 박근혜 살려줄 유일한 후보”

    박근령, 홍준표 지지선언 “언니 박근혜 살려줄 유일한 후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생 박근령씨는 1일 “언니를 살릴 유일한 후보”라며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후보 지지를 선언했다.1일 아시아뉴스통신에 따르면 박근령씨는 “미약한 힘이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 된다는 믿음으로 홍 후보를 지지한다고 선언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박씨는 “이번 대선은 좌파 정권이냐 우파 정권이냐 중차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좌파 정권의 탄생은 퍼주고 뺨 맞는 굴종의 대북정책, 잃어버린 10년의 연속일 뿐”이라면서 “뿔뿔이 흩어진 박정희 대통령 지지 세력과 박 전 대통령 지지 세력이 하나로 뭉치면 홍 후보의 당선은 삼척동자도 아는 상식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박씨는 “좌파는 거짓말로 망하고 우파는 분열로 망한다는 교훈을 잊지 맙시다”라면서 “자유 민주주의를 외롭게 지키려다 유폐 당한 박 전 대통령을 구해달라. 억울한 누명을 쓰고 순교한 박 전 대통령을 살려줄 유일한 대통령 후보는 기호 2번 홍준표 후보”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소녀상 옆 대통령 흉상 설치 또 시도…“노무현 정신으로 소녀상 이전하라”

    소녀상 옆 대통령 흉상 설치 또 시도…“노무현 정신으로 소녀상 이전하라”

    부산 소녀상 철거를 주장하는 남성이 지난달에 이어 또 소녀상 옆에 전직 대통령 흉상 설치를 시도했다. 1일 오후 1시쯤 자신을 ‘진실국민단체’ 사무국장이라고 밝힌 이모 씨가 부산 동구 일본영사관 앞에 나타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흉상을 설치하려고 했다.이모씨는 시민들과 구청 직원의 제지를 받았다. 이씨는 지난달 21일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흉상을 소녀상 옆에 설치하려다가 시민들의 제지를 받았던 사람 중 한 명이다. 이씨는 지난번과 달리 이날은 혼자 소녀상을 찾았다. 이씨는 흉상 설치에 앞서 준비해온 성명서를 꺼내 읽어내려갔다. 지난번처럼 이씨가 시민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것을 막으려고 경찰은 이씨가 성명서를 읽고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대폭 제약했다. 이씨가 “노무현 대통령은 100만 재일동포들을 위해 이곳의 불법적인 소녀상 설치에 반대했을 것”이라면서 “노무현 정신으로 소녀상을 이전하라”고 성명서를 읽자 지켜보던 시민들이 즉각 반발했다. 시민 김모씨는 이씨를 향해 “역사를 팔아먹은 사람”이라면서 “거짓된 주장으로 언론의 시선을 끌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이씨를 막기 위해 오전부터 소녀상 주변을 경계하고 있던 소녀상 지킴이 단체에서도 “노무현 대통령 정신을 이씨가 마음대로 해석해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보인다”면서 “부산 시민의 힘으로 소녀상을 지키자”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이날 이씨를 취재하려고 많은 언론이 모여들자 시민들은 “이런 사람들한테 관심을 주면 더 이런 행동을 한다”면서 “언론이 취재 요청에 응하지 말아달라”는 당부를 하기도 했다. 이씨는 감시하는 시민들로 소녀상 접근이 쉽지 않자 경찰 통제구역 내에서 미리 가져온 사다리를 펼쳐 흉상을 올려놨다. 그런 뒤 가방에서 끈을 꺼내 사다리를 주변 나무에 동여매고는 20여 분 만에 현장을 떠났다. 이 흉상은 설치한 지 30초도 안 돼 미리 대기하고 있던 동구청 직원들에 의해 사다리째 철거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의문의 北 난수 방송/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의문의 北 난수 방송/황성기 논설위원

    1970년대 단파 방송이 잡히던 라디오가 집에 한 대씩은 있던 시절 섬뜩한 말투로 영문을 알 수 없는 숫자를 읽어 내려가는 북한 방송을 들었던 사람이 적잖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남파 간첩 혹은 남에 뿌리내린 고정 간첩들에게 보내는 암호화한 지령이라는 사실쯤은 당시의 초등학생도 알고 있는 상식이었다. “들어선 안 된다”는 어른들의 훈계에도 우연히 잡힌 난수 방송을 몰래 듣다 보면 왠지 범죄를 저지르는 듯한 죄책감이 든 것은 박정희 시대 반공교육의 영향이었을 것이다.“지금부터 27호 탐사대원들을 위한 원격교육대학 정보기술 기초 복습 과제를 알려드리겠다. 823페이지 69번, 467페이지 92번, 957페이지 100번….” 어제 오전 1시 15분 지령용으로 추정되는 난수(亂數) 방송 내용이다. 북한 평양방송이 송출한 것으로 아나운서가 6분을 들여 같은 내용을 두 번 읽었다. 이날 방송은 지난 14일 것과 같은데 동일한 내용을 두 차례 내보낸 전례가 있다. 북한은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난수 방송을 중단했으나 16년 만인 지난해 6월 24일 재개했다. 올 들어 14번째, 지난해까지 합치면 총 34차례 난수 방송을 내보냈다. 북한이 왜 난수 방송을 재개했는지에 대해서는 설이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간첩에게 보내는 지령 전파용. 북한 전문가인 바른정당의 하태경 의원은 “여러 차례 밝혔지만 북한이 새롭게 파견한 간첩에게 보내려고 난수 방송을 재개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하 의원은 “인터넷을 통한 스테가노 그래피(전달하려는 기밀 정보를 이미지 파일이나 MP3 파일 등에 암호화해 숨기는 기술)는 국가정보원에 많이 알려져 실제로 붙잡힌 간첩도 있고, 해킹에도 취약해 암호 해독 방법을 알기 어려운 숫자 방식을 이용했다”는 것이 하 의원의 설명. 심리전의 일환이라는 주장도 있다. 대공 수사에 밝은 전문가는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에 여러 경로의 정보 전달 루트가 있는데도 난수 방송을 흘려보내는 것은 뜻밖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남한 사회의 불안을 부추기기 위한 할리우드 액션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낡은 방식이긴 하지만 구글의 지메일 임시보관함에 지령을 내려 놓고 간첩들이 확인하는 방법도 있다는 것이 다른 전문가의 귀띔. 하 의원도 “심리전의 가능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고 인정한다. 지령 전파든, 심리전이든 북핵 위협의 시대에 난수 방송을 경계할 필요가 있지만 1984년생의 김정은이 70년대식 낡은 난수 방송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느낌이다. 황성기 논설위원
  • 洪 “영남·충청 총리” 劉 “흔들리지 않아” 沈 “나라 당당하게”

    劉, 탈당 이은재 겨냥 “자기 당 후보 팔아”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는 28일 차기 내각 구성과 관련, “국무총리는 충청 인사 한 분과 영남 인사 한 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홍 후보는 이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초청 정책간담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홍 후보는 “청와대 안보실장은 한미연합사 대장 출신을 영입해 한·미 동맹을 더욱 강화하겠다”면서 “법무부 장관은 정치색이 없는 호남 출신 강력부 검사에게 맡기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교육부총리는 전교조를 제압할 수 있는 보수 우파 인사 중에 교섭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홍 후보는 또 이날 보수 성향의 개신교 교단협의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한국교회연합 인사들을 만나 “목사님들이 좀 나서 주시면 판을 한번 뒤집을 수 있을 것”이라며 구애했다. 오후에는 서울 마포구 상암동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도서관을 방문했다. 보수층이 재결집하고 있다는 판단 아래 박차를 가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바른정당 의원들은 이날 유승민 후보에게 ‘후보 단일화’를 거듭 압박했다. 전체 소속 의원 33명 중 20명은 공동 성명서를 통해 “3자(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 후보 단일화는 중도·보수 대통합을 바라는 국민들의 여망에 부응하는 마지막 길”이라고 단일화 논의 착수를 촉구했다. 특히 이은재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좌파 집권을 저지하려면 분열된 보수가 다시 하나로 합쳐야 한다”며 바른정당 의원 중 처음으로 탈당을 선언하며 홍 후보 지지 의사를 밝혔다. 다른 의원들의 동요가 더해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유 후보는 완주 의지를 다졌다. 그는 “대선 후보를 뽑아 놓고 자기 당 후보를 어디에 팔아넘기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분명히 제가 말씀드리지만 아무리 저를 흔들어 대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이날 전국철도노조와 정책 협약식을 가진 뒤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근처에서 청년 표심 얻기에 나섰다. 심 후보는 유세에서 “이번 대선은 촛불의 선두에 섰던 청년들이 결정한다”면서 “대한민국 사회를 당당하게 바꾸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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