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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요 에세이] 공무원의 ‘자기합리화’/정재근 유엔거버넌스센터 원장, 전 행정자치부 차관, 시인

    [수요 에세이] 공무원의 ‘자기합리화’/정재근 유엔거버넌스센터 원장, 전 행정자치부 차관, 시인

    1980년 대학 2학년 겨울로 기억된다.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후의 사회적 격동으로 1년여 문을 닫았던 대학들이 다시 학업을 재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미처 놓친 공부를 보충하기 위해 방학 중 경제학 무료 특강을 실시한다는 게시문이 붙었다. 첫 시간에 교수는 우리를 둘러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여기 공무원 될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 같아서 얘기하는데, 여러분, 공부 똑바로 제대로 하세요. 공무원이 제대로 하면 500만명의 국민이 웃고 공무원이 정책을 잘못하면 500만명 국민의 눈에서 피눈물이 납니다.” 그리고 1979년 돼지고기 파동에 대해 말했다. 몇 년 전 돼지고기 값이 오르자 정부는 가격안정을 위해 공급을 늘리기로 하고 새끼 돼지 한 쌍을 원하는 농민에게 무상으로 분양한 후 나중에 갚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그런데 정책을 입안한 공무원은 돼지의 습성을 잘 몰랐다. 돼지는 사람이나 소와 달리 태어난 지 8개월이면 임신을 할 수 있고 임신 후 4개월이면 한 번에 8~12마리를 낳는다. 시골 노부모들이 빈 외양간과 음식 부산물을 활용해 몇 마리를 기를 수 있었지만 1년여를 지나 돼지 수가 급증해 사료 없이는 도저히 버틸 수 없었다. 사료값이 폭등해 돼지를 키울 수 없게 되자 농민들은 새끼들이 태어나는 대로 죽일 수밖에 없었다. 피붙이와도 같은 새끼를 땅에 묻으며 농민들은 피눈물을 흘렸다. 교수는 덧붙였다. “수요공급 곡선이 전부인 줄 알던 어리석은 공무원이 농민들의 가슴에 피멍이 들게 했다. 이론만 달달 외지 말라. 공무원이 되려거든 인생 공부, 역사 공부, 철학 공부를 해라. 무엇보다도 돈의 눈이 아닌, 인간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인간을 긍휼히 여기는 따뜻한 마음을 갖기 위한 공부를 해야 한다. 공무원이 되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공무원이 돼 기필코 국민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의지가 생겨야 한다. 내가 하려는 일이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생기고 이 일을 하면서 내 인생도 행복해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공부에 대한 열정이 생겨 공무원 시험엔 바로 합격할 것이다.” 물론 당시의 돼지고기 파동이 공무원에게만 책임을 묻기 어려운 여러 가지 구조적 어려움이 있었다. 단지 교수는 공무원을 꿈꾸는 제자들에게 공직 가치의 소중함을 강조하려고 사안을 단순화했을 것이다. 아무튼 그런 말이 나를 움직였다. 33년에 걸친 내 공직생활 중 어려움도 많았고 유혹도 있었다. 그때마다 국민 행복을 위한 바른 정책의 생산과 집행, 그리고 따뜻한 행정이라는 공직 가치를 심어 주셨던 그 선생님을 생각하며 견뎠다. 돼지고기 파동 사례는 내 일에 대한 가치와 보람을 되새겨 줬다. 며칠 뒤면 국가직 7급 공무원 채용시험이 실시된다. 최고 100대1의 경쟁을 뚫고 대한민국의 공무원이 될 그대들은 왜 공무원이 되려는가.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된 직장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은 누구나 꿈꾸는 목표라고 말하려는가. 내 자신의 행복이 우선이지만 그것만으로는 힘든 공직여정을 행복하게 항해하기 어려울 것 같다. 공직은 개인의 행복을 넘어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도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어서 선택했다는 자기만의 논리를 구체적 사례를 가지고 만들어야 한다. 필자는 이것을 ‘개인목표를 사회화하는 과정’이라고 부른다. 개인의 목표를 사회적 목표와 조화를 이루도록 만드는 ‘자기합리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통해 공직생활 중 자꾸 되새기며 스스로를 담금질할 나름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힘들고 두렵고 유혹을 받을 때 자기합리화의 논리를 자꾸 꺼내 쓰다듬노라면 언젠가 문득 나 자신만의 삶을 위해 공직을 선택했던 마음이 옅어지며 나의 삶과 공직의 삶이 하나로 다가오는 가슴 뭉클한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공무원들이여, 자기합리화를 하자.’
  • 국정원, ‘오프라인 심리전’ 위해 박승춘이 만든 단체에 자금 지원

    국정원, ‘오프라인 심리전’ 위해 박승춘이 만든 단체에 자금 지원

    국가정보원이 ‘오프라인 심리전’을 위해 박승춘 전 국가보훈처장이 만든 단체인 ‘국가발전미래교육협의회’(국발협)에 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22일 한겨레에 따르면 국정원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부터 사무실 임대료와 상근자 월급 등의 명목으로 약 1년간 국발협 한 지회에 5000만원 안팎을 지원했다. 자금 출처는 온라인 여론조작과 마찬가지로 국정원 특수활동비였다. 국발협은 2010년 8월 안보교육 등을 목적으로 만들어져 서울사무소와 대전·부산·경남 등 11개 지회를 두고 있었고, 국정원은 다른 지회에도 비슷한 수준의 지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국정원 전직 직원은 국정원이 예산 지원뿐 아니라 안보강사와 일정 등 사실상 대부분의 활동을 관리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당시 국발협 안보강연은 몇 차례 ‘편향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국발협 강사들은 예비군 동원훈련 등에서 “김대중·노무현 당선은 북한의 정치적 도발이 성공한 사례”, “광우병 촛불시위는 종북세력의 선동” 등의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박 전 처장은 국발협을 만든 뒤 설립 이듬해인 2011년 2월 국가보훈처장이 됐다. 그가 국가보훈처장이 된 뒤에도 국정원과의 커넥션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국가보훈처는 2012년 1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찬양하고 민주화운동을 ‘종북’으로 헐뜯은 영상자료(DVD)를 예비군 교육 등에 배포해 야당 등의 반발을 샀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부서장회의 녹취록에는 “예비군 교육 잘해주고, 자료를 잘 못 만드니까 너희들이 신경 쓰라”고 말한 사실이 포함됐다고 한다. 한편 박 전 처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국정원의 국발협 예산 지원 사실 등을 묻자 “답변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전화를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문수 “문재인 우표 완판, 저는 가슴이 아픕니다” 왜?

    김문수 “문재인 우표 완판, 저는 가슴이 아픕니다” 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19일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기념우표 매진 소식에 “저는 가슴이 아픕니다”라는 글을 올렸다.김 전 도지사는 “박정희 대통령 기념우표는 이미 발행하기로 작년에 결정되어 있었던 것을, 문재인 대통령 취임후 갑자기 번복하여 발행취소를 했지 않습니까?”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묻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우표 발행 취소 결정을 보고 받지 않았습니까? 박정희 대통령 기념우표를 굳이 발행하지 못하게 한 결정이 과연 국민과 역사에 어떻게 비칠까요?”라면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문재인대통령은 잘못 취소된 박정희대통령 기념우표를 계획대로 발행해 주시기 바란다. 역사와 국민과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가하면 20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아 대국민 보고대회를 한 것과 관련해서는 “전시행정이라는 말이 생각난다”며 비난했다. 그는 “청와대에서 사흘이 멀다하고 기자회견하고 요란하게 국민보고대회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면서 “적폐청산한다는 촛불대통령이 전시행정에 세계적 신기록을 갱신하고 있으니 누가 바로 잡을지 걱정이다. 내가 하면 ‘국민소통’, 남이하면 ‘전시행정’입니까?”라고 반문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근로자와 노동자/오일만 논설위원

    [씨줄날줄] 근로자와 노동자/오일만 논설위원

    일본 제국주의의 뿌리가 참으로 질기다. 해방을 맞고도 70년이 넘었건만 우리의 제도와 문화 곳곳에 아직도 일본식 용어가 남아 있다. 전체적 국가주의와 권위주의적 식민지 잔재가 아직도 온존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다. ‘천황 만세’를 외쳤던 친일파가 해방 이후 역사적 단죄를 받지 않고 득세한 것은 반공을 국가 정책으로 삼은 미국의 세계 전략 덕분이다. 일제의 잔재가 더욱 고착화된 것은 군부 독재 시기였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나 정일권 국무총리 등 권력 핵심부는 일본 육사나 만주 육사를 거치면서 일본식 교육을 신봉했던 인물들이다.이들의 그늘 아래 친일파들은 정치·경제·교육·문화 등 각계각층에서 식민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유지·발전시키면서 세력을 확대하는 계기로 삼았다. 타율성과 정체성을 강요한 교육을 주입한 것은 일제의 차별적인 억압 정책을 관철하기 위함이다. 군부 독재의 통치 이데올로기가 손을 잡은 이유는 간단하다. 자연과 인간, 사물에 대한 주체적 회의와 사유를 거세해 말 잘 듣는 순종형 인간형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자유와 평등, 창의를 앞세우는 민주주의적 가치관은 독재 체제 유지에 걸림돌일 뿐이다. 친일 기득권과 군부 독재의 결합, 이것이 식민주의 유산이 이처럼 맹위를 떨치는 근본적 이유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모든 법률에서 사용하는 ‘근로’라는 용어를 ‘노동’으로 일원화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한다. 박 의원은 ‘근로’라는 용어는 일제시대 근로정신대에서 유래한 것으로 수동적이고 사용자에 대한 종속적 개념으로 국제노동기구와 세계 입법례에도 없다고 설명한다. 한자문화권인 중국, 대만, 일본 노동법에서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 군부 독재 시기였던 박정희 정권이 1963년 ‘노동절’ 명칭을 ‘근로자의 날’로 변경한 것도 같은 이유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일왕을 위한 충군애국을 강요한 교육칙어나 유신시대 국민교육헌장을 줄줄 외어야 했던 통치 시스템의 뿌리는 같은 것이다. 이참에 우리 사회에 끈질기게 남아 있는 일제 식민주의 잔재를 청산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아직도 우리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식민사관이다. 역사는 민족의 정체성을 이루는 근본적 뿌리이자 우리의 혼이라는 점에서 식민사관의 폐해는 지대하다. 국회 동북아역사 왜곡특위가 밝혀낸 것처럼 식민사관의 연장선상에서 왜곡된 역사를 하나하나 제자리로 돌려놓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각박한 사회 속 추리 재미 풀무질한 ‘미스터리’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각박한 사회 속 추리 재미 풀무질한 ‘미스터리’

    재미있는 책이 없다. 시간도 없고, 골치 아프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는 책을 읽고 싶다는 강한 내적 욕구를 포기하고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기회만 닿는다면 누구나 책을 읽고 싶어 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리하여 한 번 손에 든 이상 끝장을 보기 전에는 결코 팽개칠 수 없도록 지속적인 흥미를 유발시키면서도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수 없는 유익한 책이 나와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호기롭게 독자들의 독서 욕구를 사로잡겠다는 취지를 밝히고 있는 이 글은 지금으로부터 34년 전인 1983년 세상에 선보인 잡지 ‘미스터리’(MYSTERY) 창간호 머리글이다. 여전히 우리나라 독서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1980년대에도 사정은 비슷했던 모양이다.바쁘다는 이유로, 책이 재미없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독서를 멀리했다. 책보다는 텔레비전이나 영화가 더 재미있고 쉬는 날이면 가만히 앉아 책을 보느니 놀이동산에 가서 기구에 올라타는 게 더 짜릿한 경험이다.그래도 책만이 줄 수 있는 멋진 경험이 있다. 그건 아무리 설명하려고 해도 알 수 없다. 마치 문 안쪽에 쓰인 글자처럼 책이라고 하는 것은 직접 읽어 보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세계를 간직하고 있다. 그 놀라운 세계는 같은 책이라도 읽는 사람에 따라서 다른 모습으로 존재한다. 이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더 많은 사람을 이 멋진 독서의 세계로 초대하고 싶어 한다. 그 노력은 곳곳에서 지금도 끊임없이 진행 중이다. 책이라도 다 같은 책이 아니라 그 내용에 따라 여러 장르로 나뉘는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추리소설은 독자가 적다. 시간은 흘러서 밀레니엄도 훨씬 지났지만, 여전히 미스터리를 포함한 소위 장르문학은 독자층이 얇다. 읽는 사람이 없으니 이런 작품을 쓰는 작가도 많지 않다. 악순환이다.서양은 산업혁명 시기를 즈음해 본격적으로 장르문학이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특히 사회가 복잡해지고 자본주의,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지면 범죄 소설이나 반유토피아 소설들이 쏟아져 나왔다. 미국 작가 애드거 앨런 포(1809~1849)가 쓴 기괴한 작품에 몇몇 평론가들이 주목했다. 영국에선 명탐정 셜록 홈스를 탄생시킨 아서 코난 도일(1859~1930)이 활약했다. 그 뒤를 이어 나타난 불세출의 추리작가 애거사 크리스티(1890~1976)는 그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평생 동안 100권에 달하는 작품을 남겼고, 영국 여왕으로부터 남자의 기사 작위에 해당하는 ‘데임’ 작위를 받았다. 이들이 쓴 작품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 세계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고 연극, 영화, 텔레비전 등 수많은 매체로 변주돼 여전히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다.우리나라의 경우 역사를 돌아보면 애석하게도 미스터리 장르가 들어설 만한 여유가 없었다. 산업화 물결이 세계를 뒤덮었던 1800년대 후반 조선은 일본의 간섭을 받았고 결국 강제로 주권을 빼앗긴 채로 자그마치 반세기를 흘려보냈다. 준비도 없이 갑작스러운 해방을 맞은 후에는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그 후로 1990년대가 될 때까지는 군사정권이 사회를 움켜쥐고 있었으니 국민들이 한가롭게 소설이나 읽고 있을 여유가 있었겠는가. 주인공이 수수께끼를 풀고 모험에 빠져드는 추리소설이라면 더욱 찬밥 신세였고 지금도 그런 시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에 추리소설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1년에 출판된 이해조의 ‘쌍옥적’은 본문 앞에 ‘정탐소설’이라는 말을 명기할 정도로 이 소설이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장르임을 밝히고 있다. 그 외에도 몇몇 작품이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였기에 제대로 된 추리소설을 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코난 도일의 작품이 일본을 통해 번안돼 소개되는 일도 있었지만, 도시인 경성을 무대로 한 추리소설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었다.이때 느닷없이 등장한 작가 김내성(金來成)은 1939년 2월부터 조선일보에 추리소설 ‘마인’을 연재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셜록 홈스에 비견되는 탐정 ‘유불란’을 창조한 김내성은 이후에도 여러 작품을 펴내며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 추리소설 작가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그러나 김내성의 아성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그 이름은 혼란스러운 역사 속에 잊혔고 몇 년 전 김내성 탄생 100주년을 맞아 야심차게 펴낸 기념 소설들도 지금은 모두 절판된 상태다.이런 흐름 속에 우리나라 추리소설 장르가 다시 한번 발전을 꾀한 시기는 박정희 정권이 막을 내린 직후인 1980년대다. 1970년대 후반부터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 몇몇이 모여 ‘미스터리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친목회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발전시켜 1983년에 한국추리작가협회를 만들었다. 초대 회장은 국민대 대학원장 이가형 교수가 맡았다. 협회는 잡지와 신문에 추리소설을 제공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다. 회장인 이가형 교수는 해문출판사에서 시리즈로 펴낸 애거사 크리스티 전집 번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앞서 소개한 잡지 미스터리도 이때 창간했다. 하지만 표제 위에 있는 ‘부정기간행물’이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잡지의 운명을 예측하기는 힘들었다.미스터리 창간호에 실린 목록은 상당히 눈길을 끈다. 김내성의 잘 알려지지 않은 소설 ‘벌처기’(罰妻記) 전문을 실었고 대작 ‘여명의 눈동자’를 끝내고 이제 막 전성기를 맞은 우리나라 추리소설의 대부 김성종의 작품 ‘얼어붙은 시간’ 연재 1회분을 실었다. 그런가 하면 ‘금수회의록’으로 잘 알려진 작가 안국선이 쓴 과학소설 ‘비행선’을 발굴해 소개했고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쓴 범죄 소설 ‘트레일러가의 살인 사건’, 존 스타인벡의 ‘살인’을 소개하면서 독자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야심차게 써내려 간 창간사와 달리 잡지는 오래가지 못했다. ‘미스터리’ 2호는 다른 잡지의 부록으로 끼워 넣었을 만큼 위상이 떨어졌고 3호는 끝내 나오지 못했다. 잡지를 펴내던 소설문학사는 추리소설이라는 제목을 단 부록으로 몇 번 더 명맥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지만 금세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한국추리작가협회마저 사라지지는 않았다. “추리소설은 인기 없는 장르”라는 오명을 완전히 떨쳐 버리지 못했지만 ‘계간 미스터리’ 잡지를 꾸준히 내놓고 있다. 2015년엔 격월간으로 펴내는 잡지 ‘미스테리아’가 새롭게 창간하면서 우리나라 장르문학 지평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비인기 장르라는 오래된 숙제를 풀 수 있는 열쇠는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을지 모른다. 오늘도 여러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장르문학을 쓰고 있는 작가들, 그리고 추리문학을 사랑하며 응원하는 독자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나라 추리소설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 김영삼 ‘서편제’부터 문재인 ‘택시운전사’까지…대통령의 영화 정치

    김영삼 ‘서편제’부터 문재인 ‘택시운전사’까지…대통령의 영화 정치

    1980년 5월 18일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의 참상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가 20일 누적관객 1000만명을 돌파하며 올해 첫 ‘1000만 영화’에 올랐다. 배급사 쇼박스에 따르면 택시운전사의 누적관객수는 이날 오전 8시 기준 1006만 8708명으로 집계됐다.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시민 학살을 전 세계에 고발한 독일 기자 고(故) 위르겐 힌츠페터와 그를 서울에서 광주까지 태우고 간 택시기사 ‘김사복’의 실화를 다룬 이 영화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힌츠페터 기자의 부인인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 여사 등과 함께 관람하면서 정치권에서도 화두로 떠올랐다. 문 대통령의 취임 후 첫 공개 영화 관람 작품으로, 국가 최고 권력자의 공개적인 영화 관람은 단순히 문화생활을 넘어 정치적 의지를 담은 것으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첫 영화 ‘택시운전사’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린 문 대통령은 관람 직후 “광주 이야기는 영화로도 마주하기 힘든 진실이기 때문에 광주 민주화운동이 늘 광주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는 국민 속으로 확산되는 것 같다”면서 “이런 것이 영화의 큰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문 대통령은 힌츠페터 기자와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 실제 힌츠페터 기자는 1980년 5월 독일 제1공영방송(ARD-NDR) 일본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중 광주에 대한 소문을 듣고 서울로 가 택시운전사 김사복씨의 도움으로 광주 현지 취재에 성공했다. 그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기로에 선 한국’은 세계 각국에 방송되면서 광주의 참혹한 진실을 알렸지만 한국에서는 대학가와 성당 등 정권의 감시를 피해 암암리에 상영됐다.부산에서는 1987년 부산 가톨릭센터에서 상영됐는데, 당시 이를 주도한 인물이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다. 부산 시민은 이를 통해 광주 학살의 참상을 알게 됐고 부산·경남 지역 민주화 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 뽀로로·넛잡·명량·국제시장·인천상륙작전박근혜(구속 수감) 전 대통령은 당선 직후와 취임 초반에는 영화 관람을 통해 국정철학인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을 강조했다. 대선 당선 이후 처음으로 극장을 찾은 영화는 2013년 1월 ‘뽀로로 극장판 슈퍼썰매 대모험’이다.이는 문화 콘텐츠가 경제·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됐다. 2014년 1월에는 국내 자본과 기술력이 투입된 애니메이션 ‘넛잡:땅콩도둑들’을 관람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 영화가 북미에서는 흥행을 기록했지만 국내에선 최종 관객수 47만명에 그친 점을 지적하며 “한국 흥행부진이 국내 배급시스템의 문제인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도 강조했다. 박 전 대통령의 ‘영화 정치’는 집권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보수층 껴안기 전략을 택했다. 박 전 대통령은 2014년에 영화 ‘명량’과 ‘국제시장’을, 2016년에는 ‘인천상륙작전’을 관람했다. 공교롭게도 세 영화 모두 개봉 이후 애국 코드를 지나치게 남발했다는 이른바 ‘국뽕’ 논란에 휩싸인 영화다. ‘국뽕’은 ‘애국심’과 마약을 의미하는 은허 ‘뽕’을 조합한 신조어로, 애국심에 지나치게 도취되거나 애국심을 무분별하게 강요하는 행태를 비꼬는 의미로 사용된다.특히 ‘국제시장’은 박 전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재임 시절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삶과 조국 발전을 그린 영화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영화 관람 직후 “젊은이들과 윗세대의 소통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이명박 전 대통령 – 도가니·워낭소리이명박 전 대통령이 재임 중 관람한 영화는 독립영화로는 드물게 300만에 육박하는 관객을 동원한 ‘워낭소리’와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을 다룬 ‘도가니’가 대표적이다. 워낭소리 관람을 통해서는 성공 신화의 희망을, 도가니를 통해서는 제도와 사회 의식 개혁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평가됐다. 이 전 대통령은 2009년 워낭소리를 관람한 직후 “자녀 9명을 농사지어 공부시키고 키운 게 우리가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었겠는가”라면서 “교육을 통해 가난의 대물림을 끊으려 했던 것이 우리의 저력이 됐고 외국인도 이에 놀라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2011년 도가니 관란 후에는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를 통해 “이와 유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법적,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지만 전반적인 사회의식 개혁이 더욱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의식개혁을 위해서는 사회 전반의 자기희생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 왕의 남자·맨발의 기봉이·괴물·밀양·화려한 휴가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중 가장 많은 영화를 봤다. 영화 장르나 스토리가 다양해 ‘화려한 휴가’를 제외하면 특별한 정치적 메시지를 읽기 힘들다. 영화 관람을 통한 정치를 했다기 보다는 대통령이 아닌 ‘인간 노무현’으로 영화를 선택했다는 평가다.2003년 2월 취임한 노 전 대통령의 첫 극장 방문 작품은 2006년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은 ‘맨발의 기봉이’ ‘괴물’ 등을 관람했고, 2007년에는 독립영화 ‘길’과 참여정부 초대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이창동 감독의 ‘밀양’을 관람했다.청와대 초청 행사에서 “대통령과 동향인 김해의 가락마을 출신”이라고 소개한 밀양의 주연배우 송강호는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영화 ‘변호인’에서 인권 변호사 시절의 노 전 대통령을 연기하며 인연을 이어갔다.노 전 대통령이 관람한 영화 중 정치적 메시지가 읽히는 영화는 ‘화려한 휴가’다. 택시운전사와 마찬가지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 노 전 대통령은 붉게 충혈된 눈과 깊게 잠긴 목소리로 “가슴이 꽉 막혀서 영화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면서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이 볼 것 같다. 그럴 만한 영화다”라고 평가했다. ●‘영화 정치’ 시작한 김영삼, 재임 중 극장 못 간 김대중‘영화 정치’의 시작은 1993년 개봉한 ‘서편제’로 꼽힌다. 그해 5월 청와대는 춘추관에서 고(故)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 함께하는 서편제 상영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임권택 감독과 주연배우 김명곤, 오정해 등이 참석했다. 김 전 대통령은 영화를 본 뒤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 내가 본 영화 중에서 가장 큰 감명을 받았다”라면서 “이 정도면 세계 어디에 내놔도 되겠다. 문화대국으로 가는 것도 신한국 건설의 하나”라고 극찬했다.김영삼 정부에 이어 취임한 고(故) 김대중 대통령은 문화계 지원을 대폭 확대했으면서도, 정작 재임 기간 중 극장은 찾지 못했다. 당시 직면한 시대적 과제인 IMF 외환위기 극복 탓에 자제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김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는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 ‘화려한 휴가’ 등을 관람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김문수, ‘문재인 우표’ 완판에 “가슴 아프다”…왜?

    김문수, ‘문재인 우표’ 완판에 “가슴 아프다”…왜?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기념우표가 이틀 만에 사실상 ‘완판’을 기록하자 “가슴이 아프다”고 밝혔다.김 전 지사는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기념우표가 웃돈까지 붙어 완판되고 있다”며 “(발행이) 잘못 취소된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우표를 계획대로 발행해달라”며 이같이 썼다. 김 전 지사는 “박정희 대통령 기념우표는 이미 발행하기로 작년에 결정되어 있었던 것을,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갑자기 번복해 발행취소를 하지 않았느냐”며 “박정희 대통령 기념우표를 굳이 발행하지 못하게 한 결정이 과연 국민과 역사에 어떻게 비치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문재인 대통령은 잘못 취소된 박정희 대통령 기념우표를 계획대로 발행해 주기 바란다”며 “역사와 국민과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오는 9월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기념우표를 발행하려던 계획이었으나 박정희 우상화 논란으로 7월 12일 재심의를 거친 끝에 발행 취소가 결정된 바 있다. 구미시는 7월 18일 박정희 대통령 기념우표 발행 철회를 취소해 달라며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다. 한편 17일 우정사업본부는 전국 총괄우체국과 인터넷우체국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우표를 판매했다. 19일 기준 전체 500만 장 중 99%에 달하는 495만 2000여장이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장준하 선생 42주기 간 피우진… 현직 대통령 첫 추모사 대독

    장준하 선생 42주기 간 피우진… 현직 대통령 첫 추모사 대독

    피우진(왼쪽) 국가보훈처장이 17일 경기 파주 장준하 공원에서 열린 장준하 선생의 42주기 추도식에서 장 선생의 장남인 장호권씨와 악수를 하고 있다. 독립운동가인 장 선생은 박정희 유신독재에 맞서 민주화투쟁에 헌신하다 1975년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피 처장은 이날 문재인 대통령의 추모사를 대독했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현직 대통령이 장 선생의 추도식에 추모사를 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합뉴스
  • ‘썰전’ 유시민 “전두환, 범죄자가 자기 범죄 사실 부인하는 수준”

    ‘썰전’ 유시민 “전두환, 범죄자가 자기 범죄 사실 부인하는 수준”

    ‘썰전’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 회고록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17일 방송된 JTBC ‘썰전’에서는 유시민 작가, 박형준 동아대 교수가 전두환 전 대통령 회고록에 대해 이야기했다. 박 교수는 “전두환 회고록이 법원으로부터 판매금지 가처분 결정이 내려졌다. 책의 33곳을 5.18 관련 단체에서 왜곡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허위사실로 인정돼 가처분 결정이 된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사람들은 믿고 싶은걸 믿는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나 측근들은 5.18 민주화 운동이나 80년 상황을 자신들이 생각하는 틀에서만 본다”고 말했다. 유 작가는 “범죄자가 자신의 범죄 사실을 부인하는 수준”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5.18 관련 재판이 많았다. 전두환 씨 본인이 내란목적 살인으로 유죄선고를 받았다. 거기서 거의 다 인정된 내용이고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해 유죄선고 받은 재심 재판에서 관련 사실이 다 인정됐다. 범죄자로 중형을 선고 받았으나 대통령이 사면해준 분들이다. 자기의 범행을 지금와서 부정하고 있는거다. 그러고 싶으면 친구들끼리 할 일이지 왜 책에 썼냐”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자신의 ‘데모’ 경험담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서울의 봄이 있었다. 당시 내가 대학교 3학년이었다. 5월 13일 서울에서 가장 큰 데모가 있을 때 내가 맨 앞줄에 섰다. 시청앞에서 백골단이 갑자기 덮치는 바람에 최루탄이 내 눈에 들어왔다. 한쪽이 실명 직전까지 갔다”고 밝혔다 유 작가는 “시청 앞 나도 거기 있었다. 해산할 때 ‘전두환이 쿠데타를 할거다’ 했다. 학생 대표들이 그런 사태가 발생하면 각 학교 앞에서 시위하자고 약속했다. 다른 대학에서는 시위를 못했는데 전남대 학생들은 전남대 앞에서 시위를 한거다. 거기서부터 충돌이 빚어졌고 도시 여러 군데에 군인을 투입하고 사태가 커진거다”고 말했다. 그는 “5월 21일 전남도청 앞에서 대규모 발포가 이뤄졌다. 집단발포 전까지는 시민군 손에 무기가 없었다. 최초로 무기 탈취가 이뤄진 화순 파출소 무기고 탈취시간과 비교하면 그 무기조차도 도청앞까지 갈 시간이 안된다. 사실 관계가 밝혀져서 역사 기록으로 인정된 이야기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북한군 소행이라고 전두환 대통령이 회고록에 적었다. 지난해 신동아 인터뷰 보면 북한군 특수군 600명 이야기가 나오니까 들은 적 없다고 나온다. 회고록이 북한군이 와서 뭘 했다는건 사후에 이야기를 듣고 그럴듯 하니 자기들 입장에서 쓴거다”고 말했다. 유 작가는 “만약 그랬다면 5.18 당시 전두환씨가 국군보안사령관,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 중앙정보부장이다. 북한군 600명인가가 들어왔으면 자기는 뭐했냐. 그런걸 회고록에 왜 썼냐. 요즘 ‘나 바보에요’ 하는게 유행이냐”고 비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장준하 추모식’에 추모사 보낸 문 대통령 “애국의 가치 재정립해야”

    ‘장준하 추모식’에 추모사 보낸 문 대통령 “애국의 가치 재정립해야”

    일제강점기 광복군으로 활동하면서 독립사상을 고취하고, 국내침투작전 등을 추진했던 장준하 선생(1918년 8월~1975년 8월)의 42주기 추도식이 17일 오전 11시 경기 파주 장준하공원에서 열렸다.장준하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린 이날 추모식에 참석한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추모사를 대독했다. 역대 대통령 중 장준하 선생 추도식에 추모사를 보낸 사람은 문 대통령이 처음이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40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적이 있는 문 대통령은 이날 추모사를 통해 “장 선생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는 일은 정파와 이념을 초월해 모두가 함께 풀어야 할 역사적 과제”라면서 “(40기 추도식 참석 당시) ‘장준하 특별법’ 제정을 추진했다”고 밝혔다. 이어 “진상을 규명하지 않고서는 선생이 꿈꿨던 평화로운 나라, 진정한 국민통합의 시대로 나아가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면서 “선생이 평생 바쳐온 애국의 가치도 바르게 세워야 하고 해방 이후 지금까지 친일과 독재 세력이 왜곡하고 점유해온 애국의 가치도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안북도 선천 출신인 장 선생은 1944년 일본군에 징집됐으나 중국에서 6개월 만에 탈출해 광복군에 입대했다. 간부훈련반에서 훈련을 받고 광복군 제2지대에 배속돼 활동했다. 교양·선전잡지 ‘등불’을 발간해 독립사상을 고취하고, 광복군의 존재를 중국인들에게 알렸다. 1945년 한·미 연합 특수훈련을 받고 정보·파괴반에 배속돼 국내 침투작전을 준비하다 광복을 맞았다. 해방 뒤에는 잡지 ‘사상계’ 등을 발간하며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 여러 차례 옥고를 치렀다.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옥중 당선되기도 했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5년 8월 17일 경기 포천 이동면 약사봉에서 숨진 채 발견돼 권력기관에 의한 타살 의혹이 불거졌다. 문 대통령은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향한 길은 장준하 선생을 비롯한 애국선열들, 국가를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헌신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온전히 기릴 때 더욱 굳건해질 수 있다”면서 “오직 국민을 위한 나라, 남과 북이 평화롭게 화합하는 한반도를 이루는 것이 선생의 후손으로서 감당해야 할 소명”이라고 덧붙였다. 장준하기념사업회의 유광언 회장은 인사말에서 “42회째 열어온 추모식에서 올해 처음 문재인 대통령께서 추모사를 보내주셨다”면서 “이는 6·10 민주항쟁과 촛불 시민혁명을 통해 역사의 줄기를 바로 잡아가는 하나의 상징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신동욱 “고마워요 문재인, 태극기부대 전투력 배가시켜줘서”

    신동욱 “고마워요 문재인, 태극기부대 전투력 배가시켜줘서”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100일째인 17일 주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고마워요 문재인’이 오르자 신동욱 공화당 총재가 “살충제 달걀 먹게 해줘서 고마운 꼴”이라고 비꼬는 글을 올려 눈총을 받고 있다.신 총재는 이날 트위터에 “고마워요 문재인, 살충제 달걀 먹게 해줘서 고마운 꼴이고 살충제 날계란 먹게 해줘서 고마운 꼴. 문재인 대통령도 피하는 살충제 계란을 국민이 안심하고 못 먹는 꼴이고 불안한 꼴이다. 국민 먹거리 계란을 위해 文대통령께 날계란 먹기 캠페인 제안한다”는 글과 함께 날계란을 먹는 자신의 사진을 올렸다. 또 “고마워요 문재인,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 취소 고마운 꼴이고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배지 발행 명분 만들어줘 고마운 꼴이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기념우표첩 추가발행 고마운 꼴이고 박정희 기념배지 추가발행 고마운 꼴이다”라는 글도 적었다. 끝으로 “박정희 대통령 가문의 화합과 결속을 만들어줘 고맙고, 태극기부대 전투력을 배가시켜줘 고맙다. 보수의 단결과 결집의 계기를 만들어줬다”라고 적었다. 네티즌들은 “관종이다. 병원가라”, “처형의 선물이니 고마우면 많이 드시길”, “관심 필요한가보다”, “처형께 따지세요. 아프면 병원에 가세요”라며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정희 기념도서관 표지석에 열흘만에 또 ‘붉은색 낙서’

    박정희 기념도서관 표지석에 열흘만에 또 ‘붉은색 낙서’

    서울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도서관 표지석에 지난 8일에 이어 누군가가 또 낙서를 했다.17일 서울 마포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1시 40분쯤 마포구 상암동 ‘박정희 대통령 기념도서관’ 표지석 앞면에 낙서가 돼 있는 것을 시민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낙서는 붉은색 스프레이로 돼 있었다. 지난 8일에도 누군가 붉은색 스프레이로 ‘개XX’라는 욕설을 적어놓고 달아났다. 박 대통령 표지석에 낙서가 적힌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경찰은 같은 색 스프레이를 쓴 점으로 미뤄 동일범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주변 폐쇄회로(CC)TV 영상을 분석하고 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광복절 경축사] “2019년은 건국 100주년”… 건국절 논란에 쐐기

    [광복절 경축사] “2019년은 건국 100주년”… 건국절 논란에 쐐기

    “산업화·민주화 구분 넘자…19대 대통령 문재인 역시 이승만·박정희 역사 속에 있다”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내년 8·15는 정부 수립 70주년이기도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72주년 경축식 경축사에서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일을 대한민국 건국일로 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진보·보수 대립의 최전선이었던 ‘건국절 논란’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건국절’은 2006년 7월 식민지근대화론자인 이영훈 서울대 교수의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는 언론 기고문에서 비롯됐다. 이후 이명박 정부 시절 뉴라이트 단체의 ‘대안교과서’ 출판,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과정에서 ‘이념 갈등’으로 불붙었다. 지난 9년간 보수 정부는 대한민국 건국일을 1948년 8월 15일로 규정했고, 독립운동 단체와 진보진영에선 임시정부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문 대통령은 “진정한 광복은 외세에 의해 분단된 민족이 하나가 되는 길로 나아가는 것이며, 진정한 보훈은 선열들이 건국 이념으로 삼은 국민주권을 실현해 국민이 주인인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근현대사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세력으로 나누는 것도 이제 뛰어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수 진영의 정치적 셈법에서 비롯된 건국절 논란을 매듭지음으로써 미래지향적 통합의 길을 나가자는 의도인 셈이다. “모든 역사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며 개인의 삶 속으로 들어온 시대를 산업화와 민주화로 나누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의미 없는 일이다. 19대 대통령 문재인 역시 김대중·노무현만이 아니라 이승만·박정희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모든 대통령의 역사 속에 있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 대통령은 또한 “지난 100년의 역사를 결산하고 새로운 100년을 위해 공동체의 가치를 다시 정립하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며 “보수·진보, 정파의 시각을 넘어 동참해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건국절 논란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경축식에 앞서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백범 김구 선생의 묘역을 찾아 참배했다. 현직 대통령이 김구 선생의 묘역을 찾은 것은 1998년 6월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두 번째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류석춘 혁신위원장은 “너무 당연한 1948년 건국을 견강부회해서 1919년을 건국이라고 삼는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라면서 “건국과 건국 의지를 밝힌 것은 다른 말”이라고 반박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전문›문재인 대통령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

    ‹전문›문재인 대통령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해외에 계신 동포 여러분, 촛불혁명으로 국민주권의 시대가 열리고첫 번째 맞는 광복절입니다.오늘, 그 의미가 유달리 깊게 다가옵니다. 국민주권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처음 사용한 말이 아닙니다.백 년 전인 1917년 7월, 독립운동가 14인이 상해에서 발표한‘대동단결 선언’은 국민주권을 독립운동의 이념으로 천명했습니다.경술국치는 국권을 상실한 날이 아니라오히려 국민주권이 발생한 날이라고 선언하며,국민주권에 입각한 임시정부 수립을 제창했습니다.마침내 1919년 3월, 이념과 계급과 지역을 초월한전 민족적 항일독립운동을 거쳐,이 선언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국민주권은 임시정부 수립을 통한 대한민국 건국의 이념이 되었고,오늘 우리는 그 정신을 계승하고 있습니다.그렇게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세우려는 선대들의 염원은백 년의 시간을 이어왔고,드디어 촛불을 든 국민들의 실천이 되었습니다. 광복은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이름 석 자까지 모든 것을 빼앗기고도자유와 독립의 열망을 지켜낸 삼천만이 되찾은 것입니다.민족의 자주독립에 생을 바친 선열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독립운동을 위해 떠나는 자식의 옷을 기운 어머니도,일제의 눈을 피해 야학에서 모국어를 가르친 선생님도,우리의 전통을 지켜내고 쌈짓돈을 보탠 분들도,모두가 광복을 만든 주인공입니다. 광복은 항일의병에서 광복군까지애국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이 흘린 피의 대가였습니다.직업도, 성별도, 나이의 구분도 없었습니다.의열단원이며 몽골의 전염병을 근절시킨 의사 이태준 선생,간도참변 취재 중 실종된 동아일보 기자 장덕준 선생,무장독립단체 서로군정서에서 활약한 독립군의 어머니 남자현 여사, 과학으로 민족의 힘을 키우고자 했던 과학자 김용관 선생,독립군 결사대 단원이었던 영화감독 나운규 선생,우리에게는 너무도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었습니다. 독립운동의 무대도 한반도만이 아니었습니다.1919년 3월 1일 연해주와 만주, 미주와 아시아 곳곳에서도한 목소리로 대한독립의 함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항일독립운동의 이 모든 빛나는 장면들이지난 겨울 전국 방방곡곡에서,그리고 우리 동포들이 있는 세계 곳곳에서, 촛불로 살아났습니다.우리 국민이 높이든 촛불은 독립운동 정신의 계승입니다. 위대한 독립운동의 정신은민주화와 경제 발전으로 되살아나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그 과정에서 희생하고 땀 흘린 모든 분들,그 한 분 한 분 모두가 오늘 이 나라를 세운 공헌자입니다. 오늘 저는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그리고 저마다의 항일로 암흑의 시대를 이겨낸 모든 분들께,또 촛불로 새 시대를 열어주신 국민들께,다시금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저는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이 날이민족과 나라 앞에 닥친 어려움과 위기에 맞서는용기와 지혜를 되새기는 날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존경하는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경북 안동에 임청각이라는 유서 깊은 집이 있습니다.임청각은 일제강점기 전 가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망명하여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무장 독립운동의 토대를 만든석주 이상룡 선생의 본가입니다.무려 아홉 분의 독립투사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산실이고,대한민국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상징하는 공간입니다.그에 대한 보복으로 일제는 그 집을 관통하도록 철도를 놓았습니다.아흔 아홉 칸 대저택이었던 임청각은지금도 반 토막이 난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이상룡 선생의 손자, 손녀는해방 후 대한민국에서 고아원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임청각의 모습이 바로 우리가 되돌아봐야 할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일제와 친일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고,민족정기를 바로 세우지 못했습니다. 역사를 잃으면 뿌리를 잃는 것입니다.독립운동가들을 더 이상 잊혀진 영웅으로 남겨두지 말아야 합니다.명예뿐인 보훈에 머물지도 말아야 합니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사라져야 합니다.친일 부역자와 독립운동가의 처지가해방 후에도 달라지지 않더라는 경험이불의와의 타협을 정당화하는 왜곡된 가치관을 만들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을 모시는 국가의 자세를완전히 새롭게 하겠습니다.최고의 존경과 예의로 보답하겠습니다.독립운동가의 3대까지 예우하고자녀와 손자녀 전원의 생활안정을 지원해서국가에 헌신하면 3대까지 대접받는다는 인식을 심겠습니다. 독립운동의 공적을 후손들이 기억하기 위해임시정부기념관을 건립하겠습니다.임청각처럼 독립운동을 기억할 수 있는 유적지는모두 찾아내겠습니다.잊혀진 독립운동가를 끝까지 발굴하고,해외의 독립운동 유적지를 보전하겠습니다. 이번 기회에 정부는대한민국 보훈의 기틀을 완전히 새롭게 세우고자 합니다.대한민국은 나라의 이름을 지키고, 나라를 되찾고,나라의 부름에 기꺼이 응답한 분들의 희생과 헌신 위에 서 있습니다.그 희생과 헌신에 제대로 보답하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젊음을 나라에 바치고 이제 고령이 되신독립유공자와 참전유공자에 대한 예우를 강화하겠습니다.살아계시는 동안 독립유공자와 참전유공자의 치료를국가가 책임지겠습니다. 참전명예수당도 인상하겠습니다. 유공자 어르신 마지막 한 분까지대한민국의 품이 따뜻하고 영광스러웠다고 느끼시게 하겠습니다.순직 군인과 경찰, 소방공무원 유가족에 대한 지원도확대할 것입니다.그것이 우리 모두의 자긍심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보훈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분명히 확립하겠습니다.애국의 출발점이 보훈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지난 역사에서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해국민들이 감수해야 했던 고통과도 마주해야 합니다. 광복 70년이 지나도록일제강점기 강제동원 고통이 지속되고 있습니다.그동안 강제동원의 실상이 부분적으로 밝혀졌지만아직 그 피해의 규모가 다 드러나지 않았습니다.밝혀진 사실들은 그것대로 풀어나가고,미흡한 부분은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마저 해결해야 합니다.앞으로 남북관계가 풀리면남북이 공동으로 강제동원 피해 실태조사를 하는 것도 검토할 것입니다. 해방 후에도 돌아오지 못한 동포들이 많습니다.재일동포의 경우 국적을 불문하고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고향 방문을 정상화할 것입니다.지금도 시베리아와 사할린 등 곳곳에강제이주와 동원이 남긴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그 분들과도 동포의 정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해외 동포 여러분, 오늘 광복절을 맞아한반도를 둘러싸고 계속되는 군사적 긴장의 고조가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분단은 냉전의 틈바구니 속에서우리 힘으로 우리 운명을 결정할 수 없었던식민지시대가 남긴 불행한 유산입니다.그러나 이제 우리는 스스로 우리 운명을 결정할 수 있을 만큼국력이 커졌습니다.한반도의 평화도, 분단 극복도,우리가 우리 힘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오늘날 한반도의 시대적 소명은 두말 할 것 없이 평화입니다.한반도 평화 정착을 통한 분단 극복이야말로광복을 진정으로 완성하는 길입니다. 평화는 또한 당면한 우리의 생존 전략입니다.안보도, 경제도, 성장도, 번영도평화 없이는 미래를 담보하지 못합니다.평화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한반도에 평화가 없으면 동북아에 평화가 없고,동북아에 평화가 없으면 세계의 평화가 깨집니다.지금 세계는 두려움 속에서 그 분명한 진실을 목도하고 있습니다.이제 우리가 가야할 길은 명확합니다.전 세계와 함께한반도와 동북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의 대장정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지금 당면한 가장 큰 도전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입니다.정부는 현재의 안보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정부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미국과 긴밀히 협력하면서 안보위기를 타개할 것입니다.그러나 우리의 안보를 동맹국에게만 의존할 수는 없습니다.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정부의 원칙은 확고합니다.대한민국의 국익이 최우선이고 정의입니다.한반도에서 또 다시 전쟁은 안 됩니다.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정부는 모든 것을 걸고 전쟁만은 막을 것입니다.어떤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북핵문제는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이 점에서 우리와 미국 정부의 입장이 다르지 않습니다.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평화적 해결 원칙이 흔들리지 않도록외교적 노력을 한층 강화할 것입니다.국방력이 뒷받침되는 굳건한 평화를 위해우리 군을 더 강하게, 더 믿음직스럽게 혁신하여강한 방위력을 구축할 것입니다.한편으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도록군사적 대화의 문도 열어놓을 것입니다. 북한에 대한 제재와 대화는 선후의 문제가 아닙니다.북핵문제의 역사는 제재와 대화가 함께 갈 때문제해결의 단초가 열렸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시험을 유예하거나 핵실험 중단을 천명했던 시기는예외 없이 남북관계가 좋은 시기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그럴 때 북미, 북일 간 대화도 촉진되었고,동북아 다자외교도 활발했습니다.제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한반도 문제의 주인은 우리라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북핵문제 해결은 핵 동결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적어도 북한이 추가적인 핵과 미사일 도발을 중단해야대화의 여건이 갖춰질 수 있습니다.북한에 대한 강도 높은 제재와 압박의 목적도북한을 대화로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지군사적 긴장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이 점에서도 우리와 미국 정부의 입장이 다르지 않습니다. 북한 당국에 촉구합니다.국제적인 협력과 상생 없이 경제발전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합니다.이대로 간다면 북한에게는 국제적 고립과 어두운 미래가 있을 뿐입니다.수많은 주민들의 생존과 한반도 전체를 어려움에 빠뜨리게 됩니다.우리 역시 원하지 않더라도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더욱 높여나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즉각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와핵 없이도 북한의 안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합니다.우리가 돕고 만들어 가겠습니다.미국과 주변 국가들도 도울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천명합니다.우리는 북한의 붕괴를 원하지 않습니다.흡수통일을 추진하지도 않을 것이고인위적 통일을 추구하지도 않을 것입니다.통일은 민족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이 합의하는‘평화적, 민주적’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북한이 기존의 남북합의의 상호이행을 약속한다면,우리는 정부가 바뀌어도 대북정책이 달라지지 않도록,국회의 의결을 거쳐 그 합의를 제도화할 것입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밝힌 바 있습니다.남북간의 경제협력과 동북아 경제협력은남북공동의 번영을 가져오고, 군사적 대립을 완화시킬 것입니다.경제협력의 과정에서 북한은핵무기를 갖지 않아도 자신들의 안보가 보장된다는 사실을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쉬운 일부터 시작할 것을 다시 한 번 북한에 제안합니다.이산가족 문제와 같은 인도적 협력을 하루빨리 재개해야 합니다.이 분들의 한을 풀어드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이산가족 상봉과 고향 방문, 성묘에 대한 조속한 호응을 촉구합니다. 다가오는 평창 동계올림픽도남북이 평화의 길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어야 합니다.남북대화의 기회로 삼고, 한반도 평화의 기틀을 마련해야 합니다.동북아 지역에서 연이어 개최되는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2020년의 도쿄 하계올림픽,2022년의 베이징 동계올림픽은한반도와 함께 동북아의 평화와 경제협력을 촉진할 수 있는절호의 기회입니다.저는 동북아의 모든 지도자들에게이 기회를 살려나가기 위해 머리를 맞댈 것을 제안합니다.특히 한국과 중국, 일본은 역내 안보와 경제협력을 제도화하면서공동의 책임을 나누는 노력을 함께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국민 여러분께서도 뜻을 모아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해마다 광복절이 되면 우리는한일관계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한일관계도 이제 양자관계를 넘어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함께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과거사와 역사문제가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지속적으로 발목 잡는 것은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정부는 새로운 한일관계의 발전을 위해셔틀외교를 포함한 다양한 교류를 확대해 갈 것입니다.당면한 북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을 위해서도양국 간의 협력을 강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그러나 우리가 한일관계의 미래를 중시한다고 해서역사문제를 덮고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오히려 역사문제를 제대로 매듭지을 때양국 간의 신뢰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그동안 일본의 많은 정치인과 지식인들이양국 간의 과거와 일본의 책임을 직시하려는 노력을 해왔습니다.그 노력들이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에 기여해 왔습니다.이러한 역사인식이 일본의 국내 정치 상황에 따라바뀌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한일관계의 걸림돌은 과거사 그 자체가 아니라역사문제를 대하는 일본정부의 인식의 부침에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 한일 간의 역사문제 해결에는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국민적 합의에 기한피해자의 명예회복과 보상, 진실규명과 재발방지 약속이라는국제사회의 원칙이 있습니다.우리 정부는 이 원칙을 반드시 지킬 것입니다.일본 지도자들의 용기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해외 동포 여러분, 2년 후 2019년은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내년 8.15는 정부 수립 70주년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광복은,외세에 의해 분단된 민족이 하나가 되는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우리에게 진정한 보훈은,선열들이 건국의 이념으로 삼은 국민주권을 실현하여국민이 주인인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준비합시다.그 과정에서, 치유와 화해, 통합을 향해지난 한 세기의 역사를 결산하는 일도 가능할 것입니다. 국민주권의 거대한 흐름 앞에서 보수, 진보의 구분이 무의미했듯이우리 근현대사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세력으로 나누는 것도이제 뛰어넘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역사의 유산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모든 역사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며,이 점에서 개인의 삶 속으로 들어온 시대를산업화와 민주화로 나누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의미 없는 일입니다.대한민국 19대 대통령 문재인 역시김대중, 노무현만이 아니라 이승만, 박정희로 이어지는대한민국 모든 대통령의 역사 속에 있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의 치유와 화해, 통합을 바라는 마음으로지난 현충일 추념사에서 애국의 가치를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이제 지난 백년의 역사를 결산하고, 새로운 백년을 위해공동체의 가치를 다시 정립하는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정부의 새로운 정책기조도 여기에 맞춰져 있습니다.보수나 진보 또는 정파의 시각을 넘어서새로운 100년의 준비에 다함께 동참해 주실 것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 우리 다함께 선언합시다.우리 앞에 수많은 도전이 밀려오고 있지만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고 헤쳐 나가는 일은우리 대한민국 국민이 세계에서 최고라고 당당히 외칩시다.담대하게, 자신 있게 새로운 도전을 맞이합시다.언제나 그랬듯이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 이겨 나갑시다.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완성합시다.다시 한 번 우리의 저력을 확인합시다.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독립유공자들께깊은 존경의 마음을 드립니다.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순신 장군 사당에 우뚝 선 일본 국민나무 ‘금송’

    이순신 장군 사당에 우뚝 선 일본 국민나무 ‘금송’

    이순신 종가가 문화재제자리찾기와 함께 문화재청에 “이순신 장군 사당 앞에 서 있는 일본 국민나무 ‘고야마키’(금송)를 경내 밖으로 이전해 달라”고 재차 요구했다. 13일 노컷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순신 종가는 광복절 72주년은 물론 내년 이순신 장군 순국 및 임진왜란 종결 470주년을 앞둔 시점에서 ‘더 이상 금송을 방치해둘 순 없다’며 이같은 진정을 제기했다. 금송은 도쿄의 메이지신궁 등에 식재돼 일본을 상징하는 일본 국민나무로 알려져 있다.이순신 사당 앞 금송은 지난 1970년 12월 ‘현충화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청와대에서 현충사로 옮겨졌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금송 한 그루를 사당 앞 오른편에 직접 헌수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 금송은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 자리를 이어 사용한 청와대에 남겨져 있던 ‘일제의 잔재’라고 지적했다. 문화재제자리찾기는 지난 2010년 문화재청에 금송을 옮겨달라는 진정서를 접수했다. 2011년에는 행정소송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 결과는 각각 ‘1심 각하’와 ‘항소 기각’이었다. 문화재청은 시대성과 역사성을 이유로 금송 이전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문화재청은 2011년 “현충사 본전에 식수돼 있는 금송은 본래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동측 창 앞에 있던 것을 1970년 12월 6일 당시 박 대통령이 헌수한 것”이라며 “해당 금송은 1970년대의 시대성과 박 전 대통령의 기념식수 헌수목이라는 역사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문화재청의 입장은 현재도 유사하다. 문화재청은 “문화재위원회가 이미 지난 2000년과 2010년, 2015년에 세 차례에 걸쳐 검토한 바 있는데 학계에서도 이견이 많은 문제”라고 했다. 이순신 종가는 이에 반발했다. 종부 최순선씨는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이 아니면 이순신 장군이 영웅이 아닌 거냐”며 “금송은 그 자리에 어울리지도 않고 역사성에도 맞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순신 종가는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후 정부가 과거사에 대한 적폐청산을 언급하고 있는데 금송의 이전 문제도 본격적으로 논의될 시점이 왔다고 생각한다”며 문화재청에 “시대적 요구를 받아들여 현충사의 금송을 경내 밖으로 이전해 줄 것을 요청한다. 문화재위원회를 통해 이전에 관한 사항을 심의해달라”고 촉구했다. 노컷뉴스는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 관계자가 “사당 권역에 대해선 전문가들의 의견을 한 번 더 구해볼 예정이다. 올해 안에 금송을 비롯해 정비가 필요한 부분이 있는지 살피고 문화재위원회의 검토에 따라 조치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광일’이와 ‘연정’이/이동구 논설위원

    [씨줄날줄] ‘광일’이와 ‘연정’이/이동구 논설위원

    새 정부 출범 초기에는 총리, 장관 등 새롭게 요직을 차지하는 인물에 세인들의 관심이 쏠리기 마련이다. 그중에서도 대통령의 복심에 가까운 실세 그룹이 어느 지역, 어떤 학교 출신들로 형성되고 있는지에 주목하게 된다. “인맥의 크기만큼 성공한다”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박근혜 정부 때는 위스콘신 학파들이 실세 그룹으로 회자됐다. 대통령의 최측근인 최경환 전 지식경제부 장관이 이 학교 출신인 데다 안종범 전 경제수석, 유승민 전 대선 후보 등이 동문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는 특정 인맥이 정부 요직을 독식하다시피 했다.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출신 인사)이니 ‘영포라인’(영일·포항 출신 인사)이니 하면서 야당과 언론으로부터 질타를 많이 받았다. 물론 5공 때의 육사 등 군 출신 인사들, 박정희 정부의 서강학파와 대구?경북(TK) 출신 등은 다른 정권들과 비교도 안 될 만큼 두터운 인맥을 형성해 활개를 쳤던 게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요직 인사가 마무리되면서 실세로 분류할 만한 새 인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일단 두 그룹으로 나눠 볼 수 있겠다. 이낙연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한 광주일고 출신과 문정인 대통령 외교통일안보 특별보좌관의 연세대 정외과 출신 인사들이다. 이들을 ‘광일’이와 ‘연정’이라 부르며 전성시대가 도래했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이 국무총리를 비롯해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문무일 검찰총장, 김용우 육군참모총장이 ‘광일’이다. 금융계에서도 다수의 광일이가 수장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다고 한다. ‘연정’이는 문 특보 외에 강경화 외교부 장관, 김현미 국토부 장관, 최종건 청와대 평화비서관과 임명 철회된 김기정 전 국가안보 2차장 등이 꼽힌다. 학연 아닌 지연인 영포라인에서 장관급은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한 명뿐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탕평 인사를 강조해 왔다. 한동안 홀대받던 호남 출신 인사들이 중용되는 것은 탕평책의 일환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소외받았다는 이유로 특정 지역이나 학교 출신 인사들이 요직을 독차지한다면 그 또한 탕평에 반하는 인사가 아닐 수 없다. 요즘 혈연·학연·지연을 중시하는 행동이라는 뜻의 ‘친목질’이란 용어가 통용되고 있다. 인맥을 실력보다 중요하게 여긴다고 생각되면 “친목질 작작하시죠”라며 비판의 날을 세운다고 한다. 학연이나 지연보다 능력을 인재 발탁의 최우선 조건으로 삼는 게 새 시대의 새 정신일 것이다.
  • 근현대사 여적 오롯이 東郊에서 생생한 무지갯빛 이야기 童話되고 동상·기념비의 천국 童心저격

    어린이대공원이 면한 능동, 군자동, 구의동은 조선시대 동교(東郊)의 언저리다. 동교란 동대문서부터 아차산과 광나루까지 서울의 동동쪽 교외를 이르는 조선식 지역 구분법이다.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내사산(백악~낙산~남산~인왕산)이 사대문을 형성한다면 외사산(북한산~아차산~관악산~덕양산)은 사대문 밖 10리 즉 성저십리(城底十里)를 감싼다. 동교는 동쪽 벌판이었다. 북교, 서교, 남교라는 지역명은 낯설지만 동교는 귀에 익다. 생산지가 없는 소비도시를 먹여살리고 지키는 중요한 배후지였다.●동대문~광나루 동교는 소비도시 배후동교는 목장→군대 주둔지→채소 재배지로 돌고 돌았다. 너른 들에 말을 키우던 목장이었지만 군마를 키우지 못하도록 항복 조건을 못박은 병자호란 이후 훈련도감 군인 주둔지로, 사대문 안에 필요한 채소 재배지와 물물교환 시장으로 변천한 것이다. 전농동, 마전교, 마장동, 면목동, 자양동, 미근동처럼 지명에 농사와 목축, 채소 재배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특히 마장동 축산물시장과 옛 뚝섬 경마장에 이 지역의 대표 유전자가 깃들어 있다.어린이대공원을 단순히 하나의 공원, 그것도 어린이용 공원으로 만만히 봤다가는 큰코다친다. 한국 근현대사의 여적이 오롯이 남은 터전이다. 이 땅의 마지막 황태자비이자 황후인 순명효황후가 1926년 유릉에 순종과 합장하기 이전까지 묻혔던 유강원 자리였다. 능동이라는 지명이 여기서 비롯됐다. 1927년 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골프장 서울컨트리클럽(군자리골프코스)의 클럽하우스가 건재하고 공원에는 18홀 코스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을 앞두고 남북 간 체제 경쟁의 폭풍 속에서 “골프장을 한가로운 교외로 옮기고 그 자리에 어린이대공원을 조성하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한마디에 골프장은 어린이공원으로 둔갑했다.●골프장 모습 그대로… 동양 최고 공원1973년 5월 5일 어린이날을 기해 71만 9400㎡짜리 동양 최고 규모의 공원을 우리 손으로 조성한 기념비적인 공간이다. 공원이라곤 창경원, 남산공원, 사직공원, 효창공원, 삼청공원, 파고다공원 같은 자연공원과 사적지공원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1인당 국민소득 350달러, 조경이라는 개념조차 없었지만 국민의 염원을 담아 만든 최고의 어린이공원이었다. 모든 어린이와, 어린이를 빙자한 어른들의 놀이터였다.공원을 조성한 양택식 시장 등 서울시 공무원들이 가장 잘한 일은 공원이 인공적인 놀이기구에 파묻히지 않고 골프장 상태 그대로 잔디와 숲을 유지하도록 해 달라는 자문위원회의 의견을 수용한 점이다. 동양 최대의 디즈니랜드를 만든다면서 모든 길을 포장하고, 동서남북으로 6개의 광장을 만들고, 모노레일을 깐다는 식의 계획은 백지화됐다. 덕분에 오늘의 어린이대공원이 도시의 허파로 온전하게 남았다.●예술가들 무보수 참여… 도시의 허파로당대의 쟁쟁한 예술가들이 무보수로 공원 조성에 참여했고 기업과 개인독지가가 분수대, 벤치, 음수대 제작비 등 공사 대금을 기증 혹은 찬조했다. 광화문 충무공 동상을 조각한 김세중이 중앙분수대를, 세종문화회관을 설계한 건축가 염덕문이 정문과 팔각정을 각각 지었다. 어린이대공원은 잠자던 능동 일대의 지도를 새로 그렸다. 1973년 개원일에 맞춰 서울시는 시내 어느 곳에서라도 한 번만 갈아타면 대공원에 갈 수 있도록 시내버스 운행체계를 개편했다. 개원 첫날 60만명, 다음날 30만명이 몰렸다. 한적한 교외마을 능동과 뚝섬·화양·중곡동에 시민들의 관심이 쏠리면서 개발붐을 탔다. 주변이 학교와 주택지로 변했다. 능동로·중곡동길·자양로가 생겼고 천호대로와 동이로가 개통됐다. 지하철 2·5·7호선이 지나게 된 것도 모두 어린이대공원의 영향이다. ●마지막 황후의 능… 살아 있는 역사로‘옥에 티’가 있다면 20개에 이르는 동상과 기념비가 개념 없이 꽂혀 있고 육영재단 어린이회관과 통일교에 알토란 같은 부지 13만㎡를 떼어준 점이다. 1974년 남산에서 옮겨온 어린이회관은 길을 잃었고 리틀엔젤스예술단 자리엔 유니버설발레단, 선화예술 중·고교 등이 들어서 사유화됐다.꿈마루는 ‘소설 같은’ 건축물이다. 조선의 마지막 황후의 능과 최초의 골프장 클럽하우스 그리고 어린이대공원 교양관이라는 여러 시간대의 역사가 한 장소에 겹쳐 꿈을 꾸기 때문이다. 워커힐호텔 본관을 설계한 나상진이 1970년 완공한 이 건물은 철거 일보 직전 살아남은 뒤 조성룡과 최춘웅에 의해 2011년 되살아났고 2013년에는 한국 최고의 현대 건축 14위에 뽑혀 건축물 순례지가 됐다. 살아남은 역사란 바로 이런 것이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서울신문이 서울시 및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1회 동심이 전하는 메시지편이 서울 광진구 능동로 216 어린이대공원 일대에서 지난 5일 진행됐다. 어린이대공원은 공원 전체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도시의 보물창고이다. 참가자들은 무더위를 피해 오후 7시부터 9시 30분까지 나무들이 소곤대는 소리와 보름달을 조명 삼아 시원한 밤을 보냈다. 부모의 손에 이끌려나온 어린이들도 김미선 서울도시문화지도사가 전해 주는 감미로운 무지갯빛 이야기보따리를 따라 동심을 맘껏 발산했다.
  •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東郊에서 童話되고 童心저격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東郊에서 童話되고 童心저격

    서울신문이 서울시 및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1회 동심이 전하는 메시지편이 서울 광진구 능동로 216 어린이대공원 일대에서 지난 5일 진행됐다. 어린이대공원은 공원 전체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도시의 보물창고이다. 참가자들은 무더위를 피해 오후 7시부터 9시 30분까지 나무들이 소곤대는 소리와 보름달을 조명 삼아 시원한 밤을 보냈다. 부모의 손에 이끌려나온 어린이들도 김미선 서울도시문화지도사가 전해 주는 감미로운 무지갯빛 이야기보따리를 따라 동심을 맘껏 발산했다.어린이대공원이 면한 능동, 군자동, 구의동은 조선시대 동교(東郊)의 언저리다. 동교란 동대문서부터 아차산과 광나루까지 서울의 동동쪽 교외를 이르는 조선식 지역 구분법이다.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내사산(백악~낙산~남산~인왕산)이 사대문을 형성한다면 외사산(북한산~아차산~관악산~덕양산)은 사대문 밖 10리 즉 성저십리(城底十里)를 감싼다. 동교는 동쪽 벌판이었다. 북교, 서교, 남교라는 지역명은 낯설지만 동교는 귀에 익다. 생산지가 없는 소비도시를 먹여살리고 지키는 중요한 배후지였다. ●동대문~광나루 동교는 소비도시 배후 동교는 목장→군대 주둔지→채소 재배지로 돌고 돌았다. 너른 들에 말을 키우던 목장이었지만 군마를 키우지 못하도록 항복 조건을 못박은 병자호란 이후 훈련도감 군인 주둔지로, 사대문 안에 필요한 채소 재배지와 물물교환 시장으로 변천한 것이다. 전농동, 마전교, 마장동, 면목동, 자양동, 미근동처럼 지명에 농사와 목축, 채소 재배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특히 마장동 축산물시장과 옛 뚝섬 경마장에 이 지역의 대표 유전자가 깃들어 있다. 어린이대공원을 단순히 하나의 공원, 그것도 어린이용 공원으로 만만히 봤다가는 큰코다친다. 한국 근현대사의 여적이 오롯이 남은 터전이다. 이 땅의 마지막 황태자비이자 황후인 순명효황후가 1926년 유릉에 순종과 합장하기 이전까지 묻혔던 유강원 자리였다. 능동이라는 지명이 여기서 비롯됐다. 1927년 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골프장 서울컨트리클럽(군자리골프코스)의 클럽하우스가 건재하고 공원에는 18홀 코스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을 앞두고 남북 간 체제 경쟁의 폭풍 속에서 “골프장을 한가로운 교외로 옮기고 그 자리에 어린이대공원을 조성하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한마디에 골프장은 어린이공원으로 둔갑했다.●골프장 모습 그대로… 동양 최고 공원 1973년 5월 5일 어린이날을 기해 71만 9400㎡짜리 동양 최고 규모의 공원을 우리 손으로 조성한 기념비적인 공간이다. 공원이라곤 창경원, 남산공원, 사직공원, 효창공원, 삼청공원, 파고다공원 같은 자연공원과 사적지공원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1인당 국민소득 350달러, 조경이라는 개념조차 없었지만 국민의 염원을 담아 만든 최고의 어린이공원이었다. 모든 어린이와, 어린이를 빙자한 어른들의 놀이터였다. 공원을 조성한 양택식 시장 등 서울시 공무원들이 가장 잘한 일은 공원이 인공적인 놀이기구에 파묻히지 않고 골프장 상태 그대로 잔디와 숲을 유지하도록 해 달라는 자문위원회의 의견을 수용한 점이다. 동양 최대의 디즈니랜드를 만든다면서 모든 길을 포장하고, 동서남북으로 6개의 광장을 만들고, 모노레일을 깐다는 식의 계획은 백지화됐다. 덕분에 오늘의 어린이대공원이 도시의 허파로 온전하게 남았다.●예술가들 무보수 참여… 도시의 허파로 당대의 쟁쟁한 예술가들이 무보수로 공원 조성에 참여했고 기업과 개인독지가가 분수대, 벤치, 음수대 제작비 등 공사 대금을 기증 혹은 찬조했다. 광화문 충무공 동상을 조각한 김세중이 중앙분수대를, 세종문화회관을 설계한 건축가 염덕문이 정문과 팔각정을 각각 지었다. 어린이대공원은 잠자던 능동 일대의 지도를 새로 그렸다. 1973년 개원일에 맞춰 서울시는 시내 어느 곳에서라도 한 번만 갈아타면 대공원에 갈 수 있도록 시내버스 운행체계를 개편했다. 개원 첫날 60만명, 다음날 30만명이 몰렸다. 한적한 교외마을 능동과 뚝섬·화양·중곡동에 시민들의 관심이 쏠리면서 개발붐을 탔다. 주변이 학교와 주택지로 변했다. 능동로·중곡동길·자양로가 생겼고 천호대로와 동이로가 개통됐다. 지하철 2·5·7호선이 지나게 된 것도 모두 어린이대공원의 영향이다. ●마지막 황후의 능… 살아 있는 역사로 ‘옥에 티’가 있다면 20개에 이르는 동상과 기념비가 개념 없이 꽂혀 있고 육영재단 어린이회관과 통일교에 알토란 같은 부지 13만㎡를 떼어준 점이다. 1974년 남산에서 옮겨온 어린이회관은 길을 잃었고 리틀엔젤스예술단 자리엔 유니버설발레단, 선화예술 중·고교 등이 들어서 사유화됐다. 꿈마루는 ‘소설 같은’ 건축물이다. 조선의 마지막 황후의 능과 최초의 골프장 클럽하우스 그리고 어린이대공원 교양관이라는 여러 시간대의 역사가 한 장소에 겹쳐 꿈을 꾸기 때문이다. 워커힐호텔 본관을 설계한 나상진이 1970년 완공한 이 건물은 철거 일보 직전 살아남은 뒤 조성룡과 최춘웅에 의해 2011년 되살아났고 2013년에는 한국 최고의 현대 건축 14위에 뽑혀 건축물 순례지가 됐다. 살아남은 역사란 바로 이런 것이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 [단독] ‘새마을공원’ 운영 年30억…경북·구미 “네가 맡아라”

    [단독] ‘새마을공원’ 운영 年30억…경북·구미 “네가 맡아라”

    道 “공원 관리 권한 시에 있어 ‘박정희로’ 확장비 5억 지원” 市 “사업 추진한 도가 가져야 수용 못해… 시민단체 등 반대” 1000억원에 가까운 세금을 들여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 인근에 짓는 ‘새마을운동 테마공원’의 완공이 4개월여 앞으로 임박한 가운데 이 공원의 운영권을 놓고 경북도와 구미시가 서로 떠넘기기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운영권을 서로 갖겠다고 싸우는 게 아니라 서로 안 갖겠다고 미루고 있는 것이다. 연간 수십억원이 들어갈 운영비 부담 때문이다.9일 경북도에 따르면 올 연말 준공을 목표로 구미시 상모사곡동 박 전 대통령 생가 인근 터 25만여㎡에 ‘새마을운동 테마공원’을 조성하고 있다. 총 사업비는 870억원(국비 293억원, 경북도비 151억원, 구미시비 426억원)이며, 현재 공정률은 62%다. 이 사업은 2009년 9월 경북도가 당시 이명박 대통령에게 건의하면서 시작됐다. 문제는 이 공원이 완공된 다음이다. 경북도는 구미시가 관리·운영권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이 도시공원의 설치·관리 권한을 특별시장·광역시장·시장 또는 군수로 제한했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운다. 도 관계자는 “도(지사)가 새마을테마공원을 운영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구미시는 이 사업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경북도가 운영도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의 재정여건상 연간 30억원(용역기관별 운영비 27억~36억원)의 운영비 전액을 자부담하는 것이 어렵다는 게 이유다. 시는 이미 도가 부지매입비 275억원 부담을 회피하는 바람에 과도한 재정 부담까지 떠안았다고 주장한다. 도는 운영권을 떠안지 않는 대신 오는 10월 준공 예정인 구미시 ‘박정희로’ 6차로 확장 공사비 5억원 등을 지원해준다는 대안을 제시했지만, 구미시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구미시 관계자는 “새마을테마공원 조성 사업은 전적으로 경북도 책임하에 이뤄지고 있는 만큼 운영권 또한 마땅히 경북도가 가져야 한다”며 “경북도가 구미시에 운영권까지 떠넘길 경우 구미시의회와 시민단체 등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경북도 관계자는 “구미시는 새마을테마공원 조성으로 인한 국내외 관람객 유치와 도시 브랜드 제고 효과를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글 사진 안동·구미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오늘의 눈] 과학기술인 지지 못 받는 과학계 인사/유용하 경제정책부 기자

    [오늘의 눈] 과학기술인 지지 못 받는 과학계 인사/유용하 경제정책부 기자

    지난 7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신임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인사를 본 과학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논문 조작 사건에 연루돼 큰 파문을 일으킨 박기영 순천대 교수가 임명됐기 때문이다.과학기술인 중심의 전국공공연구노조가 ‘한국 과학기술의 부고를 띄운다’란 성명을 낸 것을 시작으로 보건의료단체연합, 한국생명윤리학회,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들까지 박 본부장의 임명 철회 성명에 가세했다. 자신의 연구 이외 분야에 대해 무관심한 과학계 특유의 분위기를 감안할 때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새 정부의 인사는 국민에게 감동과 놀라움을 안겨 줬다. 그러나 과학계에선 ‘창조론’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여성과학기술인단체 경험 정도밖에 없는 문미옥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이 잇따라 발탁됐다. 과학 분야 인사가 유독 혹평을 받는 이유는 뭘까. 과학계는 대통령 주변에 과학에 관심 있는 참모가 별로 없기 때문이라고 보고있다. 한 연구원 박사는 “과학기술 자체뿐 아니라 과학윤리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기 때문에 과학기술을 경제발전의 수단쯤으로 여기던 1970년대 박정희식 시대인식에 머물러 있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또 다른 연구원의 박사는 “그러다 보니 4차 산업혁명 전문가인 양 강연을 하거나 책을 급조해 자기 홍보하는 사람들이 과학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자리를 욕심내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14조원에 가까운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을 다뤄야 하는 혁신본부장에게 필요한 것은 과학기술의 공공성을 실현할 수 있는 책무성과 정책 결과에 대한 책임감, 윤리성이다. 하지만 과학기술인들의 지지조차 받지 못하는 혁신본부장이 과연 ‘혁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과기정통부 관료들은 “그래도 기획재정부에 자리를 빼앗긴 것보다 훨씬 낫다”며 자위하고 있다. 이런 ‘밥그릇 행태’ 또한 한국의 과학과 과학정책을 무너뜨리는 적폐다. edmond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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