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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정희대통령
    2026-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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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朴 전 대통령 생가에 관리전담팀

    경북 구미시가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 관리 전담팀을 이달 말부터 상주시키기로 했다. 23일 구미시에 따르면 고 김재학 생가보존회장이 박 전 대통령 생가 인근에 살면서 20여년간 무보수로 생가 관리를 맡아왔다. 그러나 지난달 김 회장이 피살된 뒤 마땅한 관리인이 없어 구미시는 임시로 일용직과 공익근무요원을 파견해 관리해 왔다. 박 전 대통령의 생가 소유권은 장조카인 박재홍씨가 갖고 있었으나 1996년 박정희대통령생가보존회로 이전됐다 2003년 2월20일 시로 넘어왔다. 시는 박 전 대통령의 생가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보존하기 위해 이달 말부터 이곳에 문화예술담당관 산하 박대통령기념사업담당 직원 2명과 공익근무요원 2명을 배치하기로 했다. 시는 주간에는 이들 직원이 고 김 회장이 사용하던 사무실에서 경비나 안내·관리 업무를 맡고, 야간에는 기존처럼 무인경비시스템을 가동해 관리한다고 밝혔다. 시는 휴일이나 야간에는 관리가 취약해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초기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어 보완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구미시 황필섭 문화예술담당관은 “그동안 박 전 대통령 서거일인 10월26일과 생일인 11월14일에 추모제와 숭모제가 고 김 회장 주관으로 열렸으나 앞으로 어떻게 할지 정해지지 않았다.”며 “관련 단체가 많아 논의를 통해 주관 단체를 정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생가는 1993년 경북도기념물 86호로 지정됐으며 2672㎡ 부지에 사랑채와 분향소, 관리사, 주차장 등이 있다.구미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박정희 대통령 취임하던 날

    박정희 대통령 취임하던 날

    제7대 박정희대통령 취임식이 1일 하오2시 중앙청 앞뜰식장에서 엄숙히 거행되었다. 전례없이 간소한 식전이기는 했으나 이를 치르기에 많은 사람들이 애를 썼다. 다음은 뒤에서 애쓴 사람들의 이야기와 취임식을 전후한 「에피소드」이모저모. 1주일 1천명 동원…통금때에만 잠깐씩 세종로 네거리에 등장한 반영구용 철제 무지개형 대형 「아치」의 규모를 살펴보면-. 대석(臺石)사이의 길이 50m 높이 20.8m 폭 1.8m 「크로스·바」42m 대통령 초상화 6 x 8m 이며, 소요자재는 철강이 39t 대석밑에 박은 12m 「파일」이 6개 「시멘트」가 5백여 부대이며 「아치」를 덮고있는 5W 3색 전구가 1천6백개다. 이 「아치」는 한전에서 세운 것인데 양영철(梁永喆)씨(28·영선계직원)가 기본설계를 하고 화신산업 (대표 이종국(李鍾國))이 1천 1백90만원(초상화제외)에 공사를 맡은것. 제작에 동원된 연인원은 1천명이 넘었다. 조립 공사는 통금시간인 밤 12시부터 새벽 3~4시 까지 평균 하루 3시간의 올빼미 작업으로 일주일이 걸렸다. 「캔버스」만들기 2일…초상화는 두번 그려 세종로 「아치」한복판에 걸려있는 박대통령 초상화 또한 「매머드」급(6x8m)이다. 이는 신미산업(대표 이정근)이 주문을 맡아 김만영씨와 하승만씨가 그린것. 먼저 「캔버스」를 만드는 데도 만 이틀이 걸렸는데 틀을 짜서 광목과 천막천으로 덮고 그위에 아교와 「페인트」칠을 했다. 작업 시작은 6월 17일, 총무처로부터 받은 박대통령의 명함판 사진을 보며 그리기 시작했다. 23일에 일단 완성했으나 총무처는 초상화가 마음에 들지않는다고 해서 옆으로 빗겨앉은 모습에서 정면 모습으로 다시 그리기로 결정. 25일부터 양면 2장을 그리는데 3일이 걸려 완성, 28일 붙이게 된 것이다. 약품 처리도 해보고…꽃엔 무진 애 썼다고 식장(式場)장식에서 빼놓을수 없는 것이 꽃. 취임식장 안팎과 경회루 「가든·파티」꽃장식을 맡은 곳은 꽃집 「만화원」(종로2가). 총무처의 주문을 받아 꽃장식을 한것인데, 작은 화분 50개와 꽃다발 50다발만 구입하고 나머지는 모두 창경원 식물원에서 세를 낸것들. 가장 경제적이면서도 가장 화려한 식장분위기를 꾸미는 것이 담당자들의 책임이었다. 「카네이션」을 비롯해서 갖가지 꽃을 전문가들이 두뇌를 짜내서 꽃다발 하나 만드는데도 「앙상블」을 이루도록 세심한 신경을 썼다. 수많은 외교사절들이『원더풀!』을 연발하도록 최대의 실력을 발휘한 것. 그러나 무엇보다 힘들었던 점은 취임식날에 맞추어서 꽃송이를 피워내는 일. 그래서 꽃집에서는 시내 여러 꽃집의 지원을 받아 가면서 약품 처리로 때맞춰 꽃이 피도록 필사의 노력을 했다고. 20여명이 들어 나른 4백50㎏의 「케이크」 전날밤 청와대서는 근로자초청 「파티」가 열렸다. 육(陸) 여사는 이날 「뉴욕」제과점으로부터 초대형 「케이크」를 기증받은 근로자합숙소에 묵고있는 어려운 5백 80명의 근로자들을 초청, 자신이 「호스테스」가 되어 직접 「케이크」를 잘라 나누어 주었던 것. 이번 「케이크」는 높이만 1.5m에 가로 92㎝, 무게 4백50㎏의 초대형. 가로 23㎝, 세로 36㎝, 무게 3㎏의 「카스텔라」가 1백 30장, 「버터」가 45㎏, 계란 3백개가 들어갔다고. 보통 「파티」에서 6백명이 먹을수 있는 분량. 이날 「케이크」운반에는 20여명의 장정이 동원됐다. 1주일동안 준비를 하고 이틀동안 밤을 꼬박 새워 만들었다고. 성장한 근혜(槿惠)양 보고 「벤플리트」장군 감탄 박(朴)대통령 취임을 축하하는 1일밤 경회루(慶會樓)의 경축연회는 대성황. 3부요인을 비롯, 국내외 저명인사와 각국의 경축사절들이 참석한 「매머드」연회. 6시40분 육군 고적대의 「팡파레」와 함께 박대통령은 부인 육여사와 장녀 근혜양과 함께 입장했다. 박대통령은 내외귀빈들로 꽉 들어찬 연회장을 한바퀴 돌며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벤플리트」장군을 만난 박대통령은 반갑게 포옹을 나눴는데 「벤」장군은 육여사로부터 근혜양을 소개받고 『벌써 이렇게 성장했느냐』고 놀라움을 표시. 정성담긴 만찬 음식 포도주로 건배하고 저녁 8시부터 2시간동안 중앙청 대회의실에서 베풀어진 박대통령 초청 만찬회의 음식은 반도 「호텔」주방에서 마련했다. 주방장 이경환씨를 필두로 「쿠크」25명이 동원되어 정성껏 마련한 이 음식은 순전히 양식. 맑은 소고기국에 생선연어찜을 먼저 내고 다음의 주식 순서에는 쇠고기 등심구이, 감자 완자튀김, 꽃양배추볶음과 채두, 「아스파라거스」, 「샐러드」, 그리고 빵과「버터」. 후식에는 「아이스크림」, 「코피」, 홍차가 나왔고 백포도주와 홍포도주를 곁들였다. 1천발의 불꽃 쏘아 밤하늘도 휘황찬란 경축일의 마지막 「무드」를 장식한 것은 밤하늘에 오색무늬로 수놓는 불꽃놀이. 이날밤 9시부터 10시까지 남산 팔각정에서 쏘아올린 불꽃은 모두 1천발. 서울의 밤 하늘을 아름답게 장식한 불꽃하나의 값은 1천3백원. 1천발을 쏘아 올렸으니까 1백30만원이 밤하늘을 수놓은 셈. 불꽃놀이에 동원된 인원은 한국화약에서 발사원 37명. 만일에 대비, 소방차 2대와 경찰관 40여명이 동원 됐었다. 지난해까지는 심지에 손으로 불을 당겨야 했는데 이번엔 전기 발파와「세트」발파에 성공했다고. 쏘아올린 불꽃의 종류는 무궁화 모양에서부터 버들형 분포 방향전환에 이르기까지 12가지. 불이번쩍 취재경쟁…1㎞씩의 뜀박질도 이번 경축식 취재는 불꽃튀는 기재의 전쟁. 경축식장을 자유로이 왕래할 수 없기 때문에 제한된 장소에서의 사진 취재를 위해서는 좋은 성능의 「카메라」가 압도하기 마련. 최고성능을 자랑하는 서울신문과 동앙일보의 1천2백㎜ 초망원 「렌즈」를 비롯, 35만원 시가의 「하셀브라드」까지 동원되는가하면 각사의 1천㎜ 망원 「렌즈」도 총동원되어 서로가 기재 「콘테스트」를 벌인 듯 했다. 애초 문화공보부로부터 각사에 할당된 출입완장은 2장씩. 외신 기자들에게도 2장씩 배당됐다. 취재전망대는 취임식 단상을 바라보는 광화문옆 2곳에 설치됐는데 오른쪽이 외신기자, 왼쪽이 국내기자. 사진기자단에서는 기지를 발휘하여 2장 배당된 완장을 외신기자와 교환, 사실상 2곳에서 취재하는 효과를 보기도 했다. 국내 사진기자단에서는 취재전망대에서 서로 앞자리 다툼하다 사고가 날 것에 대비, 자리차지하기 제비뽑기를 하여 미리 위치를 결정했다. 대통령 취임식사가 끝나자 각사 기자들은 중앙청에서부터 때아닌 육상경주. 차량 통행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기자들은 무거운 기재들을덜거덕 거리며 1㎞ 이상씩 대로를 질주하는 진경을 보였다. 전세계에 퍼진 전파…외국 기자들도 법석 취임식 광경과 경축행사 소식은 조선「호텔」에 임시 설치된 「인터내셔널·프레스·센터」를 통해 재빨리 전세계 곳곳에 알려졌다. 해외경축 사절단과 함께 입국한 수많은 해외기자들은 「프레스·센터」와 현장을 바삐 왕래하면서 불꽃튀는 취재경쟁을 벌였다. 체신부는 조선「호텔」「그랜드·볼·룸」에 국제전신전화국 임시 출장소를 설치, 6월 29일 하오부터 국제전신전화국의 「베테랑」직원 10~20명씩을 고정 배치시키고 「텔렉스」6대를 임시로 가설해서 취재보도에 최대의 「서비스」를 했다. 그나라 격식 이라오…맨발의 외무장관님 이번 외국 경축사절들 가운데 의상에서나 차림새로 특이한 것은 「아프리카」의 「스와질란드」왕국 외무장관 「아모스·종게·쿠발로」씨. 「아프리카」주 최남단 「레소트」국과 인접한 「스와질란드」에서는 온몸을 칭칭 감은 의상에다 맨발로 다니는게 풍속인데 「쿠발로」장관도 고유의상에 맨발이라 시선을 끌었다. 길잃었던 귀빈부인 핫·팬츠엔 일침놓고 6월 29일 김포(金浦) 공항에 내리자 마자 동행한 부인을 잃어 한때 소란을 피웠던 「아프리카」의 「어퍼·볼타」특사 「프랑소와·롱포」장관(공공사업·운수 및 도시계획장관). 알고보니 안내원의 실수로 부인이 일반여객과 함께 보세구역으로 나가 있는 것을 간신히 찾아 귀빈실로 모셔 왔다는 「에피소드」의 주인공. 숙소인 조선「호텔」에서 본지기자와 만난 「롱포」여사는 『한국 여성들은 예상했던 것 보다 더욱 몸매가 곧고 아름다워요. 특히「미니·스커트」와 「핫·팬츠」 차림은 발랄해서 좋지만 「어퍼·볼타」사람으로선 현기증이 날정도』라고. [선데이서울 71년 7월 11일호 제4권 27호 통권 제 144호]
  • [부고] 유양수 前교통부장관

    유양수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회장이 지난 1일 밤 숙환으로 별세했다.84세.1923년 광주에서 출생한 고인은 5·16쿠데타가 나자 가장 먼저 지지 입장을 취했다. 리핀·오스트리아·사우디·바레인 등 16년간 대사를 거쳐 1979년 교통부 장관과 동력자원부 장관, 석유개발공사 이사장을 지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 발인은 4일 오전 9시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02-730-6611). 유족으로는 부인 김재화(성공회대 명예교수)씨와 2남1녀.(02)2072-2091.
  • 박정희 기념사업비 회수 법적대응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는 1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 사업비 회수와 관련한 정부의 최종결정을 지켜본 뒤 법적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기념사업회 유양수 회장은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기념사업회관련 이해찬 총리의 발언은 사실과 다르다.”면서 “이 총리가 그간 사업의 진행사업과 관련, 사실관계를 전혀 모르고 발언한 듯하다.”고 밝혔다. 그는 ‘기념사업회가 500억원 모금을 약속했는데 100억원밖에 모금하지 못해 공사가 중단됐다.’는 총리의 답변과 관련,“기념사업회는 모금을 중단한 적이 없으며, 공사중단 역시 사실상 정부의 승인이 나오지 않아 시공업체가 돈을 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박정희기념관 지원금 행자부, 회수절차 착수

    박정희대통령기념관 건립사업이 무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행정자치부가 사업연장에 대해 불허결정과 함께 지원금 회수절차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행정자치부는 1일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가 기념관 건립장소를 서울에서 경북 구미로 바꾸겠다며 1년간 추가 사업연기 요청을 해온 데 대해 지난달 30일 승인거부를 통보했다고 밝혔다. 행자부는 이에 따라 기념사업회에 줬던 정부지원금 200억원에 대한 회수 절차에 착수했다. 회수금액은 행자부가 기념사업회로부터 사업보고서를 제출받아 1차 결정하고 이에 대한 기념사업회의 반론을 받아 기획예산처에 제출하면 최종 결정된다. 기념관을 서울이 아닌 구미에 짓겠다는 주장에 대해 이상호 행자부 기획관리실장은 “그것은 전혀 별개 문제이기 때문에 별도 절차를 밟아서 진행될 문제”라고 못박았다. 김대중정권 시절 정부는 기념사업회가 500억원을 민간에서 모금한다는 조건으로 200억원을 지원키로 했다. 기념사업회는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600여평의 땅을 마련했으나 모금액이 108억원에 그친데다 그나마 대기업의 기부금이 대부분을 차지해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정부 지원이 철회돼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돼 왔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부고]

    ●서울올림픽 개·폐막 연출 유경환씨 국내 공연예술계 1세대 무대감독인 유경환(劉慶煥)씨가 4일 오후 6시 40분 서울중앙아산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63세. 동국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고인은 1971년 박정희대통령 취임 경축 예술제 무대감독을 시작으로 국립극장과 세종문화회관 개관 경축공연,88서울올림픽 개·폐회식과 문화축전의 연출 및 총진행감독 등 주요 행사와 축하공연의 무대감독과 연출을 맡았다.또 국립극단,국립오페라단,국립발레단에서 공연한 30여편의 작품의 무대감독을 맡았다.유족으로는 부인 손경애(무용가)씨와 아들 준규(俊圭·국립발레단 무대감독), 딸 현미(賢美·숭의여대 교수)씨가 있다.발인은 6일 오전 9시.(02)3010-2293. ●吳明淑(서울신문 교열팀기자)씨 부친상 金淳基(경인일보 노조위원장)씨 빙부상 4일 오전 10시10분 충남부여군 규암면 부여노인병원,발인 6일 오전 9시 (041)836-2499 ●李元宰(서울신문 독자서비스국 지방부 차장)益宰(아트라스콤 〃)씨 부친상 金太鳳(자영업)씨 빙부상 3일 오전 5시50분 청량리 성바오로병원,발인 5일 오전 9시 (02)969-6299 ●오재경(전북경찰청 기동수사대장)씨 모친상 4일 오전 10시 전주 대송장례식장,발인 6일 오전 10시 (063)274-0761 ●崔應基(현대건설 부장)太基(태흥상사 대표)씨 부친상 4일 오전 6시2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6일 오전 9시 (02)3010-2238 ●吳昌衍(전 담배인삼공사 상무)씨 별세 廷鉉(개인사업)씨 부친상 許東漢(PAN LOF 전무)씨 빙부상 2일 오후 5시 서울아산병원,발인 5일 오전 6시 (02)3010-2253 ●鄭高和(리풍한국 실장)海和(삼화제지 직원)柱和(아폴로산업 〃)씨 부친상 4일 오전 5시 서울아산병원,발인 6일 오전 10시 (02)3010-2236 ●郭健弘(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 학예연구원)泰榮(에이씨에스테크놀러지 대표)씨 부친상 3일 오전 9시 서울아산병원,발인 6일 오전 9시30분 (02)3010-2294 ●朱榮敏(현대오일뱅크 부장)榮秀(삼성생명 과장)씨 부친상 崔甲植(강일공인중개사 대표)씨 빙부상 4일 오전 5시45분 서울아산병원,발인 6일 오전 6시 (02)3010-2264 ●金東龜(연세의대 약리학 교수)金慶娥(재미과학자)金蘭娥(란소아과 원장)씨 부친상 李弼中(포항공대 교수)沈宗燮(성대의대 교수)씨 빙부상 4일 오후 7시15분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6일 오전 8시 (02)392-0299
  • [부고]

    ●서울올림픽 개·폐막 연출 유경환씨 국내 공연예술계 1세대 무대감독인 유경환(劉慶煥)씨가 4일 오후 6시 40분 서울중앙아산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63세. 동국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고인은 1971년 박정희대통령 취임 경축 예술제 무대감독을 시작으로 국립극장과 세종문화회관 개관 경축공연,88서울올림픽 개·폐회식과 문화축전의 연출 및 총진행감독 등 주요 행사와 축하공연의 무대감독과 연출을 맡았다.또 국립극단,국립오페라단,국립발레단에서 공연한 30여편의 작품의 무대감독을 맡았다.유족으로는 부인 손경애(무용가)씨와 아들 준규(俊圭·국립발레단 무대감독), 딸 현미(賢美·숭의여대 교수)씨가 있다.발인은 6일 오전 9시.(02)3010-2293. ●吳明淑(서울신문 교열팀기자)씨 부친상 金淳基(경인일보 노조위원장)씨 빙부상 4일 오전 10시10분 충남부여군 규암면 부여노인병원,발인 6일 오전 9시 (041)836-2499 ●李元宰(서울신문 독자서비스국 지방부 차장)益宰(아트라스콤 〃)씨 부친상 金太鳳(자영업)씨 빙부상 3일 오전 5시50분 청량리 성바오로병원,발인 5일 오전 9시 (02)969-6299 ●오재경(전북경찰청 기동수사대장)씨 모친상 4일 오전 10시 전주 대송장례식장,발인 6일 오전 10시 (063)274-0761 ●崔應基(현대건설 부장)太基(태흥상사 대표)씨 부친상 4일 오전 6시2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6일 오전 9시 (02)3010-2238 ●吳昌衍(전 담배인삼공사 상무)씨 별세 廷鉉(개인사업)씨 부친상 許東漢(PAN LOF 전무)씨 빙부상 2일 오후 5시 서울아산병원,발인 5일 오전 6시 (02)3010-2253 ●鄭高和(리풍한국 실장)海和(삼화제지 직원)柱和(아폴로산업 〃)씨 부친상 4일 오전 5시 서울아산병원,발인 6일 오전 10시 (02)3010-2236 ●郭健弘(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 학예연구원)泰榮(에이씨에스테크놀러지 대표)씨 부친상 3일 오전 9시 서울아산병원,발인 6일 오전 9시30분 (02)3010-2294 ●朱榮敏(현대오일뱅크 부장)榮秀(삼성생명 과장)씨 부친상 崔甲植(강일공인중개사 대표)씨 빙부상 4일 오전 5시45분 서울아산병원,발인 6일 오전 6시 (02)3010-2264 ●金東龜(연세의대 약리학 교수)金慶娥(재미과학자)金蘭娥(란소아과 원장)씨 부친상 李弼中(포항공대 교수)沈宗燮(성대의대 교수)씨 빙부상 4일 오후 7시15분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6일 오전 8시 (02)392-0299˝
  • 노대통령 글씨 501만원 낙찰, 박정희대통령 휘호는 2100만원

    지난 4일 인터넷 경매에 나왔던 노무현 대통령과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휘호가 나란히 고가에 팔렸다. 6일 인터넷경매 사이트 옥션에 따르면 노 대통령의 친필 휘호 ‘사람 사는 세상’이 5일 마감된 경매에서 시작가보다 1만원 높은 501만원에 낙찰됐다.이 휘호는 노 대통령이 89년 국회의원때 경기도 남양주시의 한 음식점을 방문해 즉석에서 쓴 것이다. 고 박 대통령의 친필 휘호도 경매 시작가에 100만원이 더해진 2100만원에 팔렸다.79년 고 박 대통령이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을 위해 ‘총화유신민족중흥(總和維新 民族中興)’이라고 써준 휘호다. 최규하 전 대통령의 휘호는 본인의 글씨가 아닌 것으로 밝혀져 경매가 중단됐다. 그러나 옥션측은 인터넷 경매의 특성상 낙찰받은 사람이 물건을 사지 않는 경우가 있고,또 두 친필 모두 입찰자가 각각 2명에 그쳐 실제 구매로 이어질지는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NGO / 또 불거지는 박정희기념관 건립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 재착공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박정희기념사업회측이 최근 “8개월째 중단된 공사를 재개하겠다.”며 정부에 국고보조금 집행을 요구하자 250여개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박정희기념관반대국민연대가 “국민들이 낸 혈세를 독재자의 기념관건립에 사용할 수 없다.”며 건립에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기념회측이 모금한 기부금 100억원의 성격과 아리송한 기념관사업만료시한 연장 등의 문제까지 겹쳐 해답을 찾기 쉽지 않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간의 경위 기념사업회측은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옆 부지에 연건평 1600평 규모의 기념관을 짓기로 하고 시민단체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지난해 1월 공사에 들어갔으나 기부금부족에 따른 국고보조금 미집행으로 인해 지난해 6월 공사를 중단됐었다.정부는 기념사업회측이 공사비 214억원의 절반정도의 기부금을 자체 모금,운영자금으로 사용한다는 조건아래 공사비를 국고로 지원키로 결정했었다. ●건립 반대 및 강행의 논리 곽태영 국민연대 공동대표는 “기념관 건립은 민족정서에 반한 것으로 현 정부가 국고보조금을 지원하면 반정부 투쟁에 들어가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국민연대측은 특히 사업만료시한인 2월28일을 불과 열흘앞둔 지난 2월17일 2004년 10월까지로 시한이 연장된 점을 문제삼았다.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은 퇴임을 일주일 앞두고 있었다. 이와 함께 기념회측이 모집한 국민모금 100억원을 전경련 등 경제단체,대기업 등이 내게된 경위도 석연치 않다는 주장이다. 국민연대측은 5·16기념일인 다음달 16일까지를 기념관건립 반대주간으로 정해 건립을 저지하는 소송투쟁 등을 병행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측은 “정부로부터 정식 모금허가를 받아 기부금을 받은 것과 사정에 의해 공사가 지연돼 공사기간을 연장받은 것이 무슨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면서 “기념관은 공사비가 없어 공사가 중단됐기 때문에 정부와 국회가 결정한 대로 공사비 지원이 이뤄지면 공사를 재개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난처한 정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입장에 빠진 김두관 행정자치부장관은 최근 “행정수도 이전으로 자리가 비게될 청와대 본관을 해방 이후 역대 대통령 기념관으로 활용하는 현대사기념관 건립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제3의 중재안을 냈지만 두 단체간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노주석기자 joo@
  • 박정희기념관 성금모금 지지부진

    행자부는 18일 건립단계에서부터 논란이 됐던 박정희 기념관에 대한 국민성금이 부진할 경우 완공 예정 시점인 내년 2∼3월에 이미 지원된 국고 보조금을 회수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행자부는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회장 申鉉碻)가 500억원의 국민성금을 모금한다는 조건으로 3년에 걸쳐 208억원을 국고 보조금으로 지원한 상태지만 성금 모금이 26억 7000만원에 그치는 등 사업 추진이 불투명한 상태에 이르자 회수 작업에 임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서울 상암동 근린공원에 건축중인 기념관은 내년 2∼3월에 완공할 예정이었지만 현재 터닦기 작업을 완성했을 뿐 사업에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행자부는 당초 기념관건립사업을 지원하면서 “국고보조사업 수행에 필요한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거나 사업 추진이 부진할 때는 국고보조금 교부 전부 또는 일부를 취소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이에 따라 기념관건립은 사업요건에 크게 미달했기 때문에 정부 보조금을 회수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행자부 고위관계자는 “준공 예정시점까지 기념관을 완공하지 못하더라도 그때까지는 최소한 성금액이 100억원 정도는 달해야 한다.”면서 “그러지못할 경우 기념관을 국비만으로 지을 수는 없기 때문에 회수 조치 등을 심각히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념관 건립에 반대했던 시민단체들은 기념사업회의 모금이 부진을 면치 못하자 “국민 동의도 없이 국고 200억원이 투입된 기념관은 명백한 세금 낭비이므로 국고 지원금을 당장 회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정희 기념관은 지난 99년 7월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가 국고 200억원과 국민모금 500억원 등 총 700억원의 사업비로 건립키로 했다. 그러나 기념사업회가 모금을 시작한 지 2년이 넘도록 국민모금액이 목표액의 5% 수준에 불과해 연건평 2500평 규모가 1500평으로 축소됐고,총사업비도정부 지원금이 거의 전부인 214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이종락기자 jrlee@
  • “”유신헌법 개정 초안 박전대통령이 구상””

    유신헌법 초안은 고(故)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구상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 동안 유신헌법 제정에 주도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원로 헌법학자 한태연(84) 전 서울대 법대교수는 지난 8일 한국헌법학회(회장 安京煥 서울대교수) 주최로 서울대 근대법학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역사와 헌법'학술대회에서 유신헌법 제정 경위 등을 처음 공개했다. 한 전교수는 “”비상계엄이 선포된 뒤 청와대의 연락을 받고 가보니 박정희대통령이 '헌법 개정에 대한 구상'이란 쪽지를 내놓았다””면서 “”이를 바탕으로 개정작업을 위해 법무부에 가보니 당시 김기춘(현 한나라당 국회의원) 과장의 주도로 초안을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고 밝혔다. 이어 “”몇몇 조항은 국민의 지탄을 받을 것 같아 고치고 싶었지만 법무부가 '골격을 건드리지 마라'고 해 자구만 수정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씨는 유신 헌법에 대해 “”70년대의 정치·경제 격동기를 헤쳐나가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옹호했다. 이날 한씨의 증언은 헌법학회가 '과거 청산'을 내걸고 유신헌법 제정 실상을 밝히고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초청, 특강기회를 제의하자 한 전 교수가 허락함으로써 이뤄졌다. 이종수기자
  • 천득렁 베트남주석 8월 방한

    천득렁 베트남국가주석(64)이 8월말 김대중대통령의 초청으로 한국을 공식방문한다. 천득렁 주석은 21일 오후 주석궁에서 정부의 미래지향적사업의 일환으로 베트남을 방문하고 있는 한국 고위언론인들과 만나 이같이 밝혔다. 이 자리에서 렁 주석은 “한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단기간에 발전을 이룬 국가중의 하나로 최근 본격적인 공업화를추진하고 있는 베트남으로서는 가장 잘 살펴보아야 할 모델”이라면서 “이번 방문에서는 91년 수교이후 큰 성과를 거둬 온 양국간의 협력관계를 다시 한번 점검하고 실질적으로협력할 분야를 찾을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렁 주석은 11세기 베트남의 리 왕조가 몽골에 패해 한국으로 피신,화산 이씨를 만들었다는 내용을 예로 들며 “양국은 박정희대통령 시절 짧은 적대관계가 있긴 했으나 이는양국간의 기나긴 관계로 볼때 아무것도 아니다”고 강조하고 “문제는 앞으로 양국관계가 지난10년동안 해왔던 것처럼 보다 긴밀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노이 이경형특파원 khlee@
  • 뉴스피플 6월21일자 소개

    대한매일신보사가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뉴스피플’ 최신호(6월12일 발매 6월21일자)는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면서글로벌 자격증을 따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직장인들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다.낮에는 회사원,밤에는 수험생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요즘 직장인들의 ‘퇴근없는’ 24시를 밀착취재했다.실제 직장인들의 몸값을 올릴 수 있는 국제자격증도 철저히 해부했다.특집에서는 해고 위협에 온갖 차별로 서러운나날을 보내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실태를 집중취재했다. 6·15선언 1주년을 맞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과관련해 베일에 쌓인 대북 밀사의 존재여부와 북한 상선의 침범으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는 북방한계선(NLL) 공방을 취재했다.최근 종전의 입장에서 선회한 듯한 부시 행정부의 ‘대북 당근 정책’과 북한의 황태자로 불리는 김정일 위원장의아들 김정남의 일본 ‘아카사카 미스터리’를 취재한 특파원 리포트도 읽을거리다.정풍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민주당 추미애 의원을 만나 그의 소신을 들었다.국가보안법 개정과 고 박정희대통령에 대한 평가문제 등을 나름대로 정리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이념 해법’시나리오를 분석했다.문학마을에서는 소설가 황석영씨를 만나 그의 작품세계를 들었으며 최근 사진에 주목하고 있는 현대미술계의 동향도 살폈다. 신 장군의 비망록 안충준 장군의 세번째 이야기에서는 인도와 파키스탄 전면전을 막았던 뒷얘기를 들을 수 있다.
  • 권상능씨 “거물간첩 황태성 특수임무 띤 밀사”

    5·16직후 북에서 남파된 ‘거물간첩’ 황태성(黃泰成·전북한 무역상 부상)이 특수임무를 띤 ‘밀사’라는 주장이황태성의 조카사위에 의해 제기됐다. 당시 ‘황태성사건’에 연루돼 2년간 옥고를 치른 전 한국화랑협회장 권상능씨(67·조선화랑 대표)는 최근 월간 ‘민족21’과의 단독인터뷰에서 “황태성은 당시 쿠데타세력과모종의 담판을 위해 북측에서 남파된 밀사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황씨의 임무는 크게 세가지였다고 밝혔다.황씨로부터 직접 들은 바에 따르면 ▲5·16직후 군사정권이 북으로 공작원을 파견한 진의 파악 ▲남쪽의 (남북협상회의)제안과 관련,외세간섭 없이 통일논의 개최 후 남북에 비밀무역대표부 설치 ▲박정희 당시 최고회의 의장에게 중대정보제공 등이었다는 것이다.황태성이 말한 ‘남북 비밀접촉’은 5·16 군사쿠데타 직후 서해 용매도 등지에서 8차에 걸친 남북 정보당국간 비밀접촉을 말한다. 당시 남측 수석대표였던 강성국씨(75·캐나다 거주)는 “1961년 9월말부터 이듬해 8월경까지 북측지역인 용매도, 불당포 등지에서8차례 비밀회담을 했다”고 밝혔다.당시 이 비밀접촉은 남측이 미군 몰래 추진한 것으로, 남측에 의해 일방적으로 중단됐다. 한편 5·16직후인 61년 8월말경 남파된 황태성은 박정희,김종필 등 쿠데타 주체세력들과 접촉을 시도했다. 황태성은 박정희의 중형(仲兄) 박상희와 조귀분(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의 장모)의 중매를 선 주인공으로 쿠데타 주체세력들과는 ‘인간적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과의 ‘공식만남’은 이뤄지지 않은 채 황태성은 정보기관에 체포돼 조사를 받은 후 군법회의에 회부돼사형선고를 받고 63년말 처형됐다. 그동안 황씨가 조사과정에서 주체세력들과 ‘만남’을 가졌는지 여부가 논란이 돼왔는데 권씨는 “황씨가 ‘본인을 만나 할말을 다 했다’고말했다”면서 “(중앙)정보부장(김종필)을 지칭하는 것으로기억된다”고 밝혔다. 권씨는 황태성이 미군의 조사를 받은 사실도 공개했다.권씨는 “미군정보기관이 약 2주일에 걸쳐 박정희와의 관계에대해 물었다고 했다. 그 때 (조사받은 곳을)‘대방동’이라고 했는데 대방동에 있던 미군첩보부대를 지칭하는 것으로들었다”고 증언했다. 이밖에 권씨는 황태성의 ‘이북 생존설’과 관련,“박정희대통령의 취임(63.12.17) 3일전 인천 군부대에서 사형이 집행됐는데 시신은 총상으로 처참했다.홍제동 화장터에서 화장한 후 보문동 절에 잠시 안치했다가 이듬해 경북 상주 황씨의 선산에 안장했다”고 밝혔다. 정운현기자 jwh59@
  • [Drive & Dining] 수원 화성·갈비집

    송림이 짙푸른 요즘,싱그러운 봄바람을 맞으며 온가족이역사산책을 떠나보자.오는 길에 맛있기로 소문난 먹거리를 만나면 더욱 좋겠지. 경기도 수원시내 한복판을 둘러싸고 있는 화성(華城)은노인과 어린이들도 가볍게 찾을수 있는 곳이다. 화성은 효심이 지극했던 정조가 어머니와 여생을 보내기위해 쌓은 성으로 200여년 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자녀들 교육에도 좋다. 팔달산과 평지의 높낮이 굴곡을 따라 둘러쳐져 있는 화성은 또한 정약용이 만든 기중기를 처음으로 사용했으며 ‘조선시대 최고의 성’ ‘성곽의 꽂’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아름답고 우아하다. 5.7㎞에 이르는 순례코스를 이용하면 쉽게 둘러볼 수 있다.서장대∼화서문∼장안문∼화홍문∼연무대∼창룡문∼봉돈∼동람각루∼팔달문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돌아보는데 2∼3시간쯤 걸린다. 성곽 곳곳에는 전통복장을 한 순라꾼들이 배치돼 관광객들을 상대로 안내 및 설명을 맡고 있으며 매일 정오에는봉돈에서 30여분씩 봉화재현식이 거행된다. 매주 토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수원역∼장안공원∼서장대∼화성행궁∼연무대∼방화수류정∼반딧불이 화장실을 운행하는 시티투어 셔틀버스를 이용해도 좋다.(031)228∼2717◇수원갈비=수원의 명물은 역시 갈비다.이유가 뭘까.양이푸짐해서? 아니면 맛이 뛰어나서? 둘다 정답이라고 해도맞을 듯싶다. 수원갈비는 고 박정희대통령을 비롯해 60∼70년대 내로라는 고관대작들이 맞을 보기 위해 일부러 찾아왔다는 일화가 알려지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원조는 팔달구 영동시장에 있던 화춘옥이지만 지금은 없어졌고 톡특한 맛의 비법만 전해지고 있다.수원양념갈비는 간장이 아닌 소금으로 간을 해 맛이 담백한 것이 특징이다.설탕과 소금 후추를 1대 5대 0.5의 비율로 섞고 참깨마늘 참기름 배즙을 넣고 적어도 4시간 이상 양념이 배도록 해야 제맛이 난다. 이목동 노송지대와 동수원 등지에서 50여개의 대형 갈비집들이 성업중이며 이 가운데 ‘삼부자갈비’와 ‘본수원갈비’집이 유명하다. 78∼79년 화춘옥을 운영했던 김수경씨(65)의 삼부자갈비는 15년 전쯤 지금의 자리에 둥지를 틀고대형화하기 시작했다. 갈비를 굽기 전에 나오는 동치미를 옛 방식대로 담가 사람들이 시원하고 개운한 동치미맛에 끌려 일부러 찾는다고 한다.1인분에 2만원이며 양념갈비는 300g,생갈비는 200g나온다.(031)212∼3805 본수원 갈비집은 맛도 맛이지만 양이 푸짐해서 인기를 끈다.수원에서 30년째 갈비만 전문으로 취급하고 있는 이곳은 소갈비를 10∼11㎝정도의 큼직막한 갈빗대로 잘라 내와 한 사람이 1인분 이상 먹기 힘들 정도다.1인분에 1만8,000원.(031)211∼8434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
  • [굄돌] 기념관과 대통령 평가

    강의중 학생들에게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을 생각할 때첫번째 떠오르는 단어”를 물은 적이 있다.답으로 나온 단어들은 ‘독재자’‘부정축재자’‘고집불통’에 심지어는 ‘사기꾼’까지 온통 부정적인 단어 뿐이었다.어느정도예상은 했지만 대통령에 대한 불신이 학생들에게까지 뿌리깊게 박혀있는가에 다시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나라를 대표하고 그 임기중 국민들의 생사가 달린 각종 중요한 문제들을 최종결정했고,가장 중요한 인물인 대통령에 대한 전반적인 부정적 평가는 우리 전체의 불행이 아닐 수없다. 정말로 우리의 대통령들은 국민들로부터 지탄받을 만한일 이외에는 한 일이 없을까.식민통치와 전쟁으로 황폐화된 대한민국이 건국 50년만에 세계에서 주목받는 국가로부상할 때까지 대통령의 역할은 없었다는 말인가.물론 이는 우리 국민의 힘으로 이룩한 것이지만 대통령의 역할이전혀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박정희대통령 기념관 문제로 우리 사회는 수년째 소모적인 논란을 거듭해오고 있다.건립해야 한다는 측과 건립해서는 안된다는측 사이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평가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인물일수록 나와 다른 상대방의 견해도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그 견해에 동조하지않는다고 아예 부정해버리는 것은 바람직한 민주시민의 태도가 아니다. 정주영씨 사망 후에 ‘정주영기념관’ 건립 계획이 알려졌다.그에게도 많은 사람이 애증을 안고 있음에도 아무도그 계획에 이의를 나타내지 않았다.유족,친지들이 자신들의 돈을 모아 세운다는데 시비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싫은 사람은 안가면 되기 때문이다.이런 논리라면 박정희대통령 기념관 문제도 유족이건 추종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돈으로 세우는 것은 말릴 이유가 없다.다만 국민적인 합의를 이룰 수 없는 상황에서 국민의 세금을 지원하고 땅을제공해주는 등의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정부도 더 이상 미적거릴 것이 아니라 지원계획을 즉각 철회해 더 이상 시끄럽지 않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대로 놓아두자.싫어하는 사람들은 안가면 된다. 내가 싫어하니까 네가 좋아해서는 안된다고 강요해서는 안된다.세우는 자체를 막을 것이 아니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그곳을 한국경제발전을 이룩한 위대한 지도자의 학습장으로 활용하기도 하고,또 민주주의를 짓밟은 군사독재의 반성과 결의의 학습장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모두가 손해보는 ‘네가티브 섬’ 게임이 아니라 모두가 득을 보는 ‘포지티브 섬’ 게임 전략이 우리 사회에 절실한 때다. 라 윤 도 건양대 교수
  • [이사람] 화가 이상원

    일찍이 역사 속의 화가들은 독학을 한 천재가 많았다. 예술학교에 다니지 않아도,미술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천부의 재능과각고의 노력으로 보는 이를 감동시켰다.고흐 고갱 박수근 이인성이모두 그랬다. 지금처럼 예술이 엄격한 수련과 정치한 이론,후견으로축조되는 때에도 독학 화가가 빛을 발할 수 있을까. 한국화가 이상원화백(66)은 우리에게 “그렇다”는 대답을 준다.공사판 막일꾼에서 극장간판장이로,상업초상화가에서 세계가 인정하는 현대회화작가로 우뚝 선 이화백의 삶은 예술지망생뿐만 아니라 손에 잡히지 않는 욕망과 좌절로 번뇌하는 모든 현대인들에게 “꿈과 야망을 잃지말라,목표가 확실하면 고통도 즐겁다”고 위무한다. 이상원화백은 1935년 강원도춘천시 신북읍유포리에서 7남매중 둘째로 태어났다.초등학교4학년때 할아버지 얼굴을 그린게 소문나 동네 노인들의 초상화를 죄다 그릴 정도로 그림에 재주를 보였다.6·25를 만나 공부 때를 놓치고 고교2년 중퇴, 17세때 가출 상경했다. 아무데나 끼여 자며 노동판을 전전했다.공사장에서 쉬던 중우연히그린 스케치 한장 때문에 당시 동양극장 간판부장을 소개받게 됐다. 간판장이가 됐다.‘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벤허’‘닥터지바고’‘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닥치는대로 그렸다.프로가 끝나면 흰페인트로 쓱쓱 지워 없어져버리는 화면을 보며 허탈감을 느꼈다. 그러던 차 양씨라는 미8군납품업자가 찾아와 초상화를 권유했다.젊은 사람이 돈도 벌고 학교도 가야하지 않느냐고 집요하게 설득했다.데생엔 자신이 있었고 인기가 좋아 하루에 많게는 70장까지 그렸다.이때 그린 미8군 사령관 초상화를 보고 노산 이은상선생이 안중근의사공식 영정을 부탁해 왔다.유명화가가 그려온 것이 마음에 안든다는것이다.70년10월 박정희대통령이 참석한 영정봉안식에서 많은 찬사를 받았고 그때부터 박대통령 부모,부부등 요인 초상화제작 주문이 줄을 이었다.외국까지 소문이 나 험프리부통령등 국가원수급 회담때 공식선물이 될 정도였고 중동건설 특수 때는 왕가의 공주,사위까지 그렸다.돈도 많이 벌었다.노산선생은 순수미술 얘기를 꺼냈다.어느날은 부르더니 ‘후암예술세계(厚岩藝術世界)’란 휘호를 써주며 제갈길을 가라고 당부했다.그리곤 한 달 후 별세했다.그의 뜻대로 진짜 미술을 하기로 했다. 독학을 했다.초상화는 다시 그리지 않았다.국내외 유명작가의 화집을 수집해 연구하고 미술관도 찾아다녔다.당시 유명화가를 찾아가볼까생각도 해 봤지만 마음뿐이었다.학연도 인맥도 없어 존재를 알리는길은 공모전밖에 없었다.74년 마흔의 나이로 국전에 도전해 첫 입선했다.78년엔 민전인 제1회동아미술제와 중앙미술대전에서 차석을 차지해 작가로서 당당히 자격인정을 받았다.그러나 세차례의 개인전.국내화단의 반응은 냉랭했다. 작품가치를 알아보고 높이 평가한 곳은 오히려 해외 화단이었다.98년 연해주 주립미술관을 필두로 중국미술관(98,베이징),프랑스 살페트리에르미술관(99,파리),국립러시아미술관(〃,상페테르부르크),중국상해미술관(2001)등 세계 정상급 미술관서 초대전을 잇달아 열어주며 뜨거운 반응을 보내줬다.작품도 구입해갔다.지난달 30일 끝난 상해전시서는 “감동적인 박애정신”이며 “아시아예술탐색의 앞날을 밝혀주는 작품”이란 평가(미술평론가 水天中)를 받기도 했다. 이젠 국내서도 외톨이가 아니다.지난해엔 국전의 후신인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한국화부문 심사위원장도 맡았다.국전 대상은 놓쳤지만한국화단의 스승으로 거듭난 것이다. *화가 이상원 인터뷰. ◆화가가 됐다는 느낌은 언제부터 들었는가. 민전에서 두달 새 두번 차석을 하고나서다.두번째 국전 응모때 작품두점을 냈는데 내가 좋다고 생각한 것이 제외돼 실망했다.더구나 입선작을 놓고 평론가들이 대상감인데 아깝게 됐다고 말하는 걸 보고울분이 치솟았다.아끼던 낙선작을 78년 처음 열린 동아미술제에 내봤더니 차석이었다.중앙미술대전에선 대상을 다퉜으나 두 달 전 민전 차석자를 대상으로 뽑을 수 없어 또 다시 차석이 됐다는 말을 들었다.자신감이 들었다.그때부터 외곬으로 내 세계를 밀고 나갈 수 있었다. ◆작품을 보면 한국화인지 서양화인지,구상화인지 추상화인지 착각이 들 때가 많다.극사실주의 기법을 써 서양화같기도 하고 바퀴자국,마대,밧줄,인물을 세밀히 묘사해구상계열에 속하면서도 화면구성이나형태는 추상화 같은 느낌을 준다. 내작품은 한국화,구상화라기보다는 ‘현대회화’라는 편이 맞다.엄격한 조형성에 철학적 내용을 추구한다.기법면에서도 세계적으로 장지에 유채와 수묵을 혼합처리한 그림은 나밖에 없다.나름대로 기존의벽을 허물었다고 생각하며 나만의 길을 갈 것이다. ◆독학시절부터 지금까지 영향을 준 화가가 있다면. 스승은 없다.밀레와 파리 오르세미술관의 인상파작품들을 좋아했다. 큰 스케일,과장된 표현은 간판작업서,세밀한 묘사는 초상화작업의 영향일 거다.평론가 신양섭씨는 직선적인 발언으로 많은 자극을 주었다. ◆작가활동은 성공적이었나. 독학의 설움을 많이 받았다.86년 첫개인전을 열었는데 보러 와 주는화가,평론가가 거의 없었다.동료들의 축하를 받는 다른 작가들이 얼마나 부러웠던지.이런 구박과 설움에서 내 작품의 힘이 나오는거라고 생각한다.인생의 힘겨운 무게,쓸쓸함,낡고 버려진 것들에 대한 충만한 애정은 나의 자화상이다. ◆작품을 팔지 않는것으로 유명한데 그 이유는.팔기 위한 그림은 실컷 그렸다.10,000점 이상 그렸고 돈도 많이 모았다.내 작품이 개인창고에 묻히는 건 바라지 않는다.러시아국립미술관 같은 좋은 미술관엔 작품을 기증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두운 테마 말고 다른 그림을 그려볼 생각은. 미인도나 아기 그림을 그려보라는 사람이 많다.누드를 하고 싶다.흔한 누드가 아니라 나만의 작품.갯벌현장에서 수십명의 여성이 뒤얽혀 있는 누드군상 어떤가. ◆인사동에 화랑을 갖고 있는데. 그동안 모은 돈으로 건물을 사뒀다가 97년 갤러리로 꾸몄다.나처럼정규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어도 작품만 좋으면 발표를 할 수 있는 곳이다.전시장 얻기도 쉽지 않았던 내 과거를 생각해 마련했다.두 아들이 내 취지를 잘 살려 운영한다.앞으로 미술재단을 만들어 좋은 일을 하고싶다. 신연숙편집위원
  • 시민단체 회원들 朴正熙 흉상 철거

    ‘박정희기념관’ 건립 국고지원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시민단체 회원들이 전격적으로 박정희 전대통령의 흉상을 철거해 논란이 예상된다.민족문제연구소(이사장 조문기)회원,홍익대생 등 30여명은 5일 낮 12시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소재 문래공원내 박 전대통령의 흉상을 밧줄을 걸어 철거했다.이 흉상은 지난 66년 5·16 5주년을 맞아 홍익대가 ‘근정(謹呈)’한 것으로 조각가 최기원 홍익대 교수가 제작한 것.흉상 좌대 뒷면에는 박 전대통령을 찬양하는 월탄 박종화의 축시가 적혀있는데,글씨는 서예가 소전 손재형씨가 썼다. 박 전대통령의 흉상이 서있던 곳은 5·16쿠데타의 근거지였던 6관구사령부가 있던 자리다.민족문제연구소 회원 등은 미리 준비해간 밧줄로 박 전대통령의 흉상을 철거한 후 망치로 좌대 뒷면에 부착된 ‘홍익대학 근정’이라는 동판과 좌대 양옆에 부착된 청동 횃불상도 함께떼어냈다. 철거된 박 전대통령 흉상은 홍익대 민주동문회측이 학교로옮겨 보관하고 있다. 이날 흉상철거를 주도한 김용삼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장(51)은“최근 박정희기념관 건립 반대운동을 확산시킬 목적으로 흉상을 철거했다”며 “박 전대통령을 기념하는 어떠한 기념물도 용납치 않겠다는 결의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역사적 인물 가운데 흠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정확한 철거경위 등을 알아본 후 적극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영등포경찰서 관계자는 “철거된 흉상은 구청 재산으로 알고있다”며 “구청측의 요청에 따라 철거경위를 조사할 계획”이라고밝혔다. 정운현기자 jwh59@
  • 박정희 기념관 ‘뜨거운 감자’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건립 자체에 대한 찬반 논쟁은 물론,건립장소에 대해서도 견해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우선 기념관 건립을 둘러싼 찬반 논쟁이 뜨겁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총 700억원의 건립비용 가운데 정부가 200억원을 지원하기로 한 부분에 대해 크게 반발하고 있다.박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마무리되지 않았고 국민적 합의도 부족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반면 기념관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회장 申鉉碻 전총리)는 “국민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조국 근대화를 이룩한 박 대통령의공로를 연구·평가하기 위해 기념관을 건립하는 것”이라며 사업추진 의지를굽히지 않고 있다. 기념사업회측은 박 전 대통령 기념사업에 대한 국고지원은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것이며 국회의 의결절차를 거쳐 결정된 것이므로 민주주의 원리와 절차상 잘못이 없다는 주장을 내세우고있다. 한편 건립장소를 서울 상암지구로 할 것인가,아니면 고인의 고향인 경북구미로 정할 것인가를 놓고 벌이는 논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 건립을 주장하는 쪽은 박대통령기념관은 참배·분양하는 장소가 아니라 우리나라를 단기간에 중진국 그룹으로 발전시킨 박정희를 연구하는 장소이므로 서울이 타당하다는 견해다. 이에 대해 구미 건립 주장을 내세우는 쪽은 기념관을 조국 근대화의 산교육장으로 삼아야 하며 고인의 고향에 건립되지 않으면 기념관의 숭고한 의미를잃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재순기자 fidelis@
  • 서울 상암 신도시에 ‘박정희기념관’ 건립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기념관 건립 장소가 서울 상암 신도시 지역으로 결정됐다. ‘박정희대통령 기념사업회’(회장 申鉉碻 전 총리)는 19일 오전 청와대에서 신 회장과 기념사업회 부회장인 권노갑(權魯甲) 민주당 상임고문,한광옥(韓光玉) 대통령 비서실장,남궁진(南宮鎭) 정무수석,최인기(崔仁基) 행자부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갖고 이같이 결정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지난해 5월 박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 지원을 약속한 뒤 지난 1년여 동안 박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구미시와 수도권을 놓고 논란을 벌였던 기념관 건립장소 문제가 이로써 일단락됐다. 서울에 기념관을 건립키로 결정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장소였으면 한다”는 가족들의 희망이 반영된 결과로,김 대통령도 수도권 건립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회의에서 고건(高建) 서울시장이 주위 환경과 교통 등을 이유로 상암동 공원예정지내 기념관 건립을 제안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지 5,000평,건평 800평 내외로 건립될 예정인이 기념관은 ‘역사기록관(도서관)’ 기능을 동시에 갖춰 시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된다.기념관 건립에는 총 700억원의 예산이 소요될 예정이며,정부가 200억원을 지원하고 500억원은 기념사업회가 모금운동을 통해 마련할 예정이다. 양승현기자 yangb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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