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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정희대통령
    2026-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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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정상회담 추진 경과/81년1월 전전대통령 첫 공식제의

    ◎김대통령,93년 2월 취임사서 표명/김일성,90년 방북대표에 처음 언급 남북한정상회담이 우리측에 의해 공식제의된 것은 81년1월 당시 전두환대통령에 의해서다.그러나 그에 앞서서도 막후에서 정상회담을 실현시키려는 노력은 있었다. 이승만대통령이 이끌던 자유당정권은 「북진통일」이 국시였다.남북정상회담은 상상조차 못하는 분위기일 수밖에 없었다.60년 4·19혁명이 일어나자 남북대화의 기운이 일었지만 정상회담 개최논의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이어 등장한 박정희대통령의 「5·16정부」는 처음 반공을 강력히 내세우다 보니 정상회담추진이 어려웠다.72년에 들어서야 남북조절위가 열렸고 서울과 평양을 오가는 특사 사이에 남북정상회담논의가 비공개로 있은 것으로 알려진다.박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공개적인 운을 뗀 것은 집권말기인 79년1월이었다.그는 연두회견에서 『남북한당국이 어떤 시기·장소·수준이든 조건없이 만나자』고 제안했다.남북정상회담까지를 염두에 둔 것이긴 했지만 직접표현에는 신중을 기했다. 전두환대통령은 80년 정권을 잡자마자 정상회담개최에 집념을 보이기 시작했다.81년1월 국정연설에서 「남북한당국 최고책임자 상호방문」을 제안,공식적으로는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의사를 밝혔다.전대통령은 거의 매년 8·15 경축사등을 통해 북한이 회담에 응할 것을 촉구했다. 북방외교를 가장 큰 목표로 내건 노태우대통령은 전대통령보다 남북정상회담에 더 열심이었다.노대통령은 88년8월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식적으로는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용어를 쓰며 김일성주석과 만날 뜻을 피력했다.또 88년10월 유엔연설에서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때 의제까지도 소상히 밝혔다. 김영삼대통령은 최초의 「문민정부」답게 남북정상회담에 접근하고 있다.김대통령은 지난해 2월 취임사에서부터 『어떤 이념이나 사상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획기적 전제아래 정상회담을 제안했다.올해 들어서도 취임 1주년회견에서 남북한정상회담의 조기개최의지를 천명했다. 「5공」과 「6공」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정통성 확보의 가장 효율적 수단으로생각한 듯 비밀협상을 통해 회담을 성사시키려고 노력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5공」 때는 장세동안기부장,「6공」 때는 박철언청와대특보가 나서 북한의 고위당국자와 해외에서의 만남 혹은 상호방문등으로 깊숙한 논의를 진전시킨 것으로 전해진다.북한에 대한 대대적 경협이 정상회담개최의 대가로 제시되었다.그러나 이러한 당시 정부의 노력은 북한측의 기만적 태도로 번번이 무산되곤 했다. 북한은 해방직후부터 최고당국자의 만남을 거론해왔다.하지만 그것은 모든 정당·사회단체대표들의 회담으로 우리 내부를 교란시키려는 통일전선전략의 일환이었다.김일성은 신년사를 통해 가끔 정상회담의사를 비췄으나 무게가 실리지 않은 듯했다.지난 90년에는 평양을 방문한 남북고위급회담 우리 대표에게 정상회담의사를 밝혀 기대를 부풀게 했으나 역시 구두선으로 끝났다. □남북한 정상회담 관련 일지 ▲81년1월12일=전두환대통령,남북한당국 최고책임자 상호방문제의(국정연설) ▲81년6월5일=전대통령,남북한당국최고책임자간 직접회담제의(평통정책자문회의 개회사) ▲81년7월1일=북한금일성주석,우리측 제의 거부 ▲88년2월25일=노태우대통령,김일성과 대화용의 표명(대통령취임사) ▲88년8월15일=노대통령,김일성과 회담제의(8·15경축사) ▲88년10월18일=노대통령,평양방문 회담용의표명(유엔총회연설) ▲93년2월25일=김영삼대통령,김일성과 회담용의표명(대통령취임사) ▲93년5월25일=북한 강성산총리,특사교환통한 정상회담논의제의(대남전통문) ▲94년2월25일=김대통령,핵문제관계없이 남북정상회담 추진의사천명(취임1주년회견) ▲94년6월16∼17일=김일성,남북정상회담 수락의사표명 ▲94년6월18일=김대통령,김일성주석 제의 즉각수락
  • “김일성에 속지말라” 당부/막판변수 카터 방북/청와대 뭘 주문했나

    ◎“이왕 가게 됐으면 최대의 역할을”/우려­기대 엇갈림속 「결과」에 촉각 김영삼대통령은 14일 저녁 카터 전미국대통령을 만나면서 카터란 인물의 복합적인 의미를 되새겼을 것이다. 첫째는 그가 살아 있는 미국의 전직대통령 가운데 자신과 가장 인연이 깊다는 것이다.둘째는 주한미군 철수 주장으로 한국과 맺은 그의 악연이고 마지막은 최근 북한을 방문하는 가장 영향력있는 외국인사라는 점이다. 김대통령은 이날 만찬에서 자신과 가진 친분,그가 가진 영향력을 감안해 진지하게 우리의 진의와 국제사회가 북한핵을 보는 심각성이 북한에 전달되기를 희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김일성은 외국인사와 만날 때마다 핵개발에 관한 본심은 한번도 드러내지 않았다는게 청와대의 판단이다.핵과 관계된 질문에는 늘 『낚시를 가고 싶다』거나 『핵을 개발할 의지도,능력도,돈도 없다』고 말해왔다.단 한번도 외국인사와 진지하게 스스로의 처지를 이야기하고 「협상」을 했던 적이 없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카터 전대통령이 미국에서 전직대통령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크다는 점에 그나마 주목한다.그의 무게에 견주어,또 현재의 남북한이 함께 갖고 있는 「위기감」에 비추어 김일성이 카터 전대통령에게만은 핵에 관한 본심을 이야기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 때문이다.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카터씨의 진지성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이 진지하지 못할 것』이란 분석들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김대통령은 이날 만찬에서 우리의 북한에 대한 인식 두가지를 전달해줄 것을 요청했다.하나는 어떤 경우에도 핵개발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란 의지였다.다른 하나는 북한의 고립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과 현정권아래서 북한이 경제발전을 해주기를 바라며 우리가 이에 필요한 지원을 해줄 수 있다는 점이다.일부에서는 구체적인 경제협력 프로그램을 전달하지 않았겠느냐 하는 추측도 한다.이에 대해 청와대 당국자는 『현재의 힘겨루기 상황에서 그같은 경협프로그램은 「낮에 나온 반달」』이라고 가능성을 일축했다. 북한의 IAEA 전격탈퇴 선언으로 청와대가 카터 전대통령에게 거는 기대에 달라진 부분은 크게 없는 것 같다.기본적으로청와대는 북한의 IAEA 탈퇴가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한 선전용카드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때문에 그에게 김대통령이 거는 기대는 담담하고,기대에 못지 않은 크기로 김일성에게 이용당할 가능성을 일러주는데 게을리하지 않았다.다만 『뭣하러 가느냐』 하는 처음 불만에서 『이왕 가기로 됐으면 최대한 그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식으로 사고의 방향이 바뀐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카터전대통령은 79년 6월 고박정희대통령과의 회담이 끝난 뒤 『빠킹』이란 욕설을 혼잣말로 내뱉었었다.주한미군철수를 둘러싸고 박대통령과 치열한 논쟁을 벌인 뒤다.그때 카터를 수행했던 사이러스 밴스국무장관의 회고록에 나오는 이야기다. 김대통령은 그의 한국에 대한 이같은 인식을 고려,북한의 실체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것을 요구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그것은 그의 북한방문이 스스로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북한당국의 입지를 오히려 강화해줄 가능성을 경계해서였다. 카터전대통령은 15일 상오 판문점을 통해 평양으로 간다.카터전대통령의 평양행을 보는 청와대의 시각은 그의 성실성과 진의를 믿지만 김일성이 그에게 성실하지 않을 것이란 것으로 요약된다. 김대통령은 이번 기회에 핵문제의 고삐를 확실하게 우리가 잡도록 할 계획이다.또 그같은 계획의 실천에 카터전대통령이 도움이 될 것인지를 염려한다. □북­IAEA 관련 일지 ▲’74.9.18 북한 IAEA가입 ▲’85.12.12 북한핵확산금지조약(NPT)가입 ▲’92.4.10 북한의 NPT가입에 따른 북·IAEA 안전조치 협정발효 ▲’92.5∼’93.2 IAEA북한 임시사찰(6회) ▲’93.3.12 북한 NPT탈퇴선언 ▲’93.6.11 미·북 1단계고위급회담(북한 NPT 탈퇴 선언발효유보) ▲’93.7 미·북 2단계 고위급회담(북한에 대해 경수로 지원약속) ▲’93.8 IAEA 사찰팀 감시장비교체위해 입북 ▲’94.3 IAEA 임시사찰(6개시설허용,방사화학실험실사찰거부) ▲’94.5 IAEA 방사화학실험실 추가사찰(유엔안보리추가사찰요구 의장 성명 채택) ▲’94.6.2 IAEA 북한과의 영변 5MW급 원자로 연료봉 교체협상 결렬 유엔안보리 보고 ▲’94.6.10 IAEA이사회 대북한 기술원조 중단 결의안 채택 ▲’94.6.13 북한 IAEA 탈퇴선언
  • 중독자 급증… 치료감호시설은 1곳뿐(마약을 추방하자:5)

    ◎수감사범 5백70여명중 2명만이 혜택/진료기간 늘리고 전문인력 확충도 시급 충남 공주군 반포면의 법무부 치료감호소에서 13개월째 마약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김모씨(34). 서울에서 조그마한 사업을 하며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던 김씨는 91년부터 히로뽕을 복용하다 지난해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위반죄로 징역 3년과 치료감호를 선고받고 이곳에 수용돼 외로운 투쟁을 벌이고 있다. 매일 아침6시부터 저녁9시까지 특수치료·약물치료·재활직업훈련·체육활동 등으로 꽉짜인 일정속에서 악몽같은 지난날을 잊으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한번 빠진 늪에서 벗어나기란 그리 쉽지가 않다.마약을 끊겠다는 굳은 의지를 가지고도 마약의 유혹에서 어느정도 벗어나는데만 1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그러나 아직도 유혹은 순간의 흐트러짐을 노리고 있다. 『요즘도 밤이면 문득문득 투약의 욕망이 되살아나곤 합니다』 그만큼 잊혀지지 않는 강렬한 환각이었다.처음에는 히로뽕을 권한 친구가 「신처럼 느껴졌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처음 느꼈던 쾌감을 다시 맛보기 위해서는 점차 투약량을 늘려야만 했고 2년여만에 김씨의 몸과 정신은 환청·환각·무기력·우울증·정신분열 등으로 얼룩졌다. 『완전히 중독돼 날이 갈수록 폐인으로 전락해가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고 치료를 받기 위해 자수를 결심했습니다』 김씨는 이제 어느정도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그러나 이곳에서의 치료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다는 사실이 김씨와 치료진을 불안하게 한다. 지난달 16일 충북 제천에서 본드환각에 빠져 트럭을 빼앗아 타고 달아나다 행인을 치어 숨지게 한 뒤 인질극까지 벌인 끝에 붙잡힌 김순만씨(28)는 바로 이곳에서 1년반동안의 치료끝에 「완치」판정을 받고 지난 1월 퇴소해 당시 마약중독 치료의 성공사례로 꼽혔던 인물이었다.불과 몇달만에 다시 마약에 굴복한 것이다. 치료감호소 특수치료과장 조성남박사는 『그의 재범은 퇴소 뒤 수많은 유혹이 도사리고 있는 환경에 무방비로 방치됐기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치료감호나 교도소복역이 끝난 마약사범들이 적어도 3년이상은 계속 외래진료를 받도록 의무화해야 합니다』 현재 마약사범의 재범률은 약70%.대부분의 마약투약사범은 8월∼1년의 교도소복역 뒤 사회로 돌아가고 있다.이 정도의 단약(단약)기간만으로는 마약을 끊기 어렵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문제는 또 있다.김씨는 약물중독 치료에 가장 효과가 좋다는 집단정신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현재 마약중독으로 이곳에서 치료감호를 받고 있는 사람은 김씨와 고 박정희대통령의 아들 지만씨 2명뿐이기 때문이다. 현재 수감중인 마약사범이 5백70여명인데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숫자다.치료감호시설과 전문인력을 확충해야 할 필요성을 대변하는 대목이다. 김씨는 또다른 제도의 장벽도 경험했다.의료기관들은 마약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입원한 환자가 있으면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김씨의 경우 92년 5월 국립의료원에 입원,치료를 받다 한달만에 신고를 피해 퇴원해야 했다.김씨는 다행히 구속을 각오하고 자수하는 용기를 발휘했다.반면 대부분의 경우 이를 포기하고 다시 마약을 찾는게 현실이다. 이제 목공을 배우며 재활의지를 다지고있는 김씨는 끝으로 이렇게 경고한다. 『한번이면 어떠냐는 생각은 착각입니다.주사기를 꽂는 순간 이미 중독은 예정된 것입니다.예외란 없습니다』
  • 지명유래:1(서울 6백년만상:32)

    ◎궁정동/궁궐물 긷는 우물 있던 곳/피난 인조,말위서 팥죽 먹어/말죽거리/서인들,반정 다짐후 칼 씻어/세검정 서울 종로구 북악산 아래에 위치한 궁정동은 경복궁을 비롯한 주변의 궁궐에서 물을 길어다 쓰는 우물이 있었다해서 붙여진 이름. 궁정동은 철옹성같은 권력자를 몰락시키면서 이름을 얻었고 또 그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그리하여 궁정동은 절대 권력자들이 영락의 골로 빠져든 역사의 현장으로 서울6백년사에 권력부침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첫번째 권력자가 몰락한 때는 조선조 숙종시대로 그 인물은 장희빈이었다.장희빈이 하늘을 찌르듯한 권력을 누리고 있을 당시 영조의 생모 최씨는 대궐에서 쫓겨난 인현왕후를 사모하게 되고 그 사실이 장희빈에게 전해져 혹독한 고통을 받았다. 하루는 숙종이 낮잠을 자다가 내전앞마당의 큰 항아리속에서 용이 기어나오려다 빈사상태에 이르는 꿈을 꾸었다.깜짝 놀라 꿈에서 깬 숙종은 꿈의 현장이 실제와 똑같고 꿈이 너무 생생해 기이하다고 여겨 꿈에서 본 현장을 찾았다.그 곳에는 실제로 큰 항아리가엎어져 있었고 그 독을 젖혀보니 궁녀 최씨가 꿈속의 용처럼 빈사지경을 헤매고 있었다.숙종은 이 사건을 계기로 장희빈을 멀리하게 하고 끝내는 사약을 내렸다. 그 2백50여년뒤인 1979년 10월29일엔 역시 절대권력자였던 박정희대통령이 이 동네에서 비명에 갔다. 궁정동은 이른바 대통령의 안가로 세인들의 궁금증을 자아 냈지만 문민정부는 두명의 절대권력자가 힘없이 쓰러져갔던 그 자리를 모두 헐어내고 이른바 효자동 사랑방과 무궁화동산으로 가꿔 시민들에게 공개했다.6백년만에 세인들의 발길을 받아들인 셈이다. 역사적인 사연에서 이름을 얻은 곳도 있다.지금은 사통팔달의 관문으로 변해버린 양재동사거리는 엊그제까지만해도 흔히 말죽거리로 불렸다.지금부터 3백70년전인 1624년 광해군을 반정으로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인조는 논공행상의 불만에서 비롯된 이괄의 난을 만났다.이괄은 도성에 입성,결국 「일일천하」로 끝났지만 인조는 서둘러 피난길에 나섰고 급작스레 나선 피난길이라 임금만 간신히 조랑말 한필을 구해 몸을 실었을 뿐 대신들마저 백성들 틈에 끼어 남대문을 지나 한강을 건너야 했었다.임금일행이 천신만고끝에 지금의 양재동사거리에 도착했을 때는 그 다음날 여명이 밝아올 무렵이었다.이 소식을 들은 김이등 부근 유생 6∼7명이 급히 팥죽을 쑤어 임금에게 바치니 임금은 말에서 내릴 틈도없이 말위에서 부랴부랴 죽을 마시고 과천으로 떠났다해서 말죽(마죽)거리라는 땅이름을 얻었다.즉위초부터 이괄의 난을 겪은 인조는 즉위 중년에 병자호란을 만나 또 한차례에 피난길에 나선다.남한산성으로 황급하게 피난길에 올랐던 임금일행이 지금의 오금동인 백토고개에 이르러 잠시 쉬어가게 됐다. 구중궁궐에서 천하를 호령만하던 임금인지라 갑자기 먼길을 달려 오금이 너무 아팠던지 백토고개에 이르러 엉겁결에 「아이구 내 오금이야」하고 가쁜숨을 내쉬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백토고개일대를 오금골이라 부르게 됐고 지금의 오금동이 유래됐다고 전한다. 역사적인 사건으로 이름을 얻은 곳으로는 종로*구 자하문밖 세검정(선검정)을 빼놓을 수 없다.본래 자하문밖 일대를 탕춘대라고 불렀으나 당시 서인들이 인조반정을 다짐하며 칼을 갈고 이 냇물에 씻었다해서 이때부터 세검정으로 불렸다.
  • 문민대통령의 시축/고두현 체육부 국장급기자(오늘의 눈)

    스탠드를 메웠던 7만7천명의 관중들과 TV로 지켜보던 안방관중들은 아마도 한결같이 안도의 큰숨을 내쉬며 박수를 쳤을 것이다. 1일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치러진 한국­카메룬의 축구 테스트매치에서 김영삼대통령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달려가 맵시있게 시축을 성공시켰다. 지난날 이나라를 다스렸던 박정희,전두환,노태우등 군인출신의 대통령은 모두 교육을 받을때 스포츠와 익숙했으므로 스포츠감각이 결코 무디지 않은 사람들이었고 스포츠에 대한 이해도 깊은 편이었다. 야구의 시구나 축구의 시축을 하면서도 대통령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지난 66년 중앙일보가 대통령컵고교야구를 창설했을때 당시의 박정희대통령이 서울운동장에 나와 시구를 했다. 그때 박대통령은 보기드물게 두차례의 시구를 했다.시구란 볼이 엉뚱한 방향으로 던져지더라도 구심이 「스트라이크」를 선언해서 끝내도록 되어있다. 첫번째 시구에서 박대통령의 시구는 포수의 미트에 빨려들어 갔는데도 정확한 스트라이크가 아니었다고 판단한 그는 「한번 더 던져보겠다」고 민준기구심에게 요청,야구사상 일찍이 없었던 두번째 시구를 던졌다. 두번째 시구에는 만족했는지 박대통령은 민구심에게 『이번것은 진짜 스트라이크였지?』라며 확인했단다. 이 이야기를 민구심으로부터 전해들은 기자는 「박대통령은 꽤 꼼꼼한 사람인가보다」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제2차대전중 미국의 루스벨트대통령이 사망하고 트루먼부통령이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승계하자 미국의 어린이들이 『야 이제는 우리대통령도 두발로 걷는다』고 함성을 질렀단다. 스포츠가 생활화되어 있는 미국의 어린이들에게 소아마비탓에 휠체어에만 앉아있었던 루스벨트대통령의 모습이 안쓰럽게 비쳤던 모양이다. 평소 조깅을 즐기고 어렸을 때에는 축구도 즐겼던 탓에 김대통령은 시축을 잘했을 것이다. 대통령이 나라를 이끌어나가는 능력과 스포츠능력과의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겠지만 국민들 특히 청소년들은 스포츠를 생활화하고 건강한 대통령에게 친근감과 신뢰감을 갖게될것 같은 생각이 든다.
  • “재범우려 있다” 치료감호 선고/박지만씨 「히로뽕 투약」공판 모습

    ◎변호인 “가족 모두 결과에 만족”/방청객 백여명 몰려 관심 반영 서울지법 남부지원 형사부(재판장 이정구 부장판사)는 25일 히로뽕 상습투약혐의로 기소된 고박정희대통령의 외아들 박지만씨(36)에 대해 치료감호를 선고했다. 이에따라 박씨는 히로뽕중독증이 완치됐다고 판단될 때까지 공주치료감호소에 수용돼 치료를 받게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의 히로뽕 의존도가 중증인 것으로 보이는데다 주변환경으로 볼때 재범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건전한 사회인으로 복귀시키기 위해서는 약물을 차단하고 충동유혹을 사전에 방지한다는 차원에서 치료감호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날 상오 9시55분 선고공판이 열린 서울지법 남부지원 1호법정은 1백여명의 방청객들이 입추의 여지도 없이 들어차 이 사건에 대한 세인의 관심이 여전함을 반영. 이날 법정에서는 피고의 둘째누나 근 씨(40)를 비롯,사촌형·당숙등 가족과 친척들도 나타나 뒷줄에 서서 조용히 재판을 관람. ○…푸른 수의 차림으로 피고인 석에서 고개를 떨군채 앉아 있다가 호명을 받고 재판장 앞에 선 박씨는 시종 담담한 표정. 『재범위험이 있어 피고를 마약공급원으로부터 차단시키기 위해 치료감호처분에 처한다』는 내용의 간단한 판결문 낭독이 끝난뒤에도 결과를 예측한듯 박씨는 표정 변화 없이 퇴장. ○…3분여에 걸친 판결문 낭독이 끝난뒤 법정을 나선 근 씨는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동생이 이런일을 저질러 돌아가신 부모님께 죄송하다』고 말하고 『오늘은 그렇게만 말씀드리겠다』며 총총히 자리를 떴다. 그러나 근 씨는 재판 결과에 만족한 듯 비교적 밝은 표정. 변호인 김유후변호사는 『치료받기를 원하는 당사자와 가족 모두가 재판결과에 만족하고 있다』고 귀띔. 김변호사는 『치료감호소에 머무는 동안 치료와 동시에 6개월에 한번씩 사회보호위원회의 검증을 받아 완치됐음이 입증되면 감호소를 나올수 있다』고 말하고 『그러나 2년뒤에도 치료가 되지 않을 경우엔 다시 기간이 연장될수 있다』고 설명. ○…박씨가 히로뽕 투약과 관련해 법원의 치료감호 선고를 받은 것은 이번이 2번째로 89년 10월 코카인 흡입혐의로 불구속입건된데 이어 91년 3월에도 히로뽕투약혐의로 검찰에 구속돼 91년 7월9일부터 같은해 8월31일까지 치료감호를 받았었다.
  • “투쟁이 영웅시되던시대 지났다”/김대통령,서울대졸업식 치사서 강조

    김영삼대통령은 26일 국립 서울대학교 졸업식에 참석,「분노와 저항시대」가 끝났음을 선언했다. 서울대가 모교이기도 한 김대통령은 이날 인류문명의 기본틀이 바뀌고 있다는 전제 아래 서울대가 진취적 기상으로 새로운 문명의 시대,문예부흥의 요람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서울대 졸업식에 참석한 것은 지난 74년 고박정희대통령이후 20년만의 일로 대학이 더이상 대립과 갈등의 장이 아님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동안 역대 대통령들은 서울대 졸업식에 참석하기를 희망했으나 시대상황에 따른 학생들의 반발로 참석하지 못했었다. 김대통령은 이날 「꿈과 야망을 가집시다」란 제목의 치사를 통해 『분노와 저항의 시대는 갔으며 투쟁이 영웅시되던 시대도 갔다』고 전제,『대학은 빼앗겼던 시간을 찾아 연구실과 도서관에 불을 밝히고 개혁과 창조의 선두에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대학의 경쟁력 없이 국가경쟁력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하고 『대학은 자율과 책임으로 활기차고 역동적인 지식의 산실이되어야 하며 새로운 기술,새로운 정보,진취적 발상이 대학에서 나와야 한다』고 밝혔다. ◎졸업식장 표정/“20년만에 대통령 참석… 문민시대 실감/“동문출신” 졸업생·학부모 감회의 박수 서울대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26일 20년만에 서울대 졸업식에 참석한 현직 대통령을 박수로 환영. 이날 식장에 나온 졸업생과 내빈,학부모들은 김영삼대통령이 입장할 때와 퇴장할 때 모두 박수로 환영·환송해 문민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실감. 김대통령은 치사 서두부분에서 『이나라 대통령으로서 실로 20년만에 서울대 졸업식에 참석하고 있다』고 밝히고 『대통령으로서,여러분의 선배로서 벅찬 감회를 억누를 길이 없다』고 심경의 일단을 토로. 김종운서울대총장은 김대통령의 치사에 앞서 「우리대통령」이란 표현을 쓰면서 『내가 여러분에게 우리대통령이라고 한 것은 우리나라의 대통령일뿐 아니라 서울대 동문으로서 최초의 대통령이기 때문』이라고 설명. 졸업생대표도 답사 마지막 부분에서 『국정에 바쁘실텐데 이렇게 모교를 방문해 주셔서 영광』이라고 인사. 김대통령은 이에 앞서 졸업생대표 21명이 학위증서를 수여받고 있는 동안 이들 곁에 서있다 『축하합니다』라고 일일이 격려. 주돈식청와대대변인은 이날 김대통령의 서울대 졸업식 참석경위에 대해 『김서울대총장이 25일 대통령을 청와대로 예방,서울대의 총의라면서 졸업식 참석을 요청해 이루어졌다』고 설명하고 『앞으로 대통령의 참석이 연례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 ○…김영삼대통령이 승용차편으로 식장에 도착한뒤 졸업식이 곧바로 시작돼 국민의례·학위수여·총장식사등의 순으로 진행.교내 곳곳에서 가족 친지들과 기념사진을 찍느라 졸업식 시작 직전까지 빈자리가 많았던 졸업생 좌석은 김총장의 졸업식사가 끝날 무렵에는 뒤늦게 대통령의 졸업식 참석 소식을 듣고 달려온 졸업생과 학부모들로 만원을 이뤘다. 김대통령은 졸업식을 끝까지 지켜본뒤 2시50분쯤 단상에 내려가 졸업생,학부모 20여명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뒤 손을 흔들며 승용차에 탑승,정문을 통해 식장을 나섰다.
  • 김대중납치 조사위/미 관련자 증언 청취

    【워싱턴 연합】 미국을 방문중인 김대중납치사건 진상조사단(단장 김영배의원)은 7·8일 양일간 워싱턴에서 납치사건당시 키신저국무장관의 보좌관을 역임한 윈스턴 로드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를 비롯,사건관련자들을 만나 당시의 상황을 청취했다. 김단장과 권로갑 조순승의원은 이에 앞서 뉴욕에서 당시 일본에 체류하고 있다가 사건발생을 제일먼저 미국측에 알렸다는 임창영박사와 제롬 코헨 하버드대교수를 면담한 결과 김대중씨의 극적 구출과정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방영한 일본 NHK방송내용이 일부 틀린점이 있음을 확인했다고 성과를 설명했다. 즉 NHK는 임박사가 코헨교수에게 사건내용을 알렸고 키신저국무장관­하비브주한대사 경로를 통해 당시 박정희대통령에게 김대중씨 납치살해를 중지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고 보도했는데 이번 증언청취결과 임박사의 사건발생보고를 받은 한국과 부과장이 즉각 하비브대사에게 연락을 취했고 키신저장관은 사건발생 16시간후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하비브대사가 김대중씨의 구명에 크게 기여했다는 추측이 뒷받침된 셈이다.
  • 마약중독 박지만씨/검찰,치료감호 청구

    서울지검 남부지청(담당검사 조응천)은 3일 히로뽕을 투약한 혐의로 지난해 12월25일 구속된 고박정희대통령의 외아들 지만씨(36)에 대해 치료감호를 청구했다.
  • 구속 박지만씨 설상가상 구청서 향군법위반 고발(조약돌)

    ○…서울 서초구청은 29일 히로뽕을 상습복용한 혐의로 구속돼 정신감정을 받고있는 고박정희대통령의 외아들 지만씨(36·서초구 반포4동 88)를 향토예비군법 위반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서초구는 포병대위 출신인 박씨가 지난해 4월26일부터 5일동안 받도록 돼있는 병역동원 훈련소집에 별다른 이유없이 참석하지 않아 고발조치를 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25일 향정신성 의약품 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된 박씨는 서울지검 남부지청의 요청으로 같은달 30일부터 서울 성동구 중곡동 국립서울정신병원에 수감돼 신체 및 정신감정을 받고 있다.
  • 식량난 심화로 주민들 대용식품 개발붐(북한 이모저모)

    ◎「민족과 운명」 고박대통령역 김윤홍 인기 ○지게미밥·송기떡 등 ○…북한의 식량난이 갈수록 심각해 짐에 따라 북한주민들은 자구책으로 ▲강냉이쌀겨죽 ▲지게미 밥 ▲송기떡 ▲배죽 등 「대용식품」을 만들어 먹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대용식품은 배급된 강냉이와 식용으로 쓸 수 있는 모든 재료를 혼합해 만든 것으로 강냉이겨죽은 강냉이 쌀을 만들고 난 껍질(겨)을 볶은 뒤 절구에 찧어 물에 쑨 죽인데 역겨운 냄새가 나 먹기가 고통스러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지게미밥은 옥수수 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지게미)에 한두줌 쌀을 넣어 지은 밥으로 기름성분이 많아 대용식품으로 주민들에게 큰 인기를 누리고 있으나 구하기가 무척 힘든 실정이다. ○북 태권도 특집방송 ○…최근 북한이 주도하는 국제태권도연맹(총재 최흥희)이 한국이 주도하는 세계태권도연맹에 태권도기구 단일화를 제의해 관심을 끌고 있는 가운데 대남전용 평양방송이 23일 북한에서 행해지고 있는 태권도를 상세히 소개. 평양방송은 이날 「조선의 태권도」라는제목의 특집프로에서 태권도가 『고구려 시기부터 전해온 격술인 택견과 수박치기를 바탕으로한 민족문화유산의 귀중한 재부로서 인민의 커다란 자랑과 긍지로 되고있다』면서 북한의 태권도가 경기실천에 응용되는 기본동작(3천2백여가지)을 비롯해 틀·맞서기·위력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소개했다. ○60년 북송된 영화배우 ○…북한이 최근 심혈을 기울여 제작하고 있는 극영화 「민족과 운명」에서 고 박정희대통령 역을 맡은 김윤홍이 주연배우 못지않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최근호가 보도. 올해 48세인 김윤홍은 일본에서 고아로 자라났으나 예술에 남다른 호기심을 갖고 있었으며 지난 60년 북송선에 올라 북한에 정착했는데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배우양성반을 졸업하고 69년 처음으로 극영화 「중대의 누나」에 단역(항일유격대원)으로 출연하게 됐다고 이 신문은 소개. ○효모사료개발 성공 ○…북한은 최근 식료품공장에서 나오는 폐설물을 이용,새로운 효모사료를 개발했다고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최근호가 보도. 평양 곡산공장 공업시험소와 경공업과학원 강냉이가공연구소의 과학자·기술자들에 의해 개발된 새로운 효모사료는 비타민·호르몬효소·인칼슘 등과 미량원소들이 들어 있어 가축들의 소화흡수를 도와주며 비육시간도 단축시키고 폐사율을 낮추는 한편 우유생산량을 늘릴 수 있게 한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 「변화와 효율」 리드… 경제팀에 새활력/정 부총리 취임 한달

    ◎공공료 잇따라 오르자 여론 비등/부처반발에 감량경영 행보 “주춤”/물가·환경·노사문제 등 현안 산적 문민정부 제2기의 경제총수인 정재석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이 21일로 취임 한달을맞았다. 정부총리는 취임과 함께 파격적 언행으로 화제를 뿌리며 변화와 효율을 강조해 경제팀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김영삼대통령은 처음 정부총리에게 두가지 밀명을 주었다.첫째는 경제팀을 확실히 장악하고 둘째는 우루과이 라운드(UR)의 타결로 피해가 예상되는 농·어촌 대책을 세우라는 것이었다. 대통령이 경제팀 장악을 지시한 것은 의미가 있다.전임 이경식부총리가 청와대 경제비서실 및 다른 경제장관들과의 팀웍 난조로 상당한 불협화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홍재형재무·김철수상공자원부장관은 정부총리가 3공의 장·차관 시절 해당 부처에서 국·과장을 지낸 연고로 위계가 뚜렷하다.새로 입각한 김양배농림수산·김우석건설·서상목보사·남재희노동부장관 등이 모두 정치인 출신이지만 정부총리의 가부장적 권위에 순응하는 편이다.적어도 아직까지는 경제팀에서 「선상반란」의 가능성은 없다. 김대통령이 강조한 농·어촌 대책 등 정책을 통한 정재석 경제팀의 컬러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새해 경제운영계획이 발표됐으나 전임자 때와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오히려 공공요금의 현실화를 통해 그동안 왜곡됐던 가격구조의 정상화를 꾀한다는 정부총리의 의욕이 연초부터 일부 공산품과 서비스 요금의 인상과 맞물리자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공기업 개혁을 솔선 수범한다는 차원에서 시작된 기획원의 감량경영 원칙이 대규모 기구개편 및 조직축소 방침으로 비치면서 다른 부처의 보이지 않는 반발에 부딪쳤다.취임 초 정부총리의 발빠른 행보가 주춤하는 이유이다. 한 기획원 관료는 『과거 박정희대통령의 경제스쿨에서 우등생이었던 정부총리가 이상론을 펼치다가 13년만의 재입각에 따른 시차와 두터운 현실의 벽을 깨닫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그러나 정부총리는 관록과 배짱은 정평이 나 있다.언제 무슨 기발한 아이디어로 사람들을 놀라게 할 지 모른다는 관측이 많다.최근『3개월만 신문에 내지 말아달라』며 언론을 피하는 것은 달라진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장고에 들어간 것이라는 관측이다. 실제로 그는 언론의 눈에 띄지 않게 여러가지 「암행」을 한다.김영삼대통령과 매주 정례 독대를 통해 현안을 기탄없이 얘기한다.이회창국무총리와도 주례 회동을 한다.두사람은 인간적으로도 친하다. 당정관계도 비교적 순탄하다.취임 초 정부총리가 예상을 넘는 자신감을 보였을 때 민자당은 내심 정부의 독주를 걱정했다.그러나 정부총리가 이내 발언수위를 조절하자 「보완과 견제」 속의 균형관계를 회복했다. 그러나 정재석 경제팀의 앞길이 쾌청한 것은 아니다.물가는 여전히 오르는 추세이고 노사문제도 불씨로 남아 있다.둘 다 올해 우리경제의 최대 복병들이다.식수비상사태를 맞아 절실해진 획기적인 환경개선 대책도 사실상 예산의 대폭적 지원이 따라야 하는 난제이다. 정부총리의 「경제실험」이 성공하려면 스타일의 변화에 못지 않게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며,현실에 바탕을 둔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고언들이 많다.
  • 정일권(외언내언)

    엊그제 하와이에서 타계한 정일권전국무총리.그의 이력서는 한마디로 출세의 신기록표다.대통령만 빼놓고 군·관·정계에서 해보지 않은 자리가 없을 만큼 화려하고 다채롭다.1공화국에서 6공화국에 이르기까지 정권이 여섯번 바뀔 동안 공직생활 약50년에 걸쳐 별로 쉰 적이 없다. 6·25발발직후 이승만대통령에 의해 33세의 나이로 3군총사령관겸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돼 북진의 총반격작전을 지휘했다. 사상 최연소 기록이다.이대통령의 명령과 작전권을 쥔 맥아더사령관 틈바구니에서 며칠밤을 새운 끝에 북진작전을 성사시켜 그날 10월1일을 국군의 날로 기념케한 것은 그의 공으로 꼽힌다. 37세에 육군대장,2년뒤에 합참의장,30대에 군 최고봉을 정복한 전무후무할 기록.40대에는 프랑스,미국주재대사를 거쳐 국제신사라는 별명을 얻었고 박정희대통령밑에서 50대초까지 6년간 최장수 국무총리.이후 공화당의장,유신때는 국회의장으로서도 최장기 재임기록(6년)을 세웠다. 만군출신으로 군번 5번인 그는 2년후배인 박대통령이 사석에서는 언제나 형님이라고불렀지만 충실한 보좌역할을 해 항상 웃는 원만한 성격의 그에게 「마담」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나라의 오늘이 있기까지 분명한 공헌이 있다고 인정하든 권력의 양지를 걸었다고 비아냥거리든 화려한 그의 경력의 비결은 분석대상이 될만하다. 군이 주도해온 역사의 특수한 상황을 전제로 한다하더라도 처세라는 요인 때문이다. 그자신은 국민학교1학년때 선친을 여의고 14년간 하루도 두끼를 먹어본일이 없다는 가난과 역경을 이긴 인내와 자제를 든적이 있다.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절대로 남을 험담하지 않고 남의 장점만을 보려는 그의 성격과 철저한 자기관리를 꼽는다. 30년 연하의 여교수와 결혼을 하고 염문이 따른것도 「여름밤의 모기에게 다리를 내놓는」권력세계의 생존술로 풀이하기도 한다.만년에 그는 「돈과 명예 권력보다도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한 일이 있다.
  • 히로뽕 박지만씨 정신감정을 의뢰

    서울지검 남부지청은 30일 상습적으로 히로뽕주사를 맞은 혐의로 지난 25일 구속된 고박정희대통령의 외아들 박지만씨(35)를 영등포경찰서로부터 송치받아 약물중독 정도등을 알아보기 위해 국립서울정신병원에 정신감정을 의뢰했다.
  • 박지만씨 수감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25일 고박정희대통령의 외아들 박지만씨(35·제조업·서울 서초구 반포동 88의 13 청광빌라 102호)를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수감했다. 박씨가 히로뽕을 복용한 혐의로 구속된 것은 91년 3월에 이어 두번째이다.
  • 박지만씨 또 히로뽕 투약/영등포 사창가서 검거돼… 세번째(주약돌)

    ○…고 박정희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35·삼양산업 대표·서울 서초구 반포4동 청광아트빌라)가 24일 새벽 서울 영등포역 주변 사창가에서 윤락녀와 함께 또다시 히로뽕을 투약하려다 영등포경찰서 마약반에 붙잡혔다. 박씨는 히로뽕 밀매꾼들의 끈질긴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마약을 구입,15개월 동안 영등포와 청량리 일대의 사창가에서 동침한 윤락녀들과 상습적으로 투약해 왔다. 박씨가 마약복용으로 검거된 것은 이번이 세번째.마약상습복용자로 89년 7월 서울지검에 구속돼 기소유예로 풀려난뒤 91년 3월에는 수원지검에 자진출두해 7개월간 치료감호를 받기도 했다.그후 전자제품 원료생산업체인 삼양산업 사장을 맡아 고 박대통령의 외아들로서가 아닌 평범한 사업가로 자리잡는 듯하다 결국 마약의 수렁에 또다시 빠져든 것이다. 경찰은 이날 박씨를 향정신성의약품 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 대관령 정통 산채백반 평창 「부일식당」(맛을 찾아)

    ◎두릅·씀바귀 등 무공해 조리 “군침 절로”/북어 국물로 끓인 된장찌게는 감칠맛 서울에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여행하다보면 대관령정상을 10여㎞ 앞두고 강원도 진부면 하진부리 마을이 나온다. 이곳에서 이름만대면 쉽게 찾을 수 있는 부일식당(주인 박정자·54·여)은 정통 산채백반으로 널리 서울까지 알려져 있다. 구수한 된장찌개·손두부를 곁들인 이집의 산채백반은 토속적인 감칠맛으로 대관령을 지나는 길손들을 그냥 놓아주지않는다. 30평 남짓한 ㅁ자 단층한옥인 이 식당에 들어서면 2개의 큰 가마솥에 장작불이 지펴져 있고 천장과 벽에 걸린 반쯤 마른 북어와 시레기가 눈에 들어온다. 식사차례는 뜨끈뜨끈한 숭늉에서 시작된다.뚝배기 된장찌개,양념이 잘된 손두부·두릅·곰취·나물취·도라지·표고버섯등 10여가지의 산채반찬과 유난히 기름져 보이는 밥이 입맛을 돋운다. 주인 박씨는 『일반미보다 3배정도 비싼 기장(좁쌀과 비슷)을 15∼20%섞어 지었기 때문에 특히 기름지다』고 들려준다. 된장찌개는 장맛도 중요하지만 멸치대신 북어국물을 쓰는데 맛의 비결이 있다는 자랑이다. 또 반찬으로 나오는 산채는 철따라 저장과 관리를 철저히해 제맛을 내도록 대부분 삶아 말리며 두릅과 고랭지 셀러리는 염장해 보관한다. 산채들은 모두 오대산·태백산등 강원도일대에서 채취됐기 때문에 완전 무공해라는 자랑이다. 최근에는 고랭지채소인 셀러리·케일·고들빼기·씀바귀등을 독특한 맛을 살려 사용하고 있다. 이 식당은 지난 70년대초 당시 박정희대통령이 영동고속도로 개통공사현장에 독려차 들렀다가 이곳서 산채백반과 된장찌개를 들어보고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 각료들의 「뒷북」 경쟁/정종석 경제부기자(오늘의 눈)

    「단상에 인영이 불견­」(단상에 사람 그림자를 볼 수 없다). 지난 74년 8월15일.이른바 「문세광사건」으로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박정희대통령의 영부인 육영수여사가 흉탄에 쓰러졌다.총성과 함께 단상의 요인들은 모두 의자 뒤나 옆으로 피신했다. 대통령의 안위보다 모두들 자기 생명을 지키기에 바빴다.절대절명의 순간에 나타난 본능적 행동이지만 세인들의 눈에는 부정적으로 비쳤다.그들이 평소 국민들에게 행한 발언과는 다른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상으로 쌀 시장의 개방이 불가피해진 요즘도 정부 인사들의 행태는 19년 전에 비해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지난 9일 김영삼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뒤 부처간에 작은 소동이 있었다.경제기획원은 10일 농촌구조 개선을 위한 후속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예정에 없던 경제장관 간담회를 갖는다고 발표했다.국무총리실도 같은 목적의 관계장관 회의를 갖겠다고 나섰다. 이 때문에 경제장관 간담회는 소집시각이 세차례나 바뀌고 소집 자체가 오락가락하다 결국 없던 일이 돼 버렸다.양쪽 실무자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출 지 몰라 한동안 혼선이 빚어졌다. 그동안 정부 인사들은 한결같이 『쌀 시장을 사수한다』는 외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국민들의 비난이 두려워 입조심,몸조심에 전전긍긍했기 때문이다.그러나 김대통령이 담화로 「정면돌파」를 시도하자 뒤늦게 생색내는 일에 경쟁적으로 법석을 떠는 격이다. 쌀 개방 협상의 방향이 확실해질 즈음에야 고위 인사들이 『모든 책임을 내가 지겠다』,『사임할 각오가 돼 있다』며 뒤늦게 「말문」을 연 태도도 지나치게 기회주의적이라는 느낌이다.무슨 우국충정의 표시처럼 잇달았던 「충성서약」성 사임표명 발언 역시 절실한 느낌이 담겨있지 않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대국민 사과를 하도록 만든 각료나 비서진은 대통령 보좌라는 고유한 직무를 사실상 유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19년 전 문세광사건 때 국립국장 단상에 아무도 보이지 않던 현실과 요즘 각료들의 행태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
  • 창의문 개방(외언내언)

    서울 청운동 막바지,세검정으로 넘어가는 고개마루에 한양도성 4소문중 하나인 창의문이 있다.자하문으로 더 잘알려진 창의문은 조선 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1396년 도성과 궁궐을 짓는 대토목공사를 일으키면서 만들어진 성문이다.그러나 4대문중 북한산에 위치한 북문인 숙정문(처음에는 숙청문)이 창건된지 18년만인 태종때 폐쇄되면서 창의문 역시「산중에 있고 지대가 높다」해서 폐쇄당하는 불운을 겪는다.숙정문을 열어두면 도성 부녀자들의 풍기가 문란해진다는 것이 폐문의 이유였다고 한다. 숙정문과는 달리 창의문은 양주나 고양으로 통하는 길이 연결돼 곧잘 이용되어왔다. 1623년 인조반정때는 지방에서 진군한 군사들이 홍제원에 집결했다가 창의문을 통과해 궁궐에 들이닥쳐 광해군을 왕좌에서 몰아냈다.그 당시 공신들의 이름을 새긴 현판이 지금도 걸려있다.근래에 와서 창의문이 다시 폐쇄돼 「금단의 문」이 된 것은 68년 북한의 무장간첩 김신조일당이 청와대 기습을 노려 이곳까지 침투한 1·21사태이후.안보상 이유로 당시 박정희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인왕산·북악산과 함께 창의문도 폐쇄조치가 내려졌다.그바람에 사적인 창의문 경내에는 군인막사와 경비초소등 군사시설이 들어섰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어제 굳게 닫혔던 창의문이 개방되었다.일대 9백여평의 소공원까지 아담하게 조성돼 시민들에게 공개된 것이다.새 문민정부가 출범한 이후 청와대앞길,인왕산길,대통령비서실장 공관(효자동 사랑방)개방등 일련의 청와대주변공개조치에 따른 것이다. 때마침 내년은 서울 정도6백년.갖가지 기념행사가 준비되고 있는중에 유서깊은 사적인 창의문을 시민들에게 돌려주어 한결 더 뜻깊다.도성의 4소문중 현재 남아있는 것은 서문인 창의문과 동남문인 광희문(일명시구문)뿐이다.그중에서도 문루와 함께 완벽하게 원형을 갖추고 있는 곳은 창의문이다.
  • 홍갈색 단풍속 차분한 “환영”/경주정상회담장 주변 표정

    ◎호텔 객실 우리 66개,일 86개 사용/경주시,호소카와에 기마상 선물 준비/김 대통령 숙박료 할인해 1백만원에 6일 하오 한일정상회담이 열린 고도 경주에는 아침부터 가랑비가 내렸다.비는 회담장인 힐튼호텔 옆 보문호수를 따라 이어진 산책로 주변의 홍갈색 단풍나무와 어우러져 경주의 고풍스런 멋을 한결 더해주었다. 양국정상을 맞은 경주시내의 분위기는 조용하고 차분했다.청년회의소 등에서 내건 「호소카와총리방한환영」현수막과 힐튼호텔 진입로에 나란히 걸린 59개의 태극기,일장기가 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정도였다. 그렇다고 경주시가 호소카와총리 일행을 홀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경주시는 당초 한일정상회담의 개최지로 결정된데 자부심을 갖고 시민 전체가 참여하는 대규모 환영행사를 기획했었다.그러나 호소카와총리의 이번 방한이 실무적인 것이고 양국 정상이 회담의 모양새보다는 「질」에 더 신경을 쓴다는 사실을 감안,취소했다. ○대형환영행사 취소 대신 김정규경주시장은 국보 2백45호인 기마상 토기의 모형과 포석정 서남쪽의 남산에서 캐낸 경주옥돌로 만든 목걸이를 호소카와총리내외에게 선물할 기념품으로 준비했다. ○“홍보효과 최고” 희색 ○…한일 양국의 지도자를 손님으로 맞은 힐튼호텔측은 정상회담에 불편함이 없도록 준비에 무척 신경을 썼다고 한다. 호텔측은 김영삼대통령과 호소카와총리가 묵는 2개의 스위트룸을 비롯한 객실의 침대와 가구,조명기구등을 새로 바꿨으며 호텔진입로에 가을 꽃을 옮겨심고 조경도 새롭게 단장했다.또 양국정상 일행을 맞기위해 서울 힐튼호텔 식음료부에서 베테랑웨이터 10명이 특파됐다. 서울이 아닌 곳에서 정상회담이 열린 것은 지난 91년 4월 고르바초프구소련대통령이 제주도를 방문한 이래 이번이 처음.당시 회담장소였던 제주신라호텔의 선전효과가 엄청났던 점을 들어 힐튼호텔측은 호텔발전에 더 없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희색. 호텔의 한 관계자는 『역사적인 한일정상회담을 우리 호텔에서 열게돼 다시없는 영광』이라면서 『손님 맞는데 든 비용을 따지면 오히려 적자지만 홍보효과로 볼 때는 최고의 호기라고생각해 준비에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로얄 스위트룸 사용 ○…회담장인 힐튼호텔의 객실은 모두 3백24개로 이 가운데 일본측이 86개,한국측이 66개등 1백52개가 이번 정상회담을 위해 사용된다. 김대통령이 사용하는 로얄스위트룸의 하루 숙박료는 1백만원.호텔측은 원래 요금이 1백93만6천원이지만 청와대측과의 협상을 통해 깎아주었으며 나머지 객실요금도 정부가 지불하는 점을 감안,25%를 할인했다고 설명했다. 김대통령과 호소카와총리는 나란히 같은 층에 위치한 동쪽의 로얄스위트룸과 서쪽의 펜트하우스를 사용. 펜트하우스는 호텔 회장의 지방집무실로만 사용하기 위해 만들었으나 호소카와총리의 방한을 맞아 처음으로 내놓았다고. ○경호실팀 특히 신경 ○…청와대측은 이번 행사가 김대통령 취임후 처음으로 외부에서 치르는 정상회담인데다 숙박일정까지 잡혀있어 경호에 특히 신경. 경호실팀은 이달초부터 경주에 내려와 숙박 만찬 기자회견장등 시설물들을 점검해 왔다. 일본측의 경호팀 선발대도 지난 2일 입국,우리측 경호팀과 함께준비를 해왔다. 호텔측은 그러나 정상회담이 열린 이날도 평소처럼 일반손님을 받았으며 일부 투숙객들은 이날 아침 호텔측이 로비에 새로 카펫을 까는 등 본격적인 영접준비에 들어가자 정상회담 개최 사실을 알게됐다고. 경호실 관계자는 『문민시대를 맞아 일반인들에게 결코 불편을 주는 경호를 하지 말라는 것이 대통령의 뜻』이라면서 『그렇게 하다보니 경호하기가 몇배는 어려워졌지만 그 취지를 모두가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외신기자들 북적 ○…이날 회담에 대한 양국의 관심을 입증하듯 힐튼호텔 옆 콩코드호텔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와 현대호텔에 마련된 외신프레스센터에는 내외신기자들이 대거 몰려 북적. 특히 이날 저녁 프레스센터에서 이경재청와대대변인이 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할 때는 2백여개의 좌석이 꽉 차 후끈한 열기를 발산했다. □한·일 정상회담 일지 ▲1953·1·6=이승만대통령 방일,요시다 시게루(길전 무)총리 면담 ▲1961·11·11=박정희대통령 방일,이케다(지전용인)총리 면담 ▲1967·6·30=사토(좌등영작)총리 방한,박정희대통령 면담 ▲1971·7·1=사토총리 방한,박정희대통령 면담 ▲1974·8·19=다나카(전중각영)총리 방한,박정희대통령 면담 ▲1983·1·11∼12=나카소네(중증근)총리 공식방한,전두환대통령과 회담 ▲1984·9·6∼8=전두환대통령 방일,나카소네총리와 회담 ▲1986·9·20=나카소네총리 방한,전두환대통령과 회담 ▲1988·2·24∼25=다케시타(죽하등)총리 방한,노태우대통령과 회담 ▲1988·9·16∼17=다케시타총리 방한,노태우대통령과 회담 ▲1990·5·24∼26=노태우대통령 방일,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총리와 회담 ▲1991·1·9∼10=가이후총리 공식방한,노태우대통령과 회담 ▲1992·1·16∼18=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총리 공식방한,노태우대통령과 회담 ▲1992·11·8=노태우대통령 교토(경도)방문,미야자와총리와 회담 ▲1993·11·6∼7=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총리 경주 실무방한,김영삼대통령과 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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