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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피니언중계석/- 高大 북한연구학회 세미나 - 北문학속 김정일 ‘전지전능한 존재’

    고려대 북한연구학회(회장 김동규)가 6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주최한 ‘2002년,격변하는 한반도 정세의 분석과 평가’라는 주제의 세미나에서는 정치·경제는 물론 문학·언론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 결과들이 발표됐다.대한매일 박재범 편집국 부국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회의에서 고려대 북한학과 브라이언 마이어 교수와 한국방송대 국문과 박태상 교수의 발제 내용을 요약했다. ◆북한 문학과 북한 문학의 식량난-브라이언 마이어 교수 북한에서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소설 등 문학작품은 1948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이른바 ‘수령 형상화 문학’이다.소설의 줄거리들은 대개 비슷하다.인민들 사이에 발생한 문제를 헌신적으로 일하는 수령이 직접 현지를 찾아 교시를 내려 해결하는 과정을 보인다. 하지만 ‘고난의 행군’이라는 선전 캠페인을 강화하면서 북한 문학은 경제난과 식량난을 조심스럽게 다루기 시작했다.지난 99년 씌어진 박일명의 단편소설 ‘전환’은 전형적인 지도자 얘기와 식량난에 대한 내용을 겸비한 작품으로 주목할 만한 연구대상이다. 지도자에 대한 소설로서 ‘전환’의 가장 현저한 특징은 김정일 위원장의소극적 자세다.인민들의 식량난에 대해 걱정하면서도 이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이는 공장과 농장의 현지지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던 ‘소설 속의 전형적 지도자상’과 거리가 있다.지난 96년 12월 김 위원장이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행한 “당과 군대의 문제를 해결하느라고 경제문제를담당할 시간이 없으므로 지역수준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발표를 감안한다면 ‘전환’ 속의 지도자는 김 위원장 자신이 퍼뜨리고 싶은 이미지라고 생각된다.철저하게 전지전능한 존재로 우상화된 지도자상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가 아닌가 판단된다. ◆북한 저작물 속의 김정일 위원장 묘사-박태상 교수 북한 문학 등에서 수령 형상 창조이론에 따른 김정일 위원장의 묘사 특징을 살펴보는 것은 북한 체제와 구조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김 위원장은 문학예술 사업분야에서 자신의 독창적인 식견을 바탕으로 열정적으로일을 추진했다.‘4·15 문학창작단’과 ‘백두산 영화창작단’을 만들어 20편의 ‘불멸의 역사 총서’를 만드는 것 등은 대표적 업적이다. 김 위원장을 칭송하는 북측의 저작물들은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하나는 당국이 직접 발행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일본 기자나 조총련계 인물을 통한 출판물이다.물론 어떤 저작물이건 김 위원장의 능력에 대해 위대한 사상이론가와 위대한 정치가로서 거론하는 등 크게 두 가지의 비범함을 내세우고있다. 북한 문학에서 김 위원장에 대한 묘사는 반드시 ‘수령형상 창조이론’에근거해 그려지고 있다.이를 가장 잘 살펴볼 수 있는 장르는 현승걸의 ‘아침해’(89),박현의 ‘불구름’(90) 등 ‘불멸의 향도’ 총서라고 할 수 있다. 북한 문학의 경우 그동안 김 위원장의 영웅성과 비범성 형상화에만 주력했다.그러나 최근 남북,북·일 정상회담 등의 과정에서 보여준 유연한 협상력등에 대한 긍정성의 묘사는 찾기 어렵다.이는 아직까지 당·정·군에 의해이중삼중으로 검열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리 박록삼기자 youngtan@
  • [2002 길섶에서] 격려

    살다 보면 한두편 잊혀지지 않는 영화가 있기 마련이다.그중 하나가 마거릿 미첼 원작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이다.영화 끄트머리에서 여주인공역을 맡은 비비안 리는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고 외치며 스스로에게 힘을 불어넣는다.여러 영화를 보았으나 이보다 강한 인상을 남긴 장면은 없었다.하도 감명이 깊어 원저에 도전했다가,워낙 책이 두꺼워 중간부분에서 흐지부지된 기억이 있다. 최근 우연히도 이와 비슷한 얘기를 읽었다.아이아코카의 자서전에서였다.파산직전에 놓인 미 크라이슬러 자동차를 살려내 경영의 귀재로 불린 아이아코카는 이탈리아 이민자인 아버지의 교훈을 잊지 못한다.“네가 작년에,아니면 지난달에 고민했던 일이 무엇인지 말해 보아라.그것 봐,기억도 못하고 있지 않니.네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은 별일이 아닐지 몰라.그러니까 잊어버리고 내일을 향해 뛰자.” 아이아코카는 어려울 때마다 이 말을 떠올리며 용기를 되찾았노라고 말한다.자신을 격려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것이다. 박재범 논설위원
  • [씨줄날줄] 나눔의 미학

    국내 자원봉사단체의 모임인 한국자원봉사단체협의회는 지난 6·13 지방선거를 한달 앞둔 5월쯤 출마자들에게 다소 이색적인 질문을 던져 눈길을 모았다.16개항으로 된 질문 내용은 이랬다.‘학창시절에 자원봉사 활동을 한 적이 있는가.’‘지도층은 왜 자원봉사활동에 적극적이지 않은가.’‘어떻게 해야 지도층이 자원봉사 활동에 적극적이 될 수 있을까.’ 후보자들은 질문에 답하느라 한동안 땀을 빼야만 했다. 이런 질문을 낸 이유는 단순했다.출마자들의 봉사활동에 대한 의식수준을 엿보기 위한 것이었다.그러나 바탕에는 부자나 지도층이 봉사와 나눔에 소홀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실제로 지도층에서 나눔의 실천에 대해 인식이 깊어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올초 전경련의 주도로 유산 1%기증 운동이 전개되는 등 비로소 사회기여 의식이 태동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가슴 속에 더욱 풍부하게 자리잡고 있다.지난 8월 고성원 목사의 신장 기증 소식에 감동받은 시민 14명은 선뜻 자신의 장기 기증을 약속했다. 또 수원교차로를 경영하는 황필상 박사는 한 TV 프로그램에 나와 회사주식 등 270억원을 장학금으로 내놓았다.이들은 자신의 행위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피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나보다 못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 최근 타계한 이순덕 할머니의 ‘나눔의 실천’은 더욱 아름답다.가족도 없이 혼자 살던 할머니는 20여년전 전재산을 털어 무료양로원을 짓고는 자신보다 더 불우한 노인을 돌보다 세상을 떠났다.불행을 행복으로 바꾼 삶을 보여준 것이다. 이기주의와 배금주의가 판을 치는 요즘,이들이 들려주는 나눔의 한평생은 답답한 가슴을 뻥 뚫리게 하는 한줄기 청량제임이 분명하다.이들 덕분에 우리 사회가 아직 희망이 있음을 실감하는 것이다. 곧 연말이 다가온다.올해도 연말연시 불우이웃돕기가 펼쳐질 것이다.우리 모두 나눔의 미학을 실천함으로써 얼마 남지 않은 한해를 보람으로 채울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한다. 박재범 논설위원 jaebum@
  • [2002 길섶에서] 털갈이

    모든 동물이 그렇지만,고양이과 동물도 가을철이면 털갈이를 한다.털이 촘촘해지고 두꺼워진다.겨울에 대비한 것이다.이를 보고 옛날 사람들은 군자표변(君子豹變)이라고 했다.알록달록한 표범의 무늬가 털갈이를 하면 깨끗하고 선명해지는 것을 본뜬 말이다. ‘군자는 표범처럼 변한다.’ 이 말은 계절이 바뀔 때 표범이 털을 갈아 새 모습을 선보이듯,군자는 자기 잘못을 신속하게 바꾼다는 뜻이다.주역의 괘를 풀이한 효사에서 비롯됐다.‘대인호변 군자표변 소인혁면’이라고 해서 ‘대인은 호랑이의 털이 변하듯 천하를 혁신하고,군자는 구습을 버리며,소인은 얼굴을 바꾼다.’는 것이다. 그러나 표변의 아름다운 뜻은 세월이 흐르면서 정반대로 달라졌다.영달을 위해 하루아침에 주의·주장을 헌신짝처럼 내던지는 행위를 꼬집는 말이 됐다.이 표변은 대선을 앞둔 요즘 흔히 볼 수 있다.철새 정치인들이 이곳저곳으로 둥지를 옮기고 있는 것이다.이 참에 표변에게 원뜻을 되돌려주고 조변(鳥變)이라는 새 말을 만들어보면 어떨까.철새들은 물론 싫어하겠지. 박재범 논설위원
  • [2002 길섶에서] 얼굴

    얼굴은 사람들이 가장 처음 마주치는 신체 부위다.찡그린 얼굴,화난 얼굴은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만든다.심지어 제사상에 오르는 돼지머리도 웃는 게 시장에서 더 잘 팔린다고 하지 않는가. 얼굴은 그 사람의 생활,생각과 인생이 함축돼 있다고 한다.링컨은 이런 까닭에 “40세가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지라.”고 했다.한 여류작가도 “인간의 얼굴은 그가 갖고 있는 덕의 일부”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지혜는 사실 우리 선조들도 일찍이 간파했다.얼굴이라는 단어는 ‘얼+꼴’이 어원이다.얼의 모습이 얼굴이 된 것이다. 몇년 전 서점에서 ‘후흑학’이란 책이 제법 잘 팔렸던 적이 있다.출세하려면 얼굴가죽을 두껍게 하라는 내용이었다.이른바 출세와 두꺼운 얼굴.참으로 절묘한 연결이다. 역시 가을은 사색의 계절인가.한해가 기울어가는 시점을 맞아 이제부터라도 넉넉한 얼굴을 가꿔보자고 다짐해본다. 박재범 논설위원
  • [씨줄날줄] 별 축제

    별은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특히 그리스인은 별을 보면서 신과 인간,괴수와 미녀가 어우러진 대서사시를 그려냈다.가을 밤하늘에서 가장 밝게 보이는 별자리인 페가수스의 스토리가 하나의 사례이다.그리스 영웅 페르세우스의 칼에 베어진 메두사의 피 속에서 솟아난 페가수스는 날개 달린 하얀 말이다.이 말은 신의 영역에 도전하다 별이 됐다는 것이다.이 별은 가을 밤하늘 중심부에 커다랗게 사각형을 이루고 있어 비교적 찾아보기 쉽다. 별은 피가 끓는 이런 영웅담뿐 아니라 가슴 뭉클한 서정의 원천이기도 하다.윤동주 시인은 ‘별 헤는 밤’에서 “별 하나에 추억과/별 하나에 사랑과/별 하나에 쓸쓸함과/별 하나에 동경과/별 하나에 시와/별 하나에 어머니….”라고 별에 자신의 마음을 투영했다. 그러나 별은 천문학과 물리학의 발달에 따라 점차 과학의 대상이 되었다.현대 과학은 별의 탄생과 죽음에 대해 상당히 많은 연구를 진척시켜 놓고 있다.또 영국의 천체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호두껍질 속의 우주’에서 “우주가 10∼11차원으로 구성돼있다.”고 우주의 비밀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어릴 때 별과 우주를 바라보며 신비감에 빠져 들었던 기억을 털어놓는다.머리 위에 총총 떠있는 별을 보면서 느낀 감동을 못 잊어 별과 우주에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다.문학적 상상력이 과학의 원동력인 셈이다. 이는 최근 미 항공우주국(NASA)의 모습을 보면 일리가 있는 것 같다.나사는 최근 우주에 떠있는 인공위성과 지구를 줄로 연결하는 우주 엘리베이터라는 그야말로 꿈같은 연구에 수십만달러를 투입했다는 것이다. 때마침 경남 김해시가 자치단체로서 독특한 축제를 마련해 눈길을 끌고 있다.19,20일 이틀간 오후 6시부터 별관측 축제를 연다는 것이다.김해시는 천문 관련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우주에 관해 설명회도 가질 예정이다.자치단체들이 민속놀이,먹을거리,꽃 등을 주제로 행사를 마련한 것은 흔했지만 과학을 행사로 꾸민 것은 드물다는 점에서 이색적이다.김해의 별 축제에서 어느 어린이가 꿈을 키워 수십 년뒤 노벨과학상 수상자로 성장한다면 이 축제의 가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라는 생각이다. 박재범 논설위원 jaebum@
  • [대한포럼] 대선후보에 묻는 법

    지난 8월 중순 과학영재학교가 처음으로 학생을 뽑았다.시험은 지금껏 국내에서 치러진 어떤 것과도 달랐다.한 문제를 9시간동안 풀어야 했다.수학시험 문제는 이랬다.“2100년 지구자원이 고갈돼 지구와 같은 새로운 행성을 찾아나섰다.신의 입장에서 주어진 수치의 별 4개로 새로운 태양계를 구성해보라.” 이 문제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영재교육 담당 교수들이 십여일이상 합숙훈련 끝에 만들어냈다.출제위원은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영재의 특성인 창의성과 집중력을 알아보기 위한 것입니다.” 대선열기가 뜨겁다.후보들마다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귀중한 한 표 모으기’에 여념이 없다.조만간 이 열기는 안방으로 찾아든다.이번 주말부터 각방송사 등이 본격적으로 대선후보 TV토론회를 갖고 안방을 뜨겁게 달굴 예정이다. TV토론회의 중요성은 지난 1997년 15대 대선 때 이미 확인됐다.당시 이회창 후보는 병역의혹에 관해,김종필 후보는 당선가능성에 대해,김대중 후보는 이념적 좌표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을 받았다. 토론회는 표심의 분수령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 토론회는 한계를 드러냈다.후보들이 이미지 메이킹에 주력하도록 토론회가 유도한다는 지적이 인 것이다.후보들은 넥타이 색,머리모양 등 겉모습에 치중하는 동시에,수백개의 예상질문을 뽑아 거기에 들어있는 복잡한 수치를 외우고는 앵무새처럼 읊조렸다.어떤 문제에도 막힘없이 답이 나오는데 모든 국민이 감탄했다.간혹 예기치 않은 질문이 나오면 난처한 듯이 웃거나 은근슬쩍 넘어갔다.말재주가 없는 사람은 “영 아니던데….”라는 혹독한 평을 받았다. 대선후보 토론회의 이같은 문제점은 수치로도 확인됐다.한참 지나 여성민우회가 3당 후보 초청 대선 토론회의 질문수를 분석한 결과 전체 166개 질문가운데 단답식 대답을 요하는 1회성 질의가 77개로 전체의 46.4%였고,정책적 성격을 담은 질문은 겨우 32회로 20% 미만에 불과했다.나머지는 신변잡기식 질문 등이었다. 요즘 잇달아 방송되는 TV토론회도 안타깝게 15대 대선 때와 비슷한 수준이다.여전히 단답식이 많다.게다가 질문이 너무 포괄적이고 다양한 주제를 한꺼번에다뤄 후보로 하여금 ‘뜬구름 잡기’‘수박 겉핥기’‘원론 되풀이하기’에 머물도록 오히려 돕는 형국이다. 앞으로 열릴 TV토론회에서는 제발 이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자.“이런 수치나 이런 사실 아시나요.”라는 식의 질문은 하지 말자.또 이것저것 모두 묻지도 말자. 초강대국 미국이라면 사소한 지식을 물어도 상관없겠지만,아직 우리는 좀더 본질적이고 정책적인 질문에 집중해야 한다.“한반도에서 미국과 중국이 다툴 때 어떻게 할 것이냐.” 등 국제문제부터 노동,여성 등 물어야 할 것이 산적해 있다.이런 것을 집중적으로 주제로 삼아 질문을 만들어야 한다.수능시험에서 평균점수를 받는 학생을 선택하기보다 과학영재학교에 들어갈 학생을 골라내자는 것이다. 그러려면 시험출제자부터 바꿔야 한다.노동자,여성,과학자 등을 과감하게 질문자로 선정해야 한다.질문도 사무관급이 아닌,대통령으로서 알아야 할 것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를 묻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복잡한 현상을 꿰뚫는 통찰력과, 난국을 타개하는 결단력과 추진력 등을 엿보는 질문이 돼야 한다. 박재범 논설위원 jaebum@
  • [2002 길섶에서] 낭떠러지 효과

    간혹 SF영화나 소설을 보면 인간에게 복종하도록 프로그램된 슈퍼컴퓨터가 어느 순간 홱 미쳐 오히려 인간사냥에 나선다.인간은 자기가 만든 기계에 속절없이 당한다.과학문명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고성능 컴퓨터일수록 미세한 요인에 의해 고장이 나거나 오작동되기 쉽다고 한다.그래서 계산능력이 초당 1조회를 웃도는 슈퍼컴퓨터는 충격은 물론 온도 변화,먼지 등까지도 막아줘야 한다. 미래학에서는 컴퓨터가 쉽게 망가지는 이런 현상을 ‘낭떠러지 효과’라고 부른다.슈퍼컴퓨터는 입력된 명령이 아닌 비정상적인 지시를 받으면 ‘낭떠러지’에서 뚝 떨어지듯 기능이 곤두박질친다는 점에서 착안한 것이다.미래학자들은 여기서 한발 나아가,기계문명을 맹신할 경우 예기치 못한 위험이 초래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낭떠러지 효과는 인간사회에도 통용되는 것 같다.사회가 고도로 발달한 미국에서 이해되지 않는 총기난사 사건이 걸핏하면 일어나고 있다.기계나 사회나 너무 정교하면 취약해지는 것일까. 박재범 논설위원
  • [2002 길섶에서] 오동잎

    가을이 깊어 간다.이미 설악산엔 단풍이 찾아 왔다.계절의 어름엔 늘 비가 오듯이 지난주 말 비가 내린 뒤 기온이 뚝 떨어졌다. 은행나무 떡갈나무 등이 저마다 색깔을 뽐내겠지만,정작 가을과 인연이 깊은 나무는 오동이다.‘오동잎 하나 떨어져 가을을 알린다(梧桐一葉落 天下盡知秋).’ 얇고 넓적한 오동잎은 여린 탓에 날씨가 쌀쌀해지면 먼저 조락한다.오동은 그래서 애상과 불가분이다.가지에서 떨어진 오동잎이 사각사각 소리내며 굴러다니는 모습을 그려보라.당장 마음 한 쪽이 구멍 뚫린 듯하다.조선 명기 황진이는 오동잎의 이런 정서를 ‘달 아래 오동잎 쓸쓸히 지고,서리속에 들국화 외로이 피네(月下庭梧盡 霜中野菊黃).’라고 읊었다. 그러나 ‘오동의 낙엽’은 다른 얼굴도 갖고 있다.‘연못가 봄풀의 꿈도 깨기 전에 계단앞 오동잎에서 벌써 가을 소리가 난다(未覺池塘春草夢 階前梧葉已秋聲).’ 주자의 권학가에 나오는 이 오동잎은 삶의 의지를 북돋운다.결국 같은 오동이라도 눈에 따라 달리 보이는 셈인가. 박재범 논설위원
  • [씨줄날줄] 황조롱이

    지난 5월쯤 서울 여의도 LG트윈빌딩에 진객이 찾아들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도심 빌딩 한편에 매의 일종인 황조롱이 부부가 알을 낳고 새끼를 키웠던 것이다.LG측은 황조롱이의 산란과 부화 과정을 인터넷으로 중계했고 TV도 특집프로그램을 제작해 내보냈다.모두들 황조롱이가 척박한 콘크리트 빌딩에서 산다는 데 대해 신기하게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황조롱이의 습성을 보면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본래 황조롱이는 바위산에 산다.산란 때 다른 새의 둥지를 빌려 알을 낳지만,간혹 바위 틈에 알을 까기도 한다.꼭 둥지가 있어야 산란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또 먹잇감이 풍부한 곳 가까이 자리를 잡는다.따라서 여의도의 황조롱이는 이웃 샛강 생태공원이 야생이 숨쉬는 생명의 땅으로 복원됐음을 보여주는 증표라고 할 수 있다.사람들의 호들갑은 그만큼 자연을 외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었던 셈이다. 사실 황조롱이는 우리나라 텃새로 사람들과 가까운 사이였다.예전에는 황조롱이를 ‘번성과 발전의 상징’이라며 길조로 여겼다.게다가황조롱이는 자태가 빼어난 데다 사냥습성도 당당해서 더욱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칼날 같은 울음’을 내며 ‘낫 같은 발톱’을 자랑하는 이 새는 뒤통수를 치는 기습보다는 정면승부를 좋아한다는 것이다.사냥감인 들쥐와 정면으로 눈싸움을 벌여 기를 꺾고,참새가 날아오르는 순간에 낚아챈다고 한다. 황조롱이의 당당한 위풍은 시인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다.일례로 영국의 종교시인 존 홉킨스는 ‘황조롱이’라는 소네트에서 황조롱이를 통해 예수를 찬송했다.‘은밀한 내 마음은 한 마리 새에 설렌다…그것의 성취와 숙달 때문에/야수적인 미와 용기와 행위,오,자태 긍지 명예가 여기에서 뭉친다….’ 그러나 이런 황조롱이는 자연파괴가 가속화하면서 천연기념물 323호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는 실정이다.그나마 개체수가 갈수록 줄어드는 것으로 추정된다.이에 따라 가톨릭환경연대라는 한 환경단체는 오는 13일 인천 월미도 월미산에서 ‘황조롱이 가족대회’를 마련,황조롱이에 대한 관심을 환기할 예정이다.가을의 끄트머리에서 모처럼 가족과 함께 월미산의 단풍과 황조롱이의 비행을 즐기며 단란한 시간을 보낸다면 보람있는 주말보내기가 될 성싶다. 박재범 논설위원
  • [씨줄날줄] 개구리의 침묵

    한때 극장가에는 공포영화가 판을 쳤다.대표적인 게 미국 할리우드의 ‘양들의 침묵’이었다.이 영화는 1991년 미국 아카데미상 작품상 등 5개 부문의 상을 휩쓸었다.30여년 경력의 명배우 앤서니 홉킨스와,1981년 레이건 미 대통령을 총으로 쏜 존 힝클리의 우상인 조디 포스터가 주연했다.여자의 피부를 벗겨 죽이는 살인마의 광기어린 피의 잔치를 추적하는 스릴러물로 국내에서도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이 영화는 공포물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사이코’만큼 유명세를 얻었다. 영화를 보면 희생자의 입 속에 나방이 알을 슬어 애벌레가 자라는 장면이 나온다.보기에는 끔찍했지만 이 나방은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단서를 제공했다.우리나라에서 ‘박각시’라고 불리는 나방의 사촌쯤 되는 이 나방이 자라는 장소가 확인되면서 범행장소가 좁혀진 것이다.‘양’,즉 희생자는 침묵했지만 나방이 범인을 지목한 셈이다. 나방이 사체의 목구멍에 알을 깐다는 설정은 법의 곤충학의 관점에서 보면 전혀 무리가 없다.법의곤충학이란 1992년 세계곤충학회에서 인정된 별도의 분과학문.파리 나방 개미 말벌 등 각 곤충마다 생장 양태,산란 장소 등이 다르다는 사실에 근거해,곤충과 알 등의 상태를 보고 사체의 사망 장소 및 시간 등을 알아내는 학문이다. 실제로 범죄수사에 곤충을 활용해 좋은 결과를 얻은 사례는 적지 않다.멀리 13세기 중국에서는 낫에 의한 살인사건이 발생하자,파리가 달라붙는 낫의 임자를 추궁한 끝에 자백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몇년전 미 FBI는 미국 시카고의 한 덤불 숲에서 숨진 채 발견된 15세 소녀의 사체에 슬어있는 애벌레를 분석해 범인을 잡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최근 11년만에 유골로 발견된 개구리 소년의 사인을 둘러싸고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이는 윗옷과 바지의 끝부분이 매듭지어져 있는 데다,한 명의 두개골 좌우에 구멍이 나있는 점 등 동사로 보기 어려운 의문점이 속출한 탓이다. 이에 따라 경찰은 곤충을 통한 조사에 나설 것을 밝혔다.개구리 소년들은 침묵하지만 곤충들은 말을 한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모쪼록 말하지 못하는 개구리 소년을 대신해곤충들이 사인을 웅변해주기를 기대한다. 박재범 논설위원 jaebum@
  • [2002 길섶에서] 용문

    성패(成敗)는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함께 붙어있는가 보다.중국의 등용문(登龍門)이라는 고사를 보면 이런 생각이 한층 뚜렷해진다. 중국에서 두번째로 긴 강인 황하 상류에는 용문이라고 불리는 협곡이 있다.계곡이 워낙 좁아 여울이 빠르고 거세기로 유명한 곳이다.이 곳에서 등용문이라는 고사가 나왔다.물고기가 세찬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용이 되어 승천한다는 것이다.“용문에 올랐다.”는 말은 그래서 어려운 난관을 돌파하고 성공했다는 뜻으로 쓰인다. 반면 이 곳은 점액(點額)이라는 말도 탄생시켰다.‘이마에 상처를 입는다.’는 뜻이다.용문의 급류에 도전하다 바위에 이마를 부딪혀 상처를 입고 하류로 떠내려 오는 물고기의 지친 모습이다.등용문과 점액의 고사는 승리와 패배가 똑같은 기회에서 비롯됨을 알려준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이 속속 출마채비를 갖추고 있다.용이 되는 후보는 하나일 터.나머지 후보들은 점액 신세이다.다만 상처가 너무 크지 않기를 바랄 뿐. 박재범 논설위원
  • [씨줄날줄] 사탑의 기회

    800여년 전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인 피사의 주민들은 사라센의 함대와 싸워 승리를 거두자 기념물을 하나 만들기로 했다.마을 대성당에 아름다운 종탑을 짓기로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사의 사탑(斜塔)이다.그러나 흰 대리석탑을 세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1174년 착공했으나 196년만인 1370년 공사를 마쳤다.모래지반을 다지느라 공사 진척이 늦어진 탓이다. 해마다 1㎜씩 기울어 골칫거리였던 이 탑은 1591년 유럽의 이목을 모았다.이 곳 출신의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교황청에 맞서 탑에 올라 중력실험을 가진 것이다.삐뚜름한 탑의 기묘한 모습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사람들은 이 탑을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에 올려 놓았다. 이탈리아가 1990년 탑의 붕괴를 우려해 비공개를 결정하기 직전까지 순전히 탑하나만을 보기 위해 피사에는 한 해에 100만명의 관광객이 몰려 들었다.로마에서 세 시간 기차를 타고 달려와 관람료로 13달러쯤을 낸 다음,사탑의 294개 계단을 올라가 보고는 만족감에 젖어 다시 로마로 돌아갔다.사탑은 기운 것만 빼면 유럽의 여느 탑과 다름없건만. 이탈리아는 1992년 복구공사를 시작하면서 대단한 이벤트를 마련했다.전세계 토목전문가로 ‘사탑토목위원회’를 구성해 사탑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한 것이다.이들 전문가들은 2500만달러를 들여 지난해 탑을 43㎝ 일으켜 세웠다. 최근 국감자료를 통해 국보인 불국사 다보탑 등 3개 석탑이 해마다 조금씩 기울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문화재청의 관리소홀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다.이에 맞서 문화재청은 탑신 기울기 측정 결과 오차범위여서 전혀 문제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결국 말싸움의 또다른 소재로 그칠 공산이 크다. 차제에 이들 탑의 기울기를 관심거리로 대대적으로 확산시켜 보면 어떨까.외국 방송이며 신문들이 솔깃할 정도로 말이다.이탈리아가 기울어진 대리석탑과 복원작업 자체를 관광자원화한 것을 벤치마킹해 보면 뭔가 묘안이 나올 성싶다.석탑이 얼마나 기울었는지 잣대도 옆에 세우고 세미나도 여는 등 관광객을 유인하는 ‘발상의 전환’이 없는 게 아쉽다. 박재범 논설위원 jaebum@
  • [씨줄날줄] 대통령 사저

    사저(私邸)는 사전을 보면 관저의 상대어일 뿐이다.매우 단순한 뜻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좀 다른 것 같다.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서려있다는 느낌이다.우리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사저였던 덕수궁의 발자취를 보면 그런 생각이 한층 짙어진다. 덕수궁은 원래 조선 때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사저였다.임진왜란 때 궁궐이 모두 불타는 바람에 선조가 잠시 머물면서 궁궐이 됐다.나중에 정식으로 경운궁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경운궁은 구한말 다시 덕수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일제가 고종을 강제퇴위시키고 이곳을 거처로 삼게 한 데 따른 것이다.‘덕수’란 조선 때 퇴위한 왕을 부르는 용어였다.사저로 출발한 덕수궁의 비극이다. 사저란 단어의 신비감은 최근 십여년을 돌이켜보면 더욱 강해진다.전두환 전 대통령부터 노태우,김영삼 전 대통령까지 모두 사저의 주술에 걸렸다.김대중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전 전 대통령의 연희동 사저는 5공비리 조사대상에 오를 만큼 호화판이었다.구청은 집 주변에 수십억원을 들여 녹지를 조성했다.노 전 대통령도 퇴임을 몇달 앞두고 132평 짜리 사저를 증축했다가 말썽을 빚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역시 사저 증축으로 한동안 힘겨운 시절을 겪었다.구청측은 집앞 골목길을 새로 포장까지 했다.당시 민주당측은 이를 두고 “퇴임후가 걱정되면 국정수습과 민생에 충실하라.”고 꼬집었다. 안타깝게도 김대중 대통령도 퇴임을 앞두고 똑같은 처지에 놓여있다.내년 3월 퇴임에 대비해 199평짜리 집을 짓고 있으며 집안에는 엘리베이터,실내정원이 갖춰져 있다는 한나라당의 공격에 직면한 것이다.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카터대통령은 재임시 최악의 대통령에 뽑힐 만큼 평가가 나빴다.그러나 요즘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퇴직대통령으로 손꼽힌다.그 이유 중의 하나를 한 일본인 사업가는 이렇게 압축했다.“미국의 전직대통령이 이렇게 조촐한 집에서 사는 줄 몰랐다.” 비록 김대중 대통령의 사저문제가 병풍(兵風)차단을 위한 한나라당의 옹졸한 대처에서 비롯된 면이 없지 않다 해도,왜 우리 국민이 십수년간 사저시비를 지켜봐야 하는지 짜증스럽다.불사조처럼 5년마다 되살아나는 사저논란을 막는 길은 정녕 없는 것일까. 박재범 논설위원 jaebum@
  • [씨줄날줄] 청와대 식단

    대통령제가 가장 오래된 미국에서는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 많은 사람의 관심거리다.백악관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백악관 체험기’를 써낸다.어느 대통령은 백악관에서부터 재무부까지 뚫려있는 비밀통로를 통해 심야데이트를 즐겼고,누구는 어쨌다는 등 수많은 뒷얘기가 정권말쯤부터 여과없이 쏟아져 나온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비서였던 그레이스 툴리는 ‘나의 보스’라는 책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이 미신에 빠져 있음을 시사한 적도 있었다.그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숫자 ‘13’을 매우 싫어해,식사 때 손님이 13명이면 비서를 참석하도록 했다고 밝히고 있다.또 클린턴 대통령의 참모였던 조지 스테파노풀러스는 지난해 초 ‘너무나 인간적인’(All too human·생각의 나무)이라는 책을 통해 클린턴의 잘잘못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미국에서는 이에 대해 “대통령은 사회와 문화,역사를 읽는 중요한 키워드이기 때문에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관대하게 받아들인다.형편없는 책이든 잘된 것이든 모두 한 시대를 움직인 대통령의 성격을 반영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최근 청와대가 한 책을 놓고 발끈하고 있다고 한다.‘청와대 사람들은 무얼 먹을까’라는 책을 펴낸 청와대 직원식당 조리사와 행정관 등 두 명을 해임하고 ‘공무상 취득한 비밀’을 누설한 혐의로 조사할 방침이라는 것이다.때마침 책을 기획한 행정관은 대선에 출마할 것으로 보이는 정치인의 캠프로 일자리를 옮겼다.희한한 일이다. 책에 실린 내용은 이렇다.“김대중 대통령은 옥수수를 좋아하고 아침식사후 찐 호박 등을 후식으로 먹는다.”“이희호 여사는 거의 매일 은행을 꼬치에 끼워 먹는다.또 뻥튀기를 좋아한다.”이와 함께 청와대에서 귀빈을 대접할 때 제비집 수프를 만든다는 등의 대목도 담았다.청와대 측은 “사실도 틀리고 대통령 내외를 흥밋거리로 썼다.”며 분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흔히 우리나라에는 기록이 없다고 개탄한다.이번 책도 수사기관 조서처럼 적확하지는 않더라도 나름대로 사실을 담고 있을 수 있다.따라서 이번 책의 발간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기보다 앞으로 좀더 수준이 높은 대통령 관련 책이 나올 수 있도록 분위기를 북돋우는 게 어떨까 싶다. 박재범 논설위원 jaebum@
  • [씨줄날줄] 위장전입

    실제로는 거주하지 않으면서 주소만 옮겨놓는 위장전입이 극성인 모양이다.서울시교육청이 오는 23일부터 다음달 말까지 위장전입 의혹이 있는 학생을 찾아내기 위해 거주사실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는 것이다.‘내 자식만 잘되면 되지’라는 자기중심적 부모의 자녀사랑법을 더이상 방치하기 어렵다고 본 것일까. 이런 위장전입은 그러나 하루이틀된 일이 아니다.십수일전 총리서리에서 물러난 장대환 매일경제사장이나,바로 앞의 장상 전 총리서리는 둘다 위장전입 의혹을 받았다.장대환씨는 이에 대해 “맹모삼천지교로 보아달라.”며 위장전입한 사실을 시인한 바 있다. 더 멀리는 십여년전에도 위장전입이 크게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학군이 아파트가격을 자극하고 사회적 위화감마저 초래하고 있다….” 어떤가.요즘상황을 꼭 짚어낸 말이 아닌가.그러나 이는 지난 1990년 2월 당시 노태우대통령이 문교부(현 교육인적자원부)의 새해업무보고 자리에서 한 말이다.당시 이른바 ‘교육특구’인 강남 8학군 학교에 자녀를 보내기 위해 많은 학부모들이 강남으로몰리면서 아파트값이 치솟았다.이 과정에서 당장 이사하기 어려운 일부 사람들은 잠시 주민등록을 강남으로 옮기는 편법을 썼다.이는 서민의 상대적 박탈감을 확산시켰고 결국 대통령까지 나서 대책을 지시하게 된 것이다.아마 두 장씨의 위장전입은 이때쯤 이뤄졌을 게다. 위장전입이 이처럼 번진 것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우리 사회를 ‘망국병’에서 건져내기 위한 정책 탓이었다.문교부는 지난 1974년 나라를 과외라는 망국병에서 구해내기 위해 획기적인 정책을 도입했다.‘고교입시 폐지’로 대변되는 평준화 정책이 그것이었다.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것인가.고교평준화는 고교진학률이 부쩍 높아지고 과열과외가 해소되는 이점을 가져다 주었다.대신 80년대들어 학력저하,이른바 8학군 집중 등의 부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지금 사회현안이 된 강남집값 폭등현상의 바탕에는 여전히 교육문제가 도사리고 있다.고교에서부터 교육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그렇다면 문제해결을 위한 출발점을 거꾸로 돌려보면 어떨까.대학과직장으로 말이다.이런 점에서 한완상 전 교육부총리가 제기한 학벌타파방안에 관심을 갖게 된다. 박재범 논설위원 jaebum@
  • [2002 길섶에서] 의자

    “의자(椅子)란 참 묘한 겁니다.사람의 그릇을 알 수 있어요.” 오래 전 의자를 소재로 독특한 이론을 펼친 한 관료가 있었다.그는 ‘의자론’을 이렇게 설명했다. “의자에 앉은 사람은 둘중 하나입니다.자리가 높아져 의자가 커질수록 자신도 함께 커져 곧 의자에 잘 어울리게 되는 사람,큰 의자에 맞추지 못하고 쩔쩔매다 끝나는 사람 이 두가지예요.” 그의 의자론은 당시 여럿으로부터 “맞아.일리가 있는데.” 하는 공감을 샀다. 의자의 크기에 걸맞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던 탓일까.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어요./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 주듯이….’(조병화 시인의 ‘의자’) ‘해야 할 일/안 해야 할 일 분별하며/내밀한 양심의 소리에/더 깊이 귀기울일 수 있으므로….’(이해인 시인의 ‘고독을 위한 의자’) 큰 의자에 앉겠다는 다툼이 한창인 요즘,괜스레 의자에 관한 상념에 젖어 본다. 박재범 논설위원
  • [대한포럼] 아파트 보유세 묘약 아니다

    강남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뒤 ‘뛰는 아파트값 잡기’가 정부의 현안이 됐다.워낙 강남 아파트값 상승곡선이 가파르다 보니 정부가 다급한 기색이 역력하다.국세청은 이미 강도 높은 세무조사에 나섰고 공정거래위도 아파트 부녀회의 담합여부를 조사해 처벌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이해되지 않는 대책이지만 정부의 안타까운 심정을 엿보게 한다.급등을 막아야 하겠으나 수단은 제한돼 있고…. 정부는 또 서울 등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엄격하게 관리하기로 했고 3일쯤에는 재산세 누진율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부동산투기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전방위적으로 아파트값 잠재우기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투기대책의 주요골자 중 하나로 거론되는 보유세 강화에 대해서는 이론이 많다.십수년전부터 대두된 ‘보유세(재산세) 강화,거래세(양도세) 완화’론이 마치 투기잡는 묘약처럼 등장하고 있는 데 대해 회의론이 일고 있는 것이다.무엇보다 지방세를 다루는 행정자치부는 경제부처와 전혀 다른 얘기를 한다. “치솟는 부동산 값을 안정시키려면 아파트 보유과세를 현실화해야 합니다.시가에 비해 훨씬 낮은 재산세 과세표준을 상향 조정해야 합니다.”(재정경제부) “부동산 투기를 잡는다고 주택을 보유한 모든 사람들의 재산세를 올린다면 국민들이 납득하겠습니까.말도 안되는 얘기입니다.”(행정자치부) 과연 보유세가 투기 열풍을 잡는 데 기여할까.대체로 세제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고개를 갸웃한다.이는 보유세의 성격 때문이다. 첫째,보유세의 대표인 재산세는 아파트 등 건물을 갖고 있을 때 내는 세금이다.이 세금의 부과시점은 7월로 올해는 이미 지나갔다.올해 세율을 조정하면 내년 7월 계산된다.보유세가 투기잡는 사냥꾼이더라도 현재의 투기와는 무관하게 된다. 둘째,재산세는 지방세수 24조원 중 7000억여원 정도로 비중이 미미하다.부동산 거래에 물리는 세금을 조금 줄이는 대신 보유세를 올림으로써 세액을 현수준으로 유지하려면 재산세 오름폭은 엄청나게 된다.거래세를 3분의1정도로 줄이면 보유세는 대략 곱절 가량 늘어야 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것이다.게다가 10만∼20만원 하는 재산세를 100만원으로 올린다고 하더라도,주민들이 100만원 부담이 무거워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갈까 하는 의문도 있다. 셋째,가만히 앉아 살고 있는 주민들은 재산세를 곱절 내라고 하면 당장 불만을 터뜨릴 것이다.“아무 짓도 안했는데 세금을 더 내란 말이냐.”이런 항의가 쏟아질 게 뻔하다.한마디로 조세저항이 거세질 전망이다. 넷째,현재의 아파트값 급등이 투기바람 탓이라면 이는 분명 양도차익을 위한 것이다.투기꾼들은 보유를 위해 아파트를 사지 않기 때문이다. 이밖에 중앙정부의 목표를 국세가 아닌,지방세로 달성하려는 데서 빚어지는 원칙의 혼선문제 등도 고려해야 할 사안으로 꼽힌다. 결국 보유세를 크게 올리는 것은 여러가지 부작용만 양산하고 투기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 될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투기를 붙잡기 위해서는 보유세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유세 문제는 그 자체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모처럼 세금을 둘러싼 논란이 일어난 만큼 자치단체의 재정건전성을 높임으로써 지방자치제도를 정착시키고 조세형평을 높이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물론 이는 한두개의 정부부처가 의견조정을 함으로써 이뤄질 수 없는 일이다.관련부처들이 모두 모여 지방세와 국세의 조정,거래세 위주로 된 세금의 개편 등 그동안 거론된 문제를 새롭게 토의해야 할 것이다.이를 통해 중앙정부는 보유세라는 정책적 수단을 하나 더 보유할 수 있고 지방정부도 세수확보를 통해 진정한 자치시대를 열 수 있다.보유세 논란은 공무원들의 생각이 땜질식에서 바뀌어야 함을 보여준다. 박재범 논설위원
  • [씨줄날줄] ‘우물집 여인’

    ‘한국전쟁 때 남편이 월남한 순녀는 마을에서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는다.심지어 살인범으로 몰려 고초를 겪기도 한다.그러나 광폭정치가 실시되면서 순녀는 행복을 되찾는다.’ 얼마전 북한에서 인기리에 방송된 극영화 ‘우물집 여인’의 줄거리라고 한다.북한은 지난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이후 이산가족의 애환을 다룬 드라마·영화를 속속 제작해 눈길을 끌고 있다.이런 새로운 추세는 지난해 초부터 두드러졌다.평양방송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다룬 ‘민족의 태양을 우러러’라는 제목의 라디오드라마를 내보낸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우물집 여인’의 경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만들어졌다고 하니,김위원장이 영화마니아라는 얘기는 틀림없는 말인 것 같다.광폭정치라는 말도‘광폭화면(시네마스코프)’에서 유래됐다고 할 정도니….‘우물집 여인’은 북한 영화가 그렇듯 이념·정치색을 담고 있기는 해도 제법 잘 만들었다는 평을 얻었다고 한다. 사실 북한의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은 나름대로 상당한 수준에 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몇년전프랑스 일본 등과 합작한 만화영화 ‘영리한 너구리’는 해외수출되기도 했고 1987년 ‘제1회 비동맹 및 개발도상국 영화축전’에 출품된 ‘도라지꽃’은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최근에 만들어진 ‘살아있는 령혼들’‘군관의 안해’등도 북한이 자랑하는 영화이다.광복 직후 징용한국인 7500명을 태운 우키시마마루(浮島丸)호의 영문 모를 침몰사건을 다룬 ‘살아있는 령혼들’에는 엑스트라가 무려 1만여명이나 투입됐다.이런 대작이라면 한번쯤 본다고 나쁠 리 없을 것이다. 남북한이 올해 중 방송교류에 관한 기본합의서를 체결할 것이라고 한다.물론 그동안 몇차례 방송교류가 있기는 했다.1998년 KBS가 남북합작 다큐멘터리 ‘북녘산하 북녘유산’을,SBS가 극영화 ‘안중근,이등박문을 쏘다’를 방송한 이후 간간이 북한물이나 남북합작물이 전파를 탔다. 그러나 이는 일회성이어서 북한 이해에 한계가 있었다.따라서 방송교류가 자리잡아 정기적으로 남북한이 드라마나 영화 등을 바꿔본다면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분명하다.북한의 영화 ‘우물집 여인’이 과연 얼마나 재미있을지. 박재범 논설위원
  • [2002 길섶에서] 신선한 충격

    고교 시절 학업보다는 사색과 그림 그리기에만 몰두했던 친구가 있었다. 이십여년 이상 소식이 끊겼던 그가 얼마 전 동창 몇몇이 모인 자리에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대리석 조각전을 연다.”” 부모가 닦달하는 바람에 어는 대학인가에 진학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군제대후 복학하지 않고 외국으로 훌쩍 떠났다고 했다. 중동은 물론 아프리카까지 온갖 곳을 돌아다니다 십수년 전 이탈리아에 정착했다는 것이다. 아무런 연고도 없이 외국에서 떠돌아 다녔으니 고생이 오죽했으랴. 그는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했다. 몇년 전 사업이 궤도에 오르자 꿈이었던 조각에 매달렸다는 것이다. 내년에 정식으로 작품 발표회를 갖는다는 설명이었다. 40이면 불혹이고 50이면 지천명이라고 했던가. 그러나 산업사회에 들어서면서 이 말은 요즘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40에 오히려 흔들리는 사람이 많은 게 현실이다. 40대 막바지에 불혹에 가까워진 친구의 모습을 보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박재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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