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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기고] “베델이 꿈꾼 조선의 미래, 국민행복 시대로 구현되길”/윤병세 외교부 장관

    [특별기고] “베델이 꿈꾼 조선의 미래, 국민행복 시대로 구현되길”/윤병세 외교부 장관

    서울신문이 창간 109주년을 맞았다. 1904년 우리 민족이 외세의 침탈에 맞서던 당시,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는 일제의 침략을 전 세계에 알리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 특히,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고 조선을 위해 싸운 어니스트 베델은 37살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면서도 “나는 죽으나, 신보(新報)는 영생케 하여 한국 동포를 구하시오”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1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이 말은 우리를 숙연케 한다. 낯선 나라 조선을 위해 젊음을 바쳤던 베델은 무엇을 꿈꾸었을까? 베델은 박은식, 신채호 등 한국의 선각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독립과 번영을 누리는 조선의 미래를 상상했을 것이다. 100여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선각자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현대사에 거의 유례가 없을 정도로 단기간 내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일구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아직도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고, 국가의 발전이 국민 개개인의 행복으로 충분히 구현되지는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 기조는 이러한 역사인식과 문제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국민행복, 희망의 새 시대’는 국가발전의 양적 측면 못지않게 질적 측면을 중시하면서 국민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국민중심적인 비전’이다. 또한 “우리가 행복하고 남을 행복하게 하는 아름다운 나라”를 꿈꾸었던 백범 김구 선생님처럼 이웃과 함께 성장하는 협력적 공동발전을 지향하는 비전이기도 하다. ‘신뢰 외교’는 이러한 국정 기조를 구현하기 위한 철학이자 외교전략이다. 국가 간의 관계나 공동체의 형성 과정에 있어 지속가능한 협력은 항상 신뢰의 수준과 같이 했다는 것이 역사의 경험이자 순리이기도 하다. 신뢰외교는 진정성과 원칙에 입각한 정책을 일관되게 전개해 나감으로써 공고한 상생의 인프라를 구축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이러한 국정 기조와 외교 전략의 기치하에 확고한 안보를 토대로 남북 간 신뢰를 구축하여 한반도에 지속가능한 평화를 정착시키고 평화통일의 기반을 조성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강해야 할 때는 강하게 대응하여 평화를 지키는 한편, 유연해야 할 때는 원칙 안에서 유연하게 대응하여 평화를 만들어 내려는 것이다. 남북 간 신뢰구축뿐 아니라,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의 올바른 변화를 유도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은 신뢰외교를 동북아 지역으로 확대하여 ‘아시아 패러독스’ 현상을 협력의 구도로 바꾸어 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작지만 의미 있는 연성 이슈에서 시작하여 협력의 습관을 축적함으로써 함께 번영하는 동북아를 차분히 만들어 나가겠다는 것이다. 주변국에 의해 많은 어려움을 겪은 우리 민족에게 평화롭고 협력적인 동북아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한반도와 동북아에서의 신뢰형성 과정이 상승 작용을 일으킬 때 통일 과정도 촉진될 것이다. 한반도와 동북아 차원을 넘어 박근혜 정부는 지구촌의 행복이라는 기조하에 세계 평화와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하고 있다. 새로운 안보 위협에 대한 대응, 인권 증진, 기후변화와 세계 경제문제 해결 등 글로벌 거버넌스 분야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한편, 개도국에 ‘하면 된다’는 희망을 주는 맞춤형 개발협력을 통해 나눔과 배려의 대한민국을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그간 성공적인 한·미,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신뢰에 기반한 포괄적인 협력의 틀을 구축하고, 북한에 대해 강력한 안보태세를 기반으로 도발 의지를 차단하면서 변화를 위한 올바른 선택을 일관되고 강력하게 촉구해 왔다. 또한 북극이사회 진출 등을 통해 새로운 외교 지평을 확대하고, 아세안과 동남아, 중남미 등 우리 외교의 후방을 든든히 하였다. 최근 한반도 문제는 물론 주요 국제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우리의 위상과 역량이 크게 달라졌다. 핵심국들과의 전략적 소통이 더욱 원활해졌고 통일된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졌다. 우리의 능동적인 역할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대 또한 높아졌다. 이제 우리는 100여년 전 역사의 변방에 내던져졌던 객체가 아닌 당당한 역사의 주체로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베델과 같은 선각자들이 꿈꾼 조선의 미래가 국민행복, 한반도 행복, 지구촌 행복의 시대로 구현되리라 확신하며, 서울신문 창간 109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 윤병세 “역사는 혼” 기시다 “기존 인식 계승”… 싸늘한 첫 상견례

    윤병세 “역사는 혼” 기시다 “기존 인식 계승”… 싸늘한 첫 상견례

    ‘회담은 냉랭했고, 앙금은 남았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개막을 하루 앞둔 1일 브루나이 수도 반다르스리브가완에서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첫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열렸다. 지난해 유엔 총회에서 양국 외교장관 회담 이후 9개월 만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지난 4월 아베 신조 내각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자 방일 일정을 전격 취소했다. 그러나 윤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 간의 첫 한·일 외교장관 회담은 일본의 우경화와 역사 인식의 현 주소만 재확인한 채 장기화되는 양국 경색 국면을 풀어낼 반전은 도출하지 못했다. 윤 장관은 기시다 외상에게 “역사는 혼이라는 어느 역사학자의 말을 상기시키고자 한다”며 “역사 문제는 존중하면서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으면 한 개인, 한 민족의 영혼이 다치게 된다”고 역사 성찰을 강조했다. 윤 장관이 인용한 역사학자는 일제 침략기 때 대한매일신보 주필을 역임하며 국혼(國魂)을 강조했던 독립운동가 박은식 선생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박은식 선생은 저서인 한국통사에 “나라는 형(形)이요, 역사는 혼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기시다 외상은 “아베 정권은 일본이 과거 많은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줬다는 기존 인식을 계승하고 있고,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전체적으로 계승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통역을 포함해 25분간 이어진 양국 장관의 회담장 분위기는 냉랭했다. 기시다 외상이 이날 수차례 확실한 역사 인식을 통해 한국과의 신뢰관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전날 스가 요시히데 일 관방장관의 발언 여파가 컸다. 스가 장관은 지난달 30일 도쿄의 한 강연에서 “한·일 간 통화스와프 계약이 연장되지 않은 것은 ‘정치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그 결과 양국 외교장관 회담이 빨라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일 양국이 3일 만료되는 30억 달러 규모의 원·엔 통화스와프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했는데 이것이 양국 외교장관 회담 성사와 관련 있는 듯한 뉘앙스가 담긴 발언이다. 정부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브루나이 현지에서 기자들과 만난 정부 고위 당국자는 “우리 외환 보유고가 3000억 달러를 넘었고, 한·일 간 통화스와프 규모는 외환 보유고의 1%도 되지 않는 미미한 수준”이라고 일축했다. 기시다 외상은 한·일 정상회담의 조속한 개최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에서 기존 전례를 깨고 한·중 정상회담이 먼저 이뤄지면서 일본의 역내 고립감이 더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회담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한·일 관계가 안정될지는 불확실하다. 이달 일본 참의원 선거와 8월 15일을 전후로 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방위백서, 역사교과서 문제 등 암초가 산적해 있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진정성 있는 행동에 양국 관계 회복이 달렸다는 입장이다. 반다르스리브가완(브루나이)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배설 선생은 세계에 일제 야욕을 가장 신랄하게 고발한 분”

    “배설 선생은 세계에 일제 야욕을 가장 신랄하게 고발한 분”

    “나는 죽을지라도 대한매일신보는 영생케 하여 대한의 동포를 구하라.”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를 창간해 항일 언론투쟁에 앞장섰던 영국인 배설(베델·1872~1909) 선생 서거 104주년 추모식이 서울 마포구 양화진 성지공원에서 1일 열렸다. 이곳은 배설 선생과 함께 외국인 선교사들이 묻혀 있는 장소다. 배설선생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린 추모식에는 이철휘 서울신문사 사장, 최완근 서울지방보훈처장, 스콧 와이트먼 주한영국대사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이 사장은 추모사를 통해 “언론인 배설 선생은 영국인이었지만 어느 애국지사 못지않게 우리 민족을 사랑했고 인류애를 실천했던 분”이라면서 “대한제국 말기 민족정론지 대한매일신보 창간을 통해 일제의 침략 야욕과 만행을 신랄하게 고발하고 세계 만방에 알렸다”고 소개했다. 와이트먼 대사는 “올해는 한국과 영국의 국교 수립 130주년이 되는 해”라면서 “배설 선생은 한국과 영국의 관계를 크게 증진시킨 인물”이라고 말했다. 국방부 군악대의 추모연주로 시작된 행사는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임이조 전 서울시무용단 단장은 추모춤 ‘거룩한 님이시여’를 공연했고 대한독립군가선양회는 ‘배설 송가(頌歌)’를 불러 그를 기렸다. 배설 선생의 본명은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로 영국 브리스톨에서 태어나 32세 때인 1904년 러·일전쟁 취재를 위해 한국에 왔다. 같은 해 6월 민족지도자 박은식, 양기탁, 신채호 선생과 함께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 데일리 뉴스(Korea Daily News)를 창간했다. 항일투쟁의 대변자 역할을 하던 배설 선생은 억울한 옥살이를 했고, 그에 따른 후유증으로 1909년 5월 1일 37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했다. 정부는 그에게 1968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김재원 배설선생기념사업회장은 “후손들에게 배설 선생의 뜻을 전할 수 있도록 기념관 건립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인사]

    ■국무조정실·총리비서실 △공보실장 신중돈 ■외교부 △공보담당관 원도연 △해외언론〃 김동배 △인권사회과장 조영무 △국제에너지안보〃 오성환 △기후변화환경〃 윤현수 △북핵정책〃 이준호 △교육운영〃 정광용 △인사운영팀장 임상우 ■소방방재청 ◇승진 <부이사관>△행정관리담당관 전영옥<서기관>△대변인실 최충수△법무감사담당관실 배양일◇전보△대변인 정근영△기획재정담당관 유재욱△중앙민방위방재교육원 교육운영과장 황선업△청장 비서관 김장국△유엔 국제재해경감전략기구(UN ISDR) 동북아지역사무소 교육훈련센터 이종수 ■산림청 △해외자원협력관 류광수△북부지방산림청장 최준석△서부지방산림청장 이현복△대변인 김형완△법무감사담당관 박산우△청장 비서관 최재성◇과장△운영지원 홍명세△산림정책 박은식△목재생산 김현수△산림휴양문화 임상섭△산림경영소득 김성륜△산림환경보호 최병암 ■금융위원회 △대변인 도규상△위원장실 비서관 강영수 ■아주경제 △금융증권에디터(온라인에디터 겸임) 강갑수 ■파이낸셜뉴스 ◇부장△지식과학 현형식△정치경제 조석장△산업2 김용민△정보미디어 윤휘종 ■한국경제TV ◇상무이사△뉴미디어본부장 최완수◇이사△보도본부장 임상희◇국장△마케팅본부장 방규식△경영지원본부장 이승용△마케팅본부 플랫폼팀장 박기섭◇부국장△보도본부 정치경제팀장 강기수△직속 기획편성팀장 한순상◇승진 <부국장>△보도본부 총괄 부국장(산업경제팀장 겸임) 오연근 ■경북대병원 △진료처장 성주경 ■신한금융투자 ◇신규 선임△RM센터장 탁성호 ■두산중공업 ◇기존임원 승진 <보일러BG>△보일러BG장 이황직△보일러BU장 현호준<터빈/발전기BG>△터빈/발전기BG장 박흥권△터빈/발전기BU장 손삼용△터빈/발전기설계1 최규현△EPC관리총괄 최상민△EPC영업2 박인원△P/E 센터장 김종보△EPC 3PD 이동수△EPC 4PD 이상범△라빅 PM 김영일◇신규임원 승진△전략기획총괄 전략 최대진△COO 품질혁신 최용수△COO 두산 비나 생산총괄 김용수△관리부문 생산지원 정환엽△워터BG 워터중동지역장 변상우△주단BG 주단생산2 황무성△기술연구원 서멀&메커니컬 엔지니어링센터장 박종포△EPC영업1 전하용△EPC공사 유우영△필드 서비스 김덕준<보일러BG>△보일러R&D센터장 김용성△보일러구매 정영복△보일러사업관리1 나춘남△보일러사업관리2 송윤동<터빈/발전기BG>△컨트롤러 심강효△터빈/발전기영업 김소형△터빈/발전기구매 곽원주△터빈/발전기생산1 원준연△서비스/기술사업관리 오기철 ■한독약품 △한독테바 사장 홍유석 ■한국선급 △기술지원본부장 김창욱△도면승인실장 오주원
  • 日 식민사학 반박한 정인보의 고조선 역사 고증

    일제시대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인 박은식은 ‘국혼’(國魂)을, 신채호는 ‘낭가사상’(家思想)을, 문일평은 ‘조선심’(朝鮮沈)을 각각 강조하며 조선인들의 민족적 자존심을 고취했다. 위당 정인보(1893~?)는 같은 맥락에서 ‘민족 얼’을 강조했다. ‘얼’은 우리가 잘 아는 ‘고도리’(가장 중요한 본질)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정인보는 조선총독부가 식민사학자들과 1915년 펴낸 ‘조선고적도보’라는 역사책을 본후 분기탱천했다. 1913년 일제의 고적조사단이 평남 용강군 해운면에서 ‘점제현신사비’를 발굴하고 일본인 식민사학자 이마니시 류가 “해당 비의 발굴은 한사군이 한반도 안에 있었다는 증거”라고 강변한 것들이 사실인 양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정인보는 일본 학자들의 조선사에 대한 고증이 총독정책과 밀접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되겠구나. 깡그리 부숴 버리리라.”고 다짐했다. 정인보가 1935년 1월 1일부터 동아일보에 ‘오천년간의 조선의 얼’이란 제목으로 단군부터 조선까지 5000년의 역사를 개괄하는 연재를 시작한 이유다. 1년 7개월 동안 282회 연재되던 중 베를린올림픽에서 마라토너 손기정 선수의 시상식 장면에서 동아일보 미술기자였던 청전 이상범이 일장기를 지워버리는 ‘의거’를 벌이자 동아일보가 강제 정간돼 중단됐다. 정인보가 분석하고 고증했던 주요 쟁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의 시조 단군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었다.”고 선언했다. 일제의 단군조선 부정론에 대항한 것으로, 신화의 영역에 있던 단군을 역사의 연구영역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단군은 특정인의 이름이 아니라 천제의 아들로 비견되는 최고 통치자에 대한 존호였다는 것이다. 둘째, 기자조선설을 부인했다. 따라서 한민족의 역사는 고조선-위만조선-부여-고구려로 이어지는 것이다. 또한 고조선의 도읍 왕검성을 지금의 평양이 아니라 요동의 험독, 지금으로는 요령성 해성현으로 추정했다. 셋째, 삼한(三韓)은 지명이 아니라 한(汗)이나 간(干)처럼 크다거나 임금이라는 뜻이 있는 일종의 존호이며, 고조선과 별개의 정치세력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넷째, 요수를 지금의 하북성 영평 일대를 흐르는 난하지역으로 추정했는데, ‘요수난하설’은 1960년대 북한 역사학자 리지린이 보충해 개진했다. 다섯째, 한사군의 위치가 낙랑은 요동의 험독, 현토는 우북평, 임둔은 초자하, 진번은 대릉하 지역으로 모두 한반도 너머에 있었던 것으로 고증하고, 관할 지역이 수시로 변동됐던 한사군에 대해 “이름만 있을 뿐 실체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한사군이 한반도를 400년이나 지배했다는 식민사학자들에 반박한 것이다. 현재 중국의 ‘동북공정’의 주요 쟁점들에 대해서도 이미 1930년대 고증해 밝힌 셈이다. 정인보의 연재물 ‘오천년간 조선의 얼’은 1946년 서울신문에서 단행본 ‘조선사연구’로 새로 태어났다가, 1983년 ‘담원 정인보 전집’ 중 제3·4권으로 출간됐고, 최근 우리역사연구재단에서 ‘조선사연구’(문성재 역주)로 한글판을 내놓았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쉬웠다”… 영어·헌법이 당락 결정할 듯

    “쉬웠다”… 영어·헌법이 당락 결정할 듯

    지난 22일 시행된 지방직 7급 공무원 시험은 9급 시험과 별 차이 없이 전체적으로 무난하고 쉬운 문제들이 출제됐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지난해 지엽적인 문제가 출제돼 수험생들의 원성을 샀던 행정학 과목도 일부 논란이 생길 만한 문제가 있으나 전반적으로 평이했다는 평이다. 영어와 헌법 과목이 난이도 중상 이상으로 당락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과목별로 전문가의 분석을 들어보았다. 국어 과목에 대해 남부행정고시학원 유두선 강사는 26일 “문법 8문항, 어휘 2문항, 한자 2문항, 독해 8문항이 출제되었다.”며 “고전 문법과 문학·한문이 출제되지 않았고, 독해가 8문항이나 출제된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년 시험에 대비하는 수험생들은 독해 공부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법 문제는 표준어, 중의성, 외래어, 품사, 띄어쓰기, 발음, 겹문장, 우리말의 특징 등이 골고루 출제되었으나 어려운 문제는 없었다. 독해는 제목 찾기, 중심내용 찾기, 괄호 넣기, 정보 확인, 단락 순서 등의 문제가 골고루 출제되었다. 특히 중심 생각 찾기 문제가 4문제나 나왔다. 다양한 글을 읽고 체계적으로 독해 훈련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유 강사는 강조했다. 영어 과목은 같은 날 치러진 9급 지방직보다 쉽게 나왔다는 평이다. 같은 학원 두형호 강사는 “어휘 3문제, 문법 5문제(영작 2문제 포함), 생활영어 2문제, 독해 10문제가 출제되었다.”며 “수험생들에게 문법은 항상 어렵게 느껴지겠지만 구석에 박혀 있어 원어민도 몰라서 헤매는 문법 문제는 나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문법은 수 일치, 분사, 기타 구조가 각각 한 문제씩 출제됐고, 영작 두 문제는 전통적으로 출제되었던 기본적인 문제가 나왔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생활영어는 ‘get it off one’s chest’(속시원히 털어놓다), ‘he is over the hill’(그는 한물 갔다), ‘pull a long face’(시무룩한 표정을 짓다), ‘take a rain check’(다음을 기약하다)와 같은 기본적인 표현들이 출제됐다. 독해는 빈칸 추론 3문제, 내용 일치 여부 4문제, 제목 1문제, 요지 1문제, 추론 1문제가 나왔다. 풀이시간이 많이 드는 내용 일치 여부를 묻는 4문제가 실력 없는 학생들이 고득점을 얻는 데 걸림돌이 됐다. 손재석 강사는 영어 과목에 대해 “난이도가 중상 정도라 헌법과 함께 당락을 결정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어휘 문제는 정답 단어인 alleviate(완화하다.), derision(조롱), gnarl 가운데 gnarl(비틀다 = twist)의 난도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손 강사는 “내년 시험에 대비해 특히 독해는 평소 연습 때 시간을 정해놓고 문제를 푸는 훈련이 필요하며, 난이도가 있는 독해 지문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선우빈 강사는 한국사 과목에 대해 “민정문서, 대원군 문제, 신라 시대별 특징, 광개토대왕비, 지눌, 조선의 토지제도 변천, 국채보상운동, 김구, 박은식, 선사시대 문제 등 기출문제가 많았다.”며 “역대 민중봉기 순서를 맞추는 문제는 2012년 법원직 기출문제에서도 비슷하게 나왔다.”고 밝혔다. 임술민란, 정미의병과 서울진공작전 문제는 익숙하지 않은 지문이었지만, 한국사 공부를 어느 정도 했다면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였다. 또 경복궁 타령을 통해 흥선대원군의 상황(병인양요)을 물어보는 문제처럼 지문을 제시하고 시대 상황을 묻는 문제가 많았다. 헌법 과목에 대해 황남기 강사는 “90점 정도를 받아야 합격선”이라며 “최근에는 지문이 길어지는 추세며, 판례가 13문제로 가장 많이 출제됐고, 박스형 문제도 2문제나 나왔다.”고 설명했다. 판례 문제는 위헌, 합헌을 물어보는 유형이 많지만 판례의 논리까지 묻는 문제도 출제되고 있으며, 최신 판례의 비중도 높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황 강사는 행정법 과목에 대해서는 “납골당에 관한 문제처럼 최신 판례도 출제되어 판례 공부가 부족한 수험생은 어려웠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용한 강사는 행정학 과목에 대해 “국가직 7급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려웠으나 합격권 점수는 80~85점으로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전망했다. 경제원론 과목에 대해 박지훈 강사는 “계산문제가 줄어드는 등 난이도는 중하위권”라며 “경제학에 단답형 문제는 없으니 경제이론의 내용과 의미를 이해해야 시험에 대비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대한민국 건국이념, 미국産 아닐세”

    “대한민국 건국이념, 미국産 아닐세”

    1948년 그 모습을 드러냈던 건국헌법에 대해 널리 알려진 해석은 한마디로 ‘날림 공사’다. 좀 있어 보이는 표현을 쓰자면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의 급격한 이식’ 정도가 된다. 그러니까 어수선하던 해방 공간에서, 더구나 다가오는 광복 3주년에 맞춰 하루빨리 건국을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급박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승만이 대통령을 꼭 하고 싶은 마음에 다른 조항은 얼렁뚱땅 통과시키면서도 내각제만큼은 엄청난 몽니를 부려 대통령제로 뒤집었다는 정도다. 이는 이상과 현실 간의 괴리가 커 그 이후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일정 정도 진통을 겪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이 주장이 한발 더 나아가면 아주 직설적으로 말해 대한민국 독재자들은 시대 상황상 무죄라는 논리에 가닿는다. 그 당시 우리나라 국민들 수준이 그 모양인데 그 좋다는 해외 명품을 가져다 놔 봤자 어디에다 쓰겠냐는, 대개 국민을 비하하고 독재의 불가피성을 옹호하기 위해 쓰이는 ‘민도’(民度)라는 표현이 생명력을 발휘하는 것도 이 부분에서다. 그런데 이 관점에서 건국헌법을 읽어 나가다 보면 그만 어색해진다. 헌법기초자인 유진오 박사는 건국헌법에 사회민주주의적 요소를 대거 포함했다고 평가했고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미국이 이승만 정권에다 헌법상 사회주의적 요소를 제거하지 않으면 원조를 중단하겠다고 지속적으로 압박을 가했을 정도로 좌편향적이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흥재 서울대 교수는 기업 이윤을 노동자들에게도 분배하라고 못 박아 둔 건국헌법 18조, 소위 말하는 ‘이익균점권’ 조항이 경제계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립됐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 얘기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결국 하나다.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의 급격한 이식’이란 표현이 성립하느냐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탄생’(김육훈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은 1948년 시한이 촉박했던 헌법기초위원회에서 건국헌법이 성립됐다는 그동안의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구한말, 식민지, 광복에 이르는 기나긴 역사적 시야 아래 건국헌법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조선왕조에 망조가 들 무렵부터 광복한 직후까지 한국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살았겠느냐는 지적이다. 더구나 저자는 역사 교사들의 모임인 전국역사교과서모임 회장을 지냈고 초중고 및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이들의 연구모임인 역사교육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는 현직 역사 교사다. 그래서 독자들과 눈을 맞추고 대화하듯 부드럽게 풀어 쓴 서술 또한 매력적이다. 저자는 3·1운동을 핵심에 놓는다. 그러니까 그 이전 시기는 왕조를 부활할까, 왕정보다는 그래도 입헌군주제가 낫지 않을까, 아니 차라리 왕정을 없애고 공화주의로 나갈까라는 각기 다른 생각들이 교차했던 시기로 본다. 그러나 3·1운동을 전후한 시기에 마침내 왕정 복고 운동은 종말을 맞고 공화주의로 방향을 틀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두 가지 근거를 든다. 3·1운동 와중에 고종의 친아들 이강을 상하이로 빼돌려 황제 중심의 임시정부를 구성하려다 실패한 대동단 사건이다. 오랜 습관 때문에 왕조에 대한 기대감이 어느 정도 남아 있어 벌어진 일이었으나 이 사건 이후 왕조 부활 운동은 사라진다. 또 하나는 3·1운동 이후 각종 임시정부의 설립 운동이다. 대조선공화국을 내건 한성정부, 신한민국을 내건 경성독립단에다 너무도 잘 알려진 대한민국 임시정부까지. 이들 모두 각기 다른 국가명과 정부 조직 체계를 내세웠지만 핵심은 이들 모두 왕정 폐지와 공화주의를 선언했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도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다 ‘3·1운동’을 못 박아 둔 것은 3·1운동이 일제에 한 방 먹인 통쾌한 사건이어서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헌장 작업에 관여한 이동년 임시의정원 의장은 “우리는 이제 군주제를 부활하려고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명백히 말해 뒀다. 이승만도 1948년 제헌의회 초대 의장으로 선출된 뒤 기념 연설에서 “대한민국은 1919년의 민국을 재건했다.”는 표현을 썼다. 그러니까 3·1운동을 계기로 이제 우리가 피땀 흘려 싸워서 되찾아야 할 나라는 조선왕조나 대한제국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이어야 한다는 합의에 모두가 도달했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봐야 할 점은 이때의 민주공화국이 ‘우파 정체성’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 대목에서 저자가 주목하는 인물은 조소앙이다. 그의 지향점은 1917년 상하이에서 만난 독립운동가들이 남긴 ‘대동단결선언’에서 이미 확인된다. 조소앙이 기초하고 신규식, 신채호, 박은식 등이 관여한 이 문건에는 “황제권이 소멸한 때가 곧 민권이 발생하는 때요, 구한국 최후의 하루는 곧 신한국 최초의 하루다. (중략) 그러므로 경술년 융희 황제의 주권 포기는 곧 우리 국민 동지들에 대한 묵시적 선위이니 우리 동지들은 당연히 주권을 계승하여 통치할 특권이 있고….”라는 대목이 들어가 있다. ‘대한제국 끝, 공화주의 시작’을 명백히 선언한 것이다. 이 논리 아래 조소앙은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헌장, 193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선언, 1941년 임시정부의 건국강령 등 헌법에 준하는 각종 문건 제정 작업에 참여했다. 그 내용도 눈길을 끈다. 조소앙은 기본적으로 우파였으나 좌우파의 최대공약수를 뽑아내는 데 주안점을 뒀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이 치열한 항일투사라는 점을 인정하고 사회주의자들의 주장 가운데 받아들일 내용이 많다는 점도 인정”했으나 “사회주의 러시아에서 무산자 독재란 이름으로 정치적 자유가 소멸되고 있음을 준열하게 지적”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자본주의나 자유주의가 곧 민주주의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미국과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는 여전히 돈 많은 이들과 많이 배운 이들의 독재가 이뤄진다.”고 봐서다. “민중을 우롱하는 자본주의 데모크라시”, “무산자 독재를 표방하는 사회주의 데모크라시”를 배격한 자신의 주장을 조소앙은 ‘신민주주의’라 불렀다. 이제는 한물간 듯한 표현을 빌리자면 조소앙식 제3의 길이었던 셈이다. 조소앙이 통합시켜 놓은 이런 큰 물줄기 때문에 길게 보면 남한의 건국헌법이 “자유경제를 주장하면서도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고 북한의 첫 헌법이 “사회주의를 지향하면서도 자본주의적 경제 요소를 두루 인정”하게 됐다는 것이다. 저자가 조소앙을 일컬어 “헌법의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고 보는 까닭이다. 좀 더 전문적인 논의를 원한다면 ‘대한민국 헌법의 탄생’(서희경 지음, 창비 펴냄)을 참고해도 좋다. 헌정사 연구자인 저자는 만민공동회에서 시작해 3·1운동을 거쳐 임시정부의 헌법과 규약에 이르는 과정을 한국 헌법의 원형질이 생성되는 과정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앞선 저자의 논지와 일치하는 주장을 내놓는다. 동시에 1917년 ‘대동단결선언’을 공화주의의 효시로 꼽고 이에 참여한 조소앙의 중요성을 부각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근대 한국 헌법의 아버지가 누구인가.” 하는 점도 흥미롭다. 그동안은 유진오가 그런 인물에 해당한다고 평가됐다. 1945~48년만을 놓고 보면 유진오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포함한 긴 시간을 놓고 보면 조소앙의 역할이 한층 더 근본적이고 유진오의 역할은 제한적이라고 해뒀다. 더 두껍고 학술적이기 때문에 상황에 대한 입체적 묘사가 돋보인다. 각 권 1만 5000원, 3만 3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국가직 7급 과목별 마무리 대비법] (2) 국어·영어·한국사

    [국가직 7급 과목별 마무리 대비법] (2) 국어·영어·한국사

    국가직 7급 필기시험이 오는 28일 치러진다. 지난주에 이어 국어·영어·한국사 등 일반 과목 마무리 대비법을 알아본다. 김영준 공무원 단기학교 국어강사는 “7급 국어 문제 유형이 ‘수능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고력을 중심으로 평가하겠다는 출제자의 의도가 담겼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출제된 부분은 현대·고전 문법 3문제, 국어생활 4문제, 한문 5문제, 비문학 6문제, 현대문학 2문제 등이다. 한문이 2010년 2문제에서 5문제로 비중이 훌쩍 커진 것이 특징이다. ●15~19세기 고전문법 시간순서대로 정리를 출제 영역도 다양하다. 지난해에는 한자어를 묻는 문제 뿐 아니라 농와지경(瓦之慶·딸을 낳은 경사), 백아절현(伯牙絶絃·절친한 벗의 죽음을 슬퍼함) 등 한자성어 문제도 출제됐다. ‘이번에 아드님을 얻은 농와지경을 축하드립니다.’라고 잘못 기술한 보기가 답이었다.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의 ‘송원이사안서’(送元二使安西)라는 시를 보기로 놓고 주제를 고르는 문제도 등장했다. 김병태 국어강사는 ▲주요 한시, 한자어, 한문 문장의 문법요소 등을 꼼꼼히 정리할 것 ▲문학사의 중요 작가들 대표작의 의미 해석 등을 미리 정리할 것 ▲15~19세기 고전문법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할 것 등을 마무리 대비법으로 강조했다. 또 최근 3년간 기출문제를 반복해서 풀고 영역별 정리를 할 땐 교재 앞부분에 기술된 핵심내용 중심으로 범위를 좁혀서 정리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문법·영작 비중 25%… 문제풀이로 실전감각 7급 영어가 9급 영어와 다른 눈에 띄는 특징은 높은 어휘 수준이다. 10문제 정도 출제되는 독해 문제에서 고득점하려면 어휘력이 관건이다. ‘드러내 놓고’ ‘대단히 비싼’이라는 뜻의 ostentatious, ‘호전적인’이라는 뜻의 bellicose, ‘급속히’ ‘대폭’이라는 뜻의 by leaps and bounds 등의 어휘가 지난해 출제됐다. 조은정 영어강사는 “남은 기간 평소 보던 어휘기본서·단어집을 반복해서 보고 동의·파생어 등 관련 어휘를 묶어 공부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또 “예문에 있는 어휘의 문맥 속 의미를 추론하는 식의 연습이 좋다.”고 말했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7급 영어에서 문법·영작 비중은 25%가 넘는다. 또 문장 길이가 복잡해서 어렵다. 개념서를 무턱대고 읽기보다 문제 풀이를 통해 실전 감각을 극대화하고 부족한 문법 요소를 보충해야 한다. 독해는 감각을 유지하고 시간을 단축하는 훈련이 중요하다. 지문 전반부를 차분하게 읽되 글 전체 흐름을 예측하며 중심생각이 무엇인지, 필자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주제문만 제대로 읽어도 답을 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제2연평해전 10주년 관련내용 정리 필요 한국사는 고등학교 국사·근현대사 교과서를 바탕으로 출제된다. 수준은 7·9급이 거의 비슷하다. 전한길 한국사 강사는 “문제를 풀다 보면 생소한 표현이 있어 어려워 보이는 보기는 정답과 상관없을 때가 많다.”면서 “두려움을 버리고 핵심내용을 정리하면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삼국·고려·조선시대 왕들의 업적을 묻는 문제는 시대별로 출제되는데, 몇몇 헷갈리는 문제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출제되지 않았던 붕당정치·탕평책 등 조선후기 정치사 부분은 올해 출제 가능성이 크다. 경제사의 수취·토지제도도 필수다. 문화사에서는 불교의 영향을 받은 고대·중세문화 관련 문제가 출제될 수 있다. 주요 승려, 불교 건축 등이 중요하다. 조선 전기 부분에서는 이황과 이이의 사상 비교, 조선 후기 부분에서는 중농학파와 중상학파 실학자들의 업적을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 근현대사는 대원군~강화도 조약~임오군란~갑신정변~동학농민운동~갑오개혁~아관파천~독립협회~대한제국~의병과 애국계몽운동~국권피탈 과정~일제 통치방식의 변화~토지조사 사업과 산미증식 계획의 비교~임시정부의 시기별 활동~의열단과 애국단 비교~신간회 활동 등에 대해서 시대 흐름과 함께 활동을 꼼꼼하게 점검해야 한다. 해방 후에는 헌법개정과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 그리고 통일을 위한 노력 등이 출제될 수 있다. 시기별 역사책의 특징을 묻는 문제도 종종 출제된다. 특히 조선후기의 동사강목, 해동역사, 연려실기술, 동사, 발해고와 관련한 내용을 정리해야 한다. 일제시대 역사서와 관련해 신채호, 박은식, 백남운 등을 비교하는 문제도 출제될 가능성이 크다. 또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이의봉의 고금석림 등도 점검해야 한다. 시사적인 주제들도 짚어야 한다. 2011년에 반환된 외규장각 자료 약탈과 관련 있는 병인양요, 지난해 새롭게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5·18 광주기록물과 일성록, 그리고 세계문화유산과 기록유산 등을 잘 기억해야 한다. 또한 올해가 제2연평해전 10주년이 되는 해이므로 1999년 제1연평해전과 2002년의 제2연평해전의 연도를 알아두는 것이 좋다. 지난달 말에는 강원 고성 문암리 유적에서 동아시아 최초로 신석기 밭 유적지가 발견됐다. 몇 해 전에 송국리식 토기가 연속 출제됐던 것처럼 새롭게 발견되는 유물과 유적도 잘 정리해 둬야 유리하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도움말 공무원단기학교
  • “12세기 금나라 시조는 신라·고려인…여진족 역사도 한국사 편입시켜야”

    “12세기 금나라 시조는 신라·고려인…여진족 역사도 한국사 편입시켜야”

    여진족의 역사를 한국사에 넣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도학 한국전통문화대 문화유적학과 교수는 “만주 지역에서 생성과 성장·소멸을 거듭했던 종족의 역사 가운데 부여와 고구려, 발해는 한국사에 편입됐는데 동일 지역에서 활동한 여진족의 역사는 애매하게 처리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이 교수는 20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한국고대사의 시공간적·문헌적 범위’를 주제로 열리는 학술회의에서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논문 ‘한국사의 확대과정과 여진사(女眞史)의 귀속 문제’를 발표한다. 그는 부여 등이 한국사에 편입된 시기는 10세기 고려 태조가 후삼국을 통일한 후에 편찬한 ‘구삼국사’부터라고 했다. 13세기 이승휴(1224~1300)가 지은 ‘제왕운기’에 나온 ‘단군본기’는 ‘구삼구사’를 인용했기 때문이다. 단군조선의 편입은 고구려 시조의 계보 때문인데, 그 결과 북부여·동부여 등이 자연스럽게 한국사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문제는 여진족이다. 여진은 숙신(肅愼)→읍루(邑婁)→물길(勿吉)→말갈(靺鞨)→여진→만주족으로 이어진다. 이 여진족은 12세기 금을 세우고, 17세기 후금이 됐다가, 다시 청나라가 된다. 이 교수는 “(여진족이 세운) 후금(後)이 산해관 이남으로 진격해 중원 대륙을 제패하고 청(淸)이 되었을 때는 중국사인 것이 분명하다.”면서 “하지만 그 이전의 여진사는 중국사가 아니라 한국사로 편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 이 교수는 “12세기 금나라는 국가의 기원이 신라 또는 고려와 연결됐다.”고 주장했다. ‘고려사’는 물론 중국 문헌인 ‘이역지’(異域志)와 ‘신록기’(神麓記) 등도 금나라의 시조를 ‘신라인’ 또는 ‘고려인’이라고 기술했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이 교수는 여진의 역사를 한국사에 편입시킨 민족주의 사학자 박은식의 역사 인식을 해방 직후 손진태(1900~1950?)가 이어받았지만, 한국전쟁 때 그가 납북되면서 이런 역사인식이 남한에서 계승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신민족주의자로서 손진태는 한국사를 구성하는 족속으로 남북 9개 부족 즉, 부여, 예맥(고구려), 숙신, 조선, 옥저, 말갈, 진한, 마한, 변한 등을 말했다.”면서 “여진 등 일부는 한국사의 조역으로서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교수는 중국이 동북공정(東北工程)과 ‘장백산 문화론’을 내세워 고구려·발해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여진사의 한국사 편입은 왜곡에 대한 효과적인 대처방안이 된다고 덧붙였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약기편람은 박은식의 ‘한국통사 초고본’ 맞다”

    “약기편람은 박은식의 ‘한국통사 초고본’ 맞다”

    작자 미상으로 1904년 쓰인 것으로 알려진 ‘약기편람’(略記便覽)이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인 백암(白巖) 박은식(1859~1925)의 ‘한국통사 초고본’으로 최종 확인됐다. <서울신문 3월 14일자 2면> 쓰인 시기는 ‘한국통사’(韓國痛史)가 출간되기 5년 전인 1910년 12월 이후인 것으로 밝혀졌다. ‘약기편람’을 소장하고 있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김학수 장서각 국학자료조사실 실장은 26일 “연구원이 소장한 약기편람은 박은식 선생이 1915년 상하이에서 출판한 한국통사의 초고본이 맞다.”면서 “써 내려갈 목차에 이토 히로부미의 저격사건, 안명근의 데라우치 암살 기도 사건 등을 잡아놓은 것을 볼 때 아무리 빨라도 1910년 12월 이후에 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국통사 출간 5년 전 작성… 1915년 출판” 한국통사는 박은식이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상하이로 망명해서 서양의 근대적 역사서술 방식을 받아들여 쓴 역사책이다. 본문은 3편 114장으로 1864년 고종 즉위로부터 1911년 이른바 ‘105인 사건’ 발생까지 47년간의 역사를 시대순으로 서술했고, 중요 부분은 각 장 뒷부분에 저자의 의견을 달았다. 약기편람은 한국통사 가운데 임오군란, 갑신정변, 갑오동학란, 명성황후 폐비 후 복위, 지방의병, 아관파천과 김홍집 정권 등장 등을 써 놓았고, 박승환 순국, 장인환·전명운 의거, 안중근 의거 등을 목록으로 만들어 놓은 작은 책자다. 김학수 실장은 “지난 3월 14일 서울신문이 보도한 이후 약기편람을 자세히 살펴본 결과 해제도 필요 없고, 망설일 것도 없이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면서 “다만, 백암이 손수 약기편람을 정서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시켜 정성스럽게 필사한 것인지는 더 검토해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백암의 글씨는 한국전쟁으로 대부분 소실됐고, 그의 후손들도 알아보지 못한다고 밝혀, 친필 여부를 감정하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임치균 한국학중앙연구원 기획처장은 “약기편람의 글씨가 아주 가지런한 것이 행서나 초서체로 흘려쓴 백암의 글씨체와는 아주 달라 보이지만, 다산 정약용이 직접 쓴 초고본들도 해서체로 정서해서 아주 가지런하므로, 평소 글씨체와 다르다고 친필이 아니라고 성급하게 단정지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수록 내용 대부분 한국통사와 동일 서울신문은 지난 3월 14일자에서 “약기편람은 현재 저자 미상으로 알려졌지만, 수록 내용 대부분이 한국통사와 동일한 만큼 저자는 박은식이 분명하다.”는 김태웅 서울대 역사교육학과 교수의 주장을 보도한 바 있다. 김 교수는 한국통사(아카넷 펴냄)를 번역해제하는 과정에서 이 사실을 우연히 발견해 번역해제본에 이 사실을 발표했다. 김 실장은 “이번에 발견한 초고본은 백암 선생의 한국통사 저술의 과정을 밝힐 수 있으며, 백암 전집을 총체적으로 꾸밀 수 있는 중요한 문헌이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 실장은 약기편람에 대한 서지정보(저자, 출판사명, 출간연도 등 책에 관한 정보)도 이른 시일 안에 바꿔놓겠다고 약속했다. 김 실장은 “학자들을 위해 무엇보다 약기편람에 대한 서지정보를 빨리 바꿔놓고, 열람할 수 있게 할 필요가 있다.”면서 “장서각의 보유목록 인쇄물의 수정에는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인터넷 서지정보는 빨리 바꿔놓아 이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글 사진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배설 선생 서거 103주기] 대한매일신보로 일제만행 알린 파란눈의 독립투사

    [배설 선생 서거 103주기] 대한매일신보로 일제만행 알린 파란눈의 독립투사

    “나는 죽더라도 ‘대한매일신보’는 영생케 하여 대한 민족을 구하시오.” 배설(裵說·어니스트 토머스 베델, 1872~1909) 선생은 이런 유언을 남기고 1909년 5월 1일 37살로 인생을 마감했다. 사인은 결핵이었으나, 원인 제공자는 ‘상하이 옥살이’를 강제한 일본 제국주의였다. 영국 브리스틀에서 출생한 선생은 왜 한국식 이름으로 개명했으며, 왜 ‘한국 민족을 구하라.’라는 유언까지 남긴 것일까. 브리스틀에서 출생한 그는 16살부터 32살까지 16년을 일본에서 살며 무역 일을 했다. 1904년 3월 10일 러·일 전쟁이 터지자 런던에서 발행하던 신문 ‘데일리 크로니클’의 특파원으로 대한제국에 왔다. 그러나 그는 일본에 우호적인 기사를 강요하는 특파원 생활을 바로 접고, 7월 18일부터 양기탁과 함께 대한매일신보 등을 창간해 발행하기 시작했다. 일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영국 국적의 발행인을 자처했다. 치외법권의 보호를 받던 대한매일신보에서 양기탁·박은식·신채호 등은 일본을 통렬히 비판하며 항일무장투장, 헤이그 특사 파견, 국채보상운동 등을 보도해 애국·계몽운동을 벌일 수 있었다. 일본은 눈엣가시인 그를 추방하기 위해 영국에 압력을 가했다. 배설은 1907년 10월과 이듬해 6월 두 차례나 재판을 받아야 했다. 특히 1908년 3월 23일 전명운과 장인환이 친일 미국인 스티븐슨을 암살한 기사는 배설에게 치명적이었다. 1908년 서울의 영국 총영사관에 설치된 법정에서 영국인 본(F.S.A Bourne) 판사는 배설에게 3주간의 금고에 만기 후 선행 보증금으로 피고인 1000달러, 보증인 1000달러를 즉시 납부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는 상하이의 영국조계 안 형무소에서 3개월간 금고 생활을 마쳤고, 1908년 7월 서울로 돌아왔다. 그러나 쇠약해진 배설은 병을 이겨내지 못했다. 장지연은 배설을 위해 1910년 추모의 글을 적었고, 그 문구로 비석을 세웠다. 하지만, 일제는 칼과 망치로 그 내용을 지워 버리고 훼손했다. 그렇게 훼손된 채 광복을 맞은 비석은 1964년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한국의 언론인들은 장지연이 쓴 원래의 비문을 새긴 비석을 세우자는 운동을 벌였다. 현재 서울 마포구 양화진 외국인 묘역에는 배설의 유언이 한국인들을 반기고 있다. 새 비석이 세워진 뒤 4년 뒤 베델은 1968년 3월 대한민국 건국유공자로서 건국훈장을 받았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올 9급 공무원 시험, 왜 그리 쉽게냈나 했더니

    올 9급 공무원 시험, 왜 그리 쉽게냈나 했더니

    지난 7일 전국 194개 시험장에서 국가직 9급 공채 필기시험이 치러졌다. 지원자 15만 7000여명 가운데 72%인 11만 3000여명이 응시했다. 지난해(73.3%)보다 조금 낮아진 72.0% 응시율이었다. 출제수준은 대체로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더 쉬웠다는 것이 수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내년부터 일부 시험과목이 선택과목으로 바뀌기 때문에, 출제 측이 문제유형·난이도에 변화를 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공무원단기학교(학원)와 함께 ‘인책형’ 문제지를 기준으로 과목별 주요 경향과 눈에 띄는 문제를 짚어봤다. 국어, 어문규정·어휘 문제 11개 출제 국어는 한자 독음이나 표기 등 한자 문제가 많이 출제되지 않았고, 수험생들이 까다로워하는 고전문학 작품이 한 문제도 출제되지 않아 난도가 낮았다는 평이다. 김영준 강사는 “기본서를 중심으로 착실히 준비했다면 2문제 이상 틀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역별로 어문 규정 7문항, 어휘 4문항이 출제되었고, 비문학은 5문항, 문학은 4문항이 출제되었다. 어문 규정에서는 9번이 대표적이다. 일상생활에서 자주 틀릴 수 있는 부분인데, ‘죄다’에 연결어미 ‘-어’를 연결하면 ‘죄여’가 아니라 ‘죄어’가 맞다. 10번의 사전 등재순서 역시 무조건 내는 문제로, 모음의 순서에서 ‘ㅘ-ㅙ-ㅚ’, ‘ㅝ-ㅞ-ㅟ’의 순서만 알면 풀 수 있다. 17번은 어휘 영역문제다. ①견마지로 ②읍참마속 ③풍수지탄 ④불치하문 등의 보기가 제시됐다. 보기②의 ‘조직의 발전을 위해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감싸 안아줘요.’가 틀린 사용으로, 읍참마속은 ‘큰 목적을 위해 자기가 아끼는 사람을 버린다.’는 뜻으로 ‘감싸 안아’줄 때 사용할 수 없다. 13, 14번은 한용운의 ‘나룻배와 행인’, 김수영의 ‘눈’ 등 운문 문제다. 한용운, 정지용, 김소월, 백석, 신동엽, 김수영 등 출제 가능성이 큰 작품은 평소 잘 정리해 둬야 한다. 영어, 어휘수준 높아져 영어는 영역별로 어휘 4문항, 생활영어 2문항, 문법 및 영작 4문항, 독해 10문항으로 출제됐다. 어휘 수준이 높은 문제들도 눈에 띈다. 난이도는 평이했다. 1번은 complacent(자기만족의)라는 어휘의 뜻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유의어를 찾는 이 문제의 답은 ‘self-satisfied’다. 3번의 ‘pass on’, ‘snuff the candle’, ‘go aloft’ 등 ‘죽다.’는 뜻이 있는 숙어를 제시했다. 이들의 뜻을 물어 빈칸을 채우는 이 문제의 답은 ‘death’다. 8번 영작문제는 ‘with와 by’라는 전치사의 쓰임을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벽돌로 유리창을 깨다.’라고 하려면 ‘smash a window with a brick’이라고 해야 한다. 독해는 대체로 평이했으나, 오스카 와일드의 명언으로 시작, 빈칸을 추론하는 14번 문제는 비교적 어려운 문제로 꼽혔다. 한국사, 문화사·정치사 출제비중 높아 한국사는 주제별로는 고대 사회의 발전과 근대 사회의 태동 시기 부분에서, 분야별로는 문화사·정치사 부분에서 많이 출제됐다. 강민성 강사는 “이해만 하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가 대부분이었다.”고 평가했다. 10번 이동휘와 관련된 문제는 가장 어려운 문제로 꼽힌다. 보기 ③의 ‘대동보국단을 조직하고 진단이라는 잡지를 발간한 사람’은 박은식·신규식이다. 8번 다산 정약용 당시 농민들의 실태에 대한 문제로 최근 자주 출제되고 있다. 조선 후기에는 양반은 늘고 상민과 노비가 줄어들었다는 특징이 있다. 18번 조선후기 과학문화에 대한 문제는 실수를 유도하는 문제다. 보기 ②번 지석영은 종두법을 최초로 ‘소개’한 인물이 아니라 ‘실시’한 인물이다. 행정학, 정부 조직 관련 암기문제 3문제 행정학개론에서는 정부 조직이나 법과 관련한 문제가 예년보다 많았다. 정부 산하 기관의 조직도와 각 기관의 기능에 대한 암기 문제도 총 20문항 가운데 3문제나 출제됐다. 1번은 국무총리 소속기관이 아닌 것을 고르는 문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대통령 소속기관이다. 9번은 ‘공기업 평가’가 ‘국무총리실’이 아닌 ‘기획재정부’의 기능인 점을 알아야 풀 수 있다. 11번은 기구와 그 법적근거의 연결을 고르는 문제다. 보조사업평가단은 ‘지방공기업법’이 아닌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에 근거한 기구다. 4, 5, 12번 문제는 여러 이론에 대한 지식을 응용해야 풀 수 있는 문제다. 행정법, 판례 문제 80% 행정법총론은 이번에도 판례문제가 대다수인 80%정도 출제됐다. 12번은 2010년 개정된 ‘행정심판법’의 주요 개정 내용을 묻는 문제다. 이 법으로 행정심판위원회의 결정에 이의신청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15번은 행정형벌에 대한 문제다. 의료법 제87조의 규정을 예시로 들었다. 면허증 대여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고, 위반자의 고의 또는 과실이 있어야 행정형벌에 처할 수 있다. 전효진 강사는 “행정법총론의 기본 쟁점을 이해하고, 중요 법령의 조문과 판례를 숙지하는 것이 가장 좋은 공부법”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행정안전부는 내년부터 9급 공무원 시험 선택과목으로 포함되는 사회·과학·수학 과목의 출제범위 및 해당되는 직렬을 오는 13일 발표할 예정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내년 9급 공무원 시험에 응시할 수험생들의 수험기간 등 편의를 고려해 대략적인 시험범위를 일찍 결정해 발표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약기편람·한말비록 저자는 박은식”

    “약기편람·한말비록 저자는 박은식”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소장한 저자 미상의 ‘약기편람’(略記便覽)과 한국은행 정보자료실 소장의 저자 미상 ‘한말비록’(韓末秘錄)이 1915년 백암(白巖) 박은식(1859~1925)선생이 상해에서 출판한 ‘한국통사’(韓國痛史)의 이본(異本)으로 밝혀졌다. 김태웅 서울대 역사교육학과 교수는 최근 번역해제한 ‘한국통사’(아카넷 펴냄)에서 “약기편람은 현재 저자 미상으로 알려졌지만, 수록 내용 대부분이 한국통사와 동일하다. 그런 만큼 저자는 박은식이 분명하다. (중략) 한국통사의 초고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한국통사 초고의 일부 내용을 필사한 책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한말비록은 그동안 몇몇 학자들이 한국통사 초고본으로 추정하긴 했으나, 상해본(上海本)과 달리 문집형태로 돼 있고 내용과 구성을 볼 때 1915년 한국통사가 출판되고서 국내에서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역시 필사본인 약기편람은 인쇄된 한국통사의 초고 전체는 아니지만 초고 일부로 볼 수 있다.”면서 “한문의 서술, 똑같은 한자표현 등 중간중간 한국통사와 똑같다.”고 말했다. 그는 “전체 구성을 보면 완성본 한국통사를 베낀 것이 아니라, 퇴고 중이던 ‘초고본’ 한국통사를 베낀 것 같다.”면서 “이런 발견은 최근 모든 자료들이 디지털화되면서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백암은 동양평화와 공존의 세상 꿈꿔 ‘국가’·‘민족’은 한반도에 존재했던 것”

    “백암은 동양평화와 공존의 세상 꿈꿔 ‘국가’·‘민족’은 한반도에 존재했던 것”

    “지구촌에 여전히 나라 간 분쟁과 종교·인종·자원 전쟁이 끊이지 않은 상황에서 강자의 수탈과 침략에 맞서 약자의 평화를 향한 저항을 밝히고, 공생의 의미를 되새긴 한국통사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한국의 고전일 수밖에 없다.” “백암 박은식을 민족주의자라고 비난하는 여론이 최근 형성되고 있는데, 1915년 쓴 ‘한국통사’(韓國痛史)를 제대로 읽어 보면 양명학자인 박은식은 동양평화, 약자나 강자가 공존하는 세상을 꿈꿔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규장각 새로 읽는 우리 고전 총서’ 시리즈로 나온 ‘한국통사-국망의 아픈 역사를 돌아보는 거울’(아카넷 펴냄)을 번역하고 해제를 붙인 김태웅 서울대 역사교육학과 교수는 12일 이렇게 논평했다. 서울대 사범대 연구실에 만난 김 교수는 “냉전의 시대가 끝난 지구촌에 여전히 나라 간 분쟁과 종교·인종·자원 전쟁이 끊이지 않은 상황에서 강자의 수탈과 침략에 맞서 약자의 평화를 향한 저항을 밝히고, 공생의 의미를 되새긴 한국통사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한국의 고전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국민국가’가 살아있는 현실 인식을 최근 일본의 진보학자들 사이에서 민족주의가 사실상 국가 간 분쟁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따라서 이를 해체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적지 않지만, 21세기에 ‘국민국가’라는 단위가 엄존하고 해체되지 않는 현실도 인식해야 한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그는 “유럽은 절대왕정이나 근대국가 형성기에 ‘국민’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발명해 나갔지만 통일신라, 고려, 조선 등 중앙집권체제를 오랫동안 유지했던 한반도에서 ‘국민’이나 ‘민족’은 만들어진 전통이 아니었다.”면서 “박은식이나 신채호는 근대적 방식으로 역사 서술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한반도에 이미 존재하는 민족이나 국민을 발견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족이라 칭하지 않았지만 우리에게는 민의, 민인, 인민 등 다양한 명칭과 민족의 실체가 있었다.”면서 “고려 태종의 유훈인 훈요십조에서도 우리는 중국과 다르다고 했고,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면서도 우리는 중국과 다르다고 했던 것에서 우리의 실체를 찾아 나갈 수 있다.”고 했다. 한국통사의 중요성을 김 교수는 몇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1910년대의 아픈 현실 속에서 당대사를 어떻게 쓸까를 고민한 최초의 역사 개설서라는 점이다. ●‘생존’을 고민한 최초의 근대적 역사서 지금의 시선으론 근대사지만, 당시에는 현대사였을 그 역사를 편년체(일기체)나 왕과 영웅을 다룬 기전체가 아닌 인과관계를 가진 근대적 역사 서술 방식을 채택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이후 한국사 서술의 틀은 박은식류를 따르게 됐다고 했다. 둘째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19년 파리 평화회의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한국 독립을 위해 외교 활동을 시도하는데, 이때 주요하게 인용된 자료가 한국통사다. 1905년 을사늑약 등 일제가 대한제국을 얼마나 부당하게 강점했는지를 알리는 사료였던 것이다. 현재는 황현의 ‘매천야록’이나 정교의 ‘대한계년사’ 등이 구한말을 증언하는 자료로 많이 인용되지만, 당시 각 가문에만 존재했을 뿐 공개된 자료가 아니었다. 셋째, 한국통사가 1915년 상하이에서 출판되자 일제는 1910년대까지의 역사 무시라는 소극적 전략에서 역사 왜곡이란 적극적 전략으로 전환했다. 일제는 한국인이 한국통사의 영향을 받아 항일투쟁에 참여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고,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중국과 러시아, 미국 등에서 한국인이 이 책을 탐독하거나 전해 들었다. 1917년에 이 책은 한글로 번역 간행돼 재미 한인 학생들의 교재로 사용됐다. 결국 일제는 1916년 1월 조선사편수회라는 어용학회를 만들어 식민사관 형성에 열을 올렸다. 조선반도사 편찬 취지문에서 일제는 “재외 조선인의 저서 같은 것이 지상을 규명하지 않고, 함부로 망설을 드러내…(중략)…인심을 현혹시키는 해독 또한 참으로 크다.”이라며 한국통사를 비난했다. 조선사편수회는 1922년 12월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찬위원회로 이름이 바뀌었고, 식민사관에 바탕한 ‘조선사’와 ‘조선사료총간’(朝鮮史料叢刊), ‘조선사료집진’(朝鮮史料集眞)을 간행했다. ●정신이 멸하지 않으면 형체는 부활 김 교수는 국혼이 살아 있으면 된다는 박은식의 한국통사 서문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박은식은 서문에서 “옛사람이 이르기를 나라를 멸할 수는 있으나 역사는 멸할 수 없다고 하였으니 그것은 나라의 형체이고 역사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의 형체는 허물어졌으나 정신은 홀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인가? 이것이 통사(痛史)를 짓는 까닭이다. 정신이 보존되어 멸하지 아니하면 형체는 부활할 때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글 사진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훼손된 그리고 사라진 안중근 유묵 미스터리

    훼손된 그리고 사라진 안중근 유묵 미스터리

    안중근 의사가 남긴 유묵(遺墨)은 200점가량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숫자는 백암 박은식 선생이 1914년 중국 상하이의 대동편집국에서 ‘창해로방실’이라는 필명으로 써낸 전기 ‘안중근’을 근거로 하고 있는데, 안 의사가 뤼순(旅順) 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5개월간 유묵을 써 달라는 요청이 쇄도해 하루에도 몇 점씩 써낸 것으로 전해진다. ●日측 확인에 “천천히 얘기하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한 유묵은 57점. 이 가운데 소재를 파악하고 있는 유묵은 50점 정도이며, 기념관이 원본을 소장하고 있는 유묵은 ‘국가안위노심초사’(國家安危勞心焦思·보물 제569-22호) 등 7점에 불과하다. 나머지 현존하는 유묵은 개인이나 대학교, 일본인 등이 소장하고 있으며 총 26점이 보물로 지정돼 있다. 몇해 전 경매에 나왔던 유묵 ‘담박명지영정치원’(澹泊明志寧靜致遠·개인 소장)은 5억 2000만원에 거래된 적이 있는데, 글씨 상태가 깨끗한 유묵은 7억~8억원을 호가한다. 문제의 ‘일한교의선작소개’(日韓交誼善作紹介)는 안중근의사기념관이 2010년 펴낸 ‘대한국인 안중근’의 유묵 현황에 실려 있다.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이 1986년 원소유자의 유족으로부터 기증받은 것인데도 소장인은 ‘일본인’, 보관 장소는 ‘일본’으로 돼 있는데 이는 편집 과정의 오류인 것으로 보인다. 도록은 유묵에 대해 “국제한국연구원 최서면 원장이 확인하여, 세상에 알려졌다.”고 적고 있다. 도록에 실린 사진은 윤병석(82) 인하대 명예교수가 2001년 엮어 낸 ‘대한국인 안중근-사진과 유묵’(안중근의사기념관 출간)에 있던 것을 그대로 썼다고 기념관 측은 밝혔다. 2001년판 도록을 보면 유묵은 심하게 훼손된 상태다. 심지어 유묵 왼쪽에 써 있는 ‘경술2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근배´(庚戌二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謹拜·경술년 2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삼가 씀)란 글은 원본이 없다면 어떤 문장인지 알 수 없게 훼손돼 있다. 게다가 안 의사가 글을 써 주고 찍었던 수장인(手掌印·손바닥으로 찍은 도장)도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 이 도록을 엮은 윤병석 교수는 “2001년 당시 이 사진을 어떻게 입수해 도록에 넣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서 “최 원장과는 잘 아는 사이이지만 유묵에 대해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소노키의 둘째 딸 도시코(사망)는 기증 이듬해인 1987년 유묵의 보존 여부를 확인하러 도쿄 미나토구 미타에 있는 연구원을 찾아갔으나, 연구원이 없어져 유묵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한다. 유묵의 행방을 추적해 온 일본인 작가 쓰루 게사토시(68)도 “소노키 도시코가 기증 이후 유묵의 보관 상태를 확인하러 연구원을 몇 차례 찾아갔던 상황을 도시코의 딸에게 2009년 직접 들었으며 유족은 ‘연구원 측에 속은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밝혔다. 쓰루는 ‘천주교도 안중근’(1996년 출간)이란 책을 펴낸 안중근 연구가다. 쓰루는 “3년 전 최 원장에게 전화로 유묵의 소재를 물었더니 ‘한국의 대학 도서관에 있다’고 말해 어느 대학이냐고 재차 물었더니 ‘그 얘기는 천천히 하자’고 했을 뿐 행방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듣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안 의사 유묵 공적관리 필요” 유묵의 행방에 대해 함구하고 있는 최 원장은 ‘걸어다니는 박물관’이란 별명이 있을 만큼 한·일 관계 서지 수집과 연구의 1인자로 꼽힌다. 안중근 연구에도 조예가 깊다. 최 원장은 안중근의사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가안위노심초사’ 등을 원소유자인 일본인을 설득해 기증받은 뒤 기념관에 넘긴 바 있다. 안중근의사기념관은 최 원장 측에 유묵 등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나, 현재도 보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고 밝혔다. 최 원장은 ‘일한교의선작소개’ 유묵의 행방을 묻는 서울신문과의 두 차례 전화통화에서 “얘기가 길다. 병원에서 퇴원한 지 얼마 되지 않으니 나중에 얘기하자.”고 밝혔다. “유묵이 존재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면서 전화를 끊었다. 최 원장이 함구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갖가지 추측이 난무한다. 안중근의사기념관의 이혜균 기념사업부장은 “유묵의 일한교의(日韓交誼)란 글이 한국보다 일본을 앞세워 일(日)자를 쓴 것에 대해 안 의사가 친일로 매도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는 말을 최 원장이 하고 다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전했다. 쓰루 게사토시는 “보관 실수로 유묵이 훼손됐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런 사실이 안중근 연구의 대가라는 명성에 먹칠을 할 수 있어 자세한 경위를 밝히지 못하는 것 아닌가.”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최 원장에게 몇 차례 전화를 하거나 직접 만나 유묵에 대해 묻자 편지를 보내라고 해서 유묵을 보고 싶다는 취지로 써 보냈으나 답장이 없었다.”고 말했다. 채내희 안중근의사기념관 사무처장은 “안 의사 서거 102주년을 계기로 최 원장이 ‘일한교의선작소개’의 행방 등에 대해 밝혀 주기를 바라며, 경위야 어찌 됐든 안 의사 유묵 등 관련 자료는 공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황성기·문소영기자 marry04@seoul.co.kr ■‘일한교의선작소개’(日韓交誼善作紹介)는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뒤 체포돼 처형당한 1910년 3월 26일까지 취조, 재판 등에 입회해 통역을 맡았던 소노키 스에키에게 처형 전달인 2월에 써 준 것이다. 유묵은 초대 한국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의거가 이토를 증오해서가 아니라 한국의 독립과 동양 평화를 위한 것이며 이를 계기로 한·일 양국이 단결해 동양 평화 유지에 힘써야 한다는 재판 과정과 사형집행 순간의 증언과 일치하는 귀중한 유묵으로 평가된다.
  • 현충원 ‘이상한’ 묘역 배치

    현충원 ‘이상한’ 묘역 배치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임시정부 요인들의 묘역 위치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임시정부 요인들이 예우는커녕 홀대를 받고 있다는 게 논란의 초점이다. 독립유공자 유족들은 임시정부 요인들이 장군들 묘역 아래에 배치돼 마치 장군들의 휘하인 듯한 모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친일 논란에 휩싸인 장군들의 묘가 장군 묘역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 자체에 더 분노하는 상황이다. ●장군들에 지휘받는 형국 국립 서울현충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을 정점으로 피라미드형 구조를 갖추고 있다. 가장 길지(吉地)로 꼽히는 꼭대기 박 전 대통령 묘소 바로 아래 장군 제1묘역이 배치돼 있다. 장군 제1묘역을 중심으로 김대중·이승만 전 대통령 묘소가 있다. 임시요인 묘역은 멀리 떨어진 장군 제2·제3묘역 아래 놓여 있다. 이곳에는 임시정부 대통령을 지낸 박은식 선생을 비롯, 대한매일신보 초대 총무이자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양기탁 선생, 독립군 양성소인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이상룡 선생 등 대한민국 건국의 토대를 닦은 독립운동가들이 안장돼 있다. 심지어 장군 제2·제3묘역에는 친일 인물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제2묘역의 이응준 장군은 일본 육사 출신으로 일제가 징병제를 실시하자 “기다리던 징병제가 실시됐다.”며 청년들의 참전을 선동, 대좌(대령)까지 올랐다. 제3묘역의 정일권 장군은 만주에서 헌병 상위(대위)로 활동한 전력이 있으며, 이종찬 장군은 일본군 공병 소좌(소령) 출신으로 일제로부터 훈장까지 받았다. 대전현충원의 상황도 별로 다르지 않다. 백범 김구 선생 암살의 배후로 지목받는 김창룡 장군의 묘소는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락원 여사와 아들 김인 선생의 위에 있다. 이에 대해 독립유공자 유족들은 “현충원의 전체적인 배치를 바꾸든지 친일 인물들을 이장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초대 독립군 사령관이었던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 이준식씨는 “백선엽 장군의 경우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인사로 규정했는데, 이런 인물이 임정 요인들의 머리 위에 안장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보훈처·국방부 책임 떠넘기기만 그러나 국립묘지 운영을 담당하는 국가보훈처와 국방부는 책임만 떠넘기고 있다. 보훈처 관계자는 “서울현충원은 국방부가 관리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국방부 측은 “애당초 설계에 문제가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안장 여부와 위치 결정은 보훈처 소관이어서 친일 논란이 있는 사람이라도 국방부가 막을 방법은 없다.”고 해명했다. 한 독립유공자단체 관계자는 “현충원 묘역 배치는 독립유공자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라면서 “예우 차원에서 재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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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무총리실 ◇부이사관 전보 △공공갈등관리지원관 정현용◇서기관 전보△공공갈등관리팀장 손선미△주한미군기지이전지원단 정책조정팀장 김민△조세심판원 조사관 현재빈 ■교육과학기술부 ◇일반직 고위공무원 △국립과천과학관 전시연구단장 최은철△창원대 사무국장 김선옥△교과부 박필환△평생직업교육관 김영철△강원도 부교육감 박기용◇별정직 고위공무원△교원소청심사위원회 상임위원 김기남 ■행정안전부 ◇고위공무원 전보 △조직실장 김상인△경기도 행정1부지사 김성렬△제주도 행정부지사 김형선△감사관 유상수△재난안전실장실 재난안전관리관 송석두△정부청사관리소장 감종훈△중앙공무원교육원 기획부장 정윤기△강원도 기획관리실장 배진환 ■문화체육관광부 ◇부이사관 승진·전보 △2012핵안보정상회의준비기획단 파견 박용철◇과장급 전보△홍보지원국 홍보콘텐츠기획관실 정책광고과장 윤종석△관광산업국 관광레저기획관 녹색관광과장 이경직△2012핵안보정상회의준비기획단 파견 권수진 ■고용노동부 ◇일반직 고위공무원 △중부지방고용노동청장 안경덕◇별정직 고위공무원△전남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 김양현◇국장급 직무대리△대변인 정지원◇과장급 전보△고용정책실 직업능력정책과장 김민석△감사관실 고객만족팀장 마성균△노동정책실 산재보상정책과장 김경윤△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남부지청장 김명철△중부지방고용노동청 강릉지청장 김수곤△부산지방고용노동청 부산북부지청장 이원두△중부지방고용노동청 인천고용센터소장 김영중 ■통계청 ◇국장급 △호남지방통계청장 신승우◇과장급 전보△통계대행과장 윤석은△경제통계기획과장 최성욱 ■병무청 ◇과장급 전보 △감사담당관 최성원△현역입영과장 임중혁△서울지방병무청 징병관 박정환△대전충남지방병무청 〃 최은순 ■농촌진흥청 <경남도 농업기술원>△원장 최복경△기술지원국장 강양수<경기도 농업기술원>△연구개발부장 임재욱△기술보급〃 이상필 ■산림청 ◇부이사관 승진 △기획재정담당관 오기표△산림정책과장 최병암◇과장급 전보△비서관 박은식<과장>△운영지원 이현복△산림자원 이상익△산림경영소득 김형완△산불방지 남송희△치산복원 이명수△산림병해충 윤병현<산림인력개발원>△재해방지교육과장 이중락<지방산림청장>△중부 홍명세△서부 윤정수 ■식품의약품안전청 ◇신규임용 △기획조정관실 비상계획담당관 김선태◇전보(7월 4일자)△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의료제품연구부 의료기기연구과장 오현주△부산지방청 시험분석센터 수입식품분석과장 김형수 ■기상청 ◇고위공무원 승진 △부산지방기상청장 남재철◇3급 승진△총괄예보관 양진관△기상기술과장 김성균△기후정책〃 윤원태◇과장급 전보△국제협력담당관 안명환△수치모델개발과장 박훈△예보기술팀장 이정환△기상산업정책과장 김백조△정보통신기술〃 이동일△부산지방기상청 기후과장 남효원△안동기상대장 안용모△창원〃 조진대△청주〃 최기상△수원〃 허형재△제주지방기상청 예보팀장 구대영△국가기상위성센터 위성기획팀장 윤성득◇서기관 승진△부산지방기상청 예보과장 조서환△목포기상대장 정병석△대전지방기상청 예보과장 하창환△강원지방기상청 예보과장 이선기△제주지방기상청 기후팀장 고정석△기상레이더센터 레이더분석팀장 허복행△항공기상청 정보지원과장 조기현△정책지원팀 유상진△운영지원과 김영동△총괄예보관실 신동현△슈퍼컴퓨터운영과 연혁진△기후예측과 김현경◇과장급 신규 채용△감사담당관 이효선 ■부산시 ◇3급 전보 △감사관(개방형 직위) 조성호△문화체육관광국장 이갑준△북구 부구청장 요원 이철형◇행정4급 전보△여성정책담당관 조숙희△시의회사무처 전문위원 김정호<부구청장 요원>△부산진구 허종성△사하구 전복덕△연제구 박종철<과장>△경제정책 정진학△기업지원 이규환△창조도시기획 권정오△총무 성덕주△체육진흥 정권영△관광진흥 강희천△환경정책 이완호△자원순환 서혜숙<인재개발원>△원장 김윤일△교육운영과장 김숙자△교육지원〃 정완식<파견>△미 볼링그린주립대 이범철◇기술4급 전보△건축정책관 김영기△보건환경연구원장 김기곤△강서구 부구청장 요원 이광욱△낙동강사업본부 사업부장 이근희△국제산업물류도시개발단장 임경모<과장>△기간산업 서만석△도시재생 임기규<담당관>△하천관리 김종경△도시정비 곽영식△건축주택 한성근<건설본부>△토목시설부장 김판섭△건축시설〃 강신윤<국장 요원>△서구 황용태△동래구 양상열 ■충북도 ◇3급 △행정국장 박성수△충주세계조정선수권대회 조직위 파견 강호동△농정국장 박종섭△정책기획관 오진섭△자치연수원장 권영동◇4급△청원부군수 신찬인△보은〃 정한진△음성〃 송인헌△정책기획관실 박영선△법무통계담당관 박완수△자치연수원 교육운영과장 피의섭△북부출장소장 이용재△도로관리사업소장 신연식△산림환경연구〃 안광태△충주시 전원건△공보관 김진형△비서실장 이차영△의회사무처 정책복지전문위원 홍범회△〃 산업경제전문위원 송장섭△보건환경연구원장(개방형) 오용길<바이오밸리추진단>△단지개발과장 김용태△바이오산업〃 정인성<과장>△미래산업 김용국△여성정책 김영환△관광항공 정효진△치수방재 권봉억△자치행정 박은상△체육진흥 이성수△저출산고령화대책 정준영△식품의약품안전 권석규△일자리창출 김재영△농업정책 이진규△농산지원 김기원△문화예술 강성택△균형개발 이상헌△도로 정시영△보건정책 성국현 ■충남도 ◇2급 전보 △자치행정국 총무과(파견 대기) 박한규◇3급 전보△천안시 부시장 박윤근△의회사무처장 이성호△경제통상실장 남궁영△자치행정국장 권희태△문화체육관광〃 이성우△농수산〃 채호규◇4급 승진△지방공무원교육원 교수 강경원△백제문화단지관리사업소장 김순권△농업기술원 총무과장 이윤선△의회사무처 전문위원 신관수△아산시 오건환△경제통상실 기업지원과장 김정호◇4급 전보△홍보협력관 김돈곤△감사위원회 위원장 이완수△농수산국 농촌개발과장 염창선<직대>△지방공무원교육원장 조이현△서울사무소장 정동국△건설교통항만국 도로교통과장 조은하<부군수>△연기군 윤호익△서천군 김종화△태안군 이수연<경제통상실>△일자리경제정책과장 윤영우△전략산업〃 홍민표△국제통상〃 유병덕△투자입지〃 한치흠<의회사무처>△입법정책담당관 이두훈△전문위원 김주찬 최욱환<문화체육관광국>△문화예술과장 이상영△문화산업〃 황선만<자치행정국>△정보화지원과장 김기승△총무과 임헌용 황수철 한규성 황상용(이상 공로연수 파견) 박종구<지방공무원교육원>△총무과장 배동헌△교육운영〃 김세현<보건환경연구원>△원장 서우성△보건환경연구부장 인치경△유갑봉 ■국민권익위원회 △상임위원 박성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장 이한신△문화복지부장 강지훈△시각예술 책임심의위원 김찬동△다원예술·문화일반 〃 김윤희 ■한국전기안전공사 ◇본사 △경영지원처장 이기종△안전정책〃 박지현△전기안전기술교육원장 정기용△전기안전연구〃 김종훈△비서실장 한재진△예산〃 고성일△인력관리〃 한연수△성장동력본부장 임동훈◇사업소 <지역본부장>△서울 이상요△부산울산 송주용△대전충남 정재환△경기 변철균△충북 홍귀석△전북 김학용△경남 정찬호△제주 이은우<지사장>△서울동부 이상조△서울남부 이상목△부산동부 김기종△울산 박윤동△대구서부 김주철△구미칠곡 문이연△경주 박희만△천안아산 김정규△충남중부 최종수△보령청양 최덕기△전남남부 변석태△인천서부 유수현△경기중부 남정윤△경기서부 윤종식△이천여주 박영철△경기북동부 원대희△강원동부 김영선△충주음성 이경남△익산 정인덕△군산 이창환△경남북부 권기영△통영거제 장충섭△김해양산 이정규 ■예금보험공사 △보험정책부장 장건식△법무실장 이흥섭△정보시스템〃 서승성△재산조사〃 양태영△감사〃 김광의△특수자산TF팀장 정욱호△금융감독원 파견 김병만△홍보실장 정대영△대동은행·영남종금 파산재단 파견 전상오 ■서울도시철도공사 △고객서비스본부장 김성호 ■국민체육진흥공단 ◇실장급 전보 △감사실장 김윤수△기금관리〃 김광희△경주사업본부 고객만족실장 황용필△〃분당지점장 안경원△〃 경정훈련원장 이재효△체육과학연구원 정책개발연구실장 유지곤 ■국립공원관리공단 ◇전보 △운영처장 이영석△시설〃 김영래△감사실장 박영덕△비서〃 윤덕구△재난안전부장 이재원△전략기획TF팀장 김두한△국립공원연구원장 권혁균<사무소장>△속리산 백상흠△내장산 안시영△내장산백암 박갑동△덕유산 정석원△오대산 박문규△주왕산 황정걸△다도해해상서부 박용규△소백산 이용민△월출산 정장훈◇승진△탐방지원처장 이임희△재정운용부장 조승익△녹색탐방〃 송동주△환경디자인〃 이수형△변산반도사무소장 서윤석 ■공무원연금공단 ◇부장 승진 △전략기획실 경영평가부장 박인선◇전보△융자사업실장 이기만△ 부산지부장 하광빈△전북〃 심재월 ■정보통신정책연구원 △통신정책연구그룹장 나성현 ■중앙미디어네트워크 <중앙방송>△대표이사 김동섭<중앙일보> [중앙종합연구원 부소장]△경제연구소(논설위원 겸임) 김종수△중국연구소 한우덕△경영지원실장 제찬웅△중앙엠앤비부문 경영지원실장 박형우<중앙일보시사미디어>△경영지원실장 권능오 ■TV조선 △광고사업본부장(상무보급) 박혁규 ■스포츠월드 △생활경제부장(부국장 겸임) 배병만△연예문화〃 류근원 ■산은자산운용 ◇승진 △부사장 김영은
  • 제니퍼 박 스타우트 美국무부 부차관보 ‘혈육의 나라’ 찾다

    제니퍼 박 스타우트 美국무부 부차관보 ‘혈육의 나라’ 찾다

    증손녀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은 망향의 비통함에 애끓다 이국땅에서 숨진 증조부가 꿈에 그리던 그런 나라로 훌쩍 커 있었다. 제니퍼 박 스타우트(한국명 박지영·35). 미 국무부의 부차관보로 동아시아·태평양지역의 공공외교(public diplomacy) 전략을 담당하고 있는 그가 지난 16일 미국 외교관 자격으로 ‘혈육의 나라’를 찾았다. 지난해 9월 부차관보로 임명된 뒤 처음이다. 그의 증조부는 상해 임시정부의 2대 대통령과 대한매일신보(서울신문 전신) 주필을 지낸 백암 박은식(1859년 9월~1925년 11월) 선생이고 할아버지는 광복회장을 역임한 항일무장투사 박시창 장군이다. 국무부 내 가장 젊은 부차관보 중 한명인 그는 “증조할아버지의 영향 덕에 정치·외교에 대한 관심이 내 핏속에 흐르는 듯하다.”며 밝게 웃었다. 2012년 여수 엑스포 등 한국에서 진행 중인 미국의 공공외교 현장을 점검하려고 방한한 스타우트 부차관보를 18일 서울 남영동 주한 미 대사관 공보원에서 만났다. ●워싱턴에서 태어난 임정 대통령 증손녀 스타우트 부차관보는 1976년 미국 워싱턴 DC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이자 박시창 장군의 둘째 아들인 박유종(72)씨가 유학길에 올랐다가 미국에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세계 정치의 수도’에서 그는 백악관과 의회를 바라보며 자연스레 정부와 정치, 공공정책에 대한 관심을 품었다고 한다. 그가 국가 운영에 관심을 가진 것은 운명에 가까운 일인지 모른다. 스타우트 부차관보는 “부모님이 ‘너의 친지들이 한국에서 오랫동안 관직에 있거나 정치를 했기 때문에 너도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의 아버지는 조국이 일제 식민치하에 놓였던 1937년 중국에서 태어나 떠돌았던 ‘디아스포라’였다. 스타우트 부차관보는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한국을 찾을 때 증조할아버지가 잠든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곧잘 들렀다. 스타우트 부차관보의 말처럼 그의 혈육에는 ‘정치의 피’가 흐르는 듯했다. 증조부 외에 큰아버지인 박유철(73) 광복회장 내정자 역시 국가보훈처장을 지내며 녹을 먹었다. 박 이사장은 “지영이가 어려서부터 영특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귀띔했다. 미 의회에서 보좌진으로 잔뼈가 굵은 그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선 뒤 정무직인 부차관보 자리에 올랐다. ‘소프트파워’(정보와 문화, 예술 등을 앞세운 영향력)를 유독 강조하는 현 정부에서 중책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30대 중반의 아시아계 여성이 미국 주류사회의 심장부에 파고들며 느꼈을 고충은 컸을 듯해 어려움은 없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나 스타우트 부차관보는 “한국계로서 불리한 점은 전혀 없다.”며 “(서양계 외교관보다) 동아시아·태평양지역의 문화와 가치, 국민을 이해하는 데 수월해 이점만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美장학프로그램 벤치마킹할 만” 어린 나이 또한 상대국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임무로 삼는 그에게 장점이라고 한다. 젊고 소탈한 성격 덕에 타국의 대학생을 만나 얘기하기가 수월하다. 또 “젊은이의 소통 도구인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 활용에도 익숙해 그들이 어떻게 대화하고 정보를 얻는지 잘 이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사흘간의 짧은 일정 동안에도 육군사관학교와 주한 미 대사관 한국 청년 모임 등을 찾아 의견을 듣는 등 분주하게 보냈다. 스타우트 부차관보는 이제 막 첫걸음을 뗀 한국의 공공외교 정책을 위해서도 조언했다. 핵심은 “국제사회가 한국에 바라는 지원을 해 마음을 사라.”는 것. 특히 한국의 교육시스템과 한류로 대표되는 문화를 타국에 전수한다면 국가이미지를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가지고 있는 교육 시스템에 대한 명성을 활용해야 한다.”면서 “미국의 풀브라이트 프로그램(국제장학프로그램)이 공공외교를 시작하는 한국이 벤치마킹할 만한 모델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균미·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동방신기·카라 사태… 흔들리는 K-POP 진단

    동방신기·카라 사태… 흔들리는 K-POP 진단

    갈등을 빚었던 걸 그룹 카라 3인(한승연, 정니콜, 강지영)과 소속사 DSP미디어가 당분간 5인 체제를 유지하기로 지난 27일 극적 합의하면서 우려했던 해체 위기는 한 고비 넘겼다. 이에 따라 카라가 주연을 맡은 일본 드라마 ‘우라카라’도 예정대로 촬영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남은 상처와 후유증은 상당하다. 니혼·아사히·후지 TV 등 일본 언론은 카라가 일본의 케이-팝(K-POP) 열풍을 이끈 주역이라는 점 등을 들어 ‘한류 영향력 시들해지나’ ‘한국 연예기획사 무슨 문제 있나’ 등의 부정적인 기사를 잇따라 내보내고 있다. 남성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에 이어 카라까지 계약 분쟁을 겪자 사업 파트너로서 한국 연예기획사에 대한 일본 내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일본뿐 아니라 K-POP 열풍이 불고 있는 다른 아시아 지역에서도 동방신기, 카라 사태가 쟁점화되면서 한국 연예인의 전속계약 자체를 믿지 못하는 분위기가 점차 팽배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동방신기·카라 사태가 당장 K-POP 열풍 및 수입에 큰 타격을 주진 않을지 몰라도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K-POP 활로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는 동방신기와 카라 사태로 향후 한국 가수들의 외국 진출이 더 까다로워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동방신기와 카라 사태가 연이어 터지면서 아시아권 미디어 관계자 및 투자자들에게 한국 가수 및 연예기획사가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다.”면서 “특히 일본처럼 연예 사업 역사가 길고 틀이 잘 잡혀 있는 나라에서 볼 때 한국 가요계에 대한 불신감을 심어준다는 점에서 단순히 가수 그룹 팀 하나가 해체되는 문제를 떠나 K-POP 열풍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카라와 동방신기 사태가 장기적으로 K-POP 공급 및 투자 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고, 이로 인해 자연적으로 K-POP 위상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성우진 대중음악평론가는 “외국에서는 한국 가요 비즈니스를 주먹구구식으로 본다.”면서 “K-POP 열풍 자체가 거품이 많고, 체계화됐다기보다 이미지 위주로 선도됐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 가수들에 대한 투자를 더욱 꺼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K-POP의 해외 투자 활로가 좁아지면서 자연적으로 K-POP 위상이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해외 진출을 모색하던 다른 국내 가수까지도 이번 카라 사태로 극심한 피해와 곤란을 겪고 있는 게 사실이다. 카라·동방신기 사태를 한국 가요사업에 대한 자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씨는 “아시아 한류를 선도하는 아이돌 사업이라는 게 얼마나 이전투구판인지를 이번 사태를 통해 그대로 보여줬다.”면서 “한국 가요 수출 사업의 내부가 음악, 문화, 콘텐츠에 대한 고민보다 머니게임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기회에 한류니 K-POP이니 하는 엄청난 문구들의 본질적인 측면을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연예기획사와 소속 가수들 간에 뿌리 깊은 노예계약과 불신의 고리를 끊는 것이 원론적이지만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은식 평론가는 “계약사항과 관련해 연예기획사와 소속가수 간 갈등은 고질적”이라면서 “1차적으로 소속사가 가수와의 계약을 보다 합리적으로 맺는 등 개선해야 할 점이 있고, 가수들도 속칭 뜨기 전과 뜨고난 뒤 입장을 달리할 게 아니라 애초부터 불합리한 계약을 하지 않는 대범함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카라 사태 이후 일본 네티즌들은 각종 포털 게시판에 “한국 연예인들은 인기가 조금 있으면 바로 분쟁이 시작된다.”, “한국 소속사는 도대체 어떻게 하기에 매번 트러블만 생기는지 모르겠다.”는 등 한국 연예시스템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사설] 한국사 고교 필수과목 지정만으론 안 된다

    고교 과정에서 선택과목으로 바뀐 한국사가 필수과목으로서 위상을 되찾게 됐다. 어제 열린 고위 당·정·청협의회는 역사 교육을 대폭 강화하기로 하고, 먼저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키로 했다. 또 신규 교원 채용에서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3급 이상을 딴 사람에게만 응시 자격을 부여하는 한편 학생들이 역사 수업에 관심을 갖게끔 쉬운 교과서와 토론 중심의 수업 진행 등 개선책을 세우기로 했다. 우리는 역사 교육 강화 방침을 환영하면서 한 가지 요구를 덧붙이고자 한다,. 비록 선택 과목이라고는 하나 현재 전국의 모든 고교에서 이미 한국사를 가르친다. 그러므로 필수과목 지정이 기분 좋은 소식이긴 해도 고교 교육현장에서 한국사 과목의 비중을 실제로 높이는 데는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다. 대학입시가 고교 교육 내용을 좌지우지하는 현실에서는 각 대학에서 한국사 성적을 필수로 반영해야 고교 교육이 이를 따라간다는 점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 서울대만이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한국사 성적을 필수적으로 요구할 뿐 다른 주요 대학들은 한국사를 사회탐구 선택과목의 하나로만 대우한다. 그 결과 오히려 한국사를 입시 과목으로 택하는 학생의 숫자는 아주 적어졌다. 한국사를 선택하면, 학업 능력이 뛰어난 서울대 지망생들과 경쟁해야 하므로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사 과목의 학업량이 다른 사회 과목의 2~3배에 이르고 암기할 분량 또한 매우 많기에 수험생 대부분이 기피하는 실정이다. 그래서 일선고교에서는 한국사 시간에 교사가 학생 서너명을 놓고 수업을 진행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따라서 한국사 교육을 강화하려면 고교 필수과목 선정만으론 미흡하다. 교과부가 적극 나서고 각 대학이 그 뜻을 받아들여 대학입시에서 한국사 성적을 꼭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신규 교원 채용은 물론이고 공무원 공채와 공공기관 입사시험 등에서 한국사시험 반영 정도를 높여야 한다. 백암 박은식 선생이 누누이 강조했듯이 제 나라 역사는 바로 민족과 국가의 혼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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