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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설기념사업회장에 최도열씨

    배설기념사업회장에 최도열씨

    배설(베델)선생기념사업회는 최근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총회를 열어 최도열 숭실대 행정학과 교수를 신임 회장으로 선임했다고 21일 밝혔다. 최 신임 회장은 국회 예산정책처 평가위원, 민주화추진협의회 학술위원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국가발전정책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기념사업회는 영국 출신 언론인으로 1904년 박은식, 양기탁, 신채호 선생과 함께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를 창간해 항일 언론 투쟁을 벌인 어니스트 베델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설립됐다.
  • [인사]

    ■미래창조과학부 ◇부이사관 승진△장관비서관 강상욱△정보보호기획과장 허성욱△통신정책기획과장 정창림 ■보건복지부 △해외의료사업과장 백형기△국민연금정책과장 김기남△대통령비서실 보건복지비서관실 파견 최경일 ■경찰청 ◇본청△홍보담당관 유진규△재정담당관 홍명곤△규제개혁법무담당관 최현석△자치경찰TF팀장 유승렬△경찰위원회 이종규△기획조정담당관실 모상묘△감찰담당관 김도형△감사담당관 고범석△인권보호담당관 이대형△피해자보호담당관 박근주△경무담당관 윤동춘△교육정책담당관 엄기영△복지정책담당관 김광호△정보화장비기획담당관 이호영△장비담당관 강대일△범죄예방정책과장 이충호△생활질서과장 박창호△여성청소년과장 우철문△성폭력대책과장 신윤균△수사기획과장 강신걸△수사1과장 최주원△수사2과장 임홍기△특수수사과장 손제한△수사기획과 최준영△사이버안전과장 김진홍△사이버수사과장 장우성△디지털포렌식센터장 오승진△과학수사담당관 이형세△교통기획과장 박종천△교통안전과장 홍완선△교통운영과장 김주원△경비과장 변관수△경호과장 임종하△항공과장 권태민△테러대응과장 김용종△위기관리센터장 김병기△평창올림픽기획과장 이진수△정보1과장 윤시승△정보3과장 이용배△정보4과장 박형길△보안1과장 김순호△보안2과장 김성용△보안3과장 김성완△보안4과장 이준배△외사기획과장 한종욱△외사정보과장 최호열△외사수사과장 임병호△국제협력과장 박기태△외사기획과 임만석 최성규 정지천 강기택◇경찰대학△교무과장 김홍근△학생과장 오동근△치안대학원준비팀장 이용욱◇경찰교육원△운영지원과장 이승협△교무과장 이하배◇중앙경찰학교△운영지원과장 박동수△교무과장 조희련◇경찰수사연수원△운영지원과장 김환권△교무과장 김영호◇국립과학수사연구원△행정지원과장 박규남◇경찰병원△총무과장 위득량◇서울지방경찰청△홍보담당관 곽병우△청문감사담당관 이익훈△112종합상황실장 이동환<과장>△경무 손장목△인사교육 최종문△정보화장비 이연태△생활안전 한형우△생활질서 곽순기△여성청소년 고평기△사이버안전 윤성혜△경비2 홍기현△정보1 이상률△정보2 윤희근△보안1 이성재△보안2 김상우△외사 이인상<대장>△광역수사 노규호△지능범죄수사 김성종△제1기동 임정주△제2기동 김낙동△제4기동 오부명△제5기동 최익수△국회경비 이범규△청사경비 황천성△22경찰경호 정태진△202경비 김준영<서장>△중부 김광식△종로 김수환△남대문 강언식△서대문 이수경△혜화 송준섭△용산 김병찬△동대문 정훈도△마포 유재성△영등포 조병노△성동 윤승영△광진 곽정기△서부 최병부△강남 김광석△관악 이지춘△강동 백동흠△종암 이상현△구로 김소년△서초 최승렬△양천 박지영△노원 엄명용△은평 김항곤△도봉 전용찬△수서 박우현<파견>△경무과 서연식 박경정 홍석기△수사과 임경우 최인석◇부산지방경찰청 <담당관>△홍보 윤경돈△청문감사 박창식<과장>△정보화장비 감기대△교통 정남권△경비 윤영진△생활안전 정석모△사이버안전 정규열△정보 김영일△보안 김종구△외사 정명시<서장>△중부 박도영△동래 김해주△영도 박중희△동부 양명욱△서부 정창옥△해운대 류해국△사상 권창만△기장 양영석◇대구지방경찰청△청문감사담당관 손영진<과장>△정보 양시창△보안 박희룡△여성청소년 방원범△수사 장호식△형사 서호갑△경비교통 이창록<서장>△중부 구희천△동부 정식원△북부 이상탁△수성 박종문△달서 김훈찬◇인천지방경찰청 <담당관>△홍보 이화선△청문감사 김상철<과장>△정보화장비 전기완△경비교통 김석열△생활안전 정지용△여성청소년 이기주△수사1 유제열△수사2 전준열△형사 이재홍△보안 하용철△외사 김관<서장>△중부 안영수△남부 조종림△부평 김봉운△삼산 이창수△서부 조은수△강화 안정균◇광주지방경찰청△청문감사담당관 임성재△112종합상황실장 최규운<과장>△경무 김상철△정보화장비 김현식△정보 김영근△보안 윤중섭△생활안전 김선권△여성청소년 박종열△수사 양우천△형사 김학남△경비교통 이혁<서장>△북부 임광문◇대전지방경찰청 <과장>△정보 김재훈△여성청소년 유희정△수사 박병규△형사 박종민△경비교통 주진우<서장>△동부 김종범△서부 이동주△둔산 심은석△유성 김재선◇울산지방경찰청△112종합상황실장 정진규<과장>△경무 김성식△정보 진상도△수사 신영대<서장>△중부 김한수△울주 하임수◇경기남부지방경찰청 <담당관>△홍보 김형섭△청문감사 오상택<과장>△경무 김태수△교통 강도희△생활안전 심헌규△여성청소년 이명균△수사 곽경호△사이버안전 양근원△보안 윤치원△외사 이재술<대장>△기동 이왕민<서장>△수원중부 김동락△수원서부 정방원△안양동안 김원환△안양만안 박성민△군포 유충호△성남수정 송호림△성남중원 김광식△부천오정 김기동△광명 이원영△안산단원 한원횡△안산상록 이석권△시흥 최종혁△평택 최규호△화성동부 박형준△용인동부 김상진△광주 노재호△과천 구본숙△의왕 오문교△하남 조상현△안성 연명흠△양평 장성원◇경기북부지방경찰청△청문감사담당관 김성권△112종합상황실장 조용성<과장>△생활안전 이화섭△여성청소년 박영진△정보보안 이창형△보안 박명수<서장>△의정부 진종근△일산동부 김성희△파주 박정보△양주 송호송△구리 최성영△포천 전재희△연천 서민◇강원지방경찰청△홍보담당관 박상경△청문감사담당관 박은식△112종합상황실장 김진복<과장>△정보 김택수△보안 손호중△여성청소년 윤규근△수사2 유철<서장>△강릉 김영관△원주 김형기△삼척 최현순△영월 박문호△고성 이승호△인제 김성근△철원 정채민△화천 김도상△강원 양구 최지붕◇충북지방경찰청△홍보담당관 김정환△청문감사담당관 박달순△112종합상황실장 현춘희<과장>△경무 남정현△정보화장비 정희영△여성청소년 이우범△수사 김상문△형사 오지용△경비교통 전순홍<서장>△충주 이길상△제천 전병용△영동 이동원△괴산 조성호△단양 정영오△보은 이민수△옥천 류재화△진천 김민호◇충남지방경찰청△112종합상황실장 이동섭<과장>△정보화장비 김황구△정보 박세석△보안 김영배<서장>△당진 장창우△예산 이재승△서천 조기연△청양 남경순◇전북지방경찰청△홍보담당관 이성순<과장>△경무 박정근△생활안전 김재석△수사 이후신<서장>△정읍 김종화△완주 안상엽△고창 박헌수△임실 김광호△순창 신일섭△진안 남기재△장수 전준호△무주 나영민◇전남지방경찰청△112종합상황실장 박상진<과장>△정보화장비 진희섭△정보 이명호△보안 박종식△경비교통 이삼호<서장>△순천 김홍균△나주 임성덕△광양 서병률△무안 정경채△영광 임춘석△화순 박영덕△장성 정재윤△곡성 김영창△구례 김을수◇경북지방경찰청△청문감사담당관 최석환<과장>△경무 정흥남△정보화장비 김성수△정보 김대현△보안 이갑수△생활안전 경성호△형사 김봉식<서장>△경주 양우철△포항남부 오동석△구미 김한섭△경산 정상진△김천 김영수△상주 김해출△문경 이희석△청도 김영환△영덕 전오성△봉화 손부식△성주 도준수△청송 권혁준△군위 장병덕◇경남지방경찰청△홍보담당관 김오녕<과장>△경무 박천수△보안 윤창수△외사 이병진△수사 김성철△형사 황철환△경비교통 진영철<서장>△창원서부 이정동△마산중부 곽예환△김해중부 김상구△양산 정재화△거제 김주수△통영 김인규△거창 한흥수△합천 배진환△하동 우승관△함양 심태환△산청 황재규△함안 최인화△의령 김균◇제주지방경찰청△청문감사담당관 박재천<과장>△수사1 최보현△경비교통 양태언△정보 윤주현△보안 장원석△외사 맹훈재<서장>△서귀포 김진우◇대기 <경무과>△서울 김경원 김청수 김성섭△대구 정동식△인천 천범녕 배영철 박달서 반병욱△광주 오윤수△경기남부 이석 정경택△강원 백운용 이용완 송민주△충북 김두련△충남 홍덕기△전북 이승길△전남 우영호 백혜웅△경북 정은식 주의영△경남 전병현 박금룡△제주 고석홍◇치안지도관 <경무과>△서울 이자하 김동욱 신현규 정규열△부산 석봉구△대구 김선섭 배기명△인천 양동재△광주 문병훈△대전 송인성△울산 안현동△경기남부 김종식△충남 고재권△전북 박정환△경북 김원범 이근우△경남 서성목 강기중 유병조◇교육 <치안지도관>△서울 이병우 임경칠 이경자 이서영 박주현 송영호 한상오 박동주 이원준 김성준 강상길 오익현 김종필 이규환 류미진 박찬규 박준성 서정순 송유철 김장호 윤휘영 전창훈 이연재 이영우 탁기주 김기헌 임성순 강일원 김태철 박인배 신종묵 박희동 남제현 김형률△부산 강일웅 김만수△대구 신동연△인천 임실기△경기남부 조성복 김경진 류동혁 장한주 정재남△강원 이동우△충북 신효섭△전북 최홍범 송승현△전남 임태오△경북 유오재 ■경기도 △대변인 이승기△연정협력국장 이우철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승진△부원장 정헌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R&D평가센터장 이길우 ■폴리뉴스 △편집국 부국장 겸 폴리피플 편집장 조창용 ■서울아산병원 △진료부원장 박승일△교육부원장 김재중△기획조정실장 김종혁△심장병원장 정철현△감사실장 박수성△홍보실장 최기준△의료정보실장 최인철△진료의뢰협력센터실장 이창근△경영지원실장 정태경 ■미래에셋캐피탈 ◇부사장 승진△대표이사 김승건 ■대보그룹 ◇대보건설△이사 이동우 양영규 조인영 최희원△이사대우 김현태 정종찬◇대보정보통신△이사 조왕래△이사대우 채승언 정민우◇대보유통△이사 김창섭 강신문◇서원레저△이사 최성규◇대보실업△이사대우 김현철 ■BGF리테일 ◇임원 승진 <상무>△4권역장 조용준△재무지원실장 류철한◇직책 선임△운영지원본부장 서유승△상품본부장 송재국△3권역장 김영식△커뮤니케이션실장 민승배◇계열사 대표 선임△사우스스프링스 대표 정필용
  • [인사]

    ■미래창조과학부 ◇고위공무원 전보△소프트웨어정책관 이상학 ■국방부 ◇과장급 인사△인력정책과장 권대일△기획총괄담당관 윤현주 ■행정자치부 ◇실장급 전보△제주특별자치도 행정부지사 전성태 ■경찰청 ◇경무관 승진 및 전보 내정△국립외교원 파견 윤외출△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파견 이명교△서울 송파경찰서장 안종익△대구 성서경찰서장 이규문△인천국제공항공찰대장 조용식△광주지방경찰청 2부장 윤명성△울산지방경찰청 1부장 김병수△경기 수원남부경찰서장 이문수△경기 부천원미경찰서장 이문수△충북지방경찰청 2부장 정용근△충북 청주흥덕경찰서장 윤소식△충남지방경찰청 1부장 박희용△전북 전주완산경찰서장 강황수△전남지방경찰청 1부장 김준철△경북지방경찰청 1부장 김수영△경남 창원중부경찰서장 김희규◇경무관 전보 내정△경찰청 대변인 유현철△경찰청 정보화장비정책관 김규현△경찰청 수사기획관 이영상△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장 황운하△경찰청 사이버안전국장 김진표△경찰청 대테러위기관리관 노승일△경찰청 평창올림픽기획단장 김교태△국무조정실 파견 최해영△치안정책관 우종수△경찰대 교수부장 임용환△경찰대 학생지도부장 배봉길△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장 진교훈△경찰수사연수원장 김헌기△서울지방경찰청 경무부장 이상로△서울지방경찰청 생활안전부장 임호선△서울지방경찰청 경비부장 송갑수△서울지방경찰청 보안부장 허경렬△서울지방경찰청 기동단장 김병구△부산지방경찰청 1부장 서범규△부산지방경찰청 2부장 이순용△부산지방경찰청 3부장 전창학△대구지방경찰청 1부장 김수희△대구지방경찰청 2부장 이광석△인천지방경찰청 1부장 이운주△인천지방경찰청 2부장 정승용△인천지방경찰청 3부장 연정훈△광주지방경찰청 1부장 김재규△울산지방경찰청 2부장 현재섭△경기남부지방경찰청 1부장 양성진△경기남부지방경찰청 2부장 박명춘△경기남부지방경찰청 3부장 하상구△경기 분당경찰서장 김해경△강원지방경찰청 1부장 유진형△강원지방경찰청 2부장 이의신△충북지방경찰청 1부장 진정무△충남지방경찰청 2부장 이은정△전북지방경찰청 1부장 장하연△경북지방경찰청 2부장 이원백△경남지방경찰청 1부장 김흥진△경남지방경찰청 2부장 송병일△제주지방경찰청 차장 박세호◇총경 승진 예정△경기남부 1부 경비 조성복△전북 1부 경무 최홍범△인천 2부 생활안전 임실기△전남 1부 정보3 임태오△강원 1부 인사 최지봉△전북 1부 정보3 송승현△부산 1부 경비 강일웅△서울 정보화장비 정통운영1 임경칠△부산 2부 생활안전 박재천△서울 경무 경무 이경자△제주 형사 강력 장원석△부산 청문감사 감찰 김만수△부산 2부 강력 석봉구△서울 교통안전 교통안전 이서영△서울 종로 정보 박주현△서울 청문감사 감찰 모상묘△서울 정보2 정보4 송영호△서울 수서 생활안전 한상오△본청 사이버수사 수사기획 최준영△서울 수사 지능범죄 박동주△경기남부 부천원미 정보보안 이승호△서울 강남 생활안전 김정환△서울 종로 경비 이원준△본청 정보2 정보1 김성준△본청 정보1 정보1 강상길△본청 감찰 감찰기획 오익현△서울 송파 형사 장병덕△서울 영등포 경비 김종필△서울 경비1 경비2 이규환△본청 생활안전 112운영 류미진△서울 양천 여성청소년 박찬규△경기남부 1부 인사 김경진△경기북부 정보보안 정보2 임성재△서울 교통안전 교통순찰 신현규△서울 생활안전 생활안전 박준성△본청 특수수사 수사1 김도상△강원 1부 경무 이동우△대구 청문감사 감찰 손부식△서울 성북 여성청소년 서정순△대구 2부 생활안전 신동연△경북 홍보 홍보 유오재△본청 기획조정 기획 송유철△경기남부 3부 보안1 정재남△경기남부 1부 기획예산 류동혁△경기남부 3부 정보5 장한주△서울 강서 생활안전 김장호△본청 성폭력대책 성폭력대책 윤휘영△본청 인사 인사기획 전창훈△서울 보안1 보안1 이진수△충북 홍보 홍보 신효섭△충남 청문감사 감찰 고재권△전북 2부 강력 박정환△서울 홍보 홍보협력 김동욱△인천 2부 강력 양동재△서울 송파 생활안전 이연재△경남 홍보 홍보 서성목△대전 2부 경비교통 경비경호 송인성△서울 남대문 교통 정규열△대구 2부 여성보호 배기명△본청 홍보 홍보협력 이영우△서울 형사 강력 탁기주△대구 1부 인사 김선섭△서울 경무 특별감찰 김기헌△부산 부산진 여성청소년 우승관△광주 1부 정보3 윤주현△부산 2부 사이버수사 방원범△경북 2부 수사2 이근우△본청 경무 경무 임성순△경남 마산중부 생활안전 최인화△서울 광진 생활안전 강일원△서울 202경비 경비 김태철△본청 경무 경리 박은식△서울 경무 조직법무 이용욱△본청 수사기획 수사기획 임경우△본청 보안1 보안1 김영호△서울 혜화 경비 박인배△본청 경비 경비2 신종묵△경남 1부 인사 강기중△광주 북부 생활안전 문병훈△본청 형사 강력 박희동△울산 1부 경무 안현동△본청 감찰 감찰 여진용△전남 목포 여성청소년 김현식△본청 기획조정 조직 남제현△서울 구로 정보보안 김형률△경남 2부 경비 유병조 ■한국수자원공사 ◇본부장△인재개발원장 강우규△수변사업본부장 장재옥△해외사업본부장 박원철△K-water융합연구원장 김성한△강원지역지사장 김수명△금·영·섬권역본부장 강병재△충청지역지사장 김한수△광주전남지역지사장 한호연△경남부산지역지사장 이송희△시화사업본부장 전시권△낙동강권역본부장 김혁호◇부서장△조직문화혁신실장 소진홍△기획조정실장 김인△경영관리실장 양진식△기술안전실장 김선욱△인재경영처장 김덕중△재무관리처장 박평록△법무처장 박운섭△정보관리처장 길준표△사업경영처장 정영래△수자원관리처장 박정수△수도기술처장 최등호△통합물관리처장 김현식△통합물정보처장 박재영△사업기획처장 박세출△수자원사업처장 강기호△수도사업처장 문경훈△상하수도처장 김만재△설계처장 차형선△수변기획처장 전송광△수변환경처장 정태갑△부산에코델타시티건설단장 이규남△해외기획처장 황기성△해외사업처장 황영진△K-water융합연구원 R&D혁신처장 채효석△K-water융합연구원 물정책연구소장 김상렬△K-water융합연구원 물순환연구소장 이한구△한강권역기획처장 류재면△한강권역물관리처장 이준근△한강권역사업처장 안정호△수력댐일원화추진단장 이화익△과천권관리단장 김갑식△성남권관리단장 신창수△고양권관리단장 권형준△충주댐관리단장 김진수△아라뱃길관리단장 박도수△횡성원주권관리단장 김균동△태백권관리단장 최기선△평화의댐관리단장 김용명△금·영·섬권역기획처장 이범우△금·영·섬권역물관리처장 정찬△금·영·섬권역사업처장 김인수△전주권관리단장 김한경△용담댐관리단장 채봉근△섬진강댐관리단장 변종만△청주권관리단장 김진문△천안권관리단장 최은경△서산권관리단장 이병두△금산권관리단장 이재홍△보령권관리단장 이용일△충북서부권관리단장 이용길△대청수도건설단장 김세환△광주권관리단장 홍용선△전남서남권관리단장 조용성△전남북부권관리단장 정구응△낙동강권역기획처장 박재욱△낙동강권역물관리처장 강왕희△낙동강권역사업처장 김대근△고령권관리단장 최상찬△포항권관리단장 권태희△창원권관리단장 정환삼△성덕댐관리단장 김재희△영주댐건설단장 황진수△낙동강남부권관리단장 김진원△안동권관리단장 김익동△울산권관리단장 황재문△합천댐관리단장 유광식△남강댐관리단장 조홍영△시화관리처장 서석규△시화사업처장 박서규△시화조력관리단장 장태현 ■한국철도기술연구원 △녹색교통물류시스템공학연구소장 권용장△물류시스템연구실장 이석 ■신아일보 △경제부장 윤광원 ■Sh수협은행 ◇전보 <본부 부서>△전략기획부장 신학기△자금부장 양기욱△수산금융부장 박양수△감사실장 정철균△해양투자금융센터장 위종환△IT지원부장 강인범△심사부장 주성윤△인사총무부장 서제호△신탁사업실장 임동훈△여신정책실장 장문호△IT개발실장 박종훈△수도권여신관리센터장 전재현△미래창조실 미래기획팀장 이기동◇영업점△동부영업본부장(서울중앙지점장 겸직) 최정수△남부영업본부장(양재역지점장 겸직) 김영갑△서부영업본부장(여의도지점장 겸직) 어준선△인천영업본부장(경인지역금융본부장 겸직) 김진균△본점금융센터장 한명애△여의도증권타운지점장 송재영△부산지역금융본부장 신상용△제주지역금융본부장 양우주△충청지역금융본부장 임세기△경북지역금융본부장 민원기 ■미래에셋대우 ◇실장△글로벌기업분석실 김창권△멀티에셋전략실 유승선△감사실 김수환 ■안국약품 △웰빙사업부장 김연수△마케팅1사업부장 김진권△마케팅2사업부장 배경득△지방종합병원사업부장 박종일 ■JW그룹 ◇JW홀딩스△재무관리본부장 최지우△정도경영실장 김경복◇JW중외제약△신약연구센터장 이경준△마케팅전략본부장 김용관△부산지점장 구자형△품질보증1부장 정윤주△원료플랜트장 편도규△품질보증2부장 김관종△남부의원지점장 박상욱△생산부장 박인선△경인종병지점장 송태웅◇JW신약△경영기획실장 한상영△경영관리팀장 이명균◇JW생명과학△경영기획실장 함은경△제품플랜트장 고재천 ■무림 ◇승진 <전무>△진주공장장 및 제지연구소장 황기연<이사>△해외영업1부문장 정원식△해외영업2부문장 김유곤△울산공장 생산담당 김경동△진주공장 생산담당 김동환<이사대우>△인사노무부문장 배홍섭△전략기획실장 김국동△국내영업2부문장 최영두
  • 식민성에 갇힌 역사학, 해방은 언제 오나

    식민성에 갇힌 역사학, 해방은 언제 오나

    한국 역사학의 기원/신주백 지음/휴머니스트/448쪽/2만 3000원 한국 역사학은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 일제 강점기로 인한 식민성과 분절성, 그리고 분단성에서 자유롭지 않은 ‘구속된 학문’이라는 점에서다. 역사학이 여타 다른 학문보다 해명해야 할 부분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해방 이후 70년이 흘렀지만 극복되지 않는 식민사관 또한 이중적 성격을 띠고 있다. 식민주의를 근대의 일부로 여겨 우리 역사학을 근대 역사학의 산물로 위치 짓는 시각부터 반대로 예외적인 역사 인식으로 간주하며 근대 역사학의 영역에서 배제하는 경향까지 상호 모순적 접근도 공존한다. 이 책은 19세기 말부터 1950년대까지의 ‘한국 역사학의 역사’를 제도와 주체, 역사 인식이라는 세 측면에서 세세히 관찰하며 그동안 축적된 역사학의 지형들을 더듬어 나간다. 저자는 우리 역사학의 식민성이 내재화되는 과정을 좇는다. 박은식의 ‘한국통사’, 정인보의 ‘조선사연구’(서울신문사), 안재홍의 ‘조선상고사감’(민우사) 등의 민족주의 역사학과 식민주의 역사학의 대립 구도를 짚어 내는 동시에 일제에 포섭되어 간 우리 역사학의 부끄러운 장면들을 되살려 낸다. 조선총독부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영구적 근본적인 사업은 조선인의 심리연구이자 역사적 연구로 저들의 민족정신을 철저히 조사”하는 것이라는 발언대로 총독부는 한반도 강점 초기부터 조선 역사에 적극 개입해 왔다. 바로 식민지 지배담론을 장악하려는 ‘관제 사학’의 탄생이다. 조선의 역사 기술을 통해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한 총독부는 식민주의 역사학을 이끌 중심축으로 경성제국대학을 활용한다. 1926년 4월 경성제국대학 시업식. 초대 총장인 핫토리 우노키치는 “지나문화와 조선문화가 일본문화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한 최적의 땅이 경성”이라며 “여러 방면에 걸쳐 조선연구를 행하여 동양문화연구의 권위가 되어 달라”고 훈시한다. 저자는 경성제국대학이 식민지 조선의 차별적 고등교육체계의 최고 정점에 위치하며 일본 도쿄제국대학이 소화하는 서구 학문체계와 내용을 조선인 사회에 유입시키는 창구 역할을 했다고 규정한다. 경성제국대학 사학과 개강 당시 조선사 강좌 교수는 조선사학 최초의 박사였던 이마니시 류와 총독부 학무국 편찬과장을 지낸 오다 쇼고다. 두 사람 모두 조선사편찬위원회와 조선사편수회의 위원으로 식민주의 역사학 형성에 관여했다. 이마니시 류는 단군이 고려 중기에 이르러 개국시조로 가작됐다고 봤고, 오다 쇼고는 조선사에서 단군과 기자 항목 기술을 배제시켰다. 저자는 “1929년 제1회 졸업생을 배출하기 시작한 경성제국대학 사학과는 식민주의 역사학을 확대 재생산하는 도구가 됐다”고 지적한다. 이 지점에서 들여다볼 인물이 총독부의 조선사 집필에 참여하며 일제의 제도권 사학 주축이 된 이병도다. 그는 해방 이후 역사학계 주류로 떠오른 이른바 ‘서울대학파’의 학맥을 대표하는 ‘학문 권력’이 된다. 식민성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 대학의 역사학이 ‘국사’(한국사), ‘동양사’, ‘서양사’ 등 3분과 체제로 고착된 건 명백히 일제에 의해 이식된 잔재다. 동북아시아 국가 중 역사를 3분과 체제로 나눈 건 한국과 일본뿐이다. 저자는 이를 제도로서의 ‘식민성 내재화’로 규정한다. 저자는 한국 역사학의 식민성이 해명되지 못한 또 다른 이유로 분단을 꼽는다. 민족주의 사학과 마르크스주의사학은 좌우 대결과 6·25 전쟁을 거치며 사라졌다. 분단은 한국 사회에서 서로 다른 이념 간의 체제 갈등을 압축하는 말이자 ‘역사적 사실’과 인식을 지배하는 강력한 잣대로 작동했다. 저자는 “분단 체제는 지금까지도 우리 역사학계를 문헌 고증사학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일원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이는 역사학계 내부에 고착화된 식민성을 되돌아볼 기회마저 놓치게 했다”고 말한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3·1운동 독립선언서 2점 97년 만에 문화재 등록된다

    3·1운동 독립선언서 2점 97년 만에 문화재 등록된다

    민족 대표 33인이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포’한 1919년 ‘3·1독립선언서’가 97년 만에 문화재로 등록된다. 문화재청은 22일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과 서울 강동구에 거주하는 개인이 각각 소장하고 있는 가로 44.9㎝, 세로 20.1㎝ 크기의 3·1독립선언서 2점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3·1독립선언서는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문서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문화유산이지만 지금까지 문화재로 등록되지 못했다. 문화재청은 숭실대, 독립기념관, 민족문제연구소가 각각 소장하고 있는 3·1독립선언서도 함께 조사했으나 보존 상태가 좋은 2점만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서예박물관 소장본(위 사진)의 경우 33인 중 한 명인 오세창 선생이 소장했다가 유족이 기증한 것이고, 개인 소장본은 3·1운동 당시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습득된 것이다. 역사학자 박은식이 1911년 만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국 역사를 서술한 ‘발해태조건국지(渤海太祖建國誌)·명림답부전(明臨答夫傳)’ 합본도 이번에 문화재로 등록 예고됐다. 발해태조건국지는 고구려 말운과 발해 태조 대조영의 가계를 비롯해 발해의 종교와 풍속을 다룬 서적이고, 명림답부전은 고구려 최초로 국상 자리에 오른 명림답부(67~179)가 외적에 맞서 싸우는 모습을 담은 책이다. 아울러 우리나라 공군이 국민 성금을 통해 최초로 보유한 비행기인 ‘국민 성금 헌납기’(T-6 건국기)와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2일 공군이 미국으로부터 인수해 처음 운용한 전투기인 ‘대한민국 최초 운용 전투기’(F-51D 무스탕)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열린세상] 중국의 국학 열풍을 보면서/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열린세상] 중국의 국학 열풍을 보면서/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필자가 중국에 처음 발을 디뎠던 1990년대 초반 어수선한 현장 속에서도 중국이 곧 일어설 것으로 본 것은 독서열 때문이었다. 베이징역이나 베이징남역 광장에 보따리를 깔고 앉은 사람들 중에서도 책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 나라의 부상을 점치는 데 독서열만 한 것이 없다. 중국의 발전은 곧 서점의 발전과 일치해 여러 도시마다 큰 서점들이 생겨났다. 그런데 근래 중국의 이런 서점들에 새로운 코너 하나가 생겼다. 바로 국학(國學) 코너다. 여기에서 국학이란 중국학 또는 한학(漢學)을 뜻한다. 중국의 고전을 기초로 중국의 전통 사상과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중국의 국학을 소개하고 있는 ‘북대국학과’(北大國學科·북경대국학과)라는 책은 큰 판형에 5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중국 국학을 크게 경학(經學), 철학, 문학의 셋으로 나누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 셋을 정확하게 분류하기란 쉽지 않다. 중국은 원래 방대한 문헌 전통을 갖고 있어서 이를 분류하는 것이 쉽지 않은 난제였다. 그래서 동진(東晋·317~420) 때 이충(李充)이 분류한 ‘경사자집’(經史子集)으로 분류해 왔다. 경(經)은 사서오경을 포함한 경전과 주석서이며, 사(史)는 ‘사기’, ‘한서’ 등의 역사서와 각종 금석문, 자(子)는 제자백가 등의 저서, 집(集)은 학자들의 저서를 뜻했다. 이충의 이런 학문 분류법이 ‘수서경적지’(隨書經籍志)에 채택되면서 중국의 전통 학문 분류법이 됐다. 그러나 서양 세력이 동양으로 물 밀듯이 들어온 서세동점(西勢東漸) 이후 새로운 학문 체계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경학, 철학, 문학의 세 분류가 생긴 것이다. 이는 중국 학문의 전개 시기와 대략 일치시킨 분류법이기도 하다. 경학은 상고부터 양한(兩漢·서기전 202~서기 220) 때까지 집성된 중국 고전을 연구하는 것으로 ‘시경’(詩經), ‘춘추’(春秋) 등의 육경(六經)이 첫머리다. “육경은 대개 역사다”라는 말처럼 중국 고대사 연구의 의미도 있다. 철학은 위진(魏晋)남북조(220~589) 때 현학(玄學)이라고 불렸던 여러 학문과 송명(宋明) 때의 이학(理學), 즉 성리학을 비롯한 여러 철학 등을 연구하는 것이고, 문학은 시, 희곡, 소설은 물론 그림, 음악, 풍수, 의학, 천문, 건축 등 중국과 관련된 모든 분야를 연구하는 것이다. 중국에서 국학 열풍이 이는 것은 우리가 심상하게 넘길 일이 아니다. 그야말로 대국굴기(大國屈起)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국학이 자국의 전통 학문 연구를 넘어서 이웃 국가들에 대한 우월감의 근거로 전환된다면 동아시아는 전혀 새로운 정치 환경을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웃 국가에 대한 무력 침략이란 군사적 방법을 쓰지 않아도 동북공정에서 보여 준 것처럼 현재의 중국 강역을 영구히 자국의 강역으로 삼는 이론적 근거만 마련해도 이웃 국가들에는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 한국은 어떤가. 아직도 일제 식민사관을 비롯해 각종 사대주의 학문이 주류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우리 전통의 사상과 역사를 연구하자고 주장하면 민족주의니 국수주의니 하는 온갖 비난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 선열들이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저항 논리였던 한국 민족주의가 언제부터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했는지 속내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현재의 한국 학문 상태는 한마디로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지식의 하향 평준화는 더 심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 세기 전 일제가 나라를 빼앗으려 할 때 무원 김교헌, 백암 박은식, 단재 신채호 등의 독립운동가들은 일제히 유학의 사대주의를 버리고 한국 전통 사상에 주목했다. 여기에서 한국 국학이 나왔다. 그리고 민족주의는 물론 사회주의를 포함한 모든 독립운동의 이론적 기반이 여기에서 나왔다. 지금 일본의 극우 세력이 약진하는 상황에서 중국의 대국굴기 현장까지 목도하고서도 우리 전통 사상과 역사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이 나라는 또다시 구한말 같은 국난에 직면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인다.
  • [씨줄날줄] 배설과 동주/강동형 논설위원

    [씨줄날줄] 배설과 동주/강동형 논설위원

    배설 선생 기념사업회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았다. 5월 7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합정역 7번 출구 양화진성지공원에서 107주기 배설 선생 경모대회를 개최한다는 행사 안내문이었다. 지난해 처음 이 행사에 참석했는데 예상 밖의 규모에 깜짝 놀랐다. 행사 진행 요원들의 열정도 감동적이었다. 몇 분 안 되는 기념사업회 임원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손님을 맞았다. 군악대의 연주가 이어지고, 대한독립군가선양회 합창단의 배설 선생 송가, 한국전통춤연구회의 진혼무 등 다채로운 행사도 펼쳐졌다. 배설 선생의 본명은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이다. 고종 황제가 영국인인 그에게 배설(裵說)이라는 이름을 지어 줬다고 한다. 그는 영국 런던에서 발간되던 일간지 크로니클의 통신원으로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1904년 3월 10일 한국 땅을 밟았다. 이후 양기탁·신채호·박은식 선생과 접촉하면서 대한제국이 풍전등화에 놓인 것을 알고 1904년 7월 18일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다. 이후 대한매일신보를 통해 을사늑약이 무효라는 것을 밝히는 호외를 발간하고, 국채보상운동을 펼치는 등 대한제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노력하다 1909년 사망한다. 그의 나이 37세였다. 여기까지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프레스센터(서울신문) 1층 로비에 배설 선생의 흉상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드물 것이다. 이곳에는 대한매일신보 영인본도 전시돼 있다. 아울러 배설 선생이 만든 대한매일신보의 창간일 7월 18일이 서울신문 창간 기념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대한매일신보는 일제시대 경성일보의 한글판인 매일신보를 거쳐 해방 후 서울신문, 대한매일, 서울신문으로 제호가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배설 선생은 “나는 죽더라도 대한매일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 동포를 구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제호는 바뀌었지만 올해 창간 112주년을 맞은 서울신문이 선생의 유지를 이어 가고 있다. 그러나 남북으로 분단된 현실 속에서 선생의 유지는 여전히 미완으로 남아 있다. 영화 ‘동주’를 그제서야 봤다. 이 영화를 통해 시인 윤동주의 진면목과 독립운동가 송몽규를 알게 된 건 큰 수확이었다. 앞으로는 몽규가 없는 동주를 상상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영화 ‘동주’를 보면서 배설 선생이 떠오르는 건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부끄럽고, 죄스런 마음이 아닐까 한다. 윤동주는 시를 통해 우리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 영화를 통해 그의 새로운 모습을 봤을 뿐이다. 그런데 배설 선생에 대해서는 너무나 모르고 지내 온 것 같다. 최소한의 도리도 못 한 것이 부끄럽고 죄스럽다.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윤동주의 참회록을 되뇌면서 배설 선생을 추모한다. 강동형 논설위원 yunbin@seoul.co.kr
  • [인사]

    ■산림청 ◇부이사관 승진△기획재정담당관 박은식△운영지원과장 김형완△산림자원과장 진선필△서부지방산림청장 김영철 ■운송신문 △대표이사·발행인 국경완△부사장 겸 편집국장 임재철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행정처장 송병윤△감사실장 김유활△대외협력실장 김정흠△전략기획실장 이성국 ■을지대의료원 △기획처장 이승진△을지대병원 제1부원장 김대경△을지병원 기획실장 권오현 ■순천향대 서울병원 △중환자실장 박석규△중환자부실장 박병원△수술실장 겸 마취통증의학과 과장 옥시영△소화기병센터장 조영덕△신장센터장 겸 신장내과 과장 전진석△내과 과장 겸 글로벌헬스케어센터장 변동원△정신건강의학과 과장 한상우△방사선종양학과 과장 직무대리 박영희△치과 과장 이기철△간호부장 박미영△간호과장 안지순△원무팀장 김민아
  • [달라지는 산림정책 2題] 산림보호구역 해제 어렵고 활용 쉽게

    산림보호구역 해제 절차가 강화되는 대신 보호구역 내 활용은 용이해진다. 산림청은 20일 산림보호구역 지정해제 절차와 방법 등을 담은 산림보호법 시행령 개정안을 21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개정안에 따르면 현재는 공·사유림의 보호구역 지정해제 업무가 지방자치단체장에 위임돼 있지만, 앞으로는 산림청 중앙산지관리위원회의 전문 심의를 거치도록 했다.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훼손을 막기 위한 대책이다.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 벌채나 산지전용이 불허되는 등 재산권 행사가 제한된다. 전국적으로 산림보호구역은 45만㏊로 이 가운데 수원함양보호구역(27만㏊)과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15만㏊)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은 국·공유림 위주여서 관리가 되지만 수원함양보호구역은 각종 개발행위로 줄어드는 추세다. 또 친환경 장사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을 제외한 구역에서 수목장림 조성이 허용된다. 수목장림을 확대하고 산림을 효율적으로 이용한다는 취지에서다. 수목장림 조성이 가능해지는 보호구역은 먹는물을 공급하는 상수도보호구역(3종)을 제외한 제1종·2종 수원함양보호구역과 경관보호구역, 생활환경보호구역 등이다. 설치 면적은 국가 또는 지자체가 설치할 경우 10만㎡ 미만, 그 외는 3만㎡ 미만까지 가능하다. 박은식 산림환경보호과장은 “국가보호지역이 국토의 12.6%로 유엔의 권고기준(17.0%)에 미달한다”면서 “산림보호구역 확대와 보호구역 지정해제 심의를 통해 무분별한 개발을 방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독립운동가 박은식 선생 흉상 서울대에서 제막

    독립운동가 박은식 선생 흉상 서울대에서 제막

    한국독립운동지혈사, 한국통사 등을 저술한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을 지낸 박은식(1859~1925) 선생의 흉상이 30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사범대학 역사관 앞에서 제막됐다. 황해도 해주 출신인 박은식 선생은 1900년부터 서울대 사범대학의 전신인 한성사범학교에서 교관으로 재직하며 서양식 교육을 조선의 현실에 맞게 적용할 것을 주장한 교육가이기도 하다. 1905년에는 서울신문의 모태인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 활동하며 언론을 통한 계몽운동을 펼쳤다. 전태원 서울대 사범대학장은 “땅은 빼앗겼어도 국혼이 살아 있으면 그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는 박은식 선생의 말씀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볼 때”라고 말했다. 흉상 건립은 박은식 선생 타계 90주년에 맞춰 지난해 4월부터 서울대 사범대학 주도로 추진됐다. 실제 제작은 올 4월 시작돼 10월에 완성됐다. 제작은 서울대 조소과 전준 명예교수가 맡았다. 전 교수는 “독립운동가인 박은식 선생의 내면을 표정에 담아내는 작업이 쉽지 않아 제작 기간이 다소 길어졌다”며 “선생의 인생이 응축돼 있는 노년의 모습을 표현했다”고 밝혔다. 흉상 앞에는 “국교(國敎), 국사(國史)가 망하지 아니하면 국혼은 살아 있으므로 그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는 한국통사의 결론 부분을 새긴 화강석을 세웠다. 제막식에는 박은식 선생의 손자인 박유철 광복회장을 비롯해 이수성 전 국무총리, 성낙인 서울대 총장,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을미사변의 치욕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을미사변의 치욕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을미년 8월 20일 일본인이 우리 국모 명성황후를 시해하니 그 사건의 대략적인 전말은 다음과 같다.(중략) 새벽녘에 서문에 이르러 훈련대와 일본군이 서로를 앞뒤로 호위하며…(중략) 광화문에 도착해 바로 근정전으로 들어가니,…(중략) 연대장 홍계훈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궁궐로 난입한 훈련대를 큰소리로 꾸짖다가 일본군에게 살해되었다. 궁내부 대신 이경직 또한 일본 병사의 칼에 죽었다.”(박은식의 ‘한국통사’ 중에서) 1900년 9월 남산 아래 장충단이 생겼다. 1895년 10월 8일(음력 8월 20일) 을미사변 당시 순국한 홍 장군과 이 대신, 부령 염도희, 영관 이경호 등을 배향해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5년 뒤 을사늑약이 체결됐고 1908년 8월 일제에 의해 장충단이 폐사되면서 제향도 맥이 끊겼다. 이것을 1988년에 중구가 복원해 매년 추모제향을 올리고 있다. 8일 중구는 남산공원 장충자락(옛 장충단공원)에서 120주기 추모제향을 거행했다. 이날 최창식 구청장이 초헌관을, 이경일 중구의회 의장이 아헌관을, 이도철 참령의 증손인 이해권 제천문화원장이 종헌관을 각각 맡아 봉향했다. 제례위원은 후손들과 15개 동 자치위원장으로 구성했다. 이날 장충단제는 추모제향에 이어 추모시 낭송, 한국무용, 추모곡 및 판소리 연주 등으로 진행됐다. 마지막 헌화에는 선열의 후손들과 일본인 등이 참석했다. 수염을 붙이고 제관복을 갖추며 초헌관을 충실히 재현한 최 구청장은 “추모제향은 선조들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고 애국애족의 마음을 다지는 소중한 기회”라며 “역사는 항상 반복된다. 과거 뼈아픈 역사를 잊으려 하지 말고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일보와 신문/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옴부즈맨 칼럼] 일보와 신문/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서울의 종합일간지 중 9개가 10만부 이상 유료 판매한다. 한국ABC협회가 올 초 발표한 재작년 판매 기록이다. 경제·스포츠지 등을 제외하면 10만부 이상 유료 판매를 하는 일간지는 전국을 통틀어 10여개 안팎이다. 제호를 기준으로 두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일보’들. ‘조선·중앙·동아·한국·문화·국민’일보다. 또 하나는 ‘신문’들. ‘한겨레·경향·서울’신문이다. 대개의 경우 ‘일보’들은 보수적인 색조가 강하고 ‘신문’들은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편집을 한다. 모든 일간지들이 판매와 경영상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덩치가 큰 ‘일보’들에 비해 ‘신문’들의 매출액과 판매부수는 눈에 띄게 적다. 큰 ‘일보’들에 비해 층이 지는 ‘신문’ 종사자들의 임금 수준은 ‘저널리즘의 최저 수준’ 방비가 오롯이 이들의 헌신과 사명감에서 비롯됨을 보여 준다. ‘신문’들의 임직원 숫자는 오백여 명 전후로 엇비슷하지만 편집과 경영·소유 측면에서 차이점도 존재한다. 일보와 신문 사이, 서울신문은 어디에 있는가. 서울신문의 뿌리는 1904년 창간된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다. 영국인 베델과 신채호, 박은식 등 선열들이 혼을 담아 만들었다. 여명기의 민족정론지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일제의 침탈 후 1910년 강제 종간됐다. 일제는 제호를 매일신보(每日申報)로 바꿔 총독부 기관지로 편입했다. 태평양전쟁 직전 일제는 신보(申報)를 신보(新報)로 바꾸었다. 해방되던 해 대한매일신보의 지령을 이어받은 서울신문이 탄생했다. 서울신문은 1998년 ‘대한매일’로 제호를 변경했다. ‘한경대’로 불리던 시절이었다. 한겨레·경향·대한매일의 줄임말로 그만큼 사회적 쟁점에 대해 개방적·전향적인 보도를 유지했다는 뜻이리라. 2004년 다시 ‘서울신문’으로 돌아왔다. 그해 ‘서울신문 100년사’를 펴냈다. 서울신문의 역사는 111년, 지령은 2만 3000호를 훌쩍 넘는다. 사람들은 서울신문에서 ‘한경대’ 혹은 ‘서한경’을 보는가, 아니면 신문 서울을 ‘일보’ 중의 하나로 매기고 있는가. 옴부즈맨 칼럼을 쓰는 데도 상당한 절차와 노력이 필요하다. 새벽에 종이신문을 읽고, 사무실에서 PC형 서울신문을 수차례 본다. 이동을 하다가도 모바일 서울신문에 접속해 새로운 정보를 살펴본다. 칼럼을 집필하기 직전에는 사십여일 분량의 종이신문을 다시 차근차근 넘겨 보며 구상해 두었던 주제의 글 자료를 따로 모은다. 주장의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한국ABC협회에 접속해 서울신문의 발행부수와 유료판매부수를 추가로 확인한다. 금융감독원 전자정보공시센터에 들러서 열흘 전 탑재된 서울신문의 ‘투자설명서’ 자료도 본다. 기존의 사업보고서와 반기보고서의 데이터 변화도 비교한다. 최근 소유구조 지분율 변화도 확인할 수 있다. 규모가 비슷한 다른 일간지들의 사정도 살펴본다. ‘바른 보도로 미래를 밝히겠다’는 포부와 어떤 권력이나 자본, 족벌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을 서울신문은 내세우고 있다. 시비를 가리는 균형성과 공정성을 다짐하면서 쉽지 않은 그 길을 가고 있다고 말한다. 몇몇 보고서와 전언을 종합할 때 저널리즘의 가치를 지키고 신문 경영의 난제를 풀기 위한 서울신문 종사자들의 고군분투는 각별하다. 일보의 시장에서 견주든, 신문 시장에서 다투든 서울신문의 가장 경쟁력 있는 무기는 ‘관점’ 있는 뉴스, 심층적인 기획기사일 것이다. 우리사주조합의 지분율을 치유하고 강화하는 것도 풀어야 할 숙제다. 힘내라, 신문 서울.
  • [자치단체장 25시] 국가정원 1호 만든 에코시장 “체류형 관광도시로 도약”

    [자치단체장 25시] 국가정원 1호 만든 에코시장 “체류형 관광도시로 도약”

    #하나 조충훈(62) 전남 순천시장은 지난 7월 청와대 행사를 잊지 못한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전국 시장·군수·구청장을 청와대로 초청한 국정설명회에서 순천시의 ‘9988쉼터’를 창조복지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았다. 경로당을 리모델링한 ‘9988쉼터’는 마을 노인들이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는 공동주거공간이다. 한겨울 냉골에서 혼자 찬밥을 먹고 있는 노인의 모습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은 조 시장이 아이디어를 내 추진한 사업이다. #둘 9월 5일은 순천시가 결코 잊지 못할 날로 기록될 것이다. ‘순천만 정원’이 우리나라 최초로 국가정원 1호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201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기간 동안 440여만명의 관광객이 이 정원을 찾았을 만큼 성황을 이뤘다. 정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도 국제행사를 성공시킬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 줬다. 동행 취재를 위해 지난 9일 만난 조 시장은 “황교안 국무총리 등이 참석해 국가정원 선포식이 있었던 5~6일 연휴에는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을 만큼 국가정원이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며 “한층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는 책임감과 국민과 함께한다는 의무감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를 ‘에코 시장’이라 부르는 이유다. 지난 9일 오전 시청사에서 만난 조 시장은 “아침 5시에 일어나 조간 신문을 살펴봤는데 특별한 사건·사고가 없어 다행”이라는 말로 ‘기자와의 동행’을 시작했다. 간부회의에서 주요 현안을 보고받고 9시가 조금 넘어 시청사 현관으로 나온 조 시장은 ‘물사랑 학습체험관’ 준공식이 열리는 교량동 상하수도사업소로 향했다. 이날 첫 공식 일정인 셈이다. 조 시장은 “물사랑 학습체험관은 전남 동부권에서 유일한 체험관”이라고 설명했다. 이곳은 옛 하수종말처리장을 시비 2억 5000만원을 들여 물 절약에 대한 시민의식 확산과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 체험 장소로 활용하도록 만든, 전시·체험관실, 영상실 등의 시설을 갖춘 체험관이다. “의식 전환을 통해 혐오시설을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만든 사례”라고 조 시장은 강조했다. 조 시장은 한 달에 한 번 불쑥 시청 구내식당을 찾아 직원들의 배식을 돕는다. 번개팅식으로 월 2~3회 주정차 단속원들과 미화원 등을 찾아 같이 식사도 한다. 마침 이날 점심은 조 시장이 국가정원 선포식을 이끌기까지 고생해 온 직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배식을 하는 자리였다. 조 시장은 12시부터 직원 200여명에게 30여분 동안 돼지갈비 떡찜을 국자로 떠 줬다. 조 시장은 “고생했어요. 고마워요” “고기 좋아하면 더 줄게요”하며 덕담과 웃음을 전했다. “손목 괜찮으냐”는 기자의 질문에 “모두 너무나 좋아하는데 멈출 수가 있겠느냐”며 환하게 웃었다. 조 시장은 아랫시장 골목에 있는 자그마한 백반집인 ‘삼순이네’ 식당을 가장 좋아한다. 일정상 한 달에 두세 번밖에 찾지 못하지만 애호박찌개를 먹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여섯 살 때 처음 먹은 고기가 애호박이 들어간 돼지고기 찌개였고, 이 식당이 어렸을 때 어머니가 해 주던 맛이 그대로 나기 때문이란다. 그는 점심 후 차량 이동 때 10여분 달게 쪽잠을 잤다. 직원들과 점심 식사를 마친 조 시장은 오후 일정으로 여수MBC 토론 ‘시사뉴스크’에 패널로 참석했다. 조 시장은 이 자리에서 국가정원의 중요성과 앞으로의 계획, 순천시 발전 방향 등을 제시하는 등 열띤 토론을 벌였다. 세계 5대 연안습지로 2006년 우리나라 연안습지 중 최초로 람사르협약에 등록된 순천만의 절대 보전 공간을 지키기 위해 5.2㎞ 떨어진 순천만 정원을 활용했던 구상이 실현되고 있다. 순천만 국가정원의 효과는 벌써 타 지역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박은식 산림청 산림환경보호과장은 “안동시 등 10여개 지자체에서 국가정원으로 지정받고 싶다며 지방 정원을 조성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정부 방침은 국가정원에 대해 갯수가 아닌 내용과 수준 등 내실이 먼저인 만큼 순천시가 앞으로 할 일이 산적해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국가정원 1호라는 상징성에 맞게 정원의 가치를 지속시켜 나가야 한다는 책임을 인식하는 조 시장은 도·농복합도시의 장점을 살려 ‘순천형 숙박호텔’을 구상 중이다. 게스트하우스와 농촌체험이 가능한 민박, 펜션 등 가족 단위의 숙박시설을 짓는다는 계획이다. 조 시장은 “순천만 국가정원을 교육부의 ‘체험 인증기관’으로 지정받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면서 “학생들의 체험학습 이수 기관으로 인정되면 제2의 경주가 될 만큼 체류형 관광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국 토론회가 끝나자마자 여수에서 집무실로 직행한 조 시장은 직원들의 결재를 명령식이 아닌 토론회식으로 보고를 받았다. 조 시장이 가장 강조하는 점은 두 가지였다. 공무원 주도가 아닌 시민 눈높이에 맞추고,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행정을 펼 것과 공무원들의 협업을 주문했다. 실과별로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벽도 허물 것을 지시했다. 조 시장은 시민들 사이에 회자되는 내년 국회의원 출마설과 새누리당 비례대표의원 내정설 등의 각종 소문을 한마디로 일축했다. 조 시장은 “시중의 추측일 뿐”이라며 “지금의 순천은 행정의 일관성이 가장 중요한 시기로 내 출세를 위해 다른 길로 가지는 않겠다. 어떤 제안이 와도 시민들에게 말한 시장직 수행 약속을 꼭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조 시장은 “순천만국가정원은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오셔야 할 필수 코스다”면서 “국내 정원산업의 국제화를 추진하는 등 해외 관광객이 찾아오는 명소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글 사진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인사]

    ■방송통신위원회 △단말기유통조사담당관 신종철 ■해양수산부 △해양개발과장 윤종호△연안계획과장 노진관△해양환경정책과장 김현태△해양수산생명자원과장 이상진△항만정책과장 남재헌△항만지역발전과장 정성기△국립해양측위정보원장 공현동 ■문화재청 ◇3급 승진△기획재정담당관 신용환◇4급 승진△운영지원과 이재원△활용정책과 문영철 박동석△국제협력과 남상범◇과장급 전보△덕수궁관리소장 김정남△조선왕릉관리소장 남효대 ■산림청 ◇고위공무원 승진△해외자원협력관 김용관◇과장급 전보△산림환경보호과장 박은식 ■뉴데일리경제 ◇상무△편집국장 박찬흥 ■동국대 △의료원 일산행정처장서리 김재선 ■EBS 미디어 △대표이사 김재근
  • 본지 전신 대한매일신보 창간 주역 배설 선생 서거 106주기 경모 대회

    본지 전신 대한매일신보 창간 주역 배설 선생 서거 106주기 경모 대회

    ‘배설 선생 서거 106주기 경모 대회’가 1일 서울 마포구 양화진 성지공원에서 열린 가운데 사단법인 배설선생기념사업회의 정성화 상임감사가 추모 발언을 하고 있다. 영국 출신의 배설 선생은 1904년 민족지도자 박은식, 양기탁, 신채호 선생과 함께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를 창간해 항일 언론 투쟁을 벌였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배설 선생 서거 106주기 경모행사

    배설선생기념사업회(회장 이재용)는 1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성지공원에서 배설 선생 106주기 경모행사를 연다. 오후 3시에는 세종문화회관 예인마당에서 예술제를 개최한다. 배설(영국 본명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 선생은 영국 브리스톨에서 태어나 1904년 영국 데일리크로니클 특별통신원으로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같은 해 6월 민족지도자 박은식, 양기탁, 신채호 선생과 함께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를 창간해 항일언론투쟁을 벌였다. 일제의 언론 탄압과 영국의 압력 등으로 1908년 사장직에서 물러난 후 1909년 5월 1일 지병으로 타계했다.
  • [기고] 3·1정신은 통일 이끄는 민족 유산/안중현 서울지방보훈청장

    [기고] 3·1정신은 통일 이끄는 민족 유산/안중현 서울지방보훈청장

    올해는 광복 70주년으로 분단 70년의 갈등과 대립을 넘어 미래 통일시대를 열어 가는 원년이기에 3·1절의 의미가 남다르다. 지금으로부터 96년 전 온 민족이 남녀노소, 신분과 나이, 종교와 지역을 넘어 하나가 돼 외쳤던 3·1 만세운동은 조국의 독립뿐 아니라 인류의 자유와 평등, 평화와 공존, 조화와 통합 이념을 구현한 위대한 민족유산이다. 특히 70년 동안 분단된 국가로 남아 있는 우리의 현실 그리고 중국·일본 등 주변 국가들과의 역사, 영토 문제가 부각됨에 따라 3·1정신의 소중한 시대적 가치를 느끼게 된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제가 국권 강탈과 식민지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추진했던 조선총독부의 무력통치 및 민족문화 말살 정책은 민족의식과 항일독립 투쟁을 고취시키는 계기가 됐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서울 탑골공원에 모인 민족 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함에 따라 시작된 3·1 만세운동은 수개월 만에 전국 각 지방으로 급속히 확산됐다. 운동은 일본·만주·연해주·미주 지역 등 국외에서도 1년여 동안 지속됐다. 백암 박은식 선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따르면 3·1 만세운동 당시 현장에서 순국하거나 부상과 옥고를 치른 분이 7만여명에 이른다. 3월 1일부터 3개월간 국내외에서 1542회의 만세 시위가 전개됐고 참가 인원은 200만명이 넘은 것으로 기록돼 있어 유사 이래 가장 큰 규모의 역사 혁명이었음을 알 수 있다. 3·1운동은 중국 길림의 대한독립선언과 일본 도쿄의 2·8 독립선언에 이어 일어난 최고의 독립운동으로 민족의 독립 의지를 세계 만방에 알렸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했고 독립운동의 구심체가 된 광복군 창설로 이어졌다. 또한 3·1운동은 1차 세계대전 직후의 국제 정세와 일제의 무단통치에 대한 선열들의 숭고한 저항이 반영된 혁명이다. 미국 월슨 대통령이 1차 세계대전 중에 발표한 민족자결주의와 전후 처리를 위한 파리강화회의는 국제 정세를 관망하고 있던 독립운동단체에 일제 침략의 불법성과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리는 절호의 기회가 됐다. 중국 상하이에서 활동하고 있던 신한청년당에서는 당시 김규식을 한국 대표로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했고 국내와 일본, 만주와 연해주로 독립운동 지도자들을 보내 독립 시위를 크게 전개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아울러 중국 5·4운동과 인도의 비폭력 독립운동의 정신적 토대가 됐고, 필리핀·이집트 등 세계 여러 나라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처럼 3·1정신은 우리 역사와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민족의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오늘날 세계 유일한 분단 국가로 남아 있는 한반도 평화통일의 문을 여는 열쇠요, 동북아와 세계 평화를 보장하는 이념인 것이다. 96년 전 독립만세를 외쳤던 애국 선열들의 희생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을 누리는 밑거름이 됐다는 것과 튼튼한 국가와 번영된 통일 국가를 만들어 가는 것은 국민 모두의 몫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리하여 오늘날 국가 앞에 놓인 많은 시련과 도전을 극복하고 지난 70년의 이념 대립과 분단 갈등의 고리를 끊고 국민 통합을 이뤄 미래와 통일의 문을 열어 가는 소중한 민족유산으로 간직하자.
  • [인사]

    ■미래창조과학부 △사이버침해대응과장 최병택△전파기반과장 이도규△통신서비스기반팀장 신종철 ■국방부 △보건복지관 김윤석△군사시설기획관 박재민△주한미군기지이전사업단 기획지원부장 이남우△보건정책과장 권영철△국방전산정보원 관리과장 한청일 ■농림축산식품부 △축산정책국장 이천일△농기자재정책팀장 조장용△동아시아자유무역협정과장 김수일△친환경축산팀장 송태복△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전남지원장 신동하◇농림축산검역본부 <과장>△질병진단 소병재△동물약품평가 송재영△세균질병 이희수△구제역진단 이명헌△바이러스질병 조인수△조류질병 정석찬△해외전염병 김병한 ■국토교통부 △철도안전정책관 구본환◇과장△부동산산업 김상석△물류정책 이상일△운항안전 강승호△철도안전정책 한동민△철도시설안전 남영우◇인사교류△세종시 지종철 김태곤◇파견△경기도 박상열◇지방항공청△부산 안전운항국장 이광희△제주청장 박현철 ■국가보훈처 △국립이천호국원장 성길수 ■방위사업청 ◇담당관△공직감사 김일동△고객지원 이철원△인력개발 정상구△회계제도 강영현◇과장△절충교역 한기인△방산정책 이창호◇팀장△사업운영평가 조광섭△전자전사업 이종주△기동장비사업 김동춘△전투차량사업 박진△전투함사업 이상훈△고속함사업 최영만△경공격기사업 정기영△지원기훈련기사업 이명우△체계개발관리 강정훈△해상유도무기사업 서홍철△항공유도무기사업 김병부△탄약사업 박정은△국제부품계약 김재만△기동화력계약 손현영△신특수유도무기계약 김창환△물자계약 정만호 ■경찰청 ◇총경 승진 임용 예정△서울 정보1 정보2 김종철△본청 경무 양영우△대전 1부 경무 김의옥△서울 형사 최종혁△본청 강력범죄 오승진△경기 부천원미 수사 전준열△서울 서초 형사 정경택△대구 2부 생활안전 박권욱△본청 교통기획 홍석기△본청 정보4 정보3 김원태△경기 의정부 청문 박종열△본청 보안3 김낙동△본청 홍보 정성일△서울 강남 교통 강복순△서울 홍보 박상경△서울 남대문 교통 김환권△교육원 학생 서민△서울 경비1 권태민△광주 청문감사 조규향△충북 경무 조성호△서울 101경비 박동현△대구 1부 보안 외사 이희석△서울 경찰특공대 황천성△경남 2부 수사 황철환△경남 1부 정보 정보3 하재철△서울 교통안전 전순홍△부산 1부 경무 정성학△경기 청문감사 오상택△광주 2부 생활안전 김을수△경기 2부 수사 김진태△서울 종로 정보 마경석△부산 해운대 여성청소년 박창식△경북 경비교통 경비경호 시진곤△대구 1부 정보 구희천△경북 청문감사 김해출△광주 홍보 양우천△부산 2부 수사1 수사2 류삼영△서울 종로 경비 류성호△본청 장비 조기연△전남 2부 생활안전 김상철△인천 2부 수사1 수사2 김민호△강원 청문감사 김영관△경기 2부 형사 송병선△충남 경무 김종범△경남 1부 보안 박중기△울산 1부 경무 장근호△경북 경무 경성호△부산 3부 보안 김종구△대구 1부 경무 양시창△서울 강서 장성원△서울 영등포 오동근△서울 경무 남정현△서울 강남 이건화△부산 공항경찰 조정재△제주 정보 문영근△전북 경비교통 이후신△서울 강남 김상진△서울 외사 이양호△본청 생활안전 김종민△본청 지능범죄 이민수△본청 정보1 유윤상△경남 김해중부 정보보안 김성철△서울 경무 양우철△본청 감찰 김호승△서울 보안2 김진복△서울 수서 한원횡△서울 은평 이창형△본청 기획조정 이화섭△서울 광진 양윤교△서울 종로 서완석△본청 외사정보 박수영△본청 교육정책 정창옥△경기 홍보 오지용△인천 부평 경무 이삼호△서울 강서 최성규△부산 남부 생활안전 최영철△서울 광진 현춘희△본청 정보2 강기택△본청 위기관리 이임걸△서울 경무 유승렬△경기 수원중부 정보보안 김형섭△전북 전주완산 여성청소년 최규운△본청 사이버범죄 이병귀△서울 경무 연명흠△울산 남부 형사 진상도 ■산림청 △대변인 임하수△해외자원개발담당관 박은식◇과장△산림정책 이미라△국유림관리 김형완△산림휴양치유 임영석△산림병해충 임상섭◇산림복지시설사업단△기획과장 최재성△운영과장 홍창원◇국유림관리소장△홍천 김원수△평창 권영록 ■국회 사무처 ◇수석전문위원(차관보급) 승진·전보△운영위원회 한공식△법제사법위원회 남궁석△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정재룡△안전행정위원회 박수철△보건복지위원회 김승기△환경노동위원회 손충덕△국토교통위원회 김수흥△정보위원회 임진대△여성가족위원회 최진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활동지원국 해외지역과장 동승철 ■충북도 ◇3급 승진△농정국장 김문근△균형건설국장 조병옥△충북경제자유구역청 충주지청장 김용국△기획관리실 정책기획관 박은상△시·도지사협의회 파견 김상돈◇3급 전보△안전행정국장 조운희△바이오환경국장 박인용△혁신도시관리본부장 박승영△자치연수원장 양권석△제천시 부시장 요원 김진형△안전행정국 총무과 이진규(교육) 이우종(대기) ■전남도 ◇3급 전보△경제과학국장 정종문△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청 행정개발본부장 전종화△F1대회조직위원회 본부장 고성석△교육파견 배택휴 문동식 ■경남도 ◇3급 승진△기업지원단장 손태성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기획조정본부장 황진구◇실장△연구·예산기획 김기헌△활동·역량연구 최창욱△보호·복지연구 이유진△통계·기초연구 이종원△현안정책전략 김지연△경영지원 권영걸△감사 강명숙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대외협력실장 이정림 ■대한축구협회 ◇국장 승진△홍보실장 송기룡 ■아주경제 △편집국장 강갑수 ■중앙대 ◇부총장△교학 황인태△연구 김성조△행정(100주년기념사업단장 겸임) 박상규◇대학장△인문 겸 교양학부 김세일△사회과학 이민규△적십자간호 김경희◇대학원장△법학전문(법학전문도서관장 겸임) 김중권△국제 전선애△사회복지 김교성△건설 김경주△행정 김동환△산업·창업경영 김창봉◇처장△대외협력 황완균△국제 최영진△학생(안성캠퍼스) 최재원◇센터·실장△인권센터 조유현△입학전형실 이상명 ■동양생명 ◇승진 <임원>△상무 김태현△영업이사 공종섭 ■동국제약 ◇전무이사 승진△메디칼사업부 전세일△홍보실 홍순강◇이사△연구개발부 이희자 ■안국약품 ◇임원 신규 <이사>△지방종합병원사업부장 김용도◇임원 승진 <전무>△AG C&T 본부장 천세영<상무>△의약1사업부장 강용일<이사대우>△중호남사업부장 김연수△생산본부 물류팀장 최태섭
  • 갑오년 농민봉기, 혁명이냐 전쟁이냐… “동학은 [   ] 이다”

    갑오년 농민봉기, 혁명이냐 전쟁이냐… “동학은 [   ] 이다”

    120년 전 1894년 충청, 호남 일대에서 동학이 중심이 돼 벌어진 농민들의 봉기가 있었다. 이는 학술 연구자의 역사적 관점에 따라 또는 발생 배경, 결과, 수행 주체 등 어디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그 명칭이 제각각이었다. 역사학계에서 관심을 둔 것은 박은식이 1915년 펴낸 ‘한국통사’에서 명명한 ‘갑오동학란’(甲午東學之亂)이었다. 동학이 중심이 됐음을 드러내고 당대 사회질서를 위협했음에 주목한, 주류의 시각이 반영된 호명이었다. 이후 ‘동학혁명’, ‘갑오동학운동’, ‘갑오농민전쟁’, ‘동학농민전쟁’ 등으로 학자들마다 명칭이 엇갈렸다. 기존질서를 지키려는 관군 및 외세와의 대결이라는 점에 집중한 학자들은 ‘전쟁’으로 파악했다. 그들이 주창한 왕조 타도, 계급 타파, 인재등용, 조세·토지·무역 개혁 등 봉건체제 혁파 노력에 집중한 학자들은 ‘혁명’의 성격을 강조했다. ‘운동’이라는 성격을 부여한 쪽은 이후 지속적으로 벌어지는 의병운동의 출발점으로 보는 시각이었기도 하지만, 혁명과 전쟁이 주는 치열함과는 다소 거리를 두려는 보수 사학계의 시각이기도 했다. 수행 주체 역시 동학세력이냐, 농민계급이냐 등 주장과 견해에 따라 달랐다. 이처럼 학계의 의견은 여전히 분분하지만, 최소한 법적 용어만큼은 ‘동학농민혁명’으로 정리됐다. 2004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부터다. 동학농민혁명은 특히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질서, 나아가 세계사 재편에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은 28일 서울 중앙국립박물관에서 12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 ‘동학농민혁명, 평화·화해·상생의 시대를 열다’를 주제로 29일까지 진행되는 학술대회는 그동안 국내 학계를 중심으로 진행되던 동학농민혁명 연구의 지평을 당대 세계사적 질서재편이라는 의미로 넓힘과 동시에 동학농민혁명이 담고 있던 자유, 평등, 평화 등 인류 보편적 가치 지향성을 확인하는 차원이었다. 치쥔제(戚俊杰) 전 중국갑오전쟁박물원장, 이노우에 가쓰오 일본 훗카이도대 교수 등 중국과 일본 동아시아 3국 학자들이 참가해 동학혁명 및 청일전쟁에 대한 관점도 확인하며 서로 만나는 지점과 엇갈리는 지점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당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를 보면 상황은 명확하다. 1876년 맺은 조일수호조규에 따라 인천, 부산, 원산 등 3개항을 강제 개항했고, 1882년 임오군란 , 1884년 갑신정변 등에서 수구파와 개화파는 각각 청나라, 일본에 기대면서 주변 열강들의 조선 침략 명분을 줬다. 이이화 전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은 “청나라는 조선을 속국으로 다루면서 우월적 지위를 확보하려 들었고, 일본은 겉으로 조선의 중립화 방안을 추진하면서 조선에서 패권을 행사하려 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1885년 두 나라는 한 나라가 조선에 군사를 보낼 때는 상대국에 알린다는 내용의 천진조약을 맺었다”고 설명했다. 이 전 이사장은 “이런 당시 한반도 대외정세에서 동학농민혁명은 반침략, 반외세를 지향한 자주의식을 분명히 담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치 전 중국갑오전쟁박물원장은 “파죽지세의 농민혁명은 비록 그 기간은 짧았으나 방대한 규모, 강한 전투력을 가졌고 부패하고 무능했던 조선 정부는 청나라 정부에 원병을 요청했고, 이에 따라 일본도 군사를 보냈으며 이는 청일전쟁의 도화선이 됐다”면서 “청나라는 갑오전쟁의 참패로 일본에 영토를 할양하고 거액의 배상금을 지불했으며 이는 서방열강이 중국 영토를 분할하는 전주곡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승리한 일본은 침략을 통한 대외 확장의 경제적 효율성까지 확인했고 침략 확장의 욕망을 더욱 팽창시켰다”고 덧붙였다. 일본 학계는 동학농민군에 대한 섬멸작전에 대한 성찰을 앞세웠다. 이노우에 교수는 “동학농민군을 모조리 살육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것은 1894년 10월 27일이었고, 라이플총을 든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동학농민군은 30만~50만명의 사상자를 냈다”면서 “그럼에도 현재 일본 역사교과서에는 1개 출판사만이 동학농민의 항일 봉기에 대해 기술하고 있을 뿐 처절한 섬멸작전은 일본의 민중 속에서도 깊은 어둠에 파묻혔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지방직 7급 필기 영어·행정학·경제학서 당락 갈릴 듯

    지방직 7급 필기 영어·행정학·경제학서 당락 갈릴 듯

    지난 11일 전국 59개 시험장에서 지방직 7급 공무원 공개경쟁임용 필기시험이 치러졌다. 서울시를 제외한 부산시 등 16개 시도에서 총 205명(행정직 150명, 기술직 55명)을 선발하는 이번 시험에는 모두 2만 6046명이 응시원서를 제출해 평균 127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수험생들의 체감 난도가 유난히 높았던 이번 시험에 대해 박문각 남부고시학원의 도움을 받아 과목별로 출제 경향 및 난이도 등을 분석했다. 우선 이번 시험에서 영어, 행정학, 경제학은 기존의 공무원시험에 비해 문제가 까다로웠던 것으로 분석돼 수험생들의 체감 난도가 높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영어의 경우 올해 치러진 국가직 7·9급과 비슷한 난이도를 예상했던 수험생들에게는 매우 어려웠을 것으로 분석됐다. 이동기 강사는 “지난해 시험뿐 아니라 최근 공무원시험 중 가장 높은 난도였기 때문에 허탈감과 아쉬움이 남는 수험생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며 “합격권 점수도 10점가량 낮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본기만 있으면 수월하게 풀 수 있는 난도 ‘하’에 해당하는 문제가 기존 시험에서 4~5문항 정도 출제됐지만 이번 시험에서는 1~2문항에 불과했다. 독해 지문 역시 길게 출제돼 수험생들이 시간적 압박감으로 인한 심리적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강사는 “독해의 경우 차분히 문제를 풀다 보면 정답의 힌트를 쉽게 찾을 수 있는 문제가 대부분이었지만 지문 길이에 압도당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수험생이 많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행정학은 올해 치러진 공무원시험 가운데 가장 변별력이 확보된 시험으로 분석됐다. 이 때문에 수험생들의 체감 난도는 높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신용한 강사는 “80%가 기출문제와 기출문제를 변형한 문제로 출제됐고, 행정학에서 최근 이슈가 된 정부3.0, 정책학습, 탈신공공관리 등 신유형의 문제가 20% 정도로 적재적소에 배치됐다”며 “실력 있는 수험생과 이해 및 암기가 부족한 수험생을 구분할 수 있는 시험”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기출문제와 변형된 문제를 제외한 20%의 신유형 문제가 당락을 결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어는 지난해 수준과 비슷하게 출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문법 6문항, 어휘 4문항, 독해 4문항, 문학 5문항, 한문 1문항이 출제되는 등 어휘 문제가 비교적 많았고 다른 시험에 비해 문학 비중이 높아졌다. 한문 문제가 출제돼 많은 수험생을 당황하게 만들었지만, 원리를 묻는 문법 문제와 희곡·시·소설·고전이 골고루 출제된 문학 문제는 평이한 난이도였다. 유두선 강사는 “독해 지문이 길어진 데다 단락 순서 문제와 내용 파악 문제가 출제돼 수험생들이 문제를 푸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사는 전 범위에서 골고루 출제됐으며 난도가 높은 1~2문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쉽게 출제됐다. 선우빈 강사는 “수험생들이 심리적으로 많은 부담을 가지고 있는 근현대사가 평이하게 출제됐다”고 설명했다. 통합문제로 출제된 국경일을 물어보는 문항 때문에 수험생들이 당황했을 수는 있겠지만 쉽게 풀 수 있는 수준이었다. 광개토대왕 군대와 가야의 중심지 변화,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 조선 시대 붕당정치 전개 과정(남인), 조선의 화폐정책, 2차 갑오개혁(홍범14조), 신채호와 박은식 등 한국사의 기본 개념 중심으로 공부한 수험생들은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헌법과 행정법은 올해 치러진 국가직 7급 및 서울시 7급 시험과 비슷한 수준의 평이한 난이도로 출제됐다. 헌법의 경우 다소 생소한 판례나 외국 및 한국의 헌정사 가운데 지엽적인 부분에 관한 내용도 일부 출제되긴 했지만 정답을 고르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건 아닌 것으로 분석됐다. 조기현 강사는 “다른 공무원시험 헌법 과목과 중복되는 지문도 상당수 있었다”며 “최신 개정법령 및 최신 판례가 정답을 고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행정법은 지엽적인 법령 문제가 1문항 출제되기는 했지만 대부분 그동안 지속적으로 언급된 핵심 중요 판례나 법령 및 이론 문제들로 구성됐다. 김정일 강사는 “평소 행정법을 충실히 공부해 온 수험생이라면 별 어려움 없이 풀 수 있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분석했다. 선택과목인 지방자치론과 경제학은 과목별 난도 격차가 벌어지면서 어떤 과목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수험생들의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지방자치론은 기존 기출문제가 90%, 기출변형문제가 10%가량 출제되면서 새로운 유형과 쟁점은 등장하지 않았다. 신용한 강사는 “최근에 제도가 변화된 기준인건비제도가 출제됐지만 이미 출제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된 만큼 수험생들은 별다른 문제없이 정답을 찾아냈을 것”이라며 “다른 선택과목보다 평이했기 때문에 자치론을 선택한 수험생들이 상대적으로 유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반면 경제학은 수험생의 체감 난도가 지난해 시험에 비해 훨씬 높아졌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계산문제가 11문항(55%)이나 출제된 데다 빈출 빈도가 매우 높은 기출문제보다 상대적으로 빈도가 낮은 기출문제들이 출제됐기 때문이다. 함경백 강사는 “금리스와프, 가격상한제에서 보조금 계산문제 등은 처음 등장한 유형으로 수험생들의 시간적, 심리적 부담이 컸을 것”이라며 “보통 2문항이 출제되던 국제경제파트에서 4문항이 출제되는 등 기존에 비해 매우 어려웠던 시험”이라고 설명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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