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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시각] 보람있게 살려 하지 마세요

    지난 7월 중순 후배에게 곽경택 감독의 ‘똥개’는 어떤 영화냐고 물은 적이 있다.지면에 ‘똥개’를 소개하겠다며 간략하게 내용을 보고해왔는데,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그런데 그 후배는 설명을 잘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알고 보니 ‘똥개’는 일상(日常)을 꿈이라 믿으며 고민없이 사는 한심한 백수의 이야기였다.특별한 줄거리랄 것도 없었다.“니 나중에 뭐가 될라 카는데?”라는 물음에 “몰라,생각해 본 적이 다.”라는 백수역의 정우성의 대답은 그것을 잘 보여준다.그러니 아마 뜬금이 없어 후배는 설명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기자는 어떤 현상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이골이 난 사람이 아닌가. 그런데 문득 ‘똥개’가 우리를 되돌아 보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똥개’ 정우성의 말대로 왜 사람은 꼭 뭐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한심한 백수가 오히려 우리 사회의 착한 시민은 아닐까.우리는 너도나도 뭐가 되려고만 하고, 뭔가 이뤄내려고만 하는 것은 아닐까.우리를 되돌아 보게했는지는 모르지만,‘똥개’는 괜찮은 흥행 성적을 거뒀다.8월초까지 3주간 전국적으로 140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다.건들건들대며 시간을 죽이는 백수가 나름대로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에서는 모든 교육의 근본이 선량한 시민(good citizen)을 양성하는 것이라고 한다.그러나 우리는 선량한 시민의 자질보다 적자생존의 정글의 법칙을 가르친다.어렸을 때부터 끊임없이 뭐가 되어야 한다고 강요한다.이를테면 미국의 우리 교포들은 경제적 부담이 크고 자녀의 실력이 떨어지더라도 어떡하든 아이비리그에 넣으려고 한다.하지만 미국인 부모들은 자녀가 실력이 있는데도 가까운 주립대학에 보내는 사례가 많다. 최근에 늘어나고 있는 프리터(free와 arbeiter의 합성어)족(族)은 백수와 맥이 통한다.한 채용정보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요즘 취업자 가운데 31% 정도는 정규직이 아닌 아르바이트직이라고 한다.그런데 그 중 55%는 심각한 취업난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41%는 프리터족인 것으로 나타났다.그들은 ‘자유로운 시간 활용을 위해서’ ‘획일적인 조직문화가 싫어서’ ‘직장 스트레스가 싫어서’ 정규직이 아닌 아르바이트직을 택했다고 답했다. 우리의 경쟁지상주의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한국 사람보다 한국을 더 잘아는 귀화한 러시아인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교수는 최근에 낸 책에서 일제가 남긴 상처라고 주장한다.조선시대만 해도 다툴 경(競)자를 아주 천시했는데 일제가 들어서면서 경쟁이 공례(公例),즉 ‘자연의 도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청나라 사상가 량치차오(1873∼1929)가 일본의 제국주의적 논리에 경도돼 ‘나라가 경쟁에서 뒤지면 망국멸종을 당한다.’는 책들을 냈는데,박은식을 비롯한 구한말의 지식인과 독립운동가들이 그 책들을 앞장서서 전파했다고 설명한다.그들은 일제의 노예가 되는 것은 거부했지만 ‘경쟁’이라는 일본화된 서구 개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이다.박노자는 그같은 비극을 이해해 치열한 경쟁을 하지 않으면서 살 권리,개성의 다양성을 존중받을 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제 박노자의 말대로 부(富)와 권력과 명예를 좇는 교육보다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사는 선량한 시민으로서의 교육을 앞세워야 하지 않을까.다시 태어나면 한 그루의 미루나무가 되겠다는 한 후배는 내게 종종 이런 말을 던진다.“너무 보람있게 살려고 하지 마세요.” 황 진 선 문화부장
  • 지령 20000호에 부쳐 / 처음처럼 하겠습니다

    대한매일이 2003년 9월9일 지령 2만호를 기록합니다.지령 2만호를 맞는 이 아침,우리는 대한매일이 걸어 온 지난날을 돌아보며 새로운 각오와 다짐을 하고자 합니다. 솔직히 대한매일의 지난날은 영욕이 엇갈린 역사입니다.대한매일의 지령은 대한매일신보와 서울신문의 지령을 계승했습니다. 1904년 배설·양기탁·박은식·신채호 등 선각자들이 창간한 대한매일신보는 언론학자들이 “가히 전설적인 신문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대한제국 말기 우리 민족의 구심점이었습니다.최초의 시민운동이라 할 애국적인 국채보상운동과 항일 비밀결사조직인 신민회의 실질적인 본부 역할을 하면서 항일운동을 확산시키고 민족의 입장을 대변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이었습니다. 한국 언론사상 처음으로 국한문,한글,영문판(Korea Daily News) 세가지 신문을 동시에 발간했고 발행부수도 최고를 기록했습니다.당시 발행되던 다른 신문의 발행부수를 모두 합쳐도 대한매일신보의 발행부수(약 1만부) 절반에도 못미칠 정도였다고 합니다. 대한매일신보를 강탈해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를 발간한 일제가 패망한 1945년,서울신문은 매일신보의 시설을 흡수해 창간되면서 대한매일신보의 지령을 이어 받았습니다.3·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두사람(오세창 사장,권동진 고문)과 당시 문단의 원로이자 소설 ‘임꺽정’의 작가인 홍명희(고문) 등이 서울신문 창간에 참여했습니다. 서울신문은 1968년 모든 기사와 제목을 한글로 쓰기 시작했을 만큼 한글전용과 신문말 다듬기에 선구적 역할을 했습니다.서울신문의 신문말다듬기를 통해 만들어진 새 말 가운데는 ‘사재기’등 요즘 널리 쓰이는 것이 많습니다.상업주의와 선정주의에 휩쓸리지 않고 어느 신문보다 재벌의 잘못된 행태를 비판하는데 과감했습니다.문화예술 활동 지원에도 앞장섰습니다.서울 세종로의 이순신 장군 동상을 비롯,애국선열 동상 15기를 건립했고,금이 간 보신각 종을 새로 만들어 제야의 종소리가 계속 울리게 했습니다.언론환경의 변화에 따라 컴퓨터 조판시스템을 가장 먼저 도입한 것도 서울신문입니다. 그러나 서울신문은 4·19때 성난 시위대에 의해 사옥이 불타는 오욕의 역사도 지니고 있습니다.해방후의 좌우익 대립,군사독재 등을 거치면서 지면과 논조가 굴절되고 권언유착의 폐습에 물들었던 것이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한국 제도권 언론이 자의든 타의든 빠져들었던 곡필의 역사에서 선두에 섰던 적도 있습니다. 이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통절한 반성을 바탕으로 1998년 서울신문은 대한매일로 이름을 바꾸었고 2002년 사원들이 최대주주가 되는 민영화를 이룩해냄으로써 소유형태에 있어서도 완전한 독립언론으로 탈바꿈했습니다.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한 국민의 신문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민영화 이후 대한매일은 온건합리주의 개혁노선을 지향하며 민족문제와 남북 공동체 회복,인권,시민의 권리 신장,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해 진취적인 입장을 취해왔습니다. 내년이면 창간 100주년을 맞는 대한매일은 이처럼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항상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지령 2만호를 맞는 이 아침에도 우리는 지난날을 교훈 삼아 언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옷깃을 여밉니다.초심으로 돌아가 대한매일신보의 창간 정신을 되새기면서 시대정신을 이끄는 신문을 만들고자 합니다. 북한 핵 문제로 인해 6자회담이 열리고 있는 오늘의 상황은 일본이 세력을 확장하며 서구 열강들이 앞다퉈 아시아를 넘보던 100여년전의 상황과 매우 흡사합니다.대한매일은 대한매일신보가 그랬듯이 민족의 앞날을 먼저 생각하는 신문이 될 것입니다.아울러 새로운 시대의 동인을 먼저 읽고 사상의 자유로운 시장기능을 수행하면서 세상을 보는 다른 시각이 있는 신문이 되도록 하겠습니다.무한경쟁의 신문시장에서 상업주의나 자사이기주의에 휩싸여 진실을 왜곡하지 않고 독자의 입장에서 뉴스를 판단하겠습니다.독자가 참여해 독자가 신문을 만드는 참신하고 도전적인 신문이 될 것입니다. 임영숙 주필 ysi@
  • 이런 책 어때요/우리 역사 최전선-허동현·박노자 지음

    ‘건강한 보수주의자’(허동현 경희대 교수)와 ‘개인주의적 진보주의자’(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간의 한국 근대 100년 논쟁.근대화란 18∼19세기 서유럽과 북미주에서 전형적으로 전개된 제도와 가치체계의 확산·개발 양상을 일컫는 말.우리의 경우 개항을 통해 서구중심의 국제질서에 편입된 1876년을 근대의 시발점으로 보는 게 통설이다.우리 역사가 놓친 혹은 외면한 인물과 사건들을 선정,‘그때 거기’에 ‘지금 여기’를 겹쳐 보며 근대담론을 펼친다.유길준의 ‘과문폐론(科文弊論)’, 박은식의 ‘문약지폐 필상기국(文弱之弊 必喪其國)’ 등의 원전이 부록으로 실렸다.1만 3000원.
  • 독자가 만들고 우리가 읽겠습니다/창간99돌 아침 새 발행인의 다짐

    존경하는 대한매일 독자 여러분. 대한매일은 오늘로 창간 99주년을 맞습니다.1904년 배설·양기탁·박은식·신채호 선생 등 선각자들에 의해 창간된 대한매일은 내년이면 창간 100주년을 맞는,우리 현대사의 산 증인입니다.대한매일의 창간 정신을 되새기는 한편 민영화 2년을 맞는 독립언론 대한매일의 시대적 소명을 생각하며 다시 한번 독자 여러분 앞에 옷깃을 여미고자 합니다. 대한제국 말기에 민족의 갈 길을 비추던 민족정론지 대한매일신보는 국채보상운동 등을 주도하며 민족혼을 일깨운 한국언론의 뿌리입니다.그 정신은 오래도록 우리 마음속에 살아 남았고 광복후 서울신문 시절을 거쳐 2002년 사원들이 최대 주주인 민영화를 이룩하여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한 대한매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민영화 이후 대한매일은 이념적으로는 자유시장 경제의 바탕위에서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하는 온건합리주의 개혁노선을 지향해 왔습니다.민족문제와 남북 공동체 회복,인권,시민의 권리 신장,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해서는 진취적 입장을 견지해 왔습니다. 민영화 이후 제2대 사장으로서,대한매일에서 처음으로 경선을 통해 사원들에 의해 선출된 사장으로서,저는 이같은 대한매일의 정체성을 계속 지켜가면서 독자들에게 더욱 다가가는 신문을 만들겠습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세대간·계층간 갈등과 혼란으로 크게 분열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대한매일은 복잡한 갈등 구조를 조정하고 사회통합을 이루는 데 앞장 설 것입니다. 우리 경제는 지난 1995년 이래 국민소득 1만달러 언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세계의 경제강국 일본과 무서운 속도로 경제발전을 이루고 있는 중국과의 틈바구니에 끼여 질식하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살 길은 소득 2만달러 시대를 하루빨리 앞당기는 길밖에 없다고 봅니다.그러자면 우리의 모든 역량을 생산성 향상과 경쟁력 제고에 결집해야 합니다.기업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닌 경영 능력을 갖추도록 노력해야겠지만 근로자들 역시 세계 경쟁기업의 근로자들을 압도할 수 있는 생산성을 일궈내야 합니다. 대한매일은 기업과 근로자들의 경쟁력을 높이고,한국이 동북아 경제중심 국가로 우뚝서는 데 언론으로서 선도적인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특히 저는 대한매일의 재계출신 첫 CEO로서 미래지향적인 경영방식을 통해 독립언론의 길을 탄탄히 닦아 나가고 신문시장의 공정한 경쟁과 여론 형성의 균형성을 확보하도록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대한매일은 참신하고 차별화된 신문,독자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신문이 될 것입니다.무한경쟁의 신문 시장에서 다른 신문과는 구별되는 뚜렷한 개성을 가지면서 독자들이 찾는 신문,읽고 싶은 신문,독자들의 기억에 남는 신문이 될 것입니다.특색없는 백화점식 제작은 지양할 것입니다. 우리 언론은 그동안 공급자의 입장에서 독자에게 일방적으로 뉴스를 제공해 왔습니다.그러나 대한매일은 독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신문,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신문,독자의 편에서 느끼는 신문이 될 것입니다.그래서 독자 여러분의 사랑을 받고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지키는 좋은 신문이 될 것을 약속드립니다. 대한매일 발행인 채수삼
  • 대한매일신보 창간정신 오늘에 되새기며…/ 어제 배설선생 94주기 추도식

    “하늘은 무심하게도 왜 그를 이다지도 급히 데려갔단 말인가!” 구한말 민족정론지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배설(裵設·영국명 베델)선생이 일제의 탄압으로 건강이 악화돼 3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것을 안타까워한 고종 황제의 조문(弔文)이다. 선생의 정신을 기리는 ‘배설선생 서거 94주년 기념대회’가 24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양화진 외국인묘지공원에서 열렸다.배설선생기념사업회와 주한 영국대사관이 주최하고 민족정기수호중앙회가 주관한 이날 행사에는 대회장인 이수성 전 국무총리의 대회사와 찰리 험프리 주한 영국대사의 기념사,선생의 생애와 활동보고 순서로 이어졌다. 박유철 전 독립기념관장의 사회로 진행된 기념대회에서 이수성 전 국무총리는 “외국인의 몸으로 자기의 전부를 던져 한국을 위해 헌신한 배설선생의 정신에 영원히 감사해야 한다.”며 “그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올바른 국가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각자 본분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험프리 대사는 기념사에서 “한·영 우호·통상·항해 조약이 체결된 지 120주년을 맞아 양국의 우호적 협력관계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분들 가운데 한 분인 배설 선생을 추모하게 돼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의 유족을 비롯,200여명이 참가했다.김유전 광복회장,박기정 한국언론재단이사장 등도 참배했다. 1872년 영국 남부도시 브리스톨에서 태어난 배설선생은 고향에서 소년기를 보낸 뒤 15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완구점과 무역업을 했다.러일전쟁이 일어난 1904년 영국 데일리 크로니클지의 특별통신원에 임명돼 한국으로 건너왔다.일제의 방화로 경운궁이 불탄 뒤 보낸 ‘대한제국 궁중의 폐허화’란 제목의 첫 기사가 친일 성향의 크로니클지와 맞지 않자 사직서를 낸 선생은 박은식 양기탁 신채호 등 민족진영의 논객들과 뜻을 모아 같은 해 7월18일 민족정론지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했다.대한매일신보는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요구를 신랄하게 비판한 창간호 사설을 비롯 ‘을사조약 무효주장’ 등 항일 민족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배설선생은 계속되는 항일 논조로 두차례 재판에 회부되는 등 일제의 위협에 시달렸다. 동방의 조용한 나라의 주권을 위해 싸우다 순국한 벽안의 이방인을 기리는 행사는 수도방위사령부 군악대의 연주 속에 대한독립국가 선양회 합창단이 ‘독립군가’와 ‘용진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진행됐다.대한매일은 내년에 창간 100주년을 맞는다. 이종수기자 vielee@
  • 창간 배설선생 내일 94주기 추도식

    항일민족지인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배설(裵說·영국명 베델·사진)선생의 서거 94주년 기념대회가 24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합정동 외국인 묘지공원에서 열린다. 배설선생기념사업회(회장 진채호)와 주한 영국대사관이 주최하고 민족정기수호중앙회가 주관하는 행사에는 주한 영국대사와 이수성 전 총리,독립유공자 등 200여명이 참석,선생의 생애와 활동보고,경모시 낭송 순으로 진행된다. 영국에서 태어나 영국 크로니클지의 중국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배설 선생은 일제의 침략의 부당성과 실상을 서방에 알리기 위해 1904년 고종 황제로부터 특허장과 자금을 지원받아 양기탁 박은식 신채호 선생 등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했으나 중국 상하이 감옥에서 일제로부터 받은 고문 등으로 건강이 악화돼 1909년 36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김성호기자 kimus@
  • 박은식·양기탁 전집 출간

    백암 박은식(朴殷植·전 대한매일신보 주필)과 우강 양기탁(梁起鐸) 선생이 생전에 집필했던 저술을 한 데 모은 전집이 출간됐다.‘백암 박은식·우강양기탁 전집 편찬위원회’펴냄. 이번에 나온 박은식 전집은 모두 6권으로 새로 발굴된 ‘발해태조건국지(渤海太祖建國誌)’,‘단조사고(檀祖事攷)’와 ‘사민보(四民報)’에 게재한 저술과 자료,번역본 등이 담겨 있다.박은식 전집은 지난 75년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에서 상·중·하 3권으로 처음 출간됐다. 양기탁 전집은 국내외에 산재한 ‘105인사건’의 판결문 원문과 영문 기록,베델공판 관련 원문자료(영국 공공기록보관소 소장) 등 귀중한 관련자료가 최초로 종합 정리돼 4권으로 발행됐다.이 전집의 편찬을 계기로 백암과 우강에 대한 개인 연구의 활성화는 물론 ‘민족의 수난과 혈투 속의 자존’으로 상징되는 한국민족운동사의 체계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전집 간행에 맞춰 백암과 우강의 생애와 사상,민족운동 등을 조명하는 학술심포지엄이 오는 9월6일 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터에서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주최로 열린다. ‘박은식과 양기탁의 독립운동 조명’이란 주제로 열리는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윤병석 인하대 명예교수의 ‘박은식과 양기탁의 민족운동과 전집 편찬의 의의’라는 기조강연에 이어 신용하 서울대 교수가 ‘백암 박은식의 역사관과 역사인식’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민족주의적 역사관을 정리한다. 또 김삼웅 성균관대 겸임교수(전 대한매일 주필)는 ‘박은식의 언론투쟁과 언론사상’을,정진석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대한매일신보를 통한 양기탁의 언론활동’을,김필자 배화여고교사는 ‘한말 양기탁의 민족운동 재조명’이란 주제발표로 각각 그들의 사상과 생애를 조명한다. 김종면기자 jmkim@
  • 박유철 前독립관장 가족 ‘4대 이은 사랑’ “예리해진 대한매일 특별한 아침”

    백범기념관건립위원회 박유철(朴維徹·65·전 독립기념관장) 위원장 가족은조상의 혼(魂)이 깃든 ‘대한매일’을 펼치면서 아침을 연다.박 위원장은 대한매일신보의 초대 주필로 활동하며 항일 구국운동을 이끌었던 박은식(朴殷植) 선생의 장손이다.부인 양준자(梁俊子·59·안양대 교수)씨는 1904년 영국인 배설(裵說)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양기탁(梁起鐸) 선생의 친손녀이다.대한매일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아주 특별한 인연을 지닌 가족이다. 16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백범기념관건립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난 박 위원장의 둘째아들 지윤(志潤·26·서강대 신문방송학과)씨와 막내딸 지선(志宣·22·연세대 영문학과)씨도 대한매일의 팬이기는 마찬가지다.특히 두 남매는젊은 세대답게 창간 98주년을 맞은 대한매일에 거침없는 비판과 함께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박 위원장은 1998년 대한매일 재창간 이후 더 열렬한 독자가 됐다고 자신있게 말했다.박 위원장은 “대한매일이 과거 서울신문 시절 정부의 생각을 대변하던 모습과는 크게 달라졌음을실감한다.”면서 “정부는 물론 절대권력을 상대로 비판의 칼날을 예리하게 세우려는 의지가 지면에 드러나고 있다.”고 기뻐했다.지윤씨도 “지난해까지만 해도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는 학생들 사이에 대한매일이 관심 밖이었다.”면서 “그러나 민영화 이후 대한매일이 대안적 언론사 소유구조의 사례로 집중 거론되고 있으며,알찬 지면이 매우인상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월드컵 때 파격적인 ‘대∼한매일’ 제호와 편집은 친구들 사이,아니 대학생들 사이에서 화제였죠.그렇지만 일반 시민들이 가판대 등에서 대한매일을 쉽게 찾기가 어려워 안타까워요.” 지선씨의 지적이다. 특히 이들 가족은 우리 민족의 애국심과 자긍심을 드높였던 월드컵 거리 응원의 열기를 이어가는 역할을 대한매일이 맡았으면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 위원장은 “월드컵 거리응원 때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쏟아져 나온시민들을 보고 ‘3·1운동’을 떠올렸다.”면서 “대한매일은 이제 한국인의 의식에 잠재된 애국심을 이끄는 민족 정론지로 정착하기위해 새롭고 과감한 도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월드컵 거리 응원에 참가,서로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어깨동무하고 목이 터져라 응원하면서 새삼 민족을 인식했다는 지윤씨는 “민족정론의 전통을 이어받은 대한매일만이 한민족의 폭발적인 힘을 모아낼 수 있는 언론이 될 수있다.”고 말했다.이들은 또 대한매일이 ‘통일’을 준비하는 신문이 돼야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서해교전을 둘러싸고 세대간 미묘한 의견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김구 선생의 말씀대로 첫째도 둘째도 통일을 이루는 게 민족의 최우선 과제인데,화해분위기가 무르익을 때마다 이런 일이 생겨 너무 안타깝습니다.그렇다고 통일을 위한 노력을 늦춰서는 결코 안됩니다.” 박 위원장은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지선씨는 “친구들과 얘기를 해보면 희생을 감수하면서 통일을 추진해야 하느냐는 의견도 많다”면서.“특히 세계가 주목하는 시점에 북한이 꼭 서해교전을 일으켜야 했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고,전체적으로 북한과 통일을 바라보는 시선이 부정적으로 변한 것도 사실”이라며 자신의 주장을 가감없이 밝혔다. 대한매일에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박 위원장은 “사회 전반의 원칙이 흔들리고 부패와 비리로 얼룩지게 된 것은 일제 식민지,이승만 장기 독재,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 등 뒤틀린 역사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면서 “역사를 바로 세우는 노정에 대한매일이 앞장서 달라.”고 당부했다. 지선씨는 “기성 세대의 악습인 혈연·지연 등 연고주의에 묶여 있지 않은우리 세대가 사회에 본격 진출하면 사회 분위기가 많이 달라질 것”이라면서 “대한매일의 ‘학벌타파’ 기획에 많이 공감하고 있다.”고 활짝 웃었다. 지윤씨는 “요즘도 대한매일이 민감한 사회적 이슈를 놓고 머뭇거리는 경향을 보일 때가 있다.”면서 “족벌언론보다 자유로운 처지인 대한매일이 더욱 과감한 자세를 보였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조현석 임일영기자 hyun68@
  • 역사소설 자리매김 논쟁 본격화

    ‘한국의 역사문학’에서 한국사는 무엇인가. 그동안 생산된 우리의 역사문학,그 중 역사소설이 ‘대중화보다 더 천박한 오락성의 산물’이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면 ‘역사를 이끄는 척후’라는 평가에 대해서도 진지하고 긍정적인 궁구(窮究)가 필요하다는 데서 논의는 출발해야 한다.최근 평론가 임헌영씨가 대산문화 6월호에 기고한 ‘한국문학의 역사 수용양식’을 통해 ‘역사소설의 역사성’문제를 짚어 본다. 우리나라 근대 역사소설은 1916년부터 매일신보에 연재된 ‘해왕성’에서 시작됐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그러나 해왕성은 ‘몽테 크리스토 백작’의 일본어판인 ‘암굴왕’을 이상협이 번안한 작품으로,조악한 상업주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해 동양고전의 빼어난 전통을 왜곡시키는 출발점이기도 했다. 이후 우리 역사소설은 1920년대 애국계몽기를 거치면서 ‘친일문학’이라는 강요된 주제를 벗어나는 유효한 피난처였는가 하면,장지연 박은식 신채호 등을 통해서는 ‘민족의식 고취’라는 역사적 임무를 수행하는 매개체가 되기도한다. 비록 ‘문학성이 뒤진다.’는 일부 평가를 받으면서도 암흑기에 주체적 역사의식을 저변에 깔고 맥을 이어온 역사소설은 근대 이후 이런 전통에서 일탈,오락성에 기운 작품이 양산되기에 이르렀다.임씨는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이후 모든 근대 역사소설이 오락성과 대중성이란 전제 아래 씌어졌다.”고 지적한다.특히 예외없이 신문연재로 발표되는 역사소설이고 보면 당대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신문이 추구하는 대중적 상업주의에 매일 수밖에 없었으며,이런 점에서는 예술·민중·상업성을 동시에 이룬 것으로 평가되는 ‘임꺽정’이나 ‘장길산’도 예외일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는 “역사소설로 볼 때 동아시아에서 가장 민족의식이 박약한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라고 지적한다.‘도쿠가와 이에야스’등 국수적이기까지 한 역사소설과 외세항쟁 문학이 일본 중국에 범람하고 있으나 우리는 민족적 허무주의를 조장하는가 하면 조상에 대한 비판이 지나쳐 ‘공판장’같기만 하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역사소설이 치열한 민족적 각성을 담아내지 못했다면 이는 역사학의 빈곤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임씨의 지적마따나 역사소설은 작가의 노력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역사학적 성과를 바닥에 깔고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역사소설이 역사학을 추월하거나 견인한 사례도 없지 않다.임씨는 황석영의 ‘장길산’이나 송기숙의 ‘녹두장군’,조정래의 ‘태백산맥’등은 역사학의 토대 위에서 이뤄진 작품이나 역사학을 초월한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장길산의 경우 부마항쟁에 맞춰 난민들이 세곡창을 털게 했고,남민전사건때는 검계(劍契)와 살주계(殺主契)를 내세웠으며 광주민중항쟁 때는 관군이 구월산토벌에 나서도록 해 작가의 역사·시국관이 창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줬다고 주장했다. 또 이 작품속 곽말득은 해남 기독교농민회 정광훈 총무,마감동은 광주항쟁때의 윤상원,산진이는 시인 김남주를 투사시켜 역사를 문학으로 복원해 내기도 했다고 풀이했다. 이런 우리의 역사소설이 1990년대를 고비로 급속하게 퇴보하고 있다.흥미로 치장한상업주의가 민족적 역사관을 몰아내 제대로 된 역사소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어떤 이유도 역사소설이 민족사를 바로 수용하지 못한 데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없다면 지금,우리 역사소설의 죄는 무엇인가? 심재억기자 jeshim@
  • 대한매일 詩歌集 전5권 완간

    한국 현대사의 굴종을 김지하의 시 ‘오적’이 깼다면 구한말에는 전국의 선비·은자(隱者)들이 나서 민족의 미몽(迷夢)을 깨웠다. ‘슬슬부러 봄바람에 각대신이 놀아난다/화월루샹 만찬회에 부귀화가 피엿스나/번화시절 얼마런고 꼿치피면 풍우만화/십일홍이 업다하니 무궁행락 됴와마쇼.’ ‘슬슬부러 봄바람에 황족파가 놀아난다/(중략)산호반과 호박비로 연회도 됴커니와/위급시세 생각하야 질탕행락 너무마쇼.’ ‘슬슬부러 봄바람에 권문세객 놀아난다/(중략)춘향명기 부생인가 고흔태도 미혹일세/가성고처 원성고란 예전 글 잇지마쇼.’ 전통 시조의 운율을 사용한 이 시가(詩歌)는 이밖에도 ‘각부관인’‘외국손님’‘신임군수’등을 차례로 불러내 나라 문제에 대한 그들의 ‘정신없음’을 준열하게 꾸짖는다.가히 ‘오적’의 원형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통렬하고 문학적 완성도도 높다. 이처럼 구한말의 정치·사회상을 고스란히 담은 시가를 집대성한 ‘대한매일신보의 시가Ⅰ∼Ⅴ’권이 완간됐다.민찬 대전대 국문과 교수와 장성남 대전여고교사가 공동으로 엮어낸 책에는 1904년 창간 때부터 1910년 한일병합으로 폐간될 때까지 대한매일신보에 게재된 시가 수천편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창간 이후 대한제국과 운명을 같이 한 민족지 대한매일신보의 위상을 말해주듯 일제와 권부,백성을 향한 질타와 계몽의 소리가 생생하게 담겨 있으며 당시 시대상은 물론 열강의 각축을 보는 백성의 시각과 풍물,문학상 등이 가감없이 배어 사료적 가치도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예컨대 1909년 1월30일자 시사평론에는 ‘리완용씨 드르시오 총리대신 뎌 디위가/일인지하 만인샹에 책임됨이 엇더하며/슈신제가 못한 사람 치국인들 잘할 손가/젼날일은 엇더턴지 오늘부터 회개하야/가뎡풍긔 바로잡고 졍부제도 혁신하야/중흥공신 되여보소.’라며 을사오적의 수뇌 격인 이완용을 거침없이 꾸짖고 있다. 그런가 하면 1907년 8월20일자에는 ‘문명한 나라의 농리대로 죵자와 농긔를 개량하여/심으난 법대로 심은후에 거두난 법대로 것^^스면/십배와 이십배가 될지라 얼널널 샹사지.’‘일즉이 나가서 일하다가/초혼달 띄고 도라와셔/목욕을 하여셔 몸을 씻고 부모와 쳐자들 갓치안져/보리밥 파국 자미잇네 얼널널 샹사지.’라며 맹아기를 맞은 당시 계몽활동의 실체와 농사법까지 알려주는 ‘사동(巳童)의 동요(童謠)’같은 글도 포함돼 시대상을 거울처럼 들여다 볼 수 있다. 양기탁·신채호·박은식 선생 등 당대 최고의 선각적 지식인들이 참여한 대한매일신보의 시가는 이처럼 당대의 민족주의와 애국·계몽 담론이 넘치는 근대문학 초창기의 보물창고.이 신문 사회면에 ‘시사평론’이나 ‘사조’등의 이름으로 실린 수많은 시가들은 요즘 흔히 생각하는 ‘무력하고 무지몽매한 시대’라는 당시에 대한 통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을사오적 등 매국노에 대한 정확한 정체 인식과 분노감이 풍자와 욕설 등으로 표출되는가 하면 태양력과 신식 병의학 상식,분뇨세 징수 및 매음 등 사회 각 분야를 종횡무진 누비며 그려낸 날카롭고 정확한 묘사가 한번 붙잡은 눈길을 놓아주지 않는다. 민 교수 등은 “학자들 가운데도 이 시기의 작품을 ‘고전문학과 근대문학의 전환기에나타난 구호 일변도’라며 폄하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면서 “그러나 당시의 시가는 전환기 문학의 실체와 시대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매우 중요한 사료들”이라고 강조했다. 심재억기자 jeshim@
  • 배설선생 서거 93주년 추모식

    배설(裵說)선생기념사업회(회장 陳採鎬)는 항일민족지인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배설(영국명 베델) 선생의 서거 93주년을 맞아 15일 서울 합정동 외국인묘지공원에서 추모식을 거행했다.영국에서 태어난 선생은 일제 침략이 본격화한 1904년 양기탁·박은식·신채호 선생 등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창간,항일 언론투쟁을 벌이는 한편 국권회복투쟁 및 의병활동 지원에 나서는 등 항일투쟁에 앞장서다가 36세의 젊은 나이에 순국했다. 추모식엔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현희 성신여대 교수,크리스토퍼 로빈스 주한 영국 부대사 등이 참석했다. 임창용기자 sdragon@
  • 발굴된 박은식선생 역사서 내용

    상하이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 등에 따르면 백암박은식(白庵 朴殷植·1859∼1925) 선생은 1911년 4월부터만주 환인현 윤세복의 집에 1년간 머물면서 ‘천개소문전(泉蓋蘇文傳,천개소문은 연개소문)’‘명림답부전(明臨答夫傳)’‘동명성왕실기(東明聖王實記)’‘발해태조건국지(渤海太祖建國誌)’‘몽배금태조(夢拜金太祖)’‘대동고대사론(大東古代史論)’ 등 6권의 역사서를 저술했다.그동안전해진 세 권 외에 이번에 두 권이 발견됨으로써 이 중 ‘동명성왕실기’만이 실전 상태로 남게 됐다. 당시 만주지역에는 후에 대종교(大倧敎) 3대 교주가 되는윤세복을 비롯해 단군과 관련된 대종교를 신봉하고 이를민족운동의 이념으로 가진 독립운동가들이 많았다.박은식선생도 이곳에서 단군이 우리 역사의 출발점이고 근본임을강조하는 단군민족주의를 확립했음이 이번에 발견된 책들을 통해 잘 드러난다.이 책들은 나라를 되찾으려면 국사연구와 교육을 통해 국혼을 유지해야 한다는 선생의 국혼론(國魂論)에 따라 윤세복이 운영하던 동창학교(東昌學校)에서 교재로 사용됐으며 이 학교 교사로 있던 운허 이용하(耘虛 李龍夏·후에 출가)가 봉천성에 흥동학교를 설립하면서 이곳에도 보급한 것으로 보인다. 박은식 선생은 고구려 초 대장군 전기인 ‘명림답부전’에서 “우리 4천년 역사에 가장 자주독립의 자격이 완전하여 신성한 가치가 있는 것은 고구려시대”라면서 고구려의동명성왕-명림답부를 단군 이래 선교(仙敎)의 계승자로 보았다.‘명림답부전’은 서론 6쪽,본문 38쪽 등 총 44쪽분량에 고구려 2대왕 차대왕(次大王·71∼165)의 포악한불법 전제정치를 뒤엎고 인도주의와 구국구민주의를 실현한 영웅 명림답부 이야기를 주내용으로 하고 있다. 대조영(大祚榮·?∼719)의 발해건국에 관한 ‘발해태조건국지’는 서론 12쪽과 본문 54쪽 등 66쪽 분량으로 발해에주목, 우리 민족사를 단군과 이를 계승한 고구려, 발해로체계화하고 있다.박은식 선생은 “단군이 후세 자손을 구하기 위해 대조영을 보내어 발해를 건국하게 하였다.”고발해를 역사의 정통으로 내세운다.특히 고려가 고구려의후손임을 천명하면서도 발해사 서술이 미비했던 점을 비판하고 있다. 개화파 영향을 받은 ‘개신유학자’ 출신이었던 박은식선생은 1905년 실질적 국권상실 이후 대한매일신보 주필등을 맡으며 변법 계몽운동을 통한 국권 회복운동을 펴다가 1910년 망국의 비운을 당하자 제국주의의 침략성을 비판하면서 민족주의자,공화주의자로 전환하게 된다.1910년대 만주 망명시기는 이와 같은 새로운 사상과 역사인식을확립해 가는 중요한 시기로 이번 두 책의 발견은 이 시기박은식 선생 연구에 중요한 사료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신연숙기자yshin@
  • 박은식선생 역사서 ‘渤海太祖建國誌’ 공개

    구한말 대한매일신보 주필 및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을 지낸 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인 백암 박은식 선생의 실전(失傳) 저서 ‘발해태조건국지(渤海太祖建國誌)’와 ‘명림답부전(明臨答夫傳)’ 등 2권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19일 김도형(金度亨)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광복 전후기에 활동했던 한 원로사학자의 후손으로부터 지금까지 이름만 전해진 이 책들을 입수했다고 밝히고 실물을 공개했다. 두 권의 저서는 박은식(朴殷植) 선생이 한일합병 직후인1911년 만주 서간도 지역인 환인현(桓仁縣)으로 망명,훗날대종교의 3대 교주가 되는 윤세복(尹世復)의 집에 머물면서 저술한 6권의 역사서중 일부로 ‘동명성왕실기’(東明聖王實記)와 함께 실물이 유실된 상태였다. 이번에 발굴,첫 공개되는 책은 두 저서를 합본한 것으로책 겉표지에 만주 봉천 ‘흥동학교(興東學校) 소장’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으며 서론에 이어 본문이 들어가는 첫머리에 ‘백암 박기정 저,단애 윤세복 열(白庵 朴箕貞 著,檀崖 尹世復 閱,박기정은 박은식선생의 여러 이름 중 하나)’이라고 필자를 밝히고 있다. 김 교수는 “이 책들은 1910년대 단군민족주의를 확립해간 박은식 선생의 역사관을 밝히는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평가하고 “특히 민족사의 계통을 단군과 이를 계승한고구려,발해를 중심으로 체계화하고 만주를 우리 역사 무대로 파악하는 등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견해를 이 책들을통해 펴고 있다.”고 밝혔다.김 교수는 이번에 발굴된 자료 전체를 영인한 내용과 이를 분석한 논문을 ‘동방학지’ 114호에 발표할 계획이다. 신연숙기자yshin@
  • [대한광장] 친인척 비리와 역사의식

    역사 발전의 동력은 다양하고 동력의 공급방식도 다양하다.백암 박은식은 1915년 ‘한국통사(韓國痛史)’에서 나라는망해도 민족은 망하지 않았다는 것을 역설하며 나라는 형상으로 존재하고 민족은 혼이며 정신으로 존재한다고 했다.그리고 그 혼은 유대인이나 인도인은 종교의 힘으로,한국인은역사의 힘으로 나타난다고 보고 한국인의 역사의식을 강조했다. 하기는 유대나 인도의 역사는 곧 종교 변천사라고 할수 있을 정도로 종교의 힘이 강했다. 인도의 역사학이 종교에서 독립한 것이 크게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그와 같이 식민지 시기에 민족을 보전하고 독립의 역량을키울 수 있었던 저력을 종교에서 찾는 나라가 많았던가 하면 우리는 역사와 같은 문화 민족주의에서 찾았다.문화 민족주의는 1910년을 전후해 어문민족주의·역사민족주의·종교민족주의로 짜여져 있었는데 종교 민족주의 즉 대종교를국교로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그리하여 어문 즉 한글과 역사가 민족을 지키는 데 크게 구실했다. 한글과 역사가 민족을 지켰다면 한글과 역사학을 지키고발전시킨 조직은 무엇이었던가? 조선어학회 등의 민족운동단체였다.식민지가 아닌 정상 사회라면 학교 같은 교육 조직이 담당했을 터인데 그때의 학교에서는 일본어 사용과 식민사학을 강요했으므로 학교가 우리의 말과 역사를 지키지못했다. 유대나 인도 같으면 교회가 지키고 이끌어왔을 터인데 한국의 천주교·개신교·불교 등의 종교들은 몇몇 예외는 있었으나 끝내는 일본 식민통치에 협조하고 말았으므로 기대할 수 없었다.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됐으므로 독립운동단체가 민족을 지키기도 했다. 그러나 독립운동 단체가 국내 어디에서나 있었던 것은 아니다.더구나 1940년대에는 조선어학회 같은 민족운동 단체도 해체당하고 말았다.그렇다면 한국인의 민족성과 민족주의는 어떤 사회조직에 의해서 보호되고 있었던가? 그것은가정과 가족이었다. 가족은 사회의 기본조직이다.오늘날 핵가족 방식이라고 해도 그렇다.아직은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경우처럼 독신주의자가 많지 않다.하물며 1945년 이전에는 독신주의자가 거의없었다. 그러므로 가족은 사회의기초조직으로 의미 있는기능을 한국 근현대사에 공급하고 있었다.여러가지 기능 가운데 민족을 지킨 기능이 역사에 기여한 바가 컸다고 생각한다.자식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단편적으로나마 역사도가르쳤다.한글과 역사에 관한 책을 은근히 소개하며 민족의길을 암시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식민통치에 대한 저항의식을 심었다.총독부 관리나 친일파도 자식에게는친일파가 되기를 권하지 않았다.민족의 길을 암시한 경우가적지 않았다. 그리하여 해방이 되자 식민지어가 아닌 민족어 즉 한글로 공문서를 작성하고 한글로 조선역사를 토론하고 배웠다.그렇게 한국에서 가족은 사회의 기초조직으로서역사 발전에 기여한 의미가 적지 않았다.민주화운동에서도그랬다. 그런가 하면 반대로 가족의 힘을 나쁘게 사용한 역기능의경우도 있었다.그것이 국가적 비리와 유착했을 때는 역사반동의 자취를 남긴다.이승만의 가족 이야기가 그에 해당할것이다. 1950년대 극장가를 ‘황태자의 첫사랑’이나 ‘로마의 휴일’이 휩쓸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황태자나 공주가보여준 서민적 취향에 있었다. 그때 우리의 황태자 아닌 황태자 이강석은 ‘귀하신 몸으로’ 화려한 화제를 던지고 있었다. 그것은 독재가 낳은 산물이었다고 하자.그런데 민주화 또는 민주주의 개혁을 표방한 김영삼·김대중 정권에서 가족비리가 터져 나온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바다의 보물 캐기는 남의 재산과 거래하는 것이 아니므로 비리를 전제한 ‘게이트’가 아니라 ‘스캔들’에 불과하다고 할는지 모른다.그러나 막대한 이권사업이라면 그 자체가 비리다.전통시대에 상피(相避)제도를 왜 두었고 또 왕족은 벼슬을 맡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라.더구나 일부 청와대 비서가 개입했다니 비리가 구조화된 방증이다.가족은 부모처자를 말하지만 한국에서는 당대 인척까지 포함된다는 것도알아야 한다. 조동걸 국민대명예교수·역사학
  • 민영화 대한매일에 바란다/ “”독립언론 먼 항해 이제부터 시작””

    대한매일이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대망의 민영화를 이룩하자 각계 인사들을 비롯 많은 독자들로부터 격려 메시지가이어졌다.이들 메시지 가운데 민영신문 대한매일이 언론 대도(大道)를 걸을 것을 당부하는 8명의 충정어린 제언을 소개한다. ▲ 박원순 참여연대 사무처장. 민영화는 지난 수십년동안 권력으로부터 가해진 부당한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역사적 전환점이 될 것이다.하지만 요즘 언론은 권력으로부터의 독립만큼이나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또한 중요하다.권력과 자본의 예속을 모두 거부할때 진정한 독립언론의 위상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또 소유구조 개편이 곧바로 기사 내용의 변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소유구조를 바꿨는데도 지면의 내용에 변화가 없다면국민들의 실망은 더욱 커질 것이다.기자 개개인들이 자신의 도덕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독립언론의 기자로서 손색없는 모습을 갖추길 진심으로 바란다.진정한 독립언론을 향한 먼 항해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 강우석 영화감독. 대한매일이 민영화한다는소식을 지면으로 처음 접했을 때 받는 것도 없이 괜히 기분이 좋았다.좋은 신문이란 질높은 기사를 전제로 보기 좋은 편집이 뒷받침돼야 하고 또 때로는 사회에 충격파를 던질 수 있는 특종도 나와야 한다.평소 내 짧은 견해로도 그런 요건들을 구비하려면 대한매일이민영화가 되지 않고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종합일간지들이 많지만 대한매일이 갖는 상징성은 특별하다.그걸 밑천으로 민영화 시스템을 잘 활용한다면 양질의 아주 독특한신문이 나올 것 같다. 오랫동안 마음은 있으되 쓰지 못했던기사들,힘있고 개성있는 논조들이 봇물터지기를 고대한다. ▲ 김정태 국민은행장. 증권회사 출신인 내가 처음 은행장(옛 주택은행장)이 됐을 때 은행사람들은 이렇게 수군댔다.“증권사 장돌뱅이가 은행을 뭘 알겠느냐”고.옛 국민은행과 합병하겠다고 했을 때도 “시너지효과가 있겠느냐”며 비웃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그러나 우리 직원들과 나는 과감히 변화를 선택했다. 대한매일의 민영화는 커다란 변화의 출발점이다.변화에 수반되는 홍역을 앓아본 사람으로서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있다.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더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꿈틀대는 변화를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끌어야한다는 것이다.잭 웰치 전 GE 회장의 자서전 제목처럼 ‘끝없는 도전과 용기’를 기대한다. △ 정대 조계종 총무원장. 새로운 변화는 발전과 함께 그만큼의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며 특히 언론의 책임과 역할은 막중하지 않을 수 없다.새 대한매일은 무엇보다 국민과 나라의 앞길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야 한다.또 새로운 시대를 선도하고 함께 어우러지는건강한 사회와 국민생활을 만들어가는 빛이 되어줄 것을 기원한다.올해는 월드컵,대통령선거 등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기로서 대한매일의 새로운 변화에 따른 역할이 매우기대되는 때다.임직원과 국민이 주인이 된 만큼 대중에 근거한 책임성있는 언론의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 김광진 행자부 지방재정경제국장. 민영화와 더불어 정부를 건전하게 비판하는 감시역할을 다해줄 것으로 믿는다.더불어 국민의 언로가 돼 여론을 투명하게 전달할 수 있는 디딤돌이 돼야 한다.국가발전을 위해국론통일이 필요하고 국민의 역량결집이 요청되는 때에 국민의 선봉에 서서 이를 이룩해내는 선도지 역할을 해줘야한다.국민의 다양한 여론을 수렴해 나라 발전과 국민의 행복한 삶을 위한 날카로운 비판을 서슴없이 전달할 것으로기대한다.“펜은 칼보다 더 무섭다”는 격언을 구현하는 신문이 되기를 바란다. △ 손병두 전경련 상근부회장. 새 대한매일은 무엇보다 보도와 논조에 공정성을 확보해국민 곁으로 바짝 다가가기 바란다.그러기 위해서는 시시비비를 명백히 가려야 한다.잘한 것은 잘했다고 말하고,못한것은 못했다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눈치를 보아서는 안된다.우선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데 앞장서는 신문이 됐으면한다.우리 사회의 각종 비효율적 요소들,특히 시장경쟁을회피한 채 평등주의만 지향하는 일각의 기도를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기업경쟁력이 높아지도록 공정 경쟁 풍토 조성과 엄정한 법 집행에 신경쓰기 바란다.시대착오적인 규제 완화에도 힘써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 심윤종 성균관대 총장. 우리는 미명의 20세기 초 국민을 계몽하고 민족혼을 일깨우던 대한매일신보의 국채보상운동을 기억한다.또한 우리는 배설과 양기탁,박은식,신채호 등 우국지사들을 기억한다. 그 뜨거운 민족혼을 대한매일신보의 정신과 이념으로 계승하여 오늘날 ‘대한매일’로 재탄생했다.그동안 주주와 임직원이 고통을 분담하며 피나는 언론개혁을 추진해온 개혁정신에 뜨거운 격려와 박수를 보낸다.국가와 민족,정의와진실,역사와 하늘 앞에 떳떳한 정론지가 되기를 기대한다. △ 오원교 고려대 행정학과 3학년. 권력과 사주,자본에 휘둘리지 않는 새로운 신문이 탄생한것은 독자들에게도 행복한 일이다.정부 권력에서 독립해 민영화를 일궈낸 대한매일이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를 날카롭게 파헤치고 낡은 관습과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데 앞장서길 바란다.또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고 실천 가능한대안을 제시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항상 독자의 입장에서독자와 함께 신문을 만들어 간다면 대한매일이 머지않아 최고의 권위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새롭게 태어난 대한매일을 지켜보겠다.
  • 대한매일 민영화/ 독립정론지 대한매일의 指紋

    “엎드려 원하건대 여러분께서는 춘추의 대의로 곧은 붓을잡은 몸이 신문사에 있으니,손으로 역사의 일기를 기록하여천지의 바른 윤리를 돌리어 인민의 귀와 눈을 넓히면,인의(仁義)로 성벽을 삼고 필묵이 무기가 되어 시골군사 10만명보다 나을 것이오니,더욱 높고 깊게 힘쓰소서.” 호남창의대장 기삼연(奇參衍)이 1907년에 쓴 ‘대한매일신보사 여러분에게’란 글이다. 기삼연은 당시 대한매일신보가 의병투쟁을 상세히 보도하면서 을사5조약의 부당성과 일제의 국권침략을 비판하자 감사의 사연과 함께 ‘의병 10만명보다 나은’ 신문이란 과분한서한을 보냈고 이 내용은 그대로 지면에 실렸다. 그랬다.나라 운명이 풍전등화일 때 대한매일신보 지사들은생명을 내놓고 일제와 싸우다가 신문사를 송두리째 빼앗겼다.일제 암흑시절 홍명희선생은 신간회의 이름을 ‘시경(詩經)’의 ‘고목신간(古木新幹)’에서 취했다.고목나무에 새 가지가 돋는다는 의미였다.대한매일이 바로 그것이다.현재 발행중인 가장 오랜 역사에서 ‘독립정론지’의 새 가지를 만방에 떨치게 된 것이다.대한매일은 “마치 미켈란젤로가 돌속에 갇힌 누군가를 꺼내주기 위해 정을 들고 돌을 쪼았던것처럼”(함성호,건축가)과거 영욕의 역사를 딛고 공익과 국민복지와 민족화합을 위해 2000년대를 앞서가는 신문으로 거듭난다. 지금은 1세기 전 대한매일신보의 지사들이 맞섰던 상황과는 크게 다르다.우리 국력도 엄청나게 성장하고 국민의 교육수준은 세계 최상위권이다.그렇지만 그때와 비슷한 대목도 적지 않다.수구와 개화파 대신 보수와 개혁 세력,청·일의 간섭 대신 중·일의 거대 강국화,역외(域外) 미국의 간섭도 비슷하다.그때나 지금이나 정쟁이 모든 가치를 뒤흔들고 남북분단은 민족국가의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국가적 아젠다를 설정하고 민심을 모아 역사발전의 이정표를 세우는 건강한 언론이 없다는 점이다.국세청 세무조사에서 드러나듯이 수백억 탈세와 횡령을 일삼는 사주들과 이들에게 봉사하는 신문에서 건강한 여론을 기대할 수 없다.족벌신문이 단합하여 여론을 생산하고 왜곡하는사회에서는 다양성을 생명으로하는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어렵다.선진민주 국가들은 하나같이 건강한 신문을 갖고 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프랑스의 르몽드,영국의더 타임스,일본의 아사히신문이 대표적이다.영국의 더 타임스는 40만부 발행이지만 400만부 팔리는 대중지 ‘더 선’보다 더 영향력을 갖는다. 우리는 발행부수에 연연하지 않고 정확한 보도와 논평으로정직한 국민과 함께하고 여론을 향도하고자 한다.E·H·카는 “역사가 정확을 기한다는 것은 미덕이기 전에 하나의 신성한 의무다”라 했지만 어찌 역사뿐일까.신문은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우리는 “감히 도연명이 깨끗한 국화이슬로 먹을 갈아 그 먹으로 조국 진나라의 역사를 쓰던”(鄭寅普)심경으로 정직하고 정확한 신문을 만들 것이다.‘무이유언(無易由言)’의 가르침을 배울 것이다.“쉽게 남따라서 이야기 하지 않고 가볍게 말하지 않는” 그런 신문을 만들고자 한다. 제레미 리프킨이 “모든 문화는 그 자체의 고유한 시간의지문을 지니고 있다”고 했듯이 대한매일은 고유하고 정직한 지문이 깃든 신문을 만들 것이다.지문은 사람마다 다르며그 모양이 평생 변하지 않는다.마찬가지로 대한매일은 박은식·양기탁·신채호 등 애국지사들의 지문이 묻은 민족언론으로서 세계를 살피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지면에 담을 것이다. 독립정론지의 새 출발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허나 대한매일은 지난 1세기 한국사회의 독특한 역사적 경험을바탕으로 꿋꿋히 독립정론의 외길을 걸을 것이다. ‘非所困而困焉 名必辱(비소곤이곤어 명필욕)’이라 했던가.“몸을 기대서는 안될 곳에 몸을 기대면 반드시 위험이 미친다”는 ‘역경(易經)’의 가르침이다.우리는 권력이나 정파나 재벌이나 지역주의에 기대지 않고 ‘독립정론’의 가시밭길을 가고자 한다.그리하여 대한매일의 지문을 역사에 길이길이 남기고자 한다. 김삼웅 대한매일 주필 kimsu@
  • “중앙亞 동포-조국 가교역할 힘쓸것”

    “조국이 우리 중앙아시아 동포들을 잊지 않고 이렇게 격려해 주셔서 뭐라고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조국과 현지동포들 간의 가교가 되는 매체로 더욱 키워 나가겠습니다.” 90년 제정된 ‘장지연상’의 금년도 제12회 언론부문 수상자로 카자흐스탄공화국 수도 알마아타에서 발행되고 있는 교포신문 ‘고려일보’(구 레닌기치)가 선정됐다.시상식 참석차 방한한 채유리(39)주필 대리는 “신문사 재정사정은 어렵지만 조국의 동포들과 현지교포들의 성원에 힘입어신문을 내고 있다”며 “고려일보가 중앙아시아 교포들의 정신적 기둥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이 신문은 1923년에 창간된 ‘선봉’의 뒤를 이은 것으로,1938년 ‘레닌기치’로 바뀌었다가 지난 91년 지금의 ‘고려일보’로 개명했다.창간당시는 일간이었으나 현재 주간으로발행되고 있으며,총 면수는 16면으로 이 가운데 4개면은 국문(한글)판이다.발행부수는 3,000부. 장지연상 심사위원회는 선정배경과 관련,“구소련 전역에흩어져 살고있던 40만 고려인(한인)들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었으며,잊혀져가는 우리말·글의 보존,보급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밝혔다. 심사위원인 윤병석 인하대 명예교수는 “박은식선생 등이 1908년에 창간한 ‘해조신문’의 맥을 이어 러시아내 한국인의 대변지 역할을 하고 있는,민족성향의 신문”이라고 평가했다. 정운현기자
  • 박은식선생 中망명시절 抗日 논설 집필

    1일로 작고 76주년을 맞는 백암 박은식선생이 중국망명 시절 상하이(上海)에서 한국역사와 항일구국 논설을 집필한 순한문 신문 ‘사민보(四民報)’가 발굴돼 학계와 독립운동연구가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동안 백암선생의 각종 자료에는 ‘사민보’주필을 역임한 것으로만 전해졌을뿐 신문과 백암의 글이 밝혀지기는 처음이다.백암은 중화민국 10년(1922)10월 상하이에서 중국인들이 창간한 ‘사민보’의주필로 영입되어 많은 글을 썼다. 백암의 저서 중 손꼽히는 ‘이순신전’도 이 신문에 연재되었다.그 중 앞 부문이 한글로 번역돼 국내에 소개되었는데새로 중·후반 내용도 찾게 된 것이다.‘이순신전’은 당초‘사민보’에 연재한 것을 중국 중찡(中京)에서 출범한 한국 광복군기관지 ‘광복’ 제1권에 제6장까지만 실렸으며 해방후 국내에 그대로 소개되었다.이번에 19장까지 전문이 밝혀진 것은 큰 성과다. 이 자료는 신라대학 배용환 교수가 상하이에서 입수하여 대한매일과 동방미디어가 공동추진중인 ‘박은식·양기탁전집편찬위원회’(위원장윤병석 인하대명예교수)에 기증했다. ‘편찬위원회’는 지난 8월 백암의 ‘단조사고(檀祖事攷)’도 발굴한 바 있다.(대한매일 8월15일자 1면) ‘사민보’는상하이 망평(望平)가 261호에서 발행된 순한문 신문으로 백암을 제외하고 사장을 비롯 사원 모두가 중국인이었다.중국역사와 한문에 박식했던 백암은 한문으로 논설을 집필하면서 ‘이순신전’을 연재했다.1922년 11월20일부터 백암의 또다른 아호 ‘백치(白癡)’란 필명으로 이순신전을 연재하고 각종논설을 썼다. ‘이순신전’은 첫날 “고금수군지제일위인(古今水軍之第一偉人)”,“세계철갑군함의 비조,동양유교계 진정영웅”이란소제목을 달고 연재를 시작했다.이 충무공 사후 300여년 후한국이 망하고 중국 역시 위기와 굴욕에 빠진 이유는 국민이 이순신의 이름을 알지만 그 정신을 제대로 알지 못한 때문이라는 내용과 함께 글을 풀어갔다. 백암은 ‘이순신전’을 연재하는 한편 ‘학부(學府=학예)’난에 다양한 논설을 썼다.‘고려선유 율곡 이이 약사(高麗先儒 栗谷 李珥 略史)’,‘민족생존권’,‘민력(民力)추진희망’‘근로계급 향상진전’‘장강(長江)의 쟁점’,‘세계경제추세’,‘군벌세계의 민의기관’,‘견지(堅持)군국주의 일본군벌’,‘노동계 정의의 행동’,‘전후의 민심’,‘세계인도(人道)의 장래’,‘국제노동운동회의’ 등 당시로서는 대단히 진보적인 논설과 해박한 국제문제 특히 일본제국주의에대한 중국인민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내용이 중심을 이룬다. 백암의 ‘사민보’논설과 ‘이순신전’은 연말에 발행될 전집에 원문과 함께 번역문을 실을 예정이다. 김삼웅주필 kimsu@
  • [김삼웅 칼럼] 연해주의 안중근·이상설 유허비

    순국 92주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 이름앞에 옷깃이 여며지는 안중근의사와 조국광복을 보지 못하고 이역에서 서거한 보재(溥齋) 이상설선생의 유허비(遺墟碑)가 연해주에세워졌다.러시아 땅에 처음 세워진 유허비다. 19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자동차로 5시간 거리인 크라스키노 류하노프카(煙秋 下里)마을에서 안의사 유허비가 제막되었다.1909년 안의사 등 동지 12명이 왼쪽손 무명지를 잘라‘대한독립’이라 쓰고 조국독립을 다짐한 유서깊은 지역이다.정작 단지동맹을 했던 장소는 이웃마을인데 그곳은 황무지로 변해 인적이 끊겨서 대로변에 비를 세웠다. 광복회(회장 尹慶彬)와 국가보훈처가 주관하여 해외 독립전쟁의 본거지에 표지석을 세운 의미는 각별하다.광복회가지난 8월 중국에 ‘청산리 항일대첩비’를 세운 데 이어 두번째다. 연해주 한·러 국경지역은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땅에 둥지를 튼 한인의병과 독립운동가들의 활동무대였다.1937년 스탈린이 이 지역 한인을 중앙아시아로 쫓아낸 이후 광대무변한 지역이 대부분 황무지로 변했다.안의사는이곳에서 의병활동을 하다 국적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듣고 뜻을 같이한 우덕순과 권총 한자루씩을 준비하여 하얼빈 역두에서 이토를 처단했다. 안의사의 거사 소식에 신규식(申圭植)은 이렇게 썼다.“푸른하늘 대낮에 벽력소리 진동하니/6대주 많은 사람들 가슴이 뛰놀았다/영웅 한번 성내니 간웅(奸雄)이 거꾸러졌네/독립만세 세번 부르니 우리 조국 살았도다.” 보재선생 유허비는 18일 우스리스크 수이푼강 유역에서 제막되었다.발해의 남경(南京)이었던 이 지역 역시 항일지사들이 조국광복운동을 벌인 곳이다. 보재선생은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이준·이위종을 대동하고 고종황제의 정사(正使)로 파견되었지만 일제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서울에서는보재에게 사형이 선고되었다.귀국을 단념하고 미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1910년 연해주에 이르러 유인석·이범윤 등과 13도의군을 편성하여 일군과 싸우고 권업신문 주필로 활동했다.이어 1914년 이동휘·이동녕 등과 중국·러시아령의동지를 규합, 대한광복군정부를 세워 정통령(正統領)에 취임했다. 1915년 상하이에서 박은식·신규식 등과 조직한 신한혁명단 본부장에 선임되어 조국광복투쟁에 앞장섰던 보재는 1917년 연해주의 니콜니스크(雙城子)에서 눈을 감았다.47세 때이다.보재의 유허비가 세워진 곳은 발해의 옛토성이 바라보이는 수이푼강 언덕이다.발해가 망할 때 수많은 병사와 백성들이 이 강물에서 죽어 발해유민들이 ‘슬픈강’이라 불렀던 것이 수이푼강이란 이름의 사연이라 전한다. 안의사가 순국 직전 아우들에게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곁에 묻어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거던 고국으로 반장해다오”란 유언을 남겼듯이,보재선생도 “동지들은 합심하여 조국광복을 기필코 이룩하라.나는 광복을 못보고 이 세상을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내 몸과 유품은 남김없이 불태우고 그 재도 바다에 버리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고 이동녕·조완구등이 화장하여 재를 강물에 뿌렸다. 안중근의사와 보재선생 유허비 제막식을 지켜보고,극동대학에서 안의사의거 92주년 한·러 국제 학술회의에 참석하고,두만강 건너 북녘땅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한반도의 넓이만한 연해주의 광활한 지역을 종단하면서 이국에서 숨진 순국선열들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안의사의 유해는 아직도 조국으로 반장되지 못하고 남북관계는 이어질 듯 끊어질 듯하고 국내에서는 친일파 후손들이활개친다. 심지어 조선총독부 중추원참의 아들이 국회의원이 되는 세태가 되었다.안의사나 보재선생을 기리는 상은없어도 친일파를 기리는 상은 줄줄이 제정되고 시상되는 조국의 현실에서 동토에 잠든 순국 선열들의 영령 앞에 발걸음이 무겁구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김삼웅 주필 kimsu@
  • [편집자문위원 칼럼] 문제 던졌으면 답도 함께

    뉴스는 일회성 단순보도로 일단 그 기능을 다할 수도 있지만 내용에 따라서는 보완취재하여 후속 기사를 보도하는 것이 적절한 경우도 있다. 지난 11일 행정뉴스면 톱으로 나간 ‘119 구급대 의사가 없다'는 매우 돋보이는 기사였다.문제의식이 뚜렷했고 인용자료도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모든 사고현장에서 가장 우선되는 것이 인명구조라고 볼 때 이러한 제도적 허술함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3년여전에 국무총리실 주관으로 ‘공중보건의 배치방안 협의회'를 구성하여 수차례 회의를 가졌으나 보건복지부의 반발로 무산되었다니 더욱 한심하다.문제점을 지적 보도했으면해결책을 찾아내기 위한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부처 이견 때문이었다면 관련부처를 두루 취재하는 등 개선방안 도출을위해 물고 늘어지는 후속기사를 내보내야 하는 것이다. 이 기사는 당일(11일) 문화방송 라디오 아침프로 ‘손석희의시선집중'에서 각 조간신문 주요기사 안내중 대한매일의 ‘대표'기사로 소개되었다.프로 진행자들도 이를 의외로 받아들이면서 그 비현실성을 개탄하고있었다.지난주에는 굵직한기사거리가 많았다.8·15광복 56주년과 관련된 대통령 경축사와 평양에서 열린 남북공동행사,그리고 고이즈미 일본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인천 국제공항 유휴지 개발로비사건등….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언론사 사주 3명구속'이 가장이목을 집중시킨 사건이었다. 대한매일은 이처럼 다양한 일들을 넉넉하지 못한 지면에 성의껏 반영하느라 매우 노력한 것으로 평가된다. 언론 사주 구속을 계기로 17일부터 20일까지 3회에 걸쳐 연재한 [한국언론 새로나기]기획은 ‘편집권 독립' ‘경영투명성' ‘향후과제'등 그 내용이 구체적이어서 앞으로 우리 언론계가 자리를 바로잡기 위한 과제가 무엇인지를 독자들에게 잘설명해주었다.20일자 5면 머리에 실은 ‘향후과제'는 각계인사들의 코멘트를 모은 것인데,기사 내용을 떠나 발언자들의소속이나 성향이 너무 한쪽으로 쏠린 것 같은 인상이 든다. 특히 이 기사에서 같은 단체(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의 이사장과 사무총장을 함께 넣은 건 모양새가 좋아보이지 않는다. 15일자 1면에 특종보도한 ‘박은식 선생 유저 단조사고 발굴'기사는 우리 고대사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서를 찾아내 이를알렸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옥의 티라 할까,이 기사를 쓴 김삼웅 주필의 기명(記名)이 일반기자들 기명보다 유난히 크다는 것.칼럼이라면 그만한 글자 크기로 이름이 들어가는 게 당연하지만 이 내용은 기사다.주필이라도 이때는 기자가 된다.이름크기를 일반기사의 기명과 같게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일본 왜곡교과서 채택 비율은 학교수를 기준으로 하느냐,전체 학생수를 기준으로 하느냐,또 해당 학생수만을 기준으로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17일자 2면의 ‘…채택률 0.04%'는해당학생수를 기준으로 한 기사인데,‘0.4%'의 오기로 보인다.대한매일에는 왜 ‘바로잡습니다'가 없는지 모르겠다. ▲홍 의 언론지키기 천주교 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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